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정년퇴임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한기호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장난전화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주제발표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 사무국장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57
  • 말말말˙˙˙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통해 왔는데,나는 그런 무서운 일을 업으로 하면서 수많은 범죄사건에서 정의를 추구하며 결백한 사람의 혐의를 벗겨 인권을 보호해 왔다고 자부한다.-25년 동안 3만건의 사건을 처리해 온 최상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생물학과장,정년퇴임을 앞두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 [메트로 탐방-경찰서]우리署 명물-홍갑표 반장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겨도 틀림없이 잡고 만다.홍반장.’ 서울 강동경찰서에서 강·절도 수사통으로 알려진 강력1반 홍갑표(56) 반장.그는 범인을 잡기 위한 가장 첫번째 수칙으로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미련한 진돗개가 되는 것”을 꼽는다. 홍 반장은 지난 2002년 경찰청의 중요수사 사례로 선정된 아파트 전문털이 사건을 떠올렸다.당시 강동구 암사동과 둔촌동 일대에서 금품 11억원어치를 털어온 일당 7명을 잡게 된 단서는 백화점 주차장의 폐쇄회로(CC)TV였다.범인들이 훔친 신용카드를 백화점에서 사용한 것을 확인한 홍 반장은 점원을 상대로 몽타주를 작성,주차장 CCTV에 찍힌 출입객 3000여명의 얼굴과 일일이 대조해 인상착의가 비슷한 인물을 찾아낸 뒤 부산에서 범인들을 덮쳤다.홍 반장은 “3000여명의 얼굴을 모두 확인할 때는 답답하고 막막한 마음뿐이었지만 결국 그것이 중요한 단서가 됐다.”면서 “범인을 잡으려면 미련스러울 정도의 끈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반장은 범인 검거와 함께 그 과정에서 수사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홍 반장이 주로 쓰는 수사기법은 ‘브레인스토밍(Brain storming)’.구성원들에게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게 하고 토의를 통해 적절한 수사기법을 찾는 것이다. 증거가 없어 수사에 애를 먹다 지난 5월 천신만고 끝에 해결한 택시회사 강도사건도 한 직원의 아이디어가 실마리가 됐다.범인이 금고에서 훔쳐간 수표를 사용하기 전 수표분실 신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은행 자동응답시스템(ARS)에 전화한 것을 추적,인천과 수원의 발신지 3곳을 찾아내고도,모두 공중전화라 손쓸 도리가 없었다.그러다 회의 중 “혹시 전화건 뒤 동전이 남았다면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나왔고 통화내역을 추적한 결과 추측대로 내연녀에게 전화한 것을 확인,범인을 붙잡을 수 있었다. 지난 1973년 경찰에 입문해 총리공관 경호원,김포공항 탑승보안관 등을 거쳐 12년 전부터 형사과에서 근무,정년퇴임을 한해 앞둔 홍 반장은 “내 밑에서 후배들이 특진해 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낙”이라면서 “후배들이 물고 절대 놓지 않는 ‘진돗개 수사정신’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권위 버리고 친구같은 의사 되어야” 이성낙 아주의대 석좌교수

    “권위적 의료행위는 이제 근절돼야 합니다.독일의 경우 병원 대합실에서 대기중인 환자를 부를 때 간호사가 절대 부르지 않습니다.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다가가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물으며 진료실로 모셔가지요.” 이성낙(66·피부과) 아주대 석좌교수는 3명의 전직 대통령의 주치의를 맡을 만큼 국내 최고의 피부전문의로 꼽힌다.또 미국 피부과학회 국제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명성이 높은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 4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을 했지만 교수 재직때보다 훨씬 더 바빠졌다고 말했다.우선 잡지사와 출판사 등에서 밀려오는 원고청탁이 많아지고 있다.국내외 학회 및 학술대회 참석,각종 단체 강연 등의 스케줄도 소화하기 빡빡하단다.그는 “교수를 그만 두면 쉬는가 했더니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특히 그는 지난 4월 ‘의료현장폭력 추방추진위원장’을 맡아 “폭력추방은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의료현장에서 외치고 있다. 요즘에는 밤중에 ‘비밀모임(?)’에 불려 나가는 경우도 많아졌다.모임의 이름이 딱히 정해지진 않았지만 애칭으로 ‘도깨비당’으로 불린다.마음이 통하는 유홍준 명지대 교수 등 학계와 예술계 인사 7명이 참석하는 자리다.그는 최근 한국의학교육학회가 수여하는 ‘제8회 인당의학교육대상’을 수상했다.바로 상 받은 ‘턱’을 내야 하기 때문이란다.인당의학교육대상은 한국의학교육학회가 의학교육발전에 공이 크거나 의학교육 학술업적이 뛰어난 의학교육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그의 의학적 공로는 우선 지난 1983년 국내 처음으로 베체트병 특수클리닉을 개설했다.또 96년 세계 최초로 베체트병의 원인이 단순 포진 바이러스임을 확증시키기도 했다.아울러 여드름치료제를 최초로 개발한 실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통령 주치의가 된 경위를 물었다.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얼마 안됐을 무렵 이순자 여사를 통해 연락이 왔다.”면서 “당시 연세대 교수로 재임할 때 피부질환치료제를 개발한 약품이 있었는데 아마 그 약의 효험 때문에 연락이 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그뒤 자연스럽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주치의가 됐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비공식 주치의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는 학연은 있으되 학풍이 없습니다.학연에 얽매이다 보면 학문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없지요.” 그는 1957년 보성고를 나와 62년 독일 Marburg대 의예과와 66년 독일 뮌헨대 의대를 졸업했다.연세대 의대 피부과 부교수·교수를 거친 뒤 90∼2003년 아주대 의대 피부과 교수로 재임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대한재활의학회 명예회장 신정순 박사

    “성실,오직 그것 하나지.” 뜻밖의 대답이었다.‘한국재활의학의 대부’ 신정순(申廷淳·77) 박사,그에게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는 적어도 이런 답변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한평생을 바치면서 한국재활의학의 기초를 닦은 일,크고 작은 사회단체 회장·이사 등을 역임하며 봉사해온 일로 미뤄볼 때 ‘예상답안’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재차 ‘되도록 업적이나 공헌 위주로 말해달라.’고 질문했다.한참을 망설여 나오는 답이라곤 똑같다.“글쎄,난 잘 모르겠는걸.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자랑스럽고 자신있는 것은 이것 하나야.내 좌우명,‘성실’이라는 두 글자를 어떠한 경우에도 배신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걸 빼면 내 인생에 어떤 자랑거리가 또 있을까?” 기자의 ‘우문’에 명료한 ‘현답’을 들은 기분이다.만점짜리 오답이랄까. ●“성실이라는 두 글자 평생 배신 안 해” 대한재활의학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신 박사는 1957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정형외과 수련과정을 시작한 이래 40여년을 재활의학의 기초를 닦는 일에 바쳤다.세브란스 병원장 등을 지내며 의사 본연의 활동 외에도 대한재활의학회,한국장애인재활협회,한국재활재단,뇌성마비복지회 등 재활의학 관련 단체들의 창립과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다. 92년 연세대 재활의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에도 한국뇌성마비복지회장,국제키비탄 한국본부 총재,한국재활재단 이사 등을 맡으며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그이지만 거듭 “날 너무 대단한 인물처럼 쓰지는 말라.”고 부탁해 온다.“소문이 안 나서 그렇지 나보다 더 훌륭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난 그저 스승님들이 가르쳐주신 ‘의료는 곧 봉사’라는 말씀을 조금이나마 실천해 보려고 했을 뿐이야.” 신 박사는 51년부터 6년간의 군의관 생활을 통해 재활의학에 한평생을 바칠 것을 결심했다.“전장에 나가 수족을 잃은 군인들,민간인들,식량부족으로 제대로 먹지 못해 소아마비에 걸린 장애아동들….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어.53년 당시 주한미1군단 등이 모금해서 세브란스 병원 구내에 만들어준 ‘절단자 재활시설’이 있었는데,거기 가 보면 말도 못해.” 신 박사는 스승의 권유로 67년 홍콩으로 건너가 홍콩대학 부속병원인 퀸메리 병원,아동병원,재활센터 등을 돌며 선진 재활의학을 배웠다.“당시 우리나라에는 말로도 알려지지 않았던 첨단기술과 장비들을 마음껏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지.그때 참 자극 많이 받았어.” 68년 귀국한 신 박사는 박재주(사회사업가) 선생 등과 함께 신체장애자협회(현 장애인재활협회)를 세운다.“그때 정부나 학계,사회단체 어디 할 것 없이 장애인들에게 정말 무심했어.그런 반성에서 만들었지.지금은 그래도 훨씬 좋아진 거야.” ●6·25 참상 겪고 재활의학계 투신 신 박사는 “장애는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 전체의 불행이다.”라는 스승 주정빈 박사의 말씀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산다.“장애인 재활 문제는 단순한 의학만의 문제가 아니야.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책임져야 할 문제이지.특수교육,이동할 수 있는 권리 확보,노동권 보장….제대로 하려면 결국 사회 전 분야가 연관되지.그게 또 여러 사회단체 활동을 한 이유이기도 하고….” 신 박사는 71년 12월에는 문병기,정인회,신필수 박사 등과 함께 재활의학회를 창립했고 72년 4월에는 제2대 특수교육학회장으로 선출된다.75년부터는 국제사회봉사단체 ‘키비탄클럽’에 참가(아시아담당 총이사)해 장애아동들을 돕는다.“사실 한 것도 없는데 소리만 괜히 요란하지.” 잠시 웃던 신 박사는 “역시 가장 큰 보람은 치료했던 장애아동들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을 보았을 때 느낀다.”고 회상했다. “기억에 남는 환자는 역시 김인호라는 친구지.7살 때 연세재활원에 입원했는데 뇌성마비가 심해 팔다리도 쓰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했어.그런데 이마와 혀로 교과서를 넘기면서 공부하고,입에 문 막대기로 전동타자기를 두드리며 필기하더니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 유학 가서 성적우수 금메달도 여러번 탔지.나중에는 워싱턴 가톨릭대학교에서 우주물리학 박사 학위까지 땄어.91년인가 고맙다고 찾아왔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봉사는 복지사회의 소중한 자원” 그러던 신 박사는 “인호가 미국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휠체어 밀어주더라고 자랑할 때는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지금이야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그런 쪽에는 좀 열악했거든.관공서에도 경사로가 제대로 없는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누군가의 도움없이 ‘평범’하게 살기란 거의 불가능했지.” “인호가 미국에 안 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며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며 씁쓸해하던 신 박사는 “봉사는 복지사회의 윤활유”라고 강조했다.“꼭 장애인에 대한 봉사만 국한시켜서 말하는 게 아냐.선량한 시민정신에 의한 봉사는 복지사회의 소중한 자원이지.우리나라에서 상당히 부족한 희귀자원처럼 보이기도 하고.” 내리사랑일까.신 박사는 젊은 의료계 후배들에게 따끔한 한마디 당부를 잊지 않았다.“요즘 많이 힘든 것도 알고,국민들에게 오해받으면 괴로운 것도 알지….그렇지만 우리들 탓은 없을까.요즘 젊은 친구들이 흉부외과 등 ‘힘드는 과’는 기피하고 이른바 ‘손쉬운 과’를 선호한다고 들었어.이건 의술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다같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봐.난 선생님들로부터 ‘의료는 봉사’라고 배웠어.그리고 적당주의를 싫어하는 성격 탓에 최선을 다해 봉사했지.그게 내 평생의 자랑거리야.개인적으로는 봉사정신 없으면 제대로 된 의사 아니라고 봐.내가 너무 구닥다리인가?(웃음)” ■그가 걸어온 길 ▲1927년 서울 출생 ▲51년 세브란스의과대학(연세대 의대) 졸업 ▲57년 육군 군의관 복무 후 예편 ▲63∼66년 삼육아동재활원 의료부장 ▲67∼68년 홍콩대 의대 연구생활 ▲72년∼현재 대한재활의학회 이사 ▲72∼82년 한국특수교육학회장 ▲72∼92년 연세의료원 재활원장 ▲78년∼현재 서태평양 뇌성마비학회 이사 ▲80년∼현재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이사,한국뇌성마비복지회 이사,부회장 ▲82∼84년 대한재활의학회장 ▲87∼91년 세브란스병원장 ▲89∼91년 국제키비탄 한국본부 총재 ▲92년∼현재 한국재활재단 이사 ▲2001∼현재 한국뇌성마비복지회장 ▲2002∼현재 대한재활의학회 명예회장 글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
  • 강길원 교수 정년퇴임展

    강길원 공주대 교수가 5월3일부터 8일까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갤러리 1전시실에서 개인전을 연다. 강길원의 작품세계는 크게 네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후기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주로 그린 1960년대,풍경 그림을 통해 현실을 풍자한 1970년대,상징주의적 화풍의 1980년대,그리고 199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는 ‘순수 풍경시대’가 그것이다. 이번 정년퇴임 기념전엔 ‘가을찬가’‘청송의 여름’‘대둔산의 추경’‘변산의 해변’ 등 자연의 사계를 노래한 35점이 출품된다.풍경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던 1970년대 ‘만능’ 같은 작품과는 구분되는 보다 순도 높은 자연,즉 풍경 그 자체로서의 자연을 담았다.작가는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모사하지 않는다.강조와 생략을 통해 일필휘지로 단숨에 그리는 편이다.자연은 작가 특유의 눈으로 재창조된다.그런 만큼 강길원의 풍경화는 한층 자연의 순수함과 힘을 느끼게 한다.그러나 강길원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역원근법을 시도하는 다시점(多視點) 회화란 점이다.(02)2000-9737.˝
  • 고고학 니시타니 초빙교수로

    니시타니 다다시(西谷正·66) 일본 규슈(九州)대 명예교수가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4년제 국립대학인 한국전통문화학교 외국인 초빙교수로 임용됐다.니시타니 교수는 내년 2월28일까지 1년 동안 이 대학에서 ‘세계문화유적 특강’과 ‘일본고고학 개론’‘고고학사’‘한국고분 특강’을 강의한다. 니시타니 교수는 나라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원과 나고야성박물관 초대관장을 지내고 1973년 이후 규슈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2년에 정년퇴임했다.지난 78∼79년 서울대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 [길섶에서] 퇴직 후 생활/이기동 논설위원

    퇴직한 선배가 찾아왔다.신문기자에서 전직해 공직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한 분이다.자동차로 북미 대륙 횡단여행을 한 직후여서인지 그을린 얼굴에 가죽점퍼 차림은 60대 중반의 나이를 몰라보게 한다.입심좋은 선배가 들려주는 신나는 퇴직 후 생활에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주로 오랜 꿈이었다는 봉사생활을 하며 겪은 이야기들이다.그렇다고 무슨 거창한 봉사도 아니다.요새는 매일 전화 5통,이메일 한통을 남에게 보내는 일을 새로 시작했단다.소원했던 친구,일가친척,지인들에게 그냥 안부전화하는 것이다.매일 이메일을 한통씩 쓰면 1년 내내 누군가 자기 편지를 읽을 것이라는 생각에 행복하단다. 대기업 사장에서 물러난 선배가 있다.반년이 지났지만 아직 ‘밀려난’ 분을 못 삭이는 것 같다.경륜에 걸맞은 번듯한 자리를 다시 잡기도 여의치 않다.돈도 웬만큼 있는데 체면 벗어던지고 여유있는 퇴직 후 생활을 즐기시라고 해보지만 아직 그럴 뜻은 없는 것 같다.두 분을 보며 현직생활보다 퇴직 후 생활을 잘하기가 사실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기동 논설위원˝
  • [보러갑시다]

    ●클래식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28∼29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399-1114.지휘 오자와 세이지.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재개관 오프닝 콘서트 3월2일 오후7시30분(02)399-1114.서울시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안익태의 ‘코리아 판타지’ 등. ■ 바이올리니스트 현해은 교수 정년퇴임 기념음악회 3월2일 오후7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3436-5929. ■ 김영준 바이올린 독주회 3월3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732-0990. ●미술 ■ ‘한국의 정신’전 3월14일까지 아트파크(02)733-8500.이당 김은호·청전 이상범·소정 변관식·심상 노수현·운보 김기창 등 원로와 강경구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 ■ 이인옥 개인전 3월1일까지 갤러리상(02)730-0030.꿈의 서정과 봄의 이미지가 넘치는 유화 30여점. ■ 거장의 숨결’전 3월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02)786-3131.첨단 디지털 기술로 재현한 세계의 명작 117점. ■ 정물예찬전 3월14일까지 일민미술관(02)2020-2065.사실적인 정물화에서 팝아트적 정물화까지. ●콘서트 ■ 린애 콘서트 27·28일 오후7시30분 대학로라이브극장(02)744-6700. ■ 왁스 콘서트 27일 오후8시,28·29일 오후6시 대학로 SH클럽(02)543-5567. ■ 레이니선 콘서트 28일 오후7시30분 클럽 사운드홀릭(02)3142-4203. ■ 성시경 콘서트 28일 오후7시,29일 오후5시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02)6672-7540. ■ 이루마 대구 콘서트 28일 오후7시 대구 경북대대강당(053)954-2194. ■ 푸딩 콘서트 28일 오후7시 컬트홀(02)2658-3546. ■ 이루마 부산 콘서트 3월1일 오후7시 부산문화회관 대강당(051)607-6042. ■ 세이킹더 하우스 부산 콘서트 3월5·6일 오후7시 금정문화회관대극장(02)3141-7325. ■ 디사운드 내한공연 3월6일 오후8시 돔아트홀(02)515-7941. ■ 문단열 영어 콘서트 3월6일 오후7시 남대문 메사팝콘홀(02)334-1563. ■ 바이브 대구 콘서트 3월6일 오후7시 대구 경북대대강당(053)621-0012. ■ 리오 콘서트 3월6일 오후7시 퀸라이브홀(02)313-7777. ■ 박종호 콘서트 3월6일 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02)2650-7482∼3. ■ 한충완 콘서트 3월7일 오후7시 LG아트센터(02)780-5054.
  • 15년간 문인기념비 18기 건립 이명재 회장

    “한 시대를 풍미했고 우리 문단사에 있어서 많은 공을 세운 문인들의 묘를 찾아 그 뜻을 새삼 기리는 일을 15년째 하고 있지요.” 지난 24일 중앙대학교수(국문학과)에서 정년 퇴임한 ‘우리문학기림회’의 이명재(65)회장은 요즘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우선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신경향파(프로문학)의 기수이자 ‘탈출기’의 작가로 유명한 최서해(1901∼1932)의 문학비 건립을 위한 사업추진에 앞장서고 있다.다음 주중 전체 회의를 열고 최서해의 묘가 있는 서울 망우리 현장을 직접 답사할 예정이다.최서해의 묘는 동국대 곽근 교수가 천신만고의 노력끝에 지난해 12월 망우리 공동묘지의 풀더미에서 찾아냈다.1932년 사망한 최서해는 미아리공동묘지에 묻혔으나 지난 58년 묘지를 이장할 때 연고가 없어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었다.그러나 곽 교수가 문헌자료 등을 뒤진 끝에 최근 발견돼 문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최서해는 함북 성진에서 태어나 1917년 간도로 떠나 유랑생활하다 23년 고향으로 돌아온 뒤 대표작 ‘홍염’ ‘탈출기’‘기아와 살육’ 등을 발표했다. “제2의 윤동주로 일컬어지는 시인 심연수의 문학비도 재작년 연변에 직접 가서 건립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90년 ‘우리문학기림회’를 설립한 이후 극작가 김우진,시인 홍사용,월북작가 홍명희,이태준,‘혼불’작가 최명희 등 그동안 18기의 문학비를 세웠다고 이 회장은 밝혔다.또한 작고문인 회고록을 발간해주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고 덧붙였다.‘우리문학기림회’에는 임헌영,허영만씨 등 문인 1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정년퇴임하던 날 장서 5000여권과 퇴직금 가운데 3000만원을 학교발전 기금으로 선뜻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문학비 건립 외에도 그동안 밀렸던 ‘통일 한민족문학’의 집필을 위해 우리 동포들의 궤적을 살피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김문기자 km@˝
  • 정년퇴임 교원 2005명 훈·포장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달 말 정년퇴임하는 교원 2005명에 대해 훈·포장 및 표창을 수여한다고 24일 밝혔다. 정완호 한국교원대 총장과 서인석 전 서강대 총장이 1등급인 청조근정훈장,나찬원 인천 동명초 교장 등 780명이 황조근정훈장,석영희 경기 의정부 민락중 교감 등 436명이 홍조근정훈장,최상돈 경북대 교수 등 305명이 녹조근정훈장,노개진 서울 보성고 교사 등 256명이 옥조근정훈장을 받는다. 박평도 전남 무안북중 교감 등 104명에게 근정포장,조남돈 국민대 교수 등 34명에게 대통령 표창,전순자 경남 김해중앙여고 교감 등 45명에게 국무총리표창,김치국 부산 신곡초 교사 등 43명에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표창이 수여된다.명단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볼 수 있다.˝
  • 요료법 연구로 박사학위 받은 79세 김기일 옹

    “배움에 나이가 따로 있습니까.” 중·고교 생물교사 출신의 할아버지가 요료법(尿療法)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는다. 오는 20일 단국대 식품영양학과 학위수여식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는 김기일(79·경기 고양시 일산구)옹이 주인공.김옹은 ‘요료법이 고혈압과 혈청지질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학위 심사를 통과했다. 백발을 휘날리며 불룩한 배낭을 메고 대학 캠퍼스를 누비는 김옹이 요료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난 91년.서울 구정중 정년퇴임 때 퇴임교원들을 위한 특별강연에서 오줌을 마시며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을 들으면서 부터다.김옹은 “호기심으로 한번 해봤더니 30년 동안 앓아온 무좀이 사라지고,찬바람이 불면 꺼칠해지던 피부질환도 수그러들었다.”고 말했다. 김옹은 동의보감을 비롯한 옛 서적과 일본에서 만든 생물학 서적 등을 뒤져보다 체계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2000년 3월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매일 오전 9시부터 밤늦게까지 도서관과 실험실을 오가며 향학열을 불태웠다.그는 이번 논문에서 31∼80세 정상군(群)과 고혈압군 성인 14명을 조사한 결과 요료법이 고혈압군의 체중과 혈압,혈청,콜레스테롤 수치 등을 감소시킨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내 몸을 변화시킨 요료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는 생각에 힘든 줄 몰랐다.”면서 “그저 즐겁게 공부하다 보니 박사 학위를 밟는 4년간 단 한번 지각·조퇴도 하지 않고 공부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25년 함경남도 이원군 동면 장문리에서 출생한 김옹은 45년 10월 남하,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37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환갑 때인 1986년에는 한양대 교육대학원에서 생물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부인 박승봉씨와의 사이에 2남2녀와 손자 9명을 둔 김옹은 앞으로 기업체와 노인대학 등에서 건강 관련 강의를 하고 요료법 등을 다룬 건강 서적을 펴낼 생각이다. 박지연기자 anne02@˝
  • [부고]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 국내 비판사회과학계의 거목 김진균(67) 서울대 명예교수가 14일 지병인 대장암으로 타계했다.1968년 서울대 상대 전임강사로 교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 2002년 정년퇴임하기까지 주로 계급·노동·국가 등의 주제를 비판사회이론의 관점에서 연구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혜영씨와 아들 태진,영진,딸 기인 등 2남 1녀가 있다.빈소는 서울대병원,영결식은 17일 오전 10시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치른다.장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민중공원.(02)760-2018. ●안희경 前경무대 정무비서관 이승만 대통령 당시 경무대 정무비서관을 역임한 안희경 변호사가 14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91세.유족은 미망인 민순기씨와 명기(변호사)·용기(재미공학박사)·덕기(대한승마협회장)·건일(재미기업인)·윤기(연세대 교수)씨 등 5남 3녀.발인 18일 오전 8시,빈소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16호(02)3410-6916. ●元忠喜(유닉스라바 회장)씨 모친상 鍾源(파이낸셜뉴스 런던특파원)씨 조모상 李澤根(전 한미인터내쇼날 회장)金允洙(남원엔지니어링 상무)金容國(전 국민데이타 사장)씨 빙모상 13일 오후 8시 삼성서울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3410-6914 ●朴俊成(성진화성 대표)씨 별세 昇旭(〃 이사)昇美(독일 거주)씨 부친상 14일 오전 7시25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16일 오전 10시30분 (02)392-0499 ●徐章赫(약사)知賢(버추얼텍 대표)씨 부친상 李尙勳(단국대 의대 교수)洪性根(포천중문의대 교수)金朋年(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高法珉(서울 스타성형외과 원장)씨 빙부상 14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발인미사 17일 오전 8시 서교동성당 (02)760-2011 ●金基澤(동서산업 법무관재팀장)永敏(한국경제신문 총무팀장)씨 부친상 朴鍾官(현대모비스카페 마산점 대표)朴義錫(부산 영도구 계장)씨 빙부상 14일 오후 9시 부산 양정동 동의의료원,발인 17일 오전 9시30분 (051)852-0244 ●金炳翼(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炳(이수화학 감사)씨 모친상 15일 오전 9시4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19 ●朴東燦(서울여대 교수)씨 부친상 李明俊(세기문화사 직원)씨 빙부상 14일 오후 5시 대구 노인병원,발인 17일 오전 6시 (053)813-5935 ●琴基(봉화금씨종친회장)彩(충남대 문리대 교수)澔(미국 거주)裕植(해태제과 법정관리인·전 한일은행 본부장)同和(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원장)씨 모친상 金銀愛(연세대 교수)씨 시모상 孟元在(전 건국대 총장)李完成(미국 거주)씨 빙모상 15일 오전 4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92 ●李省勳(KBS스포츠국 기자)씨 모친상 15일 오후 6시 서울 아산병원 영안실.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38˝
  • [부고]

    ●김진균 서울대 명예교수 국내 비판사회과학계의 거목 김진균(67) 서울대 명예교수가 14일 지병인 대장암으로 타계했다.1968년 서울대 상대 전임강사로 교수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 2002년 정년퇴임하기까지 주로 계급·노동·국가 등의 주제를 비판사회이론의 관점에서 연구해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혜영씨와 아들 태진,영진,딸 기인 등 2남 1녀가 있다.빈소는 서울대병원,영결식은 17일 오전 10시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치른다.장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민중공원.(02)760-2018. ●안희경 前경무대 정무비서관 이승만 대통령 당시 경무대 정무비서관을 역임한 안희경 변호사가 14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했다.91세.유족은 미망인 민순기씨와 명기(변호사)·용기(재미공학박사)·덕기(대한승마협회장)·건일(재미기업인)·윤기(연세대 교수)씨 등 5남 3녀.발인 18일 오전 8시,빈소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16호(02)3410-6916. ●元忠喜(유닉스라바 회장)씨 모친상 鍾源(파이낸셜뉴스 런던특파원)씨 조모상 李澤根(전 한미인터내쇼날 회장)金允洙(남원엔지니어링 상무)金容國(전 국민데이타 사장)씨 빙모상 13일 오후 8시 삼성서울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3410-6914 ●朴俊成(성진화성 대표)씨 별세 昇旭(〃 이사)昇美(독일 거주)씨 부친상 14일 오전 7시25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16일 오전 10시30분 (02)392-0499 ●徐章赫(약사)知賢(버추얼텍 대표)씨 부친상 李尙勳(단국대 의대 교수)洪性根(포천중문의대 교수)金朋年(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高法珉(서울 스타성형외과 원장)씨 빙부상 14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발인미사 17일 오전 8시 서교동성당 (02)760-2011 ●金基澤(동서산업 법무관재팀장)永敏(한국경제신문 총무팀장)씨 부친상 朴鍾官(현대모비스카페 마산점 대표)朴義錫(부산 영도구 계장)씨 빙부상 14일 오후 9시 부산 양정동 동의의료원,발인 17일 오전 9시30분 (051)852-0244 ●金炳翼(문학평론가·인하대 교수)炳(이수화학 감사)씨 모친상 15일 오전 9시40분 삼성서울병원,발인 18일 오전 9시 (02)3410-6919 ●朴東燦(서울여대 교수)씨 부친상 李明俊(세기문화사 직원)씨 빙부상 14일 오후 5시 대구 노인병원,발인 17일 오전 6시 (053)813-5935 ●琴基(봉화금씨종친회장)彩(충남대 문리대 교수)澔(미국 거주)裕植(해태제과 법정관리인·전 한일은행 본부장)同和(한국과학기술연구원 부원장)씨 모친상 金銀愛(연세대 교수)씨 시모상 孟元在(전 건국대 총장)李完成(미국 거주)씨 빙모상 15일 오전 4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92 ●李省勳(KBS스포츠국 기자)씨 모친상 15일 오후 6시 서울 아산병원 영안실.발인 17일 오전 8시 (02)3010-2238
  • 법원장 하다 다시 재판 맡는 최병학 고법부장

    순환보직 차원에서 지난 4일 서울고법부장판사로 복귀 발령이 난 최병학(62) 수원지법원장이 사법부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이 법관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귀향’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최 법원장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재판부에 복귀하는 심경을 밝히고 있다. ‘섣달 그믐날이 오기 전 부모님 산소에 다녀오려고 집을 떠났다.’로 시작하는 이 글은 최 법원장이 지난 69년 타계한 어머니의 산소를 찾아가면서 법관이 되기 이전 상황을 회고하고 있다.군 복무 당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귀향했더니 형님은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 기력이 없어 아무 말씀도 안 하셨는데 하루에 한 번 오직 너의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나를 붙잡고 우셨다.”면서 “어머니의 도움으로 그 다음해 시험에 합격하고 오늘과 같이 이 산소에 와서 훌륭한 법관이 되겠다고 다짐한 기억이 있다.”고 술회했다. 그는 “99년 10월 재판장 생활을 마치고 법원장으로 일하면서 항상 좋은 재판을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면서 “훌륭한 재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다짐을 하기 위해 나에게 힘이 돼 주시는 어머니 앞에 서 있다.”고 밝혔다. 최 법원장은 “법관들이 정년까지 재판업무에 종사하다가 퇴직하는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였다.”면서 “30년 이상 법관 생활을 하면서 인사 혜택을 많이 받았는데 법원장 발령을 안 해준다고 사표를 내는 것이 속좁은 처신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며 솔직한 심경도 밝혔다. 11일 서울고법으로 부임한 그는 사건 검토를 마친 뒤 다음달 초부터 재판을 시작할 예정이다.정년퇴임을 1년 앞두고 있어 재판은 올해 말까지 맡는다. 정은주기자 ejung@
  • 퇴임 앞둔 고대 북한학과 김동규 교수

    “의식화 교육에만 주력하는 북한의 교육체계를 연구하면 사회의 근간까지 보입니다.이제 후학들이 이 분야를 연구하도록 뒤에서 돕겠습니다.” 북한교육학의 대가인 고려대 북한학과 김동규(金東圭·65) 교수가 6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퇴임 기념식을 열었다.이달말 정년퇴임을 앞둔 김 교수는 지난 97년 모교인 고려대에 북한학과를 창설했고,북한학연구소를 세워 북한학의 기초를 다진 학자로 정평이 나 있다. 교육학자였던 그가 북한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 와세다대에서 유학하던 시절부터다.그는 “남한 교육에 대해서는 몇십년씩 연구해도 한핏줄인 북한의 교육체계와 실상에 무지했던 것이 부끄러워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그는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과 통일부 정책자문위원,민주평통 상임위원을 거쳐 북한연구학회 이사,서울평양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김 교수는 “북한은 의식화 교육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교과서에 학생의 인성과 지성을 계발시키는 내용은 실리지도 않는다.”면서 “사회주의 국가가 모조리 붕괴하는데도 북한이 건재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교육체계 덕”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이처럼 남북한의 교육체계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통일 이후 교육문제가 심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때문에 김 교수는 통일이 된 후 남북한 교육을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통일교육학회’도 꾸려가고 있다.이미 고향인 경남 남해로 낙향하기로 작정한 김 교수는 “홀가분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anne02@˝
  • 35년 외길 걸어온 산림학자 김종관 박사

    산림 가꾸기 외길인생 35년.산주(山主),나무와 부대낀 평생의 고집이 때론 답답하고 미련스러워 보이지만,범접하지 못할 여유와 넉넉함을 전한다. 김종관(60·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박사.그는 나무와 숲은 말이 없지만,보살핀 만큼 풍성한 자람으로 보답한다고 말한다.그는 그러면서 나무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않는다.“숲은 생명의 젖줄입니다.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숲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그럼에도 숲을 가꾸는 임업 분야의 중요성은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걱정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사유림의 개발과 경영의 모델을 ‘창시’했다.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임도도 적지 않다.산과 숲속에서의 그의 삶은 때로 ‘땅꾼’으로 오해 받기도 했다. 그는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개발논리에 밀린 산림 훼손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자연을 무시한 인간의 오만은 머지않아 엄청난 재앙으로 앙갚음 받을지 모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재앙은 이미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다가왔다고 분석한다.대기 오염과 산림 훼손 등에 따른 세계적인 기상이변,사막화 등이 구체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인간의 오만은 자연재앙으로 돌아와 나무와 그의 인연은 집안 분위기 탓이 컸다.아버지가 사방공사 기술자였기 때문이다.아버지의 권유로 임학(고려대)을 전공했다.1968년 졸업과 함께 유엔 한국 산림조사기구(UN Korea Forest Survey Project) 근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나무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74년 경남 양산의 임업기술훈련원으로 자리를 옮겼다.한국과 독일이 두 나라 임업의 공동발전을 위해 만든 산림경영 사업기구였다.그는 지역의 영세한 산주들을 모아 산림경영협업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그는 이곳에서 공동 산림 경영 모델을 만들어 나갔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유림 경영사업의 모델이 됐고, 전국으로 보급됐다. 사유림 경영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업기술훈련원 근무 초기 그는 직원 6명과 함께 1년 동안 울주군 두서면과 상북면 산속에서 살다시피 했다.어떤 시범사업을 할 것인지를 정하기 위해서였다.이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산을 헤매고 다녔다.주민들로부터 뱀 잡으러 다니는 땅꾼으로 오해받은 것도 이때였다. 그는 훈련원장을 거쳐 1999년 정년퇴임 때까지 양산·울산지역 산림현장에서 산주들을 지도하며 우리나라 사유림 경영사업의 모델을 개발·정리했다. ●200살 참나무는 벤츠 한대값 김씨는 1977년 1년 동안 임업 선진국 독일에서 연수를 했다.거미줄처럼 잘 정돈된 독일 임도망에 큰 감명을 받았다.그는 귀국한 뒤 우리나라 임도 1호로 꼽히는 울주군 상북면 소호령 임도를 직접 설계해 만들었다.2차 대전에 사용됐다는 고물 불도저를 경남 도로관리사업소로부터 빌려 공사에 나섰다. 운전사에게 닭을 잡아 주고 술을 대접하며 작업한 끝에 1981년 소호령 임도가 탄생했다.이것이 국내 임도건설의 효시였다.이후 국내외 임업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산림은 인간생활에 필요한 많은 자원을 생산해 주는 거대한 옥외 공장입니다.이 공장을 잘 운영하는 나라는 번창하고 황폐화시키는 나라는 망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임업진흥 사업은 공해없는 농공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양산사업소에 파견 근무를 하던 독일인으로부터 독일에서는 200년이 넘은 우량한 참나무 한 그루 값이 벤츠 승용차 한 대와 맞먹는다는 말을 들고 1982년부터 소호리 일대 5㏊의 참나무 천연림 조성 사업을 시작했다. 산 주인이 표고버섯 자목으로 팔기 위해 한때 모두 벌채하려 했던 이 참나무 천연림에는 현재 수령 40년이 넘은 참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우리나라 천연림 보육사업의 견학장이 돼 독일 산림청장이 방문한 것을 비롯해 국내외 임업 관계자들의 필수 견학 코스가 됐다. ●수십년 산을 다닌 나는 행복한 사람 김씨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황폐화됐던 우리나라 산림이 70∼80년대 거국적인 사방·식목사업에 힘입어 푸름을 되찾았지만 제2의 수난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나무를 심기만 하고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전국 곳곳의 삼림의 수목이 뒤엉키고 밀폐돼 산짐승조차 다니기 어려워 간벌을 비롯한 육림작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가치있는 목재를 생산하고 건강한 숲을 조성하기 위해서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빨리 대대적인 육림사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임에도 필요한 목재의 94%를 수입해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는 목재수입도 석유 등 수입해 사용하는 다른 자원처럼 예상치 못한 파동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 국내 산림을 잘 관리해 자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숲과 산주를 위한 꿈’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30년 현장에 근무하면서 ‘산림지’와 ‘한국임업신문’ 등에 기고했던 사유림 임업경영에 대한 경험·이론·일화 등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돈을 들여 산을 다니는데 저는 수십년 동안 돈을 받고 산을 다녔으니 행복한 사람이죠.” 김씨는 평생을 어울려 정이 든 숲속에 퇴임한 뒤에도 산림을 연구할 수 있는 조그마한 거처를 마련해 지내고 있다. 3월부터는 경북 상주대학교 산림자원학과에 강의를 나갈 예정이다.평생의 지식과 노하우를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글 울산 강원식기자 kws@˝
  • 政黨대립 후임 못정한채 하경철재판관 퇴임/헌법재판소 위헌심사 차질

    국회가 각 당의 이해관계 때문에 28일 정년퇴임한 하경철(河炅喆)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선출하지 못해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장을 포함해 9명으로 운영되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1명이 모자라는 결원사태에 직면,업무에 상당한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헌법재판소 한위수(韓渭洙) 연구부장은 “위헌결정에 있어 3분의2인 재판관 6명 이상 동의가 필요한데 재판관수가 9명에서 8명으로 줄어 사실상 의결정족수가 4분의3 이상으로 강화된 셈이 돼 위헌결정이 상당히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후임 재판관 추천 몫을 놓고 서로 양보없이 대립하고 있어 결원 상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은 하 재판관이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 추천 몫이었다는 점에서 지난 16일 후임으로 이상경(李相京) 부산고등법원장을 내정했으나,열린우리당은 국회 추천 몫 3명 중 2명을 한나라당이 단독 또는 민주당과 공동으로 추천한 만큼 이번에는 의석비율에 따라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공동추천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후임 재판관 선출은 임시국회를 소집하지 않고도 인사청문특위를 구성해 진행시킬 수 있었음에도,제대로 추진하지 않아 국회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을 맡게 된 열린우리당측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공동 추천하는 것이 국회 정신에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인사청문위원 명단을 낼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강충식기자
  • 부고/ 이상훈 前 대종교 총전교

    대종교 제11대 총전교를 지낸 이상훈(李祥薰·93)씨가 18일 오전 7시 별세했다.충북사범학교 출신인 고인은 1975년 서울 광희중 교장으로서 평생 몸담은 교육계를 정년퇴임한 뒤 5년 동안 대종교 최고 지도자인 총전교로 일했다.지난 90년에는 인촌상 교육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발인 20일 오전 8시.빈소 삼성서울병원(02)3410-6907.
  • 대한매일 첫 사옥 위치 찾았다/오인환 前연세대교수 추적 발굴

    구한말 일제침략에 항거하며 우리 민족의 ‘대변지’ 역할을 했던 대한매일신보사(大韓每日申報社·서울신문사 전신)의 첫 사옥 위치와 사진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28일 오인환(吳仁煥·사진) 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연구논문 ‘구한말 대한매일신보사가 있었던 위치와 사옥의 사진을 찾아서’에 따르면,대한매일신보사 최초의 사옥은 지금의 서울 종로구 수송동 85 연합뉴스 사옥과 제일모직 사옥에 걸친 300여평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오 교수는 “대한매일신보는 수송동의 현 연합통신 부근에서 발행됐다.”는 정진석 교수의 ‘언론유사’ 등을 참고로 정확한 위치를 추적,중동고의 ‘중동 80년사’에서 “1914년 옮긴 중동의 교지는 베델이 대한매일신보를 경영하던 사지(社址)였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18일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 특파원 베델과 양기탁이 손잡고 창간한 신문이다. 일본의 야욕과 한국내 사정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면서 한국의 국권수호를 위해 필봉을 휘둘렀다.많은 의병들이 이 신문의 영향을 받아 무장 항일투쟁에 가담하는 등 대한매일신보는 민족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다. ●첫 사옥은 현 연합뉴스와 제일모직 사이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사고(社告)에서 발행소의 위치를 “박동 법어(프랑스어)학교 앞 전 영국인 셜필립 집 자리”라고 밝히고 있다.박동은 현재 종로구 수송동의 일부지역이다. 정진석 교수는 ‘언론유사’에서 “법어학교가 있던 곳은 수송동 85 중동고 부근이었고 대한매일신보는 수송동의 현 연합통신 부근에서 발행됐다.”고 밝혔었다. 오 교수는 이를 좀더 정확히 알고 싶어 영국인 셜필립의 집터와 법어학교터를 찾아봤지만 이렇다할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매일신보가 박동을 떠난 1907년을 전후해 주변에 있었던 중동,보성,숙명,한성사범 등 학교 쪽으로 눈길을 돌리기로 했다. 다행히 ‘중동 80년사’에서 “중동이 1914년 옮겨간 당시 부지는 베델이 대한매일신보를 경영하던 사지(社址)였다.”는 단서를 확보했다. 이를 지도상에서 확인하기 위해 ‘경성관내도’(1918년) 상의 수송동 85 위에 거리와 방향을 같게 조정한 오늘날 지적도를 ‘포토숍’으로 포개얹은 결과,대한매일신보의 첫 사옥은 수송공원 북쪽 모퉁이 일부와 그에 접한 연합뉴스 부지 100평,제일모직 부지 200평에 걸친 형태로 나타났다. 첫 사옥의 사진 역시 중동 80년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80년사에는 수송동 교사 앞에서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한 사진이 실려 있는데,중동이 당시 이 교사를 빌려 쓰고 있었기 때문에 건물을 개축하지 않았을 것이고,따라서 사진 속 교사가 바로 대한매일신보의 첫 사옥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매일신보에서 찾아낸 두번째 사옥 사진 대한매일신보는 1907년 1월5일자 사고에서 새 사옥의 위치가 ‘남서 황단(皇壇·원구단) 신작로 초입 석정동 북변 3층 양옥’으로 밝혔다. 두번째 사옥 역시 정진석 교수 등이 “대한매일신보의 두번째 사옥은 지금의 프레지던트호텔과 웨스틴조선호텔 입구 근처였다.”고 밝힌 바 있어 위치 추정이 가능했다. 옛 지도(1911년,1918년 제작)에서 두번째 사옥 주변을 비교한 결과 지형이 7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당시 ‘황단신작로 초입 북변’을 오늘날 지도에 포갠 결과 두번째 사옥은 현재 프레지던트호텔과 프라자호텔 사이,즉 시청 앞 광장 중앙부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번째 사옥의 사진은 참으로 운좋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일제는 1910년 8월29일 조선을 강제합병하면서 총독부 기관지로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를 발행했는데,매일신보 1914년 10월25일자 1면에 실린 사진에서 두번째 사옥의 모습을 찾아냈다. ●최후의 대한매일신보는 종로2가에서 발행 대한매일신보는 한국인 사원이었던 이장훈이 1910년 6월 당시의 사주였던 영국인 만함에게서 시설과 판권을 사들인 뒤 사옥을 ‘경성 중부 포전병문(布廛屛門·베전 골목 입구) 이궁가(二宮街) 2층 양옥’으로 옮겼다. 정진석 교수의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에 따르면 표면상으로는 이장훈이지만 실제로는 일본 통감부가 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장훈 명의로 발행된 1910년 6월14일부터 대한매일신보로 발행된 마지막 호인 1910년 8월28일까지 있었던 위치를 세번째 사옥으로 볼수 있다. 대한매일신보는 매일신보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그해 10월19일 경성 서부 정동 대한문 앞으로 사옥을 옮기기 전까지 이곳에서 계속 신문을 발행했다. 옛 지도(1903년과 1907년 제작)에 이궁내(二宮內)로 표기된 부분이 탑골공원 맞은편에 있는데,따라서 세번째 사옥은 오늘날 YBM시사영어사 빌딩앞 보도와 차도 일부이거나,수표다릿길 건너편 동대문쪽 모퉁이 상가건물들 앞의 보도와 차도 일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세번째 사옥의 사진은 찾지 못했다. ●“신문터는 신문의 이름만큼 중요” 2001년 2월 정년퇴임 뒤부터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해 독립신문·황성신문·제국신문 등 구한말 신문터 찾기에 나선 오 교수는 40여년 전 ‘신문평론’(1965년 6월호)에 실렸던 언론계 원로들의 좌담을 인용,이번 연구의 의미를 대신했다. “우리 신문사(史)가 100년이 넘는데도 명멸했던 신문이 간행되었던 곳이 어딘지에 대해서는 따로 깊이 알아보려하지 않았다.어떤 신문이 자리잡아 인쇄해서 발행하던 곳이 가지는 의미는 신문의 이름과 내용을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리 류길상기자 ukelvin@
  • “아픔은 나눌수록 작아져요”송파구 환경미화원 200명 장애인 시설찾아 ‘이웃사랑’

    가족에게조차 직업을 숨겨야 했고,세상을 떠난 남편을 이어 돈벌이를 나서는 등 나름대로 ‘아픔’을 간직한 환경미화원들이 세밑 이웃사랑의 자리를 마련한다. 송파구(구청장 이유택) 소속 환경미화원 200여명은 오는 22일 무연고 시각장애 할머니들의 삶터인 오금동 ‘루디아의 집’과 지체장애아 시설인 마천동 ‘소망의 집’을 찾아 따뜻한 시간을 갖는다.이웃사랑이란 꼭 닥쳐서 실천할 게 아니라는 뜻으로 행사 이름을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미리 크리스마스’로 붙였다. 저마다 넉넉잖은 형편이면서도 장애인들에게 생활용품 등 선물을 한아름씩 안겨주고 특기(?)를 살려 건물 안팎을 말끔히 청소도 해주며 쓸쓸함을 달래줄 예정이다. 요즘 취업난 등으로 환경미화원 채용에 대졸 등 고학력자가 몰린다지만 이들의 평균 학력은 중졸.구청 청소과 가로반 일용직으로 있다가 오는 29일 21년만에 정년퇴임하는 김용훈(60)씨 등 고령자도 끼었다. 지난달 환경부 주최 환경미화원 수기공모에서 장관상을 받은 이혜숙(55)씨는 “13년 전 미화원이었던남편이 출근길에 쓰러져 사망한 뒤 생계가 막막해 가족들에게 함께 죽자고 했던 시절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죽겠다던 용기로 열심히 살며 불우한 이웃들에게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