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정신력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김천시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초토화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개인전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 김동환
    2026-03-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885
  • 연극인 오태석씨(이세기의 인물탐구:7)

    ◎“가공할 시공처리… 이시대의 연극천재”/변혁에의 집념,70년대 연극사 전환점 이뤄/역사적사건 재조명… 「탈고정관념」 방향제시/「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연극 “30년 외길인생”으로 이어져 연극 「약장수」를 본 사람이라면 북치고 장구치듯 한바탕 굿판을 이루던 재담과 사투리,종횡무진의 요설 사설등 우리 말이 갖는 무한한 리듬감과 현란했던 언어구사의 묘미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백곰 모시곰 달하 높이곰 돋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72년 초연된 이 연극은 75년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오태석씨가 공간사랑무대에 직접 출연하여 「연출가·작가의 연기」라는 차원에서 연극팬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안겨주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오태석은 귀신이 넘나드는 경이의 무대로 관객의 시선을 한순간도 놓치지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틀거리거나 벽에 부딪치고 바닥에 뒹굴어 만신창이가 된 처절한 몸부림은 연극이 말하려는 문제의식과 함께 관객을 숙연케하는 기원이 도사려있다. 몸짓은 물론 언어와 분장·무대미술과 의상에도 변혁·개혁을 시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관객에 의외성 제시 라면박스나 신문지조각으로 꾸며진 무대는 차라리 눈부시고 싱그럽다.칡과 치자물들인 무명 저고리,백발노인 역할을 분장하지 않은 20대 연기자가 맨 얼굴로 등장하는등 서구적 사실주의 연극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 무대에서의 파격과 의외성을 연속적으로 맛볼수 있게한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쓰고 연출한 「태」와 「한만선」 「사추기」 「물보라」 「춘풍의 처」등 일련의 작품은 7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전환기를 이룬 대표작으로 손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뼈의 마디마디,어쩌면 동맥 정맥까지도 탄탄한 생명력이 살아 꿈틀거려야만 그는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그리고 그만의 정서와 상상력에 몰입하다보면 관객은 안개속의 미로에서 길을 잃고도 극의 한복판에 선채 도무지 빠져나올 줄을 모른다. 이처럼 가공할 시공처리와 시각·청각·상징적 무대언어는 극의 「완성도」성취라는 명제아래 연극다운 품격과 연극만의 특징미를 진하게 각인시켜 주고있다. 그는 하오 1시에서 1시반사이 서초동 삼익상가에 있는 그의 연습실에 나온다. 커다란 검은 숄더백에 검은 레닌모를 깊숙이 눌러쓴,새벽까지 마신 작취미성에도 불구하고 모자밑의 두 눈은 새파랗다 못해 광기가 번뜩인다. 연습도 마찬가지다. 연출자의 지시에따라 창조적 연습,되풀이 연습,연기자들이 준비해온 각자 연기를 지켜보다가 그는 마치 제각기 다루던 악기를 한데 모아 교향곡을 이루는것처럼 세시간 네시간 심오하게 숙고하면서 작품의 주제에 파고든다. 그래도 성에 차지않으면 무대에 뛰어올라 요란한 손짓발짓으로 시범을 하고는 발을 헛디뎌 다리를 다치거나 무대장치에 직접 못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기 일쑤다.오태석의 멍든 이마는 자신의 것을 하기위해 온몸으로 부딪치는 한 예술가의 고독한 흔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술취해 있을땐 더욱이나 이 고독이 소스라쳐 그는 연극의 심연속에 빠져 속수무책으로 허우적거리는 이미지다.그러나 아무리 취중이라도 그것이 연극에 관한 토론일때는 이제까지의 취기를 삽시에 거두고 예의 오태석특유의 논리정연한 속변달변을 속사포처럼 전개해 나간다. 「주어진 여건과 틀속에서 그 여건과 틀에 맞춘 행위만을 되풀이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의미하다」「연극이 예술인 바에야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모든 연극표현술과 수단을 동원하고 이를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하나의 모티프를 끌어내고 이를 현시점에 비쳐보는」탈역사로의 방향을 간단없이 제시해왔다고 할수있다. 87년이래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개작해온 「부자유친」이 그 좋은 예의 하나다.「부자유친」은 한마디로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이야기다. 이 연극은 뒤죽박죽 진행되어 어디가 처음인지 끝인지 종잡을수 없는 충격의 장면 장면이 이어진다. 왕은 흰두루마기,제자는 팬티바람,신하는 왕의 명령에 응석을 부리고 울던 사람이 파안대소,죽은자가 기지개를 켜는가하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가 풀죽은 마대처럼 바닥에 널브러진다. 어느 한구석도 논리에 들어맞지 않지만 이 반논리와 탈논리가 지극히 논리적임을 관객들은 당장 깨닫게 된다. ○반논리속 논리 정립 아버지가 자식을 학살하는데 논리가 어디 있겠느냐는 질문이 그것이며 이것이 바로 이 연극이 노리는 초점이다. 83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장화를 신은 고양이」때는 한국무용을 하는 국수호에게 안무를 맡기면서 연출자는 「한국무용이 아닌 발레」로 안무를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한국무용가의 「발레」란 오태석만의 익살이자 풍자,어쩌면 냉소의 한 일면일 수가 있다. 이렇게 오태석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연극을 이끌어왔다.그러나 그의 연극의 뿌리는 일찍이 동랑으로부터 이어받은 고전적 문법이 뼈대를 이루고 한국적 몸짓으로 지칭되는 마당놀이의 연희가 질서정연하게 바탕에 깔려있다.그리고 「우리의 너그럽고 훈훈한 인심,너털웃음,호연지기,유약한듯 하나 끈질긴 인내」등 반만년 역사를 통해 일관된 한국인의 정신력과 생명력을 연극 구석구석에 채우고 있다. 그는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3살되던해 부모와 형제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남대문국민학교에 다니던 11살때 6·25를 만나 당시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던 부친 오세권씨가 인민군에게 둘러싸여 끌려가던 광경을 눈앞에서 겪은,이른바 6·25 비극으로 인한 피해자의 한사람이다.연극 「자전거」에서 유년시절의 이 잊지못할 광경을 또렷하게 묘사해 보이고 있다. 배재고에 다닐때까지는 편모슬하에서도 비교적 여유있게 자란 편이었다.그러나 「계(설)」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어머니 이라안여사(74)가 모았던 계가 깨지는 바람에 집안은 하루아침에 풍산되고 대학입학과 함께 그는 뼈저린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그는 친구들의 자취방을 넘나들다가 대학의 빈 강의실을 찾아 잠자리를 마련했다.그때도 물론 「연극」이라고는 구경도 해본적이 없는 문외한이었다.그러나 61년 정부가 「연극인 활성화 방안」으로 마련한 「신인예술제」개최를 위한 희곡공모 소식을 듣고는 「상금」때문에 여기에 응모했다.밤새도록 써서 제출한 희곡이 당선. 이 대목에서 「제목이 뭔데?」물으면 그는 영락없이 얼굴을 확 붉히면서 「영광!」하고는 와하하 웃어버린다. ○「연세찬가」 작사 당선작품은 다른 단체들과 더불어 나란히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을 갖게되어 있었다.그래서 여기저기 연극과에 다니는 친구들을 모아 급조한 것이 그가 최초로 발족한 「회로무대」다. 「영광」에 이어 다음해 「사중주」,또 다음해 공연을 앞두고 나서야 비로소 연극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극의 마약에 깊숙이 빠져든 자신을 후회하지 않았다. 공연날짜가 임박했으나 공연할 돈이 없던차에 마침 학교에서 동문·재학생들을 상대로한 「연세찬가」작사를 공모했다. 본래의 「연세찬가」는 백락준박사가 지은 장편소설(?)같은 것이어서 행사때마다 끝까지 부를수 없을만큼 길었다고 했다. 「형제자매」와 「사랑」만 잘 섞으면 될것같아 그는 신인예술제 공모때처럼 이번에도 「상금」때문에 여기에 응모했다.나운영작곡의 /반세기 지켜온 민족의 얼/자유와 진리 심어온 모습…/은 바로 그가 지은 작사다. 그는 「연세찬가」작사 당선 상금으로 세번째 공연인 「조난(조란)」을 무사히 무대에 올릴수 있었다. 「호구지책」으로 연극을 시작했고 그것이 자신이선택한 최선의 길이며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를 알고 지난 30년을 오로지 연극에 전념했다.그리고 그의 연극에 대한 찬반양론의 시비속에서도 오태석의 위치는 우리 연극사에서 확고한 획을 긋고 있다는 것,그만의 독특한 오태석 언어와 색깔을 소유하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적」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끈질기게 실천해 보이는 것 등을 강점으로 들 수 있다. 90년 동숭동 대학로에 그가 이끄는 극단 목화의 전용극장인 충돌Ⅰ,Ⅱ(흥사단지하)를 개관,목화레파토리 전용극장으로 쓰다가 연극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무대에 올려야 하는 부담감에 쫓기기 싫어 지난 봄부터 대관을 겸하면서 서초동 연습실로 컴백했다. 지난 20년동안 그를 한결같이 섬기는 조상호·정진각등 속칭 「오사단」초창기 멤버들이 목화의 단원이다.가족은 부인 최란선씨와 딸 시내(고2)아들 영택(중2). 그는 이따금 자신의 연극에 직접 출연,올해도 서울시립무용단 프랑스공연에 가져간 자작·연출 「떠도는 혼」에서 상주로 찬조 출연하기도 했으며 87년부터는 해마다 도쿄 파르코 극장 초대공연을 가져 일본 연극계의 열렬한 찬사와 호응으로 목화의 고정팬을 확보하면서 일본속에 한국의 목소리와 몸짓을 심고 있다. 이시대의 연극천재·연극계 기인이란 호칭에 걸맞게 각계각층의 다양한 교분을 트고있는 그는 언제 어디서 그리고 누구의 입에서나 「오태석=연극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오르내리고 있다. □연보 ▲1940년10월 충남 서천에서 오세권씨(6·25때 납치)와 이라안여사의 3남1녀중 장남 ▲63년 「회로무대」창단 ▲65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회로무대」해체 ▲67년 한국일보 장막희곡 「화장한 남자」가작수상,조선일보 신춘문예 「웨딩드레스」당선 ▲68년 국립극장,경향신문공모 「환절기」당선 ▲72년 동랑레파토리 극단 「Luv」로 연출데뷔 ▲84년 목화극단 창단 ▲80년 「초분」일본공연 ▲83년 「어미」일본공연 ▲85년 MBC창사기념 「메밀꽃 필무렵」(작,연출) ▲86년 MBC창사기념 「봄,봄」(작,연출) ▲86년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시나리오·연출 ▲87년 일본 도가국제페스티벌 「춘풍의 처」참가이래 해마다 초청공연,제11회 서울연극제 「부자유친」참가 ▲88년 서울예술단 「새불」(작,연출),일본 미쓰이 페스티벌,「태」참가 ▲89년 동숭아트센터 개관기념공연 「비닐하우스」(작,연출) ▲90년 목화레파토리극장 충돌ⅠⅡ개관 ▲92년 서울 시립무용단 프랑스공연 「떠도는 혼」(작,연출),일본 마에바시(전교)시승격 1백주년 기념공연 「도라지」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쇠뚝이 놀이」「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이식수술」「약장수」「물보라」「사추기」「육교위의 유모차」「19 90년5월」「산채우」「자전거」「아프리카」「필부의 꿈」「나래섬」「운상각」「심청이는 왜 두번 임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백구야 껑충나지마라」「환절기」산문집 「북소리 울릴때」 서울연극제 대상,서울신문사제정 제2회 한국문화대상 연극부문 창작상,한국연극예술상
  • 고교 교과과정 개편 내용과 특징

    ◎“획일 탈피”… 적성따른 자율교육 확대/직업·예술계열 신설… 과목 다양화/인문계/선택과목 늘리고 설기교육 강화/실업계/러시아어 제2외국어 지정… 단체활동도 확충 3일 교육부가 확정한 제6차 고등학교 교육과정 개정안은 고교의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자율화 폭을 넓히고 학생들 개개인의 적성과 능력및 진로계획에 맞춰 교과지도의 범위와 수준을 크게 다양화한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인문계고교의 경우 지금까지의 획일적인 교육과정으로는 적절히 대비할수 없었던 94학년도부터 실시될 새 대학입시제도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가 학교수업만으로 가능케 되어 과외,국·영·수등 득점과목 편법 시간배정등 고교의 파행적인 수업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실업게 고교도 선택과목의 대폭 확대로 첨단 신 기술교육을 융통성있게 실시할 수 있게 됐으며 실험·실습교육의 강화로 고교직업교육이 산업현장과 유리되었다는 지적을 피할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8월의 중학교,9월의 국민학교·유치원 교육과정개정안 확정에 이어이번에 고교교육과정개정안이 확정됨으로써 지난 89년부터 추진돼온 제6차 교육과정개편작업이 모두 마무리됐다. 교육과정 편성·운영방향을 보면 지금까지 고등학교 3년동안에 공통필수과목,계열별 선택과목,특별활동등 모든 교육과정을 교육부가 일률적으로 결정하던 것을 공통필수과목은 교육부가 확정하되 계열별 필수과목과 계열별 선택과목은 시·도 교육감과 학교장이 각각 선정토록 학교별·지역별 교육내용 선택폭을 크게 넓혔다. 또 인문계고교에 획일적으로 인문계·자연계열을 두었던 것을 교육과정을 개편함으로써 인문·자연계열이외에 2학년때부터 직업과정이나 예술계열등을 학교형편에 따라 개설,운영토록함으로써 학생의 능력·적성·진로계획에 적절한 학교교육이 실시될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한 학기마다 학생들이 배워야하는 과목수를 18∼20과목에서 12과목으로 줄여 단편적인 학습에서 보다 깊고 핵심적인 내용까지 공부할수 있도록 했다. 고교생들의 수업시간이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에 따라 고교 3년간 수업시간이 단위(주당 1시간씩 한학기 수업량)기준으로 2백4∼2백16단위를 2백4단위로 낮춰 한학년기준으로 보면 최고 90시간이 줄어드는등 학생들의 수업부담이 많이 덜어졌다. 실업·가정등이 종전의 이론중심에서 노작교육이나 실생활 응용가능한 기능습득교육으로 전환되며 교련수업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대신 단체활동(심신수련)시간을 신설,정신력강화및 사회 공동체의식을 체험을 통해 터득하도록 했다. 또 예술·정서교육의 중요성을 인식,음악·미술교육은 인문·실업고교의 구분이나 인문·자연·직업계열에 관계없이 공통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이와함께 종전의 국민윤리 교과명칭을 윤리로 변경하면서 가치관,인생관,세계관,시민윤리,직업윤리에 관한 학습내용을 크게 강화했다. 도덕교육,환경교육,경제교육,근로정신 함양교육,보건·안전교육,성교육,진로교육,통일교육등은 관련교과와 특별활동을 통해 중점적으로 실시하되 학교교육활동 전반에 걸쳐 통합적으로 다루어지도록 했다. 국제화시대에 맞춰 러시아어를 제2외국어로 새로 지정하고 제2외국어를 비롯 수학,영어,과학,한문등 교과목은 한문­1,한문­2식으로 수준별 과목으로 나누어 성적이 뒤떨어진 학생이나 비진학생들에게 적절한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실업계 고교의 선택 교과목수와 선택의 폭을 넓혀 학교또는 지역적 형편에 따라 적절한 전문과정을 설치,현실에 맞는 실업교육이 시행될 수 있도록 했다. 농업고교의 경우 교과목을 농산물 유통,농산물 판매관리,환경보전등 모두 43개과목으로 지정,농업과등 현재의 13개 학과이외에 학교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전문학과를 개설할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공업고교도 지정 교과목수가 무려 1백2개로 최근 선보인 세라믹학과이외에도 최첨단 기술이 도입될 경우 즉시 전문학과를 개설,산업현장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했다. 이밖에 상업고교는 남녀 공통학과의 교과목으로 지정된 과목수는 30개,유아교육과,조리과,의상학과,관광학과등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의 지정 교과목수는 22개이며 수산·해운고교는 교과목 수를 28개로 늘려 전문학과 설치가 언제나 가능하게 됐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실업고교 졸업생들이 졸업과 함께 학교교육내용을 산업현장이나 실생활에 곧바로 활용할수 있도록 하기위해 전문학과의 학습활동은 50%이상을 실험·실습및 실기교육으로 실시토록 했다.
  • 이런 사람을 원한다(취업으로 가는길)

    ◎대기업 인사담당 중견간부들 귀띔/“긍정적 사고·진취적 자세 중시” ○삼성/인사담당부장 정홍식/“자기계발 힘쓰는 성실·용기에 중점” 1938년 창업이래 삼성을 이끌어온 경영이념인 「인재제일」은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삼성을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기업으로 만들어온 원동력은 바로 우수한 인재를 모으고 그들을 아끼고 키워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로 만들어 내겠다는 「인재제일」의 철학이었다. 삼성의 인사목표는 인간존중의 경영방침하에 개성이 살아 숨쉬는 활기찬 근무분위기를 조성하고 능력에 대한 보상과 끊임없는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신바람나는 근무분위기 속에서 개인역량을 최대한 발휘케 하여 삼성을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발전케 하는 것이다. 1957년 국내 최초로 공개경쟁시험을 통해 인재를 발굴하였다. 삼성이 바라는 인재는 학식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소양과 인격을 함께 갖춘 「된사람」이다.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조직속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고자 부단히 자신을 연마하여 자기계발에 힘쓰는용기와 자신감을 갖춘 도전적인 사람이다.둘째,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문제의식을 갖고 항상 새로운 것을 탐구함으로써 조직에 활력과 신선함을 주는 창의력이 높은 사람이다.셋째,긍정적인 사고와 책임의식을 갖고 묵묵히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며 밝고 깨끗한 조직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건강한 합리적인 사람이다. ○선경/경영기술실부장 한봉희/“일과 싸워 이겨내는 패기 갖춰야” 1953년 전후 폐허속에서 섬유산업으로 출범한 선경은 1991년 그룹의 숙원이던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완성,이를 바탕으로 기술집약적이고 자본집약적인 산업에 도전해 하나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선경은 초정밀 산업·종합에너지 종합화학·신소재 및 생명공학·정보통신 분야 등에서 2000년대 세계일류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또 우리사회에서 기업역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공익개념 실천에 앞장서기 위해선 기업의 안정과 성장이 필수요소라고 생각,다음과 같은 세 요소를 경영원칙으로 삼고 있다.즉,인간위주의 경영,합리적인 경영 및 현실을 인식한 경영이 바로 그것이다.이러한 생각으로 기업경영에 임하고 있는 선경에서 찾는 인재는 기업관에 뜻을 같이 하면서 선경인의 자세를 기를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선경인의 자세란 모든 선경인,특히 경영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격요건인 패기·경영지식·경영에 부수된 지식·사교자세·가정 및 건강관리를 높은 수준으로 함양하는 것을 말한다.이 가운데 패기란 일과 싸워서 이기는 기질로,사고는 적극적으로 하고 행동은 진취적으로 하며 일처리는 빈틈없고 야무지게 하는 것을 뜻하는 선경인의 자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쌍용/종합조정실부장 손현래/신뢰·혁신·인화의 생활화에 가늠자 쌍용은 「2000년대를 주도하는 세계일류기업」으로 성장·발전해 나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쌍용은 이러한 미래상을 달성하기 위해 1989년 창업 50주년을 맞아 「쌍용 100년사 창조」라는 기업이념과 「신뢰」「혁신」「인화」의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이념체계를 정립하고 범그룹차원에서 기업문화운동을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문화운동의 전개와 더불어 쌍용은 첨단신소재,종합석유화학,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종합기계산업,첨단정보통신사업,국제종합금융분야에서의 새로운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쌍용그룹은 새로운 기업문화운동의 실천적 개념인 「신뢰」「혁신」「인화」라는 경영이념에 맞는 자질을 갖추고,쌍용의 새로운 사업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 우선,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을 정성껏 위하고,정도를 솔선하여 실천할수 있는 사람. 둘째,항상 새로운 것,즉 혁신을 추구하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 셋째,타인을 존중하고 팀웍을 중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시말해 어떤 업종의 회사에 몸담게 되든,어느 부서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신뢰」「혁신」「인화」의 경영이념을 자연스럽게 생활화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고 있다. ○현대/종합기획실부장 홍성원/“창의성 갖춘 도저적 젊은이 뽑겠다” 「미래지향」 「해이지향」 「인재존중」의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꾸준히 성장발전해 온 기업­현대는 세계 도처에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형성된 강인한 정신력과 해외로 뻗어 나가면서 체득한 진취적 기상으로 타기업과는 다른 독특한 기업정신을 형성해 왔다. 현대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와 강인한 추진력의 소유자를 원한다. 어떠한 난관에 부쳐혀도 굴하지 않고 극복하는 적극적인 자세와 자신감을 갖고 꾸준히 성취하고자 도전하는 젊은이를 필요로 한다. 현대는 창조적 개척정신을 지닌 인재를 원한다.새로운 환경에 직면해도 주저하지 않고 이를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오히려 이를 발전의 계기로 삼을 줄 아는 창의와 개척정신으로 충만한 인재를 원한다. 현대는 조직내에서 융화하고 단결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공동체로서의 인식을 갖고 융화와 단결을 통해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만이 자기계발은 물론 조직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므로,인화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그리고 현대는 젊은이다운 희망찬 포부와 강인한 체력의 인재를 원한다.자신의 꿈을 달성하려는 의지는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평소 자기관리를 위한 성실한 자세를 원한다. 세계와 미래를 향해 큰 꿈을 펼쳐나갈 여러분께 현대는 그 넓은 문을 활짝 열어 드립니다. ○럭금/인재개발팀과장 이석상/“자신보다 팀웍 우선하는 협조자상” 럭키금성은 1947년 럭키화학공업사에서 시작하여 1992년 현재 럭키·금성사 등 30개 자매사에 10만여명의 종업원이 근무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럭키금성은 고객의 욕구에 맞는 가치를 창조 제공함으로써 고객에게 도움을 주고 고객과 함께 발전하는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사원 한사람 한사람을 존중하여 각자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능력껏 최선을 다해 자기실현을 할수 있도록 하는 「인간존중의 경영」을 경영이념으로 21세기 초우량기업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매진하고 있다. 럭키금성을 21세기 초우량기업으로 이끌어갈 인재상은. 첫째,남을 먼저 생각하는 열린 마음의 젊은이이다.조직은 개인 중심이 아니므로 팀웍을 통한 조직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협조하는 마음자세의 소유자를 원한다. 둘째,최고를 지향하는 꿈이 있는 젊은이다.담당분야의 세계 제일인자가 되고자 하는 꿈과,조직과 개인의 비전을 조화시키며 자기자신의 인생을 멋있게 추구하는 성취의지가 있어야 한다. 셋째,신념과 패기로 도전하는 젊은이다.매사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으로서 보다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전의식을 갖춘 사람이라야 급변하는 환경속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다. 럭키금성은 향후 이런 인재들의 집합체로서 개인의 능력과 창의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고객과 더불어 생각하고 고객으로부터 배우며 고객에게 최상의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 본지연재 「바람의 사슬」 작가 오인문씨(인터뷰)

    ◎“종말론 확산은 이기적 탐욕 때문”/「경제전쟁서 파생」 가설위 소설전개 시한부 종말신앙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종말신앙문제를 다룬 본지의 연재소설 「바람의 사슬」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 올초부터 각계각층의 호응속에 절찬리에 연재중인 「바람의 사슬」은 일간지종교담당기자,기독교 교회 집사등을 거치며 종교문제에 천착해온 중견소설가 오인문씨의 야심작. 『최근의 시한부종말론을 단순히 세기말적 증후군이나 사회의 중심가치관 부재,부조리의 만연과 소외에 따른 일시적 병리현상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많습니다』 시한부종말론 파동으로 우리 사회의 정신적 기반이 좀먹고 있다고 진단한 오씨는 시한부종말론자들의 언급속에 EC(유럽공동체),컴퓨터,바코드 등 세계화와 관련된 문구들이 등장하는 만큼 시한부종말론은 세계적인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과학기술의 진보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습니다.컴퓨터 온라인화로 세계의 경제통합이 가능해졌고 시한부종말론자들의 주장대로 바코드로 세계인류를 코드화할 수도 있습니다.문제는 거대컴퓨터로 인해 정보예속과 경제통합이 가능해짐에 따라 역사상 처음으로 가장 강력한 세계지배국가의 등장을 앞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현재 세계가 통합유럽의 기독교세력,미국권의 유태자본세력,종교적 국수주의의 일본세력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고 분석한다. 이같은 국제상황 인식 아래 오씨는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유럽공동체를 비난하는 것에 주목한다.유럽공동체본부의 컴퓨터를 요한계시록을 빌어 적그리도(사탄)세력으로 모는 것은 종교적 발상으로선 엉뚱하므로 모종의 정치·경제적 실리를 고려한게 아니냐는 것이다.유럽공동체를 모략함으로써 가장 득을 볼 세력은 일본이라고 지목한 오씨는 시한부종말론 유포의 배후에 일본이 있다는 가설에 도달한다.원래 미국에서 통합 유럽 기독교세력을 모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한부종말론을 종교성이 강한 한국에 대대적으로 유포시킴으로써 유럽을 견제하고 한국의 정신력을 약화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일본이 노린다는 것. 이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소설 「바람의 사슬」은 한국내에서 시한부종말론을 조종하는 일본세력의 음모를 파헤치는데 지금 그 역점을 두고 있다. 『우리민족도 유태의 시오니즘이나 일본의 종교적 국수주의에 맞설수 있는 주체성과 정신무장을 확립해야만 힘으로 판가름되는 국제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저는 그것을 「코리즘」이라는 시안으로 소설에서 제시해보았습니다』 오씨는 무엇보다 시한부종말론이 종교성과는 별개로 인간의 탐욕에 의해 발생,유포되고 있으며 상징적인 성서의 어구를 실물과 실제현상에 대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간타락이나 공동선의 상실이야말로 적그리스도(사탄)일지 모릅니다.언젠가는 지구의 종말이 옵니다.그러나 그것은 신이나 사탄에 의해서가 아닌 바로 인류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의해서입니다』 그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에 근거한 가설에 불과하지만 시한부종말론과 맞물린 현실을 파악하는 유용한 시각틀이 될 법도 하다.
  • 체위와 체력과 정신력(사설)

    요즈음의 우리 학동들을 얼핏 보면 초 중 고의 구별이 잘 안된다.국민학생인데 중학생 같고 중학생은 고등학생 같아 보인다.체격면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엊그제의 교육부 발표도 그 현상을 밑받친다.초 중 고생의 체위가 크게 향상되었음을 숫자로써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중학생의 경우만 놓고 봐도 그렇다.91년도 남중생의 평균 신장은 1백57.03㎝로서 10년 전인 81년의 1백51.53㎝보다 5.5㎝ 커졌음을 보인다.여중생의 몸무게도 10년 전에 비해 평균 4.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다.특히 60년대 이후 우리의 체위는 이렇게 꾸준히 향상되어 오고 있다. 이는 식생활의 질적인 향상에 따른 결과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그래서 배곯고 못먹던 광복 전후의 체위와 비교하면 더욱 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앞으로도 완만하게나마 체위는 더 향상되어 나갈 것이다.그리고 이와같은 체위의 향상은 우선 반겨야 할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다.믿음직한 체위에는 믿음직한 나라의 미래가 기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또 굶주려서 피골이 상접해 있는 일부 아프리카 사람들과 대비할 때 복된 나라의 복된 표상이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향상된 체위가 반드시 건강한 사람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도 제기된다.덩치가 크다 해서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그 점에서 체위와 체력은 달라진다.깡말라서 제몸을 마음대로 추스리는 사람에 비해 몸집 큰 사람에게 여러가지 질환이 더 많을 수 있다.갖가지 성인병들이 그것이다.그것들은 영양과잉의 선진국병인 채 우리의 심각한 당면문제이기도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성인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의 학동들도 성인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지난해 서울시 교육청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서울시내 초 중 고생의 5명중 1명이 비만증이었고 그중의 79%가 당뇨병이나 고혈압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다.근자에 들어서는 「성조숙증」이라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도 나타나고 있다.생후 1년반 밖에 안되는 계집아기가 유방이 나오고 생리현상을 보이는가 하면 사내아기의 경우 성기가 커지고 수염이 나는 따위가 그것이다.환경공해의 영향이라고도 하고부모의 영양과잉 때문이라고도 말하여지지만 성인병의 연령층이 낮아져 가는 현상과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체위의 향상을 기뻐할 수만 없다는 까닭이 이런 데에 있다. 이 체위의 향상과 함께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정신력의 문제이다.체위는 향상되었으면서도 정신면에서는 오히려 나약함을 보이고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어렵지 않고 유족하게 온실속에서 자라난 덕택에 체위는 향상되었지만 인내심이나 극기심은 많이 모자라는 것이 오늘의 우리 청소년들이다.그래서 자그마한 일에 곧잘 좌절한다.성적이 안오른다고 자살하는 경우나 용돈 안준다고 자살해 버리는 경우도 그것이다.건강한 정신력을 배양하지 못한 때문이다. 체위의 향상과 함께 건강한 체력을 다지게 되어야 한다.향상된 체위와 건강한 체력속에 다시 건전한 정신력이 깃들여야 한다.그런 청소년 학도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 여 핸드볼 오늘 「금」 도전(92바르셀로나 올림픽)

    ◎노르웨이 꺾으면 올림픽 2연패 【바르셀로나=올림픽특별취재단】 한국여자핸드볼이 구기종목사상 첫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한다.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출전하고 있는 한국은 대회 폐막을 이틀앞둔 8일하오7시(한국시간)여자핸드볼이 결승전에서 장신의 노르웨이와 금메달을 놓고 숙명의 일전을 벌인다. 서울올림픽에서 구기종목으로는 처음으로 금을 따낸 한국여자핸드볼은 이번예선에서 드러난 노르웨이와의 객관적인 전력에서 6­4로 우위를 보이고 있는데다 정신력에서도 크게 앞서 이변이 없는 한 올림픽 2연패의 영광과 함께 이번대회 11번째 금메달을 안겨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 한국투혼 어디갔나/고두현 체육부 국장급기자(오늘의 눈)

    『기적이 일어났다!』는 일본유도선수단의 환호를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일 새벽(한국시간) 바르셀로나올림픽 남자유도 71㎏급 결승에서 일본의 고가 도시히코(고하념언)는 헝가리의 하이토슈를 판정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기어이 목에 걸고야 말았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직후인 지난달 20일 고가는 훈련을 치르다가 왼쪽무릎인대에 전치3주의 부상을 입었었다. 그는 경기가 시작되기전까지의 열흘동안 실전훈련은 전혀 소화하지 못한채 유도의 도복을 두손아귀로 움켜쥐고 무릎에 부담이 가지않는 상체운동으로만 땀을 흘렸다. 도복을 움켜쥐고 상체운동을 치른것은 「그동안이라도 도복을 잡는 감각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집념때문이다.그사이 4㎏의 감량을 위해 거의 먹지도,마시지도 못했다. 일본유도선수단이 심사숙고끝에 고가의 출전을 결정한 것은 경기 바로 전날. 경기당일은 두차례나 마취제가 담긴 주사바늘을 왼쪽무릎근처에 6군데나 꽂아야만 했다.부상한 왼쪽무릎에 부담이 안가도록 오른발을 상대방의 배에 대고 뒤로 던지는 「배대뒤치기」를 자주 썼고 되치기에 능한 선수에게는 모험을 걸지않고 판정으로 경기를 이끄는등 두뇌플레이를 잊지않았다.아무튼 대단한 정신력의 승리다. 1964년 도쿄올림픽의 복싱헤비급 금메달리스트는 뒷날 프로복싱의 왕좌에 올라 저 위대한 무하마드 알리도 물리친 일이 있는 조 프레이저였다. 당시 도쿄올림픽에 프레저저는 후보선수로 갔다.정선수는 버스터 매디스였고.매디스가 훈련도중 손가락뼈를 부러뜨리자 프레이저에게 출전기회가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때 프레이저도 손가락뼈가 부러져있었다.하지만 프레이저는 손가락뼈가 부러졌다는 것을 감추고 출전,기어이 금메달을 따내고야 말았다.역시 정신력의 승리다. 중반이 넘어선 이번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우리의 기대주들이 어이없게 금메달을 놓치는 일이 잦아 우리 모두를 실망시키고 있다.사격 소구경3자세의 이은철 차영철,유도의 윤현 정훈 김병주,레슬링의 권덕용 허병호,여자탁구복식의 현정화­홍차옥조,복싱의 고요다 채성배 등이 별다른 투지도 불태우지 못한채 뒷심없이 밀려나고 말았다.졌다고 해서가 아니라 모두 한이 남는 경기내용들이다.김성집단장도 『선수들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악착같은 투지가 없어진것 같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남은 기간동안만이라도 선수들은 승패에 관계없이 후회가 남지않는 경기를 치러주었으면 싶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일선생

    ◎독립군 양성… 청산리전투 대승 이끌어/31세에 만주로 망명… 한인자녀들 가르쳐/항일투쟁단체 규합,대한군정서 총재로/「김좌진전투부대」의 최고지도자… 흑하사변으로 동지 잃자 자결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백포 서일선생이 선정됐다.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서일선생은 만주지역에서의 항일무장투쟁을 가장 적극적으로 전개,청산리전투의 실질적 주도자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교육자·종교인·언론이기도한 선생은 1921년 소위 흑하사변으로 동지들을 잃자 자결로 민족에 사죄했다.정부는 지난 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다.백포의 짧은 생애를 되새겨 본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청산리전투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서일선생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일제를 깨부술 수 있는 것은 힘뿐이라고 믿었던 젊은 혁명가,그 힘은 강고한 정신력과 무장을 바탕으로 나온다고 생각한 지휘관이 서일선생이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교단에서 백묵가루를 마시던 약골의 선비 서일을 무장독립운동가로 변신시킨 것은 무엇인가. 그는 41세의 짧은 생애 강운데 나중 10년을 백두산과 만주벌판을 누볐다.그 마지막 10년동안 흘린 피와 땀과 사자후가 희미하게 역사에 남아 있다. 혁명가 서일선생에 대한 흔치않은 증언과 색깔 바랜 기록들이 아쉽긴 하지만 그의 이름은 청산리전투와 함께 우리 역사에 영원히 남겨질 것이다. 고향과 가족을 등진채 산악과 벌판에서 풍손로숙한 이름 모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저승에서도 서일선생을 떠받들고 있을 것이다. 선생은 1881년(고종18년)2월26일 함경북도 경원군 안농면 김희동 농가에서 태어났다.호는 백포. ○월북 경원서 출생 처음 이름은 기학이라 했지만 나중에 일로 바꿨다(대종교·보훈처 기록).18세까지 향리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신학문에 뜻을 두고 경성에 있던 성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이로부터 후학을 기르는데 전념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나중 그의 행적을 미루어 보아 식민지 젊은이들의 의와 기를 살리는데 앞장섰으리라생각될 뿐이다. 그러나 그의 20대는 날이 갈수록 어두운 색깔로 채색되어갔다.혈기왕성했던 스물다섯에 을사보호조약 체결을 겪었고 서른에는 망국의 경술국치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내와 망명지 만주등에는 사립학교 설립이 급증했다.이는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교육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선지자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선생역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음에 틀림없다.그러나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망명후 선생이 교육에 정신(대종교)과 힘(무장투쟁)을 융합시킨 사실이 그 증거이다. 31세때(1911년)선생은 국내에서의 항일투쟁의 어려움과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통분해하며 당시 지사들이 많이 망명해있던 동만주 왕청현으로 떠났다.만주지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 10년의 시작이었다. 그는 한승점이 설립한 대종교계통의 명동학교(왕청 덕원리소재)에서 물밀듯 이주해오는 한인자녀들을 가르치며 조국독립의 강한 의지를 불붙여 주었다(이 명동학교를 서일선생이 설립했다는 설도 있지만 기록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이듬해 10월 선생은 대종교에 귀의한다.홍익인간의 이념을 추구·실행하는 대종교 정신은 벌판을 누비던 독립군들에게 막강한 정신력을 주게된다.선생이 단순한 무장독립운동가가 아닌 교육자·종교인·언론인으로도 평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두만강을 넘어 망명해오는 열혈청년들이 줄을 이을 때 서일선생은 북간도 일대에서 대일항전을 노리는 의병들과 규합,중광단을 조직했다.단장에 취임한 그는 무력항쟁의 기틀을 잡기위한 체제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대종교의 이념계승에도 몰두했다. ○대종교에 귀의 그는 대종교 입교후 포교에도 나서 3년동안 동만주 북만주 연해주 함경도 일대에서 10여만의 교우를 얻어 「도력이 큰 도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서일선생은 교우들중 젊은 청년들은 독립군으로 편입시키고 일반교우에게는 군량 조달등 다른 직무를 부여했다. 독립군에 편성된 청년들의 강고한 정신무장을 위해 한배검에 귀의케한 탓으로 후일 그가 총재로 지휘한 북로군정서(대한군정서)의 장병은 거의가 대종교인이었다.선생은 교도들을 중심으로 독립군 양성에 주력했는데 신도 1만5천명을 모아놓고 「독립군 양성기금으로 1인1원씩 거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대종교를 독립운동의 기지로 삼았음이 틀림없다.이 사이 선생은 「오대종지강연」「도해」「신화강의」「진이도설」「삼문일답」「회삼경」등 경전도 저술했다. 당시 선생은 중광단등을 통해 대일무장투쟁을 추구했으나 재정문제등 조직적 체제가 구축되지 않아 실질적 군사투쟁은 전개하지 못했다.이에 선생은 수많은 독립군및 운동단체 결집을 위해 1918년 김좌진 김동삼 신팔균 손일민 신채호등 39인 연서로 「무오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이와함께 강도 높은 전투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일민보」「신국보」등 신문을 발간,『일제와의 항쟁은 혈전을 벌이는 피의 전투 밖에 없다』는 논조를 내세웠다. 이듬해 1919년7월부터 청산리전투가 전개된 1920년10월까지 선생은 중광단을 확대·개편한 대한정의단→대한군정부→북로군정서등 독립군단을 이끌었다.정규병력 1천5백여명을 청산리전투주역인 사관으로 양성하고 러시아·체코군으로부터 3만여정의 무기도 확보했다. 이처럼 군정서가 힘을 갖추기 시작하자 일제는 상당히 겁을 먹고 주목했는데,그들은 「북간도지방의 항일단체 상황」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일제정규군 3천3백여명이 사살 당하는 청산리전투를 짐승처럼 예감하고 있었다. ○일군 3천명 사살 『…군정서는 서대파구에 근거를 두고 서일이 통솔한 단체로서 대부분 단군교도(대종교)이다.…그들 행동은 극히 흉포하여 부단히 선내지에 대한 무력침습을 양언하고 있다.…총재는 서일,부총재 현천묵,사령관 김좌진,부사령관 김성,참모장 나중소등이다.…일단 유사시에는 명령일하 동원소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청산리전투후 여러개의 독립군단들은 일제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영 밀산으로 이동한다.여기에서 북로군정서(서일)·대한독립단(홍범도)등 10개 부대는 전만주 3천5백 병력을 통합한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고,선생이 총재로 추대되었다.부대편성을 마친 독립군단은 이듬해 정월 우수리강을 건너 시베리아로 이동했다. 그러나 「소련영토 안에 일본에 대적하는 독립군을 육성하면 양국간 우호관계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라는 일공사 요시자와의 위협에 소련은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강요하는 소위 「흑하사변」이라는 참변이 발발해 독립군은 힘을 잃었다.여기에 토비들의 습격까지 겹쳤다. 수많은 동포와 청년독립군들이 희생을 당했다.비분강개한 선생은 8월28일 마을 뒷산 산림 속에서 대종교의 폐기법으로 자결순국했다.41세 독립운동가가 남긴 유언은 처절하다. 『조국광복을 위해 생사를 함께 하기로 맹세한 동지들을 모두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살아서 조국과 동포를 대하리오.차리라 이 목숨을 버려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역사적 평가/독립운동가·교육가로 큰 발자취/신재홍 국사편편찬위 부장 백포 서일선생은 그가 민족운동사에서 차지 하고 있는 위상에 비하여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일찍이 민족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몸소 이를 실천한 교육자이며 또 민족정신 앙양을 목적으로 한 대종교의 간부일뿐아니라 만주에서 일제와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군 지도자였다. 그의 학력은 함북 경성군에 위치한 성일학교 사범과를 나온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민족혼을 살리는 길은 교육에 있음을 인식하여 향리에서 교편생활을 하였으며 1910년 일제가 주권을 강탈하자 북만주로 망명하여 그곳에 명동 동일 학성 동신 동화 양성학교를 설립하여 구국인재 양성에 헌신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제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강인한 민족혼의 배양에 있다고 확신하였고 이를 위하여는 국조단군을 숭상하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깨우치는데 있다 하여 민족종교인 대종교에 귀의 하였다.대종교의 포교가 바로 민주운동이요 독립운동임을 믿어 교리연구과 포교에도 힘써 많은 저술을 남긴 민족종교의 지도자였다. 선생의 활동에서 특기할 것은 무엇보다 무장항일운동에 있었다.선생은 일제를 우리 국토에서 구축하고 주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로지 일제와의 혈전에 있다하여 무장항일운동 단체인 중광단 대한정의단을 조직,활동하였고 1919년에는 여러 무장단체를규합하여 북로군정서를 설립하였다.이 단체는 민족정신이 투철한 대종교 신자가 중심이 된 단체로서 재만 독립군중 최강의 부대였다.따라서 1920년 이 부대가 이룩한 청산리전투의 위업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 지지 않았음을 인식하여야 한다.이것은 선생이 배양한 투철한 민족혼과 강인한 항일의식이 그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민족교육가이며 민족종교가로서 또한 무장항일운동의 지도자로 선생이 민족운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수가 있다.
  • 첫 금 조국에 안겨준 여사격 여갑순(92금/영광의 얼굴)

    ◎“태극마크 1년”… 무서운 여고3년생/“정조준 6년” 승부욕 강한 신데렐라/4월 프레올림픽 은… 「황금총잡이」 탄생 예약 한국사격의 ‘신데렐라’여갑순(서울체고 3년)은 ‘바르셀로나의 꽃’이었다. 바르셀로나올림피아드에 걸린 257개의 금메달중 동방에서 온 18세의 ‘꼬마총잡이’가 ‘마수걸이’금메달을 명중시키는 순간 올림픽 패밀리는 ‘원더풀’을 연발하며 그녀의 화려한 스타탄생을 축하해 주었다. 지난 4월28일 이곳에서 벌어졌던 프레올림픽 마당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세계 사격계로부터 ‘황색 태풍의 눈’이라는 찬사를 받은지 꼭 100일만의 영광이었다. 여갑순의 이번 금메달은 출범 37년 한국사격사상 최대의 쾌거로 평가된다.56멜버른올림픽 처녀출전 이후 36년동안 곱씹어야 했던 ‘노골드’의 한을 ‘태극마크’를 단지 1년밖에 안되는 막내둥이가 말끔히 씻어냈기 때문이다.그것도 한국올림픽사에 영원히 기억될 가장 빠른 금메달리스트로 등재되면서. 여갑순의 이번 쾌거는 지난 84년 LA올림픽부터 뒤늦게 출전하긴 했으나 두번 모두 10위권 밖에 머물렀던 여자사격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여갑순은 또 한국올림픽도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여고생 금메달계보’를 이었다는 면에서도 값진 결실을 얻었다.84LA대회에서 여자 최초의 금메달을 따냈던 양궁의 서향순(당시 광주여고 재학중)과 88서울올림픽서 2관왕의 신화를 창조했던 김수녕(당시 청주여고 재학중)에 이어 세번째 ‘여고생’금메달리스트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다. 27일 하오 역도의 전병관에게 첫 금메달을 기대해왔던 한국선수단으로서도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농도가 낮았던 여자사격에서 하루 먼저 나온 이 여고생 다크호스의 ‘벼락’금메달’을 이번 대회 금메달 퍼레이드를 예고하는 길조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갑순은 청량여중에 입학때인 지난 87년 3월 체육교사의 권유와 총에 대한 매력으로 사격에 입문했으며 3학년때 여중 최고선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여갑순은 지난해 8월 최연소 국가대표로 뽑혀 북경아시아선수권에 출전할 때만 해도 가다듬어지지않은 ‘미완의 대기’였다.선배들의 경기경험을 무서우리만치 대담한 투지와 승부근성으로 뛰어 넘었다.첫 국제무대였던 북경대회에서 본선을 2위로 통과했으나 뒷심이 달려 4위로 밀려나자 선배 진순영을 붙잡고 눈이 붓도록 울었을 정도로 투지가 당차다. 대표팀에서 체계적인 조련을 거친 여갑순은 올들어 자신의 최고기록을 3점이나 끌어올리며 최종 선발전때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하는 등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왔다. 여자공기소총 올림픽대표 1순위로 선발돼 처음 출전한 세계무대인 프레올림픽에서 단번에 은메달을 차지,한국여자사격 세계무대출전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둔 여갑순은 올림픽 전초전이 된 프레올림픽및 줄,뮌헨월드컵서 유일하게 연속 8강결선에 올라 각국 코칭스태프들의 경계대상 1호로 지목됐었다.프레올림픽 결선에서는 막판에 쥐가 나는 고비를 강한 정신력으로 극복,‘희망봉’으로서의 두터운 신뢰감을 주기도 했다. 한국사격의 ‘샛별’로 떠올라 바르셀로나에 와서는 선배들이 이루지 못한 숙원을 풀어준 여갑순의 이번 장거는 ‘무서운 아이’로 평가했던 세계 사격계를 다시 한번 경악케 한 ‘혁명’임에 틀림없다.
  • “36년 정상도전” 바르셀로나서 실현/사격 올림픽 금 따기까지

    ◎56년 「멜버른」이래 고작 은에 머물러/76년이후 집중육성… 「메달박스」 전망 한국사격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기 까지는 무려 36년이 걸렸다. 지난 55년 2월6일 대한사격연맹을 창설,국제사격연맹(UIT)으로 부터 임시회원국 자격을 얻어 이듬해 추화일,김윤기 등 단 2명만을 멜버른올림픽에 처녀출전시킨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그동안 서방 세계의 보이콧으로 인해 불참한 80모스크바올림픽을 제외하고 줄곧 선수단 규모를 늘려왔던 한국사격은 이번엔 4년전 서울대회때 보다 45%가 적은 12명의 대표를 파견,금메달의 값진 수확을 거둬 질적인 성장을 입증시켰다. 이번 바르셀로나 금메달도전 이전 까지의 최고 성적은 은메달.4년전 서울 홈무대에서 당시 88사격단소속 차영철이 소구경 소총 복사에서 체코의 바르가에게 아깝게 1.1점차로 뒤져 2위에 머물렀던 것. 그러나 차영철을 제외하곤 지금껏 메달권에 진입한 사례가 없을 정도로 올림픽에서 한국사격은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 64도쿄올림픽에서 안재송이 자유권총서 9위에 랭크됐으나 이후 76년 몬트리올대회때까진 오히려 최고 성적이 뒷걸음치는 침체기를 맞기도 했다.몬트리올대회에선 당시 아시아 ‘피스톨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박종길마저 15위에 그쳤을 뿐이었다. 8년뒤 상황은 호전됐지만 여전히 메달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여자대표들이 처음 가세한 LA대회에서 박종길의 뒤를 이은 양충렬이 속사권총서 그때까지 최고성적인 5위에 랭크됐고 여자권총의 문양자는 10위에 머물렀다. 처음 결선(8강)시스템이 도입됐던 서울올림픽에서는 개최국 자동출전의 이점을 살려 22명의 매머드선수단을 출전시켰으나 차영철을 포함,고작 2명만이 결선무대에 올라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은 엔트리 제한에 따라 올림픽 2년전부터 출전쿼터경쟁을 벌여야 하는 ‘적자생존의 원리’에 차츰 항생력을 기르면서 금메달 도전의 발판을 다져왔다.그 분기점이 된 것은 90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소구경 소총서 이은철이 한국사격사상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며 2관왕에 등극했던 것. 그 이후 각종 월드컵대회에 출전,꾸준히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경험을 축적해 온 한국은 92프레올림픽에선 은메달 2개를 따내면서 이번 쾌거를 예고하기도했다. 지난 62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서 남상완의 첫 금메달 획득에 이어 72년 국내에서 처음 열린 국제대회인 제2회 아시아선수권대회서 종합우승한 뒤 아시아권에서 독주를 거듭하던 한국은 80년대들어 중국,북한에 밀려나기도 했지만 78년 세계선수권(은3,동5)의 서울유치를 전환점으로 전략종목으로 집중육성,소총부문에선 세계 정상권에 도달해 있다는 평을 받았다. 총포 화약류단속법 등 상존하는 사격환경의 상대적인 불리함을 딛고 세계 강호들과의 경쟁에서 강한 정신력으로 승부를 걸어야했던 한국사격은 이번의 값진 결실을 발판삼아 장비의 과학화,해외교류확대,선진기술의 신속한 도입 등 재도약을 위한 투자와 설계를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국교생 23명 도보 국토순례(단신패트롤)

    ◎동해∼인천 400㎞ 대장정 ◇국민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어린이 23명으로 구성된 「어깨동무 국토순례단」이 25일 하오1시 서울 성동구 능동 어린이회관에서 발대식을 갇고 4백㎞의 국토횡단순례길에 올랐다.(사진) 이번 행사는 재단법인 육영재단(이사장 박근영·38)이 개관 22돌을 맞아 부모들의 과보호속에 자라는 심약하고 인내심이 모자라는 어린이들에게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주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어린이들은 이날 강원도로 가 27일 새벽 동해시 이웃 백봉령을 출발,도보행진으로 국토를 횡단하게 된다. 이들은 행군도중 식사는 4개조로 나뉘어 스스로 해결하며 지도교사 7명의 인솔아래 하루 25㎞씩 강행군해 평창·양평·서울 여의도를 거쳐 다음달 10일 인천 자유공원에 도착한다.
  • 6·25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참전·전후세대 좌담

    ◎“통일의지 가다듬는 「역사의 거울」삼아야”/「상잔의 비극」 잊으면 제2불행 초래/“젊은층 북한 몰라… 통일 접근 신중히”/깨어있는 젊은이 많아야 한반도 앞날 밝아 6·25동란 42돌을 맞았다.전쟁이 일어난뒤 강산이 네번이나 바뀌고 당시 태어난 사람들은 이제 장년이 되어 사회각분야에서 중견으로 활약하고 있다.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아직도 동족상잔의 비극이 생생한데 젊은 세대에게는 6·25가 한낱 역사속의 「사건」으로만 여겨져 가고 있다.인공기가 내걸리고 북한의 상투적인 구호가 그대로 외쳐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6·25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며 또 무엇을 배울것인가.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후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6·25의 참뜻을 되새겨본다. ▷참석자◁ ▲배명오씨(63·전 국방대학원 교수) ▲김용승씨(53·월간 「한사랑」 주필) ▲박현정양(21·동덕여대 의상학과 3년) ▲배명오교수=전쟁의 비참한 날들이 아직 생생하고 6·25의 상처가 다 아물었다 할 수 없는데 벌써 42년이 흘러갔습니다.저는 서울대 3학년 재학중 6·25가나 바로 육군종합학교에 입학했다가 참전했습니다.숱한 격전을 치르며 살아남은게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해마다 6월만 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6·25가 역사 속으로 묻혀가며 잊혀지는게 섭섭하고 우리 국민의 80%나 되는 전후세대들이 북한을 너무 모르는게 안타깝고 국민들의 성급한 통일욕구가 불만스럽기 때문입니다. ▲김용승주필=저는 국민학교 6학년때 전쟁을 맞았습니다.지긋지긋했던 피란살이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전후세대가 들으면 「또 고리타분한 이야기하는구나」하며 외면할지 모르지만 저는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자』는 것을 강조합니다.누가 누구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인가를 생각해야 된다고 믿습니다. 개인이 잘 되려면 웃어른을 잘 모셔야 되듯 나라도 공세운 유공자들을 위해야 잘되는 것입니다.이 말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로부터 대접받자는 뜻이 아닙니다. 요즈음은 축구만 잘해도 국가가 예우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참전세대는 어림잡아 1백59여만명 되는데 이 가운데 47만명이 생존해 있습니다.특히 전쟁부상자 1백10명은 보훈병원에서 40여년을 보내고 있습니다.이들의 영예를 선양해 줄 때 국민적 구심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박현정양=저는 솔직히 이런 자리가 어색해요.부끄러운 말씀이지만 6·25에 대한 인식도 매우 적었습니다. 과연 6·25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저는 당혹스럽습니다.대학생활을 하면서도 이데올로기의 홍수에 혼돈을 느끼고 있습니다.난롯불에 직접 손을 덴 사람과 그저 막연히 「아,뜨겁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국민학교때에는 학교에서 「상기하자,6·25」라며 표어를 만들고 포스터를 그리기만 했을 뿐입니다.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선 그런 막연한 개념들을 자연히 잊어버렸습니다. ▲배교수=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세력의 중간에 위치,항상 그 영향을 받게 돼있습니다.우리가 한반도에서 생존하는 한 현재는 물론 2000년 이후에도 전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항상 있습니다.이 때문에 우리는 6·25전쟁을 망각해선 안됩니다. 서울을 보십시오.「세계적 대도시」라고들 합니다만 그게 자랑거리가 안됩니다.많은 안보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서울은 너무 밀집되어 있습니다.그리고 자본주의의 좋은 점보다도 취약한 요소들이 도처에 많습니다. 안보·국방은 더욱 투철히 해두어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주필=통계에서 보면 우리민족이 9백여차례나 외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고 합니다.여기에서 우리는 더이상 전쟁이 되풀이 되어선 안된다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설명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또 과거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는 인도속담은 우리에게 던지는 경구입니다.우리민족의 역사의식은 유감스럽게도 매우 약합니다.전쟁이 끝난지 불과 39년입니다.그런데 현재 우리국민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 평화의 집앞에는 이런 비문이 있습니다. 「그들을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잊을 수는 없다」무서운 경구입니다.평화를 지키는 힘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망각하지 않는 국민의식이 더욱 중요합니다. ▲박양=두분께서 저희 젊은 세대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해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자본주의의 영향탓인지 물질만능에 젖어 정신적인 것을 많이 잃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 젊은이들은 깨어 있는 정신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요.각자 개인들이 작은 일부터 질서를 지키고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교수=좋은 말입니다.민족혼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들도 많다고 봅니다.박수갈채를 보낼만한 훌륭한 젊은이들도 많아 한편으로는 마음든든합니다. 그들의 의식이 깨어 있는 한 우리민족의 통일에 대한 미래는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통일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국민들을 공연히 들뜨게 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러나 최근 우리의 통일정책은 너무 양보하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과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주필=통일 문제를 논의할 때 우리 국민의 교육열이 높다는 사실도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높은 교육열을 잘만 활용하면 통일문제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접근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 최근 우리 것을 찾자는 움직임이 각계에서 번지고 있는 데 이것도 제대로 방향을 잡아주면 민족통일문제와 접목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양=역사는 항상 되풀이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6·25는 우리에게 역사적인 거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이 불행했던 과거를 배우고 익혀서 다시는 민족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것 찾기,우리 물건쓰기운동도 한창인데 이럴때 애국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시키면서 국민의 정신력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6·25가 우리에게 건전한 의식을 갖게 해주는 역사적 거울로 우리에게 다가설 수 있다고 봐요. ▲배교수=통일문제와 관련해 최근 우리 체제만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 유감스럽습니다.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론을 제기하고픈 생각이에요.우리의 현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한반도에서의 통일은 대한민국 주도하에 이뤄져야 하며 체제와 이념은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둬야 할 것입니다.▲김주필=우리에게 있어서 내부의 갈등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 점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내부의 갈등을 해소하고 순화시키는 노력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한 방법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배교수=젊은이들은 남북고위급 회담차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들의 미소와 유연한 자세를 보았을 것입니다.그러나 그 온화한 미소뒤에는 지난 5월22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비무장지대에 침투한 북한 무장침투조의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박양=동족상잔의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힘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보며 경제성장과 함께 정신적 가치관의 확립이야 말로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초중고생 방학과제 대폭 줄인다/체험·근로학습 위주로 전환

    ◎교육부 지침마련/지역활동·농촌봉사등 적극유도/문제풀이 베끼기등의 병폐시정/건전심성 계발·호연지기 기르게 교육부는 오는 7월중순부터 시작되는 올 여름방학에 초·중고생의 방학과제를 크게 줄이는 대신 자연체험과 지역사회봉사,근로학습등을 새로운 방학과제로 제시키로 했다. 교육부는 14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하는 올여름 방학과제 부과지침 「보람있는 방학생활」을 마련,오는 30일부터 7월초사이에 소집될 전국 초·중·고 교과지도 장학관회의에서 시달키로 했다. 교육부의 이같은 방침은 교과위주의 방학과제물을 크게 줄여줌으로써 학생들이 자연속에서 직접 체험할수 있게 해 학습효과를 오히려 높일수 있다는 그간의 방학과제물 지도에 대한 자체평가 결과에 따른 것이다. 개선된 방학과제 부과 지침에 따르면 올여름 방학과제는 교과내용과 접목된 주제나 소재로 글짓기,그림그리기,만들기,독후감쓰기,기행문쓰기등의 유형으로 전환토록하고 있다. 교육부는 또 학생들의 근로정신 함양과 우리것 사랑하기 교육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흙을 만지고 느끼고 알게 하는 교육」의 실습장으로 방학을 적극 활용토록 지도한다는 방침에 따라방학중 학생들의 지역사회 봉사활동,농촌고향 찾아 봉사하기,향토반 운용등을 적극 유도키로 했다. 교육부는 방학생활지침개선을 통해 과다한 방학과제에 따른 폐단 시정과 함께 학생들의 건전한 정신력 배양이라는 두가지 교육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간 방학과제는 교과서의 일부분을 노트에 적어오게 하는등 암기위주의 주입식 내용이 많고 학생 스스로의 해결능력 한계를 넘어 과목마다 과중하게 부과돼 학부모등이 학생들의 과제를 대신 해주거나,문방구에서 나오는 문제풀이 등을 그대로 베껴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교육부의 방학과제 개선방침은 학생들의 건전한 심성을 계발하고 호연지기를 기르게 하자는 의도도 깔려있다. 교육부는 특히 자연체험을 폭넓은 인격형성의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최근 성적을 비관한 자살소동 등 무기력 증후군이나 과외와 학원수강 의존적인 학습태도등 주입식 학교교육에서 비롯된 병폐들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는데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와관련 교육부의 한 장학지도 관계자는 『「보람있는 방학생활」지침이 궁극적으로는 교과서의 학습내용을 자연체험속에서 재확인시켜줌으로써 학습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높여주자는게 교육목표인만큼 방학과제를 대폭 줄인다고 해서 학생들이 학습을 게을리하는 방향으로 운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왕과 동양란/윤시향 원광대교수·독문학(굄돌)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자식사랑이 지극한 민족도 드물 것 같다.일찍이 어떤 시인은 『나는 왕이로소이다.나는 왕이로소이다.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이라는 시를 짓기도 했고,TV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노래가 캠페인송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그러나 왕은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도록 그에 걸맞는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힘든 일은 모두 부모가 대신하고 아이들에게는 편하고 쉬운 일만 시키고 영양가 높은 음식만 먹여서 요즘 그렇게 비만아가 많다고 한다.그러면서도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준다고 일부러 며칠씩 극기훈련이라는 것을 보내기도 한다니 모를 일이다. 대학생들을 보아도 극단적으로 과격하지 않으면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MT라면 단체훈련인 터인데,산으로 MT라면서 등산을 가는 경우에도 그렇다.오랜만에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기분이 상쾌할 것 같은데 태반의 학생들이 산아래에서 놀면서 마시고 쉬기를 원한다.「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을 기피하려는 소위 3D현상이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는데 그들인들 어찌 예외이랴.주목할 사실은 군대에 갔다 온 상급생들까지도 하급생 후배를 보고 「세대차」를 느낄 정도로 이런 현상이 급속히 파급된다는 것이다.이런 현상은 물론 결코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다.전반적 사회현상과 가족이기주의 등에서 오는 가정교육의 잘못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몇년 전에 어쩌다 동양란 화분이 하나 생겼다.초심자인 나로서는 열심히 가꾸겠다고 부지런히 물을 주고 햇볕 잘 비치는 따뜻한 곳에만 두었더니 얼마간은 잎이 더 무성하게 자라는가 싶었는데 어느날 잎사귀들이 꺼멓게 죽기 시작하는 것이었다.알고 보니 동양란은 물을 너무 자주 주지 말고 겨울에도 오히려 추운 듯한 곳에 두어야 향기롭고 품위있는 꽃을 피운단다.꽃나무들도 춥고 혹독한 겨울을 넘겨야 그 이듬해 꽃색깔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답다고 한다.우리의 아이들,청소년들도 향기롭고 고귀한 꽃을 피우려면 동양란처럼 키워야 하지 않을까.
  • 여인 3대의 비극적 삶 묘사/유안진장편 다시우는새(이작가 이작품)

    ◎부계사회 상처받는 여성현실 고발/절제된 문체·풍부한 내용이 돋보여/「계간문예」 연재 끝내… 이달중 단행본으로 출간 시인,수필가에 이어 소설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유안진씨(51·서울대 가정대교수)가 장편소설 「다시 우는 새」의 「계간문예」연재를 마쳤다. 순수계간문학지 「계간문예」91년 겨울호부터 올 여름호에 걸쳐 3회간 분재되었던 이 작품은 첫 소설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저자의 두번째 소설로 큰 관심을 모았다.절제된 문체와 쉴새 없는 스토리 전개로 유씨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은 여인 3대의 비극의 운명적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꽃…」의 속편격으로 읽혀진다. 『역사상 피해자일 수밖에 없었던 여인들이 주어진 운명적 조건을 극복,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정립해가는 과정에서 성공과 좌절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소설 「다시 우는 새」는 일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선화와 그소생인 을희·문희 자매,을희의 고명딸 자명 등 여인 3대의 순탄치 못한 삶의 역정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양반가문의 딸로서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상대적 상대적으로 기울어지는 집안에 서둘러 시집갔던 선화는 혼인후 나무랄데 없는 부덕을 보이나 자매를 낳은 뒤 득남하지 못하자 남편이 취첩,후반 생애를 불행속에 보내다가 병사한다.그녀의 딸 을희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문재를 보인데 더해 총명하고 자상한 남편을 만났으나 6·25직후 공비출몰로 남편이 비명횡사하자 운면이 급변한다.사려깊은 시아버지의 배려로 건장한 상민에게 보쌈질당해 개가해던 올희는 그러나 부부간의 교육수준차이로 불화,취첩한 남편으로부터 버림받는다. 아버지의 취첩으로 일찍이 반항의 길을 걸었던 문희는 동료교사와의 동거로 임신한 후 언니의 개가를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는 동료교사와 헤어져 혼자 아이를 낳고 북수와 자수성가의 독신녀의 길을 택한다. 을희의 딸 자명은 여고시절 불어교사와 관계를 가진뒤 버림을 받고 그 교사 장인의 재취녀가 되어 복수하고 방황하다가 한 이상적인남자를 만나 동거하지만 사내아이를 출산한 끝에 숨진다. 이같은 3대 네 여인의 모전녀전의 불운한 삶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다소 작위적인 스토리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보수적인 도덕률과 관습에 얽매였던 전근대사회의 보편적인 삶의 한 양상과 결코 멀지 않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는다.어떻게 보면 전근대사회의 비합리적인 폐습들이 아직도 남아 우리를 옥죄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현실에서 작가의 자전적 요소를 개입시키고 있는 이 소설의 문학적 진정성은 돋보인다.이 소설에서 여인 3대를 불행으로 이끄는 유처취처,개가의 터부시 등 남성본위의 습속과 남성의 이기심이다.달라진 시대에 있어 지나간 풍속을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그것이 여성의 비극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그 고통인 이중적이다. 그럼에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극본방식은 풍속과 제도에 대한 질타로 쏠리고 있어 이채롭다.등장인물들의 유처취처나 개가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비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저인 것으로 남성본위적인 제도나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으로까지 나아가진 못하고 있다.그로 인해 등장인물들은 주공격대상을 잃고 방황하는 셈이다.문희와 자명이 배신한 남성을 복수하고 이르는 자기회의가 그것들이다.이는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으나 전근대적 습속이 체화되어 있는 작가자신의 정직한 반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복수로 더렵혀진 자신들은 끝내 가정을 이룰 수 없다는 문희와 자명의 논리를 통해 작가는 새삽 가정의 소중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에 주어진 불리한 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해선 한국여인들의 강인한 정신력을 물려받은 여성부터가 의식이 깨어서 작은 용기로써 하나하나 잘못들을 고쳐나가야 하다』고 말하는 유씨는 아프로 그같은 주체적인 여성관을 작품속에 반영하는 과제를 남기고 있다.소설 「다시 우는 새」는 6월중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 한인들 폐허속 재건의지에 감명/부시,LA 교포방송 방문 메시지

    ◎「미국의 꿈」 되찾게 복구지원 최선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7일 한국교민대표단을 만나기 앞서 라디오코리아 스튜디오에 직접 들러 한인교민들에 대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5분간에 걸쳐 LA전역에 생중계된 메시지를 통해 부시대통령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도 폭동직후 타운재건을 위해 힘쓰는 한인들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하고 『한인들의 재건노력에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그가 발표한 메시지 전문이다. 『우선 나는 한인들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았습니다. 엄청난 피해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굳건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한인들의 서로 돕는 모습이 대단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정신입니다. 이번 상황을 보고 연방정부가 반드시 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자원은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아메리칸드림을 되찾게 하기위해 반드시 도울 것입니다. 한인지도자에게 바라는 것은 인종과 문화를 떠나 피해극복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와 열심히 일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재산을 파괴하는 것은 공정치 못합니다. 때문에 미국의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또 도움을 줘야합니다. 나의 재임기간중 한미 관계는 대단히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곳 교포들이 미국정부로부터 보호받지못했다는 사실이 한국에 전달되면 이것은 대통령의 무책임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나는 이번 사태가 절대로 미국의 방식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수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일이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이번처럼 한인타운에서 사태가 발생할 때면 만사를 제쳐놓고 신경을 쓰겠습니다. 오늘 나는 상당한 감명을 받았고 한인들의 재건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거듭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강동석 항만청장/교통행정 전문가/차관급 11명의 얼굴

    교통행정분야에서 26년간 봉직해온 행정고시 출신의 전문직업관료.지난 12대 국회 후반 민정당 교통전문위원에서 교통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정부내 최고참 기획관리실장. 지난해 정기국회 밤샘 예산심의때는 「효소절식」을 하면서 버텨낼 정도로 정신력이 대단.부인 이홍자씨(55)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으며 취미는 등산과 클래식음악감상.
  • 외언내언

    『국가가 조국은 아니다.국가와 조국을 혼동하는 것은 그것에 의해 돈을 버는 무리들뿐이다』­로맹 롤랑이 했던 독설.자연스럽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땅과 권력의지가 재개된 삶의 땅을 구별하려 했던 듯하다.◆우주의 미아로 세계적 관심을 모았던 구소련 우주정거장 미르호 조종사 세르게이 크리칼료프가 지구로 돌아왔다.우주 공간을 떠돌던 크리칼료프야 말로 조국과 고향을 뼈저리게 느꼈을 사람.그를 하늘로 쏘아올린 국가는 이미 없어졌다.국가가 없어졌기에 반년 가까이 미아 신세가 되었던 것.그는 우주공간에서 생각했을때의 조국으로 돌아온 셈이다.그 조국도 사실은 새로운 국가가 되어 있지만.◆그는 지상요원들이 건네준 소금 냄새를 맡고서야 현기증을 가라앉힌 것으로 보도된다.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면서 새로운 현기증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닐는지.즉,그동안 일본·영국·오스트리아의 지원으로 미르호가 운영되어 왔다는 것,독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서야 교대 우주선을 발사할 수 있었다는 것,자기 대신 미르호를 조종하고 있는 조종사들도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지구귀환이 가능해진다는 것 등등.◆지난해 5월 지구를 떠난 크리칼료프.그래서 우주체류 날짜는 3백13일이된다.심신의 고통이 적지 않았으련만 「놀라울 만큼」건강하다니 대단한 정신력.그동안 우주에 버려진데 대한 항의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도 따랐다.하지만 지난달에는 독립국가연합(CIS)의 한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서 충실한 임무수행과 건강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안심시킨바도 있다.◆동화속의 주인공과도 같은 구소련의 우주조종사.먼 나라에 갔다 왔더니 낫과 망치의 적기가 없어진 딴세상이 아닌가.조국은 여전하건만 국가는 바뀐 것.아무튼 무사귀환은 기쁜 일이다.
  • 상의 창립 107돌 기념 심포지엄 중계

    대한상공회의소 창립 1백7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30일 대한상의 국제회의실에서 상공인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김우중대우그룹회장이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한국기업의 도전과 전략」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했고 구본호한국개발연구원장이 「신국제경제질서와 한국경제의 진로」,김영욱생산기술연구원장이 「우리나라의 산업기술,오늘의 수준과 과제」,박세일서울대교수가 「산업활력을 위한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방안」이라는 주제발표를 했다.김우중회장과 구본호원장의 발표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한국기업의 도전과 전략」/김우중 대우그룹회장/“아시아시장 통합에 대비하자”/「열심히 일하기」 우리 발전원리 되살려야 최근 우리의 모습을 보면 전체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느껴지며 눈에 보이는 사소한 잘못들이 개선되지 않은 채 방치됨에 따라 이제는 성장을 주도해온 경제마저 주춤거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우리가 이처럼 왜곡된 현실에 직면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모든 국민들의 의식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데서 비롯되고 있다.그중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것」을 최고의 발전원리로 삼았던 우리민족 고유의 강인한 정신력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안타깝다. 현재 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품질이 나빠지는 이유도 그만큼 일을 게을리하고 이에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집단이기주의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제조업체의 설비가동률은 70%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으며 일할 사람이 없고 있는 사람마저도 일하기를 싫어하고 있다. 우리의 사정은 이러한데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국제환경은 과거의 「집단안보체제」를 대신해 경제블록으로 표현되는 「집단지역경제체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에 60% 가까운 수출의존도를 보이는 우리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으며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병처럼 번져가는 블록화 추세가 필연적으로 아시아블록의 형성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도 이에대한 명확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아시아시장의 통합은 중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이에대한 적극적인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남북통일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도약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통일을 이룩할 경우 비단 북한시장만이 아니라 만주와 몽골·중국·소련까지도 시장개척이 가능해져 3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시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차원에서도 새로운 전략과 사고로 대처해 나가야 하는 한편 사회전체적으로도 경제를 살리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신국제질서와 한국진로」/구본호 KDI원장/“세계경제 다극체제로 바뀐다”/국제화·개방화 맞춰 기업혁신 실현해야 무역의존도가 특히 높은 우리나라는 앞으로 이데올로기시대의 종언,세계경제의 블록화,상호주의적 압력의 팽배,우루과이라운드협상의 향방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것임이 틀림없다. 향후 세계는 냉전체제하의 군사력에 바탕을 둔 힘의 균형으로부터 경제력에 바탕을둔 이해의 균형으로,정치적 양극체제로부터 각국이 경제적 이해를 중시하는 경제적 다극체제로 전환될 전망이다. 이에따라 그동안 세계를 주도해온 미소양극체제는 무너지고 다극체제,특히 일본과 EC의 역할이 증대될 것이다. 이는 다시말해 통신·교통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범세계적 경제교류가 증대됨으로써 세계경제가 하나의 지구촌경제로 변모해 감을 시사하는 것이다. 특히 유럽의 결속강화는 유럽자유무역지역(EFTA)6개국외에 93년1월에는 EC를 통합한 유럽경제지역(EEA)이 창설될 예정이며 궁극적으로는 정치통합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미국과 캐나다는 89년부터 관세와 대부분의 비관세 장벽의 철폐를 내용으로 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으며 멕시코도 이에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비해 아태지역에서의 국가간 경제협력은 아직 비공식적이고 비제도화된 상황이라 하겠다. 또한 우루과이라운드와 다자간 무역협상은 지난해 12월의 브뤼셀회담에서 당초 계획대로 타결짓지는 못했지만 국제무역질서 재정립의 필요성은 각국이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어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결말이 지어져 앞으로 다자간 무역질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90년대 한국경제의 발전목표는 국제화·개방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경제사회의 선진화를 이룩하고 민족통일을 촉진하고 대비하는데 두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산업에 대한 직접적 지원을 지양하고 동시에 금융·조세·토지부문의 제도개혁을 이루고 공정경쟁과 기업혁신을 저해하는 정부규제를 전면적으로 완화시켜 나가야 한다. 한편 시민들의 민주시민의식도 제고하고 집단이기주의도 자제해야 할 것들이다.
  • 「초원의 집」 주인공 랜던/췌장·간암과 사투(세계의 사회면)

    ◎“정신력·식이요법으로 이겨 내겠다”/화학치료 거부에 팬들 격려 잇따라 TV외화 연속극 「초원의집」에서 성실하고 인자한 아버지역으로 출연,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미국의 인기스타 마이클 랜던(54)이 요즘 암을 이겨 내기 위한 정신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다. 랜던이 수술불가능한 췌장 및 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5일. 유타주 휴양지에서 스키를 타던 중 1개월 이상 자신을 괴롭혀온 심한 복통이 재발해 의사의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다. 그러나 랜던은 여느 사람들처럼 실의에 빠지기를 거부한 채 사흘 뒤 기자회견을 자청,앞으로 「정면대결」을 통해 꿋꿋하게 암을 물리쳐 나가겠다고 그를 아끼는 팬들에게 약속했다. 그는 관례적인 화학치료요법을 마다하고 『해낼 수 있다』는 투철한 정신력과 식이요법 및 운동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대담한 자세는 그의 인생역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랜던은 어렸을 때 유난히 키가 작은 꼬마로서 학급 친구들의 놀림을 이겨냈고 젊은 인기배우로서는 한때 빠졌던 약물중독을 극복해 냈으며 후에 노련한 연출가로서도 예술적인 프로의 흥행성을 놓고 제작사 간부들과 씨름을 벌여야만 했다. 어찌 보면 투쟁의 연속이었던 삶을 살아온 그가 이번엔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야만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랜던의 투병은 결코 외롭지 않다. 그를 아끼는 친구 가족 팬 동료들의 성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랜던과 함께 마약추방 캠페인을 벌였던 낸시 레이건 여사는 전화를 걸어 따뜻한 애정을 보냈고 동료배우인 워런 비티와 머브 그리핀도 격려의 전화를 걸어왔다. 췌장암을 발견한 뒤에도 8년이나 더 살고 있는 12살짜리 한 소년은 희망의 편지를 적어 보내왔다. 유명한 부흥전도사인 빌리 그레이엄도 『이 중요한 시기에 랜던과 그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열고 있는 랜던 사무실에 있는 5대의 전화기는 팬들의 격려전화로 하루 종일 거의 쉴 틈이 없다. 복통과 황달등 췌장암 증세가 나타나 발견된 때는 병이 이미 5∼10년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에 수술이 불가능하고 대부분 몇 개월밖에 더 살지 못하지만 정신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통계숫자가 입증하고 있다. 지난 75년 영국에서 56명의 여성 유방암 환자를 정신자세에 따라 분류한 뒤 10년 후에 나타난 결과는 투병의지를 갖고 있는 환자가 10명 중 7명 꼴로 살아 남은 반면 무기력감에 빠진 환자는 5명 중 1명만이 생존했다. 랜던 담당의사도 『암환자가 스스로를 공개할 경우 열화 같은 격려를 받게 되며 이는 투병에 매우 중요한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인간은 스스로 기적을 창조해 나간다』는 랜던의 철학이 전에 없이 관심을 끄는 시점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