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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쉰들러 리스트 작성해 유대인 구한 비서 라인하르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쉰들러 리스트 작성해 유대인 구한 비서 라인하르트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구해내야 할 유대인 명단을 작성했던 그의 비서 미미 라인하르트가 10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1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던 빈에서 태어난 유대인 라인하트트는 폴란드 크라쿠프에 있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혔다가 유창한 독일어 실력 덕에 쉰들러에게 비서로 발탁됐다. 나치 친위대(SS) 대원이었던 쉰들러는 자신의 공장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의 수용소 송환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 때 구해내야 할 유대인들의 이름을 타이핑한 것이 라인하르트였다. 이렇게 구해낸 유대인 직공들이 1300명에 이르렀다.  대학에 가려고 속기를 배웠는데 그게 자신의 목숨을 구하게 될지 몰랐다. 그는 2007년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인터뷰를 통해 “평생 공부했던 것 중에 가장 쓸모있는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크라쿠프 외곽의 플라초프 노동수용소 사무실에 자리를 얻어 쉰들러의 공장에 취직할 유대인 명단을 작성하는 일을 했다. 그들을 천거함으로써 쉰들러는 나치 죽음의 수용소에 끌려갈 일을 막아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아우수비츠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 가려던 유대인들의 최종 목적지를 체코슬로바키아의 탄약 공장으로 바꿀 수 있었다. 라인하르트 역시 그 열차에 올랐다.  그의 말이다. “우리 모두 걱정했던 만큼 우리에게 도박 같았다. 쉰들러와 함께 간다고 해서 어떤 것이 보장되지도 않았다. 우리는 쉰들러가 구하는 데 성공할 것이란 확신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우리를 다른 수용소로 데려갔을 뿐이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는 쉰들러를 믿었기에 한 번의 기회를 쥐고 있었던 것이다.”  고인의 손녀 니나는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 친척들에게 전한 부고장을 통해 “너무도 사랑하고 너무도 각별했던 우리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평화로운 안식을”이라고 적었다고 미국 뉴욕데일리 뉴스가 11일 전했다. 하지만 정확한 사망 시간이나 사인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종전 뒤 고인이 미국 뉴욕에 거주하다 2007년 이스라엘로 아들과 함께 이주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외아들 사샤 바이트만이 있는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바이트만은 당시 텔아비브대 사회학 교수였다. 라인하르트는 말년을 텔아비브 북쪽 요양원에서 보냈다. 유족으로는 외아들과 여러 손주와 몇몇의 증손주를 뒀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WP)는 전했다.  쉰들러가 1974년 세상을 떠나자 이스라엘에 있는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그를 ‘열방의 의인들’로 받아들였다. 나치의 박멸로부터 유대인 목숨을 구하려 애쓴 비유대인에게 주어지는 영예였다. 그는 예루살렘 외곽 올리브 산에 안장됐다.  그의 이타적이며 용기있는 얘기는 1982년 토머스 키닐리의 베스트셀러 소설 ‘쉰들러의 방주’(Schindler’s Ark)에 소개됐고 1993년 오스카 주요 부문을 휩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스크린에 옮겨졌다. 생전에 라인하르트는 영화 촬영을 앞두고 스필버그 감독을 만난 일이 있었다면서도 정작 영화를 보러 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 “피묻은 장갑 끼고…”법의학팀, 부차의 비극 밝힌다

    “피묻은 장갑 끼고…”법의학팀, 부차의 비극 밝힌다

    때로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더 많은 말을 할 때가 있다.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우크라이나 부차(Bucha)에서는 거리에 널린 시신들이 ‘그날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키이우 법의학 수사팀이 6주 간의 러시아 침공 동안 러시아군이 민간인에게 가한 테러를 기록하기 위해 부차에 도착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너무 심하게 타서 머리와 몸통의 절반만 남거나 참수됐거나 두개골이 함몰된 시신들이었다. 수석 조사관이 무릎을 꿇고 조용히 사인을 나열하면 동료가 담담하게 그것을 기록했다. ‘가죽 재킷, 휴대폰, 신분증 없음. 부패된 구강 내부, 부러진 팔다리의 움직임 범위, 파편으로 인한 화상, 총알 상처’ 등을 기재하면 도시의 자원 봉사자가 각 시체를 수습하도록 도왔다. 법의학팀의 파란색 장갑은 곧 붉은 피로 젖어갔다. ‘부차=러시아 전쟁범죄 피해’ 동의어로 분쟁이 시작되기 전 수도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37㎞ 떨어진 인구 3만 7000여 명의 조용한 소도시는 이제 러시아 전쟁 범죄와 동의어가 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부차는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동쪽에 병력을 재집결하기 위해 철수한 첫 번째 장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점령군이 남기고 간 살인, 강간, 고문, 약탈 등 민간인에 대한 폭력의 잔상은 끔찍했다. 시민들은 증언했다. “우리는 러시아인들에게 시신을 매장하게 해달라고 간청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신이 차갑기 때문에 신경쓸 필요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곧 개들이 시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위생 문제때문에라고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결국 무덤을 파도록 허가받을 수 있었습니다.” 부차시의 장례식과 사망 등록을 감독하는 셰르히 카플리치니는 “영안실에는 전기도 없는데 순식간에 시신들로 가득 찼어요. 거리에는 여전히 널려있는 시신이 너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부차 시의회 헬프라인 자원봉사자 타티아나 리핀스카는 “저격수가 우물에서 물을 길러 오려던 민간인의 다리를 쐈고 적어도 한 명의 여성이 사망했어요”라고 말했다. “어떤 형제국이 탱크타고 이웃집 쏘나요?” 비판 러시아 군인과 대화를 나눴다는 47세의 한 남성은 “그들은 우리가 형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형제가 탱크를 타고 집에 와서 이웃을 쏘나요?”라고 울먹였다. 러시아 외무부는 사망한 민간인의 영상과 사진이 러시아를 공격하기 위해 미국에 ‘명령’을 받은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러위성사진을 비교하면 러시아군 점령 시기에 민간인으로 보이는 이들의 시신이 길거리에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AFP 통신 등이 지난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 조사팀의 위성사진 분석에 따르면 지난 3월 9∼11일 사이 부차의 야블론스카 거리에는 사람의 몸과 비슷한 크기의 검은 물체가 등장한다. 이 물체들의 위치는 지난 2일 우크라이나군이 부차를 탈환한 후 민간인 복장의 시신을 발견한 곳과 정확히 같으며 분석 결과 이 물체들이 3주 이상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NYT는 보도했다. 러 점령 뒤 민간인 사망이 벌어졌다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러 부인에도 위성사진으로 포착된 민간 사살 증거 미국 민간위성업체 맥사 테크놀로지스가 제공한 위성사진에도 부차에서 발견된 민간인 시신들이 러시아의 부차 점령 기간에 생긴 것임을 증명한다고 AFP는 전했다. 스티븐 우드 맥사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부차에서 수집된 맥사의 고해상도 위성사진은 거리에 누워있는 시신들이 수 주 동안 방치돼 있던 것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 [STOP PUTIN] 우크라 당하는데 유엔 안보리 무력하다고? 비관과 낙관 사이

    [STOP PUTIN] 우크라 당하는데 유엔 안보리 무력하다고? 비관과 낙관 사이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호소하는 연설을 들었을 것이다. 그는 “유엔을 폐쇄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고 물은 뒤 “국제법이 먹히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라고 답하려면 즉각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 BBC의 퍼갈 킨 기자는 과거를 들추거나 이번 전쟁을 멈추지 못해 벌써 1100만명 이상이 집을 버리고 피란 길에 나선 것을 봤을 때 국제사회가 대동단결할 수 있을지 9일(현지시간) 긴 글로 돌아봤다. 알파벳으로 200자 원고 100장을 훌쩍 넘겼다.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인연 등에 대한 감상 등을 건너 뛰고 최대한 줄였다. 결론부터 얘기할까. 우크라이나인들의 수많은 희생은 역사에 가장 커다란 약속 파기로 비롯된 일이다. 2차 세계대전의 충격파 속에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얘기에 뿌리를 둔 얘기다. 르비우는 킨 기자 본인에게 인류의 최악을 일깨울 뿐만 아니라 침략의 결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일깨운다고 했다. 르비우 대학 법대 졸업생 라파엘 렘킨이 대량학살 제노사이드(genocide)란 단어를 창안했기 때문이다. 나치 홀로코스트에 질색해 1944년 이 말을 썼는데 4년 뒤 유엔이 국제법의 범죄로 규정했다. 렘킨의 동창 허시 라우터파흐트는 저유명한 1945~46년 뉘른베르크 재판 때 나치 지도자들을 기소하며 처음 이 단어를 인류애에 반한 범죄에 써먹었다. 둘 다 유대인이었으며 20세기 초반 몇십년 동안 르비우에서 공부했다. 당시 그 도시는 렘베르크로 불렸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속해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제국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았다. 이 도시의 유대인이 모두 사라진 것은 우크라이나가 나치에 완벽하게 협력했기 때문이었다. 둘의 생각은 1945년 유엔 헌장의 문구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데 지금 르비우는 또다시 커다란 역사적 트라우마에 중심이 되고 있다. 킨 기자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하기 위해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 부차에서 처형되듯 살해된 민간인 시신들을 보면서 르비우에서 온 변호사들의 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고 털어놓았다.1994년 르완다에서 있었던 일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제노사이드 2주째에 유엔 안보리는 평화유지군 병력을 2000명에서 270명으로 줄여 버렸다. 벨기에 요원 10명이 르완다 군에 살해됐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달리 르완다는 지정학적 중요성도 없었다. 미국과 다른 열강들은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하기에는 너무 늦었으며 개입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만 낳게 된다며 거절했다. 그렇게 투치족 난민들은 남부 부타레에서 극렬 무장집단과 병사들에게 도륙 당했다.그로부터 일년 뒤인 1995년 7월 라트코 믈라디치 장군 휘하 보스니아 세르비아 병사들이 스레브레니차 마을에 진주한 뒤 8000명의 남성과 소년들을 사살했는데 네덜란드 유엔 평화유지군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두 제노사이드는 안보리가 유엔 헌장의 자구 해석에 매달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1945년의 약속은 정치적 의지 부족과 분열 때문에 지켜지지 않았다. 1990년대 겪은 끔찍한 일들은 국제법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노사이드를 막지 못하면 적어도 처벌할 수 있어야 했다. 해서 두 나라 문제로 법정이 세워졌다. 아울러 캄보디아와 시에라리온에서의 대규모 살인에 책임이 있는 이들을 다루는 재판도 열렸다. 시에라리온의 민간인 살해를 막기 위해 유엔이 군사작전을 펼쳤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알바니아 민족을 코소보에서 축출하는 일을 끝내기 위해 개입했다. 세계는 이제 제노사이드와 인류애에 반하는 범죄를 항시 다루는 법정을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1998년 세워져 심각한 인권 유린 사례들을 단죄했다. 유엔 산하는 아니었지만 회원국들의 손으로 긴밀히 협력해 창설됐다. 2009년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다르푸르 민간인 학살을 지시해 ICC에 제노사이드 혐의로 기소된 첫 번째 국가 원수란 오명을 얻었다.2차 대전이 끝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소로 응분의 처벌을 받게 하는 것만 아니라 미래의 전쟁 지도자들이 민간인의 권리를 짓밟기 전에 다시 생각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첫 날부터 바로 문제가 생겼는데 현재 우크라이나 전범에 대한 최근 논쟁에도 그림자를 뻗치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로마조약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세 나라는 법정을 세우지 않아 이들 나라는 ICC 사법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안보리가 표결해 승인하면 사법권이 인정되지만 비토권을 갖고 있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말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고위 참모들을 침략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기소하면 ICC가 힘을 못 쓰게 된다는 것이다. ICC가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주체들을 전범으로 수사하려 했을 때 일어난 일을 잘 기억할 가치가 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미군을 단죄하려는 데 반대하는 신호로 ICC 수석검사를 제재하기로 하기도 했다. 그리고 신장 자치주에서 위구르족을 제노사이드한 혐의로 중국 관리들을 수사하려던 시도 역시 중국이 ICC 회원국이 아니란 이유로 무산됐다. 전범 변호사인 필립 샌즈 교수는 초강대국의 이런 태도는 “한 쪽으로 치우친 정의”를 빚어내는데 힘이 부족한 나라가 기소되더란 것이다. “약자에게 이런 규칙, 강자에게 이런 규칙이 주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법적 질서도, 심지어 진짜 법적 질서도 아니다.” 샌즈 교수의 할아버지도 르비우 출신이며, 증조모는 나치에 살해됐다. 그 역시 푸틴과 그의 장군들을 기소하는 특별국제법정을 세울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을 기소해야 한다고 찬동하는 이들은 미국과 영국의 이중 기준을 탓하고 있다. 샌즈 교수는 2003년 미국 주도로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세계 여론이 양분됐음을 지적했다.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나중에야 침공이 불법임을 인정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 그리고 당신이 거둔 것에는 당신의 이중기준도 포함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미국과 영국을 반박하는 수사 장치로 이라크 예를 들었다. 그는 이라크 침공을 가리켜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특별한 장소”를 쳐들어갔다고 했다. 현실에서 국제 외교에 힘입어 전후 평화를 누린 황금기는 없었다. 열강들은 묵시록에서와 같은 핵전쟁을 하지는 않았지만 늘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 한반도와 알제리, 콩고,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앙골라,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야 등등이다. 일부는 부분적으로나마 열강들의 대리전이었다. 갖가지 분쟁 지역에서 민간인을 보호하고 완충 역할을 하는 중에 4000명 이상의 유엔 평화유지군 병력이 목숨을 잃었다. 샌즈 교수는 “부분적으로 두렵지만 부분적으로 낙관적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1945년 나치가 패함으로써 만들어진 법적 질서를 파괴할 수 있거나 어쩌면 발전시키고 강화할 수 있다. 난 후자의 견해에 더 기울어진다. 기나긴 게임이다. 이 보 진전하면 일 보 물러난 뒤 다시 나아간다. 그저 원칙을 믿고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유엔이 최근 달라졌다는 징후는 있다. 193개 회원국이 모두 모인 총회가 침공을 규탄했고, 러시아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탈퇴시켰다. 중국이 반대했고 인도가 기권했다. 유엔 회원들의 3분의 2는 도덕적 신호에 반응했다. 제노사이드와 전범 처리에 경험 있는 유엔 관리 출신은 열강들의 정치학 렌즈로만 현재 세계질서를 바라보면 실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맨체스터 대학의 무케시 카필라 교수인데 수단의 유엔대표부에서 일하며 다르푸르 살육을 제노사이드로 인식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주도했다.“옳은 것과 그른 것, 선과 악의 싸움에는 수많은 행동이 있기 마련이다. 나쁜 녀석 편에만 모두가 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미얀마를 기소한 국제사법재판소(ICJ) 예를 들었다. 1945년 유엔 법정이 세워졌을 때만 해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기소해야 가능했다. 해서 미얀마는 서부 아프리카 국가 감비아가 로힝야족 무슬림을 박해했다는 이유로 기소하는 바람에 피고가 됐다. 카필라 교수는 최근 들어선 “보편적 사법권” 개념이 발전돼 자국 영토에서 피고를 체포하면 전범 피의자를 재판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독일 검찰이 시리아 장교를 살인 및 고문, 성폭행 혐의로 기소할 수 있었다. 안보리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와 초강대국을 대변한다는비판을 받아왔다. 아프리카, 인도를 비롯한 남반구, 남미는 지금도 외면받고 있다. 안보리를 확대하는 것도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카필라 교수는 비토권으로 인한 교착 상태를 뚫는 방편으로 총회의 권능을 강화하는 것을 들었다. “안보리가 교착되면, 왜 한 멤버가 더 큰 심판 노릇을 떠맡는 메카니즘을 만들면 되지 않나. 총회 말이다. 훨씬 민주적이며 안보리가 합의에 이르도록 압력을 높일 수도 있다.” 중국과 프랑스, 러시아, 영국, 미국 등 영원한 5강(Permanent Five)이 자신의 영향력을 지우는 데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카필라는 “칠면조들은 크리스마스에 한 표를 던지지 않는다”고 빗댔다. 하지만 그는 시민사회운동이 최근 기후변화 등에서 진전을 이루는 데 힘있는 압력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도 현실이 되곤 한다.” 유엔 헌장이 건넨 약속의 중심에는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쳐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무력 분쟁이 일어나면 군대를 보내 평화를 지키고 세계는 인권 유린을 처벌할 것이란 믿음이었다. 정의를 찾게 하고 미래의 범죄를 예방한다는 뜻이었다.우크라이나 위기가 고도로 갈등을 증폭시켜 진솔하게 국제관계를 돌아보게 하고 변화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 총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여러 국가의 일방적인 행위가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는 점을 슬프게 돌아봤다. 동독에서 자라나 초강대국들의 적대가 드리운 그늘을 잘 아는 그는 망각의 위험을 경고했는데 특히 2차 대전을 살아 경험한 이들이 세상을 등지는 일의 의미를 걱정했다. “우리가 지금 살펴야 하는 것은 역사의 중요한 교훈이 옅어져가는 역사의 한 국면에 들어서지 않게 하는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원화된 세계질서가 2차 대전의 교훈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상기시켜야 한다.”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기억하라는 것이 메시지이며 과거로 끌려가지 않게 하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킨 기자는 결론 내렸다.
  • 위메이드, 고려대 이어 동서대 ‘위믹스’ 기부

    위메이드, 고려대 이어 동서대 ‘위믹스’ 기부

    게임사 위메이드가 자사 가상자산(암호화폐) ‘위믹스’ 10억원 어치를 동국대에 기부했다고 8일 밝혔다. 앞서 고려대에 이어 가상자산을 통한 대학 기부를 확대하는 모양새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이날 경기 성남시 판교 본사에서 동서대 장제국 총장과 함께 기부 협약식을 체결했다. 위메이드는 10억원 상당의 이믹스를 동서대에 기부했고, 동서대는 이를 통해 블록체인 기술을 포함한 연구·학술 활동의 발전 기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동서대는 SW(소프트웨어) 중심 대학사업단의 교육프로그램과 자체 개발 중인 메타버스 플랫폼에 위믹스를 활용해 메타버스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에게 혜택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더불어 발전 기금을 통해 인재를 생성하고, 채용 등 양측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발전 방안까지 고민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가상자산 기부는 전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고 있다. 앞서 위메이드는 지난 1월 고려대에도 10억원 상당의 위믹스를 기부한 바 있다. 장제국 총장은 “동서대는 국내 최고의 문화콘텐츠 특성화 대학으로 최근에는 IT(정보기술) 및 인공지능, 암호화폐 기술과 문화콘텐츠를 융합하여 초실감 문화콘텐츠 특성화 대학으로 거듭나고 있다”면서 “위메이드가 게임과 블록체인을 연계하는 글로벌 오픈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은 동서대가 추구하는 IT와 융합된 문화콘텐츠 특성화와 일치된 방향을 가진다”고 밝혔다. 장현국 대표도 “2년 전 지스타에서 마스크를 기부하면서 시작된 인연이 위믹스 기부까지 이어지게 됐다”면서 “모든 분야를 혁신할 블록체인 기술 인재를 양성하는데 위메이드는 지속적으로 역할을 하겠다”고 전했다.
  • 협치 리더십 번영 이끈다

    협치 리더십 번영 이끈다

    안팎으로 지도자의 역할이 특별히 부각되는 시기다. 국내에서는 정권교체의 과도기 속에서 새로운 권력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해외에선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치달은 가운데 각국 지도자들이 갈등과 협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거듭하고 있다. 3년째 세계를 휩쓸고 있는 팬데믹은 지도자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 나라의 운명을 더욱 직관적으로 확인하게 했다. 어떤 정치체제나 시스템을 갖췄더라도 지도자 개인의 행보와 특성은 여전히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로마사 전문가인 김덕수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지도자 또는 지도자가 될 인물의 성과와 비전만큼 ‘본색’이 중요한 척도라며 기원전 2세기 이후 로마사의 가장 굴곡진 500년을 이끈 지도자 9명의 본색을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이 본색이 어떻게 나라를 뒤바꿨는지 풀어낸다. 역사의 흐름을 지도자 개인에 초점을 맞춰 돌아보는 것도 색다르지만 무엇보다 무려 20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역사를 지금에 빗대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읽힌다는 점이 흥미롭다.책은 공화정 말 혼란기부터 시작된다. 기원전 509년 시작된 공화정은 시민의 단합을 강조하며 로마를 지중해 패권국으로 키워 냈지만 기원전 2세기부터 시작된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고 결국 제정으로 바뀌었다. 그사이 내부에선 빈부 격차 심화로 귀족파와 평민파의 대립이 커졌고, 그 시기를 오간 지도자의 경험과 판단은 갈등을 키우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에도 지도자에겐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개혁을 추진하려 하면 귀족이나 평민 어느 한쪽의 극심한 반발과 저항에 부딪혀 무산되거나 복수를 당해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누구보다 위기 상황을 먼저 포착할 만큼 선견지명을 지녔고, 이를 해결할 구체적 개혁안까지 제시했지만 기득권의 저항을 뚫지 못한 데다 지나친 권력욕으로 개혁의 명분마저 잃어버린 그라쿠스 형제(티베리우스·가이우스)가 대표적이다. 그나마 개혁안으로 얻은 시민들의 지지까지 놓치고 끔찍한 최후를 맞은 두 형제를 두고 김 교수는 ‘나만 옳다는 고집형’의 본색을 지녔다고 꼬집는다. 로마의 가장 유명한 지도자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선을 넘는 자기 심취형’으로 분류됐다. 카이사르는 여러 지역으로 쪼개져 있던 갈리아 전역을 속주로 편입하고 다양한 개혁을 밀어붙여 제국의 토대를 놓은, 사실상 제정의 창건자이면서도 공화정의 상징인 원로원의 권위를 무시하고 독재를 꿈꾼 폭군이라는 이중 평가를 받는다. 세금 개혁, 달력 개정 등 민생 문제도 해결하고 평민들의 큰 지지를 얻자 스스로 종신 독재관에 오르며 본색을 드러내고 강력한 권력욕과 명예욕을 휘두른 그는 암살을 당한다. 김 교수는 “인권변호사 카이사르와 종신 독재관 카이사르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라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본질을 되새긴다. 카이사르와 정반대 본색을 보여 주며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조차 일방적인 통치보다 동의를 구한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포기를 모르는 야심형’의 좋은 예로 거론된다. “천천히 서둘러라”, “대담한 장군보다 신중한 장군이 더 낫다”는 그의 말처럼 집요하고 정확하게 목표를 성취하고야 마는 야심과 탁월한 품성은 77세까지 평화로운 삶을 보낼 수 있던 그만의 본색이기도 했다. 로마 43대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함께 다스리는 협치형’도 눈길을 끈다. 황제 두 명과 부황제 두 명의 4제 통치로 로마의 번성을 이끌었고, 로마사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제위에서 물러나며 ‘박수 칠 때 떠난’ 황제가 된 그의 본색은 요즘 같은 갈등과 대립의 정치에서도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 베델로 왔다가 ‘배설’로 묻힌 영국인… 그는 왜 대한독립을 외쳤나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베델로 왔다가 ‘배설’로 묻힌 영국인… 그는 왜 대한독립을 외쳤나 [김별아의 도시 기행문-서울을 걷는 시간]

    ●매혹과 공포 공존한 이방인 향한 시선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을 보면 신기해하고 길에서 마주치면 주춤하거나 흘깃거리던 때가 언제인가 싶다. 세상이 바뀐 건 확실하다. 텔레비전만 틀면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외국인들이 등장해 퀴즈를 풀고 노래도 하고 전통시장과 오지 마을까지 간다. 여전히 외부자의 입을 통해 듣는 한국 사회의 이모저모에 부끄러워하거나 뿌듯해하는 시선이 교차하지만, 회회아비가 쌍화점에서 만두를 팔던 고려 이래 도래자(渡來者)가 보통 사람들과 가장 밀착해서 살아가는 시대는 지금이 아닌가 싶다. 낯선 존재, 이방인에 대한 감정에는 매혹과 공포가 공존한다. 외부와의 접촉이 제한됐던 전근대에 이방인은 수준 높은 문명의 전파자로서 경외의 대상이었다. 신라의 왕이 된 박·석·김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신화는 새로운 세력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매혹의 빛을 더하는 신비의 장치였다. 반면 19세기 중반 조선은 “양이가 침범하여 싸우지 않으면 화친을 하는 것이고, 화친을 하면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라는 기치를 드높인 난공불락 국가였다. 서양 오랑캐, 양이(洋夷)로도 모자라 서양 귀신, 양귀(洋鬼)라는 비속어가 공공연해질 정도로 이방인에 대한 공포가 컸다. 대한제국, 이름은 드높았으나 위상은 그에 반비례했던 때에 세계를 향한 문은 열렸다기보다 ‘벌려’졌다. 불가항력적인 개방의 회오리바람을 타고 돈과 명예와 이국적인 문화 향유와 귀족 같은 생활과 열등한 인종을 문명화시키는 사명감 등등을 좇는 이방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외교관과 선교사와 대한제국의 고문(顧問)부터 박물학자와 여행가와 도굴꾼까지, 제각기 품은 욕망에 따라 할딱할딱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랐다. 경멸과 연민, 그 또한 매혹과 공포만큼이나 간극이 컸다.●머나먼 브리스틀에서 온 한 남자 세계 지도에서 잉글랜드 남서부의 작은 도시 브리스틀을 찾아본다. 과거 대영제국의 무역 거점이자 노예무역의 전초기지였던 그곳은 현재 인구 46만명으로 제주시나 경기도 파주 정도의 규모다. 서울에서 가려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비행기로 13시간 이상 걸린다. 낯설고 머나먼 그곳에서 태어난 한 사람이 1904년 대한제국에 닿았다.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Ernest Thomas Bethell)로 태어나 배설(裵說)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땅에 묻혔다. 국한문·한글·영문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최초의 신문인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한 베델은, 한국의 독립과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운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받았다. 보도문이나 기사문을 쓰는 기본 원칙인 육하원칙은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이다. 37년이라는 길지 않았던 베델의 생애에 대해서는 바로 이 지면,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인 서울신문에 수차례 특집·기획기사가 나간 바 있다. 기사를 통해 육하원칙 중 다섯은 상세히 밝혀져 있을진대, 4월 7일 신문의 날을 기억하며 베델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동안 내가 품었던 의문은 ‘왜’라는 마지막 수수께끼였다. 왜, 무엇 때문에, 그는 한국인들을 도왔을까?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라고 독려하며 응원했을까? 돈벌이로 삼는 대신, 구경거리로 여기는 대신, 경멸과 혐오 대신, 값싼 동정을 베풀고 등 뒤에서 비웃음을 흘리는 대신.꽃샘잎샘이 알알한 날, 특별한 이방인을 만나는 여행길에 올랐다. 집을 나서기 전 지도를 펴 놓고 방문할 순서를 정하는데 아무래도 동선이 꼬인다. 삶의 궤적을 좇자면 집터를 확인하고 일터에 들렀다가 사망지와 박물관을 방문하는 순서가 좋을 듯한데, 걸어서 움직이기에는 지하철역 근방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게 맞춤하다. 하긴 언제라고 마음먹은 대로 삶의 행보가 딱딱 맞아떨어지던가? 아버지의 사업을 돕기 위해 일본에 갔던, 축구를 좋아하는 천생 영국인이 생뚱맞게 종군기자가 돼 조선에 왔다가 신문을 창립하고 항일운동을 벌인 것처럼 말이다. 급발진하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애당초 안전 운행의 용도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무릇 인생길이 꽃길보다는 울퉁불퉁 돌길이거나 질퍽질퍽 진창길에 가깝기 때문이다.●베델 만나러 가는길… 홍난파 가옥도 서울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로 나와 길을 건너 사직터널 위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1933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홍난파가 소프라노 이대형과 재혼해 새살림을 차린 붉은 벽돌집이 나타난다. 이 집에 사는 동안 홍난파는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받은 끝에 전향했고, 이후 대동민우회에 가입해 친일 행적을 이어 가다 1941년 고문 후유증으로 죽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을 두부모 베듯 자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홍난파는 나라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봉선화’와 ‘고향의 봄’의 작곡가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친일파 ‘모리카와 준’일 테다. 그런가 하면 시시비비에 염증이 난 누군가는 열여덟 살의 홍난파가 처음 쓴 곡이자 한국 최초의 야구 응원가인 ‘야구가’로 그를 기억할지 모른다. ‘배팅 들고 썩 나서니 원 스트라이크. 다시 한번 갈겨 보아라, 홈런으로. 세컨드야 주의해라 공 굴러간다. 어화 홈인이로다!’ 홍난파 가옥을 끼고 돌면 오래된 빌라들 사이로 한양도성의 복원과 함께 주변을 정비해 만든 월암근린공원 입구가 나타난다. ‘어니스트 베델 집터’ 표석은 인터넷 지도의 표시와 다르게 공원으로 들어오는 오르막길 왼편, 성벽 아래쯤에 자리하고 있다. ‘어니스트 베델 집터: 1904년 조선에 온 영국인 베델(한국명 배설, 1872~1909)은 이해 7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항일 언론 활동을 힘껏 지원하였다. 이곳은 그가 조선에 와서 정착해 사망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산 한옥 터이다.’●국적·인종 떠나 ‘양심적 삶’ 오롯이 조선인들을 선동했다는 치안 방해 혐의로 열린 재판의 결과가 6개월 근신에 그치자, 영일동맹으로 일본과 한편이었던 영국은 기어이 국채보상운동 의연금을 유용했다는 공금 횡령 혐의를 덧붙여 베델에게 3주간의 실형을 선고한다. 조선에는 영국인을 구금할 시설이 없어 선편으로 중국 상하이까지 실려가 수감 생활을 한 베델은 급격히 건강이 나빠진 채 돌아왔다. 베델의 생애를 연구해 온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에 따르면 베델의 집에는 다른 외국인들이 살던 서양식 가옥이 갖추고 있던 전기와 수도 시설이 없었다. 서울역 연세재단빌딩에 있던 세브란스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기 위해, 베델은 병원 가까운 호텔에 방을 얻고 ‘홍파동 2-16번지’ 집을 떠난다. 그리고 살아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베델이 마지막 시간을 보낸 정동 애스터하우스 호텔 터에는 농협중앙회 본점이 자리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은 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한가로이 오가는 거리에서 1909년 5월 1일 조선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죽어 간 서른일곱 살 젊은 영국인의 흔적은 찾을 길 없다. 화단에 지지대를 짚고 위태롭게 서 있는, 수령이 오백 살은 족히 돼 보이는 아름드리 회화나무는 혹시 기억하려나. 영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그저 양심적인 한 인간이었던 그가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동지인 양기탁의 손을 잡고 남긴 짧은 유언을. “내가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원히 살아남게 해 한국 동포를 구해 주오!”(㉻에 계속) 소설가
  • 독립운동 순국 ‘창원 8의사 묘’ 국립묘지수준 관리...국가관리묘역 지정 기념식

    독립운동 순국 ‘창원 8의사 묘’ 국립묘지수준 관리...국가관리묘역 지정 기념식

    1919년 경남 대표 독립 만세운동인 4·3 삼진(진동·진전·진북면)의거 당시 순국한 8인 의사 묘역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기념식이 7일 창원 진전 8의사 묘역에서 열렸다.창원시는 4·3 삼진의거 의미를 되새기고 순국한 8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날 진전 국가관리묘역에서 경남동부보훈지청이 주관해 기념식을 했다고 밝혔다. 창원 진전 국가관리묘역은 4·3 삼진의거에서 순국한 김수동, 변갑섭,변상복, 김영환,고묘주,이기봉,김호현,홍두익 등 8인 의사의 합동 묘역이다. 유족들이 각기 무덤을 조성해 모시던 8의사를 1981년 4월 22일 진전면에 한 곳으로 모아 8의사 합동묘역을 조성했다. 이들은 1919년 4월 3일 마산합포구 진전면·진북면·진동면 3개 지역 주민이 연합해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한 삼진의거에 참여했다가 현장에서 순국했다. 1981년 4월 조성된 8의사 묘역은 국가보훈처의 국가관리묘역 지정 제도에 따라 지난 1월 26일 창원 진전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됐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 등이 안장된 국립묘지 외의 장소를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해서 관리하기 위해 2020년 9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이에 창원시는 지난해 12월 17일 8의사 묘역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실태조사서 및 지정요청서를 경남동부보훈지청에 제출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됐다. 오는 7월 중에 창원 진전 국가관리묘역 지정이 고시될 예정이다. 진전 8의사 묘역의 국가관리묘역 지정은 전국에서 서울 수유 국가관리묘역과 경기 안성 사곡 국가관리묘역, 거제 일운 국가관리묘역 등 7곳에 이어 여덟 번째다. 경남동부보훈지청은 묘역관리 설계 용역을 거쳐 환경정비와 보완공사를 하는 등 8의사 묘역을 국립묘지에 준하는 수준으로 관리한다.이날 기념식에는 황기철 국가보훈처장과 지역 국회의원, 보훈단체장, 8의사 유족 등이 참석했다. 기념식에서 경남동부보훈지청과 창원시는 국가관리묘역 관리와 활성화를 위해 협력하고 함께 노력하기로 협약했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1981년 8의사 묘역이 조성된 뒤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되기까지 묘역 관리에 힘쓴 창원시에 감사패를 수여했다. 황 보훈처장은 기념사에서 “국가관리묘역에 걸맞은 품격있는 추모공간이자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로 잘 관리해 유가족과 창원시민의 긍지와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허서무 창원시장은 “지자체와 지역 주민이 함께 뜻을 모아 노력한 덕분에 8의사 묘역이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면서 “순국선열의 헌신을 기억하고 희생에 보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보훈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열린세상]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백년대전이다/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교육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백년대전이다/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캘리포니아대학 체제는 전 세계인이 가장 부러워하는 대학 체제다. 3차 산업혁명의 전진 기지로서 캘리포니아 전역에 세계적인 대학 10개를 만들어 탁월성, 민주성, 공공성을 동시에 확보한 완벽에 가까운 대학 체제이기 때문이다. 1868년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이하 버클리)가 처음 세워졌고, UCLA가 1919년 세워졌다. 연구 중심 대학을 캘리포니아 전역에 만든 캘리포니아대학 마스터플랜은 1960년 완성됐다. 그야말로 백년대계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대학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백년대계가 아니라 ‘버클리 독재’에 맞선 백년대전(百年大戰)이었다. 수백 명의 전사들과 복잡다단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역사지만 이 긴 전쟁의 양대 진영은 버클리의 독점을 지키려는 버클리 세력과 이 독점을 깨려는 정치인 세력으로 나눌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서울대’이자 유일한 ‘캘리포니아대학’이었던 버클리는 자신의 독점을 지키기 위해 두 번째 캘리포니아대학인 UCLA의 설립을 줄기차게 반대했다. 1849년 골드러시로 미국 전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인구 측면에서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이 정치의 중심이었다. 민주주의는 ‘쪽수’의 정치다. 20세기 초 인구가 늘어난 LA의 정치인들은 2년제 LA 사범학교를 4년제 대학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버클리 총장과 동문들의 줄기찬 반대로 번번이 실패했다. LA 중심의 남부 캘리포니아 정치인들은 이런 반대를 뚫고 끝끝내 LA 사범학교를 1919년 대학으로 승격시켜 UCLA를 만들었다. 버클리 동문들은 UCLA가 ‘캘리포니아대학’이라는 이름을 ‘훔쳤다고’ 비난했고, 이 이름을 UCLA가 사용하는 것까지 싫어했다. 이뿐만 아니라 버클리는 캘리포니아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지역에 대학을 세우려는 노력과 자신들과 같은 ‘유니버시티’의 위치가 되는 것을 줄기차게 반대했다. 1930년대 캘리포니아에서는 ‘지역 대학 세우기 운동’이 일어났는데 버클리는 자신들의 독점이 흔들린다며 반대에 앞장섰다. 캘리포니아 전역의 정치인들은 버클리의 독점에 맞서 싸웠고, 기어이 자신들의 지역에 대학들을 세웠다. 샌타바버라 정치인들은 샌타바버라 주립 칼리지를 캘리포니아대학 샌타바버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지만 버클리 총장과 동문들의 반대에 막혔다. 하지만 이 지역의 정치인들은 ‘대학의 민주화’를 내세우며 기어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루어 냈다. 이처럼 세계 최고의 캘리포니아대학 체제가 만들어진 것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버클리의 독점을 깨고 대학을 민주화시킨 정치인들의 백년대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제강점기 대학은 전국에 1924년 세워진 경성제국대학 하나밖에 없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의 대학 설립 노력을 철저히 짓밟았다. 이는 일제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자 한국 대학 서열 체제의 역사적 기원이다. 이에 맞서 조선인들은 대학에 준하는 전문학교 만들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일으켰다. 해방 이후 서울의 사립대 총장들이 미 군정과 한국 정부의 대학 정책을 주도했고, 이에 서울의 명문 사립대들의 입지가 탄탄해졌다. 대학의 상향 평준화를 통해 대학 서열 체제를 깨고 지방대학을 살리자는 운동이 18년 전부터 일어났지만 이를 적극 지지하는 정치인 집단이 없었기에 번번이 실패했다. 올해 여야의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은 캘리포니아와 같이 전국에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을 만드는 것이 지방 소멸을 막고 4차 산업혁명의 전진 기지 건설을 위한 최상의 방안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번에야말로 한국의 정치인들은 일제강점기로부터 유래하는 대학 서열 체제를 깨고 백년대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 [STOP PUTIN] “민간인 학살하는 푸틴 돈줄 끊어야” 독일이 걸림돌

    [STOP PUTIN] “민간인 학살하는 푸틴 돈줄 끊어야” 독일이 걸림돌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재 러시아 영사관 건물 외벽에 4일(현지시간) 레이저로 붉은 글씨가 투사됐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살인자에게 돈 주지 마. 석유와 가스 거래 중단하라” 우크라이나 부차와 모티진 등에서의 민간인 학살 의혹으로 러시아에 대한 긴급 대응 필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독일 정부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수입 금지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이날 전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자국과 유럽연합(EU)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를 거부, 결과적으로 푸틴과 러시아를 돕고 있다는 비판이다. 러시아 영사관에 구호를 투사한 시민활동가들의 인식과 한 맥락이다. 실제로 유럽 가스 수요의 40%를 러시아가 담당하고 있는데 독일은 55%로 유럽 국가 가운데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가장 높아 제재에 머뭇거린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55~77%는 난방에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 조치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인들은 공장 가동 시간을 단축하고, 온도조절기를 끄고 더 천천히 차를 몰거나,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의 가동 연한을 일시적으로 늘리고,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단계적으로 가동이 중단된 원자력발전소를 다시 돌리는 등의 보완책에 찬동했다. 정부는 즉각적인 에너지 금수 조치는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를 끊기 위한 노력은 가속하겠다고 밝혔다. 경제기후보호부의 올리버 크리셔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부차의 잔혹한 사진을 거론한 뒤 “조기에 추가적인 방법을 통해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액화석유가스(LPG) 등의 수입 다각화, 비(非)구매, 에너지 절약 등 준금수 조치도 거론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도 이번 학살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아무런 조치 없이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들과 함께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연정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는 상태다. 크리스티아네 람브레히트 국방 장관은 TV 인터뷰에서 “반드시 상응한 조치를 해야 한다”면서 EU가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완전 금수 방안을 논의할 때라고 밝혔다. 반면 리스티안 린드너 재무 장관은 “러시아와 경제적 관계를 가능한 한 빨리 끊어야 하는 것은 맞는다”면서도 “가스는 단기에 대체될 수 없으며 러시아보다 우리 피해가 더 클 것”이라며 사실상 반대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녹색당 출신의 로베르트 하백 경제 장관도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하룻밤 사이에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트해 연안 국가 및 폴란드 등 독일의 이웃이면서 러시아의 침공과 야욕에 훨씬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나라들은 독일에 압력을 높이고 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이날 독일을 대러시아 제재 강화의 장애물이라고 직격했다. 그는 바르샤바에서 기자들과 만나 “EU 회의록을 읽어 보면 누구나 독일이 결정적 제재를 확대하는 데 최대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담에서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의 전면 금수를 위한 일정표를 요구할 방침이라고 이날 밝혔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금수 조치에 반대하는 나라는 먼저 부차에 와서 보라고 요구했다. 그는 러시아산 가스·석유에 대한 금수 조치는 “강간, 고문, 학살 희생자와 그들의 친척,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쿨레바 장관은 러시아 가스 및 석유에 대한 추가 제재에는 찬성하지만 EU의 가스 수입 금지는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거명하면서 “푸틴과의 협상에서 무엇을 달성했느냐. 히틀러, 스탈린, 폴 포트와도 협상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부차와 모티진에서의 학살 만행에도 러시아와의 평화협상은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화(戰禍)를 멈춰 더 이상의 인명 손실을 막겠다는 우크라이나의 절박함을 누구도 탓하지 못할 것이다. 당장 난방이나 에너지를 쓸 수 없는 불편을 겪지 않겠다며 러시아 제재에 머뭇거리는 독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본다.
  • 세계화 후퇴로 정치가 경제 지배… 경제정책이 곧 안보정책이다

    세계화 후퇴로 정치가 경제 지배… 경제정책이 곧 안보정책이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내각 인선이 초미의 관심사다. 공무원들은 정부 조직 개편안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향후 5년 동안, 아니 공직생활 내내 중대한 영향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민감한 사안의 하나는 통상 기능의 주무 부처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주창하면서 1994년 그 기능을 산업부(통상산업부)에 두었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외교부(외교통상부)로 넘겼고, 2013년 박근혜 정부는 다시 산업부(산업통상자원부)로 옮겼다. 주소지가 이전될 때마다 해당 부처 이름도 달라졌다. 그런 점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은 성(姓) 전환 수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성(性) 전환 수술이기도 하다. 통상 기능의 정체성이 경제에 있느냐, 외교에 있느냐를 둘러싼 행정 철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경제냐 외교냐… 통상 기능 논란 그 논쟁의 뿌리는 18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1776년)을 통해 자유무역을 옹호했다. 그런데 그의 논리가 좀 궁색했다. “개는 뼈다귀를 교환하지 않지만, 인간은 무엇이건 교환하는 습성이 있다”는 비유를 통해 분업과 자유무역의 장점을 설명했다. 다윈의 진화론에 비하자면 설명이 좀 어설프다. 그래서 오해를 불렀다. 미국의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국부론’을 읽고서도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신생국 미국이 영국 같은 부국이 되려면 유치원 수준에 불과한 미국의 제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입 공산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유치산업 보호론’이다. 그러자 외교정책을 담당하는 토머스 제퍼슨 국무장관이 제동을 걸었다. 관세를 높이면 품질 좋은 유럽 공산품의 값이 올라 조악한 미국산 물건만 쓰게 되므로 국민들 불만이 커진다는 이유였다. 제퍼슨의 걱정은 옳았다. 미국 북부 지역의 조잡한 공장들을 보호하느라고 겪는 남부 주민들의 관세 부담은 지나쳤다. 현직 부통령 존 캘훈마저 ‘증오의 관세’를 집어치워야 한다면서 연방정부를 뛰쳐나와 고향 남부의 분리독립운동에 가담했다. 13개 주로 출발했던 미국은 40년 만에 쪼개질 위기에 놓였다. 이쯤 되면 관세와 무역은 경제도 외교도 아닌 국내 정치 문제다. 그런 점에서 노예해방 문제와 성격이 똑같다. 오늘날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제3의 독립기구로 설치된 까닭은 바로 그런 연유다. 따지고 보면 관세와 무역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선 기간 중 논란이 됐던 기축통화도 성격이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금이나 은을 돈으로 썼던 상품화폐 시대에는 기축통화라는 말조차 없었다. 각국 화폐에 함유된 금과 은의 비중에 따라 환율만 있었을 뿐이다. 기축통화라는 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현했다. 금본위제도가 사라진 뒤 전 세계를 상대로 금과의 무제한 교환을 유일하게 약속(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했던 미 달러화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30년도 지나지 않은 1971년 8월 15일 미국이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뜨렸다. 흔히 ‘닉슨 쇼크’라고 하는 사건이다.●USTR이 독립기구로 설치된 까닭 그러면서 등장한 것이 특별인출권(SDR)이라는 것이다. 미 달러화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서 각국 정부가 합의해 만든 세계 최초 가상화폐다(암호화폐는 아니다). 처음에는 그 가치를 금에 맞춰서 ‘디지털 금’(1SDR=금 0.88671g)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주요국 화폐 가치를 평균해 가치를 매겼다. 거기에는 미 달러화, 영국 파운드화, 독일 마르크화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랜드화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얄화까지 포함됐다. 계산 편의를 위해 오늘날에는 SDR 가치 산정에 5개 통화만 포함된다. 그런데 2016년부터 포함된 위안화를 기축통화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지급 수단으로서 기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반면 스위스 프랑화는 SDR 가치 산정에서 제외되지만 그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다. 전쟁이 터지건,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건 안전 자산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SDR 편입 여부는 기축통화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기축통화는 경제를 넘어선 문제다. 그러니 지난 대선 기간 중 한국 경제 규모를 이유로 원화의 SDR 편입 가능성을 놓고 설왕설래한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기축통화는 경제가 아닌, 국제정치의 문제다. 1960년대 초 브레턴우즈 체제가 아직 유지되고 있었지만, 미 달러화 신뢰도는 크게 떨어졌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 전 대통령마저 달러화에 회의감을 표시하면서 금으로 바꿔 달라고 공공연히 요구할 정도였다. 달러화 가치가 크게 흔들리자 미국 정부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외화 표시 미국 국채(루사 본드)를 발행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 정부와 다를 것이 없었다. ●기축통화 편입은 국제정치 문제 당시 유일무이한 기축통화국이었던 미국의 그런 모습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출범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미국은 1962년 궁여지책으로 유럽의 10개국과 ‘상호통화계약’을 맺었다.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와프’의 옛 이름이다. 처음에는 3개월짜리 계약이었다가 계속 연장되고, 1971년부터는 거래 대상에 일본, 덴마크, 멕시코가 추가됐다. 그때 기축통화 개념이 등장했다. 달러 패권을 지탱하는 화폐, 즉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와 통화 스와프를 맺은 나라의 화폐를 말한다. 그러니까 기축통화의 실질적인 기준은 미 연준과의 ‘궁합’이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와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도 통화 스와프를 통해 미 연준과 궁합을 맞췄다. 원화의 기축통화 가능성은 2008년부터 열려 있는 것이다. 계약의 항구화가 관건이다. 처음에 한국은행은 통화 스와프가 한국에만 유리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세계 9위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가진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이한다면 그것은 한국의 잘못이 아니라 국제통화 시스템의 중대한 결함 때문이요, 이는 설계자인 미국의 잘못이다. 한국이 가진 미국 국채를 시장에 내다 팔면 미국 금리가 오른다. 미국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나아가 한국은행은 1950년 미 연준 도움으로 세워진 ‘형제 중앙은행이라는 점도 상기시켰다(필자가 네이든 시트 연준 국제국장에게 누누이 강조했다). 논리와 감정이 섞인 그런 설득 속에 2008년 한미 통화 스와프가 체결됐고, 2020년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재계약됐다. 지금 세계화가 후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계기로 해외에 진출했던 미국 공장들이 되돌아가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코로나19 위기 이후 공급망 차질 속에서 에너지와 주요 원자재 공급 채널을 확장하려고 몸부림친다. 세계화를 넘어 경제안보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통화 스와프는 외교수단’ 단언도 세계화의 후퇴 속에서 한국은행 출신 이코노미스트(강태수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와프가 경제가 아니라 외교 수단이라고 단언한다. 미국의 경제안보 차원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세우기를 바란다면 한국도 거기에 상응하는 흥정거리를 통화 스와프에서 찾으라고 주문한다. 15세기 유럽에서는 백반이 오늘날 반도체에 해당했다. 무슨 옷을 만들건 옷감에 물을 들여야 했고, 그래서 착색제인 백반이 필요했다. 백반의 독점적 공급자였던 메디치 가문은 그것을 이용해 약소국 피렌체의 안보를 교황청과 흥정했다. 교황청과 메디치 가문의 백반계약은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에 지배됐다. 그것이 세상이다. 새로운 정부의 제일 중요한 과제도 경제안보다. 강조점은 ‘안보’에 있다. 그러면 새 정부는 통상 기능을 어디에 둬야 할까. 한국은행 자문역
  • 서대문에 ‘새 둥지’ 트는 애국지사 민영환 선생 동상

    서대문에 ‘새 둥지’ 트는 애국지사 민영환 선생 동상

    서울 서대문구는 종로구 우정총국 시민광장에 있는 애국지사 민영환(1861∼1905) 선생의 동상을 충정로사거리 교통섬(충정로3가 414)으로 옮긴다고 31일 밝혔다. 민영환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약을 파기하도록 상소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국민과 각국 공사에게 고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함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위인이다. 충정로사거리에서 서대문역교차로에 이르는 길이 약 800m의 왕복 8차선 도로를 일컫는 ‘충정로’라는 이름은 1946년 민영환 선생의 시호인 ‘충정’(忠正)에서 따왔다. 구는 동상 하단에 민영환 선생의 유서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에게 고함’을 새긴 조형물을 새롭게 배치한다. 또 시민들에게 동상을 잘 알릴 수 있도록 동상 주변 공간을 정비하고 야간 조명 시설도 설치한다. 31일 착공식을 연 뒤 오는 7월 말 공사를 마칠 예정이다. 구는 동상을 이전 설치한 이후 이곳을 잘 가꿀 수 있도록 시민들이 참여하는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민영환 선생의 동상이 충정로로 옮겨 와 의미가 크다”며 “이전 설치하는 곳이 선생의 유지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시민 속에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으쓱한 에르도안, 머쓱한 마크롱

    으쓱한 에르도안, 머쓱한 마크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5차 평화협상으로 개전 한 달여 만에 처음 휴전 기대감이 높아진 가운데 중재 역할을 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분주한 움직임에 비해 성과가 신통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르도안, 평화협정서 몸값 높여 29일(현지시간) 5차 협상이 열린 장소는 터키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궁이었다. 과거 오스만 제국 황제의 정궁으로 지금은 터키 정부가 영빈관으로 쓰는 장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회담 시작 전 양측 대표단 앞에서 한 연설에서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회담 결과를 낙관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맺어 온 터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역시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외교적 균형점을 맞춰 왔다. 2020년에는 미국의 제재를 불사하며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했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자국의 공격용 무인항공기(드론) ‘바이락타르’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했다. 또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엔 참여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면서도 교전국 군함의 보스포루스 해협의 통과를 막아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절묘한 줄다리기로 양측의 신임을 얻은 셈이다. 중동 전문가 스티븐 쿡은 이날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 칼럼에서 “우크라이나의 소용돌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행운일 수 있다”며 “(이번 사태에서) 터키가 미국, 독일, 프랑스와 비견될 글로벌 리더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진단했다.●마크롱, 광폭외교 비해 성과 미흡 반면 마크롱 대통령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전날 “외교를 인내로 평가한다면 그는 최고의 외교관이지만, 실효적 현실주의로 측정하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근 넉 달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양국 정상과 총 42차례 통화하는 등 열의를 보였지만 전쟁을 막지 못했고 개전 후에도 중재자로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프랑스 내 평가는 우호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8.5%로, 우크라이나 전쟁 전보다 4% 포인트 올라 재선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 으쓱한 에르도안, 머쓱한 마크롱

    으쓱한 에르도안, 머쓱한 마크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5차 평화협상으로 개전 한 달여 만에 처음 휴전 기대감이 높아진 가운데 중재 역할을 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왼쪽) 터키 대통령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은 분주한 움직임에 비해 성과가 신통치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르도안, 평화협정서 몸값 높여 29일(현지시간) 5차 협상이 열린 장소는 터키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궁이었다. 과거 오스만 제국 황제의 정궁으로 지금은 터키 정부가 영빈관으로 쓰는 장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회담 시작 전 양측 대표단 앞에서 한 연설에서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회담 결과를 낙관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맺어 온 터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역시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외교적 균형점을 맞춰 왔다. 2020년에는 미국의 제재를 불사하며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했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자국의 공격용 무인항공기(드론) ‘바이락타르’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했다. 또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엔 참여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면서도 교전국 군함의 보스포루스 해협의 통과를 막아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절묘한 줄다리기로 양측의 신임을 얻은 셈이다. 중동 전문가 스티븐 쿡은 이날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 칼럼에서 “우크라이나의 소용돌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행운일 수 있다”며 “(이번 사태에서) 터키가 미국, 독일, 프랑스와 비견될 글로벌 리더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진단했다.●마크롱, 광폭외교 비해 성과 미흡 반면 마크롱 대통령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전날 “외교를 인내로 평가한다면 그는 최고의 외교관이지만, 실효적 현실주의로 측정하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최근 넉 달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양국 정상과 총 42차례 통화하는 등 열의를 보였지만 전쟁을 막지 못했고 개전 후에도 중재자로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프랑스 내 평가는 우호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8.5%로, 우크라이나 전쟁 전보다 4% 포인트 올라 재선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 대만 징병제 부활하나…행정원장 “자기 나라 자기가 구해야” 강조

    대만 징병제 부활하나…행정원장 “자기 나라 자기가 구해야” 강조

    “현재 독재 전제국가, 민주 국가를 침공에 이유 필요 없는 상태”현지 언론 “현행 4개월→12개월로 연장…징병제 도입 가능성” 보도대만 행정원장(총리)이 징병제 부활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서면서 제도 도입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29일 연합보·자유시보 등 대만언론에 따르면 쑤전창 대만 행정원장은 전날 농업위원회 행사 후 인터뷰에서 “자기 나라는 자기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쑤 행정원장은 “현재 독재 전제국가가 민주 국가를 침공하는데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며 “자국을 구하기 위한 방법과 훈련 및 복무 기간 적절성에 대해 국방부의 전문적인 평가와 판단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만 국민들에게 지지를 당부했다. 대만 언론도 앞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군사적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당국이 현행 4개월의 군사훈련역제도를 12개월로 연장하는 형태의 징병제 도입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연합보는 차이잉원 총통이 의무복무기간 연장에 대한 대만군측 관련 부서 보고를 이미 받았다면서 총통 최종 결정만 남은 단계라고 전했다. 매체는 의무 복무 기간의 1년 연장이 결정되면 군의 편제 인원(18만 8000여 명)의 25%인 4만 7000여 명이 갑자기 늘어나게 된다면서 이들의 군 숙소·병사 급여 책정 문제 등이 과제로 대두됐다고 전했다. 앞서 추궈정 국방부장(장관)은 지난 23일 입법원(국회) 외교국방위원회에서 1년을 초과하는 기간 연장에 필요한 ‘병역법 개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12개월 연장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대만은 지난 1951년부터 징병제를 시행해오다 2018년 12월 말부터 지원병 중심 모병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94년 이후 출생자들에 대해서는 4개월의 군 복무(군사훈련)를 의무화한 징병제 성격의 군 복무체제인 군사훈련역 제도를 시행 중이다.
  • “100여년 전 페스트 창궐 시기와 코로나 시대 인간의 태도는 닮았다”

    “100여년 전 페스트 창궐 시기와 코로나 시대 인간의 태도는 닮았다”

    전염병 창궐과 반발 심리 등 다뤄“푸틴 용서 못 받아… 서구도 관망”“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닮아 있습니다. 정부는 질서가 흐트러지는 걸 원치 않아 처음에 전염병을 부인하고, 사망자 수가 늘어나자 사람들은 누가 퍼뜨렸는지 뒷담화를 하게 되죠. 이후 장기간 지속된 방역에 지쳐 반발하기 시작합니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70)가 인류 공동의 난제 팬데믹을 소재로 한 ‘페스트의 밤’(민음사)으로 돌아왔다. 파무크는 28일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전염병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많은 정보를 알기 때문에 두려워한다”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코로나19는 없었지만 페스트 창궐 당시 인간 영혼의 반응을 서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액자소설 형식을 띤 작품은 여성 역사학자를 화자로 1901년 오스만제국의 속주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에 페스트가 퍼지며 촉발된 이야기를 다룬다. 섬은 이슬람교와 그리스정교가 공존하는 문명의 충돌지다. 무슬림들은 방역 조치를 존중하지 않고, 종교·정치적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역은 실패한다. 오스만제국은 전염병 확산을 우려한 서구 열강의 압력에 따라 섬을 봉쇄하고, 섬 지도층은 민게르가 독립국임을 선포한다. 파무크는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형이상학적인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오랜 세월 동안 전염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최근 10년간 이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읽었고 방역 적용의 어려움, 방역과 격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고 했다. 이어 “이 책을 쓸 때 터키의 정치적 상황도 권위적으로 변하고 민주주의가 희석돼 이를 다루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 말기 풍경을 슬픈 시선으로 묘사한 그는 “당시 오스만은 서구 제국주의가 아닌 수많은 민족주의·종교 등 내부 갈등으로 쪼개졌다”며 “민게르섬은 ‘고립된 공간’이란 주제를 좋아하는 내가 크레타섬, 헤이벨리섬, 메이스섬 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고 작업 막바지에 코로나19가 닥쳐 ‘전염병이 확산되니까 소설을 썼다’는 오해를 피하고 싶었다는 그는 “격리 부분을 너무 장황하게 서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이를 축소하려 노력했다”고 돌이켰다. 여성을 화자로 설정한 이유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여성 주인공이 사건 내부에서 모든 것을 보고 설명하는 방식의 소설을 쓸 것”이라며 “중동 남성들의 형편없는 사고가 안타깝고 제 모습도 고치려 노력한다”고 했다. 이 책은 터키에서 출간된 지 1년 만에 한국어판이 영미판보다 먼저 나왔다. 팬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이 겹친 현 세계에 대해 파무크는 “푸틴의 공격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서구 사회도 핵전쟁이 두려워 관망하고 있다”며 “어떤 의미에서 중세가 다시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 ICBM 발사 자축한 김정은… “공격무기 추가 개발”

    ICBM 발사 자축한 김정은… “공격무기 추가 개발”

    북한이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가운데 김정은(얼굴) 북한 국무위원장이 “진정한 방위력은 곧 강력한 공격 능력”이라며 추가적인 공격무기 개발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2018년 4월 선언했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을 4년 만에 파기하면서 한반도 안보 불안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지만 대미 협상 레버리지를 얻기 위한 무력시위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은 28일 김 위원장이 ‘화성17형’ 발사에 기여한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자리에서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는 가공할 공격력,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춰야 전쟁을 방지하고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며 온갖 제국주의자들의 위협 공갈을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계속해 국방 건설 목표를 점령해 나갈 것이며 강력한 공격수단을 더 많이 개발해 우리 군대에 장비시키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 반드시 강해져 그 어떤 위협도 받지 말고 평화를 수호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다그쳐 나가자”고 말했다. 또 “인민의 믿음과 열렬한 조국애가 없었다면 오늘의 이 경이적인 주체적 국방 발전상을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 24일 김 위원장이 명령하고 발사 현장을 참관한 가운데 4년 4개월 만에 신형 ICBM을 발사했다. 북한은 신형 ‘화성17형’이라고 주장했으나, 한미는 발사된 ICBM의 엔진 노즐 2개와 1단 엔진 연소 시간 등을 근거로 기존의 ‘화성15형’을 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과 관련,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2018년 5월 폭파했던 갱도 중 일부의 복구로 추정되는 활동이 식별돼 한미 당국이 주시해 오고 있다”며 “북한의 다음 행동을 예단할 순 없지만 정부는 긴밀한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모든 가능성에 빈틈없이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 오르한 파무크 “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태도는 닮아 있어”

    오르한 파무크 “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태도는 닮아 있어”

    “현재나 과거나 방역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닮아있습니다. 정부는 질서가 흐트러지는 걸 원치 않아 처음에 전염병을 부인하고 사망자 수가 늘어나자 사람들은 누가 퍼뜨렸는지 뒷담화를 하게 되죠. 이후 장기간 지속된 방역에 지쳐 반발하기 시작합니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70)가 인류 공동의 난제 팬데믹을 소재로 한 ‘페스트의 밤’(민음사)으로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파무크는 28일 국내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전염병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많은 정보를 알기 때문에 두려워한다”면서 “제가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코로나19는 없었지만, 페스트 창궐 당시 인간 영혼의 반응을 서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액자소설 형식을 띤 작품은 여성 역사학자를 화자로 1901년 오스만제국의 속주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에 페스트가 퍼지며 촉발된 이야기를 다룬다. 섬은 이슬람교와 그리스정교가 공존하는 문명의 충돌지다. 무슬림들은 방역 조치를 존중하지 않고 종교·정치적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역은 실패한다. 오스만제국은 전염병 확산을 우려한 서구 열강의 압력에 따라 섬을 봉쇄하고, 섬 지도층은 민게르가 독립국임을 선포한다. 파무크는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형이상학적인 것을 생각하게 하기에 오랜 세월 동안 전염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최근 10년간 이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읽었고 방역 적용의 어려움, 방역과 격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고 했다. 이어 “이 책을 쓸 때 터키의 정치적 상황도 권위적으로 변하고 민주주의가 희석돼 이를 다루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 말기 풍경을 슬픈 시선으로 묘사한 그는 “당시 오스만은 서구제국주의가 아닌 수많은 민족주의·종교 등 내부 갈등으로 쪼개졌다”며 “민게르섬은 ‘고립된 공간’이란 주제를 좋아하는 내가 크레타섬, 헤이벨리섬, 메이스섬 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고 작업 막바지에 코로나19가 닥쳐 ‘전염병이 확산되니까 소설을 썼다’는 오해를 피하고 싶었다는 그는 “격리 부분을 너무 장황하게 서술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 이를 축소하려 노력했다”고 돌이켰다. 여성을 화자로 설정한 이유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여성 주인공이 사건 내부에서 모든 것을 보고 설명하는 방식의 소설을 쓸 것”이라며 “중동 남성들의 형편없는 사고가 안타깝고 제 모습도 고치려 노력한다”고 했다.그는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1947)와 비교하는 시각에 대해 “‘페스트’는 1940년대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것을 묘사한 정치적 알레고리인 반면, 제 책은 사실주의적 팬데믹 소설”이라고 강조했다. 이 책은 터키에서 출간된 지 1년 만에 한국어판이 영미판보다 먼저 나왔다. 펜데믹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이 겹친 현 세계에 대해 파무크는 “푸틴의 공격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서구 사회도 핵전쟁이 두려워 관망하고 있다”며 “어떤 의미에서 중세가 다시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한국을 두 차례 방문했다는 그는 “펜데믹이 끝나면 한국을 다시 가고 싶다”며 “한국 독자들의 따뜻한 관심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
  • [STOP PUTIN] 바이든 아홉 단어 잘못 썼다가 홍역, 유약함 떨치려다 실언

    [STOP PUTIN] 바이든 아홉 단어 잘못 썼다가 홍역, 유약함 떨치려다 실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갈수록 거칠어지는 가운데 연설 원고에 없던 짧은 애드리브 탓에 백악관과 미국 국무부가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일간 워싱턴 포스트는 대선 후보 시절 대통령의 단어는 사람을 전쟁터에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무겁다고 언급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즉흥적인 아홉 단어가 세계적인 소동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 순방의 마지막 일정이던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에서 연설하던 중 원고에 없던 “그야말로, 이 사람이 권력을 유지해선 안 된다”(For God‘s sake, this man cannot remain in power)고 발언한 것이 러시아 정권의 교체를 시사한 발언이란 미국 언론의 대서특필로 이어졌다. 그는 이날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만난 뒤에는 푸틴 대통령을 ‘도살자’라고 일컬었다.  앞서 지난 17일에는 푸틴 대통령을 향해 ‘살인 독재자’, ‘순전한 폭력배’라고 비난했다. 그 전날에는 ‘전쟁 범죄자’로 규정했다.  푸틴 대통령이 권좌에 머물러선 안된다는 취지의 발언은 러시아 정권의 인위적인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미국 행정부의 기조에서 정면으로 벗어난 것이어서 큰 논란을 초래했다. 백악관은 대통령의 발언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설명하는 자료를 내야 했다.  바이든 대통령 본인도 27일 워싱턴에서 일요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러시아의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이스라엘을 방문 중이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하거나 침략할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우리는 다른 어떤 (국가의) 정권교체 전략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줄리앤 스미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재 미국 대사도 CNN 방송에 출연해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만나 들은 일들에 대해 인간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진화하려 했다.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그것은 바이든 씨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오직 러시아연방 국민의 선택”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유럽 언론의 반응도 엇갈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한 방송에 출연, 러시아를 멈춰 세우려면 단어 사용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꼬집은 뒤 “난 이런 종류의 말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외교로 러시아군이 철수하도록 하길 원한다면 말로나 행동으로나 긴장을 고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패트릭 윈터 외교담당 에디터는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전쟁이 미국의 침략으로 비화할 위험이 있다”며 “러시아 대통령을 바꾸는 것은 러시아의 문제이지 미국 대통령의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을 ‘제국주의적 협박자’라 묘사하는 데 능숙한 러시아 정부에 ‘몹시 필요한 선물’이라며 터키와 카타르, 중국 등이 푸틴 대통령을 설득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독재정치를 부각해 유럽과 NATO 동맹국들의 단일 대오를 지키려는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발언으로 보는 이도 있다.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의 찰스 쿱찬은 바이든 대통령의 여러 메시지와 관련해 뉴욕 타임스(NYT)에 “유럽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메시지는 푸틴을 향한 것”이라며 “계속 싸우자는 독려는 우크라이나인을 향해, 침착함을 유지하자는 메시지는 유럽인들을 향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다 분위기에 취해 실언한 것이란 해석이 주를 이룬다. 문제의 발언 직전에 폴란드와 가까운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 러시아군이 폭격을 가한 사실을 보고 받고 감정이 격해져 수위 조절에 실패한 것이라고 CNN은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 실수는 폴란드 방문 내내 이어졌다. 미군 장병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결사 항전을 치켜세우면서 “현장에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절대 파병할 수 없다던 기존 미국의 입장이 달라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고, 백악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투입은 없다고 다시 한번 강조해야 했다.  또 러시아의 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비례해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미국도 화학무기를 쓸 수 있다는 발언으로 비치자 백악관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명해야 했다.  같은 실수가 이어지면 실력으로 간주된다. 의도적으로 위험한 발언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국 지도자들이 바이든을 우습게 여긴다”는 취지로 공격한 것도 완전히 터무니 없어 보이지 않는다. 워낙 유약한 지도자란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니까 강한 어조로 얘기한다는 게 실언으로 이어지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 김정은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며 “인민의 믿음 없었다면…” 발언 왜?

    김정은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며 “인민의 믿음 없었다면…” 발언 왜?

    “나라의 핵전쟁억제력을 다지는 필수불가결의 성업을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으로 지지성원해준 전체 인민의 믿음과 열렬한 조국애가 없었다면 오늘의 이 경이적인 주체적 국방발전상을 생각할 수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 17형’ 발사 성공에 기여한 과학자와 기술자, 노동자 등을 격려하면서 대북제재와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로 민생난이 가중된 상황에도 ICBM을 발사한 것을 의식한 듯, 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민심을 다독여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은 “혹독한 고생과 시련을 각오하면서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고 무엇으로 살 수도 없는 진정한 자위의 힘, 절대적인 힘을 자기 손으로 건설하고 힘있게 틀어쥔 위대한 우리 인민에게 열렬한 축하와 모든 영광을 삼가 드린다”고 감사를 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그는 ICBM 발사에 기여한 국방 관계자들에게도 “당의 독창적인 자위적 국방전략사상을 결사의 실천으로 받들어나가는 국방과학자, 기술자들과 군수노동계급의 굴함없는 혁명정신과 특출한 애국심은 우리 당의 무진한 힘”이라고 강조하며 “열렬한 축하를 담아 전투적 답례를 보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면서 강력한 공격수단들을 더 개발해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는 가공할 공격력,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춰야 전쟁을 방지하고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며 온갖 제국주의자들의 위협 공갈을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계속해 우리의 국방건설 목표를 점령해나갈 것이며 강력한 공격수단들을 더 많이 개발해 우리 군대에 장비(배치)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 공격무기를 더 개발해 전력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다졌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고,반드시 강해서 그 어떤 위협도 받지 말고 평화를 수호하고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쳐나가며 후대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욱 확고하고 더욱 완비되고 더욱 강해진 전략적 힘,절대적인 힘으로 우리 조국과 인민의 안전과 미래를 지킬 우리 당의 강력한 국방력 건설 의지를 다시금 피력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북한은 지난 24일 김 위원장이 명령하고 모든 과정을 참관하는 가운데 4년 4개월 만에 ICBM을 발사했다. 북한은 ‘화성 17형’이라고 주장하지만, 한국과 미국 군 당국은 ICBM의 엔진 노즐 2개와 1단 엔진 연소시간 등을 근거로 신형이 아닌 기존 ‘화성 15형’을 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한편 북한은 김 위원장의 공식 집권 10년을 기념하는 사진 전시회를 여는 등 초대형 기념일들이 집중된 ‘4월 경축 분위기’ 조성에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당과 국가의 최고 지위에 추대된 지 올해로 10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위대한 승리와 변혁의 10년’ 중앙사진전람회가 전날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개막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행사장에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당 창건 76주년 기념강연회와 지난달 초급당비서대회 등 각종 회의체와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부터 화성지구 1만 세대 주택건설 착공식 참석, 문수물놀이장 시찰 등 각종 민생행보와 국정 운영 활동이 담긴 대규모 동영상·사진 자료들이 주제별로 전시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1년 12월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뒤 같은 달 30일 북한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면서 사실상 집권했지만, 당(제1비서)과 정(국방위 제1위원장)의 최고지위에 오른 것은 이듬해 4월이다. 4월에는 김 위원장의 당 제1비서 추대 10주년(11일), 국방위 제1위원장 추대 10주년(13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110주년(1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 90주년(25일) 등 굵직한 기념일들이 집중되어 있다. 10∼18일 ‘제7차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 10∼20일 국제예술행사인 ‘제32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제35차 전국과학기술축전 등 태양절을 기념하는 온·오프라인 행사들도 대규모로 준비 중이다. 이에 따라 4월 대형 기념일들을 십분 활용해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며 민심을 다독이고 내부 결속에 나서는 한편 기념일을 계기로 ICBM 추가 시험발사나 열병식, 더 나아가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소형 전술핵무기 개발을 위한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
  • ICBM 발사 김정은 “우린 강해져야”…트럼프 “영리하고 터프”

    ICBM 발사 김정은 “우린 강해져야”…트럼프 “영리하고 터프”

    북한은 지난 24일 김 위원장이 명령하고 발사 전 과정을 참관하는 가운데 4년 4개월 만에 신형 ICBM을 발사했다. 북한은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하지만 한미는 기존의 ‘화성-15형’을 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조선중앙통신은 28일 북한이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하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기여한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진정한 방위력은 곧 강력한 공격 능력”이라며 추가적인 공격무기 개발 등 국방력 강화 계획을 이행할 의지를 밝혔다고 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는 가공할 공격력,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춰야 전쟁을 방지하고 국가의 안전을 담보하며 온갖 제국주의자들의 위협 공갈을 억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라며 “우리는 계속해 우리의 국방건설목표를 점령해나갈 것이며 강력한 공격수단들을 더 많이 개발해 우리 군대에 장비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고, 반드시 강해서 그 어떤 위협도 받지 말고 평화를 수호하고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쳐나가자”고 강조했다.“날 좋아하고, 영리하고 터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언급하며 “그는 영리하고 터프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미 매체 더힐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그는 장거리 미사일을 보내고 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을 그리 존중하지 않는다. 나를 좋아한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2024년 대선 재출마 의향을 밝힌 트럼프는 “우리는 두 번의 정상회담을 했다. 우리는 잘 지냈다”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력을 비판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외국 정상을 ‘영리하다’고 언급할 때마다 비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주석에 대해서도 “철권을 쥐고 15억 명의 국민을 통치한다. 그는 매우 영리하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는 영리했다”라고 답했다. 트럼프는 지난달에도 푸틴 대통령에게 ‘영리하다’, ‘천재적’이라고 발언했다가 거센 논란을 빚자 우크라이나 침공을 ‘학살’로 규정하는 등 비난 여론 무마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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