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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 노령화사회 스스로 대비해야”

    “지금의 20∼30대가 노인이 되는 50년후에는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우선 늙은이들로 가득찬 초노령화 사회를 연상할 수 있겠지요.노령자 집단은 커다란 고객이 되며 정치인 역시 노령자 그룹을 찾아서 표를 구걸하게 될 것입니다.” 주명룡(58) 대한은퇴자협회 회장은 평소 “인생에 은퇴란 없으며 다만 제2의 인생을 위한 새로운 준비를 할 뿐”이라는 지론으로 점점 왜소해지는 장·노년층의 ‘기살리기’운동에 앞장서왔다. 그가 오는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4층 콘퍼런스홀에서 ‘서기 2054년-50년후 한국의 노령화 사회/50년후 우리는 어디에 있나’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딱딱한 학문적 접근이 아닌 세대간 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풍자적’으로 접근하는 다소 이색적인 포럼이어서 눈길을 끈다.특히 참석자 중에 ‘늙은이’보다 20∼30대 ‘젊은이’들이 더 많단다.이들이 장차 노인이 되면 오늘날의 장·노년층보다 더욱 많은 압박과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50년 후 노령화사회의 주인공은 지금 방바닥을 기고 있거나,혹은 엄마 뱃속에서 꿈틀대거나 하는 세대이지요.그러나 이들은 열심히 벌어 노령화 부담금과 자신의 노후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은 세금으로 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결국 지금의 젊은 세대는 노인이 되면서 고액의 세금을 내는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2004년 현재 9% 미만에서 2025년 20%, 2050년에는 34%까지 상승한다는 통계청 예상수치만 보더라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분석이다. “장차 우리 사회는 80세가 넘은 고령 근로자들이 바쁘게 출퇴근하는 모습도 보게 될 것입니다.” 은퇴자협회는 지난 96년 미국에서 창립됐으며 유엔에 등록된 비영리·비정부기구(NGO)로 세계 각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주 회장은 5년 동안 미국에서 활동해 오다 2002년 1월 한국에 건너와 ‘대한은퇴자협회’를 만들었다.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밀려나는 한국 장·노년층의 실상을 보고 용기를 냈다.회원수만 벌써 3만 7000여명(미국의 경우 3600만명)에 이를 만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회원이 되면 간행물을 통한 정기적인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은퇴자협회는 출범 2년여 동안 ‘여성에게도 은퇴는 있는가’ 등 여섯차례 포럼을 개최했다.올 가을에는 ‘나이든 사람들은 왜 옷차림이 우중충하고 꾀죄죄한 것인가’라는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주 회장은 “아름다운 은퇴문화의 형성과 조기퇴직 종용 금지법 촉구 등을 비롯해 회원 권익 확장을 위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불법 정치자금 국고환수 소급적용 않기로

    열린우리당은 소급적용 시비가 일고 있는 불법 정치자금 국고환수법 제정과 관련,소급 적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법안을 만들기로 했다.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은 16일 2002년 불법 대선자금과 ‘안풍자금’ 등을 포함시키는 소급 적용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논란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가다듬어 다음주 중으로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 의원은 “당초 이 법안은 정동영 의장 시절 공약으로 제시했던 것으로 율사 출신인 천정배 원내대표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법안 부칙에 발효시기를 명기하는 등 소급적용 시비를 불식시키도록 가다듬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 법사위 우리당 간사인 우윤근 의원도 “이 법안이 현행 법과 충돌되는 부분이 있는데다 소급 대상과 소급 시기 등을 놓고서도 논란이 있어 다음주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재천 의원도 “소급 시비를 피하면서 과거 불법정치자금을 환수하려면 법률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법안 발의를 실무적으로 준비해온 이은영 의원은 “위헌시비가 일고 있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면서 “불법정치자금 국고환수는 우리당 총선공약인데다 대다수 국민들이 불법 정치자금 환수에 동의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어 최종 조율여부가 주목된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무어 ‘화씨 9/11’ 22일 국내 개봉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Fahrenheit 9/11)이 22일 국내 개봉된다.‘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미국의 총기규제법을 통렬하게 고발했던 풍자감각을 감독은 유감없이 다시 발휘했다.부시 미국 대통령은 한뼘의 보호막도 없이 스크린 위에서 발가벗겨진다. 부시를 쏘아보는 영화의 삐딱한 시선은 당황스러울 만큼 노골적이다.2000년 미국 대선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플로리다 재검표 소동으로 이의제기를 시작한다.부정 시비로 얼룩진 선거전,계란세례 속에 백악관에 입성하는 대통령 차량행렬 등 카메라는 ‘안티(anti)부시’를 작정한 듯 외친다. 백악관의 주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까지 감독이 얼마나 힘들게 다리품을 팔았을지 여실하다.부시의 대통령 자격에 부적격 판정을 내린 영화는 곧 9·11테러와 부시 일가의 뿌리깊은 커넥션을 까발리는 ‘본론’에 들어간다.테러의 진상을 밝히기 전에 빈 라덴의 미국내 친척들을 서둘러 사우디아라비아로 피신시킨 의문점 등 음모론을 들추는 데 주력한다. 감독은 폭소를 동반한 풍자와 블랙유머로 앵돌아앉은 관객들까지 살살 달래나간다.아버지 조지 W.부시 대통령때부터 비롯된 사우디 석유재벌과의 유착,사업파트너로서 빈 라덴 가문과의 각별한 유대관계 등이 다양한 자료화면들을 통해 논리를 확보해가는 식이다. 부시의 음모론에 동조하든 않든 관객들의 뇌리에서 부시는 볼품없이 희화화된 몇몇 장면으로 각인될 듯하다.홍보물 촬영을 위해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한 부시가 9·11테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의 반응.멀뚱멀뚱하게 클로즈업된 표정으로 아이들 앞에서 동화책만 뒤적이는 모습은,‘이미지 정치’ 이면의 무기력한 대통령을 극단적으로 폭로하는 설정이다.지구촌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어이없게도 부시는 골프채를 잡는다.“내 샷 좀 보쇼!” 중반을 넘어서면서 영화는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의 추악함을 고발하는 데 2라운드를 할애한다.예의 그 텁수룩한 행색으로 감독이 직접 현장인터뷰에 나서기도 한다.전쟁을 정당화하려는 미국 정부의 ‘공포정치’가,국민들의 관심을 얼마나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놓는지 증언하기위해 시민들 속으로 카메라를 옮긴 것.이른바 ‘애국법’으로 시민들이 서로를 감시하는 웃지못할 사건들까지 조명된다. 음악을 들으며 기계적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미군 병사,‘알라’를 울부짖는 이라크 여인,불타 매달린 미군 시체들,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미국 여인….뉴스 속의 단편적 사건들이 기승전결 틀거리를 갖춘 다큐멘터리를 빌려 강렬한 메시지로 되살아났다. 전쟁의 구린 이면을 들춘 어두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다큐멘터리가 대중의 폭발적 동조를 얻어낸 데는 특별한 ‘레서피’가 있다.코믹패러디물 뺨치게 익살스러운 내레이션,감독의 논리를 대변하며 적재적소에 절묘하게 배치된 영상자료들은 2시간3분 동안 딴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제목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SF소설 ‘화씨 451’의 패러디.책읽기가 금지된 미래사회에 소방관들이 책을 불사르는 소설 내용을 은유해 감독은 “9/11은 진실이 불타는 온도”라고 설명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씨줄날줄] 패러디/우득정 논설위원

    지난 2000년 가을 미국 부시 대통령과 통화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전화 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된 적이 있다.의례적인 인사말로 시작된 통화는 차츰 시비조로 바뀌다가 ‘이 잡것’‘콱 죽여버려’ 등 진한 사투리 속에 배어나오는 온갖 욕지거리로 끝난다.물론 김 대통령의 목소리는 흉내낸 것이었다.외환위기 과정에서 미국의 위세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김 대통령이 고압적인 부시 대통령에게 욕설을 쏟아부음으로써 네티즌들의 배알을 시원하게 했던 것이다. 올 들어서는 가시 면류관을 쓴 노무현 대통령이 한달 이상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미국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패러디(풍자)한 것이다.이른바 ‘탄핵 패러디’다.무수히 많은 대글들이 쏟아지면서 결국 탄핵 기각과 열린우리당 총선 압승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하지만 민심이란 덧없는 것.노 대통령에 대한 패러디는 웃음진 얼굴 아래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전 서프라이즈 대표 서영석씨 등이 ‘강성대국’이라는 기치 아래 홍위병처럼 행군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청와대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듯한 패러디를 배치한 것과 관련,정치권이 난리다.재미라고 하기에는 도가 지나쳤던 것이다.이쯤 되면 패러디가 아니라 3류 희극이다.관련자들에게 엄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국정홍보를 위한 사이트가 정치 패러디나 확대 재생산하고 있었다니 국민들로서는 어처구니없을 따름이다. 패러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용어다.시조는 고대 그리스의 풍자시인 히포낙스다.중세 기사도 전설을 풍자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대표적인 패러디 문학이다.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화씨 9/11’은 부시 대통령의 낙선을 위해 기획된 패러디 영화로 꼽힌다. 박 전 대표 패러디 게시물이 논란이 되자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노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으로 제작했던 패러디물들이 인터넷에 홍수를 이루고 있다.‘너희들도 국가원수를 이토록 모독하지 않았느냐.’는 항의성 시위다.후덥지근한 날씨마냥 짜증스럽기만 하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YS 모르게 1197억 전달 납득못해”

    법원이 ‘안풍 사건’에서 지목됐던 자금을 사실상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인정함에 따라 상당한 파문이 예상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에 비유,“꼬리를 자른다고 해서 혐의가 없어지겠느냐.오히려 도마뱀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 명백히 증명할 뿐”이라며 김 전 대통령의 개입 사실을 강하게 내비쳤다.김 전 대통령은 불법자금의 모금 의혹에 휘말려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될 처지에 놓였다.반면 한나라당은 1심 선고에서 강삼재 전 의원이 받은 거액의 추징금은 물론 940억원의 국고환수 민사소송의 부담까지 ‘원샷’에 털어냈다. ●‘순수한’ 안기부 예산 아니다 강삼재 변호인측은 1심 때부터 안풍자금이 안기부 계좌에서 나왔지만,안기부 예산은 아니라고 줄곧 주장했다.국가예산이 아니라면 강삼재·김기섭 피고인의 국고(國庫)손실 혐의는 자연스럽게 무죄가 되기 때문이다.안기부 계좌에 있던 외부자금을 사용한 행위는 정치자금법 위반에 적용될 뿐 특가법상 국고손실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 까닭이다.게다가 정치자금법의 공소시효가 이미 끝난 상태라 처벌도 불가능하다. 외부자금 유입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93∼96년 안기부 차명계좌의 입·출금 내역을 모두 조사하자는 변호인측의 주장을 항소심 재판부가 수용하면서 무죄 선고의 첫걸음을 내디뎠다.재판부는 지난 5개월 동안 금융기관 사실조회를 통해 93년초 616억원이던 잔고가 93년말 오히려 1909억원으로 늘어난 사실을 확인했다.93년은 김 전 대통령이 취임한 해다.늘어난 돈은 안풍사건이 일어난 95∼96년에 모두 빠져 나갔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재판부는 “안기부의 한해 예산이 5000억원인데 93년에는 전체 예산의 22%가 사용되지 않고 남았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면서 “안기부 관리계좌에 예산 이외에 다른 자금이 유입된 흔적이 없다는 검찰의 공소사실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YS 비자금’ 사실상 인정 외부자금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재판부는 판결문 곳곳에서 김 전 대통령이 보유했던 비자금이란 의혹을 강하게 내비쳤다.독자적으로 판단,신한국당을 지원했다는 김기섭 피고인의 주장이 오히려 김 전 대통령 개입설에 신빙성을 더욱 강하게 했다.재판부는 “안기부 운영차장이던 김 피고인이 거액의 돈을 인출,여당 사무총장에게 전달하면서 대통령의 지시를 받거나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요즘 웃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아랫사람이 희생하는 것을 ‘도마뱀 꼬리자르기’로 표현한다며 김 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우울한 김기섭·함박웃음 강삼재 선고가 끝나자 두 자리를 사이에 두고 앉았던 김기섭 피고인과 강삼재 피고인의 반응은 엇갈렸다.무죄를 받고도 김 피고인은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김 전 대통령을 끝까지 보호하지 못한 ‘죄책감’ 탓인지 지인들의 악수에도 마지못해 응했다.기자들의 질문에도 한마디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반면 강삼재 피고인은 웃음을 머금은 채 축하의 말을 건네는 변호인뿐만 아니라 지인들과 모두 악수를 나눴다. 정은주 박경호기자 ejung@seoul.co.kr˝
  • [공연 리뷰] ‘카바레’

    공연은 끝났지만 환호는 없었다.극이 끝났음을 미처 알지 못했던 관객들은 배우의 인사를 받고서야 박수를 보냈다.브로드웨이에서 직수입했다는 ‘카바레’(16일까지,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극장 풍경이다. 왜일까.뮤지컬의 소재인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유행했던 그 카바레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과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원래 카바레는 연주자와 청중이 얼굴을 맞대고 노래했던 일종의 라이브 공연장으로 주로 정치 풍자와 섹스에 대한 내용이 담긴 무대였다.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독일 배경 영화들에서 묘사됐던 음침한 카바레들은 바로 당시 암울했던 시대 정신의 반영이기도 하다.그래서 같은 제작자의 뮤지컬 ‘시카고’만을 연상하고 찾은 관객은 낭패를 보기 쉽다. 작사,작곡자인 프레드 엡과 존 칸더는 브로드웨이에서는 흔치 않은 ‘진지한’ 뮤지컬을 추구하는 별난 예술가들이다.이들은 뮤지컬에는 단지 웃고 즐기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담겨야 한다고 믿었다.바로 ‘서푼짜리 오페라’의 작곡자 쿠르트 바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탓이다.바일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지식인이었다. 격변기 나치 독일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긴 ‘카바레’는 이런 배경에서 잉태됐다.1966년 처음 무대에 바일의 미망인이었던 로테 레냐가 직접 프롤라인 슈나이더 역으로 등장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릴라를 여자친구라 소개하며 춤추던 MC가 관객들에게 “자세히 보면 유대인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내뱉는 충격적인 대사나 유대계를 의미하는 별 모양이 그려진 죄수복을 입고 가스실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 등은 그래서 강한 뒷맛을 남긴다.뮤지컬중에는 보면 볼수록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풍자와 은유가 많을수록 더 그렇다.‘카바레’가 대표적 사례다.극장을 찾는 횟수가 더해질 때마다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실험성과 창의력은 감탄을 자아낸다.숨겨진 그림 조각을 찾아내는 희열을 맛볼 수 있다. 공연은 수준급이었지만 왜 꼭 영어 무대였어야만 했느냐는 의문은 남는다.짧은 공연기간으로 여러번 무대를 접하기도 힘든데다 혹여 익숙하지 않은 ‘파격’에 놀라 실망할지 모를 우리 관객들을 생각하면 다소 아쉽다. 같은 기획사에 의해 이미 우리말 공연이 올려졌던 터라 더 그렇다.기왕이면 좀더 ‘씹어 소화시킨’ 우리말 버전이었다면 어땠을까.좋은 무대를 만나고도 아쉬움이 남는 것을 보면 정말 우리 공연 산업이 많이 성장하고 있긴 하나 보다. 원종원(뮤지컬 비평가·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 [이경형칼럼] 相爭의 말들

    새벽녘 이웃집에 신문을 돌리고는,이따금 운동 삼아 서울 올림픽 공원까지 속보로 간다.야외 조각 공원 초입의 공중 해우소(解憂所) 옆에 ‘네 마음의 자물통,내 마음의 열쇠’(박불똥,1998)라는 제목의 대형 철구조물 설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람의 옆 모습을 형상화한 녹슨 철판을 중심으로 큰 자물통 2개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놓여 있다.얼굴의 뺨 부분엔 ‘YOU LOVE ME’가 글자 윤곽을 따라 뚫려 있고,입은 뭔가를 외치는 모습이다.머리통 가장자리엔 자물통 달린 여러 개의 쇠사슬이 칭칭 감겨져 있다. 이 작품은 내 마음은 열지 않은 채,남더러 나를 사랑하라고 외치는 사람을 풍자한 듯하다.어느 때고 한바탕 싸움을 벌이겠다는,상쟁(相爭)의 말을 내뱉는 모습 같기도 하다. 얼마전 여당의 한 중진은 아파트 원가 공개 문제를 싸고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했다.검찰의 총수는 대검 중수부 폐지설에 대해 “중수부가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된다면 먼저 저의 목을 치겠다.”고 했다.‘계급장’‘내 목’이 사용된 말의 행간에는 사생결단의 전의(戰意)가 넘쳐난다. 요즘 수도 이전 문제로 온 나라안이 시끌뻑적하다.행정 수도 이전이냐,천도냐에서부터 국민투표를 부치네,마네 하면서 야단법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수도권의 과밀화를 막고 지방분권과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행정 수도의 건설이 불가피하며,관련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마당에 이를 재론하여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한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를 들먹이며 “언론 개혁 문제를 둘러싼 정서적 전선과 일치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 매우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이른바 ‘보수 언론’이 유별나게 행정 수도 이전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더라도,이런 말은 공연한 사족(蛇足)이다.대통령이 뭔가 피해의식에 젖어 수도 이전 문제를 감정적이고 2분법적인 피아개념으로 대응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에밀레종 소리 복원으로 유명한 배명진 숭실대 교수는 최근 노 대통령의 음성 파형과 성문 스펙트럼을 탄핵 기각·총선 승리를 기준 시점으로 조사하여 비교 분석했다.그 결과,총선 승리 후의 대통령 음성은 그 전보다 훨씬 격앙된 어조를 띠고 있다고 한다.여유와 인자함은 줄어들고,대신 근엄함과 스트레스·하소연(억눌림) 측정치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재계 일부가 개혁을 회피하기 위해 경제 위기를 부추긴다.”“보수는 약육강식이고,되도록 바꾸지 말자는 것이다.”라는 등의 발언에서도 어떤 억눌림에 의한 사시(斜視)가 묻어난다. 여권의 주요 인사들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관계를 두고,‘젖을 주고,떼는 관계’ 운운하면서 말싸움을 한다.의원들끼리도 “공부 좀 해라.”“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다.”라는 등 독설과 헐뜯기로 말다툼을 한다. 말이 사람 사이에 서로 소통하는 도구가 아니라,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비수로 전락하고 있다.입만 열면 상생(相生)을 외고 있지만,실상은 상쟁을 촉발하고 있다. 엊그제,박불똥씨에게 전화를 걸어 작품명을 ‘내 마음의 자물통,네 마음의 열쇠’로 바꿔야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한번쯤 자신을 성찰할 것 아니냐고 물어 보았다.늘 사회 비판에 풍자적 언어를 구사해온 민중 작가 박씨는 “여기서 ‘네’나 ‘나’는 구태여 구분이 필요 없는 동일한 의미”라고 가볍게 대답했다.지금 우리는 너,나 가릴 것 없이 상쟁의 흙탕물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편집제작 이사 khlee@seoul.co.kr˝
  • [사고] 반부패 패러디 웹작품 콘테스트

    서울신문사는 (사)반부패국민연대와 함께 ‘반부패/부패 패러디 웹작품 콘테스트’후보작을 공모합니다.네티즌이 현실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의 패러디 작품들을 웹에서 주고 받는 것은 이제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습니다.특히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많은 패러디 작품들은 유권자들에게 흥미와 함께 통렬한 사회비판 의식을 유발시켰습니다.반부패 캠페인 ‘Clean Korea21’의 일환인 이번 행사는 부패 문제에 관하여 네티즌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패러디 작품화하여,온라인상에서 전파시킴으로써 네티즌의 반부패 실천의지를 고양시킬 것입니다.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응모방법 ●응모부문플래시, 만화, 포스터 ●응모기간7월1일~31일 ●출품내용정치,경제,교육 등 사회전반의 반부패/부패 관련 주제 ●출품주소http://ti.or.kr/parody (6월28일 오픈) ●출품형태파일 형태로 제출(업로드) ●선정발표8월10일 ●문 의반부패국민연대 홍보국장 오정택 02-393-6211 ■ 시상품 플래시 부문최우수상 1명(디지털카메라),우수상 3명(자전거) 만화 부문최우수상 1명(디지털카메라),우수상 3명(자전거) 포스터 부문최우수상 1명(디지털카메라),우수상 3명(자전거) ■ 주최 서울신문사 ,(사) 반부패국민연대 ■ 협찬 SK텔레콤 , 보워터 한라제지˝
  • [사고] 반부패 패러디 웹작품 콘테스트

    서울신문사는 (사)반부패국민연대와 함께 ‘반부패/부패 패러디 웹작품 콘테스트’후보작을 공모합니다.네티즌이 현실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의 패러디 작품들을 웹에서 주고 받는 것은 이제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습니다.특히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많은 패러디 작품들은 유권자들에게 흥미와 함께 통렬한 사회비판 의식을 유발시켰습니다.반부패 캠페인 ‘Clean Korea21’의 일환인 이번 행사는 부패 문제에 관하여 네티즌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패러디 작품화하여,온라인상에서 전파시킴으로써 네티즌의 반부패 실천의지를 고양시킬 것입니다.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플래시·만화·포스터 3개 부문…새달 1~31일 공모 ■ 응모방법 ●응모부문 : 플래시, 만화, 포스터 ●응모기간 : 7월1일~31일 ●출품내용 : 정치,경제,교육 등 사회전반의 반부패/부패 관련 주제 ●출품주소 : http:///ti.or.kr/parody (6월28일 오픈) ●출품형태 : 파일 형태로 제출(업로드) ●선정발표 : 8월10일 ●문 의 : 반부패국민연대 홍보국장 오정택 02-393-6211 ■ 시상품 -플래시 부문 : 최우수상 1명(디지털카메라),우수상 3명(자전거) -만화 부문 : 최우수상 1명(디지털카메라),우수상 3명(자전거) -포스터 부문 : 최우수상 1명(디지털카메라),우수상 3명(자전거) ■ 주최 : 서울신문사, (사) 반부패국민연대 ■ 협찬 : SK Telecom˝
  • ‘정치패러디’ 학계공방 가열

    탄핵정국과 4·15 총선을 전후해 붐을 이뤘던 정치 패러디를 두고 사법처리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언론법학회(회장 김진홍)의 학술세미나에서도 언론학자와 법학자의 의견이 엇갈렸다. 16일 오후 한국언론재단 연수센터에서 열린 ‘정치 패러디와 표현의 자유’ 주제의 제7회 언론법학회 세미나에서 김경호 제주대 교수(언론홍보학과)는 “정치 패러디도 의견의 표현이므로 금지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반면 문재완 단국대 교수(법학과)는 “선거기간에는 무제한적인 비판을 허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신중론을 폈다. 이날 첫 발제자로 나선 김경호 교수는 검찰이 패러디 작가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사건을 예로 들며 “이 패러디는 탄핵을 추진한 정치인들의 공적 행위에 대한 풍자적 은유를 담고 있는 정치적 의견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그는 “이것이 사회적 용인의 정도를 벗어나 인격적인 모욕에까지 이르렀다고는 볼 수 없고,설사 부분적으로 인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그 풍자적 은유를 진실이라 믿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검찰을 비판했다. 문재완 교수 역시 “정치 패러디는 단순한 욕설과 달리 의견의 표명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모욕죄에 해당되지 않고,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대상자가 공인이라면 민·형사상 책임은 면제된다고 봐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면서도 선거법 위반소지에 대해서는 처벌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그는 “선거기간에는 잘못된 정보가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치유될 가능성이 적으므로 패러디를 통한 허위사실의 공표나 후보자 비방에 대해 처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패러디를 악용한 불법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려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방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아마추어 패러디작가연대 준비위원장인 하얀쪽배의 신상민씨는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면 그에 맞게 법률도 수정돼야 하는데 법률적 보완이 이뤄지지 못한 조항을 가지고 무리하게 수사를 하고 입건을 하는 것은 인터넷 민주주의의 첫 시도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정청래의원 ‘집시법위반’ 약식기소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이재원)는 지난해 8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풍자한 조선일보 만평 등에 항의하며 불법집회를 주도,집시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열린우리당 정청래 의원을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고 31일 밝혔다. 정 의원은 ‘생활정치 네트워크 국민의 힘’ 공동대표였던 지난해 8월 ‘국민의 힘’ 회원들과 함께 조선일보사 앞에서 노 대통령 관련 만평 등에 항의하는 집회를 개최하면서 미리 신고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2)안의현감(安義縣監) 연암 박지원의 행정론

    경남 함양군 안의면 안의초등학교 교정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비석 하나가 서 있다.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에 관한 역사와 선생께서 활동하셨던 18세기 영조 정조시대의 조선 지성사와 사회사의 한 단면까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사적비(事蹟碑)다.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와 탁월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함께 느낄 수 있으며,특히 안의현감이라는 지방의 한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행정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은 정치와 권력의 남용으로 고통받는 이 시대를 향하여 무언의 꾸짖음을 던지고 있다. 오늘은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아래 함양 안의면의 오월 녹음을 주우며 그 푸르고 향그러운 색깔 속에 살아있는 한 지성의 인간과 세상을 향한 말씀을 들으려 길을 떠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을 두고 칭송하는 글귀는 매우 많다.‘그의 문장은 천마(天馬)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굴레를 씌우지 않았건만 자연스럽게도 법도에 다 들어맞는다.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문장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며,뒷 사람들이 배워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글과 ‘영국에 셰익스피어가,독일에 괴테가,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는 글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이같은 선생은 흔히 ‘양반전’‘허생전’ 등 부패한 사회상과 타락한 양반 사회를 풍자적 기법으로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가로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선생의 나이 44세 때 청나라 여행을 계기로 국내 보수파들의 극렬한 비난을 무릅쓰면서 쓴 ‘열하일기’는 당시 문단에 충격을 던진 놀라운 문체로서 선생의 글이 단순히 글 재주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삶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고 가기 위한 위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이 결합된 신선함의 상징이었다.여기에서 선생은 행정가 혹은 정치가로서의 안목과 구체적 능력을 암시하기도 했다. ●나이 50에 임금분부로 마지못해 벼슬길 이렇듯 천하 제일가는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선생이었지만 한사코 과거시험을 거쳐 벼슬길에 나아가는 일은 극력 회피했다.주위의 권유가 하도 잦고 간곡하여 몇 차례 과거시험장에 나간 적이 있었다.그러나 답안지를 작성한 뒤에는 이름을 적지 않았고,글 대신 그림을 그려 놓거나 엉뚱한 시편들을 대신 적기도 했는데,이 때 선생이 지은 글은 곧잘 큰 유행이 되기도 했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감탄과 아쉬움을 함께 자아내기도 했다.심지어 임금의 명령으로 과거시험장에 억지로 나간 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모두 이름을 적지 않았다.벼슬이나 권세가 깊은 학문과 향기 짙은 문학세계를 해칠 수 있다는 선생의 청정한 지조,혼탁하고 광분한 지성사를 꾸짖어 바로잡을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세상에 나아가면 더욱 세상을 어지럽힐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직과 청빈을 집안의 가훈으로 이어받은 선생 또한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마치 독서하는 군자처럼 살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떴는데,선생이 나이 50세 때 임금의 거듭된 분부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 음관(蔭官)으로 벼슬길에 나간지 반 년도 못 된 때였다.아내를 여읜 지 얼마 안되어 다시 맡며느리의 상을 당한 뒤로는 끼니 챙겨 줄 사람도 없이 19년여를 혼자 살았다.그 고적하고 불편한 생애의 후반에 이르러서야 선생의 학문과 행정가로서의 세계가 더욱 깊고 넓게 완성될 수 있었다. 선생이 참으로 엉뚱하게도 경상도 안의현감이라는 지방 목민관으로 부임한 것은 1792년 1월이었다.1796년 봄에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5년 동안 안의현감을 지내면서 남긴 업적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직자와 정치가들에게 변함없는 교훈이자 반드시 닮아야 할 목표로 남아 있다.53세에 안의현감으로 부임한 선생 앞에 맨 먼저 던져진 과제는 아전들의 오래된 폐단이었는데,공금횡령과 현감을 속이고 우롱하는 행동이었다.다른 하나는 공금횡령을 부추기는 주변의 권유와 부정부패를 일삼아야만 출세할 수 있다는 공공연한 현실이었다. ●군량미 향곡 9000섬 야금야금 도둑질 지방관청의 실무 담당자들인 아전은 모두 그 지방 출신자들인데다 오래도록 아전으로 지낸 터여서 관내의 모든 일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거기에 비해 서울에서 임명되어 오는 현감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었다.따라서 현감은 짧은 임기 동안에 안의지역에 관한 일들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떠나는 일이 흔했다.이같은 사정을 알고 있는 아전들이 고의적으로 현감의 임기를 되도록 짧게 만들기 위한 수작을 부리는 폐습이 뿌리 깊었다.부임하는 현감으로 하여금 안의 지역의 행정 업무에는 아예 손도 못대게 하기 위해 교활한 함정을 파서 빠뜨렸다.아전 상호간의 비리를 적은 투서를 익명으로 현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투서자가 익명이기 때문에 투서에 적힌 당사자를 소환하여 조사하면 으레 시치미를 잡아 떼면서 누명을 덮어 썼다고 항변했다.이같은 투서사건을 조사하느라 시일을 보내다보면 현감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그러는 사이에 현감이 무능하다거나 죄없는 아전들을 잡아들여 족치면서 뇌물을 요구한다는 투서가 서울로 보내졌다.결국 현감은 서울로 불려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겨갔다. 아전들의 이같은 행동은 자신들이 저지른 공금횡령 사실을 은폐시키기 위한 계획적인 짓이었다.아전들이 저지르는 공금횡령의 대표적인 사례는 군량미로 책정된 곡식인 향곡(餉穀)을 도둑질하는 것이었다.각 고을에서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대동미 중에서 일부는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는 여러 가지 용도에 대비하기 위해 지방관청에다 보관해 두고 있었는데,이 곡식을 아전들이 야금야금 도둑질하여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부임했을 때는 무려 6만여 휘(열 다섯 말이나 스무 말을 일컫는 수량의 단위)나 되었다.10말을 한 섬으로 치면 무려 9000섬이나 되는 엄청난 곡식이었다.아전들의 고질적인 횡령으로 국가와 지방관청은 늘 재정부족으로 허덕였다.선생은 특유의 직관과 지혜로서 아전들의 농간을 혁파하고 그들이 훔쳐 낸 공금을 모두 환수했다.그 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도 죄를 묻거나 궁지에 몰아 넣지 않고 깊이 뉘우치면서 기쁜 마음으로 죄를 갚도록 함으로써 안의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선생은 과오를 저지른 아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다양한 교훈과 모범을 보였다.선생의 정직함과 청빈함이 아전들에게 교훈이 되었다.앞서 간 수많은 현감들의 탐욕과 위선이 아전들을 공금횡령으로 밀어 넣은 것이라고 선생은 말했다.오늘날의 저 많은 국가 공직자들과 지도자들이 다시 살펴봐야 할 두렵고 또 두려운 역사적 교훈이자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기 위한 철학이다.이렇게 채워진 곡식을 두고 서울의 중앙관청 고관들로부터 나눠 갖자는 유혹이 있었다.어차피 없어도 좋은 것이므로 나눠갖자는 제의였다.또한 늘그막에 가난 때문에 지방 수령 노릇을 하니까 적당히 챙기면 가난은 면할 수 있으리라는 중앙의 벼슬아치들이 예사로 주고받는 말은 선생으로 하여금 더욱 청빈하게 만들었다.빈번한 흉년 때마다 굶주리는 백성들을 도울 때 선생이 한결같이 정성을 쏟은 것은 얻어 먹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또한 부득이 아랫사람에게 곤장을 쳐야 할 경우에는 곤장질이 끝난 후 반드시 사람을 보내 맞은 곳을 주물러 멍을 풀게 했다. ●죄 묻거나 궁지에 몰지않아 모두 감복 “고을 원 노릇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을 매로 다스리는 일만큼은 몹시 괴롭고 싫다.”고 했다. 선생은 지방관청 행정가가 가장 공력을 많이 들여야 할 것으로 몇 가지를 꼽아 실천했다.가난한 사람을 돕되 가난의 원인을 해결해 주는 것,상업과 농업의 중요성만큼 장사하고 농사 짓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 주는 것,농민들의 노동력을 능률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청나라에서 실시하는 여러 가지 농기계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것,지역민들이 자신들의 고장에 대한 긍지를 갖고 살도록 하기 위해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들을 꼽았다. 선생의 이같은 위업은 조선 후기 타락한 양반 관료들의 부패와 탐학의 만연으로 가려져 있었지만,오늘 다시 선생의 청렴과 결백한 행정가로서의 삶은 우리 시대를 향해 또 한 번 꾸짖는다.너는 왜 공무원이 되었느냐고. 선생은 부인과 함께 황해도 장단구 송서면 대현리에 묻히셨는데,지금 누가 그 무덤의 풀을 베고 술잔을 올리는지 알 길이 없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2)안의현감(安義縣監) 연암 박지원의 행정론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2)안의현감(安義縣監) 연암 박지원의 행정론

    경남 함양군 안의면 안의초등학교 교정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비석 하나가 서 있다.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에 관한 역사와 선생께서 활동하셨던 18세기 영조 정조시대의 조선 지성사와 사회사의 한 단면까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사적비(事蹟碑)다.위대한 문학가로서의 면모와 탁월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함께 느낄 수 있으며,특히 안의현감이라는 지방의 한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행정관 시절의 흥미로운 일화들은 정치와 권력의 남용으로 고통받는 이 시대를 향하여 무언의 꾸짖음을 던지고 있다. 오늘은 산 좋고 물 좋은 지리산 아래 함양 안의면의 오월 녹음을 주우며 그 푸르고 향그러운 색깔 속에 살아있는 한 지성의 인간과 세상을 향한 말씀을 들으려 길을 떠난다. 연암 박지원 선생을 두고 칭송하는 글귀는 매우 많다.‘그의 문장은 천마(天馬)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굴레를 씌우지 않았건만 자연스럽게도 법도에 다 들어맞는다.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문장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며,뒷 사람들이 배워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글과 ‘영국에 셰익스피어가,독일에 괴테가,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는 글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이같은 선생은 흔히 ‘양반전’‘허생전’ 등 부패한 사회상과 타락한 양반 사회를 풍자적 기법으로 통렬하게 비판한 소설가로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선생의 나이 44세 때 청나라 여행을 계기로 국내 보수파들의 극렬한 비난을 무릅쓰면서 쓴 ‘열하일기’는 당시 문단에 충격을 던진 놀라운 문체로서 선생의 글이 단순히 글 재주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삶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고 가기 위한 위대한 통찰력과 상상력이 결합된 신선함의 상징이었다.여기에서 선생은 행정가 혹은 정치가로서의 안목과 구체적 능력을 암시하기도 했다. ●나이 50에 임금분부로 마지못해 벼슬길 이렇듯 천하 제일가는 문장가로 널리 알려진 선생이었지만 한사코 과거시험을 거쳐 벼슬길에 나아가는 일은 극력 회피했다.주위의 권유가 하도 잦고 간곡하여 몇 차례 과거시험장에 나간 적이 있었다.그러나 답안지를 작성한 뒤에는 이름을 적지 않았고,글 대신 그림을 그려 놓거나 엉뚱한 시편들을 대신 적기도 했는데,이 때 선생이 지은 글은 곧잘 큰 유행이 되기도 했고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감탄과 아쉬움을 함께 자아내기도 했다.심지어 임금의 명령으로 과거시험장에 억지로 나간 적도 여러번 있었지만 모두 이름을 적지 않았다.벼슬이나 권세가 깊은 학문과 향기 짙은 문학세계를 해칠 수 있다는 선생의 청정한 지조,혼탁하고 광분한 지성사를 꾸짖어 바로잡을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세상에 나아가면 더욱 세상을 어지럽힐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직과 청빈을 집안의 가훈으로 이어받은 선생 또한 몹시 가난하게 살았다.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마치 독서하는 군자처럼 살았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떴는데,선생이 나이 50세 때 임금의 거듭된 분부를 차마 뿌리치지 못해 음관(蔭官)으로 벼슬길에 나간지 반 년도 못 된 때였다.아내를 여읜 지 얼마 안되어 다시 맡며느리의 상을 당한 뒤로는 끼니 챙겨 줄 사람도 없이 19년여를 혼자 살았다.그 고적하고 불편한 생애의 후반에 이르러서야 선생의 학문과 행정가로서의 세계가 더욱 깊고 넓게 완성될 수 있었다. 선생이 참으로 엉뚱하게도 경상도 안의현감이라는 지방 목민관으로 부임한 것은 1792년 1월이었다.1796년 봄에 서울로 돌아갈 때까지 5년 동안 안의현감을 지내면서 남긴 업적은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직자와 정치가들에게 변함없는 교훈이자 반드시 닮아야 할 목표로 남아 있다.53세에 안의현감으로 부임한 선생 앞에 맨 먼저 던져진 과제는 아전들의 오래된 폐단이었는데,공금횡령과 현감을 속이고 우롱하는 행동이었다.다른 하나는 공금횡령을 부추기는 주변의 권유와 부정부패를 일삼아야만 출세할 수 있다는 공공연한 현실이었다. ●군량미 향곡 9000섬 야금야금 도둑질 지방관청의 실무 담당자들인 아전은 모두 그 지방 출신자들인데다 오래도록 아전으로 지낸 터여서 관내의 모든 일을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거기에 비해 서울에서 임명되어 오는 현감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었다.따라서 현감은 짧은 임기 동안에 안의지역에 관한 일들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떠나는 일이 흔했다.이같은 사정을 알고 있는 아전들이 고의적으로 현감의 임기를 되도록 짧게 만들기 위한 수작을 부리는 폐습이 뿌리 깊었다.부임하는 현감으로 하여금 안의 지역의 행정 업무에는 아예 손도 못대게 하기 위해 교활한 함정을 파서 빠뜨렸다.아전 상호간의 비리를 적은 투서를 익명으로 현감에게 보내는 것이었다.투서자가 익명이기 때문에 투서에 적힌 당사자를 소환하여 조사하면 으레 시치미를 잡아 떼면서 누명을 덮어 썼다고 항변했다.이같은 투서사건을 조사하느라 시일을 보내다보면 현감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그러는 사이에 현감이 무능하다거나 죄없는 아전들을 잡아들여 족치면서 뇌물을 요구한다는 투서가 서울로 보내졌다.결국 현감은 서울로 불려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겨갔다. 아전들의 이같은 행동은 자신들이 저지른 공금횡령 사실을 은폐시키기 위한 계획적인 짓이었다.아전들이 저지르는 공금횡령의 대표적인 사례는 군량미로 책정된 곡식인 향곡(餉穀)을 도둑질하는 것이었다.각 고을에서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대동미 중에서 일부는 서울로 올려보내고 나머지는 여러 가지 용도에 대비하기 위해 지방관청에다 보관해 두고 있었는데,이 곡식을 아전들이 야금야금 도둑질하여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부임했을 때는 무려 6만여 휘(열 다섯 말이나 스무 말을 일컫는 수량의 단위)나 되었다.10말을 한 섬으로 치면 무려 9000섬이나 되는 엄청난 곡식이었다.아전들의 고질적인 횡령으로 국가와 지방관청은 늘 재정부족으로 허덕였다.선생은 특유의 직관과 지혜로서 아전들의 농간을 혁파하고 그들이 훔쳐 낸 공금을 모두 환수했다.그 과정에서 어느 한 사람도 죄를 묻거나 궁지에 몰아 넣지 않고 깊이 뉘우치면서 기쁜 마음으로 죄를 갚도록 함으로써 안의 사람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선생은 과오를 저지른 아전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도록 다양한 교훈과 모범을 보였다.선생의 정직함과 청빈함이 아전들에게 교훈이 되었다.앞서 간 수많은 현감들의 탐욕과 위선이 아전들을 공금횡령으로 밀어 넣은 것이라고 선생은 말했다.오늘날의 저 많은 국가 공직자들과 지도자들이 다시 살펴봐야 할 두렵고 또 두려운 역사적 교훈이자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기 위한 철학이다.이렇게 채워진 곡식을 두고 서울의 중앙관청 고관들로부터 나눠 갖자는 유혹이 있었다.어차피 없어도 좋은 것이므로 나눠갖자는 제의였다.또한 늘그막에 가난 때문에 지방 수령 노릇을 하니까 적당히 챙기면 가난은 면할 수 있으리라는 중앙의 벼슬아치들이 예사로 주고받는 말은 선생으로 하여금 더욱 청빈하게 만들었다.빈번한 흉년 때마다 굶주리는 백성들을 도울 때 선생이 한결같이 정성을 쏟은 것은 얻어 먹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또한 부득이 아랫사람에게 곤장을 쳐야 할 경우에는 곤장질이 끝난 후 반드시 사람을 보내 맞은 곳을 주물러 멍을 풀게 했다. ●죄 묻거나 궁지에 몰지않아 모두 감복 “고을 원 노릇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을 매로 다스리는 일만큼은 몹시 괴롭고 싫다.”고 했다. 선생은 지방관청 행정가가 가장 공력을 많이 들여야 할 것으로 몇 가지를 꼽아 실천했다.가난한 사람을 돕되 가난의 원인을 해결해 주는 것,상업과 농업의 중요성만큼 장사하고 농사 짓는 사람의 인권과 명예를 존중해 주는 것,농민들의 노동력을 능률적으로 확대시키기 위해 청나라에서 실시하는 여러 가지 농기계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것,지역민들이 자신들의 고장에 대한 긍지를 갖고 살도록 하기 위해 지역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들을 꼽았다. 선생의 이같은 위업은 조선 후기 타락한 양반 관료들의 부패와 탐학의 만연으로 가려져 있었지만,오늘 다시 선생의 청렴과 결백한 행정가로서의 삶은 우리 시대를 향해 또 한 번 꾸짖는다.너는 왜 공무원이 되었느냐고. 선생은 부인과 함께 황해도 장단구 송서면 대현리에 묻히셨는데,지금 누가 그 무덤의 풀을 베고 술잔을 올리는지 알 길이 없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9)한국의 찻그릇 - 우동진의 백자 찻사발

    백자는 청자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그릇이자 조선시대의 유교이념이 투영된 세계적 미술품이다.중국의 당·송 시대에서 비롯된 백자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고려 중엽 이후부터였다.불교사상을 상징한 청자시대의 화려하고 우아한 멋이 백자의 단아함과 고결함을 껴안게 되면서 고려시대라는 정신사를 아름답게 장식했다.주로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귀국하는 길에 선물용으로 사오거나 중국 정부의 예물로 들여오기 시작하다가 고려백자라는 이름의 흉내낸 그릇이 제작된 적도 있었지만,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게 된 것은 조선시대 들어서부터였다. 특히 순백자 예찬론자였던 세종대왕의 고급 문화정책에 힘입어 경기도 여주,이천,광주에 관요(官窯)가 세워졌고,조선의 왕실,귀족,양반 관료들만의 전유물인 고급 백자가 엄격한 체제와 관리 아래서 생산되었다.조선시대 민중들은 이같은 백자를 사용할 수 없었다.그릇은 곧 신분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백자시대였지만 정작 차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찻사발은 그리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다.차문화가 불교문화의 핵심인 헌공다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불교사상을 배척하는 것을 조선의 정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지배자들이 차문화를 숭상하기 어려웠던 탓이다.차 대신 술이 지배한 시대가 조선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조선시대는 차 대신 술이 지배 그런 중에도 아주 적은 양의 찻그릇들이 제작되어 사용된 사실은 있었다.찻사발도 마찬가지였다.백자 찻사발은 백자 특유의 차갑고 엄격한 선과 색깔을 아름다움의 핵심으로 삼았다.날카롭다고 볼 수 있는 찻사발의 전이 지닌 얇고 경직된 선,단조롭고 정형화된 굽,허리와 중배에서 전으로 이어지는 차가운 선,조선 선비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절개와 무욕의 흰 색깔로 된 찻사발은 매우 적은 양만이 전해지고 있다.백자는 민중들과의 신분 차별을 뜻하기도 해서 역사적인 의미로나 미학적 접근에서 난해하고 제한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현대사회에 와서도 백자를 빚는 이들이나 사용하는 이들의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경남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 매곡요(梅谷窯) 주인 우동진(46)씨가 최근 발표한 백자를 주제로 한 찻사발의 재해석은 백자에 관한 우리의 통념을 크게 변화시켜 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그의 작업장으로 찾아가 작품 세계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문:기본적으로는 백자의 미학적 토대를 유지하면서도 민중적 정서와 체취를 느끼도록 시도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떻게 이같은 발상이 가능했을까요? 우동진:찻사발에 대한 관심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특히 최근 들어 도자작가나 차인들에게 크게 회자되고 있는 정호(井戶) 찻사발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백자에다 정호를 응용하고 싶어지더군요. 문:언제부터 도자기를 빚게 되었지요? 우동진:27세 때부터였습니다.처음엔 산어도자에 관심이 있었지요.타일,전기애자를 생산하는 일을 해 보고 싶었는데 이 분야는 기술과 자본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더군요.흙의 문제도 있었고요.생활도자기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흙을 만지게 되었습니다.벌써 20년째가 됩니다. 문:가마의 불은 어떤 재료를 주로 사용합니까? 우동진:석유가마,가스가마를 거쳐서 현재의 장작가마로 밟아왔습니다.이 가마는 스승이신 천한봉 선생께서 터를 잡고 지어주신 것입니다.가마가 곧 저의 스승인 셈입니다. 문:대학 학부에서는 도자공예를 공부하고,대학원에서는 도예디자인과 광물학 두 과정을 공부했거나 현재 공부하고 있는데,학문이 도자 실기에 도움이 됩니까? ●흙의 성질 알고 그릇 만들면 희열 우동진:굳이 찻그릇을 만드는데 석사 박사 학위가 필요한 조건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요.다만 제가 광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흙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도자기는 한마디로 흙의 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곳곳에 도자소가 산재했다는 점,선조들이 흙의 분석에 철저했다는 점 등은 우리나라 지층 구조가 다양했기 때문이라 봅니다.흙의 맛과 멋을 제대로 알고,흙의 성질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알고 그릇을 만들면 훨씬 자유롭고 깊은 정신적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흙의 성격은 복합적인 화학적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구성 요소마다 못된 놈 좋은 놈들의 상호작용이 존재하지요.그 작용이 조화인데,이를 잘 이해해야만 흙의 질서를 배울 수 있거든요.따라서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이 그냥 그릇을 만들어 돈을 받고 팔아서 먹고 사는 경우와 먹고는 살되 흙의 질서를 배워 나도 흙이 되려고 하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제딴에는 후자에 속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문:백자 찻사발 세계를 들여다보면 박지원 선생의 양반전을 떠올리게 됩니다.조선의 양반제도가 지닌 모순과 폐해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꾸짖는 양반전의 통쾌함이 우 선생의 백자 찻사발에서도 감지된다는 말입니다.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이 무논에서 쟁기질하는 것 같은 묘한 맛과 함께,조선시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백자를 민중들의 정서에 맞도록 재구성한 것은 확실히 놀라운 실험정신의 소산으로 보입니다.그런 것을 의식했을까요? ●양반제 폐해 신랄하게 풍자해 통쾌 우동진:꼭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다만 우리 시대의 삶과 정신을 담을 수 있는 백자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줄곧 해왔습니다.임진왜란으로 한국 도자역사 500년을 일본에 빼앗겼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무궁합니다.미래의 세대가 21세기 한국의 도자 역사를 물을 때 대답해 줄 최소한의 몇 마디라도 준비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도자기 만드는 이들이 실험정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재료도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만 저는 그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상업적인 도자 제작 판매에 매달려서 남의 우수한 창작품을 베끼기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그렇지 않은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다 도전정신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문:우 선생께서는 평소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요. 우동진:남 욕하고 허물을 들추지 말자는 것이지요.작가로서 이름 얻는 수단만 좇을 게 아니라 내가 할 몫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최선을 다하다 흙이 되자는 것입니다. 문:우리나라 찻사발의 문제점이 뭐라고 보십니까? 우동진:찻사발 만드는 작가들이 먹고 사는 일에 너무 급급하다 보니 실험정신과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실험정신은 도자 교육과정에서 강조되어야 옳은데 이를 소홀히 하면 미래로 향하는 작가의 발목이 현실 안주라는 마귀에게 붙들리게 됩니다.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지요.부족함을 드러낼 줄 아는 것이 실험정신이고,아름다움 아니겠습니까?˝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9)한국의 찻그릇 - 우동진의 백자 찻사발

    백자는 청자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그릇이자 조선시대의 유교이념이 투영된 세계적 미술품이다.중국의 당·송 시대에서 비롯된 백자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고려 중엽 이후부터였다.불교사상을 상징한 청자시대의 화려하고 우아한 멋이 백자의 단아함과 고결함을 껴안게 되면서 고려시대라는 정신사를 아름답게 장식했다.주로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귀국하는 길에 선물용으로 사오거나 중국 정부의 예물로 들여오기 시작하다가 고려백자라는 이름의 흉내낸 그릇이 제작된 적도 있었지만,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게 된 것은 조선시대 들어서부터였다. 특히 순백자 예찬론자였던 세종대왕의 고급 문화정책에 힘입어 경기도 여주,이천,광주에 관요(官窯)가 세워졌고,조선의 왕실,귀족,양반 관료들만의 전유물인 고급 백자가 엄격한 체제와 관리 아래서 생산되었다.조선시대 민중들은 이같은 백자를 사용할 수 없었다.그릇은 곧 신분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백자시대였지만 정작 차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찻사발은 그리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다.차문화가 불교문화의 핵심인 헌공다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불교사상을 배척하는 것을 조선의 정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지배자들이 차문화를 숭상하기 어려웠던 탓이다.차 대신 술이 지배한 시대가 조선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조선시대는 차 대신 술이 지배 그런 중에도 아주 적은 양의 찻그릇들이 제작되어 사용된 사실은 있었다.찻사발도 마찬가지였다.백자 찻사발은 백자 특유의 차갑고 엄격한 선과 색깔을 아름다움의 핵심으로 삼았다.날카롭다고 볼 수 있는 찻사발의 전이 지닌 얇고 경직된 선,단조롭고 정형화된 굽,허리와 중배에서 전으로 이어지는 차가운 선,조선 선비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절개와 무욕의 흰 색깔로 된 찻사발은 매우 적은 양만이 전해지고 있다.백자는 민중들과의 신분 차별을 뜻하기도 해서 역사적인 의미로나 미학적 접근에서 난해하고 제한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현대사회에 와서도 백자를 빚는 이들이나 사용하는 이들의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경남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 매곡요(梅谷窯) 주인 우동진(46)씨가 최근 발표한 백자를 주제로 한 찻사발의 재해석은 백자에 관한 우리의 통념을 크게 변화시켜 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그의 작업장으로 찾아가 작품 세계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문:기본적으로는 백자의 미학적 토대를 유지하면서도 민중적 정서와 체취를 느끼도록 시도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떻게 이같은 발상이 가능했을까요? 우동진:찻사발에 대한 관심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특히 최근 들어 도자작가나 차인들에게 크게 회자되고 있는 정호(井戶) 찻사발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백자에다 정호를 응용하고 싶어지더군요. 문:언제부터 도자기를 빚게 되었지요? 우동진:27세 때부터였습니다.처음엔 산어도자에 관심이 있었지요.타일,전기애자를 생산하는 일을 해 보고 싶었는데 이 분야는 기술과 자본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더군요.흙의 문제도 있었고요.생활도자기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흙을 만지게 되었습니다.벌써 20년째가 됩니다. 문:가마의 불은 어떤 재료를 주로 사용합니까? 우동진:석유가마,가스가마를 거쳐서 현재의 장작가마로 밟아왔습니다.이 가마는 스승이신 천한봉 선생께서 터를 잡고 지어주신 것입니다.가마가 곧 저의 스승인 셈입니다. 문:대학 학부에서는 도자공예를 공부하고,대학원에서는 도예디자인과 광물학 두 과정을 공부했거나 현재 공부하고 있는데,학문이 도자 실기에 도움이 됩니까? ●흙의 성질 알고 그릇 만들면 희열 우동진:굳이 찻그릇을 만드는데 석사 박사 학위가 필요한 조건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요.다만 제가 광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흙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도자기는 한마디로 흙의 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곳곳에 도자소가 산재했다는 점,선조들이 흙의 분석에 철저했다는 점 등은 우리나라 지층 구조가 다양했기 때문이라 봅니다.흙의 맛과 멋을 제대로 알고,흙의 성질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알고 그릇을 만들면 훨씬 자유롭고 깊은 정신적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흙의 성격은 복합적인 화학적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구성 요소마다 못된 놈 좋은 놈들의 상호작용이 존재하지요.그 작용이 조화인데,이를 잘 이해해야만 흙의 질서를 배울 수 있거든요.따라서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이 그냥 그릇을 만들어 돈을 받고 팔아서 먹고 사는 경우와 먹고는 살되 흙의 질서를 배워 나도 흙이 되려고 하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제딴에는 후자에 속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문:백자 찻사발 세계를 들여다보면 박지원 선생의 양반전을 떠올리게 됩니다.조선의 양반제도가 지닌 모순과 폐해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꾸짖는 양반전의 통쾌함이 우 선생의 백자 찻사발에서도 감지된다는 말입니다.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이 무논에서 쟁기질하는 것 같은 묘한 맛과 함께,조선시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백자를 민중들의 정서에 맞도록 재구성한 것은 확실히 놀라운 실험정신의 소산으로 보입니다.그런 것을 의식했을까요? ●양반제 폐해 신랄하게 풍자해 통쾌 우동진:꼭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다만 우리 시대의 삶과 정신을 담을 수 있는 백자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줄곧 해왔습니다.임진왜란으로 한국 도자역사 500년을 일본에 빼앗겼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무궁합니다.미래의 세대가 21세기 한국의 도자 역사를 물을 때 대답해 줄 최소한의 몇 마디라도 준비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도자기 만드는 이들이 실험정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재료도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만 저는 그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상업적인 도자 제작 판매에 매달려서 남의 우수한 창작품을 베끼기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그렇지 않은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다 도전정신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문:우 선생께서는 평소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요. 우동진:남 욕하고 허물을 들추지 말자는 것이지요.작가로서 이름 얻는 수단만 좇을 게 아니라 내가 할 몫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최선을 다하다 흙이 되자는 것입니다. 문:우리나라 찻사발의 문제점이 뭐라고 보십니까? 우동진:찻사발 만드는 작가들이 먹고 사는 일에 너무 급급하다 보니 실험정신과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실험정신은 도자 교육과정에서 강조되어야 옳은데 이를 소홀히 하면 미래로 향하는 작가의 발목이 현실 안주라는 마귀에게 붙들리게 됩니다.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지요.부족함을 드러낼 줄 아는 것이 실험정신이고,아름다움 아니겠습니까?
  • ‘安風자금’ 진실게임 새 국면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5일 한나라당의 ‘안풍(安風))자금’에 대해 안기부 예산 유용이라고 시인함에 따라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최근 검찰이 한나라당사에 대한 가압류 승인심사를 요청해 놓은 상황에서 안풍자금의 실체를 둘러싼 ‘진실게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당장 한나라당의 반발 강도가 주목된다. 진실게임은 강삼재 의원이 지난 2월 항소심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난 1995년과 1996년 청와대 집무실에서 받았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촉발됐다. 그러나 ‘공범’ 관계인 김기섭 전 운영차장은 강 의원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그는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직접 만나 자금을 전달했으며,출처는 안기부 예산”이라고 밝혔다.김영삼 전 대통령도 최근 재판부에 보낸 사유서를 통해 “돈을 준 일이 없다.”고 강 의원 주장을 부인했다. 그런 가운데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강 의원이 CD(양도성 예금증서)가 출·입금된 장부를 토대로 문제의 자금이 정치자금,대선 잉여금이라고 주장하지만,이 돈은 분명히 안기부 자금”이라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안기부 예산유용’이라고 시인한 이유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낳고 있다. 한나라당사 가압류를 통해 얻게 되는 실익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한나라당사 평가액은 400억∼450억원선.그러나 건물 건설대금 미납액으로 50억원,한나라당 당직자 퇴직금 비용으로 230억원 등을 빼고나면 국고에 환수할 수 있는 금액은 70억원 안팎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관계자는 이런 점을 의식해 “지난해 10월 말부터 법무부로부터 한나라당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하라는 요청을 4차례나 받았다.”면서 “최근 한나라당이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신탁했고,당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가압류 승인절차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安風자금’ 진실게임 새 국면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5일 한나라당의 ‘안풍(安風))자금’에 대해 안기부 예산 유용이라고 시인함에 따라 실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최근 검찰이 한나라당사에 대한 가압류 승인심사를 요청해 놓은 상황에서 안풍자금의 실체를 둘러싼 ‘진실게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당장 한나라당의 반발 강도가 주목된다. 진실게임은 강삼재 의원이 지난 2월 항소심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난 1995년과 1996년 청와대 집무실에서 받았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촉발됐다. 그러나 ‘공범’ 관계인 김기섭 전 운영차장은 강 의원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그는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직접 만나 자금을 전달했으며,출처는 안기부 예산”이라고 밝혔다.김영삼 전 대통령도 최근 재판부에 보낸 사유서를 통해 “돈을 준 일이 없다.”고 강 의원 주장을 부인했다. 그런 가운데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강 의원이 CD(양도성 예금증서)가 출·입금된 장부를 토대로 문제의 자금이 정치자금,대선 잉여금이라고 주장하지만,이 돈은 분명히 안기부 자금”이라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이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안기부 예산유용’이라고 시인한 이유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낳고 있다. 한나라당사 가압류를 통해 얻게 되는 실익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한나라당사 평가액은 400억∼450억원선.그러나 건물 건설대금 미납액으로 50억원,한나라당 당직자 퇴직금 비용으로 230억원 등을 빼고나면 국고에 환수할 수 있는 금액은 70억원 안팎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위관계자는 이런 점을 의식해 “지난해 10월 말부터 법무부로부터 한나라당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하라는 요청을 4차례나 받았다.”면서 “최근 한나라당이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신탁했고,당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가압류 승인절차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安風자금은 안기부 비자금”

    국가정보원 고위관계자는 5일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에 유입된 1000억원대의 자금은 안기부가 불용액과 이자를 모아 조성한 비자금이었다.”고 밝혀 ‘안풍(安風)자금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강삼재 의원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이같은 주장은 안풍자금의 실체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과거 안기부는 1년 예산을 한번에 받아 한국은행에 예치하라는 규정을 무시하고,시중은행에 적금으로 예치하거나,수익률이 높은 CD(양도성 예금증서)를 구매해 이자소득을 추구하는 식으로 관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안기부는 그간 집행하고 남은 예산을 반납하지 않고,자체적으로 영수증 처리해 왔다.”고 말해 안기부의 예산 유용을 통한 불법자금 조성 부분도 시인했다.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과거 안기부 자금의 운영방식과 비자금 조성 경위 등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최근까지 국정원이 안풍자금의 실체와 관련,“재판이 진행 중인데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침묵해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강 의원이 안기부 차명계좌 잔고내역서에 나타난 운영자금의 대거유입과 빈번한 CD구입 등을 근거로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과거 안기부 예산의 운영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이어 “안풍자금은 김기섭 전 운영차장이 안기부가 10년 가까이 남은 예산과 이자소득 등으로 조성한 1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주인없는 돈’으로 판단,신한국당에 제공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안풍자금이 안기부 자금임을 분명하게 하는 과정에서 남은 예산을 반납하지 않거나,이자소득을 추구하는 등 조직의 치부가 드러난 것에 대해서는 “과거의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그는 “현재로서는 국고 유용에 대해 한나라당과 강삼재 의원,김 전 차장으로부터 환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유용된 국고를 환수조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이자 혈세낭비”라고 주장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安風자금은 안기부 비자금”

    국가정보원 고위관계자는 5일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에 유입된 1000억원대의 자금은 안기부가 불용액과 이자를 모아 조성한 비자금이었다.”고 밝혀 ‘안풍(安風)자금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는 강삼재 의원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이같은 주장은 안풍자금의 실체에 대한 논란을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과거 안기부는 1년 예산을 한번에 받아 한국은행에 예치하라는 규정을 무시하고,시중은행에 적금으로 예치하거나,수익률이 높은 CD(양도성 예금증서)를 구매해 이자소득을 추구하는 식으로 관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안기부는 그간 집행하고 남은 예산을 반납하지 않고,자체적으로 영수증 처리해 왔다.”고 말해 안기부의 예산 유용을 통한 불법자금 조성 부분도 시인했다.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과거 안기부 자금의 운영방식과 비자금 조성 경위 등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최근까지 국정원이 안풍자금의 실체와 관련,“재판이 진행 중인데 답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침묵해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강 의원이 안기부 차명계좌 잔고내역서에 나타난 운영자금의 대거유입과 빈번한 CD구입 등을 근거로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과거 안기부 예산의 운영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이어 “안풍자금은 김기섭 전 운영차장이 안기부가 10년 가까이 남은 예산과 이자소득 등으로 조성한 1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주인없는 돈’으로 판단,신한국당에 제공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안풍자금이 안기부 자금임을 분명하게 하는 과정에서 남은 예산을 반납하지 않거나,이자소득을 추구하는 등 조직의 치부가 드러난 것에 대해서는 “과거의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그는 “현재로서는 국고 유용에 대해 한나라당과 강삼재 의원,김 전 차장으로부터 환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유용된 국고를 환수조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이자 혈세낭비”라고 주장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일요영화]

    ●뉴욕의 왕(EBS 오후 2시)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뒤 고향 런던으로 돌아온 채플린이 1957년 만든 마지막 작품.매카시즘으로 고초를 겪었던 그가 쓴소리와 풍자로 매카시즘을 꼬집었지만 커다란 호응을 얻지 못했다.당시 런던 시사회에서 반응이 신통치 않자 채플린은 “이 영화는 정치적이지 않다.내 영화중 가장 반체제적인 영화다.”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유럽의 작은 나라 에스트로비아에서 민중의 봉기로 퇴위 당한 샤도프 왕은 왕실의 보물과 재산을 들고 뉴욕으로 도망쳐 온다.그러나 수상이 그의 돈을 모두 들고 도망치는 바람에 빈털터리 신세가 된다.탤런트 앤은 샤도프 왕을 TV에 출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그녀에게 반한 왕은 앤과 함께 파티장에 간다.앤은 왕의 모습을 몰래 찍어 방송에 내보내고 샤도프 왕은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된다.어느날,왕은 우연히 호텔 앞에서 한 천재소년을 만난다.그는 소년의 부모가 억울하게 공산주의자로 몰린 사정을 듣게 된다.그러던 중 소년이 그의 방에서 발각되면서 샤도프 왕 또한 공산주의자로 몰리게 되는데…. ●에린 브로코비치(KBS2 오후 11시10분) 수질 오염을 초래한 대기업과 법정 소송을 벌였던 실존 인물 에린 브로코비치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에린 브로코비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줄리아 로버츠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에린 브로코비치 본인이 웨이트리스로 특별 출연했다. 이혼녀 에린은 직장도 없이 아이 셋을 어렵게 키우는 무일푼 여성.자신의 교통사고를 담당한 변호사 에드를 졸라 에린은 그의 법률회사에 취직한다.서류 정리 도중,대기업 PG&E사의 오염물질 방출로 힝클리 마을 주민들이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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