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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 “쿠르드 유전개발 韓國참여 확대를”

    李 “쿠르드 유전개발 韓國참여 확대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4일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와 만나 우리 기업의 이라크 쿠르드 지역 유전개발 참여 확대를 요청했다. 이날 면담은 바르자니 총리가 한국석유공사 등과 쿠르드 유전개발 등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에 앞서 이뤄져 이 당선인이 강조한 자원외교의 첫 성과라는 측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라크 정부가 쿠르드 정부의 독자 유전개발에 반발해 한국측에 원유 수출을 중단한 바 있어 이라크와의 외교마찰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이 당선인은 이날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바르자니 총리를 접견하며 “그 지역에는 석유자원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해서 필요한 석유유전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한국기업들에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대건설 사장 시절 중동건설에 앞장선 이 당선인은 “내가 그 지역에 오래 전에 가봤던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히 그쪽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바르자니 총리는 “쿠르드 지방정부로서는 한국기업에 우선권을 드리도록 노력하겠다.”면서 “한국은 우리 에너지, 석유가 필요한 반면, 쿠르드 지방정부로서는 한국의 풍부한 경험과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15일에는 무하마드 알 사이바니 두바이 투자공사 사장을 만나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막툼 두바이 지도자 겸 아랍에미리트(UAE) 총리의 친서를 전달받는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李 “한·미관계 새로운 틀 만들어야”

    李 “한·미관계 새로운 틀 만들어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3일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교수를 만나 ‘소프트 파워’에 대한 ‘과외’를 받았다. ●북핵 해결 위해 ‘소프트파워´ 중요 대선 공약에서도 ‘소프트 파워가 강한 나라’를 강조해 온 이 당선인은 이날 면담에서 해외 판로 개척뿐만 아니라 대북 관계에서도 소프트 파워가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발전적 한·미 관계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이 당선인은 “과거 전통적인 한·미관계가 유지돼 왔지만 이제 새로운 미래를 향한 한·미관계를 형성하는 게 양국을 위해서도 바람직하고 동북아의 번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북한의 핵포기를 유도할 수 있도록 좋은 관계를 맺으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당선인은 중동 지역에 비해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적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시아가 세계의 새로운 중심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미국이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나이 교수는 “동의한다.”면서 “(한국이)두 거인 사이에 있기 때문에 현명하게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두 거인 사이 힘의 균형 유지를” 그는 “소프트 파워를 잘 활용해 한국의 브랜드를 해외로 확장해서 반도국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이 교수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소프트 파워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 교수는 평소 한국의 소프트 파워와 중국의 하드 파워의 적절한 결합이 북핵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주장해 왔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이임 발코트 미8군 사령관에 훈장

    이임 발코트 미8군 사령관에 훈장

    정부는 12일 곧 이임하는 데이비드 P 발코트(사진 오른쪽) 주한 미8군 사령관(중장)에게 한·미동맹 강화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수여했다. 김장수(왼쪽) 국방장관은 이날 오후 국방부 본청 접견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발코트 미8군사령관에게 보국훈장 국선장을 전달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李당선인, IBM회장·前 佛총리 접견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2일 오전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새뮤얼 팔미사노 IBM 회장을 접견했다. 팔미사노 회장은 이 자리에서 새 정부가 추진 중인 과학비즈니스벨트 안에 IBM 연구소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이 전했다. “한국의 특화된 분야를 찾아 강점화하면 좋겠다.”는 이 당선인의 권유에 팔미사노 회장은 “호의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오후엔 방한 중인 리오넬 조스팽 전 프랑스 총리를 집무실에서 접견하는 등 외교 행보를 이어갔다. 이 당선인은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이 금년 안에 합의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북핵 문제와 관련, EU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이 당선인은 전날 별세한 톰 렌토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의 유족에게 위로 전문을 보냈다. 김상연 한상우기자 carlos@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58) 전운 그림자에 불안, 막막한 현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58) 전운 그림자에 불안, 막막한 현실

    후금이 대릉하 원정에 앞서 평안도 일원에 병력을 보내 위협하자 조선의 위기의식은 바짝 높아졌다. 인조는 강화도 정비에 몰두하는 한편, 후금의 침략에 대비한 군사적 방책 마련에도 신경을 썼다.1631년 8월, 인조는 서쪽 교외로 나아가 무사들의 훈련을 참관하는 열무(閱武)를 행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후금의 침략이 임박했다는 위기 의식 속에서 상무(尙武)의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를 띄우는 것만으로 위기를 돌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청북 포기론´ 떠돌자 민심 흉흉 인조와 조정이 강화도 방어와 정비에만 몰두하는 자세를 보이자 청북(淸北) 사람들의 위기 의식이 높아져 갔다. 조선 전기부터 ‘서북인 차별’의 굴레 때문에 내내 불만을 삭이고 살던 그들이었다.‘조정이 청북 방어는 이미 포기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평안도 전역으로 퍼졌다. 청북의 민심은 흉흉해졌다. 조정에서도 청북 민심의 동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1631년 10월, 사간 김세렴(金世濂)은 평안도, 그 가운데서도 의주 방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안도는 ‘나라의 문호(門戶)’라고 강조한 뒤 청북을 포기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백성들의 원망이 팽배해 있다고 지역 민심을 전했다. 김세렴은 이어 ‘나라를 지키려면 백성들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조정은 도리어 백성들의 원망만 사고 있으니 위기를 맞으면 누구에게 손을 벌릴 것이냐?’라며 대책을 촉구했다. 당시 청북 주민들의 불만과 위기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후금과 지척에 있는 데다 정묘호란 당시 막심한 피해를 온통 뒤집어썼던 그들이었다. 정묘호란 이후에도 조정에서 별다른 방어 대책을 마련해 주지 않자 그들의 불만과 우려는 높아만 갔다.‘용골산성(龍骨山城)의 영웅’ 정봉수(鄭鳳壽)도 서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일찍이 절규했던 적이 있다. 청북 주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의 고을 인근에 있는 산성(山城)을 손봐달라고 조정에 요구했다. 산성은 후금군이 들이닥쳤을 때 그나마 자신들의 몸을 숨길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기 때문이다.1631년 8월 이후, 청북 지역의 요충지에 산성을 새로 쌓거나 수리해 달라는 건의가 봇물처럼 밀려들었다.8월12일 의주사람 백광종(白光宗)은 의주성을 수축하자고 했다.15일에는 곽산에 사는 김은정(金殷鼎) 등이 능한산성(凌漢山城) 안의 태초봉(太初峯)과 사인봉(舍人峯) 사이에 성을 쌓고 곡식을 저장하여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21일에는 철산 백성들이 정충신(鄭忠信)을 통해 운암산성(雲巖山城)을 수축해 달라고 건의해 왔다.9월 7일에는 운산 백성들이 용각산성(龍角山城)을 쌓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백성들 스스로 나섰던 것이다. ●서북 방어, 재정궁핍이 발목 잡아 성을 수축해 달라는 청북 백성들의 바람은 절실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문제는 성을 쌓는 비용과 완공 이후 성을 지키는 데 필요한 병력과 군량을 마련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 있었다.9월3일, 부원수(副元帥) 정충신이 차자를 올렸다. 청북 사람들의 축성 요구를 현장에서 직접 접했던 그였다. 하지만 정충신은 냉정했다. 그는 의주성을 쌓아봤자 소용이 없다고 했다. 성을 쌓는 것도 문제지만 완공 뒤 들여보낼 병력과 군량이 없는 현실에서는 우선 시세를 관망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비변사는 ‘정충신의 말대로 하면 청북의 민심이 의지할 곳이 없게 되어 어렵게 모인 백성들이 모두 흩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비변사 또한 병력과 군량을 마련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원칙론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1631년 9월5일, 도체찰사 김류( )는 평안도 방어와 관련하여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의주를 지키려면 최소 1만명의 병력이 필요한데 그들에게 지급해야 할 군량이 5만석이라고 추산했다. 또 의주 방어에 필요한 용골산성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병력을 미리 들여보내면 군량이 없어 견디지 못하고, 그렇다고 적의 침입을 맞아 들여보내면 시간에 맞출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어차피 의주를 방어하기가 어렵다면 차라리 안주와 황주 방어에 신경을 쓰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주를 지키든, 안주와 황주를 더 중요하게 여기든 병력과 군량을 확보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서북 지역에서 조정이 가장 신경을 썼던 곳은 안주였다. 안주에는 약 7000명의 병력이 있었지만 군량은 겨우 몇 개월도 버티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김류는 경기도와 황해도 사이에 진을 만들어 강화도를 바깥에서 응원하는 거점으로 삼자고 청했다. 김류의 대책이란 결국 ‘강화도 방어론’과 다름이 없었다. 위기를 맞아 서북 지역의 방어책 마련이 절실했지만 군량과 재정의 궁핍은 대책 마련에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조선이 이렇게 자기를 추스르기에도 겨를이 없는 처지에 명 장수들은 여전히 수시로 들락거리며 양곡을 지급하라고 떼를 썼다. 직접 서울로 올라와 양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아예 배에다 중국산 재물을 싣고 황해도 연안 등지로 몰려와 양곡 무역을 요구하는 자도 많았다. 그들이 몇 개월씩 머물며 돌아가지 않자 연안 주민들은 그들의 등쌀에 몸살을 앓았다. 1631년 10월26일, 가도의 도독 황룡(黃龍)은 군량을 독촉하는 자문을 다시 보내왔다. 그 내용이 가관이었다.‘자신이 가도를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에 조선이 후금의 침략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떠벌렸다. 후금과 가도 사이에 낀 조선의 처지 역시 가관이었다. ●다시 ‘화친’상태로 돌아가다 1631년 윤 11월22일, 후금 사신 영아이대(英俄爾岱) 일행이 도착했다. 조선에서는 보통 용골대(龍骨大)라고 부르던 그는 홍타이지가 보낸 국서를 내밀었다. 홍타이지는 먼저 조선 백성들이 후금 지역으로 넘어와 산삼을 캐가고 있음에도 조선 조정이 방관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가도 사람들을 계속 상륙시키고, 형제국이 빌려달라고 요청한 배도 내어 주지 않는 조선은 이웃을 사귀는 데 정성이 없는 나라’라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조선은 가도의 명 장수들이나 조대수(祖大壽)가 후금을 이길 수 있다고 믿어 교묘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 앞으로 언행을 일치시키지 않으면 양국의 맹약이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며 뼈있는 말을 남겼다. 인조는 이튿날에는 대릉하전을 직접 목도하고 돌아온 추신사(秋信使) 일행을 접견했다. 추신사 박로는 대릉하 싸움의 전황을 설명한 뒤, 홍타이지가 자신들에게 후금군의 병세(兵勢)를 과시했다고 보고했다. 후금군의 병력이 7만 정도 되고, 명군 사령관 장춘(張春) 등도 후금군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이윽고 윤 11월24일, 조정의 고관들은 형조(刑曹) 앞마당에 모였다. 국경을 넘어가 산삼을 캐다가 잡힌 안덕간(安德幹)과 김태수(金太水)를 처형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용골대가 보는 앞에서 두 사람의 목을 베었다.‘채삼인(採蔘人)의 월경(越境)을 금지해 달라.’는 후금 측의 요구에 대한 성의 표시였다. 비변사는 이어 인조에게 후금 측이 요구하는 물자를 넉넉히 보내주자고 건의했다. 대릉하 전투 시작 직전 급격히 고양되었던 후금에 대한 적대적인 자세는 어느새 가라앉고 있었다. 적개심에 맞물려 위기의식은 높아졌지만 그것을 돌파할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사실 조선 조정의 신료들은 1627년 정묘호란을 당한 이후부터 모두 융복(戎服)을 입었다. 조복(朝服) 대신 융복을 입은 것은 고난과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였다.1631년 12월까지도 계속 융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융복을 착용하고 정신을 가다듬는 것만으로는 후금의 침략을 막아낼 수 없었다. 막막한 현실을 돌파할 특단의 조처가 절실한 시점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사람도 없는 방에 왜 불 켜놓냐”

    지난 3일 아침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에 출근차 들어선 한 직원은 흠칫 당황했다. 평소와 달리 사무실 대부분 공간이 불이 꺼진 채로 어두웠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명박 당선인의 불호령 때문이었다. 내막은 이랬다. 이틀 전인 지난달 31일 이 당선인의 오전 접견 스케줄이 낮 12시가 넘어 끝났다. 이 때 이 당선인은 점심을 먹으러 자리를 비운 비서진의 사무실 문을 일일이 열어 보며 ‘기습점검’에 나선다. 그리고는 “사람도 없는 방에 왜 불을 켜놓고 다니느냐. 이런 낭비부터 고쳐야 한다.”고 이 당선인은 호통을 쳤다고 한다.이 일이 있은 후로 비서실에서는 ‘무인무등’(無人無燈)이 제1의 철칙이 됐다는 것이다.대통령직 인수위에 파견나온 한 공무원은 “이 당선인의 성향상 노무현 대통령과는 달리 불시에 정부청사를 방문해 근무 실태를 점검하는 일이 잦을 것이란 얘기가 공무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고 귀띔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Local] 창원 “시장실 빌려 드려요”

    경남 창원시가 18일 시장실을 관내 중소기업에 빌려 주기로 해 눈길을 끈다. 외국 바이어 접견과 각종 협약 체결 시 마땅한 장소가 없는 중소기업체의 애로를 덜어 주기 위한 것이다. 시는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소업체가 제품 설명회나 전시회 등을 개최할 수 있도록 시청 회의실과 대강당, 읍·면·동사무소와 주민센터 등도 빌려 주기로 했다. 시는 2005년부터 ‘기업사랑 운동’을 펼치며 관내 기업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시 관계자는 “기업의 경쟁력이 곧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력”이라며 “지자체의 상징적인 시장실을 빌려줌으로써 기업의 경제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고 밝혔다.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주요 국가 공항에선

    ■ 일본 - 정재계 거물·유명 연예인 이용 |도쿄 박홍기·파리 이종수·베이징 이지운·워싱턴 이도운특파원| 일본의 나리타국제공항이나 하네다국제공항 등 큰 공항에는 한국과 비슷한 ‘귀빈실’인 ‘VIP룸’이 있다. 공항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거물급’ 각계 인사들이 이용한다. 정치인의 경우, 대표 등 당간부, 정부 각료, 대기업 회장이나 고위 임원 등이 주로 사용한다. 유명 연예인들도 종종 이용한다. 귀빈실 위치도 입국 심사대 안쪽에 있어 탑승 수속 등에 최대한 편의를 봐주고 있다. 나리타공항 홍보실 측은 “별도의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고객의 문의가 오면 공항 측에서 자체 판단한다.”면서 “신변 안전과 편리를 위해 귀빈실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국 - 회원제로… 가입비 650만원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의 귀빈실 이용은 여러가지 방식이 있다. 일단 일반 기업들은 ‘귀빈서비스 관리공사’라는 공항 자회사에 ‘VIP 통관’을 신청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회원제로 운영되며, 회원 가입과 초기 비용 등을 합쳐 최저 5만위안(65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VIP통관이 허용되면 VIP방이 딸려 나오며 규모에 따라 가격은 1000위안(13만원)부터 시작한다. 접견자 및 이용자 수에 따라 1인당 200∼300위안 위안이 추가로 부가된다. 주차장 사용 역시 방 규모에 따라 정해진다.3명 이상 기준으로 보통 6000위안(78만원) 이상 든다. 신청이 밀리지 않을 경우 사용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식 VIP실’의 사용은 쉽지 않다. 중국의 초청 기관에서 정식으로 공항측에 사용 요청을 한 뒤 ‘승인’을 받아야만 쓸 수 있다. ■ 프랑스 - 대통령·총리·외교장관만 공짜 프랑스 정부가 운영하는 귀빈실은 1곳이다. 정부는 민간회사에 위탁해 샤를 드골 공항 2터미널 A 대합실에 귀빈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용 대상자는 장관급 이상 공무원이 원칙이나 국회 의장 등 정치인도 이용한다. 귀빈실 이용자는 일반 이용객들처럼 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비행기 객실 앞까지 나온 차량을 이용해 바로 귀빈실로 이동해서 수하물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목적지로 출발한다. 귀빈실 라운지에는 접대하는 사람이 따로 없고 차량 운전수나 마중 나온 관련국 공무원이 가벼운 다과 등을 접대한다. 이용료는 50유로. 여기에 차량 이용료를 따로 내야 하는데 1대당 300유로 정도 한다. 각국 대통령과 국무총리, 외교장관은 무료다. ■ 미국 - 일부공항, 기업인에 유료 미국의 공항에는 한국처럼 정부 산하기관이 운영하는 귀빈실이 없다. 다만 워싱턴 부근에 자리잡은 버지니아 주 덜레스 국제공항의 경우 이민국에서 사용하는 작은 방이 하나 마련돼 있다. 불과 서너평 규모에 소파 몇 개가 전부인 이 공간이 이따금씩 의전용으로 쓰인다. 미 정부의 공식 초청을 받고 워싱턴을 방문하는 외국 외교장관 등을 미 국무부 의전장 등이 이곳으로 안내해 잠시 인사를 나눈다. 미국의 고위 관리들은 델타, 노스웨스트 등 각 항공사가 운영하는 개별 ‘라운지’를 이용한다. 오클라호마 등의 일부 공항이 수익 확대를 위해 기업인 등을 위한 유료 ‘VIP룸’을 운영하고 있다. 대한항공(KAL)의 김승복 워싱턴 사무소장은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 등 고위인사들이 KAL을 이용할 경우 비서실에서 언제, 몇 명이 KAL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전에 예약한다.”고 설명했다. dawn@seoul.co.kr
  • 한·일정상 ‘셔틀외교’ 복원되나

    |도쿄 박홍기특파원·서울 김미경기자|이명박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일 정상간 ‘셔틀외교’의 복원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동안 소원했던 한·일 정상외교가 활기를 띠게 되면 양국간 풀어야 할 현안들도 진전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李 당선인 “年1회 상호방문” 제의 일본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취임 후인 오는 5월쯤 일본을 방문해 달라고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1일 보도했다.이 당선인이 5월 일본을 찾으면 지난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 이후 3년 반 만이다. 이 당선인은 10일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특사자격으로 방한한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접견한 자리에서 연 1회 상호방문하는 ‘셔틀외교’ 재개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셔틀외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노 대통령 간에 시작됐지만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으로 지난 2005년 6월 이후 중단됐다. 후쿠다 총리는 지난달 한국 대선 직후 이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 “조기 방일을 희망한다.”는 의견을 전했다.후쿠다 총리는 다음달 25일 이 당선인의 취임식에 축하 사절로서 참석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 당선인측 관계자는 이날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가 어제 당선인을 예방한 자리에서 ‘취임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후쿠다 총리의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일본 내 정치적 돌발 상황이 없는 한 참석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후쿠다 총리 방한시 정상회담 예상후쿠다 총리의 방한이 성사되면 취임식 뒤 별도의 장소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한 외교 소식통은 “후쿠다 총리가 대통령 취임식 때 축하 사절로 참석하게 되면 이를 계기로 정상간 회담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의제를 정하기보다 양국간 현안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득 국회부의장은 오는 15일부터 3박4일 동안 이명박 당선인 특사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해 후쿠다 총리를 비롯, 마치무라 노부타가 관방장관·고무라 마사히코 외무상 등 각료와 국회의원, 경제인들을 만날 예정이다.인수위 관계자는 “특사 방문 이후 정상 셔틀외교 일정이 더욱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후쿠다 총리의 방한 이후 상반기 중 이 당선인의 일본 방문을 추진할 예정이며, 하반기 중 후쿠다 총리가 다시 한번 방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2004년 중단됐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와 함께 북한 핵 문제 등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윤진식 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일본 중의원 제2의원회관에서 중의원과 참의원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의 향후 외교와 경제정책’을 주제로 1시간 동안 연설했다. 윤 부위원장은 이 당선인의 통치 철학과 경제 살리기, 한·일 관계의 중요성, 대외정책 방향 등을 설명했다.hkpark@seoul.co.kr
  • 李 당선인 ‘親軍행보’

    李 당선인 ‘親軍행보’

    “한미연합사에 가기 전에 (국방부에)먼저 오는 게 예의 같아서 들렀습니다.” “저희들도 그런 소망이 있었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 재검토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당선인이 11일 정부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국방부를 찾아 ‘친 군(軍)’행보에 나섰다. 당선인 신분으로 국방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한미연합사와 계룡대 본부를 찾았었고 임기 중에도 국방부를 방문한 적이 없었다. 오전 10시 용산동 국방부 청사에 도착해 김장수 국방부 장관과 김관진 합참의장의 환대를 받은 이 당선인은 방명록에 “국민은 여러분을 신뢰하고 사랑합니다.”라고 적었다. 접견실에서 3군 참모총장들과 만난 이 당선인은 “원래 취임 후에 오려고 했는데 15일 한미연합사에 가기 전에 우리 군과 국방부를 먼저 만나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에 김 장관은 “역대 당선인이 취임 전에 국방부에 온 적이 없었다. 연합사를 가기 전에 국방부를 오는 것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다.”고 감사의 뜻을 피력했다. 이 당선인은 “앞으로 남북 화해, 평화 유지, 통일로 가겠지만 국방이 튼튼하고 안보 의식을 갖는 것은 국가의 기초라고 생각한다.”면서 “국방과 안보를 튼튼히 한다고 해서 남북 화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당선인은 또 “일부에선 안보 의식 강화가 남북 경색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 당선인은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김 장관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북측 인사를 대했던 일화를 염두에 둔 듯 ‘꼿꼿 장수’ 김 장관에게 “지난번 북한 다녀오면서 고생이 많았다.”고 격려했다. 이 당선인은 10여분간 환담을 마친 뒤 지하 2층의 군사지휘본부로 이동해 근무 현황을 보고받고 예정보다 30분 정도 더 머문 뒤 국방부를 떠났다. 한편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1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는 상호 합의에 따라 논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미 합의된 결정일지라도 모든 면에서 새 정부와 재검토의 여지가 있으며 상호 합의에 따라 전환 시기를 변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면 추후 논의도 가능하다.”며 재협상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전광삼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朴 전대표 ‘냉랭’… 黨 현안 언급 안해

    한나라당이 ‘공천 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의원, 이상득 국회부의장, 이재오 의원 등 미·일·중·러 등에 보낼 ‘4강(强)특사’들을 면담했다. 이날 면담은 중국 특사단장인 박 전 대표가 전날 밀실공천 등을 우려하며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한 직후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공천 등 당내 현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박 전대표 파견은 中에 대한 배려”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은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간에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단지 당선인이 한·미·일 협력 강화를 강조하다 보니 중국을 소홀히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중국에 그런 게 아니라는 뜻을 잘 전달해 달라는 당부의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 당선인은 “중국이 이번에 (왕이 외교부 부부장을 보내는 것은) 특별히 배려하는 것 같다.”면서 “우리도 (박 전 대표를 중국특사로 보내는 것은) 중국에 크게 배려한 것이다.”고 박 전 대표를 치켜세웠다. 이어 그는 “왕이 부부장이 오는 14일 와서 오찬을 함께하도록 돼 있다.”는 보고를 듣고 박 전 대표에게 “그때 다시 뵙겠다. 점심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최근 당내 상황과 ‘친박근혜’ 성향 인사들의 불만이 고조된 가운데 이뤄진 이날 회동은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특사 정몽준 의원, 일본특사 이상득 부의장, 러시아특사 이재오 의원 등이 먼저 도착해 환담을 하던 중 박 전 대표가 시간에 맞춰 도착하자 접견장에 돌연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朴·이재오 의원 끝까지 악수 안 해 접견장에 도착한 박 전 대표는 이 부의장과 정 의원 등과는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지만 이재오 의원과는 가벼운 목례로 대신했다. 이 당선인과 4강 특사단장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할 때도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인과 조금 떨어져 다소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접견이 끝난 뒤 이재오 의원은 박 전 대표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하며 목례를 건넸으나 두 사람은 끝까지 악수는 하지 않았다. 이 당선인측 관계자는 “박 전 대표가 시종 굳은 표정을 지은 것을 두고 최근 당내 공천갈등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출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접견은 무난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말했다.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힐 “6자 수석대표회담 조기 개최 어려워”

    힐 “6자 수석대표회담 조기 개최 어려워”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0일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비핵화 2단계를 끝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8일 방한한 힐 차관보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예방한 뒤 베이징으로 출국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렇게 된다면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그 다음 비핵화 단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힐 차관보는 이날 베이징에 도착해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중국은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을 열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지 않다.”며 회담의 조기 개최 가능성이 크지 않음을 시사했다. ●부시, 李당선인 조기 방미 요청 힐 차관보는 이에 앞서 이 당선인을 서울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로 예방,“빠른 시간 안에 미국을 방문해 대화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이 전했다. 이에 이 당선인은 “가능한 한 빨리 가겠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이 당선인의 미국 방문은 취임 직후인 3월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당선인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선인이 원칙적 입장에서 조기 방미의사를 밝힌 것으로, 구체적 방미 일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회동에서 이 당선인은 실용외교 구상을 설명하고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의 중요성과 함께 두 나라 전통 우호관계의 복원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힐 차관보는 “지난주 금요일 부시 대통령과 한시간 동안 한국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눴으며, 부시 대통령은 당선인과의 (지난달) 통화를 매우 즐거워했다.”고 부시 대통령의 안부를 전했다. ●모리 日특사도 접견 이 당선인은 힐 차관보와의 회동에 이어 이날 오후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 일행을 접견했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방문한 모리 전 총리는 이 당선인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조기에 일본을 방문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후쿠다 총리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이 당선인과 모리 전 총리는 북핵 해결을 위한 양국 협력방안과 함께 중단된 ‘한·일 정상 셔틀외교’ 복원 방안을 논의했다. 김미경 한상우기자 chaplin7@seoul.co.kr
  • 李 당선인 “미·중·일·러 특사 파견”

    李 당선인 “미·중·일·러 특사 파견”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조만간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4강에 특사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이 당선인은 4일 오전 통의동 집무실에서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 폴 울포위츠 전 국방차관, 로버트 갈루치 전 북핵협상 대표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등 미 유력인사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주호영 당선인 대변인이 전했다. 주 대변인은 “오는 8,9일에 특사단을 구성한 뒤 상대국들과 협의, 방문일정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4강 특사단장이 내부적으로 정해지긴 했으나 상대국과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주 대변인은 특사단 파견 시기에 대해 “취임 전에 특사가 가면 저쪽(해당국)에서 취임식 때 축하사절이 오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외교 소식통은 “미·중·일·러 특사는 모두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이 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사단장으로는 미국의 경우 정몽준 의원이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일본은 이 당선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을 포함한 원로급 인사가 맡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주 대변인은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방안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그런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날 미 유력 인사들과의 접견에서 이 당선인은 “한·미 양국은 북핵문제 해결 및 동맹 강화를 위한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미측 인사들은 “가까운 시일내에 미국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전 9시부터 1시간30분간 이어진 접견에서 이 당선자와 미측 인사들은 북핵과 한·미 동맹 강화, 개성공단, 탈북자, 북한 인권, 이라크 에너지개발 등 폭넓은 주제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 대변인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로의 경험담과 조언을 주로 주고받았다.”면서 “다만 자세한 대화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측에서는 정몽준 의원과 박진 인수위 외교·통일·안보분과 간사를 비롯해 김우상 연세대 교수, 남성욱 고려대 교수,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 권종락 당선인 외교보좌역 등이 배석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실용정부 인수위 발표] “경제·교육에 최우선 순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에 임명된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은 25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총장 접견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와 교육에 우선순위를 놓고 인수위원장직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면서 “새 정부가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잘 섬기는 정부가 되도록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잘 세우겠다.”고 밝혔다. ▶인수위원장직을 수락한 이유는? -오늘 오후 4시쯤 연락을 받았다. 섬기는 리더십의 모습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당선자의 태도가 그간 내가 생각해 왔던 리더십 스타일과 맞다고 생각했다. 새 정부가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국가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 생각했다. ▶선대위원장은 거부했는데 이번에는 받아들인 이유는. -학교가 방학기간이고,2개월만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어서 기간도 짧다. 나는 실용주의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니까 열심히 해서,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명박 당선자와 인연이 깊다는데? -이 당선자가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대학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 적이 있었다. 그때 의논할 기회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서울시향의 이사장으로 재직한 적도 있다. ▶인수위에서 가장 중점을 둘 부분은. -경제 살리기와 교육에 당선자가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다. 우선순위와 경중을 가려 보는 작업을 해야 될 것이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입법의원 출신이라는 전력과 삼성 사외이사를 역임해 개혁에 방해가 된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미 역사적 평가가 이뤄진 것이다. 삼성 사외이사를 한 것은 오히려 득이 되는 부분이다. 외국은 총장이 사외이사를 하지 않는 게 희귀하다. ▶정권교체에 기여한 게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떤 조직이든 가장 중요한 것이 비전이다. 모두 이를 공감한다면 국가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인수위원장이 끝나면 새 정부에 몸담을 생각인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맡은 역할은 오직 인수위원장뿐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선택 2007 D-2] ‘동영상 거래’ 4차례 시도 한나라·신당·昌측에 제의

    [선택 2007 D-2] ‘동영상 거래’ 4차례 시도 한나라·신당·昌측에 제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금년 1월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고 밝힌 2000년 광운대 최고경영자과정 강의 동영상을 갖고 있던 김모(53)씨 등 3명은 한나라당 외에 무소속 이회창 후보측과 대통합민주신당과도 접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 등을 접견한 통합신당 정성호 의원은 16일 “김씨가 지난 10일쯤 ‘거래’를 하기 위해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에게 가장 먼저 연락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이틀 뒤인 지난 12일 통합신당 정봉주 의원을 만나 100억원을 요구했다. 정봉주 의원은 “동영상 일부 내용을 MP3에 담아 왔으나 그 샘플에는 이 후보가 BBK 설립을 시인한 내용은 없었다.”고 전했다. 김씨 등은 두 당과의 접촉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3일 무소속 이회창 후보측 김정술 변호사에게 연락,30억원을 요구했으나 역시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김씨 등은 이에 따라 14일 한나라당 관계자와 만나 거래 금액을 조정,15일 서울 서교동 한 호텔에서 한나라당 박정태 특보와 만났다가 한나라당측 신고를 받고 기다리던 경찰에 체포됐다. 이들은 처음 한나라당에 100억원을 요구했다가 30억원으로 낮췄지만, 이후 강의 동영상에서 이 후보가 BBK 설립을 언급한 부분을 새로 발견, 다시 100억원으로 금액을 높였다가 최종적으로는 30억원을 받기로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미·중 관계와 동북아 안보

    [정종욱 월드포커스] 미·중 관계와 동북아 안보

    “태평양을 정복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미국 해군대학 교장 메이헌(Alfred T.Mahan)이 1890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역사에서 해군력의 영향’에서 역설한 말이다. 그의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루스벨트 대통령도 그의 열렬한 애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주도 아래 미국은 수많은 해군 함정들을 건조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태평양을 장악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의 길을 빠르게 걸어갔다. 하와이와 필리핀을 점령했고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미국은 세계적 초강대국으로 등장했다. 이렇게 미국을 세계적 강대국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메이헌 대령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소련이 붕괴된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국과의 해군력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해군력은 항공모함이 주력이었다. 수십 대의 항공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이 바다 위에 나타나면 그 지역은 미국의 점령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구를 몇 번이나 파괴할 수 있는 엄청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소련이었지만 미국의 항공모함 앞에서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항공모함이 파견되어 그 곳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잠수함과 미사일에만 의존하는 소련은 전략적 수세를 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소련도 나중에야 항공모함을 건조하기 시작했지만 엄청난 국력만 소비했을 뿐 이미 기울어진 세력균형은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지난달 미국의 항공모함 키티호크가 수천명의 장병들을 실은 채 추수감사절 휴가를 보내기 위해 홍콩에 기항하려다가 중국 정부의 반대로 기수를 되돌린 사건이 있었다. 영국이 지배할 때부터 미국의 태평양함대 소속 함정들은 홍콩을 휴가를 보내거나 연료를 공급받고 태풍을 피해 일시 기항하는 장소로 이용해 왔었다.10년 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었을 때에도 이 점에 관해 중국과 미국 정부가 합의를 본 바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중국 정부의 태도가 변한 것이다. 의사소통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중국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홍콩 기항 요청이 거절된 것은 키티호크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만해도 네 차례나 되었다. 그 중에는 연료를 공급받기 위해서나 태풍을 피하기 위해 긴급 기항을 요청한 미국의 해군 함정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긴급피난은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허가해 주는 것이 국제적 관행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이를 무시해 버린 것이다. 물론 중국이 이렇게 행동한 것은 최근 미국이 타이완에 첨단무기를 판매하고 부시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는 등 중국을 자극하는 조치들을 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문제는 중국의 행동이 미국의 세계전략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키티호크는 미국의 태평양 해군의 상징이다. 태평양에서 인도양에 이르는 방대한 해역을 관할하는 미 태평양함대는 하와이에 사령부가 있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키티호크의 모항이 일본에 있는 것도 그리고 홍콩을 중간 기착지로 활용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홍콩에의 기항이 거부되면 태평양함대의 행동반경은 좁아질 수밖에 없고 인도양에 해군력을 투사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의 지위가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다. 부시 대통령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던 것도 미국이 이 사건을 얼마나 중시하는가를 보여준다. 키티호크의 홍콩 기항을 둘러싼 소동은 메이헌 대령으로부터 시작된 미국의 세계제패 전략이 수정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국제사회 특히 동북아의 안보환경이 갖는 취약점을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9)우여곡절 속 후금과의 관계

    [병자호란 다시 읽기] (49)우여곡절 속 후금과의 관계

    정묘호란 직후 조선은 후금에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모문룡을 비롯한 한인(漢人)들의 비방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후금 사자에 대한 접대나 그들과의 무역에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조선의 입장에서 후금과의 우호 관계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조선이 후금을 ‘오랑캐’로 인식하고 있는 한 ‘내키지 않는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파열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후금, 병력 철수하고 조선과 사신교환 정묘호란이 끝난 뒤에도 의주 등지에 병력을 주둔시켰던 후금은 1627년 9월경부터 병력을 철수시켰다. 두 나라의 관계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당시 조선과 후금은 정기적으로 사신을 교환했다. 인조는 신료들에게 호차(胡差·후금 사신에 대한 멸칭)들을 우대하여 환심을 잃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후금 또한 호란 직후에는 조선에 매우 우호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 때문에 심양을 왕래하는 조선 사신들의 후금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었다.1627년 5월 심양에서 돌아온 원창군(原昌君) 일행은 인조를 만난 자리에서 ‘후금 사람들이 매우 친절했다.’고 보고했다. 인조가 홍타이지와 후금 신료들의 인물됨을 묻자, 호행관(護行官) 이홍망(李弘望) 등은 모두 뛰어난 인물들이라고 칭찬했다. 인조의 우호적인 태도는 후금 사신들을 접견할 때 잘 나타났다.1627년 5월 서울에 왔던 후금 사신 용골대는 인조를 만났을 때 ‘전하께서는 극진하게 대우하시는데 관리들이 삼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조선 관리들이 그를 인조에게 인도하면서, 대궐 문 앞에서 말에서 내리게 하고 인도자도 없이 한참 걷도록 만든 것이 불만이었다. 인조는 즉각 사과하고 용골대 등이 나갈 때 어로(御路)에서 말을 타고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당시 봉산(鳳山)에 살던 백성 박응립(朴應立)과 황하수(黃河水)가 서울로 올라가던 용골대 일행을 가리키며 ‘죽여야 한다.’고 소리친 사건이 있었다. 용골대 일행이 불만을 터뜨리자 조정은 봉산에 이문(移文)하여 곧바로 그들을 붙잡아 하옥시키고 후금 사신 일행의 경호를 강화하는 조처를 취했다. 비변사 신료들은 ‘호인들과 기미(羈)하기로 작정한 이상 원하는 물품을 많이 주어 그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조와 신료들을 막론하고 정묘호란 직후 후금을 대하는 조선의 자세는 유연했다. 그런데 병자호란 무렵이 되면 이 같은 유연함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그 까닭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開市에 대한 후금의 열망 정묘호란 직후 후금이 조선에 가장 강하게 바라던 것은 무역이었다. 그들은 시장을 열어 쌀을 공급해 달라고 간청했다. 쌀뿐만이 아니었다. 생필품과 사치품을 막론하고 후금이 요구하는 물품은 참으로 다양했다.1628년 1월 서울에 왔던 후금 사신들은 홍시와 대추, 알밤 등 과일과 약재 등을 요구했다. 중국산 비단과 청포(靑布), 일본에서 들여오는 후추를 비롯하여 단목(丹木), 칼과 창 등도 그들의 관심 품목이었다. 명과 적대 관계가 지속되면서 과거와 달리 만주 지역으로 몰려오던 중국 상인들이 끊겨 버린 상황에서 후금이 원하는 물품을 공급해 줄 나라는 조선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선은 후금과의 교역에 소극적이었다. 일단 교역의 문을 열어줄 경우, 후금 측의 요구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김상헌을 비롯한 일부 신료들은 특히 중국산 물화를 후금 상인들에게 파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하찮은 오랑캐에게 천조(天朝)의 물품을 넘겨주는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것이 명분이었다. 1627년 12월 심양에 갔던 회답사(回答使) 박난영(朴蘭英) 일행은, 중강(中江)에서 속히 시장을 열어 교역하자는 후금 측의 재촉에 시달려야 했다. 박난영은 ‘전쟁 때문에 평안도와 황해도가 극히 피폐해졌다.’는 것,‘명나라 산 물자는 조선이 구하기 어렵다.’는 것 등의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했지만 후금 측은 집요했다. 후금 측은 ‘조선과 후금이 이미 한집안이 되었으니 어려움을 서로 구제해야 한다.’며 ‘모문룡은 값도 치르지 않고 조선으로부터 쌀을 공짜로 빼앗았지만 우리들은 정당하게 값을 치르고 사겠다는데 뭐가 문제냐.’라며 회답사 일행을 압박했다. 조선 측은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이후 쌀과 과일, 약재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산 물품 등도 후금 측에 공급했다. 중국산 물품은 가도를 통해, 일본산 물품은 왜관을 통해 입수되었다. 당시 가도에는 명의 강남 등지로부터 수많은 상선들이 모여들었다. 조선 상인들은 은이나 인삼을 갖고 가도로 가서 비단과 청포 등을 구입하여 그것을 다시 후금 상인들에게 판매했다. 사실상 후금에 중국과 일본산 물자를 공급하는 중개자 역할을 했던 셈이다. 조선은 또한 후금과의 개시를 통해 피로인(被擄人)들을 속환(贖還)하려고 시도했다. 피로인이란 정묘호란 당시 후금군에 사로잡혀 끌려갔던 포로들을 말한다. 호란 당시 무방비 상태였던 서북 지방에서는 엄청난 수의 포로가 생겨났다.1627년 5월 평안도 평양, 강동(江東), 삼등(三登), 순안(順安), 숙천(肅川), 함종(咸從) 등 여섯 고을에서 파악된 포로 숫자만 4986명이었다. 같은 해 6월의 기록에 따르면 심양에서 도망쳐 오는 포로의 숫자가 매일 40명에서 50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였다. 이것을 토대로 계산하면 당시 후금군에 끌려간 피로인의 수는 최소 수만 명을 넘는 수준이었다. 조선은 개시에서 후금 측에 쌀을 공급하는 대가로 피로인들을 넘겨받고자 했던 것이다. ●피로인 송환 등 둘러싸고 분열양상 1628년 2월 후금 측은 개시가 열린 중강에 200여명의 피로인을 데리고 왔다. 그들 가운데 조선에서 우선적으로 속환하려 했던 사람들은 귀의할 수 있는 부모나 형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포로들의 몸값을 정하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개시 장소에 왔던 200여명 가운데 70명 정도만 가족 품으로 돌아오는 행운을 얻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후금 상인들은 자신들이 어렵게 데려온 피로인들을 모두 구입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고국 귀환을 애타게 고대하고 왔다가 후금 병사들에게 이끌려 도로 심양으로 돌아가는 피로인들은 조선 국경 쪽을 쳐다보며 통곡했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후금과의 개시는 유지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파열음을 냈다. 우선 개시에 대한 양측의 입장이 사뭇 달랐다. 조선은 봄가을 두 차례 개시할 것을 원했다. 후금 측은 봄, 여름, 가을 세 번을 정기적으로 하되 필요하면 제한을 두지 말자고 맞섰다. 그들은 중강 이외에 함경도의 회령에서도 개시하자고 요구했다. 개시할 때 후금 측이 데리고 오는 인원의 숫자도 문제였다. 1628년 2월 중강에서 개시할 때 용골대 일행은 자그마치 1300명의 인원을 데리고 왔다. 그들에게 필요한 식량과 마초는 전부 조선 측의 몫이었다. 조선은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측이 문제를 제기하자 후금 측은 조선과 명의 전례를 들고 나왔다.‘과거 조선이 명과 개시할 때는 소와 돼지까지 증여했는데 우리에게는 식량과 마초만 주는데 무엇이 부담스러우냐?’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조선이 계속 식량 공급을 거부하면 서울로 올라가서 소 몇 백 마리와 군사들이 한 달 먹을 식량을 얻어 내고야 말겠다고 협박했다. 조선은 결국 용골대 일행에게 쌀 2000섬을 그냥 주기로 약속했다. 후금에서 도망쳐 온 피로인들을 송환하는 문제도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후금은 수시로 조선에 국서를 보내 조선이 고의로 피로인들을 숨겨 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피로인들을 ‘피 흘려 얻은 대가’로 여겨 송환을 요구하는 후금과 ‘살겠다고 도망 온 혈육’을 송환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조선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양국 관계는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선택 2007 D-9] 李측 “신당 주장은 오래된 오보”

    대선을 10일 앞둔 9일 대통합민주신당과 무소속 이회창 후보측은 ‘이명박 때리기’에 전력 투구했다. 통합신당은 이날 ‘정치검찰-이명박 유착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11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검찰 탄핵소추안’을 발의·의결, ‘이명박 특검법’과 ‘공직부패수사처 설치에 관한 법률’을 처리키로 했다. 이해찬 비대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명박과 검찰이 합작해 국민이 피를 흘려 이룩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이명박 의원(민자당 비례대표)이 현대건설 사장 때 1300여평의 도곡동 땅을 처남인 김재정씨 명의로 등기해 놓았다.’는 내용이 실린 1993년 신문 복사본을 배포했다. 당시 민자당은 내사를 통해 당 소속 의원 재산공개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 징계를 내렸다고 신문들은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경고를 받은 것은 도곡동 땅 때문이 아니라 신고가액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통합신당의 주장을 ‘오래된 오보’로 일축했다. 통합신당은 지난 7일 서울구치소에서 김경준씨를 접견한 내용과 김씨가 작성한 메모지도 공개했다. 김씨는 “담당검사가 이명박씨가 직접 날인했다는 것에 대해 괜찮다고 조서를 받았다가 고쳐달라고 했다. 진술을 번복할 수 없다고 하자 처·누나·어머니를 모두 조사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고 송영길 의원은 전했다. 또 이 후보의 주가조작 지시 여부에 대해 “누가 ‘주가 조작해.’라고 지시하겠는가.‘어떤 주식을 매입하라.’고 지시한 것이다.”고 말했다고 송 의원은 밝혔다. 김씨는 송 의원에게 전달한 자필 메모에서 “검사는 이명박을 모든 혐이(혐의)에게(에서) 뺄라고(빼려고) 무척 노력하였읍니다(노력하였습니다).”라고 적었다. 이회창 후보측 김정술 법률지원단장도 김씨와 만난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김씨는 “지난달 23일 이면계약서 원본을 제출하자 검사는 ‘계약서를 검토할 생각이 없고 없애버리면 그만’이라고 했다.”면서 “29일부터는 미국 교도소에서 한글계약서를 만든 것으로 자백하라고 강요했고 12월 1일부터 미국 가족과의 전화통화도 불허됐다.”고 말했다고 김 단장이 전했다. 통합신당과 이회창 후보측의 김경준씨 접견과 관련, 한나라당은 “정동영·이회창 후보의 이익을 위해 접견권을 남용하고, 언론에 김경준의 말을 생중계하듯 유포하고 있다.”며 검찰에 접견 금지를 촉구했다. 나길회 한상우기자 kkirina@seoul.co.kr
  • 신당-한나라 ‘BBK 난타전’ 2라운드

    BBK 검찰수사 결과 발표 이후 정치권에서 연일 벌이는 난타전이 ‘정치공작설’과 ‘역공작설’로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검찰 수사에 대해 ‘검찰-이명박-삼성’의 3자 동맹설을 주장하며 “검찰과 수구부패 정치세력, 특정재벌이 결탁한 거대한 음모”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김경준 기획귀국설’을 꺼내들며 신당측에 맞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치공작’ 맞불전 양상이다. 신당은 7일 검찰의 ‘김경준 회유설’을 내세워 검찰 수사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급기야 임채정 국회의장에게 BBK특검법 국회 본회의 직권 상정을 요청했다. ●신당 “검찰 수사 원천무효” 정동영 후보는 전주시청 앞 유세에서 “거대한 수구부패 동맹에 의해 생매장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는 날,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 후보측 김현미 대변인은 “우리당의 변호사 출신 의원들이 김경준을 면회하는 자리에서 김경준이 수사 검사들로부터 ‘검찰을 살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면서 “이번 수사결과가 삼성특검으로 떨고 있는 세력 간의 ‘야합에 의한 결과’임을 입증하는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김효석 원내대표는 “검찰의 수사결과를 믿지 못한다는 국민이 늘고 있다.”면서 “변호인단을 구성해 매일 김경준씨를 접견하고 검찰의 허위 진술 강요를 고발할 수 있는 신고센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김경준 귀국 공작설’ 카드로 맞대응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김씨의 송환과 관련된 정치공작설의 정체가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여권의 ‘실세’가 김경준씨를 미국에서 만나 귀국을 유도했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검찰은 즉각 대규모 수사팀을 만들어 국민의 의혹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 “김경준 누나·부인 송환” 한나라당은 당 공작정치투쟁위 내에 ‘김경준 기획 입국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과 부인 이보라씨를 BBK 사건의 공범으로 규정하고 검찰에 범죄인 송환 촉구를 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양당은 법사위에서 BBK 관련 특검법 상정과 검찰총장·법무부장관의 현안보고를 놓고 정면 충돌했다. 신당측의 법안 상정 및 출석요구에 한나라당은 “정략이 깔린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신당은 결국 임채정 국회의장에게 특검법 직권상정을 요청했지만 임 의장은 “국회 운영은 교섭단체가 협의하게 돼있고 절차적 과정이 필요하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구혜영 한상우기자 koohy@seoul.co.kr
  • 김경준 혐의 조목조목 부인

    김경준 혐의 조목조목 부인

    검찰의 BBK 수사결과 발표 이후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김경준씨와 검찰은 발표 하루 만인 6일 ‘장외 공방’을 벌였다. 당초 이날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예고했던 에리카 김은 회견 1시간여 전에 이를 전격 취소했다. 횡령 사건의 공범으로, 범죄인 인도 청구 절차를 밟아 에리카 김을 국내로 송환하겠다는 검찰 방침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씨측 오재원 변호사는 이날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결과를 대부분 부인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했다. 오 변호사는 “김씨는 여전히 혐의 전체를 부인하고 있으며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가 ‘BBK의 실질적 이해관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BBK·다스 모두 이후보 것” 김씨는 서울중앙지검 변호인 접견실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송호·김종률·이종걸·이상경 의원, 무소속 이회창 후보측 김정술 법률지원단장을 함께 만난 자리에서도 “BBK와 다스 모두 이명박씨 소유다. 나는 절대 BBK를 소유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주장은 2000년 3월부터 BBK는 이 후보 소유였으며, 다스도 처음부터 이 후보가 자기 거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면계약서에 대해서는 “금감원 조사가 들어오자 이명박씨가 ‘다 뒤집어써라, 그래야 회사 건진다.’라고 말해 향후 권리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날짜를 소급해서 작성하게 됐다.”고 말했다는 것. 사무실에는 레이저 프린터밖에 없는데 이면 계약서는 잉크젯으로 작성됐기 때문에 위조됐다는 검찰의 발표에 대해 처음 사무실을 열 때부터 잉크젯과 레이저 프린트가 모두 있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레이저·잉크젯 다 있었다” 오 변호사는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회유가 있었다는 김씨측 주장이나 김씨 스스로 ‘원하는 대로 진술하면 불구속시켜 줄 수 있느냐.’고 딜(협상)을 시도한 바 있다는 검찰의 발표 내용에 대해서는 “재판에 영향을 줄 내용이라 언급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검찰 측은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거듭 반박했다. 검찰은 박수종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던 1,2회 진술조서 때는 검찰 진술녹화 조사실이 수리 중이어서 변호사가 입회한 가운데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았고, 이후에는 진술녹화실에서는 녹화를, 검사실에는 모두 녹음을 해 놓았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구치소 측에서는 메모가 작성된 적이 없다고 하고, 메모가 한국에서 작성됐는지 여부도 의심스럽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씨의 메모는 팩스를 통해 미국에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김씨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김동오)에 배당됐으며, 첫 공판은 오는 24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검찰은 이날 김씨를 다시 소환해 한글계약서를 위조한 경위 등에 대해 보강수사를 벌였다. 홍희경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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