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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현대차그룹(상)] ‘품질경영’ 싸구려車 불식 성공… 개혁 ‘가속페달’ 세계가 주목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현대차그룹(상)] ‘품질경영’ 싸구려車 불식 성공… 개혁 ‘가속페달’ 세계가 주목

    1998년 10월 30일 밤 미국 CBS방송. 토크쇼 진행자인 데이비드 레터맨은 “우주에서 장난칠 수 있는 것 10가지가 무엇일까”라는 문제를 냈다. 10가지 답 중 하나는 “우주선 계기반에 현대차 로고를 붙이라”는 것. 고장 잘 나는 현대차 로고를 보면 우주비행사가 지구로 귀환을 못할 거라 걱정해 깜짝 놀랄 것이라는 부연 설명까지 곁들였다. 레터맨은 다른 회차 방송에서도 “현대차를 80마일 이상으로 달리게 하는 방법은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것뿐”이라고도 했다. 뼈 있는 농담에 미국인은 포복절도했다. 그만큼 한국차는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에서 저가의 차로 인식됐고 조롱의 대상이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현대차는 아시아 변방 국가가 만든 싸구려 차였다. 심지어 ‘일회용 차’라는 수치스러운 별명도 따라다녔다. 가진 것이라곤 가격 경쟁력밖에 없었다. 그나마 구매 소비자층은 가난한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이었다. 1999년 당시 미국을 방문한 정몽구 회장에게 현지 딜러들은 “차가 좋지 않아 못 팔겠으니 좋은 차를 만들어 달라”고 거세게 요구하기도 했다. 참혹한 혹평만 듣고 귀국한 정 회장은 바로 컨설팅 기업인 JD파워에 품질과 관련된 자문을 하라고 지시했다. 생산라인은 중단됐고 신차 출시 일정을 무기한 미뤘다. 이른바 현대차가 내세우는 ‘품질경영’의 시작이다. 제품의 보증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모험도 감행했다. 미국시장에 내건 ‘10년 10만 마일 보장’에 당시 도요타나 혼다 등 잘나가는 일본차 업계는 “미친 짓”이라며 비웃었다. 당시만 해도 ‘2년 2만 4000마일 보장’이 일반적이던 때였다. 그러나 현대차는 흔들리지 않고 계획을 밀고 나갔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웃던 경쟁회사들이 오히려 현대차를 따라왔다. 자신들의 보증조건을 ‘3년 3만 6000마일’로 늘리더니 급기야 ‘5년 6만 마일 보장’을 조건으로 내거는 회사도 생겨났다. 개혁은 쉽지 않았다.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곧 회사 이미지 실추와 판매 급감으로 이어진다는 위기 의식이 있었지만 고쳐야 할 것들은 너무 많았다. 현대차 직원들은 미국, 유럽 등 세계를 돌며 소비자의 불만이 무엇인지를 꼼꼼히 체크해 생산에 반영했다. 정 회장은 생산과 영업, 애프터서비스 등 부문별로 나뉘어져 있던 품질관련 기능을 묶어 품질총괄본부를 발족시키고 매달 품질 및 연구개발, 생산담당 임원들을 모아놓고 품질관련 회의를 주재했다. 임원들과 시중에 판매 중인 차를 다시 뜯어 재조립하며 품질 개선방안을 하나하나 지시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현대·기아차는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올해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로 선정됐다. 신차 품질조사만 하면 늘 하위권이던 차가 2009년 일반 브랜드 순위에서 최고 자리에 오르자 미국인들은 긴장했다. 2010년 1월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자동차 업계 최고 강자’라는 제목의 표지기사를 통해 현대차의 성공을 극찬했다. 포천은 ‘현대차의 발전은 속도 위반 딱지를 뗄 정도’라며 발전 속도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또 이런 성공 뒤에는 정 회장의 품질, 기술 중심 경영 전략과 꾸준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달라진 시선은 매출에 반영됐다. 선진국 시장에서의 위상 변화는 남미와 동남아 등 신흥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초석이 됐다. 1999년 세계 판매 순위 10위였던 현대·기아차는 2000년대 들어 자동차업체 중 가장 빠른 성장을 이어 가며 세계 5위 자동차메이커로 올라섰다. 내부 변화도 적지 않다. 2000년 국내 최초의 자동차 전문그룹을 표방한 현대차그룹은 업종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2000년부터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부품의 모듈화와 전문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현대모비스는 2008년 세계 부품업체 20위권 안에 진입한 데 이어 2009년에는 12위까지 올랐다. 공작기계와 첨단부품을 생산하는 현대위아, 변속기 전문업체 현대파워텍, 전자제어시스템 전문업체인 현대케피코 등 계열사는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시장의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자산이 됐다. 여기에 현대제철이 최근 동부특수강을 인수함으로써 현대차는 쇳덩이부터 부품,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룬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자동차 그룹의 위상을 완성했다. 범(汎)현대가의 장자로서의 위상도 굳건하다. 현대제철의 확장과 현대의 모태인 현대건설의 인수를 꼽을 수 있다. 사실 제철 사업은 아버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꿈이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여러 차례 제철소 건설을 위해 그룹의 역량을 쏟았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2010년 4월 현대가의 상징인 현대건설 인수가 갖는 상징성 역시 말할 나위가 없다. 국내 위상도 과거 현대가의 명성에 접근했다. 현대·기아차가 주축이 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하다. 국내총생산(GDP)의 3.3%, 총 고용의 7.3%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으로, 단일 산업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경제기여도다. 고용 면에서는 현대차그룹은 직접고용 총 12만여명을 포함해 협력회사, 연관업체 등에 걸쳐 막대한 고용 파급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현대차그룹(상)] ‘와신상담’ 차남 정몽구 현대차그룹 재계 2위로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현대차그룹(상)] ‘와신상담’ 차남 정몽구 현대차그룹 재계 2위로

    2001년 3월 ‘왕(王)회장’인 정주영 회장의 죽음은 현대가(家)에 있어선 변화의 서곡이었다. 재계 1위 현대그룹(현재 범현대가)은 2년 후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2세인 ‘몽’자 돌림 형제에 의해 6개의 소그룹으로 계열분리됐다.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근 회장의 현대백화점그룹, 고 정몽헌 회장의 현대그룹(현재는 부인 현정은 회장),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현대중공업그룹, 정몽윤 회장의 현대해상화재보험그룹, 정몽일 회장의 현대기업금융 등이다. 하지만 현재 정몽일 회장의 현대기업금융은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로 흡수돼 모두 다섯 개의 기업집단만 남아 있다. 왕회장의 사망과 함께 무너지는 듯했던 현대 신화를 다시 쓴 이는 차남이자 현존하는 형제들 중 큰형님인 정몽구가 이끄는 현대차그룹이다. 삼성 신화에 가려져 스포트라이트가 비교적 덜한 편이지만 현대차는 명실상부한 재계 2위다. 5남인 정몽헌에게 현대가를 위임한다는 아버지의 육성 메모에 쓸쓸히 자동차 부문만 들고 떠난 정몽구 회장의 뒷모습을 생각하면 와신상담이다. 현대차그룹은 2010년에 시가총액 100조원을 기록하는가 하면 지난해 매출 132조원, 영업이익 9조 7000억원을 넘어섰다. 3남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은 왕회장 아들 중 처음으로 명예회장 직함을 달았다. 그룹도 단단해졌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구조조정을 거친 끝에 지난해 매출 5조 6000억원을 기록하며 재계 순위 23위에 올랐다. 보수적인 경영 덕에 기업의 부채비율은 38.3%로 대기업 가운데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 현재는 장남인 지선씨가 회장, 교선씨가 부회장이다. 가장 다사다난한 시기를 겪은 곳은 현대그룹이다. 과거 현대가의 영광을 찾기 어렵다. 2001년 자금난에 빠지면서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아오던 현대건설은 결국 범현대계열에서 계열분리됐다. 2010년 6월 채권단에 의해 현대건설 매각 작업이 재개됐고, 우여곡절 끝에 2011년 1월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에 인수됐다. 범현대가의 모태가 현대건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정은 회장으로서는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게 됐다. 현대종합상사와 현대오일뱅크 역시 유동성 위기 때문에 범현대 계열에서 분리된 후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의 품에 다시 안겼다. 1988년 무소속으로 정몽준 전 의원이 정치계에 발을 들인 후 전문경영인 체계를 다진 현대중공업 역시 지난 10년간 굴곡이 많았다. 2002년 현대삼호중공업을 시작으로 2008년 하이투자증권, 2009년 현대종합상사, 2010년 말 현대오일뱅크를 계열사로 편입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최근 경기침체 여파에 올 2분기 1조원대의 영업손실에 이어 3분기에도 2조원대의 영업손실이 났다. 어닝쇼크 수준의 충격에 사촌동생인 정몽진 KCC 회장이 현대중공업을 살리고자 주식 3000억원어치를 사들이겠다고 나설 정도다. 정치인 정몽준 역시 위기의 계절이다. 2005년 대선 좌절에 이어 지난 4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정치 인생의 제2의 위기를 겪고 있다. 시대의 흐름과 경기의 파고 속에 현대가의 품을 떠난 기업도 있다. 외환위기 당시 LG반도체를 인수할 정도로 덩치를 불렸던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는 뿔뿔이 흩어졌다. 특히 사명을 하이닉스로 바꾼 반도체 부문은 2012년 SK그룹에 인수됐다. 정보통신부문은 팬택에, LCD 사업부는 중국 기업에 매각됐다. 건설업계 10위를 달렸던 고려산업개발은 두산그룹에 인수돼 사명을 두산건설로 바꿨다. 해수담수화 세계 1위 기업인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역시 두산의 품에 안겼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아부지,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예

    아부지,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예

    한국전쟁 흥남부두 피란 행렬, 무너져 버린 독일 탄광 갱도, 총탄이 빗발치는 베트남 건설 현장, 억척스럽게 생활하며 지켜내야 하는 국제시장통 가게 ‘꽃분이네’, 피란 때 헤어진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기 위해 헤매던 여의도광장…. 아버지는 그곳에 있었다. 힘겨운 세월을 건너온 우리 시대의 아버지 세대가 발붙이고 있었던 상징적인 공간들이었다. 선장이 되고 싶었던 덕수(황정민 분)의 어릴 적 꿈은 가장의 책임감에 치여 언감생심 입 밖으로 꺼내지조차 못했다.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 화면에 삶 속으로, 시간 속으로 날아가는 나비의 가냘픈 날갯짓 같은 일장춘몽이었다. 그래도 늙은 덕수는 회고한다. “아버지, 이만하면 저 잘 살았지요”라고. 영화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이 시대를 허위허위 건너온 우리들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에 광부로 나갔다가 간호사로 파견 와 시체만 닦고 있던 영자(김윤진 분)를 만났지만 무너진 탄광에서 구사일생하고, 여동생 결혼 자금을 마련하려 베트남에서 기술노동자로 일한 뒤 총탄에 맞아 죽을 고비도 넘긴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언론시사회에 앞서 영화사 측이 일회용 휴지를 나눠준 것도 울지 않고는 못 배길 거라는 자신감이었을 터이다. ●정주영 회장·앙드레 김·이만기 보는 재미 쏠쏠 특히 1983년 서울 여의도광장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가득 메웠던 이산가족들의 간절한 울부짖음은 TV 자료 화면만 봐도 여전히 울컥하게 된다. 흥남부두에서 헤어졌던 아버지와 여동생 막순이를 애타게 찾던 덕수는 이 행사에서 미국으로 입양 가서 살고 있던 동생 막순이를 33년 만에 극적으로 해후한다. 봐도 봐도 눈물이 쏟아진다. 윤제균 감독이 2009년 ‘해운대’ 이후 5년 만에 연출을 맡았다. 청년 덕수, 어린 덕수, 노년 덕수의 50~60년에 걸친 시간을 마구 오가는데도 스크린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매끄럽다. 영화 컷과 신을 절묘하게 전환하며 시간과 공간을 창출한다. 영화 곳곳에는 현대사의 실제 인물들이 있다. 흥남 철수 때 미군 장성을 설득해 피란민들을 군함에 태웠다는 현봉학 박사를 비롯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디자이너 앙드레 김, 미래의 천하장사 소년 이만기, 베트남 전쟁터에서 “저 푸른 초원 위에”를 흥얼거리던 가수 남진 등이 덕수 또는 달구(오달수 분)와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온 인물들이다. ●대통령·고위층의 부정부패는 어디에 하지만 묘하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요구하는 정서를 쭉 따라가다 보면 문득 불편해진다. 역사의 사건 중 무엇을 보느냐, 그 자체가 정치적 입장을 설명한다. 윤 감독은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자식 세대와 아버지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영화의 시선은 아버지 세대에 머물러 있다. 한국전쟁 때 국민을 내팽개친 뒤 한강대교를 폭파시키고 먼저 도망친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나, 독일로 광부를 보내고 근대화 역군이라고 칭송하던 시절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물론 법의 이름을 빌려 국가가 살인을 저지른 일 등으로 상징되는 추악함은 찾아볼 수 없다. ‘국제시장’ 속 베트남 군인들은 1980년대 냉전시대 람보 영화에서 그랬듯 자기네 인민들을 마구 학살할 정도로 잔혹하다. 반면 덕수를 비롯한 한국인은 베트남인들에게 따뜻한 온정과 연민의 손길을 건넨다. 마치 미군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또한 덕수의 자식들은 행복에 겨운 삶을 살면서도 누구 덕에 이만큼이나 살게 됐는지도 모른 채, 아버지가 겪어 온 세월 속 노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랑은 대화가 안 된다”며 무시한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화면에 세련된 방식으로 기존 우익사관을 버무린 작품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미지수다. 12월 17일 개봉. 12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커버스토리] 오너일가의 승진법

    [커버스토리] 오너일가의 승진법

    ‘별 중의 별’을 쉽게 따는 이들이 있다. 재벌 총수 일가다. 경영권 승계라는 이유로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경영수업을 시작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재벌 총수 일가의 평균 입사 연령은 27.9세, 임원 승진은 34세, 사장 승진은 42.2세다. 그룹 회장에 오른 것은 평균 54.2세다. 그나마 회장에 오르는 기간이 긴 편이지만 대부분 이유는 선대(先代) 회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45)은 1994년 24세의 나이로 현대차에 입사해 5년 만인 1999년 29세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32세가 되던 2002년에는 전무, 다시 1년 후인 2003년 초에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급기야 35세에는 기아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39세인 2009년에는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3세 경영 맞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6)도 91년 23세로 입사해 10년 만인 2001년 33세로 임원을 달았다. 10년이라고 하지만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잠시 근무한 후 대부분의 시간은 미국 유학으로 보냈다. 33세의 나이로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로 재입사해 35세 상무, 39세 전무를 거쳐 40세가 되던 해인 2010년 삼성전자 사장에 올랐다. 부회장이 된 것은 지난해 1월. 당시 나이 45세였다. 보통 사람이면 상상도 못할 고속 승진이지만 그들만의 리그에선 두 사람이 그리 빠른 편도 아니다. 한진은 오너 일가의 승진이 빠른 기업 중 하나다. 조양호 한진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40) 한진관광 대표는 1999년 25세로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하고 불과 6년 만인 2005년 대한항공 상무보가 됐다. 당시 나이 31세다. 장남 조원태(39) 대한항공 부사장·한진칼 대표도 2008년 33세에 여객사업본부장이 된 후 이듬해 전무를 거처 지난해 부사장이 됐다. 막내인 조현민(31) 대한항공 전무는 24세인 2007년 과장으로 입사한 뒤 3년 만인 27세에 상무보로 승진했다. 현재 직함인 전무가 된 것은 29세 때다. 고속승진이 보장됐지만 일단 밑바닥부터 출발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 4월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의 장남 형모(26)씨는 LG전자 대리로 입사했다. 첫 직장인 외국계 회사의 경력을 인정해 대리에 올랐고 현재는 경영전략 업무를 담당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36)씨도 2006년 LG전자에서 대리로 일했다. 현재는 그룹의 핵심부서인 ㈜LG에서 시너지팀 부장을 맡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차녀 정영이(30)씨도 현대상선 대리로 일하고 있다. 아예 사원으로 시작하는 이도 있다. 이재현 CJ 회장의 장남 선호(24)씨는 CJ제일제당 영업점에서 평사원으로 근무 중이다. 오너 일가가 입사해 일선 부서에 배치되면 해당부서는 발칵 뒤집힌다. 부서가 과거 왕세자의 교육을 맡던 시강원(侍講院) 격으로 승격하는 셈이지만 정작 해당 부서장부터 일반 사원까지 오너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주 일가와 함께 일했다는 한 대기업 부장은 “오너 자녀분들이 부원들과 허물없이 회식도 하고 편하게 지낸다고 해도 같이 일하는 부서원들의 마음은 늘 벼랑 끝을 걷는 기분”이라면서 “일반 사원보다는 부장 이상 윗사람들이 더 눈치를 보는 해프닝도 벌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엔씨소프트] IT 아이돌 출신… 게임 ‘리니지’ 대박 업고 2조원 부호 반열에

    [재계 인맥 대해부 (1부) 신흥기업 엔씨소프트] IT 아이돌 출신… 게임 ‘리니지’ 대박 업고 2조원 부호 반열에

    김택진(47) 엔씨소프트 대표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22세 때(1989년) ‘아래아한글’이라는 인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주간지 표지 모델이 될 정도로 일찌감치 유명했던 ‘IT 아이돌’이다. 서른 살인 1997년 엔씨소프트를 설립하고 이듬해 다중접속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내놓으면서 게임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리니지 단 하나로만 엔씨소프트는 1998년~올해 2조원(누적)이 넘는 매출을 올렸고, 김 대표는 2011년 IT자수성가 사업가로는 사상 처음으로 2조원대 개인 재산(보유 주식 기준)을 쌓았다. 하지만 2011년 프로야구단 제9구단 NC다이노스 창단, 2012년 넥슨에 자기 주식 대량(14.68%) 매각, 지난해 환율 차를 이용해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내는 FX마진 투자에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등 ‘돌발 행동’으로 주주들의 우려를 샀다. 김 대표는 1986년 서울대 2학년 때 컴퓨터연구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IT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동아리 멤버였던 이찬진(49) 드림위즈 대표, 김형집(47) 전 나모인터렉티브 연구소장, 우원식(46) 엔씨소프트 부사장 등과 함께 1989년 아래아한글을 개발하며서 주목받았다. 그는 2011년 서울대 강연에서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학과보다는 동아리 활동이었다”면서 “대학 때 꿈꿨던 그 꿈을 이루려고 나머지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고 회고했다. 아래아한글은 한국 최초의 워드프로세서이기도 했지만 그래픽기능을 갖춘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독점하고 있었을 때다. 당시 자국 언어로 된 워드프로세서가 MS 워드를 제친 것은 ‘아래아한글’이 유일했다. 1991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병역특혜 혜택이 있는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병역 특례요원이었지만 개발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에 올랐고, 1993년 세계 최초 인터넷 기반 PC통신인 아미넷(이후 ‘신비로’로 이름이 바뀜)을 개발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김 대표를 ‘주목하고 있는 젊은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현대전자와 현대정보기술이 신비로 사업을 놓고 갈등을 빚자 김 대표는 직원 17명을 데리고 나와 1997년 3월 ‘(미래의) 다음 회사’(Next Company)라는 뜻의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창업 첫해 매출 2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매출 7567억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98년에 내놓은 리니지가 시쳇말로 ‘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리니지는 원래 엔씨소프트의 게임이 아니었다. 리니지는 송재경(47·전 엔씨소프트 부사장) XL게임즈 대표에 의해 허진호(53) 대표가 운영하던 아이네트에서 1996년부터 개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아이네트가 게임프로젝트를 포기했고, 엔씨소프트가 아이네트 게임개발팀을 영입했다. 리니지의 원작은 신일숙 작가의 만화 ‘리니지’다. 왕자·공주·기사·요정·마법사 등의 종족 중 하나를 자신의 캐릭터로 선택해 몬스터와 싸워 간다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게임 이용자가 레벨을 키워 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변신반지’, ‘순간 이동 반지’ 등의 무기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짙은 중독성 때문에 ‘리니지 폐인’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게임 속 아이템이 실제로 웃돈을 얹어 현금으로 거래돼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리니지는 해외에서도 성공했다. 2000년 타이완에서 리니지가 출시됐을 때 동시 접속자가 1만명을 돌파하자 타이완 국가 인터넷이 2~3차례 다운되기도 했다. 리니지는 여전히 엔씨소프트 게임 매출의 54.3%(지난해 기준)를 차지하는 주 수익원이다. 이후에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2003년), 아이온(2008년), 블레이드앤소울(2012년), 길드워(2005년)·길드워2(2012년) 등의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블레이드앤소울은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동시 접속자 150만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길드워2는 북미·유럽 지역에서 출시 1년도 되지 않아 누적 판매량 300만장을 돌파하고 동시 접속자 40만명을 뛰어넘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이렇게 잘나가던 엔씨소프트가 최근엔 다소 휘청거리고 있다. 신제품 출시가 뜸해 2011년 영업이익(1357억원)이 전년 대비 45.9%나 급감했다. 하지만 2012년(1513억원), 지난해(2052억원)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문제는 실적이 아닌 엔씨소프트를 세우고 키워온 김택진 대표 자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는 2012년 6월 8일 갑작스럽게 자신의 지분 14.68%를 넥슨에 매각했다. 8000여억원어치였다. 특히, 매각 가격이 전날 종가(26만 8000원)보다 싼 주당 25만원의 헐값이라 의혹이 커졌다. 2012년 6월 27만원 정도였던 엔씨소프트 주가는 6개월 뒤인 12월 28일에는 15만원까지 떨어졌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 김택진 대표가 게임사업 성장에 회의를 느낀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김 대표가 매각 금액 중 상당 금액(5000억원)을 FX마진 시장에 투자해 6개월 만에 1500억원 이상을 벌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급기야 올 8월엔 일부 주주들이 김 대표 ‘안티 커뮤니티’를 열기도 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게임에 대한 신규 이용자층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게임은 물론 캐주얼게임, 교육콘텐츠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면서 “모바일 디바이스 확대에 따른 스마트폰 게임 사업 증대를 위해 모바일게임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엔씨소프트] IT 아이돌 출신…게임 ‘리니지’ 대박 업고 2조원 부호 반열에

    [재계 인맥 대해부 (1부)신흥기업 엔씨소프트] IT 아이돌 출신…게임 ‘리니지’ 대박 업고 2조원 부호 반열에

    김택진(47) 엔씨소프트 대표는 서울대 재학 시절인 22세 때(1989년) ‘아래아한글’이라는 인기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주간지 표지 모델이 될 정도로 일찌감치 유명했던 ‘IT 아이돌’이다. 서른 살인 1997년 엔씨소프트를 설립하고 이듬해 다중접속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내놓으면서 게임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리니지 단 하나로만 엔씨소프트는 1998년~올해 2조원(누적)이 넘는 매출을 올렸고, 김 대표는 2011년 IT자수성가 사업가로는 사상 처음으로 2조원대 개인 재산(보유 주식 기준)을 쌓았다. 하지만 2011년 프로야구단 제9구단 NC다이노스 창단, 2012년 넥슨에 자기 주식 대량(14.68%) 매각, 지난해 단기적으로 큰 수익을 내는 금융투자에 수천억원을 쏟아붓는 등 김 대표의 ‘돌발 행동’이 알려지면서 주주들의 우려를 샀다. 김 대표는 1986년 서울대 2학년 때 컴퓨터연구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IT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동아리 멤버였던 이찬진(49) 드림위즈 대표, 김형집(47) 전 나모인터렉티브 연구소장, 우원식(46) 엔씨소프트 부사장 등과 함께 1989년 아래아한글을 개발하며서 주목받았다. 그는 2011년 서울대 강연에서 “대학생활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학과보다는 동아리 활동이었다”면서 “대학 때 꿈꿨던 그 꿈을 이루려고 나머지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고 회고했다. 아래아한글은 한국 최초의 워드프로세서이기도 했지만 그래픽기능을 갖춘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워드프로세서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독점하고 있었을 때다. 당시 자국 언어로 된 워드프로세서가 MS 워드를 제친 것은 ‘아래아한글’이 유일했다. 1991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병역특혜 혜택이 있는 현대전자에 입사했다. 병역 특례요원이었지만 개발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에 올랐고, 1993년 세계 최초 인터넷 기반 PC통신인 아미넷(이후 ‘신비로’로 이름이 바뀜)을 개발했다. 당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김 대표를 ‘주목하고 있는 젊은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현대전자와 현대정보기술이 신비로 사업을 놓고 갈등을 빚자 김 대표는 직원 17명을 데리고 나와 1997년 3월 ‘(미래의) 다음 회사’(Next Company)라는 뜻의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창업 첫해 매출 2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매출 7567억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98년에 내놓은 리니지가 시쳇말로 ‘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리니지는 원래 엔씨소프트의 게임이 아니었다. 리니지는 송재경(47·전 엔씨소프트 부사장) XL게임즈 대표에 의해 허진호(53) 대표가 운영하던 아이네트에서 1996년부터 개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아 아이네트가 게임프로젝트를 포기했고, 엔씨소프트가 아이네트 게임개발팀을 영입했다. 리니지의 원작은 신일숙 작가의 만화 ‘리니지’다. 왕자·공주·기사·요정·마법사 등의 종족 중 하나를 자신의 캐릭터로 선택해 몬스터와 싸워 간다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게임 이용자가 레벨을 키워 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변신반지’, ‘순간 이동 반지’ 등의 무기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큰 인기를 끌었지만 짙은 중독성 때문에 ‘리니지 폐인’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게임 속 아이템이 실제로 웃돈을 얹어 현금으로 거래돼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리니지는 해외에서도 성공했다. 2000년 타이완에서 리니지가 출시됐을 때 동시 접속자가 1만명을 돌파하자 타이완 국가 인터넷이 2~3차례 다운되기도 했다. 리니지는 여전히 엔씨소프트 게임 매출의 54.3%(지난해 기준)를 차지하는 주 수익원이다. 이후에도 엔씨소프트는 리니지2(2003년), 아이온(2008년), 블레이드앤소울(2012년), 길드워(2005년)·길드워2(2012년) 등의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블레이드앤소울은 지난해 중국시장에서 동시 접속자 150만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길드워2는 북미·유럽 지역에서 출시 1년도 되지 않아 누적 판매량 300만장을 돌파하고 동시 접속자 40만명을 뛰어넘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이렇게 잘나가던 엔씨소프트가 최근엔 다소 휘청거리고 있다. 신제품 출시가 뜸해 2011년 영업이익(1357억원)이 전년 대비 45.9%나 급감했다. 하지만 2012년(1513억원), 지난해(2052억원)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문제는 실적이 아닌 엔씨소프트를 세우고 키워온 김택진 대표 자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는 2012년 6월 8일 갑작스럽게 자신의 지분 14.68%를 넥슨에 매각했다. 8000여억원어치였다. 특히, 매각 가격이 전날 종가(26만 8000원)보다 싼 주당 25만원의 헐값이라 의혹이 커졌다. 2012년 6월 27만원 정도였던 엔씨소프트 주가는 6개월 뒤인 12월 28일에는 15만원까지 떨어졌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 김택진 대표가 게임사업 성장에 회의를 느낀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김 대표가 매각 금액 중 상당 금액(5000억원)을 FX마진 시장에 투자해 6개월 만에 1500억원 이상을 벌었다는 소문이 알려져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급기야 올 8월엔 일부 주주들이 김 대표 ‘안티 커뮤니티’를 열기도 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게임에 대한 신규 이용자층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게임은 물론 캐주얼게임, 교육콘텐츠 등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면서 “모바일 디바이스 확대에 따른 스마트폰 게임 사업 증대를 위해 모바일게임 시장에도 적극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사회 갈등 좁히는 징검다리로” 아산나눔재단 설립 3주년 행사

    아산나눔재단이 설립 3주년을 맞아 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MARU180에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이날 정몽준 명예이사장과 재단 기금 출연자, 사업 관련자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산나눔재단은 2011년 설립 이후 진행한 사업을 설명하고 미래 계획을 발표했다. 정진홍 이사장은 “아산의 도전과 창조 정신이 젊은이들에게 계승되고 청년들이 성취한 결과가 사회에 나누어지는 세상을 꿈꾼다”며 “재단이 우리 사회 갈등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다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산나눔재단은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0주기를 맞아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가 중심이 돼 6000억원을 출연해 세워졌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故 변중석 여사 7주기 한자리에 모인 현대家

    故 변중석 여사 7주기 한자리에 모인 현대家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의 7주기(17일)를 맞아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정 명예회장 자택에 범현대가 사람들이 모였다. 이날 제사에는 정몽구 현대자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딸 정지이 현대 유엔아이 전무,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 정상영 KCC 명예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정대선 현대 BS&C 대표는 부인인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제사에 참석, 눈길을 끌었다. 노씨는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 입학시킨 혐의로 지난해 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후 집안 공식행사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범현대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지난 3월 20일 정 명예회장의 13주기 제사 이후 5개월여 만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위니아만도, 15년 만에 현대家 품으로

    현대백화점그룹이 김치냉장고 ‘딤채’를 생산하는 위니아만도를 인수한다. 이로써 위니아만도는 15년 만에 다시 범현대가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10일 현대백화점은 지난 7일 글로벌 사모펀드 CVC캐피털파트너스(CVC)가 보유한 위니아만도 지분 100%를 인수한다는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고 밝혔다. 위니아만도는 한라그룹 계열 자동차 부품회사인 만도기계(현 만도) 공조사업부의 가전 부문으로 출발했는데 CVC는 1999년 한라그룹이 해체되면서 매물로 나온 위니아만도 일부 지분을 사들였다. 이후 CVC는 2006년 투자자 지분 100%를 모두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됐다. 한라그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첫째 동생인 고 정인영 회장이 창업한 회사다. 백화점 관계자는 “계약 금액을 비롯해 양사 간 세부 조건에 대한 합의가 거의 끝났기 때문에 조만간 실사를 거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매각대금은 15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현정은 회장 “현대엘리베이터, 100년 기업으로”

    현정은 회장 “현대엘리베이터, 100년 기업으로”

    현정은(59)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23일 현대엘리베이터 창립 30주년을 맞아 “한국-중국-브라질을 잇는 국내외 3대 생산거점을 바탕으로 ‘최고’를 넘어 ‘유일’을 향한 위대한 도전을 시작하자”고 강조했다고 현대그룹이 26일 밝혔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창립 30년을 맞아 발간한 사사(社史) 기념사에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글로벌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승강기 업계에서 서른 살의 현대엘리베이터가 최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이 남긴 불굴의 현대 정신 때문”이라면서 “앞으로 창립 40주년, 50주년을 넘어 100년을 영속하는 기업으로 발전해 나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현 회장이 강조한 3대 생산거점은 앞으로 현대엘리베이터가 국내시장 최강자로 자리 잡은 것을 넘어 해외로 눈을 돌리겠다는 현 회장의 의지가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정몽준, 환경미화원이 정년 연장 요구하자…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23일 관악·구로·강서 등 서남권 표밭갈이에 나섰다. 전날 강북을 훑었던 정 후보는 이날은 관악구 행운동에서 환경미화 봉사 활동을 시작으로 노인복지관 배식 봉사,쪽방촌 방문 등 일정을 이어가며 소외층 표심 공략에 주력했다. 형광 연두색 환경미화복을 갖춰 입고 흰색 서울시 헬멧을 착용한 정 후보는 새벽 6시부터 주황색 쓰레받기와 막대 빗자루를 들고 거리 청소를 시작했다. 20여분간 거리를 쓸고 나서 환경미화 차량에 매달려 이동하며 골목길 쓰레기봉투 정리 작업도 함께했다. 한 환경 미화원이 현재 61세인 미화원 정년을 62세로 늘려달라고 요청하자,“적극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도시에 사람이 살면서 매일 많은 소비를 하고,도시를 깨끗이 하기 위해 환경미화원들이 굉장히 고생을 한다”며 “그분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이어 구로구 가리봉 일대 재개발 단지 주택가 등을 둘러본 직후 부친인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을 언급하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원도에서 결혼하고 서울로 올라올 때에도 신설동 단칸방 집에서 살았다”며 “그때도 이렇게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후보는 이어서 영등포 노인종합복지관을 방문, 부인 김영명 씨와 배식 봉사를 한 뒤 노인들과 불고기 백반으로 점심을 함께하며 장년층 표심도 공략했다. 정 후보는 기자들에게 노년층이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의 안보관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면서 “박 후보의 허상과 위험해 보이는 국가관이 밝혀지면 서울시민께서 다시 한번 생각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초원복집 사건’ 녹취록 전문…구원파 기자회견 김기춘 실장 언급에 재조명

    ‘초원복집 사건’ 녹취록 전문…구원파 기자회견 김기춘 실장 언급에 재조명

    ‘초원복집 사건’ ‘구원파 기자회견 김기춘’ ‘구원파 대변인’ ‘김기춘 실장’ 구원파 대변인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언급해 초원복집 사건까지 덩달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구원파 신도들이 들고 나온 플래카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 보자”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여기서 ‘김기춘’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가리킨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거론된 것은 지난 1987년 ‘오대양 사건’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당시 오대양이라는 공장에서는 32명이 집단 자살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배후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유병언 전 회장은 별건인 사기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결국 구속됐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지금의 김기춘 비서실장이었다. 이에 김기춘 비서실장과 관련된 과거 일들도 속속 조명되고 있다. 초원복집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초원복집 사건은 지난 1992년 12월 11일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나 문제가 된 사건이다. 1992년 대선을 1주일 앞둔 12월 11일 오전 7시 부산 초원복집에서 정부 기관장들은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지역 고위 인사들이 모여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한다고 나눈 대화 내용보다 이를 몰래 녹음한 ‘도청 문제’가 오히려 역풍을 불러와 김영삼 민자당 후보에 더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 비밀회동에 참가한 기관장들은 김기춘 당시 前 법무부 장관,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92년 대선 때 국민당이 공개했던 녹취록 전문(녹취록에 나오는 직책은 당시 직책이며, 누구의 발언인지 확인되지 않는 경우는 (?)로 표시했다.) ◇참석자(9명) 김기춘 전 법무장관 김영환 부산시장 우명수 부산시 교육청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검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김대균 부산지구 기무부대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강병준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 ●녹취록 내용 김대균 기무부대장 “조선일보는 좀 잘 써주는 것 같죠. 정주영씨 좀 잘 써주지 않고…” 김영환 부산시장: 술 안하시겠어요?   (?): 허 의원은 잘했어? 김 부산시장: 다 재주좋은 사람들 아닙니까. (?): 그… 별 다는 게 쉬운 일 아닌데…. 김 부산시장: 오늘 몇분 오는가? 식당 직원: 아홉분이오. (?): 고급약 한잔 했겠구나. 김 부산시장: 어젠 저기 전 검찰총장이 오셔가지구. 정구영씨…. (?): 오늘은 김기춘이가 낸다며. 김 부산시장: 김기춘씨는 아침에 와서 했는지…. (?): 어제 어디서 했어요? 김 부산시장: 우리 업자들하고. (?): 역시 우리 대장님이 제일 빨리 오셔. (?): 어, 두분 빨리 나왔네. 어제 저녁부터 춥소. 김대균 부산기무부대장: 조선일보는 좀 잘 써주는 것 같죠. (비아냥거리듯) 정주영씨 좀 잘 써주지 않고…(일동 크게 웃음). 조선일보는 옛날에 김대중이하고도 한번 붙은 적 있지 않나… (?): 신문하고 붙으면 안돼요. 자기네만 손해지 이익볼 게 뭐 있나. (?): 큰 제목에 보니까 동아일보는 세 당을 똑같이 해주는데 여기를 작게 해준다고. (?): YS를? (?): 아니, 국민당을 글자를 작게 넣어주거든. 내용도 좀 부실하지…. (?): 동아일보는 저쪽을 좀 봐주는 것 같고. (김기춘 들어오고 이어서 참석자 소개) 기무대장님…강 회장(강병준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님…교육감입니다. 수고많습니다. 반갑습니다. 언제 왔어요? 어제 왔어요… 김기춘 전법무장관: 지금 부산은 잘 돌아갑니까? 김 부산시장: 뭐 잘 안되겠습니까. 김기춘: 보통 잘 돼가지고는 안되지. 썩 잘 돼야지. 그렇잖아요. 어제 나도 팀들하고 점심먹고 유세장에 가봤어요. 꽉 찼는데 실내체육관 스탠드 위에서 봤어요. 사람들 많이 왔데요… 그런데 가는 길에 비가 한두방울…. 권익현씨랑 공항에 나갔지(같이 왔다는 박모 얘기인 듯함). (?): 어제 수고 많이 하셨죠?(헤헤 웃음소리) 김 부산시장: 강형이 열심히 하셔야지…. (?): 맞습니다. (?): 회장님 오시네.(인사)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오랜만에 뵙습니다. 김기춘: 김기춘입니다. 오랜만입니다. 박 상공회의소 회장: 잘 기억 못하시겠죠? 김기춘: 고생 많으시죠. 박 상공회의소 회장: 아니 다 하는 걸 뭐…. 김기춘: 그동안 여러군데 다녀봤는데 광주에도, 내 처가가 광주라, 대전, 대구, 경북… (누군가 들어오며)어서오세요…안녕하세요…수고 많습니다…. 식당 직원: 지부장만 오시면 됩니까? 김기춘: 우리 경남 사람들이 좋아. 선량하고 목소리는 큰데 야물게 뭉치는 힘은 많이 약해. 단단함이 다른 지방 분들 못당해. 난 그런 걸 느낀다. 순할 때 사람이 순하더라도 독할 때는 독한게 단단한 거다. 자아비판을 하자면 그래요. (?): 그게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장점이라니 뭐. 김기춘: 평화시에는 좋은데 대결할 때 약해요. 세상이 어디 평화롭기만 합니까. 한번씩 대결해야 할 때가 있는 거지. (지부장이라는 자 들어오는 듯)어서오세요. 오래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갱생보호회에 오래 있었습니다. 장관님이 하도 잘해 주셔서. 김기춘: 갱생보호선도위원들은 검사장이 인솔하는 분들이니까 여기에 휼륭한 분들이 많지.서울서 상도 받고. 옥씨도 있었는데. (?): 옥위원, 선도위원입니다. 김 부산시장: 어제 선도위원들하고 점심 먹었습니다. 김기춘: 선도위원 분들은 하물며 부산 경남 분들이…. 정경식 부산지검장: 검찰총장이 어제 그제, 좌담회 와가지고…득표에 아주 도움이 됐답니다. 김기춘: 한 50만 나왔지. 제가 관계하는 회원들과 점심 먹고 저녁에 나오라 그래서, 가보자 해서 안에는 못들어 가고…운동장에 인산인해…체육관 계단까지 많데…정치하는 분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면 흥분될 거야. 감동적입디다. 열기도 대단…. (?): 차가 막혀서 들어가는데 대단…전철도 북새통. 김: 40만∼50만, 한국일보 보니 주최는 60만, 다른 곳은 50만이라고 하데요. 굉장합디다. (유세얘기 계속중)좌우간 어제를 기점으로 해서 부산분들 열기 좀 달아올라야…. (?): 50만이면 한 가구에 1명씩 나온 거 아닙니까? 김 부산시장: 수영만 할 때보다 많다. 장소가 사람 많이 와도 표가 안나오는 곳이라. 온통 산에다 운동장이 세개라…. (?): 좌우간 어제 박수 좀 많이 쳤습니까? 김 부산시장: 그럼 쳐야지.(일동 웃음) 김기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부산에서) 70%되니 안되니…서울 있으면 걱정이 태산이라. 믿을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다. (비아냥 투로)사실 여기서 똘똘 뭉쳐야 하는데. 저는 이제…중립내각이 나왔기 때문에 마음대로 못해서 답답해 죽겠다. (일동 웃음 ) 이해해주세요. 김 기무부대장: 나는 (부재자)투표해서 중립을 못지키겠다. 이제 저는 마음대로 해도 돼요. 장관님하고는 다릅니다. 이 안기부지부장: 용기를 내서 단합해서 회장, 부회장께…. 강 상공회의소 부회장: 외국 갔다가 월말에 들어왔는데 경찰청장, 지부장이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 김복동씨 왔다갔다 하고, 잡으러 왔다갔다 하는 소문이 수수한데 다 걱정이 되었다. 이제 조금 마음이 놓인다. 김 기무부대장: 부산에만 있으니까 안일하게 느껴지는데 다른 지역은 안 그런 것 같다. 김기춘: 그럼요. 서울에 있어보면 정말 불안한 싸움이다. 김 기무부대장: 지금 충남 같은데는 말이지 정씨가 일등한다는 소리가 있다. 김기춘: 대전 가서 유성에서 하룻밤 자고 왔는데, 맞아요…김종필이가 지도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래요. 걱정을 많이 합니다. 대구도 말이죠. TK도 이건 뭐…우리 검사장께서 통솔을 못하는 건지…사분오열돼 있지. 믿을 곳은 부산 경남이 똘똘 뭉치는 것밖에 없다. 민간인 대표로 상의회장이랑 이렇게 있으니까…내가 대구에 지방 고등검사장으로 한 2년 있었는데 신라시대부터 시작해서…또 박통부터 국가를 경영해 봤기 때문에 부산, 경남과는 달라요. 부산 국세청 세수의 4분의1도 안돼요. 단합하고 하는데 대단하다. 예를 들면 대구상공회의소 회장과 박재걸씨 등 대구는 이상연씨가 시장이었는데, 시장 이하 기관장들 목요횐가 하는 조찬모임 만들어 모여 있다. 이상희가 경북지사였는데 경북기관장회의라 해서 경장회 만들어 모여서는…대구를 떠난 지 5∼6년 지났는데도 지금도 그 모임이 있다. 어제인가 경장회 모임이 있었다.…앞으로 내 판단으로는 YS가 되고 경남은 경남대로 부산은 부산대로 중앙과의 관계 노력이 필요하다. 대구는 뭐 남들이 TK뭐 하지만 단합, 애향심의 방법을 안다. 그건 뭐 배울점이 아닌가. 김 기무부대장: 좋은 말씀. 박통 때도 그렇고 집권하니까 대구는 먹혀 들어갔는데 부산은 야당하고 그래서 많이 피해를 봤다. 이번 대선에서 경남, 부산이 발전할 기회를 못잡으면 영영 파이다. 김기춘: 노골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 접대를 좀 해달라. 야당에서는 (선거운동에 대해) 상당히 강경하지만, 아 당신들이야 지역발전을 위해서이니 하는 것이 좋고…노골적으로 해도 괜찮지 뭐…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거야. 아마 경찰청장도 양해….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이거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 (웃음) 강 상공회의소 부회장: 야당만 하고, 광주만 보아도 광주사람들 부산이나 대구 가서 선생 운동 안한다. 정주영 운동…우리는 이제 진저리가 났다. 선생도 싫고 YS도 싫고 정주영씨 경제 살리면 그만이다라고 해. 경제가 먹혀들어가니까 이제는 광주에서도 DJ를 욕한다. 김기춘: 고향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돈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 그말은 맞다. 그러나 안해봐서 모른다.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 아나 모르지. 지금 경북, 대구 사람들 섭섭하다. 30년간 대한민국을 휘두르다 놓게 되면 손해. 정권을 가지고 있으면 특혜는 못받아도 억울한 일 당하면 한다리 건너로 집권층이니까 피해는 안당했는데, 피해 안보는 것만 해도 중요한 일이지. 어떤 의미에서는 사소하지만 미국같이 민주주의 나라도 리틀 록에서 그 잔치를 벌이고 클린턴, 아칸소주 굉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죽자. (일동웃음) 남들이 비웃을 것이다. 당락을 불구하고 표가 적게 나오면 우리는 멸시받는다. 바보라고…. 이번에 거제도에 가서 물어보니까 거제도 생긴 이래 처음이라는 건데 자기 고향에서 많이 지지를 안하면, 무슨 저사람은 고향에서도 제대로 인심이 없느냐 그런다고. 제대로 해주지도 않고 다음에 가서 거제도 봐달라 그럼 말이 되느냐…지역감정이 유치한지 몰라도 고향의 발전에 긍정적…경남, 부산이 5백8만인가 그런데 80% 투표하면 4백만…그 중에서 80% 얻는다 해도 3백20만인데 그것 가지고 되겠느냐고…. (?): 국내 기자들은…표 분산…안될 수도 있다는 거죠. 김기춘: 그래 유근일이가 그거 써 가지고 요번에 막 조선일보하고 붙었는데… 조선일보하고 붙은 것은 우리 쪽에서 보면 호재다. 그 영감이 말이지 옆에 참모들이 조선일보하고 싸우면 안된다고 건의해도…그러니까 영감이 보고받고 광고 빼라 해서 확 엎어버린 거지. 옆에 참모들이 신문하고 싸우는 거 아닙니다 해도 그 영감 고집이 워낙…. 박 경찰청장: 그런 사람이 대통령 되면…안됩니다. 김기춘: …영감 재산이 2조 5000이다 3조다 그러는데 차라리 서울대나 고려대…에 기증하거나 첨단 연구단체에 1천억 넣으면 세계적 연구소…영감이 2천억 정도를 연구단체에 넣고 나는 선거자금 이렇게 썼다, 나를 찍어라 하면 얼마나 멋있게 돈썼느냐. 국가원수로 모시기는 곤란. 사생활도 문제. 김지미가 3∼4번 결혼해도 괜찮지만… 그 여자는 대통령 나오면 안되거든.…박경재도 가수하고 연애하다 신문에 나더니 쫓겨나갔다. 정주영씨도 마찬가지. 우명수 부산시교육감: 아니 장관님 아픈 데 탁 찌르네…. 김기춘: 서울에 앉아서 이래 보고받고 하면 잠이 안오는 기라. (?): …. 김기춘: …선생은 이 중요한 시기에 20일 동안 직무유기하셨구만.(일동 아부성 웃음) (?): 다 잘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는데…. 김기춘: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 5년 뒤에는 대구 분들하고 서울 분들하고 다툼이 될는지…그때 대구 분들 우리에게 손벌리려면 지금 화끈하게 도와주고…(일동 웃음)…안 그렇습니까? 박남수 상공회의소 회장 “팔이 안으로 굽는 것 같이…상공회의소 회장은 다 여당권입니다….” 박 상공회의소 회장: 팔이 안으로 굽는 것 같이…상공회의소 회장은 다 여당권입니다…. 김기춘: 그래요. 잘못되면 혁명적 상황이 와서 전부 끌려들어가야 할 판인데 여당해야지 그럼 어떡합니까?… 역대로 여당 후보가 이렇게 어려운 여건 하에서 선거를 치른 적이 없었어. 공화당 때도 우리가 다 써주고 도와줬지. 이런 건 배운 일이 없습니다. 아주 힘듭니다. 하다못해 밀양이나 거제도에 가면 촌로들이 ‘나라가 잘 된다면 그리 해야지. 공무원들이 돌아가야 하는데 안돼’라고…지난번 국회의원 선거 때 어느 부자간 얘긴데, 아버지는 여당인데 아들은 젊으니까…그러니까 아버지가 불러모아서 ‘아무개가 되어야 아버지가 군수 된다’이래 했다는 거…그게 말하자면 공무원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일인데…. 지금 민자당, 민주당은 정주영씨 하는 기업식 선거운동에 손을 든 것입니다. 과거의 민주당, 민자당의 여야간에 서로 하는 수법을 이해하거든. 서로 수가 비슷하거든. 그런데 아직…보험회사 외판원, 월부책장사에게 붙들렸다 하면 그놈들 한번 사야지 못견디지 않습니까? 보험도 한번 안들면 안되거든.기업판촉식으로 그렇게 파고드니까 정당들이 해볼 재주가 없을 정도로 아주 곤혹스럽다는 얘기입니다. 현대 직원하면 상충식으로 서로 카운터 펀치를 먹여야 되는데 정당이 그렇게 돼 있지 않거든…. 김 부산시장: 정당이라고 하는 게 원래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다. 김기춘: 거제도에 가보니까,YS본고장이지, 우리 거제도야…이웃동넨데 한면에 전부 현대야. 거제도가 본적인 놈들 전부 컴퓨터로 뽑아 가지고 그놈들 전부 휴가를 보내. 그러면 아줌마들한테 입당원서를 쓰고 운동을 할 수 있어. 그래 야단났다 싶어 촌노인들이 아무개집 아들이 국민당 한다네 하면 이놈의 자식 좀 오라고 해가지고서 네가 이 섬에 살 작정이냐 아주 떠날 작정이냐, 조용히 있다 안가면 이놈의 새끼 혼낸다. 이래 시골 어른들이 하니까 좀 주춤하지, 다른 고장에서 그런 일이 있겠어요? 저인망식으로 그냥… 위력이 대단합니다…. 김 부산시장: 12일날 뭐 하겠다는 거 뭡니까? 테레비에 나오는 거 보니까 민자당 정치자금 밝히겠다는 거…. 김 기무부대장: 우선 제일 기분좋은 사람은 김대중씨가 제일 기분이 좋고…신문을 보니까 넥타이가 나오고 시계케이스 몇만개 나오고 그러는데…. 김기춘: 민자당, 국민당 싸움이 되니까 서로 국민당은 민자당 것을 들춰내고 민자당은 국민당 것을 들춰내기가 바쁘니까. 저 사람들 찾아낼 연청 사조직이 있고 다 있는데 거기에 힘을 못 미치는 거라. 그러다 보니 이쪽끼리 싸움이…매표 부인됐다는 것…어제 선관위서, 내가 어제 라디오 방송 들었는데…그 매수, 매수죄가 된다는 거…선관위에서 유권해석을…민자당에서 아주 잘했드만. 미리미리 그렇게 김을 빼는 거지. 정치자금이란 게 옛날에 전 대통령에게 주고 무지막지해서 줬었다고 그렇게 안했습디까…그런 말도…지금 그런 얘기 해봐야 별…. (?): 다 나왔는데…뭘. 지난번 청문회에서 다 나왔는데. 이 안기부지부장: 김대중이하고 합당얘기도 나오는데 그렇게 해버렸으면 좋겠어. 그렇게 되면 진짜 완전히 동서로 갈라지니까. 김기춘: 문제는 합당해가지고 흑자하자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했으면 쓰겠어…합당해서 김영삼, 김대중 이렇게 붙으면 싸움도 안돼. 간단하게 그렇게 거저 먹는 거야…그렇게 되면 판도가 새로운…합당도 그런데, 오늘인가 만나서 둘이 무슨 공동회견인가, 뭔가…. 이 안기부지부장: 안됐습니다. 정주영이가 반대해서 안됐습니다. 김기춘: 그걸 해야지, 그것도 안하면…정주영이 참모들이 이러면 안된다고 했겠지…대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김대중이하고 이종찬이하고 가져갈 표는 가져가고 나머지를 가지고 반반 하느냐…그런데 정주영씨가 많다는 말이 있어, 그러면 투표할 필요 없지 않느냐…이종찬이도 뭐 서울서 들어보면 김대중이하고 합치느냐, 국민당에 손들어주고 들어가느냐, 그런 말이 있다고 들립디다마는 김대중의 진영에 당권을 노리고 들어가려고 하니, 그 누구야 김상현이랑 이기택이랑 이런 사람이 곤란하거든. 난데 없는 것들이 들어와 가지고 당권경쟁을 하면…돈이나 좀 받고 국민당에나 들어갈까 하라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자금이나 확보하자는 소문도 들립니다만…. 김 기무부대장: 김복동씨하고 박철언씨하고, 정주영씨가 야 몸값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지금 막판인데…YS 뭐좀 알고 있으면 터뜨려라. 몸값 안하려면 나가든지…. (?): 고민이라. 그런데 많이 주니까…. 김기춘: 그 영감이 요새 말한 것을 가만히 보면…. 김 기무부대장: 한몫을 해줘야 될 것 아니냐…. 김기춘: 그러니까 김동길이도 그저 대학교수가 그것도 아마 좋은 뭐 아파트를 사주고 요란하게 해줬다고 그래. 김 기무부대장: 지난번 지구당위원장 회의하고 김복동 의원하고 지구당위원장하고 싸움이 붙어가지고 치고받고 그랬다고 그러잖아요…노경규…뭐…대통령…. 이 안기부지부장: 그 두 지구당에 권리금이 얼마나 따라갔는가 물어보니까 처음에는 60% 따라가려 하다가 지금 입당해 가지고 30%…. 김기춘: 호남 사람이 많이 보면은 한 17∼18% 보는데…. 김 부산시장: 우리가 볼 때에 약70만으로 보는데, 호남향우회 이야기는…한 80만 된다고 하는데… 13대 대통령선거 때 DJ한테 9.2% 갔습니다…YS가 저기서 받은 0.5%에 비하면 이는 엄청난…10% 이거는 무조건 고정푭니다. 그리고 박찬종, 그외 군소정당이 3∼5%, 나머지 85% 가지고 그중에 정주영씨가 얼마나 가지고 가느냐 그에 따라서 나머지가 YS 표인데, 15%를 가져간다면 …은 끝난 것이고 그렇게 가져가면 60대로 떨어지니까 10%미만으로 떨어뜨려야 됩니다. 김: 지금 CY가 20%를 가져간다면 YS가 위험하다는 것이 중앙의 공론이거든요. 부산같은 아주 공공연한 곳에서 15%를 CY에게 뺏긴다면 다른 곳에서는…. 이 안기부지부장: 10% 미만으로 떨어뜨리면은…. 15% 이상은…80% 이상 하려면 5% 이하로 떨어뜨려야…. 현대에서 파고들어가는 것이 조직적으로 파고들어가지만 대체로 지금 자기네들 기업의 방향이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대리점, 하청업체 이런 조직을 중심으로 해서 파고들어갑니다. 부산이 그런 점에서 상당히 현대가 많이 했어. 울산시, 울산군 이런 데는 말할 필요도 없구요. 지금 보면 포항 저쪽으로 해가지고 경주, 이런 데는 영향이 있고…양산 같은 데는 부산보다 위에 있고, 김해 밀양 이런데는 위력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농촌지역이라…도시쪽으로는 상당히…. 김기춘: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일동 웃음) 우 교육감: 우리는 지역감정이 좀 일어나야 돼. 이규삼 안기부지부장 “최근 현대 수사하고 나서 많이 좋아졌어. 지금 현재 국민당으로서는 한풀 꺾였습니다. 기가 많이 죽었는데 전에 그대로 나왔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조선일보가 그걸 다 해주는데…… “ 김기춘: 도지사가 하겠습니까, 검사장이 하겠습니까, 시장이 하겠습니까? 천상 민간단체에서 야 이번에 제대로 부산놈들 본때 못보이면 다… 어제 어디 갔다 나오는데 어느 아줌마하고 어느 옷도 남루한 사람이 뭐 들고오는데 서로 수근거리더라구. 그래 내가 가서 들어보니까, 본때를 보여야 된다구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 부산을 깔봤다 그거지… 그여자가 가족들 하고 가면서… 과연 그런 어떤 감정이 우러나게 불붙여야…. 이 안기부지부장: 최근 현대 수사하고 나서 많이 좋아졌어. 지금 현재 국민당으로서는 한풀 꺾였습니다. 기가 많이 죽었는데 전에 그대로 나왔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조선일보가 그걸 다 해주는데…… 아직까지도 없는 사람들. 정주영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을 보면 지돈 지 쓰는 것 이렇게 생각하는데 부산일보하고 국제신문이 말입니다. 지역신문이 더 단결하면…. 김 부산시장: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놈들이 원체 삐딱하니까… 숨어서 지금 하고 있는데…. 김기춘: 지역신문에 광주일보다 무등일보다 이런 것은 자기네 고장사람 대통령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부산일보나 국제신문이… 한번 신문사 사장이랑 한번 밥이나 사먹이면서 고향 발전을 위해 너희가 해달라고 해보십시오. 관리들은 하기가 곤란하니까… 업계에서 말입니다. 박 상공회의소 회장: 저희들 바람은오히려 호남쪽에 유세가서 두들겨 맞고 오면… 대구 경북도 ‘에이’하고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없어. 김기춘: 지난 87년 우리 대통령 각하 전주 가서 한번 두들겨 맞고 와서는 홱 돌았잖아요. 박 상공회의소 회장: …우리 차 안에서 기억하시는가, 내가 전주하고 이리에서 유세를 보냈다고… 그때 그런 소동이 나서 그렇게 돼버리면 경상도 표가 모이는데 그것도 안되고. 김기춘: 언론에서 좀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이번에는 이렇게 한다는데… 그말은 못하니까 전부 부도덕한 돈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만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해서… 이래 은근히 지역주민을…을 해줘야 지역언론으로서, 지도 어디 언론이고… 부산경제가 잘 돼야 부산일보, 국제신문이 잘 되지, 부산 상공업계가 다 망하고 부산이 망하는데 신문인들 온전하겠어요? 그런 것을 이 광고주들 있잖아요. 경제인들 모아가지고 신문사 간부들 밥 사주면서 은근히 한번 좀…. 김 부산시장: 사장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밑에 평기자들이… 국장도 괜찮은데…. 우 교육감: 부산언론은 안좋게만 쓰는 것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요. 김기춘: 그것을… 쥐약 주는 사람은… 상공인들과 업계에서 일단 광고주 아니오? 그러니까 좀 모아 가지고 서울을 죽이고 우리를 살려야지 너희들은 고향 애향심도 없는 놈들이냐. 일본 아사히가 그렇게 일본정부를 욕해도 미국하고 싸울 때는 전부 일본정부 편을 든다고 이것이 성숙한 언론의 그런 것 아닙니까. 지금 광주 가봐라. 무등일보다, 전남일보다, 김대중이 욕하는 것 있는가. 어쩌든지 자기고장 대통령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너희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강 회장, 좀 한번 바쁘더라도… 편집국장, 사회부장, 정치부장, 이런 놈들 뭐…(돈) 주면서, 돈 걷어 뭐할라요? 명세서 끊어주면서…(일동 웃음) 이게 운동이라. 지역이 잘돼야 상공인이 잘 되고 그래야 신문도 잘 될거 아닌가 말이야. 광주하고 너무 판이하다. 너희는 대선이 끝나면 비판을 안해도 좋지만 이 기간 중 좀 도와줘야 사람의 도리다 말이지. 이 안기부지부장: 그런 부분에 좀 아쉽게 생각합니다. 언론계통에는 제가 제일 강하게 얘기하는데… 같은 세대… 거의 친구들이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 밑에 기자애들 때문에…. 김기춘: 배짱이 있으면 미다시 뽑을 때 편집국이나 편집국차장이 할텐데, 데스크 보는 애들이 괜히 밑에 놈 핑계댄다고. 나는 하려 했는데 애들이 말을 안듣고… 그러나 안돼. 통솔력이 있는 사람은 합니다. 아, 조선일보는 과격한 기자 없나, 있지만 전부 신문사 간부가 달라지니까 합니다. 나가는 논조 보세요. 박 상공회의소 회장: 언론부터 제길로 가줘야 이 부산이…상공회의소가… 김기춘: 대구에서도 상공회의소가 다 합니다. 이거 뭐… 앞으로도 분위기야 다 조성해 주겠지만 직접 나가서 뛰는 사람이 그렇게. 박 상공회의소 회장: …얼마전 택시 탔는데 기사가연설하다 오줌 싸고 차안에서 옷을 60벌이나 가지고 다니고 하는데, 오줌 싼 사람 찍어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김기춘: 내가 며칠전에 내 아이가 시험이 있어 차를 타고 나간다 해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가다 물었어. 나이가 좀 들었다. 아저씨 택시기사는 정주영씨 인기 좋다며…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저씨는 누구요? 난 YS요. 왜 YS요? 국민당에서 오셨는 모양인데… 아, 실은 내가 YS 팬이요, 제발 좀 부탁합시다. 염려마세요. 그래 내리면서 2천원인가 나왔는데 만원 주고 내렸구먼. 현대에서는 택시 타고 내리는 운동이란 게 있다는군요. 천원 나오면 5천원 주고, 만원 주고 국민당에 입당… 그러니까 누구 찍습니까, 학벌을 보나 뭘 보나 YS 찍어야 되지 않겠소. 정주영씨 하는 놈은 쓸개가 있는 놈이냐 하면서 은근히… 부산에서는 감정을… 이번에 하지 못하면 부산 놈들은 쓸개가 없는 놈이라… 부탁한다고 내린다. 그런 것이 필요할 게다. 부산 운동본부에서 아이디어 하나 내, 택시 운전사가 그걸 제일 잘 전파하거든… 타고 내리는 사람마다 대고 말이지. 이번에 부산사람들 단결 못한다고 하면 이것은 인간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상당히 반응이…. 뭐 역사적 중요한 시기에 기관장 하시니까 어렵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훗날 보면 보람있는 시민이라고 다들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아침 시간에 뵐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 부산지검장: 오늘 일정은 어떻게…. 김기춘: 점심 때 고향사람들 모아놓은 게 있어서 3시 비행기로 올라갑니다. 아마 못볼 겁니다…. 경찰청장 고생이 많소.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초원복집’ 사건, 구원파 대변인 기자회견 ‘김기춘 비서실장’ 언급에 덩달아 관심

    ‘초원복집’ 사건, 구원파 대변인 기자회견 ‘김기춘 비서실장’ 언급에 덩달아 관심

    ’구원파 기자회견 김기춘’ ‘구원파 대변인’ ‘초원복집’ ‘김기춘 비서실장’ 구원파 대변인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언급해 초원복집 사건까지 덩달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구원파 신도들이 들고 나온 플래카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 보자”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여기서 ‘김기춘’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가리킨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거론된 것은 지난 1987년 ‘오대양 사건’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당시 오대양이라는 공장에서는 32명이 집단 자살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배후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유병언 전 회장은 별건인 사기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결국 구속됐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지금의 김기춘 비서실장이었다. 이에 김기춘 비서실장과 관련된 과거 일들도 속속 조명되고 있다. 초원복집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초원복집 사건은 지난 1992년 12월 11일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나 문제가 된 사건이다. 1992년 대선을 1주일 앞둔 12월 11일 오전 7시 부산 초원복집에서 정부 기관장들은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다. 이 비밀회동에 참가한 기관장들은 김기춘 당시 前 법무부 장관,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구원파 대변인 기자회견 김기춘 언급에 초원복집 사건까지 덩달아 화제

    구원파 대변인 기자회견 김기춘 언급에 초원복집 사건까지 덩달아 화제

    ’구원파 기자회견 김기춘’ ‘구원파 대변인’ ‘초원복집’ ‘김기춘 비서실장’ 구원파 대변인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언급해 초원복집 사건까지 덩달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구원파 신도들이 들고 나온 플래카드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플래카드에는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 보자”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여기서 ‘김기춘’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가리킨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거론된 것은 지난 1987년 ‘오대양 사건’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당시 오대양이라는 공장에서는 32명이 집단 자살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배후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유병언 전 회장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유병언 전 회장은 별건인 사기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결국 구속됐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지금의 김기춘 비서실장이었다. 이에 김기춘 비서실장과 관련된 과거 일들도 속속 조명되고 있다. 초원복집 사건도 그 중 하나다. 초원복집 사건은 지난 1992년 12월 11일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나 문제가 된 사건이다. 1992년 대선을 1주일 앞둔 12월 11일 오전 7시 부산 초원복집에서 정부 기관장들은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 김대중 민주당 후보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다. 이 비밀회동에 참가한 기관장들은 김기춘 당시 前 법무부 장관,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92년 대선 때 국민당이 공개했던 녹취록 전문. 녹취록에 나오는 직책은 당시 직책이며, 누구의 발언인지 확인되지 않는 경우는 (?)로 표시했다. ◇참석자(9명) 김기춘 전 법무장관 김영환 부산시장 우명수 부산시 교육청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검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김대균 부산지구 기무부대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강병준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 김대균 기무부대장 “조선일보는 좀 잘 써주는 것 같죠. 정주영씨 좀 잘 써주지 않고…” 김영환 부산시장: 술 안하시겠어요?   (?): 허 의원은 잘했어? 김 부산시장: 다 재주좋은 사람들 아닙니까. (?): 그… 별 다는 게 쉬운 일 아닌데…. 김 부산시장: 오늘 몇분 오는가? 식당 직원: 아홉분이오. (?): 고급약 한잔 했겠구나. 김 부산시장: 어젠 저기 전 검찰총장이 오셔가지구. 정구영씨…. (?): 오늘은 김기춘이가 낸다며. 김 부산시장: 김기춘씨는 아침에 와서 했는지…. (?): 어제 어디서 했어요? 김 부산시장: 우리 업자들하고. (?): 역시 우리 대장님이 제일 빨리 오셔. (?): 어, 두분 빨리 나왔네. 어제 저녁부터 춥소. 김대균 부산기무부대장: 조선일보는 좀 잘 써주는 것 같죠. (비아냥거리듯) 정주영씨 좀 잘 써주지 않고…(일동 크게 웃음). 조선일보는 옛날에 김대중이하고도 한번 붙은 적 있지 않나… (?): 신문하고 붙으면 안돼요. 자기네만 손해지 이익볼 게 뭐 있나. (?): 큰 제목에 보니까 동아일보는 세 당을 똑같이 해주는데 여기를 작게 해준다고. (?): YS를? (?): 아니, 국민당을 글자를 작게 넣어주거든. 내용도 좀 부실하지…. (?): 동아일보는 저쪽을 좀 봐주는 것 같고. (김기춘 들어오고 이어서 참석자 소개) 기무대장님…강 회장(강병준 부산상공회의소 부회장)님…교육감입니다. 수고많습니다. 반갑습니다. 언제 왔어요? 어제 왔어요… 김기춘 전법무장관: 지금 부산은 잘 돌아갑니까? 김 부산시장: 뭐 잘 안되겠습니까. 김기춘: 보통 잘 돼가지고는 안되지. 썩 잘 돼야지. 그렇잖아요. 어제 나도 팀들하고 점심먹고 유세장에 가봤어요. 꽉 찼는데 실내체육관 스탠드 위에서 봤어요. 사람들 많이 왔데요… 그런데 가는 길에 비가 한두방울…. 권익현씨랑 공항에 나갔지(같이 왔다는 박모 얘기인 듯함). (?): 어제 수고 많이 하셨죠?(헤헤 웃음소리) 김 부산시장: 강형이 열심히 하셔야지…. (?): 맞습니다. (?): 회장님 오시네.(인사)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오랜만에 뵙습니다. 김기춘: 김기춘입니다. 오랜만입니다. 박 상공회의소 회장: 잘 기억 못하시겠죠? 김기춘: 고생 많으시죠. 박 상공회의소 회장: 아니 다 하는 걸 뭐…. 김기춘: 그동안 여러군데 다녀봤는데 광주에도, 내 처가가 광주라, 대전, 대구, 경북… (누군가 들어오며)어서오세요…안녕하세요…수고 많습니다…. 식당 직원: 지부장만 오시면 됩니까? 김기춘: 우리 경남 사람들이 좋아. 선량하고 목소리는 큰데 야물게 뭉치는 힘은 많이 약해. 단단함이 다른 지방 분들 못당해. 난 그런 걸 느낀다. 순할 때 사람이 순하더라도 독할 때는 독한게 단단한 거다. 자아비판을 하자면 그래요. (?): 그게 단점이라면 단점인데 장점이라니 뭐. 김기춘: 평화시에는 좋은데 대결할 때 약해요. 세상이 어디 평화롭기만 합니까. 한번씩 대결해야 할 때가 있는 거지. (지부장이라는 자 들어오는 듯)어서오세요. 오래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갱생보호회에 오래 있었습니다. 장관님이 하도 잘해 주셔서. 김기춘: 갱생보호선도위원들은 검사장이 인솔하는 분들이니까 여기에 휼륭한 분들이 많지.서울서 상도 받고. 옥씨도 있었는데. (?): 옥위원, 선도위원입니다. 김 부산시장: 어제 선도위원들하고 점심 먹었습니다. 김기춘: 선도위원 분들은 하물며 부산 경남 분들이…. 정경식 부산지검장: 검찰총장이 어제 그제, 좌담회 와가지고…득표에 아주 도움이 됐답니다. 김기춘: 한 50만 나왔지. 제가 관계하는 회원들과 점심 먹고 저녁에 나오라 그래서, 가보자 해서 안에는 못들어 가고…운동장에 인산인해…체육관 계단까지 많데…정치하는 분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면 흥분될 거야. 감동적입디다. 열기도 대단…. (?): 차가 막혀서 들어가는데 대단…전철도 북새통. 김: 40만∼50만, 한국일보 보니 주최는 60만, 다른 곳은 50만이라고 하데요. 굉장합디다. (유세얘기 계속중)좌우간 어제를 기점으로 해서 부산분들 열기 좀 달아올라야…. (?): 50만이면 한 가구에 1명씩 나온 거 아닙니까? 김 부산시장: 수영만 할 때보다 많다. 장소가 사람 많이 와도 표가 안나오는 곳이라. 온통 산에다 운동장이 세개라…. (?): 좌우간 어제 박수 좀 많이 쳤습니까? 김 부산시장: 그럼 쳐야지.(일동 웃음) 김기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부산에서) 70%되니 안되니…서울 있으면 걱정이 태산이라. 믿을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다. (비아냥 투로)사실 여기서 똘똘 뭉쳐야 하는데. 저는 이제…중립내각이 나왔기 때문에 마음대로 못해서 답답해 죽겠다. (일동 웃음 ) 이해해주세요. 김 기무부대장: 나는 (부재자)투표해서 중립을 못지키겠다. 이제 저는 마음대로 해도 돼요. 장관님하고는 다릅니다. 이 안기부지부장: 용기를 내서 단합해서 회장, 부회장께…. 강 상공회의소 부회장: 외국 갔다가 월말에 들어왔는데 경찰청장, 지부장이 얼마나 걱정을 하는지. 김복동씨 왔다갔다 하고, 잡으러 왔다갔다 하는 소문이 수수한데 다 걱정이 되었다. 이제 조금 마음이 놓인다. 김 기무부대장: 부산에만 있으니까 안일하게 느껴지는데 다른 지역은 안 그런 것 같다. 김기춘: 그럼요. 서울에 있어보면 정말 불안한 싸움이다. 김 기무부대장: 지금 충남 같은데는 말이지 정씨가 일등한다는 소리가 있다. 김기춘: 대전 가서 유성에서 하룻밤 자고 왔는데, 맞아요…김종필이가 지도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래요. 걱정을 많이 합니다. 대구도 말이죠. TK도 이건 뭐…우리 검사장께서 통솔을 못하는 건지…사분오열돼 있지. 믿을 곳은 부산 경남이 똘똘 뭉치는 것밖에 없다. 민간인 대표로 상의회장이랑 이렇게 있으니까…내가 대구에 지방 고등검사장으로 한 2년 있었는데 신라시대부터 시작해서…또 박통부터 국가를 경영해 봤기 때문에 부산, 경남과는 달라요. 부산 국세청 세수의 4분의1도 안돼요. 단합하고 하는데 대단하다. 예를 들면 대구상공회의소 회장과 박재걸씨 등 대구는 이상연씨가 시장이었는데, 시장 이하 기관장들 목요횐가 하는 조찬모임 만들어 모여 있다. 이상희가 경북지사였는데 경북기관장회의라 해서 경장회 만들어 모여서는…대구를 떠난 지 5∼6년 지났는데도 지금도 그 모임이 있다. 어제인가 경장회 모임이 있었다.…앞으로 내 판단으로는 YS가 되고 경남은 경남대로 부산은 부산대로 중앙과의 관계 노력이 필요하다. 대구는 뭐 남들이 TK뭐 하지만 단합, 애향심의 방법을 안다. 그건 뭐 배울점이 아닌가. 김 기무부대장: 좋은 말씀. 박통 때도 그렇고 집권하니까 대구는 먹혀 들어갔는데 부산은 야당하고 그래서 많이 피해를 봤다. 이번 대선에서 경남, 부산이 발전할 기회를 못잡으면 영영 파이다. 김기춘: 노골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 접대를 좀 해달라. 야당에서는 (선거운동에 대해) 상당히 강경하지만, 아 당신들이야 지역발전을 위해서이니 하는 것이 좋고…노골적으로 해도 괜찮지 뭐…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거야. 아마 경찰청장도 양해….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이거 양해라뇨. 제가 더 떠듭니다. (웃음) 강 상공회의소 부회장: 야당만 하고, 광주만 보아도 광주사람들 부산이나 대구 가서 선생 운동 안한다. 정주영 운동…우리는 이제 진저리가 났다. 선생도 싫고 YS도 싫고 정주영씨 경제 살리면 그만이다라고 해. 경제가 먹혀들어가니까 이제는 광주에서도 DJ를 욕한다. 김기춘: 고향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돈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 그말은 맞다. 그러나 안해봐서 모른다.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 아나 모르지. 지금 경북, 대구 사람들 섭섭하다. 30년간 대한민국을 휘두르다 놓게 되면 손해. 정권을 가지고 있으면 특혜는 못받아도 억울한 일 당하면 한다리 건너로 집권층이니까 피해는 안당했는데, 피해 안보는 것만 해도 중요한 일이지. 어떤 의미에서는 사소하지만 미국같이 민주주의 나라도 리틀 록에서 그 잔치를 벌이고 클린턴, 아칸소주 굉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죽자. (일동웃음) 남들이 비웃을 것이다. 당락을 불구하고 표가 적게 나오면 우리는 멸시받는다. 바보라고…. 이번에 거제도에 가서 물어보니까 거제도 생긴 이래 처음이라는 건데 자기 고향에서 많이 지지를 안하면, 무슨 저사람은 고향에서도 제대로 인심이 없느냐 그런다고. 제대로 해주지도 않고 다음에 가서 거제도 봐달라 그럼 말이 되느냐…지역감정이 유치한지 몰라도 고향의 발전에 긍정적…경남, 부산이 5백8만인가 그런데 80% 투표하면 4백만…그 중에서 80% 얻는다 해도 3백20만인데 그것 가지고 되겠느냐고…. (?): 국내 기자들은…표 분산…안될 수도 있다는 거죠. 김기춘: 그래 유근일이가 그거 써 가지고 요번에 막 조선일보하고 붙었는데… 조선일보하고 붙은 것은 우리 쪽에서 보면 호재다. 그 영감이 말이지 옆에 참모들이 조선일보하고 싸우면 안된다고 건의해도…그러니까 영감이 보고받고 광고 빼라 해서 확 엎어버린 거지. 옆에 참모들이 신문하고 싸우는 거 아닙니다 해도 그 영감 고집이 워낙…. 박 경찰청장: 그런 사람이 대통령 되면…안됩니다. 김기춘: …영감 재산이 2조 5000이다 3조다 그러는데 차라리 서울대나 고려대…에 기증하거나 첨단 연구단체에 1천억 넣으면 세계적 연구소…영감이 2천억 정도를 연구단체에 넣고 나는 선거자금 이렇게 썼다, 나를 찍어라 하면 얼마나 멋있게 돈썼느냐. 국가원수로 모시기는 곤란. 사생활도 문제. 김지미가 3∼4번 결혼해도 괜찮지만… 그 여자는 대통령 나오면 안되거든.…박경재도 가수하고 연애하다 신문에 나더니 쫓겨나갔다. 정주영씨도 마찬가지. 우명수 부산시교육감: 아니 장관님 아픈 데 탁 찌르네…. 김기춘: 서울에 앉아서 이래 보고받고 하면 잠이 안오는 기라. (?): …. 김기춘: …선생은 이 중요한 시기에 20일 동안 직무유기하셨구만.(일동 아부성 웃음) (?): 다 잘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는데…. 김기춘: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 5년 뒤에는 대구 분들하고 서울 분들하고 다툼이 될는지…그때 대구 분들 우리에게 손벌리려면 지금 화끈하게 도와주고…(일동 웃음)…안 그렇습니까? 박남수 상공회의소 회장 “팔이 안으로 굽는 것 같이…상공회의소 회장은 다 여당권입니다….” 박 상공회의소 회장: 팔이 안으로 굽는 것 같이…상공회의소 회장은 다 여당권입니다…. 김기춘: 그래요. 잘못되면 혁명적 상황이 와서 전부 끌려들어가야 할 판인데 여당해야지 그럼 어떡합니까?… 역대로 여당 후보가 이렇게 어려운 여건 하에서 선거를 치른 적이 없었어. 공화당 때도 우리가 다 써주고 도와줬지. 이런 건 배운 일이 없습니다. 아주 힘듭니다. 하다못해 밀양이나 거제도에 가면 촌로들이 ‘나라가 잘 된다면 그리 해야지. 공무원들이 돌아가야 하는데 안돼’라고…지난번 국회의원 선거 때 어느 부자간 얘긴데, 아버지는 여당인데 아들은 젊으니까…그러니까 아버지가 불러모아서 ‘아무개가 되어야 아버지가 군수 된다’이래 했다는 거…그게 말하자면 공무원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일인데…. 지금 민자당, 민주당은 정주영씨 하는 기업식 선거운동에 손을 든 것입니다. 과거의 민주당, 민자당의 여야간에 서로 하는 수법을 이해하거든. 서로 수가 비슷하거든. 그런데 아직…보험회사 외판원, 월부책장사에게 붙들렸다 하면 그놈들 한번 사야지 못견디지 않습니까? 보험도 한번 안들면 안되거든.기업판촉식으로 그렇게 파고드니까 정당들이 해볼 재주가 없을 정도로 아주 곤혹스럽다는 얘기입니다. 현대 직원하면 상충식으로 서로 카운터 펀치를 먹여야 되는데 정당이 그렇게 돼 있지 않거든…. 김 부산시장: 정당이라고 하는 게 원래 그렇게 돼 있지 않습니다. 김기춘: 거제도에 가보니까,YS본고장이지, 우리 거제도야…이웃동넨데 한면에 전부 현대야. 거제도가 본적인 놈들 전부 컴퓨터로 뽑아 가지고 그놈들 전부 휴가를 보내. 그러면 아줌마들한테 입당원서를 쓰고 운동을 할 수 있어. 그래 야단났다 싶어 촌노인들이 아무개집 아들이 국민당 한다네 하면 이놈의 자식 좀 오라고 해가지고서 네가 이 섬에 살 작정이냐 아주 떠날 작정이냐, 조용히 있다 안가면 이놈의 새끼 혼낸다. 이래 시골 어른들이 하니까 좀 주춤하지, 다른 고장에서 그런 일이 있겠어요? 저인망식으로 그냥… 위력이 대단합니다…. 김 부산시장: 12일날 뭐 하겠다는 거 뭡니까? 테레비에 나오는 거 보니까 민자당 정치자금 밝히겠다는 거…. 김 기무부대장: 우선 제일 기분좋은 사람은 김대중씨가 제일 기분이 좋고…신문을 보니까 넥타이가 나오고 시계케이스 몇만개 나오고 그러는데…. 김기춘: 민자당, 국민당 싸움이 되니까 서로 국민당은 민자당 것을 들춰내고 민자당은 국민당 것을 들춰내기가 바쁘니까. 저 사람들 찾아낼 연청 사조직이 있고 다 있는데 거기에 힘을 못 미치는 거라. 그러다 보니 이쪽끼리 싸움이…매표 부인됐다는 것…어제 선관위서, 내가 어제 라디오 방송 들었는데…그 매수, 매수죄가 된다는 거…선관위에서 유권해석을…민자당에서 아주 잘했드만. 미리미리 그렇게 김을 빼는 거지. 정치자금이란 게 옛날에 전 대통령에게 주고 무지막지해서 줬었다고 그렇게 안했습디까…그런 말도…지금 그런 얘기 해봐야 별…. (?): 다 나왔는데…뭘. 지난번 청문회에서 다 나왔는데. 이 안기부지부장: 김대중이하고 합당얘기도 나오는데 그렇게 해버렸으면 좋겠어. 그렇게 되면 진짜 완전히 동서로 갈라지니까. 김기춘: 문제는 합당해가지고 흑자하자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했으면 쓰겠어…합당해서 김영삼, 김대중 이렇게 붙으면 싸움도 안돼. 간단하게 그렇게 거저 먹는 거야…그렇게 되면 판도가 새로운…합당도 그런데, 오늘인가 만나서 둘이 무슨 공동회견인가, 뭔가…. 이 안기부지부장: 안됐습니다. 정주영이가 반대해서 안됐습니다. 김기춘: 그걸 해야지, 그것도 안하면…정주영이 참모들이 이러면 안된다고 했겠지…대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김대중이하고 이종찬이하고 가져갈 표는 가져가고 나머지를 가지고 반반 하느냐…그런데 정주영씨가 많다는 말이 있어, 그러면 투표할 필요 없지 않느냐…이종찬이도 뭐 서울서 들어보면 김대중이하고 합치느냐, 국민당에 손들어주고 들어가느냐, 그런 말이 있다고 들립디다마는 김대중의 진영에 당권을 노리고 들어가려고 하니, 그 누구야 김상현이랑 이기택이랑 이런 사람이 곤란하거든. 난데 없는 것들이 들어와 가지고 당권경쟁을 하면…돈이나 좀 받고 국민당에나 들어갈까 하라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자금이나 확보하자는 소문도 들립니다만…. 김 기무부대장: 김복동씨하고 박철언씨하고, 정주영씨가 야 몸값을 해야 할 것 아니냐 지금 막판인데…YS 뭐좀 알고 있으면 터뜨려라. 몸값 안하려면 나가든지…. (?): 고민이라. 그런데 많이 주니까…. 김기춘: 그 영감이 요새 말한 것을 가만히 보면…. 김 기무부대장: 한몫을 해줘야 될 것 아니냐…. 김기춘: 그러니까 김동길이도 그저 대학교수가 그것도 아마 좋은 뭐 아파트를 사주고 요란하게 해줬다고 그래. 김 기무부대장: 지난번 지구당위원장 회의하고 김복동 의원하고 지구당위원장하고 싸움이 붙어가지고 치고받고 그랬다고 그러잖아요…노경규…뭐…대통령…. 이 안기부지부장: 그 두 지구당에 권리금이 얼마나 따라갔는가 물어보니까 처음에는 60% 따라가려 하다가 지금 입당해 가지고 30%…. 김기춘: 호남 사람이 많이 보면은 한 17∼18% 보는데…. 김 부산시장: 우리가 볼 때에 약70만으로 보는데, 호남향우회 이야기는…한 80만 된다고 하는데… 13대 대통령선거 때 DJ한테 9.2% 갔습니다…YS가 저기서 받은 0.5%에 비하면 이는 엄청난…10% 이거는 무조건 고정푭니다. 그리고 박찬종, 그외 군소정당이 3∼5%, 나머지 85% 가지고 그중에 정주영씨가 얼마나 가지고 가느냐 그에 따라서 나머지가 YS 표인데, 15%를 가져간다면 …은 끝난 것이고 그렇게 가져가면 60대로 떨어지니까 10%미만으로 떨어뜨려야 됩니다. 김: 지금 CY가 20%를 가져간다면 YS가 위험하다는 것이 중앙의 공론이거든요. 부산같은 아주 공공연한 곳에서 15%를 CY에게 뺏긴다면 다른 곳에서는…. 이 안기부지부장: 10% 미만으로 떨어뜨리면은…. 15% 이상은…80% 이상 하려면 5% 이하로 떨어뜨려야…. 현대에서 파고들어가는 것이 조직적으로 파고들어가지만 대체로 지금 자기네들 기업의 방향이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대리점, 하청업체 이런 조직을 중심으로 해서 파고들어갑니다. 부산이 그런 점에서 상당히 현대가 많이 했어. 울산시, 울산군 이런 데는 말할 필요도 없구요. 지금 보면 포항 저쪽으로 해가지고 경주, 이런 데는 영향이 있고…양산 같은 데는 부산보다 위에 있고, 김해 밀양 이런데는 위력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농촌지역이라…도시쪽으로는 상당히…. 김기춘: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일동 웃음) 우 교육감: 우리는 지역감정이 좀 일어나야 돼. 이규삼 안기부지부장 “최근 현대 수사하고 나서 많이 좋아졌어. 지금 현재 국민당으로서는 한풀 꺾였습니다. 기가 많이 죽었는데 전에 그대로 나왔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조선일보가 그걸 다 해주는데…… “ 김기춘: 도지사가 하겠습니까, 검사장이 하겠습니까, 시장이 하겠습니까? 천상 민간단체에서 야 이번에 제대로 부산놈들 본때 못보이면 다… 어제 어디 갔다 나오는데 어느 아줌마하고 어느 옷도 남루한 사람이 뭐 들고오는데 서로 수근거리더라구. 그래 내가 가서 들어보니까, 본때를 보여야 된다구 이런 얘기를 하더라구. 부산을 깔봤다 그거지… 그여자가 가족들 하고 가면서… 과연 그런 어떤 감정이 우러나게 불붙여야…. 이 안기부지부장: 최근 현대 수사하고 나서 많이 좋아졌어. 지금 현재 국민당으로서는 한풀 꺾였습니다. 기가 많이 죽었는데 전에 그대로 나왔으면 큰일날 뻔했어요. 조선일보가 그걸 다 해주는데…… 아직까지도 없는 사람들. 정주영을 무조건 좋아하는 것을 보면 지돈 지 쓰는 것 이렇게 생각하는데 부산일보하고 국제신문이 말입니다. 지역신문이 더 단결하면…. 김 부산시장: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놈들이 원체 삐딱하니까… 숨어서 지금 하고 있는데…. 김기춘: 지역신문에 광주일보다 무등일보다 이런 것은 자기네 고장사람 대통령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부산일보나 국제신문이… 한번 신문사 사장이랑 한번 밥이나 사먹이면서 고향 발전을 위해 너희가 해달라고 해보십시오. 관리들은 하기가 곤란하니까… 업계에서 말입니다. 박 상공회의소 회장: 저희들 바람은오히려 호남쪽에 유세가서 두들겨 맞고 오면… 대구 경북도 ‘에이’하고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그것도 없어. 김기춘: 지난 87년 우리 대통령 각하 전주 가서 한번 두들겨 맞고 와서는 홱 돌았잖아요. 박 상공회의소 회장: …우리 차 안에서 기억하시는가, 내가 전주하고 이리에서 유세를 보냈다고… 그때 그런 소동이 나서 그렇게 돼버리면 경상도 표가 모이는데 그것도 안되고. 김기춘: 언론에서 좀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해 이번에는 이렇게 한다는데… 그말은 못하니까 전부 부도덕한 돈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만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해서… 이래 은근히 지역주민을…을 해줘야 지역언론으로서, 지도 어디 언론이고… 부산경제가 잘 돼야 부산일보, 국제신문이 잘 되지, 부산 상공업계가 다 망하고 부산이 망하는데 신문인들 온전하겠어요? 그런 것을 이 광고주들 있잖아요. 경제인들 모아가지고 신문사 간부들 밥 사주면서 은근히 한번 좀…. 김 부산시장: 사장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밑에 평기자들이… 국장도 괜찮은데…. 우 교육감: 부산언론은 안좋게만 쓰는 것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요. 김기춘: 그것을… 쥐약 주는 사람은… 상공인들과 업계에서 일단 광고주 아니오? 그러니까 좀 모아 가지고 서울을 죽이고 우리를 살려야지 너희들은 고향 애향심도 없는 놈들이냐. 일본 아사히가 그렇게 일본정부를 욕해도 미국하고 싸울 때는 전부 일본정부 편을 든다고 이것이 성숙한 언론의 그런 것 아닙니까. 지금 광주 가봐라. 무등일보다, 전남일보다, 김대중이 욕하는 것 있는가. 어쩌든지 자기고장 대통령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너희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강 회장, 좀 한번 바쁘더라도… 편집국장, 사회부장, 정치부장, 이런 놈들 뭐…(돈) 주면서, 돈 걷어 뭐할라요? 명세서 끊어주면서…(일동 웃음) 이게 운동이라. 지역이 잘돼야 상공인이 잘 되고 그래야 신문도 잘 될거 아닌가 말이야. 광주하고 너무 판이하다. 너희는 대선이 끝나면 비판을 안해도 좋지만 이 기간 중 좀 도와줘야 사람의 도리다 말이지. 이 안기부지부장: 그런 부분에 좀 아쉽게 생각합니다. 언론계통에는 제가 제일 강하게 얘기하는데… 같은 세대… 거의 친구들이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 밑에 기자애들 때문에…. 김기춘: 배짱이 있으면 미다시 뽑을 때 편집국이나 편집국차장이 할텐데, 데스크 보는 애들이 괜히 밑에 놈 핑계댄다고. 나는 하려 했는데 애들이 말을 안듣고… 그러나 안돼. 통솔력이 있는 사람은 합니다. 아, 조선일보는 과격한 기자 없나, 있지만 전부 신문사 간부가 달라지니까 합니다. 나가는 논조 보세요. 박 상공회의소 회장: 언론부터 제길로 가줘야 이 부산이…상공회의소가… 김기춘: 대구에서도 상공회의소가 다 합니다. 이거 뭐… 앞으로도 분위기야 다 조성해 주겠지만 직접 나가서 뛰는 사람이 그렇게. 박 상공회의소 회장: …얼마전 택시 탔는데 기사가연설하다 오줌 싸고 차안에서 옷을 60벌이나 가지고 다니고 하는데, 오줌 싼 사람 찍어서야 되겠습니까. 이렇게…. 김기춘: 내가 며칠전에 내 아이가 시험이 있어 차를 타고 나간다 해 택시를 타고 가는데 가다 물었어. 나이가 좀 들었다. 아저씨 택시기사는 정주영씨 인기 좋다며…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저씨는 누구요? 난 YS요. 왜 YS요? 국민당에서 오셨는 모양인데… 아, 실은 내가 YS 팬이요, 제발 좀 부탁합시다. 염려마세요. 그래 내리면서 2천원인가 나왔는데 만원 주고 내렸구먼. 현대에서는 택시 타고 내리는 운동이란 게 있다는군요. 천원 나오면 5천원 주고, 만원 주고 국민당에 입당… 그러니까 누구 찍습니까, 학벌을 보나 뭘 보나 YS 찍어야 되지 않겠소. 정주영씨 하는 놈은 쓸개가 있는 놈이냐 하면서 은근히… 부산에서는 감정을… 이번에 하지 못하면 부산 놈들은 쓸개가 없는 놈이라… 부탁한다고 내린다. 그런 것이 필요할 게다. 부산 운동본부에서 아이디어 하나 내, 택시 운전사가 그걸 제일 잘 전파하거든… 타고 내리는 사람마다 대고 말이지. 이번에 부산사람들 단결 못한다고 하면 이것은 인간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상당히 반응이…. 뭐 역사적 중요한 시기에 기관장 하시니까 어렵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훗날 보면 보람있는 시민이라고 다들 느끼게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아침 시간에 뵐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 부산지검장: 오늘 일정은 어떻게…. 김기춘: 점심 때 고향사람들 모아놓은 게 있어서 3시 비행기로 올라갑니다. 아마 못볼 겁니다…. 경찰청장 고생이 많소.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서울시장] 정몽준 vs 박원순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서울시장] 정몽준 vs 박원순

    ■7선의 ‘새 꿈’ 의정 생활 26년 대부분 비주류… “공직은 봉사하는 자리”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정몽준 의원은 19대 국회의원 중 최다선인 7선으로 26년 정치 인생 대부분을 비주류로 보냈다. 정 의원은 1951년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8남 1녀 중 6남으로 태어났다. 식사 시간에 늦으면 먹을 게 금방 없어질 정도로 식구가 많은 집안에서 단체 생활을 하듯 컸다고 정 의원은 회고한다. 그는 학창 시절 조용하고 튀지 않는 우등생이었다.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재벌가 아들인지도 모를 정도로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스포츠를 좋아하고 열정적 기질을 지닌 소년이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ROTC 13기로 병역을 마친 정 의원은 미국 컬럼비아대를 거쳐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80년 현대중공업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훗날 각각 국무총리, 외무부 장관이 된 이홍구·한승주 교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존스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딴 이후 국제적 안목을 키우게 된다.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정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본산인 울산 동구에서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무소속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자진해서 선택한 비주류의 길에 대해 그는 ‘정치 노무자’란 단어로 대신 설명한다. “공직이란 말 그대로 공적인 서비스로, 여러 사람에게 봉사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당구도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비주류로서의 정치인생은 녹록지 않았다. 정 의원과 축구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1993년 1월 대한축구협회 제47대 회장에 취임했다.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추진하기 시작했을 때 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일본에 승산이 없어 보나 마나 안 된다”는 회의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듬해 5월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선거에 출마해 극적으로 당선되면서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정 의원은 1년 중 3분의1 이상을 외국을 돌며 월드컵 유치 강행군을 펼친다. 1996년 5월 31일 일본에 절대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한·일 공동 월드컵 개최 결정을 따낼 때까지 정 의원이 다닌 거리는 150만km, 지구를 37바퀴 도는 거리였다고 한다.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치솟은 대중적 인기를 발판 삼아 정 의원은 2002년 대선 때 ‘국민통합21’을 창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대선 막바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이뤘지만 선거 하루 전날 ‘노무현 지지 철회’를 선언한 후 한동안 정치적 침체기를 겪었다. 이후 2007년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그해 대선 때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으로서 10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 냈다. 이어 2009년 9월 한나라당 대표에 선출돼 정치적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2012년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박근혜 대세론’에 밀려 일찌감치 하차했다. 정 의원은 자신을 소개할 때 “(7선 의원이 아닌) 서울 재선 정몽준”이라며 ‘서울시민’임을 강조한다. 국회에선 주로 한·미, 남북 관계 등 외교 문제에서 목소리를 내 왔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시장의 ‘큰 꿈’ 1세대 시민운동가·인권 변호사 명성… 재선 뒤 새 도전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박원순 현 시장은 인권변호사를 거쳐 ‘1세대 시민운동가’로 명성을 떨친 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박 시장은 이번 6·4 지방선거에선 새정치연합 소속으로 시장직 재선에 도전하며 더 큰 꿈을 그리고 있다. 박 시장은 1956년 3월 경남 창녕에서 평범한 농부의 2남 5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박 시장은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3개월이나 두문불출하며 공부할 만큼 어릴 적부터 노력가형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 경기고를 졸업한 뒤 1975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진학했지만 유신 체제에 저항해 학생운동을 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4개월 복역하고 제적당한다. 이듬해인 1976년 박 시장은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고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2년 대구지검 검사로 임용된다. 하지만 검사 생활은 그의 적성과 거리가 멀었다. 결국 검사 생활 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인권 변호사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다 박 시장은 일생일대의 멘토인 조영래 변호사를 만나게 된다. 박 시장은 조 변호사와 함께 인권 변호사들의 모임인 ‘정법회’를 결성했고, 이 모임은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으로 확대 개편됐다. 박 시장은 민변의 창립 멤버로도 활동했다. 박 시장은 조 변호사와 함께 ‘권인숙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구로동맹파업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아 시국사건을 주도하며 명성을 떨쳤다. 박 시장은 조 변호사가 1990년 별세한 뒤, “해외에서 넓은 문물을 접하라”던 조 변호사의 권유로 1991년부터 이듬해까지 영국 런던 정경대 국제법 대학원 1년 과정을 마쳤다. 런던 정경대 유학 시절과 하버드대 객원연구원 1년여 시절 동안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현재 샘솟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됐다고 한다. 한국 상황에 맞는 새로운 시민사회의 모델을 고민하던 박 시장은 1994년 귀국, 참여연대 설립을 주도하며 시민운동가로 변신한다. 박 시장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절인 2000년 16대 국회를 앞두고 ‘국회의원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했고,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1인 시위’ 등 다양한 시민운동을 창안했다. 2000년에는 ‘1% 나눔운동을 위한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했고, 2006년에는 아름다운 가게와 희망제작소 등을 설립했다. 2009년에는 제3세계의 가난한 농부들을 돕는 공정무역 커피회사 ‘아름다운 커피’를 연이어 설립하는 등 각종 시민운동 경험이 서울시장 준비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 박 시장은 2011년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확정되면서 후보 출마 의사를 밝혔다. 당초 5% 내외의 미미한 지지율이었지만,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과의 단일화 등으로 지지율이 50%대로 뛰었고 결국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박 시장은 2년 반의 재임 동안 ‘서울의 살림살이’를 개선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임 기간 서울시의 채무를 3조 2500억원 감축했고, 지하철 9호선을 재구조화하면서 3조 2000억원의 낭비를 막았다”고 주장한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정몽준 눈물, 당선 수락연설에서 눈물..왜? “아들 철없는 짓 사과드린다”

    정몽준 눈물, 당선 수락연설에서 눈물..왜? “아들 철없는 짓 사과드린다”

    ‘정몽준 눈물’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이 6.4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정몽준 의원은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선출대회’에서 3198표를 획득하며, 958표를 얻은 김황식 전 총리와 342표의 이혜훈 최고위원을 누르고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됐다. 이날 정몽준 의원은 후보자 당선 수락연설에서 “아들의 철없는 짓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제 막내아들 녀석도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바란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에 정몽준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결정된 박원순 현 서울시장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 의원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6남이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한 정몽준 의원은 지난 19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을에 출마해 7선을 달성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인간 노무현’ 보낸 지 5년… 그리움이 피운 희망의 불씨

    ‘인간 노무현’ 보낸 지 5년… 그리움이 피운 희망의 불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반추하는 책 2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생각의길이 펴낸 ‘그가 그립다’(유시민 외 21명 지음)와 책담이 세상에 내놓은 ‘기록’(윤태영 지음)이 화제의 책들. 모두 노 전 대통령 생전 지근에서 일상을 공유한 이들이 떠올린 ‘바보 대통령 노무현’의 진면모를 들여다 보게 하는 회고의 기록들이다. ‘그가 그립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주위에서 살며 그를 지켜보았던 22명이 떠올린 생각들을 모은 산문집.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법학자 조국, 작가 신경림·노경실·정여울·유시춘, 역사학자 이이화, 교수 한홍구·서민, 카피라이터 정철, 문화평론가 김갑수, 드라마 작가 김윤영, 프로듀서 김형민, 시인 류근, 이발사 정주영, 연구원 김상철·시윤희·조세열, 요리사 신충진, 협동조합 대표 노항래, 연출가 김태수, 번역가 박병화가 필자들이다. 이들이 기억하는 생각 조각들이 ‘그리움’이란 테마 아래 희망의 메시지로 묶이는 구성이 흥미롭다. 필자들이 떠올리는 노무현의 인상은 아무래도 굴곡많은 삶을 굳은 의지로 살아냈던 의지와 정의감, 그리고 인간미로 집약된다. 대통령과 정치인보다는 ‘인간 노무현’의 면모가 더 짙다. 그래서 그 반추의 기억들은 각각의 입장에서 ‘인간 노무현’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을 넘어 지금 이 시대에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피자는 ‘속 깊은 기대’로 향한다. 가수 조관우가 부른 동명 노래를 타이틀곡으로 한 북 테마앨범도 CD로 제작해 붙였다. ‘기록’은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을 가장 지척에서 지킨 인물로 여겨지는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이야기’다. ‘기록’을 철학이요, 원칙으로 삼았다던 노 전 대통령이 모든 회의나 행사에 자유롭게 배석해 자신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겼다는 윤 비서관의 솔직한 회상으로 눈길을 끈다. 수백 권의 휴대용 포켓수첩과 100권에 가까운 업무수첩, 한글파일 1400개에서 건져올린 ‘인간 노무현’의 일상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책은 노 전 대통령의 화법과 습관 같은 개인적 모습을 비롯해 탄핵안 가결 등 재임시절에 숱하게 겪었던 위기들, 그리고 퇴임 이후 서거까지의 마지막 삶을 가감없이 풀어낸다. 금연 중에도 어려운 상황에서 담배를 주문하고 어려운 입장에 놓인 사람들 앞에선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인간적 면모들이 도드라진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이지원(문서관리시스템) 메뉴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남기곤 했다는 메모 내용들을 ‘나의 구상’이란 제목의 부록으로 실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6·4 지방선거 인물 대해부] 서울시장 예비후보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

    [6·4 지방선거 인물 대해부] 서울시장 예비후보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

    서울신문은 유권자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6·4 지방선거 광역단체장에 도전장을 던진 주요 후보들을 집중 분석하는 ‘지방선거 인물 대해부 시리즈’를 7일부터 기획, 연재합니다. 보도 순서와 분량은 주요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율을 기준으로 차등을 두되 현역 단체장이 없는 당의 예비 후보들을 먼저 보도하며 현역 단체장 불출마 시에는 다수당 후보 순으로 보도하기로 했습니다.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 연기….” 지난달 31일 밤 10시쯤 서울 종로구의 어느 길거리. 식당에서 나온 10여명의 중년 무리에서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수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대로변에서 불러 젖힌 주인공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일행은 정 의원의 노래 중간중간 “좋고”라는 추임새로 흥을 돋웠다. 행인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수군댔다. 이날 모임은 정 의원이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 후보로서 비전 선포식(정책 발표회)을 한 뒤 가까운 몇몇 서울시 당협위원장과 가진 ‘번개 저녁 식사’였다. 현장에 있었던 한 당협위원장은 “반주 한잔 걸치고 기분이 좋으면 대로에서 한 곡조씩 불러 젖히는 게 요즘 정 의원의 주특기”라며 “노래 실력이 좋거나 가사를 다 외우는 게 아닌데도 꼭 부른다”고 했다. 지난달 2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후 정 의원이 다른 사람이 됐다는 평이 많다. 서민들과의 ‘스킨십’을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등 전에 없이 강한 ‘권력 의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박호진 경선캠프 대변인은 “노무현 후보 지지 철회로 얼룩졌던 2002년 대선, 승자가 이미 결정돼 있었던 2012년 대선 때와는 투지가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지난달 중순 유경희 새누리당 도봉갑 당협위원장은 인근 강북구 당원의 전화를 받았다. “정 의원이 동네 목욕탕에 벌거벗고 들어갔다고 하네요.” 두어 시간 전 정 의원이 측근인 정양석 전 의원과 강북구의 한 목욕탕에 들렀다는 것이다. 정 의원이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인사를 건네자 시민들은 “여기까지 뭐하러 왔느냐”며 화들짝 놀라면서도 이내 “시장 선거 잘하라”며 등을 두드려 줬다고 한다. 정 전 의원은 “시민들 입장에서는 ‘재벌이 이런 데도 오는구나’ 하는 반전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정 의원은 지난달 9일 도봉산을 등반할 때 ‘셀카’를 같이 찍자는 여고생들의 요청에 자진해서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그리기도 했다. 예전의 ‘근엄했던’ 정 의원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최근 중학교 화장실에서 물청소를 하고 당원대회에서 갈비탕 200인분을 직접 나르기도 했다. 한 측근은 정 의원에 대해 “머리 회전이 빨라 핵심 파악 능력이 뛰어나고 추진력도 있다”고 했다. 정 의원은 지난 2월 23일 귀국 직후 가진 첫 참모진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2017년 대선엔 안 나갑니다. 서울시장 연임하겠습니다.” 참모들은 대선 불출마 선언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만류했지만 정 의원은 단호한 표정으로 일축했다고 한다. 한 정치권 인사는 정 의원에 대해 “인지도가 높은 데다 재벌로서 서민적 행보까지 보이니 요즘 지지도가 오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명문대(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재벌에 키 크고 인물도 훤해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정 의원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는 종종 말실수로 구설에 오른다. 그는 2008년 당 대표 경선 TV 토론에서 “시내버스 요금이 70원”이라고 말해 곤욕을 치렀다. 2011년 국정감사 때는 김성환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그게 무슨 궤변이야”라는 식의 반말을 퍼부어 빈축을 샀다. 그는 당 최고중진연석회의 때 가끔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해 받아 적는 기자들을 곤란하게 한다. 정 의원이 ‘부자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르고 인색하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당협위원장은 “식당에서 물주인 정 의원이 먼저 설렁탕, 짜장면 같은 저렴한 메뉴를 선택하면 다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메뉴를 따라간다”면서 “뒤에서 ‘짠돌이’라고 수군대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정 의원은 2002년 대선 때 ‘국민통합21’을 창당했다. 당시 당직자들로부터 식사비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정 의원은 돈 대신 인근 구내식당 식권을 구입해 나눠 줘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한 전직 민주당 의원은 “당시 정 의원이 10억원만 더 썼어도 민주당 의원들이 대거 국민통합21에 합류했을 것”이라면서 “정 의원이 인색하다는 걸 확인한 의원들이 발길을 돌렸다”고 회고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 의원의 한 측근은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엄격한 훈육 때문인지 점심 때 먹다 남은 김밥도 오후 늦게 다시 집어 먹는 등 근검절약이 습관이 됐다”며 “그런데 주위에서 많이 쓰면 많이 쓴다고 지적하고 안 쓰면 안 쓴다고 핀잔을 받는다”고 항변했다. 정 의원이 아랫사람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한다는 지적도 회자된다. 그를 오랫동안 보좌한 한 인사는 “기업 경영인 출신이다 보니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아랫사람을 보듬는 부분이 아쉬울 때가 있다”고 했다.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 사장 시절 업무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버지 연배 간부의 정강이(조인트)를 걷어찼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나돈다. 정 의원의 가장 큰 단점은 화가 났을 때 판단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 의원은 2002년 대선 투표일 전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게 숙고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대사를 그르친 것이라고 지적한다. 2008년 총선 유세 중 한 여기자가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자 손으로 그 여기자의 뺨을 건드리는 등의 신체 접촉을 한 게 결국 성희롱 논란까지 확대된 적도 있다. 그러나 정 의원의 가족은 그가 자상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남자라고 말한다. 정 의원은 지난달 31일 비전 선포식을 앞두고 머리 염색을 세 차례나 했다고 한다. 정 의원은 동네 이발소에서 한 첫 번째 염색이 마음에 들지 않자 집에서 부인 김영명씨에게 다시 염색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 의원은 두 번째 염색한 머리를 거울로 보며 “불그스름한 머리색이 꼭 원숭이 같다”며 투덜거렸다고 한다. 김 여사가 원숭이띠인 것을 겨냥한 나름의 유머였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데스크 시각] 부자 후보 vs 서민 후보/김상연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부자 후보 vs 서민 후보/김상연 정치부 차장

    “결정적인 순간에 정몽준 의원이 김황식 전 국무총리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면서 예비후보직을 사퇴하는 게 여당의 극비 시나리오라는데, 사실인가요.”  “정 의원이 왜 사퇴하는데요.”  “재벌인 정 의원이 새누리당 후보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맞붙으면 부자 대(對) 서민 구도가 돼 불리하기 때문에.”  요즘 사석에서 정치부 기자로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6·4 지방선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누가 될 것으로 예상하느냐다. 그리고 정치에 나름대로 ‘조예’가 깊다고 자평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부자 대 서민론’을 곁들인다. 며칠 전에는 지인으로부터 ‘정몽준의 김황식 지지 및 사퇴설’까지 들었다. 그가 업무적으로 서울시와 연관된 사람이라는 점에서 주로 야당 안팎에서 돌고 있는 음모론인 듯했다.  ‘부자 필패론’은, 우리 국민이 유난히 평등의식이 강하다는 시각과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부자 이미지의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가 ‘1억 피부숍’ 논란 등으로 패배한 기억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정설처럼 굳어진 인상이다. 하지만 ‘부자 대 서민 구도=정몽준 필패론’이 과연 근거가 있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정몽준은 재산이 2조원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벌 중의 재벌이다. 그러나 그는 7선의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30년 가까이 직업 정치인 이미지가 덧칠돼 있다는 얘기다. 16년간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재임하는 등 서민들이 즐기는 축구 애호가 이미지도 강하다. 따라서 정몽준이라는 인간형을 재벌 이미지로만 단순화하기는 힘들다. 이 선천적 재벌이 ‘강남·서초’가 아닌 서울 동작을에서 연거푸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실은 ‘부자 대 서민’ 구도론에 의문부호를 부여하는 실례다.  투표 행위는 이성끼리 사랑에 빠지는 경우와 정신적 메커니즘이 비슷하다. 사람은 속이 뻔한 이성보다는 뭔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성에게 끌린다. 지금 정몽준은 부자라는 약점을 장점화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는 “서울시장이 되면 연봉 1만원만 받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내 돈을 쓸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발언은 유권자의 머릿속에 ‘정말 그렇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원조(元祖) 재벌’인 정 의원의 아버지 고(故) 정주영 회장도 ‘반값 아파트’ 공약으로 대중의 호기심을 끈 바 있다. 적어도 부자로서의 정몽준에 대한 총점은 유권자들이 이미 내렸다고 봐야 한다. 이 총점은 정몽준의 재산 내역에서 치명적인 부도덕성이 새로 발견되지 않는 한 변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따라서 야당이 정몽준이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김황식보다 더 유리한 상대로 상정하고 있거나, 정몽준이 새누리당 후보로 뽑힐 경우 부자 대 서민 구도로 몰아가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 때 야당의 패인 중 하나는 선거를 ‘박정희 대 반(反) 박정희’ 구도로 몰아간 것이었다. 국민들은 이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총점을 저마다 매겨놓았는데,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부자 대 서민 구도에 매몰된다면 지난 대선의 우(愚)를 다시 범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부자를 질투하면서도 선망한다. 정치부 차장 carlos@seoul.co.kr
  • “美 GDP 40% 혁신서비스서 창출… 창조경제도 융·복합 중요”

    “美 GDP 40% 혁신서비스서 창출… 창조경제도 융·복합 중요”

    세계 석학들의 기고 사이트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서는 총 54명이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금융계의 대표적 비관론자로 꼽히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 교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 보좌관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 인도 중앙은행 총재인 라구람 라잔,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인은 딱 한 명, 이종화(54)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미 경제학논문학회가 논문의 인용도를 가지고 순위를 매기는 한국의 경제학자 1위도 오래전부터 이 교수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그는 이명박 정부 때는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비서관과 수석 사이 직급)을 지내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 교수를 지난 1일 서울 성북구 안암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만났다. →인용될 만한 논문을 영어로 많이 발표하는 것은 힘든 일인데 왜 꾸준히 하나. -내가 한국 경제학자 중에서는 1위이고 아시아에서는 3위이지만 전 세계로 따지면 상위 1%라도 100위 밖이다. 우리나라의 위상에 비해 학계의 위상이 약하다.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더 많이 알려야 한다. 경제학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영역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순위가 어느 정도 공정성이 있다. →어렵게 공부했다던데.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고생을 많이 했다는 의미보다 점점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데 획일화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해서 오히려 좋았다. 당시 시골(강원 태백)에서 내가 대학을 처음 갔다. 고대 다니면서 정주영 전 회장이 강원도 출신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4년 내내 받았다. 미국에 가서 공부할 기회도 얻었고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근무했다. 내 목표는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좋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다. 그래서 베이징대와 연결해서 ‘한국·아시아·세계 경제의 최근 쟁점’이란 강의를 지난해부터 만들었다. 반드시 토론을 하게 하며 많은 부분을 중국 경제와 한국 경제를 비교하도록 했다. →강의하면서 아쉬운 점은. -우리는 아직도 어느 대학을 가느냐, 어디서 뭘 하느냐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둔다. 아직도 서울대, 고려대 몇 명 들어갔는지 따진다. 하버드대 간다고 다 좋은가(이 교수는 풀브라이트장학생으로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땄다). 교육 시스템은 다양성과 자기가 할 수 있는 정체성을 길러 줘야 한다. 명문대 입시에 치이다가 대학 들어오면 어떻게든 평생 다닐 직장에 한 번에 들어가려고 재학 시절 재수, 삼수를 한다. 예컨대 한국은행에 들어가서 뭘 하느냐가 아니고 한은에 들어가는 것을 남한테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대학생들로부터 창업한다는 이야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베이징대에 가 보니 어디 가서 뭘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다. 하버드대에서 강의할 때도 그런 걸 느꼈는데 여기서는 못 느꼈다. →왜 창업할 생각을 안 한다고 생각하나. -어려서부터 완벽하게 상자 안에 있는 아이들을 키우려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대학에 더 오래 머무는 경향이 있다. 원하는 좋은 직장을 잘 못찾아가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공계에 여성이 적은 것도 한 원인이다. 이공계가 최근 취직이 잘되는데 이공계에 여성이 20%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의료 부문이다. 물리, 화학, 생물 등 과학 분야에 여성이 남성에 비해 그렇게 관심이 없을 리가 없다. 실습 위주로 재미있게 가르쳐야 하는데 매일 외우니까 흥미가 사라지는 거다. →정부도 여성 고용률을 높이려고 애쓰고 있다. -의지를 가지고 오랫동안 노력해야 한다. 고용률 숫자에 집착하면 파트타임(시간제)을 늘리는 것으로 끝날 수 있다. 여성의 잠재력을 높이는 일은 교육 개혁은 물론 노동시장 개혁, 특히 서비스 분야의 구조적 변화가 요구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뜻하나.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면 비정규직 많이 만들자는 소리인 줄 아는데 그게 아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1년 정도 있다가 나한테 안 맞는다고 생각하거나, 여기서 배울 만큼 배웠으니 다른 곳에 가서 해보겠다고 하면 그걸 잘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자기한테 맞는 자리를 찾아가고, 기업도 발전단계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쓸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40%가 의료, 문화, 비즈니스서비스(컨설팅), 교육 등 고부가가치 혁신 서비스에서 나온다.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창조경제는 과거 철강산업, 자동차산업, 정보기술(IT) 등이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켰듯이 우리 경제를 도약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제조업에서 굉장히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창조경제는 이런 제조업과 새로운 서비스업의 융·복합에서 올 거 같다. 의료와 IT가 합쳐지는 부분도 될 수 있다. 원격진료가 누구의 밥그릇을 뺏는 차원이 아니고 새로운 큰 기술이 될 수 있다. 경제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중요하다.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제대로 할 수 있는 분야를 많이 키워야 한다. 의료, 컨설팅, 금융 등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간다. 훌륭한 인재가 있는 만큼 산업으로서 커갈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관련 분야의 규제개혁이 화두다. -양이 아니라 효율적인 규제에 초점이 놓여야 한다. 금융은 정보가 불완전하고 서로 연결돼 있어 문제가 생기면 급속도로 파급되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제와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금융에서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있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있다. 돈을 빌려서 달아날지, 믿고 정보를 줬는데 팔아 넘길지를 그 사람이 안다. 시스템의 문제도 있고 교육도 필요하고 단기 성과에 급급해하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필요하다. 교육이 산업 현장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만 했듯이 금융은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만 했다. 이제 금융과 교육이 실물 부문을 이끌어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10년 뒤에 한국에 필요한 인재를 고민하고 키워 내야 한다. 외국, 특히 아시아에서 뛰어난 학생들을 데려다가 지도자로 만드는 작업도 계속해야 한다. 우리의 재산이 될 수 있다. →장기 과제에 대한 정책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정책을 개발해서 끌고 나가는 연구기관이 약하다. 현재 정책을 내놓는 연구기관들은 대부분 정부와 연관돼 있다. 선진국은 브루킹스연구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등 중립적 기관이 활동한다. 대학에서 연구소를 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난해 8월 고대에서 아시아문제연구소를 연 것이 좋은 예다. 공무원들이 정책을 발표할 때도 6개월 뒤에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고 발표하는데 10년 뒤에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싶다. 정치적 측면에서 어렵기는 한데 멀리 보고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우수한 관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실패하면 뭐라고 하니까 약간씩 작은 것에서 조금씩 티가 나는 것만 한다. 정치에서 이런 문제를 풀어야 한다. →사회 양극화도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나. -분배 문제가 심각해진 데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산업구조와 지식산업이 발전하면서 무형 기술이 중요해졌다. 이 과정에서 무형 기술을 가진 고소득자와 일반인의 소득 차이가 커졌다. 두 번째로 기술 발전이 고학력 고기술자에게 유리하게 발전돼 왔다. 세 번째로 근로자가 가져가는 몫은 줄어들고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은 늘어났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의 미흡, 급속한 노령화와 가족제도 해체, 주택 등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중산층 문제 등이 겹쳐졌다. 이제는 정부가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일정 역할을 해야 한다. 어디까지 얼마나 빠르게 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의 합의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압축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양극화도 빠르게 진행 중이라 대책을 빨리 세워야 한다.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안타깝다. 글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사진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이종화 교수는 ▲강원도 태백 ▲고려대 경제학과, 하버드대 경제학 석·박사 ▲고려대 정경대학 경제학과 교수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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