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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둑계 전반 ‘알파고 신드롬’ 긍정적… 세돌은 강했다”

    “바둑계 전반 ‘알파고 신드롬’ 긍정적… 세돌은 강했다”

    “바둑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 최고수 이세돌 9단과 최강 인공지능 ‘알파고’의 5번기를 주관한 한국기원의 양재호(53) 사무총장은 “결과는 다소 아쉽지만 이번 대결은 바둑계 전반에 잘된 일”이라고 총평했다. 양 총장은 1980~90년대 맹활약한 프로기사 출신으로 2011년 사무총장에 취임해 행정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선 양 총장은 이 9단의 정신력을 높이 샀다. 그는 “1, 2국은 이 9단이 몹시 힘들었을 것이다. 알파고와의 대결에 앞서 대국도 많았고 알파고 대국과 관련한 이벤트도 많았다”면서 “컨디션이 나쁠 것으로 예상했고 결국 자신의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팬들은 이 9단이 연패로 충격에 휩싸이자 ‘경기를 중단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안타까워했지만 이 9단은 강했다. 프로기사는 모두 강하다”라고 강조했다. 양 총장은 알파고의 기력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는 정체불명이었다. 이 9단의 압승을 점쳤지만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알파고가 바둑을 연구하고 도전한 것 자체가 경이롭고 바둑계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도 알파고의 정확한 실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알파고가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분석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바둑의 정석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알파고의 수가 잘 두지 않는 ‘독특한 수’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수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양 총장은 이 9단이 알파고에 대한 정보가 전무해 사전 대국을 추진했다고 털어놨다. 한국기원은 알파고와의 대국 계약 당시 국내 정상급 프로기사와 대국을 치르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감에 찬 이 9단이 “괜찮다”고 만류해 사전 대국은 논의로 끝났다. 1, 2국에서 이 9단이 당황한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감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계약 당시 ‘리턴 매치’도 논의됐다고 했다. 이 9단이 압승한다는 전제에서다. 하지만 알파고의 승리로 구글이 받아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현재 한국기원이 ‘리벤지 매치’(설욕전)를 요청한 상태다. 양 총장은 이번 대결로 바둑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9단이 연패에 빠졌을 때만해도 우려의 소리가 컸으나 이 9단의 4국 투혼으로 기대감이 훨씬 높아졌다고 안도했다. 양 총장은 “그동안 우리는 전문기사 10여명을 세계에 파견하며 바둑의 세계화와 대중화에 힘썼으나 보급에 애를 먹었다”면서 “하지만 이번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로 전 세계인이 승패와 관계없이 동양의 낭만적인 바둑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어린이 등 바둑 문외한들이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대박’이라고 기뻐했다. 그는 “그동안 바둑은 배우기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졌고 시작한 뒤에도 얼마 못 가 그만두기 일쑤였다”면서 “하지만 인공지능 바둑을 보면서 쉽게 바둑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종전 기사나 강사 교육 대신 인터넷, 스마트폰 등이 바둑을 쉽게 접하고 가르치는 첨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기원도 구체적인 대중화, 세계화 전략을 새로 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터넷 바둑 교육 사업도 서둘러 가동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바둑이 자칫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계심도 내비쳤다. 그는 “인간이 기계에 패한 탓에 바둑의 신비감이 떨어질 수 있다. 바둑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인간이 파헤칠 수 없는 경지”라면서 “깊은 맛이 있는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퇴색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양 총장은 “바둑의 의미, 가치 등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바둑은 인류와 영원히 공존하며 무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씨줄날줄] 부처 멘털/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부처 멘털/최광숙 논설위원

    1972년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체스 세계 챔피언전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대결 중 하나로 꼽힌다. 그동안 소련 독주 체제이던 체스계에 미국의 ‘체스 천재’ 바비 피셔가 무패의 신화를 기록하던 러시아의 ‘체스 황제’ 보리스 스파스키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다. 6세에 체스에 입문해 13세에 미국 체스계를 평정한 바비는 첫 대국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악수를 두면서 스파스키에게 졌다. 다음날 바비는 극도의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2차전에 불참했다. 3차전에 복귀한 바비는 관객과 카메라가 방해된다는 이유로 관객이 없는 곳에서 대결하겠다고 했다. 투숙한 호텔방에도 도청 장치가 있다며 전화기를 분해하고 TV를 떼어 달라고 난리 법석을 떤다. 스파스키 역시 자신이 앉은 의자가 수상쩍다면서 의자에 대한 엑스레이 촬영까지 요구한다. 결국 이상한 물체가 발견됐는데 다름 아닌 죽은 파리 두 마리였다. 당시 냉전 대립이 극에 달했던 시기라 이들의 대회는 개인의 천재성 대결을 넘어 미·소 간의 체제 경쟁으로 비화하면서 선수들을 극한의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다. 두 선수의 ‘기행’은 영화 ‘세기의 매치’에서 실감 나게 그려진다. 체스처럼 골프도 멘털 게임이다. 그래서 상대와의 심리전이 중요하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세계 최정상에 있던 타이거 우즈는 “상대방의 머릿속에 들어가 무너뜨릴 수 있게” 멘털 게임에 집중함으로써 상대 선수를 제압했다. 골프 여제 박인비가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이유 중의 하나도 ‘부처 멘털’, ‘강철 멘털’에 있다. 게임이 잘 풀리든 안 풀리든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여유 있게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한다. ‘조용한 암살자’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어떤 대회에서든 선두를 달리다가 우승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대로 뒤처지다 강한 정신력으로 반전을 꾀하는 일도 있다. 최근 인공지능 알파고와 세기의 바둑 대결을 벌인 이세돌 9단은 “그동안 이토록 심한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에 3연패한 뒤 4번째 대국에서 기보에 없는 창의적인 바둑 한 수로 알파고를 이겼다. 한 치의 오차도, 흔들림이 없을 것 같던 기계도 신의 한 수에 그대로 무너진 것이다. 이로써 그는 상대방이 싫어하는 수를 두어 판을 흔드는 심리전의 고수이자 팔을 내주고 머리를 취하는 진정한 전사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하지만 어제 마지막 대국에서 아쉽게 졌다. 사람과의 대국 때는 상대방의 호흡, 손떨림, 기운 등 육체적·심적 상태를 느낄 수 있지만 기계와의 대국에선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기계와의 대국은 ‘부처 멘털’이 더 요구되는 고독한 싸움이리라. 그런 싸움에서 1승이라도 일군 이세돌은 인간 승리, 그 자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류현진 럭셔리한 화보 공개

    류현진 럭셔리한 화보 공개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럭셔리한 시계 화보가 공개됐다. 스위스 아방가르드 워치메이킹 브랜드 태그호이어와 함께한 류현진은 특유의 듬직한 모습과 지적인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앞서, 태그호이어는 #DontCrackUnderPressure 캠페인 영상과 메이킹 영상을 연이어 공개하였으며 이후 화보를 통해 류현진 선수의 강한 정신력과 집중력,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는 태그호이어 정신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한편, 류현진 화보 공개와 더불어 태그호이어 코리아 페이스북(http://bit.ly/1LJ9bL1) 에서는 어려움을 극복해낸 사연을 공유하는 이벤트를 20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사진 태그호이어 제공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n&Out] 전역군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신만택 국방전직교육원장

    [In&Out] 전역군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필요하다/신만택 국방전직교육원장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년의 평균 취업준비 기간은 11개월이라고 한다. 또 취업자 10명 중 6명이 15개월 만에 첫 직장을 그만둔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기업은 인재가 없다고, 구직자는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꼬여 버린 이 고용 실타래를 푸는 길은 쉬워 보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런 현실은 오랜 기간 사회와 격리되어 국가방위를 위해 헌신한 전역을 앞둔 간부들에게도 두려움이며 이겨내야 할 또 다른 전쟁의 시작점이다. 특히 학업 종료 후 군 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전역’이라는 단어는 곧 ‘실업’으로 인식된다. 나름대로 취업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군 복무의 특성상 정보 접근의 제한성, 이동의 제한, 변화하는 채용 트렌드 등 많은 이유로 무방비 상태에서 취업이라는 전쟁터로 내몰리는 게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위례신도시에 국방부 산하기관으로 국방전직교육원이 지난해 1월 1일 문을 열었다. 국방전직교육원은 전역을 앞둔 군 간부들을 대상으로 진로교육, 컨설팅, 군 특성화 교육, 기업 주문식 교육 등의 취업지원사업을 수행하는 전직 지원 전문기관이다. 연간 4만 4000여명을 대상으로 전직 교육을 시행하고 취업박람회 등 취업 지원 사업을 통해 3260여 명을 취업시켰으며 재난안전관리사 등 3개 분야 국가 자격화 및 인증화를 추진해 창조적 일자리를 만들고 유관기관 및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발굴하는 등 설립 첫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괄목한 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한구석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전역간부들은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인적자원으로, 기본자질이 우수하고 군 생활을 통해 익힌 전문적인 관리능력과 강인한 정신력, 신속·정확한 상황 대처 능력과 판단력, 정직성, 탁월한 리더십 등을 갖춰 위기의 순간에 더 빛을 발한다. 이러한 전역간부만의 차별화된 장점을 국가적·사회적으로 흡수하지 못하는 인적자원 관리시스템의 개선은 국가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임무를 다하는 군인이라는 직업은 우리 사회의 존중과 배려의 시스템에 포함돼야 한다. 이런 시스템이 잘 갖춰진 미국, 독일, 일본, 대만 등 선진국의 전역군인 취업률은 90%를 웃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복무 연수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평균 취업률이 56.5%로 선진국에 비하면 그 격차가 매우 크다. 이는 사회 복귀를 위한 개인의 준비 부족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군 업무의 특성상 사회와 물리적, 환경적으로 이격되어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켜내는 공공재로서의 직업적 특성 때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 중심에 국방전직교육원이 섰다. 올해는 연간 5만여명의 전직 교육과 5000명의 취업을 목표로, 군의 인재가 사회의 인재가 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맞춤식 교육과정과 기업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주문식 교육을 강화하고 기업 협력을 통한 일자리 발굴 외에도 정부 일자리 사업의 핵심 과제인 일학습병행제, 해외취업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해 출범한 청년희망재단과도 협력을 강화해 전역 간부들이 청년 실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주요 대도시에 분원을 설치하고 흩어져 있는 기능을 통합, 확대해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전직 지원 전문기관으로 발전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아직도 휴전 중이며, 이 순간에도 유사시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1년 365일, 24시간 오직 국가방위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전념하는 이들을 위한 사회와 기업의 존중과 배려가 더해진다면 선진국을 따라잡을 날도 머지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 [메디컬 인사이드] 술독에 빠진 당신, 성격이 변했네요

    [메디컬 인사이드] 술독에 빠진 당신, 성격이 변했네요

    여러분은 평소 술을 얼마나 드시나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한국인은 한 해 평균 맥주 148.7병, 소주 62.5병을 마시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다른 술을 제외하더라도 한 사람이 1년에 211병을 마신다는 의미입니다. 주말을 포함한 휴일 수가 116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평일엔 거의 매일 소주와 맥주를 마신 겁니다. 1인당 알코올 소비량 세계 1위라는 사실은 더이상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3일에 한 번씩 마시면 간은 살릴 수 있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럼 우리 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거의 매일 술을 마시지만 난 전혀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는 분들 많을 겁니다.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서는 외래진료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수는 전국적으로 155만명,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23조 4000억원으로 추산됐습니다. 지난해 전체 암 진료비(4조 4000억원)의 5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치료를 받거나 술을 끊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그래서 28일 정신건강의학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설명에 해당된다고 놀라지 말고, 차분하게 스스로의 상황을 판단해 보길 바랍니다. ●의존증 환자 155만명… 사회적 비용만 23조 알코올전문병원협의회 회장인 이무형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늘 과음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뇌의 가장 넓은 부위인 전두엽에 광범위한 손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인지기능이 저하되는데, 주로 자기중심적이 되고 판단력이 흑백논리에 매몰되며 매사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집중력이 떨어져 산만해지기도 합니다. 이해력이 ‘터널’처럼 좁아지면서 의견 차이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무조건 자신의 방식이 맞다고 우기는 경향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피해의식에 빠져 주변에 공격성을 드러냅니다. 가족과 동료의 고통이 크겠죠. 또 기억력이 감퇴돼 과거 시점의 이야기를 반복합니다. 감정 기복이 심해져 웃어야 할 때와 울어야 할 때를 판단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취하게 되는데 이런 증상들이 심해지면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져 ‘알코올성 치매’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당연히 본인 스스로도 힘들겠죠. 여기서 가장 쉬운 해결 방안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술입니다. 폭음이나 과음을 ‘문제적 음주’라고 하는데, 멈추지 못하면 질병의 범주인 ‘알코올 의존증’으로 넘어갑니다. 모든 사람이 위험한 건 아닙니다. 다사랑중앙병원 입원 환자 200명을 조사했더니 100명이 ‘부모도 알코올 의존증이었다’고 밝혔습니다. 61명은 특히 아버지가 지독한 ‘술고래’였다고 증언했습니다. 유전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경제적 어려움, 가정 불화, 스트레스, 주변에서 술을 권하는 분위기, 수줍음이 많거나 양심적인 성격이 유전적 요인과 결합하면 위험이 더 커집니다. 한번 술을 마시면 멈추지 못한다거나 금단증상이 생기고, 취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을 마셔야 하는 내성이 생기면 의존증으로 진단받게 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학계가 정한 안전한 음주 기준은 하루 4잔(여성 3잔), 일주일 13잔(여성 6잔)입니다. 일주일에 소주 두 병을 넘게 마시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기준에 코웃음 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정영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끔씩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숙취에서 깬 다음 문제가 없지만, 습관적으로 과음해 알코올 의존증에 가까워지면 가족·직장 문제 같은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되고 자기 합리화 경향이 세지기 때문에 부모·자녀와도 대화가 되질 않는다”고 했습니다. 경찰을 만난 음주운전자들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취한 상태에서는 자기 합리화가 심해지기 때문에 50%의 거짓과 50%의 진실을 섞어 ‘모두 진실’이라고 믿어버립니다. 알코올의 포로가 된 뇌가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의존증으로 갑니다. ●의존증 자가진단법 없어… 검사·상담받아야 인터넷을 뒤지면 ‘알코올 의존증 자가진단법’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 간이 테스트로 스스로 알코올 의존증을 진단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알코올 의존증에 대해 공인된 자가 테스트는 없다”며 “신체에 대한 의학적 검사와 상담을 통한 평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영철 교수는 “흥미롭게도 알코올 의존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테스트가 잘 들어맞고, 심해지면 제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인지기능이 떨어져 본인의 상황을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알코올 의존증은 다른 정신질환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우울증입니다. 알코올이 뇌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억제해 증상이 악화됩니다. 우울증이 심해져 술을 찾고, 음주로 우울증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이 원장은 “우울증 때문에 의존증이 생긴 건지, 의존증 때문에 우울증이 생긴 건지 판단이 쉽지 않을 정도”라고 표현했습니다. 2014년 사망한 할리우드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심각한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으로 치료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불안장애, 공황장애가 심해지고 전두엽이 심하게 망가지면 망상과 섬망(발작하거나 환각을 보는 증상) 단계로 갑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알코올이 숙면을 방해해 오히려 불면증이 심해집니다. 이것이 또 술을 부릅니다. ●회복하려면 스스로 치료할 수 없다는 인정부터 알코올 의존증에서 회복으로 가는 과정의 중대 고비는 ‘인정’입니다. 스스로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석훈 교수는 “뇌 손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환자가 의지나 정신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의존증 환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무기력증에 빠지고 우울감이 심해집니다.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닙니다. 마약처럼 ‘하이’(high·극치감)가 없어서 손떨림, 근육통, 경련, 불안 등의 금단증상을 없애려고 마신다고 합니다. 손떨림 같은 가벼운 금단증상은 짧으면 6~8시간에 나타나고 2~3일 뒤 최고조에 달합니다. 숙취로 인한 두통이 사라지면 다시 술 생각이 납니다. 첫 잔에 손대면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 원장은 최소 14일, 정영철 교수는 3주간 금주해야 금단증상과 음주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가족의 지지와 보살핌이 중요합니다. 전문의료기관의 치료는 상담과 교육, 신경전달물질 회복제 투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단순히 술을 끊게 하려고 격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질병이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치료받으러 병원에 자의로 오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정신질환 진료를 받으면 보험 가입 등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정부는 앞으로 관련 법을 개정해 일반인과의 차별을 없앨 계획입니다. 정영철 교수는 “강제로 치료받은 사람이 다시 외래진료를 받으러 오는 사례는 10%도 안 되지만, 스스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다시 병원을 오는 비율은 50% 정도 된다”며 “뇌기능이 조금이라도 살아 있을 때 빨리 오면 그만큼 치료 효과가 크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자유냐 굴종이냐/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자유냐 굴종이냐/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동양과 서양은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최초로 격돌했다. 기원전 492년부터 기원전 448년까지 지속된 페르시아의 침공에 대항해 그리스는 각 도시국가가 연합해 항전과 축출을 위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헤로도토스(기원전 484?~기원전 425?)는 인류 최초의 역사서 ‘역사’에 이 위대한 행적을 기록했다. 소아시아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의 압제와 가혹한 징세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와 에레트리아가 지원군을 보냈지만 페르시아에 진압된다. 이를 기화로 페르시아의 다레이오스 왕은 그리스 전체를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전쟁이 초래된 원인뿐 아니라 전쟁의 경과와 승패를 가름한 요인에서 후세는 역사의 교훈을 얻는다. 세 차례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나타난 페르시아 대군과 그리스 연합군 진영의 군세 차이는 현격했다. 페르시아의 기병과 함선의 압도적인 양적 우위 또한 양군 사이의 비대칭 전력의 대표적인 예다. 페르시아는 가공할 군사력을 과시하며 그리스 전 도시국가들에 항복의 표시로 흙과 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전쟁이냐 평화냐”를 물으며 내부 분열을 촉진하고 이간시킨 것이다.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애당초 대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많은 도시국가들은 줄줄이 페르시아 대왕에게 항복했다. 그 대가로 평화를 얻었지만 군대와 전쟁 물자를 바치며 부역해야 했다. 하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예외였다. 그들은 다레이오스 대왕이 보낸 전령들을 구덩이 속에 던지며 거기서 왕에게 줄 흙과 물을 가져가라고 했다. 항복을 회유하는 페르시아 사령관 휘다르네스에게 응대한 스파르타 전령의 말도 이들의 결기를 웅변한다. “그대는 노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도, 자유가 무엇인지는 전혀 경험해 보지 않아 그것이 달콤한지 아닌지 모르신단 말이오. 그대가 자유를 경험했더라면 우리에게 창뿐 아니라 도끼를 들고 자유를 위해 싸우라고 조언했을 것이오.”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들은 굴종 대신 자유를 선택했다. 그들은 페르시아 신민(臣民)의 노예적 삶보다 헬라스의 자유인이길 원했다. 절대적 열세 전력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용기와 희생의 정신력으로 맞서 극복했다. 이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그리스의 평화와 황금기를 일군 원동력이 됐다. 돈으로 산 평화는 취약하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땐 “전쟁이냐 평화냐”라며 분열과 공포를 야기하는 감성의 구호보다 “자유냐 굴종이냐”라며 자유 시민의 자긍과 용기를 북돋우는 것이 책임 있는 지도자가 취해야 할 덕목이다.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kipeceo@gmail.com
  • [리우올림픽 메달 전망] ⑧ 배드민턴

    [리우올림픽 메달 전망] ⑧ 배드민턴

    ‘세계 1위’ 12년 만에 男복식 金 도전 …‘천적’ 2위 아산-세티아완組 위협적 스매싱 파워·네트플레이 약점 보완 혼복 고성현-김하나組도 우승 후보 5월 5일 랭킹으로 올림픽 출전자 확정 “리우가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것 같습니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습니다.” 한국 ‘셔틀콕’의 간판 이용대(28·삼성전기)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유연성(30·수원시청)과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복식에 나서는 이용대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유연성도 소중한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용대에게는 리우 대회가 올림픽 세 번째 무대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정재성과 남자복식 금 사냥에 처음 나섰다. ‘황제’ 박주봉-‘테크니션’ 김동문을 잇는 걸출한 선수여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1회전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대신 이효정과 짝을 이룬 혼합복식에서 깜짝 금메달로 위안을 삼았다. 당시 20살이던 그는 ‘윙크 세리머니’로 단숨에 인기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주 종목인 남자복식의 실패는 가슴 한구석에 앙금으로 남았다. 이후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며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강력한 금 후보로 부각됐다. 하지만 런던에서도 막판 고비를 넘지 못하고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이용대는 은퇴한 정재성 대신 고성현(29·김천시청)과 새롭게 라켓을 잡았다. 하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2013년 말 유연성으로 파트너가 교체됐다. 기대 반 우려 반이었으나 둘은 ‘찰떡 호흡’을 뽐내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아시아선수권과 호주오픈, 코리아오픈, 덴마크오픈, 프랑스오픈 등 슈퍼시리즈 대회를 석권하며 2014년 8월 이후 줄곧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한풀이’의 기운이 감돈다.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이득춘 감독은 이용대-유연성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의 하태권-김동문 이후 12년 만에 남복 정상에 설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그러면서도 “경쟁자들과의 기량은 종이 한 장 차이”라며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실제로 세계 2위 무하맛 아산-헨드라 세티아완(인도네시아)은 이용대-유연성의 ‘천적’이다. 각종 대회에서 발목을 잡기 일쑤였고 특히 큰 경기에 강하다. 이-유는 지난해 왕중왕전인 ‘슈퍼시리즈 마스터스 파이널’ 준결승에서도 덜미를 잡혔다. 세티아완은 동남아인 특유의 유연함으로 네트플레이를 펼치고 아산은 후위에서 무서운 스매싱을 터뜨린다. 배드민턴에서 유일하게 금메달을 노리는 인도네시아는 이-유 조를 꺾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3위인 중국의 푸하이펑-장난도 위협적이다. 푸하이펑은 차이윈과 짝을 이룬 런던에서 금을 캔 강호이고 장난은 자오윈레이와 리우 우승을 장담하는 혼복 최강이다. 고공 강타가 일품인 둘은 한 조로 뭉친 남복에서 2연패를 일구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여기에 런던 대회 은메달리스트 마티아스 보에-카르스텐 모겐센(덴마크) 등 복병도 수두룩해 ‘맞춤형 대비책’이 요구된다. 이용대는 세계 최고의 수비력으로 안정된 경기를 펼치고 유연성도 비슷한 전형이다. 둘의 수비력은 최고지만 스매싱 파워가 떨어진다. 빠른 공수 전환과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전략으로 부족한 파워를 보강하는 것이 과제다. 대표팀은 올림픽 출전 포인트를 쌓기 위해 지난달 말까지 말레이시아와 인도 대회에 거푸 출전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이용대-유연성을 이들 대회에 출전시키지 않았다. 국내에서 특별 훈련을 지시한 것이다. 올림픽 출전이 확실시되는 둘은 현재 단점 보완에 힘을 쏟고 있다. 이 감독은 “이용대는 후위 공격이 약하고 유연성은 네트 플레이에서 범실이 나온다”면서 “이용대는 공격력에, 유연성은 네트플레이에 중점을 둬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둘은 올림픽 경기에서의 중압감을 이겨내기 위한 ‘마인드 컨트롤’도 병행하고 있다. 초접전으로 이어지는 큰 경기에서는 정신력이 승부를 가르기 일쑤여서다. ‘효자 종목’ 한국 배드민턴은 현실적으로 1개의 금메달이 목표다. 하지만 이 감독은 2개 이상의 금메달로 런던대회 ‘노골드’의 굴욕을 씻겠다고 다짐했다. 이 감독은 남복에서 이용대-유연성이 금메달에 가장 근접해 있고 김사랑(27)-김기정(26·이상 삼성전기)도 정상권에 있어 내심 결승에서의 ‘형제 대결’까지 꿈꾼다. 혼복의 고성현-김하나(27·삼성전기)도 우승 후보로 손색이 없다고 강조한다. 고-김은 손발을 맞춘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국제 무대에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줄곧 4강 언저리에서 맴도는 여자단식 성지현(25·새마을금고)도 기대를 부풀린다. 최강 중국이 주춤거리면서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이다. 리우에 가기 위해서는 단식은 16위, 복식은 8위 안에 들어야 한다. 국가별로는 최대 2명(2개 조)까지만 출전이 허용된다. 4월까지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만 출전은 물론 시드 배정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올림픽 티켓은 5월 5일 발표되는 월드 랭킹으로 가려진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韓 선수 정신력 약해… 강압적 지도 바꿔야”

    [스포츠 돋보기] “韓 선수 정신력 약해… 강압적 지도 바꿔야”

    지난달 28일 태국 방콕 무앙통유나이티드 연습경기장. 이곳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광주FC 선수들을 향해 우렁차지만 알아듣기 힘든 고함이 끊이지 않았다. 브라질에서 온 길레미 혼돈(34) 광주FC 피지컬 코치는 포르투갈어와 “하나 둘 셋”이나 “빨리 천천히” 같은 한국어를 섞어 잠시도 쉴 틈 없이 선수들을 독려했다. 훈련이 끝난 뒤에도 혼돈 코치는 매일같이 선수들이 묵는 호텔 로비에서 밤늦도록 노트북을 켜고 선수들의 활동량과 신체 상태를 활용한 통계를 분석했다. 지난해 1월 광주FC에 합류한 혼돈 코치는 2000년부터 브라질 3부 리그부터 1부 리그까지 13개 클럽에서 선수들을 지도한 베테랑이다. 브라질 대표팀 주장으로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에서 주전 수비수로 뛰는 치아구 시우바가 그가 초기에 지도했던 유소년 선수였다. 그는 “브라질 선수들은 선천적인 재능을 너무 믿다 보니 후천적인 노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어떻게든 채우려고 노력한다”며 한국 선수들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혼돈 코치는 그렇지만 노력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건 없고 꼬집으면서 한국 축구에 거침없는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먼저 “한국 축구는 장기적인 전망이 아니라 단기 실적에 너무 집착한다”면서 “한 경기 한 경기에 너무 연연하다 보니 선수들을 압박하고 그러다 보니 차근차근 배우는 과정을 생략해버린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자세보다는 선수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계기를 만드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한국 선수들은 프로로서 정신력이 약하다. 강압적인 지도방식이 정신력을 떨어뜨린다”면서 “그라운드에서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압적인 교육방식은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브라질 선수들은 정신력이 강하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훈련이 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광주 선수 중 눈여겨보는 선수에 대해 “이찬동, 송승민, 김영빈은 앞으로 광주를 이끌 재목”이라고 지목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김현회의 축구싶냐] “일본은 야구나 하라” 24년 전 통쾌한 기억

    [김현회의 축구싶냐] “일본은 야구나 하라” 24년 전 통쾌한 기억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마침내 '8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해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2016 AFC U-23 챔피언십에 출전 중인 한국은 4강에서 카타르를 3-1로 이기고 감격적인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다가올 결승 상대가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되는 일본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한일전을 앞두고 24년 전 통쾌했던 그 순간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는 건 어떨까. 한국의 이번 경기 필승을 바라면서 시간을 24년 전인 1992년으로 되돌려 보려 한다. 모든 게 불리했던 1992년 아시아 예선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한국 축구는 단 한 번도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안방에서 열린 1988년 서울올림픽에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출전했을 뿐 유독 올림픽 무대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래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준비하는 한국 축구의 각오는 비장했다. 1964년 이후 28년 만에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에 진출하자는 열망이 강했다. 바이에른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을 이끌었던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을 모셔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크라머 감독과 함께 칼브 체력 담당 코치, 보버 물리치료사에게만 무려 5억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하며 올림픽 본선 진출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크라머를 총감독으로 내세우고 감독에 김삼락, 코치에 김호곤을 선임하며 동서양 축구를 접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28년 만의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은 쉽지 않았다. 아시아 최종예선 시작 직전 188cm의 장신 공격수 정우영이 부상을 당해 엔트리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해 쿠웨이트와 바레인, 카타르, 중국, 일본 등 6개국이 풀리그를 치러 상위 세 팀에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이 돌아가는 방식이었지만 중동 심판이 대거 배정되는 등 분위기도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크라머 총감독과 김삼락 감독이 이끄는 한국 선수들은 1992년 1월 13일 격전지인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한국은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국의 첫 경기 상대인 쿠웨이트 주축 미드필더 파와즈 알 아마드가 아시아 1차예선 인도와의 경기에서 폭력적인 행동으로 무기한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당한 상황이었는데 아시아축구연맹(AFC)이 돌연 알 아마드의 징계를 풀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측에서 항의를 하자 돌아오는 답은 이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결정 사항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팀들이 “공식 문서를 보여달라”고 하자 “조만간 증빙 자료를 보여주겠다”고 핑계를 댈 뿐이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오일 머니'의 위력을 새삼 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알 아마드와 함께 1차 예선에서 경고 누적으로 최종 예선 첫 경기 결장이 불가피했던 바레인 주축 수비수 라작 아바스도 흐지부지 징계가 풀려 동아시아팀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중동의 ‘오일 머니’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심만 할 수 있었을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알 아마드가 결장한다고 믿고 그에 대해 대비를 전혀 하지 못했던 한국으로서는 발등이 불이 떨어진 셈이었다. 이임생과 이문석 등 수비수들은 알 아마드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가 부랴부랴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했다. 일본 감독의 도발에 자존심 상한 한국올림픽을 향한 다른 팀들의 열망도 우리에겐 큰 부담이었다. 카타르는 브라질 출신 감독을 선임한 뒤 무려 7년 동안 조직력을 키워왔고 중국은 1차예선에서 51득점 1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며 막강 전력을 뽐냈다. 이에 반해 한국은 1990년 12월 팀을 구성해 13개월간 조직력을 맞춘 게 전부였다. 한국은 33차례 평가전을 치러 23승 3무 7패 85득점 22실점의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이는 필리핀 등 약체들과의 승부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크라머 총감독을 비롯한 독일인 코치진과 김삼락 감독 등 한국인 코치진들 사이의 불화도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전승, 혹은 3승 2무로 올림픽에 가겠다”고 장담했다. 한국의 첫 상대 쿠웨이트와는 역대 전적에서 6승 3무 6패의 호각세를 유지하고 있어 부담은 더 컸다. 더군다나 쿠웨이트는 걸프전이 발발하자 선수들을 영국에서 소집해 6개월 동안 합숙훈련을 하며 매주 두 경기씩을 치러 프로팀 이상의 조직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최종예선 바로 직전 10만 달러를 들여 노르웨이를 말레이시아로 초청해 평가전을 치르는 등 ‘오일 머니’를 앞세워 본선 진출에 대한 야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한국은 불리했고 심지어 여기에 ‘에이스’인 서정원(고려대)은 발등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도 아니었다. 28년 만에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 진출을 노리는 한국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1992년 1월 18일 쿠웨이트와의 대망의 첫 경기가 열렸다. 하지만 전승을 노리던 한국은 전반 10분 만에 알리에게 선취골을 허용하고 말았고 이후 파상 공세를 펼치며 추격에 나서 전반 30분 노정윤(고려대)이 통렬한 동점골을 뽑아냈다. 서정원이 헤딩으로 연결한 슈팅이 골키퍼를 맞고 흐르자 노정윤이 이를 다시 골문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 6분 최악의 순간을 맞게 됐다. 이임생(고려대)이 거친 플레이로 퇴장을 당한 것이다. 10명으로 싸우게 된 한국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고 여기에 조정현(대구대) 또한 부상으로 교체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1차예선에서 경고를 받았던 김귀화(대우)도 이날 경기에서 경고를 받아 다음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이임생은 다이렉트 퇴장으로 세 경기 출장 정지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결국 한국은 쿠웨이트와의 첫 경기에서 1-1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오히려 후반 막판 쿠웨이트가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공세를 취하지 못한 게 다행일 정도였다. 사흘 뒤 열린 바레인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노정윤의 결승골에 힘입어 가까스로 1-0 승리를 따냈지만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였다. 두 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노정윤은 후반 30분 만에 근육 경련을 일으키며 김기남(중앙대)과 교체되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본 일본 요코하마 감독은 이런 말로 한국에 도발했다. “붉은 유니폼은 분명 한국의 것인데 그 안의 선수들은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일본 감독의 도발에 한국은 치욕을 느꼈지만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카타르전 충격패, 그리고 운명의 한일전일본 감독의 도발에 자존심이 바닥까지 떨어진 한국은 세 번째 경기에서는 완전히 추락하고 말았다. 경기 전부터 한국팀의 조직력은 이미 깨져 있었다. 발등 부상으로 고전하고 있던 서정원의 투입을 놓고 김삼락 감독을 비롯한 한국인 코치들과 크라머 총감독을 비롯한 독일인 코치진들의 의견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1승 1무를 기록하며 위기에 놓인 한국은 세 번째 경기인 카타르전에서 부상 중인 서정원을 무리하게 투입해 곽경근(고려대)과의 투톱을 형성했지만 점유율을 카타르에 완벽히 내주며 농락당했고 결국 전반 39분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파헤드의 슛이 수비를 맞고 하르자 이를 무바라크가 가볍게 골로 연결한 것이었다. 후반 2분 카타르는 압둘라가 퇴장 당했지만 이후 강력한 수비를 앞세워 이 골을 지켜냈고 한국은 결국 0-1로 카타르에게 패하고 말았다. 충격적인 패배였다. 1985년 이후 네 차례 경기에서 카타르를 상대로 3승 1무의 절대 우위를 점하던 한국이 7년 만에 카타르에 패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10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고 여기에 독일인 지도자 영입에만 5억 원 가까운 돈을 썼던 한국으로서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한국인 지도자들과 독일인 지도자들의 갈등도 점화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걱정은 28년 만의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점이었다. 1승 1무 1패를 기록한 한국은 다음 경기에서 패하면 무조건 탈락하는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됐다. 그런데 다음 상대는 하필 일본이었다. 일본 역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이후 무려 24년 만의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었는데 한국과 일본이 운명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된 셈이었다. 당시 세 경기를 마친 상황에서 카타르가 3전 전승을 기록 중이었고 중국이 2승 1패로 그 뒤를 따랐다.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1승 1무 1패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골득실에서 일본에 크게 뒤져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이 바레인을 6-1로 대파하며 골득실에서 +4를 유지하고 있었던 반면 한국의 골득실은 0이었다. 한국이 일본에 지면 무조건 탈락이었고 비길 경우에도 상황이 극도로 불리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중국을 상대하는 반면 일본은 이미 사실상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낸 카타르와 경기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카타르가 일본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국은 일본전에서 무조건 이겨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미 노정윤의 근육 경련을 보고 한 번 한국에 도발했던 일본 요코하마 감독은 한국전을 앞두고도 독설을 쏟아냈다. “일본이 올림픽 본선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도야 잡아야 되지 않겠느냐. 후반전에만 들어가면 발이 굳어버리는 한국을 이겨 대성공을 거두겠다. 한국은 이제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각종 악재가 겹친 한국팀을 흔드는 심리전의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이 발언은 오히려 한국 선수들을 자극했다. 김삼락 감독은 일본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 이기지 못하면 감독직이고 뭐고 축구계를 떠나겠다. 무조건 이긴다.” 1960년대 일본 대표팀을 지도해 한일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크라머 총감독도 이번에는 한발 물러섰다. 작전과 선수 기용 등 전권을 김삼락 감독에게 위임한 것이다. “김삼락 감독이 한국인의 정신력만 일깨워 준다면 틀림없이 한국이 이길 것이다.” 김삼락 감독의 통쾌한 한마디, “일본은 야구나 하라”28년 만에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 진출을 꿈꾸는 한국과 24년 만의 올림픽 본선 티켓을 노리는 일본이 하필이면 이 운명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여기에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긁어내린 일본 감독의 발언 때문에 이 한일전은 그 어떤 한일전보다도 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한국은 고민 끝에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닌 서정원을 선발 명단에서 빼고 김인완(경희대)과 곽경근 투톱을 내세우기로 했다. 김삼락 감독의 모험이었다. 일본은 바레인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미우라 후미다케를 비롯해 지노 타키유 등 정예 멤버를 총출동시켰다. 김삼락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이런 말을 하며 한 번 더 각오를 다졌다. “일본을 이기지 못하고 올림픽에 나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1992년 1월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메르데카 국립경기장에서 마침내 운명의 한일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무승부만 거둬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놓이는 일본은 경기가 시작되자 탄탄한 수비를 앞세워 골문을 틀어 막았다. 한국 입장에서는 답답한 경기였다. 전반 5분 만에 김인완이 날린 슈팅이 상대 수비를 맞고 골문 밖으로 흘러가는 등 여러 차례 슈팅을 시도하고도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하면서 시간을 점점 흘러갔다. 후반 들어서도 한국은 총공세를 펼쳤지만 일본의 수비에 모두 막히고 말았다. 후반 13분에는 노정윤이 날린 슈팅이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걸렸고 후반 17분 김병수의 슈팅 또한 골문을 살짝 빗나가고 말았다. 이렇게 시간은 점점 90분을 향해 갔다. 한국이 원치 않는 무승부로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경기장의 선수들과 김삼락 감독, 관중은 물론 텔레비전을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본 모든 이들 역시 다들 시계만 들여다보고 있던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장면이 연출됐다. 후반 44분 왼쪽 코너 부근에서 김귀화가 올린 공을 이문석(인천대)이 헤딩으로 연결하자 김병수가 침착하게 왼발슛으로 일본 골문을 가른 것이다. 극적인 결승골이었다. 일본 감독에 따르면 “후반전에만 들어가면 발이 굳어버린다는 한국”이 후반 막판 드라마를 쓴 것이다. 김병수는 완호하며 동료들과 부둥켜 안았고 일본 선수들은 그대로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올림픽 본선 진출을 놓고 벌인 운명의 한일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1-0으로 짜릿하게 꺾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순간이었다. 당시 승리는 승점 2점, 무승부는 승점 1점이었는데 일본이 한국에 지면서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도 승점이 5점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탈락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김삼락 감독은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 경기 전부터 한국을 향해 연이어 도발을 해온 일본 감독에 대한 응수였다. “정신력의 승리였습니다. 일본 요코하마 감독이 한국을 종이호랑이로 혹평한 데 대해 실력으로 한국 축구의 우월성을 다시 입증해 통쾌합니다. 선수들에게 오늘 일본에만은 절대 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저 역시 일본에 지면 축구계를 떠난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했습니다. 일본은 축구를 그만두고 인기 있는 야구나 하는 게 좋겠네요. ” 이 장면은 전파를 타고 그대로 안방에 있는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일본 감독의 도발을 실력으로 이겨냈고 통쾌한 말로 한 번 더 이기는 순간이었다. 일본을 잡고 기사회생한 한국은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을 3-1로 제압하고 마침내 28년 만의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의 꿈을 이뤄냈다. 한일전의 역사는 내일도 계속된다한국 선수들에 대한 전국적인 성원도 이어졌다.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도 성과지만 수 차례 도발한 일본을, 그것도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그것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결승골을 넣어 이겼다는 게 너무나도 통쾌했기 때문이다. 1992년 2월 1일 서울역 측은 설날을 앞두고 올림픽 대표 선수들이 미리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한 고향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급하게 열차 표 6장을 대한축구협회 측에 보내기도 했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자동 출전한 이후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며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자력으로 진출하는 등 이번 2016 리우올림픽까지 무려 8회 연속 출전하는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이 역사적인 기록의 시작은 바로 한일전 김병수의 짜릿한 결승골부터였고 “일본은 야구나 하라”던 김삼락 감독의 통쾌한 발언부터였다. 이제 한국은 내일(30일) 일본과 2016 리우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겸한 2016 AFC U-23 챔피언십 결승을 치른다. 이미 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은 상황이지만 일본과의 자존심 싸움은 여전하다. 24년 전 이때쯤 열린 한일전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통쾌한 발언까지 쏟아냈던 좋은 기억을 되살려 또 한 번 멋진 승리가 우리와 함께 하길 응원한다. 또한 1992년 당시 김삼락 감독과 함께 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신태용은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수장이 돼 다시 일본을 만나게 됐다. 신태용 감독 또한 일본전을 앞두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일본에는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과거 그의 발언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다. K리그 MVP를 수상하고 J리그에 거액의 이적 제안을 받았던 그는 제안을 거절하면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K리그 MVP는 J리그에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번 한일전을 앞두고 황희찬(잘츠부르크)이 “위안부 이야기를 접했다. 일본전은 무조건 이기고 싶다”고 밝히자 일본 측에서 “한국이 또 다시 정치적인 문제를 들먹이고 있다. 미개하다”고 응수할 만큼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 싸움은 팽팽하다. 통쾌했던 24년 전 그 말을 새기면서 이번에도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를 꼭 이겨줬으면 한다. “일본은 축구 그만두고 야구나 하라. 아, 그런데 야구도 우리가 이겨버렸네.”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 footballavenue@nate.com 사진=대한축구협회
  • [프로축구] ‘조국’ 앞세운 광주FC “더 영리해져서 돌아온다”

    [프로축구] ‘조국’ 앞세운 광주FC “더 영리해져서 돌아온다”

    작년 뒷심 달려… 정신력 강조 정조국·이종민 등 절박감 넘쳐 초반 기세 잡고 6강 도전 남기일 광주FC 감독은 지난 시즌 저돌적인 공격 축구로 K리그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신생 구단이자 시민구단으로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승격과 잔류라는 뜻깊은 기록을 남겼다. 28일 태국 방콕 전지훈련장에서 만난 남 감독은 올해는 “좀 더 영리한 전방 압박 축구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2015시즌에는 챌린지(2부) 출신 팀으로는 처음으로 K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작년에는 뒷심이 달렸다. 선수층이 두터워야 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올해는 재능 있는 신인 선수들도 많이 입단했다. 이들에게 정신력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현재 선수단 평균 나이가 24살이고, 8명을 빼곤 모두 1990년대생이다. →선수 유출이 심하다. 팀을 새로 만드는 수준인데. -우리는 항상 어렵게 시즌을 시작했다. 잘하는 선수들이 더 좋은 클럽으로 이적하는 건 어쨌든 좋은 일이지만 막상 선수들이 빠져나가니까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정이 많이 든 선수들이었다. →FC서울로부터 정조국 선수를 영입한 걸 두고 팬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사실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건 아니었고 알고 지내는 정도였다. 이번에 지도자 연수과정 때문에 파주훈련센터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믿음을 갖게 됐다. 영입까지 열흘 정도 걸렸다. 운이 좋았다. 주장인 이종민이 뒤에서 수비를 받쳐 주고 앞에서는 정조국이 공격진을 이끌 수 있게 됐다. 선수 스스로 의욕이 넘친다. 절박감을 갖고 열심히 한다. →광주는 지난 시즌에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다만 선수층이 두텁지 않은 상황에선 선수들 체력도 감안해야 한다. 좀 더 영리하게 하려고 한다.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 특성도 감안해야 하지 않겠나. →올해 시즌 첫 경기가 포항 원정 경기다. 올해 목표는. -첫 골을 어떻게 넣느냐, 첫 승을 어떻게 거두느냐, 그것이 시즌 초반 기세를 좌우한다. 작년에는 모든 클럽을 상대로 1승을 해 보는 게 목표였다. 올 시즌에는 그보다 더 많은 승점을 쌓아 잔류를 좀 더 일찍 확정 짓고 6강에 도전해 보고 싶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축구를 하고 싶다. 방콕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日 꼭 잡는다”… 개념 찬 황희찬

    “위안부 할머니들 위해서라도 日 꼭 잡는다”… 개념 찬 황희찬

    “선수들의 활약으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게 돼 기분이 좋습니다.”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이끈 신태용(46) 감독은 27일 카타르 도하 알사드 스타디움에서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4강전을 마친 뒤 기자회견장에서 “(올림픽 8회 연속 진출은) 사실 처음 올림픽 대표팀을 맡을 때만 해도 모르고 있었는데 카타르로 오면서 알게 됐다”며 “4강전이 열리기 전에 황희찬(20·잘츠부르크)과 문창진(23·포항)을 따로 불러 후반전에 사고를 쳐보라고 했는데 선수들에게 주문한 것이 적중해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선수단이 하나가 돼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린 신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로 한국 축구가 한 단계 성숙해져 이제는 아시아의 맹주가 됐다”고 자평했다. 일본과의 결승전을 앞둔 신 감독은 “한·일전은 특수한 경기 아니겠느냐”며 “선수들이 부담을 덜어놓고 편안하게 준비하도록 해서 또 한번 진짜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결승전에서 승리할 경우 기자회견에 한복을 입고 등장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1-1로 팽팽하게 맞서던 후반 34분 교체 투입돼 상대 수비진을 뒤흔들며 팀 승리에 기여한 황희찬은 “처음 들어갔을 때는 (부상 부위인 발목이) 아파서 불안했는데, 골을 먹으니 아픈 거 없이 죽도록 뛰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팀이 이기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역사적인 부분이 있는데 마지막 경기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며 한·일전에 대한 필승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황희찬은 소속팀인 잘츠부르크의 차출 반대로 결승전에서는 뛰지 못하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 후반 44분 결승골을 터뜨린 승리의 주역 권창훈(22·수원)은 “선수 모두가 죽기 살기로 뛰었다”며 “90분 내내 강한 정신력으로 뛰었다. 이기고 싶었다”고 밝혔다. 결승골을 터뜨린 소감을 묻자 “동료가 좋은 찬스를 만들어 줬다. 너무 좋았다”고 답했다. 이날 “좋았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한 권창훈은 “우리가 가진 실력만 제대로 발휘한다면 한·일전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결승전에 대한 각오를 불태웠다. 선제골의 주인공인 류승우(23·레버쿠젠)는 함께 득점을 기록한 권창훈과 문창진에 대해 “어릴 때부터 함께한 동료들이고, 언제든지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들”이라며 “다 함께 중요한 골을 넣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리우올림픽 메달 전망 ③ 골프] 112년 만의 빅매치…박인비·리디아 고 ‘金전쟁’

    [리우올림픽 메달 전망 ③ 골프] 112년 만의 빅매치…박인비·리디아 고 ‘金전쟁’

    올해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지난 대회와 다른 것 중 하나는 골프의 복귀다. 골프가 올림픽에 처음 선을 보인 건 1900년 파리대회 때다. 하지만 4년 뒤 세인트루이스대회를 끝으로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다. 이후 한 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꾸준한 발전을 거듭한 골프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대중성의 부족함을 채워 내면서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에 당당히 한 축을 담당하는 영예를 안았다. 리우올림픽의 골프 종목에는 남녀 개인전 각각 1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단체전은 없다. 단 2개뿐인 112년 만의 금메달은 남녀 1명씩 가져가게 된다. 한국이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건 여자 부문이다. 올림픽 출전 자격은 세계 랭킹을 환산해 국가별로 쿼터를 결정하는 국제골프연맹(IGF)의 올림픽랭킹에 의해 좌우된다. 남녀 각 1위부터 60위까지, 60명만 출전할 수 있다. 이 예순 명의 명단, 즉 최종 엔트리는 오는 7월 11일 발표되는 올림픽랭킹에 의해 결정된다. 단 가능한 한 모든 나라가 대회에 참가해야 한다는 ‘올림픽 정신’을 존중해 국가별로 정해진 출전 쿼터는 최대 2명이다. 그러나 세계 랭킹 15위 안에 여러 명이 포함될 경우 4명까지 출전 티켓이 주어진다. 남자 가운데는 지난해 5월 유러피언프로골프(E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BMW 챔피언십 정상에 오른 안병훈(25)이 19일 현재 올림픽랭킹 18위로 출전이 유력하다. 지난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상금왕이자 최우수선수에 오른 김경태(30·신한금융그룹)도 세계 랭킹을 60위까지 끌어올리며 28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둘 외에는 현재까지 올림픽 랭킹 60위 이내에 든 선수가 없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이들의 리우행은 이미 7부 능선을 넘었다는 게 중론이다. 여자의 경우 남자에 견줘 치열하기 짝이 없다. 랭킹 2위의 박인비(28)와 5위 유소연(26), 7위 김세영(23), 8위 양희영(27)이 ‘톱10’ 안에 버티고 있다. 이 밖에 세계 랭킹 9위의 김효주(21),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16시즌 새내기인 10위의 전인지(22), 14위의 장하나(24), 올해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를 평정한 15위의 이보미(28) 등 상위 세계 랭커들이 즐비하지만 올림픽 랭킹 60위권 밖에서 떠돌고 있다. 6개월 뒤를 상상하기란 어렵다. 극단적으로 60위권 밖의 선수들이 매번 우승하고 유력한 이 네 명이 매 대회 때마다 컷 탈락하면 출전 명단이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설사 치열한 경쟁 끝에 60위 밖의 선수들이 치고 올라온다 해도 랭킹 2위 정도면 ‘안전지대’다. 200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골프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을 때만 해도 한국여자골프의 에이스가 과연 누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확실한 대답을 던질 수 있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올림픽의 해가 밝은 지금 박인비가 아니면 다른 정답을 찾을 수가 없다. 박인비를 평가하는 가장 큰 잣대는 메이저 우승이다. 2008년 US여자오픈 이후 지난해까지 7개 메이저 우승컵을 수집했다. 각 봉우리를 한 차례 이상씩 오르는 ‘커리어 그랜드슬램’까지 작성하며 이제 ‘명예의 전당’ 헌액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지난해 해당 포인트를 충족시키고 올 시즌 10개 대회에 출전, ‘투어 10년 이상’을 채우는 5월 말쯤이면 박인비는 ‘명예의 전당’ 명찰을 달고 올림픽에 나설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러나 박인비에게도 강력한 라이벌이 있다. 지난해 치열하게 랭킹 경쟁을 펼친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19·뉴질랜드)다. 지난해 박인비와 나란히 LPGA 투어에서 5승을 올리며 올해의 선수와 상금왕 타이틀을 차지한 리디아 고는 올해 만 19세가 됐다. 어린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침착한 플레이와 강인한 정신력, 정교한 아이언샷을 갖춘 그는 올림픽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떠올랐다. 박인비도 “나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리디아 고가 가장 상대하기 힘든 선수”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최근 해외의 베팅업체 ‘스카이벳’은 올림픽 여자골프에서 리디아 고의 우승 배당률을 3분의1로 잡아 박인비의 5분의1보다 더 낮게 평가했다. 또 ‘377벳’이라는 업체 역시 리디아 고에게 4.35, 박인비에게 6.00의 배당률을 매겨 리디아 고가 금메달을 따내는 쪽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큰 무대에서의 굵직한 경험과 우승 전력에서는 박인비가 한 수 위라는 데 국내외 골프계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누가 되든 112년 만의 빅매치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김현회의 축구싶냐] ‘손흥민의 부진’ 여자 문제 때문일까?

    [김현회의 축구싶냐] ‘손흥민의 부진’ 여자 문제 때문일까?

    *안녕하십니까.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입니다. 오늘부터 [서울신문 나우뉴스]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이 공간을 통해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 남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열심히 독자들께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이 부진에 빠졌다. 지난해 12월 5일 웨스트브롬위치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선발 명단에서 쭉 제외된 손흥민은 지난 주말에도 동료들의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손흥민은 지난 주말 선덜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43분에서야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으며 8경기 연속으로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굴욕을 맛봤다. 400억 원의 이적료를 지불하며 손흥민을 영입한 토트넘으로서는 손흥민의 부진이 답답할 수밖에 없고 한국의 축구팬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다. 한국 축구의 에이스로 성장한 그가 부진을 이어간다면 이건 선수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축구 전체의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 펄펄 날던 손흥민이 최근 들어 급격한 슬럼프에 빠지자 이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손흥민의 부진이 여자 때문일까? 손흥민의 부진 이유를 꼽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바로 여자 문제다. 그가 이성 친구에 푹 빠져 경기와 훈련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손흥민은 지난해 말 한 여자 연예인과의 데이트 장면이 언론에 포착돼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대충 그의 부진이 시작된 시기와 맞아 떨어진다. 손흥민이 부진한 이유를 여자 문제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이거 참 자극적인 그림이 된다.  하지만 나는 손흥민이 부진한 이유가 여자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가 정말로 누군가와 이성 교제를 하고 있는지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세상에 젊고 잘 생기고 돈도 잘 버는 미혼 운동선수 가운데 연애를 하지 않는 이를 찾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나같이 키도 작고 대출금에 허덕이는 남자 따위도 가끔씩 연애를 하는데 손흥민이 연애를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손흥민의 이성 친구 문제가 두 번이나 언론에 포착된 것일 뿐 다른 해외파 선수들도 대부분이 이성친구를 만난다. 현재 해외에서 뛰고 있는 한 선수도 팀에서 3박 4일의 짧은 휴가를 받으면 곧장 한국으로 달려와 여자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돌아간다. 단지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 선수는 여전히 큰 문제 없이 선수 생활을 잘 이어나가고 있다.  심지어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 뛰고 있는 박주호는 스위스인 여자친구와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5월 딸까지 낳았다. 아마도 박주호가 부진했더라면 결혼도 하지 않고 외국인 여성과 허튼 짓(?)을 했다고 대차게 비난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박주호는 이후 마인츠에서 더 큰 구단인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는 등 전혀 경기력에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여자친구가 한국에서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는데 당장 오늘 해외에서 경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경기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 축구선수는 무슨 24시간 축구만 해야 하는 축구 기계인줄 아나. 다 똑같은 사람이다.  손흥민이 만약 경기 도중에 경기도 포기하고 여자를 만나러 가거나 아니면 관중석의 예쁜 여자를 쳐다보느라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 먹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손흥민의 사생활은 철저히 존중되어야 한다. 비판하려면 그의 경기력만을 놓고 비판해야지 여기에 여자문제를 도마 위에 올려 놓을 이유는 없다. 직장인들도 다 퇴근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손흥민이 훈련과 경기 외적인 시간에 여자친구를 만나건 <무한도전>을 다운로드 받아 보면서 낄낄거리건 그건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유부녀를 만난다거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손흥민의 사생활은 온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에게 여자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심지어 전성기 시절 안정환은 지금의 아내와 연애 당시 떨어지기 싫어 벌금 1000만 원을 내고 훈련을 불참한 적도 있다. 비판의 대상은 손흥민의 연애가 아니라 손흥민의 현재 경기력이어야 한다. 그가 부진한 진짜 원인은?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손흥민의 여자 문제를 왈가왈부하는 게 아니라 과연 그가 왜 이렇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선수처럼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지 원인을 찾는 것이다. 일단 손흥민이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의 움직임과 위치가 상당히 좋지 않다. 짧은 출전 시간 동안 보여줘야 할 게 많지만 욕심이 과도해 상대 수비가 밀집된 곳에 박혀 공을 달라고 사인을 보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또한 레버쿠젠에서는 주로 측면에 기용됐지만 토트넘에서는 중앙에도 자주 배치되며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해리 케인은 최전방에서 폭 넓게 움직이며 손흥민의 공간과 자주 겹치는 현상까지 생겼다. 이뿐 아니다. 손흥민의 장점은 상대방 뒷공간이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폭발적인 스피드로 치고 들어가는 플레이인데 점유율을 앞세워 지공으로 공격하는 걸 즐기는 토트넘 입장에서는 손흥민이 좋아하는 역습 상황이 자주 연출되지 않는다.  해법은 뭘까. 단순하지만 손흥민이 토트넘에 맞춰야 한다. 과거 잘 나가던 댄스 그룹 ‘터보’에서 김정남이 탈퇴한 뒤 새로 영입된 마이키에게 내려진 숙제는 딱 하나였다. “랩을 김정남처럼 하라.” 터보가 가진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결국 마이키는 자신의 스타일을 포기한 채 김정남과 비슷한 스타일의 랩을 구사해야 했다. 자신에게는 불편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토트넘과 김종국이라는 큰 축에 손흥민과 마이키가 맞춰야 한다. 그래야 명곡도 쏟아져 나오고 리그에서의 순위도 끌어 올릴 수 있다. 만약 새로 영입된 마이키에 맞춰 터보가 스타일을 바꿨더라면 아마도 지금의 터보는 없었을 것이다. 역습에서 화려한 드리블로 관중을 감탄케하는 플레이도 좋지만 손흥민은 상대를 후방에 가둬 놓고 패스를 통해 찬스를 잡아내는 토트넘의 플레이 방식을 따라야 한다. 손흥민이 축구를 한두 해 더 하고 말 게 아니라면 말이다. 경기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5분 남짓한데 일단은 죽기살기로 임해야 한다. 후반 교체 투입된 선수가 풀타임을 소화 중인 수비수와의 몸싸움에서 나가 떨어지면 선수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봐야 한다.  내 분석이 정답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손흥민의 부진과 관련해 보다 생산적인 토론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여자에 빠져 있어 축구를 등한시 한다는 건 아주 유치한 발상이다. 애초에 여자 한 명 때문에 선수 인생이 흔들릴 정도로 정신력이 나약한 선수라면 지금 그 자리까지 올라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박지성처럼 손흥민도 은퇴할 때까지 여자를 멀리하라는 지적도 많은데 나는 이 말에도 의문이 든다. 박지성의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그가 성실했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지만 박지성이 은퇴할 때까지 여자를 멀리했다는 말에는 그 어떤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박지성은 지금의 아내가 첫 사랑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적어도 “손흥민도 박지성처럼 여자를 멀리하라”는 말은 이 둘의 사생활을 잘 아는 이들이 아니라면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손흥민 부진의 이유를 여자로 꼽고 조롱하지 말자.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직장 생활에 집중할 수 없으니 연애를 하지 말라는 상사의 핀잔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손흥민이 못하면 그건 실력 탓이지 여자 탓이 아니다. ‘사나이 손흥민’이 아쉬운 이유 물론 손흥민을 전적으로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실 축구선수 손흥민의 부진에 대해서는 해결 방안을 찾고 더 응원하고 싶다. 하지만 남자의 입장에서 손흥민의 행동은 아쉬운 게 사실이다. 손흥민은 지난 번 여자친구로 지목된 여자 연예인과의 열애설이 났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열애설이 터졌을 당시 그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여자 연예인들은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다”면서 손흥민과의 열애를 인정했다. 아이돌 그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인기를 먹고 사는 여자 연예인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누가 더 아깝네’라고 따지고 싶지도 않다. 그런 거 따지는 내 시간이 가장 아깝지 않을까. 어찌 됐건 나는 젊고 아름다운 선남선녀의 연애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그런데 손흥민은 두 번의 열애설 모두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시점에 슬쩍 “사실은 사귄 적도 없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다. 졸지에 그녀들은 혼자서만 남자와 연애를 한 바보가 됐다. 고등학교 시절 옆 학교 퀸카와 사귀기로 해 기쁜 마음에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가 그녀가 돌연 마음을 바꿔 바보가 된 나로서는 그녀들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안다. 더군다나 그녀들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유명인 아닌가. 이건 ‘축구선수 손흥민’의 문제가 아니라 ‘사나이 손흥민’으로서의 문제다. 손흥민의 말처럼 그가 그녀들과 사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차피 그녀들이 손흥민과 사귀지 않는다고 해서 나와 만나줄 것도 아닌데 나는 열애 사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랬다면 열애설이 터졌을 당시 어떤 해명이라도 했어야 한다. “열애설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 한 마디면 끝날 문제였다. 그런데 손흥민은 상대방 측이 열애를 인정한 상황에서도 내내 조용히 있다가 열애설이 흐지부지될쯤 “사실은 사귄 적도 없다”는 말로 두 명의 여자 연예인을 졸지에 바보로 만들었다. “맞다”고 하건 “아니다”라고 하건 남자답게 당당히 앞에 섰으면 좋겠다. 골을 넣고 손으로 ‘S’를 그리는 세리머니를 하며 해당 여성과의 열애설에 온갖 추측이 난무하게 해놓고 그녀가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다”고 용기까지 냈음에도 침묵하며 물러서 있다가 측근의 입을 빌어 “사실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고 하는 건 남자다운 모습이 아니다. 손흥민이 다시 토트넘에서 부활했으면 좋겠고 앞으로는 사랑을 하는 방식도 더 당당해 졌으면 좋겠다.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 footballavenue@nate.com  
  • 대한장애인체육회 첫 장애인 홍보책임자 탄생

    대한장애인체육회 첫 장애인 홍보책임자 탄생

    대한장애인체육회 출범 10년 만에 처음으로 장애인 홍보책임자가 탄생했다. 장애인체육회는 7일 신임 홍보부장 자리에 박종철(49) 생활체육부장을 임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생후 10개월 때 앓은 소아마비 탓에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됐지만, 꾸준한 훈련을 바탕으로 한국 장애인 역도의 간판스타로 우뚝 선 ‘악바리’다.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과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에서는 연달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그는 2003년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선수 특채로 채용됐다. 그는 입사 초반 행정업무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지만 선수 시절 90㎏급에서 세계신기록(250㎏)을 세웠던 정신력으로 열중하다 보니 점차 일에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2005년 장애인체육회가 출범할 땐 창립 멤버로 합류했고, 전략사업팀과 생활체육부 등 주요 부서를 거치면서 행정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행정가의 길에 들어선 지 13년 만에 홍보부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올해는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이 있어서 장애인 체육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이런 중요한 때에 홍보부장을 맡아 걱정도 되지만, 선수 출신으로서의 노하우를 어떻게 홍보에 접목할지 고민하며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몸무게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볼링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력에 자신이 있다면 더 무거운 공도 괜찮다. 볼이 무거울수록 흔들림은 적고, 파괴력은 더 커진다. 오빠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다소 무거운 공을 사용하곤 했다. 그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오빠에게 실제로 버거웠는지, 아니면 적절한 무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오빠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되돌려 보았다. 유튜브 검색 창에서 오빠의 이름과 ‘볼링’이라는 단어를 함께 치면 열 개가 넘는 동영상이 뜬다. Y시장배 아마추어 볼링 대회의 결승전 영상, 그리고 형식이 ‘제일볼링장’이라는 태그를 달아 업로드한 짧은 영상들로, 대부분 볼링공을 던지고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따금 스트라이크를 치고 나면, 뒤로 돌아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잡히기도 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모형 볼링핀을 지붕 위에 얹은 ‘제일볼링장’ 간판도 보였다. 나는 객차의 출입문을 향해 트렁크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걸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낡고 찌든 구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로, 십여 년 전 그를 쫓아낸 오빠가 아버지의 외투와 함께 마당으로 내던졌던 그 구두였다. 앞코가 해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은 갈색 구두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날렵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은 아바이도 아이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만 우리 둘 다 제 명에 몬 삽니데이. 살아생전에 서로 보는 일 없도록 하입시더!” 오빠는 커다란 전정가위를 손에 든 채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이 집에 그 종자가 발을 디디 놓는 일은 없을 끼다. 엄마도 맞고 산 세월은 이제 잊으이소. 열일곱 살의 오빠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오빠의 말은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십 년 만에 나타나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거실에 선 채로 나를 맞고 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구두만큼이나 아버지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 휑뎅그렁했다. 게다가 새카만 피부와 깡마른 팔다리, 그리고 볼록한 배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연상시켰다. 기세등등했던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젓가락 같은 팔로 러닝셔츠 안의 배를 긁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왔나? 밥은? 너거 엄마는 밭에 갔다. 덥은데 어서 들와서 선풍기 바람 쫌 쐐라.” 약간 새된 소리가 섞인 음성은 그대로였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는 듯 다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내한테도, 거…걸리가 있다 카더라. 나도 다 들었는 말이 있다.” “걸리고, 권리고 간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어떤 집인데!”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과 맞닿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방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갖게 된 내 방. 그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현관에 놓인 그의 구두를 집어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렸다.  냉장고에는 자양강장제 열 병이 두 개씩 나란히 줄을 지은 채 놓여 있었다. 각성 효과가 있다는 자양강장제를 물처럼 마시던 오빠가 세상을 뜬 지도 이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냉장실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갈색 병에 담긴 드링크를 열 병씩 정리해 놓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빠는 매일 아침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라는 광고로 유명한 노란색 드링크제를 양쪽 점퍼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은 채로 출근하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고가 났던 날, 오빠가 몰던 트럭 조수석 바닥에는 빈 드링크제 병이 스무 개 남짓 뒹굴고 있었다. 오빠는 졸릴 때마다 자양강장제를 마시면 힘이 난다고 했다. 오빠는 자주 졸려했고, 늘 피곤해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서 소변을 본 후 변기 커버를 위로 젖혀 놓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물을 내리면서 자양강장 드링크제처럼 샛노란 오빠의 오줌이, 거품을 일으키며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오빠 방에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책상에 놓인 액자 속 오빠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한 채 경직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담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사진 액자 옆에는 두 개의 볼링핀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링핀 모양의 트로피다. 한 개는 2.0리터짜리 생수 병 크기 정도로 크고, 나머지 하나는 막걸리 병만 했다. 오빠가 냉장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던 막걸리 말이다. 오빠는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다. 그와 한판 붙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었다는 건 오빠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빈소에서 문상객들이 늘어놓는 오빠의 무용담을, 나는 상복을 입고 빈청에 앉아 참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오빠의 사인은 졸음 운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한 심박정지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 인근에서 서울 방면으로 시속 130㎞로 달리던 K주류회사의 냉장 트럭이 오전 6시 40분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보도가 전파를 탈 만큼 큰 사고였다, 새벽부터 출근해 냉장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로 막걸리를 배달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당연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했다. 사고 전날에도 오빠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고, 사고 당일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오빠가 죽기 전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쳤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 따위에 도장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오빠의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현란하게 혀를 휘두를 때에도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엄마의 곁을 지켰다. 문도 열어 줘서는 안 된다는 회사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오빠가 즐겨 마시던 드링크제를 그들에게 내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오빠가 그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치지 않았더라면…. 회사는 이런 가정을 내놓고 우리를 괴롭혔다. 과한 취미생활이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를 대신해 회사와 싸웠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그날 아침 내가 오빠에게 전화라도 한 통 했더라면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빠가 그날 새벽에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나간 것이 오히려 졸음 운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마는 싫다는 오빠에게 한사코 아침을 먹여 보낸 것을 후회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한 학기 등록금은 당시 식구들이 살던 고향집의 연세(年貰)보다 비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오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정들과 후회는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좁았다가 때로는 큰 파도처럼 밀려와 삶 전체를 부정하고 휘저어 버렸다. 아버지가 반듯한 가장이었다면, 엄마가 좀 더 야무지게 우리 남매를 건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빠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웃들과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동공이 초점을 잃고 실성한 사람처럼 빈소를 지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더러, 이제 너그 엄마한테 남은 사람은 인숙이 니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일말의 부담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감추고 살아남은 내 책임을 강조했다. 나 역시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을 면담하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동창이자 오빠의 친한 후배였던 형식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곤란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인호 행님은 내한테도 친행님이나 다름없다. 형식은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우리를 도왔다. 형식은 주변의 선후배들에게 오빠의 부고를 알렸고, 생각보다 늘어나는 조문객을 맞으려 술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나를 대신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르며 조문객들을 대접했고, 장례 행렬 맨 앞에서 오빠의 영정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례 기간 내내 내 시선을 피해 의아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화장터 앞마당으로 나를 따로 불러 오빠가 남긴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 것도 형식이었다.  “장례 다 치아고 말해 줄라 캤는데 행님을 저래 불구디에 보내디리고 나이 인자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볼링동호회에 보험설계사 하시는 행님이 계시거덩. 그 행님한테 인호 행님이 얼마 전에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기 정확히 말하만, 무슨 내기를 해가꼬 20만 원 정도 인호 행님이 땄는데 그거를 보험 행님이 돈으로 안 주고 인호 행님 이름으로 종신보험을 들어뿌맀다 이기라. 첫 달 보험료 대납해 줬다 카민서. 두 달도 안 된 일인기라. 그걸로 그 보험 행님이랑 인호 행님이 싸우고 억수로 난리 났는데, 일이 이래 되고 보이 이런 거를 불행 중 다행이라 캐야 되는 긴지…. 사람 운명이라 카는 기 참… 얄궂다.” 형식은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와 형식의 담배 냄새가 섞여 공중으로 흩날려졌다.   오빠가 내 이름으로 남긴 보험금이 꽤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웃들은 그래도 이제 인숙이네는 걱정 없겠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죽은 보험금으로 포도밭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며 수군거렸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해서 그를 잃은 슬픔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받기 위해 그 돈을 받은 것 또한 아니었다. 오빠는 죽으면서 보험금을 내 앞으로 남겼고, 우리는 오빠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항상 가난했다. 오빠는 가난하게 자라, 가난하게 살다가 갔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보험금 5억과 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 6억이란 돈은, 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으며 살던 엄마의 소원은 자기 명의의 땅과 집을 가지는 것이었다. 내 소원은 학교 앞에 원룸이라도 하나 얻고,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었다.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 사람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중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내 공간으로 마련한 8평짜리 오피스텔은 아늑했다. 뜨거운 물을 가장 센 수압으로 오래도록 틀어 놓고 머리를 감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 벌거벗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되뇌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볼링을 몰랐더라면, 형식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은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장례가 끝난 후,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에 남겨진 형식의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형식은 거의 매일 밤 오빠를 자기네 볼링장으로 불러냈다.  행님 오늘 제가 3 대 3 죽이는 멤버들로 조 짜놨습니더. 판돈이 꽤 커예. 이거는 진짜 빅 매치라요. 컨디션 조절 잘하고 오시이소. 드링크 시원하게 해 놓고 기다리께예. 오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읍내에 있는 형식의 볼링장으로 달려갔다. 볼링장 입구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보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였다. 형식이 놓친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으. 뜨거버라! 니 미친 거 아이가.”  대답도 없이 볼링 레인 앞에 놓인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볼링공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볼링장 입구의 유리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야, 이형식. 너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머라카노. 니 뭐 잘몬 쳐 묵었나.”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해? 우리 오빠를 노름에 끌어들여 죽게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냐고!” 나는 형식이 가슴팍과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다, 그런 기 아이고. 니가 무슨 오해가 있는 갑는데, 행님은 노름을 하신 기 아이고… 그거는 그냥 친목 도모다. 그라이깐 여기 볼링동호회 회원들끼리 재미로 했던 내기인기라.” “그래? 그럼 이 얘기 경찰서 가서 한 번 해 볼까. 매일 밤 판돈이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씩 오가는 볼링 게임이 내기인지 도박인지 말이야.” “니 말 다했나? 니 그래 말하만 나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나. 그래도 해…행님이 우리캉 볼링을 칬기 때문에 그 보험을 들게 된 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칸다. 너거 집은 행님 죽어 가꼬,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 살게 됐다꼬. 6억이 뭐 누구 집 아 이름이가?” 나는 형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레인 앞에 놓인 볼링공 하나를 들어 카운터 방향으로 던졌다. 형식이 자리를 비운 카운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둔탁하게 볼링공이 떨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볼링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욕을 하는 형식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입구에 잘게 부서져 있는 유리 조각을 밟으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바지 자락은 흙투성이였다. 엄마는 입구에 더러운 몸뻬 바지와 토시를 허물처럼 벗어 두고, 반팔 셔츠와 팬티만 입은 채로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못 본 사이 살이 더 빠졌는지 팬티조차 몸뻬처럼 헐렁했다. 엄마는 팬티를 발목까지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욕실 바닥에 소변을 보았다. 욕실 문도 닫지 않고 수채 구멍에 오줌을 누는 엄마의 엉덩이를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변기가 아닌 수채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엄마의 버릇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이기 편한데 우짜겠노. 엄마는 늘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입안에서 삼키듯이 말했다. 학창 시절, 매일 아침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욕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에 숨이 막혔다.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자주 깜빡하는 오빠도 지긋지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꼭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냐고 묻는 오빠의 질문에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달라고,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 보겠다며 겨우 오빠를 설득했다. 오빠에게도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공고 3학년 때 수원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오빠는 고민 끝에 입사를 포기했다.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했던 엄마의 만류 탓이 컸다. 대신 오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걸리 공장에 취직했다.  “인숙아, 오빠야가 볼링부인 거 알제? 오빠야가 볼링 칠 때 제일 어려븐 기 뭐꼬 카만 스페어(spare) 처리다.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시키만 두 번째 공 떤질 때 나머지를 다 넘가야 되거덩. 최고 골치 아픈 기 뭐꼬 카만 핀이 몇 개 남지도 안해 가꼬 뚝뚝 떨어지가 있을 때인 기라.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 개 뚝 떨어져 있으면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빢에 없더라 카이. 그라이깐,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 뭐 이런 말이다.”  오빠가 한창 볼링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오빠는 모든 것을 볼링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 들었고, 볼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환하게 웃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부터 굳게 다짐했다.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 보겠다고. 나는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도 않았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들고 온 유리단지 속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서로 몸이 뒤엉긴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이런 게 어디서 났어요?” “어데서 났기는? 샀지. 읍내 건강원에 외상 잽히가 샀다. 읍에 나갈 일 있으만 그 집에 돈 쫌 갖다 주라. 구하기 힘든 기라꼬 억수로 생색내더라. 이따가 너거 엄마 오만 이거 씻거가 한 번 찌놓으라 캐라.” “아니, 대체 뭘 믿고 외상을 줘요?” “내 믿꼬 줬겠나? 인숙이 니 인자 부자됐다꼬 소문이 자자하더라.”  “그래서, 좋으세요?” “누가 좋다 카더나. 사람들이 그칸다 카는 기지. 나도 참 기가 차가 말도 안 나온다.” 아버지는 유리단지를 손에 든 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투명한 단지 표면에 희뿌옇게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얼마를 원해요? 그때 말한 권리라는 게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세요?” “35다.”  “당장 필요한 용돈 말고요. 얼마를 주면, 이 집에서 나가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많이는 못 줘요.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엄마도 농협에 빚내서 비료 사고 농사지어요.” “35만 워이 아이라 35키로. 그기 지끔 내 몸무게다.” 예전의 그는 36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걱정 마라. 오래 안 있는다. 나도 곧 인호 저트로 갈 끼다.”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약은 왜 구해다 먹어요? 무슨 염치로 이래!” “하루를 살아도 쫌 덜 아프까 싶어가 칸다. 내가 이거 한 빙 사 묵는 것도 아깝나? 인호 글마가 살아 있었으만, 내를 이래 멸시하지는 않았을 끼다. 적어도 다 죽어 가는 아바이한테 이래 하는 거는 갱우가 아이라 카이!”  아버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우윳빛 투명한 몸체에 붙은 검은색 대가리를 뒤흔들며 유리벽을 타고 있는 굼벵이들처럼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오빠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더 독한 말로 쏘아 주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놀라 엉거주춤 팔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푸른색 타일이 깔린 욕실 바닥에 검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러닝셔츠 앞섶을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적신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물을 세게 틀어서 바닥의 끈적끈적한 핏자국을 지우다 말고, 나는 쪼그려 앉아 울었다. 오빠였더라면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빠가 돌아와 어서 이 스페어들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오빠의 방에는 그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 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갖다 버린 오빠의 유품들을 엄마는 모두 다시 주워 왔다. 오빠가 입던 옷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어 보았다. 오빠에게서 늘 나던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담배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섞여서 나던 찌든 내가 좀약 냄새와 함께 코끝에 돌았다. 외투 주머니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 전해졌다. 오빠의 점퍼 주머니에 하나하나 손을 넣어 보다가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링에 관한 메모밖에 없었다. PVC 재질의 수첩 커버에는 ‘제일볼링장 이용권’이 스무 장 남짓 끼워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 수첩을 첫 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수첩은 각 장마다 오빠가 치른 게임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빠는 자신이 얻은 점수와 딴 돈 혹은 잃은 돈을 먼저 기록하고, 그날 컨디션과 치러 낸 게임의 보완점들을 짤막하게 적어 놓았다. 돈을 잃은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액수라도 잃은 날이면, 처리하지 못한 스페어의 위치와 공의 각도까지 그려 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들었다. 나는 모르는 볼링 용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서 찾아보면서까지 오빠의 게임을 내 나름대로 복기해 보려 애썼다. 오빠는 파워모션 볼링을 선호했다. 5스텝의 순서로 빠르게 어프로치 라인을 통과해 공의 스피드와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오빠는 되도록 1회 차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 성공시켜야 한다고 수첩에 써 놓았다. 스페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빠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첫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성공하지 못하면, 2회 차 투구에서는 미스가 잦았다. 그럼에도 그의 에버리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과 터키(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심심치 않게 보여 줄 정도로 스트라이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수첩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인 ‘일타열피!’라는 문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오빠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막걸리 상자를 들 때에도 오빠는 남들처럼 한 상자씩 드는 게 아니라 두세 상자를 한꺼번에 겹쳐 옮기곤 했다. 상가에 조문 온 회사 동료들은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빨랐던 오빠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허겁지겁 끝내고 그가 달려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침 느지막이 거실로 나가자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의 방문 앞에는 빈 죽 그릇이 놓인 개다리소반이 나와 있었다.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읍내의 볼링장으로 나갔다. 카운터 앞에서 쿠폰을 내밀자, 형식은 두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니 이거 어데서 났노?” “이 쿠폰 너네 볼링장 꺼 맞지? 240 사이즈로 줘.”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내 할 말만 늘어놓았다. 형식은 순순히 볼링화를 꺼내 주었다. 푸른색 쿠폰 한 장을 내고 하루 종일 볼링을 쳤다. 쿠폰 한 장당 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섯 게임에서 열 게임은 족히 쳤다. 신발 대여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형식은 그런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평일 낮 시간의 볼링장은 한산했다. 오빠의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볼링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러 볼링공을 세게 바닥에 던지듯 굴렸다. 레인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발끝에 진동이 와 닿았다.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수첩에 공부를 해 가면서까지 쳐. 대단한 박사 나셨어.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잠이나 잤어야지. 나더러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떠났나. 공은 레인 옆의 도랑같이 생긴 회색 거터 속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굴러가기 일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이죽거렸다.  “그래 가꼬 바닥이 뿌사지겠나. 더 씨기 쾅쾅 떤지 뿌라. 아이고 답답아래이. 그래 하는 기 아이고….” 형식이 내 손과 어깨를 붙들고 볼링공 잡은 자세를 교정시켜 주려 했다. 나는 볼링공을 손에 든 채로 형식을 노려보았다. 순간 형식은 움찔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오일이 덧발라져 번들거리는 레인 위로 나는 폭탄을 던지듯 공을 던졌다. 오빠에게 등록금을 부쳐 달라고 했던 내 발등을 볼링공으로 찧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 레인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시끄럽게 순서를 바꿔 가며 볼링을 치고 있었다. 볼링공이 굴러가 핀에 부딪칠 때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카운터에 신발을 반납하며 힐끗 학생들의 전광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들은 10프레임이 아니라 12프레임으로 게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는 형식에게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쟤네들은 왜 열 번이 아니라 열두 번씩 쳐? 내가 쿠폰 손님이라고 홀대하는 거야?”  형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니는 여어가 노래방맨치로 사장이 뽀나스 프레임 더 주고 싶으만 줄 수 있고 그런 덴 줄 아나? 그기 아이라 쟈들은 10회 차 떤질 때 스트라이크를 해 가꼬, 뽀나스 프레임을 받은 기다.” “보너스?”  “하긴, 니는 맨날 개판 치는 점수만 받아 가꼬 그런 기 있는 줄또 몰랐겠지. 인호 행님이 진짜 뽀나스 게임의 명수였는데…. 10회 차를 스트라이크 때리 가꼬 두 번 더 뽀나스 투구를 받아 뿌리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제.” 형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때 저 행님은 진짜 운빨 쥑인다 생각했거덩. 스트라이크를 치도 우째 저 순간에 딱 성공시키민서 뽀나스 투구를 받아 가까. 행님이 내한테 자주 했던 말이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꼬, 두고 봐라 늘 그캤는데….”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실력에 운까지 따라 준다고 치켜세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이 졸린 눈을 부비며 공을 던지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빨간색 팬티와 체크무늬 양말을 신은 날이 제일 점수가 좋다며 속옷과 양말 색깔까지 메모해 놓은 오빠의 수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링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굴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공이 휘어지는 지점인 후킹 포인트까지 계산에 넣어야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이뤄 낼 수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오빠가 펼치던 인생이란 게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보너스는커녕 주어진 프레임의 점수 칸을 제대로 채워 보지도 못한 채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앞세우고 포도밭을 향해 걸었다. 포도송이를 종이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집은 너거 아이라도 일손 안 많나. 오늘 우리도 해야 되는데, 우짜노. 내일은 약 치야 되는 날인데…. 오늘은 꼭 우리 밭에 와 줘야 된다꼬 내가 말 안 하더나…. 어데,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약속을 어긴 건 상대방인 것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맸다. 오기로 했던 이들은 엄마와 함께 조를 짜서 인근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로 일당 벌이를 다니던 아주머니들로, 오빠의 장례식장에 달려와 가장 큰 목소리로 곡을 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포도밭을 사면서 그들의 태도는 묘하게 변해 갔다. 유월 초순, 포도알이 새파랗게 영글 즈음이면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 줘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병충해나 햇빛, 농약으로 포도가 상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도울 테니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방 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있던 아버지도 눈치를 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나 나나 밭일을 안 해 봤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운 게 문제였다. 나는 엄마와 예닐곱 걸음 떨어져 혼자 일했고, 아버지는 엄마와 한 조를 이루어 일했다. 아버지가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면 엄마가 옆에서 그 위를 철끈으로 묶었다. 너무 쫄리게 묶으만 안 된다 카이, 포도도 숨을 쉬이야제. 엄마가 종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에 불현듯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입관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으로 분까지 바르고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사고 직후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오빠를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장례사를 붙들고 염해 놓은 오빠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아는 답답은 거 싫어하는데, 너무 꽉 쫄라 놨다. 옷도 찡기는 거 싫다 캐가 내가 맨날 한 치수 큰 걸로 사주고 캤는데…. 어차피 태울 꺼 아이가. 쪼매만 풀어 주만 안 되겠나. 우리 인호는 저래 답답은 거 싫어한다 안 카능교.” 목구멍에서 넘어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난 삼십여 년간 아무 탈도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산 금슬 좋은 부부인 양, 같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도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허망한 생각마저 몰려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내려와 있는 내가 한심했다.  “니는 와 하필이믄 포도밭을 샀노. 쪼매난 하우스 같은 거를 샀으만 차라리 좀 핀하고 나슬 낀데.” “우리 인호가 포도를 제일 안 좋아했능교. 맨날 넘우 밭에서 얻어 가꼬 알매이 쪼매난 것만 믹인 기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사상에 제일 큰 걸로 올리 줄라꼬 그캤제.”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꺽꺽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 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한편으로, 별안간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품새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웅얼거리면서 속의 말을 삼키던 엄마였다. 이렇게 울기라도 해야 썩은 포도알처럼 문드러진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주변은 고요했다.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니 와 이카노. 일나 봐라. 동네 사램들이 들으만 머라카겠노. 내가 니 뭐 우째 했는 줄 알겠다. 동네 우사시럽구로.” 그는 진땀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팔뚝은 엄마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앙상했다. 엄마를 일으키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휘청거리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쓰고 있던 선캡을 벗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낮아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부채질만 해댈 뿐이었다. 숨이 막히게 더웠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땅바닥에 카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길고 끈적끈적한 가래침이 끊어지지 않고, 그의 아랫입술에서 덜렁거렸다.   오빠는 죽기 전날까지 도박판을 벌였다. 수첩을 절반쯤 넘기다가 나는 게임일지의 패턴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생의 막바지에 빠져 있었던 게임은 단순히 볼링 에버리지를 얼마나 많이 내는지를 다투는 게 아니라 누가 점수를 제일 적게 내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공을 레인 옆의 거터 구역에 빠뜨려서도 안 되었다. 핀 스폿까지 공을 굴리되, 가장 적게 핀을 쓰러뜨리는 자가 돈을 따갔다는 점에서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투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공은 킹핀과 헤드핀을 아슬아슬하게 잘 비켜나가 많은 수의 핀을 남겼다. 형식의 말에 따르면, 점수를 많이 내는 오빠를 견제하기 위해 점수를 적게 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도록 룰을 바꾼 것이었는데, 오빠는 의외로 빨리 새로운 게임에 적응했다. 투구 자세와 쓰던 볼을 바꾼 효과가 컸다. 5스텝 대신 4스텝, 평소 쓰던 16파운드의 볼 대신 13파운드 볼을 쓴다. 거친 필체로 채워진 오빠의 메모는 꼼꼼했고 진중했다. 배치도까지 그려 놓고, 검은색으로 표시된 10번 핀 하나만 안정적으로 아웃시키기 위한 공의 동선을 짰다. ‘훅 볼’이라고 동그라미 쳐진 단어 옆에는 별모양 그림이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곧게 전진시키다가 핀 앞에서 오른쪽 바깥으로 볼의 커브를 유도해서 10번 핀을 날리는 전략이었다.   ⓻ ⓼ ⑨ ❿   ⓸ ⓹ ⓺ ↱    ⓶ ⓷ ↗     ⓵ ↗      ↱      ↑ ‘뉴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게임의 판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메모에 담긴 욕망의 크기도 기묘하게 불어났다. 사고 즈음의 오빠는 팬티 한 장을 갈아입는 데에도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임 한 판에 한 달치 월급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헤드핀(1번 핀)과 킹핀(5번 핀)을 비켜 지나가 단 하나의 핀만 깨끗하게 날려야 한다고 휘갈겨 놓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한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 수첩을 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캐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 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스(spares)라는 걸 잊고 싶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잿더미를 발로 밟고 침을 퉤퉤 뱉었다. 수첩에서 빼낸 몇 장의 쿠폰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화가 치솟으면서 무언가 던지고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볼링장에 갔다. 이 집에서 머무른 대부분의 시간이 그런 나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쿠폰을 내고 벤치에 앉아 볼링화를 갈아 신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점수를 적게 내는 볼링을 쳐 보기로 했다.  오른쪽 끝의 10번 핀을 노리고 던졌더니 볼링공은 손에서 떨어지는 족족 레인 밖으로 굴러가기 바빴다. 한 번은 10번 핀에 공이 닿긴 닿았는데, 스치기만 했는지 핀이 살짝 기우뚱하는 데 그치고 오뚝이처럼 말짱하게 섰다.  “으이고, 속 터지 죽겠네. 니는 우째 핀을 맞차 놓고도 점수를 못 내노? 이거 끼고 한번 해봐라.” 형식이 볼링 아대라며 낯선 장비를 내밀었다. 광택이 나는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진 붉은 아대는 아이언맨의 갑옷 같았다.  “핀이 맞으만 머하노. 손모가지에 히마리가 없어 가꼬, 핀이 쓰러지지를 안 하는데. 이거 차고 한 번 해 봐라. 훨씬 더 힘이 잘 들어갈 끼다.” 나는 웅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딱 하나만 아웃시키고 싶어. 아주 깨끗하게.” 형식은 내 팔에 억지로 아대를 채우느라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다 되는 기 아이다. 첨부터 우째 깨끗하이 다 처리하겠노. 부담 가질 필요 엄따. 공짜로 주는 거 아이다. 빌리주는 기다. 신발하고 같이 반납하만 된다.” 단단한 아대를 착용하자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 공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확실히 공이 뻗어 가는 기세가 이전보다 좋았다. 10번 핀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던 공이 핀 스폿 앞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1번 헤드 핀을 정확하게 때렸다. 헤드 핀이 넘어지면서 킹 핀을 때렸고, 또 킹 핀이 주변의 핀들을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였다. “브라보! 내가 말 안 하더나. 아대 끼면 힘을 팍 받아 갖고 점수가 더 나올 끼라고. 이야, 핀 캐리 직이네. 일단 공을 쌔리삤다 카만 저런 반발력으로 핀 캐리가 나와 줘야 속이 씨원해진다 카이. 아대가 완전 임자 만났는 갑다.” 형식은 박수를 쳐 가면서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크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손끝에 얼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공에 맞은 핀이 튀어 오르는 순간, 핀과 핀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의 경쾌함이 내 몸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쓰러진 핀들이 쓸려져 나가고 새로운 열 개의 핀으로 리셋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얼한 손끝과 팔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아대를 어루만졌다.  볼링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 봤자, 강한 힘이 덮쳐 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반환구가 방금 전 내가 던졌던 10파운드짜리 남색 공을 뱉어 냈다. 오일이 표면 곳곳에 묻은 공을 헝겊으로 닦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힘껏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이 볼링공처럼 매일 새벽 수백 상자의 막걸리를 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도시까지 가 닿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오빠의 삶이 이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그가 얻어 내고 싶었던 보너스는 무엇인지 나는 계속 외면하려 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마 그 대가일 것이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벤치에 앉은 형식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희뿌옇게 펼쳐진 눈앞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열 개의 볼링핀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 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 당신이 보지 못한 가장 후끈한 MLB

    당신이 보지 못한 가장 후끈한 MLB

    내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를 기다리는 야구팬들의 마음이 설레고 있다. ‘토종 선수’들의 미국 진출이 잇따라 성사되면서 추신수(33·텍사스 레인저스), 류현진(28·LA다저스), 강정호(28·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김현수(28·볼티모어 오리올스), 박병호(29·미네소타 트윈스) 등 5명의 한국 선수가 동시에 MLB를 누비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6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최근 LA에인절스에 입단한 최지만(24)과 아직 구단들과의 접촉이 진행 중인 이대호(33), 오승환(33)까지 합류할 경우 숫자가 더 늘어나게 된다. 이들이 낯선 구장과 부상을 극복하고 MLB에 ‘한인 선수 전성시대’를 열 수 있을지 기대가 커진다. ‘MLB 새내기’ 김현수와 박병호는 안정적인 리그 연착륙이 최대 과제다. 두 선수 모두 국내 최고의 선수였지만 MLB에서도 실력이 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박병호의 경우 마이너리그행 거부권과 관련해 에이전트에서 즉답을 피하고 있는 것을 미루어볼 때 거부권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자칫 잘못하면 마이너리그로 갈 수 있다는 부담감을 떨치는 강한 정신력이 요구된다. 다행히 현지에서는 박병호에게 적응의 시간을 줘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MLB 공식 홈페이지(MLB.com)는 30일 ‘미네소타의 내년 시즌에 대한 5가지 질문‘이라는 기사에서 “강정호는 시작은 늦었지만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 3위로 시즌을 마쳤다”며 “미네소타 구단도 박병호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현수는 구단과의 협상을 통해 마이너리그행 거부권을 확보했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최근 볼티모어가 쿠바 출신 외야수 요에니스 세스페데스의 영입을 추진하면서 주전 좌익수 자리를 안심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미국 볼티모어 지역지 MASN은 이날 보도를 통해 “세스페데스가 좌익수로 출전하고 김현수는 지명타자로 나서면서 메이저리그에 적응할 시간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류현진과 강정호는 부상을 떨치는 것이 급선무다. 지난 5월 어깨 수술을 받은 류현진은 내년 스프링캠프 합류를 목표로 재활훈련에 구슬땀을 쏟고 있다. 다저스의 2선발이던 잭 그레인키가 팀을 떠난 상황이라 건강하게만 복귀할 경우 주전 경쟁은 문제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정호도 올해 놀라운 데뷔 시즌을 보냈지만 지난 9월 수비 도중 무릎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으며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당초 내년 5월쯤 복귀할 것으로 보였던 강정호는 재활이 예상보다 순조로워 내년 4월 복귀 가능성도 엿보인다. 추신수는 올해 타율 .276, 22홈런, 82타점으로 무사히 시즌을 마쳤지만 전성기와 비교해 볼 때 만족스럽다고 볼 수 있는 성적은 아니었다. 7년간 1억 3000만 달러(약 1515억원)라는 몸값에 부응하기 위해 내년에는 좀더 큰 활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엘리트 조기 발굴·육성…정신력까지 철저히 교육”

    “엘리트 조기 발굴·육성…정신력까지 철저히 교육”

    한국 골프는 왜 강한가. 올해 일본 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7승을 거두며 최다승과 ‘상금 여왕’ 트로피를 거머쥔 프로골퍼 이보미의 일본 내 인기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아사히신문이 22일 한국 골프가 강한 비결을 사회면 주요 기사로 다뤘다. 올해 남자 상금왕은 김경태가 차지했다. 한국 낭자군의 올해 약진은 한층 두드러진다. 투어 37개 대회 가운데 절반 가까운 17개 대회 우승컵을 한국 선수들이 쓸어 담았다. 이보미, 안선주(2승), 신지애(3승) 등이 우승컵 합작 주인공들이다. 올해 JLPGA 상금 상위 5위 가운데 4명이 한국 선수였다. 이보미는 일본에서 ‘이보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열렬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보미의 올해 상금은 2억 3049만엔(약 22억 3000만원)으로 남녀 통틀어 일본 골프계의 역대 최고 상금 기록을 경신했다. 정확한 자세와 깔끔한 샷, 우아한 매너와 호감 가는 일본어 말솜씨, 겸손한 성격의 이보미는 일본 장년 남성층의 마음을 쏙 빼앗았다. 신문은 일본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의 전성시대가 열린 이유는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불리는 엘리트 육성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골프협회가 주요 대회 성적을 포인트화해 이를 근거로 초등학생에서부터 대학생까지 ‘대표 상비군’으로 불리는 60명을 뽑아 훈련시키는 것을 예로 들었다. 이들 가운데 6명을 국가대표급으로 선발해 200일 동안 무료 합숙훈련을 하면서 기술과 정신력면에서 철저하게 교육시킨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한국 골퍼들이 선배들과는 달리 미국보다는 일본에 몰리면서 코리안파워가 부각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비슷하며 스폰서도 비교적 풍부해 우수한 선수들이 일본에 몰린다는 것이다. 올해 일본 투어에서 5승을 거둔 김경태는 “주니어 시절에도 경쟁이 가혹했다. 지금도 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신문은 전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박병호, 믿음직한 대포

    박병호, 믿음직한 대포

    “박병호의 장타력을 믿는다.” 미국 야구통계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21일 내년 미프로야구(MLB) 미네소타의 운명이 한국인 거포 박병호(29)와 유망주 미겔 사노(22)의 장타력에서 갈릴 것으로 전망했다. 팬그래프닷컴은 “박병호와 사노 모두 많은 홈런을 생산할 능력이 있다”면서도 “박병호는 메이저리그를 경험하지 못했고 사노도 올해 80경기만 뛰었을 뿐”이라고 전했다. 둘의 ‘거포 본능’은 인정하지만 빅리그 적응력 여부가 최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테리 라이언 미네소타 단장은 이 매체를 통해 “우리는 박병호의 강한 정신력을 믿는다”며 메이저리그 적응에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이어 “박병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19살이 아닌 29살이다. 그는 한국에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다”고 덧붙였다. 라이언 단장은 “박병호가 LG에서 다소 불운한 시절을 보냈지만 넥센으로 이적해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됐다”면서 “이미 힘겨운 시절을 극복했고 성품도 좋아 새 리그에서도 잘 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박병호를 세심하게 관찰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다른 구단들도 마찬가지 견해였다”면서 “박병호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고 밝혔다. 성남고 시절 4연타석 대포를 터뜨린 유망주 박병호는 2005년 LG에 1차 지명됐으나 좀처럼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2011년 넥센으로 트레이드됐지만 이후 4년 연속 홈런왕에 오르며 한국의 대표 거포로 자리매김했다. 박병호는 내년 27개 홈런이 가능할 것으로 평가됐고 이를 넘어설 충분한 능력도 있다. 결국 그의 빅리그 성공 열쇠는 조기 적응이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슈틸리케 “유소년 선수들, 돈보다 공만 보세요”

    “어린 선수들에게는 공만 보는 축구가 중요합니다. 어릴 때부터 돈을 좇는 축구는 안 됩니다.”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이 8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유소년 축구선수 부모들에게 이같이 조언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내 어릴 적 꿈은 축구를 하는 것이었지만 당초부터 돈을 버는 프로선수를 목표로 운동을 한 건 아니었다”면서 “17세 이전까지는 프로는 꿈도 꾸지 않았다. 이듬해 18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축구를 잘하면 프로팀에서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한국의 부모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조금만 축구에 재능을 보이면 반강제로 프로축구 선수 입문을 서두른다”면서 “여기에 적절한 자격도 갖추지 않은 에이전트들이 먼저 나서서 부모들을 부추기는 나쁜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독일축구협회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16세에서 21세까지 대표팀을 맡아 봤는데 이 가운데 프로선수를 염두에 두고 운동하다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더라”면서 “어린 선수들은 돈보다는 공만 바라보는 축구를 해야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축구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1년 3개월 동안 한국생활을 해 온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 ‘걱정 말아요, 한국축구’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날 간담회에서 “외국인으로서 한국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현지 생활에 적응하려는 자신의 의지”라고 말한 뒤 “한국 음식 중에 숯불구이를 가장 좋아하지만 음식 자체보다는 누구와 같이 먹느냐, 또 무엇을 곁들여서 먹느냐가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22살 때 결혼한 아내와 39년 동안 탈 없이 잘 살았다. 39년의 반을 합숙에다 훈련, 대회 참가 등으로 비웠으니 바가지 같은 건 긁을 시간도 없었을 것”이라고 좌중을 한바탕 웃긴 슈틸리케 감독은 내년에 열릴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 대해 “올해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가맹국 중 최소 실점을 했다. 올해와 같은 모습과 철학, 정신력을 러시아까지 똑같이 가져가겠다”고 굳게 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일본, 독도 침공 작전 카운트다운!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일본, 독도 침공 작전 카운트다운!

    대한민국 해군 미래 핵심 전력인 기동전단이 둥지를 틀 제주해군기지 완공을 앞두고 지난 1일 제주도에서는 기지전대와 해병대 제9여단 창설식이 열렸다. 1993년 소요 제기가 이루어져 2016년 1월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제주해군기지는 이지스 구축함 등 한국형 구축함으로 구성된 제7기동전단과 잠수함사령부의 제93잠수함전대 등이 주둔할 예정으로, 독도와 이어도 등 해양 이권이 걸려 있는 핵심 수역과 해상교통로를 수호하는 최전방 전진기지로써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우리 해군이 미래 해양안보를 위한 최일선 기지로써 제주해군기지 완공을 알릴 준비를 하던 시기, 일본은 우리의 해양 주권을 짓밟을 준비의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천명했다. 日, 한반도 감시용 장거리 레이더 도입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지난달 29일, 부산에서 불과 50km 떨어진 쓰시마(對馬), 우리가 대마도라고 부르는 섬에 딸린 작은 섬 우니시마(海栗島)에 헬기를 타고 나타났다. 육안으로도 부산이 보이는 이 섬에는 항공자위대 서부항공방면대 예하의 레이더 부대인 제19경계대가 배치되어 있으며, 이 레이더 부대는 최대 탐지거리가 약 200km 가량 되는 J/FPS-2 3차원 대공 레이더를 이용, 대한해협과 한반도 동남부 지역의 하늘을 감시하고 있다. 국방장관 격인 방위상이 이 섬을 찾은 것은 이례적인 일일뿐더러 나카타니 방위상은 육상자위대 쓰시마경비대 주둔지 근처에 한국계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한 숙박업소에 대해 경계감을 드러내며 “현재는 (이 숙박업소가) 안보 우려가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잘 둘러보고 경계 감시를 강화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이 섬에 배치되어 있는 레이더를 최신형 장거리 레이더로 교체하기 위해 내년도 예산안에 사업 예산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그는 쓰시마 현지지도 방문을 끝낸 다음날 도쿄 방위성에서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북한의 탄도 미사일 위협을 강조했다. 남서 지역의 정보 수집 및 경계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의지 속에 이 섬에 최신형 3차원 대공 레이더인 J/FPS-7 레이더를 배치할 계획을 밝혔다. 일본이 우니시마섬에 배치하겠다고 밝힌 J/FPS-7 레이더는 대당 100억 엔이 넘는 가격의 고성능 레이더인 J/FPS-5 레이더의 다운그레이드형이지만, 최신 위상배열레이더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에 무려 270마일(약 432km)에 달하는 탐지거리와 스텔스 전투기, 순항 미사일까지도 탐지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최신형 레이더다. 일본은 지난 2014년부터 우니시마섬 북쪽 해안에 신형 레이더 설치를 위한 건설 작업에 들어가 현재 완공 단계에 있으며, 이 레이더의 배치가 완료되어 가동에 들어갈 경우 일본은 대한민국 전역의 모든 비행 물체를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다시 말해 경기도 모처에서 우리 공군의 정찰기가 언제 이륙해서 어느 지역을 정찰하고 어느 경로를 통해 언제 복귀했는지, 전국 각지의 우리 공군 전투기가 언제 어디서 이륙해서 어떤 훈련을 하는지, 심지어 우리 대통령 전용기의 동선 흐름까지 실시간으로 모두 파악할 수 있어 한국 공군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대한해협 봉쇄 준비 착착 지난 9월 안보 관련 법안 11개를 제·개정한 아베 정부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와 군사력 증강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 자위대의 군사력 증강 동향을 살펴보면 자위대의 칼끝은 중국·북한이 아니라 한국을 향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 분쟁 발발 시 부산기지와 제주기지에서 동해로 증원되는 한국해군 기동전단을 대한해협에서 간단하게 궤멸시키고, 독도 인근 해상에서도 한국해군 제1함대의 한줌 밖에 안 되는 전력을 상대로 일방적인 학살극을 펼칠 수 있는 준비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다. 우선 대한해협의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는 전투기 전력을 전진 배치했다. 대한해협을 마주보고 있는 후쿠오카(福岡) 소재 쓰이키(築城) 공군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항공자위대 제6비행대의 전투기를 2006년에 F-2A 전투기로 모두 교체했다. F-2A 전투기는 우리 공군의 F-16과 유사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덩치는 훨씬 커서 군함을 공격할 수 있는 공대함 미사일을 무려 4발이나 탑재한다. 쓰이키 공군기지의 F-2A 전투기와 F-15J 전투기 일본은 내년부터 이 F-2A 전투기에 탑재되는 공대함 미사일을 기존의 공대함 미사일보다 3배 이상 빠른 최신형 XASM-3로 교체할 계획인데, 이렇게 되면 해상자위대가 나서지 않아도 전투기만으로도 우리 해군 기동전단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이 F-2A 전투기를 막기 위해 출동한 우리공군 F-15K 전투기는 쓰이키 기지에 함께 배치된 제304비행대의 F-15J 전투기가 맡는다. 이 전투기는 F-15K보다 구식이지만, J-MSIP(Japan-Multi-Stage Improvement Programme)에 따라 성능개량이 이루어져 공중전 성능에서 F-15K를 능가한다. 대한해협 봉쇄는 육상자위대도 동원된다. 일본은 지난해 6월, “중국의 규슈 상륙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구마모토(熊本) 겐군(建軍)의 제5지대함미사일연대에 배치된 구식 지대함 미사일 16대 전량을 최신형 12식(式) 지대함 미사일로 교체했다. 신형 지대함 미사일이 나오면 북해도 지역에 최우선적으로 배치되던 이전 사례를 볼 때 서부 지역 단일 부대의 장비를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모두 교체한 것도 파격적이지만, 미사일의 성능을 보면 일본이 왜 이 지역에 신형 지대함 미사일을 배치했는지 금방 답이 나온다. 제5지대함미사일연대 주둔지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만 올라간 구루메(久留米) 지역에 부대가 전개할 경우, 이 부대는 대한해협 전 지역을 공격 범위에 두게 된다. 12식 지대함 미사일 발사차량은 미사일 6발을 탑재하며, 1개 연대는 16대의 발사차량으로 구성되므로 이 부대는 최대 96발의 미사일 동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미사일은 일본의 최신 공대공 미사일 AAM-4B에 적용된 기술을 채택, 크고 무거운 대함미사일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회피 기동이 가능해 요격이 매우 까다로운 미사일이기 때문에 이런 미사일 96발이 동시에 집중되면 제아무리 이지스함이라고 하더라도 방어가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일본이 독도 침공을 결심하면 대한해협의 하늘은 F-15 전투기의 엄호 하에 ‘군함 킬러’ F-2A 전투기, 수 백여 발의 미사일이 새카맣게 뒤덮을 것이고, 부산이나 제주에서 출항한 한국해군 기동전단은 하늘을 뒤덮은 미사일과 깊은 수중에서 몰려든 일본 잠수함의 어뢰 세례를 맞고 대부분 격침될 가능성이 높다. 독도를 지키기 위한 함대가 독도는 고사하고 동해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수장된다는 것이다. 이미 시작된 독도 침공 준비... 우리는? 2008년, 일본 우익 정치학자인 나카무라 아키라(中村 粲) 도쿄대 명예교수의 ‘다케시마 폭격론’이 발표되고 이듬해 육상자위대 간부학교 교관 출신인 다카이 사부로(高井三郞)의 ‘다케시마 강습작전 시나리오’가 발표되면서 일본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한시라도 빨리 다케시마를 탈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 극우 진영에 팽배했던 ‘다케시마 탈환론’은 극우 세력들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당시 자위대는 독도에 강습상륙작전을 펼칠 수 있는 능력도, 이를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으며, 이명박 정부 당시의 한미관계가 대단히 돈독했기 때문에 국제 정세도 일본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다케시마 폭격론’이 나온지 7년, 상황은 많이 변했다. 일본은 독도를 무력 침탈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완료했으며, 이제 정치적 결단만 있으면 언제든지 독도에 일장기를 꽂을 수 있게 됐다. 자위대의 독도 ‘탈환’ 작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작업 뿐만 아니라 전력증강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법적 정비를 끝냈다. 지난 9월 강행 처리된 안보관련 법안 11개 중에는 자위대법 제3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은 이 법률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무력행사 가능 범위를 ‘외부의 간접 침략’까지 포함시킴으로써 분쟁지역으로 분류된 독도에 언제든지 군사력 투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독도 공격용 전력 강화 계획도 착착 진행 중이다. 독도를 관할구역으로 삼는 마이즈루(舞鶴)의 제3호위대군은 그 어느 호위대군보다 빠르게 현대화가 진행 중이다. 사실상 항공모함으로 운용할 수 있는 대형 헬기탑재 호위함 휴우가(ひゅうが)를 중심으로 탄도 미사일 요격까지 가능한 2척의 이지스 구축함도 보유중이다. 나머지 5척의 호위함 중 4척은 5,000~7,000톤급 이상 대형 구축함으로 모두 신형이며, 1척 보유하고 있는 4,000톤급 구형 호위함은 2018년 7,000톤급 신형 구축함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최신 전투함으로 무장한 독도 관할 제3호위대군의 마이즈루 해군기지 공중 전력도 독도 침공 준비를 거의 마무리했다. 항공자위대는 관련 법률 때문에 지상을 정밀 폭격할 수 있는 무기의 보유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안보 법안 통과 직전인 지난 8월 미국 록히드마틴과 스나이퍼 ATP라는 장비의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 장비는 수십km 떨어진 곳의 지상 표적을 정확하게 조준해서 정밀유도무기를 유도해주는 장비다. 즉, 이제 항공자위대는 실제로 독도를 정밀 폭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독도에서 불과 157km 떨어진 오키섬에 대형 비행장을 설치해 언제든지 항공자위대 전투기 전진 배치가 가능하도록 준비를 마친 상태다. 이 비행장은 민간인 이용객이 거의 없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지속적으로 확장 공사가 이루어져 왔다. 수중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도 확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6월 아베 총리 방미 직후 잠수함에서 발사해 지상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최신형 잠대지 순항 미사일 UGM-84L Block II 도입 계약이 체결되어 자위대 인도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해상자위대 잠수함은 독도 근처까지 가지 않아도 250여km 떨어진 곳에서 독도경비대 막사에 초정밀 순항 미사일 공격을 퍼부을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자위대는 7년 전 극우 진영이 주장했던 독도 강습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는 준비를 대부분 마쳐가고 있다. 이제 일본정부가 “독도를 탈환하라”는 지시만 내리면 대한해협은 봉쇄될 것이고, 동해는 일본의 바다가 될 것이며, 우리해군 기동전단과 1함대는 독도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대한해협과 동해에 수장될 것이다. 그리고 교전이 시작된 지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아 독도경비대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자위대에 체포되거나 강제 퇴거 조치될 것이다. 일본은 ‘다케시마 폭격론’이 등장한 이래 독도를 겨냥한 군사적 역량을 빠른 속도로 키워 왔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의 독도 도발이 있을 때마다 반일 감정으로만 대응할 뿐 실제로 독도를 지키기 위한 그 어떤 투자도,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독도 문제를 떠나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해상교통로 봉쇄를 결정하고 대한해협과 제주 남방 해역을 틀어 막아버리면 수출입 물동량의 99%가 바다를 통하는 한국은 말 그대로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쓰시마섬에 레이더를 설치하고, 규슈에 전투기와 미사일을 전진 배치하는 등 일본의 군사 도발 정황이 수년 전부터 관측되어 왔지만, 여기에 대응할 해군의 전력 증강 계획은 전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초 18척 체제를 목표로 추진되었던 한국형 구축함 사업은 대폭 축소되어 12척으로 줄어들었고,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역시 사업 착수 시기가 2020년대 후반으로 밀려난 상태다. 적 잠수함 대응을 위한 해상초계기는 예산이 없어 궁여지책 끝에 미 해군이 퇴역시킨 기종을 재생해 도입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고, 차기 호위함( FFX) 초기형 6척도 예산 문제로 성능을 다운시켜 2010년대 이후 등장한 최신 전투함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형편없는 설계와 무장을 갖추고 배치되고 있다. 1591년, 조선 조정은 동인과 서인의 정치 싸움에 눈이 멀어 서로 물고 뜯고 할퀴느라 나고야에 전진기지를 만들고 군사를 모으며 전쟁 준비를 하고 있던 일본의 위협을 보고도 모른척했고, 그 결과 조선 전 국토는 7년에 걸쳐 전화(戰火)에 휩싸이며 초토화되고, 무고한 양민들만 100만 명 이상 희생됐다. 그로부터 433년이 흐른 2015년의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주변국들이 역대 최대 규모로 증액된 국방예산을 편성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국방예산은 기획재정부에서 약 1조원이, 국회에서 1,500억 원이 삭감돼 주요 사업들이 줄줄이 축소·연기 위기에 처하게 됐다. 대통령은 ‘안보강화’를 외치지만 군사력 강화는 신무기 확보 대신 ‘정신력 강화’로 대신할 것을 주문하고 있고, 국회의원들은 내년 선거에서 한 번 더 ‘금뱃지’를 달기 위해 나라를 지킬 국방예산은 물론 국채 이자 낼 돈까지 빼돌려서 지역구 선심성 예산에 쏟아 붓고 있다. 정치인들에게 있어 도대체 그 ‘권좌’가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매력적인 것이기에 나라와 국민의 안위마저 팽개칠 수 있는 것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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