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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벽한 합성음의 음악회 선보였죠”(검퓨터로 만납시다:5)

    ◎음악동호회 셈틀소리/애호가 380명 모여 월1회 소공연회/작곡과정도 간편… “오선지 필요없죠”/가수 신해철도 취입때 이용… 장비 비싼게 흠 『석양에 노을지는 꽃잎위에 머나먼 곳으로 손짓하는 저편 향기가…』 지난달 15일 컴퓨터음악통신동호회인 「셈틀소리」가 서울종로2가 코아아트홀에서 개최한 신곡발표회에는 1백80여명의 음악애호가들이 참석,이색적인 컴퓨터 음악발표회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컴퓨터음악만 있으면 소규모 공연을 갖는 일은 아주 쉽습니다.컴퓨터음악이 반주를 맡고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되거든요』 셈틀소리 회장인 방재혁씨(30·중앙일보행사팀)는 피아노나 기타반주를 대신해 노래를 부를 수있는 컴퓨터음악이야말로 우리의 생활을 즐겁고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도구라고 예찬한다. 셈틀소리만 셈틀(컴퓨터)에서 나오는 소리(음악)란 뜻. 컴퓨터통신을 통해 음악을 연구하고 즐기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컴퓨터음악의 기술적인 분야를 다루는 미디(MIDI)파트와 컴퓨터음악을 이용,편·작곡하고 실제로 음악을 노래하는 라이브파트로 나뉘어 있다. 3백80여명의 회원중 라이브파트가 30여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미니파트에 속한다. 『컴퓨터음악을 하면 작곡하기가 매우 쉽습니다.악상이 떠오르면 피아노의 건반에 해당하는 신디사이저를 두드려 컴퓨터에 입력한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를 수정 보완해 편집하면 곡이 완성됩니다』 셈틀소리 회원인 이승훈씨(29·한국전산)는 『피아노를 이용해 작곡할때는 구상한 곡을 다시 들으려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거나 처음부터 다시 피아노를 쳐야하지만 컴퓨터음악은 그런 과정이 필요없다』고 편리성을 알린다. 실제로 작곡가나 가수들 사이에서는 컴퓨터음악이 필수품화돼 최근 인기정상인 가수 신해철 윤상등이 레코드취입때 반주로 컴퓨터 음악을 이용한다. 회원 구정래양(이대 문헌정보과)은 데이콤PC서브를 통해 이 모임은 알게 됐다며 『회원들이 대부분 전에 음악활동을 했던 이들로 음악에 박식한데다 컴퓨터통신은 이용,음악에 관한 정보교환이 빠르다는 점에서 가장 유익한 취미 모임』이라고 자랑한다. 지난89년 가을 창립된 이 동호회는 월1회 정기모임과 연1회의 정기공연외에 틈틈이 소공연을 마련,컴퓨터음악을 보급해간다. 컴퓨터음악판매업소인 강스튜디오에 근무하는 한경희씨(25)는 『현재 컴퓨터음악장비와 소프트웨어가 대부분 외제인 것이 큰 불만』이라며 값싼 국산장비와 소프트웨어가 나오지 않으면 컴퓨터 음악 대중화는 이루기 어렵다는 판단아래 동호회원중 일부는 컴푸터 음악장비와 프로그램 개발에 심험을 기울이고 있다고 알린다. 셈틀소리회원은 20,30대의 젊은이가 주류이지만 교수·의사·군인들도 참여하고 있고 전KBS경음악단원인 홍사철씨,강스튜디오 운영자인 강계남씨등 컴퓨터음악 전문가도 있다. 셈틀소리회원들은 재즈(18%),와 고전음악(18%)을 가장 좋아하고 팝,록,뉴뮤직,블루스,전위음악등 다루는 음악세계가 다양하다. 지금 컴퓨터음악이 확산되는데는 장비값이 만만치 않은것이 가장큰 흠. 피아노건반인 신디사이저가 60만∼3백만원,컴퓨터의 악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카드가 18만∼35만원,소리를 조절하는 사운드모듈이 60만∼2백만원이다. 실제 셈틀소리회원중에는 장비값이 비싸서 악기를 전혀 갖추지 않은 사람도 17%나 된다.
  • 봄철집안단장 화사하고 산뜻하게(가정여성)

    ◎전문가에 들어본 실내장식 아이디어/소파 천으로 뒤집어씌워 새분위기 연출/낡은 싱크대는 접착시트 이용 변화주길 햇살 가득한 새봄을 맞고 보면 집안 분위기도 화사하게 꾸며보고 싶게 마련이다.벽지와 커튼을 모두 바꾸고 가구도 새로 들여 놓는 것이 좋겠지만 돈이 많이 들어간다.그래서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효과도 거둘 수 있는 봄철 실내장식 아이디어를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알아봤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겨우내 사용하던 무거운 소재의 커튼·쿠션·카펫등을 과감하게 치우고 봄기분이 물씬 풍기도록 밝고 가벼운 색상으로 바꾸어 주는 것.특히 낡거나 때가 탄 소파에 커다란 천을 뒤집어 씌우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거실 전체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천으로 소파 리폼하기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이 소파의 크기대로 천을 마련해 가장자리를 올이 풀리지 않도록 박음질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요즘 젊은 주부들에게 널리 애용되는 아이디어.쿠션도 같은 천이나 비슷한 톤의 단색천으로 커버를 만들어 씌우면 완벽하다. 면소재로 기존의 가구나커튼의 색상과 어울리는 색조의 꽃무늬가 화사한 것을 선택하되 좁은 거실의 경우 너무 큰무늬는 어수선해 보이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천을 소파 위에서부터 뒤집어 씌우고 등받이 코너 부분에 굵게 주름을 만들면서 각 틈새에 천을 끼워 넣는 방법으로 모양을 정리한 다음 양옆의 천을 모아 묶는다.면은 한 마당 2천5백∼2천8백원이면 살 수 있다. 흠집이 나고 낡은 싱크대와 신발장등은 산뜻한 무늬의 접착시트를 이용,변화를 준다.뒷면에 접착제가 칠해져 있어 뒷종이만 떼어 내고 크기에 맞게 오려 붙이는 접착시트는 비닐·헝겊·코르크등 소재가 다양하고 무늬도 3백여가지가 나와 있다.꽃무늬는 화사하고 아늑한 분위기를,체크무늬는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한다.어린이 방에는 동물무늬의 접착시트를 사용하면 아기자기하다. 접착시트로 꾸밀때는 뒷종이를 한꺼번에 떼어내지 말고 위쪽을 20∼30㎝정도만 벗긴뒤 위에서 아래로 붙이고 기포가 생긴곳은 바늘로 구멍을 뚫어서 처리한뒤 마른수건으로 꼼꼼하게 눌러주는 것이 요령이다. 백화점의 DIY코너와벽지전문점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접착시트의 가격은 1m(45㎝폭)에 단색이 1천8백∼2천원,무늬시트는 2천4백∼5천5백원 정도. 또 창가에는 작고 앙증맞은 꽃화분과 관엽식물을 놓아 집안 가득 싱그러움이 넘치도록 해본다.베란다에는 꽃이 많이 피고 개화기간이 긴 팬지,패추니아,데이지등 초화류의 모종을 사다 간이정원을 꾸며보는 것도 재미있다.
  • 비판적 남북정상회담론/정부의 “신종추진”발표를 듣고…

    남북간에 합의서가 채택되고 또 비핵선언이 이루어지니 다음 화제는 주로 정상회담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남쪽에서는 곧 성사된다는 소리가 높고 북쪽에서도 개최엔 아무 장애도 없다는 이야기이다.그렇다면 회담의 개최는 이제 틀림 없을 것 같이 보였는데 13일 정부가 『우리측이 먼저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천명함으로써 필자가 주창해 온 「남북정상회담 불가망론」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이 아직은 왜 성사될 수 없는가.그것은 회담 의제만 생각해 봐도 당장에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하늘의 뜬구름 같기만 했기 때문이다. 첫째로 남쪽에서 꼭 제기해야 할 것으로서 북쪽이 한사코 거부할 의제의 하나가 6·25 전쟁처리 문제이다.장장 40년이나 지속되어 온 휴전 상태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인 종전선언이 있어야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는가.그러나 북쪽은 그것은 미국과 할 일이지 남쪽이 상대가 될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뿐만 아니라 이 전쟁 처리에 관한 문제는 종전선언으로만 족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원인에 대한 민족적 반성을 명백히 표명하는 선언을 앞세워야 한다.그것은 즉 국토분단과 전쟁 도발의 책임이 북쪽에 있음을 말하고 넘어가자는 것이다.이 또한 북쪽이 절대로 응하지 못할 문제이다. 국토분단은 1945년 9월20일자로 스탈린이 북한점령 소련군에 내린 「민주기지」노선에 관한 지령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레닌이 죽은뒤 세계혁명의 기지인 소련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던 스탈린은 한반도 적화를 위한 기지로서의 북한이라는 전략을 「민주기지」란 미명으로 시달했던 것이다.그것은 바로 선분단 후공산통일의 전략이기도 했다.그 연장선상에 6·25남침전쟁이 있었다.그러나 북쪽은 이 모든 역사적 사실을 은폐·부인하고 분단과 전쟁의 책임을 소위 「미제와 그 앞잡이 남조선」에다 전가함으로써 저들 체제의 역사적·민족적 정통성의 구실로 삼아 왔던 것이다. 북쪽은 1955년부터 줄곧 불가침선언을 제의해 왔었는데 지난 연말에 그것이 성사되어 매우 흡족할 것이다.이 불가침선언이 바로 분단과 전쟁책임이 남쪽에 있다는 주장을 전제로한 제의였던 것이다.따라서 우리가 정상회담에서 만은 이 문제를 명문으로 밝혀놓고 넘어가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대죄과로 남을 것이다.빼앗긴 주권은 되찾을 날이 있어도 양도해 버린 역사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법이다. 둘째로 북쪽에서 꼭 제기할 것이로되 남쪽이 한사코 거부해야 할 것으로 연방제통일의 문제가 있다.북쪽은 현재 구체적인 통일 방안에 대해 합의를 볼 수 있다면 정상회담에 응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북쪽이 말하는 구체적인 통일방안이 바로 연방제란 사실은 온 세계가 아는 일이다.연방제통일이란 무엇인가.그것은 북한주권하의 통일성취라는 조선로동당의 전략전술이다. 레닌이 1920년에 극동 시베리아에 극동공화국이란 나라를 출현케 한 일이 있다.혁명의 파급을 막기 위해 파견된 일본 군대를 철수시키기 위해 노농러시아와 일본사이의 완충국가로서 세운 이 「위장국가」는 철저히 부르주아 민주제를 가장했다.그러나 1922년 10월에 철수하자 한달도 채 못되어 레닌정부에 흡수되어 없어지고 말았다. 이같은 레닌 전술을원용한 것이 바로 북쪽이 내놓은 연방제이다.그것은 오로지 미군철수를 겨냥해 짜낸 전술이요 제안이다.일단 연방제가 되기만 하면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없어지는 것이니 미군철수는 시간 문제요 미군만 철수하면 민중정부를 세워 흡수하든 남진통일을 하든 그것은 저들의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이와같은 저들 생각이 김일성의 「교시」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그는 남쪽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미군 때문이란 것이다.그에게는 60만 국군의 존재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미군만 나가면 기를 못쓴다는 생각이다.그래서 김일성은 지금까지도 미군철수가 남진통일의 절대적 조건이라고 「교시」해 왔다.그러나 남북의 젊은 이들이 다시는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도 전쟁억지력으로서의 미군의 존재는 앞으로 상당기간 절대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따라서 연방제 합의를 하기 위한 정상회담에는 남쪽이 절대로 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만일 북쪽이 정상회담에 응한다면 거기에는 그들 특유의 게릴라전법에 의한기습전략이 숨어 있을 것이다.그들은 남북주민들의 뜻을 직접 묻자고 하면서 미군 철수 조건하의 남북총선거통일안을 제시할 것이다.일본의 가네마루(김환)를 손안에 넣었던 그와 같은 기습작전인 것이다. 어떤 제안을 할 때 상대가 반대하면 비난을 받게 되고 동의하면 망하게 되는 그런 수법을 쓰는 것을 정략의 요체라고 하거니와 선거통일안이 바로 그런 것 가운데 하나이다.미군이 철수했다 해서 선거가 실시되는 것은 아니다.노사 분규나 학생 소요 같은 것을 통해 소위 민중정부의 수립을 공작할 것이요,아니면 전격적인 남진통일로 나올 것이 뻔하다. 정상회담 임박이라는 소문은 여러번 들어왔지만 막상 회담 의제에 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다.뒤늦게나마 정부가 서두르지 않겠다고 나온 것은 천만 다행이나 일시적인 눈치작전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 첼로와 함께 50년 전봉초씨(온고지신의 탐방)

    ◎문화계 원로에게 어제·오늘을 듣는다/“예술가는 예술에 대한 욕심으로 살죠”/11월 독주회 준비로 바쁜 나날/아시아청소년오케스트라 한국지부장도 맡아/국내 첼리스트의 80%가 제자 18년째 산다는 구반포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자 전봉초선생(74)이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따라 들어간 서재에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듯 보면대를 마주한 의자에 첼로가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이수교의 분주한 차량행렬이 바라보이는 창밖의 하늘은 잔뜩치푸려 있는데 펼쳐져 있는 악보는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이었다.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놓고 부엌으로 건너간 그는 불과 2∼3분만에 쟁반에 받쳐든 커피를 내왔다.문득 그가 서울음대 교수로 있던 시절 연구실 캐비닛에 여러 종류의 차를 넣어두고는 레슨을 끝내면 학생들에게 한 잔씩 끓여주었다는 한 제자의 추억담이 떠올랐다. 이날 그는 부인 이복련여사(62)가 붓글씨를 쓰는 모임에 나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예총회장을 그만둔 뒤에는 줄곧 집에만 있었어요.예술원에 가끔 갈 뿐이지요.그런데올해는 무척 바쁜 해가 될 것 같군요』 그가 올해 바쁘게 될 첫번째 이유는 자신의 표현대로 「악단생활 5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기념독주회를 준비하고 있다.이 연주회의 피아노는 서울대에 함께 재직했던 피아니스트 김순렬선생(73)이 맡게 되는데 그 또한 올해가 연주생활 50년째 되는 해여서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되리라는 것이다. 기념독주회의 프로그램은 이미 결정이 되었는데 「사랑의 기쁨」은 그 가운데 하나다.그외에 비교적 현대쪽에 속하는 바르토크와 난곡인 바흐의 「무반주첼로를 위한 조곡」이 포함돼 있다.바르토크의 경우 지난 61년 생소하기만 하던 현대곡들로 독주회를 가지는등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려고 애써온 그의 노력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그런데 바흐에 대해서는 『이 나이에는 무리인 줄을 잘 알고 있다』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전성기가 있는 법이므로 70이 지나서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은 욕심이지요.그래도 음악인생을 총결산하는 심정으로 큰 산과 같은 이 곡을 넣었습니다.예술가가 예술에 대한 욕심이 믿으면 밥숟가락을 놓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신조이기도 하고요』 그가 올해를 바쁜 해가 될 것으로 보는 두번째 이유이자 진짜이유는 최근 아시아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한국지부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당장 3월부터 이 오케스트라에 참가하고자 하는 국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하고 8월에는 음악캠프에 보내 지도를 받게한 뒤 아시아 지역 순회연주에 내보내야 한다.올해는 이 오케스트라가 우리나라에서도 연주회를 갖는다. 『음악회를 가지려면 필요한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서겠지요.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됐어요』 그는 8월17일과 19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을 미리 대관받아 놓았다.그리고는 요즘 후원자를 물색하기 위해 방송국으로 대기업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음악협회장과 예총회장으로 휘둘리며 지낸 5년 세월을 남들은 허술히 보아주지 않는 탓인지 다행히도 곧 후원자가 나설 전망이라고 했다. 지난 해 여름 그는 사위인 첼리스트 이동우씨(KBS교향악단수석)가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이 교향악단의 지도교수로 참가한데다 아시아 8개국에서 모인 1백2명 가운데 우리나라가 가장 많은 22명이나 선발돼 매우 기뻤다고 한다. 그러나 기쁨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동양 음악가의 자질을 일찍부터 개발해 보자는 취지로 90년 홍콩에서 창설된 이 교향악단은 지난 해에는 중국 순회연주까지 했어요.그런데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음악수준도 높다는 한국에는 스폰서가 없어 오지 못했어요.올해도 성사되지 않으면 국제적인 망신이지요』 그래서 한국 지부장을 맡았다는 설명이다.교향악단을 운영하는 재단이 있으니 우리측에서는 협연자에게 돌아갈 얼마간의 개런티를 마련하고 연주장 대관,교통편,숙소마련 등 「몸으로 때우는」일이 그의 몫이다. 그런데 그런 곤고한 일들이 오히려 재미있고 의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서울대 음대학장 시절인 지난 79년 당시 교육부가 음대교수의 개인레슨에 제동을 거는 발표에 대한 반대의견을 한 음악잡지에 기고한 뒤 언론의 집중 포화를 얻어맞기도 했다. 당시 그는 예능의 조기교육을 옹호하며 『음악실기를 일반과외공부와 동일시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라면서 『대학교수라는 작자들이 얼마나 옹졸하기에 불로소득도 아니고 기술전수에 대한 대가로 몇 사람의 동료가 좀 잘 산다기로서니 배아플 것은 무어냐』고 썼었다. 그로 인해 「레슨으로 돈 번 대표적 교수」로 치부되는 부작용을 겪기도 했으나 그 일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인 장녀 미영씨(37·교원대 교수)는 대신 그가 89년 펴낸 고희기념문집 「농현 오십년 낙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를 실었다. 『사정이 어려워 그냥 레슨을 받았던 창우언니(이창우)·재미첼리스트가 동아콩쿠르에서 대상을 받던 날 밤,캄캄한 어둠속에서 소리내어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의 그 모습… 저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가 지금 갖고 있는 악기는 의외에도 정순화씨가 만든 국산 악기로 10수년전 손에 넣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82년 가진 「악단생활 40주년기념독주회」에서도 이 악기와 이정우씨가 만든 국산악기를 번갈아 사용했고 지난 87년 일본초청공연에서도 국산악기를 써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악기수리를 맡겼던 두 사람이 일을 꼼꼼히 잘하는데다 자신들이 만든 악기를 한번 써줄 것을 부탁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그가 따로 국산이라고 말하지 않는 한 아무도 그 악기를 국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그만큼 수준급의 악기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비교적 괜찮은」외국산 악기를 가지고 있었으나 같은 첼로주자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함께 살고 있는 막내딸 소영(30·서울 신포니에타단원)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 74년 정년퇴직할 때 받은 4천여만원의 퇴직금가운데 1천여만원을 쪼개 마련한 스텔라승용차를 8년째 타고 다닌다. 이웃들이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다른 젊은 음악가들은 크고 좋은 새 차를 타고 다니는데 왜 그런 고물차를 타고 다니냐고 한다는 것이다.처음엔 그 말이 주변머리없는 자신에 대한 핀잔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젊은 음악가를 바라보는 「의혹의 눈초리」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그래서 제자들은 만나면 『노동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일해서 3∼4만원』이라면서 상식선의 강사료를 받을 것을 암시해주고는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첼리스트의 80%는 제자」라는 그는 제자들이 초대하는 음악회만 찾아도 봄·가을에는 쉬는 날이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전문 연주가가 아닌 다음에야 1년에 한번 이상의 연주회를 갖는 사람에게는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의 소망은 모든 음악인이 예술에 대한 욕심은 키우되 다른 욕심은 버리도록 하는 것이다. 「주당당수」직을 버리고 자전거 타기등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좀도 오래 첼로를 연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 노 대통령 본지 창간 46돌 특별인터뷰

    노태우대통령은 서울신문 창간 46주년을 하루 앞둔 21일 청와대에서 본사 서건일편집국장과 특별회견을 갖고 경제질서확립,북한의 핵개발저지를 포함한 한반도안보상황,민자당의 차기대권 후보결정,개각문제 등 국정전반에 관한 구상을 밝혔다.이 자리에는 이수정공보수석과 본사 강수웅정치부장·장정행경제부장·이중호사회1부장및 청와대 출입 김명서기자가 배석했다. ◎“북한체제 한계상황… 금세기내 통일 될것”/자주·평화·민주 3원칙 따라 통일추구/「북한핵」 외교적 해결… 군사제재 불원/북측 주장 「비핵지대화」 외세개입 자초/「한국방위의 한국화」 위해 군구조 개편/북한서 원하면 「두만강 특구」 개발 적극 협력… 경제개방 유도 ­한반도 주변 상황과 북한의 변화조짐 등에 비추어 볼때 통일은 이제 희망의 단계를 넘어 현실의 단계로까지 접근해 가고 있는듯 합니다. 금세기내에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씁하셨습니다만 통일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또 현상황에서 통일의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통일문제 남북관계◁ ▲한반도의 상황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한반도 바깥과 그 주변에는 냉전이 종식되고 있습니다. 이 세계를 갈라온 냉전체제가 와해되었음은 물론 우리가 추진해온 북방정책의 진전으로 지난날 북한의 동맹국이던 소련과 동유럽 모든 나라들이 우리와 우호협력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이웃 중국과도 교류·협력하는 관계가 날로 확대,발전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분단의 고통을 가져온 것도… 그것을 오늘에 이르게 해온 것도 냉전체제였습니다.냉전체제의 와해는 곧 한반도 분단상황의 종식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북한의 변화가 언제,어떻게 이루어지느냐는 것입니다. ○인적·물적교류 확대 공산체제가 소련과 동유럽 모든 나라에서 무너지고 중국도 개방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 북한만이 극단적인 폐쇄노선을 고수할 수 없을 것입니다.북한이 완강한 반대태도를 전환하여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한 것도 북한의 변화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북한은 내부적으로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폐쇄체제에 한계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북한간에 교류협력하는 관계를 이루려 합니다.남북한이 상호신뢰하는 바탕위에서 공존공영하는 관계를 이루는 것은 평화적 통일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중간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남북한의 동포들이 서로 오가며 서로가 서로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를 이루게 되면 우리 민족의 강한 결집력에 비추어 통일의 과정은 가속화될 것입니다. 순리에 따른 이러한 통일의 과정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북한체제의 비현실성입니다.그들은 폐쇄노선과 대남적화전략을 바꾸지 않고 있을 뿐아니라 핵무기개발을 에워싸고 국제적인 의무의 이행을 거부하고 있어 세계적인 우려와 불안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변화를 향한 마지막 진통이라고 생각하며,경직된 체제에 변화가 시작되면 그것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봅니다. 한반도의 분단은 다음 세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며 통일의 경정적인 전기는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빨리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남북한간 관계의 발전을 통하여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기보다 동유럽과 같이 북한의 공산체제가 급격히 붕괴함으로써 통일의 기회가 올것이라는 관측이 국내외에서 우세한 것같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직된 북한체제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관해서는 아무도 속단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그것은 북한의 체제가 급변하는 세계와 주변정세에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느냐… 또한 북한이 어떻게 내부문제를 해결하느냐와 직결된 문제인 것입니다. ○흡수통일 원치 않아 우리로서는 북한이 당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러한 바탕 위에서 북한이 우리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민족화합을 실현하도록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바라지만 그것이 점진적이고 질서있게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우리는 북한에서 내부적 혼란이 야기되거나 그들 스스로가 수습할 수 없는 급격한 변화로 폭발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은 북한 동포들에게 불행을 초래할 수 있을 뿐아니라 한반도와 이 지역에 뜻하지 않는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마치 우리가 독일식의 흡수통일을 원하고 있는 것처럼 경계하고 있으나,우리는 그것을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최근 한반도의 해결방식으로 2+4,즉 남북한과 미소중일 6개국 회담의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 구상이 한국의 반대로 철회되었는데 우리가 이에 반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반도문제는 어디까지나 한반도의 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합니다.남북한 문제에 미소중일등 주변강대국이 참여하게 되는 것은 민족적 자주성에 배치될 뿐 아니라 통일한국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우리는 우리 민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의지와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한반도의 통일을 자주·평화·민주의 원칙에 따라 성취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정신이며 역사의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독일문제의 해결을 위해 2+4방식이 적용되었으나 독일과 한반도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독일은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서 전후처리에 있어 4대강국의 간여를 수용할 의무를 졌으나,우리는 이와 전혀 무관한 입장입니다. 미국측도 6자회담의 구상은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토록 하는 방안으로 검토해본 것이지 한반도 문제의 해결이나 통일을 위한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했습니다.즉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미국·소련·중국·일본등 모든 방향으로부터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이 문제에 관한한 한미간의 이견은 없으며 완전한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졌습니다. ­대통령께서는 1988년 10월 유엔총회연설에서 「동북아 평화협의회의」를 제의하셨습니다. 이 구상과 베이커 미국무장관이 말하는 6자회담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내가 제의한 동북아 평화협의회의는 한반도 문제만을 논의하기위한 회의가 아니라 냉전의 대결이 지배해온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협력의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한 여러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열릴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이 통일과정의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이를 위해서는 우리측이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여 구체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제5차 서울회담의 전망과 우리측의 입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평양에서 열린 제4차 고위급회담에서 남과 북은 「남북사이의 화해및 불가침과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마련하기로 합의를 본바 있습니다. 판문점실무회담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협의하고 있는 중이지만 우리측은 합의서에 실효성이 보장되는 남북간의 불가침,교류협력등 핵심사항이 명시되고 그것이 실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다음달 서울에서 열리는 제5차 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이룩할 합의서가 채택될수 있도록 우리는 신축성 있고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북한핵 주한미군◁ ­「11·8 비핵화선언」에 대해 북한은 반대입장과 함께 미군철수,미국의 핵우산포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비핵지대화」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비핵화를 구현해 나갈 계획이십니까.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를 획기적으로 폐기·감축하는 조처를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반도에서도 핵무기가 제거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1월8일 비핵화 정책을 선언했습니다.한반도의 남북에서 핵무기를 제조·보유·저장·배치하지 않고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핵무기의 위험은 이 지역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비현실적이며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북,핵사찰 수용할것 비핵지대화를 위해서는 핵을 보유하고 있는 강대국들이 합의하고 그것을 보장해야 합니다.그것은 한반도 문제에 관한 강대국들의 간여를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핵보유 강대국들이 세계 모든 지역을 떠나 한반도만을 비핵지대화하는 합의를 이루도록 하는 것도 현실적이 아닙니다. 지금 온 세계가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찰을 수락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가중되는 압력을 끝내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북한이 핵무기의 개발을 포기하게 되면 나의 비핵화선언에 따라 자연 핵무기가 없고 핵의 공포가 없는 한반도가 실현될 것입니다.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를 제거할 군사적 조처까지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에 유엔안보이사회의 결의를 통해 강제국제사찰을 해야한다는 등의 논의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반드시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북한측은 두만강 경제특구 개발계획에 한국의 참여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듯한 의사를 나타냈습니다.우리의 참여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요. ▲경제면에서도 폐쇄적인 자세를 견지해 오던 북한이 비록 두만강유역 일부에 국한된 계획이긴 하지만 관련국과 공동개발할 의사를 비춘데 대해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이 계획은 현재 초보적 연구단계에 있긴 하지만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이 계획을 지지하여 왔으며 여건이 허락된다면 우리도 투자·협력사업에 최대한 참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이 원한다면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도록 지원할 것이며 이 계획이 북한의 경제적 개방을 촉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독일 통일에 큰 감명 ­이 세기안에 결정적인 통일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통일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중 가장 현실적이며 중요한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바로 2년전 자유와 번영을 향한 인간의 거대한 염원이 독일을 분단해온 장벽과 동서세계를 갈라온 높은 벽을 무너뜨리는 것을 감동으로 지켜보았습니다.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진 뒤에도 지난날 서독이 이룬 다원적 민주사회의 폭넓은 수용성과 큰 경제력이 유혈없는 민족통합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민주주의를 안정위에서 정착시켜 자유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고 번영의 힘을 한껏 키우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고 통일한국의 밝은 앞날을 여는 첩경입니다. 우리가 해방을 맞고도 남에 의해 분단을 당하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는 우리 겨레의 잘못도 있었습니다. 물론 역사에 있어서 가정이 통용될리 없지만….그당시 우리 민족이 세계의 변화를 올바로 보고 민족문제에 삼분사열 되지않고 뭉칠 수 있었다면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이제 남북민족의 문제,통일의 문제에 있어서는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되 그 대응은 초당적,범국민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이 문제에 관한 우리 내부의 분열은 민족화합과 통일의 길에 장애가 될 것입니다. 나는 세계의 변화를 넓은 시야로 보고 겨레의 밝은 앞날을 여는데 모두가 힘을 합치고 뭉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미안보장관회의가 20일부터 서울에서 열렸습니다.앞으로 몇년간 주한미군문제에 어떠한 변화가 있겠습니까.한반도의 핵무기문제에 관해서도 협의가 있을 것입니까. ◎“선거풍토 혁신… 경제·사회부담 줄여야”/정치·선거풍토/정치권 대권경쟁 휩쓸리면 불신 초래 ▲주한미군은 한반도와 주변정세에 따라 적정한 수준으로 조정될 수 있으나 앞으로 몇년간 급격한 감축은 없을 것입니다. 한미양국은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위해 주한미군의 역할조정에 관해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995년까지는 평시작전지휘권을 한국군이 넘겨받고 3단계 조치가 완료되는 2000년까지는 평전시의 작전지휘권 모두를 한국군이 이양받는다는 것이 큰 방향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군구조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따른 관련조처에 관해서도 이번 회의에서 구체적인 논의가 있을 것입니다. ­통일된 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한 것으로 보십니까.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한미양국간의 안보협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 임기가 종반에 접어듦에 따라 통치권 누수현상,특히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 가능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공직자들은 박봉과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국리민복과 사회안정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민주주의가 진전됨에 따라 직업공무원 체제의 확립과 함께 민주주의의 시대에 걸맞는 의식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부는 선거나 정부의 교체에 관계없이 공무원의 신분을 더욱 확고히 보장하고 처우를 개선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한 시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공직자는 물론 모든 국민들도 선거나 정부의 교체기에는 공직사회에 동요가 온다는 고정관념을 없애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비리,부조리 관련자를 엄중히 다스림은 물론 무사안일·책임회피등 열심히 일하는 기풍에 역행하는 일부 공직행태는 철저히 추방해 나갈 것입니다. 바람직한 공직사회의 확립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협조와 참여없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불법부당한 일이라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면 된다는 풍조를 고치고 깨끗한 공직사회를 이루어 나가는데 국민들도 적극적인 협조를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민자당의 다음 대통령후보에 관한 논의를 중지하도록 여러차례 당에 지시하였습니다.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민주정치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되어야 합니다.정치가 정치집단이나 정치인을 위한 정치가 되어서는 국민의 불신을 더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앞엔 경제민생문제,남북관계,세계의 급변에 대한 대응 등 해야할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이러한 일을 제쳐두고 정치권이 다음 대통령 후보문제에 온통 휩쓸릴 경우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못함은 물론 정치불신만을 깊게 할 것입니다. ○감정적 평가는 잘못 ­민자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는 당헌에 명시된대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뽑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오셨습니다.이는 경선에 의한 선출을 의미하는 것인지요.차기대통령후보는 언제쯤 결정될 것으로 보시는지요. ▲차기 대통령 후보의 선출시기와 절차는 당헌에 정해져 있습니다.민자당은 당헌에 명시된 대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차기 대통령후보를 뽑을 것입니다. ○돈 안드는 선거 이룩 ­내년의 잇따른 선거 일정과 관련해 많은 국민들이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선거망국론까지 제기하고 있습니다. 야당에서는 총선과 기초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를 함께 치르자는 주장도 합니다.선거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한 대책을 밝혀주십시요. ▲선거로 인한 경제·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것은 선거를 통합하기 보다는 선거풍토의 개혁을 통하여 이루어야 합니다. 앞으로 잇단 선거에 비추어 돈 안드는 선거를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14대 총선을 깨끗한 공명선거풍토를 정착시키는 전기로 만들 것이며 이를 위해 불법·탈법적인 선거운동은 여야,지위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다스릴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도 지금 국회의원 선거법 협상을 통하여 선거공영제 강화와 선거사범에 대한 벌칙강화 등 선거제도의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선거풍토의 개혁은 제도개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법·타락선거운동을 단호히 배격하는 국민적 자각과 후보자들의 각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올 정기국회가 끝나면 대폭적인 개각이 있을 것으로 정가에서는 관측하고 있습니다.개각여부및 시기와 폭을 말씀해 주십시요. ▲내년 총선이 있고 해서 개각에 관심이 높은 것 같습니다. 개각은 필요성이 있으면 언제,어느 때라도 할수 있는 것 아닙니까.언론이 인사문제에 너무 앞질러가지 말고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경제·UR대책/기업은 경제난 이기게 사회책임 완수 ­우리의 현대사와 관련,역사의 단절이 아니라 승계발전이 돼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5공청산」의 과정에서 빚어진 전두환 전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고 특히 전 전대통령이 감정적 앙금을 풀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이 문제는 어떻게 해소하실 생각이신지요. ○민주적 절차 밟을것 ▲역사는 청산될 수도,또한 단절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집적위에서 우리의 오늘이 있고,우리가 오늘 이룬 것을 바탕으로 내일이 열리는 것입니다. 해방이후 우리의 현대사는 모든 공과를 무시한채 부정으로 일관하여 지난날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진실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자유의 활력이 넘치는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한국을 이루는데 세계에서 유래없는 많은 일을 해온 오늘의 우리세대가 젊은세대에 의해 불신받고 세대간의 단절현상이 빚어지고 있는것도 이와같이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민주주의를 여는 전환기적 상황속에서 이른바 「5공청산」의 진통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임대통령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입니다.산사에서 오래 은둔생활을 하면서 겪은 그분의 인간적인 고되도 컸을 것입니다. 전임 대통령은 우리 정치사회의 급격한 변화속에서 빚어진 지난 일로 감정적으로 생각할 분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지난날의 모든 것이 균형있게 판단되고 평가될 날이 올 것으로 믿습니다. ○저력으로 위기 극복 ­올들어 국민들의 큰 걱정거리는 물가 앙등과 수출부진문제였습니다.현 상황에서 내년도에도 이같은 경제적 난제들이 해소될 수 있느냐에 대한 비관론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의 경제상태를 어떻게 진단하고 계시는지요.또 이같은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특별한 구상이 있습니까. ▲지난 3∼4년 우리 경제는 국내외 여건의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함께 본격적인 시장개방이 이루어졌습니다.경제규모만 보아도 지난 87년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은 두배로 커졌습니다. 이와같이 빠른 여건변화와 경제규모의 팽창에 비해 정부와 기업의 구조적 대응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며 그 결과 경제의 여러 부문에서 문제가 일시에 표출되었습니다. 사회간접자본의 애로,제조업의 인력난,기술개발의 지연… 모든 문제가 이러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 경제가 한단계 더 높은 발전을 이루기 위해 겪어야 할 전환기의 진통이며 오늘의 번영을 이루어온 우리 국민의 저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볼때 지금은 우리가 어려운 경제현실을 비관할 때가 아니라,이러한 전환기적 현상을 하루빨리 해소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다행히 기업과 근로자,모든 경제주체들이 현실을 직시하고,경제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경제 부문부문마다 바람직스런 변화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노사분규가 진정되고,일하는 분위기가 진작되고 있으며,투자가 꾸준히 늘고과소비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정부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경제의 흐름을 크게 보고 우리경제가 중장기적으로 흔들림없이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다지는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시장개방은 불가피 ­우리 정부의 쌀 개방 절대불가 방침에도 불구하고 UR협상이 진전됨에 따라 쌀을 비롯한 농산물 시장의 개방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이와 더불어 급속한 개방으로 호화·사치품이 범람하여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걱정도 있습니다. 앞으로 전반적인 국내시장개방에 대비한 대책을 말씀해 주십시요. ▲시장개방은 우리나라가 자유무역의 혜택을 입으며 세계 12위의 교역국으로 성장한 나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일 것입니다. 우리는 일부 농산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상품에 대해 이미 시장을 개방하였습니다.그동안 시장 개방에 따라 부분적으로는 수입이 크게 늘고,일부 업계가 타격을 받는등 충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때 시장개방은 새로운 경쟁의 활력을 불어 넣음으로써 국내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체질을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보호주의와 지역 블록화로 치닫고 있는 세계 경제의 앞날을 위해서도 꼭 타결되어야 합니다. 대외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욱 그러합니다.정부는 다른 분야의 협상보다는 농산물 분야에서 우리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농산물 시장의 문호를 지금보다 좀 더 열게 될 경우에도 대비하여 우리 농업이 충분한 여유를 갖고 개방에 대처하도록 하는 대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어떤 분야든지 국내 산업의 대응능력을 충분히 고려하여 시장개방을 추진해 왔으며,앞으로도 그렇게 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노력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국내산업이 스스로 개방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우는 일과 국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건전한 소비풍토가 정착되는 것일 것입니다. ◎국민의식 개혁/근검정신 되살려 「일하는 풍토」 정착을 ­얼마전 현대그룹의 변칙 상속과 관련해 재벌그룹의 도덕성 문제가 다시 부각되면서 재벌들의 그릇된 행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습니다.재벌들의 사회 경제적 기능 재정립과 경제질서 확립을 위한 소신을 말씀해 주십시요. ○재벌 탈세행위 응징 ▲우리 경제가 오늘의 발전을 이루어 오는 동안,우리 기업들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였습니다.불과 한 세대의 짧은 기간에 많은 기업들이 국내시장에만 머물던 작은 규모로부터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했으며,그들의 성취는 바로 우리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대기업들은 어려운 여건과 숱한 도전을 앞장서 극복하며,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우리 경제에 발전의 활력을 불어 넣었습니다. 나는 국민 모두가 이처럼 우리 대기업들이 경제발전에 공헌해온바를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앞으로 우리가 선진국을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 이들의 더 큰 기여를 기대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최근 국민들사이에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일게 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기업들이 새로워진 기업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고도성장을 위해 어느정도의 예외가 합리화되고,정부가 경제를 이끌던 지난 시대와 지금의 우리 사회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법을 어기면서 영리를 추구하는 일이 용납될 수도… 감추어질 수도 없는 민주주의의 사회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기업자금을 변칙적으로 사용하거나 탈세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며,그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법에 따라 다스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회전반에 큰 영향력을 갖게됨에 따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업이 국민경제와 조화있는 발전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바람일 것입니다.정부가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를 규제한 것이나,업종의 전문화를 유도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추진하는 일입니다. 나는 우리 경제가 자율과 책임에 바탕한 자유시장경제 질서 위에서더 큰 발전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우리 기업인들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기업의 상을 정립하는데 앞장서 주기를 당부합니다. ­국민들 일각,특히 야권에서는 외치에서의 업적은 인정하면서도 내치에서는 미흡함이 많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남은 임기 내치 최선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그리고 남은 임기동안 가장 중점적으로 시행할 시책은 무엇인지요. ▲지난 3∼4년간 세계 속에 우리나라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습니다.북방정책으로 한반도도 평화와 통일을 향해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대외정책과 통일문제의 가시적인 성과가 국내문제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사실이며 그로인해 그런 말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내치에 더욱 더 잘해 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소리로 겸허히 받아들이고,남은 임기동안 최선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국내적으로도 우리는 오랜 권위주의의 낡은 옷을 벗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었습니다.한국의 이와같은 전환을 외국 언론이 「명예혁명」에 비유한 적도 있습니다. ○정치일정 진행 순조 민주화는 큰 대가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환기적 상황을 단기간에 슬기롭게 극복하고 민주적인 안정이 각 분야에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나는 안으로는 민주화와 밖으로는 개방에 따라 구조적 조정기를 맞고 있는 우리 경제가 하루빨리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는데 모든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의 정치일정을 순조롭게 진행하여 민주주의를 확고히 정착시키면서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앞당기는데 열과 성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 후세인 강권통치에 배곯는 이라크/국민 인질삼아 유엔제재 해제 요구

    ◎포성 멎은지 6달 넘도록 종전안 이행 안해/식량구입 조건부 석유수출도 거부 걸프전이 끝난지 6개월이 넘었는데도 이라크 국민들은 전후복구는 커녕 갈수록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이라크인들의 굶주림은 단순히 전쟁에서 패한 나라가 감수해야 하는 전후의 고통이 아니다. 무모하게 걸프전을 일으켰다가 참패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정권유지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밀어 붙이고 있는 정략에 의한 것이다. 후세인이 마음만 먹으면 이라크인들의 굶주림은 당장이라도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후세인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카드로 삼기 위해 국민들의 기아를 볼모로 삼아 오히려 이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후세인이 유엔과 합의한 걸프전 종전안을 이행할 경우 이라크는 본격적인 전후복구는 어렵더라도 국민들이 나날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세인은 종전안의 수행이나 종전후 유엔이 이라크에 대해 내린 결정을 그대로 승복하면 결국 자신이 몰락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이라크의 경제난이다 국민들의 생활고는 아랑곳하지 않고 국제협약이나 결정을 위반하기 일쑤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1천8백만 이라크 국민들의 기아를 볼모로 내세워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 유엔이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를 자진 철회하기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쿠웨이트를 전격 침략한 대가로 유엔의 경제봉쇄 조치를 15개월째 받고 있는 이라크인들의 생활상은 일부 소수계층을 제외하곤 처참한 상태에 놓여있다. 식량의 대부분을 비롯한 생필품의 태반을 외국에서 수입해 오면서 하루 2백만배럴의 석유를 팔아 수입물품 대금을 결제해왔던 이라크로선 석유의 해외판로를 막는 경제봉쇄 조치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 정부는 국민 누구나 해외물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조치했지만 물품 구입원인 석유가 팔리지 않는 마당에 정부가 국민들이 외국물건을 살 돈이 있을 턱이 없다. 후세인이 벌인 이란과의 8년전쟁을 포함,11년동안 전쟁에 시달릴대로 시달린 이라크인들은 걸프전 종전을 맞긴 했지만 돈이 달린 정부가 그동안 석유판매대금으로 지원해오던 기본식품 보조금을 대폭 축소하는 바람에 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식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빵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수도 바그다드 거리에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구걸하는 젊은 어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기초의약품이 크게 부족하고 환경이 극도로 나빠져 병사자가 급증한 가운데 강권통치로 극소수에 그쳤던 범죄가 크게 늘어 강도사건만해도 인구 5백만명의 바그다드에서 하룻밤에 30여건씩 발생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되자 후세인은 유엔이 경제봉쇄 해제의 조건으로 내건 종전안 수행에 착수할 생각은 않고 이라크인들의 고난을 구실삼아 경제봉쇄를 무조건 해제해줄 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선 종전안이행 입장을 고수하던 유엔도 이라크인들의 참상을 보다 못해 드디어 지난달 20일 이라크에 앞으로 6개월 동안 16억달러 어치의 석유를 외국에 팔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이라크가 석유를 판매하되 판매대금을 전부를 유엔이 관리,후세인이나 이라크정부가 다른 곳에 유용할 수 없도록 조치했고 핵사찰에 협조할 것을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이같이 모욕적인 주권침해를 받느니 보다 차라리 굶겠다』며 이라크인들의 곤궁과 기아를 해결해줄 유엔 허용안을 퇴짜 놓고 말았다.
  • 얘들아,그만하면 됐다/「5월시국」에 부쳐/한운사 작가

    얘들아 욕 봤다 잠 좀 잤느냐? 뭐 좀 먹었느냐? 날씨가 풀리면서부터 연일 그렇게 뛰어다니며 돌을 던지고 화염병 던지고 노 정권 물러가라 민자당 해체하라 민주화하라 소리지르고 전신에다 시너라는 것을 뿌려 불을 지르고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니 나이 먹은 우리는 가위가 눌려 잠 이루지 못하고 걱정했었다. 이 나라가 이거 어디로 가나 세계고 나발이고 없다는건가 모두다 한꺼번에 죽자는건가 열사의 나라가 되자는건가 그래야만 이 나라가 산다는건가 늙은 우리들을 삿대질하며 증오를 담아 욕하는가 오죽 못났으면 늙은이들아 일제때 그 모욕을 다 감수하며 열사 될 생각은 하나도 없이 무슨 염치로 살아왔느냐! 쓸개도 허파도 없는 것들아 해방후 반세기가 다 되건만 민주화 하나 못이룬 무리 박 정권 때는 무엇을 했고 전 통때는 어떻게 살고 아직도 죽지않고 거기 있느냐! 조석으로 밥상을 뒤엎으며 그대들 힐난이 추상같구나 그러면 새파란 이 사람들아 열사가 아니면 사람 아니냐? 민주화 덜 됐으면 세상아닌가 늙은 것들은 모두 쓰레기인가 왜? 어째서? 인생의 아침에 겨우 깨어난 싱싱한 생명의 그대들 몇가지 지식으로 단정말라 인생은 참으로 긴 것이야 여러가지 일이 있는 것이야 출발점에서 속단말게 우리가 그대들 나이 때에는 인생이 무엇이냐 헤매면서 살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을 했어 살만한 뜻은 무엇이며 죽어야 될 까닭은 무엇이냐 우리는 그런것을 문제삼았어 참으로 많은 세월 참아보았다 온갖 모욕을 견뎌 보았다 그러면서도 한가닥 희망 언젠가 광명이 찾아오겠지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한가닥 빛! 우리가 저주받을 까닭이 없다 우리가 버림받은 민족 아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오,그날이 오면! 얘들아 이승만 박사를 욕하느냐? 장기독재한 노망이라고? KOREA IS KOREA!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준 사람 박정희 장군을 욕하느냐? 태어난지 13세의 대한민국을 일어나라 일하라 채찍질하며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 레일을 깔아놓고 달리자 했지 그대! 너! 젊은 사람들아 그나마 오늘날 우리 형편이세끼밥은 누구나 다 먹는데 그렇게 만든 것이 박정희라면 삼켜버린 음식을 토해내겠나? 박정희때 깔아 놓은 레일 위를 대한민국호가 달려간다 저지하려고 돌을 놓아도 산모퉁이에 다이나마이트를 이중삼중으로 깔아 놓아도 대한민국호는 달려간다 이상하게도 달려간다 꺼떡도 않고 달려간다 국민들이 다 지키는거야 한 번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보자 우리의 땅 덩이가 어디에 있나 이대 이데올로기의 시험장으로 남북으로 갈라진지 40여 성상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양쪽 다 열심히 해보았다 그 결과가 오늘의 남북 네가 잘 했나,내가 잘 했나 언짢은 얼굴로 다투지 말자 보라 남북 단일팀의 탁구우승 코리아 청소년의 축구장도 이제 춘삼월에 눈 녹듯이 얼었던 가슴이 풀리는 계절 때마침 소련과도 손을 잡고 중국과도 번영을 이야기 한다 세계를 향해서 큰 소리 치자 우리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남북은 각기 몫을 충실히 했다 다시 한몸 되는 절묘한 과정! 세계여 눈여겨 지켜보시라 얘들아 젊음들아 과격이 늙은 눈에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뜻이 있었다 그만 하면 됐다 그것으로 됐다 이젠 거리에서 헤매지 말고 돌을 던지지 말고 화염병 던지지 말고 살기를 일체 버리고 고개 반듯이 들고 부모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라 역사의 우람한 대 회전은 실망스럽게 가지 않는다 아니 가려해도 가지 못한다 우리의 내일은 환하다 7천만 동포가 어울리는 날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서로 손을 꼭 잡고서 쳐다보고만 있자 눈물이 주룩 흐를 것이다 그러면 됐다 아무말도 하지 말자 쳐다보고만 있자 만사,너무 서둘지 말자 오,찬란한 태양이여! 1991년 5월21일 새벽
  • 부시,심장이상… 한때 입원/약물치료로 정상 회복

    ◎백악관대변인/“어제 백악관 복귀… 집무 재개” 【워싱턴 AP 연합】 비정상적인 심장박동으로 지난 4일부터 입원치료를 받아온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6일 상오(워싱턴 시간) 베데스다 해군병원에서 만 이틀 만에 퇴원,백악관 집무실로 되돌아왔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부시 대통령의 심장박동은 5일 밤 정상을 회복했다가 6일 아침 다시 이상을 보였으나 담당의사들은 부시에게 투여된 두 가지 약물의 반응경과가 양호,그의 심장박동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한때 고려했던 전기충격요법의 시술을 실시치 않고 퇴원시키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병원을 떠나면서 『문제없다. 다시 돌아가 일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피츠워터 대변인도 부시 대통령이 활기에 차 있으며 업무 재개를 갈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4일 캠프 데이비드 산장에서 조깅중 심장에 이상을 일으켜 워싱턴 근교 베데스다 해군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왔는데 백악관측은 그가 6일중 마취상태에서 전기충격치료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댄 퀘일 부통령이 임시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미 대통령,병상주변 스케치/미 의료진 “부시 심장병은 스트레스가 주인”/입·퇴원 소식에 외환시장 달러화 등락 거듭 ○…부시 대통령의 입원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장하는 뉴질랜드 외환시장을 비롯한 주요 외환시장에서 폭락세를 보였던 달러화가 부시의 퇴원 후 급반등세를 보이는 등 민감한 반응. 유럽 외환시장에서 6일 상오 한때 1.7315마르크,1백37.95엔으로까지 떨어졌던 달러화 시세는 하오 들어 1.7450마르크,1백38.50엔으로 거의 정상수준을 회복.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1일 백악관 잔디밭에서 열린 「국민건강과 스포츠의 달」 행사에 축구공을 차는 등 이제까지 역대 미 대통령들 중 가장 「건강한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를 자랑해왔는데 이번 입원을 계기로 미 일각에서는 부시의 건강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이번에 부시의 입원까지 부른 심방세동의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스트레스와 피로가 주요원인으로 꼽히고 있는데 부시의 경우 최근 걸프전쟁으로 높은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그 이후 쿠르드족 난민의 비참한 생활상이 알려지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 데다 존 수누누 백악관비서실장의 공용 항공기 무단사용 등 부시로선 달갑지 않은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스트레스와 피로를 가중시킴으로써 결국 심방세동이란 병을 부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부에서 제기되는 데 따른 것. ○“퀘일 능력 못 믿어” ○…부시의 건강이 『완전히 정상적』이라는 백악관측의 거듭된 강조에도 불구,부시의 갑작스런 입원으로 대통령 유고시 미국의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이 6일 전기충격요법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럴 경우 댄 퀘일 부통령이 잠시 대통령직을 대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헌법 25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유고시 미 부통령 하원의장,임시상원의장(평시에는 부통령이 상원의장 겸임),국무장관,재무장관,국방장관,법무장관… 등의 순으로 대통령직을 계승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부시 대통령의 경우 부통령인 댄 퀘일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인 데다 경험마저 없어 그의 대통령직 수행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이제까지 오는 92년의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측 후보로 부시가 다시 나올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고 그럴 경우 댄 퀘일이 다시 부시의 러닝메이트가 될 것이 틀림없는데 부시의 건강에 이상이 있을 경우 언제 미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될지 모를 부통령에 국민의 신망으로 따질 경우 경량급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퀘일이 나서는 것은 오히려 부시 대통령의 지지기반을 잠식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공화당측에선 우려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 이전의 역대 미 대통령 40명 중 현직에 있는 동안 입원했던 경우는 무수히 많으며 특히 병사한 인물만도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비롯해 4명에 이른다고. 아이젠아워 대통령도 지난 55년 1개월 동안 입원하는 바람에 닉슨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기도.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 대통령 등 재직시 암살당한 케이스도 4명.
  • “제발 헛되게 죽지 마라”/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이 땅에서 부모로 사는 일이 어쩌다 이렇게 힘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기울여 길러놓은 아들 딸들이 학문과 인생을 탁마하라고 보내놓은 대학교정에서 그 빛나는 젊음을 연일 화염병으로 불사르고 국방의무를 다하러 내보낸 아들들이 화염병을 막기 위해 쇠덕석같은 차림을 하고 창살차에 갇혀서 선밥에 선잠을 자며 거리에서 지샌다. 그러다가 화염병에 불붙어 그을려 상해버린 아들도 생기고 몽둥이에 몰매 맞아 생때같던 목숨이 짚둥처럼 쓰러지는 기막힌 일도 당했다. 세월이 천년을 간다고 해도 자식의 죽음은 북망에서 삭지 않는다.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세월을 보내야 하는 부모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죽음이 한번 시작되면 이 극한의 항거수단에 열병처럼 취해서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당기는 「분신의식」이 뒤따른다. 전라도 쪽에서 불타며 쓰러진 한 딸이 사경에 있는데 경상도 쪽에서 또 한 아들이 몸을 불살라 숨졌다. 전경으로 내보냈다가 사람 죽인 죄인이 된 아들을 둔 부모나 사경을 헤매는 시위학생의 부모나 다 우리 이웃이고 동기간인 부모들이다. 더욱 마음이 떨리고 불안한 것은 지나간 시대의 악몽을 되살리는 「분신의 열병」이다. 한동안 잠잠히 체내에 머물던 이 잠복균을 자극하여 소중한 젊은이들을 불꽃 속에 뛰어들도록 충동질한 결과가 되고만 「치사」의 허물이 한스럽다. 자식들이 분신으로 만들어준 세상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세상이라도 그 부모가 살 만한 세상은 아니다. 혹여 적이거나 중오할 대상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죽음을 택한 것이라면,나와 내 육친만 불행하게 하는 이런 죽음으로는 응징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죽음을 볼모로 삼거나 흥정으로 삼는 엉뚱한 다른 세력으로나 넘겨질 뿐,싱싱한 생명도 열정에 찼던 진실도 살아나지 않는다. 낳기만 했지 시대를 앞서 줄달음치는 젊은 아들 딸의 생각을 뒤쫓기에 숨만 헐떡여질 뿐인 부모들에게 깜깜한 암흑만 남겨놓고 사라질 뿐인 그 허망한 죽음의식을 제발 이제 멈춰주기 바란다. 젊은이들이 그토록 준엄하게 주장하는 정치사회의 개혁도 예리하게 지켜보는 눈길을 두려워하지,죽어버린 젊은이의 지나간 구호에는 구속을 받지 않는다. 또다시 불어닥친 분신악몽에 사회가 참담한 분위기에 빠져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성세대가 사려깊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투르고 사려깊지 못한 시위의 대응법이 돌이킬 수 없는 정국의 혼미를 부르고 만 이 유감스런 사태를 가라앉히기 위해 할 수 있는 성의와 노력,근신을 정치권은 다해줘야 한다. 「분신악몽」의 되살아남에 대한 우려는 집권층이나 체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야권,재야나 운동권 연합세력들에서도 「헛된 죽음」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며 자살특공대를 조직하던 세력이 있었던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범재야투쟁권의 이 사려깊은 이 발언들에 매우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그와 함께 매우 조심스럽지만 꼭 당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진실로 오늘의 젊은이들의 이 무모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전권」을 쥔 운동권 지도층이 반드시 해주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이의 죽음을 대규모 시위나 규탄집회의 확대재생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장례식」을 볼모잡고 있는 듯한 혐의를 우리는 지울 수가 없다. 이 혐의가 지워지지 않는 한 젊은이의 분신을 자제하도록 호소하는 투쟁권 지도층의 목소리는 그 효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없을 것이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분신이나 죽음을 투쟁의 열기로 높이는 데 이용한 흔적이 거듭되고도 있다. 그런 가운데서 외치는 자제의 호소는 결과적으로 역작용의 효력을 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지난 시대에 이미 경험하였다. 재야운동권 지도자가 열기에 찬 혁명선동연설을 외치고 있을 때 온몸을 불꽃으로 사르며 투신한 젊은이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 온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극적인 행동을 하면 부모들은 짐짓 그것을 외면하기도 한다.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짐짓 무관심함을 꾸미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위급한 순간이 지난 다음 분별있게 타이르는 것이 생각깊은 어른들이 하는 행동이다. 죽음이라는 극한투쟁에 젊은이에게서 더 이상 일어나면안 된다는 생각이 진심이라면 그것을 설득하기 위해 좀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투쟁」의 효과와 운동권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는 「치사정국」까지도 온건하고 합리적인 처리방법으로 수습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열사로 거듭나는 분신」의 악순환에서 이성을 회복하리라고 생각한다. 제발,불행하고 슬프게 간 한 아들을 고이 잠들게 도와주고,또다른 어떤 죽음도 산 사람의 명분을 정당화하고 강화해주는 데 이용할 수는 없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범운동권 지도층만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 현명함에 국민 모두의 마음은 크게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글이 필경 어떤 비난과 핍박의 빌미가 될지도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 이 땅에 산,한 어머니의 양심으로 피력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이어서,여러 예측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쓴다. 그리고 거듭 말한다. 『아이들아 제발 헛되게 죽지말아라』
  • “최고령 당선” 부산 이수은씨(이젠 「동네일꾼」… 화제의 4인)

    ◎우리마을 예의바르고 인정 넘치게 『마지막 봉사의 기회를 준 이웃들에게 우리마을을 예의바르고 인정이 넘치는 동네로 가꿔 보답하겠습니다』 부산시 동구 좌천4동에서 출마,전국 최고령당선자가 된 이수은씨(81)는 당선이 확정되자 그동안의 피로 잊은듯 환한 표정으로 당선소감을 말했다. 유효투표의 56.2%인 1천9백47표를 얻어 젊은 후보자 2명을 여유있게 물리친 이씨는 자신이 당선이 『40대 이상의 지지때문인것 같다』며 임기 4년안에 자신인 공약한 「청소차 운영개선」을 꼭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씨는 지난 56년 경남 도의원에 당선돼 5·16으로 2년8개월만에 중도하차한뒤 마을금고 설립,경로당 운영 등 좌천동에서만 40년 이상 살아오고 있다. 7명의 자녀들도 훌륭하게 키워낸 이씨는 『86세의 등소평이 중국을 이끌어가고 있는데 노인이라고 해서 집에서 손주들만 돌볼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구의회 의장직에도 도전해볼 뜻을 비쳤다.
  • 중동지상전 서둘러선 안된다/제임스 레스턴/뉴욕타임스 기고

    ◎미목적은 이라크군 궤멸 아니 후세인항복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제임스 레스턴은 21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왜 값비싼 희생이 따를 지상전을 서두르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다국적군은 후세인군대가 굶어지쳐 항복할 때까지 공습을 계속할 필요가 있으며 지상전은 가능한한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뉴욕 타임스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였던 레스턴의 기고문 요약이다. 다국적군은 초반 대공습으로 걸프전쟁의 1단계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제공권을 장악한 다국적군은 지금 2단계 작전인 지상전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쿠웨이트에 포진한 54만 이라크군과의 전투를 어떻게 승리로 이끌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다국적군 지휘관들은 그러나 아직 지상군 공격날짜를 확정짓지 않았다. 그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미 관리들과 군지휘관들은 지상전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베트남전의 교훈 지상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미국이 어떻게 베트남전 수렁에 빠졌는가에 대한 조지 볼 전 미국무차관의 말을 상기시킨다. 볼차관은 미국은 너무 성급하게 베트남전에 개입했다며 보다 더 사려깊은 행동이 필요했었다고 말한바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미국이 왜 걸프사태에 개입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유엔의 결의안을 실행하고 정의를 위해 개입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지금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고 쿠웨이트 합법정부의 복원을 천명한 유엔결의안을 스스로 실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엔은 부시 대통령에게 지상전까지 하도록 결의하지는 않았다. 유엔은 다만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하라고 결의했을 뿐이다.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쟁은 미국과 이라크와의 전쟁이 아니라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전제로한 유엔의 합동작전이라고 말해왔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다국적군의 대규모 공습에 대해 거의 응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군을 지휘하고 있으며 피해상황의 보도를 제한하기 위해 CNN을 제외한 모든 미 TV방송 특파원들의 철수를 명령했다. 후세인은 다국적군의 대규모 공습을 비웃으며 사막전에 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다국적군은지상전을 서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아는한 어느누구도 이라크군에게는 아주 익숙하지만 다국적군에게는 낯선 사막의 지상전을 벌여 결과적으로 후세인을 도와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미 정부도 미 장군들이나 고참 언론인들은 젊은 병사들에게 지상전 전투를 권고하는데 미국의 스마트미사일은 왜 후세인을 겨냥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았다. 미 정부는 아마도 스마트미사일은 핵연구소나 화생방무기시설을 파괴할 수는 있으나 지하에 은신한 후세인이나 이라크군에게는 효과가 없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후세인 군대가 철저하게 은신하고 있을 것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들도 먹지 않고는 살수 없으며 보급을 계속 받지 않으면 안된다. 다국적 공군은 보급품을 실은 이라크군 트럭을 공격할 수 있다. ○이적행위 될수도 일부 다국적군 지휘관들은 계속적인 대규모 공습으로 이라크의 통신체제를 파괴,후세인의 지휘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물론 하루이틀에 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주일내에는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적어도 일부 전문가들은 보급로를 차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습을 하기전에 왜 지상전을 서두르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국적 공군과 해군은 이라크군 보급 트럭의 마지막 샌드위치까지도 폭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미 육군과 해병대는 자신들도 공군이나 해군과 마찬가지로 강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아이젠하워 장군의 「인내의 용기」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또 다른 문제를 갖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이후 걸프전쟁 전에 이미 2번의 「전쟁」을 치렀다. 그의 인기는 그때마다 치솟았다. 인명피해가 아주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라크와의 지상전에서 많은 피를 흘릴 경우 그의 위상은 미국내 뿐만아니라 새 국제질서의 정착과정에서도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부시 대통령이 아랍세계에서 후세인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최선의 방안은 후세인 군대를 궤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다. 이라크를 군사적 황무지로 만들어 이란이나 시리아의 허약한 상대로 전락시키는 것은 미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지상전을 시작하기 전에 더 많은 공습을 통해 후세인의 통신체계를 무너뜨리고 이라크군이 굶어지쳐 항복하도록 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 다국적군 60만­이라크군 54만 “초긴장 대치”

    ◎요르단 국경·사우디 영공은 폐쇄/“이촉즉발” 위기속의 페만 현장 ○난민유입 방지 일환 ○…요르단은 9일 아리크와 쿠웨이트로부터 넘어오는 모든 비요르단인들에게 국경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살라메 하마드 요르단 내무차관은 이날 국영 페트라 통신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이 조치는 즉각 발효된다고 말했다. 하마드차관은 이라크와 쿠웨이트로부터의 난민들을 도울 국제지원을 받기까지는 국경폐쇄가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요르단은 이제까지 제3세계 출신 난민들 85만여명을 돌보느라 외채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5천5백만달러를 썼으나 국제지원으로 받은 금액은 1천2백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페르시아만 난민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키려는 비행기들에 대해 사우디 영공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영공 폐쇄조치를 내렸다고 국제이민기구(IOM)의 암만소장이 9일 밝혔다. 이 소장은 8일 밤 리야드항공 관계자들로부터 이를 통보받았다고 말하고 이에따라 하노이로 떠나려던 비행기들이 출발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우디 상공을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페만 지역에는 미군을 포함한 다국적군 60만5천여명과 쿠웨이트지역내 및 부근에 배치된 이라크군 54만명 등 모두 1백14만명이 대치중이라고 미 국방부가 8일 밝혔다. 피트 윌리엄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유엔이 결의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군시한을 1주일 앞두고 논평을 통해 페만 지역에 미 육해공군 36만명 이상이 서구 국가들과 아랍 국가들의 다국적군 24만5천명과 함께 집결해 있다고 밝혔다. ○중화기 막바지 수송 ○…유엔이 쿠웨이트 점령 이라크군의 철군시한으로 설정한 15일이 다가옴에 따라 미군을 주축으로 하는 사우디 주둔 다국적군의 화력 강화를 위한 탱크와 중무기 등의 해상 수송 작전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서방의 군사소식통들은 사우디 항구에는 하루 평균 6∼7대의 군용물자를 수송하는 선박이 도착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한 관계자는 수송작전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23만명의 병력을 수송한 것을 시작으로 대규모 수송작전을 전개해 왔는데 지난해 12월까지 1백50여대의 선박이 병력은 물론 수백대의 탱크를 포함해 모두 2백만t의 물자를 수송했다. ◎“예상 밖의 평온” 바그다드/거리엔 젊은이 “북적”… 이따금 반미시위 ○…유엔이 정한 이라크의 쿠웨이트 철수시한을 불과 1주일 앞두고 페르시아만에 전운이 짙게 깔린 요즈음 바그다드시는 송년축제 때 쓰인 전구들이 아직 시내 곳곳에 줄지어 걸려있는 등 새해맞이 분위기로 가득차 있으며 긴박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호텔 옥상으로 보이는 하늘에서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시내 고속화도로 양편에는 붉은빛을 뿜는 가로등이나 혹은 행운을 상징하는 네잎 클로버 모양으로 된 네온등이 불빛의 행렬을 이루고 있다. 시내 야시장은 여전히 인파로 북적거리고 있으며 백화점에는 각종 상품들이 가득 진열돼있어 비록 유엔의 대이라크 금수이후 물가가 크게 오르기는 했지만 물자부족 등 즉각적이고 실제적 타격은 받지 않고 있는 듯하다. 그간 중재를 자청하고 바그다드를 숱하게 드나들었던 서방측 유명인사들중의 하나는 『전쟁에 관한 얘기는 바그다드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많이 하고 있다』며 바그다드의 평온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라크 정부가 17세에서 23세까지의 남자들을 공식적으로는 전원 징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령층 젊은이들이 사둔가나 티그리스 왼쪽 강안을 따라 들어서 있는 번화가를 몰려다니고 있는 풍경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이곳 서방외교관들은 이라크 정부당국의 민방위태세와 관련한 각종 성명과 발표들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동시에 대외적 선전효과도 노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졌지만 『정규군은 동원된 예비군에 무장을 시킬 여유능력이 없는 것은 물론 군편제내에 흡수할 능력조차 없는 것 같다』는 것이 이곳 외교관들의 진단이다. ○…수백명의 이라크인들이 9일 바그다드주재 미국 및 영국대사관앞에 『미군은 즉각 철수하라』 『우리는 사담 후세인을 사랑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같은 항의시위는 미국이 페만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마지막이자 최선의 기회』라고 말하는 미·이라크간의 제네바 외무장관 회담이 열리기 직전 발생했다.
  • 노대통령 모스크바대학 연설 요지

    ◎냉전의 벽을 넘어,평화와 번영을 향하여/“한·소,불행한 과거 씻고 역사의 새 장 열 때” 나는 이 대학이 세계에 낡은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고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새로운 물결을 일게 한 페레스트로이카의 기수였음을 생각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로구노프 총장과 트로핀 부총장 그리고 교수 여러분과 이 대학이 새로운 사고를 이끌었으며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많은 개혁의 지도자들이 이 대학으로부터 배출되었습니다. 수많은 위대한 사람들의 예지와 영감이 숨쉬는 이 대학은 이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의 진보를 이끌고 인류사를 풍요롭게한 지성의 요람입니다. 이 대학이 낳은 문호 곤차로프는 러시아인으로서 첫 한국견문록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가 한국인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속에서 오늘의 만남을 예견한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1854년 푸차친 제독을 수행하여 러시아인으로 처음 한국땅을 밟았던 그는 길에 깊이 패인 수레바퀴 자국들을 보고 한국인이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것을 알았으며 신기하게도 가난한 사람까지 시를쓸만큼 학식이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인들은 그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 진실을 말한다. 그들은 그 어느 것도 기탄없이 이야기한다…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 사람이라면 이런 일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한국인들은 유럽에 무난하고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한국이 이룬 급속한 발전의 원동력은 바로 그가 지적한 우리 국민의 높은 교육수준과 근면성,그리고 개방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한 한국인의 특성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까지는 한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한 세기동안 우리 민족은 강대세력의 침략과 냉전의 대결속에서 험난한 수난의 역정을 걸었습니다. 냉전은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으로 폭발했습니다. 3년 넘게 지속된 이 전쟁에서 모든 것이 폐허화되고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고 피를 흘렸습니다. 1960년대 초 한국이 경제 사회개발을 시작했을 때 자원·자본·기술… 우리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여기에서 일어섰습니다. 국민의 가슴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불을 지펴 모두가 국가건설에 나섰습니다. 그로부터 26년 뒤 서울에서 「인류화합의 큰 축제」가 열렸습니다. 30년 전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던 낙후된 농업국가가 세계 12위의 무역국가로 탈바꿈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1백40년 전 문호 곤차로프가 한국인이 학식이 있다고 한 것은 우리의 오랜 교육전통을 말합니다. 한국의 가난한 농민들은 전쟁을 치른 어려움 속에서도 농토와 소까지 팔아 자녀를 대학에 보냈습니다. 가난의 세월을 그들의 세대에서 끝내겠다는 국민적 의지의 한 단면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은 여러분의 대학과 같이 진리와 학문,과학기술과 시대의 흐름… 모든 면에서 가장 앞서가려 합니다. 소련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그 좋은 예입니다. 한국의 대학은 이처럼 다양성을 꽃피우나 국가발전의 힘을 녹여내는 용광로가 되어왔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한국의 오늘은 자질이 우수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국민들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교수,학생여러분. 한국은 본격적인 개발계획을 추진해온 지난 28년간 연평균 8.6%의 빠른 성장을 거듭해왔습니다. 한국의 고도성장은 창의력 높고 부지런한 우리 국민의 노력이 정부의 효율적인 개발정책과 조화를 이루어낸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성공적인 개발로 2차대전 이후 외채를 줄여나간 유일한 개발도상국입니다. 한국은 아직 선진국도 아니며 강대한 나라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루려는 목표가 성취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어려움과 도전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기안에 국민소득 1만5천달러 수준의 번영하는 선진국이 되는 소망을 이루려하고 있습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어려움과 도전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장래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비관적인 이야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보다 2백배가 넘는 광대한 국토와 여기에 무한한 자원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달과 우주를 정복하는 첨단의 과학기술과 세계 초강대국의하나가 된 국력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페레스트로이카를 승리로 이끌 모든 것을 갖고 있습니다. 소련은 지난 10월말 경제개혁안을 채택하여 시장경제로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나는 우리의 개발경험에 비추어 이와 같은 개혁이 소련경제의 밝은 앞날을 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새로운 친구인 한국은 소련의 개혁을 지지하고 성원할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은 소련을 자유와 번영의 길로 이끌 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인류사회의 진보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 뽀옴뉴 추우드노예 므그노 베니예 뻬레 더 므노이 야비일라시 뜨이 (나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은 우리 두 나라의 새로운 만남을 시인 푸슈킨이 노래한 「기적의 순간」처럼 경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 소 관계의 정상화는 우리 겨레에게 그토록 큰 고통과 비극을 가져다 준 냉전체제의 종막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쟁과 분단의 땅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재촉할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간에는 지난 시대 86년간의 단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식민세력의 침략과 냉전체제의 대결 때문이었습니다. 2차대전이 끝날 즈음 미·소 두 나라는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른 북위 38도를 따라 선을 그었습니다. 이 선이 남북의 우리 동포와 한·소 두 나라 국민 모두를 서로 가르는 냉전의 높은 벽으로 굳어졌습니다. 스탈린시대 나라를 불바다로 만든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1983년에는 소련 공군기에 의해 우리 민간여객기가 피격을 당했습니다. 한·소 양국은 어두웠던 지난날이 불행을 씻고 이제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합니다. 한·소간의 새로운 시대는 모든 나라,모든 국민이 화해와 협력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려는 우리의 북방정책과 페레스트로이카가 합치하는 공동의 철학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나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평화와 번영… 인류가 가진 공동의 이상을 다함께 실현해 나갈 수 있다는 신뢰와 신념을 가집니다. 한·소 두 나라간에 선린우호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일은 부자연하고 비정상적인 과거를 청산하고 이성이 지배하는 역사,인간성을 회복하는 역사,현실을 현실로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함께 실현하는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나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갖고 두 나라가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해 나갈 것을 밝혔습니다. 이것은 몰타 미 소 정상회담으로부터 「한 지붕속의 유럽(European Common House)」을 이룬 평화의 새 질서가 유라시아대륙의 동쪽으로 미쳐오고 있음을 말하는 의미깊은 진전입니다. 한국은 이제 이 지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았습니다. 한반도문제의 해결방향은 분명합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남북한이 교류협력하는 관계를 이루면 같은 민족간의 화해는 빠른 속도로 진전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과 경쟁·대결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동반자의 관계를 이룩해 나가려 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고립을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소련이 우리와 좋은 관계를 발전시키는것과 똑같이 북한과 기존의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랍니다. 북한은 그들의 오랜 폐쇄노선으로부터 나와 우리는 물론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 세계에 넘치는 개방과 개혁의 물결을 북한만이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이 새로운 질서에 참여하는 것은 북한이 그들의 발전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입니다. 특히 양국의 경제구조는 상호 보완적이어서 교역과 경제협력관계는 크게 확대될 것입니다. 한국 경제는 소련이 필요로 하는 많은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소련의 선진과학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소련의 앞선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류협력의 증진은 비단 경제분야에 그치지 않고 모든 분야에 걸쳐 우리 모두에게 결실과 보람을 안겨줄 것입니다. 나는 양국의 대학이 적극적인 교류를 추진해 나가고 있는 것을 반갑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학문을 향상할 뿐 아니라 학자와 젊은 세대간의 이해와 우의를 증진하여 우리 모두의 더 밝은 내일을 약속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특히 모스크바대학을 중심으로 소련 학계가 한국에 관해 어느 나라보다 깊고 광범한 연구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것을 마음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욱 평화롭고 번영된 세계를 향하여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저 밝은 21세기를 향하여 손잡고 나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스끄바,베치나야 찌베 슬라바(모스크바여,영광이 영원하여라)! 발쇼예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
  • 외언내언

    일본에서 야쿠자라고 하는 폭력단체로 인한 피해는 크게 2가지. 조직폭력의 속성대로 이들이 유흥가를 지배하면서 마약밀매나 밀수·인신매내 등의 불법행위와 이권개입으로 사회를 멍들게 하거나 조직폭력간의 세력다툼을 위한 피의 전쟁으로 선량한 시민들이 해를 입는 것. ◆피의 전쟁은 지난 몇년 동안 일본내에서 치열하게 벌어져 왔다. 최대 조직인 야마구치(산구)파의 조장 다오카(전강일웅)가 지난 78년 피격당하면서 전쟁은 시작됐고 그 뒤를 잇는 조장자리를 둘러싸고 숱한 파벌 싸움이 있어 왔다. 지난 3년여 동안만을 보아도 3백17건의 「전투」에서 모두 95명이 죽었다. 주로 시내 한복판의 총격전이어서 인근 주민들의 불안은 이만저만 아니었다. 한창 때 언론은 총선거 뉴스보다 이 전투소식을 더 크게 보도할 정도로 관심의 대상. 동남아에서 젊은 여자들을 데려다 팔아넘기거나 마약·총기류를 밀반입,거래하고 자릿세로 일반시민을 괴롭히는 것은 이미 오래된 사회문제다. ◆그러나 이런 폭력조직에 대한 일본내의 대응도 만만치가 않다. 경찰은 폭력단 사무실에 드나드는 인물은 누구나 컴퓨터에 입력시켜 동향을 체크한다. 이들이 방뇨라도 한번 눈감아 줄 것도 연행해서는 조직상황을 캐묻고 벌을 준다. 행동을 철저히 제한하겠다는 의도. 또 범법자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추적하고 그 중에서도 두목이나 간부급의 범법행위는 사소한 것이라 해도 용납되지 않는다. 조직과 격리시키기 위해서다. 이에 못지않게 일반시민들의 폭력배 추방운동도 만만치가 않다. 시민단체들이 폭력배 사무실을 마을에서 몰아내고 있는 것. 은퇴한 노인·부녀자들이 앞장서고 있다. 지난 한해만 2백17개 사무실이 문을 닫았다. ◆그 야마구치파 소속 폭력배들이 대거 우리나라에 오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입국조차 못 하도록 원천봉쇄가 가장 바람직하다. 그것이 어려울 땐 국내에서의 활동이 제한되어야 한다. 조그만 범법행위라고 용서돼서는 안된다. 이들에 대한 대책을 서두를 때다.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8)

    ◎“공적1호” 마약… 잔혹한 「환각범죄」 유발/10대ㆍ주부까지도 상습복용 “충격”/공급로 차단 통해 “백색공포” 추방 지난 9월 남미 콜롬비아의 현지인이 낀 국제적 코카인밀매조직이 코카인 1㎏을 국내에 들여와 팔려다 적발돼 전국에 「코카인비상」이 걸렸었다. 히로뽕만으로도 골머리를 앓아온 우리나라의 마약문제가 70년대의 대마초,80년대의 히로뽕에 이어 이제 90년대에 이르러 코카인이라는 제3세대 강력 환각제 문제에 부딪치는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특히 코카인 대량적발사건은 국제적으로 악명높은 콜롬비아의 카르텔과 연계돼 있을 가능성이 크며 우리나라가 미국ㆍ유럽ㆍ일본에 이어 이들의 다음 공략대상지로 꼽힌 것으로 보여 수사당국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마약은 현재 쾌락의 수단뿐만 아니라 범죄를 잔혹화하고 정신적ㆍ육체적 건강마저 송두리째 파괴해 「공적1호」로 지목돼 세계 각국에서 전면전을 치르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ㆍ부산 등지의 유흥업소가 몰려있는 지역에서는 하룻밤에도 히로뽕투약에 사용된 피묻은 1회용 주사기가 수십개씩 발견되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히로뽕사범이 대형 밀매ㆍ밀조조직의 검거로 금년들어 약간 주춤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마ㆍ마약사범의 증가로 전체적인 마약류 사범은 여전히 증가추세에 있으며 마약류의 상용계층이 10대ㆍ20대로,주부ㆍ운전기사ㆍ농부등에로까지 전계층으로 퍼지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올들어서만도 지난 1월9일 유명패션모델 겸 노량진청과시장 부사장 노충량씨(30)와 유명모델 김모씨(25ㆍ여)등 5명이 쾌락의 도구로 히로뽕을 상습적으로 복용해오다 검찰에 구속됐다. 지난 5월까지 재벌2세ㆍ연예인 등 소위 「유명인」들이 마약류를 상습복용해 적발된 것만도 모두 4건 32명에 이르며 이들은 감수성과 호기심이 강한 청소년들을 마약에로 유혹하거나 모방심리를 불러 일으키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인천 S고교생 29명은 학교 숲속과 화장실 등지에 모여 대마초를 돌려가며 피우다 적발돼 무더기로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 대중교통 운전자들의 마약복용 실태 또한 80년대 중반 1∼2명에 불과하던 것이 88년 93명,89년 1백18명 등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학교도,도로도 더이상 「마약의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다. 대검에 따르면 지난 9월까지 전국에서 검거된 각종 마약류 사범은 모두 3천1백8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늘어 났으며 이 가운데 히로뽕 등 향정신성의약품 사범이 23.2% 줄어든 반면 대마ㆍ마약사범은 26.3%와 43.5%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무엇보다도 히로뽕사범 가운데 10∼30대가 75.6%를 차지하고 대마의 경우 10∼20대 청소년층이 45.8%로 절반가량 돼 젊은층이 모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피해가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어 사회의식전반을 나약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높다. 이와 함께 히로뽕의 확산은 인질극ㆍ폭행ㆍ강간 등 이른바 「환각범죄」를 불러오고 있다. 의약관계자는 이에 대해 『중독자가 되면 뇌신경이 손상돼 환각ㆍ환청ㆍ환시현상에 시달리고 극도의 피해망상증과 편집증 증세를 보여 자해행위는 물론 대담한 범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게 된다』고 마약폐해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마약문제가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자 사회일각에서는 손을 쓸 수 있을때 뿌리 뽑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서울신문사는 지난 6월24일 범국민마약추방운동을 벌이기 시작,지금은 전국적인 시민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검찰은 검찰대로 주요 밀조ㆍ밀매관련자 10여명을 전국에 수배하고 마약공급선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마약상용자를 적발하기 위해 시약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일상생활에서 오는 가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마약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건전한 놀이문화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며 마약류에 관한 계몽영화 같은 것을 보급하는 일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 정부가 마산에 지을 계획인 마약사범들을 수용하기 위한 전문치료병원의 신축이 지역주민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밝히고 『마약복용자들을 문제자로만 보는 시각에서 탈피해 이들도 피해자 또는 환자라는 인식을 갖고 치료를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등의 도와주는 풍토가 빨리 조성돼야 이들이 다시 마약에 빠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도 마약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마약관련사범들의 명단을 전산입력시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들에 대한 재산이동상황과 출입국 상황등을 세밀히 추적해야 하며 허가를 받아 마약류를 취급하고 있는 제약회사ㆍ병원등에 대해서도 부정하게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추후관리를 철저히 해 나가야 할 것이다.
  • 피서 절정… 무질서도 절정/해수욕장ㆍ유원지 5백만이 “북새통”

    ◎바가지 판쳐 하루숙박 7만원/계곡서 세차ㆍ쓰레기 마구버려/주말 물놀이하다 50명 사망ㆍ실종 전국이 섭씨30도를 훨씬 웃도는 불볕더위가 열흘째 계속된 가운데 8월들어 첫 일요일인 5일 전국의 해수욕장 등산로 등 피서지에는 제철을 맞은 피서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올여름 최고인파를 기록했다. 이날 부산의 해운대해수욕장에 80여만,광안리에 40여만 인파가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룬 것을 비롯,속초 강릉 등 동해안에 50여만,그동안 기름에 오염돼 피서객의 발길이 뜸하던 서해안도 1백여만명의 피서객이 줄을 이었다. 또 설악산 지리산 북한산 덕유산 등지에도 2만∼5만명씩의 등산객들이 몰려 울긋불긋 꽃무늬를 이뤘고 미처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 시민들도 가까운 수영장이나 계곡 유원지 등을 찾아 무더위를 식혔다. 이날 전국의 피서인파는 5백만명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이처럼 피서행렬이 피크를 이루자 곳곳에서 물놀이 사고와 피서객상대 범죄 등 사건사고가 잇따랐고 바가지요금이며 행락질서를 둘러싸고 갖가지 시비와 소란도 끊이지 않았다. 물놀이 익사사고의 경우 주말인 4일 강원지방에서 8명이 숨지거나 실종한 것을 비롯,경북과 전북지방에서 5명씩,충남 3명,충북2명 등 2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된데 이어 이날도 낮 12시15분쯤 경북 울진군 서면 하원리 불영계곡의 속칭 용소에서 고교동창생들과 야영을 와 수영하던 김상현군(24ㆍ영남대 경영학과3년)이 깊이 3m의 물에 빠져 숨지는 등 모두 30여명이 사망ㆍ실종된 것으로 추정됐다. 또 5일 상오 3시50분쯤 부산해운대 바닷가에서 산책하던 이웃 서창권씨(42)가 2인조강도에게 현금 14만원 등이 든 지갑을 빼앗긴 것을 비롯,곳곳에서 피서객을 상대로 한 강ㆍ절도ㆍ폭력사건 등이 속출했다. 또 부산 등 남해안과 동ㆍ서해안의 해수욕장 일대에서는 숙박시설과 음식점 등이 초만원을 이뤄 평소의 5배나 되는 바가지요금을 요구하기가 일쑤여서 시비가 잇따랐다. 해운대와 광안리 등지에서는 하루 1만1천5백원으로 정해진 갑급여관의 숙박료를 5만∼7만원씩 받았고 야영텐트 1개 치는데 1만원씩의 자릿세를 요구했다. 특급관광호텔의 경우가장 싼 방이 11만원이어서 부대시설이용료를 포함하면 20만원이 들어야 했다. 이밖에 동ㆍ서해안피서지에서도 하루 1만∼1만5천원씩이던 숙박료가 5만∼8만원씩이나 했고 사이다 콜라 등 찬 음료수는 2∼3배의 값을 받았다. 상인들 뿐만 아니라 피서객들도 더위에 지친 탓인지 곳곳에서 보기 민망스런 추태를 연출,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서울 근교의 북한산계곡과 송추ㆍ일영 등지의 냇가에는 피서객들이 몰고온 차량들이 아무곳에나 마구 세워져 큰 혼잡을 빚었으며 냇가마다 차들이 모여들어 세차를 하는 바람에 환경보호를 무색케 했다. 강원도 오대산,충남 계룡산 계곡 등에서는 집에서 가져오거나 이웃 상점에서 1시간에 1만∼2만원씩에 빌린 속칭 가라오케 등을 틀어놓고 30∼50대 남녀가 술에 취해 춤판을 벌이는가 하면 곳곳에서 고스톱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서객들이 아무데나 마구 버리고 간 쓰레기는 며칠이 지나도록 손길이 미치지 않는 듯 악취가 코를 찔렀고 젊은 남녀들의 낯뜨거운 데이트장면도 볼썽 사나웠다.
  • 기대와 불안… 「통독」움직임의 반향

    ◎무너지는 동독… 일어서는 「거대 독일」 동서독이 통일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에 힘입은 통독논의는 오는 18일 동독의 자유총선후에는 더욱 구체적이고도 가시적인 단계로 뛰어오르게 될 전망이다. 미국과 소련등 강대국들,특히 독일과 인접한 유럽각국은 거대독일의 출현을 우려,통독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데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도 분단극복이 거역할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판단,벙어리 냉가슴앓이를 간직한채 통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통독 움직임을 바라보는 유럽과 미국의 시각,배경및 전망을 살펴본다. ◎미국의 시각/초강대국화 우려,나토잔류 강력 희망/고르비 실각땐 통일행보 지연 가능성/국민열망이 원동력… “올해가 재결합 완성의 해”인식 지난2월 모스크바와 워싱턴을 돌며 통독외교를 벌인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양독의 신속한 통일만이 동독의 경제적ㆍ정치적 붕괴와 동독인들의 서독 이주 사태를 막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콜총리의 「동독붕괴」발언은 서독측의 정치적 주장이기보다는 객관적 현실을 직시한 것으로 워싱턴은 보고 있다. 동독은 지금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 각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동독 경제위기감 팽배 동독의 미래에 대한 동독인들의 불안감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대규모 엑소더스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작년에 34만4천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갔다. 올들어 지난 두달간 서독으로 이주한 동독인은 11만5천명에 달한다. 1월의 하루 1천8백명에서 2월엔 하루 2천2백50명으로 늘어났다. 미국의 독일문제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가 내년엔 다소 고개를 숙이겠지만 앞으로도 동독 인구 1천6백만명 가운데 1백80만명 이상이 더 빠져 나가 동독의 공동화 현상을 심화시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독 사회의 공동화 실상은 작년 11월10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절반으로 줄어든 동독군이 잘 대변하고 있다. 불과 수개월전만 해도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동독군은 수천명씩의 탈영자가 발생하고 기강이 무너져 『이미 군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나토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나토측 추정에 따르면 동독국가인민군(NPA)의 병력 수는 작년의 17만3천명에서 지금은 9만명에 불과하다. 동독경제는 지금 파국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숙련 노동 인력의 엑소더스로 사회 각 분야가 인력난에 허덕이고 살쾡이 파업(노동조합의 일부가 본부의 통제를 받지않고 멋대로 벌이는 파업)ㆍ작업정지ㆍ태업 등의 만연으로 심각한 생산 차질이 빚어져 인플레가 계속되고 있다. 동­서독 마르크화간의 공정 환율은 1대1이나 서베를린 암시장에선 10대1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동독경제에 절망과 무질서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능성」이 「현실」로 성큼 콜 총리가 지난 2월 제의한 「양독의 통화 단일화」는 1차적으로 동독인 엑소더스의 저지를 겨냥한 것이었다. 날로 시세가 떨어지는 동독의 「장난감」 돈을 서독의 안정되고 태환성 있는 통화로 바꿔주면,그것도 1대1의 공정 환율로 바꿔주면 동독인들이 동독경제의 미래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돼 엑소더스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이 「통화 단일화」의 논리라고 타임지는 풀이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인의 3분의2와 서독인의 4분의3이 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분단된 독일 국민의 이같은 통일 열망이 통독의 원동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동독을 붕괴의 위기로 몰아가고 서독의 사회복지에 중압감을 안겨주고 있는 동독 주민의 끊임없는 엑소더스야말로 현실적으로 양독의 신속한 통일을 촉구하는 가장 강력한 압력 요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풀이했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얼마전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통일이 1990년에 완성의 호기를 맞고 있다』고 년내 통일을 예견하면서 『사실상의 경제 통합과 통일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개방됐을 때만 해도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독일통일이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고,당초 금년 5월로 예정됐던 동독 총선때까지는 진지한 조치가 요구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난 1월28일 동독정부가 총선일을 3월18일로 앞당긴다고 발표하자 사태의 급박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동독지도부가 5월까지 나라를 지탱해 나갈수가 없기 때문에 총선일을 당긴 것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3월 동독 총선에선 통일 지지 정당들이 압승할 것이 분명하므로 이제 독일통일은 가능성이 아니라 뚜렷한 현실로 다가섰다고 판단했다. 부시 정부는 국제적인 통독 협상방안을 서둘러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지난 2월13일 오타와 회담에서 두 독일과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미 영 불 소 4개국간에 합의된 통독협상의 틀 「2+4」가 그것이다. 「2+4」방식에 따르면 먼저 독일이 통일의 경제적 정치적 법적 측면을 논의한다. 그 다음에 두 독일과 4강이 만나서 통일된 독일의 병력 규모라든가 나토와의 관계등 유럽의 안보 문제를 논의한다. 금년 초까지도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독일 통일에 반대했다. 나치와의 전쟁에서 2천6백만명의 희생자를 낸 소련이 유럽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인 7천7백만명의 재결합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뜻밖에도 고르바초프는지난 2월초 동독 총리 한스 모드로브의 독일 중립화 통일안을 지지했다. 그리고 서독 총리 콜의 방소를 받아들여 『통독은 독일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통일된 독일의 비대한 힘과 영향력을 억제하는데 나토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통일 독일의 나토 편입을 주장하고 있다. 통일 독일의 중립화는 「경제거인」 독일을 고립시켜 강대국이나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상황을 조성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어 고르바초프도 결국 독일의 나토 잔류를 받아 들일것으로 워싱턴은 내다보고 있다. ○통독협상 방안 마련중 콜이 이끄는 서독의 기민당 정권은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새로운 유럽안보체제와 독일 통일을 확정시켜야 한다는 방침 아래 서독의 온 체중을 실어 통독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콜과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은 통일된 독일이 나토 회원국이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전 동독 영토내에는 나토군이 주둔해서는 안된다는 방안을내놓고 있다. 서독은 또 과도기간중 독일 동부에 소련군 주둔을 허용하는 방안도 마련중이다. 일부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심각한 경제난과 인종분규 등에 직면한 고르바초프가 언제 실각할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만일 그가 실각할 경우 그의 대담한 동서긴장완화정책에 따라 급격히 빨라진 통독 행보도 지연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시각/동독에 어떤 정부 들어서도 「통독」불변/국제적 지위ㆍ국경ㆍEC와의 관계 촉각/양독의 경제격차가 기폭제… “민족주의 망령 부활”긴장 쾌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서독 통일 작업을 바라보는 서유럽 나라들의 요즈음 모습은 엉거주춤한 상태 바로 그것이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해볼 묘책도 그들에게는 있어 보이질 않는다. 『독일은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독일민족의 소리를 외면할 처지가 못되며,자국의 이해에 관련된다 하여 민족자결의 명분에 반하는 처신을 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국제정치 변화가 촉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통독에심한 거부감을 가져오던 서유럽나라들이 어느새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코앞으로 다가온 동독총선이 끝난 뒤에 곧 통일이 실현될 것이라든지,오는 7월1일부터는 서독 돈이 동독에서도 통용되는 등 통화 통합과 경제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들이,성급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불가능한 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 상태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같은 현실인식은 통독작업이 급진전될 수 있었던 상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동서 냉전체제의 종식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고 봅니다. 말할것도 없이 독일의 분단은 2차세계 대전의 결과입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은 두쪽으로 갈라졌으며 그것이 바로 냉전시대의 개막신호였습니다. 이러한 대결 구조가 존속되는 한 독일의 분단상황도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반대로 냉전시대가 종료되면서 분단국의 재통일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런던 국제관계연구소의 토머스 펠러만 박사는 독일의 재통일 문제를 국제정치 상황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조명하면서 동서간 대립과 대결구조의 해소는 분단민족의 통합을 촉진시킬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모멘트가 될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반도라 해서 이같은 국제정치 질서의 흐름이 외면해 지나칠 이유가 없으며 당사자들(남북한 지칭)이 이같은 분위기를 자기 것으로 흡수 소화할때 분단이라는 긴 터널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같이 분단국 재통일 문제의 부각은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가 촉매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대부분의 견해이지만 이에 곁들여 『동독의 소멸』현상을 중요한 모멘트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던 호네커정권이 무너지면서 동독의 공산당은 물론 과거의 동독 자체가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서독은 책임있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다고 구체적인 통일 논의는 오는 18일의 동독 총선뒤로 미루어 놓았습니다. 총선뒤 동독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 첫 과제는 서독의 통일 스케줄에 자신들의 일정표를 짜맞추는 일이 될것입니다』 파리사회과학연구소의 코르넬리우스 교수는 줄곧 두개의 독일을 고집해 오던 공산당 정권의 붕괴로 통일논의의 최대 장애가 제거된 셈이며 이로인해 국민들의 통일욕구가 분출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서독이 대화할 책임있는 상대가 없는 때를 역으로 통일논의의 최적기로 삼아 기회를 놓칠세라 안팎으로 뛰어 통일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산당 붕괴로 새 국면 이와함께 동서독간에 빚어진 경제ㆍ사회적 격차가 통일작업을 재촉하는 계기의 하나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5월 헝가리가 국경철조망을 걷어 치운 뒤부터 시작된 동독인들의 대량 탈출 현상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도 계속되어 요즈음도 하루 2천∼3천명이 서독으로 넘어오고 있다. 그들은 체제나 이념문제를 떠나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보다 잘사는 형제들 곁으로 향하는 대열이다. 『서독으로의 탈출 대열이 보여주듯 파탄지경에 이른 동독경제는 서독경제의 도움이 절실하며 칼자루를 쥔 서독의 통일논의에 응할수 밖에 없는 상황』(불 리베라시옹지)이 통독작업을 서두르게 하는 원인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도 그동안 동서독이 꾸준히 힘기울여온 통일기반 조성 작업이 그 토대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서독에 의한 대동독 경제원조,인적교류,문화ㆍ체육교류등을 통한 민족동질성의 고취등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통일논의가 동서독 국민들에게 다같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이와같은 통독논의의 가속화에 대한 원인분석 뒤에 따르는 관심은 자연히 통일독일의 지위와 국경보장문제, EC(구주공동체)와의 관계등에 대한 것이다. 서유럽 사람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서독 페이스 불가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날 곡괭이를 들고 장벽을 부수겠다고 달려드는 독일 젊은이들의 모습을 TV를 통해,신문을 통해 보면서 섬뜩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알랭 투랜박사(파리 국제전략연구소)는 많은 유럽사람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 장면을 한맺힌 통일염원의 표출로 보기보다는 「민족주의 망령의 부활」을 느꼈을 것이라고말했다. 그들은 통일독일이 다시 유럽을 지배하거나 중부유럽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두려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 싸여있다. 이같은 통독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연유하는 것이 요즈음 초점이 되고 있는 오데르­나이세국경선 선보장문제이며 헬싱키협약 준수의무 요구나 EC통합범위 안에서의 통독작업 진행 주장 등이다. 콜총리가 6일 오데르­나이세 국경의 불가침성을 인정하겠다고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통독을 보는 유럽 사람들의 불편한 심기가 씻은듯 가셔질리는 없는 것이다.
  • 고려대 총장 졸업식사 요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젊은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들의 앞에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강의실에서 연마했던 지식과 기술,대학캠퍼스의 안팎에서의 많은 경험들은 여러분들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살이 되고 피가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세계는 빠른 속도의 변화속에서 번민과 회의에 빠져있습니다. 세계각국은 국익을 확장하기 위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소련과 동구권에서의 자유화물결은 모든 국가와 국민들을 한 울타리속에서 함께 뛰는 새로운 경쟁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도 서서히 종말을 고하고 보편적 진리ㆍ자유ㆍ정의를 부른짖던 보편적 인도주의의 물결이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억지로 그어진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지구를 온통 하나의 넓은 광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한반도의 분단상태도 기약없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역사의 여신은 미소를 지으며 눈짓하고 있습니다. 민족분열과 국토분단으로 얼룩졌던 온갖 슬픔과 손실들이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멀지않은 장래에 우리는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미래를 향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할 졸업생 여러분앞에는 넓고 희망이 가득한 광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국제적 경쟁의 대열에 참가하여 기량을 마음껏 펼칠 때가 왔습니다. 패기와 지혜와 투지를 가지고 선의의 공정한 승부를 걸어 영광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행이나 운수에 기대를 거는 후진사회의 안일한 타성은 이제 발붙일 곳이 없는 시대가 되었고 주관과 원칙이 없이 시류에 편승하여 적당히 살아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커다란 포부를 가지고 치밀한 계산하에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로 새로운 것을 개척해가야 합니다. 활동의 무대가 넓을수록 경쟁의 상대가 강할수록 여러분들은 서두름없이 장기적인 안목과 구상을 토대로 의연하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세대가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중에는 하나의 조국,하나의 민족,하나의 국토위에 우리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날을 하루속히 앞당기는 일이 무엇보다도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성과 이성의 각성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음을 확신합니다.
  • 전두환 전대통령 국회증언 속기록

    ◎5공 특위/“「일해」 기금관련 기업특혜ㆍ보복 없었다”/재임중 친인척 관리 잘못한 점 뉘우쳐/국제그룹 해체는 부실기업 정리 차원 ▷인사말◁ 지난해 11월 참회의 고별사를 드리고 국민여러분 곁을 떠나 산간벽지의 한사에서 반성과 수도의 길을 걸어온 제가,오늘 이처럼 국회에 나와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에게 언짢은 문제들에 관해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80년대를 마감하는 섣달 그믐날인 동시에 21세기를 향한 길목에서 밝아오는 1990년대의 첫 해를 맞이하게 되는 전야입니다. 송구영신하는 이 뜻깊은 시점에서,한때 이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제가,새 아침의 여명속에 희망과 기쁨의 말씀을 드리지는 못할 망정,지난 날의 어두웠던 기억과 아물어 가던 상처를 일깨우게 되는 말씀을 드리게 된 것이 다름 아닌 저 스스로에서 비롯된 것임을 되새길 때,새삼 저의 부도덕을 뉘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3권분립주의의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아직 한번의 선례도 없는,전직대통령의 국회출석 증언이라는 오점을 우리 헌정사에 남기게 된 것은,저의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과오가 될 것입니다. ○사안별 증언 이해를 저는 이 모두가 원칙적으로 저로 인해서 초래된 하나의 업보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국민과 역사 앞에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기억하시리라고 믿습니다만 지난해 11월 서울을 떠나 사죄의 은둔생활을 시작하면서 국민 모두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버리고 단합해서,새로 출범한 정부를 도와 국가발전을 지속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저와 저의 재임기간중에 있었던 일 때문에 가슴 깊이 한이 맺히고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분들에게는,저의 은둔이 모든 아픔에 대한 보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그 당시 저는 그 이상의 어떠한 단죄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을 통해 나타난 여론이나 정치권의 요구는 「재임중의 과오를 사과하고 남은 정치자금이 있으면 헌납하고 고향에 가서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과거청산문제가 마무리 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저는 그 제의를 전폭 수용해서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저 스스로 근신하는 뜻에서 낯설고 인적도 드문 백담사를 찾아 오게 된 것입니다. 그간 일부에서는 해외 장기여행을 권유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이 저로서는 죽음보다 오히려 감내하기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국민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수치스런 일인만큼 거론 되는 일조차 없어야 한다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이 제시한 해결책이 모두 실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바 대로 과거청산 논란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저의 국회출석 증언문제가 또다시 제기되었습니다. 「5공청산」 문제는 정치의 안정과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으며 저의 국회증언이 실현되지 않음으로써 정치는 물론 경제도 계속 뒷걸음질 치게 되고 사회의 혼란과 갈등도 모두 저의 증언문제 때문이라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전직대통령의 국회증언이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전례가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정치ㆍ사회의 안정과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저는 정치권이 바라는 바 그대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국회출석 증언이 하루속히 실현되기를 희망하였으며 또한 그 증언도 당초의 목적에 부합되는 증언이 될 수 있도록 증언의 방법ㆍ절차ㆍ시기 문제 등은 정치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뜻을 밝힌바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야가 합의하고 국회가 결정한 바에 따라 제가 오늘 이자리에 서서 의원 여러분의 질문에 대한 증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증언의 내용이 의원 여러분에게는 미흡하게 느껴지는 점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앞으로의 증언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될 것입니다만,질문 자체가 실무자들이 한 일,실무자들만이 알 수 있는 일,또는 저 자신이 당시에는 보고를 받았고 재가를 한 일이라 하더라도 세월이 많이 지나서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일 경우 지금 이 시점에서 완벽하고 책임있는 설명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질문중에는 간단하게 「아니다」 「모르겠다」 등의 한마디로 답변을 끝낼 부분도 있고 또 보다 정확히 이해 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줄거리를 갖추어 말씀드리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질문의 순서에 상관없이 사안별로 묶어서 말씀드리게 된 데 대해 양해를 구하는 바 입니다. ▷「일해」설립ㆍ자금조성◁ 일해재단의 설립은 버마 아웅산 참사후 귀국하는 길에 본인과 동행했던 경제인들이 북한의 만행에 울분을 토로하고,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어서는 안된다는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순국자의 유가족을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시발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그 당장에 23억원이 모금되었으나 『전액을 그대로 집행할 경우 세금 등의 문제로 유족 지원금이 상당부분 줄어든다는 것과 공익재단을 설립하게 되면 전액을 보조금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보고를 접하고 그렇다면 재단설립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에 대한 조의금 분배만을 위해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지나친 편법이 아니냐는 의견과 순국자의 유지를 받들 사업을 모색하는 것이 좋겠다는 등의 의견이 제시 되었습니다. ○경제단체,자체 할당 유가족 지원사업은 설립이후 계속 확대되어 왔을 뿐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에서 희생자의 유지를 받드는 작업을 한시라도 게을리 한적이 없었습니다. 재단이 그 출발은 희생자 및 그 유가족에 대한 위무책의 일환으로 구상되고 설립된 만큼,본인도 고인과 그 유가족들을 위한 일에 정성을 보태고자 5천만원을 출연했습니다. 기금 모금은 경제단체 대표들이 주관해서 대상을 정하고 금액을 할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단측에서는 한해 50억원 정도의 예산을 사용할 셈으로 5백억원 정도의 기금조성 목표를 세웠습니다만,본인은 규모가 너무 커 출연하는 기업에 부담이 될 것같아 대폭 줄이라는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재단의 사업계획이 확충된데다가,일부 기업인들의 의견이 『계속해서 연간 사업비를 모금할 수도 없고,외부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으니 일단 기금을 조성한 다음 본격적인 사업전개 단계에서는 기금의 증식이자만으로 매년 예산을 충당하는 것으로 하자』고 하며 3차년도 기금모금을 진행시켜 기금의 총액이 처음 구상보다 커지게 된 것입니다. 재단명칭에 본인의 호를 사용하게 된 것은 아웅산 참변과 직접 관련이 있고 또한 지속적으로 유가족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재단명칭으로 사용하자는 건의가 있어 이를 승낙했습니다. 기금의 기탁과 관련하여 특혜가 있지 않았느냐,또는 이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 어떤 보복조치가 있지 않았느냐,심지어는 일해재단 모금자체가 정치자금을 조달키 위한 목적이 아니냐 하는 의혹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그런 일은 전혀 없었고 또 있을 수도 없는 일임을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특히 국제그룹 해체를 이러한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부실기업 정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신동아그룹 등에서 기부한 35억원이 익명으로 처리된 것은 좋은 목적으로 써달라는 뜻을 살려 당시 재단의 사업계획에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재단기금을 축내지 말라는 의미에서 이 자금을 이에 충당하도록 한 것입니다. 항간에 재단과 관련,본인이 퇴임후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풍문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무근의 이야기입니다. 본인은 단임의지를 실천한 전임대통령으로서 재직시에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연구소를 통하여 국내외 원로들과 교류하는 한편,동구권 등 비수교국 학자들과의 교류를 추진함으로써 민간외교 차원에서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소는 21세기에 대비하여 통일문제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를 연구할 국제적인 학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민간연구기관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유족을 돕기 위한 순수한 목적에서 본인이 발의했던 재단의 설립과정에 물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관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새 세대ㆍ심장재단◁ 본인과 내자는 젊은 시절부터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유아교육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만 이 부문이 질량 양면에서 미흡하고 부족하다는 사실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 보고를 받아보니 정부의 예산사정으로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뜻있는 분들의 찬조로 사업을 일으켜 보자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사업의 취지에 찬동하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기금이 조성되고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새 세대 심장재단은 83년 11월 내한한 레이건 미대통령 부인 낸시여사가 우리나라 심장병 어린이 두명을 미국으로 데려가 치료해준 일이 계기가 되어 국내의 심장병 어린이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고 우리의 기술과 비용으로 우리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자는 여론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81년 새세대육영회는 창립 당시부터 83년까지 2백여명의 불우한 선천성 심장병 환자의 수술지원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에 착안한 당시 보사부장관과 심장병 전문의 등 의학계 인사들이 육영회에서 기왕에 하고 있던 심장병환자 지원사업을 확대하는 뜻에서 별도의 재단설립을 건의해옴에 따라 이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취지찬동 기업 출연 그러나 새 세대 육영회나 심장재단 모두 기금조성 및 관리과정에서 너무 꼼꼼하게 취급하다보니 기금을 한푼이라도 더 증식코자 하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오히려 경리면에서 의혹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만 그 기금 모금과정이나 운영에는 조금도 잘못이 없었던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일해재단이나 육영회 심장재단 등은 본인 내외가 직접 설립했기 때문에 기금조성 과정에서 출연자들에게 반대급부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으나 사업취지에 찬동한 기업인들의 출연에 의해서 기금조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본인의 명예를 걸고 말씀드립니다. ▷친인척비리ㆍ재산도피◁ 본인의 재임기간중에 있었던 미국산 쌀 도입,쇠고기 및 석탄 수입과 관련하여 본인의 친인척이 관련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이 문제는 당시 이미 문제화 되어 철저히 조사한바 있습니다. 국회 해당상임위원회에서도 조사 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진상을 규명한바 있으나 전혀 그러한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며,그 결과에 대하여 국민들도 납득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미국,호주 등에 막대한 재산을 도피시켜 놓았다는 유언비어가 일부 보도매체에도 실린 바 있으나,그러한 일은 터무니 없는 낭설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정부도 국회의 요청에 따라 해당국가에 정식으로 조사를 요청한 바,최근 그러한 사실이 전혀 없었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해 온 것으로 저는 듣고 있습니다. ▷부실기업 정리◁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데에는 해당기업을 부도처리하여 도산시키는 방법이 가장 원칙적인 것이겠지만 대기업을 도산시키는 경우 하청기업과 계열기업의 연쇄부도 등으로 인한 대량실직 등의 커다란 사회문제가 초래될 수 있고 또한 대출금 회수불능으로 금융시장 전체가 근본적으로 위협을 받게 되는 등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심각할 것으로 우려되었습니다. 또한 부도처리 대상기업이 국외에서 상당한 공신력을 갖고 있는 재벌기업일 경우에는 해외시장에서의 한국기업 전체에 대한 평가절하 또는 신용실추 등이 염려되어 수출에 국가적 사활을 걸고 있는 우리 입장으로서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실기업 정리의 또 다른 방법으로는 해당기업에 계속 추가 금융지원을 하여 부도를 막아 주는 것도 있겠으나 정상화 가능성이 없는 기업에 금융지원을 계속한다는 것은 이미 위험수준에 도달해 있던 부실채권의 규모를 더욱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산업전반의 체질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사회정의에도 배치된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써 해당기업도 살리면서 능력있는 제3의 기업을 찾아 인수를 종용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된 것입니다만 그 과정이 비공개로 처리되어 많은 의혹이 발생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실기업을 공개경쟁 방식으로 정리할 경우 부실의 내용이 공개되어 즉각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려워지게 되는 등 부실이 가속화될 우려가 있으며 인수자 선정에도 애로가 있어 부득이 내부적인 기준을 설정하여 정부에서 인수자를 선정하게 된 것입니다.○사심 작용한 적 없다 인수기업의 결정은 경영능력,재무구조,업종 관련성,지역연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재무부장관 주관하에 주거래 은행과의 협의를 거쳐 산업정책 심의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그 최종단계에서 재무부장관이 본인에게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실기업 정리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각종 의혹과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경우에 따라서는 본인이 몇가지 방안중에서 결정을 해야 할 경우도 있었으나 예상되는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하여 결정을 내렸었습니다. 피인수기업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는 등의 감정을 지니게 되고 정리절차의 비공개성으로 인해 일부 의혹이 초래될 가능성도 있으나 대통령이란 직책은 이러한 비난보다는 국가경제란 측면을 더욱 고려해야할 입장이라고 생각하며 나름대로 최선의 결과가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부실기업 인수와 관련한 부채경감,세제지원,금융지원 등이 특혜라는 오해는 자산의 몇배가 되는 부채를 인수하는 기업의 부담을 경감시키는 조치로써 상당수의 기업이 인수에 소극적임에도 국민경제적 측면을 고려하여 떠맡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은행감독원장이 부실기업 정리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주장에 대해 주거래은행과 재무부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은행감독원장으로서 관여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나 질문과 같이 총괄지휘 등은 정치적인 오해라 생각합니다. 국제그룹 정리과정에서도 본인은 당시 재무부장관으로부터 국제그룹 정리의 필요성과 그 처리대책을 보고받고 이를 재가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부실기업 정리라는 일반원칙에 따라 행해졌던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10대 재벌에 속하고 있었던 국제그룹의 정리는 정부로서도 신중한 결정을 필요로 하였으며 해외에서의 한국기업의 이미지 실추 등을 고려하여 부도처리에 의한 정리보다는 부분별 제3자 인수방식을 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그룹의 부실은 부채비율이 거의 1천%에 이르렀고 그 중 상당부분이 단기고리인 완매채에 의존하는 등 부채의 성격 또한 악성이었다고 보고 받았었습니다. 정부는 84년 가을부터 85년 2월까지 2천5백억원의 자금지원을 함으로써 그룹의 회생에 노력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계속 경영상태는 악화되어 경제부처의 관계장관들이 수차에 걸쳐 본인에게 회생불능의 보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한선주의 정리과정도 통상의 정리절차와 마찬가지로 재무부장관의 건의를 승인한 것이며,당시 해운업의 부실규모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여서 선사별로 합리화 조치로 부족운영자금 지원,자구노력추진 등으로 경영정상화를 모색하였으나,대한선주의 경우 제1차 해운합리화 조치시 금융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실규모나 당시 해운시장 여건 등으로 보아 자체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정리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한진해운에 인수시키는 과정에서 조양상선과 경합시킴으로써 인수조건을 유리하게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실기업 정리는 당시 경제여건상 기업 및 산업의 구조조정으로 일면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라며 절차의 비공개,피인수기업의 불만 등으로 많은 의혹이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결코 개인적인 사심이 국가정책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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