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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청원 의식했나…中 혐오 부추기는 보수정치

    국민청원 의식했나…中 혐오 부추기는 보수정치

    보수 야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한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며 ‘중국인 입국 금지’, ‘한국 체류 중국 관광객 본국 송환’ 등 초강경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단 이 과정에서 ‘중국 포비아’(공포증)를 조장하거나 중국과의 외교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발언들이 함께 담기며 보수 정당이 이번 사태를 지나치게 정치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29일 “지금 청와대가 ‘우한 폐렴’ 명칭이나 고치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며 “중국인 입국 금지 청원자가 삽시간에 50만 명이나 돌파한 사실을 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고질적인 중국 눈치 보기에 국민의 불신은 더 깊어진다”고 말했다. 유기준 의원도 “현대판 흑사병이라고 할 수 있는 우한 폐렴 환자가 전 세계에서 4000여 명이 확인됐는데 대통령은 뒷북 치듯 우한 지역 입국자 전수조사를 지시했다”며 “중국 눈치 보기에 급급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국제적 규정과 외교적 파급 관계 등을 모두 따져야 할 전면 입국 금지 문제를 중국에 대한 ‘눈치보기’라고 매도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 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발병국 출신의 입국을 제한한 경우는 없다. 인도적 사안인 의료지원을 마치 ‘퍼주기’로 규정한 발언도 나왔다. 조경태 최고위원은 “정부가 중국에 마스크 200만개와 의료지원을 하겠다는데 중국은 세계 G2(주요 2개국)를 자처하는 국가”라며 “자국민 보호를 해야할 정부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라고 지적했다. 정미경 최고위원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멀쩡한 사람이 그냥 쓰러지고, 우한 시내의 병원에 사람이 바글바글 앉아있다”며 확인되지 않은 ‘괴담’을 재생산하기도 했다. 또 정 최고위원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중국에 대해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했는데 문재인 정권 주사파들은 피가 진한가 이념이 진한가”라며 “북한도 국경을 폐쇄한다는데 공산당도 하지 않는 사대주의를 멈추라”고 덧붙였다. 야당이 재난 상황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대응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특정 국가 국민을 ‘잠재적 감염자’로 낙인 찍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확산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또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9일 현재까지 58만명이 참여한 가운데 정치권이 재난 이슈를 총선 표심 잡기에 활용하는 듯한 것처럼 비춰지는 점도 문제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보수 정당이 매사를 정권 심판론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바람몰이도 어느정도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며 “공당이라면 국민 정서에 편승해 불안감을 고조시킬 게 아니라 ‘우리가 집권 세력이라면 정부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도 “국민이 불안을 야당이 대신 전할 수는 있지만 (입국 금지 등) 판단은 국제 관계 등까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산림청·UNCCD, 평화산림이니셔티브 추진 협약

    산림청·UNCCD, 평화산림이니셔티브 추진 협약

    한국과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이 ‘평화산림이니셔티브’(PFI) 추진에 협력키로 했다.박종호 산림청장은 28일(현지 시간) 독일 본에서 이브라힘 띠 아우 UNCCD 사무총장과 PFI의 본격적인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PFI는 이웃 국가 또는 다른 민족 간 갈등이 있었던 황폐지에서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동 산림복원 사업을 통해 협력과 평화를 이뤄내기 위한 정책 프로그램이다. 분쟁과 갈등 상황이 지속되면 주민들은 토지 황폐화와 식량 부족, 자연재해에 취약한 상황에 몰려 고통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 2018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20%(18억명)가 분쟁 영향, 취약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청은 지난해 9월 UNCCD, 외교부와 함께 UNCCD 제14차 총회에서 PFI를 제안한 결과 비정치적이고 주민 삶·환경 개선, 상생 번영 등의 가치에 대한 지지를 받아 당사국 총회 결정문 등에 반영했다. 특히 PFI는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한 북한과의 산림 협력 창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높다. 양해각서는 당사국 총회 결정을 이행하고 실천하기 위해 산림청과 UNCCD 간 협력의 틀을 정하고 국제사회가 ‘산림협력을 통한 평화’를 실행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박종호 산림청장은 “양해각서 체결은 PFI를 글로벌 이니셔티브로 이행하기 위한 협력의 첫 걸음”이라며 “주민이 참여하는 산림복원을 통해 협력과 상생 번영, 평화를 끌어낼 중요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前 경남지사 3인, PK서 대권 노리나

    前 경남지사 3인, PK서 대권 노리나

    홍준표 “밀양에서 PK 수비대장 할 것” 김태호, 고향 거창 지역서 예비후보 등록 김두관, 문재인 사저 양산을 출마 예고 경남지사 출신 3인방이 21대 총선에서 PK(부산·경남) 출마를 나란히 공식화하면서 선거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주인공은 김태호(32·33대)·홍준표(34대)·김두관(35·36대) 전 지사로 모두 대선주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홍준표(66) 전 지사는 2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2022년 정권 교체에 유의미한 지역 및 내가 정치를 마지막으로 정리할 곳을 지역구로 선택하기로 하고 20년 험지 정치를 떠나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고향으로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2월 3일 밀양 삼문동으로 이사를 한다. 당 공천관리위원회를 설득해 흔들리는 스윙보터 PK 지역 40석을 방어할 수비대장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향인 창녕군이 속해 있는 선거구(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를 원하고 있다. 서울에서 15·16·17·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지난 대선 때 자유한국당 후보로 나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했다.김태호(58) 전 지사는 고향인 거창군이 속한 지역구(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에 일찌감치 예비후보 등록을 한 뒤 지역을 훑고 있다. 경남도의원·거창군수·도지사를 거쳐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에 지명됐다가 청문회에서 낙마한 뒤 경남 김해을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후보자 선출 경선에 참여한 바 있다. 김태호·홍준표 전 지사는 고향인 선거구에서 출마한다면 승리가 확실시된다. 두 곳 모두 보수 성향이 강한 곳으로 두 후보의 출마설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도 없다. 다만 당에서 ‘험지 출마’를 압박하고 있어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한국당 출신 경남지사로 김태호·홍준표 전 지사가 PK 출마를 노린다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두관(61) 전 지사를 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을에 투입하기로 했다. 양산을은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장담할 수 없는 접전지역으로 김 전 지사의 출마 소식을 썩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김 전 지사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양산을 출마를 공식화한다. 최근 SNS에서는 “저는 당의 요청과 결정에 따라 지역구를 옮기게 됐다는 정말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고민이 컸음을 비쳤다. 고향인 남해에서 이장을 거쳐 남해군수를 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으며, 경남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2년 만에 지사직을 그만두고 2012년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신종코로나 대책 질타 한국당 ‘마스크 회의’…“뒷북대응”

    신종코로나 대책 질타 한국당 ‘마스크 회의’…“뒷북대응”

    김승희 “마스크 쓰고 손 닦아달라” 당부신상진 “지방자치단체 아직 대비 못해”정치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에 따라 방역대책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28일 국회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책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고 정부 대응을 집중 질타했다. 의사 출신인 신상진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TF에는 역시 의사인 박인숙 의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출신 김승희 의원, 국군간호사관학교장 출신 윤종필 의원, 약사 출신 김순례 최고위원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회의에 앞서 각자 자리에 놓인 마스크를 착용하고 알코올 성분 손 세정제를 사용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김승희 의원은 “감염 예방에 마스크, 손 닦기가 중요하다”며 “국민 여러분도 저희처럼 마스크를 쓰고 손을 닦아달라”고 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마스크를 낀 채로 한 모두 발언에서 “콘트롤타워가 돼야 할 청와대가 수수방관하다가 뒷북 대응을 하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은 우한지역 입국자만 전수조사할 게 아니라, 제2의 메르스 사태가 되지 않도록 초기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후 마스크를 벗은 채로 진행된 회의에서는 정부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신상진 위원장은 “평택의 4번째 확진 환자의 경우 동네 의원에서 컴퓨터에 뜨는 환자 신상명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보건소 신고에도 3일이 지체됐다”며 “지방자치단체가 아직 대비를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김순례 최고위원은 “안구, 각막을 통해서도 전염이 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에 검역, 방어가 중요하다”면서 “국립의료원의 이동식 병원을 공항으로 시급히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무성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검역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고 대책 마련도 ‘허둥지둥 일색’”이라며 “대통령의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말라“는 엉뚱한 발언이 초기 대응 실패를 불러왔다. 이러한 안이한 자세가 더욱 걱정”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자신이 메르스 사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대표로 전국을 다니며 대응을 지원했다며 “검역 인력이 부족하다면 당장 경찰과 군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수 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정부의 무능과 안이한 태도가 빚은 인재”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정부의 손에 달린 지금만큼은 ‘늑장 대응보다는 과잉대응이 낫다’는 박원순 서울시장 말이 백번 지당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당은 공항 검역 현장 등을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현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현장을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시론] 청년에게 3000만원보다 기본소득 도입을/금민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이사·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시론] 청년에게 3000만원보다 기본소득 도입을/금민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이사·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

    정의당이 ‘청년기초자산제’를 4·15 총선 공약 1호로 내놓았다. 만 20세 청년 모두에게 3000만원, 아동양육시설을 퇴소한 청년에게는 5000만원을 일회적으로 지급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일정 금액 이상의 상속증여를 받은 청년에게는 클로백(Clawback) 제도를 통해 조세로 환수한다는 것과 학자금, 취업준비금, 주거비용, 창업비용의 네 종류로 용도를 제한해 청년기초자산을 담보로 잡거나 차압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완책으로 덧붙이고 있다. 원칙적으로 상속세를 재원으로 하며 부족분은 부동산 관련 조세로 충당한다고 한다. 주요 내용은 기초자산제도의 본령을 표현하는 반면에 보완책은 기초자산제도에 대해 그간 제기된 비판을 담아내려는 시도로 보인다.용처의 제한, 양도 및 담보대출의 금지는 현대적인 기초자산제도 옹호자들과 달리 정의당 공약의 특색이라고 볼 수 있다. 기초자산제에 대한 비판이 ‘의지의 박약함’에 의한 탕진 가능성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종의 미시적 보완책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클로백 제도는 부자에게도 기본소득을 주어야 하는가라는 해묵은 비판을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클로백 제도로 인해 무조건성과 보편성을 충족하지 못해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기초자산 배당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차라리 상속증여세와 개인소득세에 대한 과세를 제대로 하고 필요하다면 기초자산배당금을 포함한 상속액 전체를 과세소득화하는 것이 옳다. 사실 정의당의 ‘청년기초자산제’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아이디어이며 21세기에도 여러 차례 정책화됐던 것으로 그 자체로서는 새롭지 않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18세기 말 토머스 페인은 상속세를 재원으로 21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게 일회적으로 15파운드를 지급하자는 계획을 내놓았었다. 현대에도 이 아이디어는 애커먼과 앨스톳에 의해 ‘사회적 지분급여’라는 명칭으로 다시 등장했고, 영국의 노동당 정부는 ‘자녀신탁기금’을 실시한 적이 있다. 페인의 주장은 토지를 개간한 사람이 토지 그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사람도 토지 그 자체에 대해 일정한 몫을 주장할 수 있다는 발상에 근거한다. 토지나 자연환경과 같은 자연적 공통부(富·common wealth) 또는 지식이나 빅데이터와 같은 인공적 공통부의 수익 일부는 모든 사람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발상은 기초자산제나 기본소득제로 이어진다. 이처럼 두 제도는 동일한 정당성의 기초를 가지며 무조건적, 보편적, 개별적 배당이라는 특성을 공통적으로 가진다. 다만 일회적인가 아니면 정기적인가가 두 제도의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일회적인 종잣돈을 보장하는 제도와 평생에 걸쳐 꾸준히 소득최저선을 보장해 주는 제도는 효과에 있어서 큰 차이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두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이러한 차이를 둘러싼 논쟁이다. 불평등의 완화와 출발상황의 공정 문제와 관련해 기초자산제도가 현격한 시정 효과를 낳을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자산불평등과 세습자본주의에 대해 천착해 온 피케티는 기초자산제를 해법으로 말하지만, 그가 참여한 ‘세계불평등보고서 2018’은 공공 소유의 감소와 개인 소유의 증대가 자산불평등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자연적 공유자산이나 지식과 같은 인공적 공유자산에 대한 인클로저(사유화)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는 뜻이다. 상속할 자산이 한 푼도 없는 청년에게 약간이나마 종잣돈을 마련해 주는 것은 개인 소유 안에서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불평등 원인의 제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에 기본소득은 모든 소득에는 물려받은 지식과 같은 인공적 공통부의 기여가 들어 있다는 관점을 전제한다. 조세형 기본소득은 사유재산을 허물어뜨리지 않지만 GDP의 일정 부분은 공통부의 기여에 의한 것이라는 관점 위에 서 있다. 또한 기초자산제와 달리 기본소득은 출발상황의 공정만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친 안정성을 제공한다. 기본소득이 도입되지 않은 사회에서 기초자산을 논한다는 것은 정작 다루어야 할 문제를 회피한 것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초자산제가 과연 청년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일회적 지급은 일자리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라는 기본소득에 대한 익숙한 반론을 피해 가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지급연령 이외의 20대에게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난점이 된다.
  • [데스크 시각] 설 명절 ‘밥상머리 대화’가 가리키는 것들/김경두 경제부장

    [데스크 시각] 설 명절 ‘밥상머리 대화’가 가리키는 것들/김경두 경제부장

    “왜 조국 가족만 이 잡듯이 수사를 하는 거냐. 윤석열(총장) 가족도 그렇게 탈탈 털면 만만찮을 거다.” “(비리가 있다면)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해놓고 손발 자르는 거 보면 이 정권의 ‘내로남불’은 대단하다.” “지들은 ‘똘똘한 집’ 안 팔면서 국민들에겐 팔라고 하고 누가 집값을 올려 달라고 했나.” “문재인 정부의 최고 도우미는 야당이다. 경제와 외교가 최악인데, 야당 하는 거 보면 한심하다. (야당) 통합이나 할 수 있겠어?” ‘조국과 윤석열, 부동산, 총선….’ 서울신문이 ‘가족 간 싸움난다’며 설 명절 밥상머리에 올리지 말라고 권했던 주제들. 그럼에도 이런 대화를 한 번쯤 나눴을 것이다. 의도했든 안 했든 ‘사는 게 퍽퍽하다’며 누군가 말꼬를 트면 다들 한마디씩 쏟아낸다. 때로는 추임새를 넣거나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나름의 이유를 댔고 설득력도 있다. 그 대화가 가리키는 의미들도 적지 않다. 검찰의 ‘선택적 정의’는 정의인가. 동양대 표창장 위조 등은 보는 이에 따라 경범죄, 잡범 혹은 파렴치범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밝혀내기 위해 수십 차례 압수수색과 검찰 조직을 총동원한 것은 지나쳤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먼지떨이와 여론 재판식으로 수사한다면 국민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다는 대의명분보다 검찰개혁을 회피하려는 사심이 들어간 수사였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검찰은 조국 수사를 통해 노무현 정부 시절 여야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송광수ㆍ안대희’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정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핵심 가치로 떠오른 지금, 조국 가족의 부도덕함뿐 아니라 검찰의 선택적 정의 역시 심판의 대상이 됐다. 되레 조국 수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말대로 검찰개혁의 불쏘시개가 됐다. 검찰이 얼마나 정치적인 집단인지 까발려진 건 덤이다. 검찰 수사의 공정성 논란과는 별개로 이 정권의 내로남불도 만만찮다. 검찰이 박근혜 정부의 적폐 수사를 찍고, 살아 있는 권력에 칼날을 들이대니 ‘어디서 감히’라며 눈을 부라린다. 검사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걸 알려주더니 제대로 휘두른다. 검찰은 검찰의 일을 하고 청와대는 청와대의 일을 한다는 원칙을 실천했으니 할 말은 없다. 다만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의미가 ‘내 편 빼고’라는 걸 다들 눈치챘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 누가 정권을 잡든 교집합이다. 이 정도로 재산을 불려줬으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고가 주택 보유자들은 진보 정권에 충성해야 하지 않을까. 참여정부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도 강남3구의 집값이 50% 안팎 올랐다. 허탈해하는 서민들을 달래기 위해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은 집 한 채 빼고 다 팔라’는 권고가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서 잇따라 나왔다. 그러나 지방 아파트만 매각해 이들 스스로 강남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 준다. 특히 부동산 정책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청와대 정책실장과 국토교통비서관을 비롯해 고위공직자 10명 중 8명이 강남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면 투기 방지라는 이름하에 서민들이 올라갈 ‘강남 사다리’는 끊겼다. 설 민심을 듣고 온 여야는 역시나였다. 야당의 발목잡기와 국정운영 실패를 주장하며 아전인수 격으로 4월 총선 심판론을 꺼내들었다.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현역 의원들 안 찍겠다’는 게 민심인데 말이다. 총선에서 이들을 내치지 않으면 내년 설 명절 밥상머리엔 또 ‘식상한 반찬’들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잘하자. golders@seoul.co.kr
  • “모든 지자체에 ‘4대 자치권’… 자치분권이 선진국 향한 열쇠”

    “모든 지자체에 ‘4대 자치권’… 자치분권이 선진국 향한 열쇠”

    “선진국이라서 자치분권을 한 것이 아니라 자치분권을 해서 선진국이 된 것입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자치분권 전도사로 불린다. 지난해 226개 기초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회 대표회장과 지방분권 개헌국민행동 공동의장, 전국자치분권개헌추진본부 공동대표 등을 맡으면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서는 전북 순창과 경남 창원, 서울 여의도 및 정부 청사 등지를 오가며 간담회, 특강, 연석회의를 통해 자치분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4월 총선을 계기로 지방분권형 개헌의 불씨를 살리고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체를 폐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전략도 세워놓고 있다.염 시장은 지난 2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방자치는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사업을 지역이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것인데, 지금은 재정과 규정에 얽매여 중앙정부의 출장소와 다를 바 없다”며 진정한 자치분권 실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방정부는 정책의 배달자가 아닌 주체로서 그들이 알아서 정책을 설계하고 시행해야 한다”면서 “지역의 정책 소비자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자체들이 힘을 모아 시민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새 역사를 여는 데 수원시가 앞장서고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 국가’로 거듭날 때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기재부 ‘지방분권세案’은 형식적 분권 한계 -지난해 자치분권 실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올해 계획은. “자치분권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국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아 아직까지도 통과되지 못했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여러 자치분권 법안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자치분권의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분권개헌의 불씨를 되살리는 동력이 될 수 있다.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통과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힘을 모으겠다.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입법·재정·행정·조직이라는 ‘4대 자치권’이 있는 지방정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힘을 쏟겠다.”-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20대 국회 임기 내에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비롯한 자치분권 관련 법률 제·개정안의 법제화를 매듭지을 수 있도록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하겠다. ‘지방분권형 개헌 논의’의 불씨를 다시 살리고 활활 타오르도록 하겠다. 역대 최악의 ‘식물 국회’라는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국회가 막바지라도 일을 하고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하루빨리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 협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재정분권을 놓고 정부와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1단계 재정분권의 핵심은 지방소비세율 10% 포인트 인상에 따라 발생하는 8조 5000원의 국세 이양과 균특회계 사무 3조 5000원의 지방 이양이다. 여기까지는 이견이 없는데 현재 논의 중인 2단계 재정분권에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방교부세를 폐지하고 법인세·소득세 일부를 재원으로 하는 가칭 ‘지방분권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지방의 재정 확충과 권한 배분을 바탕으로 한 재정분권이 아니라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형식적으로 맞추는 재정분권이 될 것이다.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이다. 지방소득세 인상으로 기초정부의 재정을 확충하고 이에 따른 지자체 간 재정력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지방교부세 세율인상을 포함한 ‘형평화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방의 ‘자율성과 책임성 강화’라는 기초정부 입장이 반영된 재정분권이 추진되길 바란다. 기초정부는 주민이 더 행복한 지역을 만들고 싶어한다.” -지난 9일 ‘지방이양일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으로 새마을금고 설립인가, 박물관·미술관 등록,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관리, 주민안전·지역경제·지역개발·문화·일반행정 등 여러 분야의 사무가 기초지방정부로 이양된다. 기초지방정부는 지역 여건과 특성에 맞는 정책을 만들고 주민이 중심이 되는 풀뿌리 자치분권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총 400개의 이양 사무 중 기초지방정부의 사무는 152개에 불과한 점은 아쉽다. ‘2단계 지방일괄이양법’ 제정을 추진할 때는 기초정부에 더 많은 기능과 사무가 이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사무이양에 따른 재원과 인력이 함께 지방으로 이양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총선서 ‘지방분권형 개헌’ 의제 돼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으로 2년 차를 맞는다. 올해 계획은. “민선 6기에 구성됐던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산하 ‘지방분권개헌 특별위원회’를 다시 조직할 것이다. 특위 위원으로 시장·군수·구청장들을 각 지역협의회에서 추천받아 구성해 운영할 계획이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오는 4월 열리는 제21대 총선의 핵심 의제로 선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국회의원 후보자와 각 정당에 지방분권형 개헌의 ‘총선 공약화’를 촉구하고 이행을 강력하게 요청하겠다. 또 지방분권 개헌을 지지하는 다른 지방 4대 협의체와 시민사회, 학계 등과도 협력하겠다. 지방분권개헌에 대한 전 국민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토론회, 결의 대회 등을 열 것이다. 분권 단체와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지방분권형 개헌의 의의와 당위성을 널리 알리겠다.”●시민이 시정 주도할 수 있는 환경 만들 것 -‘100만 도시 특례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자치분권의 초석이 될 특례시를 실현해 도시 위상에 걸맞은 구체적인 권한과 지위를 확보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이를 위해 인구 100만 도시인 고양·용인·창원시 등과 힘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름만 특례시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시민 복지와 행정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시민의 만족이 더 커지도록 자치역량을 강화할 것이다. 특례시 실현에 발맞춰 모든 것을 새로 고치고 기존 행정 관행을 광역 수준에 맞게 기초부터 새롭게 할 것이다.” -수원시정을 맡게 된 지 10년이 됐는데. “올해는 민선 5기 수원시장으로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자 새로운 10년을 여는 첫해다. 2010년 수원시장으로 취임하며 ‘휴먼시티 수원’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0년간 우리 시를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시민 여러분의 참여 덕분에 약속을 지키고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시정의 중심에는 늘 자랑스러운 시민이 있었다. ‘모든 지자체가 수원시를 지켜본다’는 생각으로 우리 시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신경을 썼다. 남은 임기도 초심을 잃지 않고, 시민과 함께하며 ‘더 큰 수원의 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2020년에는 시민 참여를 넘어, 시민이 시정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차별에 맞선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그녀의 싸움이 길이 되려면

    차별에 맞선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그녀의 싸움이 길이 되려면

    “저의 성별 정체성을 떠나, 제가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변희수 전 육군 하사는 지난 22일 자신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성별 정체성을 공개했다. 커밍아웃을 통해 육군의 결정에 맞서는 길을 선택했다. 전차조종이 주특기인 변 전 하사는 2017년 부사관으로 임관했다. 청소년기부터 젠더 디스포리아(신체적으로 드러나는 성별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의 불일치에서 오는 혼란)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가 지난해 8월 성전환 수술을 했다. 소속 부대와 상급 부대는 변 전 하사가 성전환 수술 이후에도 군 복무를 계속 하길 원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육군본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육군본부는 지난 22일 변 전 하사를 강제로 전역시켰다. 변 전 하사가 남성의 성기를 절제한 것이 군에 계속 복무할 수 없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변 전 하사는 같은 날 시민단체 ‘군인권센터’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를 포함해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면 한다”면서 “저는 비록 미약한 한 개인이겠으나 이 변화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가정, 학교, 직장 등 사회 여러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사건이 변 전 하사 개인의 일로 그칠 수 없는 이유다.■“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다르다’는 두려움 변 전 하사는 “줄곧 마음 깊이 가지고 있던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한 마음을 줄곧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남성들과의 기숙사 생활도 이겨 넘겼다”고 말했다. 청소년기부터 성소수자들은 ‘진짜 자신’을 숨기고 세상을 속여야 하는 괴로움과 외로움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공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성소수자 응답자의 92.2%가 오프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성소수자 비율은 98.0%에 달했다. 이런 환경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알려지면 차별과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정민석 대표는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조건들이 형성돼 있지 않은 환경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는 일은 하나의 생존 전략”이라면서 “비난할 일도 아니고, 당사자가 스스로 거짓말을 했다면서 자책할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커밍아웃’은 큰 용기를 발휘한 행동이다. 정 대표는 “커밍아웃은 물질적 자원이 있다고 해서, 또는 분노만 있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일상을 찾기 위한 용기이고, 성소수자도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도록 하는 의미 있는 행동”이라면서 “하지만 사회는 그 용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이 갖는 의미를 충분히 공감하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밝혔다.■이분법적 성별 구조 여전…계속되는 혐오 성소수자 중에서 트랜스젠더(신체적으로 드러나는 성별과 본인이 깊이 느끼고 있는 성별이 다른 사람)는 성별 불일치 때문에 성적 지향(이성, 동성 혹은 양성 모두에게 감정적, 호의적, 성적으로 깊이 끌릴 수 있는 개개인의 가능성)으로 고민하는 사람들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박한희 변호사는 “이를테면 자신의 성별 정체성은 여성인데 법적 성별은 여전히 남성인 성소수자는 은행 방문, 여권 발급, 주택 임대차 계약, 선거 투표 참여 등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거나 주민등록번호를 서류에 적는 모든 일상적 용무에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화장실이나 수영장, 헬스장 등의 공간이 여성용, 남성용으로만 구분된 상황에서 트랜스젠더 성소수자들은 본인이 어떤 공간을 들어가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이것은 공간 설계가 사람의 성별은 당연히 여성과 남성으로만 구분되고 성별이 변하지 않는다고 전제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위가 지난해 공개한 ‘혐오차별 국민인식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77.2%는 성소수자가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하지만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표현과 사회적 배제, 차별은 여전하다. 박 변호사는 “지난 2017년 6월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 동료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직장에서 해고된다면 이것이 타당한 조치인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약 81%가 ‘타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런 결과를 보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된다”면서도 “성소수자 차별은 당위적으로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내 주변에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차별과 혐오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난무해도 정치권에서는 이것을 바로잡으려는 해결하려는 모습이 없고, 오히려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면서 “혐오표현과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범정부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다. 정부는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변희수 하사의 싸움이 갖는 사회적 의미 박 변호사와 정 대표는 변 전 하사의 싸움을 단순히 개인의 싸움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비록 육군본부는 변 전 하사에 대한 강제 전역 결정이 그의 성전환 수술과는 무관하며, 현행 규정에 근거해 성기 절제를 이유로 그런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지만 그 규정 자체가 트랜스젠더 존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규정이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를 배제한 기존 규정을 무리하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검토해서 결정을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만큼 그동안 성소수자를 배제했던 사회 각 영역의 여러 제도들, 여러 규정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 대표도 “군에서만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성소수자들의 취업 기회를 박탈하고 학교에 다니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지,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꾸준히 필요하다”면서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각자의 삶의 조건 안에서 차별을 당할 수 있고, 그런 차별이 발생했을 때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법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을 하루 빨리 제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군인권센터는 시민사회단체에 공동대책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며 공동 대응에 나섰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23일 각 시민단체에 가칭 ‘한국군 최초 성별 정정 트랜스젠더(MTF) 군인 지원을 위한 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 참여를 제안하는 문서를 보냈다. 이 제안서에서 군인권센터는 “해당 사건은 비단 변 하사만의 사건이 아니다. 군에는 아직 커밍아웃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군인 다수가 복무 중이며, 일부는 성별 정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면서 “이런 점에서 이번 사안은 현재 군에서 복무 중이거나 향후 군에서의 복무를 희망하는 모든 성소수자 군인에 대한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성소수자 군인들이 차별받지 않는 환경에서 각자의 임무와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 모두의 힘이 필요할 때”라고 호소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김문수, 전광훈과 신당 창당…홍준표 “오죽 답답했으면…”

    김문수, 전광훈과 신당 창당…홍준표 “오죽 답답했으면…”

    김문수 “한국당, 태극기 버리고 좌클릭 반대”홍준표 “대통합 필요한데 좌파들만 살판났다”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27일 자유한국당이 추진하는 보수통합에 반대하며 신당 창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당에는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목사가 후원 형식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지사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당이 문재인 정권과의 투쟁을 가장 열심히 한 ‘광장세력’을 극우로 몰고 있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태극기를 뺀 보수통합에 반대한다.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유승민당’과 통합하기 위해 자유한국당을 해체하고 태극기를 버리고 좌클릭 신당을 창당하는 데 반대한다“고 밝혔다. 총선과 관련해서는 ”선거의 전략·전술과 정당의 강령은 다른 차원“이라며 한국당과의 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 전 지사에 따르면 신당명은 ‘국민혁명당’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통합과 관련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결국 총선은 각개전투로 치르고, 총선 후 ‘헤쳐모여’로 재편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경제 폭망, 외교 왕따, 북핵 노예, 실업 폭증으로 3년 만에 판을 뒤집을 호기를 맞이했는데도 갈가리 찢어져 각자 자기 팔만 흔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아울러 “보수 우파가 대통합하는 것이 시대 정신인데 한국당과 유승민당(새로운보수당)은 서로 자기들만 살기 위해 ‘잔 계산’을 하기 바쁘고, 태극기 세력은 조원진당·홍문종당·김문수당으로 핵분열하고, 보수 우파 시민단체는 20여개 이상 난립하고 있으니 좌파들만 살판이 났다”고 지적했다. 또 김 전 지사가 신당 창당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해서는 “착잡한 심경을 가눌 길이 없었다”며 “25년 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영혼이 맑은 남자 김문수’라고 별칭을 내가 붙여 줄 만큼 순수하고 바른 그가 오죽 답답했으면 신당 창당을 결심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라고 적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우한 폐렴 ‘중국인 입국 금지’에 정치권도 가세…“中 관광객도 모두 돌려보내야”

    우한 폐렴 ‘중국인 입국 금지’에 정치권도 가세…“中 관광객도 모두 돌려보내야”

    ‘우한 폐렴’ 국내 4번째 확진자 발생국민청원도 사흘만에 40만명 넘어보수 야권, 중국인 입국금지 주장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의 국내 네 번째 확진환자가 나온 27일 일부 정치권이 발원지인 중국인의 입국 금지 주장에 가세했다. 지난 23일 시작된 중국인 입국 금지 청와대 국민청원도 사흘 만인 이날 청원 참여자가 40만명을 넘었다. 자유한국당은 중국인 입국 금지를 당의 공식 입장으로 확정하지는 않았으나 국내 네 번째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서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중국 여행객 입국금지를 즉각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당 조경태 최고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인 관광객을 모두 돌려보내라고 주장했다. 조 최고위원은 이날 긴급성명서를 통해 “우리 정부가 늑장대응을 하는 것과는 달리, 중국과 인접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자국민 보호를 위한 총력전을 이미 공세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다”며 필리핀, 대만 등의 중국 관광객 귀국 조치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중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뿐만 아니라, 중국이 ‘우한 폐렴’을 공식발표한 지난해 12월 31일 이후 우리나라에 입국한 모든 중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귀국 조치를 즉시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바른미래당도 중국인의 한시적 입국 금지 검토를 촉구했다. 바른미래당 강신업 대변인은 “비상 상황에는 비상조치가 필요하다”며 “정부는 비상사태 선포와 중국인의 한시적 입국 금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대변인은 “무엇보다 정부는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즉각적으로, 과감하게 취해야 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전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 금지 조치 등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대집 의사협회장은 “중국의 환자 변화 추이를 시간 단위로 쪼개 관찰하고 필요하다면 신속하게 중국 관광객에 대한 입국 금지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홍희경의 패스추리TV] 국회의원 4명 중 1명 꼴 강남집 보유

    [홍희경의 패스추리TV] 국회의원 4명 중 1명 꼴 강남집 보유

    ‘검사와 장삼이사.’ 정권 대 검찰의 대립이 애꿎게 한 검사의 상가에서 폭발하자, “네가 검사냐”며 상관에게 대든 검사를 법무부가 준엄하게 혼냈다. 그러다 ‘장삼이사도 하지 않는 부적절한 언행’이란 법무부의 표현이 새 구설을 낳았다. 검사씩이나 됐으니 장삼이사, 즉 나머지 사람들과 다르다는 노골적 구별짓기다. 그 적나라함이 차라리 고맙다.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고관대작 수사 절차를 조금 고쳐 놓고 검찰개혁 완수했다는 식의 호도와 결이 다르니 말이다. 아무리 살펴도 공수처 수사 대상이 될 정도의 위인이 내 주변엔 없는데, 공수처 설치가 왜 가장 주목받는 검찰개혁 의제가 됐을까. 장삼이사의 손에 잡히는 공포가 진지하게 다뤄지는 모습을 본 기억은 드물다. 혹여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냈는데, 화성 8차 사건 때처럼 신속처리 압박을 받은 당국이 수사를 잘못해 억울한 희생자가 되면 어쩌지. 이런 우려에 정치는 늘 불성실하게 답했다. 엘리트 그룹들끼리 치고받아 만든 의제를 패션쇼하듯 무대에 올린 뒤 앉아서 쇼나 보라는 식의 정치가 4월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앞으로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지역갈등 해소, 보혁 대결, 친박 소멸 등 엘리트들이 관성적으로 배급한 의제로 옷장 속이 분주해도 일상에서 입을 옷은 늘 부족할 테다. ‘조작된 의제’에서 벗어날 때다. PD수첩에서 세 보니 국회의원 300명 중 75명, 넷 중 한 명꼴로 서울 강남에 집이 있단다. 마을에 현수막 걸고 상경했다 30년 만에 금의환향하면 지역구 의원 되는 풍토 탓에 강남에 집 가진 의원이 이렇게까지 많아졌다. 이들에게 고향 겸 지역구는 어린 시절 풍경에서 천지개벽한 곳일 테고, 최근 일상을 보내는 강남에서의 작은 불편엔 신경이 곤두설 것이다. 교육, 집값, 커뮤니티 전부 지금도 제일 좋은 강남이 계속 더 좋아지겠다. 강남은 번식 중이다. 입성을 위해 엘리트들이 흘렸던 피, 땀, 눈물은 사회적 가치로 승화되는 대신 그 집 자녀들도 나머지 지역으로 추방당하지 않고 강남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유리바닥’ 까는 데 활용되고 있다. 이른바 ‘세습 중산층’ 시대가 시작됐다. 엘리트들이 강남을 벗어나서도 유능하고 유익할지는 사실 확인된 바 없다. 오히려 동네에 대형마트가 생길라치면 주변 전통시장이 얼마나 다칠지 책상머리에서 내놓는 분석이 장황할 때가 많았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철들 무렵부터 그 지역에서 장사한 자영업자라면 ‘김씨네 식당 고생하겠네’라거나 ‘배씨네 총판이 타격 입겠네’라고 즉각 튀어나올 법한 분석인데 말이다. 정치인의 고스펙이 유권자에게 언제나 이롭지는 않다 엘리트도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엘리트가 밀집한 지역구, 그만큼의 의석이면 족하다. 강남에 집을 둔 75명끼리 강남에서 겨뤄 최고를 가리고, 나머지 지역에서 그곳의 현안을 들고 온 다른 대표자들과 정치하라. 과잉대표 되는 강남, 그래서 어떤 정책에도 강남의 손실은 없는 결과. 이대로는 장삼이사의 욕망과 행복이 실현될 통로가 너무 좁다. ※ 서울신문 홈페이지에서 관련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124500053) saloo@seoul.co.kr
  • ‘데이터 3법’, 내 페북 프로필 동의 없이 기업이 수집해 쓸 수 있다? [강주리 기자의 K파일]

    ‘데이터 3법’, 내 페북 프로필 동의 없이 기업이 수집해 쓸 수 있다? [강주리 기자의 K파일]

    ‘조국 사태’로 집중 조명을 받은 검찰개혁법과 공직선거법 말고도 중요한 법안 하나가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했다. 바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이용·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이다. 데이터 3법 통과로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한 가명 정보를 과학적 연구와 통계 작성 등의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또 금융·의료 등 기업에서 상업적 목적으로도 가명 처리된 신용정보 등을 당사자 동의 없이 이용하는 길이 열렸다. 여러 부처에 쪼개져 있던 개인정보 관리·감독 주체도 국무총리 소속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격상돼 일원화됐다. “신산업 장애물 사라져” “개인정보 도둑법” 정부·여당과 보험·통신 등 관련 업계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데이터 기반 신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던 장애물이 사라졌다”며 환영했다. 반면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개인정보 도둑법”이라고 비판했고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도 “정보 인권 보호 논의가 불충분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개인정보와 가명 정보, 익명 정보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개인정보는 ‘1990년 5월 4일생 남성 김민준’처럼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다. 이를 ‘1990년생 김씨’로 바꾸면 가명 정보, ‘30대 남성’으로 하면 익명 정보가 된다.본인이 공개한 프로필 정보는 수집 가능 그렇다면 데이터 3법에 따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 등에 공개된 개인 프로필 정보를 동의 없이 기업이 가명 정보로 수집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23일 “본인이 공개한 정보라면 가명 정보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는 가명 정보와 기업이 보유한 각종 정보를 결합하면 개인을 식별할 수 있고, 국가와 기업의 시민 감시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마케팅으로 개인 편의를 보다 도모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업의 이익 추구를 위해 신용 정보와 질병 정보에 광범위하게 접근해 개인을 등급화한 뒤 채용에서 차별하거나 구매 능력이 있으면 상품을 보여 주고 그렇지 않거나 아예 정보를 차단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위험에 많이 노출되는 소방관들이 생명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이유와 비슷하다.가명 정보는 정정 불가… 기업 재식별 땐 처벌 그러면 가명 정보로 바뀐 내 개인정보를 정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행안부 관계자는 “가명 정보는 이미 누구인지 찾기가 어려워진 정보라서 100명 중 1명을 찾아내려면 나머지 99명의 정보까지 식별해야 해 의도치 않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가명 정보로 수집되기 전 기업의 ‘개인정보처리방침’에 나와 있는 연락처를 통해 ‘원치 않는다’고 의사를 전달하면 가명 정보로 쓸 수 없다. 가명 정보를 재식별하다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과 5000만원 이하의 벌금, 매출액의 3%의 과징금에 처해진다. 포털의 검색 기록 등을 가명 정보와 결합해 파악한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국가기관·기업의 감시나 정치권에 악용당할 우려는 없을까. 정부는 정치적 성향이나 주민등록번호 등은 ‘민감한 정보’로 분류돼 법적으로 수집이 금지돼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정보가 오남용돼 스팸 문자가 급증하거나 보이스피싱 등 데이터 관련 범죄가 심화될 우려도 제기된다. 윤종인 행안부 차관은 “가명 정보는 처리 목적이 달성되면 당연히 파기해야 한다”며 “데이터 활용은 기업의 생존 전략과 맞닿아 있고 기업의 고객 정보 보호는 신뢰와 직결되는 만큼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의 균형을 맞춰 가명 정보의 활용 범위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jurik@seoul.co.kr
  • [서울광장] 연동형비례대표제 200% 활용법/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연동형비례대표제 200% 활용법/박록삼 논설위원

    천신만고(千辛萬苦). 만시지탄(晩時之歎). 사필귀정(事必歸正). 용두사미(龍頭蛇尾). 어떤 사자성어로 수식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준연동형비례대표제가 오는 4·15 총선에서 처음 적용된다. 2018년 12월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합의할 때만 해도 새로운 민주주의 세상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국회에서 보여 준 기가 막힌 지리멸렬함은 굳이 더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민의의 왜곡을 막고 표의 평등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는, 일단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당초 기대에서는 많이 벗어났고 퇴색됐다. 게다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저항하며,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무력화시키고 역행시키기 위한 시도는 집요하기만 하다. ‘비례○○당’과 같은 위성정당인지 괴뢰정당인지를 설립하겠다는 자유한국당의 1차 꼼수는 지난 13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괴뢰(傀儡)라 함은 형식상으로는 독립적이나 실질적으로는 다른 단체에 종속돼 그의 말을 따르는 단체나 정권을 말한다. 하지만 선관위 제동에도 불구하고 ‘미래한국당’이라는 이름의 창당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년 넘는 동안 파행 끝에 나타난 해프닝만으로 여기기에는 뒷맛이 너무 씁쓸하다. 민주주의는 인류의 과제이자 지향점이다. 하지만 법과 제도 만으로는 이렇듯 허망하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는 1987년 체제 이후 오랫동안 겪어 왔다. 진짜 제도의 완성은 주권을 가진 시민의 몫이다. 온갖 저항 속에 어렵사리 미흡하게나마 만들어진 제도다. 이조차 희화화하고 왜곡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시민이 나서서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참여하고, 감시하고, 심판해야 한다. 4·15 총선이 세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각 정당이 비례대표 순번을 정해야 하는 절차가 남았다. 정당정치의 문화가 부재하다시피 한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진행될까. 공천 절차에 한창인 정당마다 크고 작은 잡음이 들려온다. 비례대표 일부는 나름의 기준으로 전략공천을 하고, 나머지는 공정성에 의문을 남기는 여론조사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정의당이 과거 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 방식처럼 비례대표 선발에 개방형국민경선을 실시한다고 밝혔지만 시간의 한계, 제도의 미비 등으로 인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당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을 싸잡아 욕하는 것은 당장은 통쾌할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는 시민들의 역할이 될 수 없다. 투표에 적극 참여해 누군가를 지지하고, 누군가를 심판하는 역할 역시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요체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당 참여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에 의견을 개진하고 논의에 참여하며, 정당의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시민들의 삶에 굳게 뿌리를 내리는 정당이 탄생할 수 있다. 흔히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진짜 풀뿌리 민주주의는 꼭 지방자치가 아니라도 시민의 구체적인 참여와 실천만 있으면 정당에서도 구현할 수 있다. 정당정치 참여는 연동형비례대표제 활용법 중 하나다. 이와 함께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또 다른 활용법이 있다. 다수의 노동자, 농민, 서민, 청년들은 아주 오랫동안 부자와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곤 했다. 그렇게 계급 배반 투표를 해오다가 아예 정치 냉소로 돌아서버린 것은 그들 탓이 아니었다. 자신의 계급과 계층, 삶에 기반한 구체적인 요구를 담아낼 정당과 국회의원이 없었던 탓이다. 예컨대 청년 실업 문제를 실천적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 내는 가칭 ‘청년당’이 있거나, 농민기본소득과 생태농업에 대한 담론을 실천하는 ‘농민당’이 있거나, 도시 서민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도시빈민당’이 있다면 어땠을까. 과거에는 제도권 진입이 어려웠겠으나,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된 마당에는 이제 승산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목표를 가진 정당이 탄생하고, 이들 정당에서 시민들이 당원 활동을 하고,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시작된 만큼 특수목적 정당들이 의회에 진출해 민생과 관련된 법안을 만드는 현실을 얼마든 꿈꿀 수 있다. 이는 정치 문화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거대 양당 중심의 획일적 가치 혹은 삶과 유리된 정치가 아닌, 다양성을 보장하는 연대의 정치 말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그때 비로소 시작된다. youngtan@seoul.co.kr
  • ‘국회 1%’ 청년 의원 3명이 말하는 청년 정치

    ‘국회 1%’ 청년 의원 3명이 말하는 청년 정치

    #30대 #청년 #여성 #1%. 더불어민주당 정은혜(37), 자유한국당 신보라(37), 바른미래당 김수민(34) 의원의 공통점이다. 20대 국회의원 중 30대는 이들 셋뿐으로, 전체 300명 의원 중 1%다. 전체 유권자의 30%를 차지하는 20~30대 목소리를 대변하기에 턱없이 적은 숫자다.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청년들의 표심을 사로잡을 인재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도 제2의 산나 마린(지난해 34세로 세계 최연소 총리가 된 핀란드 여성 정치인)을 배출할 수 있을까. 세 의원의 얘기를 들어 봤다.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세대교체 아닌 공존 필요… 黨 육성한 청년 인재 많아야” ●청소년기부터 정치 참여하는 법 배워야 “대통령 언급이 없었더라면 민식이법이 과연 통과했을까요. 의원들은 이슈가 돼야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만약 국회에 저와 같은 아기 엄마가 10명만 있었더라면 함께 ‘으으’ 힘을 모을 수 있었을 거예요. 제가 발의한 스토킹 방지법 역시 다들 꼭 필요하다고 하지만 잘 안 된 이유는 필요성을 직접 느끼는 20~30대가 국회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17일 의원회관에서 만난 정 의원은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청년 정치인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면서 “세대교체가 아니라 세대 공존 차원에서 국회에는 70대도, 20대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도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18세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넓힐 수 있다는 얘기다. 정 의원은 “핀란드에서 34세 총리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2006년 청소년들이 지역사회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한 청소년기본법이 큰 역할을 했다”면서 “우리는 중고교에서 근현대사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않는데, 청소년기부터 다양한 형식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청년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하려면 “영입도 중요하지만 당에서 성장한 육성 인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21살에 지구당 사무실을 찾아가 입당한 뒤 유세 지원 율동팀부터 비상근·상근 부대변인, 대선캠프 지원, 비례대표 후보를 차례로 거친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정당도 연예기획사 같은 양성 시스템 만들자 그는 “정당도 연예기획사처럼 청소년 때부터 정당 활동이나 교육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거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으면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당직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청소년들이 훌륭한 정치인, 훈련받은 정치인이 될 수 있고 동시에 좋은 정치인을 고르는 유권자도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례대표 16번으로 출마했던 정 의원은 이수혁 전 의원이 주미대사로 임명되면서 지난해 10월 의원직을 승계했다. 17개월 된 딸을 둔 워킹맘이기도 한 그는 100일 남짓한 의정 활동 중 남성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라떼파파법’ 등 12가지 생활법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이번 총선에) 다시 한번 도전해 이 법안들을 꼭 이어 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청년기본법 통과까지 4년… 또래 동료 없어 한계 느껴” ●당내 청년정치학교 운영… 인재 풀 늘고 있어 “국회의원 모두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면서 통과되는 걸 지켜보고 싶었죠. 하지만 ‘반쪽 국회’에서 찬성 토론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4년이란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도 웃을 수만은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신보라 의원은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반발한 한국당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 불참한 가운데 자신이 대표 발의한 청년기본법에 대해 ‘나 홀로’ 찬성 토론을 했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 충돌’ 등으로 얼룩진 20대 국회 막바지 본회의를 통과한 청년기본법은 2016년 5월 30일 20대 개원 첫날 한국당 1호 법안으로 발의됐다. 청년을 독립된 세대로 규정하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국가 책무를 정의한 법안이다. 초선 의원이 꺼내 든 법안을 ‘1호’로 확정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막상 발의된 이후 통과까지 4년이 걸렸다. 신 의원은 “국회에 30대 국회의원이 3명에 불과하고 힘을 합할 또래 동료 의원이 없어 겪은 한계가 많았다”면서 “청년기본법에 4년이 걸린 것은 국회에 청년 의제에 대한 절실함이 떨어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했다. 청년 정치인을 못 미더워하는 시선에 대해 “우리 사회에 30대 스타트업 리더들도 많지 않으냐”며 “신선식품 배송 ‘마켓컬리’, 요가 브랜드 ‘젝시믹스’ 등을 이끈 것도 30대”라고 했다. ●일회성 영입 그치지 않고 양성 시스템 체계화를 신 의원은 향후 한국 정치에 청년들의 참여가 늘어날 것이란 희망적 전망을 했다. 그는 “청년 정치에 대한 국민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저도 당의 청년정치학교를 3기수째 운영하고 있는데 역량 있는 인재 풀이 늘고 있다”면서 “일회성 영입에 그치지 않고 양성 시스템이 체계화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 의원은 지난해 임신·출산을 경험했다. 정기적 수유가 필요한 24개월 이하 영아 자녀에 한해 함께 회의장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을 요구했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이 불허한 일이 화제가 됐다. 신 의원은 “청년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나라, 출산과 육아가 기쁨이 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서 국회 세대교체와 구성원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신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인천 미추홀갑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특정 직업군 국회 민의와 멀어… 시민 참여 정치 하고파” ●청년들의 정치 참여 환경 만들어 줘야 “국회의원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정치 자체가 목적인 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소수 권력자의 정치가 아닌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정치를 해보고 싶었어요.” 김수민 의원은 “‘직업 정치인’이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더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민주화 투사, 법조인, 교수, 보좌관 등 특정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수십 년간 동질성 강한 국회를 유지해 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쳤다. 김 의원은 “여성이나 2030세대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민의와도 동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청년 정치’라는 표현에도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김 의원은 “지금까지 청년의 존재를 상수가 아닌 변수로 소모품 취급했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며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열린 정치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안으로 ‘내일티켓’이라는 참여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들어 정치 실험을 했다. 일상에서 문제점을 발견한 시민들이 법안과 정책을 고민하고 직접 발의 과정까지 참여할 수 있게 한 새로운 시도였다. 그는 “저희 의원실에서 만들어진 법안 90%는 시민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고 저는 하나의 그릇이 됐을 뿐”이라고 했다. 일정 규모 이상 남자화장실에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도록 한 법안, 온라인 게임 내 지나친 성적 발언을 성희롱으로 포함하는 법안 등이 그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조국 사태’ 겪으며 21대는 청년이 주역 될 것 정치권에서 높아지는 ‘세대교체’ 바람이 21대 국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란 전망도 내놓았다. 김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여러 가지를 남기고 떠났지만, 그중 하나는 각 당의 청년 공천경쟁”이라며 “역설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했다. ‘조국 사태’를 겪으며 기득권 불공정에 박탈감을 느낀 청년세대가 변화의 주역이 될 거란 기대다. 피선거권을 낮출 필요성도 언급했다. 11세에 입당해 19세에 국회의원이 된 구스타프 프리돌린 스웨덴 녹생당 대표 사례도 들었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묻자 “각자가 원하는 내일의 모습은 다 다르기 때문에 제 말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면서 “많은 청년들이 국회에 입성해 새로운 길을 함께 개척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해리스 대사, 호르무즈파병 압박 등으로 ‘총독’ 비난받아역대 23명 대사 중 유일 직업군인 출신, 국민에게 낯설어결례 논란 전임 대사도 자유롭지 않아…현대사에 영향력미국대사 과거 막후 외교관이었지만 지금은 공공 외교관변화된 역할 조정 과정서 시행착오 겪으며 논란 불거져 ●한국민에게 낯선 미국대사, 해리스 “해리스 대사는 한국 총독처럼 행세하지 않느냐. 자기가 무슨 총독인 줄 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공개된 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해리스 대사가 지난 7일 KBS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그곳에(호르무즈해협)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며 정부에 파병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총독 행세’라고 비판한 것이다.해리스 대사가 16일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날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당정청은 일제히 반발했다. 다음 날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된다”(민주당 설훈 최고위원),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통일부 이상민 대변인),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청와대 관계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해리스 대사는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남북 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과 관련 미국 정부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표명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11월 당시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을 관저로 불러 방위비분담금을 50억 달러 내라는 요구만 20번 정도 반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교적 결례라는 비난을 받았다. 해리스 대사는 같은 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한국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확대한 데 대해 실망했다”며 종료 결정을 번복할 것을 압박했다.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우선 대사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해리스 대사는 첫 직업군인 출신 주한 미국대사다. 1949년 부임한 1대 존 무초 대사부터 해리스 대사까지 23명 대사 중 6명을 제외하면 모두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비외교관 출신 6명 중 해리스 대사를 제외하고는 외교를 전공한 교수이거나 한국과 인연이 깊은 목사, 외교에 익숙한 중앙정보부(CIA) 출신 요원, 국회와 국방부에서 외교를 담당한 정치인이었다. 군인 출신으로 외교적 수사보다 직설 화법에 익숙한 해리스 대사가 한국민에겐 ‘낯선 대사’라는 것이다.외교 소식통은 “한국어에 능숙한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와 한국민과 스킨십을 즐겼던 마크 리퍼트 대사에 익숙했던 한국민에게 4성 장군으로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해리스 대사의 야전군 사령관 스타일이 낯설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주한 미국대사의 행보와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한미 관계 현안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표출하는 등 거만한 태도를 보여 이 대통령의 반감을 샀다. 박정희 정권에 베트남 파병을 압박했던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카운터파트인 이동원 외무부 장관을 ‘패싱’하고 정일권 국무총리, 박정희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는 오만함을 보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진보적인 노무현 정부와 보수적인 조지 W 부시 정부가 마찰을 빚던 당시 노무현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어긋나는 발언을 해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의 총독’이라는 논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 정부와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한 미국대사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불거졌다는 해석이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마다 주·조연으로 등장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와 한국 정치에서 한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국가원수급 대우 받은 초대 미국대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주한 미국대사는 존 무초 대사다. 무초 대사는 1948년 8월 13일 주한 최고대표로 임명돼 사흘 후 부임했다. 미국은 이듬해 1월 1일 한국을 정부로 승인하고 4월 7일 무초 최고대표를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했다.1년 전 남북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장엄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1949년 4월 20일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는 이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등 삼부 요인이 모두 참석했고, 무초 대사는 중앙청에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은 무초 대사는 1950년 이 대통령과 6·25 전쟁 첫 2년을 함께 겪었다. 무초 대사는 전쟁 발발 직전인 6월 초 미국 의회에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전쟁 당일인 25일 워싱턴 국무부에 “북한군의 전면 공격이 시작됐다”고 보고했고 이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들어갔다. 무초 대사는 피난가겠다는 이 대통령을 말렸지만, 이 대통령은 무초 대사에게 알리지 않고 27일 서울을 떠나 수원으로 갔다. 무초 대사는 이 대통령의 행동에 분노했지만 이후 한국 정부를 따라 수원·대전·대구·부산으로 피난가던 도중 이 대통령을 자신의 차에 태워 피신시키기도 했다. ●이승만 하야 작전의 선봉장?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독립운동을 한 친미주의자였지만, 집권기에는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이 대통령은 6·25 전쟁 기간 휴전 반대, 반공포로 석방 등으로 휴전을 원하던 미국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쟁 후에 미국은 냉전 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요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뿌리쳤고, 미국의 우려에도 독재의 길을 걸어가면서 양측의 갈등은 악화됐다. 미국 정부는 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미국대사들이 야당 인사들과 접촉하며 최전선에서 하야 계획을 수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미국대사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1955년 5월 취임한 3대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재한 미국인 상사에 세금을 물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충돌하자 이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반감을 느껴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에 대사 교체를 요청했고, 취임 다섯 달 만에 레이시 대사는 사임했다. 후임인 4대 월터 다울링 대사는 진보당 사건, 보안법 파동 등 이승만 정권의 정치 탄압을 두고 이 대통령과 부딪쳤다. 다울링 대사는 이승만 정권이 1958년 야당 진보당의 조봉암 당수 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사형을 구형하자 정권 2인자인 이기붕 국회의장을 두 차례 만나 조봉암을 구명하려 했으나 조봉암은 1년 후 사형당한다. 1958년 12월에는 이승만 정권이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일방 통과시키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울링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1959년 12월 부임한 5대 월터 매카너기 대사는 이승만 정권의 종말에 일조했다. 매카너기 대사는 1960년 4·19 혁명 당일 “시위자들과 당국이 폭력을 자제하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정당한 불만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시위대에 우호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19일과 21일 경무대에 이 대통령을 찾아가 미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26일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자 매카너기 대사는 “전국적으로 퍼진 정당한 국민의 불만 표시에 한국 정부는 즉각적인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미봉책을 취할 시기가 아니다”며 이 대통령의 하야 요구를 시사하는 성명을 냈다. 직후 경무대로 가 이 대통령으로부터 하야 의사를 전달 받았다. 경무대 앞에 있던 시위대는 매카너기 대사의 차가 경무대에서 나오자 그가 이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며 ‘매카너기 만세’, ‘미국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박정희 인정하되 미국 요구 관철시킨 대사들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하에서 미국대사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반공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을 돕기도 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이들을 견제하기도 했으며, 국익과 가치의 딜레마에서 이들의 독재를 방관하기도 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하고 한 달여 후 취임한 6대 새뮤얼 버거 대사는 박정희의 쿠데타 세력을 사실상 인정하되 미국의 정책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전략을 취했다. 쿠데타 발발 당일 마셜 그린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카터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이 쿠데타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버거 대사는 박정희에게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고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박정희는 전역하고 1963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했으며, 2년 후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조약 등을 체결했다.7대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박정희 정권에 미국이 수행하던 베트남전 참전을 압박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하자 그 해 9월 베트남에 의무 요원과 태권도 교관을 파견했는데, 브라운 대사는 12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증파를 요청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10월부터 전투부대를 파병하기 시작했고, 브라운 대사는 이듬해 3월 한국의 추가 파병에 대한 미국의 보상을 담은 ‘브라운 각서’를 전달했다. 브라운 각서와 월남 특수로 한국은 경제·군사적 성장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국군 장병의 피를 돈을 받고 팔았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유신 정권과 대립했던 대사들 1970년대 미국에 닉슨·포드·카터 정부가 차례로 들어서고,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유신헌법 개정으로 독재의 길을 걸으며 양국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냉전 완화(데탕트)를 이유로 아시아에서의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자력 방위를 요구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닉슨 독트린에 따라 8대 윌리엄 포터 대사는 1970년 박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을 6만 명에서 4만 명으로 감축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박 대통령이 감축에 불만을 갖고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지원 요구를 거부하자 포터 대사는 “(박 대통령은) 엉클 샘(미국)의 큰 젖통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으려 한다”며 독설을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동맹국이 미국을 벗겨 먹는다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셈이다.1971년 10월 취임한 9대 필립 하비브 대사는 ‘미국 당대의 가장 걸출한 전문 외교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구명한 인물로 유명하다. 하비브 대사는 1973년 8월 박정희 정권이 야권 정치인 김대중을 납치하자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 하비브 대사는 박 대통령에게 “김대중 납치 사실을 알고 있으며 김대중이 죽는다면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끝장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부장이자 후일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는 도널드 그레그가 회고했다. 김대중은 납치 닷새 후 서울 자택에서 풀려났다. 후임 10대 리처드 스나이더 대사는 박정희 정권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사실을 알아채고 박정희 정권에 경고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무마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 정권의 견제자인가 방관자인가 11대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1978년 7월 취임, 이듬해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의 주요 변곡점을 겪은 인물이다. 1977년 출범한 카터 정부는 도덕주의 외교 노선을 앞세우며 박정희 정권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고 주한미군 철군을 추진함에 따라 한미 관계가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카터 대통령을 설득해 주한미군 철군 계획을 철회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1979년 10월 국회에서 여당 공화당과 유신정우회를 동원해 야당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의원직에서 제명하자 카터 정부는 항의의 뜻으로 글라이스틴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도 했다.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할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와 미국 정부는 이를 묵인하거나 최소 방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과 그의 참모들을 만나 광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항의하기도 했으나,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수행하기 하루 전 글라이스틴 대사는 ‘(신군부에) 군사작전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백악관에 보고한 것으로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신군부의 진압작전을 묵인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신군부의 행동에 미국이 공모자는 아니었으나 무력했던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12대 리처드 워커 대사는 1981년 8월부터 1989년 1월까지 약 7년 5개월간 재임해 현재까지 최장수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1대 무초 대사부터 11대 글라이스틴 대사까지 모두 직업 외교관이었으나, 워커 대사는 학자로서 첫 비외교관 출신 주한 미국대사이기도 하다. 워커 대사는 1980년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을 석방시키는 데 역할을 했지만, 김대중 석방 대가로 전두환 대통령의 조기 방미를 성사시켜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민주화 이행기의 CIA 출신 대사들 13대 제임스 릴리 대사와 14대 도널드 그레그 대사는 CIA 요원 출신으로, 1987년 6·10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93년 문민정부 출범까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목격했으며 민주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방조 의혹으로 반미 정서가 고조됐던 1980년대 말 부임했던 릴리 대사와 그레그 대사는 한국민의 거센 반감에 직면해야 했다. 릴리 대사는 반미 시위대로부터 수차례 인형 화형식을 당했으며, 그레그 대사는 시위대의 관저 침입을 겪기도 했다. 특히 릴리 대사의 후임으로 연이어 CIA 출신인 그레그 대사가 미국대사로 임명되자 야당과 언론은 ‘미국이 한국을 외교 대상이 아닌 정보·공작 대상으로 본다’며 반발하기도 했다.하지만 1987년 6·10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이 명동성당에 강제 진입해 학생들을 연행하려 하자 릴리 대사는 13일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만나 “전 세계가 떠들썩해질 것”이라며 진입을 저지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을 검토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시위를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요청해 받았다. 릴리 대사는 전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18일 거절 의사를 밝혔다. 릴리 대사는 결국 다음 날 전 대통령을 찾아가 친서를 전달하고 “무력을 절대 사용하지 마라”고 경고했으며 전두환 정권은 계엄령 선포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레그 대사는 취임 약 4개월 후인 1990년 1월 광주를 찾아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책임을 묻는광주민주화운동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을 취임 후 첫 외국 정상으로 초청한 것은 김대중을 사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레그 대사는 노태우 정권의 남북화해정책과 북방정책을 지지했으며 미군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철수를 추진하며 1992년 남북 한반도비핵화선언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레그 대사는 1992년 남북화해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도록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미 정부는 그레그 대사와 상의 없이 훈련을 재개하면서 북한은 준선시상태를 선언했고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레그 대사는 2015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내가 대사로 봉직하던 기간 중에 미국이 결정한 유일한 최악의 실수”라고 했다. ●북핵 전문 외교관 전성시대 1993년 북한의 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촉발되자 미국의 대한국 외교는 물론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북핵 문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1993년 11월 취임한 15대 제임스 레이니 대사는 목사 출신으로 직업 외교관은 아니었으나, 1947~1950년 서울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했고 1959~1964년 연세대에서 신학을 가르친 ‘지한파’였다. 레이니 대사는 1994년 북한이 영변의 핵연료봉 추출을 강행하고 미국은 영변 핵시설 정밀 타격을 시행하려 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오르자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 대북 특사로 방북해 중재할 것을 요청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 해 6월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으나, 7월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다. 하지만 북미는 9월 제네바합의를 타결하며 1차 북핵 위기를 종식시켰다.레이니 대사의 후임인 16대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 17대 토머스 허버드 대사, 18대 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모두 북핵 전문 외교관이다. 보즈워스 대사는 1995~1997년 제네바합의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는 역할을 맡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보즈워스 대사는 2001년 주한 미국대사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2009~2011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북미 협상을 총괄했다. 그는 미국 대북 협상파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허버드 대사 역시 1994년 북미 제네바협상에 실무급으로 참여한 대북 협상 전문가다. 2001년 9월 취임한 허버드 대사는 이듬해 2차 북핵 위기를 맞게 된다. 아울러 2002년 6월 주한미군 장갑차의 여중생 압사 사건, 이듬해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 2004년 주한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 등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한미 동맹의 균열 우려가 심화되자 이를 해결하는 데 임기를 보냈다.후임인 힐 대사는 2004년 9월 취임해 이듬해 2월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 지명됐으며, 두 달 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취임하면서 대사직을 내려놓았다. 힐 대사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반미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힐 대사는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리코드 브레이커’ 대사들의 명과 암 19대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부터 23대 해리 해리스 대사까지 다섯 명의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 역사의 ‘신기록 보유자’들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직전에 주러시아 미국대사를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 중 역대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한국어 구사 대사, 성 김 대사는 최초의 한국계 대사였으며 마크 리퍼트 대사는 현재까지 최연소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해리스 대사도 최초의 직업군인 출신 대사 기록을 세웠다. 2005년 10월 취임한 버시바우 대사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 중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버시바우 대사는 부임 초기 북한의 인권과 위조지폐 문제를 거론하고 김정일 정권을 ‘범죄 정권’이라고 칭하며 대북 강경 기조를 보였고 당시 노무현 정부는 버시바우 대사에게 북한 비난을 자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버시바우 대사는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실망스럽다”고 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빚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손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주장한 데 대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불안을 야기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했으며, 민주당 측은 이를 공개하며 반발했다. 다만 버시바우 대사는 힐 대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 외교를 이어나갔다. 스티븐스 대사는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국민과 접촉면을 늘리면서 공공 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사로 평가받는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평화봉사단에 들어가 한국 복무를 자원, 1975~1977년 충남 예산군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 그는 1978년 국무부에 입부한 후 1983~1989년 한국에 다시 와 서울 대사관과 부산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2008년 10월 취임하자마자 33년 전 봉사한 예산중학교를 방문, “예산은 내가 외교관으로 필요한 자질을 배웠던 곳”이라며 한국 국민의 마음을 샀으며, 블로그도 개설해 글을 연재하며 ‘파워 블로거’로서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후임 성 김 대사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6자회담 특별대표를 역임하다 그 해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김 대사는 2017년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으나 이듬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과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실무협상을 했다. ●‘같이 갑시다’ 한미 동맹 캐치프레이즈 만든 리퍼트 리퍼트 대사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2008년 오바마 정부 인수팀에 합류했다. 정부 출범 후 국방장관 수석보좌관,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2014년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이전 직업 외교관 출신 대사들이 ‘늘공’(늘 공무원)이었다면 리퍼트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참모로서 관직을 맡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셈이었다.리퍼트 대사는 2015년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기종 씨에 의해 습격을 당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미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나아가 한미 동맹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습격 소식이 전해지자 리퍼트 대사의 수술은 물론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의 여론이 높아졌다. 리퍼트 대사는 사건 당일 수술을 마치고 트위터에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복귀합시다. 같이 갑시다!”라고 올리며 우려의 여론을 신속히 잠재울 수 있었다. 이후 ‘같이 갑시다’(Go together)는 한미 동맹의 캐치프레이즈가 돼 한미 동맹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인사말이나 건배사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됐다. 리퍼트 대사는 대사 부임 전 한국과 인연이 별로 없었지만, 부임 후 빠르게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익히며 한국민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 부임 후 갖게 된 첫째 아들에게 ‘세준’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미들 네임으로 줬고, 딸에게도 ‘세희’라는 미들 네임을 붙였다. 야구팀 두산 베어스의 팬으로 유명한 리퍼트 대사는 대사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야구장을 찾아 두산을 응원하면서 ‘야구 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막후 외교서 공공 외교로 대사의 역할 변화했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2월 주호주 미국대사로 지명됐다가 세 달 후 주한 미국대사로 재지명된 뒤 7월 취임했다. 전임 리퍼트 대사가 퇴임하고 1년 6개월여 만에 공석을 메운 터라 기대도 높았던 반면, 그가 대북·대중 강경파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교차했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6월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실제 협상에 진지한지 가늠하는 차원에서 주요 (한미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 협상 기조에 보조를 맞췄다. 해리스 대사가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우려를 표하고 문 대통령의 남북 협력 사업 추진에 한미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개인의 신념이라기보다 트럼프 정부의 기조를 대변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뿐만 아니라 전임 대사들도 한국 정부와 이견이 있는 이슈에서 항상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버시바우 대사도 재임 기간 당시 조지 W 부시 정부의 기조대로 ‘남북 경제협력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해 해리스 대사처럼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스티븐스 대사도 2010년 한미의 핵심 현안이자 2000년대 한국 내 반미 정서의 주요인이었던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한국의)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기를 바라지만 이 사안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다”며 비록 정제된 톤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그럼에도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분담협상 등 한미 관계의 현안에 대해 한국 정부를 전례 없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공교롭게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중에 해리스 대사가 부임하고, 그의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계속해서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가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해리스 대사에게는 ‘고압적인 미국 외교관’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한미 관계가 과도기를 겪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모두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을 변화한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같은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한국의 국력이 급성장하면서 한미 관계가 상호 호혜적 관계로 재조정되는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대국민 공공 외교를 통해 한미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변화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과거 미국대사의 한 마디에 한국 정부의 기조가 흔들렸던 경험을 겪었던 한국민은 미국대사의 발언을 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간주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대사들도 한국과 미국이 불평등한 관계에 있었던 역사와 한국민의 의심을 고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오해를 자초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 주한 미국대사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냉전 이후 한국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미국대사는 한미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역할로 변화했다”고 했다. 이어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대사 개인의 성향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한미 정부가 변화된 양자 관계 속에서 이견을 조율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제된 톤으로 발표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이는 탓도 있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합당? 영입?…‘정치권 청년’ 어디까지 왔나요

    합당? 영입?…‘정치권 청년’ 어디까지 왔나요

    청년의 정치 참여가 4·15 총선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민주당과 정의당 등 진보진영의 ‘청년 정치인 육성’ 경쟁에 불이 붙었다. 각 당은 청년 정치 결사체와의 합당·연대, 당내 청년당의 개설, 젊고 참신한 정치신인 영입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젊은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애쓰고 있다. 총선이 3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정치권은 실제로 얼마만큼의 자리를 청년과 함께하고 있을까.●“통합합시다” 정의당 청년 정치세력에 제안 ‘청년’에 가장 강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는 곳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설 이후 청년정당인 우리미래를 비롯한 청년정치결사체에 합당하는 방안을 제안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정의당은 오는 28일 범진보세력 및 시민사회세력과 선거 연대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태스크포스(TF)에서 첫 회의를 열어 우리미래 등 청년 정치 단체와 연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정의당은 청년정당과의 통합으로 당내 청년의 목소리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의당 김종민 부대표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정의당은 우리미래 등 청년 정당에게 통합 등 청년정치 세대교체를 주도하자는 정치적 연합을 공식적으로 제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의당은 과거부터 총선에 앞서 통합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는 방식을 택해 왔다. 20대 총선을 5개월여 앞둔 2015년 11월 정의당은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 더하기와 4자 통합을 이루면서 정치적 외형확대를 이룬 바 있다. 21대 총선에 앞서서도 정의당은 청년세력과의 통합으로 당내에서 청년의 위상을 하나의 주요한 세력으로 만들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10% 할당? 20%할당? 각 당 청년할당 범위는 정당들은 당직과 선출직 공무원 후보자 비율 등을 청년에게 할당하는 ‘청년할당제’ 도입하고 있다. 특정한 기준을 설정해 선거 때마다 청년정치신인을 배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다. 민주당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자를 추천할 때 청년을 10% 이상 추천하도록 당규에 명시하고 있다. 광역의회의원 후보자는 20% 이상, 기초의회의원 후보자는 30% 이상 추천해야 한다. 기초의회에서부터 청년 정치인이 성장해 국회로 들어오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민주당 관계자는 “청년 정치인이 기초의회에서부터 성장하면 상당히 탄탄한 실력을 가지게 된다”며 “오랜 시간 총선에 도전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성장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민주당은 선거에서 청년 후보자가 경선에 임할 때 나이에 따라 차등해 추가점을 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청년후보자의 경우 29세 이하는 25%, 만 30세 이상부터 35세 이하는 20%, 만 26세 이상부터 만 42세까지는 15%, 만 43세 이상부터 만 45세 이하는 10% 가산한다. 또한 대의원에는 청년 당원이 30% 이상 포함되고, 중앙당과 시도당 주요 당직을 비롯한 각급 위원회를 구성할 때 청년 당원이 10% 이상 되도록 강제하고 있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 비례대표 명부 당선권에 만 35살 이하 청년 5명을 할당하기로 했다. 비례대표 1번을 포함해 당선권 경쟁명부의 20%(5명)를 청년에게 할당하는 게 핵심이다. 또한 지역구 출마자에게 40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고, 35세 이하 청년과 여성·장애인 후보에게는 추가 지원을 하기로 했다.●21대 새로 들어올 청년 정치인들 청년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정치권에서도 청년 정치인 영입을 서두르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인재영입 2호로 영입한 원종건(27)씨가 가장 화제다. 원씨는 지난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지역구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청년이라서 안 된다, 가진 것이 없어서 안 된다. 이 두 가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원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5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각막 기증으로 눈을 뜬 어머니와 함께 소개돼 전국의 시청자를 눈물바다로 만든 사연의 주인공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영입 발표 후 정말 많은 기자분들을 만났다. 그런데 만나는 분들마다 공통적으로 물어 오는 질문이 꼭 있다”며 “첫째는 ‘20대인데 왜 정치를 하려는� ?굡箚� 밝혔다. 이어 “저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반드시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야 제 뒤를 잇는 20대 청년 정치인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라며 “20대는 정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고정관념이다. 제가 보란 듯이 청년의 패기로 뚫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민주당은 81년생 최기일 전 방위사업청 육군 소령, 청년소방관 오영환씨 등을 청년 정치인으로 영입했다. 정의당은 영입 청년인사와 당내 청년인사가 고르게 출마한다. 외부 영입 인재로는 장혜영 감독이 대표적이다. 장 감독은 1987년생으로 지난 2011년 연세대를 중퇴하며 ‘공개 이별 선언문’이라는 대자보를 붙여 김예슬·유윤종씨에 이어 ‘명문대’ 자퇴를 선택한 3번째 대학생으로 주목받았다. 장 감독은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할 예정이다. 당내에서는 젠더 문제에 힘써온 조혜민 여성본부장이 출마할 예정이다. ●청년을 ‘독립시키자’…청년당만드는 정당들 궁극적으로 당내에서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각당은 청년당을 만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9일 전국청년당 전진대회를 열었다.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는 최근 청년당 창당했다. 지난 11일 충북청년당을 시작으로 12일 강원 청년당, 15일 대구 청년당, 18일 광주 청년당을 창당했다. 그리고 지난 19일 전국청년당 전진대회를 통해 기존 청년위원회 구조에서 벗어나 청년당원의 권리와 권한이 실질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첫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당으로 개편을 시작했다. 특히 이번 전진대회에서는 전국청년당 내 청소년분과가 발족하고 청소년이 직접 분과위원 당직을 임명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정의당은 한발 더 나아가 35세 이하 모든 당원을 청년당의 구성원으로 포함하는 방안을 제4차 전국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정의당은 청년정의당을 청년 자체적인 정치활동과 독립된 예산, 정책수립을 통해 ‘자치기구’로 만들 계획이다. 이에 따라 만 35세 이하 모든 당원과 예비당원을 청년정의당의 회원으로 하고, 정의당 전체 당원 당비에 600원씩 할당해 청년정의당 기금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정의당은 내년 사안기까지 청년 정의당 창당을 마친다는 생각이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홍희경의 패스추리TV] 강남도 한 석만 가져라

    [홍희경의 패스추리TV] 강남도 한 석만 가져라

    ‘검사와 장삼이사.’ 정권 대 검찰의 대립이 애꿎게 한 검사의 상가에서 폭발하자, “네가 검사냐”며 상관에게 대든 검사를 법무부가 준엄하게 혼냈다. 그러다 ‘장삼이사도 하지 않는 부적절한 언행’이란 법무부의 표현이 새 구설을 낳았다. 검사씩이나 됐으니 장삼이사, 즉 나머지 사람들과 다르다는 노골적 구별짓기다. 그 적나라함이 차라리 고맙다. 전체 인구의 1%도 안 되는 고관대작 수사 절차를 조금 고쳐 놓고 검찰개혁 완수했다는 식의 호도와 결이 다르니 말이다. 아무리 살펴도 공수처 수사 대상이 될 정도의 위인이 내 주변엔 없는데, 공수처 설치가 왜 가장 주목받는 검찰개혁 의제가 됐을까. 장삼이사의 손에 잡히는 공포가 진지하게 다뤄지는 모습을 본 기억은 드물다. 혹여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냈는데, 화성 8차 사건 때처럼 신속처리 압박을 받은 당국이 수사를 잘못해 억울한 희생자가 되면 어쩌지. 이런 우려에 정치는 늘 불성실하게 답했다. 엘리트 그룹들끼리 치고받아 만든 의제를 패션쇼하듯 무대에 올린 뒤 앉아서 쇼나 보라는 식의 정치가 4월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앞으로도 변하는 건 없을 것이다. 지역갈등 해소, 보혁 대결, 친박 소멸 등 엘리트들이 관성적으로 배급한 의제로 옷장 속이 분주해도 일상에서 입을 옷은 늘 부족할 테다. ‘조작된 의제’에서 벗어날 때다. PD수첩에서 세 보니 국회의원 300명 중 75명, 넷 중 한 명꼴로 서울 강남에 집이 있단다. 마을에 현수막 걸고 상경했다 30년 만에 금의환향하면 지역구 의원 되는 풍토 탓에 강남에 집 가진 의원이 이렇게까지 많아졌다. 이들에게 고향 겸 지역구는 어린 시절 풍경에서 천지개벽한 곳일 테고, 최근 일상을 보내는 강남에서의 작은 불편엔 신경이 곤두설 것이다. 교육, 집값, 커뮤니티 전부 지금도 제일 좋은 강남이 계속 더 좋아지겠다. 강남은 번식 중이다. 입성을 위해 엘리트들이 흘렸던 피, 땀, 눈물은 사회적 가치로 승화되는 대신 그 집 자녀들도 나머지 지역으로 추방당하지 않고 강남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유리바닥’ 까는 데 활용되고 있다. 이른바 ‘세습 중산층’ 시대가 시작됐다. 엘리트들이 강남을 벗어나서도 유능하고 유익할지는 사실 확인된 바 없다. 오히려 동네에 대형마트가 생길라치면 주변 전통시장이 얼마나 다칠지 책상머리에서 내놓는 분석이 장황할 때가 많았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철들 무렵부터 그 지역에서 장사한 자영업자라면 ‘김씨네 식당 고생하겠네’라거나 ‘배씨네 총판이 타격 입겠네’라고 즉각 튀어나올 법한 분석인데 말이다. 정치인의 고스펙이 유권자에게 언제나 이롭지는 않다 엘리트도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엘리트가 밀집한 지역구, 그만큼의 의석이면 족하다. 강남에 집을 둔 75명끼리 강남에서 겨뤄 최고를 가리고, 나머지 지역에서 그곳의 현안을 들고 온 다른 대표자들과 정치하라. 과잉대표 되는 강남, 그래서 어떤 정책에도 강남의 손실은 없는 결과…. 이대로는 장삼이사의 욕망과 행복이 실현될 통로가 너무 좁다. ※※유튜브 ‘패스추리tv’에 강남 엘리트 위주 정치에 대한 진단과 풍자가 있습니다. 패스추리tv는 우리 주변에서 발생한 일의 경로(path)를 추리합니다.
  • “공무원 수부터 줄이는 게 먼저… 연금개혁·보수체계 손봐야”

    “공무원 수부터 줄이는 게 먼저… 연금개혁·보수체계 손봐야”

    지난해 공무원연금 적자는 2조 2000억원이다. 그 적자는 고스란히 나랏돈으로 메워야 한다. 공무원연금과 ‘용돈연금’ 수준인 국민연금 간 격차도 6배 이상이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경제활동인구 감소와 복지 증가의 파고를 넘으려면 재정을 압박하는 공무원연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울신문은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끈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과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등 전문가 3명과 함께 공무원연금의 문제점과 향후 해법 등을 모색했다. 이들은 “공무원연금 개혁은 인기 없는 정책이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꼭 해야 할 과제”라며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인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생아 수 줄어 연금 제도 유지하기 나쁜나라로 윤석명(이하 윤) 연금 분야의 저명한 사회정치학자인 스위스 로잔대의 보놀리 교수가 지난해 방한했는데 ‘(한국처럼) 인구구조가 나쁜 나라는 처음 봤다’고 하더라. 연금제도를 유지하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여건이 좋지 않은 나라로 들어섰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근면(이하 이) 출생아 수가 한 해 40만명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에 20년 후에는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이 40만명 이하가 될 것이다. 이런 초저출산 국가에서 20년 미래를 보장할 수 있겠나. 연금은 견고한 경제성장률, 충분한 세금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상누각이다. 윤 2015년 굉장히 어렵게 개혁한 공무원연금이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공무원연금이든 국민연금 개혁이든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구조를 개선해 국민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정치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한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은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여야와 공무원노조가 합의한 굉장히 보기 드문 사례이며 성과 또한 크다. 하지만 다시 정부보조금 규모가 늘고 재정 추계가 악화하다 보니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단기적으로 공무원연금 개혁, 중기적으로 공무원 보수체계를 손봐야 한다. 왜 공무원의 생산성 향상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나. 국민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출 방법은 공무원 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비스를 받을 국민은 줄어드는데 공무원을 증원하고 있다. 이런 미스매치를 국민은 어떻게 볼 것인가. 더욱이 문제는 젊은이들의 참여 없이 그들에게 지속적인 부담을 안겨 줄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평균 급여 530만원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 김태일(이하 김) 공무원연금은 급여를 적게 주는 대신 노후를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설계됐다. 박봉과 이권을 신경쓰지 않고 충실히 일하면 노후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국민은 부당한 특혜라고 본다. 공무원들이 가뜩이나 잘 누리고 직업도 안정됐다고 본다.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현재의 공무원연금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한지 살펴 개혁해야 한다. 윤 공무원연금은 1960년 원래 소득대체율 40%로 도입됐고 연금 수급연령은 60세였다. 그런데 1962년에 수급연령 기준을 없애고 소득대체율도 76%까지 올렸다. 완전 역주행을 했다. 그때는 공무원들이 재직 기간에 희생한 것을 나중에 주겠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공무원 평균 급여가 530만원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올렸던 것을 내리지 않았고, 개혁했다는 내용은 새로 들어온 공무원에게만 적용된다. 기존 공무원들에게는 개혁 내용이 거의 해당되지 않는다. 김 100% 동의한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기존 공무원은 손해 본 것이 별로 없다. 인사혁신처가 2015년 연금 개혁으로 공무원은 국민보다 내는 돈은 2배 많으나 받는 돈은 1.7배라고 해명했는데 궤변이다. 내는 만큼만 받는 구조라면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내는 것만큼 받는 게 아니다. 국민연금은 1을 내면 2를 받는 구조이고, 공무원연금은 1을 내고 3.4를 받는 구조다. ●후세대 ‘폭탄 돌리기’ 된 공무원연금 이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일단 공무원은 국민보다 내는 돈이 2배 많다. 개인 기여율이 국민은 4.5%, 공무원은 9%다. 그러니 모수가 2배다. 그런데 받는 돈은 국민연금 대비 1.7배밖에 되지 않는다. 김 예컨대 30여년 근무하고 퇴직하는 공무원의 연금 수령액이 얼마인지, 비슷한 대기업 직원은 얼마를 내고 얼마를 받는지 비교하면 실제 액수는 매우 차이가 난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좋을 게 없다고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예전에는 스무살에 공무원이 돼 마흔살에 퇴직해 연금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도 예외조항이 있어 50대에 퇴직해도 바로 받는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그렇지 않다. 이 공무원 증원도 결국 국민에게 부담이 간다. 연금을 그대로 두면 후세대 폭탄 돌리기가 된다. 정치권은 왜 가만있는가. 지금 안 하면 못 하는데, 이렇게 시기를 놓치는 것은 대국민 기만행위다. 공무원이 스스로 연금을 개혁하겠는가. 민간기업은 노동생산성이나 기업의 성장, 물가 상승을 고려해 임금을 올린다. 그러나 정부는 재정 여력으로 공무원 임금을 올린다. 생산성은 도외시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논하기 전에 근본적인 문제마저 손도 대지 않는 것이다. 김 국민이 공무원연금을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공무원연금 구조를 유지하는 게 과연 공직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타당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연금 정도로 줄이는 게 맞다고 본다. 결국은 공정의 문제다. 이 전체 보수체계 문제에서 봐야 한다. 공무원 전체의 보수와 생산성에 대한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문제는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만 개혁해서는 안 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우리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 대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세대 간 형평성이 정의롭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 정부는 연금 개혁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고 있는 것이다. 김 정부가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좋을 것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지 말고, ‘팩트’는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렇게 화두를 던져야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연금 문제 정부가 지속가능성 책임져야 윤 맞다. 주요 선진국들은 연금 관련 정보를 매우 투명하게 공개하는데 우리는 갈수록 비밀주의로 흐르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면 이상한 논리로 방어하기에만 바쁘다. 이 문제가 나중에 곪아 터지면 수습할 방법이 없다. 개혁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우리 사회가 빨리 공유하고, 사회 공동의 가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논의할 주체가 나와야 한다. 김 사실 연금은 정치다. 재정의 원칙은 지속가능성이며, 정부가 지속가능성을 책임져야 한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모두 빨리 개혁할수록 실질적 부담이 줄어든다. 영국은 연금 개혁을 하면서 학자들이 모여 오래 토론하고 지방을 다니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그런 과정을 거쳐 연금 개혁을 해야 한다. 윤 우리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이 모여 사회적 대화를 하고 있는데, 좀더 객관적이고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치열한 논쟁을 거쳐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이익집단들이 대화를 주도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논의가 흐르고 있다. 우리 사회가 연금 문제를 정치 문제화하고 있다. 개혁안을 만들 때는 정치 밖에서 하고, 그 안을 논의할 때는 정치 안에서 해야 한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전직 대통령 가족들 총선 출사표…후광효과 볼까, 세습 비판 받을까

    전직 대통령 가족들 총선 출사표…후광효과 볼까, 세습 비판 받을까

    DJ 3남 김홍걸 전략지역 경기 고양 검토 노태우 장남 노재헌 한때 민주 입당설 전직 대통령 가족들이 하나둘 4·15 총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배운 정치적 소신을 잇는다는 해석이 있지만 단순히 ‘후광 효과’를 노린 것 아니냐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결국 유권자들의 손에 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는 22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선언하며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이곳은 자유한국당 박덕흠 의원의 지역구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 옥천군이 포함돼 민주당에서는 험지로 분류된다. 그는 입당 회견에서 노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자신의 결정이 “수많은 이들이 따르려는 어르신의 큰 정치와 뜻을 이어 가는 큰 길”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도 일찌감치 출마 의사를 밝혔다. 호남 출마를 노렸지만 전략공천지역이자 DJ의 옛 사저가 있던 경기 고양 출마가 검토되고 있다. 김 상임의장은 통화에서 “당에서 (지역을) 정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는 한때 입당설이 나왔지만 민주당에서 “사실이 아니다”라고 입장문을 내면서 이야기가 정리된 상태다. 당 관계자는 “일각에서 영입을 주장했지만 지도부와 공유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의 가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국내외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이들은 선대의 정치적 유산을 보존한다는 데 뜻을 같이하는 정치인들 사이 구심점 역할을 주로 한다. 노 변호사의 경우처럼 아버지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대신 반성하고 화해의 장을 여는 일도 가능하다. 노 변호사는 지난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족에게 공개 사과를 하는 등의 행보로 주목을 받았다.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가족이 훌륭한 정치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국민의 바람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면 전직 대통령에게 폐를 끼친다”고 말했다. 이 역시 ‘정치 세습’일 뿐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홀로서기’를 강조하지만 결국 선대의 대통령이 쌓은 기반에 기대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최근 문희상 국회의장 부자의 지역구 세습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런 인식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中 ‘우한 폐렴’ 확진 500명 육박…전문가 “실제 상황 훨씬 심각”

    中 ‘우한 폐렴’ 확진 500명 육박…전문가 “실제 상황 훨씬 심각”

    中 ‘우한 폐렴’ 확진자 473명 이르러“상황 축소 보고한 전력…더 많을 것”“중국 내 감염자 1459명” 관측도중국 정부가 발표한 ‘우한 폐렴’ 확진자가 22일 500명에 육박했다. 중국 정부가 밤 사이 100여명이 넘는 추가 확진자를 갑자기 발표해 2003년 ‘사스 사태’처럼 환자 정보를 은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중국 당국의 공식 발표보다 실제 상황이 훨씬 심각하며 ‘대유행’ 조짐까지 보인다는 관측도 내놓았다. 인민일보는 우한 폐렴 확진자가 오후 7시 30분(현지시간) 기준 473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9명이다. 지난 21일 하루 동안에만 149명이 확진 판정을 받는 등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 확진 환자는 발병지인 우한이 있는 후베이가 375명으로 압도적이고 광둥 26명, 베이징 10명, 저장 10명, 상하이 9명, 충칭 6명, 쓰촨 5명, 허난 5명 등이다. 환자가 5명 이상인 성과 직할시가 8곳이다. 푸젠, 안후이, 랴오닝, 구이저우, 하이난, 산시, 광시, 닝샤와 특별행정구인 마카오 등 9개 지역에서는 이날 처음으로 환자가 나왔다. 이에 따라 확진자가 있는 지역은 20곳을 넘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전날 ‘우한 폐렴’을 사스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에 해당하는 ‘을류’ 전염병으로 지정했다. 그러면서 대응책은 흑사병이나 콜레라와 같은 ‘갑류’ 전염병 수준으로 상향하기로 했다. 환구망은 ‘갑류’ 전염병 수준으로 대응하면 정부가 모든 단계에서 격리 치료와 보고를 요구할 수 있고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면 공안이 강제할 수 있고 공공장소에서 검문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저우즈쥔 베이징대 공중보건학 교수는 “갑류 수준의 대응은 중국 본토에서는 가장 강력한 조치”라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지만 인체에 대한 위험성은 흑사병이나 콜레라보다는 훨씬 덜 심각하다”고 밝혔다. ●사스 때도 5개월 숨겨…정보 은폐 의혹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중국 당국의 공식 발표보다 실제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사스 대응에 참여했던 싱가포르의 전염병 전문가 피오트르 클레비키는 “공식 발표된 수치를 믿기 힘들다”며 “중국은 실제보다 상황을 축소해 보고한 전력이 있으며, 실제 상황은 (공식 발표와) 완전히 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과거 ‘사스 사태’ 때도 정보를 숨기다 물의를 일으켰다. 사스는 2002년 11월 16일 광둥성 포산 지역에서 처음 발병했지만, 감염 사실이 처음 보도된 것은 발병 45일 후인 2003년 1월 말에 이르러서였다. 그것도 ‘이상한 괴질이 발생하고 있다’는 광둥성 언론의 1단짜리 기사가 전부였다. 이후 언론 통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홍콩 언론이 2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이 ‘괴질’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지만, 이때는 이미 중국과 홍콩에서 수백 명의 사스 환자가 발생한 뒤였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중국은 역학조사를 나온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에게 환자를 숨기는 등 사실 은폐에 급급했다. 발병 5개월 만인 4월 10일에야 사스 발생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당시에도 27명의 환자가 있다고 밝혔을 뿐이었다. 사스는 모두 774명의 사망자를 냈다. 홍콩대 전염병역학통제센터는 우한 폐렴이 지난 17일까지 이미 중국 내 20여개 도시로 확산했으며, 우한 내 감염자 1343명과 다른 도시 감염자 116명을 포함해 중국 내 감염자가 이미 1459명에 이른다는 추정치를 내놓았다.홍콩 전염병 권위자인 홍콩대 위안궈융 교수는 우한 폐렴이 사스 때와 같은 전면적 확산 단계에 진입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위안 교수는 “우한 폐렴은 이미 환자 가족이나 의료진에 전염되는 전염병 확산 3단계에 진입했으며, 사스 때처럼 지역사회에 대규모 발병이 일어나는 4단계에 근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 “지역사회 대규모 발병 단계 근접” 전염병 확산 1단계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 2단계는 인간 사이의 전염을 가리키는데 우한 폐렴은 이를 넘어 3단계, 4단계로 진행하고 있다는 경고다. 위안 교수는 특히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가진 채 대규모 인파와 접촉하는 ‘슈퍼 전파자’가 이미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사스 대유행 당시 슈퍼 전파자는 ‘독왕’으로 불렸는데, 1명이 100명이 넘는 사람에게 전염시키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스 대유행 당시 세계보건기구(WHO) 아시아 지역 대변인을 지낸 피터 코딩리는 “중국 정부는 우한 폐렴 확산에 대해 초기부터 거짓말을 했다”며 “사스 때 보였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 지금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가 운영하는 위챗 계정 ‘창안젠’은 “사스의 뼈아픈 교훈을 잊지 말고 현 상황을 정확하게 보고해야 한다”며 “이를 어기고 이기적인 목적에서 보고를 은폐하거나 지연하는 당원은 수치스러운 고통을 영원히 맛보게 될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했다.한편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 가오푸 센터장은 이날 발표한 연구 결과에서 “우한 폐렴을 일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와 매우 높은 유사성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학원 상하이파스퇴르연구소와 군사의학연구원 연구자들은 전날 학술지 ‘중국과학: 생명과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우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자연숙주는 박쥐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과거 사스는 박쥐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향고양이로 옮겨진 뒤 이 사향고양이를 통해 다시 사람에게 전파됐다. 가오푸 주임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초기 환자가 집중발생한 우한 화난 수산시장에서 팔린 야생동물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야생동물을 먹거나 접촉하지 말라는 주의보를 내렸다. 우한 폐렴의 진원지로 알려진 이 시장은 겉으로는 수산물을 팔지만, 시장 내 깊숙한 곳에서는 뱀, 토끼, 꿩 등 각종 야생동물을 도살해 판매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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