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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전협정
    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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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 사우디 공군력 증강/후세인 응징 일환

    ◎스텔스등 첨단기종 곧 배치 【다란(사우디아라비아)AFP 연합】 미국은 걸프전이 끝남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국 군사력을 가능한한 빨리 철수시키려던 당초 계획을 수정,스텔스 폭격기등 최첨단 기종들로 구성된 전투비행 전력을 곧 현지 배치할 계획이라고 미공군 간부가 밝혔다. 주사우디 제4004전투비행단을 이끌고있는 로버트 힌즈 대령은 지난 1일 가진 AFP와의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미국의 철군 계획 일부 수정이 이라크의 군사력 「복구」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앞서 걸프전에서 파괴된 레이더 설비를 고치고 미사일 발사대도 새로 설치하는 등 정전협정을 「무시한 적대행위를 여전히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미­북한 평화협정/북,대미 체결 촉구

    【내외】 북한은 27일 정전협정조인 30주를 맞아 미·북한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북한은 이날 당기관지 로동신문의 사설을 통해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남북한간 불가침선언을 채택하며▲한반도를 비핵·평화지대로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유엔가입 그후의 한반도(사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계속에서 한반도정세 역시 변화를 맞고 있다.우선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을 하면 일단 한반도에서 무력분쟁의 가능성은 덜 느끼게 될것이다.그것이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유엔은 누가 뭐래도 현존하는 세계 최고 최대의 국제기구로서 그 권능을 갖고있다.걸프전의 전과정이 바로 그것을 증명했다.국제법적으로도 유엔 가맹국이 된다는 것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것을 약속하는 일이 된다.그 헌장 전문에 게재된바 공동의 이익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수락해야한다.원칙적으로 「전쟁은 안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 즉 남북한문제 해결에 관한한 유엔가입 이후 일차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현안은 유엔군 사령부 지위와 이와관련된 남북한간 휴전체제이다.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군사적 제재를 가하기 위해 설치된 유엔사의 존재는 북한이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 유엔헌장을 준수하는한 현실적으로 재규정될 수 밖에 없다. 유엔군은 당초 그것을 구성했던 대부분의 국가가 군대를 철수하여 현재는 그 주축이었던 미군 일부만이 남아있다.유엔사의 존재와 지위가 재규정될 경우 그에 따라 대두될 현안이 휴전협정과 주한미군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전쟁억지수단으로서,또 세계전략 차원의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으로서 존재하면서 그 인계철선 역할이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은 지금 엄밀하게는 교전이 없는 전쟁상태,다시말해 정전상태에 있다.그 상태에서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고자 하는 데에 남북한 문제해결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여기서 이제 그 어려움을 깨뜨리자는 것이다.그것이 바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일이다. 북한도 그 당위성은 인정한다.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다.북한의 주장은 정전협정의 서명당사자가 미군사령관인 유엔군 사령관이고 따라서 새로운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억지라도 보통이 아니다. 어느 경우의 휴전협정에서도 서명인의 국적과 협정의 당사국은 개념이 다르다.우리 정전협정의 서명자가 마크 클라크대장이었다고 해서 한국이 당사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한국정부의 사실상 승인이 없었다면 협정은 성립될 수 없었다.그리고 지난 38년동안 한국군은 정전위의 대표로서 또 지금은 유엔군측 수석대표로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그것이 현실이다. 남북한의 유엔가입현실은 그 활용여하에 따라 한반도문제 해결의 궁극적인 수단이 될수도 있다.통일의 길을 극적으로 앞당길수도 있다는 얘기다.따라서 이제 북한은 대국을 걸어야한다.군비통제와 당사자간 해결원칙위에 서야 하는 것이다.전쟁을 버리고 평화를 택해야한다.유엔가입후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의 구축은 현실적으로 휴전협정의 개폐문제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돼야 하는 것이다.
  • 북한의 중립국감독위 철수 요구/폴란드·체코 거부

    북한은 최근 폴란드측에 중립국감독위에서 철수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폴란드측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22일 『북한 외교부는 지난 6일 바투라 평양 주재 폴란드 대사를 불러 중립국감독위에서 폴란드가 대표를 철수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폴란드는 이에 대해 정전협정이 중국과 북한 및 미국간에 체결된 것인 만큼 어느 일방의 결정만으로 철수할 수 없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은 체코측에도 중립국감독위 철수를 요청했으나 체코도 풀란드와 같은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스위스 스웨덴 체코 폴란드 등 4개국으로 구성된 중감위는 그동안 정전협정의 위반사항을 감시해 왔으나 우리나라가 체코 및 폴란드와 국교를 수립하자 북한은 이의 무용론을 제기해 왔다.
  • 화해길목에 들어선 미­베트남/미의 1백만불 경원발표 안팎

    ◎하노이사무소 개설로 교류길 터/「캄」 분쟁등 난제 많아 수교까진 시간 걸릴듯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월남전의 적대관계에서 서서히 벗어나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주 부시 미 행정부는 월남전 당시의 미군실종 문제를 규명하기 위한 임시사무소를 하노이에 개설하기로 공산 베트남정부와 합의한 데 이어 수일 전에 베트남에 대한 1백만달러의 재정원조 계획을 발표했다. 워싱턴이 근 40년 만에 처음으로 하노이에 공식 사무소를 개설키로 한 계획은 미·베트남간 관계정상화 가능성을 예고하는 중요한 진전으로 이해되고 있다. 월남전 부상자들에게 의수와 의족 등을 제공하기 위한 소규모의 인도적 원조이긴 하지만 2년전 시작된 미·베트남 관계의 점진적 개선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의 특사인 존 베시 전미 육군참모총장은 지난 20일 베트남의 구엔 코 탁 외무장관과 이틀간 회담을 가진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베트남 양국 정부는 관계정상화를 바라고 있으며 이 문제에 관한 회담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의 리처드 솔로몬 동아태 담당차관보는 25일 미 의회 증언에서 대베트남 원조에 대해 『지난 87년 베트남과 미국의 관리들이 실종 미군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노력키로 합의했을 때 약속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하노이에 개설될 임시사무소에 언급하면서 『외교적·정치적 책임이 부여되지 않을 이 사무소를 정상화 과정의 첫걸음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캄보디아사태 해결방안이 조인되면 이 사무소는 관계정상화 촉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미·베트남 국교수립 전망은 지난 78년 12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폴 포트와 그의 크메르 루주 정권을 전복시켰을 때 사라졌다. 그러나 89년 하노이가 캄보디아 주둔 베트남군 14만명을 철수시키면서 양국 관계는 점차 개선되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아직도 프놈펜에 상당수의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있지만 부시 미 행정부는 지난해 7월 캄보디아문제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 하노이와 대화를 개시함으로써 협조증진의 움직임을 보였다. 당시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의 민간단체들이 베트남에 인도적 원조를 제공하는 것을 권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후 지금까지 부시 행정부는 총 36건 4백30만달러 상당의 대베트남 민간원조를 허가했다. 베트남에 대한 정부차원의 경제원조 문제는 오랫동안 미·베트남간의 쟁점이 돼 왔다. 77년 카터 미 행정부와 협상중 베트남은 미국이 베트남의 전후 복구를 위해 수십억 달러를 부담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베트남의 이러한 주장은 두 가지 문서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하나는 베트남 재건을 위한 미국의 지원을 다짐한 73년 파리정전협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전 후 닉슨 미 대통령이 팜 반 둥 월맹총리에게 보낸 서한이었다. 이 서한에서 닉슨은 40억달러 이상의 식량 및 복구사업 원조를 베트남에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후 포드 행정부와 카터 행정부는 75년 월맹의 사이공 침공·통일을 정전협정의 위배라고 비난하며 베트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워싱턴은 캄보디아 분쟁이 미·베트남 관계정상화의 최대 장애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꿔 말해 캄보디아사태 해결을 위한 유엔 평화안을 프놈펜 정권이 받아들이도록 베트남이 협조해야 대하노이 관계를 정상화시켜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유엔 평화안은 우선 캄보디아정부군과 게릴라집단의 무장을 해제시킨 후 선거를 실시해 의회를 구성하도록 돼 있으며,미·베트남간 전면적 외교관계수립은 맨마지막 과정으로 제시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월남전 포로 및 실종자문제의 미해결도 관계정상화의 장애요인으로 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무조건 관계정상화를 주장하는 하노이에 대해 워싱턴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최근의 호의적인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미·베트남 관계의 조기정상화는 아직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망했다.
  • 미 공군,이라크 전폭기 1대 격추/“정전협정 위반에 응징”

    ◎휴전후 처음/“반군 진압 출격땐 공격” 경고 【다란·워싱턴 로이터 AP 연합 특약】 미 공군기가 20일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정전협정을 위반한 이라크 전폭기 1대를 격추시켰다고 사우디주둔 미군사령부 대변인이 밝혔다. 데이비드 녹스대변인은 이날 하오1시50분쯤(한국시간 하오7시50분) 바그다드 북쪽 1백75㎞지점 타크리트 부근에서 비행중이던 이라크의 SU­22전폭기 2대가 미국의 AWACS 조기경보기에 의해 탐지돼 이중 1대가 미군 F­15기에 의해 격추되고 나머지 1대는 곧 착륙했다고 말했다. 녹스대변인은 이 사건이 정전협정위반에 대한 응징일 뿐 이라크에 대한 전투재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말린 피츠워터 미 백악관대변인도 이같은 격추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라크의 전폭기 비행시도는 지난 3일 다국적군과 이라크간에 체결된 정전협정조건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국적군측은 정전협상과정에서 이라크남부를 점령하고 있는 다국적군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이라크가 다국적군의 승인없이 전투기를 이동시키지 말도록 경고했고 헬리콥터도 행정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앞으로도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모든 이라크 항공기들은 격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이라크전투기의 격추는 지난달 28일 다국적군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행위를 중단한 이래 처음있는 일로 이라크정부군 비행기가 앞으로 반군 진압을 위해 사용될 경우 모두 격추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 판문점 통한 남북왕래 허용

    ◎해외교포·외국인 대상/법무부/출입국관리법령 개정 방침 법무부는 20일 해외교포나 외국인이 국익에 도움이 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북한을 거쳐 제3국으로 출국하거나 제3국에서 북한을 거쳐 판문점 등으로 입국할 수 있도록 판문점 등 접촉지역에서 출입국 심사를 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는 지금까지 질병 등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입국 장소로 지정된 서울·부산·인천·제주 등지만을 통해 출입국을 허용해 왔으나 남북 자유왕래 등 앞으로의 남북교류에 대비,판문점 등도 출입국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법무부의 관계자는 이날 『법이 개정되면 해외교포나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제3국을 거치지 않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에 가거나 북한에서 제3국을 거치지 않고 판문점을 통해 입국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밝히고 『그러나 정전협정 등 남북양측의 선결문제가 남아있어 법이 개정되더라도 당장 남북 자유왕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이날 전국 12개 출입국관리사무소장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방침을 정한뒤 불법취업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불법취업소개 권유 및 알선금지 조항을 신설,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금고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 정전위 유엔측 수석/한국 장성 교체 당연/외무부,북 주장 반박

    외무부당국자는 20일 군사정전위 유엔측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이 맡기로 한 한미 양국간 합의사항에 대해 북한이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과 관련,논평을 발표하고 『정전협정 제2조20항에 의거,유엔군 사령관은 유엔측 군사정전위 5명을 임명토록 돼 있는데 군대 계급외에 국적 등 다른 명시조건은 없다』면서 『따라서 한국군 장성이 군사정전위의 유엔측 수석대표를 맡는 데는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고 반박했다.
  • 「군정위수석대표직 한국이양」 한·미 합의

    ◎북한·중국,“정전협정 위반” 【내외】 중국은 17일 한미간에 최근 논의된 바 있는 「군정위 유엔군측 수석대표의 한국 이양」 문제는 한국이 정전협정 조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는 주장을 표명했다. 중국은 이날 관영 북경방송을 통해 지난 15일에 끝난 한미안보협의회 군사위원회에서 지금까지 미국측이 맡아왔던 군정위 유엔군측 수석대표 자리를 오는 92년까지 한국측에 넘기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하면서 『한국이 정전협정에 조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이 방법은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된다』고 주장했다. 【도쿄 AP 연합 특약】 북한은 19일 한국이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을 증액한 데 대해 노골적인 비난을 가하고 나섰다. 도쿄에서 수신된 북한 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이 미군의 주둔비용을 증액한 것은 민족적 반역행위』라고 비난하면서 『특히 북한의 핵사찰을 주장한 것은 미군의 핵무기 존재를 정당화시키려는 술책』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또 정전협정에 있어 유엔군의 대표로 남한군 사령관이 대체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북한의 비난은 지난 15일 워싱턴에서 끝난 한미연례안보회의에 대한 첫 공식반응이다.
  • 비 좌익 노조 총파업/반군선 정전협정 파기 선언

    【마닐라 AFP 연합】 필리핀 경찰은 24일 연료비 인상에 항의하기 위한 총파업으로 마닐라등 주요 도시의 기능일부가 마비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총파업 참여자들중 최소한 48명을 연행했다고 노조단체들이 주장했다. 총파업이 시작되면서 무장병력들은 비상상태에 들어갔으며 정부는 총파업으로 발이 묶인 승객들을 수송하기 위해 국영버스와 트럭을 운행시키는 한편 운수업계의 노동자를 회유하기 위해 버스운임 25% 인상을 발표했다. 이번 총파업을 주도한 좌익 노조단체 「5월1일 운동」은 이날 총파업으로 남부에 있는 다바오시의 교통이 완전히 마비됐으며 마닐라등 주요 도시의 간선도로도 마비상태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필리핀의 공산반군들은 14일 필리핀 전역에서 보안군에 대한 공격을 재개할 것이라고 선언,지난 7월 지진참사 이후 코라손 아키노정부와 맺은 한시적인 정전협정을 파기했다.
  • 소ㆍ북한 관계 냉각 시사/김영남 회견 “미와 대화시기 온다”

    【도쿄 연합】 김영남 북한외교부장은 지난 30일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와 회견에서 『남ㆍ북한간의 양호한 동지적 관계는 장기간에 걸쳐 복잡화되어가고 있다』고 말해 소ㆍ북한간의 냉각화를 북한의 외교책임자로서 처음으로 인정했다고 산케이(산경)신문이 31일 모스크바발 지지(시사)통신을 인용,보도했다. 김은 내달 2,3일 셰바르드나제 소외무장관의 북한방문시에 복잡한 제문제를 전면적으로 토의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이 통신은 전했다. 한편 교도(공동)통신은 김영남 북한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지난 30일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의 평양특파원과 회견에서 소련의 아시아 외교를 평화적이라고 평가하는 한편,미국에 대해서는 『대화의 시기가 오고 있다』고 말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했다고 31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김은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대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 현재 학술분야에서 교류가 있고 지금까지도 북경에서 양국이 외교적 접촉이 있었음을 지적,『지금이야말로 대화의 시기다. 이것이 우리의 입장이다』고 말했다.
  • 새 실록 6ㆍ25 김학준:하

    ◎“핵투하도 불사”… 미 으름장에 DMZ설정 동의/“휴전 지체할 수 없다”… 투르먼,맥아더 해임/반공포로 석방으로 한­미 방위조약약 가조인/아이크 대통령 당선ㆍ스탈린 사망후 「정전협상」급진전 ▷제4기◁ 중국군의 남진이 계속되자 맥아더는 과감한 보복조치를 마련했다. 그는 50년 12월30일 본국의 합동참모본부에 대해 ①중국해안의 봉쇄 ②중국본토의 군수산업시설 폭격 ③장개석 군의 파한 ④장개석 군의 중국본토에 대한 견제공격을 건의했다. 그는 미국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전면철수한다면 중국군의 침공위협은 보다더 중요한 지역에 대해 가중될 것이며 그 결과 보다 많은 전력의 투입이 요청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합참은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 보존에 주로 유의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철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축차적인 방어작전을 수행하라』고 답변할 뿐이었다. 맥아더는 이 답변을 「명백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면서 『국련군의 전면철수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든지,아니면 일본의 방위와 국련군의 전력보존을 위해 한반도를 포기하든지 양자택일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트루먼은 51년 1월13일 『공산군의 침략행위가 시정될 때까지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침략의 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세계에 밝혀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최악의 경우 국련군은 제주도와 같은 남한 연안의 섬으로 철수해 전투를 계속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후임에 리지웨이대장 맥아더와 본국정부 사이에 이견이 오가는 사이 국련군은 전세를 수습하고 공세로 돌아섰다. 그리하여 국련군은 51년 3월 초순 이후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3월15일 서울을 재탈환했으며 3월30일께까지는 38도선까지 밀고 올라갔다. 이로써 한국전쟁을 국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전황이 국련군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전개되고 무엇보다 전전원상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이면서 국련에서는 다시 휴전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서방진영의 국가들도 국련군의 38도선 재북상에 반대하면서 만일 미군이 단독으로라도 재북상하기로 결정한다면 자신들은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의사마저 나타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트루먼은 중국과의 정치적 협상을 통해 휴전을 성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3월20일 맥아더에게 그러한 취지의 성명이 가까운 장래에 발표될 예정임을 통고했다. 맥아더는 트루먼의 이 결정을 좌절시키기로 결심하고 3월24일 본국정부와의 아무런 협의없이 중국에 대한 공식성명을 발표했는데 중국대륙에의 전면적 확전으로써 한반도문제를 해결지을 수 있을 것임을 암시함으로써 트루먼이 추구하려는 중국과의 협상을 사실상 어렵게 만들었다. 이 성명에 뒤이어 맥아더는 4월5일 하원 공화당 원내총무 조세프 마틴의원이 자신에게 보낸 3월2일자 편지에 대한 답장을 공개하여 트루먼을 더욱 격분시켰다. 아시아 중시정책을 강조하면서 논평을 요구한 마틴의 서한에 대한 이 답장에서 맥아더는 우선 트루먼의 유럽 중시정책을,그리고 유럽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아시아를 경시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결론적으로그는 『우리는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승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맥아더의 3월24일자 공식성명을 보고 그의 해임을 결심했던 투르먼은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4월10일 라디오방송을 통해 맥아더의 해임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한반도에서 추구하고 있는 목표는 제한전에 의한 제3차대전의 방지』라고 선언했다. 맥아더의 후임으로는 8군사령관 리지웨이 대장이 임명됐다. 맥아더의 해임은 미국이 휴전을 향해 움직인다는 명백한 의사의 표시였다. 한편 공산군은 51년 4∼5월 춘계대공세를 폈으나 인명의 큰 손실을 겪었을 뿐이고,이 시점에서 전선은 완전히 교착됐다. 전선이 교착된 51년 5월 중순부터 미국과 국련에서 휴전논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특히 5월17일 에드윈 존슨 미국 상원의원이 국련이 휴전을 이끌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고 이 제의가 소련의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된 것을 계기로 휴전논의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예컨대 국련에서 리 사무총장과 캐나다의 레스터 피어슨 외무장관 및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이 각각 전전원상의 회복이라는 선에서의 휴전안을 제의했다. 소련도 드디어 6월23일 국련대표 말리크의 연설을 통해 휴전에 동의했다. 통일을 염원하던 남­북의 한인들에게는 유감스런 일이었지만 쌍방의 참전국가들의 거의 예외없이 휴전을 바라고 있었다. ▷제5기◁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과 소련이 정전의 원칙에 합의함에 따라 7월8일 개성의 중심지 북방에 있는 지난날 유명했던 유곽에서 국련군쪽과 공산군쪽의 연락장교단에 의한 예비회담이 열렸다. 이어 7월10일 개성에서 본회담이 열렸다. 국련군쪽의 수석대표는 미해군 극동사령관 조이 제독이었다. 리지웨이 총사령관이 직접 뽑았다. 정전회담에서 공산군 대표들이 국련군 대표들을 자극해 국련군 대표들로 하여금 공공연하게 화를 내게 하여 회의장을 뛰쳐나가게 만드는 「충동작전」을 쓰거나 정반대로 몇시간씩 끌면서 지치게 만드는 「권태전술」을 쓸 것이라고 계산한 리지웨이는 따라서 국련군 수석대표는 어떠한 도발적 언동에 대해서도 침착하면서도 강경하게 맞설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고판단했다. 즉 『6시간정도 앉아 있으면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오줌누러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협상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리지웨이에게 조이는 적임이었다. 조이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많은 훈장을 받았고 공산주의자들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증오하고 있었으며 적을 굴복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ㆍ소에 “전면전”통첩 조이 수석대표를 보좌할 대표로 리지웨이는 2차대전의 베테랑들로부터 뽑았다. 유럽전선에서 보병연대를 지휘했었고 이때 미8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호지스 소장,북아프리카에서 공중전을 지휘했었고 이때 미극동군 부사령관으로 있던 크레이기 소장,태평양전쟁에서 구축함전투를 대담하게 지휘해 용맹을 떨쳤었고 이때 미극동해군 참모차장으로 있던 버크제독이 선발됐다. 한국군으로부터는 제1군단장 백선엽소장이 선발됐다. 공산군쪽 수석대표는 남일중장이었다. 남일중장을 보좌하는 북한군대표는 전선사령부 총참모장 이상조 육군소장이었다. 정전회담에서 그는 파리가 얼굴에 앉아도 꼼짝 않고 앉아 「강철같은 자기억제」를 보여주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또 한 사람의 북한군 대표는 북한 육군 제1군단 총참모장 장평산 소장이었다. 중국군에서는 사방 소장과 등화 중장이 대표로 참가했다. 이들 가운데 사방이 사실상의 수석대표였고 남일은 이름이 수석대표였지 실제에 있어서는 사방의 지휘를 받는 것 같다고 국련군 쪽에서는 보았다. 회담도중 그는 동료 대표들과의 상의없이 발언했고 선전적인 문구 같은 것도 사용함이 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양쪽 대표단들은 신경전을 거쳐 7월26일 다음과 같은 의제에 합의했다. ①전투행위를 정지하는 기본조건 아래 양군 사이에 비무장 지대를 설치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설정하는 문제. ②정전감시기구의 구성과 권한 및 기능을 포함하여 정전을 성립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들을 결정짓는 문제. ③포로에 관한 결정. ④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에 권고하는 문제. 의제에 대한 합의와 더불어 7월28일 첫번째 의제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합의가 쉬울 것 같아 버크 제독 같은 이는 본국의 아내에게 『가을이 되어 사과가 익었을 때는 나는 과수원이 있는 이곳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썼는데 회담은 길어지면서 10월25일부터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긴다는 것 정도에 겨우 합의할 수 있었다. 회담이 이렇게 길어지면서 서방 참전국들은 초조해졌다. 이점을 간파한 공산군쪽은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자신감에서 국련군쪽 대표들에게 모욕적인 용어마저 썼다. 호지스 소장을 「거북이 알」이라고 불렀고 조이 수석대표에 대해서는 『이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든 수석대표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리지웨이는 견디기 어려웠다. 『이처럼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나오는 적에게 양보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부드러운 비단보다 강한 쇠가 필요하다』라고 본국정부에 호소했다. 이에 미국은 소련에게 『공산군쪽이 협상에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은 만주의 공산기지를 폭격하고 중국의 해안을 봉쇄하여 필요하다면 소련과 전면전에 돌입할 것』이라는 「공갈」을 전달했다. 이와 동시에 트루먼은 중국에 대해 핵무기를 쓰는 문제를 검토했다. 미국의 이와 같은 강경한 자세를 보면서 공산군쪽은 한발 물러서 『현재 쌍방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는다는 원칙아래 앞으로 체결될 정전협정이 지정하는 시간에 쌍방은 이 분계선으로부터 2㎞씩 철수하여 그 지역을 정전 동안 비무장화 한다』는 국련군쪽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때가 52년 1월27일이었다. 이처럼 군사분계선에 관한 합의가 일단 이루어졌다는 것은 한국전쟁의 전체 흐름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군사분계선 문제에 매듭이 지어지면서 쌍방은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해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들에 권고하는 문제」를 다뤄 나갔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쉽게 이뤄졌다. 즉 정전회담 발효 3개월 안에 쌍방에 관련된 나라들의 정부사이에 「고위 정치회담」을 열기로 한 것이다. 정전의 세부사항에 대한 협상에서도 진전이 있었다. 52년 5월2일 양쪽은 스웨덴ㆍ스위스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의 네 나라로써 중립국 감시위원단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공산군쪽은 소련을 중립국이라고 우기면서 중립국 감시위원단에 포함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나머지 문제는 포로교환의 문제였다. 정전이 성립되면 포로교환은 당연히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들이 모두 해결된 이 마당에 이 문제는 빨리 매듭지어져 정전협정이 곧 체결될 것으로 기대됐다. ○2년 1개월만에 매듭 국련군쪽은 우선 「자발적인 송환」의 원칙을 제의했다. 국련군에 포로로 잡힌 공산군에게 돌아갈 것인지 남을 것인지 선택할 권한을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군쪽은 「자동송환」의 원칙을 내세웠다. 모든 포로들은 포로 개개인의 의사에 관계없이 무조건 송환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공산군쪽은 이 원칙을 관철시켜야 국련군쪽에 잡혀 있는 자신들의 장병들이 서방세계를 선택하지 않고 전원 돌아올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협상이 오래 끌면서 공산군쪽은 국련군쪽이 세균전을 펴고 있다는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공산포로들이 포로수용소 사령관 도드 준장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이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련군쪽은 북폭을 강화하기도 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에서는 52년 11월 대통령선거가 치러져 「조기정전」을 내세운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이로써 53년 1월 공화당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었으며,휴전협상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소련에서는 53년 3월 스탈린이 죽으면서 정전을 향한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정전협상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자 이대통령은 통일의 기회가 사라진다는 실망감 속에서 6월19일 국련군에 수용되어 있는 공산포로들 가운데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 2만5천여명을 극비의 작전을 통해 과감하게 석방했다. 이대통령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은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로버트슨을 대통령 특사로 파한했으며 이대통령이 요구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게 했다. 한­미간의 합의가 성립됨으로써 정전협정의 체결을 위한 길은 완전히 열렸다. 그리하여 7월27일 휴전협정은 판문점의 「평화의 천막」안에서 조인됐다. 2년 1개월 여의 긴 시간동안 5백75회의 공식회의를 갖고 1천8백여만 단어를 소비한 다음에야 매듭지어진 것이다.
  • 정전협정은 폐기 평화협정 대체를/북한 유엔 부대사

    【워싱턴 연합】 워싱턴 포스트지는 27일 북한이 안국전 참전 미군유해 5구를 미국에 송환하기로 결정한 것은 동구권의 변혁에 자극받아 서방측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국무부 관리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유엔주재 북한부대사 허종은 미ㆍ북한 간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대체 등 실제적인 조치들이 취해져야 함을 촉구했다고 포스트는 전했다.
  • 방미학술단,한국특파원과 회견 내용

    ◎북한,“한·소 수교는 통일 저해” 비난/“현안해결과 대미수교는 별개문제/의무만 지우는 핵협정 생각해볼 일” 다음은 미 조지워싱턴대 주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중인 북한의 최우진이 워싱턴 주재 한국특파원단과 가진 회견내용이다. ­서울과 모스크바간의 수교가 멀지 않았다는 관측이 많다. 이에대한 견해는. 『주변 나라들의 수교문제는 통일에 이로우냐 불리하냐의 각도에서 고찰하고 있다. 소련과 남조선의 수교는 우리나라를 영구분열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통일을 바란다면 남측도 소련도 국가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수교를 제의할 경우 북한은 이에 응하지 않을 것인가. 『미국이 수교를 제의할 경우에도 우리는 영구분열 요소때문에 수교할 의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북한이 북경에서의 미­북한 접촉수준을 격상하라고 미국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모순된다고 볼 수 없다. 미국은 조선문제에 책임이 있다. 조선문제의 발생과 해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위치에있다. 미국은 정전협정체약의 일방이다. 우리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 미군이 남쪽에 영원히 있어선 안된다. 이것은 해결되어야 한다. 미국과 협상해야 할 문제가 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해 협상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현안해결과 수교는 별개란 말인가. 『그렇다. 별개로 본다』 ­미국과의 대화보다도 우선 남북대화를 통해 해결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우리는 북남대화를 매우 중시한다. 조선문제는 원칙적으로 북남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50년대 전쟁으로 북남간에 불신이 커졌다. 그 근원은 정치·군사적 대결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것이 해결되기 전에는 불신과 오해를 풀 수가 없다. 앞으론 북남고위급회담서 이것을 풀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런데 왜 북한은 며칠전에 적십자회담을 거부하고 금강산 공동개발 계획을 취소했는가. 『문제는 무슨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느냐다. 지금 우리는 어느 한쪽의 오발(?)로 전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긴장상태에서 무력 대치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물물교류를 진행한다고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니다. 남쪽에 수재 구호물자도 보내고 예술단도 보내봤으나 이같은 교류가 북남의 불신 해소에 별 도움을 안줬다. 근 20년간 진행한 대화가 큰 진전이 없는 것은 북남의 정치 군사적 대결과 관련이 있다. 가슴에 총을 품고 회담하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권총을 내놓고 회담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한이 일방적 감군을 먼저 시도할 용의는 없는가. 『87년 7월23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정부 성명을 통해 3단계 군축실현방안을 제시했다. 93년까지 북남이 각각 10만명이 넘지 않는 수준으로 병력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또 우리는 87년말까지 병력 10만명을 일방적으로 축소하는 조치를 취해 돌파구가 열리기를 기대했으나 오늘까지 긍정적인 호응을 받지 못했다. 앞으로 북남고위급 회담시 진지한 토의나 해결을 기대한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많은 국가가 우려하고 있다. 북한은 왜 핵 안전협정 체결을 마무리짓지 않는가. 『미국이 남조선에 핵무기를 두고 있는 것은 정전협정에 위배되는 것이다. 우리는 85년에 핵전파방지조약에 가입하면서 미국이 핵무기를 철수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86년 6월 조선반도 비핵지대안을 내놓았지만 미국과 남조선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없었다. 이런 조건하에서 일방적인 의무만 지우는 조약의 담보협정에 서둘러 서명하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선 미국이 남조선의 핵무기로 조선인민공화국을 위협하지 않겠다고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담보를 안한 상태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가입하면 우리는 핵위협의 불안상태에 있게 된다. 미국은 핵무기철수 용단도 내려야 한다』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얘기인가.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우리에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시설도 가능성도 없다. 우리에겐 남조선에 있는 것과 같은 원자력 발전소가 없다. 원자로조차 없다. 북에 대한 핵무기 개발주장은 미국이 어떻게 하면 남조선에 핵무기를 계속 보존시키고 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것이냐는 구실을 찾는 것과연관돼 있다』 ­북한에 실험용 원자로는 있는가. 『있다. 전기생산용 원자로는 소련서 들여오는 것을 협상한 바 있다』 ­핵폐기물 재처리 시설도 있다는데. 『그것은 완전 날조다』 ­북한에서는 동구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북한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동구에 어떤 정권이 서는가는 그들 자신의 내부문제다. 동구가 변했으니까 북과 남도 변해야겠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인민에게 자주적·창조적 생활을 보장하느냐의 각도에서 변화를 생각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하면 통일을 빨리 이루느냐의 각도에서 정책의 변화를 고찰,실시하고 있다』 ­그러다가 낙후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시책이라고 생각한다. 낙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민들이 얼마나 고르롭게,또 자주성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지는 평양에 와서 보면 알 것이다』
  • 한반도통일에 대한 소련의 입장 세미나 요지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이 우선과제”/낭비적 군비경쟁 지양,군축협상부터 시작을/평화공존속 민주화 거쳐 점진적통일 이뤄야 한양대 중소연구소와 소련의 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제3차 한소학술회의가 16,17일 양일간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에는 극동연구소 소속의 소련학자 8명과 국내학자 다수가 참석해 「한소관계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토의를 벌였다. 다음은 소련극동연구소 한국책임자인 유리 오그네프씨가 발표한 「한반도통일에 대한 소련입장」이란 제하의 논문 요지이다. 현재의 국제정세는 한반도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유리한쪽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미소양국을 포함,주변국가들에게도 공히 도움을 줄 것이다. 소련은 한반도의 통일 문제가 외부의 간섭없이 남북한국민의 뜻에 따라 실현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남북한이 상호 적대관계를 종식,한반도에 안정과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통일의 전제조건이라고 보고있다. 남한과 북한은 장기간 분단되어온 그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사회ㆍ경제ㆍ이념ㆍ문화적인 측면에서 서로 상이하며 대외 정치적 정향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는 우리가 승인을 하든 안하든 두개의 한국(Two Koreas)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현재의 국제환경하에서는 미ㆍ일ㆍ소ㆍ중이 한반도를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시키기는 불가능하다. 또한 한국동란과 같이 한반도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는 새로운 국제분쟁만을 낳을 뿐이다. 남북한은 일찍이 지난 72년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의 통일3원칙에 합의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선 상호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 북한은 고려연방제를 통일문제해결에 가장 적합한 방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먼저 상징적 통합을 이룬뒤 점진적으로 완전한 단일주권국가로의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태우대통령은 지난 88년 유엔연설에서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한 6개국(미ㆍ일ㆍ중ㆍ소와 남북한)회담을 제의했다. 이는 소련의 입장과 일치하며 다른 국가들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 89년 9월에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의,완전한 통합에 이르기 위한 공동영역의 마련을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은 유감스럽게도 자신들이 주장한 고려연방제와 일맥상통한 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물론 남북통일이나 40년간 지속된 적대관계 종식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질 수는 없지만 북한이 통일이라는 명분 때문에 그들의 이념인 「주체사상」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통일을 위해선 40년간의 대결구조가 우선 사라져야 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남북간의 대화와 관계정상화가 더욱 요청되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은 공히 오는 8월15일 남북분단 45주년을 맞아 재통일을 위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상호인식의 전환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한의 군사독재 정권이 없어지고 사회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의 남쪽상황은 북한이 주장하던 그러한 여건이 조성됐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상황은 전혀 변화가 없다. 또 남한은 북한이 개방만 하면 북의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한 것으로 보는데 이는 단순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40년 이상 안정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의 생각처럼 북한이 쉽게 와해되지 않듯 북한의 생각처럼 남한에서의 미군철수가 통일의 전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조만간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문제에 있어 양당사자간 제1과제는 군사충돌의 방지다. 다시 말해 평화공존외에는 어떠한 대안도 없다. 평화공존이란 전쟁방지뿐만 아니라 민주화ㆍ비군사화ㆍ인도주의적 관계회복을 통한 건설적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소련의 대한국외교기조도 이런 기틀위에서 진행될 것이다. 군사ㆍ정치대결의 청산,상호불신과 적대관계의 제거를 통한 진정한 긴장완화정착을 위해 소련은 노력할 것이다. 또 한반도의 통일은 민주적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낭비적인 군비경쟁의 지양을 위해 남북 상호간의 군축협상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한반도의 통일이 무력수단이 아닌 정치적 수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기도 하다. 소련은 한반도의 긴장ㆍ대치국면을 해소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체결,불가침선언으로 대체하는 것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이러한 것이 이루어지면 남북한ㆍ미국ㆍ기타 국가들은 외교ㆍ무역ㆍ관광등 여러 분야에서 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며 특히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은 남북한의 폭넓은 접촉 뿐만아니라 중국ㆍ소련의 대남한의 관계강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또 이러한 「교차 데탕트」는 아태지역의 통합에도 기여할 것이다. 한반도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 요인중에서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련의 영향력은 미국에 비해 제한되어 있다. 소련은 많은 경우 단지 한반도의 군사적 화해와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관심을 불러일으킬뿐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주변국들의 상호협력을 위한 가능한 수단으로 남북한과 관련국가들이 참여하는 국제회의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회의는 우선 한반도의 무력분쟁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미ㆍ소ㆍ중국 기타 국가들은 남북한의 무력 불사용협정의 보증자로서 유엔감독하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십년동안 대결의 장이었던 유럽이 현재 「유럽공동의 집」을 짓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있어서도 「아시아 공동의 집」 건설이 가능할 것이다.
  • 워싱턴∼평양 “새로운 냉기류”/미­북한관계 최근 흐름을 보면

    ◎미의 잇단 유화조치에도 북한측 냉담/여행허가 신청 거부등 서로 강경 대응/미,상호주의 철저 고수… 일방적 양보는 없을 듯 미국이 대북한관계개선 노력에 「상호주의」 입장을 철저히 견지하고 있다. 미국의 88년 10월 대북한 유화조치에 북한이 「화답」하지 않는 한 미국의 일방적인 양보는 더이상 없으며 평양이 「강경」으로 나오면 워싱턴도 「강경」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또 한국과 소련이 수교하더라도 교차승인원칙에 얽매어 미국이 북한을 자동 승인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공공연히 시사하고 있다. 미정부의 이같은 태도는 「변화하지 않는 북한」에 대한 「실망과 불만」의 표시이자,변화를 촉구하는 「경고」의 의미로 워싱턴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지난 2월 북한이 연례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 팀스피리트의 실시를 트집잡아 남북대화는 물론 모든 미ㆍ북한접촉을 중단시키자 워싱턴과 평양간에는 새로운 냉기류가 표면화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미 스탠퍼드대 군축문제연구소가 추진해온 남­북한­미 3국 학자들간의 군축세미나 개최(3월26일∼30일)에 합의했다가 참가를 철회한 데 이어 자신들의 초청으로 평양방문길에 오른 워싱턴 소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수석연구원 윌리엄 테일러에 대해서도 중도에서 입국 불허를 통보했다. 지난 6일 미국무부는 북한의 유엔주재 대표부 차석대사 허종이 IMF(국제통화기금)본부 방문을 이유로 제출한 워싱턴 여행허가 신청을 거부했다. 미국은 또 이번에 미측이 제의할 차례인 북경에서의 미­북한 외교관 접촉을 잠정동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실망과 불만은 남북한 교차승인 문제에 관한 미정부의 입장을 밝힌 지난 13일의 국무부 논평에 잘 나타나 있다. 국무부는 이 논평에서 『한국의 대소접근과는 달리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향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노골적으로 지적했다. 미국은 노태우대통령의 7ㆍ7선언에 호응하여 88년 10월31일 발표한 대북제재 완화조치를 통해 ▲미ㆍ북한 외교관 접촉을 재개,북한의 대미접촉길을 터주는 동시에 ▲미국인의 북한 여행을 자유화하고 ▲미ㆍ북한간비정치적 교류및 ▲인도적 교역을 허용했다. 워싱턴은 이 조치에 대해 북한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반응을 보여야 다음 단계의 조치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상호주의」 추구입장을 처음부터 분명히했다. 그리고 88년 12월6일 이래 북경에서 갖고 있는 양측 외교관 접촉에서 북한측에 대해 ▲남북대화의 진전 ▲6ㆍ25참전 미군유해 송환 ▲반미선전 중단 ▲비무장지대내 신뢰구축 조치 ▲핵 안전협정 수락 ▲테러리즘 포기 선언 등 6개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특히 남북한 관계의 진전에 따라 미ㆍ북한 관계도 진전될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해 무엇보다도 남북대화를 중시하도록 강조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주한미군 철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양측 접촉수준의 참사관급에서 대사급으로 격상 ▲유해 송환을 위한 양국 정부간 협의 등을 주장하는 바람에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난 1월18일의 마지막 7차접촉에서 북한측은 미군 유해 5구의 송환을 위해 미의회의원 초청 계획을 통보하고 팀스피리트훈련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며 이의 취소를 요구했다. 북한은 유해 송환을 위해 양국 정부간 협상을 갖자는 그들 주장을 미국이 끝내 반대하자 미의원들을 초청,이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미국은 유해 송환문제가 판문점의 군사정전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북한측의 미의원초청 계획에 반대했다. 미국무부의 드세이 앤더슨 동아태담당부 차관보는 13일 의회 증언에서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확대되기를 바라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고 밝히면서도 『그러나 평양이 핵 안전협정 수락,테러리즘 포기 선언 등과 같은 믿음을 주는 조치를 취해야 미­북한 대화가 진전될 것』이라며 상호주의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 따라서 북한측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미­북한 접촉은 재개되더라도 실질적인 진전이나 급격한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 아시아 군축 최우선 대상/미,한반도로 설정/미 국무부 아태부차관보

    【워싱턴=김호준특파원】 미국은 아시아지역 군축의 최우선 대상을 한반도로 설정해놓고 있으며 수수께끼같은 북한정권을 고립에서 탈피시키기 위해 평양과의 대화를 활기차게 추구하고 있다고 미국무부의 비사익스 앤더슨 동ㆍ아태담당 부차관보가 13일 밝혔다. 앤더슨 부차관보는 미하원 동ㆍ아태소위의 군축문제 청문회에 출석,증언을 통해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앤더슨 부차관보는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상호주의적인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평양의 국제원자력기구 안전협정수락이나 테러리즘 포기 등과 같은 조치는 미국으로 하여금 대북한대화를 더욱 촉진시키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유럽지역에서 발전된 것과 같은 신뢰구축조치가 한반도에서도 유용성을 가질 것』이라고 말하고 『미국은 군사정전위에서 유엔군사령관이 긴장완화를 위해 제의한 ▲정전협정위반 합동조사팀 부활 ▲주요군사훈련의 상호통보및 참관 ▲비무장지대의 진정한 비무장화 등에 대해 북한이 전향적으로 다루도록 촉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작전권」 인수 방안 구체 검토/미서 “전시만 관장” 제의

    ◎「군 조직법」 통과되면 「참모본부」 창설/국방부 국방부는 한미연합사령부의 작전통제권을 전시가 아닌 평화시에는 한국군이 이양받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국방부가 7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측은 최근 한미연합사의 평상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게 이양하고 전쟁시에만 한미연합사령관이 작전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제의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국방부는 이에따라 평시의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이양받는 문제를 전시전환에 따른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국방부는 평시 정전협정 준수를 위한 유엔군 사령부 기능은 그대로 존속시키고 한미연합훈련은 한미연합사에서 계속 통제할 방침이다. 국방부는 국회자료에서 『한반도 방위를 위해 순수한 군사적 측면에서는 한미연합사의 작전지휘체제가 현재처럼 군ㆍ평시 구분없이 단일화 하여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적 지휘체제확립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고 밝혀 한미연합사령부의 평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이양받는 문제를 적극 검토중임을 시사했다.
  • 유엔군측 수석대표 땅굴 공동조사 제의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측 수석대표 랠리 지 보트 미해군소장은 5일 하오 『북한의 제4땅굴은 명백한 정전협정위반』이라고 비난하고 『이를 조사하기위한 공동조사단을 구성하자는 항의서한을 공산군측 수석대표에게 보냈다. 보트소장은 이 서한에서 『북한의 제4땅굴은 군사분계선 북쪽에서 남쪽으로 파내려온 남침용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이를 공동조사 하기위해 6일 상오11시 군사분계선 동부전선 1074지점에서 만나자고 제의했다.
  • “명백한 도발… 즉각 폐쇄를/이국방 담화,전전선 걸친 굴착 판단”

    이상훈국방부장관은 3일 강원도 양구에서 북한의 남침용 제4땅굴이 발견된 것과 관련,『북한이 남침용 땅굴을 휴전선 넘어 비무장지대안에 판 행위는 정전협정 위반임은 물론 명백한 침략행위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남한은 한반도의 공산화 목표를 포기하고 지금까지 판 남침용 땅굴을 모두 공개하고 자발적으로 폐쇄할 것』을 요구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장관은 이 담화에서 『오늘 발견된 땅굴 등 북한이 전전선에 걸쳐 판 것으로 판단되는 20여개의 남침용 땅굴은 개전초에 은밀하게 아군 후방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침투시켜 전후방을 동시에 전장화하여 그들의 속전속결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장관은 이어 『북한은 비인도적인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를 폐기하고 핵무기 개발 역시 중지해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의 전차부대 공격을 막기 위해 설치한 대전차 방어용 장애물을 콘크리트 장벽이라고 기만선전하는 선동행위를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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