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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최장 4년 계약 전월세 대책 부작용 충분히 살펴야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가 그제 주택 세입자에게도 계약갱신청구권을 줘 현재 2년이 기본인 전월세 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방향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상가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최대 10년까지 임차할 수 있다. 주택 세입자에 대한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위한 대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정협의에 주택시장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가 참석하지 않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실제 임대차계약 기간 단위가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다고 예고됐던 1989년 서울의 전셋값은 1년 전보다 23.68%가 급등했다. 그 전해 상승률(7.34%)의 3배 수준이다. 제도가 시행된 1990년에도 16.17% 올랐다. 현재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 상한제 시행이 가능한 법안이 마련된 것만으로도 서울 강남의 전셋값과 집값이 오르고 있다. 새 아파트 공급이 위축될 거라는 생각에 전셋값이 한 달 동안 1억원 오른 신축 아파트 단지도 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전세 심리지수는 106으로 7월(104.4)보다 1.6포인트 뛰었다.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움직임에 따라 집주인이 전세계약을 맺을 때 2년이 아닌 4년의 인상분을 반영한 전세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다. 전월세 신고제나 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은 세입자의 부담을 대폭 늘릴 수 있다. 국토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제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2013~2022년) 수정계획’에서 내년 이후 임대주택 등록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계약갱신청구권 및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까닭일 것이다. 전월세 기간이 4년으로 늘어나면 집주인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전세나 월세를 선호해 전세 매물이 줄어들 거다. 재산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나름의 방어책이다. 특히 대출 등을 받아 어렵게 마련한 뒤 이런저런 이유로 입주하지 못한 주택에 대한 거주가 2년 뒤에 가능할지 4년 뒤에 가능할지가 세입자의 의중에 달렸다면 주택시장에 참여하지 않거나 임대주택의 개보수를 등한시할 수 있다. 세입자의 주거 질이 저하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에 앞서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시간강사법 등은 선의로 만든 정책이지만 오히려 약자들에게 피해가 갔다. 시장의 반응을 도외시하면 선한 의지의 정책이 최악의 정책으로 돌변할 수 있다.
  • 정부예산 통계에도 빠진 추가교부금 3년 20조원…지방재정 계산법 틀렸다

    정부예산 통계에도 빠진 추가교부금 3년 20조원…지방재정 계산법 틀렸다

    재정분권은 더 많은 재정권한에만 초점을 맞춘, 중앙에 대항한 지방의 원심력으로 귀결되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 초점을 맞춰 보면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과연 지방재정 현황은 파악이 되고 있는가, 그리고 지방은 준비가 돼 있는가와 지자체의 이해관계는 하나인가라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정부가 재정분권을 강조할 때 늘 강조하는 표현은 “열악한 지방재정”이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열악한지, 열악한 원인은 무엇인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기초지자체 중에서도 시군과 자치구 상황이 전혀 다르다. 현재 정책은 시군이 더 많은 혜택을 보는 쪽으로 설계돼 있다. 또한 지방재정에 가장 부담을 주는 건 낮은 지방세 수입 때문이라기보다는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 등 국가정책에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을 분담하도록 한 게 더 큰 원인이라는 지적에 무게가 쏠린다. 정부가 발표한 지방교부세는 올해 52조원 규모다. 하지만 통계에 누락된 실제 액수는 57조원이라는 게 여영국 정의당 의원의 설명이다. 서울신문이 여 의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기획재정부는 2016년부터 국세수입이 예상보다 많이 걷히면서 다음 연도 4월에 세계잉여금을 정산해 지방교부세(지자체)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청)을 추가 교부했다. 그 액수가 2017년 약 4조원, 2018년 약 6조원, 2019년 약 10조원으로 모두 20조원에 이른다. 문제는 추가 교부한 20조원이 결산서 등 정부예산 통계에 포함도 안 되고 국회 보고도 안 된다는 점이다. 지자체와 교육청은 추가 교부받은 예산이 결산에 포함되기 때문에 받은 기관은 장부에 기입하는 데 나눠 준 기관은 기입하지 않는 셈이다. 지자체로선 올해 4월에 추가 교부받은 지방교부세만 5조 2475억원이나 된다. 이는 재정분권 차원에서 지방소비세율 인상해서 지자체에 가는 돈보다도 규모가 크다. 정부 정책을 위한 기초 통계조차 지방재정 규모를 잘못 계산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 재정분권 방안에 대해 지자체에서도 각기 처지에 따라 입장이 제각각이다. 가령 지방소비세에서 수도권이 출연하는 지역상생발전기금만 해도 인천은 지역상생발전기금의 세율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기도는 지역상생발전기금 세율을 모든 지자체에 동일하게 적용하자고 하고, 강원도는 지역상생발전기금의 비율을 높이자고 맞서고 있다. 19일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방사무이양에 따라 감소하는 균형발전특별회계(균특)을 보전하는 방법을 둘러싼 시도별 입장도 천차만별이다. 지자체 사회복지예산 비중을 보면 지자체 간 재정부담 양상이 잘 드러난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지자체 통합재정개요 자료에서 사회복지예산 비중을 살펴보면 69개 구 평균은 54.8%인 반면 75개 시 평균은 29.9%, 82개 군 평균은 20.7%다. 군과 구 차이가 세 배 가까이 된다. 광주와 부산 자치구 평균은 각각 63.0%와 62.0%인 반면 강원, 전북, 전남, 경북, 경남은 관내 군 평균이 각각 18.4%, 18.6%, 20.8%, 18.9%, 19.0%에 그친다. 경기 의정부(53.0%)와 경북 문경(21.3%), 부산 기장군(44.2%)과 경북 울릉군(9.2%) 등에서 보듯 동일한 시와 군끼리도 격차가 상당하다. 익명을 요구한 A교수는 “지자체에선 언제나 돈이 없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일종의 알리바이”라면서 “특히 군 지역은 돈 쓸 곳을 찾지 못해서 고민”이라고 지적했다. B교수는 “정부에서 재정분권 로드맵에 따라 막대한 예산이 지자체로 가는데 정작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얘기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자체 고위공무원 C씨 역시 “특히 군 지역에서 순세계잉여금이 늘어나는 추세다. 초과 세수에 따른 지방교부세 정산분 증가 등으로 최근 지자체 재정 상황이 많이 호전됐는데 그걸 어디에 쓸지를 찾질 못하는 게 현실이다”고 꼬집었다. 실제 지자체 재정현황을 보면 82개 군 지역은 결산상 잉여금(2017년 기준)이 평균 1575억원이나 된다. 가장 액수가 큰 경북 울진군은 4717억원, 대구 달성군은 3501억원, 울산 울주군은 2970억원이다. 세 곳만 더해도 1조원이 넘는다. 2000억원 이상인 곳도 12개 군이다. 69개 구의 결산상 잉여금 평균(1028억원)과 비교하더라도 규모가 엄청나다. 최근 전국 지자체에선 타워, 대형 동상, 조형물 추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난데없는 이순신 경쟁이 대표적이다. 경남 창원에선 대발령 쉼터(해발 180m)에 33층 건물 높이인 100m짜리 이순신 동상을 세우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예상사업비는 200억원이다. 공교롭게도 경남 통영시 역시 이순신 타워(사업비 300억원) 건립을 검토 중이다. 전남 광양 역시 초대형 이순신 동상을 비롯한 테마거리 사업을 2000억원 규모로 추진 중이다. 전북 무주는 최근 향로산(해발 420m) 정상에 33m 높이로 만화 캐릭터 태권브이 조형물을 설치하려다 예산 낭비 논란 끝에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 최근 지자체 재정 상황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사뭇 다르다. 이명박 정부가 시행한 소득세·법인세·종합부동산세 축소 등 이른바 ‘부자 감세’에 더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지방재정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거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무상보육을 확대하면서도 그 재원의 상당분을 지자체에 떠넘겨 지방재정은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국세수입에서 초과 세수가 발생해 지방교부세 정산분이 늘어나고 2018년부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국고로 편성하는 등 지방재정 부담도 줄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내 옆 그녀가 잘돼야 그 옆 나도 성공하죠 인생 동료 ‘여성 연대’

    내 옆 그녀가 잘돼야 그 옆 나도 성공하죠 인생 동료 ‘여성 연대’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오드리 로드는 말했습니다. “내 침묵은 나를 지켜 준 적이 없다. 당신의 침묵도 당신을 지켜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요. 많이 인용되는 이 경구를 꼭 빌려 쓰고 싶었던 것은 이 세계가 여성들의 목소리로 조금 더 시끄러워지기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은 제법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오래된 침묵을 깨고 여러 사람 앞에 선 용기 있는 여성들 덕분입니다.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꾸며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새로운 장을 여는 이들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려고 합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침묵보단 더 많은 여성 서사이니까요.유리천장과 유리벽이 공고한 조직 내에서 여성들은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과 자주 마주한다. ‘이 조직에서 내가 원하는 목표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조직 내에서 전문성을 쌓아 안정된 경력을 이어 갈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할 수 있나’….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황야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 들 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의 조언 한마디는 그래서 천금같다.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들을 위한 유료 멤버십 커뮤니티’ 빌라선샤인이 빛을 보게 된 계기도 이와 맞닿아 있다. 여자들과 ‘큰일’을 하기 위해 빌라선샤인을 시작한 홍진아(36) 대표는 급변하는 시대에 맞서 분투하고 있는 여성들이 모이면 “서로를 응원하는 동료이자 인생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선배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빌라선샤인은 ‘뉴먼’(New와 Women의 합성어)이라고 불리는 여성 회원들에게 다양한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통해 일터 밖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격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모닝 뉴먼스 클럽’에서는 조직에서 동료와 협업하는 법, 다른 세대의 동료와 어울려 일하는 법 등 조직에서 겪는 문제를 주제별로 나눠 함께 고민한다. 회원들이 직접 모임을 만들고 관심 있는 동료들과 함께 진행하는 ‘뉴먼소셜클럽’도 있다.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30분씩 일기를 쓰고 온라인에서 인증하는 프로젝트부터 매주 토요일 일주일 동안 자신에게 영감을 준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임까지 다양하다.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선샤인 오피스아워’에서는 노무와 법률, 주거 분야 여성 전문가들을 만나 궁금한 점을 물어볼 수도 있다. 지난 5월부터 3개월간 이어진 시즌1을 마무리한 빌라선샤인은 9월부터 시즌2를 이어 가고 있다. 홍 대표가 ‘여성 연대’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계기는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대학원 졸업 후 2011년부터 8년간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연구소, 사회혁신기업가를 발굴·지원하는 글로벌 비영리조직 아쇼카 한국 등에서 기획 및 홍보,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했다. 홍 대표는 일하면서 줄곧 롤모델이 될 만한 여자 선배에 대한 갈증을 느껴 왔다고 한다. 의사를 결정하는 자리에 남자들만 앉아 있는 것도 이상했다고. ‘지속가능한 일’에 대한 해답을 직접 찾고 싶었던 홍 대표는 지난해 일을 그만두고 창업 준비를 했다. 소셜벤처 투자사의 투자를 받아 지난 3월 빌라선샤인의 문을 연 홍 대표는 여성들을 모으는 일부터 시작했다.-일터 밖 여성들을 ‘연결’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조직에서 여성의 경력이 (일정 정도 이상) 쌓이지 않는 건 사회 구조적 문제 혹은 전통적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비롯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여성들은 ‘내가 부족해서’ , ‘내가 버텨내지 못해서’라고 생각해요. 조직 내에 문제가 있어도 남성들에 비해 대표성을 띠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지도 못하죠. 개인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다가 조직에서 사라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성들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성들이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판을 만들면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주체가 되어 문제를 풀 수 있잖아요.” -빌라선샤인이 특히 ‘일하는 밀레니얼 여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제가 밀레니얼 여성이기도 하고요(웃음). 밀레니얼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 많은데 사회에서 아직 주목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저희 세대는 이전 세대들이 겪지 않은 생애주기를 겪고 있어요. 예전에는 학교를 졸업하면 일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은퇴해서 그 이후의 삶을 설계했죠. 지금은 좀 다르죠. 1인 가구 수가 급증하고 있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결혼이 아닌 다른 방식의 가족 형태를 선택하기도 하고요. 밀레니얼들이 경제 주체로서 세상을 살아나갈 때 겪게 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물꼬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밀레니얼 여성만 빌라선샤인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150여명의 시즌2 회원 중 대부분은 20~30대이지만 40대도 6%나 된다. 밀레니얼 세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나 그들이 지닌 가치관과 취향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시즌2에 참여한 사람이 시즌1(80여명)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한 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싶은 여성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홍 대표는 “일하면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 입사 직후부터 경력 개발과 향후 진로를 고민하는 여성들, 유명인이 아닌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자극을 받길 원하는 여성들의 수요가 반영된 것 같다”고 했다. -일터 밖에서 인생의 동료를 만나게 된 회원들의 반응이 남다를 것 같아요. “자신처럼 고민을 지닌 여성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된다고 해요. 사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라 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서로 가치관이 다를 수도 있고요. 빌라선샤인에서는 가치나 성향, 목표가 다를 수는 있지만 지향점을 향해 나가는 과정에 대해 공감하는 여성들이 존재하고, 내 고민을 털어놓는 행위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의 나’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나’가 이해를 받으면서 주저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좋다는 말을 많이 하세요.” -최근 젊은 여성들을 겨냥한 멤버십 커뮤니티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는데 빌라선샤인의 차별점을 꼽자면요. “전문성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밀레니얼 전문가를 발굴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콘텐츠 기획, 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사람들을 빌라선샤인 내외부에서 발굴하는 게 저희의 큰 관심사예요. 현재 20여명을 모았는데 곧 100명까지 늘어날 것 같아요. 주변에서 때때로 ‘20~30대 기고가나 무대에서 이야기를 들려줄 연사를 찾기 힘들다’고 하는데 빌라선샤인을 통해 더 많은 밀레니얼 여성이 자신만의 전문성을 발굴하면서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홍 대표가 여성들을 잇는 장을 마련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3월부터 1년 1개월 동안 민주주의 플랫폼 스타트업 ‘빠띠’와 조직문화를 연구하는 ‘진저티 프로젝트’에서 동시에 일하는 ‘N잡’ 실험을 했던 그는 2017년 10월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었다. 기획자가 되길 꿈꾸는 20대 중반 여성들이 5~10년차 기획자 선배들을 만나 자신의 일과 삶을 기획하는 연습을 해 보는 ‘진로 탐색 학교’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했던 기획안을 선배들과의 대화를 통해 구체화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는 이 교육·네트워크 프로그램은 수강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맥락이 다를지 모르지만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 역시 빌라선샤인처럼 여성들을 서로 연결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아 보여요. “20~30대 여성이 자기 일의 전문성을 정리하거나 그걸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점이 승진이나 일을 지속하는 데 부정적인 요소가 되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여전하지만 2017~2018년 크고 작은 규모의 콘퍼런스가 많이 열렸어요. 무대에 서는 연사는 대부분 남성이고 40대 중반이더라고요. 여성 연사가 있어도 소수였고 그들은 이미 성공한 경우였죠. 그 모습을 보면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자 여성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여성들이 일하면서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종종 마주치는데 서로에게 동료가 돼 주면 덜 외롭겠다는 생각에서 프로젝트 이름도 그렇게 붙였죠.” -여전히 운동장이 기울어진 사업 환경에서 여성 사업가로서 느끼는 어려움도 많을 텐데요. “저희는 사회문제를 비즈니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셜벤처예요. 밀레니얼 여성들이 지속가능한 일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판을 만드는 것이 저희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예요.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남자죠. 자본시장이 대부분 그렇지만 큰 돈을 투자하는 건 남성이고, 그걸 심사하는 심사역도 대부분 남자인 상황에서 여성 창업가는 자신이 하려는 비즈니스의 필요성을 자세하게 설명해야 해요. 여성끼리 이야기하면 ‘맞아, 그런 문제가 있지’ 하고 공감할 만한 부분도 남성들 앞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해야 돼요. 개중에는 ‘여성들끼리 모이는 커뮤니티에 누가 가냐’, ‘남성과 여성이 같이 있어야만 여성들이 돈을 쓸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기울어진 판이 조금이나마 제자리를 찾으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의사결정권자 자리에 여성들이 더 많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조성이 된 게 아니어서 시스템적으로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 100대 기업 여성 임원 비율이 3%라고 해요. 3%에서 어떻게 10%, 20%가 될 수 있을까요. 자연적으로 숫자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무조건 기계적으로 맞추라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보장하라는 거예요. 현재로선 의사결정권자 자리에 올라가는 여성도 적고, 그 자리에 가기 위해 교육받은 여성들도 거의 없어요. 늘 답보 상태에 머무는 거죠.” -빌라선샤인의 향후 계획이 궁금해요.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빌라선샤인 안에서 서로를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서울에서만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데 대전, 부산 등 여러 지역에서도 빌라선샤인 서비스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아요. 우선 온라인상에서 전국의 뉴먼들을 모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려고 해요. 오프라인에서 하는 특강이나 모임들을 온라인화시켜 웨비나(webinar·인터넷상의 세미나) 형식처럼 조금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홍 대표는 일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로 두 가지를 꼽았다. ‘나의 성공을 위해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는 것’과 ‘내가 잘돼야 내 옆에 있는 여성들이 잘되고, 내 옆에 있는 여성들이 잘돼야 내가 잘된다’는 것이다. ‘연결’과 ‘연대’를 중요하게 여기는 밀레니얼답게 그는 많은 여성들이 빌라선샤인 안에서 자신만의 정보원이자 동업자를 찾기 바란다고 했다. 홍 대표의 단단한 목소리만큼 “여성들이 혼자 외롭게 있다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게 빌라선샤인의 미션”이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김균미 칼럼] ‘한미 동맹 셈법’, 비용에만 치우쳐선 곤란

    [김균미 칼럼] ‘한미 동맹 셈법’, 비용에만 치우쳐선 곤란

    추석 연휴도, 고용 사정이 대폭 개선됐다는 정부 발표도,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는 기사도 사람들의 관심을 조국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돌려놓지 못했다. 언론 보도도, 사람들의 사적인 모임도 결론은 언제나 ‘기승전조국’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5일 전격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마저 ‘조국 블랙홀’에 빠지는 것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다. 막판에 결정된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최근 한두 달 동안 집중 제기된 한미동맹 ‘균열’ 우려를 불식시키고 동맹의 공고함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물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와 한미 공조도 주요 의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에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평양 초청에 시기상조라며 선을 긋고, 실무협상 일정도 아직까지 잡히지 않은 데다 북한 외무상이 총회에 불참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한미 간 공조를 재확인하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북한보다는 한미동맹 이슈가 주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이달 말 시작되는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걱정이다. 양국이 검토하는 분담금 규모뿐 아니라 셈법이 워낙 차이가 나 미국 정부의 의중을 최고위층에서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방위비분담금 증액 문제 말고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갱신 거부 결정 이후 한미일 관계, 호르무즈해협 호위 참여 범위와 방안, 전시작전권 전환 이후 유엔사 역할 등 다뤄야 할 현안이 쌓여 있다. 현재까지는 미국 측이 한국에 연간 50억 달러(약 6조원) 규모의 청구서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략자산 전개 비용과 연합훈련 비용 등이 포함된 액수다. 올해 한국이 부담하는 1조 389억원보다 5배가량 많다. 액수도 액수지만, 미국은 지난해부터 치밀하게 협상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과연 얼마나 대비가 돼 있는지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이번 협상에 임하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달라진 대표단 구성이다. 그동안 10차례 협상을 이끌어 온 국방부와 외교부가 빠지고 기획재정부 출신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수석대표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미국과의 국방·안보협상 경험이 없는 기재부 출신이 전면에 나서는 것에 대해 우려의 소리가 적지 않다. 미국의 전략이 워낙 복잡해져 외교부 차원에서 대응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설명이 외교부에 오히려 더 큰 부담이 아닐까. 협상단의 일원으로 방위비 협상이 동맹이나 안보 입장보다 비용 문제로만 흘러 한미 관계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 역할이라도 제대로 하길 바란다. 한국도 미국의 달라진 방위비분담금 셈법에 대응해 조기 반환을 추진하기로 한 주한미군 기지 오염 정화비용과 토지임대료, 전기요금, 카투사(한국 주둔 미 육군에 파견 근무하는 한국 군인) 인건비 등을 항목별로 제시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동맹을 철저히 비용으로 인식하는 트럼프를 상대로 통상과 경제 전문가들을 안보 협상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될지는 따져 봐야 한다. 그동안 선거 공약은 거의 다 이행해 왔다는 트럼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은 트럼프의 속내와 협상의 여지를 탐색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회담 결과에 따라 ‘동맹비용’에 대한 한국의 협상 전략과 마지노선이 결정될 것이다. 트럼프의 깜짝 카드에도 대비해야 한다. 협상단도 뒤늦게 꾸려져 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 협상이 장기화하면서 미국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면 반미감정이 높아질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이 실시되고, 미국에서는 내년 11월 대선이 실시된다. 양쪽 모두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에서의 승리보다 국익만 쳐다보고 협상 전략과 트럼프 리스크에 대비한 외교 전략을 짤 때다. 외교수장과 청와대의 외교안보 고위 관계자가 감정싸움이나 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미중 간의 무역전쟁과 중동 정정 불안, 세계 경기 둔화 우려 등 어느 것 하나 간단하지 않은데, 한국은 조 장관 문제에 빠져 관심도, 여력도 없다. 한숨만 나온다.
  • 기후변화에 귀 막은 트럼프, 배기가스 기준 놓고 캘리포니아와 맞대결

    기후변화에 귀 막은 트럼프, 배기가스 기준 놓고 캘리포니아와 맞대결

    미국을 방문 중인 스웨덴의 10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미 의회에서 쓴소리를 날리는 순간에도 기후 변화에 귀 막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독단적인 행보는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구온난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놓고 캘리포니아주를 상대로 한 판 대결을 벌일 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시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 환경보호청(EPA)이 이튿날 오후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연방정부와 별도로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한 권한을 공식적으로 취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주는 기후 변화에 맞서려고 연방정부보다 더 엄격한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갖고 있다.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다른 13개 주도 연방정부보다 높은 기준을 마련해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법원까지도 갈 수 있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리차드 레베스 뉴욕대 환경법 교수는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엄청나게 큰 일”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어떤 행정부도 주 정부가 자신들의 대기질을 개선하기 위해 규제를 도입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에 대해 회의적인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는 물론 에너지 회사의 메탄가스 배출 규제도 완화했다. 앤드루 윌러 EPA 청장은 이에 대해 17일 연설에서 “우리는 연방주의와 주 정부의 역할에 대해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주 정부가 나라의 기준을 명령하도록 하는 것이 연방주의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여파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대법원이 주 정부의 배출 가스 기준 권한을 영구적으로 취소하면 총기 규제나 낙태권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슈까지 논의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이 주 정부의 손을 들어준다면 미국 자동차 시장의 3분의1에 달하는 13개 주만 엄격한 배출 기준을 갖게 되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에겐 악몽일 수 있다.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주지사가 이끄는 캘리포니아는 그간 이민과 환경 정책 등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반목해왔다. 주는 독특한 지형과 한때 남부를 뒤덮었던 짙은 스모그 등 심각한 대기 오렴 전력 때문에 역사적으로 좀 더 엄격한 배출가스 기준을 허용받아왔다.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 변화 대책을 마련해왔던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 대한 정치적 복수를 위해 지구온난화와 맞서 싸워야할 의무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한편 17일 미 상원과 만난 툰베리는 자신을 비롯한 10대 환경운동가를 칭찬하는 의원들을 향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건 알겠지만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지 않다”며 일침을 날렸다. 그는 발언을 요구하는 의원들을 향해 “칭찬은 넣어둬라. 우리는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우리가 얼마나 영감을 주는지에 대해 말하려고 우리를 초대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툰베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과학자와 같은 전문가들을 초청하라”면서 기후 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에 귀 기울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여기는 남미] 미모의 베네수엘라 여대생, 정보부에 끌려간 이유

    [여기는 남미] 미모의 베네수엘라 여대생, 정보부에 끌려간 이유

    베네수엘라 정부가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는 현직 기자의 폭로가 나왔다. 베네수엘라의 여기자 세바스티아나 바라에스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수감돼 있는 장교의 딸이 출국을 하려다 이유도 없이 연행돼 실종됐다"고 밝혔다. 실종된 여성은 로스안데스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있는 여대생 미셸 스테파니 로페스. 반역 혐의로 수감된 베네수엘라 육군대령 라몬 알리 바스케스의 딸이다. 바라에스는 "로페스가 출국수속을 마치고 여권을 챙기고 있을 때 갑자기 정보부 요원들이 출현, 그녀를 데리고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로페스가 라스로마스에 있는 정보부 시설에 감금된 것으로 보인다"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정보부는 불법 연행과 감금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라에스는 "이건 명백히 국가가 저지르고 있는 납치사건"이라고 규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로페스는 현재 실종자 경찰에 신고된 상태다. 로페스가 정보부에 끌려간 건 순전히 가족관계 때문이라는 게 이 사건을 폭로한 여기자 바라에스의 주장이다. 바라에스는 "로페스가 아버지와 관계를 끊은 지 오래"라면서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두 사람 간에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반역자의 친딸이라는 이유로 로페스가 끌려갔다는 것이다. 로페스의 아버지인 바스케스 대령은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지난 4월30일 체포됐다. 그는 반역 혐의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로페스처럼 선량한 민간인이 무단으로 치단기관이나 정보 당국에 끌려가는 일은 올해 들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민간단체인 '형법포럼'에 따르면 1~8월 베네수엘라에서 체포영장 없이 치안기관에 의해 체포된 사람은 최소한 2169명에 이른다. 체포영장 발부라는 형식은 갖췄지만 정치적 이유로 체포된 사람은 476명이다. 이 가운데 107명은 군인이다. 형법포럼은 "정권 유지를 위해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가 정치 탄압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미셸 스테파니 로페스 (출처=페이스북)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학종, 금수저 전형 벗어났지만 신뢰도 낮아… 과학적 평가 기준 필요”

    “학종, 금수저 전형 벗어났지만 신뢰도 낮아… 과학적 평가 기준 필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딸 입시 논란 이후 대학입시 제도와 고교 서열화에 대한 개혁 의지를 강조하면서 대입이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그중 학생부종합전형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시· 수시 비율 조정이 아닌 학종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언급하면서 대입 논쟁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교육부의 대입 개편 공론화 과정에서 벌어진 ‘정시vs 수시’ 논쟁 이후 1년 만이다. 조 장관 딸 논란으로 다시 단두대에 오른 학종을 교육계 전문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서울신문은 공교육과 사교육, 학부모 입장을 대변할 세 사람을 지난 11일 서울신문 편집국에 모아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임병욱 인창고 교장, 박은진 전국혁신학교학부모네트워크 대표,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가 각각의 입장에서 바라본 학종의 현실과 개선 방향을 놓고 여러 의견을 쏟아냈다.임 교장과 박 대표는 학종에 대체적으로 긍정적 입장을 보였지만 현재 신뢰도가 낮다는 점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임 대표는 사교육계 입장에서 학종의 장점과 한계를 분석했다. 서울의 사립고교인 인창고는 올해 졸업한 학생 85%가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을 만큼 다양성을 중심으로 한 진로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 대표는 3년 전 자녀가 대입을 치른 학부모이기도 하다.-현재 학종에 대한 신뢰도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임병욱 “낮다. 대학마다 전형 용어부터 평가 기준이 다 다르고, 평가도 대학 내부적으로 이뤄지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신뢰도를 얻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박은진 “정시 확대에 부정적인 학부모들도 학종의 신뢰도가 낮다는 데는 동의한다. 대학이 학생을 (학종으로) 뽑아도 어떤 기준으로 선발됐는지 모르니 신뢰도가 낮은 것 같다.” 임성호 “(학종으로 대학 진학 가능성이 높은) 내신 2등급 아이들에게는 신뢰도가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신뢰도가 낮다. 서울 시내 상위 10개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 외에 나머지 학생들에게 학종은 ‘나와 상관 없는 전형’ 이다.” -학종은 ‘금수저 전형’인가. 임병욱 “입학사정관제로 시행되던 2007~2010년대 초반까지는 합격 여부에 부모의 영향력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학생부나 자기소개서에 부모 신분을 쓸 수 없고 지난해부터 면접관이 학생의 배경을 알 수 없는 블라인드 면접이 시행되는 지금은 금수저 전형이란 말은 맞지 않는다.” 박은진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면 정시는 다이아몬드수저 전형이다. 사회 계급에 따른 학력 편차는 수능이 더 심각하다. 학종의 신뢰도는 문제이지만 학교 생활에 충실한 학생을 뽑아 공교육을 정상화하려는 취지는 살려야 한다.” 임성호 “학종 초기에 비해 나아진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지금도 고1 1학기를 마친 학생들은 학생부 컨설팅을 위해, 고3 1학기를 마친 학생들은 학생부를 어떻게 수정할지 묻기 위해 학원을 찾는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학부모가 학생부 작성에 개입할 여지가 있고, 실제 조력을 받는다는 것이 학종의 공정성을 가로막는 요소라고 본다.” -학종의 평가 과정이 얼마나 불투명하다고 보는지. 임병욱 “2012~2014년 대학에서 입학사정관들과 학종 서류평가를 맡은 적이 있다. 다양한 평가자들이 서로의 평가를 보지 못하고 최종 평가 결과를 취합해 보면 평가자 150여명의 학생별 평가가 거의 일치한다. 대학들의 평가 기준이 그만큼 구체적이고 정확하다. 학종에 대한 대학들의 평가는 생각보다 더 공정하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종의 공정성에 대해 신뢰도를 더 가져도 된다.” 박은진 “학교에서도 교사 간 크로스 체크를 하며 학생부의 공정성을 높인다. 불투명한 부분도 있겠지만 평가 시스템은 대체로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임성호 “학종 평가 시스템이 공정하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대학에서 떨어진 학생에게 왜 떨어졌는지, 합격생은 어떤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알 길이 없다. 현재 내신 등급을 올리기 위해 전학 가는 학생은 있어도 학종 진학을 목표로 전학하는 학생은 없다는 것이 학종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도를 말해 준다.” -일부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특정 학생들에게 ‘몰아주기’를 한다는 논란도 있는데 임병욱 “정말 일부 학교의 이야기다. 요즘 그런 식으로 특정 학생에게 상을 몰아주면 민원 등으로 바로 문제가 된다. 모든 교내 경시 대회는 시험 범위가 다 예고되고 공정하게 이뤄진다. 일부 한두 학교의 부정이 전체 사례처럼 비춰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박은진 “학종이 없던 과거에도 각 학교에서 상위권 아이들 모아 특별 수업을 하거나 특별 학습 공간을 마련해 주는 등 ‘밀어주기’는 언제나 있어 왔다. 학종이라서 밀어주기가 생긴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임성호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에 몇 명을 보냈는지로 경쟁하는 상황이 밀어주기가 없어도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 같다.” 임병욱 “매년 (인창고) 교내 밴드 경연대회가 있는데 1~5등급 아이들이 뭉친 밴드에서 5등급 아이가 1등급 아이에게 악기를 가르쳐 우승을 했다. 요즘에는 밀어주기가 아니라 이런 협력 수상 사례가 오히려 학종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학종이 더 공정해지고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을까. 임병욱 “대부분 무기 계약직인 입학사정관들의 신분을 국가 정책을 통해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평가가 더 과학적으로 이뤄지고 신뢰도 쌓인다.” 박은진 “학종에서 떨어지면 대학이 그 이유를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실제 합격한 학생들의 사례도 보여 주면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학종에 대한 신뢰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임성호 “평가 결과에 대한 이유를 공개하면 학생들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학종 취지인 학교 생활에 충실한 잠재력 있는 인재 선발을 이루려면 대학에 완전한 학생 선발 자율권을 줘야 한다.” -학종의 공정성 강화가 문 대통령이 언급한 고교 서열화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지. 임병욱 “전국 상위 0.01% 학생들이 모이는 전국 단위 자사고에서 서울대에 많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학종이 공정해져도 이미 서열화된 고교 순위를 극복하기는 힘들 것이다.” 임성호 “학종의 공정성과 고교 서열화는 별개다. 학종은 2007년 입학사정관제로 도입된 이후 계속 공정성이 강화돼 왔다. 하지만 서울대 합격생 자료를 보면 상위 학교들의 합격생 수가 더 많아지는 등 오히려 고교 서열화는 더 공고해졌다. 현재처럼 학종에서 금지 사항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고교 간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본다.” 박은진 “저는 생각이 다르다. 학종이 취지에 맞게 안착된다면 서열이 낮은 학교의 학생들도 명문대 입학률이 높아져 고교 서열화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0학년도 대입에서 정시 비중이 30%로 늘어난다. 적정한 정시 비율은 얼마로 보는지. 임병욱 “정시 비중은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맞다. 하지만 30%는 많다고 본다.” 박은진 “임 선생님 의견에 동의한다. 정시가 확대되면 공교육은 붕괴된다.” 임성호 “현재 학종 논란은 과도하게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 업계에서 보면 실제 학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 1학년 때 학종을 준비하던 아이들도 내신 등급이 내려가면 학종을 포기하고 정시에 매달린다. 정시나 수시, 학종 비율은 사회 논의로 결정할게 아니라 실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각 전형을 준비하는지 등을 조사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정시 30% 비율은 준비하는 학생에 비해 적다고 본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co.kr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80년대 전화보급률 낮아 신고 홍보… 노약자는 작은 불에도 무조건 대피

    80년대 전화보급률 낮아 신고 홍보… 노약자는 작은 불에도 무조건 대피

    현재 휴대전화 보급에 신고 쉬워져 가연성 자재 건축에 화재 확산 빨라소방청이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불나면 대피먼저’라는 슬로건을 새롭게 내걸었다. ‘어떠한 경우든 대피만 하면 되는 것인지’, ‘왜 대피를 강조하는 것인지’ 등의 궁금증을 소방청 대변인실 소속 김영진 소방경의 도움을 얻어 해결해 봤다. -왜 119 신고가 아니라 대피가 먼저인가. “1980년 당시 유선전화 보급률은 7.2%에 불과했다. 전화가 없어 화재신고가 늦어졌다. 119 신고 홍보가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휴대전화를 다 소유하고 있고 신고가 매우 쉬워졌다. 그리고 최근 가연성 자재를 사용한 건축물이 많아져 119에 신고하는 동안 불이 빠르게 확산되거나 독성 가스가 발생할 수 있다. 다만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불은 보이지 않고 비상벨만 울리고 있다면 119 신고를 먼저 해도 된다.” -소화기 비치운동이 있었는데 화재 진압도 하지 말아야 하나. “‘대피먼저’는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게 아니다. 소화기 한 대면 쉽게 끌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집을 예로 들면 휴지통에 불이 붙는 등 초기 단계일 경우다. 이럴 때는 진압이 가능하다. 물론 안 되겠다 싶을 때는 초기여도 빨리 포기하고 대피해야 한다.” -그래도 궁금하다. 119 신고하고 화재 진압 시도하다가 대피하면 안 되나. “예로 든 상황은 아주 이상적인 경우다. 소방관이 아니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동시에 몇 가지를 할 수 없다. ‘대피먼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바에 우선은 대피하라는 메시지다. 이후에 안전한 곳에서 119 신고를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다시 묻고 싶다. 언제나 불이 나면 대피먼저 하면 되나. “앞에 말했듯이 그렇지는 않다. ‘대피먼저’는 행동의 원칙이다. 상황에 따라서 불을 먼저 끄거나 신고를 할 수도 있다. 다만 소화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거나 어린이나 노인 등 재난약자는 무조건 대피 먼저 하는 것이 좋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아프리카 돼지열병 발생···파주에서 국내 첫 사례

    아프리카 돼지열병 발생···파주에서 국내 첫 사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경기도는 17일 오전 6시 30분쯤 경기 파주시 연다산동에 있는 한 돼지사육 농장을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농가로 확진했다고 밝혔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치료제나 백신이 아직 개발돼 있지 않아, 살처분외 다른 대처 방법이 없어 국내 양돈산업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이날 경기도 관계자에 따르면 ASF의심축은 어제 오후 8시쯤 북한과 가까운 파주시 연다산동에 한 돼지사육농가에서 발생했다, 농장주는 돼지가 사료를 잘 먹지 않고 비장이 커지는 등 이상증세를 보여 방역당국에 신고했다. 이 농장에서는 2500두가 사육중이었으며, 반경 3km이내 지역에는 돼지사육농가가 없다. 현재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다. 방역당국은 감염경로 등 역학조사를 진행중이다. 이 농가는 북한 접경지역과 직선 10km 거리에 있다. 북한에서는 지난 5월, 중국에서는 지난 4월 발생해 국내 전파는 시간문제 였다. 이재욱 농식품부 차관이 이날 오전 9시 이와 관련한 내용으로 브리핑을 실시할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고대 이집트인들도 즐겼던 맥주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고대 이집트인들도 즐겼던 맥주

    맥주는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일상적인 음료가 된 것 같다. 한국에서의 연간 1인당 맥주 소비량이 2018년에는 53리터에 이르렀다는 통계도 있다. 소비량이 100리터가 넘는 체코나 독일, 폴란드 같은 세계 최대 맥주 소비 국가들과는 여전히 차이가 있는 양이지만, 한국에서는 소주나 전통주 막걸리 등이 계속해서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소비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집트는 이 음료가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은 곳들 가운데 하나다. 이집트에서는 선왕조 시대(기원전 4000~3100년경)부터 히에라콘폴리스 등지에서 양조의 흔적이 확인된다. 양조 작업에 사용됐던 것으로 여겨지는 원뿔 모양의 용기들이 발견됐고, 용기 내부에 양조에 쓰인 곡물의 잔해가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맥주는 고대 이집트어로 ‘헨케트’라고 하는데, 이 맥주라는 단어가 문자 기록으로 처음 확인되는 것은 고왕국 5왕조 시대(기원전 2494~2345년경)다. 이후 중왕국 시대(기원전 2055~1650년경)가 되면 양조 작업을 묘사한 나무 모형이 부장품으로 사용되거나, 비슷한 주제의 무덤 벽화가 그려지게 된다. 맥주는 이집트에서 빵과 더불어 주식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이집트의 맥주는 제빵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산물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맥주는 보리나 에머밀을 반죽해 살짝 구운 뒤 갈아서 물을 부어 자연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아마 현대의 맥주와는 달리 탁한 빛깔을 띤 걸쭉한 상태였을 것이다. 필수적인 음식으로 여겨졌던 만큼 맥주는 급여로 제공되기도 했다. 신왕국 시대(기원전 1550~1069년경)에 파라오의 무덤을 만들던 장인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 유적인 데이르엘메디나에서는 관련 기록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중왕국 시대의 서사문학인 ‘시누헤 이야기’에는 오랜 망명 생활 끝에 이집트로 귀환한 시누헤를 환영하기 위해 맥주가 준비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처럼 맥주는 축제나 연회 같은 특별한 이벤트에서는 다량으로 소비됐던 것 같다. 신왕국 시대 무덤 벽화 속의 연회 장면에는 연회 참석자들이 지나친 음주 끝에 토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아니의 격언’에도 “맥주 마시는 것을 너무 탐닉하지 말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그만큼 맥주는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일상적이면서도 큰 즐거움을 주는 음료였다. 맥주는 살아 있는 동안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필요한 식품으로 여겨졌다. 널리 관용적으로 사용되던 망자를 위한 주문에서도 맥주는 필수적인 제물로 등장하는데 주문은 이렇다. “제두의 주인이자 위대한 신, 아비도스의 주인인 오시리스에게 왕이 드리는 봉헌물. 그가 드리는 음성 봉헌. 빵과 맥주, 소와 가금류, 알라바스터와 아마포, 그리고 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훌륭하고 순수한 모든 것들.”현대의 이집트는 이슬람교도들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나라에서는 의외로 꽤 괜찮은 맥주가 생산된다.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맥주를 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아마 이집트가 오래도록 서구 사회와 교류를 해 왔고, 매년 수백만명의 여행객이 방문하는 관광 대국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이집트의 맥주는 ‘룩소르’나 ‘사카라’ 같은 유적지들의 지명이 이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스텔라’다. 이 맥주는 벨기에인들이 19세기 말 이집트에 세운 양조 회사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수천년 전에 이집트 땅에서 탄생한 맥주가 세계를 돌고 돌아서 100여년 전에 다시 이집트로 돌아온 셈이다. 이후 이 맥주 회사는 국영화됐다가 현재는 네덜란드계의 맥주 브랜드인 하이네켄이 소유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집트산 맥주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브랜드가 무엇이 됐건 오늘 저녁에는 다소 시원해진 저녁 바람과 함께 맥주 한잔의 여유를 즐겨 보는 것이 어떨지. 우리들과 같이 맥주 한잔의 여유에 무척이나 즐거워했을 수천년 전의 고대 이집트인들을 추억하며.
  •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포기한 책들의 성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포기한 책들의 성

    독자들이 절대 만날 수 없는 책이 있다. 모든 원고는 편집자의 손을 거치는데, 이때 어떤 이유에서인지 통과 못하는 원고들이 생겨난다. 내용과 수준 미달의 글들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수준급인 데다 주제가 기존 책들과 겹치지 않으며, 어떤 이들이 간절히 원해 왔을 법한 책들을 말한다. 100여년 전 프랑스의 고고학자 P는 자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등에 업긴 했지만 아시아 고고 발굴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고, 그의 업적은 지금도 기릴 만하다. 한 성실한 학자가 그의 책을 번역해 투고했고, 우리는 그 책을 진지하게 검토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최소한의 독자를 확보하는 데 자신이 없어서였다. 일본 학계의 한 거두는 에도시대 사람들이 독서에 유난히 몰두했던 걸 주제 삼아 흥미로운 책을 펴냈다. 일본어 고어를 옮기기 까다로웠을 텐데 번역은 좋았고, ‘스스로 배우는 독자’의 탄생은 되짚어 볼 만한 주제였다. 그러나 한 실력 있는 소장학자가 옮긴 이 원고는 안타깝게도 편집자의 결단에서 비껴났다. 에도의 독자들이 열성적으로 읽었던 건 유학 경전인데, 이걸로 지금 우리 독자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이 외에도 최근 두어 달 사이에 제안받은 원고 중 아일랜드 역사를 다룬 것은 한국 현실이랑 너무 멀어서, 박물관 관련 원고는 전문적이어서, 프랑스 이론가 책은 이론이 점점 죽어 가는 독서 시장과 동떨어져서 과감히 배제됐다. 그 훌륭한 책들이 어쩌면 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한편 죄책감을 불러일으켰고, 다른 한편 판단 오류일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자아냈다. 출간되지 못한 책은 누구 탓이 클까. 저자와 번역자는 편집자를 설득하려 하고, 편집자는 독자의 심기와 상태를 살핀다. 그러면 최종 책임은 독자에게로 향하게 된다. 왜 독자들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변덕까지 심해 편집자가 양질의 책을 포기하게 만드는 걸까. 하지만 독자에게 화살을 돌리는 이 질문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은 언제나 생업과의 사투 속에서 책 읽을 시간을 어렵게 마련하는 존재이고, 책 읽는 습관도 스스로 길러야 할 만큼 큰 임무를 자기에게 부과하고 있으니 말이다. 편집자가 중간 역할을 잘 못하는 것인가. 그렇기도, 아니기도 하다. 그들이 때로 눈앞의 이익에 함몰되는 것은 사실이다. 겉으론 뚝심 있을 것 같지만 많은 경우 영향력 있는 방송에 매달리고, 대중추수주의자처럼 행동하곤 한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편집자 ‘이’와 ‘고’만 봐도 웬만한 잔바람에는 옷깃도 여미지 않은 채 제 갈 길을 간다. 그리고 그들이 이뤄 내는 일들은 빛나진 않더라도 지난 세월 한국 사회가 대충 가려 놓고 지나쳤던 구멍들을 성실히 메우고 있다. 종합하자면 들뜨고 휙휙 바뀌는 시장, 좋은 책은 안 팔린다는 편집자들의 내재화된 체념, 두텁지 않은 독자층이 양서들의 탄생을 가로막는다. 그러면 성처럼 쌓인 외면된 글들은 무얼 말하는가. 어쩌면 이론을 공부하지 않음으로써 공부의 얕음을, 먼 타자의 역사를 살펴보지 않음으로써 코즈모폴리턴의 사고감각을 놓칠 우려를, 세부 학문에서 쌓아 온 역사에 관심 갖지 않음으로써 디테일에 대한 감각의 결여를, 비인기 작가에게 관심을 갖지 않음으로써 많은 작가가 무덤 속으로 들어가게 됨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더 깊이 몰입하고 추구할 생각이 없다면 소비와 향락의 차원에서 독서를 해도 괜찮을 것이다. 개인의 선택 문제이고 탓할 수 없다. 하지만 편집자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독자는 표면적 욕구 말고, 깊은 욕구를 캐내 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자들은 어차피 편집자가 내놓은 책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편집자는 좀더 과감해져도 된다. 어렵다고 집어 들길 그만두는 독자들은 아마 삶에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잠재 욕구를 읽어 달라는 독자를 향해 한 번도 교양으로 완전히 무장된 국가에서 살아 보지 못했으니 좋은 책을 많이 내달라는 독자에게도 자주 시선을 던지는 건 어떨까.
  • “DLF 계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시급…징벌적 손해배상·집단소송제 도입해야”

    “DLF 계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시급…징벌적 손해배상·집단소송제 도입해야”

    원금 손실 DLF 19일부터 만기 도래 연계된 금리 올라 손실률 일부 줄어해외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펀드(DLF)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면서 금융 소비자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집단소송제, 소송중지제도 등을 담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의 국회 통과가 탄력을 받을지 주목된다. 16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과 ‘달빛포럼’은 ‘문재인 정부의 금융소비자보호 혁신 방안’을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금융소비자들은 금융사보다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만큼 금소법으로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국회에 정부안을 포함한 5개 금소법이 계류 중이다. 조혜진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금융 상품의 판매와 소비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정책과 법체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수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령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가 특히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김기한 금융위원회 소비자정책과장도 “금소법이 있다면 징벌적 손해 배상이 가능해 금융사는 상품 판매에 더 조심하고, 소비자는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 등을) 입증하는 데 자유롭게 되며, 금융 당국은 판매중지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후 구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전문성을 높여 법원도 인정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금소법 등은) 금융회사가 우회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명시적 규준보다 포괄적 규준이 돼야 소비자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짚었다. 조상욱 글로벌금융학회 사무국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피해구제 제도를 상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금리 연계 DLF의 첫 번째 만기는 오는 19일 돌아온다. 우리은행의 전체 DLF 잔액 1236억원 가운데 만기가 19일인 DLF 규모는 134억원이다. 지난달 말 -0.71%까지 떨어졌던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가 지난 13일(현지시간) -0.45%까지 오르면서 95.1%(지난달 7일 기준)에 달했던 손실률은 40% 내외(지난 13일 기준)로 예상된다. 또한 하나은행이 판매한 영국·미국 이자율스와프(CMS) 연계 DLF는 이달 25일부터 만기가 돌아온다. 같은 기간 56.2%로 예상됐던 손실률은 40% 초반으로 줄었다. 전체 잔액 3196억원 가운데 1220억원은 수익 구간에 들어섰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조국 파면 부산시민연대‘ 결성...야권 ,부산서 매주 집회

    야권이 ‘조국파면 부산시민연대(가)’를 결성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운동을 본격 추진한다. 한국당 부산시당과 바른미래당 부산시당은 16일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조국 파면과 자유민주 회복을 위한 부산시민연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회견에는 유재중 한국당 부산시당 위원장,하태경 바른미래당 부산시당 위원장,양당 당협·지역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양당은 기자회견문에서 “조 장관 임명은 인사 참사의 절정이다.갖가지 의혹 중심에 선 인물을 정의와 공정의 최중심에 서야 할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것은 민심에 반하며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죽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부산시민들은 역사적 현장에서 언제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선봉에서 맞서왔다”며 “잘못된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철회를 관철해서 문재인 정권이 오만과 독선을 부산에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당은 모든 정파와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연석회의를 추진하고 조 장관이 사퇴할 때까지 매주 한 차례 집회를 열기로 합의했다.첫 집회는 20일 열릴 예정이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부동산거래 신고 30일로 단축·자전거래시 쌍방에 3년징역 또는 3천만원 벌금형

    부동산거래 신고 30일로 단축·자전거래시 쌍방에 3년징역 또는 3천만원 벌금형

    경기 김포시는 지난 10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김포시지회 임원진 30여명과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김포시지회 임원진과의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날 간담회는 부동산 거래질서 확립 방안 마련에 대한 내용과 2020년 부동산 거래신고 변경사항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지난 8월 20일부터 개정·변경된 부동산거래신고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60일 이내에 신고하던 부동산거래신고사항이 30일로 단축됐다. 또 지금까지 계약해제나 무효·취소된 경우 신고의무가 없었는데 법 개정으로 확정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신고해야 한다. 아울러 가상계약서를 체결해 신고해 실제거래가격을 높이는 ‘자전거래’에 대해 공인중개사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리고 자격정지 또는 등록취소까지 할 수 있고, 매도인 측도 3년 이하 징역과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임동호 토지정보과장은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당선된 김수영 지회장님께 축하 인사를 전하며, 김포시지회가 지역의 단체로서 함께할 수 있는 일들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가정적인 남편” 데이비드 베컴, 아이들과 아내 패션쇼 관람 [헐!리우드]

    “가정적인 남편” 데이비드 베컴, 아이들과 아내 패션쇼 관람 [헐!리우드]

    데이비드 베컴이 아이들과 함께 아내 패션쇼를 관람했다. 전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은 15일(현지 시각)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잘했어, 언제나 자랑스러워”라는 문구와 함께 한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데이비드 베컴은 아이들과 함께 아내 빅토리아 베컴 패션쇼를 보고 있다. 아빠를 닮은 아이들은 훈훈한 비주얼을 자랑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은 “부럽다”, “가정적인 남편이다”, “너무 멋있는 거 아닌가?”, “아이들도 다 훈훈하네”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데이비드 베컴은 지난 1999년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해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있다. 사진 = 인스타그램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조국, 김홍영 검사 묘소 참배… 檢 아픈 기억 꺼내 개혁 압박

    조국, 김홍영 검사 묘소 참배… 檢 아픈 기억 꺼내 개혁 압박

    “金, 상사 괴롭힘 견디다 못해 극단 선택 평검사 의견 檢 교육·승진과정에 반영” ‘윤석열 배제한 특별수사팀’ 구성 제안 법무차관·검찰국장 ‘직권남용’ 고발당해검찰이 추석 연휴 기간에도 조국 법무부 장관과 가족 관련 의혹 수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가운데 조 장관도 연일 현장을 찾는 등 광폭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지난 12일 연휴 첫날에는 서울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를 방문한 데 이어 14일엔 부산추모공원을 찾아 김홍영 검사 묘소에 참배했다. 특히 조 장관이 취임 이후 닷새 만에 김 검사 묘소를 찾아 검찰의 조직문화를 손보겠다고 한 것은 검찰에 대한 강한 압박으로 풀이된다. 조 장관은 지난 14일 김 검사 묘소에 참배한 뒤 “고인(김 검사)은 상사의 인격 모독과 갑질, 폭언 등을 견디다 못해 죽음에 이르렀다”면서 “연휴가 끝나면 평검사들의 목소리를 듣고 검사 교육과 승진 과정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2016년 서울남부지검 소속 김 검사는 김대현 당시 부장검사의 상습적인 폭언 등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대검찰청 감찰 결과 드러났다. 김 부장검사는 해임됐고, 김진모 당시 서울남부지검장도 검찰총장 경고를 받았다. 대검은 ‘조직문화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상사의 청렴성, 리더십 부분을 차장·부장검사 인사평가에 넣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막내 검사가 상사의 식사 메뉴 등을 미리 준비하는 ‘밥총무’ 역할도 못 하게 했다. 그런데 조 장관이 검찰의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 든 것은 검찰의 당시 대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은 15일 페이스북에 “검찰은 몰인정한 조직이었고 언제나 조직 보호의 논리가 우선이었다”면서 “그런 문제점을 무자격 법무장관 조국이 취임하자마자 파고들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추석에 자기 조상도 아닌 김 검사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언론에 사진을 노출하는 ‘조국스러운’ 언론 플레이에는 다시 놀라게 된다”고 비판했다. 조 장관은 16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리는 ‘전자증권제도 시행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는 등 당분간 적극 행보를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오수 법무부 차관과 이성윤 검찰국장이 조 장관 일가 의혹 수사와 관련해 지난 9일 대검 고위 간부들에게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 구성을 제안했다가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하는 등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은 상태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전날 김 차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이 국장을 직권남용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해 달라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냈다. 조 장관 부인 정경심씨에 대한 검찰의 추가 수사도 예고돼 있어 조 장관의 입지가 점차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타인은 지옥이다 결방, 오늘(15일)까지..아쉬움 달래는 비하인드컷 공개

    타인은 지옥이다 결방, 오늘(15일)까지..아쉬움 달래는 비하인드컷 공개

    ‘타인은 지옥이다’의 현장은 천국이다. OCN 토일극 ‘타인은 지옥이다’가 추석 연휴 휴방으로 아쉬워하는 시청자들을 위해 화기애애한 현장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비하인드 컷을 15일 공개했다. 먼저, 고시원 안팎으로 불편과 분노를 선사하는 타인들에 의해 지옥을 겪고 있는 윤종우 역의 임시완. 극중의 예민하고 날선 모습과는 달리 환하게 웃음 짓고 있는 얼굴이 싱그럽다. 친절하고 능력 있는 치과의사와 잔혹한 살인마라는 두 개의 얼굴로 최고의 반전을 보여줬던 서문조 역의 이동욱도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든다. 에덴 고시원 303호에 입주한 종우 앞에 지옥을 펼치는 엄복순 역의 이정은, 유기혁 역의 이현욱, 변득종-변득수 쌍둥이를 모두 연기하는 박종환, 그리고 홍남복 역의 이중옥 역시 극중의 캐릭터와는 또 다른 반전 분위기로 선사하고 있다. 이들의 촬영에서는 언제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와 ‘현장은 천국이다’라고 불릴 정도였다는 후문. 그뿐만 아니라 만만찮은 사회생활의 단면을 리얼하게 보여줘 분노 유발자로 등극한 종우의 회사 동료들 신재호 역의 차래형, 박병민 역의 김한종, 손유정 역의 오혜원, 고상만 역의 박지한의 돈독한 모습들도 촬영 현장의 유쾌한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제작진은 “모든 순간 항상 웃음을 끝까지 잃지 않고 현장을 천국으로 만들며 촬영을 모두 마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감사하다”라며, “추석 연휴를 맞아 오늘(15일) 밤까지는 휴방하며, 제5회는 다음 주 토요일(21일) 오후10시 30분에 정상 방송된다. 고시원 안팎의 타인들이 만들어내는 지옥 속에 사로잡혀가는 임시완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예정이니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향수와 현실도피’...음악영화 신드롬 이유는

    ‘향수와 현실도피’...음악영화 신드롬 이유는

    퀸, 비틀스, 주디 갈랜드 등 뮤지션 소재 영화 잇따라 개봉 BBC보도, “올해는 음악영화의 해, 음악 자체가 캐릭터”퀸, 엘튼 존, 브루스 스프링스틴, 주디 갈랜드, 비틀스… 세계 대중음악계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또다른 공통점은 바로 최근 영화를 통해 재탄생·재조명됐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큰 인기를 끈 음악영화으로 퀸 열풍을 일으킨 ‘보헤미안 랩소디’가 떠오르지만, 올해는 이밖에도 뮤지션을 소재로 한 많은 영화가 관객을 찾고 있다. 영국 BBC는 최근 보도에서 이미 상영됐거나 곧 상영 예정인 음악영화들을 소개하며 이들의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①음악 자체가 ‘케릭터’다 BBC는 영화 관객들에게 2019년은 ‘음악영화의 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해를 넘기며 인기를 이어갔고, 이후 음악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했다. 한국 개봉을 기준으로 세계적인 팝 가수 엘튼 존의 생애를 다룬 ‘로켓맨’, 비틀스의 명곡들을 스크린에 녹여낸 ‘예스터데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미국 고전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른 배우 주디 갈랜드를 소재로 한 영화 ‘주디’,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데뷔 싱글 제목이기도 한 ‘블라인디드 바이 더 라이트’, 고(故) 조지 마이클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라스트 크리스마스’ 등이 해외에서는 올해말 상영이 예정돼 있다.음악영화의 장점은 무엇보다 음악이 하나의 ‘캐릭터’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국내 개봉은 미정인 ‘블라인디드 바이 더 라이트’는 영국계 파키스탄 청소년의 성장기를 다루는데, 스타 배우가 출연하지는 않지만, 대신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멋진 음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작품의 대본을 쓴 사르프라즈 만주르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스타는 바로 스프링스턴이고, 이것이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면서 “우리는 음악이 영화의 등장인물이 되도록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②음악은 향수를 자극한다 음악영화가 인기를 얻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10대 때 즐겨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옛 시절을 ‘소환’한다. 중장년층들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자신들이 학창시절 열광했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떠올린다. 해외 팬들은 영화를 보며 30여년전 ‘팝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실제 퀸을 봤던 옛 추억을 스크린을 통해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관계자는 “최근 음악영화의 인기는 복고 트랜드와 연관이 있다”면서 “음악이 향수를 자극한다는 것은 우리 자체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고 말했다.③음악은 현실을 잊게 한다. 영국영화협회(BFI)에 따르면 과거 미국에서 뮤지컬 영화가 큰 인기를 누렸던 때는 역설적으로 1930년대 대공황과 2차세계대전 전후였다. 1933년 개봉한 ‘42번가‘, 1952년 제작한 ‘사랑은 비를 타고’ 등이 대표적인 예다. 경제불황이나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음악과 영화가 모두 녹아든 음악영화, 뮤지컬 영화가 대중에게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할 수 있도록 하게 한다는 것. 부족한 게 없는 풍요의 시대 때 음악과 영화 등을 즐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인 셈이다. 이같은 분석은 최근 음악영화의 인기가 결국 우리가 지금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음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BFI 영상자료원의 헤드 큐레이터 로빈 베이커는 “최근 음악영화가 다시 인기를 끄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며 “기후 변화 문제나, 도널드 트럼프, 정치적 불안정, 나라가 둘로 쪼개진 것 같다는 등 뉴스 속에서 사는 지금 시대에 사람들은 이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고 진단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채근담 하룻말 3] 박영률 “무더운 여름날 느낀 채근담의 참 맛”

    [채근담 하룻말 3] 박영률 “무더운 여름날 느낀 채근담의 참 맛”

    7일 ‘채근담 하룻말’의 옮긴 이 박영률(62) 커뮤니케이션 북스 대표와 막걸리 마시며 나눈 얘기에 살을 보태 9일 보낸 질문지에 답을 보내왔다. 1편 보러 가기 2편 보러 가기 몸통 없고 행동과 사유, 갈등과 결단의 흔적만 남은 채근담은 쓴 사람, 읽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이 3분의 1씩 감당하는 책 Q. 한문학 전공자가 아닌데 어려움이나 두려움이 만만찮았을 것 같다. A. 채근담을 처음 본 것이 1974년, 고교 시절이었다. 그 뒤로 여러 번 만났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었다. 오랜 우리 문화의 한 쪽 정도라 여겼다. 남들도 그러리라 생각했고. 한문도 우리 문장 아닌가? 고교 때부터 배웠고 뒤로도 틈틈이 고전을 들춰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 생활 지혜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이번에 고생 톡톡히 했다. 나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처음엔 엄청나게 긴장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다. 이 책은 쓴 사람이 삼분지 일, 읽는 사람이 삼분지 일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이 삼분지 일을 감당하는 책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신나게 썼다. Q. 그래도 전공자로부터 공격당할 두려움 같은 게 없는지. A.난 전공자가 아니므로 전공자가 공격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난 글을 글로 옮긴 것이 아니다. 원문이 묘사하는 삶의 상황, 인간 심리를 오늘의 상황에서 재현한 뒤 현대 생활 언어로 다시 쓴 것이다. ‘채근담 하룻말’에서 홍응명의 ‘채근담’은 뼈와 혈관만 남아있다. 살과 신경망은 내가 붙였다. 그래서 몸통은 사라졌고 행동과 사유, 갈등과 결단의 흔적만 남아 있다. 한문학의 평가는 엄혹하겠지만 대중의 마음 양식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옳고 그름→속도와 양, 언제 얼마나 해야 하는지가 중요한데 의식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세계는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Q. 그런 점을 감수하고도 이 책을 내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만큼 이 책이 좋아서였을 것 같다. 그 점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면. A. 살아가면서 매일 묻는 질문이 있다. 어디까지가 적당한가? 어릴 때는 무엇이 옳은가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이 쉰을 넘고 나서는 옳고 그른 것은 대개 짐작된다. 그러고 나니 다음 도전자가 나타났다. 옳은 쪽으로 가도 결과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는 반성이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하게 된 것이 속도, 곧 양의 문제였다. 좋은 것도 너무 많아지면 썩는다. 옳은 것도 너무 늦거나 빠르면 사람을 해친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언제, 얼마나 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이 책 183일 자에 이런 글이 있다. “남의 잘못을 나무랄 때는 너무 엄하게 하지 말라. 그가 받아 낼 수 있는 만큼만 하라. 모범으로 사람을 가르칠 때 너무 높은 수준을 보이지 말라. 그가 따라올 수 있는 만큼만 하라.” 간단한 얘기다. 그러나 가르침은 깊다. 인간관계는 반드시 상대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질책이나 모범의 목적이 뭔가? 상대의 변화다.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오히려 주인이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다. 그러나 난 이렇게 하지 못했다. 남에게 뭔가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할 때 상대보다 나에게 더 집착한 자신을 본다. 자주 본다. 그랬으니 아무리 좋은 말도, 멋진 행동도 사태를 개선시키지 못했다. 상대가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없는 수준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옳았지만 방법이 틀렸다. 이 책은 곳곳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한다. 글을 놓고 자신의 삶을 비춰 보면 배우는 게 많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는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그렇게 살 수 있는지를 몰라 답답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Q. 옮긴이의 글을 보면서 가장 알듯 모를 듯한 대목이 ‘본능은 도전하지만 문화는 지킨다. 생명과 생활을 만드는 이 둘의 충돌, 그 현장은 곧 세계가 된 나다’는 것이었다. A. 쉬운 말이다. 우리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고 문화를 배우며 살다 죽는다. 곧 생명은 본능이고 생활은 문화다. 뇌과학을 빌려 말하면 변연계와 신피질의 관계다. 프로이트가 이 문제를 제기했고 마르쿠제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의 책 ‘에로스와 문명’은 문명사회에서 인간이 문화에 소외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우리는 매일 이 둘의 충돌을 목격한다. 배는 고픈데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사랑하는데 상대가 거부하면 어떻게 하나? 본능과 문화는 이렇게 삶을 만들고 제어한다. ‘세계가 된 나’는 주체와 객체의 통일 상태를 말한다. 언제나 다투지만 한 치의 틈도 없이 서로 기대는 관계, 상대를 부정하지만 이미 자기 안에 상대를 품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식이다. 존재는 이미 그런 조건 속에 있지만 의식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세계는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Q. 옮기면서 가장 많은 공을 들였고 재미있었던 날은. A. 옮긴이 머리말 쓸 때였다. 내용에 대해 쓸까, 옮김에 대해 쓸까, 내 감상을 쓸까 이리저리 생각했다. 다 중요해서 선택이 어려웠다. 마침 비가 그쳐서 무더운 날이었다. 회사 앞길 건너에 노점이 있다. 아주머니가 옥수수를 쪄 판다. 찜통에선 하루 종일 김이 무럭무럭 올라온다. 파는 이나 사는 이나 온통 땀범벅, 왠 날이 이렇게 덥고 비는 왜 이렇게 자주 오냐고 다들 하늘을 원망했다. 우리 회사 앞에 버려진 화분이 있었다. 옥수수 사 들고 돌아오는데 폐사한 화초에서 새잎이 나고 있었다. 유난히 더운 날씨와 잦은 비가 아니었으면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길 하나 두고 이런 일이 벌어졌다. 지옥과 천국의 공존, 삶과 죽음의 교환, 덥다 춥다 떠든 내가 부끄러워졌다. 참으로 채근담다운 날이었다. 책상에 앉자마자 옥수수 씹으면서 머리말을 다 썼다. 시원한 여름날이었다. 일의 선후 따질 때 채근담 돌아보니 마음 가벼워지고 머리 맑아지고 출생과 사망 잊지 않는다면 현재 삶의 잘잘못을 평가하기 쉬워지는데 Q. 원래는 359편이다. 그런데 궈마이 판이 일일일언으로 꾸미려 365편을 채우고 치바이스의 그림을 무심하게 엮어넣었고? A. 명나라 때 처음 책이 나왔고 청나라 때도 많은 판본이 나왔다.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여러 판본이 출판되었다. 지금 우리가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판본도 수십가지다. 편 수는 제각각이다. 궈마이 판은 일년 삼백육십오일을 염두에 두고 365편을 모은 듯 싶다. 치바이스 그림은 그의 화집에서 골라 실은 것이다. 글과 그림이 꼭 맞지는 않지만 꼭 틀리지도 않는다. 삼분지 일은 읽는 사람 몫이다. Q. 책을 옮기는 과정에 옮긴 이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가 온건가? A. 올해 유난히 분주했다. 회사 일뿐만 아니라 출판계 공익근무도 맡아 긴장이 높아졌다. 회사도 사옥 지어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정리할 것이 적지 않았고 2020년을 목표로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도 몇 건 되었다. 목적과 성격이 다른 일 여러 가지가 한번에 닥치면 마음이 예민해진다.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면 머리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이러다 생활 리듬을 잃게 되면 몸까지 망가진다. 대소경중을 따져 과제목록을 짜보지만 헝클어지기 일쑤다. ‘채근담’을 다시 보게 된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정말 중요한 것과 버려야 할 것, 지금 해야 할 일과 미뤄야 할 일, 집중해야 할 일과 바라보아야 할 일을 가려내는 법을 홍응명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정을 확정하기 전에, 행동하기 전에 채근담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마음이 가벼워졌고 머리도 맑아졌다. Q. 연령에 따라 채근담 하룻말을 보는 이들의 생각과 접근에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여튼 밀레니얼 세대도 읽을 수 있게 하고, 청년과 중년 시절 채근담을 접해본 이들에게는 조금 다른 삶의 지혜를 들려주고 싶었을 것 같다. A. 책은 읽어야 살아나는 물건이다. 그래서 읽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한문을 읽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삼황오제의 옛일과 옛 중국의 생활 습관과 유가와 도가, 불가 유명짜들의 행적에 공감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사전을 찾아보고 인터넷을 뒤지면 된다고 하겠는가? 그래서는 채근담이 안 된다. 이 책은 밥 먹듯이, 숨 쉬듯이 보는 책이다. 그러자면 오늘의 채근담은 쉽고 분명해야 한다. ‘채근담 하룻말’에 군자, 성현, 도, 천지, 성현과 같은 단어가 보기 드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말로 바꿨기 때문이다. 생활 언어 수준의 단어를 찾아 바꿔놓았다. 예를 들어 길 도 자는 길, 마음 길, 눈길, 발길로 썼다. 사람이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도의 가능성은 여기까지라고 봤기 때문이다. 한때 길에서 지나는 사람을 가로막고서는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져 특정 교리를 설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습기 짝이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인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보고 이건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도를 신비한 무엇으로 생각하고 기대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넌센스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길을 길 아닌 무엇으로 신비하게 포장했기 때문이다. 누가 이 짓을 한 것인가? 우리 교육 환경이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지 않겠나? 채근담은 어려운 이야기를 적어 놓은 고담준론서가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본능을 통제하고 문화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삶의 경험을 반성하고 잊은 다짐을 일깨울 수 있게 돕는 책이다. 예전에 어려운 ‘채근담’을 경험했던 독자라면 ‘채근담 하룻말’에서는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Q. 정말로 하루 한 편을 실천한 이가 나타나면 한 턱 쏘아야 하는 것 아닌가. A. (기자가) 오버하는 것 같다. 난 하루 한 편만 읽기를 권했지, 실천하라고 등을 떠민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 턱 쏘기 싫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쏠 기회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읽은 것과 생각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책 한 줄 읽고 그걸 하루에 한 가지씩 실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계획이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직접 해 보시라.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 사람은 마음이 백지여서 무엇이든 읽는 대로 기록되고 정신이 텅 비어서 생각하는 대로 행동이 이루어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있는가? 없다. 먼저 읽어야 한다. 그러나 눈으로 본다고 다 읽히는 것이 아니다. 읽기 전에 읽을 내용이 절실해야 읽은 것이 마음에 기록된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여러 가지로 바쁘고 할 일이 코앞에 첩첩이 기다리고 있으면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글자는 마음에 자리잡지 못한다. 글이 마음에 자리를 잡아도 자신의 생활과 이어지지 못하면 글은 글일 뿐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는 욕망이 간절할 때만 글이 생각과 이어지고 생각은 행동을 끌어간다. 이 과정은 반복되어야 하고 깊어져야 하며 늘 새롭게 고쳐져야 한다. 글 한 줄을 씹어먹기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하루에 한 가지를 실천한단 말인가? 사람이 물건이 아닐진대 그런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저 하루에 한 편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Q. 일전에 술 마시며 “중국은 정치 체제는 공산주의인데 생활 방식은 자본주의다. 그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채근담 열풍이 일었고, 일본은 이른바 소확행으로 탐닉한 것 같다”고 했는데 우리 읽는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하는지. A. 채근담은 현실주의 사고방식이다. 돈을 탐내지 말고 권력을 넘보지 말고 남과 경쟁하지 말라고 하는 말은 지극히 현실적인 명제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면 괴롭고 위험하고 외롭기 때문이다. 탐내지 않고 넘보지 않고 다투지 않으면 우리 삶은 안전하고 여유 있고 도타워진다. 본능의 힘과 문화의 멍에가 우리를 다른 쪽으로 끌고 가지만 때때로 정신을 차려 자신의 길을 돌아보면 인생의 탈선을 막을 수 있다. 채근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생의 출발점과 종착점을 계속 상기시키는 수사법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의 삶은 피할 수 없는 두 지점의 중간 지점이다. 출생과 사망이라는 기본 조건을 잊지 않는다면 현재 삶의 잘잘못을 평가하기 쉽다. 이 사실만 기억해도 우리 일상은 한결 건강해지지 않을까? Q. 중국 출판사와 계약하며 일본어판 계약을 하지 않은 게 안타깝지는 않은지. A. 한가해지면 책 들고 도쿄에 가 볼 생각이다. 일본어판에 대해 중국 출판사에 물어봤는데 한국 출판사가 일본어 판권 문의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채근담 하룻말’의 편집 방식과 번역 방법을 그대로 살려서 중국어판을 출판할 생각은 없는지 중국 출판사에 물어볼 생각도 한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집으로/황수정 논설위원

    빗방울이 한두 점 떨어지면 아까는 불러도 대답 없던 어머니는 어디선가 틀림없이 나타나셨다. 저만치서 보내는 손짓은 어서 빨래를 걷고 장독 뚜껑을 닫으라는 수신호였다. 딴 건 몰라도 나는 언제나 그 신호만은 찰떡같이 알아먹었다. 작가 이태준은 ‘무서록’에서 길을 가다 어느 집 부엌의 저녁 짓는 그릇 소리에 문득 내 집, 내 어머니가 그립다고 썼다. 그릇 소리에 꼬리표가 붙었을까마는, 간절한 옛 문장을 내내 기억하게 된다. 나는 장독 뚜껑 여닫는 소리에 고향집이 생각난다. 이즈음 우리 집 장독대의 단지들은 날마다 바람을 쐬었다. 금싸라기 볕에 장맛은 속속들이 단물이 들지 않고는 못 배겼다. 햇된장이 떫어질세라 따독따독 눌러서는 장독 주둥이에다 쨍쨍, 숟가락을 털고 하얀 광목으로 뚜껑을 싸매면 저녁 해가 기다렸다가 꼴깍 넘어갔다. 다정했던 숟가락 소리,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어머니가 떠나고 된장독을 열지 못했다. 장독에 볕과 바람을 들이는 요령을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알지도 못한다. 묵은 된장독을 열어 오래 밀린 안부를 물어보고 오려 한다. 가을볕이 된장독에 잠기고 잠기다 지칠 때까지, 저녁이 목젖에 차오를 때까지, 떨어지는 대추알이나 실컷 주워 먹으면서.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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