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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젤리피시/조수경

    [2013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젤리피시/조수경

    분홍빛 바다가 출렁인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 토막 난 엉덩이가 바짝 엎드려 있다. 둥근 엉덩이 사이로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페니스들이 서 있다. 페니스들은 물살이 지나갈 때마다 일제히 부드럽게 흔들린다. 한쪽에서는 실리콘 가슴이 유두를 꼿꼿하게 세운 채 먹잇감을 찾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듯, 무지개빛깔 콘돔 무리가 빠르게 헤엄쳐 지나간다. 나는 눈을 감는다. 바다 깊은 곳까지 파고든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든다. 눈꺼풀을 투과한 빛이 안구를 따스하게 감싼다. 빛은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온몸에 뿌리내리고 있는 뼈마디를 녹인다. 몸이 점점 더 가벼워진다. 나는 분홍빛 바다를 부유한다. 나는 휠체어 바퀴를 탄력 있게 밀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휠체어를 미는 손에는 조금의 망설임이 없었다. 방향을 틀 때마다 짧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하늘거렸다. 출입문이 열리며 사십대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의 얼굴 위로 분홍빛 조명이 물결처럼 흘러갔다. 나는 카운터 위에 달린 회전 조명등을 껐다. - 천천히 돌아보세요. 휠체어를 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남자의 시선이 뒤쫓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의 시선이 진열대 쪽으로 튕겨 나갔다. 남자의 눈동자는 진열대에 놓인 성인 잡지와 DVD, 콘돔 상자와 딜도를 빠르게 훑으며 한 칸씩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줄리’ 앞에서 멈췄다. ‘줄리’는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었다. 그것은 유명한 포르노 여배우가 자신의 성기를 직접 본떠 만든 것이었다. 남자는 ‘줄리’의 우윳빛 허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토막 난 몸뚱이를 쓰다듬던 남자는 여배우의 그곳을 구석구석 살피며 촉감을 확인했다. 남자의 턱관절이 점점 느슨해지며 입이 벌어졌다. 모니터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앉아 있을 때도 남자는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삼 개월 할부로 몸값을 치르고, 남자는 토막 난 연인을 끌어안은 채 가게 밖으로 사라졌다. 비록 신체 일부분이긴 하지만 남자는 매일 밤 포르노 스타와 밀애를 즐기게 될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상품 중 완전한 것은 없었다. 모두 분절된 신체기구뿐이었다. 발기된 페니스를 본뜬 고가의 바이브레이터, 살짝 벌어진 여자의 성기, 둥글고 탐스러운 엉덩이, 가슴 사이에 질이 달린 기형적인 기구까지 온통 토막 난 몸뚱이뿐이었다. 토막 난 몸뚱이들은 나와 제법 어울렸다. 아이처럼 작은 몸에 달린 성숙한 여자의 젖가슴, 근육이 잘 발달된 짧은 팔,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붙어 있는 가늘고 휘어진 다리는 몸통을 중심으로 하나로 이어져 있으나 각각 떨어져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법했다. 내 몸뚱이는 버려진 재료를 모아다가 아무렇게나 조립해 만든 결과물 같기도 했다. 나는 가끔 가게 안에 분해된 채로 진열된 내 몸뚱이를 상상해 보곤 했다. 오후 두 시. 노인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인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나는 카운터 뒤쪽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노인은 방 안에 쟁반을 밀어 넣은 뒤 내 몸을 들어 올렸다.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아무 의지도 없이 덜렁거렸다. 노인은 나를 방 안에 내려놓은 뒤 문지방에 걸터앉아 천천히 신발을 벗었다. - 오늘은 유난히 바빴어. 공영주차장 공사가 시작됐거든. 그쪽 인부들이 다 왔지 뭐야. 한동안 바쁘겠어. 노인은 안주인과 함께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동네 이름을 따서 지은 평범한 상호에, 따로 메뉴도 없이 그날그날 안주인이 만든 국과 반찬을 내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일하는 공업사 사람들 대부분이 노인의 식당을 찾았다. 젊은 시절, 노인은 이 근방에서 기계 다루는 일을 했다. 안주인은 노인이 일하는 곳 근처에 세를 얻어 식당을 열었다. 공업사와 공구상가가 밀집된 지역이었다. 식당은 벌이가 꽤 괜찮았다. 노인은 일을 그만두고 식당에서 안주인을 거들거나 상가로 배달을 다니곤 했다. 세를 얻어 식당을 차린 노인 부부는 이제 식당이 딸린 3층짜리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내가 노인의 건물 2층에 세를 얻어 산 것도 벌써 6년째 접어들었다. 노인은 내가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게끔 화장실을 개조해 주었다. 노인이 아니었다면 가게를 시작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었다. 끼니때가 되면 노인은 식당에서 밥과 반찬을 챙겨다 주었다. 때로는 나를 안고 식당에 내려가기도 했다. 한창 바쁘게 손님을 치르고 난 안주인까지 함께 둘러앉아 늦은 점심을 먹을 때면 ‘가족’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공업사 사람들은 노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밥알을 씹으며 노인 같은 사람이야말로 선행상을 받아야 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노인은 쑥스럽게 웃으며 “딸자식 같아서…”라고 겸손하게 말하곤 했다. -갈치조림이야. 손님상에 내려고 만든 건 아니고… 며느리가 보낸 걸 내가 몇 토막 졸여 달라고 했지. 방으로 들어온 노인이 쟁반을 덮고 있던 신문지를 걷어냈다. 매콤한 갈치조림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노인은 손으로 갈치 한 토막을 집어 들고 몸통 양 옆에 박혀 있는 가시를 빼냈다. -이렇게 가시를 미리 빼두면 먹기 좋지. 갈비처럼 손에 들고 뜯어 먹기도 좋고. 양념장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빨며 노인이 말했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갈치 살을 발라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갈치는 꽤 먹음직스러웠다. 발라낸 살을 입안에 넣자마자 연약한 살점이 부서졌다. 그제야 허기가 밀려왔다. 자작자작한 국물에 뜨거운 밥을 비벼 입에 넣고,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무를 베어 먹었다. 노인은 남은 갈치 토막을 집어 들고 가시를 제거한 뒤 살점을 발라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살점을 씹고, 국물을 삼키는 나를 보며 노인은 기름으로 번들번들해진 손가락을 자꾸만 빨았다.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는 밥그릇 가장자리에 들러붙은 밥알을 떼어 냈다. 손톱으로 접시에 말라붙어 있는 갈치 비늘을 긁어냈다. 손톱 사이로 은빛 비늘이 반짝였다. 나는 신문지로 빈 그릇을 덮었다. 노인은 쟁반을 방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나는 갈치 기름으로 얼룩진 신문지 귀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손님이 올 거예요. -그래, 그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꿰신었다. -저녁 올려다 주마. 노인이 쟁반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방 한쪽에 쌓아 놓은 상자더미 쪽으로 기어갔다. 어제 들어온 상품 몇 개를 새로 진열해 놓을 생각이었다. 상자더미 옆에는 계단식으로 만든 나무받침대가 있었다. 노인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나는 받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였다. 몸집이 큰 그는 사람들과 섞여 있어도 쉽게 눈에 띄었다.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을 때 그와 몇 번인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눈을 갖고 있었다. 그는 마치 바다 속 포유류 같았다. 그가 맞은편에 위치한 자동차 공업사에서 일한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그리고 공업사 2층에 딸린, 내 방에서 마주 보이는 방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곧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받침대에 올라갈 때마다 창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작업을 마친 그는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툭툭 털어내고 동료들과 함께 공업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맨 위에 올려져 있던 상자에서 ‘투 러버스’를 꺼냈다. 페니스 모형 두 개가 하나로 이어진 상품인데, 한쪽은 딱딱하고 다른 한쪽은 부드러운 질감을 하고 있는 기구였다. 이것은 마치 머리가 둘 달린 뱀처럼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튜브 걸’도 꺼냈다. 여체를 본뜬 비닐 튜브에 바람을 주입한 뒤, 성기 부분에 실리콘으로 제작한 질 모형을 끼워 넣고 사용하는 상품이었다. 모양이나 촉감은 ‘리얼 돌’에 못 미치지만 저렴한 가격이 ‘튜브 걸’의 장점이었다. 나는 두 개의 상품을 들고 가게로 나갔다. ‘투 러버스’를 딜도 옆에 나란히 진열해 놓은 뒤, 납작하게 눌린 ‘튜브 걸’의 몸에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밋밋한 얼굴과 유두 없는 가슴이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흐느적거리던 비닐 다리에도 팽팽하게 공기가 차올랐다. 나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튜브 걸’의 다리를 벌리고 핑크빛 질을 끼워 넣은 뒤 무릎 위에 앉혔다. 공기처럼 가벼운 여인을 한 팔로 끌어안고 가게 중앙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춤을 청하듯 정중하게 ‘튜브 걸’에게 손을 내밀었다. ‘튜브 걸’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동그란 원을 그리듯 휠체어를 밀었다. 멀어질 듯 밀착되고, 흐느끼듯 가라앉다 이내 경쾌하게 튀어 오르던 춤. 오래전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흘러나왔던 연주곡을 흥얼거리며 나는 ‘튜브 걸’과 함께 가게 안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췄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춤추기를 멈췄다. -제법인데. P공업사 사장 최 씨였다. 최 씨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가게를 찾아왔다. 최 씨는 나에게서 ‘튜브 걸’을 빼앗아간 뒤, 춤을 추는 시늉을 했다. 나는 ‘튜브 걸’을 거칠게 낚아채 한쪽에 세워 두고 가게 문을 잠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최 씨가 나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알코올로 기구를 닦아 내는 동안 최 씨는 양말과 바지, 그리고 팬티를 차례로 벗었다. 나는 최 씨 쪽으로 기구를 밀었다. 무릎을 세운 채 다리를 한껏 벌리고 있는, 여자의 하반신을 본뜬 기구였다. 최 씨는 내가 건넨 윤활제를 자신의 성기에 발랐다. -거기 있어. 네가 보고 있으면 더 흥분이 되거든. 이곳에 찾아오는 남자들 대부분이 내게 자신들의 행위를 지켜봐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에게 섹스를 요구한 사람은 없었다. 기구가 아닌 진짜 여자와의 섹스를 원했다면 그들은 다른 곳에 갔을 것이었다. 대신 그들은 내가 여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했다. 나는 남자들이 기구 안에 사정을 할 때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그들을 지켜보곤 했다. 때로는 기구에서 여자의 상반신이 자라나는 상상을 하거나, 기구처럼 남자들의 상반신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일을 마친 최 씨가 기구에서 몸을 빼냈다. 나는 전기주전자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커피 잔에 인스턴트커피를 쏟아부었다. 황갈색 커피 알갱이가 잔 위로 우박처럼 떨어졌다. 하얀 프림이 쏟아지며 커피 알갱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입자가 고운 프림은 카리브 해의 모래를 닮았다. 카리브 해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해파리가 산다고 했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 언젠가 TV에서 본 그 해파리의 이름을 천천히 발음해보았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성장과 퇴행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했다.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 1cm도 안 되는 이 작은 해파리는 죽지 않고 끊임없이 번식하며 전 세계 바다로 퍼져 나가 생태계를 위협한다고 했다. 지구상에서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다 해도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는 태고로부터 멀고 먼 미래까지, 끝없이 헤엄쳐 갈 것이었다. 바다를 가득 메운 영생불사의 생명체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헤엄쳐 오는 환영. 나는 몸을 떨었다. 아주 오래전, 나는 해파리였다. 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흐물흐물한 두 다리는 내가 해파리의 삶을 살았다는 흔적기관으로 남아 있었다. 분출하는 법은 잊었지만, 여전히 분비되고 있는 독이 동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며 현기증이 일 때도 종종 있었다. 물이 끓었다. 나는 최 씨에게 커피를 건넸다.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시고 최 씨는 커피값을 기구 옆에 내려놓았다. 나는 해변에 누워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 끝에 태양이 반쯤 걸려 있다. 태양은 바다 위로 황금빛 길을 만들고 있다. 황금빛 길을 따라 무언가 해변을 향해 헤엄쳐 오고 있다. 그것은 수면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헤엄쳐 온다. 물살이 점점 거세진다. 하지만 나는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해변에 가까워지면서 그것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검은 고래다. 고래와 나는 서로 마주 본다. 나는 고래의 등 위로 기어 올라간다. 고래의 등은 생각처럼 미끄럽지 않다. 그리고 따뜻하다. 나를 태우고 고래는 다시 바다로 헤엄친다. 내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고래는 수면 가까이에서 헤엄친다. 물살에 발등이 간지럽다. 낯설다. 나는 내 다리를 내려다본다. 길고 튼튼한 다리가 쭉 뻗어 있다. 나는 다리를 한껏 뻗어 물살을 가른다. 잠결에 쇠가 또 다른 쇠붙이 안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떴다. 철컥, 하고 가게 출입문이 열린 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시 출입문이 슬며시 닫히는 소리, 쇠붙이가 돌아가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로 허공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서는 귀가 예민해지는 법이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방문이 천천히 열렸다. -벌써 잠이 든 게냐? 노인이었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방문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저녁상 봐왔다. 불을 켜지도 않은 채, 노인은 방 한쪽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저녁은 먹고 자야지. 노인은 문지방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었다. -갈치찌개다. 남은 갈치 넣고 끓였는데 맛이 아주 개운하다. 노인이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오며 말했다. 노인이 등 뒤에서 나를 끌어 안았다. 노인의 손이 티셔츠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노인의 피부는 차갑고 거칠었다. 노인은 내 가슴을 성급하게 움켜쥐었다. 노인은 내 등 뒤에 바싹 붙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물을 벗고 있는 커다란 곤충이 등 뒤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간간이 쇠를 자르는 날카로운 소리도 들려왔다. 공업사에서는 종종 야간까지 작업을 하곤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나는 어두운 방 안에 누워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쇠가 잘리는 소리는 비명소리 같았다. 그것이 쇠붙이에서 피 맛이 느껴지는 이유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불로 온몸을 꽁꽁 감싸고 누워 기계가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소리를 듣다 잠이 들곤 했다. 노인이 긴 숨을 토해냈다. 허물처럼 노인의 몸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입맛 없으면 뒀다가 아침에 데워 먹어라. 방문을 닫기 전, 노인이 말했다. 가게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힐 때까지 나는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노인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난 뒤, 나는 기구를 소독하듯 내 몸 구석구석을 닦아 냈다.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배고픈 아기마냥 희미하게 울다가도 이내 앙칼진 비명을 질러댔다. 안주인은 또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전화벨이 울려도 못 들을 만큼 깊은 잠에 빠지는 편인데, 고양이 울음소리만 들리면 이상하게 잠에서 깨어난다며 투덜거리곤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다 보면 단순히 교미를 하고 있는 짐승이 아닌, 이제 막 성의 유희를 알게 된 계집 같다며 몸서리치기도 했다. 나는 노인이 두고 간 쟁반을 끌어당겼다. 밥공기를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차갑게 식은 밥덩이가 갈치찌개 위로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비닐봉지 안에 담은 뒤 나무받침대 맨 위까지 기어 올라갔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응시했다. 캄캄한 골목길에서 몸집이 작은 고양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비닐봉지를 아래로 떨어뜨리고 비린내를 맡은 고양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곧 생명을 잉태할 어미 고양이에게는 충분한 영양 공급이 필요할 것이었다. 전봇대 아래 둥그런 물체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쓰레기더미일 것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맞은편, 그가 살고 있는 방을 바라봤다. 불이 꺼져 있었다. 창문은 밤하늘보다 더 어두운 빛깔을 하고 있어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낮에 본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자동차 보닛을 열고 부품을 교체하던 중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육중한 부품들을 그는 날렵한 동작으로 들어내고 또 갈아 끼웠다.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자동차는 매끄러운 엔진 소리를 냈다. 그는 무엇이든 고칠 수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 몸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괴한 모양으로 붙어 있는 팔과 다리를 몸통에서 분해한 뒤 정상적인 팔과 다리를 다시 이어 붙이고 조립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그의 집 창가에 커다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재빨리 몸을 숨기며 받침대에서 기어 내려왔다. 안주인이 자꾸만 하품을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지난밤 잠을 설친 탓이었다.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손으로 열무를 집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노인이 두부조림을 반으로 잘라 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양념장이 간간하니 입맛이 돌 게다. 나는 노인이 얹어 준 두부를 입안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두부에 배어 있던 물기가 밥알 사이로 스며들었다. 노인은 배추김치를 손으로 찢어 밥 위에 올려 주고 코다리찜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주었다. 안주인이 열무를 집어 먹던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을 먹으면서도 식당 출입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안주인의 오랜 습관이었다. 곧 식당 문을 밀고 남자 몇몇이 들어왔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 중에 그가 있었다. 빈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는 나와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안주인이 부엌에 들어가 국을 데우는 동안, 노인은 밑반찬을 가져다 날랐다. 나는 밥알을 씹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는 코다리찜을 한입에 넣고 씹다가 입을 우물거리며 가시를 뱉어냈다. 그의 젓가락은 계란말이를 자주 집어 들었다. 그는 국그릇을 한 손으로 들고 후루룩 국물을 삼켰다. 콧등에 땀이 맺히자 손등으로 스윽 닦아냈다. 숟가락질 서너 번 만에 그는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물로 입가심을 하던 그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노인이 맞은편 자리로 와 앉았다. -다 먹은 게냐? 노인이 물었다. 노인 뒤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노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나를 안으려는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올려다 줄게요. 그가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 옆에 서자 그의 몸집은 더 커보였다. 노인은 그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가 나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는 나를 안은 채로 식당 문을 열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그의 새끼손가락이 내 가슴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었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콧날에서 인중으로, 인중에서 다시 윗입술로 이어지는 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윗입술에 비해 아랫입술이 들어가 있고 아래턱이 짧아 그는 고집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는 휠체어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의 목덜미가 내 얼굴에 닿을 듯했다. 그는 후, 하고 숨을 짧게 내뱉었다. 그는 물건을 사러 온 손님처럼 가게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나는 휠체어를 밀고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를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 좀 마실래요?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에게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방바닥에는 포장하려고 꺼내 놓은 상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 주문량이 나날이 늘고 있었다. 나는 상품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그가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방에 들어온 그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반쯤 찔러 넣고 머뭇거렸다. 방바닥에 앉아서 바라보니 그는 더욱 커 보였다. 엉거주춤하게 선 자세로 방안을 휘휘 둘러보던 그가 갑자기 창가로 걸어갔다. -내 방이 마주보이는군요.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는 정말 모르고 있었던 걸까. -저기가, 그가 손을 쭉 뻗으며 맞은편을 가리켰다. -내 방이거든요. 그가 천진하게 웃었다. 방바닥에 앉아 있는 나는 창문 너머 그의 집을 볼 수가 없었다. 그제야 눈치 챈 듯, 순식간에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창문 앞에 놓인 나무받침대를 흘끗 쳐다보고 내 옆에 와 앉았다. 나는 전기주전자 쪽으로 몸을 끌었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손을 짚은 곳까지 엉덩이를 끌어당겼다. 작고 가느다란 두 다리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꼬리처럼 흐물흐물 따라왔다. 그가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더 무거워졌다. 전기주전자에 물이 끓는 동안 그는 주문 목록을 집어 들고 천천히 훑어봤다. 상품명을 일일이 소리 내어 읽다가 그는 중간중간 주변을 돌아보며 해당 상품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름만으로는 도무지 어떤 상품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커피를 건네고 나서야 그는 주문 목록이 적힌 종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바닥에 늘어놓은 상품들 중 딜도를 손에 쥐었다. 나는 익숙한 솜씨로 딜도를 포장해 상자에 넣었다. 사은품으로 지급하는 콘돔 두 개도 빠뜨리지 않았다. 상자를 테이프로 봉한 뒤 나는 ‘식스팩맨’을 끌어당겼다. 탄탄한 복근부터 허벅지까지 만들어놓은 것으로 ‘초콜릿 복근’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출시된 상품이었다. ‘식스팩맨’을 개발한 회사에서 상품을 광고할 때 내건 문구는 ‘지금은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이었다. 광고 문구를 읽을 때마다 나는 구시대의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레즈비언 커플을 위한 기구를 포장했다. 벨트를 허리에 두르면 여자도 남자의 성기를 몸에 지닐 수 있었다. 내가 상품을 포장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그가 여자의 엉덩이를 본뜬 상품을 집어 들었다. 그는 내 손놀림을 곁눈질해가며 여자의 엉덩이를 포장했다. 엉덩이를 움켜쥐는 그의 손등 위로 핏줄이 일어섰다. 나는 페니스 모형을 말아 쥐었다. 불끈 튀어나온 핏줄까지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상품이었다. 그의 시선이 느껴져 손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나는 페니스를 더욱 세게 말아 쥐었다. 그는 포장한 엉덩이를 상자에 넣고, 이번에는 실리콘 가슴 모형을 끌어당겼다. 그의 커다란 손 안에 한쪽 가슴이 가득 찼다. 그의 시선이 내 가슴 쪽으로 옮겨 왔다. 순간, 아랫도리에 더운 피가 고여 들었다. 나는 실리콘 가슴을 움켜쥐고 있는 그의 손을 끌어다 내 가슴에 가져다댔다. 잠시 멈칫했던 그의 손이 이내 옷 속을 파고 들었다.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두 개의 다리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옷 속을 파고든 그의 손이 몸의 굴곡을 따라 느리게 움직였다. 온기가 지나간 자리에 소름이 돋아났다. 가슴과 배꼽 위에 차례로 머물던 따스한 기운이 순간 사라졌다. 그가 치마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나는 그의 손을 다급하게 막았다. -일 끝내고,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빛이 한창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짧고 가느다란 다리가 여과 없이 보일 터였다. 다리를 보게 되면 햇볕에 말라죽은 강장동물의 사체라도 발견한 듯, 그의 눈은 경멸로 가득해질 것이었다. -밤에 다시 와줄래요? 그가 내게서 몸을 뗐다. 그는 몸의 열기를 빼내듯, 숨을 길게 내뱉고 일어났다. 포장이 끝난 상자 몇 개를 한쪽에 쌓아 두고 그는 방에서 나갔다. 오후 일곱 시. 나는 딜도를 크기별로 보기 좋게 정리했다. DVD를 진열해 놓은 선반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니 먼지가 묻어났다. 물티슈를 뽑아 선반에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내친김에 다른 진열장에 쌓여 있는 먼지도 닦았다. 출입문 손잡이 부분은 늘 손님들의 지문으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물티슈를 한 장 더 뽑아서 손잡이 부분을 닦았다. 휠체어를 뒤로 밀어 얼룩이 남은 곳이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봤다. 카운터 주변까지 정리를 마치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택배기사가 상자를 수거해 가고 난 뒤에 방안을 쓸고 걸레질까지 했지만, 나는 물티슈로 방바닥을 한 번 더 훔쳐 냈다. 가지런히 개어 놓은 이불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노인의 냄새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불 귀퉁이에 향수를 살짝 뿌려두고 나서야 나는 안심했다. 욕실 문을 열고 쓰윽 훑어봤다. 거울도, 세면대도, 바닥도 모두 말끔했다. 세면대 옆에 걸어둔 수건이 낡아 보였다. 나는 서랍장을 열고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수건을 찾아 욕실에 새로 걸어 두었다. 그가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카운터 서랍을 열고 화장품을 꺼냈다. 파우더 퍼프를 두드려 이마와 콧등의 기름기를 지웠다. 턱을 살며시 들고 마스카라를 덧발랐다. 손거울 안에 들어있는 여자의 얼굴이 제법 도도해 보였다. 나는 턱을 든 채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여 보기도 하고 입 꼬리를 올려 웃어 보기도 하다가 키스를 기다리는 여자처럼 입술에 긴장을 풀었다. 거울을 끌어당기고 살짝 벌어진 입술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을 향해 처음 속살을 내보인 패류(貝類)처럼 나는 재빨리 입술을 닫았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카운터 서랍을 급히 닫고 미리 띄워 놓은 인터넷 쇼핑몰 창을 들여다보며 주문량을 확인했다. 문이 열리며 발자국 소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모니터 너머로 고개를 빼고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노인이었다. -문 닫고 내려가서 저녁 먹자. 일곱 시 사십 분. 평소대로라면 벌써 가게 문을 닫았을 시간이었다. -손님이 올 거예요. 나는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노인은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 출입문 밖으로 나갔다. 노인의 발자국 소리가 희미해지자 나는 가게에 불을 켜둔 채 방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이미 어두웠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걸까. 나는 상체를 숙여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엉덩이를 끌어내렸다. 쿵, 소리가 났지만 이 정도 충격에는 이미 단련되어 있었다. 나는 어두운 방안을 기어갔다. 방바닥에 가로등 불빛이 창문 모양으로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나는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은 나무받침대를 한 칸씩 올라갔다. 팔 근육은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더 굵고 튼튼했다. 창밖으로 그의 방 창문이 보였다. 불이 꺼져 있었다. 공업사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빠른 속도로 나무받침대를 내려왔다. 휠체어에 올라타고 카운터로 나갔다. 모니터에 인터넷 쇼핑몰 창을 띄워 놓은 채, 나는 가끔씩 출입문 쪽을 바라봤다. 배송해야 할 상품목록을 정리하고, 제조사에서 보낸 신상품 카탈로그를 살펴봤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덧 아홉 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두운 방안을 기어 나무받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의 방 창문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창가에 바짝 붙어 그의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나무 책상이 보였고 침대 모서리가 보였다. 멀리서 자동차가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지나갔다. 소리는 점점 멀어지다 사라졌다. 침대 모서리 밖으로 하얀 다리가 튀어나왔다. 창틀에 가려져 다리의 일부만 보였지만 그의 것은 아니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침을 삼켰다. 나는 다시 몸을 낮추고 창밖을 내다봤다. 하얀 다리 사이로 그의 커다란 몸뚱이가 보였다. 하얀 다리가 그의 허리를 감쌌다. 곧은 뼈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탄력 넘치는 근육. 근육이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곡선. 관절의 거칠고도 부드러운 움직임. 실리콘도, 비닐 튜브도 아닌 살아 있는 다리. 만져 보고 싶었다. 나는 카운터 위에 달린 회전 조명등을 켰다. 꼿꼿이 서 있는 딜도와 납작하게 웅크리고 있는 엉덩이 위로 분홍빛이 내려앉았다. 휠체어를 밀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나는 포르노 스타의 토막 난 몸뚱이 앞에서 멈췄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질을 가지고 있는 포르노 스타 옆에는 실리콘 가슴이 누워 있었다. 나는 계속 가게 안을 둘러봤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성인 잡지에서 종종 봤으나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았다. 나는 잡지를 집어 들고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여자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면을 찾아 방바닥 한가운데에 잡지를 펼쳐 놓았다. 그 아래로 실리콘 가슴을 가져다 놓았다. 나는 다시 포르노 스타의 토막 난 은밀한 부위, 그리고 여자의 다리를 본뜬 쿠션을 차례로 가져다 놓았다. 나는 내가 창조해 낸 여자 옆에 나란히 누웠다. 카리브 해의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여자와 나는 백사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분홍빛 파도가 밀려와 여자와 내 몸을 적신다. 여자의 분절된 몸이 하나로 이어진다. 여자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운다. 한 걸음씩 발을 내딛다 여자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전라의 아름다운 육신이 부드럽게 출렁인다. 여자는 춤을 추며 내게 다가온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큘라. 여자는 주문을 외우고 섬세한 손길로 내 다리를 쓰다듬는다. 숨을 불어넣은 ‘튜브 걸’처럼 가늘고 휘어진 두 다리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며 감각이 되살아난다. 탐스럽게 살이 오른 두 다리가 공중으로 뜨기 시작한다. 다리와 함께 내 몸도 붕 떠오른다. 내 몸은 분홍빛 바다 위를 떠다닌다. 따스한 물결이 몸을 부드럽게 감싼다. 투명한 몸에서 빛을 발하는 해파리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하나둘씩 떠올라 해면을 부유한다. 해파리들이 헤엄쳐와 내 몸을 핥듯이 뒤덮는다. 목을 감싸고 가슴 위로 미끄러지고 내 몸 안을 깊숙이 파고든다. 태양과 바다가 맞닿은 곳을 향해 나는 해파리들과 함께 헤엄친다. [당선소감] 연인이 세상 떠난 벼랑끝, 거짓말 같은 일이…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쏟아졌고, 나의 연인은 세상을 떠났다. 감당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이쪽이 아닌, 저쪽 세상을 바라보던 시간이었다. ‘나’도 잃고 ‘언어’도 잃은 시간이었다. 두려웠다. 벼랑 끝에서, 당선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달려가며 세상을 편리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느리게 걸으며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 나는 후자 쪽을 꿈꾼다. 어릴 때부터 꿈은 하나였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언제나 명확했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삶의 사각지대였고, 나는 그것을 문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제, 간신히 ‘입장권’을 받은 기분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임을 잘 알고 있다. 글. 그림. 여행. 세상 구경 실컷 하고, 아이들, 동물들과 사랑을 나누는 삶.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글’의 힘을, 나는 믿는다. 늦게 출발한 만큼 더 열심히 쓸 것이다. 제게 ‘숨’인 소중한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좌뇌를 물려주신 아빠, 우뇌를 물려주신 엄마, 가장 소중한 우리 가족, 사랑합니다. 등단하면 찾아뵙겠다며 지금껏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어요. 조해룡 교수님, 곧 찾아뵐게요. 대모님을 비롯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많은 분, 믿고 응원해 준 친구들, 특히 집 밖에 나가지 않는 나를 위해 식량과 각종 영양제를 배달해 준 재경양, 모두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영원히 방부 보존되어 있을 당신, 그곳에서 늘 지켜봐 주세요. ■약력 ▲1980년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 현재 SBS 라디오 작가 [심사평] 인간의 깊은 내부세계 들여다보는 문제작 서울신문 신춘문예는 전통적으로 좋은 작품, 좋은 작가를 새롭게 배출하는 자리로 알려져 왔다. 최근 이은선, 차현지, 김가경과 같은 재능 있는 작가들을 문단에 새로 내놓았고 이들은 이미 활발한 문단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 ‘힘센’ 서울신문 신춘문예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본심을 맡으면서 우리는 비상한 관심과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모두 열두 작품 정도. 생각보다 많은 예심 통과작은 심사위원들로 하여금 시간적으로도, 마음 씀씀이로도 쉽지 않은 일을 하도록 했다. 두 사람이 미리 배송해 받은 예심 통과작을 읽고 그 가운데 몇 편을 추려 꺼내 놓은 후보작은, 한 사람은 두 편, 다른 한 사람은 네 편. 공교롭게도 한 사람의 네 편 가운데 다른 사람의 두 편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 두 편의 제목은 조수경의 ‘젤리피시’와 이완의 ‘아빠의 네트워크’. 두 작품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수작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아빠의 네트워크’는 아들의 시선으로 아버지의 세계를 조명한 독특한 작품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중 화자의 시각이나 생각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녹록지 않은 생활을 이어 가는 인물들 모두의 삶에 흐르는 생기나 활력은 이 소설의 작가가 성숙한 세계인식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수경의 ‘젤리피시’는 어떻게 보면 더 독특하면서도 문제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것 같다. 성인용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고독한 장애 여성의 시점을 취한 것은 이 작품을 쓴 사람이 세태와 시류를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유행감각의 소산이 아니다. 이 작가는 인간의 깊은 내부 세계를 들여다보는 안목을 갖추었다. 또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묘사 능력도 탁월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조수경의 ‘젤리피시’를 당선작으로 올렸다. 문제작을 당선작으로 올린 것에 만족한다. 조수경에게 축하드리며 정진을 당부한다. 이완은 이것으로 낙심하지 말고 힘내시길.
  • [Weekly Health Issue] 목디스크

    [Weekly Health Issue] 목디스크

    많은 의사들이 목디스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컴퓨터와 함께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 되면서 목이 겪는 혹사의 강도가 적정 수준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는 위험신호다. 일찍 온 추위에 질려 몸을 잔뜩 움츠리다 보면 전신이 결리고 뻐근하기도 하다. 이런 상태에서는 당연히 목에도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가 가해진다. 목 근육이 뻐근하고 어깨가 무거운 증상이 일반적인데 목디스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런 증상을 단순히 계절 탓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자세와 습관으로 목디스크(경추 수핵탈출증)가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겨울철에 목디스크가 악화돼 병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가천대 길병원 척추센터 김우경(신경외과) 교수와 얘기를 나눴다. ●먼저, 목디스크란 어떤 질환인가. 목디스크란 목 부위의 척추 부위인 경추와 경추 사이에 있는 추간판(디스크) 속의 수핵이 밀려서 빠져나와 신경근이나 척수를 압박하는 질환이다. 7개의 경추뼈 가운데 운동이 가장 활발한 5∼6번 디스크에서 가장 많은 문제가 생기고, 이어 6∼7번, 4∼5번 순으로 발생빈도가 높다. ●발생 추이는 어떤가. 근래 환자가 지속적으로 느는 추세다.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하느라 목뼈가 소위 ‘거북목’이라는 일자목으로 변한 데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이 폭넓게 보급되면서 발생 추이가 한층 가팔라지고 있다. 실제로 의료계에서는 이 때문에 향후 목디스크 환자의 폭발적인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겨울에 환자가 많은 이유가 있나. 최근 내원하는 환자들 상당수는 잘못된 자세가 원인이다. 운전을 하거나,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 직장인들이 장시간 목을 거북이처럼 앞으로 빼고 앉아 일을 하다보면 인대나 근육이 긴장에 노출돼 점차 약해진다. 스마트폰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다. 경추 주변 근육이나 인대가 약해지면 디스크가 쉽게 밀려 나오게 된다. 물론 겨울이라고 디스크 질환이 갑자기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겨울에 환자가 많은 이유는 추운 날씨 때문에 몸을 움츠리게 되고, 이런 자세가 반복되면 평소 좋지 않았던 부위가 과도하게 긴장해 디스크를 악화시키고,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최근에 발생하는 목디스크 특성이 과거와는 어떻게 다른가. 목디스크도 퇴행성 질환이다. 디스크는 수분과 단백질로 구성되는데, 나이가 들면서 수분이 빠져나가 탄력을 잃게 되면 작은 충격에도 디스크가 쉽게 빠져나오게 된다. 고령 환자에게서 목디스크 등 척추질환이 잘 생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목디스크 환자가 최근 들어 30∼40대는 물론 20대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경우는 디스크 퇴행보다 잘못된 습관과 자세가 문제다. 여기에다 레저활동이나 교통사고 등 외상에 의한 환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교통사고의 경우 후방 추돌로 갑자기 충격을 받으면 목이 순간적으로 앞으로 쏠렸다 뒤로 젖혀지면서 경우에 따라 심각한 디스크를 유발하는 만큼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증상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디스크가 생긴 부위에 따라 증상이 약간씩 다르다. 일반적으로 목디스크는 목이 뻣뻣해지고, 어깨와 팔이 저리며, 등 뒤 날개뼈 사이에도 통증을 느끼게 된다. 가장 발생 빈도가 높은 5∼6번 디스크가 탈출한 경우 젓가락을 들지 못할 정도로 팔 근력이 약해지기도 한다. 또 디스크가 바깥쪽이 아니라 몸통 중심 부위로 밀려나 척수를 압박할 경우 배뇨 및 보행장애까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일부 환자군에서는 목디스크임에도 목에 통증이 없는 대신 어깨나 등 부위에만 통증이 나타나 오십견이라며 방치하는 사례도 흔하다. ●검사와 진단은 어떻게 하나. 가장 기본적인 진단 요소는 환자의 증상이다. 증상에 따라 신경학적 검사와 단순 X레이검사를 통해 상태를 파악하며, 목디스크가 의심되면 CT(컴퓨터 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시행한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검사로 충분히 진단이 되지만 그래도 미흡하면 근전도를 통해 확인하기도 한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또 디스크는 수술치료가 어렵다는데 사실인가. 치료는 비교적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증상이 초기인 경우라면 약물치료와 물리치료를 병행하면서 증상의 완화를 관찰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소염진통제로 통증을 유발하는 화학인자를 조절해 통증을 줄일 수는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다. 비수술적 치료로 호전이 없을 경우 인공디스크 삽입, 유합술 등 수술적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인공디스크 삽입은 자연스러운 관절 기능을 유지할 수 있고, 주변 척추의 퇴행성 변화를 늦춰 합병증도 줄여준다. 이 방법은 퇴행이 아직 진행되지 않은 연성 디스크 환자에게 효과적이다. 디스크가 딱딱하게 굳는 석회화가 진행된 경우라면 디스크를 제거하고 뼈를 하나로 유합하는 수술을 하기도 한다. 디스크 상태에 따라 뼈를 이식하거나 인공디스크 등 대체물질을 넣지 않고 정상 디스크를 그대로 활용하도록 하는 ‘전방경유경추 추간공확장술’도 시행된다. 6∼7㎜ 정도의 작은 구멍을 통해 현미경을 삽입한 뒤 디스크의 병변 부위를 직접 보면서 원인 부위를 찾아내 치료한다. 수술후 보조기 착용이 필요 없어 일상 생활로의 복귀가 빠른 장점이 있는 수술법이다. 이 방법은 부드러운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고 있거나,디스크 탈출은 아니어도 신경 구멍이 좁아져 신경을 압박하는 협착증에 효과적이다. 이런 수술적 치료는 보존적 치료로 충분한 치료 효과를 거두지 못할 때 적용하는 마지막 치료 수단이지만 알려진 것처럼 환자들이 두려워할 만큼 어려운 치료는 아니다. ●치료에 따른 후유증 등의 문제는 없나. 목부위는 근육과 혈관, 신경조직이 밀집한 곳이어서 허리 쪽보다 치료를 위한 접근이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치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어렵지는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증상이 나타나면 초기에 병원을 찾아야만 보존 치료가 가능해 수술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증상 악화에 따른 후유증도 줄일 수 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대통령(재미난책보 글, 이진모 그림, 어린이아현 펴냄) ‘따뜻한 그림백과’의 41번째 책. 3~7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대통령 선거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왕과 대통령의 차이점 등을 설명했다. “번지르르한 말보다 정직한 행동이 필요해요.” “대통령은 그 나라의 거울이에요. 좋은 대통령도, 나쁜 대통령도 결국 국민이 뽑는 거니까요.”라며 쉽게 이해를 돕는다. 7700원. ●카펫 소년의 선물(페기 다이츠 셰어 글, 린 모린 그림, 김지연 옮김, 꿈터 펴냄) 노동을 착취당하는 ‘어린이 노예’ 문제를 다뤘다. 1만 3000원의 빚에 팔려 4살 때부터 6년간 카펫공장에서 노예로 살아온 파키스탄 소년 이크발 마시흐의 실화를 담았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늘 배고픔에 시달렸던 이크발은 공장에서 탈출, 한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수백 곳의 공장에서 아이들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이크발은 1995년 12세에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1만 2000원. ●아빠가 확 달라졌어요(한현주 글, 강화경 그림, 장수하늘소 펴냄) ‘행복한 가정, 행복한 학교, 행복한 사회’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아빠’ 때문에 고민하는 12명 어린이의 얘기를 담았다. 멸종 위기의 반달가슴곰처럼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든 아빠, 자녀의 젓가락질까지 지적하며 숨이 턱턱 막히게 하는 잘난 아빠, 가정의 대소사는 물론 자녀의 약속까지 좌지우지하는 독불장군 아빠까지…. 아빠를 이해하고 ‘절친’이 될 수 있는 법을 소개한다. 1만원. ●파블로와 두 할아버지(해리 벤 글, 멜 실버먼 그림, 이유림 옮김, 논장 펴냄) 한갓진 산골에서 가족과 오순도순 사는 소년 파블로. 어느 날 가난뱅이 친척인 실반 할아버지가 편지 한 통을 가진 채 당나귀를 타고 나타나고, 편지의 내용을 놓고 주변 사람들은 설왕설래한다. 결국 글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을 대신해 파블로가 글을 배우기 위해 읍내로 나간다. 거짓과 오해가 지배하는 복잡한 사회에 얽히며 벌어지는 얘기다. 9000원.
  • 흔하지 않은 안동 그 소소한 맛과 멋

    흔하지 않은 안동 그 소소한 맛과 멋

    흔하지 않은 안동 그 소소한 맛과 멋 경상북도 안동에 다녀왔다. 안동 하면 즉각적으로 따라붙는 하회마을은 들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지거나 비교적 새로 생긴 곳들을 주로 둘러봤다. 한국을 대표하는 양반 마을을 논외로 하더라도 안동에는 볼거리가 쏠쏠했다. 물론 퇴계 이황을 배향하는 도산서원을 찾아 선생의 덕을 추모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노중훈 1 신세동 벽화 마을. 생기 없던 마을은 3년 전 벽화가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한결 밝아졌다 2 벽화 마을 초입의 마싯타 카페. 원래 구멍가게가 있던 자리에 두 달 전 문을 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벽화로 거듭난 마을 점심 무렵, 안동에 도착했다. 허기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속이 출출했다. 어디를 가나 배꼽시계는 근면하고 성실했다.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인 구시장에 들어섰다. 서문 부근에 찜닭 전문 식당들이 많았다. 그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하는 분이 ‘순한 맛, 보통 맛, 매운맛’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매운맛을 먹고 싶었으나 “정말 맵다”는 아주머니의 반응에 보통 맛을 주문했다. 조언 한 가지.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운맛을 시켜야 한다. 보통 맛은 입속의 점막을 자극하지 않는다. 토막 난 닭고기와 당면, 감자 등이 수북하게 쌓인 접시가 상에 올랐다. 매콤하고 달콤하고 간간한 찜닭은 익숙한 맛이었고, 익숙해서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었다. 구시장에서 신세동까지 걸었다. 신세동은 안동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오랫동안 세월의 적막을 경험해야 했다. 택시조차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달동네였다. 변화는 3년 전 찾아왔다. 안동대 출신의 예술팀이 마을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한 것이다. 처음에 데면데면하던 주민들도 마음을 열고 ‘마을 꾸미기’에 동참했다. 그 결과 신세동은 화사한 얼굴로 거듭났다. 몇몇 주민은 벽화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복덩이 할머니’로 불린다는 김화순 할머니와 손자, 그리고 옆집 여자아이가 옥탑방 건물 벽면의 대형 초상화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면 철가방을 든 채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동네 중국집 배달원이 담벼락에 그려져 있다. 오르막길의 흰색 담장에서는 중년 혹은 초로의 사내가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다. 동네에서 마주친 한 어르신께 “할머니 얼굴은 왜 없어요?‘라고 여쭈자 ”저기 아래로 내려가서 모퉁이를 돌면 내 얼굴도 볼 수 있다“며 수줍어하셨다. 벽화 마을 초입, 그러니까 동부초등학교 바로 앞에는 손바닥만한 카페가 자리했다.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인도풍의 그림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이곳은 원래 30여 년간 구멍가게가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범상치 않은 외모의 카페 주인은 과자나 라면 등을 올려놓던 가게 선반을 그대로 남겨두었다. 여기에 자신이 갖고 있던 소품들과 추억의 물건들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그랬더니 창업에 드는 비용이 150만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월세는 겨우 10만원이다. 하지만 제일 부러웠던 것은 그의 눈썰미와 인테리어 감각, 그리고 여유로운 삶의 태도였다. 마을 구경을 마치고 다시 시내로 돌아와 땀도 식히고 다리쉬임도 할 겸 맘모스제과의 문을 열어젖혔다. 맘모스는 지난해 미슐랭 가이드가 별 세 개를 부여하면서 새삼 화제를 모았지만 이미 40년 가까이 안동 시민들의 ‘궁금한 입’을 책임졌던 전통의 빵집이다. 세월의 흐름과 사람들의 기호에 복속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생각보다 세련된 외부 모습과 내부 분위기는 좀 아쉽기도 했다. 단팥빵, 블루베리 파이, 맘모스 빵 등을 사서 한 입씩 베어 물었더니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동네 제과점의 풍경이 떠올랐다. 제과점을 나올 때 마음속에 따뜻한 물이 차올랐다. 학문의 길이 막히면 길을 걸었다 도산서원은 학창 시절 단골 시험 문제였다. 출제자들은 도산서원이 세워진 내력과 사액서원으로서의 의의, 퇴계 이황의 발자취 등을 무던히도 물어봤던 것 같다. 문화해설사의 꼼꼼한 설명을 길라잡이 삼아 도산사원의 안팎을 차분하게 들여다보았다. 강당인 전교당, 기숙사인 농운정사, 서고인 광명실, 한석봉이 썼다는 편액, 퇴계가 유난히 아꼈다는 매화나무 등은 시간 여행을 위한 매개물이었다. 도산서원은 익숙했지만 예던길은 낯설었다. 예던길은 퇴계가 도산서원과 청량산을 오가면서 걸었다는 오솔길이다. 강변을 끼고 있는 개인 소유의 땅에 접근할 수 없어서 길은 현재 온전하지가 않다. 길의 허리가 뚝 끊긴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강을 돌아가는 산길을 새로 놓았지만 예전 강변길의 운치를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퇴계는 학문의 이치를 구하다 ‘생각의 길’이 막힐 때마다 예던길을 소요했다고 한다. 후학 양성에 진력했던 성리학의 대가는 일평생 자문자답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해가 저물었다. 밤이 찾아오면 더욱 아름다워진다는 월영교로 차를 몰았다. 안동댐 아래 물길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교각은 콘크리트로, 상판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다리가 수면에 비치는 모습이 나름 운치 있었다. 사람들은 다리 중간쯤에 놓인 팔각 정자 월영정에서 살랑바람을 맞았다. 그날 밤 영월교의 낭만을 더욱 북돋워 줄 밤안개는 끝내 피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문어숙회로 갈음했다. 문어 내장이 별도로 제공됐다. ‘먹물 맛’이 고소했다. 울진 후포항에서 올라온 쫀득쫀득한 문어를 적당하게 썰어 소주 몇 잔과 함께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이튿날 아침, 안동에 산재한 다양한 박물관 가운데 산림과학박물관을 노크했다. 문패에 걸맞게 나무와 숲, 생태계에 관한 자료들이 꼼꼼하게 전시돼 있었다. 화요일 오전, 박물관은 적막했다. 거대한 박물관을 온전히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했다. 박물관 주변을 산책했다. 탐방로가 잘 조성돼 있었다. 이름 모를 나무들과 야생화들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연못은 물낯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많은 연잎을 들쓰고 있었다. 성곡동의 온뜨레피움은 열대식물과 허브의 천국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어 가족 단위 나들이객에게 적합해 보였다. 안동을 떠나기 전 운흥동의 갈비 골목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생갈비의 맛도 준수했지만 고기를 다 먹을 즈음 나오는 두 가지의 찌개가 인상적이었다. 갈비뼈에 김치와 감자를 넣고 끓여낸 갈비김치찌개와 우거지를 듬뿍 넣은 된장찌개는 ‘고기 먹은 후 냉면’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전혀 생각나지 않게 해주었다. 김치찌개는 달착지근한 반면 된장찌개는 구수하고 시원했다. 밥 한 공기 반을 후딱 해치웠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내내 배가 든든했다. 1 매표소에서 도산서원으로 이어진 길 2 아이들이 창밖을 내다보는 신세동의 벽화 3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별 세 개를 받아 화제를 모았던 맘모스제과 4 간고등어, 헛제삿밥과 더불어 안동이 자랑하는 구시장의 찜닭 5 운흥동 갈비 골목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찾아가기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IC를 이용하면 된다. 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먹거리 안동찜닭을 먹은 곳은 구시장의 위생찜닭(054-852-7411)이다. 2~3인용 2만5,000원, 4~5인용 3만8,000원. 옥동의 오렌지향기(054-852-3559)는 문어숙회와 굴, 두 가지 메뉴만을 취급한다. 굴은 겨울철에만 내놓는다. 문어는 간장과 고추장, 두 가지 소스에 찍어 먹는다. 2만3,000원. 운흥동에 자리한 백조숯불갈비(054-859-4988)의 생갈비는 1인분에 1만9,000원. 밑반찬도 정갈하다. 숙박 안동호반자연휴양림(054-855-8687)을 추천한다. 한옥과 초가집 형태의 숙박 시설에 종갓집, 처갓집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방 세 개가 있는 처갓집은 비수기 기준으로 1박에 6만원이다. 각 방마다 화장실이 딸려 있어 편리하다. 주변 환경도 고즈넉하다. * 9월28일부터 10월7일까지 탈춤공원과 하회마을 일대에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www.maskdance.com)이 열린다. 세계 각국의 탈춤 공연을 비롯해 다채로운 체험 행사가 곁들여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19일 TV 하이라이트]

    ●강연100℃(KBS1 밤 10시) 김규호씨는 트럭을 타고 하루에도 경북 안동에서 대구까지 몇 번씩 왕복하며 고추 도매업을 한다. 그는 돌이 지났을 때 기차에 치여 두 팔을 잃었다. 때문에 남들에겐 일상인 젓가락질이나 글씨를 쓰는 일조차 그에게는 수천번의 연습이 필요했다. 프로그램에서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쉼 없이 달리고 있는 그의 일상을 엿본다. ●VJ 특공대(KBS2 밤 10시)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영화인들의 축제 부산 국제영화제가 그 화려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영화의 도시 부산에서는 1년 365일 언제나 영화를 즐길 수 있으니 아쉬움은 금물이다. 한편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는 옛날 교복을 입고 손님을 안내하는 14년 지기 두 사장의 모습이 영화 ‘친구’를 방불케 하는데…. ●TV속의 TV(MBC 낮 12시 20분) 2012년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드라마 ‘마의’가 명품사극의 귀환을 기다렸던 시청자들의 성원 속에 베일을 벗었다. 조선 최초 한방외과의의 삶을 그린 의학 사극드라마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프로그램에서는 수의사라는 새로운 소재를 차용해 동물과의 교감을 그려낸 ‘마의’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여행의 기술(SBS 오후 5시 35분) 다방면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여배우 최여진이 일본의 마쓰야마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중에 그녀는 방송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 다른 자신의 본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 그녀는 어린시절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사기를 당했던 사연과 자신의 꿈이었던 발레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명의(EBS 밤 9시 50분) 통증은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경보장치다. 뼈가 부러지거나 신경과 혈액 순환 등에 문제가 생기면 통증이 발생한다. 통증의 종류는 다양하며 이것을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통증으로 발전해 치료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증에 대한 경각심이 적어 증상이 악화되고서야 병원을 찾곤 하는데…. ●청춘은 아름다워(OBS 밤 11시 5분) 변함없는 카리스마의 가수 김완선이 출연해 하와이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김완선은 하와이에서 3년간 지내면서 남자에게 대시 한 번 받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김완선과 함께 뮤지컬 공연을 통해 친분을 쌓은 김세아가 깜짝 출연해 김완선 덕분에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털어놓는다.
  • 전주, 이번 주말 입맛을 훔친다

    전주, 이번 주말 입맛을 훔친다

    ‘맛의 고장’ 전북 전주시에서 한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 음식의 뿌리를 찾는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18~22일 닷새간 ‘2012 한국음식관광축제’와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가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개최된다. 이 축제는 한국 방문의 해(2010~2012년)를 기념해 진행되는 이벤트로 우리 민족 고유의 맛을 이어 온 한식의 전통과 우수성,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화두를 담고 있다. 이번 축제에서는 시대별 밥상 변화를 통해 살펴본 우리 식문화의 변천과 기획전시 ‘한국의 밥상’, 반세기 넘게 음식에 대한 열정과 정성으로 가업의 맥을 이어 온 ‘대를 잇는 맛집’이 소개된다. 대를 잇는 맛집은 77년간 3대째 운영되는 익산 황등육회비빔밥, 59년간 2대째 이어 온 전주 한일관 콩나물국밥, 57년간 인기를 끌고 있는 순창 토종순대 등이다. 또 속 깊은 이야기가 공개되는 음식 명인들의 푸드쇼 ‘맛의 비밀을 찾아서’, 장 담그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며느리도 모르는 장맛의 비밀’,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던 추억을 찾아주는 ‘내 손으로 만드는 잔치음식’ 등 다양한 ‘한국의 맛’이 현장에서 펼쳐진다. 한식의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명성 높은 6명의 길거리 음식 달인들이 호떡, 떡볶이, 순대, 만두, 강정, 꿀타래 열전을 펼치는 ‘생활의 달인 열전’, 세계를 대표하는 거리 음식에 우리 소스와 재료를 과감히 내세운 ‘세계를 요리한 K-드레싱’이 진행된다. 축제 현장 곳곳에서는 맛 공식을 셈해 보는 어린이 체험 ‘맛있는 놀이터’, 행사장 곳곳을 온몸으로 느끼는 ‘KFF 런닝맨’, 젓가락질을 뽐내 보는 ‘젓가락 달인을 찾습니다’ 등의 다양한 체험 행사가 열린다. 함께 개최되는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는 올해 10회째를 맞아 ‘생명을 살리는 발효’라는 슬로건으로 기획됐다. 지식경제부 국제인증전시회, 대한민국유망전시회에 선정된 발효식품엑스포에는 20개국 350여 업체가 참여했다. 국내외 3000여 상품들이 식품산업관, 수산발효관, 친환경식품관, 식품판매관으로 각각 나뉘어 전시 운영된다. 대륙별 특별 프로모션 이벤트와 와인, 사케 아카데미가 진행되고 세계 석학들이 참여하는 국제발효콘퍼런스, 발효마을연대회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또 18~21일 한옥마을 등 전주 시내 일원에서는 비빔밥축제와 술축제가 열린다. 비빔밥축제에서는 6000인분 비빔밥 비빔 퍼포먼스, 전국 요리 경연대회, 명인 명사 비빔밥, 셰프의 비빔밥, 이야기가 있는 만찬 등 비빔밥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한옥마을에서 열리는 ‘만추 만취 한옥마을 술축제’에서는 국선생 선발대회, 한·일 전통주 포럼, 주도락 향연, 술품평회, 전통주 체험 행사 등이 열린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전쟁은 이미 숙소에서 시작됐다

    어색한 동거, 보이지 않는 신경전…. 축구 한·일전은 이미 숙소에서 시작됐다. 런던올림픽 동메달결정전을 앞둔 올림픽대표팀은 9일 오전(한국시간) 4강 신화의 여운이 남아있는 카디프로 돌아왔다. 숙소는 영국과의 8강전 때 묵었던 메리어트호텔. 그런데 일본팀 역시 거의 같은 시간 이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서로 마주쳤지만 분위기는 미묘하다 못해 썰렁했다. 한국 선수들은 1층, 일본은 3층을 사용한다. ‘비무장지대’인 2층은 한국대표팀 관계자와 일본 관계자들이 나눠 쓰게 돼 종종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조별리그 때 함께 뉴캐슬의 힐튼 호텔에 약간 시차를 두고 묵었을 때의 화기애애함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은 ‘젓가락 우정’까지 섞어 일본을 대했다. 멕시코전을 앞두고 투숙하면서 첫 식사 때 젓가락이 많이 부족한 걸 보고는 곧 일본팀이 들어올 테니 젓가락을 넉넉히 준비해 달라고 호텔에 요청했다. 홍명보호가 코벤트리로 떠난 몇 시간 뒤 호텔에 도착한 일본 관계자는 예상 외로 젓가락이 많이 남은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한국 선수단이 미리 부탁한 것”이란 얘기를 들은 일본 관계자들은 한국 측에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확연히 달라졌다. 눈인사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호텔 주방에서는 곁눈질로 서로의 메뉴를 확인한다. 소소한 얘기조차 주위를 살핀다. 낮말은 새가 늦는다던가. 홍명보 감독은 물론, 황보관 기술위원장과 언론담당인 차영일 대한축구협회 과장 등이 일본어에 능통하다. 더욱이 일본인 이케다 세이코 코치까지 있다. 차 과장은 “일본대표팀엔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우리는 편하게 다니지만 일본은 그게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런던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의학이 부추긴 女性 쇼핑

    의학이 부추긴 女性 쇼핑

    “인간의 난자는 나무에 열리지 않는다.” 의료윤리 연구자인 저자가 한마디 툭 던져놨다. 가슴 아린 한마디다. 황우석 사태가 비극인 까닭은 연구 자체가 거짓말이어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 연구 자체는 그냥 희극이다. 진정한 비극은 그 파문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 구체적으로는 난자 문제가 여전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뜻에서 ‘인체 쇼핑’(도나 디켄슨 지음, 이근애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은 번역이 때늦은 감이 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언급하자면 황우석의 방법은 체세포 핵이식이다. 영국의 이언 윌머트가 복제양 돌리를 만들 때와 같은 기법이다.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체세포의 핵을 대신 넣는 것이다. 거짓 연구라는 걸 들키기 전부터 이미 외국에선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애국주의자들 눈에는 한국의 성취에 대한 질투로만 보였겠지만 의심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윌머트는 400개의 난자를 획득한 뒤 핵을 제거했더니 267개가 사용가능했고 이 267개 가운데 1개에서 돌리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인데 황우석은 무려 11개의 줄기세포주를 만들어내는 데 난자는 200개도 채 안 썼다고 주장했다. 돌리에다 단순비교하자면 난자 4400개 정도는 써야 했는데 말이다. 이런 의심에 대한 황우석의 과학적(?) 반론은 연구원의 손기술을 진화시킨 한민족의 젓가락문화였다. 물론 거짓 연구가 들통난 뒤 난자에 대한 해명 역시 거짓임이 드러났다. 200개도 채 안 된다고 했는데 난자 “2200여개를 119명의 여성에게서 채취”했다. 한 여성에게서는 무려 “43개의 난자”를 얻었는데 이는 “배란촉진제를 치명적일 정도로 과다투여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난자 기증자의 15~20%가 심각한 난소과자극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연구팀 소속 연구원에게 난자를 기증하라 했다. 이는 나치정권의 생체실험을 비판하면서 이타주의로 치장된 거짓 자발성을 엄격히 금지했던 과학계의 대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증자의 절반 이상이 “평균적으로 난자 1개당 1400달러”를 받았다. 기증이 아니라 매매였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자.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었다면? 위대한 젓가락문화가 진화시킨 연구원의 세심한 손가락 놀림 덕분에 정말 그런 결과를 이뤄냈다면? 그래서 영국의 시민운동가 세라 색스턴은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란 가정하에 필요한 난자량을 계산해 봤다. 치료대상은 영국 당뇨병 환자로 한정했다. 의료전문가들이 황우석 기술이 가장 널리 쓰이게 될 분야로 당뇨병을 지목해서다. 그 결과는 “영국 젊은 여성 3분의1 내지 2분의1이 난자를 기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다른 어려운 질병을 제쳐 두고 당뇨 하나만에도 그렇게 많은 난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를 일어서 걷게 하리라.’는 복음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 필요할까. 다른 하나는 “젊은”이다. 성공률은 여전히 낮기 때문에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젊고 싱싱한 난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그 당시 황우석 연구가 진짜로 판명났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젊은 여성들에게는 난자를 기증해 박애주의자로 거듭나라는 지속적인 대국민 캠페인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자 채취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책에는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불임클리닉에 다닌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른 길이다. 저자는 난자를 얻기 위해 난소를 지나치게 자극하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실제 사례들도 소개해뒀다. 더구나 여성이 생산할 수 있는 난자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자를 뽑아 쓸 경우 조기 폐경이 우려된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골밀도가 떨어지고 자궁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일부 연구결과도 있다. 실제 이런 이유 때문에 캐나다는 난자 기증 자체를 중지시켰다. 과학적으로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여성의 몸에 해가 안 된다는 증거가 분명해질 때까지 금지한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가장 한심한 소리는 체외수정을 위해 쓰고 남은 난자를 연구용으로 쓰는 것은 무방하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저자는 목적에 따라 난자를 얻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가령 영국의 한 연구팀은 체외수정용으로 쓰고 남은 난자를 모으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7개월 동안 겨우 66개를 모았다. 반면 뉴캐슬 불임클리닉을 조사해 보니 29세의 한 여성에게서만도 44개의 난자를 뽑아낸 경우가 있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차피 남는 난자인데 다른 사람 치료를 위해 연구용으로 쓰는 게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불임클리닉들은 체외수정에 적당한 수준 이상으로 난소를 더 자극해 더 많은 난자를 뽑아내려 들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특허로 인한 학문적 명망과 경제적 이득이 연구자 혹은 병원장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국익이라는 애국적 가치가 지켜보는 이들의 입까지 다 막아버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보면 차라리 황우석의 연구가 거짓으로 들통나 일찍 중단되어버린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은 제목에서 보듯 황우석 사태만 다룬 건 아니다. 불로장생을 가져다 줄 것처럼 떠들어대는 생명의학계가 얼마나 엉뚱한 짓을 일삼는지 보여준다. 죽은 자의 뼈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하는 대형병원들, 이 병원들에 제품을 잘 공급하기 위해 밀매조직들이 내놓은 각종 인체조직들의 가격표, 언론에서 크게 부풀려진 장기이식 수술 성공사례들의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참한 결과 같은 것들이 빼곡하다. 얼마 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문학동네 펴냄)으로 널리 알려진 헨리에타 랙스의 사례는 물론, 그와 비슷한 사례와 이를 둘러싼 각종 법적 공방까지 모두 다뤄뒀다. 그 가운데 제대혈이 눈길을 끈다. 출산 때 태반과 함께 버려지는 제대혈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대혈 보관이 유행이 됐다. 저자에 따르면 여기엔 거짓말, 그것도 중대한 거짓말이 하나 있다. 제대혈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제대혈은 아기에게, 특히 조산아에게 신선한 산소 공급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구나 제대혈 채취는 산후출혈이라는, 출산과정에서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에 행해진다. 제대혈 보관은 어차피 버려질 것을 소중하게 다시 쓰는 기법이 아니라,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에 아기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무언가를 일부 덜어내는 것이다. 이는 난자와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억제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버릴 거 유용하게 쓰는데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합리화란 대개 양심을 마비시킬 때 쓰는 전략이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황우석, 女 119명의 난자 2200개 채취해놓고…

    황우석, 女 119명의 난자 2200개 채취해놓고…

    “인간의 난자는 나무에 열리지 않는다.” 의료윤리 연구자인 저자가 한마디 툭 던져놨다. 가슴 아린 한마디다. 황우석 사태가 비극인 까닭은 연구 자체가 거짓말이어서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 연구 자체는 그냥 희극이다. 진정한 비극은 그 파문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 구체적으로는 난자 문제가 여전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뜻에서 ‘인체 쇼핑’(도나 디켄슨 지음, 이근애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은 번역이 때늦은 감이 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이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언급하자면 황우석의 방법은 체세포 핵이식이다. 영국의 이언 윌머트가 복제양 돌리를 만들 때와 같은 기법이다.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체세포의 핵을 대신 넣는 것이다. 거짓 연구라는 걸 들키기 전부터 이미 외국에선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애국주의자들 눈에는 한국의 성취에 대한 질투로만 보였겠지만 의심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윌머트는 400개의 난자를 획득한 뒤 핵을 제거했더니 267개가 사용가능했고 이 267개 가운데 1개에서 돌리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인데 황우석은 무려 11개의 줄기세포주를 만들어내는 데 난자는 200개도 채 안 썼다고 주장했다. 돌리에다 단순비교하자면 난자 4400개 정도는 써야 했는데 말이다. 이런 의심에 대한 황우석의 과학적(?) 반론은 연구원의 손기술을 진화시킨 한민족의 젓가락문화였다. 물론 거짓 연구가 들통난 뒤 난자에 대한 해명 역시 거짓임이 드러났다. 200개도 채 안 된다고 했는데 난자 “2200여개를 119명의 여성에게서 채취”했다. 한 여성에게서는 무려 “43개의 난자”를 얻었는데 이는 “배란촉진제를 치명적일 정도로 과다투여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난자 기증자의 15~20%가 심각한 난소과자극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연구팀 소속 연구원에게 난자를 기증하라 했다. 이는 나치정권의 생체실험을 비판하면서 이타주의로 치장된 거짓 자발성을 엄격히 금지했던 과학계의 대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기증자의 절반 이상이 “평균적으로 난자 1개당 1400달러”를 받았다. 기증이 아니라 매매였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보자.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었다면? 위대한 젓가락문화가 진화시킨 연구원의 세심한 손가락 놀림 덕분에 정말 그런 결과를 이뤄냈다면? 그래서 영국의 시민운동가 세라 색스턴은 황우석 연구가 진실이란 가정하에 필요한 난자량을 계산해 봤다. 치료대상은 영국 당뇨병 환자로 한정했다. 의료전문가들이 황우석 기술이 가장 널리 쓰이게 될 분야로 당뇨병을 지목해서다. 그 결과는 “영국 젊은 여성 3분의1 내지 2분의1이 난자를 기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인트는 두 가지다. 다른 어려운 질병을 제쳐 두고 당뇨 하나만에도 그렇게 많은 난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를 일어서 걷게 하리라.’는 복음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 필요할까. 다른 하나는 “젊은”이다. 성공률은 여전히 낮기 때문에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젊고 싱싱한 난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그 당시 황우석 연구가 진짜로 판명났다면 지금쯤 대한민국 젊은 여성들에게는 난자를 기증해 박애주의자로 거듭나라는 지속적인 대국민 캠페인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자 채취는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책에는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불임클리닉에 다닌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른 길이다. 저자는 난자를 얻기 위해 난소를 지나치게 자극하다 죽음에까지 이르는 실제 사례들도 소개해뒀다. 더구나 여성이 생산할 수 있는 난자 수는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자를 뽑아 쓸 경우 조기 폐경이 우려된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골밀도가 떨어지고 자궁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일부 연구결과도 있다. 실제 이런 이유 때문에 캐나다는 난자 기증 자체를 중지시켰다. 과학적으로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여성의 몸에 해가 안 된다는 증거가 분명해질 때까지 금지한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가장 한심한 소리는 체외수정을 위해 쓰고 남은 난자를 연구용으로 쓰는 것은 무방하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저자는 목적에 따라 난자를 얻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가령 영국의 한 연구팀은 체외수정용으로 쓰고 남은 난자를 모으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7개월 동안 겨우 66개를 모았다. 반면 뉴캐슬 불임클리닉을 조사해 보니 29세의 한 여성에게서만도 44개의 난자를 뽑아낸 경우가 있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차피 남는 난자인데 다른 사람 치료를 위해 연구용으로 쓰는 게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불임클리닉들은 체외수정에 적당한 수준 이상으로 난소를 더 자극해 더 많은 난자를 뽑아내려 들 것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특허로 인한 학문적 명망과 경제적 이득이 연구자 혹은 병원장의 양심을 마비시키고, 국익이라는 애국적 가치가 지켜보는 이들의 입까지 다 막아버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보면 차라리 황우석의 연구가 거짓으로 들통나 일찍 중단되어버린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은 제목에서 보듯 황우석 사태만 다룬 건 아니다. 불로장생을 가져다 줄 것처럼 떠들어대는 생명의학계가 얼마나 엉뚱한 짓을 일삼는지 보여준다. 죽은 자의 뼈를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하는 대형병원들, 이 병원들에 제품을 잘 공급하기 위해 밀매조직들이 내놓은 각종 인체조직들의 가격표, 언론에서 크게 부풀려진 장기이식 수술 성공사례들의 널리 알려지지 않은 비참한 결과 같은 것들이 빼곡하다. 얼마 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문학동네 펴냄)으로 널리 알려진 헨리에타 랙스의 사례는 물론, 그와 비슷한 사례와 이를 둘러싼 각종 법적 공방까지 모두 다뤄뒀다. 그 가운데 제대혈이 눈길을 끈다. 출산 때 태반과 함께 버려지는 제대혈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대혈 보관이 유행이 됐다. 저자에 따르면 여기엔 거짓말, 그것도 중대한 거짓말이 하나 있다. 제대혈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다. 저자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제대혈은 아기에게, 특히 조산아에게 신선한 산소 공급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구나 제대혈 채취는 산후출혈이라는, 출산과정에서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에 행해진다. 제대혈 보관은 어차피 버려질 것을 소중하게 다시 쓰는 기법이 아니라, 산모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에 아기에게 주어지는 소중한 무언가를 일부 덜어내는 것이다. 이는 난자와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필요한 만큼 최소한으로 억제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버릴 거 유용하게 쓰는데 뭐 어때.’라고 합리화하는 순간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합리화란 대개 양심을 마비시킬 때 쓰는 전략이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전주 ‘영화의 성찬’… 오감이 즐겁다

    전주 ‘영화의 성찬’… 오감이 즐겁다

    전주는 영화 팬에겐 설렘이자 고통이다. 밑반찬 하나도 허투루 남길 수 없는, 젓가락을 쉴 틈 없이 움직여 보지만 배가 불러 더 먹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안기는 전주의 상차림을 떠올리면 될 터.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오는 26일부터 새달 4일까지 영화팬에게 작업을 건다. 42개국 184편(장편 137편, 단편 47편)을 상영한다. 2010년 209편, 지난해 190편에 이어 6편을 더 줄였다. 대신 극장 좌석 수는 6287석을 늘렸고, 일부 작품은 상영 횟수를 3회로 늘렸다. 프로그램의 밀도는 높이고 소통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한정된 시간에 맛집 순례를 해야 하는 열혈 영화팬을 위해 유운성·맹수진·조지훈 프로그래머의 추천작 9편을 추렸다. 출산의 세기 (유운성의 한마디:6시간 동안 서서히 몰입시킨다. 라브 디아즈 감독의 영화 중 가장 통렬하고 가슴 저미는 결말) 필리핀의 거장 디아즈가 ‘멜랑콜리아’(2008)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수년째 영화를 못 만드는 영화감독 호머는 영화제 프로그래머로부터 영화 완성을 독촉받는다. 한 이교도 집단은 한 처녀의 이탈로 큰 충격에 빠진다. 전혀 관련 없는 두 개의 이야기는 6시간 후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결말로 수렴된다. 후지산의 혈창 (유운성:기묘하게 뒤틀린, 지적이고 비판적인 시대극/맹수진:사무라이 신화를 유쾌 통쾌하게 해체하는 코믹활극) 한국에선 극소수 작품밖에 소개되지 않아 미지의 감독으로 남아 있는 일본영화 거장 우치다 도무(1898~1970)의 1955년 작이다. 젊은 사무라이 고즈로는 하인 둘을 데리고 귀중한 찻잔을 운반하는 임무를 맡는다. 주사가 심한 고즈로는 취중에 사무라이 계급의 위선에 분노해 칼을 뽑아든다. 파닥파닥 (맹수진:수족관에 갇힌 고등어의 필사 탈출기. 한국 애니메이션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지난해 ‘마당을 나온 암탉’의 뒤를 이을 토종 애니메이션 기대작이다.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던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탈출을 꿈꾼다는 설정은 ‘니모를 찾아서’를 떠올릴 법하다. 하지만 귀여운 물고기의 모험극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자유를 갈망하는 고등어, 수조 안의 권력자 넙치 등 생생한 캐릭터, 산 채로 회가 떠진 채 눈과 입만 끔뻑이는 물고기 등 사실적인 그림체가 눈길을 끈다. 이대희 감독과 스태프들이 5년을 작업한 노작이다. 드라이레벤 (조지훈:지난해 최고의 독일영화. 각각 1시간 30분 분량의 3편의 장편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독특한 형식) 독일을 대표하는 중견감독 크리스티안 펫졸트, 도미니크 그라프, 크리스토프 호르호이슬러가 참여했다. 독일에 있음 직한 소도시, 하지만 허구의 도시인 드라이레벤에서 펼쳐지는 기이한 사랑과 범죄의 3부작이다. 각각의 영화는 저마다 줄거리로 마무리되는 자족적 성격을 갖지만 몇몇 연결고리에 의해 세 편이 이어진다. 르 타블로 (조지훈:폴 세잔과 마티스에게서 영감을 얻은 아름다운 디자인과 색채,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수작) 프랑스를 대표하는 노장 애니메이션 감독 장 프랑수아 라귀오니(73)의 네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채색의 정도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캔버스의 세계에서 미완성된 캐릭터가 그림을 완성하려고 화가를 찾아 떠난다는 기발한 발상에서 비롯됐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아름다운 얼굴색을 찾아주고자 캔버스의 경계를 넘나드는 라모와 친구들의 모험을 그렸다. 관용의 집 (유운성:세기 전환기 파리 매음굴을 19세기 말 퇴폐주의 분위기가 집약된 소우주처럼 그린, 관능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영화) 인간관계를 매개하는 육체의 문제에 집요하게 관심을 기울여 온 프랑스 감독 베르트랑 보넬로의 신작이다. 프랑스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지난해 세계영화 ‘베스트 10’ 중 8위로 꼽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매춘부의 삶을 통해 노골적 착취의 역사 속에서 노동, 섹스, 자본의 관계를 탐구한다. 개들의 전쟁 (맹수진:액션영화의 상투적인 관습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절묘하게 피해 가는 묘한 재미. 한국 시골 액션영화의 새로운 지형) 한가로운 시골 동네에서 보스 자리를 놓고 기싸움을 벌이는 양아치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했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마는 수컷들 사이의 팽팽한 기싸움과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독특한 어조로 담아냈다. 뮤지컬 스타에서 충무로로 보폭을 넓힌 김무열의 첫 단독 주연작. 몸 전체로 사랑을 (맹수진:한국영화의 세대논쟁을 불러일으킨 ‘영상시대’의 문을 연 작품. 숨겨진 역사와 만나는 기쁨) 한국영화의 암흑기인 1970년대 선배 세대와 단절을 선언하고 네오리얼리즘(이탈리아), 누벨바그(프랑스) 등 세계영화계의 움직임에 호응해 영화적 혁신을 추구한 하길종·홍파·이원세·이장호 감독, 변인식 평론가를 중심으로 한 동인운동 ‘영상시대’ 특별전의 일환으로 상영된다. 시나리오 작가로 먼저 이름을 알린 홍파 감독이 1973년 발표한 문제적 데뷔작이다. 자이언츠 (조지훈:사춘기 소년이 겪는 전복적이면서도 유쾌하고 때론 빈정거리는 모험담.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의 프랑스식 해석) 시골의 가족별장으로 휴가 온 자크와 세스 형제. 그곳에서 또래 대니를 만나 할아버지의 차를 훔쳐 타는 등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자유를 만끽하며 위험천만한 여행을 시작한다. 지난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아트시네마상을 받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은 불리 라네 감독의 세 번째 장편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서양 ‘포크’ - 동양 ‘젓가락’ 합쳐진 ‘초크’ 개발

    다소 우스꽝스러운 발명품이 나왔다. 동양의 젓가락과 서양의 포크를 적절히 결합한 제품으로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거창한(?)수식어도 달렸다. 미국 솔트 레이크 시티에 있는 브라운 이노베이션 그룹이 개발한 이 식기의 이름은 ‘초크’(Chork)로 포크(fork)와 젓가락(chopstick)의 합성어다.  이같이 새로운 식기가 나오게 된 것은 동양의 음식들이 서양에서 인기를 끌면서 젓가락의 사용이 늘었기 때문. 위 아래에 포크와 젓가락이 있는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젓가락 끝 부분이 붙어있어 초보자라도 간격유지가 쉬워 사용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브라운 이노베이션 측은 “초크는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라도 음식에 맞게 유용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면서 “분리도 가능해 사용자의 편의를 최대한 보장했다.”고 밝혔다. 주로 젓가락을 사용하는 식당업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런던에서 스시점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정말 똑똑한 제품이다. 젓가락질이 미숙한 사람들이 스시나 샐러드를 먹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뉴스팀
  • [사설] 중국산 발암제품 검역시스템 강화하라

    중국산 저질 공산품이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범벅된 중국산 대접·접시·국자·젓가락이 최근 1개월 사이에 대형마트는 물론 전통시장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됐다고 한다. 가정이나 음식점 등에 얼마나 팔려나갔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중국산 발암 공산품이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번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중국산 공산품이 우려 차원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도대체 검역 및 통관시스템이 어찌됐기에 발암 제품이 이 지경으로 판을 친단 말인가. 현재 우리나라는 해외 제품은 최초 수입분에 대해 정밀검사를 하고, 이를 통과하면 이후 같은 제품에 대해서는 서류 검사만으로 통관시키고 있다. 이루 셀 수 없는 제품과 엄청난 물량을 감안하면 일일이 검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중국 제조업자들이 이런 점을 악용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산 공산품의 유해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통관 당국이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봤어야 했다. 지나치게 관례를 중시하는 당국이 이들에게 허점을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한 번이라도 문제가 된 국가의 제품에 대해서는 철저히 관찰하고 퇴짜를 놓았어야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식품·식기류는 31만 2000여건, 130억 달러어치에 이른다. 이 가운데 올해 들어 유통 중인 공산품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발암물질이 검출된 제품은 모두 중국산이었다. 국내로 들어오는 중국산 공산품이 엉망인 데에는 우리 기업이나 수입업체의 책임도 적지 않다. 선진국처럼 제품에 대한 모든 안전검사를 수입업체가 책임지고 실시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해야 한다. 상식 이하 제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현지 생산에 대한 감시시스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 일상서 건진 깨알같은 詩心 …편협한 시인, 사랑을 말하다

    일상서 건진 깨알같은 詩心 …편협한 시인, 사랑을 말하다

    세밑에 식구들과 오골계 백숙을 먹으면서 ‘오골계 자그만 몸을 젓가락으로 벌리는데 엄마야, 노란 알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조금씩 말줄임표처럼 사라지는 중인 것 같은 알들이 오오오오오’라고 감탄하는 시인 김선우는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푹 삶아진 알들을 식구들끼리 골고루 나눠 먹은 후 날지 못하는 가금류 두 발로 뛰어다니는 새의 비상에 대해 생각’하고 ‘위험해 위험해’(‘다만, 오골계 백숙 먹기’ 중) 하고 외쳐댄다. 지난 5년간 소설가로 외도하던 김선우(42)가 5년 만에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 펴냄)를 최근 펴냈다. 네 번째 시집으로, 2008년부터 문예지 등에 기고했던 시 90여편 중 속이 꽉 찬 토란 같은 시 55편을 골라 실었다. 시집 제목에서 ‘혁명’을 운운하지만, 그는 무심하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일상에서 깨알 같은 시심을 발굴해냈다. 이를테면 가을 고구마를 수확하면서 ‘척박한 땅이어서 더욱 단단해진/비구상(非具象)의 슬픔/할 말이 너무 많아 입을 꾹 닫은 심장 같다’면서 ‘너는 좀 넓은 데서 숨쉬라고 가만히 뱉어놓은,//주먹만 한 자줏빛 심장들이/그렇게 밭 하나를 이룬 것 같다’(‘옆-고구마밭에서’ 중)고 쫑알댄다. 자주색 고구마에서 ‘여리고 따뜻한 누군가의 목숨줄’을 떠올린 것이다. ‘거지 같다구 사는 게’라고 투덜대면서 약수터로 올라가는 길에 ‘사흘째 잠에서 깨지 않은 채 딱딱해진 그를 나흘째 경찰이 와 마대자루에 담아갔다’(‘눈많은그늘나비’ 중)는 잊고 싶은 사실을 기억해 기록해 놓기도 한다. 글쟁이란 늘 백수이기가 십상이라서 20대 백수에게도 ‘바다풀 시집’을 통해 동질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쓴 시이자 표제시로 삼은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도 김선우에게는 ‘2011년’의 일상을 기억하는 방식일 뿐이다. 김선우처럼 어떤 사람들에게 2011년은 ‘김진숙’과 ‘희망버스’라는 고유명사로 기억되기도 한다. 김진숙은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해고를 반대하며 300일 넘게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했던 여성. 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쇄도했다. ‘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라거나, ‘흔들리는 계절들의 성장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사랑합니다 그 길밖에’라든지, ‘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 중으로 내밀었다/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라고 서술하고 있다. 니체처럼 신이 죽었다고 하지 않고, 우리가 서로에게 신이므로, 사랑한다고 해버린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신조어도 내놓았다. ‘사생어른’. 생각이 많다는 것이냐? 사색적이라는 것이냐? 자문자답했지만, 시집 끝에 달린 평론가 최현식이 해답을 줬다. 결혼제도 밖에서 낳은 아이들에게 낙인 찍는 ‘사생아’와 기원을 같이하는 신조어였다. 주류가 꽉잡고 있는 세상에 거부당하고 손가락질당하는 어른, 사생어른. 문단에서도, 독자로부터도 상당한 사랑을 받고 있는 김선우가 자신을 사생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달방’이란 표현에서는 운치 있는 이름이라 보름달처럼 환해지다가, ‘월셋방’이 떠오르자마자 마음이 침침해졌다. 시집을 내놓고도 마케팅에 신경쓰지 않고, 있는 곳도 가르쳐 주지 않고 지방에서 버티는 ‘인기 시인’ 김선우와 전화로 몇 마디를 나눴다. 55편 중 한 편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김선우는 “단 한편도 버릴 수 없다.”며 55편 모두를 꼭 끌어안았다. 시들은 모두 다른 운명을 지닐 것이므로, 시인은 그저 자식을 낳아 놓고 잘 성장하길 희망하는 어미처럼 기다릴 뿐이란다. 다만 김선우는 “이번 시집은 명랑하고 다른 한편으로 처절한 연애시집인 만큼, 사랑으로 읽어 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사는 것이 어디 처절하거나, 명랑하기만 하겠나. 뒤섞여 있는 것이지라는 생각이다. 시를 써서 개인적인 구원을 얻고, 소설을 써서 사회적 관계성을 획득해 나간다는 양다리의 김선우는 ‘편협한 사랑이 용서되는 시인으로 남기로 한다.’는 선언도 한다. 그는 소통을 이야기하며 불통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ㄱ과 ㄴ이 모여 ㄷ의 안부를 얘기한다/ㄱ과 ㄴ과 ㄷ이 모여 ㄹ의 안부를 얘기한다/ㄱ과 ㄴ과 ㄷ과 ㄹ이 모여 ㅁ의 안부를 얘기한다/(중략)/서로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오늘의 개더링’ 중). 소통합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21일 TV 하이라이트]

    ●세상 사는 이야기(KBS1 밤 11시 40분) 40~50년 넘게 함께 살면서 진정한 가족이 된 고부지간이 있다. 남편이 떠난 뒤에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 다른 자식들보다 며느리와 사는 게 좋다는 시어머니. 서로 다른 처지였던 고부지간이 이젠 함께 나이 들며 세월을 나누는 인생의 벗이 됐다. 미운 정, 고운 정 쌓아온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1대 100(KBS2 밤 8시 55분) 만능엔터테이너 김현숙, 방송인 고영욱이 각각 1인에 도전한다. ‘연예인 퀴즈 군단’, ‘곤충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 ‘서울대 MBA 1대10’, 대한민국 1% ‘남자 간호사’, 남양주 동원아파트 ‘퀴즈 마니아’, ‘이태원 안전센터’, ‘국과위 오형제’ 한국야생동물 ‘구조대원’, 글로벌 ‘영어 체육 강사’, 그리고 74인의 예심 통과자들이 함께한다. ●위험한 여자(MBC 오전 7시 50분) 강 회장의 성화에 못 이겨 애리와의 만남을 이어 가고 있는 동민. 서주를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애리가 당황스럽기만 하다. 한편 도희는 강 회장이 집 나간 소라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도희는 소라를 찾아 애리와 동민의 결혼 성사에 일조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며 소라를 집으로 데려온다.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발달장애 2급, 정신연령 7세인 23살 준이씨는 일명 자폐증 환자다. 하지만 피아노 연주면 연주, 작곡이면 작곡에 판소리까지 못하는 게 없는 젊은 뮤지션이다. 젓가락으로 밥 그릇을 쳐서 에프 음인 걸 맞추고, 지하철 엔진 소리만으로 제작 회사를 알아내는 절대 음감을 가진 준이씨의 감동적인 성장 드라마를 함께한다. ●하나뿐인 지구(EBS 오후 11시 20분) 전북 장수군 산 중턱에 위치한 장수하늘소 마을에는 작정하고 귀농한 12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는 모두가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그중 하나는 순환 농업에 중요한 퇴비를 제공하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다. 비누와 치약은 합성계면활성제가 들어가지 않은 것을 쓰며, 비누는 폐식용유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데…. ●가족(OBS 밤 11시 5분) 경북 예천군 주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부자가 있다. 올해로 101세가 된 손악이 할아버지와 그 곁에서 77년간 항상 함께하며 살아 온 아들 손병우씨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농사일을 하고 소를 키웠다고 한다. 이렇게 바늘과 실처럼 늘 함께하는 부자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 [사설] 중국산 발암 젓가락 쉬쉬한 이유가 뭔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중국산 멜라민수지 젓가락에서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는데도 8개월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청은 지난해 6월 중국산 수입 젓가락을 비롯해 식기류에 대해 안전성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젓가락에서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의 3배가 넘는 14이 나왔다. 그런데도 식약청은 적극적으로 이 사실을 알리지도, 주의할 것을 당부하지도 않은 것이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 존립하는 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식약청은 당시 실험 결과 내용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수입업체 및 각 지자체에 젓가락을 회수하도록 조치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이런 중요한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8개월이나 자료를 쥐고 쉬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또 정책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을 배제한 채 행정절차만을 밟고 할 일 다했다는, 매너리즘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0㎏이나 수입된 젓가락 가운데 회수된 것은 고작 1.2㎏밖에 안 된다고 하니 지금도 어디에선가 유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식약청의 안이한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이미 지난 2006년 중국산 나무 젓가락에서 표백제와 농약이 나와 온 나라가 시끄러운 적이 있다. 2008년에도 중국산 유제품 멜라민 파동을 겪었다. 그때마다 식약청은 “문제 제품을 신속히 회수하고 정보 공개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보니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몇 년에 한 번꼴로 사고가 나는데도 말로만 대책 운운해서는 안 된다. 식기류뿐 아니라 식품·의약품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정보는 문제 발생 시 바로 경보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 [길섶에서] 3녀 1남/이도운 논설위원

    딸, 딸, 딸, 아들. 토요일 낮 백화점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가족을 바라봤다. 딸 셋에 아들 하나, 단란한 집안이었다. 아들이 가장 어렸다. 네 살쯤 되어 보였다. 딸들은 그 위로 한두 살 터울 같았다. 아들을 낳으려다가 딸 셋을 낳은 것이 아닐까 싶다. 네 아이 모두 밝고 건강해 보였다. 아이 넷이 한 줄로 앉아 젓가락으로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이들 맞은편에 앉은 부모를 바라봤다. 40대로 보이는 부부는 선하고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이 주는 즐거움이 크겠지만, 이만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생각해 봤다. 우리 부부는 딸 하나 키우는 데도 정신이 없는데. 생각은 생각을 낳고, 상상은 상상으로 이어졌다. 잠시 뒤 옆자리에 부부 한 쌍이 더 들어왔다. 차를 세우고 오느라 늦었다고 한다. 네 아이 가운데 둘은 이들의 자녀였던 것이다. 이유 없이 실망스럽고 아쉬웠다. 대가족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하긴 요즘 같은 세상엔 아이 둘 낳아 키우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금천구 무상급식 쌀 품평회 가보니

    금천구 무상급식 쌀 품평회 가보니

    “수확 전과 후 두 차례 잔류농약 검사를 하는 안전한 쌀입니다. 1년 동안 정말 열심히 지었습니다.”(전북 남원시) “논산 하면 군대를 떠올리죠. 입대한 아드님을 보살핀다는 심정으로 지었습니다. 한번 믿어보세요.”(충남 논산시) ●학교 관계자 등 선거인단 200명 2차 투표 지난 3일 쌀 품평회를 개최한 금천구 대강당은 ▲경남 거창군(미부인) ▲경북 영주시(선비숨결) ▲전남 고흥군(수호천사 건강미) ▲전북 군산시(철새도래지쌀) ▲전북 남원시(자연섭리) ▲충남 논산시(예스미) ▲충북 진천군(생거진천쌀) 관계자와 관내 학부모 등 400여명으로 붐볐다. 지난해 상반기 다른 자치구도 비슷한 행사를 열었지만 무상급식을 본격화한 올해 들어서는 처음이다. 아이들에게는 양질의 급식을 제공할 수 있게 하고, 농가에는 친환경쌀 재배를 확산시켜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는 기회이기도 했다. 행사는 크게 학부모, 학교 관계자 등 선거인단 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지자체 설명회와 직접 쌀밥을 먹어보는 시식회로 나뉘었다. 설명회 뒤 1차 투표, 시식회 뒤 2차 투표가 열렸다. 지자체들은 ‘우렁이’를 이용한 잡초제거와 사탕수수·쌀겨·깻묵 등을 활용한 친환경비료, 저온숙성저장법 등을 앞다퉈 강조했다. 경쟁 기관을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순박한 농심(農心)이 그대로 묻어났다. ●공정성 위해 전자개표기도 동원… 군산시 1위 20대부터 60대에 이르는 선거인단은 판매가격과 재배기술을 메모하기에 바빴다. 일부 학부모는 직접 생쌀을 만져보고 씹어보면서 질감을 파악했다. 문교초등학교 행정실 이병갑(54)씨는 “아이들을 위해 급식 질을 미리 파악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시식회였다. 번호를 매긴 7개의 솥에서 밥을 퍼담는 학부모들의 손길이 세심했다. 포만감 탓에 다른 밥 감별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시식에는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썼다. 학부모들은 쉬지 않고 10~20분이나 쌀알을 곱씹는 끈기를 보였다. 찰기와 윤기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냄새도 맡았다. 개표결과 1위는 군산시(111표)에 돌아갔다. 고흥군(86표), 논산시(56표), 남원시(53표)가 2~4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2년 계약에 연간 400t의 쌀을 공급한다. 부정을 막기 위해 전자개표기까지 동원됐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6일 “질 좋은 급식을 제공하는 게 공공기관의 책무이지만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장류와 반찬까지 품평회를 확대해 학부모들의 먹을거리 고민을 덜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서울광장] ‘김씨 조선’ 3세 상속자 김정은의 앞날/구본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김씨 조선’ 3세 상속자 김정은의 앞날/구본영 논설위원

    ‘데자뷔 현상’이 이런 걸까. 그제 점심 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는 특별방송을 접하자 ‘이미 봤다는 느낌’이 확 들어왔다. 1994년 7월 8일 통일원을 출입하던 기자는 점심으로 시킨 짜장면이 나오자마자 젓가락을 놓아야 했다. 김일성 주석이 급사했다는 TV 자막을 보고 신문사로 뛰어들어가야 했다. 17년이란 시차에도 불구하고, 두 권력자의 사망 직후 제기되는 북한의 앞날에 대한 전망도 판박이처럼 닮았다. 한마디로 북한체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 직후 북한의 내구력을 과소평가한 오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일 체제가 이르면 6개월 이내에, 늦어도 3년 이내에 붕괴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북한 주민이 적게는 수십만명, 많게는 200만명이 굶어죽었다는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도 명맥은 이어졌다. 그렇다면 ‘김씨 조선’의 3대 상속자인 김정은은 수성에 성공할 것인가. 딱히 그런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배급경제가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라는 점에서다. 1990년대 초반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린 평양의 만찬장에서 남측 대표단 수행원이 들었다는 비화가 이를 방증한다. 김책공대에서 약전(弱電·반도체)을 전공하는 아들을 둔 북한 인사가 “통일이 되면 사상이 아닌 기술을 전공한 아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물어왔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 간부가 일찍이 체제의 장래에 회의적 시각을 표출한 셈이다. 생전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 대해 “지도자로서 판단과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평한 적이 있다. 절반은 맞고, 나머지 반은 틀린 인물평일 게다. 그는 독재권력 유지라는 합목적성에 맞는 최상의 대안을 구사했다는 점에선 유능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습체제의 덫에서 빠져나올 비전을 찾는 데는 무력했다. 북한이 당면한 최악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선 개혁·개방을 선택해야 하나, 그러다 보면 체제 유지가 어려워지는 딜레마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처럼 고장난 비행기 같은 북한체제가 추락하지 않고 ‘비틀거리며 날아온’(muddling through) 또 다른 원동력은 무엇일까. 해답으로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의 탁견을 원용할 만하다. 즉, “과거엔 대도시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판이었지만, 공중전과 핵무기 등으로 이젠 그 속의 시민이 인질이 돼 버렸다.”는 ‘도시 인질론’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1000만 서울시민이 볼모로 잡힌 상황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선대의 체제 유지 전술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한 채 김정은 체제가 막 비행을 시작할 참이다. 그가 운행할 항로를 점치는 일은 쉬운 노릇이 아닐 게다. 조종 경력 1년짜리 조종사를 평화통일의 길로 인도하는 일은 김일성·김정일을 상대하는 것보다 더 고난도일 수도 있다. 우린 지난 십수년간 북한의 불가측성을 여러 번 목격했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단적인 사례다. 심지어 남측이 햇볕을 쪼인다고 해서 선의로 화답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온갖 경제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때도 북측은 핵실험과 연평해전으로 응수하지 않았던가.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나 남북관계 개선보다 체제 유지에 최우선 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북한정권의 속성 탓이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대외 정책을 벤치마킹할 만하다. ‘먼 길을 가려면 부드러운 말(言)과 큰 몽둥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원용한, 이른바 ‘큰 몽둥이 정책’이다. 김정은 체제가 제 풀에 무너지지 않는 한 평화통일의 상대임을 인정하고 부드러운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호전적 속성을 버리지 않을 때를 대비해 우리의 힘도 비축해 둬야 한다. kby7@seoul.co.kr
  • 냅킨 깔 필요 없다! ‘위생수저’ 돌풍

    냅킨 깔 필요 없다! ‘위생수저’ 돌풍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아이디어는 전 세계를 휘어잡은 아이폰과 같은 거창한 작품뿐 아니라 우리가 매일 쓰는 수저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수저를 살짝 구부려 끝이 식탁에 닫지 않도록 한 위생수저가 청결지향적인 음식문화 트렌드에 힘입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김여일 키친아이디어 사장은 11일 “식당에서 식사하기 전에 하얀 냅킨을 깔 필요가 없게 만든 위생 수저에 대한 주문이 많이 늘고 있다.”면서 “일반 식당뿐 아니라 기업의 사원식당, 정부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직원식당 등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식당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냅킨을 깔고 그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두는 일이다. 식탁 위에 있는 각종 세균으로부터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최근 조사 결과 대형 식당의 냅킨에서 표백제 성분인 형광증백제가 검출됐으며 식당의 행주에서는 무려 150만 마리 이상의 대장균이 검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간단한 질문에서 위생 수저가 탄생했다고 김 사장은 설명했다. 그는 “숟가락과 젓가락 중간을 구부리니 입에 닿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위로 향해 바닥에 전혀 닿지 않게 됐다.”면서 “이로써 그동안의 위생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 산하 기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자체 식당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 사장은 “우리의 건강한 음식문화 정착을 위해 정부 부처의 직원식당뿐만 아니라 산하 공공기관 등이 먼저 나서서 위생 수저를 사용해야 한다.”면서 “이 위생 수저를 계기로 우리의 식탁문화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돼 모든 국민이 식탁에서 안심하고 식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열린세상] 마음의 순리와 격물치지/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마음의 순리와 격물치지/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순리(順理)란 우주와 만물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따른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는 것이 어렵고 힘겨울 때 마치 체념의 표현으로 순리대로 살자고 말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순리는 마음 의지가 실종된 상태가 아니고 자기가 걸어가는 여정을 뒤돌아보고 벗어난 궤도를 끊임없이 수정하여 자기 본체를 완성하려는 마음작용이요,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늘의 뜻(性)에 따라 작거나 크거나 각자 해야 할 역할이 다르고 역할에 맞게 마음기운(品)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성품(性品)을 갖고 있으며 이것에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적 삶의 순리를 밟아가고 있다. 마음이 순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외면적으로 이미 자기 역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몫을 만지고 있다는 것이고, 내면적으로는 맑았던 마음 기운마저도 탁해지면서 분별력이 떨어진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역할에 맞게 마음(初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역할의 한계를 넘어서면 마음이 탐욕의 기운에 가려져 분별이 흐려짐으로써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판단의 착오가 많으면 인생은 고통으로 얼룩진 채 미완성으로 남는다. 밥 먹을 때 쓰는 나무젓가락을 지붕 올리는 데 필요한 서까래로 사용하겠다는 집착이니 결코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없다. 순리에 맞게 산다면 바른 마음으로 바른 길을 걸어가니 자연스럽게 덕(德)을 얻을 수 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덕을 쌓는다면 우주·만물로 하여금 각자 하고 싶고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음은 당연하다. 물론 역할에 따라 자기의 길을 가면서 얻어지는 것이니 결과는 각기 다르다. 노자는 만물을 이롭게 하고 아우르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순리를 닮자(上善若水)고 했고, 묵자는 하늘은 한결같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롭게 품고 보존하기 때문에 그 성품을 가지고 온 사람도 항상 서로를 존중하고 베풀며 유익하게 사는 길이 순리라고 설시한 이야기는 고단한 우리네 삶에 마음을 일으키는 지혜로 다가온다. 격물치지(格物致知)란 격물과 치지가 합쳐진 말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데 그 뜻을 살펴서 알면 몸을 다스려 세상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대학 경문(經文)편에 나온다. 만물의 이치와 순리는 각 사물의 역할이나 쓰임새 등을 살펴 지식이나 경험으로 인식하고 다시 인지된 지식 등을 마음 안에 들여놓고 분별의 창에 투과시켜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도 물질세계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역할에 따라 다른 기운의 형태로 격물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치지의 내용도 단순히 객관적으로 보이는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역할과 기운을 내면적으로 성찰하여 어떤 것이 순리에 맞는지 선택하는 결심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신(修身)이 순리에 맞는 자기성찰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요즈음 2040세대들의 분노가 갈수록 심화되는 듯하다. 5060세대가 구박덩어리처럼 회자된다. 나라 잃은 슬픔과 6·25전쟁의 굶주림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60여년 만에 기적을 일구어 놓았음에도 비난이 여간 만만치 않다. 역사 이래 지금처럼 경제적 번영을 구가한 사례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음에도 그렇다. 그들의 분노를 보면, 아무리 직업을 찾아도 구하기 어렵고 어쩌다 취업을 해도 돌아오는 보상은 적고 살인적인 경쟁을 통해 다수를 희생하고 살아남은 소수는 기득권을 독식하기 때문에 소통은 단절되었고 인정은 말라버려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실로 맞는 주장이고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선(善)을 찾아야 한다. 하늘의 본래 마음자리(天心)가 모든 사람이 보람을 느끼며 행복하게 더불어 사는 데 있기 때문에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는 사회는 순리에 역행하므로 반드시 망한다. 백성들의 마음이 천심이고 순리이니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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