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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식 나이 역사 속으로… “정년·백신 등 따로 계산법 혼선 없앨 것”

    한국식 나이 역사 속으로… “정년·백신 등 따로 계산법 혼선 없앨 것”

    #1. 남양유업 노사는 2014년 7월 단체협약에서 ‘56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56세를 두고 노사의 해석이 엇갈리며 정면충돌했다. 사측은 56세 앞에 ‘만’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식 세는 나이로 보고 ‘만 55세’로, 노조 측은 ‘만 56세’로 해석해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대법원은 지난 3월 ‘만 56세’로 해석한 원심을 깨고 ‘만 55세’로 최종 해석했다. #2. 코로나19 잔여 백신 ‘당일 예약 서비스’ 과정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과 관련해 ‘연 나이 30세 미만’은 접종을 권장하지 않기로 했다. 접종 현장에서는 이를 두고 ‘연 나이’인지, ‘만 나이’인지 나이 계산법에 대한 혼선이 발생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11일 우리나라의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고 밝힌 건 이러한 사회 혼란과 국민 불편을 해소하고, 한국식 나이와 해외 통용 나이의 기준이 달라 빚어지는 혼선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현재 우리나라의 나이 계산법은 ‘세는 나이’, ‘만 나이’, ‘연 나이’ 방식이 혼용되고 있다. ‘세는 나이’는 한국식 나이 기준으로,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된 뒤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씩 먹는다. ‘만 나이’는 국제 통용 기준으로, 출생일 기준 0살부터 시작해 생일이 될 때마다 한 살씩 늘어난다. ‘연 나이’는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나이로, 태어나면 0살로 보고 해가 바뀌면 한 살씩 올라간다. ‘세는 나이’는 일상생활에서, ‘만 나이’는 현행법상 세금·의료·복지 기준으로, ‘연 나이’는 청소년보호법이나 병역법 등 일부 법률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식 나이 계산법은 국제 통용 기준과 동떨어져 혼선이 빚어지곤 했다. 12월 31일 태어난 아이는 이듬해 1월 1일이 되면 한국식 나이 계산법으론 하루 만에 ‘2살’이 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0살’이다. 인수위는 우선 민법과 행정기본법에 ‘만 나이’ 계산법과 표기 규정을 마련해 법령상 민사·행정 분야의 ‘만 나이’ 사용 원칙을 확립하고 ‘연 나이’ 계산법을 채택하고 있는 개별법도 정비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민법에 ‘만 나이’ 적용 원칙이나 표기 방법을 명문화하는 방안, 행정기본법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정책을 수립하거나 공문서 작성 때 ‘만 나이’만을 사용하고 국민에게 ‘만 나이’ 계산법을 적극 권장·홍보할 책무를 규정하는 방안 등을 추진한다. 법제처는 내년까지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올해 중 행정기본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예정대로 내년에 ‘만 나이’가 도입되면 한국식 나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만 나이’ 기준 통일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었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였던 지난 1월 ‘59초 쇼츠’를 통해 “법 개정을 통해 만 나이가 사회적으로 정착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용호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는 “‘만 나이’ 사용이 일상생활에서 정착되면 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법령이 적용되거나 행정·의료서비스가 제공될 때 국민들 혼란이 최소화되고 국제관계에서도 오해가 발생하지 않으며 각종 계약에서 나이 해석에 관한 다툼의 여지가 사라져 법적 분쟁이나 불필요한 비용이 크게 감소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 미래 인재양성, 청년과학자 양성에 올해 8조 투입한다

    미래 인재양성, 청년과학자 양성에 올해 8조 투입한다

    정부가 미래 인재와 청년과학자 양성을 위해 8조원을 투입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7일 ‘제12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 미래인재특별위원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제4차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2021~2025년)’의 2021년도 추진실적을 점검하고 2022년도 시행계획을 수립확정했다. 이에 따르면 과기부와 15개 중앙행정기관,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2021년 5조 1359억원에서 2022년 8조 843억원으로 대폭 확대된다. 구체적으로는 기초가 탄탄한 미래인재 양성을 위해 초중고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수업 활성화하고 AI 선도학교 선정을 지난해 566개교에서 올해 1000개교로 늘릴 확대할 계획이다. 또 산업·현장 맞춤형 인재양성을 위해 소프트웨어 전문융합인재 양성을 늘리고 이공계 미취업자 대상 기업 맞춤형 연수지원 및 산업수요 기반 연구과제 지원을 늘려 현장문제 해결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이공계 신진박사의 자율적, 독립적 연구역량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개인기초연구 지원규모를 2021년 1조 4769억원에서 2022년 1조 6283억원으로 늘린다. 인공지능 분야, 기후기술, 감염병 연구, 무인이동체 등 첨단기술 분야의 인력수요에 대응한 석박사급 고급 연구개발 인재 육성을 늘린다. 정부는 비대면 시대에 대응해 수요자 맞춤형 온오프라인 통합 교육시스템을 운영하고 디지털 혁신 선도인력 육성, 주력산업 인재의 디지털 전환 교육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경력단절 여성과학기술인의 연구과제 지원 확대를 통해 여성 과학기술인의 일자리를 늘리고 고경력 우수연구자의 정년 이후 후속연구개발 지원도 추진할 방침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앞으로 주요 정책 환경 변화와 분야별 중장기계획을 시행계획에 반영하고 부처별 정책·사업을 구체화하는 등 기본계획의 효과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 부산 행정관료·경찰 출신들, 지방선거 출마 ‘열풍’

    부산 행정관료·경찰 출신들, 지방선거 출마 ‘열풍’

    부산지역 고위 행정 관료와 경찰 출신의 인사들이 오는 6월 1일 치러질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기초단체장에 잇따라 도전한다. 1일 부산지역 정가에 따르면 이번 부산 기초단체장 선거에 출마 의사를 나타낸 행정직 관료 출신 인사는 현재 4명이다. 이들은 고위 공무원 출신이고, 모두 국민의힘 공천을 희망하고 있다. 정재관 전 금정구 부구청장은 부산진구청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5선의 서병수(부산진갑) 국회의원 측근으로 분류된다. 정 전 부구청장은 부산진구청에서 20년, 부산시청에서 15년 근무했다. 조성호 전 부산시 행정자치국장은 북구청장에 도전한다. 북구청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부산시로 옮겨 행정자치국장을 지내고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이갑준 전 부산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사하구청장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사하구 부구청장, 부산시 문화체육관광국장과 안전행정국장 등을 지내고 퇴직한 뒤 5년 넘게 부산상의 상근부회장으로 일했다. 김형찬 전 부산시 건축주택국장은 정년을 7년이나 남긴 지난해 11월 명예퇴직하고, 강서구청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3선에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 노기태 현 구청장과 맞붙게 됐다. 퇴직 경찰관들도 기초단체장 출마 채비를 마쳤다. 이순용 전 금정경찰서장(경무관), 정명시 전 기장경찰서장(총경), 김성수 전 해운대경찰서장(총경) 등 3명은 각각 서장으로 근무했던 지역 단체장에 도전한다. 3명 모두 국민의힘 소속이다. 퇴직 공무원 출신 인사들이 기초단체장 선거에 뛰어들면서 지역 정가의 반응도 엇갈린다. 행정직 관료 출신 예비후보들은 오랜 공직생활 경험을 토대로 안정적인 구정을 펼칠 수 있고, 부산시와 원활한 업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구정 혁신 의지가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경찰관 출신 예비후보들은 지역 사정에 밝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십 년간 계급 중심의 경직된 조직 생활을 한 탓에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행정조직을 이끌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 5·18 진압 거부 故 안병하 치안감 의원면직 취소

    5·18 진압 거부 故 안병하 치안감 의원면직 취소

    경찰청, 유족 만나 통보..급여 정년까지 소급해 지급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향한 발포 명령을 거부해 고초를 겪고 사직한 고 안병하 치안감에 대한 의원면직 처분이 취소됐다.진교훈 경찰청 차장은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안 치안감의 부인 전임순씨 등을 만나 이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위로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달 24일 안 치안감에 대한 의원면직이 불법 구금과 고문 등 강박에 의한 것으로 보고 이를 취소한다고 경찰청에 통보했다. 육사 출신인 안 치안감은 6·25전쟁에 참전하고 중령으로 예편해 1962년 치안국 총경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전남경찰국장(경무관)이었던 그는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라는 신군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다친 시민들을 치료했다. 이 일로 안 치안감은 그해 5월 26일 직위해제됐으며 군 보안사에 구금돼 조사를 받은 뒤 6월 2일 사표를 내고 의원면직됐다. 이후 고문 후유증으로 투병하다 1988년 10월 10일 숨을 거뒀다. 경찰청은 2017년 안 치안감이 시민의 생명과 재산, 인권 보호를 위해 힘쓴 공로를 인정하고 2017년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했다. 유족은 지난해 6월 안 치안감의 사직 의사표시는 고문 등 강압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의원면직 처분을 취소해 명예를 회복하고 그에 따른 미지급 급여를 지급하라는 고충민원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제기했다. 권익위는 이를 받아들여 지난달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안 치안감의 의원면직 처분을 취소하고 미지급 급여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급여 미지급 기간은 계급정년이 아닌 당시 61세였던 연령정년으로 보고 고인이 사망한 1988년 10월 10일까지 100개월분 급여를 소급해 지급한다.
  • 소비자금융 철수한 한국씨티은행, 지난해 희망퇴직 비용만 1조원 넘어

    소비자금융 철수한 한국씨티은행, 지난해 희망퇴직 비용만 1조원 넘어

    지난해 소비자금융 부문에서 철수한 한국씨티은행이 희망퇴직 비용으로 1조 2000억원 정도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796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거뒀다고 30일 공시했다. 소비자금융 단계적 폐지와 연관된 희망퇴직 비용은 1조 1920억원으로, 이러한 일회성 항목을 제외하면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434억원 수준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4월 소비자금융 부문 철수를 공식적으로 밝힌 뒤 고용 승계를 전제로 소비자금융 사업부문 전체 매각을 추진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자산관리(WM), 카드, 여수신 사업 부문을 각각 매각하는 방식도 검토했다. 하지만 결국 적절한 매각 상대를 찾지 못하면서 지난해 10월 단계적 폐지 절차를 밟기로 했다. 이후 은행은 최대 7억원을 한도로 정년까지 남은 급여를 보상해주는 방안을 희망퇴직 조건으로 제시했다. 희망퇴직 신청자는 2300여명에 달했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1조 330억원 수익을 거뒀지만, 희망퇴직으로 1조원 넘는 비용을 치르면서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 고객 대출자산은 1년 전보다 0.6% 감소한 24조 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예수금은 같은 기간 2.4% 증가한 28조원이었다. 유명순 은행장은 “소비자금융의 단계적 폐지 과정에서 고객 보호를 최우선에 두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씨티은행은 이날 정기 주주총회 열고 정민주 전 BNK 금융지주 부사장, 지동현 전 KB금융지주 부사장을 각각 임기 1년의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재선임했다. 또 김민희 법무법인 해자현 대표변호사를 임기 2년의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신규 선임했다.
  • 경남교육감 선거 진보 박종훈 교육감과 중도·보수 김상권 후보 맞대결 전망

    경남교육감 선거 진보 박종훈 교육감과 중도·보수 김상권 후보 맞대결 전망

    6·1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경남도교육감 선거는 3선에 도전하는 진보성향 박종훈(62) 교육감과 중도·보수 단일후보인 김상권(65) 전 경남교육청 교육국장의 양자대결이 될 전망이다. 경남교육감 중도·보수후보 단일화 경선추진협의회는 중도·보수예비후보 4명의 단일화 경선 여론조사 결과 김상권 후보가 26.1%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고 30일 밝혔다.김명용 창원대 법대 교수와 최해범 전 창원대 총장, 허기도 전 경남도의회 의장 등 나머지 예비후보 3명의 지지율은 경선 규정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 단일후보로 확정된 김 전 교육국장은 이날 도교육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민의 준엄한 결정에 감사드리며 책임지고 경남교육을 바꾸라는 추상같은 명령으로 받아들인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후보는  “단일화에 참여한 세 후보께도 감사드리며 끝까지 함께 해 목표를 이루어 반드시 경남교육을 살리겠다”고 말했다. 경남교육감 중도·보수 단일후보 결정을 위한 이번 여론조사는 김 전 교육국장을 비롯한 후보 4명의 합의에 따라 지난 27~29일 3일간 진행됐다. 김 후보는 평교사로 시작해 교감, 교장을 거쳐 경남도 교육청 교육국장으로 정년퇴임 하기까지 37년간 경남 교육계에 몸담았다. 앞서 박종훈 교육감은 3선 도전을 밝히고 지난 2월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이번 여론 조사는 나라사랑연합회 의뢰로 한길리서치와 조원씨앤아이 두 기관이 경남 만 18세 이상 성인 각각 1507명과 1500명을 대상으로 27∼29일 100% 무선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실시했다. 응답률은 각각 8.1%와 10.4%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 금융사 사외이사, ESG 타고 ‘여성 시대’

    금융사 사외이사, ESG 타고 ‘여성 시대’

    주요 금융사들의 정기 주주총회가 마무리된 가운데 올해 새로 선임된 금융권 사외이사 중 여성이 늘면서 이사회 구성이 다양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8월 특정 성별이 이사회를 독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데다 금융사들이 디지털, 소비자보호,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강화한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8개 금융그룹 중 신한·우리·BNK·DGB금융은 주주총회를 거쳐 신임 사외이사로 여성 후보를 선임했다. 신한금융은 여성 경제학자인 김조설 오사카상업대학 경제학부 교수를, 우리금융은 ESG 전문가인 법무법인 세종의 송수영 변호사를 발탁했다. BNK금융은 김수희 변호사를, DGB금융은 김효신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30일 주주총회를 여는 JB금융도 이성엽 회계사를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해 놓은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앞으로도 여성은 물론 ESG, 디지털 분야 전문가 몫의 사외이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사외이사는 이사회를 비롯해 각종 위원회 등에 참석하면서 금융사의 주요 안건을 의결한다. 겸직이 가능하고,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계, 금융권, 경제관료 등 모두가 원하는 자리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외이사는 1년에 10차례 이상 열리는 이사회 외에도 담당 분과마다 각종 소위원회를 맡게 된다”며 “정년과 같은 나이 제한도 없고, 겸직 제한도 없어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KB·신한·하나·우리·NH농협·BNK·DGB·JB금융 등 8개 금융그룹의 사외이사는 모두 57명이다. 이들은 1년간 50차례 이상 열리는 이사회와 각종 위원회에 참석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8개 금융그룹의 사외이사가 회의 참석 등을 위해 할애한 시간은 평균 317시간이다. 통상적인 근무시간에 비춰 보면 1년 중 40일 정도를 사외이사 역할을 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에서 해당 금융사 경영진 경영활동의 기준·절차·방식 등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개선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해당 금융사의 경영목표·전략 수립 및 평가, 예결산 승인, 지배구조 원칙·정책 수립 등 주요한 경영행위에 대한 자문은 물론 의결권도 행사한다. 회사의 경영활동 전반을 들여다보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기준으로 8개 금융그룹 사외이사들의 각종 수당을 포함한 평균 연봉은 6992만원이다. 금융사들은 기본급에 더해 회의 참석 횟수에 따라 수당을 지급한다. 대부분 사외이사가 겸직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 적지 않은 돈이다. 게다가 회의 참석 시에는 차량이 제공되고, 건강검진 혜택 등도 받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연봉이나 처우도 나쁘지 않지만, 사외이사라는 경력 자체가 전문성을 인정받는다는 의미여서 해당 분야에서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56세부터 임금피크’ 한국 나이? 만 나이?… 대법 “만 55세”

    노사 단체협약에 ‘56세부터 임금피크를 적용한다’고 명시했다면 정확한 적용 시점은 ‘만 55세’일까, ‘만 56세’일까. 1·2심 법원과 지방·중앙노동위원회에서 반반으로 갈렸던 판단은 대법원에서 ‘만 55세’로 결론이 났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8일 남양유업이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단체협약 해석 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남양유업 노사는 2014년 단협을 개정해 “근무정년은 만 60세로 하며 56세부터는 임금피크를 적용하되 직전년(55세) 1년간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피크를 적용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문제는 몇 년 뒤 실제 임금피크 적용 시점을 두고 노사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발생했다. 사측은 해당 조항의 56세가 “정년으로 정한 나이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해당 나이에 도달한 때까지’를 의미한다”며 만 55세라고 주장했다. 반면 노측은 “단협은 법규적 성질을 갖는 규범이므로 문언상 명확한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없다”며 맞섰다. 56세를 만 56세가 아닌 만 55세로 보면 임금피크 적용이 빨라져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단협을 그렇게 볼 순 없다는 것이다. 지방노동위원회는 사측의 손을 들어 줬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임금피크제는 만 56세부터 적용되는 게 맞다”는 재심 판정을 내놨다. 그러자 사측은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의 판단도 갈렸다. 1심은 단협이 조합원의 정년을 ‘만 60세’로 정했으므로 임금피크 적용 나이도 ‘만 나이’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2심은 56세를 만 56세로 보면 급여 삭감 기간이 길어져 노동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단협은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유지·개선하기 위한 것이라 이를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다시 판단을 뒤집고 사측의 손을 들어 줬다. 재판부는 “단협 규정에 따른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을 만 55세로 보는 것이 명문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해 해석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 단체협약에 쓴 ‘임금피크 56세’는 정확히 몇 살? 법원도 엇갈린 판단

    단체협약에 쓴 ‘임금피크 56세’는 정확히 몇 살? 법원도 엇갈린 판단

    노사 단체협약에 ‘56세부터 임금피크를 적용한다’고 명시했다면 정확한 적용 시점은 ‘만 55세’일까, ‘만 56세’일까. 1·2심 법원과 지방·중앙노동위원회에서 반반으로 갈렸던 판단은 대법원에서 ‘만 55세’로 결론이 났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8일 남양유업이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낸 단체협약 해석 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남양유업 노사는 2014년 단협을 개정해 “근무정년은 만 60세로 하며 56세부터는 임금피크를 적용하되 직전년(55세) 1년간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피크를 적용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문제는 몇 년 뒤 실제 임금피크 적용 시점을 두고 노사가 다른 해석을 내놓으며 발생했다. 사측은 해당 조항의 56세가 “정년으로 정한 나이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해당 나이에 도달한 때까지’를 의미한다”며 만 55세라고 주장했다. 반면 노측은 “단협은 법규적 성질을 갖는 규범이므로 문언상 명확한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없다”며 맞섰다. 56세를 만 56세가 아닌 만 55세로 보면 임금피크 적용이 빨라져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단협을 그렇게 볼 순 없다는 것이다. 지방노동위원회는 사측의 손을 들어 줬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임금피크제는 만 56세부터 적용되는 게 맞다”는 재심 판정을 내놨다. 그러자 사측은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의 판단도 갈렸다. 1심은 단협이 조합원 정년을 ‘만 60세’로 정했으므로 임금피크 적용 나이도 ‘만 나이’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2심은 56세를 만 56세로 보면 급여 삭감 기간이 길어져 노동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단협은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유지·개선하기 위한 것이라 이를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은 다시 판단을 뒤집고 사측의 손을 들어 줬다. 재판부는 “단협 규정에 따른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을 만 55세로 보는 것이 명문 규정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형 해석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 나이 많다고 근로시간 연장 제외? 인권위 “개인마다 노화 정도 달라”

    나이 많다고 근로시간 연장 제외? 인권위 “개인마다 노화 정도 달라”

    “나이 이유로 근로 차별 개선해야”국가인권위원회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근무시간 연장계약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한 대형 슈퍼마켓 점장에게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게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업체의 사업본부장에게는 영업점 점장들에게 차별인식 개선 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이 곳에서 일하는 A씨는 동료 직원 1명이 그만두자 슈퍼 측이 기존 직원의 근무시간을 연장하기로 하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A씨를 제외한 나머지 직원 3명에 대해서만 근무시간을 하루 6시간 30분에서 8시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A씨는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업체 측은 “8시간 내내 서서 근무해야 하는 근무 특성을 고려해 기본적인 체력을 선택 기준으로 삼았다”면서 “직원 개개인의 업무태도, 건강 상태 파악이 어려워 나이가 적은 사람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치는 사기업의 자율적 경영활동에 속하는 것”이라며 “근로시간에 대응하는 임금 지급은 노동력 제공에 대한 대가로 지급되는 것이므로 특별한 이익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개인마다 노화의 정도는 차이가 있고 노령에 따른 개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해 측정하기는 어렵다”면서 슈퍼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근로시간 연장은 불이익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근로시간이 확대되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대상자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 근로시간 연장 대상에서 배제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를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한 행위”라고 봤다.
  • ‘개구리 소년 변사사건’ 30년 추적기 발간

    ‘개구리 소년 변사사건’ 30년 추적기 발간

    ‘개구리 소년 변사사건’의 사인을 비교·분석한 현직 기자의 추적기가 발간됐다. 책은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가운데 하나인 이 사건이 발생한 지 꼭 31년 되는 3월 26일을 앞두고 발간돼 주목받는다.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부제 개구리 소년 변사사건 30년 추적기)라는 제목의 책은 <책을 쓰면서>와 <책을 마무리하면서>를 포함해 모두 7부로 구성됐다. 제1부 <임시공휴일에 사라지다>에서는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은 집단가출한 것으로 판단하고 오락실과 만화가게 등 대구 시내 일원을 수색한다. 이 때문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아이들을 돌려보내면 관용을 베풀 것”이라는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목격자들의 증언은 달랐지만, 경찰은 아이들이 앵벌이 조직에 적응한 것으로 판단했다. 제2부 <허위제보만 넘쳐나다>에서는 각종 허위제보로 인해 경찰력이 낭비된 사례를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납치범으로 몰렸던 경북 칠곡농장 주민들의 집단 반발과 종식이 아버지 김철규 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카이스트 김가원 교수의 해프닝, 무속인들에게 끌려다닌 당시 수사본부의 상황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제3부 <유골로 돌아오다>에서는 11년 6개월 만에 아이들의 유골이 와룡산에서 발견되자 사인을 ‘저체온사’로 주장한 경찰의 성급함과 사인을 타살로 판단한 전문가들의 주장, 야산에서는 조난 당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람들의 주장이 이어진다. 유골 발견 당시 ‘엉성하게 대처해 사건의 단서를 사라지게 했다’는 비난을 받은 경찰은 “발굴 현장을 훼손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제4부 <살해범은 누구일까?>에서는 아이들 주변 인물과 도사견 사육자, 50사단 군인들이 수상하다는 당시 수사본부의 수사상황을 들려준다. 또 미군 병사가 범인이라는 네티즌의 주장, 분노조절장애자가 범인이라는 전문가의 주장, 프로파일러들이 말하는 범인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제5부 <미안하다 아들아!>에서는 실종된 지 13년 만에 치러진 아이들의 영결식, 아들 잃은 슬픔을 안고 하늘나라로 떠난 종식이 아버지 김철규 씨의 애틋한 이야기, 저체온사를 음모론으로 몰고 간 방송사의 황당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제6부 <저체온사가 확실하다>에서는 이 사건의 사인이 저체온사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범행동기와 도구가 없고, 두개골 상처는 사후에 생긴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경찰은 사건 초기 유골 발견 지점을 수색하지 못했고 사체 역시 매장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법의학팀의 감정 결과는 정치적이었다는 의견도 다룬다. 제7부 <공소시효와 태완이법>에서는 이 사건이 왜 변사사건인가를 정리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유가족들에게 김영규 전 총경이 편지를 보낸 사연 등을 소개한다. 또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주장한 유족들의 힘이 ‘태완이법’을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유와 와룡산에 소년들의 추모비가 세워진 까닭, 대구경찰청의 재수사 전망을 알아본다. 이 책을 쓴 사람은 국민일보 대구경북본부장으로 근무하는 김재산 기자다. 정년퇴직을 앞둔 저자는 “대중들에게 ‘살해 암매장 사건’으로 각인된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누군가는 정리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용기를 냈다”며 “경찰의 재수사로 사건의 진실이 오롯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구리 소년 변사사건은 1991년 3월 26일 대구 성서초교 학생 다섯 명이 도롱뇽알과 탄피(탄두)를 줍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지 11년 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마을 인근 와룡산 중턱에서 유골로 발견된 사건이다.
  • 29년 430회 헌혈왕…코로나도 못 막았다

    29년 430회 헌혈왕…코로나도 못 막았다

    29년간 429회. 코로나19 확산에도 꾸준히 헌혈을 멈추지 않았던 70세 노인이 ‘헌혈 정년’을 맞이하며 헌혈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다. 70세 생일을 일주일 앞둔 최영돈(70)씨는 22일 서울 노원구 대한적십자사 동부혈액원에서 생애 마지막 헌혈 기념식을 가졌다. 헌혈이 가능한 나이는 만 16세부터 69세 사이로 70세는 ‘헌혈 정년’이라 불린다. 최씨는 1994년 군복무를 마치고 소령으로 전역한 후 헌혈을 시작했다. 이후 헌혈 정년을 맞이할 때까지 매년 꾸준히 15회 이상 하다 보니 헌혈 횟수가 어느새 429회가 됐다. 오는 24일로 예정한 430회째를 마지막으로 헌혈 침대와 이별한다. 최씨는 “30회까지만, 50회까지만, 100회까지만 해야지 하다 보니 어느덧 430회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전쟁 와중 피난지인 부산에서 태어난 최씨는 중·고등학생 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배달을 하며 어렵게 살았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육군3사관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됐지만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토목공학·행정학·영문학 등을 공부했다. 최씨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사회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헌혈도 그 일환이다. 소액 기부로 시작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 서울 9호, 전국 95호 회원이 됐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면서 헌혈 발길이 줄어드는 가운데 오랜 시간 꾸준히 헌혈해 온 최씨는 단 한 번의 헌혈 기회가 남았음을 아쉬워했다. 그는 “헌혈은 건강해야 할 수 있고, 오히려 헌혈을 하면서 더 건강해지는 기분을 느꼈다”면서 “아직도 건강만큼은 자신 있는데 마지막 헌혈을 하게 된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헌혈왕’ 최씨의 바람은 자신의 모습이 후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것이다. 최씨는 “나도 이렇게 해냈으니 너희도 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29년 헌혈 인생 마침표…70세 노인의 430번째 마지막 헌혈

    29년 헌혈 인생 마침표…70세 노인의 430번째 마지막 헌혈

    마지막 430번째 헌혈 앞둔 ‘헌혈 정년’“헌혈로 건강해진 기분…후손들에게 귀감되길”29년간 429회. 코로나19 확산에도 꾸준히 헌혈을 멈추지 않았던 70세 노인이 ‘헌혈 정년’을 맞이하며 헌혈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다. 70세 생일을 일주일 앞둔 최영돈(70)씨는 22일 서울 노원구 대한적십자사 동부혈액원에서 생애 마지막 헌혈 기념식을 가졌다. 헌혈이 가능한 나이는 만 16세부터 69세 사이로 70세는 ‘헌혈 정년’이라 불린다. 최씨는 1994년 군복무를 마치고 소령으로 전역한 후 헌혈을 시작했다. 이후 헌혈 정년을 맞이할 때까지 매년 꾸준히 15회 이상 하다보니 헌혈 횟수가 어느새 429회가 됐다. 오는 24일로 예정한 430회째를 마지막으로 헌혈 침대와 이별한다. 최씨는 “30회까지만, 50회까지만, 100회까지만 해야지 하다보니 어느덧 430회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전쟁 와중 피난지인 부산에서 태어난 최씨는 중·고등학생 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배달을 하며 어렵게 살았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육군3사관학교를 거쳐 소위로 임관됐지만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토목공학·행정학·영문학 등을 공부했다. 최씨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사회 보답 하겠다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헌혈도 그 일환이다. 소액 기부로 시작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 서울 9호, 전국 95호 회원이 됐다.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회원수가 2662명에 달하는 아너 소사이어티의 초기 회원에 들 정도로 사회 환원을 일찌감치 시작한 셈이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면서 헌혈 발길이 줄어드는 가운데 오랜 시간 꾸준히 헌혈해 온 최씨는 단 한 번의 헌혈 기회가 남았음 을 아쉬워했다. 그는 “헌혈은 건강해야 할 수 있고, 오히려 헌혈을 하면서 더 건강해지는 기분을 느꼈다”면서 “아직도 건강만큼은 자신있는데 마지막 헌혈을 하게 된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헌혈왕’ 최씨의 바람은 자신의 모습이 후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것이다. 최씨는 “나도 이렇게 해냈으니 너희도 할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순천시 해룡면에 세워진 ‘청근검 비석’ 유래는?

    순천시 해룡면에 세워진 ‘청근검 비석’ 유래는?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지만 당시엔 너무나 힘들었어요. 잊지 않고 이런 큰 행사를 마련해줘 너무나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순천시 해룡면 제13대 면장(1989년 12월부터 1994년 12월)을 역임한 김학년(86) 씨는 “주변에서는 본인 땅도 아닌데 왜 그렇게 고생하면서 애를 쓰냐며 말렸지만 공직자로서 외면할 수 없었다”며 “벌써 30여년이 지났지만 광주 법정까지 오가면서 겪었던 힘들었던 장면들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웃음을 보였다. 김씨는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망설임 없이 그때의 선택을 다시 할 것이다”고도 했다. 21일 오후 3시 30분 순천 해룡면 행정복지센터 앞에 허석 시장과 관내 기관장, 지역 원로,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쌍비석 제막식’이 열렸다. 해룡면 지역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 걸음으로 해룡면사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주민들의 화합과 단결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특히 김 전 면장의 공덕을 기르는 자리여서 더 의미가 깊다.김 전 면장은 지난 1990년 해룡면사무소(현 순천농협 해룡지점)가 협소해 이설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희사되었던 면사무소 부지 전체 2040㎡중 684㎡가 개인 앞으로 등기돼 있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등기부에 올라간 A씨는 순천에서 막강한 자산가 가족이어서 큰 힘을 발휘했었다. 1심에서는 패소했다. 하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고, 2년 동안 수십 차례 재판정을 오가면서 힘겨운 싸움을 벌인 끝에 광주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재판 비용 400여만원도 모두 자비를 들여 마련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 행정복지센터를 현재의 부지로 옮길 수 있었다. 면민들은 지난 1991년 김 전 면장의 공로를 알리기 위해 청렴·근면·검소의 뜻을 담은 높이 150㎝의 ‘청근검’ 표석을 세웠다. 평소 공직자로서 모범이 되었던 삶의 자세와 후배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에 대해 제시하는 표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김 전 면장의 행적과 현재의 행정복지센터 설립 과정을 아는 사람들이 드물어 시는 이날 두 가지 내용을 기재한 동판을 제작, 기념식을 열었다. 김 전 면장은 1994년 12월 정년 퇴직 후 고향인 해룡면 도롱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난 1월 취임한 후 김 전 면장의 업적을 모른 사람들이 많다고 판단, 쌍비석 설립을 추진한 허국진 해룡면장은 “쌍비석은 우리 지역의 역사를 나타내는 산 증인이다”며 “면 발전을 위해 더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 존재의 성찰을 넘어, 무한 우주로 향하는…‘새벽 언어’의 트레킹[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존재의 성찰을 넘어, 무한 우주로 향하는…‘새벽 언어’의 트레킹[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최근 김수복 시인은 시집 ‘고요공장’을 출간했다. ‘슬픔이 환해지다’(2018) 이후 펴낸 열세 번째 시집이다. 작품 대부분은 양재천 산책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설산이 바라보이는 네팔 포카라에서 얻어진 결실이다. 시인은 이 작품들이 황폐한 시대를 통과하면서 성찰과 신생을 열망했던 이미지라고 설명한다. “이번 시집에는 지나온 삶의 고백과 고해(告解)를 통한 존재론적 성찰의 모습을 담으려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40년 가까이 해 온 대학 정년을 앞두고 제 삶을 성찰하고 고백해 보자는 의미였지요.” 그 점에서 이번 시집은 새로운 존재의 자유로 나아가는 출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 새로운 차원을 향해 출발한 그는 “가을바람이 숨이 멎었나/적막이 선듯하다/어디쯤 그의 배는 가고 있을까”(‘이슬’)라며 자신의 시 쓰기가 적막의 자유로 나아가기를 희원하면서도 더러 그 “작은 배들이 나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어떤 배는 돌아오지 못했고/어떤 배는 돌아와 잠들었다”(‘모항’)면서 엄연한 인생의 파고(波高)에 대해 깊은 사유를 펼치기도 했다. 고해와 성찰은 그렇게 시작됐다.●문학에 빠져, 가녀린 열망이 낭보로 시인은 1953년 10월 경남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외가인 산청군 금서면 신아리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대구로 거처를 옮겨 지낸 청소년기는 그로 하여금 문학에 눈을 뜨게 해 준 결정적 시기였다. 대륜중 2학년 때 도서관에서 한국문학 전집을 독파하던 중 ‘소년 김수복’은 강한 전율에 사로잡혔다. 오영수 작가의 ‘메아리’라는 작품을 읽는 순간 경험한 충격이었다. “소설의 무대가 제가 어릴 때 땔감 구하러 오르내리던 필봉산 화전터였어요. 유년의 장소가 소설의 현장이 될 수 있다는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그 후 도서관 2층에서 줄곧 문학 전집에 빠져 지냈습니다.” 대륜고로 진학한 그는 문예반장, 학생회장, 대구 소재 고등학교 연합동인 ‘회귀선’ 회장 등 열정적인 고교문사 시절을 보낸다. 이곳 문예반은 이상화, 이육사의 시정신을 자랑삼아 전국 고교 문단을 주도한 문청들의 산실이었다. ‘회귀선’은 고문으로 시인 이호우, 김춘수, 아동문학가 이응창 선생이, 지도교사로는 이성수, 여영택 시인이 있었다. 학교를 순회하면서 작품 합평회를 열었는데 지금도 그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고 한다.단국대 재학 시절은 대부분 ‘단대신문’과 함께한 여정이었다고 시인은 술회한다. 1학년 수습기자로 시작해 기자, 편집장으로, 졸업 후에는 편집주임, 편집국장으로, 교수 부임 후에는 주간, 편집인으로, 지금은 총장으로 발행인이 됐으니 단연 그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나 싶다. ‘청년 김수복’은 단국대 행정학과 2학년 때인 1975년 3월 ‘한국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하는데, 이때 월간 ‘한국문학’은 김동리 선생이 주간이었고 이문구 선생이 편집장이었다. 김현승, 박재삼 시인이 시 부문 신인상 심사를 맡았다. “당시 김현승 선생께서는 병상에서 심사하셨다고 들었는데 한 달 후엔가 작고하셔서 생전에 뵙지를 못했습니다. 박재삼 선생은 제게 시인으로서 사표가 돼 주셨지요.” 김수복의 첫 시집 서문에서 박재삼 선생은 “자연에 펼친 경개를 인간의 정한과 병렬시켜 바라보는 그 지혜로운 눈을 가상하지 않을 수 없다”며 갓 등단한 시인에게 평생의 시적 지침을 주기도 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천왕봉 왕산 아래 고향 산청에 내려가 있을 때 눈발이 퍼붓는 날 한꺼번에 쓰여진 작품들로 그는 시인으로 출발하게 됐는데, ‘겨울 숲에서’, ‘청동그릇’, ‘저물 무렵’ 등 다섯 편의 시가 그 주인공이었다. 화개장터 금서우체국에서 차갑게 굳은 손으로 투고했던 그 가녀린 열망이 평생의 낭보로 돌아온 것이다. 등단 후에 시인은 당시 장충식 총장의 각별한 배려로 학기 중에 국문과로 전과를 하게 되는데, 특별 전액장학생으로 졸업 때까지 대학을 다니게 된 것이다. 시인으로서의 이른 등단이 그의 인생 전체를 돌려놓았던 셈이다.●공감적 교육과 단정한 서정의 총장 대학원에 진학한 시인은 1980년 ‘윤동주 연구’로 석사 학위를, 1990년 김소월과 윤동주 시를 다룬 ‘한국 현대시의 상징유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당시 윤동주 관련 선행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 논문은 이후 윤동주의 삶과 시를 다룬 평전 ‘어두운 시대의 시인의 길’(1984),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1988), ‘별의 노래’(1995) 등으로 개정 속간되는 역사를 이어 간다. “윤동주와의 만남은 제게 시를 창작하고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행복한 인생의 활로를 개척해 줬습니다. 윤동주의 시로 학위를 받고 교수로 부임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숙명이 됐지요.” 아닌 게 아니라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시들에 대한 대(對)시집 ‘밤하늘이 시를 쓰다’(2017)는 그 실존적 보답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시인은 한국문학의 외연을 풍부하게 개척한 연구자 및 기획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한국연구재단에서 펀딩을 해 한국문학 공간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실용화 방안을 연구했고, 남북한 문화예술의 소통과 융합 방안을 연구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단국대에 문예창작과를 창설했고 이듬해 한국문예창작학회를 설립해 문예창작의 학문적 범주 가능성을 크게 확장시켰다. 국제적 네트워크도 활발하게 조성해 국제문예창작센터를 설립했고 세계작가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여 사이사이로 ‘시인 김수복’은 세월호 사건의 비극에 대해 “바다에 빠진 해야,/엄마, 엄마, 불러다오/바다에 빠진 달아,/아빠, 아빠, 불러다오”(‘사월이 오면’)라는 애도의 마음을 남겼고 “오늘은 날이 쾌청하여/우리 남해의 먼동을 들쳐서 업고/압록강 너머 요동으로 가서/우리 노을이나 한 점 지고 올까나”(‘한반도’)라며 민족 현실에 대한 단정한 서정을 남기기도 했다. 이래저래 그의 저 깊은 존재론적 수원(水源)은 ‘시’였다.대학 총장과 시인이라는 두 가지 일이 혹시 충돌을 빚지는 않을까? “시인과 총장의 일이 상호 충돌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나 시 쓰기와 조직 경영은 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 쓰기가 관성적 일상을 낯설게 보고 새로움을 발견해야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듯이 대학 경영도 특성화를 통해 조직 활성화를 이룰 수 있지 않습니까?” 과거 관성으로부터 새로운 대학으로 혁신할 때 사회적, 교육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 쓰기 역시 변화와 혁신의 전환이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총장-시인’은 설명해 준다. 다만 충돌이라면 시 쓰기에서는 시인으로서의 실존적 자유가 선행되지만, 대학 경영은 조직 구성원의 상호 인식을 전제로 갱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대학 경영에서 공감적 교육과 행정, 소통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모교의 총장으로서 그의 시심(詩心)이 공감적 교육으로 피어나리라는 예감이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한국시, 아날로그·디지털 만나 확장 시단의 중진으로서 그는 최근의 한국 시에 대해 긍정의 믿음을 표한다. 한국 시가 지녀 온 자율성, 역사성, 내적 외적 동력을 이합집산하며 그 나름대로의 방향과 속도를 가지고 진전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아날로그적 상상력에서 디지털적 상상력의 세계로 이행하면서 시의 본질과 외연을 심화, 확장해 나가리라 봅니다. 다만 예술의 본질에는 들뢰즈가 말한 바 있는 ‘탈영토화 운동’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해요.” 시인은 그들의 관념, 감성, 심리 등이 유한한 순간성에서 무한한 영원성으로 존재 전환해 가는 예술의 보편적 지향과 접속하기를 희망했다. 그야말로 그러한 여정을 밟아 온 수범 사례가 아니겠는가. 다시 ‘고요공장’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고해와 성찰이라는 정신적 전환을 통해 훨씬 자유로워지는 선험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더욱 낯설고 외로운 세계로 나아가야겠지요. 무한한 우주로의 존재론적 탐험을 시작할까 합니다. 더욱더 육체적, 정신적 ‘트레킹’을 열심히 해 보려 합니다. 일상을 낯설게 해 영원성, 신성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경주할까 합니다.” 이제 ‘재영토화 상상력’이 환기하는 저녁의 언어에서 ‘탈영토화 상상력’이 요청하는 새벽의 언어로 자신만의 트레킹을 시작하려 하는 것이다. 존재의 성찰을 넘어 무한한 우주로의 탐험까지 가닿을 그의 시적 여정이 한없이 궁금해진다. 오미크론을 뚫고 따뜻한 기운이 지상에 어김없이 젖어들던 초봄 어느 날의 만남이었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60m 학교 담장에 타일 벽화… 제주 ‘거리예술’ 되다

    60m 학교 담장에 타일 벽화… 제주 ‘거리예술’ 되다

    “아이들이 등하교 때, 선생님들이 출퇴근 때 벽화를 보며 잠시나마 뿌듯함을 느끼고 행복을 충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 서귀포 서귀중앙여자중학교 교문 앞 밋밋하고 칙칙했던 담장이 전교생들의 열정 덕에 벽화로 장식되면서 화려한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벽화 만들기는 양덕부(62) 교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양 교장은 9일 “출근할 때마다 정문 쪽 60m에 이르는 긴 담벼락이 삭막하게 느껴져 무언가 따뜻함을 채우면 좋겠다고 생각해 지난해 10월 미술교사 송수일 선생에게 제안하면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러나 송 선생이 그림은 오래되면 색이 바래진다며 부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 타일로 제작하면 더 오래갈 수 있겠다고 깜짝 제안하면서 거사를 도모하게 됐다. 마침 학교에 도자기 굽는 가마가 있어 송 선생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벽화 제작에는 전교생 505명이 하나가 돼 참여했다. 겨울방학 전 지난해 10월부터 미술 수업을 하면서 직접 귀면 부조를 빚고 타일에 제각기 개성 넘치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귀면은 귀신 얼굴 문양으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액운을 물리치는 의미가 있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3개월을 매달렸다. 귀면 부조 760여점과 타일 작품 3000여점이 탄생했다.작업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60m를 넘는 대형 작업이다 보니 계획했던 타일보다 200장을 더 만들어야 했다. 2, 3학년 학생들이 그림을 더 그렸다. 타일이 많아 굽는 것도 큰일이었다. 송 선생은 방학 동안 가마 곁을 떠나지 못했다. 게다가 학교 가마는 크지 않아서 한 번에 150장밖에 굽지 못한다. 가마를 한 번 사용하면 3~4일은 식혀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굽는 게 한계였다. 결국 졸업생 중 공방을 운영하는 이진미씨 도움을 받아 나머지 절반을 만들었다. 마침내 새 학기 전에 전교생의 땀이 담긴 작품이 빛을 보게 됐다. 송 선생은 61세로 지난달 명예 퇴직했다. 마지막 수업하듯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송 선생은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부임한 지 1년도 안 돼 교정 곳곳의 낡은 곳을 페인트칠하고 리모델링하면서 새 학교가 됐다”며 “그 열정 바이러스에 전염된 듯 나와 학생들이 모든 걸 쏟아부은 듯하다”고 했다. 양 교장은 올해 정년을 맞는다. 송 선생과 함께 큰 선물을 학교에 주고 떠난다.
  • “더 구체적인 학문하라” 부친 권유로 서울대 법대 진학

    “더 구체적인 학문하라” 부친 권유로 서울대 법대 진학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아버지 윤기중씨는 연세대와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교인 연세대 통계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했다. 윤씨는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을 오래 연구해 왔다. 윤 당선인은 유년 시절 경제학자의 꿈을 꾸기도 했지만 더 구체적인 학문을 하라는 부친의 권유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특히 윤 당선인은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낸 아버지의 영향으로 시카고 경제학파의 책을 읽고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중시해 왔다고 한다. ‘원칙주의자’인 윤 당선인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아버지라는 평도 있다. 어머니 최정자씨는 이화여대 교수를 지냈고, 여동생 윤신원씨는 연세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윤 당선인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이 충남 공주 출신이고 외가는 강원 강릉에 기반을 뒀다. 2012년 52세의 나이에 부인 김건희씨와 결혼했으며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다. 다만 개 ‘토리’와 고양이 ‘나비’ 등 일곱 마리의 반려동물을 자녀처럼 키우고 있다. 윤 당선인은 대선 출마 선언날인 지난 6월 2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열면서 반려견을 가장 먼저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윤 당선인이 검사 시절 유기견 ‘나래’와 유기묘 ‘나비’ 등을 입양한 스토리가 다시 재조명되며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토리는 2012년 입양한 반려견으로 한때 교통사고를 당해 안락사를 권유받았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여러 차례 수술을 시켰을 정도로 윤 당선인이 각별하게 애정을 쏟으며 키우고 있다.
  • 60m 학교 담장에 타일 벽화… 제주 ‘거리예술’ 되다

    60m 학교 담장에 타일 벽화… 제주 ‘거리예술’ 되다

    “아이들이 등하교 때, 선생님들이 출퇴근 때 벽화를 보며 잠시나마 뿌듯함을 느끼고 행복을 충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 서귀포 서귀중앙여자중학교 교문 앞 밋밋하고 칙칙했던 담장이 전교생들의 열정 덕에 벽화로 장식되면서 화려한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벽화 만들기는 양덕부(62) 교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양 교장은 9일 “출근할 때마다 정문 쪽 60m에 이르는 긴 담벼락이 삭막하게 느껴져 무언가 따뜻함을 채우면 좋겠다고 생각해 지난해 10월 미술교사 송수일 선생에게 제안하면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그러나 송 선생이 그림은 오래되면 색이 바래진다며 부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 타일로 제작하면 더 오래갈 수 있겠다고 깜짝 제안하면서 거사를 도모하게 됐다. 마침 학교에 도자기 굽는 가마가 있어 송 선생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벽화 제작에는 전교생 505명이 하나가 돼 참여했다. 겨울방학 전 지난해 10월부터 미술 수업을 하면서 직접 귀면 부조를 빚고 타일에 제각기 개성 넘치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귀면은 귀신 얼굴 문양으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액운을 물리치는 의미가 있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3개월을 매달렸다. 귀면 부조 760여점과 타일 작품 3000여점이 탄생했다. 작업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60m를 넘는 대형 작업이다 보니 계획했던 타일보다 200장을 더 만들어야 했다. 2, 3학년 학생들이 그림을 더 그렸다. 타일이 많아 굽는 것도 큰일이었다. 송 선생은 방학 동안 가마 곁을 떠나지 못했다. 게다가 학교 가마는 크지 않아서 한 번에 150장밖에 굽지 못한다. 가마를 한 번 사용하면 3~4일은 식혀야 한다. 일주일에 두 번 굽는 게 한계였다. 결국 졸업생 중 공방을 운영하는 이진미씨 도움을 받아 나머지 절반을 만들었다. 마침내 새 학기 전에 전교생의 땀이 담긴 작품이 빛을 보게 됐다. 송 선생은 61세로 지난달 명예 퇴직했다. 마지막 수업하듯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송 선생은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부임한 지 1년도 안 돼 교정 곳곳의 낡은 곳을 페인트칠하고 리모델링하면서 새 학교가 됐다”며 “그 열정 바이러스에 전염된 듯 나와 학생들이 모든 걸 쏟아부은 듯하다”고 했다. 양 교장은 올해 정년을 맞는다. 송 선생과 함께 큰 선물을 학교에 주고 떠난다.
  • 도이체 오퍼 베를린 오케스트라 이서현·이정욱 종신단원 임명

    도이체 오퍼 베를린 오케스트라 이서현·이정욱 종신단원 임명

    비올리스트 이서현(왼쪽·28)과 콘트라베이시스트 이정욱(오른쪽·29)이 독일 도이체 오퍼 베를린 오케스트라 종신단원으로 임명됐다. 3일 소속사 스테이지원에 따르면 이서현과 이정욱은 지난해 도이체 오퍼 베를린 오케스트라 오디션 최종 합격을 거쳐 지난해 9월과 10월 나란히 정단원으로 입단했고, 지난달 65세 정년이 보장되는 종신단원으로 임명됐다. 도이체 오퍼 베를린 오케스트라는 독일을 대표하는 3대 오페라하우스 중 하나인 ‘도이체 오퍼 베를린’ 소속이다. 도이체 오퍼 베를린은 1912년 시립 오페라하우스로 개관했고 1961년 지금의 모습으로 재개관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브루노 발터, 로린 마젤, 크리스티안 틸레만 등 세계 유명 지휘자들이 역대 음악감독을 거쳤고, 현재 도널드 루니클스가 맡고 있다. 이서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 제1기 출신으로 금호 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했다. 일본 오사카 국제콩쿠르, 미국 서밋 뮤직 페스티벌 협주곡 콩쿠르 주니어 부문에서 입상했다.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 연주회, 금호영재 20주년 기념 콘서트, 영아티스트포럼앤페스티벌 ‘현악본색’ 등 크고 작은 무대를 통해 인지도를 쌓았다. 2019년까지 뮌헨의 명문 오케스트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아카데미 단원으로 활동했다. 이정욱은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를 통해 처음 음악을 접하고 콘트라베이스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제37회 전국음악콩쿠르 전체 부문 1위를 수상했고, 서울시 유스 오케스트라와 예술의전당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서 정단원으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드레스덴 필하모니 기간제 단원으로 임용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장학단원으로 활동했다.
  • [이종수의 헌법 너머] 불문율이 아쉬운 사회/연세대 로스쿨 교수

    [이종수의 헌법 너머] 불문율이 아쉬운 사회/연세대 로스쿨 교수

    1980년 5월 광주 현지에서 어렵사리 취재한 한츠 페터 특파원의 기사를 받아서 독일의 여러 공영방송이 “남한, 광주에서 심각한 소요 발생”을 뉴스로 보도했었다. 이로써 광주의 참상이 처음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2017년에 개봉된 영화 ‘택시운전사’의 말미에도 이 뉴스 꼭지가 잠시 나온다. 믿기 힘들겠지만 당시에 광주의 참상을 보도한 독일 방송의 뉴스 앵커들이 2000년 전후까지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정년이 다 돼서야 수십 년을 내내 지켜 온 앵커 자리에서 물러났다. 본래의 뜻 그대로 마치 붙박이처럼 뉴스 프로그램에 굳게 닻을 내린 셈이다.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수년 동안 장수하는 뉴스 앵커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이 자리가 자주 바뀐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독일 방송의 이 같은 인사 행태가 다소 의아했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언론계에서는 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진 현직 언론인이 곧바로 정계로 옮겨 가는 게 금기시되고, 그것이 일종의 불문율로 확고하게 지켜지고 있다. 기자들 대다수도 선임기자나 원로기자로 정년까지 현직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판검사들도 마찬가지다. ‘평생법관제’가 정착돼 있어서 대다수가 정년까지 일하다가 퇴직 후에는 연금으로 살아간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줄곧 논란이 돼 온 ‘전관예우’ 문제가 거의 없다.  얼마 전 방송에서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이들 몇몇이 대선 캠프로 자리를 옮긴다는 기사를 접했다. 과거에도 그래 왔으니 그리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금기시되는 불문율이기는커녕 오히려 뉴스 앵커 자리가 높은 인지도에 기대어 정계로 진출하는 디딤돌이 돼 왔다. 신문 쪽도 다르지가 않다. 불과 엊그제까지도 날 선 논조로 정치기사나 칼럼을 쓰던 기자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관계로 자리를 옮겨 갔다. 이들뿐이 아니다. 심지어 선거토론 방송에서 사회를 맡은 이들도 마치 불빛을 보고 몰려드는 부나방처럼 선거캠프에 몸담는다. 정치적 중립성이 특히 요구되는 현직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옷을 벗고서 바로 대선에 뛰어드는 판이니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건 그저 입이 포도청이라서 쉽사리 옷을 벗지 못하는 평범한 공무원과 교사들의 몫이다.  법치주의 또는 법치국가라고들 하지만 법으로 일일이 모든 사항을 규율할 수도 없고 그게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 관련 업계나 영역 내부에서 법이 나서기 전에 응당 자율적으로 지키거나 해결할 몫이 따로 있기 마련이고, 이런 것들이 업계의 윤리, 도의 내지 불문율로 자리잡아야 한다. 또한 가족과 종교단체도 마찬가지다. 내부에서 불거진 갈등이 서로 간의 사랑과 신에 대한 믿음으로 해결돼야 마땅한데도 상속분쟁과 세습분쟁이 법정에서 다투어지는 게 다반사다. 정치의 영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국회에서 확립된 불문의 관행이 중요한데, 정당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쉽게 무시되고서는 헌법재판소에 결정을 맡기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심화돼 왔다.  자율적인 해결은커녕 “법대로 하자”며 온갖 고소·고발이 난무한다. 얼마 전엔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까지 문제로 불거졌다. 사법에 대한 불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높은데도 이렇듯 고소·고발이 넘치는 데에는 따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법률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이에 따른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법률가들, 특히 법원과 검찰이라는 사실은 경계해야 한다. 1982년 의회에서 “나는 민주주의의 불문율에 따라 오늘 총리직에서 물러난다”는 멘트를 남기고서 떠난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가 그랬듯이 민주주의는 지켜야 할 불문율이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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