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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아파트(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아파트(상)

    서울은 넓고 그리고 깊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장기연재한 ‘서울택리지’가 서울의 윤곽을 더듬는 도시학적 탐사였다면 이번에 후속으로 선보이는 ‘서울택리지-테마기행’은 서울의 속살을 찬찬히 살펴보는 풍물적 탐사의 성격을 띨 것입니다. 먼저 세계 최고,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서울의 아파트와 아파트 문화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어 서울의 극장, 백화점, 호텔, 공원, 시장의 명멸사(明滅史)를 추적할 작정입니다. 서울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지하상가와 지하도, 고가도로와 육교의 부침이나 한강 다리와 나루의 변천도 들여다보기의 대상입니다. 물난리와 하천복개, 전차, 판자촌과 달동네, 다방·댄스홀 같은 유흥업소에 얽힌 흘러간 추억도 되새김해 볼만할 겁니다. 지구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다이내믹이 지배하고 있는 서울의 변화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요? ●어쩌다 아파트가 서울의 압도적 주거문화가 됐을까 아파트는 서울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한국사회를 읽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서울사람 열 명 중 여섯 명이 아파트에 살고 있고, 서울 도시경관을 아파트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여성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프랑스 고등사회과학연구원)교수가 2007년에 출간한 ‘아파트 공화국’은 파리의 아파트가 아니라 서울의 아파트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줄레조는 1990년 서울 방문길에서 공룡처럼 군림하고 있는 아파트와 아파트단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주저 없이 ‘서울의 아파트’를 박사학위 논문의 연구주제로 선택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서울의 아파트 건설 이유와 한국인들의 아파트에 대한 열망을 분석해 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10년 넘게 걸린 긴 조사과정을 통해 그녀는 왜 아파트가 서울의 지배적인 주거형태가 됐으며, 한국의 중산층은 왜 아파트에 집착하느냐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졌다. 이방인의 눈에는 희귀한 이상현상이었지만 한국사람들은 덤덤했다. “그런 것도 연구대상인가”라는 조롱 섞인 핀잔을 극복하고 줄레조는 2003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아파트문화 분야연구의 독보적인 학자로 인정받는다. 유수 기관들이 그녀를 초빙해 강연을 듣는다. 줄레조의 의문에 한국사람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서울은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서 아파트라는 거주형태의 선택이 불가피했다고. 우리가 알고 생각하는 대로다. 그러나 줄레조의 연구결과는 달랐다.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압축된 현대성’(compressed modernity)의 반영이었다. 아파트는 돈이나 주식과 비슷한 환금성을 가진 재화인 동시에 현대화의 매개체 또는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1970~80년대 산업화를 담당한 권위주의 정권과 재벌, 중산층이 맺은 ‘3각 동맹’이 아파트를 상위 계급화했다고 주장한다. 아파트는 서울사람, 나아가 한국인 욕망의 상징이며 3각 동맹이 건재하는 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아파트와 아파트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비평한다. 영화평론가 이형석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집의 역사’와 다름없다”라면서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 갖는 것을 중산층 평균적 삶의 실현으로 봤다. 주거지역과 평형, 아파트 건설회사의 브랜드가 신분을 드러내고, 재개발이나 뉴타운 공약이 선거 판세를 좌지우지하고, 아파트 정책이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시대를 살아왔다는 것이다. 2004년에 출현한 초고층 최첨단 주상복합 아파트는 또 다른 성공과 신분을 상징하는 ‘욕망의 바벨탑’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경제 칼럼리스트 우석훈도 줄레조의 분석에 동의하면서 중산층의 욕망과 개발독재의 획일성이 결합된 부동산정책과 아파트공화국의 파국을 예고했다. ‘아파트 한국사회’를 펴낸 건축가 박인석(명지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은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라고 비판의 대상을 좁혔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담장을 둘러친 ‘단지’가 문제라는 인식이다. 그는 아파트를 열악한 도시환경이라는 사막 속에 자리 잡은 ‘사설(私設) 오아시스’라고 명명하면서 오아시스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임대아파트 단지, 분양아파트 단지, 주상복합아파트 단지처럼 아파트 단지가 재산가치에 따라 계급화하면서 계층적으로 폐쇄성을 띤다고 보았다. ‘단지 해체’가 왜곡된 아파트문화를 바로잡는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충정아파트부터 와우아파트까지… 아파트의 부침 아파트가 서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30년대였다. 일제는 회현동에 3층짜리 공동주택(미쿠니아파트)을 지은 데 이어 1932년 충정로에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충정아파트(도요타아파트)를 지었다. 혜화동과 적선동 등에도 아파트가 선보였다. 주로 일본인 임대·거주용이었다.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8층짜리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이었으니 충정아파트는 당장 도시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아파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르 코르뷔지에가 주창한 미래주택 개념에 따른 획기적 건축물이었다. 이 아파트는 한때 호텔(트레머호텔, 코리아관광호텔)로 개조됐다가 다시 아파트(유림아파트)로 되돌아갔다. 1979년 충정로 8차선 확장으로 건물 절반이 뜯겨나가는 곡절을 겪었지만 살아남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충정아파트를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공인, ‘100년 후의 보물, 서울 속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정부 수립 이후 지어진 최초의 민간아파트는 1958년 중앙산업이 성북구 종암동에 세운 종암아파트였다. 17평짜리 4층 건물에 152가구가 살았다. 정식명칭은 ‘종암 아파트먼트 하우스’였지만 ‘종암아파트’로 줄여 부르면서 ‘아파트’라는 용어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잘나가는 기업인, 정치인, 예술가들이 입주했으며 최초의 옥내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 부엌이 장안의 화제였다. 특히 양변기로 대변되는 화장실 문화의 대혁명을 알린 옥내 좌식화장실은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같은 변기에 앉아 일을 보는 해괴망측한 서양문화의 무분별한 도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온돌이 깔린 침실이 현관이나 주방, 거실보다 한 단이 높은 특이한 구조였다. 1995년 종암선경아파트로 재건축됐다. 1962년 안양으로 이전한 마포형무소 자리에 대한주택공사가 최고급 마포아파트(도화동 삼성아파트)를 건립하자 서울의 모던보이와 모던걸 사이에 아파트는 일약 선망의 대상이 됐다. 입주 초기 연탄보일러 중독사고가 연발하고 부유층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했지만, 아파트주변에 담장을 쌓아 외부와 격리시키는 ‘자폐적 공간’을 조성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세계 유일의 ‘한국형 아파트 단지’의 모델등장이었다. 서울로의 ‘광적인’ 인구유입은 주택난을 부채질했다. 도심과 가까운 지역의 산비탈과 국공유지변 하천부지를 꽉 메운 토막집과 판잣집을 밀어내고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당시 지은 낙산 시민아파트 등 대부분 시민아파트는 경관훼손 사례로 낙인 찍혀 1990년대 철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김현옥 시장(1966~70년 재임)이 주도한 시민아파트는 본래 철거민 수용용이었다. 시민아파트 1호는 천연동 금화아파트였다. 한 서울시 공무원이 해발 203m의 산꼭대기에 아파트를 짓는 이유를 묻자 김 시장은 “이 바보야 높은 데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볼 것 아니냐”라고 답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전해진다. 1968~69년에 지은 시민아파트는 어김없이 산허리 또는 산등성이에 지어졌다.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다. 그래서인지 경관 하나는 끝내주는 금화아파트는 아직도 살아남아 개발연대기의 암담함을 나타내는 영화촬영장으로 쓰인다.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 뚫린 물길은 막을 수 없었다 도심재개발 차원에서 이뤄진 세운상가와 낙원상가, 청량리 대왕코너(롯데백화점 청량리점)는 요즘 주상복합아파트의 원조격이다. 특히 세운상가 아파트는 1960년 후반부터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이 들어서는 1970년대 초까지 상한가를 쳤다. 18~25평의 작은 평수였지만 대규모 상가와 엘리베이터를 갖춘 이 아파트에 사회 저명인사들이 앞다퉈 입주했다. 사대문 안에 밀집된 직장에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는 상류층 집결지였다. 세운상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집창촌으로 알려졌던 ‘종삼’과 무허가 판자촌 철거로 얻어진 1만 3000평의 공지 위에 종로~청계천~을지로~퇴계로까지 무려 1km를 8개의 건물이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심의 괴물이었다. 아파트의 고급화는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에서 처음 시도됐다. 대한주택공사가 1970년에 지은 한강맨션은 중앙집중식 난방을 채택한 첫 호화 아파트였다. 시민아파트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으려고 ‘아파트’ 대신 ‘맨션’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계약 1호는 27평형을 구입한 탤런트 강부자였다. 고은아, 문정숙, 패티 김 등 연예인들이 줄지어 입주했다. 분양이 대박 나자 당시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이 장동운 주공 총재에게 “아파트 사업 그거 돈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현대를 비롯한 대형 건설업체들이 아파트사업에 뛰어드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1970년 4월8일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의 붕괴로 위기를 맞았지만 뚫린 물길을 막을 수 없었다. 바야흐로 서울은 아파트 공화국의 문턱을 막 넘어섰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화장실… 보부상… 한국의 민낯을 보여주다

    화장실… 보부상… 한국의 민낯을 보여주다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강준만 외/인물과사상사 320쪽/1만 4000원 “문화는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훨씬 더 많으며, 더구나 묘한 것은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감춰진 바를 가장 모른다는 점이다. 나는 여러해 동안 문화를 연구하면서 정말로 중요한 일은 외국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됐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말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 말을 자주 인용한다고 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학의 불모지는 역설적으로 한국일지도 모른다”는 강 교수는 그런 이유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에서 한국의 민낯을 찾아내 책으로 엮었다. 화장실, 행운의 편지, 자기계발서, 보부상과 행상, 크리스마스 등을 다룬 ‘우리도 몰랐던 우리 문화’다. 지난해 내놓은 ‘우리가 몰랐던 세계 문화’의 후속작으로, 이번 책도 전북대 재학생들과 공동 작업했다. 책의 시작은 ‘한국 화장실의 역사’다. 처음부터 ‘똥’ 얘기가 매우 자세하게 나온다. 풍자문학의 소재인 똥과 동서양 변기사(史)를 짚노라면, 그 ‘형태’부터 떠올라 머쓱하다. 하지만 그 순간을 넘기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똥의 의미를 깨닫기에 이른다. 1920년대 일제는 조선 개혁대상의 하나로 화장실을 꼽아 변소 개량과 요강 폐지를 강요했다. 한국전쟁 와중에도 서울시 경찰국은 악취 제거를 위한 변소 개량 독려를 이어갔다. 1952년 양변기라고는 본 적도 없는 37세 건설업자가 미군의 찬사를 받는 일도 있었다. 미 대통령 당선자 아이젠하워의 방한을 코앞에 둔 미군은 숙소인 운현궁의 난방과 화장실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 건설업자는 전쟁통에 고물상을 뒤지고 물품을 주워모아 12일 만에 공사를 끝냈다. 미군은 “현다이(현대) 넘버원”을 외치면서 이후 공사를 모두 이 업자에게 맡겼다. 그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다. 화장실 이야기는 시설과 문화의 변화, 변의 재활용 등을 거쳐 평등과 겸손의 미학으로까지 확장되면서 ‘개똥철학’이 아니라 심도있는 사유를 풀어낸다. 1895년 12월 내려진 단발령부터 2000년대 두발규제 반대운동까지 읽어내려오면서 머리카락을 핵심으로 한 전통과 개화, 통제와 자율이 충돌하는 투쟁의 역사를 읽는다. 또 밸런타인 데이부터 핼러윈 데이까지 ‘1년 365일 사이클의 물신화(物神化)’를 진단하고, 남한산성에서 만든 효종갱(해장국)을 이불에 말아 서울 사대문 안의 양반들에게 전해주던 일에서 배달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강 교수는 서문에서 “필자가 20대 학부생이라는 점을 행여 낮춰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말은 엄살이거나 자신감의 우회적 표현이 아닌가 싶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책은 꽤 촘촘하고 의미있는 생활문화사로 완성됐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정주영 손금, 강한 운의 상징…막쥔손금은 어떤 것?

    정주영 손금, 강한 운의 상징…막쥔손금은 어떤 것?

    정주영 손금, 강한 운의 상징…막쥔손금은 어떤 것?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손금 풀이가 화제다. 지난 4일 방송된 tvN ‘공유TV 좋아요’에서는 온라인 손금도사 김진환이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김진환은 “이건희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의 손금은 어땠냐”는 MC 김성주의 질문에 “정주영 회장의 손금은 막쥔손금이다”라고 답했다. 막쥔손금이란 운이 강한 손금으로 지능선과 감정선이 하나로 이어진 손금을 말한다. MC 이경규는 “저런 손금 가진 사람 몇 번 봤다. 그분들은 편안하게 인생을 날로 먹는 분들이 많더라”라고 맞장구를 쳤다. MC 김구라는 “김영환 전 장관도 그렇고 막쥔손금을 가진 사람을 봤는데 막쥔손금의 운명은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둘 중의 하나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이경규는 “내 아내가 막쥔손금이다. 그래서 내가 고생한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누리꾼들은 “정주영 손금, 그런 의미구나”, “정주영 손금, 그래서 엄청난 부를 쌓았나”, “정주영 손금 대박”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주영 손금 ‘막쥔손금’, 어떻게 생겼나 봤더니

    정주영 손금 ‘막쥔손금’, 어떻게 생겼나 봤더니

    정주영 손금, 강한 운의 상징…막쥔손금 어떻게 생겼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손금 풀이가 화제다. 지난 4일 방송된 tvN ‘공유TV 좋아요’에서는 온라인 손금도사 김진환이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김진환은 “이건희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의 손금은 어땠냐”는 MC 김성주의 질문에 “정주영 회장의 손금은 막쥔손금이다”라고 답했다. 막쥔손금이란 운이 강한 손금으로 지능선과 감정선이 하나로 이어진 손금을 말한다. MC 이경규는 “저런 손금 가진 사람 몇 번 봤다. 그분들은 편안하게 인생을 날로 먹는 분들이 많더라”라고 맞장구를 쳤다. MC 김구라는 “김영환 전 장관도 그렇고 막쥔손금을 가진 사람을 봤는데 막쥔손금의 운명은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둘 중의 하나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이경규는 “내 아내가 막쥔손금이다. 그래서 내가 고생한다”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누리꾼들은 “정주영 손금, 그런 의미구나”, “정주영 손금, 그래서 엄청난 부를 쌓았나”, “정주영 손금 대박”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춘규 선임기자의 지방선거 풍향계] 새정치연합 영향력 미풍? 강풍?

    지난 주말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각축을 벌인다는 전북 4개 시·군을 방문해 민심을 살폈다. 50여명이 모인 한 모임에서 6·4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현역 도의원과 시의원 지망자가 한 시간여 전부터 주민들에게 ‘얼굴도장’ 찍기에 분주했다. 공식 지방선거전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는 벌써 선거전이 달아오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난 이들이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기초 단체장이나 지방의회에서 절대다수를 점한 민주당의 목소리가 높았다. 도지사 선거에 대해서는 새정치연합 측 강봉균 전 의원이 강세라는 진단도 있었고, 민주당 인물에 밀린다는 얘기도 들렸다. 전북을 포함한 호남 민심은 수도권 호남출향 인사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새정치연합은 전략지역인 전북에서 민주당 독주의 정치지형을 뒤흔들지는 못했지만 균열은 일으키고 있었다. 수도권에서 새정치연합의 위력은 미지수다. 지난 25일 발표된 일부 언론의 수도권 여론조사에서는 새정치연합이 변수조차 아니라고 진단했다. 전북지역에서 민주당이 새정치연합에 역전했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 수차례의 선거국면에서 신당이 정국지형을 변화시킨 전례가 있다. 1985년 총선 때 신한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이끌었다. 개헌 국면에서는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각각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민주공화당을 창당해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 총선·대선판을 흔들었다. 이후에도 주로 총선·대선 국면에 신당 창당이 많았다. 1996년 총선 전 창당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는 총선에서 제1야당이 되면서 다음 해 정권을 교체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창당된 열린우리당도 과반에 성공했다. 이인제 의원의 1997년 국민신당, 2002년 정몽준 의원의 국민통합21도 대선 국면에서 창당돼 승부에 영향을 줬다.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새정치연합이 지방선거가 아닌 총선, 대선 국면에서 창당됐다면 파괴력이 컸을 것”이라는 분석들이 많다. 안철수 의원이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나 2012년 대선 때 창당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그러나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창당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지방선거와 총선, 대선 승부에 영향을 미쳤다. 새정치연합이 얼마나 정치지형의 변화를 몰고 올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심각한 만큼 앞으로 정치지형이 요동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다만 새정치연합이 중량급 인물을 얼마나 영입하느냐가 정국지형의 변화 강도를 좌우할 것이란 분석이 일반적이다. taein@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63빌딩 기둥부터 동해 가스전까지… “이 손에서 나왔소이다”

    [주말 인사이드] 63빌딩 기둥부터 동해 가스전까지… “이 손에서 나왔소이다”

    “청년들을 보면 ‘장이 정신’이 부족합니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업종이 아니라 무한한 도전이 가능한 세계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명장’인 이주형(54)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제관팀장의 목소리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제관은 도면을 보고 양복을 만드는 작업과 같다. 도면을 보고 철판에 그림을 그려 용접한 뒤 철 구조물을 만든다. 천 대신 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손끝 기술’이 필수적이다. 명장의 반열에 오르기 힘든 이유다. 이 팀장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9년에 입사해 35년간 한 직장에서 같은 일을 했다. 그는 “중간에 일반직으로 전환해 설계실에서 근무하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거절했다”며 “생산직으로 들어왔으니 한 우물만 파겠다는 결심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경력은 지난 30년간 우리나라 산업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 1980년대 미국 거대 정유사인 엑손이 발주한 ‘하모니 헤리티지 자케트’(해양 석유시추 구조물)에 참여했다. 102층 높이의 4만t짜리 구조물로 당시 세계 최고 규모였다. 이 팀장은 “고(故) 정주영 회장이 ‘해 봤어?’라고 묻는 광고에 나오는 배경이 바로 이 구조물”이라면서 “처음 입사해서는 20세기 최고 역사(役事)라 불리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1985년에는 63빌딩의 기둥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1994년 붕괴된 성수대교를 복구하는 데 참여했고, 2002년에는 이어도 과학기지 및 동해 가스전의 구조물을 만드는 공사에도 참여했다. 이후 대형 선박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이 팀장은 2008년 대한민국 명장 칭호를 받았다. 그는 “1970~1980년대 오일달러를 많이 벌어들인다는 자부심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처음에는 제관 일을 배우기 위해 장비에 손을 댔다가 뺨을 맞기 일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장이 근성’이라고 불렀다. 당시 선배들은 자신 이외에 그 누구도 기술을 가져가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출근 시간인 오전 8시보다 2시간 먼저 출근했다. 장비 청소를 하고, 끝나면 막걸리도 대접했다. 이 팀장은 “1년 정도를 이렇게 지내자 선배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면서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왕도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밤 10시에 회사 일을 마치면 바로 잔 뒤에 새벽 3~4시에 일어나 공부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대졸 중심인 사무직에 비해 생산직은 승진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지금은 노사분규가 거의 없지만 1987년 노사분규가 터졌을 때는 조업파와 비조업파가 나뉘어 직원들 사이에 갈등이 심했는데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요즘 이 팀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그는 “지금은 3D 업종이라고 해 조선업보다는 서비스업이나 정보기술(IT)로 많이 간다”면서 “하지만 힘든 일을 하며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장이 정신’을 갖추려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팀장 같은 대한민국 명장은 96개 직종에 547명이다. 대한민국 명장은 숙련기술장려법에 따라 정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인정한 해당 분야 최고 권위자다. 해당 직종 경력이 15년 이상이어야 하고 최고의 숙련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 대한민국 명장으로 뽑히면 일시장려금 2000만원이 지급된다. 계속 같은 직종에 근무할 경우 연수에 따라 계속종사장려금(연 167만~357만원)을 받는다. 기술 선진국 산업 시찰 기회가 주어지고 숙련 기술 관련 행사 심사위원 위촉, 산업 현장 교수단·청소년 직업진로지도 강사 초빙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 기업 내에서 먼저 명장 후보에 선발돼야 한다. 한 명장은 “2003년부터 도전했는데 다섯 번째인 2011년에야 명장에 선발될 수 있었다”며 “회사와의 관계도 선발에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대한민국 명장 설문 결과(2013년 8월 19일~9월 27일)에 따르면 213명의 대한민국 명장 중 남성이 91.5%(195명)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또 자기 사업을 하는 명장이 34.3%(73명), 기업 종사자가 65.7%(140명)였다. 명장들은 대부분 어려운 유년 시절의 경험을 갖고 있는 ‘자수성가형’이었다. 우선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전체 중 36.2%(77명)가 부모의 소득 수준이 하류층이었고 중하층이 29.6%(63명)으로 뒤를 이었다. 상류층이었다고 답한 이는 2.3%(5명)에 불과했다. 부모의 직업은 농업이 66.7%(142명)로 가장 많았다. 형제자매 수는 평균 5.3명이었다. 경쟁이 숙명이었던 셈이다. 남자 명장 중 장남이라고 답한 이는 46.1%였다. 집안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일을 시작한 나이는 10대 후반이 47.4%(101명)로 가장 많았다. 10대 초반에 일을 시작한 명장도 4.7%(10명)였다. 일을 시작할 당시 학력은 고졸이 53.1%(113명)로 절반을 넘었다. 중졸은 24.4%(52명)였다. 초졸 이하는 16%(34명)로 전문대졸 이상(6.6%·14명)보다 많았다. 거주지의 경우 직장에 근무하는 명장은 영남권 출신이 절반을 넘어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한 산업화 과정을 반영했다. 자기 사업을 하는 명장은 수도권 거주자가 절반 이상이었다. 기술은 바로 위 선배를 통해 배웠다는 이가 45.7%(64명)로 가장 많았지만, 스스로 익혔다는 사람도 35.7%(50명)로 꽤 많았다. 선배들이 후배를 잠재적인 경쟁자로 인식해 기술을 잘 가르쳐 주지 않던 1970~1980년대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 선진국 기술의 유입으로 혼자 습득해야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 근무 명장과 자기 사업 명장 모두 기능을 배운 이들에게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손끝 기술’이었지만, ‘자세와 태도’가 뒤를 이어 기본 인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배에게 아쉬운 점은 작업에 임하는 태도나 자세가 부족하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 가장 많았다. 기본 인성과 끈기 측면에서 요즘 젊은 세대가 미흡하다고 인식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명장들은 어떤 인성적 특질을 가지고 있을까. 첫째는 ‘꾸준한 학습과 부단한 노력’이다. 또 책임감과 자긍심이 강했다. 한 명장은 “다른 회사에서 3배의 봉급을 준다고 했지만 의리가 있어 안 간다고 했다”며 “내가 크고 가족을 먹여 살린 회사를 떠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적주의도 이들의 특징이다. 남들과 다른 업적은 현장에서 학력과 신분의 장벽을 넘어서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또 승진을 위한 거의 유일한 발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장들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것은 사실상 은퇴가 없다는 점이었다. 은퇴 후 평생 몸을 담은 회사의 계열사에 취직하거나 경력을 바탕으로 각종 강연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성재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성 명장들의 경우 자기 사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후배에게 기술을 전수하거나 경력 개발 경로가 분명하지 않은 것, 장인적 기술을 이용한 작품의 상품화가 힘든 점 등을 어려움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울산학원’ 정정길 이사장 선임

    ‘울산학원’ 정정길 이사장 선임

    울산공업학원은 5일 이사회를 열어 정정길(72) 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제5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1969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으로 설립된 울산공업학원은 현재 울산대학교와 울산과학대학 등을 운영하고 있다. 경남 함안 출신의 정 신임 이사장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대학원장, 울산대 총장,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실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지냈다. 한편 1983년부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직을 맡아 왔던 정몽준 의원은 이날 이사회에서 명예 이사장으로 추대됐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글로벌 NGO리더 기른다… 아산 프런티어 펠로십

    아산나눔재단은 글로벌 비정부기구(NGO) 리더 육성을 위해 국내 NGO 분야 실무자와 진출 희망자를 대상으로 ‘아산 프런티어 펠로십’을 시작한다고 10일 밝혔다. 아산 프런티어 펠로십은 차세대 국내 NGO 리더들에게 해외 기구 근무를 통해 실무경험과 운영노하우를 습득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6월 공모를 통해 5명의 참가자를 선발했다. 지난달 국내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이들 5명은 각각 빈곤계층의 보금자리 조성 활동을 하는 해비탯 등 미국 소재 5개 NGO에 1년간 파견돼 글로벌 NGO 활동가들과 적극 교류할 예정이다. 아산나눔재단 설립자인 정몽준 명예이사장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간 비영리 분야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이 프로그램이 국내 비영리 분야의 전문성 제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산나눔재단은 2011년 아산 정주영 회장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정몽준 의원과 현대중공업그룹 등이 중심이 되어 총 6000억원을 출연해 출범한 재단이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사설] 국가경쟁력 좀먹는 납품비리, 현대重뿐인가

    현대중공업 전·현직 임직원의 이른바 ‘갑(甲)질’ 비리 실상이 드러났다. 그제 검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협력업체로부터 구린 돈을 받은 이 회사 임직원은 부사장을 비롯해 전무와 상무, 부장, 차장에 이르기까지 전 직급에 걸쳐 예외가 없을 정도였다. 한 임원은 돈은 물론 골프회원권을 받아 사용하다 이를 되팔아 양도성 예금증서까지 챙겼다. 또 다른 간부는 마치 돈을 빌려준 것처럼 28억원 상당의 차용증을 써 공증한 뒤 매달 1200만원씩 입금하게 했다. 일부 직원은 유흥업소 여종업원이나 여동생 명의의 계좌를 만들어 돈을 받기도 했다. 세계적 대기업의 이 같은 후진적 납품 비리는 그 광범위함에 절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현대중공업이 대체 어떤 회사인가. 1970년대 초 고 정주영 회장은 직접 백사장에서 진두지휘하며 울산의 한 작은 어촌마을을 ‘천지개벽’시켜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일궈냈다. 현대중공업의 울산 미포조선소는 지난해 말 현재 수주 잔량 기준으로 단일 조선소 가운데 부동의 세계 1위다. 국내 재계 서열 7위로 청년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기업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이 회사 임원 연봉은 3억 2300만원에 이르고 직원들의 평균 연봉도 7420만원으로 국내 기업 가운데 ‘톱클래스’급이다. 그런데도 임직원이 돈에 눈이 멀었다면 그야말로 양심 불량이다. 회사 측도 “이미 해고 등 중징계를 했다”며 마치 할 일을 다했다는 태도를 보일 때가 아니다. 연간 50조원대의 매출과 1조원대의 순이익이 이 같은 부패구조에서 달성된 게 아닌지 겸허히 되돌아봐야 한다. 납품 대가로 검은돈이 오가게 되면 부실공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한국산’에 대한 신뢰 저하를 가져와 국가 경쟁력의 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문제는 납품 비리가 현대중공업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일각에선 “과연 현대중공업뿐이겠느냐”는 자조적 반문도 들려온다. 뿌리 깊은 부패구조 탓이다. 어제는 수년간 억대의 리베이트를 받은 화승그룹 임직원도 적발됐다. 수사 확대를 통해 납품 비리를 완전히 도려내는 것과는 별개로 차제에 부패 근절을 위한 전 사회적 공감대를 모으는 대대적인 캠페인에 착수할 것을 제안한다.
  • [인사]

    ■문화체육관광부 ◇과장급△지역발전위원회 파견 신용식 ■방위사업청 ◇부이사관 승진△방산정책과장 손현영△기동장비사업팀장 정상구△급식유류계약팀장 강영현 ■특허청 ◇과장급△특허심판원 심판관 반재원 ■경향신문 △전산제작국장 강기성 ■고려대 △의무기획처장 김용연 ■경희대 △서울캠퍼스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 유정완△체육대학장 전익기△국제캠퍼스 학생지원처장(취업진로지원처장 겸임) 이용택△서울캠퍼스 사무처장 김인겸△재정예산원장 김동호△대외협력처장 김중섭△신문방송국장 김민전 ■한화손해보험 ◇본부장△서울지역 강창완△부산지역 김남옥△법인1사업 전정표△법인2사업 박지호△법인3사업 안상갑◇팀장△기획관리 권양훈△인사 성시영△통합마케팅 서준호△CS추진 김민기△재무기획 강명훈△개인영업마케팅 이선기△법인영업마케팅 이영훈△감사 김형훈◇파트장△총무 이준호△CRM 정주영△브랜드전략 한건희△소비자보호 문수진△기업금융 손두호△개인금융 최광용△상품전략 안광진△손해율개선 박경식△자동차업무 정종민△일반업무기획 하진동△화재특종업무 배광희△해상업무 배상현△개인영업마케팅 김명식△방카사업본부마케팅 이응인△중부지역본부마케팅 박윤수◇지역단장△강남 이창수△강서 윤형락△강동 이진천△경기 김용운△충청 남윤왕△충북 이명수△마산 정상금△전북 박찬량△제주 홍승남◇영업부장△기업영업1 김성훈△기업영업2 하재현△기업영업3 전승원△기업영업4 곽명환△협단체영업 이동현△대리점영업 박정채△에너지영업 봉필식△국공영업 정우종△전략영업 김연면△신성장영업 유창근△방카영업1 정연중△방카영업2 정차용△신채널영업 김보승△다이렉트영업 이평복 ■전주페이퍼 ◇임원 승진△영업본부장 김영출△상무 최용근△해외영업담당 박상준△생산담당 최종호△환경에너지담당 정명운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세일즈부문 부사장 최덕준 ■한국타이어 ◇전무 승진△품질부문 문동환◇상무 승진△중국지역본부 중경공장 장맹근△마케팅본부 글로벌마케팅전략담당 임승빈△중국지역본부 PC/LT마케팅&영업담당 이상훈△마케팅본부 아세안인도마케팅&영업담당 박재범◇상무보 승진△한국지역본부 마케팅전략팀 강종인△한국지역본부 관리담당 서병철△TBR마케팅팀 오준석△미주지역본부 중남미담당 강정수△설비기술1팀 이범한△연구개발부문 연구기획담당 조남국△한국지역본부 대전공장 부공장장 유경곤△영국법인장 이강승△중국지역본부 가흥공장 부공장장 서의돈△한국지역본부 리테일마케팅팀 김만주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상무보 승진△글로벌HR팀 한강수△미국신공장 기획팀 김재우 ■쌍용양회 △전무 강현택△상무 윤민수 김종식 김두만△상무보 김용만 추대영 김병권 ■쌍용레미콘 △대표이사 사장 황동철△상무 배우영 ■쌍용머티리얼 △대표이사 부사장 김진영△전무 안정원△상무 이상억△상무보 황보상일 ■쌍용해운 △상무 박홍준 ■이랜드그룹 ◇전무 승진△이랜드리테일 윤여영△이랜드리테일 모던하우스 사업부 여신애◇상무 승진△이랜드파크 임은경△이랜드월드 장석면 정성관△이랜드리테일 김연배◇이사 승진△이랜드파크 강성민 서영희△이랜드중국법인 석은정 양일철 박정미 신성미 김영재△이랜드리테일 신인철△엘칸토사업부 우상배 ■아모레퍼시픽그룹 ◇신규 선임△부회장 백정기◇전보△감사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승진△사장 심상배
  • [안미현의 시시콜콜] 신형 제네시스가 대박나길 바라며

    [안미현의 시시콜콜] 신형 제네시스가 대박나길 바라며

    오래전 재벌가(家) 이야기를 취재할 일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공식석상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 그룹 총수인지라 동고동락한 주변 사람의 얘기를 많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에 관한 얘기 가운데 지금도 기억나는 표현이 있다. “곰 같은 외모에 뱀 같은 머리를 지녔다.” 너무 입에 발린 소리 아니냐며 시큰둥해 하자 많은 이들이 “사실상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방목 속에 갤로퍼(현대차의 첫 지프) 신화를 탄생시켰는데 머리도 (외모처럼) 곰이면 그게 가능했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어눌한 말주변 탓에 진면목이 가려서 그렇지, 알고 보면 아주 무서운 장사꾼이라는 주장이었다. 정 회장이 지난 26일 서울 하얏트호텔 행사장에 섰다. 신형 제네시스의 출시를 알리는 행사였다. 정 회장은 가벼우면서도 충격에 강한 초고장력 강판을 절반 이상(51%) 썼다며 세계 최고 품질을 자신했다. 성공하면 현대차로서는 대중차 이미지를 벗고 고급차 시장에 본격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예약 대수가 벌써 6000대를 넘었다고 하니 출발은 순조로운 듯싶다. 하지만 출시를 앞두고 벌인 4행시 짓기 이벤트에서 가장 많은 지지 댓글을 얻은 작품은 아래와 같다. 제 제네시스에서 또 물이 새네요 네 네, 현대차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 시 시속 80㎞로 박아도 에어백이 안 터지네요 스 스스로 호구 인정하셨네요, 호갱님. 물이 새는 싼타페의 결함을 쏘나타의 감성 광고에 절묘하게 빗댄 풍자였다. 올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신형 싼타페는 누수 결함 때문에 ‘수타페’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현대차는 발뺌과 무성의로 일관하다가 급기야 공식 사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올 4월에는 현대·기아차 13개 차종에서 브레이크 스위치 결함이 무더기로 발견돼 미국에서만 187만대를 리콜했다. 소비자들이 더 분통을 터트리는 것은 현대·기아차의 대응 방식이다. 역시 큰 지지를 받은 ‘제동이 안 되는데요? 네가 알아서 하세요 시동이 안 걸리는 데요? 스스로 해결하세요’라는 사행시는 고객들의 이런 불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 회장은 얼마 전 잇단 리콜 사태 등의 책임을 물어 연구개발(R&D) 담당 임원 세 명의 옷을 벗겼다. 아무리 봐도 현대·기아차는 중대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다. 국산차를 타야 한다는 국민의 애국심과 인내심은 한계를 드러내며 품질 불만을 쏟아내고 있고, 수입차의 공세 속에 브랜드 충성심도 속절없이 꺾이고 있다. 거침없이 뻗어나가던 해외 시장은 제동이 걸렸다. 유럽 자동차시장이 살아나고 있는데도 지난달 현대차의 판매 대수는 1년 전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이번에도 정 회장은 뱀 같은 머리로 무서운 장사꾼의 면모를 보여줄 것인가. 다른 건 몰라도 사행시의 풍자에 담긴 소비자들의 정서를 고통스럽더라도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것이 새로운 도약의 단초라는 생각을 해본다. 논설위원 hyun@seoul.co.kr
  • [뉴스 분석] “낡은 정치 틀 더는 안돼”… 안철수發 새정치 ‘태동’

    [뉴스 분석] “낡은 정치 틀 더는 안돼”… 안철수發 새정치 ‘태동’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28일 신당 창당 추진을 공식화했다. 안 의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창당을 위한 실무 준비 기구인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극한적 대립만 지속하는 낡은 정치 틀로는 더는 아무것도 담아낼 수 없어 이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안 의원의 창당 선언은 ‘영향력 있는’ 제3당의 등장을 예고한다. 성공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양당 체제에 도전했던 제3당의 실험은 대부분 실패했기 때문이다. 1992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통일국민당, 1997년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 2002년 정몽준 후보의 국민통합21, 2007년 문국현 후보의 창조한국당 등이 자취를 감췄다.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는 자민련이었다. 자민련은 1995년 3월 탄생해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영역을 확장한 뒤 10년여간 제3당으로서 캐스팅보트의 지위를 누렸다. 안철수의 신당이 맞게 될 정치 일정은 이와 비슷하다. 1차적으로 의미 있는 제3세력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자민련은 롤모델이랄 수도 있다. ‘김종필’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유사하기도 하다. 그러나 자민련의 성공이 지역을 기반으로 성취됐다는 점은 두 당이 성격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드러낸다. 안철수 신당의 성공과 지속 가능성은 내년 6월 지방선거와 이어질 7월 재·보궐 선거가 좌우할 전망이다. 안 의원이 “내년 지방선거에 최선을 다해 책임감 있게 참여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 만큼 인재 영입은 안철수 신당에 절실하고 시급한 일이지만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날도 창당 시점과 합류할 인사들은 공개하지 않았다. 따라서 안 의원의 독자 정치 세력화 선언은 사람을 모으기에 앞서 ‘당’이라는 깃발을 먼저 세우겠다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통상적인 창당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이는 여론의 지지가 있어 가능했다. 안철수 신당 창당을 가정한 지난 2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신당(23.8%)은 민주당(16%)을 앞질러 새누리당(44.1%)에 이어 2위였다. 안철수라는 깃발 아래 어떤 사람이 얼마나 모이느냐가 3당, 정립(鼎立) 정치의 가능성을 내다보게 하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
  • 비에 젖은 골재 불에 구워 쓰고… 물이 부족해 콜라로 양치질도

    비에 젖은 골재를 불에 구워서 사용하고, 공사의 진행을 위해 여성 감독관에게 속옷까지 선물하는 등 현대건설이 밝힌 48년 해외건설 뒷이야기는 이제 눈물겨운 추억이 됐다. 1966년 현대건설의 사상 첫 해외건설 현장인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 현장. 당시 보유한 건설 장비는 재래식 도로공사에서 사용해온 낡은 장비뿐이었다. 수량조차 매우 부족했다. 불도저 등 일부 장비는 새로 사들였지만 이를 능숙하게 다룰 기능공이 없어 곧 고장이 나기 일쑤였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최악의 조건은 날씨였다. 연일 폭우가 쏟아지는 탓에 도로포장에서 가장 중요한 모래와 자갈이 항상 젖어 있었다. 건조기에 넣고 말리려는 시도도 해봤으나 건조기 자체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고(故)정주영(당시 사장)회장이었다. 현장을 지켜본 정 회장은 “건조기에 비싼 기름을 때면서 말릴 게 뭐 있느냐”면서 “골재를 직접 철판에 놓고 구워보라”고 지시했다. 기발한 묘수는 통했다. 건조기를 이용할 때보다 생산능률이 2~3배나 높아졌다. 첫 해외건설 현장은 정 회장의 진두지휘 속에 마무리됐고, 이 경험은 현대건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초가 된 동시에 한국 경부고속도로 건설에도 밑거름이 됐다. 현대건설이 잊을 수 없다고 꼽는 또 다른 해외건설 현장은 1980~1984년 이란과 전쟁 중이던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였다. 전쟁터에서 현대건설은 의료단지를 짓고 있었다. 1983년 정수현 차장(현 사장)은 현장 관리를 위해 바그다드로 날아왔다. 건설 현장은 전장으로 나간 남자들을 대신해 여성 감독관들이 주를 이뤘다. 의료단지 현장의 감독관 역시 바그다드 공대 출신의 젊은 여성. 깐깐하고 까다로운 태도 탓에 공사 진행이 어려웠다. 정 차장은 “전쟁 중이라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우니 여성 감독관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선물해 보라”는 영국 감독관 부인의 조언에 따라 한국에서 여성 생필품을 공수하기 시작했다. 손수건, 기초화장품에서 시작해 스타킹, 속옷 심지어 생리대까지 여성에게 필요한 물품을 가리지 않고 선물 공세를 펼쳤다. 여성 감독관의 마음이 조금씩 풀리면서 공사 역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물이 부족해 콜라로 양치질해 가며 공사를 수행했던 1975~1978년 바레인 아랍 수리조선소 공사와 20만 달러짜리 불도저 1대가 순식간에 개펄 속으로 가라앉은 1993~1999년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 2단계 매립 공사도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씨줄날줄] 재벌가의 수구초심/정기홍 논설위원

    경남 의령지방의 남강 물길 한가운데에는 범상치 않은 바위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솥뚜껑처럼 생겼다 해서 솥바위로 불리는데, 재벌들의 탄생과 연관돼 있다는 그 유명한 ‘정암’(鼎巖)이다. 옛날 도인이 이곳을 지나다가 “이 바위를 중심으로 20리(8㎞) 안에서 큰 부자 셋이 나올 것”이라 예언했다고 전한다. 이 일대는 영락없는 배산임수에다 농토도 비옥해 만석·천석꾼이 많았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왜적을 물리친 승전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도인의 예언 때문인지 일대에서 태어난 이병철 전 삼성 회장과 구인회 전 LG(옛 럭키금성) 회장, 조홍제 전 효성 회장 등의 창업주가 나왔고, 이들의 창업과정 일화는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솥바위에서 8㎞ 떨어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구 전 회장은 7㎞ 떨어진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 조 전 회장은 5㎞ 떨어진 함안군 군북면 신창리에서 자랐다. 지금은 폐교된 지수보통학교(초등학교)를 같은 시기에 다녔다. 작명 이야기도 자못 흥미롭다. 삼성과 럭키금성, 효성의 회사명에는 모두 ‘별 성(星)’이 들어 있다. 옛날엔 ‘먹을거리는 곧 하늘’로 여겼다 하니 음식 만드는 솥바위를 ‘별’로 보고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항간에는 호와 관련해 이 전 회장의 호암과 구 전 회장의 연암을 솥바위 ‘정암’과 연결 짓지만 각기 호암(湖巖)과 연암(蓮庵)으로 다르다. 하지만 GS의 허씨 집안이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란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만석꾼 허만정(허창수 GS 회장 조부)씨가 사돈인 구 전 회장과 동업을 한 이래 2005년 LG가 GS와 분리되면서 ‘60년 아름다운 동업’이 알려져 회자됐다. 두 집안은 검소하고 소탈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허씨 집안은 ‘사람이 없으면 짚신을 들고 다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GS의 GS칼텍스가 오는 12일 허씨 선대의 고향땅인 지수면 압사리 일대에서 대규모 복합수지공장 준공식을 갖는다. 이창희 진주시장이 GS 임원진 등에 고향 발전을 위해 투자를 요청했다고 한다. 재계엔 명문가 출신인 이들과 달리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기업을 일군 사례는 많다. 하지만 창업주가 고향땅에 공장을 세운 경우는 찾기가 쉽지 않다. 강원 통천이 고향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금강산관광 사업과 경남 울주군(지금 울산시)에서 태어난 롯데의 신격호 회장의 ‘40년 귀향잔치’ 정도가 고향 사랑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허씨 집안은 유달리 성격이 치밀하고 숫자에 밝았다고 한다. GS칼텍스가 허씨의 선대 고향땅에서 ‘솥뚜껑 정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해진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어린이 ‘위인전 인물’이 달라졌다

    어린이 ‘위인전 인물’이 달라졌다

    어린이용 위인전의 목록이 달라지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토머스 에디슨, 이순신 등 역사 속 이름으로 채워졌던 인물전집에 스티브 잡스, 버락 오바마, 반기문 등 동시대 인물들이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고전적 개념의 ‘위인’보다는 ‘멘토’나 ‘직업 롤모델’로 인물을 평가하는 세태가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그러나 사회·역사적 검증이 끝나지 않은 당대 인물에 대해 다분히 자의적인 평가가 반영된다는 점에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인물전집 시장의 달라진 분위기는 최근 출판된 인물전을 일별해도 쉽게 감 잡힌다. 지난달 출판사 다산어린이와 비룡소는 일제히 배우 오드리 햅번 편을 펴냈다. 그동안 다산어린이의 ‘세계인물 교양만화 WHO’ 시리즈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조앤 롤링, 비틀스의 존 레넌, 자메이카의 가수 밥 말리 편 등을 출간했다. 웅진주니어의 ‘직업 인물 학습 만화’ 시리즈는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레고를 발명한 고트프레드 편을 펴냈고, 살림어린이의 ‘거장들의 시크릿’ 시리즈는 경영인 잭 웰치와 손정의, 워런 버핏,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다뤘다. 영림카디널의 ‘꿈을 이룬 사람들’ 시리즈는 경영인 이병철과 정주영, 문이당어린이의 ‘닮고 싶은 사람들’ 시리즈는 앙드레 김과 안철수 전 안철수연구소 대표 등을 목록에 포함시켰다. 1958년 학급문고간행회의 ‘위인전’이 마하트마 간디와 막사이사이, 이순신 등으로 구성되고 1972년 계몽사의 ‘소년소녀 세계위인 전집’이 석가모니와 공자, 유방 등을 소개했던 데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독자들의 구매 현황에서도 달라진 분위기는 감지된다. 15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어린이 인물 전기 분야에서 베스트셀러 1위는 2011년 ‘반기문 총장님처럼 되고 싶어요’(명진출판사), 2012년 ‘스티브 잡스’(문이당어린이)가 차지했다. 올해 순위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아버지의 편지(다산 정약용)’(함께읽는책)가 1위를 차지했지만 개그맨 김병만의 자서전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실크로드·3위), ‘노력의 멘토 반기문’(참돌어린이·5위), ‘박지성처럼 꿈꿔라’(주니어김영사·8위) 등 현대 인물의 전기도 여전히 강세를 나타냈다. 예스24의 올해 같은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멘사 회장 빅터 세리브리아코프의 이야기를 다룬 ‘어린이를 위한 빅터’(한국경제신문·2위), ‘1대 100 요리 에드워드 권’(스콜라·5위)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처럼 수십년 꿈쩍없던 인물전집의 목록이 바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출판계에서는 “기존의 인물전이 고루한 느낌을 주면서 시장성이 떨어지고, 직업 교육이 강화돼 ‘위인’보다 ‘롤모델’이 중요하게 인식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찰리 채플린과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 등을 포함해 ‘만화 인물 평전’을 완간한 돌베개의 관계자는 “익숙한 인물들에 학부모 독자층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 출판사가 새로운 인물 발굴에 나선 것이 가장 큰 변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웅진주니어 관계자는 “‘직업적 멘토’를 강조하는 등 교과 과정에서 직업 교육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 ‘직업 인물 학습 만화’ 시리즈의 기획 배경”이라면서 “독자들에게도 갈수록 세분화되는 직업을 다양하게 다뤄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대 변화 속에서도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재복 아동문학평론가는 “직업의 다양화에 따라 더 넓은 범위에서 인물을 다루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인물의 전기에는 사회적 합의를 거친 보편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면서 “시간의 무게를 견디면서 검증되는 절차를 밟지 않고 단순히 경제·정치적 성공의 잣대로 인물을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가치 판단이 어려운 어린이에게 특정 인물의 장점만 부각시켜 전달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면서 “유명한 인물의 성공 이야기를 주입시키는 것보다 사회에는 다양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2002년의 추억과 2013년의 기억/이기철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2002년의 추억과 2013년의 기억/이기철 체육부장

    부산아시안게임이 한창이던 2002년 10월 1일, 부경대 체육관에서 처음으로 북한 국기가 게양되고, 북한 국가가 연주됐던 기억이 새롭다. 북한 역도의 간판 리성희(당시 24)가 여자 53㎏급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북한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북한은 남측 관중에게 아홉 번 국가를 들려줬다. 대회 직전 정부는 인공기를 들고 응원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라고 엄포를 놓았던 터여서 기자는 북한 국기와 국가의 공식 등장이 당혹스러웠고, 새삼스러웠다. 시상식장의 미녀 응원단이 눈물을 글썽거렸던 모습이 아직 선연하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9월, 이번에는 태극기와 애국가가 북한에서 게양되고 울려퍼졌다. 12일, 남북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서 태극기와 정식국호 대한민국이 공개석상에 등장한 것이다. 지난 18일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끝난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역도선수권대회 입장식에서다. 14일 대회 남자 주니어 85㎏급에 출전한 19세의 김우식이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애국가가 연주됐다.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회가 아니었지만 북한을 방문했던 대통령도, 정치인도, 기업인도 하지 못한 일을 스포츠가 해낸 것이다. 대회에서 모두 여섯 번 애국가가 울렸다. 평양 역도대회를 이끈 전창범 선수단장은 “애국가가 연주될 때마다 우리 선수들 모두 큰소리로 따라 불렀다”고 전했다. 이전까지 북한은 애국가와 태극기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2008남아공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남북한 간의 평양 경기를 두고 북한은 제3국인 중국 상하이에서 경기를 치렀다. 홈 경기의 이점을 포기할 정도로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한 거부 반응이 극심했다. 이런 북한이 이번 대회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전 단장은 “장내 아나운서가 ‘남조선’으로 잘못 부른 것에 대해 대한민국으로 불러달라고 시정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여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고 했다. 북한 전역을 커버하는 조선중앙TV는 15일 오전 11시쯤부터 15분간 김우식 등의 경기와 시상식 장면을 북한 주민들에게 방송했다. 화면에서 태극기는 클로즈업되지 않았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까지는 희미하게나마 7초 남짓 흘러나왔다. 북한의 이런 전향적인 움직임은 변화를 위한 나비의 날갯짓으로 읽힌다. 스위스 유학 시절 농구에 빠졌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미 프로농구 출신 데니스 로드먼을 초청해 자신의 딸을 안아보게 하는 등의 환대를 베풀었다. 최근엔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남한의 IOC 위원 도전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스포츠가 체제 선전과 통치 코드인 북한에서 이런 행보는 1990년대의 국제 대회에서 남북한 단일팀 구성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서독의 꾸준한 스포츠 교류가 통일의 물꼬를 튼 것이나 미국과 중국의 수교를 이끌어낸 핑퐁외교에서 보듯 스포츠는 정치나 이념의 장벽을 뚫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북한에서 다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가 금지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북한의 변화만 기다리며 손을 놓고 지낼 수는 없다. 김우식이 북한에서의 사상 첫 애국가 연주 기회가 올 줄 모르고 땀을 흘렸듯, 우리도 남북 관계에서 기회가 왔을 때 꽉 잡을 수 있도록 마중물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할 때다. 정치와 행정이 열아홉 살짜리 역도 선수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chuli@seoul.co.kr
  • [하프타임] 원정식, 평양역도대회 5관왕

    원정식(23·고양시청)이 지난 16일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아역도선수권 및 아시아클럽대항전 남자 69㎏에서 인상 144㎏, 용상 180㎏, 합계 324㎏으로 우승했다. 원정식은 클럽대항 경기에서도 같은 기록으로 인상 2위, 용상 1위, 합계 1위를 차지해 모두 5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7일 폐회식을 가진 선수단은 18일 오후 귀국한다.
  • 평양에 태극기 첫 등장… 분단역사 이정표

    평양에 태극기 첫 등장… 분단역사 이정표

    대한민국 역도선수단의 기수 구원서(아산시청)가 지난 12일 북한 평양의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2013 아시안컵·국제클럽 역도선수권 개회식에서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의 북한 여성 진행자가 든 피켓에는 ‘대한민국’과 ‘KOR’이 선명하다. 북한의 공개 스포츠 석상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고, 우리 국호가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AP통신은 연초만 해도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남북한 사이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맹은 13일 오후 4시부터 주니어 여자 69㎏급의 권예빈이 한국 선수로는 처음 경기에 나서며 선수단 전원이 응원에 나섰다고 밝혔다. 대한역도연맹 제공
  • 속타는 역도연맹

    북한 평양에 선수단을 파견한 대한역도연맹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10일 평양에 도착한 선수단과 국제전화로 의사를 교환하거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어서다. 우선 대회 장소부터 혼동을 낳고 있다. 연맹은 12일 오전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날 오후 3시부터 평양 보통강구역의 정주영체육관에서 개회식이 열린다고 밝혔다. 당초 북한이 아시아역도연맹(AWF)에 접수한 공문에 따르면 경기장은 평양실내체육관(Pyongyang Indoor Stadium)으로 표기돼 있다. 연맹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주영체육관의 영문 이름을 이렇게 표기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연맹은 선수단을 통해 어찌 된 일인지 상황을 확인할 길이 없다. 평양의 선수단 임원이 중국에 팩스를 보내면 중국에서 다시 연맹에 보내줘 전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전달된 팩스에 따르면 선수들은 개회식 뒤 전날에 이어 두 번째로 정주영체육관에서 훈련한다. 사상 첫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가 기대되는 남자 69㎏급의 원정식(23·고양시청)과 남자 85㎏급의 천정평(28·수원시청)은 오는 16일 각각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5시 경기에 나선다. 현대와 북한의 합작으로 세워진 정주영체육관은 2003년 10월 완공 기념으로 통일농구대회가, 2005년 8월엔 가수 조용필의 공연이 열렸던 곳이다. 연맹 관계자는 “구체적인 경로를 확인해줄 수는 없고 또 앞으로도 팩스 중계가 계속될지도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정주영의 꿈’ 유라시아 철도사업 보인다

    ‘정주영의 꿈’ 유라시아 철도사업 보인다

    현대자동차 그룹 계열사 현대로템이 러시아 철도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 이를 통해 한·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탄력 받고 있는 유라시아 횡단 철도 연결사업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현대로템은 러시아 국영 중공업회사인 UVZ(UralVagonZovod)사의 알렉세이 티샤예프 철도사업본부장 등이 10일 자사의 창원 철도차량 공장과 연구소를 방문해 러시아 철도사업에 대한 협력 및 기술이전 방안 등을 논의한다고 8일 밝혔다. UVZ사는 러시아 연방정부가 지분 100%를 소유한 국영회사로 화물철도차량, 특수차량을 생산한다. 2012년 매출액이 60억 달러, 직원 수만 7만명에 이른다. 현대로템은 러시아와의 철도사업 협력이 앞으로 유라시아 철도 연결사업으로까지 확장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현대로템이 설계·생산기술, 기자재 공급과 시스템 엔지니어링을 주도하고 차량은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 생산하거나 남북한과 러시아가 유라시아 철도연결 사업에 합의하는 경우 북한에서도 차량의 조립,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그룹에 따르면 유라시아 횡단 철도 연결은 오랜 숙원 사업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생전에 “우리가 만든 열차로 부산에서 서울, 평양을 거쳐 유럽까지 가고 싶다”고 꿈을 피력해 왔으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유라시아 철도사업에 적극 참여할 것을 주문해 왔다. 정 회장은 평소 “부산에서 독일 함부르크까지는 1만 9000㎞로, 배로 가면 27일이나 걸리지만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이용하면 10일이면 충분하고, 운임도 컨테이너 1대당 평균 980달러로 선박 이용(2200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언급해 왔다. 사업 가시화에 대한 계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통해서 마련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며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앞서 2008년부터 현대로템은 러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작업을 꾸준히 벌여왔다. 지난해 10월에는 러시아 철도청과 철도차량 공급, 인증, 연구개발에 대한 협력 합의서를 체결한 바 있다. 현재 러시아가 2015년까지 개통할 모스크바 순환선 전동차 231량(4억 달러)과 모스크바 지하철 고급 전동차 2500량(42억 달러)에 대한 입찰을 준비 중이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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