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정돈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 미용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 생일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 동시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 망막
    2026-06-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96
  • 대학교육/김영화 한림대 교수·영어학(굄돌)

    조용하고 초연한 분위기에서 높은 이상과 폭넓은 교양을 가진 인사들과의 교분,체계적이며 정돈된 사고의 훈련,공부하며 사색하며 이따금씩 하는 일 없이 공상에 빠지기도 하는 청년기의 세월,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회의 속물적 현실로부터 보호받는 기간,공동의 유대감과 전통을 나눌 수 있는 단체에 속하는 것,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동등하다는 자신감….이런 것들이 대학에 다님으로써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고 칼빈 키니라는 작가가 말한 바 있다.대학에 다니지 못해서 자신은 그런 기회를 놓친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그는 대학교육의 참된 가치를 교육교육에 두고 있다.교양교육이란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 되기 보다는 자신이 평생 지니고 살 인품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 각 대학에서 세계화에 발맞추어 개혁을 시도하는 듯하다.영어회화 교육을 비롯해서 학생들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는 실용적 교과목을 집중적으로 개설할 의지들이 보인다.기초과학은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토풀이나 토익·경제학·법학·경영학·일반상식 등에 3·4학년 학생들은 몰두한다.취직을 위한 공부다. 21세기의 일꾼들을 길러내기 위해 학교에서도 현실적인 교육을 지향하겠다는 것은 이해가 된다.기능인을 길러내는 것도 경제발전과 국력의 신장을 위해 당장 필요한 교육이 되겠다.그러나 장기적 안목으로 볼때 정의롭고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지적 소양교육과 인성교육을 대학이 맡아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입사시험에서 면접을 강화하는 기업은 크게 앞서가고 있는 것이다.
  • 문법교육의 필요성/김영화 한림대교수·영어학(굄돌)

    문법이란 무엇인가.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촘스키교수는 문법이란 우리 두뇌(마음)에 내재하는 언어지식이라고 한다.지배 결속 통어 통제 자유 장벽 흔적 이동 일치 등이 현대 문법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예를 들어 영어에서 재귀대명사(­self)는 지배범주 안에서 결속되어야 한다.명사구가 이동할 때는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과 이동된 명사구(선행사)는 연쇄관계(체인)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자질을 공유한다.장벽이 있을 때는 결속도 이동도 불가능하다. 문법이란 규칙이며 질서다.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의사소통에 혼란이 온다.문법 규칙에는 모든 언어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보편규칙과 각 언어의 고유한 특수규칙이 있다고 본다.말을 배운다는 것은 이 규칙을 터득하는 것이다.규칙의 습득이 어설프다면 말이 서툴게 될 것이고,알고 있는 규칙이라도 올바르게 활용하지 못하면 의사소통에 무리가 생긴다.정돈된 언어구사는 곧 질서있는 사고의 표현이다. 우리말 글짓기를 잘 못한다는 것은 우리말의 규칙과 질서를 어긴다는 것이다.말의 질서를가르치는 것이 논술 교육의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외국어 교육은 대상 언어의 뼈대부터 인지시키는 과정이 필수적이다.소위 주어와 동사에 나타나는 문법적 일치관계를 인지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장문의 글을 읽고 객관식 문제의 답을 맞추는 연습은 해 봐야 눈치만 는다.건물의 골조를 확실하게 쌓아야 하듯이 언어교육에서도 기초문법을 분명하게 인지시키도록 해야 한다.다만 문법을 위한 문법교육이 아니라 말과 글이라는 건물 전체의 구조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분석적 시각을 길러 주어야 한다.
  • 「니그로 예술」/손 끝에서 태어나는 생활공예품(아프리카 기행:9)

    ◎컵·의자·표주박·질그릇 등에 갖가지 문양/부족보호·번성 기원하는 주술적 혼 담겨/16세기 축조한 지저스요새는 박물관으로 변해 몸바사의 기구한 역사를 속속들이 증거하고 있는 명소는 포트 지저스라는 요새다.올드타운의 해안에 있는 이 요새는 1596년에 완성되었다.1824년 영국의 보호령으로 선포될 때까지 이 요새를 중심으로 벌어진 싸움은 거의 그칠 날이 없었다.1593년 포르투갈의 항해가였던 바스콘첼로스가 천연의 요새지를 우연히 발견한 이래 인공을 가해 건설한 것이 포트 지저스다.1875년 영국 함대가 몰려와 아랍인들을 몰아낼 때까지 280여년동안 격전장이 되었다.아랍·포르투갈·오만·영국을 비롯해서 마즈루·발루치와 같은 성주들까지 번갈아가며 요새를 빼앗고,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그때마다 요새주변은 풀 한포기 남지 않는 초토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요새의 해안을 지나는 해적선이나 상선들이 물과 양식을 구걸하다가 거절당하면 요새를 공격하고 해서 집중포화를 얻어맞았던 일도 여러번이었다.지저스요새는 강력한군사요충지로 건설되었지만 지금은 마치 짓다만 건물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성벽의 두께는 2m가 훨씬 넘고 높이는 15m나 된다.이 성벽에 대고 먼저 대포를 쏜다는 것은 십자포화에 얻어 맞는 것을 자초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성벽 곳곳 총탄 흔적 1824년 이 요새에 영국 깃발을 꽂았던 해군의 리츠대위는 이 연안에서 더 이상은 노예수출을 하지 않겠다고 마즈루 성주에게 약속했다.그 약속의 대가로 마즈루는 영국인들의 주둔을 허용했었다.그러나 리츠대위에 의한 보호령 통치체제는 그 이듬해로 마감되고 말았다.그것은 그가 23세의 짧은 나이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나서 1875년 회교부족국가의 왕이었던 술탄의 명령에 따라 이 요새를 지키고 있던 사령관이 술탄의 소환명령에 불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이에 분노한 술탄은 영국 함대의 도움을 청한다.두시간에 걸친 영국 함대의 집중포화에 혼찌검이 난 사령관은 드디어 항복하게 된다.그후 1958년까지 이 요새는 감옥으로 개조되었다가 걸벤키언재단이 기증한 3만파운드를 들여 지금은 박물관으로 고쳐 쓰고 있다.어떻든 지저스요새는 동아프리카 노예시장과 뗄래야 뗄수 없는 비정의 역사를 간직하였다.그래서 주변 열강들의 추악한 전쟁은 그칠 날이 없었던 것이다.군데군데 총탄자국이 뚜렷한 붉은 색깔의 성벽에는 그때의 참상과 흑인들의 눈물이 얼룩져 있는듯 하였다. 이곳 몸바사에는 케냐 관광조각상품의 60%의 수요를 감당하는 조각공장이 있다.아프리카인들에게 미술은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그 뿌리는 갖가지 장식적 문양을 새겨넣은 컵·표주박·의자·질그룻·빗·손칼·창 등의 공예품으로 손 끝에서 피어난다.또 잉태와 부족의 번성을 상징하는 주술적 인물상,적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하는 의미를 가진 전사상,가죽제품같은 생활에 친숙한 물건들에도 일상적 예술성이 내포되어 있다.이런 조각작품들은 피상적인 묘사보다는 그속에 깃든 부족의 심성이나 그들이 추구한 이상이 더 중요하다. 아프리카 조각과 함께 떠오르는 화가가 바로 피카소다.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 있는사람은 없다.피카소는 시각적인 겉모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20세기 젊은 화가들의 열망을 풀어줄 예술의 열쇠가 바로 아프리카의 가면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하였다.아프리카 미술이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측면을 일컬어 「니그로의 예술은 합리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피카소 미술에 영향 피카소는 말했다.『아프리카에서 온 가면들을 보는 순간,나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 가면들은 다른 여느 조각들과 달랐다.그들은 마력을 지닌채 미지의 모든 것들과 대적한 채 서 있는 것같았다.나는 한동안 그것들을 주시하다가 깨달았다.나 또한 모든 곳과 대적하여 서 있다는것을.그리고 그 모든 것은 미지의 것이며 나는 그 미지의 것들을 모두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것을.여인들,어린이들,담배,놀이같은 세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전체가 미지의 것이며 나의 적이었던 것이다』라고….아프리카 미술품에 표출된 모든 우주창조적 요소들은 피카소의 작품을 통해 마치 환생이라도하는 것처럼 다시 태어났다.그래서 피카소의 이 말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주제설명 일수도 있다.피카소는 일생동안 무수한 변화를 추구해 왔었지만 그 다양했던 변화과정 중에서도 아프리카 조각을 만났을 때처럼 그의 미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몸바사 중심부에 자리잡은 조각공장의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하였고 정돈된 것이라곤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시설도 원시적이었고 공장은 먼지투성이었다.그 속에서 한 사람이 나무토막 한개를 잡으면 완성품이 나올때까지 오직 칼과 끌,깎고 다듬고자 하는 나무토막,이외 한눈을 팔지 않았다.그러나 어느 한 사람 낙후된 시설을 헐뜯거나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그 공장에서 우리는 매우 싼값으로 몇가지 기념품들을 살수 있었다.관광 길목마다에는 관광조각품을 팔고 있는 점포가 즐비하고 점포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솜씨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하지만 어느 덧 그들의 소박하고 단순한 인간미에 매혹되어 별 소용도 없을법한 목조기념품을 샀다. ○조각품 가게들 준비 하오에 호텔로 돌아왔을때 또다른 아프리카의 아픔과 서러움을 목격하였다.르완다에 주둔하고 있는 다국적 군인들이 몰려와서 호텔로비를 메우다시피 우글거렸다.그들은 르완다의 주둔지에서 군용기로 잠시 몸바사공항으로 날아와 이틀이나 사흘씩 피로를 풀고 다시 르완다로 돌아간다.그런가하면 호텔 야외에 있는 야자수 그늘에는 유럽에서 휴가온 사람들이 벤치 위에 누워 일광욕으로 하오를 즐기고 있다.바로 한빨짝 밖에서는 수십만의 르완다 난민들이 굶주린 배를 쓸어쥐고 시시각각으로 엄습하고 있는 죽음과 대치하고 있는데….두발짝 밖 몸바사의 고급호텔 야외로비에서는 이런 호사로움이 그들 유럽 관광객과 같은 입장이 되어버린 우리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 미·소공동위 결렬 이후(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16)

    ◎미,한반도문제 유엔총회 상정/유엔 남북총선·한국임시위 설치 결의/소 「한국대표 불참」 이유 임시위 보이콧/남로당,북과 공조 유엔토의 반대 선동 미국은 제2차 미소공위가 정돈상태에 들어간 1947년 여름부터 회담자체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그래서 팽창하는 공산주의 압력을 저지하기 위한 서구와의 협력문제,한국의 독립이 친미적 반공이념에 입각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문제등을 고려하게 되었다.특히 양극화 현상을 치닫는 동·서냉전의 구도속에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유엔에 맡기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여기에는 당시 남한에 주둔한 2개사단을 철수시킬 수 있다는 군사전략도 맞물려 있었다. 1947년 9월 17일 미국대표는 한국독립문제를 제2차 유엔총회의 의사일정에 포함시킬 것을 전격적으로 요청했다.이날 미 국무장관 G C 마셜은 총회의 연설에서 미국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넘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나섰다.마셜의 연설요지는 미 소협상에 의한 한반도 문제해결은 전혀 전망이 없기 때문에 유엔에 상정한것이며 비록 미국이 의안을 제출했을 지라도 회원들의 공정한 판단이 요구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미 소의 무능으로 한국인이 열망하는 한국의 독립을 더이상 연기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덧붙였다(미국무성보·1947년). 소련 외상 그로미코는 한반도 문제의 총회 상정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이 문제는 전쟁과 연결된 사안으로 강대국들이 특별한 방법,다시 말하면 모스크바협정(3상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운영위원회는 미국의 의안을 12대 2로 가결한데 이어 총회도 이를 동의했다.총회의 제1위원회가 10월 28일 한반도문제 토의를 시작하기전 소련대표는 다른 안건을 내놓았다.그것은 한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정부를 선택할 기회를 주도록 1948년초까지 미·소의 군대를 한반도에서 철수하자는 내용이었다. 소련의 이같은 안건을 주의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이무렵 한반도 북쪽에는 소련의 조종을 받는 자신들의 대리기구인 정부형태의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또 7월 제2차 미소공위에서 소련이 내놓았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한 정당 및 단체협의체 구성안과도 무관치 않은 것이다.소련은 제2차 미소공위에서 남한의 27개 정당을 우익계 및 중간계라는 이유로 배제시킨 극좌 우세의 지위를 차지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적이 있다(한국에서의 미군정 활동요약·1947년).소련의 이 제안은 제2차 미소공위가 결렬되는 요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어떻든 미국대표는 10월 17일 미국의 제안을 구체화한 결의안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했다.미국의 안은 되도록 빠른시기에 한국의 독립이 이루어져야 하고 점령군이 철수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다시 말하면 점령국은 1948년 3월 31일까지 남북한 전지역에서 유엔위원단의 감시하에 총선거를 실시,국회나 중앙정부를 수립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그 정부는 군대를 창설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유엔위원단은 국회 및 정부조직,점령군 철수에 관한 협정체결에도 협의할 수 있다는 위원단의 역할도 제시했다. ○소 별도 결의안 제출 소련은 역시 미국안에 맞서는 2개의 결의안을 별도로 유엔에 내놓았다.그 하나는 남북한에서 선출된대표들을 초청,한국문제 토의에 참가시키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서 주장한 한국정부 수립은 한국민에게 맡기자는 요지였다.그러나 도대체 누구를 한국민의 대표로 하느냐는 벽에 부딪혔다.얼핏 매력적으로 보이는 한국대표 참가는 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하자는 미국의 수정안에 밀려나고 말았다.총회의 제1위원회는 11월 14일 35대 6으로 미국의 수정안을 최종 채택했다. 소련이 내놓은 안건은 미국에 의해 모두 봉쇄된 셈이었다.그로미코는 「총회가 한국민 대표를 참석시키지 않고 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한다면 소련은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이는 뒷날 소련과 소련이 전적으로 조정한 북한에 의해 실현되었다.유엔총회는 11월 14일 미국의 제안을 몇가지만 부분수정하고 최종적으로 채택했다.소련의 제안이 만약 수락되었을 경우 이미 기반을 닦은 북조선노동당과 인민위원회,남조선노동당을 주축으로 한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정부가 수립되었을지도 모른다.이는 미국이 우려한 부분이기도 하다. 유엔총회는 11월 14일 채택한 결의안에 따라 한국독립을 위한 계획안을 발의하였는데 대부분 미국이 주장한 원칙을 따르는 것이었다.총회의 결의에 따라 설치된 한국임시위원단은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중국,엘살바도르,인도,필리핀,시리아,우크라이나로 구성되었다.우크라이나는 대표파견을 거부,7개국이 참여했다.한국임시위원단에게는 선거감시의 임무가 부여되었다.선거는 늦어도 1948년 3월 31일까지 성년자 투표 및 비밀투표를 실시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1947년 11월 14일 미국측 제안이 유엔총회에 최종 채택되는 것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좌우파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이승만은 미국이 남한에 독자적인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자신에게 눈을 돌릴 것이라고 예측했다.남로당도 이른바 야산대라는 게릴라를 조직하고 경찰관서를 포함한 관공서를 습격하는 등 과격성을 띠었다.그리고 유엔에서 한국문제 토의를 끝까지 반대해야 한다는 선전선동을 강화했는데 이는 12월 중순부터 본격화되었다(극동사령부 정보철·1948년 2월). 남로당은 북로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광범위한 세력과 공동전선을 펴는 지령을 받는다.서울신문이 입수한 한 자료에 따르면 남로당 요원의 북한파견은 아주 일찍부터 고정루트를 통해 이루어졌다(별도기사).지금까지 알려진 자료들을 종합하면 1947년말 당시 남한에 있었던 중도좌파 인물 홍명희는 평양의 북로당위원장 김두봉과 수시 연락을 가진 것으로 되어있다.홍명희는 1948년 2월초까지 실제 비밀리에 평양에 몇차례 다녀왔다. 그리하여 19 48년 1월 8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서울에 첫발을 밟은데 이어 1월 12일 첫 회의를 열었다.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한국에서 활동은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남로당 북한과 수시접촉 했었다/당수 허헌,북에 밀령 전달/요원 4명 배로 평양 밀파/원산서장에 “동행을” 사신 해방정국에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킨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가운데 수시로 접촉한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가 워싱턴에서 발굴됐다.1950년 미군이 평양에서 가져온 이른바 북한노획문서의 하나인 이 자료는 허헌이 함경남도 원산인민보안서장에게 보낸 소개장으로 4인의 공산당 요원을원산을 통해 평양에 밀파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개장은 1946년 당시 남로당위원장 직책을 맡고있던 허헌이 그해 12월 친필로 작성한 것이다.그는 소개장에 허인(당시 31세)등 4명의 이름을 적고 허인이 자신의 조카임을 밝혔다.소개한 4명의 인물은 모두가 희생적으로 투쟁하는 간부들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들이 평양까지 무사히 가도록 동행등 모든 편의를 보아주도록 당부한 내용을 담았다.그리고 동선했다는 대목이 보여 이들은 동해안에서 배를 타고 원산에 상륙한 것으로 보이는데 평양까지 가는 목적은 「모 용무」라고만 적어 상세히 밝혀지지 않았다.그러나 중요한 임무를 띠고 밀파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왜냐하면 경찰서장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서장의 동행을 요청했다는 점이 그것이다.특히 이무렵 남한의 공산당은 10월폭동과 같은 과격한 투쟁을 벌이다 지하로 숨어든 시기여서 다급한 밀령을 가지고 입북했을 가능성이 크다. 허헌은 1885년 함북 북청출신의 변호사로 일찍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다.1946년 11월 해방정국에서 개편한 공산당인 남조선노동당 위원장을 맡았다가 월북,최고인민회의 의장을 비롯,김일성대학 총장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장 등을 지냈다.1951년 8월 병사했는데 허정숙은 그의 딸이다. 이 자료를 검토한 북한문제연구소 김창순 소장은 『개성과 서해안,철원등을 통한 월북루트는 널리 알려졌지만 동해를 통한 해상루트가 밝혀진 것은 처음』이라면서 「허헌 친필의 소개장 자체도 공산주의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특별취재반 ▲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 기자) ▲김성호 ( 〃 〃 ) ▲김경운 (조사부 〃 )
  • 이렇게 고쳐야 한다(지방행정 체계:6·끝)

    ◎“정보화­지방화시대… 행정단계 줄여야/여야의원의 처방/지역감정 청산위해 「도」 재획정 필요/전남·경남 일부묶는 안도 고려할만 최근 정계 일각에서 행정구역 개편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지난해 10월 정기국회에서 행정구역개편 문제를 제기했던 나로서는 이제와서 이 문제가 재론되는데 착잡한 느낌이다.그때 바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이 문제를 정면돌파했더라면 매듭을 풀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기국회는 지방자치제 문제 같은 해야할 일은 뒷전으로 미루고 여야간에 해묵은 「12·12」사건의 사법처리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인 경쟁으로 아까운 시일을 허비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민자당의 당론은 4대 선거를 예정대로 치르면서 고칠 수 있는 부분은 우선 고치자는 쪽으로 정리됐다.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된다.생활권과 행정구역이 다른 지역의 경계 재조정,특별시·광역시의 구의 준자치구화는 모두 일리있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 병폐이며 후손들에게 더이상 물려주어서는 안될 지역감정을 인위적으로라도 청산하기 위해 일부 지방의 경우 선거가 끝난뒤에라도 도의 경계를 다시 획정할 필요가 있다.전라남도의 동남부와 경상남도의 서남부 일부 지역을 묶어 새로운 도를 만든다든지 전남북과 경남북의 내륙지방을 묶는 것,그리고 경기도를 한강 이남과 이북으로 가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현행 3단계로 되어 있는 행정조직을 한 단계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또 인구의 급격한 이동으로 인해 지방의 군은 인구 3만이 겨우 넘는데가 있는가 하면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인구 4만에 육박하는 동도 있는 형편이다.이런 불균형은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한다.발로 뛰면서 행정을 보던 시절의 행정구역을 전화와 자동차로 처리하는 지금의 상황에도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지자제 선거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행정구역 개편문제가 제기되어 정가에 다소 혼란을 주고 있는듯 하나 이 문제는 국가의 백년대계에 관계되는 주요 사안이므로 정치권이 당리당략과 이해관계를 떠나 신중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선거뒤 필요부분만 손질해야/「읍·면·동 폐지」 검토해 볼수도 민자당이 서울시 분할론,경기도 분할론,울산의 직할시 승격론,도 폐지론에 이어 자치구폐지론을 제기하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4대지방선거를 4개월 앞두고 치고 빠지기 식으로 행정구역개편을 공론화하려는 것은 다음 두가지 점에서 반민주적이다. 첫째,민주적 절차에 어긋난다.주민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정구역개편은 지역주민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수렴해 이뤄져야 한다.따라서 주민투표법을 먼저 제정한 뒤 그 절차에 따라 행정구역을 개편해야 한다.지금 단계에서 행정구역개편론의 초점은 주민투표절차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모아져야 한다. 둘째,물리적으로 6월 지방선거를 연기하지 않고는 행정구역개편이 불가능하다.행정구역개편을 4대지방선거 연기의 명분으로 삼는다는 것은 결국 민주화와 지방자치발전의 차원이 아니라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만일 수도권과 호남에서의 패배와 TK정서및 JP신당출현을 우려해 지방선거 연기를 꾀하는 것이라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행정구역개편은 현재 국회내무위 법안소위에서 심의중인 주민투표법을 조속히 제정한 뒤 지방선거 이후에 필요한 지역에 한해 민주적이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해야 한다. 행정단계 개편은 자치계층과 행정계층의 일치,행정보조계층의 단순화 차원에서 읍면동을 민원출장소화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그것도 민원업무 간소화와 사무전산화를 먼저 이룬 뒤 시범지역을 선정해 추진하는 등 장기적으로 검토할 사항이라고 본다.반면 민자당의 한 의원이 제기한도 폐지론은 지금까지 어느 행정학자도 거론한 바 없는 것으로서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도 폐지론은 고려시대 이래의 역사성과 자주적 기반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지방화나 분권화에 역행하고 광역행정수행 애로,자치단체간 분쟁해결 곤란,중앙정부 부당간섭 등을 초래할 것이다.오히려 광역단체인 도에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해 통일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가장 지방적인 것이세계적 경쟁력을 갖는다는 평범한 진리에도 불구하고 지방화를 연기하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세계화추진기구는 있으면서 지방화추진기구는 없다.옥상옥의 정부기구인 총무처가 국가사무의 지방사무 이양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범정부적인 지방화추진기구 설치가 시급하다. ◎전문가들의 대안/선거보장장치 마련… 의혹 해소부터/정치권 중·장기 협의기구 만들어야 지방행정의 개편 여부로 다시금 온 나라가 시끄럽다.이같은 혼돈을 수습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차분히 생각을 정돈하고 문제의 본질을 규명해 보아야 한다. 지방행정의 계층과 구역은 지방차치의 근본토대이다.현행 계층구조의 행정구역은 조선말기에서 일제 초기의 확정된 것으로 지금까지 큰 변화없이 골격이 유지되어 왔다.본질적으로 기존의 지방행정 수행체제는 국민생활의 편의를 도모하기 보다는 통치의 용의함이 중점을 두어 왔다고 볼 수 있다.그 결과 현행 체제는 중앙정부의 통솔의 원리를 기준으로 하여 다단계의 계층과 하향적인 구역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같은 지방행정체계는 주민의 생활권이 도시화와 교통·통신의 발달로 크게 변모했기 때문에 현실과 심한 불일치 현상이 유발됐다.다시 말해 지방행정과 주민생활이 서로 유리됨에 따라 시간적 물질적 낭비가 초래됐고 국가적으로도 경제·사회적 비용을 증대시켜 왔다. 지방차치의 육성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통치의 편이함에 주안을 두어 설정된 기존체제는 주민생활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정착의식이 희박해지고 참여기회 빈곤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계층구조는 지나치게 다층화되어 있어 행정의 능룰성 내지는 생산성을 저하시켰고 경직된 행정구역은 동일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심한 행·재정적 격차를 유발시켜 균형있는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 했다. 지금의 지방행정구역과 계층이 안고 있는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편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문제는 「개편시점이 적절한가?」라는 점이다.한마디로 지금 개편을 해도 문제화 되고 안해도 문제가 되는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지방행정 계층구조나 행정구역의 개편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로서 장기적인 안목과 함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실정이다.무엇보다 개편의 필연성을 의심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예정된 6월의 지방선거는 분명히 실시된다는 보장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의혹과 불심을 해소하고 아울러 여야가 함께 중·장기적 논의를 계속할수 있는 정치적 장치를 마련해 두는 것도 바람직 할 것이다. ◎손쉬운 사항은 선거전에 매듭/나머지 골격마련뒤 점진 처리 6월말로 잡혀있는 지방자치선거를 고려해 지방행정구역의 개편문제를 다루는 방법에는 세가지 접근방법을 생각해 볼 수있다. 그중 첫번째는 행정구역을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것이다.물론 여기에는 자치선거를 연기하더라도 낡은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다.다른 하나는 지방선거가 불과 3개월여 밖에 남아있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개편이 불가능하니 지방선거를 먼저 치른후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 두가지 입장에는 다 나름대로의일리는 있다.문제가 많은 지방행정구역을 그대로 둔다면 지방경쟁력강화에 한계가 있고 요즘 국정지표인 세계화와 걸맞는 명실상부한 지방화시대를 여는데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또 지방선거를 고려하면 국민에게 약속된 법적 사항을 헌휴지 조각으로 만든다는 것이 옳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50여년간 손을 못댄 구식제도를 그대로 끌고 갈 수 없다는 점이다.이것은 중병이 있는 지 알고도 손을 안쓰고 그대로 봉합해 버리자는 논리와 같다고 비유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인가.실현 가능하면서도 문제점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방안으로 차제에 지방행정체계의 문제를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에게 알려 개편사안을 우선 체계적으로 분류하자는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우선 선거전에 고칠 수 있는 사항은 고치고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리는 사안은 원칙적인 골격을 마련한 후 지방선거를 예정대로 실시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실천에 옮기자는 것이다.이 세번째 방안은 여당의 개혁의지와 행동을 수용하고 야당의 지방선거 예정대로 실시라는 입장을 충분히 살려줄 수 있다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의회정치는 모름지기 타협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을 볼모로 대립을 조장해서는 안된다.여당의 입장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나 우선 쉽게 개편할 수 있는 사항은 고치고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가 요구되는 사항은 원칙적인 골격을 먼저 마련한후 단계적으로 바로 잡는 수순을 밟으라고 충고하고 싶다. 지방선거를 이유로 「봉합론」을 주장하는 야당도 지방행정체계의 문제점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더구나 예정대로 지방선거가 실시된다면 지방행정체계의 손질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 재가노인 복지사업 대폭확대/복지부/새달부터… 수혜자 크게늘듯

    ◎「노인의 집」/가정봉사원 파견/단기보호 서비스/3∼5명 거주… 15개 시·군에 설치/노인의 집/가사·개인활동·우애서비스 제공/가정봉사원 올해부터 가정봉사원들이 노인 가정을 방문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무료 재가노인복지사업이 크게 확대된다. 보건복지부는 19일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의 집」을 운영하는 것을 비롯,가정 봉사원 파견·주간 보호·단기 보호 등 4개 사업을 주요 골자로 하는 재가노인복지 사업지침을 확정,오는 3월부터 실시하도록 각 시·도에 시달했다. 이같은 방침은 현행 노인복지 서비스 제도가 생활보호대상자와 유·무료시설거주 노인 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 가정에 머물고 있는 대다수 노인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0세 이상 노인 인구 3백80만명 가운데 현재 서비스를 받고 있는 노인은 생활보호대상자와 유·무료 시설거주자를 합쳐 10%에도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복지부는 이에따라 전국 15개 시·도에 단독 세대 노인을 비롯,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3∼5명의 노인들이 거주하는 「노인의 집」을 시범적으로 설치,성과를 보아가며 전국 시·군·구에 확대하기로 했다. 「노인의 집」은 노인이 거주하고 있는 가정 가운데 비교적 환경이 좋은 곳에 설치,한사람에 매달 10만원 안팎의 비용을 받아 운영하고 현재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전국 16개 재가 봉사단체와 24개 여성단체 요원으로부터 서비스를 받도록 했다. 복지부는 또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들이 가정에 머물며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가정봉사원 파견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기로 했다. 사회복지법인 또는 비영리법인이 복지부의 허가를 받아 유료 또는 무료로 운영하는 가정봉사원 파견사업 종사자들은 식사 시중·시장 보기·주변 정돈·생필품 구매 등 가사에 관한 서비스,신체 청결·외출시 부축 등 개인활동 지원서비스,말벗 등 우애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법인은 10평규모 이상의 사업장을 갖추고 80명 정도의 노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며 노인 8명에 1명의 봉사원이 배치하도록 했다. 또 낮동안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노인을 입소시켜 편의를 제공하는 유·무료 주간 보호 사업도 실시한다. 이는 여성의 사회진출에 따른 맞벌이 부부의 증가와 보호 가족이 부득이한 사유로 낮동안 보살필 수 없는 가정의 어려움을 고려한 것이다. 복지부는 가정봉사파견 및 주간보호 사업장 가운데 거택보호자와 자활보호자 등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장은 국고 또는 지방비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와함께 보호가족이 병이 났거나 단기간 출장을 가는 등의 이유로 일시적으로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는 노인을 입소시켜 15일 이내의 범위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유료 단기보호사업도 함께 실시한다. 복지부관계자는 『노인복지 서비스도 생활보호대상자 등에게만 제공하는 대증 요법 수준에서 벗어나 중산층을 포함하는 재가노인 대다수를 상대로 하는 선진국형으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올해가 재가노인 복지서비스의 원년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여성 많아진 법조계 새 풍속도/부부 판·검사 늘고 있다

    ◎사법연수원 재학중 “열애” 대부분 현재 모두17쌍… 새달 3쌍 더 탄생 여성의 법조계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현직 판사및 검사 부부가 계속 늘고 있다. 오는 3월 2일 판·검사에 임용될 예정인 사법연수원 24회(사시34회)수료생 가운데 조재건(31)·송혜영(30)부부가 판사를,이형택(30)·곽란주(27)부부가 검사를 각각 지원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사법연수원 재학 도중 열애 끝에 결혼까지 성공한 뒤 부부가 같은 길을 걷기로 하고 나란히 판사·검사를 지원한 것. 또 지난해 서울지검 공안1부 정병하(35·사시28회)검사와 결혼한 연수원 수료생 전지원(28)씨도 판사를 지원해 판·검사부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판사부부는 11쌍,검사부부는 2쌍,판·검사부부는 4쌍 등 모두 17쌍이 법조가족을 이루고 있다. 판사부부 가운데 가장 고참인 서울가정법원 이태운(47·사시16회)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교수인 전효숙(44·사시17회)부장판사부부는 후배 부부판사들의 「맏형」「큰언니」역할을 하고 있다.이들은 후배들에게 「법관부부」로서 지켜야할 도리들을 아낌없이 조언하고 있다. 4쌍의 판사·검사부부는 한결같이 부인은 판사,남편이 검사인 게 특징.「3D직종」에 비유되곤 하는 검사직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로 각광을 받고 있는 법무부 관찰과장 강지원(46·사시18회)부장검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김영란(39·사시20회)판사부부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최근 정통무협지 「검탑」을 펴내 관심을 끈 임무영(32·사시27회)검사도 조수정(34·사시27회)판사와 커플을 이뤘다.조판사는 남편 임검사의 서울법대 1년 선배로 2년 연상이다. 현직 검사부부로는 오정돈(35·사시30회)·최윤희(31·사시20회)검사부부와 김영준(35·사시28회)·박계현(31·사시32회)검사부부가 동고동락하고 있다. 법원과 검찰은 이들 부부 법조인들이 가급적 함께 살도록 인사배려를 하고 있다.
  • 백화점들,직원 총동원 생필품 배급/복구 3일째/일지진 현장

    ◎매몰된 94살노인 53시간만에 구출/영안실 태부족… 사찰에도 시신 안치 ▷의연한 직무수행◁ ○…사망·실종자가 4천명을 넘어선 대형지진에도 불구하고 지진지역에 사는 많은 회사원들이 걸어서까지도 회사에 출근,직무를 수행한 것으로 나타나 감동을 주고 있다. 한큐전철의 야마자와부부장은 지진직후 집을 출발,3시간 걸려 오사카에 있는 회사에 도착.18일까지도 회사에서 철야하면서 동료승무원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철로 안전상태를 점검.열차의 운행업무를 점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미쓰이부동산 기토과장은 아파트가 흔들리면서 식기와 조명기구등이 전부 떨어져 박살났지만 집안을 우선 정돈한 뒤 부근의 회사동료 두명과 함께 자전거로 25㎞정도 떨어진 오사카의 회사로 3시간 걸려 출근.회사가 관리하는 아파트의 피해상황등을 확인하는 등 바쁘게 지내고 있다. ▷생존자 구출◁ ○…지진발생 3일째를 맞아 필사적인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19일 무너진 가옥등에서 잇달아 생존자가 구출돼 지켜보고 있던 주민들에게뜨거운 감동을 선사. 48시간정도가 한계라고 통상 말해지고 있으나 생존 희망을 버리지 않은 끈질긴 수색 구출 작업끝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 19일 상오 11시쯤에는 효고현 아사야시에서는 53시간만에 94세 노인이 구출되기도.니시노미야시에서는 80세의 노인 두명이 잇달아 구출됐다. 한편 고베시에서는 중국인으로 보이는 임사태씨(46)가 56시간만에 구조됐으나 안고 있던 여섯살난 아들은 이미 숨진 채여서 지켜보던 이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고베시내의 건물더미속에 묻혀있다가 21시간만에 구출된 70세의 한 노인은 18일 함께 갖혀있던 아내가 부르는 노래 덕분에 고통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힘을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고추잠자리」라는 동요를 불렀다고. ○…일본전역에서 차출된 경찰과 자위대 요원 6천여명은 19일에도 구조활동을 계속.그러나 파괴된 사회간접시설과 중장비 부족,때때로 계속되는 여진이 구조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방위청에는 자위대의 늑장구조활동을 비난하는 전화가 쇄도. ▷생활주변◁ ○…출입금지나 교통정체로 차량접근이 어렵자 대형유통업체들은 수백명의 직원을 동원,생필품을 손에 들고 전달하도록 하는 등 필사적인 노력.지진지역 상점들의 가격인상행위가 우려됐으나 기우로 판명됐고,재해지역주민들은 사재기는 커녕 적은 물건도 서로 나눠쓰고 일부는 공동 취사하는 등 자발적인 협력자세를 보이고 있다.폐허가 된 시가지를 뒤로 한채 도보로,또는 자전거,자동차를 타고 시외로 나가는 고베시민이 상당수에 이르며 일부는 붕대를 감은 채 절뚝거려 전쟁난민들을 방불케하고 있다.부상자들로 초만원인 고베시내의 병원들은 식료품,전기,식수,의료장비 부족으로 수술도 하기 어려운 형편.병원 영안실만으로는 부족해 불교사찰까지 안치장소로 쓰고 있는 실정. ○…고베 시내 곳곳에서는 가스누출에따른 경보음이 하루종일 짜증스럽게 울리고 있고 가스폭발 위험성도 고조.스마구의 주민 7만여명은 19일 인근 공장탱크에서 가스가 새어나와 다른 곳으로 소개됐고,이날 아침 고베시내 중심부의 상가지역에서 가스폭발과 함께 일어난 불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인근 소형건물 20채와 백화점으로 순식간에 옮겨붙었다. ▷기타◁ ○…지진 피해가 엄청난데도 일본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침착하고 냉담해 빈국까지 포함된 외국정부들의 원조제안및 위로 메시지와는 대조적.텔레비전방송들이 스모대회 중계를 취소하고 구조상황을 생중계하는 등 현장에 많은 인원과 장비를 투입하고 있지만 성금모금운동 같은 동정적 반응은 거의 없다.자동차 제조업체들이 『행복한 것은 좋은거야』라는 등 경망스러운 텔레비전 광고를 중단한다고 발표해 「자제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도가 고작.도쿄의 한 구조관계요원은 『일본인들이 「정부와 당국이 사태를 처리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도쿄의 백화점에서는 지진이 일어난 후 소화기를 비롯,건빵 헬멧 방재두건 등 방재상품들이 불티나게 팔려 재고가 바닥이 난 상태. ○…일본정부는 19일 지진 희생자 중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이 사망했을 경우 5백만엔(약 4천만원)을,그외 다른 가족들이 숨졌을 경우에는 2백50만엔(약 2천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며 부상가족 부양자들에 대해서도 2백50만엔을 각각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이번 피해지역이 1946년 이후 큰 지진이 없었던데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위험성이 낮아 지진피해 보상책임에 가입한 세대는 효고현 3%,오사카현 4.9% 등 일본평균 지진보험가입률 7.2%에 비해 극히 적은 상태라고 업계 소식통들이 밝혔다.이번 지진으로 피해지역의 상당수 제조업체의 생산활동이 마비됐다.
  • 달라지는 풍속도(연변 조선족 1백년:13)

    ◎“마시고 즐기자”/개방바람 타고 「흥청망청」 확산/무도·오락·커피 3청 급증… 이혼율 높아져 중국조선족의 성분을 이주목적을 기준으로 해서 나눌 때 네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가장 비율이 높은 것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쪽박차고 건넌 빈농들이고,다음은 독립운동을 위해 이주한 일부 지사들이다.또 상인과 선교사·교육자 혹은 문학인들을 꼽을 수 있다.어떻든 모두 합쳐도 빈농의 수를 능가하지 못할 만큼 거의 호구지책을 위해 이곳에 모였다고 할 수 있다. ○88년 가라오케 첫 등장 여자들이라고 해서 집안에 들어앉아 남편의 시중이나 처분만을 바라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발벗고 나서서 무슨 짓이든 하지 않고서는 먹고 살지 못했다.억척여성이라는 명찰이 붙을 만큼 악착스럽게 일하며 살아왔다.지금은 그 노력의 대가로 겨우 먹고 살 만하게 되었다.그렇지만 80년대 들어서면서 자유화의 물결과 갖가지 외래문화의 범람으로 인해 조용하던 호수가 파문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1988년초 지금의 연길시 노동자문화궁 옆에 처음으로 「은방석다방집」이 생겨났다.그후 이어 「봉황루커피청」등 커피집이 또 문을 열었다.다음해는 더욱 다양한 서비스업종이 선을 보이게 되었다.이를테면 가라오케가 생겨 맥주를 마시며 마음껏 춤추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가라오케는 이곳 조선족들의 오락적 성향에 맞아 더욱 번창되었다. 중국조선족의 음주는 중국의 다민족중에서도 단연코 상위에 속하며 노래나 춤도 둘째가라면 서운할 만큼 잘한다.술마시는데 독작과 대작이 있다.조선족은 대작을 즐긴다.대작이란 술상에서 서로 한잔 부어주고 한잔 받고 하여 서로 잔을 치면서 마시는 것이다.연변에서는 흔히 대작시에 『술은 권하는 맛으로 마시는 것이지 혼자 먹어서야 무슨 재미인가』하면서 상대방에 강권하면서 만취하게 만드는 음주풍속도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존재한다. ○서민에겐 “그림의 떡” 1990년부터 연변의 가라오케는 급변하기 시작했다.밀폐식 단칸방에 흐린 색등을 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이지 않게 시설을 꾸몄다.그리고 여종업원을 채용하여 손님과 동석시켜 술시중을 들게 했다.손님의 청에 따라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말하자면 겉으로는 노래방이지만 내용상 카바레나 술집의 기능을 겸한 것이다.지금은 분업화된 서비스업종이 다양하게 성업중이다. 연변에는 부유층의 출현으로 향락과 소비성 유흥업이 계속 생겨났다.어느 통계에 의하면 1991년에 1백50개소밖에 없던 연길시의 가라오케가 다음해에는 4백36개소로 증폭했다고 한다.오랜 기간 사회주의 정책에 눌려 있던 조선족은 이러한 유흥업소가 더 없이 신기하고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출입하는 사람은 누구나 『돈이 많이 들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즐거움도 한번쯤 누려봐야지』하고 자위한다.그러나 전부터 있어온 나이트클럽이나 「야총회」「무도청」과는 달리 80년대 후반부터 생겨난 가라오케·술집·요리집·사우나 등은 일반서민층에게는 선망의 대상일뿐 경제적으로 발붙일 곳이 못된다. 연길시는 인구 30만명이 안되는 중형도시인데도 불구하고 1천5백여대의 택시가 바쁘게 뛰고 있다.이것을 비아냥거리는 말로 사람들은 『연길시는 세가지가 많고 한가지가 괴상하다』고 한다.즉,「유흥장소가 많고,주정뱅이가 많고,택시가 많으며 자전거가 택시를 탄다」는 것이다.이러한 급작스러운 변화는 결국 음성적인 매춘행위의 범람을 초래하게 했다.이윽고 당국이 메스를 들었다.1993년 자치주인민정부에서는 「문화오락업과 음식·봉사업 등 업종의 경영장소질서를 참답게 정돈하고 엄하게 관리하는 데 관한 통고」라는 긴 제목의 통제문이 공표되었다.밀폐식 단칸방이 금지되고,조명도 10촉 아래는 안되게 되었다.이때 많은 업소가 폐소되었고 수백명이 처벌을 받았다. ○한국과 교류도 원인 산업화의 물결이 일어 시장경제가 도입된 이래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고 외화수입도 늘어났다.그러나 구질서의 붕괴에 따르는 자본주의의 나쁜 점들이 만연되어 사회병리현상으로 발전한 것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예컨대 여성들의 건전하던 의식이 향락으로 빠졌고,이로 인해 가정의 불화가 이혼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 점을 들 수 있다. 연길시에서도 이혼이 1988년의 2백23건에서 89년도에는 6백26건으로 증가되었다.이어 90년에는 8백45건으로 88년에 비해 약 4배가 되었다.연길시의 이혼유형에서 한가지 특징은 여성이 이혼을 제기한다는 점이다.이혼의 이유는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전체의 40%이고,다음이 남자의 외도를 들고 있다.두번째의 문제점은 청소년들의 비행이다.유흥업소의 범람은 청소년들에게 과소비풍조를 부채질했다.3청(무도청·오락청·커피청)을 다니면서 먹고,마시고,놀고 즐기는 것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이전의 청소년범죄의 주종은 상해죄였는데 최근에는 성범죄가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같은 연변의 조선족 사회병리가 날로 심화해가는 모습을 보고 깊이 반성해야 할 것 같다.
  • 과학정책 이끌 신임 두장관(인터뷰)

    세계화시대를 맞아 국내의 정보통신 및 과학기술 정책을 이끌어갈 새 장관들이 임명됐다.정보통신부는 범 국가적 장기계획인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을 포함,통신망·소프트웨어·통신기기산업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 국내의 정보화 수준을 조기에 선진국형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또 과학기술처는 굴업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을 비롯,기초과학의 획기적인 발전 등 21세기 과학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토대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경상현 초대 정보통신부장관과 정근모 신임 과기처장관으로부터 과학분야 정책운영 방향 등을 들어본다. ◎경상현 정보통신장관/첨단정보 국제교류 강화/관련 정책 일원화에도 역점 24일 정보통신부 발족과 함께 취임식을 가진 경상현장관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초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아 개인적 영광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앞선다』고 소감을 밝혔다.경장관은 이어 『정보통신부의 출범으로 그동안 각 부처에 분산됐던 정보통신 관련 정책을 일원화해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국가사회의 정보화를 촉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가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사안은.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이 내년부터 시작됩니다.이 사업은 정보통신 관련 전분야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구축과정에서 정보산업의 전반적인 발전을 이룰 작정입니다.또한 선진국의 고속망과도 연계,기본통신과 컴퓨터망 등을 통한 첨단 서비스의 국제교류도 활발히 추진하겠습니다. ­아직도 정부조직 개편에 따른 업무분장이 완전치 못한 것 같은데요. ▲똑부러지게 선을 긋기는 어렵지만 상공부·과기처와는 만족스럽게 이루어졌고 공보처와도 항간의 소문과는 달리 업무분장이 대체로 정리된 상태입니다.정보화사회에서 통신·방송의 융합현상을 정부의 행정기구가 정돈 안돼 활용 못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통신시장 개방에 따른 준비는 어떻게 해나갈 계획인지요. ▲개방은 세계적 추세입니다.외국기업들이 국내에서 사업을 한다면 우리도 다른 나라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얻게 됩니다.다만 해외 진출여건이 어려운 특정분야는 조심스럽게 개방함으로써 개방의 혜택을 최대화 하겠습니다. ­내년의 시외전화경쟁도입 방안은.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기업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최대한 돕고 공정경쟁을 조성한다는 차원에서 모든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정근모 과기처장관/정부­민간연 경쟁제 도입/경쟁력 갖춘곳 최우선 지원 신임 정근모 과학기술처장관은 24일 상오 취임식을 갖고 앞으로의 과기처운영계획에 대해 밝혔다. ­과학기술처가 향후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계획은 무엇입니까. ▲전문과학기술 관료집단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생각입니다.적어도 과학기술분야에서만은 언제나 자문을 해주고 확신을 심어주는 부처로서의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것이지요. ­구체적인 연구지원계획은 어떻습니까. ▲기술외교에 역점을 둘 생각입니다.「중간진입전략」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는 선진국의 기술을 받아들이되 아직 경제적으로 가치가 높지 않은 분야에서의 국제협력을 강화한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정부출연연구소를 비롯한 민간연구소에 대해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동안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지원면에서 혜택을 받아온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앞으로는 정부·민간연구소를 구분하지 않고 경쟁력이 있는 연구소를 우선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과학기술교육에 대한 정책은 어떻게 달라집니까. ▲그동안 정부지원이 국·공립대학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앞으로는 과학기술계라는 큰 범주 안에서 공·사립대학의 지원은 세심하게 배려할 생각입니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부지로 굴업도가 확정됐는데 앞으로 변경될 가능성은 있습니까. ▲굴업도는 원자력위원회의 결정이므로 과기처는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는데 역점을 두겠습니다.그러나 부지매입 직전의 환경영향평가에서 부적합판정이 나면 결정은 변경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이문구 “판소리의 구술성을 소설에 접목”

    ◎전북대 전정구교수,「말글 생활」서 이씨 문체 본격 분석/시제 불일치·일관성 없고 장황하게 장점/「정돈·압축된 명사형 문장」 최인훈과 비교 소설가 이문구씨는 대중적 인기를 지닌 작가는 아니다.그러나 한국 문단에서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다.그것은 그의 남다른 「문체의 힘」 때문이다.전북대 전정구교수(국문과)가 그 문체의 힘을 본격적으로 분석해내 눈길을 끌고 있다. 전교수는 「말글 생활」 제2호에 기고한 글 「이문구 소설의 문체」를 통해 『채만식 김유정 이효석 황순원등 뛰어난 작가들처럼 이문구는 개성적 문체를 지녔다』고 지적하고 『이문구의 문체는 채만식 문체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작가는 장용학과 최인훈』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그는 서로 상이한 문체를 지닌 이문구씨와 최인훈씨의 작품을 비교 분석한다.그의 분석에 의하면 『판소리 전통문체처럼 아무렇게나 장황하게 엮어낸 긴 사설』의 이문구씨의 글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데 비해 『잘 정돈됐으나 호흡이 짧고 단속적이고 압축적인 명사형 문장』의최인훈씨의 글은 어렵다. 전교수는 또한 『이문구는 사건과 행동의 주체인 인물을 강조하고 사건과 행동을 행위자의 것으로 표현하는데 비해 최인훈은 인물보다 행동과 사건 그 자체를 중시하고 인물을 사건과 행동의 부속물로 처리한다』고 얘기한다.이문구의 소설은 최인훈의 소설과는 달리 『뚜렷한 내용이 없거나,설사 그것이 있다 해도 문체속에 분산시키고 구성을 거의 무시하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사건과 행동의 일관성이 없고 시제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분석한 전교수는 『그러나 이 모든 소설적 기법의 결함이 그의 소설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동네 이씨」) 이처럼 걸걸 하면서도 칡넝쿨처럼 얼크러진 입담에,방언이 지닌 고유한 의미와 미감을 실은 그의 문체는 특별한 소설적 장치를 동원하지 않고도 「시골 밭둑의 싱싱한 수풀같은」(송기숙) 농민의 삶을 형상화 해내는데 성공하고 있다고 전교수는 파악한다.그에 의하면 이문구씨는 채만식 이후 구비문학의 「말하기와 듣기」에 충실한 판소리의 구술성을 소설미학으로 개척한 유일한 작가이다.따라서 『지금도 전통적 조선문체에 향수를 느끼는 많은 독자들이 이씨의 소설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의 이같은 문체가 근작소설 「매월당 김시습」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 전교수는 주목한다.이 소설에서는 인물의 행동과 사건을 생생하게 들려주기에 주력했던 구술성을 거의 느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긴호흡으로 느릿느릿 이어지는 특유의 이문구적 문체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교수는 『오늘날 우리시대가 전통문체의 보전자 이문구를 외롭게 한다』면서 『그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문체가 사라지는 것은 우리 소설문단의 불행』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 현중/「무노무임」 지켜질까/파업기간중 격려금명목 50만원 제시

    ◎깎인 임금 1인 백만원꼴… 배려 관심 두달동안 계속됐던 현대중공업노사분규가 마무리되면서 협상의 최대쟁점으로 떠올랐던 「무노동무임금」원칙이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현대중공업분규가 타결된 마당에서 무엇보다도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과연 파업기간동안 발생했던 무노동에 대한 무임금원칙이 글자 그대로 적용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각 사업장마다 어떤 식으로든 파업기간동안 파업참여 조합원들의 임금손실부분이 보전되는 것이 관례로 돼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정부가 악성노사분규의 근절을 위한 노동정책의 하나로 파업기간중 무노동무임금 원칙만큼은 강력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원칙에 대한 노조의 수용여부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60일이 넘도록 파업이 계속됐던 이번 현대중공업분규에서도 이 부분은 노사양쪽 모두 풀기 힘든 매듭이었다. 이 때문에 막판협상까지 노사가 이를 놓고 공방을 거듭했으나 결국은 노조측이 표면적으로 이 원칙을 수용하는 선에서 타결을 보았다. 그러나 협상타결 내용을 놓고 볼때 과연 앞으로 무노동무임금원칙이 실질적으로 적용되겠냐 하는데는 얼마든지 의구심을 가질 수있다. 회사측은 그동안 조합원들이 입은 1인당 평균 임금손실은 1백여만원이 넘는다고 밝혔다.또 파업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던 대의원·풍물패등 1천여명은 파업기간동안 한푼의 임금도 받지 못해 1인당 2백여만원이상의 임금손실을 보았다. 그러나 파업기간중이던 지난 7월14일 회사측은 경영목표달성 격려금 명목으로 50만원의 일시금지급을 내놓았었다.비록 타결 훨씬 전에 제시된 것이었지만 임금보전 성격이 짙다. 지난해의 경우 현대중공업 회사측은 경영성과에 따른 특별포상금 명목으로 통상임금 50%와 30만원을 일시금으로 지금했던 전례도 있다. 또 92년에도 노사화합격려금 30만원과 통상임금의 50%를 특별 격려금명목으로 지급했으며 90년에는 23만원의 일시금을 지급했었다. 물론 이때는 모두 파업기간중 임금 손실에 대한 보전을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부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강조했던 올해 이회사가 일시금으로 제시한 50만원도 파업기간에 발생한 임금손실의 완전한 보전에는 못미치지만 이는 과거에 임금손실 보전을 위해 지급했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이다. 해마다의 관례를 보면 회사측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 임금손실을 본 조합원들을 위한 특별배려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또 당국은 당국대로 그것이 설사 무노동무임금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눈감아 줄것이다. 결국 이번 협상에서 노사양측이 무노동무임금 원칙이라는 자구의 적용에만 수긍했다고 볼 수있다. 올해 이같은 일시금 지금은 다른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다.미포조선이 55만원,현대정공과 대우조선,한라중공업등에서도 각각 50만원의 일시금이 지급됐다.한마디로 파업임금손실에 대비한 보전을 위한 성격이 짙은 것이다. 따라서 이번 현대중공업 노사분규타결과정에서 정부당국이나 회사측의 「무노동무임금원칙」이 관철됐다고 해서 노동없는 임금지급은 있을 수 없다는 관행이 정착될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판단이 될지도 모른다. ◎분규타결 첫날 현대중 표정/출근 근로자,기계점검등 조업 준비 부산/일부강경파 골리앗·LNG선 농성 계속 분규 61일만에 노사가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던 현대중공업은 24일 전체종업원의 89.4%인 1만4천4백82명이 정상출근해 작업장 정리와 각종 기계장비를 점검하는등 정상조업을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또 관리직 사원들과 노조간부들은 노사협상을 통해 어렵게 마련한 잠정합의안을 투표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이를 세세하게 설명하는등 오랜만에 노사가 함께 노력하는 모습. ○…분규가 마무리돼 파업때보다 일찍 밝은 표정으로 출근한 종업원들은 모두 자신의 소속 부서로 가 작업장 정리 정돈등을 마친뒤 임·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해 노조대의원과 관리직 사원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특히 노조는 부서별 집회등을 통해 장기파업과 농성에 따라준 조합원들에게 감사한다는 뜻을 전하기도. ○…회사측은 이날 관리직 사원들을 총 동원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찬반투표 가결을 위한 설득작업에 나서는 모습.김정국사장은 이날 「임·단협 잠정합의와 조합원 찬반투표에 즈음하여」라는 유인물을 통해 노사안정이 회사가 영원히 번창하는 길이라며 어렵게 의견일치를 본 잠정합의안을 전폭적으로 지지 가결해 줄것을 호소. ○…이날 상당수 조합원들은 찬반투표에서 가결될 때까지는 파업을 계속하기로 한 노조집행부의 방침에 따라 족구등 체육놀이로 시간을 보내기도.이에따라 출근 근로자의 56.1%인 1만4천4백82명만이 조업에 참여해 부분적으로 조업이 이루어졌다.사업부별로는 비조합원이 많은 건설사업부가 96.5%의 조업률을 보였고 엔진 51.2%,프랜트 52.4%,중장비 48.3%,중전기 47.9%,해양 43.1%등의 순이었다.강성 조합원이 많은 조선사업부는 26·4%로 조업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회사안 노조사무실 주변 텐트 농성장과 골리앗 크레인,LNG선 등에는 여전히 상당수 조합원들이 농성을 계속했고 사내 곳곳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등도 철거되지 않았다. ○…해양사업부 이일석씨(53)는 『파업기간중 4일밖에 일을 하지 못한데다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돼 생계가 어려웠지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상을 타결해참으로 다행』이라며 『총회에서도 합의안이 가결돼 빨리 생산현장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사는 이날 상오 10시30분부터 본관 중역실에서 전날 잠정합의한 안에 대한 최종 마무리를 했고 회사측은 합의에 따라 노조간부등 고소고발자 49명에 대한 소취하를 울산동부서에 접수. ○…노조는 이날 하오 1시부터 중앙쟁위대책위원회와 대의원 간담회등을 잇따라 열고 잠정합의안 총회 회부여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이날 회의에서 일부 강성 대의원들은 회사측이 노조간부를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건은 취하했지만 조업방해 과정등에서 빚어졌던 근로자 개개인의 고소고발 문제는 정리가 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 인권문제 풀기 대북 적극공세/적십자회담 제의 배경과 전망

    ◎국제여론 고조시점서 대화압력 가중/북 새체제 혼조로 화답여부 불투명 강영훈 대한적십자사총재가 이번에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한 것은 납북자문제와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구체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지난달 30일 국제사면위가 고상문씨 등 납북인사들이 북한내 정치범수용소에 억류되어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이후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정부의 첫 정공법적 대응으로도 볼 수 있다.즉 우리측으로선 북한측이 껄끄러워하는 사안이라도 남북간 인도적 차원의 현안이라면 정면대처할 수밖에 없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우리측으로선 어차피 납북자문제에 관한한 문제제기를 뒤로 미루더라도 북측의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그래서 공신력있는 국제기구가 북한에 정치범수용소의 실재를 확인하고 남한 출신 인사 11명이 구금돼 있다는 사실을 폭로해 인권문제제기의 명분이 극대화된 시점을 택해 공세적 대북제의를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는 한때 남북당국자간 회담을 북측에제의하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하지만 북측이 최근 남북연락관 명단통보를 위한 우리측 전화통지문 접수마저 거부하고 있는 점을 감안,일단 민간차원의 협상을 선행한다는 방침을 정했다는 후문이다. 이같은 방침은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후계체제가 공식화되는 등 북한권력 내부가 정돈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과도 무관치 않은 것 같다.말하자면 김의 당총비서 취임 등 북한의 후계권력구도가 안착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납북자가족들이 국제적십자사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의 조치로 국제여론이 고조된 시점에서 남북간 직접협상을 제안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남북적십자회담은 지난 71년 8월부터 23년 동안 1백여차례 회담을 했으나 85년 한차례씩 고향방문단을 교환한 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이처럼 별다른 결실을 거두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북측이 체제붕괴를 두려워해 매우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측이 남북적십자회담사상 처음으로 총재 또는 부총재급 회동형식의 새로운 협상을 제안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이는 전통문 접수거부 등 최근 노출된 북한의 대남 지휘체계의 혼선을 감안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당장 우리측의 제의에 화답할 공산은 극히 희박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이산가족이나 납북자문제 해결에 극히 부정적이었던 북한의 입장이 달라질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당국이 최근 고상문·유성근씨 등 국제사면위가 정치범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다고 발표한 인사들을 대남방송의 「무대」위에 올려 「의거입북」했다고 선전하고 있는 등 더욱 경직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또 납북자문제로 인한 수세를 벗어나기 위해 김인서·함세환등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다시 제기,구태의연한 「맞불작전」을 펴고 있는 것도 불길한 조짐이다. 다만 북한도 미·북 3단계회담에서 경수로 지원과 대미관계개선 등의 일정한 성과를 얻어내려면 남북관계를 형식적으로나마 진전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일말의 호응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강영훈 한적총재 일문일답/“북의 새 체제 맞춰 새 형식 제의”/“미전향자 송환 요구엔 인도차원서 대응” ­이번에 총재 또는 부총재회담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제안을 하게된 배경은 무엇이고 성사전망은 어떤가. ▲성사전망은 전적으로 북측에 달려있다.그러나 이번이 과거와 다른 점은 국제사면위가 납북자들이 혹독한 정치범수용소에 있다는 것을 확인해줬다는 것이다.우리는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납북자들이 송환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외에도 각국 적십자사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과거와 또 다른 점은 북한 권력구조가 변하고있다는 점이다.김일성 사망후 김정일체제의 출범으로 북한지도자들이 새 정책노선을 가지고 나올 가능성이 있어 새 형식의 회담을 제의하게 된 것이다. ­납북자송환이란 문제의 시급성을 고려해 북측 대응을 기다리는 한편으로 총재가 직접 국제적십자사를 방문,도움을 요청할 의사는 없는지. ▲지난 1일 고상문씨 가족으로부터 이 문제에 대해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이어 2일 국제적십자 총재에게 고씨의 생사여부와 소재를 확인해줄 것과 하루속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편지를 발송했다.또 다른 가족들로부터도 탄원서를 받아 이들에 대한 관계서류를 국제적십자사에 보냈다.대한적십자사는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납북인사의 생사여부와 소재지를 확인하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노력을 하고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힘쓸 것이다. 국제적십자사엔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갈 생각이다. ­북측의 반응이 신통치않을 경우 또다른 제의를 할 용의는 없는가. ▲지난 71년 회담개최를 제의한뒤 오늘까지 우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이산가족문제와 납북인사문제에 대해 같은 입장을 표명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북한에 촉구해왔다.앞으로도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북측이 김인서,함세환등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데 앞으로 총재 또는 부총재급회담에서 이들과 납북자들을 맞바꿀 것을 고려하고 있는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려하고 있으나 납북자와 비전향자 문제는 일면 정치적 측면이 있으므로 정부당국과긴밀히 협조를 해야한다.우리는 어디까지나 인명의 존귀함을 생각하고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비전향 장기수 2명은 전쟁때 남파돼 지리산에 들어가 살상 파괴를 자행한뒤 구속된 사람들이다.국내법에 따라 형무소에서 각각 형기를 살다 특사에 의해 풀려나와 여기서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이들을 송환하라는 북한의 주장과 요구는 억지일뿐이다. ◎남북적십자회담 일지 ▲71·8·12 한적,남북적회담 제의 ▲71·9∼72·8 판문점 예비회담 25회 개최 ▲72·8∼73·7 본회담 7회 개최 ▲73·8 북측,모든 남북대화 중단 발표 ▲84·9·29∼10·4 북적 제공 수재물자 인수 ▲85·5∼12 본회담 재개,3회 개최 ▲86·1 북측,팀스피리트 훈련 구실로 회담 중단발표 ▲85·9·20∼9·23 남북이산가족고향방문및 예술공연단 교환(서울·평양) ▲89·9∼90·11 제2차 남북이산가족고향방문및 예술공연단 교환과 제11차 본회담 재개위한 실무대표접촉 8회 개최…결렬 ▲91·4·2 한적,제11차 남북적회담 5월초순 개최 제의 ▲92·5·7 제7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남북이산가족노부모방문단 및 예술단 교환합의 ▲92·6·5∼8·7 남북이산가족노부모방문단및 예술단 교환 ▲92·8·8 한적 총재,남북이산가족노부모방문단 및 예술단 교환 무조건 이행촉구 ▲92·10·29 한적,제11차 남북적회담 재개촉구,11·3 북적거부 ▲94·5·9 한적,회담재개 촉구 ▲94·8·12 한적,남북적책임자 회담 제의
  • 김일성사망 한달… 평양은 지금/권력승계 왜 늦나

    ◎“김정일옹립 합의 불구 요직배분 난기류”/충성경쟁 형태 친위세력 암투설/「화려한 대관」 분위기조성 분석도 김일성이 사망한지 한달이 다 되도록 후계자인 김정일이 최고 권력직인 당총비서와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국가주석직을 승계했다는 발표가 나오지 않아 구구한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의 권력승계 마무리가 지연되고 있는 데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최근 북한을 다녀온 외국인사들의 전언도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그의 권력세습에 결정적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추측이 있는가 하면 이미 1백% 권력을 장악했다는 첩보도 있는 탓이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분명한 것은 다음 3가지 사실이다.첫째 김일성 사후 북한의 공식매체들이 김정일의 후계체제를 당연시하는 선전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둘째 반김정일세력이 표면화됐다는 징후가 아직 외부로 표출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셋째 그러면서도 그의 이름 뒤에 주석이나 당총비서라는 호칭이 따라붙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3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일부 관측통들은 김의 1인자 옹립엔 북한 권력층 내부의 이견이 없으나 당·정·군 요직 배분에 「난기류」가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즉 공동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김의 권력승계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고 있으나 북한권력의 핵심인 당정치국 및 비서국,당중앙군사위 등을 충원 또는 물갈이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직 확고한 장악력이 없는 김이 이를 효과적으로 교통정리하지 못해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는 얘기다.다만 이같은 갈등이 지금까지의 도식적 예상처럼 「빨치산 1세대」 대 「혁명2세대」,보수파 대 개방파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게 아니라 친위세력 내부의 충성경쟁의 형태이므로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당조직지도부장 자리를 놓고 김의 매제인 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과 당공안담당비서 계응태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또 같은 「혁명2세대」인 당작전부장 오극렬과 군정치국 부총국장 이봉원의 암투로 김의 군부장악에 혼선이 초래되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 이 때문에 김이 전권을 장악하는 「1인지배체제」가 아닌 다른 형태로 김일성 사후 북한체제가 정돈될 것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즉 김을 당총비서에 추대하되 당정치국원들이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결판이 날 것이라는 분석이다.북한방송들이 김일성추도대회나 「전승기념일」 등 주요행사 때마다 「당의 두리(주변)」 또는 「당중앙위」 중심으로 뭉치자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는 것도 그 징후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복동생으로 잠재적 경쟁자인 김평일이 최근 핀란드대사로 귀임하는 등 이와는 정반대의 징후도 있다.특히 북한권력의 풍향계인 노동신문이 2일자 사설에서 「당의 위업을 완성할 영도의 계승문제가 해결됐다」고 밝힌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때문에 수령의 유일지도체제가 주된 특징인 북한체제에서 이미 20여년간 「미래의 수령」으로 북한주민들을 세뇌시켜온 마당에 당총비서 등의 승계는 요식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즉 김이 이미 실권을 장악했으나 북한전역의 추대분위기를 고조시켜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려는 각본에 따라 승계절차가 지연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이같은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그의 공식 1인자 등극시점은 북한정권 창건일(9월9일)이나 노동당 창당일(10월10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외정책 변했나/대남긴장 조성·핵줄다리기 불변/체제 안정까진 부분개방도 곤란 김일성 사후에도 북한의 대외 정책은 당분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더해 가고 있다. 김일성이 죽은지 한달이 다되고 있으나 북한의 대남 및 대외 노선의 변화 조짐이 감지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김정일의 권력승계라는 내부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나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자세 및 「핵전술」등에서 생전의 김일성노선과의 차별성이 아직 엿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보다는 핵카드를 이용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주력하고,체제동요를 우려해 극히 제한된 범위내의 개방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것 등은 김일성노선의 복사판에 다름 아니다. 북한은 5일부터 재개된 제네바 미북 3단계회담에서 현재와 미래의 핵동결을 미끼로 미국과의줄다리기에 들어갔다.이처럼 대미협상에선 김일성이 죽기 직전의 적극적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반면 남북관계에서는 정상회담 연기통보 이후 계속 적대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김영삼대통령에 대한 극렬한 비방 등 대남 비난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더욱이 6일엔 북측이 전화통지문 접수를 거부해 심상치않은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남한측 조문단의 방북을 환영한다는 식으로 우리측 당국과 비당국을 이간시키는 통일전선전술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같은 북측의 반응들은 종래 주적으로 설정했던 미국에 대한 직접적 비방을 자제하고 있는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이는 끊임없는 긴장조성을 통해 체제유지를 도모해온 구태의연한 행태를 당분간 적어도 대남 관계에서는 고수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북한이 자주·평화·민족대단결 등 통일 3원칙과 이른바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도 김일성의 대남 정책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행태다.이는 결국 일단 국력의 열세를 감안해 흡수통일을 피하기 위한 시간을 벌면서 장기적으로 통일전선전술에 의한 대남 혁명전략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시사로 볼 수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주의 개념이란 외세추방,곧 주한미군철수를 뜻하고 민족대단결도 우리측 민간과의 「통일전선」 형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북한은 김정일체제가 확고한 궤도에 오르는 시점까진 남한과의 합작을 통한 본격적인 대외개방노선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등소평이 선도한 중국식 부분개방노선을 김정일체제가 곧바로 답습하기란 어렵다는 얘기다. 최근 북한은 러시아와 나진·선봉 경제특구안에 소규모 합작 무역회사를 설립했으나 본격적인 대외개방에는 여전히 소극적이다.나진·선봉이라는 제한된 울타리 안에 안주할 뿐 남포나 신의주 등 사회간접자본 등 상대적으로 투자여건이 좋은 지역으로 개방을 확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을 방문해 그곳의 대북전문가들을 만나고 온 외교안보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북측은 남한사정 등 외부정보 유입과 자본주의 바람의상륙으로 인한 체제동요를 우려해 단기적으로는 중국식 또는 베트남식 개방노선을 채택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북한도 어쩔 수없이 개방노선을 채택하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며 그 성공여부도 확실치않아 김정일체제가 3년을 넘기지 못해 중대한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게 중국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당국 뭘하고 있나/“후계 확립” 선전 안간힘/생산차질 극복도 총력 북한 당국은 김일성사망이후 김일성의 뒤를 잇는 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세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생산차질을 극복하기 위한 산업활동 독려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특히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은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후계체제 공식출범을 앞두고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기 위해서이다. 요즈음 북한 방송이나 신문들은 김일성의 혁명유업계승을 내세워 김정일을 후계자로 떠받드는 일에 온통 매달려있다. 김정일이 지난 30년 동안 사상·이론활동을 비롯,정치·경제·군사·문화등 모든 분야에서의 과제들을 「빛나게 해결」했으며 그 과정에서 이룩한 업적은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사상과 이론, 영도예술의 걸출한 영재」,「신념과 의지의 최고의 화신」,「인덕과 사랑을 베푸는 위대한 은인」등으로 표현하면서 「김정일 없는 세상은 태양이 없는 암혹」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다.더욱이 지금까지 김일성에 의해 창시되고 김정일에 의해 계승·발전됐다고 주장해온 주체사상마저 김정일이 발전·완성시켰다고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는 김정일시대를 맞아 「주체사상=김일성주의」에서 「주체사상=김정일주의」로의 전환을 위한 사상이론적 정지작업의 일환이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의 업적 부각과 함께 김정일의 「유일적 영도」 확립을 부르짖고 있다.지난 20년 동안 후계구축작업이 진행되어 왔음에도 김일성사후의 불안정한 분위기를 틈타 일어날 지도 모를 반김정일 세력이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차단하기 위해서이다.김정일에 대한 호칭도 「수령」,「운명의 수호자」,「민족의 태양」,「인민의 위대한 어버이」등으로 갈수록 격이 높아지는등 우상화작업이 극에 달하고 있다. 북한은이와함께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주민들의 사기저하를 극복하고 생산손실을 만회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북한 언론들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과 효성은 눈물이나 격조높은 맹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이 준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헌신적 투쟁에 있다』면서 북한 주민들이 애도분위기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생산활동에 주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모든 당원과 근로자들이 생산과 건설에서 혁신적 성과를 이룩하는 것만이 김일성의 유지를 받들고 김정일을 잘 모시는 길』인만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건설투쟁에 떨쳐나서야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 박은희 한국 페스티벌앙상블 대표(인터뷰)

    ◎6년째 「여름 실내악축제」 개최/“비엔나 페스티벌 같은 음악회 여는게 꿈”/“「실내악 축제」 부담없이 즐길수있어 좋아/땀흘려 일하면서 오히려 참행복 느껴요” 해마다 한여름이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땀을 흘리는 음악인이 있다.피아니스트 박은희씨(41)다.그가 이끄는 한국 페스티벌 앙상블이 지난 89년부터 이곳에서 「여름 실내악 축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 24일 야외조형무대에서 있었던 전야제로 막을 올렸다.25일부터 30일까지 현대미술관 대강당에서는 매일 두차례씩 연주회가 열린다.하오 4시 청소년을 위한 강의식 연주회와 하오 7시 페스티벌 앙상블의 본격 실내악 연주회가 그것이다. 박씨는 입장권과 팸플릿,기념 티셔츠를 파는 일부터 무대에서 청중들에게 연주자를 소개하고,또 연주회가 모두 끝난 뒤의 정리정돈까지 땀범벅이 되는 모든 일을 사서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명물이 된 현대미술관 조각장의 야외조형무대아래서 만난 박씨는 『이곳에서는 땀흘려 일하면서 오히려 행복을 느낀다』고 말문을 열었다.『12년전 처음 에프엠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지요.제가 맡은 프로그램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나 비엔나 페스티벌등 해외의 유명 음악축제를 소개하는 것이었어요.방송을 하면 할수록 그런 페스티벌을 한번 열어 보고 싶다는 꿈을 키웠어요』 박씨의 꿈은 지난 86년 한국 페스티벌 앙상블을 창단하면서 조금씩 현실화되기 시작했고 87년 마침내 첫번째 「여름 실내악축제」를 가졌다. 『그 해에는 용평,다음 해에는 포천에서 열었어요.솔직히 성공했다고 할 수 없었지요.그래서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다 발견한 것이 이곳 현대미술관입니다』 박씨가 현대미술관이라는 실내악 축제의 적지를 발견한 것은 그러나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했다. 『그 전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한달에 한두번 씩은 현대미술관을 찾았어요.대강당이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그런데 어느날 미술관 안에서 길을 잘못들어 두리번거리다 눈에 번쩍 뜨일 정도로 훌륭한 극장을 발견한 겁니다』 당장 다음날 박씨는 이경성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찾아갔다고 그는 이후 박씨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야외조형무대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도,이 무대를 설계한 서울건축을 소개하고 조각장안에 세울 수 있도록 한 것도 그였다.5천여만원의 경비는 박씨가 마련해야 했다.그러나 그는 그렇게 힘들여 세운 무대가 그리 자주 쓰이지 않는 것이 무척 아쉬운듯 했다. 『야외조형무대는 페스티벌 앙상블이 만들어 현대미술관에 기증한 것이에요.우리도 미술관으로 부터 대여받아 사용합니다.페스티벌 앙상블뿐 아니라 더 많은 공연이 열렸으면 좋겠어요.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 박씨는 현대미술관이 너무 외져 공연장으로 부적합하다는 주장에도 공감할 수 없다고 했다. 『이곳이 교통이 좀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음악회·미술관에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잖아요.청중동원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은 그동안 페스티벌 앙상블의 공연이 잘 증명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박씨는 「여름 실내악 축제」가 『격식이 없어 좋다』고 말한다.연주자나 청중이나 모두 다른사람의 시선을 의식할필요없이 간편한 옷차림으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회라는 것이다.
  • 김 대통령 국기확립 고삐 죈다/극렬좌경·악성분규 도려내기

    ◎법 엄정집행… 「사회적암」 제거/김정일체제 선제대응 의미도 김영삼대통령이 다시 고삐를 바짝 당겨쥐고 있다. 지난 18일 대학총장단과의 오찬에서 좌경학생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데 이어 19일 상오 국정평가보고대회에서는 대기업 노사분규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경고하고 나섰다.김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날 저녁 민자당 초·재선 의원들과의 만찬석상에서 대학의 「주사파」를 직접 거론,응징의 뜻을 강한 톤으로 밝혔다. ○「주사파」 절대 불용 그리고 거기에는 「법대로…」가 처방으로 제시되고 있다.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한동안 청와대를 둘러쌌던 대내외적인 화해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냉랭한 기운이 청와대를 다시 휘감고 있다. 김대통령의 발언은 한쪽은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고 또 하나는 대학의 운동권을 대상으로 한 것이긴 하다.그러나 두가지 사안이 국가기강확립 차원에서 거론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고,「법대로」가 강조됨으로써 상당한 공안한파를 예고하고 있다. ○「공안한파」 예고 김대통령은 국정평가보고대회에서 『정부는 국가생존 차원에서,민주화의 역사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법질서를 엄정히 세워나가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노사분규에 대한 적법대응과 공산주의 맹종자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국가생존」의 문제로 제기한 것이다.이문제를 보는 청와대의 시각이 그만큼 단호하다는 이야기다. 김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빌려 우리사회에 다시 재개될 조짐을 보인 이념분쟁을 종식시키려 하고 있다.북한 김정일체제와의 대결을 앞두고 우리내부의 이념 정돈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다른 말로 하면 북한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루기에 앞서 우리내부의 이질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김대통령의 취임초기 북한과 운동권학생들에 관한 생각은 다분히 낭만적인 것이었다.이인모노인의 송환을 허용한 것이 바로 이런 낭만적 대북관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주사파」에 대해서도 정통성없는 정부에 대항하면서 생긴 양념같은 것으로 본 흔적이 많다. ○「김사망」 애도 충격 청와대의 한 고위당국자는 『「주사파」에 대해 대통령은 구체성없는 맹목적인 추종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그는 『그러나 김일성의 사망과 관련해 운동권학생들이 보인 「애도」에서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가에 충격을 받았고 국법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에 상처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이 대기업의 노사분규와 「주사파」에 대한 응징을 결심한 데는 「학생들의 분수없는 행동」(청와대 당국자)말고도 두어가지의 이유가 더 있다. 하나는 북한이 대남비방방송과 통일전선전략을 재개했다는 점이다.이점은 북한이 김일성의 사후에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인식시킴으로써 대통령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요인이다. 두번째는 남북한 관계에 있어 일정기간 대화를 위한 제스처를 쓸 필요가 없게 됐다는 점이다.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김정일의 북한체제는 한동안 대화의 문을 닫고 내부의 체제정비에 힘쓸 것으로 청와대는 분석하고 있다.그렇다면 우리도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유화책을 쓸 필요가 없고 차제에 우리체제도 정비하는 기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법대로…」를 강조하는 것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수단으로서의 정치적 결단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지금까지 김대통령의 통치수단은 대체로 법보다는 정치적 결단에 치우쳐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그런 김대통령이 「법대로」를 강조한 것은 이제는 법에 따라 집행하는 것이 남은 개혁의 큰 방향임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불법엔 법대로 대응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법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많았지만 문민정부 출범이후 국민을 보호하는 법으로 바뀌어 왔다』고 말했다.개혁작업의 일환으로 법률도 정비된 만큼 이제는 법을 엄정히 집행하는 것이 가장 큰 개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대처수상의 광산노조에 대비시킨 현대중공업노조에 대해서도 법대로가 예고됐다.파업에는 직장폐쇄로 법적인 대응을 하고,여기에 노동자들이 반발하면 다시 법대로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인 것 같다.
  • 남도답사 1번지/강진∼해남 가족여행 인기

    ◎청자가마터·대흥사 등 유적 고찰 즐비/고산유물관엔 시가집 등 3천점 전시/한반도육지 남쪽끝 알리는 토말탑도 가볼만 최근 가족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있다.한반도 최남단의 전남 강진·해남지역.이곳은 지난해 미술평론가 유홍준씨가 쓴「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남도 답사1번지로 소개해 놓은뒤 답사객들의 발길이 부쩍 늘고 있다. 『…지난 20년간 내가 답사의 광이 되어 제철이면 나를 부르는 곳을 따라가고 또 가고,그리하여 나에게 다가온 저 문화유산의 느낌을 확인하고 확대하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여덟번을 다녀온 곳이 바로 강진 해남 땅이다.강진과 해남은 우리역사에서 단한번도 무대에 부상하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이 없었으니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는 대단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을 리 만무한 곳이며,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 나 같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이 조용한 시골은 그옛날 은둔자의 낙향지이거나 유배객의 귀양지였을 따름이다.그러나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지,다산초당, 칠량면의고려청자가마터, 해남 대흥사와 일지암, 고산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그리고 땅끝(토말)에 이르는 이 답사길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명명하였다…』유홍준은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산과 바다, 들판이 있기에 주저없이 일번지로 내세우고 있노라 한다. 서울쯤에서 자동차로 6시간이면 전남 강진에 닿는다.강진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강진읍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터에 자리하고,마당 한편에는 꽃진 모란 무리와 시비가 세워져 있다.영랑생가는 몇차례 전매되면서 일부 변형됐다가 지난 85년 군에서 매입,원형을 복원했다. 영랑의 생가를 보고 군청에서 18㎞쯤 떨어진 대구면일대의 신비의 고려청자 도요지(사적 68호)를 찾아가 보자.일찌기 국립중앙박물관장 정양모씨가 가마터에서 발견된 새초롬 파르스름한 고려청자 조각을 보며 반해서 찬사를했던 곳. 고려 전시대에 걸쳐 1백70개의 가마터가 총망라돼 있던 고려자기의 모태이자 청자연구의 기반이 되는 이곳에는 올해말 완공을 목표로 1천평규모의 고려청자 도요지전시관이 한창 공사중이다. 또 군청에서 8㎞쯤 떨어진 도암면 만덕리 귤동에는 조선말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요 사상가이며 경륜가인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초당(사적 제107호)이 있어 답사길에 나선 이들을 맞는다.다산은 18년 귀양생활중 이곳에서 10년간 머물며 후진을 기르고 저술에 힘썼다.목민심서등 5백여권의 저서를 이 곳에서 완성,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를 남겼다.초당을 나와 땀을 씻고 풍광이 시원한 천일각에서 구강포구를 바라보는 맛도 일품이다.해남읍에서 3㎞를 달리면 연동리에 잘 정돈된 고산 윤선도유적지가 있다.특히 해남 윤씨의 종가인 녹우당(사적 제167호)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덕음산)을 진산으로 ㅁ자형 가옥구조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모양을 잘 전해주고 있다. 뒷산에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웃한 고산유물관에는 국보 제240호인 고산의 증손 윤두서자화상을 비롯,중년에 연동으로 내려와 해남 금쇄동과 완도·보길도를 오가며 남긴 산중신곡집·어부사시사등 3천여점의 유물이 보관,전시돼 문화의 맥을 전한다.해남읍내에서 43㎞쯤 내려가면 한반도 육지부 최남단인 「땅끝」에 닿는다.사자봉아래 깎아진 절벽에는 땅끝을 알리는 토말탑이 세워져 있다. 북위 34도17분38초,동경 126도6분01초에 위치한 토말탑은 높이 10m의 삼각구조물.유홍준의 말대로 땅끝에 서서 인생과 역사를 추스려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여간 뜻깊은 일이 아닐수 없다.땅끝으로 가는 길은 오갈데 없는 절망의 벼랑처럼 생각하기쉬우나 우리나라에서 둘째로 아름다운 산경, 야경 해경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 코스를 한번 답사해볼만하다.
  • 심근경색증/김일성 돌연사 계기 발병원인·예방책을 알아보면

    ◎흡연·고혈압·콜레스테롤이 주범/하루 담배 1갑 피면 위험률 2배 높아져/발병땐 30%가 급사… 운동·식사요법이 최선 북한당국이 김일성주석의 직접적 사인으로 밝힌 심근경색증은 흡연,고혈압,콜레스테롤이 3대 주범으로 꼽히며 이밖에 비만,스트레스,운동부족등도 주요 요인으로 알려지고 있다.심장전문의들은 심근경색증이 일단 발병하면 환자3명당 1명꼴로 응급실에 도착 전 사망할 만큼 급사율이 높기 때문에 예방이 최선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연세대의대 조승연교수(심장혈관센터)는 『평소 흡연,고혈압,콜레스테롤만 피할 경우 심근경색은 거의 1백%까지 막을 수 있다』면서 실제로 이들 3대 위험인자 뿐만 아니라 비만이나 스트레스등도 사전에 얼마든지 예방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흡연은 심근경색증의 으뜸 요인.세계보건기구(WHO)는 하루에 담배를 1갑 피우는 사람이 비흡연자에 비해 심근경색의 위험성이 2배 이상,하루에 2∼3갑 피우는 사람은 3배이상 높아진다고 경고하고 있다.또 흡연자에게 심근경색이 생겼을 경우 비흡연자에 비해 소생가능성도 떨어진다.이밖에 심근경색이 유발된 이후에도 계속 흡연할 경우 2번째 심근경색이 생길 확률이 훨씬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의 경우 한림의대 춘천성심병원 가정의학과팀이 지난 91년 1월부터 93년 9월까지 급성심근경색증환자 3백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심근경색 발병위험이 3.4배 높게 나타났다.특히 담배를 하루 1갑 피우는 사람은 그 미만인 경우보다 발병율이 2.2배 높은 것으로 드러나 WHO의 연구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들어 중장년층사이에 심근경색증 환자가 급증하는 것은 고콜레스테롤때문이라는게 전문의들의 일치된 견해이다.고콜레스테롤은 영양과잉,특히 동물성식품의 과다한 섭취에서 원인을 찾을수 있다. 가톨릭의대 김철민교수(순환기내과)는 『정상인의 이상적인 혈중 콜레스테롤치는 2백㎎/㎗』이라고 전제,『2백∼2백39㎎/㎗인 경우 심근경색증의 위험이 2배 높아진다』고 경고했다.그는 또 콜레스테롤치가 2백40㎎/㎗ 이상이면 극히 위험한 상태이므로 20세 이후에는 적어도 5년마다정기 검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콜레스테롤을 줄이는데는 약물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식사요법.가급적 동물성 식품을 피하고 운동을 하면 효과적이다.콜레스테롤이 많은 동물성 식품은 육류나 유제품을 비롯해 계란노른자위,간·췌장·콩팥등의 동물장기,새우나 굴,소시지나 핫도그등의 가공된 고기,오리·거위고기등.특히 붉은색을 띤 고기는 동맥경화를 촉진하는 대신 닭가슴살,돼지 흰살등 흰고기는 비교적 고콜레스테롤의 위험이 낮다.또 닭 껍질은 먹지 말고 전유로 만든 유제품 보다 저지방탈지 유제품을 섭취하는게 바람직하다.이와달리 땅콩등의 콩류,과일,야채,호도등은 단백질이 풍부하면서도 콜레스테롤이 낮은 식품이다. 이밖에 서울대의대 서정돈교수(순환기내과)는 심근경색증의 또다른 주범으로 비만에서 오는 고혈압을 들었다.즉 국민의 영양상태가 좋아지면서 남녀노소 없이 비만인이 늘고 있고,비만은 고혈압을 유도하며 이는 다시 동맥경화를 일으켜 심장으로 향하는 피가 굳거나 제대로 흐르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심근경색을 부른다는지적이다. 그는 『50세의 남자의 경우 수축기혈압이 1백60이고 콜레스테롤이 2백50이면 앞으로 6년동안 심근경색에 걸릴 위험이 정상인보다 10.8배 높다』는 미연구결과를 인용,『중장년층은 이들 위험인자와 과로·스트레스를 조심하면서 1년에 1회이상 심전도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했다.
  • 실무접촉 윤여전 대표/세련된 매너·정돈된 화술

    ◎남북대화 무대 “스타탄생”/“문민정부가 발굴한 대어” 후한 평점 남북한 대화무대에 「스타」가 탄생했다. 남북한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 대표였으면서 실무접촉 수석대표인 윤여전국무총리특보.남북대화 첫 데뷔무대에서 「스타」가 되는 좀처럼 보기 드문 행운을 잡았다.TV극 미니시리즈 「사랑을 그대 품안에」1회 방영으로 갑자기 스타가 된 차인표를 연상시킬 정도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윤특보의 실무접촉 회담상황을 폐쇄회로로 지켜보면서 「문민정부가 발굴한 남북문제 대어」로 평가했다.북한문제 전문가들만 모인 통일원에서도 처음 무대에 서는 사람치고는 깜짝 놀랄 정도로 역할을 잘 소화한다며 후한 평점을 주고 있다. 물론 이번 회담들이 잘 풀려가는 것은 많은 부분 북한의 태도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그의 잘 정리된 생각,영국신사 같은 분위기,세련된 화술이 회담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그를 뛰어난 회담전문가로 부상시키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편이다.상대방이 싫지 않게 잘못된 점을 간결하게 지적하는 능력을 가졌다.소리치지 않고도 상대방을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이곤 한다.이런 점들이 북한측 대표단을 더욱 진지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냉전시대가 아닌,화해시대에 걸맞는 남북회담 전문가인 셈이다. 그는 언론계생활을 거쳐 「5공」때 청와대에 들어와 공보·의전·정무비서관,정무1장관 보좌관을 지냈다.새정부 출범 당시에는 정권교체에 따라 사표를 내기도 했으나 이원종 청와대정무수석이 꼭 써야할 사람이라고 천거,하루를 쉰뒤 출근을 한 인물. 관례를 아는 사람들은 윤특보의 회담대표 발탁을 의아해 했었다.그의 소속기관 책임자가 강력히 추천했다고 한다.
  • 상거래 미숙… 손님에 푸대접 “일쑤”(박강문 귀국리포트:8)

    ◎불선 물건 혼자 챙겨야… 배달 달포 걸려 「고객은 왕이다」 우리나라 가게에 더러 이런 표어가 써붙여져 있다.그러나 프랑스에서 고객은 왕이 아니다. 파리의 슈퍼에 처음 갔을 때 인상적인 것은 계산대의 계산원 아가씨나 아주머니들이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것이었다. 계산원은 계산만 할 뿐이며 그가 바코드 판독기에 읽히고 밀쳐놓는 물건들을 잽싸게 비닐 주머니에 담는 것은 손님이 할 일이다.처음 얼마동안은 손수 담는 게 습관이 안돼 멍청히 서있다가 계산원의 눈총을 받고서야 허둥지둥 서둘러야 했다. 슈퍼 매장내에는 물건을 창고에서 꺼내와 선반 위에 정돈하는 종업원들이 있다.이들은 자신의 임무란 오로지 물건을 선반에 올려놓는 일뿐이라는 듯 손님이 무슨 물건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건성으로 듣고 대개 모른다는 대답이다. 이들이 물건을 선반에 정리하려고 오면 방해되지 않도록 잘 비켜주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밀어 닥치며 『파르동』(미안합니다)이라고 하는데 이 소리가 꼭 『뭘 꾸물대.저리 비켜』 하는 것으로 들린다. 고객이뭘 훔치지 않나 살피는 건장한 남자 감시원들이 장승처럼 서있는 것도 고객 모두를 우범자로 보는 듯해 기분 나쁘다. 백화점이라고 해서 그리 나을 바는 없다.면세 데스크에 앉은 점원이 외국인 고객에게 왜 불어가 서투르냐고 핀잔 주는 꼴도 본다. 물건을 고르고 나서 점원을 찾으면 어디 있는지 안 보인다.제자리를 떠나 다른 점원과 잡담하고 있기가 일쑤다.손님끼리 점원으로 착각하는 일도 벌어진다. 문닫기 30분전만 돼도 손님이 접근하면 짜증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이때쯤은 퇴근후 만날 약속전화도 해야하고 화장도 고쳐야하는 시간이다. 개인 상점은 대개 처음엔 친절하지만 거래가 성사될 기미가 없으면 태도가 싸늘해지는 것이 보통이다.안보이는 물건을 찾으면 『없다』고 한마디 하고는 그만이다.『우리한테는 없지만 모퉁이를 돌아 두번째 가게에 가면 그 물건이 있다』 한다든가,『사흘 뒤에 다시 오면 살 수 있다』하고 일러주는 친절은 기대할 수 없다. 프랑스 사람은 역사적으로 유능한 장사꾼으로 훈련되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전통적으로농업국가였던데다가 물산이 풍부해 대개 자급자족이라 사고 파는 일에 딴 나라 사람들보다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는 사는 형편이 여유가 있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10년이 넘게 진행되어온 사회주의 정책 때문이라는 설명도 이와 연관된다.한번 고용되면 사용주가 쉽사리 해고하지 못하고 해고되더라도 실업수당으로 살아갈 수 있다. 친절과 불친절을 떠나 점원들이 자기 임무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 엉뚱하게 일러주어 헤맸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서 들었다. 애프터서비스도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하면 처진다.프랑스 원자로를 들여오고 나서 사후 처리문제 때문에 한국의 관계자들은 속을 썩혀야 했다.테제베 도입을 검토할 때도 우리 상공부 관리중에는 이를 걱정하는 이가 있었다. 「다르티」라는 가전제품 연쇄점은 확실한 애프터서비스와 빠른 배달,불량 상품 교환 보장으로 신뢰도가 높다.다른 데서 더 싼값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차액을 내주겠다는 약속까지 한다.알고보니 영국계 진출기업이었다. 가구류를 백화점에서 사자면 배달기간이 달반이나 두달 걸린다.주문 받아 거래 공장에 전하고 일요일 빼고 축일 빼고 종업원 휴가 빼고 남는 시간에 일 시키니 그만큼 걸린다.그래서 구입한 물건을 자기 차로 바로 싣고 올 수 있는 「이케아」라는 조립식 가구 전문 스웨덴 가게가 인기있다.이 가게는 일요일도 연다. 프랑스 상인들이 모두 불친절한 것은 물론 아니다.태도도 문제지만 우선 상거래 관습이 소비자 위주로 돼있지 않고 기업의 경쟁의식이 치열하지 않다.프랑스인들은 발명과 상품 제조에 재간이 있는 만큼 장사 수완은 없는 듯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