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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체장관사 복지시설‘재활용’

    경기도내 자치단체장들이 관사를 노인복지시설이나 예절관,취업알선센터 등으로 활용해 호응을 얻고 있다. 3일 경기도에 따르면 안성시는 동본동에 위치한 연면적 50평 규모의시장 관사를 노인들의 복지시설로 개조해 최근 문을 열었다. 시는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가족이없는 노인,장애노인,주간 또는 야간에 일시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노인 등에게 시설을 개방할 예정이다.또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점심식사와 물리치료,목욕ㆍ용변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031-670-1261) 앞서 광명시는 지난해 11월 철산3동 시장 관사를 ‘1일 취업지원센터’로 바꿔 일용직 구인·구직 등록,취업알선 및 정보제공 등을 해주고 있다.일용근로자들의 휴식공간 및 컴퓨터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이곳을 통해 지금까지 4,600여명이 일자리를 구했다.(02-680-6338) 군포시는 당초 관사를 매각할 계획이었으나 매수자가 없자 시를 찾는 국내·외 자매결연도시 방문객을 위한 숙소로 활용,예산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방문객이 없을 때는 각종 사회단체 간담회 및 월례모임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031-392-2580) 고양시와 안양시도 시장 관사를 예절교육관으로 탈바꿈시켰다. 고양시는 230여평 규모의 예절원을 통해 학생 및 시민들에게 전통예절교육,다도,인성교육,향토사,시조창,단소,대금 등을 가르치고 있다. (031-961-3183)안양시 예절교육관에서는 지금까지 177명이 예절교육일반 및 지도자 과정을 이수하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031-389-2781)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문화奧地에 예술의 향기가 솔솔…

    경춘국도변에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코스모스가 가을을 알리는 지난29일.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 심석종합고등학교는 ‘작은소동’으로 아침 일찍부터 술렁거렸다. 개교이래 처음으로 서울서 관현악단이 찾아온다는 소식에 교사와 학생들은 강당을 청소한다,음향시설을 설치한다 땀방울 송송 맺혀가며분주했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긴 오후 2시쯤 전세 관광버스 한대가 교정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피크닉이라도 온 듯 티셔츠,반바지 차림의 낯선이들이 내리자 학생들은 오늘 일어날 ‘특별한 일’이 그제서야 실감난다는 표정이었다.금발의 외국인 연주자와 덩치 큰 악기들을 보며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였다. 전교생이 1,150여명으로 시골학교치고는 규모가 제법 큰 이 학교를뒤흔든 이벤트는 바로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산따라 물따라 음악회’.문화관광부 역점사업인 ‘찾아가는 문화활동 2000’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한 이번 음악회는 대한매일이 공동주최한다.문화오지를찾아 무료음악회를 들려주며 문화의 향기를 나누겠다는게 행사의취지다. 수업이 끝난 오후 3시30분,강당은 연주복으로 말끔히 차려입은 관현악단 36명과 학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초반의 소란스러움은 요한 슈트라우스 ‘레데츠키 행진곡’이 연주되자 이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비제의 ‘카르멘 서곡’등 정통 클래식부터 대중가요 ‘아빠의 청춘’‘제이에게’,영화주제곡 등을 넘나들며 10여곡을 연주하자 학생들은 낯설어하면서도 연신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2학년생 박대우 군은“TV에서는 몇번 봤지만 진짜 관현악단은 처음 본다”며 사뭇 신기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익숙치 않은 분위기 탓인지,지휘자 하성호씨가 교향악단을 지휘해볼 기회를 주겠다며 지원자를 받아도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쑥스러워했다.결국 남학생 1명을 강제 지명해야 했다. 서울서 1시간 거리인 화도읍 마석우리는 인근 묵현리에 ‘천마산스키장’이 위치해 시골이라 부르면 섭섭할 정도지만,문화의 혜택은 거의 받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공연이 끝난 후 교사들은 땀에 흠뻑 젖은 채 한숨 돌리고 있는 지휘자 하씨를 찾아와 “이런 소중한 체험을 갖게 해줘서 고맙다.앞으로도 기회를 자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지휘자 하씨는 “음악을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언제든 달려가겠다”고 약속하며 다음 공연장소인 진접읍사무소로 떠나기 위해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29일 마석에서의 첫공연을 필두로 ‘산따라 물따라 음악회’는 김포,파주,춘천,진주시 등 5개지역의 읍,면소재지 15곳을 순회하며 10월 16일까지 연주회를 개최할 예정이다.이밖에도 ‘찾아가는 문화활동 2000’프로젝트에는 민간예술단체 43곳 등 총 50개 단체가 참가해 연극,무용,인형극 등 1,000여회의 공연을 일반인들을 위해 펼치고 있다. 올해 9월로 창단 12년을 맞는 서울팝스.그동안 고궁,길거리,교도소등을 가리지 않고 매년 250여회의 연주회를 열어온 관록탓일까.70여명의 단원들은 절반씩 번갈아 가며 ‘산넘고 물건너’문화 오지를 찾아나서는 이번 순회공연이 낯설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신난다는 표정이다. 마석 허윤주기자 rara@
  • 남북 장관급 평양회담/ 이모저모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통일을 향한 남북 당국의 행보가 한 걸음 한 걸음 순조롭게 진행되는 느낌이다. 30일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은 우리측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의제를 제기한 반면 북측은 다소 수세적으로 선별 대응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북측은 ‘한라산-백두산 교차관광’을 제외하곤 별다른 의제를 내놓지 않았다.우리측이 제기한 사안을 상부에 보고,수용여부를 검토하는 수준이었다. 양측은 이날 2차례 회담 중간에 수석대표간 단독접촉을 갖는 등 진지한 자세로 일관했다.이에 따라 오후 회담에서는 상당부분 의견 접근을 볼 수 있었다.이날 양측의 공식 협의 시간은 총 3시간15분이었다. ●첫 회담은 오전 10시부터 1시간15분동안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됐다.회담후 북측 전금진(全今鎭) 단장은 취재진에 “분위기가 좋았다.성과를 내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북측 관계자도 “남측 제안중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안드는 것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다 잘될 것이다.평양에 온 보람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일정부분 성과가 있을 것임을 시사. ●우리측 박재규(朴在圭) 수석대표와 전 단장은 오전 회담이 끝난 뒤 승용차를 함께 타고 남측 숙소인 고려호텔로 와 2층 회의실에서 양측 실무자만 배석시킨 채 1시간 가량 단독접촉을 가졌다.우리측 관계자는 “입장 조율을 위해 수석대표들끼리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눈것으로 알고 있다”며 “버릴 수 없는 카드와 다음으로 미룰 카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는 책임자간 만남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 ●오후 회담은 3시30분부터 1시간여동안 진행됐다.회담이 끝난 뒤 “양측이 올해 안에 이산가족 추가 교환방문을 2∼3차례 실시키로 의견을 접근시켰다”는 등의 협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회담장 주변은 급속히 활기를 띠었다.그러나 우리측이 가장 기대를 걸었던 군 당국간 직통전화 설치 등 군사분야 합의에 대한 소식은 일단 나오지 않아 다소 실망스런 분위기도 있었다. ●앞서 남북 대표단은 오후 1시쯤 대동강 건너 강남쪽 통일거리에 위치한 ‘평양 단고기집’에서 1시간20분간 ‘단고기 코스요리’로 점심을 즐겼다.부위별로 단고기를 요리한 5가지 음식이 나왔다.박 수석대표는 “단고기(개고기)라는 명칭은 김일성(金日成) 주석이 지은 것으로 베트남 요리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코스 음식으로 개량했다”고 북한식 단고기에 대한 ‘식견’을 피력,북측 대표단의 웃음을 불렀다. 평양 공동취재단 김상연기자 carlos@
  • 민주 전당대회/ 권노갑.한화갑 향후 행보는

    민주당 권노갑(權魯甲)·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이 8·30 전당대회를 계기로 다시 한번 ‘용틀임’의 기회를 맞았다.당내 확실한 두 축(軸)으로 자리매김한 ‘양갑(兩甲)’의 향후 행보는 그래서 정치권의주요 관전포인트다. *권노갑 최고위원. ‘동교동계의 맏형’‘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분신’‘여권내 2인자’…. 숱한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이 최고위원으로화려하게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오랫동안의 막후생활을 털고 ‘무대’에 복귀했다는 사실은 권고문에게 벅찬 감회일 수밖에 없다. 지난 97년 한보사건에 연루돼 징역을 살고 의원직까지 잃은 아픔은‘전주곡’에 불과했다.그토록 기대했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유를 떠났고,심지어 16대 총선과 최고위원 경선 출마의지마저 접는 일을 겪었다. 그런 권고문이 민주당 지도부의 일원이 됐다는 점은 상당히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선 정상궤도 진입과 동시에 정치적 복권의 완결로 읽혀진다.따라서그의 당내 역할이나 비중도 배가될 것으로 점쳐진다.김대통령의 집권 2기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정권 재창출을 이뤄내는 문제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권고문은 최고위원 지명후 기자들과 만나 “40년의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당내 단합과 화합을 이끌어내겠다”고 다짐했다.그러면서 “내가 중심에 서서 정권 재창출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킹 메이커’ 역할을 공식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권고문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막판 경선 쟁점으로 떠올랐던‘보이지 않는 손’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도 “(동교동계)식구들은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모두 협력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점은 똑같다”며 “전혀 감정이 없다”고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켰다.권고문이당 안팎의 산적한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한종태기자 jthan@. *한화갑 최고위원. 민주당 권노갑(權魯甲)·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이 8·30 전당대회를 계기로 다시 한번 ‘용틀임’의 기회를 맞았다.당내 확실한 두 축(軸)으로 자리매김한 ‘양갑(兩甲)’의 향후 행보는 그래서 정치권의주요 관전포인트다.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날개를 단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의 제1목표는 집권 2기를 맞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안정적 국정운영에 맞춰져 있다.한최고위원은 “집권 후반기를 맞아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강한 여당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차기 대권 행보다.그가 차기 대권후보 또는 ‘킹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그러나 그는 “이번 경선은 당권·대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대통령 임기가 2년 이상 남아 있는 상황에서 대권에 대한 꿈은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는 시각이다. 아울러 당내 갈등이나 분화 조짐을 잠재우는 데도 적극성을 보일 것으로 읽혀진다. 특히 ‘동교동계 맏형’인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과의 관계 복원이 관심이다.한최고위원은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는 자세에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다”고 말했다.이어 “나에게 맡겨봐라.이름이 화합을 이룬다는 뜻”이라며 관계 복원에 자신감을 보였다. 한최고위원은 말투와 제스처가 김대통령을 빼닮아 ‘리틀 DJ’로 통한다.그러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권교체 이전에는 정치의 전면에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정권교체는 도약의 발판이 됐다.‘나이 60에 능참봉’이라는말을 들으면서 지난 98년 ‘집권당 원내총무 대행’이라는 꼬리표를달고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정직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여야 의원들의신뢰속에 진가를 발휘했다.자연스레 당내 실세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강동형기자 yunbin@. * ‘또다른 승리’ 클린선거.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돈과 조직을 동원하지 않은 조순형(趙舜衡)·이협(李協)후보의 ‘클린 선거’가 돋보였다.비록 13위,12위로 떨어졌지만 사실상 ‘또다른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다. 조후보는 지난 12일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돈과 조직을 동원하지않을 것임을 공약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15일간의 선거운동에 쓴비용이 9,000만원에 그쳤다.그에게 점심이라도 대접받은 지구당위원장은 단 한명도 없다.이후보도 못지 않게 깨끗한 선거를 펼쳤다.다른후보들이 지구당별로 조직책을 두고 후보간 연대에 부심하는 동안 이후보는 단기필마로 전국을 누볐다. 합동연설회에서도 다른 후보들이 선거운동원 수십명을 동원,세를 과시할 때 이후보는 부인과 자녀 등가족 서너명이 나서 고군분투했다. 이들이 선거기간 당 지도부를 가차없이 비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도덕적 우위에서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진경호기자 jade@. *미풍에 그친 ‘바꿔바람’.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줄곧 ‘바꿔 바꿔’를 외쳤던 ‘소장파’김민석(金民錫)·추미애(秋美愛)의원이 결국 바꾸는 데 실패했다. 개혁과 변화를 기치로 일으켰던 바람이 득표로는 그다지 연결되지 않은것이다. 김의원은 1,666표(19.1%),추의원은 1,627표(18.7%)를 얻어 각각 9위와 11위에 머물렀다.당내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들 두 의원은 줄곧 정대철(鄭大哲)최고위원,김기재(金杞載)의원 등과 7위 진입을 다퉜다. 그러나 막판에 접어들어 뒷심을 발휘한 정위원의 조직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당 일각에선 그러나 최고위원당선자의 면면을 감안하면 다른 중진들을 제치고 중위권에 오른 것만으로도 선전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비록 최고위원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소장층 내에서는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는 것이다. 진경호기자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7)丹東 臨政 교통국과 쇼우의‘이륭양행’

    일제하 항일투쟁 대열에 섰던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국내외에 거주하던 외국인들도 적지 않았다.구한말 항일 필봉을 드날린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사람은 영국인 베델(한국명 裵說·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이었고,영국인 스코필드(한국명 石虎弼·68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박사는 3·1의거와 일제의 ‘제암리만행’을 전세계에 폭로했다. 또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한국명 訖法·50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박사는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을 지원한 주인공이다.베델과 헐버트 박사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스코필드 박사는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헐버트 박사 묘비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박사의 유언이 적혀 있다. 한편 한국독립을 도운 외국인 가운데 G.L 쇼우(1880∼1943·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라는 인물이 있다.그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이유는 해방 전에 사망한데다 그의 후손도 한국과 왕래가별로 없었으며,또 그동안 그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부족했던 탓으로생각된다.그가 활동했던 1920년대초 당시 국내 일간신문을 펼치면 그의 행적이 곳곳에 남아있다.그러나 국내에선 그의 ‘흔적’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그를 만나려면 지금은 중국땅이 된 남만주로 찾아가야 한다. 백두산에서 발원해 중국과 국경을 이루며 황해로 흐르는 압록강 하류의 신의주땅 건너편에는 단동(丹東,옛 지명은 安東)이라는 도시가있다.심양(沈陽)에서 아침 7시45분발 기차를 타면 점심때인 낮 12시10분에 도착하는 거리다.취재팀은 일행의 안내차 역으로 마중을 나오신 박문호(朴文鎬·65)선생과 먼저 점심식사를 한 뒤 답사에 나서기로 했다.취재팀이 첫 답사대상으로 삼은 곳은 ‘이륭양행(怡隆洋行)’건물이었다.이 건물은 쇼우가 경영하던 무역회사 겸 중국의 태고선복공사(太古船輻公司) 대리점이었다.70년 세월이 지났건만 놀랍게도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채 취재팀을 반겼다. 단동시내 육도구(六道口) 흥륭가(興隆街)25번지에 위치한 이 건물은 현재 단동시 건강교육소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세월의 풍상을 겪은낡은 모습이었다.겉에서 보면 2층 건물처럼 보이나 실지로는 3층 건물로,현재 이 건물은 1층만 건축 당시 그대로이며 나머지는 신축됐다고 한다.주민들에 따르면,인근에 헌 건물들이 많아서 이 건물도 곧헐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건물의 주인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이방인 쇼우는 어떤 인물인가? 영국인들의 생몰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영국의 ‘제너럴 레지스터 오피스’에 보관된 자료에 따르면,쇼우는 1880년 1월 25일 파고다 아일랜드에서 해양조사원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1908년 부친사망 당시 그는 중국 남동부의 항구도시 복주(福州)에 살고 있었다. 1912년 당시 상업에 종사하고 있던 그는 단동에서 일본여인 후미 사이토(당시 28세)와 결혼하였는데 이듬해 장남이 태어날 당시 그는 일본 고베에 머물고 있었다.그가 한국의 독립을 돕기로 결심한 것은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쇼우가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기로 한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첫째는 그의 출신과 가족구성.그는 영국 식민지인 아일랜드태생으로 자신의 고국이 식민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처지나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입장을 잘이해하고 있었다.특히 모친과 부인이 모두 일본인이라 일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더욱이 그의 사무실(이륭양행)은 안동(현 단동)구시가지에 위치해 있어서 일본영사관의 영향이 미치지 않아 한국인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바로 이곳 2층에 상해 임시정부 교통부 산하 ‘안동(安東)교통국사무국’이 들어있었다.교통국은 임정초기 정보수집과 재정모금,인물소개 등을 담당하였는데 국경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교통부 산하 7개 교통국 가운데서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그는 단순히 장소만 제공해준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기도 하고,상해를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배를 제공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편의를 제공해주었다. 1920년 그가 소위 ‘이륭양행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었을 때 일본 외무성에서 작성한 그의 행적자료에 의하면,그는 봉천(奉天) 주재영국 총영사가 일본당국의 요청으로 수차례 주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대동단사건 지원 ▲독립군 무기수송 ▲독립운동 근거지 제공 ▲임정 비밀문서 전달 등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1920년 7월 오학수(吳學洙) 등이 국내로 무기를 들여오기 위해 그가 소유한 계림환(桂林丸)에 숨겨두었다가 발각되자 그도 이들과 함께일경에 구속되었다.1924년 단동을 떠나는 조건으로 영국 측의 도움을 받아 석방된 그는 복주(福州)로 거주를 옮겼는데,그해 11월30일 63세로 타계하였다.그의 사후 57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그에게 건국훈장 추서한 것이 전부일 뿐 그의 묘소에 꽃 한송이 바치지 못했다. 항일투쟁 끝에 단동에서 최후를 마쳤으나 일반인들에게는 쇼우처럼거의 무명(無名)에 가까운 독립투사 한 분이 있다.바로 편강렬(片康烈·1892∼1929) 의사다.17세때인 1907년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이듬해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에 참가한 편 의사는 이후 1911년 ‘105인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여,1919년‘구월산주비단사건’으로 해주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하였다.출옥후만주로 건너가 양기탁(梁起鐸) 등과 의성단(義成團)을 결성,단장에취임한 편 의사는 이듬해 3월 장춘 일본영사관을 습격하였으며,다시1개월 뒤에는 봉천(현 심양)에서 일경과 백주에 시가전을 벌여 적 다수를 사살하였다. 1924년 길림과 하얼빈에서 각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다가 일경에 체포된 편 의사는 국내로 압송돼 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척추염이 발병,안동 적십자병원에서 순국하였다.불과 37세였다.구한말 의병전쟁에서 부터 독립군 투쟁에 이르기까지 청춘을 항일투쟁에 몸바쳤으나 이름을 아는 이가 적음은 물론 그의 묘소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생전에 편 의사는 ‘나라가 광복되기 전에는 내 유체를 고국에 이장하지 말라’고 유언했다.지금도 단동 진강산(鎭江山) 기슭 공동묘지 어디엔가 누워있을 편 의사를 생각하면 후손된 자로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단동은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압록강이 마지막 모습을 감추는 곳이자 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땅과 마주하고 있어 우리 민족에겐 ‘비원의 땅’이라고 할수 있다.또애국선열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조국광복을 위해 몸을 의탁하던 곳이자,살 길을 찾아 만주땅으로 향하던 유민들의 한숨이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산(錦江山)공원(구 진강산공원) 옆에 있는 안동주재 일본영사관 건물은 아직도 그 화려한 건축미를 간직한 채 지금은 단동 경비사령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다.압록강을 가로지르는 두 철교 가운데 6·25때 끊어진 철교를 중국의 모 회사가 매입,관광용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한다.단동은 우리 근·현대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중국의 경제개방 열풍속에서 나날이 변모하고 있었다. 정운현기자 jwh59@
  • 美공군, 고아원생 초청 행사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 미 공군 사격장에 대한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들의 폐쇄 여론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미 공군이 고아원생들에게 병영체험 기회를 제공하기로 해 화제다. 25일 공군 제10 전투비행단과 미 공군에 따르면 26일 수원 효행원고아원생 84명을 부대로 초청,병영체험 행사를 갖는다. 효행원생들은 이날 부대에 도착,부대를 소개하는 영화를 관람한 뒤격납고와 무장전시장,미사일 등 부대 방공무기 및 장비 등을 둘러보게 된다.또 조종사 비상대기실을 찾아가 조종사들로부터 평소 궁금했던 점을 듣고 직접 전투기에 타보는 기회도 갖는다. 이어 부대 간부들과 점심식사를 한 뒤 좀처럼 접하기 힘든 비행단내 미군부대를 방문,각종 첨단장비와 시설 등을 둘러보고 미군장병들이마련한 파티와 축구경기 등을 함께 하며 즐길 예정이다. 수원 김병철기자
  • [지방 고시촌 르포](4)광주

    보통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기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정오.광주용봉동 전남대학교 앞은 학원 수업을 듣기 위해 분주히 걸어가거나졸음과 권태를 피해 담소를 나누는 고시생들로 붐빈다. 광주,전남·북도를 아우르는 호남지역에서 가장 큰 고시촌은 단연전남대 앞이다.2년여의 기간동안 우후죽순 식으로 생긴 전남대 앞 고시원은 어느새 30여개.고시 관련 서점,학원 등이 이곳에 몰려있다.이런 추세로 가면 서울 신림동 규모의 고시촌이 생기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현재 호남지역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은 3,000여명정도로 추산된다.7·9급과 각종 자격증을 준비하는 수험생까지 따지면 7만여명에 이른다고 주변에선 얘기한다. 수험생의 수에 비해 고시·자격증 학원은 많은 편이 아니다.광주지역 고시·자격증 학원은 13개,전주·익산은 고작 4개뿐이다.목포·순천 지역도 각각 1개씩. 하지만 ‘무척 열악한 환경이다’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호남지역수험생들을 위한 ▲대학측의 적극적인 지원과 ▲영상 강의 활성화라는 호남지역 고시환경의 특징과도 연관성이 많다. 전남대,전북대,원광대,조선대 등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대학들은 고시를 준비하는 재학생,졸업생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때가 되면 서울지역 명강사를 초빙해 특별강의를 하는가 하면 대학 내 고시특강 수업료는 일반 학원 수업료보다 50%가 저렴하다. 또한 대학 고시반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매달 50만원의 장학금을 주기도 하고 수험료의 일부를 면제하기도 한다.물론 50∼100명 정도의최정예 요원만 수용하는 고시반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지만. 지난해 사시 최종합격자가 전남대의 경우 11명,전북대 4명,조선대 3명,원광대 1명이 배출된 저력도 이같은 대학측의 적극적인 지원에서나온 것이다. 소위 잘나간다는 명강사는 서울로 가버리기 때문에 학원마다 튼튼한 강사진을 배치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하지만 그 대안으로 시작된영상강의가 이제 조금씩 실효를 거두고 있다. 신림동의 유명 고시학원과 연계해 호남지역 대학에 영상강좌를 제공하고 있는 호남법학원 박기수(朴基洙·42) 원장은 “공부할 수있는분위기를 익히고 정보를 얻기 위해 무작정 상경하는 학생들을 보면안타깝다”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고향에서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도록 지방강좌를 상설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한다. 한때 역사적으로 소외된 지역이었고,고시계에서도 변두리 지역으로꼽히는 호남지역에서 꾸준히 고시 합격자 수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주 최여경기자 kid@
  • 이선행씨 꿈같은 방북기 “꽃다웠던 아내모습은 어디로…”

    아내와 자식을 각각 북에 두고 온 뒤 남으로 내려와 지난 68년 재혼한 이선행(80)·이송자(81) 부부는 평양 방문에서 북에 사는 가족들을 만났다.다음은 선행씨의 방북기. △14일 북행(北行) 하루 전.청와대 오찬을 마치고 숙소인 워커힐호텔로 들어서니 비로소 내일이면 북의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게 실감이나기 시작했다. △15일 오전 7시.짐을 꾸려 호텔 로비로 내려오니 마음은 벌써 평양에 가 있는 것 같았다.꿈 속을 거닐듯 발걸음이 가벼웠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이륙 1시간 뒤 비행기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이산가족,대한적십자사 관계자,보도진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버스를 타고 평양∼순안간 고속도로를 따라 평양으로 향해 오후 2시쯤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했다. 오후 6시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상봉의 순간이 왔다. “아닌데….아닌 것 같은데…” 나는 너무 늙어버린 북의 아내 홍경옥(76)을 한 눈에 알아보지 못했다.26세 꽃다웠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깊은 주름만 속절없이 패어있지 않은가. “혼자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 많았지” 하지만 최근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경옥이는 50년만에 본 남편의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안타까웠다.어린애였던 장남 진일이(56)와 셋째 진성이(51)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오래 전부터 제사를 지내왔다며가족사진을 내밀었다. 아내는 내가 북의 가족들을 만나는 바로 앞에서 큰아들 박위석(61)을 만나 눈시울을 붉혔다. △16일 오전 10시부터 객실에서 개별 상봉을 했다.북의 아내와 아들진일·진성이가 찾아왔다. “진일아,손주들 이름이 뭐랬지” 진일이는 백지를 꺼내더니 북의 친척들과 손주들의 이름을 도표처럼그려가며 일일이 가르쳐줬다. “이게 우리집 새 족보다” 절로 함박웃음이 나왔다. 같은 시각 아내는 북의 큰아들과 만났다.처는 “위석이가 ‘외손자가 공부를 잘 해서 인민학교 단위원장(학생회장)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면서 “헤어질 때 7살짜리 응석받이였던 위석이 모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훌쩍 2시간이 지났다.점심을 먹은 뒤 오후 3시쯤 유람선을 타고 대동강 유람에 나섰다.대동문·연광정 같은 유적과이끼 낀 평양성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모란봉은 보기 좋았다. △17일 이산가족 방북단 선정 통보를 받고 북에 갈 날을 기다릴 때는그렇게 안가던 시간이 개별 상봉때는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북의 아내에게 “스물여섯 예쁘던 얼굴이 왜 이리 쭈글쭈글해졌어”라고 말했다.그 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북 가족이 함께 하는 점심시간이 됐다.그동안 몇번 지나가면서 아내,북의 아내가 스쳐 지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선뜻 인사를 나누지 못했는데 북측 안내원이 합석을 권유,비로소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진일이는 아내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아버지를 돌봐 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어서 통일이 돼서 아버지 90세 생일상은 제가차려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18일 아침 일찍 숙소로 배웅을 온 북쪽 가족들을 보니 그제야 “정말 가야 하는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모두들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겨우 버스에 올라 멀어지는 가족을 바라보면서 15일 왔던 길을 되짚어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오후 1시쯤 비행기가이륙했다.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평양의 모습을잠시 내려다보는데 불과 1시간도 안돼 김포공항에 내렸다. 이렇게 짧은 길을 그렇게 오래 걸려 돌아오다니…. 특별취재단 연합
  • 남북이산상봉/ 이선행-이송자-홍경옥씨 기구한 인생 드라마

    “통일돼서 다시 만나면 본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겠다.북쪽에 할아버지를 보내주겠다.그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분단의 부부는 마침내 17일 처음으로 오찬을 함께 하면서 잠시나마얼굴을 마주 했다.이송자(李松子·82)씨는 점심 식사 후 북의 아들을 돌려보내고 호텔방으로 가기 위해 승강기 앞에서 잠시 기다리다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북쪽 부인하고 하룻밤이라도 손을 꼭 잡고 지낼 기회가 있었으면…”북한에 각각 처자식과 아들을 두고 내려온 뒤 남쪽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이선행(李善行·81·서울 중랑구 망우동)·이송자씨의 기구한 인생드라마는 상봉 사흘째인 이날 클라이맥스에 달했다. 북쪽 아내 홍경옥씨(76·평북 구장군)와 남쪽 아내 이송자씨는 그동안 세차례의 상봉과 한차례의 식사 때 서로 얼굴을 지나치면서도 선뜻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자식들 보기도 그렇고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던 탓이다. 이선행씨도 남북의 두 아내 사이에서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 어색함을 푸는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은 바로 북측 안내원이었다. 이날고려호텔에서의 고별 오찬 때 안내원의 권유로 두 아내는 드디어 합석,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먼저 북쪽 아들들이 이선행씨에게 잔을 드렸다.이송자씨의 북쪽 아들 박위석씨(61)가 처음 얼굴을 맞대는 이선행씨에게 “아버님 잔 받으십시오”라고 들쭉술을 권하자,이씨는 “나는 머슴처럼 어머님을받들고 있으니까 걱정마라”고 노령인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북쪽 아들을 안심시켰다. 이선행씨의 북쪽 장남 진일씨(56)도 이송자씨를 “어머님”이라고부르며 “아버지를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진일씨와 동생 진관씨(51)는 이송자씨 아들 박씨에게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며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송자씨는 “이같은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러나 정작 두 아내의 대화는 아주 짧게 이뤄졌다.이씨는 홍씨에게악수를 권하며 “반갑습니다.건강하세요”라고 했고 요즘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홍씨는 고개만 끄덕였다.진일씨는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이송자씨를) 잘 해드리라고 부탁했었다”고 대신 전했다. 앞서오전 개별상봉에서는 그동안 눈물을 보이지 않던 이선행씨와 홍씨가끝내 눈물을 터뜨렸다.이씨는 홍씨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혼자 애들키우느라 고생 많았어.스물여섯 예쁜 얼굴이 왜 이렇게 쭈글쭈글해졌느냐”며 오열했다.이씨는 사진기자들을 모두 내보낸 뒤 “이제 내마지막 소원을 이룰 차례”라며 갑자기 홍씨를 등에 업고 눈물을 흘리며 방 안을 한바퀴 돌았다. 평양 공동취재단
  • 문화스냅-2000 여름/ 록 페스티벌 열기

    지난 12일 창원시 종합운동장. 폭염이 퍼붓는 운동장 한복판에서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뒤엉켜 구르고 뛰고 소리지르느라 창원벌이 요란하다.간간이 소방호스로 물이 객석에 뿌려진다.온 몸이 땀에 젖어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꼴이지만 이들은 록 리듬에 맞춰 이날 밤 11시까지 10시간 가량 시간관념을 잃고 젊음을 불태우느라 여념이 없다. 포항에서 달려온 주부도 있고 대구에서 김밥을 싸들고 온 고딩(고등학생을 가리키는 은어)도 있고 서울에서 딸이 좋아하는 일본 뮤지션을 보기 위해 손잡고 내려온 40대 부인도 있었다.모두 자신이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 지난달에는 소요 록스티벌과 부산 국제록페스티벌이 열기 속에 펼쳐졌다.기대가 컸던 제1회 대한민국 록페스티벌과 2회째를 맞은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은 돌연 취소돼 우리는 정녕 미국의 우드스톡이나 일본의 후지 같은 록페스티벌을 가질 수 없는가 탄식을 하게 만들긴 했다.성급한 이들은 한국 록의 죽음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포에버 피스 2000’ 공연은 살인적 더위와 부족한홍보,지리적 한계 때문에 관객은 적었지만 그 열기는 한국 록의 앞날을 확신해도 좋을 만큼 뜨거웠다. ?7월 록페스티벌 지난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열린 부산 국제록페스티벌은 일본의 남성 5인조 그룹인 ‘시얌 샤이드’와 3인조 여성그룹 ‘미사일 걸 스쿠트’ 외에 5개국 19개팀과 국내 인디밴드 12개팀이 참가했다.7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부산지역 록팬들의 갈증을 해소해줬다.내년에는 국고 5억원을 지원받아 모두 17억원의 예산을 투입,국제적 음악축제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소요 록페스티벌 또한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1회 대회를 올해도 이어갔다는 점에서 반길만 하다.특히 인디밴드나 메이저밴드 외에도 고교생이나 아마추어 밴드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냄으로써 록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취소된 두개의 록페스티벌 기획사도 빠른 시일안에 조그만 규모로나마 다시 개최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포에버피스 2000 이경미(17·창덕여고 1년)양.일본의 전설적인 비주얼록그룹 X-저팬의 보컬리스트였던 토시를 만날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고속버스로 6시간 거리의 창원에 달려왔다. 팬클럽 ‘T.Z’회원 30여명을 모아 여관에서 칼잠을 지새며 이틀의공연을 빠짐없이 지켜봤다.“꿈만 같아요.어제 한끼도 못먹었습니다. 저에겐 ‘신’(神)과 같은 존재인 토시를 만날 수 있다니…”마산에서 달려운 김경욱군은 “군대가기 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위해” 이곳을 찾았단다.바리케이드 위에 발을 올리고 뒤로 한바퀴돌아 관중들의 머리위에 넘어지는 ‘서핑’에 열중한다.‘보디가드’ 아저씨들의 제지를 못 본체 하며. 그의 말.“정말 기분 째지게 좋은데,안전은 나도 나름대로 신경쓰며즐기고 있는데 자꾸 말리는 저 아저씨 너무 미워.한대 때려주고 싶어.”“하참,얘네들 체력도 참 대단하데이.”근처 아파트촌에서 ‘마실다니듯’ 나온 한 중년 신사는 혀를 끌끌찬다.이런 팬들이,그리고 무더위속에서도 웃통을 벗어제끼며 연주에열중하는 뮤지션들이 록의 앞날을 버팀목처럼 버텨주고 있는 것이다. ?고군분투 ‘록’앨범 이 여름 우리의 록밴드들은 댄스와 힙합그룹의 기세에 눌리고 음반시장의 축소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판매량은 잘해야 3만∼5만을 오르내리고 어떤 경우 3000장 안쪽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열심이다. 이달 ‘귀곡(鬼哭)메탈’이란 새로운 장르를 창시한 레이니 선의 2집 ‘유감’을 시작으로,크리스천 음악에 프로그레시브록을 혼융시켰다는 평을 듣는 예레미가 오케스트라와 공동작업을 하는 등의 화려한사운드로 꾸민 3집 ’플라잉 오브 이글’을,롤러코스터가 1집을 훨씬 뛰어넘는 음악성으로 단단히 무장한 2집 ‘일상다반사’를,퍼니파우더가 풍자와 익살이 가득 담긴 가사를 경쾌한 리듬과 적절히 비벼놓은 ‘더 그레이티스트 히츠’를 내놓았다.다소 낯선 다양한 장르가선보이고 있는 것. 하지만 이들이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잡기란 쉽지 않은 일.방송의 외면탓. 그러나 “우리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이 있는 한” 그들은좁은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연주한다.개런티는 ‘입에 풀칠’할 정도로 매니저 등을 대동한4인조 밴드의 경우 점심값에 교통비 제하면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쨍하고 해뜰날 돌아올거야’를 외치며 오늘도 무대에 오른다. 글·사진 창원 임병선기자 bsnim@. * 록 축제가 성공하려면. 이틀걸려 22시간동안 진행된 ‘포에버 피스 2000’ 록페스티벌을 전량 녹화한 케이블채널 NTV(채널 19)의 홍수현 PD가 한국 록문화와 축제문화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NTV는 오는 22일과 24일밤 자정,음악채널 KMTV(채널 43)는 24일 자정과 31일 밤10시 각각 2시간 분량으로편집한 실황을 녹화방영한다. [편집자 주]한국에서 록페스티벌이 성공하려면 어떤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는가. 일반 사람들은 록을 단지 시끄러운 음악으로 알고있다.거친 랩과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과격한 율동,그 모습에 열광하는 청소년들. 방송에서는 물론 레코드점에서도 록 음악은 들을 수 없고 찾을 수 없다. 적지 않은 록페스티벌들이 기획됐다가 공연 며칠 전 취소된다.좋은취지의 공연들이 관객의 외면으로 썰렁하게 끝나기 일쑤다. 한국에는 공연과 함께 놀 수 있는 부대시설이없다.공연에만 집중하는 관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록 음악이 생소한 이들을끌어들일 만한 이벤트와 부대시설이 구비됐으면 한다. 한국에서는 CD판매가 저조하다.공연장에서만 즐기고,자신이 좋아하는 그룹들의 공연만을 관람한 뒤 등을 돌리고 만다.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짜깁기 해서 듣고 있다.이건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길 기다리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 한 밴드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 음악이 시끄럽지만 자꾸 듣게되면 우리들의 음악도 귀에 익을 것이다.”댄스와 발라드가 우리 주변에 익숙해진 것은 방송의 힘이다.듣고 싶든 듣고 싶지 않든 그 음악들은 우리 주변에 늘상 자리잡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듣기 좋은 음악처럼 느껴지는 것이다.방송에서만이라도균일하게 음악을 내보내야 한다. 국민적인 축제가 없어 노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한 요인이다. 브라질의 삼바,미국의 독립기념일 등등 그들 국민들이 1년내내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가 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우리 국민들이 1년에 1주일 아무 일도 않고즐길 수 있는 축제가 자리잡히면 사람들에게 록축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홍수현 NTV 프로듀서 518316429@hanmail.net
  • [황석영의 맛따라 추억따라](12)낯선 땅에서

    *농군집서 맛본 해남 별미 보리.매생이국엔 흙내음이. 해남은 공기는 물론 햇빛과 바람부터가 달랐다.아무리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도 볼에 닿으면 살랑대며 어루만져 주는 듯했고 햇빛은 마치석양이 그렇듯이 약간 비껴서 내리 쪼이는 것 같았는데 풀과 나무와꽃이며 땅이 제 색깔을 제대로 내는 것처럼 보였다. 비 온 뒤의 풍광은 더욱 투명해서 느끼한 유화가 아니라 묽게 채색된수채화로 아슴프레하게 그린 듯했다. 밤이면 댓잎이 서걱대고 댓가지가 서로 부딪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려왔고 비가 오나 하여 내다보면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그렇게 들렸다. 미리 작정하고 찾아 내려간 터이라 나는 슬슬 농민들과 접촉을 시작했는데 이들이 힘을 얻으려면 읍내 중간층들의 두터운 후원이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다.읍내에서 내가 사귈 사람은 일단 관리들과나이 든 사람은 빼고 학교 선생이나 의사 약사 아니면 대학을 나와도시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낙향하여 자영업을 하는 삼십대의 사람들을 정하였다.촌에서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언제나 술 한 잔이 매개였는데 그래서 벼라별 것을 다 먹어 보았다. 농민들과의 접촉은 주로 장날에 이루어졌다.읍내에 장이 서면 주위의면과 리에서 농민들이 장을 보러 나오고 그들은 우리 집을 방문해서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책도 빌려 보곤 했다. 나중에 시인 김남주나 전국 농민회 의장을 지내게 된 정광훈 형이며 동화작가 윤기현이 내 서재를 사랑방 농민학교로 만들어 장날마다 학습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되었다.처음에는 집에서 대충 점심을 나누어 때우곤 하였는데 점점 많아지는 회원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방문자는 먹을 거리를 가져오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정이 돈독해졌다. 내가 기현이를 알게된 것은 우연히 우슬재 넘어 어느 개척교회를 방문했을 때였다.어느 젊은 농민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처음에는 뒷전에서 무심코 듣고 앉았다가 나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자리가 끝난 뒤에 그에게 어디서 그런 동화를 읽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되물었다.‘동화가 뭣이다요?’ 하여튼그가 책에서 읽은 건 아니고 그냥 농사짓는 틈틈이 ‘아그들에게보탬이 되는 이야그를 머릿속으로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나는 그에게 그런 얘기를 글로 써보라고 일렀고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았다는그에게 맞춤법이며 원고지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얼마 안가서 그는 어느 잡지의 동화 현상공모에 당선 되었다.그의 첫 번째 동화 ‘개똥이’는 나중에 노래쟁이 김민기가 노래극으로 재구성해서 유명해졌지만.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전혀 낯설지만 대단히 맛갈스러운 것을 먹게되었다.서울에서 반도의 서쪽 끝자락인 전라도까지 천릿길이라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보리국이다.보리국이라면 무슨 보리 곡식으로 국을 끓이는가 할테지만,천만의 말씀이다.보리는 다 알다시피 전 해 가을에 벼를 베고 추수를하고나서 다시 갈아 엎은 뒤에 씨를 뿌리는데 겨우내 추위와 눈보라에 시달리며 싹을 틔운다.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올 보리 농사 풍년 들것네!’하고 얘기한다. 새 봄이 되어 햇볕이 포근해지고 밭두렁에는 아직 잔설이 덜 녹아서희끗희끗할 무렵이면 눈밭 사이로 파란 보리싹이 고개를 봉긋 내민다.바로 이 때에 보리를 잘라다가 국을 끓이는 것이다.먼저 쌀뜨물을받아 두고 다시를 내든지 아니면 홍어 ‘애’라고 부르는 홍어의 내장을 넣어 국물의 맛을 깊게 한다.보리는 된장에 무쳐서 맛이 배게두었다가 넣고 끓인다.아마도 봄의 생명력이 싱싱하게 들어있을 보리와 구수한 된장과 홍어애의 콤콤한 맛이 어우러져 전라도의 땅내음이배인 것 같았다. 국거리를 따진다면야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이들 모두가 해장감으로도맞춤한데 그중에 매생이국이 있다. 매생이는 아주 여리고 부드러운해초다.톳이나 파래는 나물로 무쳐 먹고 그보다 가늘고 부드러운 감태는 장을 만들고 김도 장을 만든다.이들 모두가 해초인데 거의 김처럼 여린 매생이는 향기와 감칠 맛이 그만이다.조금이라도 더럽혀진바다에서는 자랄 수가 없으니 매생이는 남해의 맑은 연안에서 조금씩나온단다. 매생이국은 다시물을 내어 마늘과 무를 넣고 푹 끓여서 밭여내어 맑은 국에다 매생이를 넣고 살짝 끓여 낸다.너무 끓이면 아예녹아서 연약한 매생이가 물처럼 되어버린다고 한다. 거의 죽처럼 부드럽게 된 것이 제대로 된 것인데 입안에 호물딱 넣으면 저절로 녹아국이 되는 느낌이다. 장날에 읍내의 시장 모퉁이로 나가면 아주머니들이 이른바 ‘세발낙자’를 함지에 산채로 담아 팔고 있다.세발낙자라고 하여 무슨 다리가 셋이 달린 낙지인 줄 알기가 십상인데 발이 가늘고 몸통이 작은어린 낙지를 말한다.어리고 작기는 하여도 방금 갯벌에서 꼬챙이에패어져 나온 것들이라 흡판의 힘 세기가 보통이 아니다.여기 사람들은 다른 고장 사람들에게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전에 언제나 잘못먹으면 죽는다는 엄포를 잊지 않는다. 심지어는 ‘요 얼마 전에’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숨이 막혀서’ 죽는 광경을 목격했노라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세발낙자를 먹을 때에는 우선 대가리를 잡고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로 낙지의 발가락들을 죽죽 훑어내린다.그러고나서 사정없이 대가리를 우적 깨물면서 두 손으로는 연신 낙지 발을 훑어내리면서 씹어먹는다.씹는 동안에도 흡판들이 간지럽게 볼따구니 안쪽과 혀에 간질간질 들러붙는다.도회지에서야 칼로 잘게 썰어놓은 산낙지 회를 먹는것만도 무용담꺼리가 되지만 세발낙자 먹기는 그야말로 엽기적으로보인다. 올림픽 때던가 국제 펜 클럽 모임 때에 수감된 문인들 석방시켜 보려고 해외 문인들과 몇 차례 자리를 같이 했었는데 누군가 짖궂게도 어찌하나 보려고 산낙지 회를 시켰다.그들이 소스라치던 얼굴이 생각나서 지금도 웃음이 난다.미국 회장이던 수잔 손탁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호기심 때문에 먹어 보고는 연신 맛있다고 했다.수년 뒤에 뉴욕에서 만났을 때에도 다시 그때의 낙지 얘기를 꺼낼 정도로 기억에 선명했던 모양이다. 이 세발낙자를 국으로 끓인 것이 목포의 저 유명한 연포탕이다.연포탕은 무와 양파와 마늘을 넣고 푹 끓이다가 맑은 국물에 어린 낙지를넣고 살짝 끓여 낸다. 파를 쳐서 먹는데 시원한 국물 맛이며 발갛게익은 어린 낙지의 살이 오돌오돌 씹히는 것이 술국으로도 그만이다. 낙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와 쌍벽이라고 할 수 있는 홍어를 빼놓을수가 없다.아니,홍어는 전라도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으뜸의 먹을 거리이다.경조사에서 홍어는 고기붙이 보다도 더욱 중요한품목이 된다.누군가 잔치에라도 갔다가 상에 홍어가 보이지 않으면그 집 잔치 먹을 것 없다고 투덜대고 홍어가 빠지지 않았으면 ‘잔치가 걸다고’ 만족해 한다.전라도 속담에 ‘만만하기는 홍어 거시기’라는 말이 있다.남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욱박지름을 당하면 항의조로나오는 게 이 말이다. 황석영.
  • 남북이산상봉/ 정창모·워커힐 엄기호씨

    “시간되면 술 한잔 사야함네” 북한의 인민화가 정창모(鄭昶謨·68)씨는 15일 점심 오찬장에서 쉐라톤 워커힐호텔 주임 조리사인 엄기호(儼基瑚·44)씨를 보자 반갑게어깨를 두드리며 먼저 말을 꺼냈다. 엄씨는 “정화백과의 재회가 너무 반갑고 기쁘다”며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때의 인연을 털어놓았다. 6월15일 저녁 고려호텔 조리사 20명과 남측 조리사 9명은 정성들여준비한 정상회담 만찬이 잘 끝나 기분이 좋았다.다음날인 16일 엄씨를 비롯한 남쪽 조리사들은 평양시내 관광에 나서 만수대 예술창작소를 찾았다.당시 엄씨가 만수대 안에 있는 정화백의 개인화실을 방문하게 된 것은 열려 있는 문사이로 걸려 있는 그림들 때문이었다. 평소 동양화를 좋아했던 엄씨는 정화백의 화실에서 “너무 반갑습니다.선생님은 붓으로 예술을 하시지만 저는 칼을 가지고 예술을 하는쉐라톤 워커힐호텔 조리사입니다”라고 재치있게 인사말을 건넸다.동행했던 북측 안내원의 소개를 듣고서야 정화백이 북한의 유명한 인민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엄씨는 즉석에서 사인을 부탁했다. 정화백은 엄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벽에 걸려 있던 동양화 한 점을떼어내 직인을 찍어 엄씨에게 주었다.안내원들은 “당신 동무래이 아주 행운을 잡았다 야”라며 부러워했다. 엄씨는 이날 “매화 그림을 볼 때마다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면서 “그림은 집안의 가보로 보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恨은 풀고… 情은 잇고…

    “하루 빨리 통일의 그 날이 와서 서로 이웃집 다니듯 다니며 정을나누도록 하자”(북측 방문단 류열씨) “우리 오래오래 살아 꼭 다시만나자우요”(남측 방문단 최성록씨). 정든 고향 땅에서 뜬 눈으로 설레는 밤을 보낸 남북 이산가족들은 16일 서울과 평양에서 다시 만나 2시간여에 걸쳐 못 다한 얘기를 주고받았다.분단 50년 만에 이뤄진 전날 상봉의 흥분과 감격,맺힌 한이채 가시지 않은 듯 숙소 곳곳에서 오열의 소리도 들렸으나 첫날의 단체상봉 때보다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 상봉의 기쁨을 나눴다. 남과 북은 이날 가족단위의 개별상봉에서 안내원을 배석시키지 않아이산가족들이 반세기 동안 쌓이고 쌓인 얘기를 거침없이 털어놓으며오붓하고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또 각자 준비해 온 때묻은 사진과앨범을 꺼내 놓고 지난 시간을 되새기는가 하면 정성껏 마련한 선물도 주고받았다. 류미영(柳美英)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북측 방문단 100명은 두 팀으로 나눠 이날 오전 10시,오후 3시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 남측 가족들과 이틀째 상봉했다. 이들은 워커힐 호텔과 잠실 롯데호텔에서 남측 가족들과 50년만에처음으로 한자리에 앉아 점심식사를 했으며 식사도중 웃고 울기를 되풀이하며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묻어둔 한을 풀고 얘기꽃을 피웠다.방문단은 상봉이 없는 시간에는 롯데월드 민속관을 둘러봤다. 류 단장은 이날 오후 서울에 살고 있는 차남 인국(53)·맏딸 근애(62)·막내딸 순애(48)씨와 비공개리에 상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단장으로 한 남측 방문단도 두팀으로 나눠 오전과 오후 번갈아 호텔에서 북측 가족들과 개별상봉을 갖거나 대동강 유람선 관광 및 단군릉 참관 행사를 가졌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북한 원로 국어학자 류열씨(82)는 전날에 이어여동생 인자씨(59·부산) 등 4명과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만나 남쪽가족들의 안부를 일일이 물으며 지난 세월을 되새겼다. 1·4 후퇴 때 생이별한 아내를 50년 만에 만난 남측 방문단 최성록(崔成祿·79)씨는 이날 평양 고려호텔 숙소로 찾아온 아내 유봉녀씨(75)의 손가락에 금가락지를끼워 주며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렸다.한편 전날 밤 단체상봉에서 과도한 감격과 흥분 때문에 이근하씨(71·경기 시흥시 신천동)가 급성폐렴증세를 보여 16일 아침 병원치료를받고 오후 일정에 참가했으며,정명희씨(71·강원 동해시)는 발목을삐기도 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서울만남 이모저모

    북에서 온 아들은 “오마니”를 외치며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았고,남쪽의 어머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열했다.기약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만남은 뜨거운 포옹과 눈물이 되어 분출했다. ◇ 상봉 ■안순환씨(65)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상봉 장소인 서울 삼성동코엑스에 나온 어머니 이덕만씨(87·경기도 하남시 초일동)와 동생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냈다.50년 동안 소식도 없던 아들을 만난 어머니 이씨도 아들의 뺨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씨는 “며느리에게 갖다 주라”며 미리 준비한 금목걸이를 아들의목에 걸어 준 뒤 연신 아들의 등을 두드렸다.안씨는 “북쪽에 가족이있느냐”는 동생들의 질문에 북한에 있는 가족사진을 꺼내 아내와 자식들을 소개했고, 어머니 이씨는 “며느리가 예뻐 합격”이라며 대견스러워했다. ■북한에서 축산 및 채소 생산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둬 ‘노력영웅’칭호를 받은 백기택씨(68)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딸 신금옥씨(50)를보고 숨이 멎는 듯했다. 옆에 서 있는 낯선 얼굴이 궁금했던 백씨는 여동생 문옥씨(67)로부터 “오빠,오빠가 의용군에 입대한 뒤 태어난 오빠 딸이야.오빠 딸”이라는 말을 듣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듯 움직이지 못했다. 유복자라는 이유로 외가에 입적돼 호적상으로는 백씨의 조카로 돼있는 딸 금옥씨가 “아버지,저 금옥이에요.아버지 딸”이라며 아버지품으로 달려들자 주변은 울음바다가 됐다. ■만주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전북 임실로 건너 온 뒤 전쟁 때 전주북중 입학증까지 받았지만 행방불명됐던 정춘모씨(63)는 계모 최순래씨(78)를 붙잡고 눈물을 쏟았다. 최씨는 “교복 입은 사진만 달랑 남겨 놓고 사라져 꿈같이 살아 왔다”며 울먹였고,여동생 정영자씨(54)는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북한에서 돌아올 때 하얀 비둘기가 집 안으로 날아든 뒤꼭 한 달 만에 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북쪽의 형 문병칠씨(68)의 생존 소식을 전해 들은 뒤사흘 만에 치매를 앓던 어머니 황봉순씨(90)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동생 병호씨(64·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는“어머니는 형님이살아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치매 환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기력을 회복했는데 사흘 뒤 ‘병칠이가 보고 싶다’고 손을 내저은뒤 갑자기 숨을 거두셨다”며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여동생 정자씨(59)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오빠의 손을 꼭 잡고는“오빠가 죽은 줄 알고 절에 위패까지 모셔 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왔다”면서 ”어머니가 한 달만 더 사셨어도 오빠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신문 논설위원을 거쳐 국회의원을 지낸 주영관씨(72)는 지난 50년 동국대 정치경제학부에 다니다 의용군에 입대한 동생 영훈씨(69)를 만나자 “어머니는 7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너를 찾으셨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영관씨는 “헤어진 이듬해 나도 바로 국군 연락장교로 입대해 너를만날 수 있을까 찾아 헤맸단다.서로 적군으로 총부리를 맞대더라도혹시 전쟁터에서라도 만나기를 고대했었는데 이제야 이렇게 만나게됐구나”라며 동생의 얼굴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인민군이 서울에진입한 바로 그날 중학생으로 의용군에 징집됐던임재혁씨(66)는 휠체어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치매로 듣지도 못하고말도 할 수 없는 아버지 임휘경씨(90·서울 양천구 목동)를 보고 목이 메었다. 재혁씨는 형 창혁씨(71)에게 “어머님,어머님은…”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지만 “15년전 돌아가셨어.늘 네 얘기만 하시곤 했는데…”는 말을 듣곤 할 말을 잃었다.. ■박노창씨(69)는 조카들로부터 큰형 원길씨(89·서울 은평구 신사동)가 상봉을 이틀 앞두고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맥이 풀렸다. 노창씨는 지난달만 해도 6남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고 통보된큰형의 운구가 이날 오전 8시30분 장지인 경기 파주시 금촌면으로 향했다는 말에 “믿을 수 없다”며 망연자실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큰아들 조진용씨(69)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 정선화씨(95)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면서 쓰러져 들것에실려 아들을 만났다.정씨는 고령에다 아들을 만난다는 설렘 때문에아침은 물론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못해 기력이 쇠약해진 것으로알려졌다.■상봉 가족수를 제한해 코엑스에 가지 못하고 8남매 중 맏이인 오빠 김용환씨(68)를 만나러 무작정 쉐라톤워커힐 호텔로 찾아온 용순(50)·용란(43)씨 자매는 오빠 용환씨가 코엑스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기 전 ‘기적’같이 자기 이름이 적힌 피켓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자 “오빠,오빠”를 연호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정태씨(72)를 만나러 온 매부 신현묵(75)씨와 형수 박정우(70),계수 연종술(63)씨도 워커힐호텔 로비에서 ‘환영 김정태’라고 적은종이를 들고 이름을 연호하다 버스에 오르는 이산가족들의 줄이 끝날무렵 김씨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남측 이산가족들은 오후 3시쯤 버스 편으로 컨벤션센터 동문에 도착,3시30분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행사장에 들어와 정해진 탁자에앉았으며,4시10분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을 출발한 북측 가족들은 태진아의 ‘어머니’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4시40분쯤 홀에 들어와눈물의 상봉을 했다. 북측 가족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번호표를 들고 홀 입구의 상황판에서 자기 번호와 같은 번호가 적힌 탁자를 확인한 뒤 탁자를 찾아가남측 가족들을 만났다. ◇ 김포공항 ■북측 가족 151명을 태우고 공항에 도착한 북한 고려항공 승무원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남측 승무원들과 악수를 나누었다.고려항공 승무원들은 오전 11시30분쯤 북측 가족들이 국제선 2청사 17번 게이트를통해 빠져나간 뒤 게이트 앞에서 10분 간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대한항공 김홍정 사무장(52)과 유은아씨(27) 등 스튜어디스 5명은게이트 앞으로 나온 박승남 기장(46) 등 10여명의 고려항공 승무원들에게 꽃다발과 기념시계를 선물했다. ◇ 워커힐호텔 ■밤 10시쯤 숙소인 워커힐호텔에 돌아온 북측 방문단들은 대부분 상봉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상기된 얼굴로 “내일 다시 만나도 울음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57분 김포공항에 도착한 북측 이산가족들은 숙소인 워커힐호텔로 이동,방 배정을 받은 뒤 여장을 풀고 호텔 식당에서 서울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점심은 갈비찜,은행죽,인삼야채무침,민어삼색전 등이 곁들여진 한정식으로,호텔 관계자는 “상봉단이 대부분 노령층이어서 먹기 좋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대부분의 북측 이산가족들은 “김치가 제일 맛있다”면서 “같은 조선 사람들인데 달리 맛을느끼겠느냐”며 남북 동포들이 한 입맛임을 강조했다. 북측 가족들의 가슴에는 김일성배지와 함께 인공기와 적십자 표시가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배지가 달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북측 가족들은 신원을 증명하는 명찰도 휴대하고 있었다. ◇ 올림픽파크텔 ■밤 10시30분쯤 올림픽파크텔에 도착한 남쪽 가족들도 북한 방문단과의 상봉의 순간을 다시 되새기며 16∼17일의 개별 상봉시간은 어떻게 보람있게 보낼까 의논했다. 이날 아침 남측 가족들 중에는 잠을 설친데다 50년 만에 가족들을만난다는 기대 때문에 올림피아홀에 마련된 아침 식사를 제대로 들지못하고 남기는 사람이 많았다. 한편 남쪽 가족들은 기자들이 객실로 몰려와 취재 경쟁을 벌이자 가족간 대화 등에 방해가 된다며 기자들의 객실 출입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호텔측은 송파경찰서의 지원으로 이산가족들이 머무는 각 층마다 의경 2명씩을 투입해 객실 접근을 막았다. ◇ 한국종합전시장■북측 방문단과 남측 이산가족은 이날 저녁 대한적십자사가 강남구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COEX) 그랜드볼룸에서 주최한 환영만찬에 나란히 참석,재회의 기쁨을 함께 했다. 만찬은 상봉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예정보다 1시간여 늦은 오후 7시40분께 시작됐으며 남북 상봉자 600여명과 한적 관계자 100여명 등이 참석했다. 한적 봉두완(奉斗玩) 부총재는 환영사에서 “만나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50여년동안이나 미뤄왔는가”라면서 “반세기 동안 간직했던회포를 이 자리에서 맘껏 푸시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평양만남 이모저모

    ◇ 평양 단체상봉■평양 방문단은 15일 오후 5시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북녘의 가족·친지들과 50여년 만의 감격스런 ‘단체상봉’을 가졌다. 호텔 2·3층에 마련된 상봉장은 남북 가족이 만나는 순간 울음바다를 이뤘다.서로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2층의 상봉장에는 방북단 60명이,그리고 3층 상봉장에는 40명이 자리했다. ■20년 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고 상봉장에 나온김금자(金今子·69·서울 강동구 둔촌동)씨는 사촌 김금도(72)·금년(69)씨를 만났다.금자씨가 “허리는 아프지만 이를 악물고 만나러 왔어”라고 말하자 이들은 “이렇게 아픈데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며 함께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그러나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오빠 어후씨(71)가 고혈압 때문에 나오지 못했다는 말을듣고 다시 오열을 터뜨렸다. ■한때 고혈압으로 여행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방문단에 포함된 김상현씨(62·서울 송파구 마천2동)는 누나 상월씨(70)와조카 이예숙씨(50)를 만나 50년 응어리진 한을 풀었다.2남2녀의막내로 태어나 누나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김씨는 “누님에게 안겨보는 것이 희망이었는데 이제야 소원을 풀었다”고 기뻐했다. ■남한에서 올라온 아버지 이재경씨(80·경기 부천시 원미구)를 만난딸 경애씨(52)는 “결혼식을 앞두고 왼쪽 뺨에 난 점을 빼려고도 했지만 아버지가 내 얼굴을 몰라볼까 점을 빼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개성 출신의 이윤용씨(82·경기 성남시)는 처남 김홍규씨(63)를 왈칵 껴안으며 “다 컸네.걱정 안해도 되겠네”라고 말했다.홍규씨는“돌아가신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다들 매형이 폭격을 맞아 죽은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계시다니 기쁘다”고 매형을 얼싸안고 흐느꼈다. ■남동생 후열씨를 만난 황해 사리원 출신의 양영애씨(70·강원 동해시 부곡동)는 “엄마가 어떻게 돌아가신 줄 아느냐.평생 너를 가슴에묻고 한에 사무쳐 돌아가셨다”며 울부짖다 땅에 쓰러져 주위 안내원들의 부축을 받고 가까스로 몸을 추슬렀다. 또 평양방문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김정호씨(91·서울 강서구 가양동)는 1·4후퇴 때 눈보라때문에두고 와 평생 한이 됐던 외동아들 덕순씨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흘렸다. ■평북 박천 출신의 김사용씨(74·서울 문래동)는 지난 51년 헤어진아내 이옥녀씨(72)와 당시 1년 6개월 된 딸 현실씨(51)를 보자 왈칵껴안으며 “살아줘서 고맙다”고 울음을 터뜨렸다.김씨는 지난 51년평양에서 징집돼 전쟁포로가 되면서 헤어지게 된 상황을 되뇌며 “당신이 애(현실) 고사리 손을 쥐어 올리며 ‘잘 다녀오세요’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번 상봉에는 북측 기자들이 치열한 취재 경쟁을 벌여 관심을 모았다.노동신문,조선중앙TV,조선중앙통신,민주조선,평양신문,통일신보,청년전위,조선기록영화촬영소,내나라 비디오,중앙방송,금성청년출판사 등 20여개사 10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중국의 신화사,인민일보와 러시아의 이타르타스 등 외신들도 취재팀을 파견했다. ◇ 인민문화궁전 만찬■오후 8시부터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조선적십자회 초청 만찬은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방북단 일행은 조금전 북쪽 가족들과의 해후에대한 흥분과 감격으로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러나 가족들이 빠지고 북측 안내원들이 함께 자리에 앉게 되자 못내 아쉬워하기도했다.저녁식사로는 고기종합보쌈,생선묵과 감자무침,김치,쉬움떡(술떡),메추리알국,볶음밥,닭강냉이즙,칠색송이구이,버섯완자볶음,수박,과줄,인삼차 등이 나왔다. ■1층 만찬장에는 헤드테이블 1개와 30개의 원탁테이블이 놓였다.식사가 계속되는 동안 만찬장에는 ‘반갑습니다’‘아리랑’‘나의 살던 고향은’ 등 우리 귀에 익은 음악들이 연주됐다. ■장재언(張在彦)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환영사를 통해 “우리모두는 오늘의 이 뜻깊은 자리가 가족적 범위를 벗어나 분열의 비극을 끝장내고 화해와 통일의 새 전기를 마련하는 민족사적 대업을 성취해 나가는 데 기여하게 되도록 뜻과 마음을 합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북단장인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답사에서 “우리적십자 성원들은 더 늦기 전에 한명의 이산가족들이라도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편지를 교환하며 다시 만나 함께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고려항공 기내표정■이날 낮 12시쯤 남측의 평양 방문단이 탑승을 시작한 북한 국적 고려항공 비행기 내부는 장식이나 시설이 다소 떨어지는 수준이었으나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민요가락이 흘러나오는 등 친근한 느낌을 주었다.비행기내 모든 표지는 우리말과 영어가 함께 기재돼 있었는데 이중 ‘안전벨트’를 ‘박띠’로 표기하는 등 재미있는 우리말 표현도눈에 띄었다. 비행기 이륙후에는 “이제부터 청량제를 봉사하겠습니다”란 안내방송과 함께 6명의 승무원들이 룡성맥주,오미자단물,금강산 샘물 등을제공했다.‘가공물고기’란 이름의 명태포도 인기를 끌었다. ◇ 순안공항 도착■방북단 일행을 태운 고려항공 IL62기는 예정보다 5분 빠른 오후 1시45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비행기가 도착하자 마중나온 30여명의 환영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고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순안공항에는 소나기가 내린 듯 활주로 곳곳이 젖어있었고,일행이평양 시내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간간이 소나기가 내렸다.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과 최윤식 평양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조춘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허해룡 조선적십자회사무총장, 허혁필 민화협 부회장 등이 영접을 나왔다.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북측 장 위원장에게 “반갑습니다.좋은 날 이렇게 공항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다.북측 장 위원장은 “잘 오셨습니다.보고 싶었습니다”라고 답했다. ◇ 고려호텔 도착■광복절 휴일을 맞은 평양거리는 차분했다.이산가족 방북을 환영하는 현수막이나 지난 정상회담 때의 시민들의 열광적 환영은 찾아보기힘들었다. 다만 간간이 지나는 시민들이 멈춰서서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면서 이들을 환영했다. 방북단은 지난 6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문 당시 취재단이 지나온 길을 따라 평양 시내를 거쳐 오후 3시5분쯤 상봉장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했다.고려호텔 정문에는 곱게 단장한 한복과 유니폼을 입은 호텔 여직원들이 양쪽에 늘어서 ‘환영합니다’라며 박수로 반갑게맞았다. ■호텔에 도착한 이산가족들은 1층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다.점심메뉴로는 녹두지짐,평양냉면,김치 등이 나왔고 후식으로 얼음보숭이와 신덕샘물이 마련됐다.식당 중앙뒤편에 마련된 대형TV에서는 왕재산경음악단의 ‘기쁨만을 드리고 싶어라’등 각종 경쾌한 음악이연주됐다. ◇ 서울 출발■이산가족 100명과 수행원,취재기자단 등 151명으로 이뤄진 우리측평양 방문단은 오전 9시30분 버스 10대에 나눠 타고 숙소인 쉐라톤워커힐 호텔을 출발,역사적인 평양 방문길에 올랐다. 10시30분 김포공항 국제선 2청사에 도착한 방북단은 대합실에서 배웅나온 가족과 친지들의 환송 속에 출국장으로 들어섰다.여객라운지에 모인 방북단 일행은 준비한 선물꾸러미를 거듭 살피며 탑승시간을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뒤 만날 북녘 가족들의 옛 얼굴을 더듬기도 했다. 고려항공기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은 오후 1시 활주로를 이륙,반세기의 세월을 거슬러 평양으로 힘차게 날아 올랐다.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상봉 첫날 쏟아진 말 말 말

    역사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 첫날인 15일 북쪽의 이산가족들은 50여년 동안 쌓여 있던 응어리진 한(恨)을 담은 말들을 쏟아냈다. ●이 가까운 길을 50년 동안 기다려 이렇게 멀리 왔다. 리래성씨가김포공항 도착 직후 소감을 밝히면서. ●식사 중에서는 갈비찜이 가장 맛있었다.조선사람인데 달리 맛을 느끼겠느냐. 전덕찬씨가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고마움에 대해 절절이 느낀다. 남측땅이라고 해서 북측땅과 다를 바 없다. 김규설씨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소감을 묻자. ●보름만에 서울에 왔는데 올 때마다 통일의 열기가 높아지는 것이느껴진다 12번째 서울에 온 북측 수행기자 최영화씨가 방문 소감을묻는 남측 기자들의 질문에. ●남한 음식은 약간 달다.다음에는 달지 않게 해달라. 북측 방문단단장인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이 워커힐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한뒤. ●감개무량하다.선물은 비밀이다. 북측 방문단 수행원으로 서울에 온장윤철씨가 서울 방문 소감을 묻자. ●살아계신다고 할 때가 언젠데 이제는 돌아가셨다고 하니 어느 말을 믿어야 하느냐.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남측 방문단의 장이윤씨,방북 출발에 앞서 최근 사망했다는 노모에 대한 기억을떠올리며. ●길 막히는데도 흐뭇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봉단과 취재진 때문에 교통이 혼잡한 쉐라톤워커힐호텔 앞에서 택시기사가.
  • 北 노동자 매일 1시간 낮잠 보장

    “노동자에게는 매일 1시간씩 낮잠이 보장되고,국가 공휴일·민속명절 외에도 연간 14일간 정기 유급휴가를 갖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국내외 연구소 등지에서 수집해 14일 발간한 책자 ‘북한의 노동법제’에 담긴 북한노동자들 휴가규정의 일부다. 경총은 남한기업들의 대북투자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이 책에서북한 노동자들의 휴가일수,급여,고용 및 해고 등의 규정을 상세히 싣고 해설도 곁들였다. 이 책에 따르면 북한 노동자들은 아침 8시에 출근해 낮 12시까지 오전근무,12시부터 1시간동안 점심식사,오후 1시부터 2시까지 낮잠을자며 2시부터 6시까지 오후근무에 들어간다.또 매주 하루의 휴일과연간 18일인 국가명절·민속명절 이외에 연간 14일의 정기 유급휴가와 7∼21일의 보충휴가를 얻을 수 있다. 임산부에게는 산전 60일,산후 90일 등 모두 150일의 유급휴가가 보장된다.남한의 직장여성들(60일)보다 후한 대접을 받는 셈이다. 북한의 여성이나 소년 근로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는다.여성에게는힘들고 건강에 해로운 작업을 시킬 수 없으며,젖먹이 아이를 가졌거나 임신한 여성근로자에게는 야간근로를 금지하고 있다. 북한의 시간외 근로는 직업동맹조직과 합의해 탄력적으로 운영된다. 월단위의 탄력시간근무제(변형근로제)도 남한과 마찬가지로 허용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월평균 임금은 100∼150원.공식환율(북한돈 2.15원=1달러)을 적용할 때 우리 돈으로 5만∼7만5,000원 정도가 된다. 북한내 외국투자기업의 종업원 임금은 종전에는 ‘220원(한화 11만원)보다 낮지 말아야 한다’고 최저임금을 명시했으나 지난해 노동규정 개정때 ‘중앙노동기관이 정한다’로 바꿨다.또 외국기업은 임금을 근로자에게 직접 지급할 수 없고 노동력 알선기관을 통해 줘야 한다. 육철수기자 ycs@
  • 남북離散 상봉/ 오늘 서울·평양은‘눈물의 도시’

    15일은 남북한 모두 ‘눈물 바다’가 될 것 같다.서울과 평양에서 50년 만에 상봉하는 이산가족 당사자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힐 것이다. 남북당국이 ‘항공기 1대 순차이용’으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 북측이산가족이 먼저 서울에 도착하고,우리측 이산가족은 그보다 2시간쯤 뒤에 평양 땅을 밟게 됐다. ◆15일 서울 방문단은 김포공항에서 간단한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숙소인 쉐라톤 워커힐호텔로 이동,여장을 풀고 오찬과 간단한 휴식을취한다.이어 오후 4시 단체상봉 장소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컨벤션홀에서 꿈에 그리던 남쪽 가족들과 감격의 상봉을 한다.2시간30분여 상봉행사가 끝나면 같은 건물 1층으로 자리를 옮겨 가족들과 밤 9시 정도까지 저녁식사를 한다.첫날 상봉시간이 총 5시간이 넘는 셈이다. 평양방문단은 당초 일정보다 2시간쯤 늦게 도착한 관계로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짧은 휴식을 가진 뒤 인민문화궁전이나 평양체육관에서북의 가족들과 집체상봉(단체상봉)을 한다.2시간여 상봉행사가 끝나면 가족들과 헤어져 조선적십자회 주최 공식만찬에 참석한다. ◆16일 서울방문단은 A,B 2개조로 나뉘어 오전과 오후 개별상봉과 롯데월드민속관 참관 행사를 갖는다.개별상봉은 숙소인 워커힐호텔 객실에서 가족별로 진행되는데,남북 당국자가 입회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끼리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점심식사도 워커힐호텔과 롯데호텔에서 가족과 함께 한다.저녁에는 가족들과 헤어져 신사동 삼원가든에서 열리는 대한적십자사 주최 만찬에 참석한다. 평양방문단은 오전 숙소인 고려호텔에서 개별상봉을 한 뒤 가족들과점심을 함께 한다.오후에는 가족들과 헤어져 세계 최고 수준의 평양교예단 공연을 관람한다. ◆17일 서울방문단은 전날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개별상봉을 한다.시내관광으로는 창덕궁 참관이 예정돼 있다.저녁에는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 주최 환송만찬(한남동 그랜드 하얏트호텔)에 참석한다. 평양방문단은 오전 개별상봉에 이어 오후에는 가족들과 헤어져 을밀대나 동명왕릉 등의 유적지를 참관한다.저녁에는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서 열리는 평양시인민위원회 주최 만찬에 참석한다.마지막날인 18일 정식 상봉행사가 없기 때문에 이날 개별상봉이 사실상의 마지막 상봉이라 할 수 있다. ◆18일 남북 방문단은 가족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서울과 평양으로 각각 귀환길에 오른다.방문단이 공항에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설 때 가족들은 현관 등에서 손을 흔들거나 부둥켜 안는 등 잠시 석별의 정을 나눌 시간은 있을 것 같다. 김상연기자 carlos@
  • 고시·자격증 전문 인터넷사이트 인기

    ‘이제 고시공부도 인터넷 시대’ 사법시험,행정·외무고시와 각종 자격증시험 강의를 인터넷 동영상으로 제공하는 사이트가 늘어나고 있다.이들 사이트는 각 학원의 유명강사,현직 대학교수 등을 섭외해 다양한 강좌를 제공,수험생들에게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 동영상으로 고시·자격증 강좌를 제공하는 사이트는 줄잡아 10여개.자격증 강좌 전문 사이트인 테크빌닷컴(www.tekville.com),책상과 걸상(www.desknchair.com),고아카데미(www.goacademy.com),고시전문 사이트인 OK고시(www.okgosi.co.kr),채널로(www.chlaw.co.kr)등이 있다. 이 가운데 LEC(www.lec.co.kr)와 와우패스(www.wowpass.com)가 동영상 강좌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LEC가 고시 강좌를 전문으로 제공한다면 와우패스는 금융관련 전문 자격증과 공무원 시험이 전문 분야다. 동영상 강좌의 가장 큰 장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강좌를 들을 수 있다는 것.컴퓨터와 인터넷 전용선이 있는 곳이라면 굳이 학원에 가지 않아도 손쉽게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강의를 놓쳐도 다른 수험생들의눈치를 보며 강사에게 되풀이를 요구할 필요도 없다.동영상 화면의 되돌리기,건너뛰기 등을 이용해 원하는 부분만 다시 시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에게 현실적인 고민으로 다가오는 수강료도 일반 학원 강의보다 저렴하다.수강료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4만∼6만원 선.최고 50%까지 싼 가격이다. 이같은 장점때문에 소위 잘나가는 사이트의 경우 한 과목에 100여명가까운 수강생이 몰리기도 한다. 수험생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다양하다.온라인 학습조언이나 인터넷 모의고사는 기본.와우패스는 강의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일부강좌의 ‘강의 리콜제’를 도입,동영상 강좌를 듣고도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수강생들에게 강의료 50%를 환불해 주기로 했다. LEC의 경우 인터넷을 접하기 어려운 수험생들을 위해 PC방과의 연계를 추진하는가 하면 유명 학원의 강의를 독점 제공하기 위해 작업중이다. 동영상 강좌의 성공 열쇠는 화질,속도,연속성의 3박자.화면이 흐릿하거나 전송속도가 느려 강의가 끊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이 경우수강생들에게 ‘퇴출’당하기 십상이다. 한 사이트 운영자는 “빠르고 선명한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접속이 많은 점심시간과 밤 10시부터 새벽 1시를 피하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최여경기자 kid@
  • 이산가족 방문 민항기로

    남북 양측의 8·15이산가족 방문단은 오는 15일 오전 비행기로 서울과 평양을 동시 방문,3박4일의 체류기간에 총 5차례 가족과 상봉한다.방문단은 18일오전 각각 서울과 평양을 떠나 역시 항공편으로 귀환한다. 남북 적십자사는 9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에서 이같이 합의했다. 통일부 홍양호(洪良浩) 인도지원국장은 “남북 양측의 이산가족 방문단 각100명은 15일 오전 10시 민간항공기 편으로 평양과 서울을 동시 출발할 것”이라며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 때 이동경로인 서해 항로를 이용하고 공항에는 적십자사 책임자나 부책임자급이 영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 방문단이 이용할 고려민항기는 15일 김포공항으로 들어올 것으로 알려졌는데,이 항공기는 사상 처음 남한땅에 착륙하는 북한 국적기가 된다. 홍 국장은 “양측 방문단은 첫째날인 15일 오후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단체상봉을 갖는다”며 “둘째,셋째날엔 호텔 객실에서 가족끼리 개별상봉을 각1회씩 가진 뒤 점심 때 다시 만나 오찬을 함께 하기 때문에 총 5회를 만나는셈”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방문단과 만나는 가족 수를 5명 정도로 제한하기로 했다.양측 방문단은 둘째,셋째날에 유적지 등 시내관광을 하게 된다.서울 방문단은 창덕궁등을 관람한다. 공식 만찬은 첫째날인 15일과 셋째날인 17일 등 2차례 갖기로 했다.15일 서울에선 한적,평양에선 북적이 주최한다.17일에는 서울에선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이 공식만찬을 주최할 예정이다.공식만찬에는 가족 없이 방문단 151명만 참석하게 된다. 홍 국장은 “방문자와 가족이 함께 투숙하거나 시내관광 동행,가정방문,성묘 등은 하지 못한다”며 “1일 1회 행낭을 판문점을 통해 전달하고 TV중계는 녹화 위성송출 방식으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홍국장은 “북측이 지난달 26일 생사확인 통보 명단에서 제외됐던 나머지 62명의 가족을 계속 찾고 있다고 우리측에 오늘 전해왔다”며 특히 “이들 62명의 경우 앞으로 면회소가 설치되면 가족을 상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북측이 밝혔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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