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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 임기 내 5·18 개헌 가능할까

    尹 임기 내 5·18 개헌 가능할까

    여야가 5·18 개헌에 원론적으로 공감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언했던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개헌이 임기 내에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현재로선 대통령실과 여당에서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은 아니어서 현실화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8일 5·18 기념식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더불어민주당이 전날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 구성을 제안한 것을 두고 “저는 긍정적으로 반응하지만, 지금 총리 임명도 제대로 못하는데 다른 과제들이 나오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원포인트 개헌은 언제나 와닿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약 없는 개헌론을 시작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저쪽(국민의힘)은 진정성이 없다고 느낀다”며 “소위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진정성 없이 광주에 저렇게 떼로 지어서 왔는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통령께서 (5·18 기념사에)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 일절 언급도 안 해 줬고, 검사가 필요한 조서를 쓰듯 자유·인권·공정·정의 이런 표현으로만 도배됐다”며 “여당 정책위의장은 ‘2~3년 지나서 하면 된다’는데 이건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CBS라디오에서 “2~3년 뒤에 꺼내게 될 때는 자연스럽게 헌법 전문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 것을 거론한 것이다. 민주당은 전날 5·18 개헌을 위한 헌정특위 구성을 제안하면서 권력기관 개편 등 다양한 주제를 포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거대 야당으로서 원내에서 이슈를 선점하는 동시에 ‘텃밭’인 호남을 사수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개헌에 공감하지만, 임기 초 개헌 논의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모양새다. 전날 대통령실이 개헌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헌법을 바꾸는 데 국회가 우선”이라며 공을 국회에 넘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초인 2018년 3월 대통령 발의로 개헌안이 논의됐지만 무산된 것과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6·1 선거 후보 10명 중 여성 3명 안 돼…정당은 추천만 하고 육성은 나 몰라라

    6·1 선거 후보 10명 중 여성 3명 안 돼…정당은 추천만 하고 육성은 나 몰라라

    27.5%. 6·1 지방선거의 전체 여성 후보 비율이다. 4년 전(25.2%)에 비해 2.3% 포인트 상승했다. 광역단체장 후보의 경우 2018년에는 71명 중 여성 후보가 6명(8.5%)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55명 중 10명(18.2%)이다. 기초단체장 후보 중 여성 비율은 2018년 4.7%에서 5.6%로 증가했다. 여성할당제가 법제화된 이래 22년 세월이 흐른 것을 감안하면 미미한 성과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라 각 정당은 국회 및 지방의회 의원 선거 후보자 추천 시 비례대표에 한해 여성을 50% 이상 추천해야 한다. 지역구의 경우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 규정만 존재한다. 2004년부터는 여성정치발전비가 도입돼 정당들이 경상보조금의 10%를 ‘여성정치발전’을 위해 사용하도록 규정했지만, 여성 정치인을 육성하려는 정당들의 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여성할당제 인센티브보다 페널티” 정치에서의 여성 대표성 증진을 위한 제도로 여성추천보조금과 여성정치발전비가 있다. 여성추천보조금은 지난 4월 국회에서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 이상을 여성 후보로 공천한 모든 정당에 추천 비율에 따라 지급하는 것으로 개정됐다.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 이상을 여성 후보로 추천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20% 이상~30% 미만, 10% 이상~20% 미만)를 나눠 전자를 충족시키는 정당이 없을 경우 후자를 충족하는 정당에 보조금을 지급해 온 것에서 변경된 것이다. 이는 전형적으로 거대 정당을 위한 제도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군소 정당은 현실적으로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 이상을 후보로 내기가 쉽지 않다. 또한 10% 이상만 여성 후보로 공천하면 여성추천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여성 후보를 30% 이상 공천하려고 노력할 필요조차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는 “소수정당에 불리한 개악”이라며 “할당제 취지에는 동의하지 않으면서 보조금만 챙겨 가는 몰염치 정치”라고 비판했다. 여성할당제의 실효성을 위해 최근에는 아예 공직선거법상의 ‘권고’ 규정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2일 여성 공천할당제 의무화를 국회의장에게 권고했다.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의회 의원 선거 후보자 추천 시 공천할당제를 지역구 의석에도 의무화해 특정 성별이 전체의 10분의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장 후보 공천 때도 할당제를 적용하되 특정 성별이 전체의 10분의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 각 정당이 이를 실행하기 위한 근거 규정을 마련하도록 했다. 인권위는 “임의 규정으로서의 성별할당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선거보조금 등의 인센티브 방식은 효과가 크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볼 때 정치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실질적 참여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행 성별할당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당이 여성 공천 할당 의무를 지키지 못했을 경우 보조금을 감액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여성의정은 지난 1월 펴낸 ‘2022년 지방선거 대비 역대 선거 결과를 통해 본 여성 대표성 확대방안 실증연구’ 보고서에서 정당의 여성 공천 할당 위반 시 국고보조금을 감액, 20%에서 50%까지 추천 비율에 따라 차등 삭감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대상은 선거보조금 또는 매년 지급되는 경상보조금 중 하나로 한다. 여성들의 정치 대표성 제고를 위해서는 인센티브보다는 페널티가 효과적이고, 이와 같은 법 개정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권수현 여성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여성 공천 할당을 지키지 못할 경우 이러한 선거보조금 자체에 페널티를 가하는 방식의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거대 정당들의 ‘결단’이 필요한데 시민사회 차원에서 정치권에 강력히 정치개혁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대 양당 대신 ‘다른 길’을 가는 여성 한편 여성들은 거대 정당 체제를 마다하고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시도를 이어 가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세 명의 페미니스트 여성 기초의회 후보를 낸 ‘청주페미니스트연대’가 이 같은 사례다. 지난해 11월 회원 60여명으로 시작한 청주페미니스트연대는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권익 보호 활동을 하다 이번 선거에 세 명의 후보를 냈다. 무소속 2명(현슬기·김현정), 노동당(유진영) 1명으로 정당 소속 여부와 관계없이 ‘청주페미니스트연대’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이성지 청주페미니스트연대 선거운동본부 활동가는 “지난 대선에서도 보았듯 거대 양당제와 중앙집권화한 정치는 여성들의 욕망을 실현해 주지 못한다는 인식 아래 선거운동을 시작하게 됐다”며 “페미니즘이 어느덧 색깔론의 한 형태로 차용되고 있는데,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페미니즘 정치란 어떤 것이며 어떤 지향성을 가졌는지 정치 활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5·18 개헌 급부상… 與 “헌법전문 수록 긍정적” 野 “헌정특위 구성”

    5·18 개헌 급부상… 與 “헌법전문 수록 긍정적” 野 “헌정특위 구성”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7일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대해 “저희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을 향해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을 논의하기 위한 헌법개정정치개혁특위(헌정특위) 구성을 제안하면서 5·18 개헌이 이슈로 떠올랐다. 이 대표는 이날 KBS 광주 라디오에서 “당연히 개헌이 진행되게 되면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진 민주화 운동으로서 당연히 저희가 헌법 전문의 가치가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저만 해도 85년생인데 지금 5월 광주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아니면 왜곡된 생각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 없다”며 “저희 당내에도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당연히 저희가 합리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5·18 정신이 개헌 때 헌법 전문에 올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국회가 이른 시일 내에 현재의 정치개혁특위를 확대 개편해 헌정특위를 만드는 것을 여당에 제안한다”고 압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5·18 정신은 헌법 전문에 반드시 올라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일단 여야 공히 5·18의 헌법 전문 수록에 공감하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개헌을 주도하기보다는 국회 쪽으로 공을 넘기는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헌법을 바꾸는 데 국회가 우선인 만큼 지금부터 앞서서 뭔가 추진하는 모습은 아닌 것 같고 차후에 국회가 어떤 계기로 헌법 등 여러 사안을 논의할 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 전여옥 “이준석, ‘검수완박’ 중재안 받아놓고…한동훈 통해 尹에 SOS 치려 한다”

    전여옥 “이준석, ‘검수완박’ 중재안 받아놓고…한동훈 통해 尹에 SOS 치려 한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 의원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를 싸잡아 비판했다. 전 전 의원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주 가관이다”라며 “‘국민독박 죄인대박’ 패널을 들고 있는 이준석 대표와 권성동 원내대표는 낯뜨겁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 “이제 와서 국민독박이고 죄인대박인가” 전 전 의원은 “권 원내대표는 ‘최선의 협의를 했다’고 중재안을 자랑스럽게 발표했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국민독박이고 죄인대박인 것을 알았다는 것인가”라고 적었다. 이어 “권 원내대표는 중재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필리버스터로 막겠다고 한다”며 “‘이재명 방탄법’이라던 중재안 떡하니 받아놓고 자화자천하더니 웬일인가”라고 부연했다. 전 전 의원은 이어 “이 대표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통화를 했다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절대 반대로 돌아섰다”며 “아마도 당 윤리위의 징계 대상인 자신의 처지 물타기용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 “尹에게 ‘살려달라’는 신호” 이어 “윤 당선인에게 ‘나 좀 살려주세요’라고 한 후보자를 통해 SOS를 친 것 같다”며 “정치인들 끼리끼리 해먹기에 선거법 수사 피하기 등 ‘그들이 사는 세상’을 위한 것처럼 두 대표도 똑같다”고 적었다. 그는 “검찰개혁으로 정치권이 난리친지 오래됐다”며 “그래서 손에 든 것이 검수완박이라니 뻔뻔하다”고도 했다. 끝으로 “진짜 필요한 것은 정치개혁”이라며 “특히 국민의힘 개혁이 절실하다. 새달 9일 검수완박 공표를 위해 폭주하는 민주당은 이미 공중분해중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준석, 중재안 ‘오케이’하더니…” 전 전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프로그램 ‘정면승부’와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다. 그는 “이 대표는 권성동 중재안을 미리 전달받았고 동의한 것으로 확인되지 않았는가”라며 “처음에 확실히 ‘오케이’한 것이다. 여론이 용암처럼 흘러내리니 중재안을 엎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서 한동훈 후보자와 통화했다고 하니 민주당에서는 ‘한동훈 아바타냐’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전 전 의원은 다만 “이건 매우 특이한 일이다”라며 “최고위원회에서 의원총회를 엎어버리는 일은 거의 없다. 여의도 입법 권력은 배지에서 나온다. 배지도 없는 이 대표는 그런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성상납 관련해서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있다”며 “이 대표의 물타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내가 볼 때는 이 대표는 윤 당선인의 확실한 동반자로 생각되는 한 후보자를 통해 일종의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이준석 “잘 모르면 자문 구해가며 정치해야” 앞서 이 대표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 후보자는 검수완박 사안에 있어 매우 명확한 입장을 가진 인물”이라며 “검수완박이 이뤄졌을 때 국민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잘 모르면 법률가에게 자문을 구해가며 정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24일에는 “여러 법률가들에게 검수완박 관련 자세한 의견을 들었다”며 “한 후보자 포함 일선 수사 경험자들의 우려는 타당하다고 여겨진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당 대표로서 원내지도부 논의를 존중해왔고 검수완박 논의가 우리 당 의원총회에서 통과했지만 심각한 모순점이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입법 추진은 무리다”라며 “1주일로 시한을 정해 움직일 사안이 아니다. 협상안에 대해 재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시 협상을 하게 된다면 그 담당자는 압도적인 표로 선출돼 우리 당의 원내 전략을 담당하는 권성동 원내대표”라며 “권 대표를 신뢰하며 국민 입장에서 새 협상을 하는 과정을 적극 응원하겠다”고 했다.
  • “예산감시가 곧 권력감시… 靑특활비 공개청구소송, 새 정부 초에 할 것”[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예산감시가 곧 권력감시… 靑특활비 공개청구소송, 새 정부 초에 할 것”[박록삼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

    “청와대와 검찰청 등의 특수활동비는 공적인 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돈인데 국민들이 예산과 집행 내역을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견제와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돈들인 것이죠. 이게 21세기에 합당한 일입니까?” 하승수(54) ‘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경영학과 출신의 회계사이면서 변호사다. 지난 19일 만난 하 대표는 인터뷰 내내 예산 감시가 곧 권력 감시이며,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지속 발전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검찰 특수활동비(특활비) 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 1심에서 승소했지만 검찰 측은 공개를 거부했다. 특활비 집행 내역 자료가 없으며 또한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는 수사기밀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자료가 너무 방대해서 정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항소했다. “특활비도 원칙은 카드로 집행해야 하며 현금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설령 현금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영수증 증빙 또는 집행 내역 확인서를 갖고 있어야만 하죠. 특활비 사용은 검찰총장이 대검 담당관에게 요구하면 현금을 갖고 오는 방식입니다. 그런 식으로 현금을 사용하며 용처를 전혀 안 남겼다는 것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하 대표는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이 소송은 시간은 걸릴지 모르지만 결국 이길 수밖에 없다. 예산 사용 증빙 자료가 없다거나 정리할 수 없다는 검찰의 항소이유서는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발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와 연수원 동기 연 8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대검 특활비는 실제 고스란히 ‘검찰총장의 쌈짓돈’처럼 쓰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검찰총장 시절 특활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는 소송은 그렇게 한창 진행 중이다. 이뿐 아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농촌·농민 공익법률센터 ‘농본’ 차원에서 한국전력을 상대로 특별지원금 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한전이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건네는 특별지원금은 법에 의한 것이 아닌 내부지침으로 집행하고 있다. 집행 내역은 물론 내부지침의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한전 측은 국회의원에게도 열람만 시켜줄 뿐 사본 복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할 정도라 한다. 지난 22일로 예정됐던 1심 판결은 갑자기 연기됐다. 전 국민의 전기요금과 관련한 부분일 뿐 아니라 전국의 여러 농촌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되는 부분이기에 그가 특히 관심을 갖는 이슈다. 예산 집행의 투명성이 막힌 지점은 한두 곳이 아니다. 그 어느 곳보다 핵심 권력기관인 청와대 역시 마찬가지다. 하 대표는 2014년 10월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특활비 공개 청구 소송을 냈고 1년 반 만에 승소했지만, 2심이 진행 중이던 2017년 대통령 파면 이후 소송은 각하됐다. 소송의 실효성이 없어진 셈이다. 5년이 지난 뒤 진행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 특활비 공개 청구 소송 역시 비슷한 운명이 예정돼 있다. 지난달 공개가 결정됐지만 항소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 임기를 마치는 만큼, 관련 자료는 곧 대통령기록물로 이관될 예정이다. 이 소송 역시 결국 각하될 수밖에 없다. 하 대표는 “대통령 특활비는 비록 아직까지 공개되지는 못했지만 감시의 시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행 정보공개법과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체계 아래에서 연 96억원 남짓의 대통령 특활비 공개가 실효성 있게 이뤄지기는 어렵다”면서 “결국 집권 초기에 청구 소송을 진행해야 대통령 임기 내에 자료 공개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말했다. 두 번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윤석열 정부 초기에 특활비 공개 청구를 요구하겠다는 의지다. 왜 이렇게 권력 기관 감시 활동에 열중하는지 궁금했다. 출발은 1987년의 경험이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였고, 시민의 힘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면서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갖췄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고 권력을 감시·비판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삶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2년 공인회계사가 됐지만 다시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1995년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7기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동기이기도 하다. 그는 “당초 공인회계사로서 자본시장을 감시하는 역할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기업에 대한 서비스가 회계사의 주요 업무였다”면서 “마침 시민사회가 활성화하던 즈음이었고,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으리라 판단했다”고 대학 졸업 직후 겪은 시행착오 아닌 시행착오를 설명했다.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참여연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고, 나중에는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으로서 아예 상근 근무했다. 연수원 수료 직후인 1998년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 소액주주운동을 시작으로 조세개혁, 정보공개, 예산감시 등의 활동을 벌였다. 회계사이자 변호사, 그리고 시민사회 운동가로서 특화할 수 있는 업무였다. 특히 199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되면서 시민사회에 정부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는 정보공개운동이 본격화됐다. 이 역시 하 대표의 전문성과 역량을 드러내기에 맞춤형 역할이었다. 고건 당시 서울시장 업무추진비 공개 청구 소송을 했고, 이후 전국 각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전국판공비공개네트워크’를 만들어 동시다발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업무추진비 공개를 추진했다. 하 대표는 “처음에는 단체장 업무추진비에 집중했는데 중앙정부를 들여다보니 국회, 청와대, 검찰, 국정원, 경찰, 국방부 등 모든 곳에 예산 내역도, 집행도 불투명한 특활비가 널려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시차를 두고 자료 공개 청구 소송에 나선 것은 물론이고 국회 특활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정책개발예산 등 예산에 대한 자료 공개를 모두 승소로 이끌었다. 그는 “이제 지자체와 국회는 투명한 예산 집행과 내역 공개가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면서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면 자연적으로 방만한 운영이 줄어들 뿐 아니라 예산 규모도 줄어드는 효과를 낳게 된다”고 지속적인 예산 감시운동의 의미를 자평했다. 그의 삶과 활동을 관통하는 가치, 그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세상에 투영돼 있다. 권력기관 감시 운동으로 시작된 하 대표의 활동은 이제 정치개혁 과제, 공공정보 공유 과제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농촌 공동체 복원에 주목하고 있다. 자칫 책상 위 개혁 의제에 머무르는 방식이 아닌 현장과 삶에 밀착한 활동을 하기 위함이다. 그는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시민사회와 산업 등 민간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함께 다양한 정치세력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혁 등 정치개혁 과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산 감시, 권력 감시,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결국 정치 개혁이자 국민 삶의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권력감시 원활할수록 좋은 정부 돼” 그는 “보수·진보를 떠나 우리 사회에 투명성과 합리성이 자리잡아야 한다”면서 “공정과 상식을 저해하는 것은 특권과 특혜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우리가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 정책 등은 부러워하며 그 정책을 배우려 하지만 그 사회가 갖고 있는 투명성의 바탕이 되는 제도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명하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사회는 거대 양당의 독점으로 부패 독과점을 유지하는 나라이며, 이들 양당 입장에서는 투명하지 않은 게 서로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죠. 결국 공수 교대만 반복하며 부패 구조를 존속시키려 할 뿐입니다.” 예산 감시 운동이 정치 개혁 과제로서도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하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소송제, 정보공개 등 기득권 구조를 깰 수 있는 제도 개혁을 하기를 기대했는데 못 했다”고 비판하면서 “시민사회의 권력 감시가 원활할수록 국민들도 그만큼 좋은 정부를 갖게 된다”며 변함없는 활동을 다짐했다. “이런 제도와 형식의 과제들이 잘 정리되고 나면 개혁의 구체적 내용, 발전의 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더욱 효율적으로 가능해질 수 있으며, 이것이 민주주의가 잘되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죠. 설령 세상이 주목하지 않더라도, 변화가 더디더라도 묵묵히 끝까지 제 길을 가려고 합니다.”
  • “윤석열 대통령 특활비 공개 소송, 집권 초에 할 것”

    “윤석열 대통령 특활비 공개 소송, 집권 초에 할 것”

    “청와대와 검찰청 등의 특수활동비는 공적인 업무를 위해 사용하는 돈인데 국민들이 예산과 집행 내역을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견제와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돈들인 것이죠. 이게 21세기에 합당한 일입니까?” 하승수(54) ‘세금도둑잡아라’ 대표는 경영학과 출신의 회계사이면서 변호사다. 지난 19일 만난 하 대표는 인터뷰 내내 예산 감시가 곧 권력 감시이며,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지속 발전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검찰 특수활동비(특활비) 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월 1심에서 승소했지만 검찰 측은 공개를 거부했다. 특활비 집행 내역 자료가 없으며 또한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는 수사기밀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자료가 너무 방대해서 정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며 항소했다. “특활비도 원칙은 카드로 집행해야 하며 현금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설령 현금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영수증 증빙 또는 집행 내역 확인서를 갖고 있어야만 하죠. 특활비 사용은 검찰총장이 대검 담당관에게 요구하면 현금을 갖고 오는 방식입니다. 그런 식으로 현금을 사용하며 용처를 전혀 안 남겼다는 것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하 대표는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이 소송은 시간은 걸릴지 모르지만 결국 이길 수밖에 없다. 예산 사용 증빙 자료가 없다거나 정리할 수 없다는 검찰의 항소이유서는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발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연 8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대검 특활비는 실제 고스란히 ‘검찰총장의 쌈짓돈’처럼 쓰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검찰총장 시절 특활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는 소송은 그렇게 한창 진행 중이다. 이뿐 아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농촌·농민 공익법률센터 ‘농본’ 차원에서 한국전력을 상대로 특별지원금 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한전이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건네는 특별지원금은 법에 의한 것이 아닌 내부지침으로 집행하고 있다. 집행 내역은 물론 내부지침의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한전 측은 국회의원에게도 열람만 시켜줄 뿐 사본 복사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할 정도라 한다. 지난 22일로 예정됐던 1심 판결은 갑자기 연기됐다. 전 국민의 전기요금과 관련한 부분일 뿐 아니라 전국의 여러 농촌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되는 부분이기에 그가 특히 관심을 갖는 이슈다. 예산 집행의 투명성이 막힌 지점은 한두 곳이 아니다. 그 어느 곳보다 핵심 권력기관인 청와대 역시 마찬가지다. 하 대표는 2014년 10월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특활비 공개 청구 소송을 냈고 1년 반 만에 승소했지만, 2심이 진행 중이던 2017년 대통령 파면 이후 소송은 각하됐다. 소송의 실효성이 없어진 셈이다. 5년이 지난 뒤 진행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 특활비 공개 청구 소송 역시 비슷한 운명이 예정돼 있다. 지난달 공개가 결정됐지만 항소심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통령 임기를 마치는 만큼, 관련 자료는 곧 대통령기록물로 이관될 예정이다. 이 소송 역시 결국 각하될 수밖에 없다. 하 대표는 “대통령 특활비는 비록 아직까지 공개되지는 못했지만 감시의 시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규모가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행 정보공개법과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체계 아래에서 연 96억원 남짓의 대통령 특활비 공개가 실효성 있게 이뤄지기는 어렵다”면서 “결국 집권 초기에 청구 소송을 진행해야 대통령 임기 내에 자료 공개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말했다. 두 번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윤석열 정부 초기에 특활비 공개 청구를 요구하겠다는 의지다. 왜 이렇게 권력 기관 감시 활동에 열중하는지 궁금했다. 출발은 1987년의 경험이었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였고, 시민의 힘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면서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갖췄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고 권력을 감시·비판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삶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2년 공인회계사가 됐지만 다시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1995년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7기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동기이기도 하다. 그는 “당초 공인회계사로서 자본시장을 감시하는 역할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기업에 대한 서비스가 회계사의 주요 업무였다”면서 “마침 시민사회가 활성화하던 즈음이었고,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으리라 판단했다”고 대학 졸업 직후 겪은 시행착오 아닌 시행착오를 설명했다.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참여연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고, 나중에는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으로서 아예 상근 근무했다. 연수원 수료 직후인 1998년 3월 삼성전자 주주총회 소액주주운동을 시작으로 조세개혁, 정보공개, 예산감시 등의 활동을 벌였다. 회계사이자 변호사, 그리고 시민사회 운동가로서 특화할 수 있는 업무였다. 특히 1998년 정보공개법이 시행되면서 시민사회에 정부 공공기관을 상대로 하는 정보공개운동이 본격화됐다. 이 역시 하 대표의 전문성과 역량을 드러내기에 맞춤형 역할이었다. 고건 당시 서울시장 업무추진비 공개 청구 소송을 했고, 이후 전국 각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전국판공비공개네트워크’를 만들어 동시다발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업무추진비 공개를 추진했다. 하 대표는 “처음에는 단체장 업무추진비에 집중했는데 중앙정부를 들여다보니 국회, 청와대, 검찰, 국정원, 경찰, 국방부 등 모든 곳에 예산 내역도, 집행도 불투명한 특활비가 널려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시차를 두고 자료 공개 청구 소송에 나선 것은 물론이고 국회 특활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 정책개발예산 등 예산에 대한 자료 공개를 모두 승소로 이끌었다. 그는 “이제 지자체와 국회는 투명한 예산 집행과 내역 공개가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면서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면 자연적으로 방만한 운영이 줄어들 뿐 아니라 예산 규모도 줄어드는 효과를 낳게 된다”고 지속적인 예산 감시운동의 의미를 자평했다. 그의 삶과 활동을 관통하는 가치, 그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세상에 투영돼 있다. 권력기관 감시 운동으로 시작된 하 대표의 활동은 이제 정치개혁 과제, 공공정보 공유 과제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농촌 공동체 복원에 주목하고 있다. 자칫 책상 위 개혁 의제에 머무르는 방식이 아닌 현장과 삶에 밀착한 활동을 하기 위함이다. 그는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시민사회와 산업 등 민간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함께 다양한 정치세력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혁 등 정치개혁 과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산 감시, 권력 감시,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결국 정치 개혁이자 국민 삶의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그는 “보수·진보를 떠나 우리 사회에 투명성과 합리성이 자리잡아야 한다”면서 “공정과 상식을 저해하는 것은 특권과 특혜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우리가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 정책 등은 부러워하며 그 정책을 배우려 하지만 그 사회가 갖고 있는 투명성의 바탕이 되는 제도에 대해서는 외면하거나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명하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사회는 거대 양당의 독점으로 부패 독과점을 유지하는 나라이며, 이들 양당 입장에서는 투명하지 않은 게 서로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죠. 결국 공수 교대만 반복하며 부패 구조를 존속시키려 할 뿐입니다.” 예산 감시 운동이 정치 개혁 과제로서도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하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소송제, 정보공개 등 기득권 구조를 깰 수 있는 제도 개혁을 하기를 기대했는데 못 했다”고 비판하면서 “시민사회의 권력 감시가 원활할수록 국민들도 그만큼 좋은 정부를 갖게 된다”며 변함없는 활동을 다짐했다. “이런 제도와 형식의 과제들이 잘 정리되고 나면 개혁의 구체적 내용, 발전의 과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더욱 효율적으로 가능해질 수 있으며, 이것이 민주주의가 잘되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죠. 설령 세상이 주목하지 않더라도, 변화가 더디더라도 묵묵히 끝까지 제 길을 가려고 합니다.”
  • 제주도의회 의원 정수 43명에서 45명으로 확정

    제주도의회 의원 정수 43명에서 45명으로 확정

    제주도의회 의원 정수가 현재 43명에서 45명으로 늘어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15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송재호(제주시갑)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수정 의결했다. 당초 제주도의원 정수를 기존 43명(지역구 31명, 비례 7명, 교육의원 5명)에서 46명(지역구 33명, 비례대표 8명, 교육의원 5명)으로 3명(지역구 2명, 비례대표 1명)을 증원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국회는 2명(지역구 1명, 비례대표 1명) 증원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이로써 6·1지방선거 제주도의회 의원 정수는 현행 43명에서 45명이 된다. 예상보다 1석이 줄면서 추가적인 선거구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현재 헌법재판소 인구 편차 기준에 어긋나 분구 또는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는 선거구는 아라동, 애월읍, 한경·추자면, 정방·중앙·천지동 등 4곳이다. 이 중 아라동과 애월읍은 인구가 다른 선거구보다 과도하게 많아 분구 대상이며, 한경·추자면과 정방·중앙·천지동은 인구가 적어 통폐합 대상으로 꼽힌다. 이날 국회 결정에 따라 제주시 한경·추자면과 서귀포시 정방·중앙·천지동 등 선거구 2곳 중 한 곳은 타 선거구와 통폐합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는 긴급 회동을 갖고 선거구 조정 방안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도의회는 오는 22일쯤 원포인트 임시회를 열어 해당 조례 개정안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교육의원 제도는 일몰제를 적용해 이번 선거를 마지막으로 폐지된다.
  • 6·1선거 ‘기초의원 3~5인 선거구제’ 시범실시

    여야가 오는 6·1 지방선거에서 전국 11개 선거구에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3∼5인 선거구)를 시범 도입하기로 14일 합의했다. 기초의원 정수를 2~4인 선거구에서 3~5인 선거구로 바꿔 군소정당의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수정당의 기초의회 진출이 확대될 전망이다. 여야 원내수석부대표인 진성준·송언석 의원과 여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김영배·조해진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양당은 “제8회 지방선거에 한해 국회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서울 4곳, 경기 3곳, 인천·영남·호남·충청 각각 1곳 등 총 11곳을 3∼5인 선거구로 지정, 시범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양당은 공직선거법상 ‘기초의원 4인 선거구 분할 가능’ 조문도 삭제하기로 했다. 광역의회의 판단에 따라 4인 이상 선거구가 2인 이상 선거구로 쪼개지면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장벽이 높아지기 때문에 정의당은 해당 조문의 삭제를 요구해 왔다. 다만 선거법상 조문을 삭제하더라도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 권한은 시도의회에 있어 2인 선거구가 유지될 여지는 남아 있다. 또한 여야는 위헌 소지 등으로 조정이 필요했던 의원 정수 문제도 광역의원 38인, 기초의원 48인을 각각 증원해 해결하기로 했다. 양당은 이 같은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다.
  • 6·1 선거 ‘기초의원 3~5인 선거구제’ 시범실시

    6·1 선거 ‘기초의원 3~5인 선거구제’ 시범실시

    여야가 오는 6·1 지방선거에서 전국 11개 선거구에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3∼5인 선거구)를 시범 도입하기로 14일 합의했다. 기초의원 정수를 2~4인 선거구에서 3~5인 선거구로 바꿔 군소정당의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소수정당의 기초의회 진출이 확대될 전망이다. 여야 원내수석부대표인 진성준·송언석 의원과 여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인 김영배·조해진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양당은 “제8회 지방선거에 한해 국회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서울 4곳, 경기 3곳, 인천·영남·호남·충청 각각 1곳 등 총 11곳을 3∼5인 선거구로 지정, 시범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김영배 의원은 “양당이 각각 지지 우위를 점한 영호남 1곳씩과 수도권을 고루 포함해 시범 실시 지역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양당은 공직선거법상 ‘기초의원 4인 선거구 분할 가능’ 조문도 삭제하기로 했다. 광역의회의 판단에 따라 4인 이상 선거구가 2인 이상 선거구로 쪼개지면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장벽이 높아지기 때문에 정의당은 해당 조문의 삭제를 요구해 왔다. 다만 선거법상 조문을 삭제하더라도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 권한은 시도의회에 있어 2인 선거구가 유지될 여지는 남아 있다. 또한 여야는 위헌 소지 등으로 조정이 필요했던 의원 정수 문제도 광역의원 38인, 기초의원 48인을 각각 증원해 해결하기로 했다. 인구 최다·최소 선거구 간 인구비율 4대1 기준이 표의 등가성을 저해한다는 헌법재판소 판결과, 국민의힘 측의 지역소멸 대응을 위한 지역의회 정수 확대 주장 등을 두루 고려한 결과다. 양당은 이 같은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다.
  • 민주당·정의당, 농성장 두 곳에서 정치개혁 요구

    민주당·정의당, 농성장 두 곳에서 정치개혁 요구

    이은주 정의당 의원 단식농성 돌입민주당 74명 5일째 국회 앞 농성중이탄희 “민주당·정의당 연합처리해야”정의당 정치개혁특별위윈회 위원장인 이은주 의원이 8일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확대 등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 의원은 이날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이 자리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거대양당의 결단과 합의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로서 지방선거가 54일 남았다. 5월 12일 후보자 등록까지 겨우 한 달 남짓 남았다”며 “선거구획정만 급한 것이 아니라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확대 등 제도 개선 방안 논의도 함께 이뤄줘야 하나 이 급박한 시간표를 앞에 두고도 거대양당은 여전히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기초의원 선거구당 3인 이상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오는 6월 지방선거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이에 반대하면서 논의 자체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 의원이 권성동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를 향해 “집권 1년차 여당 원내대표로서 통 큰 협치의 결단을 내려주시길 당부드린다”고 촉구한 이유다. 이 의원이 단식농성에 돌입하면서 국회 안에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확대를 위한 농성장이 두 곳으로 늘었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이은주 의원이 단식농성을 하는 로텐더홀을 찾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이탄희 의원과 국회 본관 앞에서 농성을 함께 하는 모습도 보였다. 앞서 민주당 의원 74명은 지난 4일부터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담은 법안 처리를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이탄희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며 “다음주 예정된 국회 본회의까지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오늘까지도 아무런 태도 변화가 없다면, 정의당과 민주당의 동의만으로 ‘연합처리’할 것을 주장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주말부터 중대선거구제 및 광역의원 정수 확대 등을 놓고 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다음 주는 선거제도 개선을 위해 결단해야 하는 마지막 시한”이라며 “양당 원내대표의 상견례 예방도 필요하지만 공직선거법 개정 등 시급한 현안 논의에 바로 속도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대통령은 권한 나누고…총리는 자리 걸고 직언을”[최광숙의 Inside]

    “대통령은 권한 나누고…총리는 자리 걸고 직언을”[최광숙의 Inside]

    “책임총리제가 실현되려면 대통령은 총리와 권한을 나누고, 총리는 언제든지 사표 쓸 각오로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법학교수회장인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제 아래에서 총리의 권한은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장관 인선 시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지만 후보가 2~3배수로 좁혀지면 대통령이 총리 의견을 물어보는 방식을 통해 실질적인 협의를 하는 것을 정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과 총리의 관계는.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을 통할한다고 헌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총리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보니 큰 문제가 생겼을 때 대통령 대신 총리가 책임을 지는 ‘방탄총리’, ‘허수아비 총리’가 많았다.” -책임총리제의 핵심은 인사다. “대통령과 총리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윤석열 당선인이 앞으로 장관 인선 시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대신 총리와 복수의 장관 후보자를 놓고 협의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많이 보여 줬으면 좋겠다. 총리가 장관 임명에 관여하는 것이 알려지면 장관들이 총리 말을 잘 듣고, 총리는 자연스럽게 행정 각 부를 통할하면서 책임총리로 이어진다.” -결국 대통령과 총리 간 신뢰가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대통령과 총리 간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책임총리로 간다. 대통령은 총리를 국정의 주요 파트너로 존중해야 한다. 대통령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 줘야 장관들이 총리를 패싱하고 청와대와 직거래하는 일이 줄어들고, 대신 총리에게 보고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려면 대통령이 총리와 권한을 분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총리는 행정의 관리자로서 역할을 하고, 외교·국방 등 중요한 국가 정책은 대통령이 결정하면 된다. 대통령 권한이 너무 강하면 그 앞에서 대놓고 얘기할 사람이 드물어진다. 대통령이 마음을 열고 총리와 장관의 의견을 듣고 충분히 토론해야 한다.” -책임총리의 역할은. “총리는 국정에 대해 완전히 파악해야 한다. 대통령이 못 볼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날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대통령 눈치를 보면 안 된다.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을 때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총리다.”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은 무슨 의미가 있나. “대통령은 총리 또는 장관들과 더 자주 만나 업무 협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대통령이 장관을 불러 소통하며 일하는 일이 많아지면 청와대 ‘비서 정치’는 줄어든다. 그게 정치개혁이고 행정개혁이다.” -청와대 비서실 역할이 줄면 총리와의 관계도 변화가 온다는 건가. “윤 당선인이 책임장관·책임총리제를 도입한다고 공언해도 청와대 비서실이 강력한 기능을 발휘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윤 당선인의 장점은 ‘소통’에 있다. 윤 당선인이 장관과 소통하면 자연스럽게 총리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 NGO학회 등 3곳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 분석’ 학술회의

    NGO학회 등 3곳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 분석’ 학술회의

    20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분석하고 한국사회의 변화를 전망하는 특별학술회의가 6일 한국NGO학회(회장 원준호 한경대 교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정해구), (사)내나라연구소(이사장 김영래 전 동덕여대 총장) 공동 주최로 서울시 서초동 국립외교원(원장 홍현익) 회의실에서 열렸다.양병기 청주대 명예교수(전 한국정치학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학술회의에서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지 정당에 대한 선호와 상대정당에 대한 거부 등 정서적 요인이 투표 기준이 된 점을 이번 선거의 특징으로 꼽았다. 아울러 종래 세대 간 및 소득 수분별로 지지 정당이 다른 경향이 지속된 가운데 보수당의 서진과 민주당의 동진이 나타나는 등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완화된 점, 20대가 성별에 따라 지지 정당이 나눠진 점 등이 향후 정당정치를 변화시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토론에 나선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정책과 자격을 검증하는 토론이 부재했던 점을 지적했고 향후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또 이창용 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대표는 대의제를 단지 보완하는 시민정치가 아니라 대의제와 경합하고 부분적으로 대체할 수도 있는 시민정치를 통해 한국 정치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제안하며 읍면동 자치의 강화를 제안했다. 나아가 지역 정당이나 유권자 단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정책정당을 유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상복 목포대 교수는 토론을 통해 중앙과 지방이라는 불균형 구도를 수정함과 아울러 자치가 가능한 규모에서 지역성을 풍부하게 하는 자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촛불혁명 후 이내 여야 구도가 바뀐 점을 주목하면서 현 정부가 정치개혁에 있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점, 그리고 보수 세력이 결집한 것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현 정부가 권한 공유와 분권 등에서 소홀했던 점을 지적했고, 선거 과정에서 양성평등의 원칙이나 가치를 견지하며 공감대를 확보하는 데 실패한 점을 아쉬워했다. 토론에 나선 이광재 한국 매니페스트 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여당의 패배는 현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고, 향후 정치적 의제는 거대 정책 담론뿐만 아니라 생활정치에서 제기되는 요구에 부응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고 우리 사회의 회복력을 복원하는 데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 “‘졌잘싸’ 프레임 갇히면 안돼”…민주 초선의원, 토론회서 쓴소리 경청

    “‘졌잘싸’ 프레임 갇히면 안돼”…민주 초선의원, 토론회서 쓴소리 경청

    대선 패인 분석 돌입한 민주…“전략 실패가 원인”외부인사 포함 평가기구 구성·백서 발간도 ‘박차’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졌잘싸’ 프레임에 갇히면 안된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더민초는 30일 오전 국회에서 대선평가 경청토론회 1차 총괄평가를 개최하고 이번 대선에 대해 평가했다.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영인 의원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부터 0.73%포인트라는 근소한 차이로 석패했지만 가치적으로는 참패했다는 평가도 있다”면서 “대선결과에 대해 겸허하면서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패배는 분명한 패배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민주당의 전략 실패에 돌렸다. 유 대표는 “탄핵 세력이 부활한 책임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있다”며 “‘졌잘싸’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된다. 이재명 후보의 석패, 민주당의 참패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선거 내내 근거 없는 낙관론이 팽배했던데다 전략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네거티브에 올인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기본소득과 대장동 사건, 반여성주의 흐름 등의 대응에 우왕좌왕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체성 약화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던졌다. 유 대표는 “도덕적 책임감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 리버럴이라는 ‘민주당다움’ 이미지가 기득권과 내로남불, 무능 프레임으로 대체됐다”며 “민주당의 위기는 시대정신과 가치 부재의 위기다. 민주당의 존재 이유에 대해 재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촛불 집회로 형성된 이른바 ‘촛불 연합’은 5년간 서서히 해체되어왔지만 새로운 지지 기반이 창출되지 않았다”면서 민주당이 지지기반 구축에 실패했음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치개혁을 지지하는 여러 정파와 연합해 정치교체 연대를 구성하라”며 “이재명 후보가 공론화한 일련의 의제를 법제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이재명 상임고문에 대해서는 “‘이재명의 정부’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브랜드 확립에 실패했고, 정치교체론은 너무 늦게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대선 평가기구 구성 및 백서 발간에도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윤호중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백서작업은 진행 중이고, 곧 평가기구를 만들어서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평가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평가기구 구성에 대해서는 “당내 평가뿐만 아니라 외부 인사 외부 전문가들 평가도 포함이 되고, 외부 여론조사 기관 조사를 통해서도 객관적인 평가를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 “‘졌잘싸’에 갇히면 답 없다” 민주당 토론회서 쓴소리

    “‘졌잘싸’에 갇히면 답 없다” 민주당 토론회서 쓴소리

    초선의원 모임 주최 대선 평가 토론회“이재명의 석패·민주당의 참패 분석해야역사상 가장 약한 상대에게 뼈아픈 패배”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이 주최한 대선 평가 토론회에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프레임에 갇히면 답이 없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30일 국회에서 ‘더민초 대선 평가 경청토론회’를 열었다. 발제자로 나선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겸 정치컨설턴트는 “이번 대선은 수치적으로는 0.7% 포인트차 석패지만 가치적으로는 참패”라며 “민주당은 왜 존재하는가”라고 물었다. 유 대표는 “탄핵 세력이 부활한 책임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있다”며 “‘졌잘싸’ 프레임에 갇히면 안 된다. 이재명 후보의 석패, 민주당의 참패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재명 후보의 막판 추격전은 높게 평가하지만, 역사상 가장 약한 상대 후보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며 “압도적인 정권심판론 속에서 인물 경쟁력에서도 압도하지 못한 비호감 레이스였다”라고 평가했다. 유 대표는 특히 대선 패인으로 ‘전략 부재’와 ‘민주당다움의 부재’를 들었다. 그는 “선거 내내 근거 없는 낙관론이 팽배했던데다 전략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네거티브에 올인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기본소득과 대장동 사건, 반여성주의 흐름 등의 대응에 우왕좌왕했다”고 비판했다. 또 “도덕적 책임감과 공동체에 대한 헌신, 리버럴이라는 ‘민주당다움’ 이미지가 기득권과 내로남불, 무능 프레임으로 대체됐다”며 “민주당의 위기는 시대정신과 가치 부재의 위기다. 민주당의 존재 이유에 대해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향후 전략에 대해 “당론으로 채택한 정치개혁 법안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며, 유야무야하면 반드시 역풍을 맞을 것”이라며 “평등법, 이주민, 장애인 권리 향상 등 다원주의 사회로 가는 진보적 가치 실현을 적극 추진하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주도하는 반동적 혐오정치에 대해 초강력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재명 등판론’에 대해서는 “강대강 대치 국면에 함몰된 위험이 있다”며 “대선후보로서 매우 소중한 전략자산은 아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발제자인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촛불 집회로 형성된 이른바 ‘촛불 연합’은 5년간 서서히 해체돼왔지만 새로운 지지 기반이 창출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재명의 정부’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브랜드 확립에 실패했고, 정치교체론은 너무 늦게 등장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 민주, 김동연 ‘새로운물결’에 합당 제안…“李·金 선언 실천하자”

    민주, 김동연 ‘새로운물결’에 합당 제안…“李·金 선언 실천하자”

    6·1 지선 앞두고…출마 예상 김동연에 통합·정치개혁 ‘제안’합당 후 당내 경선 ‘유력’…金 “어떤 것도 열려 있다”더불어민주당이 28일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에게 양당의 통합 논의와 정치개혁추진기구 공동 구성을 공식 제안했다. 6·1 지방선거를 두달여 앞두고 경기지사·서울시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김 대표에게 합당을 통한 당내 경선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지난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이재명 상임고문과 김 대표가 함께 발표한 정치교체 공동선언을 거론한 뒤 “이재명·김동연의 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정치개혁추진기구를 양당이 공동으로 구성하자고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 활동과 함께 양당의 통합 논의를 개시할 것을 정식으로 제안한다”고 말했다. 앞서 김 대표는 대선 기간이던 지난 1일 이 상임고문과 만나 정치교체와 권력구조 개편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 두 사람은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책임총리제를 포함한 개헌,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정치개혁 방안에 대해 뜻을 모았다. 이후 김 대표는 후보직을 내려놓고 이 고문 지지를 선언했다. 민주당이 새로운물결에 합당을 전격 제안한 배경에는 김 대표의 경기지사 등 지방선거 출마 가능성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여러 차례 방송을 통해 출마 의지를 드러낸 김 대표를 향해 민주당 소속으로 선거를 치르라고 손짓하는 셈이다. 김 대표는 대선에서도 이 고문과 단일화에 성공해 사실상 범민주 후보로 분류되는 만큼 민주당 주자로 나서야 한다는 게 당 안팎의 중론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합당 절차를 마무리 지은 후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로 선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 대표가 예상대로 경기지사에 출마할 경우 이미 출마를 공식화한 염태영 전 수원시장, 안민석·조정식 의원과 겨루게 된다. 비대위 관계자는 “(통합 제안이) 대선 때 한 약속을 구현하기 위해 힘을 합치자는 선언적 의미”라면서 “당대당 경선이 아닌 합당한 상태에서 경선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의 민주당 내 기반이 약하다’는 지적에는 “여론조사 50%, 권리당원 50%라는 경선 룰은 여러 기구에서 합의만 하면 상황에 맞춰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라며 여론조사 비중 확대 가능성도 시사했다. 김 대표도 이날 KBS 라디오에서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냐’는 질문에 “연대가 됐든 합당이 됐든 그 문제는 (민주당이) 분명한 의지가 있고, 실천하겠다는 액션을 취한다면 부수적인 것”이라면서 “어떤 것도 열려 있다”고 긍정적 태도를 취했다. 김 대표는 민주당의 공식 제안 다음날인 29일 오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에 대해 논의하고 곧바로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물결 관계자는 “(당원들은) 대표와 최고위원의 결정을 전적으로 따른다는 스탠스(태도)”라며 민주당과의 통합에 대한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국힘·尹, 민주 새 원대와 관계설정 어떻게…전초전은 4월 국회

    국힘·尹, 민주 새 원대와 관계설정 어떻게…전초전은 4월 국회

    여야 4월 국회서 본격 협상 전망공직선거법·추경·총리 인선 등 과제‘여소야대’ 尹 정부 여야관계 엿볼 예고전더불어민주당이 박홍근 신임 원내대표를 선출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국민의힘이 민주당 새 원내지도부와 어떻게 관계설정을 해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정치권에서는 인수위 기간 여야 원내지도부 협상 상황이 사실상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의 여야관계를 미리 전망할 수 있는 예고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박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조만간 상견례를 가질 예정인 가운데 첫 시험대는 4월 임시국회가 될 전망이다. 3월 임시국회가 4월초까지 예정돼 시간상 촉박하다는 점에서 여야는 곧바로 4월 임시국회를 열기로 합의하고 주요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당은 새 원내지도부가 임기를 시작하고, 국민의힘은 김 원내대표가 4월말로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임시국회가 열리며 양측의 기싸움이 상당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원내대표로서는 정권교체기에 자신의 투쟁력을 증명해야 하고, 김 원내대표서는 윤석열 정부의 5월 출범에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유종의 미’를 거둬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4월 국회의 주요 현안은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지방선거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추가경정예산 등이 꼽힌다. 현재 정개특위는 6·1 지방선거에 최소 3인의 기초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전체회의에서 상정했으며, 법안 처리를 주장하는 민주당과 이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추경도 다시 논의된다. 공직선거법과 달리 추경은 여야의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인수위는 50조원 규모의 추경 추진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지며, 이와 관련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재원 마련 등에 관한 계획을 보고받았다. 박 원내대표는 전날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김 원내대표를 찾아뵙고 추경안을 포함한 민생 입법 협상을 개시할 것”이라며 “더불어 대선에서 여야가 약속한 대장동 특검과 정치개혁 입법도 국민의힘이 한 발짝 앞으로 나오도록 설득하겠다”고 했다. 가장 큰 ‘뇌관’으로 꼽히는 새 정부 총리 인선 문제도 기다리고 있다. 윤 당선인은 4월중 초대 국무총리를 인선할 예정으로, 180석에 육박하는 ‘거여’의 벽을 넘어야 한다. 웬만큼 동의할 수 있는 인사가 아니라면 민주당은 총리 낙마에 당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과거 박근혜 인수위 등에서 있었던 초대 국무총리 낙마 사례가 반복될 경우 윤 당선인으로서는 취임도 하기 전에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총리 인선을 둘러싼 파열음은 새 정부 임기초 여소야대 국면에서의 더 큰 혼란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원내대표로서는 총리 인선 문제까지 어떻해든 마무리 지으려 할 것”이라며 “차기 원내대표 체제에서 정부조직법 등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박홍근, “협치, 尹과 국힘에 달려...민생입법 협상 곧바로 개시”

    박홍근, “협치, 尹과 국힘에 달려...민생입법 협상 곧바로 개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25일 “여야가 얼마나 협력하느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와 국민의힘 태도에 달려있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전날 윤 당선인과의 통화를 언급하며 “(윤 당선인이) 민생과 안보만큼은 여야가 없다는 마음으로 힘 모으겠다며 국회와 적극 소통해줄 것을 요구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새로운 여야 관계 설정의 첫 관문은 3∼4월 국회를 민생과 개혁의 장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를 만나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민생입법 협상을 곧바로 개시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대선에서 여야가 약속한 대장동 특검과 정치개혁 입법도 국민의힘이 한 발짝 앞으로 나오도록 설득해가겠다”고 강조했다. 박 원내대표는 “견제와 협력은 야당의 책임과 의무”라며 “견제는 강력, 확실히 하면서 국민을 위한 협력의 교집합을 넓혀 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무능, 독선, 불통, 부정부패 등 국민의힘 정권의 잘못은 국민 편에서 따끔하게 지적하되 잘한 일에 대해선 제대로 평가해주고 필요한 일에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오후 원내수석부대표 발표를 시작으로 원내대표단 인선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 오는 29일부터는 원내대표단 활동을 본격화할 계획”이라며 “경제 능력, 소통 역량, 당내화합을 기준으로 구성될 제3기 원내대표단은 강한 야당을 위한 베이스캠프, 위기를 타개할 비상본부”라고 강조했다.
  • 민주 새 원내대표에 이재명계 박홍근 … ‘檢·언론개혁’ 강공 예고

    민주 새 원내대표에 이재명계 박홍근 … ‘檢·언론개혁’ 강공 예고

    더불어민주당의 새 원내사령탑에 3선의 박홍근(53·서울 중랑을) 의원이 선출됐다. 신(新)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박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향후 민주당은 이재명 상임고문을 중심으로 세력이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박 원내대표는 코로나19 손실보상 등 민생과 검찰·언론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을 예고했다. 민주당은 24일 의원총회를 열고 원내대표 선거를 실시했다. 박 의원은 3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낙연계 박광온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1차 투표에서 10% 넘게 득표한 박홍근·박광온·이원욱·최강욱 의원이 2차 투표에 올랐고, 2차 투표에서 박홍근·박광온 의원이 상위 2위 안에 들었다. 1∼3차 투표 모두 득표수는 공개하지 않았다.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막내인 박 의원은 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내고 시민운동에 몸담았다. 19대 총선 때 여의도에 진출한 이래 박원순계로 분류됐다. 한때 ‘민평련(경제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국민연대)계’로 분류됐으며 당내 최대 의원모임인 ‘더좋은미래’ 소속이다. 지난해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를 지지하면서 캠프에서 비서실장을, 선거대책위원회 출범 후 초기에 비서실장을 맡았다. 박 원내대표는 당선 인사에서 “쇄신과 개혁의 깃발을 들고 국민과 민생 속으로 들어가겠다”며 “개혁과 민생을 야무지게 책임지는 강한 야당을 반드시 만들어 국민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밝혔다. 선출 후 기자들과 만나서는 “가장 시급한 것은 4월 국회를 민생 개혁 국회로 만드는 것이다. 핵심은 코로나 피해에 대한 완전하고 신속한 보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다”라며 “재원을 어떻게 만드냐를 갖고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라 보다 신속하게 함께 머리를 맞대서 코로나로 힘든 민생 현장에 단비를 내리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가 이 상임고문과 이낙연 전 대표의 대리전으로 치러지면서 친문(친문재인) 세력과 통합하는 것이 박 원내대표의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당내 세력은 이재명계가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조기 등판론이 힘을 얻을 수 있고, 8월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이 상임고문이 등판할 수도 있다. 다만 이 상임고문 중심으로 과도하게 쏠리면 견제론이 나올 수도 있다. 172석 거대 야당의 입법 수장으로서 윤석열 정부, 국민의힘과 관계 설정도 중요한 과제다. 박 원내대표는 검찰개혁, 여성가족부 폐지 등 핵심 쟁점에 있어서 국민의힘과 분명하게 각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검찰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신구 권력 충돌에 이어 여야가 강대강으로 대치할 가능성도 커졌다. 대선 패배 후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강경 투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1차 투표에서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던 열린민주당 대표 출신의 최강욱 의원이 깜짝 선전을 한 데는 강력한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초선의원 모임인 ‘처럼회’의 지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6·1 지방선거의 선거구를 획정하는 문제를 둘러 싸고도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기초의원을 최소 3명 뽑는 중대선거구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이날 전체회의에 상정했으나,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선거법은 통상 여야 합의하에 통과하는 것이 관례지만 민주당이 정의당과 힘을 합쳐 단독 처리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7월 상임위원장을 재배분하면서 야당인 국민의힘에 넘기기로 한 법제사법위원장은 민주당이 야당이 된 만큼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다. 여가부 폐지에 당내 전반적인 기류가 부정적이라 정부조직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과 강하게 부딪칠 수 있다.
  • [서울포토]서울시민사회노동단체 정치제도개혁촉구 기자회견

    [서울포토]서울시민사회노동단체 정치제도개혁촉구 기자회견

    23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정치제도개혁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소속 관계자들이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2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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