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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영 ‘중부권 공략’ 본격화

    정동영(얼굴)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19일 대전·충남 공략에 나섰다.그동안 민생현장 방문은 남대문시장 등 수도권에서 반나절 일정으로 진행됐으나 이날은 고속철 시승,충남대·한국과학기술원·한남대 정책토론회 참석 등 오후까지 이어지는 하루 일정으로 진행됐다. 서울역에서 과학기술의 총아인 고속철을 타고 50분 만에 대전역에 도착한 정 의장은 “하드웨어는 세계적 수준이니 소프트웨어가 뒷받침되면 좋겠다.”면서 “영·호남이 동시 개통돼서 기분이 좋다.”고 시승 소감을 밝혔다. 충남대 학생회관에서 점심을 겸해 마련된 ‘깜짝 토론회’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지난 50년 동안은 중앙으로 돈이 집중되던 시대였다.이것을 180도 바꾸겠다는 게 우리당의 철학”이라면서 “지방분권특별법,신행정수도건설법 등이 우리당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와 입법됐다.”고 말했다. 이날 민생 현장방문이 선거운동의 장으로 본격화된 것은 당 국정자문위원회가 마련한 대전·충남 정책토론회에서였다.정 의장은 축사에서 “큰 기삿거리가 있다.”며 자민련소속의 심대평 충남지사와 한나라당 소속인 염홍철 대전시장과의 만남을 소개,장내를 술렁이게했다. 정 의장과 함께 지역을 방문한 김혁규 상임중앙위원이 심대평 충남지사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박영선 대변인은 이와 관련,“서로 협력해보기로 했다.입당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자민련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정 의장이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실에서 20분간 직접 만났다.“지역분할과 부패정치를 바꾸기 위해,역사의 물줄기를 넘기 위해,서로 모색해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정 의장은 “신행정수도 공약때문에 정권을 못잡았다고 생각하는 측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신행정수도 이전이 언제 이뤄질 지 모른다.”며 “지방사람들도 서울사람처럼 대접받으려면 우리당이 승리해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대전 박현갑기자 eagleduo@
  • 盧후원회 前사무국장집 수색

    ‘대통령 측근비리’ 김진흥 특별검사팀은 썬앤문그룹 김성래 전 부회장의 농협 115억원 사기대출과 관련,농협 직원들을 19일쯤 소환·조사하기로 했다. 김성래씨 측근으로 사기대출 사건의 공범인 이모(구속)씨를 소환·조사한 특검팀은 “사기대출 당시 농협 원효로 지점에서 대출을 도와준 정모(구속) 전 과장과 지점장 J씨 등을 불러 대출 경위를 조사할 것”이라고 18일 밝혔다. 김성래씨는 2002년 12월∼지난해 3월 위조서류로 115억여원을 대출받은 뒤 계몽사 인수자금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1심 재판을 받고 있다.대출과정에 정치권 인사가 개입,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돼 왔다.특검팀은 당시 지점장 등 대출 책임자급을 소환,외압유무를 재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특검팀은 지난 17일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후배인 홍모(49)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홍씨는 지난 대선 직전까지 노무현 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다.지난해 초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이 노 대통령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도록 두차례 자리를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았다.특검팀은 홍씨가 부산상고 인맥을 이용,불법자금을 모금했다는 의혹과 관련,수사단서 확보차원에서 자택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전해졌다.압수한 통장,메모지 등을 정밀·분석한 뒤 설연휴 이후에 홍씨를 소환,문병욱씨가 노 캠프측에 불법자금을 제공할 때 개입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정은주기자 ejung@
  • [김영희 이혼클리닉-만남, 사랑 그리고 헤어짐]집안일·돈 ‘두마리 토끼’는 욕심

    30대 맞벌이 부부입니다.세살난 딸아이를 사설 육아원에 맡기고 출퇴근하고 있습니다.아내는 직장일 때문이라며 매일 귀가시간이 늦습니다.집안 살림도 딸아이도 엉망입니다.직장을 그만두라 했더니 못 하겠다며 이혼해도 좋답니다.저도 이혼하고 싶습니다.-경기도 고양시 박상철(가명) 박상철씨.2003년 11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경제활동 인구가 남성 1366만명,여성 955만 8000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여성 경제활동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요. 상철씨.세살 난 어린 딸을 남에게 맡겼다가 퇴근 후 찾아 올 때면,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내가 차려놓은 따뜻한 저녁상 앞에 둘러앉아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며,자식들 재롱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싶은 게 모든 남편들의 바람이겠지요. 상철씨.몸은 여자면서 직장에서는 남자로,퇴근 후에는 다시 여자로 돌아가야 하는 맞벌이 아내들의 딱한 처지를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직장일로 지치고 피곤하기는 남편이나 마찬가진데,집에 들어서자마자 허겁지겁 부엌으로 달려가 죄인인 양 남편 눈치를 살펴야하는 자신의 처지에,가끔씩 심사가 뒤집힌다고 합니다.남편보다 늦는 날이면 잔뜩 벼르고 있던 남편은 직격탄을 쏘아대고 “누군 좋아서 이러고 다녀.당신은 손 없어.여자만 집안일 하라는 법 있어?”라며 맞받아치게 되고,남편은 그 잘난 직장 당장 때려치우라고 소릴 지르고….이렇게 맞벌이 부부들의 전쟁이 시작되지 않나 싶습니다. 상철씨.맞벌이 여자들이 땀 흘려 일하고 있는 동안 쇼핑에,외식에,찜질방,노래방을 전전하면서 편히(?) 살고 있는 여자들도 많은데,한 푼이라도 벌어보겠다고 고된 맞벌이를 하고 있는 부인에게 격려를 보내줘야 할 것 같네요.일부 맞벌이 아내 중 살림은 ‘나 몰라라.’하는 사람도 있나본데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깨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상철씨.가정은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며 작은 사회입니다.지금 상철씨네는 맞벌이 부부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없이 맞벌이를 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생각이고,맞벌이는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오늘의 투자라고 생각하십시오. 상철씨.미국에서 27년째 살고 있는 제 아들은 대기업 간부로 일하고 있습니다.몇년 전 아들 집을 방문했을 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들이 와이셔츠를 다리고 있더군요.‘웬 다리미질이냐.’며 내가 뺏으려하니 “캐롤(며느리 이름)도 직장에 나가는데 아침식사 준비해야지,화장도 해야지,집도 치워야지,애들 보육원에 데려다 줘야지,할 일이 너무 많아요.내 옷은 내가 다려 입어야지요.”라고 하더군요.합리적인 아들 생각에,참 부끄러웠습니다. 나를 믿고 의지하며 사는 여자,예쁜 자식을 낳아준 여자,평생을 같이할 인생의 동반자.아내에게 붙여줄 이름은 수 없이 많습니다.남편의 다정한 말 한마디로 온갖 고달픔이 봄눈 녹듯 녹아버리는 아내들인데,세상 남편들은 왜 그 한마디 말을 아끼는지 모르겠어요. 상철씨.이혼은 최선의 선택이 아닌,최후의 선택입니다.최선의 노력을 다해본 후,이혼을 결심해도 늦지 않습니다.맞벌이를 꼭 해야만 하는 집안형편인지,아내가 직장에서 늦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알아보세요.경제적인 이유로 맞벌이를해야 하고 일 때문에 아내가 직장에서 늦는 거라면,상철씨가 집안일을 당연히 도와야겠지요.돈도 벌어 오고 집안 살림도 잘 하는 아내가 되기란 어렵습니다.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생각은 욕심이지요. 상철씨가 먼저 생각과 행동을 크게 바꿔 보세요.달라진 상철씨를 보고 아내도 달라질 것입니다.아내보다 일찍 집에 들어온 날은 서툰 솜씨라도 저녁식사를 준비해 놓고 있다가 늦게 들어오는 아내에게 “오늘 저녁 내가 했어.당신 기다리느라 배고파 기절할 것 같다.”라고 엄살도 부려보고,식사 후엔 “들어오다 가게에서 귤 사왔어.달고 맛있더라.같이 먹자.”라고도 해보세요.일요일엔 쓰레기도 치워주고 딸아이를 안고 “엄마 쉬게 아빠랑 놀자.”고 하세요. “당신 빨래하는 동안 나는 청소 할게.점심 먹고 우리 바람 쐬러 나가자.”며 한강변이나 동네 공원길을 딸아이 손잡고 함께 걸으며,아내가 직장에서 속상한 일은 없는지 일이 힘들지는 않는지 물어봐 준다면,남편에게 하소연을 한 아내는 가슴 속이 날아갈 듯 후련해질 것입니다. “당신 많이 힘들지.남자인 나도 그러는데….우리 조금만 참자.고생시켜 정말 미안해.” 이 한마디가 상철씨 가정을 따뜻하게 해 줄 것입니다.너그러움도,배려하는 마음도 습관으로 옵니다.“생각을 바꾸니 이렇게 편한 것을.”이 말을 상철씨는 두고두고 할 것입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1)무너지는 소도시 상권

    농촌 경제의 어금니였던 읍내 상권이 무너졌다.구매력의 원천인 농민들은 호주머니가 비었다.농협 빚이 자라나 원금과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는 연체자 비율이 회원농협별로 조합원의 8∼20%를 웃돈다. 대목 중의 대목인 설이 코앞에 닥쳤지만 읍내 거리는 썰렁하다.경기(景氣)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고 한다. ●물좋다는 다방·모텔 매물 홍수 이농에 따라 인구가 줄면서 관공서들도 하나 둘 떠났다.자석처럼 손님을 끌고 다니며 읍내 경제를 쥐락펴락 하던 공무원들도 철수하거나 구조조정으로 그 수가 크게 줄었다. 또 읍내 우회도로나 국도 주변에 들어선 대형 할인마트들이 주차시설과 값싼 가격,편리함을 내세워 수백명이 북적거리는 시장을 대신하고 있다.여기다 고속도로 등 도로 확장·포장과 개설로 접근성이 좋아지자 읍민들도 시 단위 시장을 찾아간다.경북에서는 2001년 이후 대구에서 왜관,김천∼구미,구룡포∼포항 국도가 4차로로 확장되면서 군위·의성·청도·칠곡군 등 대구권역 군들은 개발 기대와는 달리 지역상권이 오히려 위축됐다.특히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인근 군 지역의 인구가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으며,시가지 상가매출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군청과 가장 번잡하다는 중앙로·버스터미널·5일시장 주변 등 이른바 황금상권도 수천만원을 웃돌던 권리금이 없어졌다.상인들은 “경기침체라는 홍역에다 농촌붕괴로 상가마다 링거를 꽂고 연명하는 중환자 신세”라며 하소연이다.“하던 일인데다 마땅히 할 것도 없고 내 집이어서 하루하루 장사한다.”며 더 묻지 말라고 손사래다.읍내마다 내려진 셔터나 출입문 위에 ‘휴·폐업.임대.건물 세놓음.몽땅세일’ 등 부도난 건물에나 붙어 있을 법한 종잇장이 나붙어 있다.2000년대 이후 ‘물좋다.’는 다방이나 모텔도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의성군 1년새 100여개 문닫아 가장 큰 문제는 농촌에 현재 소득원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불확실성에 있다.이 때문에 고향을 지키던 젊은이들이 도시로 도시로 흘러들고 있다.날품을 팔고 노점상을 하더라도 도시가 낫다는 생각에서다.하루라도 빨리 고향을 뜨는 게 당대는 몰라도 자식을위해서라도 밑지지 않은 장사라고들 말한다. 특별취재팀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 대구 김상화기자 농도인 전남도는 어느 지역보다 심각하다.전남도민(206만명)의 25.3%인 52만명이 농민이다.도내 22개 시·군 중 5개 시를 제외한 17개 군의 경우 전체 주민의 절반이 농민이다.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전 군민의 20%를 넘는 곳도 있다.강진군의 경우 관내 130개 중소기업 가운데 최근 2년 새 11개가 휴업하고 5개가 폐업했다.읍내 상가번영회 김병완(60) 회장은 “군민 전체라야 5만명도 안되는데 무슨 장사가 되겠느냐.”며 “읍내 600여개 상가 가운데 지난 2년 동안 100여개 업체가 휴·폐업했다.소규모의 구두가게·양복점·식당·옷가게 등이 손들고 나갔다.”고 말했다. 마늘과 사과·고추 주산지로 돈이 돌았던 경북 의성군을 비롯해 군위와 예천,영양,청송군의 읍내도 폐업과 매물로 넘쳐난다.의성군의 경우 1800여개 업소 가운데 1년 새 100여개 업소가 문을 닫았다.800여개가 가게를 내놨으나 거래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가게당 1000만∼5000만원씩하던 권리금이 공중에 떴다.문을 연 가게들도 매출이 지난해의 50∼80%선으로 격감했다.수개월째 임대료를 못내는 경우도 적잖다.종업원 해고 등 자구책을 쓰지만 ‘언발에 오줌누기’ 식이다.세입자들은 주인의 독촉에 사채와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버티고 있다.부도 위기설로 술렁거린다.옷가게를 하는 김모(43·여)씨는 “농촌경제 붕괴로 읍내 상가가 줄줄이 쓰러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고 있다.”며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이제 상권붕괴는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충남에서 군세가 가장 작은 청양군 읍내는 휴·폐업중인 점포수가 전체 80∼90개 가운데 10여개를 넘었다.부동산업을 하는 이상선(58)씨는 “10년 전만 해도 5일장이 서면 버스 안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차 장날 분위기가 났는데 요즘은 서너명만 내리고 장날도 썰렁하기만 하다.”고 말했다.예전에 손수 가꾼 농산물을 바리바리 이고 와 팔던 농민들 대신 트럭에 물건을 가득 떼온 떠돌이 장사꾼들이 장터 곳곳을 메우고 있다. ■무너지는 소도시상권 르포 지난 9일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30분여만에 도착한 경북 의성군 의성읍내는 날씨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했다.사람들로 붐벼야 할 점심 시간인 데도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눈 앞에 보이는 몇몇 상가들은 문이 잠기거나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7만 군민들의 중심 상권이라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상가 임대·매각 딱지만 ‘더덕더덕' 필름을 사려고 들른 한 사진관에서는 난방을 하지 않아 한기가 돌았다.한참만에 밖에서 들어선 주인에게 “장사하지 않고 어디 다녀 오세요.”라고 묻자 “손님도 없는 점포를 지키면 뭐 해요.인근 가게 주인들 대여섯이 모여 매일 고스톱이나 치고 놀죠.”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건너 편에서 부동산을 하는 이성민(60)씨는 “전체 점포 중 절반 정도가 휴업하거나 세로 내놓았지만 거래는 전혀 없다.”며 “그동안 점포세로 재미를 봤던 건물주들도 세입자들이 불황으로 세를 연체하자 건물 관리가 안돼 매물로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 생활정보지도 태반은 건물 임대·매물란으로 채워져 있었다..군청앞에서 식당을 하는 김종우(59)씨는 “요즘 손님을 받지 못하는 날이 다반사”라면서 “식당한 지 1년이 지났으나 때려치워야 할 판”이라고 씁쓰레한 표정이었다.의성농협의 한 직원은 “예전 같으면 상가 주인들이 평균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하루 매상을 들고 왔지만 요즘에는 그 분들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인구 3만 8000여명으로 충남도에서 가장 적은 청양군 읍내는 산사(山寺)와도 같았다.9일 점심 때,외관상 그럴듯한 식당에 들어섰으나 주인과 종업원인 듯한 여자 4명만이 식사중이었다.주인은 “장사,말도 말아라.하루종일 파리만 날린다.어디 밥먹고 살겠느냐.”고 푸념부터 늘어놓았다.문 닫은 상가와 ‘무조건 1만원’이란 딱지가 붙은 가게도 듬성듬성 보였다. ●군청직원 월급일부 상품권으로 곡창지대인 예산군 읍내는 초저녁인데도 서너집 걸러 한집씩 불이 켜지지 않았다.급기야 예산군은 지역상권 활성화를 내걸고 직원들의 월급 가운데 실·과장은 10만원,6급 이하는 5만원짜리 상품권으로 대체해 지역상품을 의무적으로 사도록 했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은 탐진댐 건설에 따라 읍내 식당(523개)과 유흥주점(36개) 등이 한동안 특수를 누렸으나 겨울해는 길지 않았다.식당을 하는 이동철(43)씨는 “주민들 보상이 마무리되면서 식당이고 술집이고 썰렁해 졌다.”고 말했다. 국도 2호선(부산∼목포)이 왕복 4차로로 뚫리면서 목포시와 20분거리로 좁혀진 강진읍은 상권 붕괴가 가속화했다.읍내에서 비교적 목이 좋은 매일시장이나 5일시장이 가장 먼저 손님을 빼앗겼다.5일 시장에서 20년 넘게 옷가게를 해온 구연호(65)씨는 “이러다간 굶어 죽겠다.하루 3만∼4만원어치 파는 게 고작”이라며 “하루 매상 30만원씩 올리던 80년대 시절이 그립다.”고 회고했다.이 시장 내 장옥(점포) 120개 가운데 20%는 비었다.윤천식(63) 시장상가번영회장은 “23년째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데 7∼8년 전부터 매상이 뚝 떨어져 부부 인건비나 건지는 셈 친다.”면서 “시장에 오는 사람 찾기가 힘든 판이니….”라면서 혀를 찼다.군에서는 시장 활성화를 위해 20억여원을 들여 장옥을 현대식 건물로 단장했고 주차장(70대)도 짓는다.입점 상인들도 친절과 청결 등 소비자 만족을 위한 자체 교육에 눈을 돌리고 있다.시장통에서 만난 주민들은 농협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할인마트가 그나마 있는 손님까지 몽땅 훑어갔다고 불평불만이다.시장안에서 40년도 넘게 콩나물과 두부·대파·시금치 등을 팔아온 할머니 세분은 “오늘은 아직 개시도 못했다.저쪽에 있는 마트에서 두부나 콩나물을 여기보다 100원씩 더 싸게 판다.”며 성질부터 냈다. 특별취재팀 ■러브호텔 불황 직격탄 농촌에서 불황을 비웃으며 현금을 거머쥐던 모텔(러브호텔)이나 다방도 2000년대 들어 맥을 못추고 있다.우후죽순 격으로 늘던 모텔도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또 웬만한 읍내마다 50여개를 웃돌던 다방도 여종업원들이 티켓비(일명 봉값·시간당 2만∼2만 5000원)를 못 채우는 불황에 휴업이 속출하고 있다.읍내 소재 다방마다 아가씨 4∼7명을 두고 장사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러브호텔로 통칭되던 여관이 충남 연기군 50개,금산군 55개에 이른다.그러나 농촌경제가 결딴나면서 회전율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기름값도 안 나오고 매매가마저 폭락해 이중고다.금산읍 H모텔 종업원은 “모텔 손님들이 1997년 외환위기 전의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연기군내 다방은 140개에서 112개로 줄었다.조치원읍내의 한 다방 여주인은 “아가씨 구하기도 어렵고 장사도 잘 안돼 일부 티켓다방 등은 노래방으로 업종전환을 하는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40여개의 러브호텔이 몰려 있는 팔공산 자락인 경북 칠곡군 동명면에는 매물 10여개가 나왔다.20∼50여개의 객실을 갖춘 러브호텔 가운데 최근에 지은 10∼20%만 그런대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20억원을 호가하던 매매가는 13억원으로 내려갔다.임대기간이 끝난 D모텔 등도 올 들어 임대료를 30∼40%가량 낮췄다.군위군 동산리 10여개의 러브호텔 가운데 2곳이 문을 닫았고 나머지는 개점휴업 상태다.의성군에는 다방 161곳이 등록돼 있지만 영업중인 곳은 100여곳이다.군위군 61곳,영양군 43곳도 20%가량 휴업중이고 나머지도 도산위기다. 전남 보성군도 99년 하루에도 서너개씩문을 열던 다방이 한때 120여개였으나 지금은 87개다.이 가운데 정상영업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인근 장흥군도 다방 83개가 있으나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종업원 4명을 둔 P다방 업주 김모(39·여)씨는 “예전에 월 평균 1000만원까지 오르던 매출이 300만∼400만원도 간신히 건진다.”고 말했다.군청 위생계의 한 직원은 “몇 년 전만 해도 다방 아가씨들의 봉값(티켓비)을 둘러싼 실랑이나 신고가 잦았으나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점포 임대·매매 실종 “상가 점포 임대요.더는 말 마이소.불황에 누구 속 뒤집어 놀라캅니까.” 경북 의성군의 ‘명동 거리’로 불리는 의성읍 후죽리에 사는 임모(68)씨는 요즘 화병이 났다. 10여년전에 신축한 건물(4층) 점포 대부분(1∼3층,100여평)이 3년째 텅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1층 20여평을 임대한 것이 고작이다.4층은 살림집이다.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가게 임대문제론 걱정을 하지 않았다.오히려 큰소리 떵떵 치면서 세를 놔 먹었다.‘노른자위’ 점포여서 사람들이 줄을 서세들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가 경기가 주저앉기 시작한 2001년부터 점포세가 슬슬 빠지더니,다시 나가지 않고 있다.1년전부터 점포세를 예전의 절반 정도로 내렸지만,감감무소식이다, 임씨는 “점포세 놔 먹기가 이젠 끝장난 것 같다.”며 “‘애물단지’가 된 건물을 매각하려고 해도 그마저 어렵다.”고 한숨 지었다. 인근 건물에서 점포 20여평을 세 얻어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49·여)씨의 심정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매출부진으로 7000만원을 투자한 점포를 십 수개월전부터 처분하려고 해도 임자가 나서질 않는다.그저 울며 겨자 먹기식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한달에 5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려야 본전치기라도 되지만,300만원 정도가 고작이다. 특별취재팀
  • [길섶에서] 소머리국밥

    며칠전 점심시간에 소머리국밥 집엘 가니 손님이 거의 없다.미국발 광우병 파동 때문이란다. 어릴 적 집안 어른들이 큰장을 보면 지게꾼에게 짐지워 돌아올 때가 있었다.10리도 넘는 길을 숨 헉헉 땀 뻘뻘 오고도 삯에다 국수 값 정도 얹어받으면 고맙다는 말을 열번도 더하고 가던 모습이 엊그제처럼 기억되는데,쇠고기가 기피대상이라니 세상 좋아지기도 했고 이상해지기도 했다. 썰렁한 방에 앉아 국물을 뜨니 맛도 예전같지 않은데 일행 가운데 한 명이 문득 국밥 이름이 목에 탁 걸린다고 말한다.재료나 조리방법이 그대로 드러나,듣고 먹기가 거북한 음식이 적지 않다는 데까지 말이 미친다.소머리국밥,내장탕,내장볶음,곱창구이,잡탕밥,닭똥집….소머리국밥 이름을 바꾼들 광우병 파동에 무슨 효험이 있으랴마는 파동과 관계없이 기왕이면 음식 이름을 예쁘게 붙이는 편이 좋을 것 같다.외국에선 별것도 아닌 음식에 온갖 ‘예명’을 붙여 사람을 현혹하기도 하는데….국밥 한 그릇 먹고 뒷덜미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니 ‘머리국밥’이라는 이름이 더 뜨악하다. 강석진 논설위원
  • 육사, 고교생 체험교실 운영

    육군사관학교(교장 김충배 육군 중장)는 올해부터 육사 진학을 희망하는 고교생을 대상으로 ‘생도생활 체험교실’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고교 1년생 중 200명(여자 포함)을 선발,여름방학 기간 3∼4일간 숙식을 하며 육사생활을 체험케 하는 것으로 사관학교 중 육사가 맨 먼저 시행하는 제도이다. 입교자들은 육사내 옛 화랑대 건물에 머물며 오전 6시 점호부터 오전 학과,점심식사,오후 학과,개인 활용시간,오후 8시 일석점호까지 기존 생도와 같은 시간표를 적용받게 된다. 특히 방학 동안 교내에서 학위 군사훈련을 받는 4학년 생도들이 일과 후 입교자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육사생활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준다. 체험교실은 강의와 대화형식으로 진행되지만 강인한 정신력을 키워주기 위한 극기훈련 프로그램도 검토중이다. 육사 관계자는 “인터넷과 전화를 통해 사관학교 생활에 대해 문의하는 중·고생이 많아 체험교실을 마련키로 했다.”며 “짧은 기간이지만 생도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 고 말했다. 한편 육사측은 체험교실에 대한 참가자들의 반응이 좋을 경우 연간 입교 횟수를 겨울방학 기간을 포함, 2∼3회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나의 건강보감]웅진코웨이개발 박용선 사장

    “무슨 운동을 그렇게 하느냐고요? 그게 제가 세상을 사는 방법입니다.” 웅진코웨이개발 박용선(48) 사장.그는 운동광이다.복싱에 태권도는 물론 볼링과 야구,축구,탁구에다 마라톤,심지어는 시쳇말로 ‘맞장’까지 구미가 당기는 운동은 뭐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스스로도 키로 하는 운동 빼고는 뭐든 한다고 할 정도다.그가 자란 곳은 서울 돈암동 서라벌고등학교 뒤편.어렸을 때부터 고만고만한 ‘동네 어깨’들과 어울렸고,‘용가리’로 불리며 그 ‘구락부’의 중간보스까지 올랐다. ●球技에서 마라톤까지 ‘운동광' “고등학교 시절 권투를 시작했어요.당시에는 권투가 최고였거든요.동네 복싱도장에서 권투에 한참 재미를 붙였는데 아,관장이 절 불러 이러는 거예요.‘어이,용가리,너는 코가 커서 권투 못해.’치고받다가 코뼈라도 주저앉으면 날샌다는 뜻인데,그 말에 열받아 그만뒀어요.그래도 그땐 동네 공터마다 샌드백 하나씩은 걸려 있어 그걸 두들기며 울화를 풀곤 했지요.” 앞서 중학교 때는 태권도 바람이 불어 도장을 찾았다가 요샛말로 ‘개망신’을 당한 일도 있었다.“태권도 배우겠다는 놈이 두툼한 겨울 내복에 양말까지 신고 도복을 입었다가 애들 보는 앞에서 사범에게 혼쭐났죠.그럭저럭 여름이 됐는데 도장의 함석 지붕이 불볕에 달아 실내가 한증막이더라고요.더위라면 옴짝달싹을 못하는 체질이라 그때 그만뒀죠.”초등학교 때는 야구가 좋아 야구부에 들어가려 했으나 유니폼을 장만할 돈이 없어 입맛만 다시다 말았다.대신 ‘동네야구’는 원없이 했다.지금도 그는 회사 야구동호회 시합날이면 아침부터 가슴이 뛴다.그가 81년 갓 입사해 처음으로 만든 ‘운동 조직’이어서다. 그는 말쑥한 댄디스타일이 아니다.오히려 누구와도 격의없이 소주잔을 기울일 만큼 호방하고 선이 굵은 현장 스타일이다.그러면서도 미세한 시장의 흐름을 읽어내는 동물적인 감각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제게 그런 장점이 있다면 아마 권투 등 여러 운동을 익히면서 체득한 감각이 경영 현장에서 발현된 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권투는 상대와 맞붙어 감각적으로 때리고 피하는 운동이거든요.권투 선수는 그래서 상대의 발만 보고도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경영도 마찬가집니다.상대의 주먹을 보고 움직이면 늦습니다.그보다 한 박자 빨라야 됩니다.” 대학 2학년 때 웅진그룹 산하 헤임인터내셔널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던 그는 ‘감각과 열정의 승부사’답게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사장에 취임하자 정수기 렌털마케팅에 나서 우리나라 정수기 시장의 절반을 장악했다.이름도 생소한 ‘정수기 코디제’도 그의 아이디어다.그렇게 정수기시장을 휘어잡더니 이번에는 “닦지 말고 씻으세요.”라며 비데마케팅에 나서 사상 최악이라는 시장상황을 헤치고 연간 매출액 1조원의 디딤돌을 놓았다.그런 그가 요새 축구 재미에 푹 빠져 있다.“사장으로 부임해 사내 축구부부터 만들었어요.직원들과 몸으로 부딛히며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동료애를 키운다는 점에서 어떤 방법보다 매력적입니다.”그는 운동장에 나서면 사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선수가 된다.그렇게 내닫고 뒹굴면서 직원들의 기를 벼르고 스트레스를 털어낸다. ●“직원들과 의사소통에 그만” 축구장에만 나서면 직원들과 격의없이 뛰고 뒹굴지만 팀을 이끄는 그의 리더십은 분명하다.“저는 패스는 실수할 수 있지만,드리블은 실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무슨 말이냐면,경기장에서나 일터에서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그렇지 않은 일을 냉정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거죠.슈팅할 때는 과감하게 하되,아니다 싶으면 주저없이 다른 사람에게 공을 넘겨 또 다른 기회를 잡도록 하는 것이 미덕입니다.경영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의 운동편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고등학교때 동네 ‘조직’에서 다진 탁구 실력도 만만찮아 지금도 선수 빼놓고는 누구와도 일전을 불사한다.한때는 직장 동료들과 아예 볼링장에서 자장면으로 점심을 떼우며 볼링을 쳐댔다.지금도 기분 좋으면 230∼240점대는 거뜬히 때리는 실력이다. 바둑에서는 실리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계속 밀어붙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기사들은 이를 ‘기세 싸움’이라고 한다.CEO로서 그의 삶이 그렇다.“만 6년을 사장으로 일하면서 처음 부임 때 생각했던 구상에 크게 모자라지 않는다.”고 돌이키면서도 그간의 경영성과를 두고 ‘운칠기삼(運七技三)’으로 보는 소극적 해석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그래선지 항상 예각의 기세로 사는 그에게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겠냐고 물었더니 호방한 웃음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그야 정수기 등 우리 회사 제품이 필요없는 사회 아니겠습니까?현실은 자꾸 거꾸로 가지만….”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박용선사장의 축구건강론 축구는 시간당 580∼620㎉의 에너지를 소모할 만큼 격렬한 운동이다.거친 몸싸움과 태클을 뚫고 쉴새없이 뛰어야하기 때문이다.11명이 유기적으로 팀워크를 발휘해야 하는 운동이면서 강인한 체력과 투지,승부 근성과 희생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매력적인 운동이기도 하다. 박용선 사장도 이런 점 때문에 축구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한다.“제 경우 다른 사람보다 승진이 빨랐는데 이 때문에 주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축구동호회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서로 교류하고 건강도 다지는 기회로 삼고자 한건데 의외로 성과가 만족스럽습니다.특히 축구장에서의 스킨십은 정말 멋진 교감입니다.” 키 175㎝,몸무게 73㎏의 탄탄한 체격을 가진 그는 운동장에 나서면 펄펄 난다.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많이 뛰는 자리지만 돈암동 조기축구에서부터 다진 체력이라 지쳐서 못뛰는 일은 없다.최근에는 축구의 변형인 5인조 풋살에도 재미를 붙였다.매번 축구장을 찾아 유랑해야 하는 불편도 문제지만 그나마 겨울에는 경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는데,그런 고민을 실내 경기인 풋살이 말끔히 해소해 줬다. 심재억기자
  • ‘가출소녀 代母’ 경찰의 별 됐다/김인옥 방배서장 첫 女경무관에

    “아버지의 원을 이제야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습니다.” 아침 6시50분 집에서 출발,7시20분 경찰서 도착.아침은 우유 한잔으로 때우고 점심은 구내 식당에서 간단하게 해결한다.퇴근은 아무리 빨라도 밤 11시.이 고된 생활을 32년 동안 계속해왔다. 그러나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9일 경무관으로 승진한 김인옥(사진·52) 서울 방배경찰서장의 얼굴에는 고단한 기색은 간데 없고 새로운 기대와 열정만이 넘쳐 흘렀다. ▶관련기사 9면 ●부친 영향으로 경찰 입문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김 경무관의 선친은 1950년대 지리산 공비토벌대장을 지낸 김호연(79년 작고)씨.지난 72년 부산 동아대 1학년에 다니던 중 경찰에 투신,여자경찰 공채1기로 순경이 됐다.김 경무관은 “평생 경찰에 투신한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법과 질서를 지키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그는 또 “어렸을 때 앞집에 살던 형사가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고,주위 사람이 모두 무서워하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외로 아버지는 딸의 선택에 반대했다.스스로 나선 공비 토벌 중 두차례나 총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긴 데다,박봉의 고달픈 생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는 뜻을 꺾지 않았다.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선친은 결국 딸의 뜻을 받아들였다.김 경무관은 “이왕 경찰을 할거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한우물만 파라고 하셨다.”고 회상했다.이후 32년을 경찰관이라는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경찰조직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편견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처음 서울 용산서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자가 정복을 입고 교통단속을 하면 운전자들이 ‘동물원 원숭이 보듯’ 쳐다봤다.”고 말했다.그는 “선친의 말을 잊지 않고 노력한 결과 경감으로 경찰 생활을 마친 선친보다 훨씬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게 됐다.”면서 “선친도 만족해 하실 것”이라며 기뻐했다. ●미혼의 최초 여성 경무관 김 경무관이 일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무섭다.”고 말한다.평생 배필을 찾는 일도 잊을 정도다.그는 “선을 두번 보긴 했는데 신통치도 않고 일이 바빠서 신경을 못 썼다.”면서 “‘경찰’과 결혼했고,‘경찰’과 같이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일요일 등산이 유일한 취미인 김 경무관은 관악산,청계산 등 관내의 산만 찾는다.등산 전후에 경찰서에 들러 별일 없는지 꼭 확인한다. 하지만 김 경무관이 ‘악바리’만은 아니다.그는 가출 소녀의 대모로 불린다.순경때 서울역 주변의 윤락여성을 상담하면서 어려운 처지의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고,경찰 생활 중 18년을 여성·청소년 분야에서 일했다.그는 “90년대 중반 경찰청 여성청소년계장으로 있을 때 신촌,강남역 등 서울지역 번화가는 가지 않은 곳이 없다.”고 밝혔다.방배서장으로 와서도 저녁이면 어김없이 방배동 카페골목과 사당동 먹자골목을 다니며 탈선 청소년이 있는지 살핀다. ●“퇴직하면 양로원,고아원 운영” 탈선 청소년의 선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는 “지난 96년 서울 미아리 사창가에서 10대 여학생 둘을 빼냈는데 부모들이 ‘이미 내 자식이 아니다.’라며 발길을 돌릴 때는 아찔했다.”고 돌이켰다.관내 독거 노인을방문하는 것도 김 서장의 주요 일과.2001년 서울경찰청 방범과장 시절에는 의경들과 함께 집 없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 시설인 용산 ‘사랑의 집’을 한 달에 두차례씩 찾았다. 김 서장은 퇴직 이후 양로원과 고아원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김 서장은 2000년부터 서울 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에 다니고 있다.올 7월 졸업과 동시에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갖게 된다.그는 “함께 의지하고 봉사하면서 말년을 보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김 서장은 경찰업무에 여성만의 장점을 살리라고 후배 여경들에게 당부했다. 글 김효섭·사진 강성남기자 newworld@
  • 주말매거진 We/이집이 맛있데-부산 연산동 ‘낙원’

    직장인들은 끼니때가 되면 무엇을 먹어야할지 종종 고민에 빠진다. 대부분 영양가와 가격,거리 등을 감안해 이 식당 저 음식점을 기웃거린다.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시청사 인근 에 자리잡고 있는 ‘낙원’(주인 양미자·39)은 시청 공무원들에게 꽤알려진 식당이다. 이 집의 주된 메뉴는 영양돌솥밥,양곱창,등심 세가지. 이중 영양을 고려한 돌솥밥은 점심 식사로 제격이다. 전남 화순이 고향인 주인 양씨는 비교적 짧은 경력임에도 불구,새로운 맛 개발과 친절로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밥 짓는 찹쌀과 쌀은 고향인 화순에서 농사를 짓는 어머니가 직접 보내준다. 인삼,대추,밤,은행,수수,속청(검은콩),양대(빨간콩),잣,해바라기씨,호박씨 등 총 10가지가 곁들여진 이 집 돌솥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차지며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감칠맛이 도는게 여느집의 돌솥밥과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여기에는 이 집만의 밥짓는 비법이 있다. 생수로 밥을 지을 때 간수(소금물)로간을 맞추는데 이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40여분 동안 물에 불린 쌀을 돌솥에 넣고 인삼 등 재료를 넣은 뒤 센불(가스불)로 끓이다 불을 낮추고 20여분 정도 다시 뜸을 들인다. 과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불 조절과 간맛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귀띔한다.곁들여 나오는 밑반찬은 주군인 돌솥밥과 궁합이 잘 맞는다. 배추김치,파김치 여수갓김치,게장(바닷게),명란젓,조개젓갈(바지락),아가미젓,창난젓 등이 입맛을 돋운다. 시금치,도라지,톳나물,버섯류 등도 철따라 곁들여진다. 특히 고향에서 담가 가져오는 된장에다 질좋은 멸치와 파,양파,고추 등의 갖은 양념을 넣고 끓인 된장은 시골 옛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큼직한 조기구이도 상에 빠지지 않는다. 파인애플과 마늘을 넣고 참기름,후추,땅콩가루 등으로 양념한 양곱창과 숯불에 구워먹는 순수 한우 등심구이도 육질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일품이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주말매거진 We/이번 주말 뭘 먹을까

    ●잠실롯데호텔(02-419-7000)은 4월 말까지 객실 리노베이션 기념으로 4개 식당에서 주말과 공휴일의 점심과 저녁 식사를 40% 할인한다.할인되는 식당은 이탈리아식 베네치아(사진),일식 모모야마,중식 도림,한식 무궁화이다.음료는 할인에서 제외된다.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의 뷔페 페스티발(02-531-6618)은 새해를 맞아 2월말까지 명절 음식 코너를 마련했다.명절 음식으로 밀쌈전병·쇠등심 편육·코다리 양념 찜·쇠고기 산적과 조리장이 즉석에서 조리하는 전통 떡·만두국 등이 나온다. ●세종호텔 한식당 은하수(02-3705-9141)는 1월 한달동안 기존의 뷔페와 함께 맛깔 난 우리떡 20여 가지를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떡상을 차린다.3만 3000원·3만 6000원. ●패밀리 레스토랑 TGI프라이데이스(02-580-8114)는 새해부터 당근·토마토·사과주스·벌꿀 등을 넣어 만든 비타민 티와 녹차의 은은한 맛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조화된 그린 티를 각각 4200원에 내놓았다.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양식당 실란토로(02-317-3062)는 다음달 29일까지 굴요리 축제를연다.뷔페식으로 나오는 굴요리로는 생굴,생굴찜,생굴 샐러드 등 20여가지에 이른다.3만 3000·3만 5000원. ●조선호텔 뷔페 비즈바즈(02-6002-7777)는 10일까지 40㎏급 참치를 즉석에서 요리해 제공한다.참치회(사진)·참치 갈비구이·샐러드·초밥 등 참치요리 14가지가 나온다.3만 7000·4만 1000원.호텔은 또 새해부터 서울과 부산 조선호텔의 객실 예약 전화번호를 080-317-0404로 통일했다.
  • 스크린+α

    ●‘태극기…' 피하려고 16일 개봉작전 “16일을 잡아라!” 신년 벽두부터 충무로에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요란하다.새달 6일 개봉할 강제규 감독의 블록버스터 ‘태극기 휘날리며’(사진·제작 강제규필름)를 피하기 위해 너나없이 눈치작전을 펴고 있어서다.그렇게 해서 ‘간택’한 날짜가 16일. 새로 간판을 올리는 영화들은 극장의 스크린 확보에 불꽃튀는 신경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한국영화만도 무려 3편.권상우 주연의 학원액션 ‘말죽거리 잔혹사’,송승헌·이성재·김하늘 주연의 멜로 ‘빙우’,하지원·김재원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내사랑 싸가지’가 동시에 개봉한다.하나같이 관객 동원력이 대단한 스타들이 주연한 작품들이다. 한 마케팅 관계자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위력이 클 것 같아 2월 개봉은 피해야겠고,설연휴 대목을 보려면 그 전주인 16일 개봉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외화 ‘런어웨이’,‘피터팬’도 16일 극장가에 합류한다. 지난달 24일 개봉해 줄기차게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는 ‘실미도’가 스크린을 줄일 기미가 없는 것도 16일 개봉을 손꼽아 준비해온 영화사들로서는 ‘복병’인 셈이다. ●‘반지의 제왕' 1~3편 연속상영 행사 영화채널 MBC무비스는 개국 1주년 기념으로 14일 서울 신사동 씨네시티 극장에서 화제작 ‘반지의 제왕’ 1∼3편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이색행사를 갖는다. 11일까지 홈페이지(www.mbcmovies.com)로 신청을 받아 네티즌 300명에게 1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시리즈를 모두 감상하는 기회를 준다. 1편 ‘반지원정대’,2편 ‘두개의 탑’,현재 개봉중인 3편 ‘왕의 귀환’까지 모두 볼 수 있으며 참가자들에게는 점심식사와 추첨을 통해 디지털 카메라,MP3플레이어 등의 경품을 준다.
  • ‘盧사생활 루머’ 커피숍 농담이 인터넷에 /특수수사과 여경 좌천 파문

    “한순간의 말 실수 때문에….” 경찰청 특수수사과 소속의 유능한 여성경찰관이 사적인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해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언급했다가 문제가 되자 전보된 것으로 6일 밝혀졌다. 지난달 17일 경찰청에 근무하는 여경 20여명이 청사 근처 식당에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최근 민주당에 입당한 김강자 전 총경을 환송하는 자리였다.식사를 마치고 김 전 총경이 떠난 뒤 특수수사과 소속 A경위 등 경위·경사급 여경 8명은 청사내 ‘포돌이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담소를 나눴다.이 자리에서 A경위가 ‘카더라’ 수준의 노 대통령 사생활을 농담삼아 얘기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누군가가 A경위가 한 얘기를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리면서 사건이 확산됐다.청와대측의 통보로 경찰이 자체 감찰을 벌인 결과 A경위가 문제의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경찰은 글의 IP를 추적,경기 하남시의 한 PC방에서 글이 작성된 사실을 파악했다.여경 8명의 사진까지 들고 PC방 주인에게 확인을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답변만 들었다.이에 따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나서 글 작성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A경위는 결국 이달초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전보됐다.경찰청 관계자는 “사석의 발언을 놓고 인사조치한 것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청와대 하명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특수수사과 직원으로서는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면서 “나머지 7명의 여경은 듣기만 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서울경찰청은 관련 서류를 검토한 뒤 A경위의 구체적인 징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동안 군장성 뇌물비리 등을 적발하며 뛰어난 수사능력을 인정받아 왔던 A경위로서도 후회스럽기만 하다.A경위는 “여경들끼리 모인 사석에서 아무 의도없이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이야기한 것인데 인터넷에 글이 게재될 줄은 몰랐다.”면서 “참 무서운 세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재두 민주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구시대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면서 “청와대에서 비서관들을 모아 놓고 사전선거운동을 한 대통령의 발언은 사적인 덕담이라고 변명을 한 청와대가 커피숍의 사담까지 개입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盧 “FTA 거부땐 경제 더 피폐”/농민단체·한나라에 협조 요청

    노무현 대통령은 6일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는 농민단체 대표들에게 “한·칠레 FTA 비준동의안의 재검토 요청은 현 시점에서 수용하기 어려우니 정부의 농정대책을 믿고 8일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이날 전국농민총연맹 정현찬 의장 등 농민단체장들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농민대표들이 ‘한·칠레 FTA를 시행하면 농업에 막대한 피해가 있다.’며 재검토를 요청하자 이렇게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처럼 수출이 주도하는 경제에서 FTA비준을 거부하면 경제도 어려워지고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어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거듭 협조를 당부했다.노 대통령은 “비준 문제와는 별도로 유통구조 개선 등 여러 농협개혁 과제를 적극 추진하고 사안별 정책대안을 농민단체가 제시해 주면 반영토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를 만나 “오늘 점심 때(농민단체 대표들을)만나 얘기하면서 이해를 깊이 같이하게 됐다.”면서 “국회에서 선물을 줘야할 것”이라고 협조를 요청했다.최 대표는 “(한나라당은)할 만큼 했다.”면서 “원체 국회 앞에서 (농민단체들이)판을 심하게 벌리니…”라고 말했다.노 대통령과 최 대표가 FTA와 관련해 신경전을 벌인 셈이다. 문소영기자 symun@
  • 양측 운영위서 서로 자제/“당 깨질라” 한나라 내홍 봉합

    당무감사자료 유출을 둘러싸고 대폭발을 예고했던 5일 한나라당 운영위가 최병렬 대표의 주도로 봉합 국면의 물꼬를 튼 것 같다.회의에서는 당이 깨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으며,이런 탓인지 서로들 발언을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예상과 달리 연찬회 개최 및 공천심사위 가동 전면 중단 요구 등은 나오지 않았다. ●3가지로 압축된 요구 초반에는 많은 불만과 요구가 분출됐다.백승홍 의원은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이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반발하는 사람은 비리부패 연루자다.’라고 했다는 보도와 관련,“이런 막말을 하는 사람이 심사위원장으로 있는 한 서류를 낼 수 없다.”면서 강력 반발했다.권철현 의원은 “몇몇 지도부가 공천배제 대상을 일방적으로 흘리고,‘숨을 한 풀 죽일 사람이 필요했다.그래서 손을 좀 봤다.’는 의혹이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특히 양정규 의원은 그간 당 인사위원회 운영의 ‘불법성’을 지적,한때 심각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이에 이방호·유한열 의원 등 친(親) 최병렬계 위원들도 ‘대표 감싸기’에 나서며 갑론을박했으나,회의가 점심시간을 넘기며 3시간30분간 진행되자 요구가 몇가지로 모아졌다.대부분 위원들은 “이 논쟁을 계파싸움이나 당권싸움으로 몰고가다 일이 잘못되면 당이 망한다.”면서 사태 수습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김무성·양정규 의원 등은 회의 말미에 ▲비대위 해체 ▲공천심사기간 연장 ▲공천심사위 보강 등 의견을 종합해 최 대표에게 공식 요구했다. ●“공천심사위는 변동없다.” 최 대표는 비대위 해체와 공천심사기간 연장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그러나 비주류 요구의 핵심인 공천심사위 보강 또는 일부 교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추가 공천심사위원’이 향후 논란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나아가 최 대표는 당무감사 문건 유출사건을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는 이미 파기된 것으로 알려진 ‘당무감사 실무 보고서’의 존재를 확인해준 뒤,“(감사)조작이 있을 수 없다.”면서 “이를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따로 공개하겠다.”고밝혔다.이어 “해임된 조직국장이 수정·보완한 별도의 문건도 그대로 디스켓에 있으며,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수정됐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그러나 일각에서는 실무보고서 대조작업이나 공천심사위 변동 불가침 방침이 뒤에 다시 내분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지운기자 jj@
  • [나의 건강보감] 국문학자 김열규 교수

    생명을 키우는 햇빛과 대지를 감싸는 바람,그 앞에 맨몸으로 서서 깊게 호흡을 가다듬는다.해송숲 삼림에서는 솔향기가 번져나고,푸른 하늘의 새들은 날갯짓이 편하다.이윽고 대자연의 정기에 온몸이 말갛게 익을 무렵,가뿐한 걸음으로 흙길을 밟아 귀가한다.풍욕(風浴),말 그대로 ‘바람욕'이다. “햇살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걸음의 숨가쁨이나,차가운 겨울바람이 왜 자연의 축복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거기서도 그냥 앉아 있는 건 아니다.마른 수건으로 전신을 가볍게 문지르면 금세 온몸이 따뜻하게 달아올라 한겨울에도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바람의 끝,매운 삭풍도 거친 숨결을 누그러뜨리는 경남 고성의 한적한 남해바닷가,거기에 ‘있고도 없는 도깨비'처럼 그는 홀로 서 있었다. ●일흔 넘긴 나이에도 검버섯 하나 없어 김열규(71) 교수.일흔을 넘긴 그의 얼굴에서 속진의 기름때같은 끈적임은 찾아 볼 수 없었다.유리알처럼 맑은 얼굴에는 그 나이면 훈장처럼 번지는 검버섯 하나 자리하지 않았다.“며칠 전 친구를 만났는데 날 보고 물어요.‘왜 그렇게 건강한가,비결은 뭔가.’그래 이렇게 말했지요.내 어깰 만져봐라.부드럽지 않나.대자연에 묻혀 사니 어깨에 힘 줄 일도 없고,긴장할 인간관계도 없다.이렇게 살면서 건강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가 “속되고 욕되다.”며 표표히 서울을 떠나 고향인 이곳에 정착한 게 지난 91년이니,벌써 12년째 한 걸음 뒤편에서 넉넉하게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91년 서강대를 떠나면서 40년 서울생활을 함께 털어냈어요.험한 문명의 변화에 몸이 따라가질 못하더라고요.천성이 예민해 위·십이지장궤양도 심했고,또 감기를 몸에 달고 살았지.의사가 찬바람에 민감한 ‘콜드알레르기’라며,서울을 떠나 사는 게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해요.도리없지.아내에게 난 고향으로 돌아갈테니 알아서 하라고 그랬죠.”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일도 버거웠고,자꾸만 가라앉는 몸도 예사롭지 않았던 그는 작심하고 김해 인제대로 옮겨 정년을 맞았다.이곳에서 그는 바쁘다.바람과 햇빛,그리고 철마다 자태를 바꾸는 꽃과 새를 만나야 하고,오솔길을 걸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그의 일과이다. ●12년전 서울 떠나 귀향… 고성에 정착 그에게 귀향은 새 삶의 출발점이었다.“여기 와서야 서울사는 동안 나의 생체 리듬과 자연의 리듬이 맞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요.지금은 나를 철저하게 자연에 맞추며 삽니다.의사가 수술하라던 속병도 거진 나았고,알레르기도 걱정없어요.‘더 일찍 낙향했더라면…’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습니다.”이렇게 그를 바꾼 것은 자연의 힘이었다.그 중에서도 그는 ‘풍욕(風浴)'과 ‘절식(節食 혹은 時食)'을 ‘건강 비결'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풍욕과 함께 그가 자연의 섭리를 체득한 또다른 비결은 절식.풀어서 얘기하자면 제 철 음식을 골라먹는 ‘자연식 섭생법'이다.“섭리에 순응하는 삶이란 자연에 맞서 중뿔나게 모를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도시에서는 계절 파괴란 말이 유행이지만,그건 자연성에 대한 왜곡일 뿐입니다.지천에 널린 계절음식으로 주린 속을 채우는 일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를 사랑하는 일인데,나물은 물론 어류도 다 제 철이 있어요.여기에서는 식탁에 오른 음식 만으로도 금방 계절을 느낍니다.”그러면서 익숙하게 구절초나 산능금 같은 이름을 외워 보였다. ●속병·알레르기 사라져 “더 일찍 낙향할걸…” “철마다 산과 들을 누비며 나물 캐고,꽃과 산과일을 따는 게 제 일입니다.매화,찔레꽃,인동초,비파꽃과 산수유,비파,유자는 잘 말려 녹차에 띄우거나 과일차를 달이고,들국화와 쑥부쟁이, 구절초는 목욕물에 띄우죠.”그는 지금도 저녁 8시면 따뜻한 물에 야생초를 담근 뒤 30분간 반신욕을 하며 일과를 정리한다.“아랫배가 잠길 정도로 따뜻한 물을 채운 뒤 꽃향기 속에서 편하게 복식호흡을 하며 ‘반가운 사람의 노크’처럼 깊고 깨끗한 잠을 맞습니다.그런 뒤 바로 잠자리에 들면 7∼8시간쯤 넉넉하게 깊은 잠을 자게 됩니다.”더러는 이런 생활을 호사라고 여길지 모르지만,전원생활이라는 게 움직인 만큼 얻는 것이어서 그런 일마저도 보람이라고 했다. 전원으로 귀향해 살았던 도연명의 삶이 이랬을까.바쁠 일 없어 아침 햇빛에 온 바다가 치자빛으로 물들 무렵,산까치나 붉은배새매의 노래를 들으며 느지막이 잠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달빛이 산야에 넘치는 날이면 잔잔한 물소리를 밟으며 갯가를 소요 하는 일.때론 옛 친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이렇게 속삭인다.“이 사람아,내가 왕일세.” 그의 또다른 즐거움은 사철 발을 풀어놓는 일.“서울 살면서 안타까웠던 일 중 하나가 발바닥을 퇴화시키는 일이었어요.발바닥은 예민하고 중요한데도 도회에 살다 보면 죽도록 혹사시키고 숨도 못 쉬게 틀어막잖아요.전 가끔 맨발로 몽돌해변을 걷거나 보리밭을 밟곤 합니다.초록이 귀한 겨울에 싱싱한 보리싹을 맨발로 밟는 그 삽상한 쾌감,상상이 됩니까.” ●맨발로 해변·보리밭 걷고 매일밤 반신욕 국문학자로 민속학과 문화해석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구축한 그는 지금도 줄기차게 한국의 문화와 한국인의 정체성을 천착하고 있다.석좌교수로 있는 계명대에서는 매주 지역 주민과 교수들까지 수강하는 공개강의를 하는가 하면,농익은 학구열도 젊은 시절 못지 않아 새해 벽두에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돋보기를 들이댄 역저 ‘한국인의 화와 화병'을 선보인다. 그는 자신의 사전에 ‘고통’이나 ‘스트레스’는 없다고 했다.“사는 일이 고통인데 그걸 피할 수 있겠습니까.고통을 시인하고 기꺼이 수용하는 삶,그것이 건강한 사회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우리 사회의 고질인 사회윤리의 붕괴,남에 대한 배려가 없고,돈과 권력에 매몰되는 현상도 그렇게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요.” 광기와 탐닉의 시대,모든 인간이 제삼자로 존재하는 혼돈 속에서도 우리가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사랑과 자유 없이는 모든 것,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악마일 뿐”이라는 니콜라이 베르자예프의 예언을 믿으며 한사코 사람에게로 길을 내는 등대 같은 그가 있어서다. 고성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왕상관기자 skwang@ ■김열규 교수의 풍욕법 김열규 교수의 풍욕은 하루하루 자신을 비우는 작업이다.비오는 날만 빼고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다르다면 겨울에는 햇볕 속에 나앉고,여름에는 솔그늘에 들어 따가운 햇볕을 피하는 정도다.점심 식사후 온몸 가득 햇살을 받으며 나서는 풍욕산책.보드라운 흙길을 밟으며 땀이 밸 만큼 빠른 걸음으로 솔밭길을 걷다 양지녘에 이르면 겉옷을 모두 벗고 바윗등에 앉아 맨살로 햇볕을 받는다.“풍욕 중에 가끔씩 쌓인 솔잎을 발로 뒤집으면 확,하고 다시 솔향기가 퍼지곤 합니다.내 풍욕은 일광욕과 삼림욕,산책과 명상이 어우러진 건데 중요한 것은 그 순간,머리 속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겁니다.‘멍’하게 앉아 오로지 바람소리,새소리만 듣습니다.” 그는 이를 철학에서 말하는 ‘부정이 없는 이상향’이라고 정의했다. 30∼40분을 걸은 뒤 20분 정도 하는 풍욕과 절식 덕분에 그는 감기를 잊고 산다.날마다 활력이 넘쳐 글을 쓰거나 먹고 자는 일이 마냥 즐겁다.살이 맑은 것도 풍욕과 절식 때문이다.풍욕길에 나서는 그의 손에는 항상 망원경이 들려 있다.망원경을 통해 이름모르는 새들과 ‘희열의 눈맞춤’을 하기 위해서다.그가 풍욕을 ‘새소리목욕’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섭생도 자연에 가까워 자연에서 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이를테면 아침식사는 제 철의 나물과 채소,식초를넣어 만든 즙과 우유,그리고 잣이나 호두 같은 견과류로 대신합니다.식탐은 하지 않고 조금 적다 싶을 때 숟가락을 놓는데,양이 적은 대신 가려서 먹지요.” 키 169㎝,몸무게 57∼58㎏의 단구인 그가 “이제야 꿈과 이상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건강이라는 걸 알겠다.”며 담박하게 웃는다.아직도 학문에 관한 한 ‘바람둥이’랄 만큼 지적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는 ‘청춘의 노학자’,그에게서 배우는 것은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삶이 아니라 건강 이후의 이룸이었다.그가 말하지 않는가.“지금도 내 분야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고. 심재억기자
  •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현영이가 만난 하느님

    정 회 옥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모두 내립니다.현영이는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마지막으로 내리려던 운전기사님이 현영이를 봅니다. “넌 왜 내리지 않니?”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는 종점이라 모두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타야 한단다.” 현영이가 내린 곳은 한번도 와본 적이 없는 큰 호텔 앞이었습니다.반대편에는 바다가 보였습니다.학교가 끝난 뒤 버스를 탔지만 오늘은 너무 멀리 와 버렸습니다.현영이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버스가 돌고 돌아 다시 집 앞까지 데려다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옳은 생각이 아닌 모양입니다.엄마가 걱정하실 겁니다.그 생각을 하니 서둘러 집을 찾아야겠습니다.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지 영 떠오르지 않습니다.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봅니다.친구들과 뽑기도 하고 게임을 하느라 200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방파제 위에 섰습니다.바다는 온통 파랗습니다.그리고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부분은 눈이 시려서 볼 수가 없습니다.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부릅니다.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바다에 눈을 돌렸을 때입니다. “넌 누구니?” 현영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누구냐니까?” 거대한 몸집을 한 바다가 조금 화가 난 듯 다시 묻습니다. “나,나는 최현영.초등학교 1학년이야.” “그런데 혼자 여기까지 온 거야?” “응,그렇게 됐어.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너무 멀리 와 버린 것 같아.” “그래,집은 어딘데?” “초원 청아 아파트.너 혹시 모르니?” “글쎄,잘 모르긴 하지만…….초원이니까,아마 풀이 많고 산 가까이에 있지 않을까?” “그래,맞아.난 가끔 집에서 가까운 산에 올라 가곤 했단다.” 현영이는 기뻐서 말했습니다. “아함.” 바다가 큰 소리로 하품을 합니다. “미안해.도와주지 못해서.난 지금 너무 졸려.이른 아침부터 이곳까지 밀려왔거든.잠시 쉬어야겠어.난 또 해가 질 무렵 다시 반대쪽으로 이동을 해야 해.안녕.” 바다는 그렇게 말하고 잠잠해졌습니다.현영이는 혼자가 되었습니다.점심도 먹지 못했습니다.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바다는 좋겠습니다.혼자가 아니고 모두 같이 있어서 집을 잃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바다의 말이 생각나 현영이는 아래쪽으로 걸어갑니다. 한참을 걸었습니다.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픕니다.잠시 현영이는 길옆에 걸터앉았습니다.엄마의 말이 생각납니다. “학교가 끝나거든 한눈 팔지 말고 곧장 집으로 와야 한다.” 어떡하죠? 오늘은 곧장 집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너무 멀리 와 버렸으니까요.잠시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생각이 눈물로 변했습니다.눈물 몇 방울이 땅위에 똑똑 떨어졌습니다. “아얏,비가 오나 봐.” 정말 작은 소리였습니다.주위가 조용하지 않았다면 현영이는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눈을 아래로 향했습니다.좀 전에 떨어트렸던 눈물이 조그만 동그라미를 만들었습니다.그리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개미를 발견했습니다. “개미야,뭐하니?” 현영이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비가 오려나 봐,서둘러 집에 가야겠어.난 비가 싫어.” “그건 내 눈물이야.비는 오지 않아,내가 도와줄게.” 현영이는 개미를 마른 땅 위로 옮겨주었습니다. “고마워.그런데 넌 왜 여기서 울고 있니?” 개미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습니다. “난 집을 잃어버렸단다.버스를 탔는데 너무 멀리와 버렸어.” “그랬구나.” “너 혹시 초원 청아 아파트가 어디 있는지 알겠니?” “미안해.나는 거의 땅에 붙어 있어서 땅위에 있는 물체를 잘 알아보지 못한단다.그리고 눈도 좋은 편이 아니야.하지만 멀리 왔다면 온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될 것 같구나.” “그렇구나.” “난 서둘러 집에 가야겠어.어두워지면 집을 찾기가 곤란하거든.” 개미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가버렸습니다.현영이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개미의 말처럼 하는 것이 집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큰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졌습니다.망설이는데 바람이 휙 불어옵니다.아직 바람이 찹니다. “어떡하지.” 현영이는 걱정스레 혼자 말을 했습니다.그 말을 스쳐가던 바람이 들었습니다. “뭘 어떡해?” 차가운 바람이 현영이 곁에 머물자 갑자기 몸이 떨렸습니다. “미안해.내가 아직 차갑게 느껴지지.그러나 네가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단다.” 바람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고마워.난 집을 잃어버렸단다.도무지 집을 찾을 수가 없어.” “안됐구나,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바람아,너는 안 가본 곳이 없지?” 현영이가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럼,초원 청아 아파트가 어디 있는지 아니?” “글쎄,우리는 한 곳에 머물지 않아.그리고 우리가 옮겨 다니는 속도는 굉장히 빠르단다.너도 알 거야.특히 여름철 태풍은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바다를 건너기도 해.미안해,도와주지 못해서.” “아니야,괜찮아.” “빨리 집을 찾았으면 좋겠다.날이 어두워지기 전에,안녕.나도 바빠서 같이 있어줄 수가 없구나.” 바람이 윙 소리를 내며 지나갔습니다.또 현영이는 혼자가 되었습니다.점심도 먹지 못했습니다.그래서 더 춥게 느껴집니다. 집 생각이 납니다.엄마는 현영이가 올 무렵 점심을 차려놓고 기다립니다.아마 엄마도 걱정이 되어 밥을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갑자기 엄마가 몹시 보고 싶습니다.엄마는 승용차로 학교를 데려다 주겠다고 했습니다.그러나 현영이는 친구들과 놀고도 싶고,여기저기 구경도 하고 싶어 엄마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아빠는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십니다.아빠의 몸에서는 한약 냄새가 납니다.아빠는 한의사입니다.가끔 쓴 한약을 안 먹겠다고 버둥대는 현영이를 꼭 안고 어르십니다.약을 잘 먹으면 놀이공원에 데려간다든지 아니면 맛있는 갈비를 사주겠다고 말입니다. 현영이는 눈을 꼭 감고 못 이기는 척 받아먹습니다.최대한 아빠의 애를 태우면서.그러나 현영이는 아빠가 든든합니다.빨리 집에 가고 싶습니다. 4월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가 짧습니다.벌써 주위가 어둑어둑해집니다.현영이는 조바심이 납니다.기억을 더듬어 버스가 왔던 길을 생각해 봅니다.두 길 중 한 길이 분명합니다.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살필 걸 그랬습니다.간신히 한 길을 택했지만 조바심만 날 뿐 확실하지 않습니다.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얘,넌 누구니? 힘이 없어 보이는구나.” 현영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그러나 아무도 현영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나야,어둠이.” “응?” “어둠이라구.” “벌써 어두워지는구나.” “지금은 그래도 덜 어두운 편이야.저쪽에선 더 까만 애들이 준비하고 있단다.” 어둠이 반대편을 가리키며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어떡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난 집을 잃어버렸단다.” “큰일 났구나.조금 있으면 더 어두워질 텐데.” “넌 혹시 초원 청아 아파트를 아니?” “초원 청아 아파트?” “응.그곳이 우리 집이야.” “그런데 넌 왜 여기까지 왔니?” 어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합니다. “난 버스를 타고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닌단다.엄마가 그 학교가 더 좋다고 그곳까지 보냈거든.” “엄마들의 욕심은 그렇지.그런데?” “오늘은 다른 생각을 하다가 내릴 곳을 지나쳤어.난 버스가 돌아서 다시 우리 집까지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그런데 종점에서 사람들이 다 내리고 나도 내리게 됐어.그리고 여기까지 걸어서 왔어.” “저런 고생이 많았구나.그러나 더 어두워지기 전에 집을 찾아야겠다.밤은 낮과는 달라.사람의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의 차이지.밤에는 나쁜 마음이 더 강해져.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그냥 있으면 안돼.나를 따라와.” 현영이는 어둠이 이끄는 대로 몇 발자국 움직였습니다.버스 정류장이 나오고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좋겠어.잘 봐.” 어둠이 말했습니다.현영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분이 좋겠어.이 분은 옷차림은 조금 허름하지만 마음이 착해 보여.침착하게 물어봐.넌 학교도 다니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야.” “고마워.” 어둠이 빙그레 웃습니다. “빨리 서둘러.” 어둠이 현영이의 등을 떠밉니다.현영이는 용기를 냈습니다. “저,아주머니.제가 집을 잃어버렸거든요.초원 청아 아파트를 아세요?” “그럼,알고말고.나도 거기 근처에 산단다.그동안 고생했겠구나.” 아주머닌 정말 어둠이 말대로 마음씨가 착한 분이었습니다. “자,이 버스를 타면 된단다.그리고 아줌마랑 같이 내리면 돼.” “고맙습니다.” “아이고,인사성도 바르구나.” 주머니가 활짝 웃었습니다.벌써 집에 도착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많이 기다렸을 엄마가 생각납니다.빨리 엄마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얼마나 갔을까요.그동안에도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내렸습니다.사람들은 표정이 없습니다.아마 피곤한 모양입니다.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아니면 눈을 감고 있습니다. “여기야.이젠 내리면 된단다.” 현영이는 눈에 익은 동네가 보이자 가슴이 뛰었습니다.버스에서 내려 다시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어서 가거라.엄마가 많이 기다리시겠다.” 한참 동안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현영이는 달려가다 몇 번 이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이제 아주머니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그 곳에는 어둠이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어둠이 씨익 웃어 줍니다. 현영이도 한 번 웃어주고 달렸습니다.엄마와 아빠가 기다리는 집으로. “딩동” “누구세요?”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바로 나옵니다. “엄마.” “현영아.정말 현영이구나.하느님 감사합니다.” 엄마는 그동안 몇 차례나 밖으로 현영이를 찾아 다녔습니다.그리고 조금 전에 집에 들어와 경찰서에 전화를 했습니다. “집을 잃어버렸으면 전화를 해야지.그럼 엄마가 데리러 갔을 텐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면 쉽게 집에 올 수 있었겠지만 아마 바다나 개미,바람과 어둠이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겠지요. “그냥,물어서 왔어요.” 집에 돌아온 현영이는 안심이 되면서 피곤해졌습니다.아빠도 일찍 들어왔습니다.온 가족이 모였습니다.밥을 먹고 양치질을 하고,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자리에 든 현영이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엄마는 분명 하느님이라고 했습니다.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느님은 만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고마운 분들은 많습니다.바다,개미,바람,어둠이,아주머니.모두 다 고마운 분들입니다. 집과 숨바꼭질을 한 현영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 끝 - ■당선 소감 겨울,바람 끝에 칼이 숨어 있다.회색의 거리로 나왔다.어색한 미소를 머금고 기웃거렸다.누군가 나를 봐주었으면 했을까.그것은 나름대로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였다.수많은 사람들이스쳐 지나갔다.그들은 표정이 없는 얼굴로 옷깃을 꼭꼭 여민 채 빠른 속도로 내 곁을 지나쳤다. 맥없이 또각또각 걸음을 옮기는데 가는 눈발이 발길을 잡았다.하늘을 보았다.가는 눈발이 함박눈으로 변했다.순간 같은 곳에서 많은 시선을 보았다. 일시에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향했다.그들의 얼굴에서 환한 미소를 보았다.곧이어 수없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욕심이 생겼다.저 눈 같은 동화를 써 봤으면. 잠시 여유를 가져 보자.무심히 스치는 것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간절히 말을 걸고 싶어 하는지.나 또한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우리는 모두 현대라는 빠르고 거대한 틀 속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보고 싶은 분들이 많다.조그만 가능성을 발견해 주셨던 배봉기 교수님,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광주 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그리고 나보다 더 가슴을 졸였을 가족들,같이 했던 문우들,세상 밖으로 끌어내 주신 심사위원님께 다시 한번 고개 숙여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약력 1959년 광주 출생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최종심까지 올라온 작품은 김혜정의 ‘청새리상어의 눈물’,김희진의 ‘휘파람새를 아세요?’,윤숙희의 ‘풍경’,최지혜의 ‘손수레에 넣어준 사랑’,정회옥의 ‘현영이가 만난 하느님’ 등 다섯 편이었다.이들 작품은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어서 당선작 결정에 고심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먼저 ‘손수레에 넣어준 사랑’은 지문보다 대화에 의존한 문장이 불안하고 전체적으로 응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풍경’은 소재가 진부하고 주인공 보현이가 밤길을 걸어 종소리를 찾아오는 부분에서 작위성이 드러난다는 이유로,‘청새리상어의 눈물’ 또한 실어증을 앓던 어린이가 말을 하게 되는 부분에서 작위성이 느껴져 오히려 감동이 반감되었다는 이유로 먼저 논의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남은 두 작품을 두고 고심한 결과 ‘현영이가 만난 하느님’을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휘파람새를 아세요?’는 군더더기 없는 치밀한 문장과 소설적 완결성을 보여주어 앞날이 크게 기대되는 작품이었다.그러나 동화라기보다는 소년소설에 가깝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당선작 ‘현영이가 만난 하느님’은 잔잔한 일상 속에 내재돼 있는 동심을 발견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어떤 소중한 감동을 동화의 본질이라고 볼 때,이 작품은 그 본질에 성큼 가까이 다가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집을 잃은 어린이가 집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바다와 개미와 바람과 어둠에게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는 데서 맑은 샘물과 같은 동심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낙선자에게는 격려를,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드린다. 조대현 정호승
  • 가자 아테네로/ 지금 선수촌에선

    ‘아테네올림픽 D-226’을 알리는 표지판에는 성에가 하얗게 끼어 있었다.불암산에서 몰아치는 새벽 바람이 온도계의 눈금을 끌어 내렸다. ‘올림픽의 해’인 2004년을 하루 앞둔 2003년 12월31일 새벽 6시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의 박정구 생활지도위원이 운동장의 불을 환하게 밝히자 태릉선수촌은 잠에서 깨어났다.개선행진곡이 울려 퍼졌고,선수들은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하나둘씩 운동장으로 모여 들었다.밤 10시까지의 고된 ‘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운동의 기본은 예의’라는 말이 실감난다.종목별로 빙 둘러서서 에어로빅 체조로 몸을 풀더니 운동장을 뛰기 시작했다. 군대의 새벽 구보처럼 대오를 이뤄 뛸 것이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어떤 선수들은 한 바퀴 걷더니 곧바로 어디론가 사라지고,또 어떤 선수들은 무리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몇몇 선수들은 날이 훤하게 밝을 때까지 계속 돌았다.박 지도위원은 “자신의 컨디션과 운동 스케줄에 맞게 몸을 푸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침 식사는 7시부터.1식6찬이 뷔페식으로 제공됐다.냉장고에는 우유가 빼곡히 들어찼고,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통에는 한약 봉지가 떠 있었다.펜싱 국가대표 현희(경기체육회)가 “제 약 주세요.”라고 말하자 주방 아주머니는 수험생 딸에게 약을 챙겨주듯 정성스럽게 꺼내 줬다.아주머니들은 숱한 한약 봉지의 주인들을 모두 기억한다고 했다. 몸매가 생명인 체조 선수들은 야채만 먹는다.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4관왕인 양태영(경북체육회)은 “아침보다는 온갖 고기류가 나오는 점심이 문제”라면서 “연습보다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는 게 더 힘들다.”고 말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장인 ‘월계관’에 들어서자 땀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운동 기구만 750여개.언뜻 보기에는 일반 헬스클럽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선수 개인과 종목의 특성에 따라 운동할 수 있도록 특수제작된 기구들이다.공압식이나 유압식 기구는 1대에 2000만원이 넘는다. 최근 ‘육성 종목’으로 떠오른 펜싱과 체조는 지난 8월 완공된 ‘개선관’을 꿰찼다.비인기종목에다 메달가능성도 별로 없어 변방에 머물던 이들 종목이 선수촌 한 가운데로 중심이동을 한 것.러시아에서 영입한 옥다이(펜싱 사브르) 코치는 “태릉선수촌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훌륭한 엘리트스포츠의 요람”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선수촌을 찾는 원로들은 “시설과 음식은 좋았졌는데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예전 같지 않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곤 한다.프로화가 된 일부 종목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는 세상이다. 지난 1966년 개촌과 함께 농구 국가대표 선수로 입촌했던 김인건 선수촌장은 “선수들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라면서 “세월의 변화에 맞게 선수촌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촌장은 “올림픽이 사라지지 않는 한,국민들이 스포츠가 주는 희열을 간직하는 한 가슴에 태극마크를 단 대표선수들의 자부심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연금과 일당 등 금전적인 보상외에 선수들을 운동에 몰입시키는 원동력이 바로 자부심이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일단 선수촌에들어오면 외박이 금지됐고,매일 새벽과 밤 점호를 취했다.선수들 사이에서는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현재의 태릉선수촌은 음주와 도박을 제외하고는 자율에 맡긴다.김 촌장은 “조만간 연습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선수촌을 시민들에게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후 5시.특별한 훈련법으로 이름난 양궁대표팀을 찾았다.이날의 특별프로그램은 심리상담.서울대 정창희 교수팀이 선수들의 뇌파를 검사한 뒤 개인면담을 했다.윤미진(경희대)은 4∼5점을 앞설 때 의외로 흔들리고,박성현(전북도청)은 첫번째 화살을 쏠 때 가장 불안하다는 등 개인별로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숙소의 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한 밤 10시에도 농구장에서는 공 튀는 소리가 들렸고,복싱체육관에서는 샌드백 치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골아떨어진 선수들이나 밤을 잊고 ‘나머지 공부’에 열중하는 선수들이나,그들의 가슴에는 아테네의 꿈과 영광이 영글고 있었다. 이창구기자 window2@ ■김인건 선수촌장 “금메달 13개 이상을 획득해 10위권에 재진입하는 게목표입니다.” 프로농구 감독에서 국가대표의 요람인 태릉선수촌의 총 지휘자로 변신한 지 1년이 지난 김인건(사진) 선수촌장은 올림픽 10위권 복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메달 가능성을 점검한다. 한국은 1984년 LA올림픽(금6·10위)을 시작으로 88서울대회 4위(금12),92바르셀로나대회 7위(금12),96애틀랜타대회 10위(금7) 등 네차례 올림픽에서 줄곧 10위권을 유지하다 지난 2000년 시드니대회(금8)에서 12위로 밀렸다. 김 촌장은 특히 “서울올림픽 이후 이어진 하향세를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반드시 상승세로 돌려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촌장은 10위권 진입의 마지노선을 금메달 13개로 점치고 있다.“태권도 양궁 레슬링 등 효자종목은 물론 상승세를 보이는 배드민턴 펜싱 유도에다 역도 사격 체조 등에서도 깜짝 금메달을 노리고 있어 13∼16개를 점치고 있다.”고 밝혔다. 금메달 4개가 걸린 태권도에서는 이미 남자 68·80㎏급과 여자 57·67㎏급 4명이 모두 출전권을 따내 ‘싹쓸이’를 벼른다.양궁에서는 남녀 개인·단체 등 4개의 금메달 가운데 최소한 3개가 목표다. 지난 두 대회에서 심권호의 금메달 각 1개에 그친 레슬링은 문의재(자유형 84㎏급)를 중심으로 3개의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국제대회 전승 행진중인 ‘꿈의 복식조’ 라경민·김동문이 버티는 배드민턴도 빼놓을 수 없는 유망 종목.혼복과 남녀 복식에서 1∼2개의 금메달이 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펜싱에서는 여자 에페 단체에 기대를 걸지만 상승세의 남자 개인 플뢰레도 꿈을 부풀리고 있다. 남자 유도에서는 세계선수권 우승자 이원희(73㎏급)와 황희태(90㎏급)가 금을 벼르고,2002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형주(66㎏급)와 여자 유도의 희망 조수희(78㎏이하)도 유망주다.역도에서는 이배영(69㎏급) 송종식(85㎏급)을 선두로 남·여 각 4체급의 선수가 92바르셀로나대회 전병관 이후 12년만의 ‘금사냥’을 노린다. 사격에서는 공기소총의 서선화와 더블트랩의 이상희가 92바르셀로나대회 여갑순 이후 처음으로 ‘금 타깃’을 겨냥하고,체조의 김승일(마루)은 사상 첫 금에 도전한다.오상은·유승민,이은실·김경아의 탁구 남녀 복식조도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을 채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
  • 신나는 건강동호회/철인 3종 ‘아이언윙’

    “올해는 기필코….”운동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다짐한다.하지만 비장함은 대개 봄볕에 눈 녹듯 사라지고,이런 저런 핑계를 대기 마련이다.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들.하지만 즐거운 이들.‘철인을 따라다니기만 해도 철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인3종경기 동호회 사람들의 훈련 현장을 가봤다. “국화씨,오늘도 벗고 뛸거야?날도 추운데 참아.”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조정경기장.지난 28일 새벽 6시50분.기온은 영하 7.9도.10명의 남녀가 모여 있는 주차장 곳곳엔 매끄러워 보이는 얼음이 눈에 띄었다.조금 다가가자 들려오는 말소리.“겨울 코트에다 목도리까지 중무장을 하고 있어도 추운데 얇은 운동복만 입은 사람이 그나마 입고 있던 웃옷도 벗는다니….”이들은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동호회 ‘아이언윙’ 회원들이다. ●새벽6시50분 살에는 듯한 추위 철인3종경기는 수영 3.9㎞,사이클 180.2㎞,마라톤 풀코스 42.195㎞를 한꺼번에 완주하는 경기다.러닝머신에서 5㎞ 뛰고도 다리에 알이 박이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은 말그대로 ‘철인(鐵人)’이다. 회원들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10여분간 이리저리 관절을 움직이다 땀을 낸다고 PT체조까지 한다.오늘은 일요 훈련을 하는 날.25㎞ 마라톤과 사이클 20㎞가 예정되어 있다.다들 모자·귀마개·장갑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있다.조정경기장 트랙을 돌아 한강 둑길로 접어드는 코스.미사리 간사 박인석(49)씨가 “오늘은 기자분도 오고 했으니까 살살 가자고.앞에서 너무 빨리 달리지마.”회원들에게 당부를 한다.“은숙씨,목요일에 보니까 수영 잘하던데.동계 훈련만 잘하면 시합나가도 되겠어.”“에에,아직 3㎞도 못 나가요.숨쉰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더니 목도 아프고….”회원들은 달리면서 호흡도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얘기를 나눈다. 30분 정도 됐을까.슬슬 앞사람들과 기자와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이젠 보이지도 않는다.겨우 4㎞ 정도 뛰었는데 다리가 묵직해졌다. 인터뷰를 핑계로 인석씨와 걷기 시작했다.2번이나 철인 코스를 완주한 인석씨에게 왜 철인3종경기를 하느냐고 물었다.“힘들지만 그 과정을 이기는 것이 트라이애슬론의 묘미”라는 대답이 들려온다.사실 그도 운동을 하기 전 허리 디스크에 시달렸다.무릎관절도 안 좋아 3층 사무실에서 내려오는 것도 힘들었다.그런 그가 어떻게 철인3종경기를 하게 됐을까.“처음엔 마라톤을 했지.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트라이애슬론을 하게 되더라고.운동을 하다가 보니까 관절 근육도 튼튼해졌지.내가 낼 모레 오십인데 언제라도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다.”며 자신감 있게 웃어보였다. 인석씨와 함께 한강 둑으로 접어들자 김국화(26)씨가 기어이 웃통을 벗고 달리고 있었다.찬바람에 살이 벌겋게 됐다.“국화씨,그러면 나중에 살이 에려.정 웃통을 벗고 달리려면 토시를 껴.그러면 따뜻해”라고 보다 못한 인석씨가 조언을 했다.텔레비전에서 철인3종경기를 하는 걸 보고 무작정 운동을 시작했다는 국화씨는 1년 만인 지난 8월 철인 코스를 완주했다.“철인3종경기를 하기 전에 헬스를 한 게 전부다.”라며 “경기 한 달 전에 일주일에 마라톤 20㎞,사이클 40㎞를 한 번,수영을 두 번씩 연습했다.”고 말했다.이어 “이런 나도 할수 있었으니까 누구나 다 철인에 도전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반문했다. ●힘들지만 훈련후 성취감에 뿌듯 국화씨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최정수(40)씨.땀으로 젖었던 정수씨의 옷이 하얗게 얼었다.얼음을 털어내는 그도 철인3종경기는 초보다.지난 여름에 산악자전거를 타러 갔다 철인대회를 구경하고는 바로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했다.“딸하고 철인 대회를 봤는데 ‘저거다.’ 싶더라고요.그래서 바로 그날부터 연습을 했죠.지난 10월에 울진 대회를 나갔죠.성적이요? 준비 없이 대회에 나갔으니까 성적이야 뭐”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다. 추운 한강변에서 2시간 넘게 달리던 이들이 돌아온 것은 오전 10시가 다 된 시간.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오자 중간에 사라져 다른 이들을 걱정케 했던 임송운(35)·이호정(28)씨가 생강차를 들면서 기다리고 있었다.송운씨는 “호정씨가 감기 때문에 힘들어서 쉬고 있었다.”며 오는 3월에 결혼할 예비신랑의 살가움을 보여줬다.송운씨와 호정씨는 트라이애슬론으로 맺어진 인연. 송운씨는 “수영을 잘 하지 못하는 제가 잠실쪽에서 마라톤을 하고 있었거든요.근데 호정씨가 수영대회에서 3㎞를 쉬지 않고 헤엄치더라고요.비록 4등을 해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아 저 사람은 체력은 걱정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한눈에 뿅갔죠.”라며 옆에 있는 호정씨와 웃음을 나눴다. 이제 회원들은 하나둘씩 사이클과 MTB 등을 꺼내 자전거 훈련을 준비했다.올 초에 철인경기에 입문한 정은숙(35)씨는 오늘 사이클 클립 연습을 한다. ●동호회서 만나 결혼하는 커플도 “잘 해야 돼.오늘 생일인데 괜히 넘어져서 몸에 상처라도 나면 남편이 화낼 걸.”이라고 말하는 회원들의 농담에 모두 크게 한 번 웃으며 훈련을 하러 나섰다.은숙씨는 잔디밭으로,나머지 회원은 조정경기장 트랙으로 자리를 옮겼다.훈련이 쉽지 않은 듯 은숙씨는 몇번이나 넘어졌다. “내가 수영이나 마라톤은 자신이 있는데 자전거는 영 무서워서….”라며 말문을 연 은숙씨는 “국군체육부대에서 여군 하사관으로 근무를 했죠.그때 여자사이클 선수들하고 방을 같이 썼는데 이 친구들이 시합을 하고 오면 말그대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돼서 들어오곤 했죠.그걸 봐서 그런지 자전거 타는 것을 내 자신이 겁내나 봐요.”라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엔 그럴듯하게 다리를 움직였다.다른 사람들도 슬슬 돌아오고 오늘의 훈련은 점심 무렵에 끝이 났다. 기자가 돌아갈 때 인석씨는 “마라톤 훈련중에 지구력을 향상하는 지속주(持續走) 훈련이 있는데 영어 약자로 LSD라고 해.마약 이름과 같아.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트라이애슬론은 마약처럼 끊기가 어렵다고 한다.”며 “트라이애슬론은 절대 어렵지 않은 운동이다.누구나 철인만 따라오면 철인이 될 수 있다.다음 훈련에도 나오지?”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38선 명퇴시대/ 성공한 30대에 듣는다-800만원으로 14억만든 조상훈씨 신년 덕담

    멀쩡히 점심을 잘 먹었다.그런데 뜬금없이 “멈춰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너무 분주했고,너무 어수선했다.그 날 저녁 사표를 썼다.2002년 10월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조상훈(33)씨는 이후 지금껏 표면적으로는 ‘백수’로 지내고 있다.이쯤 되면 샐러리맨들은 두가지 생각을 할 터다.“말이 사표이지,회사에서 잘렸겠지.”라거나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겠지.”라고.그렇다.그는 후자쪽이다.본인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에게는 믿을 구석이 있었다.돈이다.800만원을 굴려 14억원을 만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유명해진 젊은이가 바로 그다. ●명확히 보일때까지 현업에 충실해야 ‘38선’의 비애에 노출돼 있는 동년배 30대들을 위해,인생의 방향을 먼저 튼 선배로서 ‘신년 덕담’을 부탁했다.그런데 의외의 충고가 되돌아왔다. “30대는 시행착오를 겪을 여력이 없다.무모한 도전에 자신을 베팅(내기)하지 마라.안 보이면 쉬워보이는 법.명확히 보일 때까지 공부하고,그 때까지는 현업에 충실하라.만약 준비가 되기 전에 회사에서 잘렸다면 차라리 눈칫밥을 먹더라도 백수로 지내라.내몰려 방향 전환을 시도하거나 설익은 투자에 나섰다가는 넘어진다.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은 중간에 넘어지지 않고 한번에 서야 한다.” ●8년동안 부동산으로 돈벌어 부산이 고향인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조금씩 모았다.하지만 이 때만 해도 부자보다는 군인이 더 되고 싶었다.94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군대에 입대했고,시쳇말로 ‘말뚝’(장기근무)을 박았다.이듬해 스물넷의 나이에 일찍이 결혼날짜를 잡았다. 그러나 막상 결혼식이 다가오자 ‘(경제문제를 포함해)책임있는 가장(家長)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도망쳤다.부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였다.96년 800만원으로 주식을 샀다.3주만에 2배로 불어났다.순전히 운이었다.‘운에 인생을 계속 맡길 수 없어’ 곧바로 주식을 팔고 빠져나왔다. 신문의 경제기사를 샅샅이 읽어가며 ‘공부’를 시작했다.직업군인으로 전국을 돌아다닌 덕분에 부동산에 대한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1억 6000만원으로 97년 대전에 미분양 아파트 6채를 샀다.2년만에 8배로 값이 치솟으면서 자산이 단숨에 10억원을 넘어섰다.임대사업자로 등록하려니 군인 신분은 아무래도 불편해 2001년 육군대위로 예편했다.서울의 작은 기업체에 취직했다.연봉은 3000만원이 채 안 됐다. 직장생활이 2년이 되어가던 무렵,불쑥 사표를 던지고 빈둥빈둥 놀다가 지난해 6월 교통사고가 났다.무료한 병원생활을 이겨낼 겸,자신이 돈 번 이야기를 글로 써 인터넷에 올렸다.곧바로 출판 제의가 들어왔다.‘33세 14억,젊은 부자의 투자 일기’라는 책을 펴냈다.인터넷 다음카페에 ‘선한부자’(cafe.daum.net/fq119)라는 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인터넷에서의 이름은 ‘죠수아’(여호수아의 영어식 발음). ●선한부자 만들기 무료 오프라인 개설 그는 선한 부자 1만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다.선한 부자 1만명은 중산층 4만명을 만들어내고,이는 다시 40만명의 고용창출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계산에서다.“부자가 되면 외로워진다.덜 외로우려면 나눠야 한다.선한 부자는 외로운 부자의 반대말이다.” 2004년 2월에는 선한 부자가 되는 법을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선한부자 스쿨’도 오프라인으로 개교한다. 서울대 강당과 서대문구청이 제공하는 공간을 확보해놓았다.수강료는 공짜.억대 자산가이지만 집안에서 그는 여전히 천덕꾸러기 장남이다.그의 부모는 “(아들이)직장이 없어 장가도 못간다.”며 여간 속앓이가 심한 게 아니다.조씨는 “느닷없이 부자됐다고 선언하기가 뭣해서”라며 얼버무린다.그는 “지금껏 미등기 전매를 한번도 한 적이 없고,세금을 빼돌린 적도 없다.”며 일각의 ‘투기꾼’ 시선에 당당하게 맞섰다. 안미현기자 hyun@
  • 이집이 맛있대요/대구 수성구 ‘이봉화추어탕’

    ‘좋은 재료가 좋은 음식을 만든다.’ 대구시 수성구 황금2동 들안길 먹자골목 이봉화추어탕은 철저하게 자연산 미꾸라지만 고집하는 곳이다. 미꾸라지를 가스불이 아닌 연탄불에 푹 삶은 후 뼈를 일일이 발라내고,여기에 배추속대·파·토란줄기를 넣어 끓인 추어탕은 담백하고 시원하기 그지없다.추어탕 한 그릇에 밥 한술 놓으면 전날 숙취 해소에도 그만이다.국을 끓일 때는 수돗물이 아니라 생수만을 사용하고 인공조미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 곳의 특징.반찬으로 내놓는 김치와 물김치,고춧잎 장아찌도 좋은 재료만을 사용해 맛이 일품이다. 그날 팔다 남은 추어탕을 다음날 다시 팔지 않는다.남은 추어탕은 푸드뱅크나 노인복지회관 등에 기탁한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미꾸라지 찜과 튀김도 별미다. 무·시래기 등 갖은 야채와 맵싸한 고추장을 넣은 미꾸라지 찜은 술안주로 그만이다.통 미꾸라지를 깻잎에 말아 튀긴 미꾸라지 튀김은 바삭바삭 씹히는 맛이 고소하다.간장에 고추냉이 등을 넣어 만든 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미꾸라지를 소금에 씻으면 기절해 깻잎에 말기 편해진다.”는 게 이봉화(50) 사장의 설명이다. 술안주로 내놓는 김천 지례토종돼지 수육과 궁중 떡볶이도 맛깔스러운 음식이다.점심 때 일찍 가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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