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정동영
    2025-12-17
    검색기록 지우기
  • 김준수
    2025-12-17
    검색기록 지우기
  • 심정지
    2025-12-17
    검색기록 지우기
  • 전후80년
    2025-12-17
    검색기록 지우기
  • 대표연설
    2025-12-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435
  • 文, 역대 최다 표차… 洪 제외 4인 75% 득표는 탄핵표심

    文, 역대 최다 표차… 洪 제외 4인 75% 득표는 탄핵표심

    전례 없는 다자구도 선거로 文득표율 41% 세 번째로 낮아…최고 득표율은 박근혜 51.6% 洪·安·劉 득표율 합하면 52%…유권자 절반이 중도·보수…劉+沈 12.93% 소신투표 결과 보수·중도보수·중도진보·진보 3:2: 2:3 구도로 세분화된 선거문재인 제19대 대통령이 ‘5·9 대선’에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역대 최다 표차 승리라는 값진 성과를 일궈 냈다.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개표 마감 결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호 1번 문 대통령은 3267만 2101명의 유효 투표자 가운데 41.1%인 1342만 3800표를 득표했다. 이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785만 2849표(24.0%),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699만 8342표(21.4%),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220만 8771표(6.8%), 심상정 정의당 후보 201만 7458표(6.2%) 등이다. 지난 3일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직전 ‘1강(문재인) 2중(홍준표·안철수) 2약(유승민·심상정)’의 판세가 대선일까지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문 대통령은 2위인 홍 후보를 557만 951표(17.05% 포인트) 차이로 따돌려 역대 최다 표차 당선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금까지 1·2위 간 득표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던 때는 2007년 17대 대선으로,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531만 7708표 차로 이겼다. 1·2위 후보 간 득표율 격차에서도 17대 대선(22.6% 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역대 최저 득표 격차는 15대 대선으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불과 39만 557표 차이로 꺾었다. 다만 이번 대선이 원내정당 후보만 5명(총 13명)에 이를 정도로 전례 없는 다자 구도로 치러진 탓에 문 대통령의 득표율은 13대 대선(노태우 대통령 득표율 36.6%)과 15대 대선(김대중 대통령 득표율 40.3%)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최고 득표율은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51.6%)가 기록했다. 또 문 대통령과 안·유·심 후보의 득표율 합계는 75.42%로, 70%대를 유지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찬성 여론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반대로 홍·안·유 후보의 득표율 합계는 52.2%로, 중도·보수층이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유·심 후보의 합계 득표율(12.93%)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대결 구도를 뛰어넘은 표심으로 읽힌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번 대선은 보수·중도·진보의 4대2대4 구도가 보수·중도보수·중도진보·진보의 3대2대2대3 구도로 세분화된 선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탄핵 찬성과 반대 세력 구도의 대선이자 소신투표의 결과가 드러난 대선”이라며 “각 후보의 성과나 한계라기보다는 각각의 노선과 정책을 살려 나가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군소 후보 중에는 조원진 새누리당 후보 4만 2949표(0.31%), 김민찬 무소속 후보 3만 3990표(0.10%),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 2만 7229표(0.08%), 장성민 국민대통합당 후보 2만 1709표(0.06%), 윤홍식 홍익당 후보 1만 8543표(0.05%), 이경희 한국국민당 후보 1만 1355표(0.03%),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후보 9140표(0.02%), 오영국 경제애국당 후보 6040표(0.01%) 등의 순이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국정원장 후보자 서훈…남북정상회담 막후 주도한 ‘대북 전문가’

    국정원장 후보자 서훈…남북정상회담 막후 주도한 ‘대북 전문가’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을 지명했다. 서훈 후보자는 2000년 6·15정상회담과 2007년 10·4정상회담 등 남북 간 열린 두 차례 정상회담을 모두 막후에서 주도한 베테랑 대북 전문가로 알려졌다.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과 다수의 공식·비공식 접촉을 진행했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가장 많이 대면한 인물로도 꼽힌다. 북한 신포 경수로 건설을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 당시 북한 금호사무소 현장사무소장으로 1997년부터 2년 동안 북한에 상주하기도 했다. 이때 다양한 북측 관료들을 만나 그들의 협상 스타일을 익힌 것이 향후 북한과 협상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됐다는 후문이다. 신포에서 돌아와 곧바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 간 비밀접촉에 투입, 6·15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 특사 역할을 한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을 수행해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과 협상을 벌였다. 이후 2000년 10월 박재규 당시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 2002년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김 위원장 면담, 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의 김 위원장 면담 등에 모두 배석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10·4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의 비공개 방북 때도 동행했다. 10·4 정상회담 때도 배석했으며 정상선언문 작성을 위한 북측과의 협상도 총괄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 11월 남북총리회담의 대표단에도 포함됐다. 2007년 12월 정권이 교체된 이듬해 28년여의 국정원 생활을 마무리한 뒤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권에 도전하자 선대위 ‘미래캠프’ 산하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이번 대선에서도 선대위 국방안보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힘을 보탰다. 추진력과 기획력이 뛰어나 꽉 막힌 남북관계를 반전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다.청와대는 “국정원이 해외와 북한 업무에 집중하도록 이끌 최적의 인물”이라며 “국정원의 국내 정치 관여행위를 근절하고 순수 정보기관으로 재탄생시킬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온화한 성품에 친화력을 갖췄다. 대주가(大酒家)이며 골프를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은 부인 오해정(59) 여사와 1녀. △63세 △서울 △서울고 △서울대 △미 존스홉킨스대 대학원(SAIS) 졸 △동국대 대학원 북한학 박사 △1980년 국가안전기획부 입사 △1997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 △2004년 2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 △2004년 12월 국가정보원 대북전략실장 △2006년 국가정보원 3차장 △2008년 이화여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2012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후보 선대위 ‘미래캠프’ 산하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위원 △2017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대선캠프 국방안보위원회 부위원장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당선…부드러운 경호에 시민들과 셀카, 파격적인 취임식

    문재인 대통령 당선…부드러운 경호에 시민들과 셀카, 파격적인 취임식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선서식이 10일 국회에서 열렸다. 특히 이날 취임식은 이례적으로 유연한 경호 속에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여야 지도부, 당직자, 정부 관계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박수를 보내거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였으며, 격식과 권위를 내려놓은 친근한 모습 때문에 곳곳에서 “정말 대통령이 온 것이 맞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는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 국회와 대화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오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국회 본관 중앙홀(로텐더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했다. 현장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다수 의원이 몰렸으며 일부 의원들은 자리를 구하지 못해 서서 취임식을 지켜봤다. 지정석을 마련하지 않아 여야 의원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앉은 점도 눈에 띄었다. 취임식에 앞서 문 대통령과 면담을 한 정세균 국회의장, 황교안 국무총리 등 5부 요인도 자리에 앉아 선서 장면을 지켜봤다. 문 대통령 내외는 국군 교향악대의 연주 팡파르와 함께 입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애국가 1절을 제창하는 등 국민의례를 했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까지 한 문 대통령은 엄숙한 표정으로 연단에 나와 오른 손을 들어 올려 취임선서를 했다. 감색 정장에 푸른색 넥타이 차림으로 왼쪽 가슴에는 세월호 배지를 달고서 국회를 찾았지만, 선서 직전에는 배지를 풀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선서 후 대국민 담화문에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대한민국이 다시 시작한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가 시작된다”며 “이 길에 함께 해달라. 신명을 바쳐 일하겠다”고 말했다. 박수와 함께 연설을 마친 문 대통령이 국회 본관을 나와 잔디밭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행사 종료를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의 ‘사진 세례’가 이어졌다. 이들은 휴대전화를 높이 치켜들고 문 후보의 사진을 찍으면서 “와! 대통령이다”라고 외치거나 ‘대통령! 문재인!’을 연호하면서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문 대통령도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거나 손을 흔들며 화답을 했다. 문 대통령이 차에 타기 직전에는 행사의 한 참석자가 휴대전화를 내밀어 문 대통령과 ‘셀카’를 찍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취재진의 접근도 과거 대통령 행사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비표’를 받지 않은 기자들도 문 대통령 근처에 다가가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또 대통령 행사장에는 보통 통신장비 사용을 제한하지만, 이날은 통제 범위가 평소보다 좁았다. 문 대통령이 국회를 떠날 때에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등 여야와 정파를 가리지 않고 의원들이나 장관들이 차를 타는 곳까지 몰려들어 새 대통령을 배웅했다. 문 대통령은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으며, 꽃다발을 받은 후 차를 타고서 국회 경내를 한 바퀴 돌면서 창문을 내려 손을 흔드는 등 인사를 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를 빠져나간 뒤 마포대교를 건너 천천히 청와대로 향했다. 그는 청와대에 도착하기 전 세 차례 차의 선루프를 열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감사를 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9대 대선 득표율…문재인,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

    19대 대선 득표율…문재인,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역대 최다 표차 기록을 갈아치우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현재 개표 마감 결과 총 3267만 2101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선인이 1342만 3800표로 전체의 41.08%를 득표했다.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785만 2849표(24.03%),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699만 8342표(21.41%)를 득표했다. 이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220만 8771표(6.76%), 정의당 심상정 후보 201만 7458표(6.17%) 순이었다. 문 당선인과 홍 후보 간 득표 차는 557만 951표차로 이는 역대 최다 표차 당선 기록이다. 지금까지 대선에서 1·2위간 차이가 가장 크게 벌어졌던 것은 17대 대선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531만 7708표 차로 이겼다. 군소후보 중에는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 4만 2949표(0.31%), 무소속 김민찬 후보 3만 3990표(0.10%),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 2만 7229표(0.08%), 국민대통합당 장성민 후보 2만 1709표(0.06%), 한국국민당 이경희 후보 1만 1355표(0.03%), 늘푸른한국당 이재오 후보 9140표(0.02%), 경제애국당 오영국 후보 6040표(0.01%) 등의 순으로 득표했다. 무효투표수는 13만 5733표, 기권수는 967만 1802표로 각각 집계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민들 “서민대통령 돼 달라”… 文, 광화문서 지지자 수천명과 자축

    5·9 조기 대선 투표가 끝난 오후 8시를 기해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41.4%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나자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개표 상황실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상황실을 가득 메운 당직자 500여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포옹하며 함성을 질렀다.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시각은 한 표도 개표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당직자들은 “그동안 고생했다”며 격려를 나눴다. 서울 홍은동 자택에서 출구조사 방송을 보다 오후 8시 15분쯤 출발한 문 당선인이 40분쯤 여의도 상황실에 도착하자 들뜬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남색 양복과 파란 넥타이 차림에 세월호 배지를 착용한 문 당선인은 자택을 출발하기 전 문 앞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기호 1번을 나타내는 ‘엄지척’ 손 모양을 지었다. 시민들이 “서민 대통령이 돼 달라”고 환호하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취재진의 소감 질문엔 “나중에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붉게 상기된 채 시종 미소를 띤 모습이었다. 추 대표를 비롯한 당직자, 당 상임고문단 등과 인사를 나눈 문 당선인은 간단한 연설을 했다. 당직자들에 대한 격려로 시작됐지만, “개혁과 통합, 두 가지 과제를 이루겠다”는 선언으로 끝난 연설은 수락 연설을 방불케 했다. 출구조사 결과 문 당선인과 오차범위 내 2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간 득표율 격차가 18.1% 포인트로 컸음을 감안한 행보였다. 1·2위 후보(이명박·정동영) 간 득표율 격차가 22.53% 포인트로 가장 컸던 17대 대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격차로 당선이 예측돼서다. 상황실에 20여분쯤 머물다 귀가했던 문 당선인은 오후 11시 30분쯤 다시 자택을 나와 10여분 만에 지지자들이 운집한 광화문에 도착해 “내일부터 국민 모두의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경선 경쟁자였던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 추 대표, 김부겸 의원 등이 광화문에 설치된 무대에 올라 문 당선인과 포옹하며 자축했다. 박 시장은 “뜨거운 대한민국의 새벽이 열렸다”고, 이 시장은 “문재인의 승리이자 새로운 대한민국을 원하는 국민 모두의 승리”라며 문재인 정부 출범에 의미를 부여했다. 안 지사는 문 당선인에게 깜짝 볼 뽀뽀를 한 뒤 “(경선 경쟁자인) 저희를 불러 함께 축하 말씀을 드릴 기회를 허락한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며 운을 떼 호응을 받았다. 안 지사는 이어 “경선에서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결과가 나온 뒤 합심했다”면서 “이제 대선이 끝났으니 우리 모두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김 의원은 “(대구에서) 이번에 조금 더 나왔으면 좋았겠다”고 아쉬움을 표시한 뒤 “대구에서 선거운동을 시작하며, 전국에서 고루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문 당선인의 희망이 달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 대표는 “23일의 선거운동 기간 드린 약속을 모두 지키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올해 3월 11일까지 매 주말 최순실 사태에 분노한 촛불집회가 열렸던 광화문에는 이날 방송사 생방송 무대가 세워졌고 문 당선인 지지자 수천명이 운집했다. 초저녁부터 함께 출구조사를 시청한 문 당선인 지지자들은 결과가 발표되자 일제히 환호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일부는 “과반 득표를 못 해 아쉽다”고 반응했다. 근처 서울시청에 모였던 홍 후보 지지자들이 출구조사 결과를 몇 번씩 확인하며 침묵한 풍경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문 당선인은 이날 오전 8시 30분 서울 홍은중학교에서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투표한 뒤 10시 30분쯤 주황색 등산복 차림으로 부부 동반 등산을 즐겼다. 하산길에 기자들이 ‘홀가분하냐’고 묻자 문 당선인은 “하나도 홀가분 안 합니다”라고 답했다. 개표 방송이 이어지는 동안 민주당 상황실은 시종 들썩들썩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출구조사 결과가 보도된 직후 외신들은 속보로 ‘문 당선인의 압도적 승리 예상’ 속보를 타전했다. 각국 통신사뿐 아니라 영국 BBC 방송도 긴급 뉴스로 ‘진보가 한국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홍준표에도 지다니” 국민의당, 출구조사 발표에 ‘초상집’

    “홍준표에도 지다니” 국민의당, 출구조사 발표에 ‘초상집’

    19대 대선 투표가 마감된 9일 저녁 8시, 방송 3사로 생중계된 전국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국민의당 대선 개표 상황실이 차려진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 장내는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안철수 대선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물론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도 밀린 것으로 나오면서 장내는 ‘초상집’ 분위기로 변했다.10여분 전만 해도 장내는 곳곳에서 기대감을 보이는 표정들이 엿보였으나 순식간에 얼어 붙었다. 당초 기대했던 광주를 비롯해 전남에서도 안 후보가 문 후보에 더블스코어 차이로 밀린 것으로 나타나자 침통함은 더욱 깊어졌다. 맨 앞줄에 앉은 박지원·손학규 상임선대위원장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고, 정동영·주승용·천정배·박주선 공동선대위원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린 채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었다. 모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TV만 지켜보는 가운데 문 후보가 자택에서 나와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는 장면이 방송에서 나오자 일부는 눈길을 애써 돌리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광의 순간들…오늘 밤 한 사람만 웃는다

    영광의 순간들…오늘 밤 한 사람만 웃는다

    9일 오전 6시 정각 전국 1만 3964개 투표소에서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일제히 시작됐다.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 사상 첫 대통령 탄핵에 따른 궐위 선거로 오후 8시까지 진행되며, 10일 새벽 2~3시쯤 당선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13명의 출마 후보 가운데 단 한명 만 웃게 될 대선, 제14대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부터 지난 대선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영광의 날을 돌아봤다.● 개표 방송에 뜬눈으로 밤새고 새벽 조깅, 김영삼 1992년 12월 18일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부정권의 실질적 종식과 함께 제12대 대선이 진행됐다. 민주화의 두 거목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와 김대중 민주당 후보 양강 구도 속에 19일 새벽 김영삼 후보 당선이 확정됐다. 이후 집계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최종 득표율은 김영삼 후보 41.96%, 김대중 후보 33.82%였다.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18일 밤부터 19일 새벽까지 TV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김영삼 후보는 당선이 확정되자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서울 상도동 자택 일대는 잔치판이 벌여졌다. 김 당선인은 평소보다 10분 이른 새벽 5시 10분쯤 가벼운 조깅복 차림으로 자택을 나와 상도동 조깅팀인 민주조기회 회원 30여명과 아침을 시작했고, 민주조기회 회원들은 ‘위대한 우리의 지도자 김영삼 대통령 만세’ ‘우리는 해냈다’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북과 꽹과리를 치며 당선을 축하했다. ● 동생의 죽음 후 찾아온 대통령 당선 소식, 김대중 15대 대선이 진행 중이던 1997년 12월 18일 저녁 당시 유력 대선 후보인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가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전날 간암으로 숨진 동생 대의씨의 빈소다. 대의씨는 대선에 출마한 형을 위해 ‘선거가 끝날 때까지 사망 소식을 알리지 말라’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고, 김 후보는 대선 당일 오전에서야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됐다. 투표를 마치고 빈소에 도착한 김 후보는 동생의 영정 앞에서 오열, 조문객들을 숙연하게 했다.김 후보는 그렇게 동생을 떠나보낸 몇 시간 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이날 밤 일산 자택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새벽까지 TV 개표방송을 지켜봤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 나가자 흥분한 측근들에게 “오차율의 한계가 있다”며 성급한 반응을 보이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 태풍이 된 노란 바람, 노무현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선의 시작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대세론이 있었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당시 광주 경선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을 12월 대선 ‘태풍’으로 키운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다. 노 후보는 48.9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6.58%에 그친 이 후보를 간신히 따돌렸다.대선 당일 경남 김해 선영 참배를 마치고 오후 6시쯤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한 노 후보는 여의도 당사 인근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며 개표방송을 지켜봤다. 노 후보가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당사를 찾은 시간은 이미 각 방송사들이 노 후보의 당선을 확정한 밤 10시 30분쯤이었다. 당사 입구에는 노사모 회원 등 1000여명의 지지자들이 운집, 북과 꽹과리 등을 치며 “대통령 노무현”을 외쳤다. ● 대권 도화선 청계천서 당선 인사, 이명박 2002년 12월 19일 제17대 대선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득표율 48.7%로, 26.14%에 그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일찌감치 당선이 확정됐다. 대선 당일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이 후보는 오후 9시 40분쯤 여의도 당사에 도착했다. 당선 확정까지는 개표율이 낮았으나 이미 당선을 확신한 듯 얼굴에는 미소와 여유가 넘쳤다.사실상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이 당선인이 찾은 곳은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서울 청계광장이었다. 이 당선인은 지지인파가 모인 청계광장에서 “오늘 이 시간부터 힘드신 분들, 절망하시는 분들, 외국으로 이민 갈지 망설이는 분들 모두 희망을 갖고 그 자리에서 함께 하자”라며 “저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5년 동안 보여드리겠다”고 말해 큰 환호를 받았다. ● 첫 여성 대통령에서 첫 파면 대통령으로 몰락, 박근혜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선은 결국 대한민국 역사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됐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51.55%라는 과반의 득표율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에 올랐지만, 그는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임기 5년을 마치지 못하고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에 따라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되면서 이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아닌 ‘수인번호 503’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박 전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당선 확정 직후 찾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했던 말은 “국민 여러분 모두가 꿈을 이루고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국민행복시대를 반드시 열겠다”였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대선 호남민심 르포- ‘적략적 투표’ 호남 민심, 조기대선에선 문재인이냐 안철수냐

    5일 아침 광주 서구 화정2동 주민자치센터 제19대 대선 사전투표소 앞에서 만난 유모(51·여)씨는 “문재인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인물이라서 그에게 한 표 던졌다”고 말했다. 같은 투표소에 들어서는 회사원 김모(40)씨는 “안철수 후보는 특정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정치를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를 찍겠다”고 말했다. ‘문재인이냐, 안철수냐’. 호남 유권자들은 사상 처음 생경하고 낯선 대선 환경을 맞아 고민이 깊다. 한 명의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던 예전 선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탓이다. 그렇다고 투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 광주와 전남·북은 사전투표 둘째 날인 이날 오전 이미 투표율이 20%를 넘어섰다.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 정도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제15대 대선(광주 89.9%, 전남 87.3%)의 투표율을 뛰어넘거나 버금가는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전 대선처럼 길거리 유세 현장에서 노래와 경적, 소리 등으로 지지후보 측과 교감하는 모습은 사라졌지만, 이번 대선의 중요성과 관심에는 변함이 없다는 방증이다. 여·야 또는 진보· 보수 후보 간 호각지세를 이룬 상황도 아닌데 왜 호남의 사전 투표율이 이같이 높을까.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정상적인 정치적 환경과 선거 이후 호남에 뿌리를 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셈법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비상상황’은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전남대생 이상진(21)씨는 “이번 선거의 본질은 촛불민심에 있다.‘며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와 불공정 등 적폐청산에 적합한 후보가 누구인 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며 문재인 후보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내비쳤다. 야간 대리운전자인 김모(39)씨는 “TV토론회 등을 지켜보면서 보수와 진보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안철수보다는 문재인에 믿음이 더 간다”며 “선거 당일까지 고민하고 나서 지지 후보를 최종 결정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서는 광주와 전주, 목포· 순천 등 대도시와 20~30대 젊은 층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고령층과 농어촌 지역에선 안철수 후보를 선호하는 경향도 엿보인다. 광주 서구 양동 시장에서 만난 이순례(75·여)씨는 “안철수가 떠 깨끗하고 포용력이 더 좋아 그를 찍겠다”고 말했다. 물밑에서 양 정당의 치열한 기 싸움도 투표율을 높이는데 한 몫하고 있다. 대선 이후 지역 정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가 달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가 7대 3 이상 압도적 표차로 이겨야 대선 이후 지역 정치 구도가 갈등 양상에서 통합으로 갈 수 있다”며 “모든 조직을 동원해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도 “안철수 후보가 적어도 40% 이상 득표해야 차기 지방선거 등에 대비할 수 있다”며 “지지층 투표율 높이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호남의 이번 대선 구도가 ‘반문정서’(문재인 반대 정서)와 안철수의 ‘가능성’이란 두 축을 중심으로 형성됐으나 시간이 갈수록 문재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갤럽의 최근 5주간 호남지역 지지율을 살펴보면 문 후보 52%→47%→51%→39%→44%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안 후보는 38%→36%→35%→30%→29%의 움직임을 보였다. 오랜 정당생활 끝에 최근 회사 CEO로 변신한 장모(58)씨는 “각 당 후보 선출 시기인 지난달 초 각급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 안철수의 지지도는 50대 50으로 비슷했다”며 “그러나 안철수 후보가 이후 TV토론 등을 거치면서 문재인 후보를 압도할만한 비전제시나 국정운영능력 등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역전됐다”고 설명했다. 호남 민심이 ‘반문 정서’보다는 ‘될 사람을 밀어주자’는 전략적 투표로 옮겨갔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호남권은 역대 대선에서 단 한 번도 복수의 후보에게 표를 나눠주지 않았다. 호남정치의 중심지인 광주는 15대 대선 때는 김대중 후보에게 97%의 싹쓸이 표를 줬고, 16대 때는 노무현 후보에게 95%, 17대 때는 정동영 후보에게 80%, 18대 때는 문재인 후보에게 91%를 각각 던졌다. 전남·북도 이와 비슷하게 몰표를 줬다.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평민당·새천년민주당 때는 물론이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후 열린우리당이 싹쓸이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반문 정서’가 널리 퍼지면서 호남권 28석 가운데 국민의당이 23석을 가져갔다. 호남은 이처럼 역대 선거에서 전략적 투표의 ‘경향성’을 보여 왔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선의 호남권 민심은 안철수의 등장으로 바로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유동성’ 그 자체였으나 종반으로 갈수록 박근혜 탄핵을 주도한 촛불민심이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며 “지역민의 문재인에 대한 안정적이고 꾸준한 지지와 문·안 양자 또는 3자 구도 등 외부적 프레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도 문재인 쪽에 크게 유리한 국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단일화 득보다 실”… 安 ‘협치·통합내각’ 구체 청사진 있나

    “단일화 득보다 실”… 安 ‘협치·통합내각’ 구체 청사진 있나

    TK서 洪·劉보다 지지율 높지만 ‘사드 추가 배치’ 등서 이견차 커 단일화해도 컨벤션 효과 불투명 정동영 “통합내각 구상 밝혀야”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향한 공격이 라이벌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지도에 반사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점. 보혁 간 양자 대결 구도에서 벗어난 5·9 대선의 특이점이다. ‘안보 이슈’가 급부상하자 문 후보 지지층은 결집하고, 안 후보만 보수·진보 양쪽에서 지지율 정체를 경험한 게 최근이다. 25일 떠오른 ‘단일화 이슈’ 역시 안 후보 측에 계륵이 될 여지가 크다. 이달 초부터 국민의당 내부에선 ‘연대론’보다 ‘자강론’이 대세를 이뤄 왔는데, 연초까지 한 자릿수였던 안 후보 지지도가 이달 들어 급상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른바 ‘단일화 효과’를 기대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안 후보 측은 보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 성공한 단일화는 크게 3가지 방식으로 요약된다. 1997년 대선의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처럼 지역 기반이 확고한 맹주들 간 결합이 있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당시 ‘박원순·안철수 단일화’처럼 같은 진영 내 흡수합병 방식의 단일화는 여러 후보의 지지도를 고스란히 합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단일화의 정석과 같다. 2002년 대선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협상’은 이념이 다른 후보들 간 결합이란 화제성에 힘입어 ‘컨벤션 효과’를 부른 단일화 방식이다. 최근 거론되는 안 후보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간 단일화 논의는 이 3가지 성공 공식에서 벗어났다는 게 국민의당 내 대체적인 판단이다. 대구·경북에서 안 후보가 보수 후보들보다 높은 지지를 받는 중이니 맹주 간 결합이라고 부르기 무색하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등에 관한 이견에서 보듯 안 후보와 다른 후보들의 생각이 판이하고, 단일화가 촉박하게 이뤄지면 컨벤션 효과는커녕 ‘명분 없는 단일화’란 비아냥만 들을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단일화 논란에 대해 국민의당이 비난하는 태도로 일관하기도 어려운 국면이다. 국회 39석, 제3당이란 약점을 딛고 국정 청사진을 제시하려면 협치·통합 내각에 대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정동영 국민의당 중앙선대위원장은 이날 사견을 전제로 “지지율만큼 (다른 후보 진영도) 내각에 참여하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통합내각 구상을 밝힐 필요가 있다”며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DJ처럼 새 미래 만들 것”… 安 호남 사수전

    “DJ처럼 새 미래 만들 것”… 安 호남 사수전

    安측 “고용정보원 특채 더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20년 먹거리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는 지난 17일 선거운동 개시 이후 일주일 만에 다시 호남을 찾아 “그것이 김대중 정신이고 호남의 정신”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보수의 대통령, 진보의 대통령도 아닌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여론조사 1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텃밭’인 호남 민심부터 다져 놓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안 후보는 이날 전남 목포와 나주에 이어 광주를 방문해 유세를 펼쳤다. 그는 목포역 광장 유세에서 “전남이 미래 4차 산업혁명을 선두에서 이끌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어제 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일이 있었다. 박지원 대표가 제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임명직 공직에도 진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면서 “반드시 승리해서 그 결단에 보답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유세를 마친 뒤 목포시민들과 함께 ‘목포의 눈물’을 열창했다. 이어 나주에서 정보기술(IT) 전문기업 한전KDN을 찾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한 미래 지도자임을 강조했다. 광주 전남대 유세에서는 보수·진보 세력을 모두 수구 세력이라고 비난하며 자신이 국민을 통합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는 “왜 진보는 안보에 대해 신뢰를 주지 못하고 북한에 쩔쩔맵니까. 생각이 다른 사람을 악으로 돌립니까”라며 정면 비판했다. 또 “보수는 왜 이렇게 부패하고 미국·일본에 쩔쩔맵니까. 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외면합니까”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은 이번 주 지역구에서 대역전 드라마를 위한 총력전에 나서기로 했다. 이날 천정배·정동영·주승용 공동선대위원장은 전남에서, 박주선 공동선대위원장은 광주에서 표심잡기에 올인했다. 호남행에 앞서 안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국 YWCA연합회에서 범여성계 연대기구와 성평등 정책간담회를 열어 여성가족부를 성평등인권부로 개편하고 현재 양성평등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국가성평등위원회로 격상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이용주 국민의당 선대위 공명선거추진단장은 이날 “권재철 한국고용정보원장 재임 시절 신규 채용된 89명 중 상당수가 문 후보 아들 준용씨와 비슷한 방식으로 특혜 채용 됐고 그중 우선 총 9명의 명단을 공개한다”며 문 후보 측에 해명을 거듭 요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의 친척 권모(5급)씨, 권 전 원장과 함께 참여정부 청와대에 근무한 황모(1급)씨 등이 특혜 채용 의심을 받는다고 이 단장은 폭로했다. 이에 권 전 원장은 “특혜 채용은 없었고 권씨는 권 여사 친척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목포·광주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대선 D-21] 安, 호남서 “드림팀 만들 것”

    [대선 D-21] 安, 호남서 “드림팀 만들 것”

    최대 지지기반서 安風 재현 의지 “4차 산업혁명 대비 필요” 강조도 文측 겨냥 “갈가리 찢긴 계파정당”“계파 패권주의 세력에게 또다시 나라를 맡길 수 없습니다. 선거를 위해서 호남을 이용하는 후보는 절대 안 됩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공식 선거 운동 첫날인 17일 전북 전주를 찾아 전북대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겨냥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녹색 점퍼를 입고 유세차량에 오른 안 후보는 “저는 혁신의 전쟁터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 자신이 있다. 그것이 김대중 정신이고 호남 정신 아니냐”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정부 드림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저 안철수, 국민과 함께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후보는 봄비로 우산을 쓴 시민들과 함께 대선 슬로건인 ‘국민이 이긴다’를 삼창했다. 이날 유세장에는 박지원 대표와 정동영 공동선대위원장 등을 비롯해 호남에 지역구를 둔 최경환·김광수·이용주·유성엽 의원 등이 총집결해 힘을 보탰다. 안 후보는 이후 광주로 이동해 광산구 자동차부품산업단지와 광주 양동시장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안 후보는 문 후보가 대구 유세에서 ‘국회의원이 마흔 명도 안 되는 미니정당, 급조된 정당이 위기 상황에서 국정을 이끌고 통합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한 데 대해 “갈가리 찢긴 계파정당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겠느냐”고 맞받았다. 안 후보가 첫 지역 유세로 호남을 찾은 까닭은 최대 지지기반인 호남에서 ‘안풍’(안철수바람)을 재현시키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동안 호남민심이 당선 가능성 높은 야권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문 후보와 안 후보가 엎치락뒤치락 접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외연 확대도 중요하지만 호남 지지 없이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박주선 국회 부의장은 광주, 주승용 원내대표는 전남, 정동영 의원은 전북 등 중량급 인사들이 호남을 권역별로 맡아 기선제압에 총력을 쏟았다. 앞서 안 후보는 이날 0시 인천항 해상교통관제센터(VTS)를 찾았다. 안 후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아침에는 ‘촛불 혁명’의 상징인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출근길 회사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동서를 관통하는 1박2일 유세의 이틀째인 18일에는 국립대전현충원과 카이스트 등을 방문한 뒤 대구로 이동한다. 한편 안 후보는 보좌진을 통해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안 후보 캠프는 또한 난임진료비 지원금을 2배로 인상하고,임신부에게 발급되는 ‘국민행복카드’ 지원금을 현행 50만원에서 70만원(단태아 기준)으로 인상하는 임신·출산 정책을 발표했다. 최근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제기된 ‘유치원 공약 논란’을 정면 돌파하고 여성·중도층 유권자의 마음을 잡으려는 행보로 읽힌다. 서울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전주·광주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대선 D-21 선거운동 개막] 文 “대통합의 꿈 실현”… 安 “새로운 미래 개척”

    ‘5월 대선’을 22일 앞둔 17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투표일까지 3주가량 남았지만, 29일부터 징검다리 연휴인 점을 감안하면 유권자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 있는 시간은 10일 남짓. 후보들은 첫날부터 살인적 일정 속에 총력전을 펼쳤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준비된 대통령’과 ‘대통합’에 초점을 맞췄다. 대구에서 공식 선거운동 깃발을 든 문 후보는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어 놓고 직접, 매일매일 점검하겠다”며 취임 직후 10조원 이상을 일자리에만 투입하는 ‘슈퍼추경(추가경정)’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경북대 후문에서의 첫 공식 유세에서는 “민주당 역사상 대구에서 유세를 시작한 일이 없었다. 정권 교체와 통합의 꿈을 이루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왔다”고 강조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측은 이날 0시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투표일 직전인) 5월 8일 자정까지 528시간 동안 대역전극을 위한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에 “자체적인 조사에서는 이미 지난주부터 대반전이 시작됐다”고 밝힌 홍 후보는 충청권과 TK(대구·경북) 공략에 주력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호남’과 ‘유능한 대통령’에 무게를 실었다. 안 후보가 문 후보보다 하루 먼저 전주·광주를 잇따라 찾은 것은 물론 박지원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을 비롯해 박주선·정동영 등 당내 중진들이 모조리 투입됐다. 첫 유세를 손학규 상임공동선대위원장과 함께 광화문광장에서 시작한 안 후보는 “우리 아이들, 대한민국을 꿈꾸게 하겠다. 4차 산업혁명시대, 융합혁명시대에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만들겠다. 미래를 여는 50대 젊은 대통령이 되겠다”며 차별성을 강조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서 첫발을 뗐다.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을 상기시키며 ‘준비된 안보 대통령’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13일 만에 서울을 수복했다. 우리도 22일 만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내건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여의도에서 한국노총 임원과 사무직 노동자를, 경기 고양 서울메트로 지축차량기지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을 만나 노동계 표심을 집중 공략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모든 것을 잃는다”…대선 2등 잔혹사

    “모든 것을 잃는다”…대선 2등 잔혹사

    1등만이 모든 것을 다 갖는 냉혹한 승자 독식의 승부, 대통령 선거. 대한민국은 막강한 권력에 취해 이를 사유화한 박근혜 전 대통령, 지금은 그저 ‘수인번호 503번’이 된 사람 탓에 이 냉혹한 승부를 예정보다 이른 오는 5월 9일 또 치르게 됐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눈앞에 두고 눈물을 삼켜야 했던 2등들은 다시 1등에 오르기 위해 5~10여 년 간 표심 다지기 나서거나, 중앙 정치 무대에서 쓸쓸히 퇴장하기도 했다.1992년 제14대 대선부터 지난 5차례 대선에서 2등에 머물렀던 정치인의 발자취를 되돌아봤다.  ● 정계 은퇴와 출국…민주화 거목 김대중1992년 12월 18일 제14대 대선. 13대 대통령 노태우의 퇴장과 함께 대한민국에 실질적인 민주 정부가 들어서는 중대한 선거였다. 대선은 영남 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둔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와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둔 김대중 민주당 후보 양강 구도로 치러졌다. 두 정치인 모두 과거 군부정권에 맞서 선봉에서 싸운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었다.유권자 2942만 2658명 81.9%가 투표에 참여한 결과 대한민국 최고 권좌는 42.0%를 득표한 김영삼 후보에게 돌아갔다. 김영삼 후보와는 190만여 표 차이(34.0%)로 낙선한 김대중 후보는 선거 결과에 승복, 대선 이튿날 정계 은퇴 성명을 발표하고 1993년 1월 영국으로 떠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객원교수로 활동하던 그는 아시아·태평양 민주지도자회의(아태재단)를 설립하며 한국 정계 복귀를 위한 초석을 마련한 뒤 1995년 7월 국내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옛 민주당 탈당 의원들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다.해외와 국내 정치의 외곽을 떠돌던 김대중은 1997년 제15대 대선에도 다시 도전, 당시 대통령으로 유력했던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39만여 표 차로 간신히 누르고 그토록 갈망하던 대통령에 당선됐다. 15대 대선은 보수층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회창 후보에게 다소 유리한 흐름이었으나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에 밀린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가 국민신당을 창당해 출마하면서 결국 일부 보수층이 분열, 김대중 후보 당선에 기여한 결과만 낳았다. ● 삽질하고 햄버거 먹고…대법관 출신 ‘대쪽’ 이회창1993년 12월 대법관 출신 이회창이 김영삼 정부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현실 정치에 등장했다. 그는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판결을 해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대쪽 판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후 총리 사임 뒤 변호사로 활동하던 이회창은 1996년 다시 김영삼 대통령의 영입으로 신한국당에 입당, 1997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에 밀려 2위에 그쳤다.15대 대선에서 낙선한 이회창은 당을 이끌며 다음 대선을 준비했다. 2002년 16대 대선 유세에서는 기존 ‘대쪽 판사’의 강직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서민과 함께하는 친근한 대통령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출근 시간대 만원 지하철에 올라 유권자들을 만나고, 패스트푸드점과 포장마차 대화 등 서민 행보에도 주력했다. 하지만 그의 친서민 행보는 진짜 서민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 족구하고 분식 먹으며 분투했지만…초라한 패배 정동영2007년 12월 17대 대선은 10명의 후보가 난립한 가운데 전국 63.0%라는 대선 역대 최저 투표율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48.7%)됐다. 2등은 득표율 26.1%에 그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다. 이 후보와 표 차이는 무려 530만 표가 넘었다. 문화방송 기자와 메인 뉴스 앵커를 거치며 전국적 인지도가 높았던 정동영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정치활동을 시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까지 지냈지만 대선 후보로는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대권 경쟁자 중에서는 현대건설 사장과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후보가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경제 성장 747 공약(연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 등 굵직한 대선 이슈를 선점하며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다.정동영 후보는 ‘안보 대통령’, ‘일자리 창출 경제 대통령’ 등 이미지 강화에 나섰지만 민심의 흐름에는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대선 이듬해 4월 치러진 제18대 총선에서도 서울 동작구에 출마한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후보에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 제2의 노무현을 꿈꿨지만…재수에 나선 문재인2008년 2월 노무현 대통령 퇴임과 이듬해 5월 노 대통령 서거로 국내 정치권에서 이른바 ‘친노’ 정치 계보도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제도 정치권에서 비켜 서 있던 문재인 참여정부 비서실장이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정치권과는 거리를 뒀었지만, 2012년 제18대 대선이 다가오면서 이명박 보수정권에 반감을 가진 정치권과 유권자들의 출마 요구가 이어지자 2012년 4월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문 후보는 총선 출마를 앞두고 출간한 저서 ‘운명’에서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작하지 못하게 됐다”며 정치 입문 배경을 밝힌 바 있다.2012년 12월 대선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문 후보 양강 구도로 진행됐다.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무소속 안철수 현 국민의당 전 대표도 유력 대권 주자로 떠올랐으나 문 후보로 단일화하면서 대선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러나 ‘박정희 향수’와 유권자의 보수성은 강했고,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논란 끝에 박 후보가 51.6% 득표로 48.0% 득표에 그친 문 후보를 눌렀다. ● 사상 초유 대통령 궐위 대선, 누가 울 게 될 것인가?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민간인이 됐고,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지금은 구치소에 수감 중인 미결수로 전락했다. 이 탓에 애초 올해 12월로 예정됐던 제19대 대선은 오는 5월 9일로 당겨 치러진다.현재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경쟁 중인 가운데 지난 13일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후보가 44.8%, 안 후보가 36.5% 지지율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쳤던 두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는 최대 라이벌이 된 것이다.대선 시계는 점차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2017년 5월 9일, 이번에는 누가 2등 자리에서 눈물을 삼키게 될까.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安 “모든 것 바친다” 의원직 사퇴 배수진… 선대위 朴·孫 투톱

    安 “모든 것 바친다” 의원직 사퇴 배수진… 선대위 朴·孫 투톱

    비트코인 전문가 김진화 등 공동선대위원장 6인체제로 박주선·정동영도 막판 합류… 한때 ‘박지원 백의종군’ 갈등도 YS·박 前대통령도 대선 전 의원직 사퇴 승부수 던져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의 선거 캠프인 ‘국민선거대책위원회’가 12일 출범했다. 박지원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투톱 체제로 이번 대선을 이끈다. 이와 함께 안 후보는 19대 대선 후보 등록과 동시에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기로 함으로써 임전무퇴의 배수진을 쳤다. ●선대위 구성 원칙은 ‘신속·역동·유연성’ 장병완 총괄선대본부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대위 인선안을 발표했다. 장 본부장은 “선대위 공식 명칭은 국민선거대책위원회(국민 선대위 혹은 국민캠프)로 명명했다”면서 “선대위 구성의 원칙은 신속성, 역동성, 유연성”이라고 설명했다. 경선 경쟁 상대였던 손 전 대표에게 박 대표와 함께 상임 선대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기며 화합을 도모했다. 공동 선대위원장은 천정배 전 공동대표와 주승용 원내대표를 비롯해 4·13 총선 당시 비례대표추천위원장을 지낸 천근아 연세대 의대 교수와 김진화 한국비트동전거래소 코빗 이사가 맡았다. 박주선 국회부의장과 정동영 의원이 이날 발표 후 뒤늦게 공동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해 6인 체제가 됐다. 옛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3선의 장병완 의원이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전체 실무를 지휘한다. 2012년 대선 당시 ‘진심캠프’에서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성식 의원은 이번 선거에서는 총괄선거대책 부본부장을 맡았다. 국민캠프가 출범했으나 공식석상에서 박 대표의 ‘2선 후퇴’ 주장이 제기되는 등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문병호 최고위원은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대표는 이번 선대위에 참여하지 마시고 백의종군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한다”고 말해 긴장이 흘렀으나 비공개 최고위에서 가까스로 봉합됐다. ●安, 15·16일 중 후보 등록 때 의원직 사퇴 안 후보는 이날 대선 후보 등록일인 15일이나 16일 후보 등록을 하면서 의원직에서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의원직 사퇴와 관련, “너무 당연한 것 아니냐”며 “제 모든 것을 바쳐 꼭 우리나라를 구하겠다는 각오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는 ‘사퇴 시점이 빨랐으면 재보선을 통해 의정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사퇴 시점은 대통령 후보 등록 때가 맞는 시기라고 본다”고 답했다. 앞서 1992년 대선에서 당선된 김영삼 민자당 후보도 의원직을 사퇴하고 선거를 치렀고, 2012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도 대선을 24일 앞두고 의원직을 던졌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2012년에 의원직을 유지한 채 대선을 치렀다.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 2002년 노무현 후보, 2007년 이명박 후보는 현역 의원이 아니었다. 한편 안 후보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공약 1순위로 ‘튼튼한 자강안보를 토대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내걸었다. 또 ‘좋은 성장, 좋은 일자리’를 위해 교육혁명·과학기술혁명·창업혁명을 일으키고, 정경유착·불공정거래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안철수 ‘국민선대위’, 손학규·박지원 공동 선임…투톱체제로

    안철수 ‘국민선대위’, 손학규·박지원 공동 선임…투톱체제로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상임선대위원장에 박지원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공동 선임됐다고 12일 밝혔다. 손금주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선대위 인선을 발표했다. 선대위 명칭은 ‘국민선거대책위원회’, 약칭 ‘국민캠프’로 결정됐다. 공동선대위원장에는 당내 인사로 주승용 원내대표와 천정배 전 대표가 임명됐고, 외부인사로는 지난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 비례대표추천위원장을 지낸 천근아 연세대 의대 교수와 한국비트코인거래소 김진화 코빗 이사가 영입됐다. 손 수석대변인은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정동영 의원과 박주선 국회 부의장을 계속 모시려고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실무를 지휘하는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옛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3선의 장병완 의원이 맡았다. 김성식 의원은 총괄선거대책 부본부장을 맡는다. 총괄본부장 산하에는 9개의 본부가 설치됐다. 총무본부장은 김삼화 의원이, 조직본부장은 유성엽 의원이, 정책본부장은 김관영 의원이, 홍보본부장은 김경진 의원이, TV토론본부장은 이용호 의원이, 미디어본부장은 김영환 최고위원이, 뉴미디어본부장은 이언주 의원이 각각 맡기로 했다. 전략본부장은 총괄부본부장인 김성식 의원이 겸임한다. 외부인사로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에 조영달 서울대 교수, 좋은일자리위원회 위원장에 최영기 한림대 교수, 문화미래준비위원회 위원장에 엄용훈 삼거리픽쳐스 대표가 선임됐다. 평화로운한반도본부 본부장에는 최상용 전 주일대사, 이성출 전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장이 공동 임명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선생 48주기 추모재, 12일 현충원에서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선생 48주기 추모재, 12일 현충원에서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선생의 추모재가 12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대한민국 민족사에서 치욕이었던 일제강점기속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운암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12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운암 김성숙선생 서거 제48주기 추모재’를 개최한다. 이번 추모재에서는 유족, 관련단체장,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하며 개식, 국민의례, 운암 김성숙 선생 약사보고, 내빈추모사, 합창단 추모곡, 헌화 및 분향, 조총발사 및 묵념, 그리고 운암 김성숙 선생 묘소 참배 순서로 진행되며 부천 석왕사합창단, 역사어린이합창단,국방부의장대, 국방부 군악대가 참여한다. 특히 정세균 국회의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정동영 국민의당 국회의원, 이경근 서울보훈지청장, 함세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기식 상산김씨대종회장 등이 자리를 함께 할 예정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기념사업회에 전달한 추도사에서 “운암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최전선에서 싸우던 분열된 독립운동 통합을 위해 애썼고 해방 후 좌우 대립과 독재를 극복하고 통일국가의 초석을 놓으셨다”라고 밝혔다. 한편 운암 김성숙 선생은 1898년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났으며 19세에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서 출가했으며, 1919년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의 격문을 뿌려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중국으로 건너간 운암선생은 조선의용대, 의열단 투쟁을 조정하시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도 활동한 선생은 광복 이후에는 정치인으로서 통일을 위해 헌신했으며, 신민당 창당의 주축으로 지도위원을 맡아 활동하시다 1969년 4월 12일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국가보훈처는 2008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민성진 기념사업회 회장은“ 조선의용대, 의열단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하시며 항일독립운동을 앞장서시고, 해방 후 정치가로서 민주화투쟁에 앞장서며 조국 통일을 위해 헌신하셨던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되는 인물이시다”라면서 “운암 선생의 재평가와 함께 2017년에는 선생께서 주창하시던 평화통일의 초석을 다지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선 D-30] “불심으로! 대동단결!” 역대 이색 대선 후보들

    [대선 D-30] “불심으로! 대동단결!” 역대 이색 대선 후보들

    5월 9일 ‘장미 대선’이 30일 앞으로 다가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독주 속에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후보들도 저마다의 목적으로 대권에 도전하고 있다. 다가오는 대선을 맞아 그간 유권자에게 황당함 혹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이색 대선 후보들을 알아봤다.●“불심으로! 대동단결!”…2002년 호국당 김길수 후보 기호 1번 이회창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후보의 대세론 속에 기호2번 노무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 양강 구도로 치러진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의 눈길을 끈 한 후보가 있었다. 기호 6번 호국당 김길수 후보. 30대 이상 세대라면 ‘김길수’라는 이름을 몰라도 그가 대선에 내건 구호는 기억할 것이다. “불심으로! 대동단결!” 이 구호는 이후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김 후보의 공식 직함은 ‘세계불교 법왕청 산하 법륜사 주지’이다. 과거 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70년 육군 7사단에서 하사로 병역을 마치고, 1988년 필리핀 콘티넨탈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김 후보는 출마의 변을 통해 “역대로 큰스님들은 국난 때 사회참여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후보의 주요 공약은 ▲조세정책 개정을 통한 ‘빈익빈 부익부’ 타파 ▲선 평화, 후 통일 대북정책 ▲한미주둔 지위협정(SOFA) 전면 개정 등이었다. 선거 결과 김 후보는 5만 1104표(0.2%)를 얻으며 6명의 후보 가운데 5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 “십자가의 사랑만이”…1997년 바른나라정치연합 김한식 후보 불교계의 대권 도전에 김길수 후보가 있었다면 기독교계에서는 1997년 제 15대 대선에 출마한 바른나라정치연합 김한수 후보가 기독교 정당의 대선 출마 시초로 꼽힌다.김 후보는 당시 한사랑선교회 대표 목사로, 광주숭일고 재학시절 6.3한일외교회담 반대 투쟁에 참가한 것이 문제가 돼 중퇴했고 서울대 재학시절에는 음대 학생회장과 서울대 총학생회 부회장을 지내면서 유신반대투쟁을 벌였다. 주요 공약으로는 ▲남북한 공동 예배 추최 ▲예수님의 사랑으로 남북통일 ▲신앙과 정치활동의 접목 등이 있었다. 대선에서는 총 4만 8717표(0.18%)를 받으며 7명의 후보 중 공화당 허경영 후보를 누르고 6위에 올랐다. ● “신안 앞바다 보물로 국민 부자 만들겠다”…1971년 정의당 진복기 후보 시간을 더 거슬러 1970년대로 올라가면 더욱 황당한 대선 후보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회자되는 사람은 단연 “신안 앞바다 보물로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다”던 정의당 진복기 후보다.트레이드 마크인 ‘카이젤 수염’으로 당시 유권자에게 얼굴을 알린 진 후보는 외모만큼이나 공약 또한 파격적이었다. ‘신안 보물 발굴’외에 그가 강조한 공약은 ‘북진 전쟁을 통한 통일’이었다. ● ‘남장여자’ 1992년 무소속 김옥선 후보 1992년 제 14대 대선에 출마, 8만 6292표(0.4%)로 낙선한 정치인 김옥선 후보. 당시를 기억하는 유권자에게 김 후보는 ‘남장여자’ 대선 후보라는 다소 황당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김 후보는 단순히 ‘괴짜’ 후보로 치부되기에는 국내 정치사에 던진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김 전 의원은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 재검표 끝에 국회에 입성했고, 이후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유신 체제이던 1975년에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딕테이터(dictator·독재자) 박”, 유신정권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이라고 비판했다가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김 전 의원의 ‘남장’은 대선에 출마하면서 더욱 주목받았지만, 그녀는 이미 1950년대부터 남장으로 살아왔다. 그녀는 과거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일제 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오빠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1남 3녀 중 막내인 내가 남장을 하게 됐다”면서 “어린 나이에 사회사업과 교육 사업에 뛰어들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 ‘나라를 지킨 철모’ 2007년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 후보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 유력 후보군 뒤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한 남자의 홍보용 포스터. 녹슬고 구멍 난 철모 뒤로 태극기 이미지가 걸려있다. 포스터 속 구호는 ‘지키자! 대한민국’. 당시 대선 후보 중 유일한 군 출신인 기호 9번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 후보다.전 후보는 1967년 육군사관학교를 임관, 합동참모본부와 육군 보병제9사단장과 학생중앙군사학교(ROTC 사령부) 학교장 등을 지냈다. 선거 결과 7161표(0.03%) 득표에 그치며 10명의 후보 중 최하위에 그쳤다. ●“내 눈을 바라봐!”…본좌 허경영의 등장 국회의원 300명 정신교육대 입소,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유치, 산삼뉴딜 정책으로 100만 일자리 창출… 공약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한 남자. 사람들에게 ‘허본좌’로도 잘 알려진 민주공화당 허경영 전 총재다.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각종 황당한 공약과 ‘축지법’, ‘아이큐 450’ 등 괴짜로 주목 받은 허씨는 이미 1997년 제15대 대선도 황당한 공약으로 도전한 바 있다. 그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내세운 주요 공약으로는 1000여 개의 산삼재배단지를 만들어 100만 실업자는 고용하는 ‘산삼뉴딜정책’, 결혼 시 1억원 지급과 출산 시 3000만원 지원, 국회의원 100명으로 축소 및 지자체의원 보수폐지 등이 있다. 허씨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된다면 “국회의원 300명을 국가지도자 정신교육대에 집어넣어버리겠다”며 또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그는 2008년 12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선고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면서 출소 후 10년 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이번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다. 앞서 허씨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결혼하기로 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 취임 만찬에서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양자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고 주장했으나 모두 허위로 확인됐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필승전략 키워드는 대세 vs 분열 vs 흡수… 대선구도 보인다

    필승전략 키워드는 대세 vs 분열 vs 흡수… 대선구도 보인다

    민주당 ‘again 2007’ 부동층 쏠리는 ‘밴드왜건’ 기대 한국당 ‘again 1987’ 진보진영 다자구도에 승부수 국민의당 ‘again 2002’ 중도·보수층 전략 투표 유도‘5·9 대선’의 대진표가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각 진영은 ‘필승 시나리오’ 구상에 돌입했다. 표면적으로 원내 5개 정당을 축으로 한 ‘5자 구도’가 형성됐으나 역대 대선 구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새판 짜기’에 골몰하고 있다. 준비 기간이 짧은 조기 대선인 만큼 정책과 공약보다 선거 구도와 프레임이 당락의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대세론’에 방점을 찍고 있다.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유력 후보 쪽으로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가 노림수다. 같은 맥락에서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압승을 거둔 2007년 대선이 ‘모범 답안’이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48.7%의 득표율로 26.1%에 그친 정동영 후보를 큰 격차로 따돌렸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2년 대선 구도도 차선책일 수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다자 구도를 승부수로 보고 있다. “좌파에서 2명, 얼치기 좌파에서 1명, 우파에서 홍준표가 나간다”는 홍 후보의 최근 발언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는 ‘야권 분열’로 득표율 30%대 대통령이 탄생한 1987년 대선 구도를 염두에 둔 것이다. ‘보수 분열’과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대권을 거머쥔 1997년 대선 모델도 홍 후보에겐 역전 시나리오다. 당시 DJ는 40.3%로 당선됐고, 보수 표는 이회창(38.7%) 후보와 이인제(19.2%) 후보로 갈렸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이회창 대세론’을 뒤집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정몽준 전 의원과 손 잡으면서 중도와 보수표를 흡수했듯, 홍 후보를 지지하는 중도·보수층이 안 후보에게 ‘전략 투표’할 경우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 후보와 안 후보 간 양자 대결에서 안 후보가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날 공개되기도 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구상도 안 후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 후보도 문 후보를 맞상대하려면 일단 안 후보를 비롯해 중도·보수 진영을 아우르는 ‘비문(비문재인) 연대’가 성사돼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48.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6.6%의 이회창 후보를 2.3% 포인트 차이로 꺾었다. 다만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가 지속돼 다자 구도에서 자력으로 문 후보의 대세론에 맞설 수 있다면 선거 구도는 또다시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홍준표 “나는 HJP”

    홍준표 “나는 HJP”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3일 “나는 HJP(홍준표)다”라고 했다. 홍 후보는 이날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를 예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내 이니셜도 (JP와) 똑같다”면서 “그래서 나는 H자를 하나 더 붙인다”고 말했다.홍 후보가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 등 과거 거물급 정치인들처럼 이니셜로 대표되려고 해도, 김 전 총리의 ‘JP’의 상징성이 워낙 강하다보니 자신을 ‘HJP’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니셜만으로도 통하는 정치인으로는 이명박(MB) 전 대통령, 정몽준(MJ) 전 새누리당 의원, 손학규(HQ) 전 민주당 대표, 정동영(DY) 국민의당 의원, 고 김근태(GT) 전 의원 등이 있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MS’라는 이니셜의 소유주를 확실히 구분짓지 못했다. 이니셜이 아닌 성(姓)만으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GH’, ‘MH’로 불리지 않고 ‘박(朴)’, ‘노(盧)’라는 성만으로도 통한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당권이 우위에 있을 땐 與 후보가 대권 잡았다

    MB 땐 ‘절대 우위’ 박근혜 승리 정동영·노무현, 갈등으로 실패 여당 없는 19대 적용될지 주목 역대 대선에서 ‘당·청 관계’가 집권 여당 후보의 운명을 결정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당권이 우위에 있을 땐 여당 후보가, 당·청 마찰이 심할 땐 야당 후보가 각각 승리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변수가 돌발한 이번 5·9 대선은 과거 선거와 어떻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옛 대선 사례를 살펴보면 대통령과 여당 후보의 ‘힘겨루기’ 결과가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난다. 2012년 대선에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세력이 집중됐다. ‘지는 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라는 강력한 당권 앞에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다. 박 후보는 결국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2002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호남 화합’이라는 명분 아래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를 비공식적으로 지원했다. 노 후보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체제에서 치러진 1992년 대선에서도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에게 권력이 집중됐고, 정권은 유지됐다. 하지만 2007년 대선은 달랐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각종 현안을 놓고 ‘파워게임’을 벌였다. 당·청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대선에서 정 후보는 26.1%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고 노무현 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29일 “정권 초기에는 대통령이 주도권을 쥐고, ‘권력 누수 현상’이 찾아오는 임기 말에는 당이 주도권을 쥔다는 ‘정치적 순리’가 지켜졌을 때 정권이 재창출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이 탄핵으로 퇴임해 버린 상태다. 자유한국당도 여당의 지위를 상실하면서 이번 대선은 전례 없는 구도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까지 유효했던 ‘당·청 관계와 정권 재창출 공식’이 이번 대선에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