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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주요 어록

    ■바닷가에 소나무만 서있는 백사장의 사진을 찍어 가지고다니며 이곳서 배를 만들 테니 사주시오 하고 다녔다(71년 12월 현대중공업 초창기 일화에서)■모든 것은 나에게 맡겨라.겁이 나거든 집에 가서 누워기다려라(74년 6월 현대중공업 26만t급 대형 유조선의 도크 이동을 지휘하며)■기업가는 자신이 일으킨 사업이 자기가 존재하지 않을때에도 영원히 존재하기를 바란다(77년 4월 전경련 회장취임을 앞두고)■돈 벌기는 소비재 장사가 쉽지만 그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78년 12월 국세청 고액 소득자 랭킹 1위에 오르며)■기업 스스로가 책임경영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도전하는 것이 곧 자유기업주의다(78년 10월 전경련 ‘한국 경제의 과제’강연록에서)■새벽 5시반이면 일어나 30분씩 운동을 한다.운동은 보약이 필요없는 건강 비결이다(80년 ‘주간한국’인터뷰에서)■기업이 정부정책에 협조 안하면 경제가 클 수 없다.기업은 영원한 여당이다(80년 7월 언론 인터뷰에서)■호주머니 지갑에 든 것만 내돈이다.나머지는 모두 사회의 것이요,나라의 것이다. (80년 12월 언론 인터뷰에서)■종교는 기적이 있을지 몰라도 경제에는 기적이 있을 수없다(81년 5월 동국대 강연에서)■현대의 재산은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는다.사회가 바라는 사회사업에 기증하겠다(81년 9월 KBS방송 출연에서)■가난한 사람이 잘사는 방법은 씀씀이를 줄이면서 돈 안쓰는 것이다(81년 9월 KBS방송에서)■이기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반대한다. 스포츠란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84년 바덴바덴IOC총회에서 서울올림픽 유치를 성사시키며)■독점으로 상품의 품질이 국제 수준보다 떨어지고 값이비싸다면 이는 소비자를 수탈하는 것이다(88년 12월 언론특별대담에서)■몽헌 회장이 취임해도 중요한 일은 모두 저와 의논할 것이니 여러분은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2000년 3월 몽구·몽헌 형제의 ‘왕자의 난’때)■본인은 오늘부터 모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납니다.아들인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도 함께 모든 경영 일선에서물러나겠습니다(2000년 5월 ‘3부자 동반 퇴진’을 선언하면서). ●정주영 생애. ■1915년 11월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에서 출생■1930년(15세) 송전소학교 졸업■1940년(25세) 합자회사 아도서비스공장 설립■1946년(31세) 현대자동차공업 설립■1947년(32세) 현대건설주식회사 설립■1965년(50세) 한국 최초로 해외 건설공사 진출■1967년(52세) 현대자동차주식회사 설립■1969년(54세) 현대그룹회장 취임■1976년(61세) 한국 최초의 자동차 고유 모델 포니 생산■1977년(62세) 전국경제인연합회 제13대 회장 취임(1987년 17대까지 연임) 및 아산사회복지재단 설립■1981년(66세) 88서울올림픽 추진위원장으로 올림픽 유치에 성공■1982년(67세) 대한체육회 회장■1987년(72세) 현대그룹 명예회장 취임■1989년1월(74세) 북한을 첫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남. 금강산 공동개발 의정서 체결■1990년(75세) 소련 방문,시베리아 개발 착수■1991년(76세) 중국 방문,중국과의 경제 협력 착수■1998년(83세) 북한 세번째 방문.금강산관광 성사,김정일국방위원장과 첫 면담.IOC 올림픽훈장 받음■1999년(84세) 9월28일 7차 방북■1999년 10월1일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두번째 만남■1999년 11월18일 금강산관광 시작■2000년(85세) 5월25일 건설 상선 중공업 등 계열사 지분정리하고 현대차 지분만 소유■2000년 5월31일 ‘3부자 동반 퇴진’ 선언■2000년 6월28일 8차 방북■2000년 6월2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세번째),금강산종합관광개발과 서해안공단 부지 조성 사실상 마무리. ■2001년 3월21일 사망
  • 정주영(鄭周永) 별세로 2세들 상속세 최소 500억 이를듯

    현대 창업주인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별세로 그가 남긴 유산과 2세들이 낼 상속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 전 명예회장은 병세가 악화되기 휠씬 전부터 그룹 분할구도에 따라 보유재산의 대부분인 주식을 정리해 왔기때문에 상속과정에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때 수조원대에 달했던 정 전 명예회장의 재산은 2세들을 위한 그룹계열분리와 현대건설의 자구노력 지원에 따라최근 1,100억원대로 급감했다. 21일 현재 정 전 명예회장이 갖고 있는 상장주식은 현대건설 15.77%(5,062만주),현대중공업 0.51%(38만주),현대상선 0.28%(28만주) 등에 불과하다.금액으로는 이날 종가 기준으로 건설이 926억원,중공업이 105억원,상선이 76억원등 모두 1,039억원에 이른다.여기에다 서울 청운동과 가회동 주택(100억원대)을 합치면 1,139억원가량이 된다. 정 전명예회장은 지난 92년 통일국민당 총재시절 기자회견에서 “내 재산은 나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국내 최고 부자로 알려졌었다.포춘지(誌)도 정 전 명예회장의 재산은 62억달러(당시 4조9,000억원상당)로 세계 9위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정부의 비업무용 토지매각방침에따라 이를 모두 처분,계열사 주식으로 모두 옮겨놓았으나계속된 주가하락으로 재산이 대폭 줄었다. 남은 재산은 정 전 명예회장의 유언이 있을 경우 유언장내용대로 상속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상속법에 따라 투병 중인 부인 변중석(邊仲錫)씨와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차 총괄회장 등 아들,손자 등에게 분배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상속재산이 50억원을 넘는 경우 45%의 최고 상속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최소 500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지금까지 최고 상속세는 지난 97년 작고한최종현(崔鍾賢) 전 SK그룹 회장으로 730억원의 상속세를낸 것으로 알려져 정 전 명예회장의 유족들이 상속세를 낸다면 두번째 고액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병철기자 bcjoo@
  • 타계한 경제거목 왕회장 정주영씨/ 일대기

    정주영은 격동의 현대경제사의 산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근대화의 거목(巨木)이었고,옛소련과 중국의 경제 교류를 이끌어낸 민간 외교관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성공적으로 치른 체육인이면서 사회사업가이기도 했다.누구도 엄두내지 못했던 ‘소떼 방북’으로 금강산 관광을 이끌어낸 이도 그였다.‘소떼 방북’은지난해 6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밑거름이 됐다.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로 자신의 퇴진 여부가 도마에 올랐던 지난해 5월에는 ‘3부자 동반 퇴진’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던정주영.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자서전 제목만큼이나 그의 인생 역정은 위기와 시련,극복의 연속이었다. ■소년 정주영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의 산골짜기에서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의 호 아산도 고향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어려서부터 남달리 야심이 많았던 그에게“농사일을 하라”는 부친의 말은 성에 차지 않았다.가난은 야심찬 통천 산골의 소년을 잡아두지 못했다. 신천지를 꿈꾸며 세번씩이나 가출을 시도했던 정주영은 19살때 아버지가 소 팔아 모아 둔 70전을 훔쳐 들고 네번째‘탈출’에 성공, 드넓은 세상으로 나온다.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냉엄한 현실뿐.막노동판을 전전하다 다다른 곳이서울 신당동 쌀 가게였다.황소처럼 우직하게 일한 그에게운이 따랐다.그의 성실성에 탄복한 주인이 그에게 쌀 가게를 넘겨줘 일약 점원에서 사장으로 올라앉게 된다.‘경일상회’라는 상호로 자신의 간판을 내단 것은 고향을 떠난지 4년 만의 일이다.보통학교(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에게 ‘안되는 일은 없다’는 불굴의 의지가 생긴 것도 이무렵이다. ■사업은 탄탄대로 40년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 자동차수리공장인 ‘아도써비스’를 창업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의길로 들어선다. 이후 46년에는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47년에는 현대건설 모태인 현대토건을 세우며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손대는 일마다 성공했다.그에게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머리 속은 ‘도전’ ‘성공’이란 단어들로만 가득찼다.반세기에 걸친 ‘현대 역사’의 시발점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잠깐 부산으로 피란 길에 올랐던 그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복구사업에 뛰어든다.단일 공사로는최대였던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맡아 일약 대형 건설업체로 부상한 것도 57년이다.62년부터 본격 추진된 경제개발계획때는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65년에는 태국의 파타니 나라와소 고속도로공사를 따내면서 국내 최초로 해외에 진출하는 개가를 올렸다.68년엔 박정희(朴正熙)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사업을 성공리에 마친다.세계 최단 시간 완공이라는 기록까지남긴 이 공사는 ‘정주영’을 불세출의 인물로 각인시킨대역사였다. 70년대 후반은 중동 붐을 타고 대규모 건설공사를 수주,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시키는 또 다른 계기가 됐다. 사업 절정기는 80년대.76년 최초의 국산 모델 ‘포니’승용차를 만들어 미국 수출 길을 닦았다.86년에는 포니의 후속 모델인 엑셀이 미국 수입시장 소형차 판매 1위를 차지,‘엑셀신화’를 만들어냈다.엑셀신화는 후속 모델인 엑센트,베르나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결단의 승부사 그의 ‘신화 창조’는 초인적 의지와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의 삶은 위기와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그때마다 특유의 뚝심으로 승부를 걸었다.결과는 늘 적중했다. 고비때마다 결단은 더욱 빛났다.한국전쟁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겨울에 유엔군 묘지에잔디를 깔라는 미군측 요청에 보리밭을 떠다가 푸른 잔디로 바꿔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독점한 일화는 두고두고회자된다.조선소 도크도 없이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내밀어 영국에서 조선소 건설 차관을 따낸 일,일본나고야를 제치고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일은 아마도 그가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4년 2월 서해안 서산 간척지의 물막이공사는 정주영의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양쪽에서 쌓아온 방조제의 끝 사이를 막아 조류를 차단하는 당시 공사는 유속이너무 빨라 난공사 중 난공사였다.정주영은 때마침 외국에서 들여온 고물 유조선 한 척을 활용하는 ‘기발한 발상’으로 물막이공사를 완벽하게 해낸다.후일 ‘정주영공법’으로 불렸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다.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대통령에 출마해 떨어진다.대가는 비쌌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쓰라린 실패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그는 현대그룹 일선에서 물러났고,건강도 극도로 악화되는이중고(二重苦)를 겪어야 했다. 회사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문민정부 5년간 각종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일 욕심은 물론 명예욕도 컸던 그가재벌의 정치 참여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을 계산하지 못해무리수를 둔 결과였다. ■마지막 불꽃,대북사업 금강산에 가졌던 그의 애착은 남달랐다.그에게 통천에서 가까운 금강산은 바로 고향이었다. 98년 6월 ‘소떼 방북’을 추진하면서 “아버님의 소판돈 70전을 갖고 집을 나선 뒤 긴 세월 동안 저는 묵묵히일하는 소를 ‘성실과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삼고 인생을걸어왔습니다. 이제 그 빚을 갚기 위해 한 마리의 소가 1,000마리가 되어 꿈에 그리던 고향산천을 찾아갑니다”라며벅찬 감회를 표현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방북 길에 올랐던 그의 노력은 헛되지않았다.‘3부자 동반 퇴진’과 함께 대북 총수 자리를 아들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 물려줬지만대북사업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공단을 따낸 것도 성과 중의하나다. 지난해 6월28일에는 막걸리를 싣고 방북,김 위원장이 지방 순시 중인 원산까지 날아가 대북경협을 담판짓는 지칠줄 모르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자식들엔 엄격 손주들엔 자상. 아버지 정주영은 자식들에겐 매우 엄격했다.잘못을 저지른 아들에겐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다.아들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고 고백하곤 했다. 92년 총선 전후까지만 해도 자식들을 한데 모아 아침을같이 먹고 계동사옥으로 출근할 정도로 가부장적인 면을지니고 있었다.자식들과는 달리 손자·손녀들에게는 정이많은 할아버지였다.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손자·손녀들을 자주 찾곤 했다. 이렇듯 위세당당하던 그도 나이는 이기지 못했다.말년에몽구(MK)와 몽헌(MH) 두 아들이 싸우면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데 몹시 속상해 했다고 한다. 일 벌레로 비쳐진 그에게도 멋진 풍류가 있었다.‘아침이슬’을 곧잘 불러댔고,한번 마이크를 잡으면 ‘가는 세월’ ‘고향의 봄’ ‘고향무정’ 등 3∼4곡을 불러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노래를 좋아했다.시간이 날 때면 작가와화가를 만나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면도 있었다. 외지와의 회견에선 “120살까지 살겠다”고 장담했던 정주영.그러나 그도 불로초를 구할 수는 없었다.매순간 승부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던 대사업가 정주영은 이승에 ‘왕(王)회장’이란 이름 석자를 남기고 끝내 이 세상을 떴다.사업가로 첫 발을 내디딘 지 63년,47년 현대건설 전신인 현대토건을 설립한 지 꼭 54년 만의 일이다. 손성진기자 sonsj@
  • 건축가 승리로 끝난 ‘자존심 싸움’

    재벌총수와 건축가의 지루한 자존심 싸움이 건축가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 건축사에 한획을 그은 건축물‘공간’(서울 종로구 원서동)으로 잘 알려진 공간그룹이 구사옥과 신사옥 사이에 있는 한옥을 현대그룹으로부터 곧 사들인다.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은 지난 84년 휘문고와 인근의 한옥들을 한꺼번에 매입한 뒤 그 자리에 지상 12층(이후 15층으로 증축)의 계동 현대사옥을 완공했다.대지 18평의 이 낡은 한옥은 이때 사들인 것.일대를 현대의 아성으로 만들려고했던 정회장은 공간사옥을 옮겨줄 것을 요구했지만 공간그룹의 창업주이자 건축가인 김수근씨는 이를 거부, ‘공간’을 현대건축의 상징으로 가꿔왔다. 공간그룹은 앞으로 이 한옥을 헐지 않고 그대로 보존할 방침이다.한옥 바로 옆에 있는 공간그룹 소유의 석탑과 함께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백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이로써 검정 벽돌의 구사옥과 투명유리로 된 신사옥이 독특한 공간미를 연출하는 공간사옥은 건축적인 가치를 한층 높이게 됐다.공간사옥은 최근 서울시지방문화재로 지정됐다. 김종면기자 jmkim@
  • 정주영명예회장 위독설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의 건강 상태가 심상치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대는 특별히 악화된 것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7일 현대에 따르면 정 전 명예회장은 최근 외부 거동을 못한 채 서울중앙병원에만 머물고 있다.이에 따라 4억달러 지급보증에 따른 현대건설 출자전환 동의서에 필요한 최대주주정 전 명예회장의 동의도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병원을 방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관계자는 그러나 “정 전 명예회장이 노환으로 병원과청운동 집을 왔다갔다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라며 “건강상태가 특별히 나빠진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 푸틴, 국내 인사 7명에 훈장

    우리나라 정,재계 인사 등 7명이 방한하는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으로 부터 훈장을 받는다. 26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8일 오후 2시15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한·러 수교 10주년 기념식에서 한·러 관계 개선에 공이 많은 7명에게 친선훈장을수여한다. 수상자는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장성원(張性元) 롯데호텔 사장,박길훈(朴吉訓) 길훈건설 회장 등 경제인과 공노명(孔魯明) 전 외무장관,이정빈(李廷彬)외교부장관, 정재문(鄭在文) 의원,박형규(朴炯奎) 고려대 노문과 교수 등이다.
  • 3차 교환방문 양측 단장

    3차 이산가족 교환방문(2월26일∼28일) 때 남측은 장정자(張貞子·66)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북측은 김경락(64) 조선적십자회 상무위원이 각각 단장을 맡는다.두 사람 모두 첫 방북,방남이다. ◆장정자 단장 장부총재는 현대와의 인연으로 눈길을 끈다.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다섯째 동생인 고정신영(鄭信永) 동아일보 기자의 부인이다.59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악대학 유학 중 결혼했지만 62년 남편이 죽은 뒤부터 줄곧 독신으로 지내 왔다. 77년부터 정전명예회장이 정기자를 기려 만든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이사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83년 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을 맡으면서 한적과 인연을 맺었고 98년 7월부터 부총재로 활동해 왔다.서영훈(徐英勳) 한적 총재가 “각종 사업에 열심이면서도 나서지 않는 성격”이라고 평한 바 있다.외아들 몽혁(夢爀·40)씨는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된 현대정유 사장이다. ◆김경락 단장 김단장은 지난달 북한 금강산여관에서 열린 3차 남북적십자회담 때 북측 수석대표였다.외무성 부국장과포르투갈 대사 등을 지낸 외교통이다. 지난해 9월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부의장 자격으로백두산 관광단을 영접했다.포르투갈 대사였던 지난 91년 5월에는 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러 리스본에 도착한 남북 단일축구팀을 맞기도 했다. 90년대 초부터 대남관계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현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부국장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북측본부 부의장 직책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하기자
  • [오늘의 눈] 금강산사업의 의미와 해법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하나,아니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야하나. 위기에 봉착한 현대의 금강산사업을 두고 말들이 많다. 현대가 이달 말 북한에 지불하기로 돼 있는 관광대가(1,200만달러)를 치르지 못하면,금강산 관광사업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고,이 여파가 남북관계에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현대의 무모한 사업추진이 빚은 결과인 만큼 정부가 도와줘서도,현대가 지원을 요구해서도 안된다고 얘기한다.맞는 말이다. 민간기업이 스스로 리스크(Risk)를 안고 추진했던 일이 잘못됐다고정부에 지원을 요청한 전례가 없고,또 그렇게 할 명분도 없다. 다만,이 시점에서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우선 금강산사업의 주체가 민간이지만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때 국가·민족적인 사업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금강산사업은 통천출신의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으로 시작됐지만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 사업이 우리에게가져다 준 결실을 보면더더욱 그렇다. 지난 99년 전시를 방불케 하는 서해교전이 벌어졌을 당시 반대편인동해에서는 실향민들이 유람선을 타고 평생의 소원인 고향땅을 밟았다.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것도 따지고 보면 금강산사업의 ‘보이지 않는 결실’이다. 우리는 지난 90년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북방외교의일환으로 한·러수교를 맺으면서 30억달러를 러시아에 빌려 준 적이있다.아직도 상환이 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물론 현대의 금강산사업을 한·러 수교와 비교하긴 어렵겠지만,통일을 향한 디딤돌을 놓는 행보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대는 지금 무모한 사업추진으로 금강산사업 적자누적 등 대가를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러나 당초의 순수한 의도와 열정을 제쳐둔 채 ‘실패한 사업’이라며 비아냥거리고 손가락질만 해댈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금강산사업이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다시 한번 숙고해 봐야 한다.그리고 지속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문제풀이를 해나갈 것인지를 놓고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주병철 디지털팀 기자 bcjoo@
  • 뱀띠 해 뱀 이야기/ 신사년 운세

    *김광일 성명학회장이 본 새해. 신사년(辛巳年) 올 한해의 운세는 어떨까.맑을까 흐릴까.역술인들은뱀이 동면하면서 새봄을 기다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내다본다.중반까지는 고단하고 어렵지만 후반들어 활기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짜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한다.운명은 개척하는 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스스로의 노력이 절실한 한해라는 것이다. 김일성 사망과 부시 미 대통령 당선 등 굵직굵직한 예언을 적중시킨 한국성명학회 김광일 회장(48)과 대한매일 뉴스넷(www.kdaily.com)에 ‘금주의 운세’를 싣고 있는 신세대 역술인 김민정씨(30)로부터새해 운세를 들어본다. 주역(周易)으로 새해 운세를 보면 위는 불(火)이요 아래는 물(水)인화수미제괘(火水未濟卦)에 해당한다.미제(未濟)란 미완성의 상태로발전하는 과정을 뜻하기에 정치,경제 및 사회 전반에 걸쳐 위난(危難)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장애와 좌절을 겪으며 보완,앞날의 큰 수확을 준비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군자(君子)는 이 괘상을 보고 결함과 장애를 받는 요소를 깨달아,신중하게 사물을 분별해서 알맞은 자리에 배치하고 경영해야 한다.따라서 최고지도자의 밝은 지혜가 기대되는 해이다. 먼저 경제분야를 보면 사(巳)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음화(陰火)이며 그속에 술토(戊土),경금(庚金),병화(丙火)가 들어 있다.계절상 춘궁기(春窮期)에 해당돼 예전 보릿고개처럼 국민들이 고통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기가 침체되고 증권의 불안정과 물가상승이 우려되는 것이다. 하지만 8월부터 경기 침체가 해소되고 수출이 증대돼 경기도 안정세를 회복하겠다. 특히 올해는 화극금(火剋金)하는 상극의 원리로 노사간의 마찰,기업합병에 따른 마찰,기업과 정부간의 대립도 많겠다.하지만 상극(相剋)이란 시행착오를 겪는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기에 결국 뜻을 같이 하게 된다. 정치 부문에서는 경금(庚金)이 암장(暗藏)되어 있는데 경(庚)이란 개혁과 쇄신의 뜻이어서 부정부패가 철퇴를 맞는다.공무원 기강이 더욱 확고해지고 부패한 관료나 정치인은 자멸하게 된다.여권에서는 이인제 최고위원이 대통령후보로 가시화되는 가운데 뉴 페이스가 나타나대결이 치열하게 된다. 야권에서는 이회창총재에 반기를 든 그룹의 힘이 강해져 이총재의 위상에 흔들림이 있겠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여야의 첨예화된 대립이 심화된다.자민련은 김종필 총재의 부상으로 입지가 강화된다. 대북관계에서는 북한과의 경제교류가 활발해지며,진통이 있지만 이산가족의 서신왕래와 개별방문 등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겠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성사된다. 그러나 올해는 화재 화공계통에 의한 사고와 건물 붕괴,지반사고 등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하고 모 재벌총수의 사망운도 있다.이혼율도급증하겠다.개인적으로는 돼지,토끼,양띠가 삼재(三災)가 드는 해로이 띠에 해당하는 이는 생할 전반에 걸쳐 무리한 활동을 피하고 안정 위주로 생활해야 하며 신사년에는 대장군방위(大將軍方位)와 삼살방위(三殺方位)가 모두 동쪽에 있어 동쪽으로 이사하거나 확장·이전하는 일은 금해야 한다. *김민정 신세대 역술인이 본 운세. 올해 7∼8월까지는지난해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올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분들이 엄청나게 많아질 것 같다.경기에도 하나의 흐름이 있는 만큼 밑바닥인 체감경기가 갑자기 좋은 쪽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7∼8월이 바닥인 만큼 가을부터는 상황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벤처기업들은 이 시기보다 조금 앞서 회생조짐을 보여 테헤란밸리에 사무실 구하기가 다시 힘들어진다. 끝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과도기적 현상으로 자세히들여다보면 상승의 발판을 만드는 과정이며 이때 국민의 기를 모아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우리 국민의 기가 조금은 쇠잔해진 상태여서 2∼3년뒤 경제나 모든 산업활동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들이 흔들림없는 자세로 운명을 극복해야 하는데 군중심리에 좌우되는 측면이 많아 걱정이다. 지난해 재개된 이산가족 상봉은 더 큰 폭으로 늘어나지만 올해는 물론 4∼5년 동안 통일은 기대하기 힘들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을 소지가 상당 부분있다.그러나 김 대통령의 개인적인 운세는 대단히 좋은 편으로,단지건강에 유의할 것을 권한다. 재계 순위는 지난해처럼 극심한 기업의 부침은 없다.다만 L그룹의 기운이 아주 좋다.중진그룹들이 대거 앞 순위로 들어온다.이에 비해 국내굴지의 모그룹은 총수의 건강이 악화될 것으로 보이며 그룹 자체가 수년내 상당한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중병설이 나도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올해도 건강을 유지할수 있다.정 명예회장의 기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기반은 더욱 강화된다.탈북난민이 쏟아져내려오는 일이나 전쟁 같은 최악의 상황은 없겠다. 눈을 해외로 돌리면 일본 시장은 침체할 것이지만 중국 시장이 비약적인 속도로 성장한다.중국과의 교역을 준비하는 이들은 투자 아이템을 잘 관리하면 1∼2년후 ‘대박을’ 안을 수 있다. 노벨문학상 같은 경사스런 일은 기대하기 힘들다.다만 2003년 우리문화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영화산업의 운 역시 아주 강하다. 가수 서태지는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데 개인 운이워낙좋아 사회 전체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지는,아주 좋은 운세다.일본 시장에 진출해도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2년후 또다른 음악으로 세계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한국축구는 해외 유명감독을 영입하는 등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겠다.
  • [경제프리즘] MH 정신차려야 한다

    ■주병철 디지털팀 기자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지난 20일 현대호(號) 선장으로다시 돌아왔다.지난 5월31일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전격적인 ‘3부자 퇴진’선언으로 홀연히 회장직을 떠난 지 7개월만이다. 정 회장 복귀는 현대건설을 살리려는 의지의 표현으로,현대가 국가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다행스런 일임엔 틀림없다.그러나화려한(?) 복귀뒤엔 정 회장이 새겨야 할 대목들이 많다. 우선 자신의 경영복귀가 현대건설 경영진의 경영실패에서 나온 고육지책(苦肉之策)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물론 현 경영진에게 모든 짐을지우기에 무리인 점도 없지 않다.정 회장도 기자회견에서 “책임은나한테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 회장이 은퇴하면서 전문경영인이 현대그룹을 세계기업으로 키워주길 당부했던 약속을 지켜내지 못했다.성과는 없었고오히려 ‘오너없이는 되는 게 없다’는 변명만 늘려주었다.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은 그의 복귀로 ‘변화하는 세계의 흐름을 좇겠다는 현대의 대(對)국민약속’은 일단접을 수 밖에 없게 됐다는 점이다.그의 복귀로 현대그룹은 적어도 지난 5월31일 ‘3부자퇴진’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남은 것이라곤 만신창이가 된 건설의 몰골 뿐이다. 그 뿐아니다.그의 복귀는 정부의 재벌개혁이 실패했음을 반증하는꼴이 됐다.그의 말대로 ‘오너없는 기업’의 현실적인 한계가 오너를다시 불러들이게 됐지만 현대는 물론,정 회장 자신도 그 책임에서자유로울 수 없다. 정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국외를 전전하며 현대의 위기에소극적으로 대처했었다.따라서 그가 현대를 살리려고 작심했다면 더이상 결재도장만 찍고 측근들의 달콤한 얘기에 안주하는 ‘한량한 오너’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다.주변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아직도 전 근대적인 스타일을 되풀이하는 경영·홍보방식,그리고 내부에서 일고 있는 불만도 챙겨봐야 한다. 시장은 정 회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주목하고 있다.정 회장은 그에대해 믿을 만한 답변을 줘야 한다. bcjoo@
  • [외언내언] 서산농장 매각 이후

    현대건설이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분할 매각하고 있는 서산농장은 농사를 위한 담수호를 포함,서울 여의도의 48배에 이른다는 광활한땅이다.한바퀴 둘러보는데만,시속 40㎞로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3시간30분이 걸린다.유조선에 물을 담아 가라앉혀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마무리 지었던,이른바 ‘정주영공법’으로 유명한 A지구 방조제에는,이 농장이 단일 경영 농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세계 최대 규모’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기계화 영농이 이루어지고 있다.볍씨를 모내기 없이 비행기로 직접 뿌리고 농약살포와 수확 등 벼농사 전과정이 기계화돼 있다.쌀을 뜻하는 한자 미(米)에는 88번의 손이 가야 한다는 쌀농사의 어려움이 담겨 있다.그 많은 과정들이 생략된 이곳에서는 단 100명의 농민이 최신 영농기술로 3,330만평의 농사를 짓는다. 따라서 쌀 생산단가도 일반 농가 보다 훨씬 저렴하다.즉 쌀 1가마를 생산하는데 일반 농가에서는 8만∼9만원이 든다면 서산농장에서는 5만원∼6만원 밖에 안든다.물론 미국의 생산단가 2만5,000원∼3만원에 비하면 높은편이다.그러나 간척지의 염기가 완전히 빠지는 3년후엔35,000원까지 생산단가를 줄일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서산농장은 3차례에 걸쳐 북한에 보낸 ‘통일소’를 길러 낸 곳이기도 하다.B지구 목장에서 자라는 소들은 이곳에서 생산된 볏집과 쌀겨를 먹고 그들의 배설물은 다시 농장의 비료로 사용된다. 서산농장이 분할매각된 다음엔 어떻게 될까.환경단체들은 우선 국내 최대의 철새도래지가 사라질 것을 걱정한다.수천명의 일반인들이 농장을 나누어 소유하면 농약을 마구 쓰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철새 보호가 힘들게 되리라는 것이다.‘싹쓸이 추수’로 철새들의먹이감도 줄어들 것으로 본다. 해마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새를 비롯 총 220여종 50여만마리의 철새가 날아 든다.철새 보호를 위한서산농장 매입운동,즉 또하나의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이 그래서 시작됐다. 그러나 철새의 운명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농업경쟁력의후퇴다.한국 농업이 살 길은 농가부채 경감 등의 미봉책이 아니라 농업 생산성 향상을 통한 국제경쟁력 증진에서 찾아야 한다.그런데 서산농장이 분할 매각되고 소유자들이 각각 농사를 짓는다면 이곳의 쌀 생산단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농림부가 “생산량은 더 늘어 날 것”이라고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은채 수수방관해서는 안될 일이다.서산농장의 소유자가 많아지더라도 지금처럼 쌀 농사만 짓는 절대농지로 유지하면서 단일영농법인이 과학적인 농사를 짓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임영숙 논설위원실장 ysi@
  • 정주영 현대 前 명예회장 퇴원

    지난 7월부터 서울 중앙병원에 입원해 온 정주영(鄭周永) 현대 전명예회장이 최근 거처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으로 옮겼다. 김윤규(金潤圭) 현대건설 사장은 지난 9일 현대건설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정 전 명예회장이 최근 청운동 자택으로 돌아왔다”면서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은 경영복귀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병철기자
  • 서산농장 철새도 부도위기?

    ‘현대건설 뿐만 아니라 철새들도 살려달라’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충남 서산농장을 일반인에게 매각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철새도래지가 훼손위기를 맞고 있다. 6일 서산A·B지구로 구성된 서산농장.A지구의 간월호와 B지구의 부남호 주변에는 기러기와 두루미 등 20만여마리의 겨울철새가 먹이를찾아 떼지어 날아다니고 있다.서산A·B방조제 너머 천수만에는 수만마리의 갈매기들이 물이나 바위 등에 한가하게 앉아 있다. 해마다 이곳에는 220여종 50만마리의 철새들이 찾는다.지금도 천연기념물 199호인 황새를 비롯,흑두루미(228호),노랑부리저어새(205호) 등 희귀 철새들이 찾고 있으며 여름엔 뜸부기 등이 찾아들어 번식한다. 서산시 부석고 김현태(金賢泰·33) 교사는 “4일전 가창오리 30만마리가 전남 영암호 등 남쪽으로 날아가 겨울철새 개체수가 줄었다”며 “내년에는 이러한 장관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매각대상은 서산농장 3,122만평 가운데 3,082만평이다.이중 2,076만평은 오는 20일까지 14만∼30만평,5만∼14만평,1만∼5만평 등으로 쪼개져 일반인에 매각되고 나머지 1,006만평은 인근 어민들에게 분양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훼손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근처에 있는 당진군 대호방조제를 보면 알 수 있다.독한 농약을 마구 뿌리고 ‘싹쓸이 추수’로 철새들의 먹이감인 붕어 등 물고기와 낙곡(落穀)이 줄어든데다 밀렵 등이 성행한 이후 철새들이 거의사라졌다. 현대는 이곳을 찾는 철새들을 먹여살렸다.항공기로 씨앗을 뿌리는등 대규모 기계 영농으로 곳곳에 떨어져 있는 낟알은 철새들의 먹이가 돼왔다.또 인근 군부대와 함께 일반인의 농장출입을 통제하고 밀렵과 낚시를 제한하는 등 관리도 철저해 철새의 낙원으로 자리잡아왔다. 서산농장은 95년 정주영(鄭周永)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바다를 막아 만든 간척지로 두 담수호까지 합하면 모두 4,700만평으로 서울의4분의 1 크기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은 서산농장 매각발표 직후 성명서를 내고 “주택과 공단조성이 우려되는 토지공사에서의 매각을중지하고 농장운영을 단일화하라”며 정부의 철새보호 대책을 촉구했다. 조류학자인 공주대 조삼래(趙三來) 교수는 “정부가 담수호 주변 땅을 매입,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며 일괄관리해야 철새도래지를 보호할 수 있다”며 “담수호 가운데에 철새들이 안전하게 쉴 수 있는인공섬을 만드는 방안 등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산 이천열기자 sky@
  • 뉴스피플 12월7일자 소개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11월28일 발매,12월7일자)는 ‘한국의 새로운 첩보무대 서울 정동’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구한말의 첩보 각축장이었던 정동이 100년만에 또다시 첩보 전진기지로 변화하는 현장을 심층취재했다.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최근 32년 자동차 인생을 정리한회고록을 냈다.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자서전을 낸 지 9년만이다.한국경제의 두 거목의 자서전에 투영된 현대자동차의 역사와 형제의 애증을 들여다봤다. ‘하이테크의 요람’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도전하는 한국 벤처들을현지에서 24시간 밀착취재했다.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지각변동과 대기업들의 내년 2월 인사 속앓이 사정,인사철을 앞두고 브로커가횡행하는 경찰 주변을 살펴봤다. 감기 다음으로 흔한 것이 요통.한국정형외과학회의 손꼽히는 형제명의 이춘기·춘성교수가 허리병과 디스크에 대한 모든 것을 들려준다. ‘우리 사전에 불황이란 말은 없다’는 건축 게릴라 ‘사람과 공간’,테크노 뽕짝 개척자 ‘신바람이박사’,근정전에 용 단청을 그리자고 제안한 미술사가 곽동해씨 등 사람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밖에 박물관의 우먼파워,출판가 일본문화 재조명 열풍,동시에 연극 무대에 오른 두 편의 ‘멕베드’ 비교감상법도 읽을 거리다.
  • ‘정주영 사이버 박물관’ 개관

    ‘왕(王)회장의 모든 것을 보여드립니다’ 현대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일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정주영 사이버 박물관(www.chungjuyung.pe.kr,www.asanmuseum.com·사진)’이 27일 문을 열었다. 국·영문판으로 개관한 이 사이버 박물관은 아산관,역사관,자료관,전시관,커뮤니케이션관 등 5개 주제별 전시실로 구성,2,000여점의 전시자료를 사진·동영상·3D입체 화면·가상현실 화면을 통해 생생히전달하고 있다. 특히 정 전 명예회장이 15년간 사용한 TV와 구두 세 켤레,친필 서예작품,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휘호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개인소장품 400여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15년 이상 신고 다닌 구두에는 구멍난 자국이 선명히 나 있다.청운동 자택과 집무실도가상현실 화면으로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현대는 밝혔다. 현대 관계자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단순히 한 기업의 창업자라기보다는 시련기의 한국현대사를 이끌어온 거인”이라며 “신념과 의지로 시대를 개척한 거인의 발자취를 인터넷 세대에게 손쉽게 알리는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시아버님 건강합니다”

    ‘시아버님은 건강하세요’ 25일 85회 생일을 맞은 현대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이 입원한서울 중앙병원을 찾은 정몽구(鄭夢九)현대·기아자동차 총괄회장의부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은 정 전 명예회장이 “생각보다 건강했다”고 말했다. 이씨 등은 이날 오전 9시쯤 정 전 명예회장이 있는 18층 VIP룸으로찾아 와 집에서 손수 요리한 전복죽과 미역국 등 한정식으로 생일상을 차렸다.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1시간 30분가량 머물렀다. 정 전 명예회장은 며느리들이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거뜬히 비웠으며 손자들을 껴안고 유쾌한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특별히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고 며느리들은 전했다. 이씨는 “건강상태나 기분이 몹시좋아보이셨다” 고 전했고,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부인현정은씨는 “식사를 잘 하셨고 건강한 모습이었다”면서 “특히 손자들을 보고 기뻐하셨다”고 말했다. 며느리 외에 7남인 정몽윤(鄭夢允) 현대해상화재 고문과 8남 정몽일(鄭夢一) 현대기업금융 회장 등이 손자를 데리고 찾아왔으며,‘영(永)’자 항렬동생들도 병원에 들렀다.맏아들인 정몽구 회장은 27일 중국에서 귀국,정 전 명예회장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주병철기자
  • 왕회장의 남다른 85회 생일

    현대의 정주영(鄭周永)전 명예회장이 25일로 85회 생일을 맞는다. 서울 중앙병원에 입원중인 정 전 명예회장은 건강 등을 고려해 이날병원 식당에서 맏며느리인 정몽구(鄭夢九)현대·기아차총괄회장의 부인 이정화씨,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회장 부인 현정은씨,정몽준(鄭夢準)현대중공업 고문 부인 김영명씨 등 며느리 7명이 차려준생일상을 받는다. 정상영(鄭相永)KCC회장 등 동생과 아들,측근 등은 따로 병원을 방문해 생일을 축하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정 전 명예회장의 건강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고 측근들은 말했다.한때 상태가 좋지 않아 긴장했으나 최근 기력이 회복되고있다는 설명이다. 정 전 명예회장은 요즘도 아침 5∼6시쯤 일어나며,식사 후에는 바람을 쐬려 바깥으로 자주 나간다.병실에만 있으면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병원측의 권유에 의해서다. 지난 20일에는 복국을 먹으러 압구정동에 나타났으며,그 전에는 경기도의 KCC골프장도 둘러봤다.모친의 기일(忌日)이었던 지난 22일에는 계동 체육관의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깎고청운동 자택에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빼놓지 않던 TV시청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한다.눈과 귀가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데다,의료진이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기를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정 전 명예회장은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나 서산농장 매각 같은 ‘우울한 뉴스’는 모른다고 측근들은 전했다.현대건설은 ‘여전히 잘 나가는 기업’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병철기자 bcjoo@
  • 정세영씨 회고록 발간

    정세영(鄭世永)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21일 출간한 회고록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에서 조카이자 정씨 일가의 장자인 정몽구(鄭夢九·MK) 현대·기아자동차총괄회장의 사업과 관련해 정주영(鄭周永)전 명예회장과 몇차례 마찰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 명예회장은 자신의 은퇴와 관련에 대해 “큰 형님이 떠나라는 거북한 말을 하기 전에 미리 떠났어야 했었다”면서 “미리 속뜻을 헤아리지 못한 내가 오히려 송구스러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또 74년 MK가 현대차써비스를 설립할 당시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AS부문을 몽구에게 넘겨주라는 말을 듣고 독립된 서비스회사를 갖는 자동차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며 반발했고,80년대 초반에도 “자동차 판매권을 MK가 사장으로 있는 현대차써비스에 넘기라는 지시를받고 의견대립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99년 3월 32년간 몸담은 현대차를 떠날 당시 큰형님이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라고 반문하는 바람에 3일만에 아들인 정몽규 당시 현대차 부회장과 함께 자동차인생을 끝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포니’에서 내렸지만 기사(騎士)가 바뀌어 이제껏보지 못했던 오류와 잘못을 고친다면 현대차는 더욱 훌륭한 준마로커나갈 것”이라며 현대차의 발전을 희망하는 것으로 글을 마쳤다. 한편 정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당초 회고록에서 현대자동차를 떠나면서 느꼈던 섭섭함 등을 좀더 상세하게 담았으나 현대그룹과 자동차 쪽에서 수정을 요구,많은 부문이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출판기념회는 23일 오후 하얏트호텔 그랜드 볼륨에서 열린다. 주병철기자 bcjoo@
  • 정주영씨 오랜만에 나들이

    최근 들어 현대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바깥나들이’가 부쩍 잦아 눈길을 끌고 있다. 정 전 명예회장은 21일 오전 최근 개통된 신공항 고속도로로 드라이브를 나갔다가 점심때 현대백화점에 들러 이병규(李丙圭)현대백화점사장과 함께 복요리를 먹었다.지난 18일에도 현대백화점 지하 제과점에 들러 좋아하는 빵을 직접 골라 사갔다. 현대 관계자는 “명예회장이 병원에 있는 것을 갑갑하게 느끼고 있어 나들이를 하는 것”이라며 “소문과는 달리 건강에는 별 이상이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전명예회장은 85회 생일을 맞는 25일에는 정몽구(鄭夢九)현대·기아차총괄회장,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회장,정몽준(鄭夢準)현대중공업 고문 등 아들들과 정세영(鄭世永)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등 동생들을 청운동 자택으로 불러 식사를 같이 한다. 한편 정 전 명예회장은 현대자동차 주식 2.69% 매각대금 900억원,현대건설 발행 회사채 1,700억원 등 2,600억원을 현대건설의 유상증자에 투입하기로 해 건설 보유지분이 0.5%에서 16.3%로 급상승,최대주주가 됐다. 주병철기자
  • 鄭夢憲씨 경영복귀 강력 시사

    현대는 20일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회장과 정주영(鄭周永)전명예회장 등 오너 일가의 사재출자를 포함한 총 1조 2,974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안을 확정했다. 정 회장은 이날 오후 계동사옥 15층 대회의실에서 이같은 내용의 현대건설 자구계획안을 공식 발표했다.정 회장은 “경영복귀는 결정된것은 없지만,임직원과 사외이사 등과 협의해 절차에 따르겠다”고 밝혀 경영복귀 의사를 강력히 시사했다. 이번 자구계획은 ▲정 전명예회장의 회사채 출자전환(1,700억원) ▲정 전명예회장의 자동차 주식 2.69% 매각후 출자(900억원) ▲정 회장보유 주식 매각후 출자(400억원) ▲서산농장 매각(6,000억원) ▲계동사옥 매각(1,620억원) ▲인천철구공장 매각(400억원) ▲건설 보유상선주식 매각(290억원) ▲기존 자구(1,664억원) 등이다. 계동 본사사옥은 서산농장과 비슷한 위탁매매 방식을 통해 매각하되,이달 말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처분위임장을 주채권은행에 제출키로했다.현대전자는 내년 상반기까지,현대중공업은 내년 말까지 각각 계열분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또 금융부문(증권·투신증권·투신운용)은 미국 AIG금융그룹의 외자유치를 통해 경영권을 포기할 방침이다.한편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김경림(金璟林)행장은 “현대가 이번 자구안을 충실히 이행할 경우 연말까지는 신규자금 지원이필요없으며 연말에 가서 이행실적과 향후 영업전망 등을 감안,자금지원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병철 김성곤기자 bc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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