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정교사
    2025-12-28
    검색기록 지우기
  • 직장인
    2025-12-28
    검색기록 지우기
  • 차범근
    2025-12-28
    검색기록 지우기
  • 화장실
    2025-12-28
    검색기록 지우기
  • 피해자
    2025-12-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03
  • 靑참모진 해외공관 ‘러시’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교체는 없다.”고 밝힌 지 11일만에 조윤제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주영대사로 내정된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또 미얀마 주재 대사에는 이주흠 청와대 리더십 비서관이 내정됐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김우식 실장의 청와대 참모진 교체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내정된 데 대해 “대통령께서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교수 출신의 조윤제 보좌관은 참여정부 출범 때부터 노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해왔다.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은 주중 대사와 국가정보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김하중 주중 대사의 교체에 대해서는 유임과 교체설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청와대 참모들이 해외 공관장으로 이동하면서 이태식 주영대사는 이날 외교부 차관으로 ‘영전’했다. 차관보에 송민순 기획관리실장이, 기획관리실장에는 김성환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가 내정됐다. 외교정책실장에는 천영우 주유엔 차석대사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영진 차관은 주 유엔대사, 이수혁 차관보는 주 독일대사, 이선진 외교정책실장은 주 인도네시아 대사로 옮긴다. 외교부 김영석 구주국장은 주 노르웨이 대사에 내정됐다. 논란을 빚은 북핵 전담 대사 자리는 신설하되, 조태용 현 북핵 외교기획단장이 직함을 갖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빠르면 28일 이같은 인사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정현 구혜영기자 jhpark@seoul.co.kr
  • [학교소식]

    [학교소식]

    ●5·6학년생 김치담그기 솜씨겨뤄 독립문초등학교(www.dnm.es.kr)는 15일 오후 1시 30분∼3시30분, 학교 과학실에서 ‘어린이 김치요리 경연대회’를 열었다.5∼6학년 8개팀 50여명이 참가해 배추김치, 동치미, 호박김치, 깍두기, 롤 김치, 보쌈김치 등을 직접 만들어 요리 실력을 뽐냈다. 이날 경연대회에는 보쌈김치와 호박김치를 만든 5학년 3반 ‘김치야 맛있어져라’(윤소진 외 5명)팀이 교장·교감·영양사·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좋은 평가를 받아 최우수 팀으로 선발됐다. 독립문초등학교 학생들은 이날 담근 김치를 학교에 일주일 정도 보관한 뒤 김치가 알맞게 익으면 다시 시식회를 열 예정이다. ●교사모집… 영어·미술등 특기자 우대 동산초등학교(seoul-dongsan.es.kr)에서 초등교원을 모집한다. 만 35세 미만의 정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사람으로 2005년 대학 졸업 예정자도 응모할 수 있다. 이력서와 교원자격증 사본,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내년 1월20일까지 중구 신당 4동 333의579 동산초등학교 앞으로 우편 접수해야 한다. 영어·컴퓨터·미술 특기자를 우대하며 최종 합격자는 내년 새학기부터 근무한다.2233-5480. 한편 동산초등학교는 지난 14∼16일 사흘 동안 전교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상담회를 열었다. 이 학교는 해마다 2∼4차례 전교생 학부모가 참여하는 담임교사 개별 면담을 실시해왔으며, 담임 교사들은 학부모들로부터 촌지는 물론 커피 한잔도 대접받지 않는다는 철칙으로 학부모 상담을 진행해왔다. 이번 상담에는 95%의 학부모가 참여해 지난 한해 동안 자녀들의 학업성취도와 겨울 방학 스스로 공부법 등에 대한 세심한 상담을 받았다. ●김완기 부교장 세번째 시집펴내 리라초등학교(www.lila.es.kr) 김완기 부교장은 최근 시집 ‘늘 함께 있는 이여’를 발간했다.94년 해동문학으로 등단한 김 부교장은 학교 생활 중에 써온 시 100여편을 엮어 세번째 시집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각 시를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로 나누어 계절마다 20여편의 시를 담았다. 김 부교장은 “자연에 4계절이 있듯이 인생에도 4계절이 있어 삶의 그리움이 변화하고 깊어지는 모습을 시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예성출판사 6000원. ●양지 리조트서 스키캠프 개설 동광초등학교(www.dongke.es.kr)는 27일(월)∼29일(수) 2박3일 동안 용인 양지리조트에서 스키 캠프를 개최한다.3∼6학년 학생 220여명이 참여하며 스키 실력에 따라 상·중·하 그룹으로 나누어 스키 강습을 받는다. ●서울시교육상 8개부문 시상식 서울시 교육청(www.sen.go.kr)은 제26회 서울교육상 수상자 8명을 선정하고 지난 18일 오전 11시 본청 강당에서 시상식을 가졌다. 서울교육상 유아교육 부문은 문성유치원 최완영씨, 초등교육 부문은 신창현 전 서울성북교육청 교육장과 임갑섭 전 서울강동교육청 교육장이 수상했다. 특수교육 부문은 신희영 광진학교 교장, 중등교육부문에는 김선명 서울공고 교장과 한광수 은광여고 교장, 사회교육 부문은 윤현중 신영중 학교운영위원, 교육행정분야는 김태숙 서울학교 안전공제회 사무국장이 수상했다.
  • [일요영화]

    [일요영화]

    ●데드라인(KBS1 오후 11시50분) 리자 마크룬드의 베스트셀러 ‘폭파범’을 원작으로 한 스릴러물. 스릴러 요소뿐만 아니라 신문사 기자들의 생활도 실감나게 그려 평론가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2001년 스웨덴의 아카데미상 격인 ‘황금벌레’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작품. 콜린 너틀리 감독, 헬레나 베르그스트롬, 올란 람베르그, 브래스 브란스트롬 출연. 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둔 스톡홀롬. 그러나 난데없는 폭탄테러로 올림픽 경기장이 완전히 파괴되고, 올림픽 개최 담당자인 크리스티나도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이 가운데 신문기자 애니카는 두서없는 단서들 속에서 연관성을 잡아내 점점 진실에 접근해 간다. 그러나 범인은 두 번째 테러를 계획하고 애니카도 위기에 빠지는데….119분. ●애나 앤드 킹(SBS 오후 11시45분) 율 브린너, 데보라 카 주연의 유명한 뮤지컬 ‘왕과 나’를 앤디 테넌트 감독이 1999년 리메이크했다. 조디 포스터, 주윤발 주연. 태국과 버마 접경에 위치한 사이암 왕국의 뭉쿳 국왕은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야욕 속에서 독립을 지키는 길은 근대화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자식들의 서구화교육을 위해서 영국의 미망인 애나를 가정교사로 초빙한다. 애나는 50명이 넘는 뭉쿳의 자식들을 가르치며 사사건건 고집센 뭉쿳 국왕과 충돌을 벌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뭉쿳에게 점점 연민을 느끼게 된다.147분.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 ‘사운드 오브 뮤직’ 후손들 서울서 감동의 ‘도레미송’

    ‘사운드 오브 뮤직’ 후손들 서울서 감동의 ‘도레미송’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실제 주인공인 조지 폰 트랩 대령의 후손들인 폰 트랩 중창단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무대에 선다. 19일 오후 7시30분 공연을 갖는 소피아(15) 멜라니(14) 아만다(12) 저스틴(9) 등 네 아이는 모두 폰 트랩-마리아 부부의 증손자·손녀들.영화에서 커트로 나오는 베르너 폰 트랩의 손자·손녀들이다. 영화에서처럼 폰 트랩 대령은 7명의 자녀,가정교사 마리아와 함께 나치 치하의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중창단은 1997년 할머니의 생일을 기념해 열린 가족모임에서 함께 노래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세계 유명 음악축제와 TV 프로그램,자선공연 등에 출연하면서 맑은 음색과 아름다운 화음으로 영화의 감동을 다시금 전하고 있다.미국 9·11 테러를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뉴욕 그라운드 제로 콘서트의 무대에도 오른 바 있다.지난해 1월부터 음반도 발매,지금까지 3장의 음반을 냈다. 이들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음악부터 미국과 유럽의 다양한 고전음악과 포크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한다.이번 무대에서는 최선용이 지휘하는 구리시교향악단과 함께 ‘도레미송’등 영화 속에 등장했던 주옥 같은 곡들과 한국 가곡,동요들을 들려준다. 한국여성재단이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나눔 행사의 일환으로 마련한 무료공연으로,장애인 등 소외 이웃들도 관객으로 초청할 예정이다.(02)3472-4480.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사교육 “승리조 가자” 유치원부터 경쟁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日사교육 “승리조 가자” 유치원부터 경쟁

    일본의 사교육 열풍이 뜨겁다.자녀수가 적어지는 이른바 소자화(少子化)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자녀교육에 ‘총력투자’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특히 사회 전반에 ‘승리조’ ‘패배조’로 가르는 ‘2대8의 편가르기’가 심화되면서 ‘부익부 빈익빈’식인 교육혜택의 양분화도 위험수위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자기 처지를 불만 없이 수긍하는 일본의 전통 때문에 아직 집단적인 반발로 이어지지 않고 있으나,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이 장기불황의 끝이 보이지 않으면서 교육총력투자가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무리해서라도 자녀교육에 투자,좋은 직장이나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란 해석이다. 일부 명문 사립대학은 유치원에서부터 부속 초·중·고교가 있어 한번 들어가면 특별한 하자가 없는 경우에는 해당 대학에 특별 전형되는 특혜가 주어져 경쟁이 치열하다.비용은 공립에 다닐 때보다 2∼3배 많이 든다. ●“승리조에 반드시 끼어라” 자녀가 유명 사립중·고교에 다니고 있을 경우 직장의 해외 근무명령도 포기할 정도다.귀국해 다시 해당 학교로 복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일본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자녀를 계속 사립학교에서 교육받게 하고,계열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 해외발령도 기피하는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승리조에 끼기 위한 경쟁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된다.올초 명문 사립대학 부속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 일부 학부모들이 수백만엔의 기부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며 문제가 됐다.초등(소)학교는 사립의 비율이 0.8%여서 큰 이슈는 되지 않고 있다. ●12세 어린이의 입시 강박감 중학교 입시경쟁은 뜨겁다.전체 중학교의 6.3%인 사립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5,6학년 때부터 과외교육 열기가 뜨겁다.초등 6년인 12세부터 승리조 끼기 경쟁이 시작돼 ‘12세의 충격’이란 말도 생겼다. 최근 한 조사에서 도쿄도 내에서 사립학교에 가기를 바라는 초등학교 5,6년생(12세) 중 70% 이상이 여름방학 때 과외학원을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고교도 사립 비율이 24.2%로 비교적 적다.중학생들 사이에서도 1학년 때부터 사립고교나 명문 도립고에 가기 위한 ‘과외열풍’이 뜨겁다.도쿄 도심의 한 공립중학교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이 수학과 영어 등 과외학원에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비용도 한 과목당 3개월에 7만엔 정도로 만만치 않다.사립 중·고교에서도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과외교육은 예외가 아니다. ●주쿠(塾),기숙학교 우후죽순 일본의 과외학원이 우후죽순격이다.명문 대학생 가정교사에서부터 기업형 1대1 학원까지 다양하다.종합반 과외학원비는 월 6만∼7만엔 수준이다.명문대생의 과외비는 시간당 2000∼3000엔.기숙사가 달린,과외수요까지 해결하는 고교의 교육비는 연간 200만∼300만엔이다. 아들을 사립고,명문 사립대를 졸업시킨 고마요지는 “공립학교는 수준차가 있고,그에 따라서 이지메 문제도 있고 해서 약간 무리를 해서 사립학교에 보냈다.”며 “놀랄지도 모르지만 학비가 고교 1년에 300만엔까지 들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부작용도 속출,미래가 더 걱정 자녀 과외교육을 위해 시간제 등 맞벌이를 하는 부부가 증가하고 있다.결혼 뒤에도 양가 부모들로부터 지원도 받는다.연간 1000만엔 이상까지 드는 의과대를 보내거나,600만엔 안팎이 드는 미국 등 해외 유명 사립대학에 유학시키기 위해서다. 일본 월급쟁이들의 연평균 소득은 400만엔대로 혼자 벌어 사립교육을 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그래서 30∼40대의 직장인 중에서도 올해 설치된 법과대학원에 다시 가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고 한다. 초등생들도 고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수험 전쟁을 치르느라 수면부족과 피로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지난 여름 나가사키현 초등 6학년 여학생의 동급생 살해사건도 가해 여학생의 학교 성적에 대한 고민이 원인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뒤 나가사키현 청소년대책긴급회의가 현내 도·시부의 초등학생 5,6학년과 중학생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43.2%가 공부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고 응답할 정도로 초등학교부터 공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는 상태다. 우치다(50·여)는 “어른들이 승리조,패배조로 가르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일 것”이라면서 “행복은 각자의 분수에 맞는 역할을 찾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본다.”며 과잉 교육경쟁을 걱정했다. ●명문대 입학,출세의 보증수표인가 출세의 지름길로 인식되는 사법시험 합격자의 명문대 집중현상은 심하다.2003년도 시험에서 도쿄대 201명,와세다대 174명,게이오대 123명,교토대 116명,주오대 104명 등이었다.전년에도 추세는 비슷했다. 국가공무원 채용 1종시험도 도쿄대 488명,교토대 200명,와세다대 118명,게이오대 82명,도후쿠대 75명 등이었다.또 명문대학은 일류기업 취업률도 높아 명문대 추구 현상을 강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교육 총력투자가 성공을 보장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사회구조가 다양해졌고,세계적인 경쟁이 가열되고 있어 ‘명문대 출신=출세보장’이란 등식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taei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中 대학생 아르바이트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中 대학생 아르바이트

    중국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 문화(兼職文化)’가 바뀌고 있다.개혁·개방의 물결이 중국 대륙을 휩쓸면서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영역까지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전통적으로 가정교사나 번역 아르바이트 등에서 최근엔 보험대리인,PC방 관리원,시장조사연구원은 물론 ‘창업 대학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여기에 황금 만능주의와 성(性) 개방 풍조까지 가세해 이른바 ‘링레이젠즈주(類兼職族·특별 아르바이트족)’까지 출현했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충칭(重慶)사범대학 4학년생인 장카이이(張凱一)는 보험 대리인이다.보통 아르바이트생과 달리 그는 10여명의 부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그는 “졸업에 앞서 사회 경험으로 시작한 보험 업무가 이제 직업이 될 것 같다.”며 활짝 웃는다. 우한(武漢)대학교 3년생인 정빈(鄭斌)은 올해초 학교 근처에 호프집을 열었다.친구들과 돈을 모아 자금을 만든 그는 “대학교가 학생들의 자주적 창업을 돕는 차원에서 일정한 금액을 빌려 주고 있다.”고 밝혔다. 창업은 대학생 아르바이트의 새로운 영역이 되고 있다.국가에서도 ‘근공조학(勤工助學·일을 통해 학비를 조달)’의 차원에서 대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대학교 관련 규정을 고치고 있다. 국가에서도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차원에서 아르바이트가 사회 경험과 실천능력을 키워 전공지식을 강화시킨다는 입장이다.취업난에 직면한 중국 대학생들의 실업구제도 겸하는 일석이조를 겨냥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 베이징 인민대학교의 계산기학과(컴퓨터학과) 3년생인 우옌핑(伍燕平)은 PC방에서 네트워크 관리원으로 일한다.보수는 많지 않지만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로 활용하면서 공짜로 온라인 게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더없이 좋은 돈벌이라고 즐거워한다. 중국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 다원화 경향은 목적의 변화에서 기인된 측면이 크다.과거에는 학비와 용돈 벌기 등 주로 경제적 문제였지만 지금은 취업난에 직면한 상황에서 대학 재학 때부터 사회 진출을 위한 예비 적응 수단이 된 것이다.대학당국도 아르바이트가 학생들의 자주적인 도전 의식을 키운다는 점에 주목,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피라미드 판매 피해 속출 하지만 이런 순기능과 달리 중국 사회에 만연된 물신(物神)주의 풍조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영역까지 침범했다.최근 충칭에서 적발된 ‘어우리만(歐麗曼)’ 촨샤오(傳銷·다단계 피라미드 판매) 사건이 대표적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던 중국 13개 대학의 2000여명의 대학생들은 프랑스 어우리만 화장품 회사의 ‘회원’으로 가입,주로 동료 대학생들과 친척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다가 공안에 철퇴를 맞았다. 주범으로 체포된 허난성(河南省) 농촌 출신 친융쥔(秦永軍)은 ‘아르바이트 소개’나 ‘컴퓨터 전시회 참가’ 등의 명목으로 외지 출신 대학생을 모집,집단 합숙을 시키면서 회원으로 끌어들였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1인당 3350위안(약 50만원)을 내고 화장품 한 세트를 구입해 피라미드 회원 자격증을 취득한 뒤 신규 회원 유치 실적이 좋으면 3개월 만에 2만위안(300만원)을 벌 수 있다며 대학생들을 유혹했다.학생들도 직접판매 방식의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충칭시 공안국 관계자는 대학생들이 ▲눈앞의 이익 추구 ▲보다 나은 생활에 대한 높은 기대감 ▲사회경험 부족 등으로 다단계 판매망의 함정에 쉽게 빠져든다고 지적했다.정샤오볜(鄭曉邊) 화중(華中) 사범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취직이 안된다고 한숨 짓는 중국 대학생들에게 다단계 판매는 벗어나기 어려운 유혹”이라고 분석했다. 사건 직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대학생을 상대로 피라미드 판매조직 가입의 위험성에 대해 철저한 교육을 지시할 정도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부정적’ 아르바이트 출현 일부 대학생들의 경우 ‘낮과 밤’의 변화가 너무나 현격하다.대학생 신분과는 전혀 동떨어진 가수나 모델,심지어 ‘접대부’로 나서는 이른바 ‘링레이젠즈주’가 출현한 것이다. 술집에서 판촉요원으로 일하는 바메이( 妹)와 부자들과 놀아주는 페이주(陪族·동반족)들도 비슷한 유형이다. 바메이의 면접조건은 간단하다.어리고 외모가 예쁘면 무조건 ‘오케이(OK)’다.호프집이나 카페의 바메이는 보통 저녁 7시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월급은 300위안(4만 5000원) 안팎이지만 실적이 좋으면 보너스도 두둑하다.맥주 1병에 1위안,포도주는 10위안을 번다. 하지만 일부 바메이들은 손님과 합석해 술을 마시고 일부는 퇴근 후 손님들과 ‘2차’를 가는 경우도 있다.베이징 중앙재정대학교 왕즈산(王志山) 교수(사회학과)는 “2년전부터 등장한 바메이는 시장경제하의 새로운 판촉 아르바이트”라며 “사회의 다양화와 개성화란 측면도 있지만 성적 서비스가 가미됐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동반 아르바이트’ 성황 최근 학원이나 대학가 주변의 게시판에 등장하기 시작한 ‘페이광가오(陪廣告·동반광고)’가 주목을 받고 있다. ‘페이랴오(陪聊·채팅 동반)’‘페이완(陪玩·놀이 동반)’ ‘페이창거(陪唱歌·가라오케 동반)’ 등 내용도 다양하다.일부 대학교의 여학생 숙소 앞에는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여학생 구함.시간당 보수는 200위안’,‘함께 수영할 수 있는 여학생을 찾습니다.충분한 보수 보장’ 등의 의미심장한 광고도 심심치 않다. 시간당 15위안(2250원)∼20위안(3000원)을 받는 가정교사나 5위안(750원)∼10위안(1500원) 안팎의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와 비교하면 동반 아르바이트 여학생에게 주는 시간당 200위안(3만원)은 엄청난 금액이다. 이런 구인광고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혁·개방 이후 ‘돈벼락’을 맞은 졸부들이다.이들은 동반자의 조건으로 가장 먼저 쾌활한 성격과 외모를 따지지만 명문대 여대생을 더욱 선호한다.졸부들끼리 ‘누구의 동반자가 학력이 더 좋고 얼굴이 예쁜가?’를 서로 비교하며 자랑한다는 것이다. 중국신문사는 “동반 아르바이트생의 ‘수고비’는 천차만별이지만 하루에 1000위안(15만원)까지 버는 학생들도 많다.”며 “이들이 봉건시대에나 존재했던 부자들의 ‘체(妾·첩)‘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질타했다.동반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여대생은 “집안이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매번 돈을 받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중국신문사는 “일부 여대생들이 주말에 호화 승용차에 실려 다니는 현상은 이미 보편화됐고 같은 과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전했다.일부 학생들은 “동반 아르바이트가 위법도 아니고 외모를 이용해 돈을 버는데 무슨 문제”냐고 항변하지만 ‘인격을 돈과 바꿀 수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oilma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 우샤오후이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 우샤오후이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아르바이트를 통해 부모님의 돈버는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이징(北京)의 대외경제무역(對外經濟貿易) 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저우샤오후이(周曉輝·21·여)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사회적 경험을 쌓고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예찬론’을 편다. 베이징 차오양취(朝陽區) 야윈춘(亞運村)에 위치한 켄터키치킨(肯德基·KFC) 체인점에서 일하는 그녀는 시간당 6위안(900원)을 받고 수업 중간이나 방과 후에 보통 하루 2∼3시간씩 일한다.한달을 꼬박 일해도 가정교사보다 수입이 적어 보통 500위안(7만 5000원)∼600위안(9만원)의 수입이 생긴다고 한다.일년 학비가 6000위안(90만원)과 비교해도 적은 돈이지만 지난해 성탄절 때 카드 판매를 시작으로 연예인들의 콘서트나 대형 체육대회에서 짬짬이 생수도 팔며 세일즈 기법을 익히고 있다고 한다.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인근의 농촌 출신인 그녀는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에 한계도 있지만 졸업 후 직접 회사를 차려 돈을 벌기 위해선 대학생 때부터 사회경험을 쌓고 사회를 직접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라고 야무진 의지를 밝혔다. 최근 일부 여대생들의 ‘동반 아르바이트’에 대해 “돈도 좋지만 자신의 직업과 연계시키는 분야가 가장 좋을 것”이라며 “다른 사람의 세계관에 관여하고 싶지 않지만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oilman@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中대학생 아르바이트 의식구조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대학생들은 젠즈(兼職·아르바이트)를 어떻게 바라볼까. 중국 사회과학원의 최근 ‘중국사회조사 보고’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희망하는 아르바이트로 22%가 컴퓨터 회사를 지목했고,19%가 시장조사 연구원,13%가 영업직을 선호했다.가정교사를 희망하는 대학생은 4%에 불과했다. 대학교 1년생의 아르바이트 비율은 13.5%이며 2,3학년은 점차 높아지는 추세이고 대학 4학년의 경우 41.2%에 달한다. 아르바이트의 목적으로 사회에 대한 경험(59.9%)이 1위를 기록했고,학비와 용돈 조달(24.1%),향후 취업 기회 마련(12.5%) 순으로 나타났다.학과 지식의 실천은 3.5%에 불과했다. ‘아르바이트에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적어도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74%)는 반응과 함께 ‘가치가 없다.그 시간에 책이라도 읽는 것이 낫다.’는 답변도 14%가 나왔다. 아르바이트생의 76.9%가 주말 휴식 시간을 이용하고 있다. 보수는 50% 정도가 시간당 15위안을, 15.4%가 시간당 30위안을 받고 있다.보수는 적지만 88.4%가 자신의 선택에 만족감을 표시했다.아르바이트를 찾는 과정은 46.1%가 친구 또는 친척의 추천에 의한 것이고 26.2%가 스스로 구했다. oilman@seoul.co.kr
  • ‘시민의 발 30년’ 서울지하철

    ‘시민의 발 30년’ 서울지하철

    서울지하철이 오는 15일로 개통 30주년을 맞는다. 서울지하철은 1974년 8월15일 청량리∼서울역 구간에서 도심 대중교통수단으로 첫 선을 보인 뒤 30년만에 서울시내 하루 유동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1000여만명을 실어 나르며 ‘시민의 발’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하지만 지하철은 때때로 경제난과 신병을 못이긴 서민들이 선로에 몸을 던지거나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다.수천억원에 이르는 빚더미를 안고 달리는 ‘애물단지’이기도 하다.‘서울인서울’은 지하철 개통 30주년을 맞아 콩나물시루 출근길과 심야 승객들의 퇴근길 풍경은 물론 볼거리 많은 역사와 지하철 사람들 등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서울지하철 24시간을 집중취재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30년만에 총연장 36배…세계 4위로 민족의 잔칫날인 1974년 제29회 광복절 때 온 국민들을 텔레비전 앞에 끌어모았을 정도로 관심을 끌며 첫 궤도를 밟았던 지하철은 그 뒤 30년 동안 서울은 물론 수도권 도심의 대동맥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난 2002년 기준으로 서울시내를 오간 교통인구는 2968만명이다.이 가운데 지하철 이용자는 모두 1025만명이다.수송 분담률이 34.6%로 단연 1위다.반면 승용차는 26.9%,버스는 26%,택시는 7%에 머물고 있다.나머지는 오토바이,화물차,특수차 이용자로 5.1%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자 서울 지하철은 8개 노선에 263개 역사와 전동차 3508량,노선거리 286.9㎞,연간 수송인원 22억명을 자랑한다.운행거리로 따지면 영국 런던,미국 뉴욕,일본 도쿄에 이어 세계 4위다.수송인원으로는 브라질 상파울루,도쿄 다음으로 많다.고작 7.8㎞ 구간으로 첫 발을 뗀 지 반세기도 안돼 초고속성장을 거듭했다.74년에 견줘 운행거리는 약 36배,역사 수는 29배로 늘어났다.하루 운행횟수도 296차례에서 4297차례로 15배 늘었으며 하루 수송인원은 23만명에서 50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땅 밑을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시 3000만 국민의 눈길을 끌며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등장했던 지하철도 초기 몇년간의 수송 분담률은 3%대에 불과했다.노선이 짧은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시민들은 최도심 일부 구간만 움직이는 지하철이 신기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버스로 갈아타는 불편을 참기 힘들어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국가의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 현상이 극심해졌다.서울시는 ‘콩나물시루’를 떠올리게 하는 시내버스 등 만성적인 교통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호선 개통 10년만인 84년 5월 강남과 강북을 원형으로 잇는 2호선 54.2㎞가 마무리됐다.이듬해인 85년 10월엔 서울을 X자로 관통하는 3·4호선 54.5㎞가 건설됐다.90년대 들어서도 3호선 지축역을 비롯해 양재∼수서간 연장구간,4호선 상계∼당고개와 사당∼남태령간 연장구간, 2호선 신정지선이 잇따라 개통됐다.이에 따라 20주년 때인 94년에는 총연장 131.5㎞에 114개의 역을 보유하는 위용을 뽐냈다. 96년 12월에는 방화∼상일·마천 52㎞를 잇는 5호선이,99년 7월엔 암사∼모란 구간의 8호선 17.6㎞에 지하철 길이 열렸다.이어 2000년 8월 장암∼온수구간의 7호선 42㎞,이듬해 3월에는 6호선 응암∼봉화산 31㎞가 개통됐다.마침내 2002년 4월엔 9호선 김포공항∼반포 25.5㎞가 착공됐다.바야흐로 3기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화려함 뒤에는 씁쓸한 기억도 많이 담겨 전동차도 처음에는 선풍기가 달린 전동차로 출발했으나 지속적인 투자로 냉방장치가 탑재된 최첨단 제어방식 ‘VVVF’ 전동차를 도입했다. 운임제도는 개통 초기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승차거리 만큼 부담하는 거리비례제였으나 3·4호선 개통 이후 지하철 규모가 커지면서 구역제로 개편됐다.역무자동화시스템(AFC)을 도입,승차권 발권에서 개·집표 처리까지 모든 과정을 전산화해 지하철 운영 시스템을 몇 단계 높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90년대 말 이후 경제난 등으로 재원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하철마저 ‘동맥경화’ 현상을 빚고 있다.게다가 수천억원에 이르는 부채 더미에 올라앉으면서 원래 목표인 분담률 50%에는 크게 밑돌고 있다. 질적·양적 성장 뒤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82년 현저동 지하철건설 공사장 붕괴사고,84년 영등포구청역과 89년 교대역 침수피해,89년 지하철노조의 3·16파업 등이다. 더군다나 공공성을 띠었다는 점 등의 부담 때문에 요금을 올려받기 힘들어진 데다 노선연장 등 추가건설에 따른 투자로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각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스크린세이버 등 안전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수천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야 하는 등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전력 사용량 ‘구리+의정부시’와 비슷 서울지하철공사와 철도청은 지하철 30년을 이끈 ‘개국 공신’임에도 서울도시철도공사라는 ‘신진 세력’의 등장으로 전동차 등 시설 노후화에 대한 세간의 ‘쓴소리’에 더욱 익숙하다.지하철에 얽힌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고물철’ 지적에 ‘벙어리 냉가슴’ 도시철도공사의 5∼8호선에서 운행 중인 전동차 1564량 가운데 10년 이상 지난 것은 한 량도 없다. 그러나 1∼4호선에는 10년 이상 된 전동차가 지하철공사의 경우 1944량 중 75.4%인 1466량,철도청은 1213량 중 45.6%인 553량이다.특히 20년이 넘은 전동차가 14.8%(469량)로 이들 대부분은 1·2호선에서 운행되고 있다. 까닭에 전동차에 설치된 모니터로 영화도 볼 수 있는 3∼8호선과 달리 편의시설이 부족한데다 이용객이 많아 ‘콩나물 시루’같은 1·2호선의 승객들은 불만이 아닐 수 없다.철도청 관계자는 “도시철도법은 전동차 교체를 위한 내구연한을 25년으로 못박아 임의로 교체할 수 없는 실정”이라면서 “다만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비와 시설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지하철공사 관계자도 “2002년까지 신형 전동차의 70∼80% 수준이던 구형 전동차의 냉방기 용량을 높여 1·4호선에서는 5·6번째 전동차를 ‘약냉방 차량’으로 지정,운행할 정도”라면서 “또 2006년까지는 모든 차량의 실내인테리어도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하철은 전기먹는 하마? 전적으로 전기에 의존해 전동차가 움직일 뿐만 아니라,대부분 지하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에 불도 밝혀야 하는 만큼 전력사용량도 엄청나다. 지하철공사는 한달 평균 7100만의 전력을 사용한다.이는 서울시 전체 전력사용량의 2.7%에 해당하며,구리시나 김포시의 전략사용량과 맞먹는다.도시철도공사의 전력사용량은 한달 평균 5500만로 의정부시의 사용량과 비슷한 수준이다.연간 전기요금으로 지하철공사는 670억원,도시철도공사는 484억원을 지불하고 있다. 지하철공사는 상대적으로 전력 수요가 큰 노후 전동차가 많아 전체 사용량의 71%를 전동차 운행에 쓰고 있는 반면,최신식 역사에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도시철도공사는 55%만을 전동차 운행에 들이고 있다. 또 지하철역은 시민들이 다닐 수 있는 땅 밑 가장 깊은 곳이다.이 중 경기 성남시에 있는 8호선 남한산성역이 지상에서 지하철 승강장까지의 직선거리가 건물 15층 높이에 해당하는 56m로 가장 깊다.서울시내에서는 지하철 5호선 신금호역이 46m로 가장 깊고,노선별로는 ▲1호선 종로3가역 13m ▲2호선 이화여대입구역 30m ▲3호선 충무로역 28m ▲4호선 회현역 23m 등이 깊다. ●전력공급·통행방식도 차이 양 공사가 운영하는 구간에서는 1500V의 직류(DC) 전기가 흐르는 반면,철도청 운영 구간은 2만 5000V의 교류(AC)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까닭에 1호선 서울역∼남영역과 청량리역∼회기역,4호선 남태령역∼선바위역 등 3곳은 전력 공급방식 전환을 위해 전기가 흐리지 않는 ‘절연구간’이 존재한다.철도청 관계자는 “전기의 특성상 지상에서는 교류가,지하에서는 직류가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면서 “순환운행하는 2호선을 제외하면 1호선 전동차는 좌측 통행을,3∼8호선 전동차는 우측 통행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승강장 길이는 1호선 서울역에서 청량리역에 이르는 9개역이 210m,나머지 1∼4호선의 역은 205m,5∼8호선은 165m 등이다.전동차 길이가 20m이기 때문에 1∼4호선은 10량,5∼8호선은 8량이 한 편성을 이루고 있다. 또 지하철에서 나는 ‘덜커덩’ 소리는 전동차 바퀴가 선로의 연결 부위를 지나면서 발생한다.지하철공사 관계자는 “선로는 20m가 기본단위지만,용접을 통해 선로의 길이를 늘린다.”면서 “하지만 계절에 따른 선로 팽창률과 선로의 직선화 정도 등을 감안,지역에 따라 선로 길이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선로 한개의 길이가 가장 긴 구간은 구파발역∼연신내역 사이로 1360m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지하철역엔 뭔가 숨었다 푹푹 찌는 날씨를 보인 7일 오후 4시 4·7호선 이수역 지하 1층에서는 경복고 록밴드 ‘사육신’의 공연이 지나가는 이들의 발목을 붙잡아 놓고 있었다. 이어 6시엔 ‘메트로 실버악단’이 트럼펫·기타·아코디언·하모니카 연주로 눈을 휘둥그레하게 했다.피아노까지 동원했으니 놀랄 만도 하다. 6호선 녹사평역 지하에서는 공짜로 사랑하는 이와 백년가약을 맺을 수 있다.역사 유리지붕으로부터 29m 아래까지 햇살이 들어오고 벽면은 갖가지 작품과 유리로 장식돼 황홀한 느낌마저 풍긴다.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는 시민들이 쏟아져 지하 4층에 폐백실,지하 2층에 신랑·신부 대기실을 만들었다.청소·전기료도 받지 않는다.신랑·신부는 설레는 가슴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4층 전시장에 내려와 나란히 입장한다.피로연장도 갖췄다. 1·2호선 신도림역 열린 쉼터에서는 무료 법률상담이 달라진 ‘지하 세계’를 실감케 한다.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낮 12시 3명의 변호사들이 상담을 해준다.매주 화요일 같은 시간엔 세무,둘째 화요일 오후 2∼4시엔 의료,매일 오전 8시∼오후 6시엔 생활·결혼문제,매주 화요일 오후 2∼4시엔 청소년 상담이 펼쳐진다. 매일 역사 어딘가에서는 남다른 ‘끼’를 지닌 이들의 공연과 시범이 쏟아진다.예컨대 10일 오후 4시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는 배명고 랩 동아리 ‘FMT’가 무대에 오른다.11일 오후 6시30분 공덕역에선 송학봉·남화선·이차석씨의 트럼펫·피아노·클라리넷 연주회가 손님을 맞는다. 4호선 충무로역엔 다섯가지 재미가 있는 곳이란 뜻인 ‘오! 재미동’이 있다.1동엔 영화·디자인 등 예술서적 400여권과 국내외 잡지 37종을 갖췄다.2동에서는 희귀 영화·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영상물을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3동에서는 참가자 마음대로 영화도 만들어 보며 강의도 들을 수 있다.4동은 60석 규모의 무료 소극장,5동은 센터 바깥에 2개의 대형 스크린과 5대의 PDP로 영상물을 감상하도록 꾸민 휴식공간이다.월요일은 쉰다. 전동차 역시 메마른 지하공간에 숨을 불어넣고 있다.오는 31일까지 7호선 ‘달리는 문화예술관’에는 차량마다 여성작가들의 미술작품이 꾸며진다.7호선 온수∼도봉산 구간엔 ‘하늘이 내린 살아숨쉬는 땅-강원도’라는 주제의 환경열차를 오는 10월14일까지 하루 왕복 3차례 운행한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지하철에선 무슨일들이… 한 비구니 스님이 울긋불긋한 초롱 모금함을 들고 전동차에 뛰어든다.이어 “제 얼굴 한번만 봐주세요.자비사 ‘지우’입니다.여덟살짜리 아이가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어요.”라는 하소연이 들려온다.(2004.6.8.오후 1시30분 3호선 수서행) 대중교통의 견인차인 지하철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평일의 경우 오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1시쯤까지,길게는 하루 19시간 손님을 실어나르는 전동차는 연인들의 사랑,떠나보내는 아픔,일터에서 언제 나왔는지 뒤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직장인의 고달픔을 함께 실어나르고 있다. 주5일제 확산으로 사실상 주말인 6일 오후 11시30분쯤 지하철 3호선 도곡행 3010호 전동차.러시아워를 한참 지난 탓인지 그다지 혼잡하지는 않은 가운데 초로의 나이로 보이는 남성이 경로석에 잠들어 누워 있었다.오른쪽 다리를 반으로 접어 좌석에 구겨넣고 왼쪽 다리는 길게 뻗은 채 때때로 고르지 않은 숨을 길게 내쉬면서…. 출근길인 같은 날 오전 8시15분쯤 2호선 순환 전동차에서는 몸빼 차림에 배낭을 멘 한 여성이 선반 위에 놓인 신문들을 거둬들이느라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엄청나게 뿌려대는 무가지(無價紙)로 전동차가 어지럽혀지는 것도 최근 나타난 풍경이다.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경험이 있겠지만 바쁘게 내리다 보니 애지중지 여겨온 물건을 깜빡 하고 잃어버리는 일도 적잖다.서울지하철공사(1∼4호선)가 운영하는 구간에서 습득신고가 들어오는 분실물은 액수로 따지면 연 2억 3000여만원이나 된다.서울시내 지하철 유실물 반입은 지난 6월 168건,7월엔 무려 200여건에 이른다.이에 따라 서울·경기지역에 유실물센터를 일곱군데 개설해놓고 있다.승객들이 분실한 물건을 합치면 자그마치 10억원은 족히 된다는 얘기다. 지하철 승객들에게 언짢게 들릴 수도 있는 뒷얘기도 있다.직원들 사이에서는 ‘사고 3번은 나야 멈춘다.’는 표현이 통설처럼 전해지고 있다.자살사고 등이 발생하면 ‘안전 기원제’를 열곤 한다.특히 승강장이 밝으면 사고가 줄기 때문에 에너지 절약 캠페인과 무관하게 늘 밝게 유지한다. 대신 대체교통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운행중단 사고가 나면 사고 지속시간이 30분 이하인 경우 대체 교통비로 5000원,그 이상이면 1만원을 승객들에게 지불한다.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이 있으면 환불만 해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1세대 기관사 정철영씨 “이름 정철영보다 비슷한 발음의 ‘전철역’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지난 1974년 지하철 개통 당시 30명의 ‘1세대’ 기관사 가운데 가장 신참이었지만,30년의 세월 앞에 현직에 남아 있는 유일한 기관사이자 지하철 역사의 산증인이 된 정철영(57) 신정승무사업소장의 지하철 사랑은 남다르다.“약관의 나이에 철도국(현 철도청) 직원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했던 인연이 철도 기관사를 거쳐 지하철에 몸담은 지금까지 지속될 줄은 미처 몰랐다.”면서 “지하철이 생긴다는 소식에 주저없이 지원한 선택과 이후 지하철과 함께한 30년의 생활에 후회는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정 소장은 지하철 개통 당시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한다.“8월15일 광복절에 맞춰 개통행사를 치렀지만,당시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는 불상사가 발생해 행사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면서 “하지만 개통 이후 아침부터 밀려든 시민들은 신기한 듯 지하철을 타면 내릴 생각은 않고 왔다갔다 했고,말끔히 단장된 역사에서는 구경나온 시민들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기관사로 줄곧 근무하던 정 소장은 80년부터 열차운행을 통제하는 사령실로 근무지를 옮겼으며,84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개통을 앞두고 있던 3·4호선의 열차운행 자동화업무시스템 제작에 참여했다.이어 94년에는 다시 영국에 가서 2호선의 기존 설비를 개선하는 데 공헌했다.즉 전동차 하나하나,설비 여기저기에 정 소장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게다가 지난 99년부터는 기관사 등 승무원을 관리·양성하는 종로·성수·신정승무사무소 등에서 줄곧 근무하며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사소한 지하철 사고 소식에도 시민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이 앞서곤 한다.”면서 “지하철 30년의 역사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계속 노력할 터”라고 말했다. 기차나 지하철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눈을 뗄 수 없다는 정 소장도 내년이면 정년이다.정 소장은 “부부도 30년을 같이하면 최고로 느껴지는데,지하철과 함께한 30년의 소회가 달리 느껴지겠습니까.”라며 말을 맺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DJ역장’ 김만오씨 “작은 노력 하나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DJ 역장’으로 더욱 유명한 김만오(56) 경복궁영업사무소장의 말이다.김 소장이 이같은 별명을 얻게 된 것은 1995년 ‘환승 지옥’으로 일컬어지던 신도림역무소장을 맡으면서부터다.“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해 ‘뛰지 맙시다.’ 등의 딱딱한(?) 멘트로 시작한 역내 방송이 계기가 됐다.”면서 “콘크리트 구조물이라는 삭막한 공간이지만 시민들에게 한발짝 다가선다는 취지에서 차츰 멘트에 위트를 섞고,노래를 선곡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97년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신촌역무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랩댄스와 힙합 등 젊은이 취향의 노래를 선곡,신촌 대학가의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했다.“방송을 듣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시민들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면서 “98년 연·고전 당시에는 초청받아 축제 무대에 서기도 했다.”고 귀띔했다.이어 현재의 자리에 부임한 2001년부터는 김 소장의 책임 하에 있는 9개역(3호선 지축역∼경복궁역 구간)으로 방송 활동영역을 넓혔다.특히 지난해 6월부터는 당시 강경호 지하철공사 사장의 특별지시로 지하철 1∼4호선 114개 모든 역사에서 김 소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시스템상의 문제로 모든 역에 생방송을 할 수 없어 직접 녹음·편집한 90분짜리 테이프를 각 역에 나눠줘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자비를 들여 편집·녹음장비들을 구입,한때 아내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하지만 큰아들 정균(23)씨와 막내딸 덕교(20)씨를 비롯한 가족들이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여전히 어눌하다는 생각이 앞선다.”면서도 “저의 존재 이유는 시민들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퇴직하는 그날까지 방송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도 어느 역사에서는 DJ 역장의 “탈법을 일삼는 사람,오늘도 큰소리 뻥뻥 칠거야?’라는 목소리 뒤에 흘러나오는 가수 송대관의 ‘큰소리 뻥뻥’에 환한 웃음을 짓는 시민들이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여성기관사 김현정씨 “앞으로 30년 동안 더욱 편하고 안전한 시민의 발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하철 전동차를 운행한 지 1년 남짓 지난 ‘새내기’ 여성 기관사 김현정(30·서울도시철도공사 신풍승무사무소)씨는 포부를 이같이 밝혔다. 지하철 개통 30년의 역사에도 불구하고,서울지하철공사의 경우 960여명의 기관사 가운데 여성은 한명도 없다.또 서울도시철도공사는 850여명의 기관사 중 여성이 18명에 불과한 실정이다.특히 김 기관사는 지난 2002년 말 기관사 채용시험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28명의 신참 기관사 가운데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3개월의 이론과정과 6개월의 실습기간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지하철 7호선 운행 기관사로 정식 배치됐다.”면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아주머니나 아저씨들이 놀랍다는 모습으로 악수를 청하면 비로소 기관사가 됐음을 실감한다.”고 미소지었다. 대학에서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김 기관사가 전공과 전혀 무관한 기관사에 도전하게 된 데는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됐다.“대학 재학 시절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여성 기관사를 본 뒤 그 존재를 알게 됐고,이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힘들 거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자동화시스템이 갖춰져 간단한 기계 조작만으로 수백t의 전동차를 운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여성들도 도전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적극 추천한다.“남녀 차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근무 여건이나 처우 등도 일반 사기업에 비해 좋은 편”이라면서 “다만 기관사는 전기·전자·기계분야에서 기능사 이상의 자격증이 있거나,관련 학과를 졸업해야 지원할 수 있어 사전대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기관사는 “다만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사상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늘 신경써야 한다.”면서 “전동차 문을 여닫을 때 CCTV 등으로 확인하지만 볼 수 없는 사각지대가 있어 문에 끼이는 등 사고 위험을 없애기 위해서는 보다 여유를 갖고 승하차하시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서울시 교육정책 대전환 예고

    서울시 교육정책 대전환 예고

    ■ 공정택 교육감 당선자 정책·인물 해부 역대 16대·민선 4대 서울시교육감으로 선출된 공정택 당선자의 정책 방향의 핵심은 ‘학력 향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학생들의 실력을 높이는데,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한마디로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고,교사들은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실력있는 학생들을 기르기 위해 교육 환경도 실력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정책 공약도 전체적으로 이같은 학력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선진국 수준으로 학생복지를 이루고,교원들에게 행복한 직장환경을 조성한다.’는 그의 ‘웰빙 교육환경 공약’도 학력을 높이기 위해 모든 주위 환경을 한 단계 높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서울시 교육정책에는 앞으로 4년 동안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초등학교 학력평가와 자립형 사립고 도입,외국어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의 확대,0교시 등 그동안 유인종 현 서울시교육감이 재선을 거치는 8년의 임기동안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었던 각종 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공 단선자가 밝힌 초등학교 학력평가 방식의 변화는 사실상 ‘수우미양가’ 식의 평가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지난 1996년부터 초등학생 성적표에는 ‘수우미양가’ 대신 ‘그림을 그리는 데 표현력이 뛰어나지만 과학실험에는 소극적이다.’는 서술식 평가가 등장했다.공 당선자는 “‘수우미양가’가 아니라 ‘탁월·우수·보통’ 하는 식으로 표시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학력평가 과거회귀 가능성 교육부도 이같은 서술형 표기는 문제가 없지만,학업 성취도에 따른 순위나 석차 등을 표기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하지만 학업 성취도를 표시하는 특정 ‘단어’가 사용될 경우 ‘수우미양가’ 5단계든 ‘탁월·우수·보통’ 3단계든 말만 달라졌을뿐 똑같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자칫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정책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0교시’를 학교 자율에 맡기겠다는 공약도 사실상 0교시가 전면 확대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공 당선자는 “0교시는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해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결정하되 학생들의 건강을 고려해 되도록 자제하도록 장학지도를 할 계획”이라면서 “전면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장학지도 자체가 학교자율에 맡긴다는 정책과 배치되는 모순을 안고 있다.말 그대로 학교자율에 맡길 경우 0교시를 실시하는 학교 주변의 다른 학교 학부모들의 거센 요구에 따라 줄줄이 0교시를 실시하는 ‘0교시 도미노 현상’까지 예상된다. 한편 자립형사립고의 설립 가능성은 높아졌다.공 당선자는 “교육부가 현재 실시 중인 전국 6개 자립형 사립고의 운영결과를 참고한 뒤 서울에서도 곧바로 시범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에 따라 내년에 운영결과가 나온 뒤 자립형 사립고 심의·평가위원회를 구성,이르면 오는 2006년부터 서울에서도 몇 개의 자립형 사립고가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실업계 고교에 대한 지원책도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공 당선자 스스로 실업계 교사로 교직생활을 시작,오랜 기간 실업계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는 점도 이같은 예상을 가능케 한다.공 당선자는 실업계 학생들에 대한 전면 무상교육을 추진하고,‘학교기업’의 설립을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교직단체와 마찰 줄이기가 가장 큰 숙제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다른 예산을 그만큼 줄여야 하는 만큼 그리 쉽지는 않을 것 같다.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전교조와 한국교총 등 교직단체와 교육 관련 단체와 마찰을 줄이는 문제는 가장 큰 숙제다.전교조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육 관련 단체들은 공 당선자가 밝힌 ‘초등학교 학력평가 시스템 도입’방침에 벌써부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초등학교 학력평가가 부활할 경우 입시 풍토가 초등학교까지 확대돼 사교육비 부담이 느는 등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와의 ‘정책적 공유’도 결코 쉽지 않은 부분이다. 공 당선자의 정책공약 가운데 상담교사제,표준수업시수제,교원 법정정원 확보 등은 교육부와 협의를 거쳐 결정해야할 사안들이다.문제는 이같은 사안 대부분이 막대한 예산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상담교사제 도입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온 학교 양호교사와 영양사의 정식 교원 임용 문제와 맞물려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과목별로 일정한 표준 수업시간을 정해 이에 따라 수업이 이뤄지는 표준수업시수제나 교원법정정원 확보 공약은 교육부는 물론 당장 막대한 예산을 배정해야 하는 기획예산처와도 조율해야 할 난제다.서울시교육청 한 관계자는 “현 유 교육감도 표준수업시수제와 교원법정정원 도입을 추진하려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보류했다.”고 말했다. ■ “초등생 학력평가 소신 불변 인성·특기교육과 균형 유지” “초등학생 때부터 학력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는 2일 최근 며칠 사이 논란이 일고 있는 초등학생 학력평가 실시 여부에 대해 이렇게 못박았다.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현재 실시하고 있지 않은 초등학교 학력평가를 학교 자율에 따라 실시토록 하고 학생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학부모에게 알리겠다는 설명이었다. 공 당선자는 이와 관련, “교육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교의 평가제도가 어느 정도 이뤄져야 하고 성취수준의 평가 결과가 학부모에게 제대로 전달돼야 자극을 받아 공부하게 된다.”면서 “예전의 ‘수우미양가’를 부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탁월·우수·보통’ 등의 설명을 현재의 서술식 평가방식에 접목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이뤄지고 있는 인성교육과 다양한 소질을 계발하는 특기적성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유인종 교육감이 그동안 닦아놓은 인성·특기적성교육을 한 축으로 하고 이와 균형을 맞추도록 기초학력 신장이라는 다른 한 축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 당선자는 초등학교 학력평가 체제 도입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 우려에 대해 “혼란을 줄이기 위해 서울시 교육위원들과 협의를 거치고 각계 각층의 여론을 수렴,신중하게 검토한 뒤 추진할 계획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학력평가를 통해 공부하는 풍토를 만들어 중·고교까지 이어지도록 하겠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 학연·지연보다 함께 일한 인연 중시 공정택 당선자의 인맥은 학연이나 지연보다는 평교사 시절부터 맺어온 인간관계에 따른 인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그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그와 함께 근무했던 인사다. 공 당선자가 공개적으로 꼽는 가까운 인사는 서울고 윤웅섭(59) 교장과 덕수정보산업고 이종성(60) 교장이다.윤 교장은 서울 사범대 출신으로 공 당선자가 이번 선거에서 다른 후보들에 비해 비교적 나이가 많은 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 주인공이다.평교사들을 비롯한 교육 각계 인사들 사이에 ‘젊은 리더’로서의 이미지가 강한 윤 교장과 의기투합해 뭔가 해보겠다는 전략이 주효했다.고령의 교육감을 보필할 젊은 참모 역할이었다. 이 교장은 공 당선자가 덕수상고 교장 시절 교무주임으로 동고동락을 했다.당시 공 당선자의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이 많던 시절,당선자의 뜻을 따라 덕수상고를 이른바 ‘명문고’로 자리잡게 한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공 당선자의 당선 배경에는 다양한 인맥과 학맥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공 당선자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사범대 출신은 아니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서울대 사대 출신 교원들의 지지를 골고루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실업계 고교의 지지도 적지 않았다.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실업계고 근무경험은 실업계고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일각에서는 호남 출신 교원들이 보이지 않게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공 당선자는 이에 대해 “오히려 다른 후보측에서 ‘유인종 교육감에 이어 또 호남에서 서울교육을 책임지려는 것이냐.’는 역공세를 펼쳐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서울시교육청 한 관계자는 “인맥과 학맥도 중요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평교사부터 행정경력까지 풍부한 교육 행정경험이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 같다.”면서 “하지만 다른 후보들을 지지한 표도 적지 않은 만큼 공 당선자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서울 교육을 훌륭히 이끌어나갔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 동료들이 말하는 공정택 당선자 ‘추진력·친화력·카리스마’. 공정택 당선자를 한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같은 단어를 빼놓지 않는다.강한 카리스마에 타고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사소한 일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는 황소같은 추진력은 ‘똑’ 부러진다는 평가다.학생들의 공부에 관한 한 물불 가리지 않고 도와준다는 점에서 일부에서는 그를 ‘진정한 스승’으로까지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반면 한번 마음먹은 것에 대해 고집을 꺾지 않는 그의 스타일이나 공부에만 역점을 두는 교육철학이 다양성이 요구되는 21세기 교육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공부에만 역점… 다양성 부족 지적 그의 일하는 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 하나.1986년 중랑중 교장 시절이었다.교장으로 첫 발령을 받아 부임한 뒤 처음 시작한 것이 학력을 높이는 시스템 구축이었다.당시는 고입 연합고사 성적에 따라 알게 모르게 중학교가 평가되던 시절이었다.그는 학생들의 실력을 높일 방법을 연구하던 끝에 각 교과 담당 교사에게 일일이 방학과제를 만들도록 한 뒤 이를 모아 하나의 문제집으로 묶었다.각 문제에는 관련 교과 단원을 표시해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도록 했다.방학숙제는 담임교사가 모두 걷어 쪽마다 확인도장을 찍어 교장인 그에게 확인을 받게 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사용하던 확인도장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이는 전교생이 모두 제출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공 당선자는 “이렇게 2년을 했더니 학생들의 성적이 크게 오르면서 학부모·교사·학생 모두 좋아했다.”고 했다.그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교육계 인사는 “교사들과 학생들을 ‘혹사’시켰으면서도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이유는 당선자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의 진학률이나 취업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82년 성동여실 교감 시절이었다.자율학습 시간에 직접 지휘봉을 들고 교실마다 자는 아이들을 깨워가며 공부를 독려했다.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호랑이’로 유명했다고 한다.하지만 밤 늦은 시간 불쑥 학교로 되돌아와 공부하는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간식을 사다 먹이는 일도 그의 일과 중 하나였다.학생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매년 취업철만 되면 발품을 팔아 서울 퇴계로 일대 은행과 기업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실력있는 좋은 아이들이니 뽑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그와 함께 성동여실에서 근무했던 한 교사는 “학교 사정이 나빴던 어느 겨울 연탄 가스로 고생하는 아이들 얘기를 했더니 어떻게 구했는지 석유난로를 몇 대 구해왔다.”고 말했다. ●인기직종 은행에 한해 243명 합격시켜 앞서 72년 덕수상고에서 학년주임을 맡을 때에는 당시 최고의 인기직종이었던 은행에 243명을 합격시켜 교육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당시 취업을 잘 시킨다는 실업계고가 50∼60명을 취업시킨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학생들에게는 무서운 ‘호랑이’였지만 교사들에게는 정 많은 ‘동료’였다.그는 평교사 시절부터 동료 교사들과 식사와 술로 회포를 풀었다.틈틈이 술자리를 마련해 동료 교사들의 어려움을 들었다.그와 함께 근무했던 한 현직 교장은 “평교사 시절부터 부인 월급으로 생활하고 자신의 월급은 거의 대부분 동료들의 밥값과 술값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그는 술보다는 술자리를 좋아했기 때문에 주종을 가리지는 않는다고 한다.그와 함께 일했던 한 교육계 관계자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다음날 학교에 맨 먼저 도착하는 사람은 공 당선자였다.”고 말했다.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그의 추진력을 ‘옥에 티’로 지적하기도 한다.그를 겪어본 한 교육계 인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고집스러운 스타일 때문에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는 인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교육계 한 인사는 “학생들을 위한 그의 진심은 훌륭하지만 서울 교육의 수장으로서 공부만을 강조하다 보면 학교 현장에서는 자칫 성적 만능주의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부인 육완숙씨가 본 공 당선자 이번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당선자는 출마자 중 최고령이었다.고희의 나이에도 40∼50대 후보자들과 경쟁할 수 있었던 그의 건강비결은 테니스와 산보였다. 오는 26일 취임하는 공정택 당선자 부인 육완숙(68)씨를 지난달 29일 저녁 송파구 방이동 자택에서 만났다.152∼153㎝의 키,40㎏이 겨우 넘을 듯한 호리호리한 몸매에 카키색 원피스를 걸친 육씨는 전형적인 선생님의 모습이었다.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온 육씨에게는 선거 후 연일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이 낯설고 부담스럽기만 한 것 같았다. 육씨는 지금까지 남편이 정열적으로 학교 일에만 매달려왔기 때문에 노년에는 손주들 재롱보며 조용히 살기를 바랐다고 한다.하지만 남편의 넘쳐나는 교육에 대한 열정은 육씨도 말릴 수 없었다.고령에도 선거 일정을 강행군 할 수 있었던 건강비결을 묻자,편식하지 않는 식습관과 매일 오전 7시부터 1시간 가량 부부가 함께 산책한다고 했다.골프를 안하는 공 당선자는 주말마다 3∼4명의 교사들과 인근 학교에서 테니스를 즐기는 것으로 취미생활과 체력관리를 병행하기도 한다. 공 당선자는 젊어서부터 워낙 건강했고 술 자리를 좋아했다고 한다.소주 2∼3병을 마시고도 취한 모습을 보이질 않아 육씨는 반평생 같이 살면서도 공 당선자의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40여년간 교육자로 일했던 공 당선자의 생활은 오로지 학교 일이 전부였기 때문에 가사와 육아,자녀교육은 부인 육씨가 도맡다시피 했다.간혹 공 당선자는 불시에 두 아들의 책과 공책을 꼼꼼히 살피며 학업상태를 점검하기도 했는데 이 시간이 아들 훈식과 문식에겐 가장 무섭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한다.공 당선자는 아이들이 학업에 나태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크게 호통을 쳐 스스로 반성할 때까지 벌을 세우는 엄한 아버지였다.육씨는 두 아들에게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를 강조했기 때문에 별다른 과외는 시키지 않았고 중 3때와 고 2·3학년 때 단과학원에서 영어·수학 강의를 듣게 했다. 육씨는 공 당선자가 학교 일에만 매달렸던 30∼40대에도 육씨의 학생 성적 처리만큼은 한번도 빼놓지 않고 챙겨주었던 남편의 배려를 기억한다.육씨가 전주여고 가정교사로 재직했던 7년동안 전주상고에서 상업을 가르쳤던 공 당선자는 육씨의 중간·기말고사 성적처리를 모두 맡아서 해주었다.지금처럼 계산기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육씨는 공 당선자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고 한다. “부부가 모두 평생을 교육자로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크게 부부싸움 한번하지 않고 별 탈없이 지금까지 생활한 것이 정말 행복하다.”는 육씨는 공 당선자를 처음 만났던 그날을 떠올리며 수줍게 웃었다.1960년 봄,육씨는 전주여고 재직시절 큰언니 옥희(78)씨의 중매로 당시 전주상고 교사였던 공 당선자를 처음 만났다.상대를 리드하는 카리스마가 마음에 들었다는 육씨는 자신들을 알아보는 학생들이 많아서 1m씩 떨어져 함께 걷는 것으로 데이트를 대신했다.공 당선자와 육씨는 1년 6개월 연애끝에 1961년 11월 결혼식을 올렸고 강산이 4차례나 변했을 40년 넘게 잉꼬부부로 살아왔다. 육씨는 “큰 일하는 남편에게 도움이 될 수 없어 미안하지만 지금까지 늘 곧은 모습만을 보여주었기에 앞으로 잘 할 것”라며 공 당선자에게 굳은 믿음을 보여주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친·처가 교직근무자 20명 넘어 공정택 당선자의 가족은 처가와 사촌, 손자·손녀까지 합쳐 교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20∼30명에 이를 정도로 대표적인 교육가(敎育家)다. 공 당선자는 11남매 중 일곱째로 큰형인 고 공원택씨가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 장학관을 지냈다.넷째 공이택(74)씨는 군산부시장을 지냈으며 여동생인 열째 공정자(62)씨는 현재 남서울대 총장이다. 5남매 중 막내인 공 당선자의 부인 육완숙(68)씨도 40여년간 고등학교 가정교사로 재직했다.육씨의 큰오빠 고 육완기씨가 임실·고창·금산군수를 지낸 바 있다.둘째 언니 육옥희(78)씨는 4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셋째 언니 육완순(71)씨는 한국 현대무용의 대가로 현재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육완순씨의 남편 이상만(78)씨는 서울대 지질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외동딸 이지현(37)씨의 남편이 가수 이문세(46)씨다. 공정택·육완숙씨 부부는 2남을 두었으며,큰 아들 훈식(42)씨는 산부인과 의사, 둘째 아들 문식(40)씨는 남서울대학교 사무처 계장이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공정택 당선자는… ▲1934년 1월26일 전북 남원 출생 ▲53년 이리 남성고 졸업 ▲57년 서울대 상과대 경제과 졸업 ▲76년 고려대 교육대학원 중등교육행정 수료 ▲72년 4월∼78년 9월 덕수상고(현 덕수정보산업고) 주임교사,교육청 장학사 ▲82년 3월∼86년 8월 성동여자실업고 교감 ▲85년 5월∼86년 5월 교육개혁심의회 상임전문위원 ▲86년 9월∼91년 2월 중랑중 교장 ▲91년 3월∼94년 9월 덕수상고 교장,서울시 강동교육장 ▲96년 9월∼98년 2월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국장 ▲98년 3월∼2002년 8월 남서울대 총장 ▲98년 9월∼현재 제3·4대 서울시 교육위원 ▲2004년 7월 서울시교육감 당선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죽죽선녀를 만나다/박정애 지음

    98년 등단한 뒤 신인답지 않은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면서 2000년 장편 ‘에덴의 서쪽’으로 문학사상 신인상,다음해 ‘물의 말’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가 박정애가 두번째 창작집 ‘죽죽선녀(竹竹仙女)를 만나다’(문학사상사 펴냄)를 냈다. 이번 작품집에서 작가는 남성 위주의 현실에서 여성들이 강요당해온 희생과 그로 인한 신산한 삶을 그려온 이전의 문제의식을 더 넓혀간다.여성의 상처가 어머니 세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딸의 세대로 대물림하고 있음을 꼬집는다.한걸음 더 나아가 그 상처를 안고 치유하는 ‘여성성’의 풍부함도 보여준다.물론 세세한 묘사보다는 특유의 리듬감있는 이야기체 속에 된장국 맛 같은 토속어와 경상도 사투리를 실어서 메시지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힘은 여전하다. 표제작 등 8편의 단편에서 작가는 여성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특유의 토속어와 속담 등에 실어 그린다. 민박집 할머니의 굴곡어린 삶을 담은 ‘불을 찾아서’가 어머니 세대의 상처를 비춘 것이라면, 젖먹이 아이를 고향에 두고 한국에 온 조선족 여성과 남한의 가정교사가 강남의 부잣집에서 받는 눌린 삶을 그린 ‘21세기 유모’는 진행 중인 수난사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조각난 삶의 상처를 들추는 데 멈추지 않는다.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흔을 하나씩 기우며 상흔을 극복하는 낙관적인 모습을 다양한 형태로 그린다.20살에 원치 않은 임신으로 마지못해 결혼을 한 엄마가 딸들에게 ‘여자의 더러븐 팔자’가 되풀이될까 두려워 분열증에 시달리면서 딸을 미워하고 그런 엄마의 한풀이 때문에 자살한 딸의 원한을 풀어가는 과정을 다룬 표제작은 여성에 내린 험한 운명과 화해·치유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내 딸아,네가 크고 내가 늙으면,네가 그 낭랑한 목소리로,우리 엄마가 쓴 글이네? 하면서 이 잡문을 뒤적거리는 날도 있겠지.”라는 작품 속 내용처럼 마치 아이에게 들려주는 것같이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이야기체의 매력에 힘입어 작품은 생생하게 들려온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에듀짱] 모차르트선율로 아침맞는 아이들

    [에듀짱] 모차르트선율로 아침맞는 아이들

    “‘딴따라’는 공부를 못한다는 편견을 버려!” 바이올린에 빠졌기 때문에 전교 1∼2등 하는 ‘범생이’(모범생)이가 될 수 있었다는 서울 은평구 신사동 숭실중학교 박찬균(13·1학년)군.특기적성교육에 대한 이 학교 이덕춘(65) 교장과 정태영(53) 지도교사의 헌신적 뒷바라지가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찌든’ 마음을 ‘즐기는’ 여유로 바꿔 놓았다. 25일 오전 7시 50분.숭실중 음악실에는 관현악반 단원 70여명이 모여 앉았다.아이들은 이른 등교 탓에 눈을 연신 부벼대지만,각자 맡은 악기를 튜닝하느라 부산을 떤다.어수선한 분위기도 잠시,정 교사가 지휘봉을 들자 아이들은 금세 프로 교향악단원이 된다.모차르트의 감미로운 선율이 ‘까까머리들’의 연주로 되살아나는 아침이다. ●합주는 협동과 양보 배우는 과정 올해로 창단 7년째인 숭실중 관현악반은 매일 아침을 이처럼 음악과 함께 연다.박군은 “아침 연주를 마치면 마음이 차분해져 1학년 첫 시험에서 전교 2등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첼로의 매력에 푹 젖어 산다는 1학년 박정배(13)군은 “화려하진 않지만 장중하고 은은한 음색이 항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처럼 편안하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3학년 문지민(15)군도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위해 협동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어 좋다.”며 즐거워했다. 이에 대해 정 교사는 “전체 구성원이 조화를 이뤄야만 좋은 소리가 난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인성교육”이라며 지난해 졸업한 J(16)군의 이야기를 꺼냈다.외국어고에 진학한 J군은 의료인 집안의 외아들로 전교 1,2등을 놓친 적이 없는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하지만 관현악반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3차례 연주회를 경험하면서 J군은 눈에 띄게 교우관계가 원만해졌다.정 교사는 “이처럼 교육현장에서 인성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음악교사에겐 최고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40명으로 시작한 관현악반은 이 교장과 정 교사의 변함없는 정성을 바탕으로 현재 130명의 대부대로 탈바꿈했다.정 교사는 지난 97년 관악기만을 연주했던 기악합주반을 관현악반으로 개편했다.꼭 한번은 관현악단의 지휘를 맡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이 교장도 ‘악기를 배워두면 평생 재산이 된다.’는 생각에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방음벽을 갖춘 음악실 2곳을 만들고 동문과 학부모 독지가들을 설득해 해마다 후원금 2800만원을 받았다.까닭에 정 교사는 팀파니와 콘트라베이스 등 한 대에 500만원이 넘는 특수 악기를 구입할 수 있었고,전문강사 6명을 영입해 학생들의 연주지도도 내실있게 운영했다. 바이올린,첼로,클라리넷 등 개인악기는 30만∼100만원선에서 학생들이 직접 구입하도록 했다. 악기 값은 천차만별이라 좋은 모델만 권하고 특정구입처는 정해주지 않았다. ●지도교사의 열정과 의지가 중요 정 교사는 관현악단의 틀을 갖추는 것은 물론 단원선발·운영방식과 교육과정도 체계화시켰다. 새학기 초 1학년 지원자 중 아침연주에 참여할 열의를 갖고 있는 학생을 50명 안팎으로 선발해 3년간 단원으로 임명한다.전학가거나 아침잠이 많아 중도 포기하는 학생 5∼8명을 빼곤 보통 3년간 활동한다.단원이 선발되면 정 교사는 학생들의 희망사항과 신체조건을 고려해 개인악기를 정한 뒤 팀을 6개로 나눠 매주 2시간씩 전문강사로부터 기본기를 익히도록 했다.매일 아침 7시 50분부터 40분간 관현악반 전원이 모여 합주하는 것도 정례화했다. 정교사는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딴따라 교육을 한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들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쳐왔다.”며 “특기적성교육은 무엇보다도 지도교사의 열정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에듀짱] 모차르트선율로 아침맞는 아이들

    “‘딴따라’는 공부를 못한다는 편견을 버려!” 바이올린에 빠졌기 때문에 전교 1∼2등 하는 ‘범생이’(모범생)이가 될 수 있었다는 서울 은평구 신사동 숭실중학교 박찬균(13·1학년)군.특기적성교육에 대한 이 학교 이덕춘(65) 교장과 정태영(53) 지도교사의 헌신적 뒷바라지가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찌든’ 마음을 ‘즐기는’ 여유로 바꿔 놓았다. 25일 오전 7시 50분.숭실중 음악실에는 관현악반 단원 70여명이 모여 앉았다.아이들은 이른 등교 탓에 눈을 연신 부벼대지만,각자 맡은 악기를 튜닝하느라 부산을 떤다.어수선한 분위기도 잠시,정 교사가 지휘봉을 들자 아이들은 금세 프로 교향악단원이 된다.모차르트의 감미로운 선율이 ‘까까머리들’의 연주로 되살아나는 아침이다. ●합주는 협동과 양보 배우는 과정 올해로 창단 7년째인 숭실중 관현악반은 매일 아침을 이처럼 음악과 함께 연다.박군은 “아침 연주를 마치면 마음이 차분해져 1학년 첫 시험에서 전교 2등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첼로의 매력에 푹 젖어 산다는 1학년 박정배(13)군은 “화려하진 않지만 장중하고 은은한 음색이 항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처럼 편안하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3학년 문지민(15)군도 “가장 아름다운 연주를 위해 협동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어 좋다.”며 즐거워했다. 이에 대해 정 교사는 “전체 구성원이 조화를 이뤄야만 좋은 소리가 난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인성교육”이라며 지난해 졸업한 J(16)군의 이야기를 꺼냈다.외국어고에 진학한 J군은 의료인 집안의 외아들로 전교 1,2등을 놓친 적이 없는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하지만 관현악반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3차례 연주회를 경험하면서 J군은 눈에 띄게 교우관계가 원만해졌다.정 교사는 “이처럼 교육현장에서 인성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음악교사에겐 최고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40명으로 시작한 관현악반은 이 교장과 정 교사의 변함없는 정성을 바탕으로 현재 130명의 대부대로 탈바꿈했다.정 교사는 지난 97년 관악기만을 연주했던 기악합주반을 관현악반으로 개편했다.꼭 한번은 관현악단의 지휘를 맡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이 교장도 ‘악기를 배워두면 평생 재산이 된다.’는 생각에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방음벽을 갖춘 음악실 2곳을 만들고 동문과 학부모 독지가들을 설득해 해마다 후원금 2800만원을 받았다.까닭에 정 교사는 팀파니와 콘트라베이스 등 한 대에 500만원이 넘는 특수 악기를 구입할 수 있었고,전문강사 6명을 영입해 학생들의 연주지도도 내실있게 운영했다. 바이올린,첼로,클라리넷 등 개인악기는 30만∼100만원선에서 학생들이 직접 구입하도록 했다. 악기 값은 천차만별이라 좋은 모델만 권하고 특정구입처는 정해주지 않았다. ●지도교사의 열정과 의지가 중요 정 교사는 관현악단의 틀을 갖추는 것은 물론 단원선발·운영방식과 교육과정도 체계화시켰다. 새학기 초 1학년 지원자 중 아침연주에 참여할 열의를 갖고 있는 학생을 50명 안팎으로 선발해 3년간 단원으로 임명한다.전학가거나 아침잠이 많아 중도 포기하는 학생 5∼8명을 빼곤 보통 3년간 활동한다.단원이 선발되면 정 교사는 학생들의 희망사항과 신체조건을 고려해 개인악기를 정한 뒤 팀을 6개로 나눠 매주 2시간씩 전문강사로부터 기본기를 익히도록 했다.매일 아침 7시 50분부터 40분간 관현악반 전원이 모여 합주하는 것도 정례화했다. 정교사는 “일부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딴따라 교육을 한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들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쳐왔다.”며 “특기적성교육은 무엇보다도 지도교사의 열정과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책꽂이]

    ●성공하는 영어이름 따로 있다(브루스 랜스키 등 지음,링구아포럼 리서치 센터 옮김,링구아포럼 펴냄) 영어이름에 함축된 이미지와 작명법을 소개한 네임북.책은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잭(Jack)이나 질(Jill) 같은 이름은 ‘아무개’의 뜻에 가까운 촌스러운 이름이며,여성이름 보니(Bonnie)에선 활기 넘치고 사교적이며 다정한 성격의 예쁜 빨강머리 아일랜드 시골소녀가 연상된다고 말한다.1만 2000원. ●36계 성공전략(황차후 등 지음,오굉국 옮김,영진닷컴 펴냄) ‘36계’를 통해 살펴본 현대 중화권기업의 성공비결.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다),차도살인(借刀殺人,남의 칼을 빌려 적을 제거하다),이일대로(以逸待勞,편안한 마음으로 때를 기다리다),무중생유(無中生有,아무것도 없지만 있는 것처럼 보이다),부저추신(釜底抽薪,가마솥 아래의 장작을 꺼내어 끓어오르는 것을 막다),혼수모어(混水摸魚,물을 흐려놓고 물고기를 잡다) 등 갖가지 병법의 역사적 배경과 이를 응용한 기업의 성공 사례 등을 다룬다.2만 2000원. ●티베트 마법의 서(알렉산드라 다비드 넬 지음,김은주 옮김,르네상스 펴냄) 티베트의 신비주의와 심령현상을 소개.티베트에는 해발 3000m 이상의 빙설지대에서 거의 벌거벗은 채로 겨울을 보내는 은자들이 있다.그들은 ‘투모수련’을 통해 스스로 열을 일으킨다.‘투모’는 열이나 따뜻함을 뜻하지만,티베트 밀교에선 정액을 따뜻하게 하고 그 안에 에너지를 보내어 미세한 신경계를 따라 온몸으로 돌게 하는 보이지 않는 불을 의미한다.정신집중과 호흡법을 결합한 ‘롱곰수행’으로 공중 보행술을 연마하는 라마승들,바람에 메시지를 실어 보내는 텔레파시 비술,시체를 소생시키는 ‘롤랑의식’ 등도 보여준다.1만 2000원. ●칸트 평전(만프레트 가이어 지음,김광명 옮김,미다스북스 펴냄) 독일 철학자 칸트의 삶과 사유의 행보를 추적.칸트의 일생은 복잡다단한 그의 철학과는 달리 무척이나 단조로웠다.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80평생을 이곳에서만 살다가 갔다.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100리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40대 중반까지 가정교사 생활을 했고,이후 고향에서 죽을 때까지 교수로 일했다.책은 칸트의 세계를 역사적 ‘암시의 왕국’이라고 지적한다.1만 3000원. ●자연이라는 개념(로빈 조지 콜링우드 지음,유원기 옮김,이제이북스 펴냄) 고대에는 경외감으로부터 자연을 막연히 숭배했다.그러나 기독교 사상이 팽배했던 중세에는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했고 따라서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다는 사고가 싹트기 시작했다.저자가 ‘르네상스 우주론’이라고 부르는 근대의 자연관은 자연세계가 하나의 유기체라는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의 주장을 거부한다.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자연관의 변천사를 살핀다.저자는 “모든 역사는 사상의 역사다.”란 말로 유명한 영국 옥스퍼드대 웨인플리트좌 교수 출신의 석학.2만원.˝
  • ‘한국의 가족’ 연구로 박사학위 받는 니콜라

    “이젠 백자가 조선조 어느 때인지,삼국시대 건축물은 백제,신라,고구려 중 어느 나라 건지 보기만 하면 알아요.” 역사나 고고학을 공부하는 한국인 이야기가 아니다.오는 7월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한국 가족의 초상(가제)’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예정인 이탈리아인 귀세피나 드 니콜라(33 )의 말이다. 니콜라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자원봉사를 했다.지금은 논문 마무리 작업으로 쉬고 있지만 논문이 끝나면 이탈리아에 돌아갈 내년 초까지 다시 자원봉사를 할 생각이다.니콜라는 내년 3월부터 밀라노의 라비코카 대학에서 조교수로 강의를 할 예정이다. 자원봉사기간 동안 박물관에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에게 박물관을 안내하고 박물관이 펴내는 각종 자료의 번역작업을 돕는 것이 니콜라의 일이었다.니콜라는 이탈리아어 외에 영어,불어,일어,한국어 등 5개 언어를 할 수 있다.박물관에 온 외국인들은 대부분 신라시대 미술품의 화려한 아름다움과 조선 백자의 검소함·깨끗함에 대해 많이 질문했다고 회상했다. ●우연히 접한 ‘한글’에 빠져 한국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자원봉사를 오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더군다나 지금까지 외국인 자원봉사는 니콜라를 포함,2명이었다는 것이 박물관측 설명이다.박물관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제공하는 것이 유일한 서비스다. 시간을 쪼개 자원봉사를 한 연유를 물었더니 “사랑에 빠져서”다.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해 배운 것이 고마울 뿐이란다. 니콜라의 한국 사랑은 한글에서 시작됐다.대학교 시절 일본어를 배우면서 다른 동양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때 우연히 본 한글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공부를 시작했다.역사를 공부하면서 작은 나라지만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고,외세에 시달렸으면서도 ‘외교적 타협’이 뛰어나 독립을 유지하는 독특한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탈리아 내에서는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박사학위를 한국에서 따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했다. “아마 그 때로 되돌아간다면 한국에 오는 걸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니콜라는 웃었다.낯선 언어에 혼자 외국에서 생활하는 환경,그리고 여성을 바라보는 다소 경직된 시선.모두가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힘이 된 건 어머니였다.서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96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아버지는 니콜라가 이탈리아에 도착,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장례를 며칠 미뤘다.니콜라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평생 가슴에 남을 것 같단다.“힘들 때마다 내가 공부를 마쳐야만 임종을 지키지 못한 걸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버텼다. 니콜라는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근 8년을 한국에 머물고 있다.현재 외국어대학교 이탈리어과에서 전임강사로 재직 중이다.논문을 쓰기 위해 영어 가정교사를 자청,한국인 가정에서 2001년 한 해를 살기도 했다. ●어른에 대한 존경심 엷어져 안타까워 지금은 본인 스스로가 한국인인지 이탈리아인인지 헷갈리는 ‘정체성 혼란’에 가끔 빠진다고 농담을 던진다.한국에 처음 왔을 때 그렇게 낯설었던 연장자에 대한 행동이 지금은 너무 자연스럽다.이제 3∼4명만 모이면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지고,그래서 상대방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문화가 편안하단다. 니콜라는 한국 젊은이들이 연장자에 대한 존경을 많이 버리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2000년 넘어서 급속히 퍼지고 있는 개인주의가 연장자에 대한 존경과 결합된다면 훌륭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이런 존경심이 사라지는 데는 학교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니콜라 연구의 중심은 한국의 가족과 결혼문화이다.9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던 나폴리 동양학대학에서 92년 ‘한국 가족 체계-전통과 변화’라는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니콜라는 지금 한국 가족이 핵가족시대라고는 하지만 핏줄을 중시하는,대가족과 핵가족의 중간쯤 된다고 본다.니콜라 생각에는 중국과 일본이 핏줄을 한국만큼은 중시하지 않는다.아주 옛날의 한국도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조선시대에 유교문화가 정착되고 외세의 침공을 여러번 겪으면서 핏줄 집착이 생겼다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유럽서도 한국 IT 등에 관심 커져 내년 3월에는 홍콩 중국대 인류학과와 홍콩 인류학회 후원으로 ‘한국 결혼 앨범’도 발표할 예정이다.결혼을 둘러싼 풍토가 많이 변하므로 그 변화를 통해서 사회변화를 알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결혼식,폐백은 물론 야외촬영,결혼앨범 자체 등을 담았다. 중매쟁이로 나서 결혼을 직접 성사시키기도 했다.미국인으로 친한 친구인 북한전문가 티모시 새비지에게 자신이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던 한국 친구를 소개,두 사람이 지난 1일 결혼식을 올렸다.그러나 막상 본인은 미혼이다. 니콜라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유럽에서 급격히 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촉구했다.이탈리아만 해도 90년대 말부터 로마나 베니스에서도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한국의 영화나 정보기술(IT)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한국에는 아무 관련 없는 시저나 나폴레옹을 한국인이 아는 것처럼 세종대왕도 유럽인이 알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프로필 ▲1984년 이탈리아 포자 가톨릭국제대학 졸업 ▲1992년 나폴리 동양학연구대학 석사 ▲1992년 전일본항공 밀라노 지사 홍보담당 ▲1994년 밀라노 대학에서 ‘현대 일본’ 강의 ▲2001년 한국외국어대학 이탈리아어과 전임강사 ▲2004년 7월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 예정 ▲2005년 5월 ‘한국 결혼 앨범’ 출간 예정 ▲2005년 9월 ‘경제위기 이후의 한국-새 사회문화 정체성을 찾아서’ 출간 예정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 교원단체 힘겨루기

    교원단체가 교원인사 체제의 개혁 방안을 둘러싸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교장임용 다양화와 교원평가제 개선은 한마디로 ‘학교의 권력’을 바꾸는 것으로 비유될 만큼 교육계의 가장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교육당국은 물론 교장·교사·학부모들도 뒤숭숭한 분위기다.특히 단체간의 이해관계도 제각각인 탓에 크게 전교조·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으로 대변되는 교원단체의 힘겨루기도 만만찮다.예컨대 전교조는 교장선출보직제를,교총은 수석교사제를 고집하며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교장직 개방,‘동상이몽’ 지난 23일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원인사 혁신방안’에 대한 공청회 무산은 교원인사제도 개선을 놓고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교육계에서는 “교원인사 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봉합하기보다는 밖으로 드러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주장에 대한 한계와 현실성을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교장임용제는 승진평정에 따라 교사-교감-교장으로 이어지는 승진제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교사에서 교장으로 건너뛸 수도 없고 외부인사가 교장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초빙교장제는 대체로 4년씩 두차례만 보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된 교장중임제 때문에 일부 교장들의 정년 62세를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교육개발원은 교장직의 10% 범위 안에서 교육경력 15∼20년 정도의 평교사를 대상으로 교장을 공모·추천하는 ‘공모·추천제’를 제시했다. 특히 장기적으로 교육 경력이 없는 일반인에게도 ‘학교 CEO’로서 선임이 가능한 ‘개방형 공모제’도 내놓았다.공모·추천제는 교육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안이다.전교조가 내세운 선출보직제와 승진제도의 절충안이다. 하지만 전교조는 “승진체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두고 성격조차 불분명한 공모·추천제의 부분적 도입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초빙교장제도 폐지해야 한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전국 교장단협의회는 “현재 교장자격자들이 모두 임용된 이후 공모·추천제가 시행돼야 한다.”면서 “무자격자에게 교장직을 주는 방안은 반대”라고 밝혔다. ●교장선출보직제와 수석교사제 도입 이종재 교육개발원장이 기조강연에서 ‘자율적인 학교운영이 보장된 새 유형의 자치학교에서 실험적으로 교장선출보직제를 시행할 수 있다.’고 밝힌 내용은 모든 교원단체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교총은 “당초 논의되지도 않았던 ‘교장선출보직제의 실험적 시행’을 갑자기 넣은 것은 교원인사제도를 투쟁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전교조의 억지 주장에 영합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교조 역시 “전면적인 교장선출보직제의 시행이 추진돼야 한다.”면서 자치학교의 전제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반면 교원자격제도의 개선과 관련된 수석교사제에 전교조가 발끈했다. 수석교사제는 교총이 과열된 승진구조의 완화를 위해 줄곧 제기해왔던 사안인 까닭이다. 전교조는 “수구 보수적,반개혁적인 입장을 수용,교육개발원이 교원인사 혁신을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개발원은 교사의 수직적 다단계 체계를 위해 ▲2급 정교사-1급 정교사-수석교사(3단계) ▲2급 정교사-1급 정교사-선임교사-수석교사(4단계) 등 2개안을 제안했다. ●교원평가제 도입,시기상조? 안병영 교육부총리는 ‘2·17 사교육비 경감대책’에서 교사 다면평가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학부모단체들도 교원평가,즉 교원의 검증은 학교의 개혁을 위해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적격 교사를 가려내고 교사 사회에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자는 취지이다.교육개발원도 이같은 현실을 반영,교장·교감에 의한 교원평가에 동료교사를 참여시키는 다면평가 방안을 마련했다.학부모와 학생의 교사 평가는 우선 교사의 자율에 맡겼다. 교사가 필요하면 학부모와 학생의 평가를 받아 자기 계발에 참고토록 권장한 것이다.교육개발원측은 “평가제도는 교직사회의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전면적인 개혁보다는 점진적인 개선이 타당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교원단체들은 “교원평가는 필요하긴 한데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인다.전교조는 “현행 근무평정과 새로운 평가제도는 공존할 수 없다.”면서 우선 승진의 도구일 뿐인 근무평정제의 폐지를 주장했다. 특히 학부모·학생의 교사 평가에서는 교원단체가 모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학생들은 감정적인 평가에 치우치기 쉽고,학부모는 교사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 교육개발원이 제안한 교장에 대한 교육청의 평가 부분도 시끄럽다. 전교조는 이와 관련,“평가주체를 학교구성원이 아니라 교육청에 두는 것은 교장의 지위를 교육청의 말단관료로 보는 시각”이라고 비난했다.물론 교장단협의회도 반대하는 사안이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문일용씨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동양인으로는 처음 버니지아 페어팩스 카운티의 교육위원에 선출된 문일룡(47) 변호사는 돈 싸들고 자녀들을 조기유학 보내는 것을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조기유학으로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서 잘하는 아이라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에 유학보내기 앞서 자녀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특별한 재능이 있어 꼭 미국에서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다면 단기간의 어학연수 정도만 권유하고 싶다고 했다.너무 일찍 부모를 등지고 혼자 있으면 평생을 이방인으로 지낼 수도 있다는 것.서울대를 못가고 직장 잡는 게 어렵더라도 가족과 함께 고국에서 사는 게 훨씬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어려움을 각오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면 가급적 일찍 오라고 말한다.“중·고등학교 몇년 배운 영어로는 미국의 토론식 수업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고등학교 1년만 마치고 미국으로 이민 온 자신의 경험담이기도 하다.영어가 몸에 익고 제대로 공부할 수준이 되려면 적어도 현지에서 7년 정도의 적응이 요구된다고 했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자기의 적성을 살리지 못해 한국에 있었으면 법학이나 문학,사회학 등을 공부할 학생들이 이공계로 빠지는 것을 봤습니다.”때문에 언어에 웬만한 자질이 없으면 부모의 욕심만으로 유학 보내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조기유학을 왔다가 망친 경우를 적지 않게 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기러기 가족’으로 불리는 두집살림이 워싱턴 DC 지역에서는 경제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예컨대 DC에 맞붙은 페어팩스 카운티의 가계 평균소득은 연간 9만달러에 이른다.그만큼 물가나 집값도 비싸다.교육여건이 좋지만 월급이 1000만원은 되어야 따라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무조건 자녀를 보내놓고 뒤늦게 돈 문제로 고생할 수가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과 준비도 치열합니다.”그러나 특별히 고액 가정교사를 둔다든지 한밤중에 학원에 가지는 않아도 기본적인 자질만 있으면 웬만한 대학은 갈 수 있다고 했다.굳이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취업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특정대학에 대한 강박관념은 적다고 했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 조기유학 오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어렸을 때 수천만원을 들여 아이들만 기숙사에 달랑 보내는 것은 자녀들을 망치기 십상이라고 했다.성공한 사례만 드러났을 뿐 나쁘게 된 경우는 잘 모른다는 것.인종적·문화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인성을 다칠 수 있다고 했다.1∼2년만 있다가 한국에 들어가도 다른 학생들에 처질 게 뻔한데 자녀들에게 지나친 부담이 아니냐는 것.다만 부모와 함께 6개월 안팎의 어학연수는 경험삼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문 변호사는 서울 출신으로 경복고 1년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버지니아로 이민온 뒤 하버드대를 거쳐 영국 황실이 세운 명문대학원 ‘윌리엄 앤 메리’에서 법학을 전공했다.1995년 첫 선출직 교육위원에 당선된 데 이어 지난해 재선됐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0대 사건 중 하나는 1923년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사운동이었다.여러 세기에 걸쳐 인간 이하의 천민으로 분류되어 수탈과 탄압,능멸과 죽임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백정(白丁)들도 인간이라는 백정해방운동을 형평사운동이라 불렀다.일본의 부락민(部落民),유대인 차별 정책인 게토,인도의 최하층민 수드라,노예시장의 매매물건인 아프리카 흑인들과 같이,1923년 이전 한국의 백정들도 인간이 어찌 평등할 수 있느냐는 조선시대 정치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우리의 이웃이었다. 형평사운동을 계획하고 탄생시켰으며,그후 십여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문제를 줄기차게 제의했던 사람들 중에서 강상호(姜相鎬)와 장지필(張志弼)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진주 형평사운동은 ‘백정해방운동’ 장지필은 대물림한 백정 집안 후손이었다.그의 부친 장덕찬(張德贊)은 경남 의령의 백정인데 상당한 재력가였다.백정의 주된 사업인 도살업,육류판매,피혁의 건조와 가공,쇠기름(牛脂)의 생산 판매,소피(牛血)를 이용한 식품의 제조와 판매,가축의 내장과 뼈의 판매,이를 이용한 음식점의 독점적 운영은 오랫동안 백정 계급만의 전용물이었다. 이 사업은 이윤이 많이 남기로 유명한 데다 국가로부터 세금 징수의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생각이 깊었던 이들은 큰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다.19세기 후반 이후 서울과 지방의 토호들은 백정들의 전유물이었던 도축장 경영권을 빼앗는 농간을 부렸다.많은 백정들은 토호들의 자본에 흡수되어 신분의 억압 외에 다시 경제적 수탈 대상이 되었고,이중의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장덕찬은 대구의 김경삼,부산의 이성순,마산의 이상윤과 박유선,진주의 이학찬 등과 함께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백정출신 부호였다.당시에는 재력가라 하여도 백정신분으로 서당이나 향교 같은 교육기관에 나가 공부할 수 없었다.백정들은 평민들과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장소에 얼씬거리는 것도 금지되었으며,교회 설립 초기에는 일반인과 백정이 함께 예배보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장덕찬은 집에 독선생을 초빙해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켰는데,장덕찬의 아들 장지필은 요즘식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하여 일본 메이지대학까지 유학하였다.행운아였던 셈이다. ●‘장지필’은 백정 출신의 부호 장덕찬은 평생토록 백정 해방을 꿈꾸며 투쟁하였다.그는 1887년 무렵 경상도 관찰사에게 백정도 패랭이를 벗고 망건을 쓸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경상도 71개 군에 있던 백정공동체인 도중(都中)들을 모아 시위를 벌였다.그 과정에서 곤장을 맞고 고문도 당했지만 요구를 끝까지 외쳐 경상도 백정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다.장덕찬에게 곤장을 가하며 백정들의 요구를 거부했던 경상도 관찰사는 이호준(李鎬俊·1821∼1901)인데 그의 아들이 한일합방을 주도한 이완용이다. 관찰사와 담판을 벌였을 만큼 재력과 식견을 갖추었던 장덕찬은 아들에게 백정 해방을 위한 투쟁정신을 물려주었다.아버지의 뜻을 잇는 장지필은 세상의 두터운 차별의식과 싸우기 위해서는 재력과 신학문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믿어 동경유학을 감행했고,귀국하여 백정해방 운동에 전력을 다한 백정 해방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강상호’ 양반신분으로 독립운동 헌신 반면 강상호는 당시 진주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양반신분이며 부유한 집안의 큰아들이었다.일제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문맹에서 눈을 떠야 한다며 학교 세우기와 신식교육을 장려했고,직접 기미년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한 행동하는 지성이었다.애국계몽운동의 하나로서 동아일보 창간 주주로 참여했고,신간회활동 등 일제에 문화적으로 항거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장지필과 강상호가 지향하는 백정해방운동의 목표는 서로 달랐다.강상호는 민족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순진하다 할 수 있는 민족운동노선을 따른 데 반하여,장지필은 백정 고유의 산업에 일반인들이 진출하지 못하게 하여 백정계급의 경제적 토대를 지키고 장차 백정들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관념적인 백정해방운동은 성공할 수 없으며,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경제적 자신감이 있어야만 백정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두 사람이 믿는 바는 달랐지만,1923년이라는 시대상황은 한국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장지필과 강상호가 함께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1919년 기미만세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를 표방하였다.민중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이다.국내에는 다양한 사회운동 조직이 생겨났고,각 조직은 민족해방운동의 뜻을 폈다.겉으로는 조직 회원들이나 민중의 계몽을 표방했으나 궁극적으로는 민족해방을 바란 것이다. 민족해방운동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뉘었는데,첫째는 일본에 무장 투쟁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한 민족독립운동으로 만주와 중국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애국주의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치중했다.두 번째는 대종교,보천교 등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었고,세 번째는 3·1운동을 이끈 세력이 주도한 문화 계몽 운동이었다. 강상호가 문화 계몽 운동에 매진하고 있던 중에 진주의 대표적인 부자 백정 이학찬이 새집을 장만하여 강상호의 이웃으로 이사하였다.강상호는 이학찬의 이사를 계기로 백정들과의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원래 진주 지방에는 여느 행정 관청이 있는 주요 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관청 관할 아래에 백정들의 거주지가 정해져 있었다.이른바 백정마을 혹은 백정놈 동네였다.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백정단취(白丁團聚) 조항에 따라 거주이전이 금지되었고 죽는 날까지 한 곳에 머물러 살았다.혹 거주지를 이탈하면 엄하게 처벌받았는데,마을 밖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관청에서 발행한 통행 증명서가 필요했다.통행증명서에는 목적지와 여행 기간이 적혀 있어서 이를 어길 때에도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개도살 요구 거절한 백정, 매질당해 죽어 그러나 1863년 고종임금이 즉위하면서 실시한 특별사면으로 백정마을에서 살던 백정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얻게 된다.거주이전 금지 규정이 해제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숙명 같았던 옛 거주지를 벗어나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로 옮겨가기 시작했고,재력 있는 백정은 마을 안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백정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강상호는 기미 독립만세 시위 이후 어느날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하였다.진주공원에서 청년들에 의해 백정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청년들은 백정마을에 사는 백정을 강제로 데려와 개를 잡으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 백정은 청년들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하였고,결국 매질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이후 백정들이 청년들을 고소하였지만 죽은 백정은 호적이 없으므로 그를 죽인 청년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일본 경찰의 판결이 내려졌다.살인죄가 성립하려면 죽은 자의 신원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법률적 증거가 없으므로 산짐승이나 벌레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이 사건은 강상호가 백정해방운동에 적극 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8)인간이 평등할 수 있을까?-백정해방운동 (上)

    20세기 세계를 움직인 100대 사건 중 하나는 1923년 진주에서 일어난 형평사운동이었다.여러 세기에 걸쳐 인간 이하의 천민으로 분류되어 수탈과 탄압,능멸과 죽임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백정(白丁)들도 인간이라는 백정해방운동을 형평사운동이라 불렀다.일본의 부락민(部落民),유대인 차별 정책인 게토,인도의 최하층민 수드라,노예시장의 매매물건인 아프리카 흑인들과 같이,1923년 이전 한국의 백정들도 인간이 어찌 평등할 수 있느냐는 조선시대 정치이념의 제물로 희생된 우리의 이웃이었다. 형평사운동을 계획하고 탄생시켰으며,그후 십여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인권문제를 줄기차게 제의했던 사람들 중에서 강상호(姜相鎬)와 장지필(張志弼)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다. ●진주 형평사운동은 ‘백정해방운동’ 장지필은 대물림한 백정 집안 후손이었다.그의 부친 장덕찬(張德贊)은 경남 의령의 백정인데 상당한 재력가였다.백정의 주된 사업인 도살업,육류판매,피혁의 건조와 가공,쇠기름(牛脂)의 생산 판매,소피(牛血)를 이용한 식품의 제조와 판매,가축의 내장과 뼈의 판매,이를 이용한 음식점의 독점적 운영은 오랫동안 백정 계급만의 전용물이었다. 이 사업은 이윤이 많이 남기로 유명한 데다 국가로부터 세금 징수의 대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생각이 깊었던 이들은 큰 재산을 모을 수도 있었다.19세기 후반 이후 서울과 지방의 토호들은 백정들의 전유물이었던 도축장 경영권을 빼앗는 농간을 부렸다.많은 백정들은 토호들의 자본에 흡수되어 신분의 억압 외에 다시 경제적 수탈 대상이 되었고,이중의 인권유린에 시달렸다. 장덕찬은 대구의 김경삼,부산의 이성순,마산의 이상윤과 박유선,진주의 이학찬 등과 함께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백정출신 부호였다.당시에는 재력가라 하여도 백정신분으로 서당이나 향교 같은 교육기관에 나가 공부할 수 없었다.백정들은 평민들과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은 물론이고 공공장소에 얼씬거리는 것도 금지되었으며,교회 설립 초기에는 일반인과 백정이 함께 예배보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장덕찬은 집에 독선생을 초빙해 자식들에게 공부를 시켰는데,장덕찬의 아들 장지필은 요즘식 가정교사 밑에서 공부하여 일본 메이지대학까지 유학하였다.행운아였던 셈이다. ●‘장지필’은 백정 출신의 부호 장덕찬은 평생토록 백정 해방을 꿈꾸며 투쟁하였다.그는 1887년 무렵 경상도 관찰사에게 백정도 패랭이를 벗고 망건을 쓸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하며 경상도 71개 군에 있던 백정공동체인 도중(都中)들을 모아 시위를 벌였다.그 과정에서 곤장을 맞고 고문도 당했지만 요구를 끝까지 외쳐 경상도 백정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넣었다.장덕찬에게 곤장을 가하며 백정들의 요구를 거부했던 경상도 관찰사는 이호준(李鎬俊·1821∼1901)인데 그의 아들이 한일합방을 주도한 이완용이다. 관찰사와 담판을 벌였을 만큼 재력과 식견을 갖추었던 장덕찬은 아들에게 백정 해방을 위한 투쟁정신을 물려주었다.아버지의 뜻을 잇는 장지필은 세상의 두터운 차별의식과 싸우기 위해서는 재력과 신학문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고 믿어 동경유학을 감행했고,귀국하여 백정해방 운동에 전력을 다한 백정 해방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강상호’ 양반신분으로 독립운동 헌신 반면 강상호는 당시 진주사회의 대표적인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양반신분이며 부유한 집안의 큰아들이었다.일제 식민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문맹에서 눈을 떠야 한다며 학교 세우기와 신식교육을 장려했고,직접 기미년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한 행동하는 지성이었다.애국계몽운동의 하나로서 동아일보 창간 주주로 참여했고,신간회활동 등 일제에 문화적으로 항거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장지필과 강상호가 지향하는 백정해방운동의 목표는 서로 달랐다.강상호는 민족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미분화된 상태에서 순진하다 할 수 있는 민족운동노선을 따른 데 반하여,장지필은 백정 고유의 산업에 일반인들이 진출하지 못하게 하여 백정계급의 경제적 토대를 지키고 장차 백정들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관념적인 백정해방운동은 성공할 수 없으며,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천한 신분인 백정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경제적 자신감이 있어야만 백정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두 사람이 믿는 바는 달랐지만,1923년이라는 시대상황은 한국역사상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장지필과 강상호가 함께 움직일 수 있게 하였다. 1919년 기미만세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문화통치를 표방하였다.민중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이다.국내에는 다양한 사회운동 조직이 생겨났고,각 조직은 민족해방운동의 뜻을 폈다.겉으로는 조직 회원들이나 민중의 계몽을 표방했으나 궁극적으로는 민족해방을 바란 것이다. 민족해방운동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뉘었는데,첫째는 일본에 무장 투쟁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한 민족독립운동으로 만주와 중국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애국주의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치중했다.두 번째는 대종교,보천교 등의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었고,세 번째는 3·1운동을 이끈 세력이 주도한 문화 계몽 운동이었다. 강상호가 문화 계몽 운동에 매진하고 있던 중에 진주의 대표적인 부자 백정 이학찬이 새집을 장만하여 강상호의 이웃으로 이사하였다.강상호는 이학찬의 이사를 계기로 백정들과의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원래 진주 지방에는 여느 행정 관청이 있는 주요 지방 도시와 마찬가지로 관청 관할 아래에 백정들의 거주지가 정해져 있었다.이른바 백정마을 혹은 백정놈 동네였다. 경국대전에서 규정한 백정단취(白丁團聚) 조항에 따라 거주이전이 금지되었고 죽는 날까지 한 곳에 머물러 살았다.혹 거주지를 이탈하면 엄하게 처벌받았는데,마을 밖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관청에서 발행한 통행 증명서가 필요했다.통행증명서에는 목적지와 여행 기간이 적혀 있어서 이를 어길 때에도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다. ●개도살 요구 거절한 백정, 매질당해 죽어 그러나 1863년 고종임금이 즉위하면서 실시한 특별사면으로 백정마을에서 살던 백정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얻게 된다.거주이전 금지 규정이 해제되자 전국의 백정들은 숙명 같았던 옛 거주지를 벗어나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 가까이로 옮겨가기 시작했고,재력 있는 백정은 마을 안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백정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강상호는 기미 독립만세 시위 이후 어느날 충격적인 사건을 목격하였다.진주공원에서 청년들에 의해 백정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청년들은 백정마을에 사는 백정을 강제로 데려와 개를 잡으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그 백정은 청년들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하였고,결국 매질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이후 백정들이 청년들을 고소하였지만 죽은 백정은 호적이 없으므로 그를 죽인 청년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일본 경찰의 판결이 내려졌다.살인죄가 성립하려면 죽은 자의 신원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아무런 법률적 증거가 없으므로 산짐승이나 벌레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이 사건은 강상호가 백정해방운동에 적극 관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 [삶과 경영 이야기]③국내최대 프랜차이즈 (주)제네시스 윤홍근 회장

    윤홍근(尹洪根·50) 회장은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치밀하게 계산해 목표를 계량화한다.그는 “최근 조류독감 파동으로 닭고기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지금은 100% 회복했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창업 9년 만에 연 매출 4000억원의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그룹을 일군 비결을 물었더니 어릴 적 가정환경부터 털어놓았다. ●“고마운 물건을 만드는 곳이 회사” -나는 전남 순천의 종갓집에서 태어났다.아버지는 여수에서 사업을 하셨고,집에는 할머니도 계셨다.부잣집 종손이어서 외지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머슴도 부려야 했다.기업에 대한 마인드는 아버지가 심어주셨다.초등학교 1,2학년 때쯤인가,아버지가 운동화와 책가방을 사 주셨다.검정 고무신과 허리춤에 찬 책보가 전부인 시절이라 뛸 듯이 기뻤다.아버지께 이런 좋은 물건들은 어디서 만드는지 물었더니 아버지께서 “회사”라고 말해 주셨다.나는 ‘아! 회사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물건을 만드는 고마운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이때부터 내 꿈은 여느 아이들처럼 대통령이나 군인,판·검사가 아니고 큰 회사의 회장이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아버지 회사도 부도가 나 집안이 그야말로 완전히 망했다.장학금을 받기 위해 서울 유학을 포기하고 조선대에 입학했다.가정교사 생활로 돈을 벌며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공부했다.덕분에 수석으로 졸업했다.졸업 후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장교를 택했다.학사장교 1기로 입대했다.리더십이 있어서인지 동기들로부터 ‘군단장 같은 소위’라는 말을 들으며 군생활을 했고,동기회 회장까지 맡았다.당시엔 학사장교 제도가 생소해 실력이 있어도 취업이 쉽지 않았다.나는 취업대책위원장을 맡아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을 직접 찾아다녔다.취업희망자 350명 전원이 취업에 성공했다.그때 무엇이든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사장이 되기 위한 도상훈련 -1984년 미원(현재 대상그룹)에 입사했다.매사 일을 할 때 ‘내가 만약 사장이라면….’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덕분에 ‘과장 같은 신입사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지금 생각하면 기업경영을 위한 도상훈련을 한 셈이다. -나의 첫 업무는 사료곡물 수입이었다.개인적으로도 무역에 관심이 많았다.구매업자들은 흔히 판매상들을 상대할 때 구입가격을 무조건 깎으려고 하기 마련인데 나는 판매상들이 달라고 하는 대로 주었다.소탐대실(小貪大失)하기 싫었기 때문이다.대신에 판매상들로부터 사료에 쓰이는 옥수수나 소맥 등에 대한 시장정보를 입수했다.수출국의 생산 동향도 파악했다.정보가 쌓여 나중에는 수입시장에 공급이 넘칠 때 주문을 내서 평소보다 더 싸게 곡물을 들여올 수 있었다.판매상들에게 인심도 잃지 않았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인 셈이었다.월급의 3분의1이 집안의 빚을 갚는 데 들어갔지만 일에 몰두했다.새벽 6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하는 날이 계속됐다.1978년 프랜차이즈를 국내에 도입한 롯데리아에 관심을 가졌다.‘롯데리아처럼 사업을 하면 빨리 성장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프랜차이즈를 공부했다. -곡물수입을 하며 돼지,닭 등에 대해 많이 배웠다.유통사정도 알게 됐다.고속으로 승진해 경기도 이천의 사료공장에서 총무과장으로 일했다.이때 품질·신용·법무 관리 등에 대해 식견을 넓힐 수 있었고,합리적인 생산지원으로 부임 3년 만에 판매량을 3배 늘렸다. ●목표는 반드시 달성한다 -94년 미원이 닭 생산업체인 천호 마니커를 인수하면서 미원 마니커의 영업부장으로 발령이 났다.당시 마니커의 하루 평균 판매량은 채 1만마리가 되지 않았다.임원진에게 “발로 뛰는 영업으로 3개월 안에 5만마리로 늘린 뒤 매월 1만마리씩 증대시키겠다.”고 보고했다.임원진은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실제로 그해 5월에 5만마리,6월에 6만마리,비수기인 7∼8월에 10만마리를 달성했다.내 계획대로 2년 후 13만마리,3년 후에 20만마리도 가능했다.국내 최고의 닭고기 생산업체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하려면 생산물량을 제때 소화해 줄 치킨 전문점이 필요했다.마침 오너도 미국의 맥도널드를 보고 미원을 식품회사에서 외식산업 회사로 키우고 싶어했다.미원은 이미 생산·유통망을 확보하고 있고,자금력도 있었다.미원 식품연구소에서 최고의 맛을 만들 준비도 돼 있었다.그 정도면 3년 안에 1000개의 프랜차이즈 점포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그러나 나는 닭고기점 특성에 맞는 소형 점포를 주장했고,임원진은 그룹 이미지에 걸맞은 대형점을 주장했다.나는 점포당 2억원을 투자해야 하는 대형점보다 5000만원만 있어도 가능한 소형점이 7배의 투자효율성을 지녔다고 설득했다.당시 대형업체로서 경쟁관계에 있던 K사는 100개의 점포를 내기 위해 2000억원을 투자했다.경기도 광명에 모델점을 개설했다.BBQ 브랜드도 만들었다.그러나 일부 중역들의 계속되는 반대에 부딪혀 사업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나는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원과 내가 만족하는 협력관계 제안 -아내,친구들과 상의한 끝에 미원에 사표를 내면서 ‘사내 사업가’제도의 도입을 건의했다.마니커는 판매처가 필요하고,나는 미원이라는 브랜드가 필요하니 서로 돕자고 했다.미원의 닭고기를 독점적으로 구입하는 만큼 미원의 리스크는 없다고 설득했다.마침내 95년 9월 친구들로부터 5억원의 투자를 받아 제너시스를 설립했다.치킨점의 브랜드는 마니커가 소유권을 지닌 BBQ를 그대로 사용했다.BBQ는 ‘Best Believable Quality’,가장 맛있는 치킨이라는 의미다.회사는 나를 적절히 활용했고,나도 회사의 인프라를 충분히 이용한 셈이다. -치킨 시장은 당시 일부 전문가들의 말처럼 포화상태가 아니었다.당시에는 치킨이 맥주의 안주쯤으로 간주돼 호프집에서만 팔렸다.그러나 치킨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맛을 지녔다.1㎏짜리 닭고기로 환산하면 우리나라의 연간 닭고기 소비량은 3억 8000만마리,1인당 8마리를 먹는 셈이다.그러나 일본은 15마리,미국은 45마리,이스라엘은 60마리다.우리의 소비량이 적은 이유는 닭고기를 이용한 요리가 다양하게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맹점 사업의 고속 성장 -창업 2개월 만에 경기도 전곡에 1호점을 차렸다.전곡점을 운영하는 부부는 지금도 나의 고마운 후원자이다.1호점 개설 후 7개월 만에 100호점을 돌파했다.다시 3년 3개월 만에 1000호점을 만들었다.마니커 생산량의 70%를 제너시스가 구입하면서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뀌었다. -일부 가맹점에선 재료비를 낮춰 낮은 가격으로 승부하자고 했으나 “좋은 재료만이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길”이라고 설득했다.다른 치킨점들은 수입 냉동육을 쓰지만 BBQ만은 도축 후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신선육을 사용한다.닭고기는 냉동육을 사용하면 맛이 30% 이상 떨어지는 식품이다.고비용이 반드시 고품질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고품질은 반드시 고비용이 든다.맛과 가격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라면 맛이 우선이다.맛은 원재료의 품질에서 나온다.맥도널드 햄버거 대학을 본뜬 치킨 대학을 경기도 이천에 설립했다.12명의 석·박사들이 맛을 연구한다.양념이 살코기에 깊숙이 스며들게 하는 인젝션(주사)공법도 개발했다.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미원 마니커는 워크아웃 업체가 됐다.새 경영진이 갑자기 BBQ 브랜드를 내놓라고 했으나 일정한 로열티를 물고 계속 사용하기로 했다. ●중국은 프랜차이즈 석권의 교두보 -국내 가맹점 1350곳을 기록한 지난해 3월 중국에 진출했다.중국 희망그룹과 손잡고 올 3월까지 상하이 등에 5호점을 차렸다.BBQ는 중국에 배달점 문화를 도입했다.오는 2010년까지 1만개의 매장을 만들 계획이다.그러면 연간 벌어들이는 돈이 2억 2000만달러에 달한다.무형의 가치인 기술료만 이 정도이니 이를 매출로 환산하면 40억달러에 이른다.국내는 가맹점의 영업반경 보호차원에서 볼 때 꽉 찼다.가맹점은 5분 거리에 한개 꼴이 원칙이다.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 추가로 개설해 줄 예정이다. -가맹점을 내면 치킨대학에서 1주일 동안 연수를 받는다.오픈 때에는 슈퍼바이저(일종의 경영지도책임자)가 4일 동안 현장에서 지도해준다.창업 1개월 동안은 한 주에 두 차례씩 슈퍼바이저가 가맹점을 찾는다.한 슈퍼바이저가 25개의 가맹점을 책임지며,현재 100여명이 있다.치킨은 무엇보다 맛이 우선이다.본점에선 CF 및 전단지 광고,입소문 마케팅을 책임진다.월 7억∼8억원의 광고비를 쓰고 있다.조류독감 파동 이후 40일 동안 전국을 돌면서 가맹점 점주들을 만났다.그들의 의견을 듣고 영업비전을 제시했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절대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게 아니다.부존자원이 필요없는 지식산업이다.브랜드화,마케팅,운영시스템,물류시스템,자금과 조직력 등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한다.이런 면에서 제너시스의 프랜차이즈 영업은 새로운 한국형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제너시스는 세계적인 맥도널드보다 모든 것이 3∼4배 빠르다.제너시스는 올 3월 말 현재 치킨 전문점 ‘BBQ’가 1600개점,참숯닭불구이 전문점인 ‘닭익는 마을’ 120개점,우동·돈가스 전문점 ‘U9’ 10개점을 운영하고 있다.지난해 말 본사 매출 1400억원을 포함해 연간 매출액이 4000억원에 이른다.오는 2020년엔 전 세계에 5만개의 가맹점을 차릴 계획이다.제너시스의 자본금은 200억원인데,투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제너시스를 당장 주식시장에 내놓을 계획은 아직 없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