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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女간호원과 정 통한 폐결핵 환자, 배신당하자…

    女간호원과 정 통한 폐결핵 환자, 배신당하자…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68. 간호원과 환자의 칼부림 사랑…함께 병원 뛰쳐나와 한때는 살림까지 (선데이서울 1973년 3월 18일) 의료병동의 폐결핵환자와 그에게 유난히 친절했던 간호원이 사랑을 했다. 둘의 사랑은 함께 병원을 뛰쳐나올 만큼 뜨거운 것이었으나 어느덧 그 사랑은 식어가 여자는 남자를 피했다. 끝내는 칼부림 끝에 남자는 감방으로, 여자는 병실로 가게 됐다. 받기만 하려는 젊은이들의 그릇된 사랑 윤리가 문제다. ●무료 병동서 폐결핵 치료받으며 알게 돼  지난 2일 오후 5시쯤. 서울 동교동 S다방. 맞선을 보듯 한 쌍의 젊은 남녀와 함께 그의 가족들로 보이는 7명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드럽게 몇 마디 말이 오가더니 차츰 분위기가 험악해지며 음성이 높아졌다. 창문 쪽을 향해 앉았던 파리한 청년이 발작하듯 후다닥 일어나더니 “에이 이 년!” 하면서 마주 앉았던 여자의 얼굴을 면도날로 그어버렸다. 여자는 이를 피한다고 고개를 뒤로 젖히다가 의자와 함께 나둥그러졌다. 청년의 이름은 백병일(26). 전북 J읍이 고향인 폐결핵 2기의 환자. 얼굴을 긁힌 여자는 최정숙(가명·24)양으로 백씨의 애인이자 전직 S병원 간호원. 백씨가 최양의 얼굴을 긁은 이유는 한 마디로 ‘자기를 버리고 가려는 님을 못 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그러나 결과는 엄청나 백씨는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되고 최양은 전치 10주의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다. 10주라는 큰 상처가 생기게 된 것은 백씨의 칼을 피하려다 의자와 함께 넘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칼이 얼굴에서부터 목줄까지 그어져 버린 것. 이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6월. 백씨가 S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부터다. 가난한 집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근근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메리야스 공장에 다니던 백씨는 과로로 폐결핵에 걸려 1971년 10월부터 시립서대문병원 극빈자 무료병실에 입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입원한지 8개월이 되는 지난해 6월, 백씨가 입원해 있는 입원실 간호원이 최양으로 바뀌었다. 한 병실에 7개의 베드가 있는데 최양은 특히 백씨에게 미안할 정도로 친절했다. 치료약에서부터 음식에 이르기까지 간호원의 정도를 지나칠 만큼 알뜰히 보살펴 주었다. 한 달이 지난 7월부터 둘은 데이트를 즐기게끔 되었고, 8월에 들어서서는 결혼을 약속, 정을 통했을 정도로 급속히 친해졌다. 그러자 병원에서의 소문도 시끄럽고 하여 최양은 병원에 사표를 내고 백씨도 퇴원해 버렸다. 이때 최양은 “당신의 병은 제가 책임지고 고쳐 드릴 테니 아무 염려 말고 나가서 살자”고 하더라는 게 백씨의 말. 그래서 둘은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생활무능력자인 백씨와 최양의 동거생활은 계속 평화로울 수만은 없었다. 티격태격 싸움도 잦아졌다. 백씨 몰래 아기를 유산시킨 최양은 건강을 이유로 고향인 충북으로 내려가 버렸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정식 결혼해서 살기를 바란 백씨는 최양의 부모들을 만나 “이왕 이렇게 된 것이니 결혼을 시켜달라”고 했고 최양 집에서도 승낙을 했었다는 게 백씨의 진술. 그러나 무남독녀 외딸을 백씨에게 주기는 서운했던지 최양 집에서는 말과는 달리 자꾸 둘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했다. 그리고 최양은 백씨 몰래 서독으로 가기 위해 해외개발공사에서 파독 간호원 훈련을 받고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백씨는 지난 2일 사생결단을 하기 위해 아침부터 훈련원이 있는 동교동 로터리에서 기다리다 교육을 받고 나오는 최양과 그의 부모들을 만나 다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일을 저질렀던 것.   ●남자 피해 서독 파견 간호원 훈련받다가 “미안합니다. 단지 내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칼질을 했던 것인데 그만…. 지은 죄만큼의 처벌을 받고 나온 뒤 그녀만 이해해 준다면 다시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그녀는 나의 첫사랑이었으니깐요”-백씨의 심정이다. 한참 동안 최양의 과거-간호학교 때부터 제멋대로 놀아난 여자며 병원에서도 백씨와 알기 전 역시 환자인 정모씨와의 스캔들이 있었느니 등등-를 늘어놓으며 그녀를 욕 한 백씨지만 그래도 자기에겐 최양만이 유일의 여성이라고. 한편 병실에 누워 있는 최양은 백씨의 이야기라면 한마디도 듣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다며 눈을 감기만. 정리=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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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 ◇이사관 승진△시민안전실장 이병렬◇부이사관 <승진>△정책기획관 허익배△문화관광정책실장 김일융△도시재생국장 안용훈△체육지원국장 홍화성△도시철도건설본부장 문범수<전보>△복지건강국장 염방열△지방공무원교육원장 안치환△서구 부구청장 정평호△남구 부구청장 백봉기△광주복지재단출범준비단장 박향△행자부 전출 예정 김정훈◇서기관 <승진>△문화예술진흥과장 문병재△대중교통과장 송상진△도로과장 조주환△청년인재육성과장 이정석△수영대회지원과장 박용규△기업육성과장 이석호△종합건설본부 토목부장 박병량△시립도서관장 안미영△동구 국장요원 최광희<전보>△여성청소년가족정책관 이윤숙△일자리정책관 이동진△세정담당관 정찬성△법무담당관 조윤식△국제교류담당관 김석웅△재난예방과장 김홍식△재난대응과장 서병천△문화산업과장 문정찬△식품안전과장 허기석△생태수질과장 고현종△도시계획과장 이순남△도시재생과장 박산△자치행정과장 오순철△회계과장 김진수△체육진흥과장 이효상△U대회관리과장 윤재철△지방공무원교육원 교육운영과장 한채석△상수도 용연정수사업소장 범진철△상수도 시설관리소장 김갑수△도시철도건설본부 기술담당관 송형석△문화예술회관장 박영석△북구 국장요원 박주옥 ■강원도 ◇지방이사관 승진△의회사무처장 한만수◇지방부이사관 승진△보건복지여성국장 이지연◇국장급△재난안전실장 조규석△인재개발원장 직무대리 조인묵◇과장급 승진·전보△국제교류과장 안진석△복지정책과장 박천수△방재과장 박태영△총무행정관실(2018동계조직위 파견) 박종열△농업기술원 환경농업연구과장 김인종△농식품연구소장 김상수△특화작물연구소장 최준근△산채연구소장 홍대기 ■국민체육진흥공단 ◇공단본부△기금평가실장 주정돈△기금사업실장 박선종△중장기전략TF팀장 송명규△인사팀장 정철락△정보보안팀장 최경화△기금평가팀장 박재철△체육진흥팀장 류재훈△지도자연수팀장 하성수◇경륜·경정사업본부△스포츠단운영실장 허정석△대전지점장 최창렬△의정부지점장 최상헌△회계팀장 박정숙◇스포츠레저사업본부△스포츠공정문화팀장 이종삼△대중골프장지원팀장 문병기△광산골프장팀장 유철승△제천골프장팀장 김희제◇한국스포츠개발원△스포츠과학거점센터TF팀장 성제현 ■예금보험공사 ◇1급 승진△보험정책부장 박태준△금융정리1부장 장진영◇2급 승진△보험정책부 팀장 손종현△청산회수1부 팀장 한형구△조사지원부 팀장 안병율 ■금융결제원 ◇승진△상무이사 박연상 ■OBS △경기총국 동부권취재본부장 최진광 ■연세대 △문과대학장 최문규△생활과학대학장(생활환경대학원장 겸임) 고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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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병상 수 OECD 절반도 안 돼… 메르스 사태에 ‘속수무책’

    공공병상 수 OECD 절반도 안 돼… 메르스 사태에 ‘속수무책’

    정부가 지난 7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발생·경유 명단을 일괄 공개하자 곳곳에서 메르스 의심자들이 병원에서 문전박대당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민간병원에서 환자를 받지 않으면 공공의료기관으로 가야 하는데, 공공의료기관 수는 너무 부족했다. 정부도 애초 이런 이유를 들어 병원명 일괄 공개를 꺼렸다. 공공의료를 방치하다시피 한 탓에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감염병 사태와 같은 위기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공공의료기관은 취약계층 진료와 민간이 제공하기 어려운 서비스를 담당한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민간병원은 메르스와 같은 대형 감염병 사태가 터졌을 때 비용이 많이 드는 재난적 의료서비스를 수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공의료기관이 필요한 것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국내 인구 1000명당 공공병상 수는 1.19개로 24개 회원국 평균(3.25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국의 지역거점 공공병원은 38곳뿐이다. 위급 시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다 보니 이번에도 시설, 장비, 인력 부족 문제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23일 “공공의료기관에 워낙 투자를 하지 않아 그나마 공공병원에 있는 음압병실마저 가동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고, 감염병에 대응할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지방의료원 원장들이 ‘해방 이후에 손을 안 댄 것이 아니라 그냥 쭉 놔두었다’고 혀를 찰 정도로 공공의료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다. 전국 33개 지방의료원의 평균 건축연수는 19년이나 된다. 장비보유율은 민간과 차이가 크지 않으나 첨단장비 보유대수는 적고 만성적인 구인난에 시달린다. 지방의료원 전문의 가운데 2년만 의무 복무하는 공중보건의 비율은 17%나 된다. 공공의료의 궁극적인 책임은 국가에 있는데도 지방의료원 관리를 지방자치단체가 하다 보니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경남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에서 나타났듯 지자체는 적자를 줄이는 데 관심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지난해 작성한 ‘공공보건의료의 현황과 발전방안’ 연구보고서에서 “이중적 관리체계로는 공공병원이 가진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며 “지방의료원에 대한 관리를 보건복지부로 일원화하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라고 지적했다. 의료 인력 강화도 시급한 문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의료원 100병상당 의사 수는 평균 7.8명으로, 민간병원(11.8명)보다 4명이 적다. 간호사 수는 더 부족해 지방의료원이 46.1명, 민간병원이 51.8명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정숙 활동가는 “공공의료시설과 의료진이 부족해 민간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몰린 것도 메르스 사태를 키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정책은 자본의 논리에 밀려 계속 후퇴해 왔다. 김대중 정부는 보건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정치권의 새로운 어젠다로 등장시켰고, 5년마다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 보건의료기본법을 만들기도 했다. 참여정부는 2005~2009년에 4조 5000억원을 공공보건의료에 투자했다. 국가적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공공의료체계 강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공중보건서비스보다는 의료서비스에 치중하는 경향이 심해졌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지자체장이 방만 경영과 적자를 이유로 1910년 진주자혜원의 역사를 지켜 온 진주의료원을 폐업시키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정부는 공익적 의료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공병원의 ‘착한 적자’를 보전해 주겠다고 했으나, 공공병원은 어차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의료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적자이기 때문에 ‘착한 적자’와 ‘나쁜 적자’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상당수 공공병원이 ‘수익 창출과 공익’을 모두 잡아야 하는 딜레마 앞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 나 실장은 “공공의료기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단 시설 수를 늘려야 하며 상시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해 민간병원도 우수한 인프라를 활용, 공공의료를 할 수 있도록 협력체계를 갖춰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울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인사]

    ■미래창조과학부 △대변인 조경식 ■행정자치부 ◇고위공무원 승진△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총무인력국장(파견) 문영훈◇국장급 전보△국가기록원 기록서비스부장 김현철◇부이사관 승진△경제조직과장 이정구△지방세정책과장 이동혁△지방자치발전위원회(파견) 김항섭◇과장급 전보△재정협력과장 구본근△자치제도과장 한순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비서관 서준한△경영인력과장 김기훈 ■산업통상자원부 ◇승진△산업정책실장 박일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급 상당 승진 <상임위원>△인천선관위 정훈교△경남도선관위 이계형◇2급 승진△중앙선관위 행정국장 이재화<사무처장>△대전선관위 남택융△충북도선관위 박태섭△충남도선관위 김종영◇2급 전보 <사무처장>△서울선관위 조원봉△대구선관위 김규조△경북도선관위 고충열◇3급 승진 <중앙선관위>△총무과장 이명행△조사2과장 문응철<파견>△주로스엔젤레스대한민국총영사관 윤재수<관리과장>△대구선관위 최호길△광주선관위 박찬진△경남도선관위 신영식◇3급 전보△중앙선관위 감사관 임성규◇4급 승진 <중앙선관위>△총무과 강석태△기획재정과 송현기△인사과 이치형△국제협력과 구희만△공보과 김영헌△선거1과 유훈옥△법제과 강희국<선거연수원>△교수기획부 장인흥△제도연구부 고광용<사무국장>△부산서구선관위 조희철△부산동구선관위 이복삼△울산중구선관위 김윤종△울산남구선관위 문용준△청주시흥덕구선관위 배상완△영동군선관위 최환준△군산시선관위 김덕주△정읍시선관위 김창권△목포시선관위 김정현△여수시선관위 강창길△영덕군선관위 함연정△양산시선관위 김종인△울주군선관위 남기종<행정과장>△대전선관위 이영철△충북도선관위 박상규△제주도선관위 김대정<지도과장>△세종시선관위 김성하◇4급 전보 <중앙선관위>△감사과장 이한규△선거기록보존소장 김남이<선거연수원>△시민교육부장 경범훈△제도연구부 전임교수 신광호 (이상 7월 1일자) ■국민안전처 ◇실장급 승진△기획조정실장 김동현◇국장급 승진△특수재난실 조사분석관 김성곤◇국장급 전보△안전정책실 안전총괄기획관 이정술 ■기상청 △광주지방기상청장 양일규 ■서울시교육청 ◇승진 <지방부이사관>△서울시학생교육원 총무부장 박국천<지방서기관>△감사관 엄종범△평생교육과 백자영△학교지원과 조원익△서울시과학전시관 총무부장 정재헌△서울시교육연수원 행정지원과장 김용숙△서울시교육연수원 교육행정연수부장 조규천△어린이도서관장 홍순영◇전보△총무과장 안덕호△서울시학생체육관장 이동배△서울시교육시설관리사업소 총무부장 이숙자△강서도서관장 유송숙△서대문도서관장 신태숙△남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김범수△중부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박정숙△강동송파교육지원청 행정지원국장 정용문 (이상 7월 1일자) ■헤럴드 △이사 권충원 ■차병원그룹 △총괄 연구본부장 임재승
  • 김남길도 반한 길, 성북동 인문학 길

    김남길도 반한 길, 성북동 인문학 길

    지난 17일 오후 오랜 가뭄에 다행스럽게 비가 오려는 듯 하늘이 살짝 어두웠다. 해가 뜨겁지 않아 걷기 좋은 날, 김영배(48) 성북구청장, 김남길(35) 배우겸 길스토리 대표, 이훈(50)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가 서울 성북구 성북동을 걸었다. 성북동 길에는 간송미술관, 한국가구박물관, 구립미술관, 보석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한용운의 심우장, 이태준 고택인 수연산방 등 역사적 공간이 있고, 삶이 만든 골목길이 있다. 녹음이 진 길상사 벤치와 누브티스 넥타이박물관 등에서 최근 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비는 성북동 길의 성공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길을 재해석하고, 관광객이 몰린 이후 생긴 주민들과의 갈등까지 문화, 학문, 행정 분야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각자 문득 말했다. 길은 마음을 걷는 것과 같다. 여러 삶의 기록이다. 사람을 만나는 통로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성북동은 조성된 길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생기고 시간에 따라 변하며 존재하던 길을 어느 날 사람들이 발견했을 뿐이라고. 그래서 길을 걷다 깜짝 놀라는 신기한 것은 없어도, 수없이 걷더라도 질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걷기의 역사’를 쓴 레베카 솔닛이 말했단다. ‘세상을 탐험하는 것은 마음을 탐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걷기는 세상을 여행하는 방법이자 마음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처음 건넨 질문은 성북동 길을 걷다 만난 경험이었다. 김 구청장은 길을 걷다 얼린 페트병을 가슴에 안고 여름을 나는 할머니를 만났단다. 겨울 길에서는 김치가 얼어 먹지 못해 발을 구르는 노인을 만났다. 작은 정원을 훌륭하게 가꾼 이도 있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작은 집 정원들을 다른 이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그래서 김 구청장은 “길은 다양한 삶의 공간들을 만나게 해 준다”고 정리했다. 그는 곧 1937년 성북동 길에 섰다고 가정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 “동네가 곧 박물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심우장에서 글을 쓰고 수연산방에는 이태준 선생이 글을 씁니다. 간송이 일본인에게 문화재를 사러 다니는 모습이 떠오르고 내가 그 길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동네가 곧 박물관인 셈이죠.” 김 대표는 성북동 골목길 곳곳을 누비며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4개 국어로 제작된 오디오 가이드 11편과 가이드 필름 3편을 인터넷과 모바일 사이트(roadstory.gil-story.com)를 통해 지난달 공개한 바 있다. 그는 어린 날 느꼈던 정과 문화가 살아 있는 모습을 동경했다. 김 대표는 “북정마을 길을 걸을 때 골목길에서 만난 주민들이 인사를 먼저 건네고, 마을버스 정류장 윷놀이판을 지날라치면 막걸리 한 사발을 권하는 어르신들도 있었다”면서 “고개가 삐쭉 나오는 낮은 담장을 사이로 인사를 건네면서 나도 그곳에 오래 산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고 전했다. ●이훈 한양대 교수 “일상속의 여행 공간” 이 교수는 길을 걷는 여행을 순례의 일종으로 표현했다. 여행이 성숙할수록 성과중심의 ‘방문 여행’보다 느린 여행, 일상 속으로의 여행이 확산된다는 것이다. 길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문화를 경험하고픈 욕구가 커지는데 성북동 길은 역사와 문화,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봤다. 그는 “사실 외국인을 위한 시설, 편리한 표지판, 정돈된 길은 걷기 좋은 길을 위한 우선순위가 아니다”면서 “주민이 먼저 즐기고 소문이 나고, 가이드북에 실리면서 외국인들이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확산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구청장은 “2013년 9월 장수마을의 외진 곳에서 북 페스티벌을 열었는데 아이 둘의 손을 잡고 멀리 걸어오는 아빠에게 불편하게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오히려 오랜만에 걷는 골목길 맛에 푹 빠졌다고 고마워하더라”고 덧붙였다. ●김남길 길스토리 대표 “현재·과거 중간지점” 김 대표는 성북동 길에서 오래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찾은 것도 성과라고 했다. 밤이 내릴 때 한양 도성에 서서 카메라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과 빌딩이 휘황찬란하고, 왼쪽으로 돌리면 빨간 백열등에 묻힌 주택가의 모습이 고즈넉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와 과거의 중간에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한 고등학교를 촬영차 갔다가 윤리나 역사는 없고 국·영·수만 시간표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려면 인문학 교육이 필요할 텐데요. 효율적인 속도만 강조하는 건 아닌지 모릅니다.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의 유행이 짧았던 것에 당시 외국은 놀랐습니다. 그건 후속곡을 빨리 내야 한다는 우리만의 빠른 속도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 교수가 루시 리파드의 저서 ‘오버레이’에서 본 이야기로 말을 이었다. “에스키모 사람들은 분노를 해소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화가 난 사람은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며 직선으로 걸어 자기의 몸에서 감정을 몰아냅니다. 화가 풀린 지점을 지팡이로 표시하며 분노의 강도나 지속된 시간을 알 수 있는 겁니다.” 이에 대해 김 구청장은 “신영복 선생은 저서 ‘처음처럼’에서 가슴에서 발까지가 가장 먼 여행이라는 문구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서 “길을 걸으면 무언가의 생각이 각자 시작된다”고 표현했다. ●성북동은 관광지 아닌 진솔한 삶의 공간 하지만 성북동 역시 관광객이 늘면서 주민들이 소음과 번잡함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김 대표는 “실제 달동네의 경우 자신만의 풍족한 삶의 모습이 오히려 동정을 받을까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그래서 성북동은 관광이라는 표현보다 삶의 시간과 역사로의 산책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구청장은 동네의 주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토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곳의 박물관, 주민, 상인들이 각각 협의회를 만들거나 추진 중”이라면서 “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근본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정숙관광이라는 말까지 나오는데 몇 가지 에티켓 정도만 알려주어도 찾아오는 이와 맞는 이 사이의 갈등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좋은길의 요건은 ‘특색&감성’ 성북동 고갯길을 올라 길상사에 닿을 무렵 걷기 좋은 길의 요건을 물었다. 이 교수는 “대학들도 건물로 꽉 차면서 산책로가 없어 둘레길을 만드는 상황인데 그늘도 있고, 특색도 있어야 한다”면서 “조용하거나, 예쁘거나, 보고 싶은 것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면에서 성북동 길은 이런 요건들을 다소 거칠게 갖추고 있는데 그게 특색 있는 매력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감성’이라고 답했다. 그는 “어릴 때 접했던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나오는 채석장의 소리가 길을 걸으며 간혹 떠오르곤 했다”면서 “최성수 시인이 ‘북정, 흐르다’에 썼듯 ‘삶의 속도에 등 떠밀려 상처 나고 아픈 마음이 느릿느릿 아물게 되는 곳’이라는 말로 성북동 길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성북동 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꼽아달라고 했다. 김 구청장은 최순우 옛집부터 간송미술관, 수연산방 등을 지나 심우장까지를 골랐다. 거리 전체가 거대한 조선사 박물관이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한양 도성을 낀 북정마을 길을 추천했다. 속도에 익숙해진 이에게 우리네 삶의 현주소를 보여줄 거라고 했다. 어릴 때 뛰어놀던 골목길이 떠오르고 동네 사람들과 격 없이 눈을 맞추고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길상사 주변 길을 꼽았다. 가구박물관의 고즈넉한 정원을 걷는 재미는 덤이라고 했다. 법정스님이 남긴 많은 것이 떠오르는 길이라고 했다. 시인 백석의 사랑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은 또 다른 포인트가 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부고]

    ●김수원(고려대 전자공학과 교수)장원(미국 거주)무원(경남은행 부장)씨 모친상 김득수(전 사학연금관리공단 이사장)씨 장모상 7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70-7816-0229 ●정태균(신한금융투자 상무)영균(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씨 부친상 한전건(성균관대 교수)씨 장인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3010-2000 ●이재현(디아타 대표)정숙(전 가천대길병원 영양실장)씨 모친상 권홍기(한신대 교수)씨 장모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40분 (02)3010-2235 ●박제우(바니랜드 대표이사)씨 모친상 7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3010-2237 ●차상우(서울중앙지검 검사)씨 부친상 7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9일 오전 (02)2258-5940
  • “부군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부인 찾아 큰절한 해경 생존자

    “부군 덕분에 살아남았습니다” 부인 찾아 큰절한 해경 생존자

    “저희만 살아남아서 죄송합니다.” 지난 6일 오전 9시 50분쯤 현충일 기념식이 열리기 직전 강원도 속초의 해양경찰충혼탑 앞. 정장 차림의 두 초로의 신사가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여성 앞에 다가서더니 큰절을 올렸다. 당황한 두 여성도 맞절했다. 두 신사는 지난해 정년퇴직한 한범석(61) 충북 보은경찰서 전 정보보안과장과 충북 증평에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김태용(63)씨다. 두 여성은 1974년 6월 28일 속초 앞바다에서 북한의 군함 3척과 전투를 벌이다 장렬히 전사한 해경 863함 안정일 함장의 부인 강정숙(68)씨와 허판구 부함장의 부인 백정임(71)씨다. 해경 863함은 41년 전 어선 보호 임무를 수행하다 북의 군함 3척과 사투를 벌이다 침몰한 200t급 경비정이다. 배에 타고 있던 해양경찰과 전투경찰 28명 중 26명이 전사하고 2명은 납북됐다. 전사자 26명 중 공식 사망자는 6명뿐이며, 나머지는 시신을 찾지 못해 ‘실종’ 처리됐다. 한 전 과장은 당시 전투경찰로 복무하던 중 멀미가 심한 사실을 알고 사고 한 달 전 안정일 함장이 육상 근무로 보직을 변경해 줘 863함에 타지 않았다. 또 김씨는 863함과 쌍둥이로 볼 수 있는 865함 승무원이었다. 사고 당시 인접 해상에서 다른 어선 보호 업무를 맡고 있었다. 한 전 과장은 “2013년 6월과 2014년 6월 서울신문이 보도한 863함 관련 기사를 보고 언젠가는 두 부인을 찾아봬야겠다고 생각했었다”며 “마침 지난해 퇴직을 해 40년 만에 속초를 다시 찾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973년 11월 동기생 7명과 863함에 배치됐으나 어느 날 밤 뱃멀미로 갑판에서 토하는 모습을 지켜본 함장님이 사고 한 달 전 육상 근무로 바꿔 주셔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유가족들과 동료 예비역 해경들은 이날 홍익태 해양경비안전본부장에게 “앞으로 새로 건조하는 경비정을 안정일함, 허판구함 등으로 명명해 달라”고 건의했으며, 유가족들은 “실종자들의 경우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묘비조차 세워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정부 차원의 관심을 요청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 장군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이순신만 아는 당신을 위한 전쟁영웅 이야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전쟁영웅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부터 거론할 겁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지금도 성웅(聖雄)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위인이죠. 하지만 교과서에 단 한 줄만 언급된, 아니 우리가 따분하다고 덮어버린 역사책 속에 숨겨진 전쟁영웅은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가 몰랐거나 지나쳤던 6·25 전쟁의 영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처럼 웅장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각박한 삶이지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그분들을 한번 쯤은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국민 성금으로 산 중고 초계정, 첫 승전보를 올리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은 19만명(한국군 10만명)의 병력과 소련이 제공한 T-34 전차 240여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을 빼앗게 됩니다. 전차는 커녕 변변한 대전차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우리 군은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전쟁발발 다음날 깜짝 놀랄 만한 승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전쟁 직전 손원일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해군 지휘부는 장병들의 월급과 국민 성금 1만 5000달러와 정부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한 6만 달러를 들여 미 해군의 450t급 중고 초계정을 구입했는데요. 초계정은 연안을 감시하는 작은 전투함입니다. 참고로 우리 최신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배수량이 7500t(만재 배수량 1만t)이니 정말 작은 함정이죠. 선박이 진해 해군기지에 들어온 시기가 전쟁 발발 불과 두 달 전인 4월 10일입니다. 무장조차 없었던 선박에 3인치 함포 1문과 포탄 100발을 어렵게 갖췄습니다. 드디어 27일에는 ‘PC-701’이라는 함명을 받고 ‘백두산함’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전쟁 당일 진해 해군본부는 백두산함에 동해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임무 중 울산 앞바다에서 덩치가 두 배인 1000t급 괴선박을 발견합니다. 깃발이나 표식이 없었지만 함정을 북한군 상륙함으로 판단한 백두산함 지휘부는 해군본부로 “600명의 북한군이 승선한 채 전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다”고 긴급보고했습니다. 부산항을 노려 남하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위협사격을 가하자 적선이 중기관총과 주포로 대응했고, 곧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4시간의 교전 끝에 26일 오전 1시 30분쯤 적선은 포탄에 명중돼 물 속으로 가라앉았고, ‘대한해협 해전’이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 첫 승전으로 기록됐습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장전수 전병익 중사, 조타수 김창학 하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창학 하사는 침몰 위기에 놓인 적함이 집중적으로 조타실을 공격해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타실 키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최용남 중령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고, 소장으로 진급해 해병대 1사단장에 오른 뒤 1998년 타계했습니다. ●수류탄과 화염병 뿐…적의 자주포를 육탄공격하다 6·25 전쟁 영웅으로 또 심일 소령이 있습니다. 심 소령은 함경남도 단천군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 재학 중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군인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일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소위)으로, 춘천·홍천지구 전투에서 남하하는 10여대의 SU-76 자주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적이 가까이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2문의 57mm 대전차포 발사를 명령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죠. SU-76은 이름만 자주포이지 전면에 35mm 장갑을 갖춰 당시 우리 군 입장엔 전차나 다름없었습니다. 초라한 무기에 좌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는 포탑을 돌리지 못하는 자주포의 특성상 좌우 측면이 취약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5명의 특공대를 편성합니다. 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들고 적의 포탑 위로 돌진하는 육탄 공격을 감행해 자주포 3대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뒀죠. 이런 방식은 전차에 대한 공포심을 사라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 곳곳에서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충북 음성군, 경북 영천군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 잇따라 참전했고 1951년 1월 26일 7사단 수색중대장으로 강원 영월군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중 북한군의 총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심 소령에게는 사후 태극무공훈장이 수여됐습니다. 심 소령의 동생으로 셋째 동생 심익은 1952년 17세의 어린 나이로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됐고, 경찰관이었던 둘째 동생 심민은 1960년 32세의 나이로 과로사하는 아픈 가족사를 남겼습니다. 보훈처는 올해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세 형제의 어머니인 고(故) 조보배 여사를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훈장 하나 못 받았지만…북한군 간담을 서늘하게 한 ’구월산 여장군’ 여성 전쟁영웅으로는 ‘구월산 여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이정숙 여성유격대원이 있습니다. 그의 활약상은 1965년 최무룡 감독의 영화 ‘피어린 구월산’과 고우영 화백의 만화 ‘구월산 유격대’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6·25 전쟁 직전 북한군에 의해 부모와 남편을 잃은 그는 1950년 10월 황해도 안악군에서 처음 ‘서하무장대’를 결성, 적의 후방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그는 중공군에게 많은 부하를 잃고 고향 황해도로 돌아온 육군본부 김종벽 대위의 ‘구월산 유격대’에 합류했고, 김 대위의 보좌관으로 많은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1951년 1·4 후퇴 당시에도 후퇴하지 않고 구월산에 남았는데요. 제대로 된 보급을 받지도 못한 채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해 탈취한 물자로 생존해야 했지만 늘 그들의 가슴은 뜨거웠습니다. 같은 달 18일 고립된 재령유격부대를 구출하기 위해 촌부로 가장한 채 밤새 100여 리를 걸어 적 포위망을 뚫고 89명을 구출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올해 여군으로는 처음으로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됐습니다. 지금도 일부 대원이 생존해 있지만 유격대를 이끌던 이정숙씨조차 훈장하나 받지 못했고 올해 뒤늦게 아들이자 구월산유격대 청장년회장인 김광인(60)씨가 참전 유공자 증서를 받았습니다. 6·25 전쟁 훈·포장은 1953년 12월 31일부로 종결한다는 이승만 정부 당시 법 조항이 걸림돌이 됐다고 합니다. 북한이 2013년 42일간 억류했다가 추방한 미국인 메릴 뉴먼(당시 85세)씨는 6·25 전쟁 당시 이 구월산 유격대와 함께 활동했다고 밝히면서 유격대의 활약상에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그는 추방 뒤 공식 성명을 통해 북한 가이드에게 구월산 유격대원 생존 여부를 묻고 “구월산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오해를 받고 억류됐다고 밝혔습니다. 6·25 전쟁에서는 유엔군, 특히 압도적 다수였던 미군의 희생도 많았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흥남철수’도 사실 미군이 목숨을 걸고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해 이뤄졌습니다. 역사상 미군이 가장 고전한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 전투’입니다. 당시엔 미국 언론의 조롱까지 받았지만 종전 후에는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미군은 압록강을 목표로 북진을 거듭했죠. 동부전선을 맡았던 미 10군단은 1950년 11월 해병대 1사단을 주력으로 한국군과 함께 함경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미 중공군이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상태였고, 병력은 1만 5000명인 한미 연합군의 8배에 가까운 12만명에 달했습니다. 7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군이 주력인 연합군을 장진호 계곡으로 몰아넣고 섬멸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중공군에 패해 후퇴하면서도 피난민을 구한 그들 11~12월 이 지역에는 영하 20~32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해발 1000m 산악지대여서 살을 에는 추위가 전투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전체 미 해병대 1사단 사상자 7200명의 절반인 3600명이 동상으로 쓰러졌을 정도였습니다. 부상자에게 사용할 약품이 얼어터지고 총은 사용하지 않으면 얼어붙어 작동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니 당시 추위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었을 겁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싶었겠지만 중공군의 기습을 대비해야 해 강제로 지퍼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군을 에워싸고 단숨에 전멸시킬 기세였던 중공군은 미 해병대의 악착같은 반격에 사망자만 2만 5000명, 부상자 1만 2500명의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중공군 제9병단은 이곳 동부전선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입어 서부전선의 제13병단과 합류하지 못하고 부대 재편을 위해 휴식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성공적으로 후퇴해 흥남에 도착한 미군은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결정을 했습니다. 김백일 1군단장과 의사 출신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씨의 설득으로 에드워드 알몬드 미 10군단장이 민간인 피난민까지 모두 철수시키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공로로 현씨는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종전 뒤 미국 버지니아대, 콜롬비아대, 펜실베니아대에서 의대 교수로 활약, 의학 발전에 공헌했고 2007년 미국 뉴저지주 뮐렌버그병원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부두를 떠날 때 미군이 시설과 군수 물자를 폭파하면서 일부 민간인이 희생돼 논쟁이 있긴 합니다만, 흥남 철수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됭케르크 철수 작전’과 더불어 가장 성공한 철수 작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흥남 철수 당시 피난민들을 도왔던 또 한 명의 영웅이 있는데요. 라루 선장은 배에 실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1만 4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원의 피난민을 태우라고 지시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네스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죠.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는 이후 아픔을 겪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마리너스’라는 이름을 얻어 가톨릭 수도회인 베네딕토회 수사가 됐습니다. 그는 당시 항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느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비행기 문 열림 경고등 뜨자 “문고리 잡고 가라”

    국내선 항공기가 ‘문 열림’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승무원이 문 손잡이를 잡기만 한 채 그대로 운항한 사실이 재판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김정숙)는 이스타항공 기장 A씨가 국토교통부에 낸 항공기 조종사 자격증명 정지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기각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월 9일 오전 6시 인천공항에서 청주공항으로 향하다가 발생한 결함을 항공일지에 기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당시 비행기 이륙 직후 기내에 문 열림 경고등이 켜졌다. 문 잠그는 손잡이가 들리는 현상이 일어났던 것. 승무원이 손잡이를 누르자 꺼졌던 경고등은 손을 떼자 다시 켜졌다. 이에 A씨는 승무원에게 착륙 때까지 손잡이를 누르고 있으라고 지시했다. 이 비행기는 손잡이를 누른 상태에서 청주~제주 운항도 감행했다. 제주공항에 가서야 정비사가 임시방편으로 손잡이에 테이프를 붙였다. 비행기는 김포로 운항한 뒤에야 정비됐다. 이 사실은 A씨가 회사 안전보안실에 보낸 메일을 통해 드러났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경고등이 저절로 켜졌다 꺼지는 현상이 있었을 뿐 항공기 자체에 결함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일지에 기재할 사항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항공기 사고는 그 자체로 대형 참사로 이어진다”며 “모든 기계적 결함은 일지에 기재해 안전사고에 대비하고 사고 발생 시 원인 규명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며 “기장에게 기록 여부를 결정할 재량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무상보육 지지도, 저소득층이 오히려 낮다

    무상보육 지지도, 저소득층이 오히려 낮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무상보육’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외려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혜택의 수혜를 더 많이 볼 것으로 예상되는 계층이 복지정책을 덜 지지하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고용지위가 안정적일수록 무상보육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다. 27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김정숙 부연구위원과 경희대 성열관 교수가 함께 진행한 연구 보고서 ‘한국인의 복지태도가 교육복지 관련 쟁점에 대한 동의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저소득가구 구성원의 무상보육에 대한 동의 비율은 60.9%로, 일반가구의 63.9%에 비해 3% 포인트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설문에는 한국복지패널 4185명이 응답했다. 교육수준에 따른 무상보육 지지 비율도 사회적 통념과 반대로 나타났다. 무상복지 동의 비율이 중졸 이하는 60.4%, 고졸은 61.3%였는데, 전문대졸 이상은 68.0%로 월등히 높았다. 고용지위에 따른 무상보육 지지 비율 역시 비정규직 63.3%, 상용직(정규직) 69.5%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소득 및 교육 수준이 낮고, 고용이 불안할수록 복지 혜택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복지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반대로 조사 결과가 나온 데 대해 “복지에 대한 비계급성과 비일관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한국 성인들의 교육복지에 대한 동의는 복지에 대한 일관된 입장과 태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안별로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이해관계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고 밝혔다. 성별에 따른 무상보육 정책 지지 비율도 통념을 뒤집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친복지적 성향이 강하다는 기존 연구결과와 달리 무상보육에 동의하는 비율은 여성 61.7%, 남성 64.6%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여성이 오히려 남성보다 보육에 대한 책임을 가족이나 여성에게 있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높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함께 진행된 무상교육 정책에 대한 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하는 정책에 대해 저소득가구의 27.6%가 지지해 30.6%인 일반가구보다 낮았다. 또 중졸 이하의 11.7%, 고졸의 23.4%, 전문대졸 이상의 24.6%가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하는 정책을 지지했다. 고용지위에서도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정책에 대해 비정규직의 19.7%, 상용직(정규직)의 26.9%가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상의 연구 결과는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하는 ‘한국교육’ 42권 1호에 실렸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여성 수영복 변천 100년사 한눈에 보기

    여성 수영복 변천 100년사 한눈에 보기

    근 100년 동안 여성 수영복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 지난 2015년 5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스 웹사이트 버즈피드(BuzzFeed)가 제작해 유튜브에 올린 3분가량의 영상에는 100년 동안의 여성 수영복 변천 과정이 담겨 있다. ‘역사를 통해 본 여성 수영복’(Women‘s Swimsuits Through History)이란 제목의 영상에는 1920년대를 시작으로 오늘날에 이르는 다양한 여성 수영복 패션을 소개했다. 울로 만든 1920년대의 수영복. 물에 젖으면 무거워진다는 자막과 함께 스타킹이나 신발을 꼭 착용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1930년대. 맞춤복 형태로 물 안과 밖에서도 자유롭게 입을 수 있으며 몸에 딱 맞는 신축성 소재의 수영복이 인기를 끌었다고 소개한다. 이어 1940년대. 여성 모델이 1946년부터 등장했다는 투피스 수영복을 입고 있다. 상·하의로 나뉜 비키니 수영복이 인기 있었으며 이는 전시 상황 중 천을 절약하는 차원에서 개발됐다는 설명이 곁들어진다. 1950년대 수영복은 속옷 브래지어와 같은 형태로 곡선이 강조됐으며 패션을 완성하기 위해 캣아이 선글라스 같은 액세서리가 함께 유행했다. 캘리포니아 록 앤 롤 비치 트렌드가 유행한 1960년대. 수영복이 작아지고 정숙함이 덜 한 트렌드가 이어진다. 1970년대에는 드디어 수영복에 대한 섹슈얼 혁명이 시작된다.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는 여성이 늘어나고 셔츠에서 카프탄(caften: 터키 사람 등이 입는 소매와 기장이 긴 옷) 형태의 커버 업(cover-ups) 제품들이 해변의 주요 필수품으로 바뀐다. 그리그 색상은 강렬한 색을 선호한다. 1990년대. 화려하면서도 다리가 깊게 파인 하이 컷 렉(high-cut leg) 수영복이 인기다. 드디어 오늘날의 수영복. 색상과 디자인 면에서 다양해지고 패션의 한 부류로 자리 잡았을 만큼 여성에겐 중요한 패션 소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편 유튜브에 게재된 이 영상은 현재 964만 49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사진·영상= BuzzFeedVideo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국내 항공사 안심지수 64.5점 낮은 수준...저가항공에 대한 우려 더 커

    국내 항공사 안심지수 64.5점 낮은 수준...저가항공에 대한 우려 더 커

    국민들의 국내 항공사에 대한 안심 지수는 64.5점(100점 만점)으로 낮았다. 안심 지수는 사건 및 사고 등의 위험 발생 전, 발생 시 대응, 사후 조치 등 위험사례의 진행경과에 따라 안심하는 정도를 평가하는 척도이다. 안심 수준은 일상 생활에서 불안을 느끼지 않고 편안함을 느끼는 정도다. 일반 항공으로 분류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67.1점, 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아스타항공·티웨이항공 등 저가 항공 5사는 61.8점이다. 최근 잦은 국내외 항공사고 탓에 항공기에 대한 불안이 늘어난 경향이 짙다. 성균관대 SSK위험커뮤니케이션연구단(단장 송해룡 교수)과 포커스컴퍼니(대표 최정숙)이 10일 내놓은 설문조사결과다. 위험컴연구단은 만 20세 이상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성별로 보면 저가항공의 경우 남자(62.5점)가 여자(60.8점)보다 안심지수가 높았다. 특히 50대 이상(66.1점) 연령대에서 안심지수가 컸다. 일반항공에서는 저가항공과는 달리 여자(67.4점)가 남자(66.9점)에 앞섰다.50대 이상(69.7점)에서는 저가항공과 같이 안심지수가 높았다. 김원제 위험컴연구단 책임연구원은 “결과는 국민이 국내 항공에 대해 이동수단으로서 안심하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안전에 대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 항공 안심지수 64.5점는 국내 항공사들의 노력이 부족함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또 “저가항공사들의 안전 대책 및 신뢰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잘못됐거나 미흡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 강자의 패권적 지배 꾸짖다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 강자의 패권적 지배 꾸짖다

    담론/신영복 지음/돌베개/428쪽/1만 8000원 신영복(74)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1988년 20년의 감옥 생활을 마친 뒤 그 안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아 1990년 내놓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혼란스러웠던 이들은 이념적 대안 부재의 세상을 받아들이기가 힘겨웠다. 신 교수의 책은 거침없이 내달려 온 이념의 시대에 대해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 한 줄기 빛이 됐다. 그 책을 비롯해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숲’, ‘강의’ 등에 이르기까지 박제화된 동양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했고, ‘지금, 여기’의 문제와 맞닿게 했으며, 거기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의 잇단 저서들은 인류의 오래된 지혜가 담긴 고전에 눈을 돌리게 했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길을 찾게 했다. 전사회적으로 대중적인 인문학 공부의 첫 단추를 끼웠다. 신 교수는 여러 저서로 유명하지만 오히려 강단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1989년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시작해 2006년 정년퇴임 뒤에도 석좌교수로서 계속 대학원에서 ‘인문학 특강’ 한 과목의 강의를 맡아 왔다. 지난해 2학기를 마지막으로 그마저도 끝냈다. 이제 더이상 대학 강단에서 그의 강의를 들을 길은 없게 됐다. 최근 펴낸 ‘담론’은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실제로 그의 마지막 강의를 녹취했고, 마지막에 썼던 ‘강의노트 2014-2’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동양고전의 명저인 ‘시경’, ‘주역’, ‘논어’, ‘맹자’, ‘한비자’를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읽어 내는 제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과 20년 20일 동안의 수형 생활에서 보고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바를 엮은 제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구성돼 있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화두는 ‘관계론’이다. 신 교수의 마지막 강의 내용들은 물이 흐르듯 얽매이지 않는다. 때로는 봄날의 훈풍처럼 따뜻하게 감싸 안고, 때로는 가을날 서릿발처럼 매섭게 질타한다. 그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인 화(和)와 달리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를 담은 동(同)의 논리가 판치는 현실 속 강자의 패권 지배구조를 비판한다. 또 위선(僞善)과 위악(僞惡)의 생생한 사례를 들며 실체를 직시하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장치에 현혹되는 인간 이해의 천박함을 지적한다. 예컨대 시위 현장의 붉은 머리띠는 단결과 전의를 과시하는 약자들의 위악적 표현인 반면, 강자들은 엄숙하고 정숙한 법정으로 상징되는 위선적 방법과 논리를 구사한다는 얘기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與 ‘지역 일꾼론’ vs 野 ‘진짜 일꾼론’

    與 ‘지역 일꾼론’ vs 野 ‘진짜 일꾼론’

    4·29 재·보궐 선거를 일주일 앞둔 22일 여야 지도부는 격전지인 인천 서·강화을에서 나란히 집중 유세를 펼쳤다. 인천 서·강화을은 재·보선이 치러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양강 구도가 더욱 뚜렷해지며 여야의 ‘정면승부’와도 같은 긴장감이 더욱 팽배해지고 있다. 이를 의식한 듯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전날 인천 강화로 내려가 석모도에서 하룻밤을 묵는 ‘1박 유세’를 펼쳤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검단과 강화를 오가며 이날 하루를 인천에 쏟았다. 이날 강화문화원에서 개최된 새누리당 현장 선거대책회의에서 김 대표는 “우리 동네를 위해 진짜 열심히 일할 진정한 일꾼이 누구인지 잘 살펴보시고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며 ‘지역일꾼론’을 거듭 강조했다. 북한과 인접해 안보 이슈에 민감하고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 특성을 의식한 듯 ‘안보 정당’ 이미지를 부각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이군현 사무총장은 “강화는 북한과 가까운 접경지역으로 안보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안상수 후보는 경제를 발전시킬 후보임과 동시에 굳건히 안보를 지킬 수 있는 후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지역일꾼론’에 ‘진짜 일꾼론’으로 맞서는 모습이다. 당 지도부는 신동근 후보가 25년간 이 지역에서 치과의사를 지낸 ‘토박이’이고 지난 총선에서 세 차례 낙선했던 만큼 이번에는 기회를 달라는 논리로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문 대표는 이날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검단노인회를 방문해 “신 후보가 이번에 네 번째 출마하는데 눈물로 호소하니 꼭 국회의원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특히 문 대표는 이날 공식 선거운동 개시 이후 강화 지역을 처음 방문했다. 부인 김정숙씨가 강화 출신인 이유로 문 대표는 자신을 ‘강화의 사위’라고 소개하며 이 지역과의 인연을 강조한 바 있다. 부인 김씨는 같은 강화 출신인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부인 인재근 의원 등과 함께 2~3일에 한 번씩 강화 지역을 찾아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여성을 위한 교양강좌 ‘희망드림 톡’… 전쟁기념관, 여성과 아이들에 희망 전한다

    여성을 위한 교양강좌 ‘희망드림 톡’… 전쟁기념관, 여성과 아이들에 희망 전한다

    전쟁기념관(관장 이영계)은 4월 문화가 있는 날(4월 29일, 수요일)에 여성들을 위한 교양강좌 ‘희망드림 톡’을 개설하고 선착순으로 참가자 170명을 모집한다. ‘희망드림 톡’ 강좌는 명사들의 강의를 통해 여성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여성이자 어머니를 통해 미래세대인 아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마련되었다. 그동안 3회의 ‘희망드림 톡’이 진행되었으며, 대한민국 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 『지선아 사랑해』 저자이자 희망전도사인 이지선씨, 59세에 하버드 박사 꿈을 이룬 서진규 소장 등이 강사로 나선바 있다. 매 강좌마다 준비된 좌석이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그동안은 여성들만 강좌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올해는 여성 개인은 물론 여성을 동반한 가족 단위의 신청도 가능하다. 올해 첫 강좌는 4월 29일(수)에 전쟁기념관 1층 이병형홀에서 열린다. 유지태 주연의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의 실존인물인 성악가 배재철 교수가 <희망을 부르는 소리>라는 주제로 60분간, 전쟁기념관 안보체험강사이자 아코디언 연주가인 이효주 씨가 <음악을 통해 찾은 희망>을 주제로 40분간 자신들의 삶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강의가 끝난 후 이효주씨의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배재철 교수의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를 감동의 무대를 통해 직접 만나볼 수 있다. 6월에는 ‘로봇다리 수영왕’으로 알려진 장애인 수영선수 김세진군의 어머니인 양정숙씨가, 9월에는 가수 ‘이적’의 어머니이자 여성학자로 유명한 박혜란씨가 각각 강사로 나선다. 수강료는 무료이며, 전쟁기념관 홈페이지나 전화로 접수를 받고 있다. 개인과 단체 모두 가능. · 일 시 : 2015. 4. 29(수) 18:30 ~ 20:30 · 장 소 : 전쟁기념관 1층 이병형홀 · 대 상 : 여성, 여성을 동반한 가족 · 강 의 : 1강(40분) 음악을 통해 찾은 희망 I 이효주 (전쟁기념관 안보체험강사) 2강(60분) 희망을 부르는 소리 I 배재철 (성악가, 공연예술전문학교 교수) · 신 청 : 홈페이지(www.warmemo.or.kr) 또는 전화 · 수강료 : 무료 · 문 의 : 전쟁기념관 교육팀 (☏02-709-3050, 3115) ※ 전쟁기념관에서는 <4월 문화가 있는 날>에 전문안보해설사가 들려주는 전시실 심화해설(18:30/ 19:00)진행되며, 옥외경관 조명점등 등 멋진 야경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29 재보선 인천서·강화을 표심] 토박이는 與·전입자는 野… 갈라진 與텃밭

    [4·29 재보선 인천서·강화을 표심] 토박이는 與·전입자는 野… 갈라진 與텃밭

    인천 서구에는 허허벌판 위에 아파트가 즐비했고, 강화군은 높은 건물 하나 없는 그야말로 시골이었다. 4·29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는 ‘인천 서·강화을’은 이처럼 이질적인 두 풍경이 뚜렷하게 대조를 이루는 곳이었다. 서구는 ‘개발도상’ 지역이라는 인상을 줬다. 10여년 전 이곳에서 군 생활을 했던 기자의 눈에 들어온 웅장한 아파트 단지는 ‘상전벽해’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공사중’인 건 여전했다. 개발이 참 더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때문인지 지하철 공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는 증거로 이해됐다. 8일 서구 검단에서 만난 유권자들의 표심은 대체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였다. 토박이와 고연령층은 여당, 신규 전입자들과 젊은층은 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검단신도시 아파트 주민 상당수는 “이사를 온 지 얼마 안 돼 지역을 잘 모른다”며 손사래와 함께 줄행랑을 쳤다. 15명 가운데 10명이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인터뷰에 응한 일부 젊은 초보 엄마들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이름을 거론하며 조심스럽게 야권 성향을 드러냈다. 주부 김미진(35)씨는 “새누리당은 애초부터 지지하지 않았다”며 “야권 후보가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2번을 찍겠다”고 밝혔다. 안경점을 운영하는 이상준(43)씨는 “새정치연합의 신동근 후보가 검단에서 치과를 오래 해서 아마 지역 기반이 탄탄할 거다”면서 “안상수 새누리당 후보는 시장 시절 대책 없이 판만 크게 벌려 놓으면서 빚만 산더미로 만들어 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의 정치 지형을 묻는 질문에는 돌아오는 대답이 사뭇 달랐다. 지역 내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한민섭(50)씨는 “안상수 후보가 아무리 부채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해도 주민들 피부에 그렇게 와 닿지 않는다”면서 “여기 사람들은 일단 지역 발전만 시켜 주면 뽑아 준다”고 말했다. 검단 4동에서 만난 김기환(43)씨는 “후보가 누군지는 상관없다. 여기서는 누가 여당 후보로 나와도 당선된다”면서 “대한민국 정치 문화 수준이 아직 그 정도밖에 안 되지 않느냐”고 쓴소리를 했다. 지봉립(84·여)씨는 “정치인들이 늘 싸우기만 하고 뭐 제대로 하는 건 없고…”라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욕심이 있나 뭐가 있나.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아 놨으니까 여당 의원이 많아야 대통령이 일을 더 잘할 수 있지”라고 말했다. 이처럼 검단은 ‘여권지대’이긴 하지만 신도시 개발로 유입된 야권 성향의 젊은 주민들이 얼마나 많이 투표장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야당 후보가 선전할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강화군은 야생 노루가 도로 위를 뛰어 지나갈 정도로 조용한 시골이었다. 인천 서구와는 교집합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서구에 아기를 업은 젊은 엄마들이 많았다면 강화에는 과일 봉지를 든 노인들의 비중이 확연히 높았다. 이 때문인지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도 여권 친화적인 편이었다. 상당수의 첫 대답이 “아이 난 잘 몰라. 무조건 1번”이었다. 이유도 대부분 비슷했다. 강화도가 ‘접경지대’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화군청 인근에서 할인마트를 운영하는 정미자(52·여)씨는 “여긴 노인분들이 많아서 선거만 있으면 습관적으로 1번을 찍는다”며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무조건 여당을 미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래도 북한과 가까이 있다 보니까 전쟁 나면 제일 먼저 피난을 해야 하는 지역이라는 인식을 많이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층의 마음은 야권으로 가 있었다.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일하는 김나영(22·여)씨는 “새누리당은 어른들만 지지하는 당”이라면서 “내 또래에서는 야당이 인기가 많다”고 했다. 강화풍물시장에서 만난 김수정(37·여)씨는 “이거 해준다 저거 해준다 해 놓고선 해준 게 뭐가 있느냐”며 여권에 대한 반감을 내비쳤다. 문 대표의 부인 김정숙씨의 고향으로 알려진 송해면에서 김씨를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안상수랑 신동근이 후보로 나오지 문재인이 나오나. 문재인 부인이 나오나”라면서 “이런 거 저런 거 다 갖다 대면서 쓸데없는 소리 하고 돌아다닌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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