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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스위스 ‘젊은피’ 대격돌

    ‘복수혈전’ 한국축구대표팀 ‘영건 삼총사’ 박주영 백지훈 김진규가 독일월드컵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설욕에 나선다.21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지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네덜란드)에서 스위스에 1-2로 졌다. 스위스는 당시 멤버 가운데 트랑킬로 바르네타(21), 필리페 센데로스(21), 요한 폰란텐(19), 요한 주루(18) 등 4명이 독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폰란텐은 청소년대표 대결 당시 결승골의 주인공이다. 1년이 지난 뒤 이들은 성인대표팀 주전으로 성장, 이번 월드컵에서도 포지션상 맞대결이 불가피하다. 중앙 수비수 김진규는 프라이와 함께 주전 공격수로 나오는 폰란텐과 다시 맞선다. 폰란텐의 능력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최고 골잡이 프라이와 함께 투톱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다.16세에 역대 최연소 스위스리그 출전선수로 기록됐고 최연소 리그 득점자라는 영예까지 안았다.18세에 이미 대표팀에 발탁돼 유로2004에 출전했고, 월드컵 지역예선에도 무려 12경기에 나섰다. 공격수 박주영은 패기와 노련미를 함께 갖춘 중앙 수비수 센데로스를 상대로 골사냥을 해야 하고, 미드필드 백지훈은 바르네타와 치열한 중원싸움을 벌여야 한다. 바르네타도 유로2004 멤버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독일월드컵 최우수신인상 후보 40명에 모두 올랐다. 한국에서는 박주영 백지훈 김진규가 이름을 올렸고, 스위스는 지난해 청소년대표 출신 4명 등 모두 6명이 포함돼 ‘젊은 피’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프랑스 브라질 일본 등 11개국은 대상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준결승전이 끝나는 7월5일까지 인터넷투표 등으로 압축한 6명의 후보 가운데 최우수신인을 선정한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2006 독일월드컵] “A매치 0… 토고 6명 누구야”

    토고가 고질적인 수비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A매치(국가대표간 경기)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피’를 대거 수혈한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월드컵 G조 한국의 첫 상대 토고는 최근 발표한 23명의 최종 엔트리에서 A매치 출전 경험이 전무한 6명의 젊은 선수들을 포함시켰다. 록 그나싱베 토고축구협회장은 17일 “그들은 우리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나싱베 회장이 밝힌 ‘부족한 부분’은 수비. 이를 증명하듯 6명 가운데 4명(투레 아시미우, 카림 구에데, 리치몬드 포르손, 쿠아미 아그보)이 수비수다. 토고는 지난 1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내며 카메룬, 콩고, 앙골라에 3전 전패의 수모를 당했다. 지난 3월 지휘봉을 잡은 오토 피스터 토고 감독은 최종 엔트리 발표 전까지 약점으로 꼽힌 수비진을 보강하기 위해 유럽을 순회하면서 선수들을 점검했다. 피스터 감독이 새로 발탁한 6명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선수는 지난 14일 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맹활약한 18세의 오른쪽 윙백 투레다. 태극전사들도 한결같이 위협적인 선수로 투레를 지목했었다. 토고는 투레를 비롯한 ‘젊은피’의 영향으로 비록 역습 한방에 골을 내주기는 했지만 네이션스컵 당시보다는 한층 안정된 수비력을 보여줬다. 투레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엘 레버쿠젠 20세 이하 팀에서 중앙 수비수를 맡아왔다. 레버쿠젠 구단 홈페이지도 투레가 토고 월드컵 멤버로 발탁된 것을 자세히 보도하는 등 투레에 큰 관심을 쏟았다. 또 공격수로는 프랑스리그 브레스트에서 뛰는 이중국적(프랑스와 토고)의 로베르 맘을 발탁했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무대옷·소품은 대사없는 배우”

    “자식같은 옷과 소품들이 천덕꾸러기 되는 걸 보느니 차라리 태워없애버리는 게 나아요. 젊은 사람들 생각하면 남기고 싶은 욕심이야 있지만 누가 나서서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데 어쩌겠어요.” 무대미술가로 40년 외길을 걸어온 극단 자유의 이병복(79)대표는 요즘 몹시 착잡하다. 그동안 일일이 직접 바느질을 해가며 만든 수많은 소품과 의상을 자신의 품에서 떠나보내는 통과의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인 화가 권옥연씨와 함께 설립한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무의자박물관에서 27∼31일 무대미술 인생 40년을 정리하는 전시회 ‘이병복은 없다’(02-762-0010)를 연 뒤 작품들을 모두 태워버릴 작정이다. 1966년 연출가 김정옥씨와 극단 자유를 창단하고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무대미술계에 뛰어든 이 대표는 한지와 삼베, 모시 등 전통소재를 활용한 독창적인 의상을 선보였다. 무대미술을 정식으로 배운 적 없는 그는 타고난 감각과 손재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고, 창단작인 ‘따라지의 향연’을 비롯해 ‘무엇이 될꼬 하니’‘달맞이꽃’’피의 결혼’등을 통해 한국 무대미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1991년 세계무대미술경연대회에서 무대미술상을 수상할 만큼 해외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스태프를 ‘무대 뒷광대’라고 부르는 이 대표는 “한국에선 연출가, 배우가 없으면 연극이 되지 않는 줄 알지만 우리가 무대를 꾸며주지 않으면 아무리 잘난 배우라도 설 땅이 없다.”고 꼬집었다.남양주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월드컵 신화’ 시작됐다] 빅리그 경험+좋아진 체격=‘빅파워’

    [‘월드컵 신화’ 시작됐다] 빅리그 경험+좋아진 체격=‘빅파워’

    ‘더 젊어지고 더욱 강해졌다.’ 11일 독일행 승선 명단에 이름을 올린 23명 태극전사들의 면면을 살펴 보면 딕 아드보카트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그동안 강조해 왔던 ‘젊음과 경험의 조화’가 한 눈에 드러난다. 일단 ‘라인강의 기적’을 꿈꾸는 아드보카트호 멤버들의 면면은 4년전 ‘4강 신화’를 일궈낸 히딩크호 멤버에 견줘 더 젊어지고 더욱 강력해졌다. 한·일월드컵에 출전한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7.2세. 이날 발표된 ‘독일행 전사’들의 평균 연령은 26.4세로 낮아졌다. 신체조건에서도 한 걸음 앞섰다. 히딩크호의 평균 신장과 몸무게는 각각 179.5㎝와 73.1㎏이었지만 이번에는 180.2㎝,74.8㎏으로 훌쩍 커지고 더 튼튼해졌다. ‘월드컵 4강’의 주역이었던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를 비롯한 유럽파 대부분이 승선, 큰 무대에 대한 경험도 철저하게 고려했다. 23명 가운데 히딩크호의 멤버는 모두 10명으로 전체의 43%를 차지한다. 특히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일월드컵을 발판 삼아 빅리그에 진출했지만 올 상반기 내내 유난히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며 애를 태운 안정환 설기현 등 ‘위기의 유럽파’에 대한 기대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또 되풀이하며 지난 1일 최종 점검에 나서 7일 안정환의 2경기 연속골을 지켜 보면서 결국 미소를 지었다. 국내외에서 내내 발품을 팔며 꼼꼼하게 후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한 아드보카트 감독의 ‘조각맞추기’는 포지션별 조합에서도 신·구의 조화를 적절하게 이뤄냈다는 평가다. 주장 이운재(33)의 선발이 확실시되는 골키퍼 3명 가운데 김용대(27)를 ‘깜짝 투입’한 건 신예 김영광(23)과 이운재 사이의 버팀목 역할을 기대한 대목. 최고령의 대표팀 맏형 최진철(35)이 핵심이 될 포백수비에서는 조원희(23)-송종국(27) 김동진(24)-이영표(29) 등을, 미드필더에서는 박지성(25)-김두현(24) 김남일(29)-백지훈(21) 이을용(31)-이호(22) 등의 조합을 염두에 두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선발 경쟁’에 ‘젊은 피’와 ‘경륜’이 맞붙는 또 다른 시험무대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독일행 아드보카트호 승선자들의 발탁 배경은 신·고참의 적절한 조합과 경쟁구도로 ‘신화 재연’의 시너지효과를 노린 과감한 전략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제1회 입양의 날] 가부장제에 ‘강요된 선택’

    [제1회 입양의 날] 가부장제에 ‘강요된 선택’

    “먹어도 헛헛하고 먹지 않아도 늘 뭐가 걸린 듯 답답했죠. 그렇게 수십년을 살았습니다.” 평생 죄인으로 살았다. 제 뱃속에서 낳은 아이를 먼 타국 땅으로 보냈기에 한이 맺혔다. 아이를 입양한 가정은 밝은 데서 박수를 받지만 제 아이를 떠나보낸 생모들은 어두운 그늘에서 한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식을 버린 매정한 엄마가 아니라 한 사람의 피해자다. ●가부장적인 사회의 희생자 A씨는 딸 8명을 낳아 시댁에서 갖은 구박을 받았다.9번째도 딸임을 알게 됐다. 몰래 남아를 입양했고 딸은 태어나자마자 해외로 입양 보냈다. 입양한 남자아이를 자신이 낳았다고 가족을 속였다.A씨는 자신을 찾아온 딸을 만났지만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 B씨는 26년 전 아이 둘을 미국으로 보냈다. 남편은 주벽에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이 사기죄로 감옥을 가게 됐고 결국 이혼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빚과 양육의 책임은 고스란히 B씨의 몫이었다. 어느날 한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빚을 갚아주는 대신 아이들을 두고 오는 조건이었다. 삶에 지친 B씨는 재혼을 결심하고 아이들과 생이별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들을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해외입양인들을 지원하는 뿌리의 집 원장 김도현 목사는 해외 입양의 대부분이 가부장적인 사회분위기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재혼을 하는데 왜 아이들을 두고 오라고 할까요. 남자들이 ‘처녀 장가’를 가야 위신이 깎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아들을 선호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죠. 가부장적인 풍조 때문에 생물학적인 관계를 끊도록 강요하는 것은 다분히 폭력적입니다.” ●타의에 의한 생이별도 많아 해외 입양은 생모 자의로 보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70년대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의 아기 수출국’의 불명예를 안고 있었을 때 부모 의사와 상관없이 무수한 아이들이 해외로 나갔다. 40대 C씨의 경우 입양 보낸 아들이 자신을 찾아 오면서 해외입양 사실을 알게 됐다. 젊은 시절 실수로 아이를 갖게 됐고 낳자마자 입양을 보냈다. 국내 부잣집에 가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들은 미국인이 돼 있었다. 재회했지만 통역없이는 말 한마디 나눌 수 없었다. D씨 역시 비슷한 처지다. 피까지 팔아 도박을 하던 남편은 아들을 두고 달아났다. 친정 부모는 아이가 있으면 D씨가 재혼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손자를 입양보냈다.2004년 아들이 연락을 해오면서 미국 입양 사실을 알았다.D씨는 “내가 보낸 것은 아니지만 죽는 순간까지 한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입양을 보낸 엄마들에 대한 다큐 제작 중” 해외 입양아들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아이를 보내야만 했던 사람들은 손가락질만 당했다. 입양을 강요한 것은 결국 사회였는데도 그들의 인권은 없었다. 뿌리의 집에서는 생모 10명 가량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감독은 미국으로 입양됐던 태미 추씨가 맡았다. 김 목사는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작품을 연말쯤 공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유학가서 임도 보고 박사도 되고

    유학가서 임도 보고 박사도 되고

    오동영(吳東英)·김찬숙(金讚淑) 두 부부박사는 정부의 해외과학자 초청「케이스」에 의해 68년 1월 귀국했다. 서독에 있을 때 보다는 수입이 적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고 조용히 웃는다. 사실 부부박사는 적지 않지만 함께 외국에서 공부하고 외국에서 결혼해서 함께 돌아온 부부박사는 그리흔하지가 않을 것 같다. 이들은 그 흔하지 않은 젊은 박사들인 것이다. 남편은 농약합성의 이박(理博) 아내는 치아의 교정(橋正)박사 부인 김찬숙(金讚淑·33)씨는 치아의 교정(橋正)전문의인 치의학(齒醫學)박사다. 부군 오동영(吳東英·35)씨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농약합성 연구실장인 이학(理學)박사다. 함께 독일 「괴팅겐」대학에서 공부했다. 지금은 정부가 마련해 준 과학기술연구소 「아파트」에 몸담고 있다. 부군 오동영박사는 화학자다. 귀국과 함께 현재의 직책을 맡았다. 농업국가에 꼭 필요한 농약의 연구에 전념하는 귀중한 젊은 두뇌다. 한편 부인 김찬숙박사의 전공은 더 독특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사람치아의 교정 전문의사는 金박사 단 한 사람뿐이다. 치과의사이기는 하지만 치아가 아파서 진통제 등으로도 참다 참다못해 겁반 체념 반으로 환자들이 찾아 드는 그런 무서운 칫과의사는 아닌 것이다. 성한 치아를 더 곱게 꾸며주고 병을 예방해 주는 교정전문의. 말하자면 「치아의 미용수술」 전문의사다. 여자의 직업으로서는 격에 맞는 전공이 아닐 수 없다. 부군이 농업한국과 과학한국의 큰 기둥이 되는 과정에 있다. 부인은 아름다움을 그 섬세한 손으로 「창조」해 내려는 미의 사신이다. 한국서 유일한 박사님인 아내는 곧 병원차릴예정 안과 밖에서 아내와 남편-그들의 조건에 맞는 분업을 맡은 이상적인 맞벌이 「인텔리」부부다. 맞벌이라고 말해도 상관없는 것은 부인 金박사가 기왕에 배운 학문을 썩히기 아까와 오는 10월1일 서울 충무로1가에 치아교정전문의원을 개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독에서 칫과교정학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긴 연구와 실습과정과 시험을 거쳐 외국 사람도 부러워하는 독일정부 발행 칫과교정전문의사의 자격증을 얻은 여의사의 출현은 이 부부의 보람을 위해서도 또 치아환자가 많은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반가운 소식이다. 치아교정이란 우리에게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분야다. 흔히 칫과라고 하면 치아를 뽑는 치료, 금니 해넣는 치료, 충치를 덮는 치료등으로 알고 있다. 교정칫과는 이렇게 되기 이전의 예방의학분야에 속한다. 간단희 말하면 아래 위의 턱이 잘못 자리잡은 주걱턱, 무우턱, 옥니, 이빨이 뻗어 웃을때 잇몸이 흉하게 많이 드러나는 것, 덧니가 많이 나타나는 것, 이빨 주위에서 피가 나는 것, 잇몸이 내려않는 풍치, 이가 고르지 못해 씹는데 장해가 있는 것등을 예방 혹은 교정해서 그 기능을 살려 주는 치의학이다. 아이낳고 살림하며 공부 즐겁고 바빴던 유학시절 그 효과는 간단히 말해서 치아를 보기 좋게 배열시켜 미용에 자신을 갖게 하고 음식을 수월하게 씹게 해 준다. 예방을 시켜 주기 때문에 金박사의 치료를 받는 사람은 이가 아파 뺨이 퉁퉁 붓는 고통을 모르고 지낼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부부박사는 두 사람이 합쳐서 양수겹장이 된다. 부군이 농약합성연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식량의 증산에 기여한다. 그러면 부인이 치아교정술로 그것을 더 잘 씹게 만들어준다. 식량생산과 음식저작(咀嚼), 소화의 일관작업을 맡고 있는 격이다. 부인은 서독에서 공부할 때는 고생도 많았다고 말한다. 양쪽의 집안이 모두 그렇게 구차한 살림은 아니었다. 이따금 학비를 보내왔다. 또 장학금도 탔다. 그렇지만 어디 자기나라 자기 집에서 학교에 다니는 생활과 꼭 같을수가 있겠느냐는 이야기. 이런 두 부부가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서울에 있을 때 이미 알고 지냈다. 吳박사는 경기고교를 졸업하고 57년에 유학길을 떠났다. 부인 金박사는 경기여고와 서울치대를 졸업하고 60년 10월 처음으로 서독「뮌서터」대학에 들어 갔다가 「걸혼하려고」 吳박사가 적을 둔 「괴팅겐」 대학으로 옮겼다. 그리고 도독(渡獨)한지 꼭 6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하려고 「괴팅겐」 대학으로 옮겼다는 그 말에 부인은 먼저 떠난 사람을 뒤쫓아 갔다는 뜻을 은연히 비치기도 했다. 공부와 살림살이에 아이키우기까지 도맡아야 했던 부인쪽이 더 고된 생활을 보냈다고 하지만 그들은 즐거운 부부였다고도 말한다. 부인이 회고담을 털어 놓는다. 방학때면 유럽 관광여행 유명한곳 모두 다녔지요 『「괴팅겐」지방은 나무숲이 우거진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저는 쉬는 날이면 밀린 집안 일을 처리 하는데 바빴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번 쯤은 「하이킹」을 즐길 수가 있었읍니다. 저녁이면 저희들은 곧잘 「괴팅겐」시내의 「하인홀츠」공원을 산책하기도 했읍니다. 방학때면 공산권을 빼놓고 「유럽」의 자유 제국을 관광여행하기도 했읍니다. 서부 「유럽」 대륙의 수도엔 우리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읍니다. 「로렐라이」의 전설이 깃든 「라인」강의 언덕에서 감상에 젖어보기도 했고 「다뉴브」강가에서 「슈베르트」의 영혼을 더듬어 보기도 했읍니다.』 잊기어려운 유학생활의 기억이 쌓인 청춘을 보낸 듯하다. 민들레의 씨앗이 봄바람에 날려가듯 동지나해와 인도양을 넘은 「유럽」 대륙에 뚝 떨어져 서로 도우며 의지하며 공부한 한국의 이 두 부부에게는 남달리 농도 짙은 추억이 젊은 시절을 수놓고 있을 것이다. 결혼 8년6개월 사이에 자녀 넷을 보았다. 이 중 7세가 되는 장녀 순화(舜華)양을 머리로 하는 셋은 독일에서 낳아 키웠다. 나머지 한 명은 약 2주일 전에 순산했다. 공부하면서 아이 셋을 키운 학생부부이기도한 것이다. 아마 金박사가 개업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에서 치아가 보기 흉하게 생긴 사람은 사라질것 같다. 그 말이 걸작이다. 『김포공항에 내리자 곧 다른사람의 이빨을 보았어요. 이빨들을 보기 좋게 가지런히 교정시켜 주고 싶은 사람들이 어떻게나 많은지요. 특히 어느 모로나 빈틈없는 여대생들의 이빨이 멋대로 돼있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어릴 때 미리 고쳐주지 못한 어머니들을 나무라고 싶어집니다. 이빨의 아름다움, 이빨의 건강은 얼굴미용과 섭취를 위해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아니겠어요?』 [ 선데이서울 69년 9/14 제2권 37호 통권 제51호 ]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마술사’ 손인호[2]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마술사’ 손인호[2]

    ‘얼굴 없는 가수’의 50년만의 외출 손인호씨는 대중들 앞에 일절 나서지 않았던 것은 물론 이미 톱 가수 반열에 오른 1955년 결혼 당시 부인조차 그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현재 손인호씨의 가족은 부인 이선자 여사를 비롯해 3남1녀, 그의 음악적 인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장남 손동준씨가 뒤늦게 대를 이어 ‘사랑은 OX’라는 곡으로 데뷔,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는 늘 입버릇처럼 ‘네 아버지가 가수인 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지요. 때문에 어릴 때 집에서 아버지 노래를 부르면 야단을 맞곤 했는데 밖에서만큼은 늘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비단 어머니뿐 아니라 당시엔 연예인들을 ‘딴따라’라고 비하하기도 했고 유독 가수활동을 말렸던 어머니가 뒤늦게 제 가수 활동만큼은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하시는 걸 보면 전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수로 50년 후배인 손동준씨의 말이다. 취입된 노래만으로도 전성기를 구가하던 가수 손인호씨는 정작 그 시각에 피 말리는 영화녹음현장에 매달려 있었다. 손인호씨는 우리나라 영화녹음 발전사의 산증인인 처남 이경순씨와 ‘한양녹음실’을 설립, 운영해왔다. 이곳에서 녹음한 영화는 무려 3500편 정도.50년대에서 90년대까지,40년간 제작된 한국영화의 70∼80%를 도맡았다. 물자 부족과 낙후시설로 인해 녹음 환경이 매우 열악했던 시기, 특히 필름은 ‘핏방울’이나 다름없이 귀했다. 당시는 ‘후시녹음’시절이라 이미 촬영된 생필름에 직접 녹음을 해야 하는 ‘피 말리는 작업’에 따르는 긴장감과 압박감은 엄청났다. 한 ‘씬’마다 음악과 음향효과, 그리고 연기자와 성우의 호흡과 감정을 맞추는데 몰입해야 했다. 게다가 이미 개봉날짜가 정해진 영화를 마무리하는 작업이기에 밤샘 작업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노래 취입 자체가 사실상 버거웠다. 결과적으로는 레코드사 전속가수로 한달에 몇 곡 이상은 반드시 녹음해야 하는 계약조건 때문에 그나마 여러 곡들을 취입, 남길 수 있었던 셈이다. 일화도 많다. 지금처럼 다양한 특수음향효과음을 모아놓은 ‘sound effect(음향효과)모음집’이 없던 시절이라 효과음향들을 일일이 직접 녹음해 만들어내야 했다. 재래식의 무거운 장비를 들고 기적소리가 울리는 현장, 즉 안양 밖 수원 못 미친 지점을 찾아내 철도 밑에서 밤새 기다렸다가 비로소 시나리오에 적혀진 대로 ‘차가운 새벽을 가르는 적막한 기차소리와 서글픈 기적소리’를 녹음기에 담아, 스크린을 통해 재현해야 했다. 임시 방편으로 철판을 흔들거나 두들겨 산들바람부터 비바람을 동반한 천둥소리까지 만들어내야 했고 ‘백치 아다다’의 경우 화면 배경의 매미소리를 내기 위해 임시 방편으로 두셋이 셀로판지를 입에 물고 매미소리를 직접 흉내내야 했던 웃지 못할 일화도 부지기수이던 시절. 신상옥 감독의 ‘젊은 그들’에서 주인공 최무룡과 개들이 싸우는 장면에서는 고민 끝에 실제로 개 네 마리를 직접 녹음실로 데려와 마이크를 목에 매달고 두 마리씩 편을 갈라 싸움을 붙이는, 말하자면 성우 대신 성견(聲犬)까지 동원했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전투장면. 우리 측 무기와 상대 전투기소리는 물론 M1과 카빈소총, 그리고 따발총소리 역시 제각각 달라야 했다. 영화편집용 기기인 ‘무비올라(moviola)’가 없던 시절이라 영사기 렌즈로 한 프레임씩 필름을 검색해 그림에 맞춰 한방 한방씩 녹음, 일일이 소리맞추기를 해야 했다. 특히 그에게 대종상 녹음상의 영광을 안겨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경우는 등장인물도 많았고 또 소리의 원근감까지 정확히 묘사했던 작품으로 보름 이상 소요되었다. 워낙 철두철미한 성격에 ‘보통사람과 다른 귀’를 가지고 있어 작곡가 이봉조씨가 그에게 지어준 별명이 ‘손형사’.‘소리의 달인’ 손인호씨가 가수로서 노래를 취입할 때마다 마이크 앞에서 갖는 중압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짜깁기’가 불가능했던 시절 ‘마그네틱 녹음테이프’ 또한 혈관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던 때인지라 취입 도중 반주나 노래가 틀리기라도 하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오랫동안 ‘긴장감’에 숙련된 그였지만 녹음에 들어가기 전 아예 독한 술을 미리 마시고 노래를 취입하기도 했던 일화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가 브라운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2001년,75세 때 가요무대 특집방송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 편’에서다.2003년 뒤늦게 가수분과에 입회,77세 되어서야 비로소 가수에 적을 둔 셈이고 재작년에는 40여년만의 신곡 ‘휴전선아 말해다오’를 발표했다. 이 노래가 결국 우리나라 최고령 가수의 취입곡이 되는 셈이다. 손인호 선생이 지난 4월12일 필자와 함께 부산 해운대를 찾았다. 그의 대표곡이자 동시에 해운대를 대표하는 노래 ‘해운대 엘레지’의 주인공이 노래 발표 50년 만에 첫 방문한 것으로 장남인 가수 손동준씨도 함께 동행했다. 지난 2000년에 세워진 ‘해운대 엘레지 노래비’ 앞에서 그는 사뭇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sachilo@empal.com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살 바라보는 ‘영원한 어린이’ 수필가 피천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00살 바라보는 ‘영원한 어린이’ 수필가 피천득

    온아우미(溫雅優美), 조촐하지만 향기가 아련하다. 마음과 영혼이 정갈해진다. 젊음과 봄을 찬미한다. 고매한 서정이 가득하다. 어여쁜 아이의 미소가 항상 넘쳐난다.‘영원한 어린이’이자 이 시대의 ‘참 스승’으로 여겨진다. ‘나같이 범속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볕 속에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내 나이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금아(琴兒) 피천득(97) 선생. 늘 이맘때면 고향의 ‘인연’처럼 생각난다. 그래서 신록이 우거진 5월의 거울 앞에서 우리 자신을 살핀다. 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어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채식 위주로 건강 유지 선생은 지금도 애지중지하는 인형 ‘난영’이와 함께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는다. 잠 잘 때에는 즐거운 꿈의 세계를 함께 걷는 길동무가 된다. 깨어 있을 땐 어린 아이처럼 순박한 미소로 서로를 느끼며 의지한다. 선생은 평생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삼았기에 칠순이 넘은 제자들이 자주 찾아와 허물없이 얘기를 나눈다. 어버이로서, 스승으로서 존경받아 선생은 5월의 상징적 인물이다. 햇볕이 따사로운 지난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선생의 자택을 찾았다. 미리 전화로 시간약속을 했던 터여서 선생은 응접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맑아보였다. 넙죽 인사를 드렸다.“어서 와요.” 하면서 특유의 해맑은 미소로 다정하게 손을 잡는다. 따뜻했다. 선생은 “건강? 한달에 한번 병원에 가요, 등쪽에 뭐가 좀 있는데 아직 괜찮아요.”라고 요즘의 건강상태를 미리 귀띔해준다. “선생님, 언제나 동안(童顔)입니다. 여전히 채식을 하시죠?” “아, 그럼….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주까. 영국의 버나드 쇼(1950년 95세로 사망)가 채식주의자였어요. 나이 들어 죽었는데 이때 ‘런던 타임스’ 사설에 뭐라고 그랬는가 하면 ‘버나드 쇼의 장례 행렬에는 염소와 소, 양떼들이 울면서 뒤를 따랐다.’라고 했지. 평생동안 육식을 안 하니깐 그놈들이 얼마나 고마워했겠는가 말야. 어쨌든 사설에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해….” 선생의 얼굴엔 함박 웃음이 가득했다. 아름다운 기억을 한순간에 들춰낸 희열이었다. 삶의 조크가 봄날의 화사한 꽃처럼 향기롭게 다가온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문득 응접실 벽에 걸린 족자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족자는 한문으로 깨알같이 썼으되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글씨였다. 선생은 눈치도 빨랐다.“저 (글)내용은 다 내 책에 있는 거야. 얼굴 사진은 아마 2년 전인가 그래요. 전문가가 찍었대….”라고 얼른 설명해준다. 아파트 창너머 화단쪽에는 연분홍 치마를 입은 진달래가 요염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화제를 돌렸다. “선생님, 이제야 봄이 온 것 같습니다. 꽃도 많이 피었고요.” “아, 그래. 제대로 오긴 왔나요.” “선생님,‘오월’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59년에 발표한 작품이시죠?” “아마, 그럴 거요.” “봄도 완연하고,5월에는 생각할 여러 날도 많습니다.” 선생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상념에 잠긴다. 기억을 되살릴 때마다 선생은 잠깐씩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 책을 가져와봐요.”하면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부른다. 아주머니는 치매로 고생하는 선생 부인의 수족처럼 늘 함께 지낸다. 이어 ‘피천득 수필집’(범우사 간행)과 번역시집 ‘내가 사랑하는 시’(샘터사 간행) 두 권을 가져왔다. 수필집은 ‘인연’‘그날’‘비원’ 등 그동안 발표된, 금쪽같은 것만 추려 모았다. 시집은 셰익스피어, 워즈워스, 예이츠, 도연명, 두보, 타고르 등 평소 좋아했던 세계 명시를 모아 작년에 직접 선생이 번역했다. “이봐요, 번역을 하다 보니 요새 느낀 게 있어. 영어로 Cover the Wagon을 직역했더니 포장마차가 되더라고. 그런데 지금 포장마차라고 하면 뭐가 돼요? 안주 먹고 술도 마시는 곳이지요. 원래는 인근에 산책 나갈 때 이용하는 덮개 씌워진 마차를 말하거든요. 이렇게 세대가 바뀌면 딴 게 돼버려요. 그래서 번역이 힘들어요.” ●시는 영혼의 가장 좋은 양식 선생은 또 눈을 감는다. 기억을 해내는 데 방해가 될까봐 질문을 멈추고 잠자코 기다렸다. 다시 말을 이었다. “거 참, 좋은 시들 많아.‘겨울이 짙었으니 봄이 그다지 멀겠는가.’ 영국 시인이 말했는데 괜찮다고 생각해요. 음, 이것도 있어요.‘봄비니까 맞고 가자, 젖어서 가자’ 이건 일본 사람이 한 얘기야. 요즘같은 황사니 뭐니 하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생각할수록 아주 운치가 있어. 그래, 봄비인데 옷좀 젖으면 어떠냐고 말야.” 이어 우리나라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봄과 가을이 좀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피력했다. “나는 수필과 시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높은 차원의 시는 동서를 막론하고 엇비슷해요. 모두가 순수한 동심과 맑은 서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요즘에는 과거에 비해 시를 많이 읽지 않는 것 같아요. 경쟁이 치열하고 남을 누르고 이겨야 살 수 있는 세계에서 시는 사실 잘 읽히지 않아요. 하지만 이럴수록 오히려 시를 가까이 두고 읽어야 해요.” 시는 영혼의 가장 좋은 양식이고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시를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영혼이 정갈해지며 이것은 곧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순수한 동심만이 세상에 희망의 빛을 선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생은 열다섯 살 때부터 유럽과 일본의 시들을 읽고 심취했다. 이어 스승의 날을 생각했던지 “우리나라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대접이 부족해요. 아이가 선생한테 뭘 갖다줄까봐 스승의 날 휴교하는 세상이 어디 있어요.”라고 질타한다. 또한 “아이들이 선생을 존경해야 하는데 아직 너무 부족해.”라고 안타까워했다. 아이들이 선생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라도 사랑하고 또 나중에 커서 봉사하는 정신으로 삶을 살게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나라 장래는 아주 낙관적” “우리나라 아이들은 두뇌가 기가 막혀요.‘나는 훌륭한 나라의 백성이다.’는 자존심을 가져야지. 원래 우리 민족은 두뇌가 좋아. 우리나라처럼 부지런하고 극성인 나라도 없어. 운동이니, 음악이니 다 두각을 나타내잖아요. 자연도 아름답고, 자존심을 상실할 이유가 없어요…. 우리나라 장래는 아주 낙관적이야.” 선생은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많다. 월드컵야구클래식(WBC)에서 조편성만 불리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가 우승도 할 수 있었지 않으냐는 예를 들었다. 또 미 여자프로골프협회(LPGA)에서 한국 여자들이 연이어 우승하는 것도 다 민족의 우수성에서 얻어진 결과라고 덧붙였다. 선생은 100살을 바라보는 지금에도 분명 젊은 봄처럼, 신록의 5월처럼 살고 있었다. 고매한 서정성과 순수한 동심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은 하루에도 몇번씩 인형과 함께 잔다. 딸 서영의 동생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난영’으로 지었다. 목욕도 시켜주고 예쁜 핀으로 머리를 묶어준다. 선물을 받은 곰인형 세마리도 함께 자는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어 선생이 직접 안대를 씌워 재운다. 엄마 노릇을 하고 싶어서다. 오는 29일, 선생은 아흔일곱번째 생일을 맞는다. 선생의 원래 이름은 천득(天得)이었는데 호적계의 과실로 ‘天’이 ‘千’으로 바뀌었다. 획수가 하나 적어지는 바람에 가난하게 산다는 얘기를 듣는다. 다시 오월을 노래한다.‘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10년 서울 출생 ▲26년 서울 제일고보 4년 재학시 중국 상하이로 유학 ▲29년 상하이 호강대학교 예과에서 수학. 도산 안창호 선생을 사사함 ▲34년 귀국후 춘원 이광수 선생댁에 유숙, 금강산 체류 ▲37년 호강대학교 영문과 졸업 ▲45년 경성대학 예과 교수 ▲51년 서울대 사범대 교수 ▲54∼55년 하버드대학에서 연구 ▲59년 금아시선문선 출간 ▲63∼69년 서울대학원 영문과 주임교수 ▲74년 서울대 교수 퇴직(슬하에 2남1녀를 둠. 장남은 캐나다에서 치과 기공소 운영, 차남은 서울아산병원 의사, 장녀는 미국에서 물리학자로 활동 중.) # 주요 작품집 서정소곡(1930년),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33년), 서정시집(47년), 소네트시집(76년), 수필(76년), 금아문선·금아시선(80년), 인연(96년), 미수기념 금아 피천득 문학전집(97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2005년) 등
  • 2남1녀 박사로 키운 미셸위 조부 위상규 옹

    2남1녀 박사로 키운 미셸위 조부 위상규 옹

    천재 골퍼 미셸위(위성미·17)의 할아버지이자 우리나라 항공공학박사 제1호인 위상규(魏祥奎·80)옹. 27일 전남 장흥군 부산면 기동리 자택에서 위 박사를 처음 대면했다. 순간 텔레비전으로 본 손녀가 연상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갸름한 얼굴, 콧날, 꼭 다문 듯한 입술…. 위 박사는 고령으로 걷는 게 조금 어색할 뿐 정정한 모습이었다. 상대방을 응시하는 눈빛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젊은 시절을 짐작케 했다. 위 박사는 지난 2003년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에 잘 왔어. 늙으면 고향으로 와야지.” 13살 때 고향을 떠난 그는 77살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어릴 적 가시에 손을 찔렸던 대문앞 탱자나무가 흰꽃을 터트리며 그를 반겼었다고 낙향 소회를 밝혔다. ●대한민국 항공공학박사 1호 미공군 파견근무 중 한국전쟁을 만난 그는 전투기 조종사로 전장을 누비며 생사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97회나 출격했지. 지금도 경기도 장단·고성·온천 일대는 눈 감고도 지도를 그릴 수 있어.”당시 되돌아오는 전투기는 손에 꼽을 정도. 죽었는가 싶으면 나타나기를 수십번, 어느새 그는 ‘불사조’로 불렸다. 가슴에 단 화랑무공훈장, 그래서 그는 남다른 애착을 갖는다. 사진을 찍자고 하자 방안에서 ‘대한민국 공군 전쟁동지회’란 글자가 새겨진 모자를 애써 찾아 썼다. 전투기 앞에서 찍은 그때 그 사진을 벽에 걸어 두고 ‘운명론’을 되뇌었다. 위옹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생활신조는 노력과 겸손이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았어. 돈이 있나, 배경이 있나. 노력하지 않고 되는 게 있겠어.” 손녀인 위성미 선수의 골프중계를 보고 전우들이 전화를 걸어왔다.“위 박사. 니 손녀니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라고 격려했다. 위 박사의 제자인 조선대 이상기(49·항공우주공학) 교수는 “스승님은 엄하면서도 재미있게 공부를 가르치셨고 세상을 보는 눈도 정확하고 원칙대로 살려고 노력한 분”이라고 기억했다. ●한국전쟁때 ‘불사조´ 전투기 조종사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 된 것은 모두 조상덕이라고 박사는 강조했다.“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가 피땀 흘리고 자식농사 지은 결과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야.” 박사는 종교가 없다. 믿는다면 조상이다.“종교는 때론 거짓말도 하지만 과학은 절대 거짓말을 안 해. 사실대로 가는 과학이 그래서 좋아.” 요즘 젊은이 얘기가 나오자 발끈했다.“대학생들 공부 좀 했으면 좋겠어. 관련책을 제대로 읽고 알고 비판을 해야지. 꽁무니 따라다니면서 어영부영하지 말고,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위옹은 대안 없는 반대에는 눈길도 안 준다.“시대의 흐름과 이데올로기는 다르다.”며 보수나 진보보다는 잘사는 방법, 즉 실리를 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우리 공무원들 충성심이 없어. 또 기록이 없는 나라야. 더욱이 행정경험도 일천하고.” ●“고집센 성미… 탁구치면 나한테 공 주워오래” 위 박사 집안은 수재로 유명하다. 부인(78)과의 슬하에 2남(54·46) 1녀(50)를 두고 있다. 큰아들은 서울대와 미 스탠퍼드대를 나와 현재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이다. 피를 물려받아 세계항공우주공학회에서 기조연설을 할 정도로 유도항법분야의 권위자다. 큰며느리(52)는 피닉스대(수학과) 교수다. 작은아들이 미셸위 아버지이다. 그는 한양공대와 미 펜실베이니아대를 나와 하와이주립대(도시교통공학) 교수이다. 어머니는 미스코리아 서울진(1985년) 출신. 성미는 운동을 하면서도 학업성적도 거의 A학점을 받았다. 위옹은 “성미와 탁구를 치면 공을 나한테 주워오라고 해. 고집이 보통이 아니야. 하와이에서 홍어를 먹어선지 장흥 집(2003년)에서도 두 접시를 먹어치우더라고.”라며 손녀의 기백을 소개했다. 손자 둘은 미국에서 고교를 수석졸업했다. 자녀 가운데 가장 영리했다는 딸은 서울의대를 나왔고 사위(52)는 연세대의대 교수이다. “아이들이 영리하고 체격이 큰 것은 외가쪽을 닮아서 그래. 할머니 집안이 키도 크고 보통 수재가 아니야.”라며 공을 외가로 돌렸다. “자식들 교육은 엄하게 해야 돼. 잘못하면 꾸짖고 때리고, 나는 그렇게 했어.” “부모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돈만 주면서 공부하라고 하면 어떤 자식이 따르겠어. 부모가 자신을 되돌아 봐야지. 공부할 만한 애인가, 아닌가.”그래서 그는 조기유학을 절대 반대한다. 최소한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아이들 스스로 정체성을 세우고 우리 선조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게 먼저라는 논리이다. “외국 나가면 자칫 술·담배·여자 등 못된 것만 배운단 말이야. 또 우리나라 교사들 실력이 미국보다 세배는 낫거든.”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조기유학 반대… 아이들 정체성이 우선 “성미가 29일 오후 2시에 자가용비행기로 인천공항에 도착해. 바빠서 장흥에 못오게 했어.” 위옹의 말에 여운이 흘렀다. 손녀가 택배로 텔레비전을 보내준다고 전화했다며 다소 들뜬 표정이었다. 미국에 사는 두 아들은 1년에 한번가량 부모님을 찾는다. 위옹은 노환으로 누워 있는 부인을 보살피며 온종일 곁을 떠나지 않는다.“이렇게 물 좋고 공기 맑고 아늑한 곳이 고향이야. 왜 진작 못 왔는지 안타깝구먼.” “종일 평상 그늘에 앉아서 지난 일을 생각해.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았어. 늘 반성하면서 살지.” “내가 오래 살아야 돼. 병든 할머니를 돌봐야 하거든….” 말끝을 흐린 채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이 왠지 적적해 보였다. 장흥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서울대 공대 항공공학과 1회 졸업,1958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에서 항공우주공학 석·박사 학위. ▲1951∼1954년 미 공군 파견근무 중 전투기 조종사. 화랑무공훈장 수상.1955년 소령 예편. ▲1956∼1992년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이후 명예교수.1967년 한국항공우주학회 설립 주역.
  • [녹색공간] 워드와 한국인의 종족성/박은경 환경과문화 연구소장

    지난 2월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결승전 슈퍼볼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 소속의 하인스 워드가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당시 한국 언론에서는 한국계선수가 서양인들의 우람한 풋볼선수들 사이에서 건재한 모습에 열광했고, 그가 얻게 된 돈방석에 대리만족이라도 하듯이 즐거워했다. 지난 4월3일 영웅이 된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김영희씨와 한국에 왔다. 워드가 극적인 터치다운으로 스틸러스를 승리로 이끌었던 것처럼 고향땅에 터치다운함으로써 파란만장한 김영희씨의 삶을 인간승리의 순간으로 승화시켰다. 워드는 자신에게 한국 피가 흐르는 것을 원망한 적이 있다며 이제는 그 사실이 송구스럽다고 토로했는데, 그의 솔직한 고백의 저편에는 이 땅에 사는 우리들 자신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인은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고 자라고 살아가고 있다. 피부·머리·눈동자 색이 같은 종류의 사람들만이 한국인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허구적 ‘종족성’을 가지고 살아왔다. 한국인이 떠나보낸 이들은 하인스 워드만은 아니다. 실은 우리들과 피부·머리·눈동자 색깔이 같은 화교들에게도 다른 ‘종족’이라는 굴레를 씌워 1960년 이후 그들의 생계수단이었던 중국 식당조차 하기 어렵게 해 4대째 살아온 그들을 한국 땅에서 떠나보냈다.1882년 임오군란 이후 한국 땅에 들어오기 시작하여서 1940년대에는 10만명에 이르렀던 화교들은 1970년대부터 한국을 떠나서 2000년 즈음에는 1만 5000여명으로 축소되었다. 100여년간 유일한 다른 종족집단이 화교들이었지만 한국이 지난 40년간 겪은 현대화와 산업화는 이제 다양한 외국인들을 한국사회에 유입시키고 있다. 젊은 여성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농촌에 이제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한국인의 부엌을 차지해가고 있고, 단일민족을 그렇게 외치던 한국 땅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을 혼혈로 바꾸고 있다. 동남아 신부를 찾아준다는 거리의 홍보물에 놀랐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농촌 결혼의 두 쌍 중 한 쌍이 외국인과의 결혼이고 100쌍 중 11쌍이 외국인과의 혼인이라는 보도는 이제 한민족이 단일 혈통이라는 주장을 실효가 없게 만들었다. 2004년 말 약 42만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 살고 있어 인구의 1%를 차지하고 있다. 또 임금노동자 1450만명 중 3%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21세기 한국인들의 혈통은 실로 다종족적인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이제 한국 땅에는 수많은 하인스 워드를 출산하고 있다. 김영희씨는 20여년 전에 아들을 안고 미국 땅으로 건너갔지만, 이제 태어나는 한국 땅의 혼혈아들은 아마도 이 땅에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성장하여 미래 한국의 동력이 되게 하려면 우리 모두 ‘한국인’이라는 종족성을 재인식시키는 공공 인식을 증진해야 한다. 종족성은 원래 생물학적이고 원초적인 문화를 강조하는 근원주의적인 면과 사회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상황주의적인 면이 있다.1980년대 미국사회과학 분야에서 크게 부각된 종족성에 대한 논쟁에서 사회정치적인 상황에 따라서 종족성이 변한다는 상황주의적 이론이 더욱 현실성이 있다는 주장이 우세하였다. 한국사회도 후기산업화로 들어가면서 한국인들의 노동에 대한 의식과 현실이 급변하면서 한국의 노동시장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열리고, 농촌의 신랑들이 동남아 신부를 맞게 되는 세상이 된 현실을 한국인들은 주지해야 한다. 달라진 사회, 경제적 현실에 적응하려면 이제 우리와 다르게 생기고 한국말이 어눌한 혼혈아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의식을 우리 마음에 심어야만 출산율이 1.16으로 세계 최저여서 남한의 인구가 1400만명에 그친다는 2100년에도 우리 손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 하인스 워드는 한국인들에게 종족성을 가르친 훌륭한 사회선생이었다. 박은경 환경과문화 연구소장
  • 다시 찾은 청계천의 봄

    다시 찾은 청계천의 봄

    청계천에 성(性)이 있다면 아마도 ‘여성’일 것이다. 청계천에는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포근함과 넉넉함이 살아 있다. 또 크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여성미도 느낄 수 있다. 청계천 복원 이후 처음 맞는 봄. 청계천에 화사한 봄 옷을 입혀 놓고 보니 영락없는 ‘봄 처녀’의 자태를 닮았다. 수줍은 듯 하얀 꽃향기를 뿜어내는 조팝나무와 연분홍 진달래, 노란 개나리, 조만간 꽃망울을 터뜨릴 노랑꽃창포 등에서도 ‘여심’(女心)이 느껴진다. 그녀는 품속에서 수많은 꽃과 나무와 풀과 곤충과 새들이 어우러져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어려웠던 지난 시절 서민들과 희로애락도 함께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넉넉함을 잊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 곳에는 역사가 있고, 추억이 있고, 생명이 있고, 문화가 있고, 삶이 있다. 주변의 ‘맛과 멋과 쉼’에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30년만에 찾아 온 청계천의 봄. 가족들에게는 봄나들이 명소로, 주머니가 가벼운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코스로 이보다 좋은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길이 5.84㎞. 나이 7개월 20일. 새롭게 태어난 청계천, 그녀의 봄 속으로 들어가 봤다. 글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걸어서 한바퀴 30년 만에 찾아온 청계천의 봄 풍경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컷던 것일까. 아니면 콘크리트로 뒤덮인 청계고가를 넘어다니던 학창시절 읽었던 박태준의 ‘천변풍경’의 잔영들이 갑자기 되살아난 것일까. 청계천을 찾기도 전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청계천변에 모여 살았던 서민들의 모습들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판자촌이 늘어섰던 개천변의 모습과 아낙네들이 수다를 떨던 빨래터, 개천변에 모여살던 민 주사와 한약국집 가족, 이쁜이, 점룡이, 여급 하나코’. 이런 상상에 빠져 지난 14일 봄의 새싹이 움트고 있는 청계천을 찾았다. 봄을 만끽하기에는 이른 느낌이었지만 그 곳에는 봄이 있었다. 조팝나무에 하얀 눈송이가 달려 있고, 진달래는 제철을 만났다. 개나리 꽃은 잎사귀에 둘러싸여 내년 봄을 기약한다. 창포와 버들가지에도 봄이 가득하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과 오리가 자맥질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30년 만에 되찾은 청계천의 봄 풍경이다. #10:00-청계광장 출발 청계천 시작지점인 ‘청계광장’(청계1경)을 내려와 모전교를 출발했다. 천변은 번잡하던 도로 위와는 전혀 딴 세상이 펼쳐졌다. 개천은 지상에서 불과 2∼3m 아래지만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시끄러운 소음 대신 물 흐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상쾌하게 파고드는 공기도 지상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모전교는 청계천 22개 다리 중 첫 다리로 근처에 과일을 팔던 모전(毛廛·과일가게)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다리 아래 ‘팔석담’. 팔도의 화합과 정기를 담은 이 곳에서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수거된 동전은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한다고 하니 소원도 빌고, 좋은 일도 할 겸 과감하게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물속에 던졌다.‘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동전을 줍는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한다. 던질 수는 있지만 줍지는 말아야 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계천의 석교인 ‘광통교’(청계 2경) 아래를 지나자 완연한 봄 세상이다. 버들가지에서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나고, 천변에 줄지어 늘어선 창포가 푸르름을 자랑한다. 인공미가 물씬 풍기던 지난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청계천의 돌과 나무, 꽃 모두는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로 자연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청계천의 새역사를 써 갈 꽃과 나무는 따사로운 봄볕에 새싹을 틔우고 있었다. 광통교는 청계천 다리중 가장 큰 다리로 원래는 광교 사거리에 있었지만 1958년 복개공사로 땅속에 묻혔다가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10시20분-광교∼관수교 물의 흐름이 걷는 속도보다 빠르다. 봄을 즐기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탓도 있지만 유속이 어른의 빠른걸음 정도다. 그러나 강바닥에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오물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광교 다리를 지나 ‘정조반차도’(청계 3경)에 이르렀다. 정조가 모친의 회갑을 기념해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이 있던 화성(현재 수원)에 행차하는 모습으로 김홍도 등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합작해 그린 작품이다. 규모는 폭 2.4m, 길이 192m에 이르는 거대한 도자벽화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벽화라고 한다. 자원봉사자가 반차도의 내용을 설명해 준다. 장통교를 지나자 ‘삼각동 워터 스크린’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어 삼일교를 지나 수표교터에 도착했다. 수표교는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춘단 공원으로 옮겨졌고 이 곳에는 터만 남아 있다. 청계천의 수심을 측정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수표(水標)라는 이름이 붙었다. #10:40-관수교∼나래교 관수교에 이르자 개천 바닥에 녹색 그물들이 눈에 들어온다.‘뭘까?’라는 궁금증을 품기도 전에 자원봉사자들이 먼저와 다가와 “물고기들의 쉼터”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꽃이며 나무들의 이름을 물어봤다. “하얀 꽃을 예쁘게 피운 것이 장미과 조팝나무고, 붉은 것은 진달래, 개천변의 파란 풀들은 창포”라며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관수교를 지나자 시원한 ‘고사분수’의 물줄기가 개천에서 하늘로 솟구친다. 새벽다리에 이르자 물흐름이 느려진다. 곳곳에 물고기 산란장이 많다. 개천 위의 돌다리를 건너 다니며 개천 속을 들여보기로 했다. 바닥에는 푸른 이끼들이 끼어 있고, 한무리의 송사리떼가 노닌다. 개천 바닥의 흙색과 닮아 한참을 들여다봐야 송사리떼를 찾을 수 있다. 엄마와 봄 나들이를 나온 아이는 “엄마, 송사리가 어디 있어, 안 보여.”라며 칭얼댄다. 엄마의 손끝을 한참 들여다본 뒤에야 “야, 물고기가 많다.”며 즐거워했다. #11:00-나래교∼오간수교 출발한 지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청계광장에서 나래교까지는 2.5㎞ 남짓. 산책이 즐거운 탓인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버들다리를 지나자 천변 담장을 타고 담쟁이덩굴이 올라간다. 시골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개나리도 반갑게 반긴다. 오리 한 마리가 물위를 거닐며 먹이를 찾느라 여념없다. 먹이를 발견한 오리는 자맥질을 한다.“아이고 몇 마리 없는 물고기 다 잡아먹네…”라며 지나가던 한 할머니의 한숨 섞인 탄성도 들린다. 청계천 산책에 동행한 동료가 복원 전과 복원 직후의 청계천은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거든다. 버들다리를 지나자 ‘패턴천변’(청계 4경)에 이르자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주제로 제작됐다는 ‘문화의 벽’과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패턴 분수, 그리고 그 주위로 조성된 수변 무대가 발길을 사로잡았다. 엄마 손을 잡고 돌다리를 건너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가 정겹게 들려와 산책길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준다. #11:20-오간수교∼비우당교 오간수교 아래에는 오간수문터의 옛모습이 걸려 있다. 도성안의 물줄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지점에 있었던 다섯개의 수문이다. 다리 아래에 청계천에서 빨래하는 아낙네와 그 앞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의 흑백 사진은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산교를 지나자 흑백사진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빨래터’(청계 5경)에 도착했다. 시멘트로 만든 대여섯개의 빨래판은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빨래터는 소설 천변풍경이 시작되는 곳. ‘…간간이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 인근에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촌 사이로 빨간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빨래 방망이를 겨드랑이에 끼고 아이들을 데리고 청계천을 찾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오버랩된다. 인근 다리 아래에 당시 천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몇 점의 사진이 걸려 있다. #11:50분-비우당교∼두물다리 점점 다리가 아파 온다. 쉬지 않고 걸은 탓이다. 밤이면 물줄기와 형형색색의 조명이 아름답다는 ‘리듬 벽천’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맞은편에는 소망의 벽(청계 6경)이 눈에 들어온다.2만여개의 예쁜 타일에 시민들의 소망이 적혀 있다. 선생님을 따라 봄 나들이를 온 유치원생들의 재잘거림이 정겹다. 길게 줄지어 가는 산책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아이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벽에서 시원스레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하늘물터’(청계 7경)의 터널분수. 마치 커다란 물줄기 사이를 지나는 듯하다. 바람에 물이 날려 옷을 젖을 수 있어 안경을 썼거나 카메라를 지닌 사람은 돌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피해 가는 것이 좋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져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개천 가운데 우뚝 솟은 3개의 거대한 기둥이 눈길을 끈다.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으로 후대에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일부러 남겨둔 것이라고 한다. #12:20-두물다리 도착 ‘구경 한번 잘했다∼.’무학교와 두물다리를 지나 청계천이 끝나는 청계문화관에 이르렀다.2시간 남짓을 걸어서야 5.8㎞의 산책로 끝에 이르렀다. 너무 빨리 걸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볼거리와 화려함은 덜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더욱 정겹다. 체력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다시 청계광장까지 거슬러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다. 고산자교를 지나면 청계천에서 가장 자연적이고 생태적인 ‘버들습지’(청계 8경)을 만난다. 어류, 양서류, 조류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주변에 갯버들과 매자기, 꽃창포 등 수생식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힘에 부치는 사람은 두물다리 위로 올라와 ‘청계천문화관’에 들러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 뒤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 된다. 두물다리 위에 있는 성북상수도사업소(청계주차장) 앞에 가면 노란색 1번 버스를 타면 청계광장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노선은 이곳에서 청계8가∼평화시장∼세운상가∼청계 3가∼종로3가∼무교동까지다. 버스는 30∼35분 간격이며, 요금은 현금 550원, 카드 500원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숨은 맛집 완연한 봄이다. 청계천에도 이곳 저곳을 거니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청계천엔 수경시설과 금붕어, 청둥오리, 꽃, 전태일 동상까지 많은 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청계천 주변을 둘러보면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렇지만 성큼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눈여겨 보면 청계천 주변의 뒷 골목엔 숨은 맛집들이 적지 않다. 한 장소에서 고집스럽게 단일 메뉴만을 수십년 동안 만든 요리사도 많다.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청계천의 맛집을 소개한다. ●북한토속음식 청계천 광장 인근에 북한 토속음식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 ‘리북손만두’(776-7350)사장 박혜숙(65)씨는 평양 태생으로 한국전쟁 때 남하해 그동안 줄곧 북한 음식을 했다. 청계천 인근 지금의 장소에서 시작한 지는 17년. 이 가게의 주요 메뉴는 리북손만두와 김치마리밥, 빈대떡, 제육보쌈 등이다. 특히 리북손만두가 맛있다. 김치마리밥은 김치국물에 찬 밥을 말아먹는 북한에선 한겨울 음식. 하지만 손님들은 주로 여름에 이 음식을 찾는다. 빈대떡은 평양식 빈대떡이다. 제육보쌈은 일반적인 보쌈과 달리 삽겹살로 한다. 보통 목살로 하는 경우가 많다. 돼지고기는 북한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가격은 만둣국과 접시만두는 7000원, 김치마리밥은 6000원, 빈대떡은 1만 2000원. ●70년 이상 추어탕만 파는집 1972년 남북조절위 제3차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북한의 박성철 대표는 “지금도 무교동 그 자리에 용금옥이 있는거요?”라고 물어 용금옥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용금옥(777-1689)은 전통을 사랑한다. 용금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찾는 사람들도 전통을 사랑한다. 아무리 장사가 잘 돼도 사장은 함부로 객장을 넓히려 들지 않고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추어탕 한 그릇에 소주를 기울이던 손님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옛모습 그대로인 이곳을 ‘마음의 고향’인양 찾는다. 위치도 무교동 골목길을 헤매야만 찾을 수 있는 그 자리 그대로이다. 용금옥은 1932년 홍기녀(작고)씨가 열었다. 현재 3대째인 신동민(45)씨가 9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에서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미꾸라지들은 살아있는 것으로 소금에 씻어 얼른 뚝배기 육수 속으로 집어넣기 때문에 연하고 신선하다. 미꾸라지를 넣기 전에 느타리와 목이, 표고버섯, 두부, 양파, 유부 등 갖은 양념이 먼저 육수에 들어간다. 고춧가루를 듬뿍 쳐 내놓는다. 가격은 8000원. ●피아노로 프러포즈를 미리 피아노를 배우지 못 한 걸 후회하는 남성들이 더러 있다. 피아노 프러포즈만큼 낭만적인 게 있을까. 하지만 피아노 프로포즈를 할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고민이라면 청계천 장통교에서 종로쪽에 자리잡고 있는 티포투(735-5437)를 추천한다. 홍차와 우롱차, 커피 등을 파는 차 전문점 티포투의 2∼3층엔 피아노가 있다. 간혹 실력을 뽐내는 손님이 더러 있다고 한다. 또한 매주 두 차례 오후 9시 하프 공연도 잡혀 있다. 일정은 매주 월요일 저녁 때 나온다. 티포투는 메뉴를 선택하기 전 찻잎이 담긴 작은 샘플병에서 향을 먼저 맡아보고 원하는 차를 고를 수 있다. 4층은 공연장으로 쓰인다. 극단들이 종종 대관해 공연을 한다. 티포투는 인테리어가 전반적으로 부드러워 여성들이 선호한다. 차 가격은 6000∼8000원 ●주문진산 골뱅이 수표교에서 나와 중부경찰서 앞에 오면 골뱅이 집이 10여개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집은 풍남원조골뱅이(2265-2336).1971년 이원희(81)씨가 시작,1981년 방종숙(50)씨가 시집을 온 뒤 요리를 맡고 남편 송병희(54)씨가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쓴다. 골뱅이는 주문진산으로 육질이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비결이다. 송씨는 “일반적으로 골뱅이는 북한산을 써 딱딱한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주문진산을 써 많은 손님들이 온다.”고 말했다. 이 집은 모든 게 푸짐하다. 대접에 골뱅이 무침이 산처럼 쌓여 나온다. 반찬으로 나오는 계란말이도 풍성하다. 또한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인심도 좋다. 골뱅이는 산지에서 잡아 냉동 전 바로 가공된다. 따라서 산 채로 운반되는 것보다 위생적이고 영양 상태도 오래 간다. 젓가락에 돌돌 말아 먹는 맛도 별미. 가격 1만 9000원. ●굴보쌈집 골목 청계천의 관수교에서 나와 서울극장 뒷골목에 가면 굴보쌈집이 6∼7개 있다. 이곳에서 10년 이상 굴보쌈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가게들이있다. 또한 대부분 맛이 좋기로 언론에도 소개된 만큼 믿을만하다. 손님이 많이 찾는 가게 가운데 한 곳이 전주집. 돼지고기와 김치를 말아 김치보쌈을 만들고 여기에 굴을 올리면 굴보쌈이 된다. 맛은 달콤해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함께 나오는 국도 맛이 일품이다. 가격은 굴보쌈 큰 게 2만 5000원. 중간 크기는 2만원. 정식은 1만원이다. ●대한민국 원조 함흥냉면 동네마다 함흥냉면 가게가 있다. 함흥냉면을 안 먹어본 사람은 드물다. 함흥냉면 가게는 많지만 원조는 오로지 하나. 바로 ‘함흥곰보냉면’(2267-6922). 한국전쟁 때 함흥에서 온 곰보부부가 여기서 냉면집을 시작했다. 당시엔 가게는 없었고 길 구석에 탁자를 놓고 장사를 했다고 한다. 부부는 둘 다 얼굴에 천연두 흉터가 많았고 사람들은 “곰보네 냉면 먹으러 가자.”면서 찾았다고 한다. 그 뒤 이들 부부는 수십년 동안 8명의 주방장에게 요리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현재 모든 함흥냉면 집은 모두 이들 주방장한테 전수받은 것. 부부는 장사가 잘 돼 1968년 가게를 열었고 1987년 배정지(63)씨가 인수,3층 건물에 260석을 갖춘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함흥냉면 특유의 새콤달콤한 양념장 맛이 난다. 육수는 누린내가 완전히 제거됐다. 회냉면은 가장 인기다. 물·회·비빔냉면 모두 6000원. ●4계절 문전성시인 닭집 동대문 종합시장 뒷골목엔 1년 동안 손님이 끊이지 않는 가게가 있다. 바로 진할매원조닭집(2275-9666). 진옥화 할머니는 25년 동안 여기서 오로지 한 메뉴 닭한마리만을 고집했다. 닭이 통째로 대야에 담겨 나온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손님들은 집게와 가위로 닭을 자른다. 대야 안엔 대파와 큰 감자도 있다. 아무리 가위질이 서툴러도 종업원들은 절대 돕지 않는다. 종업원들과 눈 한 번 마주치기 힘들다. 닭은 자란지 35일쯤 된 것으로 냉동하지 않은 걸 쓴다. 영계이기 때문에 부드럽고 맛이 담백하다. 김치도 고랭지 배추만을 쓰며 3일 이상 된 것은 없다. 닭을 모두 건져먹으면 국수를 넣고 국수 대신 흰떡을 넣어 먹어도 된다. 닭한마리 가격은 1만 2000원. ●원할머니 보쌈집 본가 김보배(84)씨가 1965년 청계천 8가에 허름한 판잣집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사위인 박천희(49)씨가 1991년 맡아 운영한 뒤 현재 프랜차이즈점으로 커졌는데 원래 본가는 바로 이곳이다. 많은 프랜차이즈점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데 이종구 홍보과장은 “본가 맛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개성식 보쌈으로 보쌈김치의 매콤한 맛을 줄이고 담백한 맛을 높였다. 해산물을 많이 넣는다. 현재 유명한 보쌈 프랜차이즈점이 이곳에서 배웠다는 설이 있다. 한 손님은 “36년 동안 왔다.”면서 “맛에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손긍익씨도 “서울에서 맛을 본 뒤 잊을 수 없어 대구에서 다시 와 먹는다.”고 말했다. ●황학동 곱창골목 연탄불로 곱창을 구우면 기름이 쭉 빠지고 잘 익는다고 한다. 철판에 곱창을 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연탄불로 곱창을 굽는 음식점이 모인 골목이 있다. 청계천 황학교에서 황학동 사거리로 가면 곱창 골목이 모여 있다. 대부분 음식점은 10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곱창을 팔았다. 1991년까진 이곳은 곱창을 파는 포장마차가 많았다. 당시엔 심야단속이 있었는데 몰래 장사를 했다고 한다. 당시 정부가 포장마차 규제 정책을 펴면서 하나 둘씩 구멍가게로 전환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업소 주인들은 손님들이 요즘도 곱창을 밖에서 먹는 걸 좋아한다고 전했다. 날이 더워지면 손님들이 밖에서 먹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가격은 가게마다 좀 다르지만 연탄불 곱창은 9000원. 야채곱창은 8000원이다. 원조왕곱창은 유일하게 4년 전부터 메뉴에 껍데기를 추가했다고 한다. 껍데기는 다이어트와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글 사진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어떻게 변했나 ‘청계천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청계천 하류 끝지점인 성동구 마장동에 위치한 ‘청계천문화관’에 가면 이런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준다. 청계천 물길을 상징하는 긴 유리 튜브 형태의 건물에는 한국전쟁 전후 혼돈과 가난을 담아냈던 청계천의 삶에서부터 도심을 관통했던 청계고가의 모습 등 복원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청계천문화관은 오전 9시부터 밤 10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상설전시장은 무료로 개방된다. 건물 외벽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 전시장에 올라가자 상설 전시관이 나타난다. 관람은 4층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관람 동선을 따라 관람하면 자연스럽게 1층으로 내려올 수 있다. ●“엄마, 정말로 저렇게 끔찍한 집에서 살았어?” 가장 먼저 만난 곳은 6·25 한국전쟁 전후인 1950년대 청계천의 모습. 청계천 복개관에 들어서자 개천변으로 늘어선 판잣집의 모형과 영상물이 반겼다. 마치 성냥곽을 붙여 놓은 듯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과 난간에 내걸린 빨래, 천변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당시 서민들의 어려웠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모형물 뒤로 대형 스크린에서는 청계천의 실제 모습이 담긴 영상물이 연신 돌아간다. 관람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어떻게 저런 집에서 살았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다. 김인숙(42·동작구 사당동)씨는 함께 온 딸아이가 “엄마, 어떻게 저런 집에 사람이 살아?”라고 묻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다 저렇게 어렵게 사셨단다.”라고 얼버무린다. ●주변 찍은 대형 항공사진 바닥 ‘장식´ 코너를 돌자 어두컴컴한 터널이 눈에 들어왔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하다.‘이게 뭘까.’라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니 청계천 복원 전 복개도로 아래 지하를 체험하는 곳이란다.1967년 복개 공사로 인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청계천 아래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5∼6m 정도의 길이에 불과하지만 마치 어두컴컴한 복개도로 아래 지하로 들어온 듯했다. 이어 10㎞에 이르는 복원공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그래픽 패널과 영상, 모형을 통해 볼 수 있다. 또 돌아온 청계천 코너에 들어서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계천의 모습을 애니메이션 동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3층에는 청계천 주변을 촬영한 대형 항공사진이 바닥에 깔려 있어 하늘에서 청계천을 내려다 보는 느낌을 준다. 2층에서는 조선시대의 청계천 모습도 가늠할 수 있다. 조선시대 청계천의 본류와 지천, 청계천에 얽힌 역대 왕들의 이야기,17·18·19세기 청계천 고지도 등 다양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또 청계천 복개 논의가 시작됐던 일제시대의 관련자료도 볼 수 있다. 태조과 태종, 영조, 정조로 분장한 배우들이 영상을 통해 청계천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한다. ‘청계천 투어’코너에서는 청계광장∼신답철교까지 복원된 청계천의 모든 구간을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잠시 쉬며 합성사진 찍어 볼까 인공 연못과 인터넷 시설을 갖춘 휴식코너인 ‘에코 청계천’의 ‘포토존’은 인기 코너. 청계천 다리를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합성해 찍을 수 있다. 사진은 곧바로 프린트를 해주며 1장당 1000원이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23일까지 1970년대 청계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노무라 할아버지의 청계천 이야기’ 사진전이 열린다. 사진전에서는 1968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청계천 하류 판자촌에서 구호활동을 했던 일본인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75)가 기증한 사진과 스크랩북, 한국지도 등 826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사진에 등장하는 지역은 현재 성동구 마장동과 사근동, 용답동, 송정동 일대로 청계천 하류의 모습과 판자촌 거주민들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옛날엔 저 구정물에서 수영도 했다네” 사진전은 세 가지 테마로 나뉘어지는데,‘청계천의 하류 스케치’에서는 1970년대 청계천 하류에 늘어서 있는 판자촌의 모습을,‘판자촌의 하루’에서는 군복 염색과 벽에 폐휴지를 붙이는 모습 등 판자촌 거주민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마지막 테마인 ‘어린 회상과 증언’에서는 당시 노무라의 어린 자녀들이 판자촌에서 느낀 감회를 적은 글을 사진과 함께 정리한 스크랩북이 전시된다. 관람료는 무료. 사진전을 꼼꼼하게 관람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50∼70대가 대부분이다. 옛날 청계천 인근에 살았다는 한 70대 관람객은 한 사진을 가리킨 뒤 “옛날에는 저기에서 수영도 하고 그랬어. 우리 집은 저기 저쪽이야.”라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문의는 569-0696.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쇼핑·풍물시장 제일평화시장(2252-3633)은 ‘오전에 밀라노 컬렉션에서 소개된 옷이 저녁에 제일평화에 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품을 본뜬 옷들이 시시각각 선보인다.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직장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평화시장(2265-3531)은 중년 여성복, 스포츠 용품, 아동복, 운동복, 양말, 모자 등이 두루 있는 가장 큰 도매 시장 중 하나다. 신평화시장(2253-0714) 1층에는 속옷 가게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2000∼3000원대부터 유명브랜드까지 다양하다. 동평화시장(2238-1833)은 국내 유명 브랜드 위주의 덤핑 매장이 많다. 동대문의 다른 의류 상가에서도 이곳에서 물건을 떼어 갈 정도로 소매 시장이 잘 형성돼 있다. 남평화시장(2237-0622) 지하 1층·1층은 가방을,2·3층은 청바지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청평화시장(2252-8036)은 가격이 싼 재고 상품들이 많다. 동대문종합시장(2262-0114)은 연면적 2만평으로 1970년 개장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단일 시장으로 기록됐다. 원단류, 의류 부자재, 침구·커튼,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을 취급하는 우리나라 대표 원자재 시장. 인테리어 소품을 직접 만드는 등 아기자기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동대문신발상가에는 1000개가 넘는 신발 도매상이 모여있다.A동은 운동화,B·C동은 숙녀화를 주로 취급한다. 물론 신사화도 있다.광희시장(2238-4352)은 가죽·모피 전문 상가로 일본인 관광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성수기에는 시중가보다 40∼50% 싸고, 비수기에는 여기서 10% 더 싸다. 광장시장(2267-0291)은 한복, 주단, 직물, 폐백용품, 나전칠기, 제수용품을 판다. 덕운상가(2252-5835) 지하1층에는 벨트·가방·지갑 등 피혁 제품 도매 상가가 모여 있다. 아동복이 품질도 괜찮다.우노꼬레(2250-7829)에는 남성복 매장이 많다. 청대문(옛 프레야타운·2048-2000)은 30대 이상 여성복들이 많다. 광장시장(275-3674)은 1905년 7월 5일 대한제국 한성부 개설허가를 받아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근대적 시장.2층은 일본·홍콩 등에서 들여온 구제 의류가 많다.‘빈티지 룩’을 연출할 수 있는 구제의류가 잘 갖춰져 있다. 독특한 디자인과 1만∼2만원의 저렴한 가격. 한복, 침구, 의류, 나전칠기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지만 최근에는 빈티지 패션을 이끌고있다. 밀리오레(3393-0001)는 두산타워와 함께 동대문 패션몰 전성시대를 이끈 곳. 두산타워에 비해 의류 디자인이 평범하지만 가격이 저렴하다. 꼭대기층 식당가에서는 동대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식당 아주머니들의 ‘호객행위’만 아니라면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다. 두산타워(3398-3333)는 상인의 30%가 공장·하청 공장을 소유한 디자이너 출신일 정도로 감각적인 디자인의 의류가 많다. 대신 값도 다소 비싸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교환·환불도 가능하지만 현금아니면 잘 안깎아줘 동대문에서도 원칙적으로 교환·환불까지 할 수 있다. 상인들이 환불을 거부하면 상가측 상담센터나 상인연합회 등에 문의하면 도와준다. 가능한 한 현금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원칙적으로 신용카드는 받지만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면 가격을 깎아주지 않는다. 설사 가격을 흥정한 뒤라도 신용카드를 내밀면 원래 가격을 받으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평화시장 등은 소매시장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낮에 문을 닫는다. 시장별로 운영시간을 확인해보고 가야 한다. ■ 만원이면 즐기는 ‘보물찾기’ 동대문 풍물시장 ‘추억여행’ “탱크 말고는 다 있어요.” 낡은 구두, 곰방대, 화폐, 중고 바이올린골동품, 헌옷,LP판, 중고 가전, 성인용비디오까지.동대문 풍물시장(2238-4709)은 그야말로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어야 할 건 없는 벼룩시장이다. 가로 2m, 세로 1.2m의 좌판 1000개가 모여 있다.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자 청계천·황학동 일대 노점상이 동대문야구장 자리에 터를 잡았다. 입소문이 나서인지 평일에도 손님들이 제법 많다. 물건 가격은 대부분 1만원 이하.‘보물찾기’하는 기분으로 물건을 골라보자. 물건값을 흥정하는 재미도 있다. 물론 시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시장 체험이, 어른들에게는 추억으로 떠나는 여행이 될 것이다. 시장 한쪽에 마련된 먹자골목에서는 튀김·어묵·잔치국수 등으로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상인들이 저마다 문 열고 닫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지만, 대개 오전 8∼9에 장사를 시작해 오후 6∼7시면 문을 닫는다. ■ 서점·극장가 반디앤루니스(종로타워점·2198-3000)는 가장 최근 지어진 서점. 교보·영풍문고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실내에 의자가 많아서 서점에 있는 책들을 몇시간이고 볼 수 있다. 특히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다. 서가 사이에서 카페트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진 손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재즈 등 조용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악이 적당한 크기로 흘러나온다. 서점 입구에는 계단이 있어서 쉬어가기 좋으며, 간이무대에서는 간간이 문화공연이 열린다. 교보문고(광화문점·1544-1900)는 명실공히 업계 1위 서점인만큼 책이 가장 많다. 저자와의 팬사인회도 수시로 열린다. 음반판매점(핫트랙)은 웬만한 음반 전문점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음반들을 구비해놓고 있다. 문구점 역시 문구백화점으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규모가 크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문구·소품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유명한 만큼 붐비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영풍문고(종로점·399-5600)는 청계천을 걷다가 광교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보인다. 지하 매장에는 커피 전문점, 아이스크림점, 샌드위치점이 있어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형 서점인 반즈 앤 노블 한편에서 스타벅스가 성장한 것을 떠오르게 한다. 북스리브로(을지점·757-8100)는 영풍문고에서 명동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다. 다른 대형 서점에 비해 아담하지만 서점 곳곳에 4인용 테이블을 마련,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100평)의 만화책 전문매장이 있다. 대형 서점으로서는 유일하게 와인가게도 갖췄다.OK캐시백과 연계돼 있어 적립금 할인혜택이 15%나 되는 점도 장점이다. 청계천을 떠올리면 헌책방 거리를 빠뜨릴 수 없다. 청계천6가 평화시장 대로변(버들다리∼오간수교)에 있다. 한참 잘 나가던 1970년대에는 200여곳이나 됐지만 지금은 40여곳 정도 남아 있다.3평 안팎 되는 가게에 책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다. 책 고르기는 힘들지만, 괜찮은 책을 발견할 때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마냥 신난다. 가격은 정가의 절반 정도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영화관·공연장 옹기종기 마니아들 발길 북적북적 관수교 북쪽 방향으로 ‘원조 개봉관 삼총사’인 서울극장·단성사·피카디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1907년 개장해 국내 최고(最古) 영화관으로 기록된 단성사(764-3745),1958년 개관한 피카디리(3676-7942)는 지난해 리모델링을 했다. 시설은 깔끔하지만 예전 극장의 낭만은 사라졌다. 영화 ‘접속’에서 주인공이 서로를 기다리던 피카디리 극장 앞 커피숍도 사라졌다. 삼일교 북쪽(인사동) 방향으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극장전’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시네코아(2285-2090)가 있다. 여기서 더 걸어가면 예술영화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741-9782)가 연인들을 기다린다. 옛 허리우드 극장 자리의 아트선재센터에 있던 시네마 테크 전용관을 옮겨왔다. 삼일교 남쪽(명동) 방향에는 개봉작과 단편영화를 두루 볼 수 있는 중앙시네마(776-8866)가 있다. 직진하면 우리나라 소극장 공연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삼일로 창고극장(319-8020)도 보인다.1975년 개관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멘트를 펴바른 담벼락 아래로 연극인들의 추억들이 느껴진다.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도 있다. 광교를 기준으로 명동을 바라보면 애비뉴엘 건물에 롯데시네마(1644-8855)와 아바타 건물에 명동 CGV(1544-1122)가 있다. 마전교를 건너 종로쪽으로는 연강홀(708-5001)이, 지하철 2호선 동대문운동장역과 신당역 사이에는 충무아트홀(2230-6600)이 있다. 모두 뮤지컬·연극·클래식 등이 펼쳐지는 종합 공연장이다. 동대문 시장의 청대문(옛 프레야타운) 건물에는 MMC(2268-01111)가 있다. 씨네큐브 광화문(2002-7770)은 청계광장에서 충정로 방향 쪽의 흥국생명 지하에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 건물 외관에서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반긴다. 로비에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지하에 푸드코트가 갖춰져 있다. 로비에서 팝콘을 팔지 않아 영화 관람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 버들치·조팝나무 “날 보러 와요” ‘반갑다. 봄!’ 30년만에 찾아온 청계천의 봄을 가장 반기는 이들은 아마도 청계천의 나무와 꽃들과 물고기, 철새 등일 것이다. 콘크리트 더미에 떠밀려 도시를 등졌던 이들은 화사한 청계천의 봄을 만끽하고 있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심은 100여종의 나무와 꽃 이외에 바람을 타고 천변에 날아든 156종의 식물들이 청계천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다. 맑은 물 아래에는 각종 물고기가, 수면 위에는 긴 겨울을 지낸 새들이 날아와 따스한 봄볕을 즐긴다. ●봄꽃들의 현란한 꽃잔치 요즘 청계천에 가면 조팝나무에 하얀 꽃들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여기에 활짝 핀 빨간 진달래와 영산홍, 노란 개나리가 관람객을 맞는다. 키 1∼2m의 조팝나무는 꽃 핀 모양이 튀긴 좁쌀을 붙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조팝나무라 불린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한다. 조만간 청계천 가로변 5.5㎞구간에서는 900여그루의 이팝나무와 물가에 심은 노랑 꽃창포가 만개해 장관을 이룰 전망이다. 지난 연말 루미나리에 축제 때 화려한 전등이 내걸렸던 이팝나무들은 파란 잎과 하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물가에 심어진 백합목 붓꽃과 식물인 노랑 꽃창포의 꽃망울이 개천을 화려하게 장식할 전망이다. 담쟁이덩굴들은 가로변 담장을 타고 오른다. 덩굴손에 흡착근이 있어 담벽이나 암벽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아 회색빛 담장을 푸르게 바꾸어 놓는다. 마장2교에서 용답육교에는 매화거리가 330m 조성돼 있으며, 시점부에서 새벽다리 사이에서는 산수유와 산철쭉, 자산홍, 개나리를 볼 수 있다. 고산자교에서 신답철교 사이의 사과나무와 감나무도 이달 말부터 꽃망울을 터뜨린다. 하류인 고산자교 일대에는 바람을 타고 온 이름 모를 풀들의 현란한 잔치가 벌어졌다. 마디풀과 고들빼기 등 종수는 156종에 이르지만 일반인들이 이름을 알기란 쉽지 않다. 식물 중에는 다른 식물들에 해를 끼치는 위해식물들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돼지풀과 서양등록나무 등은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청둥오리등 동물 160여종 관찰 청계천은 정수된 한강물과 지하수가 흐르는 2급수 자연하천으로 1급수 어종인 버들치와 2급수 어종인 붕어, 참붕어, 메기 등 다양한 어종들이 살고 있다. 모전교에서 다산교까지 3.26㎞구간에 물고기 인공산란장 5개소와 물고기 쉼터인 거석 16개소, 거석수제 16개소, 목재방틀 20개소가 설치돼 있다. 이것들은 물고기들이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올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고 홍수 때에는 물고기들의 피난처로 쓰이게 된다. 버들치는 몸길이 8∼15㎝로 몸 한가운데 황갈색 세로띠가 있다. 몸은 길고 옆으로 납작하며, 주둥이가 길고 위턱 끝에서 앞쪽으로 튀어나온 육질돌기가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송사리는 몸길이가 5㎝정도로 몸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몸빛깔은 담회갈색을 띤다. 이 밖에 하류에 가면 메기와 잉어, 피라미, 미꾸라지, 갈견이, 버들치, 돌고기 등도 볼 수 있다. 찾아드는 철새들도 다양하다. 지난해 청계천에서는 황조롱이와 고방오리, 중대백로, 왜가리 등 34종의 조류를 포함해 족제비등 동물 160여종이 관찰됐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청둥오리. 몸길이는 50∼60㎝로 수컷은 머리와 목이 광택 있는 짙은 녹색이고 암컷은 갈색 얼룩이 있다. 집오리의 원종이기도 하다. 청계천관리센터 윤소원과장은 “청계천에는 다양한 동·식물들 서식처로 많은 생태가 점차 복원되고 있다.”면서 “이달 말부터 복원 뒤 처음 찾아온 봄 식물 등에 대한 모니터링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지역 명물’ 多 있네! ‘지방 명물들이 다모였네’ 청계천에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기증받은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북 상주시와 충북 충주시 등 12개 자치단체에서는 각 지역을 상징하는 나무와 꽃을 청계천에 기증했다. ‘곶감’으로 널리 알려진 상주시는 감나무 90그루를 기증, 신답펌프장∼마장 2교 제방에 심었고,‘사과’의 고장 충주시는 사과나무 120그루를 고산자교∼신답철교 제방에 심었다.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의 명소 충남 천안시는 능수버들 16그루를 다산교 하류 빨래터 양측 둔치에 심었으며, 창녕군은 청계천·중랑천 합류지점 호안습지에 갈대 3만포기를 기증했다. 경북 영주시는 산철쭉 5400그루를 오간수교간 둔치에, 경기 포천시는 구절초 2만포기를 살곶이공원 둔치에,‘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군은 대나무 260그루를,‘매화의 본고장’경남 하동군은 매화나무 250그루를 신답철교∼용답육교에 각각 심었다. 경북 성주군은 노랑꽃창포 39종 8430그루포기를 지난 15일 기증, 신답철교 하류 생태교육장 부근에 심었으며, 충남 부여군은 이달 말 차집관거∼세월교에 연꽃 300평을 기증할 예정이다. 이밖에 황학교 하류 소망의 벽 주변에 있는 돌하르방은 제주도에서 기증한 것이며, 두물다리 아래에 있는 경관석은 남해군에서 기증한 것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주차장·화장실 못찾아 불편하셨죠? 청계천을 찾을 땐 미리 주변 편의시설을 확인해두면 편리하다. 특히 화장실과 주차시설은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놓자.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라 청계천과 인접한 무료 주차시설은 거의 없다. 멀리 떨어진 공영 주차장이나 주변 건물의 부설 주차장, 사설 주차장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도심이다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한국관광공사 옆 노상주차장은 무료인데 자리가 9개 뿐이라 서둘러야 한다. 서울신문사 등 부설주차장은 24시간 운영하며 최초 30분은 2000원, 초과 10분당 1000원을 받는다. 오히려 성동구 마장동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주변에 주차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시설관리공단, 성북수도사업소, 동대문우체국 등이 모두 무료이기 때문이다. 청계천 주차장도 10분당 350원에 불과하다. ●무인 자동화화장실을 찾아라 청계천을 거닐다 보면 화장실 찾기가 녹록지 않다. 청계천변에서 올라와 표지판을 살펴보면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지정한 화장실이 눈에 띈다. 공단과 협약을 맺은 곳이라 화장실 이용을 거부하면 신고할 수 있다. 건물에 들어가기 껄끄러우면 무인 자동화화장실을 이용하자. 삼일빌딩, 한국전력변전소, 구 홍보관, 황학교, 고산자교, 성북천 등 7곳에 설치돼 있다. 이용료는 10분당 100원. 남녀공용이란 점이 불편하다. ●청계천 순환버스를 타자 청계광장에서 의욕적으로 출발해도 동대문운동장을 지날 때면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청계천 순환 2층버스를 이용하면 관광이 한결 편안하다. 다음달 4일부터 하루 5차례씩 왕복 14.6㎞를 오간다. 원하는 곳에 내려 구경하고, 다음 버스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다.2층에 앉으면 청계천 물길도 보인다. 관광 안내원이 청계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차내에서 관광영상을 보여줄 계획이다. 요금은 3000∼5000원선이 될 전망이다.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를 비치하고 있다. 청계광장 안내소와 청계천 2가 안내센터, 오간수교 등 3곳이다. 청계천 편의시설은 청계천 종합안내도(cheonggye.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4·19 함성 46년 뒤 새로 햇빛 조지훈 ‘혁명 헌시’

    4·19 함성 46년 뒤 새로 햇빛 조지훈 ‘혁명 헌시’

    “사랑하는 젊은 이들아/붉은 피를 쏟으며 빛을 불러 놓고/어둠 속에 먼저 간 수탉의 넋들아/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 늬들의 공을 온 겨레가 안다.” 1960년 5월3일 고려대 학보인 ‘고대신문’ 특집 통합호 1면에는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피 흘린 제자들에 바치는 스승의 헌시(獻詩)가 실렸다. 제목은 ‘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어느 스승의 뉘우침에서’. 이 시를 쓴 사람은 당시 문과대 교수였던 조지훈(1920∼1968) 선생이었다. 청록파 3인 중 한명으로 학생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선생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고려대생들의 4·18의거를 힘찬 어조로 소리 높여 찬양했다. 한국현대사의 한 자락을 장식하고 있는 이 시가 46년 전의 벅찬 감동과 흥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수학과 56학번 김문식(70)씨는 모교 박물관에 1960년 5월3일자 고대신문을 기증했다. 이 신문은 기존에 박물관에 있던 신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선명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시에는 어리고 기개 없다며 한심하게 여겼던 제자들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선봉역할을 한 데 대해 미안한 동시에 가슴 벅차게 자랑스러워 하는 스승의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선생은 “그날 너희 오래 참고 참았던 의분이 터져/노도와 같이 거리로 거리로 몰려가던 그때…사실을 말하면 나는 그날 비로소/너희들이 갑자기 이뻐져서 죽겠던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문학적 가치보다는 시대사적 의미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유가족과 학교의 애정이 더욱 각별하다. 지난해 박물관은 선생의 부인이자 서화가인 김난희(82) 여사에게 이 시를 서화로 만들어 주길 특별히 부탁했고 김 여사는 1년 넘게 공들여 대형 서화를 완성, 최근 기증했다. 학교측은 대형 서화와 5월3일자 신문을 한데 모아 특별전시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4년만에 재기 혼혈가수 박일준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4년만에 재기 혼혈가수 박일준

    떠남과 돌아옴이 무척 길었다. 그 간격에 켜켜이 쌓여진 고독과 시름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그랬다. 살면서 늘 떠나야 했다. 반기는 사람보다 멀리하는 사람이 많았다. 행복보다 참아야 하는 눈물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길의 유일한 친구는 술이었다. 술과 같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이제 웃는다. 새로 시작한다. 얼굴엔 술픔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채워진다. 진정한 행복도 알았기에 사랑의 정열도 생긴다. 노래를 부른다. 경쾌하고 빠르다. 사랑과 진실을 그리워한다.‘누구는 소주먹고/누구는 양주먹고/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할까/사랑과 진실은 실종된 지 너무 오래야/왜 왜 왜 왜 그럴까 말도 안돼’ 가수 박일준(52). 혼혈 고아 출신이다.1977년 ‘오 진아’로 데뷔해 ‘아가씨’ 등의 히트곡으로 많은 팬을 거느렸다.20대에겐 다소 낯설지만 지금의 30대 중반 이후에는 여전히 기억된다. 박씨는 91년 7집 앨범을 내고 팬들의 곁을 훌쩍 떠나버려 한동안 기억에서 멀어졌다. 이후 꼭 14년이 지났다. 최근 존재의 이유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 제2의 가수 인생을 시작한 것. 신곡 이름은 앞서 언급된 ‘왜 왜 왜’이다. 앨범 발표 소식은 지난해 있었지만 아직 시중에 내놓지 않았다. 우선 ‘가수 박일준’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궁금해진다. 앞으로의 음악활동과 대중과 멀어졌던 지난 세월이…. 또 혼혈로서 겪었던 많은 사연들,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에서 박씨를 만났다. ●신곡 ‘왜왜왜´ 양극화된 세상 풍자 먼저 신곡 얘기부터 나왔다.“노랫말처럼 양극화된 세상을 풍자하면서 빈부차이와 못 사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지요.”라고 설명했다. 친한 후배 형제가 작사(성주)·작곡(성현)을 하면서 권유한 것이 신곡 발표를 앞당기게 됐다고 부연한다. 이어 “원래 저는 쉽게 따라부를 수 없는 ‘팝쪽’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세월이 오래 가도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곡을 불러보자고 했어요.”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방송국에 찾아갔더니 알아주는 PD들이 없어 애를 먹었다.“중고신인이세요?”라는 말만 들어야 했다. 할 수 없이 지방공연부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박씨 자신이 직접 홍보물을 제작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재기’를 알리는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했다. 이같은 외로운 노력끝에 차츰 반응이 좋다는 소문이 퍼졌다. 최근에는 ‘가요무대’와 ‘가요큰잔치’ 등 전국 공중파 방송에도 얼굴을 내밀어 팬들과 만났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들어 각종 가요차트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아내와 같이 이번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위에서 ‘박일준이 다시 왔구나’ 하는 얘기를 들으니 행복해요. 모든 것이 고맙죠.” 그동안 노래와 멀어진 이유에 대해 “가수는 후속타가 없으면 서서히 잊혀져가지요.”라고 대답한다. 박씨는 81년부터 3년간 MBC의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인 ‘폭소대작전’에 출연했다. 코미디언 배일집씨가 운영하는 햄버거집 종업원 역을 맡았다.4일 연습하고 하루 녹화하다 보니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또 영화 ‘상한 갈대’ 등에 출연하다 보니 자연히 노래와 멀어졌다. 아차 싶어 신곡을 내려고 했으나 아무 곡이나 낼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공백이 생겼다. ●간경변으로 쓰러져 “살 확률 50%” 진단받기도 때마침 벌이는 사업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혼혈인으로서 사업을 이끌어가기가 정말 힘들었다. 자연히 술만 퍼 마셨다.4년전 어느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간경변으로 식도정맥이 파열됐던 것. 병원에서 살아날 확률이 50%라는 얘기를 들었다. 식구들이 막 울자 “그러면 나보고 죽으라는 얘기냐.”고 하면서 밝게, 또 밝게 마음을 먹었다. 몇달간 입원끝에 다행히 호전돼 퇴원할 수 있었다. 이때 가수의 길을 다시 걷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박씨는 “열다섯때부터 술을 마셨어요.”라고 고백한다. 혼혈이라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늘 혼자 있게 만들어 술에 의지했다. 이렇게 말못할 스트레스를 혼자 떠안고 30년 넘게 술을 마시다 보니 죽음 직전까지 갔던 것. “다시 살아났기에 식구나 모든 사람들이 고맙게 여겨지더군요. 가수로서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고 다짐했지요. 용서하는 마음도 아울러 생겨났습니다. 조금 전 인터뷰하러 오는 도중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어요. 가해자가 젊은 친구였는데 화를 내지 않고 대신 ‘일진이 안 좋으니 조심해서 운전하라’고 타일렀지요.” 부인과도 새로 연애하는 기분이 든단다. 남편이 잘나가던 과거에는 그저 돈을 벌어오는 수준으로 생각했으나 신곡을 준비하면서 같이 발품팔고 고생을 하다 보니 진정한 동반자로 거듭 태어났다며 웃는다. ●代이어 놀림받던 아들 9년간 미국에 보내 박씨는 아들과 딸, 자식 둘을 두었다. 아들이 미국에 가 있지 않으냐고 했더니 “얼마전 9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정말 보내고 싶지 않았거든요.”라고 한맺힌 듯 말꼬리를 흐린다. 잠시 먼 곳을 응시하더니 “제 아들도 파키스탄이나 인도인, 동남아쪽 사람처럼 생겨 초등학교때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어요.”라고 말을 이었다. 박씨 자신도 어렸을 적부터 혼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지낸 터에 아들한테도 똑같이 벌어지자 더는 참지 못했다. 결국 미국 뉴저지에 사는 지인에게 부탁, 아들을 그곳에 등 떠밀듯 떠나보냈다. 세월이 지나 아들이 커서 현지 대학에 진학하자 “얘야, 이젠 견딜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귀국시켰다. 아들은 목사가 되려고 현재 모 신학대 4학년에 재학중이다. “곁에 두어야 할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장애인이 따로 없어요. 혼혈이라는 편견으로 멀쩡한 사람이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갑니다. 정말이지 우리 대(代)에서 모든 것이 끝나야 합니다.” 박씨는 6·25전쟁이 끝난 직후 54년에 태어났다. 미군이 돌아가면서 아버지도 미국으로 건너갔고 박씨는 세살 때 친어머니에 의해 고아원에 맡겨졌다. 어렸을 때부터 얼굴이 검어 ‘연탄’으로, 머리가 곱슬이어서 ‘라면’이란 별명으로 늘 놀림의 대상이었다. 이후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양부모는 박씨가 가수로 성공을 거둘 무렵인 70년대 후반 세상을 떠났다. 다시 혼자가 된 박씨는 결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혼혈이란 이유로 거절당한다. 예비 장모가 워낙 완강하게 반대했다. 고민끝에 ‘임신작전’을 썼다. 하지만 예비 장모는 “그래도 안 된다. 애를 떼라.”며 성화가 대단했다. 할 수 없이 예비신부가 산부인과 병원에 갔으나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그냥 돌아오는 바람에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처음 낳은 자식이 아들. 장모는 손자를 무척 사랑했다. 미국에 갈 때에도 직접 따라가 온갖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박씨 역시 25년동안 장모(지난해 작고)를 친어머니처럼 극진히 모시고 살았다. 박씨 자신의 팔자에 모두 다섯 부모를 둔 셈이다. “워드가 한국에 왔을 때 워드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봤어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 모습이었어요. 저의 친어머니도 아마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워드로 인해 혼혈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냄비처럼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식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베트남의 혼혈아 위한 사업 하고파 혼혈이라는 말은 우리 민족의 슬픔인 6·25전쟁이 있었기에 생겨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남들과 똑같이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죄를 지은 것처럼 차별과 편견의 굴레속에서 살아야 하느냐고.“내 것은 소중하고 남의 것은 장난을 쳐도 되는 건가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박씨는 혼혈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방법을 제시한다. 부모와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쟤 하고 놀지 마라. 시커멓게 된다.’가 아니라 ‘쟤 하고 놀면 영어도 배우고 재미있거든’하고 유도해주면 된다는 것. 이어 “농촌 총각들이 왜 베트남 처녀와 결혼합니까. 우리가 안 봐주기 때문이죠. 자연히 혼혈이 생겨납니다. 늘 내 생각만 하는 쪽으로 가면 안 돼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아닙니까.”라고 호소한다. 박씨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가수의 길만 걷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베트남의 혼혈아들을 위한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베트남 전쟁으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그들을 한국으로 초청, 서로 부둥켜 안고 반쪽 모국인 한국을 이해시키는 일이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4년 서울 출생 ▲77년 ‘오 진아’로 가수 데뷔 ▲79년 ‘잘가요’ 발표 ▲80년 ‘아가씨’ 발표 ▲81년 ‘누나야’ 발표 ▲81∼83년 코미디프로 ‘폭소대작전’ 출연 ▲84년 영화 ‘상한 갈대’ 출연 ▲83년 ‘너는 지금 어디에’‘닻’ 등 발표 ▲91년 ‘가 가지마’‘사랑은 3.14’ 등 발표(7집 앨범) ▲2005년 9월 신곡 ‘왜왜왜’ 등 8집 앨범 제작 ▲06년 지방공연 및 방송활동 재개
  • [연극]

    봄날은 간다-7일∼5월28일 축제소극장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 모여 피붙이보다 더 진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가족의 이야기.2002년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최창근 작·연출, 장영남, 이용이, 박상종 출연.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3시·6시.1만 5000∼2만 5000원.(02)741-3934. ■ 매직타임 16일까지 화∼금 7시30분, 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6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햄릿’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분장실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뒷모습. 박광정 연출, 이대영 김중기 등 출연.1만∼2만원.(02)743-7710. ■ 일주일 6월4일까지 화∼일 7시30분 배우세상소극장. 살인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4명의 젊은이들이 겪는 일주일간의 상황. 고연옥 작·박근형 연출, 홍성인 김진용 등 출연.8000∼1만 2000원.(02)743-2274.
  • [인간시대] 자원봉사자 이춘희 할머니

    [인간시대] 자원봉사자 이춘희 할머니

    “일하다 보면 가끔 고맙다고 간식거리를 내놓지. 그럼 받지 않아. 도와주러 가서 오히려 폐를 끼치면 안되지.” 할머니는 독거노인들과 서로‘형님’‘아우’라 부르며 허물없이 지낸다. 목욕을 같이하고, 때론 함께 목놓아 울며 마음을 나눈다. 식음을 전폐한 노인들에게 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자고 다독인다. “형님, 죽는다는 소릴 왜 자꾸해. 그 힘으로 벌떡 일어나야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오래 살아서 뭐해.” 야무진 손끝으로 다리를 주무르던 자원봉사자 이춘희(71) 할머니가 독거노인의 배쪽으로 손을 뻗더니 간지럼을 태운다. “왜 이려∼.” 누워 있던 노인은 싫지 않은 듯 손을 뿌리친다. “형님한테 벌주는 거여. 왜 이렇게 속을 썩여.” 두 할머니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정겹다. ●20여년 활동… 용산구 자원봉사센터 ‘대모´ 이 할머니는 용산구 자원봉사센터의 대모(大母)다. 활동한 지 20년이 넘은 터라 자원봉사자 100여 명이 어머니처럼, 할머니처럼 그를 따른다. 크고 작은 자원봉사 모임에 빠짐없이 나와 진두 지휘한다. “나이 들어 주책이라고도 말하지만, 내가 행복한 걸 뭐.” 할머니는 ‘프로답게 봉사하라.’고 가르친다. 내일 쓰러지더라도 오늘은 몸 바쳐 일한다는 각오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와주러 갔으면 똑 소리나게 일 해야지.‘야, 저 사람들 몇 만원짜리 일꾼보다 훨씬 낫다.’이런 소리를 들어야지. 왜 공짜라고 대충하려고 하나.” 어영부영 일했다가는 할머니의 잔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할머니가 솔선해 일하니 젊은 봉사자들이 힘들다고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단다. ●“마음 약해져 몸이 아픈 거니까 희망을 심어줘야 해” 할머니는 또 음료수와 과자, 빵 등을 가방에 싸갖고 다닌다. 봉사하다 지치고 목마르면 먹기 위해서다. “일하다 보면 가끔 고맙다고 간식거리를 내놓지. 그럼 받지 않아. 도와주러 가서 오히려 폐를 끼치면 안되지.”그러나 활동이 끝나면 젊은 봉사자들을 음식점으로 데려가 밥을 사준다고 자원봉사센터 직원이 귀띔했다. 일할 때는 엄한 어른이지만, 평소에는 살가운 할머니 그대로다. 할머니는 독거노인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형님’‘아우’라 부르며 허물없이 지내기 때문이다. 목욕을 같이하고, 때론 함께 목놓아 울며 마음을 나눈다. 식음을 전폐한 노인들에게 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자고 다독인다. “희망을 불어 넣어 줘야 해. 몸이 아픈 것도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 거거든. 세상이 참 재미나다는 걸 알려서 악착같이 살도록 해야지.” ●말기 암환자에겐 ‘남은 시간´ 정리토록 조언 그의 따뜻한 위로와 야단에 힘을 얻어 오랜 병석에서 떨쳐 일어나는 어르신도 종종 있다. 반대로 암환자를 돌볼 때는 마지막 시간을 잘 정리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암환자를 많이 만나니까 느낌이 오더라고. 병 수발을 들어주다 때가 가까이 왔다 싶으면 얘기해 주지. 이제 갈 준비를 하라고….” 수개월간 환자와 먹고 자며 체득한 감각이다. 그러면 할머니의 충고에 죽음을 두려워하던 환자가 서서히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생을 정리한단다. “가기 전에 고맙다고 그러지. 다들 쉬쉬하는데 형님이 준비하라고 알려줘서 다 정리할 수 있었다고. 그럼 맘이 짠해.” ●대부분 저소득… 염습 등 궂은일 직접 맡아 환자 대부분이 장례 비용도 넉넉하지 않은 저소득층이라 염습도 할머니가 직접한다.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수개월간 형제처럼 지낸 사람들인데, 무슨….”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요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일에 지나치게 무관심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몇 달 전에 지하철 플랫폼에서 발생한 일이다. 밤 11시쯤 할머니가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20대 청년이 술에 취해 들어오는 전철에 머리를 다쳤단다. 청년은 그대로 나뒹굴었다. 할머니가 달려가 쳐다보니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소리를 질러댔지. 사람 살리자고. 피 흘리는 사람이 있는 데도 도와줄 생각 없이 다들 지하철을 타더라고.” 지하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청년을 간신히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에서도 보호자로 등록해 치료를 받도록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까 밤 1시가 훌쩍 넘었단다. “뭐가 그리 급한지. 뭐 때문에 그리 바쁜지….” 할머니는 답답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행복이 별거야, 건강·끼니 걱정없고 맘 편한 거지” 할머니의 ‘열혈봉사’에 가족들은 어떤 반응일까. “내가 복이 많아요. 며느리들이 손자, 손녀를 다 키우니까 집에서 할 일이 없어. 다들 내 직업이 자원봉사라고 알고 있지.” 할머니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할아버지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게 아쉬울 뿐이란다.“행복이 뭐 별거야. 몸 건강하고, 끼니 걱정없고, 마음 편안하고. 세상에 진 빚만 더 갚고 갔으면 좋겠어.” 할머니는 처음에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별 일도 아닌데 언론에 오르내리면 봉사하기만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기자가 ‘딸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해준다고 생각해 달라.’고 간청하자 마지못해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여느 어머니처럼 다정한 반말로 삶의 지혜를 들려줬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정려원 “해피 바이러스 퍼뜨릴래요”

    정려원 “해피 바이러스 퍼뜨릴래요”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싶어요.” 가수에서 연기자로 완전 전업한 정려원에게 2005년은 즐겁고도 쓰라린 한 해였다.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최고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한 축을 담당하며 연기자로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 ‘가을 소나기’에서 끝없이 추락했다. 적어도 숫자를 따지면 말이다. 그녀를 향한 첫 질문은 역시 지난해 롤러코스터 분위기에 대해서였다. 정려원은 “마음을 최대한 비우고 있다.”면서 “노력하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연기하는 자체가 너무 좋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과분한 ‘선물’을 받고 있다는 설명. 거기에 시청자 사랑까지 받는다면 덤으로 주어지는 ‘보너스’라고 했다. 그저 열심히 노력할 뿐이라며 다소 짧아진 머릿결을 쓸어올렸다. 모든 시청자들을 전부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며 정신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비추기도 했다. 13일부터 시작하는 MBC 새 월화미니시리즈 ‘넌 어느 별에서 왔니’(연출 표민수, 극본 정유경, 제작 김종학프러덕션)에서 이혜수와 김복실,1인 2역을 맡았다. 젊은 영화감독 최승희(김래원)와 연인이었던 부잣집 딸 혜수는 첫 회에 자동차 사고로 숨진다. 복실은 혜주의 친동생이지만 곡절 끝에 강원도 산골에서 자라난 밝고 털털한 처녀. 승희는 우연히 복실을 만나게 되며 아픔을 보듬게 된다. 정려원이 이번 작품을 선택하게 된 배경은 복실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자신의 인생 목표와 닮았기 때문.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한 기운을 퍼뜨리는 게 그것이다. 마치 맞춤형 옷을 입게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자신의 반쪽과도 같은 복실이를 연기하며 팬들에게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싶다는 바람이다. 복실은 강원도 산골에서 자라난 캐릭터. 때문에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등을 보며 사투리 연습도 많이 했다. 실제 촬영장에서도 사투리 대사 때문에 배꼽 잡을 정도로 웃음꽃이 피었다고. 하지만 코믹 분위기로 흐를 것 같아 그냥 평범한 대사 톤으로 가기로 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주 앞서 시작한 KBS ‘봄의 왈츠’와 경쟁해야 한다. 이 작품에는 ‘내 이름은 김삼순’을 같이 했던 다니엘 헤니가 나온다. 헤니나 현빈, 김선아 등과 가끔 통화나 문자로 격려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현빈이 무슨 드라마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본방은 ‘넌’를, 재방은 ‘봄’를 보라고 했다.”며 웃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한승원 토굴살이] 꽃들의 사업

    [한승원 토굴살이] 꽃들의 사업

    나의 92세 노모께서 강건한 ‘늙은이’이므로 그분의 아들은 예의상 싱싱한 ‘풋 늙은이’여야 한다. 나이 들면서 일과 꽃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집착이고 탐욕인지도 모른다. 꽃을 보면 허기진 듯 코를 대고 향을 맡곤 한다. 색을 밝히는 남자들은 사랑해야 할 여인이 없으면 꽃이라도 희롱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꽃을 탐하는 것은 무어라 흉허물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을 꽃들의 사업 사랑하기라고 말한다. 꽃 한 송이 피는 것을 보고 우주의 변환을 헤아린다. 꽃들이 하는 사업처럼 화사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우주 율동의 원리에 따라 천하 인민들에게 베푸는 것을 사업이라 한다.’고 주역은 말한다.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살이를 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실사구시적인 글쓰기가 사업이었다. 사업을 통해 정심(깨달음)에 이르곤 하신 그분의 한 권 한 권의 결과물들은 거대한 꽃 타래이다. 꽃들의 사업은 열정으로 자기를 불태우듯이 터뜨리는 것이고, 세상을 황홀하게 장식하는 것이고, 향기 퍼뜨리고 꿀벌에게 화분 주고 꿀 주고, 열매 맺어 번식한다. 세상을 온통 자기 꽃으로 덮으려 하고, 자기가 언제 떨어져 썩어 없어질 것인가를 알고 스스로 땅에 떨어진다. 꽃은 사람으로 치자면 생식기인 것인데, 사람의 그것과는 정 반대쪽에 향기롭고 화사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자기의 꽃을 몸의 아래 땅 쪽(陰)의 깊숙한 옷 속에 감춘다면 그들은 몸 위의 하늘(陽)을 향해 드러내어 장엄하다. 나무의 뿌리와 사람의 머리털은 모양새가 비슷하다. 뿌리는 땅 속에 숨어 영양소를 빨아들이고, 머리털은 하늘 쪽으로 뻗어 신령스러움을 빨아들인다. 식물과 사람은 정 반대의 삶을 살면서 서로 교통하고 교감한다. 가장 불가사의한 것들은, 초봄에 잎사귀보다 먼저 꽃을 터뜨리는 족속들이다. 상식적으로는 줄기와 잎사귀들이 나온 다음에 꽃을 터뜨리는 순서여야 하는데, 그들은 발가벗은 몸으로 겨울철을 보낸 다음 꽃망울을 키웠다가 펑펑 터뜨린다. 입춘 훨씬 전, 눈보라 치는 소한·대한 때부터 나는 매화나무 산수유나무의 꽃망울들을 살피며 기다려왔다. 시인 김영랑이 한 해의 모란꽃잎 떨어져 시드는 5월의 어느 날부터 다음해 그 꽃 피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내내 기다렸듯이. 내 기다림에 보답하듯 매화나무는 입춘이 지나면서부터 좁쌀만하던 꽃망울들을 참새의 검은자위만하게 키우고 다시 녹두알만하게 키우고 콩알만하게 키웠다. 그리고 바야흐로 폭죽처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내 토굴 앞 정원의 매화 꽃망울 커지는 것을 보면서 한 원로 영화감독의 사업을 생각한다. 소설가에게는 소설쓰기가 사업이고 영화감독에게는 영화 찍는 일이 사업이다. 사람이 치열하게 자기 사업을 하면서 영육을 소진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행운인가. 또 그 사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불행인가. 나는 살아 있는 한 내 사업을 할 것이고 사업을 하는 한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사업을 하지 않는 나의 생물학적인 생명은 무의미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가 찍으려 하는 영화가 돈이 안 될 것이라며 처음의 제작사가 매정하게 그를 배반했을 때,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각박한 인심에 분노하고 슬퍼했었다. 그런데 감격적이게도 그는 다른 제작사의 도움으로 그 영화를 다시 찍게 되었고 그의 영화는 천년 동안을 기다려 온 신화 속의 학처럼 비상을 꿈꾸고 있다. 청매화 꽃망울들은 가장자리가 진한 옥색으로 변하고 홍매화 꽃망울들은 붉은 빛을 띠고 있다. 그의 마음은 지금 광양의 매화 꽃 지천으로 피는 마을에 가 있을 터이다. 젊은 시절에 그가 영화 찍는 것을 따라다니며 구경한 적이 있다. 그는 한 장면을 찍기 위하여 하루 혹은 며칠을 허비하곤 했다. 허비한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찍을 대상에 내리는 빛과 어리는 그림자가 마음에 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한 차례 봄비가 내린 다음에는 날씨가 연일 따스할 거라고 한다. 올해의 매화꽃들은 넉넉하게 그의 사업을 도와주는 향기로운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매화 꽃망울들아, 그의 천년학의 비상을 위해 한사코 곱고 예쁘게 터져라.
  • 프랑스 질주 토고 후퇴 스위스 주춤

    독일월드컵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G조에서 동상이몽을 꿈꾸는 4개국의 준비 상황은 자못 다르다. 한국대표팀이 8차례의 평가전을 통해 ‘옥석고르기’에 분주한 동안 프랑스와 스위스는 첫 단추조차 꿰지 못했다. 유럽리그가 한창이어서 대표팀 소집이 불가능했기 때문. 토고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했을 뿐 월드컵을 겨냥한 본격 평가전은 갖지 못했다. 하지만 유럽 빅리그에서 뛰고 있는 3개국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대표팀 합류를 벼르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는 ‘부동의 투톱’ 티에리 앙리(아스널)와 다비드 트레제게(유벤투스). 앙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15골(2위), 트레제게는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18골(2위)을 폭발, 건재를 뽐내고 있다. 여기에 칼링컵에서만 5골(1위)을 터뜨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우승으로 이끈 루이 사하도 상승세다. 프랑스는 국제축구연맹(FIFA) 공인 ‘A매치데이’인 새달 1일 슬로바키아전을 시작으로 5차례의 평가전을 갖는다. 특히 오는 6월 잇따라 열리는 사우디아라비아(4일), 중국(7일)전은 한국을 겨냥한 ‘맞춤 예비고사’ 성격이다.스위스는 지역 예선에서 7골을 터뜨렸던 간판 골잡이 알렉산더 프라이(렌느)가 사타구니 수술을 받고 12주 이상의 재활이 필요해 빨간불이 들어왔다. 본선 진출후 첫 평가전인 새달 1일 스코틀랜드전을 앞둔 야콥 쿤 감독은 지난해 세계청소년(20세 이하)선수권에서 주축을 이뤘던 ‘젊은 피’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지역예선에서 4골,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에서 5골을 터뜨린 ‘신성’ 요한 볼란텐(NAC 브레다)과 ‘중원의 핵’ 요한 보겔(AC밀란), 장신수비수 필리페 센데로스(아스널) 등이 리그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고 있다. 스위스는 스코틀랜드전에 이어 5월27일 토고를 겨냥, 코트디부아르와 평가전을 갖는다. G조 4개국 가운데 토고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올들어 치른 5차례 A매치에서 1승4패(3득점 8실점)로 부진, 본선 진출국답지 않은 허점을 노출했다. 토고는 향후 평가전 일정조차 잡지 못해 독일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폼나는 스포츠카 미니어처야 유모차야

    폼나는 스포츠카 미니어처야 유모차야

    ‘페라리형 유모차, 초경량 유모차, 은사 원단 유모차….’ 아이와 함께 봄 나들이를 할 때 필수품인 유모차. 천과 플라스틱으로 된 자리에 바퀴 네 개가 달려있는 모습만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요즘 유모차들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나온다. 스포츠카 디자인을 적용한 제품부터 웰빙 소재로 만든 것까지 선택의 폭이 매우 넓어졌다. ●넓고 가벼우며 등받이 각도 조절되는 ‘혼합형’ 각광 유모차는 크게 ‘딜럭스형’과 ‘휴대형’으로 나뉜다. 딜럭스형은 차체가 넓고 등받이 각도를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어 목이나 허리를 못 가누는 갓난아기도 사용할 수 있지만 무겁다. 휴대용은 접기 편하고 가벼운 대신 기능이 단순하고 시트도 좁다.㈜아가방 육아연구실 황은경 실장은 “아이가 허리를 완전히 가눌 수 있을 때는 햇빛 가리개 정도만 있는 가벼운 휴대용 유모차가 좋지만, 생후 10개월 이전의 아기는 등받이가 완전히 펴지는 일반형이 알맞다.”고 말했다. 또 “아기 허리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휴대용 유모차에는 1시간 이상 계속 태우지 않도록 하고 일반용 유모차라도 2시간을 넘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최근 새롭게 나온 ‘혼합형’은 휴대용과 딜럭스형의 장점을 섞었다. 가볍고 다루기 편리하게 만들었고 등받이 조절 기능(2단)을 첨가했다. 실용적이어서 가장 선호되고 있다. 유모차를 고를 때는 시트 등받이와 좌석이 튼튼한지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항균 처리가 됐는지, 분리 세탁이 가능한지도 살핀다. 차양이나 시트를 나중에 별도 구입해 교체할 수 있는지도 알아봐야 한다. 바퀴의 지름이 크고 바퀴 사이 간격이 넓으면 흔들림이 적다. 부모의 키에 맞춰 손잡이 높이가 조절되면 편리하다. 안전을 위해 다리 벨트가 있는 제품을 고르도록 한다. 벨트의 아기 피부가 닿는 부분을 천으로 감쌌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페라리 자동차형·초경량형·은사 사용 웰빙형등 다양 봄 나들이를 할 때는 자외선 차단 기능, 활동성과 안전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아가방(02-527-1430~2)의 ‘캣츠 조거’유모차(43만원)는 삼륜임에도 앞 바퀴를 두 개로 이어 안전성을 강화했다. 격하게 움직여도 아기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됐다. 젊은 부모들이 유모차를 고를 때 특히 신경쓰는 부분은 디자인이다. 스포츠카 페라리의 디자인을 적용한 아프리카(02-2058-2361)의 ‘아이 투 아이 페라리’(65만 9000원) 유모차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끈다.‘아가방 리미트 유모차’(17만 9000원)는 반짝거리는 회색에 오렌지 색으로 포인트를 줘 색깔이 튄다. ‘은사원단’을 사용해 아기 피부 보호에 역점을 둔 제품도 있다.㈜소예(031-740-4431)의 ‘클로버웰빙’(24만원)은 항균·방취효과를 강화한 소재를 사용했다. 자외선과 적외선을 반사시키는 단열효과와 열의 방출을 차단하는 보온 효과도 훌륭한 편. 장애아동을 위해 개발된 맥클라렌(02-3463-8101)의 ‘메이저 엘리트’는 특수 알루미늄을 사용해 튼튼하다.60㎏이 넘는 장애 아동이 타도 편안하게 운행할 수 있다.1∼15세까지 탈 수 있도록 설계했다. 가격은 63만 5000원. ●깔개 깔아 사용하면 오래 사용, 고장은 그때그때 손질 유모차를 오래 사용하려면 타월이나 얇은 누비 깔개 등을 시트 위에 깔고 사용하는게 좋다. 시트에 한번 곰팡이가 피면 없어지지 않으므로 장마철이나 보관시 특히 주의해야 한다. 또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을 때에도 망가진 곳은 미리 수선을 받아 두는 것이 좋다. 육아 기구는 모델이 자주 바뀌어 부품의 보유기간이 2∼3년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아기생명’ 카시트 우수제품 어디에? 아이와 차를 타고 외출할 때 ‘아이용 카 시트’를 챙기는 것은 의무다. 지난 1월6일부터는 6세 미만의 아이를 보호용 장구없이 태우면 3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되고 있다. 그러나 안전하고 가격도 저렴한 아이용 카 시트를 고르는 일은 만만치 않다. 가격대 별 카 시트의 특징을 간단하게 소개한다. 10만원대 제품 중에는 불연성 소재를 사용한 ㈜순성산업의 ‘코스모스 카 시트’(15만원)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무게가 4.5㎏으로 가볍고 물빨래가 가능하다.(080)078-7811. ㈜이에프이의 ‘스위트 카 시트’(15만 8000원)는 강한 충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벨트가 잠긴다. 흡수와 건조가 빠른 기능성 원단을 사용해 땀이 많은 아기들을 배려했다. (080)078-7811. 20만원대로는 아가방의 ‘엘리펀 카 시트’(21만원)가 있다. 머리를 보호하는 머리 받침대를 코끼리 캐릭터로 디자인해 아이들이 친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02)527-1430∼2. 30만원대로 올라가면 기능성을 강화한 제품이 많다. 에뜨와의 ‘코모 카 시트’(33만원)는 기본 시트 안쪽에 추가 시트가 달려 있어 푹신푹신하다.(02)527-1430∼2. 브라이택스 ‘맥시라이더’는 아이가 허리벨트 밑으로 미끄러져 빠져 나오거나 머리가 허리벨트에 끼이는 사고를 방지하도록 고안됐다. 생후 10개월정도부터 8세까지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 가격은 38만 5000원이다.(02)3463-8101.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이현세 만화경] 표범, 그 위대한 인내심과 품격

    [이현세 만화경] 표범, 그 위대한 인내심과 품격

    어느새 친구의 아들들이 군에 가는 나이가 되었다. 가끔 술자리에 모이면 군대 얘기가 안주가 된다. 군에 보내서 기어코 고생을 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어제의 육군 병장들이 막상 때가 되니 걱정되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걱정도 되고 궁금도 해서 얼마 전에 만화학과 제자들과 함께 전방 GOP 경계체험을 갔다. 한마디로 군대는 좋아졌다. 내무반은 일인침대와 휴게실로 꾸며져 쾌적했고, 목욕탕과 도서관도 만족스러웠으며 구타는 없어졌다. 이 세상 어떤 조직보다 사고율만 따져도 아들을 맡기기에는 가장 안전한 곳이 군대였다. 하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여전히 힘들고 괴로운 곳이다. 몇 년 전에 군대를 소재로 한 만화 ‘까치병장’을 제작한 적이 있었다. 군대얘기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영화·연극·드라마·문학 작품들이 그렇듯이 내가 그린 ‘까치병장’ 역시 낯선 조직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야기되는 갈등관계가 주요 소재였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에 교훈을 담아냈다. 그런데 이번 GOP 경계체험에서 경계근무도 같이 서고, 대화시간도 가지면서 두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 하나는 여태껏 ‘문화상품의 소재로 주목받을 수 없었던 극적인 생활양식의 발견’이다. 영하 20도의 야밤, 전방의 철책선은 웅웅대며 울고 있었고, 가로등의 희뿌연 불빛 사이로 함박눈은 쏟아졌다. 이곳에서 GOP 근무 장병들은 해지기 전에 경계근무에 투입되어 날이 밝을 때까지 겨우 서너시간 쪽잠을 자가며 매일 똑같은 일상을 일년이나 반복한다. 이 장병들의 생활이야말로 젊은 시절 가장 혹독하고도 가장 극적인 삶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군인들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은 대개 충성과 명예, 용기 등이 차지했지만 이것은 어쩌면 극적인 소재만을 좇는 대중문화가 만들어 낸 순위 조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군인의 자질을 가진 병사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다수의 작가들은 서슴없이 ‘네팔의 구르카 용병’을 꼽는다. 강철처럼 단련된 신체, 올빼미에 견줄 만한 시력, 거기에다 물불 가리지 않는 용맹성까지. 그러나 대다수 작품들이 놓치고 있는 구르카 용병들의 가장 우수한 자질은 ‘인내심’이다. 한번 매복을 명 받으면 폭우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몇날 며칠이고 움직이지 않고 적의 움직임을 찾아 전방을 주시한다. 이 인내심이야말로 구르카 용병을 최고라고 칭하게 하는 최고 요인이지만 이 덕목은 극적 요소로 전환이 어려워 작품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군인의 최고 덕목은 인내심이고,GOP의 장병들은 극한의 인내심을 요구 받는다. 반대로 사회에서 소위 조직폭력에 몸 담았던 자원이 대체로 군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통계가 있었다. 그 이유는 체력이나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하는 ‘인내력 부족’이었다. 또 한가지 발견은 군에 오기 전에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하여 문화 예술을 접하기 어려웠던 병사들이 군에 와서도 문화적 인프라 부족 탓에 역시 문화예술과는 담 쌓고 사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젊은 장정들에게 주고 싶은 소프트웨어는 너무나 많지만 도서관이나 공연장, 전시장 같은 하드웨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곳이 병영이었다. 장병들은 우리 모두의 젊은 아들들이며 ‘군복 입은 시민’이다. 우리사회의 미래는 청년들의 몫이고,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왜곡된 가치관과 문화적 미성숙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병영에서 모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젊은 피와 탄력있는 육체를 가진 장병들을 생각하며 눈을 감으면 아름다운 표범이 보인다. 표범이라면 흔히 아름다운 점박이 무늬와 잘 빠진 몸매, 그리고 앙칼진 성격과 날카로운 발톱을 생각하고 가끔은 제 덩치보다 더 큰 사슴을 나무 위까지 물고 올라가는 힘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표범을 생각하면 먼저 단 한번의 사냥에 모든 것을 걸고 몇날 며칠을 위장하고 풀숲에 숨어서 먹이를 노리는 표범의 노란 눈이 생각난다. 내게는 바람도 숨을 죽이고 있는 그 침묵의 인내심이 표범이다. 그리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이에나처럼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 그 우아한 품격이 표범이다. 한때 한국의 모든 야산을 주름잡고 포효하던 표범은 지금은 철책선 남방 아래에는 한 마리도 없다. 옛날 표범과 함께 살았던 우리 조상 중 누구 하나가 표범의 종말을 알았을까. 앞으로 군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할 기회가 있다면 군의 덕목 중에는 인내심이 최고라고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범국민운동’으로 병사들이 좀더 많은 문화·예술 환경을 접할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해야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분명 GOP의 장병들은 ‘극한의 인내심’속에 생활하고 있고 병영체험을 하러간 학생들은 그 인내심을 경이와 존경의 눈으로 봤다. 장병들은 단절된 바깥세상의 문화예술을 그리워했고, 나와 함께 간 학생들은 집중력과 인내심을 배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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