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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 잔]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 내놓은 작가 김인배

    [저자와 차 한 잔]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 내놓은 작가 김인배

    인간에게 기억은 무엇일까. 한 작가의 말을 들어본다. “기억은 마구 흩어놓은 그림판의 퍼즐 조각이라고 할까요. 아스라한 곳에서 허공을 울리며 술렁이는 바람처럼 어슴푸레 꼬리를 감추고 마는 상념들, 그 흩어진 조각들이 어디쯤에선가 만나 옛날의 일들을 시도 때도 없이 그립게 하기도 하고….” ●‘기억’을 정면으로 다룬 이례적 작품 기억한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해주는 중대한 정신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삶 자체가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되는 노정(程)이기 때문이겠다. 작가 김인배(64)씨가 무려 20년 가까이 절필 상태로 지내다가 최근 ‘기억’을 주제로 장편소설 ‘바람의 끝자락을 보았는가’(황금알 펴냄)를 세상에 내놓았다. 한국 소설에서 지금껏 ‘기억’ 그 자체를 문제 삼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동안 주로 역사 연구에 전념하며 관련 논문을 발표하거나 한국과 일본 고대 관계사에 얽힌 학술 서적을 출간하는 등 소설 이외의 분야에 정력을 쏟았지요. 오랜 기간 소설 창작은 중단하고 있었지만 남이 쓴 소설들은 그래도 부지런히 읽은 셈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침묵의 긴 세월은 기실 저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 어떤 것인지를 모색하는 기간이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자꾸 나이를 먹어갈수록 덧없이 흘려보낸 시간들만큼 쌓여 온 기억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이 이번 소설을 쓰게 된 동기였다.”고 밝힌다. 아울러 “무엇보다 우선 소설 문장의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 힘들었다.”고 하면서 “논문 투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소설 문체로 바꿔보려고 노력하며 꽤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어떤 소설일까. 소설 속의 두 남녀 주인공은 각자 단순한 고통을 넘어 공포에 가까운 감정으로 마음속에 회한을 남기는 일, 그러한 상실의 아픔과 고통이라는 ‘기억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유사한 경험들을 간직하고 있다. 소설은 이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을 지켜보는 제3의 인물인 화자(話者)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제목 ‘바람의 끝자락’은 시간에 의해 퇴색되고 파괴되며 변하지 않는 게 아무것도 없는 불가항력적 자연의 섭리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의미한다. 또 그런 상황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덧없고 허무한 감정의 실체를 이중으로 상징하고 있다. ●바다·섬으로 원초적 인간 모습 그려 소설에서 기억의 출발지는 바다와 섬이다. 바다는 모태의 양수(羊水)와도 같은 질료로 그려진다. 그리고 섬은 자궁 속에 든 인간의 원초적 모습을 다룬다. 주인공은 천년 남짓 이전의 실존 인물이었던 백제계 일본 만엽가인(萬葉歌人) 가키노모토노 히토마로의 생애와 노래를 추적하며 연구에 몰두할 동안 어느덧 그를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는 데서 시공일여(時空一如)의 신비로운 현상을 실감한다. 그가 천년도 넘은 옛날의 만엽가인을 이 시대에 다시 불러낸 것처럼 죽은 자라도 기억이 있는 한 새롭게 부활시킨다. 작가는 1975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중편 ‘방울뱀’으로 등단했다. 이후 ‘하늘궁전’(문학과 지성), ‘후박나무 밑의 사랑’(문학과 지성), ‘문신’(고려원), ‘비형랑의 낮과 밤’(문학세계사) 등의 소설집을 펴냈다. 1982년에 발표된 중편 ‘물목’으로 올해의 문제 작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다. 글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동화 같은 그림 속 잔혹무도한 이야기

    동화 같은 그림 속 잔혹무도한 이야기

    거 참 귀엽다. 개구리 왕눈이의 아로미가 사는 연못 같은 풍경이다. 그림체도 언뜻 만화 같고 인물들도 슥슥 간단하게 드로잉한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자세히 하나씩 들여다보면 잔혹하다. 온몸으로 화살을 다 맞은 사람도 있고, 성폭행을 당했는지 옷이 반쯤 벗겨진 채 울고 있는 여인도 있고, 아이를 강제로 물에 빠트려 죽이는 인물도 보인다. 어라 이게 뭔가 싶다. 9월 23일까지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2인전에 참가한 전경(37)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는 ‘코메리칸’이다. 미국 뉴저지에서 나고 자랐다. 백인들만 있는 동네였다. 그는 “작품 속 캐릭터가 모두 아시안인 것은 그게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세계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체성의 문제를 미술로 풀어낸 것이다. 연필과 수채를 쓰면서 그걸 한국에서 가져간 한지 위에 펼쳐 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풀어낸 얘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상대적으로 눈에 익숙하다. 작가는 그것을 북한, 중국, 일본 등 한국의 주변국 얘기를 그림 속에다 풀어 놓았기 때문이라 했다. “할아버지가 2년 전쯤 돌아가셨는데 그때 남기신 말씀이 ‘북에 남은 가족을 찾아 달라’는 거였어요. 할아버지가 북에서 결혼하셨고, 월남한 뒤 미국에 왔다는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 빈 공간을 제가 상상한 이야기들로 채워 넣은 겁니다.” 그림이 동화풍이면서도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은 분단, 위안부, 북한 같은 이야기들이 아낌없이 들어가 있어서다. 굉장히 꼼꼼한 작업이라 구석구석 둘러보면서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는지 찾아보는 매력이 있다. 함께 전시하는 강임윤(31) 작가의 고래 연작도 흥미롭다. 어릴 적 울산에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고래가 등장하는 이누이트 신화에서 힌트를 얻어 그렸는데,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굉장히 대담한 필치로 그려 낸 것이 인상적이다. (02)735-8449.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한민국 건국이념, 미국産 아닐세”

    “대한민국 건국이념, 미국産 아닐세”

    1948년 그 모습을 드러냈던 건국헌법에 대해 널리 알려진 해석은 한마디로 ‘날림 공사’다. 좀 있어 보이는 표현을 쓰자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급격한 이식’ 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어수선하던 해방 공간에서, 더구나 다가오는 광복 3주년에 맞춰 하루빨리 건국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급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을 꼭 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조항은 얼렁뚱땅 통과시키면서도 내각제만큼은 엄청난 몽니를 부려 대통령제로 뒤집었다는 정도다. 이는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가 커 그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일정 정도 진통을 겪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이 주장이 한발 더 나아가면 아주 직설적으로 말해 대한민국 독재자들은 시대 상황상 무죄라는 논리에 가닿는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 수준이 그 모양인데 그 좋다는 해외 명품을 가져다 놔 봤자 어디에다 쓰겠냐는, 대개 국민을 비하하고 독재의 불가피성을 옹호하기 위해 쓰이는 ‘민도’(民度)라는 표현이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도 이 부분에서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 건국헌법을 읽어 나가다 보면 그만 어색해진다. 헌법기초자인 유진오 박사는 건국헌법에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대거 포함했다고 평가했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미국이 이승만 정권에다 헌법상 사회주의적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했을 정도로 좌편향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흥재 서울대 교수는 기업 이윤을 노동자들에게도 분배하라고 못 박아 둔 건국헌법 18조, 소위 말하는 ‘이익균점권’ 조항이 경제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립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얘기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결국 하나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급격한 이식’이란 표현이 성립하느냐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김육훈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은 1948년 시한이 촉박했던 헌법기초위원회에서 건국헌법이 성립됐다는 그동안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구한말, 식민지, 광복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적 시야 아래 건국헌법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조선왕조에 망조가 들 무렵부터 광복한 직후까지 한국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았겠느냐는 지적이다. 더구나 저자는 역사 교사들의 모임인 전국역사교과서모임 회장을 지냈고 초중고 및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이들의 연구모임인 역사교육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현직 역사 교사다. 그래서 독자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듯 부드럽게 풀어 쓴 서술 또한 매력적이다. 저자는 3·1운동을 핵심에 놓는다. 그러니까 그 이전 시기는 왕조를 부활할까, 왕정보다는 그래도 입헌군주제가 낫지 않을까, 아니 차라리 왕정을 없애고 공화주의로 나갈까라는 각기 다른 생각들이 교차했던 시기로 본다. 그러나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마침내 왕정 복고 운동은 종말을 맞고 공화주의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 가지 근거를 든다. 3·1운동 와중에 고종의 친아들 이강을 상하이로 빼돌려 황제 중심의 임시정부를 구성하려다 실패한 대동단 사건이다. 오랜 습관 때문에 왕조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 남아 있어 벌어진 일이었으나 이 사건 이후 왕조 부활 운동은 사라진다. 또 하나는 3·1운동 이후 각종 임시정부의 설립 운동이다. 대조선공화국을 내건 한성정부, 신한민국을 내건 경성독립단에다 너무도 잘 알려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이들 모두 각기 다른 국가명과 정부 조직 체계를 내세웠지만 핵심은 이들 모두 왕정 폐지와 공화주의를 선언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다 ‘3·1운동’을 못 박아 둔 것은 3·1운동이 일제에 한 방 먹인 통쾌한 사건이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 작업에 관여한 이동년 임시의정원 의장은 “우리는 이제 군주제를 부활하려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백히 말해 뒀다. 이승만도 1948년 제헌의회 초대 의장으로 선출된 뒤 기념 연설에서 “대한민국은 1919년의 민국을 재건했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니까 3·1운동을 계기로 이제 우리가 피땀 흘려 싸워서 되찾아야 할 나라는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합의에 모두가 도달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봐야 할 점은 이때의 민주공화국이 ‘우파 정체성’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인물은 조소앙이다. 그의 지향점은 1917년 상하이에서 만난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대동단결선언’에서 이미 확인된다. 조소앙이 기초하고 신규식, 신채호, 박은식 등이 관여한 이 문건에는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하는 때요, 구한국 최후의 하루는 곧 신한국 최초의 하루다. (중략) 그러므로 경술년 융희 황제의 주권 포기는 곧 우리 국민 동지들에 대한 묵시적 선위이니 우리 동지들은 당연히 주권을 계승하여 통치할 특권이 있고….”라는 대목이 들어가 있다. ‘대한제국 끝, 공화주의 시작’을 명백히 선언한 것이다. 이 논리 아래 조소앙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헌장, 193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언, 1941년 임시정부의 건국강령 등 헌법에 준하는 각종 문건 제정 작업에 참여했다. 그 내용도 눈길을 끈다. 조소앙은 기본적으로 우파였으나 좌우파의 최대공약수를 뽑아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치열한 항일투사라는 점을 인정하고 사회주의자들의 주장 가운데 받아들일 내용이 많다는 점도 인정”했으나 “사회주의 러시아에서 무산자 독재란 이름으로 정치적 자유가 소멸되고 있음을 준열하게 지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나 자유주의가 곧 민주주의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미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여전히 돈 많은 이들과 많이 배운 이들의 독재가 이뤄진다.”고 봐서다. “민중을 우롱하는 자본주의 데모크라시”, “무산자 독재를 표방하는 사회주의 데모크라시”를 배격한 자신의 주장을 조소앙은 ‘신민주주의’라 불렀다. 이제는 한물간 듯한 표현을 빌리자면 조소앙식 제3의 길이었던 셈이다. 조소앙이 통합시켜 놓은 이런 큰 물줄기 때문에 길게 보면 남한의 건국헌법이 “자유경제를 주장하면서도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북한의 첫 헌법이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자본주의적 경제 요소를 두루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가 조소앙을 일컬어 “헌법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좀 더 전문적인 논의를 원한다면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서희경 지음, 창비 펴냄)을 참고해도 좋다. 헌정사 연구자인 저자는 만민공동회에서 시작해 3·1운동을 거쳐 임시정부의 헌법과 규약에 이르는 과정을 한국 헌법의 원형질이 생성되는 과정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앞선 저자의 논지와 일치하는 주장을 내놓는다. 동시에 1917년 ‘대동단결선언’을 공화주의의 효시로 꼽고 이에 참여한 조소앙의 중요성을 부각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근대 한국 헌법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점도 흥미롭다. 그동안은 유진오가 그런 인물에 해당한다고 평가됐다. 1945~48년만을 놓고 보면 유진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조소앙의 역할이 한층 더 근본적이고 유진오의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해뒀다. 더 두껍고 학술적이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입체적 묘사가 돋보인다. 각 권 1만 5000원, 3만 3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학 취업률 발표 전날밤, 어느 인문학 교수의 자살

    대학 취업률 발표 전날밤, 어느 인문학 교수의 자살

    은은한 묵향을 뽐냈던 대전의 한 사립대 교수가 지난 22일 밤 자신의 집 안방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충청서단의 중견 서예가로 활동하다 뒤늦게 대학강단에 선 Y(57·서예한문학과) 교수는 정통 교수사회에서 볼 땐 늦깎이였지만, 환갑을 4년 앞둔 올해 박사학위를 받았을 만큼 학문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지역 교수사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그를 잘 아는 동료 교수는 “평소 점잖은 분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유족은 경찰조사에서 “Y 교수가 평소 졸업생의 취업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족의 말대로라면 대학 취업률에 등 떠밀린 교수가 압박을 못 이겨 자살한 것이 된다. 깜짝 놀란 대학 측이 “Y 교수의 학과는 순수 인문·예술 전공이어서 (졸업생) 취업률에 대한 압박은 없었다.”고 부인하는 것은 당연하다. 취업률이 낮았던 이 대학은 지난해 재정 지원 제한대학에 포함됐다. 퇴출당하지 않으려면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 이 대학은 절치부심 끝에 지난해 50%대였던 취업률을 올해 60%대로 끌어올렸다. 획기적인 개선이다. 취업률 스트레스와 자살과의 상관관계가 이 사건의 핵심이다. 예고된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족과 대학의 주장이 다른 만큼 진실규명은 경찰의 몫이 됐다. 취업률을 높이는 데 교수를 내모는 지금의 현실은 분명히 정상이 아니다. 대학의 본질은 연구와 교육이기 때문이다. 대전의 한 사립대 교수는 “논문 덜 써도 좋으니까 빨리 학생들 취업시켜 달라고 본부에서 얘기한다.”며 “대학교수로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서울지역 대학 빼고는 정체성 위기가 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자 취업 안 시키고 싶은 교수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그러나 취업 한명 시켰느냐 못 시켰느냐가 교수 승진할 때 실적으로 반영된다면 곤란한 얘기”라고 말했다. Y 교수가 속한 서예한문학과 등 인문대는 취업률 제고에 한계가 있고, 이는 정부와 기업이 해결할 문제라는 시각이다. Y 교수의 사건을 계기로 교육과학기술부의 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세계 어느 곳에도 취업률로 대학 등급을 매기는 나라는 없다. 교육 정상화, 연구 정상화 측면에선 독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목원대 도중만(50) 역사학과 교수는 “이런 식의 정책이 계속되면 서울 소재 대학 빼고 지방대학은 다 죽는다.”면서 “Y교수 사건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천주교, 올바른 신앙찾기 나섰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포한 ‘신앙의 해’(10월 11일∼2013년 11월 24일)를 앞두고 한국 천주교가 올바른 신앙 찾기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1일 천주교계에 따르면 서울대교구와 춘천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와 본당, 단체가 ‘신앙의 해’와 관련한 각종 교육, 연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평신도들도 심포지엄과 평신도대회 등 다채로운 ‘신앙 쇄신’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되살리기 의미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교회교리서 반포 20주년을 맞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새로운 복음화’를 모토로 제정한 시기. 갈수록 삶과 신앙의 괴리 현상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가톨릭 전례와 의식의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되살려보자는 취지에서 정한 일종의 캠페인 행사랄 수 있다. 한국 천주교는 신앙의 정체성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초점을 맞춰 ‘신앙의 해’ 기간중 신앙 쇄신 운동을 중점적으로 벌여 나갈 방침이다. 청소년 세대의 급속한 감소와 노인세대의 폭발적 증가, 성사 생활과 신앙교육 참여 감소가 대세인 만큼 위기 극복을 위한 사목활동과 신행의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교구, 새달 본당 회장단 연수 서울대교구는 9월 12일 본당 회장단 연수를 통해 최일선에서 사목하고 있는 지역 본당 회장단에 ‘신앙의 해’와 관련한 안내와 특강을 실시한다. 이와 관련해 사목국을 중심으로 교구·본당별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교구는 10월 9∼12일 사제연수회를 열어 바른 신앙 찾기와 관련한 사제단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며 대구대교구도 현재 진행 중인 교구 시노와 연계해 새 시대에 맞는 새 복음화 전략을 집중적으로 도출할 예정이다. 교구가 사제연수나 특강에 치중한다면 각 본당은 좀 더 구체적인 교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 특징이다. 서울 성북동본당은 9월 5일부터 본당 신자들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함께 읽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읽기반’을 운영하며 서울 연희동본당은 9월 중 교리서에 대한 강좌를 실시한 뒤 10월 14일 ‘가톨릭 교회교리서’를 내용으로 한 교리경시대회를 열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한국평협·회장 최홍준)는 ‘신앙의 해’ 개막일에 맞춰 10월 11일 ‘평신도사도직과 공의회’란 주제의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11월 9∼10일 대구에서 ‘신앙의 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주제로 평신도회의도 연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박사논문은 ‘홍경래 난’… 高大 한국사 강의 마치고 출국 앞둔 앤더스 칼슨 런던대 교수

    박사논문은 ‘홍경래 난’… 高大 한국사 강의 마치고 출국 앞둔 앤더스 칼슨 런던대 교수

    앤더스 칼슨(46)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교수는 박사논문으로 19세기 초 홍경래의 난을 연구했다. 덕분에 한국사 연구가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특이하게 평가된다. ‘홍경래 난’(1811년) 연구자는 칼슨 교수를 포함해 오수창 서울대 교수 등 국내외로 3명밖에 없다. 한국사에서 순조-헌종-철종으로 이어지는 1860년까지 세도정치와 민란 등 19세기 연구는 거의 중세의 암흑과 가까운 수준으로, 18세기 영·정조 시대에 대한 화려한 조명과 비교하면 더욱더 척박하다. 20일 서울 효자동에서 만난 칼슨 교수는 “원래 근대 한국에 관심이 있는데, 먼저 19세기 한국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19세기는 ‘민란의 세기’로 관심이 많았다. 지도교수인 유럽 한국학의 대모인 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교수가 홍경래의 난을 연구해 보라고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초 방한해 고려대 국제하계대학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강의한 그는 27일 출국하기에 앞서 한국의 역사학자들과 막걸리 파티로 사랑방 좌담회를 열고 있었다. “19세기 초 민란이 많았던 이유는 국가가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중앙정부와 상업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지방사회 사이에 사회·경제적 갈등이 불거져 홍경래 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19세기에 조선 왕조의 국력은 어디서부터 약해졌나? 칼슨 교수는 1809~1815년의 대흉년을 이유로 들었다. 6~7년간의 가뭄과 흉작은 조선의 국부, 경제력을 바닥에서부터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그는 “20세기 초 식민지배의 아픈 경험 때문에 19세기 조선을 비판적으로 보는데, 너무 비판적으로 보면 안 된다. 긍정적으로 보라.”고 덧붙였다. 칼슨 교수는 “19세기 세도정치와 어린 왕들의 리더십 부재를 자꾸 비판하는데, 부적절하다. 조선에는 500년 전통의 관료제도가 버티고 있었기에 리더십에 대한 문제제기는 적절하지 않다. 또한, 세도정치도 관료제도하에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리더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결정과 행동이 중요하고, 사회 변화는 개인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 국고가 탕진돼 세금을 더 거두려고 제도를 바꾸자 1860년대에 다시 민란이 일어난 것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의 식민지화는 내부로부터의 붕괴가 아니라 외부 변수 즉, 일본의 야심과 서양국가들의 조선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만약 홍경래의 난이 성공했더라도 성공적인 근대화로 가기보다는 제국주의적 압력으로 조선은 훨씬 더 약해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9세기 말 동학혁명 역시 제국주의적 압력으로 성공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덧붙였다. 한류가 유럽의 한국학 연구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평가도 하였다. “K팝과 한류가 유럽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를 끌자, 최근 런던대 한국학 신입생이 30여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10년 전에는 5명에 불과해 폐강될까 조마조마했다며 방긋 웃는다. 그는 “런던대는 학비도 있고, 입학 조건도 까다로워서 적지만, 학비가 없는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한국학과에는 100여명씩 몰린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스톡홀름대학을 마치고 그저 한국에 매료돼 1991~1993년 2년 6개월 한국에서 살았다는 그는 “런던대 한국학과에서 1학년을 마치고 나면 고려대의 교환학생으로 오는데, 학생들이 완전히 한국에 넘어간다.”고 했다. 홍대, 이대, 명동, 대학로 등 24시간 다이내믹하게 재밌고 즐겁게 놀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한류 덕분에 신입생이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국학의 정체성은 무엇인가.’가 유럽 학계에서는 새로운 고민거리다. 한국을 알고 싶어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늘어났지만, 한국학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과제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시론] 한국외교의 구조적 비관론과 신뢰 회복/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시론] 한국외교의 구조적 비관론과 신뢰 회복/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천안함 사건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이어진 2011년 한국 외교의 화두는 북한과 중국을 한 축으로 하고 한국-일본-미국을 다른 축으로 하는 한반도 ‘신냉전’ 시대의 도래였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방한 불필요’ 발언, 일본 민주당 정부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행으로 이어진 2012년의 화두는 ‘신냉전’ 체제의 내부 균열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한·미·일 간의 공고한 안보공조체제가 요구되지만 극단으로 치닫는 최근의 동북아 상황은 한국외교의 비전 부재와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감소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장과 이익을 주장하고 이해를 구하려면 무엇보다 한국 외교에 대한 구조적 비관론을 경계해야 한다. 구조적 비관론의 핵심은 한국 외교의 태생적 한계론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이 한국 외교의 발목을 잡아 한국이 국제정치에서 독창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한국 외교의 기본전제는 자국 이익 추구임을 잊지 말자는 타당한 조언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한국 외교에 대한 소극적· 폐쇄적 태도는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 외교가 국제정치의 구조적 변화라는 큰 파도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변화의 파도를 적절히 타고 넘느냐는 외교력은 정부의 능력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교의 구조적 비관론이 위험한 이유는 일단 자국 외교에 대한 무기력증이 퍼지기 시작하면 외교는 더이상 국익의 대외적 추구 수단이 아니라 국내 정치용 도구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치사를 돌아보면 정권 말기에 시도한 ‘충격외교’는 정권의 정통성을 회복하거나 대중의 지지도를 높이는 기대효과를 달성하기보다 공들여 구축했던 대외협력관계만 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많다. 1990년대 후반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장담했던 김영삼 정부는 이후 일본 하시모토 정권과 어업협정 개정 샅바싸움에서 어선납포외교에 당하고 아시아 통화위기 때에는 일본 측에 지원을 요청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에도 국민의 정책 지지가 정권 평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독도 방문 다음 날 아산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3.6%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 지지도는 6월 31.4%, 7월 28.2%로 떨어지다가 8월 16일 31.5%로 약간 회복했다. 하지만 58% 이상은 여전히 이명박 정부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최근 한·일 간 ‘외교전쟁’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외교는 기본에 충실한 외교라는 점을 다시 부각시켰다. 외교는 내치의 수단이 아니라 바깥세상(外)과 사귀는(交) 일이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사귐이 깊어지고 지속되는 데 있어 가장 큰 자산은 신뢰다. 이명박 정부는 그간 견지해 왔던 보편주의의 언어로 설명하던 외교정책 기조를 임기 말 들어 한국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급선회해 한국 외교에 대한 신뢰와 정체성의 상실을 초래했다. 한·미동맹을 대북 억지력에 기초한 군사동맹에서 범세계안보에 기여하는 가치동맹으로 격상하고, 북한 인권문제를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인권의 보편적 틀에서 논의했다. 자유시장과 자유무역 원리에 입각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며 ‘글로벌 코리아’ 외교를 주창해온 이명박 정부는 최근 노무현 정부의 신일본독트린과 비슷한 주권외교로 선회했다. 결국 한국 외교의 지속성과 신뢰에 대한 문제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12월 대선에서 어느 당이 집권하건 새 정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편주의에 입각한 한국 외교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노력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 [기고] 전문대가 위기다/고재경 배화여대 영문학 교수

    [기고] 전문대가 위기다/고재경 배화여대 영문학 교수

    2011년도 기준 전문대는 146개교로 우리나라 전체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42%가량 차지하고 있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2010년도 대학 재정지원 사업의 약 10%만을 떠맡았다. 고용노동부와 지식경제부 등 다른 정부 부처는 4.4%만을 전문대에 지원했을 뿐이다. 전문대에 대한 재정적 홀대뿐만 아니라 정부의 특성화고 및 마이스터고 집중 투자와 고졸자 채용 확대 정책은 제한된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전문대 졸업자의 진입이 감소할 전망이다. 후(後)진학 정책도 대부분 일반대를 겨냥해 전문대 존립 기반에 위협이 되고 있다. 전문대의 일부 성공 사례를 모방한 일반대가 직업교육 관련 학과를 무차별적으로 신설, 무임승차한 지도 오래됐다. 전문대의 교육목표와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 전문대의 앞길이 어둡기만 해 암흑의 길을 밝혀줄 역할 모델 발굴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해 도입한 교과부의 WCC(세계적 수준의 전문대) 육성정책은 전문대에 대한 ‘옥석 가리기’ 사업이다. 위기에 직면한 전문대 직업교육 방향 제시의 이정표가 될 WCC 사업은 전문대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정부의 WCC에 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쟁점과 해법을 제언한다. 첫째, 미흡한 재정 지원이다. 정부의 충분한 예산 뒷받침 없이는 WCC 사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정부는 WCC 타이틀을 부여함으로써 WCC 명예와 책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별도의 독자적 예산을 확보해서 집중 지원해야 한다. WCC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인 행·재정적 지원은 전문대의 선도 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모델은 국내 졸업자에 대한 산업체의 입도선매 모델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적으로는 WCC 모델을 해외에 수출하는 글로벌 직업교육 명품 모델로 거듭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구축된 우리나라의 WCC 발전 모델 경험과 노하우를 개도국과 공유하고 개도국의 직업교육 개발을 지원하여 국제사회의 글로벌 직업교육 공동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과 연계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둘째, 너무 일반화된 현행 WCC 사업 선정지표이다. WCC 사업 평가 지표는 전문대가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이나 내용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지표들이 단기적 성과 도출에 치중되어 있어 전문대가 세계적 명품 프로그램을 육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평가지표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취업률에 대한 획일적 평가, 즉 1년 단위로 성과를 도출하는 현행 평가 방식도 쟁점이다. 단순화된 계량적 성과지표보다는 질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개발이 급선무이다. 또한 특성화된 세계 유수 직업교육기관과의 실질적 산학협력 체결 실적을 선정지표에 투입해 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WCC와 세계적 명성을 가진 산업체가 상호 브랜드를 공동 활용함으로써 윈-윈(Win-Win)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마이스터고’를 통해 중등직업교육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한 바와 같이, 전문대도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 육성을 통해 완성된 고등직업교육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활로를 찾아야 한다. 국제경쟁력을 확보, 성과와 역량을 겸비한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학으로 탈바꿈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위기에 처한 전문대의 향후 역할 모델이자 미래이다.
  • [저자와 차 한 잔] ‘대통령과 루이비통’ 펴낸 연세대 교수 황상민

    [저자와 차 한 잔] ‘대통령과 루이비통’ 펴낸 연세대 교수 황상민

    한국 사람들은 요즘 유난히 명품에 열광한다. 한때 명품은 일부의 사치요 과소비라는 인식이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도 ‘짝퉁’일망정 괜찮은 브랜드의 가방 하나쯤은 갖겠다는 게 보통이다. 그러면 왜 한국인은 이토록 명품에 목말라할까. 명품 아파트, 명품 대학, 명품 서비스…. 온갖 것에 다 접두사 격으로 붙여 특별함을 과시하는 이 ‘명품 심리’를 들여다보면 한국인의 속내를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가 낸 ‘대통령과 루이비통’(들녘 펴냄)은 바로 그 명품 소비 심리를 파고든 흥미로운 책이다. “대통령을 뽑는 선거와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을 고르는 선택은 따져보면 소비의 측면에서 같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명품 가방을 사는 데 들이는 공과 정성이 대통령을 선택하는 열정보다 훨씬 큰 게 우리네 실정입니다.” 심리학자가 왜 오지랖 넓게 소비라는 경제의 영역을 건드릴까. 그 어리석은 질문에 황 교수는 정색한 채 손사래를 친다. “경제학은 흔히 합리적인 선택을 강조하지요. 하지만 경제행위 자체도 인간의 심리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영역입니다. 소비를 경제나 경영의 관점에서만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연구실에 매이지 않고 거리에서 사회 문제들을 해부하고 고민하는 연구 방식 때문일까. 그에겐 보통 ‘황 반장’이며 ‘황크라테스’, ‘셜록 홈스 같은 심리학자’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이번 책 ‘대통령과 루이비통’ 역시 한국인의 유별난 소비 심리를 생생한 현장 탐색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1년도 채 안 돼 스마트폰이 전체 통신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령하는 유행이 자연스러운 현상일까요. 외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런 점에서 한국인의 그 유별난 심리의 저변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계단을 오를 때 한 계단씩 차근차근 밟지 않고 두세 개를 뛰어오를 수 있는 것처럼 모든 행위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소비 역시 규범과 당위에 매이지 않는 상황 심리에 철저히 영향받는 행위이고, 한국인의 명품 신드롬은 그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의 극치라는 게 황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인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한국 상황에 맞게 접근해야지요. 외국에서 수입된 학문과 이론을 그대로 우리 사회에 적용하다 보니 오류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게 당연하지요. 외국인 몸에 맞춰 만든 옷을 한국인에게 억지로 입히려는 꼴이지요.” 소비는 근본적으로 결코 합리적이지 못한 행위인데 기업 마케터들은 그 저변의 심리를 헤아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젠 마케터들도 상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먼저 파고들어야 한단다. 그러면 명품에 휘둘리고 목매는 한국 사람들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셜록 홈스 같은 심리학자 황크라테스가 내놓는 답은 명쾌하다. “한마디로 내가 속하지 못한 특별한 세상으로의 억지스러운 편입이지요. 명품으로 얻는 대리만족과 신분이동, 주류를 향한 비주류의 괴짜스러운 몸부림이랄까.” 비주류에 있다가도 주류로 포함되면 곧바로 그 주류의 세계에 함몰되고 마는 대세의 논리. 이제 그 정체성 혼돈의 주범인 대세 논리를 접어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 “명문대 학생들이 등록금을 절반으로 깎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명품 대학이 명품 강의를 한다면 학생들이 그에 걸맞은 강의료를 지불하는 게 정당한 것이지요. 고가의 명품에 바겐세일은 없지 않습니까.” 결국 명품 심리의 바탕은 명품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천착이 아닌, 주류와 특별함이라는 허울의 추종일 뿐이다.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남에 의해 인정받고 평가받고 싶어 하는 허약함이 문제 아닐까요. 먹고사는 문제가 생활의 전부이던 시절과는 달리 다양한 가치들을 중시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돈은 다양한 것들을 중개할 수 있는 도구임이 틀림없지만 모든 가치를 포괄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지요.”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시론] 오늘날 축구 경기장에선/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시론] 오늘날 축구 경기장에선/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오늘날 축구장은 장외의 모든 분노와 증오가 폭발하는 화약고로 차츰 바뀌고 있다. 지역 라이벌전이나 역사적으로 갈등 관계에 있는 국가 간 경기에는 반드시 경찰과 안전요원이 배치되고 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대형 오페라 공연에는 친절한 미소를 띤 진행요원으로 충분하지만, 국가 간 축구 경기는 진압장비까지 갖춘 경찰력이 없으면 진행하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축구장이란 이름의 화약고는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손꼽힌다.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상징인 바르셀로나의 팬들은 자신들을 억압했던 카스티야 왕조의 레알 마드리드를 맞이하여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는 구호를 경기장 안팎에 써놓는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항만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는 보카주니어스와 부자들의 클럽 리버플레이트가 계급 투쟁을 치른다. 터키에서도 유럽에 속하며 중산층을 대변하는 갈라타사라이와 아시아에 속하며 노동자의 클럽인 페네르바체가 오랜 전쟁을 치러왔다. 평화로워 보이는 네덜란드도 부자 도시 암스테르담의 아약스와 노동자 세력이 주축인 로테르담의 페예노르트가 맞붙을 때에는 수천명의 경찰이 기차역에서 경기장까지 두 팀의 팬들을 원천적으로 격리시킨다. 이러한 상징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2월 이집트 리그에서는 70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외신에 따르면, 경기 결과에 흥분한 팬들의 난동이 아니라, 민주화에 반대하는 수구세력이 경찰의 묵인 아래 조직적으로 축구장에 난입해 저지른 폭력 사태였다. 유럽의 축구장도 이상한 열병에 사로잡히고 있다. 지금 유럽은 위기 상황이다. 유로화는 균형을 잃었다. 경제 위기에 따라 비유럽계 이민자를 향한 악감정도 늘고 있다. 서유럽보다 사회 안전망이 부실하고 문화 격차가 큰 동유럽에서는 극우 패권주의가 발호하고 있다. 내부의 문제를 인종차별이란 예민한 감정을 이용하여 외부를 향해 폭력적으로 발산하려는 의도가 늘고 있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불평등을 양산하여 대규모의 불안정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불만의 감정을 응집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민족주의다. 홉스봄은 ‘세계화, 국가 정체성, 외국인 혐오증’이란 세 가지 상극 관계가 민족주의를 발판 삼아 축구 경기에서 폭력적으로 표출된다고 분석한다. 2010년 12월,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 스파르타크의 팬이 카프카스계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일이 있었다. 곧 러시아 극우민족주의자와 무슬림 소수민족 카프카스계의 거센 충돌로 번졌다. 신나치파와 인종주의 단체들이 축구팬과 연계하거나 일부 팬들마저 패권적 열병에 사로잡혀 발생한 사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경기장에서 정치적 슬로건을 금지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세계적인 혼돈은 격렬한 시위로 나타나고 이는 경찰력의 강화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사회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대규모 야외 공간으로 축구장만 남는다. 그 축구장에서 정치, 인종, 지역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 곧장 경기장은 폭력의 장이 되고 만다. 박종우 선수는 이런 경우와 전혀 다르다. 승리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당연한 사실’을 표현한 게 무슨 잘못이냐는 주장도 들려온다. 물론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FIFA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아무리 보편타당한 것이라 해도 주장과 신념을 표출한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다. 축구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국가 간 경기가 숱하게 열린다. 일본이나 유럽으로 진출하는 선수도 급증하는 추세다. 세계 곳곳의 축구장에서 뛰게 될 우리 선수들은 축구장이 어떤 진공 영역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과 격렬한 이념이 표출되는 공간임을 새삼 깨달을 필요가 있다.
  • 다문화자녀 글로벌 인재로…

    경북도가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기 위한 발판 마련에 나섰다. 도는 최근 대구교육대, 필리핀 사범대, 베트남 껀트대와 ‘해외 다문화 거점대학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15일 밝혔다. 이에 따라 도는 해마다 다문화가정 자녀 20명을 선발해 방학 기간에 어머니 나라인 필리핀 또는 베트남을 찾아 문화를 체험토록 지원할 예정이다. 또 2014년까지 조성할 다문화가족 지원 기금 60억원을 활용해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이들 국가 등에 유학 보내기로 했다. 필리핀 사범대와 베트남 껀트대는 도가 선발한 다문화가정 자녀와 현지 대학생의 교류를 주선하며, 대구교대는 다문화가정을 상대로 정체성 확립 교육, 대화기법 교육, 창의성 교육 등을 하게 된다. 도는 이와 함께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이중언어 교육, 이중언어 영재교실 운영, 이중언어대회, 글로블 영어캠프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사설] 민노총 ‘막말정치’ 대신 노동운동 전념하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어제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전면 철회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통진당의 진로는 분수령을 맞게 됐다. 당비를 납부하는 진성당원 7만 5000여명 가운데 3만 5000여명에 이르는 민노총 당원들의 탈당은 통진당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할 중대변수다. 민노총이 조건부 지지에서 지지 철회로 돌아선 데는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제명을 포함한 당 혁신안이 무산된 데 따른 것이다. 민노총의 지지 철회는 패권다툼에 사로잡힌 통진당, 특히 구당권파에 보내는 엄중한 경고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노총의 통진당 지지 철회를 계기로 노동세력의 정치 참여 문제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민노총과 한국노총의 정치 참여는 적잖이 왜곡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정책 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일부 노조 간부들의 정계 진출 수단으로 활용돼 온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노동자와 서민대중을 위한다는 명분은 찾아보기 힘들다. 민노총은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종북 성향을 이유로 이들에 대한 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8·15 노동자 통일 골든벨’ 행사에서 스스로 종북 성향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을 ‘국민의 원수(怨讐)’로, 한·미 군사훈련을 ‘미국놈들의 전쟁연습’이라고 표현했다. 민노총은 “돌발적으로 발생한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들의 정체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기업노조들이 민노총의 정치투쟁과 투쟁일변도의 행동방식에 염증을 느껴 잇따라 탈퇴하고 있다. 민노총은 이런 현실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민노총이 끝내 운동노선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통진당 지지를 철회했듯 기업노조들 또한 민노총을 외면하게 될지 모른다. 민노총은 차제에 ‘막말정치’를 접고 순수한 노동운동에 전념하기 바란다.
  • “선거인단 최소 100만… 레이스 스타트”

    “선거인단 최소 100만… 레이스 스타트”

    런던올림픽 기간 동안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민주통합당이 14일 대선 경선 레이스를 본격 재개했다. 부진했던 흥행을 되살리기 위한 ‘정책 엑스포’ 등 아이디어 짜기에 몰두하는 한편 당 쇄신안으로 여론의 시선을 끌겠다는 전략이다. 국민 경선 선거인단 모집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인 이날 오후 10시 선거인단 수는 권리당원, 6·9 전당대회 시민선거인단을 포함해 37만명이다. 당 안팎에서는 기대치를 밑도는 저조한 선거인단 실적에 애타는 눈치지만 그나마 모집 초반이라는 것을 위안으로 삼는 분위기다. ●초반 선거인단 모집 예상밖 저조 이에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저 목표 100만명, 최고 목표는 200만명인데 최저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것 같다.”면서 “정권 교체는 절체절명의 과제로 당 대표로서 대선 때까지 신명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오는 25일부터 진행되는 순회 경선은 ‘정책 엑스포’를 도입해 후보들이 자신의 정책과 정체성을 잘 드러내게 할 계획”이라면서 “TV토론도 1, 2부로 나눠 1부는 청중들과, 2부는 후보자 간 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책 엑스포’ 도입… 시선끌기 총력 민주당은 17일 전국 245개 민주당 지역위원장 회의를 열어 선거인단 모집 교육을 실시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3주기인 18일에는 모든 후보들이 참여하는 공동 이벤트도 열 계획이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국민들의 눈길을 끌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이 좀 더 새로운 면모로 일신할 수 있도록 당 쇄신책을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원들도 재외국민들의 경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미국·중국·동남아 등에 대거 출동한다. ●DJ 3주기 때 공동이벤트 추진 대선 경선 후보들의 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손학규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선거 사무실에서 선거대책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며 “김대중 정신이 살아 있고 노무현 정신과 김근태 정신이 꽃피우고 제정구 정신이 함께하고 있다.”고 대선 의지를 내보였다. 문재인 후보는 출마 선언 이후 처음으로 강원도를 방문, 최문순 강원지사를 만나 “강원도가 평화특별자치도의 첫 번째 대상지가 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세균 후보는 가계 부채 종합정책을 발표하며 “‘가계부채특별법’을 제정한 뒤 국가채무관리단을 설립해 가계 부채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김두관 후보는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신혼주택 100만 가구에 무상융자를 추진하겠다는 청년 정책 서약에 서명했다. 박준영 후보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면담해 표심을 모아줄 것을 호소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인사동의 숨은 매력 찍어주세요”

    “인사동의 숨은 매력 찍어주세요”

    종로구는 인사동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문화지구로서의 정체성을 되짚어 보자는 의미로 ‘2012 인사동 사진 공모전’을 개최한다고 14일 밝혔다. 종로구가 주최하고 인사동전통문화보존회가 주관한다. 인사동을 소재로 한 참신한 미발표 작품으로, 인사동 문화지구의 권장업소인 고미술점·표구점·화랑·필방·전통공예품점의 개성과 특징을 잘 살렸거나 인사동에서 이뤄지는 각종 전시 및 행사, 인사동 골목길 풍경과 사람의 모습, 인사동의 매력을 담은 홍보 사진 등을 제출하면 된다. 접수 기간은 다음 달 5일까지다. 이메일(insadong2001@hanmail.net)로 디지털 파일과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예비심사와 본심사를 거쳐 선발한다. 다음 달 11일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최우수상 1명, 우수상 2명, 장려상 3명, 입선 20명 등 26명에게 상금 460만원이 지급된다. 공모 수상작은 다음 달 19일부터 25일까지 인사동 홍보관에 전시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인사동전통문화보존회 홈페이지(www.hiinsa.com)를 참고하면 된다. 인사동의 예술·문화적 가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와 서울시는 1987년 인사동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했다. 2002년에는 국내 최초의 ‘문화지구’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김영종 구청장은 “국내외 예술인을 비롯해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문화공간으로 성장한 인사동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자는 취지로 공모전을 마련했다.”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인사동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더욱 사랑받는 명소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끝없는 백인 행렬… “롬니 선택 영리했다”

    11일 오후 2시쯤(현지시간)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의 유세가 예정된 미국 버지니아주 머내서스시로 들어가는 편도 2차로는 10㎞ 이전부터 막혔다. 롬니가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한 폴 라이언 연방 하원의원이 이날 처음으로 유세에 동행한다는 사실이 특히 관심을 끌어모은 듯했다. ●“라이언 젊다고? 케네디 당선된 나이” 거북이 운전으로 도착한 유세장 ‘해리스 야외강당’ 부근은 벌써부터 공화당 지지자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줄지어 있었다. 유색인종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백인 일색이었다. 남편과 함께 줄 서 있던 캐럴 밀러(66)는 “롬니가 똑똑하고 매력적인 라이언을 지명한 것은 영리한 선택”이라고 반색하며 말했다. ‘너무 젊지 않으냐.’고 묻자 그녀는 “존 F 케네디는 그 나이에 대통령까지 됐는데 뭐가 젊으냐.”고 되레 면박을 줬다. 롬니가 도착하기 훨씬 전인 오후 3시부터 인근 건물 옥상에 경찰 저격수들이 배치되고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밖에 설치된 멀티비전으로 시청하는 가운데 유세가 시작됐다. 머내서스 시장의 연설에 이어 등단한 여성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자.”고 제안하자 모든 참석자가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았다. 참전용사들을 소개하는 순서에 이어 참석자들이 일제히 가슴에 손을 얹고 성조기를 향해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독했다.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라는 공화당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자리였다. 롬니의 도착이 지연되면서 노인들을 포함해 2만여명의 참석자 대부분은 3시간 넘게 서 있어야 했지만 힘든 기색은 거의 없었다. 마침내 오후 5시 15분 롬니와 라이언이 도착하자 행사장은 떠나갈 듯한 환호로 뒤덮였다. 청중의 관심은 롬니보다는 라이언한테 더 쏠린 듯했다. 라이언이 롬니의 ‘능력’을 극찬할 때마다 박수가 이어졌고 “미국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겠다.”고 역설했을 때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롬니도 라이언을 조목조목 칭찬한 뒤 “우리는 기필코 승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기도·참전용사 소개·국기에 맹세로 시작 롬니가 남북전쟁 당시 격전이 펼쳐졌던 머내서스를 부통령 지명 후 첫 유세장으로 선택한 데는 깊은 뜻이 있을까. 행사장 밖에서는 10여명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맞유세’를 했지만, 충돌은 없었다. 머내서스(버지니아주)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MB, 독도 전격방문 대신 휴가차 갔더라면…”

    “MB, 독도 전격방문 대신 휴가차 갔더라면…”

    “대통령이 독도에서 휴가를 보냈다면 어땠을까요? 꼭 ‘전격 방문’을 하지 않아도 우리 땅이란 걸 알릴 수 있었을 텐데….”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지난 10일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38) 성신여대 객원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소식으로 전국이 들썩이던 터라 자연스레 독도가 대화의 주제로 떠올랐다. 2005년부터 독도 홍보활동을 이어 오고 있는 서 교수는 “대통령이 독도에 거주하는 김성도 할아버지와 낚시를 하며 휴가를 보내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내놨다. 외신의 관심을 끌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기보다 실효지배의 현실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키자는 것이다. ●‘힘자랑’ 아닌 ‘보다 세련된 방식’ 요구 독도뿐 아니라 동해 표기와 위안부 문제 등 외교적으로 민감한 주제들까지 다뤄 온 서 교수는 인터뷰 내내 홍보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핏대 높여 싸우거나 ‘힘 자랑’을 하는 대신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정치적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복절을 맞아 가수 김장훈씨 등과 함께 독도까지 헤엄쳐 가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우리 땅이니 당연히 수영해서 갈 수도 있잖아요. 꼭 정색하고 우리 땅이라는 걸 주장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서 교수는 지난 3월 뉴욕타임스의 한국 홍보 광고에도 “한국에는 아름다운 섬들이 많다.”며 독도를 ‘슬쩍’ 집어넣었다. 서 교수는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움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이 교과서에 ‘다케시마’(독도)에 대한 영유권까지 기술하는 마당에 방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 교수는 동해 표기 문제를 예로 들었다. 지도상 ‘일본해’(Sea of Japan)를 일본의 영해로 생각하는 외국인들이 “독도가 일본해에 있는데 왜 한국 땅이냐.”고 반문한다면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지적에 “정말 중요한 문제”라며 반색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사가 선택과목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서 교수는 “우리 역사를 등한시하면서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우리 역사를 지키겠느냐.”고 지적했다. ●정색하고 ‘우리땅’ 주장할 필요 없어 서 교수는 최근 정치외교적 문제 외에 세계에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일에도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경제력·군사력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건 문화”라는 서 교수는 “런던올림픽에서도 스포츠라는 문화를 통해 한국이 세계에 더욱 잘 알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7~8일 영국 런던에서 소녀시대를 모델로 내세운 한국 홍보 책자 1만부를 배포한 것도 문화를 알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내년 광복절까지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24시간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 전광판을 설치하고 싶다는 서 교수는 “우리가 마이클 잭슨을 즐기듯 외국인들도 소녀시대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커버스토리] 애니깽 후손들이 말하는 한국 방문 이유는…

    [커버스토리] 애니깽 후손들이 말하는 한국 방문 이유는…

    ‘애니깽’의 후손들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K팝(K-POP)을 좋아하는 10대 소년부터 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청년, 선조의 뿌리를 찾아온 아이 아빠까지 이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와 소감, 한국에 대한 인식 등을 들어봤다. 서울신문과 재외동포재단은 이번 모국체험 연수에 참가한 33명에 대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병행해 이들의 한국관을 살펴봤다. 헤나로 미겔 만사닐랴 김(23)은 예비 요리사다. 한국인의 피가 섞인 만큼 이곳의 음식을 알고, 배우고 싶어 참가 신청서를 냈다. 지난 7일 기자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김은 음식에 대한 질문부터 했다. 점심으로 먹은 음식이 맛있어서 이름을 알고 싶은데, 재료를 알려 줄 테니 무슨 음식인지 가르쳐 달라는 것. 그는 “생선이 들어가 있었고, 두부가 작게 들어가 있는 일종의 해물수프”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을 기다렸다. ‘동태찌개’이라는 재단 관계자의 말을 듣고는 잊지 않으려는 듯 여러 번 되뇌었다. “동태찌개엔 고추장이 들어간다.”고 하자 몇 년 전 멕시코에서 고추장 맛을 봤는데 생각보다 입에 맞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신 그는 “매운 음식이 많은 멕시코와 한국 요리는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다.”면서 “두 나라 사람들이 모두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문화 스포츠 강국인 한국의 위상을 높이 평가했다. 최근 3년간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등 한국 아이돌 가수부터 한국 드라마까지 멕시코에 부는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고 소개했다. 특히 한류열풍에 흠뻑 빠진 참가자들이 많았다. 마누엘 알레한드로 마르티네스 빌랴누에바(19)는 10대답게 소녀시대의 열렬한 팬이다. 최근에는 ‘초콜릿 러브’라는 노래에 푹 빠졌다. 다른 K팝들도 줄줄 꿰고 있다. 티아라를 비롯해 씨스타, 원더걸스, 포미닛 등 걸그룹의 이름도 죄다 외우고 있었다. 아나로사 멘도사 아코스타(17·여)도 한류 얘기가 나오자 거들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류가 굉장히 유명하다.”면서 ”그룹 ‘슈퍼주니어’를 좋아하고 드라마 ‘천국의 계단’, ‘유리구두’를 인상 깊게 봤다.”고 말했다. 가장 어린 참가자인 길레르모 안토니오 리 마르티네스(15) 역시 한류 마니아다. 한국에 간다고 하니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했다는 그는 “아는 여자아이가 한국에 간다고 하니 한국 남자 한 명만 데리고 오라고 했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는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춤을 똑같이 흉내낼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며 K팝을 통해 올라간 한국의 위상도 전했다. 이들에게 한국이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 멕시코에서 나고 자라 눈·코·입·체형 모두 멕시코인에 가까운 그들이지만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려는 경향도 뚜렷했다. 이들은 ‘나에게 한국이란?’ 질문에 ‘제2의 심장’, ‘또 하나의 나’, ‘위대한 나라’, ‘반쪽’, ‘나의 일부’, ‘자랑스러운 조국’ 등의 답변을 내놓았다. 호세 마누엘 마르티네스 김(19)에게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극복’이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일어선 나라이기 때문이다. 김은 애니깽들의 눈물이 어린 멕시코 유카탄 주의 메리다 지역 출신이다. 할아버지 성을 딴 한국의 성씨를 쓰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100여 년 전 선조들이 농장에서 궂은일을 하며 고국을 그리워한 아픈 역사도 알고 있다. 처음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도 “와, 행복하다. 드디어 한국에 간다.”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한국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의 일부라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집으로’다. 이들은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33명 가운데 4명을 제외한 29명이 ‘광복절’의 날짜와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벨 에사우 데 라 크루스 오초아(25)는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한 중요한 날”이라면서 “멕시코 한인회 행사를 통해 광복절에 대해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대부분 한인회나 인터넷, 책 등을 통해 광복절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멕시코 지역 한인회는 매년 8월 14일부터 이틀간 문화행사 등 한인후손 모임을 갖고 광복절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에 대해 되새기고 있다. 아벨은 “광복절은 멕시코 한인 후손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게 하는 상징적인 날”이라고 말했다. 네오나르도 이슬라스 후암포(24)는 “한국은 선조인 할아버지의 고향이며 나에게는 한국인으로서의 피가 흐르고 있다.”면서 “한국은 나의 뿌리이기 때문에 한국 역사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센터에서 2주간 봉사활동을 하며 한국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빌랴누에바는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것이 꿈이다. 미리 한국을 둘러보고 싶어 이번에 참가하게 됐다. 그는 “대학교를 마친 뒤 한국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선조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버지 성이 ‘이’씨라는 것은 안다. 자신은 민혁, 동생은 현수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 멕시코 한인 4세인 루이스 다니엘 메디나 김(23)도 한국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다. 법학 석사학위를 가진 그는 박사과정생이다. 자연스럽게 아침, 저녁으로 한국 음식을 먹을 만큼 한국 먹을거리에도 친숙하다. 특히 김치는 꼭 빠지지 않는 메뉴다. 그는 “친구들에게 부침개 등 간단한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는데 친구들이 좋아할 때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면서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한국인 같다고 느낀다.”고 웃었다. 그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정책에 힘을 쏟는 한국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역사가 깊은 나라라고 생각했다.”면서 “조만간 지인들과 한국을 다시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런던 올림픽 얘기를 물어봤다.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 경기에 대해 묻자, 15명이 여자 양궁이라고 답했다. 강풍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집중력으로 과녁을 명중시켰던 선수들에게서 한국인의 강한 정신력을 느꼈다는 것.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호세 마누엘 알레한드로 멘도사 이(19)는 스포츠 강국인 한국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볼 때마다 기뻐했다. 이는 증조할아버지가 멕시코에 정착한 뒤 시계를 고치는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8살 때 어머니가 한국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는 이번 런던 올림픽 양궁 경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확하게 과녁을 맞히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라며 손뼉을 쳤다. 만일 한국과 멕시코가 축구 결승전에서 맞붙었으면 어느 쪽을 응원했겠느냐고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소년은 그냥 말없이 배시시 웃었다. 백민경·명희진기자 white@seoul.co.kr
  • [서울광장] 서울의 랜드마크는 무엇인가요/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서울의 랜드마크는 무엇인가요/노주석 논설위원

    런던올림픽이 피날레를 향해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영국의 오랜 랜드마크는 타워브리지와 세인트폴 대성당이었지만 금세기에 접어들면서 기울어진 달걀 모양의 런던시청사나 오이를 절반쯤 자른 듯한 거킨빌딩으로 옮아 갔다. 이번 올림픽 기간 중 현대 건축물에 대한 세계인의 시선은 310m 높이의 ‘더 샤드’에 쏠렸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더 샤드는 2000년 역사의 고도(古都) 런던의 스카이라인과 건축 개념을 바꿨다. 파리의 랜드마크 퐁피두센터를 설계한 이탈리아가 낳은 천재 건축가 렌초 피아노는 지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 런던의 랜드마크를 단숨에 갈아 치웠다. 더 샤드의 경이는 크기나 높이가 아니다. 렌초 피아노는 더 샤드는 ‘소셜 드림(social dream)의 빌딩’이며 그 이유는 주차장이 없는 대중교통 수단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더 샤드가 들어선 런던 브리지 역은 이용객이 30만명에 이르는, 런던에서 가장 붐비는 역이다. 빌딩에는 호텔, 오피스, 레스토랑 등이 입주하는데 주차 대수는 달랑 40대에 불과하다. 켄 리빙스턴 런던시장이 주차장 없는 초고층 빌딩 개념을 처음 제안했고 개발업자와 건축가가 호응한 것이다. 뉴욕의 랜드마크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처럼 일반인들이 꼭대기층에 올라가 시가지를 전망할 수 있는 퍼블릭 스페이스가 들어설 예정이다. 더 샤드는 ‘제국의 수도’ 런던의 새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미덕을 두루 갖췄다. 서울의 랜드마크는 무엇일까.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한국의 랜드마크엔 불타 버린 숭례문이 올라 있다. 왠지 씁쓸하다. 우리는 주로 높고 큰 건물을 랜드마크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남산타워, 63빌딩, 잠실 롯데월드타워, 상암DMC 랜드마크빌딩, 용산 트리풀원, 인천 송도타워 등이 후보작이다. ‘자칭 랜드마크’는 많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승인한 ‘공인 랜드마크’는 아직 없다. 서울시 신청사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온갖 구설에 오른 서울시 신청사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기대와 함께 3000억원을 쏟아부은 건물치곤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공간의 효율성을 희생시키면서 한옥의 처마 선을 살렸다는 외관은 쓰나미가 덮치는 위협적인 형상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신·구 청사의 ‘잘못된 만남’도 시빗거리에서 벗어나긴 어려워 보인다. 보존 가치 논쟁에서 ‘억지로’ 살아남은 구청사처럼 신청사도 먼 훗날 문화재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사는 보존 가치가 높지만, 일제 잔재 청산의 광풍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옛 문화관광부 건물을 리모델링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도 마뜩잖다. 지난해 11월 공사에 들어가 7개월 만에 뚝딱 지어졌으며 11월 개관 예정이란다. 뭐가 그리 급한지…. 미국대사관과 쌍둥이 건물을 리모델링하다 보니 국적 불명의 역사박물관이 될 것 같다. 광화문광장 중심에 역사박물관을 만들기로 했다면 시간과 돈을 좀 더 투자해 제대로 만들었어야 했다. 필리핀의 원조와 기술로 건축된 건물을 남긴 이유도 모르겠다. 길 하나 건너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도 물어보고 싶다. 소격동 옛 기무사 자리에는 국립서울미술관이 내년 개관을 목표로 신축되고 있다. 가림막에 가려져 알 수 없지만, 경복궁과 어울리는,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태동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에 현대 미술관의 역할은 긴 말이 필요 없다. 날림은 안 된다. 더 샤드는 설계 이후 13년 만에 완공됐다는 사실을 참고하기 바란다. 디자인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역사에 남는 건물이 될는지도 차별화된 디자인에 달렸다. 서울시청사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립서울미술관 같은 공공 건물은 정체성과 디자인의 예술성 그리고 공공성이 생명이다. 경복궁 안의 ‘꼴불견’인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건물이란 한 번 잘못 지으면 오래오래 속을 썩이기 마련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의 랜드마크를 보고 싶다. joo@seoul.co.kr
  • 갤러리로 들어온 ‘뒷골목 그래피티’

    갤러리로 들어온 ‘뒷골목 그래피티’

    그래피티와 캔버스. 어째 궁합이 안 맞아보인다. 그래피티라면 아무래도 ‘작품만 봐주세요.’라고 하얗게 속삭이는 화이트 큐브보다는 어디 한구석에 쥐똥도 굴러다니고 파리 좀 날아다니는 후미진 뒷골목에 있어야 어울릴 성 싶다. 서울 방배동 갤러리토스트는 이런 그래피티 작품을 갤러리에다 끌어다놓은 이색적인 연속 전시를 선보인다.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앤디 워홀 같은 이들로 낙서화니 팝아트니 하는 말로 유명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그래피티가 크게 인정받는 분위기는 아닌 상황에서 마련된 전시다. 홍삼, 반달, 제이플로우, 후디니의 전시가 10월까지 이어진다. 4인 릴레이 전시에서 1번 타자로 19일까지 ‘스트리트 보이’(Street Boy)전을 여는 홍삼(29)을 만났다. ●“스프레이 작업땐 해방감 느껴” 아니나 다를까 “기분이 묘했다.”고 했다.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한다. “굵은 마커나 스프레이 작업은 해 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어요. 해방감이랄까, 그런 기분. 그런데 캔버스 위에다 하려니까 그림 그리는 작업하는 사람처럼 얌전해지더라고요.” 그 느낌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작품은 스프레이 느낌이 충만한데, 다른 작품에서는 스프레이가 양념 정도로만 쓰였다. 이 묘한 기분은 작가의 정체성과도 관련있다 했다. 원래 어릴 적 꿈은 이현세, 허영만 같은 정통 만화가. 그래피티엔 고등학교 때 홀딱 빠졌다. 홍익대 애니메이션과로 갔지만 그때 재밌게 했던 것은 교내 힙합동아리였다. 노홍철,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어울렸던 시간이다. ‘홍삼’이란 이름도 그때 얻었다. “본명이 김홍식인데 형들이 장난삼아 부르던 이름이 홍삼이었어요. 작가 이름으로 굳어버린 거죠.” 최종 진로는 미술로 정했다. 그래피티계에선 드물게도 가장 한국적인 정규 미술교육을 확실하게 받은 셈이다. “심지어는 어릴 적에 미술학원도 착실하게 다녔어요. 하하하.” 그래서인지 그가 내놓은 캐릭터 ‘스트리트 보이’에서는 그래피티하면 떠올리는 반항이나 정치적 풍자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예술이란 게 세상 얘기라 정치가 빠질 순 없겠지만 자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의미를 과하게 찾으시더라고요. 정치적인 것도 있을 수 있는데, 저는 그것보다는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봐 줬으면 해요.” 놀다 보니 문화가 됐고 문화가 되다 보니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생겨났던 것이지 처음부터 정치적인 것을 의도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의 스트리트 보이는 빨강 후드티에 파란 바지를 입고 흰 모자를 눌러쓰고 있지만 얼굴은 텅 비워뒀다. 작가 스스로도 “아마 전 세계적으로 그래피티 작가들 가운데 자기 캐릭터에서 얼굴을 지워버린 건”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그걸 작가는 “슬픔”이라 불렀다. ●“한글 응용한 작품 선보이고 싶어” “그래피티에도 역사성이 있죠. 제가 선보이는 건 1970~80년대 풍의 작업이에요. 한국에서 그래피티가 널리 퍼지면서 다양하게 분화됐는데 최근 일부 작가들의 경우 유행에 부합한 상업적인 분위기로 일러스트레이션처럼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한국의 그래피티는 이런 거라고 얘기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그래서 뿌리부터 밟고 나가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몇몇 분들은 왜 요즘 같은 시대에 옛날 풍으로 작업하느냐는 말도 많이 하세요.” 좀 재수 없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다고 물었더니 “먹물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고 흔쾌히 인정했다. 그래도 그래피티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작업, 한글을 응용한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그의 작업을 길거리에서 만날 수는 없을까. 홍대 앞에서 제법 작업했는데 개발물결에 통째로 사라져버렸단다. 대신 압구정 굴다리를 가보라 했다. 길거리 작업에도 룰은 있다. 원래 있던 그래피티 위에다 덧대 그릴 수 있다. 단, 더 잘 그린다는 보장이 있어야만 한다. 재미, 놀이의 요소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작품 가운데서도 ‘I B T Y’라는 문구가 보인다. 아이 베터 댄 유(I Better Than You), 너보다는 내가 낫다는 말이다. 이번 전시는 19일까지. (02)532-646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올림픽과 나 - 권석하] 한국도 영국도 응원하는 아들에게

    런던올림픽 덕분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거창하게는 국가의 정체성과 개인의 정체성 문제였다. 첫딸이 세 살 때 우리 가족은 영국으로 건너왔고, 둘째 아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우리말을 쓰고 한식을 먹어도 애들에겐 영국이 더 편하고 정겨운 곳이다. 아이들 대화 도중 ‘우리나라’란 말이 나오면 잘 새겨 들어야 한다. 한국일 수도 있고 영국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애들 마음속에는 두 나라가 같은 비중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둘째가 승승장구하는 한국 팀을 보고 “가슴이 막 뛰어요.”라고 말했을 때 안도와 함께 뿌듯함을 느꼈다. 해외에 살면서 자식에게 한민족의 정체성을 심어 주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둘째와 2년 전 남아공월드컵 중계를 보다가 “넌 한국과 영국이 대결하면 어느 쪽을 응원할래?”라고 물은 적이 있다. 궁금했다. 둘째는 씩 웃기만 했다. 이번 런던올림픽 축구 8강전을 둘째와 함께 지켜보지는 못했다. 해서 저녁에 귀가한 아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당연히 한국 응원했지.”라고 답했다. “넌 평소에 영국을 우리 팀이라고 했잖니.”라고 따지듯 말했더니 아들은 “영국에게 이 경기는 별 거 아닌데, 한국에겐 큰 의미가 있잖아.”라고 했다. “진짜 네 마음은 어떤데?”라고 재차 따지니 조금 생각하다 “아무래도 한국이 이긴 게 더 좋은 것 같다.”고 아비가 원하는 답을 해 줬다. 어쩌다 박태환 선수 부모와 누나의 런던 숙소를 주선하게 됐다. 박 선수가 실격한 뒤 판정이 번복되기까지 몇 시간 사이에 아들은 “한국 방송사의 런던 특파원이 박 선수 가족의 거처를 묻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 왔다. 당연히 안 된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는 인터뷰를 할 건지 묻는 것만으로도 결례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그건 아버지 입장이고 난 주소를 알면 얘기를 해 줘야 한다.”며 “아버지는 아버지 입장이 있지만 난 나대로 직업적인 입장이 있다.”고 했다. 그러던 참에 다행히도 판정이 번복돼 부자 간의 의를 상할 일은 없게 됐다. 오늘 브라질과의 축구 4강전에서 울적했던 기분은 이탈리아와의 배구 8강전 극적인 승리에 눈 녹듯 사라졌다. 2세트부터 한 번도 리드를 뺏기지 않고 시원하게 이겨 줘서 우리 여자 선수들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한국 응원단이 보이지 않았다. BBC 카메라는 관중석에서 대형 태극기를 광적으로 흔드는 세 남녀를 포착했다. 낯익은 얼굴들이다. 일본인 남편을 둔 미국 국적의 교포 부인, 그리고 조선족 교포 여성. 국적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셋은 모두 열심히 한국을 응원하고 있었다. 도대체 올림픽은 뭐고, 또 거기에서 국가란 뭐란 말인가. 런던거주 컨설턴트 johank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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