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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대야소 정국] 당선자 살펴보니

    17대 국회는 30,40대의 ‘젊은 피’가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386 의사당’으로 탈바꿈한다.여성 의원이 2배 이상 늘고,석사 이상의 ‘전문가’ 의원들도 대폭 증가한다. 반면 당선자 평균 재산이 증가했음에도 불구,16대에는 단 한명도 없던 채무자가 8명이나 되고 20억원 이상의 자산가는 2배 이상 늘어난 45명이다.국회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 셈이다. ●386 여의도 주류로 부상 당선자의 평균 연령은 51.0세.당선자의 40.5%(121명)가 50대로 가장 많았으며 ▲40대 106명▲60대 이상 49명▲30대 23명 등이었다.60대 이상 당선자는 16대에 비해 50명이나 줄어들었다. 30·40대 당선자의 약진이 두드러졌다.16대에서 30%에도 못 미쳤던 이들은 이번 총선에서는 43.1%를 차지하며 국회의 연소화를 주도했다.민주화 운동시대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이들이 주도하는 17대 국회는 보다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과 전문직도 ‘상한가’ 16대에서 16명에 불과했던 여성 의원은 39명으로 급증했다.5명이었던 지역구 여성의원도 10명으로 두배 늘었다.이는 대부분의 정당들이 비례대표의 50%를 여성에게 배정한 데 힘입은 결과다.지역구의 여성 당선율도 남성의 21.0%에 육박하는 15.2%를 기록해 여성의 목소리가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토대가 마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체 273명의 의원 가운데 67명에 불과했던 석사 이상 의원도 118명으로 크게 늘어났다.17대 국회에서는 보다 전문적으로 의정활동을 펼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빈익빈 부익부’ 심화 당선자들 사이의 빈부차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당선자 평균 재산신고액은 21억 6591만원을 기록,16억 1700여만원이었던 16대 수준을 훌쩍 넘겼다.100억원 이상의 ‘갑부’는 최고액인 2567억 8321만원을 신고한 정몽준 당선자를 포함,모두 5명이다. 정 당선자를 제외하면 당선자 평균 재산은 13억700여만원으로 3분의1 넘게 뚝 떨어진다.20억∼100억원의 자산가도 40여명이나 나왔다.16대 때 20억원 이상 재산가 숫자는 22명이었다. 반면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은 ‘빚쟁이 의원’도 무려 8명이나 됐다.특히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박홍수 당선자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현애자 당선자는 각각 2억 402만원,1억 6396만원의 빚을 안고 있다고 신고했다. 당선자들의 지난 5년간의 재산세와 소득세,종합토지세 등 납세액은 평균 1억 584만원이었다.정몽준 당선자가 62억 7350만원을 내면서 가장 많은 납세실적을 기록했다. 여성 39명을 뺀 당선자 260명 가운데 24.2%인 63명이 병역을 마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16대 때의 24.1%와 비슷한 수치다.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당선자 가운데 상당수가 국가보안법이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양심수’ 출신이어서 병역이 면제된 점도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전과 기록을 가진 당선자는 21.1%였다.민노당 비례대표 2번인 단병호 당선자는 노동·시국사건 등에 얽혀 4건의 전과기록을 보유,가장 많은 ‘별’을 갖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
  • [아테네올림픽 여자축구 예선] 봐라, 만리장성 넘는다

    지난해 한국 여자축구가 월드컵에 진출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2003년 6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당시 한국은 3·4위전에서 일본을 1-0으로 꺾고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비록 ‘꿈의 무대’에서는 강호 브라질(0-3) 프랑스(0-1) 노르웨이(1-7)에 연패,8강에 오르지 못했지만 한국 여자축구의 대약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한국 여자축구는 ‘방콕의 기적’을 뒤로 한 채,‘히로시마의 기적’을 일구기 위해 18일 아테네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괌과의 경기를 시작으로 다시 한번 날개를 활짝 편다. ●아테네행,그 험난한 여정 아시아 최종예선에는 모두 11개 나라가 참가,3개조로 나뉘어 리그를 벌인 뒤 각조 1위 3개 팀과 2위팀 중 최상위 1개팀(와일드카드)이 4강전을 벌이고,결승에 오르는 국가에 본선행 티켓 2장이 주어진다. 지난 1월 조추첨 결과,한국은 아시아의 맹주 중국과 미얀마 괌 등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각조 1위는 북한(A조) 중국 일본(C조)이 각각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전력상 한국은 A조의 타이완과 와일드카드를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조에 속한 중국과의 경기가 ‘특히’ 중요하다.조 1위 또는 와일드카드를 확보한다면 대진에 따라 중국과 준결승에서 다시 충돌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아테네행 티켓을 손에 넣기 위해선 만리장성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하는 것. 솔직히 중국과의 역대 전적은 처참하다.1990년 10월 아시안게임에서 0-8로 대패한 것을 시작으로 13번을 겨뤄 모두 졌다.10골 차 패배를 당한 적도 있다.2000년 이후 그나마 격차가 줄고 있는 추세. 그러나 최추경 한국 감독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중국에 열세인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열세가 패배로 직결되지는 않는다.축구공은 둥글다.”고 잘라 말했다. ●세대교체로 만리장성 넘는다 지난달 8일부터 시작된 2차 강화훈련부터 모든 초점은 22·24일 예선전과 준결승에서 잇따라 맞붙을 중국에 맞춰졌다.최 감독은 여자대표팀을 맡자마자 중국을 뛰어넘기 위해 스피드와 체력,좋은 체격을 지닌 선수들을 선발했고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지난 14일 최종 예선이 열리는 일본 히로시마로 떠난 선수는 모두 22명.이 가운데 지난해 월드컵 전사는 9명뿐이고 나머지는 젊은 피다. 이번 세대교체는 최근 남자 중·고등학교 팀과의 경기에서 밀리지 않을 정도로 스피드와 체력면에서 대폭적인 도움을 줬다. 특히 투톱 자리를 다툴 박은정(18·예성여고) 차연희(18·여주대)가 주목된다.플레이 메이커는 이장미(19·영진대),양날개는 김진희(23·울산과학대)와 정정숙(22·대교) 등이 맡을 예정이다.‘스리백’ 홍경숙(20·여주대) 박은선(18·위례정보고) 김유미(25·INI스틸)와 골키퍼 김정미(20·영진대)가 빗장을 걸어 잠근다. 최 감독은 “초등학교 때부터 공을 차 온 선수들이라 기술이나 스피드,체력면에서 언니들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와일드카드를 다툴 때를 대비,괌 미얀마와의 경기에서는 공격 축구로 다득점을 노릴 예정이지만,중국전에서는 스피드를 바탕으로 역습에 중점을 두게 된다.지난해 월드컵에서 두각을 나타낸 차세대 주포 박은선이 수비수로 보직을 옮긴 것도 이를 위해서다.최 감독은 박은선이 최근 부상으로 컨디션이 떨어져 있지만,남자 대표팀의 유상철(33·요코하마)처럼 철벽수비를 하다가 중요한 시점에 결정적인 한방을 뿜어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명화(31·서울시청) 유영실(29) 진숙희(26·이상 INI스틸) 등 고참들도 노련미 넘치는 플레이로 동생들의 뒤를 받칠 예정이다. 세대교체를 통해 새 출발한 한국 여자축구가 일본 히로시마에서도 기적을 재현해낼지 자못 기대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왕년 주먹 모아 봉사활동하는 ‘낙화유수’ 김태련씨

    “양로원이나 교도소 어디든 아픈 몸을 이끌고라도 달려갈 겁니다.어려운 노인들을 돕고,오갈 데 없는 불우한 건달들을 챙겨야 합니다.뒷골목 양아치의 길로 빠지면 안되죠.” ‘낙화유수’란 별명으로 유명한 김태련(72)씨.그는 현존하는 최고 서열의 ‘주먹지존’,서울대 상대를 나온 인텔리 깡패,1960년 4·19혁명의 도화선인 4·18 고대생 습격사건 당시의 행동대장 등의 수식어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또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이정재와 유지광의 행동대장으로 나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도 꽤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이정재(1918∼1961)의 ‘동대문사단’과 유지광(1924∼1988)의 ‘화랑동지회’ 후신인 ‘대한연합상사’를 발족,또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특히 왕년의 동대문사단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43년 만에 다시 문을 열어 더욱 그렇다. 12일 오전 종로4가 시계골목의 한 허름한 건물 4층에 위치한 ‘대한연합상사’에서 그를 만났다.요즘 심한 당뇨증세와 신장병 등으로 하루걸러 피를 투석하며 지낸다고 했다.때마침 당시 동대문사단의 멤버 10여명이 모여 앉아 향후 일정을 논의하고 있었다.고 김두한씨와 종로에서 동고동락을 했던 윤봉산(88)옹도 찾아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의리의 사나이’들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4·18 고대생 습격 당시 상황을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는 “습격이 아니라 우발적 충돌이었다.”고 전제한 뒤,“이정재씨와 유지광씨는 당일 시골에 가 있어 아무런 책임이 없다.4·18 깡패 동원은 임화수씨와 신도환씨가 주도했다.”면서 “충돌장소인 광장시장 앞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1년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그것도 검찰과 재판부에 서울대 동문들이 많아 감형이 됐다.”고 술회했다. 1957년 민주당 조병옥 박사가 장충단에서 유세할 때의 방해사건과 관련,그는 “야당집회를 방해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인 줄 알았다.”면서 대가로 밀가루 15만부대를 받아 조직확장을 꾀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60년대말 이후에는 가끔 지방을 돌아다니며 후배 동지들과 만나곤 했을 뿐 거의 칩거하다시피 지내왔다.지금도 어디를 가나 ‘큰형님’ 소리를 듣는다.후계자 조병용(52)씨는 “오는 22일 ‘큰형님’이 직접 김천 소년교도소를 찾아가 수감소년들을 상대로 강의할 예정”이라면서 “해체 당시 조직원 60여명이 최근 다시 모여 마지막 ‘큰형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 꿈은 양로원을 만들어 불우노인에게 쉴 공간도 제공하고 또 옛 동지들끼리 함께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김씨는 최근 의정부시에 위치한 양로원 ‘나눔의 샘’을 방문,성금과 음식물을 전달했다.그는 이같은 뜻을 실천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상수동 자택을 비롯한 전 재산을 내놓았다.자식들에겐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겠다고 이미 공언까지 했다. 아들은 미국에서 에이즈 백신을 연구 중인 박사이며 두 사위는 의사와 무역업을 해 아쉬울 게 없다고 그는 말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총선 D-6] 광주 이색후보 2題

    ● 최경주 민주당 광주 북을 최경주(43·광주 북을) 후보가 광주·전남지역 민주당 후보로는 유일하게 ‘2004총선 물갈이 연대’의 ‘당선운동 대상자’로 선정돼 눈길을 끈다.최 후보는 “지조와 신념을 갖고 일관되게 사회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점을 높게 평가해준 것 같다.”며 “당선되면 국가발전과 깨끗한 정치문화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조선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한국폴리테크 대표이사,대한산악연맹 기획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젊은 피 수혈’을 통해 정치문화를 바꾸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그러나 최근 민주당 ‘경선여론조사 조작 논란’으로 뒤늦게 선거전에 뛰어들었다.이 때문에 선거전 초반에는 열린우리당 김태홍 후보에 비해 지지도가 크게 뒤진 것으로 각종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최 후보는 “정동영 우리당 의장의 실언 이후 민주당 지지자들의 결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상대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줄었다.”고 주장했다. 또 탄핵정국과 당 지도부의 분란으로 이 지역에서 ‘민주당 프리미엄’이 사라진 만큼 ‘젊고 깨끗한 인물론’을 차별화 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 선거구에는 우리당 김태홍 의원과 자민련 김천국,민노당 안영돈,구국총연합 최익주,무소속 손민영·이인호 후보 등 모두 7명이 표밭갈이에 나서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 염동연 우리당 광주 서갑 광주 서갑 선거구는 열린우리당 염동연(58) 후보와 민주당 장홍오(45),무소속 이정일(58) 후보가 표밭을 누비고 있다.탄핵폭풍 이후 급상승한 정당 인기도와 ‘광주발전 역할론’을 내세운 염 후보가 앞서가고,민주당과 무소속 후보가 그 뒤를 쫓는 형국이다. 염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선거캠프와 ‘광주 노사모’를 이끌면서 사실상 참여정부 탄생에 핵심 역할을 한 실세다.한때 하향식 공천 논란은 있었지만 각종 매체의 여론조사 결과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실세론’이 먹혀들고 있다는 게 선거캠프의 판단이다. “서비스 유통업에 치중한 광주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그는 지역발전을 위해 ‘심부름꾼’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현 정부의 인맥을 동원해 각종 지역발전 전략을 짜내겠다는 의지다.최근에는 정보통신부가 추진 중인 4200억원 규모의 ‘정부통합백업센터’ 광주 유치를 노 대통령에게 건의,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염 후보의 선거캠프 관계자는 “전국 최고 득표율 당선을 목표로 잡았으나 지도부의 ‘실언’이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근접거리에서 보좌하며 ‘DJ정치’를 섭렵했다고 자처하는 민주당 장 후보는 우리당 지도부의 노인폄하 발언과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광주 고행’ 등으로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며 ‘후반 약진’을 기대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
  • [2004 K-리그 ] K-리그 새달 3일 킥오프

    ‘수성이냐,탈환이냐.’ 2004 K-리그가 오는 4월3일 막을 올린다.‘지존’ 성남이 정규리그 4연패의 대기록을 향해 줄달음칠 태세를 갖춘 가운데 수원,서울(옛 안양),전남 등이 앞다퉈 도전장을 던졌다.특히 올해 초 193명의 자유계약선수(FA)가 쏟아져 나와 42명이 유니폼을 바꿔 입는 등 ‘전력 이동’도 두드러져 팬들의 흥미를 돋우고 있다. ●성남 전력누수… 선두권 혼전 예고 이번에 전력이 대폭 업그레이드된 팀은 ‘샤프’ 김은중,‘후반전의 사나이’ 이원식을 영입한 서울과 ‘폭주기관차’ 김대의를 챙긴 수원. 지난해 ‘안양’으로 뛰면서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서울은 ‘올림픽호 황태자’ 최태욱이 빠져나갔지만 김은중 이원식이 가세하면서 우승후보로 도약했다.프로통산 167경기에 출장,42골 13도움을 기록한 김은중과 승부의 분수령에서 조커로 활약하는 이원식(통산 69골 17도움),브라질산 득점기계 헤나우도로 이어지는 공격라인은 이미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게다가 서울을 홈으로 새출발하는 만큼 우승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투지를 불사르고 있는 중이다. 수원(지난해 6위)도 ‘차붐’의 공격축구로 재정비했다.폭발적인 스피드를 앞세워 프로 3년 동안 27골 21도움을 기록한 김대의는 지난해 부상으로 부진했지만 차범근 감독의 속도축구에 잘 어울린다는 평.신·구 브라질 특급 나드손,마르셀과 함께 ‘총알 삼각편대’를 구성할 것으로 점쳐진다.J리그에서 돌아온 고종수와 관록의 서정원이 버티고 있고 조병국 조재진 김두현 김동현 등 ‘젊은 피’가 즐비한 것도 강점이다. ‘충칭의 별’ 이장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전남도 우승후보.지난해 4위에 그쳤지만 별다른 전력 누수없이 이 감독의 조련을 통해 조직력을 강화,팀 면모를 쇄신했다.지난달 통영컵 친선대회에서 우승,돌풍을 예고했다. 신생팀 인천도 무시할 수 없다.최태욱 등 알짜배기 FA 16명을 쓸어담았고,터키의 세계적인 수비수 알파이 외잘란 등 용병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독일 분데스리가 출신의 맹장 베르너 로란트 감독의 지휘는 ‘플러스 알파’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전 FC서울·신생 인천 돌풍 관심 반면 지난해 팀 통산 두 번째 3연패를 달성한 성남은 상대적으로 전력이 일보후퇴했다.‘토종 골잡이’ 김도훈과 이성남 신태용이 건재하지만 중원과 수비의 ‘믿을 맨’ 윤정환 김현수 등을 내보냈고 ‘우승청부업자’ 샤샤도 방출한 것. 부산의 용병 하리를 데려오고 김상훈(전 포항) 서혁수(전 전북) 등을 보강,기동력을 살렸지만 지난해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이 지배적이다.브라질 출신의 스트라이커 아데마를 새로 영입했지만 샤샤의 명성을 뛰어넘을지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단순 전력만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현실.올해에는 월드컵 예선과 올림픽 등 국제대회가 많아 대표팀 차출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여겨진다. 성남이 태극전사를 단 한명도 보유하지 않은 반면 서울은 각급 대표팀 명단에 주전급 7명을,삼성은 5명,전남은 3명을 올려놨다.따라서 전력누수가 불가피한 구단들이 용병들과 조커들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올시즌 운명이 엇갈릴 전망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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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국립극단(예술감독 이윤택)의 대표작 2편이 잇따라 공연된다.국립극단이 올들어 야심차게 기획한 연대별 대표 레퍼토리 복원작업의 첫번째 무대이다.해외극으로는 ‘뇌우’가,창작극으로는 ‘인생차압’이 각각 선정됐다. 공연시간 4시간30분의 원전 무삭제 연극으로 재탄생한 ‘뇌우’(4월1∼7일,국립극장 달오름극장)와 한국적 전통연희 양식으로 되살려낸 사회풍자극 ‘인생차압’(4월13∼19일)이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관객과도 통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50년대 흥행신화 ‘뇌우’ 6·25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6일부터 23일까지 부민관에서 공연돼 7만 5000여명의 관객을 모았다.당시 서울 시민(40만명) 여섯명중에 한명꼴로 봤으니 요즘으로 치면 블록버스터 연극인 셈이다.중국 작가 차오위(曹禹)가 스물넷의 젊은 나이에 발표한 데뷔작으로 중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레퍼토리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격동기 중국 사회를 배경으로 지주집안인 주씨 일가와 노동자계층을 대변하는 노씨 집안 사람 8명이 펼치는 비상식적인 애증의 드라마가 기둥 줄거리.계모와 아들의 불륜,의붓남매의 근친상간,부자지간의 패륜적 행동 등 선정적인 내용으로 초연 당시 공연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1950년(유치진 연출),1988년(이해랑)에 이어 세번째 공연인 이번 무대에는 이윤택 연출감독이 정통 리얼리즘 연극의 계보를 잇겠다며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원작의 앞뒤를 잘라내고 공연했던 전작들과 달리 전막(4막)을 그대로 살려낸 것이 특징.중간 휴식 30분을 포함해 총 공연시간이 무려 4시간30분에 달한다.“작품이 너무 아까워 한 부분도 잘라낼 수 없었다.”는 게 연출가의 변. 1막에서 조금씩 흩뿌리던 비바람이 극의 절정에 이르러 천둥번개와 함께 거세게 몰아치는 대목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이다.권성덕(주복원) 오영수(노귀) 이혜경(주번의) 권복순(주시평)등 중량감 있는 국립극단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한다.휴식시간 로비에서 김밥과 우동을 즐기는 것도 새로운 관극 체험이 될 듯싶다. ●한국적 해학극의 원조 ‘인생차압’ 오영진의 희곡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를 제목만 바꿔 1957년 공연한 작품으로 연극의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영화화되기도 했다.일제때는 악질적인 친일행위를 하고,해방후에는 혼란기를 타 거부가 된 이중생이 수십년에 걸쳐 사기,배임,횡령,탈세 등 온갖 못된 짓을 골라 하다 결국 몰락한다는 이야기이다.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을 신랄하게 꼬집는 해학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민요,판소리 등 전통연희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형식적 측면에서도 주목받았다. 당시 이중생역을 맡았던 배우 장민호가 47년 만에 같은 배역으로 다시 무대에서 서는 것도 화제다.서른셋 나이에 파렴치범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냈던 그가 그간의 연륜과 경험을 어떻게 무대위에 쏟아낼지 기대를 모은다.개성있는 배우 서희승이 번갈아 이중생역을 연기한다.연출은 ‘피고지고 피고지고’‘불 좀 꺼주세요’로 널리 알려진 강영걸. 한편 국립극단은 매년 순차적으로 연대별 대표작을 올린 뒤 향후 극단의 고정 레퍼토리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산불’‘베니스의 상인’‘세자매’(60년대),‘달집’‘물보라’‘파우스트’(70년대)‘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어이’‘들오리’‘간계와 사랑’(80년대)‘맹진사댁 경사’‘피고지고 피고지고’(90년대) 등이 목록에 올라 있다.(02)2274-3507.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 예선] 내몸이 둘이라면…

    ‘바쁘다,바빠!’ 말레이시아 원정경기를 끝으로 26일 귀국하는 한국 올림픽축구 대표팀은 이라크와의 평가전(6일)에 대비,다음달 3일 재소집될 때까지 열흘 정도 꿀맛 같은 휴식에 들어가지만 오히려 더 바빠지는 선수들도 있다.조병국(23)과 김두현(22·이상 삼성)이 그들이다. 오는 31일 몰디브에서 열리는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전을 치를 ‘코엘류호’(국가대표팀) 엔트리에도 포함된 이들은 26일 귀국하지 않고 25일 싱가포르를 거쳐 형님들보다 앞서 몰디브로 날아간다. 축구협회는 올림픽 최종예선 일정이 빡빡한 점을 감안,젊은 피를 차출하지 않으려고 했다.하지만 몰디브전을 아시안컵에 대비한 실전훈련으로 삼아 해외파까지 포함한 ‘정예 멤버’로 팀을 구성키로 계획을 수정,이들을 승선시켰다.그만큼 조병국과 김두현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선두주자로 낙점받았다는 얘기다. 조병국은 올해 코엘류호와 김호곤호에 번갈아 승선하며 발군의 활약을 펼쳐,‘자책골의 사나이’라는 오명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스위퍼로서 폭넓은 시야와 강력한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방’까지 갖춰 이제 ‘포스트 홍명보’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달 레바논과의 월드컵 2차예선전의 추가골은 백미.후반 5분 박지성(23·에인트호벤)의 코너킥을 정확하게 헤딩으로 연결시켜 A매치 첫 골을 기록한 것.앞서 열렸던 오만과의 친선경기에서도 한국팀의 첫 골도 사실상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전반 25분 코너킥 세트 플레이에서 작렬한 헤딩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자 설기현이 그대로 차 넣어 5-0 대승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김두현은 날카로운 패싱 능력에 감각적인 슈팅력까지 겸비한 만능 선수다.소속팀 선배 고종수의 뒤를 이을 멀티플레이어로 각광받는 그는 올림픽대표팀에서도 공격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두루 섭렵했다.지난해 12월 코엘류호에 탑승,일본에서 벌어진 동아시아선수권 홍콩전에서는 빨랫줄 같은 슛으로 A매치 첫 골을 신고하기도 했다. 지난달 일본과의 평가전에 이어 지난 3일 중국전에서는 부진한 플레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란과의 고지전에서는 투지와 체력이 되살아 나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들의 고행은 몰디브전으로 끝나지 않는다.다음달 3일에는 K리그가 개막하며 사흘 뒤에는 이라크 올림픽팀과의 친선경기가 있다.14일에는 말레이시아와의 올림픽예선 리턴매치에도 출전해야 하고,2주 뒤에는 코엘류호에 재승선,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 나서게 된다. 무리한 일정으로 주변에서 다소 걱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지만 이들은 “아직 젊으니까 뛰어야 한다.”며 오히려 패기를 과시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서울시서 한옥마을 숙소 제공받는 이석 씨

    “이제는 떠돌이 생활을 접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서울에도 ‘비둘기 집’이 곧 생길 것 같습니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라는 가요 ‘비둘기 집’을 부른 가수 이석(63·본명 이해석)씨.이 노래는 랩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다.하지만 한때 결혼식 축가로 부를 만큼 널리 알려진 애창곡이다. 이씨는 고종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義親王)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난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손’이다.이같은 ‘고귀한 피’를 간직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정권 수립후 황실재산이 국고에 환수되면서 방 한칸 없는 떠돌이 생활로 전전긍긍해 왔다.그런 이씨가 이제야 ‘비둘기 집’을 하나 장만할 수 있게 됐다.이씨는 18일 낮 서울시 문화재과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뜻하지 않은 큰 희망을 얻었다.다름아닌 서울시가 추진중인 종로구 가회동 북촌 한옥마을에 숙소를 마련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얘기를 들은 것. 또 운현궁에 왕실문화재현 공간이 완성되면 강연 등을 맡아달라는 제의도 받았다.따라서 다음달 처음 선보일 ‘왕비(명성후)간택의식 재현행사’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될 가능성도 높아졌다.1959년 의친왕이 사망한 이후 45년만에 ‘비둘기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특히 오는 5월 전주에서 시행되는 ‘황실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도맡아 운영할 예정이어서 이래저래 방랑생활을 청산하고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됐다.1941년 서울 관훈동 사동궁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사망 직후부터 생계를 위해 종로2가 음악다방에서 DJ로,미8군에서 노래를 불렀다.그러나 ‘비둘기 집’과는 거리가 먼 떠돌이 생활로 전전긍긍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마땅한 거처가 없어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한 단체에서 마련해준 작은 사무실로 출근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당분간은 전주에서 지낼 예정입니다.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전주는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현재 전주시가 3억 5000여만원을 들여 매입한 전통한옥 2채를 체험용 민박집으로 꾸미고 있다. 김문기자 km@˝
  • 儒林(53)-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젊은 유생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스승격인 조광조와 김식 등이 투옥되자 정의감이 폭발되었다.수백 명의 유생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거리로 나서 대궐로 향하였다.광화문 밖에 이르렀을 때 신명인(申命仁)이란 학생이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상두꾼들도 상소를 올려 신원하려 하거늘,하물며 여러분 유생들이 아직도 상소를 준비하지 못함은 어찌된 일이오.” 신명인의 말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천한 상여꾼들도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씻기 위해서 신원하는데,어찌 스승인 조광조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는데 이를 보고만 있겠느냐는 고함소리에 유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덤벼들었다. 신명인이 붓을 들어 상소문을 초하니,나머지 유생들도 거들어 순식간에 연명으로 된 상소가 완성되었다. 이 유생들의 대표는 이약수(李若水)였다.이들 150여 명은 궐기대회를 가진 후 곧 대궐을 향해 시위행렬을 계속해 나갔다.문을 지키는 군졸들이 필사적으로 막았으나 허사였다.학생들은 저지선을 맹렬한 기세로 뚫고 들어가 합문(閤門) 앞에까지 이르렀다.이 과정에서 여러 유생들이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이들은 합문 앞에 이르러 상소를 올린 후 모두 무릎을 꿇고 땅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하였다.기록에 의하면 유생들의 곡성이 대궐을 진동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곡성이 온 대궐을 뒤흔들었으므로 자연 중종이 이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중종은 크게 놀랐고,곧이어 승지로부터 이들이 보낸 상소문을 전해 받아 읽어보았지만 상소문을 읽은 중종은 더욱더 화를 내며 말하였다. “유생들의 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노라.대궐 안에 함부로 난입해 들어와도 죄가 되거늘,하물며 문을 밀치고 들어와 곡성을 냄은 천고에 없는 일이 아닌가.” 중종은 주동자를 색출하여 엄단하도록 명령내리는 한편 금군을 풀어 유학생들을 궐내에서 쫓아내게 하였다.어명을 받은 군사들이 이들을 모두 쫓아내려 하였지만 유생들은 필사적이었다.옷과 갓이 찢어지고,상처 입은 몸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상소를 올린 주동자 다섯 명,즉 이약수,윤언직(尹彦直),박세호(朴世豪),김수성(金遂性),황계옥(黃季沃) 등은 곧 체포되었는데,모든 유생들이 모두 함께 잡혀 가길 원하니,감옥이 부족하여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조광조가 중종의 교지가 내려지자마자 즉시 능주로 유배를 떠나게 된 것은 이처럼 흉흉한 민심 때문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조광조를 도성에 머물도록 하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조광조를 귀양길로 쫓아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조광조의 유배 길은 이와 같은 옷깃을 여미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전송하는 백성들에 의해서 외로운 것만은 아니었다.조광조를 압송하는 나장들도 비록 조광조가 죄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그를 함부로 다룰 수는 없음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최고의 권세를 가졌던 인물이었으므로 나장들도 조광조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지방의 많은 관원들도 나와서 조광조를 위문하였고,선산이 있는 용인을 지날 때에는 이자(李)의 전송을 받을 수 있었다. 이자는 우참찬으로 조광조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영의정 정광필에 의해서 ‘장차 국가에 크게 이바지할 인물이오니 아무쪼록 의금부로 하여금 죄가 있고 없음을 분명히 가리어 처결토록 하소서’란 탄원을 받고 특별히 사면되었던 것이다.이자는 감옥에서 석방되자마자 자신의 초당이 있는 용인으로 내려왔다가 마침내 유배지로 떠나는 조광조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대감.” 비참한 모습의 조광조를 보자 이자는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며 말하였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 오니까.”˝
  • 儒林(53)-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儒林(53)-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제1부 王道 제3장 至治主義 젊은 유생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스승격인 조광조와 김식 등이 투옥되자 정의감이 폭발되었다.수백 명의 유생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거리로 나서 대궐로 향하였다.광화문 밖에 이르렀을 때 신명인(申命仁)이란 학생이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상두꾼들도 상소를 올려 신원하려 하거늘,하물며 여러분 유생들이 아직도 상소를 준비하지 못함은 어찌된 일이오.” 신명인의 말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천한 상여꾼들도 억울하게 뒤집어쓴 죄를 씻기 위해서 신원하는데,어찌 스승인 조광조가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는데 이를 보고만 있겠느냐는 고함소리에 유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덤벼들었다. 신명인이 붓을 들어 상소문을 초하니,나머지 유생들도 거들어 순식간에 연명으로 된 상소가 완성되었다. 이 유생들의 대표는 이약수(李若水)였다.이들 150여 명은 궐기대회를 가진 후 곧 대궐을 향해 시위행렬을 계속해 나갔다.문을 지키는 군졸들이 필사적으로 막았으나 허사였다.학생들은 저지선을 맹렬한 기세로 뚫고 들어가 합문(閤門) 앞에까지 이르렀다.이 과정에서 여러 유생들이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이들은 합문 앞에 이르러 상소를 올린 후 모두 무릎을 꿇고 땅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하였다.기록에 의하면 유생들의 곡성이 대궐을 진동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곡성이 온 대궐을 뒤흔들었으므로 자연 중종이 이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중종은 크게 놀랐고,곧이어 승지로부터 이들이 보낸 상소문을 전해 받아 읽어보았지만 상소문을 읽은 중종은 더욱더 화를 내며 말하였다. “유생들의 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노라.대궐 안에 함부로 난입해 들어와도 죄가 되거늘,하물며 문을 밀치고 들어와 곡성을 냄은 천고에 없는 일이 아닌가.” 중종은 주동자를 색출하여 엄단하도록 명령내리는 한편 금군을 풀어 유학생들을 궐내에서 쫓아내게 하였다.어명을 받은 군사들이 이들을 모두 쫓아내려 하였지만 유생들은 필사적이었다.옷과 갓이 찢어지고,상처 입은 몸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상소를 올린 주동자 다섯 명,즉 이약수,윤언직(尹彦直),박세호(朴世豪),김수성(金遂性),황계옥(黃季沃) 등은 곧 체포되었는데,모든 유생들이 모두 함께 잡혀 가길 원하니,감옥이 부족하여 이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조광조가 중종의 교지가 내려지자마자 즉시 능주로 유배를 떠나게 된 것은 이처럼 흉흉한 민심 때문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조광조를 도성에 머물도록 하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조광조를 귀양길로 쫓아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조광조의 유배 길은 이와 같은 옷깃을 여미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전송하는 백성들에 의해서 외로운 것만은 아니었다.조광조를 압송하는 나장들도 비록 조광조가 죄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그를 함부로 다룰 수는 없음이었다.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최고의 권세를 가졌던 인물이었으므로 나장들도 조광조를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지방의 많은 관원들도 나와서 조광조를 위문하였고,선산이 있는 용인을 지날 때에는 이자(李)의 전송을 받을 수 있었다. 이자는 우참찬으로 조광조와 함께 체포되었으나 영의정 정광필에 의해서 ‘장차 국가에 크게 이바지할 인물이오니 아무쪼록 의금부로 하여금 죄가 있고 없음을 분명히 가리어 처결토록 하소서’란 탄원을 받고 특별히 사면되었던 것이다.이자는 감옥에서 석방되자마자 자신의 초당이 있는 용인으로 내려왔다가 마침내 유배지로 떠나는 조광조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대감.” 비참한 모습의 조광조를 보자 이자는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며 말하였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 오니까.”
  • [Doctor&Disease] 이화여대 의대 소아과 이근 교수

    “우리나라도 세계보건기구의 ‘모유대체식품 광고금지법’ 제정에 동의해 91년에 법으로 분유 광고를 못하게 했어요.그랬더니 분유 회사들이 어떻게 한 줄 아세요? 분유를 몽땅 이유식으로 등록했어요.우리 법엔 분유만 광고 금지대상에 넣어두고 이유식은 쏙 뺐거든.이러니 뭐가 되겠습니까?” ●젖동냥 하더라도 분유만은 안돼 한국소아과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화여대의대 소아과 이근(61) 교수.그는 평생 ‘모유 수유’를 외치고 다닌,이를테면 모유의 전도사 같은 사람이다.2년 전에 잡힌 우리나라의 모유 수유율 16%라는 통계가 그의 공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물론 아직은 미국이나 일본의 40% 대에는 턱없이 못미치는 것이지만,그래도 그의 신념은 단호하다.“어떻게 사람에게 소젖을 먹입니까.설령 엄마가 없어 젖동냥을 하더라도 분유는 안됩니다.” 그런 법이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알고 보면 웃겨요.입법에 관여한 정신없는 관료와 국회의원들,분유업체와 짜고 논 거죠.세계보건기구가 모유 대체식품을 ‘분유,유아식,이유식’ 등으로 정해 놨는데도 우리 정부는 규제 범위를 ‘분유’로만 한정해 이유식을 쏙 빼놨어요.분유 회사들은 옳거니 하고 분유를 죄다 이유식으로 등록했고요.분유 회사 연간 광고·홍보비가 1000억원인데,다들 여기에 자빠진 거죠. ●1000억 분유광고 위력에 모유수유 줄어 만나자마자 그는 신문에 못낼 인터뷰를 왜 하느냐고 물었다.까닭인즉 이랬다.“숱한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지만 제대로 보도된 게 없어요.연간 광고비 1000억원에 어느 언론사가 군침을 흘리지 않겠습니까?”인터뷰 내내 그는 분유를 ‘소젖’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의 실태는 어떻습니까?좀 나아진 것 같은데. -예전에 비해 관심은 많아졌지만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려워요.젊은 엄마들,모유 생각은 많이 하는데,그들이 모두 모유를 먹인다고는 보지 않아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분유 광고죠.귀찮다거나 유방이 처진다거나 하는 근거없는 오해에도 불구하고 16%가 모유를 먹이고 있지만,역시 1000억원의 위력은 대단해요.10년 전만 해도 나이 드신 할머니들 ‘외손자는 분유 먹이고,친손자는 모유 먹이라.’고들 했어요.그런데 요새는 그 할머니들이 ‘분유가 그렇게 좋다는데‘,‘우리땐 없어 못먹였는데‘라며 분유를 권하거든요.남편들도 마찬가집니다.그 10년 사이에 제가 졌고,그게 돈의 위력이겠죠. 왜 그런 상황이 초래됐다고 보는지. -돈바람이죠.저도 유혹 숱하게 받았어요.누구에게 대충 얼만큼의 돈이 들어갔는지도 알아요.업체에서 제게 돈을 가져 와서는 ‘누구누구는 다 받는데,선생님만 왜 그러십니까.’그래요.1000억원이면 서울 명동에 큰 빌딩 4∼5개를 살 돈인데,이걸 1년 광고·홍보비로 쓰고 있어요.그러니…. ●‘소젖’ 먹고 자란 애들은 IQ도 낮아 중요한건,왜 모유를 먹여야 하는가 하는 점인데. -전 의사라 잘 알아요.병을 달고 사는 애들이 모두 분유 먹고 자란 애들입니다.감기,아토피피부염,정서장애 등등 셀 수도 없어요.국민건강도 문제지만 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은 계산도 안 되지요.또 소젖 먹고 자란 애들,엄마젖 먹인 애들보다 IQ가 10쯤 낮아요.우리나라,소젖 먹인지 40년 만에 국민지능 많이 낮아졌어요.애들 안경 쓰는 것,왕따 현상도 따지고 보면 분유 먹고 자란 세대의 특성이 나타난 겁니다.걔들은 따뜻한 사랑이나 깊은 배려를 잘 모르거든요. ●분유광고 법적으로 전면 금지해야 그는 덧붙여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한마디로,정부가 모유 수유를 권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관련 단체에 주어진 1년 예산이 3000만원가량인데,이걸로 어떻게 1000억원을 감당합니까.새발의 피 아닌가요.” 어느 해인가 의대 사은회때 제자들은 ‘가장 시어머니 같은 교수’로 그를 뽑았다.그러나 그는 자신의 일상이 두루뭉수리해 병원에서도 환자에게 손해 끼치는 일만 아니면 잔소릴 안하는 타입이라고 했다.“그런데 분유 문제는 달라요.그건 엄마젖을 먹어야 하는 아기의 인권을 박탈하는 거니까요.” 해결책은 있습니까. -분유 광고를 전면 금지해야 합니다.정부가 세계보건기구와 한 약속은 지켜야죠.이게 안되면 아무리 애써도 힘들어요.지금부터 광고 금지하면 10년 후쯤 모유수유율이 아마 50%대로 오를 거예요.간단해요.법령 속 ‘분유’라는 용어를 ‘모유대체식품’으로 바꾸기만 하면 되잖아요? 모유수유가 산모들 선택의 문제만은 아니지 않습니까.일선 산부인과에서 모유를 먹일 기회를 아예 박탈하거나 특정 분유를 권장하기도 하는데. -저도 유식하진 않지만,무식한 병원들 많아요.병원들이 다 적자 운영이라 제 정신들이 아닌 것 같아요.젖을 먹이려면 병원들 추가로 돈 들거든요.인력 늘려야지,시설투자 해야지….실은 광고 의식한 언론사보다 분유 회사에 병원들이 더 단단히 발목이 잡혀 있어요.산모들이 이걸 알고 다퉈서라도 모유를 먹여야 합니다. ●포유류중 인간만이 짐승의 젖 먹여 그러면서 그는 엄청난 광고에 세뇌된 국민의식을 탄식하며 방송인 이다도시씨의 사례를 들었다.“얼마전 텔레비전을 보는데,그 분이 둘째 애에게 분유 먹이는 장면이 방영돼요.그도 처음엔 모유를 먹이다 ‘그거 좋다더라.’며 시어머니가 강권해 분유를 먹인대요.얼마나 화가 나던지 방송국에 전화 해서 따졌죠.”모유 수유에 대한 그의 열정이 이 정도다.그런 그도 세 아이 중 위쪽 둘은 분유를 먹였다고 털어놨다.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이 ‘특별한 임상시험’에서도 모유의 우수성은 확인되더라며 모처럼 웃었다.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은 ‘자연의 위대한 섭리’라는 그는 300여 종의 포유류 가운데 유일하게 짐승의 젖을 먹이는 인간,그래서 아기를 짐승으로 기르고자 하는 세태를 ‘모성의 실종’이라고 힐난했다.그는 이렇게 인터뷰를 끝냈다.“분유 먹이는 산모들,나중에 ‘왜 내게 엄마 젖을 먹이지 않았느냐.’는 자식들 물음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그 때도 유방 처지는 게 싫었다고 말할 것인가.”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 ■ 이근 교수는 △이대의대,서울대 대학원(의학박사)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칼리지병원,아이오와주 아이오와대학병원,테네시주 밴더빌트대학병원,뉴욕의과대학병원,사가모어아동병원 등에서 수학 및 근무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이사 및 산하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만들기위원회’ 위원장 △대한소아과학회장˝
  • 대학 신입생·첫 출근길 어떻게 입을까

    꽃 피고 새 지저귀는 3월,참 좋을 때다.1월보다 더 새로운 느낌이 드는 것은 새 학교,새 반,새 친구들,새 환경 등으로 뛰어 들어가는 때이기 때문이다.루키즘(외모지상주의)에 이어 얼짱·몸짱이 사회를 주름잡는 이때 새로운 시작을 후줄근하게 할 수는 없는 법!과연 어떻게 새로운 느낌을 살릴 수 있을까.발랄 깜찍 우아 고상 멋스러움 등을 자유자재로 버무려 좋은 첫인상을 남길 수 있는 차림새는 없을까. ●학교 가니? 좋겠다∼ 세월이 흘러도,어린 나이가 아니라고 다짐해도 자꾸 마음이 가는 스타일이 바로 ‘스쿨 룩(School Look)’이다.남성보다는 여성이 스쿨 룩을 많이 따르고 있어 ‘스쿨걸 룩’이라는 표현이 더 널리 퍼졌다. 해석하자면 ‘교복 패션’인데,아주 교복처럼 입으면 촌스럽다.여성은 아가일 체크(마름모형 체크) 스웨터,주름 치마,무릎까지 오는 니렝스 삭스로 코디한 영국 사립학교 학생풍이 기본 차림새.남성은 브이 네크라인(V넥)의 스웨터에 면바지를 차려입은 미국 아이비리그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여성이라면 V넥 니트+미니스커트+니삭스를 매치하고 캔버스화나 스니커즈,로퍼(납작한 스타일의 구두)로 마무리한다.남성의 경우 깔끔한 재킷에 면바지,정장바지 또는 데님바지를 입고 양쪽으로 메는 가방을 코디하면 센스만점 신입생. ●첫 출근? 부럽다… 직장 새내기,어려운 취업관문을 뚫어 스스로를 대단히 대견하게 생각하면서도,한편으로는 첫 출근 옷차림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까.실력뿐만 아니라 외모도 경쟁력으로 꼽히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말이다.업무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초보 티내지 않고 직장인 이미지에 맞는 감각적인 연출이 필요한데…. TNGT 박경아 디자인실장은 “사회에 처음 첫 발을 내딛는 중요한 순간인 만큼 단정하지 못한 차림새나 잘 맞지 않는 정장은 주위에 불쾌감을 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성실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남성은 기본이 되는 남색과 회색,검정색의 젊은 이미지에 어울리는 캐주얼 정장이 무난하다.남색 정장은 셔츠·타이와 다양하게 매치되고,회색과 검정색은 안정된 느낌과 지적인 분위기를 준다. 직장 여성들은 세부 장식을 절제한 미니멀한 스타일인,일명 ‘며느리 패션’이 추천 스타일.단정하면서도 상쾌한 연출이다.스커트는 무릎이 보이지 않는 길이를,바지는 복숭아뼈가 보이는 9부나 10부 길이에 단정한 로퍼를 신는 것이 깔끔하다.샤넬풍의 트위드 재킷은 생기발랄함을 표현할 수 있다.색상은 밝고 무난한 와인·베이지·아이보리 등이 적당하다. ●빼놓지 말자,패션 포인트 전통적인 스쿨 룩에 체크무늬 헌팅캡,여러가지 색을 믹스한 니트모자,발목에 끈이 달린 스트랩 슈즈를 더하면 패션이 심심하지 않다. 여성 직장인은 평범한 라인의 정장 속에 흰색 셔츠를 입고 밝은 스카프로 포인트를 주면 감각적인 표현을 할 수 있다.남성은 정장 안에 입는 셔츠와 타이의 V존 연출이 중요하다.보라·분홍·파란색이 화사하다. 타이 색상은 재킷·셔츠 색상과 같은 계열로,셔츠 색상보다 짙은 것이 좋다.타이의 무늬색은 재킷이나 셔츠 색상에 맞춰 준다. 양말의 포인트는 흰색이 아니다.정장과 잘 어울리는 남색,회색,검정색을 선택한다.스타일링의 또하나 포인트는 가방과 신발.구두는 옷의 전체적인 색상과,스타킹 색은 피부색과 맞춘다. 탠디의 강선진 디자인팀장은 “스쿨 걸 룩에는 로맨틱하면서도 발랄한 느낌을 주는 구두를,새내기 직장 여성은 앞코가 동그란 낮은 굽의 로퍼나 스트랩 슈즈가 좋다.”고 조언했다. 가방 역시 옷 색상과 같은 계열로 맞추고,약간 큰 직사각형 모양의 토트백(손에 드는 가방)을 선택하는 것이 실용적이다. 최여경기자 kid@˝
  • 자연과 인간사 보듬는 두 시인의 노래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람이 무(巫)라면,시는 성스러움과 속됨이 만나는 곳에서 울리는 노래가 아닐까.많은 작가들이 도심의 번잡을 피해 창작에 매진하려 시골이나 한적한 공간으로 달음질치는 것도 성(聖)과 속(俗) 사이의 여유가 그리워서일 것이다. 최근 나온 두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창비사 펴냄)와 ‘나는 걷는다 물먹은 대지 위를’(민음사 펴냄)은 모두 성과 속의 경계에서 건져올린 노래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사를 보듬는 두 시인의 시선은 그래서 고즈넉하다. ‘이 환장할 봄날에’를 낸 시인 박규리는 삶 자체가 성과 속 사이에 있다.몸과 마음이 아파 찾아간 전북 고창 미소사에서 8년째 절을 찾는 이들에게 밥을 해주는 공양주로 일하고 있는 시인은 눈에 비친 승속(僧俗)사이에서 자신의 심정을 곡절히 담았다. 시인은 “명치끝에 돌덩어리 같은 이 일생(一生)”(‘무서운 잠’)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다.비록 “가슴속 켜켜이 몸 속속들이 문신 같은 상처”(‘이유없이 오고 흔적 없이 가는 건 없다’)로 새겨진 삶이었지만 시인의 시선은 여전히 세속에의 미련을 보여준다. 그러나 “세상에서 무서운… 흔들리는 제 마음”(‘사과꽃 한송이 떨어졌던가’)과 맞서며 “내 철없는 욕심과 부질없는 사랑이/상처 한줄 그을 줄 차마 어찌 알았으랴.”(‘주름’)라고 되돌아본 뒤 자신을 낮추면 “산꿩도,다람쥐도/저물녘 다 늙은 햇살도/쉬었다 간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시인의 특이한 체험과 상상력은 절제된 시적 긴장에 힘입어 여운이 오래간다.빼어난 서정미는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설운 눈물 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종탑 뒤에 몰래 숨어…”본 뒤 시인 자신이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치자꽃 설화’)라고 노래할 때 절정에 이른다. 해설을 쓴 시인 박영근은 ‘절집 세계의 일상과 리얼리티’라 묘사한다.또 신경림은 “칼날의 매서움과 봄 햇살의 부드러움 양면을 갖춘 한없이 젊고 풋풋한 시”라고 평한다. 한편 “말(言)과 절(寺)이 만나는 곳,속됨과 성스러움인 만나는 곳이 시(詩)”라는 원재길의 시도 공간은 다르지만 시선은 역시 성과 속의 경계에 있다. 강원도 원주에 칩거하면서 창작에만 전념하는 그의 시는 폭설을 치우면서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하지만(‘폭설’) “하늘을 닫고 구름을 접고 언덕을 훌훌 털어 머리에 베고”(‘나무 그늘에 누워’) 주위에 보이는 폐허위의 풀·새·물 등에서 시의 주제인 생명의 기운을 발견한다. 속에서 성스러움을 보는 시인의 눈은 젊은 날을 돌아보는 여유가 그득한 장시 ‘겨울에서 봄으로’에서 만개한다. “너의 청춘은 즐거웠는가.”라고 말문을 연 시인은 하루 산책길에 비친 거리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그 시절 겪은 많은 죽음을 추억하기도 하고 “저를 버리기 위해 마음의 모든 집 버리려” 스스로 택한 방황을 들려준다.그 여정에서 비치는 쓰레기 더미에 피는 꽃들,날벌레·땅벌레에게서 생명스러움을 목도한 뒤 석양을 등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종수기자 vielee@˝
  • 조선선비들의 기개/신봉승 지음

    왕조시대에 직언(直言)은 목숨을 내걸어야 가능한 일이었다.그럼에도 조선시대는 직언의 시대였다.작가 신봉승의 ‘직언’(선 펴냄)은 바로 직언의 아름다움을 밝힌 책이다.‘조선왕조실록’이란 젊은 언관(言官)이나 사관(史官)의 용기를 편년체의 일기로 집대성한 기록이라는 것이다. 신봉승은 조선왕조를 “붓을 든 선비가 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칼을 든 무반(武班)을 다스린 나라”라고 규정한다. 조선시대를 일관되게 지배한 성리학은 ‘배웠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지행(知行)을 가장 큰 덕목으로 가르쳤다.세계사의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역사를 만들어낸 것은 참 선비의 기개와 의리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젊은 사관들은 군왕의 면전에서도 직언을 할 줄 알았다.기사를 적으면서는 비평을 동시에 남겼다.명종 16년 실록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국사에 선정이 없고 교화가 밝혀지지 않아 재상들의 횡포와 수령들의 포학이 백성들의 살과 뼈를 깎고 기름과 피를 말려 손발을 둘 곳이 없고 호소할 곳도 없으며,기한(飢寒)이 절박하여 하루도 살기가 어려워 잠시라도 연명하려고 도적이 되었다면,도적이 된 원인은 정치를 잘못하였기 때문이요,그들의 죄가 아니다.” 임금의 책임을 준열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신봉승은 직언 자체의 아름다움만 강조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흥청망청 잘사는’ 우리 국민들에게 할 말이 많다.지금 같은 상태로는 2만달러 시대 근처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이다.직언에서 보는 것 같은 우리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신적 근대화에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2만 5000원. 서동철기자˝
  • 남극 탐험의 꿈/장순근 지음

    지난해 12월 젊은 지구과학자 전재규 대원의 목숨을 앗아간 남극 세종기지 조난사고는 우리 극지 연구의 현주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남극에 세종기지가 세워진 지 올해로 16년.하지만 남극 현장의 연구 여건은 초라하기만 하다.세종기지 대원들이 극지 연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쇄빙선 하나 없이 고무보트로 거친 남빙양을 항해해야 했던 사실이나 낡은 무전설비들 앞에서 동료들의 생사를 몰라 안타까워했던 모습은 우리의 열악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20년간 남극 지킨 저자의 생생한 체험 `남극 탐험의 꿈’(장순근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정부 차원에서 ‘극지 연구 활성화’ 방안이 논의되고 이공계 위기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특히 관심을 끌 만한 책이다.저자(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는 지난 20여년간 남극 탐험의 최전선을 지켜온 극지 연구의 개척자.남극 탐험의 역사와 자연환경,세종기지에 얽힌 이야기 등을 300여장의 현장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책은 먼저 남극의 역사·지리적 배경부터 살핀다.한국의 세종기지가 들어선 킹조지 섬은 남극의 관문인 사우스셰틀랜드 군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사우스셰틀랜드 군도는 1819년 영국 탐험가 윌리엄 스미스 선장이 최초로 발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그러나 저자는 ‘서인도 기술’ 등의 문헌을 토대로 1599년 네덜란드 출신 도선사 디륵 게리츠가 처음 발견한 것으로 추정한다.스미스가 발견한 것은 사우스셰틀랜드 군도가 아니라 그 남쪽에 있는 리빙스턴 섬이라는 것이다.책은 해표와 펭귄 고기를 먹고 연명하며 전설적인 생존신화를 남긴 섀클턴 탐험대의 이야기도 흥미롭게 전한다. ●`바다의 3대 악당’ 해적·노예선·물개잡이 사우스셰틀랜드 군도는 남극에선 문명세계에 가장 가깝고 얼음의 장애가 적은 편이라 발견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장 먼저 군도를 찾은 사람들은 물개잡이들.19세기 남극의 물개는 남획돼 거의 멸종지경에 이르렀다.해적과 노예선 선원,물개잡이는 ‘바다의 3대 악당’이라 불렸을 정도다. 현재 남극 대륙에는 한국을 비롯한 18개국이 42개의 상주 기지를 짓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한국은 지난 86년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2년 뒤 세종기지를 세워 남극연구 대열에 합류했다.세종기지가 있는 사우스셰틀랜드 군도의 킹조지 섬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900㎞쯤 떨어져 있다.남극 중에선 그나마 북쪽에 있어 얼음에 덮이지 않은 대지가 있고 연평균 기온도 그리 낮지 않지만 겨울엔 체감온도가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또 초속 30m가 넘는 남극의 폭풍 블리자드가 어김없이 몰아친다. ●`탁, 탁’ 노래하는 남극의 얼음 세종기지는 남극의 대기,지질,해양,생물 같은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와 남극의 환경변화가 문명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것이 주된 임무다.지구상의 대륙 가운데 가장 늦게 발견된 남극은 여전히 미지의 땅이다.1360만㎢의 남극 대륙은 평균 두께가 2000m가 넘는 얼음으로 덮여 있다.남극의 얼음은 동글동글한 공기방울이 들어 있어 아주 아름답게 보인다.그 얼음을 물에 넣으면 ‘탁,탁’하는 공기 방울 터지는 소리가 난다.저자는 그것을 ‘얼음의 노래’라고 부른다.일본에서는 특유의 상혼을 발휘,남극의 얼음조각을 넣은 위스키를 비싼 값에 팔기도 한다. 얼음은 귀중한 연구 재료다.공기 방울 속에 지구의 역사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남극의 얼음은 물이 얼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눈이 쌓여 생긴 것이다.얼음 속 공기 방울은 눈 결정 사이에 있던 공기로,눈이 쌓일 때의 공기 성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그 공기 성분을 분석하면 당시의 기후와 지형을 알 수 있다. ●눈 속서 자라는 신기한 이끼 `눈조류’ 남극에는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을까.남극의 혹한 속에서도 꽃이 피고 새가 운다.눈 속에선 눈조류라는 신기한 이끼가 자란다.거대한 코를 가진 코끼리 해표는 기이한 소리를 내고 남빙양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범고래는 곧추 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남극이 펭귄의 무대인 것은 물론.저자는 날다 지치면 바다 위에 떠서 쉰다는 국제 보호조 신천옹도 가끔 킹조지 섬 부근에 나타난다고 전한다.책은 이밖에 남극 기지 사람들이 함께하는 남극 올림픽 이야기,영국·칠레·아르헨티나 등이 남극에서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분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유럽에선 가장 고상한 취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는 극지 봉투수집 이야기 등도 들려준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3)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상)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3)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상)

    누군들 고통속에 머무르고 싶은 이가 있겠는가. 지금 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고요한 평온을 누리고 싶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게 쉽지 않느니,아주 드물게는 이대로 영원했으면 싶을 때도 있었지만, 오,그때는 순간으로 짧은 것. 비록 짧게였지만 깊게 느껴졌던 그 순간을 맛본 사람은 자주 꿈을 꾸느니.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것에 대하여 꿈 꾸느니. 오늘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을 배우러 또 길을 떠난다.길은 경남 하동 섬진강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푸른 전설과 향기짙은 신화의 몸 위로 흘러간다.언제 걸어도 새로운 길이다.길에서 만난 바람에게 묻는다.하동의 옛 일과 옛 사람을 묻는다.옛 사람 가운데서 노랫말 없는 노래를 소리로 부르면서 근심걱정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을 가르쳤던 쌍계사 혜소(慧昭,774∼850) 스님 소식을 묻는다. 그 스님이 말했던가,노래했던가.노래한다는 것은 뭍 새들 우는 소리,뭍 벌레들 우는 소리,바람소리 물소리 천둥소리 빗소리,아 서리내리는 소리 속으로,숨어 흐느껴 우는 외로운 사람 울음소리 속으로,입으로 소리내지 않고 마음으로 우는 사람 마음속으로 들어가 한몸이 되는 것이라고.가서 자연이 되는 것이라고.그리하여 모든 것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그것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이라고.그 스님은 쌍계사에 계실거라고 바람이 말했다.어쩌면 보고도 못 알아 볼지 모른다는 야릇한 말을 나그네 뒤에다 던지고는 숲으로 들어가버렸다. 하동 옛일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고 송림(松林) 바람이 전해준다. ●자연에 동화돼야 고통 사라져 하동은 신라와 백제가 서로 뺏고 빼앗기는 두 나라의 변방이면서도 서울 못지않은 전략거점이었다.진주도 한동안 백제 땅이었다.신라에 진주를 내주고 하동으로 물러선 백제는 더 후퇴할 수가 없었다. 신라는 하동을 넘고 섬진강을 건너야 호남평야를 얻고 중국 가는 편리한 뱃길을 잡을 수 있었다.두 나라의 전투는 하동 땅 산과 들에서 자연 오래 끌고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젊은 사내들의 목숨이 서로 겨눈 창 끝에서,화살 끝에서,칼날 위에서 이슬같이 스러져 갔다.그 젊은 영혼들의 산화(散花)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지리산 철쭉꽃으로,차꽃으로 피고 졌다. 산화란 비록 꽃은 피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라는 식물학적 정의도 있으려니와 절집의 재식(齋式)에서 범패(梵唄)를 부르며 꽃을 뿌리는 일을 두고서도 일컫는 말이니,쌍계사에 살았던 저 혜소 스님이 범패를 세속으로 모셔 내려와서 민중으로 하여금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한가지 지혜로 응용하셨으니,하동의 옛일이야말로 이 땅의 향기 짙은 신화가 아니겠는가. 두 나라 전쟁의 참화가 오래 절규했던 하동 땅이었으므로 이 모진 아픔을 치유해 사람이 이웃하여 살게 하기 위해서는 비범한 사랑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그 사랑으로 두루 평온을 숨쉬는 공존의 미학이 생겨나도록 하동 사람들이 빌었을 것이다. ●영·호남이 하나된 공존의 미학 `花開洞天’ 기원은 마침내 이루어졌다.하동 말씨에 전라도 사투리의 억양이 자리잡았고,하동의 음식 맛에 전라도의 간과 향기가 배어 있음이 그것이다.둘이면서 하나가 된 공존의 미학을 완성시킨 전형적인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또한 그 문화는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 섬진강 강물을 나눠 먹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로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 어머니 젖을 나눠먹고 자란 형제들인 것이다. 이같은 하동의 옛일은 이미 화엄사상이 만개할 토양이 되었고,화엄이 꽃 피는 화개동천(花開洞天)을 만들었다. 나그네는 송림을 지나 키낮은 차나무들의 높은 푸름을 쓸어안아 보면서 섬진강 기슭으로 난 그림 같은 길을 따라 걸어오른다.화개(花開)다.화개장터다. 화개 골짜기는 유난히도 절이 많았다.시대마다 예사로 쉰개가 넘는 절들이 화개천 물소리를 나누어 들으면서 이쪽저쪽 산자락마다 들어 앉아서는 고통의 바다 건너는 법을 묻고,대답하면서 한 천년을 좋이 살았다.절이 그토록 많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하동 역사 속에 아프게 저며 넣어진 젊은 목숨들이 이승에 살아남은 자들을 향하여 왜 사느냐고 물어온 화두를 풀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그랬을 것이다.적어도 하동땅에서 삶을 곧추세우려는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옛사람들이 던져 놓은 저 생사(生死)화두를 들고 밤을 지새워봐야 옳다. 참 무겁고 힘에 버거운 명제다.이같은 명제를 신명나게 풀어서 세상 사람들의 일상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세상 사는 지혜를 일러준 한 사람을 만나보면 세상살이가 지겹고,고통스럽고,후회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나그네는 성큼 쌍계사 일주문을 들어선다.아직은 겨울의 품안이라 손이 시리다. 대웅전 오르는 돌계단 아래서 나그네가 물어 물어 찾아 온 혜소 스님의 그림자를 만났다. 국보 제 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다.신라 사람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손수 썼다. 나그네가 찾는 혜소스님이 진감선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분이다. 838년쯤엔가 민애왕이 혜소스님을 만나고 싶다는 간곡한 청을 넣었으나 그는 승려가 권력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완곡히 사양한 일이 있었다.왕은 나라를 생각하면 되고,승려는 그 나라의 백성을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백성을 생각하는 것은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백성들의 나라이며,백성은 왕이 낳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신 것이니 왕은 백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왕은 백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야 정치하는 왕이 추구하는 것은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지만 승려는 그 사람들을 섬겨야 하므로 비록 만난다 하더라도 아무 도움될 일이 없다고 했다. 인물 잘나고,좋은 옷으로 몸을 치장했으며,정치와 권세에 도움되는 학식과 경험을 두루 갖추어 왕에게 도움되는 사람은 세속에서 찾는 것이 옳다는 말도 했다. 민애왕은 존경심이 우러나서 존경의 뜻으로 사신을 보내면서 혜조(慧照)라는 법명을 내렸다. 지혜의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는 지극한 존경심을 담은 이름이었다. 이름을 가져온 사신은 민애왕의 간곡한 청을 다시 전했다.경주까지 한 번만 다녀가시라는 부탁이었다.그래도 응하지 않았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민애왕이 내린 이름의 비칠 조(照)를 부를 소(昭)로 고쳐버렸다.이 시대를 사는 스님들이 새기고 또 새겨봐야 할 옛일이다. 그는 고통받는 민중을 구원할 수 있게 되기를 목표로 정하고 수행을 시작했다.하지만 민중의 고통은 바다같이 넓고 커서 어떻게 하는 것이 구원이 될지 그것을 아는 것이 더 급했다. 민중을 구원한다는 일이 자칫 화려한 관념적 수사에 그쳐버리고 실제로는 민중에게 고통을 더하는 짓이 되기 쉽다는 것을 깨닫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서 그 자신이 민중으로 살아가야만 민중의 고통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는 점이었다.깨달아야만 실천할 수 있는 것.그러자면 평상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나와 민중을 둘로 양립시켜서는 안 된다.하나가 되어야만 한다.그래야 하는 일이 즐겁고,즐거워야만 오래 계속할 수 있다.그는 자신이 큰힘 들이지 않고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헐벗고 굶주리는 고통이 가장 흔하고 큰 것이기는 하지만 남에게 줄 옷과 밥을 마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계속하기란 불가능하고,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칫 자신을 자랑하게 되기 쉽다는 것도 알았다. 오랜 궁리 끝에 일감을 찾아냈다.몸이 불편하거나 가난하여 신발을 신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짚신을 삼아서 신겨주기로 했다. 짚신 삼는 솜씨는 자신도 갖고 있었다.짚을 장만하는 데는 큰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짚을 구해 잘 손질하여 일을 시작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보니 저절로 입에서 염불이 흘러나왔다.굳이 염불이라 할 것도 없었다.그냥 좋으니까 흥얼흥얼거리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13)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상)

    누군들 고통속에 머무르고 싶은 이가 있겠는가. 지금 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고요한 평온을 누리고 싶지 않은 이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게 쉽지 않느니,아주 드물게는 이대로 영원했으면 싶을 때도 있었지만, 오,그때는 순간으로 짧은 것. 비록 짧게였지만 깊게 느껴졌던 그 순간을 맛본 사람은 자주 꿈을 꾸느니.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것에 대하여 꿈 꾸느니. 오늘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을 배우러 또 길을 떠난다.길은 경남 하동 섬진강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푸른 전설과 향기짙은 신화의 몸 위로 흘러간다.언제 걸어도 새로운 길이다.길에서 만난 바람에게 묻는다.하동의 옛 일과 옛 사람을 묻는다.옛 사람 가운데서 노랫말 없는 노래를 소리로 부르면서 근심걱정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을 가르쳤던 쌍계사 혜소(慧昭,774∼850) 스님 소식을 묻는다. 그 스님이 말했던가,노래했던가.노래한다는 것은 뭍 새들 우는 소리,뭍 벌레들 우는 소리,바람소리 물소리 천둥소리 빗소리,아 서리내리는 소리 속으로,숨어 흐느껴 우는 외로운 사람 울음소리 속으로,입으로 소리내지 않고 마음으로 우는 사람 마음속으로 들어가 한몸이 되는 것이라고.가서 자연이 되는 것이라고.그리하여 모든 것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그것이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법이라고.그 스님은 쌍계사에 계실거라고 바람이 말했다.어쩌면 보고도 못 알아 볼지 모른다는 야릇한 말을 나그네 뒤에다 던지고는 숲으로 들어가버렸다. 하동 옛일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고 송림(松林) 바람이 전해준다. ●자연에 동화돼야 고통 사라져 하동은 신라와 백제가 서로 뺏고 빼앗기는 두 나라의 변방이면서도 서울 못지않은 전략거점이었다.진주도 한동안 백제 땅이었다.신라에 진주를 내주고 하동으로 물러선 백제는 더 후퇴할 수가 없었다. 신라는 하동을 넘고 섬진강을 건너야 호남평야를 얻고 중국 가는 편리한 뱃길을 잡을 수 있었다.두 나라의 전투는 하동 땅 산과 들에서 자연 오래 끌고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젊은 사내들의 목숨이 서로 겨눈 창 끝에서,화살 끝에서,칼날 위에서 이슬같이 스러져 갔다.그 젊은 영혼들의 산화(散花)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지리산 철쭉꽃으로,차꽃으로 피고 졌다. 산화란 비록 꽃은 피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라는 식물학적 정의도 있으려니와 절집의 재식(齋式)에서 범패(梵唄)를 부르며 꽃을 뿌리는 일을 두고서도 일컫는 말이니,쌍계사에 살았던 저 혜소 스님이 범패를 세속으로 모셔 내려와서 민중으로 하여금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한가지 지혜로 응용하셨으니,하동의 옛일이야말로 이 땅의 향기 짙은 신화가 아니겠는가. 두 나라 전쟁의 참화가 오래 절규했던 하동 땅이었으므로 이 모진 아픔을 치유해 사람이 이웃하여 살게 하기 위해서는 비범한 사랑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그 사랑으로 두루 평온을 숨쉬는 공존의 미학이 생겨나도록 하동 사람들이 빌었을 것이다. ●영·호남이 하나된 공존의 미학 `花開洞天’ 기원은 마침내 이루어졌다.하동 말씨에 전라도 사투리의 억양이 자리잡았고,하동의 음식 맛에 전라도의 간과 향기가 배어 있음이 그것이다.둘이면서 하나가 된 공존의 미학을 완성시킨 전형적인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또한 그 문화는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 섬진강 강물을 나눠 먹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로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 어머니 젖을 나눠먹고 자란 형제들인 것이다. 이같은 하동의 옛일은 이미 화엄사상이 만개할 토양이 되었고,화엄이 꽃 피는 화개동천(花開洞天)을 만들었다. 나그네는 송림을 지나 키낮은 차나무들의 높은 푸름을 쓸어안아 보면서 섬진강 기슭으로 난 그림 같은 길을 따라 걸어오른다.화개(花開)다.화개장터다. 화개 골짜기는 유난히도 절이 많았다.시대마다 예사로 쉰개가 넘는 절들이 화개천 물소리를 나누어 들으면서 이쪽저쪽 산자락마다 들어 앉아서는 고통의 바다 건너는 법을 묻고,대답하면서 한 천년을 좋이 살았다.절이 그토록 많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하동 역사 속에 아프게 저며 넣어진 젊은 목숨들이 이승에 살아남은 자들을 향하여 왜 사느냐고 물어온 화두를 풀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그랬을 것이다.적어도 하동땅에서 삶을 곧추세우려는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옛사람들이 던져 놓은 저 생사(生死)화두를 들고 밤을 지새워봐야 옳다. 참 무겁고 힘에 버거운 명제다.이같은 명제를 신명나게 풀어서 세상 사람들의 일상사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세상 사는 지혜를 일러준 한 사람을 만나보면 세상살이가 지겹고,고통스럽고,후회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나그네는 성큼 쌍계사 일주문을 들어선다.아직은 겨울의 품안이라 손이 시리다. 대웅전 오르는 돌계단 아래서 나그네가 물어 물어 찾아 온 혜소 스님의 그림자를 만났다. 국보 제 47호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다.신라 사람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손수 썼다. 나그네가 찾는 혜소스님이 진감선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분이다. 838년쯤엔가 민애왕이 혜소스님을 만나고 싶다는 간곡한 청을 넣었으나 그는 승려가 권력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완곡히 사양한 일이 있었다.왕은 나라를 생각하면 되고,승려는 그 나라의 백성을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백성을 생각하는 것은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백성들의 나라이며,백성은 왕이 낳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 내신 것이니 왕은 백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왕은 백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야 정치하는 왕이 추구하는 것은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지만 승려는 그 사람들을 섬겨야 하므로 비록 만난다 하더라도 아무 도움될 일이 없다고 했다. 인물 잘나고,좋은 옷으로 몸을 치장했으며,정치와 권세에 도움되는 학식과 경험을 두루 갖추어 왕에게 도움되는 사람은 세속에서 찾는 것이 옳다는 말도 했다. 민애왕은 존경심이 우러나서 존경의 뜻으로 사신을 보내면서 혜조(慧照)라는 법명을 내렸다. 지혜의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는 지극한 존경심을 담은 이름이었다. 이름을 가져온 사신은 민애왕의 간곡한 청을 다시 전했다.경주까지 한 번만 다녀가시라는 부탁이었다.그래도 응하지 않았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민애왕이 내린 이름의 비칠 조(照)를 부를 소(昭)로 고쳐버렸다.이 시대를 사는 스님들이 새기고 또 새겨봐야 할 옛일이다. 그는 고통받는 민중을 구원할 수 있게 되기를 목표로 정하고 수행을 시작했다.하지만 민중의 고통은 바다같이 넓고 커서 어떻게 하는 것이 구원이 될지 그것을 아는 것이 더 급했다. 민중을 구원한다는 일이 자칫 화려한 관념적 수사에 그쳐버리고 실제로는 민중에게 고통을 더하는 짓이 되기 쉽다는 것을 깨닫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서 그 자신이 민중으로 살아가야만 민중의 고통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는 점이었다.깨달아야만 실천할 수 있는 것.그러자면 평상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나와 민중을 둘로 양립시켜서는 안 된다.하나가 되어야만 한다.그래야 하는 일이 즐겁고,즐거워야만 오래 계속할 수 있다.그는 자신이 큰힘 들이지 않고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헐벗고 굶주리는 고통이 가장 흔하고 큰 것이기는 하지만 남에게 줄 옷과 밥을 마련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계속하기란 불가능하고,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칫 자신을 자랑하게 되기 쉽다는 것도 알았다. 오랜 궁리 끝에 일감을 찾아냈다.몸이 불편하거나 가난하여 신발을 신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짚신을 삼아서 신겨주기로 했다. 짚신 삼는 솜씨는 자신도 갖고 있었다.짚을 장만하는 데는 큰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짚을 구해 잘 손질하여 일을 시작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보니 저절로 입에서 염불이 흘러나왔다.굳이 염불이라 할 것도 없었다.그냥 좋으니까 흥얼흥얼거리는 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 코엘류호 11일 첫 체력 테스트 “스피드를 높여라”

    지난해의 시련을 뒤로하고 ‘코엘류호’가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오만과의 평가전(14일·울산)과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레바논전(18일·수원)을 위해 10일 밤 파주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모였다. 고난의 한해를 보내면서 ‘자질론’ 시비에 휘말리기까지 했던 움베르투 코엘류(얼굴) 감독의 각오는 어느때보다 굳다.‘포르투갈의 베켄바워’로 불린 코엘류 감독에겐 2003년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정도였다. 기대 이하의 성적과 플레이로 연신 도마위에 올랐고,급기야 아시안컵 예선(10월)에서 오만과 베트남에 잇따라 패하면서 경질위기까지 내몰렸다. 동아시아축구선수권에서의 우승으로 일단 ‘생명연장’에는 성공했지만 개운하지는 않다.명예회복을 위해 코엘류 감독은 스피드 강화와 내부경쟁을 기치로 내걸었다.특히 노장과 신예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전력을 극대화할 생각이다. 대표팀에 최성국(21) 김영광(21) 김동진(22) 등 ‘젊은 피’가 대거 포진한 데서 코엘류 감독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코엘류 감독은 젊은 선수들에게 노장들과 당당히 맞설 것을 여러차례 강조했다.눈앞의 승리보다는 2006독일월드컵을 노리는 ‘장기포석’으로 해석된다. 코엘류 감독의 후원을 업은 신예들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를 통해 실력을 검증받은 ‘거미손’ 김영광은 패기를 앞세워 백전노장 이운재(31)의 아성에 도전장을 냈다. 다른 포지션도 신·구 대결 구도로 변했다.유상철(33)의 부상으로 뒤늦게 합류한 조병국(23)은 장기적으로 중앙수비수 자리를 놓고 유상철과 경쟁을 벌일 각오다.공격에선 ‘리틀 마라도나’ 최성국이 ‘테리우스’ 안정환(28·요코하마) 등 노장 스트라이커와의 맞대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또 ‘코엘류호’는 체력강화를 통해 스피드를 높이는데도 중점을 둘 계획이다.11일 체력테스트는 ‘코엘류호’에서는 처음있는 일. 여기에다 경기에 임하는 코엘류 감독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오만과의 경기는 평가전인데도 불구하고 유럽파를 총출동시켰다. 유럽파 6명 가운데 이영표(27·에인트호벤)만이 16일 입국하고,나머지는 14일 이전에 귀국해 오만전 투입이 가능하다.아시안컵 예선에서 당한 오만전 패배 쇼크에서 탈출하려는 의지가 가득하다. 박준석기자 pjs@˝
  • [나의 건강보감]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아마 입지전(立志傳)을 얘기한다면 그만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일본에서 태어나 광복이 된 11살 때 귀국하는 바람에 후쿠오카에서 다닌 초등학교 3학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사람,담배장사,엿장사,찐빵장사에 돼지장사까지,거친 밑바닥에서 잡초처럼 삶을 일군 사람,그랬다가 경옥고 제약공장을 차려 마침내 연매출액 1200억원대에 이르는 굴지의 제약사로 키워낸 사람,바로 광동제약㈜의 최수부(70) 회장이다. 몇년 전,텔레비전 광고에서 “지금도 직접 우황을 고른다.”는 대사와 함께 ‘최씨 고집’ 운운하던 그를 사람들은 기억한다. ●헬스로 몸 다지고 냉·온탕 목욕으로 피로 풀어 그는 지금도 건강만큼은 자신있다고 했다.그런 자신감이 결코 과신으로 비쳐지지 않았다.오로지 ‘맨 땅에 박치기하듯’ 살아온 삶이 어찌 건강없이 일궈질 수 있을까.“타고난 건강 체질이지만 그걸 믿고 오만했다면 지금 이렇게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보면 타고난 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그러면서 그는 일을 말했다.“63년도,그러니까 스물여섯 나던 해에창업해 지금까지 왔는데,그 힘은 일에 있었던 것 같아요.사람은 목표가 있으면 힘이 고갈되지 않습니다.그런 거 있잖습니까?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죽을 틈도 없이 일하던 부모가 자식들 잘 키워놓고 느긋하게 노후를 즐길 만하면 자빠지는 거 말입니다.그 부모를 지탱시킨 힘은 바로 ‘해야 할 일’에 있었던 거지요.”그러면서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강골이다.기질이 강인한 것은 물론 체력도 그 연배의 누구보다 좋다고 자신한다.물론 운동도 두루 좋아한다.등산을 하면 젊은 사람들도 감당하기 쉽지 않을 정도며,구력이 30년이나 되는 골프는 지금도 치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건강법은 역시 운동을 겸하는 목욕과 섭생법.“주중에는 일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어 매일 피트니스센터를 찾는데,꾸준히 하되 무리는 하지 않습니다.30분 정도 걷고,30분 정도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정도입니다.이렇게 땀을 흘린 뒤 목욕탕을 찾는 게 몸에 익은 운동 순서입니다.” ●단백질 많고 비만 부담없는 생선 좋아해 그의 목욕법은 독특하다.탕에 들어가기 전,미리 준비한 쌍화탕을 한 병 따뜻한 물에 덥혀 마신 뒤 입욕한다.온탕에 들어 10여분간 몸을 덥히고 나서 이번에는 냉탕·온탕을 교대한다.이렇게 세 번 정도를 반복하면 덥혀진 몸이 풀리면서 심신의 스트레스와 묵은 앙금이 일순 빠져나가는 듯한 가뿐함을 느낀다.“우리 쌍화탕이 감기몸살약으로 더 많이 애용되지만,원래는 피로회복제입니다.지난 75년 제조를 시작한 이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마셔왔는데,내가 만들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꽤 좋은 약이에요.” 그가 절실하게 건강을 돌아본 데는 별난 계기가 있었다.20여년 전,가족과 함께 경주 인근 감포해수욕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다 애들 둘이 파도에 휩쓸리는 사고를 당했다.천신만고 끝에 둘을 건져냈으나 그날 밤 잠자리에서 반신마비가 왔다.“할 일이 태산인데,얼마나 놀랐겠어요.바로 귀가해 한의원에서 침도 맞고 이런저런 치료를 받았는데 신통찮아요.그래서 ‘죽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뜻을 이뤄야 한다.’는 각오로 운동을 시작했지요.그 전에는 체계적으로 운동 안했어요.” 최근의 채식 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류와 생선을 즐기는 식성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제가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서 그런지 유독 생선류를 좋아해요.단백질이 많으면서도 고지혈이나 비만 등 육류가 주는 부담이 적잖습니까? 예전엔 일식집엘 가면 초밥이든,회든 3인분은 거뜬히 먹어 치웠는데,요즘엔 조금 양을 줄였어요.그래도 남들보다 2배는 많이 먹지만….”싱싱한 어패류를 즐기는 그의 식성은 식도락에 가깝다.생선도 무작정 먹기보다 지금같은 철에는 방어 복어 광어를,여름에는 농어를 먹는 등 까다롭게 제철을 따져 먹는다. 육류도 남달리 좋아해 지금도 다른 사람의 2배는 거뜬히 먹는다.돼지고기와 닭고기는 피부알레르기 때문에 피하지만 쇠고기,그 중에서도 육회와 생갈비는 너무 즐겨 전문가 수준의 감별 미각까지 갖췄다.“생갈비는 적당히 구워 소금에 찍어먹는 게 제일 맛있고,육회는 아무래도 전라도 게 좋은데,지금도 지방 출장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광양을 찾곤 해요.거기 육회가 일품이거든.아마 한 근은 족히 먹지.최근에는 집사람이 자꾸 고기 좀 줄여 먹으라고 닦달해 줄였는데,당길 땐 어쩔 수 없지 않아요.먹어야지.”그러면서 그는 “고기든,뭐든 잘 먹되 빈둥거리지 말고 일하면서 에너지를 태우면 된다.”고 했다. ●생갈비는 소금에 찍어 먹어야 제맛 창업 이래 광동제약의 대표브랜드로 자리잡은 쌍화탕은 지금도 해마다 1억 3000만병이 팔리고 있으며,우황청심원도 연간 1200만개가 팔리는 등 사세가 든든하지만 ‘양약구세(良藥救世)’를 향한 그의 집념은 끝이 없다.“이제는 국민건강을 위해 예방약 개발에 전력하고 있으며 몇가지 야심적인 프로젝트도 진행중”이라고 소개했다. “덜 짜게,덜 맵게 먹되 두려워 말고 병원을 자주 찾아 건강을 살펴야 개인은 물론 국가도 건강해집니다.”이렇게 말하는 그의 집무실에는 너무 소중해 오히려 값싸보이는 이런 편액이 걸려 있었다.‘재보만고건실무용(財寶滿庫健失無用-재물이 창고에 가득해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 최수부 회장의 섭생법 키 172㎝,몸무게 70㎏의 단단한 체격을 가진 최수부 회장은 지금도 주말이면 부인 박일희(66)씨와 골프를 즐긴다.한번 라운딩을 하면 서두르지 않고 7㎞쯤 걸을 수 있으며,과격하지 않아 골프가 좋다는 그는 “그래도 식보(食補)라고 했는데,섭생만큼 소중한 건강법이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줄였다지만 나이 일흔인 그의 식사량,특히 고기를 즐기는 식성은 지금도 젊은 사람 못지 않다.“사람이 과음(過飮) 과식(過食) 과색(過色) 과로(過勞)를 피하면 천수를 누린다고 했지만 그건 신선의 얘기고,사람이야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으면 그게 몸에 좋고 또 행복한 거지.나는 그렇게 살아왔어요.뭐든 당기는 음식을 양껏 먹되 일에는 몸을 아끼지 않는 방식으로.”그렇다고 그가 질정없이 고기만을 즐겨 먹지는 않는다.“집사람이 챙겨 최근에는 육식 대신 야채와 두부,콩 등 잡곡류를 많이 먹지만 언제든 당기면 고기집을 찾습니다.”이럴 땐 기름이 좀 배어 있어도 안심보다는 등심이 좋다.먹는 맛이 달라서다.“옛 어른들이 그랬잖아요.잠자리는 가려도 먹을거리는 가리지 말라고.그래선지 식성은 좋습니다.사실,그게 나를 있게 한 힘의 원천이라고 봐야죠.”하루 3갑씩 태워대던 담배는 25년쯤 전에 국회의장을 지낸 민관식씨 권유로 끊었지만,지금도 맘만 먹으면 어지간한 술꾼 정도는 어렵잖게 제칠 만큼 술은 마신다.“작고한 김복동 장군과 한자리에서 폭탄주를 서른잔이 넘게도 마셔봤어요.그래도 다음날 거뜬했는데,지금은 그만 못하지.” 그러면서 그는 일본인의 장수 비결을 귀띔했다.“일본에만 100세 이상 고령자가 3만명이나 되는데,이 사람들 오래 사는 비결은 무엇이든 과하지 않으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데 있습니다.잘 먹고 기쁘게 일하는 것만한 건강법이 있겠습니까?” 심재억 기자
  • 코엘류호 “킬러 없소”/최태욱등 젊은피 주목 월드컵예선 멤버 발표

    새로운 ‘킬러’를 찾아라.한국축구대표팀 ‘코엘류호’의 차세대 스트라이커 경쟁이 시작됐다.그동안 대표팀 해결사로 활약해 온 노장들이 줄줄이 물러나면서 새 킬러 발굴이 최대의 과제로 떠오른 것. 2002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황선홍(36)이 은퇴했고,지난 20일에는 김도훈(34·성남)마저 대표팀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이어 ‘독수리’ 최용수(31·쿄토 퍼플상가)도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혔다. 차세대 주자로 일단 2002월드컵을 통해 기량을 인정받은 안정환(28·요코하마) 설기현(25·안드레흐트) 박지성(23·에인트호벤) 차두리(24·프랑크푸르트) 등이 거론된다.그러나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의 마음을 충족시키기엔 부족한 점이 있다.안정환과 박지성은 파워가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고,차두리와 설기현은 투박한 플레이가 마음에 걸린다. 여기에다 ‘젊은피’도 차세대 킬러 싸움에 합류할 태세다.올림픽대표팀 공격수 조재진(23·광주)과 최태욱(23·안양) 최성국(21·울산)도 후보에 올랐다.특히 코엘류 감독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세대교체를 강하게 주장해 이들의 중용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한편 대한축구협회는 26일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레바논전(2월18일)에 출전할 국가대표 23명을 발표했다.박지성 이천수(23·레알 소시에다드) 등 유럽파 6명과 유상철(33) 안정환(이상 요코하마) 등 J리거 2명을 포함시켰다. 박준석기자 p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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