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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대한 프랑스」의 오만/박정현 파리 특파원(오늘의 눈)

    위대함은 오만함을 의미하는가.「위대한 프랑스」를 내세운 프랑스의 대내외정책을 보면서 가지는 의문이다. 한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의 죽음을 놓고 프랑스사회는 논란이 한창이다.폭탄테러의 용의자인 켈칼의 사살이 과연 정당방위였느냐는 점이다. 켈칼은 총기로 무장은 했지만 저항도 못하고 숨졌다.그런데 문제는 당시 현장 근접에서 취재하던 한 방송기자의 카메라에 『죽여버려』라는 경찰의 외침이 두번씩이나 잡힌 데서 비롯된다. 첫사격으로 다리에 총알을 맞고 저항하지 못하는데도 경찰은 집중난사를 가했다는 정황은 쉽게 집작이 간다.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경찰권의 과잉행사」라고 비난하고 나섰고 프랑스정부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당방위 여부는 진행중인 검찰수사로 밝혀질 수도 있다.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용의자로 지목되던 켈칼의 죽음으로 프랑스의 연속폭탄테러사건 배후도 묻히게 됐다는 데 있다.위수령발동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지 못한 프랑스는 그를 죽임으로써 범인으로 몰아세우고 모든 테러사건을 덮어씌우려했다는 지적도 있다. 공항이나 개선문 등지에는 무장군인이 순찰을 돈다.국익우선의 신드골주의정책으로 프랑스의 외국인 혐오를 아는 사람은 이런 무장군인의 시위가 기분 좋을 리 없다. 궁극적으로는 「외국인은 떠나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특히 프랑스에서 3개월이상 살기 위해 체류증발급문제로 골치를 썩어본 사람이면 이런 느낌은 더하다. 사실 프랑스는 범인을 잡는다는 잿밥보다도 외국인에 대한 위협적인 시위로 외국인은 떠나라는 효과를 노린다는 인상이 강하다. 프랑스는 국제사회의 강한 반발에도 눈 깜짝하지 않고 두번이나 핵실험을 강행했다.프랑스상품 불매운동에도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북한 핵문제가 논의됐을 때 가장 강경하던 나라가 프랑스다.「남은 안되고 나는 된다」는 철저한 강대국논리다.그것은 강대국의 오만처럼 보인다. 국제사회는 이 때문에 「위대한 프랑스」를 내세우는 오늘의 프랑스를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다.프랑스는 국익우선의 강대국논리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 공동의 이익을 위한 국제적 윤리에도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 부산 정치파동(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5)

    ◎우남,「대통령 직선」 시도… 야서 강력 반대/계엄 선포·민의 조작… 발췌개헌안 통과 1952년 초 한국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유엔군과 공산군이 51년 11월 판문점 휴전회담에서 양쪽의 접촉선을 일단 군사분계선으로 인정키로 합의한 뒤 큰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1월 초 서부전선인 문산 북쪽 두매리고지와 중동부전선의 크리스마스고지에서 충돌이 있었을 뿐 양쪽의 작전은 수색·정찰,간헐적인 포격전 등 일상적인 군사활동에 그쳤다.이 군사분계선은 거의 변하지 않은 채 휴전까지 이어져 지금의 휴전선으로 고정됐다.한편으론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정전회담이 거듭 열려 휴전과 포로교환 문제를 논의했다. 이때쯤 후방은 전쟁의 공포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안정을 되찾아갔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1월19일에는 제32회 전국체전 동계대회가 수원에서 열리기도 했다.그러나 백성의 생활은 극도로 어려웠다.월남 동포 1백20만∼1백50만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모두 7백만명가량의 피란민이 발생했고 이들이 대부분 도시로 몰리는 바람에 생필품은 매우부족했다.대한민국 임시수도 부산의 경우 전쟁전 43만명이었던 인구가 1백50여만명으로 늘어났다.52년 초 물가는 「6·25」전보다 13배나 뛰어올라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에서는 헌정사에 큰 오점을 남긴 「부산정치파동」이 서서히 싹터갔다.부산정치파동은 1952년 5월25일 계엄령선포에서 7월7일 제1차 헌법개정,이른바 발췌개헌 공포에 이르기까지 부산에서 벌어진 일련의 정치사건들을 말한다.그 발단은 51년 11월 이승만 대통령의 의도에 따라 정부가 발의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에서 비롯됐다. ○첫 표결 압도적 부결 이승만은 개헌발의에 앞서 자유당을 창당,이를 발판으로 국회에서 개헌안을 통과시키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자유당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반대하는 원내세력과 지지하는 원외세력으로 갈라져 결국 창당 한달여만에 원내자유당과 원외자유당으로 분리됐다.이런 가운데 헌법개정안은 해를 넘겨 1월18일 국회 표결에 부쳐졌는데 찬성 16,반대 1백43,기권 1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이승만은 자신을 반대하는 국회에더이상 미련을 두지 않는 대신 충성을 다하는 경찰력을 이용,민의를 동원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이때부터 원외자유당 주도로 「개헌안 부결반대 민중대회」가 열리는가 하면 헌법규정에도 없는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벌이는 등 갖은 수법을 동원해 국회에 압력을 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이승만에게 유리하게 전개됐다.먼저 4월25일 실시한 읍·면의원선거와 5월10일의 도의원선거 등 첫 지방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원외자유당이 압승을 거두었다.이승만은 지방의회와 원외자유당을 양대 축으로 삼아 직선제개헌안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내각책임제 개헌에 앞장서던 서민호 의원이 4월24일 육군대위 서창선을 저격한 사건도 반이승만파에게 큰 타격을 입히는 계기가 됐다.서의원은 지방의회선거 감시차 전남 순천에 갔다 숙소에서 술취한 서대위와 시비가 벌어졌다.서대위가 먼저 권총 6발을 쏜 뒤 서의원이 응사했지만,서의원은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국회는 서의원의 살인이 정당방위인데도 그를 구속한 것은 내각책임제 개헌을 방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서의원 석방결의안을 의결했다. ○대낮 야 의원에 테러 서의원이 5월19일 석방되자 부산 거리에는 이를 항의한다는 구실로 조작된 민의가 활개를 쳤다.민족자결단·백골단·땃벌떼 등 정체모를 집단들이 때를 만난듯 거리를 누비며 대낮에 야당의원들에게 공공연하게 테러를 가했다.이들은 또 「살인 국회의원 석방한 국회는 해산하라」며 정부·국회·대법원 청사를 습격하기도 했다.피란수도 부산시내에는 공포 분위기가 확산됐다.때맞춰 이승만지지파가 주를 이룬 7개 도의회가 국회해산 요구를 결의했고,지방의회 대표는 반민의국회 해산궐기대회를 열었다. 정부의 공세는 5월25일 0시를 기해 부산·경남북과 전남북 일부 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공비소탕을 내세운 계엄을 악용,야당의원을 철저히 탄압한 것이다.계엄당국의 언론 검열이 시작됐고 25일 밤부터 서민호의원 등 내각제 지지의원들을 잡아들였다.26일에는 헌병대가 국회의원 40명이 탄 통근버스를 크레인에 달아 끌고갔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우방들의 비난이쏟아졌다.맨 처음 반응은 유엔한국통일 부흥위원단(UNCURK)에서 나왔다.언커크는 5월28일 이승만에게 성명을 보내 『한국에서 유엔을 대표하는 본 위원단은…부산시의 계엄령을 즉각 해제하고,현재 체포·구금된 국회의원들을 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트루먼 미국대통령도 항의각서를 보냈지만 이승만은 「계엄령은 공비토벌을 위한 것이며,국회의원 체포는 공산당과의 공모여부를 밝히기 위해서」라고 둘러대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어 6월25일 반이승만 세력에게 결정타를 먹인 「이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이 발생했다.부산 충무로광장에서 벌어진 「6·25기념식전」에서 유시태(당시 62)가 이승만에게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그러나 총알이 발사되지 않는 바람에 이승만은 암살을 면할 수 있었다.이 사건으로 유시태에게 신분증과 옷을 빌려준 민주국민당 김시현의원 등 야당의원 5명이 배후세력으로 체포됐다.「이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은 온갖 테러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의 재집권 야욕을 꺾으려던 야당에게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장택상의 수정안수용 이처럼 반이승만 세력이 궁지에 몰렸을 때 장택상 국무총리가 제안한 제3의 개헌안이 등장했다.이 개헌안이 바로 정부의 안과 국회의 안을 적당히 절충한 「발췌개헌안」이었다.하지만 대통령직선제·양원제를 뼈대로 한다는 점에서 이승만의 개헌의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국회안을 몇가지 수용하긴 했지만 이는 야당의원들에게 타협할 명분을 주기 위한 치장에 불과했다.「이대통령 암살미수 사건」으로 기진맥진한 야권은 장총리의 「발췌개헌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952년 7월4일 밤 발췌개헌안은 기립표결로 통과됐다.출석 1백66명 가운데 1백63명이 찬성했고 3명이 기권했다.정부는 7월7일 개정헌법을 공포함으로써 부산정치파동은 막을 내렸다.이 개헌에 따른 정·부통령 직접선거가 8월5일 실시돼 이승만은 다시 대통령 권좌에 올랐다. 우리 헌정사에 첫 개헌으로 기록된 발췌개헌은 이처럼 불미스러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후 거듭된 정치파동의 선례가 됐다.역사는 부산정치파동을 「여야간의 정치운영 방식을 폭력을 통한 극한대립 양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헌정사에서 평화적 정권교체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만든 분기점이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부산 정치파동」에 미 직접개입 주장/휴전협상·군사작전에 악영향 판단/한때 이승만 제거·임정수립을 암사 1952년 한국 정정이 부산정치파동으로 위태로워지자 미국은 한때 이승만 대통령의 제거를 고려하는 등 대책 마련에 크게 고심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당시 미국 정부의 입장을 보여주는 극비문서를 최근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 보관중인 「정책수립처 문서」(Records of Policy Planning Staff)더미에서 발굴했다.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이 문서는 「한국에서 정치적 위기의 지속」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3쪽분량.미 국무성 유엔과장 힉컬슨이 1952년 6월13일 작성,정책수립처의 니체를 포함해 국무차관보 매튜,극동과의 앨리손과 존슨등 간부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돼 있다. 힉컬슨은 이 문서에서 부산 정치파동의 해결책으로 미국의 직접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그는 미 국무성이 제한적인 차원에서 개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전제아래 위기의 책임을 이승만보다는 그의 측근인 이범석·임영신·윤치영에게 돌렸다.그 까닭은 한국에서 이승만을 대체할 만한 『전 국가적인 명망성』을 지닌 인물이 없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때문에 이승만의 지위는 인정해 주면서도 주변의 추종자를 거세함으로써 그의 독재적 경향을 제어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며칠 뒤 발췌개헌안을 내놓은 장택상 국무총리를 미국이 비난대상에서 제외한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 미국은 지지부진한 휴전협상보다 한국의 정치적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미국은 이 위기가 휴전협정 뿐만 아니라 군사작전의 시행마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따라서 이승만을 제거하고 임시정부를 세울 계획이 한때 있었음을 이 문서는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서는 미국의 개입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음을 밝혔고 이 내용대로 미국은 발췌개헌안 통과­이승만 재선의 과정을 묵인하게 된다.
  • 해외 한국민 보호책 강구하라(사설)

    중국과 미국에서 한국인 피살소식이 동시에 전해졌다.22일에는 여행중이던 한국인이 북경의 호텔에서 죽었고 23일에는 LA에서 식품상을 하는 한국인이 자기가게에 침입한 강도의 총에 맞아 숨졌다. 중국서만도 올들어 벌써 3번째 희생이다.최근들어 급속도로 해외진출이 활발해진 우리국민이 어쩔수 없이 겪는 위험의 확대현상이기도 하다.그러나 같은 조건에서도 한국인이 유별나게 표적이 되고 있다.그런데는 몇가지 까닭이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숫자가 많아진 것에 비해 사전에 아무런 훈련도 주의깊은 대비도 없이 무작정 나다니는 인구가 많아진 것이 우선 첫째 이유이다.그러다보니까 유난히 현금을 좋아하는 기질 그대로 돈을 품고 다니고 그것이 현지에 알려져 지구촌 곳곳에서 한국인이 표적이 되기에 이르렀다.심지어 러시아 마피아 사이에서는 한국인을 「움직이는 금고」로 부르며 무조건 범행대상으로 삼을 지경이라고 한다. 그와함께 정부의 자국민 노력에도 미흡함이 있는 것 같다.현지의 대사관들이 기민하고도 철저하게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자국민의 보호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거니와 국민의 희생에 민감한 나라에 대해서는 상대국도 긴장하는 정도가 다르게 마련이다.상대국의 보호를 유도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도 정부의 대응 태도는 중요하다. 그와함께 국민 자신의 책임 또한 적지않다.우선 화의 근원인 그 고질적인 현금선호 성품을 고쳐야 한다.또한 과시적 과잉쇼핑 행태도 고쳐야 한다.LA교포의 경우처럼 어설피 대항하는 일의 무모함도 경계할 일이다.권투나 태권도 몸짓 따위도 「정당방위」의 빌미를 주어 총격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야구방망이 대응」도 그런 경우였던 것 같다.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다 함께 철저한 예방지식을 기르고 사고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해야하는 것이 우선은 최선의 길이다.지금이 더욱 그런 시기인 것이다.
  • 46년 남한의 공산당 활동(새로 쓰는 한국현대사:13)

    ◎미소공위 깨지자 9월 파업·10월 폭동 주도/「전평」앞세워 산업마비·사회혼란 획책/정 판사 사건 계기 미군정 좌익소탕 반격/“무모한 좌경 모험주의”북 질책에 박헌영 남노당 결성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 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경운(조사부 〃) 1946년의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는 불확실한 한반도에 아무런 빛이 되어주지 못했다.특히 북위 38도선 이남에는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깔아놓았다.그해 5월6일 1차 미소공위가 결렬되자 남한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북한이 소련의 의도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것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었던 것이다. 찬·반탁의 좌우익 대결구도 속에서 맞은 미소공위의 결렬은 좌익쪽에 더 많은 좌절을 안겨주었다.찬탁을 주장했던 좌익은 미소공위를 통한 정권장악이 수포로 돌아가자 새로운 전술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다.그래서 조선공산당은 정당방위를 위한 역공세라는 구호를 들고 이른바 신전술을 펴기 시작했다.폭력에 호소한 이 전술은 실제 9월총파업과 10월 폭동 등으로 나타났다. 조선공산당의 신전술을 소련의 지령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1946년 7월 박헌영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이를 어느정도 뒷받침한다.현재 모스크바에 살고있는 박헌영의 친딸 리비안나 박도 최근 한국 언론에 이를 시인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짙다.그해 7월 하순께 조선공산당중앙위원회가 신전술을 발표한 것도 그의 모스크바 방문과 일치하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 미군정의 공산당에 대한 표면적 탄압은 이보다 일찍 시작되었다.5월16일 공산당 본부 급습과 함께 이루어진 공산주의 비밀문서 압수가 그것이다.특히 19 46년 5월25일에 일어난 조선정 판사 위조지폐사건을 계기로 남한 전역의 좌익본부를 모조리 조사했다.하지장군은 공산당에 대한 모종의 조치를 취하기 위한 착수가 끝나자 「공산당과 그들의 활동을 제재할 때가 되었다」면서 「희생양이 필요하다면 본인이 기꺼이 수락하겠다」는 보고서를 맥아더에게 보냈다(주한미군사령관이 미 태평양사령부에 보낸 전문·1946). 하지의이같은 보고서는 공산주의 활동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주한미군인 24군단 정보처(G­2)와 방첩대(CIC),경찰조직을 통해 남한의 공산당과 소련의 연결고리를 확인한 미군정은 간첩활동 증거도 찾아냈다.여기에는 남한의 경찰과 경비대 침투,식량배급 방해,납세거부,군중선동,각종 사회단체 장악등의 지령이 포함되었다.조선공산당 본부와 원주지부,인민당 정치국장 김세용 집에서 찾아낸 문서들은 간첩활동을 입증한 대표적 케이스로 기록된다. 조선공산당이 7월6일 발표한 신전술의 슬로건을 보면 미군정에 대한 전면투쟁 양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테러는 테러로,피는 피로 갚자」는 기치를 선명하게 든 공산당은 같은 계열의 연합체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전면에 나서는 대중적인 파업투쟁을 계획한다.전평을 조선공산당 세력구축의 발판으로 삼았던 박헌영은 당초 이 파업투쟁을 10월중에 강행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그런데 공산당 지도부는 갑자기 총파업을 9월로 앞당기기로 수정하고 이를 긴급 지령했다. ○경찰발포로사태 악화 그 이유는 미군정 운수부가 적자타개와 노동자 관리의 합리화를 내세워 운수부 종업원의 25% 감원과 월급제를 일급제로 바꾼다는 발표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또 9월6일 좌익계 신문인 「중앙신문」등 3개 신문이 미군정포고령 위반으로 정간되는 것과 함께 조선공산당 지도부원인 이주하가 체포되고 박헌영의 체포령이 내려진데도 그 원인이 있다.그해 10월 박헌영이 해주로 피신했는데도 남한 열성당원들은 그의 지령이 모두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전국의 경찰이 비상경계에 들어간 상황에서 9월15일 철도 노동자들은 생활개선을 위한 6개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일주일간의 시한부 총파업을 미군정 철도당국에 통고한다.미군정의 성의있는 응답이 없자 23일 7천명의 부산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간 것을 시발로 24일에는 남한 각지에서 4만명의 철도노동자들이 연대투쟁을 벌였다.조선공산당의 전평을 주축으로 한 남조선총파업투쟁위 구성과 파업선동은 철도뿐 아니라 전기 체신 출판산업을 마비상태에 빠뜨렸다.이에대한 동정파업은 은행 회사 병원 미군정청까지 파급되었다.미군정은 이에맞서 9월30일 경무총감 장택상의 지휘로 파업 농성중인 경성공장 기관구 통신구에 진입,1천7백명의 철도종사원을 검거함으로써 일단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10월에 접어들면서 노동자들의 파업여파는 또다른 양상을 띠고 10월1일 대구폭동으로 이어졌다.부녀자들을 앞세워 쌀을 요구하는 것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경찰의 발포로 악화되어 경북 일원과 경남 전남등 전국 73개 지역으로 확대되었다.그러나 대중파업 지도의 경험이 없었던 전평은 간부들이 거의 검거되는 바람에 위기에 직면하고 만다.그렇다고 노동자 농민에게 어떤 정치·경제적 혜택을 안겨준 것도 아니었다. 미국 버클리대 교수를 역임한 RA 스칼라피노는 자신의 저서 「한국공산주의 운동사」에서 9월 총파업은 군정을 정치·경제적으로 악화시키려는 공산당의 음모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파업과 태업이 운수와 전기산업을 주 대상으로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그는 9월 총파업은 결국 악화된 남한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그는 이 저서에서 파업과 폭동등의 일련의 사태는 소련의 새로운 정책이 박헌영을 거쳐 조선공산당에 의해 시행되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개당 6개파벌로 분열 조선공산당은 9월 총파업을 전후로 여운형의 인민당,백남운의 신민당과 합당을 논의한다.좌익 3당의 합당은 9월파업과 무관치 않다는 설도 있다.다시 말하면 박헌영 자신이 헤게모니를 잡은 뒤에 합당추진의 반대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파업을 조기 결행했다는 것이다.3당 합당은 좌익세력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기 때문인데,동상이몽(의 합당은 내부분열을 일으켰다. 북한 지도부는 또 나름대로 남쪽의 공산당이 9월 총파업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재개와 인민 구국항쟁의 토대」로 삼아줄 것을 채근해왔다.그래서 박헌영은 10월6일 입북한다.당시 북로당은 박헌영을 호되게 비판하면서 「10월 인민항쟁이 무모한 좌경모험주의적 편향」이라고 몰아붙이고 북에서처럼 3당합동 추진을 강력히 요구했다.그러나 남한의 좌익은 조선공산당내 대회파와 인민당내 31인파,신민당내 반간부파 등 반박헌영세력과 조선공산당내 박헌영파,인민당내 47인파,신민당내 중앙파 등 어지럽게 갈려 있을 시기였다.박헌영은 북에 있었지만 결국 그 지지파를 중심으로 11월23·24일 서울 견지동 시천교당에서 북조선노동당을 표방한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6개월후 여운형과 백남운을 중심으로 근로인민당이 창당되었다.당초 좌익진영의 통합을 위해 추진되었던 3당합동은 2개당과 6개의 파벌로 분열된 셈이었다.좌익세력의 판도가 남조선노동당과 근로인민당의 창당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은 좌익역량 총결집이 실패로 끝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록 뮤지컬 「후즈 토미」(브로드웨이 “새바람”:10)

    ◎영그룹 「WHO」 노래 극화… 3년째 관객 밀물/사랑에 굶주린 장애소년의 정상회복 과정 그려/록뮤직 30곡으로 구성… 사이키 조명에 빠른 진행/“이 시대 마지막 정통 록 뮤지컬” 평… 롱런 예고 브로드웨이는 요즈음 20여년만에 찾아온 로큰롤의 열기로 후끈 달아 있다.50년대 중반 이후 엘비스 프레슬리,비틀즈,롤링 스톤즈로 이어져온 로큰롤이 브로드웨이의 정통 뮤지컬에 접목되어 대대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60년대말부터 70년대말까지 10여년간 로큰롤의 세계적 명성을 누려온 영국 보컬그룹 「후」(Who)의 69년 앨범 「토미」(Tommy)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뮤지컬 「후즈 토미」(TheWho’s Tommy)다. 지난 93년 4월 막을 올려 곧 공연 2주년을 맞는 이 뮤지컬은 장년층들의 향수는 물론 청소년층의 관심도 크게 불러일으켜 브로드웨이 44스트리트의 세인트 제임스 극장 앞에는 항상 긴 줄이 늘어서 있다.특히 수요일 하오2시의 낮공연은 단체 관람온 학생들로 북적인다. ○학생관객엔 할인혜택 극장측은 공연2주년을 맞아 4월과 5월 두달동안 1개월 앞서 예매하면 정상요금(30달러∼67달러)에서 50%를 할인해주는 파격적인 관람료의 사은행사까지 계획하고 있어 「후즈 토미」 열기는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헤어」(1968년 초연·1천7백50회 공연),「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1971년·7백20회)와 함께 브로드웨이의 3대 록뮤지컬로 불리는 이 극은 전편이 30여곡의 록뮤직으로 구성돼 있으며 갑작스런 심리적 충격으로 귀먹고 말 못하고 눈 안보이는 장애인이 된 4살의 토미가 20년 동안 의지력으로 장애를 극복,정상인으로 돌아온다는 교육적 내용을 극적인 연출로 흥미진진하게 전개하고 있어 큰 감동을 선사해주고 있다. 「후즈 토미」는 브로드웨이에서 20여년만에 공연되고 있는 본격적인 록뮤지컬이며 또한 세인트 제임스 극장 역시 지난 64년 록뮤지컬 「헬로,돌리!」를 2천8백44회 공연이라는 공전의 기록을 세워 이번 작품의 롱런도 점치게 하고 있다. 기타리스트로 주로 작곡을 맡으며 그룹 「후」의 리더로 활약하던 피트 타운센드가 대본과 음악을 맡고,데스 매카너프가 연출을 맡은 이 뮤지컬은 주인공 토미의 출생부터 성장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 구성으로 돼 있다. 특히 4살의 토미(킴벌리 하논·여),10살의 토미(트라비스 그라이슬러),장성한 토미(피터 에르미데스)등이 시대별로 나오며 이들은 토미의 자아의식 변화에 따라 둘이 혹은 셋이 동시에 등장하기도 한다.또한 장성한 토미는 어린시절의 토미와 내면의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공중을 날아서 무대위에 나타난다. 막이 오르면 2차대전이 한창인 1940년,영국 런던의 공군 폭격기 기지창을 무대로 워커대위(마크 맥베이)가 미모의 남장 용접공(제시카 몰라스키)을 만난다.그들은 곧 결혼하게 되고 신혼의 꿈이 채 깨기도 전에 워커대위는 특수임무를 띠고 독일진영에 투하된다.그러나 곧 잡혀 포로가 된다.여기까지의 이야기인 프롤로그가 빠르게 진행된다. ○남편의 전사통보 받아 첫 장은 1941년 워커대위의 집.배가 부른 채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던 부인에게 워커대위의 전사통지가 날아든다.그녀는 상심의 나날을 보내다 사내아이를 낳는다.사건은 1945년에 발생한다.워커대위의 집에서는 4살된 토미와 워커부인과 애인(리 모건)등 세식구가 단란하게 앉아 그녀의 21세 생일파티를 벌이고 있는데 사실은 죽지 않고 종전으로 석방된 워커대위가 나타나고 워커대위는 부인의 애인과 싸우다 그를 총으로 쏴 죽인다. 그 광경을 거실의 커다란 거울앞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토미는 엄청난 충격으로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고 눈도 안보이게 된다.워커대위는 정당방위로 무죄방면되나 토미가 한 순간에 장애자가 돼 버린 일은 부모들을 죄책감으로 짓누른다. 워커부부는 토미를 고치기 위해 병원에도,성당에도 가보나 소용이 없자 마지막에는 주술사에게 데려간다.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그러던중 토미는 부모가 직장에 나간후 돌봐주는 사촌형 케빈(안토니 배릴레)을 따라 핀볼(회전당구)오락장을 드나들게 된다. 그곳에서 토미는 그동안 잠재돼 있던 시각적 청각적 기능이 발산돼 놀라울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핀볼 플레이어로 등장한다.그는 또한 이곳에서 뛰어난 미디어 감각도 갖추게 된다. 그래도 그의 장애증상에는 전혀 차도가 없자 워커부부는 다시한번 병원에서 종합검사를 시키지만 여전히 소용이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워커부인은 상심하고 있던중 집에 돌아온 토미가 늘하는 버릇대로 거울앞에 서서 거울과의 대화를 주고받자 화가 치민 끝에 책상을 들어 대형 거울을 깬다. 거울이 깨지는 충격에 토미는 제정신이 돌아오고 그의 뛰어난 음감은 그를 최고의 록스타로 만든다.결국 이 시대의 상징으로 설정된 토미의 정신불안상태가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것이다. 이 극은 병원에서 검사를 하거나 핀볼게임을 하거나 모든 극중의 내용들이 록뮤직에 맞춰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조명 또한 사이키에 가까운 다양한 변화를 보이고 있어 관객들에게 시종 박진감을 주고 있다.따라서 다소 어두운 내용임에도 지루함 없이 전개되며 특히 토미의 의식이 돌아오고 눈을 뜨며 말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또 이 극에서 어린 토미와 장성한 토미가 부르는 주제곡 「나를 보세요,나를 느끼세요,나를 만지세요,나를 고쳐주세요」(See Me,Feel Me,Touch Me,Heal Me)는 사랑에 굶주리고 고독감에 빠져 있는 장애인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노래로 퍼져나가고 있다.극이 끝난후에는 극중의 주인공들이 현관앞에 나와 장애인을 위한 모금활동을 벌여 감동한 관객들이 아낌없이 적선하는 광경도 연출했다. 이 뮤지컬의 구성은 특히 영국 소설가 제임스 배리의 아동극화 「피터 팬」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공상의 나라 아이인 피터는 장성한 토미와,피터에 이끌려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 소녀 웬디는 어린 토미와 대비된다.장성한 토미가 천장의 줄장치를 통해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니는 모습은 피터가 나는 모습과 흡사하다. ○「피터 팬」과 비슷한 양상 뮤지컬 「피터 팬」은 79년9월 로브 이스코브의 연출로 브로드웨이의 런트 폰테인 극장에서 5백51회의 공연을 가진바 있다. 특히 「토미」앨범은 2년이상 연속 빌보드 차트에 올랐으며 주요 히트곡 「핀볼 마법사」(Pinball Wizard),「나는 자유」(I’m Free),「영감」(Sensation)등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그룹 「후」는 록뮤직을 청소년들이나좋아하는 「하찮은 음악」의 수준에서 어엿한 음악예술의 한 장르로 격상시켰으며 이로인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가진 세계 최초의 록 밴드가 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 시대의 마지막 정통 록뮤지컬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뮤지컬 「후즈 토미」는 당분간 롱런할 것으로 보여 록뮤직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누리리라는 가능성을 이 작품에서 찾기도 한다.
  • 집주인이 절도범 쫓아가 폭행 숨지게/정당방위 여부 논란

    달아나는 도둑을 뒤쫓아가 폭행을 가한 끝에 숨지게 한 시민이 구속돼 「정당방위」여부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일 자신의 집에서 지갑을 훔쳐 달아나던 도둑을 뒤쫓아가 폭행을 가해 숨지게 한 전모씨(30·회사원)를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사건의 발단은 1일 새벽 5시쯤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전씨가 숨진 권림(34·무직)씨가 몰래 방으로 들어와 상의 주머니에서 현금 11만원이 든 지갑을 훔쳐 달아나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전씨는 『도둑이야』라고 소리치면서 15m가량을 뒤 쫓아가 권씨의 머리채를 잡아 넘어뜨리고 『지갑을 내놓으라』며 주먹과 발로 옆구리 등을 마구 때린 후 자신의 지갑을 되돌려받았다. 전씨가 집으로 되돌아가는 사이 권씨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달아났으나 이날 상오 10시30분쯤 전씨의 집에서 2백여m가량 떨어진 부근 골목길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은 숨진 권씨를 부검한 결과,전신에 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는데다 좌우 갈비뼈 3대가 부러지고 간과 장간막이 파열될 만큼 심하게 구타당해 숨졌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주변을 탐문수사한 결과 전씨를 찾아냈다. 전씨는 경찰에서 『당시 지갑을 훔쳐가는 것을 보고 뒤쫓아가 권씨를 잡았으나 지갑을 되돌려주려 하지 않아 때릴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갑을 돌려받은 뒤 집으로 돌아왔으나 권씨가 숨질 것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비록 권씨가 전씨의 집에 침입해 금품을 훔쳤지만 달아나다 붙잡혀 폭행을 당할 당시 전씨가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의 위급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전씨의 행위를 「정당방위」(형법 제21조)로 볼 수 없어 구속했다』고 밝혔다.
  • 일본 나가노 망언/규탄시위 잇따라

    태평양전쟁은 정당방위이고 대동아공영권 해방목적이었다는 일본 나가노 시게토법상의 망언을 규탄하는 시위및 성명서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공동대표 양순임)소속 회원 1백여명은 6일 하오1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앞에서 집회를 갖고 나가노 법상의 즉각 해임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하는 항의시위를 벌였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상임의장·이창복)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이번 나가노 장관의 발언은 태평양전쟁범죄인정및 이에대한 법적 처벌과 보상을 백지화시키려는 일본 내각의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가노 법상의 사죄와 전쟁피해에 대한 보상을 촉구했다. 광복회(회장 김승곤)도 이날 하오 성명에서 『일본 법무상이 지난날 일제가 저지른 군국침략의 야만적 행위를 은폐하고 미화하려는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중국등 기타 피해국가에 대한 모독이며 이 속에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모색이라는 저의가 담겨 있다』고 비난했다.
  • 칼든 강도 남편이 격투끝에 잡아(조약돌)

    ○…30일 상오 2시25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1동 서모씨(28·상업)집에 전병철씨(26·회사원·폭력등 전과3범)가 침입,금품을 빼앗은 뒤 임신중인 서씨의 부인(27)까지 성폭행하려다 서씨에게 덜미. 범인 전씨는 이날 부엌에 있던 식칼을 서씨의 목에 들이대고 넥타이로 서씨의 손발을 묶은 뒤 지갑에 있던 현금 12만원을 빼앗았다.전씨는 이어 임신7개월인 서씨의 부인을 성폭행하려다 서씨의 부인이 집밖으로 달아나자 흉기를 들고 뒤쫓아갔으나 때마침 남편 서씨가 손발을 풀고 추격,10여분동안의 격투끝에 전씨의 머리등 세 곳에 상처를 입히고 붙잡았다. 경찰은 전씨를 강도혐의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전씨에게 중상을 입힌 서씨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인정,형사처벌하지 않기로 결정.
  • 미군 마클이병 징역 15년 확정/정부,곧 신병인도 요청

    ◎대법,“유금이씨 난행살해 인정”/검찰,천안소년교도소 수감키로 경기도 동두천시 미군클럽 여종업원 윤금이씨(92년 사건 당시 20세)의 살해범으로 불구속기소된 미8군 2사단 소속 케네스 마클 피고인(22·이병)에게 징역15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박순서대법관)는 29일 하오 이 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이 고의로 윤씨를 난행·살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법무부는 이날 확정판결에 따라 현재 마클이병의 신병을 구금중인 미군당국에 정식으로 신병인도를 요청할 방침이다.법무부의 이같은 요청은 형이 확정된 미군 및 군무원 또는 그 가족의 경우 신병인도를 요청할 수 있다는 한미행정협정(SOFA)의 형사재판규정에 따른 것이다. 검찰은 미군측이 마클이병의 신병을 인도해줄 경우 곧바로 천안소년교도소에 수감키로 했다. 그러나 미군측의 마클이병 신병인도방침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살해사실은 명백하며 범행동기 경위및 수단등에 비춰볼 때 정당방위및 과잉방위라는 주장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마클이병은 92년 10월 윤씨를 살해한 혐의로 미 육군교도소에 구속수감됐으나 재판관할권을 가진 우리측 법원에 의해 불구속 기소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으며 1심에서 무기징역을,2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이날 공판이 열린 대법원 1호법정에는 「윤금이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주한미군범죄근절을 위한 운동본부」회원등 2백여명이 나와 재판을 지켜봤다. 이들은 재판부가 15년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대로 선고하자 『형량이 적다』 『사형시켜야 한다』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은 즉각 개정돼야 한다』며 재판이 끝난 뒤에도 3시간여동안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이번 재판이 한명의 미군범법자를 처벌하는 차원을 떠나 수도 없이 저질러졌던 미군범죄에 대한 우리 정부와 사법부의 단호한 의지를 보이는 시금석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기독교협의회 인권위원회」및 여성단체등도 『마클피고인에 대한 유죄확정은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정부는 반드시 마클피고인의 신병을 인도받을 수 있도록 미군당국과 협상을 벌여 국내에서 형을 살도록 함으로써 미군범죄의 재발을 막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자른 여자」 무죄평결/보비트부인에 45일간 보호관찰령

    ◎“학대 못견뎌 정신이상 상태서 정당방위” 남편의 성기를 절단,중상해죄로 기소된 에콰도르출신 미국인 로리너 보비트 피고인(24)에게 21일 무죄평결이 내려졌다. 7명의 여성과 5명의 남성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보비트 부인이 수년간에 걸친 성폭행을 견디다 못해 남편 존 웨인 보비트(26)의 성기를 절단한 것은 「일시적인 정신이상 상태」에서 저지른 행위이기 때문에 무죄라고 평결했다. 보비트부인은 이번 평결로 버지니아주법에 따라 정신감정을 위해 최고 45일간 보호관찰을 받게된다. ○곳곳서 즉석토론 ○…이날 보비트 부인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의 여성단체와 남성단체는 각각 찬성과 반대 입장을 밝히는가 하면 사무실·술집·거리 곳곳에서는 평결 결과를 놓고 열띤 즉석 토론이 벌어지기도. 브로드웨이의 한 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앨라배마주 어번대학에 재학중인 린 업처치양은 밝게 웃으며 환영을 표시했으나,옆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보비 스크로볼라군등 20대 청년 3명은 마치 가족이 죽은 듯한 슬픈 모습을 보여 대조. ○“여성의 승리” 자축 ○…보비트부인의 고향인 에콰도르에서는 이날 그녀에게 무죄방면 결정이 내려지자 일제히 환영을 표시.남부 부카이에서는 수백명의 주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허공에 공포를 쏴대는등 축제분위기를 연출했다. 보비트 부인의 아버지 카를로 갈로씨는 『매우 행복하다.애초부터 딸이 무죄라고 생각했으며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일어난 일일뿐』이라고 반기는등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 여성인권단체 「세팜(CEPAM)」의 안느 홀레스트 국장은 『배심원들이 사건을 단순히 법리적 해석이 아닌,심리적 측면등 다른 차원에서 보았기때문에 이루어진 여성의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
  • 세례명 되찾은 안중근의사/나윤도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지난 21일 안중근의사(1879∼1910)추모미사에서 김수환추기경이 안의사를 천주교도로 복권시키는 강론을 함으로써 안의사는 사후 83년만에 「종교적 단죄」를 벗어나 「안토머스」라는 세례명을 되찾은 천주교신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날 미사에 앞서 개최된 「안중근의사의 신앙과 민족운동」 주제 세미나에서 발제자들은 한결같이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암살한 안의사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고 당시 조선대교구장 뮈텔주교의 「살인죄」 단죄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안의사에 대한 종교적 복권은 때마침 이달의 문화인물로 정해 그를 추모하는 각종 행사가 한창인 때여서 시의적절한 생각도 든다.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왜,이제서야…』라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안의사 의거당시 국제적 관계와 또 1백년 박해기를 지나 찾아온 조선선교 기회를 잃지않으려는 의도에서 프랑스인 뮈텔주교가 살인죄로 단죄했던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그는 주교의 뜻을 거역하고 몰래 여순감옥으로가 안의사에게 마지막 성사를 준 빌렘신부도 성무집행정지에처할 정도로 단호했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 종교적 정치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얻은지 반백년이 되는 이 시점까지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안의사가 종교적으로는 「살인자」로 남아있었다는 사실은 종교차원을 떠나 우리 모두가 역사와 민족에 대해 얼마나 소홀히 해왔으며 껍데기 삶을 살아왔는가를 자성케 해준다. 한편 만시지탄으로 보이는 안의사의 복권도 천주교 입장에서는 대단한 결단에서만 가능했던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전임 교구장의 결정을 후임자가 번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동안 한국천주교는 비공식적인 안의사 탄생1백주년 추모미사 거행등 사실상으로는 그를 위대한 교인으로 떠받들면서도 공식적으로는 교인으로 인정못하는 이중적 가치에서 고민해온 것이 사실이다. 김수환추기경은 안의사 의거를 정당방위로 인정하면서 『교회가 잘못한 것은 민족사 앞에 반성해야 한다』며 일제시 교회가 호교론에 치우쳐 일제의 침략에 동조하거나 호응했던 친일사실을 진지하게 시인하고 연대책임으로 참회해야한다는 단안을 내렸다. 최근 「친일불교론」「다시 써야할 한국기독교사」등 출판물을 통해 전체 종교계가 오욕의 역사 청산으로 거듭나기를 모색하고 있다.결국 문제는 민족과 종교의 문제로 귀착된다.더욱이 21세기는 민족이 최고의 가치가 될것으로 전망된다.늦었어도 종교가 민족적 기반위에 서는 일에 용기를 낼 때다.
  • 안중근의사/사후 83년만에 천주교인 복권

    ◎21일 「신앙과 민족…」심포지엄서 인정 행사/김추기경 추모미사 집전… 공식 공표 일제의 조선침략에 끝까지 맞서다 순국한 안중근의사(1879∼1910·세례명 토마스)가 사후 83년만에 천주교신앙인으로 복권된다. 한국카톨릭문화사연구회(회장 노길명 고려대교수)가 21일 카톨릭교리신학원 강당에서 개최하는 「안중근의 신앙과 민족운동」 주제의 학술심포지엄은 한국천주교가 안의사의 항일운동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그를 종교적으로 복권하는 자리가 된다.이날 심포지엄에서 김수환추기경은 주제발표와 토론이 끝난후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안의사를 추모하는 미사를 집전,한국천주교가 안의사를 공식 복권했음을 공표할 예정이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에서 조선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암살한 안의사의 의거가 당시 천주교 조선교구장인 프랑스인 뮈텔주교에 의해 「살인죄」로 단죄됐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안중근의 카톨릭신앙(노길명) ▲안중근의 동양평화론(홍순호 이화여대) ▲안중근의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전쟁(조광 고려대) ▲안중근의 의거와 교회의 반응(최석우신부)등 주제발표를 통해 신앙인으로서 안의사의 의거가 단순한 살인이 아닌 정당방위였음을 뒷받침하게 된다.
  • LA/더이상 천사의 도시 아니다

    ◎로드니 킹 평결앞두고 「제2의 폭동」 공포/무장강도 등 설쳐대는 무법지대 전락/불황까지 겹쳐 소수민족 역이민 속출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은 요즘 범죄에 대한 공포와 「예고된 흑인폭동」,그리고 극심한 불경기로 풀이 꺾일대로 꺾여 있다. 지난 2월 한달동안 무장강도의 총격으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교민숫자가 자그마치 15명.12살짜리 흑인소년이 자전거를 훔칠 목적으로 쏜 총탄에 교민 우정삼씨(49)가 목숨을 잃었는가 하면 운동구점을 경영하던 한 교민은 히스패닉계 청소년 3명으로부터 스케이트 보드로 머리를 맞아 숨졌다. 이처럼 한인들의 피습이 계속되자 지난달 21일엔 교민 50여명이 로스앤젤레스 시청 앞에서 『더 이상의 한인희생을 막아라』『모든 인종이 화합하자』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촛불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곳 교민 매스컴에 연이어 보도되는 한인피살소식은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안될 정도로 폭력의 피해를 입는 한인들의 숫자는 날로 늘어만 가고 있다. 5년째 계속되는 미국내 불경기 속에서 가장 회복이 느린 곳이 바로 캘리포니아주,그 가운데서도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일원이다. 냉전체제 붕괴후 세계적인 평화무드에 힘입어 군비증강의 필요성이 줄어든데다 미국정부의 재정적자 해소책으로 지금 미국 곳곳에서는 군사기지가 속속 폐쇄되고 있다.이미 3개군사기지의 폐쇄방침이 발표된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또다른 2개기지가 추가로 폐쇄되리란 소문이 퍼져 군수경기 퇴조에 뒤따를 대량실업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다. 악재는 그것말고도 또 있다.부동산 가격이 속락,경기가 바닥을 헤매고 있는데 차량·의료 및 종업원 상해보험료,세금이 계속 오르고 있는데다 자꾸 죄어지기만 하는 각종 공해규제 등이 미국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캘리포니아주의 경기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한인을 비롯,각 소수민족 이민자들 가운데 고국으로 되돌아가는 이른바 역이민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그 가운데서도 한국계 이민자들은 대만·필리핀계와 더불어 역이민이 가장 많은 아시아계 소수민족에 속한다.흑인지역에서 「챔피언 마켓」이란가게를 경영하다 침입한 강도를 사살했으나 다행히 정당방위로 인정돼 불기소처분된 박태삼씨(51)도 지난달 20일 영구 귀국길에 올랐다. 남가주대 다민족연구소의 에릭 샤크먼부소장과 UCLA의 정치학교수 내다인 카치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실시한 조사결과 한인응답자 가운데 약 40%가 탈로스앤젤레스를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이곳 교민사회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1천2백명의 한인 및 흑인 사업체 소유주를 무작위로 추출,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90%가 탈로스앤젤레스를 고려하고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응답자의 대부분은 『이젠 로스앤젤레스가 지극지긋하다』며 다른 고장으로 이사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 가운데 한인답변자의 약 7%는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심각하게」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미국정부의 신뢰도를 묻는 문항에 대해서도 불과 14%의 교민들만이 긍정적으로 답변했고 90%의 교민들은 캘리포니아 주법정이 범죄자들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며 불만을 털어 놓았다 한다. 지난 91년 한국으로 영구귀국한 5천5백여명의 해외교포 가운데 대다수가 미국으로부터 되돌아 간것으로 밝혀지고 있다.흑인청년 로드니 킹 구타사건에 대한 증인신문이 끝나고 배심원 평결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요즘 이곳 로스앤젤레스 교민사회는 제2의 폭동발발 가능성에 대비,자체 방어태세 갖추기에 분주하다. 법질서가 엄연히 존재하는 미국에서 흑인들의 동태를 살피며 진행되는 로드니 킹 재판,그리고 교포들이 서두르고 있는 자체 방어망 구축.도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지금 로스앤젤레스 일원에서 분명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그러나 이제 로스앤젤레스는 더 이상 천사의 도시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 “유죄” 실정법 재확인속 관용 베풀어

    ◎의부 살해사건 항소심 집유선고의 함축/“패륜 피해자” 변호인측 선호의견 수용/대법원의 최종 법논리 적용에 “촉각” 자신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한 여대생에 대해 법이 어떤 심판을 내릴지 관심을 모았던 청주지검 충주지청 전사무과장 김영오씨 살해사건은 14일 열린 항소심에서 김씨의 딸 김보은양에게 집행유예가,남자친구 김진관군에게는 실형이 선고됨으로써 대법원의 최종판단만을 남겨놓게 됐다. 12년이라는 장기간동안 딸을 근친성폭행한 아버지를 살해했을 경우 법의 관용이 어느 선까지 베풀어질 수 있는지를 놓고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계속됐던 이 사건은 결국 성폭행의 피해자인 딸에게만은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것으로 사실심리가 일단 마무리된 것이다. 그동안의 재판과정에서 검찰과 변호인측이 법리적으로 첨예하게 맞섰던 부분은 ▲피고인들의 살인을 정당방위로 볼 것인가 ▲우발적인 범행가능성의 여부 ▲정당방위가 아니더라도 피해자의 과잉방어에 따른 살인인지 ▲양형의 적정성의 문제 등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계획적인 살인으로 인정된다 하더라도 법논리에 대응한 정상참작이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관심이 집중됐었다. 감정적으로는 마땅히 죽여야 할 사람을 죽였다하더라도 사적구제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법체계가 살인행위를 그 동기만으로 봐서 정당한 것 또는 어쩔 수 없는 행위로 인정해 줄 수 있는가하는 문제였다. 변호인측은 이와관련,항소이유를 통해 사전에 치밀한 공모로 이뤄진 범행이 아니고 ▲강간에 따른 정조권 및 신체의 자유 등의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정당방위였으며 ▲범행당시 피고인들이 극도로 분노하고 당황해 저지른 과잉방위일 뿐 아니라 ▲동기로 봐서도 양형은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검찰측은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하더라도 살인이라는 반사회적인 사적복수의 방법을 동원한 사실과 치밀한 계획성,강도로 위장한 점등을 볼 때 중형을 선고해야한다고 맞섰었다. 재판부의 이에대한 판단은 범행의 과정과 정당·과잉방위등에 대한 변호인측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피고인들의 살해공모등 범죄사실이인정되고 장기간 성폭행을 당한 것등 범행동기를 고려하더라도 범행당시에는 피고인들이 살인을 할수밖에 없었던 정당·과잉방위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 재판부는 그러나 양형문제에 있어서는 변호인측의 주장을 수용,김진관피고인에게는 징역7년에서 5년으로 감형하고 김보은피고인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살인피고인에 대한 집행유예선고는 다소 이례적인 것으로 여기에는 김보은피고인이 살인범죄의 공범이기는 하나 성폭력의 피해자인 점 등의 정상이 참작된 것으로 풀이된다. 형량을 깎은 또다른 이유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전과가 없고 범행을 저지른 뒤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 21명으로 구성된 변호인단과 56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위는 범행이 정당방위로 무죄임을 계속 주장하고 있어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되고 있다.
  • 성폭행 하려던 20대 강도/되레 등찔려 병원서 덜미(조약돌)

    ○…광주 북부경찰서는 28일 김인석씨(24·광주시 북구 용봉동 1200의 3)를 강도혐의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이날 0시40분쯤 광주시 북구 용봉동 이모양(20·C대학2년)의 자취방에 흉기를 들고 들어가 이양을 위협해 현금 1만원을 빼앗고 성폭행하려 한 혐의 받고 있다. 김씨는 성폭행하기 위해 흉기를 방바닥에 놓아두고 있다가 오히려 흉기를 잽싸게 가로챈 이양이 등을 두군데 찌르자 황급히 달아나 광주시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양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무혐의 처리했다.
  • 흑인폭동 여파/LA에 통기 구입 붐(특파원코너)

    ◎남가주선 8일새 5천여정 팔려/“규제 필요”­“소유 불가피” 큰 논란/「왓츠폭동」후와 흡사… 미 개인보유 5억정 추산 「4·29인종폭동」이후 LA를 비롯한 캘리포니아주에 총기류구입 붐이 일고있어 이에대한 규제의 필요성과 자기방어상의 불가피성 주장간에 큰 논란이 일고있다. 「4·29폭동」과정에서 보여준 경찰의 무능력을 지켜본 많은 주민들과 상인들이 『결국 내생명과 재산은 내가 지킬수 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느낌에 따라 「방어용 총기류」구입이 급격히 증가,총포상들에 때아닌 호경기를 안겨주는 이변까지 낳고있다. 「왓츠폭동」등 60연대에도 미국내 대도시 도처에서 폭동이 발생,한때 총기류판매가 기록적으로 늘어난적이 있었다. 지난 4월29일부터 5월6일까지,그러니까 「LA폭동」발생 8일만에 LA일원에서는 작년동기간에 비해 무려 5천5백정의 총기류가 더 팔린것으로 최근 집계됐다. 현재 미전국에는 약2억정의 각종 총기류가 각가정에 보관돼있는것으로 집계되고있으며 이는 70년대에 비해선 약2배가량,50년대에 비해선 약4배가량늘어난 숫자다.총기류구입의 이같은 증가에 비례하여 개인또는 가정의 안전도도 그만큼 높아졌느냐하면 그렇지가 않다는데 문제가 있는것으로 전문가들은 총기류의 확산에 우려를 나타내고있다. 비극적인 사실은 작년에 발생한 총기류에 의한 사망자수가 67년에 비해 약2배나 늘어난것으로 집계되고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총기류 소지자들은 자기방어용등으로 적법하게 사용하고있으나 파괴적 요소로 이를 사용하는 예가 적지 않다는데에 찬·반양론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90년의 경우 미 전국에서 발생한 총기류에 의한 살인사건 1만1천7백여건중 정당방위로 밝혀진 경우는 고작 2백15건에 불과했다는 놀라운 사실도 최근 밝혀졌다. 지난해 LA에서는 모두 1천5백54명이 총기류에 의해 사망,이는 70년의 4백64명보다 무려 2.5배나 늘어난것이며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웃도는 수치로 밝혀졌다.이중 약25%는 19세 미만의 「틴 에이저」들이며 총기류사고 부상자치료비도 5천4백만달러에 달했던것으로 한 통계자료는 보여주고있다. 지난2년간 LA카운티에서는 매6가정당 1가정이 총기류사고와 관련됐었으며 남가주전역에서의 총기류관련사고 비율도 8대1이나 됐다. 총기류사고가 이처럼 폭증하고 있는 이유는 소지자들의 불법적 또는 부적법한 사용에 그 큰 원인이 있다. 그러나 소관행정당국의 감독 내지 관리 소홀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총기류판매허가는 미연방 주류·담배·화기류 관할국(ATF)소관이나 현재의 ATF소속인원 숫자로는 늘어나기만 하는 총기류사고를 줄이기엔 역부족이다. LA인근에만도 3천여개의 총포상이 있으나(LA카운티 전역에는 약 4천여개) 이의 감독청인 LA지역 ATF소속인원은 고작 12명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총기류구입희망자는 가까운 총포상에 30달러와 함께 구입신청서를 제출,수사기관에 의한 범죄관련여부조회를 거쳐 약 2주후쯤이면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엔 정신병력 소유자로 투표권까지 유보돼 있던 「찰스·맥도날드」란 사람이 총기류판매허가를 취득,89년부터 2년여간 약 1백여정의 총기류를 판매한 사실이 밝혀져 큰 물의를 빚기도 했다.더구나 그가 판 총기류 중12정이 강도·살인 등의 범죄행위에 사용돼 사회문제화되기도 했다. 많은 총기류 판매상들이 상점도 차려놓지 않고 집이나 호텔방 개인 오피스 심지어는 정부소유 건물에서까지 총기류 판매가 이뤄지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져 선량한 시민들을 전율케 하고 있다. 이같은 부작용을 막기위해 갖가지 대책이 검토되고 있다.LA타임스의 경우는 지난 2개월 사이에 총기류소지확산에 관련된 사설을 3번이나 게재할만큼 큰 관심을 보여왔다. 카운티검찰청 산하에 총기류단속전담반을 신설,지역 검찰청간의 유기적 협조를 통해 총기류관련 범죄를 단속하자는 의견도 LA타임스는 제시하고 있다. 연방정부 관할아래 모든 총기류를 일련번호로 등록하자는 안,자동차면허 취득시험처럼 총기류소지면허도 보다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발급하자는 안,정신병력의 소유자나 범죄기록보유자에겐 판매를 엄격히 제한하자는 안에 이르기까지 대책마련에 모두가 부심하고 있다.
  • 여성단체 「김보은양 구명운동」확산/무죄탄원 서명·공동변호인단 구성

    자신을 상습 성폭행해온 의붓아버지를 남자친구와 함께 살해한 김보은양사건은 발생 직후부터 법과 인륜의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지난 4일 선고공판에서 김양은 징역 4년,남자친구 김진관군은 7년을 선고 받았다.이 선고공판을 계기로 두 사람에 대한 구명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김부남사건대책위,여성의 전화,대전·충남여민회,충북여민회등으로 구성된 「김보은­김진관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11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실에서 대표자회의를 열고 ▲무죄석방을 위한 전국서명운동 전개 ▲항소심에 대비한 공동변호인단 구성 ▲대규모 항의집회등을 펴나가기로 결정했다.공대위는 이와 더불어 현행법 체계내에서는 무죄를 설명할만한 근거가 없다는 점을 감안,12년간 변태적인 성폭행을 해온 의부의 반인륜성을 부각시키기로 했다.의부의 폭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살인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당방위 쪽으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이를 위해 살해된 의붓아버지 김영오씨(청주지검 충주지청사무과장)의 추악성을 알려주는 김보은양과 친어머니등 그의 주변 인물들의 증언,재판자료등을 모아 자료집을 발간할 계획도 세웠다. 공대위는 이에 앞서 고려대 공주대 단국대등 충남지역 6개대학의 총여학생회와 함께 이들의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펴왔다.13일 현재 3만5천여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이들에게 답지한 진정서·탄원서만도 8백통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퍼스널컴퓨터(PC)통신동호인들 사이에서도 전자게시판과 전자우편함을 통해 격려편지 보내기,모금활동,공개토론,서명운동등이 펼쳐지고 있다.지난달 31일 데이콤의 PC­SERVE 한 회원이 「이들에게 격려편지를 보내자」는 내용의 글을 게시판에 실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이 사건에 깊은 관심을 보여 민자당 정옥순여성국장등이 1심공판에 앞서 재판부를 방문,두 사람의 정상을 참작해 줄것을 요구했다.민주당은 지난 2일 이우정최고위원(여성특위위원장)을 위원장으로 「김보은­김진관사건 대책위원회」를 구성,무죄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와 함께 「성폭력특별법」제정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보은­김진관사건 외에도 오는 17일 1차공판이 열리는 김진희­은희자매에 대한 친부의 성폭행사건을 비롯해 근친 강간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그리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지난 1년간 접수된 친인척에 의한 근친강간사례만도 전체의 20%나 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 성폭행 의붓아버지 살해/여대생에 징역 12년 구형

    【충주=한만교기자】 청주지검 충주지청 장인종검사는 28일 자신을 9살때부터 성폭행해온 의붓아버지 김영오씨(전 충주지청 사무과장)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보은양(21·D대 천안캠퍼스 무용과4년)과 김양의 친구 김진관군(21·〃체육과2년)에 대해 존속살해및 살인혐의로 각각 징역 12년씩을 구형,재판부의 선고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이날 상오10시 청주지법 충주지원 1호 법정에서 형사합의부(재판장 김릉환)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장검사는 『피고인들의 정상은 참작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빼앗은 죄는 법에 의해 처벌받아 마땅하다』며 이같이 구형했다. 이에앞서 지난 17일의 2차공판에서 변호인측 증인으로 채택된 김양의 어머니 김영자씨(52)는 『죽은 남편이 자신과 딸을 한방에서 번갈아 성폭행하는등 짐승같은 일을 저질렀으나 반항하면 친정식구들까지 죽이겠다며 폭행·협박을 계속해와 이를 알릴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피고인 김양은 이날 진술에서 『세상에서 의붓아버지만 없으면 행복할줄 알았다.이렇게나마 내 한을 얘기할 수 있어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공범 김군에 대한 선처를 간청했다. 변호를 맡은 전봉호 최일숙변호사는 변론을 통해 『이번 사건은 잔학한 성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의 정조권·자유권·행복추구권을 보호받기 위해 어쩔수 없이 저지른 행위로 정당방위로 인정돼야 한다』며 『무죄가 선고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선고공판은 오는 4월4일에 있을 예정이다.
  • 현대자/그룹회장­노조위장 담판 결렬

    ◎노/6개항 또 요구/사/“더이상 할일없다”/노조원들,출근 관리직사원과 유혈충돌/쇠파이프등 휘둘러 7명 부상/“조만간 공권력투입시기 결정”/경남경찰청 순시/김원환 경찰청장 【울산=이정령·이용호·박홍기기자】 현대자동차 분규사태는 17일 회사를 완전 장악한 노조원들과 회사 진입을 시도하던 관리직 사원들간의 유혈충돌이 발생,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더욱이 이날 현대그룹 정세영회장과 이헌구노조위원장 사이에 있은 협상에서도 회사측이 노조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재확인함으로써 협상에 의한 사태해결은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이같은 사태악화에 따라 조만간 공권력의 투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혈충돌은 박병재부사장등 관리직 사원 5백여명이 상오8시쯤 회사로 들어가려다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한채 정문을 통제하고 있던 정당방위 대원들이 막으면서 일어났다.노조원들은 관리직사원들이 정문을 비켜줄 것을 요구하자 쇠파이프 등을 휘둘렀고 이 과정에서 앞에 섰던 총무부 과장 현익씨(37),생산관리2부차장 강호돈씨(40)등 관리직사원 7명이 얼굴에 부상을 입고 해성병원 등에 옮겨져 치료중이다. 이어 이날 낮 12시30분쯤부터 45분까지 정세영현대그룹회장과 이헌구노조위원장이 본관 2층 중역회의실에서 만나 사태해결을 위한 협상을 가졌으나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정회장은 이 자리에서 ▲회사 내의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직사원의 회사내 출입을 허용해 줄 것 ▲제품 파괴행위를 자제할 것 등을 당부했으며 이위원장은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지 말 것 ▲고소고발 취하 ▲공권력 투입 철회 ▲무더기 징계철회 ▲휴업철회 ▲경영성과급 지급등 6개항을 요구했다. 정회장은 이위원장과 만나고 밖으로 나온뒤 『노조측 요구에 대해 회사측으로서는 이제 더이상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경남지방경찰청을 초도순시한 김원환 경찰청장은 울산 현대자동차 사태가 『노사차원에서 사태해결이 안될 경우 공공안녕을 위해 공권력을 투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청장은 『지난해 상반기 노사가 합의한 단체협약이 오는 3월말까지 유효한데도 노조가 1백50% 성과급지급을 요구하며 쟁의에 들어간 것은 불법』이라 강조하고 『노조가 농성을 풀지 않을 경우 사태추이를 지켜본뒤 조만간 공권력 투입시기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경찰관계자는 노조측이 본관을 물리적으로 장악한 사실과 16일 하오부터 계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기물파괴·방화 등은 명백한 실정법위반이어서 회사측의 고발이 없더라도 관련자를 색출,모두 구속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노조측은 사내 5개공장(14개부서)과 본관을 점거한뒤 1천5백여명이 사내에서 철야농성을 벌이면서 비상식량을 준비하고 수출선적 경비실에서 해안도로 1백m와 승용1공장쪽 도로등에 8t 트럭과 승용차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추가 설치했다.
  • 현대자노조,“쟁의돌입” 결의/조합원 89% 찬성

    ◎“공권력 투입땐 파업” 방침/오늘부터 태업… 사측 “무기한 휴업” 태세 【울산=이용호기자】 (주)현대자동차노조(위원장 이헌구)는 14일 상오6시부터 15개 사업장별로 실시한 쟁의돌입 여부에 대한 전체조합원 찬반투표에서 89%의 찬성을 얻어 쟁의돌입안을 확정했다. 이날 투표에는 전체노조원 3만4백7명중 84.5%인 2만5천6백78명이 투표에 참가,찬성 2만2천8백24표(88.9%),반대 2천4백95표(9.7%),무효 3백59표(1.4%)로 쟁의돌입이 가결됐다. 이에따라 노조는 15일부터 고품질 생산향상 운동등의 방법으로 조직적인 태업을 확산시켜 나가기로 했으나 전면적인 파업에는 나서지 않을 방침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조는 33명의 노조간부들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병력이 사내에 투입될 경우에는 전면파업에 돌입하기로 하고 정당방위대 조직과 화염병 제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서 회사측은 전체조합원 찬반투표 실시는 불법이라고 지적하고 태업등 노조의 실력행사가 확산될 경우에는 정부의 승인절차를 거쳐 무기한 휴업조처를내리는등 강경한 자세로 맞설 태세여서 노사분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측 관계자는 『노조측이 불법쟁의를 할 경우 휴업때 급여인 임금의 70%도 지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3개중대 4백여명의 병력을 회사주변에 배치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며 고발된 노조간부들이 계속 소환에 불응하면 일제검거에 나서 이중 핵심간부 10여명을 구속할 방침이다. 한편 울산지방노동사무소는 이날 노조측에 공문을 보내 『찬반투표로 쟁의행위에 돌입할 경우 노조원은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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