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비상사태 선포… 강제진압 초읽기
태국 반정부 시위대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볼모’로 잡아 회의를 무산시키자 정부가 12일 다시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군병력과 탱크, 장갑차를 시내 곳곳에 배치, 강제진압 초읽기에 들어가자 시위대는 “사람들이 우리의 무기”라고 맞서 유혈사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06년 쿠데타로 축출돼 망명 중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도 이날 전화성명을 통해 “혁명에 나설 때”라며 “탄압이 시작되면 즉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복귀의사를 밝혀 정국은 더욱 요동칠 전망이다.
●3만명 시위행렬… 주요길목 10곳 차단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총리는 12일 수도 방콕과 논타부리, 아유타야 등 주변 5개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또 시민들에게 곧 시위대 진압에 나설 예정이니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발표 직후 장갑차 수대가 방콕 중심지로 이동하고, 최루탄으로 무장한 경찰 1000명이 정부청사로 진입하면서 현지언론은 곧 강제진압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했다.
군 대변인은 “육·해·공 56개 중대 병력을 버스 정류장, 기차역 등 시내 요지 50곳에 배치한다.”며 “이는 쿠데타 임박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질서유지를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UDD)’이 이끄는 시위대가 이미 장갑차 2~3대를 탈취하고 방콕 경찰청으로 향하는 도로 등 주요 길목 10곳을 차단해 정부의 ‘특단’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있다.
비상사태가 선포되자 도심 전역에서 3만명이 시위에 나섰으며 이중 수백명은 내무부 청사에서 돌과 막대기 등으로 총리가 탄 차량을 공격했다. 경찰이 공중에 경고사격을 하자 시위대가 항의하면서 수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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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회의 연기… 시위 주도자 체포
11일 이틀 일정으로 개막한 아세안 정상회의는 반정부 시위대 1000여명이 이른 아침부터 회의장인 로열클리프 호텔을 봉쇄하면서 취소됐다. 이들은 호텔을 둘러싼 비무장 군병력의 벽을 뚫고 유리문을 깨고 내부로 난입해 ‘총리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의 공세가 폭력사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태국 정부는 파타야와 인근 촌부리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가 6시간 뒤 해제했다. 16개국 정상들도 헬리콥터를 타고 인근 우타파오 군비행장으로 탈출하는 등 허겁지겁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강경 자세를 고수하다 회의를 두 번째 연기하며 체면을 구긴 태국 정부는 12일 즉각 ‘응징’에 나섰다. 아피싯 총리는 이날 오전 주례연설에서 시위 관련자에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신속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회의 무산을 주도한 UDD 시위대 지도자인 아리스문 퐁루엥롱도 이날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나 UDD 지도부는 “회의를 막는 데 성공했다.”며 13~15일 태국의 설날인 송크란데이 축제 기간에도 시위대를 결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강경 대응을 부르짖던 정부가 시위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현 정부의 존립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쿠데타설 확산… 정부 존립 위기론 대두
아피싯 총리는 “3~4일 내 평화를 회복할 것”이라며 빠른 수습을 약속했지만, 이번 사태로 태국의 취약한 민주주의뿐 아니라 입헌군주제까지 손상될 위험이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쿠데타가 발생하거나 정부가 의회를 해산할 것이라는 소문이 정가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위기론’이 세를 더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지신문 더 네이션은 익명의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 “정부가 48시간 내 중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태국 관광위원회는 이번 소요로 56억달러 규모의 관광 손실을 봤다고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