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접견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물 부족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오해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심경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해상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201
  • “대한 정책전환 고무적”/노 대통령,일 사회당의원 접견

    노태우대통령은 16일 상오 청와대에서 이가라시 고조(오십람광삼)의원등 일본사회당의원 11명을 접견,사회당의 대한정책전환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일양국간의 진정한 우호협력관계는 역사의 진실된 인식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말하고 『사회당이 과거 일본의 잘못에 대해 진실되게 인식,재일동포의 법적지위·사할린동포·원폭피해자문제 등에 대해 어느 당보다도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는것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이가라시의원은 『우리 일행이 오늘 노대통령을 예방함으로써 한국과 사회당간에 놓였던 벽을 뛰어넘게 되었다』고 말하고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깊은 사죄를 드린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당국자는 이날 노대통령이 사회당의원을 처음으로 접견한 배경과 관련,『최근 사회당이 한일기본조약의 승인등 친북한 일변도정책을 수정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평가한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현실적인 변화를 실감케하여 남북한관계진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기 위한것』이라고 설명했다.
  • 한­스웨덴 협력 논의/노 대통령,구스타프국왕 접견

    노태우대통령은 14일낮 청와대에서 세계잼버리대회 참관을 위해 방한중인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국왕의 예방을 받고 오찬을 함께 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구스타프국왕의 전왕이자 조부인 구스타프 아돌프 6세가 세자시절인 1926년 한국을 방문,경주고분 서봉총에서 금관을 발굴한 사실과 함께 스웨덴이 유엔한국감시단의 일원으로 활동한 점등을 상기시키며 『한­스웨덴간의 긴밀한 유대관계가 더욱 발전되기를 바라며 국제무대에서 한반도의 냉정종식을 위해 협력해줄것』을 요청했다.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 명예총재자격으로 내한한 구스타프국왕은 『현재 스웨덴에서는 한국도자기전시회가 열리고있는데 이같은 양국국민간의 교류를 더욱 확대해나가자』고 말하고 노대통령의 스웨덴방문을 희망했다.
  • 다케시타 전 총리 접견

    노태우대통령은 13일 상오 청와대에서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전 일본 총리를 접견,양국 공동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 브라질 외무에 훈장/노 대통령

    노태우대통령은 9일 상오 프란시스코 레제키 브라질 외무장관을 접견하고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다. 레제키장관은 국제법을 전공한 법학박사로 지난해 3월 브라질 외무장관에 임명됐다.올해 47세.
  • 서울에 온 소 광산노련위원장/알렉세이 타라센코씨(인터뷰)

    ◎“남북 노동단체교류 징검다리 역할 할터” 『남북한의 화해와 남북노동조합간의 교류를 이룩하기 위해 한국노총이 제안한 대북 교류제의서한을 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에 전달하겠습니다』 한국노총의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있는 소련 전국광산노련위원장 알렉세이 타라센코씨(51)는 27일 상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노총회관 6층 접견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타라센코위원장은 이날 『소련노총은 이미 북한의 노동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북한이 교류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노총이 남북관계개선과 남북한 노동단체의 이익증진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북한조선직업총동맹 원동구위원장앞으로 보내는 서신을 전달하는 등 남북노동단체의 교류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에 앞서 박종근노총위원장과 가진 회담에서 ▲한·소간 인사교류를 산별조직으로 확대하고▲지역평화증진을 위해 서로 노력하며▲교역증진및 정보교환,연수생파견등 상호협력방안을 폭넓게 논의한일과 관련,『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싶으며 양국의 노총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소련의 노동운동과 경제상황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사회주의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올해 4월 노동자의 근로조건·보험·연금 등에 대해 노총과 정부간에 협상이 이루어지는등 노동운동에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면서 『그러나 경제체제의 변화로 물가가 뛰어오르는등 소련의 노동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소련노총은 10월혁명이 일어난 다음해인 1918년 결성돼 현재 산하조합원만도 1억4천만명에 이른다』고 소개한 뒤 『사회주의체제이기 때문에 정치·경제·공공문제에 대해 노조의 참여권이 보장돼 있는 것이 특색』이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에고로브 소련노총 국제국장등 6명을 인솔,입국한 타라센코위원장은 구미공단과 광산노련방문,최병렬노동부장관예방등 8일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달 2일 귀국한다.
  • 3국 대사 신임장 받아/노 대통령

    노태우대통령은 19일 상오 청와대에서 이니즈 오노부 나이지리아대사,하무드 울드엘리 모리타니대사,에보아 랄라투테 파푸아 뉴기니대사등 3개국의 주한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받았다. 노대통령은 이어 이날하오 레오 맥클레이 호주 하원의장을 접견했다. 노대통령은 또 최형우신임정무1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 맹인 박사부부 접견

    노태우대통령은 19일 하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맹인박사 강영우씨부부를 접견,환담했다.
  • 모스크바시장 접견

    노태우대통령은 15일 상오 청와대에서 가브릴 포포프 모스크바시장을 접견,환담했다.
  • “「북미순방」 한반도통일에 기여” 73%/공보처,전화 여론조사

    ◎“핵사찰 수용 촉구,북한에 영향” 68% 우리 국민 대다수는 노태우대통령과 부시미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이 한반도통일여건 조성등 우리의 통일에 도움이 될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노대통령의 이번 미·캐나다순방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정착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공보처가 8일 노대통령의 미·캐나다순방과 관련,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20세이상 남녀 5백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여론조사 결과에서 밝혀졌다. 이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통일방식,통일한국의 모습까지 포괄하는 「통일에의 기본틀」을 논의한 것이 우리통일에 도움이 될것인가에 대한 설문에는 응답자의 72.6%가 도움이 될것이라고 답했으며 부정적인 견해는 25.1%에 불과했다. 또 이번 한미정당회담 결과가 한국의 안보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6.9%가 긍정적으로 전망했으나 17.8%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고 정상회담에서 있었던 북한의 국제핵사찰 수용 촉구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68.1%가 영향력을 끼칠것으로 본 반면 26.8%는 끼치지 않을것으로 응답했다. 한편 노대통령이 미·캐나다를 국빈자격으로 방문,양국 정부와 국민들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38.6%로 가장 많았으며,다음은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짐」(25.0%),「당사국간의 전통적 우의」(24.8%),「양국 상호이익」(5.5%)순으로 나타났다. 또 노대통령의 순방기간중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는 「국빈예우」(29.2%),「한미정상간 친선테니스」(16.3%),「백악관정상회담」(14.6%),「노대통령의 의연하고 세련된 외교스타일」(10.3%),「교포접견행사」(8.9%)등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 “아태 국가간 호혜적 경제협력 다지자”(노 대통령 북미순방 여로)

    ◎“소와 수교해 이젠 KAL기 타도 안전”/노 대통령/“한국의 세계정세 유연 대응 특기할만”/멀로니 ◎…나티신 캐나다 총독내외가 노태우대통령내외를 위해 4일 저녁 총독관저에서 베푼 공식만찬에는 우리측의 공식수행원과 수행경제인,멀로니총리를 비롯한 캐나다 각계주요인사 1백여명이 참석. 이날 저녁7시50분(현지시간) 노대통령내외는 나티신총독내외,멀로니총리내외의 안내로 만찬장입구쪽으로 입장,역대 총독들의 초상화가 걸린 벽면을 배경으로 함께 기념촬영. 이어 노대통령내외와 나티신총독내외는 접견 라인에 서서 시종무관의 호명에 따라 만찬장에 입장하는 양측 참석인사들과 악수. 나티신총독은 먼저 만찬사를 통해 『한국이 지닌 활력은 곧 아시아태평양지역이 지닌 활력의 축소판』이라며 한·캐나다간의 긴밀한 협력필요성을 강조한뒤 『각하의 이번 방문이 너무 짧은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인사말에 이어 건배를 제의. 답사를 위해 일어선 노대통령은 배포된 만찬답사를 하기에 앞서 영어로 『내 친구가 캐나다의 경우 9개월이 겨울이고 나머지 3개월은 봄 가을이라고 하던데 실제 와보니 사실과 크게 다른 말』이라고 조크하는등 두차례에 걸쳐 좌중의 웃음과 박수를 유도. 노대통령은 이어 우리말로 답사를 읽어내려 갔는데 『우정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한국속담이 있고 『좋은 우정은 제2의 친척이라는 속담도 있다』며 『우리 두나라 국민간의 우정은 리도강에 흐르는 물처럼 아름답고 영원할것』이라는 인사말을 끝으로 건배를 제의. ◎…노대통령과 멀로니 캐나다총리는 정상회담이 끝난직후인 4일 상오(한국시간 5일 0시45분)부터 의사당내 리딩룸에서 40여분간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회담결과를 설명. 정상회담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져 15분정도 늦게 시작된 공동기자회견에는 캐나다측을 포함,외신기자 40여명과 우리측 수행기자 50여명,사진기자 등 1백50여명이 참석. 이날 기자회견은 멀로니총리에 이어 노대통령이 회담결과를 설명한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양측에서 각각 2명씩 모두 4명이 질문. 멀로니총리는 『오늘의 회담에서는 한 캐나다 양국의 협력증진에 관한 문제를 비롯,서방선진7개국(G7)정상회담에 관한 문제,무기문제와 우루과이협상에서 협력할 문제등을 논의했다』며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내용들을 대략적으로 설명. 노대통령은 『6·25 전쟁때 캐나다가 2만7천여명의 젊은이들을 파견,자유를 지켜 오늘날 한국이 경제성장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면서 『내가 멀로니총리를 반갑게 만나 아시아태평양의 번영을 위한 문제들을 논의하게 된 것 자체가 감회가 깊은 일』이라고 피력. ◎…노대통령과 멀로니총리는 4일 환담중 전날 공항의전행사 때 의장병1명이 더위로 쓰러진 일과 북한의 김일성동상크기에 관해 농담을 나누며 폭소. 멀로니총리는 『나는 누군가 쓰러져 놀라면서도 제발 야당의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더니 유감스럽게도 여군이었다』고 노대통령에게 농담. 이때 노대통령은 미국백악관 의전행사 때는 의장병이 4명이나 더위와 피로때문에 쓰러졌다고 소개하면서 『그러고보니 캐나다군인이 역시 미군보다 강하다는 것 아니냐』고 응수. 이어 멀로니총리는 평량의 김일성동상이 무려 75피트(22·5m)나 된다고 해서 동료의원들에게 『나는 그보다 작은 것이라도 동상하나 세워달라』고 했더니 『75㎝짜리 동상을 세우기도 어려울 것이다.말썽날 일 말라』는 반응이더라고 해 좌중엔 다시 웃음. ◎…노태우대통령은 4일 하오4시(한국시간 5일 상오5시) 캐나다 외무성 회의실에서 열린 한가경제인 간담회에 멀로니총리와 함께 참석,경제인들을 격려. 노대통령은 이날 두나라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는 아태경제협력각료회의(APEC)를 중심으로 지역국가간 호혜적 경제관계가 심화돼야 한다고 역설. 이에앞서 멀로니총리도 인사말에서 『캐나다시장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교역에 장애는 없다』면서 한국기업의 캐나다투자를 호소하고는 『두나라가 국가와 민족의 벽을 허물고 세계시장에 함께 진출하자』고 제안. 노대통령은 인사말 끝머리에 한소간 인적교류를 언급하는 가운데 『옛날에는 대한항공을 타면 불안하다 했지만 이제는 소련과도 수교했으니 걱정할 것없다』고 농담을 해 웃음을 자아냈는데 곧이어 자리를 뜨면서 간담회에 참석한 박성용금호그룹회장을 발견하고는 『한국에는 아시아나항공도 있다』고 부연,박수를 받기도. ◎…노대통령은 4일 하오5시(한국시간 5일 상오6시) 숙소인 총독관저에서 캐나다 야당인 자유당의 크레티엥당수를 접견하고 환담. 노대통령은 『한국과 캐나다는 6·25때 혈맹관계를 맺었다』면서 『앞으로 21세기 아태지역발전과 공동번영을 위해 동반자로서 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양국관계의 발전을 희망. 노대통령은 한국의 국내문제에도 언급,『민주화의 진전에 대해 비판도 많이 있지만 인내로서 꾸준히 국민의 자율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 크레티엥당수는 『야당 당수로서 각하를 뵙게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각하가 민선 대통령으로 민주화에 성공하고 있는데 대해 축하드리며 앞으로 계속 민주화에 큰 업적을 남기시기 바란다』고 인사. ◎…대통령 부인 김옥숙여사는 4일 하오(한국시간 5일 상오) 나티신총독 부인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한뒤 멀로니총리 부인과 함께 국립미술관을 방문. 김여사는 톰슨관장의 안내로 미술관의 1·2층 전시실을 둘러본후 톰슨관장에게 「한국미술 5천년」과 「한국복식도감」의 영문책자를 전달.톰슨관장은 이에 「캐나다 미술걸작선집」을 선물.
  • 한미정상,테니스 치며 우의 돈독히(노 대통령 북미순방 여로)

    ◎“「보통사람」 링컨 말인줄 나중에 알았다” 조크/“내 미제라켓은 무역 불균형 시정 위해 산 것”/88올림픽 사진등 비치… 한국문화 전시장 눈길 ◎…부시 미 대통령내외가 노태우대통령내외를 위해 2일밤 백악관에서 주최한 국빈만찬은 필요격식을 갖추느라 7시15분부터 2시간20여분간 계속. 노 대통령내외는 백악관 북측현관에 도착,부시대통령내외의 영접을 받고 기념촬영을 한뒤 3층 옐로 오벌 룸에서 잠시 환담. ○만찬 2시간20분 걸려 노 대통령내외는 7시45분 부시대통령의 안내를 받으며 기수단을 앞세우고 만찬이 열린 2층의 국빈만찬장으로 이동. 양국 대통령내외는 이동 도중 또 한차례의 기념촬영을 한뒤 만찬장에 입장전 이스트 룸에서 참석자들을 접견했는데 양국대통령이 들어설 때는 「국가원수에 대한 찬가」를 연주. 4분여에 걸친 부시대통령의 만찬사 및 건배제의에 이어 노 대통령은 조크를 곁들인 답사와 함께 건배를 제의했고 8시30분부터 만찬이 시작. 만찬이 끝난뒤 노 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참석자들과 격의없이 어울려 10여분간환담을 나눈후 이스트룸으로 이동,20여분간에 걸쳐 공연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PhantomofTheOpera) 중 5곡을 감상했는데 이 뮤지컬은 현재 케네디센터에서 성황리에 공연중. 공연이 끝나자 부시대통령은 무대로 올라가 지휘자,남녀가수와 악수를 하고 『이렇게 특별한 날에 한국에서 오신 특별한 손님을 위해 훌륭한 공연을 해주어 고맙다』고 치하. 부시대통령은 이어 노 대통령내외도 무대로 올라올 것을 권유한 뒤 참석자들에게 소개했으며 이에 노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여사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무대에 올라가 공연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 ○환대에 거듭 감사표시 ◎…노 대통령은 이날밤 국빈만찬의 답사를 통해 양국간 전통적 우의를 누누이 강조하며 환대에 대해 거듭 감사의 뜻을 표시. 노 대통령은 『오늘 내 생애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받는 기쁨을 가질수 있었다』고 서두를 꺼낸뒤 그것은 부시대통령이 애써 구해준 「링컨―더글러스 디베이트(논쟁)」초판본 때문이라고 설명. 노 대통령은 링컨대통령이 『보통사람이 제일 잘난 사람이다.하느님께서 보통사람을 가장 많이 만든 것을 보더라도 이것이 설명된다』고 했는데 바로 「보통사람」이 자신의 대통령선거 구호였고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연다」는 게 자신이 이끄는 정부의 국정목표가 됐다고 부연. 노 대통령은 『내가 「보통사람」을 선거구호로 선택했을 때 링컨대통령이 이런 말을 먼저 썼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나중에야 알게됐다』면서 『따라서 내가 링컨대통령의 「지적소유권」을 침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고의적인 침해행위는 아니었음을 믿어달라』고 조크,박수와 웃음소리가 한동안 그치지 않고 지속. ◎…노 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2일 하오 백악관 테니스코트에서 1시간가량 테니스를 즐기며 우의를 다졌다. 두대통령은 현홍주주미대사·그레그주한미대사·이현우경호실장 등과 함께 코트에 도착,가볍게 몸을 푼뒤 하오4시10분부터 대통령조와 대사조로 나눠 시합. ○강력한 스트로크 구사 환갑을 훨씬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시대통령은 경쾌한 푸트워크로 노익장을 과시했고 노 대통령은 특유의 강력한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해 박수를 받았다. 대통령조와 대사조의 첫세트는 6대4로 대통령조가 승리. 두대통령은 대사조를 물리친뒤 조를 바꿔 현대사대신 이실장과 그레그대사조와 경기를 가져 역시 6대4로 승리. 두번째 시합에 들어가면서 부시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이번에도 사정을 봐주지말고 이기자』고 파이팅을 보이며 승부욕을 과시하기도. 섭씨 3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때문에 두정상은 땀을 흠뻑 흘리면서 1시간동안 테니스를 즐겼고 시합이 끝난뒤 땀에 젖은 라켓을 교환. 부시대통령이 『이 라켓은 작년 전미 오픈에서 우승한 심슨이 기증한 것』이라고 소개하며 『우승자의 사인이 있는 커버까지 드릴테니 앞으로 이 라켓을 갖고 시합하면 계속 승리하실 것』이라며 라켓을 교환. 이에 노 대통령은 『이 라켓은 미제인데 내가 이 라켓을 구입해 사용한 이래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서 쓰고 있다』면서 『한미간의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고 조크해 웃음이 터지기도. ◎…백악관에서 부시 미대통령과회담을 마친 노 대통령은 영빈관에서 잠시휴식을 취한후 제임스 베이커국무장관이 국무부청사에서 주최한 오찬에 참석. 부인 김옥숙여사와 함께 국무부 건물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외교사절입구(디플로매틱 엔트란스)에서 베이커장관 내외의 영접을 받고 리드 의전장의 안내로 1층에 있는 한국소개 전시대를 관람하고 애담스룸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찬 참석자들을 접견. 한편 국무부청사 1층 복도에서는 노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기념하는 한국에 관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방문자들의 눈길을 끌기도. 이 전시관에서는 한국의 문화재모형 9점과 서울올림픽사진 36점등이 전시되었는데 미정부는 국빈방문의 경우 그나라의 특징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방문 1주 전후로여는 것이 관례라고. ○두 정상 회담결과 만족 ◎…정상회담이 끝난뒤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매디슨호텔 2층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회담결과를 브리핑. 이대변인은 『정상회담은 10시45분부터 11시25분까지의 단독회담과 25분간의 확대회담등 총 65분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양국의 상호 관심사에 대해 진지하고 기탄없는 대화가 있었다』면서 『회담결과에 대해 양국 정상은 만족을 표시했다』고 설명. 이대변인은 『전체적으로 이날 회담에서 모든 문제에 있어 의견이 다르거나 차이가 있는 부분은 없었으며 양국간의 긴밀한 협조에 대한 다짐이 있었다』고 강조.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는 2일 하오 워싱턴의 여성미술관을 방문,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현대여류작가 10인전」과 소장품들을 약 40분동안 관람. 윌헬미나 홀라디 관장(여)의 안내로 전시실을 둘러본 김여사는 3층 전시실의 여성인물 중심의 걸작소장품에 관심을 표명. 김여사는 특히 2층에 전시중인 박상숙 정경연 진옥선씨 등 우리나라 여류작가 10인의 작품을 재미교포 화가 부부인 한규남 최분자씨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했는데 『우리 여류미술인들의 작품성이 다양하고 과감하다』고 찬사.
  • 백악관 앞뜰 “국빈맞이” 예포 21발(노 대통령 북미순방여로)

    ◎전례없는 인파… 악수 공세에 진땀/교민들과 일일이 인사,공항출발 지연/“봄바다에 떠있는 영산”… 북한변화 강조 ○“다시 만나 반갑다” 인사 ◎…노태우대통령의 국빈방문에 따른 공식 환영행사는 백악관 남쪽뜰에서의 옥외환영식과 백악관 본관 2층 크로스홀에서의 공식수행원및 환영위원 접견순으로 2일 상오10시(한국시간 2일 하오11시)부터 약30분간 진행. 환영식은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의 사열대 등단후 의장대의 양국 대통령에 대한경례에 이어 애국가와 미국 국가연주,양국국가 연주중 21발의 예포발사,양국 대통령의 의장대 사열,부시대통령 환영사,노대통령 답사순으로 20분간에 걸쳐 장중하고 엄숙하게 거행. 노대통령 내외는 환영식에 앞서 영빈관을 출발,10시 정각 백악관에 도착했으며 부시대통령 내외는 외교사절 출입구인 디플로매틱 엔트런스 앞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영접. 양국 대통령내외는 서로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며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고 나서 잠시 인사말을 주고 받은뒤 리드 백악관의전장의 안내로 전면의 환영식장으로 이동. 환영식에는 이상옥외무장관을 비롯한 우리측 공식수행원과 김봉규공사등 우리측 환영위원회위원,김상하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수행경제인등 특별초청인사들과 비공식수행원,대사관직원과 가족,상사주재원,교민지도자등 우리측인사 3백여명과 퀘일 부통령내외,베이커 국무장관내외,수누누 비서실장,제레미아 합참차장,그레그주한대사내외를 비롯한 미측 환영위원회위원등 4백여명이 참석. 양국 정상내외는 환영식이 끝난후 백악관 2층 크로스홀로 이동해 부시대통령,노대통령,바바라 부시여사,김옥숙여사순으로 나란히 서서 우리측 공식수행원과 양측 환영위원들을 접견. ○15분간 단독회담 가져 ◎…양국 정상은 약30분간에 걸친 공식환영행사에 이어 상오10시30분(현지시간)1층의 대통령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바로 옆의 각료회의실에서 단독및 확대정상회담을 약1시간 가량 진행. 단독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이,미측에서는 스코우크로프트대통령안보보좌관이 배석했으며,통역은 우리측의 이정하공보비서관과 미측의 크리스텐센 주한미대사관 1등서기관이 각각 수행. 약15분간의 단독회담에 이어 열린 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측에서 이상옥외무,이봉서상공,현홍주주미대사,정해창비서실장,김종인경제수석,김종휘외교안보보좌관,이수정공보수석,이정하비서관(통역)이,미측에서는 퀘일부통령,베이커국무,모스배커상무,스코우크로프트안보보좌관,솔로몬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크리스텐센 서기관(통역)이 각각 배석. ○잇단 박수답례에 상기 ◎…첫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일 하오5시(한국시간 2일 상오6시)전용기편으로 워싱턴 앤드루스공군기지에 도착한 노태우대통령은 현지 교민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베풀어진 리셉션에 참석하는 것으로 워싱턴 일정을 시작. 노대통령이 저녁 7시 정각 리셉션장인 옴니슈람호텔 리젠시 볼룸에 입장하자 현홍주 주미대사와 최광수 현지교민회장 등이 박수로 영접했고 노대통령은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 노대통령은 모임에 앞서 오석봉 전현지한인회장(61)및 태권도사범 존 리(한국명 이준구)씨 등과 잠시 환담.노대통령은 존 리씨에게 『국위를 선양해 고맙습니다』고 말했고 존 리씨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영광으로 느끼며 활동합니다』고 답례. 노대통령은 교민들의 잇따른 박수답례에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북한은 변화할 것이며 봄바다에 떠 있는 빙산은 녹게 마련』이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연단을 치기도. ○플래카드 들고 환호성 ◎…노대통령내외가 도착한 앤드루스 공항에는 교민 1천여명이 나와 플래카드와 피켓등을 들고 환호하는등 어느때보다도 환영열기가 고조됐는데 노대통령의 해외순방에서 환영교민이 이처럼 많기는 처음. 이날 하오5시께 대한항공 특별기가 공항에 도착한 직후 노대통령내외가 리드 백악관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오면서 교민들을 향해 손을 번쩍 치켜들자 교민들은 일제히 환호. 노대통령은 트랩밑에 대기하고 있던 빅스 워싱턴지구 공군사령관,그레그 주한대사,솔로몬 국무부 아태담당차관보,앤더슨 부차관보등 미국측 인사와 현홍주주미대사등의 영접을 받았다. 노대통령내외가 양측 인사들로부터 영접을 받는 동안 2백여m 떨어진 교민환영대에서 계속 환호성이 터지자 노대통령내외는 환영대쪽으로 이동해 교민들과 일일이악수로 인사를 나눴는데 교민의 수가 많아 공항출발 시간이 15분간 지연되기도.
  • 북방외교의 결실 설명…교민들 뜨거운 박수(노 대통령 북미순방여로)

    ◎“한미유대 깊을수록 동포위상 높아져”/“한국의 정치적 기적 이룩한 분” 극찬/슐츠 ○페어몬트호텔서 첫밤 ◎…방미 첫날밤을 샌프란시스코시내 페어몬트호텔에서 보낸 노태우대통령은 30일 상오8시(한국시간 1일0시)호텔로 교민대표들을 초청해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격려. 노대통령은 격려사에서 『작년 6월 고르바초프소연대통령과 회담을 하러 이곳에 왔을때는 워낙 일정이 촉박해 여러분을 만날수 없어 서운했는데 오늘 아침 이처럼 편안한 자리를 함께 하게되어 기쁘다』고 한뒤 『이지역 10만명의 우리 동포들이 화합과 결속으로 미주지역에서도 모범적인 동포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감사를 표시. 노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는 우리겨레가 이 대륙으로 처음 이민을 왔던 곳이며 나라를 잃은 어둠의 시기에 선열들이 몸바쳐 독립운동을 벌이는등 우리의 역사와 깊은 유대를 맺고 있는 친근한 도시』라고 지적하고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한소정상회담을 시발로한 국교수립등 양국간 관계개선과정과 북방정책의 결실부분을 소상하게 설명. 노대통령은 『이러한 관계위에 소연과 지난날의 북한동맹국들이 우리의 통일정책을 지지하고 북한에 대해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하고 국제핵사찰을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세계가 유전벽해의 변화를 하는 상황에서 북한도 변하지 않을수 없다』고 단언. 노대통령은 『저의 이번 방미는 3년반동안 4번째로 매년 한번씩 미국에 온 셈』이라면서 『한국과 미국 사이는 그만큼 긴밀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나라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두나라의 관계가 깊을수록 우리 동포사회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 노대통령은 또 6·29선언 4주년에 대해 언급하면서 『대학생들이 스승이자 공직자인 총리에 폭행을 한 사건을 뉴스를 통해 보시고 여러분도 모두 개탄하셨을 것이고 저도 해외동포들의 질책과 걱정의 소리가 많았다고 보고 받았다』고 피력한뒤 『그러나 성숙한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언론의 자유가 있고 참고 자제할 줄 아는 정부가 있는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여러분은 더이상 걱정 안하셔도 된다』고 역설. 이날 조찬에 참석한 교민대표들은 노대통령이 「모범적인 샌프란시스코 교민사회」라고 감사를 표시한 대목과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북방정책」및 「조국의 민주화 진전 상황」등을 설명할 때에는 여러차례나 박수로 환영의 뜻을 표하는등 시종 밝고 화기넘친 분위기. ○슐츠 전국무 즉석 질문 ◎…29일하오1시(한국시간 30일새벽5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샌프란시스코의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 오찬장에 입장한 노태우대통령 내외는 슐츠전국무장관 내외와 레이지언 소장내외등과 헤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한시간여 오찬을 나눈뒤 슐츠전장관의 소개로 연설을 시작. 슐츠전장관은 인사말에서 『경제적 기적에 이어 6·29선언을 통해 한국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정치적 기적을 이룬 노대통령의 훌륭한 리더쉽과 넓은 안목을 접하기위해 노대통령을 초청한 것』이라고 소개. 동시통역으로 약 35분동안의 연설이 끝나자 교수 학생등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로공감을 표시했으며 슐츠전장관은 참석자들을 대표해 한국의 학생운동문제와 북한의핵사찰 수용가능성에 대해 즉석 질문. 노대통령은 한국학생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뒤 『금년봄 격렬한 시위가 있었으나 시민들이 호응하지 않아 확산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여당에 표를 몰아줘소요를 잠재우는 선택을 했다』고 말하고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겠지만 북한이 핵사찰에 응할 것을 기대한다』고 대답. 연설이 끝난뒤 슐츠전장관은 세계지도가 그려진 어항을 노대통령에게 선물하면서 『한국이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를 지닌 선물』이라고 설명했고 노대통령은 『연설한 대가로 한국의 지도를 크게 그려준데 대해 감사한다』고 조크. ○취재진들의 이목 집중 ◎…휴게실에서 슐츠전장관,레이지언소장등과 잠시 환담을 나눈 노대통령은 오찬참석자들을 위한 옥외칵테일장과 오찬장을 잇는 복도입구에서 슐츠전장관등과 함께 참석자들을 일일이 접견. 공식수행원등 우리측 40여명과 미국측 80여명의 참석자중 국내 취재진의 카메라가 집중된 것은 노대통령이 정호용전의원과 만나는 장면. 지난해 4월 대구서갑보궐선거에 출마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방미, 1년3개월째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고 있는 정전의원은 이번 노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에 따른 단독대좌로 향후 거취가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 리셉션 라인에서 정전의원을 만난 노대통령은 어깨를 감싸고 두드리며 『반갑습니다』라고 악수를 나누었고 정전의원은 웃음으로 답례. 노대통령이 리셉션장에 도착하기전 양측 참석자들이 칵테일을 나눈 자리에는 정전의원의 육사 11기 동기생인 안교덕청와대 민정수석과 나란히 서서 정담을 교환. ◎…경호용 헬리콥터가 스탠퍼드대 캠퍼스상공을 선회비행하는 가운데 이날 낮12시40분쯤 모터게이트편으로 후버연구소 후버타워 앞뜰에 도착한 노대통령 내외는 슐츠전국무장관과 레이지언 후버연구소장 내외의 영접을 받고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 □특별취재반 △김호준 워싱턴특파원 △홍윤기 LA특파원 △이경형 정치부차장 △김영만 모스크바특파원 △김윤찬 사진부기자 △김종원 사진부기자
  • “노 대통령의 날”… 상항,두번째 선포(노 대통령 북미순방 여로)

    ◎“고르비와 인연 맺어 「통일시대」 확신한 곳”/6개 지역 교민들 환영단 결성,공항 마중 ○…29일 상오(한국시간 30일 상오) 샌프란시스코공항에 안착한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낮 샌프란시스코시내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를 방문,슐츠 전 미 국무장관과 레이지언 연구소장 등 미측 관계자들과 오찬을 함께한 뒤 「태평양시대의 새로운 질서와 한국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30여 분 간 연설하면서 여러 차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는 나에게 언제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과 꿈을 불어넣어주는 도시』라고 말문을 열고 『32년 전 결혼 사흘 만에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첫발을 내디딤으로써 미국과 첫만남이 이루어졌다』고 소개. 노 대통령은 이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첫만남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루어졌고 그때부터 한반도는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자신을 더하게 되었다』고 샌프란시스코와의 인연을 거듭 강조. 노 대통령은 현지 날짜로는 이날이 6·29선언 4주년이 된다고 지적,『태평양을 건너며 날짜 변경선을 넘게 되어 6·29선언의 4주년이 되는 날을 서울에서 한 번,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한 번 맞게 됐다』면서 『이 뜻깊은 날을 한 해에 두 번째 맞으며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새롭게 다진다』고 피력. 노 대통령은 『72년 전 후버 대통령이 이 연구소를 설립할 때 오늘의 세계와 21세기의 세계를 내다봤던 것 같다』면서 국제정세 변화에 따른 태평양시대 개막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이 훌륭한 연구소가 태평양 연안에 세워진 것부터가 이 세계의 또다른 변화를 예견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 노 대통령은 『전후 독립을 쟁취한 나라로서 한국과 같이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이 지상에 드물 것』이라면서 『한국은 민주주의를 향해 흔들림없이 전진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것은 공동의 이상을 나누고 있는 우방에는 자랑스러움을,민주주의를 하는 데 어려움을 맞고 있는 나라들에는 용기를 더해줄 것』이라고 역설. 이날 노 대통령 내외는 후버연구소 입구에서 슐츠 전 국무장관 내외와 레이지언 소장 내외의 영접을 받고 휴게실에서 10여분 동안 환담을 나눈 뒤 오찬장으로 가 참석자들을 접견. 오찬이 끝나갈 무렵 슐츠 전 국무장관의 환영사에 이어 연설을 한 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 참석자들로부터 간략한 질문을 받아 답변했으며 슐츠 전 장관은 노 대통령에게 미리 준비한 선물을 증정. ○교민대표들과 악수 ○…29일 상오 9시20분(현지시간) 미 샌프란시스코공항에 도착한 노 대통령 내외는 특별기 안에서 현홍주 주미 대사 박춘범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 스위그 샌프란시스코시 의전장으로부터 기상영접을 받고 방미 첫날 일정을 시작. 스위그 의전장의 안내로 트랩을 내려온 노 대통령 내외는 환영나온 인사들에게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어 답례한 뒤 트랩 밑에서 대기하던 아그노스 샌프란시스코시장 내외의 정중한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 아그노스 시장은 노 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을 기념하는 뜻에서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이날을 「노태우 대통령의 날」로 선언했다는 선포문을 증정했으며 노 대통령은 이에 감사를 표시. 노 대통령 내외는 도열병들 사이를 통과한 뒤 슐츠 전 미 국무장관·벡텔 벡텔사 회장·마르크스 캘리포니아 상원의원(민주) 등 미측 환영인사들과 인사교환. 노 대통령 내외는 특히 교민 남녀 화동 2명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을 때는 10시간50분 동안의 비행에서 온 피로도 잊은 듯 즐거워하는 모습이어 노 대통령 내외가 박 총영사의 안내로 교민단체 대표 11명과 악수를 나눈 뒤 환영교민단 앞으로 가 답례를 하자 1백여 명의 교민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일제히 흔들며 환호. ○곳곳 환영 플래카드 ○…지난해 6월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 1년 만에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방문한 노 대통령 내외를 맞는 교민사회의 열기는 지난번 방문 때보다는 훨씬 더 달아올랐다. 이곳 교민들은 샌프란시스코가 바로 1년 전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간의 회담으로 한소 수교의 주춧돌을 마련한 곳일 뿐만 아니라 1백여 년 전 미국에 건너간 한국 이민들의 교두보였었다는 점에서 자긍심을 갖고 29일 상오(현지시간) 이곳 국제공항에 안착한 노 대통령 내외를 열렬히 환영했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몬트레이·샌 호제이·새크라멘토·스탁톤·페어필드 등 6개 지역의 전·현직 한인회장을 비롯한 각 단체장 및 지도급 인사 등 65명은 「노태우 대통령 환영공동위원회」를 스스로 만들어 영사관의 도움없이 환영준비를 했다. ○…대통령의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불과 몇 블록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밀집돼 있는 한인 상점들에는 「노태우 대통령 각하 내외분 환영」이란 대형 플래카드가 나붙어 있는가 하면 이곳의 교포 일간지에 공동위원회의 이름으로 환영광고가 크게 게재돼 샌프란시스코 일대에는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노 대통령을 환영하는 분위기. 미 언론들도 노 대통령의 이곳 방문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채널8의 CNN­TV는 28일 하오 11시 뉴스에 이날 아침 LA에서 발생한 지진에 관한 기사를 젖혀두고 머릿기사로 노 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도착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29일 낮 서울공항에서 국내외 주요인사 및 일반환송객 등 1천여 명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미국 및캐나다 순방을 위해 대한항공 특별기 편으로 출국. 노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 여사는 이날 하오 2시10분쯤 정원식 국무총리서리와 이연택 총무처 장관의 안내를 받으며 청사 2층에 마련된 환영식장에 입장. 감청색 싱글 양복 차림의 노 대통령과 부인 김 여사는 군악대의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의장대를 사열한 뒤 소형 태극기와 대통령 캐리커처가 그려진 수기를 흔들며 환송하는 일반 시민들과 환한 얼굴로 악수를 교환하며 답례.
  • “분신한 김씨 필적” 주장 메모지/전민련서 하루 보관

    ◎“전민련,공개자에 발설금지 요청”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 분신자살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강력부(강신욱 부장검사)는 27일 구속된 강기훈씨(27)가 혐의내용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수사에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김씨 사망 전 강씨의 행적 ▲유서대필 일시·장소 ▲김씨 수첩조작 과정 등을 집중조사하며 그 동안 확보해둔 필적감정 자료와 참고인 진술 등을 제시했으나 강씨로부터 이렇다 할 진술을 받지 못했다. 한편 이날 검찰은 지난달 20일 숭의여전 이보령양(21) 등 3명이 명동성당에서 김씨가 적어준 메모지라며 공개한 필적이 하루 전날인 19일 「전민련」측에 넘겨진 뒤 하룻동안 보관됐다가 다시 이양 등에 넘겨져 발표됐으며 「전민련」측은 이양 등에게 『이 사실을 검찰에서 말하지 말라』고 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었다고 밝혔다. 한편 김창국,장기욱 변호사 등 강기훈씨의 변호인단 6명은 이날 하오 5시40분쯤 서울지검을 방문,하오 6시20분부터 40여 분 동안 신상규 검사실에서 신 검사와 교도관 1명이 입회한 가운데 강씨를 접견했다.
  • 「분신」 배후조종 가려질까/강기훈씨 본격수사 안팎

    ◎「묵비권」 대비,결정적 증거수집 주력/검찰/“「대필」 확인돼도 강씨 개인의 일” 주장/재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분신자살을 방조한 혐의를 받고있는 이 단체 총무부장 강기훈씨(27)가 24일 마침내 검찰에 구속돼 이 사건의 배후를 밝힐 수 있는 전기를 맞고 있다. 강씨의 구속집행은 지난달 5일 김씨가 분신자살한 지 47일 만에,지난달 26일 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지 29일 만에 이뤄진 것으로 「유서대필」 및 「김씨 수첩 조작」 혐의에 대한 사실확인이 수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강씨는 이날 구속 수감되기에 앞서 계속 결백을 주장하며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검찰이 강씨의 혐의사실을 확인하는 데는 상당한 애로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검찰은 이같은 애로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공인된 필적감정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 등을 토대로 혐의사실에 대한 공소유지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담당 검사들은 그동안 강씨 한사람의 혐의 사실입증을 자신하면서도 강씨가 검찰에 불려와도 입을 다물거나 진술을 거부해 이렇다할 분신자살의 배후를 밝혀내지 못할 것에 대비,강씨가 진상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는 데 주력해 왔다. 줄곧 강씨의 결백을 주장해온 재야 쪽에서는 만에 하나 강씨의 혐의내용이 사실로 밝혀졌을 경우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사실이 아님을 주장하면서도 『만에 하나 강씨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강씨 혼자의 일』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찰로서는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최소한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었다는 자백을 받아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검찰의 이번 수사는 ▲유서대필과 필적부분 ▲「전민련」이 제출한 김씨 수첩 조작 부분 ▲김씨와 강씨의 분신전 행적 ▲「전민련」관계자들의 분신가담 여부 ▲이외의 또다른 분신사건 연루여부 등으로 나눠진다. 이를 위해 검찰은 「전민련」의 서준식·김선택·임근재·김씨의 친구 홍 모양 등이 단체와 강·김씨 주변인물 17명에 대한 방증수사도 병행하며,특히 홍양에 대해서는 필요할 경우 지난달 17일 법원에서 증거보존절차를 마친 부분에 대해서도 강씨와의 대질신문 등을 벌일 계획이다. 또 반복적으로 강씨의 필적을 제출받아 이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쓴 강씨의 필적이 유서필적과 동일한 지도 밝혀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반면 재야 쪽에서는 강수빈 변호사 등 변호인단을 통해 변호인단의 수시접견과 헌법에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 줄 것 등을 요구하면서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임에 틀림없다. 재야 쪽에서는 특히 대다수 국민들이 믿고 법원에서도 그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에 대해 사설단체 등을 내세워 불신감을 극대화 시키고 있는 인상이 짙으며 앞으로의 수사·재판과정에서도 이 부분을 부각시킬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검찰로서는 『이번 사건에서 강씨만을 수사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강씨를 비롯한 김씨 자살사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는 한 담당검사의 말처럼 철저한 수사결과로 일말의 의구심도 남기지 말아야 하는 처지에놓여 있다. 이 사건에 있어 국민들은 특히 국가기관이나 수사기관 등의 수사내용이나 결과 또는 그 과정에 대해 일거수일투족마다 심정적으로 편을 들어온 재야 쪽이 보다 객관적인 자세에서 조사결과를 지켜보고 때로는 겸허하게 자기반성을 하는 용기를 발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 바웬사 파 대통령 방한 초청/노 대통령,비엘레츠키총리 접견

    노태우 대통령은 21일 청와대에서 방한중인 얀 크쉬스토프 비엘레츠키 폴란드 총리를 접견하고 양국간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접견에서 바웬사 대통령이 빠른 시일내에 한국을 방문해주도록 초청했다. 노 대통령과 비엘레츠키 총리는 이날 오찬으로 이어진 회담에서 양국이 수교한 지 1년밖에 되지 않는데도 교역량이 2억달러에 이르고 90년 한햇동안 폴란드에서 약 3천명이 한국을 다녀가는 등 두 나라간의 인적·물적 교류가 증대되고 있는 데 만족을 표시하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을 다짐했다.
  • 국제탁구 회장 접견/노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은 21일 하오 청와대에서 오기무라 이치로(적촌 이지랑) 국제탁구연맹 회장을 접견했다.
  • “강씨 등과 더이상 대화 않겠다”/명동성당 경 신부

    ◎“철수요구 묵살… 경찰 막을 명분 없어”/사복경관 문화관 앞 진입,동태 살펴 경갑실 명동성당 수석보좌신부는 20일 하오 9시30분쯤 성당 안 사제관에서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27)와 인권위원장 서준식씨를 1시간 동안 접견한 뒤 기자들과 만나 『번번히 약속을 깨는 사람들과는 더 이상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경 신부는 『교회가 은신처를 제공한다는 것은 죄지은 사람을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강씨 등이 농성을 벌이는 것은 은신의 의미가 아닌 성당건물의 점거』라면서 『성당에서 나가 줄 것을 몇 차례 요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철수하지 않으면 이제는 경찰진입을 막을 명분이 없다』고 밝혔다. 경 신부가 강씨 등과 나눈 대화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강씨가 20일 이후 검찰에 자진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번복하고 계속 농성을 벌이며 성당측이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이날 하오 10시30분쯤 사복경찰관 30여 명이 강씨 등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성당 안 문화관 앞까지 들어와 동태를 살폈으며 경찰이 밤에 문화관 앞에 배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이 들어오자 성당 안 농성자들은 재빨리 셔터문을 내리고 경찰진입에 대비했다. 경찰은 『사복경찰관 30여 명을 배치한 것은 수배자들을 강제연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압박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 “김일성,소와 한달간 6·25남침 계획”

    ◎전 북한군 작전국장 유성철 증언/대독 전쟁경험 풍부한 소 장성들 고문단에 참여/“서울 전격 점령하면 상황 끝”… 예비병력 안갖춰 북한의 김일성은 지난 50년 3월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스탈린으로부터 남침에 대한 동의를 받아낸 후 약 한달간의 구체적인 작전계획작성에 들어갔으며 이 작업에 전쟁경험이 풍부한 소련 장군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쟁 전후 북한군 작전국장이었던 유성철씨는 지난 5일까지 재소 교민신문 고려일보에 연재한 자신의 회상록 「피바다의 비화」에서 김일성의 소련 방문 직후 민족보위성 작전국의 한 방에서 약 1개월간 극비리에 작전계획이 작성됐으며 소련군의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이 작업에 적극 참여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전쟁 발발 직전까지 모두 3천여 명의 공작대를 남파시킨 전 강동학원 원장 박병률씨(86)는 16일 유씨의 6·25증언이 가장 정확한 진실이라고 확인했다. 다음은 6·25전쟁에 관한 유씨 회상록의 요약이다. 『6·25 전쟁 작전계획은 민족보위성 작전국의 한 방에서 약 1개월에걸쳐 극비밀리에 진행됐다. 이 작전계획에는 총참모장 강건,포병사령관 김봉률,포병참모장 정학준,공병국장 박길남,동신국장 이용인,공군사령관 한일무,해군 참모장 김원무,병기국장 서용선,후방국장 정목,정찰국장 최원,작전국장 유성철(필자),작전부국장 유상렬 등이 참여했다. 소련 고문단에서는 바실리예프 중장,포스트니코프 소장 및 기타 장군들과 영관급이 작전계획 작성에 주동 역할을 했다. 이 작전계획 작성을 위해 독소전쟁 등 경험이 풍부한 소련 고문단이 필요했기 때문에 바실리예프 중장 등이 구 고문단과 신속히 교체된 것이다. 작전계획의 실천을 앞두고 비밀을 보장할 목적으로 훈련형식을 취하면서 병력을 38선에 집결시켰다. 집결이 완료된 후 기동연습에 관한 명령서를 무전으로 공개적으로 전파했는데 국방군 참모본부는 아마도 이 같은 북의 기만에 떨어졌으리라고 믿어진다. 이 작전계획의 기본 약점은 미국이 손쓸 사이없이 불의의 공격으로 서울을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예비 병력을 준비하지 않은 데 있다. 또한 서울함락 후 박헌영의 지도하에 있는 남로당원 10만명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지리산 후격대들이 후방에서 세찬 공격작전을 펼 것을 기초로 해 작성된 것이다. 서울은 전쟁개시 3일 만에 함락됐으나 기대했던 인민봉기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지리산 유격대의 활동도 없었다. 인민군은 한 달 동안에 남한의 90%를 점령하고 남한인구의 92%를 장악했으나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후퇴를 거듭하게 됐다. 전황이 극도로 불리해지자 김일성의 지시로 박헌영과 함께 북경을 방문,원조를 요청하게 됐다. 우리 일행을 접견한 모택동은 조선에 지원군을 파견키로 결정했음을 알리고 팽덕희 장군이 전선을 지휘하고 후방은 중국 동북정부 주석 고강이 책임지게 됐다는 것과 이들 두 동지가 손을 잡으면 조선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모는 최종발언에서 전쟁은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다섯 손가락을 앞으로 펼쳐 보이면서 미군과 괴뢰군(국군을 지칭)을 각각 분리하여 격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는 이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한 다리를미군이라고 가정하고 다른 다리를 괴뢰군이라고 하자. 먼저 괴뢰군을 포위 섬멸하고 다음에 미군을 포위 섬멸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미군이 맥을 추지 못할 것』이라면서 한 다리를 들고 다른 다리로 툭툭 뛰면서 설명했다. 모의 이러한 말에는 김일성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모가 김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50년 10월19일 저녁 8시쯤 중국 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 여러 지점을 통과,조선 전쟁에 참전하기 시작했다. 피아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어느 쪽에서도 승리자도 패배자도 없이 전쟁은 끝이 나 1953년 7월27일 비로소 남북 인민들이 그처럼 고대하던 휴전을 맞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 김일성은 악명높은 소위 「사상검토」를 통해 민간인을 휩쓸고 뒤어어 군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착수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일성에게는 세 가지 「흑색」 명단이 작성되어 있었다. 첫 명단에 든 사람은 죽어도 좋다는 부류였고 제2명단에는 무기징역을 받을 사람들이 들어 있었으며 제3 명단에는 소련으로 가기를 원하면 보내도 좋다는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는데 필자는 제3명단에 들어 있어서 소련으로 나올 수 있었다. 김일성은 6·25전쟁에 참가한 장군들 중 남일·이권무·김창봉·김광협 대장,무정 중장 등 모두 44명을 처형하거나 숙청했으며 이 가운데 필자를 비롯한 이상조·강상호 중장 등 16명의 장군이 탄압을 받고 소련을 위시한 외국으로 망명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