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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국방부의 소 문제 전문가가 내다 본 「미래의 판도」

    ◎유럽ㆍ소련지도 “2천년엔 EC 축으로 재편”/노르딕ㆍ중ㆍ서부유럽 등 5그룹으로 분리/탈소 발트3국ㆍ동구국,EC 가입… 소는 준회원으로/소연방 붕괴… 러시아ㆍ백러시아공만 잔류 『소비에트제국은 붕괴로 치닫고 있으며 크렘린도 이 사실을 알고있다』 미국방부의 소련문제 수석전문가인 필립 피터슨씨가 최근의 새로운 연구를 통해 내린 결론이다. 전DIA(국방정보국)분석가였으며 펜터건에서 7년째 근무하고 있는 피터슨씨는 『증대된 긴장에 적응하는 능력이 소련 사회엔 없다』고 지적하면서 『점증하는 폭력추세에 대처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유지하기 위한 소련군 사용 능력이 반군선전과 무기력성 때문에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리처드 체니 미국방장관과 브뤼셀 주재 나토 회원국 대사들에게 배포될 보고서에서 『소련의 비 대결 정책 수용은 유럽의 안보가 나토와 바르샤바 기구보다 대륙의 경제그룹에 더 의존하게 될것임을 뜻한다』고 말했다. ○소도 “자체붕괴”감지 이 보고서가 역점을 두고 작성한 서기 2000년의 유럽 판세지도는 피터슨과 펜터건의 동유럽 연구팀이 소련 안보 문헌과 바르샤바조약기구 전문가들과의 토론에서 끌어낸 결론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수석 군사고문 세르게이 아크로메예프와도 폭넓은 토론을 가졌다. 이지도는 기본적으로 경제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국제안보가 점점 경제관계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지도는 장래의 유럽 안보에 대한 안내서나 준거로 생각할 수 있다고 피터슨은 말했다. 나토의 소련문제 전문가는 이 지도에 대해 『기본적으로 소련의 견해를 요약한 것』이라며 『소련 사람들의 생각에서 군사문제가 얼마나 많이 배제됐는지를 알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고 워싱턴 타임스지는 전했다. 피터슨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 안보에 대한 소련의 새 견해는 고르바초프가 아니라 그의 전임자 유리 안드로포프로부터 비롯됐다. 핀란드 문제 전문가였던 안드로포프는 84년 타계하기 전에 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 인물인 페도르 불라츠키,게오르기 아르바토프,알레산더 보빈,올레그 보고몰로프 등을 요직에 기용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채택해서,소련의 안보가 점차 경제력에 의존하게 될것이라는 자각에 입각한 「혁명적 실용주의」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피터슨은 주장했다. ○미,유럽안보에 중요 소련의 안보 이론가들은 독일이 비무장 중립화되면 유럽을 「핀란드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그의 보고서는 밝혔다. ▷2000년의 유럽과 소련에 대한 크렘린의 전망◁ ▲모든 동유럽 국가가 EC(유럽공동체)에 가입할 것이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는 독립할 뿐만 아니라 EC에 가입할 것이다. 소련은 터키와 함께 EC의 준회원이 될것이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단일 경제권이 돼,이탈리아가 지배하는 EC의 중부유럽 그룹에 유고슬라비아및 체코슬로바키아 등과 더불어 합류할 것이다. ○쿠릴열도 일에 반환 ▲영국ㆍ포르투갈ㆍ스위스는 EC내의 서유럽연맹(독일ㆍ프랑스ㆍ스페인ㆍ벨기에ㆍ룩셈부르크ㆍ네덜란드)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은 미국ㆍ캐나다가 포함되는 북대서양 그룹에 합류할지모른다. ▲미국과 캐나다는 유럽 안보에 중요하고 적법한 존재로 소련에 의해 간주돼 동유럽에서 소련군이 전면 철수하더라도 영국ㆍ이탈리아ㆍ포르투갈에 주둔군을 유지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독일,나토에… ▲통일된 독일은 나토에 잔류할 것이다. 다만 소련군의 동독철수에 따라 영국군과 미국군은 서독에서 철수할 필요가 있다. ▲소련은 내부적으로 해체돼 백러시아와 러시아공화국만 USSR(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에 남을 것이 확실시 된다.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의 분열은 종식되고,그루지야가 독립할 경우 기독교인들의 아르메니아는 고립될 것이다. 회교 원리주의에 대한 정치적 장벽이 소련의 아제르바이잔,이란의 아제르바이잔,그리고 터키의 연합을 촉진시킬것이다. 쿠릴열도는 일본에 반환될 것이다.
  • 「신사고」 앞세워 동서데탕트시대“견인”/고르바초프 집권5년의 평가

    ◎새로운 「자결원칙」 제시,동구 대변혁 “촉발”/강력한 대통령제 신설,개혁 가속화의 기틀 다져/“발등의 불”경제난ㆍ민족분규등 현안 “첩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의장이 11일로 집권 5주년을 맞았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사고의 대전환을 통한 대담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소연방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물결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난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12ㆍ13일 열리는 인민대표대회에서 비상대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소련 최초의 서방식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취임 5주년 기념일인 11일에는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가 독립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표결을 준비하는 등 그에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과 신사고외교를 성공리에 추진,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아니라 끝없는 군비경쟁으로만 치닫던 냉전체제에 종지부를찍으며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담하게 개혁 추진 지난 85년 체르넨코 서기장 사후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지난 88년말 유엔총회연설에서 일방적인 국방비삭감과 50만명의 소련군 감축을 선언,세계의 군비경쟁에 결정적 브레이크를 걸었다. 또 소련의 동구개입을 뜻하는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이른바 시내트러독트린(프랭크 시내트러의 히트곡「My Way」처럼 각국이 제갈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결원칙을 제시,지난해 동구의 민주화변혁을 가능케 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없었다면 베를린장벽의 제거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는등 지역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ㆍ재편)와 글라스노스트(개방ㆍ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의 위협자에서 수호자로,동구제국의 지배자에서 해방자로,혁명수출국에서 분쟁중재국으로 소련의 역할전환을 이룩해낸 것이다. 시사주간 타임지는 고르바초프를 지난 8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플라톤의 정치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극찬하면서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지난달 미CNN방송이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설을 보도하자 뉴욕ㆍ도쿄등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증권시장에서 주가폭락을 초래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전세계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군비경쟁에 쐐기 국내에서도 국제무대에서 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소련의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있다. 볼셰비키혁명이후 70년이 넘도록 유지돼온 공산당 권력독점을 포기,고질적인 관료제를 타파하고 정치적 다원주의의 물꼬를 텄다. 강력한 대통령직을 신설,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인민대표대회의 권한을 강화,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변모시켰는가 하면 각급 선거를 복수후보경쟁에 의한 비밀투표로 실시토록 했다. 정치범 석방,언론ㆍ종교ㆍ출입국 자유화 등의 민주화 조치도 취했다. 경제적으로도 관료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의 비능률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협동조합기업(코페라티브)설립과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는등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침체의 늪에 빠져든 소련 경제를 소생시키지는 못했다. 생산수단 사유화및 임금노동과 토지의 개인영구임대 및 상속을 허용하는등 보다 실질적인 조치들이 곧 입법화될 예정이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물자부족등 피부에 와닿는 경제혼란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과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보의 공개와 언론자유에 힘입어 소수민족공화국들의 민족적 자각과 그에 따른 분리독립요구가 높아져 연방해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같은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제2의 혁명이며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한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분쟁해결 앞장 일부 서방전분가들이 지적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의 재생이라는 주장이다. 개정된 공산당 강령은 레닌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도 안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국유 또는 사회소유에 반하는 사적소유와 인간노동의 착취행위로 금지돼왔던 임금노동을 허용하는 문제들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던 것처럼 아직도 사회주의적 「사회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지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변혁이 일방적이 아닌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련내의 개혁도 집권층과 국민들간의 상관관계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에측불허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작업이 어떤 동기에 의해 추진됐건간에 전임자들도 똑같이 느꼈던 문제를 고르바초프만이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대담한 실천력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집권2기를 맞으며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실각의 우려를 덮어둔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부분적 시장경제로 개혁을 가속화시켜 국민들로부터 계속 지지를 받게될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처럼 독재자로 변신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는 94년의 2대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식 강권통치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유의 맛을 느낀 소련국민들도 두번다시 과거행 타임머신에 동승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강제이주 이전 거주지인 크림반도로 돌아가겠다는 타타르족등의 단순한 요구로부터 발트해연안 3국의 즉각 분리독립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문제들이 고르바초프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또 루블화의 태환성 부여,가격ㆍ금융제도의 개선,완전자유시장의 도입등 근본부터 흔들어 놓아야 할 경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세기의 영웅 고르바초프가 70년동안 타율성과 의욕상실증에 찌들대로 찌든 국민들을 다독거려 이같은 난제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취임5돌 고르바초프 공과 ■외교 정책 ▲동구 각국에 대한 불간섭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동유럽에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핵전쟁 발발 가능성의 공포와 유럽 및 중국에 대한 소련의 선제공격 우려를 현저히 불식. ▲국방비를 삭감하고 병력 50만명과 탱크 1만대 감축을 일방적으로 선언 ▲중부유럽 주둔 병력의 철수를 미국과 잠정적으로 합의 ▲미국과 중거리핵미사일 폐기를 합의한데 이어 오는 90년까지 장거리 핵미사일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목표를 협상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 11만5천명을 철수. ▲앙골라ㆍ나미비아ㆍ캄보디아ㆍ니카라과 등 분쟁국에 대해 협상을 종용 ■민주화 ▲지난 89년 경선제를 도입하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지도부를 설득,동의얻어냄. ▲강력한 대통령제 도입을 제안. ▲언론ㆍ집회ㆍ종교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법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 ▲정치범 수백명을 석방하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탄압을 종식 ■경제정책 ▲일반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생화수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당지도부가 공장의 개인소유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 ▲개인이 토지를 임대차하는 것은 물론 이 권리를 상속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개인의 토지소유는 거부.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대폭 완화. ▲90년도 적자가 1천5백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처음으로 공개. ■국내정책 ▲발트해연안 3개 공화국의 독립요구 운동을 묵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일부 공화국에서 민족분규가 발생해 진압군 수십만명을 파견. ▲관료들의 부정 근절 실패,폭력범죄도 계속 증가.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환경개선에는 아직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음.
  • 소련경제의 제도개혁(사설)

    소련의 경제제도가 중대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소련최고회의는 지난 6일 공장과 산림자원을 포함한 여러가지 재산의 시민소유(사적점유)를 인정하는 소유권법을 채택했다. 농민들에게 농지의 사적점유를 인정한 데 이어 재산의 다양한 소유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소련이 앞서 제정한 토지기본법은 농민에 의한 농지점유를 보증하고 있는 데 반해서 소유법은 수자원 또는 산림자원등 공공재와 철도및 송유관등 사회적 생산기반을 비롯하여 기업및 공장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재화와 자산의 소유제도를 법제화하고 있다. 소유법의 제정으로 지금까지 모든 재산의 국가소유에서 시민소유ㆍ집단소유ㆍ국가소유로 3원화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개인들이 주택ㆍ별장ㆍ유가증권ㆍ소규모 생산수단 등을 소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본주의경제체제 아래서 재산의 사적소유와 유사한 소유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 법에 있어서의 소유는 점유를 의미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소련이 재산의 사유화조치를 단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소유법은 고르바초프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개혁을 위한 핵심적 입법인데다 국유화를 원칙으로 해온 사회주의 국가체제에서 다양한 소유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은 중대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또 개인이 소유한 재산을 매매와 양도 또는 교환및 증여를 할 수는 없어도 자손들에게 상속은 가능하기 때문에 사회주의국가로서는 획기적인 제도개혁을 단행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재산의 사유화로의 길을 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이번 제도개혁은 레닌의 신경제정책(NEP)과도 다르다. 레닌은 혁명후 과도기 경제의 특수성을 인정하여 농지등 일부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완성된 사회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일시적 후퇴에 불과했고 재공격을 위한 세력의 재편이었다. 반면에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완성된 사회주의」가 빚어내고 있는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개혁으로 볼 수 있다. 사회주의체제가 내세워 온 국유화 또는 평준화가 인간의 창의성을 말살하고 마침내는 생산활동의 극심한 정체현상까지 야기시키고 있는 점을 타개하기 위한것이다. 그들은 『정직하게 일하여 돈을 버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고 선언하면서 87년에 29개 업종에 대하여 개인기업을 허용한 바 있다. 그리고 식량증산을 위해 농민들에게 농지점유를 허용한 데 이어 생필품의 극심한 부족현상을 타개할 방편으로 공장의 사적점유를 인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소련은 재산의 사유화ㆍ사기업ㆍ자유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경제제도 가운데 그들이 필요한 부문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채택한 농지와 주택의 점유허용은 자본주의체제에서 재산의 사유화와 유사하고 공장의 사적점유는 사기업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련의 경제제도개혁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 소유법개정에서 보수파의 반대로 사적소유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고 시민소유로 바꾼 것이나 소련 시민들이 자본주의제도나 상거래관습에 익숙지 못한 점등 여러가지 한계성이 있다. 그렇지만 소련의 경제개혁은 정치체제 개편과 함께 역사발전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 「합당공방」에 밀린 「민생현안」/「여대야소」첫국회 대정부질문 결산

    ◎정책질의보다 아전인수식 추궁/정치법안 이견,상위도 진통 예상/정부측 고자세ㆍ답변 내용 부실도 문제로 국회는 5일 사회ㆍ문화 분야에 대한 대정부 질문 일정을 끝으로 4일간의 대정부 질문을 마무리했다. 이번 대정부 질문은 거대여당 출범이후 처음으로 이뤄진것으로 정국전반에 대한 여야의 인식과 시각을 확인할 수 있을 뿐아니라 앞으로 상위활동에서 「대결」또는 「타협」의 수위를 미리 가늠해 본다는 점에서 여느 국회때보다 큰 관심을 끌었다. 정치ㆍ통일 외교 안보ㆍ경제ㆍ사회문화분야 등 4개부문으로 나눠 진행된 이번 대정부 질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역시 예상했던대로 분야별 성격과 관계없이 정계개편과 관련한 여야간의 공방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정부측을 상대로 정책 질의를 벌이기보다는 여야 모두 정치질서 재편에 대한 각자의 논리를 대정부질문 방식을 통해 홍보ㆍ선전하는데 역점을 둔듯한 모습을 보였다. 여야는 3당통합ㆍ정계개편에 대한 논리대결의 차원을 넘어 전반적인 정치사회현상과 시국문제를 각자 편리할대로 정계개편 등과 연관시키는 감정대결의 양상까지 보여 앞으로 상위활동의 어두운 그림자를 예고하고 있다. 민자당은 과거 4당 구조를 『되는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무력 불신의 구도』(오유방의원)라는 기본인식을 바탕으로 이번 정계재편을 통해 소모적인 정쟁을 지양하고 민주개혁조치를 과감히 추진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강조했다. 이에반해 유일야당으로 변모한 평민당은 『3당통합을 성장이란 구호아래 부의 공정분배를 거부하는 정경유착』(신기하의원)으로 규정,민생치안부재,심지어 연쇄방화사건 등도 3당야합에 의한 가치관의 전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6일부터 시작되는 상위활동을 앞두고 평민당이 숫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기선을 잡기 위해 3당통합 비판의 호재를 적극활용한 무대였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번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민자당이 거대여당으로서의 자신감을 표출한 것도 새로운 모습이다. 우선 숫적우세를 바탕으로 한 여유에서 나온 것이지만 정부측을 일방적으로 비호,두둔하는 모습만 보이지 않고 야당에 못지않게강도높은 질타와 비판을 가한 점이다. 대정부 질문자 선정과정에서 민정ㆍ민주ㆍ공화계를 고루 안배한데는 각계파간의 이해조정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기존 3계파의 정책에 대한 입장과 의지 등을 적절히 조화ㆍ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신당의 각오를 표출한 것으로 여겨진다. 정치분야 질문에서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을 전향적으로 대폭 개정할 것을 촉구한 점이라든지 시국사범을 대폭 사면ㆍ석방할 것을 요구한 점 등은 과거 정부ㆍ여당간의 공조체제유지 때 볼수 없었던 새로운 변화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이번 대정부 질문 과정에서 여야간의 현격한 시각차가 노정된 부분은 정치ㆍ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치안부재ㆍ시국불안 등을 정계개편현상의 부작용으로 연계시키고 있는 평민당은 상위활동에서 치안장관의 퇴진 요구등 보다 적극적인 공세를 펼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어 해당 상위마다 여야간 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광주보상법에 대해서도 평민당은 이번 대정부 질문에서도 자신들이 제출한 법안에 따른 배상액과 명예회복조치를 취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어 여야 합의에 의해 단일안을 탄생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밖에 국가보안법ㆍ안기부법ㆍ경찰중립화법 등 주요 정치성 법안에 대한 질의ㆍ답변에서도 기존 여야간 시각을 별로 좁히지 못해 이들 법안처리를 둘러싼 진통이 적지않을 것같다. 특히 이들 정치성 법안은 3당합당 이전 야3당 간에도 각각 다른 입장을 보여왔고 민자당내에서도 계파간의 일치된 목소리를 보이지 못하고 있어 어떤 모습으로 귀착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아무튼 이번 대정부 질문도 역시 여야간의 정치공세성 공방의 장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평민당은 3당통합 비난에 모든 초점을 맞추다 보니 억지 춘향식 주장이 난무,설득력을 잃었고 민자당도 평민당에 대한 역공을 지나치게 염두에 둔데다 각 계파간의 교감형성이 제대로 되지못해 의욕에 비해 수준은 낮았다는 분석이다. 당초 예상했던 정도의 여야간의 충돌이나 물리적 충돌 사태는 없었으나 회의도중 의석에서 저급한 야유나 진지하지 못한 맞고함 등이 빈발한점 등은 앞으로 시정돼야 할 대목이다. 대정부질문때마다 지적되는 사안이지만 분야별로 각당 1명씩 대표를 내세워 심도있는 질의ㆍ답변을 하는 보다 효율적 방식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여야 공통의 지적이다. 거대여당 출범이후 정부측 관계자들의 답변태도가 고압적으로 변했을 뿐 아니라 답변내용 역시 함량미달이라는 질책에 대해서도 정부측의 시정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최태환기자〉
  • 남북한 경제교류의 지름길

    제2차세계대전 이후 유지돼온 동서 양대진영간의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있다. 동서독을 갈라 놓았던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양독의 통일도 가까운 장래에 가시화될 전망이다. 소련의 개혁 및 개방정책으로 비롯된 이같은 국제정치 질서의 재편은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에도 변화의 기류를 형성하는 조짐이다. 우리나라도 정부의 적극적인 북방정책으로 헝가리ㆍ폴란드ㆍ유고 등 동국권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한데 이어 중소와도 연내 수교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북한 역시 제3국에서 비공식 외교접촉을 통해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타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반도에도 분단의 장벽을 허물어뜨릴 해빙의 훈풍이 불어올 것인지. 가장 실현성이 높은 남북한간의 경제교류에 관해 진단해 본다. ◎교역 현황과 전망/간접교역 의존…2천5백만불에 불과/남의 기술ㆍ자본,북의 자원ㆍ인력 결합을 ▷현황 및 문제점◁ 현재까지의 교역은 홍콩ㆍ일본ㆍ싱가포르 등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에 의존하고 있고 교역량도 미미한 수준이다. 남북한간의 물자교역이시작된 지난 88년 7월부터 지금까지의 교역량은 2천5백만달러 정도. 우리가 북한산 물자를 도입한 것이 대부분이고 북한에 반출한 것은 현대종합상사가 북한산 모시조개 반입에 대한 대가로 반출한 어부용 점퍼 5천벌(6만9천달러) 1건에 불과하다. 이밖에 최근 일부 업체가 컬러TV부품 등의 대북 반출상담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구영향 증가추세 북한산 물자의 반입은 89년 상반기까지는 도자기ㆍ공예품ㆍ술ㆍ담배 등 기호품류가 많아 호기심 차원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기동ㆍ활석ㆍ장석ㆍ연괴ㆍ선철ㆍ열연코일 등 원자재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 교역량의 추이를 보면 89년 2월까지는 꾸준히 증가했으나 문익환 목사의 방북사건 이후 급격히 감소 했다가 최근에는 동구권과의 교역확대,외교관계 수립 등 공산권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의 영향으로 북한산 물자도입이 다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교역방식이 간접교역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해외조직망과 정보망 등을 갖춘 대규모 종합상사들이 대북교역에 참여하고 있다. 남북교역에대한 국민적 기대감은 고조되고 있으나 ▲직접교역에 대한 북한측의 소극적 태도 ▲양측간의 무역협정,남북교류특별법 등 제도적 장치의 미비 ▲북한을 적대시하는 관행의 상존 등이 교류확대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도적장치 미흡 ▷정부의 추진방안◁ 단기적인 이윤추구 보다는 상호 신뢰회복을 통한 남북한 경제공동체 형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우선 접근이 용이한 민간차원에서 교류ㆍ협력을 추진하며 이를 바탕으로 남북교류에 관한 당국간의 합의를 유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남북경제회담을 빠른 시일내에 재개해 통신ㆍ통행ㆍ통상 등 「3통협정」 체결문제를 의제로 논의할 계획이다. 특히 통상분야에서는 직접교역체제로의 교역형태 전환 및 대금결제방식 등에 관한 무역협정과 남북간 합작투자 확대를 위한 투자보호협정의 체결을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현재 관계부처간에 세부방안을 검토중이다. 대금결제방식에 관해서는 지난 84∼85년 사이에 이루어진 5차례의 경제회담에서 거래시점으로부터 일정기간이 지난 뒤 양측중앙은행이 정기적으로 대금을 일괄 결제하는 청산결제방식에 잠정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투자협정 체결 시급 남북경제회담이 재개될 경우 직교역 물자의 수송을 위한 경의선철도 연결 및 인천 포항 원산 남포 등 양측 2개소씩의 항구개방,남북경제교류협력 공동위원회 및 분과위 설치,비관세,자원공동개발 등 과거의 경제회담에서 협의된 사항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방북시 합의한 금강산 공동개발문제 등이 함께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 북한과 친숙한 관계에 있는 소련 중국 동구권 국가들에 대해 남북이 합작투자를 통해 진출하는 방안과 판문점 등 휴전선 지역에 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는 방안도 장기적인 과제로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남북한간의 인적ㆍ물적교류에 관한 제도적인 장치 마련을 위해 「남북교류ㆍ협력에 관한 특별법」(가칭)의 제정을 서두르고 있으며 남북교역 및 합작투자에 따른 기업의 손해를 보상해 주기 위해 3천억원 규모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의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교역확대 및 합작가능성◁ 물자교역 분야에서는 대북반출이 유망한 품목(잠재적 수요를 포함한 북한의 주요 수입품목중 우리가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품목)은 화학섬유,의류,라면,고급화,스포츠화 등 신발류,단순 NC공작기계,종ㆍ소형 승용차,중ㆍ소형 선박 및 국산개발엔진 등 조선기자재,전자부품,컬러TV,냉장고 등이다. 북한으로부터의 반입이 가능한 품목(한국의 주요 수입품목중 북한이 공급능력을 갖고 있는 품목)으로는 탄산마그네슘ㆍ알루미늄ㆍ금ㆍ천연동석ㆍ활석ㆍ동ㆍ연ㆍ점토 등 원자재와 철강판ㆍ철강코일ㆍ합금철 등 원자재 가공품 등이 지적되고 있다. 농산품은 북한측이 공급능력을 갖고 있기는 하나 국내 농가보호 측면 때문에 교역폭은 넓지 못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경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외환사정과 산업구조의 자급자족체제 등을 감안한다면 직접교역이 이루어지더라도 교역량은 연간 2억달러 수준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북한의 수출가능 상품이 많지 못하기 때문에 합작투자를 통한 장기적인 교역기반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제3국 진출도 모색 남북합작은 우리의 자본과 북한의 인력을 결합하거나 또는 우리의 기술과 북한의 자원을 결합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정부,업계 및 관계 전문가들은 화학섬유ㆍ농업용 트랙터ㆍ각종 전자부품과 컬러TVㆍ냉장고 등의 분야에서 자본+인력 결합에 의한 북한내 합작공장건설과 기술+자원 결합에 의해 북한내 아연광ㆍ금광ㆍ철광산의 지하자원 공동개발,금강산의 관광자원 공동개발 등이 경제적 타당성이 높은 유망 합작분야로 보고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오는 5월쯤 북한을 방문,금강산공동개발을 본격 협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원선과 금강산 전철 복원 ▲통일전망대∼금강산간 도로신설 ▲원산∼통천∼금강산 연결도로 건설 등 도로ㆍ철도망 구축과 동해안지역 명사십리 대중호 총석정 금란지구 등에 비행장ㆍ호텔 건설 등을 통한 관광단지 개발 ▲설악산과의 연계관광권 구축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남북합작에 의한 제3국 진출도 관련업계를 중심으로 가능성을 모색하는 단계에 있는데 시베리아의 삼림개발,만주ㆍ동구권 공동진출 등이 유망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대북한 경제교류 유망분야 및 품목 반출품목:타이어ㆍ철강 전자부품 전선류 컬러TV 냉장고 합금강 고탄소강 어망ㆍ직물 합성수지제품 무선전신기 섬유류 승용차 재봉기 반입품목:탄산마그네슘 금ㆍ알루미늄 철강판 철강코일 아연ㆍ연 실장어ㆍ견 동ㆍ점토 합금철 천연동석 활석 합작분야 ①합작공장:화학섬유 스포츠화 단순NC 공작기계 농업용트랙터 전자부품 냉장고 컬러TV ②합작개발:아연광(낙연,성천,용운,검덕) 금광(성흥,축안,운산,대유동) 철광(은율,재령) 금강산개발 ③3국진출:시베리아 만주 동구 ◎교류 추진방향/초기엔 상호수평적인 분업형태 바람직/중ㆍ소 등 제3국에서의 합작투자 필요 최근 북한은 대외적으로 동구권의 변화와 대내적으로는 경제의 침체로 인하여 경제개방화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이 예견된다. 따라서 우리는 장단기적인 차원에서 남북한간의 다양한 경제교류협력방안의 「기본 틀」을 재정립하여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북한 무역의 성격을 살펴보면 제3차 7개년계획 (1987∼1993년)서는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을 목표로 대외무역은 국민경제의 원활한 확대재생산을 위해 최소한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기본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북한의 경제현황 및 대외개방추세를 감안할 때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경제교류의 추진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남북한교역은 대외무역이라는 측면에서 벗어나 국내무역으로서 부문별ㆍ부분별 접근에서 출발하여 경제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간접교역ㆍ직교역ㆍ산업면에서의 협력,그리고 직간접투자 순의 단계적 접근방식을 지향하고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경제공동체를 위한 기본구상을 꾸준히 추진하여야 하겠다. 둘째 비교우위론에 입각하여 우리의 2차산품과 북한의 1차산품을 교환하는 수직적 분업형태의 교역은 정치적 입장에서 북한측이 수락할 리 없으므로 초기교역 단계에서는 원자재는 원자재와,공산품은 공산품과 교환하는 상호수평적 분업형태이어야 하겠다. 셋째 합작투자 추진에 있어서는 투자의불확실성,북한이 느낄 수 있는 체제위협의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서방국가와의 공동진출,또는 중국ㆍ소련 및 개도국 등 제3국에서의 북한과의 합작투자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넷째 북한이 현재 당면하고 있는 커다란 문제의 하나는 외채문제이므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원자재ㆍ자본재 등을 한국이 수입하여 북한으로 재반출하고 북한은 이를 가공하여 일부는 북한내에서 소비하고 나머지는 한국에 재반출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수 있으며 자본원조ㆍ차관보증을 함으로써 이를 통해 북한을 채무상환능력을 지닌 나라로 인정받게 하는 방법도 고려할 여지가 있다. 다른 사회주의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스스로를 완전히 고립시킬 수 있는 상황은 이제 끝나가고 있는 시점이다. 더욱이 최근 우리의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통한 동구ㆍ중ㆍ소 등 사회주의국가와의 관계개선과 미ㆍ일의 대북한 접근은 남북한 관계개선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환경의 어떠한 변화도 그것이 북한 내부적 동기에 의해 활용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언제나 우리가 가져야 할 시각은 북한이 「우리나라」라는 점이다. 「함께 속하는 것이 함께 성장한다」는 전제하에 꾸준한 국민적 인내를 갖고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 가면서 정치ㆍ경제ㆍ사회체제의 이질감에서 오는 모든 문제를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 북한 인민회의 대의원/6개월 당겨 4월 선출/중앙통신

    【도쿄 AFP 교도 연합】 동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혁 선풍에 맞서 대대적인 사회주의 지지 및 생산증대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23일 최고인민회의(의회)제9기 대의원 선거를 당초 일정보다 6개월이나 앞당겨 오는 4월22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도쿄에서 수신된 북한관영 중앙통신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가 22일 최고인민회의 9기 대의원 선거를 오는 4월22일 실시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해 계응태 당비서를 위원장으로 하는 13인 중앙선거위원회를 구성했다고 전했다. 도쿄의 분석가들은 이번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특히 그간 오랫동안 예상돼오던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비롯한 북한 권력구조 재편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통상 4년간의 대의원 임기만료후 선거가 실시되던 것에 비추어 최고인민회의 선거가 이처럼 앞당겨 실시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북한문제 전문가인 한 일본관리는 북한이 현재 침체된 경제를 진작시키고 동구국가들의 개혁조치에 저항하기 위해서 내부 결속을 강화,합의에 도달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해설)변혁풍에 맞선 내부 결속 모색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예정보다 6개월이상 앞당겨 실시키로 한 것은 최근 나돌고 있는 「김정일의 후계승계」보도들과 관련,크게 주목되고 있다. 해외의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지난해말부터 김일성이 중국의 등소평처럼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김정일에게 전권을 넘겨준 후 수렴청정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 시기는 김일성의 78회 생일(4월15일)이나 오는 10월의 7차당대회를 전후해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해왔다. 북한이 조기선거를 추진하게된 배경이 과연 김정일에게 전권을 넘겨주기 위한 것인가. 우선 북한의 「국가주석」직은 72년 개정헌법에 따라 신설된 것으로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한다. 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일을 김일성 생일 1주일 후로 잡은 점,북한 정권수립 후 대의원선거를 예정보다 늦춘적은 수 없이 많지만 앞당겨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 등에 비추어보면 김정일에게 주석직을 넘겨주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한국내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대부분 김일성의 전권이양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말부터 동구공산국들의 변혁등 외부로부터 개혁 압력을 받고 있으나 그 대처방법이 ▲국내에서는 김일성ㆍ김정일 체제결속 강화 ▲대외적으로는 유화정책 표방이라는 2중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말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처형 직후 동구권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을 소집,수일동안 회의를 거듭하면서 동구개혁돌풍에 대한 대처방안을 논의했다. 그후 김일성은 신년사에서 남한의 콘크리트장벽 제거를 전제로 한 남북한주민들의 자유왕래를 제의했고 뒤이어 북한당국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인정 ▲홍콩ㆍ일본 등에 전세항공편 운항추진 ▲대한수교때 보인 결례에 대해 동구국들에 사과 ▲해외에서의 한국비방금지 ▲한국외교관 접촉허용 등 다소 개방적이고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여왔다. 그런가하면 북한내부에서는 각종 군중집회와 매스컴을 통해 김일성ㆍ김정일 체제옹호와 사회주의 우월성을 줄곧 강조해왔다. 따라서 이번조기선거도 아직 「김정일 주석 승계」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며 그보다는 이번 선거를 통해 지금까지 들러리당인 천도교 청우당이나 조선민주당 등을 독립정당처럼 보여줘 마치 북한도 다당제를 실시하는 듯 외부세계에 선전하면서 새로운 마음자세로 내부결속을 다짐하기 위한 조치일 가능성이 더 높을 듯하다.
  • 자민ㆍ사회당의 공동과제 “안정과 개혁”(일본 「보혁 새정국」:하)

    ◎파벌싸움 지양,변혁대응 외교 펴야 자민/「도이 인기」의존 탈피,「비전」제시 긴요 사회 「자민 안정다수,사회 대약진」으로 판가름난 일본 총선결과는 유권자의 절묘한 밸런스 감각의 표출이다. 자ㆍ사 이극체제의 선택은 일본 국민들이 여야정치에 그만큼 더 무거운 과제를 부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속에 자민당을 주축으로 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소비세ㆍ리쿠루트사건으로 상징되는 금권부패의 일당정치를 사회당중심으로 선명히 비판토록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2ㆍ18총선은 「여야역전」이 실현됐던 지난해 7월의 참의원선거이래 「추격바람」을 타고 있던 일본야당에게는 정권교체의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반년동안 「야당연합정권」수립을 위한 사회ㆍ공명ㆍ민사ㆍ사민련등 야당간의 협의는 전혀 진척을 보지 못했으며,새로운 정책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일본국민들은 「야당연합정권」에는 국정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함과 동시에 자민당의 교만방자함도 더 이상 허용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법은자민ㆍ사회 양당의 성숙한 협의에 의해 오늘의 번영된 일본을 지키며 정치개혁을 실현하는 것 뿐이다. 이렇게 볼때 2월말경 새로 발족하게되는 제2차 가이후(해부)내각과 집권자민당의 정국운영은 결코 쉬울 수가 없다. 중ㆍ참양원의 조화를 꾀하기 위해서도 사실상의 연립,정책연합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된다. 참의원에서 여야가 역전되어 있다는 현실은,이번 중의원선거에서 자민당이 안정다수의석을 획득한 사실에 의해 치유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13명 전원당선의 결과를 빚은 이번 선거로 『국민의 심판은 끝났다』고 리크루트관련의원이 강변한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소비세에 대해서도 이번 선거결과가 정부ㆍ자민당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양해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총선후 30일 이내 소집하게 되어 있는 특별국회에서는 90년도 예산안 및 자민당의 소비세 개선법안등 심의를 둘러싸고 여야당간의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가이후 정권의 안정도이다. 이번 선거에서의 낙승으로가이후 총리의 계속집권은 보장되었지만 당내 기반이 약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이후 총리 자신은 이번 제2차 가이후정권의 조각과 당인사에 거당체제로 인선하겠다는 의향을 표명했으나 그것이 말 그대로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번 총선에서 중의원세력을 해산당시보다 1석을 더 확보,62석으로 다케시타(죽하)파 69석에 이어 당내 제2파벌로 부상한 미야자와(궁택)파에서 당3역에 거점확보를 기도,다케시타,아베(안배),나카소네(중증근)의 주류3파와 마찰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의 법안심의 난항,인사잡음은 기반이 약한 가이후 내각을 조기퇴진시킬 수 있는 구실이 된다. 「포스트 가이후」에는 아베 신타로(안배진태랑)전 간사장을 필두로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 대장상,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등 3자가 노리고 있다. 이들은 리크루트사건에 관련,한때 실기했었으나 「리크루트 풍화」와 함께 활발히 재기의 포석을 하고 있다. 아직은 때가 이르다고 보여지기는 하나 「일용전쟁」으로 일컬어지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간사장과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대장상간의 헤게모니 쟁탈전도 주목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내정에 산적한 문제이외에 가이후 내각으로서는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될 외교적 과제가 쌓여 있다. 지난해에는 주로 유럽을 무대로 전개됐던 동서관계의 변화가 앞으로는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 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일본은 종전의 대미의존형 외교에서 탈피,경제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 적극 참여,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의 노력은 우선 중국ㆍ북한ㆍ캄보디아 등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문제는 많다. 우선 91년에는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의 일본방문에 대비,일소관계 개선의 전기를 모색해야 한다. 대미관계에 있어서는 동서긴장완화 추세와 미국의 재정적자현상에 비추어 대일방위비 분담요구는 더욱 강화될 것이며 이는 미일 무역마찰과 더불어 양국간의 새로운 마찰요인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실현,이의 전제가 되는 한국인3세 법적지위보장문제등 해결해야 될 과제가 많다. 문제는 야당쪽에도 있다. 해산당시 83석에 불과하던 사회당의석이 1백36석으로 급증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사회당의 정권담당 능력이 신장됐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번 선거결과는 단지 소비세폐지를 원하는 반자민표가 반사적으로 사회당에 흡수됐다고 분석되고 있다. 의석수가 26석에서 14석으로 격감된 민사당의 나가스에(영말)위원장은 『자민ㆍ사회의 대결무드속에 중도는 매몰되어 버렸다』고 탄식했다. 선거에서 의석의 행방을 좌우하는 것은 「지지정당이 없는」 부동층이다. 이번 선거에서는,혁신적인 부동층은 사회당에,보수층은 변혁이 두려워 자민당에 표를 던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사회당의 이번 선거에서의 상대적 승인의 하나는 도이(토정)위원장의 개인적 인기였다. 사회당이 앞으로도 계속 이 인기에만 의존하고 현실적 정책제시노력을 게을리한다면 도리어 「자민일당우위체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에 자민정책에 강력 대항할 수 있는 야당결속의 책임도 사회당에 더 한층 무겁게 지워졌다고 전문가들은 보고있다.
  • 양당정국 “난기류 예보”/「거여소야」 첫 임시국회 전망

    ◎기본목표 달라 현안매듭 불투명/신경전 벌이다 막판타협식 운영될 듯/평민의 합당공세 열도가 분위기 좌우 자칫하면 거듭 연기될 것으로 우려되던 제148회 임시국회는 17일 상오 민자ㆍ평민당간의 2차 총무회담에서 오는 20일 개회한다는 원칙에만 합의함으로써 일단 문은 열게 됐다. 그러나 이날 회담에서는 종전의 경우 개회일자와 함께 합의를 보는 것이 관례화됐던 회기(민자 20일,평민 30일 주장) 문제와 의사일정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지 못함으로써 임시국회 진행 자체에서부터 적지않은 파란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양당 총무는 임시국회 개회와 함께 뒤따르는 양당 대표연설 및 대정부질문 등 다급한 의사일정은 앞으로 남은 3일 동안의 총무접촉과 국회운영위 소집 등을 통해 무리없이 확정짓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회기문제로 국회를 운영해가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서로 의논해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로 신경전을 벌이다 절박한 상황이 되면 해결책을 모색하는 「짜깁기식 운영」을 해보겠다는 것이 이번 임시국회에 임하는 양당의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정부질문 의제 및 발언자수 등 의례적인 문제에서부터 갖가지 정치쟁점 및 법안처리에 이르기까지 양당간의 이견의 폭이 워낙 큰 만큼 각종 현안들이 최소한 마무리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조차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민자ㆍ평민당은 이번 임시국회에 임하는 기본목표에서부터 궤를 달리하고 있다. 민자당은 3당통합의 당위성을 강조해 합당논란을 마무리짓고 주요법안과 민생문제 처리에 있어서도 거대여당으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정책정당ㆍ민주정당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의석의 4분의3 가까이를 차지한 첫번째 임시국회이니 만큼 국민들에게 「독주」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대화와 타협을 「인내심」 있게 벌여 나가고 야당측이 단상점거ㆍ농성 등 극한 투쟁으로 단독강행을 유도하더라도 결코 말려들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비해 평민당은 3당통합의 부당성과 비도덕성을 집중 공략하고 각종 쟁점사항에 대해서도 선명성을 부각시켜 유일야당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분명히 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이번 임시국회 활동을 통해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정국흐름의 물꼬를 바꿔놓고 앞으로의 지자제선거에 대비하겠다는 복안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이같은 양당의 기본입장을 놓고 볼 때 이번 임시국회는 민자ㆍ평민간의 정치공방과 정책대결로 압축될 전망이다. 정치공방 측면에서 민자당은 『신당창당이 종전 4당체제하에서의 정치적 갈등과 이에 따른 경제ㆍ사회적 불안요인을 해소시키기 위한 구국적 결단』이라는 명분적 대응논리에서부터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이 합헌적인 절차에 따라 새로 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대의정치원리에도 문제가 없다』는 현실논리까지 내세워 야당의 공세를 반박할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은 특히 모든 의사일정 및 법안처리에 있어서도 평민당을 따돌린 「단독강행」은 배제하고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해냄으로써 3당통합이 당리당략에 얽혀 이루어진 야합이라는 비난을 행동으로 반증하겠다는 자세다. 평민당은 이에 비해 3당합당의 부당성에다 최근의 민생치안부재ㆍ사회악ㆍ경제문제까지 합쳐 파상공세를 벌여 여대야소 정국에 있어서 「강야」의 입장을 분명히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즉 수적대비의 차원을 넘어 정국 자체를 여야 1대1의 구도로 최대한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평민당은 특히 종전 방침대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의원직 총사퇴결의안을 신야당모임인 민주당(가칭)쪽 의원들과 함께 제출하는 방법으로 정치공세의 고삐를 더욱 조일 방침이다. 이같은 정치공방 속에 상임위에서 처리하게 될 국가보안법ㆍ안기부법 개폐및 경찰중립화법ㆍ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법,그리고 최대 현안인 지자제선거법 등도 적지않은 파행과정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자ㆍ평민당은 이들 법안들 가운데서도 특히 지자제법과 광주보상법은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지자제법은 올 상반기에 실시한다는 대원칙에 부합시키려면 이번에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시기적인 촉박함이 우선적인 이유로 대두되고 있다. 또 광주보상법도 더 이상 정쟁의 대상으로 삼다가는 비난을 모면할 수가 없고광주문제 자체가 자칫하면 원점으로 되돌아가 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다른 주요법안들에 있어서도 민자당은 『과거 집권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겠다는 차원에서 민주개혁을 선도하는 집권당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입장인 데다 평민당도 대부분 민주화와 직결된 법안들인 만큼 평민당안이 최대한 수용된다는 차원에서 마무리짓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어느 정도의 의견접근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인식에도 불구하고 양당은 이번 국회를 여대야소로 급재편된 새 정국의 첫번째 시험대로 상정하고 있느니 만큼 「힘겨루기」 차원의 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최종통과 단계까지에는 공전과 파행이 반복될 가능성도 크다고 하겠다. 결국 이들 법안들이 통과된다 할지라도 이번 임시국회 개회와 관련한 민자ㆍ평민간의 어설픈 합의처럼 궁지상황에 이르러서야 결론이 내려지는 등 우여곡절이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은 신당의 이미지 관리와 장기적인 정국운영을 고려,대화와 타협의 「선전」을 다짐하고 있고 평민당은 과거와 같은 강경과격 투쟁만을 고집하다가는 그나마 유일야당으로서의 입지가 줄어들 수가 있다는 우려에서 합리적인 정책대결을 꾀하고 있어 뜻밖에 파고 낮은 국회운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 “「EC 안에서의 통독」이 바람직하다”

    ◎크리스찬 드브네르(서독 정치과학연구소 연구원),르몽드지 기고/「역외서의 거대독일」누구도 불원/서독은 「동독의 EC가입」 배려한 정책펴야/동구국 망라할 「유럽경제구역」설정도 필요 최근 아일렌드에서 개최되었던 EC(유럽공동체)외무장관회의는 동독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변혁에 대한 유럽인들의 각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동독의 변혁과 EC와의 관계라는 중요한 과제에 대한 몇가지 견해를 추려본다. 사실상 EC통합의 장래라는 측면에서 보면 동서독의 정치적 통합은 점점 시급을 요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서독은 이미 양독의 통일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 대동독정치적 화해작업에 들어갔다. 이같은 노력은 동구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새로운 철외장막이 드리우기 전에는 후퇴될 수없을 것이다. 동구의 정치적ㆍ군사적 재난을 의미하는 냉전 상황의 재발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두번째는 동구의 민주화와 자유화의 진전은 정치ㆍ경제적 불안정이 초래하는 위험성과 서로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의 재편은 동구국들의 통합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동구의 개혁세력들은 아직 확고한 믿음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역할을 해낼만한 정통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서독에 있어 유럽통합은 중대사안이다. EC가 현재 또는 앞으로의 격변에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 될 때 특히 동구국들과의 정치ㆍ경제적 연계를 위해서는 통합EC의 구조를 더욱 굳건히 해야되는 것이다. ○「독일의 미래」더 중요 이같은 점에서 보면 서독의 국내정책과 대 EC정책간에 양립의 필요성이 유발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양립성은 동독이 EC의 제반규정을 준수한다는 전제아래 EC에 가입될 경우에 더욱 뚜렷해진다. 동독의 EC가입이 내일 실현되느냐 그보다 늦게 되느냐의 여부는 그리 중요한게 아니다. 그보다는 앞으로 몇단계를 거쳐 실질적인 자주독립국의 지위를 회복하고 서독과의 통일을 이룩하거나 아니면 연방으로서 동독이 서둘러 「독일」에 대한 믿음과 전망을 제시하는 일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서독은 만일 그들이 대EC정책과 국내정책사이에 발생하는 모순을 방치해 둔다면 대유럽정책의 리듬을 깨고 유럽통합작업에의 참여를 주저케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동독 민주화가 전제 EC의 다른 회원국들은 하나의 독일이 통합된 EC안에 확고히 자리잡아 주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7천7백만명 인구의 독일은 EC의 정치ㆍ경제적 범주내에서 통합을 이루게되며 이것은 양독의 통일보다 좋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EC밖에서 이루어지는 거대독일은 소련과 더불어 누구도 바라지 않는 상태이다. 양독의 화해에 대한 지원과 지지 그리고 두번째 독일(동독)에 대한 EC의 문호개방은 서독과 EC국가들에 다같이 이익이 될 것이다. 이같은 상황전개를 위한 최적의 컨디션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우선 동독의 민주화와 자유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동독이 EC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서독이 이를 고무,지원해주어야 하며 EC는 동독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2차대전의 전승국,적어도 영국ㆍ프랑스만은 상황의 변화를막고있는 승전국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해야할 것이다. 독일문제를 책임있게 다룰 수 있는 강력한 EC가 필요하다. 또한 소련의 경우에 있어서는 동독의 군비문제에 대한 자주적인 결정권의 행사에 동의해야 한다. 이같은 상황은 동독이 바르샤바조약기구의 회원국 지위와 EC소속으로서의 입장에 서로 모순을 초래하는 것이긴 하다. 시간은 촉박하다. 우선 상황의 진전을 위해 다음 몇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EC회원국들중 특히 영국과 프랑스 두나라는 EC의 가입협상문호를 개방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스트리아와 같이 가입을 위한 대기 기간이 주어져서는 안된다. 서독정부는 동독에 대한 접근을 동독의 EC접근과 연계시켜야 한다. 우선적인 목표는 동독의 EC참여에 두어야 한다. ○영ㆍ불도 양보해야 동독과 EC의 화해는 처음에는 EC규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협력협정형태를 갖출 수도 있으며 무역협정관계로 시작할 수도 있다. 과거 스페인이 협력협정 과정을 거쳤고 현재는 그리스가 무역협정 관계에 있다. 이러한 협력협정 또는 무역협정은 서독은지원이 필요하다. 예를들어 동독에 대한 실질적인 공공보조금과 관련한 서독의 모든 계획을 위해서는 EC의 범주안에서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 또한 이같은 계획들이 승인받기 위해서는 EC의 규약에 따라 다른회원국 기업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독일문제와 관련한 이같은 EC의 우선적인 조치는 동구의 다른나라 문제에도 적절히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두가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EC회원국과 EFTA(유럽자유무역연합)회원국들이 「유럽경제구역」을 설정하는 방안이다. 이 유럽경제구역에는 동구국들의 참여가 허용되어야 한다. 이 방안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이 내놓은 「유럽연방안」의 실현을 위한 지름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EC에의 가입전략이다. 어느 방법을 선택하느냐는 물론 GATT(무역관세에 관한 일반협정)의 관용과 미국이 새로운 경제구역의 설정을 달갑게 생각하느냐의 여부에 영향을 받게될 것이다. 또한 동구국들이 어느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EFTA회원국들은 얼마만큼의 흥미와 열성을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서구에서는 EC와 나토의 관계가 느슨해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서유럽의 방위를 위해 강력한 우방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EC는 1992년이후 유럽의 안보와 국제정치질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군비의 규모는 유럽의 긴장완화 진전에 좌우된다.
  • 민주자유당 창당 선언문

    우리는 오늘 민주ㆍ번영ㆍ통일의 새로운 민족사를 위한 중추적 일꾼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민족민주세력을 총결집하여 민주자유당의 깃발을 올린다. 2천년대 여명앞에 한민족이 새세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새로운 태세가 필요하다는 자각아래 이제 우리는 신념에 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 정치사를 얼룩지웠던 갈등과 반목의 기억을 역사의 대하속에 흘려보내고 민주발전과 국민화합ㆍ국리민복과 민족통일의 과업을 실현시키는 것이 우리의 시급한 책무임을 확인한다. 세계질서가 재편성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나라들이 자기개혁의 소용돌이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의 정치가 창조적인 개혁으로 새로워질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청신한 국민정당의 등장이야말로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길임을 굳게 믿는다. 이러한 확신에서 우리는 나라와 겨레의 부름에 기꺼이 순응하여 온 나라의 민주세력을 하나로 결속시킨 민주자유당을 창당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위대한 새출발을 하는 우리 당원들은 국민을 안심시키고 희망을 주며 나라를 밝은 미래로 이끌 포부에 온 가슴이 벅차옴을 금할 수 없다. 우리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나라의 기틀로 삼고 조국의 민주적 통일을 주도하여 자주ㆍ자존의 바탕위에서 세계속에 우뚝설 선진복지국가를 이룩하려 한다. 우리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참다운 민주발전을 이룩하는 정치,지속적인 성장으로 국민복지를 뒷받침하는 경제,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정의와 양심이 살아 숨쉬는 사회,그리고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민족문화,이 모든 것을 구현하는 데 온갖 힘과 정열을 다 쏟고자 한다. 우리는 지역간ㆍ계층간ㆍ세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대화합을 실현하여 모든 국민이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넓은 세계로,더 밝은 미래로」 출발하는 선상에 스스로 서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국민적 역량을 한데 모으고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각오로 조국의 정치사에 신기원을 여는 오늘,우리의 눈은 빛나고 발길은 당당하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 우리와 함께하고 국민의 우렁찬 박수가우리를 성원해 주고 있다. 90년대의 서장을 열면서 영구히 민족과 함께할 믿음직한 국민정당을 우리손으로 출범시키게 된 것을 다시 없는 영광으로 가슴에 새긴다. 우리의 이러한 보람이 곧 나라의 영광,겨레의 영광이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우리는 이를 위해 새 시대의 주역이라는 자긍심으로 국민의 봉사자로서 정성을 기울일 것을 역사앞에 선언한다. ◎국민에게 드리는 메시지 우리는 오늘 새로운 민족사의 전개를 갈망하는 국민적 소망에 따라 민주세력을 총결집하여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습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자기개혁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이때 우리는 민주ㆍ번영ㆍ통일을 국민 모두에게 약속하고 그 실현 위하여 뜻을 모으고 일을 함께할 새로운 국민정당이 되고자 합니다. 2천년대의 여명을 눈앞에 두고 새로 태어난 우리당이 추구하는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세계각국의 민주개혁 과정에서도 그 우월성이 입증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와 건전한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수호ㆍ발전시키는 민주정당이 되겠습니다. 둘째,현실에 안주하는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적 정당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항상 전향적으로 행동하는 개혁지향정당이 되겠습니다. 셋째,특정지역ㆍ특정계층ㆍ특정세대만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는 국민정당이 되겠습니다. 넷째,인기에 영합하여 공허한 약속을 남발하는 무책임한 정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고 민의를 수렴하여 광범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정책정당이 되겠습니다. 다섯째,민족의 동질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을 적극화하고 정치ㆍ군사문제 등의 협의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통일정책을 추진하여 자주ㆍ민주ㆍ평화적인 통일을 앞당기는 통일정당이 되겠습니다. 번영된 조국의 미래를 우리당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 많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정치에 대한 무력감을 떨쳐버리고 새 정치시대를 열고자 하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중간실력자들 세 연합 모색 활발

    ◎신당속 민정계보 “수면위 부상”/TK­SK 접목ㆍ경기­강원 연계가능성/박 정무 중심 월계수회,행동반경 확장/박 대표 중심의 연합 계보 추진할지도 신당통합등록을 목전에 두고 민정당내 계보결성 움직임이 가시화돼 주목된다. 민정당의 중간보스들인 김윤환ㆍ이춘구ㆍ이한동ㆍ이종찬의원이 8일 낮 서울 롯데호텔에서 갖는 오찬모임은 민정당 운영방식이 계보중심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짙다. 모임 참석자들은 통합신당 작업과정에서 심한 소외감을 몸으로 표시하고 있는 이춘구 전총장을 위로하기 위한 친목회동이라고 설명하며 지나친 의미의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눈치다. 그러나 이들 중진들이 당내외로부터 공인된 중간실력자들이고 모임이 지난달 말부터 계획돼 왔다는 점,새로운 당관리방식이 모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롯데호텔 회동의 의미는 심장하다. 비록 당의 견제로 박태준대표가 돌연 주재자로 등장,모임의 성격이 변질될 가능성이 크지만 본래 예정됐던 주의제는 계보형성과 운영대책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롯데호텔모임이 확정되기 이전에 이미 민정당 내부에서는 계보결성 움직임으로 볼 수 있는 여러갈래의 움직임들이 있어 왔다. 다만 이런 움직임의 당사자들이 계보운영에 대비한 활동임을 인정하면서도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만 공개적인 계보활동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와 의례적 수준이상의 관심을 끌지 않았었다. 이날 모임이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도 계보운영의 전제조건인 「총재 재가」가 어떤 형태로든 있었고 그 바탕위에서 이들 중간보스들의 공개회동이 주선되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한동 전총무는 지난 2일 노태우대통령의 경기도정 보고에 참석했던 경기지역 초선의원 10여명과 서울 S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특별한 단합」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전총무는 특히 요로를 통해 노대통령에게 계보 양성화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져 비교적 계보결성 노력을 감추지 않았던 편이다. 김 전총무도 지난달 24일 일본에서 귀국한 이래 거의 전소속 의원들과 면담,계보형성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또 신당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박철언정무1장관과 회동,효율적인 당운영방식과 총재보필 방식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데 이어 박준규 전대표ㆍ이종찬 전총장과 빈번하게 접촉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정무장관이 이끄는 월계수회는 지난 5일 민정의원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모임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고 있다. 노대통령과의 교감이 가장 빠른 것으로 알려진 박장관은 최근 『지금까지는 월계수회원 5명,북방정책연구소 관계자 10명 등 15명의 초선의원만 노출시켜 왔지만 적당한 시기에 재선ㆍ3선의 소속의원들도 계보로 노출될 것』이라고 말해 공개적인 계보운영이 노대통령으로부터 양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계보운영의 필요성은 민정당내에서 여러시각으로 제기돼 왔다. 우선은 3개 정당이 한개 정당으로 통합되는 상황에서 1백27명의 민정당 소속의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계보운영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또한 통합신당이 정책개발에 주력하고 당내 정책개발경쟁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방편으로도 계보인정은 실보다 득이 많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덧붙여 당내 계보를 양성화하고 그 계보들을 총체적으로 노대통령이 관리하는 것이 앞으로의 임기말 통치권누수현상 방지에 이롭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노대통령이 여러채널의 계보양성화 건의를 받고 이에 동의했는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롯데호텔 모임의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계보를 양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관계자의 설명과 박정무장관의 요즘 발언을 종합하면 노대통령이 설혹 적극적으로 계보를 육성할 의사는 갖고 있지 않더라도 계보태동 움직임을 양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은 바탕위에서 이날 모임도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노대통령의 양해를 전제로 민정당내에는 박장관이 관리하고 있는 기조의 월계수회및 북방정책연구소외에 두개 정도의 계보결성이 모색되고 있다. 첫째는 김 전총무와 이종찬 전총장이 추진하고 있는 TK(대구ㆍ경북)와 SK(서울ㆍ경기)의 연합계보를 들 수 있다. 김 전총무와 이 전총장은 몇차례의 단독회동을 갖고 민정당세를 TK와 SK의 지역기준으로 분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합전선을 형성하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총장은 7일 이와관련,『TK와 SK의 접목이 민정세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가장 필요한 방안』이라고 말해 이를 시인했다. TK와 SK의 연합은 박 전대표에 의해서도 여러차례 주장됐고 후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번째는 이한동 전총무가 모색하는 것으로 경기세와 강원세를 엮어 하나의 계보로 형성하는 움직임이다. 이 경우 강원도의 심명보 전총장과의 제휴가 전제되는 것으로 최근 이 전총무와 심 전총장과의 회동이 잦아지고 있어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강원도의원의 상당수는 TK와 연결이 되고,경기의원의 상당수는 이미 박정무장관쪽과 선을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민정당 소식통들은 소속의원들이 몇개의 계보로 재편이 되더라도 계보의 기능은 기존야당에서 보던 것이나 일본 자민당식 계보보다는 결속력이 약한 특징을 가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때문에 그 활동도 다른 계보와 대립ㆍ배타적 성격을 갖기 보다는 상호보완적 경쟁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와 당이 박태준대표를 급거 롯데호텔 회동의 주재자로 등장시킨 점은 계보형성문제에 대한 노대통령의 검토가 끝나지 않은 결과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롯데호텔 회동자체를 노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파악해서라기 보다는 계보문제가 통치권의 울타리밖에서 거론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고 방향이탈을 막기 위한 조치가 아닌가 여겨진다. 이같은 청와대 및 당의 조치와 관련,2ㆍ3개의 독립계보문제를 논의하려던 본래의 계획대신 노대통령이 잇단 청와대만찬에서 언급한 박대표중심의 단결 즉 민정단일계보의 총체적 유지문제를 거론하는 데서 이날 회동이 끝날 가능성도 있다.〈김영만기자〉
  • 고르바초프 연설문 요지

    오늘날 소련 공산당원 및 모든 국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페레스트로이카와 이 나라의 운명이며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 혁명적 전환의 단계에 있어 소련 공산당의 역할이다. 이 사회는 당의 위치가 어디에 와 있는지 알기를 원하며 이것이 이번 전체회의의 전체적인 의미를 결정하게 된다. 당이 스스로를 급진적으로 재편하고 현대적 정치기술에 통달하며 페레스트로이카에 참여하는 모든 세력과의 협력에 성공할 때에만 당은 정치적 선봉대로서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당은 지난 수십년간 체질화된 이념적 교조주의와 틀에 박힌 국내정치의 구시대적 작태,그리고 세계의 혁명 과정과 세계 전체의 발전에 대한 케케묵은 견해를 버려야만 한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세계 문명의 주류로부터 소외시켜온 모든 것들을 버려야만 한다. 우리는 「진보」와 다른 사회구조를 갖고 있는 세계와의 영원한 대결로 인식하는 구습을 버려야 한다. 당은 민주적으로 인정되는 세력으로서만 새로운 사회에서 존재하고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당의지위가 헌법 조항에 의해 강제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말할 것도 없이 소련 공산당은 통치 정당으로서의 지위를 얻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투쟁은 법적ㆍ정치적 특혜를 포기하고 사업계획을 제시하며 토론을 통해 스스로를 방어하고 다른 사회 정치세력과 협력하고 항상 대중 속에서 일하고 대중의 이익과 대중의 요구에 의해 존재하는 민주적 절차의 틀안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광범위한 민주화 운동은 정치적 다원주의 요구를 동반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ㆍ정치 기구들과 운동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같은 과정은 일정 단계가 되면 여러 정당들의 설립으로 귀결될 것이다. 소련 공산당은 이같은 새로운 상황을 적절히 고려해서 행동하며 소련의 헌법과 헌법이 옹호하는 사회제도에 참여하는 모든 기구들과 협력하고 대화를 할 것이다. 이와함께 우리는 이 중대한 시기에 당이 국가전체를 위해 페레스트로이카의 전진을 보장하는 통합적인 역할을 할 능력이 있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현재의 사회상황은 전진을 위한 움직임이 성공할 기회와 이같은 움직임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이 공존하고 있다. 성공할 기회란 개혁의 과정이 인민의 거대한 에너지를 개발하고 방출한다는 점에서 가능하다. 반면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나라를 강타한 위기가 예상보다 훨씬 깊고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수십년간 사회구조내에서 누적돼 왔던 문제와 모순들이 이제 밖으로 노출됐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페레스트로이카의 과정에서 오산과 실수를 피하지 못했고 이는 상황을 악화시켰다. 모험주의자들은 이미 제기된 난제들을 이용하고 실질적인 문제들과 근로자들의 불만을 투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같은 위험의 징후는 최근 분명해지고 있다. 보수파와 극좌파들의 결집 현상은 최근 급격화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1917년의 선택에 계속 헌신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의 교조주의적 해석에서 탈피하고 도식적인 구조를 위해 인민의 진정한 이익을 희생시키는 행위를 거부할 것이다. 우리는 소련 경제발전의 문제에 있어 향상된 것이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국민들은 식료품의 수급상황에 대해 특히 불만을 갖고 있으나 식료품은 소비자 시장을 정상화 하는 문제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소련사회가 경제에서 뿐만 아니라 소련연방의 장래에 영향을 미치는 소수 민족분규등 복잡한 문제들에 당면해 있으며 당대회를 대비한 강령안은 소련연방의 조약원칙에 대한 더 많은 발전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연방관계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하는 합법적인 조건의 창출과 연계될 것이며 우리는 통합된 소련 연방내에서 소수민족들의 다양한 생활형태를 지지한다. 우리는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분리주의에 반대하는데 있어 원칙적인 접근방법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소련사회는 새로운 자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전략적인 관점에서나 현실적인 관점에서 페레스트로이카에 좀 더 많은 추진력을 제공하고 복고주의를 분쇄하기 위해 권력 상층부의 세력을 재편성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입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당과 정부의 기능을 분화한조치를 환영하고 있는 동시에 단호한 행동이 결여된 것에 대해 분명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모든 권력을 갖춘 대통령제의 실시를 놓고 의문이 제기돼 왔으며 나 자신은 이 문제를 이번 중앙위 총회에서 논의돼야 할 사항으로 생각한다. 제 28차 당대회에서는 혁신적이고 건설적인 대외정책을 재확인 해야 한다. 우리의 정책은 이미 세계도처에서 광범위한 반응과 인정을 얻고 있으며 국제정세 완화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있다. 이 정책은 우리의 내적 요구와도 맥을 같이 한다. 또한 소련의 대외적 위상을 강화하며 국가적 위엄을 높이는 동시에 외부와의 문화적 관계구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세계평화 실현을 위한 인류애 증진도 가능하게 한다. 이제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군축협상에 박차를 가하고 대화를 활성화시키는 한편 국제관계 개선이라는 측면에서의 상호 이해증진을 실현시키는 일이다. 또한 유럽 공동가정 구축을 위한 기반확장을 향한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같은 관점에서 동구권과의 동맹관계를 격상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새로 권좌에 오른 역내 지도자들이 원하는 바와 이들의 입지에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협상이라는 테두리안에서 군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국제상황을 현실적으로 분석하면서 군축노력과 관련된 긍정적 측면과 위험요인 모두를 고려할 것이다. 최근 수년사이 국제상황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발발의 위험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여전히 군사노선을 완화하지 않고 있다. 병력과 군사지출 역시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잘 훈련되고 중무장한 병력을 유지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서방은 군사력을 개선하고 재조직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세계상황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책임감있는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군비감축은 자위력 확보라는 수준까지만의 군사력을 상호 인정한다는 관점에서 추진돼야만 한다.
  • 27개월 만에 간판내린 공화당/여야 넘나들며 4당정국 “조정역할”

    ◎5공청산엔 강경… 3야 결속의 촉매역/중평반대… 평민ㆍ민주 선명경쟁 무력화/영을 재선거 때 한계 실감… “3당통합 산파” 자청 신민주공화당이 통합신당 창설의 삼각파트너인 민주ㆍ민정 양당에 이어 당의 깃발을 내렸다. 공화당은 5일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을 의결한 뒤 당정리를 위한 수임기구로 당무회의를 지정함으로써 사실상 당활동을 마감했다. 이른바 「박정희시대」로 상징되는 구공화당 이념과 유업의 계승자로 자임,지난 87년 10월30일 「재건」된 뒤 2년 3개월만에 스스로 당간판을 내린 것이다. 공화당의 짧은 이력은 80년 신군부세력의 등장 이후 7년 동안 「무위와 침묵을 강요당했던」 JP(김종필총재)의 정치재개와 이후 그의 정치적 입지를 확대해나가는 시기로 압축된다. 87년말 대통령선거와 이듬해 4ㆍ26총선이 구공화당시절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통해 지난날을 재평가받는 무대였다면 4ㆍ26총선 이후 1년 9개월의 기간은 새 정치 틀에 대한 JP구상과 당의 활로를 모색한 시험기였던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JP는 87년 가을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공화당을 창당,곧바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1백80만표를 얻음으로써 그의 정치적 앞날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1노2김」에 비해 득표율에서는 크게 뒤졌지만 구공화당의 전력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민주대 반민주」,「독재대 반독재」의 대결논리가 극에 달했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해볼 때 상당한 선전으로 평가됐다. 공화당은 이어 4ㆍ26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의석확보(20석)가 어려울 것이라는 당시 정가의 예상을 깨고 35석(전국구 7석 포함)을 획득,원내입지를 확고히 마련했다. 4당구조하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정당으로서 「시시비비론」을 내세워 때로는 야권공조의 대열에서 민정당을 견제하는 데 동참하고 때로는 여권과의 정책연합 등을 통해 평민ㆍ민주 양당의 투쟁일변도의 선명경쟁을 무력화시키는 「조정역」을 향유해왔다. 88년말과 89년초 정치권의 태풍의 눈이었던 중간평가를 반대했고 ▲전교조 결성반대 ▲서경원 문익환 입북사건 등 공안사건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 요구 ▲통일문제에 대한 과도한 욕구분출 반대와 정부의 신중자세 촉구 등의 입장을 피력했던 부분들을 여권과 인식을 같이했던 현안들로 당관계자들은 분류하고 있다. 또 정호용의원의 공직사퇴와 두 전직대통령의 국회증언요구등 5공청산 방안제시와,경찰중립화법,국민의료보험법,지방자치법 등 쟁점법안처리를 위한 야3당안 마련 등을 통해 야권의 결속력을 과시했다. 요컨대 민주화 과정에서 정책정당의 위상을 확인하면서 여야간 극한대립을 해소,정국안정에 기여한 점 등이 공화당 족적의 밝은 면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출범 당시부터 야당다운 자세를 포기,민주화작업을 더디게 하는데 「상당몫」을 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게 제기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여권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의 속성으로,국가보안법,안기부법 등 주요 정치성 법안처리 등에 항상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 민주개혁을 그만큼 지연시켰다는 일부 야권의 비난이 그것이다. 공화당은 특히 지난해 여름 공안정국을 겪으면서 정부여당보다 더 보수적이고 강경한 입장을 고집,평민당과의 틈새가 회복 불능상태에까지 벌어졌고 영등포을 재선거에서의 참패를 통해 말석정당의 한계를 실감했다. 4당구도의 재편이 이뤄지지 않고는 당의 활로를 모색할 수도 정국안정을 기대할 수도 없다는 판단이 JP의 정계재편 추진작업을 가속화시킨 것으로 추론된다. 결국 JP는 지난해 9월 한달동안의 칩거기간을 거쳐 차기 정국구도에서 우선권을 YS(민주당 김영삼총재)에게 양보하는 방안을 민주당측에 제시,민정ㆍ민주ㆍ공화 3당합당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거대여당에 동승한 공화당이 정치적 안정과 민주화작업을 마무리하는 데 기여했던 정당으로 기록될지 지역간ㆍ계층간의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킨 부정적 이미지의 정치집단으로 평가될지는 앞으로 신당의 정치역량과 밀접한 함수관계를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여권인사들과 JP의 구상대로 건전야당이 자리를 잡아 정치적 안정의 틀이 잡힌다면 공화당의 긍정적 역할이 돋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정개재편으로 새로운 정치적 격동과 갈등이 심화될 경우 민주화 흐름을 타고 탄생했다가 민주화 완성을 저해시키고 사라진 정당으로 평가절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 극동전략 구도에 중대변화/주한 미공군기지 축소의 파장/이기택

    ◎해ㆍ공군력 중심 팀스피리트전략 흔들려/북의 군사력 증강ㆍ소 기지화 정책과 모순 미국방장관 체니의 새로운 기지폐쇄정책을 보면서 유럽의 데탕트가 성큼 극동으로도 확산되어오고 있다는 느낌과 충격을 감출 수 없다. 더욱이나 체니국방의 국방예산 속에는 남한을 포함하는 한반도의 안전보장에 군사 전략상으로나 정치 심리적으로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1970년 이래 미국의 대한군사정책은 군사전략상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지상군의 감축」은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해ㆍ공군」으로 「남한을 지킨다」는 전략 논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역으로 주한 미공군기지의 「재조정」이라는 형식으로 남한내에 수십년 동안 미공군이 주둔하던 대구ㆍ광주ㆍ수원기지를 사실상 「폐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는 미공군의 기본구조와 골격은 유지하면서 보조기지나 지원기지들을 정리한다는 구실은 있다고 본다. 기본적인 공군의 화력에는 변화가 없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작년 미의회는 주한 미공군기지에 대한 설비예산 8천5백50만달러를 전면 삭감,80만달러만을 지출 허용함으로써 대폭 삭감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닉슨 독트린 이래 견지해온 남한으로부터의 미철군정책의 대안으로서 「해ㆍ공군으로 지킬 것」이라는 「팀스피리트」의 전략적 발상이 하루아침에 근본적으로 문제되고 있다는 임박성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남북한의 군사균형과 전쟁억지력은 첫째,전술핵을 포함하는 미 지상군과 둘째,남북한간의 공군력의 균형에서 공군의 제어가 그 요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는 한반도의 안전과 전쟁억지력의 기본이었다. 이제 미국은 남북한간의 공군력의 균형에까지 감축문제를 확대시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를 포함하여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은 기본적으로 공군과 해군의 균형을 갖고서 북한의 「전략적 압도」를 상쇄하여온 것이다. 특히 84년 김일성의 소련방문 이래 소련은 북한의 공군력을 대폭 강화시켜 주었다. 소련의 대북한 공군력의 강화는 미그23과 미그29를 포함하는 5∼6년 동안의 대폭적인 것이었다. 특히 소련은 84년 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에 뒤이은 김정일­카피차간의 단독군사협상 이래 공군 장비의 지원과 함께 북한영공에 대한 비행을 허용받았으며 북의 공군기지 북창 황주 등을 마음대로 기착하도록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의 TU16/Badger와 TU95/Bear가 북한의 영공을 비행하면서 북한의 공군력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한 소련에 의한 북한의 「핵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제 미국이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한으로부터 공군력의 「조정」과 「정리」라는 이름 아래 공군력의 감축을 진행한다면 이는 확실히 미국의 대한군사전략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닉슨독트린 이래의 지상군은 감축하되 한국군이 인적인 상쇄를 하더라도 「해ㆍ공군으로 지킨다」는 한미간의 군사전략의 본질적인 변화를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한미간 군사관계의 군사적이며 정치적 또는 심리적인 상호협상 형식이 문제된다고 본다. 확실히 이번 주한 미공군의 기지폐쇄라는 문제는 한미간의 「충분한 협의」 후에 나온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미간의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우리는 「대비」와 「대안」을 갖고서 한미군사 동맹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70년대말 철군을 전제하면서 한미간의 연합사(CFC)를 창설하였던 것이다. 연합사가 유명무실한 것이 된다. 특히 미소간의 새로운 데탕트라는 위험한 군사게임 속에서 최첨단에 위치한 남한의 미군기지를 조정한다는 것은 남북한의 군사균형을 파괴할 뿐 아니라 한반도의 전쟁억지력에 동요를 주는 일이 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조정해야 할 군사지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문제 이후 극동문제가 미소간에 제기될 때에도 남북한의 군사문제는 최후적인 군사협상이 될 수밖에 없는 군사적인 조건을 띠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 없는 이상 군사적인 상식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미국은 소련과의 한반도군사협상에서 두가지 기본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로는 동유럽에서의 소련의 재래식 군사력의 우세를 나토가 인정하여 왔다면 극동에서 남북한간의 군사균형에 필수적인 조건인 남한에서의 미군의 주둔을 인정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동유럽의 재래식 소련 군사력과는 달리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인 우세가 아니라 「균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점을 소련은 알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84년 김정일­카피차간의 단독군사협상이래 군사 장비의 지원,해ㆍ공군기지의 사용 북한영내에서의 소련의 군사활동,핵기술의 지원 등에서 기인하는 대북한 정책에 눈에 보이는 수정이 가해져야 한다는 전제라고 본다. 현실적으로 고르바초프의 정책인 외몽고로부터의 소련 기갑사단의 철수,아프가니스탄 철수 등을 감안한다면 소련의 한반도 군사정책은 거의 남한을 깔보고 있으며 또 우리가 깔보이고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한편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에 있어서도 주한미군의 본질적인 기지정책의 변화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970년초 닉슨독트린 당시 주한미군을 철수한다고 할 때에 북한의 허담은 미국의회에 「미지상군의 단계적 철수」 협의를 전제한 대미협상을 호소한 바 있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주한미군의 본질적인 철수는 남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북한 「안전체계」의 전면적인 재편성이 필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북한은 또하나의 새로운 북경에서의 대미협상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군사체계와 안전체계를 한반도의 군사균형과 평화를 위주로 하는 군사 재편성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역으로 북한은 새로이 형성되는 국제환경에서 기인하는 주한미군의 철수에 대처하기 위해 북한을 보다 군사 요새화하기 시작한지 오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북진을 하지도 않고 시키지도 않을 미군이라는 한반도의 군사적인 안정요인인 「유엔체제」는 북한의 안정체계에 있어 수십년간의 안전한 「방파제」였다는 것을 김일성 스스로가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체니의 기지폐쇄정책은 현실적인 재조정이나 정리를 위해서는 「시간」과 역시 「예산」이 필요하므로 얼마간의 시간적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시간적인 유예 속에서 미소간의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하리라 보며 동시에 특히 북한에 새로운긴장완화에 적응할 수 있는 군사정책으로 전환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져야 하리라 본다. 어떤 의미에서는 84년 이래의 북한의 군사력 강화도 실제에 있어서는 미군 철수에 대비하는 군사정책이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유럽지역등과는 달리 미군의 감축이나 기지의 폐쇄라는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이는 한반도만이 아니라 극동전반에 걸친 군사적 안정과 정치적 안정에 걸치는 문제라고 본다. 또 이는 미국과 소련에 있어서도 긴요한 문제라고 본다. 특히 주역인 미국이 오랫동안 현명하게 한미군사동맹을 통해 반세기에 걸쳐 쌓아 이제 결실을 맺으려는 이 지역의 안전보장이라는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끝으로 오늘의 시간단위로 변하는 새로운 국제환경에서 우리 정부나 국민도 최근 몇년간의 무감각에서 벗어나 안전보장정책에 보다 깊고 분석적인 눈을 갖고서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는 우리 민족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 3단계 정치일정과 권력구조 변화(“대통합” 신당정국:5)

    ◎철저한 「정립상태」 창당까지 유지/3당각축 지양,당내 결속 최우선/조직책 선정 당분간 유보,개헌선 확보 주력/14대총선 이후 계파간 본격 세력다툼 예상 「민주자유당」(가칭)의 당사는 통합의 주체인 민정ㆍ민주ㆍ공화당간의 상호협조를 날줄로 하고 상호견제와 알력을 씨줄로 해서 엮어지게 된다. 어떤 때는 협조가 강조되고 또 어떤 때는 견제가 협조보다 우위에 서는 변화무쌍한 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통합추진 15인위는 오는 2월20일까지 합당등록을 하고 5월22일 창당대회를 개최한다는 데 합의했다. 또한 정치일정으로는 올 6월중에 지자제 의회선거를 실시하고 13대 국회의 임기말에 내각제개헌을 하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하고 있는 상태다. 이같은 창당ㆍ정치일정은 「민주자유당」의 당내권력질서와 성격을 변화시키는 분기점으로 각각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창당ㆍ정치일정과 관련해 「민주자유당」은 크게 3개 기로 나누어 민정ㆍ민주ㆍ공화당간의 역학관계를 변화시켜 나갈 것으로 어림되고 있다. 제1기는 합당신고로부터 창당대회에 이르기까지의 이른바 「약혼기」로 3당이 철저하게 당을 3등분하는 정립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동안은 3개정당이 모두 내부적으로는 기존체제를 유지하면서 같은 지분으로 신당에 참여하게 된다. 합당신고서에 쓰일 당직자의 이름도 3등분,기존체제 유지의 방식이 적용될 것이다. 즉 사무총장에는 박준병 민정당사무총장,원내총무에는 이기택 민주당원내총무,정책위의장에는 김용환 공화당 정책위의장이 임명돼 5월 창당대회때까지 한시적으로 신당을 이끌어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2기는 신당창당대회가 열리는 5월22일부터 14대총선 때까지로 각당의 기존체제가 해체돼 신당의 새 체제로 재편되는 일종의 「동거기」로 이해될 수 있다. 철저하게 3등분했던 당직 등의 배분방식은 의석비례를 가미한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이때에도 총장→민정,총무→민주,정책위의장→공화의 배분방식은 그대로 적용되겠지만 신당이 법률상으로나 내용상 기존 3당과는 별도의 정당이 된 만큼 새로운 인물로 교체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나머지 하위당직과 국회직,내각숫자면에서는 3등분원칙 대신 의석수 비율을 가미한 5(민정)대 3(민주)대 2(공화)의 새 원칙이 적용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창당대회 때까지의 3등분원칙이 통합의 명분을 강화하고 야합의 성격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던 데 비해 창당후에는 각당의 의석수에 따른 실세반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4대총선이 치러지고나면 총선결과에 따른 신 질서가 「민주자유당」을 지배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제3기가 될 이때는 3당통합정신이 아니라 어떤 계보가 얼마만큼의 의석을 가졌느냐에 따라 계보별 당직 및 각료배분비율이 결정되고 통합의 주체였던 3당은 계보의 전신으로서만 존재하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ㆍ김종필 공화당 총재간에는 내각제 개헌후 첫 총리를 김영삼 민주 총재로 한다는 데 묵시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같은 노대통령 후계구도는 14대총선 때까지만 효력을 갖게되고 총선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민정당쪽의 시각이다. 별도의 합의서를남겨둘 사안도 아닌만큼 누가 초대총리를 할지는 과거의 약속보다 총선후의 계보간 역학관계에 더 영향을 받을 수 밖에는 없다는 논리다. 14대총선 전까지 신당의 지도부가 맡게될 최대과제는 각 계보간의 경쟁을 억제하면서 통합성을 높이는 일일 수밖에 없다. 경쟁억제 방책의 일환으로 6월중 실시예정인 지자제 지방의회선거의 정당추천제를 없애는 일이 다시 고려되고 있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4당은 야3당의 주장이었던 정당추천제를 지방자치제법에 도입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자유당」 입장에서는 창닥직후에 각 계보의 이해가 격돌할 수밖에 없는 지방의원 추천문제를 놓고 계보간 경쟁을 하게 되면 당이 뿌리도 내리기 전에 분열할 가능성을 고려치 않을 수 없다. 각 지구당의 조직책을 빈자리로 남겨놓겠다는 것도 같은 발상이다. 3당은 조직책 선정과 관련,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약 2백개 가까운 지구당에서 2당 또는 3당간에 경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같은 난해한 조직책 선정작업을 개헌 이전에 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개헌선(2백석) 확보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때문에 창당에 꼭 필요한 법정지구당만 창당하고 나머지 지구당은 3당의 지구당을 해체한 뒤 미창당지구당으로 남겨둠으로써 계보간 경쟁을 개헌 이후로 미루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민주자유당」의 내부경쟁억제는 창당과 함께 있을 당직배분 및 국회요직 배분,입각자 숫자를 둘러싸고 한차례 진통을 겪은 뒤 14대 국회의원 공천작업에서 완전한 경쟁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14대 공천은 중선거구제를 채택한다 하더라도 계보간 무제한 경쟁이 불가피한 점을 감안,친「민주자유당」 무소속 후보의 난립이 예상되고 있다. 양원제채택,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으로 경합지구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러나 정치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1백개 가까운 지구당에서(소선거구제 기준) 공천에 탈락한 3당의 조직책들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이들에 대한 계보차원의 지원이 있을 것으로 보여 전혀 새로운 선거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민주자유당」의 정치일정은 3당이 새로운 당으로 녹아 들어가는 긍정적 계기로,또 한편으로는 통합성의 위기를 초래하는 부정적 계기의 양면성을 띠고 있다. 이들 정치일정의 긍정적 기능만을 극대화 하는 것이 「민주자유당」 지도부의 과제이며 당의 미래도 여기에 달려있다 할 것이다.
  • 중국 권력구조 개편조짐

    ◎강경일색서 후퇴… 이붕 실각 가능성 배제못해/등소평 주도… 주용기등 경제개혁파 득세할듯 강경보수파 일색인 중국지도층의 권력판도에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루마니아사태의 충격과 긴축경제정책에 따른 고통으로 술렁이는 국내 민심을 달래고 대외적으론 개방ㆍ개혁이 지속될 것임을 강조,서방세계로부터 우호적인 시선을 끌어내기 위한 권력구조 재편 조짐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재편작업은 늦어도 오는 3월말부터 4월초까지 진행될 전국인민대표자대회 기간에는 완전히 끝날 것으로 보인다. 경질대상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중국 지도층인사는 마르크스경제 이론가이며 현재의 중앙통제식 긴축정책을 이끌고 있는 요의림부총리이다. 경제정책운용에 있어 전형적인 보수파인 요는 그의 후원자이며 역시 사회주의 계획경제신봉자인 진운중앙고문위주임과 함께 지난날 조자양 전당총서기의 개방ㆍ개혁정책을 크게 비난했던 인물이다. 요는 조가 지난해 천안문사건으로 실각하자 경제운용책임자로서 긴축통제정책을 강력히 추진했으나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가 침체되자 처우가 나빠진 근로자들과 종전까지 자율권을 갖고 지역경제행정을 다뤄온 각성 고위관리들로부터 많은 원성을 들었다. 현재 요의 후임으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인물은 상해시장인 주용기. 주는 정치적으론 보수파지만 경제개방ㆍ개혁의 충실한 지지자로 알려지고 있으며 지난해 경제사정이 전반전으로 악화된 가운데서도 상해의 수출실적을 50억달러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수출규모는 중국전체실적의 8분의 1에 가까운 것이다. 또 천안문사건으로 서방의 대중국 투자분위기가 냉각됐음에도 지역단위로는 가장 많은 3억6천만달러를 유치한 공로를 높이 인정받고 있다. 한편 요와 동시 실각이 예상되는 인사는 외교분야를 맡았던 오학겸부총리이며 현재 광동성장인 엽선평이 후임자로 지목되고 있다. 엽은 경제개방구인 광동성을 맡아 왔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보수성향이 별로 없는 인물로 보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장 귀추가 주목되는 지도층인사는 누구보다도 이붕총리인 것같다. 천안문시위 무력진압을 앞장서서 주장했던 그는 중국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상일뿐 아니라 얼마전 북경의 계엄령해제도 반대하는등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시류를 의식하는 다른 고위인사들 사이에서 고립된 상태 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 12일 북경에서 소련외무차관 로가초프가 내외신기자들에게 이붕의 방소계획을 설명했음에도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들은 이같은 양국간 중대사항을 조그맣게 보도했을 뿐이다. 관측통들은 중국지도층의 여론이 미국에서 특히 싫어하는 이붕의 소련행을 조용히 다루자는 쪽으로 기울어진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서방세계의 경제제재 해제움직임 등과 관련,미측의 신경을 될 수 있는한 건드리려 하지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붕의 실각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중국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최고실권자는 아직도 등소평이며 그는 비록 정치민주화는 원치않더라도 경제개방ㆍ개혁의 골격을 마련했던 터이므로 이의 보수적인 경제관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등은 이붕ㆍ요의림등 중앙통제의 계획경제정책에 매달려 신축성을 잃고 있는 보수파를 견제키 위해 상해시장 주용기를 경제담당부총리로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이붕의 후임자로 중도파로 알려진 정치국 상위위원 이서환(전 천진시장)이 꼽히고 있다. 어쨌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권력구조 개편 움직임은 등과 양상곤국가주석등 일부원로들에게 주도권이 있으며 대내외적인 미소작전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지도층의 상당부분이 개편되더라도 공산당지도체제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고 민주개혁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묵은 술을 새부대에 담는 것처럼 본질은 그대로 있게 된다는 것이다.
  • 15인 통합추진위 구성/내일부터 창업 실무작업 본격화

    신당창당에 합의한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은 23일 각당별로 5명씩 모두 15명의 통합추진위원회를 공식 구성,24일부터 창당에 필요한 제반준비작업을 본격화 한다. 통합추진위원들은 25일 청와대에서 신당 공동대표인 노태우대통령,김영삼 민주당총재,김종필 공화당총재와 함께 오찬모임을 갖고 창당작업의 일정과 기본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창당준비위원들은 2월말까지 신당창당 등록절차를 완료하고 5월까지 창당대회를 치른다는 목표아래 앞으로 ▲지도체제 구성 ▲당직 및 국회요직 배분 ▲정강정책 마련 ▲사무처요원 등 조직재편 ▲외부인사 영입문제 등 창당작업에 따른 모든 문제를 협의하게 돼는데 특히 각의원 및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의 이해가 직결된 지구당위원장 인선과 당직배분 등을 둘러싸고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민주당은 23일 상오 9시 당사에서 정무회의와 의원총회 합동회의를 열어 청와대회담의 결과에 대한 김영삼총재의 설명을 듣고 신당인 가칭 「민주자유당」 창당준비위원 선정문제 및 민주당의 해체문제 등에 관해 논의한다.
  • 최고위원 5명의 집단 지도체제 예상/「신당만들기」 절차와 권력구조

    ◎「노태우 총재­김영삼 대표」 체제 유력/합당의결→창당추진위→선관위 신고 수순 확실 22일 청와대회담으로 합당 대원칙이 정해짐에 따라 여기에 참여한 민정ㆍ민주ㆍ공화 등 3당이 어떤 형태와 절차로 통합을 이룰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우리 헌정사상 유례없는 여야3당의 통합이 어떤 형태의 지도체제를 유지할 것인지와 그동안 여와 야로 나뉘어 체질적으로 동화될 수 없을 것으로 보여져왔던 인적 구성 및 당운영방식이 새로운 당명아래 조화될 수 있을 것인가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현행 정당법상 정당통합방식은 ▲기존정당의 해산후 신당창당 ▲새로운 당명의 신설합당 ▲다른 정당에 흡수되는 흡수합당 등 3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신당추진은 3당이 기득권을 포기한채 대등한 입장에서 대통합을 이루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새로운 당명의 신설합당」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왜냐하면 신설합당의 경우 합당전 정당의 권리의무가 그대로 승계되고 전국구의원의 승계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신당창당 방식은 전국구의원 승계권 및 정치자금 국고보조 등에 있어 일부 기득권 포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3당이 당 대 당통합 방식을 취할 경우 각 당은 전당대회등 대의기구나 대의기구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수임기구의 합동의결로써 합당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각정당의 당헌에는 합당을 전제로 한 수임기구를 위임해 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전당대회를 개최치 못할 경우 당의 해체 및 합당을 민정당의 중집위나 민주당의 정무회의,공화당의 당무회의가 의결할 수 있느냐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나 이들 기구의 합동의결로 가능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각당별로 합당의결후 3당은 신당창당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중앙선관위에 ▲발기인의 취지 ▲정당의 명칭(가칭) ▲발기인과 대표자성명ㆍ주소 등을 신고한 뒤 6개월안에 지구당을 창당해 지역선관위에 신고절차를 밟아야 한다. 창당추진위는 45개 지구당 이상 등록증 사본을 첨부,중앙선관위에 정당등록 신청을 하면 창당의 법적 절차는 마무리된다. 신당에 대한 국고보조는 통합형식을 취하게 될 경우 의석수와 3당의 득표비율을 합친 수치대로 배분되며 신당에 참여 않는 의원들은 지역구와 전국구 상관없이 무소속으로 남게 되며 의원이 아닌 당원들은 당원자격이 상실된다. ○…신당의 지도체제는 노태우 대통령이 신당의 총재직을 맡고 김영삼ㆍ김종필총재와 박태준대표위원외 당의석비율에 따른 영입인사 2명 등 5명이 최고위원을 맡는 집단지도체제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회담후 각 당들은 5명씩의 신당창당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지도체제 및 당명ㆍ합당절차ㆍ인적구성에 대한 본격적인 절충을 벌일 예정이다. 합당과정에 있어서는 지도체제등 권력구조 문제뿐 아니라 지구당위원장과 중복,사무처직원들의 조직재편 등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지구당위원장의 중복문제는 신당내 계보별 협상과 중선거구제로의 선거법개정 약속 등으로 해결해 나갈 전망이나 기득권을 둘러싼 알력은 신당내 새로운 통합 저해요인으로 상존할 전망이다. 사무처요원도 민정당의 경우는 대부분이 공채요원으로 구성돼있지만 민주ㆍ공화당의 경우 당료출신 및 특채요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대우 및 자리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나 신당의 기구확대 및 사무처요원 전문화과정 등을 거쳐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합당형식의 신당이 창당될 경우 당명은 무엇이 될 것이며 당사는 어느 곳을 사용할 것인가에도 설왕설래가 됐으나 당명은 「민주자유당」으로 결론. 그동안 수십개 이상의 정당들이 명멸한 상황에서 이미 좋은 당명은 거의 다 사용돼 왔기 때문에 통합신당에 걸맞는 작명이 상당한 고민거리였었다. 그런 면에서 3당은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민주」라는 단어 외에 남북관계 개선을 지향하고 민주화를 추진한다는 뜻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접목,대통합의 역사적 의의를 살리기로 했다는 후문. 당사문제에 있어서는 현재 민정당의 관훈동 당사가 독립건물로 가장 규모가 큰 이점이 있으나 이미 민정당도 신축 또는 이전을 검토한 바 있고 신당의 이미지가 퇴색된다는 의미에서 한때 민정당이 당사이전을 검토했던 종로4가의 구전매청사가 거론되고 있으며 여의도 또는 마포쪽의 신당사 마련방안도 대두. 중앙당사가 새로 마련될 경우 각 정당은 계보별로 정당재산과는 별도로 계보사무실을 확보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앙당사 이외에도 시ㆍ도지부 및 지구당사의 재산처리문제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으나 신당 등록시 정당재산등록 과정에서 공동재산으로 등록화하거나 용도변경 등으로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또 공화당이 민정당을 상대로 제기중인 민정당 가락동 정치연수원등 구공화당 재산반환 청구소송은 자연 소멸되게 됐다. 신설합당 절차와 함께 창당추진위에서는 통합의 대명제인 지속적인 국가발전,전방위 자주외교,남북 및 지역ㆍ계층간의 민족대화합이란 차원에서의 자유체제 수호와 통일을 지향하는 정강정책을 마련하게 된다.
  • 「여대야소」 신 정국의 향방 긴급(대담)

    ◎신당 권력구도 적응,내부통합이 과제/외피적 통합… 대화ㆍ타협으로 극복해야/야 극한투쟁… 정국대립 첨예화 예상/중도 탈피,혁신정당화가 평민 활로/비호남ㆍ호남 대결 우려… 「지역감정 해소책」 기대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ㆍ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22일 청와대에서 긴급회담을 갖고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을 주축으로 하는 신당창당에 합의함으로써 앞으로의 정국이 숨가쁘게 돌아가게 됐다. 특히 2년여동안 지속되어 오던 4당체제가 신당의 출현으로 「여대야소」의 2당체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풍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창당 선언을 계기로 정계개편의 의의와 전망 및 문제점을 송복 교수(연세대) 신희석 교수(외교안보연구원)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참석자 송복 신희석 ▲송교수=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을 주축으로 한 신당 출현은 한국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대지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통합신당은 정치지도자들의 담합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정치적 행위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한국정치사의 대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50년대 보수대연합이 이루어졌지만 우리와는 정치적ㆍ사회적 환경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동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신박사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신교수=3당합당 선언에 따른 정계개편은 한국정치사에 있어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기존정당의 통폐합은 적지 않게 이뤄졌지만 여당,야당세력들만의 통폐합에 불과했습니다. 이번과 같이 정치지도자,이념을 전혀 달리하는 3개정당이 동시 통합한 예는 이웃 일본정치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변혁입니다. 3당통합은 현 4당구조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감정이 탈피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과 함꼐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개편작업이 이루어진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3당통합은 여러모로 일본 자민당창당과 비교됩니다. 일본 자민당은 지난 55년 보수주류와 비주류간의 통합으로 결성된 이래 지금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일본 상황과 현재의 우리 사정을 살펴볼 때 크게 3가지 유사점을 발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양측 모두 획기적인 정계개편을 이뤘다는 점이고 둘째 이러한 개편이 국내정치의 전환기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셋째로는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 등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야기된 위기감을 보수정치권이 감지,이를 모면하겠다는 배경을 공통분모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유사점에도 불구,양측간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노정되고 있습니다. 먼저 일본의 통합은 내각책임제하에서 이뤄졌지만 우리의 경우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일본은 당시 보수파간의 통합인 만큼 혁명적인 것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전혀 이념을 달리하는 3당간의 통합이기 때문에 가히 혁명적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은 주류와 비주류에 의한 보수통합인 반면 우리의 경우 보수여당과 중도야당간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당시 일본은 2차대전 종전 후의 과도기적 체제였지만 우리는 서울올림픽 개최등 국력향상과 민주화 물결속에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국제정치상황도 50년대는 미소간의 대립냉전기였지만 현재는 신보수주의 물결속에서 경제제일주의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당시 사회당ㆍ공산당 등 야당의 강력한 등장에 보수세력이 위기의식을 느껴 이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통합을 추진했지만 우리는 민주정치 안정과 효과적인 정국운영이라는 측면에서 3당통합을 추진한다는 데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송교수=2년전 국민들이 만들어준 4당체제를 정치지도자들이 자의적으로 바꾼다는 점이 이번 신당창당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시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계개편 추진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첫째 우리의 정치상황은 90년대를 맞았으나 60년대의 초기민주주의 구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역사발전에 맞게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인당 GNP 80여달러에서 현재 50배가 되는 4천여달러로 급성장했으나 정치구도는 30여년전이나 똑같아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대다수 국민이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합의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금까지의 4당체제는 각당의 이념ㆍ지향ㆍ정책이 다른데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지역성에 기인하고 있어 적어도 인위적이라도 4당구조는 전진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셋째 평민당이 비교적 선명성을 내세우지만 혁신정당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4당 모두가 보수당이기 때문에 정책과 이념대립보다는 지역성ㆍ감정적 싸움으로 극한상황으로 치닫기 쉽다는 점입니다. ▲신교수=송교수 말씀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정치풍토ㆍ사회구조ㆍ정치문화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만큼 일본 자민당 모델에 의한 3당통합은 필요불가결하면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의원내각제ㆍ양원제ㆍ권력분산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중심제ㆍ단원제ㆍ중앙당중심체제로 짜여진 우리 정치상황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또 야당의 존재양상도 서로 다른데 일본의 경우 사회당ㆍ공명당ㆍ민사당 등 야당지도자들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 야당은 정책이나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됐고 총재직도 순환임기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 야당은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대권도전 의사를 갖고 있으며 정책ㆍ이념이 아닌 인물ㆍ지역에 의해 정당이 만들어져 정당의 인물화ㆍ지역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파벌간 영수에 의해 대권교체가 손쉽게 이뤄지는 일본 자민당 정권모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자민당이 35년 이상 장기안정속에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파벌정치를 통한 견제와 균형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는 이러한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자민당식으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송교수=신교수 말씀대로 50년대의 일본 자민당과 90년대의 우리 정치환경은 다르지만 이번에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이 합의에 의해 개편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하겠습니다. 민정당이 집권당임에도 불구하고 「여소」라는 상황에서 정국을 열어가는 데 한계성이 있었으며 민주ㆍ공화당이 야당이라고는 하나 제1ㆍ제2당 싸움에서 제3ㆍ제4당은 정국운영의 뒷전으로 밀려나정치현장서 사라지지 않나 우려하고 있어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고 하겠습니다. 이로 인해 3당은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개헌수준의 정계개편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의 사무엘 헌팅턴이 『양당제는 영국과 미국에서만 잘 운영되어오나 고전적인 이 제도는 정치사적 측면에서는 현대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듯이 2차대전 후 프랑스ㆍ영국ㆍ스칸디나비아제국 등 세계각국의 보편적 정치구도는 거대한 「통합정당」과 이에 대응하는 「0.5정당」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0.5정당」이야말로 「통합정당」이 국정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국민들의 거부로 쫓겨나게 된다는 점을 지적,경고적인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지난 50년 이후 일본에서는 자민당 이외의 여타정당은 경고적인 「0.5정당」이었으며 이번 3당의 할당도 전후 자유주의국가 정당의 보편적인 정당개편 유형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신교수=일본식의 정치구도 도입이 우리 정치상황에서 어떤 문제점을 노출시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신당내부의 정치질서 재편성인데 지금까지 3당은 여야로 나뉘어 대립과 갈등을 반복했다는 사실을 두고볼 때 과연 외형적인 통합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는지 의문시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도 대립과 갈등이 아닌 대화와 타협에 의한 상호인정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다음으로 그동안 야당지도자로 군림해 왔던 김영삼총재와 김종필총재가 신당내에서 어떠한 지위를 차지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최근 일 자민당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총재와 내각총리대신 분리론과 마찬가지로 신당의 총재와 국정최고책임자를 분리시키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당창당에 이은 내각책임제 개헌은 대통령중심제보다 강력한 리더십이란 측면에서 뒤떨어지는 만큼 남북분단의 현실을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송교수=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3당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이름아래 3세력이 필요시에는 힘을 합치고 평소에는 떨어져 있는 「분권구도」라는 느낌입니다. 신당의 「분권구도」에 우리 정치인들이 얼마나 잘 적응할 지가 앞으로의 문제입니다. 조선조 이후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집권화구도」에 익숙해 왔기 때문에 동업자적 조직운영인 「분권구도」에 정치인들이 얼마나 익숙해질 수 있느냐가 신당운영 성패의 관건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 사회는 분권화에 익숙하며 자민당을 중심으로 이같은 구도가 잘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통합신당의 내부문제로는 그동안 3김이 정치자금의 센터역할을 맡아와 정치집단의 축을 이루고 있었는데 통합후에도 정치자금의 주축역할을 하게 되면 신당이라는 한 우산 아래에서 분열의 소지가 남아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밖에 신당출현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평민당을 고립시킴으로써 정국을 호남 대 비호남으로 갈라놓을 우려가 있습니다. ▲신교수=기존의 다당화에서 양당화 현상으로 이양돼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또 평민당은 통합신당에 거의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의 3당통합이 자칫 호남세력과비호남세력으로 편가르기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더욱이 신당의 장기집권이 예상되는 만큼 새로운 야당은 만년야당이 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대여투쟁을 전개할 것으로 점칠 수 있습니다. ▲송교수=신당이 나타나면 정계구도도 보혁구도로 탈바꿈되어야 합니다. 평민당은 앞으로 보혁의 양날개에서 탈피,혁신정당으로서의 외모를 보여줘야 하며 국민들도 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평민이 중도 온건으로 남으면 우히려 운신의 폭이 좁고 존재 이유도 명확하지 못합니다. 평민당이 재야세력등 혁신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할 때 평민의 구조도 튼튼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 워싱턴­파리­도쿄 특파원 「페레스트로이카의 앞날」 3각진단

    ◎“인종분쟁 암초”… 기로에 선 고르바초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지난 85년 집권한 이후 발트3국의 탈소 독립주장에 이어 최근에는 악화일로에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인들간의 유혈종족분쟁 등 민족문제,경제난 등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소련 남부지역에 대한 비상사태 선포 및 정부군의 파견 등으로 진압결정을 내리게 된 고르바초프가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페레스트로이카를 계속할 것인지,사태장악을 하지못해 개혁정책이 중단될지에 대한 서방측의 시각을 워싱턴 도쿄 파리 특파원 등을 통해 알아본다. ◎미국의 시각/“몇차례의 위기… 조기실각 가능성 없다” 낙관 『소련내에서 들끓고 있는 경제적ㆍ정치적 문제들은 고르바초프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가까운 장래에 실각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르바초프가 안고 있는 문제는 너무 심각한 것이어서 그의 라이벌들 조차도 떠맡기를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문제의 세계적 권위자인 조지 케넌 교수(86)는 지난 17일 미상원 청문회에서소련의 상황과 고르바초프의 운명에 관해 이렇게 진단했다. 대소봉쇄정책의 창시자로 냉전시대중 미국의 대소전략을 주도했던 케넌 교수는 『지금 소련내 상황은 극도로 불안정해서 고르바초프에게 아주 어렵고 위험한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가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종족분규와 민족주의운동을 가열시키는 등 지금까지 전반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위치가 불안하더라도 그의 정책이 혹시라도 후계자에 의해 극적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케넌 교수는 『고르바초프는 냉전극복과 유럽평화안정에 뛰어난 기여를 했다』고 덧붙였다. 고르바초프의 경제ㆍ정치 개혁운동이 난관에 봉착해 있으며 이로 인해 고르바초프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미국 조야의 공통된 인식이다. 고르바초프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내다본 견해를 「과장된 경보」 「서방의 기분풀이용 허위보도」라고 치부해온 진보주의자들도 이젠 『고르바초프 자신이늑대가 문앞에까지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인식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고르바초프가 착실히 내실을 다지고 있으며,그의 라이벌들을 압도하는 정치적 기반을 쌓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동구공산권 국가들의 잇단 붕괴와 발트해 연안 소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요구에 이어 코카서스 지방의 종족분규가 내란으로 확대되자 「고르바초프 위기론」이 이들 진보주의자들에게 까지 확산된 것이었다. 시사주간지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는 최근호에서 소련문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소련내 각 공화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독립운동이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소련 공산당 지도자들의 당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라고 전하며 『이같은 저항운동은 이들 공화국의 체제를 전복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어쩌면 레닌과 스탈린이 건설해 놓은 공산대국 소비에트연방의 근저를 붕괴시킬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카터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역임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교수가 작년에 출간한 공산주의 연구 저서 「위대한 실패­20세기 공산주의 생과 사」와 최근 뉴욕 타임스지에 「Z」라는 가명으로 게재돼 화제를 모았던 학술논문 「소련의 종말적 위기」는 다같이 공산주의의 붕괴와 종언을 예고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는 종국적 해결책이 될 수 없고 공산주의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변화의 노력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브레진스키는 소련 공산당의 독점이 와해되고 모스크바의 통제로부터 비러시아인이 이탈하고 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예견하면서,현재의 개혁은 차라리 소련체제 와해과정의 첫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증했다. 부시행정부 내에서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차석보좌관인 로버트 게이츠는 페레스트로이카가 실패할 것이고 고르바초프는 실각할 것이기 때문에 그를 도울 가치가 없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케넌 교수는 소련 공산당이 고르바초프를 교체할 대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르바초프가 계속 집권할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US 리포트지는 고르바초프에 대한 공산당 내부의 도전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도했다. 리포트지는 최악의 경우 당내 강경보수파나 급진파들이 별도의 정당을 만들어 고르바초프에 정면도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브레진스키는 소련의 미래를 다음 네가지 상황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첫째 결론없는 체제위기가 1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상황,둘째 혼란이 진정되면서 정체가 재현되고 중앙집권적 전통으로 회귀하는 상황,셋째 고르바초프의 때아닌 죽음 등과 관련한 군부와 KGB의 쿠데타 가능성,넷째 단일국가인 소련의 분열과 이로 인한 국가폭력 및 종족폭력의 폭발. ◎유럽의 시각/“개혁일정 촉박… 경제 차질땐 「백지화」 위험성” 서유럽국가들에 있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나 동구국들의 변혁은 결코 「강건너 불」이 아니다. 동역권의 문제라는 지리적인 이유외에 페레스트로이카에서 비롯되는 동서냉전구도의 와해는 유럽인들의 앞날에 직접적이고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유럽국가들은 소련의 국내정세나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전 추이에 당연히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성패여부는 흔히 내부적으로는 경제문제 민족문제 그리고 정치적 다원화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느냐에 달렸다고 얘기되고 있다. 이중 어느하나라도 흔들리면 페레스트로이카는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많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최근의 소련상황을 보는 유럽쪽의 시각은 우려와 기대라는 서로 상반되는 두방향으로 엇갈리고 있다.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16일 모스크바발 기사에서 소수민족문제에 대처하는 고르바초프의 전략이 전면적으로 바뀌었다고 전제하면서 『고르바초프가 현재는 잃은 것이 없지만 시간은 촉박하고 이제 더이상 그가 열광과 꿈을 주는 연단에 서 있지도 않다』고 보도,고르바초프 및 페레스트로이카의 앞날을 어둡게 전망했다. 고르파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그리고 동구국가들의 개혁을 부추기는 과정에서 내세운 신사고가 소련내 소수민족들의 민족감정에 불을 댕기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는 이제 정치인으로서 천부적 능력을 상실한채 전략변경에 따른위험스런 부담을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정의하면서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면 페레스트로이카는 승리한다』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르 코티디앵 드 파리지는 『이미 5년의 연륜을 쌓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아직 경제문제에 뚜렷한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신문은 소련정부가 90년대의 경제성장률이 연 4∼5%를 웃돌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지만 서방의 연구기관들은 주변여건이 좋아진다 하더라도 2.7%를 넘기가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경제난의 해결이 페레스트로이카의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소련의 과학아카데미 조차 고르바초프가 계획하고 있는 경제개혁조치들 가운데 몇몇 핵심적 요소가 불가피하게 연기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페레스트로이카 추진에 있어 경제문제의 중요성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소련문제 전문가인 프랑스 대외관계연구소의 프랑수아 톰 박사는 『고르바초프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개혁 조치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개혁자체가 백지화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지난해 몰타 미소정상회담을 계기로 국제적 공인의 마지막 절차를 밟은 셈이다. 서유럽국가들은 이미 오래전에 페레스트로이카에 찬사를 보내고 고르바초프의 정책에 신뢰를 표시해 왔으나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 진실성에 의문을 떨쳐 버리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페레스트로이카 제창 이후 소련의 대외정책은 크게 방향을 바꾸어 왔다. 군비경쟁의 무모성을 인식,군비감축에 의한 균형안보개념을 실천해 오고 있으며 국제문제 해결에도 융통성과 타협의 정신을 높이 사고 환경오염문제 등에 대해서도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을 위한 자국의 경제난 해결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서방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평화공존의 방향으로 재편되어 가고 있는 유럽질서가 다시 대혼란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적 추진을 부추겨야 하며 그런 이유로 경제적 도움을 포함한 대소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는 것이 서유럽국가들의 생각이다. 이와같이 소련의 대외관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앞날을 밝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국내문제에서 발생되고 있는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고르바초프의 지도력의 한계가 어느부분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인가가 페레스트로이카의 앞날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게 유럽쪽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본의 시각/“「민족분쟁」 안이하게 대응… 매파 고개들지도” 소련의 민족분쟁과 이에 대한 무력진압 결정은 고르바초프 정권과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소련 자체를 위기에 봉착시키고 있는 중대문제라고 보는 것이 일본의 소련문제 전문가와 언론들의 시각이다. 동경대 야마무치 마사유키(산내창지) 조교수는 19일자 요미우리(독매)신문에 게재된 글에서 고르바초프 정권은 민족문제에 안이하게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국내의 민족분쟁에 대해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가속화하는 민족문제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너무 단순히 이해해왔던 것은 아닐까. 민족문제는 모스크바의 보수적인 중앙관료가 비러시아민족을 압박하고 민족의 자주성 및 긍지를 무시,반러시아 감정을 유발한 것이 원인이다.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하고 민주화가 진행되면 민족관계의 모순도 해결되리라는 것이 고르바초프의 견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의 군대파견으로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겠지만 민족문제가 앞으로 고르바초프 정권을 계속 뒤흔들 것은 확실하다. 소련의 민족문제는 바야흐로 유라시아국가인 소련의 아시아와 유럽으로의 분열조짐마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오야마(청산)대학의 데라다니고지(사곡홍임) 교수도 『지금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벼랑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고르바초프가 내무부의 치안부대뿐 아니라 육ㆍ해군까지 투입한 것은도로가 각지에서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공중,해상을 통해 무장병력을 넣기 위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오는 6월의 미소 수뇌회담에서 군축문제를 논의한 다음 10월의 제28차 당대회에서 권력기반의 강화를 꾀하고 그 후 민족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이 계획이 가능했던 것은 ①최고회의 의장과 당서기장으로서 2개의 조직을 이용할 수 있고 ②군상층부,국가보안위원회(KGB)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 등을 이유로 적어도 당분간은 정권을 지탱할 수 있는 공산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부드럽게 진척되지 않는 것이 괴로우며 경제부진에 의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나아가 사회가 보수쪽으로 상당히 기울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 미시간대학의 세라벤토프 교수가 소련 노동자들과 대화했을 때 그들은 고르바초프 서기장,야코블레프 정치국원들의 이름을 들어 매도하고 그러한 노동자의 폭넓은 통일전선이 결성되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고르바초프 정권의 위신 추락은 숨기기 어렵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동구제국과의 유대는 영 연방처럼,소련 내부의 공화국은 미합중국의 각주처럼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미래상으로 꿈꾸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억압당해 온 각 민족의 응어리진 감정은 러시아인인 고르바초프에게는 이해될 수 없었다. 이같은 이성으로서는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계획이 틀어질 우려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한편 도쿄(동경)신문은 17일자 국제면 톱기사에서 『강경책으로의 전환은 당내 보수파,군부 매파의 발언권을 강화시키고 민족정책 전체의 경직화를 초래할 염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고르바초프는 발트3국 정세에의 대처미비,지난번 리투아니아공화국에서의 설득공작의 실패 등으로 29일부터의 당확대 중앙위총회에서 곤경에 빠질 것으로 보이며 코카서스지역 분쟁의 험악화는 고르바초프에 대한 보수파의 공세를 더욱 기세등등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도 17일자 「위기에 처한 소련의 민족분쟁」이라는 사설에서 『비상사태 선언은 고르바초프 정권이 각기 원인이다른 몇몇 분쟁의 동시발생이라는 사태를 중대시하고 이대로 방치해서는 수습곤란한 사태를 초래한다는 판단아래 결단을 내린 강경조치』라고 지적했다. 이 사설은 『고르바초프 정권의 전도는 예측을 불허하는 상태』라며 『민족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몹시 어려운 과업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연방체제를 현 상태로 둔채로의 수습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아사히(조일)신문도 『이번 사태는 고르바초프 정권의 지상과제인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에 수반되는 자유화,개방에 의해 분출된 문제로서 고르바초프 정권의 고민은 심각하다』고 말하고 『민족문제의 앞으로의 전개는 세계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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