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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민당 “권토중래” 무산위기/엥홀름총재 은퇴후 진로 진통

    ◎87년 「바르셸사건」 위증이 치명타/대체인물 없어 콜 총리 독주할듯 내년 총선에서 기민당의 헬무트 콜 현총리와 대결할 예정이던 독일사민당의 비외른 엥홀름총재가 3일 사임함에 따라 지난 3월 헤센주의회선거 패배의 충격에서 미처 벗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사민당은 앞으로 당의 진로를 놓고 큰 진통과 파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엥홀름은 빌리 브란트 이후 처음으로 제1야당인 사민당의 총재직과 사민당 총리후보직을 함께 맡았을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개인별 여론조사에서도 콜총리를 능가하는 높은 인기를 누렸던 만큼 그의 사임은 독일정계에 큰 반향을 부를게 틀림없다. 한때 사민당재건을 위한 유일한 희망이라고까지 여겨졌던 엥홀름이 정계를 은퇴하게 된것은 지난 3월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폭로한 「바르셸사건」에 대한 그의 위증 때문. 이른바 독일판 워터게이트라고도 불리는 「바르셸사건」은 지난 87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회선거에서 당시 주지사였던 우베 바르▦이 엥홀름에 대해 갖가지 흑색선전을 편 정치공작사건.당시 바르▦은 엥홀름이 에이즈에 걸려 있으며 탈세를 일삼고 있다는 등의 흑색선전을 폈으며 심지어 자신의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해놓고 그 혐의를 엥홀름에게 씌우려고까지 했었다.그러나 바르셸의 홍보책임자였던 라이너 파이퍼가 이같은 사실을 슈피겔에 폭로,공개함으로써 엥홀름이 재선거를 통해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주지사에 오르는 길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그후 5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거의 잊혀졌다.그러나 엥홀름의 측근이 지난 88·89년 두차례에 걸쳐 파이퍼에게 5만마르크(약 2천5백만원)를 건네줬음이 또 슈피겔에 의해 폭로되면서 끝내는 엥홀름의 정계은퇴까지 몰고오게 됐다. 엥홀름은 87년 11월 주의회에서 바르셸의 흑색선전공작을 선거당일에야 알았다고 증언했었는데 슈피겔의 보도로 그가 오래전부터 바르셸의 흑색선전공작을 알고 있었음이 드러났다.위증사실이 밝혀지자 도덕정치를 표방해온 엥홀름은 자신의 신뢰성에 큰 손상을 입었으며 강력한 사퇴압력에 처한 결과 3일 정계은퇴를 발표하게 된것이다. 사민당은 엥홀름의 은퇴선언 즉시 요하네스 라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지사를 임시당수로 임명하고 오는 10일 당집행위원회를 소집하는등 예상되는 혼란방지에 애쓰고 있다.그러나 유권자들의 사민당에 대한 실망이 최고수준에 이른데다 게르하르트 슈뢰더,루돌프 샤르딩,레나테 슈미트등 차기지도자들 가운데 엥홀름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 없어 누가 사민당의 새당수가 되든 사민당의 앞날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사민당의 또다른 과제는 독일재통일에서부터 외국난민의 유입억제,해외에서의 독일군역할 확대등 최근의 민감한 문제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정책정당으로서의 신뢰도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지난 10여년간 3번의 총선에서 모두 실패한 사민당은 이제 새로운 정책을 내건 새 인물의 등장을 필요로 하고 있다.그러나 사민당이 이번에도 참신한 인물과 새로운 정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지난 10년간 계속되온 콜총리의 독주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DJ,6월말 귀국… 집필활동 구상/영국방문 이후의 행보는…

    ◎측근들 잇단 출국… 「새 역할」 모색 가능성도 영국에 머무르고 있는 김대중전민주당대표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언제쯤 귀국할 예정이며 귀국후 활동계획은 무엇인가. 김전대표의 오랜 측근인 권로갑최고위원이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영국을 다녀온뒤 김전대표의 최근 활동과 향후계획등의 일단을 밝혔다. 물론 권최고위원은 국내정치상황과 민주당내 문제등에 대해서 김전대표와 의견을 나눈 것으로는 짐작되나 김전대표의 심경이나 구체적인 생각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권최고위원은 김전대표의 귀국시기와 관련,『귀국시기는 김전대표가 정계를 은퇴한 이상 정치와는 무관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정치상황 여하에 관계없이 예정대로 6월말쯤 귀국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귀국후 국내활동에 대해서는 『현대 정치사문제와 영국에서 연구한 유럽통합문제,동서독통일과 관련해 조국의 통일문제에 대한 생각을 재정리하게 될 것』이라며 『조용한 곳에서 계속 연구하고 집필을 계속할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권최고위원이 전하는 김전대표의 영국생활은 주로 민족문제와 관련한 연구활동이라고 한다. 상오9시까지 현지신문을 정독하고 이어 김전대표가 초청연구원으로 있는 클레어 홀 칼리지의 연구소에서 하오6시까지 연구활동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각 대학의 학장들및 앤소니 기딘스,존 단 같은 석학들과의 대화시간을 가지나 현지 정치인들과는 일체 만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정치인과의 접촉은 영국 외무성의 굿래드국무장관이 만나자고 요청해 단한번 만난적이 있다고 권최고위원은 전했다. 김전대표는 귀국전 4월하순에는 브뤼셀의 EC를 방문,구주의회지도자들과 유럽통합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계획이며 4월30일부터는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세계지도자회의」에 참석한뒤 5월에는 동유럽을 방문할 계획이다. 권최고위원은 김전대표의 정치적 역할과 관련해서는 『현실정치를 떠난 것이지 국민과 민족·역사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게 김전대표의 심경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권최고위원이 단순히 인사차 영국을 방문했다고는 하지만 잇따라 한화갑의원이 지난 14일 김전대표를 방문하기 위해 출국한점 등으로 미루어 김전대표의 의도이든,아니든간에 김전대표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일각에서는 조심스러운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 “국제공헌” 외교노선 계승 확실/일,와타나베외상 전격교체이후

    ◎자위대의 해외파병 가속화 될듯/맞수 퇴진… 현총리 연임 가능성 일본 외상의 전격교체는 퇴임하는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외상이 정계실력자라는 점에서 일본정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국제공헌을 강조하는 일본외교의 기본틀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토 가분(무등가문) 신임외상도 6일 『와타나베외상의 외교노선을 계승하겠다』고 강조,이를 뒷받침했다.와타나베외상은 자위대의 해외파견등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주장해온 인물.그는 냉전종식후의 새로운 국제질서 창출과정에서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소신을 기회있을 때마다 밝혀왔다. 이번 외상의 전격교체는 와타나베의 건강악화가 그 이유다.와타나베외상은 지난해 5월 「쓸개관결석」제거수술을 받았으나 차도가 없어 최근에는 병원에서 출퇴근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는 것이다.일부에서는 그가 암을 앓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미야자와총리는 당초 「하타파」의 「자민당탈당」을 막기 위해 하타파를 이끌고 있는 하타 쓰토무(우전자)전대장상의 외상취임을 요청했으나 하타씨가 이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하타씨의 거부로 미야자와총리는 와타나베외상의 직계인 무토 전통산상을 외상에 내정했는데 이같은 맥락에서 무토씨의 외상내정은 파벌의 역학구조를 크게 고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토외상내정은 또 그가 통산상,농수산상 등을 역임했기 때문에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을 고려했다는 분석도 있다.그는 「쌀시장개방론자」로 알려져 일본이 쌀시장개방에 더욱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그는 특히 일·한의원연맹부회장직을 맡고 있어 한·일외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토신임외상은 4월중순 도쿄에서 열리는 선진7개국(G7)외무·재무장관회담,7월의 G7정상회담,미야자와총리의 방미,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문제등 많은 현안을 떠맡게 됐다.그러나 그는 와타나베외상과 같은 외교의 주도권행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 외교면에서의 미야자와총리의 영향력 증대가 예상된다. 미야자와총리는 다음 총리로 유력시되던 와타나베외상이 건강악화로 다음 선거출마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총리연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야자와정권을 적극 지지하던 가네마루 전자민당 부총재의 정계은퇴에 이어 와타나베외상도 사임,정권기반이 약화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더욱이 하타파의 새로운 정당 창당움직임도 활발해 일본정국 전망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 신임외상 무토는 누구/와타나베 직계인 「3대 대물림의원」/통산성장관 등 역임한 지한파중진 일본의 새외상으로 내정된 무토 가분(무등가문·66)전통산상은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난 「3대 대물림」국회의원이자 일·한의원연맹부회장을 맡고 있는 원내의 지한파중진. 교토(경도)대를 졸업하고 지난 67년 최초로 국회의원에 당선,정계에 입문후한 9선의원으로 농수산상,통산상 등을 역임했다. 지난 90년 통산상 당시 미국의 베이커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쌀시장개방 양보」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여전히 최소한 부분개방이라도 해야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소기업육성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산업계에도 발이 넓다.비교적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평도 듣고 있다.자민당내 와타나베(도변)파 중견간부로 와타나베외상의 직계로 알려져 있다.
  • 재력가들 지탄피하기 소명 분주/민주·국민당의원 재산공개 이모저모

    ◎9∼10명 축소의혹… 실사·징계 움직임/“보선 망칠수도” 당내 위기의식 팽배 민주당은 재산공개 접수등록 마감날인 4일의 차분함과 달리 5일 의원중 9∼10명이 전국에 대지와 임야를 가지고 있거나 축소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대책 마련을 위한 막후 움직임이 부산하다.예상되는 문제점과 그에따른 대책숙의가 한창이며,해당의원들은 소명자료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18일 앞둔 보궐선거를 망칠수도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겹쳐 서서히 「태풍권」에 접어든 모습이다. 5일 하루 앞당겨 재산을 공개한 국민당은 이보다 덜 긴장된 분위기이나 소속의원 14명중 몇명은 여론재판을 받지않을까 우려하며 소명에 분주했다. ▷민주당◁ ○…이날 밤 예정에 없던 「재산공개 대책회의」(위원장 이부영최고위원)를 여는등 향후 대책마련에 부심.공식발표도 하지않은 상태에서 대책회의를 가진 것은 공개후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게 당관계자들의 설명. 그러나 일부 「재력가」 의원들의 재산등록 서류가 일부 흘러나오면서 의외의 파문조짐을 보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여론의 「표적」이 되고있는 의원들의 소명자료를 받아 검토하고,문제소지가 있는 재산에 대해 「별첨자료」를 만드는 일이 주논의 내용이었다. 대상의원은 강희찬 국종남 김충현 신진욱 박은대 이희 양문희의원(이상 전국구)과 강수림(성동병) 장석화(영등포 갑) 하근수(인천 남을) 이경재(구로을) 정기호의원(청주을)등.이들은 무연고지 부동산 취득동기,취득연도및 의혹 가능성이 있는 임야 논밭등에 대한 설명자료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신진욱의원에게는 경우 같은 학원재벌인 김인곤의원(영광·함평)처럼 비영리법인 소유 재산내역도 별도 작성,공개토록 지시했다는 후문.당의 한 관계자는 『신의원이 비영리법인 재산에 대해 구체적인 명시를 하지않아 이에대한 보충자료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박은대의원의 경우는 기자실로 해명자료를 보내 『자녀 이름의 오기』라고 밝히는등 의혹 축소에 애썼다.일부언론에 거명된 의원들도 문제가 된 재산에 대해 취득목적·경위·연도등을 설명하는등 소명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이들중 3∼4명의 의원은 「정치적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당은 『부동산을 소유했다고 해서 모두 투기혐의로 볼수 없다』는 입장.대신 취득과정의 불법·탈법은 철저히 가리겠다는 태도이다. 박지원대변인은 『이 과정에서 만일 부정이 발견되면 당차원의 징계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당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더라도 즉각적인 사법처리는 반대하고 있다.이날 상오 열린 최고위원간담회에서는 『여야합의로 국회에서 공직자윤리법을 개정,이에 근거해 처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징계와 관련,한 고위당직자는 『사태추이를 봐가며 논의할 문제』라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개진했다.그러나 『야당의원으로서 재산취득과정이 국민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할 경우 민자당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가질수 없을 뿐더러 여당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할수 없기 때문에 당에서 조치하지 않을수 없다』고 말해,징계조치를 취할 뜻임을 밝혔다. 이 경우 당기위를 열수 밖에 없다.하지만 출당까지 갈지는 의문이다.법에 근거해야하기 때문이지만,현 야당의 사정이 의원 1명이라도 아쉽기 때문이다.따라서 최악의 경우가 자진탈당선에 그치리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당으로부터 보완지시를 받은 의원중 호남 5대부호집안의 국종남의원의 경우는 대부분 상속재산이거나 영화 「하얀전쟁」제작사인 대일필름소유 부동산이지만 제주 서귀포 소재 대지 4만여평은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국의원은 『영화예술인 종합연구원 건물을 짓기위해서』라고 소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충현의원은 지난 84년 미성년인 아들 명의로 상속한 제주도 임야와 농가주택에 대한 보완자료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이에대해 김의원은 『상속세와 증여세를 세무당국에 모두 내 문제점이 없다』고 밝혔다. ◎당위상과 달리 비교적 재산 “여유”/정주일의원 등록 안해 의혹 무성/「6공실세」 박철언의원 “24억은 예상밖” ▷국민당◁ ○…국민당의 축소된 현재 위상과는 달리 소속의원들은 비교적 재산적인 여유를 가진 것으로드러났다. 그러나 연예인시절 고액소득자 1위를 여러번 차지할만큼 상당한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정주일의원과 3공때 재무장관을 지낸 김용환의원,노태우전대통령의 처남으로 대선전 민자당을 탈당한 김복동의원등은 막바지까지 등록을 미루며 눈치작전을 펴는등 진통. 정의원은 서울 용산구 캐피탈호텔 지하 나이트클럽(지분 50%)을 비롯,잠실의 극장식 레스토랑등 부동산및 주식·예금을 포함해 모두 1백억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끝내 마감시간인 이날 하오5시를 넘겨 구설수. 재산공개결과 유수호·김복동·손승덕의원등이 모두 30억원이 넘는 「재력가」로 드러났으며 이중 유의원은 재산랭킹 1위를 차지. 김용환·김복동의원은 각각 27억여원과 34억7천만원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 역시 「돈 많은 의원」임이 판명. 손의원도 모두 34억7천만원을 신고했는데 춘천시·군일대에 가족명의로 대지및 임야·전답을 엄청나게 많이 소유해 투기혐의가 짙다는 지적. 6공의 실세였던 박철언의원은 서울 양재동 1백52평 빌라(13억원)·예금 1억8천8백만원·증권·채권등 본인재산 19억4천만원과 부인소유재산 4억2천만원등 총 24억8천만원을 신고,예상밖이라는 중론. ○의상·장신구도 신고 경북영풍 갑부로 소문난 유수호의원은 골프회원권 4개를 포함,39억3천만원을 공개했고 정주영전대표의 정계은퇴로 국회의원직을 승계한 탤런트 강부자의원은 본인재산 1억8천만원과 역시 탤런트인 부군(예명 이묵원)재산 10억7천만원등 12억9천만원을 신고. 더욱이 강의원은 TV출연용 의상 4백여점과 장신구 1백여점을 2천2백만원으로 평가해 눈길. 강의원은 또 본인및 남편명의로 경기 성남·가평·광주및 제주등지에 임야를 소유한 것으로 드러나 무연고지역 부동산투기혐의가 제기. 김동길대표는 작고한 누나 김옥길전이대총장으로부터 상속받은 충북 괴산군일대 대지및 임야를 비롯,모두 15억2천여만원을 신고했으며 이자헌의원은 16억8천여만원을 공개하면서 부인의 다이아몬드 1캐럿을 8백만원으로 신고. 한영수의원은 3억3천만원을,해병대사령관출신인 박구일의원은 18억원을 공개. 당내최대 빈민의원은조일현의원으로 국회의원을 세번 떨어졌기 때문에 9천8백만원밖에 안된다고 신고.
  • 전환기의 한반도현안 어떻게 풀까/해외특별기고

    ◎“남북정상회담으로 통일물꼬 터라”/한국정부서 이니셔티브 쥐고 「핵」 등 해결/미·러·중·일 시각 탈피한 장기전략 바람직/김영삼대통령 의지·비전 필요… 북한전후세대 부상 기대 남북간 현안과 통일문제를 생산적으로 풀어 나가기 위해 김영삼대통령의 문민정부에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새로운 비전과 투철한 실천의지다. ○격변반세기 목격 우리는 지난 3년간 세계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난공불락의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동서독이 통일되는 과정과 동유럽의 민주화쟁취,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는 「사변」을 목격했다.특히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돼온 「냉전」의 종식은 남북한 통일의 가능성을 시사,모두의 가슴을 들뜨게 하기에 족한 금세기 최고의 「격변」이었다. 냉전의 종식이 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의 「신사고」와 리더십이 없었다면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란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러나 반세기동안 지속돼온 냉전은 종식됐지만 불행히도 「냉전의 산물」인 한반도의 분단상황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또 통일 역시 요원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따라서 한반도의 냉전을 종식시키고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와 같은 김영삼대통령의 새로운 비전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강대국의존 마감 2개의 정부가 한반도의 서울과 평양에 각각 수립된지 47년,휴전협정이 체결된지도 벌써 40년이 경과했다.그러나 한반도에는 아직도 평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이에따라 90년대에 통일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이루어 내겠다고 한 김영삼대통령의 선거공약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김영삼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98년 이전에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장기전략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미·소와 같은 강대국의 행보에 의해 통일의 실마리가 풀리기를 기대했던 이제까지의 냉전시대적 발상의 시효는 이미 끝났다고 봐야 한다.물론 강대국의 역할이 전혀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나 민족적인 차원에서 통일문제 해결의 한국정부 주도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강대국으로부터는 협조를얻는 것으로 족하다는 말이다.따라서 김영삼대통령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현안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자주통일로 가는 첩경이란 지적은 설득력을 갖는다. 북한체제의 성격으로 미뤄 봐서도 정상회담을 통해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현행 고위급회담이나 실무자회담등의 우회로를 짚어가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인식이다.남북한은 지난해 2월19일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발효시킨 바 있다.그러나 현재 남북한 관계는 북한핵에 발목이 잡혀 다시 꽁꽁 얼어 붙어 있다. ○경원카드 효과적 최근 미국의 중앙정보부장 울시는 의회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핵탄두를 한개 이상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증언했다.이에 앞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해 북한의 원자로시설에 대한 사찰을 마치고 돌아와 제출한 보고에서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그 수준이 아직 저급한(Primitive)상태고 핵무기를 실질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에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고 밝혔었다.당시 사찰단의 판단에 잘못이 있었는지 아니면 북한이 시설을 은폐,사찰단이 충분한 사찰을 하지 못한 까닭에서인지 최근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특별사찰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이 현재 의심을 받고 있는 녕변부근의 2개 시설에 대한 IAEA의 사찰을 끝내 거부할 경우,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압력이 강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최악의 경우 미국의 무력사용까지 거론되고 있는게 현금의 실정이다.그러나 현 단계에서 미국의 북한핵시설공격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관측이 유력하다.그럴 경우 차선의 선택은 「외교적 해결」로 귀착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따라서 김영삼대통령이 이같은 찬스포착에 과감히 나서야 할 당위성은 더욱 강조된다.경원과 관계개선을 통해 북한의 핵무기개발과 보유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북 교섭 이전에 북한은 대일수교와 경원을 교섭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요구대로 핵안정협정에 서명하고 일반사찰도 받아들였다.그러나 핵사찰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일본과의 수교교섭 역시 지금 중단되고 있다.따라서 현재 북한은 미국과의 평화협정,국교 정상화와 경제원조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한편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의 핵무기개발과 보유를 저지하기 위해 「외교적 자원」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해가고 있는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미국과 북한 사이에 그같은 교섭이 이뤄지기 전에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추진,북한의 대미외교를 능동적으로 도와줌으로써 이니셔티브를 가질 수 있고 동시에 한반도에서의 전쟁재발 가능성에 쐐기를 박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체제가 유지되고 미국으로부터의 안보위협이 제거된다고 할 경우 남북정상회담의 두번째 아젠다(Agenda)는 군축,이산가족재결합,문화·경제교류등 기본합의서의 구체적 실천방안 논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간에 기본합의서가 채택·발효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을 체험한 구세대 계층에서는 아직까지 냉전시대적 사고방식의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게 사실이다.심지어 남북고위급회담의 남측대표 가운데김일성과 김정일이 제거되지 않으면 통일이 어렵다고 말하는 분도 포함돼 있다고 들은 바 있다.또 북한체제가 붕괴되지 않는 한 통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이 통일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강경론자도 있다고 한다. ○빨치산세대 퇴조 그러나 지금은 남과 북 양쪽에서 서서히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국면이다.한국전쟁세대인 50대와 60대는 점차 일선에서 은퇴하고 있으며 그 대신 보다 합리적이고 비냉전적 사고를 지닌 전후세대가 부상하고 있다.북한의 권력구조 내부에서도 빨치산세대와 혁명주의자들이 차츰 사라지고 테크노크랫이 전면에 등장, 보다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즉 정상회담에서 내려지는 결정을 수렴,통일의 길로 이끌어 갈 세대가 있다는 말이다.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논의함에 있어 70년대에는 미국,소련,중국,일본등 이른바 강대국의 역할이 중요시 됐으며 4대강국의 보장론도 자주 거론됐었다.또 80년대에는 이산가족찾기,경제교류등 비정치적인 사안들이 남북관계의 주류를 이루어왔다.그러다가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고위급회담을 통해 남북문제의 해결을 모색하게 되었다. ○중국 중재 가능성 지금 미국에서는 40대의 클린턴정부가 출현,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현재 미국은 국내 개혁스케줄에 쫓겨 다른데 미처 신경을 쓸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 불원은 물론 남북정상에 의한 통일문제의 자주적인 해결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아가고 있다.팀스피리트훈련이 남북고위급회담에 장애가 된다면 취소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입장천명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북한의 유일한 맹방인 중국도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다시 전쟁이 발발하는 사태발전을 원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중국 지도층은 북한정부에 미칠 수 있는 그들의 영향력이 미국이 서울정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보다 매우 약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같은 연장선상에서 남북한정상의 자주적인 한반도문제 해결을 바라고 있다는 풀이다.관측통들은 남북정상이 북경에서 대좌하게 될 경우 중국이 중재를 자처하고 나설 가능성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신한국」창조를 내외에 천명했다.지금이야말로 김영삼대통령이 「대도무문」의 자세로 이니셔티브를 장악,90년대 통일을 위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고 나설 때다. □김일평 미 코네티컷 주립대 교수 ▷약력◁ ▲서울대 문리과대학·미켄터기주 애스베리대학 정치과 졸업 ▲미콜롬비아대학교 대학원 박사 ▲미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 연구교수 ▲92년 12월 17일 「세계평화를 위한 정상회의」(SCWP)주관의 전문가원탁회의에 참석,클린턴정부에 대한반도정책 건의.
  • 「김재순·박준규씨 처리」 청와대의 분위기

    ◎사적 아쉬움 공적 개혁행보에 묻고…/“40년 친구로 가슴아프나 어쩔수 없는 일”/「토사구팽」도 아닌 섭섭함으로 이해 정부와 여당의 재산공개 파문은 일단락됐다.그러나 여진은 남아 있다.공직을 떠나는 등 징계를 받은 인사들 가운데는 분하고 억울해 하는 대목도 있을 수 있다.징계를 가한 입장에서도 사태의 본질에 상관없이 마음이 개운치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청와대는 이번 파문으로 김영삼대통령과 김재순 전국회의장,박준규국회의장 등 세사람의 「40년 인연」이 종지부를 찍은데 대해 아쉬워하는 분위기이다. 김전의장은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토사구팽」(토사구팽·토끼사냥이 끝나니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노골적으로 섭섭한 심정을 나타냈다.박의장은 『본인이 걸어온 길과 원칙에 대해 당으로부터 동지적인 해명과 정다운 비판을 고대한다』는 우회적인 말로 불만을 표출했다. 김대통령을 겨냥해 한마디로 『인간적으로 이럴 수가 있느냐』는 섭섭함을 표시한 것이다. 그러나 두사람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뚜렷하게 차이가 난다.김대통령은 김전의장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몇십년 친구로서 가슴 아프다』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박의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오히려 사법처리 검토 움직임까지 감지될 정도이다. 단편적 시각에서 보면 이같은 차이는 두사람의 처신방법이 달랐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김전의장은 정계은퇴를 선언,결과적으로 김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했다.박의장은 의원직 사퇴 요구에 불복,탈당의 길을 택해 김대통령에게 저항한 셈이 됐다. 그러나 청와대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이 김전의장에게 훨씬 더 큰 인간적인 짐과 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해석했다. 김대통령은 30일 새벽조깅을 끝내고 한 측근인사에게 김전의장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밝히며 다음과 같은 일화까지 소개했다는 것이다. 『지난 87년 대선에서 패배했을 때 이 양반이 제일 먼저 상도동 집에 찾아와 나를 위로했다.당시 김전의장은 「다음에는 김총재에게 기회가 올 것이다.이는 역사적인 필연으로 본다.실망하지 말고 계속 정진하라」며 나를 격려했다』 이경재 청와대대변인은 『김대통령이 김전의장의 정계은퇴 선언에서의 비난발언(토사구팽)에 대해 도전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개인적인 섭섭함으로 이해하는 것같았다』고 전했다. 김대통령은 이 측근인사에게 『친구라고 해서 이미 보도되고 실사과정을 통해 나타난 문제사실을 눈감아 주면 문제를 일으킨 다른 어느 누구도 승복하지 않을 것 아니냐』면서 공과 사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또 『나 스스로도 눈물을 흘릴 정도이며 김전의장의 사퇴성명은 듣기에도 가슴 아프다』고 심경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의장에 대해서는 『김대통령과 5대 국회때부터 친구』라는 정도로만 언급했다.박의장에 대한 사법처리와 관련해서는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문제 삼는 것 아니냐』는 원칙론만을 얘기하면서 『재산공개가 처벌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닌만큼 꼭 처벌위주는 아니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김대통령과 김전의장,박의장은 지난 50년대 야당인 민주당에서 정치적 동지로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김대통령과 박의장은 유석 조병옥박사가 이끌었던 구파소속으로 4·19이후에는 당내소장파 모임인 「청조회」를 주도하며 함께 활동했다.그러나 5·16이 나면서 김대통령은 야당의 핵심 멤버로 계속 남은 반면 김,박 두사람은 공화당에 들어가 노선을 달리했다.이후 김대통령은 야권의 최고지도자로 성장했고 김전의장과 박의장은 여당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세사람은 90년 3당합당으로 정치적 동지로서 다시 만났다.김전의장은 특히 민자당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두고 「YS대세론」의 선봉역할을 하며 민정계 인사들을 김대통령의 진영으로 끌어들였다.이에 비해 박의장은 친YS 움직임에 동조는 하면서도 현직 국회의장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소극적이었다.김대통령을 후보로 옹립하는 과정에서도 기여도 측면에서 차이가 났던 것이다. 재산공개 파문이 의도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고 강조되듯이 사퇴대상에 김전의장과 박의장이 포함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도 전혀 예상밖이었다고 청와대측은 밝히고 있다. 결국 김대통령과 김전의장,박의장의 결별은 「개혁 드라이브」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되고 있다.여기에는 김전의장,박의장 두사람이 문제를 자초한 부분을 우선시 해야함은 물론이다.재산내역에서 나타난 의혹부분만을 놓고볼때 두사람은 결코 역사발전의 「희생자」로 간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 등 사후의 「개혁체제」 다지기/폐막된 중국전국인민대회 결산

    ◎강택민,당정군 장악… 권력투쟁에 쐐기/시장경제 위주인사에 법률 등 대폭 손질 중국은 지난 15일부터 31일까지 계속된 제8기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1차회의를 계기로 정치는 사회주의,경제는 자본주의라는 독특한 체제실험기로 넘어갔다.물론 지난 10여년간의 개혁개방때도 생산방식에서 자본주의 흉내를 많이 내긴했으나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시장경제 도입을 명문화시킨 것이다.당국자들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시장경제와 다르다고 애써 강조하지만 서방측에서 볼때는 구차한 변명으로 들린다. 중국헌법에는 지금까지 「국가는 사회주의 공유제 기초위에서 계획경제를 실시한다」로 돼있던 것을 이번엔 「국가는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실시한다」로 바꾸었다.뿐만아니라 「국영경제」라는 말을 「국유경제」로 고침에따라 국가는 소유만할뿐 경영은 기업 스스로 알아서 대처해간다는 의미까지 분명히 밝힌것으로 볼수있다. 중국이 이같이 경제분야에서는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이를 추진해나갈 법률적 제도적 장치와 인선까지 마무리했으나 이념이나 정치노선에는 이번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이른바 「공산당 영도」「사회주의 노선」「프롤레타리아독재」「마르크스­레닌­모택동사상」등 그들의 4개항 기본원칙에 전혀 손질을 하지않았다는 사실은 경제분야개혁만으로도 소련·동구에서와 같은 체제몰락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 틀림없다. 이번 전인대회의를 계기로 나타난 또다른 특징은 보수파 세력이 거의 완벽하게 사라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물론 지난해말 14차당대회때 이미 많은 보수파 원로들이 실각되거나 은퇴의 길로 들어서긴 했으나 이번 전인대에서는 요의림 이석명 주기위 왕병건등 잔존 보수세력들마저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은 중국지도부를 보수­개혁파로 양분해 보던 종래의 시각이 무의미해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밖에도 보수세력의 아성을 이뤄온 혁명원로들중 지난해 이선념 등영초가 타계하고 이번 전인대회의 개막직전에는 왕진국가부주석이 사망한 것도 보수파의 침몰을 앞당기는데 한몫 거든 것으로 평가된다.비록 개혁파이긴 했으나 만리와 양상곤이 이번에 정계에서 은퇴한 것이나 보수파 대부 팽진 진운등이 건강때문에 정무에 더이상 간섭하기 어려운 상황도 개혁파의 활동무대를 넓혀준 셈이다. 이같은 환경변화와 더불어 또다시 주목해야할 점은 강택민 1인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는 이미 당총서기에 당중앙군사위주석을 겸하고 있는데 이번에 또다시 국가주석에 국가중앙군사위 주석까지 차지함에 따라 당­정­군을 모두 장악함으로써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의 지도층은 등소평사후 일어날지도 모르는 소요사태에 적절히 대응해 나가기 위해서는 최고 지도자에게 막강한 권위와 지위를 확보시켜줘야 한다는데 묵계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모두들 강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됐을 경우의 폐해보다는 등사후의 권력투쟁이나 소요사태를 더 우려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 제도의 개혁,개혁의 제도화(사설)

    국회의장이 참담한 모습으로 소속 당을 떠나고 전국회의장은 정계를 은퇴했다.형사처벌 될 이가 있는가 하면 몇몇 의원은 사퇴,권유탈당,당직해제,경고등의 문채을 감수했다.차관급 고위공직자들 몇몇도 또한 그러했다. 모두들 공직자들인데 그 자리의 명예와 채무와 도리를 지키지 못한 탓이다.멸사봉공하며 만인을 계도하고 더러 희생도 해야하는 공직의 사명을 잊은채 자리만 알고 수분을 못했던 사람들이다.재산을 모았으되 탁재임을 몰랐고 그것을 공개해야할 당위를 외면하고 오히려 빼돌리고 감추고 속임수로 국민의 눈을 가리려 했다.지도자의 개혁의지와 시대적 요구에 저항한 대가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차피 한번은 치러내야할 홍역이다.면역체가 생기도록 이 고비를 잘 넘기면 공직사회의 이른바 총체적 비리와 부정부패척결의 전환기적 계기로 승화시킬 수 있다.그래서 우리는 이번 재산공개파동을 이제 잘 추스르고 마무리하되 그 교훈적 의미를 살려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친 변혁의 고삐를 다잡아야 할줄로 안다. 사실 공직자재산공개의 근본취지는 고위공직자가 현재 가진것을 숨김없이 밝히고나서 맑고 깨끗하게 공적인 일을 처리해 국민의 신뢰와 공감을 얻자는데 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부의 양적 규모보다는 부의 축적과정과 신고의 정직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다.공직에 있으면서 온갖 수단과 모든 방법을 써서 부를 축적해왔다는 사실은 조세부과 또는 형사처벌의 문제를 떠나 공직윤리와 규범에 비추어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민자당은 추상같은 문책으로 일단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면서 공직자륜이법을 강화 개정키로 했다.현실규범과 도덕의 문제를 제도의 개혁과 개혁의 제도화로써 바로잡자는 의지일 것이다. 공직자윤리는 법적책임과 표이관계에 있다.공직자윤리법이 있다는것은 공직 그 자체가 바로 법적책임을 수반한다는 뜻이다.국회의원은 물론 전 공직자의 청렴의무는 도덕이전에 법적의무이다.그것을 외면하고 대중의 눈을 가린 자,부도덕한 법의 파괴자임을 면치못할 것이다.그들 일부의 손으로 입법된 현행법이 등록된 재산의 실사는 물론 공개도 않게 돼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이것을 고치고 보완하자는 것이다. 제도적 법적 보완뿐 아니라 차제에 어떻든 공직및 공직자윤리관도 새롭게 확립하는 계기도 다져야 할줄로 안다.공직자는 근본적으로 일반 국민이 접할수없는 정보와 권력을 갖고있기 때문에 어떠한 유혹이나 회유에도 노출돼 있다.다만 명예롭고 청렴하며 멸사봉공한다는 사명과 긍지의 공인의식을 갖는 사람만이 이 유혹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일대 의식의 개혁이 있어야한다는 말이다.
  • 개혁드라이브 강력 뒷받침/재산공개파문 매듭의 의미와 효과

    ◎때묻은 인사 물갈이로 도덕성 확보/새 공직사회 구축… 「창조의 정치」 지향 「신춘정국」을 9일째 강타한 재산공개파문이 30일 박준규국회의장등 6명의 의원에 대한 징계와 강신태철도청장등 5명의 차관급에 대한 문책인사로 사실상 판막음했다. 김영삼대통령은 파문이 매듭된뒤 이를 영국의 명예혁명에 비유했다.그만큼 의원재산공개가 있던 지난 22일부터의긴박한 상황전개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했다.이 작업의 당측 사령탑이었던 최형우사무총장은 『오늘로써 제발 모든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을 정도다.이른바 「개혁주체」인 최총장조차 괴로움을 토로할만큼 숨가쁜 시간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깨끗한 정부」와 「윗물맑기운동」을 천명한 김대통령의 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한 통치권 차원의 반부패운동으로 볼 수 있다.또 문민정부의 공직자상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청백이선언」인 것이다.나아가 이번 파문으로 헌정중단 상황이 아니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부 때묻은 정치인과 공직자의 물갈이를실현함으로써 헌정사상 초유의 「청정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김영삼정부」는 이번 조치로 역대 어느 정권과 달리 도덕적 기초위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됐다.이는 김대통령의 친정체제 강화와 경제회생을 위한 고통분담에 국민의 폭넓은 동참을 의미하기도 한다.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잡음없이 뒷받침할 수 있는 터전을 닦았기 때문이다. 재산공개는 지난달 27일 김대통령의 재산공개가 그 시발점이었다.당시 김대통령의 재산공개는 『퇴임후 상도동 집에 그대로 돌아가겠다』는 대선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그 이면엔 「정치권의 부정부패 척결의지」를 함축하고 있었다는 게 정가의 일치된 지적이다. 그뒤 지난 6일 국무총리와 감사원장,12일 민자당대표및 당3역,18일 장관및 청와대비서관순으로 이어졌다.고위공직자들의 엄청난 재산이 속속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고 일부 장관이 해명서를 내는등 곤욕을 치렀다. 그러다 22일 평균 25억여원이라는 민자당의원들의 재산이 공개됐고,비등하던 여론은 『역시 정치권』이라며 최고조로 치달았다.재산형성 과정에서의 갖가지 비리가 드러났고 부정이 파헤쳐졌다.공개 준비과정에서부터 적정규모를 놓고 고민하던 흔적이 역력했는데도 불구,이 정도로 드러나자 「징계론」이 제기됐다.일부에서는 「정치권물갈이」까지 들먹이는 상황으로 급전했다. 급기야 민자당은 공개 이틀뒤인 24일 재산공개진상파악특위를 구성,실사에 나섰고 박의장이 빗발치는 여론에 굴복,국회의장직 사퇴를 선언하고 칩거에 돌입했다.27일에는 유학성,김문기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치의 무대에서 퇴장했으나 국민감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또 일부의원들이 사퇴하면서 비교적 순탄하게 정리될 것 같았던 문제의원 징계는 절차를 요구하는 박의장과 탈당을 거부한 정의원의 당명불복이 막판 걸림돌로 작용,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민자당의 권해옥특위위원장과 위원들이 대상의원들을 접촉,당의 강한 뜻을 전달했고 해당부처장관들은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는 차관들을 불러 해결의 가닥을 잡아나갔다.최종발표 하루전인 29일 당쪽에서는박의장과 임의원이 탈당을 발표했고 김재순전국회의장은 정계를 은퇴했다.정부쪽에서는 정성진대검중수부장과 최신석강력부장이 자진사퇴함으로써 대단원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최종 발표에서 정부는 차관급 경질대상을 5명으로 최소화했다.정밀 실사대상이 15명선에 이르렀음에도 불구,5명으로 압축한 점은 공직사회의 위축과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게다가 문책 형식을 당사자가 자진사퇴하고 이를 정부가 수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공직사회의 사기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축재의혹은 엄중히 다스리되 개혁의 한 축인 공직사회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김대통령은 스스로 이번 파문의 진행 과정을 보고 『5공청문회보다 몇백배 낫다』고 자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새로운 공직사회의 지평을 열었다는 의미로 평가된다.이제 남은 것은 이를 제도화하고 관행으로 만듦으로써 「창조의 정치」로 가꾸어야 한다는 점이다.
  • 「박 의장·임 의원 돌출」로 당혹/마무리앞둔 민자 재산공개조사특위

    ◎해당의원 최후설득·징벌수위조절 마쳐/대선공로 앞세운 김재순의원 처리 가장 고심/비리축재·투기성 뚜렷한 의원엔 초강수 재산공개파문으로 당전체가 뒤숭숭했던 민자당이 처리시한인 30일을 목전에 두고 막바지 정리단계에 돌입했다. 청와대측과의 충분한 사전교감속에 처리대상별 분류작업을 마무리한 민자당은 전날에 이어 29일에도 당지도부가 직간접적인 접촉을 통해 해당의원들의 최후 설득작업에 나서는등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날상오 김재순의원이 의원직사퇴를 포함한 정계은퇴를 발표함으로써 순조로운 수습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했던 민자당지도부는 그동안 강한 사퇴압력을 받았던 박준규국회의장과 임춘원의원이 하오에 의원직사퇴가 아닌 탈당을 선언하자 당혹감 속에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당진상조사특위는 휴일인 28일에도 밤샘작업을 하며 징벌수위조정작업에 박차를 가했는데 당초 의원직사퇴·출당·국회및 당직박탈을 포함한 당원권정지·경고등 4단계에서 중간과정을 모두 빼버리고 의원직사퇴와 경고조치등두가지로 정리.다만 특위는 경고를 「공개」와 「비공개」로 나눠 문제의원들을 차등조치하는 방안을 신중 검토했으나 사안자체가 공개될수 밖에 없는데다 「한점 의혹도 없게한다」는 차원에서 모두 공개키로 결론. 그러나 경고조치를 당한 의원은 지구당위원장직은 몰라도 국회직및 당직을 유지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게 지배적인 관측. 한편 지난주 매듭짓기로 했던 특위활동이 이번주까지 연기된 것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70여명의 의원들이 개인적 소명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라고 한 관계자가 귀뜸. ○…특위조사활동결과,징계조치의 경중이 뒤바뀐 경우도 의외로 많았는데 이날 의원직을 사퇴한 김재순의원이 대표적 케이스라는 것. 김의원은 27일까지만 해도 도저히 의원직사퇴라는 「정치적 파산선고」까지는 가지않을 것으로 생각됐으나 휴일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급변,결국 정계은퇴로 결론.한 특위관계자는 『조사결과 김의원은 언론보도내용보다 정도가 훨씬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그 배경을 설명. 김의원은 특히 28일저녁 최형우총장을만나 사퇴를 종용받았는데 처음에는 완강히 버티다 최총장이 호화별장은닉을 비롯한 축소신고재산목록을 하나하나 거론해나가자 정계은퇴 의사를 밝혔다는 것. 그러나 김의원이 3당통합직후부터 김대통령의 대세론을 앞장서 부르짖었으며 대통령후보경선때도 고문을 맡아 맹활약하는등 「혁혁한 공로」로 김대통령과 당지도부는 막바지까지 그의 처리를 놓고 심사숙고했다는 후문. 반면 김진재·정호용·이상득의원등은 소명이 받아들여져 무혐의처리. ○…의원직사퇴라는 초강수 철퇴를 맞는 의원은 이미 사퇴한 유학성·김문기·김재순의원과 탈당한 박의장·임의원,그리고 정동호의원등 6명으로 최종확정. 당초 의원직사퇴권유대상으로 유력했던 이원조의원은 뚜렷하게 탈법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경고조치로 격이 낮춰졌다는 후문. 하지만 정의원은 부정비리축재혐의가 뚜렷하고 투기성 재산형성이 많아 일찌감치 극약처방으로 결론났다고.특히 그의 부인이 전국적으로 몇손가락안에 꼽힐 정도의 「복부인」으로 소문난 것도 정의원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했다는 것. 그러나 박의장의 탈당선언 소식이 알려지자 의원직을 사퇴할 것으로 보였던 임의원이 방향을 바꿔 역시 탈당을 선언하고 정의원도 이와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돼 당지도부는 곤혹스런 모습들. ○…이번 파문으로 언론에 보도되거나 지은 죄가 있는 의원들은 어느때보다 긴시간을 보내며 당지도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 기간이었다. 특히 최총장의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초미의 관심대상이 되어 분위기라도 파악하려는 사람들로 당사 6층의 사무총장실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
  • “예상넘는 재산 은폐”…사퇴로 결말/김재순의원의 정계은퇴선언 안팎

    ◎별장·임야 등 신고누락 실사서 판명/김 대통령과의 친분 불구 강경 처리 김재순전국회의장의 국회의원직사퇴및 정계은퇴는 다소 뜻밖이었다.그의 이름이 계속해서 언론에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의원직사퇴의 대상으로까지는 거론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청와대와 민자당측에서는 진작부터 김전의장의 처리문제로 고심해왔다.그것은 김전의장의 재산이 신고한 것보다 엄청나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는 했으나 김전의장과 김영삼대통령과의 각별한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을수 없기때문이었다. 김전의장은 민정계임에도 불구,대통령후보 경선때부터 확실하게 김대통령지지를 표명하고 전국 각지를 돌며 「거산 대세론」을 폈었다.특히 그가 「거산형」이라고 부르며 대의원들을 상대로 한 연설은 감동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따라서 김전의장의 거취는 김영삼대통령도 당연히 관심을 가질 사항이었다.그러나 결국 김대통령도 김전의장에게 의원직을 사퇴하도록 종용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김전의장이 지난 22일 신고한 재산내역은 가족분까지 포함,주택 2채,대지 2곳,빌라 2곳등 46억1천8백70여만원이었다.이는 의원들의 평균신고재산이 25억여원인 것에 비해 2배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김전의장에 대해서는 언론의 보도가 꼬리를 물었다.그는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등 9곳에 임야를 갖고 있다고 신고했으나 토평동의 임야는 3천2백평을 누락시켰으며 평가액도 축소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다.또 동해의 일출을 볼수 있는 강원도 명주군 연곡면 영진리에 부인의 명의로 별장 2채와 별장부지 1백12㎡를 갖고 있었는데도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그에게 의원직사퇴까지 종용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언론에 보도된 의혹때문이 아니었다는것이 청와대와 민자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청와대관계자는 29일 『김전의장의 재산을 실사한 결과 언론보다 정도가 훨씬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김전의장이 의원직사퇴를 거부할 것에 대비해 명백한 관련자료까지 확보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이관계자는 『당특위의 조사결과도 보도보다 심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던 것으로안다』면서 『다만 김전의장과 김대통령의 관계로 볼때 미묘한 사안이어서 공개가 어려웠었다』고 말했다. 권해옥재산공개진상파악특위위원장도 27일『실사결과 사실보다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새롭게 드러난 대목도 있다』고 말해 의원직사퇴대상자가 추가될 것임을 시사했었다. 이같은 청와대와 민자당의 입장은 주돈식정무수석과 최형우사무총장이 차례로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최총장은 27일 하오 부산에 내려갔다가 28일 하오 상경,시내 모처에서 김전의장을 만나 청와대와 당의 확고한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전의장은 29일 「정계를 떠나면서」라는 성명을 통해 『토사구팽(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의 감회가 없지 않다』『지금의 이 모진 바람이 지나가는 추이를 본인과 더불어 눈여겨 봐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라며 불만의 일단을 피력했다.하지만 청와대및 당에서 새로 밝혀낸 재산을 제외하고,스스로 공개한 재산만으로도 일반 국민들로부터 「너무 과다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는 4·19후실시된 5대민의원선거에서 처음 민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들어온 7선의 원로정치인이다.5·16후 여당인으로 변신,6·7·8대를 거쳤으며 10월유신이후 공천에 탈락,정계를 떠나 샘터사를 설립해 출판과 문필에만 전념해오다 13대에 정계에 복귀,국회의장직을 맡았었다.한일의원연맹회장직도 내놓은 그는 대선에서의 공로로 볼때 박준규의장이 2년임기를 채우면 후임국회의장을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그의 정계은퇴는 박준규의장의 탈당과 더불어 우리 국회의 현주소가 어디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 군·고위직 돌며 막대한 공직치부/유학성씨 사퇴까지 역정

    ◎공개만 58억원… 땅·건물 등 축소·누락/5공초엔 부정축재자 색출 지휘도 가난했던 어린시절을 거쳐 군과 공직에서만 44년을 보낸 유학성국회국방위원장(66)이 불명예스러운 의원직사퇴에까지 이른 것은 현재 그가 보유한 재산과 축재과정때문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으면서 또 청렴을 금과옥조로 삼아야할 군과 고위공직·국회의원으로만 평생을 보낸 그가 공개한 재산은 아무리 축소하려고 애썼어도 국민의 상상을 훨씬 초월한 것이다. 평생 공직생활로써 벌어들일수 없는 규모였음은 물론,재산취득 과정마저 공직을 이용한 투기의혹이 짙다. 그가 공개한 일가족의 재산은 본인 9억5천여만원,처 4억7천여만원,장남 18억8천여만원,자부 1억4천여만원,차남 17억2천여만원,삼남 6억1천여만원등 총 58억여원이었다. 그러나 공개재산내역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공시지가축소·신고누락·특혜사례·투기의혹등 어느것 하나 일반인이 납득할만한 것이 없다. 강남구 도곡동 대지 2백56평은 공시지가가 52억9천만원인데도 신고는 11억7천만원으로 되었고,양재동 1백5평(공시지가 16억원)도 2억3천만원,대치동 38평(공시지가 9억2천만원)은 1억3천만원,역삼동 99평(공시지가 12억3천만원)은 3억6천만원,대치동 41평(공시지가 9억6천만원)은 4억6천만원,안양시 건물(거래가 56억원)은 8억7천만원,군포시 1백45평(공시지가 5억9천만원)은 1억2천만원으로 각각 축소신고했다. 이중 대치동 2곳과 양재동등 3곳에는 3∼5층 규모의 빌딩이 있으나 아예 건물분은 신고에 누락시켰다. 제주도 한림읍에 있는 임야외 4필지는 지난 88년 장남명의로 매입한 것으로 투기의혹이 짙다. 차남소유로 신고한 안양의 대지 1백80평은 82년 유의원의 처남 안모씨가 안양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체비지를 불하받은 것으로 드러나 특혜의혹을 샀다. 이땅은 이후 91년 아들3명에게 명의를 이전해 지하3층,지상10층의 건물을 지어 현재 사무실로 임대하고 있다. 그는 월남참전·군단장·육군대장등 최고의 군경력,안전기획부장·반공연맹이사장등 최고위공직,3선의원·국회국방위원장등의 최고명예를 누렸다. 그는 3성장군시절 5공출범의 계기가됐던 12·12주도세력으로 가담,군후배인 전두환·노태우두전대통령으로부터 깍듯한 선배대접을 받았다. 79년 전두환합동수사본부측이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12월12일밤 30경비단에 모인 신군부세력의 좌장으로서 구질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87년 대통령선거 당시에는 정승화씨가 당시 김영삼후보진영에 가담,12·12를 쿠데타로 몰아붙이자 당시 민정당의원이었던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사태의 정당성과 5공의 개혁의지를 강변했던 적도 있다. 그는 5공출범시 안기부장을 맡아 개혁과 사회기강확립의 명분으로 부정축재자를 선정,재산의 사회환원등을 유도한 바 있다.이때 부정축재자로 조사를 받은 정치인으로는 현재 민자당의 김종필대표,최형우사무총장등이 있다. 이번 재산공개때 5억원남짓의 재산을 신고한 최총장은 당시 3천7백만원의 부정축재혐의로 한달 보름간 안기부에서 고문과 조사를 받았다. 이때 중학교에 다니던 최총장의 자녀들은 TV·신문에 아버지가 부정축재자로 발표돼 친구들이 「아버지가 도둑이냐」는 비난을 하자 한달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민자당의 재산공개파문 수습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총장은 굳이 과거를 들추진 않지만 두사람의 인연은 역사의 아이러니로밖에 볼수 없다. 유의원은 지난 23일,물의의 심각성을 고려해 이미 정계은퇴를 결심했으나 여론에서 조금 빗겨간 26일에 결심을 밝혔다고 말했다. 유의원 자신이 직접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 거듭 사과한다」고 말했듯이 유의원의 사퇴는 「군인정신」과 「공직윤리」 「권력의 부패불감증」등 왜곡된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유학성씨 사퇴 발표문 (전문) 본인은 이번 재산등록 과정에서 당과 지역구민,그리고 국민들에게 누를 끼치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데 대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새로운 신한국 건설에 매진할 시점에서 본인의 일로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에서 의원직을 사퇴하고자 합니다. 본인은 지난 총선때 지역구민들과 약속한대로 장학재단 설립을 추진중에 있었던바,그 약속을 지키고 조금이라도 사회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40여년간 공직생활에 헌신적으로 도와준 가족과 주위의 많은 도움을 주신분들,특히 고향지역 주민들에게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점 거듭 사과드리며 그동안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제철 세계3위 키운 “철강대부”/박태준 전 명예회장 인생역정

    ◎말년 정치입문으로 쓴맛 경험 12일 포철을 떠난 박태준씨(66)는 포철 신화의 주인공이자 세계철강업계의 거목이었다. 지난 68년 불모지나 다름없던 포항 영일만 개펄에 콘크리트 기둥을 밖기 시작한지 25년만에 2천1백만t의 조강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제3위의 제철소로 키워낸 철의 사나이이다.그가 일궈낸 포철의 지난해 매출액은 6조1천8백21억원으로 국내 제조업체 가운데 6년 연속 매출액 1위를 지켰고 세후순이익만도 1천8백51억원에 이르러 웬만한 기업의 매출액을 능가할 정도였다.포철은 지난 73년 포항제철소 준공 이후 15년 7개월만인 89년 1월 철강생산 1억t을 달성하는등 지금까지 1억7천만t의 철강재를 생산해왔다. 포철을 세계 3위의 제철소로 만든 신화로 박씨는 「한국의 철강왕」이라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이같은 명성을 활용해 지난해 정계 은퇴 이후에도 포철명예회장으로 동남아를 돌면서 도 무오이 베트남 당서기와 만나 포철의 대베트남 투자의 문을 열어놓기도 했으며 중국과의 인맥을 통해 대규모 합작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기도 한 그는 또 완벽주의적 업무 스타일로 부하 직원들에게는 호랑이로 통했다.실제 포철 초기에는 단한번의 실수로 임원회의 석상에 불려가 그 자리에서 해고당한 직원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 그의 「목욕론」이다.『육체적으로 깨끗할 때 정신도 맑아지며 그래야 모든 일이 깔끔하게 처리된다』는게 평소의 지론이다. 그러나 그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정치와 인연을 맺어 말년에 좌절을 겪게 됐다.그가 만약 정치와 인연을 맺지 않았더라면 포철도 그를 더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 또한 마지막까지 역량을 발휘했을 것이란게 회사관계자들의 아쉬움이다.지난 10일 일본으로 건너가 신병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가 언제 귀국할지는 미지수이다.
  • 이기택대표와 전통야당의 새 위상(사설)

    제1야당 민주당이 이기택대표최고위원을 「기수」로 내세워 새 출발을 기약했다.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 패배와 김대중전대표의 정계 은퇴후 당을 이끌어온 과도체제에 종지부를 찍고 9인 집단지도체제를 출범시킨 것이다.민주당이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활기를 되찾아 건강한 제1야당으로서 소임을 다해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민주당의 이번 대표및 최고위원 경선에서 패자들이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야당의 오랜 전통을 지킨 것에 대해 우선 박수를 보낸다.전당대회 과정의 한심한 「김심」논쟁이라든가 과열·혼탁상으로 인해 빚어졌던 실망과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전통야당의 성숙한 면모였다. 이번에 제1야당의 당권이 사상 처음으로 4·19세대로 넘어간 것은 정치적 의미가 크다고 본다.민주당으로선 「탈」김대중화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면 정치권으로선 「양금시대」 청산을 공식화했다고 하겠다.특히 민주당의 약점이었던 지역당과 사당의 이미지를 크게 벗어날 수 있게 된 건 이번 전당대회의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일 것이다.다만 야권 개혁파의선두주자인 이부영의원이 최하위 득표로 간신히 최고위원에 턱걸이한 것은 야당내의 두터운 「보수의 벽」을 엿보게 한다.어쨌든 이번에 이루어진 야당 지도세력의 세대교체를 통해 우리는 한국 정치의 가능성을 거듭 확인한다. 지금 한국의 정치상황은 세력과 명분면에서 정부와 여당이 야당을 압도하고 있다.문민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정치·경제·사회등 각 부문에서 엄청난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국민들에게 야당의 존재는 거의 인식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야당이 자신의 체제정비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렸던 나머지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소홀히 한 때문일 것이다.지금처럼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야당의 건전한 비판과 협조가 아쉬운 때도 없을듯 싶다.그런 점에서 우리는 민주당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고자 한다. 무엇 보다도 민주당은 김영삼정부의 개혁 추진에 적극 동참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김대통령이 추진하는 부패 척결,즉 「윗물맑기운동」과 「깨끗한 정치」가 정부·여당만의 과제일 순 없다.민주당도 낡은 정치관행과 당운영의 쇄신등을 통해 「돈 적게 드는 정치」의 구현에 앞장서야 한다.소속의원의 재산공개에 적극성을 보임으로써 반부패 의지를 과시해야 한다. 다음,민주당은 시대변화를 수용하는 새로운 야당의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반대를 위한 반대라든가 국회운영을 인질로 삼는 건 더 이상 새 야당의 투쟁방식이 될 수 없다.국가를 중시하는 큰 정치와 민생을 아끼는 생활정치에서 민주당은 내일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 정치헌금도 착복한 가네마루/일 부패스캔들 규모 확산

    ◎70억엔중 50억엔은 무기명 채권 구입/검찰,사무실서 금괴 수백㎏ 찾아 압수/타락한 금권정치에 국민불신 증폭 일본의 정치가 거듭되는 대규모 정치자금 스캔들로 얼룩지고 있다.일본인들은 이를 「타락한 금권정치」라고 말한다. 가네마루 신(김환신)전 자민당부총재의 거액 탈세사건은 타락한 금권정치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검찰수사결과 가네마루씨가 은닉한 정치자금의 총액은 60억엔(약4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도쿄지검특수부는 9일 가네마루의 개인사무실을 수색한 끝에 금고속에 금괴(수백㎏)와 현금등 10억엔 상당이 보관돼 있는 것을 확인,금괴를 압수했다. 가네마루는 이밖에 무기명 할인금융채권(할인채)50억엔어치를 구입,자산을 은닉한 것으로 드러나 앞으로 검찰수사결과에 따라서 은닉자금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가네마루씨는 이 거액의 채권을 지난달 중순 비밀리에 임대한 사무실 별실 금고에 감추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그는 시민단체들과 국회의원 등으로부터 「소득세법위반혐의」의 고발이 잇따르자 이 별실을 임대해 증거를 감추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네마루씨의 탈세사건은 은닉자금이 거액이라는 점도 주목되지만 그 보다도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치자금을 개인이 착복했다는 의혹이 짙다는 점이다.기업이나 단체등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의 일부를 개인축재로 전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가네마루씨가 정계의 실력자로 군림하던 지난 87년 자민당총재선출과 89년 참의원선거때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업계로부터 폭넓은 정치헌금을 받은 것 가운데 일부를 착복한 것이 아니가 보고 있다. 그는 이미 운송회사 도쿄사가와규빈사로부터 5억엔의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지난해 당부총재직과 의원직을 사임했다.그는 이때 『5억엔의 정치자금은 모두 의원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나는 한푼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한 정치평론가는 『검찰이 정치차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확실한 근거를 잡았기 때문에 그를 전격 구속한 것』이라고 전했다. 가네마루씨의 주변에는 늘 「검은돈」의 의혹이 따라다녔다.국회의원들은 장관이 되기 위해억단위의 현금을 그에게 바쳤다는 것이 공개된 비밀이다.「일본의 권력구조」라는 유명한 책을 낸 네덜란드태생의 카렐 반 월페런은 그의 저서에서 『일본정치는 자민당,관료,경제계의 유착 시스템』이라고 정의했다.그 가운데서도 가장 현저한 분야가 건설업계이며 가네마루씨는 건설업계의 「황제」였다. 그에게 정치자금스캔들이 망령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그가 일본정계의 막후 실력자였기 때문이다.그는 정계를 은퇴하기 전까지는 일본정계와 관료조직을 장악하고 있었다.때문에 기업들은 정부의 인·허가등 기업의 이익을 위해 돈을 싸들고 가네마루를 찾아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네마루에게 의뢰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인식하고 있었다.가네마루의 이같은 「힘」의 근원은 돈이다.그는 돈으로 많은 국회의원을 거느렸으며 이를 위해 또 돈이 필요했다.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전 총리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본의 금권정치는 「정치에는 돈이 든다」「돈은 정치를 움직인다」「정치로 돈을 모은다」는 3가지 측면이 맞물려 움직여 왔다.일본인들은 정치가들에게 정치개혁과 자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이번 가네마루사건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국민들이 분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미 소장학자 한국학 외면/윌슨센터 보고

    ◎대부분 50대… 40대 28%·30대 15%뿐/절반이상 교포… 중국·일 관심 높아져 미국에서 한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약3백5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젊은 세대 학자들의 수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내 한국학 열기는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드루 윌슨 센터가 최근 발표한 「미국내 한국학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 이들이 은퇴한 후 대를 이을 젊은 학자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미국인들의 한국에 관한 관심이 높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한국학 연구학자들의 수는 그렇게 적다고는 할수 없으나 문제는 젊은 학자들이 한국연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학 연구학자들은 절반 이상이 한국태생인데 이들은 50년대와 60년대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강의나 연구활동을 한 사람들로 한국학 연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태생의 교포 한국학 학자들이앞으로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은 되고 있으나 이들이 교단에 서는 것을 원치않는 경향이 있어 나이가 많은 한국학 전공자들이 은퇴할 경우 향후 15년동안 한국학 전공자 수나 활동은 동시에 퇴조기를 맞을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한국학 연구자 가운데 이 보고서 작성에 응답한 학자들의 연령을 보면 50대가 42%로 가장 많고 40대가 28%,30대가 15%,60대가 11%의 순인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은 대학이 전체의 81%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부기관 7%,비영리단체 5%,기타가 7%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이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은 하버드가 12%로 가장 많았고 버클리 9%,워싱턴(7%),예일·인디애나·스탠포드(각각 5%),미시건·남 캐롤라이나·위스콘신(각각 4%)의 순으로 드러났다. 전공별로는 정치학(22%),문학(15%),역사학(12%)등이 상위에 올랐으며 경제학·인류학(각각9%),종교학·사회학(각각7%)등의 순이다.
  • “한국 민주화에 새 이정표”/미 국무부/새 정부 출범 각국 반응

    ◎“한·일 정상 조속회담… 역조논의”/일 관방/조속한 러시아방문 희망/러/이집트와 수교를/애 ▷미국◁ ▲미국무부는 24일(현지시간)한국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을 뜨겁게 환영한다』고 말하고 『김대통령의 취임은 한국 민주주의 제도화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이정표』라고 논평했다. 국무부는 이날 김대통령의 취임식에 즈음한 논평에서 이같이 말하고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김대통령및 새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나갈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 논평은 『한미양국은 늘 긴밀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말하고 『우리는 이같은 관계가 김대통령의 영도하에 계속될 것을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뉴욕 타임스지는 25일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을 1면 주요기사로 취급하면서 김대통령은 30년만에 처음으로 탄생한 한국의 순수 민간인 대통령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대통령이 선거유세에서 「안정속의 개혁」을 제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취임연설은 매우 강경해서 대담한 경제개혁과 정치적 민주화조치를 예고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또 김대통령이 군장성출신 전임대통령들이 한국을 부패와 경제침체의 어두운 밤으로 이끌었다고 비판한 부분에 유의했다.그러나 김대통령은 문제가 되고 있는 금융실명제문제와 보안법철폐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타음스지는 아울러 지적했다. ▲LA타임스는 『지난 80년대 초반 언론이 이름이나 사진을 싣는 것 조차 금지됐던 김영삼씨가 32년만에 출범하는 한국 문민정부의 새 대통령에 취임한다』고 24일 보도했다. 그러나 김신임대통령은 지역감정문제,당내의 분파문제,호전적인 북한과의 관계및 북한의 핵개발문제,미군추가철수 우려,부정부패,경제의 쇄락 등 해결해야할 많은과제를 안고 5년임기를 시작한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일본◁ 일본은 김영삼대통령취임에 대단한 관심을 나타내고 「문민정치」와 「신한국 창조」의 새시대가 개막되었다고 축하를 보내고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새정권이 경제문제를 비롯한 이른바 「한국병의 치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안고 출범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는 25일 『한국이 새대통령의 탁월한 지도력아래 「신한국 창조」를 실현,태평양지역의 중심국가로 발전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요미우리(독매)신문도 이날 사설에서 「신한국 창조」를 주창한 김영삼시대가 열렸다고 전했다. 일본언론들은 이날 김대통령 취임을 일제히 크게 보도하고 특히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한국의 문민정권탄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마이니치(매일)신문은 사설에서 『32년만의 문민정권탄생은 한국민주주의의 정착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김대통령은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선거에서 경쟁자였던 김대중후보와 정주영후보의 정계은퇴로 정권기반이 탄탄한 강력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신문은 한일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정부가 한국의 새정권탄생을 계기로 보다 성의있는 대응을 하여야 한다고 지적한다.일본언론들은 양국간의 현안해결과 이해를 넓히기 위해 가능하면 빠른 시일안에 양국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노고 요헤이(하야양평)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빠른 시일안에 한일정상회담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러시아◁ 러시아정부는 25일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에 즈음한 외무부대변인 성명을 통해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한국의 새 행정부출범과 함께 한·러시아양국 관계가 더욱 실질적인 발전을 이룩할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아스트레젭스키외무부대변인이 발표한 이 성명에서 러시아정부는 또 『김영삼대통령이 가능한한 빠른 시일에 러시아를 방문,옐친대통령과 향후 양국협력방안에 대해 심도있는 대화를 가질 것을 희망한다』며 김대통령의 방러초청의사를 거듭 표명했다. 이 성명은 『러시아정부는 옐친대통령이 김영삼대통령에게 보낸 당선축하메시지에서 이미 그의 러시아방문을 요청한바 있으며 양국 모두 적당한 시기에 이 방문이 이루어질수있기를 다시한번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성명은 이어 『한·러 양국의 새로운 관계구축을 위한 토대는 이미 완성됐으며 한국의 새 행정부출범과 함께 양국은 그간 체결된 일련의 협정을 바탕으로 더욱 실질적인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프라우다,콤스몰스카야 프라우다,로시스카야 가제타,코메르상트 데일리,프란티지등 러시아 주요 언론들은 25일 김영삼대통령의 취임을 일제히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평화5원칙」 지속 바라 ▷중국◁ 중국정부는 25일 김영삼한국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이를 계기로 한중관계가 더욱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중국외교부의 이건영대변인은 이날 주례 뉴스브리핑에서 김대통령의 취임에대한 중국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김영삼대통령이 한국의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데 대해 축하를 보낸다』고 말하고 『이를 계기로 한중양국은 평화공존 5원칙에 따라 인접국으로서의 우호 협력관계 증진을 위해 공동노력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집트◁ 이집트정부는 김영삼새대통령의 취임을축하하면서 새 문민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한국이 정치·경제발전을 가속화하고 이집트와의 관계도 보다 강화하기 바란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내기 가드리피 이집트외무부 대변인은 24일 『김영삼 새대통령의 취임을 맞는 한국국민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실질적 민선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한국의 민주적 실천과 경제적 발전이 심화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하고 『한국국민들의 생활수준과 복지에 향상이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새 대통령 정부아래서 양국관계가 보다 활발해지고 이로 인해 양국국민들이 혜택을 입게 되길 원한다』고 말하고 『양국간의 수교도 조속히 이루어지길 한국국민과 함께 갈망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 양상곤정치입지 붕괴 암시/전인대대표 탈락 함축

    ◎강경성향 탓에 등소평의 신임 잃어/주석직 강택민총서기가 겸임 예상 중국의 양상곤국가주석(86)이 다음달 열리는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회격)에서 교체될 것이라는 보도들은 중국당국이 정치적 개혁파와 보수 강경파간의 세력균형을 모색하고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홍콩의 중국계 신문인 문회보와 대공보가 22일 중국의 최고지도자인 등소평이 제8기 전인대 대표로 선출된 반면 양국가주석과 7기 전인대 상무위원장 만리등은 8기 전인대 2천9백77명의 대표명단속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한 것은 양주석이 중국의 현정치진용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증거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중국정부가 민감한 정보를 흘리는데 대공보를 이용해 왔다는 점에서 이 신문의 이번 보도는 권력구조의 변화를 앞두고 이에 따른 충격을 다소 완화하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지난해 제14차 공산당 대회에서 구성된 당정치국 상무위원 진용은 개혁파와 온건파가 강경 보수파를 앞지르고 있음을 나타냈다.양주석은 이제까지 약 5년동안 국가주석을 지내왔다.경제정책면에서 그는 등소평의 정책을 지지하는 성향을 지녀왔지만 정치문제에 관해서는 강경론자로 분류돼 왔다. 따라서 양주석은 최고 실권자 등소평의 지지를 잃은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온건개혁파의 득세와 함께 이들 개혁파의 권력핵심부 중용이 예상되고 있다. 관측통들은 양주석이 야심적인 인물로 인식됐다고 지적한다.일부에서는 세력균형을 이룩하려는 중앙당국의 시도를 양주석이 교란했었다고까지 말한다. 양주석이 상무위원 후보에 지명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은 이전부터 나돌았다.양주석과 7기 전인대 상무위원장 만리는 이미 지난해 10월 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14전인대)에서 스스로 당14기 중앙위원에 선출되기를 거부하며 정계은퇴결의를 밝혔기 때문이다. 반면 전인대 회의의 최종준비가 끝나면서 전해진 보도에 따르면 이붕총리는 유임하는 쪽으로 굳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총리와 양국가주석은 89년 6월 북경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군의 탄압조치를 명령한 책임자로 지목돼 왔다. 양상곤의 후임 국가주석에는 강택민당총서기가 임명돼 그가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겸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강총서기는 영어,러시아어,루마니아어에 능통하며 외교정책면에서 온건론자로 간주되고 있다.
  • 정주영씨,탈당파 재규합 가능성/연쇄이탈 원격조종… 정치적 속셈은

    ◎정몽준의원 중심,별도 교섭단체 구성/대여협상 카드로… 현대 등 보호막 치기 국민당이 소속의원의 연쇄탈당끝에 20일 마침내 원내교섭단체 유지선(20석)이 무너지며 정계는 민자·민주 양당체제로 재편되게 되었다. 정치권이 양당체제로 재편되면 책임소재가 분명하고 정권의 안정을 확보할 수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자칫 여야간의 극한대립으로 정국이 마비될 우려가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원내 17석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국민당의 진로와 정주영 전대표의 향후 정치적 행보가 주목된다. 소속의원들 상당수의 탈당이 정전대표의 적극적인 종용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정전대표의 행보에 따라 정계재편의 물꼬가 바뀔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당은 지난 9일 정전대표가 정계은퇴를 선언할 당시 34석이었다.불과 11일만에 정전대표의 6남인 정몽준의원을 비롯,김효영 정장현의원등 이른바 「왕당파」를 중심으로 17명의 의원이 떠난 것이다. 이로써 국민당에는 이자헌·한영수·박철언의원등 입당파와 김동길신임대표와 가까운 김정남 윤영탁의원등 17명의 의원만이 남게되었다. 하지만 잔류의원들중에서도 관망파로 분류되던 변정일·조순환·정주일·조일현·손승덕의원 등이 빠르면 내주초 추가탈당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양순직·한영수최고위원도 「반금동길」입장이어서 임시국회가 끝나는 2월말께 탈당할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럴 경우 국민당은 정치권에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못하는 의원 10명안팎의 미니정당으로 전락,겨우 명맥만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당분간 「김동길대표체제」로 당을 꾸려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김신임대표측과 박철언최고위원등 입당파측은 서로 정치적 입장과 시각이 서로 판이하게 달라 궁극적으로는 국민당 간판을 내리고 뿔뿔이 헤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민당의 이같은 급격한 쇠락은 정전대표의 「입김」때문이란 것이 정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정전대표가 정계은퇴선언과 탈당이후 울산·강릉을 오가면서 대표시절 자신과 가까웠던 의원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접촉을 통해 탈당을 강력종용했다는 것이다. 정전대표의이러한 행동의 저변에는 국민당 탈당의원들을 정몽준의원을 중심으로 한 「무소속구락부」등으로 재규합,별도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탈당의원들 상당수가 민자당 입당을 원하고 있어 앞으로 민자당측이 이들을 얼마나 받아들이느냐가 관심거리이다. 어쨌든 정전대표는 일단 자신과 현대에 대한 정치적 보호막을 새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를통해 대선과 관련된 자신과 현대관계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문제를 민자당측과 다시 정치적 협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관측의 단서는 정전대표의 행동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전대표는 정계은퇴선언뒤에도 계속 의원직을 고수하고 있는 점이 특히 그렇다.이외에도 양순직·한영수최고위원에게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무소속의원들로 구성될 원내교섭단체의 대표직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진 점,20일 의원 대거탈당의 실무역을 맡은 김효영의원이 최근 강남 역삼동에서 개설한 개인사무실이 정전대표가 탈당의원들의 연락처로 삼기위한 곳이라는 지적등이다.더욱이 정전대표와 김효영의원은 비슷한 시기에 미국여행을 각각 떠나는 것으로 알려져 미국에서 만나 「무소속구락부」구성 실무작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탈당의원들은 당분간 「무소속구락부」형태로 활동하다 15대총선 임박해서 신당창당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당장에 신당을 창당하기에는 또 다른 형태의 「정주영 사당」이라는 비판적 여론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전대표가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국민당 간판을 내린 것은 몇가지 추론을 가능케한다. 우선 대선과정에서 비대해진 국민당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무소속구락부」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판단한 결과라는 정전대표의 「경제적 마인드」에 입각한 분석이다. 또 다른 분석은 이른바 「김­정밀약설」이다.즉 정전대표가 민자당측과의 사전교감아래 여권에 순종적인 제3당을 만들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동시에 여권핵심부에서 심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박철언·김복동의원 등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려 했다는 것이다.
  • 정계 양당체제로 재편/국민의원 7명 7명 탈당

    ◎17석으로 교섭단체 붕괴/양순직·한영수의원 등 7명도 곧 탈당예정 국민당이 20일 국회 교섭단체자격을 상실,정국은 민자·민주 양당체제로 재편됐다. 국민당은 이날 김효영(동해) 김진영(청주갑) 김두섭(김포·강화) 박제상(과천·의왕) 송광호(제천·단양) 김해석(대구남) 이건영의원(전국구)등 7명이 탈당,의원수가 17석으로 줄어 국회법상 의원 20명이상으로 되어있는 원내교섭단체 자격을 상실했다. 이들 의원의 집단탈당에 이어 양순직·한영수·변정일·손승덕·정주일·조순환·조일현의원등도 이번주초 탈당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여 국민당은 10여명의 의원을 가진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게 됐다. 이로써 우리 정계는 지난해 3·24 총선에서 3당체제가 성립된지 11개월만에 다시 양당시대로 되돌아갔으며 민자·민주 양당은 새정부 출범후부터 국민당탈당의원들을 상대로 영입작업을 활발히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주영 전국민당대표는 국민당 탈당의원 20명이상을 묶어 「무소속동우회」형식의 새로운 교섭단체구성을 추진할 움직임이어서 주목된다. 정전대표의 움직임대로 된다면 정국은 또다시 3당체제로 개편될 것이지만 민자·민주당의 세확장노력에 맞서 새 교섭단체를 구성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김효영의원등 탈당한 의원들은 이날 『이질적 구성원들간의 불화는 당의 결속은 물론 개인의 정치적 소신까지도 성취할 수 없을 만큼 당을 분열시키고 말았기에 국민당을 탈당한다』고 밝혔다. 김효영의원은 『향후 거취에 대해 서로 얘기해본 적이 없으며 각자의 정치적 신념과 소신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면서도 『교섭단체를 새로 구성하거나 신당결성에 대한 생각자체를 전적으로 배제할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혀 정전대표를 중심으로한 무소속 원내교섭단체등록 또는 신당결성이 추진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지난 9일 정계은퇴선언이후 울산에 머물고있던 정전대표는 19일 강원도 강릉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번주초 장기외유를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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