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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0 민주항쟁 22주년] ‘행복했던 그 날’ 되뇐 얼굴엔 짙은 그늘이…

    [6·10 민주항쟁 22주년] ‘행복했던 그 날’ 되뇐 얼굴엔 짙은 그늘이…

    1987년 6·10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22년이 지난 오늘 서울광장에서 착잡함을 토로했다. 서울광장에서 만난 이들은 그날을 ‘행복한 날’로 추억했다. 온 국민이 함께 쟁취한 민주주의의 힘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동안에도 촛불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등을 겪으면서 스스로 세운 민주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10일 서울광장을 찾은 그들의 얼굴에는 6월항쟁의 빛만큼이나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고… 당시 고려대 87학번 신입생이었던 김영남(41·여)씨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다. 김씨는 “시청앞 무대 위에서 ‘광야에서’를 부르던 것이 생생하다.”면서 “학생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이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했던 진정한 축제였다.”며 그 때를 기억했다.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지만 원하는 것을 스스로 외치면서 실제 성취하는 희열을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아스라이 그때를 되돌아봤다. 1987년 “독재타도,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를 연호하며 6·10항쟁의 주역으로 섰던 대학생들은 대부분 40대 중년이 됐다. 항쟁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모임인 ‘7080 민주화학생운동연대’ 회원들도 이날 서울광장에 섰다. 하지만 경찰이 에워싼 광장을 지켜보면서 “일생을 바쳐 일궈낸 민주화가 후퇴하는 것 같아 참담한 심정”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서울광장에 서게 되다니…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송세언(47)씨는 당시 3년차 직장인이었다. 송씨는 “22년 전 오늘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면서 “그날 오후 6시 광화문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항의의 표현으로 경적을 울려달라고 전단을 돌렸는데, 6시 정각 일제히 경적이 울리는 것을 들으며 민주화가 오는 것을 느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하지만 송씨는 “투쟁은 우리 세대에서 끝내자고 친구들끼리 다짐했는데 다시 서울광장에 서게 되다니….”라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광장이 통제되고 정부의 일방통행식 독주가 계속되는 걸 보면서 내가 뭣 때문에 온갖 희생을 치르면서 학생운동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며 고개를 떨궜다. ●민주주의 성취감에 젖은건 아닌지 유시춘 6월계승사업회 사무총장은 이날 ‘6월항쟁 계승·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 결성을 위한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찾았다. 이원기 한대련 의장이 “현 정부는 권위주의적 치안통치와 사문화된 법과 관행으로 국민들의 권리를 옭죄고 있다. 6월항쟁 정신을 기리며 국민들이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며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하자 유 사무총장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22년 전 같은 장소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으로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대통령 후보지명 무효를 선언하는 문안을 직접 작성하고 발표했었다. 유 사무총장은 “22년만에 다시 민주주의를 되찾자는 선언문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면서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얻었다는 성취감에 젖어 있는 동안 상황은 악화됐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만들고 수백만명이 질서정연하게 조문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는 여전히 희망적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평가했다. 박건형 김민희기자 kitsch@seoul.co.kr
  • ‘당사자 본인 확인제’ 도입 제안

    정부가 인감제도 폐지를 위한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행정안전부는 11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등과 함께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학계와 법조계, 공무원 등 150여명이 참석하는 ‘인감제도 개편방안 공청회’를 개최한다. 그동안 인감제도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모두 논의 단계에서 무산됐고,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청회 발제자로 나서는 금창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감제도의 대안으로 ‘당사자 본인 확인제’ 도입을 제안할 예정이다. ‘당사자 본인 확인제’는 변호사나 법무사, 행정사 등 자격사가 등기 및 소송 등의 업무를 대리할 때 거래 당사자 본인 여부를 신분증 등을 통해 책임지고 확인하는 제도다. 금 연구원은 또 현재 지문만 기입돼 있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등에 자필서명을 추가하면 인감 대용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상당수 국가는 은행거래나 부동산 거래시 신분증에 기재돼 있는 서명과 본인의 서명을 대조해 신원확인을 하고 있다. 행안부는 금 연구원이 발표를 마치면 공청회에 참가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인감제도 개편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또 다음달 말로 예정된 대통령 주재의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보고해 법제화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행안부에 따르면 인감증명은 지난해 말까지 총 4846만 2700통이 발급됐으며, 인감제도 유지를 위해 연간 5000억원의 비용이 투입되고 있다. 또 지난 2004~2007년 인감사고 발생건수는 773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검찰 수사관행 이것만은 고치자] 피의사실공표죄 유명무실

    [검찰 수사관행 이것만은 고치자] 피의사실공표죄 유명무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검찰은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직접 중계하거나 내부 ‘빨대(취재원)’를 통해 언론에 흘렸다고 비판받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 수사책임자인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과 홍만표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형법 제126조는 수사기관이 피의사실(혐의)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公表)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존재했다. 당시 법제사법위원장 대리였던 엄상섭 의원은 “요새 경찰서 문 앞에만 가도 당장에 신문에 나서 혐의를 받는 사람이 명예를 유지하는 데 대단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확정판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상 원칙에도 어긋나고 소문이 퍼진 뒤에는 다시 주워 담지 못하는 결과를 낳아 법조항을 신설한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 피의사실공표 사건 기소 전무 이러한 입법 취지는 56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타당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피의사실공표죄는 ‘죽은’ 법조항이나 다름없다. 형사처벌을 받은 검사나 경찰관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05년 1월 이후부터 올 4월까지 검찰에 접수된 피의사실 공표 사건 116건 가운데 기소된 것이 하나 없고 확인되는 대법원 판례도 없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처벌 대상자라 피해자가 고소·고발하더라도 검찰이 불기소 처분하거나 기소유예로 재판에 넘기지 않아 범죄 통계나 판례가 축적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가 불러온 폐단이라는 설명이다. 형사처벌이 불가능하자 ‘피의사실 공표’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을 청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검사가 구속 피의자의 혐의 사실을 자료로 배포한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99년 1월 처음 나왔지만, 그후에도 피의사실 공표 수사관행은 바뀌지 않았다. 대법원이 선진국에 비해 기준을 관대하게 정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당한 관심 대상이고 ▲정당한 목적이 있는 수사 결과를 ▲발표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 ▲공식 절차에 따라 ▲유죄를 속단할 수 있는 표현을 피해서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공표하면 형사처벌은 물론 민사배상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 美선 수사기관 정보누설 엄격 금지 반면 선진국은 수사기관의 정보 누설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미국의 카젠바흐-미첼 가이드라인은 ▲피의자의 성격에 관한 진술 ▲피의자 진술이나 자백, 알리바이 ▲피의자 진술상 오류나 진술거부 사실 ▲지문·거짓말탐지기 등 과학수사에 피의자가 응하지 않은 사실에 관한 언급 등을 공표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예를 들면 “미국 주택의 계약서를 찢어 버렸다.”는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진술이나 “아내(권양숙 여사)가 회갑선물로 받은 고급 시계를 버렸다.”는 노 전 대통령의 진술을 언론에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유명무실하다 보니 검찰은 ‘언론플레이’로 피의자를 압박해 자백을 이끌어 내고 ‘여론재판’으로 법관의 유죄 심증을 굳히려 시도한다. 그런 사례가 노 전 대통령 수사에서도 있었다. 대검 중수부는 지난 4월30일 노 전 대통령을 소환했을 때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대질할 계획이라고 미리 언론에 공식 발표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며 거부하자 곧바로 이 사실을 공개했다.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떳떳하지 않아 대질신문에 응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했다. 한발 더 나아가 검사가 피의자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했다고 민사소송을 내기도 한다. 지난 대선 때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검찰수사를 받던 김경준씨가 검찰이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주면 형량을 낮춰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주장하며 메모와 녹음테이프를 건네자 시사주간지 ‘시사IN’이 이를 보도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김씨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한 것처럼 보도해 검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시사IN을 상대로 6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김씨 가족 말만 듣고 보도했다며 언론사가 3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래도 피의사실공표죄가 되살아날 여지가 아예 없지는 않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더라도, 고소·고발인이 법원에 재정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법원이 사건을 재심리해 재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수사관을 피의사실공표죄로 기소하게 된다. 노 전 대통령 사건이 첫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문 닫아거는 개방형 공직

    문 닫아거는 개방형 공직

    공직사회가 문을 닫아 걸고 있다. 지난달 기준 중앙행정기관 내 고위공무원 개방형 공모직위의 민간 전문가 비율은 42.3%로 지난해보다 10%포인트 이상 수직 하락했다. 이는 공직사회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며 도입한 ‘개방형 직위제도’의 취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최고경영자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도 대통령인수위원회 시절,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민간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직사회 현장에선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정부 조직개편이 대대적으로 단행되면서 절반 이상(52.7%)을 차지했던 개방형 직위 내 민간인 비율은 40%대로 추락했다. 부처 통폐합 과정에서 생겨난 일반직 공무원들의 초과현원에 자리가 밀린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이같은 현상은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 등 실세 부처로 꼽히는 행정기관에서 더욱 극심하다.  서울신문이 7일 ‘고위공무원단 개방형 직위 부처별 현황’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현재 39개 중앙행정기관 고공단 개방형 총직위 수 168석(충원 130석) 중 15개 부 단위 기관의 개방형 총직위는 108석(충원 82석)에 달했다. 하지만 실제 민간에서 채용된 외부 임용자는 33명(30.6%)으로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했다. 외청은 총 44자리 가운데 13명(29.5%)만 외부에서 임용됐다.  특히 지경부는 전체 개방형 8개 자리 중 5개 자리를 모두 내부 공무원으로 채웠으며, 민간인은 1명도 임용하지 않았다. 교과부, 국토부 역시 충원된 각 8명, 6명 가운데 민간인은 각 1명에 불과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13명 중 10명이 내부 공무원이고 민간인은 3명이었다. 이밖에 행안부·농림수산식품부는 20%, 재정부·외교부는 33.3%로 역시 민간인 채용비율이 저조했다.  39개 기관 가운데 금융위원회, 노동부, 법제처, 문화재청, 식품의약품안전청, 조달청, 특허청 등 7곳(17.9%)은 외부 임용이 전무했다. 전체적으로 민간 전문가 비율이 30%대를 넘지 못하는 기관 수가 17곳(43.6%)으로 절반에 달했다. 소방방재청, 국가인권위원회 등 민간인 임용률 100%를 기록한 곳은 지정직위나 채용인원이 1~2명으로 매우 적은 경우였다.  행안부 관계자는 “고위공무원 임용에 대한 부처의 자율성을 높여주기 위해 장관의 인사권한을 강화하고 행안부와의 사전협의제를 없앴는데 거꾸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아울러 “대국대과 체제로 조직을 개편하면서 생겨난 초과현원을 해소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민간인 비율이 낮아진 점도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수석 연구위원은 “지경부, 재정부, 행안부 등 인사·예산·집행을 담당하는 힘 있는 부처들은 공무원들 간에 인기가 높고 승진 적체도 심해 민간인이 들어오기가 어렵다.”면서 “이런 부처일수록 민간인이 오더라도 협조가 안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강주리 임주형기자 jurik@seoul.co.kr
  • 민간 인재 유치하려면

    7일 전문가들은 개방형 직위를 활성화하기 위해 어느 정도 임금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처럼 일반 공무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한 임금 수준으로는 유능한 민간 인재를 끌어올 수 없다는 것.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기업처럼 수십억원의 돈을 줄 수는 없겠지만 성과급을 대폭 강화해 기존 임금의 1.5배 이상은 더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차관 등 정무직 공무원들의 연봉과는 따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개방형 직위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종수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이 민간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기 때문에 제도가 활성화됐다.”면서 “현 정부는 이런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계약기간 유연하게 운영해야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개방형 직위를 국장급보다는 과장급에 더욱 확대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간 관리자급 민간 인재는 상대적으로 적은 보수로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또 “공무원의 ‘민간근무 휴직제’처럼 기업도 ‘공직근무 휴직제’를 도입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공직에 온 민간근무자들이 퇴직 후 돌아갈 곳을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수들이 선호 직급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는 작업도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직자 윤리법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현행 법상 퇴직 공무원이 재직기간 동안 수행했던 업무와 유사한 일을 하는 기업의 취업을 일정기간 제한하는 까닭에 개방형 직위로 들어온 민간 전문가들이 퇴직 후 본업으로 돌아가지 못해 결국 공직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최영출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계약기간을 무조건 제한하지 말고 성과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직위분류제 전환도 대안 이선우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도 “장기계약을 보장해 신분상 안정을 꾀하고 공직을 그만두고 나갔을 때 취업할 수 있는 경력관리를 해주는 유인책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기관간 전략적 제휴(MOU)를 체결해 복직을 보장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다만 기업과는 업무 유착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학교 중심으로 우선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개방형 직위 축소보다 공직의 모든 직급을 전문 업무 분야별로 완전 개방·경쟁시켜 채용하는 ‘직위분류제’로의 전환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옛 중앙인사위원회와 같은 독립적인 인사기관을 만들어 개방형 직위내 민간인 임용률 등을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 수석연구위원은 “부처 내에서는 소속 장관의 눈치를 보게 마련”이라면서 “선발심사위원회에 민간인 비율을 높여 공무원들에게 유리하게 선발하는 게 아닌지 견제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강주리 임주형기자 jurik@seoul.co.kr
  • 낮은 처우·신분 불안… 인재 안 온다

    낮은 처우·신분 불안… 인재 안 온다

    개방형 직위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로 10년을 맞고 있다. 고위공무원단 출범 이후로 따져도 3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유명무실 논란까지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경쟁력 있는 민간인들이 공직사회의 개방형 공모 직위에 지원할 이유가 없다.”며 공직내 외부임용 비율이 낮은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개방형 직위 심사위원을 맡았던 이선우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략적으로 경력관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월급이 전직에 비해 현저히 적고 평균 2년 계약으로 신분이 불안정한 개방형 직위에 들어올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면서 “민간에 있을 때는 결정권한이 많았지만 공직사회는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적어 업무 수행도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경력직 또는 계약직 형태로 채용되는 개방형 직위는 임용기간이 2년이며 최대 5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계약직이기 때문에 승진이 없으며 다른 직위로 이동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계약이 만료되고 난 후 복직할 수 없는 신분 불안정성이 가장 큰 지원의 장애요소로 꼽힌다. 현재 개방형에 지원한 민간 전문가 가운데 5년 이상 재계약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엘리트 공무원 사이에서 눈칫밥” 호소 서원석 한국행정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복직을 보장해 주는 시스템이 없는 게 가장 문제”라면서 “경쟁력이 있으면 직위를 계속 보장해주고, 직위 계약이 끝나고 나면 다시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줘야 하지만 장기적인 근무 연계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학계와 공직사회간 인사교류가 지극히 보수적이어서 자기 조직 내 사람 외에는 진입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경직성도 문제로 거론됐다. 서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정·관·학계간 인사교류가 매우 유연하게 이뤄지고 그에 맞는 조직 내 승진도 보장한다.”면서 “공직이든 학계든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사람이 나와줘야 창의성도 전문성도 발달한다.”고 강조했다. 공직사회의 외부 임용자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도 한몫했다. 특히 공무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실세 부처들의 경우 우수 엘리트 공무원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 데다 전문성에서도 밀리지 않아 민간 전문가들이 ‘눈칫밥’ 을 먹어야 하는 데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 수석연구위원은 “형식적인 개방에다 비협조적인 공무원들의 태도는 개방형 효과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면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지위에 맞는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장관 재량 강화→부처 내부공무원 우대 가속 고공단 직위 총수의 20%로 지정돼 있는 개방형 직위제도는 2006년 7월 폐쇄된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실·국장급 고위직 임용시 교수, 기업인, 연구원 등 전문성 있는 외부 전문가를 공개 채용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자 출발했다. 일부 유전공학, 의료, 고객만족도 분야에서 전문성과 권한을 인정받은 민간 전문가들은 높은 성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임금과 대우, 신분 보장의 벽이 한계로 드러나면서 제도는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5월 부처 자율성 강화를 이유로 고위공무원 임용시 행정안전부의 사전 승인 절차를 폐지하고, 각 부처 장관의 임용 권한(4급 이하→3급 이하)을 대폭 강화하면서 이같은 역주행에 가속이 붙었다. 지난 3월에는 개방형 공모직위 모집 공고 등으로 지연되는 업무공백을 막겠다며 재공고 의무조항을 폐지했다. 이에 따라 소속 부처 장관은 재량껏 공석인 자리에 일반직 공무원을 내정할 수 있게 돼 사실상 개방형 공모직위제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행안부 내부에서도 당초 정책방향과 달리 부작용이 터져나오는 데 대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관계자는 “부처의 임용부담을 완화해준 게 개방직을 아예 안 뽑는 방향을 초래해 걱정”이라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당일 CCTV에 잡힌 52초간의 화면 공개

    노 前대통령 서거당일 CCTV에 잡힌 52초간의 화면 공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경호관과 함께 사저에서 나와 부엉이바위 쪽으로 걸어가는 생애 마지막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화면이 5일 공개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과정을 수사해온 경남지방경찰청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고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은 이전 중간발표 때와 큰 차이가 없다. 또 서거 당일 노 전 대통령이 사저에서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할 당시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를 유족 가운데 한 사람이 들은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은 그러나 유족측 요청에 따라 유서 작성 당시의 사저 상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이 이날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CCTV 화면에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동행했던 이모 경호관과 사저를 나서는 모습, 사저 앞에서 경비를 하던 전경이 인사하는 장면, 노 전 대통령이 사저 담벼락 옆으로 몸을 굽혀 풀을 뽑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또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발견된 직후 급히 은색 그랜저 승용차가 경호동에서 부엉이바위 쪽으로 가고, 노 전 대통령을 태워 마을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찍혀 있다. ●수행 경호관 형사처벌 않기로 봉하마을 사저 주변에 설치된 CCTV 화면을 52초 분량으로 편집한 것으로, 유족 측의 동의를 얻어 공개됐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동행했던 이 경호관의 신병처리와 관련, 경호공백에 고의성(직무에 대한 의식적 방임)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형사처벌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노 전 대통령 서거사건 수사본부는 해체하고 앞으로 전담팀을 구성, 제보나 객관적인 자료에 의한 의혹과 문제가 제기되면 수사를 해 즉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부엉이 바위 아래서 진혼제 이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부터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임시 안치돼 있는 봉화산 정토원 수광전에서 노 전 대통령의 49재 가운데 이재(二齋)가 열렸다. 이재에는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 등 유족을 비롯해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김경수 비서관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또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해 발견됐던 봉화산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이날 오전 8시부터 30여분 동안 넋을 달래고 영혼을 모셔 가는 의식인 진혼제가 열렸다. ●봉하 경호관 2명 사의 한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경호를 담당했던 경호처 직원 2명이 직무상 책임을 지고 5일 청와대 경호처에 사의를 표명했다. 경호처는 이날 “경남지방경찰청이 오늘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봉하팀 전담 경호부장과 경호과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사의를 표명한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봉화산 부엉이바위에 올랐던 이모 경호관과 현지 경호 지휘권을 갖고 있던 주모 경호부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호처는 이날 경찰의 공식수사가 종결됨에 따라 이번 사건과 관련한 현지 경호임무 수행의 문제점 등에 대한 자체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창원 김해 강원식·서울 이종락기자kws@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개성회담,北 요구 일방통보 가능성 회색빌딩 숲속 녹색생명 ‘꿈틀’ ’정부가 간섭 안 하느냐’ 질문에… 되레 괴로운 국가유공자들 센스있는 며느리-현명한 시어머니 ‘상생의 길’ ‘쌉쌀 달콤’ 고진감래주 아세요
  • “안전도시 U-City와 연계 구축해야 ”

    “이제는 ‘U-City(Ubiquitous city)’가 아닌 ‘U-Safe-City’로 가야 합니다.” 정부가 도시의 강력범죄와 교통사고 등을 줄이기 위해 추진 중인 ‘한국형 안전도시’ 조성사업에 U-City 사업을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른바 ‘U-Safe-City’가 조성되면 시민들은 휴대전화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위험알림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고, 범죄가 발생했던 지역 등을 표시하는 ‘온라인 안전지도’ 등도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하고 서울신문이 후원하는 ‘안전한 나라, 안전도시’ 정책 세미나가 5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외부 전문가 등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서울신문 6월5일자 25면> 조석주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 등은 세미나에서 도시마다 기능과 위험요소가 다른 만큼 안전도시를 구축할 때도 각각 특성에 맞는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례로 공장이 많아 대기오염이 심각한 도시는 ‘산업안전도시’(이하 가칭)로, 교통사고가 많은 지역은 ‘주거생활안전도시’로, 상업지역이 많아 범죄 발생 위험이 높은 곳은 ‘도심상업도시’로 각각 구분해 조성하자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또 안전도시 조성사업을 ‘U-City 사업’과 연계해 ‘U-Safe City’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의 경찰과 소방 업무를 연계한 ‘행정안전종합상황실’(가칭)을 설치, 통합안전지휘체계를 구축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박남수 협성대 교수는 “의사보다 행정가, 정치가들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며 “정부는 안전도시 구축을 위한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병규 행안부 제2차관은 “‘한국형 안전도시’ 조성사업은 각 지자체의 재난안전 대응역량을 강화하고, 민·관 안전공동체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안전도시 시범마을 조성

    강력범죄, 교통사고가 없는 ‘한국형 안전도시’ 시범마을이 만들어진다. 행정안전부는 4일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연쇄살인 등 강력범죄와 교통사고와 같은 각종 사건·사고로 인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줄이기 위해 국내 최초로 한국형 안전도시 시범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형 안전도시는 재난·사고로부터 지역특성과 부존자원 등을 감안해 현실에 적합한 사회구조적 안전 시스템을 개발, 시민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든 도시를 말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전국 24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통해 시·도 1~2곳, 시·군·구 8~10곳 정도를 지정할 계획”이라면서 “내년에는 시범지역을 확대하고 합동평가를 통해 우수 지자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이달 중으로 공모계획을 확정짓고 부처간 예산 협의 등을 거쳐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행안부는 이번 시범도시로 지정된 지역 중 시·도는 10억원, 시·군·구는 5억원 등 연간 70억원의 사업비를 특별교부세 형식으로 지원해 안전한 환경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 CCTV 설치, 교통사고 다발지역 개선사업 등 각종 행안부 주관 안전 관련 사업을 패키지화해 시범지역에 지원할 예정이다. 우수 시범지역에는 ‘안전도시 공인인증’과 함께 시상, 행·재정적 인센티브가 추가로 지급된다. 행안부와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이 같은 안전도시 시범마을 선정 관련, 5일 서울신문 후원으로 세종로 정부청사 별관에서 ‘안전한 나라, 안전도시 안전정책 세미나’를 연다. 이번 세미나에는 광역·기초 재난담당 공무원과 학계·언론·시민단체 등 각계 전문가 300여명이 참석해 안전도시 도입 필요성과 추진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살인, 강도 등 전국 5대 범죄 발생률은 전년 대비 4.4% 증가했으며 안전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두 번째로 높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전지현 “액션·감정연기 동시 소화, 처음엔 자괴감”

    전지현 “액션·감정연기 동시 소화, 처음엔 자괴감”

    배우 전지현이 액션과 감정 연기를 함께한 것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다. 전지현은 4일 오후 서울 CGV 용산에서 열린 영화 ‘블러드’ 언론시사회에서 감정 연기와 액션 연기를 동시에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라는 질문에 “감정을 연결해 액션 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 처음엔 자괴감 같은 걸 느꼈다.”며 “현장에선 발차기 한 번 하면 감독이 컷을 외쳤다.”고 말문을 열었다. 전지현은 이어 “감정 연기를 주로 해왔던 터라 그런 점이 달라 어려웠다.”면서 “하지만 A팀과 B팀으로 나눠 촬영해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A팀은 드라마를 B팀은 액션을 촬영했다.”고 대답했다. 한편 이날 시사회에 동반 참석한 ‘블러드’의 제작자 빌 콩이 3부작까지 속편을 제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전지현을 계속 출연시키고 싶다.”고 하자 전지현 역시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공각기동대’의 오이시 마모루 원작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한 ‘블러드’는 일본, 홍콩, 프랑스 3개국이 합작 제작한 3,500만 달러(한화 약 5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프로젝트다. 크리스 나흔 감독이 연출을, 전지현, 코유키가 주연을 맡았으며 ‘와호장룡’ ‘영웅’ 제작진이 CG를 작업했다. 전지현은 극중 인류의 미래를 걸고 최후의 결투를 벌이는 뱀파이어 헌터로 등장해 강도 높은 액션 연기와 영어 대사를 소화했다. 영화는 오는 11일 국내 개봉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 / 사진=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권여사 사저 떠날 계획 없다”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승을 영영 떠남에 따라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은 거취를 정해야 한다. 우선 권 여사는 봉하마을 사저에 계속 머물며 고인이 된 남편 곁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28일 “권 여사는 사저에서 떠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권 여사는 지난해 2월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줄곧 봉하마을에서 지내 왔다.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의 숨결이 어린 사저에 머물며 49재(齋)를 지내고 사저 인근 남편의 묘소를 돌볼 것으로 예상된다. 마음의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기면 사저를 찾는 관광객들도 만나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 때 보내 준 뜨거운 조의에 감사 인사도 전할 것으로 보여진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권 여사는 남편의 죽음을 지켜본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 봉하마을 앞 화포천의 자연정화활동 등 남편이 못다 한 봉사사업에 힘을 보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권 여사의 한 지인은 “권 여사는 굉장히 내강(內剛)한 분으로, 본인의 도리를 다하고 싶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 부부와 딸 정연씨 부부는 아버지의 납골묘가 조성될 때까지 어머니 권 여사와 함께 봉하마을 사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임시로 안치된 정토원에서 이재(二齋), 삼재(三齋) 등 매주 지내는 제사에 참석하며 권 여사를 곁에서 위로할 예정이다. 묘지 조성이 끝나고 권 여사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으면 이들은 미국 집으로 돌아가 생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건호씨는 무급휴직 중인 LG전자를 퇴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는 구속집행정지 만료일인 6월1일 서울구치로 돌아간다. 건평씨의 아내 민미영씨는 봉하마을에서 계속 생활하게 된다. 민씨는 지난해 12월 남편의 구속을 전후해 주위의 관심이 집중되자 마을을 떠나 외부에서 주로 지냈으나 권 여사 등에 대한 수사가 집중되자 봉하마을로 돌아왔다. 김해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인사]

    ■국회 <국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 △여성위원회 김귀순◇이사관 전보△의정연수원 교수 이동근△국방위원회 전문위원 이규담△행정안전위원회 〃 손충덕△특별위원회 〃 박창규◇부이사관 승진△운영지원과장 박장호△행정안전위원회 입법조사관 정성희△국토해양위원회 〃 정연호△국회사무처 김대형 이재우◇부이사관 전보△경제법제심의관 이인섭△의원외교정책〃 송대호◇부이사관 전출△국회예산정책처 박상진△국회입법조사처 박출해 배용근◇서기관 승진△대변인실 김경신△감사담당관실 김태균△법제실 행정법제과 법제관 김성환△법제실 산업경제법제과 〃 김세현△의사국 의안과 임종수△기획조정실 기획예산담당관실 황승기△국제국 아주과 윤성민△인사과 서덕교△운영지원과 장영복△법제사법위원회 입법조사관 김용규△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 박혜진△지식경제위원회 〃 이제봉△국토해양위원회 〃 허문규△국회사무처 공춘택△의사국 의정기록1과 고경효△〃 의정기록2과 이순영△〃 의회경호과 김태연 이강봉△관리국 시설과 송기형◇서기관 전보△법제실 사법법제과장 이은정△〃 교육문화법제과장 장태백△〃 정무환경노동법제과장 홍성현△국제국 의회외교정책과장 오창석△〃 미주과장 최선영△보건복지가족위원회 입법조사관 배종학△특별위원회 〃 김갑성△법제실 법제총괄과 하서룡△관리국 설비과 양재권◇서기관 전입△대변인실 홍형선<국회예산정책처> ◇부이사관 승진△기획관리관실 총무팀장 최순만△〃 기획협력팀장 김건오△예산분석실 경제예산분석팀장 송병철△〃 행정예산분석팀장 천우정△사업평가국 행정사업평가팀장 박상진◇서기관 승진△기획관리관실 총무팀 박병섭△〃 기획협력팀 윤상열△예산분석실 행정예산분석팀 오세일△〃 법안비용추계 1팀 김수옥△〃 법안비용추계 2팀 서기영 ■교육과학기술부 △인천광역시 부교육감 권진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정책보좌관 김용렬 ■방위사업청 ◇서기관 승진 △행정직 강환석 김창환 정만호 최진용△기술직 유영욱 이종주 ■국민건강보험공단 <사회보험징수통합실무추진단>△단장(연수원건립추진단장 겸임) 공형식△부단장 김일문△총괄팀장 이정호△업무설계〃 문덕채△정보화〃 김경섭<연수원건립추진단>△연수원건립추진팀장 최인건 ■주택금융공사 △상임이사 태응렬 전우영 김규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획조정실장 황후영△홍보〃 김효진△경영관리본부장 김현경△모금사업〃 전흥윤△배분사업〃 정진옥 ■시사저널 △상무이사 겸 편집기획위원 조남준 ■KT ◇전무급 전문임원 △개인고객부문 개인고객전략본부장 양현미◇상무급 전문임원△윤리경영실 법무담당TFT 법무담당 이상직◇상무 승진 <개인고객부문>△개인고객전략본부 마케팅전략담당 임헌문△개인고객사업본부장 나석균△무선데이터사업본부장 곽봉군△무선네트워크본부 수도권무선네트워크운용단장 오성목△대외협력실 협력TFT 사업협력2담당 이충섭△스포츠단장 강종학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연화장 하늘 아래서 유언대로 ‘한조각 자연’으로 돌아갔다. 오전 영결식을 통해 하늘로 오른 영혼이 이 모습을 지켜봤으리라.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연화장에 도착해 유골 수습까지 2시간44분 만에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유족들은 고열의 화로에서 몇 개의 뼛조각으로 변한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자 몸을 떨며 오열했다. ●예상보다 3시간 늦어져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수원 연화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6시6분. 운구 행렬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해 수원요금소를 빠져나온 뒤 국도 42번선 용인대로~원천로~용인 흥덕 택지개발지구~신대 저수지를 거쳐 수원 연화장으로 들어섰다. 예상보다 3시간가량 늦어졌다. 영구차가 연화장에 도착한 뒤 삼군 의장대 10명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이동대차에 옮기는 운구의식이 진행됐다. 연화장에 모인 8000여명의 추모객들은 ‘노무현’을 연호했고, 일부 추모객들은 흐느꼈다. 권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특별히 승화원 건물 밖에 마련된 야외분향소에서 20분 동안 제례를 올렸다. 태극기에 덮인 노 전 대통령의 관이 화장로 9기(예비화로 1기 포함) 중 가장 큰 8번 화장로 앞으로 옮겨지자 유족들도 8번 분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겨 숙연한 표정으로 대형유리 너머의 화로를 지켜봤다. 권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울기만 했다. 딸 정연씨가 “엄마, 아빠 봐야지.”라고 몇 번이나 설득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후 6시31분쯤 송기인 신부가 기도를 한 뒤 대형유리의 커튼이 닫혔다. 관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화장로 안으로 들어갔다. 유해는 섭씨 800~1000도의 고온에서 1시간30여분간 화장됐다. ●고별 제례 올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은 이날은 오전 8시와 10시 2차례로 단축됐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졌다. 8번을 제외한 1~7번 분향실마다 장의위원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고별 제례’를 올렸다. 화장이 종료되고 화로에서 유골이 꺼내지자 분향대기실은 일순간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이때 보통의 유족들도 고인을 생각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곤 하는데, 국가 최고 권력을 쥐었던 대통령의 유족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보통 사람들의 것을 훨씬 초월했을 것이라고 추모객들은 입을 모았다. ●오후 8시50분 봉화마을 장지로 유골은 18분 정도 냉각과정을 거쳐 유족들에게 인계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곱게 빻는 분골 과정을 거쳐 향나무 유골함에 담겼다. 운구차는 오후 8시50분쯤 고인의 영원한 안식처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 장지로 향했다. 운구차 이동경로인 연화장에서 경부고속도로 수원 요금소까지 6㎞여 구간에는 시민들이 나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연화장은 경부고속도로 수원 나들목과 6~7㎞ 거리에 있다. 연화장측은 조례에서 정한 자치단체장 재량권 규정에 따라 화장료를 면제했다. 수원 김병철 남인우 오달란기자 kbchul@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의식 거행내내 ‘삶과 죽음 한조각’ 독송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29일 오후 늦게 수원 연화장에 도착하자 추모객(경찰 추산 8000여명)들은 “노무현”을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추모객들은 700여m나 떨어진 임시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서 연화장 승화원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추모객들의 표정은 모두 숙연했고 떠들거나 불필요한 말을 하는 사람은 보기 어려웠다. 연화장 입구에서 삼군 의장대와 군악대가 운구를 맡으며 엄숙함을 더했다. 분향실 앞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님’이라는 문구가 표시됐다. 권양숙 여사와 건호·정연씨 남매, 건평씨 등 유족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뒤를 따랐다. 절도 있는 의장대의 발걸음과 달리 유족들은 한 걸음을 내딛기도 벅차 보였다. 권 여사는 딸과 며느리의 부축을 받았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유족들이 야외분향소에서 제례를 마치고, 권 여사가 부축을 받으며 승화원으로 들어갈 때 추모객들이 박수를 치면서 “힘 내세요.”를 외쳤다. 8개 분향실 가운데 7번까지는 노사모 회원들과 종교인, 장의위원들이 자리했고, 8번 분향소에서는 권 여사 등 유족들이 고인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화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화장되는 동안 승화원 밖에서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교의 마지막 제례의식이 진행됐다. 한쪽에서는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노 전 대통령 유서의 한 구절이 독송(讀誦)됐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관계자 100여명은 화장이 시작되기 4시간 전부터 불교의 다비의식(화장의식)과 독송 준비를 했다. 제2교구 관계자는 “오늘 독송한 ‘무상게(無常偈)’는 자연과 삶은 하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의식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독송이 서글프게 울려퍼지자 북받치는 슬픔을 참지 못한 추모객들이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오열했다. 수원 남인우 오달란기자 niw7263@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인간 노무현의 희망과 좌절 기억해야”

    “인간 노무현이 남긴 진실된 삶을 이해하고 회복하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독일 뮌스터대 송두율(65) 교수는 29일 베를린 자택에서 기자와 전화통화를 갖고 “노 전 대통령이 역경을 뚫고 진실되게 살았던 삶의 태도가 앞으로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노 전 대통령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적도, 각별한 인연도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대통령과 철학자로서 각각 최고의 경지에 올랐으면서도 늘 외롭고 쓸쓸한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 시대의 경계인이었다. 송 교수는 이날 서울 광화문 노제를 TV로 지켜보다 지난 2003년 가을을 떠올렸다고 했다. 분단 이후 최대의 간첩사건으로 불리며 온 사회가 ‘송두율 충격’에 빠졌던 그해 9월, 송 교수는 37년만에 찾은 고국에서 절망적인 시간을 보냈다. 노 전 대통령은 해외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고국에 초청한 뒤 청와대에서 만찬을 열었지만 송 교수는 초대받지 못했다.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돼 검찰 수사를 받아야 했던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그해 10월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송 교수 사건은) 처벌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여유와 포용력을 전 세계에 보여 주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면서 “송 교수에 대한 처벌 문제는 분단의 대결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법과 상황에서 거론되고 있다.”고 했다. 원고에 없던 육성발언이었다. 송 교수는 “내가 구속된 전후로도 혼란스러웠던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탄핵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가슴 아파했다. 동병상련이라는 표현을 쓴 송 교수는 “쉼없이 죄어오는 여론재판 속에서 아마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짧은 유서 속에서 송 교수는 고통스러웠던 노 전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기자에게 전했다. 63년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다 보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저항할 수 있는 길을 찾았을 텐데, 그것을 그나마 자기 합리화로 삼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유서에는 정치인이라면 흔하게 남겼을 법한 국가와 민족이라는 단어 하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의 철학적 고뇌와 함께 스스로 삶을 책임지려는 태도에 뭉클했다고 한다. 송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한국 민주화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받아들였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개인사를 앞세워 한때 대통령을 지낸 국가지도자를 인격적으로 무너뜨렸다는 자체가 비민주적이라는 것이다. 송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반성도 하지 않고 얼버무리려 한다면 진정한 화해와 통합은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밑바닥에서 고뇌했던 인간 노무현의 희망과 좌절을 기억하고 승화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사자(死者)가 빈소를 떠나 묘지로 향하는 절차인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 옆 분향소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발인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 형 건평씨 등 유족과 친인척,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각료, 봉하마을 주민, 광주 노씨 문중, 시민 등 2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발인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선두로 육·해·공군 의장대 운구병 10명이 태극기에 싸인 고인의 관을 운구차에 옮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 사위가 영정 모셔 이후 상주가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견전(遣奠)과 축문 낭독, 유가족이 다시 절을 올리는 재배의 순으로 10여분간 진행됐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 채 고인의 영정을 묵묵히 바라봤다. 시민들은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을 외치며 통곡했다. 5시18분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영정을 모시고 고인이 생전 에 머물던 사저로 향했다. 권 여사도 딸 정연씨의 부축을 받으며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모르는 손녀 서은(5)양은 언론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권 여사는 사저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지듯 휘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했다. ●운구행렬 오전 6시께 봉하 떠나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전 5시56분 시민 대표 한 명의 절을 받은 뒤 국화꽃으로 장식된 캐딜락 운구차에 실려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을 향했다. 당초 예정보다 30여분 늦은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났다. 경찰 오토바이 5대가 앞장선 운구 행렬은 선도차에 이어 영정차, 운구차, 상주 및 유족 승용차, 장의위원장 및 집행위원장 승용차, 친족 버스 5대, 장의위원 대표단 버스 5대 등이 긴 줄을 이었다. 후미에는 구급차 2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영구차, 경찰 사이드카 3대가 뒤따랐다. 장례 행렬 뒤로는 마을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오열하며 뒤따랐다. 진영읍에서 왔다는 오지은(31·여)씨는 “아직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밤이 되면 한 줌 재로 돌아오실 텐데 그때까지 마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은 길 양편에 늘어서 오열하는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서히 이동했다. ●권 여사 한때 쓰러지듯 휘청여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한 노란색 종이비행기도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마을을 벗어나자 인도에 늘어선 진영중학교 여학생들과 시민 등 수백명이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를 외치며 고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오전 6시20분 봉하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동창원나들목을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올랐다. 이후 시속 120여㎞의 속도를 유지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칠원분기점(6시35분)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청원~상주간고속도로(7시56분)를 지나 청원분기점(8시50분)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입장휴게소(9시23분)에서 20여분간 휴식한 뒤 다시 출발, 10시20분쯤 궁내동 서울요금소를 지나 오전 10시48분쯤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 앞뜰에 도착했다. 이날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육교나 휴게소, 도로가 등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손에 민들레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경기 용인부터 서울요금소까지는 시민들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열해 노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잠시 머문 입장휴게소에서는 광주노사모 회원 등 시민 50여명이 노 전 대통령 운구차 곁에 서서 고인을 기렸다. 김해 김승훈 이재연 박성국·수원 오달란·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추모객들은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행렬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29일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인도에 있던 추모객들이 도로로 몰려들면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가는데 1시간 이상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정했지만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할 무렵인 오후 1시20분쯤에는 세종로 네거리부터 숭례문 앞까지 도로 전체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18만여명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 몰려 운구행렬 10분거리 1시간 걸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추모객들은 영구차에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여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님 이 땅에 다시 오시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되소서’, ‘당신과 함께 미래를 오늘로 만들겠습니다, 걱정 버리십시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고시 준비생인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40여분간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 합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때 건호·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울려퍼지는 애도의 거리를 따라 천천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안치환·윤도현씨가 목 놓아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운구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함께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뭘 했냐.”는 시민들의 원망과 질타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지켜낸 광장 광화문 네거리~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으로,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로 넘쳐났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서울광장 일대에는 오전 7시40분쯤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기 시작, 고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눈물과 통곡으로 달랬다. 오전 9시쯤 접어들면서 거대한 노란 풍선, 노란 모자 등 온통 노란색으로 광장이 물들었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여명(경찰추산, 주최측 50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노란 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22·여)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강의를 휴강했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장 2000여개 펄럭이며… 운구행렬이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을 벗어나는 동안 주변의 추모객들은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 박영선 의원 등에게 “살아 있을 때는 외면하더니 이제야 따라다니느냐.”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행렬은 오후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3시쯤 2000여개의 만장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당초 운구행렬은 오후 2시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흐름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어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1년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미소 지으며 걷던 서울역 계단과 광장은 이날 고인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수가 6만 5000여명이나 됐다. 서울 화곡동의 직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 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대학생 원미라(22·여)씨는 “국장과 달리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교수님들과 의논해 오늘 하루 휴강했다.”면서 “시대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방명록에 썼다.”고 말했다. ●경찰 주차시도에 시민들 물병 등 던져 운구행렬을 떠나보낸 추모객들은 다시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며 고인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오후 3시30분쯤 경찰 버스 4대가 서울 프라자호텔 맞은편 서울광장 가장자리에 주차를 하려 하자 일부 추모객들이 물통 등을 던지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버스 1대와 경찰 지휘차량 1대가 일부 파손됐고 세종로에서는 추모객들과 경찰의 신경전이 밤늦도록 계속됐다. 경찰은 밤늦도록 추모객들의 귀가를 촉구하는 안내방송을 내보냈고, 이에 맞서 추모객들은 차량 위에 설치된 마이크로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추모사를 쏟아내 고인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서울 유대근·수원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해처럼 지셨지만 고결한 정신은 달처럼 빛날 것”

    [노 前대통령 국민장] “해처럼 지셨지만 고결한 정신은 달처럼 빛날 것”

    29일 오전 10시48분쯤. 서울 경복궁 동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에 도열한 의장대가 ‘받들어 총’ 자세로 운구 행렬을 맞았다. 뒤이어 영구차와 유족들이 나타나자 장내는 일순 숙연해졌다. 군악대의 조악 연주에 맞춰 창백한 얼굴의 권양숙 여사가 아들 건호씨와 함께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건호씨의 아내 배정민씨와 딸 정연씨도 뒤를 따랐다. 역대 대통령 중 5번째 영결식이었다.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가 낭독됐다. 4개 종단의 추모의식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5시쯤 김해 봉하마을에서 차를 타고 상경한 유족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는 생각에서였을까. 권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모르는 어린 두 손녀만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 ●화면속 “바보 정신으로 정치…” 오전 11시50분쯤. 제단 옆 대형 스크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나왔다. 화면 속 노 전 대통령은 “별명 중에서 (바보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하면 나라가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냥 바보하는 게, 그게 그냥 좋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던 유족과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의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일주일 동안 표정 한번 변하지 않았던 이해찬 전 총리도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이미 눈시울이 붉어 있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격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백원우 의원 “MB는 사죄하라” 이어서 유가족과 주요 인사들의 헌화가 시작됐다. 권 여사를 비롯, 유족들이 줄지어 흰 국화를 제단에 바쳤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헌화하려는 순간, 앞줄에 앉아 있던 민주당의 백원우 의원이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해.”라며 소리를 질렀다. 경호원이 입을 틀어막으며 제지했지만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백 의원이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간 뒤에야 이 대통령 내외는 헌화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향소 앞까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 뒤 고인의 영정에 국화꽃을 놓기 위해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화한 뒤 뒤돌아서 권 여사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간 김 전 대통령은 권 여사의 손을 잡고 위로하다 슬픔이 북받치는지 큰 소리로 통곡했다. 영결식은 국립합창단의 ‘상록수’ 합창, 삼군(육·해·공군) 조총대원들의 조총 발사 의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25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추모사를 낭독한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의 주지 명진 스님은 “일락서산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 즉 해가 서산에서 지면 달은 동녘에서 뜬다. 지는 해처럼 당신은 떠나가지만 당신의 고결한 정신은 떠오르는 달처럼 빛날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이별을 애도했다. 김민희 허백윤기자 haru@seoul.co.kr
  • 노 前대통령 봉하마을에 영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7일 만인 29일 국민의 애도속에 고향인 봉하마을에 영면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세종로 경복궁 앞뜰에서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 문희상 국회 부의장 등 정·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를 포함한 유족 등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國民葬)으로 엄숙하게 치러졌다. 고인의 유해를 실은 운구 차량은 오전 5시쯤 봉하마을에서 발인식을 치른 뒤 고속도로로 상경했다. 이날 전국의 관공서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조기가 게양됐다.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는 조사를 통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이룩한 업적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으며,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끌어달라.”며 추모했다. 조사에 이어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의 종교의식이 차례로 진행됐으며, 고인 생전의 영상이 제단 양옆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4분여간 방영됐다. 서울광장 일대 등에는 이른 아침부터 수십만명(경찰 추산 18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고인의 넋을 기렸다.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해 40분가량 노제를 치른 뒤 서울역을 거쳐 경기 수원의 연화장에서 화장돼 30일 새벽 봉하마을 인근의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7월10일 49재때 사저 옆 장지에 안장된다. 김민희 허백윤기자 haru@seoul.co.kr
  • 발인 마치고 노 전 대통령 서울로 출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치고 힘들었던 육신을 관 속에 누인 채 마지막 상경길에 올랐다.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엄수될 국민장(國民葬)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오전 5시 김해 봉하마을에서 숙연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발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은 예정보다 28분쯤 늦은 5시58분 서울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5시 정각에 군 의장대가 관에 태극기를 두르면서 발인식이 시작됐다.의장대는 관을 빈소였던 봉하마을 마을회관 밖으로 옮겨 앞마당에 미리 준비해둔 운구차에 실었다.특수제작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쓰는 평범한 관이었다.이어 5시10분쯤 마을회관 앞마당에 차려졌던 분향소에 영정을 두고 견전제가 이어졌다.2분 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사라반드’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맏상주 건호 씨가 엎드려 부친과의 긴 이별을 고했다.형 건평씨,부인 권양숙 여사,딸 정연 씨와 손주 등 유족들이 슬픔마저 마른 듯한 표정으로 지켜본 뒤 역시 바닥에 엎드려 마지막 예를 다했다.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과 동영상에 등장했던 손녀가 모습을 비쳐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견전제를 마치고 영정이 노제 형식을 빌어 사저로 향하자 발인식을 지켜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많은 조문객들이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든 영정은 고인이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골목길을 통해 산새들이 우짖는 새벽 공기를 뚫고 사저로 향했고 영정은 사저를 한 바퀴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운구차가 5시25분쯤 마을회관 앞을 떠나 사저 쪽으로 이동하자 조문객들이 날린 수백개의 노란색 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날아 차체 위에 내려 앉았다.종이비행기에는 노 전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사저를 한 바퀴 돈 영정이 5시35분쯤 사저를 빠져나와 예정보다 20분쯤 늦은 5시50분쯤 운구차에 올라 국민장을 위해 서울로 향했다.한달 전 쯤에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날 때 걸어 내려왔던 길을 영정이 대신 걸어 내려온 것이라 조문객들이 오열할 만했는데 조문객들은 흐느낌마저 유족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조문객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인의 시신과 영정을 실은 운구차는 선도차가 준비를 갖출 때까지 지체했다가 5시58분쯤 먼 상경길의 첫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1만명으로 추산되는 조문객들이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고인의 마지막 상경길을 따라 걸으며 배웅했다. ●11시 경복궁 영결식 3000여명 참석  영결식은 오전 11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정·관계 주요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시민들의 애도 속에 노제를 지낸다.경찰은 낮 12시부터 노제가 끝날 때까지 경복궁 앞뜰~서울광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한다. 이어 만장 2000여개가 뒤따르는 가운데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만장은 불상사를 우려한 정부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불교 형식인 대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다.이 때는 일부 차로만 통제한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후 3시쯤 수원 연화장에 도착, 화장식을 치른 뒤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된다.밤 9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 오후 5시까지 분향소 운영 한편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추모인파는 절정을 이뤘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 지금까지 100만명을 넘어섰고 전국적으로는 450만명을 돌파했다. 분향소는 새벽에만 잠시 한산했고 날이 밝자마자 추모객들이 장사진을 이뤄 헌화에 참여했다. 정부는 29일 오후 5시까지 전국 각지에서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봉하마을 분향소는 밤 12시까지 운영될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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