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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서울/이상일 논설위원

    600여년전 어느 겨울 아침.밤에 내린 눈이 다 녹았는데도 북악산,인왕산과 남산을 잇는 능선에는 그대로 쌓여 있었다.수도의 성을 어떻게 쌓을까 고심하던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하얀 능선을 보자 무릎을 쳤다.“이것이야말로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한 그는 태조 이성계에 보고한 뒤 능선을 따라 도성을 쌓았다고 한다.눈으로 된 울타리라고 해서 ‘설울’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서울’로 됐다고 한다.역사적으로 신빙성이 낮지만 조선시대 학자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地)’에 나오는 서울의 어원이다. ‘서울’은 삼국시대 이래 도읍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한국의 수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된 것은 광복 후인 1946년 8월15일부터다.그전까지는 백제때 ‘위례성(慰禮城)’,고려 문종때 ‘남경(南京)’,일제때 ‘경성(京城)’등 시대에 따라 다른 명칭으로 불리었다.조선왕조는 ‘한성(漢城)’으로 불렀으며 광복 후 정부는 서울에 마땅한 한자 이름을 짓지 못했다.그러자 중국인들은 조선시대 한성을 따서 서울을 ‘한청’으로 불렀다. 얼마전 중국건설은행의 리셉션 때 필자는 소속인 ‘서울신문사’를 ‘한성일보사’라고 소개하면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최근 서울시가 서울의 발음과 뜻에 맞는 중국어 이름을 공모중인데 이 가운데 ‘서울(徐 )’이라는 색다른 주장이 나왔다고 한다.한국고서연구회 김시한 회장은 조선시대 학자 박제가의 글 등을 인용해 이같이 주장했다.울은 무성함 또는 화원을 뜻하며 서울은 중국어로는 ‘쉬위안’‘쉬완’또는 ‘쉬위’등 3가지로 발음된다.보다 가깝게 발음하려면 ‘서아(徐兒)’등 엉뚱한 조어를 해야 한다. 중국사람들은 미국 워싱턴을 ‘화성둔(華盛頓)’,프랑스 파리를 ‘바리(巴黎)’등 원음에 가까운 한자를 골라 쓴다.그러면서도 일본 도쿄는 ‘둥징(東京)’으로,서울은 ‘한청’으로 부른다.우리가 수년전부터 중국인의 발음을 존중해 ‘북경(北京)’을 베이징’으로 고쳐 부른 것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한자문화권 국가 수도이름을 자기 식대로 부르는 것이다.서울의 새 한자 명칭을 정한다고 중화사상이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과연 그대로 불러줄까.괜히 서울을 가리켜온 수십개의 명칭에 또 한개를 추가해 국내외 사람들을 모두 혼란스럽게 만들지나 않을까.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함양군수 김종직을 아십니까?(상)

    요즘 세상을 혼란스럽다고들 한다.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믿어버리는 풍조,가정의 해체,학교와 학문의 붕괴,스승과 제자 관계의 변질,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와 무능이 국민을 끊임없이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모두 걱정하며 불안한 나날을 산다.오늘은 이같은 불안과 근심을 덜고,어쩌면 혼돈의 우리 시대를 편안하게 해줄 묘책을 찾게 될지도 모를 곳으로 길을 떠나기로 했다. 경상남도 함양으로 간다.함양은 산 너머에 또 산이 있고,고개 너머에 또 고개가 있는 두메 산골이다.바깥에서 함양으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세 길이 있는데,진주에서 가는 동쪽길과 전라북도 남원에서 가는 남쪽길,그리고 전라북도 장수에서 가는 북쪽길이다.요즘은 전라남도 구례에서 지리산 노고단을 넘어서 오는 서쪽길도 생겼으니 옛날의 그 첩첩산중이 사통팔달로 트인 곳이 되었다. 함양 가는 네 길은 모두 저다마 예사롭잖은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 ●신라·백제 국경 맞닿았던 첩첩산중 북쪽길은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계내면 장계리를 잇는 육십령(六十嶺)고개를 넘는 길이다.육십령은 해발 734m나 되는 가파른 고갯마루인데,옛적에는 화적떼가 밤낮으로 들끓어서 육십 명이 모여야 간신히 넘을 수 있었다 하여 육십령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첫걸음 하는 이들은 자신의 운전면허증이 진짜인지를 혹독하게 시험당한다는 우스갯말이 생길 만큼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고 내린다.하지만 어머니 품같은 덕유산의 여름 철쭉과 겨울 눈꽃은 천하제일이다.그러나 무엇보다 뜻깊은 역사는 이 육십령이 백제 사람과 신라 사람이 넘나들면서 서로의 문물을 뺏고 빼앗기는 통로였다는 점이다. 남쪽길은 경남 함양군 함양읍 죽림마을과 전북 남원군 동면 성산마을이 코를 마주대고 동서로 앉아 있는데 50m쯤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면서도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너무나 완연하다.그래서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있는 고개를 두고 남원사람들은 ‘팔량’이라 부르고 함양사람들은 ‘팔령’이라 부른다. 서쪽길은 전남 구례에서 화엄사와 천은사를 지나 지리산 노고단 산자락을 가파르게 기어올라 성삼재를 넘어야 한다.이 길도 육십령 넘는 길 못지않게 운전 솜씨를 시험받게 되는 아기자기한 산길이다.성삼재를 넘으면 곧바로 뱀사골 계곡이다. 뱀사골 끝자락에 실상사가 있고,다시 용유담 계곡 길을 따라 내려가면 경상도와 전라북도 경계를 지나 함양으로 들어서게 된다.곧장 변강쇠 전설의 고장이자 눈망울이 가장 아름다운 장승이 있는 벽송사도 있다.용유담 계곡이 끝나면서 엄천강이 시작되는데 엄천강 맑은 물길을 따라 가다보면 함양군 휴천면 엄천 마을이 산자락에 보듬겨 있고,마을 앞 길가에서 자그마한 비석 하나를 만나게 된다. 엄천강 기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펀펀한 돌 하나를 주워다 생긴 그대로 세운 비석에는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 선생(先生) 관영차밭(官營茶園) 조성터(造成址)”라 씌어 있다. 동쪽 길은 진주에서 오는 국도 3호선과 대전 충무간을 잇는 대진고속도로가 훤하게 뚫렸다.나그네는 엄천마을 앞에 있는 그 비석의 앞면과 뒷면을 다 읽고는 잠시 함양의 옛일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최치원·정여창·박지원 등 名목민관 부임 지금의 함양군은 1914년까지만 해도 안의군(安義郡)으로 독립해 있었던 안의면(安義面)을 아우르게 되면서부터 그 역사와 문화가 더욱 깊은 유서를 지니게 된 고장이다.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이기도 했는데,사철 마르지 않는 여러 줄기의 개천과 강 좌우에 펼쳐진 넓고 비옥한 토지에서 나는 곡식을 차지하기 위한 양측의 마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에 에워싸여 있어서 풍부하고 좋은 목재와 땔감,약초와 산나물이 많고 밭자락 땅심도 좋아서 밭농사도 논농사 못지않았다. 이같이 좋은 생활 조건들로 인해 함양군으로 통합되기 이전 안의현(安義縣),함양현(咸陽縣) 시절의 현감이나 군수,관아의 육방관속 아전들 중에는 오히려 탐학과 부정부패를 일삼아서 백성들을 고통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던 이들도 많았던 것 같다. 이런 폐단이 단절되지 않고 있는 중에도 함양 땅의 지도자로 왔다 간 이들 중에는 참으로 훌륭한 어른들이 적지 않았다.그분들은 비단 지난 어느 시대의 함양군수나 안의현감에 그치지 않고,시간을 뛰어 넘어 지금 이 시대에까지도 좋은 지도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민족의 양심이자 살아 있는 정신의 사표이다. 첫 번째 어른은 891년에 함양태수를 지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다. 두 번째는 1471년에서 1474년까지 함양군수를 지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며, 세 번째는 1495년에서 1498년까지 안의현감으로 재직했던 일두(一) 정여창(鄭汝昌) 선생이고, 네 번째가 1791년에서 1796년까지 안의현감을 지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선생이다. 네 분 어른 모두 우리나라 역사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뿌리깊은 정신의 샘물이며 의리와 예절,무엇보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사무치게 그리운 이름으로 살아 있다. 지리산과 가야산을 낀 마을마다 신비로운 행적을 남겨 놓은 사람 최치원은 함양 태수를 지내면서 해마다 범람하는 위천을 막기 위해 고심했는데,위천 가에다 손수 심어 가꾸었다는 상림(上林)의 거대한 잡목숲의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학사루를 지어 지금도 한 목민관의 선행을 기리고 있다. 정여창은 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 김굉필(金宏弼)과 함께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의 길로 들어서 저 향기롭고 빛나는 영남사림의 계승자가 되기도 했던 어른이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영국의 셰익스피어,독일의 괴테,중국의 소동파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최고의 대문호였다.그런 그가 안의현감으로 재직한 6년 동안에 보여 준 성공한 목민관으로서의 생생한 증거는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제도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든 공직자와 정치인을 포함한 교육자,사회지도층 사람들에게 왜 이 땅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지를 아프게 따져 묻고 있다. 함양군수 김종직은 1431년 지금의 경남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한재마을에서 태어났는데,아버지 김숙자(金叔滋)는 그에게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다. 김숙자는 고려말 조선초 전환시대의 도학사상을 이끌었던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 중심의 의리파(義理派) 학통을 계승하여 아들 김종직에게 이어준 분이다.정몽주,길재를 의리파라 부르는 것은 고려말 국내외적인 현실을 인식함에 있어서 일단 고려왕조를 존속시키면서 점진적으로 개혁을 해나가자고 했던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몽주·길재의 義理派 학통 계승 이에 반하여 고려왕조는 수명이 다했으므로 새로운 왕조인 조선조를 창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도전 등은 정치 권력을 장악하였고,의리파는 학맥을 계승했다.이렇게 이어진 도학사상의 학통은 김종직에 이어 김굉필과 정여창에게 물려졌고,조광조(趙光祖)에 이르러 도학사상의 절정기를 맞았었다.도학사상은 국내적으로는 불의(不義)에 대하여 항쟁하고,외적의 침략이 있을 때는 국가를 수호하는 강력한 의리사상을 지니고 있는데,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의리파의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특히 국내적인 문제에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온몸으로 이를 바로잡으려고 싸우는 태도는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함양 농민들이 빠져있던 세금제도의 모순에 따른 고통을 깨끗이 척결해 보임으로써,도학사상이 흔해빠진 논리의 유희가 아니라 세상을 깨끗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실천적 학문임을보여준 첫 사례였다.백성이 행복해야 나라가 산다는 김종직의 철학적 명제가,함양군수라는 직급이 매우 낮은 지방관직을 맡았을 때 실천된 점은 오늘날 이 나라의 공직자와 정치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신선한 충격이 되고 있다.
  • “이번 강의도 약장수처럼 할 것”/MBC서 한국학 특강 맡는 도올 김용옥 교수

    ‘생구라’‘개XX’‘미친X’….툭툭 내뱉는 것은 육두문자뿐만이 아니다.“그 사람(노무현 대통령),나쁜 사람 아니예요.좀 모자란 것 같긴 하지만….” 문제성 발언들이 거의 분단위로 쏟아진다.여기에 바로 앞 사람에게 고함을 지르는 듯한 대화법,과장된 몸짓과 표정이 곁들여진다.만 1년 만에 다시 TV 강단에 서는 도올 김용옥(사진·54) 중앙대 석좌교수는 여전히 천하를 삼킬 듯 기세등등했다. 도올은 내년 1월5일부터 6개월 동안 MBC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한국학 특강 프로그램을 맡는다.총 24회 분량으로 매주 월 오후 11시에 방영된다.도올은 “그동안 유·불·선 등 기초준비만 잔뜩 하다가 이제서야 ‘본론’에 들어간다.”면서 “(한)국학이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국학 붐을 일으키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우리 국민들이 제발 자기비하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성취는 그리 대단하게 해놓고 왜 인식은 없는지….”도올은 “이번 특강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울 것”이라면서 “그를 위해 4명의 인물을 엄선했다.”고 말했다.“조선의기틀을 잡은 정도전,서양과학을 주체적으로 소화하려한 최한기,동학의 최제우,사상의학의 이제마입니다.” 도올이 개인적으로 가장 중점을 두고 기대하는 대목은 이제마 강의다.“요즘 ‘대장금’이 인기잖아요? 상승효과를 통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합니다.” 도올의 TV 특강은 97년 SBS ‘명의특강―성과 건강’,99년 EBS ‘노자와 21세기’,2000년 KBS ‘도올의 논어이야기’,2002년 EBS ‘도올,인도를 만나다’에 이어 다섯번째다.그동안 평균 시청률이 10%대를 가뿐히 넘겼다.가구수로 따지면 매회 160만 가구가 ‘도올 원맨쇼’(본인 표현)를 시청한 셈이다. “지루한 것은 질색입니다.제 특강은 촬영,편집 등 모든 부분에서 실험적인 기법들을 다양하게 도입하고 있어요.이번에도 직접 찍은 현장 다큐,난상 토론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도올은 지난해 말 EBS 특강 마지막회에서는 ‘종강 공연’이라며 재즈 밴드의 ‘금강경 노래’ 연주,도올 자신의 랩,문화일보 기자 데뷔 선언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사한 바 있다.“이번 강의도 ‘시장 약장수’처럼 하고 싶어요.최대 1000명까지 들어가는 대형 스튜디오에서 방청객들과 난장판을 만들 계획입니다.” 도올은 내년에는 오로지 TV 특강과 중앙대 강의에만 전념할 생각이다.“지난 학기에 ‘역사와 인간’ 강의를 맡았는데 첫날과 마지막날 수강생 수가 499명으로 완벽히 같았죠.탤런트 장나라가 왔던 첫 날과 마지막 날이 차이가 없었어요.” 혹시 출석을 다하면 A학점을 주겠다는 교수의 공언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럼 학점과 상관없는 종강 ‘가든파티’에 그놈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왔겠어요? 자식들,질서정연하게 와서 겁나게 처먹데….” 도올 교수는 약속을 지킨 수강생 471명에게 모조리 A를 안겼다.“한국 젊은이들,희망이 있어요.옛날 우리 때보다 훨씬 낫지요.” 채수범기자 lokavid@
  • 이런 책 어때요 / 옛사람 72인에게 지혜를 구하다

    김갑동 지음 푸른역사 펴냄 역사의 격변기를 산 대표적 라이벌 72명을 골라 그들의 생애를 조명.고국원왕과 근초고왕,장수왕과 개로왕,성왕과 진흥왕,장보고와 정년,서희와 소손녕,정도전과 하륜,이황과 이이,황진이와 허난설헌,신채호와 백남운 등이 등장한다.첫 장을 장식한 고구려 고국원왕과 백제 근초고왕 일화는 4세기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한 고구려가 약소국인 백제에 한수 이북 영토를 상실하는 과정을 보여준다.70세에 앉아서 세상을 떠난 ‘동방의 주자’ 이황과 49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대학자 이이의 학문적 교류와 삶은 학자로서의 참된 자세를 일러준다.1만2000원.
  • [씨줄날줄]행정수도

    행정수도 이전.말들이 많다.각 당이 설전의 강도를 연일 높여 가고 있다.이전문제는 70년대 안보상의 이유로 처음 거론되기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됐던것으로 알려졌다.검토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고 어려웠기 때문이었으리라.이웃 일본만해도 이미 10여년 전부터 논의는 됐으나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반면 호주 브라질 터키 등은 행정수도를 건설한 대표적 국가이며,말레이시아도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50㎞ 떨어진 곳에 행정수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서울이 이 나라의 수도가 된 것은 600여년 전인 조선 초기부터.1392년 7월17일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는 즉위 한달도 안 된 8월13일 도읍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길 것을 명령한다.대소 신료들의 반대는 강력했으며,건국의청사진을 만들었던 정도전의 반대론도 만만치 않았다.“새로 나라를 열게 된 임금이 도읍을 정하는 곳은 풍수지리를 따져 찾아지는 땅이 아니다.”는 것이었다.계룡산 천도론까지 나오자 이듬해 2월 태조는 ‘새 군주는 반드시 도읍을 옮겼다.’는 당위론을 들먹이며의지를 굳히는데,천도가 최종 확정된것은 그로부터도 1년6개월 뒤였다. 사정은 동서고금을 통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통일독일에서는 11년전 1991년 6월20일,수도가 본에서 베를린으로 결정된다.당시 연방하원은 장장 11시간의 마라톤 토론을 벌여야 했다.90년 통일 때 수도는 베를린으로 정해졌지만 의회 등의 소재지가 결정되지 않아,이를 매듭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100여명의 의원들이 연설에 나선 뒤 베를린 천도안은 337대 320으로 간신히 가결된다.“통일과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상징은 베를린”이라는 집권 기민당의 내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의 감동적 연설도 이 때 나왔다.10년 뒤인지난해 5월,총리공관이 베를린에 개관되면서 모든 게 마무리됐다. 행정수도 이전은 풍선처럼 팽창한 서울에 대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이 될 수있다.미국의 워싱턴과 뉴욕처럼 한국에서도 행정·경제도시라는 두바퀴가 잘 굴러갈 수도 있다.천도를 하려다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본인도 비참한 종말을 맞는 드라마속의 ‘궁예’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누구 말이 맞는지는 유권자들의 몫이다.수도권과 충청권 주민들을 표 볼모로 잡는 정치권의행위는 정말 짜증스럽다. 이건영 논설위원 seouling@
  • EBS 32부작 ‘한국인물사 특강’

    EBS가 2일부터 2개월간 매주 월∼목요일 오후 10시에 ‘한국인물사 연속특강’을 32부에 걸쳐 방송한다. 단군부터 시작해 광개토대왕,왕인,아직기 등 삼국시대 인물과 김춘추,김유신,대조영,장보고,왕건,도선,공민왕,신돈,이성계,정도전,세종대왕,이율곡,김성일,광해군,송시열 등 통일신라·고려·조선시대 인물까지 이어진다. 또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조선예술사’도 소개하는 등 반만년의 우리역사를 아우를 예정이다. 강의는 이이화 재야 역사학자(2∼12일),이성무 국사편찬위원장(16∼19일),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23∼26일),박석무 다산학술재단 이사(30일∼1월9일),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실장(13∼16일),신용하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20∼23일)등이 맡는다.
  • [굄돌] 혼백과 귀신

    우리 조상들은 가뭄이나 홍수, 역병 등 해로운 일이 생기면 곧 귀신이 조화를 부려 일어난 것으로 여겼다.그렇다면 정말 귀신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귀신의 실체는 무엇인가? 예부터 “사람은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했다.조선시대 예조판서를 지낸 성현(1439∼1504)은 귀신을 이렇게 설명했다.“천지간 만물에 기(氣)가 있다.기란 정령(精靈)을 말하는데,양의 정령을 혼(魂)이라 하고 음의 정령을 백(魄)이라 한다.사람이 죽으면 백은 땅으로 돌아가고,양기는 다시 둘로 나뉜다.원 없이 잘 살다 죽으면 혼이 승천하여 신명(神明,神)이 된다.하지만 생전의 원한이나 미련이 있으면 승천하지 못하고 공중에 떠돌다가 음기가 되어 땅으로 내려와 귀신이 된다.” 귀신은 곧 음기가 모여 생겨난 것인 만큼 낮보다는 밤에,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잘 붙는다.무당에 여자가 많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또 우리나라 사람은 신명이 많다는 말도 여기서 비롯됐다.혼백을 우리 몸에 비유하면 정신은 혼이요,육체는 백이라 할 수 있다.과연 혼백의 분리를 증명할 수 있을까? 물론 죽어 보면 알 수 있다. 삼봉 정도전은 혼백을 나무가 불에 타는 것에 비유하여,“연기는 혼으로 하늘로 올라가고,재는 백으로 떨어져 땅으로 돌아가게 된다.”고 했다.또 송나라 때 주자는 “향은 혼이요,타고난 재는 백”이라며 혼백을 향불에 비유했다.이 얼마나 기막힌 비유인가.이런 논리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거꾸로 연기와 재를 합쳐 다시 나무를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다. 사람이 혼백으로 이루어졌음은 은연중에 쓰는 말에서도 나타난다.갑자기 멍한 사람을 보고 “저 친구 혼 나갔어.”하지 “백 나갔다.”고 하지 않는다.또 갑자기 놀랐을 때 “혼이 날고 백이 흩어졌다.(魂飛魄散·혼비백산)”라고 한다.또 꾸짖을 때 무심코 “혼내준다.”고 한다. 이 말은 혼을 빼내 죽인다는 뜻이다.얼마나 무서운 말인가.아무리 뜻을 모르고 쓰는 말이라도 ‘혼을 내’귀한 자식을 죽여서야 되겠는가? 정종수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 [씨줄날줄] 북대문

    서울 사람 중에도 북대문의 존재를 아는 이는 흔치 않다.한양 4대문 가운데 하나다.숙정문(肅靖門·사적10호)이 원래 이름이다.북악산 동쪽 삼청동에 자리잡고 있다.조선 태조 5년(1396년) 완공됐으나 18년만에 폐쇄됐다가,1976년 북악산 일대의 성곽복원 때 다시 건립됐다.하지만 보안상 이유로 지금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삼봉 정도전은 4대문의 이름을 지을 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5행 가운데 4행의 한 자씩을 넣었다.흥인지문(동대문),돈의문(서대문),숭례문(남대문),숙정문이다.숙정문의 정(꾀)은 지(슬기)와 같은 의미였다.홍지문으로도 불렀다. 조선조 때도 북대문은 백성들의 범접이 어려웠다고 한다.실학자 조재삼의‘송남잡기’는 “북대문을 열어두면 양가집 부인들에게 음풍(淫風)이 일어 닫아 두었다.”고 전한다.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엄격한 유교사회였던 당시에도 부인네들이 계를 조직하여 건장한 사내들과 일탈된 사랑놀음을 벌이는 일이 이따금 있어,조정의 골칫거리였던 모양이다.마담뚜 역할의 ‘단골할미’얘기도 나온다.북대문 주변이 무대였다. 북대문 폐쇄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많다.풍수지리가들은 “경복궁의 양팔에 위치하고 있어 닫아두었다.”고 한다.전염병이 번질 경우 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퍼져 문을 폐쇄했다는 주장도 있다.외침이나 반란 때 경복궁의 방어를 위해 엄격하게 출입을 통제했다는 기록도 나온다.역사적 사실 등에 비추어 모두 일리있는 내용들이다. 서울시가 일반인들에게 북대문 출입을 개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다.시 문화재 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문화재청,군부대 등 유관기관에 개방을 건의할 방침이라고 한다.군작전 등으로 전면 개방이 어렵다면 주말 낮 시간대의 사전관람 예약제만이라도 도입할 예정이다.잊혀지고,묻혀있는 북대문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려는 서울시의 발상이 신선하다. 때마침 청계천 복원 논의도 탄력을 더하고 있고,복개된 청계천 안의 관람도 허용되고 있다.사라진 것을 복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기왕 있는 것을 갈고 다듬는 노력도 그에 못지 않게 필요하다.조선의 숨결을 복원하는노력이 가속화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최태환/ 논설위원
  • 책/부패권력 맞서 온몸 던진 혁명가 이야기

    ▲한국사 그 변혁을 꿈꾼 사람들,신정일 지음/이학사 펴냄 우리 역사에서 ‘시대를 앞서 간’진정한 선각자는 누구인가?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새로운 이념과 사상 그리고 행동으로 그들의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들.그러나 그들은 대개 역적으로 몰려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한국사 그 변혁을 꿈꾼 사람들’(신정일 지음,이학사 펴냄)은 부패한 정치권력과 지배 집단에 맞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온몸을 던진 혁명가·개혁운동가를 다룬 책이다.면면을 보자.무너져가는 신라를 대신해 백제의 부활을 꿈꾼 견훤,비운의 시인 정지상과 서경 천도를 주창한 묘청,민란을 일으킨 천민 망이·망소이와 만적,공민왕 시절의 혁명가인 스님 신돈,조선 건국을 주도한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서자 출신으로 혁명을 꿈꾼 반항아 허균,동학을 이끈 김개남,민족에게 이상향을 제시한 종교사상가 증산 강일순 등. 저자는 향토역사가로,변혁을 꿈꾸며 불꽃 같은 삶을 살지만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난 인물들을 다뤘다.주류에 대한 기록만이 남기 마련인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그들은 패배자로 남았지만,이제 그 억울한 누명을 벗겨보자고 말한다.저자는 “선각자들을 역사의 이름으로 조명함으로써 결국 우리가 꿈꿔야 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사회가 변혁을 꿈꾸지 않을 때 그 사회는 이미 죽어버린 사회,발전 가능성이 없는 사회임을 말하는 것이다.또한 주류 위주의역사서술 속에서 어떻게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지를 점검하는 기회도 준다.1만 2000원.
  • KBS 사극 ‘제국의 아침’ 작가 이환경씨

    “‘제국의 아침’은 후삼국의 영웅들이 각축을 벌였던 ‘태조 왕건’에 비해 정적으로 느껴질 겁니다.하지만 한 나라의 운영이 정치적 사건과 어우러지면서 전개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시청자들은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지난주 막 내린 KBS 1TV 대하사극 ‘태조 왕건’의 작가 이환경(52)씨가 200회에 걸친 대장정을 마치자마자 다시 광종의 일대기를 다룬 ‘제국의 아침’을 집필,고려사에 대한 열정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태조 왕건’과 달리 ‘제국의 아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초 자료가 없어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단 두 장에 불과한 ‘고려사’에 나온 광종의 이야기를 갖고 어떻게극을 이끌어갈 것인가가 무척 고민스러웠다.관련 논문도 왕건에 비해 5분의1 수준인 50여편밖에 안됐다고 한다. “광종에 대한 연구는 정말 너무 부족하더군요.그래서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집필한 작품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대중의고정관념을 깨면서 화제를 일으켰다.‘용의 눈물’의 정도전,‘태조 왕건’의 궁예가 대표적인 케이스였다.이번 드라마에서는 ‘고려사’에서 역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왕규가 정도전과 궁예의 위치에 놓인다.초중반 이후에는 정종(최재성 분),광종(김상중 분)으로 드라마의 주도권이 넘어가지만 그 이전까지는 왕규(김무생 분)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귀띔한다.“역사 속에묻혀있던 인물에게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점이 기쁩니다.” “글 쓰는 건 어렵지 않은데,술을 못 마셔서 스트레스가 쌓이더군요.계속 글을 쓰다보니 순발력에 지장이 오는 것 같아 휴식이 필요하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송하기자 songha@
  • [한강 그곳에 가면] 남한강변 유적지 기행

    가족·연인·친구와 함께 떠나는 남한강 유적지 역사기행은선현들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충북 단양에서 충주를관통하는 남한강을 따라가다 보면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각종 산성은 물론 선사시대의 주거지를 어렵지 않게 볼 수있다.고구려와 신라가 대업을 꿈꾸며 각축을 벌였던 산성이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버티고 있고 임진왜란때신립 장군의 한이 떠도는 곳 또한 남한강이다. [충주지역] 고구려때는 국원(國原),신라때는 중원(中原)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충주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인후지지(咽喉之地·사람의 목구멍과 같은 지역)로 통할 만큼 지리적 요충지였다.가금면 가흥리에는 조선시대 조세 물품을 보관하던 가흥창(可興倉)이,용전리에는 광개토왕비를닮은 중원 고구려비가 있다. 탑평리 7층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뜻에서 중앙탑으로도 불린다. 망국의 한을 품은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탄데서 유래된 탄금대가 이 곳에 있다.임진왜란 당시 배수진을 쳤다가 대패한 신립 장군이 열두번이나오르내리며 군사들을 독려하다 최후를 맞았다는 열두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미와 보련 남매가 축성했다는 장미산성과 보련산성은 남한강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다.신라가 남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북진거점으로 삼기 위해 축성한 탄금대토성과 충주산성은 1,500여년이 지났음에도 산성이 그대로 남아 있을 만큼 수준 높은 축성술을 자랑한다. [제천지역] 한수면 명오·사기리 유적지는 구석기시대 유적이 볼만하다.금성면 황석리에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선돌과 고인돌 무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현재 중부권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청풍면 물태리 청풍문화재단지에는 관아·민가·향교·석물군 등이 복원돼 선인들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신라시대 망월산성은 강가의 돌을 이용한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으로 우리나라 산성연구에 귀중한 사료가되고 있다. [단양지역] 단양팔경의 얼굴격인 옥순봉과 구담봉을 지나면죽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요충지에 적성산성이 남한강을 굽어보고 있다. 애곡·도담·여천리 석회동굴에는 구석기 유적이 집중돼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특히 수양개 유적과 구낭굴,금굴 등지에서는 석기·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돼 수양개 유물 전시관에서 선보이고 있다. 조선조 개국공신인 삼봉 정도전의 이름이 떠오르는 도담삼봉에는 산간 오지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뗏목이 복원됐다.조금 더 올라가면 온달 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영토를 찾겠다며 축성한 것으로 알려진 온달산성과 온달동굴,온달묘 등이 찾는 이를 반긴다. 고수길(高秀吉) 청주박물관장은 “남한강은 선사시대 이래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라며 “조상의 숨결을 쫓아 떠나는 역사 기행지로서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 신간 맛보기

    ●제왕들의 책사(신연우·신영란 지음,백성 펴냄)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조선시대 책사 21명의 지략과 음모.태조를도와 조선을 건국했으나 태종에 의해 목이 잘린 정도전,수양대군의 꾀주머니로 경복궁 문지기에서 13년만에 영의정자리에까지 올랐으나 부관참시당한 한명회 등 권력욕에 불탔던 쿠데타의 주역들이 등장한다.반면 두문동 골짜기에서홀로 살아나와 수십년간 정승을 지내면서도 끼니를 거르는날이 허다할 정도로 검소했던 황희 등 백성을 위하는 길만을 생각했던 충신들도 있다.정조 때의 세도가 홍국영처럼권력 남용자들도 존재했다.8,500원. ●변화 리더의 조건(피터 드러커 지음,이재규 옮김,청림출판 펴냄)경영학계 거두의 21세기 비전 시리즈 제2권.지식경제 시대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할 경영자의 책임을 강조하며,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혁신 경영의 비결을 제시. 경영이 왜,어떻게,무엇을 하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통해 경영의 주요 영역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제공.경영의 과제로서 목표를 구체화하고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라고 충고.유능한 경영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천재적 능력이아니라 고된 작업을 반복해 수행할 수 잇는 성실함이라고말한다.1만3,000원. ●산골의 풍경 속으로(황강연 지음,희년 펴냄)도시에서 살던 저자가 간경변으로 설악산맥 자락인 강원도 양양 갈천약수골에 정착,자연생활을 통해 건강을 되찾고 삶의 환희를느끼는 산촌사람들의 그림같은 이야기.전원 속에서 사람과산새와 동물들이 어떻게 이웃하며 따스한 세계를 열어가는지 느끼게 해준다.동네 공중탕이 된 저자 집 목욕탕,아내의 피아노 연주,휴대전화와 TV 등 산골에 찾아든 도회지적 분위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담았다.자연 그대로를 보고 즐기고 깨닫게 하는 자연의 교육을 예찬하며 산골의 무공해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한다.7,500원. ●파룬궁法輪功,중국의 충격(대니 셰처 지음,김은정 옮김,영림카디널 펴냄)기 수련 동호인 단체에 불과하다는 회원들의 주장은 들은 척도 않고 중국 정부는 이해가 되지 않을정도로 파룬궁에 강경한 억압책을 펴오고 있다.중국의 파룬궁 활동에는 일당 정권의 과민반응을 넘어서는 어떤 역사의 단서가 있는 건 아닐까.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중국 정부와 파룬궁의 오늘을 심도있게 분석하고 있다.“리홍지의파룬궁 사건은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에 나타나는 커다란 변화의 용틀임 현상임이 분명하다”고 언론인이자 기수련의‘도사’인 이규행씨는 감수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9,500원
  • “송시열의 꿈은 사대부만의 국가”

    “송시열은 사대부 계급의 이익과 노론의 당익(黨益)을 지키는 데목숨을 걸었다.결국 그의 당인 노론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정권을 잡았다.그러나 이는 백성들의 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나라에 불과하다” 역사평론가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한국사의 최대금기’로 꼽히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신화 벗기기에 나섰다. 최근 출간한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김영사)에서 그는 송시열을두고 북벌론자니 소중화론자니 하는 것은 “편벽한 소인에게 주어진공허한 찬사”일 뿐이라고 혹평한다. 송시열은 한국 역사상 가장 치열한 논란의 대상이 된 인물이다.신돈이나 정도전,정여립 등을 들기도 하지만 생전에 혹은 죽은 뒤에 송시열에 집중됐던 논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3,000번 이상 등장한다. 송시열은 83세에 사약을 받고 죽었다.숙종 때를 제외하고는 역모가아닌 경우 대신을 사형시킨 예가 없고 국문(鞠問)도 하지 않을 만큼대신을 우대한 조선에서 그는 ‘죄인들의 수괴’라는 애매한 죄목으로 사사당했다.여기서 죄인들이란 서인,좁혀 말하면 노론에 속한 당인들을 가리키는 말.그러나 송시열은 죽은 뒤 노론이 다시 집권하면서 유학자로서 최대의 영광인 성균관 문묘에 공자와 함께 배향됐다. 공자 맹자 주자처럼 송자로 불리는 영광도 누리고 있다.하나의 신화가 된 것이다.저자는 이 ‘조선 최대의 당쟁가’를 한 시대의 파탄을초래한 일개 정치가의 자리로 끌어내린다. 저자의 송시열에 대한 평가는 현행 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교과서에서는 송시열을 송준길,이완과 더불어효종을 도와 오랑캐 만주족이 세운 청을 무너뜨려 삼전도 치욕을 갚자는 북벌정책의 중추 인물로 그리고 있다.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한마디로 역사에 대한 오도다.이 책은 송시열이 겉으로는 북벌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북벌에 반대한 인물임을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 낱낱이 밝힌다. 송시열이 살았던 당시 조선은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됐다.조선의 신분질서로는 더이상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없었다.양반의 특권은폐지돼야 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들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주자학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갔다.주자학은 주희가 남송시대 사대부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송시열이 활동할 무렵 주자학은 조선에서 그 기능을 다한 학문이었다.저자는 이 주자학을 정치에잘못 적용한 데에 송시열의 비극이 있다고 강조한다. 송시열은 주자학의 의리론을 조선으로 가져오는 것, 즉 소중화(小中華)사상을 주자학의 조선화로 생각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명분론이라는 것이다.유학의 진정한 조선화를 위해서는 사대부 중심의 중세유학을 일반 양인 중심의 근세유학으로 바꾸고,왕가와 사대부가의 예가 같다는 의미의 천하동례(天下同禮)가 아니라 사대부가와일반백성이 같다는 의미의 천하동례를 내세워야 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논어’ 위정편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송시열에 대한 평을 대신한다.“군자는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지만 소인은 편벽되고 두루 통하지 못한다”김종면기자 jmkim@
  • 젊은 한국축구 거침없다

    ‘한국 축구 세대교체 이상무’-.23세 이하로 새로 짜인 한국축구대표팀이4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 4월 일본과의 평가전 직후 올림픽팀을 주축으로 새로 구성된 대표팀이지난달 유고와의 2연전, 지난 10일 끝난 이란4개국대회 2차례 경기에서 모두2승2무를 기록한 것. 유고전에서는 2무를 기록했고 4개국대회에서는 마케도니아를 2-1,이집트를 1-0으로 각각 꺾고 우승했다. 허정무 사단은 이로써 99년 6월 코리아컵에서의 멕시코전 1-1 무승부를 시작으로 A매치 15경기 연속무패(7승8무) 행진을 계속했다.올해 A매치 전적은7승5무. 그러나 대표팀이 거둔 수확 가운데서 화려한 성적표 못지 않게 값진 것은세대교체에 대한 불안감을 말끔히 씻어냈다는 점.이를 확실히 보여준 것이최근의 4경기였다. 박강조(20·성남 일화) 이천수(19·고려대) 박지성(19·명지대) 등 사실상의 올림픽대표 선수들이 축구 강국의 명실상부한 대표팀과 당당히 맞서 거둔성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유고는 10위(친선경기 당시 11위),이집트 31위,마케도니아는 76위다.특히 유고와 이집트 대표팀에는 유럽 프로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 10명 내외씩 포함돼 있다. 따라서 최근의 한국전 4경기를 본 전문가들은 “이 정도 연령층에 이 정도전력이면 올림픽은 물론 2002년 월드컵 전망도 밝다”는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안정환(24) 이외에는 올림픽대표(23세 이하)와 시니어대표를 이을 마땅한연결고리가 없어 고심하던 한국축구에 비로소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반응이다. 한국대표팀은 이란4개국대회 폐막과 동시에 다시 올림픽대표팀으로 이름을바꿔 유럽으로 이동한 뒤 네덜란드 클럽팀들과 몇차례 연습경기를 갖는 한편유로2000대회를 참관한다. 박해옥기자 hop@
  •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6월 17일부터 10월 29일까지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제7회 베니스 비엔날레국제건축전에 참가하는 한국 작가단의 출품작 윤곽이 드러났다.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한국 작가단은 건축가 조건영·김동건,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이상해 성균관대 교수,안건혁 서울대 교수,이상현 이화여대 교수 등 6명으로 구성됐다. 한국 작가단이 지난 25일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에서 ‘서울-윤리의 도시,자연의 도시’라는 주제로 작품 설명회를 가졌다. 이번 국제건축전이 내건‘도시-덜 미학적인,더 윤리적인’이라는 주제에 맞춰 공동 제작한 출품작은서울의 과거,현재의 모습과 함께 설계도면,전시기획안,멀티미디어 영상물 등을 통해 서울의 미래 모습을 보여준다.커미셔너 김석철씨(건축사무소 ‘아키반’ 대표)는 “옛 서울인 사대문 안을 보행자 위주의 거리로 되돌리고 자연의 흐름을 회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운하의 건설. 김씨는 “한강 하류는 큰 배가 지나지 못해 조선조에서는 물줄기를 서해로 돌리는 운하건설을 검토했다”며 “지금의 굴포천을 인천 앞바다로 빠져나가는 운하로 만들고 주위에 운하도시를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출품작은 베니스 카스텔로 공원내 한국관에서 비엔날레 기간동안 전시된다. 이밖에 전시관에는 서울 정도를 결정한 이성계와 정도전의 영정,주역과 풍수에 따른 서울의 도시원리,화성에 신도시를 건설한 정조의 영정,화성으로 행차하는 정조의 능행도 병풍 등이 함께 전시돼 서울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알수 있게 했다. 한국의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참가는 지난 96년 6회 대회에 이어 두번째.이 행사에는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국가관상,브루노 제비(BrunoZevi)상,의뢰인상,출판상,사진작가상 등 5개 부문의 상이 걸려 있다.
  • [쉽게읽기]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

    살아갈수록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상황은 언제나 ‘이것’ 아니면 ‘저것’일 수 밖에 없는 두 갈래 길 앞에 펼쳐져 있는경우가 다반사요,결국 그것을 선택하는 순간으로 인해 모든 것이 결정지어지곤 한다.그런 의미에서 선택은 운명을 낳는 결과에 다름 아니다. 한 개인에게 있어 선택이 곧 운명이라면 국가에 있어서 선택은 역사다.역사의 물줄기는 그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들이 갈림길 앞에서 선택을 놓고 고뇌했던 방향대로 흐르게 마련이다.지난날 우리 역사의 강물이 그토록 험난했던 것도 알고보면 선조들의 선택에 따른 필연적인 대가였을 것이다. ‘역사의 길목에 선 31인의 선택’(푸른역사펴냄)은 삼국시대부터 해방공간까지 전환기를 살면서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역사적 인물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했던 흔적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선택을 묻는다.역사의 강물을 거스르다 잘못된 선택을 한 인물들과 새로운 물길을 연 인물들의 선택….그것이 만들어낸 우리의 지난 역사를 때로는 안타까운심정으로,때로는 벅찬 심정으로 읽어 내려가게 된다. 사학자 18인이 선정한 역사적인 인물 31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만을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기존 역사책과 구별된다.나아가 이들 31인은오늘날 시각으로 새롭게 재해석되어 크게 네가지 유형으로 분류되었는데 통일을 향해 나아갔던 인물(연개소문과 김춘추,여운형,궁예와 견훤,왕건),개혁의 갈림길에 선 인물(묘청,정지상,이색,정도전),국가의 존망을 걸고 역사적인 결단을 내려야했던 인물(광해군,최명길과 김상헌,고종과 민비),역사의 국면마다 행위양식에 대해 고민했던 인물(최치원,이규보,이승휴,정약용)들이그것이다.이들 네가지 주제는 지금껏 계속 반복되는 숙제들로,앞서 살다간선조들의 선택과 행동은 오늘날의 지혜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들이 내린 개인적 결단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을 물으면서 진정한 리더십을 생각하게 하는 이 책은 분명히 ‘재미있는 역사책’과는 거리가 있다.그러나 세기말의 혼돈과 새 천년을 목전에 둔 설렘이 뒤섞여 막연한 불안감마저 자아내는 이때 나아갈바를 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정의 핵심적 위치에 섰던 인물,그리고 지식인들은 민족적인 비극과 세계사의 험난한 파고 앞에서 무엇을 선택했는지,보수와 진보,개혁 사이에서 어떤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나 그 속뜻을 헤아리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인 나에게도 자못 의미가 깊다.제아무리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결단이 자신의 생존과 권력기반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했을 때 역사는 공전할 수밖에 없고,도도한 흐름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는 일은 새삼스럽지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20세기를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내는 길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21세기는 그 결과로써 규정지어질 것이란 것을 이 책에서 배운다. 오미영 방송인
  • [金三雄 칼럼] 민주와 개혁은 양립되는가

    우리는 실패한 개혁의 역사를 안고 있다.대표적으로는 고려시대의 묘청과신돈,조선 건국기의 정도전,중기의 조광조·율곡·정조,후기의 전봉준·대원군·고종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한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그러나 불행하게도 개혁은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이들 중에는 국왕을 비롯한 권력자도 있고 학자와 개혁사상가도 포함된다. 개혁의 추진에 있어서 가장 무난한 방법은 권력자가 스스로 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이 경우 피를 흘리지 않고서도 가능하다.두번째는 개혁사상가들의 뜻을 받아 권력자가 추진하는 옆으로부터의 개혁이다.상당한 불안과 정쟁의 요인이 따르는 방법이다.마지막은 개혁운동이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혁명적 방법이다.자칫하면 내란 또는 정변으로 이어지고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①은 정조와 대원군,고종의 개혁정치를 들 수 있고 ②는 신돈,정도전,조광조,율곡 ③은 묘청과 전봉준의 경우를 든다. 묘청은 서경천도·칭제건원 등 획기적인 자주국가 건설을 주창하다가,신돈은 무신란과 원(元) 간섭기를거치면서 득세한 권문세족에 맞서 개혁작업을시도하다가,정도전은 신권론(臣權論)으로 집약되는 국정쇄신을,조광조는 훈구세력의 특권과 비리를 혁파하고 합리적이고 기능 위주의 관료체제 확립과지치주의(至治主義)의 실현을,율곡은 10만 양병설 등 국방강화와 왕도정치를,‘탕평 군주’ 정조는 정치개혁을 총론으로 사회개혁과 경제개혁을 각론으로 하는 국정개혁을,전봉준은 척왜척양과 12개 폐정개혁,대원군은 서원철폐와 부패척결 등 갑오경장,고종은 황제권과 자위군대의 강화에 역점을 둔 광무개혁을 각각 추진했으나 대부분이 실패하거나 좌절되었다. 토인비는 문명이 발생-성장-쇠퇴-해체의 과정을 밟는다고 주장했다.왕조나국가의 흥망성쇠도 마찬가지다.쇠퇴기에 이르기 전에 반드시 개혁이나 경장을 서둘러야 해체의 비극을 겪지 않게 된다. 고려가 신돈의 개혁정치를,조선조가 조광조와 율곡의,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봉준의 개혁요구만이라도 수용했다면 ‘해체’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30여년의 군사통치유산과 김영삼 정부가 남긴 국가부도위기 그리고 남북대결과 지역갈등구조 등 그야말로 쇠퇴 또는 해체기의 국정을 맡아 ‘제2의 건국’의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사 대부분의 개혁작업이 기득권 보수세력의 도전에 의해 좌절되었듯이DJ개혁도 이들에 의해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현재의 기득세력은 친일세력으로부터 시작하여 역대 정권에서 요직을 차지했거나 정경,정언유착을 통해 수혜를 받은 계층이다.이들은 국가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더 연연한다.때문에 개혁에 도전적이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 보수 기득세력은 또 그렇다 치자.입만 열면 개혁과 통일,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언론인·지식인,노동계는 어떤가.국난극복과 개혁의 당위보다는 지역,파벌,계층,집단이기주의를 우선한다.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오만과 독선에 빠지기 쉽고 타락하고 부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비판은 도덕성과 정당성에서 비롯된다.독재·부패정권에 협력하거나 기생해온 지식인·언론인들의 오늘의 비판자세는 어떠한가.최근 칼럼 미게재에 항의하면서 신문사를 떠난 한 언론인은 “포악한 정권에겐 비굴하고 온건한 정권 아래선 교활하다”고 토로하면서 “과거 정권 아래선 능동적으로 나쁜 짓 하던 언론이 이제는 매사를 트집잡고 비판해.집권세력을 보는잣대는 두 가지가 분명해야 해.하고 있는 것의 ‘동기’,집권자의 ‘능력’을 정확히 판단해야지”라고 말했다.이런 언론인이 ‘국민의 정부’ 아래서도 설 땅이 없는 것이 우리 언론풍토이고 지성계이며 개혁의 딜레마이다. 민주주의와 개혁이 공존하기는 쉽지 않다.4·19후 장면 정권과 독일 바이마르 공화정이 이를 말해준다.DJ정부의 개혁작업이 주춤거리는 것도 반개혁 세력의 도전과 자율에 대한 악용에서 비롯된다. ‘자율’을 존중하되 악용·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개혁이 요구된다.남한 180만 실업자,북한 300만 아사자를 둔 민족적 재앙과 문명사적 쇠퇴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의 네트워크가 시급하다.우리에겐 실패한개혁의 역사를 되풀이할 여지가 없다. 김삼웅 주필
  • [金三雄칼럼]實事求是 정치론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큰 정치를 하겠다”는 여야 총재의 청와대회담합의는 가뭄끝의 단비처럼 꼬일대로 꼬인 정국을 풀고 정치개혁의 계기가 될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지탄의 대상이 된 정치가 ‘큰 정치’를 통해 국민통합의 바탕에서환난극복과 남북화해 그리고 선진한국 건설의 전동차 역할을 해주면 얼마나좋을까. 우리 정치구조와 행태는 전근대적이고 비효율적이다. 공리공담과 적대적 파쟁을 일삼거나 지역갈등적 기능을 해왔다. 국회 정당 선거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방만한 구조와 비생산적인 논쟁을 지양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용성 있는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겐 실사구시의 실학사상이 있다. 실학은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일어난 근대지향적이고 민족지향적인 새로운 학풍이었다. 지식인(선비)들의 새로운 인식을 추구하는 학문운동이다. 鄭寅普의 “조선 근고(近古)의 학술사를 종관하여 보면 반계(磻溪)가 일조(一祖)요 성호(星湖)가 이조요 다산(茶山)이 3조인데 다산이 그 집성의 미를향유…”란 지적대로 다산은 실학사상의 중심인물이다. 다산은 ‘오학론(五學論)’에서 공리공담의 선비를 “성리학의 껍데기나 핥는 선비,훈고학의 꼬리나 붙잡고 있는 선비,역학(易學)의 곁길에서 술수나일삼는 선비,사장(詞章)이 전부인 줄 아는 선비,과거공부에만 몰두하는 텅빈 출세주의자들”이라 비판하면서,이러한 선비들의 존재는 ‘빈’ 이름을 도둑질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이는 사회의 ‘좀’이요 ‘도포입고 낮에 도적질하는 사람’이라고 질타했다. 다산이 질타한 ‘선비’는 오늘로 치면 정치인과 지식인의 한 묶음이다. 과연 오늘의 정치인,지식인들에게는 면책되는 말일까. 당초 ‘실사구시’의 담론은 청나라 고증학의 문을 연 고염무(顧炎武:1613∼1682)에 의해 주창되었다. 공론만 일삼는 양명학에 대한 반동으로서,사실에 토대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방법론이다. 그는 공허한 현학과 이학을 배척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제창했다. 청나라는 고염무의 주창을 받아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조선조는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공론만 거듭하다가망국의 비극을 겪었다. 조선건국기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통해 민본사상을 제시했다. 위정자들의 모든 행위는 백성을 위하고(爲民),백성을 사랑하고(愛民),소중하게 여기며(重民),백성을 보호하고(保民),교육하며(牧民),편안하게(安民)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조선조 실학자들은 이러한 민본사상을 실사구시를 통해 실현하자는 실학운동을 전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정도전의 민본사상이나 실학자들의실사구시 정신을 오늘의 정치에 대입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 지금까지과연 우리 국회가 백성을 위하고,백성을 사랑하고,소중하게 여기며,백성을보호하고,교육하며,편안하게 해주었는가. 대답은 뻔하다. 민본사상과 실사구시의 정신이 실종된 까닭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회와 정당과 필요하면 지방행정체제까지 일괄하여 개혁하고 조정해야 한다. 정파의 이해나 정치인들의 득실에 따른 땜질용이 아닌 그야말로 21세기,새 밀레니엄에 대비하고 통일시대를 예비하는 결단으로 정치구조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때마침 金大中대통령이 각 정당의 ‘전국정당화’와 ‘유능한 신인’의 정치권 수혈을 밝혔다. 정치가 달라지지 않고는 개혁은 공염불이 되고 지역갈등과 고비용 저효율의 국정난맥을 고치기는 어렵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근절도 쉽지 않다. 만악의 근원이 잘못된 정치에 있고 만병의 치유는 정치개혁에서 비롯된다. 율곡이 “언로(言路)가 열리고 닫히는 데 국가의 흥망이 달려 있다”고 했지만,언로는 이미 열렸는데 문제는 정치에 있다. 지역갈등 구조에서 손쉽게 국회의원이 되고 이를 기화로 지역토호 노릇이나 하는 선량들,범법의원 한 명 보호하고자 5차례나 방탄국회를 여는 국회,민생법안이 업계 로비로 변질되고,농·수·축협이 곪아터져도 국정감사는 겉치레 행사로 시종되는 국회구조와 기능으로는 갈수록 살벌하고 냉혹해지는 국제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탈(脫)산업사회에 적합하고 국민화합과 전문성을 갖춘,그러면서 행정부를견제하고 민심을 추스르는 실사구시의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김삼웅 주필
  • [대한광장] 北변화 가로막는 美 냉전의 외투

    작년 8월 북한의 금창리 핵시설 건설의혹 및 미사일·인공위성 발사문제가발생하자 북한이 입고 있는 외투를 벗기려는 우리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은미국·일본 등 우방에 의해 상당 정도 도전을 받게 됐다.특히 미국은 우리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북한의 긍정적인 반응을 유인하지 못할 경우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동북아시아 안보 위협은 물론 세계적 차원에서 대량 살상무기 확산 위험을 방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강압외교·무시정책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그러나 미국의 대북정책이 무력행사까지도 불사할 경우 한반도는 전장이 될 수밖에 없으며,대북 강압외교 및 강한 대북 무시정책을 구사하면 한반도 긴장은 고조되고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더욱 난제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한 우리 정부는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않고 있는 것은 미국의 대북 포위압박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미국의 대북정책을 대북 경제제재 해제,북·미관계 정상화 등 포용정책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더욱이 한반도 냉전구조를 완전 해체하지 않고 대증요법으로 북한에 대응할 경우 북한 핵·미사일문제 해결도 요원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변화를 지연시키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냉전구조는 북한 스스로 입은 유교적 스탈린주의라는 외투 위에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안보적 압박,외교적 고립 등 대북 포위압박 정책이라는 외투가 또다시 입혀지는 다차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미국은 북한이 변화할 경우 대북 관계개선을 고려한다는 입장인 반면,한국은 미국의 대북 포위압박 정책을 전환해야 북한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수출을 중단하고 점진적인 체제전환을 추진하기위해서는 미국이 씌운 대북정책의 외투가 먼저 벗겨져야 한다.북한 입장에서 볼 때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경수로 본공사 착수 지연,대미 관계개선 및 대북 경제제재조치 완화 등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또한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은 북한에 안보위협이될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는 북한에 대한 투자 및 해외시장 확보가 불가능해져 체제전환을 통한 세계시장 지향적 발전전략을 구사하기 어렵게 한다.더욱이 북한 지배계층이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을 자기이익에 반하는 정책으로 간주하는 한 자신의 개인적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체제전환 시도를 도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물론 미국의 대북정책이 포위압박 정책에서 포용정책으로 전환될지라도 북한이 얼마나 빨리 변화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분명한 대답을 줄 수 없다.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역사적 실험을 통해 더는 기능할 수 없는 체제로 판명됐고,체제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기로에 있다는 사실이다.이 시점에서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강요해 체제위기에 처해 있는 북한 지배계층으로 하여금 오히려 폐쇄정책을 취하게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어떠한 지배계층이든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세계사적 흐름에 부응하는 체제전환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것이 일반적인역사의 진리다.이러한 측면에서 폐쇄정책으로 일관해 왔던 북한이 최근 금강산을 개방하고,헌법개정을 통해 시장경제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작년 100명을 상회하는 북한 관료들이 외국에서 시장경제 연수과정을 수료하게 하는 등 체제변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면 과언일까. 대북 강압외교가 실효성이 없고 북한이 변할 준비가 돼 있다면,북한이 사회주의 외투를 벗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미국은 북한에 덧씌우고 있는 냉전의 외투를 우선 먼저 벗기는 대북 포용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황병덕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李穀 선생 탄신 700돌 기념 학술대회

    ◎목은연구회 주최… 16일 세종회관/고려후기 학자… 이색의 아버지/원나라 황제에 건의 공녀제 폐지/성리학 기초 확립… ‘목은학맥’ 형성 고려의 대학자이자 문인인 가정(稼亭)이곡(李穀)을 기리는 ‘가정 이곡선생 탄신 7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오는 16일 오전 9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목은연구회(회장 이정복)주최로 열린다. 1298년(고려 충렬왕 24년)에 태어난 이곡은 국문학사상 대표적인 가전체 소설인 ‘죽부인전(竹夫人傳)’을 남겼으며,원나라 황제에게 건의해 80여년 계속된 공녀제(貢女制)를 폐지케 했다. 공녀제란,원이 고려의 수많은 처녀들을 몽고족의 배우자로 징발해 간 것으로 당시 고려사회 최대의 해악이었다. 아울러 이곡은 아들인 목은(牧隱)이색(李穡)과 함께 고려 후기의 문학·사상·정치에 크나큰 업적을 이루었다. 부자 2대는 모두 원나라 과거에 급제해 문명(文名)을 날렸으며 높은 벼슬을 지냈다. 고려에 돌아와서는 성리학의 기초를 확립,정몽주 정도전 권근 등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형성했다. 이곡·이색 부자가 남긴 방대한 한시(漢詩)는 고려∼조선 전시기를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과로 꼽힌다. 16일 열리는 학술대회에서는 이우성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장(전 성균관대 교수)이 기조강연을 하는 것을 비롯,한영우(서울대) 이성규(서울대) 송재소(성균관대) 황재국(강원대) 김종진(동국대) 교수 등이 이곡의 학문·문학세계에 관해 주제발표를 한다. 한영우 교수는 미리 배포한 ‘가정 이곡의 생애와 사상’논문에서 “공녀제의 부당성을 항의해 고려의 자주성을 지키려고 노력하였으며,성리학자답게 민본정치와 도덕정치를 희구하고,남의 힘을 빌어서 권세를 휘두르는 정치풍토를 비웃었다”고 평가했다. 송재소 교수는 ‘가정 이곡의 동유기에 대하여’에서 “동유기(東遊記)는 금강산 유람기로서 국내 최초의 작품이며,후대의 산수유기(山水遊記)창작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이밖에 고병익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전 서울대 총장)과 이일규 전 대법원장이 이 대회에서 축사를 한다. 대회를 주관하는 목은연구회는 지난 96년 ‘목은 서세(逝世)600주년 학술대회’를 열었으며 지난해에는 중국 북경에서 ‘목은 이색 학술사상 한중 학술대회’를 중국 학계와 공동으로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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