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정당성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반성 삭제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우리가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2차 평가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 18명
    2026-08-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906
  • 세종시대 ‘여민락’ 되살린다

    세종시대 ‘여민락’ 되살린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권제, 정인지, 안지 등에게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를 짓도록 한다. 바로 ‘용비어천가’이다. 그렇게 지어진 ‘용비어천가’의 한시(漢詩) 초장과 2∼4장, 그리고 마지막 125장을 관현악 선율에 얹은 것이 ‘여민락(與民樂)’이다. ‘여민락’은 세종 29년(1447년)부터 연례악으로 연주되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노래가 분리되어 오늘날에는 가사가 없는 기악곡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세종시대처럼 노래와 기악선율이 함께하는 ‘여민락’을 되살려 17일 오후 7시30분 예악당에서 첫 선을 보인다. ‘여민락’의 가사가 ‘용비어천가’였다는 것은 기록에만 남아있을 뿐 악보가 남아있지 않아 원래형태대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전승되는 음악을 살리되 현대에 맞게 재창작하는 것 또한 국립국악원의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 ‘용비어천가’의 음운을 살려 가사가 있는 ‘여민락’을 새로 짰다고 한다. ‘여민락’은 선율이 유려하고 화평하여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으뜸가는 명곡으로 꼽힌다. 전체 연주시간이 1시간 35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정악단이 ‘여민락’을 연주하는 것은 1996년 이후 12년 만이다. 가사를 얹은 ‘여민락’ 연주는 당연히 처음이다. ‘여민락’은 꿋꿋한 피리 선율이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등 대규모 관현악 편성을 이끌고 가는 유장한 가락이 특징이다. 본래 10장이었으나, 지금은 7장만 전해진다.1∼3장은 느리게,4∼7장은 빠르게 연주된다. 정악단은 지난해 한양대 권오성 명예교수와 황준연 서울대 교수 등 5명의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어떤 가사를 어떤 장에 실을 것인지 논의했다. 그 결과 ‘용비어천가’ 125장의 가사를 발췌하여 가사로 옮겨도 좋겠다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정악단은 이렇게 ‘여민락´ 7장의 노래와 선율이 함께하는 ‘여민락’을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4월에 들어서는 오전, 오후로 ‘여민락’을 맹연습하고 있다. 김한승 정악단 예술감독은 “6개월이 넘도록 연습에 열중한 결과 단원들 모두 암보로 연주할 수 있을 만큼 몸에 익혔다.”면서 “남은 기간에는 새로운 ‘여민락’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민락’은 각 장이 모두 본장과 여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음이란 각 장을 마무리하여 여민다는 의미가 있다. 여음에서 피리와 해금은 ‘쇠는 가락’이라 하여 전체 악기의 선율보다 한 옥타브 높게 연주한다. 각 파트에서 한 두 사람이 대표주자로 이 역할을 맡는데,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한 ‘쇠는 가락’이 ‘여민락’을 더욱 풍성하고 화려한 음악으로 만드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한다.‘여민락’ 감상의 중요한 ‘포인트’이다.8000원∼1만원.(02)580-330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65) 전란의 전조

    [병자호란 다시 읽기] (65) 전란의 전조

    1634년 말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정은 강학년(姜鶴年) 발언의 파장 때문에 뒤숭숭했다.‘포악함으로써 포악함을 제거했다.’며 인조반정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했던 강학년의 직격탄은 인조와 조정 신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인조와 반정공신들의 실정(失政)을 문제 삼았던 신료들조차 강학년의 발언에 격분했다.1635년 1월 홍문관 신료들은 ‘강학년의 죄는 목을 베어야 할 사안’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언관 자리에 있던 신료들이 동료의 발언을 문제 삼아 ‘목을 베어야 한다.’고 운운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강학년과 이기안, 인조에게 도전하다 강학년의 발언을 계기로 신료들은 자신들이 인조와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하고 권세를 누리게 된 출발점은 인조반정이었다. 그들이 반정을 성공시킨 순간부터 광해군은 ‘극악무도한 패륜아(悖倫兒)’이자 ‘걸(桀) 임금이나 주왕(紂王)보다도 더한 폭군’으로 치부되었고, 광해군을 쫓아낸 반정이야말로 ‘천명(天命)과 인심의 호응 속에 무너진 윤리와 기강을 바로잡은 거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강학년이 홀연 백이(伯夷) 숙제(叔齊)처럼 ‘이폭역폭(以暴易暴)’ 운운하면서 인조반정의 정당성을 한 방에 날려 버렸다. 신료들은 강학년을 엄벌하지 않으면 신인(神人)의 공분(公憤)을 풀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조판서로 있으면서 강학년을 조정에 추천했던 최명길은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며 관직에서 물러났다. 인조반정과 인조의 권위를 허무는 사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1635년 2월 전라감사 원두표가 보내온 보고는 다시 조정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보고 내용은 삼례(三禮)에 사는 생원 이기안(李基安)이 인조에 대해 무도한 말을 퍼뜨렸다는 내용이었다. 이기안이 사근찰방(沙近察訪) 김경(金坰)과 이야기를 하면서 ‘능양군은 믿을 수 없다. 그가 오래갈 수 있을까?’라고 불경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기안은 서울로 끌려왔고, 그를 심문하기 위해 추국청(推鞫廳)이 설치되었다. 추국 과정에서 ‘일본인들을 끌어들여 난을 일으키려 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남인과 과거 대북파의 잔당들과 연결하여 역모를 꾀하려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기안은 처형되었지만 ‘역모 사건’의 파장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능양군은 인조의 잠저(潛邸) 시절 군호(君號)였다. 이미 강학년의 발언 때문에 조정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이기안이 ‘능양군’ 운운한 것은 충격을 배가했다. ●‘천변’의 원인을 둘러싼 공방 강학년의 충격적인 발언과 이기안의 역모 기도 사건을 계기로 인조에 대한 신료들의 비판은 수그러드는 조짐을 보였다. 특히 강학년이 인조가 저지른 3대 실책 가운데 하나로 꼽은 ‘부묘(廟)기도’에 대한 비판도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인조는 ‘강학년을 죽여야 한다.’는 신료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를 엄벌하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말 때문에 죄를 얻은 자를 죽이는 군주가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흘리는 등 ‘강학년 문제’로 빚어진 신료들의 격앙된 모습을 은근히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인조는 ‘서인들의 집권이 오래되고, 그들이 사사건건 왕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기 때문’에 궁극에는 강학년의 발언이 나왔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인조와 신료들은 다시 충돌하고 말았다.1635년 3월 14일 선조의 능(穆陵)에서 능침(陵寢)과 석물(石物)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간밤에 번개와 천둥이 요란한 상태로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이튿날 선조와 왕비의 능침 일부가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보고를 받은 예조는 서둘러 위안제(慰安祭)를 지내고 대신을 보내 봉심(奉審·무너진 능침을 살피는 것)한 다음 개수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목릉이 무너진 원인에 대한 진단을 놓고 긴장이 다시 촉발되었다. 사헌부 신료들은 인조에게 목릉이 무너지는 변고가 부묘를 시행하려는 즈음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중시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선대(先代)의 혼령(魂靈)을 위로하기 위해 부묘를 연기하라고 건의했다. 인조는 부묘를 연기하라는 건의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대신들이 목릉이 무너진 것을 ‘하늘이 내린 변고(天變)’라고 규정하자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조는 ‘봉분을 만든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비가 미친 듯이 퍼부어 스며든 물 때문에 무너진 것’이라며 대신들의 ‘천변’ 주장을 일축했다. 또 원인을 정확하게 구명하지도 않은 채 ‘천변’으로 몰아가려는 대신들의 저의가 불순하다고 질타했다. 부묘를 둘러싼 논란, 강학년의 ‘폭탄 발언’, 이기안의 역모 사건 등이 중첩되어 일어나면서 인조와 신료들은 치열한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인조는 특히 목릉 붕괴의 원인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천변’ 운운하는 신료들을 계속 파직하는가 하면, 능에서 무너져 내린 사토(莎土)를 다른 곳으로 실어 옮긴 선공감(繕工監) 제조(提調) 신경진(申景 )을 나문(拿問·잡아다가 취조함)하라고 지시했다.‘무너진 흙에 벼락이 내리친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었는데 그것을 없애기 위해 고의로 흙을 옮겼다.’는 것이다. 인조는 신료들이 목릉의 붕괴를, 국왕의 실정에 대한 하늘의 경고 때문에 빚어진 ‘천재’로 몰아가면서 자신을 압박하려는 것을 차단하려 했던 것이다. ●홍타이지 “조선 신료들 탐욕·부패” 직격탄 목릉 붕괴의 원인을 둘러싼 공방이 수그러들 무렵인 1635년 8월 후금 사신 동덕귀(董德貴)가 평양에 도착하여 국서를 올려보냈다. 홍타이지는 먼저 조선 백성들이 국경을 넘어 후금 영내로 진입하다가 체포되는 사례가 많다고 항의했다. 그는 법을 어기고 월경하는 백성들이 많은 것은 ‘조선 신료들이 탐욕스럽고 부패하여 임금의 총명을 가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로부터 신하가 국권을 쥐고, 사실(私室)을 강하게 하고 군주를 업신여기면 나라의 정사가 망가지게 된다.’고 충고했다. 이어 ‘후금은 형제국이므로 직언으로써 충고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의 국서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권세가 강한 신료들은 조심하라.’며 조선의 내정을 걱정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서인들의 권세가 너무 커졌다.’고 인조가 푸념했던 것이 어느새 홍타이지의 귀에까지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금은 이제 조선 내정에 ‘충고’까지 하려고 덤비고 있었다. 사실 이 무렵 홍타이지는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차하르(察哈爾) 몽골 원정에 나섰던 도르곤(多爾袞) 등이 차하르의 릭단한(林丹汗)이 가지고 있던 원(元)의 옥새(玉璽)를 노획해 왔던 것이다. 릭단한은 몽골에서 칭기즈칸의 정통성을 잇는 권위를 지닌 인물이었다. 일찍이 원의 마지막 황제 순제(順帝)는 주원장(朱元璋)의 명군을 피해 달아나다가 죽었고 그 와중에 원의 옥새는 행방이 묘연했다. 옥새는 200년이 지난 뒤에야 양치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우여곡절 끝에 릭단한의 손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그 옥새가 홍타이지의 손에 들어갔던 것이다. ‘제고지보(制誥之寶)’라는 글자가 새겨진 옥새를 얻었을 때 홍타이지는 향불을 피우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면서 ‘하늘이 역대 제왕들이 사용하던 옥새를 짐(朕)에게 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감격해했다. 마치 자신에게 천명(天命)이 돌아왔다고 여길 법도 한 일이었다. 실제로 홍타이지는 사람을 시켜 조선에도 자신이 옥새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런 사연에서 얻어진 자신감 때문일까? 홍타이지의 국서 내용은 조선의 신경을 더욱 거스르게 만들었다. 거듭되는 천재지변을 둘러싼 논란,‘충고’ 운운하는 후금의 국서에 대한 찜찜함을 뒤로하고 1636년 병자년이 밝아 오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단독]서울대 리포트 표절하면 징계

    서울대가 학내에 만연한 리포트 표절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학생들의 징계 절차를 포함한 ‘글쓰기 윤리지침’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30일 밝혀졌다. 서울대 교무처 관계자는 이날 “글쓰기 윤리지침은 대학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과제물 글쓰기 관련 안내서”라면서 “징계 수위 조정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르면 오는 2학기나 내년 1학기부터 지침에 따른 징계 등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쓰기 윤리지침에는 ▲표절의 개념 ▲어느 정도의 글자수를 베끼면 표절에 해당하는지 등의 구체적 기준 ▲징계 수위와 절차 등이 담길 예정이다. 서울대 기초교육원은 지난해부터 학생들의 설문과 면담조사를 바탕으로 윤리지침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것인지 연구해 왔고, 지난달 연구보고서를 통해 윤리지침의 초안을 작성했다. 지난주에는 학생처와 총학생회가 참여하는 교육개선협의회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서울대의 이런 움직임은 학생들의 과제물 표절이 있어도 해당 교수가 주는 학점 불이익 외엔 별다른 처벌 근거가 없어 표절에 대한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단이 없다는 지적에서 시작됐다. 인문대의 한 조교는 “많은 학생들이 인터넷의 리포트 관련 사이트를 이용하는 바람에 과제물 평가에 부작용이 많았다.”면서 “리포트 점수를 0점 처리하는 경우부터 해당 과목을 F학점 처리를 하는 등 교수에 따라 처벌 수위가 제각각”이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대 기초교육원이 지난 1월 겨울 계절학기 수강생 80명을 대상으로 설문·면담조사를 실시한 결과 38%가 ‘표절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인터넷 리포트 사이트를 자주 이용한다.’고 답한 학생도 25%에 달했다. 교무처 관계자는 “표절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은 것이 이런 현상의 부분적인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했다.”면서 “이 지침을 통해 다른 대학에도 올바른 글쓰기 윤리가 정착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시행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도 있다. 사범대학의 한 교수는 “대학에 표절 문제가 매우 일반화돼 있어 공식 징계로만 해결하는 건 성급하다는 의견도 있다.”면서 “학생들이 표절의 개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 경우가 있으니 조심스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무처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징계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지침 제정과 더불어 학칙을 수정하는 과정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데스크시각] 중국식 지도자 검증이 부러운 이유/이석우 국제부장

    [데스크시각] 중국식 지도자 검증이 부러운 이유/이석우 국제부장

    중국내 티베트(시짱·西藏) 독립 요구 시위가 유혈 사태로 번지던 지난 16일 베이징에선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2기가 공식적으로 돛을 올렸다.‘중화인민공화국 주식회사’의 회장격인 국가주석에 후진타오가,‘총괄 사장’인 총리에 원자바오(溫家寶)가 재신임되면서 다시 5년동안 ‘중국 호(號)’의 조타수가 됐음을 확인했다. 시진핑(習近平)과 리커창(李克强), 차세대 양대 축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놓쳐선 안될 ‘사건’이었다. 쉰다섯의 시진핑은 국가 부주석에 선출돼 차기 국가주석 영순위 후보가 됐고 쉰셋으로 상무 부총리에 뽑힌 리커창은 차기 총리를 준비하게 됐다. 앞서 중국공산당은 지난해 10월말 기업의 등기이사 격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4명을 물갈이, 최고정책기구에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이로써 후-원 체제가 막을 내릴 2012년 이후 차기 집권 구도의 포석을 공식화한 셈이다. 후진타오나 그에 앞선 3세대 집단지도체제 핵심 장쩌민(江澤民) 등은 모두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의 낙점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장이나 후로 상징되는 3·4세대 지도자들은 덩의 낙점만으로 정상에 오르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 경쟁과 검증을 거치며, 실적과 성취로 존재를 입증해 온 그런 사람들이다. 장쩌민이 비누공장 등을 거치며 일찍부터 수완을 과시하며 두각을 나타낸 것이나 후진타오가 편벽한 깐수(甘肅)성 현장에서 실적을 이뤄낸 것도 마찬가지 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독단과 후계구도 불안정의 악영향을 몸소 겪고 느꼈던 덩 등 2세대 지도자들은 후계구도의 안정성에 대해 정책적 우선 순위를 두고 접근했다. 그 고민은 최소한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검증과 합의라는 과정을 통해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높일 때만 인사구도의 안정성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일당 독재의 한계속에서도 그런 모습을 그려내려는 안간힘으로 이어져 왔다. 덩샤오핑은 1980년대 중·후반 과감하게 20·30대들을 간부로 기용했다.90년대 중반엔 검증과 실적 싸움에서 살아남은 일부가 중앙의 중견 간부나 중·소도시 시장, 당서기들로 자리잡으며 중국 정치의 세대교체를 이뤄내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과정에서 나이, 계파, 당에 대한 충성도 및 대중 지도력 등이 고려됐지만 실적을 중시하는 ‘실사구시’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졌다.‘사원 주주’ 공산당원 사이에서지만 공감과 수긍은 확산됐고 엘리트의 건강한 충원과 자칫 깨지기 쉬운 집단지도체제의 유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는 평도 얻었다. 엊그제 입후보 등록이 마감되면서 18대 국회의원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고 있지만 공천을 둘러싼 정당성 시비는 잦아들기는커녕 확산일로에 있다. 공천 시비로 인한 분란으로 선거 판세가 달라지고 선거후 분당 등 거센 후폭풍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일당(一黨)의 국가’ 중국의 지도자 충원 방식을 감히 민주국가 한국의 선거와 비교하는 일은 불경스럽고 불손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요사이 선거판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중국의 검증과 합의 수준에 부러움과 유혹을 느낄 정도다. 앞선 ‘실용정부´ 초대 각료 인사 검증도 한숨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몇 사람의 지도자가 바뀌면 당이 생겼다 없어지는 한국적인 ‘하루살이 정당체제’에서 요즘 같은 공천 파동과 시비가 잦아들 것 같지도 않다. 인물과 정책 검증이 시원찮은 상황에선 한바탕의 흥행을 위한 바람몰이만이 성공의 지름길인 까닭에서일까. 원칙과 대화가 소통되지 못하는 곳에선 상황논리와 임기응변만이 활개칠 따름이다. 신진대사가 이뤄지듯 변신해 나가는 중국 지도부의 진화에 유혹마저 느끼는 ‘황당한 상황’속에서 피를 흘리며 쌓아올린 우리 민주화의 성취가 선거를 거칠 때마다 무색해질까 두렵다. 이석우 국제부장 swle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64) 외환(外患) 속의 내우(內憂)

    [병자호란 다시 읽기] (64) 외환(外患) 속의 내우(內憂)

    재원 문제 때문에 청북(淸北) 지역의 성곽 수리와 군량 공급마저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 노유녕에게 십만 냥 가까운 은화를 뜯겼던 것은 너무나 큰 손실이었다. 하지만 인조는 노유녕이 다녀간 뒤 상당히 고무되었다. 명 조정이 왕세자를 책봉해 주었으니 이제 자신의 생부 정원군(定遠君,元宗으로 추숭)의 신주를 종묘(宗廟)에 모실 수 있다고 여겼다. 신료들이 인조의 의도에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조정에는 다시 소용돌이가 일었다. ●너무 비싼 책봉의 대가 왕세자 책봉례를 주관하려고 왔던 노유녕을 접대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노유녕에게 줄 은과 인삼을 마련하기 위해 조정은 전라도 수군들에게서 포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부역(赴役, 군역을 지기 위해 지정된 근무지로 나아가는 것)을 잠시 면제해 주는 조처까지 취했다. 비록 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전라도 수군을 스스로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에 일본이 침략이라도 해 올 경우 과연 어떻게 막을 것인가. 당시 일본과의 사이에 이렇다 할 사단이 없었기 망정이지 참으로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노유녕을 접대하는 문제 때문에 생긴 피해는 고스란히 하층민들에게 전가되었다. 특히 시전(市廛) 상인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노유녕이 데려온 수행원 가운데는 중국 상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조선 측에 교역을 요구했는데, 문제는 공정한 거래를 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조선 상인들이 선호하는 비단과 명주를 내놓기도 했지만, 쓸데없는 잡물들을 내놓고 조선 상인들에게 은과 인삼을 요구했다. 상인들은 말도 안 되는 늑매(勒賣)에 몸서리를 쳤지만, 조정의 강요로 이 정치적인 거래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1634년 7월, 노유녕 일행이 숙소로 돌아가는 것을 목도했던 시전 상인들은 그의 행렬을 바라보며 일제히 통곡했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서 비롯된 소극적인 저항의 몸짓이었다. 이 ‘중원의 대도(大盜)’는 통곡 소리에 짜증이 났는지 조선 측 역관과 수행원들에게 짜증을 냈다. 보고를 접한 인조는 시전 상인들 가운데 주동자를 색출하여 하옥시키고 그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평시서(平市署) 관원들을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칙사의 심기를 어지럽게 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탐욕스러운 노유녕을 접대하는 과정은 몹시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인조에게는 참으로 중요했다. 명 조정이 세자까지 책봉해 준 이상, 자신의 왕통은 이제 확실해졌다고 여겼다. 그러니 자신의 아버지 원종의 신주(神主)를 종묘에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인조 “원종은 선조의 아들” 배향 지시 노유녕이 귀국한 직후인 1634년 7월22일, 인조는 신료들에게 원종의 신주를 속히 종묘에 모시라고 지시했다. 부묘(廟,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것) 업무를 주관하는 예조의 관원들은 곤혹스러웠다. 그들은 ‘별도의 사당을 세워 신주를 모셔도 전하의 효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어 막중한 전례(典禮) 문제를 함부로 처리할 수 없다며 대신들과 상의하라고 권유했다. 삼사의 관원들도 들고일어났다. 대사헌 강석기(姜碩期) 등은, 임금 자리에 즉위한 적도 없는 원종의 신주를 종묘에 들이는 것은 불경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 원종의 신주를 종묘에 들이면, 대신 다른 임금의 신주를 옮겨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조는 격노했다. 명 조정에서 이미 승인한 이상, 원종은 ‘선조(宣祖)의 아들’이 되었다며 종묘에 들이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신료들이 동의하지 않자 인조는 강석기 등의 관직을 삭탈하고 도성 밖으로 내쫓으라고 지시했다. 인조는 승지들이, 강석기 등을 쫓아내라는 자신의 명을 즉각 거행하지 않자 ‘승지 또한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며 격한 비난을 쏟아냈다. 인조는 원종의 부묘를 관철시키기 위해 ‘오버’하고 있었다. ●예조·삼사 “전례없고 불경한 일” 반발 사실 인조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자신의 생부를 추숭하고, 그의 신주를 종묘에 들이는 것은 인조반정 이후 11년 동안의 숙원 사업이었다.‘반정’이라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즉위했던 그로서는 왕권의 확립을 위해 절실한 사업이었다. 보다 못한 영의정 윤방(尹昉)이 한마디 거들었다.‘삼사의 논의는 곧 온 나라의 여론인데, 삼사 관원들을 쫓아내면 조정이 붕괴될 수도 있다.’며 반대하는 신료들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요청했다. 윤방의 완곡한 간언(諫言)에 대한 인조의 대답은 한껏 날이 서 있었다.‘옛말에 꼬리가 커지면 움직이기 어렵다고 했는데, 서인(西人)들이 오래 정권을 잡다보니 움직이기가 어렵게 되었다.’며 쏘아붙였다. 인조가 이렇게 서인들을 대놓고 비난한 것은 유례가 없었다. 그들은, 한낱 왕손(王孫)에 불과했던 자신을 지존(至尊)의 자리로 추대한 은인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인조는 자신이 왕이 되는데 서인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왕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된 것도 서인이라고 여겼다. 윤방에게 쏘아붙인 말은 ‘추대된 임금’으로서 인조가 지녔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인조의 ‘강공(强攻)’은 멈추지 않았다. 원종을 부묘하는 것에 반대하는 신료들을 변방으로 유배하라고 계속 지시했다. 인조반정의 원훈(元勳)인 김류(金 )마저 부묘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호위대장(護衛大將) 직에서 해임했다. 또 김류가 거느리고 있던 군관(軍官)들도 전부 빼앗아 다른 장수들의 휘하로 편제했다. 인조는 서인에 대한 견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정온(鄭蘊)을 도승지로, 이성구(李聖求)를 대사헌으로 삼았다. 정온은 광해군 시절 북인(北人) 출신으로 서인 반정공신들의 행태를 노골적으로 비난해 온 인물이었다. 이성구는 부묘에 대해 찬성하는 인물이었다. ●姜鶴年, 인조에게 직격탄을 날리다 부묘에 대한 인조의 집착은 정치판에 파란을 몰고 왔다.1634년 8월에는 성균관 유생들까지 나서서 인조를 비난했다. 전 군수 홍무적(洪茂績)은 상소를 통해 ‘전하의 독단 때문에 멸망의 조짐과 광해군 시절의 혼란이 닥쳐오고 있다.’고 성토했다. 인조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서인들이 자신의 당파만 감싸고 모든 잘못을 임금에게만 전가하여 백성들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반박했다.1634년 윤 8월, 인조는 결국 원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것을 관철시켰다. 인조는 자신의 왕통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지만, 후유증은 만만치 않았다. 부묘 논의 과정에서 반대하는 신료들과 감정의 골이 몹시 깊어졌다. 조야의 사대부들로부터 ‘공론을 무시하는 임금’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1634년 11월, 강학년(姜鶴年)은 인조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인조가 자신을 장령(掌令)으로 임명하자 서울로 올라오는 대신 상소를 올렸다. 그는 상소에서 인조의 실정(失政)을 조목조목 거론했다. 특히 광해군의 아들을 죽인 것, 숙부 인성군(仁城君)을 죽인 것, 생부 정원군을 추숭하여 부묘한 것 등을 통렬하게 비난했다. 그는 곧이어 ‘반정을 일으킨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반정 이후 전하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포악한 자가 포악한 자를 갈아치웠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통박했다. ‘포악한 자가 포악한 자를 갈아치웠다(以暴易暴).’라는 표현은 충격적이었다. 인조반정의 정당성, 나아가 인조정권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상소 내용이 알려진 직후, 조정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강학년을 죽이고 강화도에 있는 광해군까지 죽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타났다. 강학년의 발언은 충격적이었지만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을 보면 ‘발언’ 때문에 흥분할 여유가 없었다. 이미 가도를 무력화시킨 후금의 마수가 야금야금 조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선은 또 다른 ‘내우’에 휘말려 ‘외환’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기고] 부동산 투기 불씨 미연에 방지해야/김용희 서울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

    실용정부는 참여정부와 비교해 분배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부동산시장도 규제보다는 시장활성화로, 안정보다는 성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세제를 완화하고, 공급을 확대하고,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부동산정책도 수립되고 집행될 것이다. 다만 투기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약을 조절해 가면서 정책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부동산시장은 서울 강남권이 지고 강북권이 뜨는 원년이 되었다. 이는 강북권과 강남권의 형평성에 대한 요구와, 도촉법에 의한 뉴타운의 지정 등에 의한 도심재개발 영향에 기인한다고 하겠다.4차 뉴타운 후보지로 거론되는 강북지역과 U벨트로 지칭되는 용산과 뚝섬지역이 부상하면서 주변지역으로 파장이 전달되었다.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도심권 개발(동대문시장, 광화문, 청계천주변, 서울역 주변)은 모두 강북에 위치함으로써 향후에도 수도권의 중심은 강북 방향으로 계속 이동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에는 강남권 버블 7지역의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신 버블지역인 강북권과 경기 북부권의 주택가격이 상승하였다. 토지시장은 당분간 약세를 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토지시장은 외지인토지에 대한 양도세 중과, 실거래가에 의한 양도소득세 부과 등으로 지금은 매도, 매수 수요가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다. 그러나 토지시장은 본질적 특성상 장기적으로는 상승의 잠재성을 항상 지니고 있고,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투자성 혹은 투기성이 높은 지역이 나타날 수도 있다. 조세부분에 있어서는 장기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특별공제의 기간별 누진율 적용, 장기보유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의 대폭 감면(80%), 고가주택의 기준가격조정(9억원), 보유세의 완화, 취·등록세의 완화 등 현재 검토되거나 시행되고 있는 조세정책들은 부동산시장을 활성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지난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을 크게 나누어 보면, 토지공개념에 기초한 부동산 불로소득의 발생제어와 환수, 수요억제에 의한 가격안정, 국토와 수도권의 균형개발을 목표로 했다. 그 결과 참여정부 초기에 부동산가격상승이 나타난 후, 현재는 주택 및 토지시장 모두가 안정되었으며 강남·강북간의 가격불균형도 완화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의 정책이 자칫 온고지신이 되지 못하고 규제완화와 성장만을 추구하다가 다시 부동산 투기의 불씨를 살려 성장보다도 더욱 중요한 정책목표인 ‘형평성과 기회균등’을 잃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1가구 1주택인 경우에도 불로소득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확인해 온 반사회적 투기이득의 폐단과 이를 통해 정립되었던 부동산공개념의 정당성에 예외와 사면권을 부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시장의 잠재적 투기자들에게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투기의 기회를 제공해서 ‘실용(實用)’의 의미를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용기를 잃게 하는 것(失勇)’이 되게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정부 주요 보직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공직자들의 부동산투기 문제는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 어려운 단골메뉴다. 따라서 부동산정책은 시장의 안정이 우선적 목표이어야 하며 또 이러한 명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정부는 없었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근절에 어느 정부도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유가나 곡류, 원자재가격의 급격한 상승, 달러환율의 불안정 등은 차후 부동산 시장에 불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주요한 요인들이다. 불씨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보를 화재로 잃은 후에야 경험한 바와 같이 후회는 항상 지난 일에 대해서만 한다. 김용희 서울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
  • 무소속 태풍 온다

    한나라당이 14일 18대 총선 영남권 ‘대학살’ 공천의 후폭풍에 휩싸였다. 김무성 최고위원이 이날 청와대의 공천 개입설을 주장하며 탈당을 선언하는 등 친박(親朴·친 박근혜) 진영을 중심으로 공천 불복 움직임이 집단화하는 양상이다. 친이(親李·친 이명박)측 의원들과 공천심사위원회측은 ‘개혁 공천’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공천 탈락 의원들의 무소속 연대가 현실화할 경우 한달도 안 남은 선거 구도가 난기류에 빠져들 전망이다. 더욱이 공천 갈등의 ‘키’를 쥐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이날 영남권 공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밝힘에 따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공천은 분명히 잘못된 공천이다. 사적 감정을 갖고 표적 공천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이정현 공보특보가 전했다. 친박 진영의 좌장격인 김무성 최고위원은 기자회견에서 “이재오·이방호가 공천 개혁을 빙자해 박근혜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실명을 거론하며 친이 핵심들을 비난한 뒤 “이번 공천은 청와대 기획, 밀지 공천”이라고 했다. 이어 “선거에서 이기고 돌아와 한나라당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당으로 다시 만들겠다.”고 무소속 출마를 시사했다. 김 최고위원을 비롯해 김재원·박종근·이해봉 의원 등 탈락한 친박 의원 10여명은 이날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서청원 전 대표 주재로 오찬 회동을 갖고 향후 행보를 논의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 저녁 공천 탈락 의원들과 만나 “기준도 없는 그런 공천에 억울함을 당한 여러분을 보니 내 가슴이 찢어진다.”면서 “다들 성공하시길 바란다.”며 사실상 이들의 탈당 및 무소속 출마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친박계의 반발에 대해 안강민 공천심사위원장은 “그쪽(친박)만 탈락한 게 아니라 이쪽(친이)도 많이 탈락했다. 양쪽이 탈락한 숫자가 비슷한 것 같은데 꼭 그렇게 나올 필요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청와대 개입 주장은 얼토당토않은 얘기로 황당하다.”고 일축했다. 이런 가운데 권철현·이성권 의원 등 친이 탈락 의원들도 잇따라 재심을 청구하며 반발했다. 한편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정몽준 의원이 민주당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출마하기로 한 서울 동작을에 경쟁상대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위원회의는 이날 공심위가 공천한 후보자 중 8명에 대해 인준을 보류했다. 보류 지역은 ▲인천 중동·옹진(박상은) ▲인천 서·강화(이학재) ▲강원 태백·영월(김택기) ▲청주 흥덕갑(김병일) ▲천안갑(윤종남) ▲천안을(김호연) ▲광명갑(정재학) ▲은평갑(안병용) 등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오늘의 눈] 불필요한 오해 산 KAIST/박건형 미래생활부 기자

    [오늘의 눈] 불필요한 오해 산 KAIST/박건형 미래생활부 기자

    최근 대학가의 화두는 단연 KAIST의 개혁이다.100% 영어강의 및 수업료 징수, 교수 재임용 강화 등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는 서남표 총장을 지켜보다 보면 다음 개혁에 대한 기대감까지 생긴다.KAIST는 13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김태국 교수 논문 조작사건’에 대한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장관 후보 검증에서 보듯 ‘논문’은 한국 대학의 대표적인 취약부분이다. 이 때문에 재빠르게 조치를 취한 KAIST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과학계에서 이 사건에 대한 KAIST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KAIST가 특허소송을 앞두고 언론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논문에서 제시한 ‘매직기술’은 세포노화를 억제할 수 있는 ‘불로약’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이다. 문제는 이 기술의 특허권이 김 교수와 공동연구를 진행한 바이오벤처 CGK에 있다는 점이다.KAIST는 지난해 3월 CGK를 상대로 특허권 반환소송을 냈고,5월에는 CGK가 KAIST에 10억원 규모의 ‘연구용역 불성실 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논문조작 사건이 아니라 신약이 개발됐을 때 생길 수 있는 막대한 돈을 둘러싼 ‘머니게임’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다. 4월 초 특허공판을 앞둔 시점에서 KAIST는 1년가량 걸리는 논문조작 조사를 이례적으로 2주 사이에 두 차례나 중간발표 형태로 언론에 공개했다. 확실한 결론도 없이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느낌이다. 마치 언론이 KAIST의 정당성을 변호해 주기를 바라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에서 KAIST의 패소를 점치고 있다. 특허권 이전 계약서가 존재하고, 김 교수의 아이디어가 KAIST내에서 수립됐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KAIST가 특허소송에 휘말리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것은 피해야 한다.‘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도 매지 말라.’고 했다. 애써 일궈놓은 개혁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신중한 대처가 필요하다. 박건형 미래생활부 기자 kitsch@seoul.co.kr
  • [열린세상] 무능이 나을까,부패가 나을까/이해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열린세상] 무능이 나을까,부패가 나을까/이해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무능과 부패,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무엇이 나을까. 노무현 정권 시절 특히 대통령선거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항간에는 이런 담론이 떠돌았다.‘무능보다 부패가 낫다’! 도덕성을 앞세워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권에 대해 갖은 흠집 내기를 즐기던 일부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양산한 담론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국민 다수의 피부에 전혀 다가오지 않는 거시경제 지표를 내세워 ‘지표는 좋다.’고 둘러댔지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민초들의 좌절감은 극심한 것이었다. 사실 얼마 전 참여정부 들어 더욱 심각해진 사회 양극화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소득보다는 자산의 불평등에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바로 이 자산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원인 가운데 으뜸은 단연 부동산이다. 연구에 따르면 1999년에 부동산이 자산 불평등도에 기여한 비율이 74%인 데 비해,2006년에는 93%로 급격히 높아졌다. 그래서 부동산정책의 실패는 민생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생각은 전사회적으로 퍼져 나갔고, 또 이명박정부의 집권에 유리한 사회심리적 환경을 조성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 무능보다 부패가 나을까. 이명박정부의 초대 내각 후보자들을 놓고 잠시나마 온나라가 떠들썩했다.‘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이라는 신조어에 이어,‘강부자(강남 땅부자)’,‘1억달러 내각’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급기야 세명의 장관후보가 낙마한다. 그 중 누구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다.’ 하였고, 또 어떤 누구는 진단 결과 암이 아니라서 남편이 오피스텔을 사주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누구는 부부교수 25년에 재산 30억이면 양반이라고도 말했다. 경제부처 장관 후보는 골프회원권이 2개씩이나 된다고 질타하자 ‘싸구려’ 회원권이라고 맞받았고, 어떤 이는 저서에서 ‘IMF는 축복’이라고 설파하였다. 참으로 새정부는 그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만을 위한 정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일까.‘부자가 천당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이명박정부에서는 가난한 자가 장관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해야겠다. 이 나라가 적빈의 지경에 있는 것도 아닌 터에, 모든 부를 ‘도둑질’로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그 부의 축적 과정에 투명성과 정당성의 엄정한 잣대를 여지없이 들이대고 있다. 실패한 부동산정책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일시 ‘차라리 좀 부패는 했지만 유능한 통치자’가 낫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낙마한 장관후보에 대한 전국민의 공분으로 볼 때, 국민의 절대 다수는 결코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은 단지 후보자들이 돈이 많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새 정부의 신임 각료후보들이 각종 의혹의 해명과정에서 보여준 안이하기 짝이 없는 사회인식에서 아무 희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특히 그 부의 대부분이 바로 부동산이라는 점, 그 부동산이 이 나라 사회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에서 새 내각과 국민 다수 사이에 넘지 못할 벽을 보았기 때문일 게다.‘섬김’을 내건 정부에서 과연 누가 누구를 섬겨야 할 것인가. 흔히 좌파는 분열해서 망하고, 우파는 부패해서 망한다고 했다. 일단 분열한 좌파는 이번 대선에서 망했다 치자. 그러면 이제는 부패한 우파의 차례인가. 과연 언제쯤 우리는 무능과 부패 사이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이해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채권은행이 회생에 동의 안해줄까 걱정

    Q개인재산을 털어 15억원을 회사에 넣고 공장부지와 시설도 H은행에 담보로 제공해 설비와 재고 투자를 했는데 주요 거래처가 어음 11억원을 부도 냈습니다. 운영자금 결손 때문에 주거래은행에 찾아가니 대출을 거절하고 오히려 신용변동을 이유로 원금 상환을 요구합니다. 비 오는 날 우산 빼앗아가기 식입니다. 공급자들도 외상 대금 결제를 독촉합니다. 기업회생을 신청할 생각이지만, 주거래은행은 담보를 실행하면 채권을 거의 회수하는 데 동의할 이유가 없을 것 같고 벌써 난리를 치는 상거래 채권자들도 걱정입니다. -윤형주(가명·47세)- A회생제도는 청산에 대신해 기존의 권리를 변경, 기업을 재조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변제계획에 관해 채권자의 조별로 담보 채권자의 4분의3, 일반 채권자의 3분의2의 찬성에 의한 가결이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지금도 채권자들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인이 주눅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채권자가 앞으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쉽게 포기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채권자들에게 이익이 가는 방향으로 계획을 짠다면 채권자들이 공익에 반하여 전략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한 동의를 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법률형식을 떠나 경제적 실질을 보면, 기업의 계속으로 인한 이익은 채권단에 일차적으로 귀속되기에, 기업회생제도는 채무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채권자들의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기업 위험을 누가 부담하느냐, 즉 기업의 실질적 주인이 누구냐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기업의 자원을 가지고 있는 기업주의 몫은 줄어들게 되고 채권자들의 몫이 늘어나며 이것이 진행돼 채무초과 상태가 되면 기업활동으로 기업주가 챙길 수 있는 몫은 없어집니다. 기업주는 기업이 망하더라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지게 되며 손실을 볼 위험은 오로지 채권자들에게 있습니다. 즉, 주인이 채권자들입니다. 기업회생제도는 이같은 경제적 지위의 변화를 감안해 채무축소와 출자전환 등 기술적 방법으로 자본과 부채 구조를 새로 정하고 필요하면 신규자본을 유치하여 계속 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편익은 위험을 진 실질적 소유자, 즉 채권자에게 미치기에 이들의 가치를 유지·증진하기 위한 방향으로 작성된 회생계획에 동의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것은 실무에 의하여 충분히 입증됩니다. 담보 채권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담보가치의 유지는 기업활동을 계속할 것인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은행이 담보로 잡는 제조업 설비는 조업의 계속에 의하여 기계성능이 유지되고, 가동하지 않더라도 고철덩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예열을 필요로 합니다. 극단적인 예는 한번 불이 꺼지면 막대한 철거비용이 발생하는 용광로입니다. 아무리 고집스러운 은행이라도 경영진과 기술자가 해외로 떠나면서 방치한 기계를 인수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영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물이나 토지는 민사법상의 방법으로 경매되면 50% 이하에 낙찰되기도 하며, 그 손실은 담보권자에게 전적으로 미치게 됩니다. 이것은 담보권자가 회생계획에 동의하는 유인이 될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은행에서 직원을 파견하여 공장을 가동하고 직접 돈을 세고 관리하는 상황을 설명합니다. 상거래 채권을 즉시 지급하지 않으면 이들이 앞으로 공급을 거부하여 기업의 회생에 장애를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도 기우입니다. 앞으로의 거래 중단은 기업이 아니고 공급자들이 걱정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기업은 계속 조업을 하게 될 것이고 여전히 그 공정에 투입할 원재료를 수요하게 됩니다. 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에 대해 적의를 보이고 협력하지 않으면 기업주는 그 공급자를 거래처 목록에서 빼버릴 것입니다. 앞으로 재조직되면 안정적으로 결제를 해줄 수 있는 고객을 잃게 되는 것은 합리적인 상인이라면 피하고 싶은 악몽입니다. 이들은 협력합니다.
  • 박지원·김홍업씨등 11명 공천탈락

    통합민주당이 오는 4·9총선에서 금고 이상의 형 확정자 전원을 공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5일 결정했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전 대통령측 박지원(전남 목포) 비서실장과 김홍업(전남 무안·신안) 의원, 신계륜(서울 성북을) 사무총장 등 11명이 공천에서 배제되게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충남 논산·계룡·금산)씨와 이용희(충북 보은·옥천·영동)국회부의장, 신건(전주 덕진 비공개 신청) 전 국정원장, 이상수(서울 중랑갑) 전 노동부 장관, 이호웅(인천 남동을)·김민석(서울 영등포을)·설훈(서울 도봉을)·이정일(전남 해남·진도·완도) 전 의원 등도 포함돼 있다. 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이날 서울 당산동 당사에서 공심위 전체회의를 열고 “뇌물죄, 알선수재, 공금횡령, 정치자금, 파렴치범, 개인비리, 기타 모든 형사범을 포함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는 공천 심사에서 제외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심위는 회의에서 공천배제 기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7명, 반대 4명, 기권 1명으로 최종 의결했다. 당 지도부는 이날 저녁 국회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공심위가 의결 정족수인 과반의 찬성으로 공천 부적격자 기준을 확정한 터라 공심위의 결정을 번복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우상호 대변인은 최고위가 끝난 뒤 “공심위의 고민은 이해하지만 최고위의 ‘선별 구제’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면서 “선의의 피해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당과 공심위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는 원칙적인 입장만 내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공심위가 재심을 실시할 때 의결 정족수가 ‘재석자 2분의1 출석, 참석자 2분의1 찬성’이라 사실상 공심위의 결정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공심위원 12명 중 박재승 위원장 등 외부 인사가 7명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심위는 공천 심사에 들어가 이르면 6일 오후에 1차 공천 확정지역을 발표할 예정이다. 일부 탈락 대상자들은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고려하고 있어 공천 후폭풍이 가시화될 조짐이다. 박 위원장은 앞서 이날 함세웅 신부·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사회 원로들과 오찬을 갖고 공천 난국을 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도 박 위원장은 ‘원칙론’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손학규 대표는 앞서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억울한 희생자가 생길 경우 공천의 정당성과 공정성에 흠이 갈 수 있다.”며 “여론몰이에 휩쓸려 선의의 피해자와 억울한 희생양이 없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구혜영 박창규기자 koohy@seoul.co.kr
  • [사설] 이재용씨 삼성특검 출두를 보는 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어제 삼성특검에 출두했다. 이 전무는 특검의 핵심수사 대상인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의 최대 수혜자다. 그는 지난 1995년 12월 이 회장으로부터 ‘종자돈’ 60억 8000만원을 받아 증여세로 16억원을 낸 뒤 44억 8000만원으로 지난해 주식평가액 기준으로 4900억원대로 부풀렸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 전무가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헐값으로 인수한 뒤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 된 과정이다. 지난해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전·현직 삼성에버랜드 사장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면서 CB 인수과정에서의 정당성에 하자가 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했다. 특검은 이 전무를 상대로 공모 여부를 집중 추궁한 것으로 관측된다. 또 e삼성 등 인터넷 벤처기업 14개를 총괄 운영했다가 부실화되자 삼성계열사에 떠넘겨 손실을 끼친 경위도 캐물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무는 특검에 출두하면서 “성실히 응하겠다.”고 했지만 혐의 인정보다는 해명과 부인에 주력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특검의 최대 수사시한이 아직 50일가량 남은 상황에서 수사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기회에 삼성은 그동안 제기됐던 모든 의혹을 깨끗이 털었으면 한다.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탈법이나 편법이 있었다면 솔직히 밝히고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든지, 거듭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 후의 문제다. 특검도 삼성이라는 거대 엔진이 다시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수사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삼성이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 [경제현장 읽기]민간업체 담배시장 진출 노크

    [경제현장 읽기]민간업체 담배시장 진출 노크

    담배산업을 규제하는 것이 국민건강을 위한 ‘필요악’인가 아니면 경쟁을 제한하는 ‘반(反)시장적’ 조치인가. 최근 민간업체들이 잇따라 담배시장 진출을 두드리면서 규제의 당위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새 담배제품을 내놓은 우리담배㈜에 이어 민간업체인 HKC㈜도 재경부에 제조업 허가신청을 냈다. 하지만 재경부는 자본금 이외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최종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담배산업 진출 러시? 17일 재경부와 업계에 따르면 민간업체인 HKC는 지난달 28일 자본금 300억원과 생산설비 투자계획을 마련, 재경부에 제조업 허가를 신청했다. 앞서 한국담배㈜는 2004년 인가 신청을 냈으나 자본금 부족으로 거부당했다. 조은담배㈜는 최근 재경부에 인가 요건을 문의하는 등 담배시장에 진출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자본금 300억원 이상 ▲연간 50억개비 이상의 생산시설 ▲5인 이상의 전문인력 ▲품질분석 실험설비 등의 요건을 갖춰야만 담배제조를 허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모든 요건을 갖춰야 하지만 이미 신제품을 내놓은 우리담배처럼 자본금 요건만 갖춰 ‘조건부 허가’를 받은 뒤 생산 설비를 늘린 전례도 있다. ●“담배규제는 정당한 공익” 지난달 11일 서울고법 특별5부는 한국담배가 “자본금 300억원 규정이 잘못됐다.”며 재경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군소 생산업체의 난립을 막아 흡연 증가를 억제하고 저질의 제품 생산을 예방할 목적으로 자본금 규정을 둔 것은 헌법상 추구할 수 있는 정당한 공익”이라고 판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담배규제협약(FCTC)에서 “불법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각국이 허가 제도를 포함, 담배제품의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거나 규제하는 ‘강화된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나아가 협약 가입국은 지금보다 규제를 완화하지 말 것을 권고, 담배산업 규제의 국제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중소 담배업체가 난립할 경우 가격 인하나 경품 제공 등 과당 경쟁으로 흡연율이 올라갈 소지가 있다.”면서 “실제 러시아를 표본으로 한 최근 연구에서도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한국담배와 HKC 등 민간업체들은 청소년에 대한 판매나 불법담배의 유통을 규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담배시장 진입을 자본금과 시설규모로 제한하는 것은 중소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해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규제는 사후관리 차원에서 이뤄져야지 사전적 규제는 세계적으로도 철폐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사전 규제 철폐는 세계적 추세” 앞서 한국담배의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담배사업법 시행령의 입법 목적은 정당하지만 자본금 규모만으로 담배산업을 규제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없을 뿐 아니라 외국 담배회사에 비해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의 결정도 엇갈리는 셈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원칙적으로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다만 생산 규제보다 소매인 지정 거리를 50m로 제한한 것을 풀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잎담배나 담배를 수출하는 미국이나 영국, 인도 등은 국제무대에서 “담배 제조와 판매는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고민하는 재경부, 인허가 절차 개선 재경부는 양쪽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국민 건강과 조세 수입의 측면을 강조한 고법의 판결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강조한 1심 판결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본다. 특히 새정부의 규제철폐 방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국제기구의 규정을 앞세워 내부적으로는 규제의 정당성에 기울어 있다. 그러면서도 현행 규제에 문제가 있다면 적극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조건부 허가를 먼저 내주면 나중에 투자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객관적이고 투명한 인허가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자본금 요건만 충족한 HKC의 인가 신청은 당분간 받아들여지지 않을 전망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열린세상] 로스쿨, 첫 단추 잘못 뀄다/정종섭 서울대 법학 교수

    [열린세상] 로스쿨, 첫 단추 잘못 뀄다/정종섭 서울대 법학 교수

    로스쿨 인가가 급기야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교육부장관이 사표를 던졌다. 예비인가를 받지 못한 대학의 교수들이 길거리 시위를 하고, 총장들이 사퇴를 하고, 탈락에 불복하여 소송으로 가고 있다. 100명도 안 되는 학생 정원을 가지고 무슨 국제 경쟁력이 있는 법학교육이냐 하는 것도 이제야 발견하고 있다. 그리고 설립인가를 충족하여 법학교육을 제공할 수 있음에도 납득할 수 없는 ‘심사기준’을 정하여 일정선 이하의 대학을 탈락시키는 방식이 편의적이고 정당성도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렇기에 탈락한 대학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하다. 이런 파국은 이미 예견되었고,‘무늬만 로스쿨’의 실패는 수없이 지적되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노무현 정부에서 이를 무슨 사법개혁인 양 떠벌리고 국회에서는 여당의 다수 힘만 믿고 한밤에 날치기로 해치운 결과이다. 전국의 로스쿨입학 총정원을 2000명으로 통제하고 로스쿨 설립을 준칙주의가 아닌 인가주의로 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이런 결과가 오는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임에도 마구 밀어붙인 것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탈락한 대학들을 무마하는 방편으로 총정원을 더 늘리거나 추가 인가의 방안을 찾고 있는데, 그렇게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법학교육개혁이 문제로 된 것은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통하여 법률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암기식 공부만으로 사법시험에만 합격하면 법률가가 되기 때문에, 이런 법률가가 판사·검사·변호사로서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제 경쟁력도 가질 수 없다고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정규 법학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들이 법률가가 되고, 양질의 교과과정으로 교육을 하자고 하여 찾아본 길이 미국식 법학교육이고, 법률가가 되는 길을 법학전공자만이 아니라, 타전공자에게도 열어 놓는 방식이 미국식 로스쿨이어서 이를 수입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처음에는 법률가 배출의 수 문제로 변질되어 싸우더니, 급기야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수단으로 동원되고, 로스쿨인가가 법률가자격을 주는 특혜사업으로 변질되면서 원래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진흙탕의 싸움판에서 괴물 같은 로스쿨이 등장했다.100명 이하의 로스쿨은 아예 법학교육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사법시험 합격률이 저조하면 입학생이 줄어들고 결국 문을 닫아야 하기에 교육은 뒷전이고 시험에만 더욱 매달려 교수는 학원강사화되고 법학교육은 지금보다 더 파행적인 것이 된다. 개악 중의 개악이다. 원래 법학교육개혁의 방향은 법과대학은 법학교육에 필요한 인적, 물적, 내용적 조건을 갖추어야 하고,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만 사법시험을 보게 하여 법률가 자격을 주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는 정상적인 법학교육의 기준을 정하여 이를 충족하는 로스쿨 졸업생만 법률가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이런 로스쿨을 가질 것인가는 대학이 스스로 결정하여 투자하는 것이다. 설립기준만 충족하면 어느 대학이든 아무 때나 로스쿨을 설립할 수 있는 것이다. 로스쿨 설치방법으로는 원칙적으로 4년제 법과대학과정으로 하고, 법학비전공자를 위하여 전국에 2∼3개의 단설대학원의 로스쿨을 설치하는 방법도 있고, 미국처럼 대학원에 설치하는 방법도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사회진출시기, 교육여건, 비용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면 된다. 현재의 사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데서 발생한 것이기에 땜질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시간을 충분히 갖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는 일이 필요하다. 단, 현 정부는 이를 다룰 능력도 시간도 없으므로 차기정부에서 차근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 정종섭 서울대 법학 교수
  • [사설] 국민참여재판 보완 필요하다

    국민참여재판이 일단 성공적인 모습으로 출발했다. 그제 대구지법에서는 일반국민들이 형사재판에 처음으로 배심원으로 참여해 유무죄와 양형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고, 재판부가 이를 수용했다. 일부 절차적 문제점을 보완하면 국민참여재판제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성을 높여 국민들의 사법불신을 없애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첫 배심제 재판의 성과는 국민 참여율이었다. 그동안 모의재판에서 배심원 후보 가운데 10% 남짓 법정에 출석했으나 이번에 37%로 참석률이 올랐다. 앞으로 출석률이 더 높아질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하고, 국민 스스로 적극적인 참여의지를 다져야 한다. 국민참여재판제가 사회적인 약자를 배려함으로써 인간적인 법정의 모습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음도 보여줬다.‘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로 압축되는 사법 불신을 해소하고, 전관예우를 없애는 장치로 작동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재판부는 배심원들에게 법률용어를 쉽게 풀어주려 애썼다. 하지만 법률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여전히 어려운 용어들이 많았다. 차제에 법률용어 전반을 쉽게 바꾸는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정 구조도 배심원들이 편안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야 한다. 지금의 제도는 과도기적이다. 미국의 배심제와 독일의 참심제를 절충, 실험적인 제도를 도입한 만큼 시행과정에서 보완해도 흠될 게 없다. 검사와 변호사는 감성 호소보다는 증거 중심으로 재판을 이끄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또 배심원 의견이 권고적 효력을 가졌음에도, 양형까지 재판부가 전폭 수용하는 전통이 만들어진다면 그에 따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일반국민의 법감정과 함께 전문법률 영역의 냉철한 판단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한국형 배심제’의 옳은 길을 빠른 시일안에 찾아내 정착시키는 데 모두 협력해야 할 것이다.
  • 북한산 아니죠~ 삼각산 맞습니다

    강북구가 ‘삼각산 제이름 찾기’를 위한 인터넷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11일 강북구에 따르면 과거 일제가 무단으로 개명한 ‘북한산’의 원래 이름인 ‘삼각산’을 되찾기 위한 서명을 구청 홈페이지에서 접수한다. 홈페이지 초기화면 오른쪽의 ‘삼각산 제이름 찾기’를 클릭하면 서명란에서 간편하게 날인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는 삼각산의 유래와 역사, 여행과 등반 코스, 사계절 영상 등도 소개하고 있다.2003년부터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명칭 복원운동의 전개 과정 등도 열람할 수 있다. 삼각산은 예부터 백운봉·인수봉·만경봉의 세 봉우리에서 유래한 이름. 하지만 일제가 1915년 나라의 기운을 차단할 목적으로 북한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뒤, 우리 정부도 이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강북구는 2004년 서울시 지명위원회에 명칭복원을 요청하고, 지금까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지역의 19개 산악회원 1000여명이 ‘삼각산 알리미 홍보단’을 구성하고 전국의 산을 돌면서 홍보하고 있다. 수차례에 걸쳐 학술연구회와 심포지엄 등을 개최하고, 명칭 복원의 정당성을 알리고 있다. 강북구는 올해 인터넷 서명운동을 토대로 서울시 지명위를 거쳐 건설교통부 중앙지명위원회에 명칭 변경을 정식으로 요청하기로 했다. 김현풍 구청장은 “지명이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이름”이라면서 “삼각산 제이름 찾기는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는 숭고한 작업”이라고 말했다.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이명박-대처정부 닮은점… 다른점…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대처리즘’(1979년부터 90년까지 집권한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신자유주의 통치철학)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이명박 당선=한국판 대처리즘의 승리’란 분석이 속속 나오면서, 바다 건너온 대처리즘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동안 한국 땅에서 풍미할 듯하다. 때마침 대처리즘의 성공요인을 조망한 ‘대처리즘의 문화정치’(스튜어트 홀 지음, 임영호 옮김, 한나래 펴냄)가 번역돼 나왔다.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은 70년대 말 대처가 노동당 정권을 누르고 집권에 성공한 뒤 11년 동안 정권을 연장할 수 있었던 까닭을 ‘문화정치’란 맥락에서 분석했다. 홀이 보기에 보수당 승리의 핵심 요인은 ‘대중의 인식 흐름 장악’이었다. 홀은 “대처리즘의 목적은 ‘이 시대의 상식’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책 및 후보에 대한 지지와는 다른 차원의 정권창출 동력이 존재한다는 뜻이다.‘공공부문은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이다.’,‘민간부문은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라는 인식을 ‘상식’으로 만들어낸 것이 무엇보다 선거 승리에 결정적이었다고 홀은 지적한다. 이명박 당선인이 자신의 핵심 구호 ‘경제를 살리자!’를 강력한 시대정신으로 부각시켜 생활고에 시달리는 한국 유권자들의 뇌리를 파고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과적으로 대처리즘이 만들어낸 상식은 현 한국사회에서도 상식이 된 셈이다. 홀의 분석에 따라 대처리즘과 이명박 당선인의 정책, 당시 영국과 지금 한국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우선 국민의정부-참여정부로 계승되는 한국의 여권과 영국 노동당 정권의 실각 배경의 유사함을 꼽을 수 있다. 경제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영국에선 사회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사회복지 정책과 고교 평준화 등에 대한 환멸이 일었고, 과거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실패한 현 정권에 한국 유권자들도 등을 돌렸다. 대부처로의 개편, 공무원 축소, 공기업 민영화, 규제완화, 세율인하 및 경쟁력 우선의 교육정책 등은 대처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공통의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차이점도 있다. 대처리즘의 또 다른 특징인 ‘개입주의’는 철저한 시장주의를 전제로 전통적 가치, 애국심, 도덕심 등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적 개입의 형태로 나타났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개입주의는 시장주의 정책 그 자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친시장 정책’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개입이 있어야만 가능한 ‘친기업 정책’이 우선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번역한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홀의 분석은 보수든 진보든 대중이 필요로 하는 갈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사회 혁신은 물론 스스로의 혁신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이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 또한 명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다보스 포럼 폐막 무엇을 남겼나

    |파리 이종수특파원|‘세계화 목소리는 낮아지고 불확실성 확대속에 공생 강조’ 27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올해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동안 다보스 포럼은 ‘세계화 전도사들의 집결체’라고 불릴 정도로 참석자들이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을 강조해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올해에는 유달리 ‘함께하는 세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함께하는 경제’ 목소리 부각 변화의 바탕에는 세계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그 만큼 분위기를 지배한 것은 세계경제의 불확실함이었다. 올해 공식 주제는 ‘협력적 혁신의 힘’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인한 세계경제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논의의 중심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옮겨졌다. 지구촌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는 ‘공존의 강조’로 이어졌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지구촌 빈민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창조적 자본주의’를 내세워 전 세계기업들이 각국 정부 및 비영리단체들과 협력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창조적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일부 참석자들은 그 동안 다보스 포럼의 일관된 입장이었던 세계화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스칼 레미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은 “올해는 보호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으면서 자유무역의 이념을 수정해야 하는 중요한 해”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이 주도해온 세계화에 대한 정당성이 논리적 설득력을 잃어가면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처방에 논란과 의구심 확산 포럼 시작 전날인 2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방기금금리와 재할인율을 각각 0.75%포인트 낮추자 참석자들 사이에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포럼의 여러 세션에서 인플레를 억제해 물가를 안정시키는 게 바람직한지 아니면 본격적인 경제 침체가 오기전에 대폭적인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에 무게를 실을 것인지 등을 놓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주된 분위기는 미국 FRB의 조치가 달러화의 약세를 부추겨 유가·원자재의 가격을 더 상승시켜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인플레를 초래할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우세했다. 세계적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를 비롯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 재무장관을 지냈던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 등은 “FRB를 비롯한 세계의 중앙은행들의 통제력 상실을 드러낸 사건이자 또 다른 버블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와 동시에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 여부도 주목을 받았다. 이에 장클로드 트리셰 ECB총재는 금리 인하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 대신 “물가 안정성과 금융 안정성 사이에 모순은 없다.”고 말해 경기 부양보다는 인플레 억제에 비중을 둘 것임을 밝혔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희박함을 시사한 셈이다. ●파트너십 구축도 모색 한편 이번 포럼에서도 지구촌 공동 화두인 기후변화, 에너지, 물 부족 등에 대한 강조는 이어졌다. 지난해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설파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올해엔 ‘물 부족’을 강조했다. 반 총장은 수단 다르푸르를 비롯해 아프리카·아시아의 유혈분쟁이 물 부족 사태와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 물부족 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지구촌이 공동으로 안고있는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정치권-기업-시민단체 등의 공동 파트너십을 구축하자고 주장했다. 또 그는 유엔과 국제통화기금 등의 국제기구들이 현안에 대처할 수 있도록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vielee@seoul.co.kr
  • [단독]“참여정부 성공한 정치 실험이라더니…”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한 달을 남겨두고 친노세력들과 연쇄 회동을 가진 것으로 확인돼 향후 진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에서 자신의 ‘정치적 전위부대’로 꼽히는 참여정부 평가포럼 회원들과 만났다. 노 대통령은 회동에서 참여정부 정책의 정당성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에 대한 평가, 퇴임 이후 구상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앞서 지난 13일과 19∼20일에는 노사모 회원들과,23∼24일에는 청와대 전·현직 직원들과 잇따라 만남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참평포럼과의 회동에서 다른 ‘정치적 동반자’들을 만났을 때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지난 5년을 돌아봤다고 한다. 회동 대상의 성격이 이를 방증한다. 참평포럼 자체가 참여정부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안희정씨 등 이날 참석자 면면만 봐도 노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라는 것이 전체 목표 속에서 봐야지 정권 중심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특히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를 의식한 듯 “처음엔 참여정부의 개혁을 성공한 정치실험이라고 하더니 나중엔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라고 말해 암담했다.”면서도 “그러나 진보는 작은 성과가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나는) 제도를 만들며 역사의 기틀을 세웠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참여정부 들어 사회복지 예산이 경제부처 예산을 넘어섰는데 이는 기획예산처가 독립돼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부처가 통합되면 경제논리에 좌우될 수밖에 없고 복지사회로 나가는 데 어려움이 많아질 것”이라며 걱정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아울러 “그동안 참여정부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평가포럼을 만들어 내게 힘을 보태주고 참여정부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올바르게 잡아줘서 고맙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자만이 이길 수 있다. 이 길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진 않다.”면서 “앞으로 진영에 내려가서도 여러분과 계속 소통하고 싶다.”며 퇴임 이후 ‘정치적 거점’인 봉하마을에서의 활동 계획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노 대통령은 지난 24일 청와대 홈커밍데이 행사에서 “내가 봉하마을을 선택한 것은 균형발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정치적으로)거절한 지역이라서다.”라고 알려졌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은행 대출금 회수에 자금난 심각

    Q20년 이상 제조업에 종사하며 은행과 거래해 왔는데, 최근 주거래은행이 이자율을 1%포인트 올리고 원금도 매년 20% 상환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치열한 국제경쟁과 내수 부족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신규로 자금을 조달할 신용이 부족한 지금 은행의 요구에 응하자면 운영자금에 결손이 생기고 임금과 세금을 결제하지 못해 사채를 끌어댈 판입니다. 반면 은행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회사는 더 이상 구매자금을 조달할 길이 없으니 진퇴양난입니다. -박수복(가명·57) A상업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금융기관이 불황기에 한계기업의 신용 상태에 의문을 가지게 될 때 자금을 회수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미리 이자의 형태로 원금을 회수하거나 원금 손실에 대한 보험을 들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원금 전액 상환을 하지 않으면 이자율을 대폭 올린다는 식으로 과도한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사례도 종종 눈에 띕니다. 문제는 은행의 자금 회수 조치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기업의 자금 사정을 더욱 나쁘게 해 다른 채권자도 경쟁적으로 채권을 회수하게 되고, 새로운 자금조달처는 위기를 틈타 기업을 통째로 짜먹는 약탈적인 대금업자밖에 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고리 사채를 쓰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기업이 파탄에 이르는 길이 됩니다. 월 2∼3%의 사채 이자를 내면서 수익을 낼 정도의 폭리를 취하는 기업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기업인이 겪는 이러한 애로를 정치인과 금융감독 당국이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경제규모가 커지고 국제금융시장에 통합된 지금 정부가 금융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이고 스캔들과 경제위기를 경험한 국민이 더 이상 관치금융으로 회귀하는 것에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신문고 울리듯이 기업인이 금융기관에 대한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것이지요. 그렇다고 기업이 당하고만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해결책은 불황기에 기업의 주인이 누가 되는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소유권이라는 형식으로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지배해 생산활동을 조직화하는 권능은, 기업의 위험을 부담하는 것을 근거로 인정됩니다. 보통은 기업의 주인 또는 주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채가 증대함에 따라 기업의 자산을 차지하는 주주, 즉 기업 주인의 몫은 줄어들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일반채권, 심하면 담보채권도 손상을 입게 돼 있습니다. 위험을 부담하는 사람을 기업의 주인이라고 한다면 채권자가 주인이고, 기업주는 채권자를 위해 기업을 지켜 주는 종업원의 처지가 됩니다. 흔히 기업이 어려워질 때 은행에서 경비원이나 관리직원을 파견하는 것은 위험이 은행쪽으로 이전해 은행이 기업의 실질적 소유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의 운명을 실질적 이해관계인인 채권단의 처분에 맡기는 제도는 정당성이 있는 것이며, 기업인이 기업을 존속시키려고 혼자서 애를 쓰면서 희망 없는 투쟁을 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채권단이 영업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기업인은 실질적 주인의 이익을 지켜 주면서 재기를 도모할 수 있고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기업소유권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용규모 500억원 이상인 기업은 2007년 8월 제정돼 2010년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의 직접 개입 없이 채권금융기관의 자주적인 노력에 의해 채권행사의 유예, 주채권은행과 채권단의 기업 관리, 채권재조정, 우선순위 보장에 의한 새로운 운영자금의 신규 대여와 같은 조치로 기업가치를 유지, 개선해 채권단의 이익을 지키고 기업을 존속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물론 여신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기업이나 글로벌화해서 국내 금융기관의 노력만으로는 채권단의 통일행동을 이룰 수 없는 거대기업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따를 수 없고 법원의 감독 아래 원칙적으로 기업주 자신이 채권자를 위해 기업재산을 관리하는 방식의 일반적인 회생절차에 따르게 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