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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입원 치료… 위독설은 ‘사실무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입원 치료… 위독설은 ‘사실무근’

    정몽구(82)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대장 염증으로 입원 치료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이 위독하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차그룹은 17일 “정 회장이 대장게실염으로 입원해 주치의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고, 치료가 순조롭게 진행돼 호전되고 있다”면서 “염증이 완화되는 대로 퇴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입원 시기나 병원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장게실염은 대장 벽이 바깥쪽으로 돌출해 생긴 비정상적인 작은 주머니에 이물질이 들어가 생긴 염증이다. 정 회장은 1999년 3월 현대차 이사회 의장 겸 회장을 맡아 현대차그룹을 키워냈다. 정 회장은 2016년 12월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국정농단 게이트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한 이후 현재까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정주영 명예회장 19주기 때에도 코로나19 우려 등으로 불참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정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사실상 이끌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2018년 9월부터 경영 전면에 나서 지휘봉을 잡았고,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현대차 이사회 의장직을 넘겨받았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정대선·노현정 부부, 정기선 부사장 결혼식 포착에 ‘시선집중’

    정대선·노현정 부부, 정기선 부사장 결혼식 포착에 ‘시선집중’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이 결혼식을 올린 가운데, 이날 하객으로 참석한 정대선 현대 비에쓰엔씨 사장과 부인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의 모습이 포착돼 많은 이목이 쏠렸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 부사장은 4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대학교 동문인 신부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정 부사장의 아버지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결혼 시작 시간인 오후 6시보다 2시간 이른 오후 4시쯤 도착했다. 정 이사장은 호텔 앞에 있던 취재진에게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신부에 대해선 “대한민국의 건강한 여성”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오후 4시 30분에는 정 이사장의 셋째인 정선이씨가 가족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고, 오후 5시 5분에는 정 부사장과 중학교, 대학교 동문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장남 장선익 동국제강 이사가 참석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내아들인 정몽일 현대엠파트너스 회장, 정일선 현대비엔지스틸 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도 모습을 드러냈고 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도 참석했다. 정대선 사장과 부인인 노현정 전 KBS아나운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노 전 아나운서는 안정하게 머리를 묶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는 연분홍 투피스에 진주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을 매치해 우아함을 더했다. 여기에 깔끔한 검은색 클러치백을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초청 인원을 제한해서 하객은 10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사장 측은 청첩장을 보내며 부부동반일 경우 미리 알려 달라고 당부했고 학교 친구들도 극히 일부만 초대했다. 한편 1982년생인 정 부사장은 대일외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년 후 2008년 현대중공업 재무팀에 입한 뒤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보스턴컨설팅 그룹과 크레디트스위스 그룹에서 근무했고 201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 부장, 상무 등을 거쳐 2017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재계 거목들 성공신화, 웹툰으로 재탄생

    ‘한국 경제계 거목’들의 이야기가 웹툰으로 재탄생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과거 발간했던 ‘만화 CEO 열전’을 웹툰 형식으로 손질해 대한상의 홈페이지에서 선보인다고 17일 밝혔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 고 정주영 현대 회장, 고 구인회 LG 회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 10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웹툰은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 등 현대사의 격동기 속에서 기업을 창업하고 성공을 일군 과정을 자세히 묘사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메멘토 모리] 한국 조선의 기틀 다진 한종서 형 영전에-황성혁 대표

    [메멘토 모리] 한국 조선의 기틀 다진 한종서 형 영전에-황성혁 대표

    한국 조선산업에 커다란 역할을 했던 한종서 씨가 지난 6일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8일 서울 소망교회에 영면했다. 고인은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함께 불모지나 다름없던 조선산업의 기틀을 단단히 세웠지만 그 흔한 부음 하나 일간지에 실리지 않았다. 근대화를 일군 중심 인물로서 고인의 영면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고인과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함께 했고 50년을 사수(射手)로 대했던 황성혁(81) 황화상사 대표(현대중공업 전무 역임)가 12일 아시아엔에 올린 기사를 정리하고 황 대표의 동의를 얻어 싣는다. 선박 판매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한국 조선사(造船史)를 기술한 자서전 ‘넘지 못할 벽은 없다’(이앤비플러스·2010년)를 펴내기도 했다. 1989년 선박 판매 담당 전무를 끝으로 현대중공업을 퇴사한 그는 이듬해 세운 황화상사의 대표가 돼 지금까지 선박 중개업을 하고 있다.한종서(韓鍾瑞) 형이 떠난다. 오랫동안 지닌 무겁고 고된 육신의 덫을 벗어 던지고 밝고 가벼운 영혼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 형의 떠남이 슬프지만은 않다. 따뜻하고 편안한 나라에 자리잡을 축복 받은 영혼을 생각하며 우리 마음은 도리어 가볍다. 1972년 가을 영국 런던지점에서 형과의 첫 만남이 시작됐다. 새로 탄생한 조선소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이었다. 런던지점은 조선소의 심장이었다. 선박 영업과 기술 도입 업무를 형이 맡고 있었다. 그 뒤 50여년 난 형을 따라 다니는 조수였다. 일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형은 이끄는 사수였다. 일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던 시절, 잠자는 동안에도 일을 꿈꾸던 시절,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그나마 일의 결말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종서 형은 미숙한 조수를 끌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냈다. 조선소의 산적한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의 시발점으로 중심을 잡고 묵묵히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조선소의 첫 작품 ‘어틀랜틱 바론’을 시작할 때 선주의 기술 대표이자 천하의 고집쟁이 아나스타소폴루스를 입을 다물게 하는 잠재우는 사람은 종서 형뿐이었다. 아나스타소폴루스는 자신의 말을 주워 담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모든 펌프는 청동으로 만드는 거야.” “스페어가 없는 기계는 기계가 아니야.” “내 말을 그르다고 하는 자는 엔지니어가 아니야.”라고 내뱉으면 경전처럼 떠받들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종서 형이 그와 다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미소를 지으며 건너다보기만 했다. 그는 떠들다 제풀에 지쳐 종서 형이 제시한 타협안을 받아들이곤 했다. 다섯 차례나 수정해 나온 마지막 사양서(仕樣書)가 누더기가 되지 않고 조선 기술의 전범이 된 것은 형의 넉넉한 인품이 빚은 결과였다. 조선소가 고용한 외국인 기술자들도 다루기 힘든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비뚤어진 결기도 결국 종서 형의 넓은 마음과 따뜻한 손으로 다스려졌다. 모든 기술자, 모든 선주 감독관들이 제각각의 취향에 맞게 기관실의 열 평형(Heat Balance)를 맞추려고 했는데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는 꼴이었지만 결국 종서 형의 손길 아래 가지런하게 됐다. 내가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종서 형의 조수가 됐다고 서울대 기계학과 동기인 최해복 형에게 말했더니 “종서가 거기 갔어? 그 회사가 복덩이를 잡았구먼. 그러면 현대조선은 되는 회사야. 그 친구는 무엇이든 제대로 되게 하는 재목이니까. 너도 큰 행운을 잡았어. 종서를 도와 열심히 해봐. 좋은 일을 이루게 될 거야”란 말을 들려줬다. 조선소 시작할 때 정주영 회장의 막막한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의논할 사람도 참고할 문헌도 없었다. 하지만 조용하고 느긋하며 영어에 통달하고 설득력 있는 종서 형이 있었다. 사리에 밝고 사심 없는 종서 형이 뒤를 지켜 정주영 회장의 마음을 안온하게 했다고 난 지금도 믿는다. 그런 감정을 잘 나타내지 않는 정 회장이 1970년대 중반 종서 형이 허리 디스크로 얼마간 입원해야 한다고 하자 당황해 하던 모습을 지금도 난 생생하게 기억한다. 톱니바퀴마냥 일이 굴러가는 중에도 형은 가끔 느닷없는 일탈로 사소한 행복을 만들곤 했다. 일요일 아침 종서 형은 정 전 명예회장이 늘 걸치던 암청색 현대건설 점퍼를 걸치고 나와 함께 옥스퍼드 거리로 나섰다. 보슬비를 맞으며 거리의 쇼윈도를 들여다보며, 우리의 불타는 청춘을 비쳐 보며, 잘 생긴 경찰관과 일부러 걸음을 맞춰 걷기도 했다. 점심시간 짬을 내 옥스포드 거리가 끝나는 곳에서 하이드파크의 유명한 연설자의 광장에 들어서 청중 가운데 한 명이 돼 가끔 ‘옳소’를 외치기도 했다. 서펜타인 호수는 비 오는 날에도 아름다웠다. 백조 먹으라고 빵 몇 조각 던지면 오리 떼들이 덤벼 들어 먹어치우거나 참새떼들의 잔치가 됐다. 형은 늘 여유 넘치고 올곧았다. 70년대 후반 종서 형은 산업 플랜트 쪽으로 옮겨 가 현대중공업에 또하나 새로운 기틀을 만들었다. 혼자 남은 난 선박 영업에 부대낄 때마다 ‘종서 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고 지침으로 삼았다. 1989년 말 내가 회사에 사표를 내자 종서 형은 탄식했다. “탐욕 때문에 재목이 찌꺼기가 되려는구나.” 그러나 난 옛날 사수를 잘 모신 덕에 지금도 찌꺼기는 면했다고 자신하고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내 고단한 육신마저 털어버리고 영혼이 맑고 가벼워졌을 때 형과 복사꽃 만발한 은하수 가에서 만날까? 하이드파크의 작은 연단 위에 올라가 우주론을 한바탕 늘어놓아 볼까? 무지개 걸리면 미끄럼 타듯 올라 앉아 성좌와 성운 사이를 넘나들어 볼까? 그때까지 편히 쉬세요. 종서 형.정리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베스트셀러]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출간 동시 3위

    [베스트셀러]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출간 동시 3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인기가 높다. 10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4월 첫째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현황에 따르면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출간과 동시에 3위에 진입했다. ‘흔한 남매 4’가 2주 연속 종합 1위에 올랐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이 쓴 ‘당신이 옳다’가 뒤를 이었다. 이도우의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4위,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녹나무의 파수꾼’이 5위에 올랐다.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출판사 문학동네가 등단 10년 이하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 소설들 중 우수작에 수여하는 ‘젊은작가상’의 수상 작품을 모은 책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애독자층이 생겨나 매해 수상 소식부터 작품집이 출간될 때까지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올해는 강화길의 ‘음복’이 대상 수상작이다. 구매층을 보면 20대가 38.2%로 비율이 가장 높았다. < 교보문고 3월 넷째 주 베스트셀러 > 1. 흔한남매 4 (흔한남매·아이세움) 2. 당신이 옳다 (정혜신·해냄출판사) 3.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 (강화길 등 7명·문학동네) 4.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시공사) 5. 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소미미디어) 6. 1㎝ 다이빙 (태수·피카) 7.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정주영·한국경제신문) 8.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3 (설민석·아이휴먼) 9. 더해빙 (이서윤·수오서재) 10. 페스트 (알베르 카뮈·민음사)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베스트셀러] 설민석 1위… 문소리 추천 ‘당신이 옳다’ 2위

    [베스트셀러] 설민석 1위… 문소리 추천 ‘당신이 옳다’ 2위

    스타 역사강사 설민석의 학습만화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3’이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올랐다. 27일 교보문고가 발표한 3월 셋째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현황에 따르면 1위는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3’, 2위는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가 올랐다. 예약 판매때부터 화제를 모았던‘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3’은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마니아 독자층을 형성해왔다. 게다가 개학이 연기되며 가정 내 보육과 학습이 병행되면서 아동 도서에 대한 관심이 한껏 높아진 것도 판매를 견인한 것으로 보인다. ‘당신이 옳다’는 최근 올리브 채널 ‘밥블레스유2’에 출연한 배우 문소리가 언급해 큰 인기를 끌었다. 정혜신 박사가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약하며 현장에서 쌓아올린 경험과 내공이 집대성된 책이다. 2018년 출간 당시보다 더욱 관심을 끌며 역주행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외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이 출간과 함께 종합 9위로 진입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녹나무의 파수꾼’, 김미경의 ‘이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가 지난주에 이어 상위권에 랭크됐다. < 교보문고 3월 셋째 주 베스트셀러 > 1.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13 (설민석·아이휴먼) 2. 당신이 옳다 (정혜신·해냄출판사) 3.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정주영·한국경제신문) 4.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시공사) 5. 1㎝ 다이빙 (태수·피카) 6. 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소미미디어) 7.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전승환·다산초당) 8. 페스트 (알베르 카뮈·민음사) 9. 타인의 해석 (말콤 글래드웰·김영사) 10.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편 (채사장·웨일북)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서울포토] 정몽준 정기선 부자, 정주영 19주기 제사 참석

    [서울포토] 정몽준 정기선 부자, 정주영 19주기 제사 참석

    고(故)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19주기를 맞아 범(汎)현대 일가가 20일 정 명예회장의 옛 청운동 자택에 모였다. 올해는 코로나19 우려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불참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참석자가 예년보다 줄었다. 이날 정 명예회장의 아들 중에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이 참석했다. 장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이 부인과 함께 참석했고, 손자녀인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도 자리했다. 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비롯한 손녀 등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아무래도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가 있어 제사에 모이는 것도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고] 신현승씨 장인상, 유정우씨 빙모상, 정수영씨 부친상, 이창훈씨 부친상

    ●최창우씨 별세, 최송이씨 부친상, 신현승(일간투데이 대표이사)씨 장인상, 12일 오전 11시,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 101호실, 발인 14일 오전 11시. 02-2002-8444 ●이춘호 씨 별세, 윤배선(전 삼익가구 씨름단장) 씨 부인상, 윤수정·수영·지원(아시아나항공 부사무장) 씨 모친상, 손호균(광성아메리카 법인장)·유정우(전 한경텐아시아 대표) 씨 빙모상, 12일, 서울성모병원장례식장 11호, 발인 14일 오전 6시30분. 02-2258-5940 ●정병태씨 별세, 정주영(통일감정법인 감정평가사)·정영순·정영미·정수영(이데일리 건설부동산부장)씨 부친상, 강정순씨 시부상, 최원철(예준물류 대표)·유재용(한국중기 대표)·이성열(힘스 부장)씨 장인상, 12일 오전 11시, 충북 영동병원 장례식장 302호실, 발인 14일 오전 10시. 043-743-4499 ●이남재씨 별세, 이창훈(서울문화사 매거진사업본부 본부장)씨 부친상, 12일 오후 2시 30분, 경북 상주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14일 오전 7시. 054-531-4444
  • [부고]

    ●최창우씨 별세 최송희씨 부친상 신현승(일간투데이 대표이사)씨 장인상 12일,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11시 (02)2002-8444 ●이춘호씨 별세 윤배선(전 삼익가구 씨름단장)씨 부인상 윤수정·수영·지원(아시아나항공 부사무장)씨 모친상 손호균(광성아메리카 법인장)·유정우(전 한경텐아시아 대표)씨 빙모상 12일, 서울성모병원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6시 30분 (02) 2258-5940 ●정병태씨 별세 정주영(통일감정법인 감정평가사)·정영순·정영미·정수영(이데일리 건설부동산부장)씨 부친상 강정순씨 시부상 최원철(예준물류 대표)·유재용(한국중기 대표)·이성열(힘스 부장)씨 장인상 12일, 충북 영동병원 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10시 (043)743-4499
  • [부고]

    ●최창우씨 별세 최송희씨 부친상 신현승(일간투데이 대표이사)씨 장인상 12일,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11시 (02)2002-8444 ●이춘호씨 별세 윤배선(전 삼익가구 씨름단장)씨 부인상 윤수정·수영·지원(아시아나항공 부사무장)씨 모친상 손호균(광성아메리카 법인장)·유정우(전 한경텐아시아 대표)씨 빙모상 12일, 서울성모병원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6시 30분 (02) 2258-5940 ●정병태씨 별세 정주영(통일감정법인 감정평가사)·정영순·정영미·정수영(이데일리 건설부동산부장)씨 부친상 강정순씨 시부상 최원철(예준물류 대표)·유재용(한국중기 대표)·이성열(힘스 부장)씨 장인상 12일, 충북 영동병원 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10시 (043)743-4499
  • 영업은 장사가 아니다… 나를 먼저 팔아라

    영업은 장사가 아니다… 나를 먼저 팔아라

    ‘망우동 정주영’고객과 신뢰 쌓기 우선 불편하게 만들지 말 것차 살 필요 없는 고객은안 사게끔 해야 진정성 ‘15년 연속 판매왕’태권도 사범서 용접공한결같이 열심히 일해쉐보레 조 지라드처럼기네스북 오르고 싶어 ‘영업’은 꽁꽁 닫힌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 일이다. 약 2만 5000여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수천만원짜리 자동차를 파는 일이라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자동차 딜러를 흔히 ‘영업의 꽃’이라고 부른다. 이런 고가의 자동차를 무려 15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아 치운 영업사원이 있다. 정송주(49) 기아자동차 망우지점 영업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5일 서울 중랑구 기아차 망우지점에서 정 부장을 만났다. 새신랑처럼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 부장이 건넨 명함에는 ‘정주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정 부장은 그동안 15년 연속 판매왕 비결에 대해 “업무 시간에 한눈팔지 않고 집중했다. 100m를 뛰는 속도로 마라톤을 뛰고 있다”는 교과서적인 답변만 해 왔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를 통해 판매왕의 영업비밀과 영업철학을 더 구체적으로 물어봤다.-차 살 마음이 없는 사람이 차를 사게 하는 특별한 비법이 있나. “차가 아니라 나 자신을 먼저 팔아야 한다. 나를 먼저 팔고, 내가 팔리면 물건이 팔린다. 고객과 신뢰가 쌓이면 아무런 언쟁 없이 계약이 진행된다. 차 한 대 파는 데 일희일비하는 건 영업을 장사로 보기 때문이다. 아직 구매를 결정하지 않은 고객이 즉흥적으로 차를 사도록 유도하는 건 일회성이다. 자동차 영업은 장사가 아니다. 굳이 차를 살 필요가 없는 고객이라면 안 사게끔 하는 게 진정한 영업이다.” -그렇다면 정 부장만의 고객 마음 사로잡는 법은. “저는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부풀려 얘기하지 않는다. 영업사원 말만 듣고 차를 샀다가 후회하는 사람이 꼭 생기기 때문이다. 저에게 구매 과정을 다 맡기는 고객에게도 반드시 가격표를 보내고 품목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한다. 요즘에는 영업사원보다 차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고객도 많다. 고객의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 하는 영업사원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그래서 신차가 나오면 차량 정보뿐만 아니라 구매 절차까지 완벽하게 숙지한다. 그리고 고객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충분한 여유를 준다. 차량 인도와 등록 절차를 마치고 나서도 고객을 직접 찾아가 구매 과정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를 나누고, 신차에 문제는 없는지 꼭 확인한다.” -판매왕의 입사 초반 모습은 어땠나. “1999년 6월 영업직으로 넘어와서 첫 3개월 동안 차를 딱 1대 팔았다. 다른 직원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해 전단을 돌리고, 밤에는 내일 돌릴 전단을 만들었지만 참 쉽지 않았다. 영업 실적이 바닥이면 압박받기 마련인데 당시 지점장은 ‘정 부장은 혼자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라. 실적도 묻지 마라. 저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조금만 기다리면 반드시 성과가 나타난다’며 믿어 줬다. 그 덕분에 첫해에는 34대 파는 데 그쳤지만 다음해 99대를 팔아 지역 판매왕에 올랐고, 영업직 전환 6년 만인 2005년 235대를 기록해 처음으로 전국 판매왕이 됐다.” -모르는 사람에게 영업하는 게 어려운 일인데, 신규 고객은 어떻게 유치했나. “상가나 사무실을 돌면서 명함을 건네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만 알렸다.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사무실을 돌아다니면 누구나 의심하고 경계한다. 사람이 없는 자리에 명함만 두고 나오면 자리 주인이 불쾌해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 있는 자리에만 가서 명함을 주고 인사했다. ‘불편한 사람이 되지 말자’는 생각으로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기아차 누굽니다’라고 해도 처음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자주 찾아가서 인사하니 차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겼다. 질문을 받으면 영업사원이 끈질기게 달라붙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물어보는 것만 정확하고 짧게 답했다. 역시 사람은 자주 만나는 게 답이다.”-지금은 영업 방식이 많이 바뀌었나.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 네트워크가 확장되고 나면 무작정 나서는 건 에너지 낭비다. 기존 고객이 차를 살 마음이 있는 새로운 고객을 소개해 주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다. 현 고객이 만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 인맥은 저절로 넓어진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고객을 많이 만나지 못하지만, 전화와 편지로 영업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차를 사신 분들과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알려 준다.” -차를 하루에 최대 몇 대까지 팔아 봤나. “개인 고객과 하루 7대까지 계약한 적이 있다. 법인 고객은 한 번에 660대까지 팔아 봤다. 이럴 때 개인 판매 실적은 30대만 산입되고 나머지는 회사 실적이 된다. 수백대에 달하는 법인 고객 물량은 주로 특판 가격에 판매되기 때문에 손실률을 고려해 30대까지 노력을 인정해 준다.” -자동차 한 대를 팔기 위해 이런 일까지 해 봤다. “금전 사정이 좋지 않아 10만~20만원 탁송료를 아끼려고 차를 직접 가지러 간 고객이 있었다. 서울에 사는 30대였다. 그 고객이 경남의 한 지점에 있는 전시차를 계약했고, 직접 차를 가지러 간다고 해서 불안한 마음에 따라갔다. 당시 무궁화호를 타고 내려갔는데, 새벽에 도착해 사우나에 함께 갔고, 아침 일찍 지점으로 가 차를 인도받은 뒤 서울로 돌아왔다. 열차삯, 기름값 드는 것을 생각하면 무모한 짓이었지만 그래도 고객이 원하는 대로 최선을 다했다. 결국엔 고객도 미안해했다.” -최근 온라인 계약이 늘어나면서 영업사원의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온라인 계약 확대로 자동차 영업사원 수가 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온라인 계약이 늘어나는 만큼 영업사원은 ‘맨땅에 헤딩식’ 신규 고객 유치 활동을 하지 않아도 돼 기존 고객 관리와 소개 판매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자동차 구매는 복잡한 블록이나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다양한 트림과 품목, 각종 세금 등 복잡한 선택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것보다 절차가 훨씬 더 까다롭다. 고객이 아무리 잘 안다 해도 차를 구매하는 주기가 길고, 각종 기능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새 차를 살 때쯤이면 앞서 차를 구매할 때 익힌 학습 효과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전문 영업사원의 도움이 없으면 필요 없는 품목을 넣거나,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차를 사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동차 영업을 하면서 감동받은 일이나 잊지 못할 추억은 없나. “징크스를 무척 싫어한다. 감정에 기복이 생기면 영업을 오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추억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굳이 인상 깊게 남기려 하지 않는다. 고객의 고마움 표시와 외부 칭찬도 속으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매월 공개되는 영업 실적은 언제든지 나빠질 수 있는데, 좋았던 기억에 휩싸이면 나빠졌을 때 극복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영업 활동 이름을 ‘정주영’이라고 정한 이유는. “관심이 없는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고객들도 뇌리에 박히는 이름 위주로 기억한다. 가명은 영업사원이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름을 빌린 유명인이 유명을 달리하거나 범죄에 연루되기라도 하면 낭패다. 그래서 저는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덕망과 업적을 쌓았고, 앞으로도 위험성이 없는 분이 누굴까 고민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택했다. 지금도 저를 ‘정송주’보다 ‘정주영’으로 부르는 고객이 더 많다.” -어떤 계기로 자동차 영업사원이 됐나.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태권도 공인 4단을 획득했다. 군대 가기 전 체육관 관장을 목표로 체육관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했지만 그 급여로는 체육관을 차리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군 전역 후 군대 선임의 소개로 1994년 기아차 화성공장에 입사했고 자동차 철판을 용접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당시 뻔히 보이는 공장 월급으로는 부모님을 봉양하기가 어려워 입사 5년 만에 영업직으로 옮겼다. 세상을 배우고 평생 함께 살아갈 친구를 사귄다는 생각으로 영업에 뛰어들었다. 어느 정도 돈을 벌면 일을 그만두려고 했는데 계속 판매왕에 오르면서 그만둘 시점을 잡지 못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시장의 규모는 다르지만 미국 쉐보레의 전설적인 자동차 영업사원 조 지라드가 세운 12년 연속 판매왕은 뛰어넘었다. 조 지라드처럼 기네스북에 오르고 싶다. 그리고 제가 살아온 인생의 굴곡을 담은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또 제 개인 역량을 계속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배 영업사원들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영업 노하우를 전수해 줄 특강을 할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뉴트론 잭’ 같은 기업지도자는 없었다”

    “‘뉴트론 잭’ 같은 기업지도자는 없었다”

    트럼프 “그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 찬사대규모 감원 의미 ‘중성자탄’ 별명 언급 생전에 이병철·정주영 회장 등과 교류 “‘뉴트론 잭’과 같은 기업지도자는 없었다. 그는 나의 친구이자 지지자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전날 타계한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이같이 추모했다. 미국 제조업의 아이콘이자 ‘세기의 경영자’로 추앙받은 웰치 전 회장은 생전에 대규모 감원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사람만 사라지게 하는 폭탄과 같다는 의미로 ‘중성자(뉴트론) 폭탄 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날 트위터를 통해 고인의 별명을 언급하며 애정을 표현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함께 훌륭한 거래를 이뤄냈다. 그는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라고 추억을 되새겼다. 고인이 20년간 몸담았던 GE의 래리 컬프 CEO는 성명을 내고 “오늘은 전체 GE 가족들에게 슬픈 날”이라면서 “그는 우리 회사의 모습과 비즈니스 세계를 다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는 잭이 원했던 것을 정확히 함으로써 그의 유산을 계속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1981년 최연소 GE 회장으로 올랐던 고인은 회사를 맡은 초기 120억 달러였던 시가총액을 그가 은퇴할 때 세계 2위 규모인 5050억 달러로 올려놓는 성공신화를 썼다. 월스트리트저널은 GE의 뿌리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 GE’는 웰치 전 회장이 일궜다고 평가했다. 과감한 구조조정과 숱한 인수·합병 등 고인의 경영방식은 다른 기업인과 경영학도들에게 교과서처럼 평가됐지만, 대규모 감원으로 얻어진 ‘뉴트론 잭’은 훈장이자 조롱이기도 했다. 웰치 전 회장은 물러나면서 제프리 이멜트 전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했지만 GE는 이후 버블닷컴 붕괴와 9·11 테러, 글로벌 금융위기 등 악재를 만났다. 생전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웰치 전 회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과 교류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정주영 회장과 사업을 논의하다가 이해관계가 엇갈리자 정 회장의 제안으로 팔씨름까지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99년 방한 때 고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는 “한국의 경제는 세계 각국에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며 “세계가 한국 국민들의 에너지와 경제회복 속도에 대해 놀랍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칭송하기도 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베스트셀러] ‘기생충 각본집’ 84계단 오른 1위… 양준일 2위

    [베스트셀러] ‘기생충 각본집’ 84계단 오른 1위… 양준일 2위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의 ‘각본집 & 스토리보드북 세트’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교보문고가 28일 발표한 2월 넷째 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기생충 각본집 & 스토리보드북 세트’는 전주에 비해 84계단을 올라 1위를 기록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도서에 대한 관심이 쏠리면서 일시적 품귀현상을 빚었고, 원활한 수급이 되기까지 2주 가량 걸렸다. 이후 출판사가 증쇄에 나서 1위에 올랐다. 구매 독자 비중을 살펴보면 40대 독자가 가장 31.3%로 높게 나타났으며 남성 48.7%, 여성 51.3%로 남녀 독자 비율은 비슷하게 나타났다. 한편 전주 발간되자마자 1위를 차지했던 가수 양준일의 에세이 ‘양준일 Maybe’가 2위로 한 단계 내려섰다. 부동산 강의 채널을 운영하면서 팬덤을 형성한 재테크 전문가 박홍기의 ‘디레버리징′이 처음으로 진입해 단숨에 3위로 이름을 올렸다. 영화, 드라마의 후광에 힘입어 원작 소설들이 조명되기도 했다. 개봉 3주차 7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작은 아씨들’의 원작 소설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알에이치코리아)이 14위, 동명의 JTBC 드라마가 방영 중인 이도우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27위에 올랐다. 1. 기생충 각본집 & 스토리보드북 세트 (봉준호·플레인아카이브) 2. 양준일 Maybe (양준일·모비딕북스) 3. 디레버리징 (박홍기·좋은땅) 4.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정주영·한국경제신문) 5.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편 (채사장·웨일북) 6. 흔한남매 3 (흔한남매·아이세움) 7.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전승환·다산초당) 8. 추리 천재 엉덩이 탐정 9 (트롤·아이세움) 9.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글배우·강한별) 10. 데미안 (헤르만 헤세·더스토리)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그들의 시선] “도전의 가치,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죠”

    [그들의 시선] “도전의 가치,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죠”

    “이제 다카르랠리에는 미련이 없어요. 최선을 다했거든요.” 지옥의 랠리로 불리는 다카르랠리에서 모터사이클 부분 ‘한국인 최초 완주’, ‘아시아 최고 기록’ 달성에 성공한 류명걸(38) 선수는 “후회 없는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10년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다카르랠리에 전념한 결과다. 류 선수를 지난 12일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다카르랠리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후회 없이 완주하는 거였어요. 제가 회사에 다니고 경제활동을 하며 대회 준비를 했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미련이나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50등 했다면, 직장만 아니었어도 더 순위를 당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식으로 말이죠.”다카르랠리는 지난 5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됐다. 7800km 중 75%가 사막과 모래언덕이다. 참가자들은 이 구간을 12일 동안 12개 구간으로 나눠 달렸다. 모터바이크 부문에 144명이 출전했고, 96명이 완주했다. 류명걸 선수는 52시간 40분 26초로 40위를 기록했다. 다카르랠리 한국인 최초 완주이자, 역대(450cc 기준) 아시아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이다. “다카르랠리 대회는 완주율이 50~60% 사이입니다. 절반이 완주를 못해요. 이유는 바이크 고장이나 선수 부상, 둘 중 하나입니다. 초장거리에 길이 험하다 보니 대회에 참가하고 완주하는 것만으로 영광이죠. 처음에는 완주를 목표로 50위권 순위를 예상했어요. 그런데 좋은 기록을 세우고 보니, 2년 동안 준비한 게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다카르랠리는 1979년 프랑스 파리-세네갈 다카르를 달리는 것으로 시작됐다. 테러 위험과 환경 문제로 2008년 이후에는 남미로 무대를 옮겼다. 이번 대회는 중동에서 개최됐다. 류 선수는 새벽 3시~4시에 일어나 10시간씩 600~700km를 달렸다. 길이 없는 곳을 달리다 보면 위험한 순간이 많을 것 같다는 말에, 그는 “매 순간이 위험하다”고 간명하게 답했다. “하루에 길게는 800km 이상을 달리다 보면 체력도, 집중력도 떨어져요. 무엇보다 주변에 나무나 건물이 없다 보니, 내가 달리는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어요. 잘 달리던 선수가 갑자기 부-웅 앞으로 날아가는 경우도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저 선수가 왜 갑자기 날아가지, 라고 생각해요. 사실 (사막의)모래 안에는 돌이 숨어 있어서 그렇거든요.”류 선수는 2년 전부터 다카르랠리를 향해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2018년 2월, 1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고, 경기도 남양주에 지금의 작업실을 얻었다. 그곳에서 그는 숙식을 해결하며 2년 동안 훈련에 매진했다. 류 선수는 “대회 출전을 위해 모든 걸 다 걸었었다”면서 “무엇보다 직장을 그만둔 가장 큰 이유가 대회를 준비하다가 잘 안 되면 중도에 포기할 것 같아서”라고 밝혔다. 다카르랠리는 참가 자격이 까다롭다. 참가비만 4000만원이 넘는다. 다른 랠리 출전 경력은 필수다. 훈련 기간을 포함해 대회에 들어가는 총 비용은 3억원가량. 대부분 기업 후원을 받아 ‘팩토리팀(브랜드 지원팀)’으로 출전하지만 류 선수는 개인자격으로 출전했다. 꿈과 현실 사이를 메워 준 건 정주영(38) 감독이다. 그는 류 선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버팀목이다.“다카르랠리는 다른 랠리에 출전한 경력이 있어야 해요. 대회에 나갈 때마다 2000만원 정도 드는데, 제가 10번 출전했으니까 2억원 가량 썼죠. 전세자금하고 퇴직금을 거기에 다 쓴 겁니다. 정주영 감독님은 비행기 사진을 전문적으로 촬영하시는 분인데, 본인 작품까지 팔아서 참가비를 보태셨어요. 정 감독님이 동분서주했기에 다카르랠리에 갈 수 있었습니다.” 정주영 감독은 류 선수의 영상과 사진 촬영은 물론 국내외 기업 후원사 모집 등 다카르랠리 도전에 필요한 제반업무를 맡았다. 정 감독의 헌신적인 노력에 류 선수는 “사실 저도 궁금하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돈을 꿔 준거라면서 내놓으라고 할까 봐…”라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정 감독님이 왜 그렇게까지 저를 도와주셨는지는 저도 미스터리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정 감독은 “답은 간단하다. 류명걸 선수에게 다카르랠리에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뿐”이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이어 정 감독은 “어느 순간부터 돈이 아니면 의미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상금이 있는지, 돈이 되는지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는 사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류 선수가 다카르랠리를 통해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는 “잃은 것은 돈밖에 없다. 대회를 준비하는 2년 동안 운동을 많이 해서 그 어느 때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또 대회를 준비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것을 얻었다”고 답했다. 평생의 반려자도 만났다. 그는 다카르랠리를 준비하면서 만난 예비신부와 오는 3월 7일 백년가약을 맺는다. 류 선수는 완주의 기쁨을 예비신부와 함께했다. 그는 “완주 메달을 들고 프러포즈를 했다”며 “정 감독님의 배려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결혼 촬영을 했다. 사막에서 결혼 촬영을 한 건 한국인 최초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다카르랠리를 끝낸 류 선수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한국 모터바이크 문화 개선, 올바른 운전자 교육과 대회 출전 경험을 담은 책을 내는 것이다. 류 선수는 “저와 같이 랠리에 관심이 있거나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교육을 시켜드리고 싶다. 또 한국형에서는 생소한 오프로드(비포장) 교육과 관련된 교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gophk@seoul.co.kr
  • [베스트셀러]기생충 각본집·스토리북, 순위에 첫 이름

    [베스트셀러]기생충 각본집·스토리북, 순위에 첫 이름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석권으로 ‘기생충 각본집·스토리북’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교보문고가 14일 발표한 2월 둘째 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출간된 이 책은 아카데미상 발표 이후 판매가 급증하면서 47위로 첫 진입 했다. 예스24와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에서는 아카데미상 발표 직후부터 이 책이 일일 집계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교보문고를 비롯한 상당수 출판 유통업체들은 이 책의 재고 물량이 소진돼 현재는 예약 주문만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영화 100년사 최초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라는 홍보문구가 적혀 있던 이 책의 띠지는 최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4개 부문 수상!’으로 바뀌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흔한남매’의 일상을 만화로 그린 흔한 남매 3‘은 5주째 1위를 이어갔다. 출간된 지 1년 4개월이 지난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이 8계단 오른 6위를 기록해 눈에 띄었다. 교보문고는 ’SNS를 통한 입소문‘을 비결로 분석했다. 방학을 맞아 강세를 보인 ’추리 천재 엉덩이 탐정 9‘(3위), ’마법 천자문‘(15위) 등 아동물과 일부 어학교재는 여전히 상위권을 유지했다. 1. 흔한남매 3 (흔한남매·아이세움) 2.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편 (채사장·웨일북) 3. 추리 천재 엉덩이 탐정 9 (트롤·아이세움) 4.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글배우·강한별) 5.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교양 수업 365 (데이비드 키더·위즈덤하우스) 6.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정주영·한국경제신문) 7.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등·김영사) 8. 에이트 (이지성·차이정원) 9. 데미안 (헤르만 헤세·더스토리) 10.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알마)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에 김도연 선임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에 김도연 선임

    김도연(67)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울산공업학원 제6대 이사장으로 6일 선임됐다. 신임 김도연 이사장은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와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서울대 교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울산대 총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포스텍 총장을 역임했다. 울산공업학원은 우리나라 산업화에 필요한 고급 기술인력을 양성하려고 1969년 고 정주영 현대 창업자가 설립했다. 울산공업학원은 울산대와 울산과학대를 운영하고 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단독 인터뷰]허구연 “정치할 걸 그랬나… 체육 예산 너무 부족해”

    [단독 인터뷰]허구연 “정치할 걸 그랬나… 체육 예산 너무 부족해”

    30대 때부터 정치권 영입 제안 이어져고 정주영 전 회장 사업 제의도 거절해“체육 등한시하는 정치권 보면 화나…정치 통해 입법화 했어야 하는 생각도” (1회에서 이어집니다.) 허구연(69) MBC 해설위원은 1982년 출범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가 배출한 ‘미디어 스타’였다. 지금이야 그의 목소리가 귀에 익어 구수하게 들리지만, 38년 전 31세의 젊은 보이스와 함께 지적인 내용이 듬뿍 담긴 그의 해설은 매우 참신하고 현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불과 35살에 청보 핀토스라는 약체팀의 감독을 맡게 된 배경에도 ‘똑똑한 해설가 허구연’에 대한 세간의 기대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허 위원은 30대 때 야구계 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영입 제의가 있었으며, 고 정주영 현대 회장 등 기업인들로부터도 사업하자는 제안을 받았었다는 비화를 밝혔다. -지금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현장해설을 하는 걸 보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 “청보 핀토스 감독에서 물러나 만 40세의 나이에 미국에 가서 마이너리그 코치를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정립했다. 흔히 권력, 명예, 돈으로 인생이 나뉜다고 하는데 나는 명예로운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가치관이 정립되니 권력이나 돈에 대한 유혹을 많이 뿌리쳤다. 정치권에선 30대 때부터 영입제의가 왔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건대 가치관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정치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 같다. 사업쪽으로 정주영 회장한테도 제의가 왔었지만 야구하겠다고 거절했다. 몇 천억원을 줘도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하지 못한다면 나에겐 의미가 없었다. 나는 여야도 아니고 작게 보면 ‘야구당(黨)’ 이다. 그게 좋았다.” -인생에는 실패와 좌절이 있다.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청보 핀토스 감독에 올랐다가 성적이 안나와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사람들이 나보고 금수저라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실패해서 어려웠던 적도 있고, 한창 야구 잘하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4차례 수술한 뒤 선수생활을 그만두기도 했다. 이후 공부를 해보자고 생각해서 대학원에 가게 됐고 교수를 하려는데 프로야구가 생겼다. 그때 청보에서 감독직을 맡아달라고 해서 결국 하게 됐다. 청보에서 실패는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젊었을 때 많은 도전을 해봐야지 50살이 넘어가면 겁이 나서 도전을 못한다. 만약 그때 감독을 안했다면 40살 넘어서 감독을 1~2번 더 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만뒀을 거다. 미리 좋은 경험을 했다. 현장 지도자는 할 사람이 많았고, 좋은 조건의 제의가 들어와도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해설을 오래하게 됐다.” -살아보니 모든 일엔 이유가 있는 것 같나, 아니면 우연히 일어날 뿐인가. “이유가 다 있다. 다리 다쳤을 당시 일본 올스타와의 경기에서 내가 1, 2차전 모두 홈런쳤다. 3차전에 가니 7월 말이라 너무 덥기도 해서 감독에게 쉬게 해달라고 했는데 ‘제일 잘하는데 빠지면 어떡하느냐’고 해서 결국 뛰었다가 다쳤다.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뭔가를 해야하니까 공부를 했고, 그러면서 해설을 하게 됐다. 운명적으로 묘하게 맞았다. 안 다쳤으면 해설을 안했을 테고 현장에서 선수, 코치, 감독하다가 잘렸을 것 같다. 청보 시절에도 계속 감독을 했다면 잘리고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다. 청보 감독 이후 롯데에서 수석코치를 한 뒤 미국에 갔고 그때 마음에 선을 그어서 이렇게 해설을 하고 있다.”-인생 선배로서 젊은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힘들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젊은이들도 따라가지만 말고 도전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 젊은이들을 좌절시키는 기성세대 중에서도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에도 애국자가 많아야 한다. 애국이라는게 단순히 나라 사랑 뿐 아니라 국민들 사랑, 젊은이들 사랑까지 포함돼 있다. 정치인들이 인기만 좇아가지 말고 젊은이들을 사랑하고 필요한 정책들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학력을 보니 고대 법대 학사라고 나온다. “나는 중학생때부터 공부했다. 고대 법대 대학원도 시험쳐서 붙었었다. 공부를 잘 했는데 덩치도 크고 야구도 잘하니까 학교에서 권유했다. 시합 뛰면서도 한 번도 후보인 적이 없었다. 운동선수들이 보통은 공부한 친구들이 없는데 나는 정치인들도 친구고 정세균 국무총리하고는 대학 때부터 40년 친구다. 아까도 말했지만 휩쓸리지 말고 자기 뜻을 바로 세워야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된다. 권력, 돈, 명예를 다 가지려면 감방에 가야한다. 야구, 축구, 농구를 한 번에 다 할 수는 없지 않나. 또 지금은 이념 대립, 빈부 대립, 세대 대립 등 너무 대립하는 시대다. 그래서 나는 정치인들을 만나면 늘 당신들이 문제라고 얘기한다. 사람들을 포용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하는데 너무 갈라놓는다.” -지금도 정치 쪽은 관심 없나. “30대 때부터 제안이 왔어도 거절했는데 요즘엔 화가 나서 ‘그때 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체육 예산 때문이다. 우리나라 체육 예산이 너무 적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말처럼 국민들에게 미치는 스포츠의 중요성이 있는데 정부도 법도 예산 편성도 너무 지원이 없다. 입법화를 시켰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돔구장 같은 프로구장만 얘기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마추어 시설을 더 많이 주장한다. 4대강 사업 때 다 축구장만 짓는 걸로 돼있었는데 건설본부장한테 가서 야구장 지어주지 않으면 1년 내내 따지겠다고 했더니 야구장이 몇 개 생겼다. 인프라가 없으면 야구는 특히 안 된다. 교실없이 학생들 오라면 오겠나. 10년 전에 야구 발전위원장 할 땐 160 몇 개였는데 지금은 400개가 넘는다.” 대담 김상연 체육부장 carlos@seoul.co.kr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①[단독 인터뷰]69세에도 팔팔한 허구연 “좋아하는 일 하는 게 젊음의 비결”(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81&aid=0003062689)
  • ‘유통거인’ 신격호(1921~2020)

    ‘유통거인’ 신격호(1921~2020)

    롯데그룹 창업주인 ‘유통 거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4시 29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신 회장이 떠나면서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이 국내 산업계를 이끌던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도 완전히 마감됐다. 주민등록상으로는 1922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21년생으로 지난해 11월 3일 백수(白壽·99)를 맞은 신 회장은 전날 밤 병세가 급격히 나빠져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끝내 눈을 감았다. 1948년 일본 도쿄에서 맨손으로 껌 사업을 시작한 고인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 대기업을 일구며 롯데를 국내 재계 5위 그룹으로 키워 냈다. 말년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2015년 벌어진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휩싸였다. 이 과정에서 정신건강 문제도 알려졌다. 제조업 중심이던 국내 산업계에 유통·서비스업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와 독단적인 경영방식, 불투명한 지배구조에 대한 비판이 엇갈린다. 장례는 그룹장으로 진행되며 이홍구 전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명예장례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장례위원장은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가 맡는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유통거인’ 신격호 (1921~2020)

    ‘유통거인’ 신격호 (1921~2020)

    롯데그룹 창업주인 ‘유통 거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4시 30분쯤 숙환으로 별세했다. 신 회장이 떠나면서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이 이끌던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도 완전히 마감됐다. 주민등록상으로 1922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21년생으로 지난해 11월 3일 백수(白壽·99)를 맞은 신 회장은 전날 밤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며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1948년 일본 도쿄에서 맨손으로 껌 사업을 시작한 고인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 대기업을 일구며 롯데를 국내 재계 5위로 키워 냈다. 1967년 국내에 롯데제과를 설립하면서는 회사의 역할이 수익을 내 국가에 도움이 된다는 ‘기업보국’(企業報國)을 기치로 내걸었다. 말년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2015년 벌어진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휘말렸다. 이 과정에서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을 면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씨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와 딸 신유미씨 등이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신격호 껌으로 세운 ‘롯데’…‘마지막 꿈’ 123층 타워 남겨

    신격호 껌으로 세운 ‘롯데’…‘마지막 꿈’ 123층 타워 남겨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의 별세로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이 재계를 이끌던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신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껌 사업을 시작해 롯데를 국내 재계 순위 5위 재벌로 성장시킨 자수성가형 사업가다. 1921년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의 첫째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인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문과 우유 배달 등을 하며 와세다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커팅오일 사업을 시작했다. 2차 대전에 공장이 전소하는 등 시련을 겪은 그는 이후 풍선껌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며 1948년 ㈜롯데를 설립했다. 롯데라는 이름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 명예회장은 한·일 수교 이후 한국 투자 길이 열리자 그는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국내 최대 식품기업의 면모를 갖춘 롯데는 관광과 유통, 화학과 건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롯데호텔과 롯데월드, 롯데면세점 등 관광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고인은 관광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관광산업 분야에서는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국내 최고층 빌딩이자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123층 롯데월드타워 건설도 신 명예회장이 1987년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며 대지를 매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신 명예회장은 제2 롯데월드타워에 대해 ‘내 마지막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터지면서 신 명예회장은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국내 계열사 이사직에서도 퇴임해 형식적으로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신 명예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유족으로는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 등이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 신경숙 씨, 신선호 일본 식품회사 산사스 사장, 신정숙 씨, 신준호 푸르밀 회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부회장이 동생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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