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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인사]

    ■ 서울 금천구 ◇사무관 전보△의회사무과장 조선구△감사담당관 김상권△총무과장 김찬△문화공보과장 신종일△재난환경과장 정해석△세무1과장 신승호△세무2과장 황선규△토지관리과장 유배옥△사회복지과장 임귀모△가정복지과장 고현담△산업지원과장 김운△청소과장 직무대리 이태형△주택과장 이광복△교통행정과장 전명철△교통지도과장 신봉호△보건지도과장 김정구△독산1동장 이상필△독산2동장 이영범△독산3동장 한경헌△독산4동장 배병한△시흥3동장 문만종△시흥5동장 이홍상
  • 부산 2020년까지 국제도시로

    부산이 오는 2020년까지 내륙권, 해양권, 낙동강권 등 3대 권역별로 특성화돼 개발되며 이를 위한 7대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26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부산발전연구원 주최로 열린 ‘부산발전 2020 비전과 전략’ 심포지엄에서 ‘세계도시 부산 실현을 위한 로드맵’이라는 기조 발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3대 벨트 부산진구, 동래구 금정구, 연제구가 주축이 되는 내륙벨트는 행정, 정보, 금융, 유통의 거점권으로 발전시키며, 북구, 사상구, 사하구, 강서구 등 동서권을 포함하는 낙동강벨트는 신산업, 항만·항공·물류거점 역할을 하는 신성장 동력축으로 활용한다. 또 서구, 중구, 동구, 영도구, 남구, 수영구, 해운대구, 기장군을 포함하는 해양벨트는 해양과학, 관광, 영상, 무역거점의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된다. ●7대 프로젝트 아시안 게이트웨이 프로젝트, 낙동강 프로젝트, 문화도시부산 프로젝트, 도시 재창조 프로젝트, 동부산 프로젝트, 국제자유도시 부산, 부산 U-City 프로젝트 등이다. 아시안 게이트웨이 프로젝트는 북항을 재개발,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이 만나는 동북아의 관문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골자다. 이곳에 해륙종합터미널을 건설, 경부고속철도 부산역사와 국제·연안여객터미널, 컨벤션 숙박시설 등 복합 공간을 조성하고 국제크루즈 전용터미널을 구축한다. 낙동강 프로젝트는 낙동강 에코벨트 조성, 부산신항의 동북아 허브항화, 경제자유구역 활성화, 남부권 신공항을 중심으로 한 남부권 중심도시 위상 강화 등 방안이 제시됐다. 문화도시 부산프로젝트는 세계 미술을 선도하고 있는 뉴욕소재 ‘구겐하임미술관’유치와 국립부산도서관 및 부산 예술의 전당을 각각 건립, 부산을 동북아의 문화중심지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국제자유도시 부산 프로젝트는 가칭 부산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제정해 부산을 국제자유도시로 만들고, 영어공용화를 시행하고 외국인 주거 단지 조성 등 외국투자자들의 주거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 등이다. 2010년에는 유비쿼터스 세계박람회를 개최하고 2020년 하계올림픽 유치도 추진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中·日 동중국해 영토분쟁 가열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최근 중국과 일본간의 외교적 마찰이 동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더욱 격화될 조짐이다. 동중국해의 댜오위다오(釣魚島ㆍ일본명 센카쿠)를 지키기 위한 중국 민간단체인 바오댜오(保釣)연합회 소속 대원 7명이 지난 24일 오전 일본 군함의 감시망을 뚫고 댜오위다오에 상륙했다고 홍콩의 문회보(文匯報)가 26일 보도했다. 이들은 섬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를 꽂고 댜오위다오가 중국 영토임을 주장하는 경계비를 남겼다. 일본은 해상 보안청 소속 무장경찰 18명을 헬리콥터로 이 섬에 투입, 상륙한 중국인 7명을 연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들의 석방을 둘러싸고 외교적 마찰도 예상된다. 바오댜오 연합회는 자원자 16명을 모집한 후 100t급 선박을 빌려 23일 댜오위다오 부근 해상에 접근한 뒤 야음을 틈타 소형 상륙정으로 일본 군함 4척의 경계를 뚫고 상륙에 성공했다. 한편 일본 국토교통성도 오는 6월 중국과 영토 분쟁을 빚고 있는 일본 최남단 바위섬인 충즈다오(沖之島·일본명 오키노토리섬)에 일본 영토임을 밝히는 영구 표지판을 설치할 계획이어서 중국측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일본측은 오키노토리섬이 행정구역상 도쿄도에 속해 있는 오가사하라무라(小笠原村) 부속 도서라고 주장, 오는 6월 섬 연해의 인공구조물 위에 헬기 이착륙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oilman@seoul.co.kr
  • [클릭 이슈] 한총련 의장 방북 논란

    [클릭 이슈] 한총련 의장 방북 논란

    한총련 의장이 넘은 것은 실정법의 테두리인가, 분단의 굴레인가. 제13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을 맡고 있는 홍익대학교 총학생회장 송효원(22·여)씨가 사상 처음으로 통일부의 허가를 받아 북한을 방문한 것을 놓고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적·법리적 논쟁뿐 아니라 이념 논쟁에도 다시 불을 붙였다.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의 동상이몽 송씨의 방북 논란은 남북교류협력법과 국가보안법이 충돌하는 데서 시작한다. 송씨의 방북이 남북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는 것이면 남북교류협력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호창 변호사는 “같은 사안을 두고 통일부는 남북교류협력법을, 검찰은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상반된 판단을 해야 하는 우리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면서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평가했다. 반면 ‘국가의 존립이나 안정을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도’ 방북했다면 국가보안법에 의한 처벌을 피할 수 없다.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소속 임광규 변호사는 “이적단체의 대표가 정부의 허가를 받고 반국가단체로 드나드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국가안보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송씨의 자격이 아니라 방북 내용이 관건 방북을 놓고 판단하는 두 법률이 서로 부딪치는 현실 속에 정부의 입장도 혼선을 빚고 있다. 통일부는 송씨가 대학생 신분의 개인자격으로 방북한 것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개인자격으로 참가했다는 송씨는 방북을 앞두고 한총련 홈페이지에 ‘남북대학생 상봉모임에 참가하며,13기 한총련 의장 송효원이 전체 청년학생들에게 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겨 논란이 예상된다. 검찰은 수배자가 아니라면 해외 출국이나 방북절차상 지장이 없다는 것이지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또 송씨 등 방북단의 활동이 현행법을 위반했다면 처벌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송 의장의 방북도 방북 사실보다는 북한에서 위법이나 불법 활동이 있는가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1년 북한에서 열린 8·15 통일 축전에 정부의 허가를 받고 방북했던 동국대 강정구 교수가 만경대 방명록에 남긴 글 때문에 형사처벌받기도 했다. ●뜨거운 감자, 한총련 합법화 한총련의 이적단체 여부도 방북 논란을 가열시키는 쟁점이 되고 있다. 대법원은 1998년 제5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인정했으며 지난해 제10기 한총련에 대한 판결에서 “그 강령 및 규약의 일부 변경에도 불구하고 종전에 비해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판단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매년 새로 구성된 한총련 집행부를 대상으로 판단해 왔기 때문에 올해 꾸려진 13기 한총련이 이적단체인지는 다시 판결을 받아 봐야 한다. 송 변호사는 “현재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인정된 것은 지난 10기 한총련이 마지막이었다.”면서 “기존의 판결에 근거해 이번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예단하는 것은 이치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새로 집행부가 꾸려져 일부 성격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한총련이라는 이적단체는 유지된다는 입장 속에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13기 한총련의 경우 아직 강령 등이 확정되지 않아 이적성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13기 한총련은 27일 공식 출범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송씨의 방북 논란은 이념 논쟁으로도 번질 전망이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 관계자는 “한총련이 이적성을 벗으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정부가 그들의 이적활동을 용인했다.”면서 “한총련의 불법활동에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관계자는 “시대에 뒤처진 이적성 등에 대한 시비로 이번 대학생 모임의 의미를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최문순 사장 시트콤 특별 출연 ‘안녕, 프란체스카’서 코믹 연기

    MBC 최문순 사장이 주간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극본 신정구, 연출 노도철)에 특별출연한다. 최 사장은 30일 오후 11시5분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 제17회분에 MBC 사장 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시트콤에 출연중인 디자이너 장광효와 건축가 김원철이 서로 연기를 더 잘한다며 말다툼하는 상황에서 코믹한 대사를 던질 예정이다. 제작진의 출연 제의에 최문순 사장은 흔쾌히 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본을 쓴 신정구 작가는 “사장님의 출연에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대본에 대사를 넣었는데, 선뜻 출연할 뜻을 밝혀 제작진도 깜짝 놀랐다.”라고 말했다.
  • [클릭이슈] 한전등 공공기관 이전 갈등

    “논의하자.”(열린우리당)“절대 못한다.”(한나라당)공공기관 지방이전 문제를 둘러싼 여야간 줄다리기가 여전히 팽팽하다. 함께 논의하자는 여권의 요구에 야당인 한나라당은 “들러리를 설 필요가 없다.”며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는 ‘단독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자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여야의 고민과 셈법 여야 모두 ‘대의명분’은 거창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면피’ 의혹이 짙다. 여권은 이전 논의를 국회에서 심도있게 해보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확정 발표 뒤 예상되는 ‘물먹은 지역’으로부터의 거센 비난에 ‘여야 논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들어 비난을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정부와 여당은 25일 이전대상 180여개 기관을 확정하고 다음달 중순 배분을 마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일단 한나라당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계획대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단독추진’에 따른 부담이 늘 따라다닌다.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연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 제4정조 위원장인 정장선 의원은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연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나라당은 다소 느긋하다. 정부와 여당 주도로 진행되는 이전문제에 자칫 발을 담갔다간 ‘공범’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그동안 정부가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명분으로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고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임시방편에 불가하다는 판단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나라당은 지역 불균형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인사권 독립이라고 주장해왔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24일 “행정구역 개편과 맞물려 있으니 신중하게 해야 한다.”면서 “현재 공공기관 이전은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철학에서 나온 게 아니라 행정기관을 충청도에 몇 개 이전하고 미안하니까 다른 지역에 떡을 갈라놓듯이 나눠주는, 비충청권 입맛 맞추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음달 중순 예정된 공공기관 이전계획 발표와 관련해서도 “발표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뜨거운 감자, 한전 여권의 또다른 고민은 ‘공룡 공기업’ 한국전력 이전 여부이다. 이전 기류가 다소 강한 듯하지만 최근 이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해 여권 내에서 보류하자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전 이전을 둘러싼 지방자치단체들의 과열 유치경쟁을 의식한 결과다. 즉, 한전을 유치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 이는 4·30 재·보선 참패 이후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여당으로서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염려와 무관치 않다. 이를 감안한 듯 최근 여당 내에서는 보류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문희상 당의장은 지난 23일 “공공기관을 계량화해 본 결과 한전은 나머지 공공기관에 비해 이전효과가 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한전 이전방안을 일단 추진하겠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그대로 남겨놓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한전을 이전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더 큰 문제점을 불러올 수 있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시비가 예상된다. 특히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정책취지가 퇴색할 가능성이 높다. 정장선 의원은 “향후 한전의 이전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순탄치 않은 처리 여당 내에서는 한나라당의 입장이 변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일정대로 강행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열린우리당 건교위 소속 박상돈 의원은 “한나라당이 끝내 불참할 경우 다른 야당과 함께 일정대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강행의지를 밝혔다. 일부에선 6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즉, 해당상임위인 건교위에 안건으로 상정하면 한나라당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6월 국회 상임위 논의에도 확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내심 하루라도 빨리 여권이 단독으로 처리하는 ‘자살골’을 기록하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건교위 한나라당 간사 김병호 의원은 “6월 국회 상임위에서 여당이 이 문제를 들고 나올 경우 별도로 내부 조율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삼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市 “가천학원에 법적책임 묻겠다”

    경원대학 재단인 가천학원(이사장 이길녀)이 성남시 구시가지의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학병원 유치공모에 뛰어들어 사업자로 선정되었다가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손을 떼자 성남시가 “대학이 돈벌이 안된다고 이래도 되느냐.”며 발끈하고 나섰다. 시는 가천학원이 사업자로 선정된 뒤 6개여월여가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이 협약을 미뤄 오다 최근 병원부지인 시유지(수정구 신흥동 산38의 4일대 7500평) 땅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병원설립 포기의사를 전달했다며 가천학원에 대해 업무방해와 손해배상 등 법적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시는 지난 10월 가천학원이 사업자로 선정되었을 때 재단의 재정부담을 감안, 토지매각대금을 연리 4%에 10년 분할상환 할 수 있도록 공유재산 관리조례까지 만들어 편의를 제공했다. 그러나 가천학원은 지난 6일 협약 미체결 청문회에서 학원측이 시유지매각이 비싸다는 것과 재정적인 부담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병원건립을 포기했다. 시는 이에 대해 “대학병원 유치공모시 대금은 감정평가로 결정된다는 것을 사전 공시했다.”면서 “그러나 가천학원은 시가 감정평가를 실시한 것도 아닌데, 사전에 감정평가를 실시한 뒤 땅값을 운운하며 뒤늦게 병원건립 포기의사를 밝혔다.”고 비판했다. 시 관계자는 “지역사회에서 2세교육을 맡고 있는 대학이 기반시설 부족현상을 겪고 있는 구시가지주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며 “기대치 만큼의 법적 손해배상을 청구해 이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시는 경원학원측의 불순한 의도도 지적하고 있다. 시는 경원학원 소유의 공원부지로 묶여있는 중원구 성남동 산 10의 18일대 7만 1187㎡(성일고등학교 뒤편 야산)을 병원설립을 빌미로 함께 개발하려다 여건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땅값을 핑계로 포기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는 병원부지의 경우 공시가격이 ㎡당 43만∼45만원 수준으로, 사업자 공모당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다 주변토지가격보다는 월등히 낮은 상태로, 감정가에도 큰 부담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있다. 이에 대해 경원학원 관계자는 “재정부담을 판단하기 위해 사전 감정평가를 실시한 결과 당초 평당 150만원가량으로 예상했던 토지가격이 400만원을 호가해 도저히 병원설립을 강행할 수 없었다.”면서 “시가 지적하는 불순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박성용 금호명예회장 별세

    재계의 큰 별이 또 졌다.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23일 새벽 2시7분(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4세. 고 박 명예회장은 193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중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68년까지 미국 케이스 웨스턴대학과 UC버클리대에서 조교수로 일했다. 귀국 후에는 대통령 경제비서관과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가 부친(고 박인천 회장)의 권유로 72년 당시 금호실업 부사장에 취임, 본격적인 경영인의 길을 걸었다. 고인은 84년 그룹 총수에 오른 뒤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하는 등 그룹의 제2도약을 이끌었다.96년에는 회장직을 동생(고 박정구 회장)에게 넘겨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금호아시아나만의 독특한 경영승계인 ‘형제 경영’의 물꼬를 텄다. 고 박 명예회장은 문화예술을 사랑한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꼽힌다. 고인은 금호미술관을 건립하고 각종 연주회를 지원, 문화예술계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큰 역할을 했다. 또 통영국제음악제 이사장과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 외교통상부 문화대사, 한·중우호협회 회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조문은 24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고,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에 마련된다. 장지는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기천리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마가렛 클라크 박(73)여사와 딸 미영(39), 아들 재영(35), 며느리 구문정(30), 손자 준명(4)군이 있다. 그룹측은 영결식은 27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치러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두차례 ‘형제간 승계’ 눈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간 경영 승계라는 독특한 문화로 유명하다. 재산 분배 차원에서 분리된 형제그룹은 그동안 적지 않았지만 두차례에 걸쳐 형제간의 경영 승계는 금호아시아나가 재계에서 유일하다. 이 때문에 장남인 박성용 명예회장의 타계에도 불구하고 박삼구 회장 체제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룹측은 “박 회장이 총수에 오른지 3년밖에 안된 데다 60세로 한창 왕성한 활동을 펼칠 나이여서 경영권에는 큰 변동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형제경영의 물꼬를 튼 사람은 고 박성용 명예회장.1984년 고 박인천 창업주에 이어 2대 회장에 오른 고 박 명예회장은 그룹의 성장을 주도한 뒤,1996년 회장직을 동생인 고 박정구 회장에게 물려줬다. 이어 3남인 박 회장은 2002년 둘째 형인 박정구 회장의 타계로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박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부회장도 ‘박 회장 체제’ 출범과 함께 금호석유화학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석유화학의 대표이사를 맡아 사실상 그룹내 2인자로 자리를 굳혔다. 다만 막내인 종구씨는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으로 공직의 길을 걷고 있어 경영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금호아시아나의 2세 형제경영은 경영권 승계뿐 아니라 지분구조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고 박 명예회장을 비롯한 4형제 일가는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과 금호산업 주식을 각각 8.94%,1.88%씩 나눠 갖고 있다. 고 박 명예회장과 그의 아들 재영씨, 차남인 고 박정구 전 회장의 아들 철완, 박삼구-세창 부자, 박찬구-준경 부자 등 일가가 사실상 그룹 전체를 동등하게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용인 기흥·구성 ‘기흥구’로 변경

    3개의 구(區) 신설을 추진중인 경기도 용인시는 지난 21일 지명위원회를 열어 ‘구흥구(駒興區)’로 결정됐던 기흥·구성지역 구 이름을 삼성전자의 입장을 반영,‘기흥구(器興區)’로 변경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시는 이에 따라 조만간 도를 경유해 행정자치부에 처인구(處仁區)와 수지구(水枝區), 기흥구 등 3개 일반구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시 행정구역 개편안’을 승인받은 뒤 이르면 오는 10월쯤 행정구역 개편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시는 지난 2월말 지명위원회를 열어 기흥과 구성지역의 구 명칭을 두 지역 이름에서 한자씩을 채택한다는 의미로 ‘구흥구’로 결정했으나 일부 주민들의 반대와 삼성전자측이 ‘기흥구’로의 명칭 변경을 건의해 그동안 여론조사를 벌여 왔다. 삼성측은 지난 3월말 건의문에서 “세계적으로 ‘삼성기흥반도체’라는 명칭이 널리 알려지면서 ‘기흥’이라는 지명이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인식돼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기흥이라는 지명을 없애면 삼성기흥반도체 인지도가 떨어져 결국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 관계자는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기흥구’ 선호율이 38.5%로 가장 높았다.”면서 “지명위원회가 이같은 조사결과와 삼성전자 건의 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인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박성용 명예회장 타계 이후

    ‘3세 경영 빨라질까.’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의 별세로 오너가(家) 3세들의 경영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연령대가 20∼30대인 데다 대부분 학업중이어서 경영 일선에 나서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반면 ‘3세 경영’ 승계를 위한 계열사 지분 매입작업은 활발하다. 23일 금호아시아나에 따르면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인 철완(27)씨와 박삼구 회장의 장남 세창(30)씨는 미국에서 MBA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의 장남인 준경(27)씨도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의 아들 재영(35)씨도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있어 그룹경영에는 한발 비켜 서있다. 누나인 미영(39)씨는 미국회사에 다닌다. 박정구 전 회장의 장녀로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며느리인 은형(35)씨와 차녀인 은경(33), 은혜(29)씨는 모두 출가했다. 반면 3세 경영승계 작업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특히 3세들의 계열사 지분 매입도 비슷한 비율로 이뤄져 2세에 이어 3세들도 ‘형제 경영’의 전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의 지분 구조를 보면 고 박정구 회장의 지분을 승계한 철완씨가 8.94%로 최대주주이다. 재영씨와 세창, 준경씨는 각각 4.16%,4.21%,4.21%를 보유하고 있다. 재영씨는 최근 금호타이어 주식 1만주를 취득해 지분율을 0.32%로 늘렸다. 철완씨와 세창씨도 각각 1만주를 매입, 각각 0.47%,0.33%의 지분을 확보했다. 준경씨도 1만주 취득으로 0.29%를 보유하게 됐다. 또 지난 3월에는 금호석유화학으로부터 금호산업 152만주를 각각 38만주씩 넘겨받았다. 이번 취득으로 금호산업에 대한 지분율은 재영 1.59%, 철완 2.46%, 세창 1.59%, 준경씨가 1.59%로 각각 늘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2)제주·전라 잇는 42개섬 ‘추자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2)제주·전라 잇는 42개섬 ‘추자군도’

    행정구역명은 북제주군 추자면이다. 그런데 추자도에서 제주도 토박이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대개 호남 말씨다. 남도 사투리의 ‘징함’이 빠진 채 표준화되어 조금은 무미건조하다. 공무원들을 만나 보면 조금 달라 제주도 말투가 엿보인다. 자연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간지대라고나 할까.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전라남도 영암·완도군 등에 딸린 섬이었다.1946년 북제주군에 편입됐으니 불과 60여년 전이다. 재미있는 것은 1831년에 잠시 제주목에 이속됐다가 1891년에 완도군이 창설되면서 이곳으로 되넘어간 기록이 나온다. 좀 왔다갔다 했지만 그러나 추자도는 틀림없는 호남문화권이다. 뱃길은 여전히 목포로 열려져 있어 농산물 공급은 물론이고 상급학교도 대부분 이곳에서 다녔다. 덕분에 추자도 1세대들은 ‘전라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근래 20여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이 덕분에 그들은 비교적 ‘제주도적’이다. 이곳 공무원들이 대개 제주도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추자도 토박이로 제주도에서 교육받고, 집안에서는 전라도 말을 쓰는 사람의 경우, 그 문화적 정체성은 대단히 복잡하다. 제사나 장례, 세시풍속 등은 확실히 전라도적이다. 반면 제주도 출가 잠녀가 아니라 토박이 잠녀들이 물질하는 형태는 ‘제주도적’이며, 전복이나 소라맛 역시 ‘제주도적’이다. 그러나 묵리의 처녀당에서 해마다 올리는 당제의 명칭과 이때 걸궁이란 풍물굿을 동원하는 것은 ‘전라도적’이다. 풍물굿이 없던 제주도에 ‘걸궁’이 전파된 것이니, 추자도 걸궁은 본디 한반도 최남단의 풍물굿이 아니었던가 싶다. 흥미로운 연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추자도의 이런 중간자적 성격은 예로부터 육지와 제주도의 징검다리였다는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결정지어졌다. 제주행 비행기에서는 망망한 바다 위에 떠있는 추자군도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가다가 바람을 피해 머물렀다는 곳이 바로 추자도다. 지금도 상추자항의 봉줄리산 기슭에는 최영 장군 사당이 위엄있게 포구를 굽어보고 있다. 옛날에는 추자도를 징검다리 삼아 제주도로 향하였다. 예전에는 추자를 주자(舟子)로 불렀으니, 영암·무안·나주·진도 등 전라남도 남서해안으로 가는 뱃길이었다. 제주도는 애월이나 조천으로 드나들었다. 당연히 이름난 유배지였다. 유배객 중에는 해배 후 되돌아간 이도 있었으나 아예 섬사람이 된 이도 많았다. 정조 때 안조환은 유배 당시 천신만고의 생활상을 이렇게 노래했다.‘출몰사생 삼주야에 노 지우고 닻을 지니 수로천리 다 지내어 추저섬이 여기로다. 도중으로 들어가니 적막하기 태심하다. 사면으로 돌아보니 날 아는 이 뉘 있으리. 보이나니 바다이요 들리나니 물소리라….” 상추자, 하추자로 위·아래 섬이 갈리는데 추자교로 이어져서 이제는 상하 구분이 의미가 없다. 상추자항은 대서·영흥리, 하추자항은 신양리 소속이며, 그밖에 예초·묵리 같은 아름다운 포구들이 흩어져 있다. 단단한 바위밭에 해류가 거칠게 흘러 흐리멍텅한 고기들은 살 수가 없는 곳이다. 참돔이나 감성돔·우럭·농어 같은 고급 어종이 바위밭에서 물살과 씨름하면서 육질을 키우는 까닭에 그야말로 ‘바다낚시의 천국’이다. 도처에 보이느니 낚시꾼들이다. 추자도는 끊임없이 왜구에게 시달렸다. 왜구들은 제 집 드나들 듯 추자군도를 드나들었으며 심지어 20세기 초반까지도 수적(水賊)이란 이름의 바다도둑이 설쳐댔다. 일제시대, 이곳 수산자원에 눈독을 들인 일인들은 대서리에 진을 쳤다. 학교와 조합을 만들고 삼치어업에 매달렸다. 기선급 선박이 엄청난 양의 삼치를 잡아 그대로 상고선에 실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이른바 추자도 삼치파시는 이들 일본배들 때문에 이뤄졌다.1000여명이 넘는 ‘뱃동서’들이 일시에 포구로 쏟아져 들어왔으니 술집과 여관이 번성할 수밖에 없었다. 덩달아 일본 기생도 들어오고, 술꾼들은 취하여 쌈박질을 일삼아 이래저래 ‘난장’이었다. 당시의 여관 흔적 등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일본인이 물러간 다음에도 삼치어업은 이어졌다. 삼치는 예전 방식대로 잡는 즉시 일본으로 수출했으며, 덕분에 파시도 70년대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시와다 그물사건’이라는 전설 같은 일제하 어민항쟁이 전해진다.1926년 5월14일, 추자면민들이 대거 운집해 면장과 추자어업조합에 대한 불편과 불만을 토로했다. 형세가 대단히 격렬해 목포와 제주에서 경찰이 들이닥치고, 주동자 21명이 검거,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어업조합과 면장 등이 공모, 은행 빚으로 어구를 사들인 뒤 2배나 비싸게 팔았는가 하면,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우뭇가사리를 강제 매입해 빚어진 사건이었다. 낌새를 알아 챈 조합장이 주재소와 결탁해 어민들을 억압하려 하자 예초리 남녀 700여명이 함께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본디 이곳 사람들은 외줄낚시로 필요한 만큼의 고기만 낚았으나 일본인들이 대형 그물로 싹쓸이하듯 고기를 잡아가자 이에 반발한 사건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이곳 노인들은 “물반 고기반이었는데 왜놈들이 싹쓸이해 가 그걸 못 보겠어서 다들 일어선 게지.”라고 말한다. 일제의 수탈적 약탈어업이 빚은 필연적 결과였다. 추자도에는 딸린 섬들이 42개나 된다. 돈대산에 올라서니 완도군 청산도가 한눈에 들어 온다. 청산도 삼치파시가 추자도 삼치파시와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구로시오 해류가 흐르는 청산도와 나로도, 추자도 남쪽에 삼치떼가 몰려든 것이다. 추자도 최남단에는 관탈도가 있다. 옛적 귀양객들이 이곳에 이르러 다왔다는 생각에 갓을 벗었다 해서 ‘관탈’이라는 지명이 붙었단다. 관탈도에서는 불과 30분이면 제주항에 닿는다. 그러니 완도-청산도-추자도-관탈도 등이 징검다리처럼 일렬로 늘어서 육지와 제주도를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그 옛날 설문대 할망이 제주도와 남해 바다를 만들 때 징검다리는 박아놓은 섬들은 아닐는지. 이곳 토박이인 황필운(38) 선장과의 약속에 맞춰 선착장으로 나갔다. 매일 아침 9시면 정확하게 행정선 추자호가 바다로 떠난다. 횡견도와 추포도를 들러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길게 누워 있는 횡견도의 바람막이 돌담이 이곳의 모진 삶을 웅변해 준다.13가구가 사는 이곳에서 여자들은 물질로 전복·소라 등을 잡고, 남자들은 톳·가사리·미역 등 해초를 뜯어 생활한다. 한때 횡견분교까지 있었으나 잡초만 무성하고, 보리농사로 자족자급이 가능했던 섬이 지금은 인적이 끊겨 한적하다. 추포도는 2가구가 등록돼 있으나 실제로는 1가구만 산다. 낚시꾼들 뒷바라지로 생계를 잇는다. 고도에서 사는 1가구, 결코 쉽지 않은 삶일 것이다. 정 다산이 ‘남도경영’을 부르짖으며 경세유표에서 ‘남도의 섬을 잘 다스려야 재물이 숲처럼 일어서리라.’라고 했건만, 이들 낙도는 오로지 낙도라는 오명만 뒤집어쓰고 파도 아래 잠들어 있을 뿐이다. 요트처럼 빠른 배라면 뭍에서 불과 1시간도 채 안돼 당도할 수 있는 이 ‘보물섬들’이 오로지 ‘떠나가는 섬’으로만 인식되고 있으니 이곳에서도 우리 바다의 미래는 아득하다. 추자군도의 최대 문제는 역시 물이다. 횡견도 같은 섬에서는 아예 빗물을 받아 쓴다.‘물 쓰듯’이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도저히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추자 본도에는 담수화공장이 있어 바닷물로 만든 비싼 물을 먹고 산다. 그래서 집집마다 거대한 물탱크 한두 개쯤은 갖추고 있다. 추자도는 아름다운 풍광에 비해 너무나 덜 알려진 섬이다. 강태석 면장은 “청정해역일 뿐 아니라 천혜의 어족자원을 갖고 있어 21세기형 관광에 적합한 곳인데, 문제는 뱃길이지요.” 무인도를 이용한 청소년 자연생태체험학습장과 유료 유어장 등이 면에서 꿈꾸는 올 여름 사업들이다. 제주항에서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아 1일 관광도 가능하지만 배편이 하루에 편도 1회뿐이라 잠을 자고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추자의 돈대산을 오르자 눈 아래 신양항이 굽어보이고, 멀리 전라도 바닷가가 한눈에 잡힌다. 날씨가 맑으면 한라산도 보인단다. 해양성 기후라 바람 심한 것을 빼면 아열대식물도 생존 가능한 곳이다. 그래선지 곳곳에 동백이 유난히 많다. 추자도에 딸린 사수도는 상록활엽수림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고, 여기에 흑비둘기와 슴새들이 번식해 1982년 천연기념물(333호)로 지정되었다. 전복, 소라, 미역, 톳, 천초가 지천인 곳이 이곳 말고 또 어딨겠는가. 아,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상식이 하나 있다. 추자도 특산품하면 대개 멸치젓을 꼽곤 한다. 지금도 멸젓이 팔리고는 있지만 오늘날 추자도의 최고 특산은 ‘추자굴비’다. “어획량은 최고지만 문제는 덜 알려졌다는 점”이라는 김금충 수협 상무의 말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조기들이 동중국해에서 추자도 근해로 몰려오기 때문에 해마다 엄청난 양이 잡힌다. 예전에는 그대로 영광 등지에 생조기로 출하했으나 이제는 아예 굴비로 말리고 있다. 어족이란 참으로 묘한 것, 칠산바다를 떠돌던 조기들 간 곳 몰라 했더니 추자도에 운집했었나 보다. 지금 추세라면 법성포 굴비 못지 않아 ‘추자굴비’ 없으면 차례도 지내지 못할 날이 다가오지나 않을까. 실제로 추자군도에서 최대의 주력품으로 굴비를 키우고 있으니 곳곳에 조기잡이 안강망 어선들이 눈에 뜨인다. 조기를 잡지 않는 비수기에는 돔이나 고등어 낚시로 살아간다. 떠나 오면서, 추자도가 ‘오지’란 생각을 싹 잊어버렸다. 제주항에 1시간 만에 도착했고, 곧장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오는 데 고작 1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스티로폼 박스에 횟감과 함께 넣어 온 얼음이 서울에 도착해서도 그대로이니 ‘멀고도 가깝다.’거나 ‘가깝고도 멀다.’는 야누스적 표현이 모두 맞는 곳이다.
  • [인사]

    ■ 교육인적자원부 ◇서기관 전보△국제교육진흥원 鄭南朝△교육부 李錫宰 ■ 대한지적공사 (본사) △정보개발팀장 車得奇(시·도본부) ◇2급 승진△양주시지사장 金寬中△고령군〃 梁海善△거창군〃 全鳳佑◇3급 승진△관악구〃 李相昊△강화군〃 鄭將燮△경기도본부 李範周 李先範△이천시지사 朴泰珉△원주〃 金容起△청주〃 河東熙△대전·충청남도본부 金用鎬△서천군지사 金秉浩△전주시〃 尹學鉉△광주·전라남도본부 金光龍△대구·경상북도〃 鄭漢基△경산시지사 金昌煥△울산·경상남도본부 金宅柱△함양군지사 李鍾熙△북제주군〃 高性昭 ■ 대한상사중재원 ◇승진(본부장)△중재사업본부 채완병△기획관리본부 이주원 (팀장)△기획관리본부 총무팀 진규호△중재사업본부 건설중재 김경배 ◇전보(본부장)△부산지역본부 서정구 (팀장)△기획관리본부 기획홍보 길경준△중재사업본부 알선상담 최태판△ 〃 무역중재팀 김광수 △ 〃 해사중재 이영호
  • “현대건설 수뢰 대가성 없다” 박주선前의원 무죄선고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이호원)는 20일 현대건설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주선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씨가 받은 돈은 직무와 대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이 끝난 뒤 박씨는 “수사부터 무죄판결까지 2년2개월 동안 누명을 쓰고 옥중출마까지 했지만 선거운동의 기회를 박탈당해 낙선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 2000년 나라종금 안상태 사장에게 2억5000만원을 받고, 같은해 9월 현대건설에게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지난해 3월 1심 재판부는 현대비자금 수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고 2심에서 원심이 유지돼 법정구속됐다. 대법원은 지난 2월 박씨의 비자금 수수혐의에 대해 무죄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하며 보석을 허가해 석방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5%의 자부심’ 서울토박이

    ‘5%의 자부심’ 서울토박이

    “낚싯대가 따로 없어 나무막대 끝에 끈 매달아 쇠로 만든 낚싯바늘을 묶었어. 반세기 전만 해도 청계천에서 가물치도 건져올렸지, 아∼암.” 청계천 쪽인 서울 중구 장교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순형(69·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 전 서울의대 학장은 청계천 얘기가 나오자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이렇게 지난 날을 돌아봤다. ‘서울토박이 중앙회’ 부회장인 그는 할아버지 세대 이전부터 서울에만 살아온 그야말로 진짜 토박이다. 뿐만 아니라 1960년 신도시로 개발됐던 불광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청계천 근처에만 살아온 ‘청계천 토박이’이니 청계천 복원공사와 최근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눈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처음만나 사랑맺은, 내 고향 서울은 아름답고 건강한 도시 ‘눈 뜨고도 코 베어간다.’는 곳이기도 하지만, 서울은 회원들에게 가슴 뭉클한 그 무엇을 안겨주는, 어머니 품속과 같은 고향인 것이다. 이 속담 아닌 속담도 “600여년 전부터 타향에서 몰려든 8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고향을 지키려는 방어의식으로 생긴 얌체짓 탓”이라고 회원들은 그럴 듯한 해석을 내놓는다. 역시 서울토박이인 강동구 김종구(58) 기획재정국장은 “어릴 적 한강에서는 뜰채로 참복어도 엄청 많이 걸려 올라왔다.”면서 “그 맛이 요즈음 말로 짱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국장은 “이따금씩 강물 위로 시체가 떠내려왔는데, 미군부대 꿀꿀이죽이나 기껏해야 수제비국으로 연명했을 정도로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에 생긴 변고였다.”며 사연을 들려줬다. “불그런 색깔을 띤 복어 알이 둥둥 떠내려오면 가뜩이나 굶주린 눈에 얼마나 먹음직스러웠는지 모른다.”면서 “복어 알인 줄 꿈에도 모르고 뜰채로 덥석 건져올려 먹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것”이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 고향은 지금 국립현충원이 있는 자리인데 현충원 분수대 쪽은 당시 콩밭이었다.”면서 “50년 전만 해도 50가구 남짓 모여 살았다.”고 덧붙였다. 동작동 248번지라는 사실도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고향에 대한 흔적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한강으로 다이빙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필 바위에 닿는 바람에 생긴 상처라고 왼쪽 다리를 보여줬다. 서울토박이 중앙회 임기완(65) 상임부회장은 “7대째 210여년이나 서울에만 살고 있다.”면서 “현재의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터가 바로 선조들이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고향마을이었다.”고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소개했다. 사도세자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무덤도 이 자리에 있었는데, 참봉(종9품·무덤 관리자) 벼슬을 지낸 증조부 이래 1969년 세브란스병원이 증축될 무렵 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갔으나 비석은 아직 백양로에 남았다고 집안 내력을 보탰다. ●“서울을 노래하자.”…판박이 활동 벗어나 야심찬 회원 배가운동 임 부회장은 “토박이 모임은 인증서까지 주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현재 ‘선조가 1930년 이전부터 현 서울시 행정구역내에 정착한 시민으로, 서울시 행정구역 안에서 계속 주거해온 사람과 신청 1세대의 자손’이라는 가입자격 규정을 뒀다. 현재 인증받은 사람은 2500여가구에 1만여명. 3대 이상 거주자 5만가구 20만명으로 늘리는 게 1차 목표다. 어느 시민은 최근 “제가 충북에서 태어난 것으로 돼 있으나 출생 1년 전후로 서울에 올라와 할머니, 아버지와 40년 가까이 살았는데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문의해왔다. 서울토박이 중앙회는 가입을 희망하는 시민들이 신청서 1부와 부친, 또는 조부의 재적등본 1부(자치구 발행), 반명함판 사진 2매를 내면 심사를 거쳐 인증서를 발급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자란, 서울을 고향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슬로건처럼 젊은이들도 많이 들어와 서울 가꾸기에 동참할 것을 바라고 있다. 서울을 아끼는 만큼이나 수도이전 등 삶의 구조를 크게 바꿔놓을 사안에는 어느 모임에 못잖게 똘똘 뭉친다. “모이자, 서울광장으로…. 깨자, 우리 고향을 깨려는 검은 무리들….” 지난해 6월 29일 수도이전반대 범시민 궐기대회에 참가한 토박이들은 이런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중앙회는 수도이전 반대 성명서까지 냈다. 최근 정부의 행정중심복합도시 발표 때 한 회원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졌는데도 혈세 10조원 이상을 들여 서울을 여기저기 분산시키려 한다.”면서 “12부,4처,3청을 옮긴다는데 토박이들이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중앙회에는 초등학생부터 90세가 넘은 장성기(95·성북구 정릉2동)옹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가입해 있다. 중앙회 산하에는 중랑·서대문·강북·송파·관악·중구지회가 따로 짜여졌다. 이 부회장은 “전해 내려오는 선조들 말씀에 따르면 족보가 불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최소한 10대까지는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되뇌었다.“한국전쟁이 끝나고 몇해 뒤인 1950년대 중반에만 해도 지금의 수색 근처에 조상들의 묘가 위로 10대까지 있었다.”고 했다. 서울토박이 중앙회 (02)2274-3291.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3대이상 거주해야 ‘성골’ 대접 3대째 내리 서울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는 100명 중 5명 정도로 추산된다. 또 서울에서 태어난 시민 가운데 31%는 서울을 고향으로 여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시민 가운데 조부모 세대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토박이는 2004년 말 현재 4.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3년말 조사된 6.5%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시정연은 시내 2만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2004년 서울 서베이’ 결과 시민들 가운데 63.9%가 본인 세대부터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부모 세대부터 거주한 비율은 30.9%로 나타났다.2003년 본인 세대부터 57.2%, 부모 세대부터 33.6%와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울토박이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전년과 같이 종로구(8.1%)로 나타났다. 원남동, 안국동, 궁동, 청운동, 삼청동 등 비교적 전통적인 가옥구조를 보이는 탓도 있다. 반면 서울토박이가 가장 적은 곳은 광진구(2.8%)로 조사됐다. 서울시민 전체에서 서울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비율은 67%,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는 시민은 33%였다. 서울시민 고향인식도는 2003년도 63%보다 상승한 수치다. 서울을 고향으로 여기는 비율을 권역별로 보면 도심권(종로·용산·중구)이 75.9%로 가장 높았다. 자치구별로는 용산 81.6%, 광진 77.2%, 중구 75.4%, 강동 72.4%, 동대문 70.9%, 성북 70.5%였다. 반면 아파트 중심 주거문화 지역인 도봉구(58.4%)와 금천구(59.6%)는 매우 낮아 정체성 확립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원조토박이들이 말하는 서울사람 “우리 토박이들을 업신여기니 청계천 사고가 일어나지….” 18일 서울 중구 수표동 56의 17 청계천 3가 골목길에 자리한 건물 4층 서울토박이 중앙회 사무실에서 만난 자칭 ‘4대문 원조 토박이’ 10명은 고향에 대한 애정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참된 서울의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은데 끼워주지 않는다는 불만도 사뭇 배어 나왔다. “프랑스에선 파리지앵, 일본에서는 에도코(江戶)라고 불리는 수도의 토박이들이 있습니다. 이들 도시에서는 도심 건물을 헐 때나 나무 한 그루를 잘라낼 때도 토박이들과 의논합니다.” “서울시가 서울만의 문화를 보존한다, 수도를 지킨다느니 하면서 토박이들에겐 관심도 없는데, 일을 잘못하면 우리가 나서서 혼쭐을 내야 합니다.” 이날 모임에는 회장단 13명 가운데 일정이 겹친 3명을 빼고 모두 찾아와 모처럼 얘기꽃을 피웠다. “그런데, 전통음식 등 서울문화를 들먹거리면서도 어떤 경로를 거치는지 몰라도 정작 대대로 살아온 우리들 말은 듣지도 않고 활약하는 단체도 더러 눈에 띄더라고요, 참….” 각 지방 사람들의 성격이 식습관에서 유래한다며 음식 얘기로 돌아갔다. 서울 사람들은 맵고 짠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이는 음식을 만들 때 실고추를 위에 얹는 관습에 잘 나타난다고 입을 모은다. 고춧가루 쓰는 일이 적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나타난 성격이 악착같지 않다는 점이다. 원래 살던 고향이라고 당연히 여기다 보니 아등바등 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고의구(71) 부회장은 “내 분수만큼만 행세하지, 절대 남의 것은 쳐다보지 않는 성격”이라면서 “서울 깍쟁이라는 말도 남들에게 불필요하게 손을 벌리지도,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하면 주지도 않는 성격 때문에 나온 것”이라며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놓았다. “서울 사람들이 자존심 강하기로 치면 어느 정도냐 하면 말이지.‘맹추’라는 소리를 들었지. 예를 들어 일본인들이 광복 뒤 헐값에 처분하거나 버리고 도망간 집이 많았는데, 셋방에서 버틸지언정 들어가 살지는 않았어.” 그는 서울사람 대신 발빠른 외지인들이 집을 차지해 내로라하는 부자로 성장한 사례가 많았다고 소개했다. “나서려고 하지 않는 특유의 성격 때문에, 가뭄에 콩 나듯 하는 부자 가운데서도 섣불리 모임에 나타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하소연도 쏟아졌다.“다른 향우회에서는 서로 나서지 못해 안달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오후 2시 시작해 6시까지 이어진 이날 자리에서 그들은 서울토박이로서의 자랑 아닌 자랑도 늘어놓았다. “산업화 물결로 갑자기 서울 인구가 엄청 늘면서 누구나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서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서울 사투리도 있어서 누가 토박이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했걸랑요’ 등 ‘요’로 끝나는 말을 많이 쓴단다.‘다’로 마치는 말과 달리 여성스러운 말투여서 다른 지방 사람들로부터 ‘간지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웃었다. 중앙회 출범 10주년이던 지난해 11월에는 효재학교 동창인 이원임(여), 이상용, 박영한(이상 81) 회원들이 70여년 만에 우연히 한 자리에 모여 추억을 되새기는 뜻 깊은 만남을 가졌다. 이들은 “토박이 모임을 만든 덕분”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꽃길로 山책] 봄철 쭉~

    [꽃길로 山책] 봄철 쭉~

    ‘저절로 걸어 온 봄은 없다.’고 한 시인은 잘라 말했다. 그리고 그이는,‘바람조차도 키를 세워 안개를 날랐다.’며 산자락의 고단함을 위무하더니, 어느새 ‘꽃불이 탄다! 꽃불이 탄다.’고 아우성이다. 눈부신 연둣빛 산자락이 농밀한 요즘, 키낮은 나무만으로 안쓰럽고 황량하게 느껴지던 능선이 별안간 분주해지는 곳이 있다. 지리산 바래봉(1165m)이다. 바래봉 아래에서 팔랑치에 이르는 능선에 만개한 철쭉은 누군가의 손으로 가꾼 정원의 모습이라 할 만큼 아름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천상의 화원’,‘하늘정원’으로 일컫는다. 마치 늦봄의 이 짧은 한 철을 보내기 위해 서러움과 인고의 세월을 참아왔기 때문일까, 그 붉은 빛은 처연하리만큼 짙다. 산길은 지리산 산간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정령치에서 시작하여 고리봉∼세걸산∼세동치∼부운치∼팔랑치를 거쳐 바래봉에 오른 뒤, 다시 바래봉 아래 안부로 되돌아와 운봉 용산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만복대∼정령치∼고리봉∼바래봉∼덕두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지리산 서북부능선이다. 능선의 동쪽으로는 그리움의 산, 지리산 연봉들이 굽어보고 있고, 서쪽 저 멀리로는 천왕봉에서 달려와 고리봉에서 북쪽으로 길을 달리하며 이어져간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득하다. 그래서 5월에 걷는 이 길은 백두대간 마루금을 좌우로 두고 그 한가운데에서 조망과 철쭉 산행을 겸할 수 있는 멋진 코스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식수를 준비하고 능선길로 접어들어 20분여 오르면 고리봉(1304.5m)에 닿는다. 고리봉에서는 주능선 방향으로 반야봉이 지척이다. 고리봉에서 직진하며 내려서는 서북능은 외길로 이어져 길 찾기에 별 어려움이 없다. 또 오르내림 고도차이도 그리 심하지 않아 비교적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산행거리가 약 12㎞에 이르고 목적지인 ‘하늘정원’에서의 느긋함을 즐기려면 걸음을 서두르자. 고리봉에서 능선을 곧장 달려 세걸산에 이르기까지는 1시간10여분 걸린다. 세걸산에 오르기 전, 키낮은 나무들로 비좁은 길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달궁의 오얏마을로 이어진다. 세걸산에서 20분여 내리막길을 진행하면 헬기장이 있는 세동치에 닿는다. 뱀사골 입구 반선의 행정구역명은 산내면 부운리(浮雲里)이다. 세동치에서 50분. 이제 천상의 화원이 기다리고 있는 팔랑치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잰걸음으로 능선길을 50여분 걷다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낯선 풍경이 열린다. 진초록의 산사면과 붉은 철쭉이 어우러진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불타는 꽃, 꽃불을 감상하고, 정상 아래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바래봉에 오르려면 1시간은 족히 잡아야 한다. 바래봉에서는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주능선의 모습에 찬찬히 눈길 두자. 오래도록 잔영이 남으리라. 바래봉에서 다시 안부로 내려서는 임도가 나 있는 운봉읍 용산마을로 하산하면 된다. 철쭉능선 동쪽 사면 아래의 팔랑마을로 하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지정로다. 임도를 가로지르는 철쭉군락 사이의 내리막길을 1시간여 내려서면 주차장에 이르고 산행을 마치게 된다. 대전∼진주간 고속국도 함양JC에서 88고속도를 갈아탄 후, 남원 방향으로 진행, 지리산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인월∼반선으로 접근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함양 백무동행 버스로 인월에서 하차한 후 반선으로 이동. 경남 함양이나 전북 남원에서 인월편 교통은 비교적 잘 연결된다. 인월에서 뱀사골행 버스를 탄다. 뱀사골 입구를 중심으로 숙식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많다. 특히 뱀사골 입구의 일출식당(주인 이춘식·063-626-5071,011-651-5077)은 산꾼들에게 편의를 많이 제공하는 곳으로 소문났다. ■ 늦봄 철쭉축제 어디로 갈까 ●연인산(1068m·경기 가평) ‘사랑과 소망’이라는 테마의 연인산 들꽃축제는 5월 20∼22일 열리지만 철쭉 개화시기는 5월 하순쯤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정능선은 야생화와 철쭉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곳이다. 또한 우정고개 주변의 잣나무숲도 뺄 수 없는 볼거리이다. ☎가평군 문화관광과(031-580-2065∼8). ●서리산(825m·경기 남양주) 수도권에서 가깝고 산도 그리 험하지않아 가족산행 대상지로 좋은 곳이다. 축령산으로 올라 능선산행으로 서리산∼철쭉동산으로 이어지는 종주산행을 하더라도 4시간 남짓 걸린다. ☎축령산자연휴양림(031-592-0681). ●소백산(1439m·충북 단양∼경북 영주)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 두 지방자치단체가 공동 주관으로 철쭉제를 개최하는데, 연화봉 인근의 철쭉이 특히 아름답다. 희방사나 죽령에서 연화봉 오르는 산길이 잘 열려있고, 비로사에서 비로봉에 이르는 철쭉길도 잘 알려져 있다. 철쭉제는 5.28∼29일 열리고, 개화시기도 이때쯤으로 예상하고 있다. ☎단양군 문화관광과(043-420-3254), 영주시 문화관광과(054-639-6391). ●덕유산(1614m·전북 무주) 철쭉제가 별도로 열리지는 않지만 중봉에서 송계3거리에 이르는 이른바 ‘덕유평전’의 철쭉이 아름답다. 철쭉 개화는 5월 하순부터 6월초로 예상된다. 무주군은 6월4∼11일 제9회 반딧불이축제를 개최한다. ☎덕유산관리사무소(063-322-3174). ●두위봉(1466m·강원 정선) 두위봉의 철쭉 개화시기는 대략 5월 하순부터 6월 초순으로 예상되며 6월 초순 철쭉제 기념 등반대회가 열린다. 철쭉은 단곡계곡을 따라 오르다 7부 능선에서부터 만나며, 두위봉 정상 인근에 수만평에 이르는 철쭉화원이 있다. ☎함백청년회의소(033-378-7633), 신동읍사무소(033-378-8001,7004). ●태백산(1567m·강원 태백) 지방자치단체중 가장 적극적으로 축제홍보를 하는 곳이다.6월 4∼6일까지 제20회 철쭉제가 열린다. 천제단 부근의 부드러운 능선에 연분홍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태백시 문화관광과(033-550-2083). 도움말 산악인 조용섭 choys56@hanmail.net
  • ‘문정동 법조타운’ 건립계획 확정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법원, 검찰청 등이 들어서는 ‘문정동 법조타운’ 건립 계획이 최종 확정됐다. 서울시는 지난 17일 제8차 시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문정동 364 일대 ‘도시계획시설 결정 및 생산녹지지역내 용적률 완화안’을 조건부 가결했다고 18일 밝혔다. 계획안에 따르면 이곳에는 동부지방법원과 등기소(364번지·대지 9000여평), 동부지방검찰청(371번지·8000여평), 구치소와 보호관찰소(384-1번지·11000여평), 서울경찰청 기동대(394번지·4500평)가 들어서게 된다. 도계위는 그러나 용적률을 50%에서 100%로 완화해 달라는 요구 등에 대해서는 법조타운 주변 문정지구 일대를 미래형 산업·업무단지로 개발하는 ‘문정지구 종합개발 계획’시행에 맞춰 결정하라며 조건부 가결했다. 법조 타운은 SH공사가 우선 토지를 수용해 상·하수도와 전기, 전화 등 기반시설을 모두 조성하는 토지 정지작업을 하게 된다. 이후 토지조성 원가를 토지 매입자가 공동 부담하는 ‘도시개발’방식으로 조성된다. 동부지법·지검 등은 2010년쯤 이전이 완료된다. 법조타운 건립에는 모두 3300억여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도계위는 또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된 미아·홍제·합정·가리봉 지구를 도시환경정비 예정구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해당 구청이 이들 지역에 대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면 재개발을 할 수 있는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내년 1월 이후에는 기반시설 공사에 들어가게 될 전망이다. 이밖에 황우석 서울대 교수 등이 줄기세포 및 바이오장기 관련 실험과 연구 활동을 할 서울대 의생명공학 연구동 증축안도 이날 통과됐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성북구 “미아리 이름 바꾸자”

    “못 참겠다 개명(改名)하자.” 서울 성북구(구청장 서찬교)가 집창촌·한(恨)·가난 등을 연상시키는 ‘미아리’란 이름을 바꾸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행정구역상 ‘미아동’이 이웃 강북구에 속해 있다는 사실도 개명을 추진하는 주된 이유다. 구는 새달 10일까지 미아로, 미아리고개 등 ‘미아(彌阿)’란 단어가 들어가는 지명에 대해 새 명칭을 공모하고, 학교명과 일반사업체 등에도 이름에서 ‘미아’란 단어를 바꿔 주도록 요구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구는 우선 미아로·미아리고개·미아리구름다리·미아사거리 등 4곳의 지명을 바꿀 방침이다. 지명개선을 위해 구는 새달 10일까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명칭을 공모한 뒤, 유관기관인 종암·성북경찰서 등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지명개선 우선대상 4곳 가운데 미아사거리의 경우 도로명이나 도로시설물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널리 불려지는 이름이기 때문에 구 지명위원회 심의의결만으로 개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머지 3곳은 구 지명위원회의 심의 후, 시 도로계획과의 검토를 거쳐 시 지명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구는 개명이 최종 결정되기까지 6개월 정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메일(pure3333@seongbuk.go.kr)과 우편(서울시 성북구 삼선동5가 411 성북구청 자치행정과 도로명개명담당자 앞)을 이용하거나 구청 자치행정과·동사무소를 직접 방문해 지명개선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다. 문의 02-920-3030. ‘미아(彌阿)’란 뜻은 ‘너른 언덕’이란 의미로 지금의 ‘미아리고개’를 가리키고 있다. 이 지명은 서울 강북구 미아 7동에 있는 ‘미아사’란 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한편 속칭 미아리 텍사스(하월곡동 집결지)는 성북구에 속해 있으며, 미아동은 행정구역상 강북구에 속해 있다. 강북구 미아동 주민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주민자치연합회를 구성해 ‘미아리 텍사스’라는 이름을 쓰지 말자는 내용으로 10만여명의 서명을 받아 각 언론사에 전달한 바 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지난 3월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강남타워(옛 LG강남타워)에서 열린 GS그룹 ‘CI 및 경영이념 선포식’.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GS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보니 남다른 감회로 가슴이 뿌듯합니다.” 차분히 축사를 읽어가는 구본무(60) LG 회장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조부(고 구인회 창업주)때부터 계속돼 온 허씨와의 57년간(47년 락희화학 설립 기준)의 ‘동거’를 당대에서 마무리짓는 순간이었다. 사돈이자 ‘동반자’였던 GS그룹 허창수(57) 회장과 임직원 300여명은 축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구 회장을 기립 박수로 환송했다. 행사장에 울려퍼진 ‘사랑해요 LG’는 앞으로도 두 그룹이 여전히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구 회장은 이에 앞서 3월14일 ‘당숙’인 구자홍(59) 회장·구자열(52) 부회장이 이끄는 LS그룹 출범식에도 참석, 새로운 길을 떠나는 집안 어른들을 축하했다. 연이어 열린 GS·LS그룹의 출범은 LG의 역사상 가장 큰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동업으로 일궈 합작으로 키웠다.’는 LG의 사사가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새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GS의 분리로 자산이 지난해 61조 6000억원에서 50조 8800억원으로 줄어든 LG는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기준 재계순위에서 현대자동차그룹(56조 400억원)에 2위(한전 제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1974년과 1980년에는 삼성과 현대를 제치고 재계 1위까지 올랐던 LG그룹으로서는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조부때부터 늘 확장일로를 걷던 사업을 ‘정리’한 구 회장은 LG의 비전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졌던 종합그룹에서 전자·화학중심의 ‘글로벌 리딩그룹’으로 재확립했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여건임에도 올해 경영목표를 매출 94조원, 경상이익 4조 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15%,26%나 높게 잡은데서 ‘제3의 창업’을 향한 LG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부친이 준 자금으로 사업 시작 재계3위 LG그룹의 역사는 194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의 설립에서 시작되지만 그 기원은 1931년 7월 경남 진주시 진주식산은행 건너편 2층 건물에서 시작한 ‘구인회 상점’이 출발이다. 구인회 회장은 1907년 8월28일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홍문관 교리를 지낸 할아버지 만회 구연호 공의 외아들 춘강 재서 공과 진양 하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해 잠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과는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축구로 교유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구 회장은 20세때 서울 중앙고보 2년을 마치고 귀향, 사업에 뜻을 보였는데 엄격한 유교집안의 장손이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조부와 부친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결국 장손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24세에 이미 3남 1녀와 아래로 다섯 동생을 둔 집안의 가장이었던 구 회장은 아버지가 건네 준 2000원과 첫째 동생 철회씨의 사업자금 1800원을 더해 자본금 3800원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7년 뒤인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출발은 일렀지만 규모는 작았던 셈이다. 구 회장의 첫 사업은 ‘실패’였다. 사업 첫 해 무려 500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이듬해 고향마을의 땅을 담보로 8000원을 빌린 구 회장은 새로운 각오로 사업을 재개했지만 그 해 장마로 포목이 물에 잠기고 만다. 이후 사업이 제 자리를 잡아 가는 듯했지만 또다시 1936년 대홍수로 가게가 떠내려 가고 말았다. 첫 시련은 가혹했지만 구 회장은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장마가 든 해에는 풍년이 들어 살기가 좋아질 것이다.”는 신념을 갖고 주변 사람에게 다시 돈을 빌려 포목사업을 벌였다. 구 회장의 예측대로 그해 풍년이 들어 결혼수요가 폭증하자 포목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고 구 회장의 사업인생도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허씨와의 인연 LG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구씨-허씨 동업을 빼놓을 수 없다. 두 가문의 인연은 구인회 회장의 8대조인 구반공 시절부터 시작됐다. 구반공의 부친이 현풍현감으로 재임할 때 진주의 만석꾼인 허씨 집안으로 장가를 왔고 이후 승산마을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구인회 회장 역시 열네살 나던 해인 1921년 담 하나 사이 이웃인 허만식씨의 장녀 을수씨와 혼례를 올렸다. 조부 만회공의 셋째 딸이 허만식씨의 둘째아들 인구씨에게 출가했지만 신랑이 요절하는 바람에 이어지지 못했던 두 집안이 다시 한번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후 구씨와 허씨는 무려 8건의 겹사돈으로 맺어지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구씨와 허씨는 1946년 1월 구 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인 허만정씨가 셋째 아들 준구(당시 24세)를 데리고 당시 구회장이 살던 부산으로 찾아오면서 사돈에서 동업자 관계로 발전한다. 허만정씨는 사업자금을 내놓으며 아들의 경영수업을 부탁했고 구 회장은 동경 유학생 출신의 준구씨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준구씨는 첫째 동생 철회씨의 맏사위였으므로 이미 남도 아니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 허준구씨는 LG건설·LG전선 회장 및 그룹 부회장을 지내며 LG의 역사와 함께했고 허창수 현 GS그룹 회장, 허정수(55) GS네오텍(전 LG기공) 사장,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 등 그의 아들들도 LG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LG의 초기 역사에는 허준구씨말고도 다른 허씨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준구씨의 친형인 고 허학구씨는 락희화학 전무로 일하면서 구자경 당시 상무와 함께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먹고 자며 밤낮으로 일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또 락희화학 서울사무소를 지원하기 위해 허준구씨의 동생으로 당시 ‘조선통운’에 다니던 허신구씨를 끌어들였다. 허신구씨는 락희유지 상무시절인 62년 동남아출장에서 ‘합성세제’를 처음보고 구인회 회장에게 세제 사업 진출을 건의,66년 ‘하이타이’가 출범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허신구씨는 금성사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했고 장남 허경수씨는 87년 코스모그룹을 창립하며 독자경영의 길을 걷고 있다. 허만정씨는 8형제를 뒀는데 학구-준구-신구씨는 LG에 발을 담은 반면 장남 고 허정구씨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창업동지’로 다른 길을 걸었다. 허정구씨의 2남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허신구씨의 차남 허연수씨도 GS리테일(전 LG유통) 상무로 일하고 있고 허만정씨의 막내인 허승조씨는 GS리테일 사장을 맡고 있다. ●가족들의 맹활약 LG는 그동안 숱한 계열분리를 통해 친족간 재산분배를 마무리지었다. 현재 LG에 남아있는 ‘오너일가’는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몇년전만 해도 주요 계열사 사장과 임원 상당수가 구씨, 허씨일 정도로 가족경영이 활발했다. 오너일가들이 지나치게 많아 그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LG의 창업과정에서 이들의 공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인회 회장은 첫째 동생 철회씨와 동업으로 ‘구인회상점’을 창업했다. 철회씨는 형과 함께 사업을 일구며 락희화학, 금성사 등의 사장을 맡았다. 둘째 아우 정회씨도 경성전기학교를 마치고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정회씨는 45년 구인회 회장이 ‘조선흥업사’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화장품 기술자 김준환씨를 영입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처음 만든 화장품 이름을 ‘럭키(LUCKY)’라고 지어 ‘럭키그룹’의 기반을 닦은 것도 정회씨였다. 셋째 아우 태회씨는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면서 창신동 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서울대를 졸업하자마자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같은 해 장조카 구자경 명예회장도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 교사 생활을 접고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태회씨는 이후 안 깨지는 크림통 뚜껑에 목말라하던 구인회 회장을 도와 LG가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53년 락희화학이 서울에 사무소를 낼 때 기반을 닦은 것도 태회씨였다. 태회씨는 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후보로 고향인 진양에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역시 서울대 문리대를 나온 넷째 아우 평회씨는 락희화학 지배인 시절인 1954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청년상공인회의(JCI)에 참석한 뒤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는 공을 세웠다. 공전의 히트를 친 ‘훌라후프’도 평회씨의 제안으로 들여왔다.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때는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씨가 아버지와 형(맹희씨)을 대신해 처벌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5년 연속 세계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LG전자의 에어컨 사업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락희화학 전무시절 “고층빌딩이 계속 늘고 있어 에어컨이 앞으로 필요해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 시작했다.67년 9월 미국 GE사와 제휴를 통해 국내 첫 에어컨 생산에 들어갔다. 미국 워시본대와 뉴욕시립대 대학원을 나온 구자두씨는 금성사 관리부장 시절인 62년 동남아 통상사절단을 수행하며 홍콩의 바노사로부터 라디오 200대를 주문 받아오는 등 LG의 첫 수출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다. 럭키치약 광고판을 부산 연지동 공장에 세우는 등 본격적인 광고개념을 도입한 것도 자두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6남4녀의 ‘방대한 혼맥’ 구인회 회장은 허을수씨와 사이에 6남4녀를 뒀다. 자손이 워낙 많다 보니 LG가를 ‘재벌 혼맥의 핵’이라고 부르지만 권력 핵심이나 정계쪽과는 인연이 없어 세칭 ‘정략결혼’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다.LG가는 특히 아들이 많은데 회(會)자 돌림만 6명, 자(滋)자 돌림은 23명에 달한다. 본(本)자 돌림은 구인회 회장 직계로만 11명이다. 장녀 양세(83)씨는 15세때 경남 남해군수를 지낸 박해주씨의 아들로 진주고보 학생이던 박진동씨에게 출가했다. 박씨는 광복후 좌우익투쟁으로 학병동맹본부 피습사건으로 사망했다. 장남 구자경(80) 명예회장은 17세때인 42년 5월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과 가까운 대곡면 단목리의 대지주 하순봉씨의 장녀 정임(81)씨와 혼례를 올렸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진주공립중 4학년이었고 한살 위인 신부는 한문에 뛰어난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구 명예회장 부부는 올해로 63년째 해로하고 있다. 2남 자승(74년 작고)씨는 56년 부산에서 금성방직 전무로 있던 고 홍재선씨의 딸 승해(71)씨와 선을 본 뒤 4개월만에 결혼했다. 홍씨는 훗날 전경련 회장과 쌍용양회 회장을 지냈다. 구 회장과 홍재선씨와의 우애는 유명한데 홍씨는 훗날 구 회장이 한때 자신을 ‘바람둥이’로 오해해 혼사가 어려울 뻔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홍씨가 평소 안면이 있던 다방 마담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고지식한’ 구 회장이 오해를 한 것이다. 3남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은 고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녀 숙희(70)씨와 57년 결혼했다. 구 회장은 64년 제일제당(현 CJ) 기획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한 뒤 동양TV방송 이사, 호텔신라 대표이사,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을 거쳐 본가로 돌아왔다. 4남 구자두(72) LG벤처투자 회장은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관과 국방부 차관을 지낸 고 이흥배씨의 딸 의숙(67)씨와 결혼했다. 이 혼사는 이미 사돈을 맺었던 홍재선씨의 중매로 이뤄졌다. 이씨는 64년 동양TV 사장으로 일하다 삼성과의 동업파기로 물러났고 이후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사장에 취임했다. 삼성과 LG는 동양TV사장에 이병철 회장의 사돈인 홍진기씨와 구인회 회장의 사돈인 이흥배씨를 나란히 앉혀 ‘공동경영’을 시도했지만 결국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흥배씨의 장남인 이희종(72)씨도 LG산전(현 LS산전) 사장과 부회장을 지낼 정도로 LG와 인연이 깊었다. 5남 구자일(70) 일양화학 회장은 일찌감치 독립했는데 부인 고김청자(66)씨는 사업가인 김진수씨의 딸이다. 차녀 자혜(68)씨는 대림산업 이규덕 창업주의 장남 고 이재준 대림그룹 회장의 막내 아우인 이재연(74) 아시안스타 회장에게 시집갔다. 이재연씨는 럭키화학 상무로 LG에 입사한 뒤 희성산업 사장, 금성통신 사장, 금성사 사장을 거쳐 LG카드 부회장을 지냈다. 장남에게 외식업을 해보라고 권유, 국내에 패밀리 레스토랑 ‘TGIF’를 처음 들여왔다. 3녀 자영(66)씨는 제일은행장을 지낸 이보형씨의 아들 재원(68)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 막내 처남 허윤구씨의 아들인 허남목씨 소개로 만난 뒤 20일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했다. 이씨는 자신 소유의 일성제지 회장을 지냈지만 일성제지는 98년 신호제지에 합병됐다.4녀 순자(62)씨는 류헌열 전 대전지법원장 아들이자 서울지검 검사였던 류지민씨에게 시집갔다. 이 혼례도 사돈인 이흥배씨가 주선했는데 구씨의 혼사는 이처럼 사돈이 연결해 준 경우가 많다. 구 회장은 막내 사위를 무척 아껴 골프장에 자주 데리고 다니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지만 류씨는 43세때 요절했다. 유일하게 구 회장 타계후 결혼한 6남 자극(59)씨는 이화여대 교수인 조필대 교수의 딸 아란(54)씨와 결혼했다. ●창업주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LG가문의 혼맥이 늘 주목받는 것은 구인회 회장 형제들의 혼사가 본가 못지 않게 화려하기 때문이다.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는 부인 안남이(작고)씨와 4남 4녀를 뒀는데 딸들의 결혼이 눈에 띈다. 장녀 위숙(77)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했다.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자애(66)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1·전 현대피부과원장)씨에게 시집갔다.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에게 시집갔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원(70) 넥스원퓨처 회장은 류영희(63)씨와, 차남인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갑희(62)씨 등 평범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4남인 자준(55) LG화재 부회장의 부인인 임방인(61), 이영희(53)씨도 재계나 정·관계 집안은 아니다. 다만 구자훈 회장의 3녀 문정(31)씨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에게 시집가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둘째 동생 정회(78년 작고)씨는 부인 김증문(작고)씨 사이에 5남 2녀를 뒀다. LG유통 사장을 지낸 장남 자윤(작고)씨는 정정자(62)씨와 결혼했다.2남 형우(62) 전 부민상호저축은행 사장은 전 대한석탄공사 전무였던 이길주씨의 딸 화숙(57)씨와 결혼했고 장녀 숙희(59)씨는 이구종 전 대한교과서 대표의 아들 규영(62)씨와,3남 자헌(작고)씨는 조종렬 한일수산 회장의 딸 금숙(55)씨와 결혼했다.LG MMA 사장을 지낸 4남 자섭(55)씨는 최근 LCD 회로부품업체인 한국SMT를 갖고 LG에서 독립했다. 부인은 심영숙(51)씨. 박정화(50)씨와 결혼한 5남 자민(50)씨는 지난해 말 LG전자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3개월도 안돼 회사를 그만두고 형 회사인 한국SMT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2녀 명희(52)씨의 남편은 하영준(56) 전 세원기업 사장이다. 셋째 동생으로 국회예결위원장·부의장을 지낸 태회(82)씨는 최무(83)씨와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장남 구자홍(59) LS그룹 회장은 지순혜(60)씨와 결혼했는데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애결혼에 성공한 ‘러브스토리’를 갖고 있다. 차남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김태향(55)씨와 결혼했다. 구 부회장의 사위가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이다.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의 부인은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의 딸 미연(53)씨다.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의 외동딸 원희(25)씨는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결혼이 예정돼 있다. 구씨가문으로서는 두산가로 출가한 자혜씨에 이은 두번째 두산과의 혼사다.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넷째 평회(79)씨는 부산 피란시절인 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씨의 딸 현주(48)씨와 결혼했다. 차남인 구자용(50) E1사장은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 현주(46)씨와 결혼했다.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독고진(46)씨와, 막내 혜원(46)씨는 주진규(49)씨와 결혼했다. 막내동생 두회(77)씨는 유한선(72)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 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김택수씨는 김한수 한일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점점 ‘소박’해지는 혼맥 구자경 명예회장은 선대 회장 못지않은 4남 2녀를 낳아 ‘다산’의 전통을 이었다. 장남인 구본무(60) 회장은 미국 애슐랜드대 유학을 마친 72년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충북 괴산의 ‘수재’로 불린 김태동 전 보사부장관의 딸. 장녀 연경(27)씨는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유학중이고 막내 연수(9)양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딸만 둘인 구 회장은 지난해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27)씨를 양자로 영입해 ‘대’를 잇고 있다. 장녀 훤미(58)씨는 구 회장 작고 직후인 70년 4월 김용관 전 대한보증보험 사장의 4남 화중(작고)씨와 결혼했다. 훤미씨의 딸인 김선혜(34)씨는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37) 전무와 결혼해 대림가와 대를 이은 혼인관계를 이어갔다. 김용관씨는 경방 회장과 전경련 회장을 지낸 고 김용완 회장의 동생이다. 화중씨는 “딸은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지만 사돈이나 사위는 아들에 준하는 대접을 해준다.”는 LG의 ‘가풍’대로 계열사였던 희성금속 사장을 지냈다. 95년 일찌감치 독립한 2남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은 차경숙씨와 결혼했다. 3남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은 숱한 계열분리 뒤에도 여전히 LG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오너 경영인’이다. 사업가 김광일씨의 딸인 은미(48)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2녀 미정(50)씨는 대한펄프 창업주인 고 최화식 회장의 아들인 최병민(53) 대한펄프 회장과 결혼했다. 4남 구본식(47) 희성전자 사장은 조경아(45)씨와 결혼,1남 2녀를 뒀다. ●LG를 떠나는 滋자 돌림 구자경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 자승(작고)씨는 홍승해씨와 3남 1녀를 뒀다. 장남 본걸(48)씨는 LG상사 대주주이자 부사장을 맡고 있고 본순(46), 본진(41)씨도 LG상사 상무로 일하고 있다.LG상사는 LG의 다른 자회사와 달리 ㈜LG가 대주주가 아니어서 자승씨 집안 몫으로 남겨진 것으로 알려졌다.2000년 아워홈을 갖고 독립한 둘째 동생 자학씨는 이숙희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남 본성(48)씨는 심재석 전 장은할부 부회장의 딸 윤보(44)씨와 결혼했다. 본성씨는 처가인 삼성에서 사장까지 지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2000년 삼성캐피탈 부장으로 입사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보까지 지냈다. 장녀 미현(45)씨는 고 이문호 서울대의대 교수의 아들인 이영렬(50) 한양대의대 교수와 결혼했다.2녀 명진(41)씨는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셋째 동생 자두씨 역시 2000년 LG벤처투자를 갖고 분리했다. 이의숙씨와 사이에 2남 2녀를 뒀는데 장녀 혜란(45)씨는 심창유 청주사대 학장의 아들 현주(50)씨와,2녀 혜선(43)씨는 장홍식 전 극동정유 사장의 아들 원우(44)씨와 결혼했다.LG벤처투자 사장인 장남 본천(41)씨와 차남 본완(39)씨는 각각 22.24%의 지분을 갖고 있다. 넷째 동생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은 처음부터 LG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독립했다. 본길(39), 은미(38)씨를 자녀로 두고 있다. 차녀 구자혜씨는 이재연 전 LG카드 부회장과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명망가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아시안스타 사장인 장남 선용(44)씨는 고 오세중 세방여행 회장의 딸 은주(40)씨와 결혼했다. 차남 지용(42)씨는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인 재연(38)씨와 결혼했다. 막내 구자극(59)씨는 LG상사 미주법인 회장을 그만두고 대주주로 있던 예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자코일, 변성기 등을 생산하는 이림테크를 인수(현 엑사이엔씨)한 뒤 스피커 전문업체인 모토조이, 성주음향의 중국 톈진공장 등을 인수하며 종합부품그룹을 키우고 있다. 엑사이엔씨 사장인 장남 본현(37)씨와 차남 본우(26)씨는 엑사이엔씨 지분 24%,4%를 각각 보유중이다. ukelvin@seoul.co.kr ■ 그룹 분가-지분율 따라 재산분배… ‘잡음’ 없어 LG는 1999년 LG화재를 시작으로 LG벤처투자, 아워홈,LS,GS그룹 등을 차례로 분리했다. 재산배분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예사이지만 유독 LG만은 큰 잡음없이 대규모 분가를 마무리지었다. 이는 LG가 엄격한 유교집안으로 집안 어른이 정한 기준을 자손들이 철저히 지키는데다 수십년간 그룹에서 친족들의 지분을 관리해온 덕분이다. 분가에 앞서 일부 친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그동안 정리해 놓은 지분율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기 때문에 큰 불만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 계열분리의 신호탄이 된 LG화재는 정부의 ‘5대 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 정책에 맞물려 분리됐다. 한때 대한생명 인수전에 뛰어들어 손해보험-생명보험을 영위하려했던 LG는 생명보험사업이 좌절되면서 LG화재를 독립시키려 했고 집안회의에서 고 구철회씨 가족들이 화재를 원해 순조롭게 분가가 이뤄졌다. LG벤처투자를 갖고 떠난 구자두씨 가족은 얼핏 ‘재산’이 너무 적어 보이지만 윗대인 구철회씨 가족에 비해 가족수가 적기 때문에 지분도 그만큼 적었다. 아워홈의 구자학씨는 한때 삼성에서 호텔신라 사장을 지내는 등 유통·서비스쪽에 관심이 많아 이견없이 분배가 이뤄졌다. 2003년 말 분리된 LS그룹은 구태회·평회·두회씨가 LG의 창업공신인데다 자녀들도 적지 않아 상황이 복잡했다. 게다가 LS전선은 허씨 가문의 고 허준구씨가 회장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허씨들이 경영을 맡아 애착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태평두씨’ 가족이 갖고 있던 지분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회사를 묶어 주면서 마무리됐다. LG그룹의 가장 큰 지각변동은 허씨들이 갖고 간 GS그룹의 분리다.GS칼텍스,GS건설,GS홈쇼핑,GS리테일을 주축으로 한 GS그룹은 자산이 18조 7200억원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창업주 형제들이나 구자경 명예회장 형제에 비해 허씨들의 재산이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관계자는 “고 허만정씨가 처음 사업자금을 댄 이후에도 허씨들은 계속 자금을 출자했고 그 비율은 일찌감치 65대 35로 정해져 있었다.”고 밝혔다. 지분비율은 정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업을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잠시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측은 전선사업에 마음이 있었고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진 금융관련 계열사도 내심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씨측의 어른인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씨측의 대표인 고 허준구 회장이 이미 수년전에 정해 놓은 ‘분리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2년 허 회장이 타계했지만 두 집안의 자손들은 선대의 ‘약속’을 변함없이 이어갔다. ukelvin@seoul.co.kr ■ 필립스 “具·許씨 동업에 감명 LCD합작” 1999년 9월 LG전자에 16억 5000만달러를 투자하며 LCD합작사를 설립키로 한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크리스털리 전 회장은 합작파트너로 LG를 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체크했는데 LG그룹의 구씨와 허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런 잡음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LG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이미 13건이나 되는데 이는 LG가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이란 것을 말해 준다.” 구본무 회장의 화답도 이에 못지않았다.“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처럼 동업자도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을 잃지 않아야 한다.” LG의 58년 역사에는 숱한 합작사가 등장한다. 합작사만 한때 20개에 달할 정도였다.60년대에 이미 66년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를 설립했고,68년에는 미국 콘티넨털카본사와 합작으로 한국콘티넨탈카본을 세웠다.70년에는 일본 알프스전기와 합작으로 금성알프스전자를,71년에는 일본 포스타전기와 합작으로 금성포스타를 설립했다. 독일 지멘스, 일본 후지전기와 3사 합작으로 금성통신을 설립했고 74년에는 일본 NEC와 손잡고 금성전기를 세웠다. 80년대 들어서도 합작은 계속됐는데 84년 다우코닝과 공동출자로 럭키DC실리콘을 설립했고 84년에는 제어시스템 메이커인 미국 하니웰과 공동으로 금성하니웰을 만들었다. 이후 동업관계가 끝났지만 87년 미국 EDS와 합작으로 만든 STM(현 LG CNS),96년 IBM과 맞잡은 LGIBM도 합작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남아있는 LG계열사 가운데도 합작사가 적지 않다. 히타치LG는 히타치와, LG MMA는 일본 스미토모상사와 합작한 회사다.LG텔레콤은 영국의 BT가 합작투자했고 필립스와는 LG필립스LCD에 이어 LG필립스디스플레이를 합작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오키사와 함께 루셈을 만들었고 올 상반기중으로 LG전자와 캐나다 노텔사의 합작사인 ‘LG-노텔’이 출범할 예정이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빌딩 X파일] 송파 여성문화관

    [빌딩 X파일] 송파 여성문화관

    송파구는 서울에서 양호한 주거지로 손꼽히는 자치구다. 비교적 높은 녹지율과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그중에서도 복지·문화 수준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송파여성문화회관은 풍부한 복지·문화 프로그램으로 널리 사랑을 받는 ‘송파 사랑방’이다. 송파여성문화회관은 송파대로변 석촌역사거리 동쪽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송파동 송파장터길 5이다. 지하철 8호선 석촌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1분 거리일 정도로 접근성도 좋다. 대지 800여평에 연면적 4000여평, 지하 2층 지상 6층의 아담한 규모다. 1998년 6월 착공,220억여원의 공사비를 들여 송파구가 지난 2001년 5월 개관했다. 어학실습실 등 15개의 각종 문화강좌 교실과 골프연습장 등 6개의 건강·레저시설을 갖추고 있다. 송파구 시설관리공단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다. 먼저 1층에는 동사무소와 구청 여권과, 우체국 등 관공서가 들어서 있다.2층에는 내과, 안과, 치과 등 의료시설과 유아교육시설인 ‘하바놀이학교’가 입주해 있다. 3층과 4층은 각종 문화강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교실에 해당한다. 어학실과 도서관, 상담실 등 부대 시설도 4층에 있다.5층은 패밀리 레스토랑,6층은 대강당과 함께 결혼식장이 들어서 있는 등 전 층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송파여성문화회관의 건립 취지는 다양한 교양·전통문화 프로그램을 개설하여 수준 높은 여성문화를 정착시키는 것. 이를 위해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현재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는 모두 140여과목의 강좌가 진행중이다. 컴퓨터, 어학, 요리 등 실용강좌는 기본 사양. 전통문화, 음악·미술, 공예 등의 문화 강좌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눈에 띄는 강좌는 주말에 열리는 가족사랑 강좌.3개월 일정으로 ‘아빠는 요리사’,‘엄마랑 도자기 만들기’ 등 가족이 주말에 함께 요리를 하거나 도자기를 빚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강좌료도 10만원 수준으로 저렴한 편이다. 1∼7세 사이의 아이가 어머니와 함께 들을 수 있는 ‘엄마랑 아가랑’ 프로그램도 인기를 얻고 있다.‘엄마랑 아가랑 느낌미술’, 세계적인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뮤직가튼’,‘엄마랑 아가랑 동화놀이’ 등 10여개의 강좌가 연령별로 준비돼 있다. 임산부를 위한 태교도예, 펠트공예 강좌도 있다. 이밖에 직장인들도 저녁 시간에 영·중·일어 등 외국어와 재즈댄스, 단전호흡, 대금 등을 수강할 수 있다. 지난 5일에는 ‘엄마, 아빠 우리의 마음을 읽어주세요’라는 주제의 아동 심리미술 전시회가 열리는 등 다양한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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