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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퇴직 공무원들 장학금 기탁 “세상은 훈훈하다니까요”

    충북 퇴직 공무원들 장학금 기탁 “세상은 훈훈하다니까요”

    충북도 퇴직 공무원들이 장학금을 맡기며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있다. 조장상 전 진천군 기획감사실장은 39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며 지난달 27일 진천군장학회에 500만원을 전달했다고 진천군이 30일 밝혔다. 조 전 실장은 “오랜 공직 생활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군민들과 후배공무원들에게 깊은 감사한다”며 “지역발전의 동력인 인재양성을 위해 써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장학금을 기탁했다”고 했다. 앞서 진천군에서는 지난 4월 퇴직한 신동화 전 농업기술센터소장이 500만원을, 김재식 전 광혜원면장은 매달 10만원을 기탁을 하고 있다. 단양군은 내년 정년퇴임을 앞둔 조경동 전 단양군 자치행정과장이 단양장학회에 장학금 100만원을 기탁했다. 조 전 과장은 “장학회 업무를 관장하면서 기탁자들이 어렵게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보내주는 것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음성군은 퇴직공무원들은 2008년부터 장학금 기탁을 전통으로 하고 있다. 지난 28일에도 퇴임식을 한 의회사무과 윤석락 전문위원과 반국병 전문위원이 각각 100만원의 장학금을 음성장학회에 전달했다. 2008년 안용섭 전 기획감사실장이 퇴직하며 300만원을 기탁한 게 출발점이다. 지금까지 60여 명의 음성군 퇴직공무원들이 7000여만원을 장학회에 내놓았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음성부군수로 잠시 일하다가 충북도청으로 원대복귀하는 서기관들도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남기중 음성군 장학회 담당은 “퇴직하는 공무원들은 당연히 장학금을 기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배 공무원들의 기부문화가 군 전체로 확산돼 군의 200억원 장학금 조성 계획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늙어도 늙지 않는… ‘사냥’으로 액션배우 변신 안성기

    늙어도 늙지 않는… ‘사냥’으로 액션배우 변신 안성기

    연기 59년째. 내년이면 연기 인생 환갑이다. 필모그래피가 무려 160여편. 아역 시절에만 70여편을 했는데 잠깐 얼굴을 비치는 개구쟁이 역할을 도맡는 등 단역, 조연이 많았지 주연은 많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이래저래 빼도 족히 100편은 넘어 보인다. 국민 배우 안성기(64)는 그 세월과 그 많은 작품이 좀처럼 실감나지 않는다며 미소 지었다. “아마 몇년 더 가면 지구상에서 제일 오래 배우한 사람이 될 것 같아요. 다섯 살에 시작한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까요. 오래 했다는 게 자랑거리는 아닌데, 그래도 여전히 작품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점은 정말 행복하고, 고맙죠.” 수많은 작품에서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해 왔음에도 29일 개봉하는 추격 스릴러 ‘사냥’은 남다르다고 했다. “지금 이 나이에 와서 가장 액션이 많은 작품을 했다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 파란불이 켜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도 여러 가지 영화를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에요.” ‘사냥’은 ‘최종병기 활’과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제작하고, 이우철 감독이 ‘첼로: 홍미주 일가 살인사건’ 이후 11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캐릭터 이름이 배우 이름을 거꾸로 해 지었을 정도로 처음부터 안성기를 염두에 두고 기획됐다고 한다. 이 나이에 이런 액션을 할 수 있다니 안성기는 피가 끓었다고 했다. 오래전 탄광 붕괴 사고의 유일한 생존자로, 마음 깊이 큰 상처를 품고 있는 늙은 사냥꾼 기성을 연기한다. 우연히 발견한 금맥에 눈이 먼 엽사(獵師) 무리에 쫓긴다. 또 사고로 세상을 떠난 동료의 딸 양순(한예리)을 지키고자 가파른 산을 뛰고 구르고 부딪친다. 안성기는 40년간 꾸준히 적당한 운동으로 단련해 온 근육도 뽐내고, 거침 없이 총격전도 벌인다. 대역을 맡아 줄 스턴트맨이 상주했으나 할 일이 없었을 정도로 대부분을 직접 소화했다. 그는 조진웅 등 후배들이 자신의 뜀박질을 따라오지 못했다고 흐뭇해하기도 했다. 극중 엽사 무리가 기성을 향해 ‘람보 영감’이라며 혀를 내두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원래는 지문에 ‘마치 람보같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애드리브로 나오게 된 대사예요. 반응이 뜨거울지 몰랐어요. 고뇌하는 모습을 담으려고 애썼는데 그런 건 잊어버리고 더 화끈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 줄 걸 그랬나 봐요. 하하하.” 그는 ‘사냥’이 배우로서 가능성을 넓힌 작품이라고 거듭 평가했다. “60대 중반이라면 할아버지의 모습이긴 하지만 기운이 빠진 느낌을 줄 수도 있는데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화면에서 봤을 때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겠구나, 그런 기대감을 주기 때문에 연기 영역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확장은 우리 배우들의 연기 정년을 늘리겠죠. 해외에는 제 또래에 꾸준히 하는 배우들이 많지만 우리는 흔치 않아요. 선배들만 보더라도 어쩌다 한 편, 10년에 한 편 정도죠. 그렇게 계속 꾸준히 간다면 뒤에서도 쭈욱 따라 오겠죠. 젊은 배우들에게 꿈과 희망이 됐으면, 그랬으면 정말 좋겠네요.” 어느새 한국 영화계 맏형 중 한 명이 되다 보니 연기 외적인 일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 얼마 전에는 격랑에 휩싸였던 부산국제영화제 첫 민간 조직위원장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지금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유니세프 친선대사 등을 맡고 있어요. 이 정도가 적당하게 제 본업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 같아요. 영화를 열심히 하니까 외적인 일도 효과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외적인 일만 많이 하면 동력을 잃을 거예요. 부산국제영화제는 중요한 시기라 모든 것을 쏟아부어 틀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제겐 그런 능력이 모자라 고사할 수밖에 없었지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부장·차장 떼고 ‘○ ○ ○님’… 삼성의 연공파괴

    부장·차장 떼고 ‘○ ○ ○님’… 삼성의 연공파괴

    ‘인사혁신’ 내년 3월부터 시행 직급 4단계로·회의 1시간내 만 2년 1개월째가 된 이재용 체제의 삼성이 완전히 달라진다. 트레이드 마크인 ‘관리의 삼성’에서 한걸음 더 진화해 ‘효율성’을 강조하는 ‘뉴삼성’으로 거듭난다. 삼성전자는 우선 직급을 전면 없앤다. 호칭도 ‘님’으로 통일한다. 직원 누구나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뿌리 깊은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제도를 직무·역할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점은 현 정부의 ‘노동개혁’과도 일맥상통한다. 삼성의 인사혁신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창하는 ‘스타트업 삼성’의 첫 출발이다. 삼성전자는 27일 직급 체계 단순화와 수평적 호칭을 골자로 한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기존 사원(1·2·3),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7단계의 직급이 ‘경력 단계’(CL)에 따라 4개(CL1~4)로 줄어든다. 새로운 직급은 급여 등을 주기 위한 인사관리 차원에서 나눈 것일 뿐 임직원 간 서열은 사실상 사라진다. 삼성이 호칭을 ‘OOO님’으로 통일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팀장, 그룹장, 임원 등 보직자를 제외한 모든 직원은 서로 ‘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바뀌는 인사 제도는 내년 3월부터 시행된다. 승진 인사도 연차가 아닌 역할 수행 능력에 따라 이뤄진다. 해당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5년, 7년 만에 팀장, 임원으로 올라설 수 있다. 과거처럼 일정 비율을 승진시켜야 되는 부담감이 없어지면서 인사 적체 현상도 상당 부분 해소될 전망이다. 승진 누락자는 퇴출 압박에서 벗어나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살려 정년 60세까지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삼성 관계자는 “앞으로 머리가 희끗희끗한 코딩 개발자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와 보고 문화에도 손을 댔다. 회의 참석자 최소화, 1시간 이내 회의 마무리, 동시 보고 등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속도와 창의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시도”라면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핵심인 ‘패러독스 경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신’보다 ‘성과’…입사 7년만에 임원 될 수 있다 삼성의 장점인 ‘속도’에 그동안 약점으로 꼽힌 ‘창의성’을 더해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변화의 ‘몸부림’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삼성의 ‘깜짝’ 발표에 직원들도 놀라는 분위기다. 직급 체계가 단순화될 것이란 예측은 했지만 아예 사라질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의 대리급 직원은 “부장님한테 ‘님’이라고 하는 게 처음에는 어색할 것 같다”면서도 “회사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뿌듯하긴 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인사 개편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삼성전자는 누적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서구식 연봉 시스템을 적용했다. 당시 삼성은 직급과 호칭도 없애려 했지만 내부에서조차 “우리 문화에서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인 시각이 많아 도입을 보류했다. 그러다 현 정부 들어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삼성도 자연스럽게 변화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게 됐다. 삼성이 직무 중심으로 인사 평가 시스템을 바꾸면 앞으로 ‘출신’보다는 ‘성과’에 따라 철저하게 보상이 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오랜 차별 논란도 마침표를 찍게 된다는 의미다. ‘평판 사회’의 저자인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실적과 인사, 보수, 감사라는 기존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면서 “협력과 연결의 시대에 문화에서 답을 찾은 것은 삼성이 진일보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사업 재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미애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는 “혁신이 계속 일어나는 신성장 사업부문에 물적, 금전적 자원이 쏠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성과를 못 내는 기존 사업부는 자연스럽게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인사혁신이 반드시 성공을 담보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수직적 위계질서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든 기존 임직원들은 상당수 내몰릴 가능성도 있다. 조영호 아주대 경영대학 교수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성과를 낸 임원들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고 말했다. 유효상 숙명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비즈니스 모델을 ‘퍼스트 무버’(선도자)로 전환하지 않으면 절반의 성공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강단 떠나는 마광수 “후회 없지만 억울하고 허탈하다”

    강단 떠나는 마광수 “후회 없지만 억울하고 허탈하다”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로 외설 논란을 겪었던 마광수(65)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오는 8월 정년 퇴임한다. 당시 외설 논란으로 해직을 당해 마 교수는 명예교수가 되지 못한다. 마 교수는 27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후회는 없다. 내 소신이니까”라면서도 “너무 두들겨 맞은 게 억울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 사회의 성 문화를 밝게 만들자고 시작한 건데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미친놈이라며 욕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연세대 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마 교수는 시인 윤동주 관련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홍익대에서 교수 생활을 28살 때 시작했다. ‘천재’로 불리던 그는 1984년 모교에 부임했다. 그러나 곧 시련이 찾아왔다. 1992년 발표한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마 교수는 어떤 풍파가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이 사건을 꼽았다. 그는 “당시 그보다 더 야한 작품도 많았다.어떻게 그게 구속감이 될 수 있느냐”라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한국처럼 성을 밝히는 나라가 어딨느냐”면서 “이 이중성을 없애자고 주장한 것뿐인데 나만 완전히 ‘동네북’이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학생들의 복직 운동에 힘입어 힘들게 강단에 다시 섰으나 우울증 때문에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마 교수는 요즘 위장병에도 시달린다. 그는 이를 ‘울화병’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제는 몸을 좀 추슬러야 할 것 같다. 너무 허탈해서 몸이 아프다. 최근에 책을 많이 냈는데 잘 팔리지도 않는다”고 힘없이 말했다. 그는 8월에 산문집과 소설을 한 권씩 낼 예정이다. 앞으로도 집필 활동은 이어갈 계획이지만 야한 소설을 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6급 이상 여성 간부 10배 증가

    대졸 이상 학력도 2배 늘어나 지방자치 부활 20년 사이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여성 공무원이 5만 4472명에서 9만 9865명으로 83.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자치부는 26일 지방공무원 주요 인사 통계를 발표했다. 1995년과 20년 뒤인 2015년을 비교, 분석한 결과다. 행자부에 따르면 지방공무원 현원은 1995년 27만 7387명에서 지난해 29만 6273명으로 6.8% 증가했다. 전체 지방공무원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5년 19.6%에서 지난해 33.7%로 14.1% 포인트 뛰어올랐다. 지난해 기준 국가공무원 101만 6100여명 가운데 여성은 44만 6400여명으로 43.9%를 기록해 지방공무원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지자체 신규 채용 여성 합격자가 2005년 50%를 돌파한 뒤 꾸준히 과반수를 이어 오고 있지만 그나마 시·군·구 및 읍·면·동 등 기초지자체에서 근무하는 여성 공무원이 82.4%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지방자치제 발전을 위해 참고할 대목으로 꼽힌다. 2015년 지방공무원의 평균 연령은 43.4세로 1995년의 38.6세보다 4.8세, 2005년의 40.1세보다 3.3세 높아졌다. 30세 이하 비율은 1995년 25.5%에서 2015년 9.9%로 낮아졌지만 50세 초과는 13.9%에서 26.3%로 늘었다. 지방공무원의 연령 상승은 공채시험 연령 제한 폐지(2009년)와 6급 이하 공무원의 정년 연장(2009년), 학력 상승에 따른 공무원 입직 연령 상승(20대→30대) 등이 주요 원인으로 풀이됐다. 지방공무원 가운데 대학교 이상 졸업 인원은 1995년 10만 7203명에서 지난해 23만 909명으로 늘었고, 특히 석사학위 이상은 3607명에서 2만 2336명으로 급증해 6배가 넘었다. 지방공무원의 신규 채용은 20년 전 1만 3770명에서 1만 6155명으로 약간 늘었다. 행자부는 앞으로 3년간 정년퇴직 인원이 약 2만명으로 예상되는 등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 급증에 따라 지자체의 신규 채용 인원이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퇴직자 중 여성 비율은 22.1%였다. 0~11세 자녀를 둔 휴직 이용자는 1995년 675명에서 지난해 1만 4405명으로 21배 증가했다. 2005년에는 1924명에 그쳤지만 2010년 6811명에서 5년 새 곱절 이상으로 솟구쳐 일·가정 양립을 중시하는 등의 가치관 변화를 드러냈다. 관리자인 6급 이상 가운데 여성은 1995년 2287명에서 지난해 2만 3306명으로 증가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법조 브로커 근절’ 변호사 이력 공개 추진

    소비자 선택에 실질적 도움 기대 앞으로 모든 변호사의 주요 이력을 일반인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법률시장 구조를 왜곡하는 ‘법조 브로커’를 뿌리뽑기 위해서다. 지금처럼 변호사에 대한 정보를 알음알음으로 얻어야 하는 ‘깜깜이’ 시장 구조가 법조 브로커를 음지에서 양산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법무부는 이러한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을 28일 열리는 법조 브로커 근절 태스크포스(TF) 회의에 안건으로 올려 집중 논의한다. 개정안은 변호사별로 학력과 개인·법인 변호사 경력, 주요 수임 사건, 전문 분야 논문, 관련 언론 보도 등을 대한변호사협회 웹사이트 등에 명시하는 게 골자다. 지금은 대한변호사협회 웹사이트에서 특정인이 실제 변호사가 맞는지 조회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으나 이 정보 공개 수준을 대폭 높여 법률 소비자가 변호사를 선택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취지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률시장은 소비자가 변호사에 대한 극히 제한된 정보만 갖고 큰돈을 지불하는 비정상적 구조”라며 “이를 해소하려는 게 제도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법무부 등은 개정안 도입으로 변호사의 ‘이력서’가 공개되면 의뢰인의 정보 부족을 악용해 거액의 수임료를 챙기거나 로비를 시도하는 법조 브로커의 활동 반경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법조계에선 ‘어떤 사건을 어느 변호사가 잘하는지’, ‘이 변호사가 어떤 사건을 맡아 왔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인 통로가 없는 상황이다. 의뢰인으로선 주관적 평가나 추천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법조 브로커의 검은손이 작용할 여지가 크다. 법무부 관계자는 “공개 정보 범위나 공개 방법 등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필요하지만 이러한 방안들이 법조 브로커 근절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법조브로커 근절 TF는 법무부, 대법원, 변호사 단체 등이 모여 지난해 구성했으며 이번이 네 번째 회의다. 이번 TF 회의에서는 현직 판검사가 정년 전에 옷을 벗고 전관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평생법관·평생검사제’도 함께 논의된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경재뉴스 깊게 보기] 1인당 당기순익 10년새 5분의1 토막

    [경재뉴스 깊게 보기] 1인당 당기순익 10년새 5분의1 토막

    9개 금융공기업들이 일제히 성과연봉제를 확대 도입하기로 한 데 이어 일반 시중은행들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10만명을 조합원으로 둔 금융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내고 결과에 따라 총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다. 이번 주 안에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성과연봉제 도입에 앞서 성과평가지표를 마련하고자 은행연합회를 통해 컨설팅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달 중 용역 보고서가 나오면 이를 가이드라인 삼아 각 은행도 적용 방침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민간 은행에까지 간여하지는 않는다고 했으나 금융공기업들에 성과연봉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사실상 민관을 포괄한 전 업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정부는 왜 은행원들의 월급봉투에 손을 댔을까.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은행의 영업이익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저성장에 직면하면서 은행산업은 새 먹거리를 찾지 못한 채 가라앉고 있다. 2006년 말 1.11%였던 총자산순이익률(ROA)은 지난해 말 0.17%로 쪼그라들었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4.64%에서 2.15%로, 1인당 당기순이익은 1억 4800만원에서 2900만원으로 내려앉았다. 10년 사이 은행의 영업 관련 지표가 모두 바닥을 향해 꼬꾸라진 셈이다. 수익은 계속 떨어졌지만 인건비와 판관비(급여를 포함한 판매·관리·유지 비용)는 각각 31%, 38% 늘었다. 은행원의 평균 연봉은 8800만원 수준이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국내 은행산업의 미래가 없다. 체질과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조선·해운업처럼 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성과연봉제 확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민들이 맡긴 돈으로 영업을 하는 은행들이 정부의 규제 산업으로 보호받으면서 꼬박꼬박 고임금을 받아가는 데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또 올해부터 60세 정년이 법으로 보장되면서 회사 부담이 더 늘어난 것도 성과연봉제 확산의 배경이 됐다. 우리처럼 호봉제의 개념이 없는 해외 은행은 직군에 따라 성과급 비중을 다르게 둔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상업은행은 직군별로 성과급 비중이 적게는 16%, 많게는 65%를 차지한다. 예컨대 같은 직급의 매니저(과장급)라도 정보기술(IT)이나 소비자지원 등 업무 지원 부서는 기본급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성과급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반면 담보 대출이나 자산운용 등 영업 실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직군은 40~60%가량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하지만 이처럼 성과연봉제가 문화로 자리잡으려면 단순히 보수 체계만 바꾸어서 될 일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내 금융사들은 IT나 전산설비 등 특정 분야를 제외하고는 부서와 상관없이 공채로 선발해 순환 보직을 원칙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반해 글로벌 금융사들은 처음부터 직군별로 채용하기 때문이다. 인턴이나 수시채용, 스카우트도 활발하다. 예컨대 글로벌 금융그룹인 HSBC의 경우 10명의 임원 가운데 5명을 외부에서 영입했다. 성과연봉제가 인건비를 줄이는 방편으로 비쳐지는 것도 직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요소 중 하나다. 이승철 삼정KPMG HR컨설팅본부장은 “직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사가 확실한 비전과 구체적인 사업 모델을 제시한 뒤 직원들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해야 성과연봉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우리 사회 미래의 등대 사회적경제] “공공기관 필수품 1% 사회적기업서 사는 강제조항 있었으면”

    [우리 사회 미래의 등대 사회적경제] “공공기관 필수품 1% 사회적기업서 사는 강제조항 있었으면”

    사회적경제는 신자유주의로 얼룩진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혀 주는 등불이다. 정부나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척척 해 낸다. 장애인에게는 양질의 일자리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돌봄 서비스를, 경력 단절 여성에게는 자존감을 심어 준다. 개인과 공동체의 다양한 요구에 답하며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는 ‘등대’다. 사회적경제는 자본주의가 낳은 각종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자리가 곧 복지’란 말과 함께 장애인과 노약자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 생산기지로 사회적경제가 부상했다. ●직원 절반 15명이 취약계층 훈련생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떡 생산업체 삼성떡프린스 직원들은 출입문에서 강한 바람으로 소독을 하고 흰 모자에 앞치마, 장화까지 위생복을 갖춰 입는다. 이 같은 모습은 다른 식품 생산업체와 다를 바 없다. 다만 꼼꼼한 손놀림으로 떡을 빚거나 자르는 직원들이 가끔 대화를 할 때는 얼굴에 쓴 위생용 마스크가 무색하게 입으로 말하지 않고 손으로 수화를 한다. ●매출액 창립 7년 만에 첫해의 16배 성장 삼성떡프린스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기관인 서울삼성학교 한쪽에 있다. 떡프린스 대표를 맡은 최종태(43) 원장은 사회복지사다. 그는 “2009년 설립 첫해에 매출 3000만원을 기록했는데 지난해 매출액은 5억원이었다”며 “사회적기업 삼성떡프린스는 성장했지만, 사회복지사가 영업을 하고 수익을 내야만 하는 것은 여전히 힘든 점이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농아원에서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외부 체험활동을 하다가 청각장애 아동에게 떡을 만드는 손재주와 감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당시에는 사회적기업인 떡프린스 대신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포토샵, 애니메이션, 캐드 등을 가르치는 컴퓨터 교육기관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에서 장애인 훈련시설을 수익사업을 내는 구조로 전환하면서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게 됐다. 삼성떡프린스는 양적 성장과 함께 떡 맛도 인정받았다. 직원 30명 가운데 15명은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며 15명은 훈련생이다. 훈련생의 월급은 40만원이며 직원은 100만~150만원이다. ●훈련생 월급 40만원·직원 100만~150만원 지난해 5월 서울시로부터 우수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아 홈페이지 제작 지원을 받고 민·관 공동영업단으로부터 공공기관 소개도 받았다. 홈페이지를 통해 받는 떡 주문도 늘었다. 군부대에서 1년 계약을 맺었을 뿐 아니라 어린이집, 복지관, 학교, 기업 등에서도 떡을 주문한다. “공공기관에서는 가산점 때문에 마지못해 사회적기업에서 물건을 산다.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처럼 공공기관이 화장지나 A4 용지 같은 필수품의 1%를 사회적기업에서 사야만 하는 강제조항이 있었으면 좋겠다.” 8년째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최 원장의 생각이다. 우선 공무원이 먼저 사회적기업의 생산품을 쓰면 시민의 인식도 바뀔 수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올 초 문을 연 동작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도 맡은 최 원장은 “사회적경제가 양적으로는 팽창했어도 아직도 질이 떨어지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장애인 직원들 일 배워 자립하는 게 꿈” 사회적경제만이 느끼는 고충도 있다.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여하느라 하루 떡 공장 문을 닫으면 어쩔 수 없이 줄어드는 매출에 신경이 쓰인다. 지난해 6월에는 3년간 인건비의 50%를 지급해 주던 고용노동부의 지원이 종료됐다. 항상 재료비를 주고 나서 직원 급여가 모자라 절절맸던 최 원장은 “직원 월급 주느라 전전긍긍했던지라 고용부의 지원까지 끊기면 죽겠구나 했는데 다행히 지난해 매출이 2억원이나 뛰었다. 그동안 홍보부스 쫓아다니며 판로를 개척하고 구, 시와 관계를 유지한 덕이었다”며 한숨을 돌렸다. 그의 꿈은 삼성떡프린스에서 배운 직원들이 창업을 하는 것이지만 장애인이 자립에 익숙하지 않아 아직은 말 그대로 꿈이다. 다만 장애인에게 정년 없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고 급여를 좀더 많이 주고 싶을 뿐이다. 사회적경제에 뛰어드는 이들에게 최 원장은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사회적기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돈 버는 데 급급해선 안 된다. 채용한 취약계층이 같이 가는 동반자란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직원 퇴직 후 제2인생 설계 돕기 나선 중랑

    ‘퇴직 후 앞으로 20년 이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백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년 퇴직 후 제2 인생에 대한 고민은 모든 직장인의 공통 관심사다. 서울 중랑구가 직원들의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중랑구는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퇴직 예정 3년 이내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행복한 인생 재설계’ 프로그램 과정을 운영한다고 16일 밝혔다. 매년 상·하반기 각 1회씩 열린다. 구 관계자는 “여러 가지 분야를 잘 알 것 같은 공무원들이 오히려 퇴직 후 빠르게 변해가는 현실을 쫓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평생 지역과 주민을 위해 봉사한 직원들이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알차게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퇴직 예정 직원이 은퇴 후 새로운 환경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재무관리와 자원봉사, 건강관리 등 미래설계를 위한 기본 및 소양 교육 과정이다. 기본과정에는 재무관리, 생활법률, 연금, 재취업, 귀농·귀촌 과정 등이 있고, 소양과정에는 자원봉사 및 건강관리 과정으로 꾸몄다. 취미 과정은 요리교실 및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화 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지난 4월에는 일터를 벗어나 힐링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제2의 인생설계에 대한 긍정적 마인드를 함양하기 위한 ‘인생이모작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임군호 총무과장은 “인생 재설계 과정 운영을 통해 퇴직 예정 공무원들에게 보람 있는 은퇴 생활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프로그램으로 직원들이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미래를 맞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메피아’ 182명 전원 퇴출… 정비 근로자 연봉 올린다

    ‘메피아’ 182명 전원 퇴출… 정비 근로자 연봉 올린다

    지하철 안전업무 모두 직영 일부 메피아들 소송 가능성 서울시가 메피아(메트로+마피아) 전원을 퇴출하기로 했다. 또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와 전동차 경정비 등 서울 지하철 관련 7개 안전 분야를 모두 직영체제로 전환한다. 하지만 메피아들은 전 직장인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보수와 정년 특혜를 담보받은 상황이라 법적 다툼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6일 서울시청에서 ‘구의역 사고’와 관련해 기자설명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지하철 안전 업무 직영 전환 및 메피아 근절 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난 7일 발표를 구체화했다. 시가 직영 전환하는 안전분야는 서울메트로가 민간위탁 중인 ▲PSD(플랫폼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전동차 경정비 ▲차량기지 구내운전 ▲특수차(모터카 및 철도장비) 운영 ▲역사 운영 업무 등이다. 여기에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자회사인 ‘도시철도ENG’가 담당하는 ▲전동차 정비 ▲궤도보수 분야까지 포함됐다. 직영화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연봉은 10~21%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월 160만원(세전 기준)을 받아 논란이 일었던 김모(19)씨 같은 은성PSD 정비 근로자는 200여만원 수준의 월급을 받게 된다. 이번 서울시의 대책으로 재고용에서 배제된 전적자는 총 182명으로 60세 미만 직원이 73명, 60세 이상 직원이 10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60세 미만 직원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위탁업체로 간 뒤 퇴출당하는 상황이라 ‘이중 차별’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시 관계자는 “정년이 안 된 경우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다시 복귀하려면 나갈 때 받은 명예퇴직 수당을 반납해야 한다. 이를 감수하고 돌아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9.5% 수익보장 등 유진메트로컴의 특혜도 바로잡는다. 시는 유진메트로컴의 과도한 특혜 등을 재구조화하고 24개 역사의 스크린도어 유지·관리 업무는 서울메트로가 직접 맡기로 했다. 박 시장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하철 안전을 포함해 그동안 잘못된 우리 사회 구조 혁신의 계기로 삼아 사람 중심의 ‘안전한 서울’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현대重 노조 결국 파업하나…17일 쟁의발생 결의

    국내 조선업계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현대중공업 노조가 올해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 과정에서 파업 투쟁을 위한 군불을 지피고 있다. 실제 파업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노조는 회사의 분사와 아웃소싱 등 구조조정에 맞서 “절차를 거쳐 공장을 멈추는 ‘점거·파업’에 나서겠다”며 투쟁을 예고했다. 올해 파업하면 3년 연속이다. 조선업 전체가 존망의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노조의 이같은 움직임은 회사를 더욱 어렵게 하고,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임단협 11차 교섭 경과…요구안 설명 겨우 마쳐 노사는 지난달 10일 울산 본사에서 권오갑 사장과 백형록 노조위원장 등 양측 교섭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임단협 상견례를 열었다. 15일 11차 교섭까지 양측 요구안을 서로 설명했다. 이제 본격적인 심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노조의 요구안은 사외이사 추천권 인정, 이사회 의결 사항 노조 통보,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전년도 정년퇴직자를 포함한 퇴사자 수만큼 신규사원 채용 등이다. 또 우수 조합원 100명 이상 매년 해외연수, 임금 9만6712원 인상(호봉 승급분 별도), 직무환경 수당 상향, 성과급 지급, 성과연봉제 폐지 등도 요구했다. 사측도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 단협과 조합원 해외연수 및 20년 미만 장기근속 특별포상 폐지,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및 재량근로 실시 등을 노조에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상견례 후 겨우 한 달이 지났고, 10여 차례 협상한 상황에서 노조가 벌써 투쟁을 외치고 있다. ◇협상 쟁점은 구조조정·노조 인사경영권 참여 노조의 임단협 쟁점은 구조조정 저지와 경영·인사권 참여다. 백 위원장은 “무능한 경영진을 끝장내겠다”고 선언하고 인사·경영 참여 권한 쟁취에 나섰다. 이제 임단협을 본격화할 시점에 노조가 파업 카드부터 들고나온 것은 이럭 맥락에서다. “임단협 교섭이 잘 안 된다”는 것이 쟁의발생 결의 이유이지만, 회사의 구조조정 칼바람에 맞서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노조는 17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쟁의발생을 결의할 예정이다. 노조가 “다수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구조조정을 저지하기 위해 강력하게 투쟁할 것”이라고 선포한 것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 한다. 이 때문에 회사의 구조조정 방안 가운데 최근에 내놓은 ‘설비지원 부문 정규직 임직원 994명 분사’ 방침도 올해 임단협의 난제가 될 전망이다. 노조는 “설비지원 분사 목적이 직영 물량의 외주화이기 때문에 경영진 퇴진과 일자리 지키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노조, ‘점거·파업 투쟁’ 예고 노조는 일단 파업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는다. 대의원 쟁의발생 결의에 이어 다음 주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신청을 한다. 이어 전체 조합원 파업 찬반투표를 거치면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다. 노조는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하면 본격 투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분사·아웃소싱 반대와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 백 위원장 등 지도부 4명이 15일 삭발식을 갖고 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이후 간부 철야·천막 농성과 점거투쟁, 파업까지 투쟁 강도를 점차 높일 전망이다. 2014년 강성 노선의 집행부가 들어선 후 3년 연속 파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나 현대차 노조와 함께 공동 파업 투쟁도 선언, 연대 파업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제계·시민 “위기 극복이 우선” 노조의 파업 예고에 지역 경제계와 시민들은 “노사가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달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최찬호 울산상공회의소 경제총괄본부장은 16일 “조선산업 침체로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상권 등 지역경제 전체가 심각한 타격이다”며 “현대중 노조도 파업보다는 위기 극복에 적극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최이현 울산시 창업일자리과 노사협력 담당은 “조선산업의 어려움 등으로 경기가 침체한 시점에 노사가 대화를 통해 경제위기를 잘 헤쳐나갔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조선 협력업체의 한 대표는 “모기업 노조가 파업하면 협력업체들은 물류 흐름이 막혀 더 큰 피해가 발생한다”며 “노사 모두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고려해달라”고 주문했다. 시민 신모(47·회사원)씨는 “조선업계가 살아야 울산 경기도 사는 것”이라며 “파업은 노사와 울산시민을 모두 힘들게 하는 만큼 지혜를 모아 위기를 이겨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저금리·구조조정에 금융권도 ‘희망퇴직’

    저금리·구조조정에 금융권도 ‘희망퇴직’

    금융권에 희망퇴직 칼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초저금리에 성과연봉제 도입, 기업 구조조정 여파까지 겹치면서 ‘항아리형’ 인력 구조에 본격적으로 메스를 들이대는 양상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신증권은 다음달 임금피크제 도입을 앞두고 17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근속 연수 5년 이상 대리급 이상 직원과 근속 8년 이상 사원급이 대상이다. 현대해상도 만 45세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2003년 실시한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그룹 명운이 흔들리고 있는 롯데카드도 17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만 45세 이상 또는 현재 직급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5년 이상 재직한 사람이 대상이다. 올해부터 모든 업권에 정년 60세가 공식적으로 적용되면서 금융권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함께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지난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앞두고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대폭 감원을 시행했지만 항아리형 인력 구조로 인한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금융업권의 연령별 인력 비중을 살펴보면 20대 16.3%, 30대 38.2%, 40대 31.6%, 50대 13.0%로 40대 이상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2014년과 비교해 20대와 30대 비중은 각각 1.3% 포인트, 0.6% 포인트 줄어든 반면 50대 이상은 1.7% 포인트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금융권은 몇 년 전부터 조금씩 군살 빼기에 나서고 있다.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은 해마다 한 차례씩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대개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이 대상이다. 우리은행은 1년에 두 차례 퇴직 지원 프로그램인 ‘전직지원제도’를 시행한다. 올 상반기 316명을 확정한 데 이어 올 하반기에도 예정돼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권 전반이 저금리, 저성장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데다 인사 적체가 심해지고 있어 인력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년은 60세가 됐다지만 임원이 되는 연령도 점점 빨라지면서 40대 중반이 되면 서서히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카드업계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인한 수익 감소 등으로 지난해 말 400여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떠났다. 여기에 조선업계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역시 구조조정 자구안의 일환으로 인력 감축 압박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사 경쟁력을 위해서는 조직의 슬림화도 필요하지만 인력 활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석헌 전 금융학회장은 “구조조정 등으로 들어갈 비용은 많고 수수료도 올리기 어렵다 보니 비용을 줄이기 위한 측면에서 은행들이 인력 구조조정을 감행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희망퇴직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금융권 시니어들은 인적 네트워크나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무조건 인원을 줄이기보다 이런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조선 빅3’ 올 6000명 옷 벗는다

    삼성중공업이 15일 희망퇴직을 공식화했다. 삼성중공업이 올해 약 1500명을 내보기로 하면서 올 한 해 조선 ‘빅3’에서만 6000명의 근로자가 회사를 그만둘 것으로 보인다. 수만명의 협력업체 직원도 직장을 잃을 전망이다. 한편 KB국민은행은 만기가 돌아온 삼성중공업의 단기차입금 만기를 이례적으로 1년이 아닌 3개월만 연장했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은 이날 사내 방송을 통해 “2018년까지 3년 동안 경영 상황과 연계해 전체 인력의 30~40%를 효율화한다는 계획 아래 올해 약 1500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정년퇴직자, 아웃소싱 인력 등 자연 감소 인원 400명을 더하면 연내 1900명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사측의 자구안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최근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사무직 1500명과 생산직 500명을 내보냈다. 전체 직원(2만 7000명) 중 약 7.4%가 회사를 떠난 셈이다. 현대중공업이 설비지원 사업부를 분사하기로 하면서 해당 사업장에 소속된 994명도 자회사 이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올 연말 약 1000명의 정년퇴직도 예고돼 있다. 현대중공업 협력업체도 일감이 줄면서 줄도산하고 있다. 건조 중인 해양플랜트 16기 중에 8기가 하반기 중에 인도되면 직원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은 최근 추가 자구안을 통해 직영 인력을 20% 이상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1만 3000명 수준의 정규직을 1만명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연평균 600명가량이 옷을 벗을 것으로 보인다. 정년퇴직과 신규 채용 최소화 등을 통해 인력의 자연 감소를 꾀하면서 동시에 일부 저성과자를 대상으로 구조조정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대우조선 협력업체 직원은 2만 9000명 수준에서 2020년까지 2만명가량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올해 말까지 7기의 해양플랜트가 인도되면 빈 도크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조선업 종사자는 지난해 말 기준 20만 3000명에 달한다. 해양플랜트 발주가 한창이던 2010년 15만 3000명에서 5만명이 늘었다. 그러나 조선업계는 수주가 이 상태로 계속되면 조선소들이 생산 설비를 크게 줄이면서 15만명 수준으로 회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소 인력에 대한 실업 대책을 하루빨리 내놓지 않으면 사회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은행은 지난 7일 만기였던 삼성중공업의 1년짜리 단기차입금 1000억원에 대한 만기를 3개월 연장했다. 시중은행의 통상적인 대출 만기 단위인 1년을 따르지 않은 사실상 대출기간 축소다. 삼성중공업이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에 제출한 비핵심자산 매각 등 1조 5000억원의 자구안 이행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자구안이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은행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을 감안한 결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17일로 예정된 1500억원 규모 대출에 대해 만기 연장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신한은행은 아직 방침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달 만기가 돌아오는 NH농협은행(1600억원)과 산업은행(3600억원)도 3개월 시한부 만기 연장을 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런 분위기는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 등 다른 대형 조선사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新전원일기] 꽃보다 할매 충남 당진 ‘백석올미영농조합’

    [新전원일기] 꽃보다 할매 충남 당진 ‘백석올미영농조합’

    1. 프롤로그 청매실이 익어가는 6월, 충남 당진의 ‘백석올미영농조합’(올미)으로 향하던 날의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강했다. 차에 오르자마자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도심과 고속도로에서는 선글라스를 끼나 벗으나 눈에 보이는 것에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백석리 어귀에 이르러 비포장 농로 위에서 차가 덜컹거릴 때쯤에는 선글라스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 개천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초록빛 매실나무의 향연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푸르고 무성한 잎사귀와 동그랗게 여문 열매가 따사로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매실밭을 보면서 목적지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평균 나이가 76세인 할머니 57명이 함께 일하는 백석올미영농조합의 주소는 ‘당진시 순성면 매실로 246’이다. 10만 그루에 달하는 마을 공동 소유의 매실나무에서 나오는 매실을 좀더 가치 있게 팔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영농조합이 이제는 할머니의 일터가 되고, 삶이 되고, 꿈이 되었다. 2. 할머니의 반란은 성공 여름철이면 지천으로 열리는 왕매실은 백석리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지만, 영농조합 설립 전까지는 마을 주민들에게 천덕꾸러기로 여겨졌다. 보관이나 유통이 어렵고 제값을 받기도 힘들어 매실을 따서 판다고 한들 인건비도 제대로 건지기 어려웠다. “우리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매실 한과’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33명의 조합원이 각자 200만원을 출자해 초기 자본금을 만들고, 농어촌 개발을 위해 지급되는 정부 보조금 3억원을 받아 마을 영농조합이 만들어졌죠. 처음부터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저 할머니들이 모여 마을을 위해 뭔가를 해보자는 마음이었지요. 이런 걸 두고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더라고요.” 2011년 영농조합 설립 당시 마을 부녀회장을 맡고 있었던 김금순(66) 대표는 마을 소득 사업이나 사회적 기업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시골 할머니들이 모여 무작정 시작한 일이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2008년 대기업을 퇴직한 남편과 함께 백석리로 귀농했다는 김 대표를 두고 할머니들은 ‘굴러들어온 복덩이’라고 치켜세웠다. 2012년 한과 공장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매실 한과를 생산한 이래 연매출 6억원의 영농조합으로 발돋움하기까지 김 대표의 역할이 지대했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 대표는 귀농 이후 마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 부녀회장을 맡으면서 새로운 운명의 길로 들어섰다고 회상한다. 부녀회원들을 중심으로 손주들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매실 한과를 만들어 보자며 시작한 영농조합의 생산 품목은 이제 매실 장아찌, 매실 고추장, 매실청, 매실 진액 등으로 확대됐다. 매실 따기와 한과 만들기 등 체험 활동 프로그램도 26개로 늘었다.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개최한 ‘6차 산업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이후 전국 각지의 농민들이 올미의 사례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체험과 견학을 목적으로 이곳을 다녀간 체험객이 5000명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도 57명으로 늘었고 매출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올미의 성장보다 더 근사한 것은 57명의 할머니에게 일자리와 꿈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미영농조합에 출근하며 처음으로 명함을 가져보았다는 할머니들은 주 5일 근무에 월급 126만원을 받는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약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할머니들에게는 큰 수입이다. 게다가 4대 보험과 퇴직금이 보장된 ‘정규직’이다. 상품 판매 실적에 따라 보너스를 받기도 한다. 남들은 경로당이나 요양원 갈 나이에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과 자부심은 돈보다 더 큰 행복을 안겨준다. 한과를 만들면서도, 공장 청소를 하면서도 할머니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한때 마을의 골칫거리였던 매실이 이제는 한과도 되고, 장아찌도 되고, 진액으로도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매실은 할머니들의 일자리가 되면서 돈을 벌어다 주었고,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통로를 열어 주었다. 3. 그녀들의 목소리 올미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50~80대로 다양하다. 70대가 제일 많아 평균 연령이 높지만 함께 일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곳에 몸담으면서 달라진 이들의 삶에 대해 연령대별로 직접 들어보았다. 막내 유희숙(51)씨 -어른 행세하는 분 없이 언니들이 항상 든든해요 우리 남편이 백석리 이장이에요. 남편이 감투를 쓰는 바람에 저도 졸지에 이장댁 사모님이 되었죠. 그래서 여러 궂은일을 나서서 맡을 때가 많아요. 올미에서는 언제부터 일했느냐고요? 5년 전에 올미영농조합이 설립될 때 저도 200만원을 내고 조합원으로 가입했어요. 그런데 집에 다른 농사가 바빠서 영농조합에 출퇴근은 못 하다가 직원으로 합류한 지 이제 6개월이 지났어요. 젊은 사람이 부족하다고 도와 달라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었어요. 언니들이 솜씨는 좋은데 기계를 다룬다든지, 운전을 한다든지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는 서툴러요. 지금도 한과 만드는 기계를 살피는 중이에요. 기계 틈에 한과 부스러기가 끼어서 날카로운 대바늘로 긁어냈어요. 언니들은 눈이 어두워서 이런 일을 하기가…(웃음). 같이 일하는 어르신들이 시어머님뻘로 연세가 많으셔서 처음에는 대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여기에는 나이 따지면서 어른 행세하는 분이 없어요. 똑같이 일하고 수익도 똑같이 나눠 갖는 시스템이니까요. 언니들에게 가장 고마운 건 제가 아무리 실수하고 뻗대더라도 나무라기는커녕 막내라고 귀여워하고 예뻐해 주신다는 거죠. 제가 이 나이에 어딜 가서 이런 사랑을 받겠어요. 언니들 덕에 저는 항상 든든해요. 대표 김금순(66)씨 -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버니 잡음 생길 틈이 없죠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은퇴하면서 남편 고향인 이곳 당진 백석리로 2008년에 귀농했어요. 서울에서는 은퇴할 나이인데 이곳에서 60대는 젊은이 취급을 받아요. 부녀회장도 맡고, 영농조합 대표까지 되면서 오히려 귀농 후에 더 바빠졌어요. 우리의 목표는 돈이 아니에요.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파는 게 첫 번째 목표예요. 찹쌀, 참깨, 검은깨 등 한과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이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로 쓰는 게 철칙이에요. 원산지라고 해서 싸게 사는 것도 아니고 시중가대로 매입하죠. 다른 업체들은 대부분 수입산을 쓰는데 국산 농산물을, 그것도 비싼 값으로 사서 재료로 쓰니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니에요. 저나 할머니들이나 노년에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돈 욕심을 부리고 싶진 않아요. 수익 규모가 커지면서 서로 간에 잡음이 생길 법도 하지만, 개인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불평이 없어요. 제가 대표라서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받는 게 아니라 저도 다른 할머니들과 똑같이 월급을 받아요. 조합 성공 사례에 대한 강연을 하고 강연비를 받더라도 제 개인 몫으로 챙기는 게 아니라 조합 소득으로 계산하고, 저는 전체 수익을 할머니들과 똑같이 나누는 거죠. 한과 한 봉지도 따로 집에 못 가져가도록 해요. 본인 돈으로 구매하고 영수증을 처리해야 가능합니다. 시골 인심 같지 않다고요? 공평한 급여 체계와 투명한 운영이 갈등 없이 올미를 성장시킨 원동력이기 때문에 이 원칙을 끝까지 지킬 생각입니다. 판매왕 권탁(71)씨 - 여그만 오면 아픈디가 싹 나아…만병통치약이여 여그 일하는 할매들은 70대가 대부분이여. 처음 생길 때부터 시작해서 여그서 일헌 지 5년째여. 재미있고, 신나유.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명함도 생기고 말이여. 내가 여그 조합에서 최고 판매왕이유. 한과를 맹그는 것도 중요허지만, 못 팔면 소용이 없잖유. 비결이 뭐냐고? 내가 낳은 자슥들이 7남매유. 우리 아들, 딸들이 100박스, 200박스씩 팔아주는 게 비결이여. 한과를 한 해에 1000박스 넘게 파는 거지유. 갸들이 회사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이웃들한테도 소개하고…. 한과 주문을 받느라 명절만 되면 전화통에 불이 나유. 재미가 쏠쏠한 게 뭐냐믄 월급 외에 한과 판 보너스는 영업 실적에 따라서 따로 받아유. 그래서 내가 보너스만 300만~400만원씩 받어유. 돈 벌어서 손주들 용돈 챙겨 줄 때가 제일 좋아유. 손주가 초등학교 댕길 때만 해도 할매가 용돈 주면 닁큼 받더니, 중학교 간 후부터는 안 받을라 그러잖유. 할미가 고생해서 번 돈이라서 못 받겠대유. 그래서 친구들이랑 즐겁게 놀면서 번 돈이라고 받아도 된다고 했지유.아픈 데가 없기는 왜 없겄슈. 평생 살림하고, 애 낳아 키우고, 농사짓고 살았는데 온몸이 쑤시고 프지유. 근디 신기하게 여그만 나오면 씻은 듯이 다 나아유. 웃고 떠들면서 일하다본께 피곤헌 줄도 모르고 아픈 것도 까묵어 버려…. 여그가 만병통치약인가벼. 최고령 성정옥(81)씨 - 돈 벌지, 돈 모아서 여행가지 을매나 좋은지 몰러 여그 정년퇴직 나이가 80세거든. 그런데 내 주민등록 나이가 아직 78세라 더 일할 수 있어. 우리 아부지가 내가 다 늙어서 올미에 취직할 줄 미리 알고, 출생 신고를 3년 늦게 해 준 덕이여. 나는 이렇게 등도 굽고, 다 늙어서 쪼글쪼글한 할매를 취직시켜 줘서 여그가 을매나 고마운지 몰러.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게 행복이여. 건강 관리는 어떻게 허냐고? 조합원들이 모여서 일주일에 두 번씩 체조를 햐. 체조 선생님이 오셔서 한 시간씩 제대로 하는 겨. 그것도 다같이 허니께 힘든 줄도 모르고 재미나. 70대에 처음 직장 생활해서 월급이란 걸 받아 봤어. 그 돈으로 영화도 보러 다니고 여행도 가. ‘해랑’이라고 열차로 크루즈여행을 하는 고급 여행 패키지여. 그게 2박 3일 가는데 100만원이나 혀. 여그 올미 할매들이랑 같이 댕겨 왔어. 자식들이 안 보내 주느냐고. 아유, 그런 말을 어떻게 혀. 내가 번 돈으로 친구들이랑 여행 가서 맛난 거 실컷 먹고 구경하고, 그게 을매나 좋은디. 4. 에필로그 매실 한과로 돈을 많이 벌면 ‘올미 실버타운’을 지어 친구들과 여생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할머니들, 올미에서 일하면서 할머니들은 이전과는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초록빛 매실이 시골 촌부(村婦)의 삶에 희망이라는 초록 불을 밝혀 준 것이다. 매실의 매(梅)를 한자로 풀이하면 ‘人+母 +木’이므로 ‘사람에게 어머니 같은 나무’라고 한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할머니들은 여러 매실 가공품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있다. 글쓴이 소설가 김유담 부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핀 캐리’로 등단.
  • [기고] 성과연봉제 확대와 국민의 눈높이/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기고] 성과연봉제 확대와 국민의 눈높이/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

    국민들이 공기업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철밥통’ 내지 ‘신의 직장’이다. 억울한 점이 없지는 않겠지만 국민들이 공기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부 경쟁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조직 문화에 있다고 본다. 공기업의 경쟁 대상은 공기업이 아니다. 독과점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울타리는 법과 정부 정책이다. 그렇다 보니 경쟁의식이 없다. 당연히 경쟁력도 떨어진다. 개방화된 세계경제 체제에서 공기업의 경쟁 대상은 유사 업종의 글로벌 기업 또는 선도적인 민간 기업이어야 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민간 기업보다 공기업은 정책사업 수행이라는 특성상 안정적이다. 비교적 정년이 보장될 뿐 아니라 임금과 복지 수준도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업무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당연히 많은 청년 구직자들이 공기업 취업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그러나 투입되는 정부 예산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기업도 일하는 방식과 문화, 성과보상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성과연봉제가 확대되면 구성원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성과가 낮은 직원에 대한 퇴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어촌공사도 성과연봉제 확대에 따른 노사 합의를 이끌어 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노조 집행부는 연좌농성과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도입 반대 의지를 드러냈다. 사측은 노조 집행부와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이어 갔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시스템을 구축해 노조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성과연봉제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임금 체계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그전에는 해가 지날수록 월급이 올라가는 호봉제였다. 그러다 연봉제로 전환됐다. 이어 실적과 성과에 따라 연봉에 차등을 두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게 됐다. 물론 그 대상을 간부 직원으로 제한했지만 도입 이후 공기업의 내부 분위기가 달라진 것만은 확실하다. 간부들의 의식과 일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공기업 혁신에 효과가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가 시스템도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정착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연봉제를 신입사원을 뺀 공기업 구성원의 대다수에게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공기업 내부의 일하는 분위기를 쇄신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이고 국민에게 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으로 혁신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4대 개혁 과제의 하나인 노동개혁의 과제이기도 하다. 호봉제에서 연봉제 그리고 성과연봉제로 전환될 때마다 노사 간 또는 노정 간의 갈등과 대립은 항상 있었다. 그럼에도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해 온 경험도 있다. 지금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이 갈등 요인이 되고 있지만 이 또한 공기업의 미래지향적 혁신을 위한 불가피한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성과연봉제의 확대 도입과 지속가능성 여부는 공공 및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에 달려 있다. 성과가 높은 직원이나 성과가 낮은 직원이나 모두 획일적으로 똑같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국민들은 얼마나 공감할까. 성과연봉제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평가하자.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박승 前 한은 총재 ‘인생경제학’

    나이를 무색하게 했던 10년 전의 ‘혈기방장’은 아직도 그대로일까. 팔순에 접어든 그가 어떤 모습으로 손님을 맞을지 그려보며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빌라의 초인종을 눌렀다. “아유, 많이 덥지? 어서 와, 어서 와.” 문을 여는 그의 말투와 표정. 10년 전의 그가 다시 보였다. 한국은행 총재 시절(2002~2006년) 어떤 전임자들보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박승(80) 전 총재는 여전히 세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이봐 학생, 기껏 어려운 시험 봐서 합격해 놓고 왜 포기하려는 거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1954년 2월 어느 날, 해군 제복을 입은 군인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도 입교 절차를 밟지 않자 ‘등록을 서두르라’는 독촉장이 날아오더니 이마저도 반응이 없자 저 멀리 경남 진해에서 전북 김제의 깡촌까지 직접 사람이 달려온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어요.” 이리공고 수석 졸업 예정자를 반드시 데려와 입교시키라는 해사 교장의 ‘특명’을 받은 그 군인은 나의 고집에 아주 난처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가 끝내 임무 완수를 못 하고 돌아간 그날은 나의 힘겨운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1936년, 호남 벽촌 마을에서 어느 집이라고 여유가 있었겠냐마는 우리 집은 특히 더 어려웠다. 아버지는 원래 한의사였는데 그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고, 나를 보셨던 44세 때의 아버지는 가족의 기초 생계도 감당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가장일 뿐이었다. 치료하던 환자가 급사한 뒤 의술의 길을 포기했던 아버지는 그 후 평생을 한글 초서체 연구에 바치셨다. -1948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7㎞ 떨어진 이리공업중·고에 진학했는데,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어떤 때는 모심고 김매느라고, 어떤 때는 산에서 땔감을 구해야 해서 학교에 못 갔다. 어머니 혼자 새벽엔 보리방아 찧고 낮에는 논일하고 저녁엔 길쌈해서 생계를 꾸리시다 보니 중·고교 6년 동안 수업료 때문에 가슴 졸이지 않은 때가 없었다. 당시에는 교문 앞에서 선생님이 불시에 수업료 납부 영수증 검사를 해서 영수증이 없으면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일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을 못 내서 공부를 못 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그렇게 터덜터덜 집에 와 보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방 안에 틀어박혀 한글 서체와 씨름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깨, 콩, 닭, 토끼를 이고 지고 5㎞ 떨어진 읍내에 가서 고생을 하시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중3 때 6·25전쟁이 났다. 전쟁이 터지고 얼마 후 인민군이 우리 마을에 들어왔다. 인민군들은 학생단체를 만들어 고등학생들을 강제로 가입시켰다. 김일성 찬양 노래를 부르게 하고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켰다. 학생들 중 6명은 나와 같이 아침마다 기차로 통학하던 고2, 고3 형들이었다. 얼마 후 유엔군이 들어와 인민군이 퇴각했는데, 그 형들은 천생 ‘빨갱이 부역자’로 몰려 처형당할 판이었다. 결국 다들 산으로 도망쳤는데, 나중에 빨치산이 돼서 경찰서를 습격했다가 결국엔 몰살을 당하고 말았다. ‘내가 몇 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이렇게 개죽음을 했겠구나.’ 좌우 이념 대결의 허망하고 참혹한 결과를 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이 집 아들 빨리 결혼해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지어야 되겠네.” 동네 아낙이 무심결에 던진 말이지만 고3 졸업반인 내가 피해 갈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나 아니면 예순 넘긴 부모님과 여동생을 부양할 사람이 없었다. 우리 2남 4녀 중 형은 일찍 돌아가셨고 누나 3명은 출가한 상태였다. 하지만 농사꾼으로 남을 수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군 사관학교였고 나는 그 중에서도 해사에 시험을 쳤다. -해사 입교를 포기하고 농사에 전념했던 그해, 가을 수확을 하니 먹고살 것 빼고 딱 쌀 다섯 가마가 남았다. ‘이 정도면 일단 대학에 등록할 수준의 돈은 되겠다.’ 이듬해 초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시험을 봤다. 어머니가 싸 주신 찐 고구마 5개를 손에 들고 난생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다.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서울역과 남대문 주변의 살풍경은 60년이 지난 현재도 머리에 또렷하다. 곰탕집 간판을 보고는 ‘곰고기를 파는 곳’, 복덕방 간판을 보고는 ‘떡 파는 곳’으로 오해했던 건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55학번으로 서울대 합격을 했는데, 입학 때의 감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그래서 고등교육받는 게 가당치도 않은 시골 출신의 고학생일 뿐이었다. 서울에서 가정교사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러자니 고향집의 농사가 문제였다. 수시로 서울과 김제를 농사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 이어졌고, 중·고교 6년 동안 그랬듯 학비와의 전쟁이 대학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대학 졸업이 다가올수록 입학 때 가졌던 경제학 교수에 대한 바람은 더 절실해져 갔다. 그러려면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나의 선택은 돈을 벌면서도 배움을 이어 갈 수 있는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였다. -1961년 한국은행 배지를 달았다. 만 25세였다. 양복 한 벌을 18개월 할부로 사 입으니 세상이 마치 내 것 같았다. 얼마 후 5·16 정변이 났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동국대 옆에 중앙공무원교육원을 만들고 여기에서 사무관 이상 공무원과 교사, 교수, 기업인들에게 소정의 교육을 받도록 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입행 첫해의 내가 여기에 강사로 위촉됐다. 매주 3~5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모교의 교장 선생님과 대학 총장, 학장도 나의 강의를 듣는 상황이 됐다. 대학 은사 박희범 교수님께서 나를 추천했기 때문이란 건 강의를 시작하고 얼마가 지난 후에야 알았다. 경제기획론과 경제발전론을 가르치셨던 박 교수님은 비교적 진보적인 색채의 학자이셨는데, 혁명정부에서 새로운 경제의 틀을 짜는 역할을 맡으셨다. 교수님은 나중에 교육부 차관과 충남대 총장을 지내셨다. -운명을 바꾼 미국 유학은 뜻하지 않은 기회에 찾아왔다. 1968년 나는 남산의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몇 날 며칠을 심하게 취조당했다. 일인즉슨 이랬다. 당시 우리나라는 무역적자가 대단히 심했는데 한국은행은 환율을 올려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폈다. 그러나 정부는 환율이 오르면 물가도 같이 뛴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서봉균 재무장관을 초청해 환율 인상 정책을 펴도록 설득시키기 위한 브리핑을 진행했다. 원고 작성과 발표를 대리급 조사역에 불과했던 내가 담당했다. 그런데 다음날 조간신문 1면 톱에 당장이라도 정부가 환율을 대폭 올리는 듯한 기사가 났다. 국민과 기업들 사이에 혼란이 왔다. 얼마 후 중앙정보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행원부터 부총재보까지 담당자들을 모조리 연행해 갔다. 중앙정보부 분실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멋대로 신문사에 원고를 넘겨줬느냐”는 추궁이 이어졌는데, 작성자인 내가 우선적으로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후배 행원이 신문기자 친구에게 발설한 사실이 드러나 나의 혐의점은 벗겨졌지만, 어쨌든 나는 후배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으로 감봉 징계를 받았다. 이게 한국은행 간부들에게 마음의 빚을 안겼다. “자네 혼자 책임을 지게 해서 미안해. 다음에 확실히 보상해 줄게.” -보상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71년 한국은행 최초로 국외에 유학생 2명을 파견하게 됐다. 전체 행원을 대상으로 시험을 봤는데 나는 통계학에서 과락이 나와 탈락했다. 그런데 재시험 공고가 떴다. “어떻게든 박승 대리는 합격시키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1972년 1월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캠퍼스)로 유학을 떠났고 2년여가 흐른 1974년 4월 석사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받아 왔다. 유학을 마친 뒤 은행에 복귀하고 나서 얼마 지나 두 군데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나중에 한국은행 총재를 하게 되는 이경식 당시 경제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와 함께 일을 하자고 했다. 이 수석은 한국은행 재직 때 나의 직속상관이었다. 또 하나는 남덕우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김재익 경제기획국장을 통해 타진해 온 ‘사우디아라비아 경제자문단’의 단장 역할이었다. 당시 사우디는 ‘1차 오일쇼크’로 막대한 달러를 벌게 됐지만 경제 개발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우디 국왕은 경제 개발을 도와줄 자문단 파견을 한국에 요청했다. 나의 선택은 사우디였다. -사우디에서 1년 만에 돌아와 1976년 9월 한국은행에 사표를 내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로 갔다. 교수 부임 직후에 쓴 ‘경제발전론’은 지금도 일부 대학에서 교재로 쓰고 있다. 교수가 되고 이듬해인 1977년부터 3년 동안은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경제 관련 사설을 썼다. 한 편 작성에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이게 소문이 나면서 다른 언론사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기도 했다. 나와 함께 김학준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 관련 사설을 서울신문에 썼다. 교수로서 경력을 쌓아가며 학교 안에서는 정경대학장과 대학원장을, 학교 밖에서는 국제경제학회장과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냈는데 1988년 뜻하지 않은 인생의 전기가 찾아왔다. -“박 교수, 나랑 같이 한번 일해 봅시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해 2월 취임을 앞두고 경제수석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만 52세였다. 노 대통령과는 이전에 일면식도 없었지만 다양한 언론 기고와 강연 활동 등으로 몇몇 경제단체에서 나를 천거했던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내가 맡았던 첫 번째 과제는 ‘200만호 주택 건설’ 공약의 실현이었다. 말이 200만호이지 엄청난 물량이었는데 막상 아파트를 지으려고 보니 서울 시내에는 땅이 없었고, 서울시 외곽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린벨트 밖으로 나가자.” 지도를 펴놓고 서울 세종로 사거리의 측량원표를 중심으로 반경 25㎞를 컴퍼스로 동그랗게 돌려 봤다. 25㎞ 이내로 한 것은 ‘지하철 1시간 이내’의 원칙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온 지역이 경기 분당, 산본, 평촌, 인천 중동 등 4곳이었다. 4대 신도시 추진이 확정되자 1988년 12월 노 대통령이 다시 나를 불렀다. “박 수석, 이제는 건설부 장관으로 고생 좀 해야겠습니다. 계획을 세웠으니 실행까지 맡아 주셔야지요.” -건설부 장관이 되고 나서 이듬해 서울 북쪽의 일산이 추가돼 5대 신도시 계획이 확정됐다. 그러나 그해 여름이 되면서 나는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심각한 마찰에 부딪치게 됐다. 당시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평균 130만원대였는데 건축비는 170만원, 시장 가격은 250만~300만원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분양 당첨만 받으면 막대한 이익이 남는 구조였고, 건설회사는 낮은 분양가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날림 공사를 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분양가를 올려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경제수석실의 반대가 심했다. 분양가를 올리면 집값이 더 뛴다고 했다. 대통령을 만나 건의했지만 “그 얘기는 이미 경제수석한테 들었다”고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구나.” 사표를 냈다. 다음날 사실상 경질 통보를 받았다. 그게 1989년 7월이었고 이듬해 3월 신학기부터 다시 강단으로 돌아갔다. -2001년 3월 정년퇴임을 하고 이듬해 초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은행 총재로 임명했다. 숱한 공직을 거쳤지만 2006년 3월 퇴임할 때까지의 한국은행 총재 4년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성취를 이룬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한국은행을 가장 사랑한 총재, 한국은행의 독립성과 위상을 높인 총재, 경제와 민생을 위해 고뇌한 총재’의 3가지 이미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5남매를 결혼시키면서 4명을 청첩장 없이 보냈다. 첫째와 둘째 아이의 결혼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치렀더니 친구들이 “축의금 낼 기회를 좀 달라”고 해서 셋째 때는 200장을 찍었다. 그런데 역시 나의 생각과 맞지 않았다. 다시 넷째, 다섯째의 결혼은 순수 가족 행사로 치렀다. -내가 모은 재산은 언젠가는 전부 사회에 내놓고 갈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은행 총재 재임 시절부터 월급의 20%를 가난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을 위해 써 왔다. 모교인 백석초등학교에 도서관도 만들었다. 오래전에 장기 기증 서약도 마친 상태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된 데는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의 이익을 중시하는 자세가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박승 前 총재 중앙은행(한국은행)과 정부(청와대·건설부·공공기관)에서, 또 대학 강단(중앙대 경제학과)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굽이굽이마다 굵직한 족적을 남겨 온 경제계의 원로다. 한국은행 총재 때 소신 있고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김제 백석초, 이리공업중·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뉴욕주립대(올버니) 경제학 석사·박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신문 논설위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청와대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주택공사·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공적자금관리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 “조선실록은 연출 사진…승정원일기는 무편집 필름”

    “조선실록은 연출 사진…승정원일기는 무편집 필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국보 303호 승정원일기를 한글로 번역하는 팀원들은 번역계의 ‘후설’(喉舌·목구멍과 혀)들이다. 조선 시대 왕명 출납을 맡은 승정원의 별칭이 후설이기 때문이다. 많은 신체기관 중 목구멍과 혀가 승정원의 별칭이 된 것은 승지들이 임금의 목구멍과 혀가 돼 임금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1994년 이후 20여년간 진행된 승정원일기 번역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승정원일기번역팀의 김태훈(46) 팀장을 만났다.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 승정원일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조선왕조실록과 임금의 일기인 일성록이 ‘연출된 스틸사진’이라면 승정원일기는 편집되지 않은 ‘영화필름’ 같다. 조선왕조실록과 일성록은 사안별 결과와 내용이 요약된 형태이지만, 승정원일기는 사안의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서 기록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딱 한 줄로 언급된 게 승정원일기에서는 몇 페이지에 걸쳐 기록되기도 한다. →2001년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15년을 맞았는데, 현재 번역 중인 부분은 어디인가. -영조 8~10년을 하고 있다. →영조대 승정원일기는 이전 시기와 다르다는데. -인조부터 경종까지는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지만 영조대는 그 자체가 원본으로 승정원일기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승정원일기 번역자는 모두 몇 명인가. -한국고전번역원 내부 번역자 11명과 외부 역자 45명으로 모두 56명이 하고 있다. 1인당 하루 한자 원문 420자, 한 달 8400자(200자 원고지 150장) 분량이다. 매년 2~3년치 분량이 번역된다고 보면 된다. →완역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현 추세라면 영조대 번역에만 앞으로 15년이 걸린다. 제가 정년퇴직할 때 영조대 번역이 끝난다. 전체 완역은 45년 뒤인 2060년으로 예상한다.
  • 위탁 4곳도 ‘메피아’… “연봉 6000만원 받고 배추심기만”

    위탁 4곳도 ‘메피아’… “연봉 6000만원 받고 배추심기만”

    “쉬운 검수 업무만… 다른직원에 일 몰려” 勞勞 갈등 고조… 시민 안전 위협 당해 19살 정비공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서울메트로의 위탁업무 관행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사고업체 ‘은성PSD’ 말고도 다수의 위탁업체를 ‘메피아’(메트로+마피아·메트로 출신 임직원들)들이 장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메트로 출신자들은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높은 급여를 받지만 업무량 등은 많지 않아 노노()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내부 부조리 탓에 시민 안전이 위협받는 꼴이다. 서울신문이 3일 입수한 서울메트로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메트로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5개 민간업체에는 메트로 출신 직원을 뜻하는 ‘전적 직원’이 137명이다. 5개 업체 직원 583명 중 평균 23.5%가 메트로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셈이다. 차량기지 내 운전업무를 맡은 업체 ‘성보세이프티’에는 직원 78명 중 24명(30.8%)이 메트로 퇴직자 출신이다.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위탁받은 ‘프로종합관리’도 직원 140명 중 37명(26.4%)이 메트로에서 왔다. ●퇴직 뒤 촉탁 재고용 ‘메피아’ 포함 땐 더 많아 위탁업체 내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이 수치마저 축소 집계됐을 가능성이 높다. 유성권 프로종합관리 노조위원장은 “전적 직원으로 구분된 37명 외에 40명 정도는 메트로에서 넘어와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가 정년퇴직 뒤 ‘촉탁직’으로 재고용해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 14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77명(55%)이 메트로 출신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정년 뒤 재고용해준 사례가 흔하다 보니 메트로 출신 직원들은 대부분 50대 후반 또는 60대 고령자들이다. ●하청업체 선정조건이 ‘메트로 출신 30%’ 또 메트로 출신 위탁업체 직원들은 은성PSD 사례처럼 많게는 3배가량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4년 실시한 ‘서울메트로 경정비 비정규직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메트로 출신으로 프로종합관리에서 일하는 직원 A씨는 월 449만원을 받은 반면 비메트로 출신 직원은 월 172만원을 받았다. 보고서는 메트로가 위탁 용역업체 선정 때 ‘전체 인원의 최소 30% 이상을 메트로 직원으로 채워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생긴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입찰 희망업체 사이에서 ‘메트로 출신 모시기’ 경쟁이 붙었고 불필요한 수당까지 얹어주며 근로계약을 맺었다. 이런 불공정 임금계약 탓에 정작 현장에서 고된 작업을 하는 현장 근로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린다. 위탁업체 내부에서는 “메트로 출신 임직원들이 업무에 소홀하고 편한 일만 하려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유 위원장은 “주요 업무 중에는 월상업무(6~18개월에 한 번씩 전동차 주요 부품을 교체하는 일)와 검수업무(매일 눈으로 전동차를 둘러보며 점검하는 일)가 있는데 메트로 출신자들은 상대적으로 쉬운 검수업무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탁업체 직원들은 “평균 연봉 5000만~6000만원 쯤 받는 메트로 출신 직원들 중 일부는 차량기지 안 공터에 배추와 무, 더덕 등을 심고 기르는 등 한가하게 보내지만 그런 만큼 다른 직원들에게 일이 몰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메트로 출신인 한 현장소장은 연봉 8000만원을 받는데 작업복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직무대행은 이날 서울시의회 특별업무보고에서 “앞으로 (메피아에 대한 특혜) 논란이 일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단독]‘메피아’ 5개 업체 있다…“연봉 6000만원 받으며배추심기 등 소일거리만”

    [단독]‘메피아’ 5개 업체 있다…“연봉 6000만원 받으며배추심기 등 소일거리만”

    19살 정비공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구의역 사고를 계기로 서울메트로의 위탁업무 관행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사고업체인 ‘은성PSD’ 말고도 다수의 위탁업체를 ‘메피아’(메트로+마피아·메트로 출신 임직원들)들이 장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메트로 출신자들은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높은 급여를 받으면서 업무량 등은 많지 않아 사업자 내 노노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내부 부조리가 심각해지면서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 꼴이다. 서울신문이 3일 입수한 서울메트로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메트로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5개 민간업체에는 ‘전적직원’(메트로 출신 직원) 137명이 채용돼 있다. 전체 직원이 583명이니 23.5%가 메트로에서 건너온 셈이다. 차량기지 내 운전업무를 맡은 업체인 ‘성보세이프티’에는 직원 78명 중 24명(30.8%)이 메트로 퇴직자 출신이며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위탁받은 ‘프로종합관리’는 직원 140명 중 37명(26.4%)이 메트로에서 왔다. 하지만 위탁업체 내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이 수치는 축소 집계됐을 가능성이 높다. 유성권 프로종합관리 노조위원장은 “전적직원으로 구분된 37명 외에 40명 정도는 메트로에서 넘어와 우리 회사에서 일하다가 정년퇴직 뒤 ‘촉탁직’으로 재고용해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다시 뽑아준 사례가 흔하다 보니 메트로 출신 직원들은 대부분 50대 후반 또는 60대 고령자로 알려졌다. 또 메트로 출신 위탁업체 직원들은 은성PSD의 사례처럼 다른 직원보다 많게는 3배가량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2014년 실시한 ‘서울메트로 경정비 비정규직 실태조사 보고서’를 매트로 출신 직원 A씨는 월 449만원을 받은 반면 비 메트로출신 직원은 172만원만 받았다. 보고서는 메트로가 위탁용역업체 선정 때 ‘전체 인원의 최소 30% 이상을 메트로 직원으로 채워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생긴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입찰 희망업체 간에는 ‘메트로 출신 모시기’ 경쟁이 불붙었고 불필요한 수당까지 얹어주는 근로계약을 맺었다. 불공정 임금계약 탓에 정작 현장에서 고된 안전 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린다. 위탁업체 내부에서는 “메트로 출신 임직원들이 업무에 소홀하고 편한 일만 하려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유 위원장은 “업무 중 난이도가 높은 월상업무(6~18개월에 한번씩 전동차 주요 부품을 교체하는 일)와 검수업무(매일 눈으로 전동차를 둘러보며 점검하는 일)가 있는데 메트로 출신자들은 상대적으로 쉬운 검수업무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탁업체 직원들은 “메트로에서 온 직원들이 지하철 차량기지 안 공터에 배추와 무, 더덕 등을 심어 키우는 등 소일거리만 해 다른 직원들에게 일이 몰린다”거나 “메트로 출신 현장소장이 연봉 8000만원을 받는데 작업복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문화·산업 인프라 확충… ‘광주의 얼굴’ 옛 명성 되찾는다

    [자치단체장 25시] 문화·산업 인프라 확충… ‘광주의 얼굴’ 옛 명성 되찾는다

    김성환(55) 광주 동구청장은 정통 행정 관료출신이다. 26년 공직 생활 중 국무총리실과 청와대에서만 22년을 근무했다. 지난 4·13 20대 총선과 함께 치러진 동구청장 재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김 구청장은 “중앙정부 근무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동구 발전의 견인차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정년 5년을 남겨두고 지난해 12월 국무총리실 국정과제 관리관(1급)을 사직했다. 당시만 해도 당선이 불투명한 가운데 선거직에 뛰어든다고 주변의 만류도 적잖았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지 않아 인지도 등의 ‘핸디캡’을 극복할만한 뚜렷한 방안이 없는 탓이다. 재선거인데다 급조된 정당 후보로 나서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는 이에 대해 “공직을 시작할 때 마무리는 현장과 호흡하면서 하겠다고 다짐했다”면서 “그 기회와 타이밍이 왔고, 나는 그것을 운명처럼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부분의 행정관료 출신들이 정년을 마치고 선거직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최선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앙 부처 인맥을 활용해 지역발전을 꾀하려면 동료나 선후배가 현직에 있을 때 나와야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실용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 구청장은 청소년기를 보낸 광주에 대한 애정도 동구청장 출마 발길을 재촉했다. 전남 보성이 고향인 그는 부모의 권유로 중학교 때부터 광주로 유학 왔다. 어린 시절부터 자취하며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행시 33회로 전남도에서 몇년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 줄곧 서울에서 근무했다. 아이들은 모두 광주에서 초·중·고교를 보냈고, 부인도 이 지역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몸은 서울에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 쪽으로 향했던 충분한 이유가 이처럼 가족과도 얽혀 있다. 그런 탓에 20년 이상을 주말부부로 살아야 했다. 취임 한 달 남짓 동안 대부분 시간을 그는 구정 현안 파악을 위한 현장 방문 등에 할애했다. 직원들과의 소통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난 2년간의 구정 공백에 따른 산적한 과제도 점검했다.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고 결의를 다지는 시간도 일부러 가졌다. 도심공동화와 재개발, 문화관광 활성화 등 공약에 대한 구체적 실행방안 마련에 몰두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과 씨름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하루 동안 그를 동행 취재했다. 이날도 김 구청장의 중요한 일정은 현장 방문이었다. 전통시장인 산수시장을 찾아 상인들의 애로상황을 듣고 시장 활성화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대기업 대형마트 등의 영향으로 대도시 전통시장이야 상황이 비슷하지만 불경기 탓에 너무 썰렁하기 때문이다. 오후 3시쯤 찾은 시장에는 즐비한 점포에 비해 오가는 사람은 뜸했다. 상인들이 좌판을 벌여 놨지만 파리만 날리는 실정이었다. 김 구청장은 상인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이야기를 들었다. 채소가게, 과일가게, 닭집, 마트, 정육점, 옷가게 등을 차례로 돌았다. 노령연금, 폐쇄회로(CC) TV 설치 문제 등 각종 건의사항이 쏟아졌다. 한여름 땡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선 인사도 할 겸 상인들의 어려움을 1시간가량 열심히 들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윤정심(70·여)씨와 튀김집 주인 김성례(65·여)씨는 “간선도로와 인접한 시장 출입구 일대 주차단속이 너무 심해 손님이 안 온다”며 “단속 카메라 운영시간을 조절해 줄 것”을 요청했다. 김 구청장은 “시장 반경 100m 이내 지역은 가능한 한 단속을 하지 않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했다. 상인회장 이수창(65)씨는 “손님이 너무 없어 장사할 맛이 안 난다”며 대책을 요구했다. 김 구청장은 “재래시장으로 특화하거나 아예 현대식 상가로 바꾸는 방안 등을 상인들 스스로 결정해 달라”며 “주민 의견이 모이면, 이를 토대로 구체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현장 방문이 많은 김 구청장은 이동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이동하면서 많은 업무를 처리하며 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차 안에서 전화로 다급한 지시를 수시로 한다. 이날도 산수시장으로 가면서 기획홍보실장에게 전화 걸어 “일부 언론에 내남지구 도로개설 등 행정자치부에 국비 25억원 지원을 요청했는데 35억원으로 보도가 잘못 나갔으니 빨리 바로잡으라”고 지시했다. 동구의 요즘 최대 현안은 국립한국문학관 유치다. 김 구청장은 오전 11시쯤 간부들과 티타임을 갖고 이를 논의했다. 그는 황남진 문화경제국장에게 “한국문학관 동구 유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안전도 꼼꼼하게 챙긴다. 오후 4시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광주시와 공동 주관해 테러 및 대형화재발생 대응 훈련을 했다. 오후 늦게 청사에 되돌아온 김 구청장은 내일 일정을 체크하고 민원인과의 저녁약속을 위해 청사를 총총히 빠져나간다. 취임 한 달 남짓 동안 이처럼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김 구청장은 동구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는 데 소홀하지 않고 있다. 자치구가 할 수 있는 일을 우선 골라낸 뒤 남은 임기 2년 안에 마무리할 수 있는 현안과 중장기 과제를 분류하고 있다. 실제로 동구는 충장로·금남로 등 옛 도심을 끼고 있는데다 노령층의 인구비율이 현재 19.5%로 광주 5개 구 가운데 가장 높다. 총인구는 2010년 10만 4449명에서 지난해 현재 9만 8784명으로 줄었다. 도심에 아파트단지가 재개발되면 원주민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가 완공 후 되돌아오는 등 감소와 정체가 반복되고 있다. 김 구청장은 “동구는 과거 광주의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지였으나 1990년대 이후 전남도청 이전과 공동화 등으로 쇠락을 길을 걸었다”며 “그러나 최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문을 열면서 이와 연계된 각종 문화산업과 인프라가 확충되는 등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여건을 최대한 살리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당장 올가을 예정된 충장축제 때는 아시아문화전당과 협업을 통해 ‘문화 동구’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2020년까지 245억원을 들여 광산동 구시청사거리 일대에 아시아음식문화지구를 조성한다. 지역 명소로 자리잡은 대인 야시장과 남광주시장, 예술의 거리 등 문화전당 주변 시설과 무등산 등을 연계한 관광 콘텐츠를 적극 육성할 방침이다. 도시 재생과 리모델링도 핵심 현안이다. 내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문화전당 주변 주거지와 상업지역 환경을 개선한다. 도심 권역별로 푸른마을공동체센터와 궁동예술두례마당, 충장미디어산업센터 등이 들어선다. 용산, 월남, 선교, 계림, 지원, 학동, 학운 지구 등 구도심의 재개발을 통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든다. 상대적으로 노령인구가 많은 지역이라서 촘촘한 복지안전망 구축사업도 진행 중이다. 갑작스러운 소득원 상실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가정을 지원하는 ‘노랑호루라기 사업’, ‘어르신 효출동’, 마을공동체사업, 인권옴부즈맨 운영 등으로 복지와 노인 일자리 창출 등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김 구청장은 “동구를 광주의 얼굴이자 중추 기능을 담당하는 지속 가능한 중심구로서 예전의 명성을 되찾겠다”며 “이를 통해 문화와 관광, 일자리와 젊은이가 몰려드는 따뜻한 공동체로 발돋움시켜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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