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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얽힌 역사 너머 예술의 교감, 400년 니조성을 채우다

    [함혜리 선임기자의 예술산책] 얽힌 역사 너머 예술의 교감, 400년 니조성을 채우다

    교토는 일본 문화의 뿌리가 시작된 곳으로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사찰과 신사, 고성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고즈넉한 옛 도시의 풍광을 지니고 있는 교토의 문화유산 중에서도 에도시대의 호화로운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는 단연 니조성(二條城)이 꼽힌다. 에도막부(1603~1867)의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가 교토에서 머물 거처와 집무공간으로 1603년 축성한 곳이 니조성이다. 축성 후 400년간 일본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과 함께해 온 니조성에서 지난 19일 ‘아시아 회랑 현대미술전’이 개막했다. 한국·중국·일본의 문화 교류를 도모하기 위해 매년 각국에서 문화도시를 선정하는 ‘동아시아문화도시 2017 교토’의 핵심 행사로, 오는 10월 15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에는 세 나라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25명(팀)이 참여해 기량을 겨루고 있다. 얽히고설킨 역사를 지닌 세 나라의 예술가들이 과거의 공간을 배경으로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교감하는 ‘현대미술 삼국지’의 현장을 찾았다.이에야스 이후 15대까지 이어진 에도막부는 일본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번영한 시대였다. 무사정권의 자취가 남아 있는 니조성의 중심은 화려한 전각들이 긴 복도로 이어져 있는 니노마루다. 초기에 지어진 니노마루는 겉보기엔 큰 건물 같지만, 그 안은 33개의 방이 꼬리를 물듯이 이어져 있다. 건물에 깔린 다다미만 800만장이 넘는다고 한다. 기다란 나무 복도를 걸어가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이는 암살자나 외부인의 잠입을 막기 위해 일부러 설계한 일종의 경보장치다. 마룻바닥 아래 받침목에 못을 여러 개 박아 사람들이 밟으면 새소리 같은 특이한 소리를 낸다고 해서 ‘휘파람새 마루’라고 한다. 이곳에는 3000점이 넘는 벽화가 있으며 이 중 954점이 1982년 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니조성은 쇼군의 시대를 열기도 했지만 쇼군 역사의 종언을 알리는 대정봉환(1867)이 이뤄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메이지 시대가 열리면서 성은 황실로 넘어가 ‘니조별궁’이 됐다가 1939년 교토부로 소유권이 옮겨졌다. 니조성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오늘에 이른다. ●건축·디자인 황금기 에도시대 보물 니조성 일본 건축과 디자인의 황금기인 에도시대 초기의 귀중한 유적으로 꼽히는 니조성에서 현대미술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한국의 대구, 중국의 창사시와 함께 올해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된 교토시에서 그만큼 공을 들였다는 얘기다. 전시 기획팀도 수준급이고, 참여 작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전시 총괄감독은 미술평론가이자 시인으로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큐레이터를 지낸 바 있는 다테하타 아키라 사이타마현립근대미술관 관장이 맡았고, 교토아트센터 수석 큐레이터인 야마모토 마유미와 모리아트미술관 큐레이터 도쿠야마 히로자쿠가 기획자로 참여했다. 세계적인 작가 구사마 야요이부터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중국 현대미술가 차이궈창과 양푸동 등이 참여했고 한국에서는 김수자, 최정화, 오인환, 함경아, 믹스라이스(조지은·양철모), 현경이 출품했다. 다테하타 감독은 “‘동아시아문화도시 2017 교토’의 가장 핵심이 되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세 나라의 작가를 선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국제적인 지명도와 특별함이었다”며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의 80% 정도가 장소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만큼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국 문화예술의 톱니바퀴, 시공간 맞물려 작품들은 니조성의 건물들과 정원 등 곳곳에 설치됐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수장고 앞마당에 최정화 작가의 작품인 거대한 ‘과일나무 풍선’이 눈길을 끈다. 부엌으로 사용됐던 ‘다이도코로’에 들어가면 바닥에 헝겊으로 만든 거대한 무 모양의 풍선이 놓여 있다. 최 작가가 에도시대 화가 이토 자쿠추의 과수열반도를 입체로 만든 신작이다. 마루에는 최 작가의 대표 작품인 ‘알케미’가 스탠드처럼 불을 반짝이고 있다. 그 옆으로 복도 끝에 설치된 점박이 평면 회화와 비너스 조각상은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이다.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가면 알루미늄 거울이 바닥에도 깔려 있고 병풍처럼 접혀 세워져 온통 거울로 꾸며진 작품을 만난다. 천장의 구조에 존재하는 수많은 선이 마치 순열조합처럼 거울에 반사된다. 김수자 작가의 신작 ‘인카운터-거울여인’이다. 김 작가는 “바닥과 천장의 공간들을 모두 보여 주면서 일본 건축이 지닌 수직과 수평의 구조와 비례들이 새롭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거울은 평생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예술가의 여정에 대한 헌정인 동시에 자신과 타인의 관계가 결국은 거울로 귀결된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그 옆방으로 옮기면 사무실 공간을 재현하고 사진 작품들과 영상 작품을 설치했다. 2007년 한국의 김홍석, 중국의 첸샤오시옹, 일본의 오자와 쓰요시 세 사람이 결성한 아티스트 그룹 서경인(시징멘)의 작품들이다. 그다음 방에선 오사카 출신으로 교토에서 작업하는 다니자와 사와코의 설치 작품 ‘보이드’를 볼 수 있다. 기이한 표정의 형상들이 흰색의 마루에 드문드문 설치된 작품은 망상이나 공상을 표현한 것으로 다이도코로의 오래된 공간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다이도코로와 니노마루 어전을 잇는 중간 마당에서는 바위 위에 배를 설치하고 소나무를 심어 놓은 거대한 분재 모양의 설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일본의 나라에서 열린 ‘동아시아문화도시 2016’ 행사 당시 동대사의 연못에 띄웠던 목선을 바위 위에 올려놓은 차이궈창의 ‘분재 배-동아시아문화도시 2017 교토를 위한 프로젝트’다. 차이궈창은 “일본, 특히 교토는 나의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고 꽃피우게 해 준 특별한 곳”이라며 “동아시아문화도시 행사가 동아시아 3국 간의 미묘한 문제들을 문화로 융해시키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분재의 정신을 작품에 담아 봤다”고 설명했다.●한국 작가와 일본 미대생들 협업 작품도 니노마루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마당에는 연둣빛과 붉은색 플라스틱 바구니로 쌓아 올린 최 작가의 ‘에어, 에어’가 설치됐다. 한국에서 공수한 플라스틱 바구니 1만개로 만들어진 작품 앞에서 최 작가는 “한 달 동안 땡볕 아래서 고생했지만 교토의 의미 있는 공간에서 이 지역의 건축과 학생 및 미술 전공 학생들과 함께 작품을 쌓아 올리고 완성시키며 많은 교감을 나눌 수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은 작품이 됐다”고 말했다. 안쪽의 혼마루궁 외곽에는 함경아 작가의 조각 작품 ‘언카무플라주 시리즈’가 설치됐다. 전쟁터에서 자신의 모습이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만들어진 전투복의 이미지들을 끌어내 입체로 만든 작품으로 요새처럼 높이 쌓아 올려진 혼마루궁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교토아트센터 초등학생 위한 예술전시공간도 이번 전시는 니조성 외에 교토아트센터에서도 열리고 있다. 초등학교를 예술전시공간으로 바꾼 곳으로 2층에 위치한 강당에는 교토시립예술대학원 회화과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다 뉴욕으로 옮겨 활동 중인 작가 현경이 2개월 걸려 제작한 20m 길이의 대작 ‘우리는 못났었다’가 설치됐다. 그 옆의 다다미로 된 강당에서는 현대 중국사회의 단편을 서정적이고 유미적인 영상으로 표현한 양푸동의 ‘우공산을 옮기다’를 볼 수 있다. 예전에 교실로 사용되던 공간에는 오인환, 믹스라이스의 작품이 설치됐다. 분지인 교토의 여름은 무덥고 습하기로 소문나 있다. 올여름에도 35도를 넘나드는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졌지만 참여 작가들의 열정은 그보다 더 뜨거워 보였다. 전시와 연계된 세미나의 주제 발제자로 참석한 이용우 상하이 히말라야미술관 관장은 “적어도 문화와 예술에서는 민족주의를 접어 두고 화해하고 타협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어느 때보다도 동아시아의 정치적·외교적 파고가 높은 상황에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가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문화도시 프로젝트의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태평성대 누리는 삼각산 아래 명당 순국선열을 품다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태평성대 누리는 삼각산 아래 명당 순국선열을 품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3차 ‘자유를 위한 함성’ 편이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일대에서 진행됐다. 혹서기를 피해 3차례의 야간답사가 이어진데다, 멀리 서울의 북서단 삼각산 아래까지 사람들이 찾아올지 우려했지만 기우에 그쳤다. 30여명의 ‘미래투어’ 팬덤은 열 일을 젖혀두고 동참했다. 집결지인 국립4·19민주묘지까지 오려면 지하철역에서 버스나 택시를 갈아타야 하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 지도사는 젊은 엄마의 감성으로 투어단을 이끌었다.국립4·19민주묘지와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의 묘역을 품에 안은 삼각산은 고리타분한 옛 지명인가. 그렇지 않다. 삼각산은 서울이 왜 서울인지를 밝히는 중요한 근거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조가 무학을 시켜 도읍 터를 정하도록 했는데 무학이 삼각산 백운대에서 맥을 따라 만경대에 이르고 다시 서남쪽으로 비봉에 갔다가 돌비석에 새겨진 ‘무학오심도차’(無學誤審到此·무학이 길을 잘못 찾아 여기에 온다)라는 여섯 글자를 보았는데 이는 도선이 세운 것이었다. 문득 깨달은 무학은 길을 바꿔 정남 쪽 맥을 따라 백악산에 도착했다. (중략) 드디어 궁성 터를 정했는데 고려 때 오얏을 심던 곳이었다”라는 일화를 전한다.●역사적 근거 명확한 ‘오얏 심던 곳’… 현재 ‘번동’ 삼각산과 한양천도에 얽힌 도참설과 풍수설화 중 귀담아들을 만한 부분이다. 떠도는 설화 대부분이 ‘믿거나 말거나’ 식이지만 ‘오얏을 심던 곳’은 역사적 근거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도선대사의 ‘도선비기’에 전해지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이씨 성을 가진 자가 나라를 얻는다)의 도참설을 깨고자 고려 조정이 이씨를 상징하는 오얏(李木·자두나무)을 한양땅에 심었다가 자라면 베어버리도록 했는데 이때 윤관 장군이 지휘관으로 파견됐고, 그 직책이 벌리사(伐李使)였으며, 지역명이 벌리(伐李)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벌리는 번리를 거쳐 오늘의 번동이 됐다. 오패산 혹은 벽오산이라고 불리다가 ‘북서울 꿈의 숲’ 공원이 조성됐다. 번동은 우이동, 수유동, 미아동과 함께 강북구의 법정동을 이루고 있다.●910여년 전 고려 중기부터 ‘한양 천도’ 시도 우리는 흔히 한양이 620여년 전 하루아침에 부각된 땅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자 하는 시도는 910여년 전 고려 중엽부터 끈질기게 이어졌다. 개경(개성)을 수도로 둔 고려는 고구려의 서경(평양), 신라의 동경(경주)과 함께 백제의 옛 수도에 남경(한양)을 두어 삼국의 융합을 원했다. 삼각산 아래 마을은 실제로 고려가 도읍 후보로 검토한 유력지였다. 후보지 4곳은 백악, 용산, 노원, 해촌(옛 다락원, 현재의 도봉산역)으로 노원과 해촌이 삼각산과 한강 사이의 명당지로 꼽혔다.도참서 중의 하나인 ‘삼각산명당기’에 따르면 삼각산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한 선경으로 산맥이 삼중, 사중으로 등져 명당을 수호하고 있어서 태평성대를 누릴 땅이라고 했다. 도참설대로 이씨가 역성혁명에 의해 왕조를 세웠으니 도읍을 옮기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결국 오얏나무가 무성한 ‘약속의 땅’ 한양으로 천도했다. 다만 좀 더 넓고, 평평하고, 한강의 조운이 편리한 곳을 찾아 이동한 까닭에 백악을 주산(主山)으로 하되 삼각산을 진산(鎭山)으로 삼았다.●북서울 3개구 ‘도봉·노원·강북’은 하나의 뿌리 고려의 개성과 조선의 한양을 잇는 두 갈래 길이 개성~장단~적성~녹양~노원~안암~제기~동대문 길과 개성~임진~벽제~영서~무악재~서대문 길이다. 벽제 혜음령이 너무 험해 좀 시간이 걸려도 노원 길을 선호했다. 이 일대를 서울의 북쪽 교외를 이르는 북교(北郊)라고 통칭했으며, 도성의 채소 및 땔감 제공지이자 중인 이하 양민들이 죽으면 묻히는 안식처가 됐다. 오늘의 도봉구, 노원구, 강북구 등 3개 구를 북서울이라고 한다. 북쪽으로 삼각산, 서쪽으로 우이천을 경계 삼아 성저십리(城底十里)에 속했으며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했다. 이처럼 북서울 3개 구는 한 뿌리이다. 1949년 숭신면 전부가 성북구에 속했다가, 1973년 도봉구, 1988년 노원구에 이어 1995년에 강북구가 차례로 분가했다. 서울의 머리인 ‘세 개의 뿔’ 삼각산이라는 지역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고 생뚱맞은 명칭을 붙인 게 옥에 티다. 교통의 요지이자 들판이었던 노원구는 아파트의 숲으로 변했지만 삼각산이라는 압도적 자연경관을 가진 이 지역의 정체성은 바뀔 수 없다. 순국선열과 청소년 수련을 특화하는 생태역사문화특구로 자리매김하는 게 순리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지는 도봉> 집결일시: 26일 오전 10시 쌍문역 3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시 서울미래유산 (futureheritage.seoul.go)
  • “넓게보다는 깊게 친구 사귀는 10대가 훗날 행복”(연구)

    “넓게보다는 깊게 친구 사귀는 10대가 훗날 행복”(연구)

    많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보다 강한 우정을 나누는 몇몇의 절친이 있는 것이 훗날 정신 건강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대학 연구팀은 친구와의 강한 우정이 성인이 됐을 때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줘 행복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사회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번 연구는 미국 청소년 총 169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연구팀은 먼저 이들이 15세가 된 시점부터 조사를 시작해 10년이 지난 25세에 분석을 마무리지었다. 10년 동안 매년 연구팀은 이들에게 학교에서의 인기도, 우정에 대한 설문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특히 연구팀은 피실험자가 절친이라고 꼽은 상대방과의 인터뷰도 포함해 실제 우정의 깊이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흥미롭다. 15세 시절부터 절친이 있는 피실험자의 경우 25세가 됐을 때 사회적 근심, 우울증 증상 등이 인기만 있는 아이들보다 낮았고 반대로 자부심은 더 컸다. 또한 절친을 가진 피실험자들이 훨씬 더 친구의 도움을 받아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논문에서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깊이있는 우정의 중요성이다. 곧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발달로 10대들이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게 됐지만 반대로 그 깊이는 사라지는 것을 지적한 것. 연구를 이끈 조셉 알렌 심리학 교수는 "소셜네트워크는 얄팍한 깊이의 친구들만 쉽게 만들고 늘린다"면서 "친구와 강한 우정을 형성하는 것은 10대의 사회적 경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청소년들은 큰 그룹보다 몇몇 개인에게 시간과 집중적인 관심을 두는 것이 장차 정신건강에 좋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안철수 “박원순 서울시장에 양보 요구? 너무 앞서간 얘기”

    안철수 “박원순 서울시장에 양보 요구? 너무 앞서간 얘기”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오고 있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박원순 서울시장에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너무 앞서간 얘기”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50%가 넘는 지지율로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박 시장과 후보 단일화를 합의한 바 있다.23일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안 전 대표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차출설과 관련해 “내가 먼저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다. 원론적으로 말씀드린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부인 김미경 교수의 서울 노원병 출마설과 관련해선 “그런일은 없다”며 뜻을 분명히 했다. 지난 총선때 ‘새정치’로 다당제의 지평을 연 것처럼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새정치’는 유효하다고 했다. 바른정당과의 선거연대와 관련해서는 “국민의당이 제3세력의 중심세력이 되고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목표”라며 “저희가 바로 서면 뜻을 함께하는 분들이 많이 모여들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동부화재 → DB손해보험 11월 1일부터 사명 변경

    동부화재는 ‘DB손해보험’으로 사명 변경을 추진한다. 동부화재는 22일 이사회를 열어 사명 변경에 대한 승인을 마쳤고, 10월 13일 주주총회에서 사명 변경안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부화재 관계자는 “11월 1일자로 사명을 바꿀 예정”이라고 말했다. 동부화재를 시작으로 동부그룹의 각 계열사도 사명 변경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동부그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동부건설과 동부제철, 동부팜한농 등 주력 계열사들이 분리된 후 그룹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기업이미지를 쇄신하고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명 변경을 추진했다. 동부 브랜드의 사용 권한을 동부건설이 갖고 있어 브랜드 사용료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 등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이회창 “탄핵 주된 책임자 朴 그다음 책임자는 새누리당”

    이회창 “탄핵 주된 책임자 朴 그다음 책임자는 새누리당”

    “보수, 끊임없이 자기 혁신 필요 사회 양극화 해소 과제 삼아야” “이번 탄핵 사태의 주된 책임자는 누구인가? 바로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본인의 말대로 억울한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그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다음의 책임자는 새누리당이다.”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22일 출간하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 전 총재는 회고록에서 “새누리당 지도부는 그동안 박 전 대통령의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당 관리 체제에 유유낙낙 순응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직언하지 못하는 나약한 행태로 최순실 일당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국정을 농단하는 기막힌 일을 가능케 했다”며 “그래놓고도 친박·비박으로 갈려 싸우면서 탄핵에 찬성한 비박들에게 탈당하라고 강박하다가 비박계 의원들이 탈당하여 신당 창당을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고 비난했다. 이어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을 창당했던 나로서는 이런 사태를 보면서 침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면서 “그렇다고 이번 사태가 보수주의의 책임인 것처럼 야당이나 일부 시민세력이 보수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말로 책임지고 반성해야 할 사람은 보수주의 가치에 배반한 행동을 한 정치인들이지 보수주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세 번의 대선 패배 후 오랜 침묵을 지켜 온 이 전 총재가 3800여쪽에 달하는 ‘이회창 회고록’(김영사)을 세상에 내놨다. 출생부터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국무총리를 지내기까지 공직 인생을 정리한 ‘나의 삶 나의 신념’, 정치 입문 후를 회고한 ‘정치인의 길’ 등 모두 2권이다. 이 전 총재는 “보수는 끊임없이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개혁을 위해 고루한 기득권 의식이나 틀에 박힌 사고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면서 “과거 좌파가 선호해 온 정책이라도 그것이 정의에 반하지 않고 보수의 이념과 정체성에 저촉되지 않으며 국민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과감하게 도입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 양극화의 문제는 보수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며 “사회 양극화는 단순한 구휼이나 복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적 가치인 정의의 문제, 공동체 존립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회고록에는 학창 시절 농담으로 수업 시간을 보내던 선생님에게 항의한 일, 젊은 남녀를 희롱하던 깡패에 맞서 싸우다가 코뼈가 부러진 일화 등이 담겨 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정치에 입문한 뒤 잇따른 대선 패배, 절치부심으로 자유선진당을 창당하기까지 정치인으로서 파란만장했던 삶, 유력 대선 후보 시절 그의 발목을 잡았던 ‘이회창 3대 의혹 사건’의 전말 등도 함께 소개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월드피플+] 완벽한 흑인→밝은 피부…‘반쪽 흑인’된 여성의 사연

    [월드피플+] 완벽한 흑인→밝은 피부…‘반쪽 흑인’된 여성의 사연

    ‘완벽한’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예상치 못한 일로 한층 밝아진 피부를 갖게 된 여성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일간지 메트로의 20일자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 사는 폴라 에드워즈(54)는 5년 전인 2012년 신장암 판정을 받았다. 당시 의료진은 그녀에게 12~18개월의 시한부를 선고했지만, 그녀는 기적적으로 현재까지 생존해 가족과 함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녀와 가족들뿐만 아니라 의료진까지 놀라게 한 것은 에드워즈의 피부색이었다. 이 여성은 지난 해 4번째 수술을 받은 뒤 신장암 치료제 처방을 받았다. 이 약은 암세포를 억제하는 대신 혀와 손 등에 수포가 생기는 부작용이 보고돼 있는데, 놀랍게도 에드워즈에게는 ‘피부색이 달라지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 에드워즈는 본래 매우 짙은 검은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기 시작한 뒤 눈에 띄게 피부톤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백인이나 황인 정도는 아니지만 보통의 흑인보다는 훨씬 흰 피부를 가지고 있다. 의료진은 이러한 증상이 약의 부작용인지 아닌지를 두고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에드워즈는 “지난해 5월, 딸과 함께 사진을 찍은 뒤 처음으로 내 피부색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6개월 남짓 지난 지난해 겨울, 누가 봐도 놀라울 정도로 완전히 다른 피부색이 돼 버렸다”고 전했다. 이어 “갑자기 밝아진 피부 탓에 나는 내 정체성을 잃은 것만 같은 느낌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예전의 나로 봐주지만 정작 나는 그렇지 못하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미백 치료를 받았냐는 사람들의 ‘오해’도 그녀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에드워즈는 “의사가 말하길, 나와 같은 치료를 받는 사람 중 일부는 이러한 증상을 겪는다고 하는데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면서 “어떤 사람들은 나를 아시아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에드워즈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같은 병을 앓는 흑인 여성을 응원하는 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근로자와 노동자/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근로자와 노동자/오일만 논설위원

    일본 제국주의의 뿌리가 참으로 질기다. 해방을 맞고도 70년이 넘었건만 우리의 제도와 문화 곳곳에 아직도 일본식 용어가 남아 있다. 전체적 국가주의와 권위주의적 식민지 잔재가 아직도 온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천황 만세’를 외쳤던 친일파가 해방 이후 역사적 단죄를 받지 않고 득세한 것은 반공을 국가 정책으로 삼은 미국의 세계 전략 덕분이다. 일제의 잔재가 더욱 고착화된 것은 군부 독재 시기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나 정일권 국무총리 등 권력 핵심부는 일본 육사나 만주 육사를 거치면서 일본식 교육을 신봉했던 인물들이다.이들의 그늘 아래 친일파들은 정치·경제·교육·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식민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유지·발전시키면서 세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았다. 타율성과 정체성을 강요한 교육을 주입한 것은 일제의 차별적인 억압 정책을 관철하기 위함이다. 군부 독재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손을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자연과 인간, 사물에 대한 주체적 회의와 사유를 거세해 말 잘 듣는 순종형 인간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 창의를 앞세우는 민주주의적 가치관은 독재 체제 유지에 걸림돌일 뿐이다. 친일 기득권과 군부 독재의 결합, 이것이 식민주의 유산이 이처럼 맹위를 떨치는 근본적 이유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모든 법률에서 사용하는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일원화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고 한다. 박 의원은 ‘근로’라는 용어는 일제시대 근로정신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수동적이고 사용자에 대한 종속적 개념으로 국제노동기구와 세계 입법례에도 없다고 설명한다. 한자문화권인 중국, 대만, 일본 노동법에서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군부 독재 시기였던 박정희 정권이 1963년 ‘노동절’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변경한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왕을 위한 충군애국을 강요한 교육칙어나 유신시대 국민교육헌장을 줄줄 외어야 했던 통치 시스템의 뿌리는 같은 것이다. 이참에 우리 사회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일제 식민주의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아직도 우리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식민사관이다. 역사는 민족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본적 뿌리이자 우리의 혼이라는 점에서 식민사관의 폐해는 지대하다. 국회 동북아역사 왜곡특위가 밝혀낸 것처럼 식민사관의 연장선상에서 왜곡된 역사를 하나하나 제자리로 돌려놓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특파원 칼럼] 민족의 유산과 오래된 미래/이석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민족의 유산과 오래된 미래/이석우 도쿄 특파원

    1961년 이후에만 재일 한인학생 및 유학생 7만 800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온 재일 장학재단이 있다. 1960~80년대 일본에서 유학하던 상당수의 한국인 유학생들도 혜택의 예외는 아니었다.조선장학회이다.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삼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추종하는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 각각 추천하는 재일 동포들과 저명한 일본 학계인사 등 3자가 공동 운영하는 일본 법규에 의거한 공익재단법인이다. 장학회 이름에 ‘조선’이 붙은 탓에 ‘총련이나 북한이 직접 운영한다’는 오해도 없지 않았지만 장학생 가운데 훗날 주일 한국대사가 된 유학생도 있다. 출발점은 1900년 대한제국의 주일 한국공사관에 설치됐던 ‘유학생 감독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권을 빼앗기면서 일제 산하기관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다가 1945년 일제 패망으로 그해 11월 재일 한인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출범하며 전기를 맞는다. 남북 분단 등 한반도 내 좌우익 충돌의 영향으로 공중분해돼 일본 국고로 환수될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재일 좌우익 동포사회의 자제와 타협, 뜻 있는 일본 지성인들의 중재와 성원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재단 이사회 및 평의회를 재일동포 사회의 좌우익이 같은 수의 구성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수결이 아닌 합의를 전제로 한 운영’이 재단 운영의 묘(妙)였다. “이사회나 평의원회에서 (민단과 총련이 추천하는) 구성원들이 합의하면 일본인 이사와 평의원들도 합의해 주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이데 요시노리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비상임 이사로, 오쿠시마 다카야스 전 와세다대 총장, 다나카 유코 호세대 총장,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이 평의원으로 각각 재단에 참여하고 있다. 도쿄의 9개 전철 노선이 교차하는 신주쿠역에서 서쪽 출구 쪽으로 3~4분 걷다 보면 육상과 지하 통로로 이어지는 지하 3층, 지상 9층의 장학회 본관을 만나게 된다. ‘장학회관’이란 이름의 신주쿠의 장학회 본관 등에서 나오는 임대료가 장학회 재원이다. 지난해 경상수익이 13억 4600만엔(약 141억 1348만원)이었고, 그 가운데 3억 8257만엔이 장학금으로 쓰였다. 대한제국에 연원을 둔 오랜 유산이 민족 후세들을 위해 쓰이고 있었다. 장학회의 역사는 어떻게 민족을 위해 함께해야 하는가를 보여준 ‘오래된 미래’이다. 그러나 재일교포 6세들이 나오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장학회도 변신과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젊은 교포들의 민족적 구심점 유지에 어떻게 기여할까 등이다. 민족 교육의 이념을 어떻게 정립할지에 대한 숙제도 산적해 있다. 이념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재일동포사회의 좌우익들이 재단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만도 경이롭지만, 미래는 늘 도전과 시련을 안겨 준다. 재일동포사회가 어떻게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과 구심점을 확립해 나갈 수 있을까. 조선장학회는 재일동포사회의 과거 성취와 함께 미래 도전을 상징하는 단면이다. 빠른 속도로 일본 사회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원심력이 커진 젊은 재일동포들과 재일동포사회를 어떻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까. 애환의 민족 근대사가 서려 있는 117년 역사의 민족 유산은 좌우익의 대립, 동포사회의 해체 등 우리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문제들을 던지고 있다. jun88@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이주의 문화 레시피]

    전시·미술 ●김형관 개인전(작품) 집-공간-거주의 경험을 통해 얻은 삶의 깨달음을 회화의 언어로 탐구해 온 작가는 기하학적 형태의 간결한 공간의 질서 속에 추상적 세계를 담아 낸다. 실현 불가능한 다면체의 공간, 질서 밖의 공간, 사물의 공간성에 대한 실험적인 연작을 선보인다. 23일부터 9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인옥션갤러리. (02)733-4867 ●‘색채의 발견’전 지금까지 대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인식된 색채에 대한 관념에서 벗어나 색채 자체가 스스로 표현의 주체가 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들을 모아 전시한다. 소장품을 중심으로 2017년 상설전 ‘단색화’도 관람할 수 있다. 9월 3일까지, 강원 원주 뮤지엄산. (033)730-9025.대중음악 ●전제덕 하모니카 콘서트 ‘앤드 소 잇 고즈’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이 3년 만에 5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여는 단독 공연. 두 번째 리메이크 프로젝트인 이번 앨범에서는 조지 벤슨의 ‘브리징’, 스팅의 ‘잉글리시맨 인 뉴욕’, 빌리 조엘의 ‘앤드 소 잇 고즈’, 허비 행콕의 ‘찬스 송’ 등 11개의 팝, 재즈, 클래식 명곡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26일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5만 5000~6만 6000원. (02)3143-5480.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 ‘가물거리는 세상’ 쇼케이스 국내 최고 베이시스트인 서영도를 중심으로 기타 정수욱, 드럼 한웅원, 트럼펫 배선용, 건반 민경인, 알토 색소폰 김지석, 소프라노·테너 색소폰 신현필이 의기투합한 앙상블이 4년 만에 3집 앨범을 발표하고 이를 선보이는 공연이다. 23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 2만 5000원. (02)325-9660.뮤지컬·연극 ●뮤지컬 ‘사의 찬미’ 실존 인물인 천재 극작가 김우진과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이 현해탄에서 동반 투신한 사건을 재구성한 창작극이다.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신원미상의 허구 인물을 통해 둘의 만남에서부터 배에 탄 후 투신하기 직전까지 5시간의 과거와 현실을 좇는다. 10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4만 4000~6만 6000원. (02)766-7667. ●연극 ‘지구를 지켜라’ 2003년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가져온 작품이다.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가 곧 위험에 처할 거라고 믿는 병구와 병구에게 외계인으로 지목되어 납치된 만식의 심리 싸움을 그린다. 지난해 초연 때 보다 대결 구도를 강화했다. 10월 22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5만 5000원. 1577-3363.무용·클래식 ●유빈댄스 2017 정기공연 ‘시선의 온도’ 유럽에서 활동하던 이나현이 귀국해 2005년 창단한 무용단 유빈댄스가 선보이는 신작이다. 이름, 성별, 나이, 직업 등 타인의 시선이 만든 울타리에 갇힌 사람들의 정체성을 1장 ‘암흑 에너지’, 2장 ‘나는 아닙니다’, 3장 ‘결혼’이라는 제목으로 독창적으로 풀어낸다. 26~27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3만~5만원. (02)2280-4114. ●차이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사드 냉전을 뚫고 열리는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 음악회다. 중국 1세대 지휘자로 꼽히는 탕무하이가 61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유일의 국립 교향악단의 지휘봉을 잡고 멘델스존, 무소르그스키 작품 등을 들려준다. 한국의 스타 바이올린 연주자 김봄소리가 협연한다. 26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만~13만원. (02)6303-1977.
  • 이언주 “안철수, 지나치게 자신 위주로 생각”

    이언주 “안철수, 지나치게 자신 위주로 생각”

    국민의당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한 이언주 후보가 서울시장 출마설이 돌고 있는 안철수 후보에 대해 “지나치게 자신 위주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이 후보는 18일 오전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안 후보가) 서울시장에 출마하면 당 대표로 내년 지방선거를 지휘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 후보는 “(안 후보가) 여전히 애매모호한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며 “본인은 여러가지 각오를 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부족하다 싶었고 제가 당 대표되는 것이 적절하겠다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가 당 대표 출마를 고려하다가 안 후보가 나오겠다고 하니까 물러서서 지켜봤었는데 이후 진행상황을 보니 당내 갈등이 극심화 되고 존립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의당 위기는 신뢰상실 때문이다. 공당임에도 공당으로써 보지 않았다는 게, 공당 시스템이 부족한 걸 방치한 게 근본원인”이라며 “나만이 위기의 당을 구할 수 있다, 내가 창업주다, 이런 생각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안 후보가) 당 정체성과 관련해 향후 민주당과의 연대 등을 우려하는 건 저도 이해한다”면서도 “그렇지만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당 정체성을,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하는 게 꼭 본인이 대표가 돼 해야 하나. 정치는 여럿이 힘을 합쳐하는 것이지 혼자하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본인(안 후보)이야말로 물러서서 다른 후보를 돕는다던지 할 수 있다”며 “지금 갈등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안 후보가 당을 구할 수 있다고 나섰지만 저는 결과적으로 더 망가뜨릴 수 있다는 위기를 느낀다. 그런 차원에서 저 이언주가 더 경쟁력있는 후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n&Out] 학교 내 종교 강요, 이대로 안 된다/류상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In&Out] 학교 내 종교 강요, 이대로 안 된다/류상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13년 전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종교 관련 사건이 있었다. 서울 대광고 3학년생이자 학생회장이었던 강의석군이 교내 방송을 통해 “강요되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강군은 46일간에 걸친 단식투쟁 끝에 예배선택권을 얻어 냈지만 학교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이 문제는 이듬해에 법정으로 갔다. 5년이 지난 2010년 4월 22일 최종 판결이 나왔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강제로 종교교육을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 이후 학생들에게 예배선택권을 준 기독교계 사립학교는 많지 않다.학교 내 종교 강요에 대한 대학생들의 저항은 강군 사건보다 앞선다. 1995년 숭실대 학생이 6학기 동안 채플(기독교 학교의 교내 예배의식) 이수를 졸업 요건으로 정한 학칙이 종교의 자유를 침범한 것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학생의 패소로 끝났다. 2003년에는 이화여대에서 ‘채플반대모임’이 결성됐다. “신을 위해 기도할 권리만큼 기도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나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당시 채플반대모임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이다. 2003년 명지대, 2004년 연세대, 2006년 다시 숭실대에서 채플반대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법적 소송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강의석군이 제기한 고교와는 달리 대학은 학생 스스로 학교를 선택해 입학했다는 이유에서다. 절대 강자인 학교와 약자인 학생 간의 불공정 계약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무시됐다. 대학생들의 채플반대운동은 2006년 숭실대 사건을 정점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기독교 학교의 유연한 대응으로 학생들의 불만이 상당 부분 누그러졌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대학뿐 아니라 중·고교도 종전 경직된 의식에서 벗어나 저명 인사 초청 강연, 뮤지컬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 학생들의 거부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내용을 유연하게 바꾼다고 강제 참석제의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일까? 기독교 학교 운영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기독교는 절대자를 인격신으로 고백한다. 예배의식은 그 신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하느님에 대해 사랑을 고백하고 설교자를 통해 신의 음성을 듣는다.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결단도 예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학생들의 기호에 맞춘 변형된 채플, 그대로 괜찮은 걸까. 예배의 중요 요소가 실종된 채 춤, 노래로 채워진 채플을 기독교 인격신은 어떤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계실까. 어쩌면 그것이 기독교의 종교적 품위를 떨어뜨리고 하느님은 물론 경건해야 할 예배 자체까지 모독하는 건 아닐까. 기독교 학교의 정체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희망 학생만 자율적으로 참여토록 해 제대로 격식을 갖춰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미국 기독교 학교인 하버드대는 1986년 의무 채플을 중단했다. 일본의 대표적 기독교 학교 도시샤대학은 1960년대에 채플이 자율화됐다. 종교의 자유란 ‘종교를 선택할 자유’와 ‘종교를 거부할 자유’,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전할 자유’, ‘종교를 (합법적 범위 안에서) 교육할 자유’를 포함한다. 기독교 학교의 ‘종교교육을 할 권리’와 학생들의 ‘종교를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를 동시에 충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고교에선 대법원 판결대로 학생들에게 예배선택권을 주고, 대학에서는 필수 이수 과목인 채플을 선택 과목으로 바꾸는 것이다.
  • ‘보수 상징’ 된 태극기… 광복절 광장서 사라지다

    ‘보수 상징’ 된 태극기… 광복절 광장서 사라지다

    탄핵 후 부정적 이미지 확산에 서울광장 등 시민 거의 안 들어 외벽 게양·마케팅도 사라져 집회도 경축 대신 ‘정치 구호’매년 서울 도심 건물 외벽을 장식하던 ‘광복절 기념’ 대형 태극기가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등에서 열린 다양한 광복절 행사에선 곳곳에 태극기가 휘날렸지만, 올해는 지방자치단체가 광장 주변에 내건 태극기가 전부였다. 과거 유통업계들이 열을 올렸던 ‘태극기 인증샷 행사’를 비롯한 ‘애국심 마케팅’도 진행되지 않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15일 “젊은층 사이에 태극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돼 태극기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광복절에 태극기가 예전만큼 눈에 띄지 않는 원인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비롯한 ‘국정 농단’ 정국을 거치면서 태극기가 마치 보수단체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방증하듯 이날 보수단체의 집회에서는 태극기가 넘쳐났다. 물론 광복절 경축을 위한 의미보다는 정치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용도로 활용된 측면이 강했다. 일부 시민들도 태극기 게양에 다소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서울 성동구는 지난 9일부터 이날까지 광복절 기념 태극기 달기 시범 아파트를 운영했지만 태극기를 무료로 나눠 줬는데도 국기 게양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전주명(48)씨는 “‘태극기부대’ 이미지가 계속 떠올라 과거처럼 태극기를 펼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직장인 정모(31·여)씨는 “태극기부대가 태극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킨 측면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애국심까지 훼손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올해 광복절이 예년과 달라진 것은 태극기에 대한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이날 서울 도심은 광복절 경축 행사장이 아닌 정치 집회의 장이 돼 버렸다. 진보 단체들은 주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등을 주장했다. 민주노총·한국진보연대 등 200여개의 시민단체가 모인 ‘8·15 범국민평화행동 추진위원회’는 서울광장에서 ‘8·15 범국민대회’를 열고 사드 배치 철회, 한·미 군사훈련 중단, 한·일 위안부 합의 및 한·일 군사협정 철회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빨간 우산을 들고 아리랑을 부르며 광화문광장과 주한 미국대사관을 거쳐 주한 일본대사관까지 행진했다. 민중연합당은 이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민중연합당 자주평화통일 결의대회’를 열고 남북 대화 시작,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했다. 친박(친박근혜) 성향의 보수 단체들도 도심 곳곳에서 집회를 열어 맞불을 놓았다.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한애국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이날 강남구 삼성역 인근에서 ‘태극기 집회’를 열고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칭 등을 주장했다. 애국단체총협의회, 새로운한국을위한국민운동은 종로구 대학로에서 ‘8·15 구국국민대회’를 열고 박근혜 무죄, 자유민주주의 수호, 탈원전 반대 등을 외쳤다. 경찰은 서울 전역에 81개 중대 6500명의 병력을 동원해 혹시 있을지 모르는 충돌에 대비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文대통령 “모든 것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

    文대통령 “모든 것 걸고 전쟁만은 막겠다”

    “분단 극복이야말로 진정한 광복 완성하는 길…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명예회복 원칙 지킬 것”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 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72주년 경축사에서 “한반도의 평화도, 분단 극복도 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면서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북·미가 각각 ‘괌 포위사격’과 ‘화염과 분노’ ‘군사행동 장전’ 등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무력충돌 우려가 최고조에 이른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타개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우발적 군사충돌 가능성을 차단하고 ‘평화적 해결’ 원칙을 지켜 나가겠다는 데 방점이 찍혔다. 지난 11일 미·중 정상 통화 이후 북·미 갈등 국면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전날 문 대통령은 ‘고통스럽고 더디더라도 평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을 천명했다. 앞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괌 포위사격’ 보고를 받은 뒤 당분간 미국의 행태를 지켜보겠다며 ‘일단 멈춤’ 신호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 위기를 타개할 것”이라면서도 “안보를 동맹국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운전대론’을 재차 거론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다”며 “북핵 문제의 역사는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 문제 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결국 ‘베를린구상’의 후퇴는 없으며, 뚜벅뚜벅 나갈 것임을 밝힌 것이다. 더 나아가 남북 공동으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 검토 등 추가 제안도 내놓았다. 한·일 관계와 관련,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의 걸림돌은 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 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역사문제 해결에는 피해자 명예 회복과 보상,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이란 원칙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진보·보수진영 대립의 최전선이었던 ‘건국절 논란’과 관련,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문 대통령은 또 “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겠다”며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경축사 전문, 서울신문 홈페이지(www.seoul.co.kr) ‘정치 섹션’ 게재
  •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전문›문재인 대통령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에 계신 동포 여러분, 촛불혁명으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리고첫 번째 맞는 광복절입니다.오늘, 그 의미가 유달리 깊게 다가옵니다. 국민주권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처음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백 년 전인 1917년 7월, 독립운동가 14인이 상해에서 발표한‘대동단결 선언’은 국민주권을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천명했습니다.경술국치는 국권을 상실한 날이 아니라오히려 국민주권이 발생한 날이라고 선언하며,국민주권에 입각한 임시정부 수립을 제창했습니다.마침내 1919년 3월, 이념과 계급과 지역을 초월한전 민족적 항일독립운동을 거쳐,이 선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국민주권은 임시정부 수립을 통한 대한민국 건국의 이념이 되었고,오늘 우리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그렇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려는 선대들의 염원은백 년의 시간을 이어왔고,드디어 촛불을 든 국민들의 실천이 되었습니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이름 석 자까지 모든 것을 빼앗기고도자유와 독립의 열망을 지켜낸 삼천만이 되찾은 것입니다.민족의 자주독립에 생을 바친 선열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독립운동을 위해 떠나는 자식의 옷을 기운 어머니도,일제의 눈을 피해 야학에서 모국어를 가르친 선생님도,우리의 전통을 지켜내고 쌈짓돈을 보탠 분들도,모두가 광복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광복은 항일의병에서 광복군까지애국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이 흘린 피의 대가였습니다.직업도, 성별도, 나이의 구분도 없었습니다.의열단원이며 몽골의 전염병을 근절시킨 의사 이태준 선생,간도참변 취재 중 실종된 동아일보 기자 장덕준 선생,무장독립단체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어머니 남자현 여사, 과학으로 민족의 힘을 키우고자 했던 과학자 김용관 선생,독립군 결사대 단원이었던 영화감독 나운규 선생,우리에게는 너무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의 무대도 한반도만이 아니었습니다.1919년 3월 1일 연해주와 만주, 미주와 아시아 곳곳에서도한 목소리로 대한독립의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항일독립운동의 이 모든 빛나는 장면들이지난 겨울 전국 방방곡곡에서,그리고 우리 동포들이 있는 세계 곳곳에서, 촛불로 살아났습니다.우리 국민이 높이든 촛불은 독립운동 정신의 계승입니다.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은민주화와 경제 발전으로 되살아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땀 흘린 모든 분들,그 한 분 한 분 모두가 오늘 이 나라를 세운 공헌자입니다. 오늘 저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그리고 저마다의 항일로 암흑의 시대를 이겨낸 모든 분들께,또 촛불로 새 시대를 열어주신 국민들께,다시금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저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이 날이민족과 나라 앞에 닥친 어려움과 위기에 맞서는용기와 지혜를 되새기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경북 안동에 임청각이라는 유서 깊은 집이 있습니다.임청각은 일제강점기 전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망명하여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무장 독립운동의 토대를 만든석주 이상룡 선생의 본가입니다.무려 아홉 분의 독립투사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산실이고,대한민국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그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그 집을 관통하도록 철도를 놓았습니다.아흔 아홉 칸 대저택이었던 임청각은지금도 반 토막이 난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이상룡 선생의 손자, 손녀는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임청각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일제와 친일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고,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역사를 잃으면 뿌리를 잃는 것입니다.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영웅으로 남겨두지 말아야 합니다.명예뿐인 보훈에 머물지도 말아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합니다.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을 모시는 국가의 자세를완전히 새롭게 하겠습니다.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습니다.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자녀와 손자녀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습니다. 독립운동의 공적을 후손들이 기억하기 위해임시정부기념관을 건립하겠습니다.임청각처럼 독립운동을 기억할 수 있는 유적지는모두 찾아내겠습니다.잊혀진 독립운동가를 끝까지 발굴하고,해외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전하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는대한민국 보훈의 기틀을 완전히 새롭게 세우고자 합니다.대한민국은 나라의 이름을 지키고, 나라를 되찾고,나라의 부름에 기꺼이 응답한 분들의 희생과 헌신 위에 서 있습니다.그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젊음을 나라에 바치고 이제 고령이 되신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겠습니다.살아계시는 동안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의 치료를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참전명예수당도 인상하겠습니다. 유공자 어르신 마지막 한 분까지대한민국의 품이 따뜻하고 영광스러웠다고 느끼시게 하겠습니다.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공무원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확대할 것입니다.그것이 우리 모두의 자긍심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보훈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겠습니다.애국의 출발점이 보훈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해국민들이 감수해야 했던 고통과도 마주해야 합니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밝혀진 사실들은 그것대로 풀어나가고,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앞으로 남북관계가 풀리면남북이 공동으로 강제동원 피해 실태조사를 하는 것도 검토할 것입니다.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그 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오늘 광복절을 맞아한반도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군사적 긴장의 고조가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분단은 냉전의 틈바구니 속에서우리 힘으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던식민지시대가 남긴 불행한 유산입니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스스로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국력이 커졌습니다.한반도의 평화도, 분단 극복도,우리가 우리 힘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시대적 소명은 두말 할 것 없이 평화입니다.한반도 평화 정착을 통한 분단 극복이야말로광복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길입니다. 평화는 또한 당면한 우리의 생존 전략입니다.안보도, 경제도, 성장도, 번영도평화 없이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합니다.평화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에 평화가 없고,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집니다.지금 세계는 두려움 속에서 그 분명한 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명확합니다.전 세계와 함께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입니다.정부는 현재의 안보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정부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안보위기를 타개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의 안보를 동맹국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원칙은 확고합니다.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입니다.한반도에서 또 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입니다.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문제는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이 점에서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평화적 해결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외교적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입니다.국방력이 뒷받침되는 굳건한 평화를 위해우리 군을 더 강하게, 더 믿음직스럽게 혁신하여강한 방위력을 구축할 것입니다.한편으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도록군사적 대화의 문도 열어놓을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대화는 선후의 문제가 아닙니다.북핵문제의 역사는 제재와 대화가 함께 갈 때문제해결의 단초가 열렸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유예하거나 핵실험 중단을 천명했던 시기는예외 없이 남북관계가 좋은 시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그럴 때 북미, 북일 간 대화도 촉진되었고,동북아 다자외교도 활발했습니다.제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은 핵 동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습니다.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군사적 긴장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이 점에서도 우리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 당국에 촉구합니다.국제적인 협력과 상생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이대로 간다면 북한에게는 국제적 고립과 어두운 미래가 있을 뿐입니다.수많은 주민들의 생존과 한반도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리게 됩니다.우리 역시 원하지 않더라도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더욱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즉각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핵 없이도 북한의 안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우리가 돕고 만들어 가겠습니다.미국과 주변 국가들도 도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천명합니다.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습니다.흡수통일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이고인위적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통일은 민족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하는‘평화적,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북한이 기존의 남북합의의 상호이행을 약속한다면,우리는 정부가 바뀌어도 대북정책이 달라지지 않도록,국회의 의결을 거쳐 그 합의를 제도화할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남북간의 경제협력과 동북아 경제협력은남북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고, 군사적 대립을 완화시킬 것입니다.경제협력의 과정에서 북한은핵무기를 갖지 않아도 자신들의 안보가 보장된다는 사실을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쉬운 일부터 시작할 것을 다시 한 번 북한에 제안합니다.이산가족 문제와 같은 인도적 협력을 하루빨리 재개해야 합니다.이 분들의 한을 풀어드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이산가족 상봉과 고향 방문, 성묘에 대한 조속한 호응을 촉구합니다.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도남북이 평화의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남북대화의 기회로 삼고,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동북아 지역에서 연이어 개최되는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의 도쿄 하계올림픽,2022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은한반도와 함께 동북아의 평화와 경제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절호의 기회입니다.저는 동북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이 기회를 살려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합니다.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국민 여러분께서도 뜻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우리는한일관계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한일관계도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과거사와 역사문제가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 잡는 것은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해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입니다.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한일관계의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의 많은 정치인과 지식인들이양국 간의 과거와 일본의 책임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그 노력들이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이러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바뀌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한일관계의 걸림돌은 과거사 그 자체가 아니라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정부의 인식의 부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국제사회의 원칙이 있습니다.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일본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해외 동포 여러분, 2년 후 2019년은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은,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진정한 보훈은,선열들이 건국의 이념으로 삼은 국민주권을 실현하여국민이 주인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준비합시다.그 과정에서, 치유와 화해, 통합을 향해지난 한 세기의 역사를 결산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민주권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보수, 진보의 구분이 무의미했듯이우리 근현대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세력으로 나누는 것도이제 뛰어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역사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며,이 점에서 개인의 삶 속으로 들어온 시대를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 없는 일입니다.대한민국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시김대중, 노무현만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치유와 화해, 통합을 바라는 마음으로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의 가치를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이제 지난 백년의 역사를 결산하고, 새로운 백년을 위해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정립하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도 여기에 맞춰져 있습니다.보수나 진보 또는 정파의 시각을 넘어서새로운 100년의 준비에 다함께 동참해 주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 다함께 선언합시다.우리 앞에 수많은 도전이 밀려오고 있지만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헤쳐 나가는 일은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당당히 외칩시다.담대하게, 자신 있게 새로운 도전을 맞이합시다.언제나 그랬듯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이겨 나갑시다.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완성합시다.다시 한 번 우리의 저력을 확인합시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독립유공자들께깊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일 한인 동포 8만에 장학금… “광복 이후 좌·우익 함께 운영”

    재일 한인 동포 8만에 장학금… “광복 이후 좌·우익 함께 운영”

    “동포 학생과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며, 재정적 도움뿐 아니라 차별과 질시 속에서 마음의 갈등과 고민을 해결해 주고, 정체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역사가 장학회가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공중분해돼 일본 국고로 환수될 위기도 있었지만 선배들과 동포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정몽주(70) 조선장학회 대표이사(이사장)는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일본 도쿄 신주쿠 장학회 본관 사무실에서 117년의 연혁을 가진 장학회의 역할과 미래를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장학회는 대한민국을 모국으로 삼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및 북한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가 각각 추천하는 인사들과 여기에 일본 학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3자가 공동 운영하는 공익재단법인으로, 대한제국 때인 1900년 주일본 한국공사관에 설치됐던 ‘유학생 감독부’가 기원이다. 국권을 빼앗기면서 조선총독부 유학생감독부(1911년), 조선교육회 장학부(1925년), 조선장학회(1941년), 재단법인 조선장학회(1943년) 등으로 변천을 거듭했다. 현재는 총련의 조선고급학교 교장을 지낸 최인태씨가 정 대표와 함께 장학회 공동대표를, 조선대학 교수를 지낸 김종기씨가 상근 이사를 맡고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좌우익의 대립으로 표류하다가 1957년 좌우익 양측 및 일본 정부 추천 인사들이 참여하는 ‘3자 운영 형태’를 확립했다. “1961년부터만 따져도 지금까지 재일 한국인 등 한반도 출신 7만 8000여명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2016년에는 고교생 754명, 대학생 877명에게 장학금 3억 8257만엔이 전달됐죠. 한국이나 조선(북한) 국적자가 대상이고, 장학금을 받은 한국 유학생 가운데는 주일 한국대사가 된 분도 있어요.” ‘60년 넘게 일본에서 재일 한인 좌우익들이 어떻게 함께 장학활동을 해 올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정 대표는 “체제와 이념을 떠나 실제로 동포 젊은이들을 뒷받침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풀어 주겠다는 의지와 실천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장학회 관계자는 “이질적인 구성에도 불구, 합의제란 운영 방식이 재단 유지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재단은 매년 학생문화제, 계절별 학생 간담회 및 강연회, 여름캠프, 한글강좌 등을 연다. “동포 젊은이들끼리 더 많이 알고 사귀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만남의 기회를 가능하면 많이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반도 출신임을 밝히지 못하고, 차별받고, 식민지 출신이라는 열등감을 느껴야 했던 그 시절부터 장학회는 동포 젊은이들을 지탱하고 묶어 주는 구심점이었다. 장학회의 미래를 묻자 그는 “공익재단의 제약 아래에서 수익 증대 방안에도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회 재원은 신주쿠의 장학회 본관 등 3채의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지난해 경상수익은 13억 4600만엔이었다. 정 대표는 “더 중요한 일은 민족 교육 이념을 정립하며 앞으로 100년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재일동포의 일본 국적 취득이 늘고, 낮은 출산율로 동포 젊은이들의 절대 숫자도 줄어드는 가운데 이념이 상반된 좌우 두 집단이 함께 넘어야 할 고개가 적지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조선장학회는 60년 넘게 좌우익이 일본 땅에서 민족의 다음 세대를 위해 함께 일해 온 경험과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문 대통령 “최저임금·알바비 미지급 근로감독 강화”

    문 대통령 “최저임금·알바비 미지급 근로감독 강화”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최저임금과 알바(아르바이트)비 미지급에 대해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최저임금과 알바(아르바이트)비 미지급에 대한 근로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근로감독관의 숫자가 부족할 텐데, 근로감독관 확충 예산확보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알바비 미지급은 노동의 대가라는 차원에서 알바비 자체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청년, 학생들에게 자칫 우리 사회에 대한 왜곡된 선입견을 품게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장관은 “노동부 예산을 어느 부처보다 우선으로 챙겨달라”며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성공하려면 그 예산의 거의 70%는 고용노동부에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지난해 상담사 처우 개선 예산이 국회에서 통과돼 예산을 확보했는데도 기재부에서 예산을 안 줬다”며 “이 자리를 빌려 예산을 많이 챙겨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문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또 문 대통령은 “노동부도 경제부처 중 하나다 보니 노동자를 위한 부처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과거에 있었다”면서 “고용노동부는 경제부처이기는 하되, 노동의 관점에서 노동자들의 이익을,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해야 한다”고 김 장관에게 당부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라는 이름처럼 고용과 노동이 양대 역할”이라며 “고용문제가 어렵다 보니 고용 쪽으로 업무가 치우치면서 노동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역할이 잘 보이지 않는 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용과 노동이 서로 균형 있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하려면 결국은 노·사·정 대타협,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며 “노·사·정 모두의 고통분담, 양보, 희생, 타협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한 번도 해내지 못한 것인데 김 장관께서 새 정부에서 꼭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 국민의당 전대 첫 TV토론회…무슨 말할까

    오늘 국민의당 전대 첫 TV토론회…무슨 말할까

    국민의당 8·27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등록을 마친 주자들이 14일 첫 TV토론회에 나선다.국민의당 대표 경선 후보인 안철수 전 대표, 천정배 전 대표, 정동영 의원, 이언주 의원 4명은 이날 오후 2시30분 서울 상암동 JTBC 스튜디오에서 생중계되는 ‘뉴스현장’ 프로그램에 나란히 출연해 토론을 벌인다. 대선 패배와 제보조작 사건으로 직면한 당의 위기 극복 방안, 당의 정체성과 노선 등이 핵심 주제가 될 전망이다. 이어 각 주자들은 국회도서관에서 열리는 중앙위원회에 참석해 당원들을 상대로 합동정견발표를 할 예정이다. 국민의당은 이날을 시작으로 총 5차례에 걸쳐 TV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같이 씻자”…13세 제자와 성관계 맺은 30대 여성 학원강사

    “같이 씻자”…13세 제자와 성관계 맺은 30대 여성 학원강사

    자신이 가르치던 13세 중학생과 성관계를 맺은 30대 여성 학원강사가 법정 구속됐다.14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인천지법 형사합의3부(부장 김동진)는 아동복지법(아동에 대한 음행강요 ·매개 ·성희롱)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학원강사 권모(33)씨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권씨는 지난해 8월 1심에서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120시간 사회봉사명령을 받았으나 항소했다. 권씨는 2015년 서울의 한 학원에서 만난 당시 만 13세인 중학교 2학년생 A군과 네 차례 성관계를 가져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에 대한 음행강요·매개·성희롱 등)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기소됐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권씨는 A군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며 그 해 가을에 “만나보자” “같이 씻을까?” 등의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1심 재판을 맡은 인천지법 부천지원은 지난해 8월 권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120시간 사회봉사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권씨는 “서로 사랑해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성관계를 했다. 성적 학대가 아니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권씨는 2심 재판에서 “피해자는 만 13세 소년이기는 하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군이 180㎝가 넘는 키에 육체적으로 상당히 성숙했고, 선정적인 메시지를 보냈을 때 싫지 않은 내색을 했으며, 중학생들의 성관계 경험이 적지 않은 점에 비춰 중학교 2학년생의 성 경험이 큰 해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은 미성숙한 상태의 아동인 피해자의 의사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핑계 삼아 자신의 성욕을 충족한 것에 대해 면죄부를 받으려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아동이 신체적·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적 정체성 및 성적 자기결정권을 발견해 나가며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상호관계를 조화롭게 이해하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게 아동복지법의 입법 취지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육체적 성숙도는 범죄 성립이나 죄의 경중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만진의 도시탐구] 응답하라 광화문

    [최만진의 도시탐구] 응답하라 광화문

    세계 제1차 대전이 일어났던 1914년에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는 전쟁 파괴에 반하는 현대적 도시 개념을 주창하게 된다. 이는 그가 발표한 일련의 스케치에서 잘 관찰할 수 있는데, 도시를 한마디로 거대한 기계로 묘사했다. 이에 발전소, 비행장, 격납고, 정거장 그리고 입체화된 대로변에 솟아 있는 초고층 건물들을 도시의 핵심 요소로 꼽았다. 이들은 산업화시대의 전형적인 상징으로 묘사됐으며, 도시는 기계적 이동 수단인 비행기 및 자동차 그리고 산업시설들이 차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도로 같은 도시 공간에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수직적으로는 엘리베이터를, 수평적으로는 건물과 건물 또는 도시 시설물 사이를 잇는 연결 다리를 통해 이동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이 같은 구상은 이전의 도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이는 도로를 중심으로 건물을 나열하고, 중요 위치에 랜드마크 구조물을 만들었으며, 공원이나 광장 등의 공지를 두어 도시를 구성하던 평면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있다. 산텔리아의 도시는 여러 층으로 형성된 입체성과 복합성을 특징으로 하는 4차원의 구조를 가진다. 이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비행기, 자동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속도감과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새로운 도시가 마치 거대한 배를 생산하는 시끌벅적한 조선소와 같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도시 풍광은 오늘날에는 일반화돼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어서 이를 ‘미래주의 건축’이라 명명했다. 한편 인류가 이루어 놓은 위대한 산업화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이 생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이 주체에서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도시가 콘크리트, 철제, 아스팔트 구조로 구성돼 있어 자연을 찾아볼 길이 없다. 이러한 기계 중심의 도시 건설 아이디어는 근대건축에 전달돼 오늘날의 도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가 인류에게 장밋빛 이익만이 아니라 해를 끼치는 면이 오히려 많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계와 이동 수단이 판을 치는 곳에서는 사람이 소외되는 것이 당연했다. 사람들은 도시 공간에서 축출돼 건물 속으로 숨어들었고 이웃과 단절돼 공동체 형성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또한 지역의 전통과 특징은 없어지고 똑같은 도시 경관이 전 세계에 만연하게 돼 정체성 회복이라는 과제가 새롭게 부상했다. 교통수단, 공장,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소음, 공기오염, 온난화 등의 문제는 현대인을 심각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 도시계획의 핵심적인 경향은 지역 전통과 특징을 반영한 사람 중심의 개발로 방향을 바꾸었다. 최근 광화문광장의 전용보행공간화 구상은 이러한 시대 흐름에 편승한 적절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서울의 가장 핵심적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좋은 점은 전통의 복원과 계승이다. 조선시대에 중앙 부처가 있어 육전거리로 불렸던 이곳은 일반인의 통행이 자유로운 개방 공간이었으며 신문고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상소하던 소통의 공간이었다. 신도시 미래파인 산텔리아는 파시스트의 편에 서서 전쟁에 가담했다가 2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우리의 광화문에서는 일제가 만든 산업 식민의 잔재를 털어 내고 시민이 화합하는 대통합의 진정한 미래주의가 싹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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