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문화국민은 저마다 그들의 고전을 창출한 황금기를 갖는다.단테와 페트라르카,다빈치와 미켈란젤로,메디치 가와 피렌체의 이름과 맺어지는 15·16세기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참으로 유럽 아니 세계사상 유례가 없는 현란한 문화의 황금기였다.우리들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1860)라는 명품(名品)을 통해 그 전체의 면모를 체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문화사학의 정초자(定礎者)요 미술사가인 부르크하르트에 있어 역사란 인간정신의 형태학이요, 르네상스의 주조음은‘개인’의 탄생과 발전이었다.이때개인이란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아가페와 에로스의 조화를 이룬, 그러므로써‘위대한 삶’을 실현한 인격을 말한다.
부르크하르트는 15세기의 이탈리아를 가리켜 선과 악이 기묘한 혼합을 이루었던 시대였다고 말한 바 있으며,그러한 인물로서 당시의 전제군주,용병대장,고위 관리들을 우리들 앞에 내세운다. 성직자나 휴머니스트,예술가와 귀부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에게 요청한 청탁을 함께 삼키는 덕성‘비르투’가 인간의 가능성과 위대함의 징표로서 찬탄되고 악도 또한 덕으로서 미장된,그리고‘명성’에 신들린 르네상스적 자아.그 자아의 비밀을 밝히는 소도구로서 부르크하르트는 그들의 기쁨과 좌절,환상과 불안,야심과 절망,영광과 몰락, 기지와 풍자,향락과 참회의 모양을 전체적 삶의 수준에서 펼쳐주며,또한 당시의 격언과 우화,사교와 의식,연설과 개선식,위상과 귀금속,간통과 창부,놀이와 성의물 숭배,미신 등의 변주곡도 빠짐없이 들려준다.이탈리아 르네상스를향한 애증(愛憎)이 뒤섞인 관찰에 있어 이 ‘진리를 널리 말하는 시인’은직관과 상상력 그리고 감정 표출의 독특한 문체를 아낌없이 구사한다.인간의심층세계를 파헤친 이 정녕의 역사가에 의해 역사서술은 예술이 되고 역사와문학의 주제는 하나가 되었다.그리하여 그는 아날 학파와 역사심리학의 개척자가 되기도 한 것이다.
부르크하르트는 도시공화국과 전제정치 그리고 특히 자유로운 시민의 공동체인 피렌체를 요람으로 자란 르네상스적 인간이 지향한 ‘보편적 인간’,‘독자적 인간’의 위대함과 그들에 의해 창출된 교양(휴머니타스),심미적 문화를 찬탄하여 마지않는다.그러나 이 뛰어난 인간 관찰자는 르네상스풍의 자아의 문제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그는 그들 속에 ‘무엇인가 진정 악마(demon)적인 것’을 예감하였다.
부르크하르트는 1789년 이후 그가 놓인 ‘혁명의 시대’의 상황이 ‘모든격정과 이기심을 방출한’광기의 소행임을 잘 알고 있었다.부르크하르트는반문화적인 정치가 모든 것을 제패하는 그의 시대를 철저하게 거부하였다.그리하여 그는 현실로부터 탈출과 구제의 길을 ‘아름다움과 위대성’에 빛났던 과거 속에서 찾았다.‘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바로 아름다운 역사에게 바쳐진 그의 신앙 고백이다.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 무서운 인간’의 불길한 도래를 예언한 부르크하르트.마이네케는 역사적 삶의 심연을 통찰함으로써 현대의 우리들의 문제를 그발단에서 그리고 그 해답을 최초로 제시한 부르크하르트에 감탄하였다.
이 책은 역사서술을 시와 예술로 드높인 고전 중의 고전이다.만시지탄의 감이 없지않으나 이제라도 명저의 번역본이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하지만몇가지 오역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교황국→교황권,현대적→근대적,계급→신분,도덕과 종교→풍속과 종교 등등의 오역은 재판에서 바로잡아지기를 바란다.(안인희 옮김,푸른숲 2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