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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뉴스] 美관리 “한국 관리들은 화끈…日은 표리부동”

    [생각뉴스] 美관리 “한국 관리들은 화끈…日은 표리부동”

    “일본 정부 인사들은 겉으론 싹싹해도 되는 일이 없고, 한국은 좀 거칠긴 해도 화끈해서 더 낫다.” 우리나라 외교관들은 요즘 들어 미국 정부 인사들로부터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부쩍 자주 듣는다고 한다. 협상에 임하는 한·일 양국 관리의 스타일을 미국 관리들이 나름대로 구분하고 있다는 얘기다. ●日과는 되는 일 없어 21일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가 기자에게 전한 미국 관리들의 ‘평론’은 이렇다.“일본 관리들은 앞에서는 ‘하이(예), 하이’하면서 아주 싹싹하게 하지만, 결국 되는 일은 별로 없더라. 그래서 미·일간에는 미해결 장기과제가 많은 것 같다. 한마디로, 일본에 대해서는 답답함(frustration)을 느낀다.”일본인 특유의 혼네(本音·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밖으로 드러나는 언행)가 외교무대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고, 이것을 미국 인사들도 체감하고 있다는 말이어서 흥미롭다. 반면 한국쪽에 대한 평은 이렇다.“한국 관리들은 협상 스타일이 거친(tough) 편이다. 하지만 결국 되는 일은 화끈하게 되더라. 한국과 협상하는 게 더 편하다.”특히 미국측은 국방 관련 협상 과정에서 이런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이 오히려 편해 하지만 ‘한국식’이 과연 국익면에서 유리한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다. 경희대 정진영 교수(국제정치학)는 “일본은 너무 꼼꼼하게 따져서 협상하기 어려운 반면, 한국은 쉽게 합의해주는 바람에 나중에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치밀함을 보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국대 법대 이용중 교수도 “외교관은 Yes(예)나 No(아니오)를 말하는 순간 이미 외교관이 아니라는 속설이 있는 만큼, 협상 테이블에서는 얼마간의 모호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국방부 차관을 역임한 한림대 국제대학원 박용옥 교수는 “1980∼90년대 미국과 방위비 분담 같은 협상을 할 때에도 우리는 직설적으로 톡 까놓고 하는 스타일이었다.”면서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합리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명분을 들어 당당하게 설득하면 흔쾌하게 들어주는 자세를 취했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역사왜곡 민간차원 대응이 효과적” 서중석 성균관대교수

    “역사왜곡 민간차원 대응이 효과적” 서중석 성균관대교수

    중국에는 일본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에는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통해 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일본 역사왜곡 문제가 터지면서 안 그래도 바쁜 몸이 더 바빠진 사람이 있다.‘한국현대사 1호 박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성균관대 사학과 서중석 교수. 여기저기서 그를 모시려는 손짓도 늘었다. 연이은 모임과 회의에 지쳤는지 인터뷰 자리에 앉으면서도 “회의부터 줄여야 돼.”라면서 웃는다.‘학자는 연구논문으로 말한다.’는 지론 때문인지 인터뷰 내내 쑥스러워하면서도 역사문제를 거론할 때는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얘기는 마침 20일 출범식을 가진 ‘동북아 바른 역사기획단’에서 풀어 나갔다. 기획단은 일본 역사왜곡에 대한 민관합동 대응기구다. 먼저 한국학중앙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등 기존 기관과 단체를 놔두고 또 하나의 단체가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이슈가 터질 때 취해지는 일종의 ‘오버액션’이 아니냐는 것이다. 서 교수도 “고구려연구재단 발기인대회 때부터 그런 주장을 했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동북아 혹은 동아시아 연구재단’하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해놔야 중국·일본측 연구자들도 끌어들일 수 있고, 또 역사문제는 무엇보다 민간 연구자들간 교류가 핵심인데 일이 생길 때마다 국가기구를 만든다면 외국에서 뭐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대답을 묻자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동북아 균형자론’ 긍정적 평가 이어서 이게 정말 역사전쟁이냐고 물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모두 껍데기는 ‘역사학’이지만 속 내용은 결국 ‘정치학’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서 교수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고 답했다. 논리에는 논리로 대응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는 역사학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21세기에도 과거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이미 역사학의 문제를 넘어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을 옹호했다. 중국에는 일본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에는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통해 아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중·일 ‘공동’의 역사인식은 가능할까. 알려진 대로 서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5월 중 한·중·일이 함께 만든 역사교과서 부교재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연세대 백영서 교수는 ‘동아시아사’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불충분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동아시아사로 통합됐다기보다 서로 분리된 채 한·중·일 3개국의 역사를 모아 놓은 삼국지 같았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이런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한·중·일 3개국 국민 모두에게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서 교수는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이는 역사왜곡사태 와중에 얻은 가장 큰 수확물로 한·중·일 시민사회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점을 꼽는다는 데서 잘 드러났다. ●한·중·일 시민사회 수준 한단계 올라서 서 교수는 역사교과서 사태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빈사상태에 빠져 있던 양심세력들이, 중국에서는 사회주의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제약받던 민주시민의식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과 한국사람들도 왜 일본 우익은 머리를 숙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일본에 강하게 대응하면 반중·반한 감정만 생긴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외려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강하게 대응해 일본에 일정 정도 충격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일본 자신을 위해 좋고 한국과 중국에도 좋다.”고 말했다. 얘기를 최근 사학계의 논쟁점 가운데 하나인 대중독재론으로 돌렸다. 일단은 부정적이었다. 서 교수는 “그 논리를 제대로 읽지는 못했다.”면서도 “어떤 한 사건이나 일화가 아니라 전체적인 시각으로 한국사를 들여다 본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박정희 향수를 예로 들었다. 서 교수는 60년대 경제개발의 원인으로 ▲한·일수교, 베트남파병 등으로 해외차관 도입이 쉬웠고 ▲50년대 대거 배출된 한글세대로 산업예비군이 풍부했는데다 ▲50년대말부터 미국 유학파들이 귀국하면서 이들이 기술관료로 행정부에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았다. 이를테면 자본+노동력+테크노크라트 3박자가 완비됐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박정희시대 경제개발을 박정희 개인의 지도력 덕분이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낮은 수준의 역사인식”이라는 비판이다. ●한국현대사는 功·過 양 측면 모두 봐야 그러나 최근 뉴라이트니 뭐니 해서 한국 현대사 서술에 이의를 제기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되도록 말을 아꼈다. 대신 “한국의 현대사 자체가 공이다, 과다라고 딱 잘라 나눠 말하기 어려울 만큼 역동적인 시간이었다.”면서 “양 측면을 모두 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역사서술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은 잊지 않았다. 올해 서 교수의 연구초점은 해방공간에서의 좌파·민족주의 그룹인 여운형·김규식·김구 등이다. 조봉암과 이승만에 이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옴부즈맨칼럼] ‘한·미 동맹’ 관계와 언론/김춘식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요즘 언론의 보도내용을 지켜보면 광복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외교안보정책의 기본틀이었던 ‘한·미 동맹’ 관계가 정말 변하고 있는지, 그리고 일부 언론의 지적처럼 그로 인한 어떤 부정적인 문제점이 현재 진행 중인지 불안스러울 정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터키를 공식방문 중인 17일 “한·미 동맹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를 보는 국민들은 여전히 혼돈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측의 방위비 분담금 삭감에 따른 주한미군 군무원 1000명 해고 발언’,‘미국의 전시 예비물자(WRSA-K) 프로그램 중단 방침 공개’,‘자이툰부대 병력 조정 갈등’,‘주한 미 육군항공대 철수’,‘작전계획 5029 작성 중단’ 등과 같은 사안에 관한 한·미간의 입장 차이가 양국을 갈등관계로 몰아넣고 있다는 기사가 잇따라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WRSA-K는 한반도에서 미군의 전쟁억제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한반도 유사시 탄약 필수 소요분의 60%를 차지하며 한국군의 탄약만으로는 10일 정도밖에 버틸 수 없다는 기사는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에 관한 언론의 논조를 살펴보면 언론이 국가정책의 내용 및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는커녕 사회 구성원간의 갈등만 유발하는 감정적 접근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동북아 균형자론’은 전통적인 ‘한·미 동맹’ 틀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전하고 있다. 필자의 경우 정치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어서 정책의 옳고 그름을 논의할 만한 입장은 아니지만, 적어도 언론은 여론형성과정에서 편견적인 입장을 배제하고 국민들이 정책구현의 현실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도록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즉, 참여정부가 제기한 ‘동북아 균형자’ 역할이 전통적인 ‘한·미 동맹’ 관계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오해를 줄 수 있는 이른바 ‘남방 3각’ 혹은 ‘북방 3각’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에 입각한 보도태도를 지양하고 정책이 추진되는 배경을 심층적으로 탐사하는 접근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한·미 동맹’ 관계가 외교안보정책의 기본틀이라는 국민들의 공감대를 인식한다면 언론은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전통적인 한·미 동맹이 서로 상충하는 개념인지 여부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것을 제일의 임무로 삼아야 한다. 즉,‘동북아 균형자론’은 곧 한·미 동맹의 균열이라는 편견을 배제하고, 이 사안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논의될 수 있는 ‘공론의 마당’(公論場)을 제공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미국과 협조해야만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고려하면 언론의 ‘공론의 마당’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아울러 우리가 과연 동북아 지역에서 그 어떤 패권국가의 등장도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국력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진단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국력수준 진단결과에 따라 정책의 실효성 판단은 물론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의 발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의 경우 4월 들어 ‘한·미 동맹’과 관련,11건(스트레이트 3건, 칼럼 5건, 기획 1건, 사설 2건)의 기사를 게재했다. 전문가 칼럼은 기존 동맹국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으며,‘균형자’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담은 내용의 칼럼도 함께 보도함으로써 독자에게 시각의 다양성을 제공했다. 특히 한반도 외교·안보 개념의 변화를 도표로 제시한 기획기사(4월15일,‘동북아 균형자론 그 이상과 현실은’)는 매우 시의적절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독자의 정확한 현실인식에 도움을 주는 기획탐사보도가 1건에 그쳤다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정책의 추진배경에 관한 심층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차별화된 자세를 통해 의제설정 기능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김춘식 한국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 [열린세상] 상생과 나눔의 선거/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1987년 민주화는 대통령직선제를 목표로 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다당제 선거·대통령직선제를 민주주의의 골자로 내세우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1972년 유신이후 1987년까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제에서 그 선출을 다른 기관에 위임한다는 것은 ‘인민의 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제1원칙에 위반되는 것이었다. 특정 정당이나 국가기관이 주권을 좌지우지하는 위임정부 치고 성공 사례가 없다는 점도 주권재민의 가치를 높여 주었다. 여기에는 김영삼·김대중으로 상징되는 1970년대 야당 지도자들 모두가 가시적으로 대통령 당선권에 들어가 있었던 것도 ‘민주화=대통령 직선제’로 정식화하는 데 유용했다. 민주주의에서 누구나 경의해 마지않는 선거도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기본적으로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기고 지는 게 모든 것을 얻거나 잃도록 되어 있는 한, 선거는 제로섬 게임의 전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 임하는 당사자들은 서로 죽기 살기의 대립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며, 급기야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을 저지르는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렇게 선거가 전쟁의 특성을 보이는 한, 불법 선거과정에 대한 통제는 엄격한 처벌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인다. 전쟁이 아닌 상생과 나눔의 평화 철학에 기초하여 선거를 치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대통령제에서 선거의 전쟁적 특성을 조금이나마 회피하기 위해서 부통령제를 도입해서 2위에게 그 직책을 주면 어떨까. 그러면 선거에서 서로 대통령이 되려고 열심히 뛰겠지만, 많은 경우 큰 표 차이 없이 떨어진 2등도 부통령으로서 또는 부통령을 당선시킨 제2당으로서 책임과 부담을 갖고 국정에 협조자로 나서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는 책임정당제 차원에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1당과 2당이 서로 협조하면서 국정에 임할 경우 무엇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인데, 결국 최종 책임은 대통령과 제1당이 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각책임제가 아닌 대통령책임제라고 명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통령제와 중대선거구 국회의원제를 통해 승자독식이 아닌 2·3위에게도 기회를 준다면, 지금과 같은 선거에서의 전쟁 상태는 줄어들고 그 대신 이른바 상생의 정치 내지는 나눔의 정치로 변모해 나가지 않을까. 1980년 ‘서울의 봄’시대의 안개정국과 1987년 민주화 바로 직전의 개헌공방 정국에서 권력구조와 선거구제를 둘러싸고 백가쟁명이 있었다. 당시의 다양한 개헌 논의는 집권 군부나 여당의 권력 재창출 내지는 집권 연장을 위한 획책으로 거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 21세기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이제는 대통령 책임과 여대(與大)국회를 중시하는 정당책임의 단일적 시각에서 정당과 사회의 공동책임이라는 복수의 시각으로, 그리고 궁극으로는 다양한 정치세력간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적 다양성의 공존으로 옮겨 갈 때가 되었다. 이제는 대통령 단임제를 그만하고 중임제를 할 때가 되었고, 대통령의 권한도 대통령·부통령으로의 권력 공유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국회도 단원제만이 아닌 양원제로 확대하여 단일 의회만능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하는가 하면, 지방도 선출된 도지사나 시장의 단독 책임에서 2등으로 선출된 부지사나 부시장과 함께 4년의 풀뿌리 민생을 책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단독 책임에서 벗어나 복수의 공동 책임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놓고 선거를 치르게 되면, 비로소 정치는 제로섬게임만이 아닌 상생과 나눔의 정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 [시론] 동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삼성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동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삼성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의 균형자 역할론은 한국이 미국과 헤어져 중국을 짝사랑하는 얘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곡이다. 균형자를 하겠다는 것은 특정한 한 외세와의 짝사랑에 우리 미래를 걸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떤 세력을 버리고 다른 세력을 일방적으로 사랑하는 논리를 떠나 모두와의 공존을 위해 필요한 자율적 비전을 갖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힘이 없어 균형자 역할은 턱도 없다는 냉소도 근거없다. 국제정치학이론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한가지가 아닌 적어도 세가지 종류의 균형역할 개념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강대국들이 서로간의 견제와 균형을 이룩하는 것으로서, 둘 이상의 강대국 관계 자체에 내재하는 생리를 가리킨다. 두번째는 한 나라에 의한 일방적 지배를 견제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들이 연합을 통해 최강국을 견제하는 경우다. 세번째의 균형개념은 두 강대국이나 진영이 각축하고 있을 때, 제3의 국가가 지정학적 중간자로서 상대적 약자에게 힘을 보탬으로써 두 진영간의 힘의 배분에 의미있는 영향을 끼치는 경우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우리에게 적실한 개념은 세번째 경우다. 우리가 한반도 주변 4강에 준하는 역할을 하기는 물론 어렵다. 그러나 중국대륙의 동해안선을 사이에 두고 형성되어 있는 동아시아 대 분단체제의 지정학적 중간에 위치한 존재로서 한반도는 어느 한편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에 더 위협적인 세력이나 그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우리에게 덜 위협적인 상대적 약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갖고 있다. 이마저도 부정하는 것은 자기비하를 넘어 자학적인 논리다. 모겐소와 왈츠 같은 이들의 권력균형론에 의하더라도, 강대국 관계가 내포한 균형의 논리는 안정이 아닌 불안정으로 통할 수 있다. 패권자는 권력남용과 예방적 군사주의를 통해서, 그리고 도전국가는 기존질서에 도전하는 행태로 인하여 안정자가 아니라 불안정자로 기능하게 된다. 강대국의 균형이란 말하자면 권력투쟁이며, 심오한 불안정화의 속성을 갖는다. 이와 달리 권력투쟁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지정학적 중간자로서 그들의 권력투쟁을 완충시키려고 노력하겠다는 한국의 균형자론은 분명 유의미하다. 그것은 결코 과대망상이 아니다. 한국의 균형자 개념이 한·미동맹과 모순된다는 주장도 잘못이다. 한반도 안보에는 불변하는 실존적 명제가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갈등심화는 우리에게 치명적이며, 이를 완충시키면서 그 두 세력과 다같이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는 지혜가 우리의 생존번영 전략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중간자로서 처해있는 지정학적 취약성을 보완하기보다는 그것을 심화시킬 때, 한·미동맹의 존재론적 근거는 희석된다. 한국이 충실한 하위파트너로 행동하는 것이 미국이 바라는 최대치이겠지만,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해서 미국이 한·미동맹을 파기하지는 않는다. 한반도가 중국에 대한 일방적 동맹으로 기울지 않게 예방하는 효과만으로도 한·미동맹은 미국에 의미있다. 장차 군사대국화를 실현한 일본이 미·일동맹체제에서 자율성을 높여갈 때, 미국의 일본관은 착잡해질 것이다. 그 역시 미국에 한반도가 갖는 의미를 더할 수 있다. 부단히 변모하는 동아시아 역학관계 속에서 수십년 후의 미래에까지도 어느 한나라가 한국안보를 책임질 수 있다는 기대에 기초한 안보전략이야말로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단기적으로도 우리가 균형 자세를 갖지 않고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유리한 주변정세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균형외교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한국의 균형자적 역할의 더 발전된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이삼성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유럽서 찾아보는 ‘首都갈등 해법’

    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대한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은 행정수도 자체에 대한 찬반을 떠나 많은 논란을 낳았다. 민주공화국을 자처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조선시대 경국대전까지 끌어댈 수 있는가가 ‘헌법학적 질문’이었다면 수도문제가 과연 국가정체성에서 핵심적인 요소인지, 더 나아가 미리 주어진 국가정체성이란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정치학적 질문’도 있었다. 과연 한 국가에서 수도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방과의 균형발전이란 무엇인가. 근대국가 성립은 물론, 국가를 넘어서는 EU 통합까지 추진하고 있는 유럽에서의 경험을 점검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16∼17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서양에서의 중앙과 지방’을 주제로 열리는 한국서양사학회(회장 최갑수 서울대 교수)의 10회 학술대회다. 첫날에는 총론격으로 유럽의 수도 발달을 역사적으로 짚어보고 EU 통합에서 불거지고 있는 균형발전의 문제가 논의된다. 둘째날에는 11명의 학자들이 각각 미국·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에 대한 사례를 발표한다. 광주대 이영석 교수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유럽에서 수도권 집중현상은 없었다.’는 널리 알려진 상식을 신화로 규정했다. 서구유럽 학문에 대한 추수주의와 지방자치제의 발달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런던과 파리, 베를린간 비교를 통해 유럽의 수도는 왕의 소재지라는 봉건적 잔재 위에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혜택이 겹친 지역으로 분석했다. 이 때문에 수도는 곧 국가발전과 민족발전의 상징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 교수는 행정수도 ‘본’으로 국가발전을 이끈 서독의 예를 들어 허구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통일 뒤 베를린으로 옮겨간 것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대국주의라는 가치관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교수는 지방자치에 대해서도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지방차지가 “불균등 발전을 얼마나 완화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는데다 오히려 불균등발전을 합리화하고 인정하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일 수 있다는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뒤이은 발표자들은 EU 통합에 따른 유럽의 균형발전 전략을 살핀다. 부산대 정영주 교수는 EU 통합과 역내 사양산업 해결 방안을, 계명대 은은기 교수는 프랑스의 이상적인 유럽통합방안이 드골식 민족주의에 의해 어떻게 왜곡됐는지를 분석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1982년 5월 19일 ‘기업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고의 날일 것 같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사장에 그를 앉히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 현대그룹 후계구도에서 형들보다 한발 늦게 출발한 몽준씨가 가장 먼저 부친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겁니다. 우리 아이들간에도 서열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열어 몽준 사장이 충분히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몽준씨가 미국 MIT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몽준씨는 훗날 가장 아끼는 그의 저서로 ‘기업경영이념’을 꼽으면서 “서문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곁들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부친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던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2002년 12월 18일 ‘정치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악의 날일지 모른다. 그는 이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 사실상 ‘백의종군’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정권의 공동 주인으로 향후 5년간 막강한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셈이다.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나이(51)였다. ●아버지에게 바가지 씌운 아들 정몽준(54). 현대가(家)의 여섯번째 아들.5선의 중진 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산규모 재계 9위(지난해·공기업 제외)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지분 10.80%). 국내 재벌가에서 정 의원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드물다. 일각에서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순탄하게 성장한 대가”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정 의원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3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담임 선생이었던 임환씨는 “몽준이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놀러갔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면서 “전혀 부잣집 티를 내지 않았으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포대를 지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고 정 명예회장임을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정 의원의 학생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부친한테는 다른 형제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부친에게 ‘바가지’ 씌운 일화 한 토막.1970년대 초반 어느 날.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잔 쏘겠다며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에 흥에 겨워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1차는 제가 샀으니,2차는 아버지가 사시라.”고 제안했다. 고 정 명예회장도 유쾌한 기분으로 흔쾌히 응했다.2차 행선지는 정 의원이 정한 강남의 한 술집. 그러나 2차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술값에 놀랐다. 먹은 것에 비해 족히 여섯배의 술값이 청구됐기 때문. 그렇다고 재벌 회장이 술값을 놓고 시비를 걸기도 뭐했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업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드님이 전에 드셨던 외상 술값까지 계산하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허허 이것 참….”고 정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의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허물없는 부자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는 이렇다.“한번은 고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과 골프를 치는데 티샷을 하고는 먼저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머뭇거리다 채를 들고 뒤따라 가는데 유독 정 의원만 얼른 공을 놓고 티샷을 했죠. 그러자 고 정 명예회장이 ‘저놈∼.’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나는 나의 아내가 고맙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종종 내가 대통령 감이라기보다 내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 감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바쁜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고, 조용히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정 의원이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밝힌 부인 김영명(49)씨에 대한 평이다. 정 의원은 1978년 여름 넷째 형수(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의 중매로 영명씨를 미국에서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명씨는 “우선 키(정몽준 182㎝·김영명 174㎝)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라 어머니가 ‘너는 키 큰 신랑감이 없으면 시집도 못 갈거다.’고 곧잘 농담을 하곤 했어요. 첫 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갔는 데 키 큰 여자들이 쭉 지나가기에 미국 사람들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나에게 오더라고요.”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들은 틈틈히 테니스를 치며 1년 가량 연애끝에 잠시 귀국해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웨슬리대학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전통의 명문 대학이다. 영명씨는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나다.‘88 서울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고 정 명예회장을 현장에서 보좌했고,1992년 대선 때는 변중석 여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는 미소와 화술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미스 스마일월드컵’이라는 애칭은 이 때 얻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의 부인 자랑은 유별나다.‘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계속되는 자랑 하나.“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유머를 곁들인 자연스러운 영어는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곧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한다. 그동안 4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는 아이들이 크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의 ‘옛’것을 ‘올’바로 알자라는 의미를 가진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명씨가 밝힌 애처가 해프닝은 이렇다.“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했던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남편은 며느리들만 모인 자리에 와서는 제게 ‘밥 먹었니.’하고 묻는 거예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한마디 때문에 남편은 ‘애처가’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 꼬리표는 지금까지 따라 다닙니다.” 그도 신혼 초에 시아버지인 고 정 명예회장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철부지 며느리 시절, 저는 식사 중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어느 날 저에게 ‘밥 먹을 때 말을 많이 안하는 게 좋은 거다.’며 조용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자녀는 2남2녀. 장남인 기선(23)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올 초 아버지의 뒤를 이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장녀 남이(22)씨는 연세대를 휴학하고, 현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유니버시티에 유학 중이다. 차녀 선이(19)씨도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막내 예선(9)군은 경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명씨는 늦둥이인 막내 임신과 관련해 병원에서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잖아요. 한번은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어요.” 시중에는 예선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의원은 최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정치인 정몽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고,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가 나가면 여당 의원이 떨어진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지켜온 가장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다.”정 의원이 밝힌 정치 입문의 배경이다.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은 5선의 중진 의원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본 정치인 정 의원은 어떨까. 지난 대선기간 내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 회장도 ‘피’는 어쩔 수 없었던지 그 속내를 내보인 적이 있었다.“몽준 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 생겼다. 미국 MIT 대학원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 발언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 정 의원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직선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보좌했던 비서관의 얘기다.“정 의원은 성격이 급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매너가 깨끗하다는 평이다.“정 의원은 서구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직원들이 떠나는 차에 인사를 하면 ‘왜 차에다 대고 절을 하느냐. 하지 말라.’고 말린다. 또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한다.”며 다른 전직 비서관이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브레인 민계식(63)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가장 부지런한 CEO, 백발의 마라토너 CEO로 불린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2시 퇴근하는 일과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서를 퇴근시키고 저녁 6시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까지 사업구상이나 신제품 개발 계획에 열중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150편의 논문을 발표토록 했으며,48건의 국내 및 국제특허를 보유토록 했다. 우주항공학 및 조선공학(석사), 해양공학(박사)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전문지식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부문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 부회장은 또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최고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비록 20대 초반 시절에 일궈낸 기록이지만 지금도 2시간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42.195㎞의 완주기록도 100회를 넘었다. 유관홍(60)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내에서 경영 합리화의 귀재로 통한다.1999년 침체에 빠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세계 각지를 직접 뛰는 영업활동을 전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결과 만성적자였던 건설장비 부문을 2001년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국내 1위의 건설장비 업체로 탈바꿈시켰고, 중국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중국 최대의 건설장비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경영능력을 두고 지난해 6월 미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유 사장을 ‘기업회생 전문가’라고 평했다. 이연재(63)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1976년 현대중공업 간부로 입사한 이래 30년간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해 왔다.1999년 부도 위기에 처했던 옛 한라중공업을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하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단기간에 70여척의 선박을 수주했으며, 중단된 사원 복지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 사원아파트와 스포츠문화센터 등을 조성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던 회사를 2001년부터 4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최길선(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최 사장은 설계·생산·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선 현장에서 33년을 보낸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이다.‘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아래 내실을 강조한다. 최 사장은 올해 슬로건을 ‘창사 30주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선포하고, 선박 60척 생산체제 구축을 마련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현대중공업 탄생 일화 ‘옥스퍼드 박사가 낳은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에 즐겨 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곳이 현대중공업의 설립 신화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고 정 명예회장의 ‘원맨쇼’였다. 고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작은 회사가 언감생심 어딜 넘보는 것이냐.’는 바클레이즈 은행의 태도에 기가 질렸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기댄 곳은 당시 기술협조 계약을 맺은 영국의 A&P 애플도어 엔지니어링사. 그는 500원짜리 지폐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켰다.“이것은 한국 지폐입니다. 여기 그려진 것이 거북선이죠. 한국은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800년대이니 한국은 무려 30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그는 롱바톰 회장의 도움으로 바클레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그러나 콧대 높은 영국 은행의 부총재를 설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옥스퍼드 박사’ 일화는 여기서 나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어제 제가 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한번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유머’에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이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고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지폐’와 ‘옥스퍼드 박사’로 바클레이즈 은행 벽을 넘었지만, 아직 영국 수출보증기구(ECGD)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이것도 울산의 초라한 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그리스 선사인 ‘선 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 선박을 수주 계약함으로써 무사히 통과했다. 이로써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하는 신화가 나오게 됐다. 고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이 당시 맺은 인연은 지금도 대(代)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MJ 처가의 ‘화려한 혼맥’ 정몽준 의원의 처가인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상류사회의 ‘족보’를 엿볼 수 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고 김 장관과 송두만(83) 여사는 자식교육 뿐 아니라 혼사까지 성공한 케이스. 자녀 모두 외교관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영어와 일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특히 장녀인 영애(60)씨와 차녀인 영숙(59)씨는 일본 최고의 여성 사립명문인 세이신대학을 졸업했다. 장남인 대영(57)씨는 미국의 암허스트대학을 졸업했으며, 차남인 민영(51)씨는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자녀 가운데 재계 가문으로 시집간 이는 삼녀인 영자(55)씨와 막내인 영명(49)씨. 영자씨는 GS그룹의 허씨가인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형제로는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과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이 있다. 또 허창수(57) GS그룹 회장과는 사촌간이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맏형이다. 고 허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성물산의 창립멤버로 참여,LG 구씨가와 손잡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명씨는 정몽준 의원과 1979년 결혼, 현대가의 일원이 됐다. 이로써 고 김 장관의 집안은 국내 대재벌인 삼성과 현대,LG,GS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차녀인 영숙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64)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30대 초반에 ‘손컨설팅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대미포조선과 쌍용자동차, 맥슨전자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웍스솔루션 코리아 고문이다. 장녀인 영애씨는 자수성가한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의 부사장이다. 남편인 최융호(62)씨는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제너럴 마리타임 사장이다. 장남인 대영씨는 부친인 고 김 전 장관의 아호(海吾)를 딴 해오실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차남인 민영씨는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인인 정다미(44)씨도 명지대 교수다. 김 전 장관의 집안은 또 언론계와도 각별하다. 손녀 사위들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셋째 사위인 허 회장의 장녀인 유정(31)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준오(31)씨와 결혼했다. 둘째 사위인 손 고문의 차녀인 정희(31)씨는 1999년 헤럴드미디어 사장인 홍정욱(35)씨와 화촉을 밝혔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열린세상] 독도가 북핵을 만났을 때/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북핵문제는 북한의 회담불참 선언과 미국의 회담복귀 요구가 평행선을 그은 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과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계기로 외교전쟁이 진행되면서 급속도로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축소 의사를 밝히자 주한미군은 한국인 근로자의 대량해고 방침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 발언은 한·미동맹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미국으로부터 불편한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래저래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한·일간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최근 몇주 동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로 자리잡았다. 연일 수많은 시위 군중이 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일본대사 추방과 독도 사수를 외치며 데모하는 모습은 이제 익숙하기까지 하다. 일본총리 화형식과 함께 시위대가 손가락을 자르는 모습에서는 독도가 우리땅임을 확인하는 확고한 결의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독도 관련 시위현장을 보면서 하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 사회의 좌우, 진보와 보수가 모두 동일한 목소리를 내면서 하나가 되어 결의를 다진다는 점이다. 대북정책을 포함하여 한·미관계와 주한미군, 이라크 파병 등 거의 대부분의 외교안보 이슈에서 진보와 보수는 이른바 남남갈등이라는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도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접근법과 해법은 놀라울 정도로 상이했고 양극단을 달리곤 했다. 그런데 독도문제가 터져 나오자 우리나라의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심지어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모두 똑같은 분노와 결의를 표출하는 것이다. 일본대사관 앞에 반핵반김 단체 회원과 한총련 및 통일연대 회원들이 같은 목소리로 일본 규탄을 하는 모습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독도문제에 관한 한 남남갈등이 무색할 정도로 한목소리를 냈지만 여전히 북핵문제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보진영은 미국의 대북 무시 정책과 협상의지 결여를 비판하면서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요구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 반면 보수진영은 북한의 핵카드가 협상용이 아니라 핵보유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인식하에 북한의 강경노선이 사태를 악화시키므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독도 문제에서는 보수 진보의 구분 없이 일본을 비판하는 똑같은 입장을 보이지만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반미와 반북이 강조되면서 서로 다른 인식과 해법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독도 문제만을 따로 떼어 이야기할 때는 소리 높여 반일을 외치던 보수진영이, 독도와 북핵문제가 섞여서 다뤄지면 일부이긴 하지만 딜레마에 빠져 내심 반일의 정도가 약해지곤 한다. 독도와 북핵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한 것이고 따라서 일본과 북한 중 어느 편이 더 적대적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가 토론자로 참석한 북핵관련 세미나에서는 독도문제보다 북핵문제가 보다 사활적인 안보 이슈라면서 독도 문제를 이유로 북핵을 해결하기 위한 한·일공조가 약화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즉 보수진영의 입장에선 독도로 인해 북한을 압박하는 한·일공조가 흔들리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고민이 존재하는 것이다. 독도문제를 따로 고민하면 일본의 책임을 묻고 비판할 수 있지만 독도와 북핵문제가 같이 고민되면 일부 보수진영은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더 큰 나머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 밉긴 하지만 그것이 자칫 북핵전선에서 한·일간 공조를 해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앞서기 때문이다. 특히나 독도문제를 놓고 남북공조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상황은 더더욱 보수진영에 용납하기 힘든 것이 된다. 북한 때리기를 위해 한·일공조가 더 필요한 마당에 독도 때문에 남북공조로 일본규탄을 한다면 이는 우리 보수진영에 매우 난처한 지경이 될 것이다. 민족보다 반공이 더 중요했고 반공을 위해서라면 친일파 등용도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광복 후 역사가 오버랩되면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 최장집교수도 7년만에 ‘무혐의’

    최장집교수도 7년만에 ‘무혐의’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구본민)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전쟁의 성격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고발된 고려대 최장집 교수에 대해 무혐의 처분했다고 31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학 교수로서 한국현대사의 연구 결과를 개진하면서 기존의 학설이나 주장과 다른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전체적 내용과 집필 당시 상황으로 미뤄 학문 연구의 일환으로 판단되고 북한을 이롭게 할 인식을 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무혐의 처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사실의 적시가 아닌 학문적 견해표명에 불과하고 비방 목적도 인정키 어럽다.”면서 역시 무혐의 처분했다. 건국회 회장 등 16명은 1998년 11월 “최 교수가 저서인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에서 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고,6·25 참전군인들을 비방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최 교수를 고소·고발했다. 한편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1994년 고발된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씨에 대해서도 이날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함께 고발된 한길사 김언호 사장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했다. 서울중앙지검 김수민 2차장검사는 “독자와 평론가로부터 예술작품으로서 객관적·미학적 가치를 획득했고, 그런 표현들은 자유토론과 상호 비판 과정을 통해 우리 국민에게 충분히 여과돼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책꽂이]

    ●조선의 마음:문학으로 읽는 조선왕조사(신봉승 지음, 선 펴냄) 누구나 접근이 쉽도록 문학적인 감성으로 조선의 역사를 풀어낸다. 창업부터 대한제국의 궤멸까지 철저한 실록을 바탕으로 한 56편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1만 5000원. ●세계의 역사교과서(이시와타 노부오·고시다 다카시 편저, 양억관 옮김, 작가정신 펴냄) 일본의 두 역사학자가 배타적 내셔널리즘을 조장하는 자국의 교과서와 이를 만든 이들의 왜곡된 역사관을 정면 비판하기 위해 쓴 책. 전쟁과 식민지 지배란 테마를 중심으로 한국·중국·싱가포르·독일·미국 등 11개국의 역사교과서를 비교분석했다.1만 3000원. ●산다는 것의 의미(김형석 지음, 마음향기 펴냄) 원로 철학자이자 연세대 명예교수인 지은이가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대화를 나누듯 쓴 철학 에세이. 삶의 의미, 친구, 사랑과 결혼, 성공, 돈, 죽음 등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삶의 비전을 이야기한다.9000원. ●목수(신응수 지음, 열림원 펴냄) 열여섯 살에 목수의 길에 들어서 46년째 대목장의 길을 걷고 있는 외길 장인의 나무와 고건축 이야기. 나무의 생과 나무를 다루는 업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는 목수의 생을 진솔하게 담았다.1만 800원.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그램 질로크 지음, 노명우 옮김, 효형출판 펴냄) 20세기의 독창적 사상가로 인정받고 있는 지은이가 나폴리, 모스크바, 베를린, 파리 등 전 생애에 걸쳐 겪은 대도시의 매혹과 경험을 명쾌하게 풀어냈다.1만 6000원. ●김정일 코드:브루스 커밍스의 북한(브루스 커밍스 지음, 남성욱 옮김, 따뜻한손 펴냄) 한국 근·현대사에 정통한 석학으로 평가되는 미국의 정치학자인 지은이는 6자회담을 둘러싸고 불거진 북·미 양자간 갈등의 근원이 이미 오래전의 한국전쟁에 있음을 설파한다.1만 4500원. ●패션의 유혹(조안 핑켈슈타인 지음, 김대웅·김여경 옮김, 청년사 펴냄) ‘패션’을 사회현상으로 파악하고, 사회학, 문화연구, 젠더, 미디어 문화인류학, 역사학, 미술, 복식사, 기호론에 이르기까지 거시적인 시각에서 패션 전체를 조망한다.1만 5000원. ●대한민국은 받아쓰기중(정재환 지음, 김영사 펴냄) 우리말 지키기 운동에 앞장서온 방송인 정재환이 생활현장속의 생생한 사례를 엮어 낸 우리말 교양서. 상점 간판에서부터 게시판, 광고판, 자장면집 차림표, 인터넷, 방송 자막까지 자주 만나게 되는 왜곡된 언어·문자환경을 고발한다.9900원.
  • 김원기 의장 전북대서 ‘명예 박사’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이 23일 전북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의장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및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정치의 발전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으며, 이어 도내 정관계 인사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재균 총장으로부터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열린세상] 인도로 가자/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먼 옛날 우리에게 천축으로 알려졌던 인도. 신라의 혜초 스님이 걸어서 그 머나먼 인도 길을 다녀온 지 13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인도는 먼 나라로 남아 있다. 우리 민족 가운데 최초의 세계인으로 일컬어지는 혜초의 발걸음이 무색하게 비행기로 8시간 거리의 인도는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다. 평소 우리의 눈이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에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동아시아 네 마리 작은 용으로 일컬어진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지속시키면서 다른 나라들로부터 부러움과 시새움을 받았다면,1990∼2000년대에는 브릭스(BRICs)가 부상하고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은 기본적으로 대국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가난했는데, 이제 이들 4나라가 용틀임을 하고 있다는 데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05년도에 들어 인도가 더욱 우리에게 어필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이유일 것이다. 인도 시장에서 우리나라 상품의 점유율은 2003년 2.2%로 13위였다가 2004년 상반기에는 3.3%에 8위로 올라서면서 경제 파트너로서 인도의 유용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90년대 이후 연평균 5∼6%의 경제성장을 꾸준히 이루어 나가고 있는데, 만약 이러한 추세라면 2050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35배로 늘어나면서 전체 국민소득은 일본을 능가하게 될 것으로까지 전망되고 있다. 중국에 이은 인도의 초고속 경제성장은 두 나라 인구를 합쳐서 25억이 넘기에 그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보고 친디아(Chindia)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인도는 영어 구사능력이 좋은 국민과 IT 부문의 우수한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넘보고 있다. 일찍이 의회민주주의를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카스트 제도의 사회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경제적 번영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21세기의 전환기에서 인도는 경제 개혁개방의 기치를 높이고 있다. 경제적 개혁개방은 필히 사회적 유동성과 정치적 다원성을 더욱 확대시키면서 인도에 총성 없는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아열대 지방 특유의 기후로 인해 인도에서의 개인적 일상생활은 퍽 안온할 수 있다. 다만 자급자족이 쉬울수록 긴장과 경쟁이 적어서 사회 전체로서의 활력은 그만큼 떨어진다는 데에 발전경제학의 역설이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한편으로는 12억 인도인이 다 먹고 사는 것만 해결해도 대단해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격심한 빈부차이와 사회계층간의 격절로 인해 무언가 신선한 돌파구가 없는 한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없으리라는 생각도 든다.1인당 GNP가 아직도 1000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어 인구의 60%는 여전히 가난하다. 대다수 인구가 역동적으로 경제건설에 참여했던 한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인도에서는 높은 교육수준의 상위 5∼10%만이 초국적기업의 자본가들과 손잡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으로 끝나 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는 한반도와 동북아간의 긴밀한 연관성에 초점을 맞추어 평화번영의 동북아시대를 내걸고 있다. 여기서 동북아가 한·중·일의 지리에 한정되지 않는 동북아를 경유하는 세계 지향으로 본다면, 한반도와 인도간의 긴밀성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특히 IT를 중심으로 한 R&D, 물류, 금융 등으로 우리의 경제영역이 세계로 확장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인도의 잠재력과 시장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경제적 프런티어이다. 아직도 먼 나라로 남아 있는 인도로의 길을 닦아가는 데 기업만이 아니라 대학과 시민단체도 혜초와 같은 사명감으로 지렛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 [日 독도주권 침해] “경제난이 국가주의 부추겨”

    16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독도의 날’ 제정을 위한 조례안 가결을 계기로 일본의 극단적인 우경화 양상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본의 대외 환경과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내부 변수가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일본 내 우익세력의 영향력이 점점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 가운데 향후 동북아의 평화 질서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이 자연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박은홍 성공회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난 2001년 미국의 9·11테러 이후 전세계적인 탈냉전 흐름이 군사·안보 중심으로 전환한 가운데 미국과의 동맹이 중요한 일본 입장으로서는 군사적 안보가치가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대외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사실상 평화헌법 개정과 유엔 안보리 이사국 진출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일본의 경제난과 맞물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민영 군산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일본 국내 경제가 지난 90년 이후 어려워지면서 일본형 모델과 영미 모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은 이같은 국가주의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환경으로 인해 일본 내 양심세력과 시민사회 진영마저 ‘국가주의’ 테두리에 포위돼 급격한 세력약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MBC 주말 뉴스데스크 새앵커에 연보흠기자

    MBC 주말 ‘뉴스데스크’의 최일구 앵커가 물러나고 새 진행자로 연보흠(36) 기자가 결정됐다. 관록 있는 중견 기자가 주로 맡아왔던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에 30대 중반의 연 기자가 발탁된 것은 최문순 사장 취임 후 또 하나의 파격 인사다. MBC는 14일 “MBC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가 오는 19일부터 연보흠 기자로 교체돼 기존 박혜진 아나운서와 호흡을 맞추게 된다.”고 밝혔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연 앵커는 사건기자를 거쳐 검찰·정치부에서 일해온 9년차 기자로, 현재 사회 2부에서 경찰청을 출입하며 MBC 사건팀을 이끌고 있다.
  • [정치자금법 어떻게] “돈 줄 죄면 편법 활개” “소액·다수 후원으로”

    [정치자금법 어떻게] “돈 줄 죄면 편법 활개” “소액·다수 후원으로”

    ■ 현실맞게 바꾸자 국회의원들의 ‘돈줄’을 눌러 놓은 이른바 ‘오세훈법’에 대한 개정논의가 정치권 물밑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다. 연초부터 본격 공론화될 조짐을 보이다가 요즈음엔 일단 수면하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형국이다. 최근 공개된 국회의원들의 재산이 평균 1억원 정도 증가하고, 의원들이 불법 정치자금 수뢰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는 등의 보도들이 뒤따르면서 국민여론이 악화된 탓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아줬으면 정치개혁협의회 김광웅 위원장은 지난 2일 “정치자금은 눌러 놓으면 편법이 활개치는 등 음성화된다.”며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와 후원금 모금행사를 허용하는 등 너무 구속적인 면은 해결해야 한다.”며 개정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에 앞서 여당인 열린우리당 소속의 국회 정치개혁특위 이강래 위원장은 지난달 24일 관련 공청회에서 “누군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줬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라며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열린우리당 김부겸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렇게 돈줄을 막아 놓으면 생계형 의원들이 돼서 4년 후에는 신용불량자가 돼 있을 가능성이 있고, 또 불법 정치자금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개정이 필요한 구체적 이유를 제시했다. 개정론자들은 ▲모금방식 ▲모금한도 ▲법인 등 기부대상의 허용 등을 요구하는 ‘전면개정론자’와 후원회 행사만이라도 허용해야 한다는 ‘부분개정론자’로 나뉜다. ●수입·지출 투명성 강화 필요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도 “수입과 지출의 투명성을 보장해 정치인들이 불법정치자금의 ‘우회로’를 찾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개정론을 주장하고 있다. 최 의원은 “현행 1년 1억 5000만원을 모금해서는 중진들이 당내 경선으로 인한 지방순회유세 등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할 수 없다.”면서 “쓸 곳이 있는 상황에서 돈줄을 막아 놓으면 그것이 부패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모든 정치인을 일괄적으로 1억 5000만원에 묶어 놓아서는 안 되고, 열심히 일한 정치인이 더 많이 걷어서 쓸 수 있도록 한도를 늘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가 끝난 뒤로 후원금으로 3000만원을 걷었을 뿐이라는 그는 모자라는 만큼을 자신 소유의 법률회사 월급에서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요즘 국회의원들이 각종 모임에 가서 밥을 얻어 먹고 다니는데, 만약 그 모임이 로비를 위한 자리였다면 극단적으로 N분의1만큼 뇌물을 받은 것이 된다.”면서 “후원금 한도를 풀어서 의원들이 로비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원금 한도 묶고 법인기부 허용을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은 “후원금 한도는 묶어 두되 법인의 기부를 허용”하는 ‘부분개정’을 희망하고 있다. 정 의원은 “후원금 모집을 위한 집회를 막고 있는 상황에서 한도 1억 5000만원도 채우기 힘들다.”면서 “모임을 허용하고 현재 막고 있는 법인의 기부를 개인들의 기부와 마찬가지로 1인 500만원 연간 2000만원으로 한정해서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그는 지난해 후원금으로 “6000만원을 모았다.”면서 “현행 한도를 유지해야 정치활동의 ‘거품’이 제거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유기홍 의원은 “의원들이 10만원짜리에서 모금으로 활로를 찾아야 하지만, 중앙당은 후원회를 열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도 후원회 행사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부분개정을 요구했다. 지난해 6000만원을 모금한 이인영 의원은 “지난해 한도를 절반도 채우지 못해 올해 한도를 채우는 것이 목표지만, 현재의 모집방식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목표를 하향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완곡하게 후원회 행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현행대로 해보자 “정치인 후원은 주식 투자와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욕도 하는 식이죠.”(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 “변화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금단현상이 괴롭다고 아편을 다시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올 초 정치권에서 정치자금법 개정론이 솔솔 흘러나왔지만, 국회의원 재산공개 이후에는 여론이 심상치 않아서인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시행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무슨 개정이냐.’라며 오히려 정자법 취지를 더욱 분명히 하자는 주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행 정치자금법 기준 속에서도 소액 다수의 후원을 통해 투명하게 후원금을 집행하는 등 모범적인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후원회 통해 정치참여·관심 유도 열린우리당 최용규 의원은 지난 2001년부터 ‘천원 후원회’를 시작해 왔다. 매달 꾸준히 후원금을 내는 사람들이 3000여명에 이른다. 후원금은 한달 평균 300여만원. 후원금 자체보다는 후원회를 통해 참여와 관심, 지지를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에 주목한 결과다. 최 의원측은 “지구당이 폐지되면서 과거처럼 지구당 운영에 들어가는 돈이 사실상 없어졌다.”면서 “후원회는 돈을 조달하는 기능과 함께 정치인 활동 감시하고, 자원봉사·정책봉사 등 다양한 참여를 보장하는 쪽으로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강력한 ‘정자법 개악 반대론자’다. 그는 “금연을 했으면 체질을 바꿔야 담배 생각도 안 나고 건강해지듯이 저비용 고효율 정치구조를 다짐했으면 정치 행태도 바꿔야 한다.”면서 “정치문화를 바꾸는 흐름에 동참할지, 아니면 구태로 돌아갈지 선택해야 한다.”고 정자법 개정론을 비판했다. 값비싼 식사와 대형 차량운용 등 활동 관행을 바꾸고, 활동방식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세비·후원금으로 활동비 충당 ‘전북의 GT(김근태)’로 불리며 80∼90년대 전북지역 민주화운동을 이끌어 온 열린우리당 이광철 의원은 ‘청빈 의정 활동’이 소신이다. 최근 국회의원 재산 신고액은 빚만 1100만원.294명 국회의원 중 뒤에서 아홉번째다. 지역구(전주 완산을)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느라 교통비를 포함해 매달 1300만∼1500만원 남짓씩 ‘깨지는’ 것이 예사다. 그래서 어지간한 식사 약속은 대부분 국회 구내 식당에서 해결한다. 세비 600만원도 노모와 딸·아내 등을 위한 가족 생활비 200만원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사무실 운영경비, 정책활동 지원비 등 활동비로 지출했다. 지난해 모집한 후원금이 1억여원이 될 정도로 여러 사람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문병호 의원은 “지역구민의 경·조사에 부조를 할 수 없도록 선거법에 돼 있는 만큼 돈 쓸 데가 없다.”면서 “적게 걷어 적게 쓰는 이대로의 방식이 좋다.”고 말했다. 17대 국회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신선한 정치실험’도 이뤄지고 있다. ●살림 빠듯하지만 떳떳해서 좋아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은 지난 총선 때 공언한 대로 후원회 없이 세비만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강원도 원주)에는 연락사무소만을 둬 운용경비를 최소화했다. 약속은 구내식당 또는 설렁탕 등 간단한 식사로 대신한다. 공청회, 의정보고서 등은 국회의 지원으로 간소화한다. 이 의원측은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장점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살림은 빠듯하지만 시대정신에 맞으니 오히려 떳떳하고 좋다.”면서 정자법 현행 유지론에 힘을 실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시민단체·학계 시각 ‘정치자금법? 당연히 바꿔야지. 더욱 엄격하게.’ 정치권에서 현행 정치자금법을 완화하는 쪽으로 개정하자는 주장에 대해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비판적이다 못해 아예 냉소적이다. 엄격하게 적용해도 부족할 판에 흥청망청하던 옛날을 못 잊고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함께 하는 시민행동’ 하승창 사무처장은 “정치권은 자신들의 과거 관행을 반성하고 이를 극복, 변화하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할 것”이라면서 “법을 바꾼 지 1년도 되지 않았고,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아직 씻기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하 처장은 “입법 활동에 필요한 의정보고서 제작비, 공청회·토론회 개최비 등 비용은 물론 올해부터 입법활동비 3000만원을 추가로 국회에서 이미 지원하고 있고, 선거법·정당법 등이 바뀌어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다.”면서 “정자법 개정 논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뒤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정치권의 개정 시도를 차단했다. ‘참여연대’ 김민영 시민감시국장은 “100만원 이상 고액 정치후원자의 신원이 인터넷 공간에서 상시적으로 공개되도록 해 국민들의 감시가 가능하도록 하는 쪽으로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나머지 부분은 손댈 필요가 없다.”고 정자법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현재 연 120만원 이상 기부자의 신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람과 복사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반면 일부 학계에서는 지난해 개정한 정자법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현실화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성공회대 정치학과 정해구 교수는 “정자법 덕분에 정치권 부패 청산이 많이 된 것 같다.”면서도 “정치인들이 돈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금기시한다면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정치 본래의 기능을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고 정자법 개정의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박록삼 김준석기자 youngtan@seoul.co.kr
  • [책꽂이]

    ●나는 평생 아버지 흉내만 낸다(조정근 지음, 고려원북스 펴냄) 성직자이자 교육자로서 한 평생 ‘사람사랑’을 실천해온 원불교 원로교무 조정근 종사의 체험적 교육현장 이야기. 문제는 청소년이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교사와 학부모, 사회의 시각과 관점이라고 역설한다.1만원. ●신의 정원, 에덴의 정치학(안자이 신이치 지음, 김용기·최종희 옮김, 성균관대 출판부 펴냄) 영국 풍경식 정원에 대한 미학 이론서. 목가적, 풍경화적 군상들로 이루어진 영국의 풍경식 정원 조성의 내면에 감추어진 이념과 정치적 내막 등을 미학·철학적 관점에서 풀어낸다.2만원. ●다 빈치 코드의 비밀(댄 버스틴 엮음, 곽재은·권영주 옮김, 루비박스 펴냄) 소설 ‘다 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성혈과 성배, 예수 결혼설, 막달라 마리아 등 논쟁적 비밀들을 고고학자, 신학자, 미술사학자, 과학자 등 46명의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를 빌려 파헤친다.2만 1800원. ●중국 청동기의 신비(리쉐친 지음, 심재훈 옮김, 학고재 펴냄) 중국 고대사의 중요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블랙박스로 평가되는 청동기 역사를 담은 책. 청동기의 기원에서부터 종류와 쓰임새, 문양과 명문, 전파, 문화교류사적 의의 등을 280여컷의 도판을 곁들여 소개한다.1만 7000원. ●세기의 인간(요제프 크바트플리크 지음, 김지영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상처로 점철된 20세기 역사에 온기를 더한 위인들의 삶을 짤막한 전기형식으로 소개한다.‘적십자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리 뒤낭, 나치에 맞서 영원한 자유를 위해 자신을 불사른 한스 숄 등 20인의 헌신적 삶을 담았다.1만 5000원.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김경상 사진집, 눈빛 펴냄) 마더 테레사 수녀에 의해 인도 캘커타에 세워진 ‘사랑의 선교회’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 선교회가 세운 집에서 생활하는 한센병 환자와 정신지체 어린이들, 그리고 이들을 보살피는 성직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2만원. ●한국, 일본국(권오기·와카미야 요시부미 지음, 이혁재 옮김, 샘터 펴냄) 부총리 겸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오기씨와 일본의 지한파 저널리스트인 요시부미 아사히신문사 논설주간의 대담집.‘국가’라는 기본 개념을 단초로 삼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산적해 있는 관심사를 논의한다.1만 2000원.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열화당 펴냄) 영국의 저명한 문명비평가인 지은이가 일상의 한 순간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정지시켜 섬세한 글로 묘사한 책. 살면서 스쳐지나가는 순간들, 수없는 만남 속에서 쉽게 놓치게 되는 감흥과 기억들을 그림을 그리듯 펼쳐 놓는다.8000원.
  • 과거사위, 민간조사관 8명 채용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 과거 의혹사건의 진상조사 활동을 담당할 민간조사관 8명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노흥래(30·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과정)·김선호(32·한국학 중앙연구원 박사과정)·이주환(35·동국대 한국사 강사)·부미선(31·여·서강대 대학원 사학과 졸업 )·권재록(41·현대기술고시학원 부원장)씨 등 사학·정치학·법학 전공자 5명과 시민운동가 박형호(44·광주발전 시도대책위 사무국장)씨,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기 조사관 엄기연(47)씨, 군 출신의 정삼석(45)씨 등이다. 이들은 3월 중 조사실무 교육을 마친 뒤 1년 동안 경찰조사관들과 합동으로 경찰 관련 과거사 진상조사 활동을 벌이게 된다.
  • [열린세상] 한승조,지만원,조갑제씨/정해구 성공회대 한국정치학 교수

    [열린세상] 한승조,지만원,조갑제씨/정해구 성공회대 한국정치학 교수

    일본 산케이신문의 자매지인 월간지 ‘정론’4월호에 게재된 한승조 고려대 전 명예교수의 글이 우리 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공산주의 좌파 사상에 기인한 친일파 단죄의 어리석음: 한일합병을 재평가하자’라는 글이 그것이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는 ‘한승조 교수에 돌 던지지 마라’라는 글로, 월간조선 대표 조갑제씨는 ‘친북이 친일보다 더 악질적인 이유는 이렇다’라는 글로 한승조씨의 주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친일 옹호 논리는 일련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논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한승조씨는 당시의 국제정세로 보았을 때 조선이 러시아에 합병된 것보다 일본에 합병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조선이 러시아에 합병되었을 경우, 수많은 사람들(1000만명 이상?)이 시베리아 강제 이주 등으로 학살되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역사의 가정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전제로 추론하고 있는 결과는 거의 어거지에 가깝다는 점에서 상식의 도를 넘고 있다. 둘째, 한승조씨와 지만원씨는 일제의 식민지배 때문에 한국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승조씨는 그 근거로 한국의 민족문화가 일제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더욱 발전했으며, 일본에 대한 경쟁의식 때문에 한국이 빨리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만원씨는 일본의 선진화된 과학기술과 지식과 절제로 훈련된 정신은 잠자던 조선인들에게 커다란 자극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배 때문에 우리의 민족문화가 발전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일본에 대한 경쟁의식이 생겼고, 일본의 선진적인 기술과 정신이 우리에게 자극을 주었다는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맞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한국이 발전했고 따라서 일제의 식민지배는 바람직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극히 부분적인 이유를 들어 전체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제 식민지배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셋째, 한승조씨는 ‘덜 돼먹은’ 사람이나 국민은 자기 자신의 책임은 숨기고 남의 책임을 추궁하며 과거에 집착하는 반면 ‘훌륭한’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지만원씨 역시 ‘못난 민족’의 모함-모략행위부터 반성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덜 돼먹은’ 사람과 국민, 그리고 ‘못난 민족’은 바로 한국 사람과 한국민, 그리고 특히 한국의 좌파를 지칭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우리 또는 우리 민족에 대한 일종의 ‘극단적인 비관주의’다. 즉 우리 민족과 우리는 못났고 따라서 식민지배는 당연한 것이고 식민지배를 받더라도 잘난 민족, 잘난 사람들을 따라 배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 아니었느냐는 사고다. 그러나 역사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역경에 처할 때도 있다. 그것을 자기 비하의 민족성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태를 호도할 뿐만 아니라 극히 왜곡시킨다. 넷째, 한승조씨는 친일파 단죄는 좌파 논리이며, 현재 좌파정부인 노무현정부는 정략적인 의도에서 친일파 청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종군위안부문제를 과장되게 내세우는 것은 수준 이하의 좌파적 심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한편 조갑제씨는 친북이 친일보다 더 악질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논리도 말이 되지 않는다. 친일파 진상규명 등 과거사 청산 작업은 과거의 잘못을 규명함으로써 과거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과거에 대한 성찰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정부가 좌파정부라는 주장의 맹점은 좌파와 민주주의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군위안부문제는 그 문제제기의 유치함 때문에 거론할 필요도 없겠다. 이상의 논의와 관련하여, 왜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은 문제점 투성이의 논리로 친일 옹호의 커밍아웃에 나섰을까? 거기에는 민주화의 진전을 좌파 지배로 보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좌파’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들의 ‘상상’ 속에 있다. 정해구 성공회대 한국정치학 교수
  • 거장 파스빈더 회고전 이달말까지

    독일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1945∼1982)의 회고전이 지난 8일부터 오는 3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 주한독일문화원이 공동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파스빈더 탄생 6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데뷔작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를 비롯해 총 24편의 작품이 선보인다. 파스빈더는 전후 유럽영화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감독.1945년 독일 남서부 바바리아 지방에서 태어나 37세로 요절할 때까지 14년간 장편극영화 38편, 중단편 3편,TV 시리즈 2편 등을 만들었다. 회고전에는 폭력과 자기 공격의 세계를 보여주는 초기작 ‘카첼마허’,‘저주의 신들’’, 중기 작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리고 독일의 현대사를 다룬 ‘중국식 룰렛’,‘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등이 상영된다. 특히 총 15시간에 달하는 분량의 TV 시리즈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의 전편도 국내 최초로 소개된다. 17·19일에는 영화평론가 서동진씨와 김성욱씨가 각각 강사로 나서 파스빈더의 성정치학과 현재성에 대해 심도있는 강연회를 마련한다. 관람료는 6000원이며, 맥스무비와 무비OK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예매할 수 있다.(02)720-9782.www.cinematheque.seoul.kr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대동아 공영권’ 반박할 논리 있는가

    지난 한 주 ‘한승조 파문’이 한국을 급습했다. 한승조 파문은 단지 군사독재에 찌든 노학자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아니다. 한국 극우의 심중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어진 지만원-조갑제의 글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씨가 야만적 자본의 논리인 ‘약육강식’을 내세웠다면, 조씨는 이념의 극한대립을 강조하는 ‘반공주의’의 진수를 선보였다. 이 때문에 일부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서는 “70대 정치학자치고 순진했다.”는 말이 나온다. 내놓고 말 못했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적 우익의 실상을 ‘단 한번에 화끈하게’ 드러냈다는 뜻이다. 보수진영은 당황하는 기색이다. 한승조를 공동대표로 ‘모셨던’ 자유시민연대는 “우리도 분노한다.”면서 비판하고 나섰다.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고치겠다고 나선 ‘교과서포럼’의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는 “우리와 한승조-조갑제식 논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비교되는 것 자체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노무현정부=좌파’라는 도식을 내세운 보수언론들은 사실전달에 충실한, 간략한 기사만 내보냈다. 물론 비판사설도 실었다. 그러나 이는 ‘원로들의 시국선언’이나 ‘뉴라이트 운동’,‘자유주의 세력 결집’이란 타이틀로 극우세력의 반동적 태도까지도 비중있게 다루던 모습과 다르다. 지만원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보수언론을 지명하면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그대로 받아쓰는 것에 실망했다.”고 쓴 것도 이 때문이다. 보수언론이 평소 지씨 같은 사람에게 어떤 이미지였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한승조 파문이 과거사 청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결론으로만 마무리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대 김기봉 교수는 한승조의 발언 내용에 앞서 ‘수준과 형식’을 문제삼았다.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 등이 걸려 있는 현실에서 일본 극우 매체에, 수준 이하의 표현까지 써가며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정말 소신이었다면 먼저 한국에서 정식으로 문제제기했어야 했다.”면서 동시에 “우리 역시 분노하기보다 그런 식의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MBC 100분토론에서 공창제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서울대 이영훈 교수와 같은 케이스라는 것이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이 교수의 정치적 위치는 비판하면서도 논리에 대해서는 “일점일획의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한국 우익의 주장은 결국 대동아공영권의 논리, 아시아해방전쟁의 논리의 변형인데 우리가 이것을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반박했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대동아공영권을 뛰어넘을 수 있는 논리를 우리가 생산해냈느냐.”는 반문이다.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학술의 장에 던져” 대논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는 현재 상황을 “나에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하면서 한국의 우익 자체가 당황하고 있다.”고 정리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도 “신자유주의적인 물량주의로만 따진다면 한승조식의 주장이 꼭 틀렸다고만 말하기 어렵다.”면서 “우리와 역사적 경험이 다르기는 하지만 인도와 타이완 등은 실제 그런 논리로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박 교수는 이 문제가 지나친 이분법이나 흑백논리로 내달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한승조식 주장에 당연히 동의할 수 없지만 이런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정치·경제논리를 차분하게 따져봐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과거사 청산이 덜 됐다는 문제도 다뤄져야 하지만 그것만이 원인인 것으로 단선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많이 거론되고 있는 동북아 공동체, 아시아 민족주의 논의와 연계해서 접근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양대 임지현 교수는 한승조 파문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비판했다. 임 교수는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에 먹혔다면 1917년에 조선은 독립했을 것”이라거나 “반공블록 때문에 독일에서도 나치전범 처리와 홀로코스트 문제가 흐지부지될 뻔했다.”면서 한승조-조갑제류의 주장을 “학문적·논리적 엄밀성이 전혀 없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임 교수는 너무 흥분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미 일본 우익 가운데 한승조류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많다.”면서 “그런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을 놓고 한국이 결집하고 그 핑계로 일본 우익이 다시 결집하는 악순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구적 근대화 혹은 발전모델을 우선가치로 삼는 ‘역사주의의 환상’에 빠져 있는 한 언젠가는 제기될 문제였다는 점에는 공감을 나타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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