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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野 “의료 공백에 국민 죽어간다”… 韓총리 “가짜뉴스” 고함

    野 “의료 공백에 국민 죽어간다”… 韓총리 “가짜뉴스” 고함

    민주당 “총선용 증원 발표 정치적”한덕수 “전공의들 책임” 감정싸움딥페이크 총괄 여가부 공백 지적에“새 장관 임명 필요성 있어 검토 중”野, 김문수에겐 ‘日로 가라’ 소리쳐 더불어민주당과 한덕수 국무총리가 12일 열린 9월 정기국회 마지막 대정부질문(교육·사회·문화 분야)에서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에 따른 죽음’에 대해 책임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이 “의료 공백에 국민이 죽어 간다. 윤석열 정부가 총선 전에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한 것이 정치적”이라고 비난하자 한 총리가 “가짜뉴스”, “전공의들에게 의료대란의 첫 번째 책임이 있다”고 반박하며 감정싸움으로 비화했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이 “의사 인력 확충 2000명은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숫자 아니었느냐”고 묻자 한 총리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한 총리는 “의사 1명 양성에 약 10년이 걸리는데 정부는 2035년 정도를 누적된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표로 삼아 내년부터 인원을 늘리려면 올해 5월 말까지 입학 절차·정원 조정 등을 끝내야 해 지난 2월 6일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 의원은 “응급실 뺑뺑이로 인한 사망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고 했고 한 총리는 “잇따른다는 표현은 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야당 의석에서 “국민이 죽어 나간다”고 소리치자 한 총리는 “가짜뉴스”라고 고함을 지른 뒤 “(의료진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죽어 나간다는 표현이 뭐냐”고 했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한 총리에게 “현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고 묻자 한 총리는 “정부도 책임이 있지만 전공의에게 첫 번째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백 의원은 “여야의정 협의체에 들어오라고 설득해야 할 대상이 전공의인데 총리가 이런 태도를 보이면 누가 협의체에 들어오겠느냐”고 질타했다. 이에 한 총리는 “감춘다고 감춰지는 사실이냐. 전 세계 어디에도 응급실과 중증 환자를 떠나는 의료파업은 없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이날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업무를 하던 여가부 장관의 공백이 오래됐다는 남 의원의 질의에 “새 장관을 임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시기는 말하기 어렵지만, 필요성이 있겠다”고 했다. 대선 공약으로 여가부 폐지를 내세웠던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한 뒤 7개월간 후임을 지명하지 않고 있다. 한 총리는 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이 잘못됐느냐 생각하냐”는 박해철 민주당 의원 질문에 “판결을 다 읽어 보지 않아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다”면서도 “달리 생각하는 분도 의외로 많은 듯하다”고 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은 법원의 몇십 년의 징역형, 이런 것들은 그러한 죄하고 대법원이 판결을 했기 때문에 맞다고 보겠습니다만 좀 달리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좀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앞서 “일제 시대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언급으로 야권의 비판을 받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려 단상에 오르자 민주당 의원들은 “사과하세요”, “사도광산 해결해”, “일본으로 가세요” 등을 외쳤다. 이후 박 의원은 김 장관에게 “일제강점기 때 우리 선조들의 국적은 어디인가”라고 질의했고, 김 장관은 “일단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때 우리 대한민국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우리 국적은 없다”고 답했다.
  • 1930년대에도 ‘얼죽아’?…한국인의 못말리는 커피 사랑

    1930년대에도 ‘얼죽아’?…한국인의 못말리는 커피 사랑

    추운 겨울에도 냉커피를 고집하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현상은 한국의 독특한 커피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스커피의 인기는 놀랍게도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스 컵피를 두 사람이 하나만 청해 두 남녀가 대가리를 부비대고 보리줄기로 쪽쪽 빠라먹는다.’ 1930년 7월 16일자 조선일보에는 아이스커피를 나눠 마시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묘사한 삽화가 등장한다. 1920년대 얼음 공장이 생겨 인공 얼음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찬 음료가 유행했는데 커피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1년 5월 22일자 매일신보에는 ‘아이스커피 이렇게 만들면 좋다’는 기사가 실렸다. 내용은 이렇다. ‘커피는 더운 것에는 여러 가지를 쓰지마는 찬 커피에는 자바 것이 제일 좋다. 아이스커피는 흐리거나 검게 보이는 것은 보기에도 흉하고 마시면 맛도 좋지 못하다. 아이스커피는 반드시 투명하게 맑아야만 한다.’ ‘커피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온 국민이 커피를 즐겨 마시면서도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한국의 커피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특별전 ‘요즘 커피’(11월 10일까지)다. 민속박물관이 외래 문물인 커피 관련 전시를 여는 것이 의아할 수 있겠으나 160년 세월을 거쳐 한국인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으로 자리 잡은 점을 고려하면 이제 커피가 민속 음료 반열에 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시는 조선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때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 급변하는 시대와 사회 변화에 발맞춘 커피의 변천사를 소개한다. 아울러 커피에 얽힌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풍부한 사료와 손때묻은 추억의 물품 60여 점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건 1861년 조선에 온 프랑스 신부에 의해서였다. 커피를 처음 마신 한국인은 누구일까. 기록으로 보면 조선 후기 문관 민건호(1843~1920)다. 1884년 7월 27일 일기에 갑비차(커피)를 대접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상류층 조선인과 서양인이 커피의 주 소비층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지식인과 모던 보이·모던 걸들이 백화점과 서양 음식점, 다방에서 커피를 즐겼다. 커피와 우유, 설탕을 섞어 만든 가정용 가루 커피, 조선의 관광상품이었던 인삼 커피 등이 당시 인기를 끌었다. 광복 이후 1960년대까지는 다방커피의 전성기였다. 다방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사랑받았지만 실직자들의 집합소로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1970~80년대에는 원두커피전문점이 등장하고, 믹스커피가 탄생했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커피체인점과 카페 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전시 후반부에는 요즘 우리에게 커피가 어떤 의미인지를 설문조사, 인터뷰 등으로 다채롭게 풀어냈다. 박물관이 실시한 자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답은 ‘습관적으로’(30%)였다. 이어 ‘피로와 잠 등을 쫓기 위해’ (27%), ‘맛이 좋아서’(23%) 순이었다. 처음 마신 커피를 묻는 질문에는 믹스커피가 49%로 가장 많았고, 아메리카노는 6%에 불과했다. 커피 껌과 커피 맛 아이스크림 등 각종 커피 가공식품, 원형 통에 든 인스턴트커피, 꽃무늬 커피잔과 구식 커피포트, 다방 이름이 적힌 성냥갑과 공중전화카드 등 전시장에 소개된 옛 자료들을 보며 추억 여행을 떠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주미대한제국공사관, 美 국가유산 됐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美 국가유산 됐다

    대한제국 자주외교와 한미 우호의 상징적 공간인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미국 국가유산이 됐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미 워싱턴DC에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미국의 국가 사적지로 공식 등재됐다고 11일 밝혔다. 국가 사적지는 우리의 국가유산과 유사한 제도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 구조물, 장소 등을 법으로 지정해 보존한다. 지난 7월 25일 워싱턴DC 주관 공청회와 8월 7일 미 국가 사적지 등재 예고<서울신문 8월 9일자 19면>, 관할 기관인 국립공원관리청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등재가 이뤄졌다. 한국이 소유한 미국 내 건물이 국가 사적지가 된 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은 “한미 외교 현장의 중요한 장소이고 건물 내외부 모두 원형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한국 정부 주도로 진행된 복원 및 새 단장 공사로 역사적 공간을 훌륭히 재현한 점 등이 등재 이유”라고 밝혔다. 공사관 건물은 1889년 2월부터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기 전까지 외교 활동의 중심 무대로 활용됐다. 일본이 1910년 단돈 5달러에 강제 매입해 미국인에게 매도하면서 건물의 소유권을 잃었다가 2012년 10월 국가유산청이 재매입해 소유권을 되찾은 뒤 2018년 역사전시관으로 개관했다.
  • 일제는 어떻게 끊임없이 20세기 초 전쟁을 벌였을까

    일제는 어떻게 끊임없이 20세기 초 전쟁을 벌였을까

    20세기 최악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8월 일본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핵 폭격을 받은 뒤에야 끝났다. 아시아 지역에 큰 상흔을 남긴 태평양전쟁을 벌이기 이전부터 일제는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왔다. 전면전에 가까운 전쟁만 봐도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14년 1차 세계대전,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까지 거의 10년에 한 번꼴로 큰 규모의 전쟁을 일으켰다. 1890년 ‘대일본제국 헌법’ 시행으로 근대 정부의 형태를 갖춘 일본이 국력을 키우기 위해 선택한 것이 ‘전쟁’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 교토대 동남아시아지역연구소 기시 도시히코 교수는 ‘제국 일본의 프로파간다’(타커스)라는 책에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50년 동안 어떻게 일제는 쉼 없이 전쟁을 벌일 수 있었는지 그 이면을 분석했다. 기시 교수는 1890년부터 1945년까지 신문, 잡지, 포스터 등 다양한 시각 매체와 선전 보도에 등장하는 도화상(圖畵像)을 10년 단위로 분석해 일제가 자국민들에게 전쟁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줬는지를 봤다. 일제가 벌인 사실상 첫 전면전인 청일전쟁 시기에는 판화 기술의 발전으로 대량으로 생산된 ‘니시키에’라는 다색 목판화와 그림엽서, 전쟁물 연극을 상연해 대중에게 전쟁에 관해 긍정적 이미지를 노출하고, 전쟁에 관한 강렬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러일전쟁 때는 인쇄술이 눈에 띄게 발전해 사진을 실은 신문과 다색 석판 인쇄로 찍어낸 삽화, 만화 등 출판물을 통해 ‘전승 신화’를 집단 기억을 형성했다. 여기에 20세기 초가 되면서 활동사진이라고 불린 영화는 과거의 인쇄 매체들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실제로 1930년 대 중일전쟁 시기에 일본 국민이 징병제, 군수 동원이라는 총동원체제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뉴스 영화와 군사 영화의 이미지에 취해있었기 때문이라고 기시 교수는 설명했다. 여기에 중일전쟁 이전이었던 만주사변 시기부터는 언론들이 정부와 군부의 프로파간다의 전략에 적극 가담했다. 당시 신문사들은 앞다퉈 현장에 기자를 파견해 전투 현장을 찍은 사진들과 함께 전쟁 속보를 내보내면서 ‘볼거리’를 만들어 신문을 보지 않던 사람들까지 독자로 끌어들여 판매 부수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 교수는 “일본이 1945년까지 사실상 군사 국가처럼 전쟁을 끊임없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 지도층의 오판과 함께 전승 신화에 눈이 멀어 계속 전쟁을 지지한 국민, 이를 언론 사업에 적극 활용한 언론의 삼박자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기시 교수는 ‘한국 독자 여러분께’라는 서문에서도 “스마트폰과 PC로 매일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방대한 시각 정보가 전해지면서, 오늘날 청소년뿐 아니라 고령자까지도 정보의 홍수에 휘말려 국제 인식에서도 가짜 정보에 놀아난다”고 경고했다.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햄과 치즈, 중국 윈난에서 맛보는 유럽의 맛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햄과 치즈, 중국 윈난에서 맛보는 유럽의 맛

    음식 기행을 다니며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의외로 세계는 넓어 보이고 달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먹는 문화는 서로 엇비슷하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처럼 인접한 지역이야 지리적으로 문화가 뒤섞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저 멀리 유럽이나 다른 대륙에서 나타나는 식문화가 생뚱맞게 동시에 존재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건조햄, 훠투이다. 햄은 돼지 뒷다리의 영어식 표현이다. 뒷다리는 돼지의 정육 부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일찍이 유럽에서는 돼지 뒷다리의 저장성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을 사용해 가공했다. 하나는 다리를 통째로 소금에 절인 후 서늘한 곳에서 말리는 염장건조 방식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스페인 하몽이나 이탈리아의 프로슈토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뒷다리살을 통째로 소금물에 담갔다 익히기도 하는데 프랑스의 잠봉 블랑,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코토 등이 익힌 햄에 해당한다. 산업화가 도래하면서 값싼 가공육이 대량으로 필요하게 됐다. 이에 뒷다리뿐만 아니라 여러 부속 부위를 곱게 갈아 밀가루와 첨가물 등을 섞은 후 익혀 캔에 넣은 프레스 미트가 탄생하게 됐는데 이것이 이후 햄의 대명사가 됐다. 유럽의 건조햄은 역사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로마 제국 시절 로마 군인들이 바바리안이라 불리는 변방의 게르만족이 만든 건조햄을 와인과 교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로마인들에 비해 돼지고기를 더 많이 소비하고 다루는 게르만족이었기에 건조햄이나 살라미와 같은 건조 소시지가 로마의 문화에 스며들었고 로마가 유럽을 사실상 제패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럽에 건조햄을 먹는 식문화가 생겨났다고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의 식문화가 동양과 교류하게 되면서 중국으로 건조햄 식문화가 전파된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추론을 해볼 수도 있지만 중국 일각에선 도리어 중국의 건조햄이 유럽으로 전파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게 진실일까. 중국에서 건조햄으로 유명한 지역은 저장성과 윈난성이다. 각각 진화햄과 윈난햄이 생산되고 있다. 중국 햄의 역사에 관해선 남송 때부터 있었다는 주장부터 당나라, 원나라 때 생겨났다는 등 명확하지 않은 설이 난무하지만 대체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내세운다. 흥미로운 건 햄으로 유명한 두 지역 간 거리가 2000㎞가량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햄은 화퇴, 중국어로 훠투이라고 부르는데 직역하자면 불처럼 붉은 허벅지라는 뜻이다. 실제로 열을 가하지는 않지만 건조하고 난 후 육색이 진한 붉은색을 띠는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훠투이는 겉보기에도 프로슈토나 하몽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고 만드는 방식도 거의 같다. 소금에 절인 후 소금기를 씻어내 말려 건조한다. 만드는 방식과 맛은 유사하지만 활용법은 차이가 있다. 얇게 썰어 생햄 자체의 맛을 즐기는 유럽과 달리 중국에서는 음식의 맛을 내는 부재료로 적극 활용한다. 잘게 다져 볶음밥에 넣어 풍미를 배가시키는가 하면 국물 요리에 넣어 국물맛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든다. 윈난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식문화 중 하나는 유제품을 이용한 요리다. 윈난성 북서부에 위치한 티베트자치구에 사는 티베트인들은 예부터 소 대신 고산지대의 혹독한 환경에 적응한 야크를 가축으로 키웠다. 야크 젖은 물이 귀한 고산지대의 음료가 될 뿐만 아니라 휴대가 간편한 저장식품으로 가공되기도 했다. 우유를 끓인 후 산을 넣고 뭉쳐지는 유단백질을 반죽해 길게 늘어뜨리거나 틀에 모양을 잡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치즈 만드는 방식과 같다. 티베트식 치즈는 서양의 치즈처럼 곰팡이를 이용해 장기간 발효하기보다는 프레시 치즈로 소비하거나 얇게 펴 건조한 후 소비하는 게 독특한 점이다. 프레시 치즈의 맛은 이탈리아의 버펄로로 만든 모차렐라 치즈나 부라타 치즈처럼 고소하면서 약간의 산미가 맛을 더 배가시킨다. 윈난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루샨 치즈는 바이족의 유산이다. 우유에 산을 넣고 끓여 나온 커드를 얇게 펴 긴 대나무 막대기에 싸서 하루 정도 노랗게 변할 때까지 말리는 건조 치즈다. 접는 부채를 닮았다고 해서 유선, 루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건조된 상태라 딱딱한 편인데 열을 가하면 부드러워져 숯불에 구워 먹기도 하는데 보통은 튀겨 먹는 게 일반적이다. 튀긴 루샨은 윈난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염소젖을 이용해 만든 루빙도 윈난에서만 볼 수 있는 유제품이다. 루빙 역시 바이족의 명물로 우유로 만든 떡이란 뜻이다. 염소젖을 이용해 만든 일종의 무염치즈인데 유럽의 고트 치즈보다는 날카로운 맛이 덜하다. 쉽게 녹는 치즈들과 달리 열을 가해도 쉽게 형태가 무너지지 않아 훠투이와 함께 찌거나 튀기거나 볶아서 먹는다. 윈난에서 맛볼 수 있는 햄과 치즈를 보고 있노라면 중국 대륙의 다양한 식문화에 놀라면서도 동서양의 유사성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게 된다. 누가 먼저 만들었느냐보다 어떻게 발전시키며 독자성을 획득해 나갔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라면 묘미겠다. 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목소리 잠들다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목소리 잠들다

    영화 ‘스타워즈’의 악당 다스베이더의 목소리를 연기한 미국 배우 제임스 얼 존스가 9일(현지시간) 숨졌다. 93세. 연극 무대에서 연기 경력을 쌓은 존스는 1964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역할을 맡으면서 영화와 TV로 영역을 확장해 갔다. 1970년 영화 ‘위대한 희망’(The Great White Hope)에서는 흑인 차별에 맞선 권투선수 역할을 맡으며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 이 영화를 무대화한 작품에서 같은 역할로 토니상을 수상했다. 그는 특유의 깊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1980)에서 그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내가 네 아버지다”(I am your father)는 영화 속 최고의 반전이자 영화사에서 불후의 명대사로 남아 있다. ‘라이온 킹’(1994)에서도 현명한 무파사 목소리를 연기하는 등 할리우드에서는 상징적인 성우로 꼽힌다. 미국 CNN방송의 오랜 태그라인 ‘This is CNN’도 그의 목소리다. 존스는 긴 배우 인생을 통틀어 에미상 2회, 그래미상 1회, 토니상 3회를 수상했고 2011년에는 평생 공로상인 명예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다스베이더의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 역을 맡은 마크 해밀은 소셜미디어(SNS)에 존스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RIP Dad”(아버지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다. ‘스타트렉’의 조르디 라포지 역을 맡은 흑인 배우 레바 버턴은 “그와 같은 특별한 우아함을 가진 배우는 다시 없다”고 애도했다.
  • 대한전선, 쿠웨이트 첫 광케이블 공장 준공

    대한전선, 쿠웨이트 첫 광케이블 공장 준공

    대한전선이 쿠웨이트에 첫 광통신 케이블 생산 공장을 짓고 생산 현지화를 통한 글로벌 사업 확장에 나선다. 대한전선은 9일(현지시간) 쿠웨이트에서 ‘대한쿠웨이트’ 공장 준공식을 열었다고 10일 밝혔다. 준공식에는 송종민 대한전선 부회장 등 임직원들과 쿠웨이트 상공부, 통신부, 산업청, 투자진흥청, 정보통신기술규제국 등 정부 주요 관계자, 박종석 주쿠웨이트 한국 대사와 이형석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쿠웨이트 무역관장 등이 참석했다. 대한쿠웨이트는 쿠웨이트의 대표적 건설·무역 기업인 랭크와 공동 투자해 만든 쿠웨이트 최초의 광통신 케이블 생산 법인이다. 대한전선 당진 케이블 공장과 같은 생산 설비와 시험 장비 등을 갖춘 이 공장은 쿠웨이트시티 남동쪽의 미나 압둘라 산업단지 내 5000㎡(약 1500평) 부지에 있다. 이달 중순부터 제품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산업을 위한 5G 인프라 확대 추세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광케이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쿠웨이트는 중장기 국가 개발 플랜인 ‘뉴 쿠웨이트 2035’의 본격화로 빠른 속도의 광케이블 수요 확대가 예상된다. 대한전선은 대한쿠웨이트를 통해 전량 수입에 의존해 온 쿠웨이트 광케이블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주변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로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아드 압둘라 알나젬 쿠웨이트 상공부 차관은 “광통신 케이블 제품 내수화를 통해 쿠웨이트 정보통신 산업이 더욱 빠르게 발전할 수 있게 됐다”며 “대한쿠웨이트가 쿠웨이트를 포함해 GCC 국가의 광통신 케이블 생산 기지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송 부회장은 “대한쿠웨이트는 대한전선이 전수한 선진 기술과 숙련된 엔지니어를 통해 최고 품질의 광통신 케이블을 공급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것”이라며 “지속적인 생산 현지화 전략을 통해 글로벌 사업을 확장하는 동시에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송 부회장 등 대한전선 임직원은 준공식을 마친 뒤 사우디아라비아로 이동해 사우디아라비아 유일의 HV급 전력기기 생산법인인 ‘사우디대한’ 생산 현장을 시찰하고 파트너사인 무함마드 알오자이미그룹과 만나 향후 사업 확대 전략을 논의할 계획이다.
  • 北 ‘9·9절’에 처음 연설한 김정은… “핵무기 기하급수적 확대”

    北 ‘9·9절’에 처음 연설한 김정은… “핵무기 기하급수적 확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권수립기념일(‘9·9절’) 76주년을 맞아 9일 가진 당 간부 연설을 두고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10일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의 연설에 대해 “형식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며 “통상 ‘9·9절’은 김정은의 연설 자리가 아니다”라며 9·9절에 김 위원장이 연설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8일 열린 기념 경축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금수산기념궁전도 참배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연설을 가진 데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민심 수습과 함께 연말 성과 달성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날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당과 정부 지도 간부들을 만나 ‘위대한 우리 국가의 융성번영을 위해 더욱 분투하자’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며 국가 사업 방향을 거론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 군대의 전쟁 수행 능력을 부단히 강화 발전시키는 것은 혁명의 제1대 과업”이라며 “핵 역량을 부단히 강화해 나가면서 핵무력을 포함한 국가 전체 무장력이 완전한 전투 준비 태세에 있도록 노력을 배가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 국가는 책임있는 핵보유국”이라며 “우리는 지금 핵무기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데 대한 핵무력건설정책을 관철해 나가고 있으며 공화국의 핵 역량과 국가 안전권을 보장하는 데 임의의 시각에 옳게 사용할 수 있는 태세가 더 철저하게 완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를 거론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 블록 체계의 무분별한 확장 책동과 그것이 핵에 기반한 군사 블록이라는 성격으로 진화됨에 따라 중대한 위협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다”고 정세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핵을 보유한 적수국가들이 강요하는 그 어떤 위협적 행동에도 철저히 대응할 수 있는 핵 역량을 부단히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또 “핵 무력을 포함한 국가의 전체 무장력이 완전한 전투준비 태세에 있게 하기 위한 대책과 노력을 배가해 나갈 것”이라며 “공화국의 군사력은 가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올해 안에 각종 국가사업의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도 거듭 강조했다. 상반기 북한 경제 개선 추진 활동에 만족감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이 역점 사업으로 내건 ‘지방발전 20×10 정책’을 비롯해 각종 경제 분야 정책 추진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특히 지방발전정책을 “무조건적이고도 완벽하게 실행”해야 한다며 앞으로 수해복구 사업은 “제 기일에 질적으로 끝내 (중략) 자연과의 투쟁도 승리적으로 종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역설적으로 내부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도 있었다. “지방발전 구상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와 입장을 갖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라는 등 내부에 부정적인 반응이 있다는 것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올해 투쟁의 성과 여부가 “당 조직들과 당 일군들의 책임성과 역할에 달려있다”며 “혁명의 요구와 맡은 책무를 똑바로 자각하고 자기 사명을 깊이 명심”하라고 간부들의 기강을 다잡았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수해 복구에 대해 평가하며 정상화를 강조하는 등 재난을 극복하는 지도자상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며 “경제적으로는 지방발전 정책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 의구심을 불식시키며 기대감을 주입하려고 주력했다“고 평가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수해 상황을 의식해 국가사업 전반을 점검하고 올해 성과 독려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려는 의도”라며 “수해로 올해 성과에 대한 조바심이 저변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 남은 110여일간 김정은이 중대 무기 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군사정찰위성이나 고체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수중무기 등의 발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대미·대남 비난을 하지 않는 등 대외적인 메시지보다는 내부 결속 등 대내적인 의도로 연설을 한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보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 제국주의나 핵 선제 타격 등의 격렬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미 대선 정국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고 중국의 입장을 감안해 북러 밀착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김정은 정권은 향후 상당 기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지방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에 올인할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역설적으로 지방과 농촌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도 말했다. 임 교수는 다만 “국방력 강화를 통한 체제 유지와 주민생활 향상을 통한 민심 확보라는 목표 달성을 자력으로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주민 총동원 방식, 주민 수탈 방식에 의한 추진을 의미하기 때문에 체제의 지속가능성은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13만원짜리 트럼프 ‘포카’는 누가 살까?...대선 출마로 돈벌이 논란

    13만원짜리 트럼프 ‘포카’는 누가 살까?...대선 출마로 돈벌이 논란

    미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운동화, 화보에 이어 판매가 99달러(13만원)짜리 ‘디지털 포토 카드’ 판매까지 나섰다. 수익금은 선거운동에도 쓰지 않아 이번 대선을 돈벌이 기회로 삼고 있단 비판이 나온다. 8일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부터 자신의 이미지를 담은 디지털 수집용 카드를 한장당 99달러에 판매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가 대선 출마를 자신의 인지도를 활용한 돈벌이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웹사이트에서는 대체불가토큰(NFT) 형태의 디지털 포토 카드를 15장 이상 사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TV 토론 때 입은 양복 조각을 넣은 실물 카드 한장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75장이면 플로리다 마러라고에서 열리는 만찬에 초청받을 수 있다. 지난 3일엔 자신의 재임 시절 모습을 담은 판매가 99달러짜리 화보 ‘세이브 아메리카’도 발매했다. 서명본은 499달러에 팔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전 대통령의 회사 웹사이트에서는 대선 캠페인에 파는 각종 기념품을 더 비싸게 팔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가 적힌 모자를 캠페인에서 사면 40달러이지만, 회사 웹사이트에서는 10달러가 더 비싼 55달러를 내야 한다. 43달러에 파는 유세용 깃발은 86달러에 팔고 있다. 이런 굿즈 수익금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이 아니라 개인 사업체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윤리청 청장 대행을 지낸 돈 폭스는 WP에 “대통령직이나 대선 출마를 트럼프처럼 수익화에 이용한 전례는 역사에 없으며 특히 근대사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측은 문제 될 게 없단 반응이다. 캐롤라인 레빗 트럼프 캠프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자신의 수십억달러 규모의 부동산 제국을 뒤로했고 대통령 급여를 기부했으며 재임 기간 총자산 가치가 실제 하락한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해명했다.
  • [인사]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정무실장 박경은 ■행정안전부 ◇국장급 승진△중앙재난안전상황실장 정제룡 ◇국장급 전보△사회재난대응국장 김중열 ■보건복지부 ◇국장급 전보 △복지정책관 이상원 ◇국장급 전입 △복지행정지원관 배형우△국제협력관 최준호 ■국토교통부 ◇국장급 승진 △부산지방항공청장 이진철 ■국민권익위원회 ◇부이사관 승진△청렴조사평가과장 정가영△행정심판총괄과장 손인순△제도개선총괄과장 김석준 ◇서기관 승진△기획재정담당관실 한건희△보호보상정책과 문호준△행정심판총괄과 김종현△사회제도개선과 한재현 ■법제처◇서기관 승진△행정법제국 박예지△사회문화법제국 김혜영
  • [인사] 행정안전부, 국민권익위원회, 법제처

    ■행정안전부 ◇국장급 승진 △중앙재난안전상황실장 정제룡 ◇국장급 전보 △사회재난대응국장 김중열 ■국민권익위원회 ◇부이사관 승진 △청렴조사평가과장 정가영 △행정심판총괄과장 손인순 △제도개선총괄과장 김석준 ◇서기관 승진 △기획재정담당관실 한건희 △보호보상정책과 문호준 △행정심판총괄과 김종현 △사회제도개선과 한재현 ■법제처 ◇서기관 승진 △행정법제국 박예지 △사회문화법제국 김혜영
  • ‘안전은 높이고 복지는 넓히고’…은평구, 미래 도시 초점 맞춘 조직개편안 공개

    ‘안전은 높이고 복지는 넓히고’…은평구, 미래 도시 초점 맞춘 조직개편안 공개

    서울 은평구가 미래 행정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구 역점 사업의 추진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민선8기 후반기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한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조직개편안은 김미경 은평구청장 취임 7년차를 맞아 그간의 구정 성과를 바탕으로 구정 철학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마련됐다. 변화한 행정수요와 대내외 여건을 반영하여 구민이 체감하는 핵심 사업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미래지향적이며 성과 지향적인 조직으로 집중 보강했다. 조직개편안은 구민 안전을 위한 재난 대응 체계 혁신과 전 세대를 아우르는 복지체계 구축을 위한 돌봄복지국 재편, 기획·예산·평가 업무 확대를 통한 재정 운용 역량 제고와 도시경쟁력 제고를 위한 미래 기반 마련 등의 내용이 담겼다. 우선 은평구는 점차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재난·재해에 대처하기 위해 ‘안전 관리 체계’를 새롭게 개선한다. 이를 위해 기존 ‘도시안전건설국’을 ‘안전도시국’과 ‘공간혁신국’으로 재편한다. ‘안전도시국’을 통해 유관부서 간 협업을 강화하여 화재, 폭염, 지진, 한파 등 각종 재난·재해로부터 구민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통합관제센터’와 ‘재난안전상황실’을 일원화하여 신속하고 체계적인 재난대응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와 함께 수색·DMC역 복합개발, 서울혁신파크 랜드마크 조성 등의 관내 대규모 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공간혁신국’도 신설한다. 임기 상반기 동안 ‘정비사업의 신속 추진’에 주력했던 김 구청장은 임기 하반기에 대규모 개발사업 등 ‘도시 재탄생’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다음으로 은평구는 세출 예산의 65.1%를 복지 분야에 사용하는 ‘수준높은 복지 도시’로서 민선 8기 핵심 공약인 ‘은평형 복지시스템’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영유아부터 청년, 중장년, 어르신까지 생애주기별 빈틈없는 맞춤 복지를 실현할 ‘돌봄복지국’을 개편한다. 돌봄복지국 산하에는 종합적인 통합돌봄 체계 구축을 위한 ‘통합돌봄과’를, 정책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 및 중장년 핀셋 지원을 위해 ‘청장년희망과’를 신설한다. 이 같은 개편안이 통과되면, 은평구는 통합돌봄, 그리고 장년층을 위한 단독 부서를 둔 서울시 유일의 자치구가 된다. 이 밖에도 사회적 관계망 약화에 따른 고독사, 무차별범죄 등과 관련한 행정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통합돌봄과’ 소속으로 ‘고독대응팀’을 신설한다. 복지 전달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동(洞) 체제도 정비한다. 국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특히나 재정자립도가 낮고 외부 재원 의존도가 큰 은평구는 조직개편을 통해 효율적인 예산 운용을 꾀한다. 이를 위해 기획·예산·평가 업무를 유기적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기존 재정경제국의 명칭을 ‘기획재정국’으로 변경하고 조직 편제에서 우선순위를 높인다. 또한 민선 8기 핵심사업의 사전 점검 및 성과 관리, 대규모 건립·투자사업의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기획예산과를 기획재정국 산하로 이관하기로 했다. 끝으로 은평구는 최근 글로벌 트렌드에 맞추어 ‘내일의 중심’으로 도약할 기반도 마련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 조직을 재편하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요 정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자연친화형 그린인프라 확대를 위한 ‘공원녹지과 산림휴양팀’과 최근 증가한 문화·체육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문화관광과 문화시설팀’을 신설해 주민들이 은평의 자원을 더욱 폭넓게 누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어 체계적인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주민실천 강화를 위한 ‘기후환경과 탄소중립실천팀’과 AI 기술의 행정 도입을 위한 ‘스마트정보과 AI빅데이터팀’을 신설, 은평의 미래 가치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김 구청장은 “민선 8기 반환점을 맞아 행정조직이 구민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은평만의 행정 혁신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은평구는 이날 새로운 조직개편안을 담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행정기구 설치 조례 전부개정 조례안’과 ‘서울특별시 은평구 지방공무원 정원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을 입법 예고한다. 본 개편안은 구의회의 심의·의결을 통해 최종 확정되며, 후속 조치로 규칙 개정을 마친 후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 예정이다.
  • 주일 우크라 대사, 야스쿠니 신사 참배… “조국 위한 희생한 분들 추모” 게시물 삭제

    주일 우크라 대사, 야스쿠니 신사 참배… “조국 위한 희생한 분들 추모” 게시물 삭제

    세르기 코르슨스키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가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소셜미디어(SNS)에 이 같은 사실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주일 우크라이사 대사관은 지난 3일 공식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이날 세르기 코르슨스키 대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잃은 분들을 추모했다”는 글과 함께 사진 3장을 게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크로슨스키 대사가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고 참배 전 정화수에 손을 씻으며 방명록에 사인하는 등 모습이 담겼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벌어진 내전과 일본이 일으킨 수많은 전쟁에서 숨진 246만 6000여명의 영령을 추모하는 곳이다.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도 합사돼 있다. 한반도 출신자도 2만여명 합사돼 있는데, 이들의 합사는 유족 등 한국 측 의향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이뤄졌다. 코르슨스키 대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상에선 비판이 제기됐다. 일본 칸다외국어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미국 출신 제프리 홀 교수는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게시물 링크를 걸며 “야스쿠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범죄자로 처형된 전쟁 지도자들을 모신 곳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방문은 일본의 보수적·민족주의적 역사관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쩌면 우크라이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일본 우파가 일부 서방 국가의 보수 정당에 스며든 친푸틴 견해에 휘둘리는 것을 막아주길 기대하는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한 일본 네티즌은 일본제국 시절 야스쿠니 신사 사진을 올리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 일본과 나치의 희생자를 모둑하는 일이다. 우크라이나 대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일본의 보수 성향 일부 네티즌들은 “야스쿠니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만들어진 신사다. 우크라이나에 행운을 빈다”, “참배해줘서 감사하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등 반응을 보였다. 주일 우크라이나 대사관 측은 논란을 의식했는지 4일 현재 해당 게시물을 삭제한 상태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국을 위시한 자유주의 진영의 지원에 의존해온 우크라이나는 일본과의 관계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 초기인 2022년 4월 정부 공식 트위터에 항전 의지를 알리는 선전 영상을 올렸다가 일본인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당시 게시물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러시아의 이념을 ‘러시즘’으로 명명하고 이를 비판하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그런데 일제의 쇼와 일왕(천황)을 나치 독일의 총통 히틀러, 이탈리아 왕국의 수상 무솔리니와 나란히 둔 장면이 영상에 포함되면서 일본 네티즌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우크라이나 정부는 쇼와 일왕만 삭제하고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그대로 둔 수정 영상을 새로 올리면서 “이전 버전의 영상에서 실수를 한 것과 관련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우리는 우호적인 일본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의도가 없었다”고 밝혔다.
  • “욱일기 옷 안 돼” 항의에…“입든 말든 간섭 마!” 말다툼 벌인 외국인 남성

    “욱일기 옷 안 돼” 항의에…“입든 말든 간섭 마!” 말다툼 벌인 외국인 남성

    중국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유적지를 찾은 한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이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외국인은 “욱일기 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지적하는 중국인들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시나뉴스 등 중국 언론에 따르면 사건은 전날인 29일 중국 서부 산시성의 핑야오에서 발생했다. 16세기 고대 중국의 도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핑야오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전세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다. SNS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욱일기 티셔츠를 입은 외국인 남성이 중국인들과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중국인들은 욱일기에 대해 설명하며 “이런 옷을 입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외국인 남성은 중국인들의 항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들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맞섰다. 영상을 본 중국 네티즌들은 “역사적 상처를 건드렸다”, “이런 외국인은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추방해야 한다” 등의 댓글을 달며 외국인 관광객의 행동을 비판했다. 일각에선 이 남성이 관광지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야 한다며 관리자를 탓하는 목소리도 나왓다. 한편 일본이 과거 태평양전쟁 등에서 전면에 내걸었던 욱일기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물로 사용됐다. 독일 나치의 상징 문양인 하켄크로이츠가 서구권에서 사용이 엄격하게 금지된 것과 달리 일본에서 욱일기는 일본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의 군기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일본 극우 세력들은 혐한 시위에서 욱일기를 흔드는 등 제국주의 시대의 상징으로서 욱일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 ‘日왕궁 폭탄 투척’ 김지섭 밀항 도운 평범한 일본인 형제 [대한외국인]

    ‘日왕궁 폭탄 투척’ 김지섭 밀항 도운 평범한 일본인 형제 [대한외국인]

    폭탄 들고 日 밀항 시도한 김지섭고바야시 형제, 화물선에 숨겨 줘던진 폭탄 모두 불발… 현장서 체포김 의사, 재판 후 웃으며 “잘 있게”가이 “평안히 있게” 마지막 인사 ‘만리창파에 한 몸 맡겨 원수의 배 속에 앉았으니 뉘라 친할고. 기구한 세상 분분한 물정 촉도보다 험하고 진나라보다 무섭구나. … 평생 뜻한 바 갈 길 정하였으니 고향을 향하는 길 다시 묻지 않으리.’ 일본 왕궁 앞 니주바시(이중교·二重橋)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 김지섭(1884~1928·대통령장) 의사는 1923년 12월 20일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한 일본행 화물선에서 이러한 시로 결의를 다졌다. 제국의회에 던질 폭탄 세 개를 지닌 밀항길. 김지섭은 어떻게 무사히 일본 선박을 탈 수 있었을까.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으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자 의열단은 일본 제국의회에 폭탄을 던지고 주요 대관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일본어도 능통하고 외모도 일본인과 닮았다는 말을 들은 김지섭이 거사를 실행할 의열단 기밀부 특파원에 자원했다. 그러나 폭탄을 갖고 배를 타기는 쉽지 않았다. 그해 12월 15일 김지섭과 함께 고려공산당원이자 의열단원으로 활동한 윤자영(1894~1938·독립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사회주의자 히데시마 히로시(秀島廣二)에게 김지섭을 일본으로 보낼 방도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흘 뒤 히데시마는 상하이에서 이발사로 일하던 요코하마 출신 고바야시 가이(小林開·1905~미상)에게 김지섭을 ‘친구’로 소개하며 밀항을 의뢰했다. 가이의 형 고바야시 간이치(小林寬一·1902~미상)가 미쓰이물산 소속 화물선 승조원이었기 때문이다. 가이의 부탁에 형 간이치도 흔쾌히 승낙했다. 이렇게 김지섭은 12월 20일 밤 9시쯤 상하이 푸둥에 정박 중이던 석탄 운반선 덴조야마마루(天城山丸)에 대추 모양 소형 폭탄 3개와 나카무라 히코타로(中村彦太郞)라는 가명의 일본인 명함 30매를 갖고 몸을 실었다. 간이치와 다른 선원 구로시마 리게이(黑島里經)의 도움으로 선미 쪽 창고에 숨어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열흘 뒤 후쿠오카현 야하타시에 내릴 수 있었다. 김지섭은 어렵게 다음해 1월 5일 도쿄에 도착했지만 제국의회가 휴회 중인 데다 무기한 연기됐다는 사실을 알고 왕궁을 폭파하기로 결심했다. 그날 저녁 왕궁 앞 니주바시를 거닐다가 불심검문한 일본 순사에게 폭탄 한 개를, 나머지 두 개는 궁 안으로 던졌지만 모두 불발됐고 그 자리에서 체포됐다. 이후 가이는 나가사키에서, 간이치와 구로시마는 중국 다롄에서, 히데시마는 상하이에서 각각 체포됐다. 이들은 함께 재판에 넘겨져 가이와 히데시마는 ‘폭발물취체벌칙’ 위반과 선박침입 방조죄로 징역 2년을, 간이치와 구로시마는 선박침입 방조죄로 징역 6개월을 각각 선고받았다. 당시 일본 외무성 특수조사문서에는 가이가 1월 체포돼 조사받을 당시 김지섭이 조선인인지 알지 못했다고 잡아떼 계속 취조 중이라는 기록도 있다. 김지섭의 재판에선 일본인 가운데 가장 처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후세 다쓰지(1840~1953·건국훈장 애족장)가 변호를 맡았다. 1924년 11월 6일 도쿄지방재판소의 판결 선고를 전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지섭은 태연하게 앉아 있다가 선고가 끝나자 웃으며 옆에 있던 히데시마와 가이의 손을 잡았다. 이어 “얼마 동안 피차 만나지 못할 것이니 잘 있게”라고 했고, 히데시마와 가이도 “부디 평안히 있게”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자료발굴 태스크포스(TF) 김은지 팀장은 1일 “히데시마는 공산주의자로 이미 김지섭을 비롯한 고려공산당과 사상적 교감이 있었지만 고바야시 형제는 평범한 일본인이었다”며 “이런 평범한 사람들이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의 심장부로 향하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도왔다는 것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자료발굴 TF는 올해 상반기 고바야시 형제와 구로시마를 독립유공자로 추천했고, 히데시마도 추천할 계획이다.
  •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101년이 지나도 기억해야 할 간토대학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101년이 지나도 기억해야 할 간토대학살

    일본 간토(관동)대지진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유언비어로 학살당한 지 101년이 된 1일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어리석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추도식이 도쿄에서 열렸다. 이날 도쿄도 신주쿠구 요쓰야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제101주년 관동대지진 한국인 순난자(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의롭게 목숨을 바친 사람) 추념식’이 개최됐다. 제10호 태풍 ‘산산’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재일교포와 일본 정치권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해 엄숙한 분위기 속에 희생된 이들을 추모했다. 매년 주일본 대한민국민단(민단) 측이 소규모로 추도식을 열었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일 한국대사관 및 재외동포청의 후원으로 대규모로 진행됐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수도권인 도쿄·가나가와·지바 등에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했고 10만 5000여명이 사망했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조선인 희생자만 독립신문 조사 기준 6661명에 달했다. 2008년 일본 내각부 중앙방재회의가 작성한 보고서는 “대지진 당시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각지에서 결성된 자경단이 일본도와 도끼, 쇠갈고리 등으로 무장한 채 재일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심문하고 폭행을 가해 살해했다”고 밝혔다. 박철희 주일 한국대사는 추도사에서 “지난해 관동대지진 발생 100주년을 계기로 그간 잊혀 가던 관동대지진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들이 한일 양국에서 재조명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일본 언론, 학계, 정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도 당시 많은 한국인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실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대로의 역사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는 용기 있는 목소리를 내어줬다”고 덧붙였다. 박 대사는 “많은 분께서 지적해주신 것처럼 이와 같은 불행한 참상은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본 여야 정치인들도 추도식에 참석해 헛소문에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도했다. 자민당 소속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 대표, 나가시마 아키히사 일한의원연맹 안보·외교위원장, 아오야기 요이치로 입헌민주당 국제국장 대리, 고이케 아키라 일본공산당 서기국장, 시오무라 아야카 입헌민주당 일한우호의원연맹 사무국장, 다니노 사쿠타로 전 주중 일본대사 등이 참석해 고인들을 기리며 헌화했다. 특히 자민당에서 전직 총리가 추도식에 직접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후쿠다 전 총리는 추도식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추도식이 있다는 연락을 받아 이번에 처음 오게 됐다”며 “일본 사람들은 아쉽게도 (간토대학살에 대해) 사실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옛날 일은 아픔은 아픔으로써 여기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한일 모두 그걸 제대로 생각하고 협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간토대학살의 진실에 대해 한일 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조사는 필요하다”며 “그것만이 아니라 다른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더 적극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주호영 의원과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각각 근조화환을 추도식에 보냈다. 지난해 100주년 추도식에 직접 참석했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101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추모 메시지를 보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맡았던 재일교포 2세 음악가 양방언씨의 추모 공연도 이어졌다. ‘더 밸리 오브 어 스완’, ‘세레나데’ 두 곡을 피아노 연주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간토대지진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그때 희생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추모 공연 후 이어진 헌화에서는 요코하마시 쓰루미구 쓰루미 경찰서의 오오카와 쓰네키치 서장의 유족도 함께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쓰루미 경찰서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약 300명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당시 오오카와 서장은 이들을 죽이려는 일본인 폭도를 막았던 인물이다. 한창 헌화가 이뤄지던 중 오전 11시 58분 101년 전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그 시간이 되자 참석자들은 헌화를 멈추고 모두 묵념했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이 벌어진 건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일본 정부와 도쿄도는 여전히 반성 없는 태도를 보였다.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는 매년 시민단체 등에 의한 추도식이 열리는데 우익 성향의 고이케 도쿄도지사는 추도식 실행위원회가 요청한 조선인 희생자에 대한 추도문을 올해로 8년째 거부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지난 30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조선인 학살 사실 조사 여부와 관련된 질문에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인식에 변함이 없다”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은 30일 사설에서 고이케 지사와 일본 정부에 대해 “잘못된 역사를 왜 외면하는가”라며 “사실을 직시하고 교훈으로 삼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도쿄신문은 “요코아미초공원 실행위는 ‘고이케 지사는 자연재해로 죽은 사람과 사람의 손에 목숨을 빼앗긴 사람을 한 데 섞어버리면서 희생자에 대한 존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항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 “김문수 말대로면 3·1운동은 내란…시스템 곳곳 붕괴 위기감”

    “김문수 말대로면 3·1운동은 내란…시스템 곳곳 붕괴 위기감”

    ‘일제강점기 선조들 국적은 일본’이라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발언은 “일본의 입장에 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법사학자의 비판이 나왔다. 28일 JTBC ‘오대영 라이브’에 출연한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 장관의 관련 발언에 대해 “일본 입장에서나 사실”이라며 “한국 정부의 입장이 아닌 일본 정부의 입장을 취하겠다는 사람은 최소한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방송에서 김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1910년 한일병합 조약은 원천 무효다. 한반도가 일본 영토가 된 적이 없고, 한반도 인민이 일본 신민(신하인 인민)이 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의 법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기 때문에 일개 정부가 바꿀 수 없다”고 짚었다. 이어 “일제강점기 선조는 일본 국민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일본의 입장에서나 할 법한 소리”라고 했다. 한일병합조약에 대해 일본은 ‘유효’, 한국 정부는 ‘무효’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김 장관의 주장은 일본 입장을 전제로 했을 때나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김문수 발언, 한일병합 유효하단 전제에서나 가능”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체결된 한일기본관계조약 제2조를 보면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이미 무효’라는 표현을 두고 양국 간 해석이 엇갈린다. 해당 표현을 두고 한국 정부는 ‘불법 조약은 애초부터 무효’라는 의미로, 일본은 ‘조약은 합법적이나 2차 세계대전 패배로 어쩔 수 없이 무효가 됐다’는 의미로 각각 해석한다. 김 교수는 “조약이 처음부터 효력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면 일본으로선 한반도를 불법 지배한 게 되어 버린다. 일본 측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마지막에 가서 ‘이미’라는 애매한 수식어를 붙이고 각자 입장대로 해석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 한반도 인민을 소요죄, 내란죄로 처벌할 수 있었던 것도 합법적 조약에 따라 한반도 인민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라며 “일제강점기 선조들 국적은 일본이었다는 김 장관의 발언은 이런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제로 할 때나 가능한,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반하는 주장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장관 말대로면) 3·1운동은 내란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반국가단체이며, 독립투사는 ‘테러리스트’가 된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또 “어떤 쟁점에 관해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의 입장이 정면으로 충돌할 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국 입장을 택해야 하는데, 일본 정부의 입장을 취하겠다는 사람은 최소한 대한민국의 공무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뉴라이트 인사 ‘핀셋 임명’…학자로서 위기의식 느껴”김 교수는 아울러 “학계 전체를 놓고 보면 뉴라이트 인사들은 주류가 아닌 극소수”라며 일련의 인사 문제에 의문을 드러냈다. 김 교수는 “뉴라이트는 극소수 비주류인데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연구기관을 비롯해 독립기념관의 관장까지 뉴라이트 인사를 핀셋으로 골라내듯 임명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거의 매일같이 매우 당혹스러운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학자로서 커다란 위기의식을 느낀다”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 곳곳이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다. 당연했던 일들을 전면적으로 다시 돌아봐야 하는 위기 상황이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김 장관은 후보자였던 지난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일제 치하에 국적이 일본인 것은 상식적인 것”이라는 자신의 과거 발언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일제강점기 때 나라가 없었는데 전부 일본 국적으로 돼 있지 어디로 돼 있나. 대한민국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반문했다. 뒤이어 나온 같은 질문에도 재차 “일본이지, 국적이 한국입니까. 상식적인 이야기를 해야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시면 안된다”고 답하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야당은 반노동, 극우 인사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김 장관 임명안을 재가했다.
  • 역발상인가 도박인가… 中 호텔시장 확장 나선 힐튼의 승부수

    역발상인가 도박인가… 中 호텔시장 확장 나선 힐튼의 승부수

    미중 패권 경쟁 심화와 중국 경기침체 장기화로 다국적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있지만 호텔체인 힐튼만큼은 ‘역발상 행보’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로 주요 도시마다 빈 사무실이 넘쳐나는 지금이야말로 중국 시장 점유율을 크게 키울 적기라는 판단이다. 힐튼 월드와이드 홀딩스와 그 프랜차이즈 파트너들은 중국 부동산 위기 상황에도 앞으로 매년 100개 이상 새 호텔을 신설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향후 18개월 이내에 문을 여는 호텔의 25%는 도심의 빈 사무실 공간을 개조하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된다. ‘적응적 재사용’으로 불리는 모델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본토에서 3배 이상 늘어났다. 힐튼그룹은 많은 투자자들이 아시아 최대 경제국인 중국 주택 시장이 붕괴됐음에도 본토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콘래드와 월도프 아스토리아, 더블트리 같은 브랜드를 소유한 힐튼은 매년 100개 이상 호텔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중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엄청난 공급 과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도시에서는 공실이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임대료도 급락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과 집주인들도 자산을 매각해 현금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다급해진 자산 소유주들은 힐튼 브랜드에 토지나 건물을 빌려주고자 접근하고 있다. 콜리어스 인터내셔널 그룹에 따르면 상하이는 최고급 사무실 임대료가 10년 만에 최저치로 하락했음에도 사무실 공실률이 15%에 달했다. 새로운 건물도 여전히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쿠시먼 앤 웨이크필드도 향후 12개월 동안 공실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힐튼은 중국 본토 여행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낙관하고 있다. 중국의 부동산 경색과 경기 침체에도 코로나19 이후 많은 중국 소비자들이 해외 여행보다 국내 여행을 선호하기 시작해서다. 일부 건물주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15년 장기 임대 조건을 내걸고 힐튼과 협의에 나서고 있다. 너도나도 지금의 부동산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감이 작용해서다. 사무실 공간을 재배치하는 것의 한 가지 장점은 빠른 전환이다. 사무실 벽을 허물고 호텔 방을 설치하는 데 일반적으로 약 18개월이 소요되는데, 이는 처음부터 호텔을 건설하는 데 걸리는 시간(3년)보다 훨씬 빠르다. 힐튼의 ‘중국 베팅’에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국내 관광은 반등했지만 아직 중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지난해 2분기 힐튼의 객실당 수익은 전년 대비 11% 증가했지만 중국에서는 5% 감소했다. 크리스토퍼 나세타 힐튼 최고경영자(CEO)도 “아직 중국을 찾는 해외 관광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 유럽과 미국 및 세계 다른 지역에서 오는 항공편이 부족하다.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되는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김천식의 통일직설] ‘자유통일’은 헌법이 정한 원칙

    [김천식의 통일직설] ‘자유통일’은 헌법이 정한 원칙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이 시빗거리가 되는 이상한 일이 종종 일어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8·15 경축사를 통해 자유통일을 천명했다. 이 당연한 명제에 대해 흡수통일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며, 북한과 싸우자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을 국가 목표로 규정하고 있다. 자유통일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통일을 하지 말자는 말이나 같다. 국가는 체제의 단일성을 기초로 한다. 서로 다른 체제가 통일하면 당연히 하나의 체제가 돼야 한다. 그래서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을 추구한다고 헌법에 규정했고, 북한은 공산주의에 의한 통일을 하겠다고 그들의 당규약에 명시했다. 남북한은 자기 주도하에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치열한 체제경쟁을 해 왔다. 더 잘사는 체제와 시스템으로 통일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체제가 절충한 제3의 모델이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나라에 두 개 이상의 체제가 존립하는 것도 성립하지 않는다. 북한은 고려연방제를 통해 1국가 2체제를 제시했지만 그것은 허구에 불과했고 기만이었다. 이제 북한 스스로가 그러한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고 폐기했다. 예멘은 1990년 남북의 서로 다른 두 체제를 그대로 둔 채 국가 통일을 선포했으나 곧바로 내전에 빠졌고 지금까지 30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남북 예멘의 통일은 권력자들 간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 독일은 1990년 체제 통일을 이룩했으며 자유롭고 번영하는 완전한 하나의 나라가 됐다. 독일 통일은 독일 민족 개개인의 자기결정권에 의한 선택이었고 평화통일이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어떠한 강압도 작용한 바 없다. 독일 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니다. 우리의 통일은 민족자결권에 관한 사항이고 민족자결권은 자유로운 한민족 개개인의 자기결정권 행사로 실현된다. 민족자결권은 유엔 헌장과 국제인권규약에 규정된 국제법 원칙이다. 1947년 11월 유엔총회 결의 112호는 한민족의 자유총선거, 즉 자기결정권 행사를 통한 정부 수립을 결의했다. 북한 지역 점령국인 소련이 이를 거부해 북한 지역에서는 민족자결권 행사가 실현되지 못했다. 지금도 한반도에서 민족자결권과 주민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통한 통일의 원칙은 유효하다고 본다. 우리는 평화적 통일을 추구한다. 이것도 헌법이 정한 원칙이다. 전쟁이나 파괴를 배제한다. 반면 북한은 동족과 통일 개념을 폐기하고 ‘적대국인 대한민국’을 오직 핵무력으로 완전 파괴해 영토를 편입하는 길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추구하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이것이 흡수통일이다. 우리는 이것을 반대한다. 폭력과 강압을 배제하고 개방된 정세에서 주민들이 자유 선택하는 방식이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가장 유효한 방식이다. 윤 대통령의 통일 독트린에서 통일국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왜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는가. 남북한 현실을 비교해 보라. 분단 당시 남북한은 같은 사람들이었고 경제적·문화적·사회적 환경도 같았다. 경제적 조건은 오히려 북한이 더 유리했다. 단지 정치체제로서 각각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채택한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 선택의 결과로 남한은 선진국이 됐고 북한은 세계 최빈국이자 최악의 인권국이 됐다. 지금 우리가 통일한다면 어떤 체제의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 2차 대전 후 반제국주의와 민족해방의 세계 조류에 따라 많은 신생국이 탄생했다. 그 대부분은 반서방 노선의 친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했다. 그때는 그것이 대세처럼 보였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가 친서방 노선과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은 매우 예외적이었고 유일했다. 현재 150여 신생국은 거의 다 정치적으로 혼란하고 가난하며 낙후돼 있다. 대한민국은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이 됐다. 우리는 지금 세계적인 성공의 슈퍼스타이고 다른 신생국이 닮고자 하는 감동의 대상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된 체제 실험의 결과를 봐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통일국가의 체제여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비판받는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전 통일부 차관
  • 항일 의병 운동 이끈 최익현 관복 국가유산 됐다

    항일 의병 운동 이끈 최익현 관복 국가유산 됐다

    항일 의병 운동을 이끈 면암 최익현(1833~1907)의 옷과 신발이 국가유산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면암 최익현 관복 일괄’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지정된 유물은 단령, 사모, 삽금대, 호패, 목화 등 5건이다. 단령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 입던 옷으로 최익현이 당하관을 지내던 1855~70년 착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복을 착용할 때 머리에 쓰는 사모는 2개의 뿔이 좌우에 달린 것이 특징이다. 삽금대는 허리에 두르던 띠의 일종으로 바다거북의 등껍질 문양을 본떠 만든 점이 눈에 띈다. 조선시대에 16세 이상 남성에게 발급했던 호패에는 ‘을묘’(1855년을 뜻함)라는 글자와 최익현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관복을 착용할 때 신던 목화는 당대 제작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국가유산청은 “19세기 후반기 복식 연구뿐 아니라 공예 기술과 재료 연구를 위한 실증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구한말 대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최익현은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체결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켰고, 1907년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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