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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자 회고록] 비화 3공의 실세들 (6)반대자들의 변신

    5·16 직후 워싱턴에 있던 한국학생·지식인·예비역 장성 가운데 5·16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백악관앞에서 연일 ‘5·16 반대시위’를 벌였다.이는 미국정부가 5·16을 인정하지 않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5·16후 ‘한국인 정치망명 1호’를 기록한 내 남편 최동현(崔潼鉉)이었다. 5·16 반대시위에 열성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로는 당시 주미대사였던 장리욱(張利郁·작고)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 신병현(申秉鉉)전 부총리,최경록(崔慶祿)·강문봉(姜文奉·작고)·김웅수(金雄洙)장군과 국회의원 양일동(梁一東·작고)씨 등이었다.강영훈(姜英勳)전 국무총리는 5·16직후 시골에 있어시위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워싱턴으로 온 뒤부터는 이 모임에 항상 참여했다. 5·16 당시 강씨는 육사 교장이었는데 쿠데타세력이 요구한 육사 생도들의5·16지지 시가행진을 거부했다.강씨와 처남 매부간인 김웅수 장군(전6군단장),장면(張勉) 정권에서 육참총장을 지낸 최경록씨도 5·16을 반대했다.당시 2군사령관이던 최씨는 자기밑에부사령관으로 있던 박정희(朴正熙)가 쿠데타를 일으켰으니 하극상 사태를 당한 셈이었다.최씨는 조선일보 등에 “군은 절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글을 발표하는 등 5·16을 반대했다.이 세사람은 5·16이 기정사실화된 후 미국측 배려로 미 국방부 장학생으로 미국에 왔다. 백악관앞 시위에는 워싱턴 조지타운대학에 재학중이던 한국유학생도 많이참여했다.당시 열심이던 학생으로는 오세응(吳世應·전 국회부의장)씨와 한광년이 기억에 남는다.그때 오씨는 워싱턴지역 한국학생회 회장이자 ‘한국인 택시운전사 1호’였다.한광년은 초지일관하지 못하고 70년대 들어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넘어가고 말았다. 5·16 직후 박정희는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주미 대사관 공관원들을 모두해임시켜버리고 그 자리를 온통 자신의 수족들로 채웠다.그가 특히 신경을썼던 주미대사 자리에는 당시 하버드대학 청강생으로 있던 정일권(丁一權)을 ‘미국통’이라고 해서 앉혔다. 정일권이 주미대사로 앉게 되자 백악관앞 5·16 반대시위 참여자 중 여러사람이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남편 최동현부터 정일권의 하버드시절 그의 영어가정교사를 했던 사람이었다.영어선생과 학생이 데모대장과 진압대장으로만난 셈이었다.또 강문봉 장군은 정일권과 같은 함경도출신으로 현역때부터형님,동생 해온 사이였다.그런 그가 백악관앞에서 반(反) 5·16 시위를 하니 정일권이 닦달할만도 하였다.그때마다 그는 “골프치러 가려고 운동화 신고 나서는데 최경록이가 와 같이 가자고 해서 할 수 없이 따라갔어요”하는 식의 변명으로 모면하곤 했다. 한편 백악관 앞에서 5·16 반대시위를 벌인 사람들의 그후 행적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생각되는 바가 많다.박정희는 이들을 한 사람씩 회유해 한국으로불러들였다.민주당정권때 주미대사관 경제담당 참사관으로 있던 신병현씨는5·16이 나자 이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백악관앞 시위에는 그의 부인까지도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이후 미국에서 세계은행 이사로 있던 신씨는 그의 후배 김정렴(金正濂)이 박정희의 비서실장이 된 후 회유공작에 넘어가 귀국,청와대 경제특별보좌관을 거쳐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최경록장군도 “선배님,그러실 것 없이 한국에 와서 손잡고 일합시다”하는 박정희의 간청에 결국 귀국해 주영대사,교통부장관 등을 지냈다. ‘백악관앞 시위동지’들 중 가장 부끄럽게 처신한 사람은 강영훈이라 하겠다.강영훈도 초기에는 깨끗하고 꿋꿋하게 살았다.그의 부인은 미장원에서 일했는데 독한 파마액때문에 손가락이 모두 헐 지경이었다.그런 생활고 때문이었던지 70년대 들어 강씨는 결국 중앙정보부의 돈으로 ‘한국문제연구소’라는 것을 설립,미국 언론계·학계에 친박정희세력을 심는 역할을 담당했다. 백악관 앞 시위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5·16을 반대한다고 떠들던 사람들의 행적도 기억해둘 만하다.장면 정권하에서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낸 이석기(李錫基·작고)씨와 나중에 야당 당수를 지낸 이철승(李哲承)씨가 그들이다. 이석기는 주미대사관 국정감사를 위해 워싱턴에 왔다가 5·16소식을 듣고는장리욱 대사 방에 달려와서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대사님,미군을 동원시켜야 합니다”하면서 열을 올렸다.그런데 5·16이 기정사실화되고 미 CIA부장 매쿤의 초청으로 당시 김종필(金鍾泌·현 국무총리) 중앙정보부장이처음 미국에 왔을 때의 일이다. 주미 대사관 중앙정보부 공사 김동환의 집에서 김종필 부장 환영파티가 열려 다른 특파원들과 함께 갔더니 뜻밖에도 이석기와 이철승씨의 모습이 보였다.나는 이석기에게 대뜸 물었다.“이의원,와이셔츠 걷어붙이고 미군 동원시키라던 분이 웬일이세요? 번지수를 잘못 알고 오신 것 아닙니까?” 이석기는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했다.“김 부장하고 나는 한 고향 출신이라 옛날부터잘 아는 사이입니다.게다가 김 부장의 춘부장도 제가 잘 알고,김 부장의 형님도 내가 은행에 취직시킨 처지라 먼길 오셨는데 몰라라 할 수도 없고….” 뒷날 김종필이 정계에 진출할때 이석기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여를 주고 자신은 서울로 옮겨갔다.그 점에선 이철승도 마찬가지다.그토록 열렬히 5·16을 반대한다던 그가 왜 그자리에 왔었겠는가.정리 정운현기자 jwh59@kdaily. com
  • 휴대폰가정교사 새달 서비스

    신세기통신(017)은 대입 수험생들이 휴대폰을 통해 교육방송 교재 문제 해설을 청취할 수 있는 ‘휴대폰 가정교사’ 서비스를 내달 1일부터 제공한다.
  • 교육부, 교육대 입학정원 10% 증원

    교육부는 2000학년도에 교육대의 신입생 정원을 전체적으로 10% 늘리되,늘어나는 정원은 대학별로 차등을 두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교대 등 전국 11개 교육대와 한국교원대,이화여대 초등교육과 등 초등교원을 양성하는 대학 및 학과의 입학 정원이 99학년도 4,495명보다 450명 늘어난다. 교육부는 또 교육대의 학사 편·입학 정원도 정원의 5% 이내에서 10% 이내로늘리고, 기간제 교과전담교사가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교육대에계절 및 야간제 과정를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범대의 입학 정원은 계속동결하고, 증설되는 학과의 입학 정원도 사범대 전체 정원이 늘어나지 않는범위에서만 허용하기로 했다. 문호영기자
  • 9급서 최고위직 오른 ‘고졸학력’…金完基광주부시장 대리

    “내가 지금 모시는 웃분이 최고의 ‘백 그라운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완기(金完基)전 행정자치부 공보관(55)이 3일 광주부시장 직무대리에 임명됐다.관례에 따라 그는 조만간 1급으로 승진하면서 ‘직무대리’라는 꼬리표를 떼게 된다.고졸 학력의 면사무소 서기보(9급) 출신이 직업공무원으로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다. 김 부시장은 이날 자신처럼 학벌 없고,배경 없는 하위직 후배들에게 “연고·학력 위주 사회에서는 결국 그동안 모셨던 상사만이 자신을 알아봐준다”면서 “성실하게 일하여 윗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공직생활을 성공으로이끄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학력 때문에 불편한 적이 많았지만 특수대학원 수료 등으로 학력을적당히 장식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그렇지만 아직도 누가대학은 어디 나왔고,고시가 몇기(期)냐고 물으면 뜨끔뜨끔하다”며 웃었다. 김 부시장은 전남 곡성 출신.고향의 중앙초등학교와 광주동중을 수석졸업하고,광주고에도 수석입학했다.그러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는 바람에 중 3때부터 가정교사로 어머니와 2남4녀 형제들을 부양해야 했다.고교를 졸업한 뒤에도 흙벽돌장사를 하며 대학 진학 기회를 노렸지만 결국 22살때인 지난 66년5급을(현재의 9급)공무원 채용시험에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지역감정이 있다지만 결코 선입견을 갖지 말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그는 “과거 호남 출신들이 불이익을 받았다지만 나는 영남출신들로부터 많은 덕을 입었고 그것이 옛 내무부의 분위기였다”면서 “자기 하는 자세가 자기의 앞날을 결정해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광주부시장 자리는 33년 공직생활의 플러스 알파(+α)”라면서 “얼마나 할지는 모르나 학연이나 연고에 집착하지 않고,열심히 하는 후배를 발굴하고 키워 적어도 광주시에서는 학벌이나 지연을 따지는 폐풍(弊風)을 없애고 싶다”고 다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고 어느 시인은 고백했지만,나를 키운 것은 온통 어머니였다.아득한 옛날 고려의 어느 가객(歌客)이 ‘사모곡’(思母曲)에서 비유로 읊었듯이 호미(아버지)도 날이건만 낫(어머니)같이 들리는 없는 것일까.MBC TV의 주간 연속극 ‘육남매’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시야가 흐릿해지는 적이 있다. 연속극 속의 어머니는 올망졸망한 육남매를 모두 혼자 거두면서 떡장사,묵장사,남의 집 빨래 해주기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역시 육남매를 두었던 우리 어머니는 막내인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는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하지만 그 여인에게도 상부(喪夫)와 함께 지독한 인고(忍苦)의 세월이 찾아든다. 막내가 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자 일단 학비는 면제받게 되었다며 기뻐하시던 어머니는 이내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시골집을 버리고 시내로 나왔다. 출가한 셋째딸네 집에 잠시 맡겨두었던 솜털 송송한 신입생 막내아들을 당신 품으로 다시 불러들인 어머니는 목포역 앞 도로변에 판잣집을 짓고 짐꾼들을 상대로 밥장사를 시작했다.우리의 첫번째 ‘판잣집시대’ 3년은 도무지잠을 모르던 억척스러운 어머니가 사시장철 입었던 몸뻬로 지금도 내 기억의 액자에 담겨 있다. 중학교를 마친 아들을 서울로 유학 보낸 어머니는 목포 둘째딸네 집으로 거처를 옮겨 가끔 사위의 눈치도 보면서 서울의 아들을 편지로 원격훈육(遠隔訓育)하였다.딸이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는지라 식구들 아침밥 준비는 어머니 차지였는데,어머니는 뒤주에서 바가지로 퍼낸 쌀에서 매일 한줌씩을 덜어따로 항아리에 모았다가 그것을 팔아 고학하는 막내에게 학비에 보태라며 부쳐주곤 하였다.그러면서 어머니는 짬짬이 고향에서 도붓장사를 했고 고등학생 아들은 서울에서 겨울밤 군밤장사를 했다. 대학 4학년때 어머니와 나는 서울에서 두번째 ‘판잣집시대’를 열었다.7년 만에 모자가 함께 살게 된 것이다.가정교사로 모은 약간의 돈으로 청량리홍릉 산기슭에 판잣집을 짓고 이번에는 아들이 어머니를 모셨다.이 집에서는 어머니와 바로 위의 형,그리고 나,세 사람이 살았다. 같은해 가을 나는 친구와 함께 고시공부를 위해 고향의 어느 절에 들어갔다.역으로 가려고 청량리 집을 나서려는데 어머니가 몸뻬를 뒤적거리시더니 꼬깃꼬깃한 지폐 두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사흘 뒤 절에서 소복 입은 어머니 꿈을 꾸었다.날이 밝아 다시 책을 붙들고씨름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부음이 날아들었다.바로 추석날이었다.
  • 문맹 시슨스사장, 美 99中企 최고경영자상 수상

    스파크스(네바다주) AP 연합 구멍가게 정도의 기계공구 회사를 연간매출 500만달러에 이르는 굴지의 중소기업으로 일군 미국의 한 최고경영자가 최근 자신이 지난 수십년간 문맹이었다고 고백,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9일 미 상공회의소가 수여하는 ‘99 미국 우량 중소기업경영상’의 수상자인 B&J 기계공구사의 ‘제이 시슨스’사장(56). 지난해 지역 최고 경영자 모임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문맹자임을 시인한 그는 수십년간 낮에는 너무 바빠 계약서류와 메일을 볼 수 없다는 핑계를 일삼으면서 밤에 집에서 아내의 도움으로 서류들을 검토하며 회사를 운영해왔다고 밝혔다.또 법률관계 등 다른 업무들은 사장이 문맹자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던 측근 경영진이 알아서 처리토록 조처해왔다. 대신 시슨스 사장은 남의 말을 잘 듣고 세세한 사항까지도 좀처럼 잊지 않는 뛰어난 기억력과 기계공구업에 필수적인 수리능력 덕분에 자신이 문맹임을 숨겨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고졸 출신인 그가 글을 못읽게 된데는 초등학교 시절 글을 제대로 못읽자선생님이 ‘미련하다’고 핀잔을 준데서 비롯됐다.이후 기가 죽어 교실 뒤쪽에서 늘 조용하게 지내는 그를 선생님들도 방치,진짜 문맹자로 전락하게 됐다는것. 지난 10월부터 가정교사를 들여 하루 한시간씩 글자를 배우고 있는 시슨스사장은 현재 가장 큰 소망으로 “어서 빨리 글을 깨우쳐 장차 손자들에게 이야기책을 재미나게 읽어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 [역경을 딛고…]고대에 10억 기증 최병순할머니 육필수기(6)

    재심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다.사형수든 무기수든 가족이 찾아와 변호사에게 착수금으로 2,000원을 내고 재심 신청만 하면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전쟁통에 이루어진 재판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알 수 있다. 나도 재심을 신청했지만 돈도 변호사도 없다 보니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공주형무소로 이감돼 1년을 살다가 형기 만기를 4년정도 남기고 서울구치소로 옮겨왔다. 나는 감옥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눈썰미가 좋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척척 일을 해냈다.한번은 형무소에 스웨터를 짜는 기계가 들어왔는데 어깨 너머로 기술을 익혀 사흘만에 기계를 다루자 간수장은 내게 총책임을 맡겼다.광목에 물감을 들여 옷을 만들어 간수들과 주변에 나눠주기도했다.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었다.나는 손에 못이 박히도록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런데 만기 2년을 남기고 비보가 날아들었다.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왜 2년을 못 기다리시느냐”며 땅을 치고 울었다.“그 고초를 다 겪고 살아남았는데,아버지를 못뵈다니….” 얼마 안있어 작은 아버지와 삼촌이 면회를 왔다.10년이란 세월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61년 7월17일.잊을 수 없는 날이다.10년 형기를 채우고 서울 서대문 101번지 서울구치소의 붉은 담을 등지고 나오면서 만감이 교차했다.“이젠 살아보겠다”는 희망이 있었다.내 나이 46세였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인사동에서 내로라 하고 살던 옛적이 아니었다.집은 어디론가 사라졌다.청량리에 있던 삼촌댁에 가보니 다섯식구가 방 한칸에서 지내고 있었다.잠시 그곳에서 기거하기로 했다.다시 또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양파장사를 했다.한 포대를 100원에 받아와 종로로 청량리로 장바닥을 돌아다녔다.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돈을 모으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식모자리라도 알아보기 위해 예전에 알던 사람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천대를 받았다.‘빨갱이’로 10년 옥살이를 하고 나온사람을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세상이 박해졌다고 한탄했다.자유를 찾았지만정말 비참했다.사기도 당했다.옛날부터 함께 바느질을 하던 친구를 찾아갔더니 같이 살자고했다.삯바느질도 하고,옷장사를 하던 작은 아버지에게서 옷감을 가져다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내 몫을 모두 가로챘다. 어렵사리 남대문의 한 식당에 자리를 잡았는데 함께 일하는 할머니가 사장집 식모자리를 알선해 주었다.약수동에 있는 사장집에 갔더니 “곱고 얌전하게 생겼는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색을 했다.“일을 잘 할테니 써달라”고 애원했다.사장의 노모가 다른 식모를 구하려 했지만 막무가내로 부엌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했다.쌀을 고르려 키질을 했더니 사장 부인이 보고는 칭찬했다.합격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일을 시작했다.옷을 빨고,장작불로 목욕물을 데우고,설거지에 청소까지.2∼3시간쯤 눈을 붙이고 이른 새벽부터 다시 장작불로 물을 끓이고,초·중학교에 다니는 네 아이와 가정교사의 도시락 다섯개를 쌌다.아이들과는 별도로 주인 내외와 시어머니의 밥상을 따로 차려냈다. 일을 시작한 8월18일은 내 생일이었다.
  • 대한매일을 읽고

    7일자 27면 행정뉴스 인사이트 ‘공무원 불만실태’관련 기사를 보고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흔히 신문에 등장하는 회사원 급여는 대기업 이야기이지 대부분의 회사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재벌기업 사원 10년차 월급이 200만원이라고 공무원 월급을 그것에 비교하면 곤란하다. 37세의 석사로 유명 제약회사 연구소의 과장급 연구원인 내 월급은 각종 수당을 다 합쳐 120만원.지난해 총 보너스는 200%였다.올해는 80%만 받았다.국민연금,의료보험 등 모두 빼고 나면 100만원도 안된다.때문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아내까지 우유배달은 물론,보험설계사 등 안 해본 게 없다.아내와 세 아이를 거느린 가장으로서 학원비,유치원비,대출금 이자 등을 내고 나면 한달 생활이 빠듯하다.기사중에 어떤 공무원은 2,000만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이 바닥났다는데,내 경우는 2,000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수도없다.나같은 경우가 대한민국의 보통 샐러리맨이 아니겠는가. 김기문[moon_sea63@hotmail.com]
  • 교도관들이‘담배장사’재소자에 한갑 30만~100만원

    부산구치소 소속 일부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을 상대로 담배장사를 한 것으로 드러나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부산지검 형사3부 鄭然峻검사는 부산구치소 보안과 소속 정모교사(30) 등일부 교도관들이 히로뽕 상습복용 혐의로 수감중인 成모씨(37)와 金모씨(40·대전교도소 수감)등 3∼4명의 중간판매책을 통해 재소자들에게 담배 한갑에 30만∼100만원을 받고 공급한 혐의를 확인,재소자들을 소환해 수사를 하고 있다. 정교사 등은 중간판매책 成씨 등과 짜고 담배구입을 원하는 재소자의 가족으로 하여금 成씨의 아내 강모씨(29) 명의로 개설된 은행계좌에 돈을 입금하도록 한 뒤 담배를 공급해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강씨로부터 지난해 8월 말부터 지난달 초까지 재소자 가족 7명으로부터 1,750만원을 송금받은 사실을 밝혀냈으며 계좌추적을 통해서도 이같은사실을 확인했다.부산┑金政韓 jhkim@
  • 교원 정년단축 이후의 교단

    ◎세대교체로 활력·혼란 혼재 예고 99년 8월31일 학교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2만7,407명의 나이든 교장·교감·교사들이 물러나는 교단은 더 젊은사람들로 채워지게 된다.교단의 세대교체는 학교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학교에는 활력이 넘치는가 하면 젊은 교사들의 미숙한 경험은 혼란도 야기할 것이다.퇴직을 앞둔 교사들은 빈 교단 채우기식의 무더기 충원으로 교육의 질이 낮아질 것을 걱정한다. ◎교사 수급 전망/초등교사 내년 크게 부족/마구잡이 충원땐 교육 질저하 우려 5년 전 건강이 좋지 않아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뒀던 40대 초반의 주부 A씨.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실직하고 생계가 막막하던 A씨에게 99년 9월 ‘행운’이 다가온다.교사생활을 다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원 부족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젊은 퇴직 교사와 교대 졸업생을 총동원할 계획이다. 교원 정년감축으로 가장 심한 타격을 받는 곳은 초등학교이다.사범대 출신과 교직 이수자 등은 한해 2만5,000여명이지만 10분의 1인 2,500여명 정도만 선발해왔기때문에 중등학교의 교사 공급은 넉넉한 편이다.그러나 초등학교 교사는 교육대 출신이어야 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내년에 퇴직하는 초등학교 교사는 5,356명.하지만 전국의 교대 출신은 모두 합해서 5,190명.매년 2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어야만 했던 임용고사를 면제하고 무조건 채용해도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이다. 여기다 매년 4,000여명씩 충원했던 기본수요를 감안하면 교사부족현상은 극에 달할 전망이다.하지만 마구잡이식의 교사 충원은 결국 교육의 질을 떨어트리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서울시 교육청 초등인사과의 관계자는 “임용고사에서 탈락해야할 교대 졸업자가 교사가 된다면 수업 능력이나 성취동기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교육의 위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교사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중등교원 자격소지자를 초등학교의 교과전담교사로 대폭 전환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 역시 질 저하를 가져온다는 지적이다. ◎공백메우기 승진 러시/40대 교장·교감시대 열린다/초등교 4,000여명 새로 교감 자격증 ‘60대 교장,50대 교감’의 등식이 깨지고 빠르면 ‘40대 교장,교감 시대’도 예상된다.초등학교는 교장부족현상이 불보듯 뻔한 탓이다. 교단을 떠나는 초등학교 교장은 4,000명이고 교감은 2,400명 정도가 된다.따라서 평교사가 교감이 될 수 있는 숫자는 모두 6,400여명이다.이미 교감 자격증을 갖고 있는 평교사 2,153명을 제외하면 4,000여명이 새로 교감 자격증을 갖게 된다.중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승진 러시’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중등학교의 퇴직 교장·교감은 모두 4,000여명.중등 교감 자격증을 갖고 있는 평교사 1,859명을 제외하면 2,000여명이 새로 자격증을 얻어 승진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령 퇴직 평교사 7,000여명을 포함하면 승진 순위는 1만명 가깝게 올라간다.중등에서 교감 연수 후보가 되는 1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교사는 8만5,000여명.따라서 후보 가운데 10% 이상이 승진할 수 있게 된다. 서울의 중등학교 교사 2만6,000여명 가운데 20명만 교감이 됐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승진 러시이다.교육부의 관계자는 “시·도별로 편차가 있어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서울 중등학교의 경우 교감은 25∼28년차 경력(군경력 포함)의 교사면 승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40대 후반이면 교감이라는 얘기다. ◎교장·교감 승진 어떻게/1급정 교사 3년→교감 3년→교장 후보 평교사가 1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지 3년이 지났으면 교감 승진 후보가 된다.교감 자격증을 가진 지 3년이 되면 교장 승진 후보가 된다. 이렇게 해서 교감 후보는 초등이 9만5,782명,중등이 8만5,000명이다.교장 후보는 중등이 3,182명,초등이 5,300여명이 된다.후보가 된다고 승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육공무원 승진규정은 경력 90점,근무평정 80점,연구·연수 30점씩으로 구성된 200점 만점의 평가를 받는다.교사들은 점수별로 서열이 매겨진다.여기서 서열대로 끊을지와 3배수 추천으로 승진자를 결정하는 지는 시·도 교육청 인사위원회에서 결정된다. ◎교육부 후속대책 점검/중등교사 초등교 배치 부작용 우려/초빙교장제 도입에 교사들 “교육현실 모르는 소리” 교사 정년단축이 발표된 이후 학교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기획예산위원회와 교육부의 정년단축 발표도 발표지만 앞으로 나올 후속조치에도 교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또 교사로서의 보람을 잃어 전직을 준비중인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교사들은 먼저 교육부가 정년단축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초·중등학교에 초빙교장제를 도입하고,특히 초등학교에는 중등교사자격자를 일선교사로 배치한다는 계획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초등학교 한 교사는 “70년대 초등교사가 모자라 중등교사 자격자 또는 6개월짜리 초등교사 양성소를 설립해 교사를 배치한 적이 있는데 이때문에 교육이 질적으로 떨어졌다는 평가가 있다”면서 “초등교육만의 전문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멀리 갈 것도 없다.서울시내 초등학교는 올해 1,200여명의 교사가 퇴직하자 학교별로 5명 안팎의 교과전담교사를 담임교사로 전환한 전례가 있다.이미 교과전담제는 무너졌고 중학교 교사는 초등학교 담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60년대에도 중·고등학교 교사가 초등학교 교사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시 한 장학사는 “초등학교로 온 중학교 교사는 한달만에 교과서 한권을 마치고 의기양양해했다”고 전했다.교사는 교과서에 나온 모든 것을 가르쳤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N중학교의 모 교사는 “정년단축으로 공백이 생기는 교장자리에 교육현실을 모르는 외부 관료들을 교장으로 초빙한다는 계획에는 전적으로 반대”라면서 “차라리 평교사를 승진시키거나 장학사가 교장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각 학교 교무실에서는 정년 대상자,교감승진 예정자,젊은 교사들 등 세대별로 나뉘어져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고,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선생을 예사로 무시한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하소연이다. S중학교 趙모 교사(30)는 “의견수렴이 없는 교육부의 정년단축발표에는 반대하지만,내심 정년단축 자체는 찬성하는 편이다.그러나 교무실에서는 원로교사들의 눈치가 보여 젊은 교사끼리 모여 얘기를 나누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교단 부작용 없나/혼내면 “법대로 해라…” 학생통제 안돼 H고등학교 蔡모 교사는 “여기저기서 교사를 몰아세우는 바람에 학생들에 대한 통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과제물을 안 챙겨와 혼이라도 낼라치면 ‘법대로 하세요’라고 대꾸하는 분위기”라고 한탄했다. H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는 “경기가 나쁠 때 좋은 인력들이 교직에 몰려든 사례로 볼 때 지금이야말로 사범대에 엘리트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요즘 고3을 상담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교사에 대한 평가절하로 결국 교육의 질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교사들 사이에서는 4판(학생은 개판,교실은 난장판,교사는 죽을 판,교장은 이판사판)에서부터 출발해 8판,9판 등 이른바 ‘판시리즈’를 확대해가며 교사들의 자조(自嘲)를 표현하고 있다. ◎중견 교사들 반응/“교직에 회의” 40대 여교사 퇴직희망 늘어 이러다 보니 ‘나도 퇴직이나 해버릴까’하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서울 숙명여고의 한 교사는 “명예퇴직 대상이 되는 53세 이상의 여교사들은 대부분 명퇴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몰아내는 듯한 교육부의 정년단축 방침에 교사로서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탓이다.게다가 교직경력이 20년이 넘으면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생활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까닭에 20년 넘은 교사,특히 여교사들은 명예퇴직이 아닌 일반 퇴직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중학교 金모 교사는 “더이상 교사생활에서 보람을 느낄 수 없어 전직을 위해 퇴근 후 컴퓨터학원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만 20년 근무한 교사는 연금 일시금 8,200만원과 퇴직수당 2,200만원을 합해 1억400만원을 받는다.연금수령을 하면 퇴직수당 2,200만원을 받고 한달에 91만여원씩의 연금을 받게 된다.연금액수는 초중등학교 모두 비슷하다. 교사들은 또 새정부 들어 정부가 교사를 개혁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개혁대상으로 몰아세움으로써 교직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토로한다.전직이 아니더라도 담임을 기피하는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난곡중학교 S모 교사도 “1주일에 수업을 5시간 더 맡더라도담임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면서 “요즘의 담임교사는 교육부의 메신저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 하루 3분의 1은 잡무처리 S중학교사의 한탄

    ◎“이게 아닌데… 오늘도 제자에 미안”/지자제이후 상급기관 자료요청 폭주/전화 놔두고 형식적 보고서 요구 분통/학생지도·교재연구 본업이 뒷전으로 서울 S중학교 영어 담당 金모교사(32)는 지난 3일 여느 때와 같이 상오 8시20분 교무실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金교사는 전날 끝난 기말고사 주관식 답안지를 채점했다. 바삐 손을 놀리던 金교사는 9시10분쯤 1교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를 듣고 허겁지겁 교실로 향했다. 수업을 마친 9시55분. 쉬는 시간 10분도 그는 자리에 붙어앉아 채점을 하는데 썼다. 2교시 수업을 마친 뒤 또 다시 10분간 채점. 3교시 수업을 끝내고 교무실로 돌아 온 金교사는 교감선생님에게서 공문서 한쪽을 전달받았다. 관할 교육구청에서 온 ‘일급 정교사 자격연수 추가 추천 요청서’였다. 문서를 받아 든 金교사의 표정에 짜증이 묻어난다. 보고 시한이 이날 하오 4시까지여서 보고서 작성을 방과후로 미룰 수도 없었다. 金교사가 공문서 회신 등 하루에 처리하는 잡무는 4∼5건이나 된다. 연초부터 연구부장의 잡무를 돕는 기획담당을 맡아 일반교사들보다 공문서를 작성하는 일이 더 늘었다. 더욱이 이번 요청은 추천 해당자가 없는 것이어서 더 그랬다.‘해당자 없음’ 보고서를 만들고 교장결재까지 받는데 30분 정도를 할애했다. “해당자가 없는 경우까지 보고서를 만들어야 되는 거야. 전화 한 통화로도 할 수 있을 텐데”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 교사가 볼멘소리를 냈다. 낮 12시. 요즘 그에게 골칫거리인 하계방학 방과후 활동 반편성 작업을 시작했다. 각 학급에서 학생들이 낸 수강희망 과목을 받아 두 과목이상을 신청한 학생의 수강시간 중복이 없도록 반을 짜는 작업이다. 수업이 없는 4교시 1시간을 꼼짝없이 컴퓨터앞에서 보내야했다. 5교시 수업 30분전인 하오 1시가 돼 구내식당에서 허겁지겁 점심식사를 한 뒤 다시 수업에 들어갔다. 5교시 수업을 마친 뒤 수업이 비는 6교시 1시간동안 하다 만 채점작업을 재개했다. 이 날 마지막 수업인 7교시 수업을 마친 金교사의 얼굴엔 피로가 묻어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해야 할 과외업무가 남아있었다. 며칠 뒤 종합장학 지도를 위해 학교에 오는 장학관들에게 제출할 일정표와 수업 일람표를 만들고 시범수업지도안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각각 10부씩 만들어 10개의 대봉투에 나눠 담는데 1시간20분이 걸렸다. 金교사는 하루 4∼5시간 수업을 맡고 있다. 비는 시간을 합치면 2시간30분 정도. 그러나 과외일 3,4건을 처리하다 보면 이 시간도 모자란다. 이 날은 채점까지 겹쳐 더 숨가쁜 하루였다. 특히 교육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는 시간이 걸리는 통계자료를 화급하게 요구할 때. 얼마전 한 국회의원이 퇴학생 수와 학교 주변정화활동 내용 및 건수 등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요청한 그 날 하오까지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일때문에 그날은 수업시간을 늦춰야 했다. 지방자치제 실시이후 잡무는 더 늘어났단다. 교육청과 교육위원회는 물론 국회,시·도의회에서도 자료요청이 끊임이 없다. 최근 교총이 교사 8,06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잡무의 원인으로 불필요한 공문서처리(45.4%)와 함께 응답자의 16.3%가 국회 및 시·도의회,교육위원회의 자료요구를 꼽았었다. 金교사는 잡무가 단순히 시간을 빼앗는 귀찮은 일이어서 싫은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학생지도나 교재연구 등의 본업이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30여명의 담임을 맡았던 지난해 학생들과 ‘계획된’ 면담을 한 것은 고작 두번. 그마저도 수박겉할기식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교사들을 잡무에서 해방시키려면 상급기관이 업적주의나 행정편의주의적 사고를 벗고 현장 중심으로 발상을 전환하는 길 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 고종의 지병(秘錄 南柯夢:14)

    ◎용한 의사 宮에 들이려 참봉 임명/가래에 피 섞여 고생… 病 이름 몰라 근심/內醫들 못 미더워 侍從에 名醫 추천 의뢰/“성명 미상” 아뢰니 즉석 作名후 벼슬 내려 ‘한국 사람들은 사람을 잘 믿는 경향이 있다’.구한말에 의료선교사로 내한해 고종의 각별한 신임을 받은 호레이스 N.앨런(H.N.Allen)의 말이다. 그는 한국 사람의 특성으로 ‘사람을 너무 잘 믿는 습성’을 들었다.그래서 그런지 그 당시 서울에는 사기꾼들이 득실거렸고,그 중 일부가 궁궐에까지 손을 뻗쳐 이권을 챙겼다. 하루는 서대문의 정환덕이 집에 경상북도 칠곡에서 올라 왔다는 류호영(柳好永)이라는 시골선비가 찾아왔다.초면이라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좌정한뒤 류호영은 들고 온 손가방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였다.종이에는 시한 수가 적혀 있었으니 내용은 이러했다. ○“한양에 사기꾼 득실” ‘언젠가 내가 요직에 오르게 된다면 즐겨이 선생을 수령으로 임명하겠네.산좋고 물좋은 고을을 맡아 나가서 소나무 계수나무 숲 사이에서 글이나 읽게나.운현궁 씀(他年我若當路在 好使先生爲守令 出宰山水鄕 讀書松桂林 雲峴宮書)’ 사연은 류호영의 선친이 1863년 아직도 대원군이 재야에서 고생하고 있을때 보수도 제대로 못받고 운현궁의 가정교사 노릇을 했었다는 것인데,그때어린 고종이 직접 친필로 써 주신 글이 위의 글이니 이것을 꼭 황제에게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정환덕은 어느날 한가한 틈을 보아 류호영의 글을 임금님에게 보여 드렸다.그러나 고종은 이에 속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이 필적은 참으로 50년전의 것이다.또 어렸을 때 일을 기억하기도 어려운 일이니 진짜인지 가짜인지 신중하게 분별해 보겠다’ 고 하시면서 서류를 바닥에 내려 놓으셨다.두말할 것도 없이 이 시문(詩文)은 사기였다. 정환덕이 고종 황제를 직접 모시고 있는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이었기 때문에 청탁도 많이 들어왔다.류호영은 그 중의 하나였다.어느날 이중철(李中喆)이라는 사람이 명의(名醫)를 가장하고 정환덕에게 접근해 왔다. 이중철을 알게 된 것은 개성 인삼장수로 돈을 번 이필화(李必和)의 소개 때문이었다.하루는 이필화가‘우리 집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명의가 기숙하고 있는데 한번 전하께 소개하여 주시게’ 하는 것이었다.고종은 기침을 하면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는 혈담(血痰)으로 고생하고 있었다.기관지염이거나 폐병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재야 의사” 속여 접근 ‘며칠을 지난 뒤에 황상께서 지밀(至密)에서 직접 침뱉는 그릇을 가지고 나오시어 나에게 보이시며 말씀하시기를 “짐이 더러운 담이 있어 간혹 이와같이 토해내게 되는데 무슨 약을 쓰면 효험이 있겠는가.안경을 끼고 살펴보면 혈담인데 왜 더러운 담이라 하는가 하면 피혈(血)이란 글자를 꺼리기 때문이라 한다”고 하셨다. 대답하여 아뢰기를 “혹 주무시는 잠이 도수에 지나치시면 그럴 수도 있고 옥체(玉體)가 건강을 잃으시어 그럴 수도 있사오니 별다른 염려는 없을 것으로 압니다.그러나 의관(醫官)을 불러 물어 보시지요.”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른바 내의(內醫)란 자들은 한 사람도 의사라고 할 만한 자가 없으니 외부에 혹시 유명한 의사가 없겠냐”고 하시었다. 여기서 갑자기 이필화가 말하던 재야에 숨은 군자라는 사람이 머리에 떠올라 드디어 아뢰기를 “신(臣)이 지난 번에 우연히 개성 사람 이필화가 전하던 말을 들어보니 그 집에 머무르고 있는 나그네 이씨의 의술이 유명하다고 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재야에 숨은 군자입니다.병에 대하여 증세를 살피며 화제(和劑)를 써서 약을 쓰는 것이 신출귀몰하여 비록 예전에 화타(華陀:후한의 명의)와 편작(扁鵲:전국시대의 명의)이라 하더라도 이 사람의 술법만 같지 못하다고 합니다.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성상께서는 생각이 어떠하십니까’ 그런데 그 다음의 대화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왜냐하면 정환덕이 이중철을 임금께 추천하였으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이름을 모른다 했는데 즉석에서 능참봉(參奉)벼슬을 내렸기 때문이다.흔한 것이 능참봉이라 하지만 임명절차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성상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은 어느 시골에 사는 누구인가.”고 하시었다.대답하여 아뢰기를 “선정신(先正臣) 이황의 후손이라 하옵니다.”하니 “그렇다면 현재 무슨 관직을 가지고 있느냐.”고 하시었다. 대답하여 아뢰기를 “백신(白身:벼슬하지 않는 몸)입니다.”했더니 그렇다면 “궁내부 주사로서 불러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시었다.이에 아뢰기를 “오직 성상의 뜻에 달린 것이고 신(臣)의 알 바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또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이미 선정(先正)의 후손이라면 재랑 (齋郞:奉)으로 쓰는 것이 가할 것이라 하시면서 드디어 동궁(東宮:세자)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능관(陵官:참봉) 가운데서 혹 결원된 자리가 없느냐”하시니 동궁이 “지금 능관은 결원이 없고 영희전(永禧殿:종묘의 永寧殿) 참봉은 결원이 있습니다.그러하니 이 사람으로써 그 결원을 보충하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하시었다. ○“임용 뒤에 본명으로” 또 나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의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무엇인가.”하시었다.대답하기를 “아직 자세히 알아보지 못했습니다.”하니 동궁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름자를 자세히 안 뒤에 임용하는 것이 좋을까 하니 내일 네가 나가서 자세히 알아서 보고하는 것이 좋겠다.”하시었다. 그러자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일 불러서 진찰을 받아 볼 계획이니 먼저 이름자를 기록해야 되기 때문에 임시로 임용한 뒤 나중에 본명으로 고치고 표를 부쳐두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하시었다.동궁께서 아뢰기를 “퇴계의 종손 항렬 가운데 글자에서 가령 중(中)자를 차용한다면 중자 아래에는 무슨 글자로 사용할까요.”하니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여름철이니 여름하(夏)자를 쓰는 것이 또한 무방할 것이니 ‘이중하(李中夏)’라고 써서 궁내부에 내리고 영희전 참봉을 임명하라.”고 하시었다.’ 벼슬이 없는 사람은 궁궐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가명을 써서 발령을 내렸던 것인데,아무리 그렇더라도 이중하의 경우는 심했다.
  • 높은 자리의 언행은 파장이 크다(박갑천 칼럼)

    세상일이란 반드시 바르게만 전해지는건 아니다.선의나 악의가 끼어들면서 사실과는 다르게 알려지는 일들이 적지않다.그래서 ‘콜럼버스와 달걀’ 얘기는 날조라든지 클레오파트라는 절세의 미인이 아니었다는 말들이 ‘증거’를 내세우면서 나오기도 하는 터이다. 옛얘기는 젖혀두자.당장 엊그제 일어난일의 보도에도 오보라는게 있잖던가.어떤건 그말을 했다는 본인이 살아있는데도 사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기도 한다.가령 얼마전 보도된 인도네시아 사회복지부장관의 경우는 어떤것일까.그는 무료급식 식당에 들렀을때 식당주인들이 치솟은 수입사료값 따라 닭고기값도 올라서 급식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소연하자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그렇다면 수입사료 안먹고 풀을 먹는 토끼고기를 쓰면 되지않겠는가”.보도는 정확하다해도 본인의 뜻에서는 빗나간건지 모른다. 별뜻없이 더뻑 내뱉은 말이 듣는마음을 아프게 찌를수 있는법.어쨌거나 그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맏딸로서 다음 대권주자로 떠오르고도 있는 처지이니 말을 삼갔어야 하는건데.세론은 그의 말에대해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을 일이지”했다는 18세기 망언의 20세기판이라면서 선거워하는 모양이다.그말은 프랑스혁명때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말을 들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반응인 것으로 알려져오는 터.하지만 이말은 마리 앙투아네트와는 상관이 없다. 그말은 루소의[참회록](제6권)에 나온다.그가 1740년 리옹에서 가정교사를 하고 있을 때다.그집에 있는 와인을 몽태쳐 마시려했는데 빵이 없으면 못마시는 버릇이었다.그때 루소는 ‘어떤 고귀한 왕비’가 “농민에게 빵이 없다”는 보고를 받고 “그러면 브리오슈(brioche:최고급 과자빵)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대답한 일을 떠올리고 그걸 사다가 와인을 마셨다.거기쓰인 ‘고귀한 왕비’를 후세인들이 미운마음 곁들여 마리 앙투아네트로 안쫑잡았다는 해석들이다.1740년이면 그가 태어나기 15년전이다.우리 초대대통령에게 따라다니는“…그렇다면 사과를 먹을일이지”도 그에 유래한‘악의섞인 뒷말’아니었을까. “언행은 군자의 추기(樞機)”라는말이 [역경](易經:계사상)에 나온다.군자의 중요한 밑바탕은 바르고 기구있는 언행에 있다는 뜻이다.여기서의‘군자’는‘지도자’로 갈음될수도 있다.그리고 높은 자리의 사람일때 이말이 남의나라 얘기일수만은 없다.
  • 영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미 전기작가 키티 켈리의‘로열스’

    ◎1917년부터 80년간의 다큐멘터리 왕실사/찰스­다이애나의 파경 등 가감없이 기록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공립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가정교사에게 하루 한시간씩 영국사와 문장학을 배웠을 뿐이다. 때문에 수학이나 과학에 약했고 자연계에 관해서는 개와 말밖에 몰랐다.그녀는 러드야드 키플링과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제외한 그밖의 모든 시들을 싫어했다.어느날 그녀는 이탈리아 시인 단테에 대해 ‘단테란 말(마)의 이름?’이라고 물었다” 영국 윈저 왕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로열스’(전2권,키티 켈리 지음·이종인 옮김)가 도서출판 동방미디어에서 나왔다. 키티 켈리는 ‘낸시 레이건:비공식 전기’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베스트셀러 전기작가.켈리는 금세기 들어 윈저 왕가는 비영웅적일 뿐아니라 결손가정화해 ‘미디어를 위한 인형극’으로 전락했다고 꼬집는다. 이 책은 1917년에서 1997년에 이르기까지 80년의 영국왕실사를 다룬다.1917년,독일을 미워하는 영국의 국민정서를 잘 알고 있던 영국왕 조지 5세는 자신의 독일 뿌리를 감추기 위해 왕가의 이름을 하노버에서 윈저로 바꿨다.그는 하룻밤 사이에 바텐베르크,메클렌베르크­스트렐리츠,헤세,베틴 등 독일계 가문의 이름을 왕가의 계통에서 박탈해버리고 영국 이름과 타이틀을 만들어 넣었다. 켈리는 이 책에서 훗날 윈저 공작이 된 에드워드 8세의 느닷없는 양위와 그 뒤를 이어 동생 앨버트 왕자가 조지 6세로 등극하는 과정을 그린다.그리고 영국 왕실에 커다란 안정을 가져온 엘리자베스 왕비를 묘사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곧 현재의 ‘퀸 마더(Queen Mother)’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의 하나다.켈리는 우아한 미소에 강철같은 성품을 지닌 퀸 마더의 생생한 초상을 제시한다. 퀸 마더는 비록 평민 출신이지만 2차대전 당시의 런던 공습때 대피하지 않고 런던에 그대로 체류,왕가의 체통을 지켜 온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켈리는 퀸 마더의 출생을 둘러싼 신비를 밝히고 인공수정으로 두 딸을 낳게된 내막도 폭로해 눈길을 끈다. 켈리는 또 조지 6세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2세의 외로운 유년시절과에든버러공 필립과의 결혼,1952년 아버지의 급서로 인한 갑작스런 등극 등을 상세히 다룬다.켈리가 엘리자베스 2세의 생활에 대해 밝힌 구체적인 사항들 중에는 여왕이 냉정하고 무심한 어머니였다는 내용도 있어 자못 충격적이다.그에 의하면 윈저 왕가의 파탄은 여왕이 기능부전한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상당부분 그 원인이 있다. 여왕의 네 자녀 중 셋은 이혼했고 나머지 한명인 막내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바람둥이 남편인 필립 공,속만 썩이는 동생 마거릿 공주, 우유부단한 아들 찰스 왕세자,뻣세기가 남자 못지않은 앤 공주,왕족이 아닌 평민계급에서 데려온 두 며느리 다이애나 스펜서와 사라 퍼거슨….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모든 풍상을 헤치고 이제 2002년 대망의 즉위 50주년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여왕의 부군으로 여왕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왕궁내의 실세’ 필립 공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묘사한다.켈리는 필립공이 아직도 가장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이 책의 후반에서는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파경,둘째 며느리인 요크 공작부인 사라 퍼거슨의 이해할 수 없는 음란한 행동 등을 가감없이 다룬다.이 책은 영국 왕실도 이혼과 결손가정의 증가라는 영국적 사회현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윈저 왕가는 또다시 위기의 시대를 맞았다.왕가를 ‘재창건’해야하는 과업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엘리자베스 여왕­찰스 왕세자­윌리엄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영국 왕실 상황은 빅토리아 여왕­에드워드 왕자­조지 왕세손으로 이어지는 1900년의 빅토리아 말기와 비슷하다.모후인 빅토리아 여왕 사후 에드워드 7세가 왕위에 올랐을 때,그는 이미 59세의 나이로 평생 여자들의 품에 안겨 샴페인이나 마시며 인생을 탕진한 사람이었다.그가 즉위한지 10년도 못돼 죽자 조지왕자는 조지 5세로 등극,윈저 왕가를 창건했다.영국 왕실은 이제 100년 세월의 간격을 두고 똑같은 운명을 맞고 있다.영국 왕실은 과연 ‘스캔들의 궁전’인가. 그러나 영국 왕실은 그 많은 스캔들과 결점에도 불구하고 역경과 비난을 견뎌내는놀라운 능력을 보여왔다.켈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1천200년 역사의 영국 군주제는 이제 신과 같은 광휘가 부식되었고 또 위축될대로 위축돼 수모를 겪고 있다.그렇지만 장엄함에 대한 매혹과 새로워진 왕권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영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 경제 가정교사(후보 프리즘)

    ◎한나라당/당안팎 200여명 활약/서상목 본부장이 핵심 이회창 후보에게 직간접으로 경제가정교사 역할을 하는 인사는 당안팎에서 2백여명에 이른다.서상목 선거기획본부장이 지근거리에서 이후보에게 조언을 해왔다.KDI부원장 출신인 남상우 경제특보와 허경회 보좌역 등도 가세하고 있다.남덕우 전 총리도 당내 경제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 고문으로 경제브레인 역할을 맡았다. 당 바깥에서는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박영철 금융연구원장,김종기 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유재훈 조흥경제연구소고문,김동원 수원대교수,윤건영 연세대교수,김종석 박원암 홍익대교수,홍기택 중앙대 교수 등이 꼽힌다. ◎국민회의/김원길 의원이 브레인역/장재식·박상규씨도 보좌 김대중 후보는 경제문제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김총재는 김원길 정책위의장의 조언에는 귀를 기울인다.서울상대와 미 웨스트코스트 대학원을 나온 김의장은 대한전선부사장,중앙증권일보사장 등을 거쳤다.이론과 실물경제에 두루 밝아 각종 경제정책개발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김후보의 ‘경제 과외교사’ 역할도 맡고 있다. 국세청차장과 주택은행장을 지낸 장재식 의원은 조세와 재정부문에서 보좌하고 있다.이와 함께 김후보는 중소기업중앙회장 출신인 박상규 부총재으로부터 중소기업 업계의 동향을 듣고 있다. ◎국민신당/한이헌·홍재형 쌍두마차/청계포럼 출신 등이 조언 이인제 후보진영은 청와대경제수석 출신의 한이헌 정책위의장과 경제부총리를 지낸 홍재형 최고위원이 핵심브레인.이계익 전 교통부장관도 경제특보로 가세해 있다. 자문교수들은 대부분 정책위 제2분과의 공조직에 포진해 있다.청계포럼 출신의 핵심측근인 오갑수 국제경영개발연구원장이 정책총괄단장으로서 이들을진두지휘한다.청계포럼 멤버인 윤창현 교수(명지대)와 서승환(연세대) 심지홍(단국대) 심임섭(한신대) 정기웅(계명대) 교수 등이 경제정책 생산라인에 서있다.
  • 안양천변 둔치 말끔히/21개 중·고·환경회원 등 4천명 참가

    ◎서울신문사 주최 서울신문사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한 ‘97깨끗한 한강지키기 안양천 현장캠페인’이 16일 서울 양천구 안양천 일대에서 펼쳐졌다. 올해 마지막 현장캠페인인 이날 행사는 양천구청이 주관하고 교육부 환경부 서울시교육청 한국방송공사가 후원했으며 한국암웨이가 협찬했다. 이날 행사에는 목일중 신서중 양강중 양서중 방원중 방화중 백석중 염창중 양천중·고 영일고 신정여상 한가람고 양천여고 영등포여상 화곡여정산고 마포고 광영여고 양정고 백암고 등 21개 중·고교 학생과 양천구 환경봉사단 및 직능·환경단체 회원 등 4천여명과 양재호 양천구청장,문인식 양천구의회 부의장,황인우 강서교육구청 장학사,이중호 서울신문 환경운동본부장 등이 참가했다. 양천경찰서는 교통정리 및 경비를 맡았고 양천구 보건소는 응급구호를 담당했다. 참가자들은 미리 준비한 장화 쇠갈퀴 집게 등으로 상오 9시30분부터 2시간여동안 오목교와 신정교사이 안양천둔치 곳곳에 널린 플라스틱병 깡통 신문지 담배꽁초 등을 치우며 환경의식을 되새겼다.
  • 국민신당 주요 당직자 프로필

    ◎박범진 사무총장/분석력 특출·직언 잘해 3공때 언론자유실천운동에 가담,해직된 언론인 출신으로 직언을 잘하고 분석력이 뛰어나다는 평.92년 민자당 대선후보 경선때 이종찬 후보 진영에 섰다가 문민정부 출범이후 대변인과 김영삼 총재비서실장을 지냈다.지난 10월말 “이회창 총재가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의혹 폭로를 주도했다”고 폭로한 뒤 국민신당에 합류했다.부인 이정지씨(54)와 1녀.▲충북 제천(57) ▲서울대 정치학과 ▲조선일보기자 서울신문 논설위원 ▲14,15대 의원 ◎한이헌 정책의장/정통관료 출신 경제통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관료 출신의 초선.김영삼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로 90년 4월 민자당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문민정부 출범때까지 김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를 했다.지난 4월 한보청문회때 은행대출외압과 관련,증인으로 나서기도 했다.온순한 인상에 대인관계도 원만한다는 평.부인 이정옥씨(47)와 1남1녀.▲경남 김해(53) ▲서울대 상대졸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경제수석 ◎김학원 대변인/판사 역임한 원칙론자 지난 4·11총선때 서울 성동을에서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을 꺾고 당선된 초선.판사출신답게 원칙을 중시해 이인제 후보의 독자출마를 끝까지 만류하기도 했다.이후보의 서울법대 2년 선배로 경선때 필마단기였던 이후보를 가장 먼저 도왔다.한보청문회때 여당의원 가운데 활약이 돋보였으나 언론감각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부인 거명숙씨(44)와 2남.▲충남 청양(50) ▲공주사대부고 ▲서울 법대 ▲현대중공업 과장 ▲수원지법 판사 ▲변호사
  • 인공 뇌 10년후면 나온다/과기처 ‘뇌연구 기본계획’ 확정

    ◎2007년까지 시청각·음성·추론기능 집중개발/뇌과학에 9,260억원 투자… 2000년 미·일 수준 회사원 K씨는 아침 7시쯤 진한 커피향내를 맡고 잠에서 깨어났다.아내는 이미 출근한 뒤다.어제 저녁의 과음을 고려한 ‘가정부 로봇’이 끓여준 콩나물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승용차에 오른다.승용차에 달려 있는 ‘인공 운전사 겸 비서’가 오늘 일정을 말로 보고하며 첫 방문지인 공장으로 데려다 준다.퇴근후에는 아내와 함께 ‘인공 가정교사 겸 보모’로 부터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듣는다…. 현재 선진국들이 야심차게 추진중인 뇌 연구가 결실을 거둘 것으로 보이는 2010년 전후의 생활상을 그려본 것이다. 과학기술처도 오는 2007년까지 시청각·음성·추론기능을 지닌 인공뇌와 치매·뇌졸중 등의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목표아래 내년부터 10년간 무려 9천2백60억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뇌연구개발 기본계획’(브레인텍 21·Braintech 21)을 최근 확정했다.인류과학의 마지막 남은 영역인 뇌에 본격적으로 도전,그 신비를 벗겨냄으로써 산업혁명과컴퓨터혁명에 이은 ‘제3의 혁명’을 이뤄 보자는 것이다. ’브레인텍 21’은 우선 뇌과학 분야에서 △음성대화컴퓨터 △컴퓨터비서 △컴퓨터가정교사 및 보모 △컴퓨터 자동운전시스템 등의 초기형 인공뇌를 개발할 계획이다.뇌의약학 영역에서는 △뇌질환 유전자 치료법 △뇌질활치료제 및 예방약 △신경손상 억제기술 △시청각 장애 보조기기를 개발하게 된다.앞으로 10년동안 뇌과학연구와 뇌의약학연구에 4천7백63억원,4천4백97억원씩이 들어간다.또한 뇌연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올 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에 ‘뇌과학연구센터’,국립보건원에는 ‘뇌의약연구센터’를 문 열 계획이다. 인간의 두뇌에는 대략 1천억개의 신경세포(뉴런)가 1천개 정도씩 서로 연결된 1백조개 가량의 신경연결고리(시냅스)가 있다.인간의 뇌는 1초에 100차례의 곱셈을 병렬로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세계 최고속 수퍼컴퓨터의 1백만배의 계산 능력에 해당하는 것이다. 뇌연구는 이처럼 복잡한 뇌의 기능 및 정보처리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뇌질환 예방·치료기술을 개발하며 인간의 사고과정과 유사한 지능적 정보처리기술을 만드는 작업. 미국은 지난 89년 7월 상·하원의 합동 의결을 거쳐 부시대통령이 90년대를 ‘뇌의 10년’(Decade of the Brain)으로 선포한 뒤 연평균 8천5억원을 들여 활발한 연구작업을 펴오고 있다.국립보건원(NIH) 과 국립과학재단(NSF) 주도로 ‘인간 잠재력을 위한 뇌연구 10년’이란 보고서를 발간했으며 올해부터는 신경망회로와 같은 공학적 응용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은 21세기를 ’뇌의 세기’(Century of the Brain)로 정해 97년부터 20년간 ‘뇌의 이해’‘뇌의 보호’‘뇌의 창조’에 대한 장기적인 연구를 할 계획이다.이화학연구소안의 ‘뇌과학총합연구센터’가 중심이 돼 인간기능시스템 개발과 뇌질환 극복을 목표로 삼고 있다.앞으로 20년간의 연구에 들어갈 예산은 16조원. 과기처 송옥환 연구개발조정실장은 “뇌연구 분야는 세계적으로 태동기에 있으며 국내외 격차도 비교적 적다”면서 “적절한 지원만 따라준다면 2000년 초에 미국·일본 수준을 따라 잡을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대 신입생 61% “과외받았다”/학교생활연 설문조사

    ◎43% “사전지식없이 과 선택”,38% “전과 의향” 서울대 신입생 10명중 6명은 합격을 위해 과외 지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소장 김상균)는 29일 올해 신입생 4천217명(남 3천55명,여 1천1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울대 신입생의 일반특성과 심리특성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61.1%가 입시를 위해 과외지도를 받은 경험이 있었으며 과외지도 형태(복수응답)는 학원수강이 88.6%,개인지도 41.6%,그룹지도 28.2%,입주 가정교사 5% 순이었다. 단과대별 과외지도 경험은 음대와 미대가 각각 83.3%,77.8%로 상대적으로 많았고 의예과 71.7%,경영대 68.8%,법대 66.5% 순이었으며 농생대가 43.8%로 가장 적었다. 과외지도 비율은 95년 70.8%,96년 60.8%였다. 학과 선택시기는 ‘고 3년부터 원서 접수전’이 44.4%,‘원서접수 기간중’이 13.4%로 절반 이상이 입시에 임박한 시점에서 학과를 선택,적성보다는 실력수준에 따라 진학한 것으로 조사됐다.반면 ‘고 1년∼고 2년’ ‘중학교 이전’에 선택한소신지원자는 각각 26.6%,14.4%에 불과했다. 전공에 대한 사전지식을 묻는 항목에서 39.7%의 학생이 ‘알지 못하는 편이다’(35.9%) ‘전혀 모른다’(3.8%)고 답했다.이 때문에 37.7%의 학생이 전공 변경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 다방 애환(외언내언)

    차를 마시는 장소로서의 다방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겨난 것은 신라시대로 추정된다.경주 창림사지에서 출토된 와당에 새겨진 「다연원」이란 명문이 그 근거다. 다방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시대.이 때의 다방은 「진다」의식 등 차에 관한 모든 일을 주관하는 국가기관의 이름이었다.「진다」의식이 「다례」로 이름이 바뀐 조선조 후기엔 국가기관으로서의 다방은 유명무실해진다. 커피를 마시는 현대적 의미의 다방이 처음 선보인 곳은 독일계 여인이 1902년 고종이 하사한 땅에 세운 손탁호텔.고종은 처음 커피를 마신 한국인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꾸민 최초의 다방은 「장한몽」을 연출한 영화감독 출신의 이경손이 1928년 관훈동에 개점한 「카카추」.이후 1930년대 천재시인 이상이 「제비」 「식스나인」 등을 열어 화제가 된바 있듯이 한동안 다방은 연극영화인·화가·문인 등 예술가들이 경영하기도 하고 주요 고객이 돼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명동의 「갈채」다방 같은 곳은 한국문학사가 생생하게 만들어지던 현장이었다. 다방이 예술가나 특별한 사람들의 장소에서 대중적인 만남의 장소로 바뀐 것은 60∼70년대.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차 한잔값을 들고 세월을 보내는가 하면 연인을 기다리는 남녀가 출입문을 초조하게 지키기도 하고 가난한 대학생이 가정교사 광고를 내고 전화 오기를 기다리던 곳이었다.그당시 달걀 노른자가 들어간 「모닝」,도라지 위스키를 한두방울 떨어뜨린 「위티」 등 비싼 차를 시킨 손님은 마담과 레지의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80년대 중반 이후 카페와 레스토랑에 밀리면서 다방은 쇠퇴기를 맞는다.90년대 들어서는 넓은 유리에 탁 트인 공간의 커피전문점이 등장하고 기존 다방들은 갈곳 없는 노인들의 장소가 돼버렸다.다방업중앙회가 「다방」이란 간판을 「휴게실」로 바꾸기로 했다 한다.한국만의 독특한 다방문화가 이렇게 막을 내린다.세태 변화의 결과지만 최소한의 여유마저 잃은듯 해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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