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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정책마당] 고구려인은 사마르칸트에 왜 갔을까?/우병렬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장

    [월요 정책마당] 고구려인은 사마르칸트에 왜 갔을까?/우병렬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장

    우즈베키스탄에는 사마르칸트라는 유서 깊은 도시가 있다. 과거 실크로드의 중심지였고 지금은 중국이 내세우는 ‘일대일로’의 한 축이 되는 곳이다. 놀랍게도 여기에 있는 벽화에 7세기 고구려 사신들이 등장한다. 지난달 방한한 우즈베키스탄의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환영식에 등장한 전통 군악대가 새 깃털이 꽂힌 모자를 쓴 것을 보고 사마르칸트의 고구려 사신 모자를 이어받은 것이냐고 물으며 관심을 표했다. 시대를 초월해 중앙아시아와 교류 협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방 경제인 우리나라가 살길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그래서 새 정부는 신북방 정책과 신남방 정책으로 활로를 찾으려 하고 있다. 신북방 정책은 유라시아 지역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새로 출범한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참여하는 한편 남북한과 러시아 간 3각 협력을 위한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여건이 어렵지만 남·북·러 간 물류·에너지 분야의 공동 협력 사업을 벌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신북방 정책이 대륙과의 협력이라면 신남방 정책은 해양을 통한 협력이라 할 수 있다. 아세안(ASEAN) 국가들과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국 수준으로 높이고 인도와도 협력 관계를 더욱 튼튼히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상황을 통해 주변 4대국을 넘어 협력 관계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있다. 신북방 정책이나 신남방 정책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비전은 사람(People), 평화(Peace), 상생협력(Prosperity)이라는 ‘3P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사람이 활발히 교류해서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되고, 모든 국민들이 핵 위협과 테러로부터 안전한 평화공동체를 이루며, 무역과 투자의 혜택을 함께 누려서 더불어 잘 사는 상생협력체가 되는 것이 글로벌 협력을 통해 꿈꾸는 미래다. 우리나라는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는 지식공유사업(KSP)을 통해 지난 10여년간 많은 나라에서 성과를 내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KSP의 도움으로 베트남은 2006년 우리나라와 유사한 수출신용제도를 도입하고 수출입은행을 설립했다. 캄보디아는 선진 금융결제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2015년부터 우리나라 금융결제원,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협력하고 있다. 몽골에는 2012년 지능형 교통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조언을 해주었고 2014년에는 우리 기업이 관련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세계은행도 이러한 노력을 인정해 “한국이 지식 공유의 챔피언”이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정치적, 군사적 긴장 탓에 경제 협력이 쉽지 않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노력은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과 함께 광역두만개발계획(GTI)이라는 국제협의체를 만들어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북방경제개발을 모색해왔다. 2009년 북한이 탈퇴해 동력이 약화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교통, 에너지, 환경, 농업 등 여러 분야에서 역내 협력사업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 경제에 대한 연구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날, 공교롭게도 여러 국책연구기관에서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개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 등에서 북한 경제를 분석한 결과를 공유하고 토론했다. 연구자들은 북한에 여러 번 가 본 선배 학자들과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신진 학자들로 나눌 수 있었는데 이는 남북 관계의 변화를 상징하는 듯했다. 극히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힘든 연구를 지속하는 연구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지진이 나더라도 수능 공부는 해야 하듯 미사일이 날아다녀도 남북 관계 개선과 통일에 대비한 연구는 게을리할 수 없다. 먼 옛날 고구려인들은 왜 그 먼 곳, 사마르칸트까지 갔을까? 이미 선조들은 무역과 교류가 상생 번영의 길임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아인슈타인의 ‘행복론’ 17억 원에 팔렸다

    아인슈타인의 ‘행복론’ 17억 원에 팔렸다

    아인슈타인의 행복론은 상대성이론만큼 성공적일까?​ 191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시공간이라는 근본적인 천으로 짜인 것이며, 이 천은 물질에 의해 휘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중력을 느끼는 것은 이 휘어진 시공간의 기하학적인 효과라고 본다. 미국의 물리학자 존 휠러는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을 “물질은 공간의 곡률을 결정하고, 공간은 물질의 운동을 결정한다”라는 말로 표현했다. 일반상대성 이론은 100년이 넘도록 과학자들의 수많은 검증을 모두 통과하고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성공적인 틀로서 자리 잡았다. 블랙홀이나 시간 지연, 중력파 등 수많은 발견이 일반상대성에서 비롯되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지 7년 후에 또 하나의 이론을 발표했는데, 이번엔 물리학이 아니라 '행복'에 관한 이론이었다. 이른바 아인슈타인의 행복 레시피라 할 수 있는 '행복론'이다. 그렇다고 무슨 논문 형식의 글은 아니고, 그가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묵을 때 호텔 메모지에 긁적거린 단문인데. 이게 우연히 호텔 보이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돈을 잘 안 갖고 다니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호텔 보이에게 팁을 주려 했을 때도 역시 그의 주머니는 비어 있었다. 그래서 돈 대신 '행복론' 메모지를 보이에게 건네면서 "언젠가 돈이 될 거야" 하고 말했다. 과연 그의 말이 맞았다. 아인슈타인의 '행복론' 메모지는 지난 30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옥션에서 무려 156만 달러(약 17억 원)에 팔렸다. 메모지를 내놓은 사람은 그 호텔 보이의 사촌으로 알려졌다. 옥션에서는 대중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아인슈타인이 메모한 지 95년 만에 그의 '행복론'을 공표했다. “고요하고 겸손한 삶이 쉼 없이 성공을 추구하는 삶보다 더 행복하다”(A calm and modest life brings more happiness than the pursuit of success combined with constant restlessness) 흥미로운 것은 1922년 11월 아인슈타인이 이 문장을 쓸 때, 인생의 가장 절정기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얼마 전에 그에게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그는 상대성 이론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로 등극해 있었다. 그가 이런 소박한 행복론을 남기게 된 것은 자신의 떠들썩한 명성과 지위에 상당이 지친 상태에 있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낳게 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행복론이 과연 그의 일반상대성 이론만큼 성공적일까? 여기에는 견해가 엇갈린다.​ 행복이야말로 일반 상대성 이론보다 무한히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이 섣불리 행복의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떤 연구는 자기 사업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직장 다니는 사람보다 더 큰 만족감을 얻는다고 한다. 이는 분명 아인슈타인의 행복론의 반례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하루에 7시간 남짓 일하고, 1주일에 5번쯤 요리하고, 1주일에 한 번 친구들을 만나는 '균형 잡힌' 삶을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는 보고서도 있다. 이는 분명 아인슈타인의 행복론을 지지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에게 고요하고 명상적인 시간이 있음으로써 그같이 열성적인 연구와 성취, 나아가 행복이 가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관측 없이는 존재도 없다'는 양자론자들은 '행복론'에 대해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관측 초점이 행복에 맞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로마제국 카이사르의 브리타니아 침공 증거 발견

    로마제국 카이사르의 브리타니아 침공 증거 발견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58~51년까지 8년 동안 로마군단을 이끌고 갈리아(프랑스)와 브리타니아(영국) 침공을 한다. 당시 전황을 꼼꼼히 기록한 것이 바로 전쟁 문학의 고전 ‘갈리아 전기’이다.갈리아 전기를 비롯해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 역사가 타키투스 등의 기록을 살펴보면 카이사르는 당시 800척 전함을 이끌고 영국을 침공한 것으로 나와있지만 영국 내에서는 그와 관련한 고고학적 증거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영국 켄트주에서 도로 건설에 앞서 실시된 지질조사 과정에서 로마의 영국 침공에 관한 첫 증거가 발견됐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레스터대 연구진과 켄트주 의회 소속 고고학자들은 타넷 섬의 작은 마을 엡스플릿에서 방어용 호와 창을 발견했다. 방어용 호의 경우는 로마군의 갈리아 전쟁에서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알레지아 전투에 사용됐던 로마군의 방어진지와 유사한 것으로 분석됐다. 발굴에서 드러난 호는 폭이 15피트(4~5m), 깊이 6피트(2m) 정도로 함께 발견된 도기와 함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1세기 경에 만들어 진 것으로 확인됐다. 더군다나 인접한 페그웰만(灣)은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기에 언급한 상륙지형과 일치한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기에서 당시 영국인들은 로마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집결했지만 함대의 규모에 눌려 고원지대로 도피했다고 쓰고 있는데 이는 타넷섬 고원지대와 일치한다고 연구팀은 밝히기도 했다. 레스터대 고고학 및 고대사 앤드루 피츠패트릭 박사는 “페그웰만은 현재 켄트주 동쪽 최대 규모의 만으로 카이사르가 당시 대규모 로마 군단을 이끌고 하룻만에 충분히 상륙할 수 있는 곳”이라며 “이번 발견으로 당시 카이사르가 영국 침공에 실패해 프랑스로 돌아갔다는 지금까지 주장을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한국 남·녀 카바디, 비인기 설움딛고 아시아선수권서 나란히 메달

    한국 남·녀 카바디, 비인기 설움딛고 아시아선수권서 나란히 메달

    한국 남·녀 카바디 대표팀이 아시안게임을 앞둔 마지막 국제대회에서 나란히 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한카바디협회(회장 강양수)는 28일 ‘제10회 아시아 남자 카바디선수권대회’ 및 ‘제5회 아시아 여자 카바디선수권대회’에 파견한 남·녀 대표팀이 각각 동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밝혔다. 아시아 카바디연맹 주최로 이란 고르간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는 카바디 강국인 인도·이란·파키스탄을 비롯해 남·녀 각 10개팀이 출전했는데 이들 틈바구니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린 것이다. 더군다나 내년 8월 개막하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대표팀이 자신감을 쌓는 계기가 됐다. B조 2위(3승1패)로 준결승에 오른 남자 대표팀은 지난 26일 카바디 종주국인 인도를 만나 분전했으나 29-45로 패하며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남자 대표팀은 마찬가지로 준결승에서 파키스탄에게 패한 이란과 함께 공동 3위를 기록했다. 남자부 우승은 결승에서 파키스탄을 36-22로 누른 인도에게 돌아갔다. 여자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인도를 만나 20-42로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반을 12-19로 선방한 뒤 후반에 반전을 노렸으나 8점뿐이 추가하지 못했다. 반면 인도는 강력한 조직력을 앞세워 후반에만 23득점을 추가했다. 직전 대회에는 인도가 출전하지 않아 한국 여자 대표팀이 우승했었는데 올해는 결국 인도의 벽에 막혔다. 아깝게 금메달은 놓쳤지만 여자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이란을 17-14로 꺾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 여자 카바디가 이란을 상대로 승리를 따낸 것은 연습경기를 포함해 이번이 처음이다. 안정된 수비로 이란의 끈질긴 공격을 극복해냈다. 카바디 대표팀은 이날 인천국제국항을 통해 입국했다. 대표팀은 잠시 여독을 푼 뒤 국내 훈련을 이어갈 예정이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아시안게임을 앞두고서는 인도에서 전지훈련을 하며 기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대한카바디협회 관계자는 “신체적 열세를 딛고 한국 카바디의 저력을 보여주게 되서 기쁘다”며 “내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의 성적이 관건이다. 앞으로 훈련을 통해 수비만 좀 더 보완하면 주목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 탄생 120주년…‘해바라기’ 초판본 공개

    ‘표본실의 청개구리’ 염상섭 탄생 120주년…‘해바라기’ 초판본 공개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삼대’의 작가 횡보 염상섭(1897~1963) 탄생 120주년을 맞아 1924년 ‘해바라기’의 초판본이 공개됐다.국립중앙도서관은 28일부토 염상섭 선생의 문학세계를 살피는 기획전을 열고 횡보의 작품을 재해석하려는 학계의 시도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종호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는 27일 열린 간담회에서 “횡보는 자연주의, 사실주의 작가로 알려졌으나 궁극적으로 추구한 이념은 민주주의”라고 강조하며 “제국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같은 근대의 주류적 권력과 끊임없는 불화와 긴장을 형성하면서 평생에 걸친 글쓰기를 통해 기존의 지배질서와는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비판적 시선으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 열리는 기획전에는 1924년 7월 박문서관에서 펴낸 ‘해바라기’, 1926년 간행된 소설집 ‘금반지’와 함께 오성식 전 보성고 교사고 소장하고 있는 아동문학책 ‘채석장의 소년’ 같은 횡보와 관련한 희귀 서적이 공개된다. 해바라기는 근대 여류 화가인 나혜석과 김우영의 결혼을 소재로 한 소설로 초판본이 일반에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횡보의 막내 딸인 염희영 여사가 보관하고 있던 육필 원고와 계약서, 원고지함, 지갑, 군번표 등 횡보의 유품들도 볼 수 있다. 전시는 7부로 구성돼 1919년 3.1운동부터 1960년 4.19 혁명까지 40년 간 현대사가 그대로 담긴 횡보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펼쳤다. 일본에서 공부하던 주인공이 아내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묘사한 ‘만세전’을 시작으로 대표작인 ‘삼대’, 30대 과부의 외로운 생활을 다룬 ‘일대의 유업’, 한국전쟁 당시의 보편적 인간애에 집중한 ‘취우’까지 다양한 작품이 소개된다. 또 작가로 활동하면서도 일간지 기자로 근무했던 횡보의 폭넓은 삶의 궤적까지 그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25일까지 이어지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김현종 통상본부장 56억… 건물 3채

    김현종 통상본부장 56억… 건물 3채

    전제국 방위사업청장 10억원 김종진 문화재청장 8억 신고 구윤철 기재부 예산실장 26억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차관급)의 재산 신고액은 56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의 장·차관 가운데 가장 많은 금액을 신고한 백운규 산업부 장관(57억 8000여만원)과 1억 조금 넘게 차이 날 뿐이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23일 문재인 정부의 차관급 공직자 3명을 포함해 재산공개자 63명의 재산등록 사항을 관보에 게재했다. 지난 8월 임명된 5명, 승진자 16명, 퇴직자 39명, 기타 3명이다. 김 본부장은 총 56억 477만원을 신고했다. 예금이 특히 많았다. 본인 예금으로 신고한 금액만 36억 4107만원으로 배우자는 2억 4347만원, 장남 78만원, 차남은 278만원을 신고했다. 건물은 총 3채(14억 8586억원) 있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아파트 한채(160.55㎡·8억 4000만원)가 있었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대지(35.95㎡)와 건물(85.27㎡)을 합쳐 4억 3886만원을 신고했다. 장남 소유로 서울시 용산구에 단독주택(대지 81.70㎡ 건물 96.30㎡)도 2억 700만원으로 신고했다. 전제국 방위사업청장은 10억 6504만원을 신고했다. 건물로 총 9억 7244만원을 신고했는데, 재건축 중인 경기 과천 중앙동에 아파트 한 채(82.67㎡·6억 2000만원)와 배우자 명의의 경기 성남 수정구의 한 아파트(85.46㎡) 전세 임차권을 3억 5000만원으로 신고했다. 예금은 총 6억 3627만원을 신고했다. 김종진 문화재청장은 이날 총 8억 2305만원을 신고했다. 지난해 6월 문화재청 차장 당시 신고 때보다 4873만원이 늘었다. 주요 원인으로는 서울 성북구 길음동 뉴타운 단지 아파트(114.73㎡·3억 4100만원)가 4900만원 올랐고, 급여를 저축해 예금도 2900만원 정도 올랐다. 상장 주식 신고가는 4827만원 정도 줄었다. 정부 예산을 담당하는 최고 실무자인 구윤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총 26억 6221만원을 신고했다. 구 실장은 건물 4채와 전세권 1개를 신고해 건물만 31억 7975만원을 신고했다. 자신 명의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아파트(318.39㎡ 중 56.57㎡)는 8억 9100만원이었고, 배우자 명의로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복합건물(446.12㎡)을 6억원에, 상속받은 주택인 마포구 염리동의 단독주택(대지 167.00㎡ 건물 215.70㎡)은 5억 2000만원에 신고했다.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는 18억 7947만원을 신고했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선봉에 섰던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은 총 9억 990만원을 신고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내년 다카르 랠리, ‘잉카의 나라’에서 9000㎞ 스타트

    내년 다카르 랠리, ‘잉카의 나라’에서 9000㎞ 스타트

    남미 3개국으로 이어지는 2018년 다카르 랠리의 코스가 확정됐다. 파라과이와 칠레는 구간에 빠진 반면, ‘잉카제국의 나라’ 페루가 5년 만에 구간에 포함됐다. 대장정의 종착지는 아르헨티나다. 2018년 다카르 랠리 일정과 코스는 22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공식 발표됐다. 내년으로 40회를 맞는 대회는 1월6일 페루 리마에서 스타트를 끊는다. 11일 볼리비아에 입성, 우유니를 거쳐 15일엔 마지막 코스로 잡힌 아르헨티나로 들어간다. 그리고 같은 달 20일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서 대장정을 마친다. 보름간 휴식은 12일 단 하루뿐이다. 3개국으로 이어지는 다카르 랠리 코스의 길이는 총 9000㎞에 이른다. 9000㎞ 가운데 약 5000㎞는 특히 위험이 큰 특별 코스다. 구간별로 보면 페루 리마에서 피스코까지 이어지는 1차 구간의 길이가 272㎞로 가장 짧고, 산 후안 데 마르코나에서 아레키파로 이어지는 5차 구간의 길이가 932㎞로 가장 길다. 2018년 다카르 랠리에는 54개국에서 515명이 참가한다. 부문별로 보면 오토바이 190대, 자동차 100대, 트럭 42대 등이다. 한편 2018년 코스가 남미 3개국으로 확정되면서 다카르 랠리는 ‘남미의 대회’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됐다. 다카르 랠리 오토바이 부문 5회 우승자로 지금은 은퇴해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인 스페인 출신의 마크 코마는 “2009년 처음으로 다카르 랠리가 남미에서 열릴 때만 해도 대회가 남미에서 계속 열릴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공원으로 전락한 성지 장충단비가 애처롭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공원으로 전락한 성지 장충단비가 애처롭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4차 ‘남산과 장충동-근대역사기억장소’ 편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장충동 남산 일대에서 진행됐다. 평소 자주 가는 곳이지만 언제,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의미와 감흥이 다른 법이다.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 바로 다음날 대한제국의 현충원 장충단을 찾은 게 공교롭다. 이곳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체결한 일본 측 주역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이 세워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남산 단풍이 최후의 절정을 이루던 날, 베테랑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해설을 맡았다.우리의 삶이 장소로부터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려 주는 학문을 인문지리학이라고 한다. 이 중 문화지리학은 장소의 정체성 확보에 중점을 둔다. ‘문화·장소·흔적, 문화지리로 세상 읽기’라는 책에서 영국의 존 앤더슨은 흔적이란 인간의 문화적 삶이 장소에 남은 것이며, 장소야말로 문화지리학의 초점이라고 역설했다. 그렇다면 장충단이라는 장소는 어떤 흔적과 문화적 삶을 우리에게 남겼을까. 장충단이 주는 첫인상은 제단(祭壇)보다는 공원이다. 시민들이 남산공원 일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장소의 곡절과 인위적인 훼절이 초래한 결과이다. 본래 남산은 공원이 아니었다. 서울 풍수는 궁궐을 위시한 모든 가옥이 백악을 등지고 남산을 향해 남향으로 짓는 게 핵심이다. 남산은 도성민이 고개만 들면 보이는 앞산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진을 친 왜장대를 중심으로 1885년부터 남산 기슭에 집결한 일본인들이 남산을 등지고 백악을 향해 북향하면서 남산은 공원 신세가 됐다. 1897년 왜성대공원에 이어 1910년 한양공원이 들어섰다. 재경성일본거류민단 위락용으로 장충단공원과 남산공원을 조성했다. 1940년 경성시가지 계획에 따라 모두 140개의 공원을 고시하면서 덕수궁, 창경궁과 함께 장충단 역시 공원으로 전락했다. 일제의 극악한 민족정기 말살 정책이다. 이때 41만 8000㎡였던 장충단공원은 1955년 70만㎡로 확장되면서 서울에서 가장 큰 근린공원이었다. 30년 만인 1984년 30만㎡로 절반 이상 쪼그라들면서 남산자연공원에 귀속됐다. 장충체육관, 영빈관(신라호텔 영빈관), 신라호텔, 자유센터, 타워호텔, 국립극장, 재향군인회관(동국대 예술대), 중앙공무원교육원(동국대 농대)등 온갖 시설들이 갖은 명분으로 공원 부지를 해제하고 들어선 탓이다. 장충단공원은 만신창이가 됐다. 사실상 이름도 잃어버렸다.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무지막지한 파괴의 현장이다.대한제국 국립현충원 장충단의 존재감은 파묻혔다. 주위를 둘러싼 엄청난 높이와 규모의 각종 동상과 기념비, 공공건물과 호텔에 파묻혀 왜소한 비석 하나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항일의 성지라는 장소의 역사성을 바꾸기 위해 가해진 극단의 변형 때문이다. 1932년 박문사 조성이 결정타였다. 신라호텔과 영빈관은 대한제국을 망하게 한 최고 공로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춘무산 박문사가 있던 장소이다. 일제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고, 이토를 신격화하는 신사이다. 정문은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가져왔고, 난간엔 광화문에서 가져온 석재를 쌓았다. 왕의 어진을 모신 경복궁 선원전은 승려 주거용 고리(庫裡)로 사용했다. 환구단 돌북을 안치했던 석고전을 가져다가 종루로 둔갑시켰다. 대한제국의 상징물을 동원해 이토를 장식한 것이다. 1913년 1월 23일자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에 ‘늦겨울의 장충단’이라는 기사와 장충단 사진이 실려 있다. 3층 기단에 14칸짜리 품위 있는 건물이다. 봄·가을에 제향과 군악 연주, 조총 발사 등 장엄한 예식이 1910년 폐사되기 전까지 거행됐다. 을미사변을 비롯, 임오군란, 갑신정변 때 숨진 군인들을 위로하는 현충의식이었다. ‘나라를 위한 일에서 죽은 자에 대해 반드시 제사를 지내어 보답하는 게….’ 고종실록에 실린 장충단 건립 목적이다. 또 1901년에 발간한 ‘장충단영건하기책’에는 장충단 축조기록과 의례절차가 전해진다. 장충단 단사는 공원 내 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자리에 있었다. 황제가 이름을 짓고, 황태자(순종)가 글을 쓰고, 충정공 민영환이 비문을 지었다. 비운의 장충단비는 신라호텔 뒤에 버려져 나뒹굴다가 1969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장충동이라는 지명이 남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강점기 장충동 일대 신흥 주택단지는 이토의 이름을 따 박문대라고 불렸다. 1970년 시인 김지하는 저항시 ‘오적’에서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동빙고동, 성북동, 수유동, 장충동, 약수동…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고 당대의 도적들을 야유했다. 강남시대가 열리기 전 한때의 만담이다. 잊혔던 장충단제는 1988년 부활했다. 서울 중구는 을미사변일인 1895년 8월 2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매년 10월 8일 장충단비 앞에서 제향을 지낸다. 또 최근에는 장충단비~한국유림독립운동 파리장서비~이준 열사 동상~이한응 열사 기념비~최현배 선생 기념비~유관순 열사 동상~3·1 독립운동 기념탑 등을 돌아보는 답사프로그램 ‘호국의 길’도 만들었다. 하루바삐 장충단사를 복원해야 한다. 마음을 모으면 장소의 역사성은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서울의 멋과 맛 ■일시: 11월 25일 오전 10시 종각역 4번 출구(보신각 앞) ■신청(무료) : 서울시 서울미래유산 (futureheritage.seoul.go)
  • ‘잊혀진 제국’ 금관가야 왕궁 찾았나

    ‘잊혀진 제국’ 금관가야 왕궁 찾았나

    지름 10m 넘는 대형건물지 7기 의례용 토기 등 유물 수백점 발견 “수장층 묻힌 대성동 토기와 흡사” 문재인 정부가 가야사 복원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가운데 금관가야(기원 전후부터 532년까지 경남 김해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나라)의 왕궁으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대형 건물터와 토기들이 출토돼 주목된다.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부터 김해 봉황동 유적 북동쪽 지역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4세기 후반~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대형 건물지 7기와 토기 수백 점을 발견했다고 21일 밝혔다. 연구소 측은 이번 조사에서 유적의 지표면에서 4.5m 아래까지 파고들어가 시대별 문화층을 처음 확인했다. 민무늬토기가 나온 원삼국 시대(기원전 1~기원후 4세기)부터 건물터와 불을 사용한 흔적이 있는 시설이 출토된 가야시대, 통일신라 시대, 조선시대 문화층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가야 문화층에서는 지름 10m를 넘는 대형 건물지 7기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3호 건물지(장축 15m)는 외곽에 둥글게 벽을 두르고 벽 사이에 기둥을 세운 형태로, 기둥을 박았던 자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강동석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큰 규모의 건물지들이 무리를 이룬 모습이라 그간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발견된 일반 생활 유적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건물터뿐 아니라 함께 나온 의례용 토기들은 가야 유력 계층의 흔적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봉황동 유적에서 나온 화로형 토기, 통형기대(筒形器臺·긴 원통을 세운 그릇받침), 각배(角杯·뿔 모양 잔), 토우 등은 의례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화로형 토기는 금관가야의 수장층이 묻힌 것으로 알려진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나온 토기와 문양이 매우 흡사하다. 통형기대에 둘러진 띠에 새겨진 둥근 고리무늬, 물결무늬, 엇갈리게 뚫은 사각형 구멍 등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독특한 형태다. 기마인물형토기에 달린 것과 비슷한 각배와 토우도 출토됐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살이] 덕수궁 돌담길의 진실

    [노주석의 서울살이] 덕수궁 돌담길의 진실

    “대한문 앞에서 덕수궁 돌담을 끼고 정동 골목을 쑤욱 들어가노라면 … 경성지방법원 앞까지 와서, 본래 같으면 이화학당 앞을 지나 서대문으로 나가는 길로 들어섰을 것을 … 그 둘은 기약지 않고 좀더 은근한 방송국 넘어가는 길을 택하려 들었다.” 1930년대 경성에서 제일 잘나가는 모던보이 구보 박태원이 단짝 이상을 모델로 쓴 단편소설 ‘애욕’에서 읊은 덕수궁 돌담길 풍경이다. 소설 속 경성지방법원이 대법원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 이화학당이 이화여고, 경성방송국이 덕수초등학교로 변했을 뿐 으슥한 길을 찾는 연애 풍속도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그 옛날에는 덕수궁 담 뒤에 있는 영성문 고개를 사랑의 언덕길이라고 일러 왔다. … 남의 이목을 꺼리는 젊은 남녀들은 흔히 사랑을 속삭이고자 찾아왔던 것이다. … 오늘날 이십대의 젊은이들은 영성문 고개가 사랑의 언덕길이었던 것조차 모르게 되었다.” 1954년 정비석이 서울신문에 연재한 ‘자유부인’에도 돌담길이 등장한다. 영성문은 신문로에서 덕수초등학교를 거쳐 미국대사관저까지 이어지는 고갯길이었다. 덕수궁(경운궁)의 북쪽 대문이고 왕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이 있어서 사람들은 경운궁을 ‘영성문 대궐’이라고 불렀다. 선원전은 옛 경기여고 터, 덕수초등학교, 구세군중앙회관에 걸쳐 있었다. 덕수궁 돌담길은 어쩌다가 사랑길의 대명사가 됐을까. 멀게는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가 남긴 불멸의 러브스토리가 기원이다. 이성계는 금기를 깨고 경복궁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곳에 애처의 무덤을 만들었다. 미국 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가 능침 자리다. 태종 이방원은 계모의 능을 파헤쳐 지금의 정릉동으로 옮기고, 석물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도록 광통교 바닥에 깔았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사라지지 않고 정동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600년 묵은 원조 사랑길이다. 개화기 서양 문물의 첫 정착지였던 정동에 자유연애의 유전자가 이어진 것도 자연스럽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정동제일교회 예배당을 중심으로 들어서면서 남녀칠세부동석의 엄혹한 윤리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두 학교 청춘들의 애틋한 만남과 헤어짐의 사연이 덕수궁 길에 깃든 것이다. 이별을 강조하는 속설은 다소 근거가 부족하다. 본래 독일영사관이 있던 자리에 경성재판소가 들어선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실제 그 시절 이혼 재판정이 돌담길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힘들다. 시대를 앞서가는 청춘들의 연애를 시샘하는 사회적 우려와 질투가 만들어 낸 아포리즘이 아닐까. 최근 서울시민이 뽑은 ‘가장 잘생긴 서울’ 1위에 덕수궁 돌담길이 올랐다. 누구나 이 길을 좋아한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길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돌담길을 좋아하는 이유는 길에 얽힌 스토리보다 궁 안팎을 넘나드는 절묘한 동선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돌담길 주변은 모두 옛 경운궁 구중궁궐이었다. 고종의 집무실이자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이 담 밖에 나와 있는 이유도 덕수궁을 관통하는 남북 간 도로가 궁을 쪼갰기 때문이다. 덕수궁 돌담은 1921년에 놓인 이 신작로의 부산물이다. 정비석이 말한 덕수궁 돌담길, 영성문 고갯길의 선원전이 복원된다고 한다. 영국대사관 소유 미완성 돌담길 70m도 뚫릴 날이 머지않았다. 다만 덕수궁 돌담길은 우리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황제국 대한제국이 남겨 준 값비싼 선물이란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나라 잃은 대가로 누리는 아픈 길이다.
  • [주말 영화]

    ■링컨(EBS1 토요일 밤 10시 55분) 자타가 공인하는 할리우드의 미다스 손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1977)와 ‘레이더스’(1981), ‘E. T’(1982)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에 거푸 도전했으나 모두 고배를 들었다. 아쉬워하던 스필버그가 작심하고 작품성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칼라 퍼플’(1984)이 그 시작이다. 작심 도전은 ‘태양의 제국’(1987)을 거쳐 ‘쉰들러리스트’(1993)에서 첫 결실을 맺는다. 아카데미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쥔 것. 5년 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9)에서도 감독상, 작품상을 재차 받았다. 암살이라는 극적인 사건 대신 노예 해방을 이끈 정치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에 집중한 ‘링컨’은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링컨을 열연한 대니얼 데이 루이스에게 생애 세 번째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2010년 작. ■김종욱 찾기(OBS 토요일 밤 10시 10분) 우리 뮤지컬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꼽히는 장유정 연출가가 자신의 뮤지컬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첫 영화다. 첫 사랑을 찾아 주는 아이템으로 창업한 한 남자와 이 업체를 통해 첫사랑을 찾으려는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장 연출가는 최근에는 ‘형제는 용감했다’를 ‘부라더’라는 영화로 옮겨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영화감독으로서의 입지도 굳혔다. 영화 ‘부산행’, 드라마 ‘도깨비’ 등을 통해 범접할 수 없는 대스타가 된 공유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스타덤에 오른 직후의 싱그러움을 뽐낸다. 2010년 작.
  • 쑹타오 中 특사, 내일 김정은 면담 가능성 트럼프 “큰 움직임… 무슨 일 생길지 보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인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이 17일 북한에 도착했다. 한국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밝히는 등 관련국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중국과 북한은 쑹 부장의 구체적 일정을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가 언제 돌아올지, 누구를 만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특사가 돌아오는 날짜를 밝히지 않은 것은 방북 성과에 따라 기간이 조정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북한은 자국을 방문한 인사에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의 면담 일정을 미리 알려 주지 않는다”면서 “쑹 부장이 김정은을 언제 만나는지는 오직 김정은의 결정에 달렸다”고 덧붙였다.다만 일각에서는 과거 관례를 들어 쑹 부장이 3박 4일 동안 머물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김정은과의 면담은 귀국 하루 전인 19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쑹 부장은 먼저 양국 간 ‘당 대 당’ 채널인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을 만난 뒤 주요 고위층과의 회동을 거쳐 김정은과 면담할 것으로 보인다. 쑹 부장은 김정은과의 면담에서 시 주석의 친서를 전달하고, 북핵과 관련한 중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한편 최근 잇단 정상회담에서 파악한 미국과 한국의 의중도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중국은 특사 방북의 중요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설 것이라는 추측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나온다.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쑹 부장의 방북은 북·중 간 고위급 소통 유지에 명백히 좋은 신호”라며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고, 북한도 최근 도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사국들은 좀더 지혜와 인내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미국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중국이 북한에 특사를 보낸다. 큰 움직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자”고 적었다. 중국의 역할에 기대를 건다는 뜻이다. 중국 특사의 방북 성과가 좋으면 미국의 대북 기조가 ‘최대의 압박’에서 ‘대화’로 전환될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쑹 부장이 도착한 17일 정세논설에서 “핵몽둥이를 휘두르는 미 제국주의와는 오직 정의의 핵억제력으로 맞서는 것 외 다른 길이 없다”며 “공화국의 최고이익과 관련되는 문제는 절대로 흥정탁(협상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정은의 생각이 노동신문의 논설과 똑같다면 쑹 부장은 빈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쑹타오, 내일 김정은 면담 가능성

    쑹타오, 내일 김정은 면담 가능성

    시진핑 친서·韓美 의중 전달할 듯 김정은 최측근·실세 최룡해 만나트럼프 “무슨 일 일어날지 지켜보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 쑹타오(宋濤)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이 17일 북한에 도착했다. 한국은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밝히는 등 관련국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쑹 부장은 이날 오후 중국국제항공편으로 베이징 서우두 공항을 떠나 북한 평양 공항에 도착, 리창근 북한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의 영접을 받은 뒤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측근이자 핵심 실세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과 회동했다. 앞서 베이징 공항에는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가 이례적으로 환송을 나왔다. 둘은 귀빈실에서 30여분 동안 차를 마시며 환담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특사의 주요 목적은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결과를 북측에 통보하는 것”이라면서도 “양국의 공동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북한이 쑹 부장의 일정을 밝히지 않아 그의 체류 기간과 김정은과의 면담 시점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특사가 돌아오는 날짜를 밝히지 않은 것은 방북 성과에 따라 기간이 조정될 수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면서 “북한은 누구에게도 김정은과의 면담 일정을 미리 고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거 관례를 들어 쑹 부장이 3박 4일 동안 머물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김정은과의 면담은 귀국 하루 전인 19일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쑹 부장은 김정은과의 면담에서 시 주석의 친서를 전달하고, 북핵과 관련한 중국의 입장을 설명하는 한편 최근 잇단 정상회담에서 파악한 미국과 한국의 의중도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특사 방북의 중요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설 것이라는 추측도 이런 분위기 때문에 나온다. 관영 차이나데일리는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고, 북한도 최근 도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사국들은 좀더 지혜와 인내를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중국이 북한에 특사를 보낸다. 큰 움직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자”고 적었다. 중국 특사의 방북 성과가 좋으면 미국의 대북 기조가 ‘최대의 압박’에서 ‘대화’로 전환될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문제는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쑹 부장이 도착한 17일 정세논설에서 “핵몽둥이를 휘두르는 미 제국주의와는 오직 정의의 핵억제력으로 맞서야 한다”며 “공화국의 최고이익과 관련된 문제는 절대로 흥정탁(협상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없다”고 밝혔다. 김정은의 생각이 노동신문의 논설과 똑같다면 쑹 부장은 빈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풍차·소금의 도시 트라파니와 소금 이야기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풍차·소금의 도시 트라파니와 소금 이야기

    시칠리아에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왕은 세 명의 공주를 한자리에 불러 말했다. “진정으로 아비를 사랑한다면 나의 생일에 가장 특별한 선물을 가져다주거라.” 왕의 생일날이 되자 첫째는 금으로 된 호화스러운 장신구를, 둘째는 진귀한 다이아몬드와 진주를 아버지에게 선물했다. 흡족한 미소를 띤 왕은 마지막으로 막내딸이 준 선물상자를 열었다. 진귀한 선물을 기대했건만 상자 속에 담긴 건 낡은 소금 자루 하나였다.크게 진노한 왕은 막내 공주를 성에서 즉시 추방할 것을 명령했다. 공주는 친구인 궁정 요리사에게 ‘앞으로 왕이 먹는 음식에 소금을 넣지 말라’는 당부를 남기고는 홀연히 성을 떠났다. 그날 이후 왕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간이 안 된 음식에 무슨 맛이 있으랴.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든 왕은 막내 공주를 다시 성으로 불러들여 지혜로움을 칭찬했고 그 뒤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여느 민담과 동화가 그러하듯 이 이야기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음식에 소금이 빠지면 ‘먹지 못할 정도로 맛이 없다‘는 사실이다. 요즘에야 소금의 과잉이 각종 성인 질환의 원인으로 인식돼 위험물질 취급을 받고 있지만 본디 소금은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요소이자 요리에 있어 맛을 내는 시작과 끝, 알파이자 오메가와 같은 존재다. 소금은 단지 음식에 짠맛만 불어넣는 것이 아니다. 조리 과정에서 재료와 상호작용을 하며 쓴맛과 같은 불쾌한 맛을 가려 주고 맛과 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분자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페란 아드리아 셰프는 소금을 두고 “요리를 변화시키는 단 하나의 물질”이라고 했다. 유럽에서 이름난 소금 산지를 꼽으라고 하면 프랑스 게랑드와 영국의 몰든, 그리고 이탈리아의 남쪽 섬 시칠리아에 위치한 트라파니를 꼽는다. 그중에서 트라파니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염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뜨거운 태양과 건조한 기후, 그리고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 이곳에 염전을 만든 건 고대 페니키아인들이었다. 트라파니는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을 지중해 중간에서 잇는 요충지인 동시에 드넓은 곡창지대와 막대한 부를 안겨다 줄 수 있는 소금까지 생산되는 천혜의 환경을 가진 곳이었다.페니키아인들이 세운 카르타고가 수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에 패하자 트라파니의 지배권은 로마인에게 넘어갔다. 테베레강 유역에서 소금 무역으로 흥한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잡고 더 큰 대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트라파니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양의 소금이 뒷받침된 덕분이었다는 학설도 있다. 우리가 천일염 하면 신안 갯벌을 연상하듯 이탈리아 사람들은 소금 하면 트라파니의 염전과 풍차를 떠올린다. 중세 때 만들어진 풍차는 바람의 힘을 이용해 거친 입자의 소금을 곱게 빻는 역할을 했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염전에 바닷물을 모아 두고 서서히 증발시키면 소금 결정이 생기는데 큰 결정은 아래로 가라앉는 반면 수면에는 눈꽃처럼 투명하고 얇은 결정층이 생긴다. 수면 위에 뜨는 고운 결정은 꽃소금(피오르 디 살레)이라고 부르는데 그 양도 많지 않고 일일이 사람이 걷어내는 수고를 요하기 때문에 일반 소금에 비해 값이 비싼 편이다. 바닥에 깔린 굵은 소금을 한데 긁어모아 간수를 빼는 과정을 거치면 천일염이 만들어진다. 염전에서 바로 수확한 소금을 주워 먹어 보면 짠맛보다 불쾌한 쓴맛이 더 느껴지는데 이는 간수에 함유된 마그네슘 성분 때문이다. 염전에 쌓인 간수가 빠지지 않은 소금을 몰래 한 바가지 퍼 간다고 한들 아무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주방에서는 소금을 어떻게 사용할까.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소금이 있지만 요리사들에게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소금이라든가 친환경 소금, 두 번 구운 소금 같은 건 사실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다. 미네랄이 더 함유된 소금은 정제 소금에 비해 맛이 다르다고 하지만 사실상 조리 중간에 사용되면 재료 자체의 맛에 가려 그 차이를 느끼긴 힘들다. 국적을 불문하고 조리용 소금으로는 염도를 맞추기 편하고 저렴한 정제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많은 요리사들이 탐내는 건 요리의 마무리에 쓰는 소금이다. 몰든 소금과 같이 속이 빈 피라미드 모양의 박편형 소금은 서양요리를 하는 셰프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소금 중 하나다. 음식이 나가기 직전에 살짝 뿌려주면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과 함께 짠맛의 악센트를 준다. 이외에도 트러플이나 셀러리, 발사믹 식초 등 향을 첨가한 소금들도 있는데 대부분 조리용이 아닌 마지막에 포인트를 줄 때 사용한다. 이러한 소금들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맛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기에 되도록 다양한 소금을 구비하고 싶은 것이 요리사들의 작은 소망이다.
  • 神도 사랑한 걸작

    神도 사랑한 걸작

    이슬람 건축 하면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은 머리를 외로 꼬지 싶습니다. 서구의 이름난 성당은 줄줄이 꿰도 이슬람 사원이라면 당최 생경한 경우가 태반일 겁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계, 그러니까 ‘서구’와 ‘기독교’의 반대편에 이슬람 문화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다르다거나 모른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지요. 경계의 장막을 걷어 내면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과 같은 자리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전설로 남은 이슬람 건축의 거장 미마르 시난입니다. 모든 이슬람 건축의 표준이자 ‘건축가’(미마르)라는 보통명사로 남은 이가 바로 그입니다.미마르 시난은 오스만 제국의 건축 거장이다. 서구에서 ‘동쪽의 다빈치’라 부를 때마다 다빈치를 ‘서쪽의 시난’이라 응수할 정도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다. 시난은 자신을 제외하고 이슬람 건축을 말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거대한 돔과 미나레트(첨탑)가 특징인 오스만의 건축 양식이 그의 시대에 확립됐고, 그가 활용했던 여러 지표들은 이슬람 건축의 표준이 됐다.터키 여정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변경의 소도시 에디르네다. 도심에서 불과 수㎞ 떨어진 곳에서 그리스, 불가리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슬람 건축물이 밀집된 이스탄불을 제치고 에디르네를 먼저 찾은 것엔 까닭이 있다. 외부의 시선과 시난 자신의 평가가 일치하는 걸작 셀리미예 모스크가 있기 때문이다. ●이교도 용병서 오스만 최고의 건축 거장으로 셀리미예 모스크는 최대, 최고 등의 수식어와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걸작이라 상찬받는 이유는 뭘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시난의 인생을 되짚어 봐야 한다. 우선 생몰 연대부터. 공식적으로는 1490~1588년이다. 한데 사망한 해에 대해서는 이견이 덜하지만 출생한 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1489년이라거나 심지어 1500년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또 하나는 그의 사랑 이야기다. 기록으로는 단 한 줄도 남아 있지 않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이지만 거의 사실처럼 회자되고 있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시난이 평생 단 한번 사랑한 이는 미흐리마 공주다. 한데 공주가 술탄 슐레이만의 딸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공주는 뤼스템 파샤와 결혼하게 되고, 시난은 황제의 명으로 미흐리마 술탄 모스크와 뤼스템 파샤 모스크를 짓는다. 두 모스크의 미나레트 위로는 일 년에 한 차례 해와 달이 동시에 뜬다. 절기상 춘분이자 공주의 생일인 날이다. 이 같은 천문 현상까지 고려해 모스크를 지었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후대에 지나치게 미화되고 각색된 ‘혐의’가 짙다. 술탄 슐레이만은 예니체리(이교도 용병)였던 시난을 거두고 그가 기량을 맘껏 펴도록 도왔던 이다. 아무리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해도 왕족이 아닌 자와 자신의 딸이 결혼한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을 것이다. 물론 슐레이만 자신도 사랑에 관한 한 여느 술탄과 다소 다르긴 했다. 술탄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대신 하렘에 있는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며 살아야 했다. 한데 슐레이만은 한 여인만 사랑했고 결혼했다. 자신이 그랬으니 딸의 파격적인 사랑에도 관대했을 수 있겠다. ●여덟 개 코끼리 다리가 42m 돔 떠받쳐 셀리미예 사원은 시난 스스로 역작이란 상찬을 아끼지 않았던 모스크다. 1575년에 완공됐다. 터키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아한 모스크로 꼽힌다. 외형은 여덟 개의 거대한 코끼리 다리(기둥)가 중앙의 돔을 떠받치고 있는 형태다. 중앙돔은 높이가 42m, 직경이 31.22m에 달한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시난이 셀리미예 모스크를 설계할 때 역점을 뒀던 부분 중 하나는 채광, 즉 빛의 유입이다. 이는 빛인 알라를 건물 안으로 영접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는 혁신적이고 기하학적인 설계 방식을 도입해 모스크에 수백 개의 창을 냈다. 그 덕에 모스크로서는 이례적으로 예술적 아름다움과 종교적 엄숙함을 충족시키는 밝은 실내가 탄생했다. 셀리미예 모스크에는 다섯 층에 걸쳐 모두 999개의 창문이 엇갈리게 배열돼 있다. 여기서 창문은 ‘99개의 이름을 가지신 분’이자 ‘빛’인 알라를, 다섯 층은 이슬람의 다섯 기둥을 각각 상징한다. 돔 천장과 벽면 등엔 2만여개의 타일이 붙어 있다. 하나같이 무슬림이 좋아하는 파란빛을 띠고 있다. 돔은 공간 확장의 의미가 있다. 지붕을 돔 형태로 만들어 하중을 분산시키고, 작은 돔을 세워 이를 도왔다. 그러니 기둥은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게 됐고, 신을 경배하는 공간은 더욱 확장될 수 있었다. 돔은 울림을 통해 소리의 확장에도 도움을 줬다. 스피커가 없었을 상황을 떠올리면 더 알기 쉽겠다. 만년의 시난이 설계한 셀리미예 모스크는 수수하다. 뜨거웠던 청춘의 뒤안길에서 불필요한 것들은 빼고 정미한 것들만 남긴 듯하다. 우리의 종묘처럼 단순하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지 싶다.모스크는 주변에 병원과 목욕탕, 시장 등 여러 건물들을 거느린다. 셀리미예 사원 주변에 남아 있는 알리 파샤 시장과 소쿨루 목욕탕(이상 1569년), 카누니 다리(1554년) 등 역시 시난이 설계한 건축물들이다.에스키 사원은 캘리그래피가 인상적인 곳이다. 1403년에 건축이 시작돼 1414년에 완공됐다. 사원 여러 곳에 독특한 형태의 캘리그래피를 새겼다. 캘리그래피는 ‘신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예술’이다. 알라의 가르침을 글자로 표현했다. 중심 단어는 알라와 그의 마지막 예언자인 무함마드다. 대개의 경우 왼쪽 벽면에 무함마드, 오른쪽 벽면에 알라를 그려 넣는다. 우츠 셰레펠리 사원도 볼만하다. 장식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가장 ‘화려한’ 자태의 모스크이지 싶다. 1438~1447년 건축됐다. 모스크의 이름은 ‘3개의 발코니’라는 뜻이다. 미나레트에 이례적으로 3개의 발코니가 달려 있는 것에서 유래했다. 영문 ‘M’ 자 모양의 회랑도 인상적이다. 바키프대학의 수피 사치 건축학과 교수는 “아치 형태의 건축 기법인 ‘레와크’가 이 모스크에서 가장 먼저 시도됐다”고 설명했다.●화려하지도 누추하지도 않은 영묘 이스탄불에도 미마르 시난의 작품이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슐레마니예 모스크, 미흐리마 술탄 모스크 등이 유명하다. 이스탄불의 대표 명소인 블루 모스크와 아야 소피아에도 그의 영향이 미쳤다. 블루 모스크는 시난의 제자들이 지었고, 아야 소피아는 라미레트를 새로 세우는 등 시난이 중건을 도맡았다. 시난의 인생을 돌아보는 여정의 끝은 그의 영묘다. 슐레마니예 사원 끝자락에 있다. 영묘는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누추하지도 않은 모양새다. 스스로 자신의 묏자리를 정했다는데, 무엇보다 그 형태가 독특하다. 두 개의 골목이 만나는 뾰족한 지점에 자리 잡았다. 위에서 내려보면 영락없는 삼각자 모양이다. 건축가가 영면할 자리로 이만큼 완벽한 곳이 또 있을까. 글 사진 에디르네·이스탄불(터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한국에서 에디르네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세 시간 정도 더 가야 한다. 카파도키아는 국내선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거리는 네브셰히르 공항이 가깝지만, 운항 스케줄은 카이세리 공항이 더 많다. 이스탄불은 유럽의 허브를 자처하는 공항이다. 터키항공이 이를 활용한 스톱 오버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환승 시간을 활용해 이스탄불의 주요 관광지를 돌아본다.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짧지만 제법 알찬 경험을 할 수 있다. 비즈니스 승객이나 스타얼라이언스의 골드 회원(동반 1인 포함)은 CIP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카파도키아 열기구는 탑승 인원과 탑승 시간에 따라 요금 차이가 크다. 2~8명이 1시간 30분 정도 탈 경우 1인당 25만원을 훌쩍 넘긴다. 보통은 1시간짜리를 주로 탄다. 16명 정도가 타는데 1인당 15만원 선이다. 카파도키아는 해발 1200m의 고원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꽤 추운 편이다. -통화는 터키 리라다. 1리라는 약 285원 정도다. 전기 콘센트는 우리와 같은 형태다. -터키 사람들은 홍차와 커피를 즐겨 마신다. 특히 터키 커피는 유럽 커피의 기원이 됐을 만큼 역사가 깊다. 터키 커피는 우리가 흔히 마시는 블랙커피와 다소 다르다. 커피 가루를 타서 마시는 형태인데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다. 커피를 마시고 난 뒤 잔 바닥에 남은 침전물로 점을 치기도 한다. -그랜드 바자르는 시장이자 관광명소다. 하지만 물건값은 꽤 비싼 편이다. 구경은 하되 기념품은 이집션 바자르에서 사는 게 좋다. 갈라타 다리 부근에 있다.
  • 벨라토르, 케이지 난입해 선수 때리고 심판 밀친 맥그리거 징계 요청

    벨라토르, 케이지 난입해 선수 때리고 심판 밀친 맥그리거 징계 요청

    벨라토르 187 주최측이 경기 도중 케이지에 난입해 승리한 선수에게 격한 셀레브레이션을 하고 심판을 뒤에서 밀치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한 코너 맥그리거(29·아일랜드)의 징계를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 대회인 UFC에 요청했다. 대회를 주최한 모히건 부족 체육규제국(MTDAR)의 마크 마줄리 국장은 11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내 “맥그리거의 행동은 선수의 몸상태를 점검해야 하는 심판과 의료진을 심각하게 방해했다”며 “UFC 고위층과 접촉을 갖고 있다”고 밝혀 사실상 징계를 요구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UFC 사상 처음으로 두 체급 챔피언에 오른 맥그리거는 전날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3 아레나에서 열린 벨라토르 187의 메인 이벤트로 존 레드먼드와 맞선 소속팀 ‘SBG 아일랜드’의 동료인 찰리 워드를 응원하기 위해 케이지 주변을 지켰다. 워드가 1라운드 KO 승을 거두자 기쁜 나머지 케이지에 들어와 그를 넘어뜨린 뒤 주먹을 날리며 격하게 축하를 했다.하지만 세컨드도 아닌 사람이 케이지 안에 들어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크 고다르 주심은 맥그리거와 가벼운 몸 접촉을 하며 제지했고 화가 잔뜩 오른 맥그리거는 경호요원들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쫓아가 고다르 주심의 등을 손으로 밀쳤다. 경호원들에게 제지돼 떠나면서 소리를 지른 것은 물론이었다. 지난 8월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의 복싱 경기에서 패퇴한 뒤 지난해 11월 에디 알바레즈를 KO로 물리친 뒤 UFC 경기에 나서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망동은 예서 그치지 않았다. 케이지 밖으로 쫓겨난 뒤 펜스를 넘어 다시 들어오려 했고 제지하던 관계자의 뺨을 때렸다. 워드도 펜스를 넘어와 상식 밖의 행동을 저지른 맥그리거와 주먹을 교환하며 격하게 끌어안았다. 더 꼴불견인 것은 벨라토르가 맥그리거의 난동을 오히려 대회 홍보에 적극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APEC 21개국 ‘신경전’…무역자유화 놓고 트럼프-시진핑 충돌

    APEC 21개국 ‘신경전’…무역자유화 놓고 트럼프-시진핑 충돌

    10일부터 이틀간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제25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트럼프 대통령은 예상대로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 책임을 중국을 비롯한 APEC 회원국들에 돌리는 태도를 보이며 무역 불균형 해소와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체제를 주장했다. 중국은 시장 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자국 주도의 경제공동체 창설 진전에 애썼다. 일본은 중국 견제 성격이 강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미국 없이도 살릴 수 있는 발판을 진통 끝에 마련했다. 미·중·일의 속내와 행보가 엇갈리는 가운데 한국을 비롯한 나머지 APEC 회원국들은 ‘트럼프 불똥’을 경계하며 무역 자유화를 위한 연대를 모색했다. APEC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11일 채택한 ‘다낭 선언문’에는 다자 무역체제에 대한 지지가 명시됐다. 2020년까지 보호무역 조치를 동결하고 보호 무역주의를 배격한다는 기존 APEC 회원국들의 약속도 재확인했다. 그러나 상호 이익되는 무역의 중요성, 시장을 왜곡하는 보조금 폐지, 세계무역기구(WTO)의 협상·이행감시·분쟁해결 기능 개선, WTO 협정의 완전한 이행 약속 등 미국의 주장도 선언문에 반영됐다. 이번 선언문 도출을 놓고 미국과 다른 회원국들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불공정한 교역 관계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다자 무역협정 대신 공정하고 호혜적인 교역 및 양자 협정을 주장하는 등 보호 무역주의 성향을 다시 한 번 드러내 예견된 일이었다. 이에 따라 선언문에 지역, 다자간 무역협정뿐만 아니라 양자 협정의 중요성도 언급하는 등 타협이 이뤄졌다. 2004년 처음 제안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창설은 중국이 주도하고 있지만, 미국의 제동으로 이번에 구체적 추진 계획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다. APEC의 역내 경제통합 주도적 역할론이 ‘트럼프 장벽’에 부닥친 셈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APEC 정상회의 연설에서 “폐쇄된 발전은 아무런 성과가 없는 반면 개방된 발전이 유일한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줬다”며 “앞으로 중국은 더 넓게 개방하고 그에 따른 발전은 나머지 세계에 더 큰 이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시 주석은 “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라고 강조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세계 통상질서 재편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각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이번 정상회의 기간에 미국의 탈퇴로 무산 위기에 빠진 TPP를 살리는 데 전력투구했다. 11개 TPP 가입국이 협상 과정에서 진통을 겪기는 했지만,일본은 일단 미국 없이 TPP 발효를 추진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중국이 처음부터 빠져있는 TPP는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견제하는 성격이 있다. RCEP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 등 총 16개국이 참여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미국의 TPP 탈퇴를 선언한 이후 RCEP가 그 대안으로 주목받자 일본이 TPP 회생에 더 매달리는 모습이었다. 장쥔 중국 외교부 국제경제국장은 TPP 회생 합의 소식에 RCEP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중국은 RCEP 협상 타결에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트럼프 아시아 순방 비난…“전쟁상인의 장사 행각”

    북한, 트럼프 아시아 순방 비난…“전쟁상인의 장사 행각”

    북한은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비난했다.외무성은 이날 대변인 담화를 통해 “취임 후 처음으로 아시아 행각에 나선 트럼프가 지난 5일부터 우리 주변을 돌아치고 있다”며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 핵 억제력을 빼앗아 내려는 호전광의 대결 행각”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담화는 “손아래 동맹국들의 돈주머니를 털어내어 미국 군수독점체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한 전쟁상인의 장사 행각에 불과하다”면서 “세계의 평화와 안정의 파괴자로서의 진면모를 낱낱이 드러내 놓았으며 조선반도(한반도)에서의 핵전쟁을 구걸하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트럼프가 지난 9월 유엔총회 마당에서 우리 공화국의 절멸이라는 미치광이 나발을 불어댄 데 이어 이번에는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전면거부하는 망발을 늘어놓으면서 우리 국가를 악마화하여 우리 정부와 인민을 갈라놓고 조선(북한)과 국제사회를 대치시켜보려고 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악의 제국 미국과의 대결에서 반드시 최후승리를 이룩하고야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베트남에 도착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제정 러시아도 독도는 한국 땅 인정”

    “제정 러시아도 독도는 한국 땅 인정”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도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일본의 주장의 근거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은 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러 국제학술회의에서 ‘근대 러시아의 해양탐사와 울릉도, 독도의 발견’이라는 논문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김 소장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재위기간 1825~1855년)가 청나라와 일본과 개항협상을 추진하기 위해 아시아 및 극동지역으로 파견한 예브피미 푸탸틴 특사가 이끈 팔라다 함대가 1854년 4월 6일부터 5월 11일까지 동해를 실사하던 중 독도를 발견하고 서도를 ‘올리부차’, 동도를 ‘메넬라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서양 국가로서 처음으로 독도의 두 섬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후 러시아 해군성 수로국은 이들의 탐사결과를 바탕으로 1857년 조선 동해안 지도를 발간했는데 여기서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고 표기해 독도가 한국 땅임을 공식 인정했다는 것이다. 수로국은 1868년 판본, 1882년 판본 등의 보완된 지도에서도 독도가 한국의 영토라는 점을 표기했다. 김 소장은 “일본 해군성도 1870년대 러시아 지도를 모사한 동해안 지도를 발간하면서 조선 동해도 안에 독도가 포함된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연설문

    [전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연설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8일 한국 국회 연설 전문이다. 국회 동시통역자의 통역이다.   친애하는 정 의장님 존경하는 국회의원 여러분 그리고 신사숙녀 여러분 이곳 국회본회의장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 미국민을 대표해 대한민국 국민들게 연설할 수 있는 특별한 영광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에 머무는 짧은 시간동안 멜라니아와 나는 한국의 고전적이면서도 근대적인 모습에 경외감을 느꼈으며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젯밤 문 대통령 내외는 청와대에서 있었던 멋진 연회에서 우리를 극진히 환대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군사협력 증진과 공정성 및 호혜의 원칙하에 양국간 통상관계를 개선하는 데 있어 생산적인 논의를 가졌습니다. 이번 방문 일정 내내 한미 양국의 오랜 우애를 기념할 수 있어 기뻤고 영광이었습니다. 우리 양국의 동맹은 전쟁의 시련 속에서 싹텄고 역사의 시험을 통해 강해졌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에서 전투에 이르기까지 한미장병들은 함께 싸웠고 함께 산화했으며 함께 승리했습니다. 근 67년 전 1951년 봄 양국 군은 오늘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우리 연합군이 공산군으로부터 수도 지역을 탈환하기 위해 큰 사상자를 낸 것이 그것으로 그해 두번째였습니다. 그 이후 수주 수개월에 걸쳐 우리 양국 군은 험준한 산을 묵묵히 전진했으며 혈전을 치렀습니다. 때로는 후퇴하면서도 이들은 북진했고 선을 형성했습니다. 그 선은 오늘날 탄압받는 자들과 자유로운 자들을 가르는 선이 됐습니다. 그리고 한미 장병들은 그 선을 70년 가까이 함께 지켜나가고 있습니다.1953년 정전협정에 서명했을 당시 3만6000여 미국인이 한국전에서 전사했으며 15만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굉장히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들은 영웅이며 우리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또한 한국민들이 자유를 위해 치렀던 엄청난 대가에 경의를 표하며 이를 기억합니다. 한국은 수십만의 용감한 장병들과 셀 수 없이 무고한 시민들을 끔찍한 전쟁으로 잃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서울의 대부분은 초토화되었습니다 한국의 많은 지역에 전쟁의 상흔이 남았으며 그리고 한국의 경제는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알다시피 그 이후 두 세대에 걸쳐 기적과도 같은 일이 한반도 남쪽에서 일어났습니다. 한 가구씩 한 도시씩 한국민들은 이 나라를 오늘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국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훌륭한 국가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축하의 말씀 드립니다. 한평생이 채 되기도 전에 한국은 끔찍한 참화를 딛고 일어나 지구상 가장 부강한 국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오늘날 한국 경제규모는 1960년과 비교해 350배에 이르고 교역은 근 1900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평균 수명 역시 53년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82세 이상이 됐었습니다. 제가 선거에서 했던 것처럼 이사실을 축하하고자 합니다. 미국은 마찬가지로 기적과 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식 시장은 어느 때보다도 활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업율은 17년째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IS를 물리쳤고 우리는 사법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대법원장을 모셨습니다. 그리고 이거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한반도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것들이 큰 항공모함입니다. 이 항공모함에는 F35가 장착되어있으며 15대 전투기가 들어가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핵잠수함을 적절하게 포지셔닝 해두고 있습니다. 미국은 제 행정부 안에서 완전하게 군사력을 구축하고 있으며 수천억에 달하는 돈을 지출해서 가장 새롭고 가장 발전된 무기체제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현재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힘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한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한국이 더 잘되길 원하고 이에 대해서 많은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누가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이에 대해 동조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이 너무나 성공적인 국가로 발전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의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국이 이루어낸 것은 정말로 큰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적인 탈바꿈은 정치적은 탈바꿈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주권 한국의 자긍심은 독립적인 국민들은 스스로 통치할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한국민들은 1988년 자유총선을 치렀습니다. 이것이 한국이 첫 올림픽을 개최한 바로 그 해입니다. 곧이어 한국민들은 30년 만에 첫 문민 대통령을 배출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손으로 이룩한 나라가 금융위기에 처했을 때 수백명씩 줄을 지어 가장 값나가는 물건들을 내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의 결혼반지, 가보, 황금 행운의 열쇠를 내놓으며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고자 했던 것들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여러분의 금은 단순한 금전적 가치 그 이상이며 이것은 땀과 정신의 업적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너무나 많은 훌륭한 것들을 발견해냈습니다. 여러분들이 기술의 한계를 확대하고 기적적인 의학적 치료법을 개척하며 우주의 불가사의를 풀어내는 리더로 부상했습니다. 한국 작가들은 연간 약 4만권의 책을 저술하고 있습니다. 한국 음악가들은 전세계에 콘서트장을 메우고 있습니다. 한국 학생들의 대학 졸업율을 전세계 최고 수준에 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골프선수들은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리고 제가 무슨 말씀 드릴지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US오픈의 여성 골프들은 올해 그 대회를 뉴저지에 있는 트럼프 골프장에서 열렸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한국 여성골프들이 박성현씨가 바로 여기서 승리했습니다. 전세계 10위권에 드는 훌륭한 선수입니다. 세계 4대 골프선수들이 모두 한국출신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냐고요. 이곳 서울에서는 63빌딩이나 롯데월드 타워같은 멋진 건축물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습니다. 여러 성장산업에 근로자들의 일터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이제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고 테러에 맞서며 전세계에서 문제 해결에 힘이 되고 있습니다. 몇달 후면 여러분들은 23차 동계 올림픽이라는 멋진 행사를 개최하게 됩니다. 행운을 빕니다. 한국의 기적은 자유국가의 병력이 진격했었던 곳, 즉 이곳으로부터 24마일 북쪽까지 미쳤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거기에서 멈춥니다. 거기서 모두 끝납니다. 거기서 바로 멈춰지는 것입니다. 번영은 거기서 끝나고 북한이라는 교도국가가 시작됩니다. 북한 노동자들은 끔찍하게 긴 시간을 견디기 힘든 조건에서 무보수로 일합니다. 최근에는 전 노동 인구에게 70일 연속 노동을 하든지 아니면 하루치 휴식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가족들은 배관도 갖춰있지 않은 가정에서 생활하고 전기를 쓰는 가정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부모들은 교사에게 촌지를 건내며 자녀들이 강제노역에서 구제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습니다. 백만 이상의 북한 주민들이 1990년대 기근으로 사망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계속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5세 미만 영유아 중 거의 30%가 영양실조로 인한 발육부진에 시달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과 2013년 북한체제는 2억불로 추정되는 돈, 즉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배분한 액수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를 대신 더 많은 기념비, 탑, 동상을 건립해서 독재자를 우상화하는데 썼습니다. 북한 경제가 거둬들이는 수익은 비뚫어진 체제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배분됩니다. 주민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여기기는커녕 이 잔인한 독재자는 주민들을 저울질하고 점수 매기고 국가에 대한 이들의 충성도를 너무나도 자의적으로 평가해서 이들에게 등급을 매깁니다. 충성도에서 높은 점수를 딴 사람들은 수도인 평양에 거주할 수 있습니다. 점수가 가장 낮은 사람들은 먼저 아사합니다. 한 사람의 작은 위반, 예를 들면 버려진 신문지에 인쇄된 독재자의 얼굴에 실수로 얼룩을 묻히거나 하면 이것이 그 사람의 가족 전체 사회 신용등급에 수십년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만으로 추정되는 북한 주민들이 노동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고 고문과 기아, 강간, 살인을 견뎌내며 고통받고 있습니다. 알려진 한 사례에서는 한 9살 소년이 10년간 수감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이 아이의 조부가 반역죄로 고발당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 사례에서는 한 학생이 김정은의 삶에 대한 세부사항 하나를 잊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구타를 당했습니다. 군인들은 외국인을 납치해서 이들을 북한 첩보원의 어학교사로 일하게 만듭니다. 전쟁 전에 기독교의 근거지였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기독교인들과 기타 다른 종교인들 중 기도를 하거나 종교 서적을 보유했다 적발되면 억류와 고문,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처형까지도 감수해야 합니다. 북한 여성들은 인종적으로 열외에 있다고 감지되는 태아를 강제로 낙태시켜야 합니다. 이 아이들이 출생하면 아이들은 신생아 때 살해됩니다. 중국인 아버지를 둔 한 아기는 바구니에 담긴 채 끌려갔습니다. 경비대는 이 아이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 중국을 도와야겠다는 의무감을 느껴야 합니까. 북한 생활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정부 관료에게 뇌물을 주고 해외에 팔려간다고 합니다. 차라리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도망을 치고자 시도하게 되면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가 됩니다. 사형에 탈출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에 더 가까웠습니다. 북한을 떠나고 나서야 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고 말입니다. 오늘 한반도에서 우리는 역사의 실험실에서 벌어진 비극적 실험의 결과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민족, 두 개의 한국에 대한 이야기다. 한쪽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국가와 삶을 꾸려나가고 자유와 정의, 문명과 성취의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다른 한쪽 한국은 부패한 지도자들이 압제와 파시즘, 탄압에 기저해 주민들을 감옥에 가뒀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가 이제 도출되었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극명합니다. 1950년 한국 전쟁 발발시 두 한국의 일인당 GDP는 거의 동일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서 한국의 돈은 북한에 비해 10배를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경제는 북한 대비 40배 이상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일선상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40배 이상 성장했다는 말입니다. 굉장히 잘하고 계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한이 초래한 고통을 고려하면 북한 독재자가 왜 점점 필사적으로 주민들이 극명한 대비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했는지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북한 체제는 무엇보다도 진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외부 세계에 접촉을 전면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의 이 연설뿐 아니라 한국 생활의 가장 평범한 사실조차도 북한에서는 금단의 지식입니다. 서구와 한국의 음악 역시 금지되어 있습니다. 해외 매체를 소유하고 있는 것도 범죄이며 이것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입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서로서로를 감시합니다. 이들의 집은 언제든지 수색을 당할 수 있습니다. 모든 행동이 정찰의 대상이 됩니다. 북한은 종교집단처럼 통치되고 있습니다. 이 군사적 이단 국가의 중심에는 정복된 한반도와 노예가 되어버린 한국인들을 보호자로서 통치하는 것이 지도자의 운명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성공할수록 더 결정적으로 한국은 김정은 체제의 중심의 어두운 환상에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번영하는 한국의 존재 자체가 북한 독재체제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서울과 국회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한국이 강력하고 최고이며 자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국가의 힘이 폭군의 가짜 영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강력하고 위대한 한국 국민의 진정한 영광에서 그 힘이 나옵니다. 한국인들은 자유롭게 살면서 번창하고 예배하고 사랑하며 삶을 만들고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 어떠한 독재자도 할 수 없었던 것을 한국 국민이 해냈습니다. 스스로 책임지고 미래의 주도권을 가졌습니다. 꿈이 있었는데 코리안드림을 현실로 만들어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서울의 멋진 마천루에서부터 들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운 경관들을 봅니다. 여러분은 자유롭게 행복하게 그리고 여러분만의 아름다운 방법으로 이를 성취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나라와 여러분의 성공은 불안함과 경종, 심지어 겁먹음에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체제는 나라 밖에서 갈등을 모색합니다. 나라안으로부터의 실패를 눈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휴전 이후 북한은 미국인과 한국인들에 대해 수없이 공격했습니다. 용맹한 미 해군들을 붙잡아 고문했고, 반복해서 헬기들을 공격했으며 또한 69년에 미국 정찰기를 격추시켜서 31명의 미군을 사망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체제는 수없이 한국에 침투했고 고위지도자 암살을 시도했으며 한국 함선들을 공격했고 오토 웜비어를 공격해 결국 이 젊은이가 죽음에 이르도록 했습니다. 이 와중에 북한 체제는 핵무기를 추구했습니다. 잘못된 희망을 갖고 협박으로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목표가 이루어지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목표는 바로 한국을 밑에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북한체제는 핵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추구하면서 지금까지 미국과 동맹국이 했던 모든 보장과 합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94년에 플루토늄을 동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의 혜택은 거두면서도 동시에 불법적으로 핵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2005년에는 수년간 외교활동이 있었는데 그때 독재체제는 핵을 단념하고 비확산조약에 복귀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포기하겠다고 한 무기를 협상했습니다. 2009년에 미국은 다시 한번 협상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에 관여를 제시했습니다. 북한체제의 답은 한국 해군 함정을 침몰시키고 46명의 해군을 사망하게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북한은 계속해서 미국 측과 일본 영토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며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여 미국 자체를 위협하려고 합니다. 북한 체제는 미국의 과거 자제를 유약함으로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치명적인 오산이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정부는 매우 다른 행정부입니다. 과거의 행정부와 비교했을 때 다른 행정부입니다. 오늘 나는 우리 양국뿐 아니라 모든 문명국가를 대신해 북한에 말합니다. 우리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또한 우리를 시험하지도 마십시오. 우리는 공동의 안보, 우리가 공유하는 번영, 그리고 신성한 자유를 방어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멋진 한반도의 가느다란 문명한 선을 긋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역사 속에서 이 선은 여기 남아있습니다. 이 선은 평화와 전쟁, 품위와 악행 법과 폭정, 희망과 절망 사이에 그려진 선입니다. 이 선은 많은 장소에서 수차례에 걸쳐 역사 속에서 그어졌습니다. 이 선을 지키는 것이 자유국가가 늘 해야 하는 선택입니다. 우리는 유약함의 대가와 이것들을 지켜야 하는 위험을 같이 배웠습니다. 미국 국민은 나치즘, 제국주의, 공산주의, 테러와의 싸움을 하면서 그들의 생명을 걸었다. 미국은 갈등이나 대치를 원하지 않습니다. 결코 그로부터 도망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에는 버림받은 체제가 많습니다. 그들은 어리석게 미국의 결의를 시험했던 체제들입니다. 우리 과거를 되돌아보고 더 상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이나 동맹국이 협박, 혹은 공격받는 것을 허용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 도시들이 파괴위협 는 것을 허용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협박받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잔혹이 이곳에서 반복되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을 걸었던 땅입니다. 바로 그래서 저는 이곳에 왔습니다. 자유롭고 번영하는 한국의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들을 위해 메시지를 들고 왔습니다. 변명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힘의 시대다.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늘 강력해야 합니다. 세계는 악당체제의 위협을 관용할 수 없습니다. 핵 참화로 세계를 위협하는 체제를 관용할 수 없습니다. 책임지는 국가들은 힘을 합쳐 북한의 잔혹한 체제를 고립시켜야 한다. 어떤 형태의 지원이나 공급, 용인을 규정해야 한다. 모든 국가들 중국, 러시아도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완전히 이행하고 체제와의 외교 관계를 격하시키고 모든 무역 관계를 단절시킬 것을 촉구한다.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는 이 위험에 함께 대처하는 것이다. 기다릴수록 위험은 증가하고 선택지는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위협을 무시하거나 혹은 가능하게 하는 국가들에게 말합니다. 이 위기의 무게가 여러분의 양심을 누를 것입니다. 이곳 한반도에 온 것은 북한 독재체제의 지도자에게 직접적으로 전할 메시지가 있어서다. 당신이 획득하고 있는 무기는 당신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립니다. 어두운 길로 향하는 한걸음 한걸음이 당신이 직면할 위협을 증가시킬 것이다. 북한은 당신의 할아버지가 그리던 낙원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가서는 안 되는 지옥이다. 하지만 당신이 지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의 출발은 공격을 중단시키고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며 안전하고 검증가능한 총체적인 비핵화입니다. 하늘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면 눈부신 빛이 남쪽에 가득하고 뚫을 수 없는 어둠의 덩어리가 북쪽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빛과 번영의 평화의 미래를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같은 빛을 논의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경우는 북한 지도자들이 도발을 멈추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경우입니다. 북한의 악한 체제는 한 가지는 맞게 보고 있습니다. 바로 한 민족이 운명은 영광스럽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못 알고 있습니다. 한 민족의 운명은 억압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영과의 자유 속에서 번영하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한반도에서 이룩한 것은 한국의 승리, 그 이상입니다. 인류의 정신을 믿는 모든 국가들에게 승리입니다. 우리가 바라기는 곧 여러분의 북한 형제 자매들이 하나님이 뜻한 인생을 충만히 누리는 것이다. 한국은 우리에게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줬습니다. 단지 몇십년 간의 기간 동안 근면, 용기, 재능만을 갖고 여러분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을 부와 풍부한 문화와 심오한 정신을 갖춘 축복받은 나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국은 모든 가정들이 잘 살고 모든 어린이들이 빛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한국은 강력하고 위대하게 국가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자주적이고 자랑스러우며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들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국민을 존중하고 자유를 소중히 여기며 주권을 간직하고 스스로 운명을 만드는 나라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하며 모든 사람들의 완전한 잠재력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준비되어 우리 국민의 이해를 보호한다. 잔인한 야심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합니다. 우리는 함께 자유로운 하나의 한국, 안전한 한반도, 가족의 재회를 꿈꿉니다. 우리는 남북을 잇는 고속도로, 가족들의 만남, 핵 악몽은 가고 아름다운 평화의 약속이 오는 날을 꿈꿉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강하고 방심하지 않으며 우리의 눈은 북한에 고정되어 있고 가슴은 모든 한국인들이 자유롭게 살 그날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한국 국민들과 미국을 축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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