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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의 카스트로/경제·정치인 잇단 접촉 눈길

    ◎불측선 외교노선 독자성 재확인 피델 카스트로 쿠바국가평의회의장의 파리 방문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사상 처음 프랑스땅을 내디뎠다는 상징성 때문이다.특히 쿠바는 유럽연합의 어느 나라와도 교역을 하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카스트로의 프랑스 방문 첫번째 목적은 경제협력 도모이다.유네스코가 초청한 형식의 방문이지만 그의 행보는 프랑스 경영인연합회와의 접촉에 초점이 모아진다.옛 소련과 동구의 붕괴로 새로운 교역 상대가 절실해졌다는 것이다.프랑스의 한 신문은 「30여년전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을 주장하던 젊은이들의 영웅이 지금은 구걸하러 다니는 신세로 바뀌었다」고 표현했다. 방문 기간 동안 그는 될수록 많은 정계 인사들과도 만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하원 방문은 예정돼 있지 않지만 필립 세겡 하원의장도 만난다.프랑스 등 유럽이 쿠바를 맞이할 준비가 돼있는 듯한 모습을 미국에 과시하려는 계산인 듯하다. 또 그는 프랑스 공포정치의 대명사 로베스피에르의 열광적 지지자이자프랑스 혁명이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 혁명의 어머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카스트로의 정치적·개인적인 계산과 함께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부부가 모두 그의 방문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진다.미테랑 대통령은 임기를 두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카스트로의 방문으로 프랑스의 독자외교력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 셈이다. 또 미테랑 대통령의 부인 다니엘 여사가 카스트로의 방문에 상당한 영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국제적 인권단체인 「프랑스 리베르테」를 주도하고 있는 다니엘 여사는 89년 카스트로의 초청으로 쿠바를 방문한 적이 있다.당시 다니엘 여사는 쿠바의 병원시설 개수를 위한 기금 1천2백50만프랑(약 18억7천만원)을 기부했다. 이런 친분 탓인지 카스트로는 유네스코 초청 방문인데도 실질적으로는 국빈 방문에 버금가는 대접을 받고 있다.영빈관인 마리니호텔이 그의 숙소이고 샹젤리제에 쿠바국기가 걸리지 않은 점만 빼면 국빈급 접대를 받고 있다. 접대 탓인지 그는 도착 당일 하루더파리에 머물기로 일정을 바꿔 16일 출발하기로 했다.충격적인 방문 속에 융숭해보이는 접대를 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프랑스가 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쿠바의 인권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미테랑 대통령이 금수조치에 대해 미국을 비난하면서도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 판치는 「외제」 뮤지컬(브로드웨이 “새바람”:9)

    ◎2년이상 롱런 8편중 영국작품 7편/70년대엔 「사운드 오브 무직」등 미국작품 주류/80년대이후 판도 변화… “미국은 없다” 비판 고조 『브로드웨이에 미국은 없다』 80년대 이후 런던 웨스트엔드의 영국 뮤지컬이 뉴욕 브로드웨이를 휩쓸고 있는 현상을 미국인들이 자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2년 이상 장기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8편 가운데 「그대에게 반했다오」 한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국 뮤지컬이다.세계 4대뮤지컬로 불리는 「캐츠」「레미제라블」「오페라의 유령」「미스 사이공」을 비롯,「거미여인의 키스」「피의 형제」「후스 토미」등이 런던의 극장가 웨스트엔드를 거쳐왔거나 아니면 영국 작곡가 혹은 영국 연출가의 작품인 것이다. 이 가운데 「레미제라블」「오페라의 유령」「미스 사이공」등은 프랑스 소설을,「거미여인의 키스」는 아르헨티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또 「캐츠」「오페라의 유령」은 영국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레미제라블」과 「미스 사이공」은 프랑스인 클로드 미셸 쇤베르크가각각 작곡을 맡았다.어디서든 「미국」은 찾을래야 찾아보기가 힘든 실정이다. ○영 작곡가·연출가 작품 이같은 현상은 브로드웨이뿐 아니라 오프 브로드웨이의 연극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특히 올봄에 히트가 예상되고 있는 샌 마티어스의 「무분별」등 연극 네편과 트레버 넌의 새 뮤지컬 「아카디아」등 다섯편이 모두 영국인 연출가들의 작품이어서 당분간 영국의 브로드웨이 점거(?)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따라서 「코러스 라인」「사운드 오브 뮤직」「웨스트사이드 스토리」「아가씨와 건달들」 등 수많은 미국 뮤지컬로 전성기를 이루던 70년대까지의 브로드웨이를 그리워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영국 뮤지컬의 전성시대를 맞은 요즘의 브로드웨이에서는 영국 뮤지컬들끼리의 경쟁은 물론 심지어는 같은 작곡자의 작품끼리 경쟁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뮤지컬의 황제라고 일컬어지는 로이드 웨버가 작곡한 「오페라의 유령」과 「선셋 불러바드」는 정상인과 비정상인간의 이루지 못한 애틋한 사랑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면서 두편 모두 장중한 스케일과 화려한 무대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작품들이다. 지난 88년 1월 브로드웨이 44스트리트의 머제스틱 극장에서 개막,「캐츠」와 「레미제라블」에 이어 세번째 롱런가도를 달리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은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가운데 가장 치밀하고 정교한 구성과 기상천외의 무대장식으로 7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입장권이 매회 매진될 정도의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선셋 불러바드」는 지난해 11월 이 작품에 도전장을 내고 브로드웨이 45스트리트의 민스코프 극장에서 막이 올려진 작품으로 결국 로이드 웨버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도전장을 내는 결과가 됐다.72년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제작,영국 뮤지컬이 미국 뮤지컬을 압도하는 전기를 이룩했던 로이드 웨버는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위한 혼신의 몸부림으로 만드는 작품마다 대히트하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장엄한 무대·의상 인기 「오페라의 유령」은 파리 오페라극장 지하에 숨어사는 흉칙한 모습의 유령작곡가(데이비스 게인스)가 소프라노 가수 크리스틴(테리 비브)를 짝사랑하는 이야기다.크리스틴과 그녀의 애인 라울(브래드 리틀)은 유령의 방해를 받지만 끝내 이를 극복한다.극중의 오페라 공연중 갑자기 가수가 사라져,공연이 중단되는등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토니상 7개부문을 휩쓴 이 작품은 파리 오페라극장의 화려한 무대와 「한니발」등 극중 공연되는 오페라의 무대장치와 다양한 의상이 볼 만하다.더욱이 폭발로 불을 뿜으며 대형 샹들리에가 천장으로 치솟고,유령이 크리스틴을 데리고 자신의 은신처로 가기 위해 극장지하의 호수위로 곤돌라를 타고 가는 등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박진감으로 극이 진행된다.. 1861년 완공된 파리 오페라 극장은 지하에 인조호수가 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프랑스 소설가 가스통 르루는 이를 바탕으로 음산한 유령 이야기를 썼다.1911년 발표된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1925년부터 이미 네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져 일반에 잘알려져 있다. 로이드 웨버는 1986년 카메론 매킨토시와 함께 이를 뮤지컬로 제작,런던 웨스트엔드의 무대에 올려 대히트를 기록했다.이는 공연에 앞서 85년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발매되기 시작한 「오페라의 유령」 음반의 큰 히트로 예견됐던 바다.「에비타」「거미여인의 키스」의 해럴드 프린스가 연출한 이 뮤지컬은 2년후 브로드웨이 공연에 나섰을 때 1천8백만달러에 달하는 입장권 예매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선셋 불러바드」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50년대 히트영화를 뮤지컬화한 것으로 로이드 웨버가 「캐츠」와 「레미제라블」의 연출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트레버 넌과 손잡고 제작,9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을 시작했던 작품이다.넌의 새 뮤지컬 「아카디아」가 이달 30일부터 링컨센터에서 공연되면 당분간 브로드웨이는 로이드 웨버-트레버 넌의 전성시대를 맞게 될 듯하다. 할리우드의 한 거리인 선셋 불러바드의 한귀퉁이에 있는 호화저택에 편집증적인 왕년의 인기 여배우 노마 데스먼드(글렌 클로스)가 살고 있다.빚쟁이에 쫓기다 우연히 그녀의 집안으로 뛰어들게 된 젊은 극작가 조 길리스(앨런 캠프벨)를 사랑하게 되나 그 사랑은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이다.주변인물로는 노마의 충실한 집사인 맥스(조지 히언)와 조의 애인 베티(앨리스 리플레이)등이 등장인물이다. ◎이루지 못할 사랑 그려 이 극에 나오는 노마의 호화를 극한 로코코 양식의 저택은 무대장치의 제일인자 존 내피어가 설계한 것이다.연말파티 장면에 나오는 윗부분의 쓸쓸한 노마 저택과 대비시켜 아랫부분을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아파트 거실로 만든 상하 복층구조 무대는 공간 활용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과 「선셋 불러바드」는 등장인물들과 내용의 유사성에서 흔히 비교되고 있다.즉 오페라 유령과 노마 데스먼드의 성격이 비슷하다.이들이 남자와 여자,이들의 주거 장소가 오페라극장 지하의 밀실과 인적이 끊어진 대저택의 거실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둘다 편집광적 성격의 소유자다. 또한 이들에 의해 일종의 노리개가 되는 젊은 인물로 크리스틴과 길리스가 설정돼 있고 그들의 애인 라울과 베티의 설정도 이들이 남녀 성만 서로 반대일 뿐 똑같은 구도로 돼 있다. 그러나 「오페라의유령」에서는 유령이 사라지고 젊은이들의 재결합이 이뤄지는 해피앤딩인데 비해 「선셋 불러바드」에서는 길리스가 노마의 총에 죽음으로써 비극적인 결말이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들은 별로 뒷맛이 개운치 않은 칙칙한 사랑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완벽에 가까운 작품구성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 심야의 탈주/맥주거품에 부각된 인간내면 “인상적”(감동의 명화)

    ◎쫓기는 자의 두려움 화면마다 넘쳐/거푸 두번 감상… 그때 추억 아직 생생 뤼미에르 형제가 18 95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반대중에게 움직이는 영상을 선보인지 올해로 꼭 1백주년.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영화는 이제 4차원의 영상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며 인간의 꿈을 대변하는 각광받는 대중예술로 자리를 굳혔다.세계영화 탄생 1백돌을 맞아 문화 예술 각계 인사들이 집필하는 「감동의 명화」를 연재한다. 김종원(영화평론가) 흘러간 영화에는 마치 빛바랜 사진첩을 들추는 것과 같은 남다른 감흥이 있다.그것은 언제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각인돼 각박한 도시의 삶 속에서도 낭만의 여유를 갖게 하는 원천이 된다. 젊은 날 영화는 나의 연인이었고 지식의 보고였다.또한 구원 그 자체이기도 했다.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관을 찾았다.그럴 때는 으레 준비해 간 노트에 좋은 장면과 대사들을 적어놓곤 했다. 그 시절 아련한 기억의 창문을 열면 의식의 스크린에 투사되는 한편의 영화가 있다.대학 2학년 때던가.나를 매료시킨 캐롤 리드 감독의 「심야의 탈주」(1947년 베니스영화제 작품상 수상작·영국)가 바로 그것이다. 캐롤 리드라면 흔히 「제3의 사나이」를 내세우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이보다 「심야의 탈주」를 사랑한다.이 흑백 시네마에는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었다.쫓기는 자의 내면에 응고된 삶에 대한 애착과 두려움이 화면마다 넘쳐나고 있었다. 특히 현상수배된 탈옥수인 주인공 조니(제임스 메이슨)가 갈등하는 모습을 맥주 거품을 빌려 부각시킨 중반부의 장면은 압권이었다.조여오는 수사망과 밀고의 압박 속에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시던 맥주잔이 탁자에 엎질러지면서 확대되는 맥주 거품.캐롤 리드 감독은 이 화면에 동료들의 모습을 클로즈업 시켰다. 아일랜드의 한 시가지가 흔들리면서 전개되는 타이틀 백.추운 겨울의 탑시계는 하오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지하 독립운동 조직의 총기 밀수혐의로 투옥되었다가 탈옥한 조니는 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면직공장을 습격한다. 세명의 일당과 함께 돈을 털어 달아나던 조니는 끈질기게 쫓아오는 수위를 쏘고 그 역시 총상을 입는다.뒷골목에 숨어 있다가 동료의 도움으로 비상선을 빠져나온 조니는 애인 캐더린(캐더린 라이언)의 부축을 받으며 탈출이 계획된 부두에 이른다. 그러나 조니는 경찰관들의 포위망이 좁혀오는 가운데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미래를 단념한 애인의 권총에 맞아 절명한다.함박눈이 내리는 부두의 광장에 서로 손을 잡은 채 피를 흘리며 쓰러진 두 남녀의 시체. 이처럼 라스트 신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예컨대 부상을 입고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캔버스 앞에 앉힌 뒤 『죽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겠다』는 광적인 화가(로버트 뉴턴)의 행위나 현상수배범이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돈을 흥정하는 새장수(F J 매코믹)의 야비한 이기주의 등은 성악적인 인간의 한 전형이었다. 나는 쫓기는 자의 내면을 깊이 있게 표출한 이 영화의 영상미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이들 캐릭터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나는 「심야의 탈주」를 앉은 자리에서 두번이나 봤다.그래서 지금은 없어진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4층에 자리한 재개봉관은 나의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 뮤지컬(브로드웨이 “새바람”:5)

    ◎「팬태스틱스」 35년째 공연 “세계최장”/작년 내한 「캐츠」도 13년째 막올려… 인기는 여전/감미로운 선율·치밀한 구성에 관객 갈채/서쪽 소호·그리니치 빌리지 지역 소극장 몰려/연기·노래·춤 어우러진 총체적 공연예술 워싱턴 스퀘어(광장)를 중심으로 한 그리니치 빌리지의 겨울 낮 동안은 매서운 추위와 수북한 눈덩이 속에서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하다.그러나 날이 저물면 밤의 열기로 거리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남쪽으로 커낼 스트리트에서 북쪽으로 14 스트리트에까지 이르는 브로드웨이 서쪽의 소호와 그리니치 빌리지는 수많은 화랑과 소극장·라이브 하우스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예술의 거리를 이룬다. ○예술기행의 필수 코스 브로드웨이의 예술은 뮤지컬로 대표된다.워싱턴 스퀘어 아래쪽 설리번 스트리트의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팬태스틱스」는 브로드웨이 공연예술 기행의 필수 입문코스다. 『9월을 기억해 보세요,생명이 서서히 익어가는/9월을 기억해 보세요,풀은 파랗고 곡식은 누렇게 변해가는/9월을 기억해 보세요,당신이 부드럽고 가냘프던 때를/기억해 보세요,기억이 나거들랑 그대로 따르세요…/12월이 깊어지면 기억하기 좋을 거예요,상처가 없는 가슴은 공허 뿐인 것을/12월이 깊어지면 기억하기 좋을 거예요,우리를 익게 한 9월의 열기를/12월이 깊어지면 우리의 가슴은 기억해야 해요,그리고 따라야 해요』 이 뮤지컬의 극중 해설자인 로버트 스미스가 고음으로 부르는 주제곡 「기억해 보세요」(Try to Remember)의 감미로운 선율은 눈덮인 브로드웨이의 겨울에 한송이 눈꽃으로 피어 있다. 그리니치 빌리지 한 모퉁이에서 19 60년 공연을 시작하여 세계 최장수 뮤지컬의 명성을 얻고 있는 이 극은 극장이 위치한 설리번 스트리트 도로표지판 위에 팬태스틱스 레인(골목)이라는 표지판을 하나 더 달게 할 정도로 기념비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시골의 한 마을에 사는 16살의 소녀와 20살 청년의 사랑이야기인 단순한 내용에 등장인물 8명으로 오프 브로드웨이(브로드웨이 외각을 뜻하며 이곳의 소극장들은 브로드웨이 극장들보다는 규모가 작고 실험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경향이 있다)의 작은 극장에서 시작한 평범한 뮤지컬임에도 한 장소에서 한 세대를 뛰어넘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설리번 스트리트 플레이하우스는 10m도 채안되는 폭에 길이 50여m의 작은 극장.관람석은 둥그렇게 무대가 자리잡은 중앙부분에는 세줄 밖에 놓일 수 없고 양쪽 옆으로 놓인 7∼8줄을 포함,모두 1백52석에 불과하다.브로드웨이 대형극장의 오케스트라 역할은 무대 뒤와 옆에 놓인 피아노와 하프 한대가 맡는다. 세트는 네개의 쇠기둥이 달린 마루판과 소품을 꺼내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드나들기도 하는 커다란 검은 상자 두개와 의자 하나가 고작이다.좁은 무대에서의 공간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 극에는 검은 옷에 마술사 모자를 쓴 무언배우(Mute)가 등장,유연한 몸짓으로 담장이 되기도,나무가 되기도 하며 눈도 뿌리고 배우들에게 소품을 공급해주는 등 바쁘게 오간다. 반대하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아들과 딸의 결합을 원하는 양측 아버지들이 연극을 꾸며 극적인 해피 엔딩의 결합을 가져오게 하는 이 극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캐루젤」과 「캐츠」의 주연으로 활동한 바 있는 소녀역의 리자 메이어와 「오클라호마」,「쇼보트」 등에서 명성을 날린 해설자역의 로버트 스미스 등으로부터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의 신인인 남자역의 조시 밀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의 배우들이 등장하고 있다. ○주제곡 40여명이 불러 이 극은 또 35년동안 공연해 오며 온갖 기록을 보유한 브로드웨이의 산 역사로 남아 있다.70여개국 1천여회의 외국 공연을 포함,모두 1만4천여회를 공연했으며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유명배우들 대부분이 이 극을 거쳐갔다.소년의 아버지 허클비로 나오는 65세의 고든 존스는 브로드웨이 최고령 배우이며 늙은 배우 헨리역의 브리안 헐은 한 극에서 14년 연속출연이라는 진기록을 지니고 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한 9명의 역대 미국대통령이 관람한 기록도 갖고 있는 이 극은 특히 주제곡 「기억해 보세요」와 「곧 비가 내릴 거야」(Soon It’s Gonna Rain)를 에드 에임스,앤디 윌리엄스 등 40여명의 가수들이 레코드로 취입,공전의 히트를 시킨 기록도 갖고 있다.이 극장의 2층은 조그만 박물관으로 각종 사진자료들과 4달러에서 현재의 33달러에 이르기까지의 입장료 변천사 등이 진열돼 있다. 61년부터 이 극에 출연,뮤트역과 인디언역 등을 거쳐 현재 무대감독을 맡고 있는 제임스 쿡씨(58)는 『이 극의 제작자인 탐 존스와 하베이 슈미트는 50년초 서로 시기를 달리해 한국전에 참전하면서 편지를 통해 대본과 음악을 함께 만들었기 때문에 전쟁에의 공포가 없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서 『젊은층과 노년층,미국인과 외국인,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내용과 제한된 상황에서의 치밀한 무대 구성이 장수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또 『일본에는 세차례나 가서 공연했는데 한국은 막상 한차례도 갈 기회를 갖지 못해 아쉽다』고 덧붙였다. 「팬태스틱스」 다음으로 현재 공연중인 작품 가운데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를 통틀어 장수의 기록을 갖고 있는 작품은 「캐츠」다.지난해 한국에서도 공연된 이 작품은 1982년의 첫공연 이래 13년동안 브로드웨이 50 스트리트의 윈터 가든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지금 그리고 영원히」라는 캐치프레이즈처럼 아직도 그 인기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9월29일 5천회 공연기념으로 맨해튼의 국민학생 1천명을 초청해 기념공연을 가진 「캐츠」는 지금까지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기록을 갖고 있는 슈버트 극장의 「코러스라인」(6천1백37회)과 에디슨 극장의 「오! 캘커타」(5천9백59회)의 기록을 깨는 것이 시간문제로 돼있다. ○일정한 대사없이 진행 뮤지컬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로버트 웨버의 대표적인 영국 뮤지컬인 「캐츠」는 시 「황무지」로 유명한 티 에스 엘리엇의 고양이에 대한 단편들을 모아 각색한 것이다.관람석을 포함한 무대 전체를 타이어 등이 쌓이고 지저분한 쓰레기가 널려 있는 폐차장으로 꾸민 무대장치에서 파격미가 느껴진다.일정한 대사도 없고 20여곡의 노래로만 진행된다. 제각기 독특한 의상을 차려 입은 의인화된 고양이들이 매력적인 춤과 노래로 재미 있거나 때로는 슬픈 과거를 회상하는 이 뮤지컬에는 하루종일 앉아 있기만 하는 늙은 굼비,신비의 힘이 있는 매캐비티,철도변에 사는 스킴블레생크,바지선을 타고 여행하는 난폭한 그롤티거,매력적인 그리자벨라 등 수많은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무대 벽면이 앞으로 내려와 거대한 배로 변하기도 하고 또 바퀴와 기관·연통 등을 제각기 갖고 나와 기차를 만들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무대변화가 극의 흥미를 더해준다. 특히 그리자벨라가 올라탄 타이어가 로켓처럼 불을 뿜으며 공중으로 치솟아 하늘에서 내려온 계단과 연결돼 그리자벨라가 하늘로 오르는 장면은 다양한 현대 무대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리자벨라 고양이로 분한 리즈 콜라웨이가 두차례 간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이 뮤지컬의 주제곡 「메모리」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주디 콜린스가 이 노래로 음반을 제작,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의 최장수 뮤지컬의 주제가는 공교롭게도 아름다운 회상을 주제로 하고 있다.그러나 연기와 노래와 춤이 한데 어우러진 총체적 공연예술의 메카 브로드웨이는 끊임없는 변신의 몸부림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 로이터 ’94영 포토그래퍼 상/본지이호정기자 수상

    【홍콩 로이터 특약】 세계 4대통신의 하나인 영국의 로이터통신사는 6일 한국의 서울신문 편집국 사진부 이호정 기자를 올해의 「영 포토그라퍼(YOUNG PHOTOGRAPHER)상」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이기자는 이번 콘테스트에 「피흘리는 민중의 지팡이」「무너지는 불탑」「성수대교 참사현장」등 사건현장 보도사진 5점을 출품하여 최우수 젊은 사진기자로 뽑혔다. 이 상은 종합일간지 사진기자중에 30세 미만의 젊은기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전년도에 가장 뛰어난 보도활동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다.이기자는 상패와 함께 1백여만원 상당의 사진취재장비와 서울∼방콕 왕복항공권 2장,그리고 4박5일간의 특급호텔숙식권을 부상으로 받게된다.
  • 화가 천경자/화려한 색조…꽃·뱀·여인집착(이세기의 인물탐구:68)

    ◎독창적 화풍… 한색깔 고르려 수십번씩 검토/91년 「미인도사건」뒤 잠적… 심한 우울증 앓아/묵화 능한 어머니 곁에서 그림 시작… 글솜씨도 뛰어나 천경자 「깊은 우물속에 깔린 신비한 보라색과도 같은 「한」과 「찬란한 절대 고독」의 이미지,꽃과 뱀과 여인과 화려한 파스텔조의 환상적인 색조라면 누구라도 쉽게 화가 천경자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화면은 날이 갈수록 청청하여 영혼과 빛과 눈부신 색채의 향연을 변함없이 변주하고 있다.그림 외에 글솜씨로도 유명한 그는 수필집 「한」의 경우 「한이 한없이 나간다」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였고 70년대 남태평양 풍물전을 비롯한 해외스케치전은 관람객이 줄을 짓는 이변을 낳았다.어쨌든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중에서 대중적인 인기스타가 아닌 이상 글과 그림으로 이처럼 폭넓게 회자된 인물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1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움직이는 미술관」이 전시한 그의 「미인도 모사품사건」이후 그는 한때 화단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당시 이 작품의 진위여부를 놓고 『내그림이 아니라』는 작가의 주장과 『작가의 그림이 틀림없다』는 미술계와의 팽팽한 대립속에서 작가를 믿지 못하는 세태에 심한 환멸을 느낀 나머지 그는 오랫동안 심적 타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대인관계 비사교적 그의 성품은 그가 좋아하는 미모사만큼이나 민감하다.작은 바람소리 하나에도 무심하지 않아 옳지 않은 것을 동조하거나 싫은 것을 적당히 수용하는 법이 없다.대인관계도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로서는 전혀 비사교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가리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그림도 그렇다.색깔을 쓸 때도 발색을 억제하는 반대색을 쓰기 위해 연보라·남보라·황토에서 녹청을 동원하고 그것이 이 그림에서 얼마만큼 확실한 효과를 나타내는가를 까다롭게 따진 다음 이를 선택한다.그러고 나서도 멀리서,가까이서 수십번씩 견주어보고 3∼4개월이 지나 썩 괜찮다는 결론이 나올 때 비로소 화폭 앞을 떠난다. 이른바 동양적인 정조를 바탕으로 하는 그의 작품에서의 조형적 특징은 「천경자풍의 인물을 전형화」하는 데 결정적 성공을 거둔 점이다.평론가 심항섭은 동양화의 인습에서 벗어나 섬세한 감각과 신선한 착상력을 지닌 그의 그림에 대해 『화가로서의 최종적인 꿈인 자기만의 화풍을 선명히 세웠고 색채선택과 배치에도 그만의 확고한 독창성을 성취하고 있다』고 단적으로 평한다.즉 「새로운 조형적 가치실현」과 「개별적 형식의 완결」이라는 어려운 등식을 동시에 갖추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초기에는 주로 뱀(사)의 무리에서 느낀 감흥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표현했고 특히 부산 피란시절에 발표한 서른다섯마리의 뒤엉킨 뱀의 「생태」는 풍경과 정물에 집착하던 화단에 커다란 충격의 논란을 던졌다.이후 초현실적인 시적 이미지들이 화면을 지배하면서 그는 자전적 요소를 띤 모티브로 아네모네·라일락·팬지·아스파라거스 같은 요요한 이향이 가득한 꽃무리 속에 화사하게 떠오른 여인의 희구를 그려내고 있다. 그의 운명은 그가 항상 예감한대로 줄기차게 쏟아져내리는 폭포수와 같진 않았다.세차게 흘러내리다가 어느 대목에선가 브레이크가 걸리듯 곤두박질치는 아픔과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마치 파란을 자초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따라서 한이 많고 고독하다고 하지만 그의 한은 그가 스스로 선택한 한이며 고독 또한 그러하다. 어릴 때는 연극배우를 꿈꾸기도 하고 노랑·파랑·분홍색등 밀랍냄새가 코를 찌르는 오사마(왕양)크레용과 미쓰보시수채화물감을 으깨고 주무르면서 묵화·서도에 능한 어머니 박운아여사 곁에서 그는 하루종일 그림그리기를 지루해 하지 않았다. ○여동생 죽음에 충격 광주농고 졸업후 군청에 다니던 부친(천성욱씨)은 딸이 의과대학에 가기를 원했으나 그의 심성과 감성을 이해한 어머니가 패물과 논을 팔아 마련해준 여비로 어렵게 도쿄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3년만에 돌아오자 집안은 몰락했고 그의 결혼실패에 이어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의 죽음,그 불운의 소용돌이에 말려 시련을 견디고 있을 때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는 불상사가 겹쳤다.언젠가 그는 「낙인」이란 수필에서 「나의 인간성에 배어 있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적요한 낙인은 바로 부친의 불행과 이 여동생의 죽음 때문에 박힌 슬픔의 표적」임을 밝힌 적이 있다. 화가의 일생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는 가정과 인간에의 정이 스민 화면에 「고통과 황홀감을 공존」시켜왔고 자녀가 모두 출가하고 평생의 반려이던 어머니마저 85년 타계후 가정도 혈육도 떨쳐버린 상황에서 그는 「꽃도 피고 가족도 많던 시절에는 생기찬 리듬감이 화면에 넘쳤으나」 이제는 대양에 뜬 섬처럼 오로지 홀로 남아 「화가」로 존재하는 자신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설령 찬란한 미래가 또 있다 하더라도 그는 「비오지 않은 가문 봄날,움트려고 파닥거리는 라일락나무 같은 과거에 더 깊은 애착과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자녀는 2남2녀. 모사품사건이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글은 쓰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빛과 색채의 순례자로서 그는 정밀(정밀)한 시적 정취와 아름다움을 넘어선 승화된 고독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9년전부터 살고 있는 압구정동 한양아파트의 모든 방은 그가 그린 그림만이 가득,그속에서 지난 4년간 예술원 회의에 나간 외에 올 11월1일부터 한달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화력 50년전과 80년이후 15년만의 개인전을 위한 작업에만 온통 매달려 있다.회고전 성격을 띤 이 전시에는 그가 직접 소장하고 있는 42년 선전 입선작들과 부산시절의 「생태」,최근작인 「우수의 티나」 「누가 울어」시리즈등 평생의 화업이 한눈에 펼쳐진다. 거의 하루종일 화폭 앞에 대좌한 채 이제로부터 몸속에 침잠한 예술적 기운을 한점 미련없이 출산시키는 순간이다.그 외엔 영화광이던 젊은 시절을 되살려 공포영화·공상영화를 보거나 겐자브로의 소설을 읽는다.여전히 걸어다니는 화폭처럼 화려한 옷차림을 즐기고 아침시간에 커피 한모금,지난해부터 술은 하지 않는다. ○화사한 옷차림 즐겨 그는 특유의 호남사투리로 아무리 괴롭고 슬픈 것을 말할 때도 웃고 또 별로 슬프지 않은 일도 그가 한을 담아 말하면 왠지 콧날이 시큰해지는 순수한 감동과 감상을 잃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그러나 나이에 따라 슬픔이나불행은 역시 세월의 금사망속에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버리고 관유온자한 자세로 자신에게 얼마나 더 충실할 수 있는가를 때때로 자문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의 삶은 그대로 예술에 집결하고 귀결하고 있으며 그의 그림들은 「서정적인 분위기」와 「서정시적인」 내용을 함축하면서 작품 하나하나가 「천경자사」라는 하나의 커다란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남과 다르다.그리고 지금 「고독으로 미채(미채)된 삼림속에 그가 꿈꾸는 예술의 전당을 짓기 위해」 화폭이라는 그만의 광산에서 그는 진짜 보석을 캐내고 있는 것이다. 사치하리만큼 눈부신 색채의 범람으로 그의 화면은 한층 탁마된 다이아몬드를 구사하고 어느때는 투명한 루비며 사파이어가 그림의 창안에서 언뜻언뜻 상서로운 광채를 발한다.인물의 눈이라든가 중요한 부분에 미점으로 사용하는 금분조차도 단순히 호사스러운 치장이 아닌 것이 세상사로부터 절연된 듯한 순화된 감정과 표정은 그 자체가 그대로 「극미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연보 ▲1924년 전남 고흥 출생 ▲1941년광주욱고녀 졸업 ▲1944년 도쿄녀미전졸업, 일본문전 무감사작가 소한천청·부산금성사사.재학중 일본문전·청금회전 입선,조전(선전)「조부상」(23회)「노부」(24회)연입선 ▲1946년 첫개인전(광주여고 강당) ▲1949년 서울개인전(동화백화점화랑) ▲1949∼52년 조선대 교수 ▲1952∼74년 홍익대 교수 ▲1953년 부산 개인전 ▲1954∼74년 홍대교수 ▲1955년 대한미협전서 「정」으로 대통령상 수상,백양회 창립멤버 ▲1960∼81년 국전 초대작가및 추천작가 심사위원 심사위부위원장 운영위원역임,국전 초대출품 ▲1963년 도쿄개인전(서촌화랑) ▲1965년 도쿄개인전(이토화랑) ▲1967년 말레이시아 초대전 ▲1969년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고에즈 연수,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사모아 타이티 첫스케치 여행,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1970년 남태평양 풍물전 ▲1973년 현대화랑 초대전 ▲1974년 아프리카 풍물전 ▲1977년 한국현대동양화 유럽순회전 ▲19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이후 예술원 회원전 출품 ▲1979년 인도 중남미 풍물전 ▲1980년 개인전(현대화랑) ▲1981년 하와이등 미주지역스케치 ▲1990∼94년 권옥연 변종화 윤중식과 4인전(이목화랑),멕시코여행 오월문예상(65년) 서울시문화상(71년) 3·1문화상(75년) 예술원상(79년) 은관문화훈장(83년) 수필집 「언덕위의 양옥집」「여인소묘」「유성이 가는곳」「한」「자유로운 여자」「쫑쫑」「캔맥주 한잔의 유희」「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자서전 「내 슬픈전설의 49페이지」,기행문 「천경자 남태평양에 가다」「아프리카 기행화문집」 등
  • 등소평 사망임박설 속/중지도자들 잇단 남부 순방/송평·교석 등

    ◎개방·경제개혁 격려 목적/조자양 실각후 첫 등장 【홍콩 연합】 등소평(90)의 사망 임박설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중국 지도층인사들이 잇따라 광동성 등 남부지역을 순방하고 있으며 이는 개방 및 경제개혁정책을 뒷받침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홍콩의 친중국계 일간지 문회보가 26일 보도했다. 정치국 전상무위원인 송평(77)은 구랍 30일부터 올 1월15일까지 심천 등 남부지역을 방문했던 양상곤 전주석의 뒤를 이어 최근 한달동안 광동성의 광주,주해,중산,샤오촹,샤오칭,불산,청원 등지를 둘러봤다. 또 전인대(의회)상무위원회 교석 위원장도 지난 19일부터 25일까지 상해 나들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국 소식통은 중국 지도층인사들이 설날을 앞두고 북경을 벗어나 타지역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민감한 사안으로 주목된다』면서 『고위 지도자들은 등이 구상한 경제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젊은 지도자들을 격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고위관리들이 전례없이 대거 남부 개방 특구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이제 등의 건강이 크게 악화돼과거처럼 이 지역 순방을 못하게 됐음을 반증해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등이 최근에 공식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설연휴동안의 상해 방문이었다. 【홍콩 연합】 피의 학살인 「89년 천안문사태의 여파로 실각한 조자양 전당총서기(75)가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90)의 사망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처음으로 광동성을 방문중이라고 홍콩의 명보가 2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조자양이 당국의 허가를 받고 광동성을 방문중이며 성도인 광주시에 도착한 후 시내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종화온천 요양원에 머물고 있으며 수일내로 경제특구인 해남성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신문 50돌 기념 「95 신년국제음악회」를 기다리며

    ◎실내악/바이올린/합창/다양한 음악 접할 귀한 기회 지난 94년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고통의 기억들을 우리들에게 남겨 주었다.그런데 그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따지고보면 모두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며 더 분명히 말한다면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속된 욕심으로부터 시작된 재난이 아니었나 한다. 그래서 말이지만 95년 새해를 맞는 시점에서 생각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는데 관심을 가짐으로써 마음의 여유를 얻고 이러한 정신적 여유를 바탕으로 세속적인 욕심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새해 벽두에 차원 높고 아름다운 고전 음악의 세계속에 마음을 묻고 한해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된다.특히 이번 무대는 한무대에서 다양한 음악의 세계를 섭렵할 수 있을뿐 아니라 고전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중적으로 널리알려져 있는 작품들을 연주함으로써 무언가 95년이 기분좋은 한해가 되리라는 기대감 마저 갖게 한다.현악 4중주와 바이올린 독주 그리고 합창단이 함께 꾸미는 무대는 우리가 흔히 접하기 어려운 무대인데 코다이 현악4중주단은 현악4중주의 명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항가리를 대표하는 실내악단으로서 이미 전세계적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4중주단인 만큼 실내악의 진수를 보여주리라 믿는다.이들은 이번 공연에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4중주와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를 연주하게 되는데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 고전의 향기는 오랫동안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 숨쉴 것이라 생각한다.바이올리니스트 이나스타샤 체보타레바는 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한 러시아의 오뎃사 출신으로 9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한 젊은 여류 연주가로서 세계 악단이 주목하고 있는 재원인 만큼 젊음의 열기가 듣는 이들을 감동시킬 것이라 생각되며 후반부를 장식하게될 불가리아의 프로브디브 오페라 합창단은 프로브디브 오페라극장의 전속합창단으로서 특히 오페라 합창의 전문 단체인만큼 오랜만에 오페라 합창의 진면모를 느껴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특히 불가리아는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 민족으로서 슬라브의 독특한 저음과 강렬한 음악적 힘을 가지고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1995년 새해는 무엇보다도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정신의 차원을 높이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것으로 생각되는 바로 이러한 첫 순간에 고전음악의 다양한 맛을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된것은 무언가 95년이 우리 모두에게 정신을 더 중요시 여기는 한 해로 다가 오리라는 강한 예감을 갖게 한다.아름다운 음악이 넘쳐 흐르는 가정·사회·국가로 변화하는데 오늘의 이 음악회가 이바지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95 신년국제음악회」 연주곡 해설/「종달새」… 종달새가 하늘 나는듯 가볍고 경쾌/사라사테의「카르멘 환상곡」현란한 기교“백미”/「포로들의 합창」,히브리 노예의 고국향한 향수 서울신문 창간 50주년을 기념하는 「95 신년국제음악회」(13일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는 음악적 전통이 깊은 동구권의 정상급 음악인과 음악단체들이 출연하는 본격적인 새해 첫 음악회로 한국 음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이 음악회에 대한 음악평론가 한상우씨의 기대와 연주곡 설명을 함께 싣는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 D장조 작품64의5 「종달새」 하이든은 일생동안에 현악4중주곡만도 83곡을 남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종달새」는 종달새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슈베르트의 피아노5중주 A장조 작품114 「송어」 피아노5중주 하면 흔히 현악4중주에다 피아노를 합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슈베르트의 피아노5중주 「송어」는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 베이스·피아노로 이루어져 흥미를 갖게 한다.그런데 이곡에 「송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슈베르트가 18 17년 봄에 작곡한 가곡 「송어」를 5중주의 4악장에 주제와 변주곡으로 넣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현악4중주 19번 C장조 K465 「불협화음」 모차르트는 23곡의 현악4중주를 남겼는데 대개 6곡씩 묶어 출판되었고 그중 19번은 「하이든 4중주곡」이란 이름으로 출판된 6곡의 마지막에 해당된다. 이 곡은 18번을 완성한 지 4일만에 작곡되어 17 85년1월14일에 하이든을 초대한 자리에서 초연되었는데 모차르트의 후기 4중주곡 10곡 가운데에서 서주부기 붙어 있는 곡은 이곡 한곡뿐이다. ◇타르티니의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타르티니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는데 그는 언제나 새로운 연주기법을 연구하던 차에 어느날 밤 꿈속에서 들려준 악마의 연주를 듣고는 꿈에서 깨어나 이 곡의 3악장에서 그 트릴을 사용함으로써 「악마의 트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사라사테의 「카르멘환상곡」작품 25 사라사테는 1844년 스페인 태생으로 10세때 마드리드의 궁전에서 연주할 만큼 소위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다.그후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당대를 풍미한 연주가로 파가니니에 버금가는 연주가로 인정받았고 많은 작곡가들은 그를 위해 작품을 쓰기도 했다. 그중에서 「카르멘환상곡」은 프랑스의 작곡가 비제가 작곡한 걸작 오페라 「카르멘」중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들을 바이올린의 유려한 기교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듣는 이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모차르트의 「이베 베룸 코르푸스」 K618 1791년 바덴에서 요양중이던 아내 콘스탄체를 돌보아주던 합창 지휘자 안톤 시톨을 위해 씌어진 이 곡은 불과 46마디의 짧은 합창곡이지만 종교적 깊이와 너무나도 경건한 음악적 여운이 흘러넘처 고금의 명곡으로 많이 연주되고 있다.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중에서 「집시의 합창」 일 트로바토레의 제2막 1장 처음 비스키아산중에서 집시들이 대장간의 철판을 두드리며 힘차게 부르는 노래로 「대장간의 합창」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곡이다.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중에서 「포로들의 합창」 베르디의 초기작품에 해당하는 나부코는 구약성서의 예레미야·열왕기하·다니엘서 등에 나타나는 나부코도노조르의 사적을 근거로 한 것인데 특히 3막2장 처음에서 히브리 포로들이 유프라데스강변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고국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합창은 ◇보로딘 오페라 「이고리공」중에서 포로베츠인의 춤과 합창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 중의 한사람인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리공」은 소위 국민주의 오페라를 대표하는 곡중의 하나. ◇차이코프스키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중에서 왈츠. 차이코프스키는 파리에서 「카르멘」을 보고는 감동한 나머지 자신도 오페라를 쓰려고 결심했는데 마침 가수이던 엘리자베타의 권유로 푸슈킨의 작품 「에프게니 오네긴」을 오페라로 작곡하게 된 것이다.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중에서 허밍 코러스. 일본을 무대로 하는 푸치니의 걸작 오페라 「나비부인」중 2막1장의 마지막 부분.스즈키와 아이는 어느덧 잠든 채 나비부인이 홀로 앉아 핑커턴을 생각하며 밖을 응시할 때 멀리서 들려오는 허밍으로 된 합창은 보는이로하여금 눈물을 적시게 한다.
  • “연말 대목 잡아라”/한·미·불영화 10편 흥행 대결

    ◎한/「젊은 남자」「마누라 죽이기」 출사표/미/「34번가의 기적」 가족영화로 승부/불/인간 원죄 묘사한 「나쁜피」로 도전 연말 극장가에 가벼운 오락영화에서부터 예술지상주의를 내세우는 「심각한」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잇따라 선보인다. 성탄절을 겨냥해 개봉을 서두르고 있는 작품은 모두 10여편.이 가운데 눈길을 끌만한 것으로는 오는 17일 동시에 개봉될 한국 영화「마누라 죽이기」「젊은 남자」를 비롯,할리우드영화「34번가의 기적」「덤 앤 더머」,프랑스영화 「나쁜 피」등이 꼽힌다. 강우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는 「만약 아내가 사라져준다면 난 자유…」라는 즐거운 공상에 빠진 한 공처가가 아내를 없애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지만 헛소동으로 끝나고 만다는 내용의 본격 코미디 영화다.단순한 에피소드를 지나치게 부풀려 사실감을 못살리고 있는게 흠이지만 부부간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는 따뜻한 작품이다.「나의 사랑,나의 신부」로 「부부 코믹영화」의 문을 연 박중훈과 최진실이 4년만에 다시 연기호흡을 맞췄다. 「젊은 남자」는 배창호 감독이 「천국의 계단」이후 3년만에 재기작으로 내놓은 영화다.배감독의 대표작인 「깊고 푸른 밤」이 「아메리칸 드림」에 사로잡혀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간 70,80년대 젊은이들의 아픔을 그렸다면 「젊은 남자」는 거품같은 야망으로 비틀거리는 요즘 젊은이들의 비극적인 꿈의 현장을 담고 있다.스타에의 환상을 쫓는 90년대 젊음의 자화상을 통해 경박해져만 가는 요즘 세대의 무모함에 경종을 울린다. 모처럼 크리스마스 극장가에 선보일 이 두편의 한국영화는 80,90년대 각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던 배창호·강우석 감독의 영상대결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17일 개봉될 「34번가의 기적」(감독 레스 메이필드)은 성탄절의 분위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훈훈한 가족영화다.어린이들의 영원한 동경의 대상인 산타 클로스의 존재에 대해 잠시나마 의문을 품었던 어린 소녀(마라 윌슨)가 인자한 이웃 백화점 산타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사랑과 믿음을 되찾고 가족의 참뜻를 깨달아간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1천대 1의 경쟁을 뚫고 배역을 따낸 마라 윌슨이 「미세스 다웃파이어」에 이어 다시 한번 앙징스런 연기를 보여준다.색소폰의 마술사 케니 지의 감미로은 선율이 동화적 분위기를 받쳐준다. 「덤 앤 더머」(감독 피터 패럴리)는 멍청이 2인조가 아름다운 여인을 찾기위해 쫓고쫓기는 대륙횡단 길에 나선다는 할리우드판 「영구와 맹구」이야기다.「마스크」의 짐 캐리와 「스피드」의 제프 다니엘의 기상천외한 익살연기가 폭소를 자아낸다.그들의 멍청한 표정 뒤에 숨겨진 한결같이 순수한 표정이 인생의 파토스를 느끼게 한다.17일 개봉. 「나쁜 피」(10일 개봉)는 「퐁네프의 연인들」의 레오 카락스 감독 작품.「베티 블루」의 장 자크 베넥스,「그랑 블루」의 뤽 베송 등과 함께 80년대 프랑스 누벨 이마주 운동을 대표하는 그는 이 영화에서도 선명한 색깔의 대비를 통해 현대인의 원죄의식과 정신적 방황을 묘사하고 있다.헬리혜성의 접근으로 질식할 것같이 무더운 파리의 잿빛도시를 배경으로 말없는 젊은 남녀의 혹독한 사랑이 펼쳐진다.알렉스(데니 라방)와 안나(줄리에트 비노시)라는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범죄영화적인 이야기 틀을 빌리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주인공 알렉스가 보여주는 복화술(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하기)과 마술이 환상적이고 시적인 느낌을 주는 상징성 강한 작품이다.
  • 올해 가장 많이 팔린책/「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서울시대 대형서점들 연간 베스트셀러 분석/「무궁화…」 4백만권 판매… 인기 급증/젊은 작가 대거 등장… 소설류 많이 팔려/「일본은 없다」·「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주목 지난 1년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은 김진명씨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이다. 새로운 감각으로 일본문화를 비판한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를 비롯해 최영미씨의 시집 「서른,잔치는 끝났다」,이인화씨의 역사추리소설 「영원한 제국」,유홍준 영남대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2권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 종로서적·을지서적·영풍문고등 서울의 대형서점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주까지 1년동안의 베스트셀러를 집계,28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남북한이 힘을 합쳐 일본을 쳐부순다는 내용의 「무궁화꽃이…」가 나이·직업에 상관없이 대단한 호응을 받아 출판사상 전례 없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가장 인기있는 책」으로 자리잡았다.「무궁화꽃이…」는 4백만권 가량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또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배울 것은없다」고 일본을 매섭게 비판한 「일본은 없다」는 70만부 정도가 팔리는 인기를 모았다.「일본은 없다」는 출간이후 「일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라는 논쟁을 사회에 불러일으켰고 「일본은 있다」(서현섭 지음)등 숱한 일본비평서를 만들어낸 계기가 됐다. 지난해 인문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장기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면서 「한국인의 레저 형태에 역사·문화 기행이라는 새 분야를 정착시켰다」고 평가받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은 올들어서도 꾸준히 인기를 유지했다.지난 7월 나온 2권도 전편의 인기에 힘입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 수위를 차지했으며,1∼2권의 인기가 함께 올라가는 보기드문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부문별로는 소설이 예년보다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이인화·공지영·신경숙씨등 뛰어난 젊은 작가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됐다.이와 함께 「서른,잔치는 끝났다」가 순수시집으로는 모처럼 많이 나가 주목을 받았다. 비소설 쪽에서는 전문작가들의 책보다 자기 분야에서 한몫을 하는 아마추어들이 쓴 책이 폭넓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전체 책 판매량은 하반기 들어 더욱 부진해 출판계는 예년에 없던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 유방암(최선록 건강칼럼:46)

    ◎멍울 만져지거나 피 나오면 즉각 정밀검사를/동물성지방 피하고 시금치 등 채소 많이 들도록 유방암은 절대로 불치의 병이 아니다.그 이유는 모든 암중에서 유방암 만큼 조기 발견이 쉬운 악성종양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에게 주로 발병되고 있는 유방암은 자궁암·위암에 이어 3번째로 많고 여성암 가운데 8%를 차지하고 있으며 해마다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연령별로 유방암은 40∼50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지만 요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젊은 여성들에게도 흔히 나타날 뿐 아니라 매년 5백∼6백여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한다. 유방암의 원인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최근 알려진 사실은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여성들에게 유방암 환자가 급증하고 있음이 발견됐다.또 어머니가 유방암을 앓으면 그 딸에게도 발병률이 높고 자매 모두가 유방암 환자이면 그 딸들은 정상인에 비해 5배 정도 높게 발생한다. 특히 3년 이상 모유로 아기를 키운 어머니는 유방암 발생률이 현저히 감소되고 55세 이상에서 폐경이 나타난여성은 45세 이전에 폐경이 나타난 여성보다 유방암 발생률이 2배 가량 높다. 유방암은 초기에 통증이 전혀 없고 젖멍울만 만져지는 것이 특징.멍울이가 약1㎝쯤 자라야 촉진이 가능하다.이때 유방주위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주변의 부드러운 피부와 경계가 불명확해지고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가볍게 누르면 피나 황색의 분비물이 나온다. 여성들은 가정에서 유방암을 쉽게 자가진단 내릴수 있다.가운데의 3개 손가락을 양쪽 유방위에 얹은 다음 위쪽에서 시계가 돌아가는 방향으로 한바퀴를 회전,딱딱한 멍울이가 만져지는가를 확인해 본다.꼭 만져볼 부위는 양쪽 어깨쪽과 겨드랑이 밑부분이다. 때로는 상체를 앞으로 숙여 유방의 외모를 관찰,좌우가 다르거나 오므라 들었는지를 살펴야 한다.마지막으로 유두에 피나 분비물이 나오는가를 확인한다.여기에서 한가지라도 이상이 발견되면 지체없이 종합병원에서 유방암의 정밀검진을 받아 보는 것이 안전하다. 유방내에 암조직이 확인되면 유방전체와 겨드랑이 밑 임파조직까지 완전히 도려내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암세포가 유방조직에만 국한돼 있으면 수술요법으로 1백% 가까이 왼치할 수 있다.또 환자에 따라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및 호르몬 요법을 보조요법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유방암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동물성 지방의 섭취를 피하며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어느정도 예방이 가능하다.또 유방암 예방에 좋은 식품으로는 우유를 비롯,귤·시금치·양배추·순무·상추·배추·케일·컬리플라워·브루셀스프라우트·브로콜리 등 잎이 푸른 채소를 들 수 있다.
  • 여권신장 부작용(연변 조선족 1백년:6)

    ◎여성 거의가 사회 참여… 시부모 모시기 기피 중국 조선족의 여성 활동은 눈부시다.사회적 정치적 활동과 아울러 경제적 면에서도 여성의 위치는 확고하다.1990년 통계에 의하면 중국 조선족 남녀의 연간 수입 비례는 1백대92.68로 나타난 것만 보아도 거의 남녀가 동위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학의 입장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와 위상의 변천을 생각할때 거의 한국과 유사하나 지정학적 이유로 인한 약간의 차이점이 발견된다.광복을 맞이하기까지는 유교의 엄숙한 부덕의 덕목을 지켜야 할 여필종부의 사회 의식이 자리한 것은 한국과 다를바 없다.그러나 광복후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남녀동등권이 사회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교육을 통해 여성 자각 의식을 고취시켰다.그렇지만 문제는 여성들의 자각 속도에 비해 남성들의 의식 변화는 그것을 따르지 못했다.그러므로 남녀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일종의 사회병리가 쌓여갔다. ○현모양처 사상 사라져 예컨대 여성의 사회 참여로 발생된 가정의 빈 공간을 채울 대역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 남성이 이 자리를 보완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러다가 문화대혁명이 발생했다.1966년부터 76년 사이의 문화대혁명 기간은 물리적으로 여성 권위 회복의 운동이 일어났던 때다.이 기간 동안 여성들은 가정도 우정도 혁명에 우선될수 없다는 사상으로 계몽되었다.바꾸어 말하면 혁명을 위해서는 이것들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문화대혁명의 10년간 지극히 가정적이라는 호평을 받아왔던 조선족 여성들은 상당한 변모를 하면서 억세어졌다.공자의 유교사상과 전통적 여성의 현모양처 사상이 정면으로 부정 당하면서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10년만에 붕괴되고,서서히 자유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것이 여성 권리에 대한 재고의 기간으로 간주된다.단순히 여성이 가정으로부터 사회로 진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신체적 생리적으로 남성과 다른 조건에 대한 사회적 보장을 요구하게끔 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운동이 90년대 들어서면서 확립된다. 그러면조선족 여성 문제와 관련되는 고부간의 갈등은 연변에서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연변에서 불리는 다음 민요 한수가 며느리의 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백두산보다 더 높은 시아버지, 고추 후추보다 더 매운 시어머니, 외나무 다리보다 더 어려운 시형, 배두잎보다 더 푸른 맏동서, 종콩알보다 더 발가진 시동생, 올빼미 눈보다 더 밝은 시누이 눈, 참대보다 더 곧은 남편…」 며느리의 위치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임을 이 민요는 보인다.마지막 보루인 남편마저 여기서는 「융통성 없는 인간」으로 비치고 있다.한국의 전통적 며느리와 진배없다.그러면 조선족 여성사에 표출된 고부간의 갈등은 어떤 것일까.이명숙·최복순 두 분의 논문 「고부 관계에 대한 초보적인 고찰」이 이 문제를 잘 해명하고 있다. 고부간의 관계란 준혈연 관계다.갈등이 생기면 모자나 모녀간에는 잘 풀어지지만 고부간에는 겉으로는 풀어질지언정 심리적으로는 앙금으로 남는다.그래서 요즘 미혼녀들 사이에 유행하는 속어가 있다.『동무의 집에 염소와 투레기가 있습니까?』하고 묻는다.만일 있다면 『다른 물건은 다 가져도 염소와 투레기는 못 가지겠다』는 말이다.염소는 시아버지를 말하고 투레기란 시어머니를 말한다.경제적으로 어쩔수 없이 아들에게 얹혀사는 노부부는 참고 견뎌야만 한다. ○「시부모 유무」 결혼조건 참는데도 한계가 있으므로 극에 달하면 정면으로 며느리에게 항거한다.「내가 있으면 네가 없다」는 식이다.이 말은 죽냐 사냐 결판을 내자는 뜻이다.재미있는 것은 현행법 규정이다.「너도 있고 나도 있어야지,그 누구도 집밖에 쫓겨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길이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가정에는 「총리」가 있다.며느리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머니가 총리였다.며느리가 들어오자 총리를 놓고 갈등이 심화된다.그러나 경제적 기반이 없는 시어머니는 총리를 쥐고 있기엔 불안하다.만일 며느리에게 양도하면 냉전은 사라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냉전이 지속된다.연변에는 이러한 문제로 가정이 불안한 상태가 전체의 반이나 된다. ○절반이상이 가정 불화며느리는 남편을 「우리」라고 호칭하고 시어머니를 「그」라고 호칭하면서도 「우리 어머니」라고는 부르지 않는다.이처럼 호칭 상으로도 시어머니는 소외를 당하고 있다.또 며느리를 맞기 전에는 무엇이나 어머니와 먼저 의논하더니 며느리가 들어오자 자기 마누라와 먼저 상의한 후에야 어머니에게 통고한다.이런 환경에서 남편의 중재적 역할은 매우 절실하다.사회주의 국가는 남녀 공히 노동자임을 자처하고 정치·사회·문화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 증식을 인정하지 않았다.그러므로 노부모는 경제적으로 자식에게 넘겨 줄 유산도 없고,노후를 자식에게 기댈수 밖에 없다.한편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시는 것도 단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이 되도록 호소하는 길 뿐이다. 사회 변화에 따르는 새로운 경제질서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핵가족의 확산이라는 반대급부를 초래했다.현재 핵가족의 수는 날로 확대해 가는 실정이다.1990년 통계에 따르면 도시에서는 핵가족이 68%이고,농촌에서는 66.28%임은 이러한 것을 단적으로 웅변하고 있다.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가정도 사실은 부모를 모신다는 효가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젊은 부부가 함께 뛰자니 집안을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가정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이 현재 안고 있는 사회 고민이 이곳 연변에서도 가속으로 추격해 오고 있음을 볼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 시인 미당 서정주(이세기의 인물탐구:61)

    ◎팔순에도 샘 솟는 시정… 문단의 거봉/새로운 언어­독특한 깊이로 감동의 운율빚어/어릴적 가난­방랑 벽이 창작욕이 밑거름으로/“내 숨결 그칠 때까지 시어 더듬고 또 더듬겠다” 1948년 선문사가 발행한 미당의 두번째 시집 「귀촉도」에서 김동리 발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나의 유일한 정신상의 재보로서 쌓아왔다. 그의 뇌락불기한 인격과 자유분방한 시혼은 그 처녀시집 「화사집」을 통하여 이미 세상에 그「비늘을 번득인」바 있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적어도 이 땅에서 시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늘날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이 혹성의 찬연한 광망과 위치에 등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평자들이 미당을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용되는 명평이다. 「뇌락불기」란 「마음이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남에게 구속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미당의 문학적 족적은 광활하고 높고 깊다. 그리고 훨훨 나는 그의 두루마기 차림처럼 시에 관한한 무장무애하고 무소불위하다. 지금은 문단의 거봉으로 우뚝 서 있지만 미당의 지난 세월은 가난과 슬픔과 방황과 방랑벽으로 그 인생의 절반이 혹독하게 얼룩져 있었다. 어릴 때는 당시를 배울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만14세 되던해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해서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적이 있고 고향의 고창고보에 편입했다가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으로 또 한번 퇴학을 당했다.다시 서울로 올라와 극예술연구회 연극배우노릇, 마포 도화동 빈민촌에 입주하여 넝마주이 행색으로 쓰레기를 줍기도 했고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교장이며 존경하는 스승인 석전 박한영을 만나 안암동 개운사에서 능엄경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릴때는 당시배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만주로 건너가 만주곡량주식회사 연길지점에서 경리과직원이 되는가 하면 김좌진장군과 이승만대통령의 전기집필,「옥루몽」등 옛소설 번역으로 생계를 잇다가 인촌 김성수 집안과의 인연으로 동아일보 사회부장 학예부장을 지내는 등 그의 인생역정은 파란이 깊고 다양하기만 했다. 이토록이나곡절이 심한 방만한 생활덕분에 한때는 자살을 기도하다 미수에 그치고 생명의 존엄을 체험하고 나서야 미당은 비로소 삶에 대한 의욕과 생명의 활기가 몸속에 용솟음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광주 무등산 자연속에서 「난생 처음 보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조우하게 되었고 이무렵 「무등을 보며」「학」「상리과원」같은 명품을 연달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의 시들은 끊일줄 모르는 시심과 계류와도 같은 운율의 감동을 자아내면서 마치 가을 한낮 거문고 소리처럼 청랑한 운기로 흥취와 운치를 자아내는 것이 일품이다. 그의 탁월한 시업은 과거로의 관념적 도피나 신비주의에 탐닉한 시절이 있었고 영원의 생명에 대한 명상으로 온자하고 정밀한 내면을 구축하면서 「육체적 인간의 본원적 충동을 순화시켜 어느 순간엔가 숭고한 정신적 표현의 극에 도달」한 것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최근 「시와 시학」지에서 시인들이 「교과서에 실리고 싶은 시」로 추천한 「무등을 보며」는 명편중의 명편으로 미당이 아직 38세이던 19 53년 「현대공론」에 발표한 것이다. 그때 이 시를 읽은 젊은 이들은 「구구절절 감명을 사로잡는 명구」라든지 「화살처럼 꽂히는 충격」으로 이를 극구 찬양해 마지 않았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저 눈부신 햇빛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여름 산같은/우리들이 타고난 살결/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청산이 그 무릎아래 지란을 기르듯/우리는 우리의 새끼들을 기를 수 밖에 없다…」 미당의 주옥같은 시들을 일일이 다 열거 할 수는 없다. 단지 그가 낳는 시마다 절륜의 절창으로 평가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평론가 유종호는 「창의성 있는 언어구사와 독특한 깊이와 지혜, 상당량의 시편이 그릇 큰 시인의 구비조건이라면 20세기 우리 시인 가운데서 이러한 조건을 가장 보기좋게 구비한 이로 미당」을 드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과연 언어를 부리는 장인적 기술에서나 직관과 상상의 능력에 있어서나 만인이 칭송하는 대가의 반열에 선 그는 한국적 릴리시즘의 탁월한 정형을 만들어냈고 안주를 모르는 시정신으로 한국의 운치와 위엄을 어느 시에서나 감동적으로 증명해 왔다. 해인사 체류시절 미당을 사로잡은 소쩍새 울음소리는 그에게 불치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음향으로 다가와 저 유명한 「귀촉도」와 「국화 옆에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국민학교 시절에 벌써 일본여선생을 흠모하는가 하면 불혹의 나이때도 때때로 여난을 겪게 되어 「나 바람나지 말라고/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는/삼천 사발의 냉숫물」은 미당을 엿보게 하는 낭만시인의 일면이기도 하다. ○속과 선을 아는 성품 만년의 그는 인생을 관조하는 허허로운 마음과 가족을 거느린 가부장적 자세를 빌리고 있으나 「속도 알고 선도 아는 복합적인 성격」과 대체로 괴팍과 까다로움이 승한 편이다. 그 한 예로 70년대 초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초청으로 영국시인 스티븐 스펜더가 한국에 왔을때 그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미당은 취중이었는지 한국의 정상다운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팡이를 휘둘러 「TS 엘리엇이 아니면 돌아가라」고 외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인 고은이 한때 주란과 폭소버릇으로 위아래없이 오만방자하게 굴자 처음에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어지로운 헛웃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가족회의끝에 그를 공덕동에서 추방하고 「고은출입금지령」을 내린 일도 있다. 그의 풍류는 나무와 돌과 침향(심향)과 글씨 그림외에도 난취미가 으뜸이다. 지난 70년 25년간 살아온 공덕동을 떠나 관악산밑 사당동으로 거처를 옮기고는 택호를 쑥 봉자 마늘 산자를 따서 봉산산방으로 붙여놓고 그는 한동안 나무심기와 난수집에 주력했다. 시암 배길기와의 광동보세며 삼중당 일력에 자필 시를 써주고 받은 제주한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류시인 김양식과의 중국춘란에 얽힌 대화는 난향같은 일화다. 당시만도 그가 지닌 서른분쯤의 난들은 「겨우 여중 2학년 정도의 잎만 여남은게 솟아올린채 꽃필날이 아득하기만 한데」 난화부재의 겨울날 김양식이 불쑥 전화를 걸어 「대만에서 구해온 중국춘란이 아주 썩좋게 한송이 피었다」고 자랑삼았던 모양이다.이때 미당의 대답이 걸작이다. 「이웃하나가 명주바지를 입으면 여러 가호가 두루 따뜻한거라는데 나도 그 푼수니 염려말고 잘 만끽하시라」고 했다. 그러자 김양식은 가족들과 휴가를 가게되니 「그 사이 며칠만 돌보아주시며 즐겨보시는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미당은 그제서야 눈이 번쩍 띄게 반가워했고 비록 빌렸을 망정 책상위에 난을 놓고 보고 또 보고 난향을 맡으며 「시의 감동이란 것도 내 생애에서 항용 이런 식으로 일어났다. 내가 소유하는 것에서보다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간절해지는 감동으로 시를 쓴 것이 많았다」고 한 산문에 적고있다. ○커피보다는 맥주 즐겨 그의 정열과 의욕은 식을 줄을 몰라 한때는 영어단어를 하루에 수십개씩 외는가 하면 70년 초반부터는 세계를 두루 일주하며 끝없는 여행길에 오르더니 최근엔 세계의 산봉우리를 높이순으로 1천6백여개나 줄줄이 기억해내는 독특한 취미를 보이고 있다. 미당은 올해 팔순이지만 아직도 그 시작은 그의 방창앞에 심은 소나무처럼 청청한 천뢰의 소리를 잃지 않는 기상이다.요즘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커피보다는 맥주」를 권하고 제자들이 마련한 시낭독회나 남을 축하하는 자리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지난 9일에는 송파문화원에서 열린 국선문학회에 나와 「국선(국선)」이란 모임이름을 지어주고 후배들의 회장추대를 극구 사양하여 주변을 송구스럽게 했었다. 이제 자기자신을 홀연히 내쳐버리는 무집착의 상태에서 그의 최근의 시들은 글맛이 한층 무르익어「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지」다. 산다는 것이야말로 사변의 연속이었던 시대를 거치면서 일찍이 김동리가 지적했듯이 미당은 지금도 「내 숨결이 아주 내 육신을 떠날 때까지는 더듬어보고 또 더듬어」 새로운 시에 대한 분방한 광망을 접어두거나 조금도 늦추려들지 않는다. ▷연보◁ ▲1915년 5월18일 전북고창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출생.서광한씨와 김정현여사의 2남2녀중 장남 ▲1929년 부안 줄포보통학교 졸업.서울 중앙고보 입학 ▲1931년 전북 고창고보2학년 편입,권고자퇴,서울 상경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입학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 「벽」당선 ▲1936년 시전문지 「시인부릭」편집인겸 발행인 ▲1941년 처녀시집 「화사집」(남만서고)1백부 한정판 출간 ▲19 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및 학예부장,문교부산하 예술과 초대과장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 ▲1952년 광주 조선대학 부교수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회원 ▲1955년 미국아세아재단 자유문학상 ▲1960년 동국대 부교수 ▲1961년 제1회 5.16문예상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5년 서울 신문회관서 회갑연 ▲1976년 미당시를 주제로한 시화전 서울서 제주까지 6개월간 전시 ▲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1979년 동국대 정년퇴임,대우교수로 대학원 강의 ▲1980년 동아일보 문화대상 개인상부문 본상 「귀촉도」「서정주시선」「신라초」「동천」「질마재 신화」「안 잊히는 일들」「늙은 떠돌이의 시」「산시」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전5권) 「서정주 시선집」(전2권)등 시 8백여수와 「서쪽으로 가는 달처럼」등 산문집과 여행기가 있음.
  • 패션명함/젊은층 PR용으로 인기

    ◎다양한 그림·독특한 문구… 개성표현 눈길/삐삐번호·생일표시는 기본… 하루주문 50여통 『미워도 다시 한번…』『그리울때 눌러주세요』『나는 나…』『저를 꼭 찾아주세요』­최근 대학생과 중고등학생,신세대 직장인 사이에 다양한 칼라 그림을 배경으로 이같은 글을 적은 「패션명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PC의 증가와 함께 컴퓨터를 배우고 활용하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주부와 대학생들이 색지에다 직접 명함을 만드는 것이 한때 유행했으나 이제는 패션명함 전문업체까지 등장한 것. 지난 봄부터 대학가와 서울종로 2가등에서 5∼20분만에 완성되는 즉석 패션명함 제작·판매를 해오고 있는 「피 알 라인」의 남강우씨는 『상대에게 자신을 분명히 알리고자 하는 신세대의 특성 때문인지 하루 주문량이 50통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말한다. 「패션명함」의 특색은 유명화가의 그림에서부터 아트그래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 그림을 고를 수있고 독특한 감각을 살린 문구를 넣는다는 점. 대학생들의 경우 「가을남자…○○○,○대○○과 93학번」「참인간 ○○○」등의 철학적 문구를 쓰기도 하고 여학생의 경우「볼수록 편안한 여자 ○○○」등의 장난스런 표현을 고르기도 한다.공통되는 특징은 신세대의 필수품이 돼버린 삐삐번호를 꼭 넣는다는 점이다.주말의 주요 고객은 중·고등학생들.미팅용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BIRTH 71 02 05」처럼 자기 생일을 꼭 적는다.이들에게는 생일이 가장 중요한 행사인 만큼 먼저 말하기 쑥스러운 생일을 명함에 넣어 친구들에게 준다는 설명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꽃꽂이학원 강사 등 부드러운 이미지를 전해줘야 하는 남녀 직장인들도 주로 찾는다.직업이 다른 동창생들에게 틀에 박힌 회사명함을 건네기가 어색해서 「패션명함」을 만든다는 사람들도 많다.불완전한 얼굴 모양의 그래픽 그림이 편안하고 자유스러운 느낌이 들어 명함배경 그림으로 선택했다는 김영진씨(회사원·23)는 『아직 직장이 없는 친구들에겐 장난기 있고 재미있는 패션명함을 주는 것이 편하다』고 말한다. 장식문화가 발달한 일본의 경우 기업체 중역이나 관공서 공무원들까지 자기 지역의 특성이나 직업특징을 담는 패션명함에 활용하고 있다. 한 명함 제조업체 관계자는『일본에서는 배경그림 메뉴를 선택하고 자신의 주소 이름을 키보드로 두드리면 즉석에서 명함이 나오는 「명함 자판기」까지 등장했다』며 자신을 인상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인 패션명함 사업이 활기를 띨것이라고 내다봤다.
  • 귀순 강명도·조명철씨 기자회견 일문일답

    ◎북군부 오진우·오극렬파 암투 치열/김정일,85년부터 외교 제외 모든 권한 행사/전쟁 대비,마카오·스위스·일등에 외자 예치 27일 귀순 기자회견을 가진 강명도씨와 조명철씨는 『북한 김정일의 정치 체제에 회의를 느껴 귀순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귀순동기와 강성산총리에게 알렸는지에 대해 말해 달라. ▲(강씨)89년 인민무력부 실장으로 있을때 군부고위계층의 권력다툼과정에서 18호 관리소에 2년간 수용된 적이 있었다.이때 죄없는 3만여명의 죄수들이 구타당하며 비참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김정일의 정치체제에 불만을 품게 됐다. 부모친척중에 김정일의 측근이 많다.그래서 이들이 석방을 제의해 김의 지시로 석방된뒤 강성산의 도움으로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으로 발령받고 작년 12월 강재수출관계로 중국으로 가게됐다. 그러나 강재를 못 팔아 자금회수가 어려워 1주일로 예정했던 체류기간이 한달로 길어졌다.북한에서는 내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김정일에게 보고돼 체포명령이 떨어졌고 이 사실을 친구를 통해 알게돼 탈출을 결심했다.강성산이나 가족들은 탈출사실을 모른다. ­한달간 머문 행적은. ▲(강씨)중국에서는 겨울이 지나야 강재값이 오르므로 팔지 않고 있었다.돈을 돌리기 위해 심양과 북경등지를 왕래했다.김일성 사후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했다.오늘의 귀순기자회견 내용이 보도되면 강성산에 대한 대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군부내 권력다툼이 심각하다는데. ▲(강씨)북한 군부내의 권력다툼은 오진우·오극렬·이봉원파등 3개파로 갈라진다.그 밑으로 1군단과 2군단 출신파로 갈려 있다. 오진우파와 오극렬파가 갈려진 배경은 이렇다.87년에 오진우가 김정일과 함께 만찬에 참석했다가 대형 벤츠 승용차를 직접 몰고 돌아오다 가로수를 받아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오진우는 거의 죽을 상태가 돼 후임을 오극렬이 대행하게 됐다.오는 이후 총참모부에 공군사령부 출신을 측근으로 기용하는등 파벌을 형성하고 자기가 무력부장이 다 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오진우가 러시아에서 치료를 받고 1년만에 회복돼 복귀해 이봉원한테서 이런얘기를 듣고 분개했다.이봉원은 오극렬과 사이가 안좋았다. 원래 오진우는 혁명1세대이고 오극렬은 만경대학원 출신의 2세대인데 오진우는 오극렬을 키우다시피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김일성에게 교체를 요구해 결국 오극렬은 물러났고 그의 사람도 다 나가게 됐다. ­김정일의 후배로서 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정무원 간부들이 성향은.(강씨에게)김달현의 근황은.강성산이 88년 좌천이후 재발탁된 배경은.강성산과 김정일의 관계는. ▲(조씨)나는 북한에서 풍파를 격은 사람이 아니다.고스란히 자라서 순탄한 길을 걸었다.남산고등중학교를 다녔는데 이 학교는 고등반 인민반 유치원반으로 나눠져 있고 장차관급이상 자녀들만 따로 교육하는 곳이다.이 곳에서나는 김정일의 동생 김평일,영일과 함께 공부했다. 대학졸업후 김일성대학 교원이 돼 상류생활을 하면서 행복에 빠져 자기만을 위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그러면서 김정일체제와 북한 사회를 다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김정일은 정치적 경제적인 업적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남쪽의 소식도 들을 기회가 많았다.나의 행동이 북조선 통치자들에게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김평일과 영일은 공부도 잘했다.김평일은 사람을 많이 끌었다.학교에서는 김정일을 치켜 세우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결단코 제거하자는 운동이 미사여구로 미화됐고 정당성으로도 연결됐다.이런일도 있었다.학생들은 김평일과 영일과는 대면하지 못하게 돼 있으나 어느날 축구를 하고 선생들이 평일 영일과 식당에 가 식사를 같이 했다.서로 불문에 부치기로 했으나 어느 선생이 노트를 두고 나와 탄로가 나 많은 선생들이 물러났다. 정무원 각료들은 파벌은 없다.그러나 이들은 개방을 원하고 있다.정무원의 모든 부장들은 개방을 지향하고 있다. ▲(강씨)김달현은 나의 친척이다.할아버지는 강선욱인데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아버지와 6촌형제이며 전부주석 강양욱과 친형제이다.김달현은 강반석의 오빠 강진석의 손녀 사위이다. 김달현은 대외분야를 많이 맡아 92년 12월 강성산이 총리가 되면서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에서 같이 승진했다.그런데 김은 강성산이 심장쇼크로 입원하면서 처음으로 총리를 대행하면서 경제를 책임지게 됐다.그때 군수공장의 전기를 30% 삭감해 탄광등지로 보냈는데 그 때문에 군수생산계획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김일성이 받게됐다.김일성은 대노해 『정신 있는 사람인가』 하면서 질책을 했고 김달현은 사상검토를 받고 도청도 당했다.김달현은 강성산과 때로 맞서기도 했다.강성산이 내놓는 방안을 놓고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기도 했던 것이다.결국 김은 작년 12월 함남에 지도원으로 내려갔다. 강성산은 경제문제등이 꼬여 집에 들어가지도 못해 당뇨병이 심해졌다. 그래서 김일성이 쉬도록 권고해 88년에 함북으로 휴양을 갔다.91년에 다시 총리가 되었는데 재기는 상상도 못했다.강성산은 어려서부터 김일성이 키운 사람이다.강은 중국 출신이고 아버지 강위련은 빨치산출신으로 김일성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강의 삼촌 강위룡은 아직 살아 있다.강위련은 기관총 분대장을 했는데 강이 죽자 김일성이 몹시 울었다고 한다.강은 혁명학원에서 공부하고 이근모 연형묵등과 함께 체코에서 유학도 해 체계적으로 키워져 김일성이 등용했다.강은 김정일과도 가깝다.김정일과 사이가 나쁜 김성애의 동생 김성갑의 비리를 들춰 낸 것이 계기가 됐다. ­북한의 핵 상황은. ▲(강씨)김정일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핵이라 생각하고 있다.인민생활과 경제가 파탄상태인데도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핵이라고 여기고 있다.북한에는 군수공장이 민간공장보다 더 많다.핵이 개발됨으로써 군수공장의 투자를 민간으로 돌릴 수 있다는 논리이다.동구권국가가 허물어지면서 공격받지 않으려면 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지금 북한은 5개 정도의 핵폭탄생산을 완료했다.핵을 실어나를 로켓 생산은 실험단계이고 94년까지 완전 생산할 것이다.최소한 10개정도 확보한 다음에는 보유사실을 공개해 남북 대미 관계에 이용하려 하고 있다. 핵폭탄은 이미 개발이 완료됐고 다만 갯수에 관한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이 이야기는 영변 핵단지에 있는 고위 간부가 아들 결혼식 때문에 나와 술과 담배 식료품등을 취급하던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들은 것이다. ­북한내 지식인이나 고위층주변의 김정일에 대한 평판은 어떠한가. ▲(강씨)북한의 지식인들과 일부 고위층 사이에는 김정일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 이때문에 식량난과 경제난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김정일 체제는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이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평소 김정일은 지나치게 즉흥적인 정치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일부 원로들에 대해서까지 너무 편견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이러한 내막을 알고 있는 지식인이나 고위층들은 그에 대한 신뢰감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조씨)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한 북한 이반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북한사회를 빠져 나올 경우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뿐 80년대 중반부터 노골화된 김정일체제를 인정하거나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 체제는 얼마나 갈 것 같은가. ▲(강씨)20년전부터 정치를 해와 권력기반은 튼튼해 수명이 길 것으로 본다.75년부터는 정권기반을 닦았으며 85년부터는 김정일이 외교권 행사를 제외하고는 총지휘했다. 당정의 지시를 받아 모든 일을 처리한다는 유일적 지도체제에서 당정은 사실상 김정일을 말하는 것이다. 또 기본권력수뇌부인 당정 조직 지도부가 모두 김일성대학 출신의 2세대인만큼 권력기반은 확고하다.총비서,주석을 다 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청진시의 화학석유공장이 91년부터 지금까지 3년동안 가동이 중단됐고 작년 9월 한달동안 김책제철소가 가동되지 못하는등 경제의 70%정도가 파탄지경이어서 김정일 체제 수명은 주민 불만고조로 짧아질 수도 있다.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총정치국장을 겸하고 있는가. ▲정치국과 참모부간의 갈등이 많아 오진우가 겸임하고 있다. ­94년을 잘 넘긴다는 뜻은 무엇이고 핵수출 가능성은. ▲지난해 김정일은 북미회담과 IAEA핵사찰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진의,핵사찰에 대한 중국의 입장등을 파악하느라 집에도 가지못하고 청사에서 자면서 북미회담을 지휘했다. 이때문에 김정일은 당시 내년(94)만 잘 넘기면 북미회담및 남북회담에서 유리하다고했다.핵수출여부는 잘 모르겠다. ­외화보유고는 얼마나 되나. ▲대성은행이 전쟁에 대비해 마카오,스위스,일본은행등에 외화유치를 하고 있다. ­북한의 사로청과 한총련과의 관계는. ▲사로청 산하 조선학생위원회는 사로청의 외곽지도를 받고있으나 사실상 대남사업부인 통일전선사업부 6과에서 지도하고 있다.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그럴싸한 이론으로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왜 남조선으로 오는 귀순자들이 있는지 학생들은 심각히 생각해봐야한다. 또 서강대 박홍총장의 얘기는 약과다.대남정보부에서는 공장의 노동자들보다는 흥분하기 쉽고 혈기가 있는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주체사상을 전파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김정일의 성격,지식,지도력,건강,가족관계는.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이다.특히 측근들을 질책할 때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성질의 기복이 매우 심하다는 뜻의 「패났다」는 소릴 들을 정도다. 피아노를 전문가이상으로 치는등 예술에 매우 조예가 깊다.매우 건강한편이다. 또 초대소(별장)에서 동생 경희가 어머니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면 동생을 나무라다가도 따라서 우는등 눈물도 많다. 김정일이 김평일등 곁가지등과의 식사및 사진촬영등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피해야한다는등 자신의 입지확보에 장애가 되는 이복형제들의 제거에 신경을 쓰는등 졸렬하다. 김정일은 또 평소 잘 웃지 않는다.83년 할아버지(강양욱 부주석)가 죽었을 때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왔으나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92년 11월 식품을 담당하는 경리부 시찰을 왔을 때는 신제품 음식을 보고는 『잘 됐다』는 의사표시로 미소를 지은 것이 고작일 정도로 거의 웃지않는 편이다. 김정일의 방탕한 사생활은 대남정탐본부인 통일전선사업부 이동호 제1부부장이 김정일이 초대소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78년 문수초대소로 초대,이때부터 기쁨조에 관심을 보였다. 또 외교부 산하에도 기쁨조를 두고 있으나 정·군을 장악하기 시작한 85년부터는 업무때문에 기쁨조를 축소시켜 현재는 각 도별로 3개씩 모두 72명의 기쁨조가 있다.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을 제일 신임하며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호위총국장 이을설등 항일 빨치산 세대인 이른바 「혁명1세대」는 대부분 존경한다. 가족관계는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이들은 55호 관저에 있다. 두번째 처는 무용수출신의 고영희씨(40)이며 고씨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1명씩을 각각 두고 있다. 자식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정남(23·미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배우인 송혜림과의 사이에서 났으며 70년대 당시 결혼한 송씨를 차지하기위해 송씨의 남편을 프랑스의 유네스코 대표로 보냈다. 김군은 그러나 김정일 뒤를 이를 후계계승자도 아니고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며 식모등과 함께 문수구역에 거주하고 있다. 김군을 93년 9월 고려호텔에서 만났을 때 김군이 여자랑 노는등 타락한 생활을 해 호텔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남한에 대한 정보는 어떤 방법으로 입수했는가. ▲(조씨)남산고등중학교 시절에는 남한 신문을 볼 수 있었고 아버지가 건설부부장으로 일할 때 장관급 이상 고위직에게 보급되는 국제정세,남조선정세,과학기술정세등에 관한 참고통신을 아버지를 통해 볼 수 있었다.이 통신은 논평없이 있는 그대로 사실만 기록돼 있다.또 지식인들 사이에는 이같은 정보가 비밀히 나돌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사망으로 집단 통곡하는 현상은 어떻게 생각하나. ▲(조씨)북한의 주체사상은 공산주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현실에 맞게 적용했다고 주민들은 세뇌당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주민들은 주체사상이 대중과 민중을 위한 이론으로 알고 있어 이를 만든 김일성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또 주민들이 그토록 슬퍼했던 것은 앞으로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했다. ◎“장인 강총리 숙청될것” 괴로운 표정/“북뉴스 접촉기회” 내외신기자 2백명 몰려/귀순자 기자회견장 이모저모 27일 귀순한 강명도씨와 조명철씨의 기자회견이 열린 프레스센터 20층 회견장에는 두 사람이 북한고위인사의 친인척이어서 폐쇄적인 북한 내부의 고급 뉴스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내외신기자 2백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였다. 특히 일본의 교토통신과 유럽의 로이터통신등 외신기자가 보도진의 절반을 넘었으며 국내 기자들보다 앞서 질문공세를 펼침으로써 최근 북한 내부 정세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강씨등은 시종 진지하고 또렷한 말투로 취재진의 질문에 성의있게 답변했으며 종래 귀순자들과는 달리 고위층 내부의 비밀스런 활동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 이날 회견에서 강씨는 여유있는 태도와 달변에 가까운 말솜씨로 북한 내부사정을 조리있게 설명.반면에 조씨는 구체적인 답변보다는 학자풍의 원칙론적인 대답으로 일관해 대조적. ○…특히 강씨의 경우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지난 87년 음주교통사고를 낸 상황을 설명하면서 오의 대형벤츠 승용차 번호인 216­5555를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도 해 기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이날 강씨는 3시간여동안의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나의 귀순과 기자회견으로 단기간내에는 강성산총리의 신변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조만간 숙청등 그 대가를 치르고 상당히 곤경에 빠질 것』이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기자회견도중 땀을 훔치는 등 다소 힘든 모습을 보인 조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동료들은 북한의 모순된 체제를 내부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달아났다고 비난할 것』이라면서 『다만 우리들의 귀순동기가 북한사회에 알려져 북한사회를 바로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끝을 맺었다. □인적사항 ▷강명도◁ ▲나이·생년월일:36세,58.12.4생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1동7반 ▲직책: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 ▲학·경력 ­70.8∼76.9 평양외국어학원 불어과 졸업 ­76.10∼79.9 평양외국어대학 불어과졸업 ­79.9∼82.7 중앙사로청 과외교양지도국 외사과 지도원 ­82.7∼85.10 조선인민경비대원,평양시당 39호실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7.6∼92.2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보위전문연구실장 *외국인 무단접촉으로 90.3∼92.2 평남 북창군 「18호관리소」수용 ­92.3∼ 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대외명칭 「릉라888무역회사)산하 「릉영윤전합영회사」부사장 ▷조명철◁ ▲나이·생년월일:35세,59.4.2생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봉수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당상1동 8반 아파트 20층1호 ▲직책: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92.8부터 중국 북경언어학원·천진시 「남개」대학 유학 ▲학·경력 ­71.9∼77.8 남산고등중학교 졸 ­77.9∼83.8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 학부자동조정학과 졸업 ­83.9∼87.10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졸업 *기업관리 현대화 전공,준박사학위 취득 ­87.10∼92.7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경제수학·기업관리 현대화 강의 ­92.8∼93.7 중국 유학,북경 언어학원 중국어 연수 ­93.9∼ 중국 천진시 남개대학관리학부 연수 *경영합분야의 정책결정론 과정
  • 이스탄불/처녀의 탑(아랍서 지중해까지:8)

    ◎바다위 돌탑… 안개에 싸여 “섬뜩”/아테네때 조망대로 건립… 콘스탄티누스대제의 딸이 뱀에 물려죽은 전설 간직 이스탄불의 서안에 있는 돌마바체궁전 앞에서 그 탑을 처음 보았을 때 마음이 이상하게 섬뜩했다.탑은 이스탄불의 동안인 위스퀴다르지역의 바다 한가운데 희뿌연 안개를 휘감고 솟아 있었다. 궁전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의 설명에 의하면 터키말로 「KizKulesi·처녀의 탑」으로 불리는 그 탑은 본래 아테네의 알키비아데스에 의해 살라케해안의 조망대로 세워졌으나 1857년이후 지금까지는 등대로 이용되어왔다고 한다.하지만 그 설명은 내 마음을 스친 섬뜩한 신비감과는 무관한 듯했다. 그뒤 탑은 두번다시 내 앞에 자태를 드러내지 않았다.마치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춘 듯. 우리가 탁심거리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이 도시에 와서 무기같은 것이 내 속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껴요.저것이 눈앞에 보이는 것인가 하고 보노라면,그 너머에서 또다른 환영이 어른거려요.시공의 음영속으로 마음이 휙휙 감기는 기분이랄까」 내 얘기는 일행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사실 내 얘기는 주변분위기와 아주 동떨어진 것이었다. ○1백40년간 등대로 터키의 젊은 남녀들은 튀김닭이나 감자칩을 씹으며 콜라컵에 꽂힌 스트로를 빨면서 미국팝송에 맞추어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창밖으로 붉은 색의 이층버스와 노란색의 택시들이 줄지어 지나다녔고,어느 빌딩의 외벽에 설치된 실물모양의 대형넥타이는 이제 이스탄불이 더이상 코란을 정신적 지주로 삼지 않는다는 전시같았다(물론 지금도 이슬람은 여러 민족의 피가 뒤섞인 터키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동질성이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연합군으로부터 자주권을 챙취한 뒤 서구화에 박차를 가했다.그는 이슬람계파에게 재갈을 물린 반면 라틴알파벳의 표기를 의무화했고,여성들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했다. 케말이 사망한 지 56년이 지난 오늘 대부분의 터키국민들은 그가 회교정통파들에게 맞서 자본주의경제이념을 받아들임으로써 터키의 경제사정이 다소나마 나아졌다고 믿고 있었다. 「돈이 조금 더 많아지면 그만큼 생활이나아지는 것이다」 대낮에도 탁심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그러나 정작 상점안에는 주인들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레신호텔의 수납일을 보는 타신씨에 의하면 최근들어 이스탄불을 찾는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어 불경기라고 했다.쿠르드족의 폭탄테러로 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 때문이다. 로터리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젊은이중 한 사람에게 테이프가게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주고 나서 양품점의 상호가 찍힌 카드를 내밀었다.필요하면 연락해달라고 사뭇 신사답게 돌아선 그가,일행들이 터키의 민속음악테이프를 고르는 꽤 긴 시간 상점앞에 서 있었다. 탁심거리를 메운 인파중에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시골청년이라고 한다.말쑥하게 차려입은 그들은 두리번거리며 관광객을 찾고 있었다.상점에 손님을 끌어다주고 받는 약간의 돈이 그들의 벌이였다. 이 거리에서 고도 이스탄불의 자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협궤를 오가는 백년 나이의 전차뿐이었다. 그런데카데시로 불리는 전찻길주변으로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어느 샛길에서 「처녀의 탑」이 돌연 우리 앞에 나타났다. ○탁심가 인파 가득 저녁식사후 영화칼럼을 쓰는 L씨의 제의로 터키영화를 보기로 했다.영화관을 찾는 일은 마치 미로를 더듬는거나 다름없었다.길을 묻고 또 물어 골목 깊숙이 파묻혀 있는 영화관에 찾아가보기를 서너차례,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영화관에서는 「필라델피아」 「피아노」 「쉰들러 리스트」같은 미국영화 일색이었다.그중에 아무거나 한 편을 보아도 좋으련만 L씨는 한사코 터키영화여야 한다고 우겼다. 길도 꼬불꼬불,L씨의 막무가내의 고집까지도 가세해 선자리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깊숙한 미로 한복판… 언제부턴가 영화간판들,불이 환하게 밝혀진 텅빈 로비,행인들이 주고받는 이방의 언어,어둠속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고양이들이 실제이면서 환영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생시가 아니라 꿈속 같다.나의 몽롱한 의식속으로 한 남자가 푸른 물길 저편에서 노란 노를 저어오고 있었다.그는 자주빛 소파에 앉은 채로 노를저어왔다.나는 그 괴상한 포스터 앞에서 한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내 의식은 그가 노를 저어오는 푸른 물빛으로 물들었다. 블루,블루,여기는 어디일까.그로부터 얼마 뒤였다.우리가 여러번 지나친 골목 한가운데서 짙은 블루 색조의 영화포스터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Kiz Kulesiasi klari(처녀의 탑으로)」 농염한 키스신을 클로즈업시킨 그 영화의 제목이었다. 갈라타다리를 건너거나 해안을 지나칠 때마다 줄곧 찾아도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듯 다시는 나타나지 않던 탑. 그럴 법했다.그것은 미로 깊숙한 데서 길을 잃어버릴 때만 나타나는 전설이었다. 콘스탄틴대제에게는 몹시 사랑하는 딸이 하나 있었다.왕은 그 딸이 뱀에게 물려 죽게 된다는 얘길 듣고 딸을 탑으로 피신시켰다.왕은 그 탑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뱀이 접근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그러나 뭍에서 가져간 과일바구니 속에 숨어 있던 뱀이 물어 공주는 목숨을 잃었다. 오스만시대에 나무로 재건축된 이 탑은 화재로 타버린 뒤 아메드3세때 돌로 다시 복구되었다. 영화관안은 물이 가득 찬 수조를 연상시켰다.커튼도,의자도,바닥도 모두 청색이었다.아들의 부축을 받고 머리 흰 노인이 천천히,아주 천천히 푸른 통로 사이로 걸어왔다.관객은 열 사람 남짓했다. 청색커튼이 미끄러지듯 양쪽으로 갈라지며 하얀 스크린이 나타났다.바깥세계와 전혀 다른 시간이 열린 것이다.40대의 남자가 거룻배를 타고 등대로 가고 있다.바다에는 비바람이 불어 파도가 뱃전을 때린다.남자는 오래된 탑의 모형을 소중하게 들고 있다.사공이 남자를 등대에 내려주고 뭍으로 돌아간다.남자는 등대꼭대기에 있는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오래전부터 비어 있은 듯 그 방에 있는 모든 것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다.녹이 슨 철침대,침대옆 벽에 걸려 있는 등대지기의 제복·모자,침대아래 놓여 있는 신발·벽거울·책상과 걸상… 모든 것이 등대지기가 살아 있을 때 그대로다. 남자는 모형을 책상위에 내려놓고 서랍을 열어본다.오래전 날짜의 소인이 찍힌 엽서 한장과 일기장. 남자가 일기장을 펼치자 내레이션이 깔린다(터키말이므로 뜻을 알 수 없다.그러나짐작컨대 그의 딸에 관한 얘기인듯).남자는 일기장을 반쯤 읽다 말고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본다.거울에 나타난 얼굴은 그가 아니라 오래전에 사망한 등대지기다.두려움에 사로잡힌 채로 남자는 등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등대지기의 환영을 계속 뒤쫓는다.환영을 쫓는 사이 남자는 환생한 등대지기로 바뀐다. ○오스만때 재건축 그러자 그의 발길은 저절로 탑의 구석에 있는 하나의 방으로 이끌려간다.그 방의 문에는 녹슨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자물쇠를 부수고 남자는 안으로 들어간다.그 방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기미가 역력하다.푸른 시트가 덮여 있는 커다란 침대,촛농이 흐른 두개의 촛대,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그림.나신의 처녀가 횃불을 높이 쳐들고 어두운 바다를 비추고 있는데,나신의 남자가 등대를 향해 기를 쓰고 헤엄쳐가고 있다. 뭍에서는 등대지기의 딸이 어머니 몰래 집을 나와 거룻배를 타고 등대로 간다.그녀는 등대로 올라서자 횃불을 켜들고 바다를 비춘다.마치 남자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남자는 바다를 헤엄쳐 등대에 이르러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다.처녀는 이전에 그래왔듯이 촛대에 불을 붙인다. 딸과 아버지의 정사. 등대지기의 제복을 입고 남자는 집(등대지기집)으로 돌아간다.그의 아내가 남편의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키다가 분통을 터뜨린다.집을 나가서 그동안 무얼 하다가 이제서야 돌아오느냐고.아내는 분을 참지 못해 뜨거운 물 한바가지를 그의 국부에다 끼얹는다. 그후에도 두 사람은 등대에서 만나 정사를 계속한다.어느날 딸에게 생긴 남자 때문에 둘은 심하게 다투던중 촛불을 쓰러뜨려 방이 불에 탄다. 등대는 그후부터 어둠에 잠기고 다시는 불을 밝히지 않는 등대가 된다. 청색커튼이 열릴 때처럼 그렇게 천천히 일마즈 귀니감독의 이름 위로 닫혔다.
  • 오두산 전망대에 실향민 1만 몰려

    ◎휴일 빗속에 혈육상봉 날짜 손꼽아/“남북 정상회담 꼭 열어 아픔 덜어주길”/북녘땅 가리키며 눈시울 붉혀 김일성의 사망으로 한반도 정세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10일 경기도 파주군 오두산 통일전망대에는 북녘땅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려는 실향민 등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데다 짙은 안개로 북측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이곳을 찾은 1만여명의 관람객들은 분단의 현실을 몸으로 느끼며 통일에의 염원을 달래고 있었다. 관람객들가운데에는 실향민들은 물론이고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 등 가족단위 관람객들도 많았다. 이들은 2·3층 전망대에서 폭 3㎞정도의 임진강 너머 짙은 안개로 가려져 있는 북녘땅을 쳐다보며 김일성의 사망에 따른 앞으로의 남북관계전망 및 이산가족문제등을 서로 나누고 있었다. 또 일부 관람객들은 준비해온 손망원경으로 북녘땅을 관측하는가 하면 2∼3곳의 북측 확성기에서 나오는 대남방송을 듣느라 손을 귀에 가까이 대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낮12시쯤 2층 전망대에서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송원순(74·인천구 남구 학익1동)·임이순(68·여)부부는 개성직할시가 있는 북녘땅 관산반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고향 평양에서 9살때 월남했다는 권세정씨(57·여·서울 성동구 용답동)도 『어릴 때 평양시내 거리 곳곳에 걸린 김일성 얼굴사진을 보면 무조건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치곤 했다』면서 『주체사상을 고집하며 외부와의 단절을 고수해온 김주석이 사망한 만큼 북한도 이제는 개방화 정책으로 주민들의 생활을 좀더 나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준비해온 망원경으로 북측을 바라봤다.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에도 여느때의 1천5백여명보다 5백여명이 많은 2천여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에서 새벽차로 통일전망대까지 왔다는 심우규할아버지(82·서울 은평구 녹번동)는 『고향인 강원도 통천에 어머니를 남겨놓고 전쟁통에 피난온뒤 지금까지 망향의 한을 안고 살아왔다』며 『김일성이가 죽었다니 어머니께 불효했다는 죄책감이 솟구쳐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같아 분통함을 가눌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일성의 사망소식에 한평생을 고향을 그리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이곳을 찾았다는 이조원씨(36·상업·경기도 화성군 태안읍)는 『김일성이 몇년만 빨리 죽었으면 어머니가 그렇게 그리던 고향을 한번은 가볼 수 있었지 않았겠느냐』며 『김일성사망이 남북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 YS/IS/“돌파력대관록” 예측불허 한판승부(남북 정상회담)

    ◎남북정상의 스타일과 회담전망/밝은심정 가진 낙관론자/YS/숱한 정치 역정… 술수 능란/IS/강력한 카리스마적 리더쉽은 “공통분모” YS(김영삼대통령)와 IS(김일성북한주석)의 만남은 우리 민족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일대 분수령이다. 지나간 역사는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지도자의 한순간 판단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수가 허다했다. 온 민족의 앞날을 어깨에 걸머지고 다음달 25일 평양에서 만나는 YS와 IS는 어떤 인물들인가.그들이 각기 유명인사기는 하지만 처음으로 만나는 새로운 「조합」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두사람이 자라온 배경과 특성을 짚어 보면 다소의 궁금증은 풀릴수 있을 것 같다. YS와 IS의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정치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카리스마적이라고 평가될 정도다.그 카리스마를 YS가 민주주의에 적합하게 발휘하고 있는 반면 IS는 50년 가까이 독재정권을 유지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자기에게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혜택을 주고 반대할 때는 정치적으로 거세시키는 보스기질이 강하다는 점도 비슷하다. 정치9단으로서 두사람은 뛰어난 순발력과 판단력을 공유하고 있다.핵심에 들어가는 능력과 순간선택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것이 일반의 평가다.YS와 IS는 「사건」을 만들어내는데도 일가견이 있다.이번에 남북한 정상회담을 극적으로 성사시킨 것도 그 「사건 생산력」의 일단을 보여주는 사례다. 두사람은 모두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났다.김일성의 부친은 한의사인 김형직이며 모친은 기독교의 집사였던 강만석이었다.김대통령이 기독교 장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IS는 그러나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에 입문하면서 기독교집안의 전통을 저버렸다. 두사람은 스포츠를 좋아하고 멋진 용모를 가졌다는 점에서도 닮았다.건강에 대한 노력도 모두 남다르다.다만 YS가 조깅등 스스로의 노력으로 건강을 가꾸는 반면 IS는 보약,좋은 음식 심지어 처녀의 피를 수혈받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외부의 도움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YS와 IS는 공통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다. 전체적 분위기에 있어 YS는 밝은 인상이다.30여년동안 야당지도자로서 탄압을 받았지만 항상 긍정적이고 미래를 낙관한다.상당히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아 서울대를 졸업했고 25살의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는등 순탄한 초년을 보낸 것이 그를 밝게 만든 것 같다. 이에 비해 IS는 음험한 인상을 풍긴다.카터전미국대통령처럼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지적이고 쾌활해 보일지 모르나 근본적으로는 음모형이다.오랜 세월 북한의 전제군주 자리를 유지하면서 숱한 술수를 체험적으로 습득해 왔다.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험난한 빨치산활동을 했고 중학중퇴라는 학력이 그의 심성을 어둡게 했을 수도 있다. YS와 IS의 역사적 만남은 그들의 특성 가운데 어느쪽이 우세하게 나타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기본적으로 YS는 정권을 잡기까지의 성향이 그랬듯이 IS와 만나서도 공격적으로 나올 것임에 틀림없다.실무진이 짜놓은 의제나 합의를 무시하고 민족통일의 거보를 진전시키기 위한 실질적 합의를 IS에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남북정상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보는 예상이 상당수 있는 것은 YS의 이러한 순수성이 IS의 노회한 복선에 걸려 이용만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탓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두사람은 모두 정치달인이다.역사적 사건을 이루어내는데도 주역들이었다.따라서 정상회담을 빈손으로 끝내지 않으리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설령 IS가 YS를 이용하려 해도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IS의 관록보다는 YS의 상대적 패기가 돋보일 가능성이 높다.게다가 국제적 지원도,역사의 흐름도 YS편이다.서로가 서로를 의심해온 남북한 관계의 기존 틀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려는 YS의 정면돌파가 성공하는 장면을 그려본다.
  • 6·25 44돌… 학도병 참전 용사들의 회고 특별대담

    6·25때 홍안의 미소년으로 전장을 누볐던 학도병들은 몇차례 강산이 바뀌는 세월속에서 이제 이순을 넘긴 노년의 옛전사로 변했다.하지만 이들의 가슴속에는 동족상잔의 아픔이 지금도 어제일처럼 살아있다.포연의 전장에서 불퇴전의 용기로 살아남은 유성덕 서울대광고교장(63)과 정년탁대한학도의용군회 총본부 전회장(63)의 대담을 통해 그날을 되새기고 오늘날 젊은이들이 가져야할 자세등을 되짚어본다. ◎“펜대신 총으로…” 5만여명 구국전선에/조국사수 일념에 사격훈련만 받고 전투/곳곳서 맹활약… 포항선 71명 장렬한 산화/“자유만끽” 요즘 젊은이들,기성세대의 체험 곱씹어 보아야 ▲유교장=사실 저는 의식적으로 6·25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하지만 또 한시도 기억에서 떨쳐버리지 못하는게 바로 6·25지요.중학6년(18세)때 학도병으로 자원해 나갔다가 온 몸을 크게 다쳐(왼쪽 손가락 4개와 오른 손가락 2개,양쪽 발가락절단,발뒤꿈치 골수염) 지금도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하는 불편한 상태입니다.하지만 해방이후 북쪽의공산당이 싫어 평양에서 단신으로 내려와 학도의용병으로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긴끝에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서 교육자로 평생을 지내고 있으니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6·25발발 직후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할 당시를 생각하면 우리 남쪽은 정말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지요.북한군에 밀려 대구와 부산만 겨우 남아 있었으니까요.피란지인 부산에서 중학교 영어 실력이지만 미군부대에서 일하다 학도의용군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50년 8월 초쯤으로 기억됩니다.어린 나이였지만 「펜대신 총을 들어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자」고 모두들 나서는 분위기였습니다.전투에 나가 더이상의 북한의 공세를 막아야한다는 생각에 미군부대에 보고도 않고 곧바로 의용병모집 장소로 달려갔습니다.함께 지원한 2백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경주에서 3일동안 사격훈련을 받고 안강전투에 참가했지요.갑자기 모집한 학도병이고 보니 복장도 교복차림에 군복,미군작업복등 각양각색이었어요.우리가 배속된 부대가 김석원준장(작고)이 이끄는 수도사단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당시 학도병들은 일정지역에 모아 부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모이는대로 그때 그때 전투지역으로 보냈지요.그만큼 병력은 부족하고 전황은 다급했다는 이야기지요.정회장도 학도병에 자원할 당시 중학생이셨지요. ▲정전회장=저는 중3때 광주지역에서 학도병으로 참가했어요.사실 호남지역에는 6·25이전에 이미 빨치산등 좌익세력이 적지않았어요.학교에도 좌익에 물든 사람이 꽤 있었던걸로 기억합니다.학생은 물론 선생까지 좌우로 갈라져 있었어요.어린 눈에 좌익분자들이 사람을 백주에 죽이는것을 보고 까무러쳤습니다.좌익학생들의 연대파업등을 수없이 보았습니다.그래서 전쟁이 발발하고 학도병을 모집한다고 하니까 공산당의 폐해를 피부로 경험한 학생들이 너나없이 몰려나갔지요.4일동안 간단한 사격훈련등을 받고 12사단에서 배속돼 주로 태백산과 노령산 일대에서 전투를 했었죠.훈련받을 때 총이 모자라 인민군의 딱총도 함께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어릴때 공산당의 잔학상을 보아왔던 때문인지 사람이 죽는다는걸 별로 무섭게 느끼지도 않았던것 같아요.안강전투는 대단했다면서요. ▲유교장=지금생각해도 정말 대단했습니다.우리로서는 더이상 밀리면 부산·대구까지 내주어야 하니까 몸으로라도 끝까지 사수해야하는 마지노선이었어요.죽거나 부상당해 후송되는 학생들 말고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습니다.당시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학도의용병의 사기는 하늘 높은 줄 몰랐지요.학도병들의 용기는 현역병을 훨씬 능가했습니다.살아남겠다는 생각없이 그야말로 물불을 가라지 않고 싸웠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을 겁니다.지금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나 싶어요.형산강을 피로 물들이고 일주일여 사투를 벌이니까 북한군이 물러서기 시작하더군요.이후 포항탈환작전에 참가,시가전을 벌였고 고성,함흥등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습니다.포항 시가전에 참가했을때 어느 중학교에는 인민군과 우리 군과 학도병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기도 했습니다.결국 그들을 포항에서 물리친 것이지요.북진이 계속되고 김일성이 다급해지니까 중공군에 도움을 요청,이른바 중공군의인해전술이 시작돼 우리는 다시 남으로 밀리게 됐지요. ▲정전회장=교장선생님도 지적하셨지만 당시 학생들의 전의는 대단했습니다.군대 안가려고 일부러 손가락까지 자르던 일부 징집대상 젊은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끓는 울분을 토로했던 기억이 납니다.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언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한마디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지요.죽음을 초월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런일도 있었어요.태백산자락 어느 전투에서 북한군과 밀고 밀리는 전투를 벌였어요.어느 지점을 며칠만에 지나는데 태극기로 자신의 얼굴을 덮고 반듯이 누운 한 젊은이를 발견했어요.죽은 줄알고 다다가 보니 목숨이 붙어있더군요.전투중에 실종된 학도병이었습니다.이 친구는 부상을 당해 낙오가 되고 기력이 떨어져 움직일 수 없게되자 가지고 있던 총을 인민군이 사용할 수 없도록 완전히 분해해 버리고 태극기로 얼굴을 가리고 죽음을 기다린 것이지요. ▲유교장=당시 학병들의 참전은 아군의 전투력증강에 상당한 보탬이 된것으로 압니다.정회장은학병모임일도 보신걸로 알고 있는데요. ▲정전회장=대한 학도의용군회 회장을 여러해 맡았습니다.학도의용군은 50년 6월 전쟁발발때부터 51년 4월 이승만대통령이 복교령을 내리기 직전까지 전쟁에 참여했던 학생들로 중학생과 대학생들로 구성됐었습니다.50년 6월28일에 피란가던 서울시내 각대학 학도호국단 간부 2백여명이 수원에서 합동비상학도대를 조직한 것이 시발이었습니다.이후 각 군소재지 학교에서까지 이들이 결성돼 눈부신 활약을 벌였어요.군번도 없고 계급도 없이 말입니다.5만여명 정도가 참전했고 7천여명이 전사했습니다.당시 정규군병력이 15만에도 못미치는 상황이었으니 규모면에서도 대단한 것이지요.그중에서도 중학생이 가장 많았습니다.1·4후퇴때는 북한에서 2천여명의 학생들이 넘어와 참전했었고 부산지역의 학생 7백여명은 유엔군에 편입돼 일본에서 훈련을 받은뒤 다시 돌아와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었죠.가장 비참했던 전투는 포항전투로 1기로 참전했던 3사단 학도의용군 71명 전원이 이름없는 고지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역사적으로 학생들의 애국심이 이처럼 높았던 나라는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외에는 없다고 외국전문가들도 이야기합디다. ▲유교장=학병들의 정신은 지금도 면면이 내려온다고 생각됩니다. ▲정전회장=그렇습니다.지금도 국립묘지에 가보면 6·25당시 어린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학도의용군들의 묘역이 있습니다.지금도 당시 같이 전투에 참가했던 동료들을 만나면 그때의 이야기들을 하곤 합니다.당시 장성들을 만나도 학도병들의 애국심과 용기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제가 보기에 학생운동의 맥은 일제시대의 광주학생운동과 해방직후 반탁반공운동,4·19의거,그리고 6·25때의 바로 이 학도의용군으로 이어지지않았나 생각합니다.역사속에 면면이 흐르고 있는 피끓는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당시 절박했던 상황이나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선배들의 정신을 너무 모르는 것같아 안타깝습니다.세계적인 변화속에서 반공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고요. ▲유교장=독사에게 물려본 사람만이 독사가 무서운 줄 알듯 전쟁을 겪은 사람만이 전쟁의 고통과 공포를 알 수 있지요.자유역시 마찬가집니다.자유를 빼앗겨본 사람만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습니다.요즘 젊은이들은 민주화 민주화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만 진정 자유가 박탈된 상태,전쟁이 주는 공포는 체험해 보지 못했습니다.기성세대의 뼈아픈 체험을 한번쯤은 곱씹어 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기성세대를 무조건 이해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가슴에 담고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자신들의 포부를 펴나가라는 것이지요.일제와 6·25를 겪으며 고난의 역정을 걸어온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부인의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열어나가는 좌표로 인식돼야합니다. 학생들이 사회의 모든 일에대해 지나치게 간여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정치는 정치인에게 국방은 군에 맡기고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주길 바랍니다.또 국민역시 각성해야 할 부분이 적지않다고 봅니다.지난 현충일 연휴때 나들이 인파로 주요도로가 모두 만원을 이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날의 어려움을 모두 잊지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전회장=지금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의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들의 정세에 맞춰 겉모습만을 바꾼 것뿐입니다.그런데도 학생들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폭력시위를 벌이는 것을 보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나름대로 애국심을 가진 행동이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북한과 김일성을 찬양하는 학생운동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시대에 맞게 어른들과 선배들의 충고에도 귀기울일줄 알아야죠.통일에 대한 문제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고루 반영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44년전의 상처 되새기며/살아남은 한 다신 없어야/이문구(기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에 화가여생이란 말이 있다.법에 저촉되어 재앙을 입은 집의 자손이란 뜻이라고 한다.이제 말 자체는 역사소설 같은 데서나 쓰임직한 말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의 뜻까지 함께 은퇴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6·25와 더불어 하루아침에 쑥밭이 된 좌익 집안의 자식으로 어렵게 살아온 전쟁 피해자이자 전형적인 화가여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필자와 비슷한 환경으로 정서적인 폐허에서 젊은 날의 방황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더욱이 그 환경의 불리함을 무릅쓰고 권위주의 군사문화에 작가적인 저항으로 일관하여 마침내 문민정부 출현에 나름껏 일조를 한 줄로 여기는 사람이라면,오늘 다시 맞는 6·25에 대한 회포 또한 남다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6·25의 상처는 44년전의 신음소리를 아직도 이어오는 보훈병원을 비롯하여 휴전선과 판문점과 국립묘지와 산야에 널려있는 전적비며 엊그저께 문을 연 전쟁기념관에 이르기까지 가시적인 것만 해도 이루 다 줘섬길 수가 없이 허다한 터다.그러나 그 무엇보다도응어리가 깊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 즉 전쟁에 희생된 집안의 결손가족,이산가족들의 사무친 여한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전형은 누구인가.가슴에 서린 채 못다한 만단설화를「그때 겪은 얘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넘을 것」이라는 한 마디로 줄이면서 체념으로 입을 다무는 사람들이다.아는 병도 쇠면 백약이 무효인데 하물며 보이지 않는 상처를 반세기 가까이나 가슴에 끓여온 그들의 여한일 것이다. 그들의 피맺힌 여한의 대상은 물론 전범자다.그리고 그 전범자에 대한 여한에 있어서 보훈가주과 화가여생 사이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터다.이는 필자가 자기나름에 유추하여 모개흥정식으로 일매지어 하는 말이 아니다.6·25야말로 남북간 공동의 패전이자 민족 전체의 패배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경위가 엄연히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6·25의 재현을 기대하는 것이나 아닌가 싶게 혐의쩍은 사람들링 사회 일각에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오늘날의 정부를 「미제에 의한 예속성과 매판성을 갖는 식민지의 대리정권」운운하는 이른바 주사파의 존재는,화가여생의 악조건 속에서 권위주의 군사문화와 맞서는 동안에 스스로 보이지 않는 상처를 수도 없이 멋내었던 필자로서는 일말의 모욕감을 넘어 차라리 헙헙한 심정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전범자가 사료 조절이나 다름없는 식량 배급표로 주민의 생존권을 근저당하고 「쌀밥과 고깃국과 기와집」이란 신기루로 혹세무민하여 「이조」보다도 퇴보적인 「김조」를 꾸며 인주로 군림하고 세습하는 것이 어떻게 「주체의 위업」이며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것인지 실로 불가사의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불가사의한 것은 아무리 북한의 대남방송으로 주체사상에 대한 과외공부를 해왔다고 해도 걸핏하면 민중·민족·민주·진보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이 자식은 아비의 존호를 대원솔로 올리고 아비는 세자로 책봉한 자식의 권위 안보를 위해 원솔란 작호를 더하여,모든 것을 부자지간에 겸지우겸하는 근세적 전제군주 체제에 대하여 상식적인 비판은 커녕 자못 우러르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렇다면 5·16이래 군사문화에 맞서 민주화·문민화를 부르짖다가 희생된 사람들은 무엇이란 말인가.남한의 군사문화는 저항의 대상 북한의 군사문화는 추앙의 대상이란 말인가.남한의 국민은 혁명과 피가 아쉬운 「민중·민족」이고 「당원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식의 계급사회 북한의 주민은 이미 혁명을 통해 「김조」의 신민이 되었으니 혁명을 혁명하여 배급표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까닭이 없다는 것인가.북한의 회담꾼이 6·25의 본질을 거듭 일깨워 준 「서울 불바다」협박이 핵문제에 맞추어 다시 포장한 군사문화의 기본 강령임을 생각하면,남한에서 자기도 모르게 「어버이 부자」의 「효자동이 충성동이」로 「김씨조선」의 식민이 되어 「책으로 쓰면 열권도 넘을」여한의 재생산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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