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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아는 이수성/김학준 단국대이사장

    ◎인간성·의리 중시… 「할말」하는 지도자 필자가 이수성 총리와 가깝게 지내게 된 때는 필자가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던 1971∼72년이었다.서울대 법학연구소 조교수이던 이총리가 피츠버그대와 서울대 사이의 교수 교환계획에 따라 1년동안 피츠버그대 정치학과 객원 조교수로 부임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이교수에게 법대로 가지 않고 정치학과로 온 이유를 물었더니,중국­그때는 미국학계에서도 중공이라고 불렀다­정치를 연구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우리 겨레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남북의 평화통일인데,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꼭 중국을 공부해야겠고,중국의 공산주의로 대표되는 아시아 공산주의를 공부해야겠다는 구상이었다. 이교수를 형법학자로 알던 필자에게는 뜻밖이었다.그러나 중국과 아시아 공산주의를 공부하면서 한반도 통일문제에 관한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필자로서는 무척 반가웠다.그래서 더더욱 가까워졌다. 이교수는 객원 조교수의 신분인데도,박사과정 학생을 위한 「중국정치론」세미나에 들어와 청강을 했다.이때 이 세미나 담당교수가 윌리엄 도릴박사로 지금 버지니아주 롱우드대 총장으로 계신데 도릴교수가 수강생들에게 이교수를 『이교수는 학문적으로 겸손한 분이라 이렇게 대학원생 세미나에 청강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교수의 인사가 있었다.필자는 이교수가 뭐라고 말할 것인가 궁금히 생각하며 기다리는데,『나를 교수라고 생각지 말고 형님(elderbrother)으로 생각하라.나는 자네들을 동생(youngerbrother)으로 여기겠다.그리고 한국음식이 먹고 싶으면 언제나 우리 집으로 와라.내 아내는 좋은 요리사이고 동생들을 잘 돌보는 사람이니 걱정들말고 오너라』라고 인사하는 것이었다.그 말이 전부였다.미국 학생들이 처음에는 좀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교수의 따뜻한,동양적인 마음을 읽고 모두 박수를 쳤다. 이 일화에 이총리의 성격과 행동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그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로,주변의 모든 사람을 형제처럼 생각한다.「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어야 한다」는 생활철학이 강하다. 그 뒤 필자는 서울대에서 이교수와 함께 교수생활을 하는 가운데 글자 그대로 형제처럼 지냈다.이교수는 일관되게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성이다.인간성이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가르쳐주었다. 이교수는 한 마디로 대인풍의 지도자다.작은 것에 매이지 않는다.인간성·의리·신뢰 같은 미덕을 중시한다. 배짱도 두둑하다.비록 때로는 표현이 부드럽지만 하고 싶은 말은 누구 앞에서라도 반드시 한다.김영삼 대통령에게 필요한 직언을 많이,자주 할 수 있는 분이다.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 국무총리의 부름을 받았다.무난하면서도 과감하게 내각을 이끌고,솔직한 충언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리라고 기대한다.또 미국 유학시절의 관심사이던 민족통일문제에서도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 “총선서 수도권 압승 최선”/통합민주당 제정구 총장 인터뷰

    ◎개혁세력·당내인사 조화에도 역점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두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15일 통합민주당의 사무총장에 전격 기용된 제정외의원의 취임 일성은 다짜고짜 내년 총선을 향했다.원내 제3당의 처지에서 내년 총선에서의 선전은 그만큼 절박했던 것이다. 마침 지역구에 내려가 전화로 하게 된 인터뷰에서 제총장은 『과분한 중책을 맡게 돼 당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면서 『계파에 얽매이지 않고 개혁세력과 당내 인사들간의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계파가 다른 이기택 상임고문이 총장으로 추천한 데 대해 제총장은 『각 계파를 포용하려는 이고문의 뜻이 담긴 게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레 해석했다.제총장은 『14일 이고문과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총장직을 제의받았으나 고사했었다』고 말했다.대신 「큰 정치」를 펴달라고 이고문에게 부탁했다고 했다.제총장은 이번 통합교섭을 막후에서 중재하며 각 계파 지도부의 신임을 얻었다는 후문이다.앞으로의 당 운영 방안에 대해 『세대교체와 지역할거구도 청산에대한 국민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당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51세·경남 고성 ▲진주고·서울대 정치학과 ▲14대의원(경기 시흥) ▲민주당 당무기획실장
  • 미 MIT대 정치과학부 학장 새뮤얼스(인터뷰)

    ◎“군수­민간기술 통합 균형있는 발전 필요”/일 성장 비결은 민군겸용 기술 개발 『한국이 현재의 미국처럼 경제 악순환을 겪지 않으려면 군수기술과 민간기술의 전략적인 통합을 통해 균형 있는 발전을 모색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초청으로 방한중인 미 MIT 정치과학부 학장 리처드 새뮤얼스교수는 6일 하오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민·군겸용기술개발전략」이란 강연을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새뮤얼스 교수는 『일본의 경우 군수기술과 민수기술이 이상하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발전하고 있으나 이런 현상을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면서 『군수기술과 민수기술간의 협력,치밀한 계획에 의한 동종기업간의 협력이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원동력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본전문가로 자처하는 그는 자본주의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원전을 방문했다가 일본 원전산업계가 정교하게 나눠져 협동하면서 혁신적인 기술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데서 경쟁을 강조하는 신고전주의경제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발견하고 일본에 흥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미 뉴욕주 콜게이트대를 졸업한 그는 MIT대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일본이 힘 있는 나라가 된 이유」라는 제목으로 정근모 과기처장관과 이경서 박사가 최근 공역한 「일본이 힘 있는 나라가 된 이유」라는 책도 저술했다. 동북아의 국방과 안보분야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두 차례,올해 한 차례 한국을 방문했을 뿐이어서 한국을 잘 알지 못하지만 『한국은 앞으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 15대총선 사전운동 3명 구속/검찰

    ◎출마예상 부지사·기업인 등 10여명 내사 대검 공안부(최병국 검사장)는 7일 내년 4월11일 실시되는 15대 국회의원선거와 관련,불법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후보예상자 등 3명을 이미 구속했으며 정당의 원외지구당위원장·부지사·부시장 등 10여명을 내사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연말연시를 틈타 불법타락 선거운동이 극성을 부릴 것으로 보고 사전선거운동 및 기부행위 등 불법선거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라고 전국 검찰에 지시했다. K모 부지사와 기업인 S씨 등 15대 총선 출마 예상자 10여명은 사전선거운동 및 기부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앞서 창원지검 밀양지청은 지난달 29일 15대 총선 예상후보자중 창원대 행정학교수 김정계(48·경남지역 정치학회장)씨를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위반 혐의로 첫 구속한데 이어 지난 6일에도 창녕군 지역구 출마예상자 성모씨(56·기업체 대표)의 사전선거운동을 도와준 김방광씨(56·페인트공) 등 2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관계자는 『최근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과 12·12 및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 등으로 아직까지 과열양상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이달 중순을 전후해 불법 선거운동이 빈발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위법행위가 드러나는 인사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엄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시대흐름 맞는 법조인 선발 역점/사법시험 개편 왜 하나

    ◎대학교육 정상화 유도… 종합해결능력 측정/2차시험은 암기보다 사례분석 위주 출제 사법개혁안의 요체 가운데 하나는 시험 과목을 바꾸는 것이다.이번에 시험 과목을 개편한 것은 대학 교육의 정상화를 유도하는 한편 시대의 흐름을 아는 법조인을 선발한다는데 취지가 있다. 대법원은 『대학의 법학 교육을 충실히 받는 것은 물론 조세·특허·통상 등 시대 흐름을 이해하는 사람을 뽑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2차 시험에서는 암기형보다 사례 분석을 위주로 한 문제해결형을 출제,법률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해결 능력을 측정하겠다는 방침이다. 1차 시험에서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기초 소양과 기본 법학 지식을 측정하기 위해 헌법,민법,형법 3과목을 필수과목으로 하고 문제수와 배점도 늘리기로 했다. 제1선택과목에서 경제학 경영학 행정학을 신설,기존의 정치학 사회학 형사정책 법철학 가운데 한과목을 선택하도록 했다.심리학은 폐지했다. 제2선택과목에서도 국제거래법 조세법 지적재산권법 경제법 과목을 신설하는 한편 지금까지 제1선택과목이었던 국제법과 사회법을 제2선택과목으로 돌려 이 가운데 한과목을 선택하도록 했다. 제2선택과목이었던 외국어는 모두 제3선택과목으로 돌리는 대신 스페인어를 추가했다. 2차 시험에서는 헌법 행정법 상법 민법 민사소송법 형법 형사소송법 등 현행 출제 과목을 유지하되 국민윤리 과목은 폐지하고 대신 사법연수 과정에서 윤리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또한 지금까지 한 과목당 1∼2개의 문제를 출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단답식 문제도 출제하기로 했다.2000년부터는 출제 과목을 민사법,형사법 등 포괄적으로 묶어 3∼4개 군으로 출제한다. 이와 함께 인력의 낭비를 줄이기 위해 오는 97년부터 사법시험 응시 횟수를 1차 시험을 기준으로 4회로 줄이기로 했다. 이밖에 선발인원의 증가에 따라 시험실시 횟수는 1년에 2차례씩으로 늘리고 응시자격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 조직책 18명 추가/국민회의

    국민회의는 27일 김근태 부총재를 도봉갑 지구당위원장으로 내정하는등 18개 조직책을 추가로 발표했다.이로써 현역의원을 뺀 2백7개 지구당 가운데 65개 조직책이 확정됐다. ▲서울 도봉갑=김근태(48) ▲강서갑=신기남(43·변호사) ▲구로갑=정한용(41·탤런트) ▲서초을=정상용(45·국회의원) ▲경기 수원 팔달구=박왕식(56·전의원) ▲성남 분당구=나필렬(59·매릴랜드대 정치학교수)▲안양 동안갑=최희준(59·가수)▲군포=유선호(42·변호사) ▲충남 천안갑=최기덕(44·워싱턴한미문제연구소장) ▲경북 영천=이육만(56·전민주당지구당위원장) ▲영양·봉화=유상기(57·경북도의원) ▲예천군=박형서(47·국회의원보좌관) ▲경남 진해=김종준(52·전민주당지구당위원장) ▲사천=이순근(41·국제문화예술협회한국위원회정책위원장) ▲김해=오세호(54·전민주당지구당위원장) ▲밀양=이태권(50·전민주당지구당위원장) ▲산천·함양=정막선(63·여·전민주당지구당부위원장) ▲양산군=이미애씨(28·여·적산농원대표)
  • 전문가들의 「극복처방」(노 전대통령 구속이후 대변혁온다:5·끝)

    ◎철저한 진상규명뒤 국민통합 「조치」를/잘못된 관행으론 생존불가 깨닫게/소외계층에 대한 배분정책 강화를/당정조직 축소… 돈안드는 정치 실천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은 우리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커다란 충격과 함께 국민의 가슴에 엄청난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그러나 자조와 자탄에만 빠져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모든 분야에서의 선진화를 추구하는 전화위복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과제,그리고 사건의 국민적 충격을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학자들의 제언을 통해 모색해 본다. ◇이용필 교수(서울대·정치학)=노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은 우리 사회의 치부를 온통 드러낸 사건이다.더이상 실추할 것도 없다.노씨의 비자금은 물론 현안인 대선자금 부분도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여야지도자들은 먼 장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이번 사건을 풀어나가야 한다.절대 미봉책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다.이를 위해 중소기업 육성책과 소외계층에 대한 배분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그리고 국민들이 나서 과거의 잘못된 정치관행으로는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는 인식을 내년 총선에서 정치인들에게 확실하게 심어줘야만 할것이다. ◇최한수 교수(건국대·정치학)=지금 우리 사회는 온 국민이 비자금 신드롬에 걸려 환자가 된 상황이다.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그런 다음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국민이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치권의 자정 결의가 필요하다.이어 제도적으로 국무총리의 권한을 늘리고 또 정치자금법을 개정,정당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을 축소하되 그 상당액을 국회에 지급되도록 하는등의 조치가 바람직하다.이런 과정을 거친뒤 궁극적으로는 공정한 룰이 적용되는 「정상사회」를 향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력해야 할 것이다. ◇박재창 교수(숙명여대·행정학)=정녕 이번 사건이 구시대 정치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작업이 필요하다.정치자금에 관련된 일부 제도를 보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비자금,그리고 대선자금과 관련한 국민들의 의혹이 철저하게 씻기지 않는 한 앞으로의 정국은 리더가 없는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비자금은 말할 것도 없고 그에게 받은 대선자금이 있다면 여야 가릴것 없이 철저히 밝혀야 한다.그리고 국민들의 양해를 얻어야 한다.이어 국민투표를 실시,재신임을 묻거나 정치권에 대한 엄정한 사정을 통해 정치권의 물갈이를 단행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박기안 교수(경희대·경영대학원장)=돈을 쓰도록 요구하는 우리의 정치풍토를 바꿔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식개혁과 함께 돈 안드는 정당제도를 도입해야 한다.정당조직의 축소와 후원회제도 현실화,소액납부 당원 확대등이 필요하다.현안인 정치권에 유입된 비자금이 있다면 이를 낱낱이 밝혀 국민의 양해를 구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한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렇게한다면 국민의 호응이 높아질 것이다. ◇곽병선 교수(한국교육개발원 수석연구위원·교육학)=이번 사건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민족사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정치권에는 정경유착의 부조리를 단절할 기회를 던져주고 있고 사회 전체로는 도덕적·정신적 가치를 바로 세울 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이번 기회에 도덕적으로 정도를 걷는 사람 만이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노씨 비자금은 모금과정뿐 아니라 어느곳에 어떤 목적으로 지출되었는지까지가 명료하게 밝혀져야 한다.이는 관련당사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의 책임이다.여야 정치인들이 낱낱이 밝혀야 하며 무엇보다 국민들은 이를 함께 책임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정당의 이기주의에 의해 이번 사건이 불완전하게 봉합된다면 오늘날의 사회적 불행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 꿈과 도전의 21세기… 50인을 주목하라(서울신문 50돌 특집)

    꿈과 도전의 시대인 21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21세기의 주역으로 기대되고 있는 각계의 유망주 50인을 서울신문이 뽑아 소개한다. ▷정계◁ ◎강삼재 민자당 사무총장 43세.부인과 1남1녀.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신문기자를 거쳐 12대부터 내리 당선한 3선의원.문민개혁 완성을 위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고 97년 대선에서 민자당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포부. ◎손학규 민자당 대변인 49세.부인과 2녀.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강대교수를 지낸 초선의원.선진정치 문화를 이룩하고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첨병이 되는 것이 포부. ◎이인제 경기도지사 46세.부인과 2녀.서울대 법대를 나와 대전지법 판사를 지냈다.13·14대 재선의원을 거쳐 6·27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충실한 지방살림꾼으로 지방자치의 초석을 다지는 것이 포부. ◎강재섭 민자당 국회의원 48세.부인과 1남1녀.서울법대를 나와 서울고검 검사,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재선의원.만성적인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법치가우선하는 정치문화 정착이 포부. ◎박종웅 민자당 국회의원 42세.부인과 1남1녀.서울대 법대를 나와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초선의원.건전한 청소년문화 정착과 환경보존에 힘써 통일조국 기반조성에 기여하는 것이 포부. ◎이철 민주당 원내총무 47세.부인과 2녀.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3선개헌반대투쟁 전국학생대표를 지냈으며 민청학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3선의원.변화와 개혁으로 신뢰받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 ◎이석현 국민회의 국회의원 46세.미혼.서울법대를 나와 전국 카톨릭학생총연합회장과 평민당부대변인을 지낸 초선의원.계층,지역간 차별을 해소하는 조세제도로 경제정의를의 실현하고 정치권의 자정을 이루겟다는 것이 포부. ◎신계륜 국민회의 국회의원 41세.부인과 2남.고려대 법대 재학시 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전민련 민중1위원장을 지낸 초선의원.세대간,지역간,계층간 대립을 극복하는 「열린 정치」와 「통합정치」를 이루겠다는게 포부. ◎허대만 포항시의원 26세로 지방의회에 진출한 경북도 최연소의원.포항지방자치연구소의 정책실장을 맡아 지방의회발전방향 연구.포항 대동고와 서울대 정치학과 졸.경실련의 서울대 대표및 포항시 집행위원으로도 활동. ▷관계◁ ◎유재웅 공보처 방송행정과장 38세.고려대 신문방송학과졸.정부안에서 방송실무에 관한한 최고 전문가.지난해 지역민방 선정과 통합방송법 제정의 산파역을 했다.방송선진화에 미력이나마 다하겠다는 것이 포부. ◎김영목 경수로기획단국제협력부장 43세.서울대 불문과 졸.73년 외무부에 들어왔다.외시 10회.경수로 건설 사업과정에서 미국·북한과의 협상 업무를 맡고 있다.신포에 한국형 경수로를 완공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사항. ◎조현 외무부 통상기구과장 38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57년부터 외무부에 몸을 담았다.외시 13회.WTO출범 과정에서부터 우리 통상외교를 맡고 있는 실무 주역.WTO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나가는 것이 포부. ◎송영무 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과장 47세.부인과 2녀.대령·해사 27기로 해군작전사령부 작전기획과장과 해군본부 작전상황실장·호위함 함장등을지낸 작전통.통일 이후 영국이나 일본에 못지않은 해양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이바지 하는 것이 포부. ◎추경호 재정경제원 사무관 35세.고려대 경영학과 졸업.행시 25회.재정경제원 종합정책과에 근무.신경제5개년계획의 추진 및 각종 경제운용 계획 수립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경제정의를 바탕으로 한 활력 넘치는 경제사회 실현이 꿈. ◎정승일 통상산업부 행정사무관 31세.서울대 경영대를 나와 미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행시 33회.통산부 미주통상과에서 근무하고 있다.자율화 시대에 부합되는 새로운 정책개발이 포부. ◎맹병렬 서울송파경찰서 수사과 27세.충남 천안출신으로 경찰대학 7기.법학은 물론 사격·운동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전교 5등으로 졸업.경찰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과 가까운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차세대경찰의 기대주. ▷사회◁ ◎김진학 사회복지전문요원 37세.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보건복지부 공채 1기.사회복지전문요원 동우회회장.현인원은 3천명.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걸맞는 사회복지수준을 일구겠다는 포부. ◎최예용 환경운동연합정책실장 30세.서울공대 산업공학과 졸.91년 페놀사건,지난해 낙동강 식수오염사태 조사활동.그린피스와 시베리아 산림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발전소 답사.지방자치와 통일시대에 걸맞는 환경정책 개발과 시민운동이 꿈. ◎박찬운 변호사 35세.인권변호사.서울변협의 당직변호사제도 운영규칙 입안주도.대한변협 기획실장 및 성폭력상담소·소비자보호원 법률자문위원.「알기 쉬운 인권지침」 「국제인권원칙과 한국의 행형」등 저서 다수. ◎정유성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사무국장 39세.교육운동가·공동육아연구회운영위원·연세대강사·독일 뮌헨대학 교육학박사.학부모와 학생이 주도하는 민간교육운동을 이끌어갈 인물.학부모 프로그램인 「학부모 아카데미」 개설. ◎이정식 한국노총조사부장 35세.서울대 경제학과 졸.86년부터 노총 정책연구위원으로 활동.노동문제나 임금문제에 정통한 노동계의 이론통이자 행동가.학계·법조계·언론계를 망라한 21세기 노사관계연구회 주도. ◎최헌규JC대전지구회장 36세.한남대 지역개발대학원졸.7년째 청년운동을 이끌고 있다.변화와 개혁을 제시하며 지역감정을 없애고 국민대화합을 실천하는 데 앞장.지방의 청년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포부. ◎김경호 경실련 부정부패추진위간사 29세.91년 연세대 법학과 졸.시민의 민원과 고발,진정사항을 검토하고 정부기관에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경실련의 포괄적인 시민운동을 보다 전문화·구체화시키겠다는 포부. ▷학계◁ ◎성영철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부교수 39세.분자생물학자.연세대 생화학과를 거쳐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이학박사,하버드 의과대등에서 연구.만성 간질환의 주요원인인 C형 간염 유전자 백신 개발에 이어 에이즈 바이러스를 연구중.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과 조교수 38세.한국 과학계의 자존심인 이론물리학 연구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소장 학자.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오하이오주립대에서 연구.인간 뇌의 물리학에 도전중. ◎이성환 고려대 전산학과 조교수 33세.인공지능 연구자.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공학박사.종이 위에 휘갈겨 쓴 글씨를 읽을수 있는 필기체 인식 컴퓨터 개발이 전공.사람 닮은 똑똑한 로봇을 만들겠다는게 꿈.▷경제계◁ ◎김병기 삼성전자 소프트웨어팀 과장 32세.서강대 전자계산학과 졸.85년 입사, 이후 소프트웨어 개발과 신규 프로젝트 기획 등을 맡아왔다.유망 분야중 하나로 꼽히는 멀티미디어 CD롬 타이틀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차인규 현대자동차 연구개발팀 과장 36세.성균관대 기계공학과 졸.베스트셀러카인 쏘나타Ⅱ의 외장 부품을 설계했고 엘란트라 프로젝트를 관리.벤츠와 도요타 등 유명한 자동차 업체의 엔지니어를 능가하는 것이 꿈. 나인용 기아자동차 디자이너 33세.홍익대 대학원 제품디자인과 졸업.크레도스와 프레지오 디자인을 맡았다.앞으로는 강한 개성을 추구하는 스포츠 쿠페의 디자인을 맡고싶어 한다.교통난을 해결할 차세대 교통기기 개발의 꿈. ◎김석규 한국투자신탁 펀드매니저 35세.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졸.미국 오리건주립대 경영학석사.13개 펀드 운용.연간 운용 총자산규모 3천8백억원으로 국내 펀드매니저중 최상급.국제적 펀드매니저로 이 분야의 명저서를 남기는 것이 꿈. ◎김두별 대우 기계부품부 사원 26세.고려대 경제학과 졸.21세기 무역거래의 새로운 패턴으로 자리잡을 3국간 거래 전문가로 활약 중.3국간 거래가 활발한 중동지역을 집중 연구,중동 전문가로 활약이 기대됨. ◎전진한 포항제철 기획조정실 26세.한양대 정외과 졸.포철의 심장부 투자기획파트에서 활약.사내 어학연수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어학에 발군의 실력.포철의 해외영업파트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희망. ◎조윤제 한국과학기술원선임연구원 31세. 암 정복에 도전하고 있는 구조생물학자. 서울대 식품공학과 졸. 코넬대에서 박사학위. 30세때 코넬대 의대 부속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쓴 논문이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사이언스」지에 표지에 소개. ◎최흥섭 대한항공 선임연구원 33세.연세대 대학원 기계공학과 졸·공학박사.항공기의 중요부품을 가볍고 강한 복합재료로 바꾸는 세계적인 추세에맞춰 이 분야의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국산 항공기가 세계 하늘을 누비는 것이 희망. ◎이지희 오리콤크리에이티브 디렉터 34세.84년 한양대 신방과를 졸.(주)오리콤 입사.중앙일보 광고상 공모부분 대상,한국일보 신인부 대상 수상(84년).오리콤의 유일한 여성 CD.기억에 남을 좋은 광고를 만드는 게 꿈. ◎오충렬 외환은 외화자금부대리 33세.연세대 경영학과 졸.88년 외환은행에 입행,2년8개월동안 일선 은행업무를 익힌후 4년2개월동안 외환딜러로 근무.3개월간 미국 시카고 금융선물중개회사에서 연수.한국 제1의 데리버티브(파생금융상품)딜러가 꿈. ▷문화예술◁ ◎이병헌 연기자 25세.한양대 불문과졸.91년 KBS 탤런트 14기로 데뷔.드라마 「사랑의 향기」 「아스팔트의 사나이」 「해뜰 날」등에 출연.신선한 감각에 연기력도 우수하다는 평.차세대스타로 가장 유망. ◎신경숙 소설가 32세.85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소설집 「겨울우화」 「풍금이 있던 자리」,장편소설 「깊은 슬픔」 「외딴방」 출간.삶의 속내를 들추는 우수젖은 문체의 미학 보여줌. ◎이미경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45세.이화여대 영문과와 대학원 정외과를 나왔다.87년 여성단체연합 태동때부터 살림을 도맡아왔다.가정·일터에서의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해결,여성도 당당히 주체가 되는 사회를 일구겠다고. ◎최용훈 극단 「작은 신화」대표 32세.서강대 철학과를 나온 연극연출가.「황구도」 「매직 아이스크림」 「쿠데타」등 연출.창작극 활성화와 신인작가 발굴을 위한 「우리연극만들기」운동주도.우리연극의 모델을 정립하는 게 꿈. ◎조덕현 서양화가 38세.서울대 회화과와 대학원 서양화과졸.이화대 미대 교수.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89년)·동아미술전 대상(90)을 수상.90년대 이후 미국화단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국제무대에 알려진 젊은 작가. ◎백혜선 피아니스트 30세.예원중 재학중 도미,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아티스트 디플롬과정 졸업.94년 차이코프스키국제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1위 없는 3위로 입상,올해 서울대 교수로 발탁.국내 음악계의 기대주. ◎박호빈 무용가 29세.서울예술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을 전수받았다.94년 젊은 무용가을 대상으로 하는 「신세대 신작무대」대회에서 현대무용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 ◎박은주 김영사대표 38세.미혼.이화여대 수학과를 나와 83년 김영사에 입사.편집장 때 뛰어난 기획능력을 보여 베스트셀러를 많이 냄.89년 출판사 대표취임.전문지식의 대중화,대중의 고급화를 이루는 게 꿈. ◎이광모 영화사 「백두대간」대표 34세.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미 UCLA에서 영화연출 전공.한국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객원교수로 재직.예술영화 보기운동을 통해 상업영화에 물든 우리 영상문화를 바로잡는 것이 포부. ▷체육계◁ ◎현주엽 고려대 농구선수 20살.키 195㎝와 체중 103㎏.고무공같은 탄력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호쾌한 덩크슛에 경기의 흐름을 읽는 감각까지 탁월.지난 5월 「청소년 월드올스타」로 뽑혔다.세계적인 농구지도자가 되는게 꿈. ◎박세리 공주금성여고 골프선수 18살.여자 프로골프계 「천하통일」을 노리는 신예.올시즌 아마추어 3개대회와 프로대회 4개대회 우승.1라운드 평균타수 71·1타.내년 2월 여고 졸업과 함께 프로 진출을 결심,삼성물산과 후원계약을 맺었다. ◎전미라 군산 영광여고 테니스선수 17살.94년 윔블던 주니어테니스대회에서 「황색돌풍」을 일으키며 준우승한 「무서운 샛별」.내년 여고를 졸업하고 현대해상 테니스팀에 입단 예정.세계 50위권내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에 차있다. ◎주형광 프로야구 롯데 투수 19살.프로 최연소 완봉 및 완투 신기록을 보유한 고졸 2년생.배짱과 마운드 운용이 뛰어난 10대 투수 가운데 선두주자.한·일 슈퍼게임에 최연소 대표로 선발됐다.최고 왼손투수가 되는 게 꿈. ◎이경출 상무 양궁선수 25살.경남 복산국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양궁과 인연을 맺은 뒤 15년째인 올해 세계선수권 2관왕에 오른 늦깎이 남자 양궁 희망주.승부욕이 뛰어나다.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는 게 꿈.
  • 김철수 WTO 사무차장(세계속의 한국인:1)

    ◎국제통상분쟁 조정자역 훌륭히/관료출신으론 국제기구 첫 고위직 맹활약/“우리나라도 전문성 갖춘 인재양성 힘쓸때” 스위스 제네바의 세계무역기구(WTO)에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건씩 각종 회의가 열리는 WTO의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등 사무혁신이 잇따르고 있다.각국에서 온 회의 참석자들은 WTO의 자그마한 변화와 개혁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WTO 사무혁신은 지난1월 WTO 출범부터 이뤄진 것이 아니다.바로 지난 7월1일 사무차장으로 부임한 김철수전상공장관(현 통상산업부)의 첫작품이다.각국의 회의참석자들은 『진작에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이라고 WTO의 변화를 반긴다.제네바의 외교가와 WTO본부내에서는 김사무차장의 일처리 능력만을 반기는게 아니다. 김차장은 WTO내에서 「김박사」로 통한다.인터뷰를 하기위해 제네바의 본부를 찾아 「김철수 사무차장」의 방을 물었을때 WTO직원들은 「아! 닥터 킴」이라며 3층 집무실로 안내해줬다. ○외교무대서도 신망 그의 집무실 문앞에도 「사무차장 김철수」라는 직함 아래는 「닥터 킴」이라는 자그마한 명패가 함께 붙어있다.「닥터 킴」은 김사무차장이 지난70년대 제네바를 비롯한 국제통상 무대에서 일하면서 불려온 별칭이다. 제네바의 한 외교소식통은 『WTO뿐 아니라 제네바의 외교가에서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김차장의 성품을 높이 사고 있다』고 전한다.한국의 장관을 지냈으면서도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아랫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특유의 소탈한 성격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얘기다.때문에 김차장은 제네바에서 근무를 시작한지 4개월여밖에 되지 않았으면서도 인기는 상당히 좋다. 김사무차장의 WTO 4개월은 눈코 뜰새없는 하루 하루의 연속이었다.우선 제네바에서 생활을 하려면 불어를 해야한다.미국에서 대학을 다닌데다 수많은 국제회의 참석으로 영어실력은 본토인 못지않게 유창하다.그러나 제네바는 불어권이어서 일상생활에는 불어를 사용해야 하고 불어를 한적이 없는 그는 WTO 본부 근처의 학원에서 한주일에 3시간씩 불어를 배운다. 그의 제네바 생활을 쉽지 않게 만든 것은 언어에다 한국과 다른 분위기 탓이다.김차장은 『한국에서는 결과를 중시하는 행정을 했다면 이곳에서는 관계국의 이해를 조정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한국과 다르다고 할수 있지만 그동안 많이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1년 가까이 된 WTO에 대한 평가는「국제 통상문제의 분쟁해결」에 집중된다. 『WTO는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의 결과가 충실히 이행될수 있도록 보장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으며 회원국들도 그런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금융협상이 마무리됐고 통신분야의 협상이 내년 4월말 종료를 목표로 진행중입니다.WTO 출범이후 19건의 나라간 통상 분쟁이 제소됐습니다.따라서 WTO는 분쟁해결기구로서 제역할을 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면서 김사무차장은 『내년12월 싱가포르에서 열릴 첫 각료회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수 있다』며 『UR에서 다루지 못했던 독과점등 경쟁정책과 외국인 투자문제등의 새로운 분야들에 대한 협상이 싱가포르 각료회의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차장이 맡은 일은 회원국 신규가입,무역정책검토,섬유,번역·문서등 4가지 분야.이가운데 섬유는 그의 전공분야라고도 할수 있을 정도로 20여년간 다뤄온 분야이다. 또 회원국의 신규가입문제는 WTO의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로 꼽힌다.세계의 기업들이 무역을 하면서 비슷한 통상규칙을 가져야 하는데도 중국·러시아등의 국가는 여전히 WTO 체제밖에 있기 때문이다. ○일벌레 「닥터 킴」 지금까지 가입신청을 한 나라는 베트남·우크라이나등 26개국.몽고·불가리아·파나마·에스토니아·라트비아등의 국가들이 가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그러나 중국등의 가입전망에 김차장의 전망은 조심스럽다. 『10년전인 지난 86년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중국의 가입문제는 WTO출범이후 협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문제는 가입조건입니다.중국은 속도와 시한을 두면서 WTO의 규칙을 지키려하고 있고 모든 나라들은 중국의 가입이 바람직스럽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중국이 더 많은 규칙을 지키면서 가입을 하라는 것이지요.그래서 중국의 가입시기를 전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는 또 『중국의 가입조건은 지난7월 처음으로 가입작업반 회의를 가진 러시아의 가입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WTO체제 출범후 2건의 제소를 당했다.식품유통기한 표시와 농수산물검사문제에서 미국이 한국을 제소한 것이다.한국도 당하기만 할것이 아니라 WTO체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외국의 불공정 관행에 공세를 펴야 한다는 주장이 외교가에서는 강하게 일고 있다. 이에 대한 김사무차장의 입장은 단호하다.『WTO체제에 맞게 한국의 제도와 관행을 고쳐 나가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적극대응 사례의 하나로 최근 브라질의 자동차 쿼터제 도입에 대한 한국등의 강한 반발로 WTO로부터 쿼터제 철회권고를 받아낸 것을 들었다. ○“협상엔 신뢰가 생명” 그러면서 김차장은 『한국도 WTO협상에 적극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문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예를들면 투자분야나 무역과 환경등 새로운 분야에서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전문성을 갖고 협상을 벌일수 있는 인력이 양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통상계에서 상당히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거짓말을 해서는 안되고 자신의 말이 1년후에도 같아야 하며 특히 외국과의 협상에는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김사무차장의 행동지침이자 신념이다.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다시 사무총장직에 도전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무차장직을 잘 수행해 WTO발전에 기여할수 있었으면 하는게 관심사항이고 너무 바빠 3년후에 어찌 될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고 웃어 넘겼다. 그의 웃음속에는 가능성이 배어 있었다. 그는 3년후 WTO사무총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현지에서는 예상한다. □약력 ▲41년1월26일 서울 출생 ▲58년 경기고 중퇴 ▲64년 미 터프츠대졸 ▲69년 정치학박사(미 매사추세츠주립대) ▲69년 미 세인트로렌스대 조교수 ▲72년 외교연구원 전문위원 ▲73년 상공부 시장3과장 ▲77년 〃 수출1과장 ▲79년 〃 통상진흥관 ▲80년 〃 통상진흥국장 ▲81년 민정당 정책국장 ▲82년 〃상공담당 전문위원 ▲84∼90년 상공부 제1차관보 ▲84년 우루과이라운드 다자간무역협정 협상그룹 의장 ▲89년 한미통상협상대표 ▲90년 특허청장 ▲91∼93년 대한무역진흥공사사장 ▲93∼94년 상공자원부장관 ▲95년 7월 세계무역기구(WTO)사무차장
  • 타계한 카피차 구소 외무차관과 한반도/김학준 단국대 이사장

    옛 소련의 외무부 제1차관이던 미하일 카피차 박사가 지난 18일 지병 때문에 향년 74세로 별세했다는 부음이 모스크바로부터 보도됐다.짧막한 기사여서 지나치기 쉬운데,옛 소련 외무부에서 1급 아시아전문가로 정평있던 그는 한반도와 인연이 깊다. 모스크바의 마리아토레즈 외국어교육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카피차는 졸업과 동시에 20대초반의 젊은이로 옛 소련 외무부에 들어갔다.때는 19 43년으로,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통해 나치독일에 큰 타격을 입힘으로써 승기를 잡기 시작했던 무렵이었다.카피차는 곧 모스크바의 동방학연구소로 파견됐고 여기서 러시아와 중국의 외교관계를 연구해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야심만만한 그에게 곧 출세 길의 실마리가 잡혔다.49년 12월 하순부터 50년 2월 중순까지 모스크바에 머물며 중소우호동맹조약의 체결을 교섭하던 중국공산당 주석 모택동에게 소련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이 마침내 정상회담의 기회를 베풀었는데,이 때 스탈린의 중국어 통역으로 『중국어를 중국 사람처럼 잘 한다』는 칭찬을 받던 카피차가 뽑힌 것이다.이 정상회담의 결과 50년 2월15일 중소우호동맹조약은 맺어졌다.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의 첫번째 회담이었던 이 중소정상회담은 두 나라의 관계에서는 물론 국제 공산주의 운동사에서,그리고 세계 외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뜻을 지녔다.많은 전문가들은 이 회담에서 50년 6월25일에 개시된 북한의 전면 남침 공격의 계획이 논의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카피차의 회고는 뜻밖이었다.소련이 해체된 뒤 소련의 비밀들이 마구 공개되던 시점에서도 그는 그 회담에서 그러한 계획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강력히 반박했던 것이다. 지난해 6·25 남침전쟁과 관련해 옛 소련의 비밀문서들 가운데 일부가 공개됐다.그러나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의 중소 정상회담부분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이 부분이 앞으로 공개될 때 카피차의 반론의 진실성 여부는 가려질 것이다. 어떻든 이때 스탈린에게 잘 보였던 카피차는 소련 외무부안에서 승진을 거듭해 동아시아국장으로 올랐고 파키스탄 주재 대사라는 중책도 맡았다.그러나 파키스탄 대사때 현지출신 여비서와 대사 집무실에서 정사를 벌이다가 그녀의 남편에게 철제 걸상으로 이마를 찍혔다.비명 소리에 뛰어든 대사관원들의 보호로 죽을 고비는 넘겼으나 그 큰 상처는 평생토록 그의 이마에 남아 있었다.이러한 추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시아전역을 담당하는 제1차관으로 승진했다. 카피차는 자연히 북한도 다루게 됐다.특히 84년 5월에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그때 소련공산당 서기장이던 체르넨코와 회담했을 때,실무적으로 깊이 관여했다.이어 84년 11월에는 카피차 스스로 북한을 방문해 소련과 북한 사이의 국경분쟁을 매듭지었다. 이때 카피차를 직접 상대했던 북한의 교섭창구가 김정일이었다.카피차는 이 사실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겨,국제학술 회의에서 『북한의 김정일이 북한 땅에서 처음으로 만나준 외국인이 바로 나였다』고 회고하곤 했다.『나하고 김정일 둘이 두만강과 백두산에 가서 여기는 소련 땅이고 여기는 조선 땅이라고 줄을 그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84년이면 김정일이 만 42세때다.카피차는 『김정일이 키에 비해 살이너무 쩠고 심장병과 당뇨병을 앓는 것 같다』고 뒷날 회고해,김정일 건강이상설의 주요한 한 원천이 됐다. 88년의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정부가 소련과의 관계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때,카피차는 이미 외무부를 그만두고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동방학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또 장관급의 대우를 받는 원사칭호도 지니고 있었다.그래서 정식 외교관계가 열리기 이전에 흔히 활용되는 비정부차원의 「학술외교」「문화외교」의 창구로 적격이었다.실제로 그는 몇차례에 걸쳐 소련의 학자들을 이끌고 서울의 초청에 응했으며 또 역시 몇차례에 걸쳐 소련에 한국학자들을 초청해 한소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한소수교의 막후에서 일한 공이 있다고 할까? 그를 서울과 모스크바,그리고 도쿄(동경)에서 여러차례 상대했던 필자로서 새삼 고인의 명복을 빌게 된다.
  • 한국의 「검은 돈」 꼬집는 러 언론/류민 특파원(오늘의 눈)

    러시아 언론들이 17일에 이어 18일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기사를 주요기사로 다루고있다.거의 모든 일간지가 1면 주요기사나 국제면 톱기사로 취급하고있고 해설기사까지 곁들이고있다.그런데 행간을 읽으면 이들 주요신문들의 논점은 『러시아만 검은돈 천국인줄 알았더니 한국은 더하다』는 곳에 모아진다.어떤 신문은 「러시아는 아직 마피아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는 아니다.부패와의 전쟁에 고삐를 더욱 죄어나가자』라는 식의 분석도 내놓는다. 이곳 사람들이 노씨 사건을 접하며 느끼는 충격,실망감은 각별한데가 있는 것같다.그것은 그동안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기적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매우 「본받고 싶은 나라」였기 때문이다.자신들의 개발모델로까지 생각해온 이 이미지가 이번 사건으로 한꺼번에 뒤흔들리고 있는 것이다.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러시아와 인연이 있다.주인공 노씨는 91년 한국이 소련과 수교할 당시 대통령이었다.당시 양국의 수교는 냉전시대의 마감을 체감케한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했다.노씨로부터 20억원을 받았다는 김대중국민회의 총재도 마찬가지다.김총재의 경우 92년 러시아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이래 지금도 수시로 모스크바를 방문,강연도 하는 덕망있는 학자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었다.그가 「나도 20억원을 받아썼다」고 밝혔을 때 러시아 언론들은 그를 부패정치인의 한통속으로 몰아붙였다.17일 한 일간신문은 그를 「낮엔 야당,밤엔 여당정치인」이라고 한 우리 언론보도를 그대로 인용했다. 뇌물을 주었다는 그룹총수들은 어떤가. 이곳의 유수대학 졸업생들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곳으로 꼽는 회사가 바로 모스크바에 진출한 「삼성」「대우」「현대」등 한국의 재벌기업군들이다.이 재벌회사의 총수들이 「검은돈」을 노씨에게 건네주었다며 검찰에 불려다니고 있는 것이다.기적의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로 부러워해온 나라에서 그 기적을 주도했다는 당사자들이 정당한 기업경영이 아니라 검은 돈과 맞바꾼 특혜로 성장했다는 소식에 이들이 받는 충격은 적지않은 것같다.어떤 신문은 김대통령에 대해서도 『노씨로부터 받은 돈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 아니냐』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한국의 좋은 이미지가 마치 사상누각처럼 일거에 무너져내린 것같아 그저 안타까울뿐이다.
  • 김일성 1인체제 구축(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4)

    ◎전후 복구­외교정책 싸고 소련파­연안파 대립/56년 「8월 종파사건」 계기 본격 숙청… 59년 완료 북한 김일성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노동당 내 경쟁 파벌들을 차례대로 숙청,50년대 말쯤에는 일인 집권체제를 구축했다.주체이론으로 무장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는 북한을 세계에서 유례없는 공산독재 국가로 만들었다.이는 김일성이 사망한 뒤에도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계승돼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북한 노동당에는 원래 김일성이 이끄는 빨치산파를 비롯,국내파(남로당계)·소련파·연안파 등 주요 파벌이 넷 있었다.이 가운데 박헌영·이승엽 등으로 구성된 국내파는 한국전쟁 말기 이미 숙청돼 휴전 직후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따라서 전후 김일성이 권력강화를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는 소련파와 연안파가 남았다. 노동당내 권력투쟁은 1955년에 접어들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여기에는 김일성의 권력욕이 물론 주요 동기였지만 전후 경제복구와 외교정책을 둘러싼 파벌간 노선 갈등도 적잖게 작용했다.김일성은 한국전이 끝나자 먼저 경제건설에 주력했다.김일성은 휴전협정 조인 다음날인 1953년 7월28일 라디오방송에서 『전쟁은 조선인민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한 다음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를 하루빨리 복구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들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중공업 우선의 「3개년 경제 계획」과 농업 집단화 등 경제개발에 한동안 힘을 쏟았다.또 소련·중국·몽골과 동구권 등 「사회주의 형제국」들을 순방하며 경제원조를 요청하는 외교활동을 벌였다.그러나 연안파와 소련파는 중공업 우선,농업집단화를 앞세운 경제복구가 북한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소련은 또 농업집단화가 중국의 인민공사제도를 흉내낸 잘못된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 무렵 스탈린 사망­흐루시초프 등장에 따라 기존의 국제관계에 변화가 일어난 점도 파벌 대립을 재촉했다.중국에 등을 대고 있는 연안파는 연안파대로,소련과 밀접한 소련파는 소련파대로 변화를 자기 파벌에 유리하게 작용시키려고 애썼다. 당연히 김일성과 반대파 사이에는 어느쪽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대로 따르는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김일성은 이즈음 방어논리로 주체이론을 새로 내놓는다.1955년 4월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의 구체적 상황에 연결해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계적 수용과 적용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밝혔다.이에 대해 정치학자인 단국대 김학준 이사장은 『주체이론의 싹을 1940년대 말에 찾을 수도 있지만 늦어도 이 때 김일성 연설에서는 충분히 발견된다』고 그의 저서에서 기술했다. ○스탈린 사후 위기몰려 김일성은 이같은 이론을 무기로 먼저 연안파인 박일우(초대 내무상이자 당시 체신상)와 방호산(한국전 때 군단장)을 숙청했다.그해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에서는 당 중앙위원겸 조직위원인 소련파 김열의 죄상을 대대적으로 폭로하는 한편 같은 파 지도자인 박창옥(부수상겸 국가계획 위원장)에게도 칼날을 겨누었다.김열은 비록 황해도당위원장 재직시 비리가 문제됐지만 결국은 개인비리를 숙청무기로 사용한 것이었다. 19 56년 김일성은 중대한 도전을 받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오히려 권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2월 14∼25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격하운동과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더불어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와의 평화공존을 제창하고 나섰다.이는 일인독재를 추구하면서 그 바탕을 「반미」에 두고 있는 김일성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흐름이었다. 56년 4월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가 열렸다.이 자리에 소련에서는 정치국 정위원이자 서기국 서기인 브레즈네프가 참석,흐루시초프가 제시한 새 노선을 북한이 충실하게 따를 것을 촉구했다.김일성은 이를 받아들이지도,그렇다고 소련의 비위를 거슬리지도 않은 어중간한 연설을 했다. 그해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연안파와 소련파는 힘을 합쳐 김일성에게 도전했다.연안파 최창익(부수상겸 재무상)이 중공업우선 정책은 주민에게 고통만을 준다며 먼저 비판의 포문을 연데 이어 상업상 윤공흠은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비난했다.박창옥 등 소련파들도 나서 김일성 1인독재를 비판하면서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김두봉 57년 직위박탈 그러나 북한 노동당에서 「8월 종파사건」으로 부르는 이 사태는 김일성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김일성이 노동당 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 대부분을 이미 친위세력으로 바꾼 상황에서 윤공흠 등 연안파는 지지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체포됐다.사건은 곧 국제문제로 비화한다.윤공흠 등이 감시소홀을 틈타 중국으로 달아났기 때문이다.중국과 소련은 즉각 개입해 김일성에게 압력을 가했다.김일성은 죄지은 연안파·소련파 지도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일단 굽히고 들어가 원래 직책에 복귀시켰다.그러나 김일성은 이들을 끝내 숙청하고 말았다. 「8월 종파사건」은 아직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일부 연구자들은 연안파가 김일성제거 계획을 조직적으로 세웠다고 주장한다.무혈쿠데타를 노렸다는 것이다.윤공흠 등이 김일성을 전원회의에서 비판한 뒤 그 죄과를 들어 기소하기로 했지만 김일성측에게 이 정보가 새나가 오히려 역습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힘을 잃은 반대파들을 숙청하는 일은 절차만 남았을 뿐이었다.연안파의 우두머리 김두봉은 북한의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19 57년 9월 박탈당했다. 이들의 운명은 그뒤 어떻게 됐을까.김두봉은 쫓겨날 때 68세였다.1년가량 사상개조 교육을 받았지만 「개전의 정이 없어」다시 산골 협동농장으로 추방된 그는 1960년 또는 61년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인은 병사와 피살설이 있다. 김일성은 이어 공산당원 한집이 네집을 감시하는 이른바 「5호담당제」를 1958년 7월부터 실시했다.곧이어 12월부터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숙청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또 김일성의 빨치산운동을 항일독립운동에서 유일한 정통으로 내세운 역사조작에 손댄 것은 1959년의 일이다.이로써 30년 넘게 계속돼온 김일성독재체제가 완결된 것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 발굴­노동당 중앙위회의 결정서/소련파 거물 김열 부패로 몰아 숙청/김일성의 정적 제거하는과정 보여줘/북 노동당 간부… 6·25때 대민착취 극심 북한 김일성이 한국전쟁후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이 정적을 숙청한 과정을 보여주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 결정서」를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최근 모스크바에서 입수했다.1955년 12월에 열린 이 회의 결정서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 문서는 12월 2∼3일 진행된 전원회의에서 위원장 임해의 보고와 이에 따른 토론에서 내린 결정을 당 중앙위원회가 「절대비밀」로 분류,그달 25일 고위직 인사들에게 한정 발송한 것으로 돼 있다.내용은 황해도당위원장을 지낸 당 중앙위원겸 조직위원 김열의 부패한 생활상을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김열은 김일성에 맞선 소련파의 유력한 인물이다.그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당위원장을 지내면서 직위를 이용,방탕과 사치가 극에 이를만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그는 강제·억압·기만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성 30여명의 정조를 유린한 것으로 기록됐다.그 가운데는 여중생까지 포함됐다. 이와 함께 갖은 명목으로 크고작은 잔치를 벌였던 김열은 당의 시설물들을 향락에 이용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이를 위해 횡령도 서슴지 않았다고 이 문서는 덧붙였다.그는 후방에서 거둬 전선으로 보내는 성금 2백53만여원을 비롯 1천여만원을 불법 조성해 모두 탕진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리고 김열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를 비판하는 당 간부들에게 구실을 붙여 강등시키거나 쫓아냈으며 아첨하는 사람들만을 중용했다고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비판했다. 김열에 대한 노동당의 단죄에 정적 숙청의 의미가 없지 않더라도 자료에서 드러난 노동당 간부의 부패상은 북한 사회의 또다른 면을 보여줬다.한국전 당시 남한에서도 후방의 퇴폐 분위기가 문제된 것처럼 북한의 권력층도 전쟁을 틈타 백성에게 갖은 횡포를 부렸음이 밝혀진 것이다.북한이 남한보다 더욱 획일적인 사회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 역시 훨씬 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심리적 부패(외언내언)

    인간사회에 나타나는 부패현상의 양으로 볼 때 사회과학분야로서의 「부패학」이 마땅히 성립돼 있어야 함에도 아직은 없다. 정치학에서는 권력의 비합리적·도덕적 일탈행위로 설명하고 있고,행정학에서는 제도적 취약성에서 오는 부산물정도로 파악한다.기능주의 입장이라는 것도 있는데 부패행위의 결과와 효과를 중시하면서 개발도상국에서는 근대화의 부산물일 수도 있다는 견해를 갖는다. 정황이 이러므로 그 실체에 대한 개념정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부패의 유형만 이럭저럭 구분한다.권력남용형·공사무분별형·개인형·조직형·거래형성형등이다.근자에 체념형 부패와 심리적 부패라는 개념이 대두돼 있다.체념형 부패는 70년대 등장한 후기기능주의시각으로 어느 사회 어느 나라든 존재하는 현상이므로 이를 필요악쯤으로 보자는 입장이다. 부패의 논의는 대부분 외형적으로 부패행위가 드러날 때 나타난 부분에 대해서만 하게 된다.그러나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행위를 하게 한 내면적 의식이다.따라서 의식의 부패를 보다 심층적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이 심리적 부패론의 주장이다. 권력남용·공사무분별 등의 부패는 정권의 몰락,공신력의 추락,불신풍조,사회적 기강해이등의 부작용을 가져온다.심리적 부패는 광범위한 사회현상으로 더 큰 역기능을 만든다.권력만능풍조와 물질만능주의의 배경에 있는 것도 바로 국민적 차원의 심리적 부패현상이다. 세계적 관심사가 되어버린 「한국의 비자금」사태에서도 우리 모두의 심리적 부패수준을 점검해보는 일이 더 심각한 과제일지 모른다.5천억원이라는 규모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엔 비리가 아니었던 것도 아니고,이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분노를 참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드러나지 않고 들키지만 않으면 비자금도 있을 수 있고 부패할 수도 있다는 은연중의 암묵이 우리 모두의 일상적 윤리로 너무 오래 굳어져오지는 않았는가를 철저하게 각자가 반성해봐야 한다.
  • “한점 의혹없이 진상 밝혀야”/노태우씨 비리조사­시민·각계 반응

    ◎국가의 수치… 엄정한 법 집행 필요/전 대통령 소환되는 일 다시 없어야 재임중 비리때문에 헌정사상 처음 전직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모습을 TV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시민들은 『국가의 수치』라며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러면서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참회의 마음으로 모든 의혹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는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를 기대했다. 특히 대부분의 시민들은 『노씨를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잘라 말하고 『검찰은 비자금문제 뿐만 아니라 부동산투기와 해외 재산은닉,재임당시 각종 비리 의혹 사건까지 철저히 수사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나아가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는 비극의 역사가 결코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치권과 기업들이 일대 각성해 「깨끗한 정치판」의 풍토를 일궈 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실련·민주노총준비위등 재야·시민단체들도 노씨의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이를 위해 집단행동을 결의했다. 서울대 사법학과 양승규 교수는 『정말 부끄럽고 침통한 일이지만 전직 대통령예우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마땅히 노씨를 구속해서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정치권도 이번 일을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체인 영등포구 문래동 가나금형 사장 권홍철(43)씨는 『종업원 봉급과 세금에 치여 쩔쩔매는 판에 전직 대통령이 엄청난 부정축재를 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민다』고 토로하고 『한점 의혹없이 친·인척비리까지 철저히 파헤쳐 엄정하게 법집행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역에서 대구행 열차를 기다리던 주부 김미정(32·서대문구 남가좌동)씨도 『노씨의 검찰 소환조사는 당연한 역사의 심판』이라며 『검찰은 어떠한 정치 요인에도 흔들리지 말고 공정한 수사를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학생인 서현수(22·서울대 정치학과 4년)군은 『이번 수사가 여론무마용으로 흐지부지 끝나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현정권이 노씨한테서 대선자금을 받았다는 의혹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실련등 2백97개 재야·시민단체들은 오는 4일을 노씨 비자금 문제의 올바른 처리를 촉구하는 「국민행동의 날」로 정하고 이날 하오 3시를 기해 전국 모든 차량이 경적을 울리고 종묘공원에서 노씨 구속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갖기로 했다. 「전국민주노조 총연맹준비위」 소속 단위노조 대표자 1천여명도 이날 상오 여의도 장기신용은행 앞에서 노씨의 구속수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에 앞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도 이날 상오 고려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학생의 날인 오는 3일 대학별 집회에 이어 노씨 구속을 관철하기 위한 대규모 시가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경실련 시민입법위원 고계현 간사는 『노씨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는 전직 대통령일지라도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면서 『엄정한 법집행으로 국가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삼풍유족 서울 시청서 농성/시 업무 이틀째 마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희생자및 부상자 가족 1백60여명이 26일 서울시청 주차장에서 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서울시의 업무가 이틀째 부분 마비되는 사태를 빚었다. 이들은 전날 시청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밤샘 농성을 벌인데 이어 이날 출근시간대인 상오 8시쯤부터 조순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20여명이 본관 로비에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이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서울시는 청사내부로 통하는 모든 출입문을 봉쇄,민원인은 물론 직원마저 2시간 가량 사무실로 들어가지 못해 업무가 한때 마비됐다. 이 때문에 이날 상오 9시로 예정된 세계정치학회 회장단의 조시장 예방일정이 취소됐다.또 청원경찰이 농성자들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삼풍사고로 딸을 잃은 박호순씨(52·여·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가 허리에 부상을 입어 입원하는등 2∼3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편 희생자 대책위원회 대표 6명은 이날 하오 조시장을 만나 삼풍사고 현장 위령탑 건립 등 5개항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조시장은 이에 대해 『서울시는 삼풍관련 재산보존 관리에 만전을기하고 있으며 중앙정부에 대해서도 보상에 대해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하고 31명의 실종자 유골수습 등 일부 요구사항에는 대안이 없다고 솔직이 시인했다. 삼풍사고 희생자및 부상자 가족들은 보상과 관련 구체적인 일정 제시를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벌이기로 해 서울시의 업무마비 사태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 재계 상납·국책사업이 주요 공급원/「통치자금」의 실체

    ◎선거자금·「전별금」 등에 사용/5·6공,경호실장 통해 관리 「통치자금」이란 공식적인 정치용어가 아니다.정치학사전에 「통치」라는 말은 있지만 「통치자금」이라는 말은 없다.통치자금은 국고에서 정당에 보조하거나 국회의원후원회를 통해 정치권에 유입되는 「정치자금」과는 전혀 다르다.하지만 정치권에 돌아다니는 돈이라는 점에서 정치자금으로 싸잡아 불리는 일이 다반사다. 통치자금은 비밀리에 조성되고 비밀리에 쓰여진다.통치자금은 부도덕한 권력자의 비자금이라고 할 수 있다.전두환 전대통령의 어록에는 『정치자금은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고 내게 직접 가져오라』는 노골적인 표현도 있다. ▷용도◁ 군사정권시절 「통치자금」은 선거때 지구당에 내려보내는 경비와 군지휘관에 대한 촌지등으로 쓰여졌다.명절때 청와대참모들에게 나누어주는 「떡값」과 물러나는 장관들에게 주는 전별금봉투에도 일부 담겨졌다.이현우씨가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용도로 밝힌 「격려금」과 「위로금」은 이런 것들을 가리킨다.전두환전대통령은 지난 90년1월국회증언에서 『민정당 창당때부터 당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가끔 지원했다』고 말했다. 부도덕한 권력자들은 물러난 뒤에도 「주변」을 관리하기 위해 돈을 필요로 했다.전전대통령은 퇴임후 1백34억원을 갖고 있다가 발각돼 국가에 헌납했었다.『한푼도 받지 않겠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선언은 바로 이런 통치자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조성방법◁ 6공초기 권력핵심부에 있던 한 고위당국자는 『6공출범이후 1년6개월간은 정치자금이 부족할 정도로 기업의 정치자금을 일체 받지 않았다』며 『그러나 89년8월부터 3당통합의 구상이 본격화되면서 기업들로부터 돈을 걷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그는 『청와대에서 정치헌금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적잖은 기업인들이 여소야대상황에서는 도저히 기업을 영위할 수 없다며 자발적으로 돈을 기탁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6공비자금은 이같은 재계의 정기상납과 국책사업을 통한 「리베이트챙기기」가 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재계상납외에 율곡사업이나 원전건설,경부고속전철,영종도신공항건설,골프장건설허가 등 대형 국책사업으로 상당분 조성됐을 것이란게 일반의 관측이다. 일부 비리가 드러난 율곡사업의 경우 국제적으로 무기도입은 공식커미션이 전체도입가의 3∼5%에 이르는게 정설이어서 74년이후 매년 수조원이 투입되면서 비자금조성에 톡톡한 몫을 했으리란 추론이다.노대통령 재임기간중 1백30여개나 허가가 나간 골프장도 비자금조성에 한몫을 했을 것이란 소문이다. 6공은 비자금조성방식과 운영에서 5공때와 달랐던 것으로 알려진다.5공때는 전두환전대통령이 직접 걷어 통장을 관리하고 재벌을 모아놓고 갹출도 지시했다.주요 정치자금원의 하나가 새마을성금으로 성금을 거둔뒤 만찬을 가졌으며 만찬때 재벌회장들은 성금을 많이 낸 순서로 앉는게 관례였다.현대 삼성 등 주요 그룹회장들은 20억∼30억원씩 내고 그 밑의 그룹은 10억,5억하는 식이었다. 반면 노전대통령은 비자금조성을 5공식으로 했으나(직접 수금은 이원조씨 등) 관리와 지출은 경호실장에 맡겼다.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실토했듯 재계의 정기상납으로도 상당분 이뤄졌다.정회장은 92년 『5공때와 마찬가지로 6공때도 명절때마다 20억∼30억원씩 상납했는데 부족해 하는 것같아 한꺼번에 1백억원을 낸 적도 있다』고 밝혔었다. ▷관리◁ 6공 비자금 실체가 드러나면서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 관리방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직대통령들은 모두 자금을 직접 챙겨 장세동·이현우 전경호실장에게 건네주면,이들이 다시 경리과장 등 경호실담당직원을 시켜 은행에 예금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은행에서는 경리담당만을 상대로 영업활동을 하지만 이 예금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대부분 알고 있다는 것이다. 5·6공 당시 청와대의 비자금 관리 방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3일 익명을 전제로 『두 전직대통령들은 모두 직접 자금을 챙기고 경호실장에게는 심부름만 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5공때 장세동 전경호실장은 수표로 자금을 건네주면서 예금하라고 말했을 뿐 예금은행을 지정하지는 않았다』면서 『당시 경호실장의 심부름으로 경리담당이 은행에 찾아가면 은행장들이 회의 도중에도 뛰어나와 따로 만나서는 꼭 예금해줄 것을 부탁했었다』고 전했다.그는 이어 대부분의 은행장들이 청와대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밝혔다. 이들 대통령의 자금관리자는 대부분 경호실장과 오랜 군생활을 해온 경리장교 출신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대통령 당시 장세동 경호실장 아래에서 은행관련 업무를 취급했던 사람은 장세동 전경호실장이 공수여단장 시절 같이 근무한 경리장교로 전해졌으며,이현우 전경호실장을 대신해 신한은행에 찾아갔던 이모씨도 이전경호실장과 군생활을 같이 한 장교출신으로 알려졌다. ▷법적성격◁ 통치자금의 법적 성격은 무엇이며 과연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통치자금도 정치자금으로 보아야 한다는 해석이 우세한 편이다.그러나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통치자금을 일반정치인들의 그것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것 역시 적절치 않다는 반론이 많아 기소권을 쥔 검찰의 최종판단이 주목되고 있다. 여기서 안강민대검중수부장의 말은 음미해 볼만하다. 그는 『통치자금도 일종의 정치자금으로 보아야 되지 않겠느냐』면서 『불법조성된 정치자금은 각종 법률에 의해 사법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다시 말해 통치자금의 조성경위와 관련,뇌물수수 등 형량이 무거운 죄목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정치자금법 위반죄는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재야의 한 변호사는 『대통령이 정식 예산항목에 포함된 경비만으로는 위로금·격려금 등 금일봉을 내려보내는 것만도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면서 『현실적인 여건미비로 기업체로부터 자금을 기부받아 사용한 것을 사법처리하는 것은 무리이며 유독 노전대통령에 대해서만 이 법을 적용하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6공 정치자금 관련 설… 설… 설/“안 전행장 비자금 정치권 유입”­동화은 사건/“군장비 구입때 거액 리베이트”­율곡비리/“청우건설 2백27억 뇌물 제공”­상무대 비리 서소문지점에 차명으로예치된 문제의 3백억원이 노태우 전대통령의 재임당시 통치자금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동안 의혹만 끊임없이 제기됐던 「6공 비자금의혹사건」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새 정부들어 맨처음 제기된 동화은행 비자금사건은 안영모 전행장이 수십억원의 은행돈을 빼내 이중 일부를 정치차금 등의 명목으로 이원조 전의원에게 제공했다는 것.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함승희변호사는 최근 자서전을 통해 『안전행장의 비자금이동경로를 추적하다 정·관계 실력자 10여명에게 돈이 흘러들어간 사실을 확인했으나 상부의 지시로 더이상 수사할 수 없었다』고 폭로했다. 함변호사는 특히 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 개설된 「청우회」명의의 계좌는 93년9월 모그룹회장이 직접 실명전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원전공사비리의혹도 야당측의 단골메뉴.야당측은 지난해에 이어 올 국정감사에서도 『한전이 원전공사의 예정가 사전유출과 수의계약 등의 수법으로 총공사비 1조7천5백억원대의 발전소시설공사 17건을 발주하면서 10%인 1천7백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았다』고 비자금의혹을 제기했다. 국방부가 74년부터 약 30조원을 들여 추진해온 군전력증강사업중 노전대통령 재임시 차세대전투기의 기종선정,해상초계기 구입 등 각종 사업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리베이트가 청와대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이른바 「율곡사업비리」이다. 또 상무대이전공사를 맡은 청우종합건설의 조기현회장이 8백30억여원의 사업비중 2백27억원을 빼돌려 정치자금과 뇌물로 제공했다는 이른바 상무대 비리 의혹사건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야권은 조회장이 2백27억원중 80억여원은 동화사 시주금으로,40억원은 정치자금으로 정부여당의 고위층에 제공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치자금부분을 확인할 수 없었다. 경부고속전철사업 역시 당초 예상보다 2배가 넘는 15조원의 총공사비중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조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야당은 특히 차량구매가가 당초보다 2배가량 높은 1조2천억원이라는 점을 들어 노전대통령이 4천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만드는데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 노전대통령재임중 1백30여개의 골프장개설을 허가,거액의 정치자금조성에 이용했다는 골프장비리의혹과 함께 노 전대통령 사돈기업인 선경이 집권 말기인 92년 8월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다 물의가 일자 자진포기한 과정에도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 대북 정책,무엇이 문제인가/서진영 고려대교수·정치학(시론)

    최근에 남북관계가 또다시 경색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그동안 「대북저자세」라는 국내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쌀지원방침을 견지해오던 우리 정부가 우성호문제등에 대하여 북한측이 계속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더이상 북한과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면서 북한측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가까운 시일내에 남북간의 화해와 대화를 위한 조치를 더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정부의 입장이 북한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상호주의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일부에서는 인내를 가지고 북한 포용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의 대북정책변화를 비판하는가 하면,또 다른 측에서는 북한에 대하여 정부가 보다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이와 같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면서도 이들은 모두 정부의 대북정책이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사실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대북정책이 여러 차례에 걸쳐반전을 거듭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하겠다.문민정부 출범초에 제기되었던 「민족우선론」은 북한 핵문제가 돌출하면서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를 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반전되었고,또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우리의 대북정책은 우여곡절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따라서 일부에서는 우리의 대북정책이 장기적인 정책목표나 전략도 없이 상황에 따라서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비판은 표면적인 정책변화만을 생각한다면 타당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이런 견해들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또는 정책환경의 복합성이 대북정책의 이중성을 강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복합적인 국면에서 단순히 정책의 일관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탈냉전시대의 이중성은 불가피하게 대북정책의 이중성을 초래한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반도주변의 탈냉전시대는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평화공존과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으면서도 또한 냉전시대와 다름없는 적대적인 대결과 경쟁이 지속되고 있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남북한은 각기 탈냉전시대을 맞이하여 협력해야 할 동반자이면서 동시에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적대국이라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로 변모하였다.따라서 우리의 대북정책도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의 위협을 경계하고 대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중성을 띠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북한정권의 이중성과 취약성이 남북한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북한 내부의 극심한 경제난으로 말미암아 북한 지도부가 심각한 위기감과 혼란에 빠져들었으리라는 추론을 쉽게 할 수 있다.사실 북한은 체제의 생존을 위해 개방을 해야 하면서 동시에 개방을 하면 체제가 붕괴할지도 모르는 역설적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특히 북한의 대남정책은 이러한 딜레마를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남한과의 화해와 협력은 북한체제의 취약성을 그대로 노출하게 되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대남정책은 상당기간 이중성을 띨 수밖에 없고,이에 따라 우리의 대북정책도 양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끝으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이중적 자세가 일관된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미국의 한국문제 전문가 로버트 메닝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국민은 북한과의 전쟁이나 흡수통일의 부담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북한정권에 대한 경멸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에도 불만이고 또한 북한에 대한 강경노선에도 찬성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환경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대북정책이 어느 한방향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지만,또한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고 하겠다.한반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탈냉전시대의 불투명성,그리고 북한정권의 취약성과 불안정성을 고려할 때,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유화책이나 대결책을 추진하는 것은 위험한 정책선택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대북한관의 혼란은 안정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의 장애요인이 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책이 시급하다고 하겠다.따라서 정부는 남북한의 평화공존과 공영이란 장기적 목표에 충실하면서도 이중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탄력적인 정책대응을 모색하면서 대북정책의 양면성과 복잡성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북경대 한국학연구센터」 세미나 중계

    북경대 한국학연구센터(소장 양통방 교수)는 19·20일 이틀동안 중앙도서관에서 「한국의 전통문화 국제학술연구토론회」를 가졌다.한국국제교류재단등이 후원한 이번 세미나에는 김준엽 사회과학원원장(전고대총장),김정배 고대교수등 국내학자,조중병 천진남개대교수 등 중국학자,이등영 인도쿄외국어대학 교수 등 일본학자와 재미학자등 4개국에서 66명의 학자가 참가,한국의 철학·종교·역사·언어 등 3개분과에 걸쳐 이틀동안 토론했다. 이들중 조교수와 서대숙교수의 발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한국정치사상과 민족의식/서대연 하와이대 교수 한국민족의 고유사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반만년 역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에도 불구,선뜻 대답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한국문명이 고유사상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오는 역사발전 방식보다는 외래문명·사조를 수용·개선하는 방식을 위주로 발전해 왔다는 경향 때문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불교·유교·기독교 및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신문명등 한민족의 지배적 사상들도 모두 외래사상이다. 「대한민국」이란 공화국도 한국국민들이 정치혁명을 통한 건립이라기 보다는 외국세력의 점령과 해방등 부단한 이민족 개입을 통해 형성됐다는 설명이 더욱 비중을 갖는다.현재 한반도의 남북한은 각기 독자적인 외래 정치사상을 신봉하면서 대립해 있다. 역사적으로 고려 및 이조시대는 한국역사에서 외래사상의 가장 왕성한 토착기로 이해될 수 있다.한국의 오랜 역사동안 수없는 이민족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강한 민족의식을 유지해왔다는데 이견이 없지만 한국의 민족의식을 담은 독특한 정치사상을 발전시켜왔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이다. 조선말 신문명을 수용할 때나 일본의 강점이후 독립운동을 벌일 때에도 한국의 지도자들은 명확한 사상적 제시에는 실패했었다.3·1운동 역시 내재적인 사상적 지도를 받았다기보다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라는 외래사상에 더 힘입은 바가 크다.이조말기 대한제국이 성립되는 시기와 과정에 있어서 강렬한 민족의식과 선각자들의 활동은 과소 평가될 수 없다.그러나 그들은 한국정치사상과 가치관정립에는 소홀했다는 평가를 면키 어렵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사상적 특질은 무엇보다 지금 이곳에서 이상향을 건설해야 한다는 하늘과 인간이 동일시 되는 천인합일적인 현세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19세기말 동학의 인내천 사상은 이러한 한민족의 사상의 정화다.불교는 한국역사에 찬란한 영향을 끼쳤지만 불교사상의 기본축인 평등사상은 한국문화전통에서 하나의 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한국의 정치학자들도 한국민족의 의식을 체계화하지는 못했다.한국의 민주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도 한국민족에게는 외래사상이다.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 양쪽 모두가 다 수용하고 긍정할 수 있는 한국민족의 정치사상을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시대의 한국지도자들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통문화와 현대화/조중병 중국 남개대 교수 80년대초 일본의 학견화자씨는 근대화및 전통문화 연구·분석에서 통치계층 중심을 벗어나 농민·어민등 민중의 습관,신앙,우주관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이런 측면에서 한국문화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층층 구조를 지닌 다차원의 체계라고 정의된다.종교적으로 한국은 다종교 국가이며 세계 제1의 유교국가면서 동아시아 제1의 기독교국가라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70년대에 3.5∼13%에 불과하던 기독교는 91년 무렵 24.3%로 성장했다.이에대해 미국 하버드대학의 두유명교수는 전형적인 유교국가가 기독교와 결합,새로운 유교윤리를 창조해내고 있다고 말한다.이같은 종교적 변화와 신흥종교의 발흥은 사회적 격변과 전통사회 와해에 따른 충격으로 발생한 것으로 해석된다.그러나 기독교및 신흥종교의 확산이 산업화의 결과이지 동력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현대화는 유교적 토양 연구를 통해 규명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유교적 특징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교육열과 성취지향적인 사고방식이다.유가의 입신출세적 문화전통은 한국의 소득이 90달러였을때 미국의 2백달러 수준의 교육수준에 이르게 했으며 1백달러를 갓 넘었을땐 3백80달러 수준의 교육정도에 도달하게 했다.쌀재배 문명권의 근면한 노동자세와 이같이 강력한 교육열은 우수한 한국노동력의 기초적인 바탕이며 현대화의 토대였다. 한국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집단주의도 공익 우선의 정치문화와 질서존중사상의 확립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고 경제발전을 주도한 정부및 기업·국민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설정하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유교적 전통 이외에도 근대 들어 함양된 국민의 높은 저항정신과 비판의식은 정부의 권한남용과 탈선을 막는데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18세기말 조선왕조는 근대화를 지향하는 내적 요소와 맹아를 키우지 못하고 일제의 먹이로 주저앉았다.그러나 지금에 와서도 한국의 유교적 문화전통은 내용·형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기본성격은 유지하면서 한국문화의 기반이 되고 있다.다른 곳에서는 파산적일 수 있었던 군사독재가 근대화의 일익을 담당했던 것도 유교적 정치전통에 힘입은 바 크다.이같은 점에서 한국의 현대화는 외부영향에 의한 수동적 발전이라기보다는 한국특색의 돌진·쟁취형 현대화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 북한역사 시대순으로 정리한 통사/김학준 저 「북한 50년사」출간

    ◎1948년 정권출범서 현재까지 다뤄/복잡한 노동당 내력도 명쾌하게 설명 분단 반세기를 맞은 올해에야 북한 역사를 총정리한 통사가 비로소 나왔다.중진 정치학자인 김학준 단국대이사장이 최근 펴낸 「북한 50년사」(동아출판사)가 그것. 그동안 북한 공산체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거나,군사·정치·경제·사회·문화등을 분야별로 개괄한 연구서는 많이 발표됐지만 북한사를 시대순에 따라 체계화한 통사는 없었다.그만큼 시대상황이 경색됐고,전문 연구인력이 부족했기 때문.따라서 권위있는 학자가 저술한 「북한 50년사」는 북한사 최초의 개설서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1948년 9월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출범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다루었다.곁들여 북한 전사로 항일독립투쟁의 한 줄기인 공산주의 운동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지은이는 북한사의 뿌리를 1850∼60년대 함경도 농민들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데서 찾았다.굶주림을 못견딘 농민들이 국경을 넘기 시작했고 1910년 한일합병이 있자 항일운동 세력이 이에 합세했다.1920년 무렵 이미 20만 가까운 한민족이 연해주에 모였다.1917년 러시아혁명이 성공하자 이들은 「일제 타도」의 한 방편으로서 공산주의를 받아들였다.이처럼 탄생한 한인 공산주의 운동이 러시아와 중국,한반도에서 맥을 이어 북한정권 수립의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광복후 북한사는 김일성의 권력강화,끊임없는 적화통일 기도,김정일 권력계승의 흐름을 보인다.광복과 함께 38도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은 극동군 산하 「88특별여단」대위 김일성을 내세워 공산정권을 세운다.김일성은 갖은 명목으로 반대파를 숙청,56년 말쯤 1인 독재체제를 확립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경제개발에 주력한 북한은 60년대에 남쪽보다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4대 군사노선 수립」「공비 남침」등 적극적인 대남 무력공세를 벌인다.그러나 70년대 초 한때 「7·4 남북공동성명」에 합의하는등 군사긴장 국면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보인다. 김정일 후계체제는 1973년 등장한다.김정일은 그해 9월 비공개로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비서국 비서로 떠오른 다음 80년 조선노동당 6차 대회 때 비서국 서열 2위가 된다. 김학준 이사장은 이때부터 「김일성·김정일 공동통치」가 계속되다 84년 초 실질적인 김정일시대가 열렸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앞날에 대해서는 ▲김정일이 적어도 20년 넘게 후계자 노릇을 해왔고 ▲체제의 혜택을 받는 「붉은 귀족」이 1백50만명 가량인데다 ▲김정일의 통치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따라서 경제침체·개방압력에 시달리는 김정일체제의 운명은 통치집단의 내부 응집력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다만 김정일체제가 붕괴하면 강경파가 게릴라활동에 뛰어들어 한국에 큰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고 지은이는 우려했다. 「북한 바로 알기」에 새 지평을 연 이 책은 실타래같이 얽힌 북한 공산당의 내력을 명쾌하게 풀어헤치는등 북한사를 일반인이 읽기 쉽게 정리한 점도 큰 공로로 꼽힌다.
  • “유럽­아시아 관계증진 양측에 이롭다”(해외논단)

    ◎조지워싱턴대 학장 해리 하딩­런던대 강사 데이비드 샴보 공동칼럼/아시아,미국 제치고 유럽 최대 무역파트너로 등장/「유럽­아시아 정상회담」 APEC수준 발전시켜야 아시아·유럽 정상회담 개최 등 유럽과 아시아의 관계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해리 하딩 조지 워싱턴대학 국제문제 엘리어트 스쿨 학장과 데이빗 샴보 런던대학 동양·아프리카대학원 중국정치학 강사가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주장했다.다음은 그 요지. 유럽은 아시아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이러한 사실은 스위스에 본부가 있는 세계경제포럼이 최근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유럽­동아시아 회의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이 회의에는 양 지역에서 7백명이상의 각국 관리들과 회사간부들이 참석,유럽의 관심이 서방에서 동방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유럽연합(EU)의 아시아 진출은 미국과 많은 아시아국가들과의 무역및 외교관계가 긴장상태에 놓여있는 것과 때를 맞추어 이루어지고있다.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대결적 자세 특히 무역협상에 있어서의 그런 자세는 유럽의 보다 유화적인 정책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유럽이 인권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면서 상업적인 기회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있는 반면 미국은 아시아 지역의 민주주의 확대가 일차적인 목표인 것같이 보인다. 유럽의 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유럽위원회에서 발표한 정책문서에 적시된 통합적 장기전략으로부터 나온다.유럽위원회의 94년도 「새 아시아 전략」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유럽의 상업적 외교적 존재를 강화하는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그 결과로서 일본·한국·중국과의 관계에 관한 구상을 다루는 유럽연합의 정책논문들이 올해말 발행될 것이다. 워싱턴은 이러한 유럽의 정책논문에 대응할 만한 것들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 대한 일관된 정책도 없는 것같이 여겨진다.미국방부의 동아시아 전략보고서만이 유럽의 그것들에 근접할 뿐이다. 클린턴 미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은 통합적인 장기적 전략이 없기 때문에 의회에 의해 마련되고있으며 불충분한 정보와 단기적인 시각에 따라 정책명령이 내려지고 있다. 내년 3월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첫번째 유럽­아시아 정상회담(ASEM)을 열기로 한 것은 두 지역의 지정학적인 간격을 좁히는 주요한 행사가 될 것이다.그 정상회담은 15개국의 유럽정상들과 10개 아시아 지도자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아마 97년에 두번째로 열릴 회담은 호주와 뉴질랜드를 포함할 것같다. 유럽지도자들은 ASEM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유럽은 동아시아에 대한 무역및 투자에 있어서 오랫동안 미국에 뒤져왔다. 이제 유럽의 은행들과 다국적 기업들은 이윤을 담보하는 아시아 시장에서 보다 확고한 위치를 얻으려하고 있다.아시아는 10년전 유럽을 제치고 미국의 주요 무역파트너로서 부상했다.또한 최근에는 유럽연합의 전체 교역량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을 능가했다. 유럽은 아시아에 대한 낮은 수준의 지식을 개선하고 싶어한다.과거 유럽은 아시아에서 광범위한 식민지를 갖고있었으나 오늘날 미국과 비교할 때 아시아전문가가 부족하다.런던대학의 동양·아프리카 대학원이 유럽에서 아시아에 관한 광범위한 전문적 지식을 축적하고 있는 유일한 기관일 정도이다.미국은 이같은 기관을 적어도 9개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과 그것의 15개 회원국들은 아시아와의 교역증진,문화적·학술적 교류의 증진등을 위한 보다 많은 기금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유럽은 워싱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금융서비스에 관한 합의등 동아시아와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은 아시아와 대등한 파트너십을 지향하고 있다.그러나 미국은 미국의 지도력이라는 전제하에서의 「관계」를 고집한다. 유럽의 아시아와의 교역량은 절대적인 측면에서는 증가했다.그러나 아시아의 외국과의 교역에 있어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많은 아시아지도자들은 최근의 유럽의 구상을 환영하고 있다.아시아와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질때 이러한 구상들은 미국이 남긴 공백을 메울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시아는 유럽카드를 이용하는 「조작적 정책」을 추구하지 말고 유럽과 미국사이의 중심적 위치에서 삼각관계를 지향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미국이 해야할 일은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만약 워싱턴이 유럽의 접근방식중 좋은 것들을 받아들인다면 워싱턴은 훨씬 더 확고한 경제적·전략적·역사적 토대로부터 아시아를 계속 다루어 나갈 것이고 시장확대와 영향력증대를 위한 유럽의 움직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워싱턴은 발전하고 있는 유럽­아시아 축을 「제로 섬」의 견지에서 보아서는 안된다.그것은 미국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확실히 미국과 유럽의 연결이 아시아 어느 누구와 비교해봐도 더 지속적이고 제도화 돼있다.유럽과 아시아의 관계증진은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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