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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비 목표 안지키면 車 못판다/정부 온실가스 저감대책

    ◎2015년까지 原電 18기 추가 건설 앞으로 자동차 업체가 정부가 제시한 연비향상 목표를 지키지 않을 경우, 해당차종의 생산과 판매가 금지될 전망이다. 또 정부는 올해부터 2015년까지 18기의 원자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온실가스 저감 종합대책’을 마련,21일 관계차관회의와 22일 장관회의를 거쳐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할 방침이다. 종합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내년부터 자동차에 배기량별로 연비향상 목표를 3∼5년 단위로 설정,이를 지키지 못하는 차종의 경우 이미 생산된 차량에 대해서는 벌과금을 부과하는 한편 신규 차량의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도록 했다. 지금도 자동차에 대한 목표 연비제도를 시행하고는 있지만 어겼을 때 제재 규정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다. 이와함께 정부는 청정연료 보급 확대를 위해 전체 전력생산중 원자력발전 비중을 95년말 현재의 36.3%에서 2015년까지 46.3%로 확대하기로 했다.
  • 재계 “신정연휴 축소 동참”/삼성·현대 2일 시무식

    ◎본사차원 분위기 조성/생산직은 탄력 운용 내년 신정에는 상당수 기업이 1일 하루만 쉬며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새해 첫 출발을 다짐한다.일하는 분위기 정착을 위한 정부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서다.한국경영자총협회도 기업체에 휴일 축소를 적극 독려하고 나섰다. 삼성은 1월2일 오전 11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李健熙 회장과 서울지역 임원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신년 하례회를 갖기로 했다.그룹 시무식과 회장 신년사도 발표하지 않는다.또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를 비롯,일선 생산현장도 가급적 신정 하루만 쉬도록 할 계획이다. 현대도 1월2일 서울 계동 본사에서 계열사 경영진이 참석한 가운데 시무식을 갖는다.계열사별 경영을 강조하는 뜻에서 종전 ‘그룹 시무식’이라는 이름을 ‘통합 시무식’으로 바꿨다.대우는 계열사별로 내년도 업무 개시일을 2일이나 4일 중 택일토록 했다.그룹 시무식은 없다. LG는 4일 여의도 트윈센터 강당에서 具本茂 회장이 참석하는 그룹 시무식을 개최하며 SK도 일부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4일사별 시무식을 가진뒤 업무에 들어간다. 한편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1일 ‘생산직은 각 기업 사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하되 사무직은 1월2일 시무식을 갖도록 하자’는 권고문을 각 회원사에 발송,일하는 분위기 정착에 앞장서기로 했다.경총은 이 권고안에서 “”생산현장이나 격주 토요휴무를 실시 중인 업체 등에서는 상황에 맞게 휴무여부를 정하더라도 본사에서만큼은 신년 2일에 업무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 국회 대변인직제 신설/사무처 직원 10% 감축

    ◎자체구조조정안 제출 국회는 대변인직제를 신설,대변인이 중요 사안을 정례적으로 브리핑할 수 있게 하고 3년간 사무처 전직원의 10%를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자체 구조조정방안을 마련해 22일 운영위에 제출한다. 이 방안에는 사무처의 3급 이상 상위직 30%를 계약직으로 전환,민간전문가를 채용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국회는 또 의정연수원을 폐지,사무처의 보좌기구로 흡수하고 입법조사분석실을 폐지하는 방안,법제예산실을 법제실과 예산정책국으로 분리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했다. 사무처 고위관계자는 20일 “정부가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국가공무원법 적용을 받는 국회사무처도 부응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은 자체 구조조정 방안을 밝혔다.
  • 의문사 장군의 아들/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대한광장)

    “장군아들 의문사도 묻어둔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오죽 하겠소”. 의문의 죽음을 당한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장군은 이렇게 자신의 심경을 한마디로 피력했다. 예비역 중장,그것도 1997년 12월에 예편한 장군이 자신의 아들 의문사를 밝히는데 그토록 고초를 겪었다는 이야기다. 아들이 자살했다는 군의 공식발표에 의문을 품고 아내와 함께 사망한 아들의 소속 전역 부대원을 수십차례 찾아다니며 눈물로 호소한 끝에 겨우 토로하게 된 진실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없었다면 어떻게 한국계 미국인 법의학자까지 동원하여 자살이 불가능함을 증명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 아버지가 아니었던들 어떻게 국회국방위산하에 이 사건에 관한 진상파악소위원회까지 구성되게 하였겠는가. 그리고 마침내 국방부가 특별조사단을 꾸려 이 사건을 전면 재수사하겠다는 뜻을 밝히도록 만들었겠는가. ○사인 의혹에도 모두 자살처리 자식을 군에 보낸 뒤 어느날 갑자기 죽음을 통고받고도 의문투성이의 사인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채 죽음같은 세월을 살아온부모들이 2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김두황 이병,한영현 이병,최온순 이병,정성희 일병,이윤성 일병은 지난 80년대 초반 운동권학생에게 프락치활동을 강요한 이른바 ‘녹화사업’의 희생자들이다. 김용권 상병,박상구 하사,정연관 상병,우인수 일병,박종근 이병,박성은 방위병도 바로 군부대내에서 의문사한 사람들이다. 군대에 아는 사람 하나 제대로 두지 못한 이들의 유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관계기관을 찾아다니고 같은 운명에 처한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농성하는 것밖에 없었다. 군부대에만 의문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의문사도 적지않다. 1985년 경부선 철로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돼 우종원 서울대생,1986년 부산 송도앞바다에서 시체로 발견된 서울대 김성수군,1989년 거문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중앙대 총학생회장 이내창군,1990년 교통사고 피살체로 발견된 속초 동우전문대 학생회장 김용갑군 등도 의문사 리스트에 올라 있다. 정경석,문용섭,이재호,박창수씨 등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의문의 죽임을 당한 케이스들이다. 이들은 외관상 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자살로 처리되고 말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신치하의 최종길교수 사건,장준하선생 사건등도 여전히 의혹 속에 싸여있다. 이 모든 사건들은 이미 공소시효나 소멸시효가 지나고 말았기 때문에 민사·형사적 배상과 처벌이 모두 불가능한 상태이다. 비인도적 범죄에는 시효가 없다는 것이 엄연한 국제관습법이라고 국제법학자들이 말하고 있건만 우리나라 판·검사들은 이런 이론에는 귀머거리일 뿐이다. 유족들이 바라는 건 단지 진실뿐이다. ○공소시효 지나 처벌 불능 상태 지난 12월10일,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식은 이나라에서도 화려하게 벌어졌다. 대통령은 “인권은 그 어떠한 명분과 구실로도 제약받거나 유보될 수 없는 천부의 권리”임을 힘주어 말했다. 그럼에도 이 의문사 진상규명은 아무런 힘도 없는,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인권위원회가 담당하는 것으로 당정이 협의하였다고 한다. 인천에는 ‘인권의 길’이 만들어졌고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리는 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의문사의 비밀을 여는 진실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그리고 한해가 또 가고 있다.
  • 수능시험 만점 ‘탄생’/한성과학고 吳承恩양… 대입 사상 처음

    ◎“책 많이 읽고 스스로 공부”/아버지도 行試수석 출신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 방법이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99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 400점 만점을 받은 吳承恩양(18·한성과학고3)은 15일 소식을 듣고 “가채점을 해본 뒤 만점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옆에서 도움을 준 부모님,학교 선생님과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환하게 웃었다.예비·학력고사와 수능시험 등 국가가 시행하는 대입시험에서 만점이 나온 것은 사상 처음이다. 吳양의 공부 스타일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독서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교과서 밖의 지식까지 폭넓게 가르치는 과학고의 수업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초·중학교에서는 반에서 3등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과학고에 진학하면서 공부에 더 재미를 느껴 줄곧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잠은 하루 5시간 정도만 잤다.부족한 잠은 주말에 집에 와서 보충했다.특별히 과외를 받지는 않았고 주말에 취약한 언어와 사회탐구 두 영역을 보완하기 위해 학원을 다녔을 정도. 소립자 물리학을 전공하는 과학자가 되는 게 吳양의 꿈.서울대 자연과학대 기초과학부에 교장 추천으로 이미 합격했다.취미는 클래식 음악감상으로 바흐를 좋아한다. 아버지 吳馨煥씨(51·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장)와 어머니 李愚仁씨(52·방산중 교사)의 1남1녀중 막내.한양대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아버지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8회 행정고시에서 수석을 차지했었다.
  • 서양화가 金章喜(이세기의 인물탐구:185)

    ◎기하학적 선에 엮어낸 ‘고요한 공허’/끝없는 그림에의 열정… 40나이에 미 유학/뉴욕 한복판서 처절하고 외로운 창조작업/그의 격자무늬속엔 ‘우주’가 들어있다. 金章喜의 화면은 ‘기하학적인 선(線)추구’로 표현된다. 100호 이상의 대형화면에 비단실을 드리운 듯한 섬세한 직선의 집합은 어느 때는 악보와도 같고 어느 때는 질서정연하게 창공을 가르는 새들의 편대와도 같다.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생 역정에서 파란과 곡절,희비가 파닥이다가 태양이 빛을 바래게 하듯이 정적(靜寂)으로 가라앉는 침묵의 뉘앙스다.도저하게 펼쳐진 구도 속에서 처음에는 질서파괴와 자유분방이 교차되지만 마침내 모든 번뇌를 씻은 무상무념의 이미지가 그것이다.미술평론가 김홍희는 이를 가리켜 ‘김장희 기하추상의 미학적인 절대성은 인간적 정취와 섬뜩한 창조적 전율’이라고 평한 바 있다.한 올도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선의 모습은 ‘무엇에도 구속당하지 않는 푸른 영혼의 안식처’라고 했다.또 그가 긋는 선은 도구를 사용하는 인위적인 선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긋는 드로잉적인 선이 특징이다.물론 그것은 자를 대고 그었을 때보다 더 치밀하고 날카롭다.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가운데 손에서의 힘의 강약이나 리듬이 되살아나는 것은 내면에 뿌리박혀 있는 강인한 작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이른바 김장희의 격자무늬는 기하학적 수직과 수평을 짜면서 속세적인 잡다한 상념을 제거하고 있다는 의미다.이와 같은 은밀한 반란은 미술사에서 이미 수립된 기존 양식에 대한 안티테제의 선언일 수도 있다.또는 캐나디안­아메리칸 여성화가 아그네스 마틴이 그런 것처럼 미니멀 추상 속에 그물망같은 선묘의 영역을 확대해 나간다고도 할 수 있다.화면의 가장자리까지도 그림의 일부이며 사방의 여백을 넉넉한 여유로움으로 남기는 것 등이 그렇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평론가 홍가이는 ‘그의 캔버스의 창은 사각의 틀로 짜여진 것이 아님을 정확하게 묘사하거나 함축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주공간의 영역을 깊이 바라볼수록 ‘공허와 무의미’만이 남듯이 그의 그림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새 ‘고요한 공허’의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김장희는 지금 뉴욕 소호 한복판 커다란 스튜디오에서 혼자 살고 있다.두꺼운 시멘트 벽과 높은 천장,오래 된 건물의 2층 화실은 300호에서 1,000호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들이 여기저기 누워있거나 세워져 있다.그는 아침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 캔버스들이 도열된 사이를 한동안 서성거린다.어제 한 일을 돌아보고 오늘의 작업에 연결시키려는 의도다.그리고 연필과 색연필·유화물감으로 극치의 극치로 치닫는 고달픈 작업에 매달린다.그러다가 며칠 만에 거리로 나와 화랑들을 순례하고 연극 영화 무용 등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예술을 토론한다.그의 예술론은 때묻지 않은 눈부신 투명성을 지녔고 그의 명상이 심오하다는 것은 그의 주변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다.실제로 그는 하르트만에서 비트겐슈타인·푸코와 에코에 심취하고 수많은 예술서적을 탐독한다.그리고 내부에 축적된 다양한 감동을 가늘고 굵고 여리고 짙은 선으로 끝없이 풀어낸다. 김장희는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다. 화장기 없는 신선한 얼굴에페이더너웨이를 풍기는 세련된 차림,깡마른 체격이 신경질적으로 보이기 쉽지만 남을 포용하고 스케일이 크고 대범한 일면이 그의 성격이다.원로 서예가로서 플루트를 연주하던 心堂 金濟仁씨와 李再淳씨 사이의 2남1녀중 가운데.바이올리니스트 金旻이 그의 오빠이고 그래픽 디자이너인 金椿이 남동생.서울에서 태어나 어릴 때는 이재현씨에게 바이올린을 사사했으나 손가락이 짧다는 스승의 충고에 따라 이대미대 동양학과에 진학했고 결혼과 함께 68년에 도일, 교토에 머무는 동안 교토대와 도지샤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일본에서는 주로 모더니즘 판화그룹에 속해 있었다. 8년 만에 서울에 돌아와 한때 슬럼프를 겪다가 그림을 위해 결혼을 정리하고 40이 넘은 나이인 지난 86년 뉴욕행을 감행했다.아들 경준(도쿄대 재학중)이 있다. 그는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컨템포러리 웨스턴아트의 배경이 무엇인가를 보았고 웨스턴아트의 뿌리를 찾아 최근에는 1년의 한 계절을 유럽에서 보내고 있다.그곳에서 유럽의 아이디얼리즘(觀念)과 동양의 선적(禪的)인 것,메타피지컬이 아닌,피지컬을 수용하고 자신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하나의 ‘빛’인 ‘선(線)’을 찾아내자 화가로서의 길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한다.그리고 그가 찾아낸 ‘선’위에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압축하고 정예화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그의 미니멀리즘은 언제부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선에까지 도전하여 이제는 마음속으로 ‘심상(心狀)’을 그려내게 된 경지다.그러나 그의 작업은 하나의 극단에 다다를 수 없고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도 없는 무한대의 우주공간임을 그는 알고 있다.그래서인지 그가 태어난 환경과 서양의 문화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만나고 변화하는가를 추적하겠다는 집념에 차있다. 해마다 서울과 유럽,일본의 초청전시에 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기회도 남용하지 않는다.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에 도취하고 있을 때의 아름다움이 교교히 배어나온다.그런 김장희와 그의 그림을 보고 시인 김화영은 ‘향기가 우러나오는 시정’이라는 글을 쓴 적도 있다.그는 스스로 천재임을 결단코 부인하지만 그의 노력과 절제와 단호한 결단은 눈부신 미래를 예고하는 ‘범상치 않은 예술가의 한 사람’임을 그의 주변과 유럽의 화단은 일률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의 길 1944년 서울 출생 1966년 이화여대 미대 졸업 1968­74년 일본 교토대 졸업 1974년 일본 젊은 아티스트 10인전 1974­76년 일본 도시샤대 대학원 미학과 졸업 1975년 교토 아메리칸센터그룹전 1988년 도미, 뉴욕체류 1994년 서울개인전(인공갤러리) 1995년 이탈리아 파도바 ‘25X25’전,베네치아 개인전 및 트라게토 ‘30X30’전 출품 1996년 서울개인전(갤러리서미) 1999년 3월 일본개인전(도쿄 쇼게츠갤러리)서울개인전예정(인갤러리) 현재 뉴욕거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활동
  • 新正 하루 쉬니 종무식은 몇시에

    ◎“종전대로 낮 12시”“오후 5시” 설왕설래/연휴 귀성 없어져 “오후 5시 이후” 우세 신정연휴가 내년부터 사라지게 되면서 공공기관의 종무식 시간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말 열린 차관회의에서도 종무식을 몇시에 할 것인가는 놓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지금까지 낮 12시에 하던 종무식을 오후 5시 이후로 옮기는 안(案)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오후 5시 이후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반공일인 토요일이라면 모르되 근무시간중,그것도 반나절이나 일찍 종무식을 갖고 퇴근한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또 낮 12시 종무식은 지방출신의 귀성을 돕는다는 측면이 있었지만 신정연휴가 없어지는 만큼 무의미해지지 않았느냐는 논리였다. 낮 12시안을 고수한 사람들은 ‘오랜 전통’이자 ‘문화’라는 논리를 폈다.매일 보는 사람들끼리 떡과 과일을 놓고 환담하며 나누어 먹는 것이 서양사람들이 보면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 자체가 우리의 문화가 아니냐는 것이다.오히려 우리만의 고유한 미풍양속일 수 있다고 설득했다. 이처럼 양쪽이 팽팽히 맞서자 이날 차관회의에서는 결론을 내지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5일 관계장관회의에서 내년부터 신정휴일을 하루로 축소키로 최종결론을 내림에 따라 대세는 ‘오후 5시 이후’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문화 내지는 관습론(論) 보다는 기능적 측면을 더 크게 고려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신정휴일을 하루로 줄이는 내용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8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할 예정이다.
  • 新正 하루 쇠기/李慶衡 논설위원(外言內言)

    내년부터 신정(新正)연휴가 이틀에서 하루로 줄어 든다.1일 국무회의는 2중 과세의 문제점을 집중 논의한 끝에 새해부터는 1월1일 첫날 하루만 쉬도록 방침을 정했다.이같은 신정연휴 축소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하루속히 벗어나려는 국민적 분위기에도 부합되는 결정이다. 신정은 지난 4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3일간의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음력설은 2중 과세라 하여 공휴일로 채택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85년 음력설이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하루를 쉬게됐다.그후 89년 ‘민속의 날’을 ‘설날’로 바꿔 3일 연휴로 하는 대신 신정연휴를 하루 줄여 이틀로 했으며 지금까지 지켜왔다. 이번 결정과 관련,아쉬운 점은 정부가 불과 신정을 한달도 안 남긴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휴무일을 변경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불편과 혼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이미 시중에 나돌고 있는 내년 달력의 1월 2일은 분명 붉은 숫자의 휴무일로 표시되어 있다.아직 배포되지 않은 달력에는 덧씌우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이같은 신정연휴 변경을 보면서 우리의 ‘예약문화’가 체질화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지난 추석때 수많은 사람들이 귀향 항공편을 예약해놓고도 한마디 취소전화도 없이 펑크를 내 항공사는 물론 항공권을 못 사 쩔쩔 매는 다른 승객들까지 골탕을 먹이기도 했다. 미국에선 여름휴가 항공권을 봄에 사면 여름가격의 3분의 1 혹은 4분의 1 값으로도 살 수 있다.여름가격도 2주전 예약가격과 휴가 당일 구입가격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한마디로 예약을 하지 않으면 대우도 못 받고 비용면에서 도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사실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 등 서구 선진사회는 이같은 예약문화가 몸에 배어 있다. 세계시장을 겨냥하며 개방화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의 사고에는 아직도 “내일 일도 모르는데 한달 앞을 어떻게”라는 예측회피의 습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앞 일을 예측하여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살림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게 된다.
  • 新正 하루만 쉰다/金 대통령 지시… 정부,새해부터 2일 시무식

    신정연휴가 내년부터 이틀에서 하루로 줄어든다. 金大中 대통령은 1일 국무회의에서 金正吉 행정자치부장관으로부터 연말연시 대책을 보고받고 “내년 2일은 토요일이지만 시무식을 했으면 한다”고 지시,이중과세의 폐지를 주문했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음 국무회의에서 신정연휴는 새해 첫날인 1월 1일 하루만 휴무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공휴일 관련 규정을 개정할 예정이다. 이로써 정부부처와 관공서,공공단체 등의 업무가 내년 1월2일부터 일제히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金鍾泌 국무총리를 비롯,전 국무위원들이 경제6단체장의 건의와 국민정서·여론조사결과 등을 감안해 신정은 하루만 쉬고 설날 연휴를 정착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일부 국무위원들이 현 국경일 지정의 타당성 및 추가지정 여부 등에 대해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함에 따라 행정자치부가 주축이 돼 공휴일 지정문제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 창업 걸림돌/禹弘濟 논설실장(外言內言)

    국난으로 표현되는 국제통화기금(IMF)시대의 우리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현안은 실업문제일 것이다.200만명으로 추산되는 대량실업사태를 하루빨리 해결해서 경제사회의 안정을 되찾으려면 경기회복과 함께 고용창출을 위한 창업(創業)이 무엇보다 활발히 전개돼야 할 것이다.잇따른 기업부도와 도산으로 황폐된 산업풍토에서 새로운 창업 움직임이 역동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신규고용이 늘어날 때 우리는 경제회생의 힘찬 맥박을 느끼게 될 것이다. 특히 고용효과가 빠르고 폭넓게 나타나는 법인형태의 중소기업이나 개인소기업의 창업이 바람직하다.IMF사태가 아니더라도 중소기업이 많고 경쟁력이 높을수록 국내산업생산의 하부구조가 튼튼해짐은 물론 경제위기의 충격에 훌륭한 완충장치 역할을 할수 있다.그래서 올들어 국민의 정부도 중소기업 육성을 실물산업정책의 새 패러다임으로 정해놓고 있다.재벌위주의 정책실패로 더욱 심화된 우리 산업의 초토화현상을 막으려면 중소기업을 적극 키우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재벌그룹 몇개 쓰러지면 국가 전체가흔들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산업구조의 차별화전략이 필요하다는 애기다.활발한 창업을 통해 중소기업 및 개인 소기업의 개미군단이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하는 바람직한 움직임이 거듭 강조돼도 모자라는 오늘의 경제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원장 吳馨煥)에서 연수중인 전남·북,충청,경기,대전,제주,경남·북등 전국 각지역을 대표하는 지방공무원 9명은 지난 19일 발표한 ‘지방제조업 창업지원에 있어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에서 지방중소기업의 최대장애는 공무원이라고 결론지었다는 것이다(본지 20일자 24면). 이들은 최근 1년동안 창업한 148개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정부규제와 관련해 응답자의 94%가 규제가 심하다고 답한 반면 규제가 약하다고 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공장설립 인허가 서류는 많은 경우 무려 40종,공장설립 검토에서 가동까지는 1∼2년이나 걸리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실업해소의 절대적 필수요건인 창업과정이 이렇게 오래 걸리고 힘겹다는 것은한참 잘못된 현상이다. 기업체 하나,공장 하나라도 하루빨리 문을 열고 가동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차대(重且大)한 시점이다.그럼에도 창업지원에 앞장서는 게 백번 마땅한 공무원들이 창업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니 정부나 국민으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심하게 찍히는 격이다.그 누구보다 공무원 정신개혁은 기필코 철저히 이뤄져야 할 일이다.
  • 공무원 9명이 조사한 지방中企 창업과정

    ◎“최대 장애요인은 공무원”/인허가 담당자 무지·비협조 꼽아 정부의 잇단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규제완화를 대신한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와,인허가담당 공무원들의 무지와 비협조가 중소기업 창업의 가장 큰 장애요인인 것으로 나타나 제도개혁에 치중하고 있는 중소기업발전책에 새로운 정책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지적은 특히 현장에서 창업지원 업무를 담당해온 복수의 지방고위 공무원들이 작성한 정책보고서의 결과여서 충격을 주고있다.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연수원에서 연수중인 전남북,충청,경기,대전,제주,경남북의 지방공무원 9명(분임장 주신호 전남지방서기관)은 19일 발표한 ‘지방제조업 창업지원에 있어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서 지방 중소기업의 최대장애는 공무원이라고 결론지었다.이들은 최근 1년 동안 충청남도에서 창업한 300여개 중소제조업체 중 중복을 피해 추출한 148개 업체를 조사대상으로 삼아 우편설문조사 등을 실시했다. 설문조사결과 정부의 규제와 관련,응답자의 94.1%가 규제가 심하다고 답한 반면 규제가 약하다고 답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공장설립관련 규제완화조치에 대해서도 47.1%는 ‘불만족’이라고 답했으며 이는 규제완화에도 불구하고 행정지도 등을 통한 ‘눈에 띄지 않는 규제’가 상존하고 일선기관에서 기존관행을 고집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공장설립과 관련해 제출한 인허가 서류의 경우 10개 이상 20개 미만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5명은 40개 이상이었다고 답했다.인허가를 위한 구비서류는 대부분이 측량설계사무소,공장설립상담회사 등을 통해 만든 것으로 나타났는데 전문가가 아니면 인허가 서류를 구비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공장설립 검토에서부터 공장가동까지 걸린 기간은 60% 이상의 업체가 1년에서 2년까지 걸렸다고 답했다. 개선방안으로 연구자들은 “관계공무원을 대상으로 최소한 연간 1주일 정도 중앙차원의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보직기간도 3년 이상으로 늘려야한다는 주장이었다.아울러 창업자금 지원확대 등 정책적 지원 외에 전국적으로체계적인 실태조사를 실시해 보다 과감한 규제철폐를 단행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 구청직원 승진탈락 소청 제기/대구 중구청 卞在國씨

    대구시 중구청 공무원이 승진 탈락을 이유로 첫 소청을 제기해 결과가 주목된다.중구청 구정연구반장 卞在國씨(41·6급)는 지난달 17일 중구청의 지방 5급 승진심사에서 자신이 탈락한 데 대해 중구청장을 상대로 무효 확인 및 취소를 요구하는 소청심사 청구서를 16일 대구시에 냈다. 卞씨는 소청심사 청구서에서 “5급 승진 후보 5명 중 본인만을 탈락시켰다”면서 학벌,능력,수상실적 등에서 뒤지지 않는데도 본인을 탈락시킨 것은 인사권자의 재량권 일탈이라고 주장했다.
  •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 모두 통합/중기재정계획 토론회 주장

    ◎‘기초’‘소득비례’ 2원화 운영을 군인연금,공무원연금,사립학교 교원연금,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을 통합,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기초연금과 소득에 따라 가입을 결정할 수 있는 소득비례연금으로 분리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국재정학회와 한국재정연구회는 13일 기획예산위원회의 중기재정계획(98∼2002년)과 관련한 연구용역 결과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보고서는 최저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기초연금은 18세이상 전 국민이 가입토록(1인1연금체제)해 기초보장 및 소득재분배 기능을 담당하도록 하고,소득비례연금은 개인의 능력과 의사를 존중해 별도의 소득이 있는 자만이 가입토록 한다는 것이다. 4대 공적연금을 통합할 경우 기초연금을 남북한 통합 초기에 북한 주민에게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공무원연금은 95년 적자로 반전돼 99년 3,500억원의 적자보전 예산이 편성돼 있고 군인연금은 77년 이미 기금이 고갈돼 매년 7,000억원의 적자가 나고 있다. 사립학교교원연금은 2015년부터 적자반전이 예상되며 국민연금은 2031년에 기금이 고갈될 전망이다. 보고서는 또 국방예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낮추되 군의 전력구조를 기술·정보 집약형으로 전환하고,장병복지분야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부문 구조개혁 차원에서 추가적인 공무원 정원을 감축,그 재원으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균형재정회복을 위해 재정적자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정비율로 유지하는 재정지출 상한선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본사 발행 ‘전국 행정망 전화가이드’

    ◎공직사회·민간단체 등서 인기 폭발 “이번에 나온 행정망 전화 가이드 책자 덕분에 어디서 근무하는 지 궁금했던 행정연수원 동기를 찾게됐다”,“오래 전부터 기다리던 종합 행정안내 책자가 나와 기쁘다” 대한매일이 재창간 기념으로 최근 펴낸 ‘전국 행정망 전화 가이드’ 책자가 공직사회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크게 인기다.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묻는 문의전화도 잇따르고 있다. 380여쪽의 이 책은 행정부는 물론,입법·사법부에다 주요 공공기관의 전화번호까지 담은 국내 최초의 행정 전화번호부다.외국의 경우,이런 책자가 적지않으나 우리나라에서 중앙 행정부처에서부터 지방 행정기관에 이르기까지 각종 행정관련 기관의 전화번호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기는 처음이다. 중앙부처의 경우,세종로청사·과천청사·대전청사별로 분류,정리했고 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각종 위원회,정부투자기관,주요 공공기관 전화번호도 자세히 담고있다.기관별로 장관 등 기관장에서 과장급에 이르기까지 직책·이름·행정전화·일반전화 번호를 담았다.국회 상임위원회,주요 정당 사무처,국회경비대 등 입법부와 각급 법원,법원행정처 등 사법부 전화번호도 수록했다. 부록에는 전화고장 신고 등 생활안내 전화번호도 곁들였다. 권당 1만원으로 전국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구입문의 ☎ 02­721­5641∼4
  • 신정연휴 축소 찬반논란 뜨겁다

    ◎찬­IMF시대 적절한 조치.이중과세 폐지는 마땅/반­토요휴무제 실시 시급.법정공휴일 축소 안돼 정부의 신정 연휴 축소 방침를 둘러싸고 공무원들 사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이중과세인 만큼 축소가 바람직하다는 반응에서부터 이번 기회에 토요휴무제를 확실히 정착시키자는 바람 등 가지각색이다. 정부 세종로청사의 한 서기관은 IMF위기극복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하는 만큼 신정 연휴를 하루로 줄이기로 한 방침은 적절한 조치라고 환영했다.그러나 공휴일 축소 근거로 내세운 법정공휴일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주 5일 근무제가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외국과 토요휴무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법정공휴일 수를 비교해 법정공휴일을 축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는 지난 96년 3월부터 토요휴무제를 실시해오다 지난 7월1일부터 IMF 경제위기 극복을 이유로 당분간 그 시행을 유보하고 있다. 정부가 파악한 각 나라별 연간 휴무일수에 따르면 일본이 공휴일 20일과 주휴일 104일 포함,1년에 124일을 휴무하는 등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 등 상당수의 나라가 한해에 100일 이상 휴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모두 주 5일 근무제를 택한 나라다. 반면 우리나라와 대만은 69일을,싱가포르는 63일,이스라엘은 61일을 쉬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원의 복무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행정자치부는 이에 따라 이번 기회에 전반적인 공휴일 체제를 검토하기로 하고 공청회 개최 등 여론수렴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하기로 했다.
  • 신정연휴 없앤다/1일 하루만 휴무/정부 내년부터 실시

    ◎토요휴무 확대 따라/공휴일 3∼4일 단축 정부는 경제난 속의 이중과세(二重過歲) 폐해를 막기 위해 현재 이틀인 신정(新正)연휴를 내년부터 1월1일 하루로 줄이기로 했다. 정부는 이와함께 토요 휴무제가 확대되는 등 사회활동 체계의 변화에 맞춰 현재의 공휴일 제도 전반을 재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의 경우 공휴일을 전체적으로 조정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었다고 보고 우선 이달 안에 공휴일에 관한 대통령령을 개정,신정만 하루 줄이기로 했다. 정부 당국자는 “신정 축소는 이중과세의 낭비를 막아달라는 경제계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히고 “여론조사와 공청회 결과 신정보다는 설날(구정·舊正)을 쇠겠다는 의견이 90%로 압도적이어서 설날 연휴는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또 “우리의 법정 공휴일이 17일로 미국(10일) 일본(15일) 싱가포르(11일)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많다”면서 “총 법정공휴일을 13∼14일 정도로 감축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삼일절·광복절 등 일제 관련기념일 가운데 하루,제헌절,종교기념일 등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공휴일 축소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더 거친 뒤 2000년부터 적용될 새로운 공휴일 규정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신정 휴일이 하루 축소될 경우 총 공휴일수는 일요일 52일을 포함해 65일이 된다.
  • 공무원교육 비리 추방에 역점/행자부

    ◎친절봉사 등 교육훈련 지침 확정 새해 공무원교육훈련 지침이 확정됐다. 행정자치부는 30일 ‘99년도 공무원교육훈련 세부치침’을 확정짓고 이를 각 부처·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과 각급 공무원 교육훈련기관에 전달했다. 새해 공무원교육훈련의 가장 큰 특징은 공직비리 근절 캠페인에 발맞추어 공직자 의식개혁 교육을 강화하고 전문인력 육성,친절교육 등에 중점을 둔 것으로 요약된다. 각 행정기관과 교육기관은 이 지침을 바탕으로 기관별 사정에 맞는 자체교육 계획안을 확정지어 오는 12월15일까지 행자부로 제출토록 했다. 행자부 鄭男俊 교육훈련과장은 새 교육훈련 지침이 “21세기 지식기반 정부 시대에 대비한 인력양성을 목표로 작성됐다”고 밝히고 “교육훈련기관이 23개에서 10개로 통폐합됨에 따라 교육훈련의 전반적인 방향전환이 불가피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 10월 중순 지방행정연수원,교육행정연수원을 통합해 국가전문행정연수원을 신설하고 노동연수원,보훈연수원 등을 폐지키로 하는 등 대대적인 공무원훈련기관 정비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 통일후 지방의회 직선제로/행자부,통일대비 공무원 교육

    ◎북한道 분단전으로 환원/남·북 시·군·구 자매 결연/공무원은 고용승계키로 남북한 통일 이후 지방행정의 효율적인 통합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주도하는 이 작업은 통일 이후를 구체적이고,실무적으로 대비한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준비작업은 △남북한 지방행정의 효율적인 통합방안을 연구하고 △지방행정 통합의 최일선에 설 지방공무원을 교육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실무공무원을 위한 ‘통일대비 교육’은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열렸다.지방행정연수원에서 있은 이 교육에는 전국의 통일업무담당 6급 이하 지방공무원 107명이 참여했다. 행자부는 이번 교육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보완,이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확대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행정통합을 위한 연구는 최근 ‘통일대비 지방행정 통합방안’이라는 보고서로 그 성과가 구체화됐다.연구를 맡은 사람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韓富榮 책임연구원과 琴敞淏 연구원이다. 구체적인 연구내용을 보면 먼저 지방행정기구는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의 이원적 체제로 구축하되,지방의회는 통일 즉시 직선제로 구성하고 단체장은 일정기간 지방자치제 실시의 유보를 전제로 임명제를 채택하도록 했다. 지방행정계층은 현재 4∼5계층인 남한의 지방행정계층을 단순화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특별시·직할시·도와 시·군·구를 축으로 한 북한의 2층제로 단순화하는 안을 제시했다. 지방행정구역은 북한의 도는 분단 이전의 5도로 환원하고 김정숙군 등 공산주의 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개칭된 지명도 환원토록 했다. 지방행정인력은 통일 직후에는 고용을 승계하되,일정한 절차에 의해 선별적 감축절차를 밟고 북한 출신 지방공무원은 교육을 실시하여 재임명하는 방안을 내세웠다. 이와 함께 시·도와 시·군·구 사이의 적극적인 자매결연을 통해 남한의 자치단체로 하여금 책임감과 지원효과를 직접 느끼게 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 관례에 묵살된 민주화 공로/장준하 선생 금관문화훈장 추서 무산

    ◎정부 “잡지공로자엔 ‘은관’이 최고훈장”/가족들 거부… 상훈행정 난맥상 드러내 사상계 발행인 고 장준하씨에 대한 금관문화훈장 추서가 무산됐다. 정부는 지난 27일 국무회의를 열고 장씨의 훈장건을 의결할 예정이었으나 훈격을 둘러싼 유가족의 반발로 안건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장씨 유족들이 은관문화훈장은 고인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고 거부했기 때문.정부는 그러나 고인에 대한 훈장 추서는 잡지에 기여한 공로에 국한된 것인 데다 잡지 공로자에 대한 최고훈장은 은관이라는 점을 들어 가족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관행과 관례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에 따라 오는 31일 잡지의 날로 예정된 장씨에 대한 훈장수여는 사실상 어렵게 됐다.정부측은 훈장상신의 효력은 유효한 것이라며 여운을 남기고 있지만 가족들이 은관문화훈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장씨에 대한 훈장추서는 이번이 두번째.지난 91년 광복절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광복군에 투신,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공적이 평가된 것이다. 그러나 자유당정권을 거쳐 3공화국까지 사상계를 통해 민주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상계는 50년대 초반부터 70년까지 지성인의 사랑을 받던 대표적인 잡지. 53년 4월 창간돼 70년 5월 당시 김지하의 ‘오적’을 게재한 것과 관련,폐간되기까지 모두 205권을 냈다.50년대 후반에는 정치 및 현실에 대한 심도 있는 비판을 가해 4·19의 정신적 배경이 됐으며 5·16 이후와 3공화국때는 군정연장 및 한·일수교에 반대한 것은 물론 언론탄압에 맞서 민주사상 고양에 앞장서 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잡지계 및 장씨와 행동을 함께 했던 민주인사들은 정부가 형식논리에 치우쳐 은관훈장을 고집하는 것은 인색한 처사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한편 이번 훈장추서 무산은 96년에 있었던 소설가 황순원씨의 은관문화훈장 거부와 이효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의 국민훈장 석류장 거부와 더불어 상훈행정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됐다.
  • 통감부와 대결(다시 태어난 ‘대한매일’:8)

    ◎침탈·탄압에 맞대응/매국노·침략자 규탄/신문지법 등 공포 맞서 논설 통해 간담 서늘케/민족혼 고취·항일 주도 1906년 1월31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초대 통감으로 하는 통감부가 발족되면서 국내 언론은 이전과는 판이한 양상을 띠게 된다. 각국 공·영사관의 철수를 강행,열강의 모든 권익을 빼앗은 통감부는 매국내각을 구성한 뒤 본격적인 한국침탈에 걸림돌이 되는 언론에 대한 탄압에 돌입했다.1906년 4월부터 통감부령 제10호로 언론활동의 통제조항을 둔 보안규칙 시행에 들어간 것을 필두로 1907년 7월24일 李完用 내각으로 하여금 ‘광무신문지법’을 공포토록 해 본격적인 항일 민족지 죽이기에 들어간 것이다.대한매일신보도 1908년 4월 개정된 이 신문지법에 따라 결국 철퇴를 맞고 말았다. 이 시기 통감부는 대한매일에 대해 유달리 집중적인 압력을 가해왔다.대한매일이 을사조약 이후 항일의 필치를 높여간 만큼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이러한 상황에서도 대한매일은 ‘영국인 사주’(裵說)덕에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아 날카로운필봉을 어김없이 휘둘렀고 매국자들을 예외없이 고발했다.그러나 결국 신문지법을 대동한 일제의 탄압에 한껏 타오르던 항일 민족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1906년의 보안규칙 시행이나 1907년의 신문지법은 처음엔 국내에서 발행되는 민간신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그러나 통감부는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는 명의의 대한매일을 그냥 놓아둘 수 없었다.따라서 1908년 4월29일 신문지법을 개정,대한매일의 기세를 꺾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신문지법은 일본의 통감정책에 저해되는 일체의 언론에 대해 발행정지권을 비롯해 벌금형과 체형,신문 인쇄기기 몰수 등 강력한 처벌조항을 담았다.더욱이 1907년 7월24일 신문지법을 발포한지 닷새만에 집회·결사를 금지하는 보안법이 공포되고 31일 한국군대까지 해산된 것을 보면 대한매일을 비롯한 항일 민족지에 대한 통감부의 탄압이 얼마나 치밀한 것이었나를 알 수 있다. 이 법은 1910년 한일합병이 강행된 뒤에도 계속 발효됐고 해방후 1952년까지 존속한 식민지 악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논봉을 들고 나선 것은 역시 대한매일이었다.정부가 허수아비로 전락한 마당에 숱한 애국지사들은 자유로운 필치를 유지하는 대한매일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통감부와 관련한 일련의 논설들은 이같은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통감부 설치 직후인 1906년 2월9일자 1면 논설 ‘통감(統監)’과 3월9일자 1면 논설 ‘이등후(伊藤侯)’는 통감부 설치의 불법성을 비난한 대표적인 예다.“일본이 이웃나라 안에 자기나라 대표를 파견해 권력을 장악함은 옳지 못한 일”(統監),“한국의 내정은 일인이 지휘하고 외무는 동경에서 관할하니 한국의 독립이란 어디 있느냐”(伊藤侯). 또 8월15일자 논설 ‘한국과 일본’에선 “이등박문은 현존 한국의 노예같은 정부 대신을 지휘해 모든 일을 자기가 집행함이 한국을 일본에 정복된 국민의 지위에 떨어뜨리는 제반 악계를 꾸몄다”고 폭로했다.1907년 1월16일자에는 “을사5조약을 승인하지 않으며 열국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고종의 칙서를 발표해 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친일정부가 발행하는 관보 게재를 중단한 것도 획기적인 일이다.법령공포와 정부시책 홍보가 내용인 관보는 한일합병 때까지 발간된 대부분의 신문들이 중요 내용을 전재할만큼 큰 뉴스원이었고 신문보급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그러나 일본이 득세하면서 자주성과 독립성을 잃게 됐고 관보기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익어갔다.대한매일은 마침내 1908년 3월6일자 1면 논설 ‘관보정게(官報停揭)’에서 “관보의 내용이 과연 한국사람의 관보인가”라고 쓰고 이날부터 관보란을 폐지했던 것이다. 이처럼 거듭되는 배일 논조에 격분한 통감부는 마침내 裵說 타도를 결의하고 나섰고 대한매일은 일제의 집요한 탄압에 강하게 맞선 裵說과 논진(論陣)이 추방 혹은 구속되면서 서서히 시들어갔다. ◎신문사들의 수난/주요 재원 신문대금 체납 ‘눈덩이’… 경영난/社告로 납부 독촉… 日帝 탄압에 곡필 보도도 통감부의 언론탄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국내 언론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게 된다. 사전검열에 따른 기사삭제,반포금지 및 정간이횡행하자 자연 독자들의 신뢰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따라서 당시의 신문,특히 민족지들은 광고수입이 적은데다 주요 재원인 신문대금의 체납이 많아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따라 자유로운 논조를 펴지 못하는 지경에 빠졌다. 실제로 내부 경무국이 펴낸 ‘고문경찰소지’(1910년 간)에 따르면 통감정치 첫해인 1906년 한 해만 하더라도 황성신문은 7건,만세보는 6건,제국신문은 13건이나 기사를 삭제당했다.또 1909년 ‘경찰사무개요’와 ‘조선통감부 시정연감’은 발매반포금지 및 압수처분의 경우 1908년 64건,1909년은 137건으로 기록하고 있다.대한매일만 하더라도 1909년 한 해 동안 발매반포금지 14건에 모두 1만6,314부를 압수당했다. 이같은 탄압이 전개되자 신문 운영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민족지들은 대중적인 호소에 적극 나섰다.사고와 잡보를 통해 독지가의 성원과 신문대금 납부를 촉구하기에 이른 것인데 그 사정이 매우 급박했음을 알 수 있다. 황성신문은 “신문대금을 빨리 지불하는 사람은 문명인이라”는 이례적인 사고를 냈고 어떤 대신이 체납금을 보내왔다는 사실을 기사로 보도하기까지 했다.사설에서도 “독자가 신문대금을 지불치 않으므로 신문을 발행 못한다”고 쓰고 있다. 대한매일도 사고에 “본사가 이전하겠는데 수리 정돈에 경비가 매우 모자라니 대금을 송치해주기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심지어는 “각 지점에서 본사 대금 체납이 많은데 평양지점은 미납급이 300여원에 달했으니 본사경비를 어떻게 충당할 수 있겠는가”라며 재촉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한 잡보에는 “재정난으로 휴간한 제국신문의 복간을 위해 각 부인회에서 보조금을 모집하기로 했다”는 글까지 올린 것을 보면 당시 언론이 얼마만큼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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