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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그리스문명 날조 근거 확실”

    “고대 그리스문명 날조 근거 확실”

    1987년 출간돼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블랙 아테나’(소나무 펴냄)를 20여년만에 완역해 낸 오흥식박사.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아직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하다.“저도 서양 고대사와 고대 그리스를 공부했지만 이런 책은 정말 처음입니다.”번역 제의를 받고 5년 동안 씨름해왔던 ‘블랙 아테나’는 말 그대로 ‘충격’이다.“혹시나 싶어 각주에 달린 문헌까지 모두 검토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근거가 다 있더군요.” ‘블랙 아테나’가 어떤 책이어서일까. 미국 코널대 마틴 버넬 교수가 10여년 동안 고대 언어를 공부한 끝에 내놨다는 이 책은 근대 서구 문명의 기원으로 일컬어지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 사실은 이집트 등 동방문명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주장한다.‘찬란한 고대 그리스 문명’은 한마디로 날조라는 것. 그것도 19세기 인종주의와 제국주의 열풍 아래 집중적으로 조작됐단다.“유럽이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이런 책이니 난리날 수밖에 없다. 오 박사의 비유대로 “일왕이 한국에서 왔다는 책을 일본학자가 일본에 소개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잇따라 문제를 제기했고 버넬 교수는 이에 대한 반론을 따로 묶어 책으로 내기도 했다. 버넬 교수의 출발점은 그리스 신화다.“신화라서 믿을 수 없다, 이게 바로 음모라는 겁니다.”정작 헤로도토스 등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문헌을 직접 보면 증거는 넘쳐난다는 것. 예를 들면 이집트 왕족 다나우스의 5대손이 헤라클레스이고 이들 자손이 통치한 곳이 바로 스파르타다. 테베 역시 이집트 왕족 카드모스의 후손들이 지배했다. 정작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런 사실을 빠짐없이 기록해뒀다.“고대 그리스 문명은 식민지배 아래에서 시작됐다는 거죠.”최근의 발굴 성과도 이를 뒷받침한다.“이들 이집트 왕가의 뿌리는 힉소스족으로 추정되는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힉소스의 수도(나일 삼각주의 ‘펠엘자바’) 발굴 작업이나 그리스인들이 남긴 파로스 비문 해독결과 등도 이런 주장과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왜 고대 그리스 문명은 19세기에야 재발견됐을까. 버넬 교수는 프랑스 혁명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혁명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낡아빠진 기독교적 세계관을 고집할 수도 없었던 유럽의 지배층들이 들고 나온 게 바로 고대 그리스의 인문주의라는 겁니다.”그런 고대 그리스가 남의 것을 베꼈다면 폼이 안난다. 그래서 나온 게 그리스문명이 독자적으로 생겼다는 설과 아리아인종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다. 당시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이 이런 흐름을 이끌었다.‘아리아인종의 위대함’을 역설한 히틀러가 떠오른다. 버넬 교수가 유대인인 점을 감안하면 그의 작업은 바로 ‘아리아인종에 대한 탄핵’인 셈이다. 그럼에도 오 박사는 버넬 교수의 2·3권 번역작업에 바로 착수했다.“문헌 근거나 자료 같은 게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리스·로마 문화 열풍이 너무 단편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책꽂이]

    ●악마의 사도(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이기적 유전자’란 책으로 유명해진 진화행물학자의 자전적 에세이. 이기적 유전자 등 중요한 생물학적 개념뿐만 아니라 종교의 해악을 폭로한 글,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등 도킨스의 전체 면모를 알 수 있는 글들을 담았다.1만 4800원.●칭기즈칸, 제국을 달리다:유목민들과 함께 한 여행(스탠리 스튜어트 지음, 김선희 옮김, 물푸레 펴냄) 13세기 말 몽골을 방문했던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윌리엄 수사의 행적을 추적하여 칭기즈칸의 땅 몽골을 횡단하는 여행기.1만 1500원.●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원희룡 지음, 꽃삽 펴냄)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인 저자의 마라톤과 공부 이야기. 학력고사와 사법고시 전체 수석을 하게된 공부 비결과 함께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서브쓰리를 향한 힘든 여정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1만원.●대한민국은 군대다(권인숙 지음, 청년사 펴냄) 여성학적 시각에서 우리사회의 군사주의와 남성성을 비판한다. 징병제, 양심적 병역거부, 학생운동의 군사문화 답습,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 등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그 해법을 모색해 본다.1만 5000원.●현대과학의 6가지 쟁점(존L. 캐스티 지음, 김희봉·권기호 옮김, 지식의 풍경 펴냄) 생명의 기원, 사회 행물학, 언어 습득, 생각하는 기계, 외계 생명체의 답사, 양자적 실재 등 현대과학의 주요 쟁점들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다양한 사례를 겉들여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1만 5000원.●구수한 큰 맛(고유섭 지음, 진홍섭 엮음, 다할미디어 펴냄) 한국의 대표적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인 우현 고유섭의 미술사 연구서. 제자인 진홍섭 연세대 석좌교수가 난해한 한문투의 글을 젊은 층이 읽기 쉽도록 한글투로 풀어 썼다.1만 5000원.●숲에서 길을 묻다(유영초 지음, 한얼미디어 펴냄) 숲과 문명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숲 해설가인 저자는 우리 숲의 사계와 외국의 모범적인 숲 이야기와 함께 숲과 멀어져가는 도시문명에서 사람들이 자연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쓴소리를 한다.1만 2000원.●스크린과의 대화(유리 로트만·유리 치비얀 지음, 이현숙 옮김, 우물이 있는 집 펴냄) 영화언어를 이해하고 영화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입문서. 영화 읽기의 알파벳을 제시하면서 영화 보기가 오락이나 휴식을 넘어선 진지한 지적 활동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1만 2000원.
  • [문학! 아시아를 말하다] (하)인도네시아

    [문학! 아시아를 말하다] (하)인도네시아

    “포스트 포스트-식민주의를 꿈꾼다.”식민지배를 경험한 국가들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식민유산의 청산이다.‘청산’이라 해서 무조건 쓸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어찌보면 어떤 시대든 한 시대가 지나면 그 시대에 대해 평가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그 작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포스트-식민주의다. 이 작업은 프랑스 식민지배 경험이 남긴 알제리의 혼란을 형상화한 프란츠 파농의 작업에서 시작됐다. 나이지리아의 치누아 아체베,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에드워드 사이드, 인도계 미국인 가야트리 스피박과 호미 바바의 작업들이 대표적인 포스트식민주의론으로 꼽힌다. ■ 김재용 원광대 교수 제시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식민지배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다 90년대 초반 페미니즘이 활성화되면서 급격하게 유입됐다. 그러나 이들의 포스트식민주의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들 이론가들이 서양중심적인 시선 대신 스스로의 시각을 되찾자며 내세운 동양은 바로 서양제국주의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였던 아프리카와 아랍·인도 등 서아시아다. 같은 동양인인 일본에 침략과 지배를 받았던 동아시아국가들과 경험이 비슷할 수 있을까. 포스트-식민주의의 ‘뒤에 오면서, 동시에 뛰어넘는’ 포스트(post)가 하나 더 붙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평론가인 김재용 원광대 교수의 문제의식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인도네시아 국립대 심포지엄에서 발제에 나선 김 교수는 한국문학의 과제로 두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중심주의를 피한다며 만들어진 아시아주의의 함정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1940년대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라는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구호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습니다. 유럽중심의 근대라는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동아공영권에서 보듯 이들의 아시아주의는 순수하지 못한 아시아주의다. 김 교수는 ‘본질주의적 아시아주의’와 ‘역사적 아시아주의’를 구분하자고 제안했다. “아시아인이기에 아시아는 하나여야 한다는 본질주의적 아시아주의는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안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모습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아시아의 개별성을 인정해주는,‘역사적 아시아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동·서양을 동시에 안고 또 넘어서야 합니다.” 이를 위해 김 교수는 시민사회단체와 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연대를 강조했다. 일본식 국가주의 연대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인도네시아의 역할에 기대감을 표시했다.“인도네시아는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연결해주는 거점입니다. 역사적 아시아주의를 가꾸어 나가는 데 인도네시아가 지적 교류의 다리가 되어 줬으면 합니다.” 김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8월말쯤 인도네시아에서 국제학술회의를 열 예정이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주변국과 함께 식민지배의 경험과 청산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한국에는 ‘인도네시아와 타이완 등은 한국과 역사적인 경험이 달라 식민지가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널리 퍼져 있다.’고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학술대회를 통해 그런 한국의 통념도 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cho1904@seoul.co.kr ■ 이다 국립대 인문대학장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인도네시아 국립대 구내에는 ‘태극기 휘날리며’‘올드보이’‘연애소설’ 등 한국영화 상영을 알리는 포스터가 꽤 눈에 띈다. 약하긴 하지만 한류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 화교 중심이지만 서서히 번질 조짐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없다. 인도네시아 국립대가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박사급 연구자가 부족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심포지엄 뒤 열린 국립대와 ACN 관계자간 미팅에서 국립대는 이 문제를 강하게 거론했다. 이다 순다리 후센 인문대학장은 한국측의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불문학을 전공했다는 이다 학장은 “이번 심포지엄은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대단히 적절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학과를 만드는데 양국의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박사급 인력 5∼6명이 필요하다.”면서 “이들 인력의 양성·배치 방안과 한국측의 지원방안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면 초기에는 한국에 의존하겠지만 몇년 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학을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다 학장은 또 양국 대사관을 통해 양쪽 언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인력풀 체계를 확립하는 것도 교류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cho1904@seoul.co.kr ■고영훈교수가 말하는 한·인니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인도네시아 말은 매우 간단하다. 그래서 아주 문학적인 표현이나 고도의 전문용어가 아니라면 1년 살았거나 30년 살았거나 언어능력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정도다. 과거·현재·미래 시제도, 동사 변화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한 언어가 있을 수 있을까. 비밀은 다양한 인종, 민족, 언어 구성에도 불구하고 2억 4000만 인구의 거대한 근대국가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19세기 말까지 인도네시아어 구어는 카스트에 따라 9단계의 존비법이 있는 대단히 복잡한 말이었다 한다. 그러나 근대국가건설과 국가통합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옛 구어는 폐지됐다. 대신 가장 간략한 말레이어 계통을 이어 받으며 문자는 알파벳을 차용했다. 단일민족국가인 한국과 공통점이 있을까. 인도네시아 또한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나라다. 중국보다 1년 앞선 1920년 아시아 최초의 공산당이 창당됐고, 저 유명한 ‘반둥회의’를 통해 제3세계 비동맹중립외교를 주창했다. 노무현-김정일을 연결해줄 수 있는 인물로 꼽혀 화제를 모았던 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의 국부 수카르노의 딸이다. 수카르노와 김일성은 제3세계 동지였다. 수카르노의 모나스타워와 김일성의 주체탑이 닮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반공국가 한국과 공통점이 있을까. 동시에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이기도 하다. 미국·일본 대사관에 장갑차가 진주해있고, 한국의 까다로워진 입국절차에 맞서 한국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대우를 철회하는 등 9·11 테러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는 나라다. 미국 중심 세계관에 젖어 있는 한국과 공통점이 있을까. 한국외대 고영훈 교수는 그럼에도 식민지 경험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봤다.250여년간의 네덜란드 통치 경험에 이은 3년반 정도에 걸친 일본의 식민통치. 일제는 백인에 맞서 황인의 이익을 지키자고 외쳤고, 네덜란드에 저항하던 인도네시아인들은 온 몸으로 일제를 환영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250년간 통치보다 3년반의 통치가 훨씬 더 가혹했던 것. 일제의 통치기법은 단순했다. 바로 한국을 36년간 통치한 기술을 그대로 옮겨와 적용하는 것.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에는 ‘Koreanlization’(한국화하다)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여기에다 66년 수하르토 장군을 중심으로 한 반공우익 군부집단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일본에 경제 성장을 의존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자들을 억압한 것도 비슷하다. cho1904@seoul.co.kr ■노벨문학상 후보 거론 ‘파프람’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조태성특파원|프라무디아 아난다 토르.‘파(Pak·선생님)프람’이라는 존칭으로 불리는 인도네시아 문학의 거장이다.‘식민지배와 독립’이라는 민족주의 주제를 파고든 그의 소설은 외국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그 때문에 80년대 중반 이래 끊임없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에도 대표작 ‘밍케’ 등 몇몇 중·단편소설 등이 번역·출간됐다. 그러나 반공우익 독재정권에게 강력한 민족자주노선은 어디서나 거북스러웠던 모양이다. 수하르토 독재정권은 80년대 초반 그의 책 모두를 금서로 지정했다. 금서로 지정되기 직전까지 수하르토 정권의 부통령은 ‘젊은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사를 쓰고 있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전해진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독재정권이 붙인 금서딱지는 외려 품질보증서였던 셈이다. 지금은 18년간의 수감생활과 고문에 지친 80세의 노인이 됐다. 하지만 ACN과의 심포지엄이 있다는 소식에 억지로 참석해 심포지엄 내용을 꼼꼼히 챙겨 듣고 있었다. 여유도 잃지 않았다.“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제 치매에 걸릴 나이”라더니 “기억력도 예전만 못해서 받을 빚 외에는 자꾸 잊는다.”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한국과의 만남에 대한 느낌은. -먼 나라인데다 어찌보면 역사적으로 크게 관계가 없는데도 이렇게 찾아와줘서 놀랍기도 하고 너무도 반갑다. ▶최근에 쓰고 있는 작품은 있나. -나는 이제껏 충분히 썼다. 더 이상 작업하는 것은 노욕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이제껏 모아뒀던 모든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60년대 이후 인도네시아 문학과 역사에 대한 문제를 정리해둬야겠다는 생각이다. ▶자신만의 문학적 모티프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국가를 통합하고 근대를 이룩해낸 작업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물론 이는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고 외려 부정적인 의미에 가깝다. 근대국가를 이룩한다는, 그 진취성이 남긴 폐해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나는 참여문학에 대해 고민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런 고민은 인류의 행복을 위한 고민이고 동시에 인류 공통의 고민이라고 본다. cho1904@seoul.co.kr
  •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 현대 터키문학의 대표주자 오르한 파묵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 현대 터키문학의 대표주자 오르한 파묵

    ‘하얀 성’ ‘내 이름은 빨강’ 등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오르한 파묵(53)은 현대 터키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슬람문명과 서구문명의 갈등을 매혹적인 서사구조 안에 풀어놓는 그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30여개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전세계 독자들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다.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마지막날인 26일 만난 그는 “이모부가 한국전에 참전했고, 어린 시절 한국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터키인들에게 한국은 형제 같은 나라”라고 첫 방문 소감을 밝혔다. 한국어로 번역된 ‘하얀 성’ ‘내 이름은 빨강’ 덕에 국내에도 상당수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전날 사인회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인 ‘눈’도 그의 방한에 맞춰 지난주 출간됐다. ●한국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받아 ▶소설을 구성하는 상상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모든 소설책은 터키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난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일례로 ‘눈’은 신문기자가 쓰는 리포트 형식의 정치소설이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초현실적인 부분이 강하다고 말한다. 작가의 비밀스러움은 현실의 답답함을 상상력의 즐거움으로 보완하는 데 있다. ‘내 이름은 빨강’은 어떤 상상력으로 탄생한 것인가. -일곱살부터 스물두살 때까지 화가가 꿈이었다. 소설은 스물세살 때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오래전부터 그림과 관련된 소설을 쓰고 싶었다. 특히 이슬람세계의 시각예술이 서양 문명의 영향으로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관심이 많았다. 한마디로 그림에 대한 열정을 지닌 사람들의 고뇌를 다룬 소설이다. 서구 문화에 대한 반발이 느껴지는데. -정치·경제적으로는 터키가 서구화되길 바란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건축이나 시각예술 등 전통문화가 사라지는 것에는 화가 난다.‘내 이름은 빨강’은 이런 현실에 대한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나는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서구적이다. 이 때문에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터키인들이 서구화를 지향하면서 과거 전통을 잃어버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서구화 지향하면서 전통 잃어버려 ▶화가지망생, 건축학도에서 소설가로 변신했다. 소설가가 된 계기와 문학수업 과정에서 영향받은 서구 작가들은. -소설은 서양에서 태어나고 발전한 것이다. 때문에 초기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에서 보르헤스까지 서양 작가의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지만 이슬람의 신비주의 경향도 크다. 터키의 전통을 보르헤스 스타일로 쓰는 것, 즉 전혀 닮지 않은 두 가지를 한 선상에 놓을 수 있는 능력이 독창성의 비밀이다. 소설을 쓰기 전에 시를 먼저 썼다. 시인은 신이 할 말을 대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상상했던 것을 썼고, 그것이 소설이 됐다. 터키의 문학적 전통과 현재 상황은. -오스만제국 당시 지식인들이 좋아했던 장르는 시였다. 최근 100년간은 프랑스의 영향으로 소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예전 시가 누렸던 영광을 소설이 이어받은 건 아니다. 나는 터키인들에게 과거 우리 선조들이 시인에게 보여줬던 관심을 지금 소설가들에게 보여달라고 외치고 있다. 서구와 아시아 사이에 놓인 터키인들의 정체성 고민이 클 텐데. -터키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문화적인 것도 정치적으로 비화된다는 점이다. 거리 가로등 하나 바꾸는 것조차도 프랑스적인지, 이슬람적인지를 놓고 논쟁한다. 터키가 동서양의 접점에 있다는 건 터키의 운명이고 특성이다. 제발 터키인들에게 동양과 서양의 양분구조를 강요하지 말아달라. ●터키에 동·서양 양분구조 강요말라 ▶터키 고유의 문화를 다룬 소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독자가 얼마나 될까를 따지면 좋은 소설을 쓸 수 없다. 좋은 작품을 쓰면 세계적으로 읽힌다. 독자는 작가의 국적이나 종교, 문화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교다. 그는 이어 “중동분쟁을 이슬람문명과 기독교문명의 충돌로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면서 “정치적인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한·중·일 공동저술 새 역사교재 ‘미래를‘ 출간

    한국·중국·일본의 양심세력들이 머리를 맞대고 집필한 3국 통합 근현대사가 26일 출간됐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동기가 돼 사상 첫 3국 공동 역사서가 탄생한 것이다. 세 나라 역사학자와 시민사회 인사 등 54명이 참여해 3년여 동안 만든 새 역사책의 이름은 ‘미래를 여는 역사’.‘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출간기념회를 열고 ‘한·중·일 3국 공동역사편찬위원회’ 명의의 공동취지문을 발표했다. 편찬위원회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하지 않고 합리화 하는 것은 이웃나라는 물론 일본국민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라면서 “불행한 과거를 넘어 3국이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미래가 펼쳐지기 바란다.”고 밝혔다. ●일제의 침략과 강압정책 공식 인정 ‘미래를 여는 역사’는 16세기 중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3국 역사를 ▲개항 이전의 3국 ▲개항과 근대화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 한·중 양국의 저항 ▲침략 전쟁과 민중의 피해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등 6개 장으로 구성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를 다룬 2장과 3장.‘미래를 여는 역사’는 1904년 러·일 전쟁 당시 대한제국이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일본이 통감부를 설치해 내정간섭, 군대해산, 언론탄압, 사법권 강탈 등에 나선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는 일본 극우파들이 만든 후소샤(扶桑社)의 ‘새로운 역사교과서’에서 축소되거나 왜곡됐던 대목이다. 후소샤는 대한제국 병합 과정을 ‘근대화’라고 미화했다. ‘미래를 위한 역사’는 또 “(일본이 주장한)대동아공영권은 식민지 지배를 치장하는 논리일 뿐이며 전쟁수행을 위한 자원, 자재, 노동력 조달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역시 후소샤 교과서에서 각국의 자주독립과 상호제휴에 의한 경제발전, 인종차별 철폐 등에 공헌했다고 미화했던 부분이다.‘미래를 위한 역사’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위안부로 끌려간 한국여성은 대부분 미혼의 10대 소녀들이었다. 한국, 중국, 필리핀 등에서 위안부로 동원된 각국 여성의 수는 최소 8만에서 15만명으로 추정된다.”고 썼다. ●공동 근현대사 탄생의 배경 한·중·일 3국 시민단체와 역사학자들은 2000년 일본에서 출간된 후소샤 교과서가 극우파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반영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한 국제연대에 나섰다.2002년 3월 중국 난징국제학술대회에서 각국 중학생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근현대사 교재를 개발하기로 합의했으며 한국 23명, 일본 14명, 중국 17명이 공동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씌어진 언어와 책의 판형은 다르지만 내용은 모두 같다. 한·중·일을 오가며 11차례의 회의가 진행됐다. 공동교재 총괄 편집위원회에는 한국측에서 교과서운동본부 대표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와 김성보 충북대 교수가 참여했다. 중국측에서 부핑(步平)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장, 우광이(吳廣義)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연구원, 일본측 오비나타 스미오(大日方純夫) 와세다대 교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어린이와교과서전국네트워크21 사무국장 등이 포함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0)인천 제물포, 천년의 역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0)인천 제물포, 천년의 역사

    중국을 겨냥하여 ‘서해안 시대’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천은 서해안의 대중국 창구이자 교두보였다. 강화 고인돌과 단군의 유향(遺香)이 전해지고, 기원전 1세기로 추정되는, 미추홀과 비류백제로 상징되는 해양세력의 거점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 인천시의 남동갯벌, 도장리에서 승학천을 따라 이어지는 저지대는 바닷물이 들어오거나 습지였기에 문학산과 승학산이야말로 지리·환경적으로 초기국가 단계의 도읍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백제시대에는 대외 창구로 기능하여 오늘날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의 능허대를 거점으로 해 중국과 넘나들었다. 한강 하류인 인천을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산둥반도 등주에 이르는 등주항로야말로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칠때 이용한 바로 그 항로이다. 오늘날 능허대는 아파트촌에 뒤덮이고 말았으나 조선 후기 읍지에 ‘백제조천시발선처(百濟朝天時發船處)라 하였듯 역사의 현장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인천이 한반도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뜬’ 것은 역시나 조선시대가 아닐까. 수도 한양에 이르는 입구, 이른바 인후지지(咽喉之地)로 온갖 역사의 영욕을 지켜보았다. 서해 뱃사람들에게 ‘행주참을 댄다.’는 말이 전해진다. 조수, 즉 밀물이 몰려들면 바닷물은 강물 위로 뜨고 바다로 내려가는 강물은 밑으로 깔리는 원리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인천쪽에서 한강을 거슬러 행주나루를 거쳐 마포까지 직행하는 뱃길 노정을 이르는 말이다. 바로 그 뱃길을 따라서 열강들이 빈번하게 침범을 강행했으니, 지금도 남아있는 수많은 포대가 이를 웅변해준다. 대개의 개항장이 시련을 겪으며 탄생했지만 인천만큼 열강들의 침략의 손길이 가장 강력하고도 직접 뻗친 곳이 또 있으랴. 한반도에 세워진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등대는 바로 이런 개항의 역사를 잘 설명해주는 증거물이다. 조선에 진출하려는 열강들은 인천 해역에서 군사적 충돌을 일으켰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가 그것으로, 선조들은 이들의 도래를 온몸으로 싸워 막았다. 그러나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에 조선 진출의 기선을 제압하고자 운요호(雲揚號)사건(1875)을 감행했고, 끝내 조일수호조약(강화도조약·1876)으로 문을 열게 되었음은 교과서적 상식이다. 구미 열강과도 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되니 은둔국 조선은 갑자기 봇물 터진 외압을 직접 받게 된다. 한적한 어촌에 불과하던 제물포는 하룻밤 새 개항장으로 둔갑하여 1883년에 인천해관과 감리서가 설치되고, 각국 영사관과 외국인 조계들이 설치되기에 이른다. 청일전쟁, 노일전쟁 등 일본의 전쟁을 위하여 조선땅을 내준 꼴이 됐으니, 이후 일본군의 군화발이 인천항을 자기 땅처럼 짓밟았다. 1892년,‘일본 밖에서 일본인 손에 의해 이루어진 가장 완벽한 일본책’으로 자평하는 ‘인천사정’이란 책자는 당시 ‘일본 영사관이 일장기를 아주 높게 휘날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서 장엄하고 수려하게 인천항을 삼킬 듯 바라보고 있다.’고 썼다. 정말 그들은 인천항을 강제로 개항시키고, 삼켜버렸다. 그 후 우체국, 경찰서, 일본거류지의회, 인천상법회의소, 무역상조합, 잡화상조합, 영어소학교, 공립소학교, 교토의 본원사(本願寺), 공립병원와 강제병원, 정미소, 제물구락부, 조선신보, 활자소, 그리고 제일국립은행, 제18국립은행, 제58국립은행, 일한무역상사, 우선주식회사의 일본지점 등이 속속 들어섰다. 대불호텔과 이태호텔, 수월루 등의 여관도 들어섰다.‘근래 불경기라는 소리가 인천항의 온 시가를 뒤덮는 데도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러(花紅柳綠) 흥청대기 이를 데 없으니 술집에는 어린 소녀들도 많았다.’고 한 기록도 있다. 이로써 유곽이 번창하여 도심까지 집창촌이 뻗어 나가 항구를 드나드는 뭇사내들을 유혹하였다. 교회도 빠질 수 없었으니 영국 성공회를 필두로 답동성당, 내리교회 등이 속속 들어섰다. 수출입세를 관장한 해관(海關)만큼은 조선정부 관할이었다. 물론 해관 운영에 ‘왕초보’였기에 대대로 영국, 독일, 일본인 등이 도맡아 했고 그들은 그야말로 ‘엿장사 마음대로’ 개항장을 농락하였다. 일본인들이 잘못된 협약서를 근거로 세금을 내지 않고 부를 축적했던 수탈 과정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당시 수입된 면직물은 대부분 영국제로 일본인이 수출을 독점했는데 영국도 저렴한 세금을 관철시켰다. 제국주의 경제침탈의 전형적인 모습이 인천항에서 관철되었다. 개항 당시 서울은 ‘좋지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인천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 적었고, 총인구 2649명 중 쓰시마, 나가사키 사람들, 그리고 시모노세키가 위치한 야마구치(山口), 규슈의 오이타(大分)사람들이 주류였다. 일제침략기를 통해 대개 한반도에서 가까운 규슈 등지에서 집중적으로 건너왔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쪽 방언들이 즐겨 쓰였으며, 도쿄, 오사카, 쓰시마 등 여러 곳의 언어가 섞인 것을 ‘인천어’라 부르기도 했다. 이후 인천에는 관리 세관원 은행원 회사원 무역상 중개인 운수업 하역업 여관 요리점 목욕탕 음식점 양주집 일본주점 약국 의사 사진사 이발업 재봉업 활판인쇄업 세탁소 양조장 대장간 오락실 과자점 창고업 고용직과 잡상 목수 석공 농업 등 온갖 직종 종사자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장차 식민지가 될 조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러일전쟁·청일전쟁 등이 터졌을때는 자발적으로 전선구호와 간호 등에 힘을 보탰으며 스스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즉, 개항장에 나와 있던 일본거류민들을 순수한 의미로만 볼 일이 아니다. 일본의 관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식민지 개척의 첨병으로 움직였다.‘생돈’이 생기는 만큼 화려한 의복과 음식으로 사치를 부렸다. 웅장한 반양반일(半洋半日) 가옥들이 앞다퉈 들어섰다. 개항장은 일본거류지, 각국거류지, 중국거류지로 삼분되었고 지금도 그 흔적이 확연하다. 은행건물 등이 남아있는 일본인 거리, 음식점이 즐비한 중국인 거리가 그것이다. 각국 거류지라고는 해도 19세기말에는 영국인 7명, 독일인 13명, 미국인 4명, 프랑스인 3명, 이탈리아인 1명 등이 거주했을 뿐이고 대개 일본·중국인들이었다. 그런데 각국거류지 회의는 인구비례가 아니라 국적별로 참여하도록 했으며, 서양인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게다가 회의조차 영어로 진행하니 일본인들로서는 못마땅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결국 일본인들은 대대적인 간척을 통해 땅을 확보, 도심을 불려나갔다. 오늘날 인천항 주변이 대부분 간척지인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렇다면 조선인들의 대응은 전무하였던가. 인천 출신의 역사학자 임학성(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인천객주협회를 모체로 1897년에 설립된 인천항신상협회는 민족 상인의 상권을 옹호·신장하였다.”고 지적한다. 인천시 역사자료관 역사문화연구실에서 역주한 ‘인천개항25년사’(1907)를 보면, 조선인들은 오늘로 치면 송월·전·복성·인현·경·신포·답·신생·사·유·신흥·선화·도원동 등에 몰려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개항 초기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의 상권 경쟁이 치열했다. 중국인들은 특유의 근면과 상업적 재기를 토대로 일본에 맞섰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결국 중국 상권도 몰락했다. 그럼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자 중국인들은 다시금 성실하게 상권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날 인천시가 중국인거리를 대대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터전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다.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중국집이나 운영하고 살았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들은 옥양목 같은 옷감장사에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여 상권을 장악해 ‘비단장사 왕서방’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조선의 쌀을 싸게 사들여 일본에 되팔아 엄청난 돈을 거머쥔 자들이 생겨났으며, 경인철도가 부설되자 서울을 오가는 보따리장사는 물론이고 석유장사 등으로 일본인들 역시 큰 돈을 벌어들였다. 군인들이 자주 부르는 ‘인천의 성냥공장’이란 노래도 당시 이후 첨단 공장인 성냥공장이 인천에 많았음을 방증하며, 그만큼 선진적 공장이 가장 먼저 시작된 곳의 하나였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제 인천은 일본인 대신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길목이 되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거니와 산둥반도 등지를 오가는 페리에서 사람과 짐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중국인 거리에 가면 대하소설 삼국지를 연작 벽화로 그려놓아 길거리를 걸으면서 책읽기를 끝낼 수 있게 해놨다. 게다가 원조자장면집을 아예 자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할 예정이라니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박물관만큼은 ‘대박’이 예감된다. 하고많은 박물관 중에 자장면 박물관은 특이성도 돋보이지만 인천에 딱 어울리는 까닭이다. 김춘선 인천해양수산청장은 “거대한 대중국 서해시대의 거점이기도 하지만 대북 통일시대의 거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남포, 해주 등지를 오가는 화물선들이 끊임없이 사람과 물건을 실어나르고 있다. 북핵문제 등으로 긴장이 조성되고 있지만 바닷길만큼은 항상 열려 있어 민족화합에도 이바지하는 셈이다. 인천항의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니다.1970년대에 대대적으로 건설된 파나마식운하의 물을 가두었다 풀어 놓는 갑문이 낙후해 머잖아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야 할 형편이다. 갑문으로 가보니 5만t,10만t급의 거대한 선박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러나 인천항도 이제는 외항시대로 접어들었다.“인천항도 북항 등을 대대적으로 건설,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돌이켜 보면, 일제시대의 인천은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중심이었다. 고베와 나가사키 쓰시마 부산 원산 톈진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잇는 정기연락선이 오고갔으니 지금보다도 훨씬 바다를 통한 국제간 교역이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러시아와의 교류가 근자에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바다를 통한 교류는 무려 반세기나 묶여 있다가 재개된 셈이다. 당시 인천은 ‘완연한 한국의 요코하마’로 불렸다. 국제 첨단 신도시로 개발되는 송도신도시가 완공되면 인근 인천공항과 더불어 인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 분명하니 돌고 도는 역사의 변화가 다시 온 몸으로 느껴진다.
  • 몽골, 서울에서 사진으로 보세요

    몽골, 서울에서 사진으로 보세요

    몽골과 한민족은 이란성 쌍둥이 같다. 언어도 둘 다 알타이어족에 해당한다. 몽골은 또 다른 우리 민족의 모습을 하고 있다. ‘뿌리’를 같이한 ‘형제’를 찾을 수 있는 행사가 하이서울 페스티벌에 맞춰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4일까지 개최되는 ‘울란바토르의 날’ 행사가 그 현장이다. 몽골·울란바토르의 사진과 그림전시회, 투자설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4일까지 울란바토르의 날 행사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다.1995년 10월 6일 서울과 자매 결연을 체결한 이후 활발한 교류를 통해 우호협력과 신뢰를 이어왔다. 이번 울란바토르의 날 행사는 자매결연 10주년을 기념해 열린다. 올해는 ‘귀한 손님’까지 왔다. 앵흐벌드 울란바토르 시장을 비롯, 울란바토르 시의회 부의장 등 모두 94명으로 구성된 교류단이 4일까지 서울을 방문한다. 이들은 지난 30일 서울시청을 방문해 서울과 울란바토르 양 도시의 실질적인 교류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공동선언문도 발표했다. 눈길을 끄는 행사는 지난달 30일부터 3일까지 열리는 몽골·울란바토르 그림전시회. 몽골 대평원에서 오랜 기간 이어진 유목민족의 전통과 역사,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담은 사진과 함께 몽골 유명화가들의 그림 150여점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된다. 평소 접하기 어렵던 광활한 몽골 대평원의 모습과 몽골 민족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시장등 교류단 방한, 투자설명회도 경제 교류를 위한 설명회도 열렸다. 지난 2일 오전 10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울란바토르 투자설명회가 개최돼 양 도시 기업인간의 경제 협력의 기회가 마련됐다. 또 가죽 등 원단과 의류, 보석류, 캐시미어, 식료품 등 다양한 기업제품 설명회도 열렸다. 화려한 몽골의 문화도 선보였다.1일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서울광장 야외무대에서 1시간 동안 전통 춤과 노래, 악기 공연 등을 가졌다. 또 지난달 30일과 1일 이틀 동안 ‘만드항우의 일대기’,‘진지마’ 등의 역사영화도 선보였다. ●몽골과 울란바토르는? 몽골은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방에 위치한 내륙국가다. 남쪽은 중국과, 북쪽은 러시아와 접해 있다.247만여명이 한반도의 7배가 넘는 150만여㎢ 영토에서 살고 있다. 국민의 80%가 몽골족이며 라마불교를 주로 믿는다.13세기 몽고제국으로 세계를 호령한 뒤 오랫동안 청의 지배를 받다가 1924년 몽골 인민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란 뜻이다.9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몽골 산업 생산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몽골의 정치·산업 중심지이다. 자매결연과 함께 96년에는 울란바토르 나트사그도르지의 거리 1㎞를 서울의 거리로 지정할 만큼 서울과 친숙한 도시다. 시장은 시의회 의원 가운데 선출하며, 총리가 임명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패션으로 通한 사진·영상·설치·회화

    프랑스 68혁명 세대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철학자 질 리포베츠키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패션의 시대’ 혹은 ‘유행의 제국’으로 규정했다. 그가 말하는 패션의 시대란 단순히 옷을 세련되게 잘 입는 시대라거나 패션이 유행하는 시대라는 뜻이 아니다. 신체적인 태도나 성 역할, 충동적인 소비행태, 정치적 수사학, 광고 등이 모두 패션의 범주에 든다. 요컨대 우리는 패션에 의해 조종되는, 패션의 논리로 재구조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한순간도 패션이라는 코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서울 서교동의 복합문화공간 스타일큐브 잔다리가 개관 1주년을 맞아 마련한 ‘패션 인 러브(Fashion in Love)’전은 이같은 패션에 담긴 은유와 상징들을 구체적인 예술작품을 통해 살펴보는 색다른 자리다.4월30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1부는 의상 디자이너들이 만든 아트웨어를 각각의 개성적인 시선으로 연출해 촬영한 사진작가들의 작품,2부는 패션을 주제로 한 영상·회화·설치작품으로 꾸며졌다. 참여작가는 김중만·김현성·노정하, 이상봉·한승수·루비나·임현희·임선옥(디자인) 등 모두 15명. 이들의 지향점은 ‘패션으로 소통하기’다. 그것은 물론 패션이 말을 할 수 있고 그 ‘언어로서의 패션’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번 전시는 패션이야말로 개인과 집단 그리고 성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유력한 지표임을 깨우쳐준다. 패션쇼나 TV 등에서가 아닌 전시공간에서 패션을 만나는 것은 그리 흔치 않다는 점에서도 일단 눈길이 가는 전시다.(02)323-4155.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책꽂이]

    ●조선의 마음:문학으로 읽는 조선왕조사(신봉승 지음, 선 펴냄) 누구나 접근이 쉽도록 문학적인 감성으로 조선의 역사를 풀어낸다. 창업부터 대한제국의 궤멸까지 철저한 실록을 바탕으로 한 56편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1만 5000원. ●세계의 역사교과서(이시와타 노부오·고시다 다카시 편저,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펴냄) 일본의 두 역사학자가 배타적 내셔널리즘을 조장하는 자국의 교과서와 이를 만든 이들의 왜곡된 역사관을 정면 비판하기 위해 쓴 책. 전쟁과 식민지 지배란 테마를 중심으로 한국·중국·싱가포르·독일·미국 등 11개국의 역사교과서를 비교분석했다.1만 3000원. ●산다는 것의 의미(김형석 지음, 마음향기 펴냄) 원로 철학자이자 연세대 명예교수인 지은이가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대화를 나누듯 쓴 철학 에세이. 삶의 의미, 친구, 사랑과 결혼, 성공, 돈, 죽음 등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삶의 비전을 이야기한다.9000원. ●목수(신응수 지음, 열림원 펴냄) 열여섯 살에 목수의 길에 들어서 46년째 대목장의 길을 걷고 있는 외길 장인의 나무와 고건축 이야기. 나무의 생과 나무를 다루는 업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는 목수의 생을 진솔하게 담았다.1만 800원.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그램 질로크 지음, 노명우 옮김, 효형출판 펴냄) 20세기의 독창적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는 지은이가 나폴리, 모스크바, 베를린, 파리 등 전 생애에 걸쳐 겪은 대도시의 매혹과 경험을 명쾌하게 풀어냈다.1만 6000원. ●김정일 코드:브루스 커밍스의 북한(브루스 커밍스 지음, 남성욱 옮김, 따뜻한손 펴냄) 한국 근·현대사에 정통한 석학으로 평가되는 미국의 정치학자인 지은이는 6자회담을 둘러싸고 불거진 북·미 양자간 갈등의 근원이 이미 오래전의 한국전쟁에 있음을 설파한다.1만 4500원. ●패션의 유혹(조안 핑켈슈타인 지음, 김대웅·김여경 옮김, 청년사 펴냄) ‘패션’을 사회현상으로 파악하고, 사회학, 문화연구, 젠더, 미디어 문화인류학, 역사학, 미술, 복식사, 기호론에 이르기까지 거시적인 시각에서 패션 전체를 조망한다.1만 5000원. ●대한민국은 받아쓰기중(정재환 지음, 김영사 펴냄) 우리말 지키기 운동에 앞장서온 방송인 정재환이 생활현장속의 생생한 사례를 엮어 낸 우리말 교양서. 상점 간판에서부터 게시판, 광고판, 자장면집 차림표, 인터넷, 방송 자막까지 자주 만나게 되는 왜곡된 언어·문자환경을 고발한다.9900원.
  • 1920년대 조선의 민담·풍습 오롯이

    1920년대 조선의 민담·풍습 오롯이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한 외국인의 기록을 본지가 입수, 소개한다.20세기 초 20여년간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독일인 선교사 안드레 에카르트가 독일 귀국후인 1923년에 발간한 조선어교제문전(朝鮮語交際文典·이하 문전). 건국대 명예교수인 류태영(69) 박사가 이스라엘에서 입수해 본지에 제공한 것으로, 원래는 조선인과 독일인 모두가 쓸 수 있는 어학교재용으로 만든 책이다. 그러나 지금은 독일인 눈에 비친 조선의 이런저런 민담과 풍습이 오롯이 남아 있다는 점이 더 관심을 끈다. 문전은 책 구성에서부터 조선인과 독일인 모두를 위한 어학교재라는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선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양 부분은 독일어와 한국어로 씌어져 있다. 한국어 부분 역시 물론 에카르트가 직접 쓴 것이다. 또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됴션언문(朝鮮諺文)’에서는 한글자모의 발음을 로마자(羅馬字)로 설명하는 등 문자체계에 대한 설명도 보인다. 그리고 45개의 조선어로 된 이야기들로 본문을 구성했다. 부록으로는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의 일부가 실려 있고 독일어 번역을 위한 짧은 연습문 45개도 있다. 책 마지막에 저자 이름으로 ‘옥락안(玉樂安)’이라는 에카르트의 한국식 이름이 표기되어 있고 ‘정가금오원’과 ‘불허복제’라는 가격과 저작권 보호 표시까지 붙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본문 내용이다. 에카르트는 서언(緖言)에서 본문의 45가지 ‘니야기’(이야기)는 “조선 13도를 통하야 방방곡곡을 천답(踐踏)하며 연구에 연구를 가한 결과”라고 밝히고 있다. 에카르트의 성실한 노력 덕분에 교재를 읽다보면 어떤 이야기들이 1920년대 당시 조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는지 엿볼 수 있다. ●만담과 해학 산을 넘다 육혈포(권총)를 가진 도적을 만나 주인양반의 돈을 다 빼앗긴 하인이 “오늘 길에서 도적을 만났다하면 그 양반이 내 말을 곧이 아니 듣고 나를 의심하겠으니 당신 가진 육혈포로 내 옷에 구멍을 뚫어주면 그 보람으로 주인 양반에게 빙거(憑據·증거를 대다)하겠다.”고 도적에게 부탁한다. 그런데 미련한 도적은 그만 “철환(총알)이 없다.”고 대답해버렸다.‘헛총만 가진 것’을 안 하인은 빼앗긴 돈을 되찾고 도적을 흠뻑 두드려주고 간다.(세번째 이야기 ‘도적을 속인 진담’) 이처럼 문전에는 만담류의 우스갯소리가 20여개로 가장 많다. 그냥 만담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판소리풍의 걸죽한 입담 역시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땡볕에 김매는 팔자에 울상짓던 아내한테 괄시받은 한 농부는 벼슬하겠다며 서울로 훌쩍 올라간다. 이 농부 어찌어찌 벼슬얻어 풍악을 울리며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데 이 풍악소리를 듣고 내뱉는 아내의 말이 감칠맛이다.“우리 양반인지 닷돈 세뭉치인지, 벼슬인지 닭의 벼슬인지, 군수인지 국수인지, 감사인지 곳감인지 한다고 시골인지 서울인지 가더니 아니오니 이 노릇을 장차 어찌하잔 말이냐.” ●조선의 풍습 조선의 풍습에 대한 글도 찾아볼 수 있다. 풍습에 대해서는 에카르트의 세심한 관찰과 묘사가 잘 드러난다.‘조선에서 혼인하는 법’에서는 에카르트가 마치 결혼식을 옆에서 지켜본 듯 신랑·신부의 행색부터 결혼식까지의 전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또 조선의 풍습을 잘 모르는 외지인과 조선사람간의 대화체로 꾸며진 ‘귀신을 위하는 이야기’에서는 성주·터주 등 전통신앙에서부터 종묘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제사 풍습에 대해 순차적으로 설명해준다. ●피할 수 없는 시대상황 어학교재인데다 각 지방의 얘기들을 채록하는 형식이다보니 정치나 사회문제 같은 민감한 소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은근슬쩍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서울구경’편은 강원도 산골에 사는 김 생원이라는 사람의 서울 유람기가 담겨져 있다. 하루는 김생원이 임금 사는 곳을 보겠다며 경운궁으로 가는데 당시 경운궁에 유폐돼 있던 태황제(고종)를 두고 한 경인(京人)과 나눈 대화가 이렇다.“그러면 국사를 시방 누가 상관하오.”라고 김 생원이 묻자 “예 일본 통감부에서 모든 정사를 다 상관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다시 “그러면 그전보다 국민간에 모든 정사가 밝게 됩니까.”라고 묻자 “예 그 전보다 백성들이 참 평안히 살고 국사가 개명하게 됩니다.”라고 대답한다.‘아무 것도 모르는’ 것으로 설정된 한 촌부의 질문이 묘한 느낌을 준다. 또 임진왜란 당시 피란길에 올랐던 선조가 겪는 고초도 ‘임금이 피란함’편에 상세히 실려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에카르트 신부는 안드레 에카르트는 1909년 천주교 베네딕트선교회 선교사 자격으로 조선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조선어를 익힌 뒤 경성제국대학에서 언어와 미술사를 강의했다.1928년 독일로 돌아간 에카르트는 20여년에 이르는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뮌헨대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의 언어, 미술, 음악, 무용, 문학 등 각 방면에 걸쳐 다양한 글을 남겼다. 한국인 제자도 많이 길러냈는데 비운의 천재로 불리는 전혜린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에카르트의 저작 가운데 1929년 쓴 ‘조선미술사’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책은 조선 미술에 대한 최초의 통사 형식 서술이었고 한국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아직도 한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으로 꼽힌다. 그는 이 책에서 거대하지만 실속은 없는 중국미술, 오밀조밀하지만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인 일본미술과 달리 한국 미술은 단아하고 소박한 자연미가 살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다 개개의 예술작품을 통해 한국의 미를 추출해내는 접근법을 쓰고 있어 책에 실린 500여점 도판은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에카르트는 그다지 기억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미술사가 2003년에서야 열화당에서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이스라엘 유학중 ‘…文典’ 입수한 류태영박사 국내에서 이스라엘 전문가로 손 꼽히는 류태영 박사는 이 문전을 1973년 이스라엘 유학시절 히브리대 중앙도서관 서고에서 처음 접했다. 히브리대 중앙도서관은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당시에는 에카르트가 누구인지도 몰랐단다. 류 박사는 “독일 선교사인데도 또록또록한 한글로 재미있는 얘기를 너무 잘 풀어내서 ‘한국에 있었던 선교사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라며 읽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하다 골치가 아프면 머리를 식힐 겸해서 이 책을 자주 읽다가 아예 복사본까지 마련해뒀다. 귀국한 뒤 이 내용을 주변 사람들한테 얘기해줬더니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아 최근에는 복사본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돌리기까지 했다. 유 박사는 “출판사에 물어보니 펴낸 지 80년이 넘어 저작권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틈나는 대로 현대문으로 풀어내 출간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히브리 도서관에는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세계 각지에 흩어 살던 유대인들이 기증한 자료가 많다.”면서 “이 때문에 한국 관련 자료도 엄청난데 한글을 아는 사람이 없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며 아쉬워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영국문화원의 영어맞춤학습

    영국문화원의 영어맞춤학습

    1934년 발족한 영국문화원(British Council)은‘영국의 창(窓)’이다. 영국문화원은 이제 세계 110개 나라에서 영국문화를 알리고 있다. 한국의 영국문화원은 1973년 8월 이후 영어학습, 유학주선, 문화교류 등의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지구 육지면적의 4분의1, 세계 인구의 6분의 1을 지배하던 18세기 대영제국은 사라졌지만, 훨씬 더 많은 나라에서 영국 문화의 해를 밝히고 있는 영국문화원을 찾았다. 설치조각 ‘망치질하는 사람’이 눈길을 끄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의 흥국생명 빌딩 4층에는 한국 속 작은 영국이 있다. 주한영국문화원은 영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원스톱 서비스센터’를 보는 듯하다. ●어린이·대학생·직장인 위한 강좌 다양 영국문화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어학센터. 세계 공통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영어의 모국(母國)이라는 자부심으로 영어를 가르친다.‘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 안에 영어를 습득하는가.’보다는 ‘어떻게 하면 언어의 이론과 실생활이 접목되도록 가르치는가.’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실있게 가르치려 노력한다. 어학센터의 영어강좌는 ‘정기코스’,‘특별코스’,‘시험준비반’,‘비즈니스코스’로 크게 4가지 형태다. 정기코스 성인반은 영어 구사 능력에 따라 15개반으로 나누어 ‘말하기’,‘듣기’,‘읽기’,‘쓰기’를 가르친다. 일주일에 4차례, 한 강의에 90분씩 7주 동안 진행한다. 한 반의 정원은 16명. 현재 성인반에 등록한 사람은 1200여명이다. 어린이 영어교실에서는 1000여명의 초등학생이 영어를 배우고 있다. 일반학원과는 달리 책임감을 갖고 지도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어린이 영어교실의 전 과정을 마치려면 4년이 걸린다.90%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시작해 4∼5학년 때까지 다닌다. 일주일에 2차례, 한 강의에 90분씩 7주 동안 수업한다. 전 세계 영국문화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어린이 예술 경연대회’도 수업과정의 하나이다. 해마다 6∼7월에 수업시간에 그린 그림을 영국에 보내 각국 어린이들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겨룬다. 입상한 그림은 영국문화원이 전 세계에서 발행하는 달력에 실린다. 한국 어린이들은 최근 3∼4년 동안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특별코스에는 논문을 영어로 쓰려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위한 ‘학위과정 준비 영작문반(Academic Writing)’과 영국 유학이 결정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국의 대학생활과 문화를 가르치는 ‘유학준비반’이 있다.BBC뉴스나 영국의 신문·잡지를 보고 영국 사회·문화 현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사토론반(Current Affairs)’은 수강생의 재등록률이 100%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아나운서, 작가 등 방송계 종사자들이 즐겨 찾는 강좌이다. ‘시험준비반’은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연방국가의 대학, 대학원에 진학할 때 필요한 IELTS(International English Language Testing System)시험 대비반도 운영한다. 영연방국가에서 TOEIC처럼 통용되는 영어능력평가인 FCE(First Certificate Exam)준비반도 있다. ‘비즈니스코스’는 직장인과 취업준비생들에게 인기다. 프리젠테이션, 보고서, 이메일, 이력서 등 공식문서를 영어로 작성하는 방법을 공부한다. 토요일 하루 6시간,2주 동안 강의하는 집중코스도 있어 공식적인 자리에서 당장 영어로 발표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영국문화원은 ‘초·중·고 영어교사 무료연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서울시 교육청과 함께 교사경력 15년 이상의 중·고 영어교사 6명을 선발해 영국 네스포트-텔보트(Neath Port-Talbot)지방교육청 산하 6개 학교를 방문하는 연수기회를 주었다. 참여 교사들은 3주 동안 영국의 교육을 직접 보고 한국문화에 대해 영어로 강의하는 기회도 가졌다. 올해는 인천시 교육청과 함께 교사를 선발해 연수를 진행한다.5월에는 과학고와 외국어고 유학담당 교사를 영국 주요대학에 초청하는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실험성 강한 현대문화 흐름 전파 영국문화원은 현대 영국문화를 전파하는 창구 역할도 맡는다. 비틀스나 스팅처럼 대중적인 스타나 예술인보다는 특정단체나 개인이 소개하기에는 부담이 큰 실험적인 영국 문화를 알리는 데 비중을 둔다. 지난해 4월에는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조너선 반브룩의 작품을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브룩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미제국주의를 맹렬히 비난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현대무용과 인도 전통춤을 결합한 영국 아크람칸 무용단의 공연을 서울 세계무용축제 개막공연으로 올리기도 했다. 오는 3월31일부터 4월2일까지는 인체의 움직임으로 삶을 표현하는 영국 DV8의 피지컬 시어터 공연을 LG아트센터에서 소개한다. 179년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과학강연’도 2001년부터 한국에 소개해 과학분야 교류협력에도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 노벨상 수상자와 유명 과학자들이 공연적 요소를 가미한 실험으로 과학 원리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지난해 8월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출발! 우주로 떠나는 시공여행’에는 5000여명의 청중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 오는 8월에도 ‘남극의 생물체’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릴 예정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포나파 원장 추천 영어학습법 “지금까지는 현대 영국 문화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과학 분야에서도 영국과 한국이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나가겠습니다.” 쇼바 포나파(56) 주한영국문화원장은 “한국은 생명공학(BT)과 정보기술(IT) 분야의 강국인 만큼 영국문화원은 두 나라 과학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나파 원장은 붐바이대학 사학과 출신인 인도계 영국인.1977년 영국문화원에 들어간 뒤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로 활동했다. 영어 교육과 관련, 포나파 원장은 “한국은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면서 “모든 일을 ‘빨리빨리’ 이루어낸 탓인지 영어도 단시간에 습득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은 영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너무 빠른 시간 안에 완성하겠다는 생각은 문제”라면서 “언어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체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포나파 원장은 특히 “영국의 부모는 아이들이 요리나 운동을 잘하면 칭찬하고 즐거워하지만 한국의 부모는 오로지 공부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한국의 부모는 자식에 대한 기대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런 점에서 경기도와 서울의 영어마을은 영어를 배우면서 균형감각을 살릴 수 있는 바람직한 교육기관이라는 것이다. 포나파 원장은 “한국인들의 영어에 대한 열망이 큰 만큼 영국문화원은 영어의 모국이라는 자부심으로 책임감 있게 영어교육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미국과 영국의 영어가 다르기 때문에 영국식 영어를 배우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일부 한국인의 생각에는 다른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영어는 이미 전세계인의 언어인 만큼 호주, 캐나다, 필리핀 등에서 사용하는 영어의 발음, 억양, 문법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라면서 “미국은 이민자를 자국에 동화시키기 위해 영어를 가르치지만 영국은 영어를 세계에 전파시키기 위해 가르친다.”고 강조했다. 포나파 원장은 한류(韓流)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영화, 가요, 드라마 등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는 아시아 어느 국가보다 우수하다.”면서 “한류를 지속시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류를 한국의 브랜드 마케팅에 적극 활용할 방법을 체계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각국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으려면 정부 또는 특정 기업만 나서서는 되지 않는다.”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함께 움직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美대사관 지원 프로그램 영국문화원 말고도 외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또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에서 후원하는 yes(young English speakers)프로그램이 그것이다.yes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미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해 9월에 시작됐다. 한국인 변호사와 Tesol(Teachers of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자격증을 가진 한국인 영어강사 등 4명이 주축이 되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수업 참여자들이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놓고 자유토론하는 형식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와 같이 시의성있는 주제나 재즈의 역사와 같이 사회·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가 선정된다. 미국대사관에서는 각 주제를 강의할 수 있는 전문강사나 대사관 직원을 주선한다. 보통 50∼60명의 회원이 참여한 가운데 매달 셋째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정기모임을 갖는다. 참여자는 대학생, 대학원생, 젊은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태평양시대위원회 김동길 위원장의 도움으로 서대문구 대신동 태평양회관을 모임 장소로 사용한다. 회원 가운데 10여명은 ‘yes+’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한 달에 한 차례 모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회원들이 일주일에 한 차례 모여 심층적인 영어토론을 벌인다. 이들의 정기모임은 용산구 남영동 미국대사관 자료정보센터에서 열린다. 자료정보센터에서는 미국정부의 국제관계, 안보, 인권 등 각종 현안과 관련된 최신 보고서, 연설문, 기자회견문 등을 제공한다. yes프로그램 참여자들에게는 미국 연수기회도 주어진다. 참여한 대학생 8명을 선정, 이달말에 9박10일의 무료 미국 연수를 실시한다. 국무성과 같은 미국 정부 기관과 유명 대학 등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다. yes프로그램의 1기 활동은 지난달로 막을 내렸고 오는 3월부터는 인터넷 독립신문(www.independent.co.kr)을 통해 2기 회원을 모집한다.(02)397-4666.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제대로 된 영어한국사 나왔다

    |뉴욕 연합|한국 역사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어판 한국 역사책이 출판됐다. 미국 그린우드 출판사는 브리검 영대 동아시아언어연구소 교환교수와 주 워싱턴 공보공사를 역임한 김준길(65)씨가 지은 영문 서적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를 출간해 시판에 들어갔다고 주 뉴욕 총영사관이 9일(현지시간) 밝혔다. 총영사관에 따르면 그동안 미국에서 나온 영문 한국 역사책들은 한국어 서적을 단순히 영어로 번역한 종류이거나 한국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어서 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나마 한국인이 쓴 영문 한국사는 이미 출간된 지 수십년이나 지나 시대에 뒤떨어지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 전 공사가 2003년에서 2004년까지 브리검 영 대학 교환교수로 재직하면서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쓴 ‘한국사’는 서울대 이태진·노태돈 교수와 연세대 유영익·울산대 최정호 교수, 이홍구 전 주미대사 등이 각각 전공 분야를 감수했고 전체적으로 마크 피터슨 브리검 영대 한국학 교수가 감수했다. 이번에 나온 ‘한국사’는 고대사에서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서구와 같은 정복제국의 가신국가가 아닌 동아시아 세계 질서 속에서 중국 본토왕조와 주변 왕국간 외교관계로 설명하는 등 한국의 정체성과 전통성을 강조했다. 또 고구려는 중국에 종속된 지방 정권이 아닌 독립된 왕국으로 대륙의 왕조와 외교관계를 가졌고, 삼국이 신라로 통일되면서 한국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아직도 미국 교과서 일부에서 잘못 소개되고 있는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철저히 비판해 한국의 역사를 바로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 [열린세상] 강한 자만이 남을 칭찬할 수 있다/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교수

    일본이 올해의 언어로 ‘욘사마’를 정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기쁨보다 놀라움이 앞섰다. 최근 태국 방콕에서 열린 회의에서 만난 베트남 사회학교수가 들려준 베트남에서의 ‘대장금’ 열풍과 겹쳐 한국 대중문화의 저력을 인정받는 기쁨보다 한국 TV 드라마 주인공의 애칭을 자기들의 한해 언어로 선정한 일본 사회의 내적 자신감과 국경을 뛰어넘는 열린 마음에 대한 놀라움 때문에서다. 니가타 강진의 여파로 흔들리는 도쿄의 식당에서 한·일시민사회포럼 준비를 위해 일본의 대학교수, 언론인, 변호사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화제는 그날 있었던 한국의 헌법재판소 판결결과와 일본의 욘사마 신드롬이었다. 참가자 대부분이 남성들이었던 만큼 일본 중년여성의 욘사마 열풍에 그들도 놀랐다는 반응이다. 일본 공영 NHK-TV에서는 배용준의 ‘겨울연가’를 세차례나 방영했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욘사마의 인기에 질투를 느낄 정도라는 등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내년은 을사보호조약으로 주권을 잃은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침략과 피침, 억압과 저항, 정복과 해방으로 점철된 한·일의 비극적인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는 것도 을사보호조약이다. 내년 중 일본은 역사교과서를 새로 채택하게 된다. 일본 시민사회의 개입이 실험대에 오르는 해가 바로 내년이다.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덮는 화제가 욘사마였다. 욘사마의 소식을 접하면서 미국 하버드대 데이비드 란데스 교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란데스 교수는 저서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에서 일본 근대화의 성공 요인을 강한 정신적 자신감으로 풀이하고 있다.19세기 말 제국주의 세력의 서세동점(西勢東漸) 시대에 일본이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을 거둔 이유는 강한 정신적 자신감이라는 인프라에 터를 두고 겸손하게 강자의 장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강한 정신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강자의 장점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강자가 될 수 있었고, 강자가 될수록 더 한층 마음의 문을 열고 겸손해 지면서 타인의 지적 자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서방 선진국에 대해 겸손을 무기로 삼는다. 그들은 자기보다 앞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기록하고 녹음하며 사진을 찍는다. 겸손을 통해 강자의 자부심과 자만심을 부추겨 무장해제시킴으로써 강자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게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제적 성공은 식민지 지배를 볼모로 한 것이라는 우리의 상투적인 생각과는 다른 란데스 교수의 분석을 접하면서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을 지적당한 느낌이다. 욘사마 신드롬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한류 열풍에 대한 자화자찬이 대부분이다. 어떤 동료는 사실은 번역이 잘 되어 한국에서 우리가 보았던 ‘겨울연가’와는 수준이 다른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번쯤 입장을 바꾸어 올해의 언어를 딱 하나만 고르라고 했을 때 이웃나라 대중문화 주역의 애칭을 선택할 용기가 있을까 자문해본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자는 자기 자신도 존중하지 않는 자이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칭찬에 인색한 자는 그만큼 내적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욘사마 이야기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것은 지나친 사고의 비약일까. 상대방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정치권의 공방이 국민들까지 편 가르기를 부추기고 있다. 나를 존중할 때 사실은 상대방도 존중할 수 있다. 표현이 무엇이든 그것이 나라 사랑이라는 동기에서 나왔다는 것을 인정해줄 때 상대방의 장점이 보이고 마음의 문도 열리는 법이다. 우리끼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서는 세계화의 파고를 이길 수 없다. 을사보호조약 100주년을 앞두고 일본과 우리의 선택을 다시 비교해본다. 욘사마와 일본인, 그리고 세계화와 열린 마음, 열린 사회와 관련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진정 강한 자만이 남을 칭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교수
  •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스티븐 컨 지음

    1880년부터 1914년까지의 서구 사회는 흔히 벨 에포크(belle poque), 즉 ‘좋았던 시절’이라 불린다. 사회·문화·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화려했던 시기라는 뜻이다. 자본주의는 한껏 발달해 제국주의로까지 치달았고 다양한 문화와 과학기술의 발달은 일상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스티븐 컨 지음, 박성관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는 이런 20세기 초 황금시대를 포함,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는 1918년까지의 문화사를 총체적으로 다룬다. 이 시기 서구 지성계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 근대 유럽 문화사와 지성사를 연구해온 저자(오하이오대 교수)의 관심은 문학예술, 회화와 건축, 철학과 심리학, 물리학에까지 미친다. 책은 이 시기 서구인들이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했는가를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에 매료됐던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에서 영화의 몽타주 기법을 언어를 통해 구현하려 했다. 또 입체파는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의 내부와 외부를 모두 단일한 캔버스 위에 펼쳐놓음으로써 미술의 전통적인 한계, 즉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문화사 서술의 새로운 방법을 선보인다. 그것은 곧 시간과 공간이라는 철학의 기본 범주 안에서 수많은 자료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다.3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기고] 호주서 만난 중국학생들/황필홍 단국대교수·명예논설위원

    호주 시드니대학에서 지난 여름에 경험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나는 그 대학 철학과 초청으로 연구차 가서 교내 우먼스칼리지라는 기숙사에 머물게 되었다.처음 칼리지에 들어가니 일본 중·고생 20∼30명이 언어연수차 먼저 와 있어 식당·가든·컴퓨터실에서 마주치곤 했다.그들은 대체로 표정이 밝고,질서 있고,어딘지 넉넉해 보였다. 일본 학생들과 1주 정도 생활했을 때 30∼40명 되는 우리 중·고생이 역시 어학연수로 입주하였다.그들의 표정도 밝고 좋았다.공공장소에서 언행이 다소 조잡한 점이 없지 않았으나 연령대를 감안하면 크게 탓할 일은 아니었다.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일본학생들이 가고 한국학생들과 지내는 사이 마치 3국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이번에는 비슷한 나이의 중국학생 50∼60명이 대거 칼리지에 들어왔다.수가 많아서이기도 그러려니와 소란스럽기가 상당했다.한국학생들이 가고난 후 중국학생들의 제멋대로 생활은 극에 달했다. 내게 비친 그들의 표정은 일인과 한인보다 상대적으로 덜 밝아보이고 행동거지가 거친 면이 없지 않았다.그리고 무엇보다도 궁핍해 보였다.또 일본·한국의 학생들에 비해 상대방을 너무 배려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아니 가질 수 없었다.기숙사 라운지에서나 컴퓨터방에서나 구내식당에서나 크게 웃고 소리지르고 뛰어다녔다.안하무인 격의 행동이 하도 신기해 자세히 지켜보곤 했다. 중국학생들이 들어온 지 얼마 지나자 식당에 ‘부탁입니다.꼭 먹을 양만 가져가 주세요.’란 안내문이 붙었다.식당이 뷔페식인데 중국학생들이 음식을 워낙 많이 가져가고,결국은 다 먹지 못해 버리는 데서,음식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아닌게 아니라 음식을 먹는 그들의 접시를 봤더니 가관이었다.조그만 체구의 아이들이 어쩌면 한결같이 엄청난 양을 갖다 놓고 먹는 것이 아닌가. 칼리지를 방문하는 각국 사람들,일본·한국 학생들은 대개 식사를 하고 나서 과일을 후식으로 몇 조각 갖다 먹는다.이들은 달랐다.과일을 주방에서 내놓기가 바쁘게 큰 접시에 가득 갖다놓고 식사 후에 먹곤 하였다.옆 사람은 먹거나 말거나 상관않고 많은 음식과 과일을 가져다 두고 열심히 먹어대는 이들을 보며 놀랍고 두려웠다.과일만 나오면 우르르 몰려가 싹 쓸어가는 통에 그들이 머무는 동안 과일을 입에 대지 못했다.어리기로,어떻게 교육 받으면 사람이 저렇게 막될까. 중국학생들이 오기 전까지는 식당에 들어갈 때 기숙사 거주자임을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거주자 외에 누가 와서 식사를 하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중국학생들이 오고부터는 웬일인지 직원이 한사람씩 확인을 하였다.통제없이 들어와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중국학생들이 기숙사 밖에 거주하는 친구까지 불러서 함께 먹어댄 불법행위가 포착된 것이다. 중국학생들이 떠나자 기숙사는 마치 전쟁을 치르고 난 후처럼 평온을 되찾아 적막해졌다.본래 기숙사가 이렇게 조용했던가.먹을 양만 가져가라는 안내문을 떼고 식당 입구에서 신분을 확인하는 일이 사라졌다.3국 학생들을 비슷한 시기에 만나 함께한 것이나,중국학생들의 적나라한 비문명성을 리얼하게 경험한 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리는 중국이 잘못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다만 중국인이 좀 더 문명개화하여 세계 속에 더불어 사는 좋은 시민이 되어주기를 바란다.특히 동방3국의 일원으로서 이웃의 역사와 문화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선진 중국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과거 이데올로기로도 싸워보고 제국 팽창주의로 세계전쟁을 치러도 보았지만 모두가 허사였다는 것이 인간역사의 준엄한 교훈이다.이 가르침을 무시하겠다면 우리도 좌시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들은 능히 알아야 한다. 황필홍 단국대교수·명예논설위원
  • [인사]

    ■ 스포츠서울21 ◇스포츠서울△광고국장 裵成國△광고국 사업부장 申相昊△편집국 편집부장 吳倫官△〃 스포츠부장 金泰忠△〃 야구부장 직무대행 梁成東△〃 종합취재부장 李元漢△〃 연예부장 직무대행 柳秀根△판매부장 李成春 ◇굿모닝서울△광고국장 白相鎬△편집국장 직무대행 李揆元△편집부장 成喜重△취재부장 朴諄圭 ■ 산업자원부 ◇국장급 파견 △국무조정실 규제개혁기획단 尹永善 ■ 한국전력공사 △부사장 鄭泰豪△송변전본부장 변강 ■ 중소기업유통센터 ◇부장급 승진 △여성의류팀 玄河哲 ■ 숙명여대 △문과대학장 梁東淑△음학〃 權純鎬△미술〃 朱敏淑△박물관장 安政彦△정보통신처장 崔鍾元△한국음식연구원장 韓榮實△취업경력개발센터장 姜貞愛△출판국장 徐贊柱△대학자체평가추진실장 朴鐘成△영미권연구센터장 李淑姬△정영양자수박물관장 鄭英陽 ■ 건국대 △사회과학대학장 李英芬△대학원 교학부장 鄭善浩△공과대 〃 丁泰建△국제협력센터장 金光洙△일우헌관장 金泳哲△건대학보사 편집인 겸 충주학원방송국 주간 尹炳善△충주 외국어교육원장 李愚學△〃 정보전산원장 鮮宇何植△기기센터소장 郭哲泳△충주 평생교육원장 金知恩△〃 보육교사교육원장 朴濬傑(서울캠퍼스)△기획조정처 발전전략팀장 金在慶△〃 기획예산〃 申采鎬△〃 관재〃 申鳳秀△교무처 학사관리〃 宋壬錫△학생복지처 취업지원〃 全大逸△총무처 인사〃 朴壽源△〃 시설〃 韓鍾奭△정보통신처 교육지원〃 李弘天(충주캠퍼스)△기획조정처 기획팀장 尹泰珉△교무처 교무〃 李訓寧△〃 입학관리〃 周仁△학생복지처 학생복지〃 겸 취업지원〃 姜源奭△총무처 시설〃 任進煥(행정실장)△대학원 朴盛斗△교육대학원 金大燮△농축대학원 朴君植△언론홍보대학원 金澤鎬△정보통신대학원 白利鉉△상경대 裵聖默△경영대 申鉉彬△사범대 裵順吉△사회과학대 柳南熙△언어교육원 朴純永△충주캠퍼스 평생교육원 겸 보육교사교육원 鄭用周△상허기념도서관 정보처리팀장 權秉聖△〃 정보봉사〃 宋奎澈△중원도서관 정보자료〃 李一燮 ■ 영남대 △임상약학대학원장 겸 약품개발연구소장 龍哲淳△공과대학장 겸 공업기술연구소장 金鳳植△정치행정대학장 李盛根△약학대학장 孫種根△기초과학연구소장 任相奎△영남지역발전연구소장 成道慶△장류연구소장 金相達△통계연구소장 姜錫福△재료기술연구소장 李在烈△공학교육인증지원센터소장 柳時沃 ■ 한라일보 △이사·영업본부장 김인배△그래픽디자인 부장대우 겸 영업관리부 부장대우 현영종 △이사·논설위원 강문규△논설위원 이관숙 강태욱△서울지사장 겸 제2정치부장 김영필△서귀포지사장 겸 제2사회부 부장대우 오태현△총무부 부장대우 조용철 ■ 한국은행 (국·실장급)△전산정보국장 朴鉉德 △강남본부장 裵鍾會 (1급)△총무국 연수원 郭載善△부산본부 金裕喆△대구경북〃 趙文基△광주전남〃 鄭熙全△대전충남〃 林宙煥△경기〃 李來晃△한국금융연구원 파견 金永伯 (2급)△기획국 鄭榮澤△전산정보국 金大鉉 宋圭成△총무국 黃寅容△정책기획국 劉炳夏△금융결제국 宋泰復△뉴욕사무소 蔡瑄秉△외화자금국 秋興植△감사실 徐正坤 全志永△인천〃 金鍾秀△경기〃 權寧贊△울산〃 裵一常△강남〃 朴昇旭 ■ 외환은행 (국내점포장) △계동 丘在雄△안양 高光奭△구미 朴承哲△역삼역 金成鎭△달성 朴海晶△철산역 李天錫△동대문 表潤錫△청량리 權鍾洵△송탄 鄭在均△영업부 張甲淳 (개인금융지점장)△강남외환센터지점 金炯鎬△소공동지점 崔溶植△구성지점 李成合△인사동지점 洪哲 (출장소장)△이태원남출장소 全燦榮 (지점개설준비위원장)△스타타워지점 盧炳允 (SRM지점장)△대기업영업1본부(SRM) 琴用一 (본부부서팀장)△기업마케팅개발부 마케팅지원팀 金善友 ■ 하나은행 (부행장보) △강동지역본부 金三得 (지점장)△천안기업센터 姜孝正 ■ 대우증권 (승진) △재무관리부장 白相玉△뉴욕현지법인장 金載祐 ■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 尹世郁 ■ SK생명 (본부장) △동부지역 鄭恒采△서부지역 崔河鎔 (지점 팀장)△대전 琴珍浩△남대전 金性兆△서산 宋明秦△미래 TM 裵秀烈△마케팅지원팀 金鎭晩△마케팅전략팀 金鐘元△서부본부 영업팀 金平規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4) 강진만에서 ‘경세유표’를 곱씹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4) 강진만에서 ‘경세유표’를 곱씹다

    여름이 끝나가는 전남 강진만의 구강포를 굽어보며 200여년 전에 살았던 한 선비를 만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위당 정인보 선생이 말했던가.다산 정약용은 조선 사회의 총체적 연구 과제라고.바다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예외없이 우리는 다산과 만나야 한다.200여년 전 19세기 초반의 인물인 다산 정약용의 ‘불패 신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생애의 결정적 대목을 남도 바닷가의 귀양살이로 채운 이 불우한 ‘천재’의 행장(行狀)에 관하여 후인들은 깊은 경의를 표하곤 한다.그러나 그 ‘천재’가 해양정책 분야에서까지 탁월한 견해를 드러냈다는 사실은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다.해양에 주목한 그의 예지를 재론하고자 강진만까지 찾아든 것이다. ●바다까지 아우른 다산의 학문 물 비린내와 개펄 냄새가 해조음에 섞여 묘한 음색을 자아내는 강진만 하구 구강포(九江浦).아홉골 물길이 모여 만든 구강포,‘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구십포(九十浦)로 기록된 곳이다.전남 3대 강의 하나인 탐진강은 보림사가 있는 장흥 유구를 거쳐 강진 읍내를 적시며 구십포로 흘러든다.워낙 뭍으로 깊게 혀를 내민 만인 데다 간척까지 이뤄져 지금은 바다인지 강인지 경계조차 애매하다.구십포가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했더니,송하훈(51) 강진문화원 사무국장은 거침없이 읍내 고층 아파트로 이끈다.아파트 옥상에 서니 구강포가 끄트머리까지 한눈에 들어온다.거듭된 간척의 결과다. 구강포는 탐라로 가는 지름길이자 인근 대구면의 고려청자를 배로 실어내던 외길 항로였다.걸작 청자를 쏟아냈던 곳.600여년 동안 단절된 기예가 복원돼 ‘청자마을’로 기지개가 한창이다.바닷길이라는 특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왜 개성에서 천리가 넘는 궁벽진 이곳에 도요지를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칠량의 봉황마을을 찾아드니 감개가 무량하다.바닷가에 바짝 붙어 옹기점이 눈에 띈다.전국에서 바닷가에 있는 유일한 옹기점이다.‘봉황 옹기’로 불리는 이곳 옹기는 곧바로 배에 실려 제주도나 인근 도서로 팔려 나갔다.이렇듯 고려청자와 봉황옹기는 오로지 구강포를 둘러싼 바닷길과의 연관으로만 설명된다. ●‘삼면이 바다이나 국가에는 득이 없다’ 이런 사실을 구강포가 굽어보이는 곳에서 18년이나 살았던 정 다산이 모를 리 만무하다.그도 오늘날 횟집촌으로 변한 마량포구를 거닐었을 것이며,칠량의 청자마을과 만덕산의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에 이르는 호젓한 오솔길,초당 아래 귤동마을도 자주 오갔을 것이다.그러면서 갇혀 산 18년 동안 겨레를 위해 땀흘리지 않았겠는가. 역사는 더러 우연의 소산이기도 하다.하필이면 다도해 연안으로 쫓겨온 덕분에 그의 바다를 읽는 방식은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달랐다.알려져 있듯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은 영암에 뿌리를 둔 월출산 아래 성전쯤에서 길이 엇갈렸다.형은 남서쪽으로 내려가 우이도를 거쳐 흑산도에 유배됐으며,동생은 남동쪽 강진만의 백련사 인근에 갇혀 살았다.형은 흑산도에서 ‘장대’라는 어부를 만나 불후의 수산서 ‘자산어보’를 남겼고,동생은 강진만을 굽어보면서 쓴 ‘경세유표’ 속에 원대한 해양방책을 녹여 넣었다. 500여권의 방대한 편질(篇帙)을 남긴 다산의 저술에서 ‘경세유표’는 단연 압권이다.1표2서(一表二書) 중의 하나로,강진 유배생활(1801∼1818)의 마지막 전해(1817)에 저술하였다.다산은 유표에서 해양에 관한 원대한 뜻을 펼쳐보이며,유원사(綏遠司)라는 해양 총괄기관의 설치를 주창한다.오죽했으면 경세유표에서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이나 어염(魚鹽)에 대한 이득은 모두 사삿집에 돌아가고 국가에는 하나도 득이 없다.’고 했을까. ●조정의 해양에 대한 무관심 비판 이런 현실을 너무 잘 아는 그는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한 어민과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는 도서의 처지를 살펴 해양경영론을 제기하며 조정의 해양에 대한 무관심과 무대책을 아프게 비판하고 있지 않는가.그는 ‘나라 땅이 편소하여 북은 2000여리,남은 1000여리에 불과함’을 지적하면서 ‘오직 서남쪽 바다 여러 섬,그중 큰 것은 둘레가 100리나 되고 작은 것도 40∼50리는 된다.’고 말한다.그의 주장은 계속된다. ‘별이나 바둑판처럼 벌려 있고,작고 큰 것이 서로 끼어 있어 수효가 대략 1000여개인데 나라의 울타리다.개벽 이래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 이 강토를 다스리지 않았다.그러므로 바닷가 고을끼리 각자 자력으로 서로 부리고 붙여서,강한 자는 많이 차지하고 약한 자는 적게 얻는다.한 무더기 푸른 산이 분명 고을 앞에 있는데 그 소속을 물으면 수백리 밖의 아주 먼 고을을 말한다.또 명목은 고을에 예속되어 있으나 실상은 딴 곳에 종속되어,혹은 궁방(宮房)이 세금을 뜯어갔고,혹은 군문(軍門)이나 고을 토호가 착취했다.간사한 짓이 사방에서 나와 제멋대로 백성을 토색질한다.’ 이처럼 문란한 풍조,신라·고려 때부터 이어진 오랜 구악(舊惡)의 유래를 그는 간파하고 있었다.다산은 ‘내가 오랫동안 바닷가에 있었으므로 그 실정을 익히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18년간 어민과 호흡하며 방략 구상 유원사를 세워 온 나라의 섬을 직접 관장,민중의 질곡을 없애자는 대안까지 제시한다.섬의 세금을 직접 유원사에 바치게 해 관할 고을의 간섭과 혈세의 낭비,어민들의 질곡을 피하고자 하였다.이런 앞선 국가경영의 책략이 무능한 조정에 의해 받아들여질 리 만무했다.‘나라의 재력이 빈약한데 무엇으로 관직을 증설하느냐.’는 반박을 짐작한 듯 이런 견해도 준비했다.‘섬은 우리나라의 그윽한 수풀이니 진실로 한번 경영만 잘하면 장차 이름도 없는 물건이 물이 솟고,산이 일어나듯 할 것이다.’ 그의 해양방략은 하루아침에 구상된 것이 아니라 18년여란 세월을 강진만의 어민들과 벗하면서 숙성시켜 구체화한 것이다.그가 얼마나 어민의 삶에 가까이 다가섰는가는 그가 남긴 시어(詩語)에서도 산견된다.가령 탐진어가(眈津漁歌)에 등장하는 궁선(弓船)은 활선,맥령(麥嶺)은 보릿고개,고조풍(高鳥風)은 높새바람,마아풍(馬兒風)은 마파람을 뜻하는 것들이다.한문투긴 하지만 민중의 토속언어를 끌어들였으니,당대 언어의 ‘종다원성’을 확장시켰다는 점뿐 아니라 해양방략이 민중의 삶에 근거한 이론임을 설명하는 명쾌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우리는 여기에서 탁상물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실천학문의 예증을 본다. ●다산의 정책이 받아들여졌더라면… 다산은 북방에 뒤지지 않는 변방 외번(外藩)으로서 남방의 섬을 중시했다.올바른 해양경영으로 온갖 물산이 산처럼 쌓이는 풍경을 다산은 그때 이미 예견한 것이다.그러나 옹졸한 세계관에 갇혀 살던 봉건왕조는 국방·경제·수산의 근본이 될 종합 해양정책을 망라한 다산의 해양방략을 수용하지 않았다.경세유표조차도 먼 훗날에야 일반에게 알려졌을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랴. 유럽의 경우 기록적인 항해나 대규모 약탈의 이면에는 국왕이나 자본가,심지어는 왕비나 호사가 등 든든한 후원자들이 즐비했으나 내 땅의 바다라도 잘 다스리자는 이 뜻깊은 방책에는 어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가 경세유표를 쓴 1817년으로부터 불과 26년여 뒤인 1843년 중국에서는 50여권의 방대한 ‘해국도지(海國圖志)’가 출간된다.이는 1839년 아편전쟁에서 해양제국 영국에 패한 뒤 남경조약에 따라 홍콩과 구룡반도를 영국에 할양하는 아픔을 겪고 나서야 제시된 대응책이다.서구 열강의 서세동점은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본격화를 의미했으니,해양제국의 침략을 예감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영토조차 장악하지 못한 슬픈 왕조의 자화상을 경세유표는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돌이켜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거니와 결국 이 땅이 일본을 위시한 해양세력에게 유린당하고서야 그를 다시 생각한다는 사실이 새삼 아프게 폐부를 저민다.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다지만 지금도 ‘그때 그의 도서경영론이 받아들여졌더라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21세기 바다경영의 지혜 배워야 지금도 민감한 국제 해양질서의 도전에 진땀을 흘리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가 200여년 전에 주창한 해양방략의 경륜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곱씹어야 하리라. 따지고 보면 노르웨이령 북극에 ‘다산기지’가 존재함이 우연은 아니다.해양연구원(KORDI)에서 북극 전초기지를 마련하고 해양학자를 파견해 본격적 북극탐사를 시작하면서 명명한 ‘다산’이라는 기지명은 탁월한 선택이다.혹자는 다산과 바다가 무슨 관계냐고 묻겠지만,수많은 실학자 중에서 그처럼 명료하게 해양방책을 제시한 사람이 또 누구인가. 필자는 그의 ‘미완의 해도경영론’을 21세기 바다경영의 기본 노선으로 받아들일 것을 감히 주창한다.또 ‘어제 같은 옛날’을 살았던 다산에게서 과거를 거울 삼는 감고계금(鑑古戒今)의 배움을 청한다.강진만에서 다산을 만나면서 내내 보듬고 있었던 화두는 ‘이 많은 섬들을 어찌할 것인가.’하는 고민이었다.다시 공무원들이라도 먼저 ‘경세유표’를 찬찬히 되읽어 다산으로부터 변방의 섬들이 번성해 국력의 영화로 이어질 해양방략의 지혜를 얻어야 하리라.
  • [이라크 ‘종교전쟁’ 비화되나]기독교·이슬람교 타협없는 대립 심화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이라크에서는 연일 테러와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최근에는 이라크 무장 저항세력들이 미군과 외국인뿐 아니라 기독교 교회와 단체들로 공격 대상을 확대하면서 종교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이같은 우려 속에 테러 위협을 피해 인근 시리아와 요르단 등지로 탈출하는 이라크 내 기독교인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종교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슬람과 비이슬람,특히 기독교간의 갈등과 대립을 일찍부터 점쳤었다.이른바 ‘종교전쟁’이다.그러면 과연 이라크는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종교 전쟁’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것일까.선문대 이원삼(46·이슬람사상) 교수와 강남대 이찬수(42·비교종교학) 교수의 대담을 통해 이라크 종교전 상황을 점검하고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과 대책 등을 들어본다. ■ 이원삼·이찬수 교수-전문가 대담- ●이원삼 교수 현 상황을 ‘종교전쟁’으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전쟁의 속성상 종교보다는 정치·경제적 요인이 더 크고 여전히 그같은 성격이 짙은 게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개되는 양상을 볼 때 종교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찬수 교수 종교가 가진 보편성을 도외시한 채 특정 이념과 교리를 강조한 종교행위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현재의 이라크를 포함한 이슬람권의 움직임을 볼 때 명쾌하게 ‘종교전쟁’으로 선을 그을 수 없지만 왜곡된 종교관으로 인한 갈등이 심각한 대립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크다.종교전쟁의 위험성이 짙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원삼 교수 흔히 이라크 전쟁을 이슬람과 서구권의 충돌에 국한해 보고 있지만 문제는 비단 이슬람-서구세계만의 대립에 머물지 않는다.이슬람권 내부의 복잡한 관계와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계의 이해관계를 함께 연결하면 현재의 이라크 사태를 결코 단순하게 볼 수 없고 파병과 관련해 한국의 입장에서도 심각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찬수 교수 역사적으로 종교간 충돌과 갈등을 들여다보면 사소한 계기가 엄청난 살육을 불러온 경우가 많다.중세 십자군 전쟁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단순한 성지 순례를 둘러싼 탈환 목적에서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낳았다.문제는 종교가 이념이나 외적인 표현 양식이 아니라 그 문화권이 지닌 독자성과 특성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때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서구의 기독교가 이슬람 문화권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전쟁으로까지 비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이원삼 교수 지구상의 모든 문화권에 각자 특수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이라크만 하더라도 각 부족마다 관습과 언어 종교적 이념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너무 그들을 모르고 있다.그 특수성을 외면한 채 무력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불러일으키려 한다면 전쟁을 피할 수 없다.그런 점에서 한국의 이슬람권 선교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한국기독교계의 예루살렘 평화의 행진은 비록 무사히 끝나기는 했지만 문화우월주의에 치우친 파행적 선교 측면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찬수 교수 이제 기존의 종교관은 세계 평화의 측면에서 볼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케케묵은 사고의 패턴으로 종교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말이다.종교에서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사고의 혁명이 절실하다.지금 행해지고 있는 한국 기독교계의 해외선교도 반드시 이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원삼 교수 현재 한국 기독교계가 파견하고 있는 해외 선교사의 70%가 이슬람권에 몰리고 있다.선교에 대한 열정은 좋지만 현지 사정을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식의 선교는 거꾸로 적을 만들 뿐이다.선교다운 선교도 시작하지 못한 채 적대감만 낳는다면 선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찬수 교수 거듭 말하지만 이슬람권의 종교적 특수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현재 이라크에서 준동하고 있는 원리주의자들이 과격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거꾸로 기독교 입장에서 이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이슬람은 쿠란에서도 타 종교를 배척하지 말라는 원리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슬람과 기독교가 상호이해를 통해 폭력을 막고 줄일 방법은 충분하다고 본다. ●이원삼 교수 문제는 전쟁의 명분이 종교적으로 가려지고 있다는 점이다.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전쟁에서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분석하고 있다.옛소련 영향권에 있던 반미성향의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과 아랍국들이 친미로 돌아섰고,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점이 바로 큰 이유다.이라크와 이라크 바깥의 아랍국들이 속속 뭉치는 과정에서 이슬람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음은 바로 종교적인 선명성을 통해 응집력을 강화하려는 속셈이다. ●이찬수 교수 이슬람 국가들이 종교를 표방하면서 전쟁을 선언한다면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서로 이해하면서 어떻게 서로를 죽일 수 있는가. ●이원삼 교수 문제는 이슬람공동체(움마),혹은 이슬람국가 건설을 위한 원리주의 세력들이 종교전쟁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현재 이라크의 상황은 광복 후 좌우이념 대립의 혼란에 빠졌던 한국의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각 세력들이 헤게모니를 잡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그중에서도 알카에다나 알자르카위는 632∼661년 정통 칼리프 시대로 복귀해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자는 원리주의를 강하게 내걸고 있다.많은 아랍국 이슬람 신도들이 이같은 이슬람 움마 건설에 동조해 이라크로 결집하고 있는 상황이 종교전쟁을 예고케 하는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이찬수 교수 우려대로 상황이 종교전쟁으로 비화할 경우 한국의 입장에서도 피해가 없을 수 없다.지금부터라도 이슬람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종교전쟁의 참상을 막고 서구 세계의 제국주의적 팽창 드라이브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유력한 집단이 바로 종교일 수 있다.국내에서도 일반인들이 이슬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아랍문화센터 같은 공간을 마련하는 데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원삼 교수 이라크 대사관 직원만 보더라도 미국 2000명,일본 200명에 비해 한국은 턱없이 적은 8명에 불과하다.현지의 정보 파악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김선일씨의 희생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외교채널 이전에 현지의 종교 지도자나 족장 등 대표들과의 폭넓은 유대관계를 확보해 나간다면 사고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정리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2)8·15단상-사시미와 우치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12)8·15단상-사시미와 우치다

    ‘수사(壽司)’라는 간판을 내건 ‘사시미’집이 많다.‘횟집’보다 ‘수사’가 한결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일까.대개의 ‘수사’에서는 같은 ‘사시미’도 전반적으로 값이 비싸다.따지고 보면 ‘수사’란 ‘스시’로 읽으며,번역하면 초밥 정도에 해당된다.일식집의 대표격인 ‘수사’란 곳도 기실은 ‘초밥집’에 불과하다.어느 작은 ‘수사’에서는 ‘쓰키다시’가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갓 잡은 ‘아나고’는 기본이고 ‘우나기’까지 올린다.수제품 ‘와사비’가 입맛을 당기는데 ‘와리바시’로 ‘기코만 간장’에 살살 풀어서 ‘스시’에 발라먹는 맛이 그만이다.어디 ‘간수메’에 비할 것인가.대하(大蝦)도 펄펄 뛰는 ‘오도리’가 한결 맛있다.겨울철에는 ‘스키야키’와 ‘오뎅’,‘덴푸라’가 유별나다.여름에는 ‘히야시’된 ‘아사히 맥주’에 시원한 ‘복지리’가 또한 별미 아닌가.전복은 ‘해녀’들이나 ‘머구리’가 직접 잡았다.이 집의 유명한 삼치는 ‘스기’로 만든 배에 ‘모타’를 ‘장착’한 ‘나가시배’를 끌고 나가서 ‘앤카’를 박고서 ‘잇폰스리’로 낚아 올린다.불법인 줄 알면서도 ‘삼마이’를 간혹 쓰는데,싹쓸이하는 ‘고데구리’에 비하면 훨씬 낫다. ●‘지리’가 우리말 아닌가요? 의도적으로 만들어본 문장들이다.바다에 사노라면 일본말을 자주 듣게 된다.알아듣기 어려운 말도 어민들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말들이다.더러는 토착화해 ‘지리’나 ‘아나고’처럼 우리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국어학을 전공한 박사에게 묻자,“지리,글쎄요.우리말 아닌가요?”하고 되물어 올 정도이니,일반인들은 오죽하랴.위의 따옴표 부분을 우리말로 한번 풀어보자. △사시미(さしみ)=회 △쓰끼다시(つきだし)=가벼운 안주 △아나고(あなご)=붕장어 △우나기(うなぎ)=뱀장어 △스시(すし)=초밥 △오뎅(おでん)=어묵 △스키야키(すきやき)=전골 △덴푸라(でんぷら)=튀김 △와사비(わさび)=고추냉이 △간수메(かんづめ)=통조림 △오도리(おどり)=산 새우 △와리바시(わりばし)=나무젓가락 △복지리(鰒じる의 변형)=맑은 복어국 △스기(すぎ)=삼나무(杉) △삼마이(さんまい)=삼중망 △고데구리=소형기선저인망 △잇폰스리(一本釣,いっぽんすり)=외줄낚시 △머구리(もぐり)=잠수부 정도다. 번역에 걸맞은 대응어가 미처 개발되지 않는 것도 수두룩하다.‘삼마이(三重網)’는 ‘세겹그물’이 맞을 터인데,이미 삼마이그물이 토착화되어 세겹그물이 오히려 생뚱맞다.누구나 쓰는 해녀(海女)는 사실상 제주도 본토에서는 쓰지 않던 말이므로 토착어인 잠녀가 맞다.‘모타(モ-タ)’는 ‘motor(모터)’의 일본식 영어이며,덴푸라는 포루투갈어에서 왔다.어민들은 더러 ‘닻’이라는 우리말을 두고 ‘앤카 박는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닻을 뜻하는 ‘anchor’의 일본식 영어 아닌가. 일반인들은 간혹 신문기사 등에서 생소한 그물 이름이 나오면 답답하다.예망(曳網),자망(刺網),건강망(建綱網),선망(旋網) 따위는 일본식 한자어다.흘림그물을 뜻하는 유망(流網)은 ‘나가시(ながし)’라고 불리며,‘흘리다.’는 뜻의 ‘나가스(ながす)’에서 비롯되었다.‘고데구리’나 ‘머구리’,낚시꾼들이 많이 쓰는 외줄낚시인 ‘잇폰스리’도 일본말이다.거개의 어로도구가 일본말이다.외관상 일본어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선착장,간석지,적조,방파제 따위의 해양용어도 일본산이다. ●바다는 아직도 日식민상태 ‘회(膾)문화’가 말하듯 ‘해양강국’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근대적 해운· 수산·항만,심지어는 국방용어까지 들여다 쓰고 있으니,참담하게도 ‘식민의 바다’는 아직 해방되지 않았다.언어식민지를 청산하자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문화적 종다원성 차원에서라도 토착용어를 써야 할 텐데,현실은 반대다.우리 스스로 근대를 ‘번역’하지 못하고 남의 손을 빌려서 ‘번역’해온 식민지의 여독 때문이다. 일본어도 외국어인데 이웃나라 말이 섞였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와사비’가 일본의 오랜 기호식품인 반면에 우리 조상들은 거의 먹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생경한 ‘고추냉이’보다는 ‘와사비’가 타당하다고 여기기도 한다.‘아사히맥주’나 ‘기코만 간장’도 상품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연히 원문 그대로 써야 한다. 문제는 주체성이다.동서양 구분없이 근대 모국어의 탄생과 확대과정은 ‘번역’을 통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었다.그러나 한국사의 내재적 발전을 거치지 못하면서 해양과학기술과 생태환경용어에 이르기까지 ‘번역과 근대’의 주체성을 살리지 못한 채 오로지 직수입에 몰두해 왔다.새로운 과학기술이 도입되면 그에 상응하는 대응어도 개발해야 하는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게다가 오랫동안 써오던 토착말까지 잃어버려 ‘아나고 먹자.’고 하면 알아듣는 사람도 ‘붕장어 먹자.’고 하면 “뭐?”라고 되묻기 일쑤다. ●일제시대 조선어류 연구학자, 우치다 식민 잔재는 바다 관련 학계의 책임도 크다.마침 8·15를 앞두고 ‘유리판에 갇힌 물고기’란 유리원판 사진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어느 젊은 연구자가 용기있게 쓴 ‘일제시기 조선산 어류연구와 우치다’란 글에서 놀라운 시사를 얻었다.‘제국의 바다,식민의 바다’라는 부제부터가 눈길을 끌었다. 전시회의 주인공인 우치다 게이타로(內田惠太郞)는 1896년생으로 도쿄제국대학 농림학부 수산과를 나와서 1927년 한반도에 들어온다.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 양식계 책임자로 15년을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의 바다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었다.그런 그가 1942년,수많은 연구 업적을 고스란히 한국에 둔 채로 규슈(九州)제국대학 교수로 자리를 잡아 돌아간다.1964년 이와나미(岩坡) 문고본으로 출간된 ‘치어(稚魚)를 찾아서’에서 한국에서의 연구 활동을 포함한 자신의 어류생활사 연구 경험을 소상히 밝히기도 한 그는 사실 한국어류사 연구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같이 근무했던 나카노(中野進)와 우치다 자신,그밖의 여러 인물들이 많은 유리건판을 남긴다.그 유리건판들이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개인 소장가의 손에 들어갔고,그 소장 자료에 근거해 이번 전시회가 열리게 된 것. ●‘수산학 거목’의 도용 씁쓸 총독부 수산시험장은 광복 후 중앙수산시험장(1949),국립수산진흥원(1963),국립수산과학원(2002)으로 이어진다.이렇게 기관은 맥을 이어왔는데,어찌해서 조선총독부가 연구하고,실험하고,수집한 그 중요한 수산자료들은 모두 흩어지게 되었을까.총독부야 밉지만 그들의 업적은 잘 보존·관리·활용했어야 하는데 총독부시절에는 잘 관리되던 것이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어쩌다 이렇게 개인의 전유물로 주물러지게 되었을까. 재미있는 것은 일본인들이 남긴 ‘전리품’을 재활용하고,가공해 자신의 연구 성과로 둔갑시킨 정말 날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예전부터 학계에는 떠도는 소문이 있었다.우리나라 ‘수산학의 거목’으로 평가되는 분의 저술이 사실은 일본인들이 남긴 연구 성과를 슬쩍 해서 가공한 것이라는 얘기다.이 ‘거목’의 광복 이후 저술에서 총독부시절의 연구 성과를 요약·재정리하거나 표절을 뛰어넘는 도용 흔적마저 발견되고 있으니,이 얼마나 씁쓸한 일인가.그래서 서점에 나와 있는 물고기 관련 책자의 상당수가 이런 배경조차 모르고 이 ‘부정한 책’을 원전으로 인용하고 있지 않은가.이제는 그 ‘거목’의 저자가 우치다로 바뀌어야 마땅하다.전시회에 등장할 사진들을 미리 훑어보니 우치다의 어류연구가 고스란히 그 ‘거목’의 연구에 겹쳐지고 있다.식민잔재 청산은 바다에서도 미완의 숙제인 셈이다. 돌이켜보면,고종 26년(1889)에 체결된 한·일통상장정을 필두로 1908년 한·일어업협정,1909년의 한국어업법,1929년의 조선어업령 등을 통해 ‘제국의 바다’가 완성되어 갔다.일본인 어업이민을 부추겨서 일본인 어촌을 따로 건설하였으며,혹심한 약탈어업으로 일관한 게 바로 한일어업사다.1965년의 잘못된 한·일협정의 후과까지 남아 있는 데다가 ‘쌍끌이 사건’ 등에서 보았듯 우리의 어업권 대응도 시원찮다.일본의 끊임없는 독도영유권 주장도 속내를 들여다 보면 어업자원에 대한 일본인들의 주장이 반영된 결과 아니겠는가. ●日 ‘해양제국 건설’은 타산지석 ‘제국의 바다,식민의 바다’는 현재진행형이며 또한 미래형이기도 하다.한국과는 독도로,중국과는 댜오위타이(釣魚島)로 싸우면서,독립국이었던 유구국(琉球國)을 내부 식민지 오키나와로 ‘점령’한 일본의 끝없고,강력한 바다지향을 지켜본다. 대륙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사 편입 음모가 노골화되고 있다면,해양에서는 ‘해양제국’의 온갖 팽창전략이 종횡으로 구사되고 있다.더욱이 UN 해양법협약이 발표되면서 일본의 바다는 한결 넓어졌다.남쪽 태평양으로 뱃길을 돌리는가 했더니,동해조차 일본해로 둔갑시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대시켜 가고 있다.바다에서 살아간다는 일이 단순히 개인사에 국한된 미시적 삶이 아니라,국제질서를 낳는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생활임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어업권역이 줄어들면 어민들은 울상을 짓고,소비자는 비싼 값에 어류를 사먹거나,수입 고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으니 밥상머리에까지 성난 파도가 밀려옴을 어쩌랴. ‘사시미’와 ‘스시’를 먹으면서,8·15 광복절의 의미보다 ‘막바지 바다피서’를 얘기하고 있을지 모를 이 땅의 선남선녀들에게 ‘우리말 바다용어집’이라도 무상 제공하는 일은 이제 국가의 ‘의무’ 아니겠는가.‘지리’와 ‘아나고’를 우리말이라고 여기며 사는 이 시대의 숱한 ‘개인들’,지금 누가 그들만을 탓할 수 있으랴.
  • [이런 책 어때요]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고모리 요이치 지음 오에 겐자부로는 94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모호한 일본의 나’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일본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전후 일본 사회는 ‘모호함’ 그 자체로 읽힌다.패전이 아니라 종전이라 강변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며 끊임없이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나라 일본.사회운동가인 저자는 궤변과 책임회피로 일관한 쇼와 천황 히로히토의 ‘종전 조서’ 800자를 분석,일본 사회에 만연된 모호한 역사인식의 실체를 벗긴다.천황의 ‘옥음방송’과 ‘인간선언’은 종전선언이라기보다는 패전후 일본의 전략을 명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1만 2000원. ●문자제국 쇠망약사/이남호 지음 전자영상시대의 문자의 위상과 쓰임을 고찰한 산문?저자(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전자문화가 세상을 재원시화(reprimitivization)시킬 것”이라는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의 주장은 과격하고 단순한 면이 있지만 이 시대를 읽는 하나의 틀로 삼을 만하다고 강조한다.문자시대가 물러가고 전자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기본 생각.문학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내면성’이 현대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점점 약화돼가고 있는 것도 문자문화의 쇠퇴와 전자문화의 확산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1만 1000원. ●사랑,그 환상의 물매/김영민 지음 고전적인 구애의 메커니즘이란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하지만 저자(한일장신대 교수)는 그런 오래된 사랑의 방식에 이의를 단다.사랑은 결코 마음의 거래방식이 아니라는 것,마음은 연정의 증명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그러면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사랑법은? 그것은 ‘말’과 ‘살’로 엮어가는 연하디연한 놀이다.철학자다운 사랑의 아포리즘이 퍽이나 감각적이지만,요령부득의 언어 유희는 인공조미료 냄새를 솔솔 풍긴다.저자의 개인 홈페이지에 게재한 85편의 ‘사랑’글들을 묶은 전작 산문집.1만 1000원. ●세계 최대의 축제 올림픽 이야기/클라이브 기퍼드 지음 고대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올림픽 챔피언은 코로에보스라는 젊은 요리사였다.그는 기원전 776년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린 첫 올림픽의 유일한 종목이던 스타데 경주(192m 달리기)의 우승자였다.그후 고대 올림픽에는 원반던지기와 창던지기,디아울로스(스타디움 두 바퀴 달리기),권투,레슬링,멀리뛰기,전차경주 등 많은 종목들이 추가됐다.고대 올림픽은 운동경기이자 종교적 축제였다.따라서 대회 기간엔 휴전이 선포돼 전쟁이 멈췄다.여성은 선수로든 관중으로든 올림픽 경기장 안에 결코 들어갈 수 없었다.올림픽에 대한 총체적인 안내서.9500원. ●생명을 치유하는 맛있는 물/하야가와 히데오 지음 물의 정체를 밝혔다.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하수도와 상수도가 교차하는 일이 없다.하지만 일본은 하수가 상수와 하나로 합쳐저 다시 사용된다.질산성 질소는 정수장에선 완전히 여과되지 않기 때문에 상수에 하수의 질산성질소가 섞여 버린다.지하수는 안전하다는 신화는 옛말.책은 건강에 좋은 기능수 중에서 환원수에 대해 설명한다.공기중에 방치된 철이 녹스는 것,종이가 타서 재가 되는 것,사과가 갈색으로 변하는 것 등이 산화반응.환원은 산화된 상태를 원상으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산화환원전위가 낮고 항산화력도 강한 물이 진짜 환원수다.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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