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젊은 피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스포츠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디테일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이서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구리시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898
  • [新 평판 사회] 체육계에 부는 신선한 바람

    [新 평판 사회] 체육계에 부는 신선한 바람

    ‘실력으로만 선수를 뽑겠다.’ 울리 슈틸리케(61) 축구대표팀 감독의 평범한 이 말 한마디가 한국 축구를 불신의 늪에서 건져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상무)이라는 무명 선수를 발굴해 브라질월드컵 참패와 ‘의리 축구’에 분노하던 축구 팬들에게 27년 만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이라는 희망을 던져 줬다. 프로야구에서는 ‘대졸 간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올해 억대 연봉자 141명의 62.4%인 88명이 고졸이다. 인맥이나 학벌보다는 실력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스포츠에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실력 축구’ 만세 슈틸리케 감독 무명 깜짝 발탁 후 아시안컵 준우승… 제2의 한국축구 전성기 예고 감독이 선수들의 실력만 보고 팀을 짰을 때 한국 축구는 강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은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이상 은퇴), 김남일(교토상가), 차두리(FC서울) 등 젊은피를 대표팀에 대거 수혈했다. 이제 축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지만,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선수를 뽑았다는 비난이 히딩크 감독을 향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는 능력으로 뽑는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선발한 선수들을 원동력으로 월드컵 4강 위업을 달성했다. 일본 J리그 2부팀에서 뛰던 박지성 등은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해외 리그에 진출, 한국 축구의 새 장을 열기도 했다. 반면 홍명보 전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자신이 총애하던 박주영(무적)과 함께 침몰했다. 홍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무승(1무2패)의 참담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홍 감독은 계약 기간을 6개월여 남겨 두고 떠밀리듯 물러났다. 팬들은 초라한 성적보다 ‘의리 축구’에 분노했다. 홍 감독은 2009년 이집트 국제축구연맹 청소년월드컵 8강,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영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홍 감독은 최근 경기에서 활약을 보인 선수 대신 자신과 청소년월드컵,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함께한 ‘홍명보의 아이들’을 중용했다. 23명의 월드컵 최종 명단의 15칸을 홍명보의 아이들이 채웠다. “소속팀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던 발언을 그대로 뒤집었다. 원칙을 어겼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 중심에는 박주영이 있었다. 박주영은 소속팀 아스널에서 출전 기회를 전혀 잡지 못했다. 경기 감각도, 컨디션도 정상이 아니었다. 월드컵 본선 2경기에 나서 슈팅 1개를 때리는 데 그쳤다. 홍 감독의 후임자 울리 슈틸리케(독일) 감독은 달랐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9월 부임했다. 첫 시험 무대인 2015 호주 아시안컵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4개월뿐이었다. 빠듯한 일정을 쪼개 수차례 프로축구 K리그 경기를 지켜보면서 선수를 찾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경험이 없고 소속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한 이정협(상주 상무)을 깜짝 발탁했다. 박주영은 제외됐다. 이정협은 아시안컵 6경기에 나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슈틸리케 감독의 안목이 정확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은 27년 만에 아시안컵 준우승을 달성하며 한국 축구의 부활을 예고했다. 최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슈틸리케 감독은 “제2의 이정협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면서 “그라운드에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선수 선발 기준을 분명하게 밝혔다. 인맥과 학연, 지연은 한국 축구의 오랜 병폐다. 국내에 연이 없는 외국인 감독은 여기서 비교적 자유롭다. 히딩크 감독이나 슈틸리케 감독처럼 센세이션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2006 독일월드컵을 지휘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원희(서울 이랜드)를 오른쪽 수비수로, 2007 아시안컵을 이끈 핌 베어벡 감독은 조재진(은퇴)을 발굴해 중용한 바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고졸 야구’ 만세 2000년대 이후 대학 간판 대신 프로 진출이 대세… 억대 연봉자 10중 6명 고교 야구 대어 선수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프로보다는 대학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에 가면 당장 거액의 계약금을 손에 쥐고 체계적인 몸 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학력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대졸 간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대학 시절 국가대표로 발탁돼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졸업 후 몸값이 더 뛴다는 장점도 있었다. 당시에는 대학 야구도 인기가 좋았고, 대학 스카우트가 고교 선수들과 꾸준하게 접촉하며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선수들은 프로로 갔으나 박봉에 시달리고 실력 차를 극복하지 못해 낙오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고졸 연습생 출신 장종훈 롯데 타격코치가 1990~1992년 빙그레 유니폼을 입고 3년 연속 홈런왕에 등극, 신화를 일구면서 고교 스타들의 프로 진출이 점차 늘었다. 1996년에는 장종훈과 김상진(두산) SK 코치, 김상엽(삼성) NC 코치가 처음으로 고졸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경북고를 졸업한 이승엽(삼성)이 32홈런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고, 일본으로 진출하기 전인 2003년까지 매년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국민 타자’로 우뚝 섰다. 2000년대 이후부터 고졸이 대세가 됐다. 2000년 이후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선수 중 2005년 손민한(NC·당시 롯데)을 빼고는 모두 고졸이다. 1999년까지는 장종훈(1991~1992년)과 이승엽(1997, 1999년) 단 두 명만 고졸이었으나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신인왕도 마찬가지다. 2002년 조용준(현대·은퇴)과 2005년 오승환(당시 삼성·한신), 2011년 배영섭(삼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졸이 생애 한 번뿐인 영광을 거머쥐었다. 억대 연봉을 받는 고졸 선수의 비율도 점차 증가했다. 8일 프로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2000년에는 1억원 이상을 받은 31명 중 11명(35.5%)만이 고졸이었으나 2004년에는 40.2%(82명 중 33명)로 40%대를 넘었다. 2010년에는 51.8%(110명 중 57명)를 기록, 처음으로 고졸이 대졸을 앞질렀다. 올해는 억대 연봉 141명 중 88명이 고졸로 채워져 역대 최고인 62.4%로 집계됐다. 특히 상위 6명인 김태균(한화·15억원)과 윤석민(KIA·12억 5000만원), 최정(SK), 장원준(두산), 강민호(롯데·10억원), 이승엽(삼성·9억원) 등이 모두 고졸이다. 물론 고졸이 프로에서 바로 두각을 나타내기는 힘들다. 입단 첫해 신인왕을 차지한 ‘순수 신인’은 2007년 임태훈(두산)을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2008년 최형우(삼성)부터 지난해 박민우(NC)는 모두 2군에서 1~2년 이상 경험을 쌓은 ‘중고 신인’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교 선수는 이제 몇 년 2군에 머무르더라도 대학보다는 프로행을 택한다. 대학 간판이 프로에서 성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최근 들어 구단도 즉시 전력감인 대졸보다 키워서 쓸 수 있는 고졸을 더 선호한다. 지난해 8월 프로야구 신인 지명 2차 회의에서는 신생팀 kt를 제외한 모든 구단이 1라운드에서 고졸을 뽑았다. 2라운드에서도 KIA와 한화만 대졸을 선택했고, 나머지 구단은 모두 고졸을 지명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국내여행 | 합천이어야 했던 이유

    국내여행 | 합천이어야 했던 이유

    이야기는 50여 년 전 한국에 머물렀던 어느 프랑스인에서 시작된다. 합천 해인사를 사랑해 죽어서도 그곳에 묻힌 사람. 무엇이 그를 넋으로 돌아오게 했을까? 그 질문에 밀려 합천으로 갔다. 홍류동에 뿌려지다 합천군은 잘 알고 있었다. ‘합천’ 하면 떠오르는 ‘해인사’의 공식이 이 도시의 이미지를 경직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시작한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이나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귀가 솔깃했으나 결국 2013년 이 행사를 찾았다는 200만명의 대열에 속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로제 샹바르’의 사연과 프랑스인들과 동행하는 합천 여행은 만사를 제쳐 놓게 할 만큼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단 ‘문제적 그’를 먼저 소개한다. 로제 샹바르Roger Chambard는 1959년 한국에 부임해 10년간 근무한 초대 주한프랑스 대사였다. 그 기간 중에 한국을 널리 여행했던 그는 특히 해인사를 좋아해 ‘죽으면 화장을 해서 해인사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했고, 실제로 1982년에 78세의 나이로 타계하자 유골은 한국으로 옮겨져 합천 해인사 자락에 뿌려졌다. 그의 손자 올리비에 샹바르Olivier Chambard는 프랑스 외교부 아프리카-인도양 담당 부국장이 되어 2011년 9월에 공무차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종종 언론에 소개되곤 했지만 그냥 잊힐 수도 있는 이야기에 마음이 복잡해진 이유는 아마도 ‘죽을 자리’ 때문이리라. 세상을 많이 떠돈 만큼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것은 회귀본능이다. 마지막 자리는 내 나라, 사랑하는 사람의 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결석처럼 단단해진다. 그런 본능을 넘어서 타국, 타향을 선택할 만큼 로제 샹바르의 해인사 사랑이 대단했던 것인지 영혼의 외로움이 컸던 것인지,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은 단편적이기만 하다. 어느 프랑스인의 피안彼岸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후 가난했던 한국의 모습은 흑백사진으로 남아있고, 그 사진 속 로제 샹바르도 흑백이다. 시간은 그냥 흐르기만 한 것이 아니어서 그 사이 홍류동紅流洞 계곡 옆으로 포장도로가 깔렸다. 2011년부터 ‘소리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해인사 산책로 6.3km는 3분의 2 이상이 이 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해인사 시외버스 터미널을 오가는, 통행량이 적지 않은 도로이고 커브를 도는 엔진소리는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도 잠식한다. 그 옛날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 할 정도로 옥계수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우렁찼다는 이야기가 무색하지만 다행히도(?) 소리길의 ‘소리’는 ‘Sound’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의 소리蘇利는 불교에서 ‘이상향’ 혹은 ‘피안’을 뜻한다. 작은 힌트를 주워 본다. 로제 샹바르가 해인사를 드나들던 그 시절에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홍류동 계곡은 어쩌면 그에게 이상향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우거진 송림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듬직한 바위 사이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청수, 그 물살의 기개를 보여 주는 폭포와 웅덩이들. 그 안에 숨은 19개의 명소. 신라 최고의 천재로 칭송받았지만 말년에 해인사에 머물다 홍류동 계곡에서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혹은 방랑 끝에 죽었다는) 최치원에게 이곳이 피안이었듯, 노년의 프랑스인에게도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은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소나무, 노각나무, 떡갈나무, 떼죽나무, 줄참나무, 굴참나무 가득하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지는 소리길을 두 시간 넘게 걷는 동안 두 노인의 마음을 소리 없이 헤아려 보았다. 최치원이 명명했다는 가야산 19경 중 16경이 그 헤아림에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다. 마음에 담은 해인사의 보물 대장경테마파크에서 시작된 소리길은 해인사에서 끝이 난다. 경내로 들어서자 한눈팔지 않고 장경판전으로 직행했다.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장경판전은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소로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팔만대장경8만1,258장은 12년 후에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이 건물은 통풍, 방습, 온도 유지 등을 고려한 과학적 설계에 있어서 현재의 건축기술이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새로운 건물을 신축했지만 일부 장경에 곰팡이가 피는 등 문제가 발생해 다시 옮겨 왔을 정도다. 통풍을 위해 앞뒤 창문의 크기를 다르게 하고 바닥에 숯과 소금 등을 깔아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지혜는 함부로 베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들어갈 수도, 사진촬영도 불가능하기에 아쉬운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데 먼 북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해인사가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앞마당엔 법고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경내의 모든 사람들은 부동자세로 젊은 스님들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전국 사찰 중 가장 힘차고 아름다운 법고 소리로 유명한 해인사이니 가능한 풍경이다. 무려 23개의 산내 암자를 지닌 해인사이기에 타종 소리, 법고 소리는 그 어느 곳보다 멀리 도달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경외로 나가자 아까 스치듯 지나온 전나무와 작품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소리길에서부터 드문드문 만났던 조각품과 설치 작품들은 2013년 진행됐던 해인사아트프로젝트의 흔적이다. 30팀의 국내외 작가들이 ‘마음’이라는 주제를 담아 평면, 입체, 미디어, 설치작품을 완성했다. 5,200여 만 자에 이르는 팔만대장경의 글자들을 단 한 자로 요약하면 ‘마음 心’이기 때문이다. 방치되어 파손된 작품 앞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정성을 다한 작품 앞에서는 경탄심이, 위트가 넘치는 작품 앞에서는 ‘아하’ 하는 마음이 둥둥둥 울리고 있었다. 팔만대장경에 한 톨씩을 새겨 넣었던 선조들의 바람은 호국이었든, 무병장수였든, 소원성취였든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신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불운한 말년을 보냈던 최치원의 마음과 타향에서의 안식을 원했던 로제 샹바르의 마음도 홍류동 계곡에서 하나로 합수하여 합천으로 흘러들고 있듯이 말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합천군 www.hc.go.kr ●Bon voyage 해인사 소리길의 도반들 해인사와 소리길 여행에는 유쾌한 도반들이 있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3명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인의 시선과 감성에서 로제 샹바르와 해인사의 인연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합천 여행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묻기 위해 합천군에서 초대한 손님들이었다.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벵자맹 박사가 두 사람을 위해 통역을 맡아 주었다. 그들의 ‘까칠하지만 솔직한’ 피드백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한없이 모던하고 최첨단인 대장경테마파크의 시설과 기술이 오히려 팔만대장경과 단절되어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고, 해인사 사하촌에 많은 식당이 있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이용하기가 불편하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지나치리만큼 자주 눈에 띄었던 해인사의 보시함을 지적할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일견 합당하고, 일견 문화적인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던 대화들은 1박2일 내내 진지하게 이어졌다. 해인사에 가려져 있는 합천의 매력이 더 잘 알려지기 바라는 ‘마음’들이 합천군에도 한 자 한 자 기록으로 새겨졌을 것이다. 참고로 세 사람의 프랑스인이 예상외로 황매산의 때늦은 억새풍경을 극찬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travel info 합천 합천영상테마파크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으로 탄생한 합천영상테마파크는 합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1920년대 경성의 거리와 1980년대 서울의 모습이 교차하는 곳이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이고 아이들에게는 낯선 근현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경남 합천군 용주면 합천호수로 757 055-931-2467 1,100원 대장경테마파크 초조대장경 간행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은 2011년 첫회를 시작으로 2013년 행사까지 성황리에 마쳤으며 다음 회를 기약하고 있다. 대장경테마파크 안에는 대장경천년관, 지식문명관, 정신문화관, 세계교류관, 세계시민관 등 5개의 전시관이 조성되어 대장경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160 055-930-4801~2 어른 3,000원 황매산 철쭉, 억새 군락지 5월이면 철쭉 원피스를 입고, 10월이면 억새풀 망토를 두르는 산이 황매산이다. 북서쪽 능선의 정상 아래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기에 평소에도 산상화원을 만나고 싶은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다. 봄과 가을만 바라는 사람은 초목으로 뒤덮인 황매산의 여름이나 눈꽃이 만발은 황매산의 겨울은 놓치는 것이니 어느 계절이든 황매산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대장경 밥상 받으시오! 합천군에서 지정한 딱 2곳의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상차림이다. 절식을 기본으로 했기에 기본적으로 채소밥상이지만 육류를 추가 주문할 수 있다. 건강한 맛뿐 아니라 식기를 모두 놋그릇을 사용하기 때문에 품격도 남다르다. 대장경 한정식은 1인분에 3만원으로 반드시 사전에 주문해야 하며 이 밖에 도토리 비빔밥 세트(1인분 1만5,000원), 도토리 비빔밥(7,000원) 등의 메뉴가 있다. 백운식당 055-932-7393 해인식당 055-933-1117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서울광장]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소외감이다/서동철 논설위원

    [서울광장]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소외감이다/서동철 논설위원

    이순신 장군이 내려다보고 있는 광화문 네거리 이쪽 저쪽에는 각각 진보와 보수가 큰길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보수는 천막을 쳐 놓고 상주하고 있고, 진보는 사람이 북적이는 퇴근 시간이 되면 플래카드를 걸어 놓고 집회를 시작한다. 그러니 출근길에는 보수 진영의 천막 앞으로 걸어가며 왕왕거리는 스피커 소리에 고통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오지 않는 광역버스를 기다리며 진보 인사의 고성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이쪽 저쪽에는 공통점도 적지 않다. 우선 주최 측이 누군지 몰라도 참여자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천막 농성장은 그저 서너 사람이 들락거릴 뿐이고, 건너편의 저녁 집회에도 참석자는 열몇 사람을 넘어서지 않을 때가 많다. 오가는 시민들이 어느 쪽에서 무슨 목소리가 터져 나와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같다. 아침저녁으로 이쪽 저쪽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다지도 닮았을까 생각하는 대목도 있다. 그것은 양쪽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다. 한결같이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이겠지만 양쪽은 모두 지쳐 있는 것 같다. 미안하지만 절어 있다는 표현조차 떠오른다. 이들은 평균치 정도의 행복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한복판에 이념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이들이다. 이념의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나라에서 이들은 분명 자기 진영의 최전선을 지키는 ‘투사’일 것이다. 자기 진영의 이념에 대한 굳은 신뢰에 기반한 자신감으로 무장하는 것은 ‘전사’의 기본 조건이다. 자신이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슬람국가(IS) 대원의 얼굴에서 비치는 자신감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광화문에 진을 치고 있는 이들의 표정이 자신감이 아니라 찌든 인생의 고뇌만 짙게 풍기고 있다고 한다면 이 역시 지극히 주관적 관찰의 결과일 것이다. 와중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가 습격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은 충격적이다. 리퍼트 대사가 피 흘리고 있는 모습은 눈을 뜨고 바라보기 쉽지 않았다. 오죽하면 몇몇 일간신문이 피격 직후 대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마치 몇십 년 전 신문인 듯 흑백으로 처리했을까. 청와대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를 열어 범인의 반미(反美)·종북(從北) 행적을 규명하고 배후 세력의 존재 가능성을 조사해 엄중하게 조치하기로 하는 등 정부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당연한 움직임이다. 범인의 전력은 반미와 종북, 배후를 의심하기에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TV 화면에 비친 범인의 모습을 보면서 착잡해지기 시작했다. 광화문 거리의 ‘찌든 전사’의 모습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확신범의 자신감이 보이지 않는 그의 표정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의 범행 동기는 반미와 종북 사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배후를 규명하는 수사도 한동안 뉴스 지면을 장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서 진짜 범행 동기는 소외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이 실제로 이념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갈등인지 긴가민가할 때가 있다. 보수를 넘어 극우적 행태를 보인다고 비난받는 한 인터넷 사이트도 그렇다.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가끔 뉴스를 타는 만큼 해당 사이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이들이 특정한 정치적 상황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도 없지 않은 모양이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로 사법 처리된 이용자도 적지 않다. 하지만 법정에 세워지면 한 마리 순한 양이 된다.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서 한 짓이니 그저 선처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 사이트의 성업은 결국 이념 때문이 아니라 관심에 목마른 ‘은둔형 외톨이’가 크게 늘어났음을 보여 준다. 이런 악담 사이트의 번성이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젊은 이용자가 많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지독한 이념 갈등은 국민 개개인의 소외감이 이념 문제로 포장되면서 더욱 증폭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념 갈등을 해소하는 대책 역시 정치적 문제로 국한시켜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히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더욱 중요한 시점인지도 모른다. dcsuh@seoul.co.kr
  • 피자알볼로, 제4기 공채 모집 “꿈과 열정을 가진 젊은 인재를 찾습니다!”

    피자알볼로, 제4기 공채 모집 “꿈과 열정을 가진 젊은 인재를 찾습니다!”

    수제피자 전문점 ‘피자알볼로’가 제4기 공채를 모집한다. 알볼로와 함께 꿈을 펼치고 먼 길을 함께 비행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피자알볼로는 직원과 회사의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밝고 젊은 기업이다. 직원들을 위한 피자시식권 지원, 기숙사 제공, 자기계발 교육비 지원, 조식제공, 창업지원, 장기근속자 해외여행 제공 등 다양한 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자율복장 근무, 전 직원 함께 점심식사 등 독특한 기업문화를 가진 기업이다. 이번 공채 모집은 디자인, 외식구매, 전산, R&D/교육, 위생서비스, 슈퍼바이저, 라이더, 인사총무, 점장후보, 홀매니저, 이천 도우공장 관리자, 부산지역 매장담당까지 총 12개 분야에서 활약할 인재를 선발한다. 오는 3월 9일에 마감하는 공채 모집은 온라인 채용사이트 잡코리아와 사람인을 통해 접수가 가능하며, 자세한 사항은 피자알볼로 홈페이지(www.pizzaalvolo.co.kr)에서 확인 가능하다. 총 2차에 걸쳐 면접전형이 진행되며, 서류전형에 합격하면 16~17일 양일간 임원진 면접이 진행된다. ‘동고동락’이라는 주제에 맞게 24일 2차 전형은 종일 면접이 실시될 예정이다. 총 3가지 과제(공통과제 2개, 개인과제 1개)가 주어지며 수행 과정을 평가하는 형식이다. 최종 합격자 발표는 26일이고, 30일부터 업무가 시작된다. 피자알볼로 인사 담당자는 “자사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보다 열정과 꿈을 가진 젊은이, 가족처럼 일하며 성장해나갈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다”며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열정이 가득하다면 피자알볼로 제4기 공채 모집에 지원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피자알볼로는 2005년 목동에 위치한 6평의 작은 가게에서 출발했다. 건강한 식재료와 풍부한 토핑을 담아 엄마의 손맛이 녹아있는 ‘집밥같은 피자’ 만들기를 모토로 하며 현재 200호가 넘는 매장을 운영 중에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하! 우주] 우리 몸이 ‘별먼지’였다고?

    [아하! 우주] 우리 몸이 ‘별먼지’였다고?

    “인간은 별의 자녀들이다” 인류가 처음 지구 상에 출현하여 밤하늘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별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달도 같이 떠 있었겠지만, 달이 없는 밤도 많으니까 주로 별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을 것이다. 이처럼 인류가 지구 상에 나타난 이래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수십만 년 보아왔지만, 그 별이 반짝이는 이유를 알아낸 것은 아직 한 세기도 채 안된다. 별이 빛나는 이유를 처음으로 알아낸 사람은 독일 출신의 미국 물리학자 한스 베테였다. 2차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 베테는 과학계가 풀지 못한 대표적 숙제였던 항성의 에너지 방출 메커니즘을 규명해 천체물리학의 토대를 놓았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젊은 베테가 이 사실을 논문으로 발표하기 전, 애인과 바닷가에서 데이트했는데, 그녀가 서녘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 저 별 좀 봐. 정말 예쁘지?” 그러자 베테는 으스대면서 이렇게 말했다. “흠, 그런데 저 별이 왜 빛나는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나뿐이지.” 베테가 32살 때 일이다. 물론 나중에 이걸로 논문을 써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20세기 물리학계에서 '최후의 거인'으로 불리던 베테는 몇 년 전 향년 99세로 타계했다. 만년의 그는 성자(세인트)의 풍모를 보였다고 전한다. 별들의 생로병사 새로 태어난 별들은 크기와 색이 제각각이다. 고온의 푸른색에서부터 저온의 붉은색까지 걸쳐 있다. 항성의 밝기와 색은 표면 온도에 달려 있으며, 근본적인 요인은 질량이다. 질량은 보통 최소 태양의 0.085배에서 최대 20배 이상까지 다양하다. 큰 것은 태양의 수백 배에 이르는 초거성도 있다. 지름 수백만 광년에 이르는 수소 구름이 곳곳에서 이런 별들을 만들고 하나의 중력권 내에 묶어둔 것이 바로 은하이다. 지금도 우리 은하의 나선팔을 이루고 있는 수소 구름 속에서는 아기 별들이 태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수소 구름은 별들의 자궁인 셈이다. 이렇게 태어난 별들은 맨 처음 수소를, 그다음으로는 헬륨, 네온, 마그네슘 등등, 원소번호 순서대로 원소들을 태우는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만들면서 짧게는 몇백만 년에서, 길게는 몇백억 년까지 산다. 그리고 별의 내부에는 무거운 원소 층들이 양파껍질처럼 켜켜이 쌓인다. 핵융합 반응은 마지막으로 별의 중심에 철을 남기고 끝난다. 철보다 더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별의 종말을 결정하는 것은 단 하나인데, 바로 그 별의 질량이다. 작은 별들은 조용한 임종을 맞지만, 태양보다 2,3배 이상 무거운 별들에게는 매우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별들은 속에서 핵 융합이 단계별로 진행되다가 이윽고 규소가 연소해서 철이 될 때 중력붕괴가 일어난다. 이 최후의 붕괴는 참상을 빚어낸다. 초고밀도의 핵이 중력붕괴로 급격히 수축했다가 다시 강력히 반발하면서 장렬한 폭발로 그 일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바로 수퍼노바(Supernova), 곧 초신성 폭발이다. 거대한 별이 한순간에 폭발로 자신을 이루고 있던 온 물질을 우주공간으로 폭풍처럼 내뿜어버린다. 수축의 시작에서 대폭발까지의 시간은 겨우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동안 빛나던 대천체의 임종으로서는 지극히 짧은 셈이다. 이때 태양 밝기의 수십억 배나 되는 광휘로 우주공간을 밝힌다. 빛의 강도는 수천억 개의 별을 가진 온 은하가 내놓는 빛보다 더 밝다. 우리은하 부근이라면 대낮에도 맨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초신성 폭발은 우주의 최대 드라마다. 그러나 사실은 신성이 아니라 늙은 별의 임종인 셈이다. 어쨌든 장대하고 찬란한 별의 여정은 대개 이쯤에서 끝나지만, 그 뒷담화가 어쩌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할지도 모른다. 삼라만상을 이루고 있는 92개의 자연 원소 중 수소와 헬륨 외에는 모두 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별은 우주의 주방이라 할 수 있다. 금이 철보다 비싼 이유 그럼 철 이외의 중원소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바로 초신성 폭발 때 엄청난 고온과 고압으로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초신성의 연금술이다. 연금술사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연금술은 초신성 같은 대폭발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지구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가지고 그들은 숱한 고생을 한 셈이다. 그중에는 인류 최고의 천재 뉴턴도 끼어 있다. 사실 뉴턴은 수학이나 물리보다 연금술에 더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초신성 폭발 때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중원소들은 많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바로 이것이 금이 철보다 비싼 이유다. 당신의 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금은 두말할 것도 없이 초신성 폭발에서 나온 것으로, 지구가 만들어질 때 섞여들어 금맥을 이루고, 그것을 광부가 캐어내 가공된 후 금은방을 거쳐 당신 손가락에 끼어진 것이다. 이처럼 적색거성이나 초신성이 최후를 장식하면서 우주공간으로 뿜어낸 별의 잔해들은 성간물질이 되어 떠돌다가 다시 같은 경로를 밟아 별로 환생하기를 거듭한다. 말하자면 별의 윤회다. 별과 당신의 관계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원소들, 곧 피 속의 철, 이빨 속의 칼슘, DNA의 질소, 갑상선의 요드 등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는 모두 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수십억 년 전 초신성 폭발로 우주를 떠돌던 별의 물질들이 뭉쳐져 지구를 만들고, 이것을 재료삼아 모든 생명체들과 인간을 만든 것이다. 우리 몸의 피 속에 있는 요드, 철, 칼슘 등은 모두 별에서 온 것들이다. 이건 무슨 비유가 아니라, 과학이고 사실 그 자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고 보면 어버이 별에게서 몸을 받아 태어난 별의 자녀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별먼지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스타(made in stars)'인 셈이다. 이게 바로 별과 인간의 관계, 우주와 나의 관계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그래서 우리은하의 크기를 최초로 잰 미국의 천문학자 할로 섀플리(1885~1972)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뒹구는 돌들의 형제요 떠도는 구름의 사촌이다’. 우리 선조들이 말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이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자의 2/3가 수소이며, 나머지는 별 속에서 만들어져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우주에 뿌려진 것이다. 이것이 수십억 년 우주를 떠돌다 지구에 흘러들었고, 마침내 나와 새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그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서 내가 듣는 것이다. 별의 죽음이 없었다면 당신과 나 그리고 새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공간을 떠도는 수소 원자 하나, 우리 몸속의 산소 원자 하나에도 백억 년 우주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은 138억 년에 이르는 우주적 경로를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게 된 셈이다. 이처럼 우주가 태어난 이래 오랜 여정을 거쳐 당신과 우리 인류는 지금 여기 서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주의 오랜 시간과 사랑이 우리를 키워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오늘 밤 바깥에 나가 하늘의 별을 보라. 저 아득한 높이에서 반짝이는 별들에 그리움과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진정 우주적인 사랑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평생 같이 별을 관측하다가 나란히 묻힌 어느 두 아마추어 천문가의 묘비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한다. “우리는 별들을 무척이나 사랑한 나머지 이제는 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금감원 임원 5명 60년대생으로

    취임 석 달 만에 ‘진웅섭호’의 조직 정비가 마무리됐다. 금융감독원은 1960년대생 임원으로 ‘젊은피’를 전면에 내세우고, 불완전판매 등 ‘금융권 적폐 해소’를 1순위 과제로 꼽은 인사를 했다. 금감원은 이상구(53) 총무국장을 은행·비은행 검사담당 부원장보에 승진 발령하는 등 신임 임원 6명의 인사를 한다고 15일 밝혔다. 업무총괄 담당 부원장보에 김영기(52) 감독총괄국장, 보험 담당 부원장보에 권순찬(56) 기획검사국 선임국장, 은행·비은행 감독 담당 부원장보에 양현근(55) 기획조정국장을 각각 낙점했다. 또 공시·조사 담당 부원장보엔 조두영(54) 특별조사국장, 회계 담당 전문심의위원엔 박희춘(54) 회계감독1국장을 선임했다. 권 부원장보를 빼고는 모두 1960년대생이다. 설 연휴 직후에 단행될 국장급 인사에서도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서태종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부원장 인사와 마찬가지로 학연이나 지연보다는 업무 능력과 대내외 평판 등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6명의 승진자 가운데 서울대와 연·고대 출신은 두 명뿐이다. 금감원장을 포함해 13명의 임원진 가운데 지방대 출신만 6명이다. 조직 개편은 금융소비자 보호와 위험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금융소비자 권익 침해와 불건전 영업관행 혁신을 위해 현행 기획검사국을 금융혁신국으로 바꿨다. 금융혁신국은 은행권 ‘꺾기’(대출을 빌미로 예금을 강권하는 것)와 리베이트, 금융사기, 잘못된 금융권 인사관행 등 금융적폐 해소의 선봉에 서게 된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아하! 우주]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와 태양계 가족사진

    [아하! 우주]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와 태양계 가족사진

    지구에서 인간이 찍었건, 우주공간에서 망원경이 찍었건 간에 지금까지 찍어온 모든 천체사진 중 가장 ‘철학적인 천체사진’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다. 이 사진이 지난 14일 밸런타인데이에 25번째 생일을 맞았다. 이 사진이 촬영된 날은 지난 1990년 2월 14일로 대중 천문학 책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故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당시 명왕성 부근을 지나고 있던 보이저 1호의 망원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려 지구의 모습을 찍어보자고 칼 세이건이 제안했던 것. 그러면 이 우주 속에서의 지구 위치를 보다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세이건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가 만만찮았다. 그것이 인류 의식을 약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과학적으로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게다가 망원경을 지구 쪽으로 돌린다면 자칫 태양빛이 망원경 주경으로 바로 들어갈 위험이 크다. 이는 끓는 물에 손을 집어넣는 거나 다름없는 위험한 행위라고 미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은 생각했다. 조그만 망원경으로 태양을 바로 보더라도 실명의 위험이 있을 만큼 태양빛은 망원경과는 상극이다. 이런 상황이라 칼 세이건도 아쉽지만 한 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새로 부임한 우주인 출신 리처드 트룰리 신임 국장이 결단을 내렸다.  "좋아, 그 멀리서 지구를 한번 찍어보자!" 그래서 그날 태양계 바깥으로 향하던 보이저 1호에게 카메라를 지구 쪽으로 돌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지구-태양 간 거리의 40배나 되는 60억km 떨어진 곳에서 보이저 1호가 잡은 지구의 모습은 그야말로 ‘먼지 한 톨’이었다. 칼 세이건은 이 광경을 보고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라고 시작되는 감동적인 소감을 남겼을 뿐만이 아니라,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기도 했다. 이때 보이저 1호가 찍은 것은 지구 뿐이 아니었다. 해왕성과 천왕성, 토성, 목성, 금성 들도 같이 찍었다. 이 모든 태양계 행성들은 우주 속에서는 역시 먼지 한 톨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지구 주변의 붉은빛은 행성들이 지나는 길인 황도대에 뿌려진 먼지들이 태양빛을 받아 만들어내는 빛깔이다. 보이저 1호는 쌍둥이 탐사선으로, 보이저 2호(1977년 8월 20일 발사)보다 보름 늦게 발사됐는데도 ‘1호’라는 명칭을 얻었다. 2호보다 더 빨리 우주를 탐험하도록 설계돼 현재 지구-태양 간 거리의 130배가 넘는 190억㎞ 거리에서, 그리고 2호는 150억㎞ 거리에서 태양계 바깥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인간이 만든 물건으로 가장 멀리 날아간 셈이다. 보이저 1호의 수명은 애초 20년으로 예상됐으나, 플루토늄 배터리를 이용해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수명 예측은 이제 2025년 혹은 2030년까지 늘어났다. 그때까지 지구로 보내올 최초의 태양계 밖 탐사자료에 대한 기대는 벌써 천문학계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아래는 칼 세이건 박사의 ‘창백한 푸른 점’ 육성 소감이다. 다시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여기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 예전에 그네들의 삶을 영위했던 모든 인류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았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량, 수없이 많은 그 강고한 종교들,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최고 지도자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기-햇빛 속을 떠도는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지구는 우주라는 광막한 공간 속의 작디작은 무대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 속의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장군과 황제들이 흘렸던 저 피의 강을 생각해보라. 이 작은 점 한구석에 살던 사람들이, 다른 구석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잔혹함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자주 서로를 오해했는지, 얼마나 기를 쓰고 서로를 죽이려 했는지, 얼마나 사무치게 서로를 증오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이 희미한 한 점 티끌은 우리가 사는 곳이 우주의 선택된 장소라는 생각이 한갓 망상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사는 이 행성은 거대한 우주의 흑암으로 둘러싸인 한 점 외로운 티끌일 뿐이다. 이 어둠 속에서,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구는,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한에서, 삶이 깃들일 수 있는 유일한 세계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해 살 수 있는 곳은 이 우주 어디에도 없다. 갈 수는 있겠지만, 살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 인류는 당분간 이 지구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천문학은 흔히 사람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인격형성을 돕는 과학이라고 한다.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인간의 오만함을 더 잘 드러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자각을 절절히 보여주는 것이 달리 또 있을까?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新국토기행] 부산 중구

    [新국토기행] 부산 중구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부산 중구는 20여년 전까지 부산시청을 비롯한 행정기관과 기업 및 금융기관, 상업시설이 집중된 부산의 중심이었다. 시청 이전으로 한때 침체기를 맞았으나 최근 제2롯데월드 등 위락시설이 들어서고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등 전통시장의 시설 현대화사업과 영화 촬영지로 명성을 얻으면서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특히 중구는 일제강점기 부산항을 중심으로 일제의 대륙침탈 전초기지 역할을 하며 도시화가 진행,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는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수많은 청년이 이곳에서 강제노역이란 이름으로 배에 몸을 실었으며, 광복 및 6·25전쟁 당시 외국에서 귀국한 동포들과 피란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의 뜨거운 피와 메케한 최루탄 연기가 뒤섞인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기도 했다. 지금은 유통·숙박·문화·상업시설과 해양친수공간을 연계한 관광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 볼거리 ●남포동·부평동 영화거리 ‘부산국제영화제(BIFF)광장’ 부산국제영화제가 1996년 출범과 더불어 남포동과 부평동 일대 극장가를 새로 단장하면서 탄생한 곳이 BIFF광장이다. 당시 ‘스타의 거리’와 ‘영화제의 거리’도 선포했다. 유명 영화감독과 배우들의 핸드프린팅, 영화 포스트, 야외 상설무대가 있어 매년 BIFF 전야제가 열린다. 광복 이후 한두 군데 극장이 생기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남포동 극장가는 1960년대에 이르러 20여개의 극장이 한꺼번에 들어서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영화거리가 됐다. 이곳은 부산극장과 대영시네마, CGV남포극장 등 극장이 한곳에 밀집돼 있다.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로 넘쳐나면서 부산의 젊은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랜드마크 부산타워가 우뚝 솟아있는 ‘용두산공원’ 부산 한복판에 자리 잡은 용두산공원은 산의 형태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54년 대화재로 소실된 이후 새로 조성되면서 120m 높이의 부산타워가 들어섰다. 부산타워는 부산의 상징이자 중구의 랜드마크로서 전망대에 오르면 부산 시가지와 부산항이 한눈에 펼쳐진다. 날씨가 맑으면 멀리 대마도까지 보여 중구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꼭 들러야 하는 명소 중 하나다. 요즘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영화흥행에 발디딜 틈 없는 ‘국제시장’-120년 전통 ‘부평깡통야시장’ 국제시장은 광복 이후 일본과 중국 등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모여들어 노점을 차리면서 시작됐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항에서 하역된 군수품과 생활용품 등이 국제시장으로 들어오면서 전국에서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도매로 물건을 뗀다고 해서 ‘도떼기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먹자골목과 젊음의 거리, 만물의 거리, 아리랑 거리, 구제 골목 등으로 구분된다. 부평깡통시장은 초창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등 깡통 제품을 판매,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120년 전통을 자랑하는 향토 음식과 다문화 음식 등 풍부한 먹을거리와 관광, 쇼핑이 어우러진 전국 최초의 야시장이 불야성을 이룬다. ●부산 민주항쟁의 산증인 ‘보수동 책방골목’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전쟁 당시 손정린(현 보문당서점 대표)씨 부부가 미군부대에서 나온 잡지와 만화 등을 판매하는 좌판을 차린 게 계기가 됐다. 휴전 직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학생과 문인들의 문화적 갈증을 없애주던 문화공간 구실을 했으며, 부산 민주항쟁의 한몫을 담당했다. 현재 국내 유일의 책방골목으로 명성을 이어가며 40여개 서점이 영업하고 있다. ●일제 침략의 상징 ‘부산근대역사관’ 일제 강점기인 1929년 건조된 역사관 건물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기구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사용됐다. 광복 이후인 1949년부터 미국 해외 공보처 부산문화원으로 사용됐다. 이 건물은 부산시민들의 끊임없는 반환요구로 1999년 미 문화원이 철수하고 우리 정부로 반환된 뒤 그해 6월 부산시가 인수했다. 시는 일제침략의 상징이었던 이 건물을 시민들에게 아픈 역사를 알릴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3년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조성했다. 이곳에는 외세의 침략과 수탈로 형성된 부산의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개항기 부산, 일제의 수탈과정, 근대도시 부산, 동양척식주식회사, 근현대 한·미관계, 부산의 근대거리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부산 최초의 연륙교 ‘영도다리’… 2013년 47년 만에 재개통 1934년 11월 23일 개통된 영도다리는 부산 최초의 연륙교로서 길이가 214.63m로 내륙 쪽의 31.30m를 도개교로 만들었다. 육지 쪽 다리의 일부인 도개부가 하루 7차례씩 들어 올려졌는데 이 장관을 보려고 몰려든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영도다리는 1966년 9월 1일 안전을 위해 철거된 이후 그 자리에 새로운 다리가 건설돼 도개 중단 47년 만인 2013년 11월 27일 재개통됐다. 하루 한 차례 다리를 들어 올려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산비탈 위 산복도로마을에 설치된 ‘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산비탈에 삶의 터전을 잡으면서 형성된 산복도로마을에 지난해 전국 최초로 주민복지형?모노레일이 설치돼 주민들로부터 큰?호응을?얻고?있다.?이?모노레일은?산복도로?고지대?서민의?이동수단이자?관광자원으로도?활용되고 있다. ●국내 최대의 수산시장 ‘자갈치 시장’ 국내 최대의 수산시장으로 숱한 이야기와 화제가 쌓인 곳이다. 6·25전쟁 후 여인네 중심의 어시장 형태로 자리를 굳히면서 ‘자갈치 아지매’라는 정겨운 이름까지 생겨났다. 부산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부산의 대명사로 불리며 억척스러운 경상도 아줌마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파닥거리는 생선의 물 튀기는 소리, 흥정하는 소리로 늘 시끌벅적한 전통시장이다. 항구에서 갓 잡아올린 생선들이 중매인을 통해 생선가게로 공급되며, 생선가게와 횟집에선 싱싱한 생선을 사시사철 입맛에 따라 맛볼 수 있다. 시장 건물 밖 노점에는 생선 파는 아낙네들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행인의 발길을 붙잡는다. 국내 최대 어항 특유의 번잡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 먹거리 ●100년 이상 역사 자랑하는 ‘부평시장 어묵 골목’ 수산물이 풍부했던 부산에서 만들어진 부산어묵의 역사는 100년 이상 될 만큼 두텁다. 노점상에서 판매하는 불량 음식의 대명사였던 어묵은 이제 부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해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부평시장은 부산 어묵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부평동 사거리 새콤달콤한 유혹 ‘족발 골목’ 광복동과 부평동을 연결하는 이면도로의 중심부 부평동 사거리에는 부산 최대의 족발 골목이 자리하고 있다. 족발 집마다 입구에 무더기로 쌓아놓은 족발이 행인의 입맛을 자극한다. 족발 특유의 구수한 맛과 냄새는 식욕을 돋우고 채소와 어우러진 족발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버무려 먹는 맛은 족발의 신세계를 선사한다. ●고추장 양념 버무린 곰장어와 싱싱한 활어회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가 생선회다. 자갈치시장에는 수많은 횟집이 밀집, 싱싱한 활어를 직접 골라 곧바로 회를 즐길 수 있다. 또 ‘아나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곰장어요리도 자갈치시장의 명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자갈치시장 곰장어요리는 산 곰장어를 매콤한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연탄불에 구워먹는데 부산 앞바다의 정취가 한데 어울려 절로 술을 부른다. ●해바라기씨·호박씨·땅콩 넣어 고소한 씨앗 호떡 부평동 깡통야시장의 명물 ‘씨앗 호떡’은 밀가루 반죽에 설탕에 버무린 해바라기씨와 호박씨, 땅콩 등을 넣은 것으로 고소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부평동과 남포동 일대에 조성된 BIFF광장에는 씨앗 호떡을 비롯한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 ●구수한 향에 건강은 덤 ‘죽 골목’ 부평동 깡통시장에는 죽 골목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곳에는 잣죽을 비롯한 깨죽과 호박죽, 녹두죽, 콩죽, 수수죽 등 육지에서 생산되는 모든 곡식을 이용해 죽을 쑤어 팔고 있다. 물엿만큼이나 뻑뻑하게 쑤어내는 죽 맛은 구수하기 그지없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이다. 특히 치아가 좋지 않은 나이 지긋한 사람들에게 더없이 안성맞춤인 영양식이다. 부산 오성택 기자 fivestar@seoul.co.kr
  • 염상섭부터 김애란까지… 민초의 100년 삶 비추다

    염상섭부터 김애란까지… 민초의 100년 삶 비추다

    “염상섭의 ‘만세전’에서 비로소 근대적 자아가 보입니다. 식민지 근대를 염두에 두고 염상섭의 작품을 시작으로 택한 이유예요.” 황석영(72)이 꼽은 근현대 문학의 출발 기점은 염상섭(1897~1963)이다.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전10권·문학동네)의 첫 작품이 염상섭의 ‘전화’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동인·이광수의 작품은 근현대 문학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고 제외했다. 문학평론가 신수정 역시 “이광수는 계몽적 자아에 머물러 문학 영역으로 온전히 들어왔다고 보기 어렵고 김동인은 일본이나 외국 문학 번역 소설로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한 단계가 아니었다”고 거들며 한국근현대문학의 파천황을 염상섭으로 꼽았다. 황석영은 29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문학동네 북카페 ‘까페꼼마’에서 출판간담회를 가졌다.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 3년 동안 연재됐다. 2011년 11월 11일 염상섭의 ‘전화’로 시작해 지난해 11월 5일 김애란의 ‘서른’으로 끝났다. 7권까지는 일주일에 한 권씩 연재하다 8~10권은 일주일에 네 권씩 게재했다. 황석영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단편 문학 선집을 재편성해 내고 싶었다”면서 “새로 나와도 종래 선집들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작가들 몇 명 붙일 뿐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당초 100편으로 기획됐지만 한 편이 늘어 101편으로 마무리됐다”면서 “백 편을 채우고도 넘치고 남아서 백한 번째 소설에 도달한 것은 완결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유명 작가의 지명도 높은 단편뿐 아니라 지금은 거의 잊힌 작가의 숨은 단편들도 포함했다. 작가들의 최전성기 때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골랐다. 원작과 황석영의 작가·작품 해설, 신수정의 시기별 해설로 구성됐다. 리뷰에는 황석영의 기억과 여러 인터뷰나 증언 자료를 토대로 해당 작가의 문학 세계뿐 아니라 기행, 개인생활, 작품을 쓴 배경 등 뒷얘기를 담았다. 1, 2권에는 이태준, 박태원, 이기영 등 월북 작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수록돼 있다. 또 8~10권은 1990년대~2000년대 후배 작가 31명을 황석영만의 필터로 걸러 내며 새롭게 조명했다. 황석영은 “101편의 단편들은 100년간 살아온 민초들의 일상이자 풍속사·문화사·사회사다. 지난 세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면서 “젊은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젊은 피를 수혈받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 기획은 말년 문학을 탄탄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새로운 출발의 의지를 다졌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손숙은 소탈한 어머니 그 자체 이따금 ‘어무이~’라며 문자도”

    “손숙은 소탈한 어머니 그 자체 이따금 ‘어무이~’라며 문자도”

    ‘연극계의 대모’ 배우 손숙의 쪽 찐 머리와 하얀 저고리로 기억되는 연극 ‘어머니’가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했다. 그런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15년 동안 뚜벅뚜벅 걸어온 이들이 있다. 연극계의 거장 이윤택 연출이 이끄는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이다. ‘어머니’ 15주년 기념공연 준비에 분주한 단원들을 29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1999년 초연 때 조연출을 시작으로 시어머니, 며느리, 무녀 등 안 해본 역할이 없는 김소희(45) 연희단거리패 대표와 10년 넘도록 시어머니로 살아온 김미숙(44)은 ‘어머니’ 15년 역사의 숨은 증인이다. 김 대표의 남동생인 김철영(44)은 2007년부터 아들 역할을, 극단의 ‘젊은 피’ 윤정섭(32)은 2013년부터 남편 돌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을 돌아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추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어리바리 초년 시절까지 가닿았다. 김미숙 입단 4년차였던 2000년에 덜컥 시어머니 역할을 했어요. 노래 연습을 하면서 얼마나 바들바들 떨었는지 몰라요. 첫 장면에서 상을 차려놓고 그 옆에 앉아 있을 때마다 ‘꼬맹이’ 시절이 생각나곤 해요. 김철영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고 아들 역할을 떠안았어요. 누님(김소희 대표)에게서 “연기가 왜 그렇게 딱딱하니” 하는 꾸중을 많이 들었죠. 연기 경력이 많지 않았는데 ‘어머니’를 통해서 연기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윤정섭 입단 2년차 때 작은 역할들을 맡는 코러스로 투입됐는데, 시인 이광수 역할로 나오는 한 장면을 위해 김소희 대표님이 하루 3시간씩 연습을 시켰어요. 처음엔 웃으면서 시작했는데 나중엔 어휴…(웃음). ‘어머니’는 극의 화자인 어머니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이 앙상블처럼 치고 빠지며 전개된다. 단원들은 고정 배역 외에도 아이, 환자, 학도병, 중공군 등 온갖 단역들을 맡아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닌다. 옷 갈아입고 무대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면 ‘몸은 환자인데 머리는 군인’ 같은 실수도 나온다. 대기실에선 종종 “으악” 소리도 나온단다.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작이면서도 유독 이 연극에는 ‘손숙의 어머니’라는 이름이 붙지만,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은 우문이었다. 이들은 ‘어머니’에 깃든 손숙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김소희 1999년 러시아 공연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러시아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뒤로 하고 환경부 장관직 수행을 위해 한국으로 가시던 날이었어요. 극장 계단을 내려가시는 선생님께 “안녕히 가세요” 하는 순간 몸이 허공에 붕 뜨더니 떨어지셨어요. 한 배우의 영광과 추락을 예견한 듯한 순간이었죠. 선생님의 고향인 밀양에서의 첫 공연도 기억에 남아요.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아려서 정말 잘됐던 공연이었는데, 끝나고 나서 선생님이 “어머니가 객석에 앉아 계셨어”라고 하시는 거예요. 김미숙 그날은 배우들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어요. “제가 황일순인데예, 고향이 어디냐고예….” 그 마지막 대사가 너무 절절해서 무대 뒤에 서 있던 배우들이 다 훌쩍거렸어요. 쭈뼛쭈뼛하는 후배들에게는 “얘, 잘 지냈냐” 하며 말을 걸어주고, 제대로 모시지 못해 미안해하는 후배들에게는 “얘, 이만하면 됐다”며 손사래를 치는 손숙은 소탈한 어머니 그 자체다. 단원들은 이따금 ‘어무이~’라며 문자메시지를 보낸단다. 김미숙 ‘어머니’를 처음 공연할 때는 하루 두 번 공연을 조금 힘들어하셨어요. 지금은 지치시는 걸 못 봤어요. 갈수록 성량도 커지시니 불가사의한 일이죠.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도 그 자체로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저렇게 나이를 먹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윤정섭 처음 연극을 시작하던 시기에 연극을 대하는 좋은 태도를 심어준 작품이에요. 이윤택 연출과 배우 손숙이라는 두 거장의 열정, 아주 작은 역할들도 제대로 해내는 선배들의 진지함 말이에요. 김철영 ‘어머니’가 15년 동안 사랑받았다는 건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는 공감대 덕분일 겁니다. 앞으로 20년, 3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김소희 한 연극이 거의 매년 공연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막이 내리고 나서도 객석을 떠나지 못하는 관객들, 대기실로 와서 손숙 선생님을 만나고 가는 관객들을 보면서 저 역시 치유를 받습니다. 31일~2월 16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1644-2003.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AFC 아시안컵] ‘젊은 피’ 이정협·김진수 희망을 쏘다

    [AFC 아시안컵] ‘젊은 피’ 이정협·김진수 희망을 쏘다

    ‘이정협(왼쪽·24·상주)과 김진수(오른쪽·23·호펜하임)의 재발견.’ 울리 슈틸리케호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축구대회 성과는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성공적인 세대 교체’다. 슈틸리케호가 결승에 오르기까지 이 둘은 공수에서 밀고 당기며 젊고 유능한 자원의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줬다. ‘제2의 황선홍’으로 불리는 이정협의 발견은 슈틸리케호가 일궈낸 이번 대회 가장 큰 수확이다. 이전까지는 청소년·올림픽 대표 경력이 전혀 없었던 무명의 스트라이커였지만 이제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황선홍 포항 감독의 등번호 ‘18’을 달고 뛰는 이정협은 전형적인 타깃형 공격수로 이번 대회 5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지난해 12월 열린 제주 전지훈련에 깜짝 발탁될 당시만 해도 이정협은 ‘조커’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호주, 이라크전을 앞두고 선발 출전해 귀중한 결승골을 터뜨렸다. 키 186㎝로 제공권과 힘이 좋은 이정협은 이동국(전북), 김신욱(울산) 등이 빠진 공격진을 이끌며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김진수도 이번 대회를 통해 대표팀의 왼쪽 측면 수비수 자리에 못을 박았다. 그동안 부상 탓에 성인대표팀의 주요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2011년 카타르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던 이영표의 빈자리를 잊게 할 정도로 공수에 걸쳐 만점 활약을 펼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활발한 오버래핑과 안정된 수비, 정확한 킥력까지 갖춰 ‘제2의 이영표’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과 4강 이라크전 등 2경기 연속 결승골을 배달해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드러낸 김진수는 태극전사 중 유일하게 이번 대회 5경기 390분을 풀타임 소화한 강철 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28. 탤런트와 미모의 아내 사기행각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28. 탤런트와 미모의 아내 사기행각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가수, 탤런트 등 연예인들이 사기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하게 됩니다. 지금도 몇몇 유명 연예인들이 재판을 받으며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명도에 취해 자기 깜냥을 넘어서는 비즈니스에 도전했다가 본의 아니게 죄를 지은 경우도 있고, 대중적 이미지를 이용해 처음부터 작심을 하고 피해자를 홀린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이라고 사정이 다를 바 없었습니다. 1971년에 있었던 젊은 탤런트 부부의 사기 행각을 소개합니다. ▒▒▒▒▒▒▒▒▒▒▒▒▒▒▒▒▒▒▒▒▒▒▒▒▒▒▒▒▒▒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28. 탤런트와 미모의 아내 사기행각…동료도 선배도 중국집 장궤도 감쪽같이 당했는데 (선데이서울 1971년 11월 14일자)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다니던 TV 탤런트가 음식을 주문하기에 “띵호”-철석같이 믿고 부지런하게 배달을 해주던 동네 중국집 장궤가 “우리 사람 망했어 해”하며 울상이 되었다. 탤런트는 철창에 갇히고 그 부인은 줄행랑을 친 것. 알고보니 중국집 외상값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데…. 빌어 탄 자가용 팔아먹고 동네 안에서만 300만원 사기 요즘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중국집 S반점 장궤아저씨는 홧병에 걸려있다. 이웃에 살던 M방송국 탤런트 J씨(29)씨가 외상값 몇 만원을 잘라먹고 줄행랑을 쳤기 때문이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호기를 부리는 기세에 깜박 속아 배달해 달라는 대로 짜장면·우동·울면을 외상해 주었더니 얼마 전 갑자기 행방을 감추고 만 것이다. 가족까지 몽땅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살림살이까지 모조리 빼돌린 다음이었고, 피해자들만 모여있을 뿐이었다. 식품점, 구멍가게, 연탄가게, 그리고 이웃 아낙네들…. 피해자들이 모여 털어놓은 피해금액을 모두 합해 보니 동네 주변 무려 300만원에 달한다. 가게 외상값 정도는 ‘새발의 피’이고, 이웃 주부들에게 빚을 얻어 쓴 돈이 엄청난 액수에 이르렀던 것. 거품을 물고 혹시 부지깽이라도 집어오려고 달려갔던 장궤 아저씨는 말도 못붙일 형편이었다. J씨는 그동안 주로 동네 주부들의 곗돈을 부인을 통해 교묘히 빚을 얻어내서 가로채곤 했는데 그것이 들통나게 되자 줄행랑을 놓고만 것이다. J씨가 돈을 얻어 쓴 것은 비단 동네에서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가 속해있는 M방송국 관계자들을 비롯해 친지, 대학선배들에까지 피해를 입혔다. 언제나 이자만은 또박또박 지불했기 때문에 누구든지 의심 없이 돈을 빌려주곤 했다. 이모(90만원), 김모(30만원), 정모(200만원), 최모(50만원), 손모(30만원)씨 등 M방송국 탤런트들 외에 작가 김모씨도 200여만원이 걸려있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공개를 꺼려하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를 알수는 없지만 대강 짐작한 방송국 주변 피해액이 1500~2000만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J씨가 경찰에 구속된 것은 지난 10월 18일. 그에게 30만원을 빌어주었던 김모씨의 고소에 의해서였다. 김씨는 J씨의 학교선배로 혜화동에서 음악학원을 경영하고 있다. 지난 9월 초 J씨가 찾아와서 “인천에 냉동기가 들어와 있는데 그것을 빼돌릴 교제비를 돌려달라” 는 말에 속아 빌려주었다. 방송국 주변서 최대 2000만원…피해자들 공개 꺼려 감쪽같이 속고만 있었을뿐 아니라 J씨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피해자들이 “당했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것은 김씨가 처음으로 30만원 사기를 경찰에 고소하고나면서부터. 그가 경찰에 구속되면서 지금까지 벌여온 사기행각의 전모가 비로소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구속된 서울 ○○북부서는 매일 피해자들로 와글와글거렸다. 주로 동네 주변의 피해자들이고 방송국 주변 피해자들은 창피하기 때문인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사건 담당 형사는 “그런 사기는 난생 처음 보았다” 고 혀를 내둘렀다. J씨가 장위동에 이사 온 것은 지난해 9월이었다. 2층집에 60만원에 전세를 들었다. 부인은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늘씬한 몸매에 능란한 화술을 가진 미인. 사람들로 하여금 당장 호감을 갖게하는 재주를 가졌고 말솜씨가 뛰어나 몇번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믿게 하는 천부의 소질을 가졌다. 그래서 꿔준 돈을 이자는커녕 원금까지 몽땅 잘린 형편이면서도 동네 사람들은 “설마…” 하고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들이다. J씨는 누구의 것인지는 몰라도 자가용 승용차를 2대씩이나 타고 다니면서 호기를 부렸다. 혹시 동네 사람 중에 차가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서슴없이 빌려주곤 했다. 그렇게 해서 인심을 얻은 다음에는 부인을 동원, 빚을 얻어쓰곤 했다. 20만원을 사기당한 모 대학 교수 P씨도 그 중 한 사람. 그 동네에 살고 있는 P교수가 어느날 귀가하는 길인데 느닷없이 J씨가 쫓아오더니 공손하게 인사하더라는 것. 그렇게 인사를 한 다음에는 자주 집에 드나들며 한가족처럼 친하다는 인상을 주고는 빚을 얻어내곤 했다. 빚을 얻을 때에는 주로 약속어음을 주고 한달이 되는 날이면 어김 없이 이자를 지불하곤 했다. 하지만 그 이자는 다른 사람에게서 빚을 얻어 마련한 돈이었다. “몸으로 때우겠다”고 버텨 일부선 재산 도피설까지 J씨의 구속과 동시에 그의 부인은 어디론가 행방을 감추었다. 그래서 J씨의 늙은 어머니가 매일 면회를 와서 며느리 욕을 늘어놓곤 했다는데, 철창안에 갇힌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도망간 부인을 야속해하더라는 게 담당 형사의 말. 경찰 조사에 따르면 J씨가 스스로 자백한 사기 액수는 1500만원.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입힌 피해가 대부분이었다. 그가 호기를 부리면서 타고 다니던 자가용도 사실은 남의 차를 잠시 빌어 탄 것으로, 소문에 의하면 그 차까지도 팔아 먹었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모두가 창피한 마음에서 공개를 꺼리기 때문에 J씨로부터 입은 피해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1년 남짓 꼬박 남의 돈, 남의 차, 남의 음식만 먹으면서 호강하고 지낸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게 많은 돈을 사기했으면서도 현재 가진 재산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게 그의 말. 조금이라도 받아보려고 경찰서에 왔던 사람들은 공연히 소송비용만 들뿐 받을 길이 없을 것 같다며 다들 그냥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과연 그의 말처럼 돈을 다 쓰고 없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 빼돌렸는 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도망갔다는 그의 부인이 정말 도망간 것인지 아니면 재산을 도피시킨 곳에 가서 J씨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 이러한 의심을 뒷받침하는 것은 그가 한사코 “몸으로 다 때우겠다” 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 결국 그는 10월 24일 30만원 사기 혐의만 적용된 채 검찰에 송치됐다. J씨는 K방송국에서 탤런트 활동을 시작해 M방송국으로 온 지는 얼마 안됐다. 오랜 연기자 경력에 비추어 조역이나 단역 밖에는 하지 못했고, 시청자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이다. 사기 혐의로 구속되기 전까지 드라마 ‘수사반장’에 출연했다.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편집자註>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 日 민주당 새 대표에 ‘아베 저격수’ 오카다

    日 민주당 새 대표에 ‘아베 저격수’ 오카다

    일본 제1야당인 민주당의 새 대표로 오카다 가쓰야(61) 전 외무상(중의원 9선)이 선출됐다. 당내 보수파로 분류되지만 아베 신조 총리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해 온 인물이다. 오카다는 18일 오후 임시 당 대회에서 진행된 대표 선거에서 ‘젊은 피’ 호소노 고시(43) 전 간사장(중의원 6선)과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역전 승리를 거뒀다. 오카다는 선거 후 기자회견에서 아베 정권을 견제할 야당의 당면 과제로서 “경제정책과 전후 70주년을 맞아 아베 총리가 발표할 담화, 또 안전보장법제 등 세 가지를 중심으로 확실히 의논해 가겠다”고 밝혔다. 정당 지지율이 9.2%(NHK 조사·1월 현재)밖에 되지 않는 민주당이 39.4%(NHK 조사·1월 현재)에 달하는 집권 자민당에 맞서 제1야당으로서의 면모를 얼마나 보여 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2004~2005년 당 대표를 지낸 오카다는 2009년 하토야마 내각에서 외무상을 맡아 조선 강제병합 100주년인 2010년 간 나오토 당시 총리의 역사인식 관련 담화(일명 간 담화) 발표에 관여했다. 자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데다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자체에 반대하지 않은 데서 보듯 안보 면에서는 보수파로 구분되지만 과거사 반성 문제에선 ‘선명성’을 보여 왔다. 이날 지지 호소 연설에서도 아베 총리가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는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클린 오카다’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돈 정치’와의 결별을 강조해 온 원칙주의자로 평가된다. 일본의 유통 대기업 ‘이온’ 창립자의 차남으로 ‘재벌 아들’임에도 동료, 후배 국회의원과의 식사 때 ‘각자 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업계의 정치헌금을 받지 않는 등 돈 문제에서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친화력과 리더십이 부족해 주변에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는 지적도 받는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길섶에서] 상가(喪家) 단상/정기홍 논설위원

    50대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여성분의 상가(喪家)를 찾았다. 생전에 엄청 밝게 살았던 분이다. 늘 얼굴엔 함박꽃이 피었고 좌중에서는 활달했다. 고인을 앗아간 병은 이름도 생소한 부신암이다. 부신은 신장 위쪽에 있고, 아직 희귀암으로 분류된다. 무정한 종양의 공격에 척추를 내주고 말았다. 생활과 주변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다양화하면서 이전에 듣도 보도 못한 불치병 환자가 많아졌다. 나중엔 이들도 치료가 쉬운 ‘친숙한 병’이 되겠지만…. 웃는 것은 심신을 윤활하고, 생명 연장줄로도 대접받는다. 삶의 가운데 우울증이 자리한 요즘엔 뻑뻑함을 푸는 단방약 정도로 모두가 치켜세운다. 수치화한 웃음은 건강학에서 필수과에도 속한다. 그래서 천진하게 웃어야 젊게 산다고 한다. 젊다는 건 병에도 강하다. ‘일소일소’(一笑一少)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문상을 하던 지방분이 “서울의 공기가 많이 탁하다”고 했다. 뜬금없다는 듯 들었지만 생활 미세먼지가 많기는 많다. 이곳 사람만 인지하지 못하고 지낼 뿐이다. 크든 작든 난()한 게 많은 지금이고 난치(難治)의 시절이다. 고인이 병원이 아닌 자연 치유력에 몸을 맡겼으면 병의 차도가 어땠을까.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커버스토리] 영상제작팀이 가장 선호하는 부산… 직접 경제효과만 최대 145억 ‘쏠쏠’

    [커버스토리] 영상제작팀이 가장 선호하는 부산… 직접 경제효과만 최대 145억 ‘쏠쏠’

    최근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이어지면서 영화의 무대와 촬영지도 덩달아 뜨고 있다. 지자체는 대박이 예상되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유치하려고 안간힘이다. 관광산업 활성화뿐 아니라 낙후된 지역 문화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시 부산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 유치를 통해 연간 145억원가량의 직접적인 경제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에 힘입어 부산의 명물 국제시장은 영남권을 넘어 전국구 시장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부산시민과, 일본·중국 관광객들이 주로 찾던 국제시장에는 전국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덩달아 상인들도 때아닌 관광특수에 즐거운 비명이다. 부산은 1999년 발족한 부산영상위원회를 통해 국내외 영화, 드라마 등 영상물 촬영을 유치하고 있다. 영상물 지원사업도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활발하다. 영화 로케이션 지원사업은 작품별로 담당자를 지정해 촬영 장소 추천 및 동영상 자료를 제공하고 관계 기관의 인허가 섭외와 도로 통제·민원 방지 등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제작진 숙소 지원과 장비 임대, 디지털편집실 대여 등도 꼼꼼히 처리한다. 이를 통해 부산은 영상촬영제작팀이 선호하는 로케이션 장소로 꼽히고 있다. ●‘문화특별시’ 부천 국제영화제로 차별화 성공 ‘문화특별시’를 표방하는 경기도 부천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난개발과 공해로 찌든 도시’였지만, 요즘은 문화도시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 같은 변화의 일등공신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다. 부천국제영화제가 지자체에서 개최하는 국제영화제 가운데 가장 성공작으로 평가되는 것은 차별성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다른 지자체의 국제영화제가 일반 작품을 다루는 영화제인 것과는 달리 부천은 모험·환상·사랑을 주제로 한 ‘판타스틱’으로 특화, 영화의 주요 고객인 젊은 층에게 어필했다. 영화제 집행위원을 영화전문가들로 구성하는 등 인적 인프라의 우수성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부천은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주민들의 접근성이 높아 관객 동원이 수월하다는 이점이 있다. 특히 상동·중동신도시는 유동성도 좋고 거주민이 많아 영상단지를 관광화시키는 데도 성공할 수 있었다. ●‘명량’ 회오리 물살 보러… 전남 울돌목 인기 전남 울돌목은 영화 ‘명량’에서 일본 전함을 수장시킨 빠른 회오리 물살을 직접 보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진도대교 일원을 조망할 수 있는 진도타워는 유료 관광객이 2000여명 남짓 했으나 영화가 상영된 지난해 7월 4051명을 시작으로 8월 9671명, 9월 9848명, 10월에는 1만 39명이나 찾았다. 또 2006년 63억원을 투자해 만든 순천 드라마촬영장은 지난해 37만여명이 찾아 5억 6000여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관광객 유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내 도심 인근의 야산 언덕바지 자연 경사면을 살려 만든 세트장에서는 1960∼1970년대 향수에 흠뻑 젖을 수 있다. 1960년대 순천읍내, 서울 달동네, 태백 탄광촌 등이 재현돼 있다. 이곳에서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님은 먼 곳에’, ‘자이언트’, ‘제빵왕 김탁구’, ‘빛과 그림자’, ‘늑대소년’, ‘피 끓는 청춘’ 등이 촬영됐다. 최근에는 영화 ‘강남블루스’가 40여일, ‘허삼관매혈기’가 2개월 동안 머무르며 촬영을 마쳤다. 순천시는 앞으로 단순 관람이 아닌 새로운 콘텐츠와 프로그램 개발 등 문화공간 조성을 위해 16억원을 들여 추억테마 체험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전주 종합촬영소·경남 영상테마파크 호황 전북 전주시는 2001년 전주영상위원회를 구성해 일찌감치 영화와 드라마 촬영에 나섰다. 전주 상림동에는 영화종합촬영소를 만들고 제작자들이 촬영 뒤 후처리를 할 수 있는 영화제작소를 설치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주영상위원회는 매년 50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주시가 매년 영화와 드라마를 유치해 얻는 지역경제 파급효과는 직접 효과 50억~60억원, 생산유발 60억~70억원, 고용유발 200여명에 이른다. 경남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성공한 국내 대표적인 영상테마파크로 꼽힌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2003년 10개월여에 걸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촬영되면서 조성됐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흥행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합천군은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을 위한 영구적인 세트장인 영상테마파크를 조성했다.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간판 등 간단한 시설물만 바꾸면 될 만큼 기본 시설이 잘 조성돼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모던보이’를 비롯해 드라마 ‘서울 1945’, ‘경성 스캔들’, ‘에덴의 동쪽’ 등 각각 10여편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됐다. 합천영상테마파크 오픈 세트장을 이용해 제작된 영화·드라마·CF는 모두 150여편에 이른다. 광주시는 2013년부터 도시 마케팅 차원에서 영화·드라마 제작지원사업을 벌여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영상문화 콘텐츠가 영향력이 높은 만큼 영화와 드라마 제작과 촬영장 유치 등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제1야당 쇄신을” 日 민주당 대표 3파전

    “제1야당 쇄신을” 日 민주당 대표 3파전

    일본 민주당 대표 선거가 7일 공시돼 18일에 치러진다. 제1야당으로서 지난달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의 독주를 막지 못한 민주당은 쇄신을 위해 당원은 물론 서포터까지 참가하는 대대적인 대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NHK는 대표 후보가 3인으로 압축돼 사실상의 선거전에 들어갔다고 5일 보도했다. ‘3자 구도’에서 가장 진보적인 후보는 나가쓰마 아키라(54) 전 후생노동상이다. 중의원 6선으로 2009년 하토야마 내각에서 후생노동상을 맡았던 그는 시노하라 다카시 전 농림수산성 부대신을 누르고 진보 진영 단일 후보로 나섰다. 집단적자위권 행사 용인과 역사 인식, 원전 재가동, 사회적 격차 등과 관련해 아베 신조 정권에 반대하는 선명성을 강조해 왔다. 그는 지난달 29일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도 “리버럴(자유주의)의 기치를 제대로 올리는 것이 당 세력을 확대하는 길”이라며 아베 정권과의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일찌감치 출마 의사를 표명한 당내 보수 진영의 오카다 가쓰야(61) 전 외무상과 호소노 고시(43) 전 간사장도 만만치 않다. 오카다 전 외무상은 일본 최대 유통그룹인 ‘이온’ 창업자의 차남으로 중의원 9선의 베테랑이다. 2009년 하토야마 내각에서 외무상을 맡아 2010년 간 나오토 당시 총리의 역사 인식 관련 담화(일명 간 담화) 발표에 관여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하게 반대하는 등 아베 정권의 역사 인식에 비판적이다. 당의 ‘젊은 피’인 호소노 전 간사장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총리 보좌관으로서 침착한 사고 대응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지지를 얻으며 ‘차세대 총리감’으로 거론돼 왔다. 팽팽한 3파전 양상이 전개됨에 따라 이번 대표 선거는 1차에서 끝나지 않고 결선 투표까지 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 일본 언론들의 분석이다. 새 민주당 대표가 당 개혁과 여당 견제라는 두 가지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가 올해 일본 정치권의 큰 변수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칠순에 한글 깨치고 팔순에 ‘정열 작가’로

    뒤늦게 한글을 깨우친 70대 할머니가 책을 펴냈다. 주인공은 전남 장성군 장성읍에 사는 박정열(79) 할머니.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박 할머니는 늘 배움에 목말랐다. 때마침 박 할머니는 69세 되던 2005년부터 장성공공도서관이 운영한 한글교실 ‘문불여대학’(文不如大學)에 입학했다. 이 학교에서 한글을 깨우친 박 할머니는 최근 남편과 자식,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와 일기, 기행문 등 57편의 글을 모아 ‘나는 문불여대 학생이다’를 펴냈다. 이 책에는 한 글자 한 글자 배워 가며 느꼈던 기쁨과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 담담하게 녹아 있다.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는 “사랑하는 여보 당신, 당신과 나와 연을 맺은 지 55년을 맞이한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서 머리에 흰 꽃이 피었군요. 그동안 우리가 살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살아왔지요. 그러나 당신이 부족한 나를 넓은 아량으로 채워 가며 살아 주셔서 항상 감사했지요”라고 적었다. ‘세월’이란 글에선 “세월아 가지 말고 거기서 있거라. 네가 가면 나도 따라가도 마음이 서글퍼서 내가 울잖니. 네가 가서 내 청춘도 가고 젊음도 갔으니 나는 네가 원망스럽다”며 세월의 무상함을 표현했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태어난 박 할머니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교를 졸업하지도 못했다. 젊은 나이에 시집을 가서 장성읍에서만 50년 넘게 신발가게를 하며 4남매를 길렀다. 어느 날 경로당 친구들이 장성공공도서관에 다니는 것을 보고 따라나선 게 계기가 돼 지금은 초등학교 과정인 3~4학년 반에서 공부하고 있다. 박 할머니는 4일 “못 배운 게 늘 한이었는데, 배우는 게 늘 즐겁고 재미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면 중학교 과정까지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1교시 언어이해 - 이은희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1교시 언어이해 - 이은희

    Ⅰ <첫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그녀는 하루에 세 문제를 만들었다. 월급에 대비해 그만큼이면 적당한 노동량인 것 같았다. 책을 만지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기뻤다. 읽은 것에 관해 말할 줄 아는 정도의 능력만 있으면 되었다. 한 개의 독해 지문에 세 개의 문제를 만들어 달면 업무가 끝났다.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오래오래 회사생활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회사였다. 그녀의 동료들은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읽거나 읽은 것에 관해 생각하는 일을 귀찮아했다. 한 달에 세 문제를 만들까 말까 하는 정도였으며 문제의 수준도 형편없었다. 그녀의 동료들은 일하는 척으로 일과를 보냈다. 대수롭지 않은 것에 관해 큰 목소리로 토의하며 바쁜 척했다. 읽고 생각하기만 하면 되지만, 적혀 있는 그대로를 읽어내는 능력 자체에 문제 있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했다. 한때 그녀는 국문과 대학원생이었다. 지도교수가 갑자기 죽은 뒤에 이상하게도 그녀의 꿈이 사라졌다. 그녀는 학업에 품었던 자신의 꿈이 로스쿨 입시용 문항으로 재생산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에는 세 시간 만에 세 문제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인고의 노력을 쥐어짜야 할 때에는 아홉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쉽게 만들어지든 오래 걸려 만들어지든 간에 개개의 문제가 전부 걸작이었다. 어떤 때에는 혼자 풀기 아까운 문제가 나오기도 했는데,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동료들 모두에게 그 문제를 자랑하고 당장 풀어보게 만들기도 했다. 동료들은 마지못해 그녀가 낸 문제를 풀어보았으나 답을 맞히지 못했다. 그녀는 동료들이 지닌 지적 능력의 총합을 초월하는 자신의 창의력을 확인한 양 우월감을 느꼈고, 콧대가 우뚝해져서는 도파민의 폭풍에 정신 잃은 채 기뻐했다. 소용돌이 모양으로 생성된 회전은하와 스케이터의 연속 회전 간의 원리적 유사성에 관한 문제를 출제했을 때에는 그만 김연아 선수에게 그 문제를 선물할 뻔했다. 김연아 선수와 접촉할 방법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당장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금메달리스트의 스케이트 날처럼 날렵한 독해문제를 출제했으니, 한시바삐 문제를 풀어보고, 각운동량보존법칙에 관한 이해를 동원하여 더욱 멋진 연기를 보여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울러 김연아가 그녀보다 훨씬 어린 사람이지만 존경한다는 말을 문제에 실어 전하고 싶었다. 김연아가 팔을 길게 뻗어 회전할 때에 보여주는 느긋한 우아함과, 몸을 움츠렸을 때 운동량이 보존됨에 따라 속도가 높아지면서 생겨나는 간절함은 청년이 생에 대하여 품어야 하는 희망이 어떠한 양상이어야 하는지 물리학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전달하고 싶었다. 그녀의 대학시절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아 교수님의 소설로 문학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헌정 출제의 성격을 완성하기 위해서 교수님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보충하는 <보기>를 달아 심화된 감상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 타인들의 머리에 더듬이가 생겨난 것을 발견한 주인공의 혼란을 다룬 작품에서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바뀌었을 리 없다’라는 독백에 밑줄을 치고 ㉠을 단 뒤, 그 ㉠에 관해 아주 많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란 얼마나 허망하고도 희망적인 것인지에 대해 파악하도록 요구하는 문제였다. 그녀는 교수님의 소설과, 자신이 낸 문제를 바라보며 그 희망적인 허망함에 관해 성찰했고, 청년으로서 자신의 무거운 사명을 통감하면서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차곡차곡 쌓인 그녀의 업무량과 비교하여 동료들의 게으름은 크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하루에 세 문제씩 꼬박꼬박 생산해내는 그녀가 미친 기차 같다고 자기들끼리 욕했으며, 방해하기 위해 시끄럽게 굴었다. 그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서 촘스키가 글을 참 못 쓴다고 욕을 하거나, 과학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과학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위험천만하지 않은가에 관해 토론하거나, 푸코의 저서는 번역이 엉망이어서 출제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난하거나, 문학문제를 출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가 바탕이 되어야 하므로 주어진 시간 안에 끝낼 수 없는 불가능한 임무라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하루에 세 문제씩을 즐겁게 생산하고 있는 그녀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녀의 동료 중 한 인물, 항상 고려청자색 눈빛을 지니고 있는 우애경이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약간의 실수 때문에 서울대에 못 갔어요. 그 이후로는 모든 게 잘되지 않았어요. 이런 회사에서 문제 내는 일이나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내가 서울대에 가기만 했어도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그녀는 우애경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생각이 젊은 시절을 비탄에 빠지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개인에 주어진 잠재력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자신의 잠재력을 직시하고 올바른 전제에서 추론을 시작해야 나의 모습을 검증할 수 있어요. 그것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그녀는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우애경으로부터 등을 돌린 뒤 다시 문제를 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우애경이 시뻘건 얼굴로 식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출제에 골몰했다. 출제를 하며 우애경에 관해 생각했다. 우애경은 왜 화가 났을까? 어떤 결과에 이르기까지 원인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것을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으로 분류하여 한 줄로 세워볼 수 있다. 그녀는 우애경의 화라는 결과를 가져온 원인들을 물리화학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으로 구분하고 생각나는 대로 정리를 해보았다. 일단 생리 중일 수도 있다. 배가 고프거나 몸이 피곤하여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물리적 상태가 저혈당증을 일으키고, 저혈당증은 다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뉴런 간 화학·전기신호 작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화를 내는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일 뿐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못하므로, 설령 이러한 이유가 작동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먼 원인일 뿐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우애경의 분노를 초래한 심리적 원인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가능성과 잠재력의 차이를 검토해보라는 말이 기분 나빴을 수도 있다. 그렇게 느꼈다면 그 이유 중에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①가능성과 잠재력의 차이를 검토하기 싫어서, ②가능성과 잠재력에 차이가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서, ③그 말을 하는 사람(즉, 이우리)의 표정이나 말투가 기분 나빠서, ④그 말을 하는 사람(즉, 이우리)이 싫어서, ⑤아니면 모종의 의도가 있었는데 그것을 묵살당해서?(이 지점은 상상의 영역이므로 과학적 추론 불가) 위 내용 중 무엇에 해당하든 그것은 화가 나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기분이 찜찜해졌다. 알 수 없는 뭔가가 엄습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엄습하던 무언가의 실체는 다음날 점심시간부터 분명해졌다. 유난히 칼국수가 늦게 나오는 그 식당에 둘러앉아, 그녀의 동료들은 하염없는 잡담을 시작했다. 그녀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깍두기를 먹고 있었다. 잡담은 점점 석연찮은 내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학 시절 미팅하던 때처럼 남녀가 줄을 지어 앉아 밥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데에서 시작한 잡담이 각자들의 출신대학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애경이 유부장에게 말하기를, 유부장의 동문들과 미팅했던 것이 학창시절 가장 언짢은 일이었다고 했다. 유부장도 자신의 학창시절에 우애경의 동문들과 미팅했던 적이 있지만 유쾌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했으나 마주보는 눈빛들은 사실 뭔가를 만끽하는 중인 듯 행복해 보였다. 화제는 갑자기 신촌의 추억을 늘어놓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때껏 잠자코 있던 다른 인물이 배꽃처럼 웃으며 동참하더니 신촌의 추억을 떠들어댔고, 그들의 대화를 끊을 수도 낄 수도 없어서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칼국수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끊을 수도 낄 수도 없는 인물로는 그녀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서교동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서울시 서대문구 전체에 관한 추억으로 이야기가 확장되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지 못할 터였다. 서교동의 추억을 지닌 인물이 왠지 모를 경멸 섞인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 봐 몹시 조심했지만 아무래도 들킨 것 같았다. 그녀가 지닌 신촌의 추억이란 극장 앞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린 것밖에 없었으므로, 그녀는 혹시나 자신에게 어떤 질문이라도 주어질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월미도나 맥아더장군에 관한 화제가 갑자기 나오는 것은 아닐지, 그러다가 그녀가 졸업한 대학에 관한 화제가 등장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하지만 때마침 양푼에 가득 담긴 칼국수가 등장해주었고, 대화는 서대문구 창천동 일대에 관한 이야기에서 그친 채 모두 얌전히 칼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마치 먹는 데에 열중한 것인 양 아무도 그녀에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녀는 회사에 혼자 남아 쓸쓸히 책을 뒤지고 출제를 했다. 김소진의 ‘개흘레꾼’을 다시 읽었고, 학생운동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힌 주인공이, 허름한 차림으로 빵을 사들고 온 아버지를 냉대하는 대목을 발췌하여 문제를 냈다. 개흘레꾼의 주인공은 말했다. ‘아버지는 ㉠테제도, 그렇다고 ㉡안티테제도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는 개흘레꾼이었다.’ ㉠과 ㉡의 의미에 대한 출제를 하다 말고 그녀는 자신의 사원증을 꺼내어 바라보았다. 포토샵으로 다듬은 사진 아래에는 ‘이우리’라는 그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녀는 ㉠ 혹은 ㉡에 머물러 자기 자신의 의미가 규정되도록 놓아두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일단 맹렬히 출제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결심을 실현하기로 했다. 1. 위 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주인공은 인천을 싫어한다. ②주인공은 우애경에 대한 반격을 결심했다. ③주인공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④주인공은 ´개흘레꾼´의 주인공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입하여 생각하고 있다. ⑤주인공은 자기의 인생이 남들의 인생에 포함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Ⅱ <두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하여 추론한 것으로 옳은 것은. 그녀는 하루에 아홉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세 개의 지문을 뽑아 각각 세 개씩의 문제를 다는 데에 온종일이 걸렸다. 그러기를 일주일이면 혼자서 한 벌의 모의고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모두가 말하길,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 출제 기계라고 했다. 그녀의 유능함에 견주어 우애경은 점점 더 무능해 보였고, 아무나 붙든 채 자기가 수능에서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 서울대에 갔을 것이며 이 자리에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 우애경을 보며 그녀는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유능한지, 모니터를 향한 거북이처럼 되어버린 자세로 하루에 아홉 문제씩을 생산한 그녀가 얼마나 탁월한 출제자인지를, 시간이 흐르면 그녀의 문제를 풀어본 수많은 학생들이 직접 증언할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애경이 사고를 쳤다. 오전 열시의 고요한 사무실에서 들려오던 그 소리를 모두가 잊지 못할 것이었다. 처음엔 작게 시작한 그 소리가 점점 커졌고, 일본어이긴 했지만 그게 어떤 상황에서의 무슨 말인지는 누구나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소리는 우애경의 컴퓨터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모두가 우애경을 지켜보는 가운데, 우애경은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로 숨었다. 우애경 주변의 남자 사원들이 대단히 당황하더니 화면 가득한 살색 움직임들을 어떻게든 없애려 하다가 끝내는 컴퓨터를 두들겨 패듯 꺼버렸다. 우애경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넷 창에 지나가던 배너를 건드렸을 뿐인데 민망한 장면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더라고 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남자 직원들이었는데, 그들은 우애경의 컴퓨터를 복구하느라 오전 업무시간을 다 써야만 했다. “지나가는 배너를 건들기만 했는데도 저 정도로 감염이 될 수 있나요?” 그녀는 동료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못 들은 척 했다. “지나가는 배너는 왜 건드리죠?” 그녀는 우애경을 향해 물었다. “포르노 사이트 광고였나요, 아니면 일반 광고였는데도 그렇게 된 건가요?” 그녀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우애경은 달팽이관이나 청소골 같은 것이 없기라도 한 양 그녀 쪽은 쳐다보지 않은 채 배실배실 웃고 있었고, 속으로는 민망해 죽겠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고 넘어갈 작정인 것 같았다. 그녀는 우애경과 담소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원래들 업무시간에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가시기도 하는 건가요?” 정말로 궁금해서 그런 것인데, 우애경과 동료들은 아주 불쾌한 듯, 마치 포르노 사이트 접속으로 오전 업무를 마비시킨 장본인이 그녀이기라도 한 듯 아래위로 노려보더니 탕비실을 향해 우르르 가 버렸다. 그녀는 모두가 떠나 버린 사무실에 앉아 홀로 출제를 했다. 그녀는 정말로 왕따였다. 그녀는 우애경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적어도 질타를 감당하지 못해 괴로운 회사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우애경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우애경의 성격이 갑자기 능글맞고 넉살 좋게 바뀌었다는 것인데, 우애경은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것으로 수치스러운 그 사건을 덮어버렸다. 유부장에게 말하길 “어머, 부장님. 계속 그렇게 야근시키시면 전 또 그 배너 건드려 버릴 거예요” 라고 하거나, 다른 팀 직원에게 말하길 “다들 너무 일만 하면서 침체되어 있기에 내가 야동 바이러스 감염으로 활력소가 되어준 거잖아” 라고도 했다. 우애경은 매일 스스로 그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그동안 몰랐는데, 일본어 공부에 좋은 게 일제 동영상이더군요” 라는 말을 해서 일부 남자 직원들이 즐거워하도록 만들었으며 절묘한 순간에 “일하기 싫은 사람은 내 감염된 컴퓨터를 쓰도록 해” 라는 말을 던져 좌중을 웃기기도 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자 우애경이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남고, 살색 가득하던 컴퓨터 화면에 대한 기억과, 우애경이 업무시간에 포르노를 보는 여자라는 인상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종래엔 유부장이 “앞으로 말 안 듣는 사람 있으면 우애경 씨 컴퓨터를 쓰게 할 거야”라고 농담하기도 했는데 그런 말에 모두 웃게 되기까지는 사건 후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우애경은 변죽 좋아 보이도록 성격이 바뀐 것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유능함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우애경은 아무 문제도 생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이우리를 향해서 발톱을 세운 채 이우리가 하루에 아홉 개씩 낸 문제를 꼼꼼히 살피고, 거기서 오류를 발견해내는 것을 주요 업무로 삼았다. 각운동량보존법칙과 회전하는 나선 은하에 관한 문제에서는 은하의 나선 팔에 관한 설명 부분이 지나치게 길다고 지적했다. 실제 시험에 비해 한 단락 분량이 더 추가된 것이므로 모의고사에 수록하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지적 때문에 그녀는 우애경과 한 시간을 싸워야 했다. 나선 은하의 나선 팔 부분과 중심부는 각각 산개성단과 구상성단으로서 밀도가 다르다는 점이 은하의 형성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을, 따라서 줄일 수도 뺄 수도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한참을 다퉜으나 그녀가 진 것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흥분하면 이마에 핏발이 서면서 얼굴이 새빨개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마치 뭐라도 잘못해서 당황한 사람처럼 보였고, 동료들은 그녀가 곤란해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녀가 중력섭동이라든가 산개성단을 구성하는 중원소에 관해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동안 다들 하품을 하고 듣기 싫어했다. 이마에 핏발이 선 이우리가 언성을 높여가며 하는 말들이 알 수 없는 소리라고들 했다. 반면 그에 응수하는 우애경의 논리는 아주 간명한 것이었다. “어찌 됐든 길잖아요. 지문이 너무 길잖아요. 안보여요?” 그녀가 낸 모든 문제에 관해 우애경은 어떻게든 시빗거리를 찾아냈다. 가장 억지를 부렸던 것은 ‘개흘레꾼’이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는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녀는 ‘개흘레꾼’이 한 대학생의 자기 탐구와 심리묘사가 흥미진진한 작품일 뿐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으며, 1990년대 작품이기 때문에 현 시대상황과도 직접 관련이 없다고 대답했다. 우애경은 그에 대해서도 간명하게 말했다.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 자체를 없애야 해요. 경쟁사에서 우리를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 여지를 남기면 안 돼요.” 민주화운동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과 테제, 안티테제 등의 용어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에 관해 출제된 문학 문제가 좌파 이념 전파에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번 사건을 이우리 씨가 잊은 것은 아니겠죠. 이우리 씨가 조심하지 않으면 나라도 나서서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개흘레꾼’ 문제는 폐기하는 걸로 하죠.” 그녀는 말이 안 나왔다. 혀의 근육 어딘가가 마비되어 버린 것 같았다. 우애경은 마치 그녀의 상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지난번 모의고사에서 그녀는 ‘내가 광우병에 걸려 병원 가면 건강보험 민영화로 치료를 못 받고 그냥 죽을 텐데 돈도 없고 땅도 없으니 화장해서 4대강에 뿌려다오’ 라는 안치환의 노래 가사를 문법적 오류가 존재하지 않는 정답의 선택지로 삼아 어법 문제를 출제한 바 있었다. 모의고사 시행 직후 게시판에 이의제기가 올라왔다. 출제자 중 누군가가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지닌 것 같은데 이는 모의고사의 공정성과 적합성에 대한 의심을 하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시험을 본 학생이 올린 것처럼 적혀 있었지만 회원가입일이 게시일 당일인데다가 모의고사에 응시한 기록도 없는 회원의 글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출제한 문제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이라고 생각했고, 직관적으로 그 글이 우애경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과학 연구에 있어 최초의 가설 설정이란 직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녀는 ‘우애경이 자작 이의제기를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라는 가설을 수립한 뒤 그것을 검증해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유부장은 게시판 사건 때문에 노발대발하였으나 진짜 응시자가 올린 글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 추이를 지켜보자고 하더니 곧 잊어버렸다. 그녀 자신도 잊을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애경은 잊지 않고 있었고, 모두가 잊지 않기를 바라는 듯 그것에 관해 자주 이야기했다. 그녀가 우애경에게 닦달당하고 있을 때이면 어디선가 유부장도 홀연히 나타났고, ‘그러니까 지문이 길어요, 안 길어요. 그것만 대답해요’ 라든가, ‘데모하다 잡혀가는 학생 이야기가 나와요, 안 나와요. 그것만 대답해요’ 라는 말만을 귀에 담아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 시선을 피해 유부장이 우애경의 등허리를 툭툭 치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 우애경은 청자색 눈빛으로 유부장을 응대했다. 두 사람은 왠지 서로를 치켜 주는 것을 의무라고 여기는 듯했다. 학창 시절에 서로의 동문들과 미팅한 추억 말고는 별 공통점도 없는데 왜 그러는지는 이해 못 할 일이었다. 유부장은 ‘이우리 성질을 컨트롤할 사람은 우애경 씨 밖에 없어. 우애경 씨만 믿어’ 라고 했다던데, 그런 뒤 두 사람은 함께 칼 퇴근을 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바대로, ㉠테제에 의해서나 ㉡안티테제에 의해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자기 자신은 이 회사의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길게 빠졌다. 우애경과 싸우느라 흥분해서 문제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아홉 문제를 꼬박꼬박 출제하리라 결심했지만 그걸 못 채우는 날이 늘어갔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모의고사 회차가 거듭되면 훌륭한 문제에 관한 학생들의 칭송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응시생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 바로 탁월한 출제 덕분이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유부장은 그것이 자기 공이라고 했다. 모의고사의 성공은 곧 마케팅의 성공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개판으로 문제를 만들어 놓는다 해도 나는 전국 최다 응시생을 끌어모을 수 있어.” 그녀는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을 위한 선택을 함부로 할 리가 없으니, 응시생이 늘어간다는 것은 결국 훌륭한 교육물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말이지 않겠느냐고 했다. 유부장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는 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야.” 그녀는 그렇다면 무얼 하는 회사인 거냐고 반문했다. 유부장은 좌중을 둘러본 뒤 선언했다. “교육 콘텐츠를 파는 곳이야.” 진정 훌륭한 모의고사, 참된 독해력과 사고력 증진의 기회를 제공하는 모의고사 등등을 운운하며 보다 열정적으로 문제를 만들어 이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녀를, 유부장은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마케팅 비용이 문항제작비의 이십 배는 돼. 마케팅이 훨씬 어렵고 중요한 거라고. 이우리 씨의 생사 또한 마케팅에 걸려 있는 거야.” 유부장은 벽에 붙은 포스터광고를 가리켰다. ‘명문대 출신 엘리트가 만든 모의고사!’ 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당신을 법조인으로 탄생시켜줄, 업계 최고의 역작’이라는 글씨가 시뻘겋게 붙어 있었다. “응시생들은 절박한 상황이지. 어떻게든 기득권층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해. 욕심으로 눈 먼 애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먹고살 거야.” 그녀는 유부장에게 따지고 들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한 수많은 청년들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유부장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진정한 법조인이 되고 싶은 애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 있다 할지라도 그놈들은 알아서 혼자 공부해. 나한테 속아 넘어갈 놈들이 아니란 말이다. 사설업체 모의고사 같은 건 안 본다고.” 동료들은 매일 놀고만 있었고, 자신들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도 이우리가 꼬박꼬박 만들어놓은 문제들이 있으니 걱정 없다는 말까지 했다. 이우리는 대체 이 회사에서 무엇인 걸까? 아무래도 자신의 정체가 진짜 출제기계인 것은 아닌지, 그래서 기계처럼 문제만 뽑아내면 이우리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녀는 모두가 그렇게 여기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빈 사무실에 앉아 밤늦도록 출제를 하고 있을 때, 대표이사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남아있는 사람은 이우리 씨밖에 없군.” 대표이사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내가 퇴근하는 척 나가고 나면 모두가 집에 가 버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 대표이사는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누가 남아 있나 체크하러 나는 돌아왔지. 역시 이우리 씨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어.” 대표이사는 무릎이 날깃날깃 닳은 트레이닝복을 그녀에게 자랑했다. “이건 내가 젊었을 적에 입던 옷이야. 나는 긴장을 늦출까 봐, 내가 가장 어렵던 시절의 옷을 버리지 않았어. 오늘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이 옷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이우리 씨밖에 못 보게 되었군.” 대표이사는 반짝이는 대머리를 기울여 그녀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양자역학에 관해 출제를 하고 있었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브라운 운동과 러더퍼드의 금박막 실험이라. 흥미로운데. 풀어봐야겠어. 나는 자네가 낸 문제의 팬이야. 힘내라구.” 대표이사는 격려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등도 아니고 옆구리도 아니고 겨드랑이도 아니고 오른쪽 가슴도 아닌 애매한 어딘가를 톡톡 치고는 떠났다. 팬이라는 말에 기뻐하다 말고 그녀는 모호한 기분에 휩싸였다. 정확히 어디인지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함부로 만져지면 안 되는 것 같은 부위에 대표이사의 손길이 남아 있었다. 찜찜한 그 부위를 괜히 긁적이며, 그녀는 대표이사가 청년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입는다는 늘어난 트레이닝복을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가 자신의 청년기를 떠올리면 어떤 장면을 가장 먼저 생각할까. 그녀는 절박한 마음으로 취업을 모색하던 백수시절을 떠올렸다. 어디든 취직만 된다면 일단은 살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 시절이 생각난 것 때문에 그녀는 공지영의 ‘부활 무렵’이라는 단편소설로 문학 출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활 무렵’에서, 병아리는 알을 뚫고 나가려 안간힘을 쓴다. 사투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병아리가 살아갈 힘을 얻으려면 스스로 뚫고 나오게끔 놓아두어야 한다고 배웠다 했다. 하지만 주인공인 아이들 엄마는 알 껍질을 조금 뜯어내어 준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든. 한 번만 살게 해주면 앞으로 어떻게든 사는 거야.” 대표이사의 칭찬에 힘입어 그 소설의 구절이 생각났고, 겨드랑이가 좀 찜찜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멋진 출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에게 뻔한 미래란 없다. 청년이란 미시세계의 전자처럼 입자이자 파동인 존재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역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도 존재하니 말이다. 위 상황에 대해 추론한 내용으로 옳은 것은? ①이우리는 대표이사와 자신의 계급 차를 망각하는 우를 범했다. ②부하직원들은 그들의 상사인 유부장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와 같다. ③이우리는 자신의 업무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④대표이사가 이우리의 몸 어딘가를 만진 것은 곧 다른 데도 만질 것이라는 예고이다. ⑤회사의 인물들이 품은 동상이몽은 결국 매한가지로 거대하고도 알 수 없는 것을 지탱하고 있다. Ⅲ <세 번째 문제> 다음 상황에 대하여 파악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그녀는 하루에 열두 문제를 출제하기로 했다. 대표이사가 그녀를 알아봐 주는 한 유부장이나 우애경이 그녀를 어떻게 괴롭힌들 상관없었다. 하루에 열두 문제라면 한 주 동안 모의고사 2회분이 생산될 양이었고, 우애경이 검토하고 흠을 잡기에도 벅찰 분량이었다. 그녀는 묵묵히 일하다 보면 모두가 자신을 인정할 거라는 생각은 버렸고, 본인이 하루에 열두 문제를 출제하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것들인지에 관해 누가 듣든 말든 마구 이야기해대기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하느라 점심시간이면 밥을 거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부석부석 말라갔고, 밥을 씹어 삼킬 힘조차 아껴서, 문제를 내는 데에만 에너지를 썼다. 잠도 거의 자지 않았고 때로는 어차피 돌아와야 하는 것이 귀찮아서 집에 가지 않은 채 밤을 새우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낸 아름다운 문제들과, 자신을 바라보는 우애경의 표정에서 희열을 느꼈다. 열두 문제를 내고 나면 뉴런 다발들이 걸레처럼 비틀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우애경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우애경의 눈 속에서 청자색이 옅어진 것을 본 그녀는 우애경을 때려눕히고, 옥수수처럼 흩어진 이빨을 주워 모아 목걸이를 해 걸기라도 한 것처럼 뿌듯해했다. 어느 날의 점심시간, 그녀는 유부장에게 조언했다. “계란을 많이 드세요.” 유부장은 반찬투정을 했다. “흰자는 괜찮은데 노른자가 메스꺼워서 나는 계란을 안 먹어.” 그녀는 드디어 원인을 찾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사십년 생애 내내 계란을 멀리 하셨나요?” 유부장은 무심히 말했다 “그랬지. 내가 싫어하는 것 몇 가지가 있지. 계란, 콩. 두부.” 그녀는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주된 콜린 공급원인 계란과 콩을 멀리하시니, 체내에선 아세틸콜린 합성이 원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것도 사십년째이니 결핍이 심각하리라고 예상되어요. 밤에 잠은 잘 주무시나요.” 유부장은 그녀에게 의학 상담이라도 하는 듯 진지해졌다. “잠은 쉽게 드는데 새벽에 곧 깨서는 전혀 못 자곤 해.” 그녀는 무릎을 탁 쳤다. 아세틸콜린 부족증상과 일치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부장에게 자신이 출제한 문제를 꼭 풀어보라고 권했다. 치매의 발생과 뇌 내 아세틸콜린의 관계에 대한 문제였다. “요즘 기억력이 많이 떨어지시는 것 같아 유부장님의 뇌 내 아세틸콜린 감소폭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부디 콩을 드세요.” 그녀는 유부장을 보며 말했다. 유부장은 국에서 콩나물을 건져내고 있었다. “난 콩이 싫어.” 그녀는 유부장의 전두엽기능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 원칙이 대단히 흐려진 상태인 걸로 보아서 전전두엽에 기능이상의 뉴런들이 많이 분포하고, 거기에 아밀로이드 침전물이 생겨나고, 그것 때문에 아세틸콜린 수치가 상당히 낮아지고, 낮아진 아세틸콜린 수치는 다시 전전두엽의 기능이상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중인 것 같았다. 유부장은 어느 날, 그녀가 낸 문제들을 일괄 검토하고 싶으니 원본파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녀는 수백 개의 문제를 유부장에게 주었다. 얼마 후, 이영준이라는 강사가 그 문제들을 묶어 저서를 출간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영준이 말하길, 잠을 줄여 만들어낸 토끼 같고 알토란 같은 문제들을 수험생에게 바친다고 했다. 그녀는 대체 어떻게 왜, 그녀가 출제한 수많은 문제들이 강사가 출제한 문제로 둔갑하였는지를 알고 싶었다. 유부장은 별로 당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훈계했다. “이우리 씨는 이 회사에서 월급 받고 문제를 낸 사람이고, 그 문제를 어디다 어떻게 쓸지는 몰라도 돼. 그건 회사가 결정하는 거야.” 그녀는 주변을 수소문해서 사건 경위를 알아냈다. 이영준 강사는 계약을 해제한 뒤 경쟁사로 옮겨갈 계획을 품고 있었다. 유부장은 인터넷 스타강사인 이영준을 붙들어야 했고, 저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싱어송라이터인 가수가 사랑받는 것처럼, 직접 출제한 문제로 강의하는 엘리트 미남 강사라면 더욱 사랑받을 터였다. “그건 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거예요.” 그녀는 바쁜 척, 그녀 같은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척 사무실을 누비는 유부장을 따라다니며 말했다. “저작권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어요. 하나는 저작재산권, 다른 하나는 저작인격권. 저는 이 회사의 직원이므로 제 생산물의 재산권이 이 회사에 귀속되는 것만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작인격권마저 유부장님이 침해하실 수는 없어요.” 사과받고 싶은 나머지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인격권을 침해하신 점, 사과 바랍니다.” 하지만 유부장은 들은 척도 않았고, 거래처에 간다며 나가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유부장은 기억력이 심히 나빠진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 몫으로 매달 나오는 사원복지비를 전혀 쓰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왕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으니 청구하는 방법을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관리팀 김미영 대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무슨 소리냐며 반문했다. “꼬박꼬박 사원복지비 십 만원씩 쓰셨던데 무슨 소리예요? 유부장님이 이우리 씨 복지비 신청을 대신 해주시던데요? 제가 영수증 다 갖고 있어요.” 관리팀 김미영 대리와 함께 그녀는 그간 자신이 제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수십 장의 영수증을 살펴보았다. 밤 열한시 삼십분에 강남역 근처에서 맥주를 마셨다든가, 백화점에서 초밥을 먹었다든가, 동반인 1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어린이용 문구세트를 샀다든가, 향수를 사고, 햄버거세트를 먹었다든가, 디저트카페에서 타르트를 먹은 일 따위가 영수증에 씌어 있었다. 김미영 대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유부장님이 매번 자기 계좌로 금액을 청구하시기에 좀 의아하긴 했어요.” 그녀는 왜 자기 명목의 금액을 유부장이 사용한 것인지 따져 물었다. 유부장은 청각장애가 있기라도 한 양 빤히 보기만 했는데,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도 보여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여러 번 천천히 쉽게 또박또박 말해보기까지 했다. 한참 후에나 유부장은 씩 하고 웃으며 겨우 말했다. “미안, 나는 기억이 나질 않네. 이우리 씨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그런 뒤 유부장은 거래처에 간다며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녀는 허탈했고, 그리고 진짜로 자신이 뭔가 착각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기까지 했다. 그다음에는 다시 그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유부장은 며칠 지방 출장을 가 있었고, 유부장이 돌아왔을 때에는 그녀가 모의고사 마감을 해야 해서 미처 싸울 틈이 없었다. 열흘쯤 지난 뒤에 사원복지비 이야기를 꺼내려 하니 마침 유부장이 활짝 웃고, 다정해 보이기도 했기 때문에 차마 그 치사한 일에 대한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저작인격권 침해라는 더 중요한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부터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부디 콩을 많이 드시고 착하게 사세요.” 그녀는 밥을 먹는 유부장을 바라보았다. 유부장은 들은 건지 만 건지 콩나물은 건져둔 채 국물만 마셨다. 저작인격권 침해에 관해 유부장은 끝내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짜증 나게 하네. 이우리 씨, 잘 들어. 월급 매달 제날짜에 받았어, 못 받았어?” 그녀는 월급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했다. “네가 말하는 그것까지의 대가가 네 월급이야. 알았어?” 유부장은 내친김에 더 뻔뻔해지기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이영준 강사한테 교재를 넘긴 건 널 위한 일이기도 했어. 이영준이 고객을 끌어모아서 돈 벌어올 거고, 그러면 그 고객들이 네 모의고사에 응시할 거야. 결국 그 이익은 너에게로 돌아갈 거고 말이야. 난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사과를 받지 못한 그녀는 대표이사를 찾아갔다. 대표이사는 자기 방을 찾아온 그녀를 아주 반가워했고, 대학 시절 미처 말 걸어보지 못했던 추억의 여인을 바라보듯 아련하게 미소 짓고 손수 음료도 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하소연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인격권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그녀가 눈물지을 때에는 티슈를 내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대표이사가 맞장구까지 치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에 마음이 좀 풀렸고, 울고 난 뒤에는 정신과 상담을 한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대표이사는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이우리 씨가 그런 마음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니 가슴이 아프네. 그동안 몰라주어서 그게 참 미안하다.” 그러나 대표이사는 선량하고 무력한 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하지만 회사에는 위계질서가 있는 거야. 사원인 너의 불만을 대표인 내가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면 내가 임명한 중간 관리자인 유부장의 권한을 무시한 게 돼.” 대표이사는 콧물을 닦고 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생각해 볼 테니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내겐 곧 중요한 회의가 있다.” 그녀는 다 털어놓고 난 뒤의 후련함과,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으므로 여전히 석연치 않은 기분을 안은 채 자리로 돌아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그녀는 생각했다. 대표이사가 말한 ‘나중에’는 오늘의 나중인지, 아니면 미래의 다른 어떤 날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른 어느 날이라면 가까운 미래인지 설마 먼 미래를 의미하는 말인지? 그 ‘나중에’가 오늘 저녁을 의미하는 것일까 봐 그녀는 밤 열시가 되도록 앉아 있어 보았다. 그때껏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무얼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허망한 희망을 품고 아주 천천히 출제를 했다. 어느 순간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대표이사였다. “이우리 씨.” 돌아보니 대표이사는 멋쩍은 듯 웃음을 띤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은 등 뒤로 감춘 채였다. 그녀는 순간, 자신의 가슴 속에서 희망이 반짝이는 것을 느꼈다. 대표이사는 씩, 하고 웃었다. 무릎이 허연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였다. “일단 집에 가긴 갔는데, 이우리 씨가 생각나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대표이사는 혀를 살짝 내밀고 웃었는데,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어렵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젊을 때 타던 찌그러진 소형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이따 한번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데 표정이 좀 이상해 보였다. 그녀는 대표이사에게도 치매가 시작된 것은 아닌지, 혹시 대표이사도 사십팔년째 콩이나 계란을 배제한 식생활을 하는 건 아닌지 잠시 생각했다. 의아해하며 대표이사를 바라보는 가운데, 대표이사는 새삼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그녀의 턱 앞에 손을 불쑥 내밀었다. 따뜻한 김이 끼쳤다. 손바닥에 커다란 감자 두 알이 놓여 있었다. “야근하느라 배고프지? 이거 먹어.” 대표이사는 그녀의 책상에 감자 두 알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감자의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그녀의 등 위에 올려놓았다. 아주 짧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의 손바닥이 그녀의 7번 경추부터 꼬리뼈까지를 훑어 내려갔다. 그녀는 그 손바닥에서 몸을 떼어냈다. 반사적으로 말이 흘러나왔다. “저는 감자 안 먹습니다. 사장님이나 드세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돌아보았더니 대머리까지 전부 빨개진 대표이사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감자 준 직원이 이 회사에 있는 줄 알아? 나 아무한테나 이러는 사람 아니야.” 대표이사는 잠시 입을 앙다물더니 다시 말했다. “감자 싫으면 그럼, 초밥 사다줄까? 초밥 먹을래?” 그녀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돌처럼 굳어버린 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이사는 등 뒤에서 식식거리더니, 쿵쿵대는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때가 왔다. 흐와스코의 소설에는 격리되어 철교 건설에 투입된 일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건설기간 동안 그들의 모든 일상은 오로지 노동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들의 꿈은 단 한 가지, 건설현장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하던 그 마지막 날, 그들이 만든 다리를 떠나며 일꾼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눈물의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때 나는 그 다리가 이미 추억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그 철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그 다리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모를 것이다.’ 그녀는 소설 속의 인물들이 흘린 눈물과 알 수 없이 아파오는 마음에 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 마지막 문제를 내고 싶었지만 그 눈물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눈물’의 의미와 위 글의 인물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그들의 청춘 전부가 바쳐진 다리를 자신의 창작물처럼 여기고 있다. ②가장 본질적인 것까지 쥐어짜 노동했던 일에 관해 슬픔을 느끼고 있다. ③자신들의 청춘과 자신이 만든 다리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④박탈당한 청춘에 대한 애착이 말 못할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다. ⑤드디어 노역에서 놓여났다는 기쁨보다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한 청춘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선택지는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⑥피 같고 살 같고 자식처럼 여겼던 대상이 고작 철교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므로 그제야 흐르는 눈물이다. ⑦그들의 미래란 두고 온 날들보다 나을 것이 없으리라는 예감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다. ⑧그들의 청춘이 누군가의 인생 속에서 부품이고 도구였다는 것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다. ⑨가장 중요한 것을 침해당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조차 없으므로 흐르는 눈물이다. ⑩정작 울어야 할 자들이 울지 않기 때문에, 대신하여 흘려주는 눈물이다……. 그녀는 알 수 없이 굴러 떨어진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버려둔 채 자리를 떠났다. <끝>
  •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올해 세상을 떠난 세계 주요인사들 - AFP 선정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미국 할리우드 배우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로빈 윌리엄스까지, 올 한해 사망한 주요 유명인사를 AFP통신이 소개했다. ‘2014년 주목할 만한 사망’(Notable death in 2014)이라는 타이틀로 공개된 이 목록을 살펴보고 한해를 돌이켜보는 것은 어떨까. ■ 1월 아리엘 샤론=이스라엘 총리로 2005년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철수라는 역사적 정책을 주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8년간 혼수상태로 투병 끝에 텔 아비브 근교 병원에서 11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밀라노 스칼라극장 음악감독,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역임하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축제로 격상시켰다. 긴 투병 생활 끝에 볼로냐에서 20일,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트 시거=미국인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와 함께 미국의 저항적인 프로테스트 포크를 발전시킨 중요 인물로 꼽힌다. 뉴욕 시내의 병원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맥시밀리안 쉘=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오스카 수상 배우. 영어권에서 독일어를 쓰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로 영화 ‘젊은 사자들’로 데뷔, ‘뉘른베르크의 재판’에서 피고측 변호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병에 의해 28일,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2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미국의 오스카 배우. 2005년 영화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2012년 ‘마스터’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유작으로는 ‘헝거게임’ 시리즈 등이 있다. 뉴욕의 집에서 2일 약물과다 복용에 의해 46세 나이로 사망했다. 셜리 템플=미 할리우드의 영원한 아역 스타로 결혼 이후 정치에 입문해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1935년 아역 부문 오스카상을 수상해 역대 아카데미 최연소 수상을 기록했다. 캘리포니아주(州) 자택에서 10일, 8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파코 데 루치아=스페인의 기타리스트로 플라멩코 기타의 전설로 불렸다. 플라멩코에 재즈, 록, 보사노바, 탱고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뉴 플라멩코’를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심장마비로 25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3월 제라르 모르티에=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10년간 브뤼셀의 라 모네 왕립극장을 이끌며 유럽 변방이던 이 극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전설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사망 이후 잘츠부르크 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암으로 투병생활 끝에 8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메드 테잔 카바=10년 넘게 이어온 시에라리온의 내전 종식을 이끈 대통령. 빈민 구제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도 프리타운의 집에서 13일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4월 미키 루니=미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이자 아역스타. 17세 때였던 1937년부터 1958년까지 출연한 ‘하디 보이스’ 시리즈에서 앤디 하디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8번이나 결혼했으며 말년에 자식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긴 투병생활 끝에 7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피치스 겔도프=영국의 패션 아이콘이자 탤런트로, 음악을 통한 자선활동 단체 ‘밴드 에이드’를 결성한 영국 가수 밥 겔도프의 딸이다. 영국 자택에서 7 일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 중남미 문학의 거장으로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 이래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어권 작가로, 스페인어로 출간된 책 가운데 성경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 시티에 있는 집에서 17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윈 틴=미얀마 군부독재에 항거한 최장기수이자 아웅산 수치 여사와 함께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창설한 언론인. 수감 뒤 여러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고, 석방 뒤 2011년 민정 이양 때까지 NLD를 통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양곤 종합병원에서 21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밥 호스킨스=영국의 연기파 배우. 1980년 영국 갱스터 영화의 클래식으로 불리는 ‘롱 굿 프라이데이’를 통해 데뷔한 뒤 차가운 악당과 런던 토박이 캐릭터로 많은 영화팬의 사랑을 받았다.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폐렴에 의해 29일,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5월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공산주의 정권 시절 폴란드의 마지막 대통령. 공산당 제1서기로 있던 1981년 계엄령을 선포하고 옛소련권 국가의 첫 자유 노동조합인 연대노조(솔리대리티)를 탄압하는 등 민주화 염원을 억압했다. 수도 바르샤바의 병원에서 25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야 안젤루=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류시인이자 배우이며 민권 운동가이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69년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로 흑인 여성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끊임없는 작품활동과 더불어 작곡과 영화 출연 등 왕성한 문화 활동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자택에서 28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6월 토미 라몬=미국 펑크 밴드 ‘라몬즈’에서 생존하고 있던 마지막 오리지널 멤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출생 이름은 토마스 어델리. 미국 뉴욕에서 11일 암으로 6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 7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 선수. 5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냉전 종결의 일익을 담당한 옛소련 마지막 외상으로 전 그루지아 대통령이다. 긴 투병 생활 끝에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로린 마젤=미국의 지휘자 겸 작곡가. 타계 직전까지 활동하며 약 7000회 무대에 섰고 음반 300장 이상을 발매했다. 미국·유럽의 오케스트라 10여 곳을 상임 지휘자로서 이끌었다. 버지니아 자택에서 13일 폐렴 합병증으로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딘 고디머=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겸 반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운동) 활동가.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13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니 윈터=미국의 전설적인 블루스 가수. 2003년 ‘블루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미국의 음악잡지 ‘롤링스톤’에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100′에서 6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스 취리히 근교의 호텔에서 16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8월 로빈 윌리엄스=미국의 오스카 수상 배우이자 코미디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역으로 열연,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있다. 또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어거스트 러쉬’ 등 장기인 코믹 연기를 비롯한 뛰어난 연기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11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됐고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구글 검색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로렌 바콜=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명배우 험프리 보가트의 파트너로 많은 영화에서 공연했고, 결혼까지 한 ‘가장 행복한 여배우’로 유명세를 탔다. 바콜은 보가트와 최고화제작 ‘키 라르고’를 비롯, ‘소유와 무소유’, ’다크 패시지’, ‘명탐정 필립’ 등 많은 영화에서 같이 출연했다. 12일 뉴욕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제임스 폴리=미국 언론인. 20일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수니파 무장 조직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되면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IS가 살해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기록됐다. 리차드 아텐보로=영국 배우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감독이다.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원 개발자로 출연해 유명세를 탔다. ‘34번가의 기적’에서는 산타 클로스 역을 열연한 바 있다. 감독으로서도 맹활약해 영화 ‘간디’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24일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9월 이언 페이즐리=영국의 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총리로, 북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했던 개신교계 민주통합당의 설립자이다. 2007년 신페인당과의 북아일랜드 공동자치정부 출범에 동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긴 투병 생활 끝에 12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0월 장클로드 뒤발리에=아이티의 전 독재자. 1971년 19살 나이에 ‘파파 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프랑수와 뒤발리에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발리에는 ‘베이비 독’으로 불리며 1986년까지 15년간 아이티를 철권 통치했다. 4일 심장마비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유럽의 3대 석유기업에 드는 프랑스 기업 ‘토탈’의 최고경영자(CEO). 1974년 토탈의 회계부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해 2007년 CEO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20일,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클 사타=잠비아 대통령. 삼수 끝에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선동가적인 기질에 독설로 유명해 ‘킹 코브라’란 별명을 갖고 있다. 빈민옹호 정책을 써왔으며 자국 탄광에 대한 중국의 투자에 강력히 반대해왔다. 건강 이상으로 영국 런던에서 치료 중이던 28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1월 마니타스 드 플라타=프랑스 로마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생전 녹음한 80여장의 음반들은 9300만장이나 판매되면서 플라멩코 음악을 대중화했다는 평을 얻었다. 남프랑스의 노인 시설에서 4일,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마이크 니콜스=영화 ‘졸업’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감독. 위트 넘치고 사회풍자적인 작품을 영화와 TV,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선보였다. 19일 심장마비에 의해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스페인 알바 공작부인, 마리아 델 로사리오 카예타나 피츠-제임스 스튜어트=세계에서 가장 많은 칭호를 가진 귀족. 폐렴을 앓은 뒤 남부 세비야의 자택에서 20일, 88 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바=레바논 출신으로 아랍권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이자 여배우. 1927년 ‘쟌넷 페갈리’란 이름으로 태어났으나 나중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아랍어로 아침을 뜻하는 ‘사바’로 불리기 시작했다. 수도 베이루트 교외의 호텔에서 26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필립 휴즈=호주 크리켓 선수. 25일 시드니에서 열린 경기 도중 공에 머리를 맞아 혼절하고 이틀 뒤인 27일 불과 2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P.D. 제임스=‘추리소설계(界)의 여왕’으로 불리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소설 작가. 예리한 직관을 가진 수사반장 애덤 달글리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 소설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잇따라 드라마로 방영됐고, 세계적으로 수 백만부가 팔렸다. 옥스퍼드 자택에서 2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12월 벨기에 파비올라 왕비=고(故) 보두앵 1세의 아내. 후손이 없어 보두앵 국왕의 동생인 알베르 2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2012년 재단을 설립해 조카들과 가톨릭 자선단체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는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연금 삭감으로 논란을 해결했다. 가톨릭과 아동복지 문제에 헌신해 존경을 받았다. 긴 투병 생활 끝에 5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비르나 리지=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1960년대 할리우드에 진출해 영화 ‘25시’등의 작품에서 열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여왕 마고’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4년 이탈리아 골든 글로브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도 로마의 집에서 17일,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조 코커=영국 출신의 전설적인 록가수. 1968년 비틀즈의 노래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럼 마이 프렌즈’와 ‘유 아 소 뷰티풀’을 커버해 스타덤에 올랐다. 말년에 폐암을 앓았으며 21일 미국 콜로라도 자택에서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TOPIC/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가슴 따뜻한 시가 흐르는 관악

    가슴 따뜻한 시가 흐르는 관악

    “계절이 바뀌는 때면 구청에 볼일이 없어도 간판을 보러 가요. 이번에는 또 어떤 글이 쓰여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좋은 글귀를 읽다 보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관악구 주민 김모씨) 30일 서울 관악구청사 앞에 서면 주민들 사이에 일명 ‘간판’으로 불리는 ‘시가 흐르는 유리벽’이 눈앞에 들어온다. ‘시가 흐르는 유리벽’은 딱딱한 관공서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2011년 유종필 구청장이 제안해 만든 것으로 구청 전면에 아름다운 글이나 시구를 올리고 있다. 계절별로 도전과 용기, 내일의 희망과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문구를 주민과 직원 공모로 선정한다. 2011년 7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1편이 게시됐다. 올해에는 정호승 시인의 ‘사랑하면 더 많은 별이 보인다’, 헤르만 헤세의 ‘노래하라 내마음아. 오늘은 너의 시간이다’, 양광모 시인의 ‘길이 멀어도 가야 할 곳이 있는 달팽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나짐 히크메트의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게시됐다. 글과 그림은 광화문 글판으로 유명한 캘리그라피스트 박병철 작가의 작품이다. 구 관계자는 “구청을 찾거나 지나가는 주민들이 발길을 멈추고 음미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젊은 친구들은 시가 흐르는 유리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고 설명했다. 구는 이번에 새해를 맞아 ‘시가 흐르는 유리벽’을 새롭게 꾸며 공개했다. 새해편은 을미년을 맞아 구민에게 사랑과 용기를 전하고 희망을 주는 글로 소설가 이외수씨의 ‘절대강자’ 중 ‘태양에 임자 있나요. 가슴에 품은 사람이 임자지요. 태양도 사랑도 희망도 그대를 위해 존재합니다’가 게시됐다. 유 구청장은 “태양을 가슴에 품고 뜨겁게 살아가는 희망찬 새해가 되길 바란다”면서 “을미년 새해에는 모든 구민이 더욱 건강하고 가정에 행복과 평화가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