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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도서관의 변신은 무죄… 복합문화공간 탈바꿈

    [커버스토리] 도서관의 변신은 무죄… 복합문화공간 탈바꿈

    “불교미술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합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 100여명의 청강생들이 윤범모 가천대 회화과 교수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강의를 듣던 백발의 노신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강연 내용을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강의 주제는 ‘현대 불교미술의 보고, 전등사를 찾아서’. 3년 전부터 강연을 듣고 있다는 박성렬(65)씨는 “강연을 듣기 위해 부산에서 가끔 서울에 올라오는데 책으로만 읽을 때와는 다르게 이렇게 강연을 듣고 현장 답사를 가면 더 잘 기억된다”고 말했다. 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9.2권, 평일 독서 시간은 23.5분에 그쳤다. 2006년 연평균 독서량이 11.9권, 평균 독서시간이 37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식정보 유통이 활자매체에서 디지털기기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식정보의 보고’인 도서관은 생존을 위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도서보존 및 대출·열람에 충실했던 도서관들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5년째 운영하고 있는 문화프로그램 ‘길 위의 인문학’은 역사·문화 분야에서 저명한 초청강사의 강연을 들은 뒤 강사와 함께 인문학 저서의 배경이 되거나 선현의 자취가 깃든 현장을 탐방한다. ‘길 위의 인문학’은 책에서만 접하던 지식을 현장에서 체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정독도서관’은 ‘Book村 인문학 스터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의 꾸준한 호응 속에 출판사 등과 연계한 작가 강연회를 수시로 열고 있다. 서울 노원구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책 대신 사람을 통해 정보와 지식,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 도서관’이다. 2012년 개관한 이곳에 ‘휴먼북’(사람책)으로 등록된 경제·기업인, 언론인, 문화·예술인 등 510여명이 직접 책이 되어 자신의 지식과 경험, 정보를 독자들과 공유한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美 GDP 40% 혁신서비스서 창출… 창조경제도 융·복합 중요”

    “美 GDP 40% 혁신서비스서 창출… 창조경제도 융·복합 중요”

    세계 석학들의 기고 사이트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서는 총 54명이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금융계의 대표적 비관론자로 꼽히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 교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 보좌관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 인도 중앙은행 총재인 라구람 라잔,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인은 딱 한 명, 이종화(54)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미 경제학논문학회가 논문의 인용도를 가지고 순위를 매기는 한국의 경제학자 1위도 오래전부터 이 교수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그는 이명박 정부 때는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비서관과 수석 사이 직급)을 지내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 교수를 지난 1일 서울 성북구 안암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만났다. →인용될 만한 논문을 영어로 많이 발표하는 것은 힘든 일인데 왜 꾸준히 하나. -내가 한국 경제학자 중에서는 1위이고 아시아에서는 3위이지만 전 세계로 따지면 상위 1%라도 100위 밖이다. 우리나라의 위상에 비해 학계의 위상이 약하다.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더 많이 알려야 한다. 경제학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영역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순위가 어느 정도 공정성이 있다. →어렵게 공부했다던데.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의미보다 점점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데 획일화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해서 오히려 좋았다. 당시 시골(강원 태백)에서 내가 대학을 처음 갔다. 고대 다니면서 정주영 전 회장이 강원도 출신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4년 내내 받았다. 미국에 가서 공부할 기회도 얻었고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근무했다. 내 목표는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좋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베이징대와 연결해서 ‘한국·아시아·세계 경제의 최근 쟁점’이란 강의를 지난해부터 만들었다. 반드시 토론을 하게 하며 많은 부분을 중국 경제와 한국 경제를 비교하도록 했다. →강의하면서 아쉬운 점은. -우리는 아직도 어느 대학을 가느냐, 어디서 뭘 하느냐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둔다. 아직도 서울대, 고려대 몇 명 들어갔는지 따진다. 하버드대 간다고 다 좋은가(이 교수는 풀브라이트장학생으로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땄다). 교육 시스템은 다양성과 자기가 할 수 있는 정체성을 길러 줘야 한다. 명문대 입시에 치이다가 대학 들어오면 어떻게든 평생 다닐 직장에 한 번에 들어가려고 재학 시절 재수, 삼수를 한다. 예컨대 한국은행에 들어가서 뭘 하느냐가 아니고 한은에 들어가는 것을 남한테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대학생들로부터 창업한다는 이야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베이징대에 가 보니 어디 가서 뭘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다. 하버드대에서 강의할 때도 그런 걸 느꼈는데 여기서는 못 느꼈다. →왜 창업할 생각을 안 한다고 생각하나. -어려서부터 완벽하게 상자 안에 있는 아이들을 키우려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대학에 더 오래 머무는 경향이 있다. 원하는 좋은 직장을 잘 못찾아가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공계에 여성이 적은 것도 한 원인이다. 이공계가 최근 취직이 잘되는데 이공계에 여성이 20%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의료 부문이다. 물리, 화학, 생물 등 과학 분야에 여성이 남성에 비해 그렇게 관심이 없을 리가 없다. 실습 위주로 재미있게 가르쳐야 하는데 매일 외우니까 흥미가 사라지는 거다. →정부도 여성 고용률을 높이려고 애쓰고 있다. -의지를 가지고 오랫동안 노력해야 한다. 고용률 숫자에 집착하면 파트타임(시간제)을 늘리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 여성의 잠재력을 높이는 일은 교육 개혁은 물론 노동시장 개혁, 특히 서비스 분야의 구조적 변화가 요구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뜻하나.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면 비정규직 많이 만들자는 소리인 줄 아는데 그게 아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1년 정도 있다가 나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하거나, 여기서 배울 만큼 배웠으니 다른 곳에 가서 해보겠다고 하면 그걸 잘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자기한테 맞는 자리를 찾아가고, 기업도 발전단계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쓸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40%가 의료, 문화, 비즈니스서비스(컨설팅), 교육 등 고부가가치 혁신 서비스에서 나온다.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창조경제는 과거 철강산업, 자동차산업, 정보기술(IT) 등이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켰듯이 우리 경제를 도약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제조업에서 굉장히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창조경제는 이런 제조업과 새로운 서비스업의 융·복합에서 올 거 같다. 의료와 IT가 합쳐지는 부분도 될 수 있다. 원격진료가 누구의 밥그릇을 뺏는 차원이 아니고 새로운 큰 기술이 될 수 있다. 경제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중요하다.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야를 많이 키워야 한다. 의료, 컨설팅, 금융 등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간다. 훌륭한 인재가 있는 만큼 산업으로서 커갈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관련 분야의 규제개혁이 화두다. -양이 아니라 효율적인 규제에 초점이 놓여야 한다. 금융은 정보가 불완전하고 서로 연결돼 있어 문제가 생기면 급속도로 파급되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제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금융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있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있다. 돈을 빌려서 달아날지, 믿고 정보를 줬는데 팔아 넘길지를 그 사람이 안다. 시스템의 문제도 있고 교육도 필요하고 단기 성과에 급급해하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필요하다. 교육이 산업 현장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만 했듯이 금융은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만 했다. 이제 금융과 교육이 실물 부문을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10년 뒤에 한국에 필요한 인재를 고민하고 키워 내야 한다. 외국, 특히 아시아에서 뛰어난 학생들을 데려다가 지도자로 만드는 작업도 계속해야 한다. 우리의 재산이 될 수 있다. →장기 과제에 대한 정책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정책을 개발해서 끌고 나가는 연구기관이 약하다. 현재 정책을 내놓는 연구기관들은 대부분 정부와 연관돼 있다. 선진국은 브루킹스연구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등 중립적 기관이 활동한다. 대학에서 연구소를 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난해 8월 고대에서 아시아문제연구소를 연 것이 좋은 예다. 공무원들이 정책을 발표할 때도 6개월 뒤에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고 발표하는데 10년 뒤에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싶다. 정치적 측면에서 어렵기는 한데 멀리 보고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수한 관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실패하면 뭐라고 하니까 약간씩 작은 것에서 조금씩 티가 나는 것만 한다. 정치에서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한다. →사회 양극화도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나. -분배 문제가 심각해진 데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산업구조와 지식산업이 발전하면서 무형 기술이 중요해졌다. 이 과정에서 무형 기술을 가진 고소득자와 일반인의 소득 차이가 커졌다. 두 번째로 기술 발전이 고학력 고기술자에게 유리하게 발전돼 왔다. 세 번째로 근로자가 가져가는 몫은 줄어들고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은 늘어났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의 미흡, 급속한 노령화와 가족제도 해체, 주택 등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중산층 문제 등이 겹쳐졌다. 이제는 정부가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일정 역할을 해야 한다. 어디까지 얼마나 빠르게 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의 합의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압축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양극화도 빠르게 진행 중이라 대책을 빨리 세워야 한다.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안타깝다. 글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사진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이종화 교수는 ▲강원도 태백 ▲고려대 경제학과, 하버드대 경제학 석·박사 ▲고려대 정경대학 경제학과 교수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현)
  • 군위 ‘삼국유사 가온누리’ 사업 탄력

    우리 민족의 정체성 확립 등을 위해 경북 군위에 조성 중인 ‘삼국유사 가온누리’(세상의 중심)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군위군은 최근 열린 국토교통부 국토정책위 지역발전분과위원회 심의에서 삼국유사 가온누리 사업이 원안 가결돼 신발전지역 발전촉진지구 개발 계획이 최종 확정됐다고 31일 밝혔다. 앞서 이 사업은 2008년 9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5+2광역경제권 실현을 위한 30대 선도 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됐고 2011년 4월 ‘신발전지역 육성을 위한 투자촉진특별법’에 의거해 국토부의 신발전지역 종합발전구역 및 종합발전계획에 반영된 이후 지난해 7월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군은 조만간 국토부의 발전촉진지구 지정 고시가 이뤄지면 경북도 사업실시계획 인가 등의 제반 행정 절차를 거쳐 오는 6월쯤 착공키로 했다. 2016년까지 군위 의흥면 이지리 일대 부지 71만 8000㎡에 국비 894억원 등 총 1374억원을 투입해 완공할 계획이다. 사업 부지는 난개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당초 92만 9000㎡보다 21만 1000㎡가 줄었으나 사업비는 변동 없다. 삼국유사 가온누리에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삼국유사 관련 자료와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삼국유사의 역사성과 우수성을 재조명할 수 있는 공간 확보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의 신화, 문학, 설화, 놀이, 장소 등 다양한 콘텐츠와 문화산업을 접목한 문화관광단지가 조성된다. 장욱 군위군수는 “삼국유사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와 문화산업을 접목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문화관광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이란·칠레서 유년 보낸 두 예술가의 전시회

    이란·칠레서 유년 보낸 두 예술가의 전시회

    소녀가 경험했던 아랍의 이란과 소년이 경험했던 남미의 칠레는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을까. 성인 예술가로 성장한 소녀와 소년은 남성 위주 사회가 지닌 억압과 군부 독재의 아픈 역사를 여태껏 기억에서 게워 내지 못하고 있다. 애써 억압의 색깔을 작품에서 지우려 하지만 그들의 잠재의식은 ‘취조실’ 같은 궂은 기억을 되새김질하곤 한다. 최근 한국을 찾은 작가들을 만나봤다. ■ 풍자된 중년의 욕망 이란 출신 탈라 마다니 “중년 남성은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존재예요. 인간의 부조리를 가장 잘 드러낸 갈등의 시기라고 할까요.”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작품들은 뭔가 사연을 담은 듯하다. 기존 미술의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이란 출신의 여류 작가 탈라 마다니(33)는 요즘 영국 화단에서 ‘뜨는’ 젊은 화가다. 육체적 요소에 블랙 유머를 적절히 섞어 사회의 관습과 모순을 꼬집는 데 일가견이 있다. 작품에는 끊임없이 중년 남성이 등장한다. 이들의 욕망은 어둠 속 프로젝터를 통해 화면에 투사되는 감각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어린 소녀는 치마를 들추며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이를 바라보는 중년 남성들의 눈빛은 반짝인다. 아예 넋을 놓고 있다. 다른 그림에선 한 중년 남성이 기저귀 차림의 자신이 기어 다니는 모습을 바라본다. 마다니는 “어린아이처럼 본능에 충실한 남성의 모습을 그렸다”고 했다. 그는 미국 오리건주립대와 예일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자주 던져 왔는데 청소년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에 대한 비판 의식이 돋보인다. 작가는 15세 때 이란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런 성장 배경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작품 속 중년 남성은 모두 아랍인이죠. 이들은 뭔가 욕망을 표출하려 해요. 어린 시절 이란에서 성장했던 경험이 무의식 중에 투영된 겁니다.” 오는 5월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PKM갤러리에서 이어지는 전시에는 마다니의 약혼자인 영국 출신의 나다니엘 멜로스(40)도 함께 참여한다. 둘 다 한국 나들이는 처음이다. 영상, 퍼포먼스 작업에 천착해 온 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동굴 비유’를 담은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한 현대인이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동굴벽화를 그린 원시인을 인터뷰한다는 내용이다. 작가는 또 보라색과 주황색으로 범벅이 된 셰익스피어의 뇌에 빨대를 꽂은 조각도 내놨다. 이성이 지배하는 현생 인류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다. 얼마 전 결혼을 약속한 두 작가가 함께 전시를 여는 것은 처음이다. 과도한 표현 때문에 영국에서 전시가 취소됐던 작품도 포함됐다. 두 작가는 “예술 작품은 본능과 욕망을 억누르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며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는 데 저항하는 건 예술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빛이 된 독재의 기억 칠레 출신 이반 나바로 “어떤 작품을 보고 사람들은 ‘취조실’을 떠올린다고 하죠. 하지만 전 딱히 억압적인 이미지를 담으려고 의도하진 않았습니다.” 와인으로 유명한 칠레는 군부 독재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칠레 출신의 네온아트 작가인 이반 나바로(42)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이듬해인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직에 오른다. 이후 17년간 잔인한 철권통치가 이어졌다. 어린 시절 숱한 통행금지와 정전을 겪으며 쌓인 어두운 기억은 역설적으로 나바로를 빛의 예술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스무살이 되던 해 “돈이나 벌어 보자”며 떠난 미국 뉴욕에서 그는 욕망의 분출구를 찾았다. “2003년 우연히 차이나타운을 지나다 벽에 걸린 별 모양 램프를 봤어요. 별이 끝없이 멀어지는 듯한 환영에 빠져들었죠.” 이후 작가는 다양한 종류의 거울로 실험해 왔다. 지금은 ‘네온아트의 떠오르는 별’로 불린다. 2009년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선 칠레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최근 뉴욕 매디슨스퀘어에 이민자의 지친 삶을 달래기 위한 네온 작품을 매달아 화제를 모았다. 작가는 오는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전시회를 이어 간다. 빛의 속도를 뜻하는 ‘299 792 458 ㎧’가 전시 제목이다. 설치작품 14점을 선보이는 작가는 마법에 가까운 눈속임을 부린다. 불과 20㎝ 두께의 작품들은 볼수록 끝없이 이어지는 환상을 불러온다. 바닥에 설치된 ‘우물’ 작품은 나락으로 빠질 듯한 아찔함을 드러내 관람객을 뒷걸음치게 만든다. ‘스파이 미러’를 통해 유리 속 거울을 반사하도록 해 무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식이다. 작가는 2011년부터 유명 고층 건물의 도면을 네온 조각 작품으로 선보이며 미국 시카고 시어스타워 등을 소재로 활용했다. 이번 전시에선 건축 중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이미지를 담은 ‘짐’(Burden)이란 작품이 포함됐다. 전시장 지하에는 ‘현대 울타리’란 작품도 있다. 100여개가 넘는 백색 형광등으로 만들어진 울타리는 남북한의 분단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적 색깔을 지양하고자 작품 제목을 ‘남과 북’으로 하지 않았어요. 강요된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지요.” 백색 형광등은 거울에 반사되면 초록빛으로 변한다. 보통 초록은 신선하고 상쾌하지만 그의 초록은 시리고 아픈 느낌이다. 흰색으로 눈속임하지만 가슴에 새겨진 아픈 기억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6·4 지방선거 누가 뛰나] 부산지역 기초자치단체장

    [6·4 지방선거 누가 뛰나] 부산지역 기초자치단체장

    부산에서는 6·4 지방선거가 새누리당과 비새누리당, 야당 간 3자 대결 구도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부산시장에 출마하는 무소속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장관이 제안한 부산시민대연합(무소속연대), 그리고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삼파전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무소속연대에는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전·현직 시의원과 전 구청장 등이 합류 의사를 보이면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정가에서는 무소속연대가 바람을 타면 부산시장 선거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새누리당 내 경쟁에서 낙오한 후보들과 정체성이 불분명한 후보들의 연합이라며 애써 평가절하하고 있다. 부산은 16명의 기초자치단체장 가운데 새누리당이 15명, 무소속이 1명으로 새누리당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3선을 채운 배덕광 해운대구청장과 강인길 강서구청장은 이번 선거에 나오지 않는다. 두 곳은 현직 구청장이 불출마함에 따라 새누리당에서는 많은 후보가 공천을 신청하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새누리당의 텃밭인 부산에서는 지난 선거 때 새누리당 후보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새누리당의 공천 경쟁은 뜨겁다. 지난 16일 공천을 마감한 결과 모두 48명이 신청했다. 일부 선거구에서는 새누리당이 공천제 폐지의 대안으로 마련한 상향식 공천제도가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조길우 동래구청장은 최근 ‘중립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공천 신청을 포기했다. 탈당 뒤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홍재 연제구의회 의장도 최근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은 각본에 맞춰진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며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들 역시 통합하면서 당이 기초자치단체장 공천을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선거에서 어려움이 예상돼 노심초사하고 있다. 새누리당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당원과 시민이 100% 참여해 투표하는 방식으로 치러지는 동구가 관심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지역에서 당원과 시민이 모두 직접 투표하는 방식으로 기초단체장 경선을 치르기로 한 것은 동구청장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정영석 구청장과 박삼석 전 부산교통공사 감사, 최형욱 전 부산시의회 기획재경위원장 등 3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부산의 현역 기초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무소속인 오규석 기장군수의 재선도 관심거리다. 이곳에는 지난 선거에서 오 군수에게 고배를 마신 홍성률 전 부산시의회 부의장 등 전·현직 시·군의원 등 모두 8명이 새누리당 공천을 따기 위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사상구는 상대적으로 야권이 강세를 보이는 곳이다. 문재인 국회의원의 지역구라는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가장 신경 쓰는 곳이다. 여야가 당력을 모을 수밖에 없어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초선인 새누리당 송숙희 구청장과 신상해 전 부산시의원이 공천을 신청했다. 3대 부산시의회 교육문화위원장을 지낸 정대욱 전 의원도 무소속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 구청장이 3선 연임으로 물러나는 해운대구에는 새누리당에서 6명이 공천 신청을 해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백선기 부산시의원과 김영수 시의원은 동료 의원에서 경쟁 관계로 변했다. 김 시의원은 2004년 보궐선거 당내 경선에서 배 구청장에게 패한 이후 10년 만에 재도전에 나섰다. 6명의 공천 신청자 가운데 2명의 여성도 포함돼 관심을 끈다. 강 구청장이 3연임으로 퇴임하는 강서구에는 노기태 전 부산항만공사 사장을 비롯해 5명이 공천 경쟁에 나섰으며 부산진구는 3선에 도전하는 하계열 구청장과 백운현 전 부산시 정무특보 등 5명이 경합한다. 부산진구는 이른바 ‘부산의 중심’이라고 불린다. 이번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도 또한 다른 기초자치단체보다 높다. 지역 특성상 보수층과 젊은 진보층이 고루 섞여 있어 선거 판세를 가늠하기 어렵다. 새정치민주연합도 후보 간 경쟁이 치열하다. 모두 3명의 후보가 거론된다. 여성후보인 서은숙 구의원, 이덕욱 변호사, 조영진 생활정치포럼 사무처장 등이 활발히 뛰고 있다. 연제구는 이위준 구청장과 김지곤 전 연제구의회 의장 등이 새누리당 공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홍재 연제구의회 의장은 새누리당의 상향식 공천에 불만을 갖고 최근 새누리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김문갑 부산디지털대 교수와 박승언 온천천네트워크 대표가 선거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지역정가에서는 “부산시민대연합에 힘이 실리면 새누리당의 강세지역인 부산에서 6·4 지방선거의 돌풍이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문화단신]

    한국무용제전 29일 개막 한국춤협회가 주관하는 제28회 한국무용제전 ‘글로벌 아트춤 축제’가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한국의 창작춤 문화를 주도해 온 한국무용제전은 올해도 인도, 필리핀 무용단 등 국내외 13개 무용단의 기량 높은 신작들을 선보인다. 백현순(한국체육대 교수) 한국춤협회 회장은 “아시아 국가들의 전문 무용단이 서로의 문화적 가치를 소통함으로써 우리 창작춤의 성장과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축제의 의의를 설명했다. 3만~5만원. (02)410-6888. 김희성 파이프오르간 리사이틀 ‘2014 파이프오르간페스티벌’의 첫 번째 공연인 ‘김희성 파이프오르간 리사이틀’이 다음 달 19일 이화여대 김영의홀에서 열린다. 파이프오르간을 재즈, 영상, 춤 등 다양한 장르에 접목시키며 오르간의 가능성을 확대해 온 김희성 이화여대 교수는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간을 맞아 바흐의 코랄 소곡집 가운데 수난 코랄 ‘오 사람아, 너희의 죄를 슬퍼할지니’와 뒤프레의 ‘수난 교향곡’ 등을 연주한다. 세계적인 오르가니스트 나지 하킴은 오는 9월 2~3일 자작곡으로 꾸민 리사이틀을 열고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1만~5만원. (02)780-5054. 국악방송 봄철 프로그램 개편 국악방송(FM)이 전통음악을 심화 편성하고 우수 창작국악을 발굴하는 방향으로 봄철 프로그램을 개편했다고 24일 밝혔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이 진행하는 ‘창악집성’(일요일 오후 2시)과 작곡가 김중현이 맡은 ‘국악의 발견’(일요일 밤 9시)이 신설됐다. 하응백은 자신의 저서인 ‘창악집성’에 수록한 우리 음악 노랫말에 담긴 멋과 맛을 전한다. ‘국악의 발견’은 창작국악을 집중적으로 들려주는 시간으로 꾸민다. ‘국악산책’(월~토 오전 9시)은 국악인 유은선이 새로운 진행자가 됐고, ‘꿈꾸는 아리랑’(월~토 오후 4시)에서는 작곡가 함현상이 새로운 아리랑지기로 자리했다. 함현상은 국악영화 ‘두레소리’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국악작곡가다. 또 ‘솔바람 물소리’(매일 오전 5시)에서는 정확히 PD가 깊이 있는 해설과 음악을 전한다. 국악방송의 지역별 주파수는 홈페이지(www.gugakfm.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초등생보다 못한 인성 ‘中2병’ 연구로 입증됐다

    초등생보다 못한 인성 ‘中2병’ 연구로 입증됐다

    로미오와 사랑에 빠졌을 때 줄리엣의 나이는 14살, 우리나라로 치면 ‘중2’였다. 부모 말도 안 듣고 사랑에 빠져 죽음마저 불사한 줄리엣을 가리켜 누군가는 ‘중2병 환자’라고도 했다. 중2병은 중학생들의 허세와 불안함이 공존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중2병은 나라님도 못 고친다’, ‘북한군이 못 내려오는 이유는 중2병 때문’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초·중·고교 가운데 중학 시절 정체성이 가장 불안하다는 속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1일 정창우 서울대 사범대 교수 연구팀이 학교급별 ▲사회성 ▲정체성 ▲도덕성 등 인성 수준을 조사한 결과 초등학교 때 가장 높았던 인성 수준이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모든 항목에서 급락했다가 고등학교에 가면 일정 부분 회복하는 ‘V’ 자 유형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한국, 미국, 싱가포르, 일본 등 국내외 인성교육 덕목 중 중복되고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덕목을 뽑고 이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다. 연구팀은 사회성, 정체성, 도덕성 등 3개 영역·4개 요인의 인성 수준 검사와 관련된 46개 문항을 수도권에 있는 초등학생 211명, 중학생 311명, 고등학생 289명에게 설문 조사했다. 그 결과 초등학교에서는 예절·효도 등을 나타내는 관습 도덕성이 5점 만점에 3.57점으로 가장 높았고 사회성이 3.33점, 규칙 도덕성이 3.31점이었다. 자신에 대한 이해나 감정 및 자기 조절 능력을 포함한 정체성은 3.15점으로 가장 낮았다. 중학교에서는 관습 도덕성이 3.45점으로 가장 높았고 규칙 도덕성 3.19점, 사회성 3.17점, 정체성 2.97점 순으로 나타났다. 고등학교에서는 관습 도덕성이 3.50점으로 가장 높고 사회성이 3.27점, 규칙 도덕성이 3.22점이었다. 정체성은 2.99점이었다. 정 교수는 “이른바 ‘중2병’으로 통용되는 중학교 시기의 불안정성은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의 발달 특성을 잘 반영한다”면서 “중학교 시절의 인성지수가 낮은 점을 고려해 인성교육 개선책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자기 탐구 등을 보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고서는 지난해 8월 교육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실시됐으며 교육부가 인성교육진흥법(가칭)을 만드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해 다음 달 초·중·고교생 4만 5000명을 대상으로 인성 수준 검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번 주말 종로는 ‘한복 패션위크’

    이번 주말 종로는 ‘한복 패션위크’

    “올해 처음 열리는 한복 축제 패션쇼에 우리 부부가 함께 참가하게 돼 기쁩니다. 한복이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라는 걸 잘 알려야죠.” 부인과 한솥밥 공무원인 종로구 김영신 여성가족과장은 19일 이같이 말하며 한복을 예찬하기에 바빴다. 김 과장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행사에 아내인 김미자 재무과 지출팀장과 모델로 나선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매월 첫째 화요일을 전통 한복 입는 날로 지정해 전 직원이 한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다”며 “한 달에 한 번이지만 1년째 하다 보니 이제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오는 22일 ‘2014 인사동 한복 축제’를 연다. 전통문화 거리인 인사동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한복의 멋과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한복 입기 생활화를 확산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오후 2시 전통의상 퍼레이드로 행사 시작을 알린다. 북인사마당~남인사마당 690m 구간에서 성인 대취타를 선두로 궁중의상·서민의상, 어린이 대취타, 한복동호회, 태평무, 부채춤, 국악기 연주, 풍물놀이패 등 행렬이 뒤따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민, 공무원이 참가하는 한복 패션쇼다. 오후 2시 30분부터 남인사마당 야외무대에서 펼쳐진다. 평소 한복 대중화를 강조하는 김영종 구청장이 모델을 자처했다.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은 5명을 포함한 직원 10명도 무대에 선다. 17개 동 가운데 15곳 주민들도 맵시를 뽐낸다. 가족, 친구, 연인 등으로 구성된 주민 16개 팀이 쇼를 꾸린다. 국악 소녀 송소희, 조주선 명창의 공연, 마술 등 다채로운 행사가 기다린다. 또 북인사관광안내소는 지난해 4월부터 실시한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이날 준공식을 한다. 김 구청장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한복을 주제로 축제를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한복, 한옥, 한식, 한글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청각장애여성 지원 ‘볼륨을 높여요’

    청각장애여성 지원 ‘볼륨을 높여요’

    관악구는 다음 달부터 여성 청각장애인 대상 사회생활지원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19일 밝혔다. 구는 대인 접촉 기회가 모자란 여성 청각장애인들의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해마다 역량 강화 교육을 한다. 올해는 행복 찾기를 주제로 이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5월 말까지 매주 월·목요일 구청 별관에서 10회에 걸쳐 특강을 한다. 7일 첫 강좌에는 장명숙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초대했다. 장애인 또는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의 문제점과 사회 활동의 중요성을 알아보는 자리다. 이 밖에도 ‘올바른 성, 아름다운 성 만들기’(김은주), ‘성폭력 피해 예방 및 대처 방안’(배복주),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서진원), ‘행복한 삶을 위한 정신 건강 세미나’(노재우), ‘웃으며 삽시다’(문경희), ‘장애를 넘어 희망으로’(박민서) 등 유명 강사들이 다양한 주제를 놓고 강연을 펼쳐 손님들을 불러모을 것으로 보인다. 특강 뒤엔 경기 여주시에서 타인과의 교류, 소통을 배우는 농촌 현장 체험을 열어 올해 일정을 마무리한다. 지난해 구는 ‘오감으로 느끼는 내 마음, 삶을 새롭게 바로보기’를 준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구 관계자는 “역량 강화 교육은 여성 청각장애인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으로, 장애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덜어 주려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갖고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1600억원 노아의 방주 비수기 극장가 삼킬까

    1600억원 노아의 방주 비수기 극장가 삼킬까

    ① 성서와 판타지 사이… 방주 속 노아 가족에겐 무슨일이 스크린으로 재탄생한 ‘노아의 방주’가 전 세계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할리우드 화제작 영화 ‘노아’가 오는 20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한다. 이는 미국 현지보다 일주일이 앞선 것으로 국내 흥행 여부에 영화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언론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영화는 종교적인 색채보다 재난 블록버스터에 방점이 찍혔다. 할리우드가 국가와 종교를 떠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성경에 눈길을 돌린 것은 꽤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 소재인데다 역사와 신화가 함축된 소재로 상상력과 판타지를 넣을 수 있어 블록버스터로서의 강점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노아’는 그런 태생적인 장점을 잘 살린 작품이다. 창세기 6~8장에 나온 노아의 삶은 상상력이 덧입혀져 드라마틱하게 재구성됐다. 창조주가 세상과 인간을 만들었지만 세상에는 악이 가득하고 인간은 타락한다. 아담과 이브의 셋째 아들 셋의 후손인 노아는 악에 휩쓸리지 않고 신의 뜻을 따르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타락한 세상을 물로 심판할 것이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대홍수에 대비해 방주를 만들어 세상 모든 존재의 암수 한 쌍과 가족들을 태운다는 기본적인 뼈대는 성경과 동일하다. ② 블록버스터와 드라마 사이… ‘노아’의 인간적 고뇌에 집중 하지만 영화는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대홍수라는 인류 최초의 재난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노아와 그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13세 때 ‘노아’에 대한 시를 써서 상을 받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노아의 캐릭터에 빠져 있었다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창세기 9장 끝 부분에 단호한 의지와 인내로 임무를 완수한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벌거벗은 채 아들들과 맞닥뜨린 장면을 읽고 문득 ‘방주 속에서 노아와 그 가족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이후 감독은 노아와 그 가족의 공포와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것. 감독은 드라마를 강조하기 위해 극적인 장치를 새롭게 첨가했다. 성경에는 세 아들 셈, 함, 야벳과 그 며느리들이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셈의 아내만 등장한다. 감독은 이름이 없던 노아와 셈의 아내에게도 각각 나메와 일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난민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노아의 가족이 된 일라(엠마 왓슨)와 사랑이라는 본능에 충실한 둘째 아들 함(로건 레먼)은 갈등을 일으키는 중요한 캐릭터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도 있게 다뤄지는 것은 주인공 노아(러셀 크로)의 내면세계다. 홀로 살아남은 자로서 겪어야 했던 죄책감과 슬픔, 신에게 부여받은 사명과 인간적인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노아의 고뇌는 꽤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그 속에서 영화는 선과 악, 가족과 타인 등 다양한 인간사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인 화두를 던진다. ‘더 레슬러’ ‘블랙스완’ 등의 작품에서 보여준 감독의 인간 내면에 대한 면밀한 통찰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또 한번 발휘된다. ③ 오락영화와 종교영화 사이… 대홍수 등 볼거리속 지루한 메시지 감독이 비종교인 관객들도 충족시킬 수 있는 비주얼을 선사하겠다고 밝힌 만큼 총 1억 5000만달러(약 1600억원)가 투입된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한다. 특히 방주는 컴퓨터 그래픽(CG)이 아니라 1200평 6층 규모의 직사각형 형태의 실물 박스로 제작됐다. 생명체들이 방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은 단연 눈길을 끈다. 복제 포유류, 파충류, 조류 등을 만든 뒤 CG를 통해 호흡을 부여하는 2단계를 거쳤다. 통상 다른 영화의 폭우 장면에 비해 3배 이상의 물이 투입된 대홍수 장면도 장대한 스케일이 압권이다. 노아 역의 러셀 크로의 입체적인 연기부터 노아의 조부 므두셀라 역의 안소니 홉킨스까지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력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다만 다소 느린 전개와 무거운 메시지는 영화의 개성을 흐렸다는 평가도 있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오락영화도 아니고 종교영화도 아닌 이 영화는 정체성이 모호하다”면서 “메시지가 지나치게 무겁고 지루해 관객들에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15세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함께 잘사는 나눔운동… 신협 역할 되살릴 것”

    “함께 잘사는 나눔운동… 신협 역할 되살릴 것”

    “1960년대 신협 설립 초창기의 목표가 ‘잘살기 위한 경제운동’이었다면 이제는 ‘더불어 함께 잘사는 나눔운동’으로 서민금융 본연의 역할을 되살리겠습니다.” 신협중앙회의 제31대 회장으로 새롭게 취임한 문상철(63) 회장은 18일 서울 중구 명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대출 건전성을 높이고 자영업자와 저신용 근로자 등 서민을 위한 대출을 지속적으로 취급해 서민금융 본연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중앙회에 기부재단을 만들어 일용직, 노숙인 등 저소득 금융소외계층을 위한 200만원 한도의 소액대출도 시작할 계획이다. 문 회장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처럼 신용등급 9~10등급의 저신용 계층도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소액대출 한도를 높여 나갈 것”이라면서 “서민의 재산 형성에 기여하고 금융 안전망 역할을 하는 신협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문 회장은 신협의 정체성 회복과 수익 증대를 위해 중앙회의 직접대출과 영업구역 현실화 등 신협법 개정과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상호금융기관 가운데 농협, 수협이나 새마을금고는 영업구역 제한이 없는 반면 신협은 행정구역에 소속된 지역민만 이용하도록 돼 있어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이 크게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문 회장은 1961년 한국 신협 설립 이후 단위 조합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앙회장 자리에 올랐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새정치연합 정책노선 ‘탈DJ·盧 지우기’ 충돌

    새정치연합 정책노선 ‘탈DJ·盧 지우기’ 충돌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체성을 담은 정강·정책을 놓고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측의 노선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은 발기취지문 등에서 중도노선을 취하고 있는 안 의원 측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통일·외교·안보, 복지·경제 분야 등 각론에 들어가면서 양측의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특히 민주당의 기존 정강·정책에 김대중(DJ)·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과만 언급하고 있는 데 대해 안 의원 측이 박정희 정권의 7·4 공동선언과의 형평성을 문제 삼고 나서 신당의 좌표 설정에도 진통이 예상된다. 60년간 이어져 온 민주당 노선에 중대 기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은 18일 서울 여의도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정강·정책분과위원회 회의를 열고 양측이 마련한 정강·정책 초안을 논의했다. 새정치연합이 민주당에 제시한 정강·정책 초안에는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 등을 존중·승계한다’는 내용이 빠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안 의원 측 윤영관 공동분과위원장은 “과거의 소모적, 비생산적인 이념 논쟁은 피하는 게 좋다”며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민주당으로선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핵심적 성과를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물러날 수 없는 부분이다. 논란이 커지자 안 의원 측 금태섭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갖고 “6·15 남북공동선언이나 10·4 남북정상선언을 존중하지 않아서 뺀 것은 아니다. 7·4 공동선언은 왜 없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어 특정 사건을 늘어놓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 측이 그동안 중도 노선을 취해 왔던 만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성과를 담으려면 박정희 정권의 공도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에 이어 새해 첫날에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고 민주화 세력뿐 아니라 산업화 세력도 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민주당 측 정강·정책분과위원인 홍종학 의원은 “7·4 공동선언도 정강·정책에 넣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해 조율 가능성은 열어뒀다. 그러나 친노무현·DJ계 등 강경파가 ‘노무현 흔적 지우기’, ‘탈DJ’라고 반발하면서 양측이 접점을 찾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지원 의원은 “논쟁을 피하고자 좋은 역사, 업적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권노갑·정동영 등 민주당 원내 상임고문들도 이날 안 의원과의 만찬 자리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의원 측은 처음 제시한 초안에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도 넣지 않았으나 논란이 커지자 정강·정책 전문에 기술하기로 한발 물러섰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세종청사 문화콘텐츠 개발 계획 ‘구설수’

    세종청사 문화콘텐츠 개발 계획 ‘구설수’

    정부가 정부세종청사를 비롯한 공공시설물을 문화콘텐츠로 개발키로 한 계획이 입주 공무원 사이에서 구설수에 올랐다. 정작 청사를 이용하는 공무원들은 불편하기만 한데 이를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상반기 내에 홍보 책자를 만드는 한편 향후 관련 웹툰, 게임, 캐릭터 등도 개발할 계획이다. 17일 국토교통부 행복도시건설청의 용역보고서인 ‘공공시설물 등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개발 연구’에 따르면 세종시를 ‘통섭형 도시’로 소개할 계획이다. 도시의 자연 및 사회적 자원을 통합하고 이를 스토리로 풀어 도시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확립한다는 의미다. 공공시설로는 정부세종청사, 국무총리 공관, 복합커뮤니티센터, 행정중심복합도시홍보관 등을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선정했다. 정부세종청사에 대해서는 건물의 바탕이 되는 도로 250m마다 5m의 높이 차를 두어 50분의1 정도의 기울기를 두었다고 소개했다. 건물을 동마다 7층에서 4층으로 단계적으로 한 층씩 낮게 지어 시민들이 자연스레 호수공원으로 다가가게 했다는 것이다. 자연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지었고, 위에서 보면 건물이 용의 형상인 것도 소개했다. 국무총리 공관에 대해서는 한 폭의 한국화라고 묘사했다. 건물 사이마다 마당을 두고 연회장 벽에 와당무늬(추녀 끝 기와무늬)를 넣는 등 노골적이지 않고 은근하게 한국 건축 문화를 녹여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입주 공무원들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우선 건물마다 7층에서 4층으로 차례로 낮아지는 것은 다른 동으로 가는 데 애를 먹는 이유가 된다. 모든 층이 다른 동과 이어져 있지 않아 처음에 오면 길을 잃기 일쑤다. 35㎞에 달하는 용의 형상 건물도 부처 간 이동 거리를 늘린다는 지적이 많다. 보안 문제로 동마다 펜스를 치면서 이동거리는 더욱 길어졌다. 국무총리 공관 역시 지난해 10월 강창희 국회의장이 방문해서 한옥 접견실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총리가 컨테이너박스에 산다는 발언도 심심찮게 나온다. 한 공무원은 “이용자 불편은 고려하지 않고 관광객에게만 잘 보이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면서 “정부청사는 관광상품이기 이전에 업무공간인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얼마 전 부산 지하철에서 술에 취한 승객이 선로에 떨어졌다. 그때 이름 없는 시민이 선로로 뛰어들어 승객을 구해 냈다. 한 시민의 용감하고 신속한 구조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을 ‘기사’에 비유한다. “저 사람은 기사도 정신이 투철해”, “정말 정의로운 기사야” 라고 말하곤 한다. 언젠가부터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의 상징이 된 ‘기사’. 우리가 상상하는 기사는 아서 왕처럼 건장한 체격에, 화려한 갑옷을 입고,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채 말위에서 질주하는 모습이다. 군주에게 충성하고 약자를 구하는 멋진 그 이름 ‘기사’. 여기에 그러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이다. 스스로 자신을 편력기사로 부르며 정의를 위해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을 했던 돈키호테. 그는 누구인가. 그동안 ‘돈키호테’는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 영화, 무용 등으로 만들어졌다. 심지어 돈키호테를 닮은 사람을 돈키호테형이라고 하거나 키호테시즘(돈키호테적인 성격이나 생활태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돈키호테’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를 위해 먼저 작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스페인의 상황을 살펴보자.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1547년은 카를 5세(1500~1558)가 지배한 시대로 ‘황금시대’라 불릴 만큼 번영을 누렸다. 신대륙에서 값싼 은이 대량 유입되었고, 식민지를 수출시장으로 한 모직물 공업이 번창했다. 카를 5세의 뒤를 이은 필리페 2세(1527~1598)가 레판토 해전(1571년 오스만튀르크와 기독교 연합 함대가 코린트 만의 레판토 앞바다에서 충돌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 기세는 점점 높아져 갔다. 절대왕정을 확립한 필리페 2세는 무적함대를 만들어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영국 엘리자베스 1세에게 패하면서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유럽에서 스페인이 최고의 강자로 이름을 날리던 16세기 초에 기사도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기사도 소설에서 불가능이 없을 것 같은 스페인의 자신감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1547년 카를 5세 치하에 태어난 세르반테스는 필리페 2세 때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고 이후 몰락해 가는 조국을 보았다. 레판토 해전에서 한쪽 팔을 잃은 그의 인생은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안에 자기가 겪은 스페인의 영광과 쇠퇴를 담으려 했다. 그 결과 기사도 소설에만 존재하는 영광의 세계를 현실에서 찾고 있는 돈키호테가 탄생한 것이다. 1605년 출판된 ‘돈키호테’ 주인공의 본명은 알론소 키하노다. 그는 스페인 라만차라는 작은 마을의 가난한 귀족이었다. 그는 기사와 아름다운 아가씨, 마법사, 용, 마법에 걸린 숲, 신비한 검이 등장하는 모험담에 푹 빠진 나머지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세상을 유랑하는 편력기사가 되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명예를 드높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산초 종자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모험을 찾아 세상을 떠돌면서 악을 바로잡고, 불행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로 다짐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라만차의 돈 키호테’라고 붙인다. 그가 떠난 편력은 온통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행동의 연속이었다. 풍차를 거인이 둔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갤리선에 노역을 하러 가는 죄수들을 풀어 주고 억울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만족한다. 지나가던 우리에 든 사자와 대결하기도 한다. 그는 시종일관 주위 사람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지만 결코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세르반테스는 기사도 소설에 사로잡힌 돈키호테를 이용하여 당시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귀족의 행태를 풍자했다. 죄수를 풀어 주는 이야기도 기존사회 질서에 대한 도전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로테아와 돈 페르난도의 사랑을 통해 신분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사랑을 말하고, 섬의 영주가 된 산초에게 충고하는 모습에서 그가 바라는 이상사회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는 당시 중세사회를 넘어 문예부흥기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근대적 자유주의자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돈키호테’는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인물을 이해하기엔 어려울 수 있다. 그 이유는 돈키호테가 꿈꾸는 이상과 행동이 모순되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열망하는 이상은 이미 쇠락해 버린 스페인에 대한 정의로 볼 수 있고, 광기 어린 행동은 새로운 르네상스가 추구한 자유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돈키호테가 현실의 정체성을 깨달았을 때 죽음을 맞는 부분에서 혼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철저한 논리와 행동의 일치, 주변의 눈에 아랑곳하지 않는 정의감에 대한 열망,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저돌적인 공격, 더할 수 없는 덕행에 빠져드는 광기 어린 행동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방황하는 전환기 지식인의 고뇌와 실천력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돈키호테가 주는 문학적 가치이자 묘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짚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산초에 대한 재인식이다. 우리는 항상 문학작품에서 주인공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문학작품 속에는 주인공과 대조되는 주변 인물이 존재한다. ‘돈키호테’의 산초가 그렇다. 그동안 산초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인물로 인식되어 왔다. 단순하고 솔직해서 배고픔과 추위 등 본능에 충실한 산초.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돈키호테의 여정에 참여한다.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돈키호테가 언젠가 섬의 영주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허황된 행동을 하는 돈키호테를 적절히 통제하며 돕는다. 돈키호테가 물레방아를 괴물로 생각해 공격하려하자 로시탄테의 뒷다리를 묶고 마법사가 한 짓이라고 속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를 만나러 가겠다는 돈키호테를 막기 위해 지나가는 못생긴 시골 아가씨들을 마법에 걸린 둘시네아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섬의 영주가 되어 모자에 대한 명판결을 내리고, 노인들의 분쟁을 해결하여 섬 주민들에게 현자라고 칭송받기도 한다.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스스로 영주의 자리를 내놓은 뒤 돈키호테에게 돌아가 임종을 지키며 숭배하는 현명한 휴머니스트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간다. 산초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우리 자신과 많이 닮아 있다. 돈키호테의 꿈을 향한 용기와 실천은 전환기 지식인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자세이다. 많은 고뇌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결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기에는 2% 부족하다. 돈키호테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산초를 통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산초는 실현 가능한 꿈을 가지고 돈키호테를 돕는다. 산초와 같이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여 돈키호테처럼 끝없는 열정을 가지고 실천해 간다면 그것이 바로 21세기에 적합한 효과적인 추진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무엇을 고르리까, 그것이 문제로다

    무엇을 고르리까, 그것이 문제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독백이다. 숙부의 패륜, 어머니의 변절을 알게 된 덴마크 왕자 햄릿의 혼란과 분노, 갈등을 압축한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햄릿’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것은 단순한 복수를 넘어서 인간 심리를 깊이 통찰하고 삶과 죽음의 본질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연극평론 1세대로 오랫동안 ‘햄릿’을 강의해 온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는 ‘나의 햄릿 강의’(2008)에서 “‘햄릿’은 온통 수수께끼투성이”라고 했다. 햄릿이 복수를 망설이는 것, 오필리어가 자살한 이유, 거트루드(햄릿의 어머니)가 독이 든 잔을 알고 마셨을까 하는 것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작품 해석의 관점에서도 다양하고 흥미로운 화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여 교수의 평가대로, 여기에 올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라는 계기가 얹어져 ‘햄릿’에 대한 변주가 공연계를 휘감고 있다.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연출 박선희)는 ‘햄릿’에 대한 기발한 접근이다. 똑같은 복장과 분장을 한 여성 소리꾼 4명이 햄릿이자 오필리어, 거트루드, 클로디어스가 돼 갈등을 빚고 이야기를 풀어 간다. 전라도 사투리로 판소리의 말맛을 살리고 칼싸움으로 긴장감을 끌어낸다. 타루의 정체성인 판소리와 우리 가락뿐만 아니라 스윙, 왈츠, 탱고 등 다양한 음악이 녹아 있다. ‘햄릿’의 역사·시대상을 재치 있게 우리 사회상과 접목해 이 시대의 자화상을 투영시킨다.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다음 달 13일까지 공연한다. 2만 5000원. (02)6481-1213. 연극, 무용,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활용한 ‘햄릿’이 다음 달 3~6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현대적인 감각과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본 ‘햄릿, 여자의 아들’(연출 송현옥)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고 한탄한 햄릿의 여성관은 다소 비관적이다. 극단 물결은 이런 햄릿의 사고에서 벗어나 거트루드의 처지와 욕망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다. 2만~5만원. (02)3668-0007. 햄릿을 사랑한 여인 오필리어에 초점을 맞춘 창작뮤지컬 ‘오필리어’가 5월 16~25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에서 오필리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아 목숨을 끊는 유약한 존재가 아니다.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은 “연극을 시작하던 스무 살 시절부터 세계인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싶다는 꿈을 간직해 왔다. 초심으로 돌아와 ‘햄릿’을 읽다 보니 청순가련하고 순종적인 여성의 상징 ‘오필리어’의 모습에 의문이 갔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 오필리어를 사랑에 적극적이고 당찬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표현한 이유다. ‘오필리어’의 음악과 안무를 각각 최우정 TIMF앙상블 예술감독과 주목받는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담당해 관심을 끈다. (02)515-0405.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티셔츠에 새겨진 숫자들… 어떤 역사일까요

    티셔츠에 새겨진 숫자들… 어떤 역사일까요

    “1931년은 일본군이 위안부 제도를 도입한 첫해입니다. 아시아 곳곳으로 팔을 뻗친 일제는 무려 20만명의 여성에게 위안부란 이름으로 성폭력을 휘둘렀죠. 그래서 저는 ‘1950’ ‘1982’ 등 이후 83년간의 한 해 한 해를 뜻하는 숫자를 티셔츠에 새겨 입고 다닙니다. 일본 정부가 명백한 범죄를 인정할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의 큐레이터로 활약한 민영순(61) 어바인주립대 교수는 9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50년 넘게 미국에 살아 외형은 한국인이지만 이제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재외 여성 작가라는 혼란스러운 정체성은 역설적이게도 위안부 문제와 이주자, 이민자 등 약자들의 ‘디아스포라’(이산)에 천착하면서 탈출구를 찾았다. 오는 5월 18일까지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2014 SeMA 골드 노바디(Nobody)’전에선 작가가 2006년부터 5년간 작업한 설치작품 ‘역사를 입다’를 만날 수 있다. 형형색색의 티셔츠 수십 장에는 연도를 뜻하는 다양한 숫자가 적혀 있다. “1992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만난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 두 분은 무척 용감했어요. 여자로서 부끄러운 과거를 당당히 밝히고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2006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위안부 생존자인 롤라 버지니아 할머니도 만났죠. 이 문제를 세상에 알릴 방법을 찾다가 티셔츠에 숫자를 새겨 입는 퍼포먼스를 시작했어요.” 이후 작가는 기회가 날 때마다 해외 원정 시위에 나선 위안부 할머니들 곁을 지켰다. 그럴 때면 늘 다른 조력자들과 함께 숫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이 같은 인간에 대한 관심은 이번 전시에서 자기 자신, 이전 부모 세대로 확장됐다. 가변 설치작품인 ‘어머니의 보따리’는 가로, 세로 90㎝인 5개의 작은 보따리들을 오브제로 삼았다. 첫 번째 보따리(비닐봉지)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남긴 유품을 담았고, 두 번째 보따리에는 1992년 4월 미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당시의 사진들을 새겼다. 한인 사회의 정체성에 대해 되물은 것이다. 이어 세 번째 보따리에는 여성 속옷과 신발, 네 번째 보따리에는 군복, 다섯 번째 보따리에는 구한말 조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담아 정체성 문제를 깊이 파고든다. 영상 복합물인 ‘움직이는 목표물’은 반대로 해외에서 국내로 온 이주자들의 문제를 건드린다. 바닥에 동그란 까만 공들을 놓고 벽면을 훑고 돌아가는 영상을 더했다. 공과 영상을 통해 이주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자신들을 ‘타깃’이라고 느끼는 소외감을 표현했다. 작가는 “이주민들의 ‘코리안 드림’으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코리아’란 상품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상품은 보호되나 노동자는 보호되지 않는 현실을 고발했다”고 말했다. 작가의 도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미군 군무원인 아버지가 먼저 미국으로 건너간 뒤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갔어요. 서울 혜화동에 살았는데 1960년 4·19 의거 때 의대생들이 시위하던 모습이 생생해요.” 미 UC버클리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휘트니미술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 작가는 민족주의 성향의 한인단체에 몸담으면서 점차 후기 식민주의와 복잡한 정체성 문제에 눈떴다. 다른 해외 거주 한인 작가들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노바디로서 예술가가 어떻게 세상과 또 자신과 대면해 왔는지에 대한 예술적 기록들을 남겼다. 작가는 추후 한류 드라마 속 여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세계를 다룬 영상 작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번 전시에는 역시 캐나다와 미국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인 윤진미(54)·조숙진(54) 작가도 참여했다. 윤 작가는 캐나다에 이민 온 이민자들이 캐나다를 상징하는 회화 앞에서 찍은 사진들로 구성한 ‘67그룹’ 등을 선보였고 조 작가는 200개의 버려진 액자를 모아 구성한 ‘액자’ 등을 내놓았다. 이들은 “노바디는 가장 중요한 생명과 삶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흔적이자 열쇠”라고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인사동 고층호텔 허용 추진… 주민들 반발

    서울시가 전통문화 업종 외 입점이 제한된 종로구 인사동 ‘주가로변’ 일부 구역에 호텔이 들어설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사전통문화보존회 등은 전통문화 거리인 인사동의 정체성이 실추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16일 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달 28일 열린 서울시문화지구심의위원회에 인사동 업종제한 구간을 축소하는 내용의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 변경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민간위원인 윤용철 인사전통문화보존회장이 “호텔 등 대형 상업 건물 허가에 대해서는 주민의견을 수렴한 뒤 재논의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해 주가로변 구역 범위 조정 안건은 보류됐다. 이 안건은 인사동길 20-3, 20-5, 22-6 등 인사동 문화지구 내 24개 필지를 인사동 문화지구의 주가로변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사동 사거리 북쪽 안국역 일대(인사·관훈·낙원동)는 2002년부터 인사동문화지구로 지정돼 있어 건축물 높이가 최대 4층으로 제한돼 있다. 인사동 사거리 남쪽 종로 방면은 공평도시환경구역으로 지정돼 높이 60m 이내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다. 특히 인사동길과 태화관길의 주가로변은 높이 24m로 묶여 있으며 고미술품점, 골동품점, 표구사, 필방 등 전통문화 업종만 입점할 수 있다. 변경안대로 일부 지역이 주가로변에서 제외되면 업종제한이 풀려 그동안 금지된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호텔 예상부지로 알려진 곳은 인사동 커피빈 매장 건너편 인사동길 12, 20, 22 일대다. 최대 높이 60m까지 건물을 지을 수 있어 약 19층 높이가 가능하다. 이미 강남의 부동산 개발업체가 일부 건물주와 가계약을 체결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윤 회장은 “부동산 개발업체가 주가로변 일부 부지에 호텔을 짓기 위한 건물주의 동의서를 받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걱정이 크다”면서 “시와 구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공청회 등을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시대 모습을 그대로 담은 인사동 거리는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의 70~80%가 들르는 곳”이라며 “문화지구의 범위를 확대하지는 못할망정 대형 상업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그대로 놔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시는 최근 문화지구변경안을 재논의하자는 내용을 구에 통보했다. 시 관계자는 “호텔 건설이 아직 승인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보류된 안건에 대해서는 향후 주민들과 협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사설] 새정치민주연합, 민생과 혁신에 명운 걸라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어제 통합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대회를 열고 통합신당의 명칭을 ‘새정치민주연합’(약칭 새정치연합)으로 확정했다. 이로써 국회 의석수 130석의 야당이 본격 행보를 개시했다. 지난 2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6·4 지방선거 전 ‘제3지대 신당’ 창당을 통한 통합을 전격 선언한 지 14일 만이다. 새정치연합은 미래지향적인 새 정치와 시대통합 정신을 당명 결정의 배경으로 밝혔다. 여권의 불통 행보를 견제하며 그들의 공언대로 혁신과 통합의 가치를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금까지 전개된 통합 과정과 양측의 행보를 감안하면 현실적인 우려를 낳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은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과 안철수 새정치 세력의 행보를 기억하고 있다. 정부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에 기대어 특정 지역의 민심을 좇으며 분열과 대립의 마이너스 정치를 해오지 않았는가 진지하게 되돌아 보기 바란다. 오죽하면 ‘못난이 싸움’이라는 소리까지 들었겠는가. 대선 패배 이후 좀처럼 지리멸렬한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해온 만큼 이번 통합 드라마에서 입체적인 감동의 요소가 반감된 것이 사실이다. 어제 발기인 대회에 앞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친노와 비노 진영 간에 고성이 오간 데서 보듯 계파 간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새정치연합이 눈앞의 선거 일정에 쫓겨 정당의 노선과 뼈대가 되어야 할 정강정책도 성안하지 못한 채 출발한 점은 유감스럽다. 경제와 복지, 대북·통일 정책, 이념적 지향성 등을 명문화한 정강정책은 당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창당발기 취지문을 통해 민주적 시장경제와 민생을 보장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의한 평화통일의 한반도 시대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부인사로 구성된 창당준비위 산하 새정치비전위원회도 급박한 창당과정과 선거를 앞둔 정치상황이 새 정치의 논의와 실천에 장애가 될 수 있다며 시대적 좌표와 비전을 정강정책과 당헌당규에 분명히 담을 것을 요구했듯 통합 명분에 걸맞은 보다 확고한 정강정책 등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통합신당이 태생 과정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고 생명력을 지닌 정치집단으로 자리 잡으려면 정치혁신에 일로매진하고, 민생문제에 올인하는 자세를 견지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기존 정치와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이번 통합으로 수도권 단체장 선거 등에서의 위험요소를 줄일 수 있게 됐다는 식의 현실 타산에 안주해선 안 된다. 지방선거용 정당으로 차기 총선 무렵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는 새누리당의 지적은 단순한 정치공세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감동을 주는 정치만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 정치의 강고한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새정치공동선언문을 열어보라. 새로운 리더십을 통한 소통과 협치, 철저한 정치혁신과 기득권 내려놓기, 과감한 정당혁신, 새 정치를 위한 국민연대….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희생과 헌신의 실천이 관건이다. 새정치연합이 ‘헌 정치의 이합집산’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민생과 혁신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 [씨줄날줄] 인사동의 고층호텔/서동철 논설위원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인 인사동에 호텔을 비롯한 고층 상업시설이 들어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서울시가 일부 구역이기는 하지만 4층 이하 건물에 전통문화업종만 들어설 수 있도록 한 기존 규제를 푸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 19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내용의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 변경안’은 이미 지난달 서울시문화지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한 차례 거쳤다고 한다.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것은 2002년이다. 전통문화 보호와 육성을 위한 업종 규제와 용도 제한, 건축 및 개발 제한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서울시가 지난해 공평 도시환경정비계획을 발표하면서 문화지구 일부를 정비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탑골공원 서쪽의 남인사마당에서 덕원갤러리가 있는 인사동 네거리에 이르는 문화지구 남동쪽 구간이다. 사실 인사동 문화지구는 지정부터가 전통문화 거리의 급격한 해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겠다는 고육지책이었다. 인사동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막상 보여줄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추세는 이미 1990년대부터 본격화하고 있었다. 문화지구 지정 이후에도 정체성은 끊임없이 훼손되어 인사동의 상징이었던 골동품 가게와 표구점, 서화용품점은 이미 오래전에 뒷골목이나 2층, 3층으로 내몰렸다. 대신 그 자리는 옷 가게, 화장품 가게와 다국적 브랜드 커피 전문점이 차지했고, 이런 현상은 이번에 정비대상으로 지목된 곳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서울시의 고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든 문화의 거리가 명성을 얻으면 부동산 값이 뛰어오르기 마련이다. 인사동은 물론 연극의 메카 대학로와 인디 문화의 본거지 홍대앞도 같은 길을 걸었다. 상업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주민’은 갈 곳을 잃는다. 하지만 특정 문화에 대한 집착만 아니라면 인사동, 대학로, 홍대앞은 여전히 문화의 거리다. 실제로 문화지구가 휴식을 겸비한 관광지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오히려 일정한 상업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우리와 달리 문화와 소비, 오락 기능을 한데 묶어 문화지구를 지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서울시는 인사동의 쇠퇴를 방관만 해서는 안 된다. 인사동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통문화 거리가 태어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인사동 주변에는 전통문화 거리의 기능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인사동과 국악의 거리를 문화적으로 이어 거대한 전통문화 중심지로 가꾸어 가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도한 곳에 필요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공세적 문화지구 정책을 기대해 본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상처 안은 풍요… 국외입양의 두 얼굴

    상처 안은 풍요… 국외입양의 두 얼굴

    1958년 전쟁 고아의 해외 입양에서 비롯된 국외 입양인이 어느덧 16만 500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유복한 가정에 입양돼 순탄한 삶을 살아온 반면 일부 입양인들은 언어·신체적 학대를 받아 어두운 성장기를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13일 서울신문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언주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국외 입양인 실태조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국외 입양인의 81.4%가 직업이 있으며 이 가운데 77.2%가 정규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직업 유형별로는 78.9%가 전문기술직, 사무직, 행정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외 입양인 10명 중 3명 이상(37.9%)은 연평균 수입이 6만 달러(약 6400만원)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 학력은 76.0%가 대졸 이상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수행한 이 보고서는 해외 및 한국에 거주하는 국외 입양인 1039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7~11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국외 입양인 실태와 관련해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과 설문조사를 병행한 것은 처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외 입양인들은 전문직 또는 기술직 종사자가 53.6%로 가장 많았고 사무직 14.5%, 고위 행정직이 10.8%에 이르는 등 직업의 질적인 측면도 상당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연평균 수입 또한 4만~10만 달러(약 4200만~1억 600만원)가 51.5%, 10만 달러 이상이 11.7%에 이르는 등 높은 분포를 나타냈다. 2012년 OECD의 평균 국내총생산(GDP)이 3만 6932달러(약 3800만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평균 이상의 소득 수준인 셈이다. 실제로 ‘얼마나 자주 행복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국외 입양인들은 평균 4.2점(‘거의 대부분 그렇다’와 ‘항상 그렇다’ 사이, 5점 만점)을 줬다. 하지만 68.3%가 사회적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하는 등 다수의 국외 입양인들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또한 거듭 확인됐다. 차별을 경험한 대상은 또래 친구가 36.5%로 가장 높았고 지역사회(27.5%), 직장(14.7%) 순으로 나타났다. 국외 입양인이 입양 가족과 친인척으로부터 신체 학대를 한 번 이상 경험한 비율은 38.6%에 달했다. 정신·정서적 문제로 상담 또는 치료를 받은 국외 입양인도 60.6%에 이르렀다. 특히 여성이 69.7%로 남자(41.6%)보다 월등히 높았다. 미국에 입양된 40대 여성 A씨는 연구진과의 인터뷰에서 “상담을 받을 당시에는 정신적 혼란이 입양 경험과 관련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보니 착각이었다”고 말했다. 김미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국외 입양인에 대한 전반적인 생활 실태를 다각적으로 파악함으로써 맞춤형 사후 서비스를 마련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표”라면서 “뿌리 찾기, 언어 교육, 문화 캠프 등의 지원을 통해 국외 입양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거나 정착했을 때 자존감을 높이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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