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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선거 D­30 여야 수도권 배수진

    ◎서울­행정통 추진력·경기­해결사 마당발 ‘D­30일’ 6·4 지방선거의 초대 승부처인 서울과 경기에서 여야가 사활을 건 ‘배수진’을 쳤다.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선거가 양자대결구도로 사실상 정립된 가운데 국민회의는 행정 전문가 高建­林昌烈, 한나라당은 추진력과 차세대 주자로 이뤄진 崔秉烈­孫鶴圭 콤비를 앞세워 ‘승부수’를 던졌다. ◎서울/高­정국안정 역설… 지명도·행정경험 활용/崔­위기관리 능력 등 과시… 反DJP票 기대 6·4지방선거의 최대 하이라이트인 서울시장선거는 국민회의 高建 전 총리와 한나라당 崔秉烈 전 의원의 양자대결구도로 확정됐다.국민회의는 4일 高전총리를 입당시킨뒤 8일 서울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서울시장후보로 공식추대할 계획이다.한나라당도 郭英薰 세계도시연구소장이 당지도부의 설득을 수용,경선에 불출마키로 함에 따라 4일 서울시장 후보추대대회 및 필승결의대회를 열어 거당지원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高전총리와 崔전의원의 ‘한판승부’는 金大中 정부의 중간평가적 성격이 있는데다 영·호남대결이란 점에서 관심을 끄는 요소들이 많다.특히 지방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물론 정국 주도권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은 총력전을 펼칠 태세다.국민회의는 안정적 정국운영을,한나라당은 집권당의 독주 견제를 내세운다.韓光玉 부총재의 조직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등 당이 전폭 지원하는 高전총리는 화려한 공직 경력으로 인지도가 崔전의원보다 높다.전남지사와 청와대정무수석,교통·농수산·내무장관,서울시장,국무총리를 역임했고 명지대 총장까지 지냈다.국민회의는 행정전문가인 高전총리의 높은 지명도와 풍부한 행정경험을 무기로 가급적 지역대결구도는 피할 방침이다.누가 시정을 잘 이끌 것이냐는데 포인트를 둔 미디어선거대책 마련에 치중하고 있다.IMF 국난극복을 위한 강력한 정부를 원하는 시민들의 일반적인 정서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崔전의원도 청와대정무수석,문공부·공보처·노동부장관,서울시장 등 高전총리 못지 않은 화려한 경력을 갖췄다.특히 그는 소신과 추진력,위기관리능력에서 돋보인다는 평가다.IMF와위기관리능력을 연결시키는 전략도 구상중이다.崔전의원측은 같은 영남권 출신이고 지지계층이 비슷한 朴燦鍾 국민신당고문의 불출마로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다.反DJP연합에서 한발 더 나아가 특정지역 편중인사 등으로 민심이 호남 대 비호남구도로 바뀌고 있는 점을 중시,TV토론에서 여당의 약점을 집중 공략,우위를 점하겠다는 복안이다.또 高전총리가 호남출신이고 자신이 영남출신인 만큼 영남출신표의 결집현상이 나타날 것으로도 기대한다.두 사람은 3일 조계사 봉축법회에 참석하는 등 벌써부터 사실상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서울시장 여야후보 비교 ▷고건◁ 나이:60 출생지:전북 군산 학력:경기고,서울대 정치학과 주요경력:전남지사,청와대 정무수석,교통·농수산부·내무부장관,12대 의원,서울시장,명지대 총장,국무총리 가족관계:趙賢淑씨(60)와 3남 별칭:행정의 달인 주요참모:林采正 의원,金翔宇 의원,申溪輪 전 의원 ▷崔秉烈◁ 나이:60 출생지:경남 산청 학력:부산고,서울대 법대 주요경력:조선일보 사회부장·편집국장·이사,청와대 정무수석,공보처장관,서울시장,12·14·15대 의원 가족관계:白玲子씨와 2남1녀 별칭:崔틀러(추진력) 주요참모:金吉弘 전 의원,黃賢澤 박사,奇鉉政씨 ◎경기/林­‘경제知事’ 이미지로 정치 문외한 극복/孫­젊은 패기·도덕성 앞세워 차세대 부각 ‘IMF 해결사’(국민회의 林昌烈 후보)와 ‘차세대 주자’(한나라당 孫鶴圭 후보)의 대결.결코 예측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시작됐다. 3일 林·孫후보는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수원용주사와 여주 신륵사,화성신흥사 등 도내 사찰을 순례하며 표밭갈이에 돌입하는 한편 밤늦도록 참모들과 ‘필승전략’ 수립에 골몰했다. 林후보측은 ‘경제해결사’,‘환란(換亂)소방수’의 구호를 앞세워 표심(票心)에 파고들고 있다.정치문외한의 약점을 ‘경제지사’의 이미지로 극복한다는 복안이다. 내심 40%에 이르는 호남­충청표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다.‘첫눈에 반한 DJ­환상의 경제 콤비’ 등의 구호를 앞세워 金大中 대통령과의 관계를 적극 홍보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선거대책위원장은 李允洙 경기도지부장이,南宮鎭 崔喜準 의원이 공동선거대책본부장,김한길 의원이 기획단장을 맡았다.선거베테랑들을 전진배치,‘착오없는 승리’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반면 야권에서 집중제기하고 있는 ‘IMF책임론’과 기아사태 장기화에 대한 ‘책임유기론’ 등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하지만 林후보측은 “부도위기 직전에서 국가를 구한 것은 세계가 아는 일”이라고 일축,‘정면돌파’를 선언했다. 孫후보측은 젊은 패기와 행정경험을 겸비한 ‘차세대 주자’와 ‘경기도토박’에 이미지를 맞추고 있다.보건복지부장관 당시 3년을 끌었던 한­약(韓­藥) 분쟁의 성공적 마무리를 대표적 성공작으로 제시한다.운동권 출신으로 청렴성,도덕성을 앞세워 기존 정치인과의 차별화에 나서는 한편 당 대변인,정조위원장의 실무경험도 주요 무기다. 반면 정권교체 후 조직이완과 자금력 부족,여권 연합공천 등이 약점으로 꼽힌다.특히 인지도에서 林후보에 상당히 뒤져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하지만 孫후보 진영은 “앞으로 TV토론회 등 정책대결에서 孫후보의깨끗한 이미지가 유권자를 사로잡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분위기다. 최근 국민신당 후보로 내정된 任仕彬 전 의원이 공천을 고사하고 있어 서울과 같은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기대감도 버리지 않고 있다. □경기지사 여야후보 비교 ▷林昌烈◁ 나이:55 출생지:서울 학력:경기고,서울대 경영학과 주요경력:재무부 이재국장·증권국장·차관보,IMF교체이사,조달청장,과기처·해양수산부·재경원차관,통신부장관,경제부총리 가족관계:朱惠蘭씨(50)와 2녀 별칭:국제금융통 주요참모:南宮鎭 의원,金한길 의원,조완규씨 ▷孫鶴圭◁ 나이:50 출생지:경기 시흥 학력:경기고,서울대 정치학과 주요경력:인하대·서강대 교수,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장,14·15대 의원,민자당 대변인,신한국당 정조위원장,보건복지부장관 가족관계:李潤英씨(52)와 2녀 별칭:마당발 주요참모:宋泰鎬 전 문체부장관,曺炳喆씨
  • 서울대 순수취업률 크게 하락/IMF 여파

    ◎단대별 작년보다 5∼20%P 떨어져 취업의 무풍지대였던 서울대의 순수취업률(진학자나 입대자를 뺀 취업자 비율)이 지난 해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IMF체제 이후 기업체마다 채용인원을 대폭 줄인데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무원 채용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28일 서울대에 따르면 공대를 제외한 단과대별 순수취업률은 지난 해 전체 평균 30.4%보다 5∼20%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사회대의 경우,98학년도 졸업자 420명 가운데 대학원이나 군에 입대한 148명을 제외한 257명 중 26명만이 취업,순수취업률은 9.7%이다.지난 해에는 34.9%였다. 과별 순수취업률은 심리학과가 30%로 가장 높았으며 지리학과 25%,경제학부 21%,인류학과 19% 순이었으며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는 각각 5%와 3%에 그쳤다.
  • 경기지사 후보 孫鶴圭씨/한나라 경선서 선출

    【수원=朴贊玖 기자】 한나라당은 28일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기도지사후보 경선을 통해 孫鶴圭 전 의원을 오는 6월4일 지방선거의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했다. 孫 전 의원과 張慶宇 전 의원이 후보로 나선 이날 경선에서 孫 전 의원은 총 투표수 1천820표 가운데 1천355표를 얻어 462표에 그친 張 전 의원을 893표 차이로 눌렀다.3표는 무효처리됐다. ◇孫후보 약력=▲경기 시흥·51세 ▲경기중·고 ▲서울대 정치학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인하대·서강대 교수 ▲14·15대 국회의원(경기 광명) ▲신한국당 대변인 ▲신한국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보건복지부장관 ▲한나라당 총재비서실장
  • 中企 특위장 朴尙奎씨 위촉

    金大中 대통령은 20일 하오 청와대에서 대통령직속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에 崔章集 고려대 교수,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에 朴尙奎 국민회의 부총재를 각각 위촉하고 위촉장을 수여했다. ◇崔위원장=▲강릉·55세 ▲고대 정외과,미 시카고대 정치학박사 ▲고려대 교수. ◇朴위원장=▲충주·62세 ▲동국대 국문과 ▲종소기업중앙회장 ▲행정쇄신위원 ▲국민회의 부총재.
  • 유엔 사무차장보에 한국인 첫 진출/崔英鎭씨 PKO 담당

    유엔 평화유지활동(PKO)담당 사무차장보에 崔英鎭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준비본부장이 임명됐다고 외교통상부가 15일 밝혔다.이는 지난 91년 한국이 유엔에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유엔본부내 정규고위직에 진출하는 것이다. 崔사무차장보는 앞으로 유엔사무국 평화유지활동국에서 사무차장 아래 2개의 차장보 가운데 PKO의 기획·지원담당실 업무를 맡게 된다. 崔사무차장보는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한 직업외교관으로 지난 72년 외무고시 6회로 외교통상부에 입부했다.학구파로 특히 동·서양문명에 관한 독자적 연구로 관련저서를 펴내고 국내외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서울·50세 ▲연세대 정외과,파리1대 국제정치학박사 ▲주미참사관 ▲국제경제국장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사무차장
  • 경제적 富 축적한 新계층 출현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경제적 부를 축적한 소위 ‘신(新)계층’이 출현했다.이들은 앞으로 시장지향적 체제개혁의 옹호세력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민족통일연구원 朴泂重 연구위원(정치학박사)은 최근 발간한 ‘90년대 북한체제의 위기와 변화’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에서 90년대 북한 사회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로 신계층을 꼽았다.朴위원은 앞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이 발전되면서 이같은 새로운 계층의 출현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계층은 암시장에서 성공했거나 부패를 통해 재산을 증식한 고급간부들로 ‘경제적 특권계층’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신계층 출현은 국경무역과 벌목공 및 유학생 등에 의한 외부정보 유입 증대와 함께 북한의 정치·사회적 기강을 지속적으로 이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 佛 국민전선 당수 자격정지 르펜(뉴스의 인물)

    ◎극우·인종차별론자 ‘악명’/잦은 돌출행동… 알제리전 참전 포로 고문도 인종차별론자,극우극단주의자의 전형으로 불리면서 프랑스 우월주의를 주장해온 장 마리 르팡 국민전선(FN)당수가 지난해 선거유세도중 상대후보를 모욕하고 폭행한 혐의로 2일 법원으로부터 유죄선고를 받음으로써 그의 돌출행동에 제동이 걸렸다. 금세기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인종차별을 주장해오면서 갖가지 과격행동을 일삼아왔던 그는 지난 1928년 프랑스 해안도시 모르비앙에서 유복한 선주의 아들로 출생,파리 법과대학과 스앙스 폴리티크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엘리트. 그러나 54년 알제리사태때 외인부대 장교로 참전,알제리 포로들을 전기고문하는 등 악명을 키워오다 58년 하원에 당선돼 72년 마침내 FN을 창당한뒤 계속 정치입지를 키워왔다. 돌출적인 행동이 보수 프랑스인들의 기저에 맞아 어찌보면 프랑스인들 자체가 그를 키워왔는지 모른다.이중 지난 96년 생베르나르 성당에서 농성중이던 아프리카출신 불법체류자들에게 “모든 인종이 동등한 것이 아니다”고 한말은 유명한 일화. 74년 이후 3번에 걸친 대권도전에는 실패한 그는 시민·학생등에 반발을 불러일으킨 우파와의 연합을 좌절당한뒤 이번 판결로 그동안의 정치행동이 부적격이란 평을 받은 꼴이돼 앞으로 입지가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길섶의 창녀/조너선 커시 지음(화제의 책)

    ◎금리시되어온 성서속 얘기 재구성 유대 율법학자들은 2천년 이상 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히브리어 성서를 연구하고 주석을 달며 미화하는 작업을 계속했다.그들의 연구업적은 유대교의 율법과 민담,전설을 집대성한 ‘탈무드’와 성서를 주석한 ‘미드라시’에 대부분 기록돼 있다. 이 책은 그동안 금기시되고 잘못 전해져온 성서 속의 이야기들을 소설기법으로 재구성,성서의 새로운 면을 부각시키고 있어 관심을 끈다.유혹과 강간,관음증과 노출증,근친상간 및 서자(庶子)생산,암살과 살인 등 서구문학을 통틀어 가장 노골적이고 격정적인 성적 일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구약성서라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서평 칼럼니스트인 커시는 이 책에서 구약성서에서 ‘금기되어온’ 내용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 일곱 가지를 소개한다. 종족보존을 위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한 롯의 두 딸 이야기,자신에게 약속된 아들을 낳기 위해 길섶의 창녀를 자청,시아버지를 유혹하는 다말의 이야기 등 그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다.이런 내용은 유대의 서기관과신학자를 겸한 율법학자들이 성서원전을 다시 고쳐 쓰는 과정에서 삭제하거나 고의적인 오역의 남용으로 은폐됐다는 것이 커시의 지적.이 책은 각 이야기들을 그 배경이되는 시대의 정치적·사회적 상황속에서 재현,당초 검열의 대상이 됐던 이유를 밝힌다. 커시는 “성서의 금지된 원전들은 섹스와 폭력을 노골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인간의 열정에 관한 이 이야기들 속에는 단순한 자극 이상의 교훈이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성서속 금지된 이야기들의 통찰력을 활용한다면 낙태문제에서부터 중동평화 문제,성(性)의 정치학,세계정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시대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데 적잖은 암시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오성환 옮김 까치 1만2천원.
  • 빨치산 토벌(대한민국 50년:13)

    ◎49년 ‘레드 킬러 작전’ 3,400여명 사살·생포/군검,지리·오대·태백산일대 주민 90% ‘적색’ 분류/48년부터 6·25휴전후까지 산악지대서 ‘소탕전투’ ‘낮에는 대한민국,밤에는 인민공화국’. 빨치산의 점령지역을 일컫는 표현이다.낮에는 군경의 치안아래 있으나 밤만 되면 빨치산의 점령구로 바뀌었다.대한민국 영토이면서도 한국의 통치권에서 벗어나 있었던 곳.48년부터 50년 사이 일부 남한지역은 이처럼 사실상‘무정부 상태’였다. 봄바람이 북풍을 녹이기 시작하던 49년 3월.1백여명의 빨치산은 전남 곡성군에서 군경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였다.경찰 사망자 수는 1백여명이고 통신도 파괴됐다.보성 화순 순천 나주 함평 구례 영광 등에서도 비슷한 전투가 잇따랐다.그해 8월 전남 화순도 더위와 피비린내로 뒤덮였다.3백여명의 빨치산은 광부들과 연합해 철로,통신시설을 차단한뒤 건물을 불태우고 경찰관을 무참히 학살했다.호남지역 빨치산 활동의 중심은 역시 험준한 산세를 갖고있는 지리산 일대. ○48년 ‘여순사건’서 촉발 경상북도도 빨치산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다.빨치산이 은신해 있던 산의 이름을 딴 ‘일월산 부대’의 지휘자는 유명한 金達三이었다.일제 또는 미제 소총으로 무장한 빨치산은 경찰서와 군부대를 습격했다.국군 1개 중대는 빨치산의 공격으로 41명이나 사망하기도 했다.경북지역 가운데 봉화 영덕 영주 등의 동북지역에서 빨치산은 발호했다. 대중과 연계해 무장투쟁을 벌이는 게릴라를 일컫는 빨치산은 48년 10월의 여순사건으로 촉발됐다.토벌 군경에 쫓겨 지리산으로 들어간 반란군들은 소규모 유격전을 벌였다.49년 6월에 접어들면서 빨치산은 더위 만큼 날뛰었다.조국전선을 결성한 북한이 게릴라를 대거 남파했기 때문이었다.북한은 게릴라 전문양성기관인 ‘강동정치학원’을 설치해 게릴라들을 훈련시킨뒤 남으로 내려보냈다.때로는 남한에서의 투쟁을 독려하고 고무하기 위해 남한내 빨치산을 북으로 불러 올려 교육시켰다.강원도지역도 38선을 넘어온 북한군이 빨치산들과 어울려 유격활동을 했지만 남쪽지역에 비해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다. 빨치산의 활동은 49년 9월들어 절정에 달했다.정규군 편제인 병단을 만드는가 하면 중대 소대 분대도 편성됐다.심지어 여단으로 편성되기도 했다.무기와 탄약은 북한으로부터 보급받았으며 생활은 현지보급에 의존했다.산악을 근거지로 한 빨치산들은 이즈음해서 산을 내려온다.경찰서와 군부대를 공격하는 ‘아성(牙城)공격’이다.목포형무소에서는 폭동이 발생해 1천4백여명의 죄수 가운데 4백여명이 탈옥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따라 李承晩 정부는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에 나선다.전국을 지리산,오대산,태백산 지구로 나눠 빨치산 토벌 동계 대공세를 벌였다.38선에서의 대치와 충돌 못지 않게 남한 내부의 산악지대는 ‘전장(戰場)’이었던 것이다.빨치산의 수는 1만여명.하지만 빨치산과의 전투보다 추위와 눈보라와의 싸움은 토벌을 더욱 힘들게 했다.빨치산은 지리산이나 일월산처럼 산세가 험하거나 외진 곳을 주 근거지로 삼았던 탓이다.빨치산을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당시 관계자들은 회고하고 있다.군경은 주민 가운데 90%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했을 정도로 주민들은 빨치산 편으로 분류됐다는 점은 중요한 대목이다.주민들은 빨치산에 대한 정보를 군경에 제공하기를 거부했다.빨치산의 보복과 경찰에 대한 반감·증오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12월 6일 李承晩 대통령이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최단시일에 공비소탕작전을 끝내고 명년 초에 후방치안문제로 유보해오던 지방자치단체의 선거및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실시한다”고 빨치산 소탕작전을 독촉하는 발언을 했다.토벌군은 마을을 불살라 유격대를 주민들과 분리시키는 ‘소진(燒盡)소개(疎開)작전’으로 빨치산의 끈질긴 저항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이현상 체포로 “작전 끝” 정부군의 진압에 49년 겨울을 지나면서 게릴라들은 차츰 소멸돼 갔다.12월 15일 지리산에서 벌어진 빨치산 토벌작전인 ‘레드 킬러’로 1천7백여명의 빨치산이 사망했고 1천7백여명이 생포됐으며 132명이 귀순했다.이에 앞선 그해 10월 좌파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던 남로당에 대한 등록취소령도 남한내 빨치산 활동에 조종(弔鍾)을 울리는데 일조를 했다.50년 봄으로 접어들면서 빨치산의 활동은 잠잠해졌다.마치 6월의 한국전쟁을 앞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 빨치산 토벌작전은 한국전쟁이 끝난후까지도 여전히 계속됐다.53년 5월17일 빨치산 소탕 작전사령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틀림없이지리산 벽점골 비트에 잠복중입니다”.작전과장의 설명에 장교들은 침을 삼켰다.남한내 빨치산의 총지휘자이자 충청 경상 전라도를 넘나들며 경찰서와 관공서를 습격했던 남부군단 사령관 李鉉相.종적을 감춘지 3년만에 그의 은신처를 알아낸 것이다.여순사건의 지휘자였던 金智會 등을 체포해서 밝혀낸 쾌거였다. 치밀한 작전계획 아래 포위망을 좁힌 것은 그로부터 5개월뒤.李鉉相을 체포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은 4개 연대였다.9월 18일의 새벽바람을 가르며 1연대는 운봉을 출발해 남원군 산내면을 경유해 반성리에 포진했으며 3연대는 노고단을 경유에 반야봉으로,5연대는 함양을 경유해 백무동 능선을 압박해 나갔다. 2연대는 돌격대 역할을 맡았다.바스락 소리에 돌격대는 숨을 멈췄고 수십미터 앞에는 잡초를 헤치는움직임이 포착됐다.빨치산 3명이 조금씩 움직였고 거리가 5m 앞으로 좁혀졌을때 돌격대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숨진 빨치산가운데 한명이 李鉉相.이로써 기나긴 3년동안의 빨치산과의 전쟁은 끝났다.당시 李承晩 대통령이 완전히 성공을 거둔 유일한 것이 빨치산 토벌이었다. ◎약간의 마을 파괴” 미 반공시각 파악/일부 국내학자들 “지금이라도 진산규명” 주장/“민족사 정립 차원 특별법 제정해야” 빨치산은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빨치산진압작전은 ‘모조리 죽이고,모조리 태우고,모조리 빼앗는(殺光,燒光,槍光)’다는 ‘삼광(三光)작전’.일본군이 만주 및 한만 국경지역에서 조선과 중국의 항일 게릴라들을 토벌할 때 사용하던 전술이었다. 일부 마을에서는 게릴라가 아닌 민간인을 대량으로 죽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군경의 초토화 정책에 따른 것이다.49년 경남 하동과 경북 문경에서는 국군이 마을사람 수백명을 모아놓고 집단적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국회에서도 “민중들의 삶의 근거지를 빼앗고 좌익으로 몰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李靑天 국방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까지 구성돼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으나 ‘빨갱이 소탕’이라는 지상명제에 밀렸다. 당시 주한미대사관의 드럼라이트 영사가 본국에 타전한 보고서는 “별로눈에 띠지 않는 약간의 마을 파괴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드럼라이트영사의 보고서는 다분히 반공논리에 의해 작성된 측면이 많다.“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비공산주의자 청년들을 가려 뽑아 그들을 좌익과 같이 견고하고 무자비한 행동에 맞설 수 있도록 조직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여년이 흐른 지금 일부 학자들 사이에는 이제라도 진상규명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특별법을 제정해 ‘민족사 정립을 위한진실규명 국민위원회’같은 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이다.제주 4·3사건의 피해자·유가족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가 요즘들어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4·3사건과 빨치산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응어리져 50년동안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북한의 협상 행태/全寅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서울광장)

    ○무위로 끝난 4자 본회담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남·북한과 미국 및 중국이 참여한 제2차 4자 본회담이 3월 16∼21일 기간 제네바에서 열렸었다.4개국대표들은 예정된 회담 일정을 하루 연기하면서까지 공동위원회 구성과 의제결정 등에 관한 합의 도출을 시도했으나,양측은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회담이 무위(無爲)로 끝나자,미국과 북한은 평화회담의 실패원인을 서로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팽팽한 설전을 벌였다.4자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은 무위로 끝난 회담결과를 아쉬워하면서,북한과 한·미 양측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중도적 입장을 택했다.IMF한파와 ‘북풍(北風)’의 2중 난기류(亂氣流)에 휘말려 4자회담에 전념할 수 없었던 남한은 소극적 자세로임할 수 밖에 없었다. 제2차 4자 본회담은 주한미군에 관한 미국의 분명한 입장과 북한의 확고한 협상목표 및 전략 고수로 인하여,시종일관(始終一貫) 고전을 면치 못했다.북한 협상단 대표 金桂寬 외교부부부장은 북한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으나 상대로부터호응을 얻지 못했다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협정 체계가 회담의 핵심 의제임을 강조했다.미국은 주한미군에 관한 견해를 북한과 교환할수는 있으나,미군 주둔이 한반도 긴장 원인이라는 북한주장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제2차 4자 본회담은 북한의 특이한 협상목표와 전략 및 행태(行態)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한가지 흥미 있는 에피소드를 제공했다.북한 대표단은 지난 16일의 제2차 본회담 벽두(劈頭)부터 좌석배정에 이의를 제기하여 회담을 5시간이나 지연시켰었다.북한은 왜 좌석문제를 가지고 중요한 회담을 지연시켰을까.북한 대표단이 그토록 완강하게 미국과 대좌(對坐)하기를 바란까닭은 우연이 아니라,회담을 미­북 중심의 회담으로 이끌어 가려는 정책적·전략적 고려와 의지 때문이었다.미국과의 정면 대좌 요구는 북한의 협상목표인 미­북 평화협정과 한국배제라는 협상전략을 반영한 것이다. ○‘좌석 배정 시비’의 시사점 참고로 1951년 7월 8일 키니(Andrew J.Kinney)공군대령이 인솔한 유엔군측 연락장교단은 개성의 회담장에도착하여 남쪽을 향해 일렬로 놓여있는 의자에 앉게 되었는데,공산군측은 유엔군측이 북쪽을 향한 의자에 앉도록 끈질기게 요구했다.2차 접촉시 회담장에 도착한 유엔군측은 공산군측이 미리와서 그들이 원했던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유엔군측은 동양에서 승자가 북쪽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협상 테이블에서 만만한 상대가 아닌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물론 한·미 양국이 좌석문제 때문에 어렵게 성사된 4자회담을 섣불리 깰 수는 없지만,유사(類似)한 상황 재발방지를 위해 적절한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예를 들면,회담기간중 4국 대표단이 좌석을 매일 매일 윤번제로 바꾸어 앉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이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1968년 북한에 억류중인 푸에블로(USS Pueblo)호 승무원들 송환을 위해 미국이 사용했던 ‘레오날드 案’(Leonard Proposal)과 같은 아이디어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푸에블로호가 주는 교훈 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을 위한 미­북한 협상경험은 자존심이 강한 북한이대외적 체면과 대내적 선전효과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푸에블로호 승무원 송환문제로 고민하던 미국은 한 주부의 참신한 아이디어 덕분에 1968년 12월 23일에 82명의 승무원과 시신 1구를 무사히 귀환시킬 수 있었다.석방 대가로 미국정부는 ①북한 영해 침범 사실을 인정하고 ②그에 대하여 사과하며 ③다시는 침범하지 않겠다고 확약한 ‘서명한 문서’를 북측요구대로 넘겨주었다.미국측은 북한이 집요하게 요구했던 문서에 서명하기전에 국무성 대책반원 레오날드씨의 부인 앨리노가 제안한대로 “이제 막 서명하려는 문서는 진실이 아닌 내용을 담고 있다”고 전 세계를 상대로 선언해 버렸다.이 에피소드는 매우 경직(硬直)되고 양보를 모르는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한·미 양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리하면 부인하고 지연 북한은 크게 유리하지 않는 한 협상에서 결코 서두르지 않으며,불리하면부인하고 지연시키는 데 익숙하다.북한은 협상시 자국(自國)의 기본원칙과협상 목표를 고수하려 든다.북한은 협상 초부터 가장 핵심적인 이익 또는 문제를 제기하며,자국 요구를 벼랑 끝까지 밀고 가는 뱃심을 보인다.물론 북한이 협상태도를 전환하거나 후퇴하는 경우도 있으나,이는 급박한 상황를 전제로 하는 극히 예외적 경우뿐이다.미국의 대북 ‘참여’정책과 남한 신 행정부의 전향적 대북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북한의 입장은 강경했다.제2차 4자 본회담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무척 멀고 험난한 과정임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 美·日 등 대사 5명 내정/駐美대사 李洪九씨/駐日대사 金奭圭씨

    ◎駐中대사 權丙鉉씨/駐러대사 李仁浩씨/유엔대사 李時榮씨 정부는 24일 주미대사에 李洪九 전 국무총리를 내정하는 등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 및 유엔주재 대사를 내정했다. 정부는 주일대사에 金奭圭 전 외교안보연구원장,주중대사에 權丙鉉 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주러시아대사에 李仁浩 주핀란드대사,주UN대표부대사에는 李時榮 주프랑스대사를 각각 내정했다. 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이같은 인선 내용을 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으로부터 보고받고 재가했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이날 차관보에 崔成泓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을 내정하는 등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외교통상부는 또 통상교섭본부 조정관에 鄭義溶 주이스라엘대사,기획관리실장에 辛成梧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외교정책실장에 金三勳 주브라질대사,의전장에 崔尙德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준비본부장을 각각 내정했다. 이와함께 주미공사에 柳明桓 북미국장,주일공사에 兪炳宇 주터키대사를 각각 내정했다. ◎李洪九 駐美대사/총리 등 요직 거친 통일문제 전문가원만한 성격과 설득력있는 화법으로 누구든지 편하게 해주는 ‘영국신사’.교수출신으로 옛 통일원장관·주영대사·국무총리의 요직을 두루 거쳐 신한국당 대표로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다. 6공때 통일원장관으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성안한 통일문제 전문가.부인 朴漢玉씨(64)와 1남2녀. ▲서울·64세 ▲경기고·미 예일대 정치학 박사 ▲국무총리 ▲신한국당 고문 ◎金奭圭 駐日대사/‘朴東宣 사건’ 해결한 외교베테랑 온화하고 합리적이어서 대인관계가 좋은 화합형.경북 성주농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거친 정통외교관으로 4강대사를 두차례나 맡게된 입지전적 인물. 주미참사관 시절 ‘朴東宣 사건’을 매끄럽게 처리,뛰어난 일솜씨를 보였으며 스페인어 실력도 탁월.부인 宋惠玉씨(57)와 1남2녀. ▲경북 성주·62세 ▲서울대 정치학과 ▲미주국장 ▲1차관보 ▲주러시아대사 ◎權丙鉉 駐中대사/92년 한·중 수교교섭 당시 실무총책 지난 92년 한·중수교교섭 당시 외무부 본부대사로 실무총책을 맡아 막후협상과정에서 역량을 발휘했다.아시아전문가로 특히 중국문제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평.외교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태스크 포스’를 자주 맡아 꼼꼼하게 일을 처리해왔다.부인 李光愛씨(52)와 1남1녀. ▲경남 사천·60세 ▲서울대 행정학과 ▲아주국장 ▲주호주대사▲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李仁浩 駐러대사/여성대사1호 출신… 국제지명도 높아 지난 96년 주핀란드 대사로 발탁돼 우리나라 외교사상 최초의 여성대사로 임명된 학자출신.뛰어난 영어실력에다 원만한 대인관계로 핀란드 외교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특히 여성관련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두루 참석,국제사회에 지명도를 넓혀왔다. ▲서울·62세 ▲미 웰즐리대,하버드대 사학박사 ▲미 컬럼비아대 조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핀란드 대사 ◎李時榮 유엔대사/자타가 공인하는 다자외교 전문가 치밀하고 꼼꼼한 일처리가 너무 돋보인다는 평.유엔에서 외교관 생활을 많이 했으며,한국 외교관 가운데 자타가 공인하는 다자외교의 전문가. 91년 아태경제협력기구 서울회의때 중국·대만·홍콩의 민감한 ‘3중국’문제를 처음으로 해결하는 역량을 발휘.부인 馬福子(61)씨와 1남1녀. ▲서울·61세 ▲서울대 정치학과 ▲주유엔공사 ▲외무부차관 ▲주프랑스대사
  •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제프리 머렐(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러 민주화는 거역할수 없는 흐름/소련 붕괴 시작의 해는 1989년/옐친 대통령 당선이 대세 못박아/국가 통합 실패 러 정치인들 질타 【모스크바=유민 특파원】 “제프리 머렐(Geoffrey Murrell). 그만큼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고 있는 사람은 없다”영국의 브라이언 폴경이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란 책의 서문에서 저자 머렐을 평가한 대목이다.폴경은 이미 러시아 주재 영국대사를 역임한 적이 있어 머렐에 대한 이같은 평가는 권위를 갖는다. 머렐을 아는 이라면 누구라도 폴경의 지적에 동의하게 된다.머렐은 영국 외무성에서 ‘러시아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인물이다.외교관시절 대부분을 소련과 러시아 관련업무에 보냈다.러시아 최근세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로 일컬어지는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 과정시기를 모두 목격하는 ‘행운’도 지녔다.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원제 Russia's Transition to Democracy)는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다.러시아어에 대한 탁월한 언어감각,소련시대 정치인들에 대한 머렐의 이해력은 그의 평가를 높이는 중요한 대목들이다.외교관의 현장감에다 분석력을 곁들임으로써 그는 책 전반을 하나의 주제로 꿰 뚫었다.“러시아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다”. 머렐은 정치학계의 논란이 되고 있는 소련붕괴 시작의 해를 1989년으로 본다.당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갈팡질팡거렸고 동유럽에서 개혁이란 낱말들이 봇물터지듯 터져나왔다.그는 소련붕괴를 완성시킨 사건으로 1996년 보리스 옐친대통령이 공산당 당수인 게네디 주가노프를 꺽고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것을 꼽았다.러시아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데 있어 전환기가 되는 역사적 사건이란 평가다. ‘대전환기의 러시아: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제1부는 다소 연대기적인 표현이지만 작가의 꼼꼼한 분석적 해석력이 돋보인다.변혁의 고통은 일반인들이 예견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고르바초프와 옐친이 똑같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지적한다.머렐은 그러나 두사람에게 대세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강했다고 덧붙인다.이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서방’이라는 단어는 러시아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나토의 팽창 문제도 지적됐다.나토의 팽창은 ‘러시아의 베르사이유 콤플렉스’를 더욱 악화시킨다면서 서방의 ‘우월주의‘에 경종을 울린다.러시아에 대한 미미한 서방의 각종 지원이나 때놓친 지원 등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머렐의 연대기적 역사서술에 대한 해석력은 돋보인다.이미 독자들이 각종 배경들은 잘 알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그의 스타일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독자들이 사전에 러시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최신 정보들을 알것을 요구하기도 한다.그는 화려한 문장도 없이 뼈대만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머렐은 니나 안드레예바라는 이름을 아무런 배경설명도 없이 쓰는 ‘실수’도 범한다.개혁을 비난하는 그녀는 데이비드 렘닉의 저서 ‘레닌의 무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인물이다.그의 책은 그만큼 내용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는 간결하지만 무미건조하지 않다.재미있으면서도 비밀스런 자료를 많이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옐친이 1990년 고르비의 개혁을 들어 ‘뱀과 고슴도치의 결혼’이라고 한 대목도 재미있다.1993년 개혁반대세력이었던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전부통령이 이고르 가이다르 부총리팀의 개혁을 ‘핑크빛 맘보바지를 입은 젊은 아이들’로 표현한 대목에도 패러독스가 들어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정수는 ‘고르바초프에 대한 탐험’이랄 수 있다.머렐은 고르바초프의 ‘동기와 행동’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깊히 천착했다.고르비는 1991년 쿠데타 6개월전에 이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한계상황에 도달해있었다고 머렐은 적고 있다.그때 이미 통제력을 상실해있었고 그 자신이 ‘인질’이 돼 망설이고 있었다고 평한다.의심이 더해지자 그는 당연히 알고지내던 강경 공산주의자쪽에 붙었다.그는 동시에 알려지지 않은 민주주의 세력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1993년 의회반란에 가담자 루츠코이와 하스블라토프 전하원의장에 대한 서술은 날카롭기 그지없고 이들의 공상에 대한 해독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하지만현대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비난도 설득력을 지닌다.국가분열을 통합시키는데 실패하고 있으며 일부 민주주의자들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뛰고 있음을 지적한다.자민당 당수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에 대해서는 그가 결국 KGB(옛소련비밀경찰)추종자임을 주장한다. 옐친에 대한 서술은 다소 실망스럽다.옐친대통령의 첫임기 시절은 허송세월로 보냈다고 할 정도로 비판적인 부분이 많다.정상외교에서 술에 취해 만남을 이루지 못한 일,근무시간의 잦은 음주,이유없는 퇴청 등으로 점철된 것이 그의 첫임기였다.머렐은 이러한 것들을 서술하긴 했지만 ‘왜?’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라는 책을 계기로 체첸전쟁에 대한 새 사실들이 정리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1995년 체첸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가 클린턴과 옐친대통령의 모스크바 정상회담을 깨뜨리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는 설,옐친의 정전명령을 거역한 쪽은 오히려 러시아군이었다는 설들이 이제는 설(열)아닌 ‘역사적 진실’로 정립돼 가고 있는 것도 이 책의 큰공적이다. 원제 Russia's Transition to Democracy:An Internal Political History,1989­1996. 서섹스 아카데미 프레스(Sussex Academic Press)출판.276쪽.32달러.
  • 외교안보연구원장 박상식씨

    정부는 19일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장(차관급)에 박상식 주싱가포르대사(64)를 임명했다. ◎박상식 외교안보연구원장/정치학박사… 일처리 꼼꼼한 학자형 맡은 일은 세심하고 철저하게 처리하는 학자형으로 연구원장 자리에 적격이라는 주변의 평가. 고등고시(10회)에 합격한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10여년간 현지에서 대학교수를 지낸 이색 경력의 외교관.지난 79년 뒤늦게 외무부에 들어와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일각에서는 호남출신 배려라는 지적도 있다.부인 서경옥씨(57)와 1남. ▲전남 해남·64세 ▲서울대 영문과,미 MIT대 정치학박사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실장 ▲싱가포르대사.
  • 학생운동권서 시민운동가로 변신/경실련 수습사원 이재현씨

    ◎숭실대 학생회장 시절 대학중 맨처음 한총련 탈퇴 “사회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청년시기를 알차게 보내고 싶습니다” 지난해 전국의 대학 가운데 가장 먼저 한총련 탈퇴를 선언,학생운동권과 세상을 놀라게 했던 전 숭실대 총학생회장 이재현씨(25). 그가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이씨는 지난달 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신입사원 모집에 합격,정책실에서 3개월간의 수습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합격에는 당시 학생운동 분위기 속에서 한총련 탈퇴를 결정할 수 있었던 용기에 높은 평가가 내려졌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6월 총학생 투표를 통해 내려진 숭실대의 결정은 ‘한총련 와해’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이후 대학가에서는 한총련 투쟁노선에 대한 자성의 기운이 일면서 전북대 상지대 이화여대 등 1백70여개 대학이 잇따라 탈퇴를 선언했다. 이씨는 한총련 탈퇴결정을 “일생일대의 실수인 동시에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이씨는 학생운동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채 한총련 탈퇴를 결정했고 그후에도 후배들에게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한 점을 가장 후회스러워 했다. 그러나 그는 96년 연세대사태 이후에도 반성의 기미없이 똑같은 행태와 사상으로 97년 한양대사태를 초래했던 한총련 지도부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는데 대해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96년 연세대사태 이후 한총련 대의원회에서는 혁신을 주장했던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그러나 ‘결집 우선주의’ 등의 논리에 밀려 번번이 묵살 당했지요”. 이씨는 총학생회 지도부도 구성원들로부터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총투표 실시를 결정했다.이후 이씨는 동료와 후배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학교측과 커넥션이 있다’ ‘경찰간부로부터 사주를 받고 돈을 챙겼다’는 등 갖가지 음해성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다. “힘든 시기였지요.졸업을 앞두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한 끝에 시민운동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학생운동 속에서 찾지 못했던 사회에 대한 비전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씨는 폭넓은 공부를 위해 오는 2학기 숭실대 정치학대학원 야간과정에 진학할 계획 아래 처음 내디딘 사회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 고검장급 6명 인사/법무차관 최경원씨/법무연수원장 송정호씨

    ◎서울고검장 김상수씨/부산고검장 최씨/광주고검장 원정일씨/대전고검장 김진세씨 정부는 16일 법무부 차관에 최경원 법무부 검찰국장(사시 8회),대전고검장에 김진세 부산지검장(7회)을 승진 발령하는 등 고검장급 간부6명에 대한 승진 및 전보 인사를 18일자로 단행했다. 이원성 대검차장(5회)과심재륜 대구고검장(7회)은 유임됐다. 서울고검장에는 김상수 법무연수원장(6회),법무연수원장에 송정호 광주고검장(6회),부산고검장에 최환 대전고검장(6회),광주고검장에 원정일 법무차관(7회)이 전보됐다. 고검장 승진이 유력시됐던 안강민 서울지검장(8회)은 인사에서 빠졌다. 주광일 서울고검장과 공영규 부산고검장은 사표를 제출,각각 국민고충처리위원장과 형사정책연구원장에 내정됐다. 지검장 승진 및 전보인사는 오는 18일쯤 단행할 예정이다. ◎최경원 법무차관/선후배 신망 두터운 ‘실무형’ 자그마한 체구에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다.동료 또는 선·후배로부터 신망이 두터우며 매사를 신중히 처리한다.정치인 장관이 실무형차관을 원해 발탁됐다.경기고 동문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부인 이기순씨(47)와 사이에 2남. ▲서울(52) ▲서울법대 ▲사시 8회 ▲서울지검 특수 2·3부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구지검장 ▲대검 형사부장 ◎송정호 법무연수원장/원칙 중시하는 ‘외유내강형’ 서민적인 풍모로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준다.상하간의 인화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정의감과 책임감이 강하고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여 원칙을 중시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부인 김초원씨(53)와 사이에 3남. ▲전북 익산(56) ▲고대법대 ▲사시6회 ▲서울지검 서부지청장 ▲법무연수원기획부장 ▲부산지검장 ▲광주고검장 ◎김상수 서울고검장/업무엔 꼼꼼 ‘무색무취형’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에다 정치색이 전혀 없다.때문에 무색무취하다는 평도 듣지만 업무처리는 매우 꼼꼼하다.지방근무 차례를 빼줄 정도로 노모를 모시는 효심이 지극했었다.리더십이 있어 맡은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부인 전경자씨와 1남3녀. ▲대구 달성(56) ▲서울법대 ▲사시6회 ▲서울지검 형사1부장 ▲서울지검 2차장 ▲서울지검 동부지청장▲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광주·대구 고검장 ◎최환 부산고검장/상황 판단력 뛰어난 ‘공안통’ 상황 판단력과 정치 감각이 뛰어난 전형적인 공안검사다.검찰에서는 드문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정계와 언론계에 지인이 많은 ‘마당발’이다.부인 이숙자씨와 2남. ▲충북 영동(51·전주고) ▲서울대 정치학과 ▲사시6회 ▲대검 형사2과장 ▲대검 공안1과장 ▲서울지검 공안부장 ▲서울지검1차장 ▲서울지검 남부지청장 ▲대검 공안부장 ▲대전고검장. ◎원정일 광주고검장/중요보직 두루 거친 ‘정통파’ 선이 굵고 대범하다.하지만 업무처리는 치밀하다.검찰에 몇 남지 않은 원칙주의자의 좌장격이다.검찰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쳐 수사능력 뿐만 아니라검찰행정에도 정통하다.부인 홍정희씨(54)와 사이에 1남1녀. ▲서울(53) ▲서울법대 ▲사시7회 ▲대검 중수3과장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법무부 보호국장 ▲청주지검장 ▲법무부 교정국장 ▲인천지검장 ◎김진세 대전고검장/소매치기 범죄수사로 ‘명성’ 원만한 성품과 합리적 사고의 소유자로 자상하면서도 업무처리에 빈틈이없다.검찰국장 재직시 여러 가지 난제를 휼륭히 처리해 인정을 받았다.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시절 소매치기 수사로 명성을 날렸다.홍성인씨와 사이에 1남2녀. ▲경북 울진(57) ▲서울법대 ▲사시7회 ▲부산지검 1차장 ▲춘천지검장 ▲대검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 총리인준 파동의 교훈/김병국 교려대 교수·정치학(시론)

    ○절차 정당성 시비는 핑계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때문일까.국난의 시기에 조차 한국정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한나라당은 김종필 총리지명자에 대한 인준 거부로 국민회의와 자민련을 이간질시키고 공동 정부를 그 내부에서부터 마비시키려 한다.한편 신여권은 신여권대로 인준 파동에 맞서 이른바 ‘야당 길들이기’에 나설 모양이다. 나라를 망친 한나라당의 실체를 폭로할 경제청문회가 열릴계획이고 ‘북풍’까지 조작하면서 대권을 장악하려 들었던 구여권 일각에 대한 감찰이 진행중이다.다같이 힘을 모아야 할 국난의 시기에 여와 야는 바로 그 국난을 지렛대로 삼아 서로 상대방을 무책임한 정파로 몰아세우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여와 야는 다같이 기싸움을 ‘절차’의 문제 때문에 일어난 정당한 대결로 치장한다.지난번 국회에서 이루어진 인준 투표가 무기명 비밀투표의 기본원칙에 위배되는가 아닌가 하는 고상한 절차의 문제로 서로 싸운다는 주장이다.그러나 그러한 변명에 설득당할 국민은 없다.여와 야는 애초부터 절차를 논할자격이 없기 때문이다.지난 병자년 겨울 노사개혁이 국가적 의제로 떠올랐을 때 지금의 여권은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여 논의를 원천 봉쇄하였고 지금의 야는 이른 새벽에 날치기로 자신의 안을 밀어 붙였던 당사자이다.절차는 당리당략에 따라 이리저리 왜곡 해석되는 목적 달성의 ‘수단’에 불과하지 지켜야 하는 원칙이 아니었다. 한편 신야권은 이렇게 절차의 문제로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김종필 지명자의 개인적 자질을 쟁점화시켜 인준 거부의 명분을 강화하려 한다.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바로 그 신야권이 걸어온 역사에 의해 힘을 잃는다.한나라당은 김종필 지명자가 경오년에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세운 민자당의 후신으로서 그 내부 일각에는 당 지휘부가 그렇게 싫어한다는 김종필 지명자의‘보수성’이 배어 있고 ‘구태’가 남아있다. ○국민 설득 논리는 실종 그렇다고 신여권이 국민을 설득할 만한 새로운 논리의 개발에 성공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기회가 있을때 마다 여와 야 사이에 밀월의 기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마음은 여전하다.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밀월이 곧 야권의 침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어떻게 보면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하기 이전에 이미 두달 남짓한 황금같은 밀월기간을 누렸다.당선의 영광을 안자마자 현직 대통령을 대신하여 국정을 살피고 개혁의 기본 틀을 구축하는 직무대행체제의 주인이 되었던 것이다. 직무대행체제는 국회가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비상사태와 같았다.국난을 헤쳐 나가기 위하여 ‘비대위’가 다국적 투자기관과 담판을 벌이고 ‘정개위’가 정부조직의 개편에 나설 때 신야권은 낮은 포복자세로 일관하였다.심지어 ‘노사정위원회’가 언론의 각광을 받아가면서개혁의 큰 틀을 짜는 시점에 조차 한나라당은 침묵을 지켰다.나라를 망친 당이 무슨 할 말이 있는가 하는 국민여론의 질타 속에서 이루어진 한국식 밀월관계의 결과였다. ○본질은 생존위한 정쟁 인준 파동을 불러일으킨 근원을 찾아내려면 절차나 개인적 자질이나 밀월의 문제보다 ‘권력’의 은밀한 소리에 귀를기울이는 편이 낫다. 지금 한나라당은 설 땅이 없다.국난은 신여권이 국제통화기금과 함께 내놓는 처방책 이외의 다른 대안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렇게 여권의 정책을 승인할 수밖에 없는 야권은 존재할 이유 자체가 모호해 진다. 인준 파동은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다.당선자가 직무대행체제하에서 정치의 중앙무대를 독점하는 동안 신야권 내부에 쌓인 위기의식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감에서 한나라당은 정책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총리 인준의 문제를 쟁점화시킨 것이다.그리고 그러한 인준 거부는 즉각 기싸움을 낳아 본래의 문제와 아무런 상관없는 정책의 영역에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국회가 마비되면 경제를 살릴 정책개혁의 기회는 실종되고 만다. ○공존의 정신만이 살길 그러나 국민이 정치권을 탓하고 기싸움을 비판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것 같지는 않다.생존의 문제가 보장되지 않는한 정쟁은 피할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소수정부로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야당 시절에끊임없이주창한 ‘거국내각론’의 기저에 깔린 공존의 정신을 살려야 한다.비대위와 정개위 및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마련한 개혁의 큰 틀에 만족하고 이제부터는 신야권을 어떠한 형태로든 정치의 중앙무대 한 편에 세워야 하는 것이다.그것만이 모두가 살 길이다.
  • 새 정부 차관급 38명 프로필:Ⅱ

    ◎이건춘 국세청장/재산세 분야 전통… 행시 10회 선두 업무추진력이 탁월하며 국세청내 행시 10회 출신 가운데 선두주자.온화하면서도 성품이 성실해 위 아래 신망이 두텁다.처음 만나는 사람도 쉽게 호감을 갖는 호남형이며 외부에도 지인이 많다.특히 직세와 재산세 분야에 밝다.부인 문영인씨(49)와 2남.▲충남 공주·55세 ▲공주고·연세대 행정학과 ▲국세청 재산세·직세국장 ▲경인·중부·서울지방국세청장. ◎이상호 병무청장/합리적 군수업무 정비한 ‘국제신사’ 차분하면서 강한 업무추진력을 갖춘 외유내강형.군수본부장 재직때 합리적인 군수업무의 기반을 닦았다는 평을 받았다. 외모처럼 일처리가 깔끔해 ‘국제신사’로 통하며 못하는 운동이 없을만큼 스포츠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많은 책을 읽는 독서광.부인 신용선씨(60)와 1남1녀.▲경북 김천·60세 ▲육사17기 ▲국방부 군수본부장 ◎이보식 산림청장/연구직 출발… 내부승진 1호 청장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에서 연구직으로 출발,산림청 개청이래 처음 청장으로 내부승진한 입지전적 인물이다.육종연구소 소장 재직시 주목의 씨눈에서 항암제인 ‘택솔’을 개발,상업화하기도 했다.뚝심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워 직원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부인 임정자씨(59)와 2남 1녀.▲황해 수안·60세 ▲부여고·서울 농대 ▲산림청 조림·영림국장 ▲산림청 차장 ◎박종세 식품의약청장/미서 20년간 연구… 행정력도 호평 20년간 미국 존슨 홉킨스대학 등에서 연구생활을 한 전문기술관료 출신. 88서울 올림픽때는 도핑콘트롤센터 소장을 맡아 벤 존슨의 약물복용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 전개가 정연하며 합리적성품에 행정력도 겸비했다는 평.▲서울·54세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식품의약품안전본부 독성연구소장 ◎신건 안기부1차장/장영자 사건 수사 지휘 ‘칼날검사’ 82년 이철희·장영자 사건때 수사검사로 명성을 날렸다.그러나 93년 슬롯머신 사건때는 정덕진씨와 수차례 만난 인연으로 엉뚱한 곤욕을 치렀다. 소탈하고 온화한 성격이나 칼같은 기질도 돋보여 이종찬 안기부장을 도와안기부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는 평. 부인 한수희씨(55)와 1남 3녀. ▲전북 전주·57세 ▲서울법대 ▲대검 중수부장 ▲법무부 차관 ◎김진선 비상기획위장/수방사령관 등 주요 보직거친 야전통 수경사·사단장·수방사령관 등 주요 보직을 거친 야전통. 93년 4월 2군사령관으로 임명됐다가 노태우계인 ‘9·9인맥’으로 분류돼 한달여만에 옷을 벗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대선전에 자민련에 입당해 김종필 총리서리의 신망이 높다.부인 임매자씨(54)와 2남.▲충북 괴산·59세 ▲육사19기 ▲육군참모차장 ▲2군사령관 ◎엄낙용 관세청장/세제·국제업무 두루거친 재무관료 세제와 국제업무 분야를 두루 섭렵한 재무관료.신사 풍의 용모에 조용한성격이지만 업무 추진력은 뛰어나다.재정경제원 2차관보때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지만 대인관계는 원만하다.부인 홍영신씨(47)와 1남 1녀.▲서울·50세 ▲서울대 행정학과 ▲재무부 세제심의관 ▲재경원 국세심판소장·제2차관보. ◎김세옥 경찰청장/후배 신망 두터운 경비작전 전문가 경비작전 분야의 전문가.신중하고 과묵해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나 대인 관계가 원만하고 업무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 간부 후보생 16기를 수석 졸업했으며 인정이 많아 부하들의 신망이 두텁다.부인 박옥주씨(50)와 2남.▲전남 장흥·57세 ▲조선대 법대 ▲전북경찰청장 ▲경찰청 경비국장 ▲전남경찰청장 ▲경찰대학장 ◎추준석 중기청장/국제감각 겸비한 상공분야 토박이 토박이 상공맨.부산출신으로 할아버지가 김영삼 대통령의 은사였던 관계로‘PK’로 분류돼 왔으나 정작 인사에서는 출신지 덕을 본 일이 없다.사안의 핵심을 정확히 판단해 대안을 제시하는 스타일.주불 상무관 경험 등으로 시야도 탁 트였다.부인 엄윤지씨(49)와 1남 1녀.▲부산 동래·51세 ▲서울상대 ▲상공부 국제협력관 ▲통산부 산업정책국장 통상정책국장·차관보 ◎정종환 철도청장/교통경제 분야 잔뼈굵은 ‘불도저’ 28년간 교통경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관료 출신.교통부직원들 사이에서는 업무 추진력이 강해 ‘불도저’로 불리우면서도 자상하다는 평.야생화 등 식물에 대해서는 거의 건문가 수준.부인 조정자씨 사이에 3남.▲충남청양·50세 ▲고려대 정외과 ▲교통부 국제항공과장·도시교통국장·항공국장·관광국장 ▲건교부 국토계획국장·기획관리실장·수송정책실장 ◎나종일 안기부2차장/새 정부 이론 가진 국제정치학자 김대중 대통령 집권과정에서 ‘지역등권론’이란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국제정치학자.경희대교수직을 가진 채 국민회의 지도위원,당무위원으로 김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다.나용균전의원(4.5.6대)이 부친이다.부인 홍재자씨(54)와 1남 3녀. ▲전남 나주·58세 ▲서울대 정치학과 ▲경희대 정경대학장 ▲국민회의총재 외교안보특보 ▲인수위 행정실장 ◎윤원배 금감원 부위원장/경제정의 실현 강조한 학자 출신 합리적이고 온건하다.69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80년 조사역을 맡다가 미국노스웨스턴대로 연수를 떠난 뒤 학자로 변신했다.경제정의 실현에 관심이 많다.김태동 경제수석,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와 가까우며 지난 해 대선때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자문에참여했다.▲전남 강진·52세 ▲서울대 경제학과 ▲숙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정의연구소장 ▲경실련 집행위 부위원장. ◎강정훈 조달청장/업무 추진력 탁월… 조달분야 전문가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고 치밀하다.줄곧 조달청에만 몸담아 온 조달분야 전문가.소탈하고 정이 두터워 따르는 부하직원들이 많다.정부조달시장 개방과 관련 제도개선,업무의 국제화,대민 친절봉사 등으로 조달청의 위상을 새롭게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부인 박안자씨(55)와 1남 2녀.▲경북 영주·56세 ▲연세대 행정학과 ▲행시7회 ▲조달청 부산지청장·차장. ◎김강권 농진청장/녹색혁명 주도… 농업발전 산중인 70년대 녹색혁명과 80년대 백색혁명을 주도한 농업발전의 산증인.감자육종을 비롯한 원예·생물산업의 토대를 확립하고 기술개발에 기여했다.소탈하고 격의없으며 대인관계가 원만하다.지금도 프라이드 승용차로 출·퇴근한다.두주불사형.부인 장명자씨(55)와 2녀.▲서울·59세 ▲서울고·서울 농대▲미 하와이대 박사 ▲농업진흥청 시험국장·농업기술연구소장 ◎김수동특허청장/변리사 자격증 취득… 특허업무 조예 업무처리가 치밀하고 추진력도 갖춘 상공관료 출신.옛 상공부에서 산업·무역·통상분야를 두루 거쳤다.특허청 항고심판소장을 역임하며 변리사 자격증을 딸 정도로 특허분야에 조예가 깊다.집요하면서도 모나지 않는 성격으로 특허청을 서비스기관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평.부인 유정애씨(50)와 2남 ▲경북 문경·52세 ▲경기고·서울법대 ▲특허청 차장. ◎안번일 감사원사무총장/세법·금융 감사 인정 받는 회계통 일 처리의 선이 굵은데다 합리적이며 통솔력이 뛰어나 따르는 직원들이 많다.세법과 금융관계 감사에 밝아 감사원 내에서 손꼽히는 회계통.감사위원으로 승진했다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이례적 케이스.부인 이춘희씨(49)와 2남1녀. ▲서울·56세 ▲서울대 법대 ▲감사원 공보관 ▲〃 제4국장 ▲〃 기획관리실장 ▲〃 제1사무차장 ▲감사위원 ◎조건호 총리비서실장/경제부처 섭렵·인화 탁월 ‘마당발’ 상공부 재무부 총리실 청와대 등을 두루 거친 화려한 경력의 경제관료.대학시절 조정선수로 활약했으며 소탈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가는 곳마다 인기를 모은다.문화계 스포츠계와 언론계에도 아는 사람이 많은 ‘마당발’이다.부인 박찬혜씨(49)와 2녀. ▲경기 김포·54세 ▲서울대 법대 ▲재무부 공보관·국제금융국장 ▲청와대 기획조정관 ▲총리비서실장 ◎박용환 공무원교육원장/업무처리 명쾌한 행정전문가 옛 총무처에서 조직·인사국장을 지내 중앙 행정을 두루 섭렵한 행정전문가.업무처리가 명쾌하고 성격이 호탕해 부처내에서 신망이 두터운 보스형.판단력과 통솔력을 갖췄으며 업무처리도 명쾌하다는 평이다.부인 백아영씨(54)와 2남2녀. ▲대구·54세 ▲서울대 정치학과 ▲행정고시 11회 ▲총무처 조직·인사국장 ▲소청심사위원 ▲기획관리실장
  • 내가 본 DJ 대통령의 세 모습/예브게니 바자노프(특별기고)

    ◎1973년 봄 샌프란시스코 독재 비판 감동적 연설 ‘한국의 사하로프’로 각인/1992년 대중연설 목도 가는 곳마다 군중 매료 ‘한국의 옐친’ 별명 추가/러 박사학위 취득 과정 해박한 지식에 외경심 ‘한국의 루소’로 불러야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것은 1973년 봄 샌프란시스코에서였다.당시 소련 대사관의 부영사였던 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정치발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주로 띠고 활동했다.어느날 나는 지방신문에서 한국의 한 반체제인사가 대중연설을 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김대중씨였다. 나는 업무상 연설을 듣기 위해 갔다.당시 47살의 김대중씨는 나이보다 정력적이었고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그는 가차없이 한국의 독재상황을 비판했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관해 역설했다.나는 연설에 빠져 들어갔고 40분이 지났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연설은 끝나고 질의응답이 계속됐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매우 깊은 신념에 차 있었다.나는 당시부터 이 용기있는 한국인을 ‘한국의 사하로프 박사’로 부르기 시작했다.그 이후 나는 줄곧 김대중씨의 활동을 모니터했다.그의 연설전문이라든가 그가 기고한 기사들을 스크랩해 나갔다. 그러다 1973년 김대중씨가 한국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됐다 풀려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도쿄납치사건’을 접하고 그에게 동정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국영사관을 곧바로 찾아갔다.내가 당시 알고 지내던 백모 영사에게 거칠게 항의했다.그는 몹시 당황했고 “신문기사는 사실이 아니다.김대중씨는 납치당하지 않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70년대 후반까지 나는 “김대중씨는 한국의 보물이다.앞으로 한국의 미래가 그에게 달려 있다”고 설명하며 한국외교관들을 성가시게 했다. 1980년 11월3일.김대중씨는 당시 한국 군사정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나는 이미 모스크바로 귀임했을 때였다.모스크바에서 나는 지방의 한 신문에 김대중씨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한국의 군사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썼다.소련 정권은 당시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을 비난하는 어떤 글도 환영하고 있었다. 신의 덕분인지 그는 사면돼다시 미국땅을 밟았다.1985년 그는 한국으로 귀국했다.내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그를 다시 접하는 행운을 얻은 것은 1991년 김대중씨가 소련을 방문했을 때였다.그때까지 김대중씨는 과거의 정력적이고 열정적인 ‘한국의 사하로프’ 인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1992년 봄.김대중씨는 나와 나의 처를 한국으로 초청했고 이 초청이 그의 뛰어난 두번째 자질을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나는 대중집회장에 직접 나가 김대중씨가 수천명을 상대로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청중들은 그의 연설에 매료됐다.열광적으로 그를 ‘한국의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와 나의 처는 김대중씨의 고향인 한반도 남부 하의도를 여행했다.하의도는 김대중씨가 태어나 공부했던 곳이다.그는 1950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투옥되기도 했다.나는 다시 김대중씨에 또 다른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다.‘한국의 옐친’이라고­.그는 어디를 가도 다 군중들의 ‘관심’과 ‘충성감’을 쉽게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 돌아오기 전 우리는 다시 김대중씨를 서울에서 만났다.이 자리에서 그는 러시아 박사학위에 관심을 표시했다.나는 러시아의 ‘독토르(박사)’학위는 다른 서양의 ‘PHD’와 다르다는 것을 설명했고 러시아에서 독토르 학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권 이상의 단행본 저서가 있어야 함을 알려줬다. 이것이 내가 그의 세번째 훌륭한 자질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그는 내게 무려 17권이나 되는 저서를 겸손히 보여줬다.나는 놀랐다.그의 학문 영역은 놀라운 것이었다.철학·정치학·경제학·미학·신문방송학·문학 뿐만 아니라 동·서양사와 예술·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한국:민주주의의 여러사건과 희망들’이라는 새 저서로 러시아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한국인으로서는 1호였다.심사위원들은 하루종일 계속된 구술시험을 끝내고 ‘전원일치’로 박사학위를 수여키로 결정했다.심사위원들은 기립박수까지 보냈다.러시아 정부는 즉각 학위수여증을 수여했고 러시아 아카데미학자들은 그를 동료로 받아들였다.그날밤 나는 ‘한국의 장자크 루소’‘한국의 계몽주의자’라고 그의별명을 추가했다.
  • 미 비디오게임대 개설/세계 첫 4년과정 문열어

    ◎비디오산업 전문가 양성 【레드먼드(미국 워싱턴주)AFP 연합】 비디오게임학을 전공하는 4년제 대학교가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문을 열었다. 지난달 워싱턴주 레드먼드에 개설된 디지펜 공대(DigiPen Institute of Technology)는 4년 과정을 이수한 졸업생들에게 ‘리얼 타임 인터액티브 시뮬레이션 인 더월드’ 학위를 수여한다.이 학위는 일반대학의 BA(학사학위)에 해당한다. 오는 2002년 첫 졸업생을 배출할 디지펜대는 수학,물리학,마케팅학,정치학 등 일반적인 학문이 아니라 비디오게임 프로그래밍,컴퓨터애니메이션,데이터구조,연산,영상처리,신화학 등을 가르친다.
  • 20세기의 문명과 야만/이삼성 지음(화제의 책)

    ◎사회정치적 제도 문제로 파악한 전쟁 전쟁의 폭력과 야만을 둘러싼 문제들을 중심으로 20세기 문명을 해부한 연구서.도서출판 한길사가 국내 학계의 인문학 연구성과를 집대성하기 위해 기획한 ‘한길신인문총서’의 첫권으로 나왔다.미국의 대외정책 등에 관해 왕성한 연구·저작활동을 보여온 지은이(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이 책에서 전쟁을 우주론적·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역사와 사회정치적 제도의 문제로 파악한다.전쟁과 평화의 문제는 운명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과 집단이 선택한 일련의 역사적 결과라는 것이다. 전쟁이 단순한 힘과 힘의 대결에 그치지 않고 제노사이드,즉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계획적인 집단 대학살의 비극을 불러오게 된 데는 ‘기억의 정치(politics of memory)’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이교수의 설명.여기서기억의 정치란 집단적인 기억의 망각과 왜곡,부인,조작의 정치를 뜻한다.정치적 신화의 창조 같은 것이 그에 속한다.이교수는 2차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대학살)에서 보스니아와 르완다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제노사이드의 비극은 인간의 집단적 역사의식이 왜곡,은폐,과장,축소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다. 나아가 독일인들이 2차세계대전 이후 나치즘의 시대를 ‘히틀러의 시대’로 묘사하는 것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히틀러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려는 집단적인 기억의 정치가 작용한 탓이라는 미국의 정치학자 허버트 허시의 비판도 소개한다.이 책에서 다루는 또 하나의 주요 주제는 핵과 국제정치질서의 문제다.도구적 이성이 합리적 이성에 의해 통제되지 못한 상태에서 핵문제가 여전히 강대국의 논리로 이해되거나 약소국 혹은 일부 반미 ‘일탈국가’의 문제로만 인식돼서는 안된다는 게 이교수의 지적이다.한길사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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