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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시대] 정보화 시대, 국제적 수준의 정보기관의 중요성/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 전공 교수

    [글로벌 시대] 정보화 시대, 국제적 수준의 정보기관의 중요성/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 전공 교수

    얼마 전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 소속 테러리스트들의 활동과 이를 저지하는 영국정보국 MI-5(Military Intelligence Section 5)에 대해 다시 한 번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게 한 영화가 상영됐다. ‘섀도 댄서’(Shadow Dancer)다. 이 영화는 국가 간의 ‘이념과 갈등’ 상황 하에서 어머니이자 개인으로서 가족을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강한 모성애와 비극적인 상황을 잘 그려냈다. 이처럼 영국을 대표하는 정보기관인 MI-5는 주로 국내 정보를 담당한다. 1992년 세계정보기관으로는 최초로 여성 총수 스텔라 리밍턴이 취임했는데, 최근 그는 오랜 전통을 깨고 주요 활동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35쪽짜리 소책자를 소개했다. MI-5에 대한 “갖가지 오해와 억측을 해소하고, 알릴 것은 과감히 알려 업무와 관련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고, 본래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겠다”는 조치에 따른 것인데,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특히 2001년 9·11 테러의 영향으로 MI-5 외에 미국의 NSA, 프랑스의 DST, 캐나다의 CSIS, 호주의 ASIO, 러시아의 FSB 등 오늘날 대다수 국가들의 정보기관은 테러리즘에 대한 정보수집·분석·평가 및 보급에 주력하고 있으며, 이로써 정보기관의 영역이 더 확장됐다. 자국민 안전과 정치 및 안보환경 변화에 따라 이들 정보기관이 통폐합·보강되고 있다. 또 전 세계적으로 테러가 확산되면서 한 국가에 대한 위협이 더 이상 국내문제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 국가 간의 해외 방첩활동에 대한 정보 협조가 글로벌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실정인가. 대표적인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NIS, 약칭 국정원)은 1999년 1월 출범했다. 그동안 중앙정보부(1961년)로 출발하여 안전기획부(1980년)를 거치면서 민주화 및 대북 위협과 안보 환경변화에 의해 역할과 임무도 강화되고 변화됐다. 국정원 역시 다른 국가의 정보기관처럼 21세기 초국가적 위협이 증대하고 있는 안보 상황을 감안해 ‘테러·마약·기술 보안’ 등 업무도 취급하지만, 한반도 국가안보 최대 위협 요소인 북한에 대한 정보 수집이 가장 중요한 업무로 꼽힌다. 최근 이른바 댓글의혹 사건으로 인해 일부에서 ‘국정원 국내파트’ 해체 주장이 제기됐는데, 이것은 국정원 고유의 기능 훼손과 국가안보 자체를 뒤흔드는 어불성설로 간주된다. 어느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에 의해 국가정보기관의 본래 기능과 조직이 좌지우지되어선 안 된다. 국정원 개혁은 국가안보와 국익을 최우선하는 본래의 역할에 의해 재정립돼야 한다. 국정원 개혁방향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과거 잘못을 되짚어 보고 발전적인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은 반드시 필요하겠으나, 뚜렷한 대안도 없이 비전문가들이 조직 해체 등을 운운하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국정원 개혁은 수십년간 노하우를 쌓아온 정보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모쪼록 국정원은 이번 국정조사를 계기로 향후 정치 개입 배제와 국제적 수준의 정보기관화를 추구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의 계속된 도발 위협과 사이버 테러 같은 초국가적 위협으로부터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잘 지켜내기 위해 정체성 확립과 정보역량 강화에만 주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 도읍에 대한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 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치장됐다. 한국 전쟁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지석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전쟁과 대사건은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폭격을 앞둔 맥아더는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실제 1644년 대화재로 도시의 80%가 타 버린 영국 런던은 옥스퍼드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교수에 의해 오늘의 런던으로 재건됐다. 일본 도쿄도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됐지만 탁월한 도시계획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도쿄시장의 주도로 세계 도시계획 사상 유례가 없는 시가지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런던과 도쿄는 세계대전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지만, 옛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재건은 성공작일까? 서울을 역동적인 현대 도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역사 도시로 평가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서울은 네 번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16세기 일본과 중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성곽을 허물고, 상징 축을 강제로 바꾸는 방법으로 도시 형태가 조작됐다. 한국전쟁기 유엔군과 한국군의 청야(淸野)작전(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1960~70년대 우리 손으로 남은 문화재를 헐어서 치워 버렸다. 맥아더의 말처럼 기회는 있었다. 1952년 전후 복구 차원의 첫 도시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세종로 등 39개의 큰길을 확장하거나 신설하고, 광화문광장·서울시청광장·남대문광장 등 19개의 광장을 만드는 과감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 집중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집중을 막으려고 온갖 정책을 동원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해방 전후 100만명대였던 서울 인구는 1966년 380만명, 1970년 540만명을 넘어서더니 1990년 1000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수도 서울 행정은 집 지을 땅을 확보하고, 도로를 넓히고, 교통수단을 늘리고, 수돗물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매달렸다. 만약 그때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한강과 북한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기본으로 사대문 밖 풍경을 상상해 보자. 동쪽으로 동대문을 나서면 신설동 큰 길가까지 집이 들어 차 있지만, 바깥은 논밭 천지다. 신당동에 집이 드문드문했을 뿐 금호동·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일대는 미나리꽝이었고 성동교의 나무다리가 삐꺽거렸다. 남쪽 한강대교에 이르는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주민은 1000명 안팎이었고, 원효로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는 큰 길가조차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했다. 서쪽으로 신촌을 지나 마포 전차 종점을 벗어나면 벌거숭이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동북쪽은 미아리고개, 서북쪽은 독립문과 현저동이 경계였다. 지금의 강남·서초·송파·강동·강서·관악·구로·금천·도봉·노원·은평구 등은 모두 경기도였다.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정할 정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5년간 거의 이뤄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거의 갖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의 ‘분부’를 이행한 김현옥·양택식·구자춘이라는 3명의 ‘충복’ 서울시장이 재직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얼개는 박 대통령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이 세워졌다. 서울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고 사대문 안에 집중된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입법부는 남서울(강남·서초구), 사법부는 영등포, 행정부는 용산 일대,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 관저 및 직속기관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입지가 맞교환됐고,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통계획을 보면 서울역~청량리(1호선), 서소문~을지로~성동(2호선), 갈현동~종로2가~을지로2가~퇴계로~천호동(3호선), 우이동~종로4가~퇴계로~말죽거리(4호선) 등의 지하철 4개 노선 건설계획이 잡혀 있다. 10년 뒤 구자춘 시장에 의해 2호선이 을지로와 영등포~영동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는 등 엄청난 노선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하철 4개 노선에 대한 기본 구상이었다. 이 밖에 4개 순환선과 14개 방사선을 간선도로망으로 7개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노면 전차는 철거하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에는 지하차도를 만들고, 시청 앞 광장 지하는 지하도시화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심 재개발과 강남·송파 등 남서울개발, 뚝섬·창동·망우 등 동서울개발, 불광·성산·김포·시흥지구의 서서울개발 등 신시가지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1년 예산이 170억원에 불과한 서울시가 20년 앞을 내다보고 인구 500만명을 예상해 3235억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즉흥계획’ ‘실현성 없는 독단’ ‘재무계획 없는 무지개’ 등등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러나 격변의 15년 중 7년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내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손정목 전 교수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도심부 재개발이니 고도지구, 미관지구 개념이 도입돼 일반에 공개됐다는 점, 70~80년대 전국 모든 도시가 수립한 도시계획의 모델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불완전하나마 서울시 장기계획의 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물이 목조건물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장충동, 신당동 일대와 남대문로, 충무로, 을지로 등 일본인 주거지에 정원이 딸린 일본식 저택과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가회동·명륜동·동숭동·북아현동 일대에는 한옥촌이 빼곡하게 형성돼 있었다. 마포, 왕십리, 동대문을 벗어난 지역은 논밭이었다. 사대문 안과 독립문, 신촌, 신설동, 돈암동, 신당동, 용산이 서울의 전부였다. 노면 전차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량리·왕십리, 남쪽으로 노량진·신길동·영등포, 서쪽으로 마포·신촌, 서북쪽으로 독립문, 동북쪽으로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가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인 무허가 판잣집이 도심에서 가까운 하천변이나 산비탈을 차지했다. 1966년 당시 13만여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은 개발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였다. joo@seoul.co.kr
  • 캠핑 열풍에 SUV붐 얇은 지갑에 소형붐

    캠핑 열풍에 SUV붐 얇은 지갑에 소형붐

    올 국내 자동차 시장은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소형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만이 승승장구하는 형국이다. SUV 중에서도 2000㏄ 소형차급이 판매를 주도하고 있다. 소형 SUV의 인기 요인은 가격과 연비에서의 뛰어난 경제성이다. 불황과 아웃도어 열풍을 타고 최근 2~3년 사이 소형 SUV 시장은 쑥쑥 크고 있다. 중대형에만 쏟던 시선을 거둬 작은 차에 주목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국산 완성차 업체들도 이 시장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쌍용자동차는 7일 내외관 디자인을 손질하고 편의성을 크게 높인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 ‘뉴코란도C’를 출시했다. 2년 반 만에 내놓은 새 모델로 선두주자인 현대차 ‘투싼ix’, 기아차 ‘뉴스포티지R’에 도전장을 내놨다. 이에 따라 하반기 소형 SUV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뉴코란도C의 인상은 좀 더 세련돼졌다.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범퍼의 공기 흡입 그릴 등 전면부를 새로 디자인했다. 후면부에도 새로운 리어 콤비램프에 ‘C’자형 라이트가이드를 적용해 차의 정체성을 살렸다. 운전자가 장치들을 조작하기 편리하도록 실내공간에도 변화를 줬다. 엉덩이와 등받이 부위엔 2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통풍 팬을 달아 여름철에 쾌적한 승차감도 보장한다. 국내 SUV 최초로 레드 가죽시트 패키지도 적용했다. 자동변속기 모델에는 새로 주행모드 선택 장치를 장착했다. 경제운전이 가능한 에코 모드와 주행 느낌을 강화한 스포트 모드 중 하나를 선택해 운전할 수 있다. 연비도 8.4%가량 향상(복합연비 12.8㎞/ℓ)됐다. 가격은 사양별로 2071만∼2872만원이다. 뉴코란도C의 출현으로 하반기 소형 SUV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까지 투싼ix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새 모델이 나온 5월 3348대를 시작으로 6월 4233대, 7월 5872대가 팔려 상승세를 타고 있다. 선두에서 달리다가 투싼의 신차 효과에 밀려 올 상반기 1만 8779대로 2위로 밀려난 스포티지R도 지난달 말 신형을 내놓고 왕좌 탈환을 노리고 있다. 각종 사양을 추가하고도 최대 80만원 인하한 ‘착한 가격’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쌍용차는 코란도C에 거는 기대가 크다. 아웃도어 열풍으로 ‘코란도 삼총사’의 인기가 날로 높아 가는 가운데 특히 코란도C가 7월 현재 국내외 총 3만 1153대가 팔려 쌍용차의 부활을 이끌고 있어서다. 쌍용차 관계자는 “2011년 코란도C가 처음 나와 투싼과 스포티지가 양분하던 시장에 균열을 일으켰다”며 “이번 뉴코란도C로 추격의 고삐를 더욱 죌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9월 카타르필하모닉 음악감독 맡는 첼리스트 장한나

    9월 카타르필하모닉 음악감독 맡는 첼리스트 장한나

    “지휘자로서의 삶이요? 우주로 나가서 날마다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그 많은 레퍼토리의 음표 하나하나 개수를 생각하면 은하계보다 더 많겠죠? 그걸 생각하면 너무도 행복해요.”(웃음) 지휘자로서의 삶이 이토록 벅차다는 장한나(31)가 오케스트라의 수장이 된다. 오는 9월 카타르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다. 2007년 제1회 국제관현악축제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지 6년 만이다. 취임에 앞서 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난 장한나는 “오케스트라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음악적 가능성을 발휘해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창단 5년째인 카타르필하모닉은 카타르 왕실이 국가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만든 신생 오케스트라다. “창단 당시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세계 10대 도시에서 단원 106명을 뽑았는데 수천명이 지원했을 정도로 경쟁률이 대단했더라고요. 실력으로 선발했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어요.” 이집트, 그리스 출신 지휘자에 이어 세 번째로 지휘봉을 넘겨받은 장한나는 내후년 프로그램까지 다 짜 놨을 정도로 열심이다. “이제 1년에 110여일을 카타르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는 그는 “앞으론 첼리스트보다 지휘자에 비중을 더 많이 둘 것”이라고 못 박았다. “지휘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고 연주할 수 있는 곡도 훨씬 많으니까요. 7대3이냐고요? 그건 저도 모르죠.”(웃음) 그에게 롤 모델은 차고 넘친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귀도 칸텔리 이 3인의 지휘자는 롤 모델로 삼지 않을 수가 없죠. 특히 36살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난 칸텔리의 몇 장 안 되는 실황 음반을 들어 보면 ‘음악은 나이나 몸이 아니라 영혼으로 하는 것’이라는 전율이 느껴져요.” 장한나가 지휘자로서 발판을 다진 것은 200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5년째를 맞은 성남아트센터의 ‘앱솔루트 클래식’(오는 17~31일)에서다. 음악감독으로 매년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온 그는 후배 음악인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믿음을 드러냈다. “‘앱솔루트 클래식’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우리 단원들이에요. 여름마다 한달간 매일 8~10시간씩, 밤 12시까지 남아 치열하게 연습해 온 단원들의 열정과 패기가 있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있었죠.” 5년간의 경험이 지휘자로 비상 중인 그에게 새겨준 교훈은 ‘진심은 통한다’는 것. “지휘자 데뷔 무대 때나 지금이나 제가 믿는 게 있다면 음악에서만큼은 ‘진심이 통한다’는 거예요. 한달을 함께한 단원들과 진한 여운으로 울면서 헤어지는 건 ‘음악의 힘’ 때문이죠. 음악을 통한 영혼과 영혼의 대화가 있다면 허물지 못할 장벽은 없어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열린세상] 금융 감독과 소비자 보호/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금융 감독과 소비자 보호/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소비자 보호를 전담하게 되는 금융소비자보호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독립하는 형태로 금융감독체계 개편의 가닥이 잡힌 것 같다.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태스크포스(TF)가 내놓은 안은 현재의 금융소비자보호처를 금감원 안에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결론이었다. 이에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대통령의 지적에 따라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최종적으로 분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금융위원회 안에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을 감독하는 금감원과 영업행위를 감독하는 금소원이 병렬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쌍봉형 모형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책과 감독을 둘러싼 행정체계는 변화를 겪으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지만 아직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제금융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 국내금융정책은 금융위원회가 주관하고 있다. 찬반이 있지만 글로벌 시대에 국제금융정책과 국내금융정책이 분리될 수 있는가는 생각해봐야 할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정책기능과 금감원을 통한 감독기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금융위원회가 정부행정조직인 반면에 금감원은 민간조직이면서 정부조직의 기능을 하는 복잡한 조직이다. 이렇게 다소 기형적인 체제에 대한 장기적 관점의 접근 대신에 금감원에서 소비자담당 기구를 독립시키느냐 마느냐의 논쟁으로 결론이 나게 된 것이다. 어떤 행정조직도 완벽할 수 없어서 기존의 조직을 없애거나 새 조직을 신설한다고 해서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고와 관행이 변화하지 않으면 결국은 같은 상황에 봉착하게 될 뿐이다. 금소원을 신설하는 것이 개악이 되지 않기 위해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금소원이 독립해야 한다는 논리의 근저에는 기존의 금감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금감원은 본연의 업무를 망각하고 사회적 큰 파문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 금소원이 생기면 이러한 사태가 자동으로 근절될 것인가. 감독기구라는 막강한 갑이 하나 더 생기면 사회구조가 약자 편으로 움직일 것인가. 이것은 정치가 개입하지 않고, 관치가 결탁하지 않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원리를 이해하는 금융소비자가 전제되지 않고는 어렵다. 둘째, 금소원은 마치 소비자를 대변하고 금감원은 업계를 대변하는 것처럼 몰고 가는 이분법의 논리는 옳지 않다. 금감원이 금융업계를 위해서 일한다고 느끼는지 금융기관에 물어볼 일이다.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을 감독하는 이유는 크게 보면 금융소비자 보호도 포함된다. 금융기관이 건실하게 성장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금융상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이기 때문이다. 셋째, 금소원은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 아마도 출발은 금감원의 금융소비보호처가 그대로 분리 확장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기구란 팽창 지향적 속성이 매우 크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감독기구가 갖는 막강한 권력을 앞세우고 업계를 볼모로 기구를 확장하려 할 것이다. 처음부터 예산의 재원부터 소속 직원들의 신분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서 시작해야 한다. 넷째, 금소원의 신설이 성공적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용의 묘이다. 자산건전성을 감독하는 금감원과 시장행위를 감독하는 금소원은 같은 사안으로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때 조정과 협력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밀리면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처 간 조정이 안 되는 것으로 유명한 우리의 현실에서 과연 발전적 조정이 가능할 것인가. 업계는 공동검사라는 허울 좋은 이중검사에 시달릴 것이 뻔하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없다면 또 다른 관치가 추가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금융서비스의 공급자조차 이해하기 어렵게 진화해 가는 복잡한 금융상품들에 대해 소비자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리스크는 생각지 않고 무모하게 고수익에 투자했다가 입은 손실을 국가가 해결해 주는 것이 소비자 보호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정부기구가 신설된다 해도 공급자와 소비자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 007 ‘최연소Q’ 벤 위쇼, 작곡가와 ‘동성 결혼’

    007 ‘최연소Q’ 벤 위쇼, 작곡가와 ‘동성 결혼’

    영화 ‘007 스카이폴’에서 최연소 Q역을 맡아 국내에도 잘 알려진 훈남배우 벤 위쇼(33)가 동성결혼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영국언론 데일리메일은 3일(현지시간) “위쇼가 영화음악 작곡가 마크 브래드쇼와 ‘동반자 관계’(civil partnership·동성 커플에게 결혼한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라고 보도했다.   언론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영화 ‘브라이트 스타’ 작업 차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진 두 사람은 이후 사랑에 빠져 지난해 8월 호주 시드니에서 ‘결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위쇼 측 관계자는 “벤은 성정체성을 결코 숨긴 적은 없으나 대부분의 배우들은 가족 등 개인 생활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면서 “벤과 마크는 서로를 매우 자랑스러워 하며 행복해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위쇼는 2006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향수:어느 살인자 이야기’ 주인공에 캐스팅돼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지난해에는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배두나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부처홈피 오류투성이… 마이너스 ‘정부 3.0’

    정부의 얼굴인 부처별 인터넷 홈페이지 곳곳에 오기와 맞춤법 오류, 일부 정보 누락 탓에 국정 과제로 추진하는 ‘정부 3.0’ 비전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신문이 1일 주요 부처별 인터넷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가장 공신력이 있어야 할 정부 기관 소개 홈페이지 곳곳에서 오기가 발견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현병철 위원장의 기관 소개 인사말에서 “우리나라가 개개인의 보편적 인권이 존중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껴안는 진정한 인권선진국으로 발돋음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구절에서 ‘발돋움’을 ‘발돋음’으로 잘못 표기했다. 현 위원장의 맞춤법 실수를 인권위 내 어느 직원도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경찰청은 홈페이지 내 경찰의 상징물을 소개한 부분이 문제로 지적된다. “미 군정하에 제작(1964년)되어 그간 정체성의 논란이 있었던 독수리의 상징물을 과감히 한국 수리인 참수리 형상으로 새롭게 표현…”이라는 구절에서 제3공화국 시절인 1964년을 미군정기(1945~1948년)로 잘못 표기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1946년을 오기한 단순 실수로 바로 시정 조치했다”고 해명했다. 일부 부처 홈페이지에는 역대 장관을 소개하는 사진이 누락돼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외교부 홈페이지의 경우 역대 장관 소개란에서 지난 3월 퇴임한 김성환 장관의 사진 부분이 여전히 공란이다. 또 9대 최덕신 장관(1961~1963년) 사진은 이미지 준비 중으로 표시돼 있다. 공보처에서 공보부, 문화공보부, 문화체육부 등으로 부처 이름이 바뀐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역대 장관 46명을 소개하며 초대부터 20대까지의 장관 사진들을 빠뜨렸다. 기획재정부는 홈페이지에 역대 장관 소개란이 아예 없어 정보 제공에 인색하다는 평을 받는다. 이 밖에 지난 3월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부처 이름이 변경된 교육부는 홈페이지 영어 소개란에 한동안 교육과학기술부로 소개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부처의 이 같은 행태가 홈페이지 이용객인 국민을 외면하고 여전히 공급자인 정부 중심의 행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방증으로 진단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각종 기관 홈페이지의 구성이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서 “우리 정부가 홈페이지의 구동 속도 등 전자정부의 기술적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아도 실제로 얼마나 많은 국민이 정부 홈페이지를 찾아볼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의 ‘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 홈페이지의 정보 오류와 누락은 오프라인의 오류보다 파급효과가 더 크다”면서 “홈페이지 정보의 정확성이나 오기 여부 등을 부처 평가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20개국 330여 디자이너 참가… 즐기는 ‘대박 비엔날레’로

    20개국 330여 디자이너 참가… 즐기는 ‘대박 비엔날레’로

    “이 땅에서 디자이너로 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을 북돋워 주세요.” 이영혜(60) ‘2013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거시기, 머시기’(anything, something)를 주제로 다음 달 6일부터 11월 3일까지 59일간 광주 일원을 수놓을 디자인비엔날레를 앞두고 그간의 어려움부터 털어놨다. “예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은 디자인”이라면서도 “이렇게 어려운 작업인 줄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20개국 330여명의 디자이너와 19개 기업이 참가하는 이번 행사는 이 시대의 디자인 거장과 신진들을 망라했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 건축 거장 구마 겐코, 데얀 수딕 런던디자인미술관장, 브랜든 기언 호주 국제디자인어워드 대표, 폴 스미스, 비비언 웨스트우드 등 해외 유명 디자이너는 물론 은병수 2009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김백선 백선디자인스튜디오 대표, 장광효 패션디자이너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행사는 주제전을 비롯해 디자인의 정체성을 다룬 본전시, 디자인 산업화를 담은 특별전1, 지역서비스 디자인을 선보이는 특별전2, 워크숍 등 5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이 총감독은 “디자인이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시장을 전제로 부가가치를 보태 창의적인 콘텐츠를 쏟아내는 행위”라며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디자이너가 되는 전시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로 5회째인 디자인비엔날레는 이번에 가장 파격적인 행보를 예고한다. 광주시내 맛집의 ‘테이블 세팅’과 택시기사 유니폼, 쓰레기봉투에까지 디자인의 영역을 확장하는 등 ‘광주적’이면서도 실험적인 길을 모색한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세계 80여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하는 국기 디자인.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남북한 동시 입장을 기원하며 이전 한반도기를 대체할 새로운 통일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 밖에 발광다이오드(LED)를 사용한 디자인 제품, 장인과 디자이너가 협업한 공예품, 가구 컬렉션 등이 전시된다. 페트병을 재활용한 술잔을 비롯해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에서 내놓은 가죽 소재의 해먹과 전등갓 등 10여점도 눈길을 끈다. 이 총감독은 “백미 포장상품 등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농사도 결국 디자인의 무대”라며 “이제 디자인도 ‘슬로 프로덕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1976년부터 ‘디자인’ ‘행복이 가득한 집’ ‘럭셔리’ ‘멘즈 헬스’ 등을 잇따라 발간한 잡지계의 거물이자 ‘디자인 통’이다. 1995년 개막한 광주비엔날레의 동생 격인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앞으로의 과제도 만만찮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정부 위탁으로 2005년부터 2년 주기로 열고 있지만 흥행몰이는 부담이다. 올해 예산은 50억원. 산업통상자원부와 광주시가 20억원씩 내놓고 관람객 수입으로 나머지 10억원을 메운다. 올해 예상 관람객은 35만명 수준. 지난해 광주비엔날레(45만명)보다 10만명가량 적다. 광주비엔날레재단 관계자는 “비엔날레의 통상 손익분기점은 관람객 70만명 수준”이라며 “국내 간판인 광주비엔날레가 1회 행사 때 관람객 163만명과 77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뒤 4회 행사 이후 적자로 돌아서는 등 대부분의 국내외 비엔날레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흥행과 예술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韓·日 가교역할 학장 되겠다”

    “韓·日 가교역할 학장 되겠다”

    한국 국적의 재일 정치학자 강상중(62) 교수가 현재 몸담고 있는 일본 사립 세이가쿠인대학 학장(총장)으로 선임됐다. 30일 세이가쿠인대학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대학 이사회는 지난 22일 이사회에서 임기 만료를 앞둔 현 학장의 후임자로 강 교수를 선임했다. 임기는 내년 4월부터 5년간이다. 한국 국적자가 일본 종합대학 총장에 선임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 일이다. 1950년 재일한국인 2세로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난 강 교수는 1998년 한국 국적 재일동포로는 처음으로 도쿄대 정교수가 됐다. 15년간 도쿄대 사회정보연구소와 정보학연구소 교수, 현대한국연구센터장으로 재직하면서 활발한 저술 활동과 TV 출연, 신문 기고 등을 통해 재일동포의 정체성, 한·일 관계 등 다방면에 걸쳐 독특한 견해를 펼쳐 왔다. 그의 최근 저서 ‘마음’(心)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강 교수는 지난 4월 사이타마현 아게오시에 있는 기독교계 미션스쿨 세이가쿠인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 특정 학과에 소속되지 않은 ‘전학교수’로 재직해 왔다. 강 교수는 “학장을 맡는 5년간 학교가 한국과 일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열린세상] 상상력은 자유롭지 않다!/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열린세상] 상상력은 자유롭지 않다!/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요즘 상상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처세나 경영을 다룬 서적에서 특히 창조적 아이디어를 강조할 때 꼭 빠뜨리지 않는 언급이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동 교육에서는 상상력을 길러줘야 한다는 당부가 필수적이라 할 정도이다. 모두 지당한 의견들이라 하겠다. 그러나 ‘상상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과거에는 상상력보다는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더 바람직하게 여겨졌다. 이제 바야흐로 이성보다는 감성, 논리보다는 상상력을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류에 맞추어 ‘상상하는 동물’이 되고자 할 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흔히들 상상력은 자유롭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하는 문제이다. 내가 마음대로 머릿속에서 그리고 꿈꾸는 것이 자유롭지 않으면 무엇이 자유롭단 말인가? 머리를 열심히 굴리면 내가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으니 바로 이것이 상상력의 자유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당연히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순진한 생각이다. 상상력에도 정치학과 경제학이 작동한다. 상상력은 이제 중요한 산업적 자원이 되었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상상력을 담은 스토리를 가공하여 게임·영화·애니메이션·만화·드라마 등을 만들어 내는 산업, 이른바 문화산업은 오늘날 유망한 국가 성장동력 산업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 문화산업은 상상력에 대한 우리의 순진한 생각을 뒤집어 놓는다. 가령, 세계를 지배하는 할리우드 문화산업은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백인 소녀의 우상인 백설공주만으로 더 이상 전 세계 소녀의 환심을 사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작품이 ‘뮬란’이다. 뮬란은 늙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남장하고 종군했다는 중국의 효녀이다. 디즈니사는 이 작품을 만들어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뮬란’에서 디즈니사는 신령스러운 용을 하찮은 도마뱀 정도로 묘사하고 중국처녀 뮬란을 백인 남성들이 좋아하는 일본 게이샤 이미지로 바꾸어 놓았다. 동양의 상상력을 자신들 서양의 스타일로 재가공해서 역수출한 것이다. 이렇게 변조된 상상력은 막강한 할리우드 문화산업의 영향력에 의해 우리에게 저항 없이 주입된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시리즈’ 등 서양 상상력의 대작들도 마찬가지이다. 서양의 신화나 전설에서 용은 줄곧 사악하거나 별 볼일 없는 동물인데, 이러한 인기 높은 대작들 속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된 용에 대한 이미지는 가뜩이나 일찍부터 그리스 신화와 안데르센 동화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의 뇌리에 여지없이 각인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 중 일부는 용이 나쁜 동물이라고 상상하게끔 되었다. 상상력의 전도라 할 이 현상은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상력이 마냥 자유롭지만은 않구나 하는 깨달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차제에 상상력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 문학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실상이 드러난다. 상상력의 결정이라 할 판타지에도 민족별 정체성이 존재하고 그것이 뚜렷할수록 문화산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즉, 서양 판타지에서는 마법이나 기사에 대한 상상력이, 동양 판타지에서는 중국의 경우 도술이나 무협에 대한 상상력이, 일본의 경우 요괴에 대한 상상력이 각기 독특한 내용과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판타지는 아직 고유한 특성을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 대부분 서양 마법담이나 중국 무협담, 일본 요괴담의 내용과 분위기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실정이다. 이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문화산업에서 우위에 있는 서양이나 일본, 그리고 엄청난 전통문화의 자원을 지닌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 용을 나쁜 동물로 상상하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어른들은 용꿈을 꾸기라도 하면 당장 복권을 사러 갈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상상력이 자유롭다는 미신에 사로잡혀 우리 상상력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면 지금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용꿈을 꿀 때 복권을 사러 가기는커녕 “재수 없다”고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 “한국말 잘하는데 무슨 다문화?”… 편견·차별에 우는 中동포

    “한국말 잘하는데 무슨 다문화?”… 편견·차별에 우는 中동포

    “중국동포는 다문화가족이 아니잖아요. 우리말을 잘 하시죠. 그럼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말고 직업을 찾아 보세요.” 결혼 생활 3년차에 접어든 중국동포 출신 이모(38·여)씨는 지난해 찾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담당자의 무심한 말투에 상처를 받았다. 어색한 말투를 고쳐 곧 태어날 아이에게 직접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싶었다는 이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 어디에도 도움받을 데가 없어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다문화가족의 경우 보육료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중국동포 출신 박모(40·여)씨는 다문화가족문화센터 요리 강좌에 참여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박씨는 “기념촬영을 하는데 사진사가 ‘이주 여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려면 베트남 출신 여성을 앞에 세우고 중국동포를 뒤에 세우는게 좋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면서 “안팎으로 차별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중국동포 다문화가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홀대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이들의 모습이 한국 사람과 다르지 않고 우리말을 사용할 줄 안다는 이유로 지원 서비스를 차별할 정도다. 되레 ‘한국계’라는 것이 다문화가족이면 누구가 받을 수 있는 서비스 혜택도 받지 못하게 하는 셈이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2012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 조사’(1만 5341가구)에 따르면 45%의 중국동포 다문화가족이 차별과 무시를 당했다고 답했다. 이는 같은 답변을 한 전체 다문화가족의 평균(41.3%)을 웃도는 수치다. 그나마 정부 지원도 ‘이제 막 이주한 결혼 여성’에게 집중되다 보니 중국동포 다문화가족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자녀 문제와 같은 맞춤형 지원이 절실하지만 이와 관련된 대책과 지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박씨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엄마가 중국동포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 한동안 힘들어했다”면서 “어디 상담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딱히 도움이 받을 곳이 (센터 내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결혼 이주 남성의 경우에는 프로그램 참여조차 제한적이다. 중국동포 남편(36)을 둔 한국인 부인 김모(37)씨는 최근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았다가 실망감만 떠안았다. 남편 일자리 지원 등을 문의하자 센터로부터 “결혼이주 여성을 위한 지원만 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김씨는 “우리도 다문화가족인데 왜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는지 답답하다”고 꼬집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관계자는 25일 “우리말을 못해 도움이 더 필요한 결혼 이주 여성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 “게다가 각 지원센터들이 아직 지역 특수성이나 집단별 수요를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건수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중국동포가 우리말을 한다고 해서 (결혼 이주민들이 겪는) 문제가 적을 것이라는 인식부터 고쳐야 한다”면서 “이들을 향한 관점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서동철의 시시콜콜] 성공이 몰고 온 사물놀이의 위기

    [서동철의 시시콜콜] 성공이 몰고 온 사물놀이의 위기

    사물놀이를 처음 만난 것은 1979년 서울 원서동의 ‘공간사랑’이었다. 그 전 해, 같은 곳에서 출범한 사물놀이는 이미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날 밤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소리뿐만 아니라 울림까지, 귀는 물론 온몸으로 전해지는 공연이란 뜻밖의 경험이었다. 서양음악에서도 관악기가 4개씩 동원되는 말러나 브루크너의 교향곡 연주회에서는 금관악기군(群)에서 내뿜는 진동이 희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150석 남짓한 소극장에서 꽹과리, 북, 장고, 징이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전투적 울림은 차원이 달랐다. 육체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분명한데도, 네 사람이 끊임없이 두드려대는 퍼포먼스의 시각적 효과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정교하게 짜여진 가락이 더해지며 절정으로 몰고 갔으니 음악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았다. 이후 사물놀이가 전례 없는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비슷한 엑스터시를 공유한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사물놀이는 1983년 드디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진출했다. 4000석 남짓한 초대형 극장이었던 만큼 공간사랑에서와 같은 물리적 울림은 없었다. 대신 소극장에서는 불가능했던 상모돌리기 같은 판굿이 등장한 것은 새로운 볼거리였다. 객석 한복판에서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땋은 색동저고리 금발 소녀가 끝없이 기립박수를 치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사물놀이가 세계적 보편성마저 갖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고, 실제 그렇게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남사당 출신의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가 만든 타악 앙상블 사물놀이는 어느 사이 보통명사가 됐다. 그렇다고 사물놀이가 찬사만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민속학계는 무대와 관객을 분리시킨 사물놀이가 두레패와 구경꾼이 한데 어울리는 풍물굿의 생명력을 쇠퇴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공동체의 신명을 풀어내던 풍물굿의 전통은 사라지고 무대에서 관객을 내려다보는 사물놀이만 남지 않겠느냐는 걱정이다. 공간사랑의 사물놀이는 풍물과 무속의 음악적 요소를 타악사중주단의 무대 공연 레퍼토리로 정밀 가공한 것이었다. 본질을 더욱 가다듬고 변두리 활동에 눈을 돌리지 않은 채 풍물굿과는 분명히 다른 독자적 영역을 유지했다면 비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체성이 모호해지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물놀이 단체가 생겨났음에도 본질에 충실한 공연은 이제 눈을 씻고도 찾기 어렵다. 무지한 사물놀이는 자기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민속학계의 걱정처럼 전통문화에 해악을 끼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사물놀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위기다. 실상을 점검하고 궤도를 수정하는 데 원조 사물놀이 멤버들이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dcsuh@seoul.co.kr
  • 밀양·거창·춘천… 피서객 유혹 한여름 밤의 ‘연극 향연’

    밀양·거창·춘천… 피서객 유혹 한여름 밤의 ‘연극 향연’

    서울을 벗어난 지방에선 다채로운 공연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나 지방에서도 짧지 않은 역사를 자랑하는 공연 축제들이 이어져 오고 있다. 전통극, 고전의 재해석, 인형극 등 저마다 개성과 대중성, 작품성을 겸비해 지역 주민들과 휴가철을 맞은 여행객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지난 24일 막을 연 제13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는 ‘연극, 전통과 놀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우리나라의 전통연희양식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개막작인 판굿놀음 ‘배돌석이’를 시작으로 고성오광대의 ‘탈놀음’, 꼭두 탈놀음 ‘산 넘어 개똥아’, 춘향전을 뒤집은 재담극 ‘탈선춘향전’ 등이 이어진다. 이를 통해 전통연희양식이 현대 연극과 결합해 변모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전통극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희랍극 주간’, ‘가족극 주간’, ‘젊은 연출가전’ 등을 통해 국내외 연극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연희단패거리의 오레스테스 3부작, 일본과 세네갈의 합작품 ‘타카세’,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밤의 꿈’ 등은 주목할 만하다. ‘열린 공연’을 추구하는 밀양여름축제는 모든 공연을 야외 무대에서 진행한다. 8월 4일까지 경남 밀양시 밀양연극촌. 무료~3만원. (055)355-4176. 26일 개막하는 제25회 거창국제연극제는 피서지에서 즐기는 ‘연극의 향연’이다. 국제연극제답게 영국, 이탈리아, 스리랑카 등 외국의 10개 단체 작품과 우리나라와 서구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 뮤지컬, 음악극, 악극 등 한자리에서 보기 어려운 장르가 모였다. 개막작 ‘100인의 햄릿’은 관객들에게 생소한 ‘사운드 이미지’ 연극이다. 몽환적인 조명과 음악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100명의 햄릿이 한꺼번에 무대에 올라 정체성 혼란을 겪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영국 극단 리브레의 ‘아트레우스가(家)’는 에스킬로스의 그리스 고전 3부작 중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을 신체극으로 각색했고, 이탈리아 극단 아바티의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1인극으로 응축했다. 낮 공연이 펼쳐지는 수승대 무지개극장은 계곡의 물 속에서 관람하는 시원함을 선사한다. 8월 11일까지 경남 거창군 수승대 야외극장 및 거창읍 전역. 1만~1만 5000원. (055)943-4152~3. 춘천에서는 동심을 자극하는 인형극 축제가 열린다. 다음 달 9일 개막하는 제25회 춘천인형극제는 국내외 96개 극단이 모인 가운데 인형극과 다양한 부대행사가 진행된다. 해외 초청작인 그리스 네브마 극단의 ‘레모니아’는 밀가루 반죽으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레모니아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렸고 포르투갈 S A 마리오네타스 극단의 ‘ETC’는 스펀지 인형이 대사 없이 음악과 행동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올해는 국내 인형극의 저변 확대를 위해 ‘공식경연제도’를 도입했다. 극단 로.기.나래의 ‘소금인형’은 자아를 찾아 떠나는 소금인형의 여정을, 극단 나무의 ‘이야기 하루’는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할아버지의 추억 여행을 따라간다. 또 ‘아기돼지 삼형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옥신각신 토끼, 자라’ 등 익숙한 동화를 인형극으로 만날 수 있다. 8월 15일까지 강원 춘천시 전역. 7000~1만원. (033)242-8450.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삼성, 구찌 입을까?

    삼성, 구찌 입을까?

    이탈리아의 명품패션 브랜드 구찌(GUCCI) 경영진이 삼성전자를 벤치마킹하겠다며 한국을 찾았다. 이를 두고 말들이 많다. 구찌에서 신발 사업을 총괄하는 마시모 리구치 사업부장과 협력사 경영진은 23일 수원 삼성디지털시티를 방문해 ‘벤치마킹 투어’를 했다. 구찌 경영진은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장 윤부근 사장 등으로부터 삼성전자의 브랜드 철학과 주요 제품의 디자인이 탄생한 배경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삼성전자의 혁신 사례, 디스플레이 솔루션이 패션·디자인 분야에 활용된 예 등을 소개받았다. 오후에는 삼성 홍보관과 삼성디지털시티 캠퍼스를 둘러봤다. 리구치 사업부장은 “매장 고객의 편의를 강조하는 삼성의 럭셔리 프리미엄 제품 개발 과정이 구찌와 유사점이 많다”면서 “창의성과 혁신적 기술이 조화를 이루게 하려는 것은 삼성전자와 구찌 모두의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방문이 ‘차세대 디자인 콘셉트’를 고민 중인 삼성전자의 디자인 전략과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5월 말 윤부근 삼성전자 CE부문 대표 등 삼성전자 주요 경영진은 디자인 전략회의를 열고 ‘차세대 디자인 콘셉트’를 논의했다. 당시 경영진은 “멀리서도 한눈에 삼성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삼성의 정체성을 담은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때문에 이날 구찌 경영진의 대거 방문이 삼성과 구찌의 협업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며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방문이 향후 협력관계를 확대하는 기반은 될 수 있겠지만 당장 어떤 협업이 나올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구찌의 시계·보석 브랜드인 타임피스&주얼리 제품과 첨단 디스플레이를 조합하는 매장 협업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또 전 세계 구찌 매장에 삼성의 상업용 디스플레이(LFD)를 설치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지방시대] 충청인의 작은 행복 찾기/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지방시대] 충청인의 작은 행복 찾기/이재은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는 작은 행복들이 숨어 있다. 특히 아이들의 표현 속에는 팍팍한 삶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아주 작은 웃음들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우리말 표현 중에 내일 모레의 다음 날을 뜻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대부분의 어른들은 쉽게 ‘글피’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면 글피의 다음 날은 무엇일까? 정답은 ‘그글피’다. 이번에는 반대로 어제의 전날은 그제, 그제의 전날은 무엇일까? 이 또한 어른들은 ‘그끄제’라고 답할 것이다. 며칠 전, 가족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생인 막내가 ‘내일 모레 내일’에 학교에서 현장 학습을 간다는 말을 하는 순간, 약간의 간격을 두고 가족 모두 작은 행복감을 느꼈다. 확신을 갖고 말하는 아이가 예뻤고 그 표현이 정말로 기발했다. 어느 집에서나 막내는 집안의 웃음꽃이리라. 일반 가정에서 작은 행복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가족 간에 사랑이 있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바깥세상이 힘들더라도 집안에서만큼은 작은 행복으로 재충전할 수 있다. 지역사회도 가정과 다르지 않다. 지역공동체의 삶은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지역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함께 잘 살아 보자고 노력하는 모습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그나마 오랜 세월 동안 경쟁과 협력의 틀 속에서 어느 한 곳이 성장하면 기꺼운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고, 안타까운 일이 생기면 작은 위로나마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기에 작은 국책사업이라도 어떻게 하면 서로 함께 할 수 있을까 상의도 하는 것이다. 특히 다른 지역들에 비해 정치력도 없고, 인구도 적고, 힘도 없고, 돈도 없는, 그야말로 서로의 어깨 빼고는 비빌 곳도 없는 지역이 바로 충청도다. 얼마 전, 충청지역민들의 작은 행복을 박탈하는 일이 있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수정안이 그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거점지구와 기능지구가 뭔지 잘 알지도 못하고, 또 그것이 우리 지역이나 가정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가져올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대전, 충남, 충북, 세종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우리나라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 충청인으로서의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켜봤던 것이다. 같이 시작했으면 끝을 내든 바꾸든 한 마디 상의는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서운함과 배신감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다 못해 가족 여행을 가더라도 행선지며 숙박이며 음식까지도 서로 상의한다. 더군다나 수정안이 국가에 더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도 미리 상의하면 안 될 이유가 있었던가. 500만 충청인들을 국가차원에서는 생각을 못하는 지역이기주의자로만 보는 것인지 의아하기까지 하다. 국가의 과학정책을 사회적 논의 없이, 더군다나 힘을 합쳐 제대로 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한 번 만들어 보자고 협력을 한 친구들에게는 한 마디 상의도 안 한 친구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조금이라도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 배려가 있었다면 이처럼 많은 배신감과 분노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힘없고 백 없는 소시민들의 작은 행복마저도 소수가 독점해 버리는 세상이 되었나 보다. 지금이라도 함께하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텐데.
  • 양극화 현상이 만연한 대한민국 제헌헌법의 정신을 되새겨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1조다. 애국가에 견줄 만큼 귀에 익숙한 조문이다. 한데 이 한 문장이 가진 의미와 가치까지 꿰고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책은 이 조문이 우리 헌법의 첫머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쳤는지, 이 조문에 담긴 민주공화국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밝히고 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한국은 군주국이었다. 대한제국은 스스로 전제군주국을 표방하기도 했다. 한데 대한제국이 무너진 지 불과 9년 만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며 출범했다. 이어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 역시 민주공화국을 앞세웠다.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토론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는 “헌법 첫 장에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답을 찾던 게 집필 동기가 됐다”고 밝혔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헌법 전문의 토대가 된 제헌헌법 제1조다. 이 문장이 명문화되는 과정이 곧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성립 과정과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책은 구한말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입헌정치와 민주주의가 망국과 일제강점기, 해방을 거쳐 어떻게 제헌헌법을 통해 결실을 보게 되는지 낱낱이 살피고 있다. 아울러 책은 제헌헌법을 거울 삼아 근래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헌법 제정의 정신을 되돌아보자는 뜻도 전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엔 민주공화국이란 용어가 매우 독창적이고 진보적인 용어였다”며 “제헌헌법이 지향한 민주공화국 또한 개인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국가였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제헌헌법이 고전적 자유민주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는 자유민주주의적 요소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균형 있게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빈부격차와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사익 극대화가 만연한 대한민국에서 되새겨 봐야 할 ‘민주공화국의 가치’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창간 특별기획] 미·중 신대국 시대 한반도 미래를 묻다

    [창간 특별기획] 미·중 신대국 시대 한반도 미래를 묻다

    지구촌의 양대 패권 경쟁국(G2)으로 등장한 미국과 중국은 남북한 관계 등 한반도에 새로운 정치·경제 전략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국제질서 속에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 진영은 의미가 없게 된 셈이다. 미·중 신대국 시대의 향후 전망과 양국 사이에서 한국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와 역할에 대해 미국과 중국 전문가를 통해 들어본다. ■ 북한부터 에너지 안보까지 광범위한 미·중 협력 냉전 시절 미·소와는 달라 앨런 롬버그 美 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 앨런 롬버그 미국 스팀슨센터 동아시아 국장은 15일(현지시간)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향후 미국과 중국은 큰 틀에서 협력적 관계를 추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팀슨센터는 미국의 안보 문제 전문 민간 연구기관이다. →최근 중국이 신형대국 관계를 주창한 의도가 무엇이라고 보나. -중국 자신이 강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기존 강대국인 미국과의 사이에 빚어지는 긴장과 대결적 구도를 피하려는 것이다. 세계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성장세에 있는 중국이 미국과 갈등을 빚는 것은 중국 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 세계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미국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두 나라는 협력이 가능한 이슈에 대해서는 힘을 모으고 이해관계가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차이점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서로에게 중요하다. 북한 문제와 같은 지정학적 이슈와 함께 기후변화, 에너지안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로벌 이슈에 있어 두 나라가 협력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아주 어려운 시대가 됐다. →현재의 미·중관계를 냉전시기 미·소관계와 비교한다면.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분명 중국이 남중국해 등 아시아 지역에서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걱정한다. 그렇지만 과거 미·소관계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소련은 전형적인 팽창주의적 제국이었다. 소련은 동유럽 등으로 세력을 넓혔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그것을 매우 걱정했다. 그래서 미국의 대(對)소련 정책은 기본적으로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고 봉쇄하는 것이었다. 반면 미·중관계는 그보다는 협력적 관계라 볼 수 있다. →지난 2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방미했을 때 미·일 간 새로운 밀월관계를 열어가면서 중국을 소외시키리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초 캘리포니아에서 파격적 정상회담을 갖는 등 예상보다 우호적 관계가 연출되고 있다. -세계 평화와 안정, 발전을 위해 미국과 중국은 협력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 일본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중·일 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이 격화되는 것을 미국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제외하고는 동북아의 모든 나라와 협력하길 원한다. 북한의 경우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태도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협력이 어렵다. →미·중관계의 걸림돌은. -구체적 이슈로는 사이버 해킹과 경제 이슈 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지난달 캘리포니아 정상회담에서 북한 등 많은 이슈에 대해 좋은 협력 모델을 보여줬다. 두 나라는 정치제도와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협력을 최대화하고 분쟁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북한에 대한 미·중 간 협력은 잘되고 있는 건가. -현 시점에서는 잘되고 있다고 본다. 최근 중국은 북한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제재에 있어 중국은 미국, 유엔 등과 기꺼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 전반적으로 중국은 북한발 안보적 위험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행동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미·중의 대북 시각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고 미국이 더욱 가혹한 제재를 가하려 할 경우 미·중이 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인가. -중국은 북한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부담까지는 안으려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중국이 최근 방중한 박근혜 대통령을 환대한 이유는. -한·중 관계는 서로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북핵에 분명히 반대하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이런 공동보조를 통해 평양에 분명한 메시지를 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박 대통령 환대를 보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초조해할까. -초조해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목할 것이다.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방중하는 등 북한은 지금 베이징에 연달아 유화공세를 펴고 있다. 이 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한국이 중국 신뢰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다면 중·미 교량 역할 가능 롼쭝쩌 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 “한국이 신형 대국관계 속에서 중국과 미국 두 나라에 모두 영향력을 가지려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롼쭝쩌(阮宗澤) 부소장은 “한국은 미국과도 친하고 중국과도 친하기 때문에 중·미 간 신형 대국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롼 부소장은 중국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박사를 지낸 국내파로 중·미관계, 중국과 한반도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신형 대국관계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난 2012년 2월 15일 부주석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공식화한 개념이다. 국제사회는 ‘중국 굴기’에 대해 우려의 눈길로 보고 있다. 중국은 이를 감안해 신형대국관계란 개념을 통해 세계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천명한 것이다. →신형 대국관계의 핵심은. -호혜(互惠), 협력, 갈등 통제다. 누군가가 이기면 누군가는 반드시 져야 하는 제로섬 사고방식을 버리고 서로 협력 면을 넓히면서 갈등을 관리하자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중국이 제안한 신형대국관계 개념을 인정했다. →신형 대국관계의 협력이 한반도 문제에도 적용되나. -한반도 문제는 중·미 두 나라의 협력 영역이다. 한반도에서 충돌이 발생하면 미국에도 해롭다. 중·미가 협력해 이 지역의 갈등을 관리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평화와 안정을 수호해야 한다.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 개념은 한·미가 말하는 것과 다른가.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는 한·미가 말하는 것보다 범위가 넓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려는 것은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북한에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기보다 핵개발 포기에 상응하는 안전 보장을 해줘야 한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할 때 북핵 폐기는 물론 핵우산 포기까지 모든 문제를 포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핵 위협이란 북핵을 말하는 것인데. -한국은 북핵 개발도 싫고 자신들의 핵우산 포기도 싫어한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동맹과 군사협력을 강화한다. 동맹을 강화할수록 북한의 위협은 커진다. 한국의 방어는 북한에서 볼 때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다. 그래서 북한은 핵개발을 강화한다. 이 같은 악순환을 깨뜨려야 한다. →신형 대국관계 속에서 중국이 한국에 기대하는 것은. -한국은 미국과도 친하고 중국과도 친하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가져야 한다.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중·미 사이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항상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한국과 소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중국이 한국을 친구로 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 곤란하다. 우리는 한국이 노력을 통해 신뢰를 구축해야 할 대상으로 중국을 바라보기 바란다. →양국이 어떻게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나. -중국은 오랜 기간 북한과 관계를 맺어 왔고, 한·미 간 동맹도 그만큼 오래됐다. 중·한 간 특정 사안을 두고 의견 차가 있을 수 있다. 그때마다 ‘역시 중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단정짓는 것은 신뢰 관계 구축에 도움이 안 된다. 양국이 이성적인 대화를 자주 하고 감정적인 부분은 배제하면서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중국이 신형대국관계 속에서 한국에 기대를 거는 까닭은. -중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선 평화로운 주변 환경을 조성할 필요성이 있고 이를 위해 한국의 협조가 절실하다. →중·북 간 정상회담설이 나오는데. -시기상조다. 최고위급 대화를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현재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현안이다. 북한이 핵사찰을 허용해야 한다. 한·미가 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요구하는 최소한의 비핵화를 북한이 바로 이행해야 한다. →중국에서 김정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데. -중·북은 중조우호조약을 체결한 국가로 동맹이자 형제 관계다. 우리는 김정은이 경제개혁과 민생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힘써 주기 바랄 뿐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영화 ‘국가대표’ 모델 토비 도슨 중앙대 편입

    영화 ‘국가대표’ 모델 토비 도슨 중앙대 편입

    영화 ‘국가대표’의 모티브를 제공했던 토비 도슨(35) 프리스타일 스키 국가대표팀 코치가 오는 9월 중앙대 경영학부에 편입학한다. 중앙대는 15일 “도슨 코치가 2013학년도 후반기 외국인 특별전형에 합격했다”고 밝혔다. 도슨 코치는 “토리노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운동에 전념하면서 학업을 중단한 것이 늘 아쉬웠다”면서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사회에 공헌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네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도슨 코치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출전해 프리스타일 스키 모굴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국내로 와 친부모를 찾은 그는 2011년 7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 참석해 ‘스키와 올림픽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부모님을 찾게 되었다’는 프레젠테이션으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기여하기도 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축구를 정말 사랑한다면/이기철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대한민국 축구를 정말 사랑한다면/이기철 체육부장

    스포츠는 직업이 아닌 바에야 우리 생활의 활력소이자 청량제다. 인간의 한계 극복에 감동하고, 예술 같은 신기에 감탄한다. 또 밍밍한 일상에 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며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축구, 특히 국가대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 국민은 일본과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여전히 목에 핏대를 세운다. 태극 마크를 단 붉은 악마 유니폼에는 우리의 정체성이 스며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우리 사회에서 축구 한 경기 이기고 지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얼마든지 많은데도 말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나 최근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투지를 보이며 선전한 경기는 우리 국민을 하나로 묶어냈다. 어떤 정치인의 사자후보다 더 우렁차다. 그러나 우리 국가대표팀은 언제부턴가 비장함이 묻어나는 경기를 잃어버렸다. 이런 대표팀에 홍명보가 지휘봉을 잡았다. 월드컵 8회 연속 진출이 확정됐지만 지리멸렬한 경기를 본 국민은 큰소리로 그를 감독으로 불러들였다. 홍명보의 감독 선임은 그가 지금까지 축구 지도자로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데 따른 성과인지, 주장으로 활동했던 2002년 월드컵 4강신화 재현을 갈구하는 역사의 흐름 또는 운명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홍 감독에게는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월드컵을 지휘할 총사령관의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국민의 기대가 잔뜩 실린 것과는 달리 홍 감독은 어떤 난제라도 풀 수 있는 만능 키를 가진 것이 아니다. 올림픽대표팀 등에서 그의 성공 경험이 국가대표팀 감독의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대표팀 선수 개개인의 역량은 남미나 유럽 선수들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진다. 홍 감독은 “월드컵에 우리 팀보다 수준이 낮은 팀은 없다”며 걱정한다. 대표팀의 정신상태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동이나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파주트레이닝센터에 들어서는 데서 보듯 비뚤어진 스타 의식에 젖은 연예인처럼 변했다. 국가대표로서 자부심,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거나 국민에게 환희와 영광을 돌려주겠다는 의지가 도대체 보이질 않는다. 이런 대표팀을 단박에 업그레이드할 비방은 없다. 우리 선수의 개인기가 11개월 만에 쑥 늘거나, 팀 수준이 갑자기 높아질 리가 없다. 대표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소년부터 학원 축구에 이르기까지 하부구조가 허약한 탓이다. 체질 개선 없이는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더 성숙하기는 요원하다. 브라질월드컵의 성과가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성과가 극히 나쁘다면 또 감독 이야기가 나올 게 뻔하다. 2002년 거스 히딩크 이후 2013년 홍명보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10명의 국가대표 감독이 교체됐다. 과정이나 경기 내용보다 눈앞의 승부, 즉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결과 지상주의에 축구도 덩달아 매몰된 까닭이다. 같은 기간 일본의 감독 교체는 5차례였다. 우리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5단계가 높은 나라다. 감독 교체는 대증요법이지, 특효 처방이 아니다. 축구협회는 당장의 결과보다는 장기적 마스터플랜을 세워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 태반은 축구 관전평을 한마디씩 내놓는다. 축구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방증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축구를 사랑한다면 K리그 한 경기라도 경기장에 가서 보자.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며 즐기자. 팬이 경기장에서 함께하는 축구. 그게 우리 축구의 빈약한 하부구조를 튼튼하게 하는 첫걸음이다. chuli@seoul.co.kr
  • [시론] 달라진 막걸리의 지형도/허시명 막걸리학교장

    [시론] 달라진 막걸리의 지형도/허시명 막걸리학교장

    최근 막걸리의 수출량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막걸리 생산량이 줄었고, 막걸리 인기도 떨어졌다는 기사들을 요즘 자주 본다. 몇 해 치솟던 막걸리의 인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 걸까? 2009~2012년까지 한국 사회에서 막걸리는 생동감 있는 아이콘이었다. 김치·비빔밥과 더불어 한류음식의 표상이 되고,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던 분야에 젊은 인력이 돌아오고, 수출량이 늘어나 일본에서까지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들이 생겨났다. 막걸리를 통해 한국민들은 전통 알코올 음료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됐다. 88올림픽 이후 개방화와 수입자유화 물결 속에 맥주에 속절없이 밀렸던 막걸리가 존재감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이 달콤한 시기를 거치면서 막걸리의 위상과 지형도가 많이 달라졌다. 서울의 느린마을양조장, 전주의 시, 부산의 청춘주가처럼 대도시에 미니양조장이 생겨났다. 함평의 자희향, 홍천의 만강에비친달, 강릉의 방풍막걸리처럼 술 빚기를 좋아하는 가정주부나 변호사, 시인이 작은 양조장을 차려 즐겁게 수제 막걸리를 만들게 되었다. 태인막걸리와 철원초가막걸리처럼 무감미료 막걸리도 생겨났다. 야구장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맥주타입의 캔막걸리로 가평 우리술의 미쓰리와 국순당의 아이싱이 등장했다. 당진 신평양조장, 단양 대강양조장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어 관광과 양조산업을 접목시키고 있다. 막걸리양조업자들이 주축이 된 막걸리협회와 우리술협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막걸리가 수출품으로 당당히 거론되는 것도 달라진 막걸리의 위상이다. 동네 양조장에서 주전자로 받아 마시던 막걸리가 백화점과 호텔에 들어가고, 외국인들이 찾는 한국문화의 상징이 됐다. 수출은 막걸리의 다각화에 기여해 살균 막걸리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생막걸리의 유통기간을 늘리는 시도로 이어졌다. 세련된 디자인의 병막걸리가 등장하고, 한 병에 1만원 안팎 하는 프리미엄 막걸리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막걸리와 전통술이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막걸리 바람이 우리 술의 자부심으로 확대되지 못한 채, 오히려 전통 약주와 전통 소주의 존재감이 옅어졌다. 막걸리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재인식한 게 아니라, 유행상품 목록 하나만 추가된 느낌이다. 한류 열풍을 타고 막걸리 수출의 90%가 일본에 집중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막걸리가 일본 시장을 전초기지로 삼아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검해 보는 기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막걸리는 일본시장에서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막걸리는 일본에서 새로운 주류 품목으로 자리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국 업체들끼리 저가 경쟁을 벌여 막걸리의 가치를 향상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제값 또는 더 좋은 가격으로 팔기 위해서는 한국 막걸리업체들 간의 수출 연대 전략이 필요하다. 막걸리를 빚는 일본 양조장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일본 내 막걸리의 흐름을 주도하려 하고 있다. 조만간 막걸리의 정체성을 놓고 한·일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김치와 기무치의 경쟁구도가 막걸리와 마코리 사이에서 재현되지 않게 하려면, 막걸리 정체성을 확립하는 표준화와 규격화 작업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아스파탐 등의 감미료가 들어간 술은 고급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양조장들은 무감미료 막걸리를 만들어 내면서 감미료 막걸리의 약점을 지적해댄다. 무감미료 막걸리가 국내 막걸리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여 한국 막걸리 경쟁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상품이든 인간이든 성장만 할 수는 없다. 막걸리는 쌀문명권의 저알코올탄산음료로서 액체밥이라 할 정도로 쌀의 영양가를 잘 간직한 기호음료다. 알코올의 소비량은 한 사회의 스트레스양과 비례하지만, 막걸리 소비량은 한 사회가 흘린 땀의 양과 비례한다. 막걸리를 통해 수출증대만이 아니라, 한국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은 막걸리 수출 감소를 우려하기보다, 막걸리 문화의 왜소함을 우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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