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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훈현 9단/「부진의 늪」 벗고 올들어 연승

    ◎유창혁·이창호 이어 일 요다·고마쓰도 연파/“초반은 정신력서 승리… 체력 뒷받침이 열쇠” 조훈현9단이 새해들어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저조한 성적을 기록,그를 아끼는 많은 팬들로부터 『올해는 무관의 제왕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자아냈던 조9단이 새해 벽두부터 잇따라 승전보를 울려 올해 밝은 전망을 던져주고 있다. 조9단은 지난 16·17일 중국 북경 캠핀스키호텔에서 열린 제2회 진로배 세계바둑최강전 제2차전 11·12국에서 파죽의 5연승을 구가하던 일본의 신예강호인 요다 노리모토 9단과 고마쓰 8단을 연거푸 격파,기염을 토했다. 조9단은 이에앞서 지난 5일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12기 KBS 바둑왕전 결승3번기 제2국에서 도전자 유창혁 6단을 맞아 2백65수만에 흑5집반승,2연승으로 타이틀을 차지했고 8일 대구 매일신문사에서 열린 제11기 대왕전 도전5번기 제2국에서도 이창호 6단에게 93수만에 흑불계승을 거두고 2연승을 기록,타이틀추가가 유력하다. 지난해 조9단은 패왕·기왕·최고위등 3개타이틀을 차지하는데 그쳤고 총 47승 30패로 승률 7위(61%),최다승 4위등 명성에 걸맞지 않은 부진을 보였었다. 전문가들은 『조9단의 초반 강세는 정신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앞으로 이같은 분발이 계속될지의 여부는 그의 체력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조9단이 이같은 상승세를 이어 나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최대의 걸림돌은 역시 내제자 이창호 6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조9단은 지난해 이6단과의 맞대결에서 9승17패를 기록했고 다섯번의 도전기에서만 4번 패하는 상대적 열세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열세에도 불구,조9단의 최근 오름세를 감안할 때 이들의 대결은 한치앞을 내다볼 수없는 치열한 접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오는 3월까지 이어질 대왕전과 패왕·기성·기왕전 도전기에서의 맞대결은 올 한해의 바둑판도를 가름하는 시금석이될 것으로 보여 결과가 주목된다.전문가들은 『당초 올해 바둑판도는 이6단이 앞서가고 나머지 4인방세력이 뒤쫓는 양상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됐으나 조9단의 초반 분발로 2강 또는 4강이 각축을 벌일 가능성도 크다』고 내다봤다.
  • “기괴한 그림”… 영 루치안 작품 미서 화제

    ◎「알몸의 여인」 등 너저분한 묘사/물감 엉겨붙어 덩어리지기도/뉴욕서 3월까지 전시… “독특한 감각 개발” 호평 너저분한 화실의 철제 침대밑에 가랑이를 벌리고 아무렇게나 드러누운 비대한 알몸의 여인(「스튜디오의 저녁」),우람한 체구의 「벌거벗은 남자의 뒷모습」 등.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3월까지 예정으로 전시중인 이 기괴한 그림들이 요즘 미국에서 최고의 찬사와 함께 화제를 불러모으는 그림들이다. 작가가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라는 점도 관심을 끌게 하는 대목이다.화제의 주인공은 프로이트의 막내아들 에른스트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루치안 프로이트. 루치안의 그림,특히 누드화들은 파격적인데가 많다.내팽개쳐진듯 침대에 드러누운 모델이 있는가 하면 더러운 화실 한구석의 넝마더미에 버려진 모델도 있다.때로는 가랑이를 벌린채 치부를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그림속의 나신에 불끈 솟아오른 정맥이 생생히 묘사되기도 한다.따라서 그의 그림이 「누드화의 예법」에 어긋난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그림은 또 물감이 엉겨붙어 거칠게 덩어리진 부분들이 많다.그림들은 대부분 사정없이 두껍게 물감이 덧칠해져 있다. 그러나 많은 비평가들은 그를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구상작가,혹은 살아 있는 최고의 사실주의 작가로 극찬하고 있다.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본능을 좇아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를 연상케 한다는 평가들이다.그리고 루치안은 욕망을 따라 모더니즘 역사라는 큰 폭포수를 거스르는 사람이라는 것. 루치안은 작품세계만큼이나 특이한 생을 살아왔다.그는 1922년 독일에서 태어나 33년 런던으로 갔다.런던에서 성장하면서 그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그 결과 오늘날 그의 글씨는 10세 소년의 필체와 진배 없다. 루치안의 청년시절은 방탕의 연속이었다.한때 뱃사람 노릇을 하기도 한 그는 도박과 음주에 탐닉,결혼생활도 순탄치가 못했다.두번 결혼해 두번 다 이혼한 그는 혼외정사를 통해 낳은 아이를 포함,여덟 아이의 아버지이다. 어린 시절 런던에서 그림을 공부했지만 루치안은 그림에 대한 재능을 타고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그런 그가 누구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혼자 공부해서 마침내 육체묘사의 독특한 감각을 개발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71세의 노인 루치안의 능력쇠퇴와 정신력 감퇴가 그의 작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 런던 화이트 채플 갤러리의 관리자 캐더린 램퍼트의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루치안이 육체를 그리는데 있어서 묘사가 어려운 부분에 물감을 마구 덧칠해 돌기가 생긴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들은 루치안이 자신의 작품들을 유리로 덮으려 고집하는 것은 결국 이같은 결점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돌기가 영혼으로부터 나오며 그것이 오히려 작품의 핵이라고 평한다.그의 그림들은 곧 현재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 오동진선생(이달의 독립운동가/다시 새기는 그 충절)

    ◎만주 15개독립단체 규합… 대일 항전/정의부 결성 주도… 독립운동 구심체로/미의원단 내한에 맞춰 일인요인 암살/체포된뒤 재판거부 33일간 단식… 44년 옥에서 숨져 1889년 평북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 659에서 출생한 오동진선생은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16일 고향인 광평면 시위에 참가,맹렬한 활동을 전개한 뒤 일경의 체포령이 내려지자 3월18일 중국 관전현 안자구로 망명했다. ○평북 의주서 출생 선생은 이곳에서 윤하진 장덕진 박태렬등을 규합,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했으며 의용대를 편성 해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였다.같은해 5월 중국 안동(현 단동시)에 있는 이륭양행 2층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연통기관을 설치하고 안동교통사무국을 두어 평안남북도와 황해도를 관할했다. 1919년 12월 선생은 대한의용군사의회·한족회·기원독립단·민국독립단·대한청년단연합회등을 통합,서북간도지방의 교민 통치기관으로 임시정부 내무부 직속의 광복군 참리부와 군무부 직속의 군사기관으로 광복군사령부를 조직했으며 각 지방에는 군영을 두고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1920년 6월6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파견된 이 탁을 중심으로 조선의 실질적 군대로 광복군총영이 조직돼 사령관에 조맹선,참모부장에 이 탁,경리부장에 조병준이 임명되고 선생은 총영장이 되었다.일제의 끊임없는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장총 2백40여정과 많은 탄약을 이륭양행을 통해 입수하고 항쟁준비를 위한 무장을 강화하고 있을 때 미국의회 동양시찰단인 모리스의원 등 상원의원 일행과 가족 70여명이 1920년 8월14일 서울에 입경 예정이라는 정보를 얻게 된다.광복군 총영에서는 이 호기를 이용,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여론에 호소하기로 방침을 세우고 국내 일제 중요기관을 파괴하며 침략원흉과 일제관리등을 처단하기로 했다.1920년 7월 결사대원을 엄선,평양·신의주·선천·서울로 보내 미 의원단 일행이 그 지역을 통과할 때 일제관청을 파괴하고 일제요인들을 암살하는 등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선생은 1922년 6월 양기탁이 제안하는 동삼성내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적극 찬성하고 양기탁김동삼 현정경 이상용 이 탁등과 광복군총영·서로군정서·한교민단·광복단·독립단·대한청년연합회를 통합,통군부를 조직했으며 2개월후에는 다시 대한통의부로 확대 발족시켰다. ○7백여 병력 편성 이후 군사위원장이 된 선생은 이듬해 6월 신팔균사령장이 전사함에 따라 사령장을 겸직하고 소속 독립군을 총지휘,항일전을 전개한다. 1925년 1월25일경 선생은 통의부의 고문인 양기탁등과 통의부를 중심으로 길림주민회·의성단·대한독립단·광정단·노동친목회·변론자치회·고본계·대한독립군단·학우회등 지방자치단체를 총망라,통일회의를 개최하고 정의부를 조직했다.통의부와 마찬가지로 입법·행정·사법기관을 두었으며 중앙집행위원장밑에 내무·군사·학무·생계·재무·외무등 6부를 두었다.군사부에는 정의부의용군을 두고 군사위원장에 이청천(후임으로 선생이 취임),사령장에 선생이 겸무했으며 8개중대에 무장한 7백여명의 병력이 각종 군사활동을 전개,적지않은 전과를 올렸다. 1926년 3월3일 길림성내 양기탁의 집에서 각계 인사들이 연석회의를 열고 고려혁명당을 조직,좌우익이 합작으로 새롭게 통일된 독립운동을 추진하개 된다.당원수는 1천5백여명에 이르렀으며 선생은 정의부 군사위원장으로 총사령을 겸임했다. 이무렵 선생과 가까웠던 옛 동지 김종원이 선생에게 『삼성금광주인 최창학이 선생을 만나 뵙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하자 1926년 12월16일 장춘시내 구시가지 약속 장소에 나갔다가 잠복중인 일경에게 잡혔다. 선생은 일제의 재판을 거부하고 1929년 11월11일부터 33일동안 단식을 하기도 했다.1932년 3월5일 강제로 재판정에 서게 된 선생은 광기가 발작했다는 이유로 퇴장당한채 검사로부터 무기징역을 구형받았으며 3월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도 같은 형이 선고됐다. ○18년간 옥고치러 공소를 제기한 선생은 그해 6월 평양에서 1심과 똑 같은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더이상 일인의 재판이 필요없음을 깨닫고 상고를 포기했다.7월 장기수를 수용하던 경성형무소로 이감된 선생은 1934년 6월11일부터 48일간의 제2차 단식을 벌인다. 7년간의 형무소생활로 쇠약해 질대로 쇠약해 진선생이 2차 단식에 들어가자 모두들 선생의 정신력에 경이로움을 표시했으며 일본인 형무소장조차 선생과 면담을 할 때에는 경례하고 예를 갖추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인 의사가 선생에게 「형무소 정신병」이라는 기이한 병명을 붙이는 바람에 선생은 1944년 정신질환자들이 수용되는 공주형무소로 이감돼 그해 5월20일경 옥중에서 순국한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국방부­합참,뉴스위크의 「북승리」 보도 일축

    ◎“북남침 수일만에 전세역전”/“개전 1∼2주내 서울점령” 불가능/한미연합방위 워게임결과 “낙관”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은 23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면 북한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 내용을 인용했다는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의 최신호 보도와 관련,『기사내용을 확인하고 있지만 전혀 사실과 다를 것』이라면서 한·미연합체제가 확고한 이상 그같은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관계자들은 『한·미연합방위체제 아래서 입수한 자료등을 분석한 결과와 그동안 남북한의 부대 및 무기체계등 각종 자료를 넣어 실시한 컴퓨터 모의전쟁(워게임)결과는 모두 낙관적으로 나왔다』면서 『워게임의 경우 입력자료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지만 합참에서 워게임에 입력시킨 자료가 객관적인 것이므로 결과도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군사전문가들은 국방관계자들이 「낙관적」이라고 한 표현에 의견을 같이하면서 북한의 기습을 가정할 때 전쟁초기에는 한국이 다소 밀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보도된 것처럼 1∼2주안에 서울이 점령당할 정도는 아니며 침략을 당한지 수일만에 한·미 양국의 반격으로 충분히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합참의 관계자는 『미 국방부의 비밀보고서의 진위여부를 현재 확인중에 있다』고 말하고 『한·미연합사측에서도 이같은 보도내용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전쟁을 이기는데는 병력과 무기등 단순한 물량적인 측면외에 국민의 결의·전략·지휘관의 자질·장병들의 정신력등이 크게 작용한다』면서 『워게임에 의한 분석결과도 절대적이 될 수 없으며 전투태세 여부가 큰 몫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는 최신호에서 미 국방부의 비밀보고서 내용이라면서 북한이 부대개편과 전력이론의 변화를 기한데다 한·미 양국군의 초전 즉응 능력의 저하로 인해 북한이 군사분계선의 비무장지대를 돌파,남침할 경우 작전개시 1∼2주내에 서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또 미 국방부 보고서가 지난 91년 작성됐지만 최근 전쟁발생을 상정해 실시한 워게임에서도 이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북한군의 승리시나리오가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 신의주 노선/권문용(굄돌)

    유리컵에 2개의 양파를 싹이 트도록 담가 놓는다.이중 한 양파는 계속 잘 자라라고 격려하고 다른 양파에게는 자라지 말라고 야단만 계속 친다. 얼마후 그 결과는 그대로 나타나 한쪽은 훤칠하게 자란 반면 다른 쪽은 불쌍하게도 거의 자라지 못했다.이것은 정신력이 물질에게까지도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기초적인 실험이다.이런 현상을 많은 사람이 인정한다. 단지 이것은 물리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의문이었다. 나는 우연히 몇년전 도쿄의 한 서점에서 이런 내용의 책을 구할 수 있었다. 미국의 한 물리학 석학이 아인슈타인이 정립한 물리학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평생을 바쳤다. 그는 양자,중성자,전자를 나누어 소립자와 「쿼크」라는 단위까지 발견한 현대 물리학의 한계를 넘어 「쿼크」를 다시 나누었다.그 결과 거기에는 어떤 물질이 있는 것이 아니고 놀랍게도 에너지를 띤 파동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런 현상이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물체는 없는 것과 같다』는 『색즉시공』이라는 원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알아보려고 일본의 한 고승과 만난다. 이것을 보고 정신력의 파동이 물질의 파동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국민의 정신력이 모아지고 지지를 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는 정책이나 사업의 성패에 직접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최근 기종선정 평가작업이 공정하게 끝난 것을 계기로 고속철도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과,더욱이 호남고속철도 건설의 결정은 우리들을 상당히 고무시킨다. 며칠전 자정을 넘어 나는 건설본부장과 같이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소년단원처럼 이렇게 다짐한 적이 있다. 『경부고속철도를 완벽하게 시공하자.그리고 그동안 준비하여 오던 호남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조사사업을 다시한번 철저하게 다져 나가자.그러면 이 다음 노선은 신의주노선이 될지 모른다』고.
  • 남자현여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 선정/항일단체 결속 앞장선 「독립군의 어머니」/서로군정서가입,일제관리 독살 기도/투옥·부상동지들 정성껏 보살피기도/임종땐 평생 모은돈 「독립축하금」으로 희사 「독립군의 어머니」로 통했던 남자현여사는 1873년 12월7일 경북 안동군 일직면 일직동에서 영남의 석학인 부친 남정한씨의 3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났다.19세에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김씨 김영주에게 시집을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씨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지하에서 다시 보자』며 결사보국을 결심하고 의병활동에 나섰으나 곧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은 여사는 복수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3대독자 유복자인 아들과 시모를 봉양하지 않을 수 없어 양잠을 하며 손수 명주를 짜 내다 팔아 가계를 이어 나갔다.여사 나이 46세에 일어난 1919년 3·1운동은 여사에게 남편의 원수 갚기를 결심하도록 만든다.항일 구국하는길만이 원한을 갚는 길임을 깨닫고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에 정착하게 된다.여사는 우선 그 곳에서 활동하는 비밀무장단체 서로군정서에 가입,군인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북만주일대의 농촌을 누비며 12개의 교회를 건립한다.여성계몽에도 힘써 10여개의 여자교육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망명생활 6년을 맞은 1925년에는 조선총독을 독살하기 위해 동료 한 명과 함께 국내에 잠입,거사를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지로 되돌아 가야 했다.마침 인근 길림주민회장인 이규동과 편강렬·양기탁등이 각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고 독립운동단체들을 믿아다니며 통합을 독려,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1927년 봄 상해 임시정부 요인인 안창호선생이 길림 조양문 밖에서 나석주의사 추도회 겸 민족장래에 대한 강연회를 독립운동단체 간부·지방유지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하자 일제는 중국 헌병사령관을 협박,안선생등 3백명을 무차별 체포했다. 여사는 안선생뿐아니라 투옥중인 애국지사들이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옥바라지를 정성껏 했다. 일제는 1931년 9월 소위 만주사변을 일으켜 여사의 망명지 요녕성뿐아니라 길림성에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자 안선생과 함께 보석으로 풀려난 독립운동단체 핵심간부인 김동삼은 할 수 없이 길림성을 떠나 하얼빈의 한 애국지사 집에 묵고 있다가 일경에게 체포된다.아무도 김동삼과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사는 그의 친척으로 위장,면회를 허가받고 연락책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여사는 김동삼의 지시내용과 정보사항을 동지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그가 국내에 호송될 때 빼돌릴 계획도 세웠으나 시간이 촉박한 바람에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그러나 여사의 슬기롭고 대담무쌍한 기질이 없었다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계획이었던 것이다.여성다움도 잃지 않았던 여사는 항일운동중 병들고 상처받아 고생하는 애국청년들에게는 항상 고향의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손길로 위로·격려했다. 여사는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제의 만행을 조사단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왼쪽 약손가락 두마디를 잘라 흰 천에다 「조선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쓴뒤잘린 손가락마디와 함께 조사단에 전달했다.민족의 강인한 독립정신을 인식시키면서 간악한 일인들에게 속지 말도록 호소하기 위함이었다.여사의 항일정신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성해졌고 남편의 복수심은 꺼질 줄 몰랐다. 여사는 1933년 초 동료들과 소위 만주국 건국일인 3월1일에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부도 노부요시(무등신의)를 독살하기로 하고 그해 2월29일 거지로 변장,폭탄·권총 1정과 탄환등을 몸에 숨기고 하얼빈에서 장춘(당시는 신경)으로 가던 중 일영사관 형사에게 발각돼 붙잡히게 된다.일본군에게 전사당한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편단심으로 14년간 동분서주하던 여사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된다.여사는 잔악한 일경들의 고문을 6개월이나 버텨냈다. 여자의 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이겨냈다. 여사는 그해 8월 마침내 죽기로 결심,옥중에서 15일동안의 단식투쟁을 벌인다.악독한 일경들도 여사의 강인한 저항에 두 손을 들고 여사를 석방했다.그러나 여사는 6개월에 걸친 옥중생활로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여사는 즉시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입원치료를 받고 하얼빈에 있는 여관에서 가료를 받았으나 옥중에서의 고문 후유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1933년 8월22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여사는 임종을 맞을때까지도 항일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유복자인 아들을 앞에 앉히고는 보따리를 풀어 중국화폐 2백48원을 내놓은 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독립축하금으로 희사하라』고 당부했다.여사는 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독립운동은 정신으로 이루어 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유족들은 여사의 뜻대로 1946년 3월1일 조국광복후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전에서 독립축하금으로 여사가 남긴 돈을 김구·이승만선생에게 전달한다. 정부는 여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과학1호」 발사 성공… 우리 기술수준은

    ◎과학로켓 96년까지 2단계 분리형 개발/아직은 초보단계… 99년엔 고난도에 도전/9월발사 2호는 성능 높여 일 80%수준/87년부터 산학연 연구… 유도제어기술은 세계20위권 지난해 8월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상 첫 과학위성인 우리별1호를 발사해 우주시대를 열었다.또한 지난 6월4일에는 과학관측로켓 「과학1호」를 쏘아올려 우리의 힘과 역량을 우주로 확대하는 과감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엑스포기간중인 오는 9월1일에는 우리별2호와 과학로켓인 「과학2호」가 발사된다. 자동차가 2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산업분야이며 비행기등 항공분야가 약20만개가 넘는 부품이 필요하다면 로켓이나 위성등은 이보다 더 정교한 최첨단의 고부가가치산업인만큼 국가마다 최대의 역점을 두고 개발에 열을 올린다.이런 중요한 과학기술산업임에도 우리는 이제 시작단계로 인공위성을 우주의 일정한 궤도까지 실어올릴 로켓기술은 아직 갖지 못해 9월 예정된 우리별2호도 프랑스 아리안로켓에 실어 발사한다. 또 95년 발사될 방송통신용 무궁화위성도 미국의 마틴 마리에타사의 델타2로켓에 의해 발사될 예정이다.우리나라의 로켓연구현황과 발사능력은 과연 어느 수준인가. 로켓이란 고체및 액체연료를 폭발시켜 다량의 가스를 내뿜을 때 그 추진력으로 나아가는 비행체를 말한다. 로켓은 이용목적에 따라 평화적(상업적)및 군사적으로 대별된다. 로켓의 평화적 이용방법에는 로켓의 앞부분에 관측장비를 탑재해 발사하는 과학관측로켓,방송통신위성인 무궁화호위성 등과 같이 목적하는 장소·궤도에 진입시키는 수송수단으로 사용되는 로켓 등이 있다. 최근 타임지는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는 5백㎞이며 한국은 2백60㎞정도라고 추정보도했다(이것은 군사적 용도로 개발된 로켓의 경우일지 몰라도 국내 민간연구계에서 확인은 안되고 있다).중국이 1만5천㎞,미국이 1만4천8백㎞,러시아가 1만3천㎞인것에 비하면 기술력에서 크게 뒤짐을 여실히 알 수 있다. 3백㎞의 사정거리를 가진 미사일을 보유한 나라는 파키스탄·이라크·리비아·브라질 등이며 5백㎞의 미사일을 가진 나라는 이란·시리아 등이다. ▷관측로켓 과학1호◁ 과학로켓 과학1호는 미국·러시아등 우주개발 선진국에 비하면 20∼30년 뒤떨어진 초보적인 단계지만 로켓발사기반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1호의 제원은 무게 11.4t,지름 42㎝,길이 6.7m이며,2호는 무게만 2백㎏정도 가벼울 뿐 1호와 차이가 거의 없다. ○미에 20∼30년 뒤져 성능면에서 과학1호는 1백75㎏의 오존측정기등 탑재장비를 싣고 비행거리 77㎞,고도 39㎞로 3분간 비행하면서 오존층을 관측했으며,1백50㎏의 탑재장비를 장착할 9월 발사될 2호는 비행거리와 고도가 각각 1백11㎞·57㎞로 4분10초동안 지구상공 오존층을 관측할 예정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 우주기술연구부장 유장수박사는 『과학2호는 1호보다 고도가 약18㎞ 높아지는등 성능을 40%정도 향상시켰다』며 『과학2호는 과학관측로켓개발 선진국인 일본 과학관측로켓의 80%수준』이라고 말했다. ▷로켓핵심기술·부품◁ 로켓의 핵심기술은 크게 발사체기술과 일정한 목표거리에 도달하도록 하는 유도제어기술로 나뉜다. 발사체기술에는 고체추진제(연료)기술및 노즐·연소실통·점화기·핀제작기술 등이 있으며,유도제어기술에는 관성유도제어·가속도계·적재화물(페이로드)제작기술 등이 있다. ○점화기기술 낙후 고체추진제기술은 로켓을 추진시키는 연료를 만드는 것으로 우리도 확보했다.가스를 뿜어내는 노즐제작기술도 거의 국산화가 가능하다. 또한 연소실통제작기술은 금속공학기술로 우리도 가졌다. 점화기제작기술은 고체추진제를 단번에 태워주는 장치인 점화기를 만드는 것으로 선진 10개국정도만 개발했다.이 기술은 아직 국산화되지 못했다.로켓 끝의 조그마한 날개에 해당하는 핀을 제작하는 기술은 우리도 가졌다. 유도제어기술중 관성유도제어기술은 자동항법장치인 자이로스코프를 제작하는 기술로 우리나라에서도 개발된 상태.세계 20여개국에서 이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로켓이 발사돼 속도변환을 측정하는 기술인 가속도계기술은 우리나라를 비롯,20여개국에서 갖고 있다. ▷국내개발현황◁ 우리나라의 로켓개발은 지난 70년대 박정희대통령시절 시작돼 78년 사정거리 40㎞에 조금 못미치는 군사용로켓을 발사했으나 외국부품으로 조립한 것이었다. 그러나 박대통령 서거후 한국의 군사용로켓개발에 대한 미국의 견제로 그이상의 발전이 없었다. ○78년 군사용 발사 10여년 휴지기를 보낸 우리나라의 로켓개발은 87년부터 방향을 선회,평화적 이용인 순수과학관측용으로 개발하기 위해 과학기술처가 28억4천만원을 투입,로켓개발기초연구에 돌입했다.이어 90년 과기처의 국책연구과제로「과학로켓개발」이 선정돼 본격연구에 들어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소를 총괄기관으로 추진되고 있는 과학관측로켓개발사업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등 2개 정부출연연구소,서울대·연세대·한국과학기술원등 3개 대학,한국화약·삼성항공등 9개 기업이 참여,연인원 3백여명이 동원된 산·학·연 협동연구다. 로켓개발에 대한 대학의 연구는 서울대·한국항공대 등에서 로켓 자체기술보다는 인공위성개발에 부수되는 과제수행에 치중되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항공공학과 노오현교수를 팀장으로 5명의 교수가 ▲로켓중 외형설계와 연결되는 공기역학적인 특성▲구조물설계▲진동시험▲로켓유도방법및 장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항공공학과 김승조교수는 『로켓을 학교단위로 연구하는 것은 재정부족 등으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로켓연구는 대학생에게 강의하는 정도의 연구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항공대도 인공위성개발에 필요한 열시스템 정도만 연구할뿐 로켓개발연구는 못하고 있다. 이밖에 서울대·항공대·경희대·인하대·조선대 등에서 관심있는 20∼30명이 모여 「로켓연구회」등의 이름으로 동아리활동을 하고 있다. 학생들의 로켓연구를 돕고 있는 한국항공대 기계설계학과 김진곤교수는 『이 동호인들은 인력·장비·재원등 모든 부문에서 빈약한 형편』이라며 『로켓기술이 고도 3백m정도 올라가는 소형로켓을 제작하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항공대 로켓연구회 제작부장 지민영군(20·항공재료공학과)도 『오는 9월 인하대에서 열리는 제2회 전국로켓경진대회를 준비하느라 지난 1일부터 동아리회원 20여명이 로켓제작을 위해 합숙하고 있다』며 『로켓발사에 필요한 화약이 위험물로 분류돼 화약을 구하는 절차가 까다로울 뿐 아니라,공부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1년예산 4백만원의 대부분을 회원들 주머니를 털어 충당하다보니 재정부족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추진계획◁ 로켓개발은 90∼93년을 사업1단계로 지난 6월 발사된 과학1호에 이어 9월 과학2호가 발사되면 마무리된다.과학2호 역시 1단형 오존측정용 관측로켓으로 제원및 성능 등에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99년 3단형 개발 사업2단계(93∼96년)로는 고도 1백50∼2백50㎞급인 2단형 중형과학관측로켓을 제작,발사하는 것으로 무게 2t,길이 10.3m,직경 42㎝ 크기다. 1단형 로켓과는 달리 2·3단형 로켓은 일단 목표지점까지 도달한 뒤 재추진력을 얻기 위해 분리돼야 하므로 분리과정에서 궤도이탈없이 정확히 유도할 수 있는 고난도의 유도제어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과학1호와 2호가 초속 1㎞내외의 속도를 낼 수 있었던 데 비해 96∼99년의 3단계에서는 초속 7.8㎞의 속도를 내 위성까지 발사할 수 있는 3단형로켓을 개발하게 된다. ◎전문가 의견/유장수 항공우주 연구소 우주기술연구부장/“4∼5년뒤엔 본궤도 진입”/우주산업 뒤처지면 후진국 전락 『21세기는 우주산업시대입니다.로켓 및 인공위성개발을 게을리해 우주산업진출이 늦어진다면 선진국의 과학기술에 예속되어 우주산업의 후진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6월4일 국내 처음으로 과학관측로켓 「과학1호」의 제작에서 발사까지 총지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소 우주기술연구부장 유장수박사(41)는 미래에 대한 최선의 투자는 적극적인 「우주산업진출」이라고 강조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기계공학으로 학위를 받은 그가 본격적인 로켓연구에 참여한 것은 지난 76년.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군사용로켓개발에 뛰어들면서부터였다.78년 과학1호수준인 군사용로켓 발사시험에 성공했으나 여러가지 제약조건으로 더이상의 연구는 할 수 없었다.80년대들어 세계의 로켓개발추세가 군사용보다는 평화적 이용이 강조되면서 미래의 로켓기술의 확보에는 군사로켓보다는 과학로켓이 더욱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로켓개발에 정진하게 됐다. 87년 항공우주연구소 전신인 천문우주연구소에서 과기처 특정연구과제로 과학로켓기초연구를 마친 뒤 90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오는 9월 과학2호를 발사할 예정입니다.2호는 1호에 비해 고도가 18㎞가 높아져 비행거리 및 체공시간이 길어지는등 성능이 약40%가 향상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로켓사업에 늦게 뛰어든 것이 큰 문제라고 하는 그는 그러나 우리나라가 반도체·조선·정밀기계기술등 로켓개발의 저변기술에 대한 기초기반기술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술적 문제는 따라잡으려는 정신력으로 보완할 수 있어 4∼5년 집중연구하면 3단형 로켓을 만드는 수준인 세계 10위권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위해 최대한으로 공공투자를 유발시켜 일정궤도에 올라선 다음 기업체가 참여하는 순서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 주한미장병들 “환영” “불만”교차/「통수권자 클린턴」을 맞는 표정

    ◎“「냉전 마지막 보루」 첫 순방에 긍지”/환영파/“이미지제고 포석” 기지 감축 비난/불만파 이국적인 정취로 가득한 서울의 이태원.때문에 이곳을 처음 찾는 외국인들이 낯선 땅으로만 여기지 않는 곳. 사정한파로 대부분의 술집이 한적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최근 이태원의 술집들은 때아닌 「미군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다.오는 10일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방한소식을 듣고 설렘속에 「한잔」걸치는 미군들의 발길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일과를 끝낸 미군들이 이태원 거리의 술집을 찾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 우선 미군들이 그들의 총사령관이 첫 해외 순방국으로 (일본은 G7회담 장소)한국을 택한 사실에 긍지를 느끼기 때문이다.강한 정신력으로 냉전의 「마지막 요새」를 밤낮없이 지키고 있는 그들의 존재이유를 총사령관이 알아줘 기뻐서라는 것이다. 또 클린턴대통령이 한국을 찾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북한병사가 바라다 보이는 DMZ를 시찰하는 것도 이들에겐 여간 「대견스런」일이 아니다.나아가 전방부대 장병을 상대로 야전에서직접 연설하는 것도 주한미군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될 터이다. 그러나 이같은 분위기는 술잔이 몇잔돌아가면 딴판으로 바뀐다.클린턴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오히려 대다수 주한미군들은 이같은 감정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클린턴대통령은 장병들의 후생복지에는 신경 쓰지 않고 군사비용지출을 대폭 깎은 장본인이라는 점이 그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술기운이 오르면서 이들의 「분노」는 한층 더해간다. 이태원의 H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한 미군은 『기지를 폐쇄하고 동성연애자나 늘리는 것이 클린턴의 정책』이라면서 『전방을 방문하고 연설을 하는 것은 그의 이미지 제고 활동일 뿐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며 냉소를 지었다. 클린턴대통령의 군사정책이 이곳 한국의 미군기지에서 처럼 강력히 비판받고 있는 곳도 없다.클린턴은 현재 일부 주한미군기지의 폐쇄를 계획중이다.
  • 질병치료와 인내심/장준근 산야초연구소장(굄돌)

    의학전문가들은 채소나 과일을 듬뿍 섭취하기를 항상 강조하고 있다.필자는 재배채소보다 야생의 식용 산야초가 탁월한 효험을 나타낸다는 근거를 자주 발표해 왔다.그러다보니 곤혹을 치르는 여러 문제에 부닥친다.야생풀이 좋다니까 풀 몇포기로 고질병 치유를 해결하려는 문의를 곧잘 받곤 하는데,각양각색의 별의별 주문에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물론 예로부터 생활(경험)의학의 축적에 의해 풀포기로 효험을 본 사례가 허다하지만,문제는 풀 한포기로 단숨에 병을 물리치려는 단순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특히 전화 한 통화로 암,당뇨병,심장병…따위를 고쳐 보겠다는 호소는 딱하기만 하다. 하루는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1백70통의 전화를 받은적이 있다.점심 저녁을 굶어야 했다.전화로 무슨 수수께끼를 풀어 보겠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전문의사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떤 요술방망이라도 없는가 싶은 즉흥성에 아연실색했다.병이 생겼으면 그만한 깊은 까닭이 있는 것이고,그 병치료는 술에 곧 취하듯이 번갯불처럼 해결하지 못하는 법이다. 왜 이런 사람들이 수두룩할까? 우리는 끊임없이 성실하게 일하면서 경제생활을 일구는 것이 정상이다.살림의 지혜는 교양있는 사고력으로 이뤄질 때 비로소 그 품위를 갖춘다. 그런데 각종 변칙투기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고,권세에 유착하여 하룻밤 꿈꾸듯이 몇억원씩 꿀꺽하는 풍조가 팽배해온 사회현상….이런 이면들을 은밀히 보고 겪는 사이에 죽음의 적신호도 그러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민들의 머리속에 물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다. 고질병은 놀음에서 돈 따듯이,한건 봐주고 뇌물 먹듯이 치료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질병 치료는 돈 버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오랜 기간 사려깊게 끈질긴 노력과 정신력을 키우는 가운데 아주 천천히 치료의 효력이 나타나는 것이다.엉뚱스러운 공짜 인생을 살듯이 건강을 지킬수는 없다.
  • 테니스코트에 재활의지 활짝/「휠체어 테니스팀」 첫 창단

    ◎연대의대 재활병원 척추나 허리뼈를 다친 척수환자들의 재활의지가 테니스코트위에서 활짝 피게 됐다. 연세대의대 재활병원(원장 전세일교수)은 오는 5월1일 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퇴원한 환자 10명을 모아 국내 처음으로 「휠체어 테니스팀」을 창단한다.휠체어 테니스팀의 출범은 재활의학과 박창일교수가 지난해 국제휠체어테니스협회(IWTF)사무국장 엘렌씨로 부터 자금및 기술지원을 약속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휠체어테니스는 척수환자들의 팔근육및 감각을 발달시키고 죽어있는 하체근육까지 자극을 줘 거의 정상적인 다리 굵기로 환원시키는 재활효과가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일찍부터 팀을 구성,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체육활동이 재활치료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는 점에는 인식을 함께 하면서도 케미컬코트등 시설물이 없어 지금까지 팀구성이 늦어져왔던 것.이 팀의 단장을 맡을 박창일교수는 『장애는 장애 그 자체를 극복하는 것만으로 인간승리의 극치를 이룰수 있다』며 『휠체어 테니스팀이 척수환자들에게 재활의욕을 북돋워 주고 정상인과 동등한 생활의지에 대한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주장을 맡을 허도영씨(39)도 『테니스를 통해 신체적재활을 이룩하고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 정상인에 결코 뒤지지 않는 사회생활을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휠체어 테니스팀의 총감독은 전국가대표테니스팀 감독 주원홍씨(현 삼성테니스감독),코치엔 전국가대표 양정순씨등 4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게 된다. 한편 휠체어 테니스팀 창단소식이 전해지자 각계에서 테니스라켓·체육복·선수용 휠체어등이 답지하고 있으며 연세대 재활병원도 척수환자 재활을 돕기위한 후원회를 조직,「1구좌 1천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일 창단식에는 IWTF사무국장 엘렌씨와 일본 휠체어 테니스코치등도 초청,휠체어테니스선수및 코치를 대상으로 워크숍도 개최할 계획이다.
  • 장애인문인협 대구·경북지회 출범/외로운 문학활동 뒷받침

    ◎발가락으로 시를 쓴 이흥렬씨 등 참여/“작품활동 제도적 보호” 새 보금자리로/정기발표회·일반인과의 교류전 등 활발 기대 『시를 왼쪽 발가락으로 쓰다니…,온몸이 꼬이다시피한 장애자의 몸으로 온갖 고통속에서 스스로 글을 배워 강인한 정신력의 소산인 「앉은뱅이 꽃」을 우리앞에 내놓으니 그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뇌성마비를 앓아 발가락으로 시를 써,「앉은뱅이 꽃」이라는 시집을 낸 이흥렬씨(38·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28의1 자유재활원 생활관)의 시집에 이 시대의 기인 시인 천상병씨가 보낸 추천사이다. 이씨를 비롯,정재한씨(26)등 뇌성마비·지체장애·시청각장애를 앓으면서도 주옥같은 시를 발표해 우리들의 가슴을 감동시켰던 대구지역 장애자문인 20여명이 지난달 27일 「장애인 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를 정식 출범시켰다. 이 협회가 발족함으로써 이제까지 일반인들의 관심밖에서 외롭게 문학활동을 해왔던 지역장애문인들의 활동이 제도적으로 보호받게 됐으며 정기적인 시발표회 마련등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이 뒷받침되게 됐다. 협회는 발족과 함께 장애문인과 일반문인과의 공동문학강좌,시낭송회,시화전등의 교류및 작품출간사업을 추진하고 장애문인들이 작품에 필요한 현장취재때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창구 역할도 맡을 계획이다. 시조시인인 문무학씨(영남일보 논설위원)등 지역문인들과 사회봉사단체 인사들의 열성적인 도움으로 출범하게된 이들 장애인문협대구경북지회는 사회복지회관의 방하나를 빌려 조촐하게 창립식을 치르고 대구시 달서구 두류1동 대구자원봉사지원센터내에 사무실을 차렸다.그리고 문단에 데뷔했거나 1권이상의 작품집을 낸 장애인은 정회원 자격을 주고 문학에 관심있는 장애인이면 누구나 준회원으로 가입할수 있도록 했다. 이 협회 출범을 보고 방귀희한국장애인문인협회장은 『문학계에선 장애인들의 작품활동을 문학이 아닌 한풀이나 심심풀이 정도로 생각을 하고있다』며,『이 지역 장애문인들이 스스로 장애의 굴레를 짊어지는 용기를 갖고 새로운 문학지평을 열어야 한다는 시대적 의무감으로 문학활동에 정진하기 바란다』고당부했다. 또 최정석대구문인협회장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분들이 자신의 삶속에서 길러낸 불굴과 극기의 산 문학은 정신문화가 피폐해 있는 이때에 시대병의 좋은 치유약이 될 수 있다』며 이들의 문학활동에 기대를 표시했다. 창작을 통해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해소해나가기 위해 어렵사리 첫발을 내디딘 이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지역문학의 새 장을 기대하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 정신력 나약한 아이들/김은희 성남 중앙국교 교사(교창)

    아이들이 나약해졌다고 한다. 몸은 비대해지고,정신력이 한없이 약해져만 가는 우리 아이들. 어린이들의 교육을 맡은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앞서면서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는 그 옛날의 아이들이 그립다. 10여년이 훨씬 지난 78년,그해 봄부터 가물기 시작한 날이 7월 중순이 되도록 하늘은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다. 그때 내가 근무하던 경기도 강화는 전국에서 가뭄이 제일 심해 농사짓는 사람들의 가슴을 무척이나 아프게 했다.모를 심을 수 없는 갈라진 논바닥을 보면서 내 마음도 무척 아팠다. 제헌절 휴일을 맞아 서울에 나와 있다가 그날 늦은밤에 빗소리를 들었다.너무 반가워 잠이 오지않아 다음날 새벽 첫차를 타고 강화로 달려갔다. 고사리 손이라도 빌려 그동안 모를 내지 못했던 논에 모심는 일이 급했던 실정이었다. 저학년은 가정 봉사를 하고,교사들과 4학년 이상 학생들은 들로 나갔다.동네분들이 선생님도 논에 들어가 모를 심으라 하신다. 어릴때부터 줄곧 도시문화권에서 자란 나에게 논에 들어가 모를 심으라니,당혹스럽고 겁이 났다.나이가 많이 드신 할아버지 선생님과 4학년짜리 아이들도 논에 들어가 허리를 구부리고 열심히 모를 꽂는데 부끄럽기도 했다. 모를 심을 줄 모르면 못줄을 잡으란다.그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선뜻 하겠노라 한 일이 거의 한주일동안 학구내 모내기를 다 할때까지 못줄 잡는 일은 내몫이었다. 그날 새참 먹을 때 부르튼 손이 아파 마음이 많이 상하였고,이런 일도 해야하나 하는 생각에 밥도 안먹고 돌아앉아 울었다. 그러다,재잘거리며 웃는 아이들을 보았다.흙탕물 논 속을 맨발로 뛰어들어 자신있게 모를 심는 아이들을 보면서 눌물이 쑥 들어갔다. 흙을 밟으며 싱싱하고 당당하게 자라는 저 아이들,내 작은 아픔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손이 부르트고,팔목이 무척 아프고,얼굴이 새까맣게 타버린 그해 첫여름은 믿음직한 아이들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강화를 떠난 이후,거의 대도시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만나는 아이들은 너무도 약해보였다. 요즈음 아이들은 어려움도 모르고,참을성이 부족하며 겁도 참 많다.연필하나 깎을 줄 모르고,제일도 제손으로 잘 못하는 요즈음 아이들한테 어떻게 해야 어린이 다운 싱싱함과 당당함을 갖게해 줄 수 있을까….
  • 소년탐험대/마라도서 백두산까지 국토종단 나선다

    ◎초중고생 50명 참가… 30일 한달간 대장정 올라/나침반 이용,하루 백리 도보기행/나라사랑 배우고 통일의 꿈 키워/중국거쳐 백두산 발두… 백록담·천지 합수의식 거행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한겨울 추위속에 국토도보종단탐험에 나선다.어린이운동단체 한국어린이벗회(회장 강원규·297­5577)산하 한국소년탐험대는 30일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부터 임진강 통일동산을 거쳐 백두산에 이르는 한달여간의 국토기행 대장정에 오른다. 국토도보종단탐험은 내나라 내땅을 내힘으로 끝까지 걸어 체험함으로써 돌 하나 나뭇잎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국토사랑을 배우고 새로운 인간관계와 체력의 한계를 체험하면서 탐구심과 독립심,인내심과 협동심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한 청소년프로그램.이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소년탐험대는 지금까지 7차례의 국토횡단과 3차례의 국토종단을 비롯하여 독도탐험 백두산기행 5대강탐사 해외탐험등 수차례의 탐사·탐험을 성공적으로 끝마친바 있다. 탐험대는 이제까지의 탐험성과를 바탕으로 이번 국토종단탐험에서는 한라에서백두까지 행진,청소년들에게 통일의 꿈을 키워줄 예정.이에따라 이번 탐험에서는 한라산 백록담에서 채취한 눈이나 물을 백두산 물에 합수하는 의식도 갖는다. 겨울 국토종단탐험에는 국민학교4학년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는 50여명이 참가할수 있으며 이들은 10여명의 지도자들과 함께 1·2차로 나뉘어 탐험에 나서게 된다. 국토종단탐험 1차팀은 먼저 서울에서 비행기편으로 제주도에 도착,새해 첫날부터 20일 여정으로 마라도∼한라산∼완도∼나주∼광주∼전주∼부여∼공주∼천안∼서울∼통일동산까지 5개도 29시군을 가로지른다.거리는 1천5백리가 넘는 6백40㎞.도중에 1백80여곳의 역사유적지도 탐방한다.또 조별로 문화유적탐구·역사탐구·자연관찰·철새탐구·별자리탐구·전설수집·해안탐사 등의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탐험대원들의 하루 도보거리는 약1백리.청소년대원들이 자율적으로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한 오리엔티어링으로 목적지를 향해 도로가 아닌 최단거리 길을 잡아나간다.숙박은 근처 학교의 빈 교실·사찰·성당·손수만든 움집이나 볏가리등에서 두툼한 옷과 비닐 한장으로 해결하고 식사는 근처의 쓰레기와 나뭇가지로 불때 지은 밥으로 때운다.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국토탐험을 마친 청소년은 지금까지 6백72명. 1차팀이 서울로 돌아오면 이중 일부와 이전에 국토탐험을 마쳤던 청소년이 합류하여 13명으로 구성된 2차팀이 1월20일쯤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오른다.인천에서 배편으로 중국 천진에 도착한 2차팀은 열차편으로 연변을 거쳐 구정인 1월23일쯤 백두산에 오르고 돌아오는길에 연변의 조선족 어린이들에게 책과 편지를 전달하는등 한·중문화교류에도 힘쓸 계획이다. 강탐험대장은 『정신력 체력등 자신의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하면서 나라사랑도 느끼게 되는 이번 탐험에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40여년 단교 불구 양국우호 확인”/본사초청 북경일보기자 방한기

    ◎지난날 22일∼29일 포항·수원 등 산업시찰/“자원빈곤,창의력으로 극복” 감명/고속성장 놀라워… 비결 배웠으면 중국신문이 한국내부의 이모저모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스포츠행사정도나 보도하던 과거의 자세에서 벗어나 기자들을 한국에 보내 이곳저곳 돌아본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전하고 있는 것이다.서울신문사와 자매결연을 추진하고 있는 북경일보는 지난 2주동안 모두 4차례에 걸쳐 방자행국제부장과 장위웅기자의 방한인상기를 실었다.이들은 지난달 22일부터 29일까지 서울신문사 초청으로 방한,서울을 비롯해 포항 울산 수원등지의 산업시설과 경주등 관광지를 돌아보았다. 이들은 북경일보에 쓴 기사에서 특히 포항공대를 훌륭한 교육시설로 소개했다. 이 학교가 포철의 전적인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며 연간 수백명의 우수한 고급 인재를 배출하고 있음을 소개한 뒤 김규영학생처장과의 일문일답까지 실었다. 중국기자=『매년 이곳 졸업생들이 전원 포철에 입사할수 있습니까?』 김처장=『포철입자는 20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다른 기업체에 취업합니다』 중국기자=『그러면 다른 기업체가 포철에 교육비를 대줍니까?』 김처장=『그럴 필요는 없습니다.우리는 국가를 위해 고급 과학기술인재를 양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재정손실은 감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 답변을 들은뒤 몇차례나 머리를 끄덕였다』고 적고 있다. 이들이 방한전부터 가장 궁금해했던것들 가운데 하나는 「도대체 한국인들이 중국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시리즈 보도 첫회는 「진정한 우호」를 주제로 삼았으며 『우리는 보도계(언론계)인사들과 실업가 통역 기사 노동자 일반회사원들과의 광범위한 접촉을 통해 그들이 중국인민에 대해 진정한 우호의 정을 품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국의 각계 인사들이 중국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게 많지않았다면서 『그것은 40여년에 걸친 단절의 역사때문』이라고 분석했다.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중국 여러분야의 정황을 이해하려 갈망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북경일보의 두 기자는 『한국이 50∼70년대 4마리용 가운데 하나로 아시아의 상공을 날게된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같이 신속한 발전의 비방이 무엇인지 궁금했었다』고 전제한뒤 『이번 방한이 주마간화(말을 타고 달리면서 꽃을 구경한다」와 다름없었으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듯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고 적고있다. 이들은 한국경제의 성공 비방중 하나로 「자원유한,창의무한」이라는 표어를 주목했다.비록 자원은 부족하지만 무한한 창의력으로 이를 극복하자는 이 표어는 현대중공업 조선소 곳곳에서 발견할수 있었다면서 이같은 정신력으로 세계 최대의 조선소를 세운것 같다고 평가했다. 수원의 삼성전자에서는 신제품 개발을 위해 9천명의 연구개발 인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2백여명이 박사학위 소지자이고 지난해 개발연구비로 5억8천3백만달러가 투입된 사실들을 관심있게 보도했다. 이들은 포철근처에서 아직도 짙푸른 하늘을 볼수 있고 강물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맑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하며 『우리가 이미 야금공업지구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역사적 유물유적을 따진다면 중국만큼 풍부한 곳도 드물어서인지 문화유적에대한 관심도 컸다. 경주에서 중국기자들은 설굴암의 조각술을 보고 『한국불교예술의 수준을 말해주는것』이라고 높이 평가한뒤 기중기도없던 옛날에 거대한 바위를 다른 산에서 옮겨와 조각했다는 사실은 『고대한국인들의 총명과 지혜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격찬했다. 유적지 보존 노력에도 관심을 보인 이들은 경주에 고층건물이 없다는데 놀라움을 표시했고 가끔 보이는 2∼3층짜리 건물도 고전식으로 지어 옛모습과 잘 어울렸다고 소개하고 『경주에서는 고도의 옛모습을 보존하기위해 이런식으로 도시를 건설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이원식경주시장이 『사람의 주택은 짓고 싶은곳에 지을수 있지만 옛사람의 무덤은 한번 파괴되면 다시 만들수 없다』는 말을 관심있게 보도했다.『이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경주관광객은 5백50만명에 이르고 그 10%가 외국인이었다』면서 『지난해 관광수입은 16만 경주시민 한사람앞에 1천2백달러였다』고 전했다. 이들 북경일보기자들은 방한기간중 서울신문과의 우호협력관계수립과 합작교류문제를 광범위하게 논의했다면서 그 내용중 일부를 소개하기도 했다.이들은 특히 윤형섭서울신문사장이 『양사간 교류협력관계는 다른 언론기관의 모범이 되도록 하자』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 연극인 오태석씨(이세기의 인물탐구:7)

    ◎“가공할 시공처리… 이시대의 연극천재”/변혁에의 집념,70년대 연극사 전환점 이뤄/역사적사건 재조명… 「탈고정관념」 방향제시/「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연극 “30년 외길인생”으로 이어져 연극 「약장수」를 본 사람이라면 북치고 장구치듯 한바탕 굿판을 이루던 재담과 사투리,종횡무진의 요설 사설등 우리 말이 갖는 무한한 리듬감과 현란했던 언어구사의 묘미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백곰 모시곰 달하 높이곰 돋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72년 초연된 이 연극은 75년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오태석씨가 공간사랑무대에 직접 출연하여 「연출가·작가의 연기」라는 차원에서 연극팬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안겨주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오태석은 귀신이 넘나드는 경이의 무대로 관객의 시선을 한순간도 놓치지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틀거리거나 벽에 부딪치고 바닥에 뒹굴어 만신창이가 된 처절한 몸부림은 연극이 말하려는 문제의식과 함께 관객을 숙연케하는 기원이 도사려있다. 몸짓은 물론 언어와 분장·무대미술과 의상에도 변혁·개혁을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관객에 의외성 제시 라면박스나 신문지조각으로 꾸며진 무대는 차라리 눈부시고 싱그럽다.칡과 치자물들인 무명 저고리,백발노인 역할을 분장하지 않은 20대 연기자가 맨 얼굴로 등장하는등 서구적 사실주의 연극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 무대에서의 파격과 의외성을 연속적으로 맛볼수 있게한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쓰고 연출한 「태」와 「한만선」 「사추기」 「물보라」 「춘풍의 처」등 일련의 작품은 7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전환기를 이룬 대표작으로 손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뼈의 마디마디,어쩌면 동맥 정맥까지도 탄탄한 생명력이 살아 꿈틀거려야만 그는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그리고 그만의 정서와 상상력에 몰입하다보면 관객은 안개속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도 극의 한복판에 선채 도무지 빠져나올 줄을 모른다. 이처럼 가공할 시공처리와 시각·청각·상징적 무대언어는 극의 「완성도」성취라는 명제아래 연극다운 품격과 연극만의 특징미를 진하게 각인시켜 주고있다. 그는 하오 1시에서 1시반사이 서초동 삼익상가에 있는 그의 연습실에 나온다. 커다란 검은 숄더백에 검은 레닌모를 깊숙이 눌러쓴,새벽까지 마신 작취미성에도 불구하고 모자밑의 두 눈은 새파랗다 못해 광기가 번뜩인다. 연습도 마찬가지다. 연출자의 지시에따라 창조적 연습,되풀이 연습,연기자들이 준비해온 각자 연기를 지켜보다가 그는 마치 제각기 다루던 악기를 한데 모아 교향곡을 이루는것처럼 세시간 네시간 심오하게 숙고하면서 작품의 주제에 파고든다. 그래도 성에 차지않으면 무대에 뛰어올라 요란한 손짓발짓으로 시범을 하고는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치거나 무대장치에 직접 못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기 일쑤다.오태석의 멍든 이마는 자신의 것을 하기위해 온몸으로 부딪치는 한 예술가의 고독한 흔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술취해 있을땐 더욱이나 이 고독이 소스라쳐 그는 연극의 심연속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리는 이미지다.그러나 아무리 취중이라도 그것이 연극에 관한 토론일때는 이제까지의 취기를 삽시에 거두고 예의 오태석특유의 논리정연한 속변달변을 속사포처럼 전개해 나간다. 「주어진 여건과 틀속에서 그 여건과 틀에 맞춘 행위만을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의미하다」「연극이 예술인 바에야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모든 연극표현술과 수단을 동원하고 이를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하나의 모티프를 끌어내고 이를 현시점에 비쳐보는」탈역사로의 방향을 간단없이 제시해왔다고 할수있다. 87년이래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개작해온 「부자유친」이 그 좋은 예의 하나다.「부자유친」은 한마디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이야기다. 이 연극은 뒤죽박죽 진행되어 어디가 처음인지 끝인지 종잡을수 없는 충격의 장면 장면이 이어진다. 왕은 흰두루마기,제자는 팬티바람,신하는 왕의 명령에 응석을 부리고 울던 사람이 파안대소,죽은자가 기지개를 켜는가하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가 풀죽은 마대처럼 바닥에 널브러진다. 어느 한구석도 논리에 들어맞지 않지만 이 반논리와 탈논리가 지극히 논리적임을 관객들은 당장 깨닫게 된다. ○반논리속 논리 정립 아버지가 자식을 학살하는데 논리가 어디 있겠느냐는 질문이 그것이며 이것이 바로 이 연극이 노리는 초점이다. 83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장화를 신은 고양이」때는 한국무용을 하는 국수호에게 안무를 맡기면서 연출자는 「한국무용이 아닌 발레」로 안무를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한국무용가의 「발레」란 오태석만의 익살이자 풍자,어쩌면 냉소의 한 일면일 수가 있다. 이렇게 오태석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연극을 이끌어왔다.그러나 그의 연극의 뿌리는 일찍이 동랑으로부터 이어받은 고전적 문법이 뼈대를 이루고 한국적 몸짓으로 지칭되는 마당놀이의 연희가 질서정연하게 바탕에 깔려있다.그리고 「우리의 너그럽고 훈훈한 인심,너털웃음,호연지기,유약한듯 하나 끈질긴 인내」등 반만년 역사를 통해 일관된 한국인의 정신력과 생명력을 연극 구석구석에 채우고 있다. 그는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3살되던해 부모와 형제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남대문국민학교에 다니던 11살때 6·25를 만나 당시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던 부친 오세권씨가 인민군에게 둘러싸여 끌려가던 광경을 눈앞에서 겪은,이른바 6·25 비극으로 인한 피해자의 한사람이다.연극 「자전거」에서 유년시절의 이 잊지못할 광경을 또렷하게 묘사해 보이고 있다. 배재고에 다닐때까지는 편모슬하에서도 비교적 여유있게 자란 편이었다.그러나 「계(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어머니 이라안여사(74)가 모았던 계가 깨지는 바람에 집안은 하루아침에 풍산되고 대학입학과 함께 그는 뼈저린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친구들의 자취방을 넘나들다가 대학의 빈 강의실을 찾아 잠자리를 마련했다.그때도 물론 「연극」이라고는 구경도 해본적이 없는 문외한이었다.그러나 61년 정부가 「연극인 활성화 방안」으로 마련한 「신인예술제」개최를 위한 희곡공모 소식을 듣고는 「상금」때문에 여기에 응모했다.밤새도록 써서 제출한 희곡이 당선. 이 대목에서 「제목이 뭔데?」물으면 그는 영락없이 얼굴을 확 붉히면서 「영광!」하고는 와하하 웃어버린다. ○「연세찬가」 작사 당선작품은 다른 단체들과 더불어 나란히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갖게되어 있었다.그래서 여기저기 연극과에 다니는 친구들을 모아 급조한 것이 그가 최초로 발족한 「회로무대」다. 「영광」에 이어 다음해 「사중주」,또 다음해 공연을 앞두고 나서야 비로소 연극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극의 마약에 깊숙이 빠져든 자신을 후회하지 않았다. 공연날짜가 임박했으나 공연할 돈이 없던차에 마침 학교에서 동문·재학생들을 상대로한 「연세찬가」작사를 공모했다. 본래의 「연세찬가」는 백락준박사가 지은 장편소설(?)같은 것이어서 행사때마다 끝까지 부를수 없을만큼 길었다고 했다. 「형제자매」와 「사랑」만 잘 섞으면 될것같아 그는 신인예술제 공모때처럼 이번에도 「상금」때문에 여기에 응모했다.나운영작곡의 /반세기 지켜온 민족의 얼/자유와 진리 심어온 모습…/은 바로 그가 지은 작사다. 그는 「연세찬가」작사 당선 상금으로 세번째 공연인 「조난(조란)」을 무사히 무대에 올릴수 있었다. 「호구지책」으로 연극을 시작했고 그것이 자신이선택한 최선의 길이며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를 알고 지난 30년을 오로지 연극에 전념했다.그리고 그의 연극에 대한 찬반양론의 시비속에서도 오태석의 위치는 우리 연극사에서 확고한 획을 긋고 있다는 것,그만의 독특한 오태석 언어와 색깔을 소유하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적」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끈질기게 실천해 보이는 것 등을 강점으로 들 수 있다. 90년 동숭동 대학로에 그가 이끄는 극단 목화의 전용극장인 충돌Ⅰ,Ⅱ(흥사단지하)를 개관,목화레파토리 전용극장으로 쓰다가 연극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무대에 올려야 하는 부담감에 쫓기기 싫어 지난 봄부터 대관을 겸하면서 서초동 연습실로 컴백했다. 지난 20년동안 그를 한결같이 섬기는 조상호·정진각등 속칭 「오사단」초창기 멤버들이 목화의 단원이다.가족은 부인 최란선씨와 딸 시내(고2)아들 영택(중2). 그는 이따금 자신의 연극에 직접 출연,올해도 서울시립무용단 프랑스공연에 가져간 자작·연출 「떠도는 혼」에서 상주로 찬조 출연하기도 했으며 87년부터는 해마다 도쿄 파르코 극장 초대공연을 가져 일본 연극계의 열렬한 찬사와 호응으로 목화의 고정팬을 확보하면서 일본속에 한국의 목소리와 몸짓을 심고 있다. 이시대의 연극천재·연극계 기인이란 호칭에 걸맞게 각계각층의 다양한 교분을 트고있는 그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누구의 입에서나 「오태석=연극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다. □연보 ▲1940년10월 충남 서천에서 오세권씨(6·25때 납치)와 이라안여사의 3남1녀중 장남 ▲63년 「회로무대」창단 ▲65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회로무대」해체 ▲67년 한국일보 장막희곡 「화장한 남자」가작수상,조선일보 신춘문예 「웨딩드레스」당선 ▲68년 국립극장,경향신문공모 「환절기」당선 ▲72년 동랑레파토리 극단 「Luv」로 연출데뷔 ▲84년 목화극단 창단 ▲80년 「초분」일본공연 ▲83년 「어미」일본공연 ▲85년 MBC창사기념 「메밀꽃 필무렵」(작,연출) ▲86년 MBC창사기념 「봄,봄」(작,연출) ▲86년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시나리오·연출 ▲87년 일본 도가국제페스티벌 「춘풍의 처」참가이래 해마다 초청공연,제11회 서울연극제 「부자유친」참가 ▲88년 서울예술단 「새불」(작,연출),일본 미쓰이 페스티벌,「태」참가 ▲89년 동숭아트센터 개관기념공연 「비닐하우스」(작,연출) ▲90년 목화레파토리극장 충돌ⅠⅡ개관 ▲92년 서울 시립무용단 프랑스공연 「떠도는 혼」(작,연출),일본 마에바시(전교)시승격 1백주년 기념공연 「도라지」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쇠뚝이 놀이」「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이식수술」「약장수」「물보라」「사추기」「육교위의 유모차」「19 90년5월」「산채우」「자전거」「아프리카」「필부의 꿈」「나래섬」「운상각」「심청이는 왜 두번 임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백구야 껑충나지마라」「환절기」산문집 「북소리 울릴때」 서울연극제 대상,서울신문사제정 제2회 한국문화대상 연극부문 창작상,한국연극예술상
  • 고교 교과과정 개편 내용과 특징

    ◎“획일 탈피”… 적성따른 자율교육 확대/직업·예술계열 신설… 과목 다양화/인문계/선택과목 늘리고 설기교육 강화/실업계/러시아어 제2외국어 지정… 단체활동도 확충 3일 교육부가 확정한 제6차 고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안은 고교의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자율화 폭을 넓히고 학생들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및 진로계획에 맞춰 교과지도의 범위와 수준을 크게 다양화한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인문계고교의 경우 지금까지의 획일적인 교육과정으로는 적절히 대비할수 없었던 94학년도부터 실시될 새 대학입시제도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가 학교수업만으로 가능케 되어 과외,국·영·수등 득점과목 편법 시간배정등 고교의 파행적인 수업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실업게 고교도 선택과목의 대폭 확대로 첨단 신 기술교육을 융통성있게 실시할 수 있게 됐으며 실험·실습교육의 강화로 고교직업교육이 산업현장과 유리되었다는 지적을 피할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8월의 중학교,9월의 국민학교·유치원 교육과정개정안 확정에 이어이번에 고교교육과정개정안이 확정됨으로써 지난 89년부터 추진돼온 제6차 교육과정개편작업이 모두 마무리됐다. 교육과정 편성·운영방향을 보면 지금까지 고등학교 3년동안에 공통필수과목,계열별 선택과목,특별활동등 모든 교육과정을 교육부가 일률적으로 결정하던 것을 공통필수과목은 교육부가 확정하되 계열별 필수과목과 계열별 선택과목은 시·도 교육감과 학교장이 각각 선정토록 학교별·지역별 교육내용 선택폭을 크게 넓혔다. 또 인문계고교에 획일적으로 인문계·자연계열을 두었던 것을 교육과정을 개편함으로써 인문·자연계열이외에 2학년때부터 직업과정이나 예술계열등을 학교형편에 따라 개설,운영토록함으로써 학생의 능력·적성·진로계획에 적절한 학교교육이 실시될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한 학기마다 학생들이 배워야하는 과목수를 18∼20과목에서 12과목으로 줄여 단편적인 학습에서 보다 깊고 핵심적인 내용까지 공부할수 있도록 했다. 고교생들의 수업시간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따라 고교 3년간 수업시간이 단위(주당 1시간씩 한학기 수업량)기준으로 2백4∼2백16단위를 2백4단위로 낮춰 한학년기준으로 보면 최고 90시간이 줄어드는등 학생들의 수업부담이 많이 덜어졌다. 실업·가정등이 종전의 이론중심에서 노작교육이나 실생활 응용가능한 기능습득교육으로 전환되며 교련수업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대신 단체활동(심신수련)시간을 신설,정신력강화및 사회 공동체의식을 체험을 통해 터득하도록 했다. 또 예술·정서교육의 중요성을 인식,음악·미술교육은 인문·실업고교의 구분이나 인문·자연·직업계열에 관계없이 공통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이와함께 종전의 국민윤리 교과명칭을 윤리로 변경하면서 가치관,인생관,세계관,시민윤리,직업윤리에 관한 학습내용을 크게 강화했다. 도덕교육,환경교육,경제교육,근로정신 함양교육,보건·안전교육,성교육,진로교육,통일교육등은 관련교과와 특별활동을 통해 중점적으로 실시하되 학교교육활동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다루어지도록 했다. 국제화시대에 맞춰 러시아어를 제2외국어로 새로 지정하고 제2외국어를 비롯 수학,영어,과학,한문등 교과목은 한문­1,한문­2식으로 수준별 과목으로 나누어 성적이 뒤떨어진 학생이나 비진학생들에게 적절한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실업계 고교의 선택 교과목수와 선택의 폭을 넓혀 학교또는 지역적 형편에 따라 적절한 전문과정을 설치,현실에 맞는 실업교육이 시행될 수 있도록 했다. 농업고교의 경우 교과목을 농산물 유통,농산물 판매관리,환경보전등 모두 43개과목으로 지정,농업과등 현재의 13개 학과이외에 학교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전문학과를 개설할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공업고교도 지정 교과목수가 무려 1백2개로 최근 선보인 세라믹학과이외에도 최첨단 기술이 도입될 경우 즉시 전문학과를 개설,산업현장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했다. 이밖에 상업고교는 남녀 공통학과의 교과목으로 지정된 과목수는 30개,유아교육과,조리과,의상학과,관광학과등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의 지정 교과목수는 22개이며 수산·해운고교는 교과목 수를 28개로 늘려 전문학과 설치가 언제나 가능하게 됐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실업고교 졸업생들이 졸업과 함께 학교교육내용을 산업현장이나 실생활에 곧바로 활용할수 있도록 하기위해 전문학과의 학습활동은 50%이상을 실험·실습및 실기교육으로 실시토록 했다.
  • 이런 사람을 원한다(취업으로 가는길)

    ◎대기업 인사담당 중견간부들 귀띔/“긍정적 사고·진취적 자세 중시” ○삼성/인사담당부장 정홍식/“자기계발 힘쓰는 성실·용기에 중점” 1938년 창업이래 삼성을 이끌어온 경영이념인 「인재제일」은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삼성을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기업으로 만들어온 원동력은 바로 우수한 인재를 모으고 그들을 아끼고 키워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로 만들어 내겠다는 「인재제일」의 철학이었다. 삼성의 인사목표는 인간존중의 경영방침하에 개성이 살아 숨쉬는 활기찬 근무분위기를 조성하고 능력에 대한 보상과 끊임없는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신바람나는 근무분위기 속에서 개인역량을 최대한 발휘케 하여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발전케 하는 것이다. 1957년 국내 최초로 공개경쟁시험을 통해 인재를 발굴하였다. 삼성이 바라는 인재는 학식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소양과 인격을 함께 갖춘 「된사람」이다.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조직속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고자 부단히 자신을 연마하여 자기계발에 힘쓰는용기와 자신감을 갖춘 도전적인 사람이다.둘째,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문제의식을 갖고 항상 새로운 것을 탐구함으로써 조직에 활력과 신선함을 주는 창의력이 높은 사람이다.셋째,긍정적인 사고와 책임의식을 갖고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며 밝고 깨끗한 조직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건강한 합리적인 사람이다. ○선경/경영기술실부장 한봉희/“일과 싸워 이겨내는 패기 갖춰야” 1953년 전후 폐허속에서 섬유산업으로 출범한 선경은 1991년 그룹의 숙원이던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완성,이를 바탕으로 기술집약적이고 자본집약적인 산업에 도전해 하나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선경은 초정밀 산업·종합에너지 종합화학·신소재 및 생명공학·정보통신 분야 등에서 2000년대 세계일류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또 우리사회에서 기업역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공익개념 실천에 앞장서기 위해선 기업의 안정과 성장이 필수요소라고 생각,다음과 같은 세 요소를 경영원칙으로 삼고 있다.즉,인간위주의 경영,합리적인 경영 및 현실을 인식한 경영이 바로 그것이다.이러한 생각으로 기업경영에 임하고 있는 선경에서 찾는 인재는 기업관에 뜻을 같이 하면서 선경인의 자세를 기를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선경인의 자세란 모든 선경인,특히 경영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격요건인 패기·경영지식·경영에 부수된 지식·사교자세·가정 및 건강관리를 높은 수준으로 함양하는 것을 말한다.이 가운데 패기란 일과 싸워서 이기는 기질로,사고는 적극적으로 하고 행동은 진취적으로 하며 일처리는 빈틈없고 야무지게 하는 것을 뜻하는 선경인의 자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쌍용/종합조정실부장 손현래/신뢰·혁신·인화의 생활화에 가늠자 쌍용은 「2000년대를 주도하는 세계일류기업」으로 성장·발전해 나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쌍용은 이러한 미래상을 달성하기 위해 1989년 창업 50주년을 맞아 「쌍용 100년사 창조」라는 기업이념과 「신뢰」「혁신」「인화」의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이념체계를 정립하고 범그룹차원에서 기업문화운동을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문화운동의 전개와 더불어 쌍용은 첨단신소재,종합석유화학,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종합기계산업,첨단정보통신사업,국제종합금융분야에서의 새로운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쌍용그룹은 새로운 기업문화운동의 실천적 개념인 「신뢰」「혁신」「인화」라는 경영이념에 맞는 자질을 갖추고,쌍용의 새로운 사업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 우선,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을 정성껏 위하고,정도를 솔선하여 실천할수 있는 사람. 둘째,항상 새로운 것,즉 혁신을 추구하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 셋째,타인을 존중하고 팀웍을 중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시말해 어떤 업종의 회사에 몸담게 되든,어느 부서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신뢰」「혁신」「인화」의 경영이념을 자연스럽게 생활화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고 있다. ○현대/종합기획실부장 홍성원/“창의성 갖춘 도저적 젊은이 뽑겠다” 「미래지향」 「해이지향」 「인재존중」의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꾸준히 성장발전해 온 기업­현대는 세계 도처에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형성된 강인한 정신력과 해외로 뻗어 나가면서 체득한 진취적 기상으로 타기업과는 다른 독특한 기업정신을 형성해 왔다. 현대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와 강인한 추진력의 소유자를 원한다. 어떠한 난관에 부쳐혀도 굴하지 않고 극복하는 적극적인 자세와 자신감을 갖고 꾸준히 성취하고자 도전하는 젊은이를 필요로 한다. 현대는 창조적 개척정신을 지닌 인재를 원한다.새로운 환경에 직면해도 주저하지 않고 이를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오히려 이를 발전의 계기로 삼을 줄 아는 창의와 개척정신으로 충만한 인재를 원한다. 현대는 조직내에서 융화하고 단결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공동체로서의 인식을 갖고 융화와 단결을 통해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만이 자기계발은 물론 조직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므로,인화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그리고 현대는 젊은이다운 희망찬 포부와 강인한 체력의 인재를 원한다.자신의 꿈을 달성하려는 의지는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평소 자기관리를 위한 성실한 자세를 원한다. 세계와 미래를 향해 큰 꿈을 펼쳐나갈 여러분께 현대는 그 넓은 문을 활짝 열어 드립니다. ○럭금/인재개발팀과장 이석상/“자신보다 팀웍 우선하는 협조자상” 럭키금성은 1947년 럭키화학공업사에서 시작하여 1992년 현재 럭키·금성사 등 30개 자매사에 10만여명의 종업원이 근무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럭키금성은 고객의 욕구에 맞는 가치를 창조 제공함으로써 고객에게 도움을 주고 고객과 함께 발전하는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사원 한사람 한사람을 존중하여 각자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능력껏 최선을 다해 자기실현을 할수 있도록 하는 「인간존중의 경영」을 경영이념으로 21세기 초우량기업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매진하고 있다. 럭키금성을 21세기 초우량기업으로 이끌어갈 인재상은. 첫째,남을 먼저 생각하는 열린 마음의 젊은이이다.조직은 개인 중심이 아니므로 팀웍을 통한 조직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협조하는 마음자세의 소유자를 원한다. 둘째,최고를 지향하는 꿈이 있는 젊은이다.담당분야의 세계 제일인자가 되고자 하는 꿈과,조직과 개인의 비전을 조화시키며 자기자신의 인생을 멋있게 추구하는 성취의지가 있어야 한다. 셋째,신념과 패기로 도전하는 젊은이다.매사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으로서 보다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전의식을 갖춘 사람이라야 급변하는 환경속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 럭키금성은 향후 이런 인재들의 집합체로서 개인의 능력과 창의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고객과 더불어 생각하고 고객으로부터 배우며 고객에게 최상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 본지연재 「바람의 사슬」 작가 오인문씨(인터뷰)

    ◎“종말론 확산은 이기적 탐욕 때문”/「경제전쟁서 파생」 가설위 소설전개 시한부 종말신앙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종말신앙문제를 다룬 본지의 연재소설 「바람의 사슬」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올초부터 각계각층의 호응속에 절찬리에 연재중인 「바람의 사슬」은 일간지종교담당기자,기독교 교회 집사등을 거치며 종교문제에 천착해온 중견소설가 오인문씨의 야심작. 『최근의 시한부종말론을 단순히 세기말적 증후군이나 사회의 중심가치관 부재,부조리의 만연과 소외에 따른 일시적 병리현상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많습니다』 시한부종말론 파동으로 우리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 좀먹고 있다고 진단한 오씨는 시한부종말론자들의 언급속에 EC(유럽공동체),컴퓨터,바코드 등 세계화와 관련된 문구들이 등장하는 만큼 시한부종말론은 세계적인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과학기술의 진보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습니다.컴퓨터 온라인화로 세계의 경제통합이 가능해졌고 시한부종말론자들의 주장대로 바코드로 세계인류를 코드화할 수도 있습니다.문제는 거대컴퓨터로 인해 정보예속과 경제통합이 가능해짐에 따라 역사상 처음으로 가장 강력한 세계지배국가의 등장을 앞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현재 세계가 통합유럽의 기독교세력,미국권의 유태자본세력,종교적 국수주의의 일본세력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고 분석한다. 이같은 국제상황 인식 아래 오씨는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유럽공동체를 비난하는 것에 주목한다.유럽공동체본부의 컴퓨터를 요한계시록을 빌어 적그리도(사탄)세력으로 모는 것은 종교적 발상으로선 엉뚱하므로 모종의 정치·경제적 실리를 고려한게 아니냐는 것이다.유럽공동체를 모략함으로써 가장 득을 볼 세력은 일본이라고 지목한 오씨는 시한부종말론 유포의 배후에 일본이 있다는 가설에 도달한다.원래 미국에서 통합 유럽 기독교세력을 모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한부종말론을 종교성이 강한 한국에 대대적으로 유포시킴으로써 유럽을 견제하고 한국의 정신력을 약화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일본이 노린다는 것. 이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소설 「바람의 사슬」은 한국내에서 시한부종말론을 조종하는 일본세력의 음모를 파헤치는데 지금 그 역점을 두고 있다. 『우리민족도 유태의 시오니즘이나 일본의 종교적 국수주의에 맞설수 있는 주체성과 정신무장을 확립해야만 힘으로 판가름되는 국제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저는 그것을 「코리즘」이라는 시안으로 소설에서 제시해보았습니다』 오씨는 무엇보다 시한부종말론이 종교성과는 별개로 인간의 탐욕에 의해 발생,유포되고 있으며 상징적인 성서의 어구를 실물과 실제현상에 대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간타락이나 공동선의 상실이야말로 적그리스도(사탄)일지 모릅니다.언젠가는 지구의 종말이 옵니다.그러나 그것은 신이나 사탄에 의해서가 아닌 바로 인류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의해서입니다』 그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에 근거한 가설에 불과하지만 시한부종말론과 맞물린 현실을 파악하는 유용한 시각틀이 될 법도 하다.
  • 체위와 체력과 정신력(사설)

    요즈음의 우리 학동들을 얼핏 보면 초 중 고의 구별이 잘 안된다.국민학생인데 중학생 같고 중학생은 고등학생 같아 보인다.체격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엊그제의 교육부 발표도 그 현상을 밑받친다.초 중 고생의 체위가 크게 향상되었음을 숫자로써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중학생의 경우만 놓고 봐도 그렇다.91년도 남중생의 평균 신장은 1백57.03㎝로서 10년 전인 81년의 1백51.53㎝보다 5.5㎝ 커졌음을 보인다.여중생의 몸무게도 10년 전에 비해 평균 4.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특히 60년대 이후 우리의 체위는 이렇게 꾸준히 향상되어 오고 있다. 이는 식생활의 질적인 향상에 따른 결과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그래서 배곯고 못먹던 광복 전후의 체위와 비교하면 더욱 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앞으로도 완만하게나마 체위는 더 향상되어 나갈 것이다.그리고 이와같은 체위의 향상은 우선 반겨야 할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다.믿음직한 체위에는 믿음직한 나라의 미래가 기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또 굶주려서 피골이 상접해 있는 일부 아프리카 사람들과 대비할 때 복된 나라의 복된 표상이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향상된 체위가 반드시 건강한 사람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도 제기된다.덩치가 크다 해서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그 점에서 체위와 체력은 달라진다.깡말라서 제몸을 마음대로 추스리는 사람에 비해 몸집 큰 사람에게 여러가지 질환이 더 많을 수 있다.갖가지 성인병들이 그것이다.그것들은 영양과잉의 선진국병인 채 우리의 심각한 당면문제이기도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인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의 학동들도 성인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지난해 서울시 교육청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서울시내 초 중 고생의 5명중 1명이 비만증이었고 그중의 79%가 당뇨병이나 고혈압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다.근자에 들어서는 「성조숙증」이라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도 나타나고 있다.생후 1년반 밖에 안되는 계집아기가 유방이 나오고 생리현상을 보이는가 하면 사내아기의 경우 성기가 커지고 수염이 나는 따위가 그것이다.환경공해의 영향이라고도 하고부모의 영양과잉 때문이라고도 말하여지지만 성인병의 연령층이 낮아져 가는 현상과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체위의 향상을 기뻐할 수만 없다는 까닭이 이런 데에 있다. 이 체위의 향상과 함께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정신력의 문제이다.체위는 향상되었으면서도 정신면에서는 오히려 나약함을 보이고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어렵지 않고 유족하게 온실속에서 자라난 덕택에 체위는 향상되었지만 인내심이나 극기심은 많이 모자라는 것이 오늘의 우리 청소년들이다.그래서 자그마한 일에 곧잘 좌절한다.성적이 안오른다고 자살하는 경우나 용돈 안준다고 자살해 버리는 경우도 그것이다.건강한 정신력을 배양하지 못한 때문이다. 체위의 향상과 함께 건강한 체력을 다지게 되어야 한다.향상된 체위와 건강한 체력속에 다시 건전한 정신력이 깃들여야 한다.그런 청소년 학도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여 핸드볼 오늘 「금」 도전(92바르셀로나 올림픽)

    ◎노르웨이 꺾으면 올림픽 2연패 【바르셀로나=올림픽특별취재단】 한국여자핸드볼이 구기종목사상 첫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한다.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하고 있는 한국은 대회 폐막을 이틀앞둔 8일하오7시(한국시간)여자핸드볼이 결승전에서 장신의 노르웨이와 금메달을 놓고 숙명의 일전을 벌인다. 서울올림픽에서 구기종목으로는 처음으로 금을 따낸 한국여자핸드볼은 이번예선에서 드러난 노르웨이와의 객관적인 전력에서 6­4로 우위를 보이고 있는데다 정신력에서도 크게 앞서 이변이 없는 한 올림픽 2연패의 영광과 함께 이번대회 11번째 금메달을 안겨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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